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러티브는 흔히 이야기 story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내러티브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제시하는 현대적 의미인 “특정 사회나 역사적 시기 등을 설명 또는 정당화하는 서술을 할 때 사용되는 이야기나 표현”이라 는 의미를 반영한다. 나는 이 의미를 더욱 확장하여, 이야기가 단순 히 사건들의 순차적 배열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덧붙이고 싶다. 여 기서 이야기란 감정적 동조를 촉발하고, 일상 대화를 통해 쉽게 전 달되는 노래나 농담, 이론, 설명, 또는 구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야 기는 종종 이야기에 함께 엮여 있는 유명인에 힘입어 인간적 흥미를 이끌어낸다.
-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인 전자서명 알고리즘은 개별 소유자를 표시해 절도나 탈취를 방지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일찍이 1990년대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이 내러티브의 전염성은 비트코 인 자체의 전염성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프로퀘스트의 전체 데이 터베이스에서 타원곡선 전자서명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는 단 하나뿐이다. '전자서명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도 5건에 불과했다. 비트코인 혁명을 탄생시킨 암호화 알고리 즘, 즉 RSA 알고리즘의 등장은 19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 퀘스트에서 검색된 'RSA 알고리즘' 언급 기사는 26건이지만, '비트 코인' 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15만 건의 기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 준이다. 이런 막대한 차이는 비트코인 내러티브가 지닌 엄청난 전염성 때문이다. 전자서명 알고리즘은 마치 시험공부 때문에 억지로 암기해야 하는 단어처럼 들린다. 왠지 전문적이고, 어렵고 따분하다. 하지만 비트코인 내러티브는 다르다. 비트코인 투자가가 최첨단 기술을 발견해 부자가 되었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단어가 쉽고 짧아 귀에 쏙쏙 들어 오고 친목 모임에서도 열띤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비트코인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내러티브인 것이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이유는 흥미로운 것에 동참하고 그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동 기가 유독 강력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컴퓨터 가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거라는 내러티브 때문이다.
- 내러티브 군집뿐만 아니라 내러티브의 융합이 경제 사건을 촉발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융합confluence'이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듯 보였던 내러티브 집단들이 어느 시점에서 유사한 경제효과를 발휘함으로써 거대한 경제 사건의 발생을 규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2000년에 출간한 『비이성적 과열』에서 2000년 즈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미국 증시를 역사상 최고조로 과열시켰다가 이내 폭락하게 만든 10여 개의 촉발 요인, 즉 내러티브를 제시한 바 있다. 그 목록을 간단히 열거하자면 인터넷, 자본주의의 승리, 사업 성공의 신화, 공화당의 우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경제 언론의 성장, 낙관적인 전망, 새로운 연금 계획, 뮤추얼펀드, 인플레이션의 하락, 거래량의 증가, 그리고 도박 문화 의 도래였다. 거대한 경제 사건이 이례적으로 발생한 원인을 규명 하고 싶다면,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무관해 보이나 비슷한 시기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 경제에 동일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 내러 티브들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대 경제 사건이 단순히 하나의 내러티브 군집 때문에 발생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거대 경제 사건은 그렇게 딱 잘라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단순한 이야기나 전염 내러티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제 내러티브의 목록을 작성하는 편이 더욱 도움될 것이다.
- 래퍼곡선의 냅킨 이야기가 바이럴이 된 이유는, 이 래퍼곡선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충격적이라 경제학 교수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정부 관리들에게 어서 빨리 사실을 깨우쳐주고 싶었다는 데에 있 다. 결국 이 내러티브가 전하는 긴박감과 깨달음 때문이다.
더불어 이야기에 담긴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는 경제학과 관련된 단순한 일화가 장기 기억으로 진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냅킨이 라는 시각적 세부 사항은 사람들이 내러티브를 잊는 속도를 늦췄 고, 망각률을 감소시켜 더 큰 인구 집단까지 유행병처럼 번져나갈 수 있게 했다. 바이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서 배 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청중에게 이야기를 각인시키고 싶다면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라. 고대 로마의 키케로 의원도 시인 시모니데스를 인용하면서 그런 전략을 강조했다.
- 시모니데스는, 혹은 이 예술을 발명한 사람이 누구든 간에, 현명하게도 이러한 것들이 감각에 의해 우리의 마음속에 가장 강력하게 고정되고, 전달되고, 각인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예리한 것은 바로 시각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귀로 듣거나 머리로 이해한 것에 상상력을 더하여 마음의 눈으로 그린다면, 가장 쉽고 오래 간직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표현은 프로퀘스트와 구글 엔그램 뷰어에 따르면 1970년대 전에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주주가치의 극대화'란 회사에 극도의 부채를 떠안기고 직원과 다른 이해당사자와의 암묵적 계약을 무시하는 등 기업사냥꾼 들의 미심쩍은 관행을 돌려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극대화' 라는 단어는 지적이고 과학적이며, 계산적임을 암시한다. '주주'는 회사 에 돈을 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만 그들은 때때로 잊힐 수도 있다. 그리고 '가치'는 부나 이윤보다 긍정적이고 이상적 으로 느껴진다. 이 세 단어를 모아 하나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야말로 1980년대의 발명품이었고, 기업사냥꾼과 그들의 성공에 관 한 이야기에 사용되었다. 주주가치의 극대화'는 부의 추구와 공격 성을 정당화하는 전염력이 강한 내러티브며 이는 경제적으로 명백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래퍼곡선의 유행이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당선에 한몫 하긴 했지만, 다른 내러티브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이건의 이런 재치 있는 말처럼 말이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작동하면 세금을 매겨라. 계속 작동하면 규제해라. 그러다 작동하지 않으면 보조금을 줘라.”
레이건이 이렇게 연설한 것은 1986년의 일이었지만 사실 기본 적인 아이디어는 형태만 약간 다를 뿐 1967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의 보수 평론가인 월터 트로한 Walter Trohan의 글을 읽어보라.
“연방정부가 일하는 방식은 이런 우스갯소리와 일치한다. 작동하면 세금을 매겨라. 세금을 매길 수 없으면 규제해라. 규제할 수 없다면 백만 달러를 줘라."
그러므로 이 유명한 말은 1967년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던 것이 다. 하지만 아무리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도 진정으로 유행하려면 유명인이 필요했고, 이 경우에 그 유명인이란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 조류학자 리처드O. 프럼은 2017년에 출간한 『아름 다움의 진화』에서 성 선택이 동물 왕국에 투기 거품과 유사한 변동 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생물학에서 가장 유명한 성 선택의 예시 는 수컷 공작일 것이다. 수컷 공작은 크고 무거운 꽁지깃을 갖고 있 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 깃은 암컷 공작의 관심을 유도 해 낸다. 따라서 깃을 통해 짝짓기에 성공한 그들은 더 아름다운 꽁 지깃을 가진 개체를 재생산하게 된다. 암컷의 이런 성 선택은 쓸모 없는 특성에 진화적인 우위를 부여하게 되고 이는 생물학자 R. A. 피셔R. A. Fisher의 이름에서 시작되어 피셔의 폭주'로 불린다.19 이 메 커니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딱히 2개의 구분된 성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러한 성 선택 과정은 암수 성기를 모두 지니고 있는 자웅동체 종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20 즉 진화생물학과 내러티브 경제 학 양쪽 모두에서 일종의 꾸밈 장식이나 과시는, 무작위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
- 비트코인 내러티브에서 봤듯 경제 내러티브는 사람들이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사실들을 상기시키고, 경제 원리를 설명하고, 사람들이 경제적 행동의 목적 또는 그 정당화를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또한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내러티브는 이제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드디어 지역정부의 부패와 무능이라는 끝없는 문제에서 해방될 새로운 코즈모폴리턴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암시한다. 또한 그러한 정보를 유리하게 사용할 방법도 내포한다. 또 경제 내러티브에는 특정한 경제 활동을 실천 하면 미래에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경제적 행동을 취하는 것은 때로 우리가 내러티브에 직접적으로 관 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러티브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가령 비트코인을 구매한다. 면 자본주의의 국제 상류층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이다.
- 경제 내러티브가 인간의 경제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데 있어, 노후를 위해 돈을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지와 같은 대화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소득의 몇 퍼센트를 저축하겠는가? 5퍼센트? 10퍼센트? 아니면 그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남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떠올려 보라. 아마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저축을 얼마나 해야 하 는지 결정을 내려야 하고, 무언가에 의거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어쩌면 대공황 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새벽 3시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이야기처럼 불경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러티브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장기 침체와 그로 인한 심각한 결과를 두려워하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전문가들의 우려에 근거해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즉 모호하고 개별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라 여러 내러티브 군집이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했을 수도 있다.
-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시작되자 주가가 급격히 하락했다. 그 결과 공황을 맞은 뉴욕 및 유럽의 주요 증권거래소들은 문을 닫았다. 전쟁에 참전하 지 않은 미국에서도 뉴욕증권거래소는 12월 12일이 되어서야 거 래를 재개했다. 윌리엄 실버 william Silber는 이 사건을 다룬 저서 『워싱 턴이 월가를 폐쇄했을 때 When Washington Shut Down Wall Street』에서 증권시 장이 단호하게 반응한 이유를 설명하는 몇 가지 이야기와 루머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특히 크게 당황한 유럽 투자가들은 미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다급하게 몰려들었다. 이 '유럽 골드 러시'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금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반출되었다. 1907년 공황과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가 회자된 것과, 또 다시 공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미국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증거였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이 더 큰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금을 긁어모으고 있는 러시아인들의 음모라는 허황된 루머도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 의 증권시장은 폐쇄되지 않았다. 1939년 9월 3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종합지수는 그날 하루 9.6퍼센트나 상승했다. 신문은 시장의 이런 긍정적인 반응에 대체적으로 놀라움을 표했고, 어째서 1914년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과거와 상이 한 이런 반응은 1차 세계대전에서 주식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거나 무기, 물자를 유럽에 판매한 일부 투자가에게 이득으로 작용했다는 내러티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인간적인 이야기는 비슷할지 모르나, 성공적인 투자가에 대한 내러티브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내러티브에 붙이는 이름에 주목해야 한다. 명칭의 변화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실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새 이름이 다른 내러티브 군집과 관련되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유의어 관계에 있는 단어들은 절대로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다. 언어학과 관련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단어들의 차이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본다면 그들마저도 유의어의 각기 다른 의미에 대해 복잡한 해석을 들려줄 것이다. 신경언어학에서도 유의 어는 신경망에서 서로 다른 연결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연결 구조 중 일부는 경제적 사고에 있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 때때로 사람들은 간결하고 예리한 명언구를 생각해 내기도 하는데, 그런 명언구가 전염성을 띠게 되는 것은 처음 그 말을 한 사람이 유명인이라고 잘못 알려질 때다. 이를테면 20세기 중반에 유행 했던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라는 사회주의 슬로건 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k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말을 강조한 것은 사회주의 운동가인 루이 블랑 Louis Blanc이다. 1851년에 루이 블랑이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 마르크스는 무명에 불과했고, 이 문구는 다른 형태로 성경에도 존재한다.13 루이 블랑은 1900년 즈음까지 마르크스보다 더 유명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잊혔고, 따 라서 이 문구의 공은 20세기 중반 이름 모를 사람에 의해 마르크스에게로 넘어갔다.
위키쿼트Wikiquotes 웹사이트는 유명한 명언구의 출처를 추적하는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유명 인사들은 대개 다른 사람의 말 을 인용했거나, 혹은 아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상관없 다. 위키쿼트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명언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 들은 결코 바이럴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전염성이 없기 때문 이다. 내러티브가 바이럴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그러한 전염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없이 반복되지 않으면 내 러티브는 점차 잊혀진다. 또한 유명인과 관련된 내러티브일지라도 어떤 사건이 발생해 해당 유명인의 평판이 바닥에 떨어지거나, 내 러티브에 내재된 발상이 진실이 아니라는 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면 갑자기 전염성을 잃을 수 있다.
-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189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했던 '황금십자가' 연설은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고취적인 연설 중 하나 로 손꼽힌다. 이 연설은 금본위제와 기독교인의 도덕성을 연결했는 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연설의 마지막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상업계와 노동계 그리고 모든 임금노동자가 우리를 지지하는 한, 우리는 금본위제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가시면류관을 노동자의 이마에 씌울 수 없으며, 황금십자가에 인류를 못 박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하며 환호하는 관중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처럼 양 팔을 넓게 펼쳤고,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마치 혁명이 목전에 닥쳐서 마침내 노동계급이 승리를 거머쥘 것처럼 거의 발작에 가까운 호응이 전당대회에서뿐만 아니라 전국 적으로 이어졌다.
브라이언의 연설은 왜 그토록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을까? 그것은 노동계급의 경제적 어려움과 로마인들의 탄압으로 무자비하게 처형된 예수의 이미지가 하나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수 세기 동안 기독교의 원동력 중 하나였던 내러티브와 말이다. 비록 브라이언이 이 연설을 하긴 했으나 사실 이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그가 아니다. 후에 많은 신문들이 보도했듯이, 연방의회 의사록 congressional Record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1896년 1월에 하원의원인 새뮤얼 W. 맥콜 samuel W. McCall이 이미 가시면류관과 황금십자가라는 거의 동 일한 표현을 이용한 바 있다. 브라이언은 맥콜이 발언한 순간에 현 장에 있었고, 군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은 위대한 선동가가 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 무엇이 사람들을 부추겼는지 이해하려면 집값이 급격히 팽창하던 시기에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대니얼 맥긴paniel McGinn은 2007년에 출간한 저서 『주택 욕망: 집에 대한 미국인의 집착house Lust: America's Obsession with Our Homes』에서 집값 상승에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보았다. 이 책은 2007~ 2009년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직전, 1997~2006년 전례 없는 수치를 기록한 미국의 부동산 붐 시기 중에서도 집값이 가장 급등 한 마지막 시기에 출간되었다.
맥긴이 책의 제목으로 『주택 욕망을 선택한 이유는 2007~ 2009년 세계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발발하기 직전 호황기 시절의 대화에 사람들의 진정한 욕망이 드러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위에 대한 욕망, 어쩌면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리킨다. 욕망이 가득 넘치던 그때, 사람들은 끊임 없이 상승하는 집값에 관한 그리고 덕분에 두둑한 이득을 챙긴 사 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즐겼다.
맥긴은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사전에는 없는 충동과 동기를 정의 하고 설명한다. 그는 하이파이브 효과에 대해 '승자를 위해 환호하 며 느끼는 대리만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 기가 부동산 투자로 성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들의 시기 질투만 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부터, 친구와 이웃들이 성공하는 것까지 모두 좋아한다. 그들은 이웃의 성공을 축하 하며, 운동선수들처럼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맥진은 '우리 집이 곧 은퇴 계획'이라는 효과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집이 성공적인 삶에 필수인 이유는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 가치의 저장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 호황 내러티브는 어떻게 든 돈을 마련하거나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고 암시하며 부동산 가격에 불을 지폈다. 능력이 되는 한 가장 큰 집을 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언젠가 집값이 오르면 행복할 거라면서 말이다.
- 2007~2009년 대침체로 이어진 주택 붐을 이해하기 위해 금리 와 세율, 개인 소득 같은 관련 요인들을 살펴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는 사람들이 집을 투기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투기 내러티브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대출기관들이 반겼던 내러티브다.
세계금융위기의 씨앗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 1970~1980년대에 미국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플리퍼라는 단어가 바이럴이 되기 시작했다. 플리퍼란 투기 자산을 입한 다음 1년 안에 되파는 플리핑을 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수익을 올리는 영리한 투자가들을 가리켰다. 그러다 이 단어는 다른 종류의 주택 붐이 일어나면서 유명해졌는데 바로 아파트 개조 붐이었다. 당시 주택 보유자들은 높은 인플레이션 덕분에 주택 임대인보다 더 높은 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총 소득에서 인플레이션 덕분에 높아진 주택대출 이자를 감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 면에 임대료는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높은 명목금리 때문에 집을 구입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면 그로써 금리를 상쇄할 수 있으리라 예측했다.
수요를 감지한 부동산 개발자들이 아파트 건물을 구입해 거주 중이던 임차인들을 내쫓고 세대별로 아파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 기존의 세입자들 일부는 해당 아파트에서 오래 거주한은 불만 을 터트렸다. 이들을 달래는 한 가지 방법은 아파트를 할인된 가격 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더불어 계약에 따르면 기존 세입자는 그 계약을 다른 이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었다. 많은 세입 자들이 계약서를 투기자들에게 플리핑했고, 그들은 또다시 계약을 플리핑했다. 플리퍼에게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플리퍼 에 대한 대다수의 인식은 재빨리 현금을 마련할 기회를 붙잡은 똑 똑한 사업가라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는 기업공개 IPO 때 주식을 사들여 재빨리 되파는 사 람들을 '플리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이 플리퍼들 에게 감탄하곤 했는데, 사람들의 이해에 따르면 IPO는 상장시 보 통 가격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IPO 직후 주가가 오르면 플리퍼들은 신속하게 이득을 챙기곤 했다. 1991년의 유명한 기사에서 제이 리터 Jay Ritter는 몇 년 동안 회사 실적이 미흡하면 주가가 떨어 지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전략은 상장 시 주식을 구입했다가 이 를 플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거대한 주택 붐이 발생하면서 '플리퍼’ 라는 단어는 집을 구입하여 개조한 다음 재빨리 되파는 사람들을 지 칭하게 되었고, 이어 그들의 성공을 동경하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집을 개조할 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았 지만, 주 거주지를 장기 투자의 개념으로 구입함으로써 장기간 플리 핑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투기 내러티브에 공감했다.
-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고 1930년대의 시 대정신은 이제 잊혀졌지만, 미국에 또다시 주가 대폭락이 발생할지 도 모른다는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영속적 경제 내러티브는 1929년의 유산이며, 주식 시장의 활황 뒤에 찾아올 수도 있는 폭락 과 신뢰의 하락을 증폭시킬 것이다. 나아가 이런 내러티브적 관점 을 지닌 이들은 남들도 그런 증폭된 반응을 보일 것이라 기대하기쉽다. 현재, 주가 대폭락 이야기는 아직 전염성이 강하지는 않으나
대중의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으며, 경제적 상황에 따라 변형되 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정책입안자들은 부동산 거품 내러티브와 주가 대폭락 내러티브 에서 교훈을 얻었다. 경제가 변곡점에 도달해 있을 때는 뉴스의 헤 드라인과 통계 너머, 우리가 진짜 분석해야 할 실질적인 가치가 있 다는 것을 말이다. 또 우리는 수없이 변화하며 등장하는 특정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에 의미심장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이야기나 전설은 다음번에 닥쳐올 경제 활황이나 붕괴의 대본이 될 수도 있다.
- 과거의 충격적인 경제 사건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과학적 방법론 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사 그 과학 이론이 완전하지 않으며 인간적 판단을 수반하더라도 말이다. 과학적 방법론이 없다면 그 역할은 결국 예언자나 점쟁이들의 손으로 넘어가 학문 전체에 악평을 부여할 것이다.
현재의 경제학 연구는 사람들의 대화나 삶에 주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러티브의 형태로 발현되는 의미들을 놓치고 있다. 포 착 가능한 데도 말이다. 대중 내러티브를 간과한다는 것은 주요 경 제 변화에 대한 타당한 설명마저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 침체에 대한 동시대적 해석이 궁금해서 20세기 신문을 조 사한다면 대부분의 담론이 실제 궁극적인 원인이 아니라 주요 선행 지수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경제학자들은 중 앙은행의 정책이나 신뢰지수, 또는 상품의 재고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그런 선행지수의 변화를 야기했는지 묻는다면 대개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내러티브를 바꿔 보는 것이지만,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내러티브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중요하거나 유 의미해 보이는 대중 내러티브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들이 아는 내러티브의 출처라고 해봐야 항간의 소문이나 친구들, 혹은 이웃들의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 사건이 발발했을 때 그와 비슷한 내러티브가 존재했는지 실제로 규명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연구 보고서에도 내러티브라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도 않는 것처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화된 과거 데이터를 활용해 대중적인 경제 내러티브를 연구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며 결합 혹은 재결합하는 내러티브에는 경제 사건을 촉발하는 상호경쟁적인 힘이 있다. 그러 나 이것을 측정하는 조직적 연구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 기에 인공지능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비조직화된 데 이터를 이용할 때 그렇다. 이 책의 3부에서 이야기한 영속적 내러 티브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며, 중요한 내러티브들은 아직 최종 적으로 철저하게 정량화되지 않았다.
내러티브 경제학에 대한 연구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앞으로 충분한 규모로 발전할 수 있을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내러티브 경제학 연구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경제 위기가 오거나 경제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기 전에, 내러티브 경제학은 이를 예측할 수 있는 더욱 정확하고 개선된 모형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더 나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배운 것들을 기 존의 경제 모형에 통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경 제학 주변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함께 조사하고 경제학자와는 다 른 관점과 견해를 가진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협력해야 한다. 수학역학 같은 다른 분야의 수학적 통찰력을 도입하고 수리경제학과 인문학의 연결고리를 창조해야 한다. 이용 가능한 데이터의 양을 늘 리고 서로가 협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간에 따라 변이하는 내러티브와 그 전염 양상을 경제 예측 모형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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