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금융시장을 피식자와 포식자로 구분하고, 투자자들이 피식자의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면, 결국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 장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노조, 기관, 글로벌 기업, 중국과 일본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챕터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작가의 직설'은 기업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저자의 시각을 통해서 해석해 주고 있는데, 부제만큼이나 직설적이다.
투자자로서의 개인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대상은 대기업이다. 기업에 투자할 때는 철저하게 기업이 수익을 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의 부도덕과 불법은 사법기관이 판단할 노릇이다. 기업을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기업의 가장 큰 죄는 부도덕이 아니라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병, 분할 등의 굵직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당기업 대주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대주주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투자를 계속해도 된다. 종목토론방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빠질수도 있다. 하지만 재벌 오너들이 장기적 관점으로 밀어붙이는 사업은 결국 성공할 확률이 높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도 알고보면 95년부터 구본무 회장의 결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한 결과이다.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가며 밀어붙인 삼성전자 반도체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피식자의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길은 착한 이미지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자들이나 연예인들이 돈을 벌어 건물을 구입했다고 하면, 그 돈으로 기부나 할 것이지 건물매입에 신경쓴다며 비판하기 일쑤이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에게 그 정도의 돈이 생긴다면 다들 건물 사서 건물주 놀이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저자는 ESG경영에 대해서도 유럽 국가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허들을 놓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세상은 ESG펀드에 유입된 금액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알고보면 기존 펀드의 종목은 유지된 채로 이름만 바꾼 펀드로 자금이 이동했을 뿐이다.
노조에 대해서도 결국 기존 노조원들의 밥그릇이나 챙기는 기업은 미래가 밝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조로화된 일본은 우울증에, 자신감이 팽만한 중국은 조증에, 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화병에 걸린 것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글로벌 경제의 커다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테마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투자자가 대중의 히스테리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훈련을 해야 하며,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해야 한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 개인이 게임에서 지는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고 덮어놓고 믿기 때문이다. 실패한 투자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실패를 기업의 부도덕함이나 다른 이슈로 돌린다. 성공한 투자자의 대부분은 주가를 부양한 금융시장의 포식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비록 기업 운영은 실패했지만 인성은 나무랄 데 없는 대표이사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배가 침몰했다면 선장이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무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 라는 건 착한 선장이 아니라 안전한 항해다. 돈에는 선악이 없다. 돈이 없 는 건 죄가 아니지만 돈에 대해 무지한 건 죄다. 투자에서는 무지로 인해 돈을 잃는 게 죄다. 돈을 지키는 게 정의다.
- 어차피 목적은 돈이다. 정치인은 이상을 꿈꾸고 기업은 현 실을 꿈꾼다. 기업에게 있어 정의는 생존이자 먹고사는 일이다. 이는 개 인 투자자와 다를 게 없다. 취미로 투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여윳돈으로 투자하느냐, 쫓기는 돈으로 투자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개인의 시점으로 시장을 봐선 안 된다. 내가 만약 대주주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주주 는 왜 기업구조를 이렇게 개편했을까? 외국계 자본은 왜 이 회사의 주식 에 투자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좋은 종목 좀 찍어 줘' '언제 팔아야 되 는데?'를 묻는 건 지극히 개인 투자자의 프레임이다.
- 당신은 참여연대 활동을 하거나 권력형 비리와 맞서 싸우는 변호사가 아니라 투자자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가진 자의 행위를 욕할 시 간에 내 손자에게 부와 자유를 증여할 수 있는 할아버지로 늙겠다는 욕망을 품는 게 맞다. 서울의 아파트를 손자에게 증여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100만 원을 투자해서 5만 원을 남겨도 성공한 투자다.
- 사실 가진 자를 욕하면서 사는 게 편하다. 비단 돈을 떠나서 내 삶 을 바꾸고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이미 높은 단계에 올라 있는 이들의 흠을 드러내고 그들을 욕하는 건 쉽고 스스로 도취감을 느끼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고, 제3자가 바라보듯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은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욕망 따위 전혀 없는 척, 스스로 정의로운 척하며 남 탓만 하는 이들은 평생 가난하게 살다 결국 가난 속에서 죽는다. 자녀에게까지 가난을 유산으로 넘겨주는 건 덤이다.
- LG화학은 길어야 몇 년 투자한 소액주주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20여 년 전에 이미 역사는 시작되었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이들이 삼성의 반도체를 만든 게 아니라 내부 반대마저 무릅쓴 故이병 철 회장의 투자 결정으로 여기까지 왔듯,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이 되기까지는 90년대 중반 구본무 회장의 결정 덕분에 가능했다. 그 는 수천억 원의 손실에도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치권력가가 돈 좀 내놓으라고 옆구리를 찌르고 청문회에 불려가 수모를 당해도 허허 웃 으며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 달라던, 사람 좋아 보이던 회장님이 수 천억 원의 손실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텼기에 LG화학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마 수천억 원씩 손실 나던 시기에 동업하자고 했으면 아무도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삼성이 비노조를 추구한 건 혁신의 속도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테슬라 직원을 대거 스카웃했다. 테슬라는 애플 디자이너를 스카웃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서로의 인력을 탐낸다. 인력은 돌고 돈다. 굳이 노조에 기댈 필요가 없다. 플랫폼 기업은 공장보다 인재를 세운다. 사람 자체가 놀라 운 소프트웨어다. 테슬라에서 애플로 이직하더라도 그가 지닌 능력은 빛을 발한다. 반면 현대차 노동자가 쌍용자동차로 이직한다고 해서 쌍용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직은 차치하고 조립라인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도장라인으로 이동하는 단순 변화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단순 인력인 가장 낮은 층의 노동자들이 집단을 이 뤄 가장 높은 층의 노동자가 되어 집단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노조 원에 대한 노조의 갑질은 고용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2021 년 택배 대리점주가 택배 노조원의 갑질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택배 노조 간부가 컨베이어벨트 위로 올라가 비노조원인 택배 기사 가슴을 발로 걷어차는 영상이 공개됐다. 2021년 9월에는 파리바게뜨가 고용한 화물차 기사가 휴게소에 들른 사이 누군가 차량 하부의 연료 공급선을 잘라놓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리바게뜨 배송 거부 파업과 영업 방해와 관련된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압수수색 절차를 집행했다. 휴게소 CCTV에 는 범인이 승용차를 이용해 화물차를 따라 휴게소에 들어와 범죄를 저지른 후 미리 준비된 또 다른 차를 타고 휴게소를 빠져나간 정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연료 공급선 절단은 도로 위에서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범죄다. 또한 휴게소 도주 시 사용할 차량을 따로 준비하는 등 우발적인 범죄로 보기도 어렵다. 노조 가입 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문제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노조원을 배척하거나 협박하는 건 이미 정상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일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노조는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인을 욕하는데, 적어도 기업인들은 동류의 기업인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거나 경쟁사 오너의 관용 차량 연료 공급선을 자르는 짓은 하지 않는다. 기업이 잘 되면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소비자와 투자 자가 이익을 얻는다. 노조가 잘 되는 건 노조에게만 좋을 뿐이다. 기업과 비노조원과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 피식자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최우선 과제가 흐리멍덩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윤 창출이 아닌 노동자의 고용 보장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당장 투자에서 발을 빼야 한다. 선善한 기업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다. 기업은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지 못해서 상장폐지되거나 폐업한다.
- 링컨은 노예해방의 선구자가 아니라, 미국의 훌륭한 오너였다. 노동자와 노조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이다. 노예 해방보다 중요한 건 미합중국 연방의 유지였다. 노조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건 남북전쟁 후반부의 노예해방령 선언처럼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략, 기업의 생존과 이익창출을 위한 전략으로 쓰여야 한다.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증가하며 기업에게 더 큰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말이다.
- 단순히 '가족 같은 직원의 월급을 인상해 주고 싶다', 기업은 직원에게 워라밸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같은 순진한 생각으로 노동자에게 퍼주는 건 기업의 쇠퇴를 불러온다. 노예해방 선언이 전략이자 명분 으로 유럽의 지지를 이끌어 냈듯 복지 증진이나 처우 개선 역시 전략 이자 대내외적인 명분으로 기업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사용되어야한다.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소리는 다 같이 죽자는 소리다. 직원을 가족으로 대하는 임원은 없지만, 임원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직원도 없다. 어차피 다 남남이다. 딸 같은 며느리가 세상에 없듯 가족 같은 임직원도 환상 속의 유니콘과 같은 헛소리다. 친딸은 퇴근하면 소파에 누워 엄마에게 밥을 달라 하지만, 며느리가 시댁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시어머니에게 밥을 내오라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믿을 건 진짜 가족뿐이다.
- 고귀한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링컨의 첫 번째 취임사에서는 흑인 인권이나 노예해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오히려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주에 대해 개입할 생각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고 취임사 두 번째 단락에서 정확히 밝히고 있다. 링컨의 취임사는 미 연방의 붕괴, 조직의 붕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의 천명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말들을 하는데, 노동자보다 기업이 먼저다. 노동자는 대체 가능하다.
- 링컨 대통령처럼 피를 흘려서라도 강한 기업을 만들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나라가, 기업이 무너지면 어차피 다 죽는다. 희생을 통해서라도 기업이 강해져야만 노예해방 선언처럼 노동자들의 복지와 처우도 개선 가능하다. 요구를 다 들어 준다고 해서 선한 오너가 되는 게 아니다. 피를 흘려서라도 지킬 건 지켜야만 존경 받는 오너가 될 수 있다.
- ESG는 투자의 미래가 아니다. ESG펀드 상품이 국내에도 우후죽순 출시되었는데, ESG 펀드가 투자한 종목들을 살펴보면 KODEX 200과 큰 차이가 없다. 대한민국 펀드는 이름이 어떻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네이버 등을 담을 수밖에 없다. ESG 펀드라 해서 새로운 기준으로 숨겨 져 있던 보석 같은 기업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기존 기업들을 판단하는 명목 기준이 하나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
ESG가 뜬다 하니 여기저기에서 ESG펀드를 만들고 ESG를 유행처럼 걸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1년 주식형 펀드에서는 4300 억 원가량이 빠지고, ESG 주식형 펀드에는 5700억 원의 돈이 몰렸다고 한다. 왼쪽 주머니에 있던 돈이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 간 셈이다. 주식형 펀드는 ESG 주식형 펀드는 투자하는 기업과 종목은 데칼코마니라 봐도 좋다.
- 스몰캡, 코스닥의 우량주라 해도 당장 ESG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ESG에 부합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홍보실이 탄탄하고 각종 이벤트가 많아 보도자료를 늘 배포하는 대기업이 제출할 자료도 많이 쌓아 두었을 테니 ESG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새로운 시험 전형이 생겼는데 학생들 각자 알아서 답안지를 쓰는 셈이다. 족집게 과외 선생이 달라붙은 학생은 답안지를 기가 막히게 포장할 가능성이 크다.
- 나라 밖은 더 문제다. 사실상 ESG는 EU와 미국이 세운 무역장벽이 자 규제다. 유럽에서 가장 GDP가 높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을 꼽으면 그중 세 곳이 자동차 회사다. 독일 시총 1위를 기록한 전적이 있으며 도요타와 글로벌 판매량 1, 2위를 다투는 폭스바겐, 그 밖에 다임러와 BMW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폭스바겐 그룹은 포르쉐,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을 거느리고 있다. 상용차에서도 트 럭으로 유명한 만, 스카니아가 폭스바겐 그룹의 식구다. 한마디로 굴러 가는 건 다 만든다고 봐도 된다. 다임러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다임러에 속한 벤츠는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도 아는 브랜드다. 자동차의 역사는 곧 벤츠의 역사다. 내연기관 자동차 세계 1호가 벤츠다. 주행 중 발생한 다수의 화재 사고 때문에 한때 인터넷상에서 불자동차란 오명을 썼지만 스포티한 주행으로 정평이 난 BMW까지, 독일 자동차는 지금껏 세계 최 고의 위치를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발칵 뒤집은 대규모 스캔들의 주인공도 독일 의 자동차 회사들이다. 2015년 디젤 게이트의 주인공은 폭스바겐과 다 임러였다. 독일 외 디젤차를 생산하는 유럽 자동차 회사 다수가 디젤 게 이트에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적 스케일의 사기극에 유럽이 원 팀으로 가담했다는 소리인데, 이제는 탄소 배출 규제, ESG 등을 내세우며 착한 기업인 척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탄소 배출 측면에서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 등은 이미 유럽에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근대화, 민주화가 늦었다. 한참 뒤에서 출발해서 죽을 둥 살 둥 노력하여 거의 따라잡았더니 우리에게만 더 높은 허들을 앞에 깔아 버리는 셈이다. 클린 디젤이라 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며 지구환경을 신나게 파괴하던 이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사회와 환경을 말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다음인 G2가 되었고, 비실대긴 하지만 한때 G2로 여겨졌던 일본이 있다. 그리고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대한민국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기술 패권을 아시아로 넘겨주는 게 싫은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자신들이어야 하는데, 바통을 주기 싫 어서 또는 조금이라도 늦게 주려고 뒤따라오는 주자들 앞에 장애물을 설 치한 셈이다. 독일을 필두로 유럽은 친환경에너지 시스템을 사실상 완비 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꼼수로 RE100이 있다. RE100이란 Renewable Energy 100재생에너지 100)의 약자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숫자 100이 들어갔다고 해서 RE100 가입 기업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RE100 역시 거칠 게 말하면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도서관 열람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 학생들이 먼저 자리 차지해 놓고서는 뒤늦게 열 람실에 들어서는 학생들을 통제하는 꼴이다. 유럽이 특별히 선진 시민들만 사는 아름다운 나라라서 환경이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따지는 게 아니다. 영국은 일본보다 더한 식민지배를 일삼았던 곳이고, 독일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학살은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열람실에 자리를 맡아 놓듯 실컷 석탄 연료를 사용하고 거리낌 없이 자연을 소진해 놓고서 이제 와서 착한 척하면서 후발 주자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자신들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면 세금 등 추가 비용을 부과하거나 투자금을 거둬들인다는 건 치졸한 짓이다. 그렇게 따지면 G2인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이 ESG를 적용한다고? 아마 중국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단칼에 날아가고 알리바바가 2019년 연매출의 4%인 약 3조 1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은 걸 생각해 보자.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이 중국의 강력한 규제를 받은 것은 또 어떤가? 투자자에게는 오너 리스크가 아니라 중국 자체가 리스크다. 중 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중국이 G2가 되 기까지는 급속한 도시화와 공업화, 생태계 파괴가 밑받침되었다. E, S, G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EU는 1989년 베이징 천안문사건 이후 무기 금수 조치를 취 한 다음부터는 중국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2021 년 3월 신장위구르자치구 소수민족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중국 관료 4 명과 기관 1곳에 제재를 가한 게 전부다. 그나마 그것도 미국이 함께여서 가능한 것이다.
- 에너지 컨설팅사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기준 미국이 생산하는 전력에서 석탄의 비중이 2020년 동기간 대비 6%가 늘었다. 코 로나19 봉쇄가 완화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전력 수요는 늘 수밖에 없는데, 화력발전에 천연가스 대비 저렴한 석탄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2024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정작 석탄 소비량은 더 늘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전력기업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전기 생산의 60%에 가까운 비중을 화력발전이 차지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탄소 중립을 외치지만 이상적인 비전에 불과하다.
- 재생에너지가 완벽한 솔루션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언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도 갈 길이 멀다. 2021년 4월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독일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결정문은 한 세대가 온실가스 할당량 대부분을 써 버리고, 다음 세대 에 급격한 감축 부담을 물려 주는 것은 심각한 자유권 침해가 될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선포하는 친환경 선언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일론 머스크가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벌이는 건 투자를 받기 위해서다. 자신이 호언장담한 시기에 신제품 출시가 불가능할지라도, 쇼를 통해 자본을 끌어들이는 거다. 테슬라가 발행한 메자닌 채권을 보자.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의 흥행 여부는 일론 머스크의 쇼에 달려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은퇴하기 직전까지 돈을 돌게 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이벤트를 이어 갈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관심이 필요해서 가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무대에 서는 것이다. 교주가 단상에 오르는 건 믿음을 바라서가 아니라 헌금이 필요해서다.
- 지혜로운 소비자는 대기업의 상품을 소비하지, 믿음을 바치지 않는다. 기업의 주식 역시 좋은 물건을 고르듯 소비하고 투자하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믿기 시작하면 봐야 할 것을 못 보기 마련이다.
- 바이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의 노조 설립은 무산되었다. 노조 설립 투표에 참가한 이들, 블루칼라의 노동자 다수는 흑인이다. 그들이 아마존에서 받는 시급은 앨라배마주의 최저 시급의 두 배 가까이고, 의료보험도 보장된다. 어디에 가도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은 노조에게 왜 급여의 일부를 지불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존은 여전히 무노조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결과가 어떻든 미 행정부의 공룡 기업 옥죄기는 계속될 것이다. 기업의 정의가 이윤이라면 정치인의 정의는 집권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정경 유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시민에게 인식되는데, 미국 대통령은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11조 원의 합동 방어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세계 1위 기업 아마존을 쿨하게 배제해 버린다. 굳이 은밀하게 진행할 필요도 없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산물인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대놓고 노골적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회유하는 곳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이미 아마존과 아마존 바라기 쿠팡의 창업자는 직을 내려놓았다. 그 들은 최초, 최고라는 영광을 취했지만 두 기업의 민낯은 지극히 후진적 이다. 아마존 27년의 승리가 앞으로의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내일의 주가를 예언할 수 없듯, 기업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의 일은 내일만이 알 수 있다. 오늘은 내일을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현재 시장의 한계를 인지한 상상력이 돈이 되고 미래에 대한 대비가 된다.
-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시기에 태어난 청년들은 이미 자기들보다 앞서 있는 한국을 보며 살았다. 20세기에 잘나갔던 건 일본의 포식자들인 일본 정부, 돈과 권력을 틀어쥔 노인들이다. 둘은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 하기 위해 그들의 아들딸인 젊은 세대를 희생시키고 있다. 20세기에 청 춘을 보낸 우리나라 중장년층에게 소니와 파나소닉이 최고의 브랜드였 다면, 21세기의 청춘들에게는 삼성이다. 파나소닉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선 이가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일본의 문제는 청년의 열정이나 근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소시민과 청년들은 피식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피식자들 은 자신이 포식자가 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대대로 흥과 화가 많은 우리 민족, 그중 젊은 세대는 왜 나는 이렇게밖에 못 사는 것이냐며 항의하고 화를 낸다. 선거든 1인 미디어는 어떤 식으 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포식자들과 정치인들은 젊은세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일본은 버블 막판의 호구 모집을 위해 주식투자를 장려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가 막아도 포식자가 되고픈 욕 망으로 주식시장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주가를 끌어올렸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처럼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화가 남아 있다. 피를 흘려야만 독립을, 자유를, 돈을 얻을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DNA에 아직 욕망과 화가 남아 있기에, 어떻게든 우리는 활로를 찾을 것이다.
- 앤트 그룹의 상장이 취소된 건 마윈이 독재 정권의 구태의연한 금융작태를 비판해서가 아니다. 중국의 포식자인 공산당이 부동산과 현금 흐름을 통제해야만 하는데, 마윈이 이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위 안화가 근미래에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환상을 품고 있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중국 인민 전체에 가까운 DB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정복하려는 마윈은 꺾어야 마땅한 싹일 뿐이다. 중국에서 금융 황제가 된다는 건 곧 세계 금융의 황제가 된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알리바바 창업주이자 회장이었음에도 알리바바 주식을 소량만 보유한 상태에서 한창인 50대에 회장직을 내려놓은 청렴한 사업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유니콘이 되고 전 세계적 쇼핑몰로 알리바바를 키워 낸 창업의 아이콘이 지금껏 브랜딩 한 마윈의 모습이다. 마윈과 알리바바가 클 수 있었던 건 공산당이 뒷배를 봐줬기에 가능했는데 스스로의 신화에 취한 마윈이 선을 넘어 버렸다. 중국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 되었다. 하지만 호랑이의 발톱과 이빨을 뽑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금융시장은 사회주의 에 근간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은 곧 중국과 일본 모두 믿고 투자하기가 어려운 시장이라는 말이다. 큰 도둑과 작은 도둑 정도 의 차이일 뿐이다.
- 참담하게 실패한 문화대약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마오쩌둥이 재 기 카드로 꺼낸 문화대혁명 역시 중국인이 중국인을 살해하는 집단 광기 가 이어졌다. 7년 안에 영국을 초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 던 마오쩌둥의 현실감각 없던 발언에서 '2035년까지 미국 경제를 추월 하겠다'는 시진핑의 선언이 오버랩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섣불리 전쟁에 뛰어든 시진핑이 마오쩌둥과 같은 절대 권력자로서 집권 연장의 꿈을 꾸며 뽑아든 카드는 사교육 규제, 문화계, 연예계 규제, 10만 위안(약1700만 원) 현금 입금 시 출처 소명, 출금 시는 사용 목적에 관한 정보 제 공, 디지털 위안 사용으로 인한 개인의 자금 흐름내역 통제 등이다. 묘하게 문화대혁명과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수천만 명의 중국인을 죽음으로 내몬 마오쩌둥의 후임이었던 덩샤오핑은 중국이 완전히 굴기할 때까지는 얼마가 걸리는 미국에 맞서지 말아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개혁개방정책으로 흑묘백묘론을 내세운 덩샤오핑다운 유훈이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민의 먹고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걸 명확히 인식한 개혁개방정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유훈을 잊었는지 성급하게 중국 굴기를 선언하고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뛰어들었다.
- 한 가지 분명한 건 문화대혁명의 전례가 있듯 문화가 정치의 노예가 되는 건 망국의 전조와도 같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의 시대는 흑묘백묘론이 지배했다. 어떻게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했다. 시진핑의 시대는 극소수의 억만장자가 모든 걸 갖고 인민의 절반 가까이가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다 같이 부유하게 살자는 공동 부유를 위해 교육과 문화를 통제하는 시진핑의 선택이 중국에게 어떤 20년으로 돌아올지 궁금해진다. 과거 시진핑을 한 번 구한 바이든은 과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혈세를 쏟아부어 기업을 살리는 건 중진국 시절에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은 성장 일변도이기 때문에 강한 정부 개입을 통해 부실기업 도 어떻게든 살려 놓았다. 개별 기업이 분식회계를 하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주도하여 중국이라는 기업을 분식회계로 꾸며 놓은 셈이다. 하지 만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 커버하는 건 한계가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중 국이 매력적이었던 건 인건비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인건비를 올릴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 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치솟는 불평등지수를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식회사 중국은 불평등지수와 인건비가 함께 상승하는 구조다. 다 함께 못살 때는 불평등지수가 낮았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기본원칙인 선부론先富論은 누구든 빨리 부자가 되는 게 목표였다. 부자가 생기고 나니 빈부 격차와 함께 불평등지수가 치솟았다. 상위1%가 국부 30%를 차지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은 선부론의 종말과 함께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시장의 화두로 던졌다. 그런데 중국의 상황은 다 같이 부자가 되기 전에 먼저 늙어 가는 꼴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조로에 접어들어 욕망을 거세한 사토리 세대가 등장하고 한국에는 N포 세대가 등장했다면, 중국에도 '탕핑平'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탕핑은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열심히 일해 봤자 인건비는 최 저 수준이니 집과 차, 결혼, 아이, 소비를 포기하고 경쟁을 내려놓은 채 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얘기다. 당연하게도 중국 정부는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탕핑을 검색 금지어로 지정했다. 탕핑의 등장 배경은 일본과 한국이 먼저 겪었던 일이다. 중국의 부동산 폭등과 부실화는 일본과 한국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버블 시절에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일본의 미친 집값은 버블이 꺼진 후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 다. 하지만 중국의 주민 평균 연봉 대비 아파트 가격은 일본의 버블 시절을 비웃는 수준이다. 버블 시대 일본 직장인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연봉을 18년 정도 모으면 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었다. 지금 중국에서는 선전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연봉을 58년 가까이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알다시피 중국은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 부동산 민영화도 1998년에야 비로소 시작됐다. 20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부동산 민영화 전에는 국유 기업의 주택에서 월세만 내면 거주가 가능했다. 이런 주택들이 민영화되며 헐값에 주택을 사들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보조금에 무이자 대출까지도 이뤄졌다. 부동산 민영화 10년 후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고, 중국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집값도 폭등했다. 당연히 민영화 당시에 헐값에 대출까지 지원받으며 집을 사들인 도시 중산층, 엘리트들은 쉽게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이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농촌에서 도시로 온 노동자들과 민영화 초기에 주택을 구입하지 못한 이들은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출발선에서 이미 뒤처지게 된 것이다. 대도시에서 쉽게 집을 얻고 수십, 수백 채의 집을 가진 공산당 고위 간부들은 보유세와 상속세 도입을 저지해 왔다. 집은 개인에 속해도 땅은 여전히 공산당의 것이기에, 세금을 내는 것이 사회주의에 반한다는 논리다. 보유세도, 상속세도 없으니 집을 수 백 채씩 갖고 있다가 자자손손 물려줘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일본이 에스컬레이터 사회라면, 중국은 애초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성채 안에서 그 들만의 파티를 벌이는 셈이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인들은 어떻게든 집을 사려고 한다. 코로나19로 경기 부양을 위해 푼 돈은 모두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본인 들은 코로나19로 정부가 돈을 풀면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하고, 중국인들은 빚을 내 집을 사고, 한국인들은 주식을 샀다. 현재 중국 전역에는 빈 집이 무려 6500만 채나 된다. 2020년 기준 중국의 부동산 시가총액은 GDP의 414% 수준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미국은 169% 였다. 중국인 재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쏠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다시 말하지만, 마윈이 공산당에 반기를 들어서 제재를 받는 게 아니다. 헝다의 위기는 헝다의 잘잘못과는 관계가 없다. 중국이란 나라의 포식자는 중국 그 자체다. 중국 정부가 앤트 그룹이나 디디푸싱의 미국증시 상장을 반대한 것을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탄압으로 읽으면 안 된다.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미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가지치기라고 보는 게 맞다.
미국은 무역 전쟁으로 중국 제조업을 압박하고, 화웨이 등을 기술 제재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죽이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금융 압박이다. 중국에 상하이증권거래소, 선전증권거래소가 있음에도 시진 핑 주석이 2021년 9월 2일 베이징증권거래소 설립을 발표한 이유는 미국의 중국 죽이기의 마지막 순서인 금융 공격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앤 트 그룹이나 디디푸싱은 미국 증시가 아닌 새로 설립되는 베이징증권거 래소에 상장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스스로의 신화에 취한 마윈은 자신이 금융 황제가 되고자 장기 집권과 미국의 공격을 방어하려는 시진핑의 큰 그림을 깨 버렸다. 결국 마윈은 그 대가로 돈놀이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알리페이 고객 10억 명의 정보를 중국 정부에 바치게 되었다.헝다의 위기 역시 부동산 위기 이전에 중국 금융을 강하게 만드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망하게 내버려 둬야 헝다가 망할 수 있다. 피식자들은 헝다의 위기를 들어 중국이 큰 위협에 빠지기를 바란다. 사드 보복,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자국문화에 편입시키려는 등 중국의 뻔뻔한 행동에 대중 감정이 안 좋은 것 도 사실이니 중국의 위기를 기대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 식자는 다르게 읽는다. 중국은 우리에게 최대의 수출 교역국이다. 우리 의 고객이라는 말이다. 중국의 뻔뻔한 행동에 한 감정과 중국을 통해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전혀 다른 문제다.
-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주식시장과 부동산을 흔들어 일본에게 잃어버린 30년이 찾아온 것을 뻔히 목도한 중국은 자국 주식시장과 부동산 단속에 나서며 대비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베이징증권거래소 개설 선언과 헝다 위기설 등은 중국이 생존을 위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일련의 이슈에서 중국의 위기만 부각하고 안 되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는 중국의 모습을 읽어야 한다. 헝다가 파산하더라도 중국에게 는 예방접종을 맞는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중국인 대다수는 극빈층이다. 기업 한두 개 쓰러진다 해도 중산층이 몰락할 일은 없다. 일본이 계층 이동의 욕망을 포기했다면, 중국 다수의 극빈층은 계층 이동은커녕 내일의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중국의 권력은 인민에 게서 나오지 않는다. 투표로 선출되지 않는 권력은 인민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1930년, 1970년, 1985년, 2008년 네 차례의 환율전쟁은 모두 미국이 주도했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상 미국은 최소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쓰러지지 않는다. 세계가 위험에 빠지면 사람들은 안전 자산인 달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인조차 위기가 닥치면 달러를 찾을 것이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20년에 1만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과 한국이 겪은 성장률 정체, 부동산 폭등, 출산률 저하, 고령화사회를 더 빨리 맞닥뜨렸다. 짐 로저스는 세상의 부가 19세기는 유럽, 20 세기는 미국, 21세기는 아시아로 이동한다는 말을 했다. 금융시장의 포 식자인 대기업, 기관, 정부와 이웃나라의 큰 방향을 읽고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부의 이동에서 포식자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잡계 세상에서의 투자 (0) | 2021.12.11 |
---|---|
당신의 수익은 우연입니다 (0) | 2021.11.20 |
무역전쟁은 계급전쟁이다 (0) | 2021.11.09 |
하이에크는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0) | 2021.10.14 |
불만시대의 자본주의 (0) | 2021.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