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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로피

사회 2024. 11. 24. 06:37

- 엑스트로피란 80년대 기술에서 비롯된 세상의 변화를 고민하던 선각자들이 만든 기술철학으로 기술에 우리의 희망과 의도를 담는 기준이자 방법이다.
80년대 캘리포니아에는다소 급진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연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술을 통해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불평등, 빈부격차, 환경문제, 생명연장 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가리켜 엑스트로피라 명명

- 엑스트롶는 무질서라는 뜻을 가진 엔트로피에서 착안한 것으로 엑스를 붙여 엔트로피와 반대되는 의미를 담음.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 보통 무질서, 복잡함, 에너지 소진의 의미로 사용. 이와 반도래 엑스트로피는 무질서가 없음, 명확해짐, 에너지 증가의 의미로 정의됨.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인간의 능력을 증강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엑스트로피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자신들을 엑스트로피안이라 불렀다.
엑스트로피안들은 기술자들이자 철학자들이다. 기술과 철학을 엮는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대를 맞고 보니 기술분야에서도 철학이 중요해졌다.

- "예측의 세부내용을 진지하게 다루는 미래학자는 없다.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변화할지를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엘빈 토플러
토플러는 여러 저서를 통해 우리가 미래를 내다볼 때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을 말했다. 예측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가 아니라, 변화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방향성)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속도)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핵심 논지다. 변화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반면 방향성과 속도를 아는 것은 가능하며, 세상의 변화가 주는 충격을 줄이고 수용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 08년 10월 31일, 화폐개혁의 시장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세가지 혁명을 제시. 그것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이다. 그는 이 중에서 특히 과학혁명을 인류역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중대한 사건으로 언급. 하라리는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한 1543년부터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판한 1687년까지를 과학혁명의 시기로 보았음. 100여년에 걸친 긴 기간의 변화를 두고 혁명이라 일컫는 것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100년은 극히 짧은 시간이므로 급격한 변화, 즉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과학혁명이 과학시술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가자.
이 시기 유럽은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이 시작. 루터는 교회 부패 등을 비판하면서 당시 절대적이었던 종교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주도. 이는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절대적 권위가 약화되는 계기가 됨. 
그 흐름을 이어 자연현상에 대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모색하는 학문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시대적 분위기가 만들어짐. 16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르네상스 혁명이 절정이 달하며 문화, 예술, 과학이 꽃을 피웠고, 이는 유럽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이런 배경하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단순히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넘어 인간사고와 사회체제의 근본적 전환을 가져옴. 지동설의 수용, 수학적 원리의 활용, 과학적 사고 등 과학분야의 획기적 성과 이면에는 신학, 철학에 대한 기존의 제약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사회적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자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관점이 근본 동력으로 자리한다.

- 지난 30년간 거대기업들의 플랫폼 독점구조가 점차 강화된 것은 우리의 선택에 따른 결과다. 인터넷을 통해 사회의 묵은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일부 사람들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오히려 기존에 있던 부의 불균형에다 정보 불균형까지 얹어지며 더 큰 불균형이 만들어졌다. 디지털 정보의 관리, 거래구조 또한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쪽으로 계속 진화해 왔기 때문. 결국 인류는 물질시대의 부작용, 즉 부의 불균형, 불공정, 불평등의 문제를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블랙록은 현물 ETF상품 승인 두발만에 20만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함으로써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기업이 됨. 또한 24년 5월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 상장기업 중 약 600개 이겁이 비트코인 ETF를 통해 비트코인에 간접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보유규모로는 전체 비트코인 공급량의 15% 수준. 월가 금융기관, 상장사, 거대 자본가 등 이미 인터넷 시대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존 세력이자 세상의 주도세력이 또 다시 비트코인 시장 장악에 나선 것.
탈 중앙화를 꿈구는 엑스트로피안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마지막 보루다. 인터넷이 결국 실패했던 탈 중앙화 시도를 비트코인이 물려받았고,또 다시 거대세력의 도전을 똑같이 받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다르게 사토시 나카모토의 설계는 완벽했다. 인터넷이 등장하던 초기에 거대세력들은 그들의 구미에 맞게 기술을 변경하고 질서를 재편할 수 있었다. 반면에 비트코인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도록 완벽한 룰세팅이 되어 있다.
어찌 보면 현재의 상황을 사토시 나카모토가 에견했는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을 탄생시키고 자신 혹은 그 집단은 익명성을 추구하며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성공에 도달할수록 주류세력이 헤집어 놓을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완벽히 자단하기 위한 고민을 세심하게 담아둔 것으로 보인다.

- 결론적으로 현재의 AI는 인간의 언어를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혹은 그 이상의 방식으로 이애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AI가 편견을 가졌다거나 의식을 가졌다거나 하는 등의 해석은 아직 시기상조. 한편으로 AI분야의 다양한 용어들이 이런 논란을 조장한 측면도 있음. 학습이나 신경망 같은 용어들이 인간 두뇌에 대한 잘못된 비유를 만들어 오해를 부추긴 것임.
거대 언어모델은 많은 텍스트를 보고서 다음에 어떤 단어가 나올지 예측하거나 단어가 빠진 텍스트를 표시하고 채우는 방식으로 학습함. 이걸 인간의 학습, 인간 뇌속의 신경망 같은 용어를 써서 설명하다보니 AI가 인간과 같냐는 논란과 비아냥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비 기술영역의 사람들은왜 굳이 학습 혹은 신경망이라는 용어를 써서 혼선을 주느냐는 것부터 지적할 수밖에 없음. 비 기술자들은 인간의 인지, 학습, 추론, 창작의 과정과 AI의 그것은 같지 않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용어에 갇혀서 불필요한 논쟁을 만들어냄. 반면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현상과 가치에 대해서는 소홀해지게 되는 문제를 야기.특이점 시대의 변화 중에서 용어에 갇혀 그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여럿 있음. 암호화폐가 대표 사례다. 암호화폐, 가상화폐, 가상자산, 암호자산 등 비슷한 느낌의 다양한 용어들이 난무한다. 새로운 현상이자 기존에 없었던 것이기에 용어를 통일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음. 문제는 용어가 여러개라는 점이 아니라, 지금 사용하는 용어가 기존의 유사셩역에서 가져온 단어의 조합이라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시선과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화폐, 자산은 금융업에서 주로 정의됨. 그럼 현재의 암호화폐 혹은 가상자산 시장의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들은 금융업 종사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화폐, 자산이라는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 용어의기존 개념에 사라잡혀 오히려 이를 강하게 부정함. 그들의 상식으로는 비트코인을 화폐나 자산으로 볼 수 없기 때문. 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을 부정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일부 금융인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 라이트 형제가 인류에 선사한 교훈
인류에 비행기를 선사한 라이트형제는 비행기 개발 당시 비행을 성공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이 제어와 안전문제라고 했다. 어떤 조건에서도 치명적인 고장이 야기되지 않는 안전한 글라이더를 설계할 수 있다면 가볍고 강력한 엔진을 만드는 것은 비교적 사소한 일이라는 의미다. 라이트형제에게는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로 여겨지는 엔진보다 오히려 안전과 제어가 더 중요한 과제였덤 셈.
AI의 안전도 라이트형제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AGI는 강력한 엔진이지만 안전한 글라이더는 아니다. 따라서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을 피하면서 강력한 AI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한 시점.

- 최근 기업들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ESG경영을 요구받고 있음. 이런 ESG를 추구하는 과정에도 다양한 가상화 기술들이 활용됨. 스페인의 에널그린파워는 수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데 가상화 기술들을 활용중. 거대한 발전소 공간에서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들을 사람의 눈으로 파악하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놓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눈과 손이 미치지 못하는 발전소 곳곳에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가상공간에 실시간으로 구현함으로써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고 예측해 발전소 운영효율을 높인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똑같은 디지털 트윈 수력발전소를 구축한다. 덕분에 작업자들은 실제 현장에서보다 더 정밀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수집된 정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에너지 효율, 친환경, 작업자 안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ESG를 추구할 수 있다.

- 스코틀랜드 신재생에너지 기업 IES는 영국 노팅업 지역의 작은 마을을 탄소중립 마을로 구현. 센서와 영상인식기술로 공해물질을 정교하게 측정하고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현실세계의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 수집하고 예측해 공급을 최적화 했다. IES가 구현한 버추얼 트윈이라는 기술은 가상세계에서 공해물질의 배출을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를 중심으로 수급을 최적화해 친환경 도시의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에너지 생산, 유통, 소비과정에서 공간컴퓨팅가 가상화 기술을 활용하면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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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생존법

사회 2024. 11. 21. 07:03

- 우리는 계속해서 웃으라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즐겁게 지내라는, 휴일에는 환호성을 지르라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라는 요구를 받음. 그런 요구가 없어도 이미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현대는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권리인 울적할 권리를, 비생산적일 권리를, 퉁명스러울 권리를, 혼란스러워할 권리를 박탈했다. 행복이 표준상태여야 한다는 주자잉야말로 현대가 우리에게 저지른 핵심적 부당행위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현대 미국이 압도적인 악당을 만들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언급한 치어리더의 우두머리 격인 악당은 바로 월트 디즈니다.

- 우리는 소비의 주된 문제점을 가격의 측면이라는 틀에 넣어 바라보지만, 더 근본적인 데 있을지 모른다. 성공적인 지출은 우리가 획득한 것과 느끼는 방식 사이의 내밀한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데 달려 있다. 우리가 쓸모 없는 제품을 고르는까닭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 우리가 불완전한 소비자로 나아가는 이유는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 실수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우리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적 측면에서 훈련받지 못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

- 삶이라는 상태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임. 커다란 슬픔이나 상실을 겪지 않고 보내는 날이 거의 없다. 세상 모든 게 근본적으로 슬픔에 괴로워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려면 많은 특권을 누리거나 시야가 좁디좁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광고는 마치 활기, 평온, 낙관주의가 일반적인 상태인 듯, 우리는 항상 오해받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으며 죽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우리에게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광고 작업은 물건 구입으로 해결되지 않는 행복감 외에 다른 마음 상태를 인지하는 게 상업 사회 전체를 한순간에 붕괴시키리라도 하는 듯 군다. 하지만 이런 성마른 감정과 태도는 우리가 슬플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우리의 기분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즐겁게 해주거나 빠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를 느끼지 않고 품위 있는 삶속에서도 슬픔, 고독, 혼란이 자리잡을 적법한 자리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크게 감사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 우리는 미래를 위한 더 품위 있는 형태의 광고를 상상할 수 있다. 떼를 쓰거나 소리지르거나, 성가시게 하거나 추어올리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제공하는 듯 굴면서 실은 전혀 다른 걸 팔기 위해 사람들의 주의를 자극할 필요가 없는 그런 광고 말이다. 이런 유형의 광도는 다른 형태의 고객층을 갖게 될 것이다. 일부는 여전히 셔츠나 머리 손질용 상품을 만들겠지만, 다른 일부는 우리의 고차원적 욕구에 대한 해결책을 개척할지 모른다. 미래의 쇼핑구역에는 고독에 대한 효과적 지원, 상심에 대한 치료법과 안정을 누리는 전략을 홍보하는 빛나는 대형광고판이 있을지 모름.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의 새벽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서로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올바르게 사고파는 방법도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셈이다.

- 안정은 특정 목적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노천탕에 몸을 담근다고 해서 찾아오지 않음. 오랫동안 묻혀 있던 물안의 희미한 근원을 시간을 들여 끈기있게 탐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음. 마찬가지로 우정이란 특정 상표의 청량음료에서 마술처럼 출현하지 않음. 우정은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그 누군가의 주변에 머물며 담대하게 약점을 드러내고 그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요구함. 화복한 가족은 새 시계를 획득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수많은 시련 앞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긴장과 비난을 수반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적절한 선을 그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

- 신문은 사건을 보다 명확히 살펴볼 계몽의 도구인 척 했지만, 결국 실제 삶의 모습을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 신문은 대부분 사람이 친절하다는 사실을, 기차는 대부분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정부에서도 감동적이고 훌륭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날들은 조용히 별일 없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대서양 횡단 케이블, 기자회견, 해외지국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는 커명 오히려 우리를 사람, 기술, 그리고 정부의 진정한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리하여 매일 뉴스를 접할 방법은 없었지만 자신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 현실을 그려낼 줄 알았던 중세시대의 문맹 농부보다 더 아는 게 적은 상태가 되었다.
- 이와 관련하여 신문이 초래한 위험 중 하나는 사람들이 신문에 익숙해지면 감정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 신문은 분노, 공포, 슬픔, 동정, 공감 등의 많은 감정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듯 보였다. 신문 역시도 자신들의 고상한 목적을 설명할 때 자기들이 무지와 편견을 내쫓고 여러 민족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일에 종사한다고 힘주어 주장했다. 하지만 신문이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하는가 하는 면에서는 뚜렷한 약점이 드러남. 놀랍게도 고통스러운 사연을 접했을 때, 우리 마음이 실제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신문은 지진으로 5만명이 사망했고, 고아원이 불타서 200명이 죽었고, 다른 대륙에 흉년이 들었으며, 그린란드에서 선박이 좌초했고, 누군가 도끼로 일가족을 살해했다고 알려주는데, 우리의 반응이란 그저 잠시 한숨을 쉬고는 시선을 들어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데 그친다. 보도되고 있는 극적인 사건들과,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십여건의 기사를 읽는 동안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무심함과 태평함 사이에 으스스한 간극이 생가는 것이다.
- 신문은 자신들의 의미지에 국가차원의 의식을 담아낸다. 아침에 잠에서 깰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꿈이 남긴 메아리, 반쯤 기억나는 계획, 산발적 흥분, 미약한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당신이 지금 무엇이 되려고 애쓰고 있건, 예전에 어떤 사람이 되려고 했건,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 보이는 무자비하고 단호한 뉴스의 벽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그것들 대신에 대통령이 하는 말고 주식시장이 가리키는 바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 우리 마음 어딘가에는 우리에게 시시비비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말슴을 귀 기울여 듣던 아이가 아직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신문이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아침 조회 앞에서도 여전히 경건히 앉아 있다.
- 19세기의 신문이 거둔 미심쩍은 업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표준화한 것이다. 신문은 헨리포드와 같은 사업가가 제조업에서 거둔 성과와 유사한 짓을 우리의 상상력과 지성이 맺은 다양한 열매에 가했다. 즉 신문은 생각을 대량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줄이고 광고기사를 늘이며 지역적 특색을 씻어냈다.
- 뉴스산업의 근본전제는 새로운 것과 중요한 것이 하나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우며 새로운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이 전제는 대부분 거짓일 공산이 크다. 방금 일어난 일이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의 번영에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20년 또는 1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며, 실제로 1500년대부터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던 책에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정말로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촉구일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뉴스는 용서하고, 반성하고, 음미하고, 감사하고, 고요하고,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뉴스다. 이런 뉴스야말로 화재, 살인, 추락, 위기같은 소식들을 제쳐두고 우선하여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마음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도록 해야하는 진정한 뉴스다. 뉴스란 가끔 사실 대부분은 그저 우리가 알아야할 것 중 가장 덜 중요하고 가장 덜 긴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 밀과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도 부자유스러운 상태로 살기 십상이라는 점을 깨달았음. 발목을 묶는 쇠고랑도 없고, 4-5년에 한번씩 지도자를 투표하라는 정중한 초대를 받긴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완강하게 붙박여 있는지도 모름. 결혼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업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휴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며, 우정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그렇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외되어 있다. 우리 영혼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줘서는 안되는 낯선 자들이 부당하게 형성한 정상성이라는 개념에 붙들려 있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새장의 창살을 흔들기 시작할 때 비로소 흥미로워지겠지만 그런 일을 시도해보라고 자신에게 허가를 내주는 경우는 좀체 없다.

- 어쩌면 누군가는 슈퍼 체인의 회계부서에서 일하면서 빈의 그로서 무지크페라인잘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여는 것을 병행하지 못했다고(두 가지 일의 수준을 거의 공평하게 놓고는) 자신을 호되게 질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과 가정생활이 상충하는 것은 우리의 무능이나 의욕부족 때문이 아니다. 단지 두가지 거대한 상반되는 주제가 충돌하는 역사의 한 시기에 살고 있을 뿐이다. 가족을 돌보고 양육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일, 효율, 이익 및 경쟁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통찰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서로를 배척한다. 우리는 크나큰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 우리는 고독을 다룬 위대한 예술작품 속 인물들의 후손이자 영혼의 쌍둥이라는 자부심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고독한 이유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으며 사교성에 대한 이상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현재 공동체가 제공하는 허울분인 증표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을 선호할 뿐이다.
사람들이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하는 방법은 숲이나 식당, 도서관, 혹은 사막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내 볼링을 치러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실패의 표시가 아니라고 안심시키는 것이다. 현대에 벌어진 외로움의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원위치로 되돌리고 독신생활의 품격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혼자 식사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스완슨사의 TV디너는 개선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가짜 미소와 억압적인 선입견으로 둘러싼 연회장에 있는 것보다는 평화롭게 소박한 식사를 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런 식사를 할때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현대는 우리에게 그 점을 상기시켜주지 못했지만, 사실 우리는 지금것 존재했던 이들 중 가장 고상하고 세련된 영혼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혼자일 뿐, 실은 최고의 사람과 어울리고 있다.

- 교육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기술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삶이 실제로 어디에 이를지, 일이란 궁극적으로무엇인지 등 전체적 관점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특히 무엇에 관심이 잇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유용한 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아직 훈련받지 않은 채 희미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열정의 신호를 결합할 적절한 진로상담 서비스가 부족하다. 세상의 요구와 우리의 적성이 연결되는 비옥한 지대를 탐색하고 우리 내면에 담든 재능의 불꽃을 비춤으로써, 언젠가 가치 있는 도구를 만드는 데 공헌하고 후회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공공의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일이라는 영역에서 현대가 처한 괴로움은 여타의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지는 배우지 못한 채 기대감만 높다는 것. 우리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 놓인 고통스러운 중간지대에 자신을 목표 없이 방치했다. 더 이상 조상들처럼 고된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괴로움을 줄이고 기쁨을 높이면서도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도구를 발견할 권리가 있다.

- 네덜란드 화가들의 정신적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영국 학자 로버트 버턴은 1621년 발표한 우울의 해부에서 세상이 소란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찬양하며 이렇게 썼다. "그는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입신양명을 좇지 않으며, 아첨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자기 재산에 만족하며 조용히 산다. ... 나랏일에 고민하지 않는다. 왕국이 계승으로 번성하건 선거로 번성하건, 군주제가 뒤죽박죽이건 온건하건 전제적이건 관심이 없다. 오스만 제국 왕조나 오스트리아 제국 왕조나 그에게는 다 똑같다. ... 그는 식민지나 새로운 지리적 발견에 대해 궁금한 게 없다. ... 침략, 파벌, 경쟁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흔들지 못한다." 어쩌면 이는 베르베르나 호흐, 엥게르트나 하퍼를 대변해주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 조용한 삶의 옹호자들도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들은 눈에 확 띄는 멋진 표지판이 자기 인생을 이끌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그들 생각에 정말 읽어야 할 소설은 최근 문학상 수상작이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작품이 아니다. 아마도 200년 전에 쓰였으며 대부분 중고판본으로 구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소중한 것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과 뒤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뛰어난 지성에 반드시 학위가 따라붙어야 하는 건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스누커 게임을 보기를 좋아하고 머리염색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친척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수도 있다. 조용한 삶의 옹호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놓칠까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성장하는 모습, 약속 없이 텅 빈 날들, 부모님을 진정으로 알아가기, 저녁놀이 지는 하늘, 느긋한 목용, 고양이와 함께 하는 주방에서의 이른 아침 등을 즐기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늘날 비극이라 일컫는 예술 장르를 창조했다. 비극을 통해 인간의 최고 경지에 오른 위대한 전사나 정칙, 시인, 웅변가도 결국 지극한 결점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 결점이 더욱 크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역에서 공연된 비극 작품들을 속 피에 물든 이야기들은 유능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린 판단착오, 심리적 맹점, 과도한 분노, 완고한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훈은 분명하다. 그 누구도 인류의 일반적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대한 실책이나 잘못없이 인생을 헤쳐나갈 수는 없으며, 우리는 본질적으로 미숙하고 상처받은 존재임을 의미. 참된 지혜는 자신과 타인이 이러하다는 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시작된다. 그러한 자세에서 자기용서와 연민, 동정이 자라날 수 있다.

- 부모의 임무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삶에서 일어나는 불완전한 상황을 대비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하지만 가능한 철저하게 준비시키는 것. 즉 이상주의로 가등한 이 작은 인간들에게 좌절이란 고질적인 문제이고, 그릇은 식탁에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게 마련이며, 테디 베어인형의 눈은 사라지기 십상이고, 자동차 여행은 너무 오래걸리며, 부모는 놀랄 만큼 짜증나는 사라들이고, 엄마는 어리석고 아빠는 바보같으며, 숙제는 지나치게 많고, 앞으로 겪을 수많은 경험이 쓰라릴 것이며, 사람은 결국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 그 이상은 필요 없다고, 위니콧은 53년 출간한 저서 놀이와 현실에서 주장. 그의 유명한 공식에 따르면 부모는 그냥 적당히 괜찮은 정도면 된다. 우리는 적당히 괜찮은 부모, 노동자, 배우자, 친구, 인간은 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우리는 삶이 병원이 아니라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시설이라는 것을, 인간은 죽을 운명이고 병든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매순간 불안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며, 항상 새로이 실망스러운 현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 남들에게 절대 잘 산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재정적으로나, 연애로나, 평판으로나, 실존적으로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 우리가 더 밝고 활기찬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광고판의 암시를 근절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는 휴가중에도 비참해질 것이며, 삶의 여러 측면에서 잘해낸 순간에도 대부분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밉고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그때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감적적으로 우리를 웃게 하려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정한 조건에 맞춰 우리를 받아드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내면의 깊이, 특히 새벽 네시 돌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잠에서 깨었을 때 삶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인생이란 절망스럽고, 불안하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조마조마하며, 늘 의문으로 가득하다. 우리 진화의 다음 단계는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구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사회는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심리적 복잡성을 수용할 용기를 가진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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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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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이 공감을 표하는 것은 감성적 질문 때문이 아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 때문. 상황의 핵심, 알고싶어하는 알맹이를 이야기하니까, 저절로 맞아, 맞아라는 말이 나오는 것임.
그러니까 공감을 얻으려면 따뜻한 감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확한 분석이 필요. 정확한 분석을 통해 파악한 핵심을 따스한 말로 건네니 감동적인 것이지, 따뜻하지만 내용이 없는 질문은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소셜 스킬에서의 대화라면우리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오은영박사의 질문방법을 벤치마킹해야 함. 우리가 오박사의 질문법에서 따와야 하는 것은 정보를 최대한 분석하는 습관과 의지,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핵심을 파악하려는 노력임. 이게 이루어진 후에 그 핵심을 상대방을 배려하는 감성적 대화에 담는 것이다.

- 꼰대의 어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번데기의 경상도 사투리인 꼰데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로 번데기처럼 주름이 많은 노인을 의미하는 뜻. 또 하나는 프랑스어로 백작을 의미하는 콩테에서 유래했다는 것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에 친일파들이 일본 작위를 받은 후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꽁데라 불렀다는 설로, 이때 친일파들이 하는 짓을 꼰대짓이라 불렀다고 함. 이런 불확실한 어원말고 공식적인 기록은 61년 동아일보에 '하층민이 나이많은 남자를 지칭하는 말'로 처음 등장. 이후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지금은 꼰대라는 말에 행위를 뜻하는 질을 붙여 꼰대질을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으로 지칭.
그러니 지금의 꼰대는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 경험만을 절대시해서 그것에 맞춘 행동과 판단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왕년에 자신의 업적과 행동, 생각을 자랑하는 순간 꼰대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임.

- 남은 평생을 설탕물이나 팔며 보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존 스컬리는 이 질문에 강한 인상을 받아 애플로 이직하기로 결심.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 질문에서, '나는 설탕물이나 팔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질문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에요. 한쪽 선택은 너무 좋아보이고, 다른쪽 선택은 너무 나빠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다음 질문과 같은 질문이에요.
'원래는 탄탄하고 안정적이며 성공이 보장된,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펩시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펩시 CEO를 계속 하실래요? 아니면 이제 막 시작해서 장래가 어찌 될지도 모르고, IT문외한이라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예상죌 수밖에 없는 IT기업의 CEO를 하실래요?'
이렇게 물어보면 쉽사리 애플로 이직하는 결정을 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러니 스티브 잡스의 질문은 마치 양자택일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쪽 선택이 강요되는 함정 질문입니다. 반대로 스티브 잡스의 입장에서 보면 대화설계를 엄청 잘한 것이죠. 상대방이 다른 선택을 생각하기 힘들어지도록 한 번의 질문으로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였으니까요.

- 어조나 말투 분위기의 문제는 사실 매우 감정적인 문제. 질문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관점의 문제라는 것. 그러니 말하는 사람의 성격적인 특성도 반영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정적 어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신중한 성격,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성격의 사람이 이런 어조를 많이 사용한다. 이런 사람의 매니지먼트하에 있으면 활력은 줄어들지만, 실패 가능성 역시 줄어드는 편이다.

- 대화의 메타인지하기
대화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한 발은 대화 안에 걸치지만, 다른 발은 대화 밖으로 빼고 있어야 함. 흐름 안에 있으면 보통은 수영하기에 바빠서 강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필 겨를도 여유도 없다. 대화의 메타인지는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강의 어디쯤에 있는지 인식하는 일이다. 정확하게는 대화를 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대화의 흐름과 과정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대화의 메타인지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메타인지가 된 상태에서야 반전도 가능하다.
이러한 메타인지를 위해서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구성원과 목적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 

- 공석인 프로그래머 자리에 들어올 사람을 뽑는데 마침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나 연봉협상을 했더니 그 팀의 다른 프로그래머에 비해 2배 가까운 연봉을 요구하더라는 겁니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그 팀의 매니저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그 팀에 새로 채용하려는 그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대답은 NO입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있는 팀의 팀원 3명이 힘을 합하면 새로 채용하려는 사람만큼 기여할 수 있을까요?"
이 대답도 NO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나타나 조용히 눈치 못채게 현재 프로그래머 몇 명을 그 사람과 바꿔 놓는다면 그게 회사에 더 도움이 될까요?"
매니저의 대답은 YES입니다. 그래서 리드 헤이스팅스는 그 요정이 되기로 하죠.
그렇다고 다른 프로그래머를 내보내지는 않고, 그 사람을 채용하기로 한 겁니다. 직급에 따른 연봉 상한선이라는 채용전략이 있었는데, 이 결정 때문에 넷플릭스는 채용전략을 바꾸어야 했어요. 이후에도 다른 회사에서 그 사람을 빼가지 못하도록 그에게 업계 최고대우를 해주었죠. 이 사람은 이후 넷플릭스에 근무하며 지금의 넷플릭스 서비스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특징을 만들었음.
리드 헤이스팅스는 질문과 답을 통해, 지금 지키고 있는 채용과 연봉전략을 바꿔서라도 필요한 사람을 잡아야겠다고 유연한 결론에 도달. 한번 정한 규칙이니 무조건 지켜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 규칙이 과연 유용한지, 더 좋은 선택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의심해보고 유연하게 선택한 것.

- 스마트폰이 몸 밖으로 나온 장기와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마트폰이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나 일정 같은 우리의 기억력을 대신해서 두뇌 역할을 한다는 것. 그렇게 치면 스마트폰이 하는 것은 두뇌 전체가 아니라 측두엽 안쪽에 있는 대뇌변연계를 구성하는 영역 중하나인 해마 정도에 불과하다. 기억을 담당하기 때문
진짜 뇌에 해당하는 장기는 챗GPT다. 기억뿐 아니라 지식, 추론, 상상, 감정까지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두뇌가 하는 일을 거의 다 할 수 있음. 그래서 챗GPT에서 AGI의 가능성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음. AGI는 일반인공지능, 강인공지능 혹은 범용인공지능이라고도 부름. 인간 수준의 사고가 가능하여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함. 그 반대 개념이 약인공지능으로 한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설계되는데, 그 분야에서만 강력한 것임. 예를 들어 바둑만 잘두는 알파고라든가, 그림만 잘그리는 달리같은 것임. 따지고 보면 챗GPT도 언어쪽으로 발달된 특화된 인공지능이지 만능해결사는 아님.
그런데 챗GPT가 언어를 조합해서 마치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작동하니까, 이 챗GPT에 다른 프로그램을 연결한다든가 하드웨어 등을 연결해서 다양한 아웃풋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음. 그러니까 하드웨어 등을 연결해서 다양한 아웃풋을 만들어냄. 예를 들어 챗GPT는 원래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데, 사람이 어떤 그림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알아듣긴 함. 그리고 말로 챗GPT에게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고 설명할 수 있음. 그런데 이것을 그림을 그려주는 달리에 연결하지 챗GPT가 알아서 달리에게 필요한 그림을 전달해 달리가 그림을 생성해 주는 것임. 사람입장에서는 마치 챗GPT가 다 하는 것처럼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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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경제학 및 프리드먼의 주장이 갖는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프리드먼은 불평등의 상당부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무시.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들은 후손을 위해 저축하고 축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은 당장 즐거움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종류의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유혹은 미덕에 불이익을 주고 악덕을 보상하는 것이라고 설명. 그는 기회의 평등을 믿었지만, 상속세에 대해 미덕에 과세하고 낭비적 지출을 조장하는 나쁜 세금이라며 강력히 반대. 17년 3명의 노벨상 수장자를 포함해 727명의 경제학자가 이 주장을 지지했으며, 프리드먼이 그전에 직접 쓴 서한에도 서명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같은 이유로 부유세가 악덕을 조장하고 미덕을 저해한다고 믿으며 반대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국가간 조세감면 경쟁을 좋아했고, 조세피난처를 지지했다. 정부의 과세권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그는 결과의 불평등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주장. 자유시장에 맡겨두면 자유와 평등이 모두 실현될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제약사 퍼듀파마의 새클러 가문이 수십만명의 미국인을 죽인 오피오이드 유행을 조장하면서 140억불 이상을 스스로에게 지급하는 세상을 맞이했다. 밴드와 베이비파우더를 제조하는 존슨앤존슨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지방에서 탈레반의 헤로인 공급지를 폭격하는 동안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를 재배하여 오피오이드 유행에 기름을 부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구급차 서비스를 사들이고 병원 응급실에 자체 의사들을 배치해 환자의 의료보험에 포함된 병원에서조차 깜짝 요금을 청구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응급실 및 수술실의 깜짝 요금은 22년 1월부터 없어졌지만, 구급차 서비스에 대한깜짝 요금 청구는 계속되고 있다. 구급차가 필요한 경우 더 나은 조건의 서비스를 찾거나 가격을 흥정할 상황이 못된다. 대신 무력한 피해자가 되어 범죄자에게 꼼짝없는 희생양이 될 뿐니다.
- 사모펀드들은 실패한 기업을 계속해서 인수하고, 사법부의 허가(아마도 경제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판사로부터)를 받아 근로자의 계약상 의료혜택과 연금을 박탈하고 남은 회사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물리적 회사자산은 효율성을 회복하는 반면, 근로자의 손실은 효율적인 시장이라는 더 큰 정의를 위해 희생된다.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기업 수익성을 회복시키는 사모펀드의 정당한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합법적인 역할은 시장이 경쟁적일 때 작동하는 것이지, 사모펀드가 활개치는 병원, 구급차, 심지어 교도서 등에서는 아니다. 또한 사모펀드가 특정 지역의 매장을 대량으로 매입하여 지역 독점을 형성하는 때도 마찬가지로 효과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 미국은 저학력자와 고학력자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물질적 차이가 관계적 불평등으로 번지고 있다. 앤 케이스와 나는 임금, 노동시장 참여, 결혼, 사회적 고립, 고통, 자살, 약물사망, 알콜 중독에서 그룹간 차이를 분석하고 논문으로 발표했다. 저학력자들에게 교육받은 엘리트를 위해 싸우라고 하는데 누구와 언제, 어디서 싸울지는 엘리트가 결정한다. 저학력 군 복무자들은 엘리트의 자녀들, 즉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대신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런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복무하던 시절의 사회적 연대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을 잃어버렸다. 미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사람인 로버트 솔로는 41년 하버드 학부과정을 마치고 이등병으로 입대했다. 군에 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다양한 미국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쌓은 경험이 어떻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하고 중요했는지 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면서도 유익하다. 그의 경험은 오늘날 미국의 특징인 양극화와 상호이해 부족에 대한 해법을 제공한다. 

- 은행가나 기업 임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연봉을 받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일자리 창출과 고액납세, 삶을 변화시키는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또는 놀라운 발명 등을 통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일시적으로 설득할 수도 있다. 이런 낙수효과 주장에는 표면적 타당성이 있지만 08년금융위기는 이것이 사기임을 보여줌.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은행가들은 엄청난 부를 가지고 떠나갔지만, 많은 보통사람들은 직장과 집을 잃었다. 나는 이제 낙수효과 논리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22년 10월 리즈 트러스가 이끈 영국 과도정부는 확실히 낙수효과를 믿은 것으로 보였다.
소득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종신재직권을 얻는 것, 파트너가 되는것, 최고병원에서 치료받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가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심각한 이해관계가 걸린 일종의 시험을 거치게 됨. 불평등한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부정행위도 보상받을 수 있고, 더 불평등할수록 더 많은 보상으르 받는다. 모든 사람이 부정행위를 한다고 여길 때는 누구도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우리는 최근 대학에서의 입학부정 스캔들을 확인한 바 있다. 학부모들이 수만에서 수십만 달러의 돈을 주고 시험성적을 조작하거나 학생 선발권이 있는 운동 코치에게 뇌물을 주어 자녀들을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키려 한 것이다. 예일대에도 그런 사건과 관련된 곳 중 한 곳이며, USC도 운동코치 관련은 아니지만 연루되었다.

- 고통 혹은 위험이 없는 방식으로 연금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대개 근시안적이고, 특히 정치생명은 인간수명보다 짧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더 그렇다. 증권시장이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운명을 증권시장의 변화에 맡겨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상에 마법의 해결사는 없기 때문. 개인이 경제성장의 덕을 일정부분 볼 수 있지만, 연금관리는 집단 체제하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사악하지만 정보가 더많은 정치인과 관리전문가들이 모든 위험을 은퇴 후 생활이 불안한 개인에게 전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 최근 증권보다 훨씬 위험한 비트코인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업계 부추김에 못 이겨 바이든 행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페어팩스카운티의 퇴직연금은 22녀 비트코인에 투자되었다.

- 경제학도 변화의 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다양성이 필요. 그러나 대다수가 소수의 대학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면 그런 다양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임. 소수 상위권 대학의 교육과 상위 5대 학술지의 기준을 해외로 확산시키는 것은 구세계의 최악의 잘못을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학을 획일화시키고 미래 경제학 발전의 밑거름이 ㅗ될 수 있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한할 위험도 있음. 비정통 경제학은 그 자체로 위기에 처해 있다. 조지 스티글러는 좋은 경제학자는 보수적이라고 주장한 논문에서 노동가치설을 신봉하는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의 급진적 생각 때문이 아니라 채용 심사자들이 그 사람이 똑똑하면서 동시에 정직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의 채용위원회라면 그가 노동가치설을 연구해서 무엇인가 배운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경제학에 대한 그런 단선적 사고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혹은 영국의 외부 평가위원들은 평가지표, 영향지수, 인용빈도 등을 근거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보통의 시절에도 교육수준과 상관없이 자살, 약물과다복용 및 알콜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늘 있었음. 사실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자살이 더 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매년 약 10만명에 이르는 절망사로 인한 사망의 증가는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들에 국한된 것임. 마치 학위가 없으면 열등한 지위를 나타내는 주홍색 배지를 착용하는 것과 같음. 자살도 이제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 즉 그 배지를 착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절망이라는 긴 여정의 종착점이다. 시작점은 4년제 대학학위를 자지지 않은 사람들을 좋은 일자리에서 점점 더 배제하는 노동시장이다. 4년제 대학 학위를 가지지 않은 비노령 성인의 고용률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남성의 경우 계속 감소해 왔으며, 여성도 2000년 이후부터 감소. 노동시장 참여율은 호황기에 증가하고 침체기에 다시 감소하지만, 다음 호황기에서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이전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함. 실질임금도 마찬가지.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큰 움직임 속에서 부분적으로 상승하고 하락하고 있다. 교육수준이 낮은 남성의 임금의 일자리가 많았던 팬데믹 호황기에 상승하면서 크게 주목받았으나 그들의 구매력은 80년대으 어떤 시기보다 낮았다.
- 절망사가 증가한 가장 큰 부분은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것. 이에 대해서는 제약사들의 책임이 크다. 초기 마약성 진통제 사망은 이익을 추구하는 제약사들이 사람들을 중독시킴으로써 시작된 것. 제약사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고 이는 그들의 삶이 더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마약확산은 사회적 혼란과 붕괴가 일어난 장소화 시기에 발생했다. 제약사와 유통업체는 마약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지원과 비호를 받기도 했다. 미국 정치에 돈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의 이익과 선거자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간혹 선거자금을 선택할 정도임.
지금 자살률은 과거 지구상 최악이었던 사회 수준으로 증가. 그런 사회의 자살률은 옛 소련과 그 위성국, 그리고 중국여성, 특히 중국 농촌지역의 여성 자살률을 말한다. 이들 국가에서도 이제 세계 전체와 마찬가지로 자살률은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 특히 교육수준이 낮은 미국인의 자살률은 부끄럽게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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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알고 있다

과학 2024. 11. 20. 07:18

- 스테이블디퓨전은 말 그대로 확산모델의 일종인 잠재확산모델을 사용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AI그림제작 도구임. 잠재확산모델은 VAE(variational aotoencoder)라 불리는 도구를 활용해 기존의 확산모델보다 이미지를 더 효율적으로 변환함.
확산메돌 또한 딥러닝과 작동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음. 수만, 수억개의 그림을 픽셀단위로 학습하고 이를 다시 재조합하는 것임. 이 고정에서 스테이블디퓨전은 그림에 인위적 노이즈를 추가하고, 노이즈로부터 다시 그림을 얻는 방식으로 대량의 이미지를 학습함. 그리고 '한 여성과 함께 탁자에 앉아 있는 반 고흐' 같은 조건을 입력해 얻고자 하는 이미지를 노이즈에서 추출함.

- 확산모델은 비단 회화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알파폴드2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단백질 구조예측 도구인 로제타폴드를 내놓음. 로제타폴드는 로제타폴드디퓨전이라는 확산모델을 사용. 스테이블디퓨전이 무작위 픽셀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 것처럼, 로제타폴드는 알파폴드의 데이터를 활용해 무작위 아미노산에서 새로운 단백질 복합체를 만들어냄. 실제로 단백질은 여러 단백질이 모인 복합체 형태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로제타폴드는 하나의 단백질을 만드는 기존 알파폴드보다 더 마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음. 연구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단순 단백질 뿐만 아니라 DNA, RNA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분자를 설계할 수 있는 로제타폴드아톰을 출시. 알파폴드가 21년에 출시된 지 3년도 안되는 시점에 이런 발전을 이룸.
이처럼 어떤 알고리즘은 여러 영역에 활용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딥마인드가 개발한 모델이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에서 출발해 단백질 예측 프로그램인 알파폴드로 이어진 것처럼 그리고 확산모델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미지 생성뿐 아니라 단백질 예측과 설계에 활용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제프 호킨스는 그의 저서 천개의 뇌에서 딥러닝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AI, 소위 인공일반지능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고 지적한 바 있음. 인간은 딥러닝과 달리 신체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세계의 모델을 구축. 만약 던진 공이 다른 사물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저 공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상호작용 속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해 세계모델을 구축하는 사람의 방식은 딥러닝의 학습방식과 사뭇 다르다고 호킨스는 주장. 심지어 사람은 세계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순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예상하며,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모델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 알파고의 바둑, GPT의 문장생성, 스테이블디퓨전의 이미지 제작은 동일하게 딥러닝에 기반한 인공신경망 네트워크를 사용하는데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별개의 프로그램으로 구동돼야 한다. 반면 사람은 쉽지 않겠지만 오른손으로 수채화를 그리면서 왼손으로는 체스와 바둑을 두고 게임 상대방을 말로 도발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능은 하나의 작업을 얼마나 잘 해내는가로 측정하는 것이 아닐, 어떤 일이든 유연하게 배울 수 있는가로 평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름.
물론 이런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바둑과 체스, 일본식 장기와 같은 게임을 수행하는 제한적인 범용 알고리듬인 알파제로를 출시하는 한편, 엑스랜드라 불리는 개방형 구조를 통해 기계에게 여러 종류의 문제가 통합된 학습을 유도하는 실험을 진행중. 메타 또한 이미지와 텍스트, 음성을 동시에 인식하는 데이터투벡이라는 알고리즘을 개발. 최근 딥마인드가 개발한 시마라는 AI도 주목할 만하다. 시마는 다양한 게임을 수행하도록 개발된 최신 AI로 범용기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시마 역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의 60%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범용성과 멀티태스킹 능력을 갖춘 AI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임.

- 현재로서는 사람이 개발한 모든 인공지능에는 사실 지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물론 지능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에 이견은 존재가능. 역전파 알고리즘 개발 등의 업적으로 딥러닝의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23년에 인공신경망이 새로운 형태의 지능이며 더 나은 지능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딥러닝은 최근 몇년간 놀라운 성취를 보여줌. 하지만 기계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지능을 가지려면 단지 이미테이션게임으로 튜링테스트를 통고하는 것 외에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여전히 산적해 있음. 인공지능을 이용해 인류가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가 가진 도구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 딥러닝의 핵심인 역전파학습이 뇌의 학습방식과 동일한지도 의문이 남아 있다. 인간의 뇌가 딥러닝처럼 순방향과 역방향의 순서로 미세조정의 프로세스를 거치거나 지도학습과 유사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까? 뇌의 학습방식이 딥러닝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면 우리는 무언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름. 따라서 AI를 연구하는 또 다른 진영에서는 현재의 딥러닝이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 뉴런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새로운 인공신겨망을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딥러닝은 AI의 가장 유망한 분야인 동시에 AGI로 나아가려는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분야일 수 있다. 딥러닝은 초기 AI연구자들이 꿈꿔왔던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기계인 AGI의 비전을 실현해줄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름. 비록 딥러닝의 초기 아이디어는 뇌의 작동방식세어 영감을 받았지만, 더 이상 딥러닝은 뇌와 신경과학에 신경쓰지 않고 수학과 컴퓨터 공학에 의존하며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만약 딥러닝으로는 근본적인 단계에서 진정한 의미의 지능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AGI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임.
그러나 AGI에 관한 건전한 담론은 쉽게 성사되기 어려워 보임. 온갖 억측은 물론이고 마케팅을 위한 과대포장이 이 분야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 일부 IT기업들은 자사의 거대한 인공신경망을 가진 모델이 뛰어나다고 강조하며, 머지 않아 자신들의 모델이 사람처럼 사고할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홍보한다. 이런 주장을 검증할 만한 과학적 기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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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Quote of the day 2024. 11. 2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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