- 법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결제는 '채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다. 채무 를 이행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고 '1파운드의 살점'을 내놓을 수 도 있을 테고, 튤립 투기가 한창이었던 시기라면 튤립 구근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상황에서 채무를 이행하려면 돈 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법정 통화, 즉 현금 말이다. 물론 그렇 다고 해서 상인들이 무조건 100달러짜리 지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상인들도 얼마든지 현금을 거부할 수 있다. 단지 100달러짜리 지폐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라는 뜻 이다.
-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의 단편 소설 『백만 파운드 지폐The Million Pound Bank Note』에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 헨리 애덤스는, 세상에 단 하나뿐 이며 엄청난 고액이라 다른 현금으로 바꿀 수도 없는 100만 파운드 짜리 지폐를 가지고(하지만 실제로 그 돈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30일을 살아낸다. 현실에서는 내가 가진 현금을 누군가에게 주지 않고 결제 가 이뤄지는 상황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단순한 경제라면, 개념적으로는 실제 현금을 전달하는 행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대신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졌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기억해야 하며, 언젠가는 주고 받아야 할 채무들이 서로 상쇄될 것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 실제 현금의 이동 없이 모든 채무가 해소되는 가상의 사례를 상상해 보자. 어느 작은 섬에 있는 호텔을 찾은 관광객이 100달러짜리 지폐 로 호텔비를 선불로 결제한다. 호텔 주인은 관광객이 낸 100달러짜 리 지폐로 정육점 주인에게 진 빚을 갚고, 정육점 주인은 다시 그 돈 으로 농부에게 진 빚을 갚고, 농부는 정육점 주인에게서 받은 돈을 트랙터를 고쳐준 정비소 주인에게 주고, 정비소 주인은 지난달에 딸 의 결혼식 장소를 빌려준 호텔 주인에게 그 돈을 준다. 이 모든 과정 이 끝난 후 관광객이 호텔 프런트에 나타나 마음이 바뀌었다며 호텔 에 투숙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호텔 주인은 관광객에게 100달 러를 돌려주고 관광객은 떠난다. 관광객이 등장하기 전과 달라진 것 은 없다. 다만 섬에 존재했던 모든 빚이 청산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다.
위와는 반대로 빚을 갚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자. 정육점 주인이 농부에게 진 빚을 갚지 않으면 농부는 정비소 주인에게 돈을 갚을 수 없고, 이런 식의 문제가 연달아 발생한다. 머지 않아 섬 전체가 완전한 혼란 속에 빠지고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크건 작건 오늘날의 모든 경제는 다원적이고 복잡하며 서로 연결 돼 있다(물론 북한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방금 언급한 섬의 시스템은 너무 단순해서 우리 사회에 통용되긴 어려울 테지만 결제 방식 자체는 우리 사회에도 얼마든지 적용된다.
- 결제가 어떻게 진화할지 이해하기 위해 애초에 결제가 어떻게 생 겨났는지 살펴보자. 전통적인 경제 이론은 결제 수단인 통화가 구체 적인 형태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는 모든 재화를 거래할 때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하나의 진 귀하고 가치 있는 상품을 엄선해 물물교환의 방식을 단순화했다. 조개껍데기나 금과 같은 상품 화폐는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즉, 상품 화폐는 부채가 아니라는 뜻이다(바로 다음에서 설명하겠지만, 화폐를 부채의 일부로 간주하고 부채가 악의 근원이라 믿는 사람들은 상품 화폐의 장점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화폐의 기원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 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같은 인류학자들은 부채가 화폐보다 먼저 생겨났으며 대부분의 화폐는 거래 가능한 부채에서 시작했 다고 주장한다.' 상품 화폐에서 화폐가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경제 학자들의 이론이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계속해서 밝혀진 부족사회의 행동 양식 몇 가지는 인류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조개껍데기를 거래하며 살지 않았다. 인간의 삶은 험악하고 야만적이었으며 짧았을 뿐 아니라 빚투성이 였다.
수명이 옛날보다 길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빚을 진 채 살아간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은 '부채 화폐Debt money'다. 다시 말해서 돈은 곧 다른 누군가의 변제 의무를 상징한다. 예를 들어 씨티은행 Citibank에 예치해둔 나의 돈은 씨티은행이 내게 진 빚, 그 이 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기 위 해 씨티은행 계좌에 있던 내 돈을 당신의 HSBC 은행 계좌로 송금한 다면, 그건 결국 씨티은행이 내게 진 빚을 HSBC가 당신에게 진 빚으 로 바꾸는 것일 뿐이다.
- 화폐가 부채의 일종이라면 현금(중앙은행권)은 누구의 부채일까? 사실 우리 주머니에 든 현금(중앙은행권)은 발행 당사자인 중앙은행 의 부채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중앙은행에 중앙은행권을 갖다주 면서 그만큼의 빚을 갚으라고 하면 중앙은행은 무엇으로 그 빚을 갚 을까? 여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지폐는 중앙 은행 대차대조표에 기록된 중앙은행의 부채일 뿐이다. 그리고 이 중 앙은행권은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부채로, 우리가 결제할 때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고 결제받을 때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기도 하다. 조개껍데기나 금 같은 상품 화폐와 달리 우리가 사용하는 부채 화 폐에는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라는 본질적인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어떤 (선진) 경제도 부채 화폐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10달러 지폐에 인 쇄된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18세기 말 만연했던 주 정부 의 채무ou를 회수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채권 발행을 주장한 것도 바 로 이런 이유에서다. 통화 부족이 초기 미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던 모습을 지켜본 해밀턴은 유동성이 매우 높은 결제 수단인 부채 화폐를 만들어 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이런 방안을 제안했다.
- 지불하기 위해, 즉 부채를 갚기 위해서 더 많은 부채가 필요하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 부채 화폐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채 권자에게 빚을 갚는 행위는 결국 그들에게 진 부채를 또 다른 형태의 부채인 '화폐'로 대체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처럼 부채를 또 다 른 부채로 대체하는 이유는 안정성(신뢰성) 때문이다. 채권자들은 일 반 개인에 대한 채권보다는 부도 가능성이 없는 은행(혹은 중앙은행) 에 대한 채권(즉, 중앙은행권)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결제와 화폐는 모 두 신뢰에 기반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 현금의 상당 부분이 고액권 지폐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현금의 수수께기 중 하나다. 그중 몇몇은 거의 사용된 적이 없거나 일반 대중은 볼 수조차 없는 것도 있다. 심지어 500유로권 지폐는 '빈 라덴Bin Laden'이 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그 존재 사실을 알며 어 떻게 생겼는지도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 현재 유통되는 총 1조 8천억 달러어치의 미국 달러 지폐에서 100달 러짜리는 무려 80%를 차지한다. 조지 워싱턴Geroge Washington (1달러 지 폐에 인쇄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벤자민 프 랭클린Benjamin Franklin에게 참패를 당한 셈이다. 미국의 성인 인구를 고려해 달러 유통 현황을 분석하면, 미국 성인 1인당 유통 중인 10달 러 지폐는 7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인 1인당 유통 중인 100달러 지 폐는 무려 55장이다. 이처럼 고액권 지폐의 유통량이 훨씬 많다면 소매치기들의 수입이 매우 짭짤해야 하지만, 미국 소매치기의 평균 적인 경험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지갑에 평균 75달러의 현금만 가지고 다닐 뿐이다. ATM과 은행, 계산대에 든 현금을 고려하더라도 그 액수는 그리 크지 않 다. 그러니 이 모든 돈이 다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달러 대부분은 '휴가 중'이다. 전체 달러의 60%와 100달러 지 폐의 75%는 미국 밖에 있다.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요청이 있을 시' 달러화를 공급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현 지 은행과 환전소에서 달러를 사고 인출할 수 있도록 실물 달러(대 개 100달러 지폐)를 국외로 실어 나른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는 전 체 달러화에서 국외 유통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했으나 이후 그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구소련 국가 들에서 외환 위기가 발생한 탓에 국외 유통 달러가 대폭 늘어나기도 했다. 미국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이들 국가에만 매년 200억 달 러어치의 현금을 실어 날랐다. 미국이 이라크 재건 비용을 대기 위 해약 120억 달러를 군용기에 실어 이라크로 수송한 사실도 잘 알 려져 있다(미국이 이라크로 실어 나른 금액은 최대 400억 달러에 달할 수 도 있다). 실제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도록 부연하자면, 100달러 지폐로 화물 운반용 파렛트 10개를 가득 채우면 10억 달러 가 된다.
- 국외 유통만으로는 막대한 현금의 행방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 마저도 미국 달러와 유로화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답이 될 뿐이며, 심지어 설문조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유통 통화 중 5~10%의 행방 정도다. 사실 지폐의 행방을 찾는 데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은행은 낡은 지폐를 일일이 검수하고 새 지폐로 교환하는 작업을 하 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폐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알 수 있 다. 미국 통화 교육 프로그램us Currency Education Program은 1달러 지폐 의 수명이 5년을 살짝 웃도는 반면, 100달러 지폐의 수명은 15년 정 도로 추산한다. 고액권은 소액권보다 사용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고나 매트리스 아래에서 평생을 보내지도 않 는다. 그보다는 지하경제에서 사용되고, 그저 소액권 지폐보다 연준 으로 되돌아오는 빈도가 낮을 뿐이다.

-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그리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이후 마스터카드Mastercard로 변신하게 되는 은행간 카드협회 Interbank Card Association는 세 가지 구조 변경을 통해 신용카드 를 결제 시장의 완전한 '대세'로 만들어 버렸다. 첫째, 뱅크오브아메 리카는 1950년대 말에 할부 결제가 허용되는 진정한 '신용' 카드를 도입했다(이 자체로도 하나의 주제가 되는 만큼 7장에서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 히 살펴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신용카드가 있으면 그달 말에 사용 금 액 전부를 상환할 돈이 없는 고객들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맹점들은 당연히 새로운 신용카드를 열렬히 환영했다.
둘째, 1960년대 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주 외의 지역 에서의 카드 발급에 장애물이 되던 '주간 은행업무 금지Restrictions on interstate banking' 규제를 교묘히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자사 시스템을 개방하고 다른 은행에 뱅크아메리카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 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차후 4당사자 모델Four-corner mode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결제 모델이자 현대 결제 시스템의 토대가 된 모델 이다. 이로 인해 카드 산업을 설명하는 게 훨씬 복잡해졌지만 이러했다(이 자체로도 하나의 주제가 되는 만큼 7장에서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 히 살펴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신용카드가 있으면 그달 말에 사용 금 액 전부를 상환할 돈이 없는 고객들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맹점들은 당연히 새로운 신용카드를 열렬히 환영했다.
둘째, 1960년대 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주 외의 지역 에서의 카드 발급에 장애물이 되던 '주간 은행업무 금지Restrictions on interstate banking' 규제를 교묘히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자사 시스템을 개방하고 다른 은행에 뱅크아메리카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 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차후 4당사자 모델Four-corner mode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결제 모델이자 현대 결제 시스템의 토대가 된 모델 이다. 
뱅크아메리카드의 세 번째 혁신은 정산 수수료nterchange fees 였다. 소 비자들은 결제를 하더라도 카드의 정산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 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비자는 별도의 카드수수료를 내 지 않는다. 감수자) 이 구조는 소비자들에게 카드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더 많은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카드 산업 전체가 원활 하게 성장하도록 만든다. 매입은행이 발행은행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면 발행은행은 소비자 측에 카드 사용에 대한 수수 료를 부과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카드 소지자와 가맹점 둘 다 수 수료를 내야 하며, 결국 카드는 사용자들에게 훨씬 덜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
대신, 가맹점측 은행(매입은행)이 카드 소지자 측 은행(발행은행)에 정산 수수료를 지불한다. 이 수수료는 카드회사The card networks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가 요율을 결정하며, 지역과 카드 유형(신용카드인가 직 불카드인가), 가맹점 유형(슈퍼마켓인가 호텔인가 등등)에 따라 달라진 다. 일반적으로 거래 가격의 1~3% 정도로 설정되며, 한 은행이 다른 은행에 지불하는 비용이지만 가맹점과 카드 소지자의 카드 거래 비 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즉, 발행은행은 이 거래를 처리한 대가로 2%의 정산 수수료를 받 는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명목으로 이 돈을 받는 것일까? 가장 간단 한 답은 결제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함이다. 그 러나 이는 부분적인 답에 불과하다. 실제 결제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개 정산 수수료보다 훨씬 낮다. 사실 발행은행은 비용보다 많은 수수료를 수취하는 대신, 카드 고객에게 공항 라운지 이용이나 구매 금액에 상응하는 캐쉬백, 항공사 마일리지 같은 혜택을 제공함 으로써 고객을 유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소비자들은 결제 수수료 없이 공짜로 카드를 이용하는 것인 양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에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으며 결제 부문도 마찬가지다.
- 표면적으로 가맹점에게만 카드 수수료가 청구되는 방식은 카드 소 지자에게 카드 거래가 무료라는 느낌을 주고, 심지어 카드 거래를 할 수록 이익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가맹점들에게 모든 명시적 비 용을 떠안기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를 한쪽에만 부과하는 방식이 어 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까? 카드 거래는 어떤 결제 방안을 사용할지 결 정하는 것은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두고 있 다. 가맹점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결제 방법을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소지자에게는 보상이나 혜택을 제공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실 소비자도 비용을 내고 있다. 정산과 처리 수수료 같은 비용이 표면적으로는 카드 소지자가 아닌 가맹점에 부과될지 모르지만, 가맹점들은 대개 상품 가격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런 비용을 고객 에게 전가한다.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포인트, 캐쉬백 등 신용카드 가 제공하는 많은 혜택 때문에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이익이라는 생 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수수료 수준이 가맹점의 유형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가맹점의 규모와 영향력에 따라 달라질 뿐 아 니라 특정 가맹점의 위험도에 따라서도 수수료가 달라진다. 대형 슈 퍼마켓은 구멍가게보다 수수료를 적게 내며, 나이트클럽과 윤락업 소는 가장 높은 요율의 가맹점 수수료를 낸다. 나이트클럽과 윤락업 소에 가장 높은 요율이 부과되는 까닭은 카드업계가 점잔을 떨며 그 들을 못마땅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이런 가맹점에서 거래한 고객들 이 다음 날 아침 거래를 부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페이팔은 소비자가 물건을 받을 때까지 결제 대금을 보관하는 '에스크로Escrow' 계좌 시스템을 도입해 카드 결제를 지원했다. 전문적 인 알고리즘과 점수 시스템을 토대로 사기성 거래 및 판매자를 적발 하는 사기 관리 Fraud management는 페이팔의 핵심 역량 중 하나가 되었 다. 한때 이베이에서 진행된 모든 결제 중 70% 이상이 페이팔을 통 해 이뤄지기도 했으며, 이후 이베이는 페이팔 덕에 온라인 판매 부문 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누리게 됐다.
페이팔이 떠난 자리는 애플페이와 같은 모바일지갑(간편결제)이 차지했다. 이런 '지갑들은 카드를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전자지갑의 등장으로 휴대전화에 카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게 되자, 플라스틱 카드를 들고 다닐 필요성 자체가 없어졌다. 휴대전 화를 단말기 옆에 갖다 대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다. 휴대전화를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지고 커피는 내 것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구매할 때 휴대전화에서 카드 데이터를 손쉽게 꺼내 쓸 수 있게 됐고 그 덕에 온라인 구매가 한층 수월해졌다. 전자지갑은 게으 른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안겨주고 카드회사의 눈부신 발전에 이바 지했다. 비록 카드 발행기관들은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게 됐지만, 전자지갑 덕에 카드회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디지털 변신을 이뤄냈다.
- 이론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결제 방식은 편익에 따라 결정된다. 다 시 말해서 어떠한 결제 방식을 사용할지는 그 결제 방식으로 얻는 편 익에서 해당 방식의 단점이나 비용을 뺀 값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수표에도 장점이 있긴 하다. 수표가 처리되기까지는 대개 며칠이 걸리고, 수표 처리 기간에는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거나 수표 수취인이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수표 를 현금화하면 좀 더 오랫동안 돈을 쥐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결제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수표가 처리 중'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수 취인이 얻는 혜택은 그보다 적을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물론 수표가 최종적으로 부도 처리 되지 않으려면 수표를 쓴 사람의 계좌에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수표가 지닌 또 다른 장점은 디지털 방식으로 결제할 때 금액이나 통화를 잘못 입력하는 '팻 핑거Fat finger' 오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 1950년대에 카드가 등장한 방식과 50년이 흐른 후 페이스북과 페이팔이 인기를 얻은 방식은 매우 유사하다. 카드는 소수의 고객과 이 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몇몇 뉴욕 레스토랑 간의 합의에서 발전 한 것이었고, 페이스북은 하버드생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페이 팔은 미국 내 이베이 구매자와 판매자들 사이에서 출발했다. 그런 다 음 카드와 페이스북, 페이팔은 비슷한 방식으로 틈새 커뮤니티를 파 고들었다. 카드는 캘리포니아에서 레스토랑을 즐겨 찾는 사람들을, 페이스북은 스탠퍼드 학생들을, 페이팔은 미국 외의 국가에서 이베 이를 사용하는 고객들을 공략했다. 셋 모두 유사한 관심사를 가진 소 규모 커뮤니티에서 필요한 만큼의 회원을 확보한 다음, 수평적인 확장을 추진할 수 있는 분기점에 다다를 때까지 특정 유형의 활동에 집중했다.
네트워크는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현 대적인 거대 결제 기업 알리페이Alipay의 모기업인 앤트그룹Ant Group은 2017년에 국제적인 송금 서비스 기업인 머니그램MoneyGram을 12억 달러에 인수하려고 했다. 굳이 인수하지 않아도 전통적인 자금이체시장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을 만한 위력을 가진 앤트가 왜 그토록 많은 돈을 주고 머니그램을 인수하려고 했던 것일까? 머니그램은 대 부분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데다 업계 1위 기업인 웨스턴유니 온Western Union 보다 한참 뒤처진 2위 기업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매력 은 머니그램이 보유한 네트워크와 머니그램을 이용하는 데 익숙한 고객층에 있었다.
네트워크는 일단 구축되면 매우 막강한 위력을 갖게 되고 몰아내기가 쉽지 않다. 네트워크 효과에 관한 그간의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사람 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직관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것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최상의 표준이 항상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는 '승자독식'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장 큰 네트워크는 설사 기능적인 매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어떤 네트워크보다 대다수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본질적으로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다음부터 무언가를 구매하고 지불할 때는, 우리가 내리는 하나하나의 결정으로 특정 결제 네트워 크의 영향력은 커지는 반면 다른 결제 네트워크의 위력은 약해진다 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같은 현상 덕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네트워크는 기술 혁신조차 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기술 혁신이 시작될 초반에는 기존의 네트워 크들이 뒤처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들은 얼마든지 앞서 나갈 수 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 기업들이 승승장구할 때 페이 스북이 시장에서 쫓겨나기는커녕 얼마나 자연스럽게 컴퓨터에서 모바일로 옮겨갔는지 기억하는가? 또 카드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카드회사들은 수차례에 걸쳐 어떻게 성공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 였는가? 기존의 네트워크가 아무리 진부해 보일지라도, 대개 맨땅에 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훨 씬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 표준이 기술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는 말의 엉덩이 너비 가 우주왕복선 설계에 영향을 미친 이야기일 것이다. 우주왕복선 추 진 로켓의 너비는 우주왕복선이 발사대로 오는 동안 통과해야 하는 터널의 너비보다 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터널의 크기는 철도 선로의 너비 혹은 궤에 따라 결정되었다. 스티븐슨이 맨체스터와 리 버풀을 잇는 세계 최초의 철도를 설계했을 때 그가 고안한 선로 너비 는 광산과 전차에서 사용되는 선로 너비에 따라 정해졌으며, 광산과 전차의 선로 너비는 마차를 끌던 말 두 필이 나란히 섰을 때의 엉덩 이 너비에 따라 결정됐다. 마차를 설계한 사람들은 아마도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경주용 마차의 표준 너비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로마인들이 우주왕복선 설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들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브루넬이 좀 더 일찍 철로를 건설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이 용하는 철로의 너비가 좀 더 넓어지고, 영국의 기차 이용객들에게 좀 더 많은 좌석이 제공되고, 우주왕복선에 좀 더 커다란 추진 로켓이 설치됐을 수도 있다.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가 된 것은 미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민자들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독일인들 이 대거 미국에 도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공식 언어가 바뀌 진 않았다. 독일인들이 미국에 먼저 도착했더라면 필자는 독일어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왜 수표를 쓰는가?'라는 질문은 '영국에서는 왜 자동차들이 좌측으로 통행하는가?'라거나 '우리는 왜 비디오테이 프로 베타맥스Betamax가 아닌 VHS를 사용하는가?' 혹은 '왜 미국인들 은 (거의 유일무이하게도) 화씨로 온도를 측정하는가?"라는 질문과 다 를 바 없다. 그저 그렇게 해왔으며, 설사 그 방식을 바꾸길 원하더라도 지금 바꾸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 QR코드는 전통적인 카드 모델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카드를 사용 할 때 소비자는 오프라인 상태여도 상관이 없다. 카드를 제시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상인은 결제받기 위해 항상 전화선이나 인 터넷에 연결된 단말기(온라인 상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QR 코드 는 완전히 반대다. QR코드를 이용하면 소비자는 QR코드를 스마트 폰으로 찍어야 하므로 온라인 상태가 되지만(전화기를 통해), 상인은 QR코드만 보여주면 되므로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결제받 을 수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카드 결제보다는 알리페이나 텐페이를 통해 결 제받는 편이 훨씬 쉽다. 또한 그 편이 훨씬 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 다. 그러니 중국 상인들이 카드를 포기하고 전자지갑을 받아들이는 것 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에서는 카 드를 받는 상점과 카드 단말기의 수가 15%가량 감소했다. 중국에서 하락세를 보인 몇 안 되는 결제 관련 통계 수치 중 하나였다(다른 하나는 훨씬 완만한 1%의 하락률을 보인 ATM이었다).1
- 케냐와 중국은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닥뜨렸다. 확립된 시스템 이 없는 상태였기에 과거의 유산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결제를 처리해온 기존의 '경로'도 없었다. 대신 두 나라는 높은 휴대전 화 보급률을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결제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는 두 나라 모 두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케냐와 중국 모두 이미 존재하는 기반을 어느 정도 활용했고, 이전부터 존재해온 그 기 반이 결제 시스템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케냐의 엠페사는 문자 메시지만 보낼 수 있는 기본 기능의 휴대전 화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된 결제 서비스다. 그에 더해 엠페사는 대다수의 케냐인들이 선불식 전화요금을 이용하며 충전된 선불식 전화 요금을 손쉽게 환불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중국 의 시스템은 나온 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 트폰을 보유하고 해당 기기가 제공하는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시점 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진정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나라는 없으며 모든 나라가 똑같이 발전하지도 않는다. 영어라는 언어를 떠올려보자. 영 국인과 미국인이 공통의 언어를 쓰면서도 어떻게 서로 다른 두 개 의 국가가 됐는지를. 두 나라가 동시에 똑같은 기술을 갖게 되더라 도 결국 각국의 특성이 반영된 서로 다른 결제 방식을 갖게 될 가능 성이 크다. 경로의존성은 끊임없이 지속되지 않으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 어쩌면 이런 경로의존성이 중국과 케냐의 모바일지갑이 아직 다른 시장에서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 이 될 수 있다. 결제는 규모가 큰 사업일 수 있으나, 그렇게까지 확장 성이 큰 사업은 아니다. 엠페사는 인도와 동유럽에 진출했다가 실패했 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고전 중이다. 그래도 탄자니아, 모잠 비크,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마도 경쟁이 덜하고 발전이 더딘 나라에 서는 좀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알리페이와 텐페이는 해외로 비즈니스를 확대해나가고 있지만, 주 로 중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맹점을 모집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즉, 비즈니스 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고객층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예 를 들어 현금 선호도가 높은 독일에서 일부 매장이 알리페이와 텐페이를 받는다(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많은 상점들이 JCB카드를 받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왜냐하면 중국에 있는 친척들과 돈을 주고받기 위해 중국계 독일 시민이 알리페이와 텐페이에 가입하기 때문이다.
알리페이와 텐페이가 독일 결제 시장을 좀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까? 독일 결제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먼저 현금을 선호하고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인의 성 향을 극복해야 할 뿐 아니라 기존 결제 수단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 다. 게다가 알리페이와 텐페이 모두 폐쇄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충분 한 사용자Critical mass 확보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작 은 편에 속한다. 일단 독일과 EU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부터가 문제다.
- 미국에는 돈을 내야만 게임이나 경기에 참여할 수 있음을 뜻하는 '참여하기 위한 결제Pay-to-play'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도움이나 투 자를 받고자 하는 기대를 품고 정치인에게 선물을 건네는 관행부터 편안한 대사 자리를 주겠다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선거 자금을 기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심지어 '기도하기 위한 결제Pay-to-pray'를 할 정도니, 결제에 대한 비용 지불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전혀 놀랍지 않다. 결제 에 사용하는 수표책Check books을 얻기 위해서 결제를 해야 할 수도 있 다. 대부분의 미국 은행 계좌는 수표책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수표 를 현금으로 바꿀 때마다 5~10달러, 또는 현금으로 바꾸는 금액의 1~2%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미국의 규제 당국, 정치인 그 리고 대중은 결제도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타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걸맞은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반면 유럽에서 결제란 약간의 비용만 받거나 별도의 비용 없이 제공돼야 하는 공공 서비스로 인식하는 편이다. EU 규제기관들은 경쟁을 장려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여러 차례 개입해왔으며 같은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의 카드 정산 수수료는 미국보 다 훨씬 낮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카드 정산 수수료가 아예 없다. 또 한 EU는 모든 유로화 결제 건에 동일한 가격을 적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 저축 계좌나 연금 계좌에 입금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가 돈을 지 출할 때는 그 소비로 인해 좀 더 가난해진다고 느끼는 것이 합리적인 지출 계획을 세우는 데 유익할 수 있다. 그리고 현금은 확실히 그런 효과가 있다. 현금을 사용하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소비의 영향을 느끼게 된다. 그에 반해 현금 외 다른 수단을 이용하면 충격이 완화된 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쓰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이 때 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현금 대신 다른 결제 수단을 이용할 때 소 비가 증가한다. 지불 수단이 대용 화폐처럼 물리적인 형태가 있더라 도 현금이 아니라면 소비가 느는 효과가 있다. 클럽메드ClubMed는 투숙객들에게 구슬을 꿴 줄을 화폐의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 스를 제공했다. 해변이나 수영장에 현금을 들고 가기보다 구슬 끈을 차고 다니는 것이 분명 더 실용적이긴 하지만, 투숙객들은 구슬에 상 응한 현금을 갖고 다닐 때보다 구슬 화폐를 이용할 때 더 망설임 없 이 지출했다.
결제 행위와 돈을 지출한다는 자각에서 우리를 더욱 멀리 분리시키는 '마찰 없는 결제Frictionless payment'의 엄청난 성장은, 현대의 결제 방법 이 사람들이 너무 쉽게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을 가열시켰다.
- 만약 왜 아직도 매장 출입문이나 계산대에 카드사 로고나 다른 결 제 방식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은 곳이 많은지 궁금했다면, 이제 그 답을 알 것이다. 단순히 브랜딩이나 고객을 위한 정보 제공 차원에서 이런 로고를 붙여 놓은 것이 아니다. 신용카드 로고를 보여주는 것만 으로도 소비자가 상품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고 좀 더 쉽게 결제하게 만드는 반면, 현금은 소비자로 하여금 비용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여러분이 다음에 자동차 매장을 방문해서 영업사원에게 카드로 결제하겠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 마나 한 질문이 아니라 구매를 부추기기 위한 장치 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카드로 결제할 때 더 많이 지출하는 성향은, 판매자들이 왜 수수료를 감수하면서 기꺼이 카드를 받는지를 설명해준다. 문제 는 그 때문에 카드빚 또한 쉽게 쌓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카드 대금 에 비싼 이자가 더해져 사람들이 빚의 덫에 갇히는 악순환으로 이어 진다. 신용카드 지출과 대출의 위험성을 알리는 연구는 무수히 많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 방안도 많다.

- 오픈뱅킹의 개념은 영국의 경쟁시장국CAM, 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이 2015년에 진행한 조사에서 기인한다. 당시 경쟁시장국은 '정보 불균형' 때문에 기존 은행들이 부당하게 우위에 서고, 경쟁 상대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탓에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발 견했다. 간단히 말해, 은행은 고객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예 를 들어 은행은 고객의 결제 내역을 보고 해당 고객이 보험이나 투자 상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은지 알아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은행은 특정 고객에게 대출해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외부 경쟁사들은 해당 고객의 수입과 지출을 확인할 수 없 으므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없고, 결국 고객은 얼마가 됐 건 거래 은행이 제안하는 금리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은행의 데이터 독점을 완화하기 위해서 영국 은행업계는 오픈뱅킹 Open Banking을 받아들이게 됐다. 고객이 거래 은행이 아닌 다른 서비스 공급자에게 은행 데이터 접근 권한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말 그대로 다른 서비스 공급자들이 고객의 결제 대화Payment conversation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오픈뱅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예를 들어 우리 가 거래 은행 외의 은행이나 핀테크 기업에 대출을 신청할 때 그들이 우리의 거래 은행에서 최근 결제 정보를 조회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

- 암호화폐 시장 총가치의 11%를 차지하는 이더리움Ethereum의 이더 Ether는 비트코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암호화폐로 대표적인 유틸 리티 코인이다.
이더리움은 '분산 컴퓨팅 플랫폼Distributed computing platform'으로 비 트코인과는 사뭇 다르다. 이더리움 플랫폼의 통화인 이더는 물건이 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참가자들의 컴퓨팅 시 간을 구매할 때 사용된다. 이더를 받은 참가자들은 이더를 준 사람이 제공한 코드를 실행한다. 모두가 보고 점검할 수 있도록 코드를 공개 된 원장에 게시하는 방식(비트코인의 블록체인과 유사하다)으로 코드를 제출하게 된다.
이더리움의 가장 큰 특징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스마트 계약이란 사전에 합의한 조건이 충족되면 어떤 대가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자동 집행 계약이다. 암호화폐 세계의 상품 인도결제 방식 Cash on delivery 인 셈이다. 가령, 생일에 맞춰 결제되도록 일정을 조정해둘 수도 있고 강수량이나 온도가 미리 정해진 수준을 넘을 경우 농부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설정해둘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계약은 돌이킬 수 없다. 일단 결제 조건이 충족되면 한쪽 이 결제를 보류할 수 없다. 스마트 계약을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중요한 대상으로 증권 배송과 대금 지급을 꼽을 수 있다. 만약 돈과 증권 모두를 '토큰화'해서 양도할 수 있다면, 스마트 계약은 두 토큰 모두가 양도됐을 때만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할 수 있다.
- 이러한 계약 방식은 랜섬웨어에서 응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기 꾼들은 피해자의 파일을 암호화한 다음, 피해자가 파일값으로 비트 코인으로 내놓으면 암호를 해제한다. 돈을 보내면 암호를 풀어주겠 다는 해커들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비트코인 결제와 파 일 암호 해제를 위해 필요한 개인 키 모두를 스마트 계약 속에 집어 넣어 동시에 교환되게 하는 방법은 제법 실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아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더리 움 코드 전문가들이 이러한 비즈니스 기회를 붙잡기 위해 조용히 작 업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스마트 계약의 활용 사례는 아직 다양하지 않다. 암호화할 수 있는 자 산이 충분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스마트 계약을 필요로 하는 커뮤 니티가 너무 작거나 너무 이질적인 탓일 수도 있고, 스마트 계약이 풀고자 하는 문제가 그리 크지 않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랜섬웨어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 테더의 THT는 가격 변동성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가장 중요한 '스테이블코인 Stablecoin' 중 하나다. 홍콩에 기반을 둔 테더는 THT를 발행한 회사이며, THT는 통화다. THT는 미국 달러에 일대일로 연동돼 있다. THT가 미국 달러에 일대일로 연동될 수 있는 것은 예치된 달 러 액수만큼 THT가 발행되고 액면 가격만큼의 달러를 THT로 교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더는 자사가 발행한 THT 금액만큼의 달러를 은행에 예치했다 고 설명한다(그러나 이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테더는 확실히 활성 화되어 있다. THT의 하루 거래량은 약 200~300억 달러로 비트코인 을 포함한 그 어떤 암호화폐보다 크다.
- 따라서 THT는 유동성이 크며, 이것이 테더가 지닌 장점이다. 왜 일까? THT는 다른 암호화폐와의 교환을 위해 사용된다. 말하자면 암호화폐 세상의 미국 달러다. 위안화 통화 조절을 피하려고 THT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자산으로서 암호화폐 에 관심이 있거나 위안화 자산을 중국 본토 밖으로 반출하는 데 어려 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THT가 유용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THT 거 래가 고객용 계좌를 운영하는 몇몇 대형 거래소에서 '오프 더 체인 the chain' 장부 기입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은 암호화폐 사용자들 이 반길 만한 내용이 아니다. 일단 이런 방식은 비용이 들고 위험이 수반된다. 또한 이런 거래소들은 가격 정보가 완전히 투명하지 않은 '다크 트레이딩 Dark trading' 방식을 허용하는 거래 플랫폼을 이용한다.

- 카드의 승리는 각각의 카드회사뿐 아니라 카드 산업 전반에 걸친 엄 격한 표준화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카드 크기, 마그네틱선 과 칩 작동 방식, 데이터 포맷 방식 같은 평범한 부분이 표준화의 대 상이다. 하지만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알리페이나 텐페이와 달리 가 맹점들이 여러 업체와 계약하는 것도 용인했다. 가맹점에게 비자나 마스터 중 하나만 고를 것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가맹점 프로토콜과 메시지 포맷을 매우 유사하게 구축한 덕에 가맹점은 비자와 마스터 카드, 둘 모두를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가맹 점 확보 경쟁을 벌이는 대신, 좀 더 높은 정산 수수료를 제공하는 등 의 방식으로 더 많은 카드 발행업체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다. 이런 방식은 카드 발행업체에게는 더 나은 선택지이며 모든 측면에서 사 용자에게도 좀 더 편리하다. 다만 소비자가 좀 더 높은 비용을 부담 해야 할 수도 있다(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 어떻게 한 국가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두 국가 간의 거래를 막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다 보면, 결제가 단일화된 세계 시스템이라 는 피할 수 없는 사실로 되돌아간다. 금융 부문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증명해보이려던 미국의 열정은 이 같은 상호 연결성에 내재된 위험 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계 결제 질서를 통제하려는 미국의 이런 모습은 앞서 26장에서 언 급했던 중요한 부분, 즉 누가 결제 뒤에 존재하는 파이프를 소유하고 통 제하고 비용을 내는가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설사 그렇더라도, 왜 다른 나라 은행들은 미국 언저리에도 가지 않 는 결제를 처리하면서 미국의 제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바로 미국 달러 자체가 가지는 남다른 위상과 세계 결제 시스템에서 미국 달러가 담당하는 특수한 역할 때문이다. 달러는 궁극적인 금수조치 수 단으로 사용할 만큼 막강하다. 다시 말해서 개인, 기업, 국가 등의 상 대가 미국 달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사실상 그 상대를 국제결제 시스템에서 배제할 수 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제재 대상은 국제 무대에서는 그 어떤 경제 활동도 할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국제 무역이 미국 달러로 이뤄지는 것도 이러한 일을 가 능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스위프트는 자신들이 처리하는 지급 지시에 사용되는 통화의 비중을 측정하고, 각 통화의 상대적인 비중을 정기적으로 공개한다. 스위프트가 발표한 결과를 보면 언제나 달러가 전체 국제 결제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무역 금융 결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달러로 처리되는 거래가 모든 거래의 무려 90%에 달한다. 어떤 면에서 달러는 영어처럼 세계 표준의 역할을 한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준거 틀이자 공통어인 것이다.
- 미국 달러에 턱없이 과도한 특권이 주어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어떤 나라의 은행이건 일정 규모 이상의 은행은 무조건 거액의 달러 대금 지 급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달러 유동성 및 달러 거액 결 제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곳은 뉴욕 인터뱅크 시장(은행 간 외환 시장)뿐이다. 은행이 국제 비즈니 스를 하려면 직접적으로 거액 달러 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는 미국 자 회사나 지사를 보유하거나, 이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대리 은행과 제휴해야 한다. 씨티은행과 JP모건이 세계 최대 규모의 대리 은행이 된 것도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두 은행은 홈어드밴티지를 누리는 것 이다.
어느 면에서 보건, 미국은 기축 통화라는 달러의 지위 덕에 결제 시 스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실상 모든 수준에서 거래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은 맨 처음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들이 예상했 던 것보다 더욱 효과적임이 드러났고, 무엇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 유는 결제에서 차지하는 달러의 역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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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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