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 자신을 살리는 글쓰기를 하려면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둑으로 치면 복기와 같은 과제인 셈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치유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거창한 목적보다는 우선 자신을 깨우치고 치유하는데부터 출발해야 한다.
- 여름이 더워도 손을 떼지 않고 긴 겨울밤에도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 제자로서 경(經)ㆍ사(史)를 고열(考閱)하는 자가 수인(數人)이며, 입으로 부르면 나는 듯이 받아쓰는 자가 3인이요, 항상 번갈아가며 초고(草稿)를 다듬고 정서하는 자가 수삼인이며, 옆에서 도와 책지(冊紙)를 가다듬고 책을 꾸미며 바로잡아 장황(粧蹟)하는 자가 3~4인이었다. 무릇 한 책을 저술함에는 먼저 그 자료들을 수집하여 서로 대비하고 서로 참고하여 완색하며 빗질하듯 정밀하게 골라 배열하였다.
'사암선생연보'에는 다산이 어떤 저술과정을 거쳤는지 그 실 상이 기록되어 있다. 집필의 시작인 자료 수집에서부터 마지막 제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자료수집에 있어서 대비하며 참고하며 완색하며 빗질하듯 정밀하게 골라 배열하였다는 대목에서 그의 기록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다산이 두 아들에게 경서를 먼저 읽으라고 한 것은 폐족이 된 집안으로 인해 희망 없이 살아갈 것이 염려된 것도 있지만, 경학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방안, 즉 삶의 철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서였다.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듯한 옷을 입고 죽을 때까지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린다. 한 상자의 책도 전할 것이 없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가장 경박한 남자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로 여기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고담(古談)이라고 한다. 맹자는 대체(大體)를 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저들이 소인됨을 즐거이 여기는데, 나 또한 어찌할 것인가?
'또 정수칠(丁修七)에게 주는 말'의 일부이다. 정수칠(丁修七,1768~?)은 장흥 반산(盤山)에 살던 이로 다산의 먼 집안사람이기도 하고 제자이다. 이 글은 두 아들에게 경학을 공부하라는 당부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고, 대체마음을 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몸을 기르는 이는 소인이 된다고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이며 그 시작은 경학이라는 것이다.
- 사신으로 연경에 가는 교리(校理) 한치응(韓致應)을 전송하는 서(送韓校理致應使)]에서 “나의 소견으로 살펴보면, 그 이른바 '중국'이란 것이 나는 그것이 중앙(中]'이 되는 까닭을 모르겠으며, 이른바 '동국'이란 것도 나는 그것이 '동쪽'이 되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른바 '중국'이란 무엇을 두고 일컫는 것인가. 요순우탕(堯舜禹湯)의 정치가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고, 공자·안자(顔子)、자사(子思)ㆍ맹자의 학문이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는데 오늘날 중국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성인의 정치 와 성인의 학문 같은 것은 동국이 이미 얻어서 옮겨왔는데, 다 시 멀리에서 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같은 글에서 다산은 성인(聖人)들의 다스림이나 성인들의 학 문이 우리나라에서 이미 다 얻어내어 옮겨 놓아버렸으니 굳이 중국을 치켜세울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산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양반사대부들이 우리나라의 문헌과 역사는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기 위해 맹목적 으로 중국의 고사와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큰 병통이고 비루한 문풍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역사서만 한정해서 읽으라고 하지는 않았 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다만 우리를 중심으로 놓지 않고 중국에만 의존하려는 사고방식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 모름지기 실용적인 학문에 마음을 써서 옛사람들의 경제(經濟)에 관한 서적을 즐겨 읽고서 마음속에 항상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모든 사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둔 뒤에야 비로소 독서하는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두 아들에게 부침(壽二兒]'이라는 글에서 다산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었다면 다음은 경제에 관한 서적 을 읽으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산의 입장에서는 조선 사회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실제 먹고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 다산시문집 오학론2(伍學論二)'의 내용 중 일부이다. 정독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책을 정독한다는 것은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백하게 분변하고, 독실하게 실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 책을 읽을 때 주관과 판단력이 생기면 취사선택의 안목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책에서 무엇을 뽑아 기록할지 알게 된다. 다산은 “초서(書)의 요지는, 무릇 한 종류의 책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로서 〈소학(小學)〉에 실려 있지는 않으나 〈소학>을 이을 만한 것이 있으면 뽑고, 모든 경설(經說)에 새로운 것으로서 전거(無據)가 있는 것을 뽑고, 자학(字學) · 운학(韻學) 같은 종류는 10에서 1만을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산이 수많은 저작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서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은 구절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하고, 그런 초서의 기록들은 모아 두었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지 않겠는가.
- 그 중에서 가려 뽑는 방법을 너의 형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었으니, 이번 여름에 부디 너의 형제들이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힘을 쏟아서 이 일을 끝내도록 하여라. 무릇 초서(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절목을 세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一貫)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 놓은 규모와 절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기록하여야 득력(得力)할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의 길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생각의 길이 열리고 글이 되는 것이다.
사의재(四宜齋)라는 것은 내가 강진(康津)에 귀양 가서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 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 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고 한 다. 마땅하다]라는 것은 의롭다]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바 학업이 무너져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기 논쟁은 세상이 마치도록 서로 다투어도 끝이 없을 것이니 인생에 일이 많은데 그대와 나는 이를 할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당대의 성리학이 탁상공론에 불과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비판했다. 이기논쟁이 요구되는 때가 있었다면 현재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학문의 의미가 그 학문을 키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효용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 다산은 시를 뜻이라고 했는데, 뜻이 저속하거나 편협하면 아무리 청고하고 달통한 말로 표현하더라도 그 뜻이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시를 하나의 수행으로 여기는 것 같다.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걸러내려는 것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특이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서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맑고 투명한 두보의 경지는 타고난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을까.'
- '연아에게 부침(壽淵兒]'이라는 글에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미운 것을 밉다하며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즉 현실을 외면하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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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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