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숫자들

사회 2021. 7. 17. 19:35

- 측정은 우리가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 측정에 결함이 있다면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 성과에 대한 우리의 측정에 결함이 있다면, 그에 따른 추론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 (스티글리츠-센-피투시 보고서(2009년))
- GDP는 '글로벌 데이터 문제(Global Data Problem)'다. GDP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집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과 산 출 방식도 집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GDP의 목적이 집계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GDP는 경제 생산을 위해 전 세계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 지 않는다. 경제 활동이 전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에 못 미치면, 수치가 증가해도 결국은 실익이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GDP는 돈을 받지 않는 활동을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집계하지 않는 다. 전체적이라는 말의 뜻은 이렇다. 집계되는 것만 중요하다면, GDP 는 경제를 좁은 범위에서 평가하고 문화적 공공재 등 인간의 다른 생 산물을 평가절하하는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부분적 이라는 말은, GDP가 이미 구조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현실에 따른 성 별 편향적인 측정치라는 뜻이다.
- 집계 불이행이라는 말은 정치적 동기에 의해 집계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집계되지 않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 최하층에 있는 사람과 집단에 대한 집계 불이행이 있을 수 있다. 이 형태의 집계 불이행은 이들에게 또 다른 수준의 소 외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 는 통계에서 이들이 빠지는 것이다. 두 번째, 집계되지 않을 능력을 가짐으로써, 특히 과세와 규제로부터 수입과 부를 은폐해 더 많은 힘 을 갖게 되는 최상층 사람들과 집단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모두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의도 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현상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 반영되는 현상이다. 
- 개발 담론에서 사망 등록의 문제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마 삶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망을 집계하지 않는 것은 더 깊은 불평등을 드러내는 동시에 본 질적으로 해롭기도 하다. 이런 제도적인 불평등에 눈을 감는 것은 그 불평등에 대처하는 움직임을 방해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언론은 사망률 집계 불이행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통계를 수집해왔다. 너무나 소외돼 있어 공무원들이 사망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과, 사망률을 기록하지 않기로 한 강력한 세 력에 의해 사망이 무시되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다.
두 번째 집단의 예로는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희생당한 사람들과 기타 살인 행위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들 수 있다. 2014년 3월까지 거 의 10년 동안 미국 사법통계국 Bureau of Justice Statistics은 '체포 과정에서 의 사망'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뉴욕시 경찰국NYPD 같은 미국 최대 경찰국 중 일부가 참여를 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1년 후인 2015년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자체 집계를 시작했다. 6개월 후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미국 법 집행기 관 및 정치인 고위급 회의에서 《가디언》과 《워싱턴포스트》가 체포 과정에서의 사망에 대한 더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받아들 일 수 없는 일이며 '터무니없으며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 명목상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정치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 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처럼 투표 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노골적 인 접근 방법은 점잖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때문에, 요즘 에는 좀 더 교묘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투표를 제한하는 법률을 도 입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특정한 집단에 체계적인 영향을 미친다. 는 것을 알고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사사법체계가 인종차별 적인 편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중범죄자들의 권리를 박탈 함으로써 그 편향이 투표 패턴에 미치는 영향을 더 크게 만들 수 있 다.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플로리다주는 이 법을 폐지해 약 140 만 명에게 투표권을 돌려줬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법은 미국의 다른 주 여러 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족, 미국 캔자스주 도지시티에 거주하는 히스패닉계 미국인 같은 소외된 시골 인구들을 배제하려면 집에서 몇 킬로미터 안에 투표소가 없게만 만들면 된다. 두 번째 방법은 특정 집단들이 투표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 이다. 즉, 특정 집단 전체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 특정 집단 의 전체적인 영향력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사진 부착 신분증 소지를 의무화하는 것은 평균적인 투표 성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 텍사스주처럼 학생증은 안 되지만 총기 소지 허가증은 투표용 신분증 으로 허가하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투표 당일에 등록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이 이용되기도 한다. 에모리 대학의 캐럴 앤더슨Carol Anderson은 신분증이 있어야 하지만 관공서가 너무 멀어 필요한 서류를 떼기 힘들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 했다(예를 들어 조지아주), 현재 노스다코타주에서는 신분증법에 따 라 투표를 위해서는 주거 주소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신분증상 주소 가 우체국 사서함으로 돼 있는 약 5,000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 리를 사실상 제한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 다국적기업 그룹들은 그들의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지역에서 과세대상 소득을 이전할 수 있다. 부유한 OECD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가 간 조세 조약들이 심각한 결함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약들 은 1920~1930년대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구분회계Separate accounting라는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구분회계는 다국적기업 그룹 에 속한 각 법인을 각자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분리된 법인으로 취 급하는 접근 방법이다. 실제로 다국적기업 그룹에 속한 법인들의 이 윤 극대화는 중앙에서 한꺼번에 통제되며, 이런 구분회계가 일반적 인 경제 논리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이 시스템은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따른 것이다. 같은 그룹 내 회사들 사이의 거래는 그 회사들이 같은 집단의 일부가 아니라,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즉, 서로 팔 길이만큼 떨어져서 활동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유시장에 서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기본적인 물품들이라고 해도 그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검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룹 내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공개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지적재산 같은 무형자산의 경우 팔 길이 가격 책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 IMF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의 모든 외국인 직접 투자 중 거의 40%가 가짜다. 실제로 경제적인 실체가 전혀 없는 외국 법인들을 통과하는 액수는 12조 달러에 이른다. 크고 작은 경제 규 모를 가진 나라들에 대한 투자의 상당 부분이 작은 조세 관할권들로 부터 서류상으로 이뤄진다. 이런 투자의 많은 부분은 국내 투자로 위 장한 우회 투자로, 조세나 규제를 회피하거나, 이해 충돌을 숨기거나, 외국인 투자자 혜택을 얻기 위한 것이다.
통계 왜곡의 가장 두드러진 예로는 2015년 아일랜드의 GDP가 26% 금두하고 이와 과려해 국가 자본이 거의 2,700억 달러 폭증한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애플이 세금 문제 때문에 기업을 재정비하면서 2,000억 달러가 넘는 무형자산을 아일랜드의 애플 자회사 중 한 곳으로 재배치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아일랜드의 공식 GDP와 실제 경제적 성취 사이의 간극이 노동시장 정체 현상을 숨겼. 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일랜드의 보통 사람들은 거시적인 통계 왜곡으로 전혀 또는 거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 헨리의 분석과 궤를 같이해 TJN이 공개한 연구 보고서 〈불평등: 당신은 그 절반도 모른다(불평등이 우리 생각보다 더 심한 이유)〉는 이렇게 부를 숨길 때 나타나는 또 다른 결과에 대해 다뤘다. 일단 세 수 손실이 심각해지고, 이 세수 손실은 그 자체로 불평등을 심화한다. 건강, 교육 등에 대해 이미 이뤄진 공공지출 부담을 저소득 집단들이 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피해가 세 가지 방식으로 더 심화되기 때문이다.
첫째, 실제 불평등은 기록되는 불평등보다 더 심할 것이다. 공식통계는 신고되지 않는 부와 소득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이 불평등의 실제 규모를 분명히 알게 된다면 재 분배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재분배 압력 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데이터의 부재는 정책 비효율성과 직결된다. 역외의 부와 소득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면 조세 당국의 집행을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조세 정책이 개선되기 힘들어지고, 그 결과로 최종적인 불평등의 정도는 더 커질 것이다.
셋째, 데이터의 부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책을 더 퇴행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책 입안자들이 소득과 부를 위한 활동에 직접세를 부과하지 못한다면 재정 압박은 소비 감소 그리고/또는 부가가치세 같은 소비세에 더 의존하는 조세 정책 퇴행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은 저소득 집단들이며, 그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가 될 것이다. | 전체적으로 볼 때, 역외의 부와 소득을 집계하지 못하면 기록되든 그렇지 않든 국가적 불평등 수준의 상승을 일으킬 것이다. 
- '불법 자금 흐름'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미국의 사업가 레 이먼드 베이커Raymond Baker가 설립한 국제금융청렴기구Global Financial Integrity, GFI에 의해서다. 베이커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서 수십 년을 일했으며, 2005년 《자본주의의 아킬레스건 Capitalism's Achilles Heel》이라는 책을 출간한 사람이다. 베이커의 평가에 따르면 불 법 자금 흐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거대 부패grand corruption 다. 불법 흐름 전체로 보면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 둘째, 범죄 수익 세탁이다. 전체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사이를 차지한다. 셋째, 상업적 조세회피commercial tax evasion 다. 기업들의 거래가 조작을 통해 이뤄지 는 이런 조세회피는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한다. 이 책의 목적은 부패에 대한 당시의 표준적인 시각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부각하는 것이었다. 즉, 이 책은 부패가 저소득 국가 정부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대부분 저소득 국가에서 활동하는 고소득 국가 출신 민간 영역 행위 자들의 문제라고 주장한 것이다. 
- 힘이 있는 데이터는 절대적일 뿐만 아니라 상대적이기도 하다. 힘이 있는 데이터는 적절한 범위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 적절한 기준denominator이 있는 데이터다. 우리 데이터에 기준이 없다면 그 데이터는 힘이 없다. 우리는 공정성이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다. 기준을 통제하는 사람은 공정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통제한다. 꼬리감는원숭이가 나오는 유명한 영상을 생 각해보자. 이 원숭이는 일에 대한 대가로 오이를 받고 좋아하지만, 다 른 원숭이가 같은 일에 대한 대가로 포도를 받자 분노한다. 부러움이 아니었다. 분노의 대상은 자기보다 더 좋은 보상을 받은 원숭이가 아니라, 잘못된 보상을 한 시스템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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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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