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 어떻게 볼 것인가

저자
구라쓰 야스유키 지음
출판사
한스미디어. | 2008-11-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지금, 세계금융은 요동치고 있다 _ 세계금융의 흐름을 읽는 6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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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자에 대한 기대와 환상_자산운용의 환경변화
- 17~18세기에 걸쳐 국제무역으로 자금력을 축정한 영국은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을 계기로 국내투자가 활성화되자 북미아 인도 등의 식민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 이것이 국제 분산투자의 시작. 동인도 회사와 남해회사의 광적인 투기 등으로 대표되듯이, 그것은 현대 버블의 원점이기도 했음. 그렇지만 영국의 해외투자 열기는 뒤집어 말하면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는 영국이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그들의 땅은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와 같은 구실에 의한 것이었지, 결코 분산투자가 리스크 삭감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적인 행동에 의한 것은 아니었음. 어쨌든 영국의 식민지 정책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분산투자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수익을 올렸음.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은 당시의 분산투자는 정치적 의도가 가미된 것으로 오늘날의 투자이론과는 그 성격을 달리함.
- 영국의 투자철학을 보면 분산투자는 잘 안느 복수의 시장에 투자한 결과이며, 따라서 리스크 분산효과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시장에 투자한다는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음. 그렇지만 최근의 분산투자는 각국의 부동산, 주식, 채권처럼 미지의 시장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음. 그것은 현대적인 의미에 걸맞은 분산투자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어떤 리스크가 숨어있는지 조심스럽게 짚고 넘어가야 함.
- 금융시장이 화폐중심에서 실물자산(상품)중심으로 이행하고 있는 중. 유가가 상승한다는 것은 석유에 대한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플레이션에 해당하며, 동시에 추상적 화폐보다는 실물을 선호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라는 말은 자금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여 늘려야 하는지 인식의 전환을 요구함. 상품시장의 활황은 유가증권에서 실물자산으로의 이동이라는 가치전환까지 요구하고 있음.
2. 포스트 부실채권 시대_은행주도시대의 종언
- 자기자본비율 제고와 ROE제고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대출을 늘여 예대마진을 축적하는 구시대적 전략의 포기를 의미. 미국 은행들은 선택은 눈앞의 수익원을 희생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수익력을 높인다는 소위 살을 발라내고 뼈를 도려내는 전략이었음. 그것이 바로 신용리스크의 재분배였음. 신용리스크의 재분배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량대출의 일부를 제3자에게 양도하는, 즉 채권을 회사채처럼 유동화해 스스로의 대출포트폴리오를 간결하게 구축하는 것.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제3자에게 채권을 양도하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수익성의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매우 괴로운 선택임. 어렵게 대출처를 찾아낸 영업노력을 고려하면 아무리 냉엄한 경영을 하는 은행일지언정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음. 호황과 불황이 순환하는 경제상황에서 은행이 단지 대출을 증대하는 단순한 전략을 추진하면, 축적된 신용리스크에 의해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커짐.
- 은행경영의 진수는 한편으로는 집중리스크를 회피하면서 수익성을 높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성에 관여한다는 이율배반을 유동화와 파생상품을 조합한 금융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극복하는 것에 있음.
3. 경제사회를 움직이는 펀드_펀드주의는 정착할 수 있을까
- 헤지펀드의 거래형태가 매우 다양하듯이, 헤지펀드를 바라보는 현대사회의 시각도 모두 동일하지는 않음. 오히려 헤지펀드에 대한 인식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변화하고 있음. 이전처럼 시장을 어지럽힌다는 인식은 사라지고 있으며, 그보다는 헤지펀드가 초래하는 사회의 변질에 대해 논의한다는 의미에서 사상대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
- 자기자본과 ROE제고에 직면한 미/유럽 은행들은 유동화와 파생상품을 이용하여 대출자산을 압축했음.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창출한 기업대출의 외부방출이었는데, 그 주체가 바로 펀드였음. 펀드에는 자기자본비율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으며, 기업공개에 대한 부담도 적었음. 은행은 부실자산뿐만 아니라 우량자산까지 새로운 시장을 통해 매각했음. 고수익 금융상품과 수익기회에 민감한 펀드가 그냥 있지 않았음. 펀드는 은행에서 유출되는 자산을 매입하여 수익원으로 삼으면서 실질적으로는 기업금융까지 취급하게 되었음. 엔론과 월드컴 등 2001년 가을 이후 발생한 일련의 대기업들의 파산, 2005년 초 세계시장을 뒤흔든 GM사와 포드의 경영위기등이 미국은행들의 경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은 은행들이 신용리스크를 다른 기관투자가, 즉 보험회사, 뮤추얼 펀드, 헤지펀드에 떠넘겼기 때문.
- 미국, 유럽 금융 현대사를 살펴보면, 종래 기업금융의 주류에 있었던 전통적인 금융기관, 특히 그중에서도 상업은행이 규모의 확대와 리테일화를 진전하는 가운데 자기자본비율의 규제와 주주의 수익력 강화요청 하에서 결과적으로 복잡화, 다양화하는 금융거래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 펀드확대를 초래. 그것은 시장원리주의의 산물도 아니고, 또한 자본의 논리에 의한 금융적 폭력의 맺음말도 아님. 시대가 펀드를 요구했다고도 할 수 있음. 적어도 현시점에서의 펀드는 현대 경제사회를 지탱하는 중효한 버팀목의 하나임. 단 이대로 펀드가 금융시스템의 중추를 차지하는 주역이 될 수 있는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성급함. 펀드의 급속한 신장의 배후에는 주요국에 의한 금융완화정책이 있었던 것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
4. 미국형 금융시스템의 붕괴_강점과 약점의 위험한 균형
- 현대금융은 금에서 파운드화로, 파운드화에서 달러화로 권위가 이동하는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음. 중세에서 근대에 걸쳐 유럽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로마 교황의 권위에 의존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도 어떤한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면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음. 오늘날 경제사회는 권위의 정통성을 금이라는 귀금속에서 신용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이동에 성공했음. 소위 금이라는 왕정에서 신용화폐라는 공화제로의 이행임. 미국이 달러화의 권위부여에 성공했던 것은. 거기에 이미 파운드화라는 위대한 화폐가 존재했던 것에 힘입은 바가 큼. 달러화는 소위 파운드화의 권위를 빼았은 것. 그 파운드화를 금본위제 하에서의 신용통화로 만들었던 것은 7개바다에 걸치는 경제, 군사대국으로서의 권위였음. 금의 역할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는 파운드화 밖에 없었음. 그리고 지금의 달러본위제란 금왕졸르 떠받쳤던 파운드화의 지위를 달러화가 빼앗아 금의 폐화를 거쳐 미국의 신용도를 근간으로 하는 달러공화제를 펼쳤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음.
- 20세기 초반에 확립된 달러패권은 외국이 달러화를 보유하고 싶다는 의욕에 의해 구축되었지만, 지금의 달러패권은 외국달러를 보유해준다는 의존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 이것이 달러공화제의 쇠퇴를 반영하고 있음.
5. 자본시장의 다극화_다양화로 가는 국제시장
- 이자수취를 금하고 있지만 이슬람 금융에도 다양한 금융기업이 있음. 주택이나 기계 등을 금융기관이 구매자를 대신해 사전에 구입한 뒤 일정기간 후 투자자가 구매원가에 약정이윤을 덧붙인 가격으로 이를 매입하는 방식(무라바하), 설비 등을 금융기관이 투자자에게 임대료를 받고 대여하는 방식(이지라), 투자자 또는 금융기관이 사업자의 프로젝트에 출자해 수익이 발생하면 배당금을 지급받는 방식(무다라바), 투자자와 사업가의 공동출자를 통해 손익을 사전에 정한 계약에 다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무샤라카) 등이 있음.
6. 금융과 사회의 대화_금융세계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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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대환 지음
출판사
살림. | 2007-06-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재치만발 유쾌발랄 웰메이드 경제 교양서 대통령 선거유세에 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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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즈의 정리(Coase's theorem) : 재산권과 인센티브의 관계에 처음 관심을 보인 경제학자. 재산권 확립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임
- 외부성과 코즈의 정리 :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고도 보상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주고도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 외부성이 존재한다고 말함. 외부성이란 어떤 행위가 시장의 정상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이익을 만들어주는 상황으로,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더 빈번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주는 행위는 더 줄어듬.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자원에 대해 누가 주인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임. 결국 재산권의 확립은 사회전체의 만족수준을 높이게 됨.
- 경제성장의 3대요인
(1) 노동력 증가 : 노동인구증가, 평균노동시간 증가, 노동생산성 증가
(2) 자본의 축적 : 생산고정에 더 많은 장비가 쓰이거나 더 효율적인 장비가 쓰이면 생산량은 증가함. 더 많은 장비 혹은 효율적인 장비를 사려면 더 많은 자본이 필요. 자본은 저축을 통해 충당됨.
(3) 기술개발 : 새로운 생산방법 개발을 통한 노동생산성 증가 혹은 생산장비 효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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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그렉 클라이즈데일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08-11-0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송대 중국부터 현대 일본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부강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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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이 기술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려면 네가 역할중 적어도 한가지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함
(1) 혁신기술이 자원을 가치있는 형태로 발전시킴
(2) 기존제품이나 용역에 가치를 부가
(3) 시장을 개발
(4)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상품을 가질 수 있도록 비용을 절감
1. 동방의 부_중국, 분업화의 대량생산 체제가 부를 만들다
- 중국이 그토록 일찍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한 배경에는 지리적, 정치적 이유가 있음. 중국인들은 일찍이 고대왕조때부터 봉건체제가 최상의 국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음, 구체제 아래에서는 봉건영주가 지역적 세력을 발판으로 전쟁을 일으켜 국가의 안정을 뒤흔들었음. 그래서 봉건영주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체계적으로 진해오딤. 그후 몇세기가 지나자 봉건영주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세계 최초로 관리들로 구성된 관료체제가 자리잡게 됨.
- 상인들은 중국선박들이 드나드는 외국항만에 대리점을 개설. 이와 더불어 소규모 중국상인 공동체가 참파, 캄보디아, 수마트라, 자바 등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형성되기 시장. 외국항구에 있는 대리점들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 대리점이 화물을 창고에 보관하고 출하시기를 조절함으로써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가격도 높은 상태로 유지되었음. 대리점들은 외국시장 개척에도 핵심적 역할을 함. 이들은 외국항구의 시장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종류의 물품을 어떤 항구로 가져와야 할지, 그들이 예상하는 가격은 어느선인지 등의 정보를 제공했음. 중국상인들은 이렇게 대리점을 통해서 자유시장을 조직화된 시장으로 변화시켜 수익성을 높임.
2. 직물과 향신료_세계의 거상들, 인도양에 취하다
-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세정책의 변화, 특히 세금을 곡물대신 현금으로 납부하도록 허용한 악바르의 결정은 시장경제체제로의 변화움직임을 가속화했음. 예전에는 식량과 면화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양만 생산하던 농가도 현금과 바꿀수 있는 곡물 생산에 열중하기 시작. 농업이 자급자족 형태에서 시장을 중심으로한 생산체제로 바뀐 것임.
- 구자라트는 건전한 경제환경 덕분에 독특한 비즈니스 구조와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음. 도우선은 인도양의 여건에 맞추어 해상운송에 가장 효율적으로 만든 배였음. 그러나 배가 가벼워서 군사작전에 필요한 무장은 갖출 수 없었고, 따라서 평화적 무역이 상인들에게도 유리했음. 한편 무역상들의 종교적 신앙이 평화로운 무역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 측면도 있음. 구자라트의 합리적 비즈니스 관행으로 대리인제도를 꼽을 수 있음. 상인들은 외국항구에 대리인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시장수요를 예측하게 하고, 만약 수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상품을 구매하는 업무도 맡겼음. 대리인은 항해하기에 알맞은 몬순 계절풍이 불기 시작하면 미리 확보한 상품을 선적했음. 재원이 넉넉한 상인들은 특정 상품을 시장에서 독점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행동은 결과적으로 격렬한 저항을 불러올 위험이 있었음. 상인등른 늘 이런 위험을 염두에 두고 그 문화권에서 합리적인 경제활동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사업을 운영했음
- 중국과 구자라트의 해운업 융성에는 흡사한 점이 많음. 양국 모두 해운업을 지원했으며 해운능력을 배양하는 데 필요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음. 특히 정치적 안정과 제국의 통일로 말미암아 대규모 시장과 생산기지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사업가들에게 열려 있었음. 양국의 선주들이 성공한 배경에는 높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던 배후산업과 나날이 증가하는 국내수요가 있었음. 이러한 이점 덕분에 선주들은 경험과 역량을 쌓으면서 외국고객의 유치에도 성공함. 양국의 해상운송업은 강력한 제국의 관문역할이라는 전략적 자산도 가지고 있었음. 양국의 해상운송업체는 모두 가족중신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그 구조가 매우 유사했음. 물론 중국의 조공무역은 예외였음. 그러나 해상운송업을 뒷받침했던 배후산업의 구조는 매우 다양했음. 중국의 요업은 단일품목에 집중하는 대량생산체제로 발달했지만, 인도의 직물생산자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었음. 그렇지만 양국의 산업은 모두 고도의 전문화를 이루었음. 산업구조의 차이는 원료의 주산지와 생산기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음.
- 구자라트 경제체제의 취약점은 지식을 발전시킬 사람이 없었다는 점. 구자라트에서 기술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려움. 중국에서는 승려들과 문관들이 기술혁신에 기여했고 또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었지만, 구자라트에서는 그런 현상이 보이지 않았음. 그 이전 수세기 동안 이슬람 문명권과 인도지역에선느 유럽을 능가하는 신기술이 많이 개발되어 있었음. 하지만 구자라트가 명성을 떨치던 시대에는 기술혁신이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었음. 여기에는 그들의 학문이 지니고 있던 독특한 성격이 한몫했음. 중국인들은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자 했지만 인도인들은 물질적인 존재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음.
3. 신과 황금, 그리고 영광_유럽, 모방과 혁신으로 경제 변방에서 벗어나다
- 외국의 생산기술을 받아들여 응용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생산능력은 크게 향상됨. 신기술의 주요원천은 바로 이슬람 국가였음. 유럽인들은 이슬람권에서 아마포 생산기술을 받아들였음. 이슬람 교도들은 에스파냐에 면화 생산방법도 전파. 물레는 13세기에 처음으로 동방에서 도입됨. 베니스는 시리아에서 전수받은 유리생산능력으로 유명해졌고, 설탕제조 기술은 십자군이 동방에서 배워 유럽으로 들여온 것. 이슬람의 영향은 광업에도 미쳤음. 15세기 중엽까지도 광업에 관한 출판물이라고는 아랍서적의 번역물밖에 없었음.
- 기독교 십자군이 이슬람 세계와 더욱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12세기에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엄청난 모방이 행해졌음. 기술면에서 부유해질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을 확보한 셈이었음. 이 시기에 그리스 고전이 재발견 되었으며, 이슬람 지역의 과학서적이 도입되어 점차 유럽인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음.
- 유럽상인들은 중국이나 인도상인들에 비해 정부로부터 훨씬 많은 지원을 받았음.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분열되어 있던 유럽의 정치적 지형이 낳은 결과였음. 유럽 각국은 상대적으로 영토가 작아서 중국이나 무굴제국에 비해 세금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농토가 부족했음. 그래서 세입을 올리려면 상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음. 국토가 작아서 군주들이 상인을 포함해 일반백성들과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었으며 상인들의 요구에도 응하기가 쉬웠음. 현대 기업구조에도 이와 비슷한 특징이 있음. 기업구조가 분권화되어 있으면 문제가 발생한 부분에 접근해서 결정을 내리기가 쉬움. 유럽 각국은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동양의 거대국가들에 비해 경제적 효율성을 한층 높일 수 있었음.
-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에스파냐, 포르투갈)에게는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두가지 중요한 이점이 있었음. 먼저 대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고, 또 지중해에 인접해 있어서 이탈리아인들의 전문적 지식도 흡수할 수 있었음. 여기에는 제노바 사람들이 자본을 공급하고 해운에 관한 전문지식을 보급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했음.
- 이베리아반도 국가들은 상호보완적 수요패턴으로 세계경제체제를 구축. 아프리카 노예를 광산과 농장에 공급하기 위해 남아메리카로 수송하고, 남아메리카에서 선적한 은괴와 기타산물은 아시아로 운송해서 남아메리카와 유럽으로 보낼 재화와 교환했음. 그와 동시에 남아메리카에서 선적한 은괴, 설탕, 기타산물을 대서양으로 거쳐 유럽으로 직접 운송하기도 했음.
- 이베리아반도 사람들은 레콘키스타 운동을 전개하던 때의 가치관 토대에서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축. 이슬람 세력에 대항해서 싸울 때 적용되던 레콘키스타라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해운기술을 향상시키고, 여기에 남아메리카 자원을 개발하려는 열망이 보태졌음. 그러나 교회와 귀족층이 상인과 무역보다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국왕은 발전과정을 직접 주도하면서 계속 중심적 위치를 점했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두 무역제국은 효율적인 조직운영으로 독점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음. 1세기 동안 대적할만한 경쟁국가가 나타나지 않아 두 나라는 자신들이 구축한 무역항로를 무난히 유지할 수 있었음.
4. 북유럽의 도약_자원부족을 딛고 바다에 이름을 떨치다
- 거래소는 자금조달의 편의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으며 암스테르담 무역계의 큰 장점이기도 했음. 즉, 네덜란드가 고품질의 제품과 용역을 저비용으로 생산하고, 고도로 효율적인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제도였음. 네덜란드는 이와 같이 혁신적 제도를 통하여 부를 창조하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도전장을 던졌음.
5. 에스파냐의 위기와 네덜란드의 전성기_조선술이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다
-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이 함정에 빠진 원인은 그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낡은 믿음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올린 위업에 대한 자만심 때문이기도 했음. 이들은 늘 오만하게 행동하며 외국을 멸시했음. 에스파냐령 아메리카에서는 식민지 지도다을이 정복자의 후계자로 행세하고 있었음. 자기들이야말로 에스파냐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들의 후예이므로 벼락출세한 북유럽 상인들과는 신분이 다르다고 확신했음. 이렇게 과거에 집착하는 사고방식과 오만한 문화로 인해 내적 발전에 장벽이 생겼음.
- 이베리아 국가들은 해전에서도 과거에 성공을 거둔 낡은 전술만 고집하고 있었음. 에스파냐는 화포사격으로 적군의 전열을 와해시킨 다음에 적선 갑판으로 뛰어오르는 전통적인 지중해식 해전방식을 쓰고 있었음. 하지만 영국은 병력이 한정되어 있어서 주로 바람을 이용하면서 뱃전에 일제사격을 퍼붓는 전술을 펼쳤음.
- 주요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새롱누 경제활로를 찾는 길 밖에 없었으며 네덜란드는 산업발전만이 그 길이라고 굳게 믿었음. 네덜란든느 기술혁신과 기계화 증진을 통해 경제전반에 걸쳐 발전. 방직기계, 구리 증류기, 압착기, 톱날이 여러개 달린 제재용 톱, 원두를 가는 기계 등이 그때 개발됨. 잔 산업지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제지공장이 1670년 경 출현했음. 이 공장에서는 종전에 비해 더 무겁고 값이 비싼 장비가 사용되어 표면이 매끄러운 고품질 백지가 생산되었음. 네덜란드는 서방세계의 기술연구소가 되었음. 신기술로 양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수출가능 품목들이 새로 등장했음. 그러나 에스파냐에는 네덜란드의 산업기자와 같은 산업기반시설이 없었음. 에스파냐 선박들은 초기에는 공산품을 싣고 남아케리카로 왔다가 원자재를 싣고 돌아왔음. 하지만 에스파냐령 남아메리카 거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생산시설을 갖추기 시작하자 에스파냐와 물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음. 식민지 거주자들은 품질이 좋은 외국상품을 찾았음.
-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는 생산투자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사회가치관이 존재하고 있었음. 일단 벌어들인 돈은 산업에 투자되지 않았음. 성공한 상인들은 아들을 교회나 군대에 집어넣어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고 대지주가 되었음. 이들은 막대한 재산을 건물, 보석, 또는 신분 과시용 물품을 사는 데 소비했음. 농업이나 공업 등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하지 않고 이자율이 높은 사채나 국채에 투자를 많이 했음
- 네덜란드와 대조적으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지연되고 있었음. 예수회 교육제도는 한때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인정받았지만 이제는 형식주의에 빠져버렸음. 예수회 교육제도가 처음 탄생했을 때 이를 창안한 사람들은 당시 대학들의 여러제도를 분석해서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었음. 그러나 이 교육제도가 채택된 이후로 진보가 멈춤. 교사들과 학생들은 카톨릭 교리에 기초하지 않는 명제에 대해서는 연구할 수 없었음.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 등의 영향을 받아 지적동요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서는 예수회가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었음.
- 중국인들이 유럽 선박구조를 모방하지 못한 첫번째 이유는 유럽선박이 건조되는 과정을 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 두번째 이유는 그러한 선박이 없어도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이 있었다는 점. 중국인들은 성능이 떨어지는 배를 가지고도 동아시아 무역시장에서 유럽인들을 능가하고 있었음. 이들은 이 지역 무역시장에서 유럽인들을 능가하고 있었음. 이들은 이 지역 무역시장에서 경험이 많았고 이 지역 산물을 취급할 수 있는 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음. 또한 자국 무역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었음. 유럽 선박들은 광동지방에서만 무역이 허용되었으나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고 고율의 관세를 부담해야 했음. 중국인들의 또 다른 이점으로는 유럽인들이 치열한 침략행위를 통해서 시장을 개척한 반면, 이들은 아시아 각국과 비교적 평화롭게 무역을 지속했다는 점. 그래서 아시가 각국의 군주들은 유럽 해운업자들에 대해서는 관세를 높이고 장벽을 세우면서도 중국인들에게는 관대했음. 중국 무역상들도 1717년부터 1727년 사이에 시행된 정부의 무역금지령, 바타비아에서 중국인들이 밀집해 살던 지역에서 발생한 학살사건 등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동아시아 무역시장을 계속 지배해 나갔음. 1842년 까지 이들은 자국분만 아니라 일본, 베트남, 샴,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주요 해운업자로 활동했음.
6. 네덜란드의 부_모든 배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다
- 영국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서 여전히 주요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향료제도를 계속 지배했음. 영국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무역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며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음. 영국의 주요 상품은 직물이었음. 1660년대부터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의 면직물을 유럽으로 수입하기 시작했음. 그때까지 영국 소비자들은 모직물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면직물을 팔려면 소비습관부터 바꿔야 했음. 그러나 면직물은 모직물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 여름에 입기가 편하고 유행에 따라 고치기가 쉬여 오래지 않아 영국인들로부터 사랑받기 시작.
- 17세기 초엽에는 네덜란드 지도제작자들과 출판업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헌과 해도를 제작해서 선장들에게 공급했음. 그러나 네덜란드 출판업자들이 예날에 제작된 것만 반복해서 찍어내는 동안 프랑스와 영국은 훨씬 정밀한 지구본, 지도, 해도를 제작하기 시작했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침체에 빠지게 된 원인으로는 회사 이사진이 항해술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도 지적할 수 있음. 이러한 상황이 해운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음 네덜란드 전역에서 사업기술이 침체기에 빠져듬.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1세기 전에 겪었던 것처럼 네덜란드 산업계도 고임금에 시달리며 경쟁력이 떨어졌음. 과거에는 임금수준이 높아 인력절감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이제는 외국의 추격속도가 훨씬 빨라 인력절감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됨. 네덜란드의 경제체제의 특징이 평등과 자유로운 사회이동이고 또 누구에게나 경제적 발전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과거와 다른 분위기가 사회전체를 뒤덮음. 1680년 이후에는 이자수입만으로 먹고사는 풍조가 퍼짐. 과거에는 기업가 계층이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했지만 이제는 투자이익으로 한가롭게 살아가는 귀족층으로 전략.
- 네덜란드 사회가 화석으로 변하고 있는 동안 영국은 사회와 경제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음. 많은 영국인들이 새로운 산업기술과 무역의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신분상승에 성공. 윌리엄 코케인, 조사이아 차일드, 찰스 덩컴 등 상인들과 은행가들은 넓은 토지를 사들이고, 작위를 받고, 딸들을 귀족과 결혼시켰음. 상류사회에서 태어났지만 장남이 아니라 상속을 받지 못한 남자들은 무역계로 진출해서 재산을 모음. 그래서 도시와 시골의 결혼, 상인과 지주의 결혼과 같은 관계가 영국경제와 사회체제를 좌우하게 되었음.
- 네덜란드가 겪은 문제는 현대의 기업조직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문제와 똑같은 것이었음. 첫번째 문제는 지배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혁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임. 두번째 문제는 노동의 전문화와 분업화로 말미암은 것임. 초창기에는 조선회사들이 모두 소규모여서 관리자들이 생산 및 계약에 관한 주요 사항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음. 그러나 배가 대형화되고 배의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관리업무는 더욱 중요하게 되었지만 선박건조를 주문받은 도급업자와 실제로 선박을 만드는 조선공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짐.
- 네덜란드인은 끊임없이 솟구치는 정열과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마음으로 번영의 물결을 주도했음.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기질이 모두 사라졌음. 이 나라는 여전히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재정에 관한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산업의 쇠토로 말미암아 국내시장에서는 더 이상 투자대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음. 투자자들은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음. 즉 해외로 눈을 돌린 것임. 에스파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공채투자로 몰렸음.
7. 번영을 맞이한 영국_동인도 회사와 증기기관이 영국을 살리다
- 17세기 말엽부터 18세기말엽까지 영국경제는 꾸준히 발전을 이어갔음. 1760년에 이르러서는 외국기술을 모방해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을 끝냈음. 혁신기술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해서 모방하는 과정을 거친 후 영국은 비용절감, 가치부가, 신제품 창조에 필요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나감.
- 대영제국이 성장하면서 무역과 해운의 성장도 촉진되었으며 식민지 시장에는 보호장벽이 없었음. 성장 초기에 영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던 항해법은 1849년 폐기됨. 식민지 무역시장이 외국의 경쟁업자들에게도 개방됨. 이 법령의 폐기는 해당 법령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일뿐만 아니라 경쟁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는 영국 해운업계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었음. 영국은 경제의 물결을 지배하고 있어서 어떤 도전자든지 편안하게 상대할 수 있었음. 이 나라는 성장 초기에는 보호무역주의로 국내산업을 보호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자유무역의 사도가 되었음. '
- 영국은 철도와 증기선, 강철 선체분야에서 축적된 기술 등으로 교역량을 급격하게 늘렸음. 그러나 자본이 없으며 이와 같은 교역량에 걸맞은 대규모 사업기반을 구축할 수 없음. 그래서 런던시가 금융중심지로 부상했음. 산업혁명에서 얻은 부는 런던 자본시상으로 흘러들어가 통상 기반시설을 구축하려는 외국정부에게 차관으로 제공되었음.
- 1855년에는 유한책임에 관한 입법조치로 적은 위험부담으로 자본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 이 조치는 선박 소유권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으며, 조합형태의 종전 회사들을 과거의 유물로 전략시켰음. 새로운 법률의 시행으로 배 한척을 보유한 주식회사가 많이 등장. 소규모 집단의 투자자들이 주로 이러한 회사를 공유했음. 자본이 있거나, 거래처가 있거나, 무역에 경험이 있거나, 또는 동인도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기업가는 신기술과 새로운 법적 보호 조치로 성공의 기회를 잡았음. 많은 투자자들이 가족 또는 동업자들과 회사를 설립했음.
- 영국산업시 세계 무역시장에서 성장세를 타면서 영국은 이익을 새로운 기술과 기량의 개발, 경험의 축적에 재투자 하여 외국과의 경쟁에서 앞서갔음. 19세기 중엽,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세계 석탄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했으며, 선철 생산량의 절반, 강철생산량의 7분의 5, 철강제품의 5분의 2, 면직물 상품의 절반이 영국에서 생산되었음. 석탄으로 움직이는 영국상선 선단의 규모는 1890년에 이르러서는 세계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선단 규모의 합계를 능가했으며, 이 배들이 부지런히 전 세계를 누비며 공산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원자재를 국내로 수입했음. 런던에서는 각 금융기관이 자본을 제공하고 그 자본으로 경제체제가 발전하는 선순환이 지속됨. 그 결과 통상 및 생산활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추진력을 강화하는 경제체제가 구축되면서 세계 정상을 향해 전진했음.
8. 서양의 판도 변화_미국, 독립을 넘어 발전의 역사를 쓰다
-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산업화를 열망하지는 않았음. 산업화는 벤저민 프랭클린, 제퍼슨 대통령, 메디슨 대통령 등 강력한 반대재들의 저항에 부딪혔음. 과학과 혁신의 선구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산업화에 반대했다면 이상하게 들릴 것임. 하지만 이것은 미국인들의 가치관의 핵심을 찌르는 문제였음. 독립선언서는 사유권, 신교도 노동윤리, 개인의 권리 등을 강조한 존 로크의 자연권 사상과 철학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었음. 프랭클린은 산업화와 부가 권력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사회불안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믿었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프랭클린도 미국은 단순한 농업경제체제를 토대로 발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음.
- 19세기 내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의 물결이 이어졌음. 인구가 서부로 이동하면서 예전에는 활용하지 못했던 자원에도 개발의 손길이 미쳤고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음. 이러한 경제발전 과정은 송대 중국에서 인구가 남부로 이동하던 시기에 있었던 과정과 매우 비슷했고, 구자라트가 무굴 제국에 편입된 시기의 발전과정과도 유사했음. 인구의 서부이주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수송체계가 생겨 인력과 자원의 이동을 촉진했음. 1820년대와 1830년대에는 운하건설붐이 일어나 초기 무역을 촉진했음. 하지만 핵심적인 운송수단은 여전히 철도였음. 최초로 철도노선은 1828년에 볼티모어 앤드오하이오 철도회사가 부설한 철도였음. 철도는 1850년에 애팔래치아 산맥을 관통한 뒤 10년만에 미시시피 강까지 뻗어나감.
9.동양의 판도 변화_중화사상, 부메랑이 되어 중국을 무너뜨리다
-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경제가 계속 번창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음. 1500년부터 1800년까지 경제성장이 지속되었으나 1인당 국민소득은 증가하지 않았음. 즉 일반 서민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 성장의 범위가 넓어졌으나 집약적인 성장은 없었음. 경제성장은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채 인습적인 행동양식, 관계, 생산활동으로 겨우 성장하고 있었고 새로운 발명품은 거의 없었음.
- 중국의 지식층은 실용적인 문제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았음. 이러한 태도는 기술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 중국의 사상과 교육은 경제문제와 같은 세속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음. 철학자들은 속세를 멀리하고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머물며 정신세계에만 몰두했음. 이 나라의 최고사상가들이 물리적인 세계의 탐구를 멀리하는 한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란 없었음. 따라서 역학적, 정량적 관점에서 다양한 현상에 접근하는 유럽식 과학이 이 나라에서 발전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음. 아와 같은 실용적인 문제, 기술적인 문제를 멀리하는 태도는 사대부들이 핵심생산활동과 거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 중국사업가들이 혁신에 실패한 원인은 아마도 시장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임. 중국의 시장은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고도로 전문화되었음. 수공업자들은 시장의 움직임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제품생산에만 몰두했고, 상인들은 재화의 생산과정은 거의 생각해 보지도 않고 유통에만 집중했음. 그 결과 생산자와 상인사이의 관격이 점점 커졌고, 중개인들이 이간격을 더 크게 만들기도 했음. 그래서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자본가들은 생산기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음. 동시에 생산자들은 자본과 영업능력이 없어서 생산기술을 크게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음. 그래서 현저한 기술적 도약은 일어나지 않음. 중국시장의 혁신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은 중국인의 의식세계였음. 사업가들은 시장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문제의 해법을 시장에서 찾으려고 했음. 물자공급에 차질이 생겨도 상인들은 기술이나 생산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닦아온 시장에서만 해법을 찾으려 했음. 면화에 대한 수요가 많으면 수십만호의 농가가 농업을 팽개치고 면화산업으로 이동했음.
- 청대의 중국 경제는 고도균형이라는 덫에 걸려 있었음. 농업과 운하 운송에 필요한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자원을 거의 완벽한 수순으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생성된 세력으로는 변화를 줄 수 없는 경제구조였음. 운송체계 및 통상체계의 효율성이 이미 한계에 이르러 기존방식으로는 거래비용을 더이상 줄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 중국에서는 인구 증가와 맞물려 실제로 국민 1인당 생산량이 이미 감소하고 있었음. 시장에 내다팔 농산물이 줄어들자 농부들이 구매력이 떨어져 기술혁신에 대한 대가를 시장에서 받아 낼 기회조차 점차 줄어들었음. 자원도 점차 고갈되어 자본재 생산비용은 증가했지만 인구증가로 말미암아 임금수준은 계속 낮아졌음. 이런 상황에선느 유럽처럼 인력을 절감할 수 있는 기계나 개선방법을 찾아내고 생산공정을 혁신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었음.
- 중국 해상운송업자들은 그들이 취급하던 화물운성에서의 우위마저 놓쳐 경쟁력을 잃고 말았음. 중국은 결국 기술력의 침체상태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19세기에는 생산부문에서도 선두를 빼앗겼음. 1800년에는 중국이 전세계 공산품의 33퍼센트를 생산했으나, 1860년에는 중국 공산품의 점유율이 19.7퍼센트로 떨어지고 1900년에는 6.2퍼센트로 떨어졌음. 같은 기간에 유럽 공산품의 점유율은 28.1퍼센트에서 62퍼센트로 증가했음.
10. 해뜨는 나라_앞선 선택이 선진 일본을 만들다
- 19세기 일본은 경직된 사회였으나 중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음. 일본인들은 기술을 도입하면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 그러나 중국인들은 외국의 사상과 기술이 언제나 열등하다고 생각했음. 그러므로 외국을 모방하는 두 나라의 태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음.
- 무사들은 자제력과 교육, 그리고 공직에 대한 신념 등 신체제에서도 이용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음. 변화와 불확실의 시대에는 확고한 자신감, 강한 힘, 그리고 낙관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유리함. 이러한 시대에는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듯 주판을 휘두르며 재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강한 의지력을 지닌 사람에게 기회가 많이 찾아오는 법. 교육받은 하급무사들은 노력과 능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한편 부모들도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음. 하지만 개인적 성공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에 달려 있었음. 학교를 졸업하면 빨리 출세할 수 있지만 여전히 집단에 대한 복종심과 화합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음. 비록 시대를 반영해 상거래 규칙까지도 바뀌었지만 전통적 규칙에 대한 복종과 혈통은 여전히 중요했음.
11. 기업 시대_규모의 무역, 태평양 연안 국가를 일으키다
- 새로운 성장경로가 나타나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임. 록펠러는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이 감소하리라는 점을 이내 간파하고 대응전략을 세움. 전략은 기술개발이나 조직개선이 아니었음. 경쟁자를 제거하는 전략이었음. 이 전략은 구자라트의 비르지 보라부터 동인도 회사에 이르기까지 고대로부터 반복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전략임.
- 1870년대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영국에서는 국내총생산이 두배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미국에서는 다섯배가 증가. 미국은 아주 짧은 기간동안 농업 및 상업중심경제에서 공업대국으로 변모했음. 이러한 발전과정이 평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음. 미국은 선도국가로 향하는 길목에서 1857년과 1873년, 1893년의 공황 등 경제적 재앙을 연속적으로 겪었음.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규모의 경제, 표준화, 자연자원의 집약적 이용을 통한 대량생산 및 대량분배를 기반으로 해서 경제거인들의 나라로 부상. 미국은 유럽에서 혁신기술을 도입해 자국만의 독특한 제도로 자리잡게 해서 과거 어느시기 어느나라보다도 생산량을 늘렸음. 이제 대기업과 마천루, 전화, 그리고 자동차의 세계가 도래함.
12. 석탄과 석유, 그리고 변화의 가속화_기술의 시대가 도래하다
- 영국의 명문가들은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어 귀족적인 명예심과 대중을 이끄는 리더십을 가르쳤음. 학생들은 고도의 도덕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군인, 관료, 정치가 등 상류사회로 진출할 준비를 했음. 불행하게도 영국은 광대한 대영제국에 봉사할 우수한 행정가는 많이 배출했으나 귀족층을 사업가로 육성하는데는 소홀했음. 이미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개인이나 국가의 재산을 늘리는데만 몰두하는 것이 야비한 짓이라고 판단했는지도 모름.
- 명예와 공익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은 일본인의 가치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일본인은 이런 가치관을 자산으로 바꿈. 일본은 상공업을 명예로운 직업으로 인식시키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음. 반면 영국에서는 교육과정에 과학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음. 산업은 신사에게 걸맞은 분야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퍼지면서 사회전반적으로 과학과 돈벌이를 위한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음.
- 사업가들은 성공을 거두면 땅을 사고 시골에 묻혀 살았음. 지방에서 지주행세를 하며 신사라는 올가미에 걸린 채 살아갔음. 이러한 과정은 중국에서 성공한 상인들이 땅을 사고 자녀들을 유학자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한 것과 매우 비슷함. 18세기에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음.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사람들은 지위와 같이 비물질적인 목표를 추구함. 그래서 영국에서도 우수한 사람들이 상공업을 멀리하게 된 것임.
- 영국의 변화를 가로막은 주요 장벽중의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도의 효율성이었음. 영국은 고도로 숙련된 근로자들로 구성된 인력시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섬유업계도 마찬가지였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섬유 제조업자들은 값싼 노동력이 부족해서 숙련도가 낮은 근로자들도 작동할 수 있게 만든 고리형 방추기를 사용했음. 이 새로운 기계는 새로 경쟁대열에 들어서는 후발 경쟁주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음. 영국은 숙련 기술자 부족이라는 문제가 없어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후발 주자들만큼 효과를 얻기는 힘들었음. 그래서 그 기술을 채택하지 않았던 것.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임. 영국 섬유업계가 2세기 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인도의 직물생산을 앞질렀음. 당시 인도에는 임금이 싼 숙련 직조공들이 많았음. 그래서 영국처럼 직물 생산을 기계화하지 않았음. 이는 한 나라가 함정에 빠지게 된 요인이 역사속에 계속 되풀이 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일깨워줌. 영국시장의 성격도 미국에서 개발된 생산기술을 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음. 미국은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자체 시장이 있어서 대량생산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음. 그러나 영국 시장은 규모가 훨씬 작아서 미국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는 없었음.
- 영국의 경우에는 산업구조도 외국의 산업 기술을 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음. 영국산업계는 가문 중심의 군소업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임. 미국에서는 생산, 관리, 유통에 필요한 대규모 체계를 구축해서 산업 주도권을 잡았지만, 영국의 군소업체들은 그런 체계를 만드는 데 투자할 자본이 없었음. 영국의 각기업은 자본이 적고 가문이 회사 지배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어 새로운 제품이나 새로운 공정에 투자하는 것을 꺼렸음.
- 영국은 세계 무역시장이 확대되는 시기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몰락했음. 영국 해운업계가 담당한 화물의 물동량이 증가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영국은 다른 나라들이 더 빠른 경로를 개발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음. 영국은 석탄, 철강, 증기기관 기술 및 친족회사들이 개발한 기량, 능력,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하며 20세기를 맞았음. 그때까지 거둔 성공때문에 영국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언 것임. 당시에는 그것이 사실이었음. 하지만 더 우수한 기술이 출현하자 영국의 산업은 고정관념과 관행에 사로잡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졌음. 영국에서 지속적으로 개발된 혁신기술을 보면 영국이 결코 정체된 것은 아니었음.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더 빠른 속도로 혁신기술을 개발해서 보급했다는 점임.
- 영국은 더 이상 세계의 학습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절정기에 이룩했던 한가지가 훗날에 이 나라에 다시 도움이 된다. 바로 영어를 전세계에 보급했다는 점임. 영국은 훗날 미국이 먼저 개발한 정보처리 기술을 이용해 이러한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게 됨. 그래서 서비스 부문에서 다시 선진국의 위상을 되찾아, 21세기 초에 영국이 다시 세계 5대 경제대국의 대열에 서게 됨.
13. 태평양 쓰나미_세계대전,태평양 경제에 변화를 부르다
- 외국 생산기술이 유입되면서 일본의 경제체제와 사회는 완전히 바뀌었음. 일본은 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서 기술을 도입했음. 즉, 외국 제품을 완전히 분해해서 제작과정을 분석했던 것임. 이렇게 함으로써 공정설계와 제품 디자인을 일괄적으로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음. 이는 제품 디자인과 공정은 서로 분리된 별도의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사고방식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음. 서양에서는 분리된 여러단계를 거쳐서 제품을 개발하지만 일본의 개발방식은 개발당시의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단계를 한데 섞는 것임.
- 일본이 능률적이고 유연한 생산체제를 개발하는 동안 미국은 전통적 방식에 만족하고 있었음. 미국이 혁신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음. 다만 제품 혁신에 관심이 있었을 뿐 생산 공정의 혁신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 미국은 신제품 개발에 연구 개발비 중 3분의 2를 투입한 반면, 일본은 제품생산 공정에 연구개발비를 집중적으로 투자했음. 일본은 생산공정 및 시설혁신에 역점을 둠으로써 생산비를 대폭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했음. 이와 같은 다른 접근 방식은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됨. 미국의 경영대학원에는 생산에 관련된 교육과정이 거의 없었음. 1980년대말, 미국의 학사 학위 소지자 중 공학 학위 소지자는 6퍼센트에 불과했으나, 일본은 20퍼센트, 독일은 37퍼센트의 학사학위 소지자가 공학을 전공. 앞서 영국이 그러했듯이 미국도 이제 일본에 뒤지기 시작했음. 미국의 관리자들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관리자들이었으나, 이제는 세계적 기술개발 추세를 파악할 능력이 없었음.
- 미국경제의 큰 특징은 협력의 결핍이었음. 매사추세트 공과대학의 실시한 미국산업쇠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회사간의 협력이나 회사 내부의 협력은 물론이고 근로자들과 경영진간의 협력관계도 거의 발견할 수 없었음. 개인기업과 경쟁은 시장경제의 기초이므로 이를 약화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있음. 그러나 협력과 총체적인 목표 추구도 필수적인 요소임. 이 양극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함. 환경이 변화하면 때로는 균형의 개념도 바뀌어야 함.
- 수직적인 통제와 개개인이 고도로 전문화된 조직형태는 회사내부의 협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음. 수직적인 조직으로 말미암아 의사소통과 조직 내부의 조정이 어렵고, 근로자들은 각자 전문화된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즉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음. 또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음. 혁신책을 도입해도 그 혁신책은 외딴 섬처럼 조직내에서 고립되고 개발 초기단계에 도입되지도 않았음. 이와 같은 현상은 18세기 인도와 19세기 중국에서 일어난 현상과 매우 흡사함. 당시에도 근로자들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어 폭 넓은 안목으로 봐야 할 혁신책이 도입되지 못했음.
14. 급속도로 변하는 세계_다시 아시아가 일어서다
- 1990년대가 되자 일본의 성장세가 멈추었음. 여기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었음. 첫째는 경제의 바탕이 되는 사회구조였음. 수직적인 관계와 경직된 결속력으로 인해 비효율적인 요소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음. 사회구조가 경제발전에 영향을 미친 역사가 여기서도 되풀이 되었음. 두번째 원인도 매우 낯익은 것이었음. 어느 나라든지 성장의 물결에는 투기의 거품이 일어나기 마련임. 90년대 초에는 일본이 투기열풍에 휩싸임. 투자자들이 투기대상으로 삼은 것은 주식이나 튤립이 아니라 토지였음.
- 중국의 성장도 이 책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추진되었음. 모방을 통해서 세계 각지로 수출할만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음. 1978년부터 1999년까지 중국 경제는 연간 평균 9.5퍼센트씩 성장했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성장은 중국에 생산기지를 세운 서방국가들에 의해서 추진되었음. 21세기초 중국은 외국의 직접투자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치했으며, 외국자본으로 기술격차 해소에 박차를 가했음.
- 90년대는 정보산업과 생명공학기술로 인해 미국고 영국의 경제가 건전한 성장을 이룬 시기였음. IT혁명은 여러분야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시장이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정보접근성을 향상했음. 또한 공급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고객과 공급자 사이의 의사소통도 향상했음. IT혁명은 인터넷이 탄생토록 했고, 예전에 갤브레이스가 소멸하고 있다고 우려했던 기업가들이 되살아나게끔 했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앞서 설명했던 미국 경제의 쇠퇴가 일시적인 조정일 뿐이라고 주장함. 또 고임금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들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므로, 오히려 자유시장의 효율성ㅇ르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함.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많은 허점이 있음. 첫째, 이 주장은 이 기간 동안 일본에서도 인건비가 상당히 올랐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음.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많은 산업부문에서 자국의 위치를 발전 유지하고 있음. 이 주장은 가장 중요한 문제도 무시하고 있음. 즉, 일본이 지속적인 개선과정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이러한 산업부문이 계속 침체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주목할만한 차이점은 미국 시장이 호황기로 접어든 시기가 많은 기업이 붕괴된 후인 90년대라는 점임. 시장변화에 따라 자원이 사양산업에서 신흥산업으로 넘어간 상황이 아니었음. 미국산업은 우수한 경쟁국가들에 밀려 몰락했고, 그 과정에서 혼란을 겪었던 것임.
- 경제학자들은 지금까지 경제계를 비교적 정적인 관점에서 보았음. 이들이 본 경제계는 공급과 수요의 세계, 그리고 유연한 시장이 전부였음. 시장의 역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 이들의 눈에는 기업가들은 그저 시장 여건에 따라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로만 보였음. 하지만 경제의 참모습을 보려면 역사가 중요함. 시장에는 상업의 기능을 결정하는 시간의 경제가 있음. 이 경제개념에는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타이밍과 선두주자로 나설 때 얻는 이점, 그리고 개척자 또는 후발주자가 되었을 때 감수해야 할 비용의 차이도 포함됨.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미래 생산활동에 대한 역사적 투자의 유산임. 통상분야에서 성장능력을 역사적 유산으로 물려받은 국가는 훨씬 유리함. 그러나 그 유산은 한 국가를 몰락의 길로 몰고 갈 수도 있음
- 서양은 지금 시간의 경제측면에서 볼때 위기에 처해 있음. 경제에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 있음. 세계화와 변화관리에 관한 지식도 여기에 포함됨. 하지만 안심하려면 멀었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논리적 사고력의 한계와 사고방식을 향상할 수 있는 문화적 투자임.
- 유연성이 뛰어난 경제체제에도 미래를 위한 선택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음. 투자라는 말은 오늘 우리가 투자한 것이 내일 우리가 차여하고 있는 활동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뜻임. 투자는 기계와 자본만 일컫는 말이 아님. 투자는 역량, 관계, 사고방식도 가리키는 말임. 이와 같이 경제성장의 진로는 구성원들이 과거에 개발한 지식과 역량을 토대로 함. 이러한 요소들은 기업가의 운영방식에도 영향을 미침. 과감한 기업가나 어리석은 기업가가 아니라면 아무런 지식이나 역량이 없는 산업이나 시장에 투자하지 않을 것임.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과거에 의해 좌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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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경제 2014. 12. 25. 12:37

 


리스크

저자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출판사
한국경제신문사 | 2008-12-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공포와 탐욕의 시대, 뱃심 좋게 도전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
가격비교

- 자연은 사건의 반복에서 생겨나는 패턴을 확립해왔다. 그러나 단지 대개의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
- 확률이란 확신의 정도이미며 부분이 전체와 다르듯이 절대적인 확신과는 다른 것이다. (라이프니츠)
1부 숫자체계에 뿌리를 둔 리스크 ~1200년
01.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리스크 정복
- 인간본성에 대해 일가견을 펼친바 있는 애덤스미스는 도박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음. "그것은 바로 인간 대다수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갖는 오만한 자부심과 자신의 운에 대한 터무니 없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리스크 감수속성이 경제발전에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그 속성을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걱정했음. 그래서 그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얻어지는 이익에 도덕적 정서를 균형있게 배합하는 데 주력했음.
-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애덤 스미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함. "한나라의 자본이 카지노 영업의 부산물로 발달하면 결코 올바른 발전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행운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너무도 재미 없는 곳이 되어 있을 게 틀림없음. 케인스도 그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음. "만일 인간의 본성이 어떤 기회에 대한 유혹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냉철한 계산을 마친 후에야 투자에 나설테고, 그러면 자연히 투자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을 것이다."
- 무역은 리스크를 수반하는 사업임. 무역성장이 도박의 원리를 부의 창조로 변형시킴에 따라 리스크 감수의 전형이라할 자본주의가 태동. 하지만 자본주의는 두가지 새로운 행위가 없었다면 결코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함. 두가지 행위는 미래가 우연이나 신의 의지에 의존하는 동안에는 불필요했음. 그 하나는 바로 부기임. 보잘것 없는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부기야말로 셈과 계산에 새로운 기술을 보급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음. 다른 하나는 예측임. 이는 부기보다 상위의 행위일수도 있겠지만, 리스크 감수를 즉각적인 수익과 연결시키는 훨씬 더 도전적 행위임.
02. 0을 발견하다
- 0는 두가지 면에서 기존의 숫자체계에 대변혁을 일으켰음. 첫째, 0에서 9까지 열개의 숫자만 사용하면 모든 계산이 가느이해졌고, 어떤 숫자건 단지 숫자 10개오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음. 둘째로는 1, 10, 100 등 숫자의 배열이 있을 때, 그 다음 숫자는 1000임을 수열자체로 알 수 있게 됨. 0은 숫자체계의 전체구조를 눈으로 보는 순간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주었음. 로마숫자로 된 수열에서는 쉽게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음.
- 아랍세계에서 이룩한 성과는 대단히 컸지만, 개념의 확장이 논리적인 결과에 미치지 못한채 멈춰버린 것을 알 수 있음. 진보적인 수학적 사고의 소유자였던 아랍인들이 왜 확률이론과 리스크 관리이론에 이르지 못했을까? 그 이뉴가 그들의 인생관에 있다고 생각됨. 우리의 미래를 누가 결정하는가? 운명인가? 신인가? 아니면 우리자신인가? 그러나 이슬람 교도들은 또한 그리스인드로가 초기 기독교인들처럼 운명론자였음. 그들은 미처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임.

2부 확률이론의 대발견 1200~1700년
03. 판돈 배분 문제를 풀어내려는 어떤 도박꾼의 노력
04. 확률이론의 기초를 세운 프랑스의 삼총사
05 . 잡화점 주인이 제시한 통계학의 핵심 개념
- 17세기 후반부는 무역이 싹트는 시대였음. 네덜란드인들이 당대의 지배적 상업세력이었고 영국은 그들에게 가장 큰 경쟁상대였음. 전세계에 산재한 식민지나 공급자들의 상선이 도착해 한때 매우 희귀했거나 생전 본적도 없는 물품(비누, 향료, 커피,차, 원료, 도자기 등)을 대량으로 쏟아내놓았음. 선조에게서 물려받는 길 외에는 달리 부에 대한 축적방법이 없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음. 이제 부는 벌거나 발견할 수 있고, 축적해 나갈 수 있으며, 투자와 동시에 투자손실에 대한 보호의 대상이 됨.

3부 선택과 결정에 대한 이론적 초석 1700~1900년
06. 셀 수 없는 것을 측정하다
- 베르누이에게 운에 맡기는 승부나 추상적인 문제 등은 단순히 부와 기회에 대한 욕망과 관련된 근원적인 상황을 이끌어내는 도구일 뿐임. 그는 확률이론의 수학적 증명보다는 의사결정을 더욱 강조했음. 베르누의의 목적은 누구든지 재정상황에 맞추어 어떤 리스크를 감수했을 경우 예측가능한 규칙을 만들자는 것이었음. 이는 현대의 모든 금융경제학자, 사업가, 투자가 등에게는 핵심적인 사항임. 리스크는 더이상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됨. 리스크는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일련의 기회가 된 것임.
07. 의사결정과 선택에 대한 확신을 찾아서
08. 무질서의 선행 없이 질서는 발견할 수 없다
09. 무엇이든 측정하라
- 평균으로의 회귀는 거의 모든 리스크 감수와 예측에 동기를 부여함.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전성기는 몰락에 선행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3대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등의 속담이나 격언도 평균으로의 회귀에 뿌리를 두고 있음.
- 회귀는 또한 이제까지 잃기만 했으나 좀 따겠지 하는 도박꾼의 환상을 자극하는 것이고, 의사가 환자에게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요 라고 말하는 의미이며, 31년 후버대통령이 번영의 임박을 호언하며 의미했던 바이기도 함.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경기회복의 평균점은 그가 기대했던 곳에 있지 않았음.
10. ‘평균으로의 회귀’에 배팅하라
- 평균으로의 회귀가 의사결정에서 헛된 지침이 되는 까닭
(1) 평균으로의 회귀는 경유에 따라 그 과정이 너무 느려 도중에 어떤 충격으로 인해 붕괴될 위험이 있음.
(2) 어쩌면 회귀가 너무 강력해 일단 평균에 도달하면 안정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반복적으로 평균주변을 동요시켜 양쪽에 불규칙한 일탈을 만들수도 있음.
(3) 경우에 따라서는 평균자체가 불안정해 어제까지만 해도 표준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오늘을 전혀 모르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음. 따라서 번영이 임박해 있다는, 되풀이되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장 내일이라도 번영이 찾아오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임.
-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내일에 심오한 효력을 행사할 과거사건에 대한 체계적 조사없이 현상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함. 장기적인 흐름은 중요함.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이 일시적인 조건에 영향을 맏을 수 있는 단기적 사건전개의 흐름에서 장기적인 추세와 그 결과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함.
- 1800년에서 1940년까지 물가는 겨우 연평균 0.2%의 비율로 상승했으며, 사실 하락한 해도 69차례나 있었음. 1940년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140년 전에 비해 단지 28%가 올랐을 뿐임. 그러한 상황에서 고정된 달러 가치의 자산소유는 즐거움이었던 반면, 고정적이지 않은 달러 가치의 자산소유는 리스크가 매우 큰 일이었음. 그러나 2차대전과 그 여파로 모든 것이 변했음. 인플레이션은 41년에서 59년까지 연평균 4.0%상승했으며, 소비자 물가지수도 한 해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상승했음. 잔인하게 오르는 물가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은 극단적으로 리스크가 큰 투자대상으로 바뀌고 말았음. 한편 주식배당금은 45년에서 59년 사이에 세배로 폭등했음. 그 사이 오직 한 해에만 저조한 실적이 나타났으며 그것도 2%의 하락에 불화했음. 투자가들은 주식을 더 이상 가격과 수익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움직히는 위험한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았음. 현재(당해년도)의 배당금을 위해 지불하는 가격은 점점 더 무의미해 보였음. 중요한 것은 미래에 받을 배당금의 상승세였음. 시간이 흐르면 주식의 자본가치 상승과 함께 그러한 배당금이 채권의 이자를 넘어서리라고 충분히 기대했기 때문. 주식이 제공하는 성장과 인플레이션 헤징의 기회 때문에 프리미엄을 얹어서라도 주식을 사들이고 고정금리 수익률만을 가진 채권을 팔아치우는 게 영리한 행동이었음.
- 훌륭한 지혜를 얻는 비결은 평균으로의 회귀가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유연한 생각에 있음. 평균으로의 회귀는 불변의 교의와 의식을 지닌 종교가 아님. 후버 대통령이 그랬듯이, 평균으로의 회귀를 과거에서 기계적인 추정을 끌어내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보다 나을 게 없음. 현재 내린 가정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 없이는 절대로 평균으로의 회귀만을 믿고 게임에 뛰어들지 말것. 골턴은 "평균보다 포괄적인 관점을 즐겨라'"라고 충고했음.
11. 원하지만 불확실한 이익을 얻고 싶다면

4부 투자전략에 대한 분석 1900~1960년
12. 행운을 빌어요
- 리스크관리의 본질은 결과에 대한 통제 가능한 범위를 최대한 늘리는 반면, 인과관계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알 수 없기에 결과에 대한 통제 불가능한 범위는 최소화하는 데 있다.
- 인간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언젠가는 다 알게 될 테고, 결국 확실성이 불확실성을 대치할 것이라는 20세기 초기의 꿈은 1차대전 후에 서서히 사라져 버림. 전쟁 후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오히려 인간의 삶은 더욱 불확실해졌고 세상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버렸음.
- 리스크 관리가 실용적 기술로 인식된 계기는 가장 심오한 결론을 지닌, 그러나 너무도 간단하고도 진부한 한마디에서 비롯되었음.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확실성을 포함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임. 따라서 인간은 결코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없으며, 항상 어느정도는 무지한 상태로 있다는 점임. 그래서 우리가 가진 정보의 대부분은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하다는 것임.
13. 불확실성이라는 축복
14. 승리하려면 효용을 극대화하라
15.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 마코위츠는 불확실성에 대한 미숙한 직관을 통계라는 대역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주식 선별방법을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라고 명명한 선택절차로 전환시켰음. 경제학자와 통계학자가 사용하던 효율성이라는 용어는 투입에 대한 산출을 최대화하거나, 산출에 대한 투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란 부의증식을 의미하는 바람직한 것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분산이라 불리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최소화하는 것임.

5부 리스크의 이익과 위협에 대한 판단 1960~
16. 손실은 이득보다 더 크게 보인다
- 카네만과 트베르스키는 기대이론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지지자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유형을 발견했으며, 그러한 행동유형의 원인을 인간의 두가지 약점 탓으로 돌렸음. 첫째, 감정에 따라 합리적 의사결정에 필수적인 자아통제력이 파괴된다는 점. 둘째,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 사람들은 심리학 용어로 인지장애라는 것을 경험함.
17. ‘사자는 가격’과 ‘팔자는 가격’
- 합리성 모델의 실패는 그 자체의 논리때문이 아니라, 그 모델이 요구하는 인간의 두뇌 때문. 그 모델이 상정한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진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모델대로라면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해야 함. 캐네먼은 합리적 모델의 경직적인 강제성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경직성의 결과와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을 정기적으로 위반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려 한 최초의 인물이었음.
- 리스크 관리기법에 대한 탐색이 한창 인기를 더해갔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와 80년대에는 전후시대의 온화한 경험으로 형성된 세계관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불확실성이 생겨났음. 유가폭등, 워터게이트와 닉슨 사임에 따른 헌저우이기, 테헤란 인질사건, 체르노빌 참사 등의 재난이 발생한 것. 이러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된 인식의 부조화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 동안 겪었던 것과 유사했음. 금융규제완화, 그리고 거센 인플레이션 시대와 더불어 그러한 환경은 이전 30년 동안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금리, 환율, 상품가격에서의 변동성을 만들어냈음. 전통적인 리스크관리형태로는 이렇듯 새롭고 불안정하며 위협적이 세계를 다룰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임.
18. 환상적인 파생상품의 세계
- 파생상품은 면도날과 같다. 당신은 면도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자살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제임스 모건, 파이낸셜 타임즈 칼럼니스트)
19. 컴퓨터의 한계를 기억하라
- 이 세상의 진짜 문제는 비합리적이지도, 그렇다고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은 거의 합리적이긴 해도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 곳이다. 인생이 불합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모든 곳에서 논리를 찾으려 한다면 덫에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간은 덜 수학적이고, 덜 정확하다고 보면 된다. 정확성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만 부정확성은 숨겨져 있다. 자연의 야성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탄)
- 혼돈 이론가들은 이 세상이 동요와 변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활력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가우스가 정규분포를 통해 예측했듯이, 정상으로부터의 편차가 양방향으로 균형을 이루며 밀집된 세계가 아님. 뿐만 아니라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골턴의 개념 또한 적용될 수 없는 세계임. 평균이 항상 변화하는 유동성 상태에 있기 때문.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혼돈이론에는 표준이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음. 혼돈이론은 불연속성 개념을 거부함으로써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푸엥카레의 생각을 극단적 논리로 끌고 간다. 즉,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과거에서 갑작스럽게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선행사건들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이야기임. 혼돈의 세계에서는 언제는 야성이 잠재해 있으며 나타날 때만을 기다림.
- 리스크 관리기술은 기존의 리스크를 통제하는 동시에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어내기도 함.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리스크 관리를 신뢰하고 있으며, 그러한 믿음 덕택에 회피했을지도 모르는 리스크일지라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음.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한 용기는 유익함. 하지만 우리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서 리스크의 양을 증가시킬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함. 어떤 연구보고에 따르면, 안전벨트를 착용함으로써 운전자들은 평소보다 더 과격하게 차를 몬다고 함. 결과적으로 안전벨트 착용으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경우는 줄어드는 반면, 사고발생 건수는 증가하는 것임. 헤지수단으로 고안된 파생상품은 투자자들을 유혹해서 리스크를 수반한 큰 이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투기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함. 일반기업의 리스크 관리자라면 절대로 꾀해서는 안 되는 측면임. 70년대 후반 포트폴리오 보험의 도입은 그전에 행해졌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주식투자 비중(리스크의 노출)을 초래했음. 같은 방식으로, 보수적인 기관투자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분야에서 큰 리스크의 노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분산투자를 사용하곤 했음. 그러나 분산투자는 손실에 대한 보장수단이 아님. 단지 한번에 모든 것을 잃을 리스크에 대한 보장수단일 뿐임.
- 나는 이론이나 가설, 공식 등 순수한 지적 소산물에 대해서는 헌신적 찬미를 바친다. 그것이 장애를 헤쳐 나가다가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주고, 사실을 관측하다가 한계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 넓은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에어리, 영국 왕립관측소 소장,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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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경제 2014. 12. 25. 12:37

 


달러

저자
엘렌 H. 브라운 지음
출판사
이른아침 | 2009-01-1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다. … 이 전쟁은 브라질, 라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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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준비은행은 사실 연방기구가 아님. 그것은 아주 큰 다국적 은행들의 컨소시엄이 소유한 민간법인임

* 주화를 제외하면, 정부는 화폐를 발행하지 않음. 달러지폐(연방준비은행폐)는 민간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해서 정부에 빌려줌

* 합친 실물통화(주화와 달러지폐)는 미국 통화량의 3%미만을 차지. 나머지 97%는 컴퓨터 화면상의 입력자료로만 존재하며, 이 돈 모두는 대출이라는 형태로 은행이 만들었음.

* 은행이 대출해 주는 돈은 미리 존재하던 누군가의 예금을 다시 유통시키는 것이 아님. 그것은 새로운 돈이며, 대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음

* 은행은 회계처리해 발행한 돈의 30%를 자신의 계좌에 넣어 자가 운용함

*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한때 농업이나 제조업 등에 생산적 대출을 한 적도 있으나, 지금은 거대한 도박장치가 되버림. 0712월 현재 68조 달러로 추정되는 돈이 파생상품으로 알려진 복합적이고 위험성 높은 투기에 몰려 있음. 전세계 여간 생산량의 열배나 되는 규모임. 거대 미국 은행들이 이런 투기의 뒷돈을 대고 있으며, 대체로 컴퓨커 화면상에서 만들어진 빌린 돈으로 이루어짐. 이들 파생상품은 시장을 조작하거나 기업을 탈취하고 경쟁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했음.

*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앤드류 잭슨 시절부터 단 한푼도 청산되지 않았음. 이자만 지불되고, 원금부분은 계속 불어나기만 했음

* 연방 소득세는 연방정부의 부채 때문에 은행에 지불해야 하는 이자를 납세자가 내도록 강제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세금임. 정부가 통화를 직접 발행하고, 화폐를 민간은행에서 빌려오지 않았다면 소득세는 필요조차 없었을 것임.

* 연방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만으로도 곧 납세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임. 이자조차 지불하지 못하면 빚을 기반으로 한 연방준비제도의 달러 시스템은 붕괴할 것임.

* 대중의 믿음과는 반대로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무책임하게 달러를 찍어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 은행들이 장부기입을 통한 대출로 통화량을 늘리기 때문

* 바나나 공화국(소수 부패 엘리트들이 지배해 정정이 불안하고 바나나 같은 제한적 산물에 의존하는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은 대개 정부가 통화를 과다발행해서가 아니라, 국제적 기관투기꾼들이 해당 국가의 통하를 공격해 국제시장에서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발생함

* 같은 방식의 투기적 공격과 이에 따른 평가절하는 미국달러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음. 국제투자가들이 더 이상 미국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인정치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은 이미 미국의 경제적 제국주의에 대한 보복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음

* 이 늪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음. 초기 미국 이주민들이 발견했고, 링컨과 다른 일부 지도자들이 이미 실천했던 방법임. 정부는 은행들에게서 화폐발행권을 되찾아올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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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영혼과 진실

경제 2014. 12. 25. 12:36

 


돈 그 영혼과 진실(돈의 본질과 역사를 찾아서)

저자
버나드 리테어 지음
출판사
참솔(도) | 2004-03-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21세기에 들어와 돈은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존재로 부상,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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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화폐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안화폐 시스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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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탄생

경제 2014. 12. 25. 12:35

 


부의 탄생 (보급판 문고본)

저자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출판사
시아출판사 | 2008-09-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역사적 사실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려낸 부에 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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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 무엇이 성장을 낳는가
제1장. 번영에 꼭 필요한 4가지 요소
- 기원전 3000년에서 1900년까지 존속한 수메르에서는 보리대부에 대한 통상적 이자율이 33과 1/3퍼센트였음. 반면 은의 대부에 대한 이자는 20퍼센트였음. 두 대부 이자율의 차이는 은보다는 곡물대부가 위험이 더 컸다는 사실을 반영. 은의 경우는 소비되거나 없어지거나 상할리가 염려가 없었고, 은 수확이 부족할리도 없었기 때문. 그러한 높은 이자율에서는 장기 프로젝트가 불가능. 이자율이 연 20퍼센트라면, 차입총액이 4년이 안되어 두배가 됨. 미래의 부담이 그렇게 파멸적 수준이라면 합리적인 사업가와 기업가들은 5~10년 안에 수익을 거두지 못할 프로젝트를 위해 차입을 하려들지 않음. 대부분 대규모의 상업거래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 경제사가 리처드 실라에 따르면, 이자율은 사회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함. 실제로 일정한 시간대에 걸친 이자율 그래프는 한나라의 체온곡선임. 불확실한 시기에는 이자율이 상승함. 공공의 안전과 신뢰감이 줄어들기 때문. 역사적으로 모든 주요한 고대문명은 U자형 이자율 패턴을 나타냈음.
- 1500년 이전에 일반인들의 복지는 정체되어 있었음. 그 원인은 첫째, 무엇보다도 부를 창출할 인센티브가 없었음. 재산을 조금 모았다 하더라도 봉건귀족, 국가, 교회, 강도들이 언제든 빼앗아갈 수 있었기 때문. 둘째, 창조적, 과학적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음. 독창적 사상을 내놓은 사람들은 종종 그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물론 저세상에서도 흔적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 셋째, 획기적인 발명을 해냈다 해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구할 수 없었음. 넷째, 그러한 발명품이 대량으로 생산된다 하더라도 그 물건들을 광고할수도, 멀리 떨어진 도시들로 값싸게 수송할 수도 없었음.
- 첫번째 경제혁명을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이유가 인간의 주된 활동을 수렵과 채취로부터 정착 농업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혁명적이었던 것은 그 이행이 인류의 압도적 다수에게 유인체계의 변화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그 유인체계의 변화는 두 시스템 사이의 재산권의 차이에 기인한다. 자원에 대한 공유재산권이 존재할 경우에는 더 나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려는 동기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더글러스 노스, 노벨 경제학 수상자)
제2장. 재산권의 등장과 확립
- 메소포타미아 왕들은 즉위 초기에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부채와 세금청구권을 취소시키는 미스하룸을 선포하곤 했음.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높은 이자율을 야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음. 대부자들은 미스하룸이 선포되면 자신들의 투자분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곡식의 대부에 대해서는 33과 1/3의 이자를 요구했음.
- 17세기 중반 내전기에 영국인의 재산은 인류 역사상 이전 그 어느때보다도 안전했음. 그러나 다른 세가지 요인이 미비했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번영을 누릴 수 없었음. 다음 2백년에 걸쳐 잉글랜드는 이 다른 세가지 요인을 획득했고, 19세기 증기 엔진과 전신이 발병되면서 번영의 정정에 도달. 그 시점에 잉글랜드와 그 식민지들은 재산권 측면에서의 유리한 점에 기인하여 이전 세대는 전혀 상상도 못해본 번영을 이룸.
- 영국의 보통법만큼 시민의 역사적 지혜를 그렇게 잘 구체화하면서 동시에 개인적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법률시스템은 없음. 그 법이 효력을 미치는 곳에서는 국가의 부도 번창함.
- 사실 재산권은 그 어느때보다 오늘날 더욱 중요함. 현대 세게에서 안전한 재산권은 부국과 빈국, 번영을 두고 벌이는 경쟁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모든 것임. 예를 들어 공산주의 세게에서 번영을 위한 세가지 기초(과학적 합리성, 풍부한 자본, 현대적 수송과 통신)는 튼튼한 편이었음. 전후 동유럽 국가들의 정부들은 무자비한 경제적 실험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재산권과 개인적 자유를 빼앗았고, 이것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임.
- 한나라가 번영하려면 그 시민 중 상당비율이 재산소유자가 되어 그 나라의 정치과정에 개인적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함. 즉, 이해관계자 효과임. 근대 이전 세계에서는 토지가 고갈되면 이해관계자 층이 엷어졌고, 따라서 그나라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음.
제3장. 과학적 합리주의의 등장과 확산
- 혁신의 분출에 자극을 가한 것은 서구인이 자연세계를 관찰하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방식에서 일어난 혁명임. 서구인과 서구문화가 이 과학적 합리주의의 탄생에 의해 정의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이러한 혁명을 위해서는 과학과 교회뿌리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음. 인류가 번영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을 분리시키고, "성령의 뜻은 우리에게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늘에 도달할 것인지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갈릴레오의 신조를 채택한 때부터임.
-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는 확실히 연구를 자극하지 않았음. 그것은 창조적 사고는 물론 세계에 대한 우리 지식의 실질적 진보도 허용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처지개선도 허용하지 않았음. 네덜란드의 위대한 역사가 호이징가는 이렇게 기술했음. "사회의 의도되고 지속적인 개혁과 개선에 관한 사항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도 일반은 잠재적으로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에 그 제도들은 본래 훌륭하지만, 인간의 죄악이 그것들을 더럽히는 것일 뿐이다...."
- 천년동안이나 아무런 실질적인 사회적, 지적, 과학적 진보도 없었다는 것이 16세기의 평범함 유럽인에게는 그리 문제시되지 않았음. 일반적으로 인간의 상태는 고정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 베이컨의 놀라운 천재성은 다음 세가지를 인식했다는 데 있음. 1) 실제로 문제가 존재했고, 중세인의 상태는 결코 자연적이지 않았다는 점. 2) 연역적 체계는 결함이 있다는 것. 3)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은 지속적으로 증진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인류의 복지도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베이컨은 알았음.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낡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체계를 귀납적 체계, 즉 선입견 없이 사실이 먼저 수집되고 그런 다음 분석되는 체계로 대체할 필요가 있을 것임.
제4장. 자본시장의 활성화
- 18세기 중반에 경제발전이 가속화된 단 한가지 이유를 찾는다면 우리는 낮은 이자율에 주목해야 함. 산업혁명기에 깊에 파고들어간 광산들, 견고하게 지어진 공장들, 잘 건설된 운하와 회사들은 모두 비교적 저렴한 자본의 산물들이었다. (토머스 애쉬턴)
- 1770년 이후 네덜란드의 금융시장은 점차 약해짐. 그 이유는 첫째, 암스테르담은 어떤 종류의 강제력 있는 중앙은행이나 투자자 대중을 보호할 책임을 진 규제기관(나중에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됨)도 두지 않았음. 두번째, 북해건너편에서 서서히 부상하던 금융적, 군사적 초강국-아이러니하게도 이 거인이 탄생하는 데에는 네덜란드의 자본이 큰 기여를 했음-의 힘이 네덜란드를 압도했음.
제5장. 수송과 통신의 발달
- 속도와 안락함이 조금씩밖에 개선되지 않았던 증기선과는 달리 철도는 여행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킴. 날짜와 주간단위로 계산되었던 여행시간은 이제 시간단위로 측정됨. 시간자체는 일상생활의 급속한 가속화를 나타내는 철도시간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음. 이전에는 부자들만 할 수 있었던 장거리 여행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됨. 1835년 영국인들은 1천만 회의 역마차 여행을 했음. 1845년 그들은 3천만회의 철도여행을 했고, 1870년에는 이 수치가 3억 3천만회로 증가.
- 1825년에서 1875년까지 반세기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 어느때보다 철저히 변함.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 대해 유례 없이 급속한 기술적 변화가 일어난 시대라고 생각함.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멈. 두세대 전의 평균적 시민이라면 컴퓨터, 제트비행기, 심지어 인터넷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임. 이와는 대조적으로 1820년대의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1870년대로 보내졌다면, 단 반세기 만에 생겨난 전 지구적인 순간 통신과 철도여행의 속도에 말문이 막혔을 것임. 1825년 이후 몇십년 동안과 같은 그러한 힘과 속도로 인류가 미래를 향해 내던져진 시기는 결코 없었음.
- 확고한 재산권 보호가 장인들을 혁신케 충돌했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그들에게 도구를 제공했으며, 자본시장이 그들의 놀라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자본을 제공했음. 결여되었던 것은 그들의 공장들에 동력을 공급하고 그들의 재화를 수송하는데 필요한 가공되지 않은 물리적 힘과 전 과정ㅇ르 조정하는 데 필요한 빠른 통신이었음. 증기엔진과 전신의 발명이 그 댐을 깨뜨려, 경제성장의 급류를 이루게 되었음.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그런 일이었음. 그 댐은 결코 재건될 수 없을 것이며, 서구 성장의 급류는 조만간 정지되지 않을 것임.
제6장. 부의 창출을 위한 틀의 완성

제2부_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제7장. 가장 먼저 부를 창출한 국가 -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 1500년 이후 네덜란드 번영의 원천
(1) 잉글랜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보다 비할데 없이 강건한 재산권을 누린 주민들
(2)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의 도그마로부터의 해방. 네덜란드는 종교적 관용덕택에 초기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 특히 독일에 깊은 상처를 남긴 최악의 분열을 면할 수 있었음.
(3) 네덜란드 자본시장에서 조성된 풍부한 투자자금, 네덜란드 자본시장이 왕성한 활력을 보인것은 낮은 이자율과 강력한 투자자 보호 때문이었음.
- 네덜란드 쇠퇴 이유
(1) 일인당 기준으로는 큰 부를 가졌지만, 경쟁국의 인구규모는 훨씬 더 컸음. 더 나쁜 것은, 더 큰 경쟁국들에 비해 네덜란드의 인구증가율이 더 낮았음
(2) 국내 및 대외 상업에 대한 모든 논의에는 독점이라는 단어가 붙음.
(3) 네덜란드의 번영은 오늘날 서구에서 부를 낳는 거대한 엔진인 기술진보에 근거하지 않았음
(4) 네덜란드의 금융은 좀 과도하게 성공적이었음. 정부가 너무 쉽게, 너무나 낮은 이자율로 차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18세기에는 나라전체가 부채로 파묻힘. 정부는 물품세로 대부를 보증했기 때문에 세율이 올라감. 물품세율의 인상은 가격과 임금을 상승시켰고, 이로 인해 네덜란드의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이 떨어졌음.
(5) 네덜란드의 정치체는 위험한 대륙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7개의 반(半)자율적인 국가들의 느슨한 정치적 연맹으로 조각나 있었음. 강력한 중앙은행과 활력있는 전국적 특허제도의 부재는 경제적으로 명백히 불리한 점이었음.
- 18세기의 네덜란드 경제는 균형을 잃은 상태였음. 활력있고 수익성이 매우 높은 무역부문은 엄청난 자본을 낳았지만, 국내경제는 기술진보의 상대적 부재와 독점적 제한들에 가로막혀 그 자본을 미쳐 흡수할 수 없었음. 그 결과 투자현금 잉여가 거대한 규모로 축적되고, 이것은 서서히 국내 이자율을 하락시키고 국내물가와 임금을 상승시켜 국내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렸음.
- 18세기 말 네덜란드가 해외부채에서 나오는 소득에 의존했다는 것은 저주스러운 일임. 미국 부채의 상환은 알렉산더 해밀턴의 정력적인 개입에 의해서만 보증되었음 다른 채무국들의 상황은 네덜란드에 더 나빴음. 프랑스와 스페인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가 속속 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네덜란드의 손실은 산더미처럼 증가했음.
- 인클로저에 관해 역사적으로나 문헌상으로나 잡음과 분노에 찬 고발이 많았으며, 또 비록 소수의 농부들이 부당하게 토지를 빼앗겼지만, 지금 대부분의 역사가는 영국의 재산권 존중전통과 적법절차가 대개는 지켜졌다는 점과 그 과정에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웠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음. 인클로저법이 오랜 세대에 걸쳐 공유지의 작은 땅뙈기를 가족적으로 점유해온 사람들에게 소유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소지주들의 수가 상당히 증가했음.
- 인클로저된 토지는 공유지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고 에이커당 더 적은 수의 농부들을 필요로 했으며, 따라서 많은 수의 농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음.
제8장. 두 번째로 부를 창출한 국가 - 프랑스, 스페인, 일본
- 근대이전에 한 나라가 상업을 통해 부와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음. 수천년 동안 부에 이르는 길은 승리와 약탈에 있었음.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희미한 번영이 나타나고 네덜란드에서 그보다는 좀더 활력 있는 성장이 일어나기 이전에 통치자들은 상업과 산업을 국가적인 우선순위로 정하기는 커녕 그것의 가치를 이해하지도 못했음. 정복만이 부를 낳았음. 전리품이 고갈되자 특징적인 악순환이 모습을 나타냈음. 상실된 세입을 보충하기 위해 통치자는 일차적인 부의 생산자들, 즉 농부들에 대한 세금을 인상했음. 늘어난 세금을 낼 수 없었던 농부들은 자기 땅을 팔거나 아니면 그냥 버리고 도망쳤음. 이는 세수를 더욱 낮추었고 이에 따라 더욱 높은 세율이 부과되었으며 더 많은 농장이 버려졌음. 헬레니즘 시기 그리스로부터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를 거쳐 오스만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 쇠퇴하는 국가의 대표적인 특징은 농촌의 인구감소였음.
- 번영으로 가는 도정에서 앞선자와 뒤처진 자를 가르는 것은, 언제 어디서 비로소 통치귀족이 국부를 위한 기초 요소들의 중요성을 파악하는지에 달려 있음. 법치, 사유재산보호, 권력의 분립, 활력있는 민간 상업과 무역, 독점지대로부터 물품세제로의 국가세입원의 전환, 공정인 안전과 교육 및 도로의 공여 등임.
- 모든 국가는 세입을 필요로 함. 세입을 확보하는 방식이 종종 그 나라의 삶과 죽음을 결정함. 오늘날에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정부 공직과 독점권 판매가 너무나 손쉬운 정부세입원이 되면서 경쟁과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 근대 이전의 프랑스와 스페인은 이 함정에 빠져 있었음.
- 1853년과 1888년 사이에 영국은 가능한 빨리 관세를 낮춘 데 반해, 프랑스는 곡물수입에 대해서는 아홉배, 소 수입에 대해서는 40배로 관세를 인상.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정치적 담화는 "모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로 거의 요약되었음. 모르셀망 체제하에서 비효율적인 영농과 보호주의가 함께 작용하여 프랑스 산업에서 필수적인 숙련 노동자의 결핍을 야기했을 뿐만 아나리 식품 가격도 유럽에서 가장 높게 만들었음. 그 두가지는 다시 프랑스 여성들의 지갑을 비웠을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을 굶주리게 했음.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프랑스는 중상주의적 과거에서 벗어나 쉴리와 콜베르 시대 이래로 이러저러한 식으로 프랑스를 따라다니던 치명적 관세를 낮추었음.
- 프랑스에 대한 잉글랜드의 경제적 승리는 우연한 사건이었음. 카드를 섞은 것은 행운의 여신이었지만, 카드 자체는 제도적인 것이었음. 17세기에 각자의 제도적 패가 돌려지자, 판돈은 잉글랜드에게로 돌아감.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모든 나라는 국가세입과 힘의 극대화라는 똑같은 목적을 추구했음. 20세기 동안 서구가 소비에트라는 외관상의 경제적 거인앞에서 몸을 떨었듯이, 17세기 동안 네덜란드와 영국은 중상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으로 계획된 프랑스라는 이웃에 바짝 긴장했음.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사람들 중에서 자국 시스템(법 앞에서의 평등, 권력분리, 탈 중앙집권적 상업, 불필요한 규제의 회피) 이 우위를 차지하리라 확신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음. 그의 마음에는 오직 프랑스 최선의 이익만이 있었음. 애덤 스미스라는 큰 게임의 심판이 게임의 결과와 그 이유를 선언하기까지는 1세기가 더 흘러야 했음. 그렇게 진상이 밝혀진 다음에야 비로소 불리한 패를 가진 쪽이 프랑스라는 점이 눈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백해짐. 그렇게 된 원인은 프랑스의 재산 인센티브 시스템에 결함이 있었고, 과학자와 장인사이의 의사소통이 결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이 발육부진 상태에 있었고, 국내관세가 상업을 질식시켰기 때문.
- 엄격한 봉건적 규칙이 비교적 느슨했다는 점 외에 농촌은 다른 장점도 있었음. 즉, 수력이 풍부했고, 화폐 경제에 익숙하고 농사와 공장 노동을 번갈아 할 수 있는 기민한 농부들이 있었음. 농촌의 두가지 장점(다면적 노동력과 수력)은 공업화를 위한 핵심적 요건이었음.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타도되고 일본의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농촌은 새로운 유럽식 공장기계를 다룰 수 있는 잘 훈련된 노동력을 제공했음.
제9장. 뒤처진 국가들 - 이슬람 세계와 라틴아메리카
- 15세기 경 이슬람 학자들은 코란해석을 동결시켰음. 타클리드(의심의 여지가 없는 종교적 공리)라는 이 가르침은 코란에 대한 이전이 해석을 글자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규정하고 장래에 있을 수 있는 어떤 해석도 차단했음. 이 조용한 재앙은 역동적인 사회적, 경제적 힘이 되어 이슬람을 불구화 시킴. 그것은 흑인은 시민권을 주장할 수 없고 의회는 노예제를 금지시킬 수 없다는 드레스 스코트 판결 이후 1857년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대한 모든 재해석을 중단시킨 것과 똑같은 일이었음. 타클리드 속에 내재된 자유로운 지적 연구에 대한 금지는 경제적 번영에 필요한 두번째 요인, 즉 과학적 합리주의에 관해 말해줌. 본래부터 외부세계에 대해 어떤 호기심도 없고 그 자신의 가정에 대해 도전할 의지도 없는 사회는 혁신하지 않는 사회임. 혁신하지 않는 사회는 진보하거나 번영할 수 없음.
- 부와 자연적 부존자원 사이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듯함. 합스부르크 제국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나이지리아, 사우디, 자이르에 눈길을 돌려보라. 풍부한 천연자원이 저주라는 결론을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임. 상업적 기업활동을 통해 위험을 감수하고 땀을 흘림으로써 이루어지는 부의 생산은 건전한 제도를 촉진하고 더 많은 부를 낳음.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제한된 수의 구멍을 원천으로 한 부의 생산은 지대추구와 부패를 낳음.

제3부_ 번영의 결과와 부의 흐름
제10장.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
-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곳에서는 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언론과 야망 있는 정치가들이 기근을 드러내고 교정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때문이다. 이는 의심할 나위 없는 진실이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기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번영이 민주주의를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아에 대한 멋진 해결책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아마티아 센)
- 선민주주의와 후경제성장과 상관되기 보다는 선경제성장이 후민주주의와 더 잘 상관됨. 번영은 민주주의를 낳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주의 자체는 번영에는 별로 도움이 안됨.(민주주의는 망하는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향이 있음. 특히 유럽과 일본에서 자주 볼 수 있음. 민주적 제도들은 또한 해방된 시민들에게 사회적으로는 유용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비생산적인 광범위한 자선적, 지적, 정치적 배추구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음.)
제11장. 부를 둘러싼 거대한 상충관계
- 경제성장의 큰 역설은 커다란 부를 창출하는 바로 그 메커니즘이 부의 큰 불평도 야기한다는 점. 사유재산은 그 소유자에게는 부를 생산하려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는 똑같은 부가 돌아가지 못하도록 함. 부는 나머지 인구에게로 조금씩 흘러가지만, 종종 이 흘러가는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못해 정치적 분쟁이나 그보다 더 나쁜 사태가 일어나기도 함. 활발한 경제성장과 소득 불평등 사이의 상충관계는 재산권과 법치를 강조할 경우 나타나는 불가피한 결과임.
제12장. 부와 세계 헤게모니의 장악
제13장. 성장이 이대로 지속될 수 있을까
제14장. 언제, 어디서, 어디로
- 서구인의 정신은 그리스-로마적 뿌리에서 움튼 위대한 문학, 예술, 건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확고한 믿음도 엄격한 경험적 조사를 받게 하겠다는 단순한 의지에 있었음. 오늘날 이것이 서구와 세계의 여타 곳들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음
- 1500년 경 수백개의 국가와 공국으로 이루어진 유럽은 부지불식간에 상쟁하는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온상이 됨. 이 요인들의 가장 유리한 조합을 가진 두나라, 즉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근대 번영의 탄생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님.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자본시장, 수송과 통신의 발전이 거의 2세기 동안 미숙하나마 느리지만 확고한 성장을 지속케 했음. 증기엔진과 수송이 아직 네덜란드 경제에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경제적 편익을 준 자연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음. 항해 가능한 수로를 가진 평탄한 지형이 그것임.
- 1800년이나 1900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에서도 네가지 요인이 발전된 곳에서 번영이 존재. 공히 영국 보통법의 유산을 상속받고 서구적 합리주의를 받아들였으며,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어 있고 수송 시스템이 발전된 홍콩과 싱가포르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음. 두 나라는 지리적 행운도 타고 났음. 두 나라 모두 작은 섬나라로서, 탁월하고 전략적인 지점에 위치한 천연항구를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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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대혁명

경제 2014. 12. 25. 12:35

 


디지털 금융 대혁명

저자
김경원, 최희갑 지음
출판사
삼성경제연구소 | 2002-03-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2002년출간 / 516쪽 l A5 l경제/경영 재테크/금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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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정보통신혁명과 금융업의 변화
- 금융기관의 아웃소싱은 두분야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음. 정보통신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살펴보자. 빠른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IT관련 업무 급증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아웃소싱이 불가피. 아웃소싱을 할 경우 정보통신 전문기업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어 비용절감 뿐만 아니라 작업의 질도 상당히 높일 수 있기 때문. 인터넷 뱅킹, 후선업무 시스템 통합, 위험관리 시스템 개발, 카드/전자화폐 등 지불시스템 개발, IT헬프데스트 운용 등의 업무가 이에 속함. 아울러 컴퓨터 시스템의 공동이용(전산센터를 공동으로 출자하여 공동망 운영), 시스템의 공동개발(전자화폐 등의 표준화), 타금융기관 또는 정보통신업체가 개발한 패키지를 구입, 사용하는 등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음. 다음으로 청구서 발송, 보안업무, 문서처리 등 비핵심은행업무들도 고정비용 감축의 목적으로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음. 뿐만 아니라 합병, 제휴, 사업재편 등 전략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획득을 위해서도 외부의 도움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음. 예를 들면, 전문컨설팅 기관들은 금융기관의 스태프 부문이 제공할 수 없는 수준의 전문기술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전략기획, 시장세분화, 합병의사소통, 프로젝트별 우선순위 선정 등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
- 탈중개화란 과거 은행, 보험사 등 금융기관을 통해 이루어졌던 자금의 이동이 금융시장을 통한 이동으로 바뀌는 현상. 역사적으로 탈중개화는 시장이자율이 예금기관의 법적 지불가능 금리수준을 초과할 때 나타났음. 소비자는 은행의 저축성예금대신 시장금리가 잘 반영된 채권을 구입함으로써 높은 이자수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
- 국제금융의 등장 또는 금융의 글로벌화는 13세기로 소급되는 은행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학자들은 중세 이탈리아의 머천트 뱅크에서 그 유래를 찾음. 당시 머천트 뱅크는 유럽의 타도시나 타국가에 소재하는 대리인을 통해 송금 및 지급결제 업무를 처리했으며, 무역에도 직접 참여해 교역로 부근에 금융 및 교역을 위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음. 국제금융 거래 중심지는 각 지역의 성쇠에 따라 지중해 지역(13~15세기의 메디치), 네덜란드 및 벨기에지역(15~17세기 앤트워프, 암스테르담)을 거쳐 프랑스와 영국(18~19세기 파리와 런던)으로 끊임없이 옮겨갔음.
- 정보통신기술 혁명과 더불어 금융비즈니스의 수직형 가치사슬 모형은 네트워크형 가치사슬 모형으로 재편성될 것임. 그러면 고객인 투자자와 예금자, 그리고 기업의 실생활이나 사업상 잠재적 의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금융업종뿐만 아니라 타업종의 네트워크까지 포함해 시의적절한 합종연횡의 가상계열이 편성될 것으로 보임. 아울러 경쟁의 양상도 가상계열간 경쟁형태를 취하게 될 것으로 보임.
2. 금융부문별 디지털화 현황
- 소비자금융 시장은 은행들이 주도해 왔는데,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신탁, 종금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의 예치규모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음. 그러다 외환위기 이후 비은행 금융기관의 신인도가 저하되자 안전성 높은 은행예금 위주로 자금을 운용함에 따라 은행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커졌음. 외환위기 이후 소비자 금융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소비자 신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
- 은행으로서는 지점이 서비스 차별화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지점축소보다는 지점으로 하여금 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남음. 우선 고려해 볼 수 있는 전략이 지점에서 판매하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증권중개, 뮤추얼 펀드, 연금 등으로까지 확대하는 방법. 그러나 이를 위해 은행이 지점의 역량을 개선하고 본사의 관리능력을 배양하는 한편, 고객이 이러한 서비스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
3. 금융기관의 대응전략과 정책과제
- 금융지주회사 모델
(1) 중앙통제형 : 자회사의 영업을 제외한 모든 공통기능을 지주회사에서 수행함으로써 자회사의 업무전반에 대해 관리/통제 등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자회사의 성과지표 전체를 관리
(2) 독립자회사간 협의체형 : 장기적 비전 및 목표를 공유하는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이 독립적 경영을 유지하고, 지주회사의 본부조직은 소규모로 운영되며 재무정책 수립과 재무성과 관리에 그치는 것
(3) 전략적 설계자형(strategic architect) : 개별회사의 공통업무 기능 중 핵심역량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엄부를 구분, 핵심역량부문은 지주회사에서 관리하고 기타 공통서비스 부문은 아웃소싱하거나 자회사에 두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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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저자
로버트 하일브로너, 레스터 서로 지음
출판사
부키 | 2009-02-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본주의 500년 역사를 아우르는 두 대가의 마지막 경제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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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경제학의 기초 ―― 경제학, 경제 주체, 경제의 흐름
1. 자본주의의 출현과 시장의 탄생
- 생산요소 없이는 시장체제 역시 존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생산요소가 자연질서처럼 영원불변한 것은 아니라는 점. 생산요소는 노동을 일상생활과 분리하고,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부동산으로 창출하며, 재산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역사적인 변화과정 속에서 생겨났음. 그리고 자본주의는 사고방식에서 법률,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근본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혁명적 변화의 산물이었음.
- 자본주의가 어째서 유럽에서만 발생하고 여타의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 이유중 하나는 로마 제국의 붕괴로 말미암아 많은 도시들이 그 누구에게도 충성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에 있음. 이 도시들은 이후 자연스럽게 무역과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결국은 왕이나 영주들과 각종 권리를 두고 흥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음. 자본주의는 이런식으로 중세제도의 틈새에서 성장. 여타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와 유사한 자극이나 기회가 없었음.
2. 경제학의 창시자, 혁명가, 구원 투수
- 우리의 관심은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강조한 이론가라는 점에 있음. 애덤 스미스는 성장이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이론을 전개했지만, 확신에 찬 스미스의 묘사과정과는 달리 마르크스에게는 성장이란 부침이 있는 불안정한 것이었음. 결국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시장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과 보다 많은 이윤을 원하는 자본사이의 긴장관계를 해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에 의해 명확해짐. 기업들이 하나같이 부의 축적을 목표로 하지만, 기업가들 모두가 이를 달성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님.
3.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
4.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
- 공공부문의 부상을 측정하는 세가지 방법. 첫째, 정부가 직접 생산하거나 구입하는 정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 둘째, 정부가 어느계층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다른 계층에는 사회보장혜택, 복지사업 또는 실업보험과 같은 이전지금을 제공함으로써 소득을 재분배하는 정도. 세째, 정부가 경제활동의 여러측면을 규제하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정부가 가진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경제운용에 어느정도 관여하는지를 조사

2부 거시 경제 ―― 경제 성장과 경기 침체의 분석
5. 국내총생산은 무엇을 말해 주나?
6. 저축과 투자의 작용 원리
- GDP는 가계부문에서 발생한 저축이 자본장비(capital equipmwnt)로 전환되면서 늘어남. GDP는 저축을 투자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늘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들쑥날쑥하게 됨
7. 소비의 수동성과 투자의 적극성
- 투자는 경제에서 추진력인 동시에 잠재적 불안요소인데, 그 효과는 경제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승수에 따라 확대됨. 경제학자들은 투자승수효과를 1년에 2정도로 예측하는데, 이는 증가할 때나 감소할 때나 마찬가지로 적용됨. 따라서 90년에 투자지출이 280억 달러 줄어들었는덷, 만약 순수출이 동일한 금액만큼 증가하지 않는다면 전국에 걸쳐 그 두배만큼 소독이 줄어서 GDP수요가 560억 달러 감소하게 되었을 것임.
- 투자는 경제의 한부분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추진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일. 투자지출 역시 소비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얻는 수입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함. 또 몇몇 투자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방향, 즉 소비지출의 등락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함. 소비지출이 증가하면 그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공장을 지어야 함. 그렇지만 기업부문의 중요한 활동으로 여겨지는 투자의 독특한 성격은 열차의 맨 끝에 매달린 승무원실이 아닌 엔진이라는 것, 즉 투자가 경기를 이끈다는 것임.
- 성장은 비록 그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투자를 하는 곳에서 이루어짐. 그리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성장에서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요인은 기술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넬이 말한 변혁을 통한 성장(transformational growth)을 가져오는 특정한 기술적 우위가 성장에서 가장 중요함. 넬이 말한 변혁을 통한 성장은 경제학자들이 흔히 생산가능 경계, 즉 주어진 여건에서 이익확보가 가능한 생산량의 최대치를 확대시키는 탁월한 발명이나 혁신의 집합체를 가리키기 때문.
- 변혁을 통한 성장은 경제생활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옴. 하지만 본질은 새로운 생산가능혁계가 자리잡는데에는 일정시가닝 걸리며,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임. 그 후에는 다시 전과 같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며 새로운 변혁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면 됨.
8. 공공 부문의 경제학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공투자에 대한 합리적 평가임. 이 평가에 따라 공공투자를 위한 자본에산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재정적자에서 차감해야 할 것임. 그러고도 여전히 재정적자가 많다면, 이는 정부지출을 삭감하거나 조세를 올려 충당하면 됨. 재정적자 문제를 두고 그렇게 히스테리에 가까운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음.
9.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
- 경제는 사회시스템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임. 하지만 모든 사회는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이어오고 있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래조차도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가치와 신념, 그리고 사회시스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함.
10 .통화란 무엇인가?
11. 통화는 어떻게 운용되나?
- 통화공급통제와 관련해서 미국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정책수단은 공개시장조직(open market operation)임. 이는 연방은행들이 미국국채를 공개시장에서 매도 혹은 매각함으로써 지급준비금 공급량을 변경하는 것. 연준위가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을 증가시키려고 가정. 연준위는 연방은행들을 통해 채권시장에서 연방정부가 발행한 채권, 즉 국채를 구입하고 판매자에게는 연방은행 수표로 지불함. 이 수표에 주목하면, 이 수표는 일반은행이 발행한 것이 아니라 연방은행이 발행한 것임. 유가증권 판매자는 이 수표를 다른 수표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계좌에 입급할 것이고, 이 수표를 받은 은행 역시 다른 수표와 마찬가지로 연방은행으로 보낼 것임. 그 결과 다른 은행의 지급준비금이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유가증권 판매자가 거래하는 은행의 지급준비금은 증가함. 결국 전반적으로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은행들의 대출 및 투자능력이 이전보다 확대됨. 이렇듯 국채구입을 통해 연방은행이 은행계좌에 돈을 입금함으로써 사실상 지급준비금의 추가제공에 나서는 것을 가리켜 채무의 통화화(monetizing debt)라고 함.
- 연방준비위원회가 직면하는 문제들
(1) 무엇을 해야할지 모름 : 지난 10여년에 걸쳐 서구경제의 특성이 되다시피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불만스러운 상황의 반영. 경기침체가 물가상승보다 심각하다고 판명되면 연준위는 통화량을 늘릴것임. 하지만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생계비의 급속한 상승만 유발할 뿐 고용여건의 극적인 개선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음. 반대로 연준위가 실업보다 물가상승을 더 우려하면 지급준비금의 활용여지를 축소할 것임. 이렇게 되면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도움은 주지 못한채 고용하락, 특히 주택건설사업과 같이 은행의 대출여부에 주로 의존하는 사업은 빠른 속도로 침체할 수 있음
(2) 목표달성을 위한 행동이 효율적이지 못함 : 연준위가 목표를 분명이 인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항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님. 연준위가 통화량을 조절하는 능력은 종종 현을 조작하는 능력에 비유됨. 현을 당기는 것은 쉽지만 미는 것은 어려움. 연준위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음. 통화량을 줄이는 것은 쉬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은행이 보유하는 지급준비금 규모를 줄이면 됨. 하지만 통화량을 늘이는 것은 통화량을 줄일 때 처럼 쉽지가 않음. 연준위가 지급준비율을 낮추거나 공개시장에서 국채매입으로 채무를 통화함으로써 은행을 통해 지급준비금을 증가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은행이 원하지 않는 이상 대출을 강요할 방법이 없음.
(3) 국제교류 증가로 통제력에 한계가 생길 수 있음. : 자금차입자들이 다른 나라 은행에서 직접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면서 연준위나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장기 이자율을 통해 통화량을 통제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르게 되었다는 점.

3부 미시 경제 ―― 시장 체제의 해부
12.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나?
13. 시장의 실패와 정부 개입
- 시장체제에는 그 제도적 특성에 비롯된 특유의 약점 또는 비효율적인 영역이 있음.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규제, 조세부과, 보조금 같은 여러 종류의 정치적 개입이 필요함. 경제 메커니즘에서 자율규제가 작동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행동 외에는 취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 이 결론을 정부의 역할 강화를 요구하는 일반적 청원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음. 실제로 시장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많은 경제학자들도 정부역할은 줄어들기를 바람. 정부가 관료화되지 않고 더 민주적이기 위해서 말이다. 요점은 시장의 역기능이 존재한다는 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정부역할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임. 그래야 정부의 권한을 이용해 개별적인 시장의 실패를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시장 체제의 전반적 운용을 강화할 수 있는 것임.
- 시장체제에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장점이 있음. 첫째, 시장은 각 개인이 경제생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능력과 포부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듬. 이 덕분에 시장체제에는 유연성, 생동감, 창의성, 변화가능성이 풍부한 것임. 시장실패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성장의 원동력은 궁극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활약에 있음. 둘째, 여러가지 이유로 정부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시장체제는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최소화함. 역사적으로 보아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것 중 하나가 바로 정부권력의 집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치적 권위에 대한 의존은 최소화하면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경제생활은 제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장 메커니즘의 존재는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
14 .독과점 시장과 기업 문제

4부 현대 경제학의 고민 ―― 세계화, 양극화, 그리고 강박증
15.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
- 대부분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거의 강박관념이나 다름없음.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전세계 중앙은행 대변인들의 발표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은 실업률이 적정수준이라 여기는 범위를 벗어나기만 하면 이를 인플레이션경향이 다시 촉발될 수 있다는 위협의 첫 신호로 받아들이고 서둘러 통화긴축에 나서곤 함. 베트남전과 석유파동이후 오랫동안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는 게 너무 높은 고용수준이 행여 너무 급속한 경제성장의 결과는 아닌지 미심쩍어 하는 버릇인 셈. 이렇듯 우리가 마주친 새로운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임.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한데다 급변하는 경제여건에서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도, 이를 억제함으로써 과거 인플레이션에 성공적으로 대처해 나갔던 성과를 퇴색시키고 있기 때문.
- 인플레이션이 과연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협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데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 실업인구나 불완전 고용인구가 많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음. 세계화 문제에 대해 설명할 때 살펴보겠지만, 현재 전 부문에 걸쳐 국제적인 경쟁이 확대되고 있음. 그 속에서 미국 기업들의 가격결정권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으며, 노동비용을 비롯한 각종 비용은 새로운 기술개발 덕분에 극격히 떨어지고 있음. 실질 노동임금이 계속 낮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경제정책을 짠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음. 게다가 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은 노령자를 위한 연금이나 의료지원 혜택 같은 사업에 투입되는 정부지출을 제한하려 할 때에도 주기적으로 호출되곤함. 예상되는 인플레이션 후유증을 근거로 정부징출의 증대 자체를 마땅찮게 만들어 결국에는 교육이나 사회기반시설, 연구개발 같은 앞으로의 번영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공공부문의 사업규모를 축소하는 것임. 이는 민간부문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기업들은 낮은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설비투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직원들에 대한 기술 훈련까지도 줄이게 됨. 또 불완전 고용상태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교육에 투자할 비용마처 없을 정도로 낮은 급여에 시달리게 됨. 결국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미래의 번영을 이루는 데 필수적인 공공투자나 민간투자를 못하게 만드는 결과에 이를 뿐임.
16. 소득 불균형의 확대와 재생산
17. 세계화로 인한 문제의 복잡화
18. 세계화 시대의 경제 정책
19. 자본주의라는 미완의 혁명
- 도대체 자본주의의 어떤 면이 혁명적이라는 걸까?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변화의 창출이라는 데 있음. 자본부의는 결국 끊임없이 창출되는 변화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서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것임. 자본주의 혁명은 통치하고 사색하는 가운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활동하는 가운데서 생겨난 것인 만큼 비정치적이라 할 수 있음. 그런데도 자본주의로 인해 빚어진 변화로 말미암아 정치부문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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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이후

저자
마이클 루이스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08-11-2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블랙 먼데이, 아시아 외환위기,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
가격비교

1.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붕괴 : 1987년, 블랙 먼데이를 말하다
- 컴퓨터가 시장 붕괴의 원인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그랬을까? 해답은 질문의 의도에 달려 있음. 원인이 10월 19일 508포인트 하락의 직접적인 촉매를 뜻하는 것이라면 하락의 원인이 된 특별한 사물이나 삶은 없다가 대답임. 오히려 그것은 집단적 패닉의 산물로, 아프리카 평원의 영양무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공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 왜 공황이 정확히 그때 발생했는지를 파악하려면 군중심리를 이해햐야 하는데, 아무리 동물행동의 최고전문가라 해도 영양(또는 인간)이 그때 공황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감히 안다고 할 수 없음. 하지만 원인이 주식시장의 가치가 조만간 하락했어야 하는 이율르 뜻하는 것이라면 대답은 간단함. 10월중순의 금리는 약 10퍼센트 수준이었음. 이럴 때 채구너의 가격대 이자수익의 비율은 10대 1이었음. 똑같은 가격대 이자수익의 비율이 주식시장에서는 20대 1이었음. 이는 대부분의 주식이 얼마나 과대평가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였음. 그런 상황에서 주식을 계속 매수한다는 것은 정말 이치에 맞지 않음. 물로 채권수익률이 곧 떨어지거나 주식수익률이 막 올라갈 것이라고 판단되지 않는한 그렇다는 이야기임. 하지만 지난 가을, 금리는 달러의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 올라가는 중이었음. 금리상승은 경제성장에 압박이 되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느리든 빠르든 주가를 하락시켜 채권가격과 균형을 이루게 만들 수밖에 없음. 주식이 컴퓨터로 거래되는지, 사람이 거래하는지 여부는 요점에서 벗어남. 두 시장이 미리 조정을 거치지 않고 그렇게 심하게 벗어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자면 복잡함. 간단히 덧붙이잔면 큰돈을 벌고 있을 때 결정적인 판단을 기꺼이 유보하려는 태도에 달려 있음. 1637년 네덜란드 튤립 열풍 사건때 일어났던 일이 1987년 컴퓨터화된 주식시장에서 일어났음. (레스터 서로우, 테크놀러지 리뷰, 1988년 2~3월호)
- 10월 19일의 사건을 설명해보고자 할 때, 유발사건 보단느 악순환 자체의 역학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줌. 이 점에 관하여 조사한 결과,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을 크지만 그 결과로서 취해지는 조치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음. 붕괴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을때,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임. 그날 기관 투자자들의 평균시세조회수는 3.2회였고, 7명이 넘는 사람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 또한 그날 기관투자자들의 평균 가격조회수는 35회였고 20명의 사람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 그들의 대부분은 심리적 걱정이 많았음. 기관투자자의 43퍼센트는 빠른 맥박, 땀나는 손바닥, 가슴이 꽉 조이는 듯한 느낀 등과 같이 신체적인 증세로 고생하고 있다고 인정했음. 개인투자자의 23퍼센트 이상과 기관투자자의 40퍼센트가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두려움이 전염되는 경험을 했다고 보고했음. 실제로 19일 주식을 거래했던 투자자들(개인투자자 중에는 5퍼센트가, 기관투자자는 31퍼센트가 거래를 했음) 중에는 공황증세를 보인 투자자가 상당히 많았음. (로버트 실러, 워싱턴 포스트, 88년 4월10일)
2. 아시아를 저버린 외국인들 : 러시아와 아시아의 붕괴, 누구의 잘못인가
- 97년 태국의 바트화가 붕괴하자 태국을 연상시키는 지역(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투자금을 회수. 그후 몇개월 동안 일어난 일은 은행에 대한 예금지급 청구가 쇄도하는 일과 비슷했음. 단, 그 은행이 동남아 전체였다는 점만 달랐음. 누구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울까 찾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메드 수상이 가리킨 사람은 헤지펀드 관리자 조지 소로스였음. 이것은 아주 바보같은 행동이었음. 소로스는 거래를 포기했지만(이것은 나중에 밝혀진대로 일시적 포기였음.) 제2의 소로스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말레이시아를 공매도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여 재산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 98년 9월 폴 크루그먼은 포춘에 이런 글을 썼음. "세계 경제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 그렇게 파괴적인 실추를 경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세계 대공황 초기에도 이보다는 심하지 않았다."
- "경제둔화의 영향, 자산가격의 붕괴, 은행의 위기는 서로 맞물려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은행 신용의 하락이 자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불황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 은행 신용의 감축은 자산 가격의 하락을 억누르고 경기후퇴를 심화시킨다. 이는 은행들에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고 이에 따라 은행들은 더욱 움츠러들게된다. 악순환은 지나친 표현이었지만, 어쨌든 아시아의 위기를 너무나도 잘 설명해준다." (국제결제은행 보고서). 하버드 대학교의 제프리 삭스처럼 통화의 안정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IMF의 소프트머니파 비평가들은 IMF가 해당 국가들에게 요구한 높은 금리때문에 심각한 불황과 금융피해가 생겼으며, 그 결과 재무상태가 좋은 은행들과 회사들도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옳았음. 그래서 그들은 IMF가 해당 국가들이 금리를 올려 통화를 방어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그국가들에게 금리를 낮게 유지하여 실물경제를 계속 성장시킬 것을 말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음. (폴 크루그먼/제레미 칸, 포춘, 98년 9월 7일)
- 워싱턴 컨센서스의 기본적 신조가 시장을 개방하라인가? 시장개방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적인 부분임. 개도국을 위한 기본적 진실은 다음과 같음. "만약 당신이 혼자 살려고 한다면, 세계 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연을 끊게 될 것이다. 전세계에 상품을 수출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상품을 외국으로부터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당신은 세계체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기본적 구성요서임. 그러나 그 합의를 어떻게 실행할지, 그것이 개방된 시장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와 같은 문제로 들어가보면 뜻밖에도 그것은 자국의 은행과 기업들이 아무런 구속이나 규제, 감독을 받지 않고 뉴욕의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국가들이 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음. 그들은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엄청난 빚을 떠안았음. 그리고 결국엔 엄청난 불행에 빠지고 말았음.
그렇지만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자본흐름을 자유롭게 허용하라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제안하고 있던 내용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 국가들에게 무역체계를 개방하라고 제안했슴. 이는 상품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음을 의미. 또한 우리가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그 국가들의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이들 국가들에게 금융시장을 개방하라고 제안했고, 이 국가들에게 장기적인 해외직접투자에 경제를 개방하라고 제안했음. 그래야 미국기업들이 해외에서 공장을 세울 수 있기 때문.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는 전세계를 미국적인 개념을 펼치기에 안전한 곳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었음. 그들은 미국의 혁신적인 경제적 특권을 보호해주기 위한 지적재산권을 채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음
그렇다면 소위 핫머니는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필요한 해외원조 대신 핫머니에 의존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음. 그리고 그 덕분에 미국의 의회나 행정부는 미국 국민을 상대로 다른 국가에 대한 경제적 원조를 어렵게 부탁하지 않아도 됨. 결국 그 일을 은행들이 할 것이기 때문. 그러나 2~3년 뒤에 우리는 정말로 그 행동을 후회할 것임. 은행들이 그 국가들의 돈을 거둬들이고 나면 경제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 이처럼 우리의 외교정책과 경제목표는 서로 어울리지 않음. 물로 가장 많이 잃는 사람들은 끝까지 그 채무를 갖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임.
97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위기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자국의 저축으로 살아온 아시아의 성공적인 국가들이 90년대초, 세계 자본에 금융시장을 개방하기로 결정했음. 이들 국가들은 그 동안 상당히 잘해왔지만 조금만 자금을 더 빌리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 이들은 국민소득의 몇퍼센트에 해당하는 자금을 빌리기 시작했고 결국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 개도국 5곳의 단기부채가 1750억 달러에 이르게 됨. 주로 다국적 은행들로 이루어진 채권자들은 97년 중반부터 아시아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고, 다른 은행들의 향후 움직임에 대해 불안해 하기 시작. 각 은행들은 다른 은행이 자기돈을 먼저 받아내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후 만기가 된 단기부채 액수가 채무국들이 보유한 단기 달러자산보다 75퍼센트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행들은 당혹감에 빠짐. 모든 은행들이 이렇게 말함. "우리는 이 나라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지금 당장 돈만 받으면 그만이다." 그 결과 갑작스럽게 아시아에 상환 청구가 쇄도. 이는 모든 채권자들이 가능한 한 빨리 돈을 빼내길 원했다는 의미. 그리고 이들 아시아 국가들은 채권자들에게 지불할 달러가 없었기 때문에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됨. 통화가치는 폭락했고, 금리는 치솟았음. 유동자산은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제조업은 올스톱되었음. 아시아 지역전체가 경제붕괴 상태에 빠짐.
3. 헛된 투자의 어김없는 최후 : 닷컴 버블, 어리석은 투자의 진상을 드러내다
- 유에스 에어웨이즈 주식으로 명성이 손상된 버핏은 투자자에게 한푼도 벌어주지 못하는 신기술의 예로 항공여행을 소개하기를 좋아함. 그러나 버핏에게 나쁜 것이 미국에게 나쁜 것은 아님. 항공여행이 없다면 우리는 경제적으로 더 좋지 않은 상태일 것임. 투자자는 기업을 팔아치움으로써 더 부유해질 수 있을 것임. 투자자에게 슬픈 진실은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익의 대부분이 소비자에게 곧바로 아무런 비용 없이 가버린다는 것임. (독점 지배력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표적인 예외임) 이런 이유때문에 버핏과 같이 사리분별과 조심성이 있는 투자자는 첨단기술에의 투자를 피하려고 함. 같은 이유로 사리분별 있고 합리적인 주식시장은 사회적으로 최적에 미치지 못하는 자본을 혁신기술에 투자함. 새롭고 나은 기술은 새롭고 좋은 길과 유사함. 사회적 이득은 한 개인 혹은 회사가 창조해서 얻는 대가보다 훨씬 큼. (마이클 루이스, 뉴욕타임즈 매거진, 2002년 10월 27일)
4. 모두에게 몰아친 위기 :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붕괴, 이젠 사회가 흔들린다
- 벅찬 모기지 부담을 안고 있는 주택소유자는 알게 모르게 리스크를 안고 있음. 그들이 앞으로 수년내에 팔아야 할 필요가 생길때 리스크는 특히 커짐. 현 금리는 경제의 침체상태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금리는 계속될 수 없음. 만약 앞으로 수개월 안에 경제가 개선될 경우 모기지 금리는 상당히 상승함. 모기지 금리가 8.5퍼센트가 된다면 그것은 2000년 중반의 금리와 같아짐. 그럴 경우 30만 달러의 모기지에 대한 월부금은 500달러가 상승하게 되고, 레빗타운 같은 지역에서의 주택구입 희망자는 그 시장 가격이 감당이 안 될 것임. 만일 반대로 더블딥 불황이 현실화된다면 모기지 금리는 5.5퍼센트로 하락할 수도 있으나 실업이 증가할 것이고 수많은 주택 소유자가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됨. 현재 실업률은 겨우 5.6퍼센트로 과거 30년가느이 평균수준에 한참 못 미치며, 사람들 대부분은 고용중에 있거나 일자리를 얻는데 자신을 갖고 있음. 그러나 만일 실업률이 급상승하면 대부분의 불황기에 그러했듯이 주택구입 희망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큰 금액의 모기지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게 되고, 주택가격은 급락할 것임. 부동산 업자는 부동산이 주식시장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그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님. 궁극적으로 주식지상을 오염시키는 약점이 거의 언제나 부동산 시장도 약화시킴. 주택구입자가 짚어보아야할 사항은 현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집을 팔고 싶을 때 미래의 구입자가 얼마나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인가임. (존 캐시디, 뉴요커, 2002년 11월 11일)
- 서브프라임 xyz와 같이 모기지담보부 증권은 커다란 모기지 머신의 종점이 아님. 그것들은 사실은 더 이색적인 증권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을 위한 구성단위임. CDO도 마찬가지로 트리플A와 그 이하 등급 채권으로 구성되며, 신용평가기관은 여기서도 중심적 역할을 함. 그 차이는 서브프라임 XYZ는 1차 파생금융 상품으로, 그 자산에는 실제 주택소유자에 의해 소유된 진짜 모기지가 포함되어 있음. CDO는 한 걸음 물러난 것으로 모기지를 매입하는 대신에 모기지를 담보로 하는 채권을 사는 것임. 그 채권은 서브프라임 XYZ에 의해 발행된 채권과 같은 것임. (3차 파생상품으로 소위 CDO 스퀘어드가 이쓴데 이는 다른 CDO에 의해 발행된 채권을 산 경우) 서브프라임 XYZ수준에서 타격을 주고 있는 계산착오는 CDO수준에서는 더욱 절망적임. 나쁜 날씨가 비행기를 여러번 타야하는 여행자에게 심각한 지체를 초래하는 것처럼, 만일 기초자산이 되는 모기지 채권의 등급평가가 잘못 되었다면 그 채권을 매입한 CDO의 경우에는 문제의 어려움이 가중됨. 무디스는 통계족 모델을 써서 CDO를 평가했음. 그것은 과거의 체납패턴에 의존했음. 여기에서 전제되었던 것은 모기지 산업이 거칠게 투기적인 비즈니스로 변모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과거 체납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임. CDO의 복잡성도 마찬가지로 그 프로세스를 위태롭게 했음. 최근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베어스턴스를 합병한 JP모건 체이스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평가기관과 은행에 대해 "상식의 대실패가 있었다. 대단히 복잡한 이 증권은 마치 가치평가가 쉬운 채권처럼 간주되지 않았어야 했다."라고 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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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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