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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발효식품의 풍미는 거부감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나중에야 정말로 즐길 수 있다. 어린아이가 맛이 진한 커피, 개성강한 치즈, 생선 액젖, 캐비어를 처음부터 맛있다거나 느억맘의 복합적인 맛들을 하나하나 구별해내는 일은 드물다. 요구르트와 생우유 치즈조차 아이으 식생활에 점진적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발효의 맛은 성장하면서 알아가는 어른의 맛이다. 그러므로 발효식품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어른이고 공동체의 어엿한 구성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표시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 표시가 생존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령 몽골에서는 아주 어린아이에게도 마유주를 먹인다. 미음이나 겨우 먹을 생후 8-9개월부터 암말의 젖을 발효시킨 이 술맛을 배우는 것. 스텝에서는 이런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 신석기혁명은 서남아에 사람들이 정착해 야생보리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막을 올림. 약 1만년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온이 상승한 것도 이란의 자그로스 산사면에서부터 소아시아 타우루스 산맥과 터키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가 이루어지는 데 유리하게 작용. 비슷한 시기에 그릇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실용화된 것도 발효음식의 비약적 발전에 한몫했다. 인간사회는 초기부터 쌀이나 곡물, 과일, 카카오, 꿀 등을 주재료오 하는 발효음료 제조에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였다. 수렵채집 인구는 야생곡물로 만들어진 술이나 빵의 맛을 알고 있었고, 이제 농사를 지어 그런 먹거리를 더 많이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발효식품들은 신석기혁명의 명실상부한 원동력이었다. 빵과 술 중에서 뭐가 먼저 있었을까 하는 문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름. 그렇지만 빵이든 술이든 발효식품이 식량재배의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 다시 말해, 발효식품은 농경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 인간이 야생식물로 만들었던 발효식품들이 그 야생식물을 작물화하도록 이끈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야생포도로 만들어진 포도주는 포도농사에 동기를 부여했다. 야생종의 작은 포도송이를 따서 만든 술이 좋았기에 포도나무를 작물화하는 김에 그코 단 포도송이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포도, 옥수수, 보리, 스펠타밀, 밀, 나아가 치즈조차 그렇다. 야생 포유류의 젖으로 만든 발효유제품들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그 동물들이 차츰 가축화된 것. 믿기지 않겠지만 빵과 술에 대한 욕망이 농경을 이끈 것이지, 농경이 먼저 이루어지고 나서 빵이나 술을 즐기게 된 것은 아니다. 더더욱 믿기지 않겠지만 인간이 맨 처음 작정하고 키운 것ㅇ느 개나 말이나 젖소가 아니라 미생물이었다.

- 발효음료는 신들의 가호를 확실히 입으려는 뜻에서 전통적으로 사원구역내에서 제조됨. 고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이집트가 그렇다. 게다가 중세 전기부터 주교관 주위로 포도농사가 발달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교권력은 잘 관리된 포도밭으로 구체화됨. 소출이 풍성한 포도밭은 신의 영광을 드러낼 뿐 아니라 주교가 누리는 당대 권력까지 보여줌. 교회는 포도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는 자기네가 독점하고 있던 맥주생산을 장악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임. 수도사들은 북쪽에서는 맥주를, 남쪽에서는 포도주를 빚었다. 그들은 치즈생산도 했는데, 특히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이 유명했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지금도 웬만한 지역 특산품 치즈는 성인이나 수도원 이름을 달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영주들은 발효음식에 동양의 레시피를 접목시켰다. 가령, 증류법을 도입하면서 발효로 생성된 알콜을 따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수도원에서 처음 만들어졌거나 지금도 생산되고 있는 주류, 술의 원액이나 브랜디 등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발효식품은 세상 어느 곳에서든 신의 가호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었다.

- 지구상 모든 대륙을 두루 살펴보면 어느 곳이든 발효식품은 이런 속담이나 관습, 신앙, 미신, 마법의식, 민속적이거나 종교적인 제의와 관련이 있ㄷ. 집단 무의식 속에서 발효음식은 원형적으로 중요하며 인간활동을 신성하게 만듬. 우리는 발효주로 축배를 들거나 함께 술을 마시면서 산 자나 죽은 자를 명예롭게 기리고 출산, 생일, 새로운 계획 등의 경사를 축하하거나 희소식을 전한다. 결혼식에서 물로 축배를 드는 경우는 없다. 운동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우리는 샴페인을 터뜨린다. 발효식품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하며, 또한 인생의 단계들마다 함께한다. 게다가 인생이 그렇듯 포도주, 여러 발효식품도 나이를 먹는다.
발효음료들이 청춘의 무분별한 혈기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해서 점차 차분하게 숙성되어 재생을 촉진하는 부패라는 기묘한 역설로 넘어간다.
이렇듯 발효식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네 인생의 이정표 노릇을 한다.

- 발효음식과 음료가 무슨 이유에서 세계 어느곳에서나 생으 영속성을 의미하게 되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요리는 가열조리, 즉 불을 이용한 변형이므로 생명을 죽이고 살균하지만, 발효는 오히려 음식물을 살린다. 이 때문에 발효는 생의 중요한 고비들, 즉 약혼, 결혼, 출산, 성년, 장례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파스퇴르가 확실하게 보여주었듯이 모든 발효과적은 살아 있는 것을 다시 말해, 미생물을 개입시킴. 수천년전 인류도 그 점을 직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직선적인 동시에 순환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삶-죽음-부활의 상징을 발효식품에서 발견. 음식물은 발효를 통해 자율적인 것이 되고 독자적 삶을 얻는다. 음식물도 생명체처럼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발효음식은 누군가에게 먹힘으로써 그 사람의 생에 참가하든가, 결국은 썩어버리고 만다. 그러한 부패 또한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운명 아니겠는가.

- 발효식품을 존중하고 그 식품이 과연 맛있게 될지 두려워하는 태도 자체가 일반적인 가열조리와는 다르다. 레바논 여자들은 빵 반죽을 만들기 전에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국에서 된장과 간장을 담글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예로부터 호랑이날과 토끼날은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고 했다. 안주인은 마가 끼지 않도록 외출을 자제하고, 불길한 일은 가까이도 하지 않으며, 매사에 경거망동을 삼가야 한다. 가령, 개를 학대해서는 안되고 성관계도 하지 않는다.
장 담그는 날은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뒷마당 장독대에 거하는 철륭(장독신)께 기도를 올린다. 장이 발효되는 동안에도 조심하고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초상을 치른 사람, 산달이 임박한 여자는 장독가까이 가면 안된다. 죽음이나 탄생, 즉 존재상태의 변화가 발효하는 또 다른 상태의 변화와 충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담그기 수칙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샤머니즘적 요소들이 아직 남아 있긴 하다. 장독에 밧줄을 감고, 붉은 고추를 끼워놓는 풍습이 그렇다. 옛사람들은 붉은 색이 잡구를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화의 효험이 있다는 숯조각, 치유의 고약(송진)을 상징하는 솔잎을 끼워놓기도 한다. 흰색 버선을 거꾸로 달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못된 영들이 함정에 빠졌다가 영영 못나가게 하려는 뜻이 있다. 옛날에는 진짜 버선을 달았지만 지금은 버선모양으로 잘라낸 종이를 장독벽에 붙인다. 밧줄을 감는 이유도 못된 영들이 장독에 접근해서 발효를 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다.

- 복을 기원하는 실이나 밧줄이라는 상징은 동남아 전여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밧줄은 존재를 온전히 붙잡아준다. 안에 든 것은 안에만 있을 것이고, 외부의 사악한 영이나 좋지 않은 영향은 안까지 침투하지 못할 것이다. 괴상한 미신이라고? 원시적이라고? 그렇게 볼 수만 없다. 오히려 과학의 시대에 고추, 숯, 솔잎이 실제로 살균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장독에 거꾸로 매단 버선도 햇빛을 반사하는 효과가 있어서 어둠을 좋아하는 해충들을 막아준다고 한다.

- 발효음료를 혼자, 개인적인 영역에서 즐기게 된 것은 산업사회이후. 그 결과 중독이라는 문제가 나타남. 전통 사회에도 중독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결 덜 심각했다. 당시에 술은 반드시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것, 건강을 보살핀다는 뜻에서라기보다는 공동체 조직을 위해 그래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음주방식은 사회구성에 큰 역할을 했다. 발효단지를 매개로 한 교류와 공유에서 환대의 예법, 사회적 관계들의 규제, 나아가 공동체 내 상호의무, 혹은 공동체와 공동체 간의 상호의무가 조직되었다. 사회생활, 경제생활, 정치생활의 상당부분이 발효음식의 제조와 소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발효식품은 인간과 신을 이어줄 뿐 아니라 인간들끼리의 연대에도 이바지한다

- 과즙이나 수액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장과나 식물 표면에 있던 효모 때문에 자연스레 발효과적에 들어갔을 것이다. 채소, 과일, 곡물의 낟알, 당분이 든 줄기가 다 그렇다. 지금도 제조하는 다양한 식물을 이용한 전통 발효음료의 기원을 따지자면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가령 물푸레나무술은 잎이 진딧물의 분비물에 든 당분 때문에 저절로 발효되어 만들어진 술이다. 자작나무와 단풍나무 수액도 이런 식으로 저절로 발효될 수 있다. 
인위적으로 만든 최초의 발효음료는 아마도 꿀물술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구석기시대부터 꿀을 먹었다. 꿀물술은 발효음료 중 가장 만들기 쉬운 것. 꿀은 자연상태에서 발효하지 않지만 꿀과 물을 3:7로 섞은 액체는 자연상태에서 며칠만 내버려두어도 알콜성분이 약간 생김. 폭우가 쏟아져 벌집이 나무에서 떨어졌고 그 안에 빗물이 잔뜩 고였다고 상상해보자. 그 상태가 며칠 지속되면 라오스의 그루터기 술의 전설처럼 꿀 섞인 빗물도 발효가 될 것이다. 우연히 이 액체를 맛본 사람들은 반했을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꿀물을 가죽부대 따위에 넣고 발효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지구상 모든 대륙에는 이같은 원시적 꿀물술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우리가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발효음료들은 꿀물술처럼 단일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 최초의 발효주들은 꿀, 곡물, 포도같은 과일, 식물을 한데 섞어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효주로서 확인 가능한 것은 아시아 대륙에 있다. 북중국 허난성 긑어 지아후 유적에서 발견된 유골 근처에는 도기항아리들이 다수 놓여 있었다. 이 무덤은 기원전 6200~5600년 것으로 추정됨. 항아리 속의 누런 찌꺼기를 분석한 결과 꿀, 쌀, 포도, 산사나무 열매를 주재료로 한 발효음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도주, 맥주, 꿀물술의 칵테일이 떠오르지 않는가? 아시아 대륙에는 과일과 곡물을 혼합한 이같은 발효주가 지금도 있다. 

- 식초도 포도주만큼 오래된 식품. 식초는 포도주가 맛이 간 것, 좀더 정확히 말하면 포도주 발효의 최종단계에 해당하기 때문. 포도주가 공기와 접촉하면 알콜이 초산으로 변성됨. 인류는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수지를 첨가하거나 밀폐 장치를 개발하여 이 변성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 피루즈 테페와 아비도스에서 채취된 포도주 찌거기에도 테레빈(피스타치오 나무) 수지가 들어 있었다. 지중해 일대에서 흔히 자라는 이 나무의 진은 약용효과도 있고 항산화작용으로 보존성을 높여줌. 그리스인들도 나중에 포도주 보존제로 이 수지를 첨가했다.
고대인들은 식초가 음식물의 부패를 더디게 하거나 막아준다는 것을 알았다. 수메르인들이 식초를 썼다는 증거가 있다. 성경에서 여러 번 언급된 것을 보면 고대 이집트에도 식초가 있었고,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유혹하는 자리에서 진주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전설도 있다. 로마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사냥한 고기를 보존하거나 양념하는 용도로 식초를 자주 사용했다. 식초에 허브, 향신료, 식용꽃을 첨가하고 물에 희석한 것이 고대인들이 가장 흔히 마시던 음료였다. 대카토는 농업을 다룬 책에서 올리브 수확 일꾼들이 다량의 식초와 올리브절임으로 품삯을 받았다고 말한다. 주정강화 포도주에 바닷물과 식초를 섞어서 열흘간 통에 재워두면 겨우내 서민들이 마실 음료가 되었다. 로마 군인들은 식초를 탄 물로 갈증을 해소했다.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이 음료를 포스카라 불렀다. 일본 사무라이들도 비슷한 음료를 마셨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목이 마르다고 했을 때 해면에 적셔주었다는 음료도 아마 식초를 탄 물이었을 것이다.

- 인간이 언제부터 곡물을 빻아 사용했고 빵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수확한 상태 그대로 곡물에 키질을 하고, 부스러뜨리거나 곱게 빻으며, 체로 쳐서 가루만 모으고, 반작을 만들며, 불에 구워내는 여러 단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졌을리는 없다. 고고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볶은 곡물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인류가 처음에 곡물을 팝콘 비슷한 형태로 섭취하지 않았을까 추측. 그렇게 하면 거칠고 질긴 껍질은 불에 살짝 타고 낟알은 부풀어 올라 인간이 씹어먹기 더 쉬웠을 것임. 게다가 이렇게 불에 볶으면 날곡물 특유의 씁쓸한 맛도 사라짐. 낟아이 부풀어 오르지 않는 곡물도 일단 한번 볶으면 껍질이 쉽게 떨어져나가고 가루로 내기도 쉽다. 실제로 이렇게 곡물을 섭취하는 예가 인도, 아메리카, 스코틀랜드에 있다. 중동에는 초록밀을 불에 볶아낸 샤위라는 음식이 있는데, 미국인들이 팝콘 먹듯 주로 간식으로 먹거나 파티에 주전부리로 낸다.
인간은 이렇게 볶은 곡물을 빻아서 가루로 쓸 생각을 했고, 그 다음에는 다시 곡물가루를 물과 섞어 죽처럼 만들어 먹임. 그러나 반죽을 전병 형태로 구워 먹었고, 반죽을 발효시키는 법까지 터득하고 나서는 빵을 만들었다. 죽을 뜨거운 판에 부어서 구워낸 것이 크레이프 혹은 갈레트 아닌가? 아마도 최초의 곡물발효음식은 빵도 아니고 맥주도 아닌 묽은 죽이었을 것이다. 죽은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화덕이나 큰 발효통이 없어도 된다. 묽은 죽을 실온에 한동안 방치하기만 해도 발효가 일어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앙아시아 기후가 온난한 지역은 발효의 진행이 더 빨랐을 것임.

- 제빵은 고대 이후로 대단히 발전했다고 보기 어려움. 21세기 사람들도 4000년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빵을 만든다. 천연발효법, 효모첨가법, 다양한 빵 종류는 그 옛날에도 다 있었다. 다양한 곡물을 단독으로 쓰기도 하고 섞어 쓰기도 하고, 둥글게도 만들고 길쭉하게도 만들고, 납작하게도 만들고 푹신하게 부풀려 만들고, 속을 채우거나 고명을 얹거나 기름기를 더하거나 꿀을 뿌리거나 했다. 반죽기나 일정온도를 유지하는 발효실 등 장비와 관련된 부분만 유일하게 발전.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빵은 공장에서 기계가 만들고 표백제를 비롯한 각종 첨가물을 넣는 빵이 아니라 제빵사가 손수 만드는 빵을 가리킴.
브리오슈같은 빵은 2000년 전에도 있었다. '어떤 빵은 달걀과 우유로 반죽을 하고 버터까지 넣는다. 전쟁에서 해방된 나라들이 이제 다양한 빵만들기에 공들일 여력이 생거서 그런 빵도 나온 것이다.' 대플리니우스는 백과사전적 저작에서조차 당시 빵 종류를 모두 나열할 수 없었다. 우리도 세계 곳곳에서 만드는 다양한 빵을 전부 나열할 수 없다. 프랑스 빵만 해도 종류가 매우 많고 유럽의 페이스트리류, 천연발효 중심의 북구빵과 효모를 즐겨쓰는 남구빵, 마그레브와 중동의 납작한빵을 다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게다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도 수천년 전부터 빵을 먹었다. 거기에도 납작한 빵과 발효시켜 부풀린 빵이 있었고, 치즈나 고기로 속을 채우거나 고명을 얹기도 했다.
중국인들도 빵을 만들어 먹었다. 중국인들은 주로 효모를 넣어 반죽을 발효시켰고, 굽는대신 찌는 방법을 썼다. 좀더 나중에는 일본인들도 단일곡물로 쫀쫀득한 빵(떡)을 만들어 먹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나간 유럽인들도 샌프란시스코의 천연발효종빵, 보스턴빵, 햄버거빵 등 미국의 전통빵을 만들어갔다.

- 인간은 자기가 잘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식품을 왜 그토록 오랫동안 즐겨 먹었을까? 유전자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인류가 처음 유제품을 먹기 시작한 때와 이론상 별 무리없이 유제품을 소화할 수 있게 된 사이에는 5000년이라는 긴 식나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결국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기 전부터 발효법으로 소화문제를 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우유를 발효시키면 유당이 젖산으로 변하기 때문에 유당분해효소가 없어도 섭취하고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다.
요컨다, 최초의 인류는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거나 젖소를 기르기 전부터 요구르트와 치즈를 먹었을 것이다. 인간이 가축을 처음 기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발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발효되지 않은 우유는 소화시킬 수도 없으니 말이다.

- 과일은 당이 풍부하므로 자연스레 알콜발효를 한다. 하지만 소금을 첨가하면 알콜발효를 일으키는 효소의 활동을 막아 젖산발효로 유도할 수 있음. 동남아, 인도, 네팔에서는 라임을 고추나 향신료와 함께 젖산발효시켜 커리양념으로 사용. 라문마크부스는 노란색 레몬을 발효시켜 만든 것이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레몬을 발효시켜 먹는다. 유럽 식료품점에서는 이것을 레몬절임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현지어로는 므시르라 하고 타진이나 뭉근하게 끓여내는 요리에 사용. 말레이시아에는 템포약이라는 두리안 과육을 발효시킨 음식이 있다. 일본인들은 매실을 시소(차조기)잎과 함께 발효시켜 우메보시를 만든다. 우메보시는 반찬이나 양념으로도 먹지만 약으로도 먹는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초록색 망고를 젖산발효시켜 먹었다. 신맛에 향신료가 더해져서 입맛을 돋우기 때문에 양념으로 인기가 좋다. 필리핀에서는 이것을 부롱 망가와 달록으로 부른다.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는 빵나무 열매를 발효시켜 먹는다. 동유럽에서는 월귤나무 열매, 사과, 멜론을 젖산발효시켜 저장했다.
과일과 채소를 함께 발효시키면 맛있는 양념이 된다. 아차드, 처트니, 스리라차가 모두 이런 계통의 소스인데 케첩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 인도와 동남아에서는 이런 소스가 매우 인기가 많아서 망고, 바나나, 가지, 콜리플라워, 고추, 마늘, 오이, 토마토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다. 소금을 써서 주재료를 발효시키는데 향신료를 많이 넣고 때로는 꿀이나 설탕도 쓴다.
소스로 말하자면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 고추를 퓌레로 만들어 놓고 소금과 함께 통에서 발효시키는 타바스코도 빼놓을 수 없다. 케첩은 토마토와 향신료를 발효시켜 만드는데, 원조는 말레이시아의 켓잡 마니스라는 새콤달콤한 소스다. 지금의 케첩맛은 이 원조 소스의 맛과 완전히 다르지만 음식맛을 더해준다는 용도 자체는 변하지 않았따. 19세기에는 케첩을 몇 주간 발효시켜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을 냈다. 현재 케첩을 만드는 기업들은 퓌레를 직접 발효시키는 대신 또 다른 발효제품인 식초를 첨가해 신맛을 낸다.

- 아시아의 콩 발효 식품
유럽에서는 콩과 식물을 발효시켜 먹는 경우가 드물다. 소카처럼 병어리콩을 발효시킨 음식이 있기는 하다. 반면에 아시아에서는 콩이 발효의 주재료다. 중동에는 병아리콩으로 만드는 팔라펠이 있고, 인도는 렌즈콩을 발효시키며, 동아시아는 간장을 먹는다. 콩은 원산지가 만주로 추정되며 기원전 3000년경부터 경작되었다. 콩은 날로 먹으면 배탈이 난다. 특히 소화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아니트립신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콩을 발효시키면 이런 불편이 해소될 뿐 아니라 몸에 좋은 비타민들이 생기고 콩단백질의 체내흡수가 용이해짐. 그래서 콩은 으레 발효시켜 먹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지앙, 한국에서는 장, 일본에서는 시오라고 한다. 콩을 뜻하는 한자인 두는 뚜껑과 받침대가 있는 단지모양을 본뜬 것인데, 절에서는 이 발효단지를 공물로 바치기도 했다. 18세기에 일본인들은 쇼유라는 이름으로 간장을 유럽에 수출했다. 이 때문에 이 검은 소스를 만드는 콩을 서양인들은 소야라고 부르게 되었다.
콩을 발표시켜 얻는 식품은 여러가지가 있다. 간장 같은 소스도 있고, 미소같은 페이스트도 있으며, 알갱이를 그대로 먹는 인도네시아 템테나 일본의 낫코도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콩의 흔적은 기원전 2세기 마왕두이 무덤에서 발견됨. 동아시아 음식에서 더없이 중요한 장의 원조가 중국인가 한국인가를 두고 아직도 논란이 많음. 지금으로서는 기원전 3세기 한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증거를 보유한 중국이 좀더 유리한 입장이다.
7세기 한국 영토 발해에서는 집에서 만든 간장과 된장이 신부의 혼수품이었음. 장을 만드는 방법ㄷ은 7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일본으로 전해짐.
콩을 발효시키는 방법은 나라마다 독자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발전. 중국은 치, 지앙, 한국은 된장, 간장, 이론은 미소, 소유라고 함. 제조법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소비방식은 매우 다양. 가령, 일본인과 한국인은 콩을 발효시켜 만든 페이스트로 국을 끓여 먹음. 미소는 양념이 아니라 국의 주재료다. 그런데 중국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 먹는 국이 없다. 또한 중국은 콩으로 만든 두부를 발효시켜 먹지만 한국과 일본은 신선한 상태로 먹는다.

- 미생물들은 모두 효소를 합성한다. 효소는 발효라는 화학과정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 단백질. 효소의 명칭은 보통 원래 물질에 아제라는 접미사를 붙여 만듬. 그래서 녹말을 단당류로 바꾸는 효소는 아밀라아제다. 육류 단백질을 연화하는 효소는 프로테아제, 맥아당을 포도당으로 바꾸는 효소는 말타아제다. 효소는 다당류 거대분자를 작은 단당류로 바꾸는데, 박테리아나 효모가 이것으로 영양을 취함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들은 원재료의 표면이나 속에서 산다. 가령, 포도주의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포도껍질에 붙어 산다. 밀알에는 빵 반죽을 부풀게 만드는 미생물도 이미 존재한다. 식물이 사는 흙, 발효의 맛을 들이는 지하실이나 술 창고의 공기, 바람이 잘 통하게 개방한 다락방에도 그런 미생물이 있다. 수확이나 제조에 쓰이는 도구와 용기도 사정은 마찬가지. 사부아 지방에서 우유를 응고시키는 밤나무통에도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이 살기 때문에 그 특유의 풍미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전에 만들어놓았던 발효유나 반죽을 섞는 방법으로 씨를 의도적으로 심을수도 있음. 예를 들어 로크포르는 전통적으로 곰팡이 슨 빵의 속살로 씨를 심었다. 포도주가 되기에는 효모가 충분치 않다면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를 종균배양해서 얻은 효모를 넣어준다. 제빵업자도 이 효모를 넣어 먹음직스럽게 부푼 빵, 크루아상, 브리오슈를 만든다.
미생물은 무리를 지어 살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래서 박테리아나 효모균을 말할 때 컨소시엄이라는 표현을 쓴다. 치즈 껍질이나 천연발효종 빵에는 10여종의 미생물이 관여하며 이 미생물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갸 특유의 맛을 좌우함. 가령 천연 발효종 빵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식물군으로는 락토바실루스속, 류코노스톡속, 페디오코쿠스속을 꼽을 수 있다. 젖산만 생성하는 미생물도 있지만 젖산, 초산, 알콜, 탄산가스를 생성하는 것들도 있다. 발효종을 고유한 특성을 유지한 채 장기간 보존하는 것도 가능.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면 젖산균상이 변해서 점점 균질화된다. 이 때문에 오래된 발효종이 어린 발효종부다 빵을 더 잘 부풀게 한다. 또한 효모균은 서서히 향 화합물을 생성한다. 이 때문에 빵 반죽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발효시켜야 풍미가 살아난다.

- 발효식품은 대개 새콤한 맛이 난다.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발효식품을 즐기지 않을 수도 있음. 하지만 요쿠르트, 슈크루트, 천연 발효종 빵을 먹으면 우리 몸의 산-알칼리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발효는 칼륨처럼 우리 몸을 알칼리와하는 무기질을 더 잘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우리 몸의 기본산도는 나트륨-칼륨 비율이 좌우함. 발효음료도 이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집트 인부들은 여과시키지 않은 맥주를 마셨는데, 이는 빵만큼 그 이상 영양이 풍부했다. 당시 맥주는 효모가 더해주는 단백질, 비타민B, 아미노산이 풍부햇고 대장의 무기질 흡수를 방해하는 피틴산은 줄였다.

- 발효식품은 굉장히 안전한 식품이다. 제대로 만든 발효식품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일은 없다. 진공밀폐나 냉동조차도 발효만큼 우수한 보존방법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 발효의 놀라운 점은 원래 식품에 있던 독성까지 없앤다는 데 있다. 많은 식품이 발효덕분에 비로소 먹을 수 있게 된다. 일단 우유부터도 선사시대 성인들은 대부분 소화시키지 못했고 지금도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은 꽤 많다. 그렇지만 요쿠르트, 치즈, 버터를 소화가 안되어 못 먹는 사람은 없다. 천연 발효종 빵, 곡물이나 콩과 식물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와 페이스트도 마찬가지. 발효는 철분, 아연, 칼슘처럼 우리몸에 꼭 필요한 성분들이 장내흡수를 방해하는 피틴산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배속에 가스가 차게 하는 콩 성분도 발효로 없앨 수 있다. 심지어 질산염, 아질산염, 잔류 농약성분의 효과를 누그러뜨리는 힘도 있다.

- 발효는 행간을 더듬어야만 읽어낼 수 있는 과정이다. 지금은 발효가 다른 단어들로 가려져서 그 단어들을 실마리 삼아야함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집어던지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라. 요즘은 고기를 삭힌다고 말하지 않고 숙성시킨다든가 맛을 들인다는 표현을 씀. 발효시킨다든가 삭힌다고 하면 부패를 먼저 연상하기 때문. 우리는 고기를 향신료와 함께 포도주나 식체에 재우면 발효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 고기를 양념에 재우는이유는 시간을 두고 발효시킴으로써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요즘은 반죽을 발효시킨다는 말도 잘 쓰지 않고, 그냥 재운다고 한다. 영미권이나 여러 국가에서 흔히 말하는 사워크림이 발효시킨 크림이라는 생각도 지금은 거의 못함. 심지어 사워크림 만드는 법도 보통 크림에 레몬즙 따위를 첨가해서 신맛만 내면 된다고 할 정도다. 건조 소시지라는 말은 써도 발효 소시지라는 말은 쓰지 않음. 숙성시키고 맛을 들이고 재우고 방치하고 간하고 말리고 훈연하고 깊은 맛을 낸다고 말하지만 발효시킨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발효를 겁내는 것 같다. 그래서 발효를 은폐하거나 위장한다. 발효는 늘 완곡하게 말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 프랑스에서는 케이크 따위를 부풀리기 위해 반죽에 넣는 가루를 화학적 효모라 부른다. 영어의 베이킹 파우더, 독일어의 바크폴버는 훨씬 더 온당한 표현이다. 베이킹파우더는 19세기 말에 유스투스 폰 리비그와 미국인 제자 벤자민 럼포드가 빵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인답시고 진보의 명분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화학적 효모라니, 마케팅에는 괜찮을 법한 모순어법이다. 애초에 효모라는 것은 생물이기에 화학적으로 만들으질 수가 없다. 곡물을 기반으로 한 반죽에서 베이킹파우더는 천연효모를 일부 대체했다. 베이킹파우더는 기본적으로 탄산수소나트륨과 산을 섞은 것으로 수분과 온도조건이 맞으면 가스를 발생시켜 반죽을 부풀게 함. 천연효모도 가스를 발생시켜 반죽을 부풀게 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과정이 생물학적이기 때문에 식품성분에 변화가 생기고 원래 없던 풍미도 더해짐. 하지만 진짜 효노를 써서 빵을 구우려면 최소 4시간 길게는 12시간 걸리는데 베이킹파우더는 단 20분 만에 소다브레드를 만든다. 베이킹파우더로 만든 빵도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맛은 완전히 다르다.
베이킹파우더는 식품의 산업화, 대량생산, 신속한 공정, 표준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으로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발효식품 특유의 복합적이고 깊은 맛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프랑스어에서 베이킹파우더가 가당찮게 효모로 불리는 이유는 화학적이라는 단어가 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상쇄하려는 꼼수. 20세기 초에 화학적이라는 말은 의심과 경계를 불러일으킴. 화학적이라는 말은 주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화학적 효모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효모라는 부분만 머릿속에 접수한다.
옛날에는 발효시켰지만 지금은 그 과저을 생략하고 만드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파운드케이크나 프랑스 전통디저트 클라푸티스, 천개의 구멍이라는 뜻의 모로코 바켈로헤이야, 인도의 이들리나 도사, 영미권의 팬케이크를 보라. 온 세상이 발효를 외면한다. 반죽에 베이킹파우더 한 자밤만 넣어주면 기나긴 발효의 수고를 덜 수 있지만, 그래서 음식맛이 예전같지 않고 요리습관도 변했다. 베이킹파우더가 나오기 전에는 과자를 어떻게 구웠던가? 비스킷을 맛있게 만들려면 달걀흰자로 머랭을 쳤다. 그 외에는 대개 발효가 답이었다. 당시 요리는 기다림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요리책에는 재워둔다, 그대로 둔 채 숙성시킨다는 표현이 자주 나옴. 그런데 베이킹파우더가 등장하면서 기다림은 쓸데없어졌다. 과거의 발효는 조리의 이면으로 밀려났다.

- 식품회사는 베이킹파우더와 첨가물을 넣어서 빵을 만듬. 반죽은 잘 부풀어오르지만 빵맛은 없다. 제빵업자들은 더 희고 더 푹신한 빵을 더 빨리 만들기 위해 속성반죽기술을 개발했다. 그 결과 전통적 방법으로 만든 빵은 일주일이 지나도 마르지 않지만 빵공장에서 만든 바게트는 구워 나온지 몇시간만에 마른다. 빵공장에서 만드는 페이스트리는 생략된 발효과정을 각종 첨가물로 메꾼다. 공장생산치즈는 살균해서 미생물을 죽이고 최소한의 숙성기간만 거친다. 어떤 제품들은 미생물을 그나마 덜 죽이는 초저온살균 원유로 만든다. 공장제 버터는 자연스럽게 크림이 올라오게 내버려뒀다가 건져낸 것도 아니고, 24-48시간 동안 숙성시킨 우유를 발효시켜 버터의 맛과 향을 더하는 젖산과 디아세틸을 생성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크림도 저온살균하고, 자연숙성이 안 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재조합된 효모들을 첨가해야만 한다. 싸구려 버터는 이 과정조차 없다. 지금은 두 시간 넘게 교유기에서 휘젓지 않아도 몇 초 만에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버터는 맛이 없다. 젖산 효모를 첨가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프랑스에서 금지된 첨가물과 디아세틸을 넣는 악수를 두기도 함. 옛날에는 여름 버터맛과 겨울버터맛이 달랐다. 소가 먹는 것이 계절에 따라 달랐기 때문. 식품산업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공장제 제품의 맛은 계절과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햄, 소시지, 빵, 치즈, 모든 식품이 신속하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팔린다. 발효가 끼어들 시간조차 없이, 대량소비를 겨냥한 대량생산이란 그런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전통발효식품은 산업호에 정면으로 타격을 받음. 라오스의 솜무, 베트남의 넴추아는 돼지고기를 찹쌀, 마늘, 고추와 함께 발효시킨 음식. 옛날에는 바나나잎에 쌌지만 지금은 분홍 종이에 싸서 만드는 이 음식도 원래는 다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지금도 집에서 만들긴 하지만 위생을 명목으로박테리아를 억제하는 화학성분과 향신료 가루를 섞은것을 사다가 쓴다. 지금도 이 음식을 발효식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간장도 3-4년을 묵혀야 맛이 나지만 지금의 싸구려 간장은 몇시간 만에 제조된다. 게다가 제조공정이 구미를 당기지도 않는다. 콩, 쌀, 밀의 단백질을 염산으로 화학적으로 가수분해 처리하여 아미노산을 추출한다. 이 용액을 탄산나트륨으로 중화해서 걸러낸 후 모노글루탐산나트륨, 캐러멜 색소, 포도당시럽을 넣고 녹말로 점도를 맞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전통 간장과 아무 상관도 없다. 이런 싸구려 간장이 팔리는 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장 담그는 노하우가 사라진다. 간장 품질에 무지한 유럽소비자들은 이게 모조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 고급 간장은 반드시 발효를 거치지만 품질 안정성을 위해 저온살균후 판매됨. 그래서 시판 간장에는 미생물이 없다.
소시지, 햄, 생선절임, 빵, 페이스트리같은 식품들은 전통적인 발효와 별 상관없는 공정을 통해 생산된다. 게다가 식품회사들은 유통기한을 다분히 임의로 정한다. 위생이라는 알리바이가 있지만 상업적 이유가 더 크다. 요구르트, 치즈, 건조소시지와 햄의 보존기간은 포장지에 적혀 있는 기한보다 훨씬 길다.

- 우마미는 음식물 속의 이노신산, 과닐산, 글루탐산 등이 화학적으로 결합해서 내는맛이다. 특정 음식물에 있는 이런 천연 맛성분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식품이나 아시아 요리에 첨가하는 MSG, 이노신 5-모노포스페이트, 과노신 등의 첨가물과 차원이 다르다. 이 맛성분들은 미생물, 효모, 박테리아 덕에 생성된다는 점에서 발효와 관계있다.
글루탐산은 차, 식초, 오래된 포도주, 사케, 미림, 오래 숙성시킨 미주, 김치, 슈크루트, 오이피클, 미소, 파마산 치즈나 로크포트 치즈, 그외 곡물, 생선, 새우 등으로 만든 각종 소스류에 들어 있다. 글루탐산은 중국의 홍국쌀에도 들어 있다. 발효시키지 않은 신선식품으로서 글루탐산이 든 것을 꼽아보자면 콤부(해조류), 파, 잘 익은 토마토, 양파, 당근, 배추, 참깨페이스트, 참기름 생선, 게, 가리비 등이 있다. 고기를 오래 끓여 맛성분을 뽑아낸 육수나 농축액에도 글루탐산이 풍부. 공장에서 나온 스톡 한 조각을 넣어 끓인 육수보다 진짜 고기와 뼈를 우려낸 육수는 훨씬 맛이 좋다. 글루탐산은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여낸 음식의 깊고 풍부한 맛을 책임진다. 브라야샤바랭이 중시했던 고기 특유의 맛도 결국은 비슷한 이야기. 글루탐산은 맛의 정수, 모든 음식을 맛있게 해주는 요소같기도 하다. 일본 요리의 육수를 내는 가다랑어와 니보시(말린 정어리)에는 이노신산이 풍부함. 이런 육수재료는 포도주나 치즈처럼 오랫동안 발효건조시켜서 복합적인 풍미를 낸다는 특징이 있다. 과닐산은 온갖 종류의 버섯에 들어 있다. 표고, 양송이, 송로버섯은 물론, 효모균에 해당하는 미세균류는 특유의 맛을 낸다.
따라서 발효식품은 우마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발효식품 없이는 우마미가 구현되지 못한다. 가쓰오부시라는 발효건조식품 없이 일본요리의 다시를 낼 수 있을까? 생선액젓 없이 티코타우의 맛을 낼 수 있나? 염장 돼지비계와 적포도주 없이 코코뱅을 만들 수 있을까? 버터와 파마산 치즈 없이는 리조토가 상상이 되는가? 잘 발효시킨 도우반죽과 모차렐라 없이 맛있는 피자 한판을 구워낼 수 있을까? 발효의 맛은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반향, 한 끗이 다른 향, 오래 남는 깊은 끝맛으로 드러난다. 

- 포도주, 간장, 그리고 모든 자연발효식품이 이렇다. 대량으로 생산해서 대량으로 팔아치우는 업계는 제품의 품질, 모양, 색상, 맛이 늘 똑같기를 바란다. 식품산업은 효모의 변덕에 놀아날 여유가 없다. 그러니 살균으로 제압하고, 기계에 집어넣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게 만든다. 우연이 개입할 여지를 철저히 봉쇄하면서, 이로써 식품의 독자적 생명을 앗아가고 고유한 맛을 지운다. 고유한 풍미가 없으니 염소치즈향, 블루치즈향을 첨가해야만 한다. 이제 우유에서 크림이 표면에 떠오르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계절에 상관없이, 소가 무엇을 먹느냐에 상관없이 치즈맛은 늘 똑같아야 한다.
우리는 원유에 사는 미생물들을 죽이면서 원유자체도 죽인다. 어차피 죽일 원유니까 굳이 좋은 품질의 원유를 택하지 않아도 양심에 거리낄 게 없다. 산업은 저온살균, 멸균으로 짭짤하게 재미를 보면서 야생발효의 여지를 제거. 산업이 만들어낸 제품들은 대부분 최저품질, 최저가를 지향함. 이 업계에 박애주의는 없다. 농부와 소비자는 이 게임에서 얻는 게 하나도 없다. 식품산업은 먹거리에 첨가물, 보존제, 색소, 증점제 따위를 집어 넣는다. 원산지, 제철음식, 제품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조방식을 표준으로 밀어붙이므로 식품의 테루아나 개성을 망친다. 원유를 살균하면 미생물들이 식품의 개성을 빚어낼 수 없으므로 여러 곳에서가져온 원유, 아주 먼 지방에서 가져온 원유까지 한데 섞어도 문제가 없다. 시장의 법칙이라고 불러야 할지 뻔뻔한 이윤추구라 불러야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노르망디나 푸아투 지방에서 생산하는 카망베르나셰브르를 스페인산 원유로 만들든, 폴란드산 원유로 만들든, 그 둘을 섞어 만들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원유에는 미생물적 개성이 없기 때문.
원유를 70도가지 몇 분간 가열처리하는 것을 저온살균이라고 함. 저온살균은 결핵균을 죽인다. 이 때문에 공중위생당국은 20세기초까지 우유늬 저온살균을 적극 추천했다. 그런데 저온살균은 우유를 음료로서 판매하는 경우엔 적합한 반면, 치즈의 원료로 쓸 때는 적합하지 않다. 생우유로 치즈를 만들어도 결핵균은 발효과정에서 죽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음. 50년대까지도 위생관리는 저온살균의 진짜 동기, 다시 말해 제조공정의 표준화를 위장하기에 딱 좋은 핑계였다. 지금도 식품업계는 생우유 치즈가 위험하다고 떠들어대고, 의사들을 앞세워 임신부는 생우유치즈를 먹으면 안된다고 엄포를 놓는다.
발효와 살균이라는 주제로 조사를 하다보면 이중담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식품업계는 생우유가 만병의 근원인 양 몰아세우면서 저온살균, 초저온살균, 마이크로필터 처리 등의 공법으로 발효씨를 죽여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반면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학계의 정설은 치즈의 원유로는 생우유보다 저온살균한 우유가 더 위험하다는 것. 생우유 속의 미생물들이 우유에 원래 존재했거나 추후 감염되는 병원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 게다가 어차피 살균처리할 우유보다 생으로 쓸 우유가 훨씬 더 엄격하고 철저한 품질관리와 검사를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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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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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버블

경제 2025. 3. 22. 06:56

-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이될 수 있던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가 있다. 아일랜드 이민자 아들이었던 조지프 케네디는 20년대 금주법이 만들어낸 부자다. 알 카포네가 밀주 제조, 유통으로 돈을 번 갱단 수괴라 하면, 조지프 케네디는 주류수입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쌓음. 그리고 그 돈을 주시시장에 투자하여 막대한 부를 거머쥠. 그는 27년도 대공황도 피해갔다. 대공황 직전 모든 주식을 팔아서 현금으로 바꾸었기 때문. 아버지의 부가 있었기에 존 에프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조지프 케네디가 주식을 대거 매도하여 대공황 주식시장 붕괴를 피한 거이 구두닦이 때문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월가 한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는데, 어느 날 구두닦이가 그에게 좋은 종목을 추천했다는 것. 이 순간 조지프는 주식시장이 버블이라고 판단하여 그날로 주식을 전량 매도했고, 그렇게 그의 자산을 지켰다. 그러나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구두닦이까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만으로 주식시장 붕괴를 직감하고 연일 급등하는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전량매도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라는 과연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이는 절대 쉬운일이 아니다. 조지프 케네디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보탐닉 성향 때문. 그는 정보광이라 불릴 정도로 정보에 탐닉했다. 그는 회사 내부 정보에서 온갖 공개정보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었고, 주식시장의 과열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구두닦이가 화룡점정을 한 것일 뿐이다.

- 경제체력에 비해 낮은 금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초과 과잉유동성이다. 어차피 2% 미만의 레벨에서 금리의 절대수준은 경기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함. 금리 인하나 인상으로 실물경제가 반응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 다시 말해 금리인하나 지준율 인하를 단행해도 신용창조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총통화량이 반응하지 않는 구간이다. 이런 점을 극복하고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양적완화라는 수단을 구사하는 것. 즉 금융시장의 통화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채권매입을 통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주입. 그렇다고 시중에 유동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기 유동성은 차고 넘친다. 초과 수익의 기회만 엿보고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 과잉 대기유동성이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 자유주의자들도 산업혁명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노동시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임금이 올라가면 풍부한 음식소비로 인구가 증가하고, 증가한 인구가 노동시장으로 나오면서 노동의 공급을 증가시켜 임금하락을 유발한다. 이것은 다시 식량부족으로 인구감소와 노동공급 부족을 초래하여 임금상승을 가져오게 된다고 보았다. 특히 수확체감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항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실질임금이 최저생계비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주장. 이런 그의 주장은 현재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자유주의자들이 당시 새로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 유럽, 미국, 일본, 한국, 중국 등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은 똑같이 농촌해체와 농민의 도시유입을 경험하는데, 노동력의 끊임없는 도시유입이 실질임금 상승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 마르크스에 와서야 농촌해체에 따른 끊임없는 노동력 유입이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도 이런 현사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한 것이 그는 농촌해체가 끊임없이 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농촌해체에 따르는 노동력 유입이 비교적 정확히 설명된 것은 영국경제학자 아서 루이스에 의해서다. 루이스는산업화가 어느정도 완성되는 국면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도시화는 일어나지 않고, 이때부터 노동력 부족에 의한 실질임금 급등과 이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구조 정착 및 성장둔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공로로 7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 이렇게 농촌해체가 완성되어 도시유입 노동력이 고갈되는 시점을 루이스 전환점이라 부름.

-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 경기 사이클을 버블과 붕괴의 연속으로 바꾸어 놓음. 그리고 4차산업혁명이 불러온 긱경제는 일자리의 파편화를 초래하여경제구조를 유리처럼 부서지기 쉽게 바꿈. 금리 저항성이 떨어져서 약간의 금리인상에도 일자리가 버티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 그러다 보니 물가도 쉽게 반응하지 못함. 이에 따라 경제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양적 완화와 확대재정에 의존하는 현대통화이론이 득세하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과잉유동성에 의한 자산버블을 불러옴. 이 세가지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만나 허리케인과 같은거대버블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소득으로 지탱할 수 없는 부동산 가격은 항구적 가격이 아님. 불안정한 일자리와 소득으로 이루어진 소비는 기업의 실적마저 설탕유리로 바꾸어 놓았고, 따라서 주가도 항구적 가격은 절대 될 수 없다. 버블은 붕괴할 수밖에 없고, 경제는 공황으로 추락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 코로나 19 팬데킥은 언택트로 패러다임을 바꿈. 이것이 부동산 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는 바로 1층 상가의 재조명이다. 상가는 항상 1층이 가장 비쌌다. 원래 상가 1층은 토지비용과 맞먹는다. 상가분양을 할 때 1층으로 토지가격을 빼고, 2층으로 건축비를 빼고, 3층 이상에서 수익을 낸다는 것은 오래된 공식. 지가가 올라가면서 여건이 조금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사한 공식이 작동. 그 정도로 1층은 상업적 가치가 크다. 그런데 상가 공실이 늘기 시작. 온라인 쇼핑이 발달하며 오프라인 상가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됨. 온라인으로 배송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택배로 배송될 것임. 오프라인 상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시작된지 오래고, 팬데믹으로 인하여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1층 상가의 용도가 사라질 것이다.

- 미용실은 온라인 배송이 안된다. 커피숍은 장소를 빌리러 가는 곳이니 온라인 트렌드를 비껴갈 것이다. 치킨집은 요즘 다 배송이다. 주점도 쉽지 않다. 혼술족은 주점에 가지 않는다. 친구 모임도 캔맥주를 들고 줌으로 하는 세상이다. 이런 변화를 고려하여 입점이 가능한 업종이 자리잡을 수 있는 입지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2,3,층에 원룸이 잘 나갈지도 봐야 한다. 미니상가도 어려워지고 있다.

- 루이스 전환점은 79년 노벨상 수장자 윌리엄 아서 루이스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그는 경제개발 초기 농촌해체에 따른 노동공급이 어느 시점에 가면 마무리되면서 임금상승 욕구가 분출하게 된다고 주장. 미국은 1900년을 전후로이 과정을 겪었고, 한국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겪음. 중국은 지난 04년부터 동부 연해 지역에서 농민공 부족이 발생하며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하였는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은 중국이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하였으며, 앞으로는 고도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아직 통과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04년 당시에는 논쟁적 이슈였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면서는 중국도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기 위해 중국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베트남 등 제3국으로 이동하기 시작. 더 큰 움직임은 미국과 일본 기업들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의 본국 회귀가 시작된 것임. 일본은 이를 유턴현상이라 불렀고, 미국은 오프쇼어링의 반대말로 리쇼어링이라 불렀다. 미국 원자재를 중국으로 보내서 제조과정을 거치고 완제품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보다 미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경쟁력을 갖게 된 것. 이것은 더는 중국 인건비가 저렴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

- 한 국가가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했는지는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야기할 때 루이스 전환점의 다른 이름은 중진국의 함정이다. 신흥국이 경제개발과정에서 겪는 두가지 함정이 있다. 하나는 빈곤함정, 다른 하나는 중진국 함정. 빈곤함정이란 경제 내부에 축적된 자본의 절대적 부족으로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인적, 물적, 그리고 기술자본 등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황폐한 상황을 말함. 쉽게 설명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종자 씨앗을 다 먹어버릴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그 다음 해 농사를 뿌릴 씨앗이 없어지는 경우다. 빈곤함정을 넘어서면 중진국 함정이 기다람. 절대 빈곤을 넘어서 중진국까지 가는 과정에서 누적된 온갖 사회문제와 경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체제의 후진성 등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만년 중진국에 머물게 되는 현상을 말함. 일부 남미 국가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했다는 것은 빈곤함정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의미.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면 상대적 빈곤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가 거세짐. 중국의 양극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다. 농민공은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반면 기업주는 수십 조 위안의 재산을 보유. 문제는 이것이 중국 정치시스템과 맞물려 있다는 점. 국유기업들의 문제와 당간부들과 기업과의 유착관계가 그 어느나라보다 심한 것이 중국이고 보면 양극화 문제가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주의적, 전제주의적 국가 지배구조도 문제가 될 것임.

- 미국 무역적자는 상대국의 무역흑자다. 중국, 한국, 독일 같은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는 1초8천억불의 화폐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 돈을 달러 지폐로 중앙은행 지하창고에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예컨대 한국이 1천억불 대미 무역흑자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한국은행은 1천억불 지폐를 미국으로부터 받아서 한국은행 지하창고에 쌓아놓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한국은행은 뱅크오브아메리카 뉴욕 지점에 개설된 한국은행 계좌에 1천억불을 예치해 놓고 있는 것이고, 이 돈을 은행에 예금으로 놔둬도 이자가 한 푼도 붙지 않으니 미국 국고채를 사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 재정적자 국고채 발행은 무역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한국의 미 국고채 매입으로 연결된다. 미국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고 한국으로부터 1천억불 어치 상품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물론 한국은 미국에 대해서 1천억불 어치의 상품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미국 달러호가 약세가 되면 그만큼 한국의 권리는 줄어들고 앉아서 손실을 보는 결과가 초래됨. 이것도 한미 간에 관계가 좋을 때 이야기고,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한국이 들고 있는 미국 국고채는 휴지가 되어버린다. 미국은 하나도 갚지 않고 전부 떼어먹고 말 것이기 때문. 미국으로서는 꽃놀이패고, 한국은 잘해야 본전이다.
이렇게 미국이 돈을 찍어서 다른 나라의 상품을 갈취하는 순간에도 전 세계 주식시장에 버블이 형성된다. 무역흑자가 많이 그리고 빨리 나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일수록 더 큰 버블이 더 빨리 형성된다. 달러 약세로 인한 미국 달러의 미국 엑소더스 때문인데, 이들 미국달러는 한국으로 흘러들어와서 주식시장에 버블을 만들어내고 상투에서 매도함으로써 대미 무역흑자로 인한 주가상승 차익을 다 벌어간다. 결국 미국은 돈 들이지 않고 재정적자를 내고, 상품을 수입해서 쓰는 경제구조. 한국 개미들만 상투에 물려서 고생하는 구조임. 과연 미국 연준이 한국 주식시장 버블을 걱정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 주식시장에 버블이 형성되는 것도 또 그것이 붕괴되는 것도 미 연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때만 신경을 쓴다. 미 경제가 너무 달아올라서 그냥 놔두었다간 버블 붕괴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무조건 금리인상이다. 통화를 환수하고 금리를 인상해서 미국 경제가 너무 뜨거워지는 것을 막으려 할 것임. 한국 주식시장 버블이 붕괴되는 것을 염려하기에는 자국경제가 훨씬 더 급하다. 그러니 제발 연준이 한국 주식시장에 버블이 터질까봐 금리인상을 살살 할 것이라는 믿음은 갖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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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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