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세계사

역사 2019. 9. 5. 12:46

- 다윈은 인간과 원숭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숙취에 대처하는 것을 보고 이 두 종이 친척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음. 이것이 다윈의 유일한 증거는 아니지만 고위 성직자들도 영장류임을 입증하는 출발점이 됨. 그뿐 아니라 이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수많은 최근 이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 우리 인간도 술을 마시도록 진화. 우리 조상은 1000만년 전 나무에서 내려왔다. 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나치게 익어서 나무 밑으로 떨어진 맛난 열매를 주우러 내려왔을 가능성도 있음. 실제 숲에 가면 지표면에 나뒹구는 열매를 볼 수 있다. 그런 열매는 더 많은 당분과 알콜을 함유. 그렇게 해서 인간은 알콜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를 지니게 됨. 알콜은 인간에게 당분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
-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이유는 식량을 얻기 위해서가 아님. 식량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유는 술이 필요했기 때문. 이런 이론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 때문
(1) 맥주는 불을 피운 화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빵보다 만들기 쉬움
(2) 맥주는 인류가 건강과 튼튼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타민B를 함유. 수렵인들은 다른 동물의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비타민B를 얻는다. 반면, 농경인은 맥주 없이 빵만 먹다가는 빈혈에 시달리다 약골이 되어 몸집이 크고 건강한 수렵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기 십상이었을 것임. 그러나 밀과 ㅂ리가 발효되면 비타민B가 생성된다
(3) 맥주는 빵보다 훨씬 나은 식품이다. 맥주가 좀더 건강에 좋은 이유는 그 안에 함유된 효모가 소화를 돕기 때문.
(4) 맥주는 저장해두었다가 나중에 마실 수 있음.
(5) 맥주의 알콜 성분은 해로운 미생물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맥주의 원료인 물을 정화. 정착생활의 문제점은 인간은 어딘가에 대변을 배설할 수밖에 없으며 그 대변의 일부가 물속으로 들어가 다음에 곧바로 인간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임.
(6) 행동을 바꾸려면 문화적 원동력이 필요함. 괴베클리 테페가 시사하듯이, 맥주가 먼 거리를 여행해서 찾아올 만큼 가치있고 종교적 음료였다면 수렵에 가장 열심인 사람이라 해도 한곳에 정착하여 맥주 양조에 필요한 보리를 재배하자는 설득에 넘어갔을 법하다.
이처럼 기원전 9000년경의 인류는 주기적으로 술에 취하고 싶었기 때문에 농경을 발명했다.
- 알콜이 인류에 끼치는 영향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본성의 신비로운 기능을 자극하는 능력 때문. 대체로 인간본성은 정신이 맑을 때문 냉엄한 현실과 메마른 비판에 짓눌린다. 인간은 맑은 정신일 때는 폄하하고 차별하며 부정한다. 술에 취하면 후해지고 협동하며 긍정한다. 알콜은 실제로 인간의 긍정기능을 효과적으로 촉진함. 알콜은 취객을 차디찬 주변부에서 눈부신 중심부로 이끈다. 취기는 사람을 얼마 동안이나마 진실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알콜을 추구하는 까닭이 비뚤어진 심성 때문만은 아님. 가난하고 학식이 없는 이들에게 알콜은 교향곡 연주회와 문학의 역할을 대신함. 또한 알콜은 삶이 지닌 한층 더 심오한 수수께끼와 비극의 일부로서 전체적으로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독이지만 초반의 짧은 시간 동안에는 우리가 곧바로 뛰어나다고 인식하는 것의 낌새와 조짐을 우리 대다수에게 알려줌. 취한 상태의 자각은 신비로운 자각의 일부이며 우리가 그런 상태에서 도출한 견해도 전반적인 자각상태에서 도출한 견해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함
- 플라톤은 취한 상태일 때 믿음직한 사람이면 어떤 경우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 게다가 상대를 술로 시험한다 한들 내가 손해 볼 일은 없다. 어떤 사람과 계약을 맺었다가 나중에야 그 사람이 부정직함을 알아채면 돈을 날리게 마련. 그러나 상대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위해 같이 술을 마시면 전혀 위험할 것이 없다. 이런 모든 내용을 종합해보면 금주하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적 결론이 나옴. 이같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음주는 이상하고 미묘한 일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제정신을 잃지 말아야 했다. 술에 취해도 미덕을 발휘해야 했다.
- 희한하게도 모든 역사가와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말술을 마시고도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 영혼 자체가 너무도 질서정연했기 때문에 술에 취해도 합리적 태도만 드러났을지도 모름. 아니면, 그의 간이 유별나게 효율적이었을 수도 있음. 어떻든 소크라테스는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해괴한 이유로 칭송을 받아온 사람의 원조다
- 로마의 콘비비움은 현대의 술꾼이 참석하기에는 굉장히 불쾌하고 불편한 자리었으리라 추정됨. 그리스의 심포지온은 자신과 동등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심포지아크가 있었다고는 해도 얼굴마담에 불과했음. 생각해보면 그리스인들은 모두 같은 크라테르에 든 술을 마셨다. 심포지온은 남자들끼리 (오직 남자만) 모이는 자리였다. 로마의 콘비비움은 부를 과시하고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를 확고히 하는 데 목적이 있었을 뿐이다. 콘비비움은 즐거운 모임이 아니라 자기 위치를 깨닫고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을 칭송하며 서열이 낮은 사람들을 조롱하는 자리였음. 그런 목적은 좌석배치, 노예, 포도주의 품질과 양, 음식, 술잔, 술잔을 던지는 곳을 통해 달성되었다.
- 중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술을 마셨음. 그들은 일터에서 술을 마셨다. 볼리외 수도원의 수사들처럼 하루에 약 1갤런의 맥주를 배급받는 수사들 천지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일터에서 술을 마심. 임금의 일부가 맥주로 지급되는 일도 많았음. 예를 들어, 목수는 임금 외에도 3파인트(약 1.7리터)의 맥ㅈ와 약간의 식료품을 덤으로 받음. 영주가 영토를 경작할 일꾼을 고용할 때도 그들에게 술을 얼마간 제공해야 했다. 술은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님. 들판에서 온종일 고된 노동을 하는 동안 띄엄띄엄 몇 파인트 마셔봐야 술에 취할리 없다. 그러나 맥주를 마시면 속이 든든해졌다. 한마디로 맥주는 액체로 된 빵이었다.
-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술을 마심. 중세 마을 교회는 예배장소라기 보다는 마을 회관 역할을 함. 사람들은 교회마당에서 축구도 하고 예배당 안에서 노래를 부름. 성인축일,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성인을 기념하는 영명축일, 혼례, 세례식, 장례식 등 각종 교회행사에서도 맥주를 나누어 마심. 호상은 늘 놀이판이었다.
- 무엇보다 중세 영국 남성은 집에서 술을 마셨음. 중세 영국 여성과 어린이도 마찬가지. 그때만 해도 물은 상당히 위험해서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마셨다. 앨프릭은 '나는 맥주가 있으면 맥주를 마시고 맥주가 없어야 물을 마신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음. 그 말고도 거의 모든 사람이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해서 기본적으로 보리와 물과 가능하다면 약간의 향신료만 필요했다. 따라서 남편이 들판에 일하러 나간 동안에 아내는 맥주를 양조하게 마련이었다.
- 중세 에일맥주는 질척질척한데다 불순물이 섞인 죽이나 다를 바 없었음. 맛을 좋게 하려면 약초와 향신료를 넣는 방법밖에 없음. 그중에서도 서양고추냉이가 가장 인기 있었음. 맥주 양조자들은 원래의 맛을 덮으려 했다. 역겨운 음료를 목에 넘길 수 있는 음료로 바꾸는 데 급급. 그때 홉이 등장했다. 홉은 홉 풀의 원뿔형 열매임. 홉을 에일맥주에 넣으면 진짜 맥주(beer)가 된다. 유럽 대륙인들은 오랫동안 홉을 넣어 맥주를 만들었지만 영국인들은 시대에 뒤처졌음. 홉은 런던에서 첫선을 보였고, 서서히 잉글랜드 전역으로 보급됨. 적잖은 저항이 있었다. 랭커셔에서는 17세기 중반이 되도록 에일 맥주를 마셨다. 콘월도 오랫동안 에일 맥주를 고수했다
- 사람들은 대개 홉이 들어간 맥주 맛을 선호. 홉 맥주는 에일 맥주에 비해 어마어마한 장점이 한가지 있다. 상하지 않는다는 점. 홉 맥주는 1년 정도를 보관해도 술통만 밀봉하면 맛이 변하지 않음. 그 때문에 홉 맥주는 대량생산이 가능했음. 모든 주요 도시에 양조장이 들어서서 맛좋은 맥주를 대량으로 생산해냈고 현지의 맥ㅈ집에 판매. 양조장은 맥주를 여과하여 훨씬 더 훌륭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 만취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은 습식문화와 건식문화를 구별. 습식문화권의 사람들은 술에 대해 굉장히 느긋한 태도를 보임. 그들은 하루종일 술을 홀짝이며 매우 유쾌한 시간을 보내며 제대로 취하여 자빠지는 일이 거의 없음. 건식문화는 이와 반대. 건식이라고 그들이 알콜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님.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술을 크게 경계하여 술을 마시면 안되는 경우를 엄격하게 규정해놓았기 때문. 상황이 허락하면 그들도 술에 취한다. 전형적으로 남부유럽은 습식문하권에 속함. 이탈리아 사람은 평일 정오에 레몬으로 만든 이탈리아 술인 리몬첼로를 홀짝이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북유럽은 아침에 술을 마시지 않으며, 금요일 밤에 술판을 벌이기 때문에 건식문화권이다. 그 때문에 이 두가지 문화는 대륙식 음주와 폭음으로 불리기도 함.
-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 당시에도 습식문화에 속했다. 그들은 포도주를 좋아했고, 온종일 술을 달고 살았지만 만취하는 일은 거의 없었음. 이 이론에 따르면 아즈텍은 건식문하다. 앞서 살펴본 법률에 따라 그들이 술에 입을 댈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를 들어 400마리 술 취한 토끼를 기리는 종교 축제일에는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었다. 그들은 종말론적이고 종교적으로 술에 취했고 앞서 살았던 이집트나 고대 중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성을 체험하는 수단을 알콜을 이용했듬. 그러다 그달 내내 술을 입에 대지 않아다.
- 이방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나라를 정복하고 종교 축제일이 표시된 달력을 없애지 않았다면 이러한 시스템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했을 것임. 그런데 정확히 아즈텍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 건식문화는 금요일에 폭음하고 월요일에는 말짱한 정신을 유지하는 식으로 그럭저럭 절충이 가능함. 하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예수회가 아즈텍 제국을 끝장낼 때쯤에는 달력이라는 중요한 정보가 사라졌다. 그때 알콜의존증이 전 세계적 유행병이 되었고 스페인 치하의 멕시코도 그것에 감염되었다. 실제 카톨릭 사제들은 사탄의 조종으로 원주민들이 알콜 의존증에 빠졌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원주민들이 선한 기독교도가 되지 못하도록 사탄이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사실과 정반대였다. 피정복자들을 풀케 중독으로 밀어 넣은 원인은 법률완화와 기독교 유입에 따른 사회혼란이었다.
-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는 노동을 식료품이나 토지 등 어쩌다 손에 넣은 것과 바꾸는 교환경제였다. 인구의 과반수가 강제노역에 종사하는 죄수들이었다. 따라서 기존 노역 의무 이상의 것을 시키려면 무엇인가를 제공해야만 했음. 영국 정반대편에 있는 이 지옥소굴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은 럼뿐이었다. 럼 공급을 장악하는 이가 식민지도 장악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로스 총독대리의 천재적 발상이었음. 역사학자 대다수가 럼이 뉴사우스웨일스의 화폐였다고 말할 테지만 실은 화폐 이상이었다. 럼은 사회통제의 수단이었다. 럼의 유통통제는 일종의 독재자였지만 럼의 소비는 무정부상태를 유발했기에 럼은 역설이었다. 향후 20년에 걸쳐 럼 부대는 럼 사업을 장악했고 부자가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전능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후임 총독들이 증류주 무역을 중단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런던에서 파견되었지만 그들이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증류주 무역만이 권력의 지렛대였기 때문
- 금주운동이 원동력이 중서부의 기혼여성들이었다면 이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독일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양조업자들이었음. 이민집단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독일인들은 금주나 음주 절제츼 전통이 전혀 없었음. 그들의 전통은 맛좋고 시원한 맥주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들은 맥주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을 라거광고는 물론 절대금주운동의 반대 캠페인에 쏟아부었음. 이들의 광고는 위스키와는 반대로 맥주를 건강에 좋고 행복한 독일인 농부가 마시며 정통 독일 제조법에 따라 양조되는 독일음료로 묘사. 그때만 해도 누구나 독일인을 좋아했기 때문. 그러다가 1차대전이 터졌다. 다른 세계대전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은 다소 뜸을 들였지만 마침내 1917년에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후에 참전했고, 곡물보급량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에 따라 증류주 제조를 금지했음. 주류지지운동이 곤경에 처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주류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 인간은 언제 어디에 살든 함께 모여 약에든 술에든 취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맨 정신에서 홀로 체험하는 세상은 결코 완전치 않다. 물론 술 같은 중독성 물질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언제나 존재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마약은 불변의 것이다. 마약끼리의 전쟁이 있을 뿐이며 그런 전쟁에서 항상 승리라는 것은 알콜이다. 명심할 점은 정부가 정말로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마약을 근절할 생각이 있다면 술에 매기는 세금을 없애기만 해도 목표를 쉽게 이룰 수 있다. 인간은 단순한 종이라서 가격과 입수가능성을 따져 중독성 물질을 선택한다.
- 인간은 맑은 정신일 때는 폄하하고 차별하며 부정한다. 술에 취하면 후해지고 협동하며 긍정한다. (윌리엄 제임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시작의 역사  (0) 2019.09.15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0) 2019.09.15
역사의 역사  (0) 2019.07.21
무역의 세계사  (0) 2019.07.08
서양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0) 2019.07.04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