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착각

etc 2024. 1. 28. 09:13

- 판단을 흐리는 고정관념
고정관념은 주로 무의식적으로 생긴다. 뇌는 우리가 의식하 기 10초 전부터 판단을 내린다. 노벨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Eric Kandel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생각의 약 80퍼센트는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는 유익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갖거나 판단을 내릴 때는 이 런 과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다른 인간들을 신속히 평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장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관념은 관찰이나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서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타인을 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자부한 다. 하지만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얻은 사회적 인 식을 지니고 있다. 워낙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그 런 인식이 우리를 속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런 인 식은 '암묵적 편향implicit bias'이라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초래해 우리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반사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게끔 영향을 줄 수 있다. 암묵적 편향은 의식적 믿음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서 줄이기도, 그냥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암 묵적 편향에는 흔히 구조적 편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구조적 편향은 근로자를 차별하는 기업이나 환자를 차별하 는 병원처럼 사회 기관의 정책이나 관행에 담긴 편향으로, 암묵 적 편향과 뒤얽혀 있을 때가 많다. 기관 내에서 차별은 관리자 나 의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으므로 암묵적 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차별은 소외된 구성원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지 않고 권력자의 권력만을 강화하므로 구조적이기도 하다.
- 우리는 각자가 속한 문화와 사회로부터 온갖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받아들이지만,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특히 쉽게 흡수한 다. 많은 사람들이 물그릇에 담긴 스펀지처럼 이런 관념을 빨아 들이는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세계보 건기구WHO에 따르면, 연령차별은 오늘날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되는 편견이다." 둘째, 인종이나 성별 고 정관념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 대상이 되는 연령대에 이르기 수 십년 전부터 나이 고정관념을 접해왔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 거나 반대하려 하지 않는다. 셋째, 고령자들이 거주하고, 일하 고, 사교 활동을 하는 장소는 종종 나머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아이들은 고령자들이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알아차리고, 이런 사회적 분리가 여러 연령대 사이의 본질적이고 의미 있는 차이에서 나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사실은 권력자들이 고령자들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넷째로, 이런 고 정관념은 고령자에 대한 광고나 매체에 담긴 메시지를 대량으 로 접하면서 평생 동안 강화된다.
- 연령 인식은 비관적 사고나 낙관적 사고와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은 긍정적 사고의 한 측면이 고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부정적 사고의 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연구를 통해 행복이나 우울 같은 일반적 인 감정과 별도로, 연령 인식 자체가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 다. 즉 연령 인식은 정서적 태도, 이를테면 유리잔이 반쯤 찼다 고 보는 성향인지 반쯤 비었다고 보는 성향인지에 관계없이 우 리의 건강을 실제로 손상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
- 어떤 종류의 기억력은 노년기에 더 좋 아진다. 그중 한 가지는 사과의 다양한 색깔 같은 일반 지식에 대한 기억인 의미기억이다.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기억도 있 다. 자전거 타는 법처럼 일상 행동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절 차기억이 그 예다. 한편 일화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는 경 향이 있다. 일화기억이란 폭풍우가 치던 어젯밤에 집 위에서 번 쩍이는 번개를 본 경험처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개인의 일화에 대한 기억을 가리킨다. 모든 노인은 이 마지막 기억 유형의 쇠퇴를 겪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기억도 개입 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자, 특정 순간에 특정 사람들에게 특정 형태의 기억력이 실제로 저하된다면 '노인 건망증'이라는 표현 이 옳다는 뜻 아니겠냐고 따지는 사람이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기억력 감퇴할 수 있으며, 우리의 뇌 는 노년기에도 가끔의 실수를 보상하고도 남을 새 연결을 형성 한다.
한마디로 특정 유형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노화 그 자체보다 우리가 노화를 대하고 바라보는 태도와 관계가 있다. 즉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속한 문화가 가르쳐주는 방식, 우리 자신이 가진 믿음에 영향을 받는다.
- 신경과학자 대니얼 레비틴Daniel Levitin에 따르면, 특정 유형의 기억력은 나이가 들면서 실제로 더 좋아진다. 예를 들어, 사람들 은 60세가 넘으면 패턴 인식 능력이 향상된다. 레비틴은 "엑스 레이를 찍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서른이 아닌 일흔의 의사가 판 독하기를 원할 것이다"라고 했다.24
나이가 들어도 우리의 뇌는 꾸준히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앤절라 구체스Angela Gutchess는 노화된 뇌의 여러 영역은 특정 기능에 특화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특성은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녀의 명쾌한 MRI 뇌 연구에 따르면 시를 비롯한 언어 정보를 암기할 때 젊 은 성인은 왼쪽 전두엽 피질에 의지한다. 고령자는 같은 부위뿐 만 아니라 지도 등의 공간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기능을 하 는 오른쪽 전두엽 피질까지 이용한다. 양쪽 뇌 반구를 더 많이 활용한다는 것은 적응력과 유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존 베이신저는 어떤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자랑스러 워할 놀라운 암기력을 보여주었다. 문자를 손동작으로 입체화 하고, 노년기를 기술과 경험이 한껏 축적된 시기로 인식한 것이 그 비결이다. 연령 인식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다. 우리 몸을 통제하는 정신의 왕좌를 차지한다. 연령 인식은 노화의 암호를 푸는 중요한 열쇠다. 문화 집단과 개인이 노년을 설계하고, 구성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연령 인식 의 효과는 우리의 기억력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 따위의 행동까지 바 꾸면서 의미 있게 확산된다.
- 심리 메커니즘은 삶이 주는 혜택이 삶이 주는 고난보다 크다고 느끼고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간단히 말해 인생에 뭔가 기대할게 있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 개념을 '인생 계획plan de vida' 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라고 말한다. 프랑스에는 '존재의 이유 raison d'étre'가 있다. 일본인들은 '삶의 원동력生甲'이라 부른다. 모두 '살려는 의 지' 또는 '존재하는 이유' 등의 의미를 갖는다.
삶의 의지는 고귀한 철학적 신념이라기보다 단순히 인생을 살 만하다고 여기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애완동물을 보살피고 정원을 가꾸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목적의식을 주는 대상, 우리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삶의 의지를 갖게 한다.
- 고인이 된 내 동료이자 유행병학자인 스탠 카슬 Stan Kasl은 삶의 의지가 있으면, 아니 단순히 기다리는 행사만 있어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카슬과 사회학자 엘런 아이들러 Ellen Idler에 따르면 독실한 그리스도교인들은 종종 죽음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이후로 늦추고, 독실한 유대교도들은 속제일, 유월절, 나팔절 이후로 미룬다. 내가 '건강과 노화' 수업에서 이 현 상을 설명하면, 손을 들고, 간절히 기다리던 가족의 결혼이나 탄 생 직후까지 사망을 유예한 친척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학생이 꼭 몇 명씩 있다.
- 과거에는 증명된 적 없지만 나는 연령 인식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경로는 우리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했다. 나는 C 반응성 단백질CRP이라는 스 트레스 생체지표에 주목했다. CRP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증 가하여 혈장에서 발견되는 고리 모양 단백질이다." 일찍 죽는 사람들은 대체로 CRP 수치가 더 높다." 우리는 50세 이상 미국 인 4,000명의 연령 인식과 CRP 수준을 6년간 추적했다. 그 결 과 긍정적 연령 인식이 CRP를 낮추어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긍정적 연령 인식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스트 레스에 저항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높였고, 결국 수명에도 영향 을 미쳤다.
- 문화심리학자 헤이즐 마커스와 기타야마 시노부는 부모의 양육 방식을 예로 들며 이 문화 차이를 부각한다. "자녀에게 밥 을 먹일 때 미국 부모들은 이런 말을 즐겨 한다. '굶주린 에티오 피아 아이들을 생각해봐. 그 애들처럼 배를 곯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반면 일본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 희를 위해 벼를 키우느라 고생한 농부를 생각해봐. 네가 밥을 먹지 않으면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되잖아. 농부가 얼마나 서운하 겠니.'"52 일본과 미국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텍사스의 한 회사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에게 매일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야"라고 100번을 중얼거리게 한다. 반면 일본인이 소유한 뉴저 지 소재 슈퍼마켓 직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상대에게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문 화는 자신을 주로 개인으로 인식하는 반면, 다른 문화에서는 자 신을 더 큰 집단의 일원으로 본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긍정적 연령 인식 문화를 촉진하고 지지 한다. 68개국의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윌리엄 초픽 과 린지 애커맨은 집단주의 문화의 구성원들은 연령차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연장자에 대해 존경심을 품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예술사학자와 창조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노년의 양식, '알터스틸Alterstil'이 실제로 찾아온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예술가가 노년에 이르면 작품의 기법, 정서적 분위기, 주제 등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들은 극적인 효과의 증가, 육감 에 따르는 노련한 접근, 폭넓은 시야, 직관과 무의식에 기대는 경향을 알터스틸의 특성으로 보았다. 화가 벤 샨Ben Shahn이 66 세에 설명했듯, 창조적 과정이라는 정신적 삶에 대한 인식도 갈 수록 깊어진다. 그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의식의 가장 까마득하 고 깊숙한 공간에서 끌어냈다. 우리가 고유하고, 자주적이며, 가 장 온전한 인식을 간직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
- 미켈란젤로가 50년의 간격을 두고 조각한 두 점의 <피에타>는 이런 '노년의 양식', 그리고 나이와 함께 성장하는 창의성을 잘 드러낸다. 그가 23살 때 조각한 성경의 한 장면은 현재 성 베 드로 대성당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젊은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무릎에 누인 채 팔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노련한 예술가가 된 미켈란젤로는 연령 인식에서 힘을 얻었 다. 그는 만년에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Ancora imparo" 라는 말을 남겼다." 72살에도 그는 같은 장면을 조각했지만 스타일은 전 혀 달랐다. <피렌체의 피에타>는 예수,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세 인물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뒤에 서서 나 머지 세 명을 받쳐주는 노인은 미켈란젤로 자신이었다. 이 예술 가는 자신의 무덤을 장식할 의도로 이 조각품을 제작했다. 첫 번째 <피에타>에서 마리아는 얼굴에 전혀 슬픈 기색 없이 예수 를 내려다본다. 두 번째 피에타 속 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예수 를 들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노인이 그녀를 돕고 있다. 그녀 혼자만의 고통도 아니다. 그들의 형체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서로 얽혀 있다. 사랑과 슬픔을 훨 씬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경험에 위배될 때조차 쉽게 수용되고 표출되기에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를테면 우리는 어떤 노인 의 총기가 예전 못지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정신이 오락가 락하거나 행동이 엉성해졌다는 식으로 우스갯소리를 한다.
한편 연령차별의 구조적 동기는 부정적 연령 인식이 경제적 으로 이익을 얻거나 권력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꽤 유용하다는 데 있다. 나의 은사인 인류학자 로버트 러바인 Robert Levine은 문화 현상을 조사할 때 처음으로 던지기에 좋은 질문은 "이 현상에서 누가 이익을 얻는가?"라고 했다.
많은 영리기업은 부정적인 연령 인식을 조장하여 막대한 이 익을 얻는다. 노화에 대한 공포와 쇠약해지는 노인의 이미지를 먹고 사는 안티에이징 산업, 소셜미디어, 광고 대행사, 기업 등 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업계는 연간 1조 달러 이상을 벌 어들이고,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은 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 고령의 근로자들은 놀랄 만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뿐더 러, 훨씬 믿음직하고 이직률·결근율·사고율도 낮다. 그런데도 연령차별은 고용 주기의 전 단계에 만연하다. 우리 연구팀이 45 개국의 직장 내 연령차별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모두)을 조사해 보니, 나이 든 근로자가 젊은 구직자보다 채용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고, 채용되어도 직무교육을 받거나 승진을 하기 어려웠다. "
최근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독일의 BMW 공장에서 실시 한 연구는 고령의 근로자를 보유할 때의 이점을 보여준다. 여러 연령대가 섞인 조립라인은 생산성이 높아지고 결근이 줄었으며 생산된 자동차의 불량이 적었다. 그밖에 장점이 있다면? 연구가 끝난 후에도 다세대 팀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55 세에 에어비앤비에서 비슷한 연령 혼합팀 조직에 기여했던 칩 콘리는 이런 팀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평가했다. "고령의 근로자들은 문제를 파악하고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알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 나는 우리가 속한 문화가 우리의 노화 방식에 영향 을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폐경을 예로 들어보자. 일 본 문화에서는 폐경을 두고 별로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생식능력을 잃게 되는 시기라는 이유로 폐경기를 중 년에 찾아오는 역경으로 보는 서양과 달리, 일본에서는 가치 있 는 인생 단계로 나아가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취급한다. 일본인들이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북미의 동년배들만큼 수치 스럽게 여기지 않은 결과는 무엇일까? 나이 든 일본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의 미국, 캐나다 여성들보다 열감을 비롯한 갖가지 갱년기 증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그리고 이 연구를 이끈 인류학자에 따르면 "자국에서 록스타처럼" 대우받는 일본 의 남성 노인들은 유럽의 노인들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 다. 이 말은 우리가 속한 문화권에서 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성욕의 노화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뜻이다. 
- 인구통계학적으로 우리는 일종의 분기점에 이르렀다. 세상 에 5세 미만보다 64세 이상 인구수가 더 많기는 인류 역사상 처 음이다. 일부 정치인과 경제학자, 언론인은 이른바 '실버 쓰나 미 silver tsunami'를 우려하지만 그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노령에 들어섰는데도 건강이 양호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성과다. 또 지금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 인지 다시 생각해보기에 좋은 시점이기도 하다.
-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옥스퍼드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대한 연 구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성별, 소득, 출신 배경, 외로움, 기능적 건강보다 이곳 주민들의 수명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노년 에 대한 생각과 태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령 인식은 우 리의 수명을 약 8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인 식은 우리의 머릿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나눈 우스갯소리에 담긴 인식 은 우리의 행동을 지시하는 대본이 된다.
- 처음으로 장수에 대한 이런 사실을 밝혔을 때, 92세를 일기 로 돌아가실 때까지 호티 할머니를 곁에 둘 수 있었던 것이 우 리 가족에게 큰 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그렇게 늙 어가면서 행복하셨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어떻게 긴 수명이라는 선물을 누리게 됐는지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호티 할머니와 7~8년쯤 더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노년 에 삶을 만끽했기 때문일까? 제도가 됐든 방법이 됐든 잘 늙는 비결이란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연령 인식이 분명하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1) 2024.02.29
원인과 결과의 법칙  (0) 2024.02.04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3) 2024.01.24
음식으로 보는 미래과학  (2) 2024.01.24
다크호스  (2) 2024.01.14
Posted by dalai
,

- 음식 맛을 느끼는 감각 수용체는 혀뿐만 아니라 위와 장에도 존재한다. 위장의 미각 수용체로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음식을 삼키고 나면 이들 감각 수용체는 들어온 음식의 영양성 분을 분석하여 소화를 위한 일련의 대사반응을 일으키는 데 영 향을 준다. 식품 알레르기가 아닌 이상, 위장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하여 그 음식이 특정 개인의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 근 거는 없지만, 먹자마자 위장이 거북해하는 음식을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키토제닉 다이어트란 뭘까? 앞에 붙은 키토제닉이란 수식어 때문에 여러 다이어트 방법 중에서도 유독 어려운 전문용어 처럼 들리지만, 쉽게 말해 평소에 잘 안 쓰는 케톤ketone이라는 연 료를 사용하도록 유도하여 체중을 감량하는 방법이다. 영어 단 어 ketogenic은 말 그대로 케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케톤은 당이 모자란 상태에서 우리 몸속에 저장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쓸 때 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평소대로 식사할 때는 케톤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 하는 회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므로, 지방을 태워 쓰되 다량 의 케톤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여 인체가 사용할 수 있는 당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을 때에야 지방에서 다량의 케톤이 만들어진다. 더 이상 당을 에너 지원으로 쓸 수 없는 뇌, 심장, 근육과 같은 다른 장기에서 대체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도록 케톤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넓게 보아 저탄수화물low-carb 다이어트의 한 종류다. 하지만 기존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황제 다이어트, 앳킨스 다이어트, 듀칸 다 이어트, 팔레오 다이어트와 같은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기본 적으로 고단백에 방점이 찍힌다. 육류, 생선과 같은 고단백질 품은 많이 먹고 지방은 적당히, 탄수화물은 적게 먹는 방법이다. 반면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가장 큰 특징은 고지방식이라 는 점이다. 근육 손실을 막기 위해 적당량의 단백질 섭취를 권 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지방으로 섭취하기를 권장한 다. 전체 섭취 열량에서 지방이 60~70%, 단백질이 20~30%, 탄 수화물은 10% 이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저탄수화물 다이어 트 중에서도 지방 섭취 비율이 가장 높아서 저탄고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식사법이다.
- 다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달리 단백질 섭취까지 제한하는 이유는 뭘까? 케톤을 만들어내는 일에 단백질이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속 단백질은 소화·흡수되면서 아미노산 으로 쪼개지는데 아미노산은 당으로 전환될 수 있을뿐더러 인 슐린 분비를 자극하기도 한다. 인슐린은 케톤이 너무 많이 만들 어지지 않도록 조절한다. 이런 이유로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 하면 케톤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진다.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핵심은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인체 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하는 것이다. 지방을 에너지원으 로 쓰려면 먼저 지방을 분해해서 케톤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방을 많이 분해해 쓸수록 핏속에 케톤이 더 많이 쌓여 케토시스 ketosis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 빨리 도달하려면 탄수화물 섭취를 하루 50g 이하로 엄격히 제한함과 동시에 단백질도 근육량이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만 섭취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금방 케톤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이라는 탄수화물까지 모조리 사용하고 나야 비로소 인체는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 하는 케토시스 상태가 된다. 개인차가 있지만 여기까지 보통 3~4일이 소요된다. 다이어트 초기에 체중 3~4kg이 금방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글리코겐이 소모되면서 자체 무게의 3~4배에 달하는 물도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 달고나 커피의 거품 속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무작정 젓기보다 원리를 알고 만들면 더 쉽다.
우선 중요한 것은 단백질이다. 맹물은 수천 번을 저어도 거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은 거품 이 생겨나긴 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이에 반해 맥주 거품은 더 오랜 시간 지속된다. 맥아 단백질이 거품을 안정시키기 때문이 다. 달고나 커피의 거품도 마찬가지다. 인스턴트커피 속의 단백 질이 기포 벽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본래 이들 단백질은 실타래처럼 압축된 형태로 존재한다. 인스턴트커피를 소량의 물에 녹여서 휘저으면 숟가락이나 거품기 철사를 따라 액 체가 이리저리 끌려가면서 단백질 분자가 풀린다.
이렇게 잡아끄는 힘을 더 효율적으로 가하려면 숟가락보 다는 가닥수가 더 많은 포크가 낫고 포크보다는 거품기 철사가 낫다. 힘의 방향을 액체가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바꿔주면 더 잘 풀린다. 그릇 속의 거품기를 한 방향으로 빙빙 돌릴 때보다 좌우 또는 지그재그로 흔들어주는 동작으로 더 쉽게 거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 단백질만 거품에 중요한 재료는 아니다. 인스턴트커피에는 따로 산을 넣지 않아도 이미 약간의 산성 물질이 들어 있어 서 거품이 지속되는 것을 도와준다. 커피 속 다당류도 거품을 안정시켜서 기포가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돕는다. 설탕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맛을 줄이기 위해 설탕 첨가량을 커피의 4분의 1 정도로 낮출 수는 있지만,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인스턴트커 피와 물만으로 달고나 커피를 만들기는 어렵다. 설탕은 찐득하 게 액체의 점도를 높여 공기 방울을 감싸는 벽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고 기포가 튼튼히 묶여 있게 해준다.

- 흑당버블밀크티에 숨겨진 사실
흑설탕과 황설탕(갈색설탕)과 흑당은 어떻게 다른가. 대만 에서는 흑설탕이 곧 흑당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듯 아닌 듯 헷갈 린다. 정제당에 캐러멜을 넣어 만든 흑설탕, 황설탕을 재래식 흑 당인 줄 알고 사 먹던 시절도 있었다. 식품 역사 연구자 이은희는 설탕, 근대의 혁명에서 이러한 혼동이 일제 전시체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설탕은 검은색의 끈끈한 액체인 당밀 을 분리해서 제거하느냐 그대로 두느냐에 따라 분밀당과 함밀 당으로 나눌 수 있다. 흑당 또는 비정제 흑설탕은 당밀을 제거 하지 않고 재래방식으로 만든 함밀당이고, 갈색설탕 또는 황설 탕은 당밀을 산업적으로 제거하고 만든 분밀당이다. 분밀당의 불순물을 여러 번 씻어내고 탈색해야 비로소 백설탕이 된다. 이 러한 추가 공정 때문에 백설탕이 황설탕보다 더 비싸다. 흑당 같은 비정제당에 미네랄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흑당 이 건강에 더 좋은 당이 되진 않는다. 우유 한 잔 속 칼슘을 흑당 으로 섭취하려면 200g 넘게 먹어야 한다.
- 20세기 초 백설탕을 효율적 에너지 공급원으로 권장하던 조선총독부는 중일전쟁으로 식량 사정이 나빠지자, 모자란 백 설탕의 소비를 줄이고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흑설탕을 내세우 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대만 분밀당인 황설탕을 가져 다 팔았다. 당시 값이 더 비쌌던 정제 백설탕은 일본에서 소비하 고, 제조비용이 적게 드는 황설탕을 조선에 공급한 것이다.
흑설탕과 백설탕의 영양상 차이도 크지 않지만, 황설탕(갈 색설탕)과 백설탕의 차이는 더 미미하다. 미네랄이 백설탕보다 많이 들어 있다며 요즘 광고하는 갈색설탕의 영양성분을 봐도 100g당 칼슘 함량은 고작 4mg에 불과하다. 흑당과 갈색설탕의 뜻이 뒤섞이고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몸에 좋다는 대중의 편견 이 생긴 것은 과거 조선총독부가 알면서도 사기를 친 결과다. 해방 이후 한국 제당업체는 그런 거짓말을 거짓말로 이어받았 다. 백설탕(정제당)에 캐러멜 색소를 넣어 색깔을 입히는 방식으 로 황설탕, 흑설탕을 생산했다. 백설탕과 영양성분은 동일하고 추가 공정으로 인해 가격만 더 비싼 제품을 만든 셈이다. 그래 도 잘 팔렸다. 일제의 황설탕에 대한 거짓 선전이 소비자에게 여 전히 먹힌 덕분이다. 씁쓸한 역사다.
- 《생리학과 행동 Physiology and Behavior》에 발표했다. 만약 초콜릿속 화학물질이 내는 약리학적 효과가 욕구의 원천이라면 코코아 가 루를 캡슐에 넣어 삼켜도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고, 입 속에서 살며시 녹아내리는 초콜릿의 특별한 녹는점 때문이라면 화이트 초콜릿으로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화 이트초콜릿은 초콜릿이 아니다. 코코아 고형물이 전혀 들어 있 지 않기 때문이다. 카카오버터에 설탕과 유지방, 향료를 넣어 만 든 화이트초콜릿은 달콤한 맛과 사람의 체온 부근에서 부드럽 게 녹는 물성 면에서만 초콜릿을 닮았다.
실험에서는 밀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코코아 가루를 넣은 캡슐, 화이트초콜릿+코코아 가루 캡슐, 가짜 알약, 그냥 물만 마시는 6가지 경우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초콜릿의 마력은 그 물성에 있었다. 초콜릿 욕구를 강하게 느낄 때 실험 참가자를 가장 만족시킨 것은 물론 초콜릿이었지만, 화이트초콜릿을 먹 어도 초콜릿의 69%에 달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코코아 가루 캡슐에는 가짜 알약 이상의 효과가 없었다. 화이트초콜릿 과 코코아 가루 캡슐을 함께 먹은 경우에도 효과는 화이트초콜 릿만 먹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코코아 가루 캡슐에 초콜 릿과 동일한 양의 약리 활성 물질이 들어 있었음에도 초콜릿을 먹을 때만큼 온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 음식에 관한 한, 상식은 진리가 아니다. 초콜릿 속 성분의 효과는 크지 않으며 만족감의 대부분은 물성에서 온다. 베개 위 에 놓인 초콜릿을 보고 생겨난 욕구는, 아름다운 갈색의 초콜릿 을 눈으로 보고 입에 넣어 녹이며 다양한 화학물질이 복합적으 로 만들어내는 향기와 맛과 조직감을 혀와 코와 피부로 직접 체 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채워진다. 동일한 성분의 알약으로는 불 가능한 일이다.

- 16세기만 해도 이탈리아 밀라노의 역사가 지롤라모 벤조니 Girolamo Benzoni가 「신세계의 역사La historia del Mondo Nuovo」에서 "인간의 음료라기보다는 돼지의 음료”라며 초콜릿을 혹평한 기록이 나 온다. 비슷한 시기 가톨릭교회에서는 초콜릿을 사순절 기간에 먹어도 되는 것으로 허용했는데, 초콜릿의 맛이 워낙 고약하여 그걸 먹는다고 사순절에 신자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희생을 위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맛없는 음료가 엄 청난 성공을 거뒀다면 뭔가 효과가 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성공 비결 중 하나는 틀림없이 초콜릿이 고칼로리의 영양 식이라는 점일 것이다. 카카오 열매를 발효한 다음 건조와 로스 팅 과정을 거쳐 갈아 만든 액체에는 코코아버터 55%, 당분 17%, 단백질 10%가 들어 있다. 액체에 무엇을 더하든 기본적으로 영 양이 풍부한 음식이 된다. 이에 더해, 초콜릿 속의 각성 물질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의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테오브로민은 카페인보다 10배 정도 많이 들어 있지만 카페인에 비해 각성 효 과가 낮은 편이다. 다크초콜릿 50g에 든 카페인 양이 20~30mg 정도로 커피 한 잔의 4분의 1 정도다. 커피에 비해 적은 양이지 만 집중력을 높이고 기분을 향상하기에 충분하다. 맛볼수록 초 콜릿이 더 좋아지는 이유다.
이쯤에서 마리화나 성분인 카나비노이드가 초콜릿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보자. 그뿐 아니다. 초콜릿에는 뇌 에서 암페타민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각성 물질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이들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초콜릿에 마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초콜릿 1kg에 든 페닐에틸아 민의 양이 3mg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소시지와 김치에도 같은 성분이 들어 있다. 초콜릿 속 페닐에틸아민 때문에 기분이 좋아 지는 효과를 본다면 갓김치를 먹고서도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 는 말이다. 마약 같은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음식이 마약 은 아니다. 함량이 마약만큼 되어야 마약이다.

- 생각해보면, 먹으며 갈등하는 사람만큼이나 초콜릿도 모순이 가득한 음식이다. 잘 만든 초콜릿은 손에서는 딱 부러지지 만 입에서는 부드럽게 녹는다. 지방 함량을 생각하면 금방이라 도 몸에 열이 날 듯한 음식이지만, 막상 초콜릿을 입에 넣으면 지방 결정이 녹으면서 입 안의 열을 흡수하여 시원한 느낌을 준 다. 레드와인 속 타닌이 스테이크 속 지방의 느끼함을 씻어내듯 초콜릿 속 지방과 타닌은 서로를 보완하며 균형을 맞춘다. 그래 서일까.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마다 인생 의 모순과 갈등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에 행복해진다.

- 1992년 영국의 스타 셰프 헤스턴 블루먼솔Heston Blumenthal과 향미화학자 프랑수아 벤지 Francois Benzi는 '푸드 페어링 가설food pairing hypothesis'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비슷한 풍미를 내는 화합물을 공 통으로 갖고 있는 식재료들일수록 요리에서 잘 어울릴 가능성 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이트초콜릿과 캐비어는 생뚱맞은 조합처럼 들리지만 트리메틸아민을 비롯한 여러 종의 향미화합물을 공통 적으로 갖고 있으므로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초콜릿과 블루치즈도 서로 맞지 않을 듯한 음식이지만 73가지 향미화합 물이 공통된다. 레스토랑 팻덕의 유명한 디저트 메뉴 '몰튼 초콜 릿과 블루치즈'는 여기에 착안해 만든 메뉴다. 푸드 페어링 가설 이 치즈닭갈비에도 들어맞을까 궁금해진다.
- 다행히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푸드 페어링 가설이 나오고 20년이 지난 2011년 12월, 「링크로 유명한 앨버트 라슬 로 바라바시 Albert-Laszló Barabási를 포함한 4명의 이론물리학자들이 레시피 5만 6,000종을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 이다. 블루먼솔과 벤지의 가설에 착안하여 식재료의 향미화합 물 공유도에 따른 연결망을 그려보았더니, 서구식 레시피의 경 우 공통된 풍미물질이 더 많은 식재료들일수록 함께 쓰고, 그렇 지 않은 것일수록 조합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모차렐라 치즈, 파르메산 치즈, 버섯, 토마토는 강한 치즈 향의 4-메틸발레르산이라는 향미성분을 공통으로 갖고 있어서 피자와 같은 음식에 흔히 함께 쓰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자료에 의하면 구운 닭고기와 치즈는 무려 62가지의 향미화합물이 공통된다. 치즈와 닭갈비는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이 정도면, 맛을 모르는 젊은이들의 음식이 아니라 맛을 제대로 아는 젊은이들의 선택이라고 봐야 맞겠다.
- 푸드 페어링 가설만으로 치즈닭갈비의 조합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음식의 향미성분이 겹치는 게 반드시 좋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참치김밥을 먹을 때 커피를 함께 마시면 생선 비린내가 날 때가 있다. 커피와 참 치에는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트리메틸아민이란 향미성분이 공 통으로 들어 있다. 각각을 따로 먹을 때는 농도가 낮아서 느끼 지 못할 수준인데, 둘을 함께 먹으면 비린내가 강해진다.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구의 조리법은 향미성 분이 공통된 재료들을 묶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동아시아 음식 조리법은 푸드 페어링 가설과는 반대로 중복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아시아에서 푸드 페어링 가설이 통하지 않는 까닭 이 비린내 같은 불쾌한 맛을 피하기 위해서인가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게다가 치즈는 다른 음식의 향미를 억눌러서 감지하기 어 렵게 만드는 음식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대 힐데가드 헤이만 Hildegarde Heymann 교수에 따르면, 치즈를 먼저 시식하도록 한 뒤 와 인 맛을 평가하도록 하면 전문가들도 와인의 섬세한 향미를 감 별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우리가 냄새를 맡으려면 우선 향미 성분이 휘발하여 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치즈 속 카세인과 같은 단백질이 와인의 향미성분과 결합하여 휘발을 막기 때문 이라는 추측이다. 특정 와인과 치즈의 페어링이 더 맛있다고 느 낀다면 순전히 당신의 상상 또는 소믈리에의 멋진 설명 덕분이라는 게 헤이만 교수의 결론이다.
- 다시 치즈닭갈비로 돌아가 보자. 닭갈비에 뿌려주는 치즈는 닭갈비의 강한 풍미를 부드럽게 완화해서 조금 더 먹기 편하 게 만들어주는 역할일 수도 있다. 치즈떡볶이, 치즈불닭, 치즈등 갈비에서 치즈닭갈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한식의 계보에 치즈 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맵고 자극성 강한 음식 맛을 즐기려 는 방편일지 모른다. 매운 음식을 먹고 우유나 요구르트를 마시 면 도움이 되듯, 모차렐라 치즈 속 카세인 단백질이 닭갈비 양념 의 캡사이신과 결합하여 입 안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다.

- 오킨 교수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1억 6,30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먹는 음식 칼로리는 프랑스 전체 인구의 1년 음식 섭취 칼로리와 맞먹는다. 이로 인한 탄소 배출 량이 매년 자동차 1,360만 대가 뿜어내는 양과 맞먹는다. 이들 반려동물의 식단이 인간의 식단보다 육류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소비되는 동물성 음식의 25%는 개 와 고양이가 먹는 셈이다. 오킨 교수는 미국에서 개와 고양이에 게 가는 고기의 4분의 1만 사람이 소비하도록 돌려놓아도 텍사스주 인구에 달하는 2,600만 명이 먹는 고기 양에 해당할 것으 로 추산한다.

- 에너지 음료에는 카페인에 더해 에너지 대사를 돕는 비타민B 몇 종과 인간의 뇌가 가장 선호하는 에너지원인 당류가 함 께 들어 있다. 인삼, 과라나, 타우린, 말토덱스트린, 글루쿠로노 락톤도 에너지 음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분이다. 이들 성분을 더한다고 하여 얼마나 더 효과를 내는가는 의문스럽지만, 카페 인을 함유한 음료를 마신 뒤에 힘이 나는 건 사실이다. 기분이 살짝 좋아지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인지기능과 운 동기능이 향상된다. 2010년 미국 연구에서는 에너지 음료를 마신 참가자가 가짜 에너지 음료를 마신 경우보다 트레드밀 위에서 뛰면서 버티는 시간이 12.5%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에 너지음료를 마신 참가자들은 운동 뒤에 피로감이 줄고 집중력 과 에너지가 향상되는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 미국 펩시코는 2020년 12월, 수면을 돕는 음료를 출시한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음료 이름이 드리프트웰Driftwell이다. 마시면 스르륵 잠이 들 거라는 효과를 암시하는 상품명이다. L- 테아닌 200mg과 하루 권장량의 10%에 해당하는 마그네슘이 들 어 있어 수면의 질을 향상하고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 움을 줄 거라는 설명이다.
L-테아닌은 녹차 속의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다. 1940년대 일본 과학자들이 발견했고 관련 연구도 일본에서 진행된 게 많다. 마치 명상할 때처럼 긴장을 풀어주면서도 집중하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 하여 기능성 음료나 건강기능식품에 종종 쓰 인다. 카페인으로 인한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다. 차를 마시고 나서 잠이 안 올 때의 느낌이 커피를 마시고 잠이 안 올 때와 달리 왠지 편안하다면 아마도 L-테아닌 때문이다.
마그네슘은 근육 긴장을 염두에 두고 포함했겠지만, 하루 권장량의 10% 정도로는 실제 효과보다는 심리적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듯하다. 제조사에서도 마그네슘보다는 L-테아 닌을 전면에 내세우며 효과를 입증할 임상 자료가 있다며 자신하고 있다. 국내에 언제 출시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면 한번 마셔보고 싶긴 하다. 일본에서 약대 5학년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L-테아닌을 복용한 학생들이 가짜 약을 복용한 그룹 보다 약국 실습 중에 스트레스 레벨이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 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이런 연구 대다수가 제조 사의 협찬을 받아 진행되고 아무래도 자금을 지원한 회사에 유 리한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 구자들도 있다. 2004년 호주 연구에서는 L-테아닌이 이미 편안 하게 쉬고 있는 상태에서는 안정감을 높여주지만, 스트레스 주 는 일을 앞두고 불안감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으 로 나타났다.

-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음식의 효능을 강조하려다 보면 특정성분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대파 흰 줄기에 사과보다 5배 많 은 비타민C가 들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 교는 오해를 낳는다. 사과는 애초에 비타민C 함량이 높지 않은 과일이다. 애꿎은 사과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대파에 비타민C 가 많다고 설명하면, 사과만 억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과에 식 이섬유가 풍부하여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기사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만 말이다.
특정 음식 또는 영양성분이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단순한 주장은 옳지 않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과 같은 거대 영양소, 비타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가 결핍되거나 부족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은 맞는다. 하 지만 딱 거기까지다. 비타민A는 면역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 며 점막과 표피를 보호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결핍될 경우 우 리 몸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 하지만 비타민A를 과잉 섭취하면 골다공증, 피로감, 간독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비타민A 과잉 섭취가 면역반응을 방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오래가면서 무슨 음식, 어떤 영양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주장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 만, 실은 면역력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용어다. 면역은 무조건 강하면 좋은 어떤 힘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작동하 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다. 땅콩과 같은 음식에 대한 알레 르기 반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경우처럼 복잡한 면역체계 일부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건강에 도리어 해가 된다. 면역력은 학술 전문용어가 아니라 마케팅에 남용되는 잘못된 개념일 뿐 이다.

- 가끔 집에서 요리하다 보면 냄새에 질려서 완성 뒤에는 정작 식욕이 떨어질 때가 있다. 생리학에서 감각 특정적 포만sensory specific satiety 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요리를 하는 사람은 냄새에 질려 다른 사람보다 적게 먹고 그만큼 체중 유지 가 쉬우며 건강하지 않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연구 결과는 내 예상과 정반대였다. 식욕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했다.
잠깐 냄새를 맡거나 10~20분에 걸쳐 오래 냄새를 맡거나 식욕 자극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냄새의 종류에 따라 식욕이 달 라졌다. 감칠맛 음식 냄새를 맡으면 감칠맛 음식에 대한 식욕이 늘고, 대신 달콤한 음식에 대한 식욕은 줄어드는 식이었다.
과학 실험 결과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요리 뒤에 식욕 이 줄었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내가 실제로 식사를 거른 적은 없었다. 역시 느낌이나 직관보다는 과학적 근거가 더 중요하고, 직접 만든 요리냐 아니냐보다는 식사량이 더 중요하다. 이거야 말로 코로나19의 시대 집에서 식사하며 내가 배운 교훈이다.

- 실제로 실험해보면 너구리와 같은 유탕면의 경우 찬물에 면과 스프를 넣고 끓인 라면이 끓는 물에 넣은 경우보다 면발이 부드럽고 덜 쫄깃하다. 기름에 튀겨낸 면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 어서 끓기 전에도 물을 어느 정도 흡수하기 때문이다. 찬물에 면 을 넣고 물이 끓으면 1분 만에 조리를 멈추어야 하는 것은 조리 시간 단축에 더해 면이 지나치게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찬물에 면을 넣어 짧게 끓이면 전분이 국물로 덜 녹아 나오기 때문에 국물이 더 맑다. 대신 국물 맛이 덜 진하고 면과 따로 노는 느낌이 든다. 물에 녹은 전분이 라면을 튀긴 기름을 물과 섞어주는 유화제 역할을 하는데, 전분이 물에 녹아 나올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튀기지 않은 건면으로 실험할 경우는 결과물의 차이가 그 리 크지 않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맞히기 어려울 정도다.
건면은 유탕면과 비교하면 파스타에 더 가까운 형태로, 끓기 전 까지는 물을 적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 국물 음식의 과학
우리가 사랑하는 국물 맛은 글루탐산의 맛이기도 하다.
국물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봐도 그렇다. 유리 글루탐산이 많이 들어 있는 것들이 주로 쓰인다.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에는 100g당 10~20mg의 유리 글루탐산이 들어 있다. 아주 많은 양은 아니다. 글루탐산은 고기 단백질의 주성분 중 하나로, 동 물성 단백질의 약 20%에 해당할 만큼 많지만 대부분은 단백질 사슬에 묶여 있어서 맛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재료를 물과 함께 가열하면 근육세포 속에 붙잡혀 있던 감칠맛 성분이 따로 떨어 져 국물 속으로 녹아 나온다(유리 글루탐산의 '유遊離는 따로 떨어 져 나왔다는 뜻이다).
2015년 12월 식품과학저널Journal of Food Science》에 실린 핀란드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온도와 가열시간에 따라 감칠맛 성분이 달라진다. 돼지고기를 수비드로 80°C에서 조리할 때 60°C, 70°C에서보다 흘러나온 육즙 속 글루탐산을 비롯한 유리 아미노산 농도가 증가했다. 특히 고기보다 육즙에서 유리 글루 탐산 농도가 2배 높았다. 아마도 고온에서 단백질과 펩타이드 의 가수분해가 더 격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일 거다. 수비드 조리 에 대한 실험이지만 국물 요리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국물에 고기를 넣고 고온으로 끓이는 과정에서 감칠맛 성분이 증가한다. 무작정 오래 끓인다고 단백질이 엄청나게 더 많이 분 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온도와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 라 국물 맛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채소와 과일로 국물을 낼 때도 글루탐산이 중요하다. 양파, 버섯, 토마토에는 유리 글루탐산이 고기보다 더 많이 들어있다. 고기보다 단백질의 양은 적지만 우리가 맛볼 수 있는 유리 글루탐산 형태로 존재하는 비율이 높다. 물에 넣고 가열하면 단단한 식물 세포벽에 싸여 있던 당과 감칠맛 성분이 녹아 나온 다. 온도와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고, 채소마다 다른 풍미의 강 약을 어떻게 맞춰주느냐에 따라 국물 맛의 차이가 크다. 각각의 채소를 넣는 시점과 조리방법에 따라서도 전체 풍미가 달라진 다. 고기 육수와 채소 육수를 언제 합치느냐도 중요하다. 채소 육수를 너무 오래 끓이면 풍미를 내는 방향성 물질이 대부분 날 아가 도리어 맛을 해칠 수도 있다.
- MSG로 대표되는 글루탐산은 대부분의 동식물성 식품에 존재한다. 그러나 국물 음식의 감칠맛을 내는 데는 글루탐산이 다가 아니다. 맛이 더 약하긴 하지만 아스파트산도 감칠맛을 내 는 아미노산 중 하나다. 핵산계 조미료로 불리는 이노신산, 아데 닐산, 구아닐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글루탐산과 힘을 합하면 글루탐산 단독일 때보다 수십 배까지 감칠맛이 증 가한다. 이노신산은 어류와 육류에 존재하며, 아데닐산은 갑각 류, 연체동물류, 채소에 들어 있다. 버섯에는 글루탐산도 많지만 감칠맛 증폭 효과가 강력한 구아닐산도 많다. 소고기와 버섯을 넣고 국을 끓이면 별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맛이 폭발 하는 이유다. 뜨거운 국물 속에서 재료는 분해되고, 향미물질을 서로 주고받으며 새로운 맛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국물 요리의 맛은 개별 재료를 아무리 오랫동안 입에 넣고 씹어도 느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층위의 맛이다.

- 2가지 불고기의 경쟁
역사를 뒤돌아보면, 불고기에는 치열한 2가지 조리방법 사이의 경쟁이 있다. 보통은 국물의 유무에 따라 나눈다. 등심, 안심 같은 연한 부위를 조금 두껍게 잘라 너비아니처럼 양념하 여 석쇠에 구워 먹는 옛 방식과 목심, 앞다리, 설도, 우둔 같은 더 질긴 부위를 육절기로 얇게 잘라 국물이 자작한 불판에 구워 먹 는, 현대에 더 가까운 방식이다.
하지만 진짜 경쟁은 불과 물 사이에 있다. 물이 조리에 얼마나 개입하느냐에 따라 화학반응이 달라진다. 가운데가 봉긋 솟은 형태의 불고기 판에 구울 때의 고기 상태는 숯불 위에서 석쇠를 돌려가며 구울 때와 비슷한 점이 많다. 불판 중심 부분 의 온도가 140°C에 이르면 당과 아미노산이 화학적으로 반응하 여 구운 고기 특유의 풍미와 갈색을 만들어내는 마이야르 반응 이 격렬해진다.
경사진 불고기 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물에 삶은 고기보 다 불로 구운 고기를 더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다. 고기에서 흘러 나온 수분이 기울어진 불판을 타고 가장자리로 내려가므로, 고기 표면 수분의 양이 줄어들고 온도가 상승하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기 더 쉬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이사이 구멍이 뚫린 불판을 벌건 숯 위에 올린 경우는 석쇠로 구울 때 와 거의 차이가 없다.
반면에 전골냄비나 팬에 양파, 당근, 파를 듬뿍 올려 불고 기를 조리할 때의 화학반응은 다르다. 채소에서 흘러나온 수분 과 양념이 섞여 만들어진 국물이 빠져나갈 여지 없이 고기와 함 께 끓는다. 100°C에서 끓는 물의 속성 때문에 온도가 더 이상 높 아지지 않으므로 마이야르 반응이 훨씬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 물을 매개로 익는 국물 불고기에 '불맛'은 없다. 불고기라는 이 름이 무색하다. 국물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는 어찌 보면 불고기보다 '물고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음식이다.

- 구운 고기 먹어도 괜찮은가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처럼 남쪽에는 수분 없이 불에 굽는 방식이 건재한데, 서울에서는 왜 국물 불고기가 크게 유행 한 걸까. 더 저렴한 부위를 사용할 수 있으며 빨리 익혀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더해, 탄 고기와 건강에 대한 염려가 한몫했을 가능성이 있다.

- 덴마크 코펜하겐대 식품자원경제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영양학적 지식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나타나지 않는다. 당류와 포화지방을 적게,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는 게 건강에 좋 다고 생각하는 건,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이나 가난한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계층별 음식 선택에서 차이가 나 타나는 것은 누적된 경험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접해서 친숙한 음식의 맛을 더 높이 평가한 다. 아이가 처음 접하는 생소한 음식을 좋아하고 받아들이려면 최소한 8회에서 15회까지 그 음식을 경험해봐야 한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려지는 음식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8 회에서 15회까지 버려지는 음식을 감당할 수 없다. 버클리대에 서 영양정책을 연구하는 케이틀린 대니얼Caitlin Daniel 박사는 음식 낭비를 우려하여 채소와 과일의 구매를 꺼리는 게 자녀의 입맛 형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 덴마크 연구에서 밝혀진 점도 비슷하다. 고학력·고소득인 경우 자라면서 채소와 과일을 접할 기회가 많으니 사람들의 입 맛도 그에 맞춰지고, 저학력·저소득인 사람은 가공식품을 접할 기회가 많으니 포화지방과 당류를 선호하는 입맛을 갖게 된다 는 추측이다. 덴마크 연구에서 고학력자일수록 소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저술가 하이드룬 메르클레Heidrun Merkle는 식탁 위의 쾌락 에서 오늘날 부유층이 "자신들이 먹는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사 회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영화 <기생충>의 다송이는 부잣집 아이지만 아직 어려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입 맛 차이를 잘 모르고 있었다. 한우 채끝살 짜파구리는 다송이 엄마가 그 경계선을 자녀의 마음에도 긋고 싶어 한다는 걸 보 여주는 장치다. 음식을 통해 그어진 경계선은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 코로 냄새 맡을 때와 입 속에 넣었 을 때의 풍미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들숨과 날숨 때 후각의 차이 때문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는 코로 들이마시 는 공기를 통해 그 향기를 인식한다. 전문용어로 정비측 후각 orthonasal olfaction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음식을 입에 넣고 씹을 때 방 출되는 향기는 입 뒤쪽에서 비인두를 타고 비강의 빈 공간으로 흘러들어 가며 냄새를 인식하므로 후비측 후각retronasal olfaction이라 고 부른다.
개는 정비측 후각이 발달해 있지만 사람은 후비측 후각이 더 중요하며 잘 발달한 감각이다. 음식을 먹을 때 추억이 떠오 르고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은 주로 후비측 후각 덕분이다. 와인을 마실 때만 들숨과 날숨의 향이 다른게 아니다. 짱구허니시나몬 볶음면도 그렇다. 들숨 때는 짱구 향, 날숨 때는 볶 음면 맛이다. 들숨 때는 재미있고 신기하지만 날숨 때는 먹을 만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달콤한 콘치즈 같은 냄새가 나지만 막상 입에 콘치즈면을 넣고 씹으면 스위트콘을 넣어 만든 수프 맛이 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사실 채식에 대해 묘한 편견이 있다. 고기 대신 풀만 먹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 은건 2001년 토론토에서 친구 자낙의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자낙의 고향인 인도 구자라트주에서는 전체 인구의 60~70%가 채식을 한다. 자낙 가족도 모두 채식을 했다. 하지만 간식으로 내온 음식은 곡물로 만든 튀김과자 몇 가지가 전부였다. 채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베지테리언이라는 말에 거의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풀밭이 그려졌지만 내 편견에 불과했다. 자낙 가족 이 주로 먹는 음식도 곡물이었다.
먹지 않는 음식을 놓고 보면 보통 식단과 채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공통으로 겹치는 음식이 훨씬 더 많다. 저명한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idney Mintz는 설탕과 권력에서 알곡이나 뿌리식물로 된 복합 탄수화물 주식에 맛을 내는 보조식품 또는 양념을 결합한 방식이 인간 식사의 기본적 양상이라고 단언한다. 마사이족처럼 예외가 있긴 하지만 농업 정착민이 세운 문명은 대부분 복합 탄수화물을 제공하는 식물 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인류 문화의 기초는 채식이다. 채식이 건 강이나 환경에 더 유익한가, 윤리적인가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기억해야 할 점이다.

- 비타민B12의 부족은 또 다른 문제다. 비타민B12는 동물성 식품에서만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여서, 별도로 보충제를 복용 하지 않을 경우 일주일에 육류 섭취를 한 번 이하로 제한하는 세미베지테리언의 경우 정상치 이하인 경우가 20%에 불과한 데 반해 락토오보베지테리언은 47%, 락토베지테리언은 64%, 비건은 92%에 달할 정도로 정상치 이하인 사람의 비율이 증가 한다(미국 위스콘신대 1982년 연구 결과). 엄격한 기준의 채식일수 록 부족하기 쉽다는 의미다.
비타민B12는 간에 저장된 양으로 1~2년을 버틸 수 있으므로 갑작스럽게 결핍 증상이 나타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악 성 빈혈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된장과 같은 발 효식품, 해조류에도 비타민B12가 들어 있긴 하지만 인체에서 흡 수해 활용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어서 별 도움이 못 된다. 비건 식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보충제나 영양강화 식품으로 비타 민B12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식단을 식물성 식품으로 제한하더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 의 종류는 다양하다. 채식이 주는 건강상의 이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좋기만 한 건 세상에 없다. 균형을 잘 잡아야 유익을 얻 고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 구매를 기피하는 것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선택하는 순간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기신호효과self-signalling effecd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품 구매를 통해 내가 누구인 가에 대한 신호를 자신에게 보내게 된다. 고가의 자동차나 명품 가방을 구입하면 스스로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처럼 이미지를 그려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레이월 교수는 못난이 농산물의 판매를 촉진할 방법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그냥 "못난이 농산물을 사세요"라는 문구만 있을 때보다 “당신은 정말 멋져요! 못난이 농산물을 사세 요”라는 문구를 놓았을 때 못난이 농산물을 선택하는 소비자 수 가 93.3%나 증가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문구가 있어서 못난 이 농산물을 사더라도 자기 지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아지고 긍정적 자기 이미지가 강화된 것이다.
그레이월 교수의 실험 결과는 <맛남의 광장> 방송 뒤에 못 난이 감자가 팔려나간 현상에 잘 들어맞는다. 전에는 못난이 감 자를 사면 그 순간 자신도 못난 것처럼 느껴져 기피하던 소비자 들에게 방송 내용은 “당신은 정말 멋져요! 못난이 농산물을 사 세요"라고 적힌 광고판처럼 작용했다. 못난이 감자 선택이 스스 로를 더 긍정적으로 보게 해준다면 못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한국식 중화요리의 불편한 진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풍미 원산지>를 보라. 광둥성 차오 산 요리만 해도 재료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양념게장부터 푸닝 된장, 말린 무, 해초, 날생선, 액젓, 어묵, 익모초까지 이어지는 요리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기름에 볶고 튀기는 방식의 고열량 음식이 중화요리의 전부가 아니며 전통 한식에도 중국의 영향 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반도에서 중국 음식 하면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범위가 좁아졌을까.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람을 빠뜨린 미식 담론은 공허 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식 중화요리는 누가 만든 것이며 누가 먹 는 음식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본래 세계 화교의 주류는 광둥성 또는 푸젠성 출신이며 중국 요리도 이들 중심이다. 반면 근대 한반도의 중화요리는 거리상 가까운 산둥성에서 넘어온 화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초창기 중국음식점은 중국에서 이 주한 화교를 주요 고객으로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고객 층은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의 이정희 교수는 화교가 없는 나라 에서 일제강점기에 세 종류의 중화요리점이 있었다고 설명한 다. 종업원이 20~40명 되는 고급 중화요리점, 그보다 규모가 작 은 종업원 2~10명의 중화요리음식점, 그리고 호떡집이다. 고급 중화요리점에서는 산동요리에 더해 북경요리와 광동요리 등 다 양한 고급 요리를 팔았고, 중화요리음식점은 우동, 잡채, 양장피, 만두를 주메뉴로 했다. 호떡집에서는 호떡만 판게 아니라 꽈배기, 계란빵, 국화빵, 공갈빵과 같은 중국식 빵을 팔았다.
이정희 교수가 책에 쓴 것처럼 "화교 중화요리점은 한국 식중화요리를 창조하고 조선과 한국의 외식산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한국의 중화요리가 기름지고 고열량에 채소는 부족한 음식인 것처럼 무시당할 때가 많지만, 중화요리에는 다양한 채 소가 많이 쓰인다. 과거 화교는 조선 주요 도시의 상업용 채소 재배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조선 화교는 오이, 가지, 파, 양배추, 토마토, 호박과 같은 다양한 채소를 집약적으로 재배했 다. 이들의 고향이 채소 재배의 오랜 역사를 가진 산둥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식에 대한 편견은 그것을 만들고 먹는 사람에 대한 차 별과 편견에서 비롯된다. 중국 음식의 범위가 좁아지고 중국 음 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편견이 생긴 것은 사람들이 중화요리음 식점에서 다양한 요리를 즐길 만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과도 관련되지만, 1960년대 말 한국 정부의 화교에 대한 규제 와 차별이 강화되면서 많은 화교 중화요리점 업주가 식당 문을 닫고 해외로 재이주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화교의 고향인 중국 본토와 한국 간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이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사회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중국과의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 고대림 차이나타운으로 대표되는 신화교 사회가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양꼬치, 마라탕, 훠궈와 같은 새로운 중국 음식이 유행 하기 시작했다. 

- 간헐적 단식의 실제 효과
단식이 필요한 이유는 인슐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나면 잘게 쪼개져 소화·흡수되는 포도당을 인체는 에너지로 쓰거나 또는 저장한다. 이때 세포 속으로 당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호르몬이 인슐린이다. 인슐린이 있어야 세포가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인슐린에는 쓰고 남은 포 도당을 지방세포로 밀어 넣어 저장하는 효과도 있다.
배가 고파지면 처음에는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지방 세포에 저장된 지방을 꺼내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면 먼저 인슐린이 줄어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굶어야 한다. 반대로 간식을 하면 인슐린 수치가 떨어지기 어 렵고 그만큼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기도 어렵다. 복부 지방을 줄이고 싶으면 최소한 10~12시간은 굶어야 한다는 말은 여기 서 나온 것이다.
이론은 그렇다 치고 실제 효과는 어떨까? 간헐적 단식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긍정적이다. 2015년 호주 연구팀 에서 40건의 연구를 모아서 분석한 결과 10주 동안 체중이 3~5kg 줄어든 경우가 제일 많았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다음 날 폭식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식욕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하루 굶는다고 해서 다음 날 2배를 먹는 게 아니라 평소보다 10~20%를 더 먹는 정도에 그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의 체중감량 효과가 기존 방식의 칼로 리 제한 다이어트보다 더 효과적이진 않았다. 2017년 미국에서 발표한 다른 연구에서도 100명의 비만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간헐적 단식과 기존의 칼로리 섭취 제한 다이어트의 효과를 비 교해보았다. 그 결과 둘 다 평소대로 먹는 것보다는 낫지만 체 중감량 정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섭취 칼로리 제한이 살 빼기 의 핵심이라는 명제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 흔히 닭고기를 백색육이라고 부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부위별로 색상이 둘로 나뉜다. 백색육이라는 명칭에 걸 맞은 옅은 색의 가슴살과 그보다 더 진한 색의 다릿살이다. 천적 을 피해 잠시 날아오를 때 사용하는 날개와 가슴살을 이루는 근 육은 짧은 순간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 딱 알맞다. 이들 근섬유에 는 지방을 태우는 장치가 들어 있지 않으니 주변에 지방을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닭가슴살에 지방 함량이 낮은 이유다.
반면 다릿살을 이루는 근육은 하루 종일 몸통을 떠받치 고 서 있거나 걷고 뛰어다닐 때 사용된다. 지구력이 필요한 이 들 근육은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며, 또한 산소를 필요로 한다. 산소를 운반하고 사용하는 데 미오글로빈이라는 적색의 단백질이 사용된다. 이로 인해 단지 색상만 짙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과 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 한 풍미의 화합물은 다릿살을 무미에 가까운 가슴살보다 훨씬 풍부한 맛의 고기로 만들어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짙은 색 고기와 연한 색 고기는 맛만 다른 게 아니라 조리 특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 는 결합조직의 비율 때문이다. 닭,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 고기 의 연한 정도는 결합조직을 이루는 콜라겐의 함량에 달려 있 다. 다릿살은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만큼 튼튼해야 하므로 결합 조직 콜라겐의 비중이 높고 그래서 질기다.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녹여 연하게 익히려면 70°C 이상의 고온으로 비교적 장시간 조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가슴살이 버텨내질 못한다. 
- 거대 기업이 병아리와 사료와 동물 약과 기자재를 농가에 공급하고, 농가는 병아리를 키우는 위탁 사육비용을 기업에 지 급받는 방식의 수직계열화가 굳건히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어 딜 가도 작은 닭뿐이다. 프라이드치킨에 최적화된 어리고 작은 닭이 대세가 되면서 어떤 닭요리를 먹어도 닭고기 자체의 맛은 비슷해지고 말았다. 가슴살이나 다릿살이나 윙이나 맛과 조직 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최적화라는 정답이 다양성을 죽였다.
작은 닭 일색의 프라이드치킨 시장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 아오고 있긴 하다. 15호 닭을 튀겨내는 치킨 전문점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15호 닭으로 튀겨낸 프라이드치킨의 맛은 어떨까? 좋고 나쁨의 문제를 떠나 큰 닭답게 부위별로 맛이 정말 다르다는 것과 둘이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 다. 그러나 큰 닭이 작은 닭을 대체하여 또 다른 정답으로 자리 잡는 식으로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의 중심이 9, 10 호 닭에서 15호 닭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닭고기 판매가 한 마리 기준에서 부분육으로 바뀐다고 해서 다양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답을 포기해야 다양한 답이 보인다. TV에 출연한 맛 전 문가는 옛날 씨암탉은 맛이 없었을 거라며 미식의 정답이 아니 라는 식으로 몰고 가지만, 진정한 미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요리 와 식문화의 꽃은 수많은 알을 낳고 폐계가 된 닭을 잡아 갖은양념으로 요리하여 내놓는 폐계 전문식당에서도 피어난다. 폐계는 못 먹을 음식이 아니다. 시골형 고기에 가까운 음식일 뿐이다.
도시에서는 순전히 고기를 먹기 위한 목적으로 동물을 사 육한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동물 각각의 가치와 생산력을 최대 한 활용하고 돌보다가 최종적으로 고기로 활용한다. 소가 더 이 상 농사일에 도움이 안 되고 닭이 더 이상 달걀을 낳지 못할 때에 야 도축하는 것이다. 겨우 한 달 사육해서 잡는 육계보다 18개월 이 지나 잡는 산란계인 폐계가 더 질기긴 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 하면 18개월 사육한 닭이 풍미와 씹는 맛은 더 좋다. 폐계는 요즘 맛보기 힘든 시골형 고기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식이다.

- 철분이 부족한 우유와 철분이 풍부한 팥이 만났으니 우유팥빙수는 환상의 궁합이며 최고의 건강식이라고 무릎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다 헛소리며 잘못된 상상이다. 음식 속 영양성분이 늘 사이좋게 우리 몸으로 들어오려고 춤을 추진 않는다. 서로 훼방을 놓다가 장을 타고 그대로 빠져나가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우유에 풍부한 칼슘은 팥 속의 철분(팥 자체의 폴 리페놀 때문에 흡수가 어렵다는 그 철분)이 흡수되는 것을 추가로 방해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긴 할까? 혹시 후식으로 빙수 먹기 전에 미리 배에 채워 넣은 삼겹살을 잊으신 건 아닌지 (철분 함량과 흡수율에서는 붉은 고기가 최고다).
음식 속의 다양한 영양물질들이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며, 아무 상관 없이 따로 놀 때도 있지만, 우리가 식탁에서 그런 영양소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을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배추김치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초 빙허각이씨가 엮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이르러서인데, 이 당시 배추김 치도 우리가 먹는 김치와는 차이가 크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무 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용기 지음)과 같은 조리서로 가면 김치의 조리법이 현대와 비슷해지지만, 닭고기, 꿩고기, 소 고기, 돼지고기 등의 다양한 고기가 재료로 사용되고, 국물로 설 렁탕까지 넣었다는 기록을 보고 있으면, 이게 대체 김치가 맞나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전통 식품의 상징 김치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게 고작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야 토마토가 이탈리아 음식의 상징 같지만,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신대륙 발견 전까지 토마토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식재료이고, 지금처럼 토마토소스를 얹은 피자와 파스 타를 즐겨 먹은 건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치즈 또는 설탕과 향신료를 뿌려 먹는 파스타가 주류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토마토를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시간 이 걸렸던 것처럼 고춧가루가 김치 속으로 들어오는 데도 시간 이 걸렸다. 이수광이 1613년에 펴낸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고추 를 '남만초라는 센 독'으로 언급하면서 이것을 소주에 타서 마 시면 대부분 죽었다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말 먹고 죽 은 사람이야 없었겠지만, 생소하며 강렬한 매운맛을 내는 음식 이 독으로 느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마침내 고춧 가루가 채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김치가 탄생하자, 그것은 한국 인의 맛이 되었고, 주류로 자리 잡았다.

- 시대에 따라 선물 세트도 변한다. 1960년대에는 설탕과 조미료, 맥주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는 라면과 칼국수가 들어간 선물 세트도 있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심 지어 콜라도 선물 세트에 들어갔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 도 어린이를 위한 종합 과자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정육, 과일, 고가의 주류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면서 선물 세트 에도 양극화 논쟁이 일어났다.
2000년대 이후, 건강과 체중 문제에 민감한 트렌드에 맞 춰 통곡물, 견과류, 올리브유를 선물하는 일도 늘어났지만, 채소 가 주류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세 유럽 귀족들만 과일은 먹고 채소는 천시한 게 아니다. 선물 세트를 놓고 보면, 우리도 채소를 뒷자리에 둔다. 과거 오랫동안 인류가 식량 부족에 시달 렸으며, 고열량 식품을 갈망했다는 사실이 우리가 주고받는 명 절 선물 세트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실은 명절 자체가 살을 찌우기 위한 장치다. 미국 터프츠 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연말연시 휴일 기간에 사람들의 체 중은 평균 0.4kg이 증가하며, 이미 과체중인 사람들의 체중은 2.3kg이 증가한다. 불행히도, 이렇게 연말 휴일 동안 증가하는 체중은 1년 체중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하며, 매년 축적되어 중년 이후 과체중과 비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춘궁기를 걱정해야 하던 시절에야 연말에 살을 최대한 찌우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련만 새해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는 한숨거리만 더해줄 뿐이다.

- 돼지는 소보다 사육 기간이 짧아서 근육과 결합조직의 발달이 덜하며, 따라서 고기도 더 연하다. 돼지고기 부위 중에 서도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은 평범한 일상에서 고기 굽는 기술 없이 구워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이 보장된다. 이른바 지방의 보장 이론이다. 육류를 고온으로 조리하다 보면 너무 지나치게 익혀 근섬유 속 수분이 빠져나오고 이로 인해 질겨지는데, 지 방이 이를 늦춰주는 보호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지방이 풍부한 고기일수록 지방의 단열효과로 열이 천천히 전달되고 따라서 수분 소실과 단백질 변성을 막아 조리 뒤에 더 부드럽 게 느껴진다. 친구들과 떠들며 삼겹살을 굽다가 너무 바싹 익 히거나 편의점에서 냉동 삼겹살을 사다가 대충 구워 먹어도 크 게 실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 함량이 높은 고기일수록 구워 먹을 때 더 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은 그 밖에도 3가지가 더 있다. 단 백질에 비해 밀도가 낮고 씹을 때 저항이 덜한 지방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수록 부드럽고 연하다는 부피 밀도 이론, 근내지 방이 고기를 씹을 때 근섬유와 근섬유 사이를 미끄러지도록 하 여 더 연하다는 윤활 이론, 지방이 주위 결합조직을 약화해서 덜 질기다는 변형 이론도 있다. 이들 이론을 실제로 검증하기 는 어렵고 지방 함량과 고기의 연한 정도 사이에 직접 관계가 없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전문가 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관능평가에서는 지방 함량이 높은 고기일수록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며 풍미가 좋다는 쪽으로 응답이 모인다. 삼겹살의 승리는 지방의 승리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인과 결과의 법칙  (0) 2024.02.04
나이가 든다는 착각  (2) 2024.01.28
음식으로 보는 미래과학  (2) 2024.01.24
다크호스  (2) 2024.01.14
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0) 2024.01.12
Posted by dalai
,

- 일단 음식에 균열을 만들면, 그다음에는 균열을 갈라 물질 전체를 두 조각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칼은 사실 두 가지 일을 하게 된 다. 이 두 가지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칼날을 최대한 예리하게 만 드는 것이다. 예리한 칼날을 현미경으로 보면 생각처럼 매끄럽지 않 다. 매끄러운 게 아니라 칼날 전체가 울퉁불퉁해서 톱니처럼 보인 다. 그런 칼날로 음식을 밀고 지나가면 전단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마찰이 생겨나고, 이것이 압박을 늘려 균열이 생긴다. 반면 무딘 칼 은 칼날이 두루뭉술하고 밋밋해 음식을 꽉 잡아주지도 못하고 그 리 잘 자르지도 못한다. 결국 전단력이 약하기 때문에 오로지 썰기 동작에 의존해야 하므로 힘이 많이 든다. 무딘 칼이 예리한 칼보다 더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힘을 더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헛손질 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그래서 사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전단력과 마찰도 개입하는 등 칼날이 물질을 자르는 과정이 이 렇게 복잡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칼을 제조하는 과정 역시 다소 복 잡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날이 예리한 칼을 만들려면 '경 도hardness'가 높은 강철을 사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칼날은 잘 닳지 않아야 하므로 '인성toughness'도 높은 강철을 사용해야 한다. 재료과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도와 인성은 개념이 다르다. 경 도는 어떤 물질이 압력에 변형되거나 긁히지 않는 성질이다. 인성은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부러지지 않고 변형되는 성질, 즉 구부러지기 는 하되 부러지지는 않는 성질이다. 칼은 경도가 높아 칼날이 늘 유지되어야 하며, 인성도 높아 잘 닳지 않고 휘었을 때 부러지지 않아 야 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경도가 높아지면 대개 인성이 줄어 들고, 또 인성이 높은 강철은 대개 경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 제조 업자들은 경도 높은 강철을 만들기 위해 철에 탄소를 추가하며, 인 성을 높이기 위해 텅스텐과 코발트를 추가하고, 또한 녹을 방지하기 위해 약간의 크롬도 추가한다.

- 당신이 요리하려 하는 단백질 덩어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스테이크일 수도 있고 생선 한 마리 또는 달걀 하나일 수도 있다. 당신의 최종 목표는 단백질 분자들을 가지고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런 상태의 단백질에서 열로 변형된 이른바 '변형 단백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백질에 관한 기본적인 과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화학물질들의 사슬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단백질 안에는 아미노산 하나당 적어도 한 개의 질소 원자가 존재하며, 또 단백질 안에는 대개 각기 다른 20종류의 아미노산만 있다. 단백질 사슬 내 아미노산의 순서에 따라 단백질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걀 흰자를 구성하는 오브알부민이라는 단백질 안 에는 늘 385개의 아미노산이 정해진 순서대로 사슬을 이룬다. 반면 스테이크 같은 음식에 들어 있는 전체 근섬유의 55퍼센트는 미오신 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미오신 속에는 약 2천 개의 아미노산이 독특한 패턴으로 들어 있다. 각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순서에 의해 나름대로 고유한 기능을 한다. 그리고 많은 아미노산 은 다른 아미노산들과 연결될 끈을 만들기 때문에 이 화학물질들의 사슬은 모두 자연스럽게 접혀 방울 형태를 만드는데, 그 모양도 아미노산의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 자연 상태의 단백질은 모두 이처 럼 방울 모양이다. 그러나 일단 단백질을 요리하면 모양이 달라진다. 단백질을 서서히 가열하면 열에너지가 방울처럼 부풀어 있는 분자들을 흔들기 시작하고, 결국 아미노산 사이의 모든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 이때 변형 단백질이 생겨난다. 공처럼 똘똘 뭉쳐 있던 모 양이 풀어지며 헝클어진 스파게티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다음 에는 어김없이 스파게티처럼 풀어진 그 분자들이 서로 들러붙는다. 이렇게 단백질 변형이 끝나면 단백질 덩어리의 전반적인 식감과 색 이 변하며, 이때 우리는 요리가 끝났고 소화하기 좋게 됐다고 생각 한다. 이 과정은 요리사들에게 더없이 중요하다. 자연 상태의 단백질이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변형되느냐는 단백질 내 아미노산들의 연 결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이 바로 각 단백질 유형의 특성이 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생선을 요리할 때 육류보다 열을 적게 가해 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어 속의 미오신 단백질은 암소 속의 미 오신 단백질과는 조금 다르다. 두 단백질이 연어와 암소 안에서 하 는 일은 같지만, 아미노산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비프스테이크의 미 오신 단백질은 섭씨 50도에서 변형되기 시작하고, 연어의 미오신 단 백질은 섭씨 40도에서 변형되기 시작한다.

- 모든 금속이 다른 금속들처럼 열을 잘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구리는 열전도율이 가장 높은 금속들 중 하나고, 다소 의외지만 스 테인리스강은 열전도율이 무척 낮다. 팬은 열의 원천이 팬 밑바닥을 골고루 가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열전도율이 매우 중요 하다. 특히 가스레인지는 팬을 원형으로 가열하므로 가운데 부분이 가열되지 않는다. 구리처럼 열전도율이 무척 높은 물질로 만든 팬 은 열이 빠르게 팬 밑바닥 전체로 분산되므로 골고루 가열된다. 그 러나 스테인리스강, 특히 얇은 강철로 된 팬은 골고루 가열되지 않 을 뿐 아니라, 심한 경우 군데군데가 유난히 뜨겁게 가열되므로 음 식이 타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팬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물질은 구 리 같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100퍼센트 순수한 구리는 거의 사 용되지 않는다. 우선 값이 비싸고, 쉽게 변색되며, 산과 접촉하면 녹 아내려 음식에 해독을 끼치므로 토마토나 레몬 같은 음식을 요리할 때는 쓸 수가 없다. 순수한 구리로 만들면 아주 좋은 주방용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달걀을 휘저을 때 쓰는 볼이다(53쪽 참조).
- 열전도율이 구리 다음으로 좋은 물질은 알루미늄이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는 알루미늄으로 된 팬이 많다. 그러나 알루미늄도 완전 한 해결책은 못 된다. 아주 가벼운 팬을 만들 수 있어 좋지만, 알루 미늄 역시 산이 함유된 음식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문 제는 몸에 해로운 게 아니라 음식이 입맛 떨어지는 회색으로 변질 된다는 것이다. 알루미늄은 한 가지 특별한 장점이 있어서 요리사들 이 좋아하는데, 그 장점이란 같은 무게의 구리에 비해 더 많은 열을 붙잡아두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비열 용량specific heat capacity(단위 질량의 물질의 온도를 단위 온도만큼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옮긴 이)'이라 한다. 비열 용량은 1도의 온도로 1킬로그램의 물질을 가열 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의 양이다. 알루미늄의 비열 용량은 구리의 3배 정도여서 보다 천천히 가열되고 보다 천천히 식는다. 그런 특성 때문에 프라이팬으로 아주 그만이다. 만약 고기 한 덩어리를 빨 리 요리하려 한다면 알루미늄 팬이 보다 천천히 식으므로 더 효과 적으로 고기를 구울 수 있고, 그 결과 맛있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아미노산과 환원당이 작용하여 갈색의 중합체인 멜라노이딘을 만드는 반응과 정옮긴이)의 산물이 탄생한다(114쪽 참조).
열전도율이 스테인리스강보다 조금 나은 것은 주철이다. 주철 팬이 있다면 잘 알겠지만, 이 팬의 문제점은 녹이 잘 슨다는 것이다. 팬을 닦은 후 적절히 말리지 않으면 녹이 생기므로, 이것을 깨끗이 씻어내지 않으면 다음에 요리할 음식을 망치게 된다.
- 마지막으로 스테인리스강은 열전도율이 가장 나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냄비나 프라이팬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물질이다. 스 테인리스강이 다른 어느 물질보다 편의성이 좋기 때문이다. 변색되 지 않고 취급할 때 특히 주의할 점도 없는 데다 인성도 훨씬 높아 사용 중에 흠집도 적게 난다. 또한 프라이팬으로 흔히 쓰이는 물질 중에 유일하게 자성이 있으므로, 자성 물질에만 사용할 수 있는 최 신 전기 레인지인 인덕션에 안성맞춤이다. 알루미늄 팬은 인덕션에 는 쓸 수 없다.
다행히도 재료과학이 발전한 덕에 요즘은 알루미늄이나 구리 의 열전도성과 강철의 내구성을 두루 원하는 요리사들을 만족시킬 프라이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많은 팬이 한 종류 이상의 금속으로 제작되고 있다. 그중 가장 단순한 것은 구리를 덧댄 프라이팬이 다. 제조업자들은 강철판 한 장에 구리판 한 장을 얹고, 그다음 다 시 강철판 또는 알루미늄판 한 장을 더 쌓는다. 그리고 구리판을 가 운데 두고 샌드위치처럼 쌓은 이 금속판들을 아주 뜨거운 롤러로 밀어 짓눌러 한 장이 되게 만든다. 이렇게 여러 금속판들로 만든 팬 들은 바깥쪽이 강철로 되어 있어 내구성이 강할 뿐 아니라 인덕션 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샌드위치 같은 프라이팬 가운데에 있는 구 리판은 열이 골고루 분산되도록 돕는다. 이런 프라이팬의 안쪽 표면 에는 또 한 층의 강철을 대거나 아니면 비열 용량을 높이기 위해 알 루미늄판을 댄다.
- 1938년 로이 플런킷Roy Plunkett이라는 미국인 화학자가 우연히 발명한 테플론 또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줄여서 PTFE)은 많 은 불소 원자를 추가해 화학반응을 정지시킨 기다란 탄소 분자다. 문제는 이 테플론처럼 잘 들러붙지 않는 물질을 어떻게 프라이팬에 붙이느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쓰는 방 법들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그 화학물질들은 촉감이 나빴고 독성 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코팅할 프라이팬 등에 먼저 모래를 분사 해 아주 거친 금속 표면을 만든다. 그다음 액체 상태인 테플론을 부 으면, 모래가 분사되어 만들어진 거친 표면 구석구석에 배어들게 된 다. 그렇게 해서 다시 평평해진 표면이 굳으면, 그 밑에 여러 금속판 을 합친 두툼한 바닥 원판을 갖다 붙일 수 있다. 테플론이 아주 미 세한 금속의 홈들을 파고들어 꽉 움켜쥐는 것이다. 일단 테플론을 이용해 코팅이 제대로 된다면, 이는 금속 표면에 형성된 불소 원자 들 덕분이다. 불소는 테플론 안의 탄소와 매우 강하게 결합하며, 일 단 그렇게 결합하고 나면 다른 것과는 결합하지 못한다. 그 결과 프라이팬 위의 음식이 바닥에 들러붙지 않게 된다.
테플론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 철의 특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먼저 주철 팬에 코팅하듯 기름 을 얇게 두른 후 아주 뜨거운(섭씨 260도) 오븐에 넣고 한 시간 정도 구우면 주철 팬에 음식이 들러붙지 않는다. 강한 열에 기름이 분해 되면서 두세 개짜리 조그만 탄소 원자 단위들로 나뉘게 되는데, 이 후 팬이 식으면 그 원자 단위들끼리 서로 결합하여 기다란 탄소 사 슬 분자들을 형성한다. 이 긴 탄소 사슬들이 테플론 역할을 하며 금속을 코팅하여 음식이 프라이팬 표면과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 하게 된다. 반응을 억제하는 불소코팅 정도는 아니지만, 긁혀도 흠 집이 잘 생기지 않고 다시 덧바르기도 쉽게 되는 것이다.

- 자, 이제 허릿살 스테이크 요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중탕기 온도를 섭씨 57도로 맞춘 뒤 스테이크를 봉지 안에 넣고 진공 밀봉 해 수조의 물 안에 넣는다. 이제 약 한 시간 동안 서서히 스테이크 의 온도가 수조 내 물의 온도인 섭씨 57도까지 올라간다. 이 정도 온도가 되면, 스테이크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 분자들이 모 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변형된다. 스테이크 덩어리를 이루는 미오신 단백질도 변형되므로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고기를 붉은색으로 만 드는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 역시 변형되기 시작하므로 스테이크 는 선홍색이 아닌 분홍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액틴 단백질은 아직 자연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데, 이는 좋은 현상이다. 이 단백질이 변형되면 고기가 질겨지고 육즙 맛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기 전체는 바깥쪽부터 안쪽까지 정확히 섭씨 57도를 유지 해 결국 미디엄레어medium-rare 스테이크가 된다. 레어rare 스테이 크를 먹고 싶다면 미오글로빈 단백질이 변형되기 시작하는 온도보다 낮은 섭씨 40도로 맞추면 된다. 또한 미디엄medium 스테이크를 원한다면 섭씨 60도로 맞추면 된다. 그러면 미오글로빈 단백질이 완 전히 변형될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혹 스테이크를 망치고 싶 다면 섭씨 74도에 맞추면 된다. 그럼 액틴 단백질을 비롯한 모든 단 백질이 변형되어 웰던well done 스테이크가 될 것이다.

- 우리가 달걀 흰자를 휘저을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휘저으면 알부민 속의 단백질들이 변형되어 보다 효과적으로 공기 방울들에 들러붙게 되기 때문이다. 거품기로 달걀 흰자를 휘저으면 공기 방울 들이 무척 많이 생긴다. 거품기의 각 가닥(옛날 같으면 잔 나뭇가지)이 액 체를 휘젓고 지나가면 공기가 끌려 내려오면서 거품들이 만들어진 다. 만일 거품기를 물에 넣고 휘저으면 거품들이 바로바로 생겨났 다가 터지겠지만, 보다 점성이 있는 액체에 넣고 휘저으면 거품들이 한동안 터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품기로 휘저은 달걀 속 의 거품들이 몇 시간이고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뭔가 다른 일이 일 어났기 때문이다. 거품기로 달걀 흰자를 휘저으면, 거품기의 각 가닥 의 물리적 움직임 때문에 서로 꼬여 있던 달걀 단백질들이 와해된 다(열에 의해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41쪽 참조). 여기서 단백질 가닥들 내의 미세한 움직임인 소수성hydrophobic(물과 혼합되지 않으려 하는 속성 -옮긴이)'이 부각된다. 외부로 노출된 물을 싫어하는 분자들이 물이 포함되지 않은 공간인 공기 방울로 몰려가고, 모든 조그만 공기 방울들은 와해된, 즉 변형된 달걀 단백질들로 둘러싸이게 된다. 이 단 백질들은 곧 서로 결합하여 모든 공기 방울들을 중심으로 안정된 단백질 망을 형성한다.
이 시점의 달걀 혼합물을 전문 요리사는 소프트 피크soft peak(부드러운 봉우리)' 상태라고 부른다. 만약 이때 믹싱볼mixing bowl (음식 재료를 섞을 때 쓰는 깊은 그릇-옮긴이)에서 거품기를 들어 올리면 거 품들이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루룩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 나 거품기로 계속 더 휘저으면 달걀 거품들은 더 굳어져 스티프 피 크stiff peak (뻣뻣한 봉우리)' 상태가 된다. 이때는 달걀 혼합물이 담긴 믹 싱 볼을 머리 위에서 거꾸로 들어도 쏟아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여기서 계속 달걀을 휘저어 단백질들 속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보내 주면 거품들이 더 작아지고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난다. 휘저은 달걀이 더 하얘지고 거품들 사이의 액체량이 줄 어드는 것이다. 이후 거품들 주변에 형성된 변형된 단백질들이 서로 부딪치며 뒤엉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들러붙기 시 작하면서 뒤섞인 달걀이 더 굳어진다. 또한 단백질들이 믹싱 볼에도 들러붙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때 믹싱 볼을 뒤집어도 쏟아지지 않 는 것이다. 스티프 피크' 단계는 오븐 안에서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 어야 하는 머랭 같은 것을 구울 때 알맞다.
그러나 달걀을 계속 휘저으면 모든 것이 잘못돼버린다. 이 상태를 요리 업계에서는 '드라이 피크dry peak'라고 한다. 거품 덩어리들 은 거의 부서질 정도로 건조해지고, 믹싱볼 바닥에는 액체가 생기 기 시작한다. 이때의 문제는 모든 단백질 분자들이 서로 너무 세게 끌어당겨, 달걀 혼합물 거품들 사이에서 쥐어짜듯 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 거품 속의 공기 방울들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거품이 부분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 구리 믹싱 볼을 만들 구리가 귀한 상황이라면 과학이 구원투수 역할을 해준다. 달걀 흰자에 구리 대신 산을 조금 추가해도 된다. 레몬즙을 짜 넣어도 효과가 있으며, 맛이 변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주석영cream of tartar (흔히 쓰이는 제빵 재료로, 정확한 이름은 포타슘 2,3,4-3수산 기-4-옥소부타노아테)처럼 분말 형태로 된 산을 조금 추가하라. 이 산은 유황 결합을 저지하므로 달걀 휘젓는 게 더 쉬워져 구리를 추가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맛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설탕을 추가해도 거품을 안정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설탕이 달걀 혼합물의 끈적거림, 즉 점도를 높여 주기 때문이다. 점도가 높아진 액체는 거품들에 보다 쉽게 들러붙 으므로 단백질 망이 형성될 시간이 더 많아지며, 그래서 달걀을 한 결 쉽게 휘저을 수 있다.

- 물론 '대포'를 쓰지는 않지만, 다른 여러 종류의 뻥튀기 제품들에도 동일한 과학이 적용된다. 사람들이 아침 식사 로 즐겨 먹는 튀긴 쌀은 약간 조리된 쌀을 온도가 섭씨 250도 이상 (가끔은 300도 가까이 되는 뜨거운 오븐에 넣는다. 온도가 급격히 변화 하면 쌀 안의 수분이 끓고 젤라틴화된 녹말이 뻥튀기가 된다. 팝콘 도 마찬가지다. 옥수수 알들은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어 그 자 체가 자가 조정되는 압력 용기 역할을 한다는 장점이 있다. 옥수수 알맹이를 가열하면 그 안쪽의 압력이 높아져 결국 껍질이 갈라지면서 압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렇게 뻥 튀겨진 옥수수 알이 전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팝콘이 된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사 용하면 밀과 쌀, 옥수수뿐 아니라 보리, 귀리, 조, 수수 등의 어떤 곡 물도 튀길 수 있다. 심지어 곡물이 아닌 퀴노아도 튀길 수 있다.
젤라틴화된 녹말을 증기로 튀기는 과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곡물을 반드시 통째로 튀길 필요도 없다. 약간 촉촉한 상태의 빵 은 옥수수 녹말 혼합물을 젤라틴화될 때까지 가열한 후 압력을 가 하면 노즐을 통해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뜨거운 녹말이 노즐을 통 해 밖으로 나가면 압력이 떨어지면서 팽창하여 팝콘처럼 된다. 여기 에 분말 치즈를 입힌 것이 바로 영국의 워시츠Wotsits, 미국의 치토 스Cheetos, 인도의 쿠르크레Kurkure,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닉 낙스Nik Naks, 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트위스티Twisty 과자다.

- 음식을 걸쭉하게 만드는 성분 중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가장 특이할 것이다. 알지네이트alginate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 조류algee, 정확히 말하면 켈프 같은 갈조류에서 나오는 성 분이다. 카라기난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제조 방법은 갈조류를 물 에 넣고 끓인 뒤 끄집어내 말려 하얀 분말로 만드는 것이다. 스파게 티 면처럼 가늘고 긴 이 분자의 화학구조는 아주 낯익을 것이다. 육 각형의 기다란 당분 분자들의 사슬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 론 이 알지네이트 분자의 조직 방식과 그 육각형 모양에 들러붙는 원자들은 다르다. 이 경우 우리는 에스테르기라고 알려진 화합물을 추가하는데, 그러면 물속에 들어갈 경우 분자가 음전하를 띠게 된 다. 알지네이트는 카라기난과 아밀로오스 같은 겔을 형성하는데, 희 석된 혼합물에 칼슘을 추가하면 숨겨져 있던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만일 물속에 칼슘 혼합물을 넣으면, 각 원자에는 2개의 양전하 가 생긴다. 그런데 알지네이트는 음전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칼슘 이 이긴 사슬의 분자들에 들러붙는다. 그러나 칼슘은 1개가 아닌 2개의 양전하를 갖고 있어 2개의 알지네이트 분자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분자들이 상호 결합하여 겔 상태가 된다. 그래서 희석 된 차가운 알지네이트 용액을 겔 상태로 만들려면 칼슘만 추가하면 된다.
분자요리 미식가 또는 과학을 좋아하는 요리사들은 알지네이 트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특이한 일들을 벌인다. 예를 들어 과일 향 이 나면서 시큼하게 맛있는 엷은 자두 퓌레 purée(채소나 곡류 등을 삶아 걸쭉하게 만든 것-옮긴이)를 만든 후, 거기에 분말 형태의 알지네이트를 조금 섞어보자. 이제 희석한 염화칼슘 한 그릇을 준비한다. 그리고 주사기를 이용해 자두 소스 몇 방울을 그 칼슘 혼합물에 떨어뜨린 다. 알지네이트가 섞인 자두 소스 방울이 칼슘 용액 속에 들어가 가 라앉기 시작하면, 알지네이트가 바로 액체 상태에서 겔로 변하기 시 작한다. 그러면 그 조그만 자두 방울 겉에 젤리 같은 층이 얇게 형 성된다. 이제 알후추만 한 그 자두 방울을 칼슘 용액에서 꺼내 깨끗 한 물에 씻으면, 살짝 자두 맛이 나는 캐비아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그 가짜 캐비아를 한입 물면, 조그만 방울이 입속에서 톡 터지며 자 두 맛이 날 것이다. 그간 실험 정신이 뛰어난 요리사들은 이걸 이용 해 온갖 특이한 음식들을 만들어왔다. 샴페인 잔 안에 떨어뜨린 오 렌지 리큐어 liquer(과일 향이 나는 달고 독한 술-옮긴이) 캐비아는 어떨까? 반드시 아주 작은 방울일 필요는 없다. 알지네이트를 이용해 씹으면 액체 상태로 변하는 기다란 면을 만들 수도 있고, 잘라보면 안에서 소스가 쏟아져 나오는 커다란 방울들을 만들 수도 있다.
- 가공식품의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로 식품의 질감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유통 종사자들의 바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 질감을 최대한 살리느냐가 관건이다. 그 균형을 제대로 잡으려면 적절한 때 또는 적절한 온도에서 식품 을 더 걸쭉하게 만들거나 얇게 만들어주는 아밀로오스나 메틸셀룰 로오스, 카라기난 같은 성분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부 예외 는 있지만, 이런 성분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같은 화학작용, 그러니 까긴 육각형 당분의 긴 사슬들이 뒤섞여 겔 상태가 되는 화학작용 으로 만들어진다.

- 밀의 종류가 다르면 그 씨앗에서 나오는 글루텐의 양도 달라진다. 그러나 글루텐 함량이 많은 밀은 무척 추운 기간을 거치며 단백 질 함량을 최대한 높여야 하므로, 영국에서는 인위적으로 그런 기 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과정을 '춘화 처리vernalization'라고 하는 데, 그 용어를 처음 만들고 직접 시연해 보인 사람은 살아생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러시아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Trofim Lysenko다. 우생학에 관한 그의 말년의 노력들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식물들에 대한 그의 초창기 발상들은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여러 식물은 춘화 처리가 필요한데, 특히 춘화 처리를 해야 하는 밀 변종을 '가을밀(가을에 씨를 뿌려 이듬해 여름에 추수하는 밀옮긴이)'이라 한다. 북반구에서는 대개 밀 씨앗을 9월부터 11월 사이에 뿌린다. 그러면 그 씨앗에서 싹이 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밀로 자란다. 가을밀을 재배하려면 섭씨 0도에서 5도 사이를 오가 는 날씨가 최소 30일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말이 보다 추운 날씨에 눈 덮인 대지 밑에서 행복하게 지낸 뒤 봄이 오면 다시 자라기 시 작한다. 춘화 처리 과정이 없으면 밀 수확량이 줄어들 뿐 아니라 밀 이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글루텐도 제대로 함유하지 못하게 되므 로 빵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는다.
춘화 처리가 제대로 된 가을밀은 경질 밀hard wheat (단백질 함량 이 높은 밀옮긴이)을 생산해내며, 그 밀은 강력분strong flour(경질 밀에서 얻는 밀로 빵을 만드는 데 쓰임-옮긴이)으로 쓰인다. 반대로 영국에서 재배 되는 밀은 대부분 연질 밀soft wheat(단백질 함량이 낮은 밀옮긴이)이어서 박력분soft flour (연질 밀에서 얻는 밀로 주로 고급 과자나 튀김을 만드는 데 쓰임-옮 긴이)으로만 쓰인다. 그래서 영국은 빵을 만들기 위해 대개 밀을 수 입하는데, 특히 겨울이 춥고 경질 밀이 재배되는 캐나다에서 많이 수입한다.

- 고체가 액화되지 않고 바로 증기로 변하는 현상을 승화라고 하는데, 대기압의 1천분의 2 상태에서는 섭씨 영하 20도에서 이 현상이 나타난다.
냉동 건조 커피는 바로 이 상태에서 제조된다. 커피의 다양한 맛은 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분자들의 복잡한 혼합에서 나 온다. 분무 건조된 인스턴트 커피의 맛이 막 끓여낸 신선한 커피의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열이 복잡한 커피 향 의 조합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 커피의 경우 분말 건조는 잊고 냉동 건조를 고려해보라. 먼저 향이 아주 강한 커피를 볶아내 고 이를 얕은 쟁반에 부은 뒤 산업용 냉동고에서 섭씨 영하 25도 로 냉동시킨다. 이제 그것을 아주 작은 조각들로 나눈 다음 진공실안에 넣는다. 그다음 진공실의 압력이 대기압의 1천분의 2(200파스 칼 또는 0.03프사이)가 될 때까지 공기를 빼낸다. 마지막으로, 냉동된 커 피를 서서히 섭씨 영하 20도까지 올라가게 놔둔다. 이렇게 낮은 압 력에서 이 온도가 되면, 냉동된 커피 속에 들어 있는 수분이 승화되 기 시작하여 수증기로 변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수분 속 에 녹아 있던 냉동 커피 맛 덩어리들은 곧장 건조된 커피 맛 덩어리 들로 변하고, 온도는 절대 섭씨 영하 20도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커 피 속에 들어 있는 모든 맛 분자들은 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냉 동 건조된 알갱이들 속에 그대로 남는다. 이 상태를 중단시킬 만한 일은 전혀 없다. 그래서 커피 제조업체들은 대신 커피 맛 분자들을 가두어두었다가 그걸 다시 액체 상태로 되돌린 뒤 냉동 건조된 인 스턴트 커피 알갱이들 위에 뿌린다. 그러면 실제 커피와 맛이 비슷 한 인스턴트 커피가 탄생한다.

- 식품 속에 유액이 들어간 경우를 찾아보려 한다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크림은 액체 속에 지방이 떠 있는 대표적인 유액이다. 이 경우 양친매성 유화제는 카세인이라 불 리는 우유 단백질이다. 카세인은 다른 모든 단백질들과 마찬가지로 기다란 사슬 분자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단백질들과 는 달리, 카세인은 친수성 극성 분자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물 을 싫어하는 소수성 분자들도 갖고 있어서 아주 좋은 유화제가 된 다. 버터 역시 카세인을 유화제로 갖고 있는 유액이지만, 특이하게도 거꾸로 되어 있다. 즉, 버터 속의 거품들이 물을 함유하고 있고, 그 물 주변을 지방이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유액과 유화제와 관련된 과학은 식품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무기다. 유화제는 마요네즈뿐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식품의 영양성분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방과 물로 이루 어진 유액을 만들어내면 몇 가지 괜찮은 요리들을 할 수 있다. 첫째, 음식을 걸쭉하게 만드는 물질(69쪽 참조)을 첨가하거나 이미 있는 것 보다 많은 지방을 따로 첨가하지 않고도 음식의 질감을 바꿀 수 있다. 묽은 질감, 매끄러운 질감, 아주 부드러운 질감 등등의 이른바 식 감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유액은 맛있는 음식을 기름을 덜 쓰고도 윤기가 더 자르르 흐르게 할 수도 있어, 저지방 제품을 만드는 데 더 없이 좋은 방법으로 여겨진다. 케이크나 비스킷처럼 지방 함유량이 높은 식품들에 유화제를 추가하면 그 식품으로부터 기름이 떨어져 나오는 걸 막는 데 도움이 된다(특히 실온에서 매장 선반 위 같은 곳에 보관할 때), 가공치즈야말로 유화제의 효과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일 것 이다.
- 유화제를 통한 식품 가공은 식품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용한 식품 가공법이다. 유용하다는 것이 다이어트 식품이기 때문이든, 정해진 녹는점 때문이든, 아니면 여기저기서 지 방이 새어 나오지 않기 때문이든, 어쨌든 유화제 덕에 식품 전문가 들은 소비자의 수요에 맞춘 놀라운 제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런 말은 논란의 소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공 치즈 같은 것들이 언론 의 혹평을 받는 이유는 맛이나 사용된 성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것들이 우리의 예상대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 약 당신이 전통적인 치즈 중심의 레시피대로 요리해서 가공 치즈를 대체하려 하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유명 브랜드의 가공 치즈는 요 리할 때 대개 한 가지 일에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사각형 가공치즈는 버거 위에 올리는 게 가장 좋다.

- 사카린은 그 분자가 우리 혀의 당질 수용기들과 만나면서 둘로 갈라지기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못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갈라진 두 분자 중 하나가 유쾌하지 못한 맛 을 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개 사카린을 시클라 메이트라는 또 다른 감미료와 섞는다. 그러나 시클라메이트 역시 특 별히 더 나은 설탕 맛이 나진 않으며, 그저 사카린의 쓴맛을 가려줄 뿐이다. 여담이지만, 시클라메이트는 1937년 마이클 스베다Michael Sveda가 우연히 자신의 연구실 작업대에 엎질러진 화학물질들에 떨 어진 담배를 건져 피웠다가 발견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의 이 발견 덕에 또다시 뜻하지 않은 즐거움과 건강과 안전을 누리게 되었다.

- 1912년 루이 마이야르가 '마이야르 반응의 기본적인 화학반응을 처음 발표했으나, 미국 일리노이주에 살았던 존 호즈 John Hodge 가 이 반응의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밝힌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인 1953년의 일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온도가 약 섭씨 140도에 도달할 때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온도에서는 설탕 분자가 단백질을 이루는 요소들 중 하나인 아미노산과 반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설탕 분 자든 아미노산이든 자유롭게 떠다니는 분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 음식에 들어 있는 설탕 분자들은 흔히 서로 결합하여 둘씩 짝 을 이루거나 긴 사슬 구조를 만든다. 파스타와 감자 또는 쌀에 들 어 있는 녹말은 전부 서로 연결된 아주 긴 사슬 형태의 글루코오스 로 이루어져 있으나, '테이블 슈거table sugar'라고도 불리는 수크로 스sucrose(자당)는 두 개의 당과 글루코오스, 프룩토오스로 이루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단백질도 수백 개의 아미노산이 서로 연결된 아 주 긴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마이야르 반응은 그 긴 사슬 끝에 있 는 당이 사슬 끝에 있는 아미노산과 만나 반응하며 시작된다. 당과 아미노산이 만나 새로운 화학물질이 생겨나며, 그 화학물질이 자연 스럽게 재정렬되어 이른바 '아마도리 혼합물을 형성한다. 바로 이 부 분 때문에 요리가 까다로워진다.
초기 반응에 관여한 아미노산과 당의 특성에 따라 다음에 일 어날 일이 달라진다. 마이야르 반응에 관여할 수 있는 당은 적어도 6가지이며, 아미노산은 20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주변의 산도와 온 도에 따라 반응도 달라진다.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는 일반적인 혼 합물들은 모두 5~6개의 원자로 구성된 고리 모양의 분자들로 되어 있고, 이 분자들은 주로 탄소와 약간의 산소, 질소 또는 유황으로 이 루어져 있다. 이들의 이름은 피라진, 퓨라논, 옥사졸, 티오펜 등으로 특이하며, 모두가 흥미로운 맛을 낸다. 마이야르 반응과 관련된 분 자들이 견과 맛, 고기 맛, 로스트비프 맛, 캐러멜 맛 등을 내는 것이 다. 또 이런 분자들은 음식을 요리하면 갈색이 되게 만든다.
- 단백질 덩어리라고 알고 있는 고기에 대체 어떻게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것이 일어날까? 단맛을 내는 당은 대체 어디에서 올까? 동물 몸속의 에너지는 핏속에서 글루코오스 형태로 이동하며, 글리 코겐이라고 알려진 기다란 사슬 형태로 근육 속에 저장된다. 그 결 과 스테이크 고기에는 글루코오스와 글리코겐 형태의 당이 많이 들 어 있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맛이 더 좋아지는 건 고기뿐이 아니다. 밀 가루 음식들도 오븐 등에서 구워질 때 마이야르 반응을 거친다. 노 릇노릇하게 구워진 빵이나 베이글의 겉면은 마이야르 반응으로 생 기는데, 이 덕분에 고소한 맛이 풍부해진다. 채소 역시 적절한 온도 로 오븐에 굽거나 튀기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맛있어진다. 그래서 양파나 로스트 파스닙을 잘 구우면 달콤하고 고소한 캐러멜 맛이 난다.
마이야르 반응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사실 중 하나는 이 반응 이 섭씨 100도 이상에서만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섭씨 120 도에서도 약간의 반응이 나타나지만, 마이야르 반응이 제대로 일어 나려면 섭씨 140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음식에서 김이 나거나 끓을 정도가 되어야 이 풍부한 마이야르 향이 나는 것이다. 예를 들 어 스튜를 만들면서 양파와 고기 등 필요한 모든 재료를 물과 함께 그냥 냄비 속에 넣으면 별 맛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요리사들이 스 튜를 만들 때 먼저 고기와 양파를 프라이팬에 넣고 고온에서 노릇 노릇하게 익히라고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온도가 섭씨 100도를 넘지 않는 상태에서는 물만 가지고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인 향을 얻을 수가 없다.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맛을 내려면, 특히 지방이 풍 부한 음식을 요리할 때는 보다 높은 온도에서 요리해야 한다.
- 지방은 우리의 미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방 그 자체에는 맛과 무관하나 마이야르 반응(112쪽 참조) 같은 것들로 만들 어져 지방 속에 녹아 있는 맛 분자들이 영향을 준다. 우리가 음식을 입안에서 씹어 삼킨 뒤에도 지방은 우리 입안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맛을 느끼게 될 가능성 또한 높다. 특히 그 음식이 베이컨처럼 그을려 만든 훈제 요리라면 더욱 그렇다. 연기 맛 분자들 이 지방 속에 녹아 있다가 입안에 지속적인 연기 냄새를 남기는 것 이다. 그러나 지방이 음식 맛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이른바 입맛 mouth feel에 나타난다. 지방이 들어 있는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실 크나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주어 씹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닭 가슴살처럼 지방이 없는 고기는 씹기가 힘들고 입안에서 퍽퍽해서 입맛이 별로일 수 있다. 그러나 닭다리처럼 지방이 보다 많은 고기 는 닭 가슴살처럼 퍽퍽한 입맛이 나지 않는다.
지방 그 자체는 맛이 있지 않지만, 맛의 가용성을 높여 입맛을 좋게 해준다. 입맛을 좋게 하는 데 많은 지방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러니 텔레비전에서 요리사들이 음식에 버터를 듬뿍듬뿍 바를 때 굳이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 화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초콜릿에 푹 빠지는 이유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라는 다소 헷갈리는 이름의 화합물 때문이다. 그 헷갈림은 이 화합물 안에 브로민은 전혀 없고 탄소와 질소, 산 소, 수소만 있다는 데서 온다. 테오브로민이란 이름은 코코아 식물 을 가리키는 라틴어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에서 왔는 데, 테오브로마란 이름은 테오theo(신)와 브로마broma(음식)라는 그리 스어의 합성어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초콜릿은 '신들의 음식이다. 약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테오브로민은 카페인 비슷한 작용을 해서 심장 박동 수를 높일 뿐 아니라 혈관들을 이완시켜 혈압도 떨 어뜨린다. 또한 카페인처럼 배뇨량이 많아지게 하며, 잠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초콜릿을 과다 섭취해 몸속에 테오브로민이 너무 많아지면 어느 시점에 속이 메스꺼워져 구토를 하게 된다. 물론 인간은 테오브로민 분해 능력이 좋으므로 별일 아 닐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들은 테오브로민 분해 능력이 없다. 예를 들어 개가 테오브로민에 중독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 성분은 몇 시간이고 개들의 혈관 속에 머물기 때문에, 몸무게 1킬로 그램당 단 60그램의 초콜릿만 먹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흥미로 운 사실은 테오브로민은 고양이들에게도 위험하지만, 고양이들은 중독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개와 달리 단 맛을 모르므로 초콜릿을 먹을 만한 동기가 별로 없다. 사람이 테오 브로민이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다크 초콜릿을 먹을 경우에는, 그 물질에 중독을 일으킬 만한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 그래서 우리는 다른 두 '용의자'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 용의자는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인데, 이 물질은 우리 몸이 세로토닌이라는 다른 화학물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세로토닌은 우리 뇌에서 분비되며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초콜릿의 중 독성을 설명해줄 좋은 용의자 같지 않은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최 신 연구들에 따르면 뇌 속에서 트립토판이 증가하면 세로토닌도 증 가하지만, 초콜릿을 먹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고 한 다. 트립토판은 특수한 아미노산 운반체에 의해 뇌로 보내진다. 문제는 초콜릿을 먹으면 온갖 종류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을 섭취하게 되고, 그 아미노산들이 아미노산 운반체의 기능을 저지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초콜릿 때문에 뇌 속의 트립토판 수치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이제 초콜릿 중독을 일으키는 나머지 용의자는 많은 식물들 속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화학물질인 페네틸아민뿐이다. 이 물질 은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항균 물질로 알려져 있다. 페네틸아민은 향정신성 물질이어서, 제약 업계에서는 환각제와 항우울제, 흥분제, 항불안제 그리고 다양한 충혈완화제 등 온갖 화합물을 제조하는 데 약방의 감초처럼 쓰고 있다. 그런데 역시 우리 인간의 몸이 초콜릿 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들의 작용을 저지한다. 그래서 페네틸아민과 거기서 파생되는 물질들은 핏속에 직접 주입될 때에나 효과를 발휘한다. 입으로 먹을 경우에는 장 안에서 모두 분해되기 때문에, 초콜릿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대부분 뇌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초콜릿에 중독될까? 최근 연구들을 보면, 우리 인간은 초콜릿에 탐닉한다. 이는 단순한 탐욕이 아니다. 초콜 릿에 분명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어대 든, 초콜릿에는 분명 약물학적인 효과는 없다. 어찌 보면 적어도 사 람들이 설탕과 지방에 탐닉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현상이다. 최근 에는 초콜릿에 쾌락주의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의 매력이 있다는 견 해도 제기되었다. 우리는 설탕과 지방의 느낌에 탐닉하며, 그래서 그 냄새를 맡거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초콜릿의 유혹 앞에서 전전긍긍하는데, 이는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 커피 원두를 한 줌 쥐어 빈 프라이팬에 넣고 볶아보라. 원두를 너무 볶아선 안 되며, 적절한 온도를 가하려면 섬세한 과학이 필요 하다. 원두가 가열돼 섭씨 100도에 도달하면 남아 있던 수분이 증 발하며 원두가 조금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수증기로 가득 찬 조그 만 구멍들이 생기며 원두의 질감이 푸석푸석해진다. 그러다 온도가 섭씨 140도에 이르면, 그 유명한 마이야르 반응(112쪽 참조)이 일어난 다. 초록색 원두들이 갈색으로 변하며 맛 분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다. 열을 더 가해 섭씨 160도가 되면 마이야르 반응으로 생겨난 열 이 스스로 유지되며 온도가 거의 섭씨 200도까지 급등한다. 이때 또 다른 기체인 이산화탄소가 생겨나, 푸석푸석해진 원두의 조그만 구멍들에서 수증기를 내몰고 대신 들어가 자리 잡는다.
원두가 막 밝은 갈색을 띨 때 계속되는 화학작용으로 많은 산 화합물들이 만들어지므로 이때 원두에서는 시큼털털한 맛이 난 다. 로스팅을 계속하면 원두는 점점 짙어져 보통 갈색이 되고 산들 이 분해되면서 신맛이 줄어든다. 바로 이 무렵에 약간의 쓴맛과 함께 커피 특유의 향을 내는 맛 분자들이 형성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이때 더 짙은 색으로 변할 때까지 원두를 로스팅하면 점점 더 씁쓸해지며 커피 특유의 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신맛이 나는 산 성 커피가 너무 로스팅된 커피로 변하는 화학반응은 섭씨 190도에 서 220도로 온도가 단 30도 오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그야말로 단 몇 초 사이에 커피 맛이 확 변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커피 로스팅 은 집에서 하기가 쉽지 않고, 프라이팬보다 세밀한 온도 조절이 가 능한 장비를 갖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 커피 로스팅 과정의 특징들 중 하나는 원두 안에 이산화탄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원두 안에 있는 수분과 산소를 내몰기 때문에, 일단 로스팅이 끝난 원두들은 굵게 간 원두들(며칠) 에 비해 실온에서 비교적 오랫동안(2주 정도) 상하지 않은 상태로 보 관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 커피 위에 특유의 크레마 거품이 생기는 현상도 원두 안에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 때문에 나타난다. 굵게 간 에스프레소 커피 사이로 고압수를 흘려보내면, 이산화탄소 가스가 빠져나가며 조그만 거품들이 생기고, 그 거품들이 굵게 간 커피에 서 흘러나온 기름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 아데노신은 우리의 몸 안에서 신경전달물질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한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쓰 이는 신경 시스템의 일부로 작동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신경세 포를 따라 움직이는 어떤 전기신호가 신경세포의 끝에 도달하면 신 경세포 끝에서 아데노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그러면 이아 데노신은 이웃한 신경세포 끝에 있는 특별한 수용기에 들러붙어, 이 웃한 신경세포 안에서 새로운 전기신호를 발하게 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우리의 뇌 안에 아데노신이 별 로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신경세포들 안에서 아데노신이 만들 어져 축적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데노신이 신경전달물질로 방출되면, 그것이 우리 뇌에 지치고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아데노신은 뇌 이외의 다른 부분에서 심장 박동수를 떨어뜨리며 혈관을 팽 창시켜 혈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아데노신은 신체 리 듬을 저하시키고 나른하게 만드는 화학물질이다.
그런데 매우 특이하게도 카페인은 인체 내에서 아데노신 흉내 를 내 신경계의 모든 수용체와 결합하면서도, 결정적으로 아데노신 과는 달리 수용체와 결합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카페인 이 신경세포와 결합되어도 신경세포 안에서 어떤 새로운 전기신호 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커피를 많이 마시면 카페인이 모든 신경체에 스며들어 아데노신의 나른한 메시지가 차단된다. 카 페인을 섭취하면 잠이 오지 않고 정신이 말짱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카페인은 아데노신이 심장 박동수를 떨어뜨리고 혈 압을 낮추는 걸 막아주므로 카페인을 섭취하면 에너지가 넘치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카페인은 각성제 비슷한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체내 시스템의 작동을 막는다. 그 결과 도파민이 나 아드레날린 같은 체내 천연 각성제들이 작동하면서 더 활기차고 더 말짱해진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셔 카페인을 섭취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카페인에 푹 빠져드는 것일까?
- 카페인 자체는 각성제가 아니기 때문에, 코카인이나 암페타민 같은 각성제처럼 중독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몸이 너무 피곤해 침대에 눕 고 싶을 때 카페인 덕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기쁨을 누릴 수는 있다. 이처럼 우리는 커피나 카페인이 든 식품을 섭취해 긍정적인 기분을 맛볼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카페인에 대한 심리학적 갈망이 시작된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면 신체적인 변화들도 몇 가지 일어난다. 우 선, 하루에 단 한 잔만 마시더라도 몸에서 더 많은 아데노신 수용체 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수용체가 많아지면 그것들을 억 제하기 위해 더 많은 카페인이 필요해지며, 그래서 한 잔의 커피가 줄 수 있는 활기도 줄어들게 된다. 점점 더 카페인에 익숙해지면서, 기운을 북돋아주는 카페인의 효과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매일 마시던 커피를 끊을 경우, 너무 많아진 체내의 아 데노신 수용체들을 제지할 것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 잠 을 유발하는 아데노신의 효과에 더 민감해져 피로감이 더 커지게 된다. 게다가 아데노신의 활동이 과다해지면서 금단증세들까지 생 긴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겪는 금단증세는 두통이다. 과도한 아데 노신 수용체들이 카페인의 제지를 받지 않게 되므로 혈관이 이완되 며 혈액의 흐름이 느려지고, 그 결과 혈액을 둘러싼 세포 조직이 조 금 늘어난다. 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약간 늘어난 그 세포 조직 때문에 두통을 느끼게 된다. 물론 다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아데노 신 수용체들의 활동이 제지되면서 혈관이 수축되고, 늘어났던 세포 조직이 줄어들면서 두통도 사라진다.

- 종합해서 이야기하면 우리의 몸 안팎에 살고 있는 모든 세균을 미생물 무리microbiota라고 한다. 그럼 이 미생물 무리는 어떤 일 을 할까? 이들이 우리 몸에 편승한 히치하이커 같은 존재일 뿐이라 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미생물 무리의 대부분은 장 속에서 산다. 소장과 위는 많은 세균이 번성하기에는 워낙 환경 이 열악하기 때문에, 대개 대장 속에 몰려 산다. 우리 장 속의 세균 들은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대장 속에는 식물 섬유와 복 합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세균들이 산다. 이 세균 들이 없다면 인간은 식물 섬유와 복합 탄수화물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균들은 섬유질을 분해하여 이른바 '짧은 사슬 지방산 short-chain fatty acid, SCFA'으로 변화시킨다. 그럼 이제 우리 몸은 그 지방산을 흡수할 수 있게 되므로, 에너지를 얻고 칼슘과 마그네슘, 철분 같은 필수 영양소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음식을 소화 할 때 이 같은 세균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 결과가 곧 나타난 다. 예를 들어 항생제 치료를 받을 때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이 항생제 관련 설사다. 
- 미국 세인트루이스주의 연구원들은 그런 다음 무균 쥐들 을 다른 일반 쥐들의 장내 미생물 무리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여기 서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대변 이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까 일반 쥐들의 장에 들어 있는 똥을 실험실 쥐들의 장 안에 넣었다 는 것이다. 그런데 정상 체중이 아닌 쥐들의 장내 미생물 무리를 옮겨 넣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 흥미로웠다. 비만한 쥐로부터 무균 쥐 로 미생물 무리를 옮겨 넣자 무균 쥐 역시 비만해졌다. 마찬가지로, 체중 미달인 쥐로부터 옮겨 넣은 경우 무균 쥐 역시 체중 미달이 되 었다. 장내 세균에는 분명 무균 쥐의 신진대사 자체를 변화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내 기 위한 연구가 이제 막 시작된 상태이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한 연구 팀의 연구 결과는 그게 다 영양가 가 많은 짧은 사슬 지방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쥐의 장내 세균을 가지고 더 많은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들어냈는 데, 그러자 쥐의 뇌 속 신호 발신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면서 그렐린 이라는 공복 호르몬을 분비했다. 그렐린은 대개 위가 비었을 때 혈류 속으로 분비되어 공복감을 높인다. 따라서 쥐의 장내 세균들이 짧은 사슬 지방산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면 쥐들은 공복감을 느끼 고 더 많이 먹어 살이 찐다. 이보다 훨씬 놀라운 실험 결과는 2016 년 아일랜드 코크와 미국 휴스턴의 과학자들이 한 두 실험에서 나 왔다.
아일랜드 과학자들은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장내 세균 을 빼내 무균 쥐들의 장에 이식하면 쥐들도 우울증에 걸린다는 사 실을 발견했다. 쥐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 르지만, 실험실 상황에서 쥐의 정신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들 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울증에 걸린 인간의 장내 세균이 쥐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미국 휴스턴의 과학자들 은 어린 쥐들의 몸에 비만한 쥐의 장내 세균을 넣어 반사회적인 쥐 로 만들었고, 이후 어린 쥐들에게 세균 보충제를 먹여 사회적인 쥐 로 만들었다. 적어도 쥐의 경우 장내 세균이 부분적으로 체중에 영 향을 미칠 뿐 아니라 기분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 우리가 영양소들과 관련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 중 하나는 고기는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갖고 있어서 완벽한 단백질 공급원이 며, 식물은 그렇지 못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식물 단백질원 역시 완벽해서 모든 종류 의 필수 아미노산을 갖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좋은 단백질 공급 원으로 여겨지는 콩류, 견과류, 씨앗류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 다. 콜리플라워, 시금치, 상추 같은 식물들에도 해당한다. 물론 이 채소들에 많은 단백질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며, 이 채소들의 단백 질이 비프스테이크의 단백질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상적인 수준에 못 미치는 아미노산들이 든 식물 단백질원들도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사탕옥수수에는 라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이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약간 적게 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탕옥수수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 내 라이신 아미노산 비율 이 조금 낮은 것이다. 사탕옥수수 단백질은 대개 라이신 아미노산 이 2.5퍼센트뿐인데, 인간은 몸속 단백질의 약 5퍼센트에 해당하는 라이신 아미노산이 필요하다. 그 부족분은 두 가지 방법으로 보충 할 수 있다. 하나는 사탕옥수수를 더 먹어 전체 단백질 섭취량을 늘 려서 전체 라이신 아미노산 섭취를 늘리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사탕옥수수 외에 약간의 콩류를 먹는 것이다. 콩류에는 라이신 아 미노산이 풍부하므로 부족분을 보충해줄 수 있다. 중앙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는 이런 식습관이 전통적이다. 
- 요즘 스피룰리나는 짙은 녹색 가루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데, 무려 60퍼센트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에도 56퍼 센트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스피룰리나 가루의 열성 팬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맛이 없다. 쓴맛이 도는 데다 썩 은 해초 느낌까지 드는 아주 강한 케일 맛을 상상하면 된다. 스피룰 리나는 이렇게 맛이 없어서 현재 건강 보조 식품으로만 쓰이며, 스 무디(과일 주스에 우유나 아이스크림을 넣어 만든 음료-옮긴이) 같은 데 추가되 기도 한다. 이외의 사실은 스피룰리나를 먹으면 변이 녹색으로 변한 다는 것이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스피룰리나는 아주 좁은 땅에서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며, 가능성이 큰 미래의 식품 자원이다.
- 점점 늘어가는 세계 인구에게 충분한 단백질을 공급하려면, 우리는 고기를 필수 아미노산의 주요 공급원으로 삼고 있는 현재의 식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현재 너무 많은 단백질을 섭취 하고 있으며, 그 양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14년 현재, 미국 성인들의 평균 고기 소비량은 연간 90킬로그램이었다. 그러니까 1인당 매일 247그램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 꼴이다. 또한 고기는 약 4분의 1 이 순수 단백질이므로, 평균적인 미국인은 매일 고기를 통해 약 62그램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인가? 유제품, 곡물, 채 소, 건강 보조 식품 등에서도 단백질을 섭취하므로, 우리는 지금 권 장 허용량의 2배가 넘는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다. 따라서 단백질 문 제는 두 갈래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즉, 단백질을 덜 먹으면서 대 체 단백질들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양배추 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 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스피룰리나 가루는 권하고 싶지 않다.
- 1980년대에 식물과학자들은 여러 무작위 대입 기법을 사용해 콩 같은 많은 농작물의 돌연변이종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 식물은 서로 다른 돌연변이를 거쳤고, 대개 비(非)돌연변이 식물 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조금 덜 건강하고 병약했다. 물론 가끔은 어 떤 면에서건 다른 식물들보다 눈에 띄게 더 강하고 뛰어난 식물들 도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그런 식물들은 따로 분리하여 그 유전 자와 생화학 구조를 분석하여 다른 식물들과의 차이를 알아냈다. 가끔은 돌연변이를 거친 콩들이 엽록소가 보다 적어졌는데, 직관과는 반대로 콩을 더 많이 맺어 곡물 수확량도 더 많았다. 사실 밭에서 자란 그 콩들은 다른 많은 잡초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었고, 보 다 작은 식물들을 죽이는 괴물이 될 필요도 없었다. 또한 연구자들 이 현대적인 농업 기법들을 동원하고 제초제를 적절히 사용함으로 써, 그 콩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오로지 잘 자라고 우리가 먹을 콩 을 맺는 데만 쏟을 수 있었다. 엽록소가 절반 정도인 돌연변이 콩들 은 정상적인 수준의 엽록소를 가진 콩들보다 수확량이 약 30퍼센 트나 많았다. 즉, 돌연변이 콩은 들뜬 전자들을 과도하게 많이 생산 하지 않았고, 그래서 모든 에너지를 비광합성 소멸 시스템에 쏟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직관과는 반대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우리가 아는 많은 농작물들의 실상이다. 우리가 만약 식물들의 잎사귀에 서 녹색을 줄일 수 있다면,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해 더 많은 사람 들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 2016년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기반을 둔 프랑스 기업 쿨테 크Cooltech는 각 상점과 산업 현장에서 쓰는 최초의 자기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 냉장 시스템은 전통적인 압축가스 냉장에 비해 눈에 띄는 장점이 많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지도 모르지만, 첫 번째 장점은 좀 더 적은 에너지로 동일한 수준의 냉방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 외에 소음도 더 적고, 압축가스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사고 로 가스가 누출될 위험도 없다. 압축가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은 큰 장점이다.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냉매는 더 이상 사 용되지 않지만, 현재 영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냉매가스인 이소부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3배나 더 해로운 온실가스이기 때문이 다. 쿨테크사의 냉장 시스템에서는 파이프들 속을 순환하는 물이 냉장고 안쪽을 냉각시킨다. 그러나 실제 냉각은 자석들의 교묘한 이 중 회전 시스템이 일으킨다. 이 기술의 핵심은 희토류 원소인 가돌 리늄을 사용해 매우 강력한 자기 냉각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빙 빙 도는 자석들이 계속해서 가돌리늄을 냉각시키고, 가돌리늄은 흐르는 물에 씻긴다. 그러면 가돌리늄이 물을 냉각시키고, 펌프가 그 물을 퍼내며 냉장고 안을 차게 만든다.
- 쿨테크사는 이 자기 냉장 시스템이 전통적인 냉장에 비해 에너지를 절반만 쓴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내 는 모든 에너지의 약 5분의 1이 냉각 시스템에 쓰인다는 사실을 감 안하면, 어마어마한 에너지 절약이다. 주로 에어컨 형태로 발생하는 냉각 수요가 앞으로 수십 년간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므로 특히 더 그렇다. 유럽연합은 2030년이 되면 냉방에 사 용되는 에너지가 70퍼센트 넘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따라서 이 냉장 시스템은 분명 아주 유망한 새 기술이지만, 현재로서는 비 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비용이 낮아지고, 가정 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현재 자석 냉장고와 얼음 냉장고 는 이미 야외 냉장고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대개 그렇듯, 우리는 굳이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냉장고들이 성공을 거 둘 거라고 설득할 필요는 없다. 재래식 냉장고 제조업체들이 움직이 려면 이 새로운 냉장고들이 출시하자마자 바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처음부터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없는 한 기존 회사 들이 새로운 기술을 위해 기존 생산 라인을 뒤집어엎지는 않을 것 이다. 내 생각이지만, 쿨테크의 자석 냉장고나 슈어 칠의 얼음 냉장 고의 가정용 유형은 5년쯤 지나야 일반 소비자들이 살 수 있을 것 이다. 그나마도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난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할 용 의가 있는 첨단 기술 마니아들이나 구입하는 특수 고가 제품이 될 것이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의 입장에서 냉장고 안쪽의 기술은 10 년 정도 지나야 완전히 바뀔 것 같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가 든다는 착각  (2) 2024.01.28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3) 2024.01.24
다크호스  (2) 2024.01.14
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0) 2024.01.12
블랙쉽  (1) 2024.01.04
Posted by dalai
,

다크호스

etc 2024. 1. 14. 16:31

- 표준화 시대의 공식
까마득히 오래 전부터 인간은 서로에게 성공의 조언을 해왔다.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교훈들, 다시 말해 학계에서 흔히 '성공 문학 success literature'이라고 분류하지만 보다 통속적으로는 '자기계발'로 분 류되는 분야는 철학만큼이나 역사가 길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성 아우구스티누스 모두 성공을 위한 조언을 글로 담았다. 이런 고 대의 정신적 지도자들이 설파한 조언들이 대체로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로써 오랜 세월 생명력을 이어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 실은 그렇지 않다. 성공 문학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
가장 유용한 조언은 실행 가능하고 구체적인 조언이므로, 그 조 언이 제기된 시간이나 장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3세기 폴리네시 아 사회에서의 성공 비결(카누를 만들고 조정하기)과 13세기 몽골 제국의 성공 비결(말을 잘 타고 잘 간수하기)은 서로 달랐다. 15세기 아즈텍제국의 성공법(인신공양의 제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과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성공법(농노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서로 달랐다.
성공 문학의 보편적 내용은 특정 시대에서는 꽤 일관성이 있지 만, 사회가 변해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설 때마다 급격한 변화를 거 친다. 1775년의 소책자 존경받는 부자로 사는 법: 큰 재산을 가 진 사람들에게 부치는 글 The Way to Be Rich and Respectable: Addressed to Men of Small Fortune」에는 그런 변곡점의 사례가 잘 포착되어 있다. 저자 존 트루 슬러John Truster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는 영국이 봉건제 경제에서 상인 경제로 전환되는 막바지 단계였다. 그는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 래하면서 부와 지위를 차지할 기회가 더는 세습 귀족들의 전유물 이 아니라고 했다. "예전에만 해도 사람들은 영주의 신하나 하인으 로 사는 삶에 만족했고 스스로를 낮추며 복종하고 충성하는 태도 를 자부심으로 삼았다 (중략) 하지만 상거래와 부가 늘어나자 차츰 새로운 바람을 품으며 (중략) 예전엔 감히 꿈도 못 꿀 사치였을 생활 을 동경하게 됐다." 이 새 시대의 성공 법칙은 무엇이었을까? 트루 슬러는 당시의 관점에선 비현실적이고 실행 불가능해 보였겠지만 결국 그 새로운 시대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 전략을 제시했다. 바 로 '독립'이었다. 당시에 효과적인 관행이던 귀족 후원자에 대한 충 성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전례 없는 파격적인 전략을 제 시한 것이었다.
-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태어난 시대는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삼아 정립된 시대다. 그 20세기 초부터 서구 사회는 공장 중심의 제조업 경제로 전환됐다. 그래서 흔히 산업 시대로 지칭되지만 표 준화 시대Age of Standardization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조립라인 과 대량생산, 조직위계, 의무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소비자 상품, 일 자리, 졸업장 등등 일상생활의 대다수 체계가 표준화됐다.
다른 모든 시대와 다를 바 없이, 표준화 시대 역시 성공을 정의 하는 고유의 개념이 생겨났다. 이제는 기관의 사다리institutional ladder 를 밟고 올라가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곧 성공으로 통했다. 이 새로운 성공 개념을 계기로 현대의 자기계발서가 탄생했다.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1936),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의 열망을 생각하다Think and Grow Rich』(1937),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의 『적극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1952) 같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베스트셀러 들이 이런 자기계발서에 해당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는 이 세대의 성공 문학에서는 개개인이 조직에서 더 높은 서열로 올라가기 위 해 유용한 습관과 기술을 강조했다. 힐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더 좋은 방법은 현재 맡은 직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펼쳐서 인사권 자들의 눈에 들어 더 흡족한 중책의 자리로 승진하는 것이다.' 표준화 시대는 자기계발과 주류 과학의 융합으로 일률적인 출세비결이 생겨난 최초의 시대이기도 했다. 21세기에 접어들 무렵엔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들과 저명한 사회과학자들이 이런 표 준 공식의 변형들을 극구 권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수 세대에 걸쳐 '목적지를 의식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끝까지 버텨라 know your destination, work hard, and stay the course'는 메시지가 성공한 삶을 일구 는 가장 확실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 조언은 논 쟁의 여지가 전혀 없어 새겨듣지 않고 묵살하면 위험하고 미련한 짓이 될 것 같은 인식을 준다. 실제로, 요즘 책들 중에는 이 표준 공식을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라도 되는 양 치켜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다크호스」에서는 지금 우리가 사뭇 다른 성공 법칙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는 중이라는 확신을 전제로 한다.
- 우연이 아닌 선택
다크호스 프로젝트를 처음 착수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충족감이 공통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크호스들이 우수한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특별하고도 색다른 공부법과 학습 비결, 연습 방식을 발견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두 사람은 그간의 훈련으로 정량화하기 힘든 모호한 변수에는 거부감이 있었 고, 개인별 충족감은 확실히 막연해 보이는 변수였다. 하지만 우리 는 훈련을 통해 증거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배웠다. 그 증거가 우 리 예상과 아무리 크게 어긋나더라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상당수 다크호스들은 드러내놓고 직접 "충족감"을 언급했다. 그 런가 하면 강한 “목표" 의식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이들도 있었고, 자신의 활동에 대한 "열의"나 자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이 야기한 이들도 있었다. 몇몇 사람은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는 식으로 표현했다. 또 다른 여러 명의 다크호스는 “이 일이 자신 의 천직"이라고 자처했고, 어떤 한 명은 조용조용하고 경건한 어조 로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표현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우리가 대화를 나눠본 다크호스들은 모두 현재의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다크호스들은 의미 있고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그들 역시 아이들을 재우랴 자동차 할부금을 내려 이런저런 일상사에 시달렸고 자신의 분야에서 더 높은 성취를 이루고 싶은 갈망도 똑같이 있었지만, 대체로 아침마 다 활기차게 일어나 일하러 나가고 밤에는 삶에 충족감을 느끼며 잠이 드는 편이었다. 우리는 이런 특징을 발견하고 나서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에 눈뜨게 됐다.
더 깊이 파헤쳐보니 다크호스들의 이런 충족감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그리고 충족감을 추구하려는 이 지극히 중요한 선택이 바로 다크호스들의 궁극적 특징이다.
- 거대 조직을 지휘하는 사람들은 너무 관념적인 전망에 빠져 실제 인간의 본질을 잊은 채 시스템을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시스템에 맞추려 들기 십상이다. (버트런드 러셀, 영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
- 기관들은 효율성을 내세워 다양한 인간의 열정을 모조리 묵살하 고 특색 없는 단 하나의 '포괄적 동기'로 뭉뚱그려, 높은 등급에서 낮은 등급까지 단순히 일차원적으로 측정한다. 포괄적 동기는 자 제력, 결의, 끈기, 인내심, 야망, 투지 등 여러 가지 잣대로 평가된 다. 하지만 이 모든 잣대들에 담긴 궁극적 메시지는 한마디로 '당신 의 개개인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표준화 계약하에서는 쭉 일직선의 길만 걷든 아니든, 둘 중 하나 를 선택하도록 동기를 자극한다. 지루함에 빠지거나 마음에 다른 곳에 가 있거나 좌절감을 느낀다 해도, 기관에서는 웬만해서는 그런 사람들이 더 몰입하거나 더 잘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하지 않는 다. 조정하기는커녕 비장하게 마음 먹고 끝까지 버티라고 강요하 기 일쑤다. 이를 악물고 버티라고! 분발해서 투지를 좀 보이라고!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누군가의 개인적 동기를 무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동기를 자극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 는 표준화된 시스템에 오래 머물수록 동기가 점점 약해지는 사실 로도 입증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기의 강도가 유치원 때 최고 치였다가 이후로 꾸준히 낮아진다. 2016년의 갤럽 조사결과에서 도 5학년생은 학교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비율이 26퍼센 트에 불과했으나, 8학년생은 55퍼센트로 나왔고 고등학교 상급생 에서는 66퍼센트까지 뛰었다. 졸업 후 돈벌이가 되는 취업을 하고 나면 동기가 다시 높아질 것 같겠지만, 갤럽 조사에 따르면 취업자 중 무려 67퍼센트가 직업생활에 잘 몰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 났다. 
- 운명은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세 차례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의 정치인)
- 자신의 개개인성에 가장 잘 맞는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고 표준화 계약의 요구에 따라 미리 정해진 성공 가망을 기준으 로 삼아 수동적으로 표준화된 선택지를 고른다면, 스스로에게 정 당한 권리인 목표의식을 빼앗는 격이다. 다크호스들이 선택에 전 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크호스들은 선택을 애매하 게 얼버무리거나 회피하지도 않고, 시험삼아 해보는 식으로 가볍 게 다루지도 않는다. 다크호스들은 특정 방향에 열정을 쏟기 때문 에 과감하게 행동한다.
과감하게 행동할 때마다 '이것이 내가 나아가려는 방향'임을 세상에 분명히 알리는 것이다.
- 대체로 우리는 우리의 뇌가 가장 잘하는 것이 뭔지 조금도 모른다. (마빈 민스키, 인공지능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
- 사실, 우리들 대다수는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그곳에 도착해서야 깨닫는다. (빌 워터슨, 캘빈과 홉스로 유명한 미국의 만화가)
- 딥블루가 인간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인공지능이 된 배경에는 프로그래머들이 무식하게 앞으로의 가능성만 마냥 계산하는 식이 아니라 인간처럼 바로 앞의 수를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식으 로 코딩을 변경한 덕분이었다.
결국 슈퍼컴퓨터가 개인화된 성공에 대해 교훈 한두 가지를 보여 준 것이다. 전통적 성공법과 다크호스형 성공법 사이에서 가장 두 드러지는 차이는 목표 설정에서 나타난다. 표준 공식에서는 목적 지를 의식하도록 강요한다. 그에 반해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원칙에서는 목적지를 무시하라 Ignore the Destination고 권 한다.
목적지는 기관들의 관점에서는 중요하지만 충족감의 관점에서 따지면 재앙이다.
- 불분명한 장점과 다양한 우수성의 가치를 받아들이면 알게 될 테 지만 자신이 장차 어떤 기량을 달성하게 될지 미리 알 방법은 없 다. 또한 자신이 어디에 다다르게 될지 모른다면 고정불변의 목적 지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일 자체가 별 의미 없어진다. 너 무 일찍부터 일직선의 경로에 매진하면, 만족감이 훨씬 큰 성공에 이르게 될 수많은 갈래의 구불구불한 경로가 차단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적지를 의식하라는 표준화 계약의 명령은 보다 미묘한 방법으로 충족감과 우수성을 획득할 기회를 망치기도 한다. 
- '테니스를 마스터하려면 평균적으로 얼마나 걸릴까?', '왜 나의 유기화학 학습 진도는 다른 애들보다 훨씬 더 느릴까?' 따위의 무 의미한 의문을 품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나 에게 맞는 전략일까?
표준화 계약은 가장 중요한 이 의문에 관심을 주지 못하게 방해 한다.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식의 상대적 시간을 외면하고, 목적지 를 의식하며 끝까지 버티는 식의 표준화된 시간을 바라보도록 강 요한다. 바로 그것이 일직선의 경로를 걷기로 선택할 때 맺는 계약 이며, 그 계약 기간 동안엔 대체로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속도에 맞춰 독자적인 선택을 내리면서 상대적 시간을 포 용하면 이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떼는 걸음걸음마다 충족감이 최대화되고, 충족감이 최대화되면 우수성을 키워나가는 속도도 최대화된다.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에서 바라보면 표준화된 시간은 사실상 우수성의 획득 능력을 해친다. 기관에서 정한 속도에 뒤처지면 절망 감으로 내몰면서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자신은 몇 학 기 휴학했는데 남들은 제때 졸업하는 모습을 보면 자칫 불안감에 초조해지기 쉽다. 남들은 승진하는데 자신은 사내 위에서 아래 에 처져 있다면 삶이 자신을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다는 오래도록 지속될 느낌에 사로잡히기 쉽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나 프로 선수, 의대 졸업생의 평균 나이가 어떻다느니 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자 신이 때를 놓친 것 같아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기관에서 세워놓은 은퇴 개념 역시 우리의 발전을 방해한다. 세상이 우리를 퇴장 날짜로 떠밀고 있다는 오싹한 자각에 시달리다보면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표 준화된 시간은 우리의 초점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치료법은 있다. 목적지를 무시하면서 길의 저 끝에 놓인 가망보다 바로 앞에 놓인 기회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 목표 vs. 목적지
다크호스들은 목적지는 무시해도 목표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 크호스형 사고방식에서는 목적지와 목표가 명확히 다른 개념이다. 우선 목표는 언제나 개개인성을 근원으로 삼는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적극적 선택을 통해 목표를 세운다. 반면에 목적지는 다 른 누군가의 목표관에 응해 따라가는 지향점이다. 이런 목적지는 대체로 표준화된 기회제공 기관에서 정해놓은 것이다.
- 목표는 당장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할 만한 여러 가지 전략을 바로 당장 시도해볼 수 있다. 출 판사의 마감일 전에 소설을 탈고하기, 다음 해에 판매 실적 높이 기, 다음 번 축구 시합에서 승리하기 등은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에 서는 모두가 타당한 목표다.
그에 반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은 언제나 의존적이다. 중간에 발생하는 상황이나, 불확실한 상황,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따라 달 라진다. 목적지에 가려면 다수의 미래 전략들이 필요하고, 이 미래 전략들은 중간에 개입되는 전략의 결과에 좌우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충족 감을 달성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노벨 문학상 타기, 사내 최고 영업사원 되기. 월드컵 승리는 모두가 목적지에 해당되는 사례다. 당신이 고등학생인데 하버드 법대 입학이 목적지라고 치자. 당 신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불확실한 상황과 중간에 발생하는 상황들이 너무 많으며, 목적지 자체도 전적으로 표준화 계약에서 정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목표들도 많다. 예를 들어 철학책 읽기, 다음 번 그룹토론 대회에서 이기기, 현지 로펌에 인턴 지원해보기 같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물론, 목적지 를 지향하더라도 장차 하버드 법대에 입학할 가능성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지금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목표들을 수행하면서 얻 는 경험을 통해 자기이해를 하게 되면, 자신의 진정한 개개인성에 더 잘 맞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선택들이 눈앞에 펼쳐질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목표와 목적지의 차이가 의미론적 장난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둘은 목표의 당위성을 서로 별개의 추론체계를 통해 도출해낸, 서로 다른 개념이다. 목적지를 무시하 면, 무턱대고 맹신할 필요가 없어진다.
- 경사 상승은 목표와 목적지의 차이도 분명히 보여준다. 오르면 서 중간중간 방향을 새로 바꾸는 방식을 선택하면 스스로 목표를 정하게 된다. 그것도 그 산에서 약간 더 높은 특정 지점이자 지금 의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지점을 목표로 잡으며 오르게 된다. 곧바 로 산봉우리를 목표로 공략하지 않는다. 산봉우리가 아직 가까이 에 있지 않아서 목표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고, 거기까지 오르는 최 상의 루트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상황에 따 라 선택하는 방식에 의존하면, 즉 단기 목표를 추진하면서 더 좋은 전략이나 기회가 보이면 코스를 변경하는 유연성도 발휘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더 높이 오르게 된다.
반면에 목적지를 선택하면 지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반드 시 X지점까지 도달하겠어!'라고 선포하는 격이다. 심지어 X지점이 까마득히 높은 허공 어디쯤에 있어 가까이 갈 수도 오를 수도 없는 상황인데도 개인적 현실을 무시한 채 말이다.
우수성의 다양함과 미시적 동기의 개개인성, 불분명한 장점을 믿고 받아들이면 경사 상승의 수학을 통해 목적지를 모르는 채로 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열정과 목표, 성취감의 설계에 계속 집중하면 언젠가 개인적 우수성의 정상에 오를 거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 현재는 관리자들이 (중략) 노동자를 과학적 원리에 따라 선별한 뒤 훈련과 교육을 통해 기량을 육성시키는 반면, 과거에는 노동자가 할 일을 스스로 선택해 스스로 최대한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프레드릭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수행할 기회를 잡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을 여는 열쇠다. (존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Democracy and Education)』)
- 어떤 사람이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게 코페르니쿠스 이전 시대에 살았던 중세 유럽인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하늘을 보면서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멍청한 사람들 아니냐고 말했다. (중략)
가만히 듣던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그래요. 그런데 태양이 지구를 돌았다면 하늘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군요.' (제임스 버크, 영국의 저명한 TV 프로듀서이자 과학사가)
- 최고 소득의 급증은 일종의 '능력주의의 극단'을 원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 특정 개인들이 출신이나 배경보다 본인의 가치에 따라 선택된 것처럼 보이면 '승자'로 지명해서 더 후한 보상을 해줘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빚어진 결과다.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을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킨 프랑스의 경제학자)
- 새로운 계약의 승인
사실, 한 사회의 사회 계약을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은 그 사회가 가진 가치에 대한 관점과 기회 시스템이다. 이와 관련해서 근래 의 역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귀족주의 계약이라고 이름 붙일 만 한 시대가 떠오른다. 이 계약은 특별한 혈통만 가치를 가진다는 믿음 을 근간으로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며 누구나 다, 모두가 다 성공할 수 는 없는 기회 시스템을 유도했다. 이 기회 시스템은 귀족층이 다른 사람들의 동의도 없이 실행 주체가 됐다.
그 뒤에는 표준화 계약이 생겨났다. 표준화 계약에서는 특별한 개인들만 가치를 지닌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효율성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누구나 다 성공할 수 있지만 모두가 다 성공할 수는 없는 기회 시스 템을 유도했다. 이 계약의 쿼터주의에서는 기관들이 개개인의 동 의하에 실행 주체가 됐다.
이제는 다크호스 계약을 승인할 기회가 갖춰졌다. 다크호스 계 약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다양한 우수성을 펼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는 신념을 바탕으로 충족감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누구나 다, 모두가 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 시스템을 유도한다. 이 계약의 민주주의적 능력주의에서는 개개인의 동의하에 개개인이 실행 주체가 된다.
- 어떤 사람이 내 불을 가져가 자신의 양초에 불을 붙인다고 해서 내 불이 어두워지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 내 아이디어를 취해 배움을 얻는다고 해서 내 아이디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토머스 제퍼슨)
- 인격형성기 동안이나 독립선언문을 쓰는 동안이나 제퍼슨은 서재에 늘 스코틀랜드인 철학자들의 책을 빼곡히 채워놓고 필사해서 주석을 달며 열심히 읽었다. 그 책들에 적힌 글자들로는 생명이나 자유나 재산보다 '행복'에 대한 사색이 훨씬 많았다.
요즘엔 행복을 환락이나 쾌락의 의미로 생각하지만 계몽주의 시 대 때는 그렇지 않았다. 'happy'는 사건이나 상황을 뜻하는 단어 'hap'의 형용사형이며, mishap(불행한 사건)과 hapless (순조롭지 못한 불운한 상황), haphazard/happenstance(우연한 사건)이 hap에서 나온 파생어다.
따라서 형용사 'happy'는 그 어원상으로는 '특정 사건에 잘 맞는 것'을 뜻했다. 'happy thought'는 대화에 꼭 들어맞는 생각을 의미 했고, 'happy garment'는 사회적 상황에 적절한 의복을 가리켰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도 새로운 지 식에 잘 맞는 이론이라는 의미로 'happy theory'라는 문구를 쓴 바 있다. 흄은 다크호스의 모토로 삼아도 될 글을 쓰기도 했다. “자신 의 기질에 잘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happiness'는 원래 '자신의 환경에 잘 맞는 상태'라는 중립적 의 미였으나, 제퍼슨의 시대에 이르러 '자신의 환경에 잘 맞는 유리한 상태'라는 뜻을 가진 'goodhap'의 유의어로 쓰이게 됐다. lucky' 가 'random(무작위의)'의 뜻에서 'favorable luck(유리한 운)'의 뜻으로, fortunate (운이 좋은)'이 'random'의 뜻에서 'favorable fortune(유리 한운)'의 뜻으로 발전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
미국의 정치 문서에서 'happiness'가 처음 언급된 것은 제퍼슨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기 불과 몇 달 전에 제퍼슨의 벗인 조지 메이 슨 George Mason이 발표한 버지니아 권리 선언 virginia Declaration of Rights 이었다.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와 독립에서 평등하며 특정 권리 를 타고난다 (중략) [그중에는] 행복happiness을 추구하고 획득할 권리도 있다." 메이슨이 사용한 행복이라는 단어를 분석한 사학자 잭 D. 워렌Jack D. Warren의 견해에 따르면, 이 문서에서 말하는 행복은 "현재처럼 두루뭉술한 목표가 아니었다. 행복은 쾌락을 뜻하지 않았다. 18세기 사상가들에게 행복은 흡족함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메이슨 같은 사상가들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이 자신의 성격과 재능, 능력에 잘 맞는 상태일 때 행복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건국자들에게 행복은 다크호스들이 생각하는 충족감과 동의어였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3) 2024.01.24
음식으로 보는 미래과학  (2) 2024.01.24
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0) 2024.01.12
블랙쉽  (1) 2024.01.04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4) 2024.01.04
Posted by dalai
,

과거에 비해 요즘의 학습환경이나 업무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능화,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폰 등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학습과 업무에는 방해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당장 해야할 일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과 힘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업무능률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는 많은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하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과 정보수집량을 줄이면 행동력이 빨라지고 행복감이 높아져 일이나 일상생활이 여러모로 개선된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통해 알려져 있다. 심지어 동전던지기를 통해 그 결정대로 행동하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는 잠깐 비는 시간이나 밤중에도 인터넷서핑을 하고, SNS를 확인하고, 게임을 하려든다. 이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잘 수도, 뇌를 쉬게 할 수도 없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개선하거나 리셋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고, 정보를 차단한 뒤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멀티태스킹은 미덕처럼 간주되고 있는데, 연구결과에 의하면 멀티태스킹은 일시적으로 가짜 만족감을 주지만, 업무능률은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두가지 이상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을 때 실제로는 뇌가 맹렬한 속도로 여러 작업을 연속적으로 전환하고 있을 뿐이고, 이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쉽사리 피로해진다.

효율화를 위해 정보를 찾아다니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멀티태스킹을 하거나 시간관리에 목을 매는 것을 중단하자. 꿈꾸는 인생을 위해 미래에 희망을 거는 일을 멈추고, 현재로 눈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해야할 한 가지 일을 정하고 집중해서 처리해보자. 우리가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며, 이런 일이 축적되다 조면 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이 따라올 것이다.

현대인들은 많은 불안감 속에서 살고 있다. 불안감은 본래 인류에게는 포식자의 위험이나 천재지변 등의 재난을 피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풀숲의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불안감은 우리를 떠나지 않겠지만, 불안해하는 일의 95%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며, 지금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은 1년 후에는 기억도 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래도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면, 불안/분노/슬픔의 내용을 글로 적어보자. 글로 적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손가락으로 이마, 눈밑, 턱 등을 톡톡 두드리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선순위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피터드러커의 조언을 참고할만 하다.
* 과거보다 미래를 택한다
* 문제가 아니라 기회에 초점을 맞춘다
* 획일적이 아닌 독자적인 것을 고른다
* 무난하고 쉬운 것이 아니라 변혁을 가져오는 것을 고른다

자신이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도망갈 구멍을 마련하지 말고 책임지자. 24시간 동안 해야할 일에 집중하는 데도, 비즈니스에서 성과를 내는 데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세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으로 보는 미래과학  (2) 2024.01.24
다크호스  (2) 2024.01.14
블랙쉽  (1) 2024.01.04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4) 2024.01.04
사실은 이것도 디자인입니다  (2) 2023.12.31
Posted by dalai
,

블랙쉽

etc 2024. 1. 4. 12:00

- 당신의 검은 양 가치는 내면에 깊이 숨겨져 있으면서 당신을 독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핵심 가치이다. 이것은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수정이나 변경도 되지 않는다.
- 의사결정사슬이란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모든 사실을 고려하며, 순간의 감정을 존중해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 감정과 가치관 사이에는 항상 건강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불확실한 미래에 끊임없이 의심을 품게 한다. 우리는 '그러면 어쩌지 what if'와 '그럴 수도 있어 could be'의 세계에 갇혀 불안감을 부추기는 결과들만 상상한다. 그러나 일생 동안 다듬어 온 가치관에 의지하면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다.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현재에 충실할 때에만 잡을 수 있으며, 그러려면 감정과 검은 양 가치관이 건강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만 하는 것이다. 
- 핵심 가치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원들 역시 회사가 자체 핵심 가치를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회사가 자체 핵심 가치를 무시하 면, 직원들은 불쾌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체 핵심 가치도 신경 쓰지 않는 회사가 과연 직원의 핵심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는가? 이럴 때는 퇴사가 답이다.
만약 당신이 조직의 지도자라면, 회사가 자체 핵심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을 실현하려 노력한다는 증거가 있는지 확인하라. 증거가 없다면, 그런 핵심 가치는 존 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직원들은 헌신하지 않을 것이고 핵심 인재는 떠날 것이다.
- 당신은 지금 충만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므로 변화를 꾀해야 한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삶이 있다. 그 안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삶은 당신의 목적 및 사명과 일치한다. 이것이 바 로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모습이다. 나는 당신이 매일 아침 일어나 자신의 검은 양 가치관에 따라 살았으면 좋 겠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신 펜을 쥐고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내려갔으면 좋겠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활발한 토론을 벌일 수 있게 타협 불가능한 가치관을 갖기를 바란다. 행복을 결과와 연동 하지 말고, 좋은 결정들을 내리며 진취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크호스  (2) 2024.01.14
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0) 2024.01.12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4) 2024.01.04
사실은 이것도 디자인입니다  (2) 2023.12.31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0) 2023.12.31
Posted by dalai
,

- 육식으로의 식단 변화는 또한 우리의 소화관이 초기 인류에 비해 훨씬 작아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른바 '귀하신 조직 가 설'의 지지자들은, 육식을 하면서 부피가 큰 식물 섬유를 덜 섭 취하게 된 잡식성 인류가 장 체계를 더 작게 진화시켜 자원 집 약적인 뇌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리라고 추정한 다. 또한 육식은 우리의 치아를 더 작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대 부분의 식물에 비해 고기는 덜 씹어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 24명의 피실험자들을 모집해 감자, 당근, 비트 세 가지 채소와 함께 염소 생고기를 먹게 했다. 그런 다음 각각의 음식을 씹어 삼키기 위해 머리와 턱 근육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근전도 센서로 측정했다. 연구 결과는 이랬다. “식단의 3분의 1을 육류로 구성하면 식물성 식단을 유지했던 때에 비해 매년 저작 사이클(chewing cycle), 즉 씹는 횟수가 거의 200만 회(약 13퍼센트) 감소하고 총 저작력(음식을 씹는 힘)도 15퍼 센트가량 줄어든다. 초기 인류는 단순히 육류를 자르고 (식물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육류를 씹어 더 작은 입자로 만드는 능력을 41퍼센트 향상시키고, 연간 저작 횟수를 추가로 5퍼센트 줄이고, 필요 저작력 또한 추가로 12퍼센트 줄였을 것이다. 연구 결과, 초기 인류가 가공된 육류를 씹어 삼키면서부터 음식을 섭 취하는 데 필요한 힘이 46퍼센트 이상 줄어들었을 것으로 파악 됐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영위하다가 육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크고 긴 신체에서 얇은 체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우 리 존재 자체의 물리적 특성까지 변해버린 것이다.
- 한편, 육식을 중심으로 인류의 진화를 파악하려는 관점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연구원들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 인 영장류 동물학자 리처드 랭엄 (Richard Wrangham)은 저서 《요리 본능(Catching Fire: How Cooking Made Us Human)》에서 이렇게 주장했 다. “육식은 침팬지를 닮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칼을 휘두르 고 뇌도 더 큰 호모 하빌리스로 변화시킨 인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획기적인 첫 번째 전환에 대해서는 매끄럽게 설명한다. (그러나) 작은 턱과 작은 치아를 지니고 있어 사냥감인 동물의 질 긴 날고기를 씹는 데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과 관련된 핵심적 인 문제에는 답하지 못한다. 약한 입은 호모 에렉투스가 사냥에 더 뛰어났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없다. 분명히 무언가 다른 일 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 '무언가 다른 일'에 대해 랭엄이 주장 하는 바는 바로 '익히기(cooking)'다. 해부학적으로 기능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탓에 날고기는 인류의 두 번째 '진화의 대전환, 즉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의 전환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칼로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다. 반면, 육류와 식 물 모두를 익혀 먹음으로써 우리 조상들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뇌와 신체는 더 커지고, 치아와 소화관은 더 작아졌다. 예컨대, 계란을 익히면 날계란과 비교했 을 때 단백질 값이 40퍼센트나 증가한다. 날고기를 익히면 씹거 나 소화하는 데 힘이 덜 들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높아진다. 많은 과학자들은 불을 통제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50만 년 전에는 드물고 빈약했으며 100만 년 전에는 거의 없었다고 주 장하면서 이 '익히기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불을 자유롭게 사용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인류의 해부학사에서 진화의 대전환 이 일어난 지 한참 후인 4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전문가들이 불을 이용한 익히기보다 석기로 날고기를 두드리거 나 자르는 등 가공 기술이 향상되면서 두 번째 진화의 대전환기 를 촉진했을 것이라는 가설에 더 무게를 둔다.
결론적으로, 인류 진화를 결정적으로 도약시킨 것이 날고기 인지 익힌 고기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지만, 대부분의 과학자 들은 익혔든 익히지 않았든 동물의 일부분을 먹지 않았다면 인 류의 외모와 행동 양식이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데 의 견을 같이한다.

- 16~17세기 부르주아 계급이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신선육을 소비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대다 수 가정에서 신선육은 사치품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사람 들은 주로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해서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육류에 의존했다. 제프리 L. 포르겡 (Jeffrey L. Forgeng)은 저서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일상(Daily Life in Stuart England)》에 이렇게 적었다.
"중류층의 식탁에도 오리, 거위, 칠면조, 비둘기 같은 가금류와 계란, 유제품, 돼지고기, 양고기, 생선, 조개류는 흔했다. 영국을 여행한 사람들은 그다지 풍족해 보이지 않는 영국 가정의 식탁 에도 항상 고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영국 사회의 상당 부 분을 차지했던 빈민층은 육류를 거의 먹지 못하는 대신에 질 낮 은 빵과 포타주(pottage, 채소와 곡물, 어렵게 구한 약간의 고기 조각을 한데 끓여 만든 걸쭉한 수프나 스튜)를 주로 먹었다. 어찌 됐든 전체적으로 볼 때, 영국이 1인당 가축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은 육류 공급이 상대적으로 풍요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 가적으로 농지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 소·돼지의 시대는 가고 닭의 시대가 오다
조금 역설적이긴 하지만 적색육 소비는 빠르게 성장한 만큼 이나 빠르게 감소했다.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 또다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육류 생산이 다시 한 번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종종 가격이 폭등했다. 육류는 1899년 미국 가공식품 생산량의 28퍼센트를 차지했지만, 1937년에는 그 비 율이 13퍼센트로 떨어졌다.
둘째, 1906년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 미국의 소설가 및 비평가 - 옮긴이)가 《정글(The Jungle)》을 출간하면서 육류 품질의 안전성 문제가 부각됐다. 싱클레어는 "착취 지옥(inferno of exploitation, 시카 고 도축장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다루던 관행을 말함)""에 대한 과 감한 기술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의 도와 달리 이 책에 묘사된 비위생적 환경이 대중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곰팡이 핀 고기를 붕사와 글리세린으로 처리해서 재사용하고, 쥐가 들끓는 불결한 바닥에 떨어진 고기도 판매하며, 보다 신선하게 느껴지도록 내장과 연골을 염색하고, 향신료를 잔뜩 감미해 배달용 햄을 만드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육류 소비가 감소한 세 번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미 국이 참전할 무렵 동맹국의 수많은 시민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서유럽의 농장들은 전쟁터로 변했고, 농민들은 군인이 됐다. 우 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이처럼 어려움에 빠진 동맹 국들과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전시 식량 공급과 보존, 유통, 운송을 담당할 미국 식품청을 만들었다. 식품청이 설립되자마자 진행한 캠페인 중 하나가 해외에 주 둔한 400만 명의 미군을 먹이기 위해 육류 소비를 자제하도록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식품청은 캠페인 내용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의 지지를 촉구하기 위해 "식량으로 전쟁에서 승 리할 것이다(Food Will Win the War)"라는 슬로건이 적힌 포스터와 기사, 팸플릿, 각종 교육 자료 등을 배포했다. 이 캠페인은 큰 성 공을 거뒀다. 미국은 1918~1919년 유럽에 주둔하던 부대와 동 맹군들을 위해 1850만 톤의 육류를 선적했다. 같은 기간에 국내 소비는 15퍼센트 줄었다.
마지막으로, 대공황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미국인들은 식탁에 음식을 올리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1933년이 시작될 무렵, 실업률은 거의 25퍼센트에 육박했다. 마땅한 복지 제도조 차 없는 상황에서 뉴욕에 있는 수백 개의 빵 가게에서는 배고픈 시민들에게 매일 8만 5000개의 빵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20세 기 중반, 육류 산업 무대를 강타할 또 다른 역사적 상황과 혁신 이 나타난다. 쇠고기가 크게 각광받았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 게 가금류가 가장 인기 있는 요리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 '공장식 사육(factory farming)'이라는 용어는 산업형 축산업이 출현하기 수십 년 전인 1890년 미국의 한 경제지에 처음으로 기록됐다.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공장 경영 원리에 입각해 설계된 '공장식 농장(factory farms)'의 개발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축산의 기계화를 통해 "전문화되고, 효율 화되고, 재료의 낭비를 줄이고, 부산물을 활용하고, 무엇보다 최 고의 기술과 경영 능력이 도입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영 양학의 토대를 닦은 미국의 화학자 윌버 올린 애트워터 (Wilbur Olin Atwater)도 일 년 뒤 <센추리 매거진(Century Magazine)>에 이와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했다.

- 미래의 농업은 아마도 그에 상응해 산출이 증가하는 생산 과정 이 될 것이다. 조밀한 인구가 기아의 전조라고 했던 구시대 경제 의 경고와 달리, 실제로는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식량을 공급할 전제 조건이 되리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섬유 공장에서 섬유를 생산하고 기계 공장에서 기계를 생산하는 등 이미 온갖 영역에서 입증된 원리를 굳이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 닭 생산이 '비정규직 경제 (gig economy)'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부업 같은 일에서 금전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내는 수익원으 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끈 첫 세대로 세실 A. 스틸(Cecile A. Steele) 이 있다. 역사적으로 중대한 전환점들의 상당수가 그렇듯, 이번 에도 변화는 완전한 우연에서 시작됐다. 이는 업계에서 회자되 는 전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틸은 체서피크만 동쪽의, 약 290킬로미터 길이의 평평한 농업 지대인 델마바반도에서 계란을 생산했다. 1923년 봄, 그 녀는 길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부화장에 산란계 50마리를 주 문했다. 그런데 부화장에서 실수로 주문량의 열 배인 500마리를 보내왔다. 스틸은 병아리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모두 키우기로 결심하고 목수에게 병아리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사육장 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병아리들을 키워 육계로 팔려 고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8주 후, 살아남은 닭을 무게 1파운드 당 62센트에 팔았다. 몇 년 동안 계란을 팔아 얻은 것보다 몇 배 나 많은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닭이었지만 요리 사나 주부들은 기름에 튀기고, 불에 굽고, 오븐에 익히고, 스튜 로 만드는 등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부유한 소비자들은 그 맛을 좋아했다. 이듬해에는 주문량이 두 배로 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벌인 사업이 기대 밖의 수익을 내자 해안경비대에서 일하던 남편은 일을 그만두고 아내의 양 계업을 돕기 시작했다. 1926년 닭의 수는 1만 마리로 늘어났다.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스틸은 육계용(broiler) 고기를 판매하 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육계용'은 고 기를 생산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로 사육한 모든 닭을 일컫는 용어다. 그로부 터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스틸의 농장과 비슷한 농장이 적어도 500여 곳은 새로 생겼고, 델마바반도 전체에서 생산하는 육계 수는 연간 700만 마리에 달했다.
- 결론적으로 닭은 체중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온도와 사료, 조 명 등이 조절되는 크고 지붕 있는 양계장에서 사육됐다. 이로써 악천후나 쥐, 여우, 스컹크, 너구리, 매 등의 포식자들로 인한 부 상 위험도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방식은 가금류 축산업 자 체를 전반적으로 더 쉽고 저렴하게 만들었다. 1923년에는 1파 운드(약 450그램)의 육계 고기를 생산하는데 4.7파운드(약 2.1킬로 그램)의 사료가 들어갔지만, 1941년에는 같은 양의 고기를 얻는 데 4.2파운드(약 1.9킬로그램)면 충분했다. 1930년대 사료 비용이 육계 사육 비용의 50~60퍼센트를 차지한 점을 감안하면 10퍼 센트포인트 정도면 엄청난 절감 효과다. 사료가 덜 드는 것 외 에도 가혹한 감금 환경에서 자란 육계는 더 빠르고 무겁게 성장 한다는 이점이 있었다. 1927년 델마바반도의 육계는 평균 4개 월 만에 시장에 나왔고 무게는 2.5 파운드(약 1.1킬로그램)였다. 하 지만 1941년이 되자 12주면 판매 가능해졌고 무게는 2.9파운드(약 1.3킬로그램)나 됐다.
스틸과 그녀의 영향을 받은 농민들은 농업 경영에 있어 혁신 을 이끈 주목할 만한 모델을 선보였지만 닭고기 소비는 돼지나 소 등 기타 가축에 비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매년 평균 10파운드(약 4.5킬로 그램)의 가금류를 소비했을 뿐이다. 20세기 초 중서부에서 가금 류 사업에 투자한 아머와 스위프트조차도 규모의 경제를 달성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전보다 저렴해지긴 했지만 닭고기 는 적색육보다 여전히 2.5배나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꾸준히 증가했다. 1930년대 후 반 유대인 신세대들은 근처 양계장에서 '뉴욕식 정육' 방식으로, 즉 깃털을 뽑고 피를 빼내지만 머리와 발은 몸통에 붙어 있고 모든 내장이 그대로 있는 방식으로 도축하고 가공한 후 얼음 과 같이 포장해서 트럭으로 상점까지 운반된 닭을 사서 먹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닭이 아니라 뉴욕 식으로 손질한 닭을 수송함으로써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 었다. 뉴욕식 정육 방식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1930년 대 후반 현지 가공 공장들이 여럿 문을 열었다. 1942년에는 열 곳의 공장에서 연간 총 3800만 마리의 육계를 도살하고 손질하 여 얼음으로 포장하는 설비를 갖추었다. 그중 6퍼센트는 워싱턴 D.C.로, 10퍼센트는 필라델피아로 보내졌다. 
- 한편, 영국계 미국인 생물학자 토머스 주크(Thomas Jukes)는 B12를 발견해내는 복잡한 과정을 동물 사료와 연계함으로써 궁 극적으로 동물성 단백질 인자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예상치 못 한 성과를 얻었다. 레들리연구소의 연구원이며 영양학 및 생리 학에 전문성을 갖춘 주크는 새롭게 발견된 B12를 동물 사료에 첨가했을 때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주크는 1948년 12월 독창적인 실험을 하나 기획했다. 먼저 갓 부화한 병아리들을 여러 그룹으로 구분하고, 그룹별로 서로 다른 먹이 를 먹였다. 한 그룹에는 영양이 부족한 먹이를 제공했다(이 그룹 은 대조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른 그룹들에는 간 추출물과 합성 B12, 오레오마이신이 생성한 B12를 포함한 배양물 등 다양한 보충제를 제각기 양을 달리하여 공급했다.
몇 주 뒤 모든 병아리의 체중을 측정한 결과, 주크는 영양이 결핍된 먹이를 먹은 대조군 병아리들은 대부분 죽은 데 반해, 실험군 병아리들은 살아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우 살아 남은 대조군의 몇몇 병아리보다 체중이 2.5배나 많이 나가 병아 리들에게 먹인 보충제가 기초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도 발견했다. 살아 있는 병아리 중에서 배양물을 가장 많이 섭취한 병아리가 합성 B12를 섭취한 병아리보다 체중이 훨씬 많이 나갔다. 즉 "비 타민 B12는 기초식단의 결핍을 완전히 충족하지는 못했다."
- 주크도 처음에는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실험을 반복한 뒤에야 그는 병아리를 살지게 한 것 이 배양물 속의 B12가 아니라 '신 성장인자'인 미량의 오레오마 이신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크는 북적이는 환경에서 사육 되는 가축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감염을 예방하는 데 이 항생물 질이 효과적이라며, 이 물질을 활용하면 면역계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를 근육과 뼈를 키우는 데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 다(이는 이후에 사실로 판명됐다). 결과적으로, 동물성 단백질 인자는 단순히 B12 한 가지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비타민과 소량의 항 생물질이 조합된 것으로 규명됐다.
1950년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탁월한 성장 촉진 물질의 하나, 비타민보다 훨씬 뛰어난 효능이라고 공표한 것처럼 이는 진정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 발견이었다. 1톤의 동물 사료에 5파운드(약 2.3킬로그램)의 비정제 항생제 만 첨가해도 닭의 성장률이 거의 50퍼센트나 향상됐다. 비타민 과 약물을 조합한 동물 사료는 사망률을 낮추고, 출하 체중에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며,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하고,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하는 데 비해 훨씬 적은 비용이 소요됐다.
- 과거에는 1파운드의 생체중(가축의 도살 직전 체중) 육계를 생산 하려면 12주의 시간과 4.2파운드의 사료가 필요했지만, 1950년 에는 1파운드당 3.3 파운드, 1963년에는 1파운드당 2.5파운드의 사료만 필요했다. 더 빠른 성장, 더 기계화된 시설, 더 나아진 양 계장은 육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줄였다. 1950년 대초 공무원들은 100파운드의 육계를 얻는 데 3.1시간 걸린다 고 추정했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단 1시간으로 줄었다. 이처 럼 효율이 점진적으로 향상되면서 닭고기 가격도 영향을 받았 다. 1950년에는 1파운드당 닭고기 평균 가격이 57센트인 데 비 해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각각 70센트와 67센트였다. 1965년에는 닭고기 가격이 39센트로 떨어진 반면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15년 전보다 비싸졌다. 같은 해 닭고기 소비량은 1인당 평균 25파운드로 1950년보다 15파운드 증가했다. 한때 식탁의 기피 대상이던 닭고기는 널리 사랑받으며 수익성도 매우 높아졌다. 양계업자들이 개척한 기계화된 생산 방식이 다른 모든 축산업 에 적용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닭고기가 돼지고기를 추월하기까지는 30년이 더 걸리고 쇠 고기를 추월하기까지는 15년이 더 걸릴 테지만, 그렇더라도 가 금류 산업은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사 람들이 모든 종류의 육류를 더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 스팸(Spam)의 기원을 되짚어보자. 스팸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발골 쇠고기 실험을 도운 육군 중위 제이 호멜 (Jay Hormel)의 작품이다. 그의 아버지 조지 호멜(George Homel)은 1891년 호멜 푸드 코퍼레이션(Homel Foods Corporation)을 설립했 다. 그가 사업을 크게 확장한 것은 불과 2년 후 찾아온 뜻하지 않은 기류 덕분이었다. 1893년 공황이 미국 경제를 덮친 이후 1897년까지 경기침체가 계속됐다. 그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 는 소비자들이 더 싼 가공육과 훈제육을 반길 것이라고 예상했 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얇게 저민 캐나다 베이컨 같은 저렴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사업은 큰 호황을 누렸다.
대공황기인 1929년 제이 호멜이 사장이 되고 나서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가격만 충분히 싸면 소비자 들이 가공육 제품을 구입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버지처럼 그 의 예상도 역시 옳았다. 하지만 가공식품으로 회사를 떠받치고 는 있었더라도 길어지는 불황으로 매출은 깎이고 또 깎였다. 그 는 곧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호멜의 회 사는 수천 파운드의 돼지 앞다리살을 버리다시피 해왔다. 뼈를 발라내려면 상당한 노력과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할 뿐 아니라 소비자들은 지역 정육점의 고기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퍽퍽한 돼지 앞다리살과 지방 부스러기들을 미트로프 같 은 친숙한 무언가로 만들면 어떨까?
제이 호멜의 지시에 따라 회사의 식품 과학자들은 직사각형 블록 형태의 가공육 덩어리 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돌입했다. 이 가공육 덩어리는 출처가 무엇이든 가족 전부를 충분히 먹이고 도 남을 양으로, 다음 날 샌드위치까지 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과학자들은 새로운 공정과 새롭게 설계한 기계 모두를 완성했다. 그리고 회사는 1937년 5월 11일 경연을 거쳐 '스팸'(드러나지는 않지만 'spice'와 'ham'을 합성한 단어다)이라는 상표를 등록했다. 스팸의 재료는 "햄 고기가 첨가된 다진 돼지 앞다리살과 소금, 물, 설탕, 질산나트륨(베이컨과 핫도그 등을 만드는 고기를 절일 때 사용하는 소금 종류) 등 다섯 가지였다. 1940년 미국 도시에선 전체 가구의 70퍼센트가 스팸을 먹었다.
이 "깡통에 담긴 기적의 고기"를 대성공으로 이끈 배경은 제 2차 세계대전이다. 고기가 상하지 않게 최전선 부대까지 수송 해야 하는 군의 요구를 스팸은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저렴하 고 운반이 용이하며 냉장도 필요 없었으니까. 이런 이유로 군은 1939~1942년 스팸 매출을 두 배로 늘려준 최대 구매자로 등극 했다. 군은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스팸을 무려 1억 5000만 파 운드(약 6만 8000톤)나 소비했다.
- 맥도날드의 눈부신 성장은 1970년대 초에도 계속되어 모든 주에서 가맹점 수가 1500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양적 성장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때까지 맥도날드가 새로운 지점을 내서 막 대한 이윤을 남기는 데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결 국은 맥도날드도 난관에 봉착했다. 1970년대 중반의 경기침체 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온 경기 팽창이 막을 내렸다. 미국 전체가 높은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이션, 치솟는 휘발유 가 격과 씨름하면서 맥도날드의 수익도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이때 데이비드 월러스틴 (David Wallerstein)이 해결의 열쇠를 제 시했다. 영화업계의 젊은 경영자 월러스틴은 한때 이와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었다. 1960년대 초, 바라반 시어터(Balaban Theaters)체인을 운영하던 그는 팝콘처럼 이윤이 많이 남는 스낵과 음료수를 많이 팔기 위해 1+1 스페셜, 팝콘 콤보, 마티니 스페셜 등 책에 나오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어느 것도 효과가 없었 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월러스틴은 깨달았다. 사람들은 팝콘 을 두세 통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먹을 것을 너무 많이 들고 다니면 불편할 뿐 아니라 게걸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월러스틴은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그렇 다면 돈을 조금만 더 받고 팝콘의 정량을 훨씬 크게 하면 어떨 까? 월러스틴은 커다란 점보 사이즈 용기를 만들고 이것을 홍보하는 광고를 붙였다. 한 주가 지날 무렵, 환상적인 결과가 나왔다. 팝콘 판매 횟수당 매출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월러스틴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크록에게 점보 사이즈 감 자튀김을 판매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크록은 머뭇거렸다. "감자튀김이 더 많이 필요하면 두 봉사면 되잖아요."12 월러스 틴은 크록을 설득하기 위해 소비자 행동에 관한 자체 설문조사 를 벌였다. 그는 시카고의 여러 매장을 돌며 수백 명의 고객들 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그는 고객들이 감자튀 김한 봉을 모두 먹고도 바닥까지 훑어가며 짭짤한 맛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월러스틴이 이 사실을 크록에게 설명하자 그도 마침내 반대를 접었다. 그렇게 점보 사이즈 감자튀김을 도입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더 많은 고객들이 맥도날 드를 찾아왔고, 1인당 지출도 더 늘어났다.
커다란 몸집의 지니를 다시 램프에 집어넣기는 불가능하듯 이, 감자튀김과 함께 시작된 사이즈 조정 문제는 곧 다른 메뉴 들에도 적용됐다. 1990년대 중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판매하 는 먹거리 네 가지 중 하나는 밸류 밀 (value meal), 스페셜 콤보 또 는 슈퍼사이즈 밀이었다. 1955년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의 무게 는 3.7온스였다. 최근의 무게는 약 7.3온스이고 빅맥은 7.5온스, 쿼터파운더 쿼터파운더 딜럭스는 무려 9.2온스에 달한다. 질 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1950년대 전형적인 패스트푸드점에서 제공하는 햄버거 패티의 무게는 3.9온스에 불과했다. 지금 은 세 배 이상 커진 셈이다. 슈퍼사이즈 정량의 도입과 때를 맞 춰 미국인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이 늘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인의 총 칼로리 섭취량은 1970년 2109칼로리에서 2010년 2568칼로리로 증가했다. 퓨리서치(Pew Research)가 설명 한 대로, “이것은 매일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하나 더 섭취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 그릴에서 고객 앞까지 햄버거를 더 빠르고 더 싸게 제공하 겠다는 두 형제의 신념으로 탄생한 맥도날드는 오늘날 전 세 계에서 3만 5000곳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약 2000곳의 매장이 새롭게 탄생하는 초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 했다. 맥도날드는 매일 6800만 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거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를 위해 매 년 10억 달러를 광고비로 지출하는데, 대부분 어린이들이 광고 의 대상이다. 2013년 연구에 따르면, 매년 초등학생들이 맥도 날드 광고를 시청하는 횟수는 평균 254회에 이른다. 두말할 것 도 없이 맥도날드는 미국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회사이며, 닭고기 구매량도 KFC에 이어 2위를 차지 한다.
- 소금과 설탕,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이유는 이 물질이 우 리의 미뢰를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물질들은 우리 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이며, 인간이 이 물질들이 함유된 식품을 찾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식물과 덜 익은 과일, 상한 고기, 기타 부패한 음식에서 잠재적 유해독소를 탐 지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쓰고 신 음식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슈퍼마켓이나 사파리 뷔페가 없었던 탓에 흙에 서 소금을 추출하고(바다 가까이 사는 경우에는 소금을 얻기가 손쉬웠지 만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무척 어려웠다) 당분이 풍부한 과일과 지방 이 많은 사냥감을 찾느라 애를 써야 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가공된 형태로 무한정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문제다.
잠시 틈을 내 우리가 맛을 느끼는 과정을 살펴보자. 치킨 너깃 같은 음식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치아가 큰 조각을 작은 조각으로 분쇄한다. 이와 동시에 침이 음식을 촉촉하게 하고, 탄수화물을 맥아당과 덱스트린 등 단순당으로 분해하듯 침 속효 소가 일부 다량 영양소를 분해하며 맛을 유발하는 물질의 분자 들을 방출한다. 이 분자들은 입천장과 후두, 혀에 있는 미뢰의 특정 수용기 세포들과 충돌하고 결합한다.
- 서양 과학자들이 감칠맛, 즉 우마미를 기본 맛의 하나로 인정 하기까지는 거의 한 세기가 걸렸다. 대다수 과학자들이 감칠맛 을 다른 네 가지 기본 맛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방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세웠다. 과학자들은 2000년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혀에서 글루탐산을 감지하는 감칠맛 수용기를 분리함으로써 이케다가 줄 곧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경시되어온 감칠맛의 지 위를 마침내 인정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감칠맛은 다른 맛들과 함께할 때 그 향미가 제대로 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연 에서는 글루탐산염과 이노신산이나트륨(disodium inosinate, IMP), 구 아닐산이나트륨(disodium guanylate, GMP) 세 가지 감칠맛 화합물이 생성된다. 베이컨, 멸치, 치즈처럼 감칠맛이 풍부한 여러 식품에 서는 짠맛이 나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글루탐산염 그 자체가 미묘한 짠맛을 내기 때문이다. 글루탐산염과 이노신산이나트륨, 구아닐산이나트륨 같은 화합물의 나트륨이 상호작용 하면 감칠맛이 훨씬 증폭된다. 감칠맛을 내는 물질은 그 자체가 독특한 맛을 지니지만 다른 물질과 혼합되면 시너지 효과를 발 휘한다. 감칠맛을 내는 두 가지 물질이 섞일 때의 혼합 효과는 각각의 물질이 지닌 효과를 합친 것보다 훨씬 강하다. 버섯이 들어간 치즈 버거가 맛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쉽게 말 해, 버섯이 들어간 치즈 버거는 일부 요리사들이 '감칠맛 폭탄' 이라고 부르는 글루탐산염과 구아닐산이나트륨, 이노신산이나 트륨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토록 매력적인 것이다.
- 감칠맛이 이렇게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콤한 음식이라고 하면 에너지로 가득한 포도당이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짭짤한 음식이라고 하면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연구에 따르면 감칠맛이 풍부한 음식은 생존 하는데 필수적인 다량 영양소 중 하나인 단백질이 존재함을 알 린다.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진화론적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글루탐산염이 다른 미각 유발 물질들과 유사하게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여러 뇌신경 영상 연구 사 례들을 통해 알고 있다. 양수에서도 발견되듯, 인간은 자궁 속 에서 이미 글루탐산염에 노출된다. 태어난 뒤에는 모유로 다량 의 글루탐산염을 섭취한다. 실제로 인간의 모유에는 젖소의 젖 보다 글루탐산염이 열 배나 많이 함유돼 있다.
- 맥도날드 치킨 너깃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성분들을 잠시 살 펴보자. 뼈 없는 흰 닭고기, 물, 식물성 오일(카놀라유, 옥수수유, 대 두유, 수소화 대두유), 강화 밀가루(표백 밀가루, 나이아신, 환원철, 티아민 모노니트레이트, 리보플라빈, 엽산), 표백 밀가루, 황옥수수가루, 식물 성 전분(변성 옥수수, 밀, 쌀, 완두콩, 옥수수), 소금, 발효제(베이킹소다, 알루미늄 인산나트륨, 산성피로인산나트륨, 젖산칼슘, 인산일칼슘), 향신료, 효모 추출물, 레몬즙 고형분, 포도당, 천연 조미료 등. “100퍼센 트 닭고기로 만들며 인위적 색소나 조미료,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맥도날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치킨 너깃에는 닭 외에도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문제는 식품인류학자 비 윌슨(Bee Wilson)이 설명한 대로 맛과 향미증진제가 풍부한 식품은 많이 먹을수록 더 갈망하게 된 다는 데 있다. "먹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 니다. 태어나면서 숨 쉬는 법을 터득하듯 먹는 법도 선천적으 로 아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 니다. 먹는 것은 유아기 이후 쉼 없이 배우는 매우 복잡한 기술 의 연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법을 배우는 주된 방식은 노출을 통해서입니다. 과학자들이 이미 오 래전부터 알았듯,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그동 안 우리가 노출되어온 특정 향미들이 기능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 고기가 맛있는 이유, 마이야르 반응과 지방의 산화
과학자들은 맛을 증진시키고 향미를 강화하기 위해 육즙만 짜내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식물성 가공식품도 이들이 주목하 는 대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를 매 료시키는 육류만의 특별한 향미는 어떤 것일까?
맛과 관련된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는 길은 다양하지만, 그 모든 길은 먼저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Louis Camille Maillard)라는 프랑스 의사이자 화학자를 거쳐야 한다. 마이야르는 육류가 아니라 요소 대사와 신장 장애 연구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설탕과 아미노산을 함께 가열하면 그 혼합물이 갈색으로 변한 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군인들이 갈색 음식이 맛없다고 불평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마이야르 반응과 향미 사이의 관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입에 당기지 않는 맛과 색깔의 변화가 마이야르 반응 때문이라 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는 이 반응을 방지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는데, 머지않아 향미증진제(조미료)로서의 가능성을 발견 하게 된다.
아미노산과 단당류의 전위를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꽤 복잡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맛 있다고 느끼는 독특한 '고기 맛' 향미가 만들어진다. 이 향미는 일반적으로 섭씨 140도 이상에서 발생하는 마이야르 반응에서 생성된 1000여 개 이상의 새로운 분자들에서 비롯되며, 이 과 정이 없으면 고기 맛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이미 여러 실험에서 입증됐듯이,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쥐와 침팬지 같은 동물들도 일관되게 날고기보다는 익힌 고기를 선택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마이야르 반응은 팝콘과 초콜릿, 맥주 같은 다른 음식들의 전체적인 향미를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지 만, 무엇보다 강력한 효과는 두말할 것도 없이 육류에서 일어난 다. 부드러운 스테이크, 육즙이 풍부한 구운 햄버거, 노릇노릇하게 튀긴 치킨 윙 등에 우리가 매료되는 이유 중 하나도 마이야르 반응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칠 경우 아크릴아미드, 푸란 같 은 발암성 물질을 포함한 위험한 화합물을 만들어내 음식이 건 강에 매우 해로워질 수도 있다.
육류가 맛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방 의 특별한 조합에 있다. 익힌 육류의 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 한 요소들이 밝혀졌지만, 과학자들은 다른 성분들 중에서도 지 방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방은 단백질과 탄 수화물에 비해 그램당 두 배 이상의 열량을 지녀 인간의 진화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지방의 조합과 그에 따른 맛은 여러 요인들에 따라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소, 닭, 돼지 등 육류의 종과 곡물이냐 풀이냐 등 먹이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이런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결과는 동일하다.
고기를 조리하면 마이야르 반응 외에도 지방이 산화하기 시 작하면서 맛있는 향을 배출한다. 고기 맛을 결정하는 데는 자연 적으로 만들어지는 글루탐산염뿐만 아니라 작지만 매우 다양 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다른 식 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하 는 감각적 경험이 이뤄지는 것이다. 소금과 설탕, 지방, 감칠맛 을 유발하는 인자에다 자연에서 추출했든, 실험실에서 합성했 든 다양한 조미료가 더해지면 우리가 고기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산업형 축산으로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거북이, 비버, 뱀장어 등은 한때 북아메리카 식단에서 사랑받던 식재료였지만 지금은 요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선호하는 소, 돼지, 닭 등의 육류에 대해 서도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애써 키운 가축들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먹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산업형 축산업계는 영리한 광고와 맛 조작을 넘어 진실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 산업형 축산업계의 홍보 전략은 매우 다양하며, 그 수법은 정 치, 법, 교육 제도의 가장 근간에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형 축산업 계는 대중을 겨냥한 정통 마케팅 및 홍보 캠페인을 시행하는 것 은 물론 전략적 로비에 나서거나 제휴 관계를 맺는 데 이르기까 지 온갖 활동을 하면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 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잠재적 장애물들을 교묘하게 제거함으로 써 어떤 제품이든 본격적으로 판매하기에 앞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산업형 축산업계는 우리가 고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조차도 고기는 강하고 식물은 약하다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 근육이 '발달한다(feefing)'고 표현한다. 집에서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가 될 거라고 한다. 신체적으로 강 인함을 표현할 때는 '육체미 (beefcake, 건장한 체격)'라는 표현을 쓰 고,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은 '식물인간(vegetable)'이라고 부른다.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수많은 바 비큐 파티에 참석했다. 공휴일은 불을 피우고 친구들을 초대하 기 위한 핑곗거리나 다름없었다. 우리 집에서 고기를 굽는다면 그릴 앞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아버지였다. 친구 집이라면 당연히 친구 아버지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디를 가든 남성들은 항상 그릴 주변에 모여 있고, 여성들은 브라우니나 토핑, 음료 등을 준비했다.
- 그릴 구이는 남성들과 어울린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릴은 맥주를 든 채 그 주변으로 모이는 남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다. 풋볼이 한창일 때의 대화면 TV와 마찬가지다. 캐설리가 부연설명한 것처럼, 그릴 구이는 20세기 미국의 독특한 관습이 다. 다른 나라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익히는 일은 주로 여성들 의 몫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며 미국인들, 주로 백 인들이 교외로 이주하면서 뒷마당 바비큐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그와 더불어 주말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 기 위해 그릴을 손보는 성실한 남성의 이미지가 탄생한 것이다. 성별과 육식의 관계에 대한 기념비적 저술로는 캐럴 J. 애덤 스(Carol J. Adams)의 《육식의 성정치(The Sexual Politics of Meat)>를 꼽 을 수 있다. 1990년 출간된 이 책은 우리가 먹는 음식, 즉 가축 은 주로 가부장적 정치학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애덤스는 모든 끼니의 이면에는 '부재(absence)'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섭취하는 고기를 내준 동물의 죽음 말이다. 이 부재 의 지시 대상(absent referent)은 “육식에 내재하는 폭력을 은폐하 고",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떤 존재였던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그 고기가 한때 동물이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애덤스는 인간 사회에서는 여성의 존재를 그 존엄성에서 분리하는 동시에 신체의 일부로 격하한다 고 주장했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팔, 허벅지, 가슴 등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메뉴를 고르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의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여성의 신체 부위에 집착 하는 가부장적 사회는 이와 비슷하게 육식에도 집착하는 모습 을 보인다.

- 빵, 치즈, 버터, 차, 우유, 단단한 뿌리채소 등으로 이뤄진 1700년대 유럽 농장 노동자들의 전형적인 식단을 생각해보자. 저녁식사 접시라도 고기가 담겨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반 면에 귀족들은 매일 3파운드(약 1.3킬로그램)의 육류와 생선을 먹 어치웠다. 20세기 이전까지 거의 모든 사회에서는 음식이 그 사 람의 사회경제적 계층을 상징했다. 그만큼 육류는 모든 이가 열 망하는 대상이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 적어도 미국에서는 산 업형 축산업 덕분에 육류가 풍부해져 매우 저렴하게 공급됐다. 오늘날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것에는 다른 화려한 것들이 많 지만,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여전히 부유 층보다 육류를 더욱 강하게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 유진 챈(Eugene Chan) 박사와 나탈리나 즐라테프스카(Natalina Zlatevska) 박사는 피실험자들에게 고기 패티와 채소 패티를 보여 주고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묻는 실험을 했다. 모든 경우에서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들은 고기 패티를 강하게 선호했다. 즐라테프스카 박사는 계층 규범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고 추측했다. "육식과 힘, 권력과 남성미 사이에는 상징적 연관 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육류는 손님을 위해서 차리거나 축하 행 사의 중심에 등장하는 상류층 음식이었다."
- 결국 우수 육류에 대한 찬반은 '생명의 박탈을 허용할 것인가?'라는 도덕적 문제로 귀결된다. 동물의 죽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들은 도축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가진 채 사육되는 동물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며, 우수 육류에도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반면 우수 육류를 옹호하는 사람들 은 동물을 도축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 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 까지 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했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 결론은 이렇다. 우수 육류는 가능할지라도 현실화하기는 결 코 쉽지 않다. 당신이 구입하는 모든 고기가 환경친화적이자 인 도적으로 생산된 것임을 확인하려면 굳은 의지와 경계심이 필 요하다. 비동물성 육류와 우수 육류 중 무엇이 더 이상적이든, 후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고기를 먹고 싶어 하며, 따라서 좋든 싫든 산업형 육류보다 나 은 방식으로 육류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식물성 육류는 정말 더 건강한 먹거리인가
식물성 육류 가격이 동물성 육류와 비슷해진다 하더라도 식 물성 육류를 선택하기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식물성 육류가 과연 몸에 더 좋을까? 식물성 육류가 소금과 포화지방으로 가득한 경우도 더러 있다. '핫 이탈리안 비욘드 소시지'를 예로 들어보자. 이 제품에는 분리 완두콩 단백질, 정제 코코넛 오일, 해바라기 오일, 천연 향료, 쌀 단백질, 파바콩 단백질, 감자 전 분, 소금, 과일즙, 채소즙, 사과 섬유질, 메틸셀룰로오스, 감귤 추 출물, 알긴산 칼슘 등 온갖 성분들이 포함돼 있다. 영양 정보를 보면, 조리된 소시지 한 토막에 500밀리그램의 나트륨과 5그램 의 포화지방이 들어 있으며, 이것은 각각 하루 권장치의 21퍼센 트와 25퍼센트에 이르는 양이다.
농무부 장관을 지낸 댄 글릭먼(Dan Glickman)은 비욘드 미트 제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반드시 좋을 거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요. 우리도 잘 모르거든요." 임파서블 버거의 나 트륨 함량은 패티당 370밀리그램으로 비욘드 소시지보다 적지 만 포화지방은 8그램으로 더 많다. 식품저널리스트 로렌 웍스 (Lauren Wicks)의 글을 보자. “식당 메뉴판에서 임파서블 버거를 보는 것은 채식주의자에게 신이 내린 은총처럼 느껴질 수도 있 지만, 이 버거 역시 건강한 성인이 평범한 치즈 버거를 대할 때 와 동일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괜찮은 경우도 있겠지만, 임파서블 버거 또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간주 해서는 안 된다.
- 비욘드 미트는 유명 브랜드 돼지고기 소시지에 비해 포화지방이 38퍼센트 적고 "호르몬과 아질산염, 질산염, 대두 또는 글 루텐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 주장을 뒷받 침하기 위해 스탠퍼드대학 의대 연구원들이 2020년 시행한 연 구에서 동물성 육류를 섭취한 피실험자들과 비교했을 때 식물 성 육류를 섭취한 피실험자들의 TMAP (심혈관질환 위험과 관련된 분 자) 수치가 더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배추만큼 건강에 유익 하지는 않을지라도 식물성 육류가 여러 측면에서 동물성 육류 보다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용한 근거들은 꽤 많다.
식물성 육류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이런 제품들이 보기보다 환경친화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실제로 식물성 육류의 일부 성분은 단일재배(토양의 생물 다양성을 해칠 수 있는 단일 작물만 재배하는 농법)로 얻어진다. 단일재배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한가지 작물만 경작하다 보면 식물에 치명적인 질병을 초래하거나 토양의 영양소가 고갈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식품 전문 저술가 알리시아 케네디(Alicia Kennedy)는 <인 디즈 타 임스(In Thes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쇠고기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기 후 변화, 생물 다양성 상실, 자원 고갈 등 우리가 직면한 광범위 한 생태학적 위기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임파서블 푸 드의 버거는 대두, 비욘드 미트의 버거는 완두콩 단백질로 만들 어집니다. 이 버거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기 위해 이 회사들은 다양한 작물보다는 단일재배에 치중하는 식물성 식품 체계를 고집합니다. 작물의 다양화는 토양과 건강한 자연뿐 아니라 소 규모 농가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작물의 다양화는 또한 탄소를 격리하고, 영양소의 순환을 효율화하고, 토양이 더 많은 물을 저장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가 더해질 때 농장은 기후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대두와 완두콩 에 의존하는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는 유해한 생산 체계 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대해 식물성 육류 옹호자들은 산업형 육류 의존도를 줄 임으로써 얻는 긍정적 효과가 단일재배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압도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공장식 농장들은 비용을 절감하 려고 이미 단일재배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런 관행은 가축이 아닌 사람을 먹일 목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바꾸어 말해, 동물을 활용하지 않고도 식물성 육류의 환경 발자국(environmental footprint, 인간의 의식주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 소모 비용을 토지 면적으로 환산한 지수 - 옮긴이)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세포배양육이 재생농업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이를 '환경친화적'이라고 간주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한 예로 지속가능 농업 트러스트(Sustainable Farming Trust)의 정책이사 리처드 영(Richard Young)은 세포배양육을 황철석(fool's gold, 금처럼 보이는 이황화철광물 - 옮긴이)'에 비유하면 서 필요 에너지량의 관점에서 아직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기술 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도 틀리지 않다.
2019년 옥스퍼드대학이 세포배양육을 분석한 결과, 단기적으 로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산업형 육류보다 기후 변화를 더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연구의 공저자들은 이 모델에서 미심쩍은 두 가지 가 정을 전제했다. 첫째는 세포배양육이 현재와 동일한 동력 생산 방식, 즉 화석연료를 이용해 계속 생산될 것이며, 둘째는 이 방 식이 이어지는 1000년 동안 계속되리라는 가정이다.
이 두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세포배양육 을 생산하는 데 있어 지금처럼 비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한다. 저널리스트이며 《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Billion Dollar Burger)》의 저자인 체이스 퍼디(Chase Purdy)는 <쿼츠>에 기고한 글에서 어떤 세포배양육 회사도 아직 완전히 가동되는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서 "세포배양 육을 대량 생산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지는 누구 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세포배 양육이 현재 전 세계 담수 소비량의 20~33퍼센트, 농경지 사용 면적의 80퍼센트,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18퍼센트를 차 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산업용 육류보다 더 심각하게 환경을 파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세상의 모든 신기술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며, 잠재적 유 해성은 그것이 얼마나 우려스럽든 간에 잠재적 이점과 견주어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문명과 식량(The Big Ratchet)》의 저자 루 스 디프리스(Ruth DeFries)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개발한 모든 기술적 해법은 천재적이면서도 또 다른 종류의 문제들로 이어 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기술을 면밀히 살펴보고 반작 용을 최소화할 해법을 구상하는 것입니다." 체르노빌과 후쿠 시마 같은 재앙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화석연료 의존도 를 낮출 방편으로 여전히 원자력 에너지 개발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포배양육 옹호자들은, 세포배양육 회사 설립자들이 사명감 에 불타는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자체 기술을 무책임하 게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하지만 이런 장밋 빛 감성만으로는 기술이 홀로 조용히 존재할 리 없다고 주장하 는 많은 세포배양육 비판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어렵다.
- 등유를 개발해서 고래를 구하고(고래의 지방에서 기름을 추출할 필 요가 없어졌으므로), 펜을 개발해서 거위를 구하고(펜대로 사용할 깃털을 뽑을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박테리아 속 인슐린을 처리해서 돼지 를 도운(돼지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뽑아낼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사례들이 있다. 이것은 다양한 유형의 기술을 활용해 하나의 환경에서 한가지 동물에 대한 착취를 종식시켰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 밖의 영역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거나 새로이 등장할 또 다른 유형의 억압을 우리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공장식 축산도 다르 지 않다. 공장식 축산이 존속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동물에 게 해를 끼치지 않을 동물 윤리를 아직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이 다. 노예제도가 기술 발전 덕분에 종식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노예제도에 대한 도덕적 고려에서 초래된 남북전쟁이 없었더라 면, 미국인들은 이 사악한 제도에 정면으로 맞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제품을 만들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 는 것과 관련된 도덕적 해악은 희생당하는 타인의 위치에서 도 덕적으로 계산해보지 않아도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착취적 대안을 찾아낼 때 비로소 해결된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0) 2024.01.12
블랙쉽  (1) 2024.01.04
사실은 이것도 디자인입니다  (2) 2023.12.31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0) 2023.12.31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1) 2023.12.29
Posted by dalai
,

- 명확하고 즉각적인 피드백
두 가지 예시를 통해 토스가 제공하는 명확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첫째, 사용자가 앱 내에서 특정 액션을 취했을 때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좋은 사용자 경험을 느낄 수 없다. 예 를 들어 어떤 앱에서 회원 탈퇴를 신청했는데 한참 동안 아무 반응이 없다면 사용자는 탈퇴에 성공했는지 알 수 없다. 액션 에 대한 빠른 피드백은 사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 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토스는 액션에 대 한 피드백이 무척 빠르고 명확한 앱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오류가 발생했을 때 또는 사용자의 특정 액션이 불 이익을 초래할 수 있을 때 이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적시에 띄 우지 못하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실수로 계좌 삭제 버튼을 눌렀는데 어떤 절차도 없이 계좌가 곧 바로 삭제된다면 그로 인해 큰 불편을 겪을 것이다. 이 경우 토스는 팝업창을 띄워 진짜 삭제할 것인지 한 번 더 확인하면 서 삭제 후 사용자가 받을 불이익(예를 들면 계좌에 연결된 자동이 체도 함께 삭제된다는 정보)까지 자세히 안내한다.
- 다음은 정지 신호 부재와 관련된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이다. 행동 경제학자인 브라이언 완싱크Brian Wansink 박사는 인 간의 식욕 조절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로 무한 수프 실험을 진 행했다. 먼저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 그들에게 각각 일반 수프 그릇과 무한 수프 그릇을 제공했다. 무한 수프 그 릇은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 구멍을 통해 수프가 계속 채워지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의 평소 수프 섭취 량과 수프가 무한히 보충될 때의 섭취량이 다른지 관찰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놀랍게도 무한 수프 그릇을 사용한 참가자 가 일반 수프 그릇으로 먹은 참가자보다 평균 73% 더 많은 양을 섭취했다.
이러한 심리 메커니즘은 UX를 설계할 때 다양한 형태로 활용된다. 대표적인 예로 SNS나 핀터레스트 등에서 볼 수 있는 무한 스크롤이 있다. 사용자는 피드를 스크롤하며 새로 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과거에는 스크롤을 내리면 화면 하단에 '더 보기' 버튼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버 튼을 클릭하면 새로운 콘텐츠가 나타나고 스크롤을 내리면 다시 버튼이 나타났다. 그런데 무한 스크롤은 새로운 콘텐츠 를 끊임없이 제공하기 때문에 자칫 일상생활에서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나 아름다운 이미지에 무한정 노출되면 자존감이 저하되거나 불안감이 생기는 등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틱톡 같은 숏폼 영상 플랫폼의 무한 스와이프나 애플 뮤 직, 스포티파이의 자동 음악 재생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으 로 디자인되었다. 특히 자동 재생 기능은 다음 콘텐츠를 연속 으로 재생하면서 사용자에게 이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포모 fear of missing out, FOMO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 생각해보면 별점은 우리가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비교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그 이유는 상 품의 품질과 가격, 배송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사용자 만족 도를 시각적으로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유용한 지표였기 때 문이다.
쿠팡을 생각하면 가성비 좋은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이라 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따라서 미리 구매할 상품을 정해놓고 앱을 실행한 뒤 싼 제품을 최대한 빠르게 구매하는 경우가 많 다. 이때 별점은 원하는 제품을 빠르게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반면 컬리는 전문가들이 엄선한 제품을 구매하고 싶을 때 이용한다. 집단 지성이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용자가 평가한 별점은 크게 중 요하지 않다.
나는 컬리에서 제품 구매 시 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상세 이미지 설명, 제품에 들어 있는 성분, 생산 유통 과정을 읽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쿠팡보다 컬리 에 체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이는 내가 두 서비스에 서 얻고자 하는 가치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오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 소셜 프루프social proof는 대상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거나 스스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애매할 때 다른 사람이 이미 내린 의견을 근거로 결정하는 것 을 말한다. 로버트 치알디니 Robert Cialdini라는 심리학자가 설 득의 심리학』 (21세기북스, 2023)에서 처음 거론했으며 한국어로 는 '사회적 증거'로 번역되기도 한다.
소셜 프루프는 디지털 세상에서 강력한 힘을 갖는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그 중요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 소셜 프루프에는 부작용도 있다. 물건을 구매할 때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무조 건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이를 허드 효과herd effect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 의견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업이 허위 정보나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사용하 면 사용자는 그 진위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 기업이 제시한 데이터가 거짓이라는 게 발각되면 소비자에게 신뢰를 잃고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므로 서비스 담당 자는 사실 여부를 철저히 검증하고 사실이 아닌 정보는 노출 하지 말아야 한다.
- 워터폴은 다음과 같이 순차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씩 진 행한다. 우선 프로젝트 목표에 해당하는 요구 사항을 분석 requirements analysis 해 문서화하고 디자인과 시스템 전반을 설 계design한다. 이후 코드를 작성하여 구현 development 하고 완성 된 제품이 요구 사항에 맞는지 확인하는 테스트testing 단계를 거친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사용자에게 제품이 제공되는데, 이를 배포deployment라고 하며 이후에 버그를 수정하고 새로 운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단계를 유지·보수 maintenance라고 한다.
이 방식은 생각보다 큰 위험을 내포한다. 시장에 나가보지 않은 모든 디자인 콘셉트는 가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디자이너의 가설만으로 시장의 모든 요구 사항과 디자인을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이 많이 바뀌는 추세다. 예전처럼 디자이너의 감에만 의지해 산 출물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데이터 전문가와 긴밀히 협업하 거나 때로는 사용자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기도 한다. 자신의 디자인을 뒷받침할 탄탄한 논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유능 한 동료들을 설득하는 것 역시 무척 어려워졌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린Lean UX라는 개념이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확산되며 국내에서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반면 워터폴 프로세스는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린 UX는 린스타트업과 UX의 합성어로, 시장에서 가설을 빠르게 검증하기 위해 MVPminimum viable product(최소 기능 제품) 를 만들어 반복 학습하며 점진적으로 실체화해 나가는 방법 론이다. 사격을 예로 들면 아주 오래 조준한 뒤 목표물을 쏘 는 것이 아니라, 일단 빠르게 한 발 쏜 뒤 영점을 조정해 가능 성을 높여 다음 사격을 계속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 린 UX는 산업 디자인, 인쇄물 디자인과 같이 공정이 명확한 영역이 아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환경에 주로 사용된다. 또한 린 UX는 공장을 가동해 인쇄하는 것처럼 물리적 시공 간이 필요한 방식이 아니라, 개발 완료 후 스토어에 업로드하 면 언제든지 출시할 수 있는 디지털 프로덕트의 특성을 잘 고 려한 방법론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잦은 업 데이트, 신속한 시장 반응 수집, 학습을 통한 반복 개선과 같 은 작업에 익숙할 것이다. 린 UX는 이러한 스타트업의 작업 방식에 대응하고자 디자인 사고,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방 법론, 린스타트업이라는 세 가지 토대로 성립되었다.
-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로 유명한 스포티파이sportify에서 는 특정 미션을 가진 융합 팀을 스쿼드squad라고 부른다. 스쿼 드는 시기별로 집중해야 하는 미션에 따라 유기적인 형태로 팀의 규모를 늘리거나 줄인다. 스쿼드는 이제 한국 스타트업 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중요한 부분은 완성도 높은 '산출물'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성과 검증'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이는 린 UX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용자'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워 터폴 프로세스에서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에게 산출물을 납 품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이다. 시장에서의 성과는 측정 가능한 수치로 관리되며 학습으로 이어진다.
- 퍼실리테이터로서의 디자이너
그동안의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라는 가치에 갇혀 조 형 전문가 혹은 시각 요소를 다루는 메이커라는 인식이 강했 다. 나는 우리가 오랫동안 숭상한 크리에이티브라는 가치 자 체에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디자이 너가 골방에 틀어박혔다가 고뇌한 끝에 세상이 깜짝 놀랄 만 한 창작물을 가지고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이미지 가 들어 있다. 하지만 각 시대에는 그 시기적 환경에 적합한 창조성이 요구되며 이에 따라 디자이너도 여러 모습으로 변 화를 요구받는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아닌 퍼실리테 이션Facilitation 측면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퍼 실리테이터 facilitator로서의 디자이너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서 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환경 그 자체를 디자인한다. 이때 디자이너는 이해관 계자들의 관점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이나 토 론 세션을 열고, 때로는 의견을 받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한 다.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러한 역할을 무한히 반 복한다. 골방에서 아름답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몰래 만든 후 다른 팀원들을 놀라게 하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린 UX에서는 가설이 검증되지도 않았는 데 아름다운 결과물만으로 설득하려는 디자이너를 경계해야 한다.
높은 미학적 완성도는 가끔 모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데, 이는 아름다움 자체에 이미 강한 설득력이 존재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퍼실리테이터로서의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디 자인이 가진 강력한 힘을 미리 인지하고 이 힘이 발휘되는 시 점을 적절히 지연시킬 필요도 있다.
- 핍진성이란
핍진성 verisimilitude 은 문학에서 온 용어다. '그럴듯한' 혹은 '있 음직한'이라는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이다. 영화처럼 진 실과 거짓의 구분이 모호한 서사 예술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를 뜻한다. 특정 세계관에 충분 히 스며들어 이해하는 정도라고도 할 수 있다.
- 브랜드와 핍진성
브랜드나 서비스가 세상에 막 출시되었다면 소비자에게 받아 들여질 만한 현실성 있는 맥락이 필요하다. 이 맥락은 브랜드 가 현실에 첫발을 내딛는 역할을 한다. 만약 기존에 없던 새 로운 개념의 서비스라면 다른 영역에서 사용되는 맥락을 빌 려와 소비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 좋다.
- 브랜드에 세월이 축적되면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여러모로 유리하다. 샤넬, 닥터마틴, 리바이스, 코카콜라 같은 브랜드 를 떠올리면 오랜 문화와 시간을 통해 형성된 헤리티지 heritage 가 자연스레 느껴진다. 헤리티지는 오랜 세월 동안 한 브랜드 가 만들어낸 브랜드의 고유 정신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브 랜드가 행하는 시도에는 자연스레 무게감이 실린다.
그러나 세상에 갓 등장한 브랜드는 당장 헤리티지를 구축 하기가 쉽지 않다. 브랜드 로고에 빈티지한 색감을 애써 입히 더라도 헤리티지를 느끼기는 힘들다.
- 단순함은 좋은 가치다. 본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 다. 하지만 언제나 단순함 자체가 목표일 필요는 없다.
피아노 건반은 88개나 있다. 모든 건반을 활용해 연주하 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건반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 하는 사람은 드물다. 비행기 조종실이 복잡한 데에도 역시 이 유가 있다. 조종사는 뚜렷한 정보 체계와 명확한 구조를 통해 그 복잡함을 이해한다. 심리학에서 종종 거론되는 테슬러의 법칙Tesler's Law 에서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시스템에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일정 수준의 복잡함이 존재한다.
이를 내재된 복잡성이라고 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카 카오톡을 떠올려보자. 최소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존재해야 하며 메시지를 입력하는 키보드도 꼭 필요 하다. 이메일 역시 단순화하기 위해 수신자나 제목 등을 제거 한다면 큰 불편함이 따를 것이다. 테슬러의 이론을 곰곰이 들 여다보면 복잡함은 완벽히 제거할 수 없는 세상의 일부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의 지저분한 책상에도 그 사람이 부여한 임 의의 질서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 UIX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은 「디자인과 인간 심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잡함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대상은 바로 혼란스러움이다.
노먼의 말에 따르면 디자이너는 맹목적으로 덜 복잡함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혼란스러움을 다스리는 사람에 가깝다. 즉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단순함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 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에 남길 최소한의 기능이 무엇인 지 고려한 뒤 혼란스러움을 야기하는 요소를 하나 둘 제거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단순함이라는 가치를 만날 수 있다.
- 2021년 한국소비자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상용되는 100개의 앱 중 97개에서 1개 이상의 다크 넛지가 발견됐다.
국내에는 아직 다크 넛지에 관한 규정이 미흡하다. UX 차 원에서 사용자에게 구매나 사용을 유도하는 것이므로 마케 팅과 위법의 경계에 있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설계하는 사 람 역시 명확히 다크 넛지와 아닌 것들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 이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다크 넛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 러한 혼란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다크 넛지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소비자가 독립적인 구매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존의 마케팅 기법과 차이가 있다.
- 화이트 넛지를 추구하는 이면에는 매출 하락이라는 공포가 존재한다. 때문에 커머셜 영역에서는 '윤리 추구가 암묵적인 금지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앱 무료 체험판 기간이 끝나는 상황을 정확히 알려줄 경우 해지율은 일시적 으로 상승하지만 잔존하는 사용자들에게 얻는 신뢰도는 오 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용자는 '아, 이 앱은 사용자 를 기만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일종의 안도감을 얻 는다. 이런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종의 화폐처럼 차곡 차곡 쌓이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앱은 사용자를 속이는 다크 넛지를 지양한다'라는 슬로건의 브랜드 캠페인도 가능하지 않을까?
최근 AI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나 브랜드의 과대 광고 등으 로 기업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사태가 종종 있었다. 소 비자는 더 이상 윤리적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 에 화이트 넛지 추구가 상식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 예상한다.
- 동네 중국집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달 앱의 성장은 예측이 어렵다. 마찬가지로 중고 옷가게의 성장은 예측이 가 능하지만 중고 거래 플랫폼의 성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즉 스 타트업 성공의 크기는 가설이 가진 잠재력과 비례하며 검증 의 연속과 직결된다. 본질적으로 실패하기 쉽다는 뜻이며 혁 신성이 클수록 실패 확률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아 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실패 확률을 줄이 는 프리토타입pretotype 작업이 사전에 필요하다. 프리토타입 에서 실패의 동의어는 '학습'이다.
- 프리토타입이란
프리토타입과 비교할 수 있는 모델이 프로토타입 prototype이 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프로토타입 모델에서 발견된 문제들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거쳐 시제품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를 거듭한다. 반면 프리토타입은 프로토타입을 만들 기 전에 더 적은 비용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인 척'하는 형태 라고 할 수 있다.
프리토타입을 개념화한 사람은 구글 출신의 알베르토 사 보이아Alberto Savoia다. 그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인플루엔셜, 2020)에서 OPD other people's data 와 YODAyour own data의 차이에 대해 OPD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고 YODA는 내가 직접 쌓은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프리 토타입은 YODA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프리토타입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 서비스에 호응한 실제 사람들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프로 토타입으로는 몇 달에 걸쳐 알아낸 사실을 단 며칠 만에 알아 냄으로써 엄청난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 한 가지 뼈아픈 사실은 프로젝트 초기의 경우 기능상 디 테일을 그렇게까지 챙기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가설이 대 부분이라는 점이다. 초기 단계에 있는 팀이 스파게티 코드 나 예쁘지 않아도 핵심 경험이 살아있는 UX를 지향해야 하 는 이유이기도 하다(그런데 각 분야 전문가와 이러한 합의점을 찾는 것 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초기 기능들은 가설이 검증되지 않거나 사용자에게 외면받으면 사라질 가능성이 무척 높다. 검증도 안 된 기능을 위해 처음부터 최고급 코드나 UX는 구축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실 이 단계에서 가장 좋은 상황은 개발 리 소스 없이 프리토타입이나 주변인들과 나누는 인터뷰만으로 어느 정도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경우다.
- 트리거 trigger란 어떤 행동을 발생시키기 위한 촉매제를 의미한다. 습관 형성을 위해서는 내부 트리거와 외부 트리거가 필 요하다.
기상을 위한 시끄러운 자명종이나 휴가 시즌에 맞춰 노출 되는 여행 특가 배너 등이 외부 트리거에 해당한다. 그중에서 도 강력한 외부 트리거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의 추천이 다. 지인의 신뢰를 얻은 서비스는 단번에 엄청난 외부 트리거 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내부 트리거는 어떤 것일까? 내부 트리거는 인 간의 감정과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나는 배고플 때는 배달 의민족 앱 아이콘이 생각나고 외로울 때는 페이스북이 생각 난다. 빨래 바구니가 넘칠 때는 런드리고가 생각나며 불쾌한 향이 가득한 곳에 있을 때는 이솝 매장에 가고 싶다. 이런 앱 과 브랜드들은 이미 내 특정 감정과 연결돼 내부 트리거로 자리 잡은 셈이다. 즉 트리거는 사용자의 무의식에 어떤 구조를 만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내부 트리거는 외로움이나 심심 함, 짜증, 괴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깊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SNS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인간 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진에 댓글을 달고 내가 태그되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의 사회적 필요성과 중 요도를 재확인한다. 누군가 인스타그램이 인류의 거대한 감 정과 욕망의 회고록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내가 운영하는 서비스의 핵심 기능을 인간의 부 정적 감정과 연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의 표면적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 제작이 아니라 사용자가 부정적인 감 정을 느끼는 일상의 지점을 핀셋으로 정교하게 집어내는 작 업 말이다.
- 주지화 intellectualization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잊기 위해 지식으로 상황을 이해하 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의사에게 암이라는 말을 듣고 병의 원인이나 증상과 관련된 지식에 몰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낙담하지 않고 문 제에 집착하는 주지화에서 긍정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어려운 순간에 충분히 느끼고 지나가야 할 슬 픔이나 낙담 같은 감정까지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마음에 지층을 만들어 부작용을 낳는다. 지식이 자신의 불안감을 완벽히 없애줄 것이라고 착 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주지화는 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지 적인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랙쉽  (1) 2024.01.04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4) 2024.01.04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0) 2023.12.31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1) 2023.12.29
무엇을 먹을 것인가  (1) 2023.12.12
Posted by dalai
,

- 어찌 보면 '특별함'이란, 평범한 다수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새 로운 뭔가를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싶다면,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하고 더 준비해야 한다. 더 늦 지 말고, 더 철저히 준비하고, 더 실수하지 않고, 완 벽에 가깝게 준비하라.
내가 전하려는 핵심은 '내 인생'이란 영화에 엑스트라조차 안 되는 방청객(타인)들에게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더 집중하고, 또 집중하자. 훌륭한(?) 방청객들이 내 주변에서 "네가 가는 길은 스타로 가 는 길이야"라고 응원의 말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 러니 이제는 내 인생에 집중하고, 목표 달성에 몰입 하면 된다. 내 인생의 주연 배우는 바로 나니까.
-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어떤 일에 대해 '가능성'이라는 여지를 남겨두려 하지 마라. 그렇게 되면 평생 그 일을 미루게 될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 미성숙한 사람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숙한 사 람은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 한다. 나는 내가 되고자 추구하는 바로 '그것'이다. (고든 올포트(Gordon W. Allport))
-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마음속에 있는 열등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 나는 우리가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현명하게 선택하는 법을 배우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나친 걱정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면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
- 현실적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면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어리석게 속상해하면 '문제에 대한 문제' 를 얻게 된다. 자신에게 이렇게 답하라. "실패하면 안 될 이유는 없어. 실패하더라도 최악은 아니고, 아주 불편할 뿐이야."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
- 다른 사람을 '앞서는' 능력은 결코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이런 방 식대로 해야 해"라는 말은 틀렸다. 어떤 일이든 항상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가운데서 지금 처한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 우리에게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서 마음을 여는 능력, 논리만큼이나 상상력에도 의지하여 다양하고 폭넓은 생각들을 해내고 통합하는 성향,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견딜 수 있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
-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은 살면서 여러 차례 변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라진다. 우울한 일은 예상보다 덜 우울한 것이고, 기쁜 일 또한 우리를 영원한 행 복으로 이끌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 이 시대의 부자들은 모두 낙천주의자다. 그들이 항상 잘 풀려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이 잘못돼도 그들의 태도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이런 긍정적 사고야말로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고, 스스로 수정하고 개선해서 마침내 성공에 이르게 한다. (데이비드 랜즈(David S. Landes))
- 내 존재의 의미는 나의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응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트렌드 코리아 2023》에 의하면 앞으로는 인덱스 관계(Index Relationship)만이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인 덱스 관계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형성되는 인간 관계 형식으로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진행되며, 자신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나와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굳이 설 득하고 이해시키며 노력의 시간을 함께 보낼 필요 가 없다. 애초에 나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픈 채팅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함께 취미를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하면 된다.
-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는지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즉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된다. (쿠르트 레빈(Kurt Lewin))
- 김영하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비싼 돈을 들여서 호텔이나 리 조트에 가는 것이다. 집에선 아무리 휴식해도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기억과 집안일을 했던 기억 등에 사로잡혀 진정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은 공간에 대한 기억력이 높다. 그리 고 그 기억은 앞으로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 친다. 때론 이 환경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달콤한 휴식이 될 수 있고, 엄청난 동기부여를 받을 수도 있다. 지친 나의 일상에 힘을 주는 게 '환경과 공간'의 능력이다.
당신이 지금 무엇인가 변화를 꿈꾼다면, 그 꿈을 이미 이룬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 보아라. 그리 고 받고 싶은 대우가 있다면, 그 대우를 이미 받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라. 또한 내가 지금 안 좋 은 환경에 놓여 있다면, 그 환경으로부터 과감하게 빠져나올 용기가 필요하다. 환경을 바꾸는 순간, 당 신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 모든 위대한 꿈은 '꿈꾸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항상 기억하라. 당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별들을 향해 도달할 힘, 인내심,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 앞서가는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하는 비밀은 복잡하고 과중한 작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업무로 나누고, 그것의 첫 번째 업무부 터 시작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 일 처리를 할 때 자기 스스로 성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만드는 것을 '자기 불구화 전략(Self- handicapping Strategy)'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제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오늘 발표 때 목소리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성공을 방해할 만한, 그리 고 모두가 이해할 만한 방해물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장애물은 당신이 실패했을 때 무능한 이미지를 얻지 않도록 보호해줄 것이고, 설령 성공한다면 그 성공을 더욱더 빛나게 할 것이다. 
- 당신이 아주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반드시 또 다른 기회가 있다. 우리가 실패라 부르는 것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넘어진 채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
- 삶의 문제 중 절반은 너무 빨리 '예'라고 말하는 것과 적절한 시기에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 때문에 일어난다. (조시 빌링스(Josh Billings))
-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나는 재능이 없었어" 라고 말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재능이 없 었다는 것이라면, 꿈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재능 이 있었다"라고 말해야 맞지만, 성공한 사람 중 그 런 말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꿈을 이룬 사람 들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열정을 가지고 계속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기타가와 야스시(Yasushi Kitagawa))
-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두 가지 말을 반복한다. 그 하나는 '왠지 오늘은 나에게 큰 행운이 생길 것 같다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 는 것이다. (빌 게이츠(Bill Gates))
- 누군가에게 딱 맞는 신발이라도 다른 사람의 발은 아프게 할 수 있다.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될 수 있는 삶의 비결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꾸는 소중한 자산이고, 적절한 준비는 매우 중요하며, 지식과 지혜는 위대한 성 취를 추구할 때 근본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아이디어도, 준비도, 지식과 지혜도 '행동'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로버트 링거(Robert Ringer))
- 현재의 성공에 만족한다면, 그 만족감이 언젠가는 실망감과 불만으로 다가올 것이다.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은 완수할 과업을 가지는 일이다.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
-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바로 이것이 자신의 약점이나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다. (히로카네 겐시(Kenshi Hirokane))
- 실패를 두려워할수록 인생은 악순환일 뿐이다. 실제로 실패를 걱정하면 실패할 확률이 올라간다. 이 를 심리학에선 '월렌다 효과(Wallenda Effect)'라고 하는 데, 일의 결과에 지나치게 걱정하면 정상적으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월렌다 효과는 미국의 유명한 고공 외줄 공연가인 칼 윌렌다(Karl Wallenda)의 마지막 공연에서 유래했 다. 1978년, 73세의 나이에 월렌다는 마지막 공연 후 은퇴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는 73세가 될 때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처음으 로 외줄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했다.
- 위대한 삶을 만드는 데 돈이나 운은 필요하지 않 다. 빠르고 강력하게 두려움을 물리치는 능력이 필 요할 따름이다. 불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은 멀리해 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당신은 두려 움을 행동에 연료를 공급하는 원천으로 삶에서 활 용해야 한다. (그랜트 카돈(Grant Cardone))
- 당신에게는 문제가 생겨야 한다. 당신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당신은 행동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문제를 피하려고 만 한다. (그랜트 카돈(Grant Cardone))
- 그대가 할 수 있는 것, 아니면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바로 시작하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나는 나여야 한다.
나는 당신을 위해 나를 망가뜨릴 수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로 그래야 한다.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삶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남을 위해 사는 건 쉽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4) 2024.01.04
사실은 이것도 디자인입니다  (2) 2023.12.31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1) 2023.12.29
무엇을 먹을 것인가  (1) 2023.12.12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3) 2023.11.26
Posted by dalai
,

우리에게 버지니아 울프라는 소설가는 그녀의 작품보다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구절때문에 유명하다. 바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속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라는 서두의 구절이다. 또한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도 그녀의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라는 구절이다.

영국 소설가이나 평론가 버지니아 울프는 제임스 조이스와 더불어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기법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의식의 흐름이란 특별한 줄거리 없이, 등장인물의 의식, 즉 두서없이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이며 느낌을 고스란히 서술하는 기법이다. 지금은 오히려 버지니아의 소설을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법을 처음 도입한 버지니아의 대표작들은 당시에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버지니아는 처녀시절부터 신문에 에세이를 기고했으며, 결혼 후에도 타임즈 문예면에 서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도 이름을 알린다. 1920년대 들어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등의 작품이 계속해서 주목을 받으며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영광과 행복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해서 명성이 높아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큰 고통을 겪게 된다. 1939년 2차대전이 터지자 울프 부부는 런던을 떠나 우즈강 근처 별장에서 지내기로 한다. 전원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불안증세는 점점 심해졌는데, 1941년 3월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 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고,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었다. 자살의 원인으로 허탈감과 환청, 어린시절 의붓오빠들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13가지 대표작 중에서 뽑아낸 문장들을 담고 있다. 그녀의 글 속에는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많다. 여러가지 물상, 자연현상의 의식적 표현 등 버지니아의 글은 난해하게 읽히고 독자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녀의 문장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썼으며, 그녀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그저 글로 옮겨내었기 때문이다.

혹여 어렵게 다가오더라도 그 문장들은 의식의 저편 너머로 그저 관조해 보는 것이 좋다. 그녀의 문장들을 통해 버지니아의 생애를 바라보고 그 흐름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