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포식자들

경제 2021. 11. 14. 16:48

이 책은 금융시장을 피식자와 포식자로 구분하고, 투자자들이 피식자의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면, 결국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 장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노조, 기관, 글로벌 기업, 중국과 일본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챕터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작가의 직설'은 기업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저자의 시각을 통해서 해석해 주고 있는데, 부제만큼이나 직설적이다. 

투자자로서의 개인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대상은 대기업이다. 기업에 투자할 때는 철저하게 기업이 수익을 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의 부도덕과 불법은 사법기관이 판단할 노릇이다. 기업을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기업의 가장 큰 죄는 부도덕이 아니라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병, 분할 등의 굵직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당기업 대주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대주주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투자를 계속해도 된다. 종목토론방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빠질수도 있다. 하지만 재벌 오너들이 장기적 관점으로 밀어붙이는 사업은 결국 성공할 확률이 높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도 알고보면 95년부터 구본무 회장의 결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한 결과이다.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가며 밀어붙인 삼성전자 반도체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피식자의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길은 착한 이미지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자들이나 연예인들이 돈을 벌어 건물을 구입했다고 하면, 그 돈으로 기부나 할 것이지 건물매입에 신경쓴다며 비판하기 일쑤이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에게 그 정도의 돈이 생긴다면 다들 건물 사서 건물주 놀이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저자는 ESG경영에 대해서도 유럽 국가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허들을 놓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세상은 ESG펀드에 유입된 금액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알고보면 기존 펀드의 종목은 유지된 채로 이름만 바꾼 펀드로 자금이 이동했을 뿐이다. 
노조에 대해서도 결국 기존 노조원들의 밥그릇이나 챙기는 기업은 미래가 밝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조로화된 일본은 우울증에, 자신감이 팽만한 중국은 조증에, 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화병에 걸린 것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글로벌 경제의 커다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테마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투자자가 대중의 히스테리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훈련을 해야 하며,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해야 한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 개인이 게임에서 지는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고 덮어놓고 믿기 때문이다. 실패한 투자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실패를 기업의 부도덕함이나 다른 이슈로 돌린다. 성공한 투자자의 대부분은 주가를 부양한 금융시장의 포식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비록 기업 운영은 실패했지만 인성은 나무랄 데 없는 대표이사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배가 침몰했다면 선장이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무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 라는 건 착한 선장이 아니라 안전한 항해다. 돈에는 선악이 없다. 돈이 없 는 건 죄가 아니지만 돈에 대해 무지한 건 죄다. 투자에서는 무지로 인해 돈을 잃는 게 죄다. 돈을 지키는 게 정의다.
- 어차피 목적은 돈이다. 정치인은 이상을 꿈꾸고 기업은 현 실을 꿈꾼다. 기업에게 있어 정의는 생존이자 먹고사는 일이다. 이는 개 인 투자자와 다를 게 없다. 취미로 투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여윳돈으로 투자하느냐, 쫓기는 돈으로 투자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개인의 시점으로 시장을 봐선 안 된다. 내가 만약 대주주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주주 는 왜 기업구조를 이렇게 개편했을까? 외국계 자본은 왜 이 회사의 주식 에 투자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좋은 종목 좀 찍어 줘' '언제 팔아야 되 는데?'를 묻는 건 지극히 개인 투자자의 프레임이다. 
- 당신은 참여연대 활동을 하거나 권력형 비리와 맞서 싸우는 변호사가 아니라 투자자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가진 자의 행위를 욕할 시 간에 내 손자에게 부와 자유를 증여할 수 있는 할아버지로 늙겠다는 욕망을 품는 게 맞다. 서울의 아파트를 손자에게 증여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100만 원을 투자해서 5만 원을 남겨도 성공한 투자다.
- 사실 가진 자를 욕하면서 사는 게 편하다. 비단 돈을 떠나서 내 삶 을 바꾸고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이미 높은 단계에 올라 있는 이들의 흠을 드러내고 그들을 욕하는 건 쉽고 스스로 도취감을 느끼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고, 제3자가 바라보듯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은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욕망 따위 전혀 없는 척, 스스로 정의로운 척하며 남 탓만 하는 이들은 평생 가난하게 살다 결국 가난 속에서 죽는다. 자녀에게까지 가난을 유산으로 넘겨주는 건 덤이다.
- LG화학은 길어야 몇 년 투자한 소액주주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20여 년 전에 이미 역사는 시작되었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이들이 삼성의 반도체를 만든 게 아니라 내부 반대마저 무릅쓴 故이병 철 회장의 투자 결정으로 여기까지 왔듯,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이 되기까지는 90년대 중반 구본무 회장의 결정 덕분에 가능했다. 그 는 수천억 원의 손실에도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치권력가가 돈 좀 내놓으라고 옆구리를 찌르고 청문회에 불려가 수모를 당해도 허허 웃 으며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 달라던, 사람 좋아 보이던 회장님이 수 천억 원의 손실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텼기에 LG화학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마 수천억 원씩 손실 나던 시기에 동업하자고 했으면 아무도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삼성이 비노조를 추구한 건 혁신의 속도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테슬라 직원을 대거 스카웃했다. 테슬라는 애플 디자이너를 스카웃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서로의 인력을 탐낸다. 인력은 돌고 돈다. 굳이 노조에 기댈 필요가 없다. 플랫폼 기업은 공장보다 인재를 세운다. 사람 자체가 놀라 운 소프트웨어다. 테슬라에서 애플로 이직하더라도 그가 지닌 능력은 빛을 발한다. 반면 현대차 노동자가 쌍용자동차로 이직한다고 해서 쌍용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직은 차치하고 조립라인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도장라인으로 이동하는 단순 변화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단순 인력인 가장 낮은 층의 노동자들이 집단을 이 뤄 가장 높은 층의 노동자가 되어 집단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노조 원에 대한 노조의 갑질은 고용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2021 년 택배 대리점주가 택배 노조원의 갑질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택배 노조 간부가 컨베이어벨트 위로 올라가 비노조원인 택배 기사 가슴을 발로 걷어차는 영상이 공개됐다. 2021년 9월에는 파리바게뜨가 고용한 화물차 기사가 휴게소에 들른 사이 누군가 차량 하부의 연료 공급선을 잘라놓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리바게뜨 배송 거부 파업과 영업 방해와 관련된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압수수색 절차를 집행했다. 휴게소 CCTV에 는 범인이 승용차를 이용해 화물차를 따라 휴게소에 들어와 범죄를 저지른 후 미리 준비된 또 다른 차를 타고 휴게소를 빠져나간 정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연료 공급선 절단은 도로 위에서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범죄다. 또한 휴게소 도주 시 사용할 차량을 따로 준비하는 등 우발적인 범죄로 보기도 어렵다. 노조 가입 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문제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노조원을 배척하거나 협박하는 건 이미 정상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일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노조는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인을 욕하는데, 적어도 기업인들은 동류의 기업인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거나 경쟁사 오너의 관용 차량 연료 공급선을 자르는 짓은 하지 않는다. 기업이 잘 되면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소비자와 투자 자가 이익을 얻는다. 노조가 잘 되는 건 노조에게만 좋을 뿐이다. 기업과 비노조원과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 피식자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최우선 과제가 흐리멍덩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윤 창출이 아닌 노동자의 고용 보장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당장 투자에서 발을 빼야 한다. 선善한 기업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다. 기업은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지 못해서 상장폐지되거나 폐업한다.
- 링컨은 노예해방의 선구자가 아니라, 미국의 훌륭한 오너였다. 노동자와 노조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이다. 노예 해방보다 중요한 건 미합중국 연방의 유지였다. 노조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건 남북전쟁 후반부의 노예해방령 선언처럼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략, 기업의 생존과 이익창출을 위한 전략으로 쓰여야 한다.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증가하며 기업에게 더 큰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말이다.
- 단순히 '가족 같은 직원의 월급을 인상해 주고 싶다', 기업은 직원에게 워라밸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같은 순진한 생각으로 노동자에게 퍼주는 건 기업의 쇠퇴를 불러온다. 노예해방 선언이 전략이자 명분 으로 유럽의 지지를 이끌어 냈듯 복지 증진이나 처우 개선 역시 전략 이자 대내외적인 명분으로 기업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사용되어야한다.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소리는 다 같이 죽자는 소리다. 직원을 가족으로 대하는 임원은 없지만, 임원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직원도 없다. 어차피 다 남남이다. 딸 같은 며느리가 세상에 없듯 가족 같은 임직원도 환상 속의 유니콘과 같은 헛소리다. 친딸은 퇴근하면 소파에 누워 엄마에게 밥을 달라 하지만, 며느리가 시댁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시어머니에게 밥을 내오라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믿을 건 진짜 가족뿐이다. 
- 고귀한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링컨의 첫 번째 취임사에서는 흑인 인권이나 노예해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오히려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주에 대해 개입할 생각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고 취임사 두 번째 단락에서 정확히 밝히고 있다. 링컨의 취임사는 미 연방의 붕괴, 조직의 붕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의 천명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말들을 하는데, 노동자보다 기업이 먼저다. 노동자는 대체 가능하다.
- 링컨 대통령처럼 피를 흘려서라도 강한 기업을 만들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나라가, 기업이 무너지면 어차피 다 죽는다. 희생을 통해서라도 기업이 강해져야만 노예해방 선언처럼 노동자들의 복지와 처우도 개선 가능하다. 요구를 다 들어 준다고 해서 선한 오너가 되는 게 아니다. 피를 흘려서라도 지킬 건 지켜야만 존경 받는 오너가 될 수 있다.
- ESG는 투자의 미래가 아니다. ESG펀드 상품이 국내에도 우후죽순 출시되었는데, ESG 펀드가 투자한 종목들을 살펴보면 KODEX 200과 큰 차이가 없다. 대한민국 펀드는 이름이 어떻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네이버 등을 담을 수밖에 없다. ESG 펀드라 해서 새로운 기준으로 숨겨 져 있던 보석 같은 기업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기존 기업들을 판단하는 명목 기준이 하나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
ESG가 뜬다 하니 여기저기에서 ESG펀드를 만들고 ESG를 유행처럼 걸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1년 주식형 펀드에서는 4300 억 원가량이 빠지고, ESG 주식형 펀드에는 5700억 원의 돈이 몰렸다고 한다. 왼쪽 주머니에 있던 돈이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 간 셈이다. 주식형 펀드는 ESG 주식형 펀드는 투자하는 기업과 종목은 데칼코마니라 봐도 좋다.
- 스몰캡, 코스닥의 우량주라 해도 당장 ESG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ESG에 부합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홍보실이 탄탄하고 각종 이벤트가 많아 보도자료를 늘 배포하는 대기업이 제출할 자료도 많이 쌓아 두었을 테니 ESG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새로운 시험 전형이 생겼는데 학생들 각자 알아서 답안지를 쓰는 셈이다. 족집게 과외 선생이 달라붙은 학생은 답안지를 기가 막히게 포장할 가능성이 크다.
- 나라 밖은 더 문제다. 사실상 ESG는 EU와 미국이 세운 무역장벽이 자 규제다. 유럽에서 가장 GDP가 높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을 꼽으면 그중 세 곳이 자동차 회사다. 독일 시총 1위를 기록한 전적이 있으며 도요타와 글로벌 판매량 1, 2위를 다투는 폭스바겐, 그 밖에 다임러와 BMW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폭스바겐 그룹은 포르쉐,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을 거느리고 있다. 상용차에서도 트 럭으로 유명한 만, 스카니아가 폭스바겐 그룹의 식구다. 한마디로 굴러 가는 건 다 만든다고 봐도 된다. 다임러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다임러에 속한 벤츠는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도 아는 브랜드다. 자동차의 역사는 곧 벤츠의 역사다. 내연기관 자동차 세계 1호가 벤츠다. 주행 중 발생한 다수의 화재 사고 때문에 한때 인터넷상에서 불자동차란 오명을 썼지만 스포티한 주행으로 정평이 난 BMW까지, 독일 자동차는 지금껏 세계 최 고의 위치를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발칵 뒤집은 대규모 스캔들의 주인공도 독일 의 자동차 회사들이다. 2015년 디젤 게이트의 주인공은 폭스바겐과 다 임러였다. 독일 외 디젤차를 생산하는 유럽 자동차 회사 다수가 디젤 게 이트에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적 스케일의 사기극에 유럽이 원 팀으로 가담했다는 소리인데, 이제는 탄소 배출 규제, ESG 등을 내세우며 착한 기업인 척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탄소 배출 측면에서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 등은 이미 유럽에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근대화, 민주화가 늦었다. 한참 뒤에서 출발해서 죽을 둥 살 둥 노력하여 거의 따라잡았더니 우리에게만 더 높은 허들을 앞에 깔아 버리는 셈이다. 클린 디젤이라 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며 지구환경을 신나게 파괴하던 이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사회와 환경을 말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다음인 G2가 되었고, 비실대긴 하지만 한때 G2로 여겨졌던 일본이 있다. 그리고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대한민국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기술 패권을 아시아로 넘겨주는 게 싫은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자신들이어야 하는데, 바통을 주기 싫 어서 또는 조금이라도 늦게 주려고 뒤따라오는 주자들 앞에 장애물을 설 치한 셈이다. 독일을 필두로 유럽은 친환경에너지 시스템을 사실상 완비 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꼼수로 RE100이 있다. RE100이란 Renewable Energy 100재생에너지 100)의 약자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숫자 100이 들어갔다고 해서 RE100 가입 기업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RE100 역시 거칠 게 말하면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도서관 열람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 학생들이 먼저 자리 차지해 놓고서는 뒤늦게 열 람실에 들어서는 학생들을 통제하는 꼴이다. 유럽이 특별히 선진 시민들만 사는 아름다운 나라라서 환경이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따지는 게 아니다. 영국은 일본보다 더한 식민지배를 일삼았던 곳이고, 독일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학살은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열람실에 자리를 맡아 놓듯 실컷 석탄 연료를 사용하고 거리낌 없이 자연을 소진해 놓고서 이제 와서 착한 척하면서 후발 주자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자신들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면 세금 등 추가 비용을 부과하거나 투자금을 거둬들인다는 건 치졸한 짓이다. 그렇게 따지면 G2인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이 ESG를 적용한다고? 아마 중국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단칼에 날아가고 알리바바가 2019년 연매출의 4%인 약 3조 1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은 걸 생각해 보자.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이 중국의 강력한 규제를 받은 것은 또 어떤가? 투자자에게는 오너 리스크가 아니라 중국 자체가 리스크다. 중 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중국이 G2가 되 기까지는 급속한 도시화와 공업화, 생태계 파괴가 밑받침되었다. E, S, G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EU는 1989년 베이징 천안문사건 이후 무기 금수 조치를 취 한 다음부터는 중국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2021 년 3월 신장위구르자치구 소수민족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중국 관료 4 명과 기관 1곳에 제재를 가한 게 전부다. 그나마 그것도 미국이 함께여서 가능한 것이다.
- 에너지 컨설팅사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기준 미국이 생산하는 전력에서 석탄의 비중이 2020년 동기간 대비 6%가 늘었다. 코 로나19 봉쇄가 완화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전력 수요는 늘 수밖에 없는데, 화력발전에 천연가스 대비 저렴한 석탄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2024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정작 석탄 소비량은 더 늘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전력기업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전기 생산의 60%에 가까운 비중을 화력발전이 차지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탄소 중립을 외치지만 이상적인 비전에 불과하다.
- 재생에너지가 완벽한 솔루션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언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도 갈 길이 멀다. 2021년 4월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독일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결정문은 한 세대가 온실가스 할당량 대부분을 써 버리고, 다음 세대 에 급격한 감축 부담을 물려 주는 것은 심각한 자유권 침해가 될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선포하는 친환경 선언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일론 머스크가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벌이는 건 투자를 받기 위해서다. 자신이 호언장담한 시기에 신제품 출시가 불가능할지라도, 쇼를 통해 자본을 끌어들이는 거다. 테슬라가 발행한 메자닌 채권을 보자.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의 흥행 여부는 일론 머스크의 쇼에 달려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은퇴하기 직전까지 돈을 돌게 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이벤트를 이어 갈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관심이 필요해서 가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무대에 서는 것이다. 교주가 단상에 오르는 건 믿음을 바라서가 아니라 헌금이 필요해서다.
- 지혜로운 소비자는 대기업의 상품을 소비하지, 믿음을 바치지 않는다. 기업의 주식 역시 좋은 물건을 고르듯 소비하고 투자하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믿기 시작하면 봐야 할 것을 못 보기 마련이다.
- 바이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의 노조 설립은 무산되었다. 노조 설립 투표에 참가한 이들, 블루칼라의 노동자 다수는 흑인이다. 그들이 아마존에서 받는 시급은 앨라배마주의 최저 시급의 두 배 가까이고, 의료보험도 보장된다. 어디에 가도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은 노조에게 왜 급여의 일부를 지불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존은 여전히 무노조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결과가 어떻든 미 행정부의 공룡 기업 옥죄기는 계속될 것이다. 기업의 정의가 이윤이라면 정치인의 정의는 집권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정경 유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시민에게 인식되는데, 미국 대통령은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11조 원의 합동 방어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세계 1위 기업 아마존을 쿨하게 배제해 버린다. 굳이 은밀하게 진행할 필요도 없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산물인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대놓고 노골적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회유하는 곳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이미 아마존과 아마존 바라기 쿠팡의 창업자는 직을 내려놓았다. 그 들은 최초, 최고라는 영광을 취했지만 두 기업의 민낯은 지극히 후진적 이다. 아마존 27년의 승리가 앞으로의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내일의 주가를 예언할 수 없듯, 기업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의 일은 내일만이 알 수 있다. 오늘은 내일을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현재 시장의 한계를 인지한 상상력이 돈이 되고 미래에 대한 대비가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시기에 태어난 청년들은 이미 자기들보다 앞서 있는 한국을 보며 살았다. 20세기에 잘나갔던 건 일본의 포식자들인 일본 정부, 돈과 권력을 틀어쥔 노인들이다. 둘은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 하기 위해 그들의 아들딸인 젊은 세대를 희생시키고 있다. 20세기에 청 춘을 보낸 우리나라 중장년층에게 소니와 파나소닉이 최고의 브랜드였 다면, 21세기의 청춘들에게는 삼성이다. 파나소닉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선 이가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일본의 문제는 청년의 열정이나 근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소시민과 청년들은 피식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피식자들 은 자신이 포식자가 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대대로 흥과 화가 많은 우리 민족, 그중 젊은 세대는 왜 나는 이렇게밖에 못 사는 것이냐며 항의하고 화를 낸다. 선거든 1인 미디어는 어떤 식으 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포식자들과 정치인들은 젊은세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일본은 버블 막판의 호구 모집을 위해 주식투자를 장려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가 막아도 포식자가 되고픈 욕 망으로 주식시장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주가를 끌어올렸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처럼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화가 남아 있다. 피를 흘려야만 독립을, 자유를, 돈을 얻을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DNA에 아직 욕망과 화가 남아 있기에, 어떻게든 우리는 활로를 찾을 것이다.
- 앤트 그룹의 상장이 취소된 건 마윈이 독재 정권의 구태의연한 금융작태를 비판해서가 아니다. 중국의 포식자인 공산당이 부동산과 현금 흐름을 통제해야만 하는데, 마윈이 이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위 안화가 근미래에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환상을 품고 있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중국 인민 전체에 가까운 DB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정복하려는 마윈은 꺾어야 마땅한 싹일 뿐이다. 중국에서 금융 황제가 된다는 건 곧 세계 금융의 황제가 된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알리바바 창업주이자 회장이었음에도 알리바바 주식을 소량만 보유한 상태에서 한창인 50대에 회장직을 내려놓은 청렴한 사업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유니콘이 되고 전 세계적 쇼핑몰로 알리바바를 키워 낸 창업의 아이콘이 지금껏 브랜딩 한 마윈의 모습이다. 마윈과 알리바바가 클 수 있었던 건 공산당이 뒷배를 봐줬기에 가능했는데 스스로의 신화에 취한 마윈이 선을 넘어 버렸다. 중국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 되었다. 하지만 호랑이의 발톱과 이빨을 뽑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금융시장은 사회주의 에 근간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은 곧 중국과 일본 모두 믿고 투자하기가 어려운 시장이라는 말이다. 큰 도둑과 작은 도둑 정도 의 차이일 뿐이다.
- 참담하게 실패한 문화대약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마오쩌둥이 재 기 카드로 꺼낸 문화대혁명 역시 중국인이 중국인을 살해하는 집단 광기 가 이어졌다. 7년 안에 영국을 초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 던 마오쩌둥의 현실감각 없던 발언에서 '2035년까지 미국 경제를 추월 하겠다'는 시진핑의 선언이 오버랩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섣불리 전쟁에 뛰어든 시진핑이 마오쩌둥과 같은 절대 권력자로서 집권 연장의 꿈을 꾸며 뽑아든 카드는 사교육 규제, 문화계, 연예계 규제, 10만 위안(약1700만 원) 현금 입금 시 출처 소명, 출금 시는 사용 목적에 관한 정보 제 공, 디지털 위안 사용으로 인한 개인의 자금 흐름내역 통제 등이다. 묘하게 문화대혁명과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수천만 명의 중국인을 죽음으로 내몬 마오쩌둥의 후임이었던 덩샤오핑은 중국이 완전히 굴기할 때까지는 얼마가 걸리는 미국에 맞서지 말아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개혁개방정책으로 흑묘백묘론을 내세운 덩샤오핑다운 유훈이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민의 먹고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걸 명확히 인식한 개혁개방정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유훈을 잊었는지 성급하게 중국 굴기를 선언하고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뛰어들었다.
- 한 가지 분명한 건 문화대혁명의 전례가 있듯 문화가 정치의 노예가 되는 건 망국의 전조와도 같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의 시대는 흑묘백묘론이 지배했다. 어떻게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했다. 시진핑의 시대는 극소수의 억만장자가 모든 걸 갖고 인민의 절반 가까이가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다 같이 부유하게 살자는 공동 부유를 위해 교육과 문화를 통제하는 시진핑의 선택이 중국에게 어떤 20년으로 돌아올지 궁금해진다. 과거 시진핑을 한 번 구한 바이든은 과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혈세를 쏟아부어 기업을 살리는 건 중진국 시절에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은 성장 일변도이기 때문에 강한 정부 개입을 통해 부실기업 도 어떻게든 살려 놓았다. 개별 기업이 분식회계를 하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주도하여 중국이라는 기업을 분식회계로 꾸며 놓은 셈이다. 하지 만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 커버하는 건 한계가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중 국이 매력적이었던 건 인건비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인건비를 올릴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 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치솟는 불평등지수를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식회사 중국은 불평등지수와 인건비가 함께 상승하는 구조다. 다 함께 못살 때는 불평등지수가 낮았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기본원칙인 선부론先富論은 누구든 빨리 부자가 되는 게 목표였다. 부자가 생기고 나니 빈부 격차와 함께 불평등지수가 치솟았다. 상위1%가 국부 30%를 차지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은 선부론의 종말과 함께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시장의 화두로 던졌다. 그런데 중국의 상황은 다 같이 부자가 되기 전에 먼저 늙어 가는 꼴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조로에 접어들어 욕망을 거세한 사토리 세대가 등장하고 한국에는 N포 세대가 등장했다면, 중국에도 '탕핑平'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탕핑은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열심히 일해 봤자 인건비는 최 저 수준이니 집과 차, 결혼, 아이, 소비를 포기하고 경쟁을 내려놓은 채 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얘기다. 당연하게도 중국 정부는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탕핑을 검색 금지어로 지정했다. 탕핑의 등장 배경은 일본과 한국이 먼저 겪었던 일이다. 중국의 부동산 폭등과 부실화는 일본과 한국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버블 시절에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일본의 미친 집값은 버블이 꺼진 후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 다. 하지만 중국의 주민 평균 연봉 대비 아파트 가격은 일본의 버블 시절을 비웃는 수준이다. 버블 시대 일본 직장인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연봉을 18년 정도 모으면 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었다. 지금 중국에서는 선전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연봉을 58년 가까이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알다시피 중국은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 부동산 민영화도 1998년에야 비로소 시작됐다. 20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부동산 민영화 전에는 국유 기업의 주택에서 월세만 내면 거주가 가능했다. 이런 주택들이 민영화되며 헐값에 주택을 사들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보조금에 무이자 대출까지도 이뤄졌다. 부동산 민영화 10년 후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고, 중국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집값도 폭등했다. 당연히 민영화 당시에 헐값에 대출까지 지원받으며 집을 사들인 도시 중산층, 엘리트들은 쉽게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이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농촌에서 도시로 온 노동자들과 민영화 초기에 주택을 구입하지 못한 이들은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출발선에서 이미 뒤처지게 된 것이다. 대도시에서 쉽게 집을 얻고 수십, 수백 채의 집을 가진 공산당 고위 간부들은 보유세와 상속세 도입을 저지해 왔다. 집은 개인에 속해도 땅은 여전히 공산당의 것이기에, 세금을 내는 것이 사회주의에 반한다는 논리다. 보유세도, 상속세도 없으니 집을 수 백 채씩 갖고 있다가 자자손손 물려줘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일본이 에스컬레이터 사회라면, 중국은 애초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성채 안에서 그 들만의 파티를 벌이는 셈이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인들은 어떻게든 집을 사려고 한다. 코로나19로 경기 부양을 위해 푼 돈은 모두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본인 들은 코로나19로 정부가 돈을 풀면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하고, 중국인들은 빚을 내 집을 사고, 한국인들은 주식을 샀다. 현재 중국 전역에는 빈 집이 무려 6500만 채나 된다. 2020년 기준 중국의 부동산 시가총액은 GDP의 414% 수준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미국은 169% 였다. 중국인 재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쏠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다시 말하지만, 마윈이 공산당에 반기를 들어서 제재를 받는 게 아니다. 헝다의 위기는 헝다의 잘잘못과는 관계가 없다. 중국이란 나라의 포식자는 중국 그 자체다. 중국 정부가 앤트 그룹이나 디디푸싱의 미국증시 상장을 반대한 것을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탄압으로 읽으면 안 된다.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미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가지치기라고 보는 게 맞다.
미국은 무역 전쟁으로 중국 제조업을 압박하고, 화웨이 등을 기술 제재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죽이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금융 압박이다. 중국에 상하이증권거래소, 선전증권거래소가 있음에도 시진 핑 주석이 2021년 9월 2일 베이징증권거래소 설립을 발표한 이유는 미국의 중국 죽이기의 마지막 순서인 금융 공격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앤 트 그룹이나 디디푸싱은 미국 증시가 아닌 새로 설립되는 베이징증권거 래소에 상장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스스로의 신화에 취한 마윈은 자신이 금융 황제가 되고자 장기 집권과 미국의 공격을 방어하려는 시진핑의 큰 그림을 깨 버렸다. 결국 마윈은 그 대가로 돈놀이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알리페이 고객 10억 명의 정보를 중국 정부에 바치게 되었다.헝다의 위기 역시 부동산 위기 이전에 중국 금융을 강하게 만드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망하게 내버려 둬야 헝다가 망할 수 있다. 피식자들은 헝다의 위기를 들어 중국이 큰 위협에 빠지기를 바란다. 사드 보복,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자국문화에 편입시키려는 등 중국의 뻔뻔한 행동에 대중 감정이 안 좋은 것 도 사실이니 중국의 위기를 기대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 식자는 다르게 읽는다. 중국은 우리에게 최대의 수출 교역국이다. 우리 의 고객이라는 말이다. 중국의 뻔뻔한 행동에 한 감정과 중국을 통해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전혀 다른 문제다.
-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주식시장과 부동산을 흔들어 일본에게 잃어버린 30년이 찾아온 것을 뻔히 목도한 중국은 자국 주식시장과 부동산 단속에 나서며 대비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베이징증권거래소 개설 선언과 헝다 위기설 등은 중국이 생존을 위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일련의 이슈에서 중국의 위기만 부각하고 안 되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는 중국의 모습을 읽어야 한다. 헝다가 파산하더라도 중국에게 는 예방접종을 맞는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중국인 대다수는 극빈층이다. 기업 한두 개 쓰러진다 해도 중산층이 몰락할 일은 없다. 일본이 계층 이동의 욕망을 포기했다면, 중국 다수의 극빈층은 계층 이동은커녕 내일의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중국의 권력은 인민에 게서 나오지 않는다. 투표로 선출되지 않는 권력은 인민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1930년, 1970년, 1985년, 2008년 네 차례의 환율전쟁은 모두 미국이 주도했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상 미국은 최소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쓰러지지 않는다. 세계가 위험에 빠지면 사람들은 안전 자산인 달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인조차 위기가 닥치면 달러를 찾을 것이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20년에 1만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과 한국이 겪은 성장률 정체, 부동산 폭등, 출산률 저하, 고령화사회를 더 빨리 맞닥뜨렸다. 짐 로저스는 세상의 부가 19세기는 유럽, 20 세기는 미국, 21세기는 아시아로 이동한다는 말을 했다. 금융시장의 포 식자인 대기업, 기관, 정부와 이웃나라의 큰 방향을 읽고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부의 이동에서 포식자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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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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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의 분배가 모든 계층이 그들의 욕망을 효과적인 상품 수요로 치환 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과잉 생산도 없고, 자본과 노동력의 불완전 고용도 없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싸울 필요도 없다. ... 시장 쟁탈전, 구매하려는 소비자보다 판매하려는 생산자들의 열망이 더 큰 것은 잘못된 유통경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다. 제국주의는 이러한 거짓 경제의 결실이다. ... 국가의 유일한 안전은 소유 계급의 불로소득 이 늘어나는 것을 없애고, 그것을 노동 계급의 임금 소득이나 공공 소득 에 추가함으로써 소비의 수준을 높이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존 홉슨, 『제국주의론』(1902년))
- 세계 경제가 심화된 불평등으로 인해 왜곡된 사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 다. 오늘날의 상황은 많은 면에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세계와 닮았다. 그 당시 부유한 유럽 국가들에서 극도로 불평등한 소득분배란,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모든 생산품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했으며, 반면 부자들은 투자할 돈은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마땅한 투자 기회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었음을 의미했다. 현지 소비자들이 더 많 은 상품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공장을 더 짓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소 득 분배가 덜 불평등하게 이루어졌더라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비력을 가지고 자신들이 생산한 모든 것을 살 여유가 있었을 것이고, 부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투자 수익을 창출하기가 더 수월하게 그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엘리트들은 덜 불평등한 소득 분배를 선택하기를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거부로 인해 혁명을 조장할 수 있을 정도로 실업률 이 높아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해결책은 과잉 생산량을 해외의 전속시장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제국의 점령지와 반독립국 내의 외국인들은 현 지인들이 살 수 없는 물건을 구입하고, 군대와 포함(砲艦)을 점령함으로써 보장된 비교적 높은 이율로 대출을 받아 그 물건 값을 지불했다. 영국, 프 랑스, 네덜란드, 독일 투자자들은 호주, 라틴아메리카, 캐나다, 아프리카,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했다. 그들은 또한 철도를 건설하고 기계에서부터 군용 하드웨어나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수출했다. 난폭한 정복은 극심한 불평등이 초래한 거시경제 왜곡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당시 명민한 관찰자들은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이자 사회 비평가인 존 홉슨은 국내에서 건전한 투자처를 찾을 수 없는 잉여 자본이 흘러갈 배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를 설명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많은 잉여 자금을 금권정치의 손에 쥐어 주는 경제·정치 시스템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이러 한 소득이 한 계층에게 집중됨으로써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소비력을 부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는 결국 소비만으로도 자본이 활성화되고 이윤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자멸로 가는 길이었다. 따라서 부자들은 수익성 있는 투자와 투기를 할 새로운 지역을 해외에서 찾아 야 했다. 결국, 이러한 탐색은 국내의 강력한 이익단체들을 부추겼고, 그 들의 경제적 자원의 커다란 부분을 점차 현재의 정치적 영역 밖에다 두 면서, 새로운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확장 정책을 펼치도록 촉진시켰다.
- 결핍은 인류 생존을 위한 대부분의 문제를 규정해왔다. 비교적 최근까지는 단순히 기아 방지를 위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오랜 결핍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생산적인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유한한 자원을 사용할지 아니면 즉각적인 수요(소비)를 충족시킬 지를 선택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소비가 이겼다. 증가하는 인구는 항상 부가적인 생산량을 다양하게 소비했고 이는 부의 창출을 제한하고 생활 수준을 결정했다. 과거에는 가치 있는 투자에 자금을 댈 수 있도록, 소비 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소비를 억제(저축을 권장)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나 자원이 풍부할 때, 덜 소비하고 저축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이자 역효과만 낳는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는 바 로 그 순간에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굶주린 채 들판에 드러누워 있다. 공장과 기계는 사용되지 못한 채 녹슬어간다. 투자할 수 있도록 흑자를 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소비를 줄이는 데만 힘쓰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뿐이다. 게다가 초과 용량은 결국 신규 투자를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
- 국가 저축률을 높이는 방식은 대체로 퇴행적이며,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나 고도의 중앙집권화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다음은 18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행했던 방법이다. 우선, 귀족 지주들은 근근이 살아가는 농부들을 공권력을 이용해 쫓아낸 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폐쇄된 사유지에 통합시켰다. 농촌에서 도시로 강제 이주한 농민 들의 희생으로 농업 이익이 증대되었다. 시간당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늘 어나는 농민들의 수는 도시 고용주와 협상할 때 불리하게 작용해 실질적 인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제조업체들의 수익이 증가했고 제조업 체들은 그렇게 불어난 수익을 추가적인 생산능력을 개발하는 데 재투자 했다.
- 1740년 영국에서는 생산량의 단 4퍼센트가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고 저축되었다. 1820년대까지 국가 저축률은 14퍼센트로 증가했고 영국은 과잉 제조된 생산량을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 특히 제국 식민지와 급성장하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산업 초강대국이 되었다. 강제 저축으로 인해 생산적인 투자가 가능했는데, 이 추가 생산은 추가 투자를 창출하는 데 사용되었다. 저축만으로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저축이 투자 자금 을 조달하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부의 창출 과정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민들을 배타적으로 제외시켜 그들에게 산업화의 첫 수확을 지불하지 않았다. 산업화는 또한 고임금 모델의 요인들을 활용해 발전했다. 농민들은 산업혁명 동안 그들이 생산한 것의 가치에 비해 점점 더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영국노동자들은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 있는 노동자들보다 더 높은 임금을 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그들의 높은 생산성과 우호적인 사업 환경 덕분에 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였고, 이로써 투자 지출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때까지 국민 저축을 지속적으로 초과했다. 이러한 차이는 네덜란드인들 이 만회해주었는데, 이들은 18세기 영국 총 투자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추정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영국 정책들(보호관세와 오늘날 지적 재산권 침해 라고 불리는 것을 포함해)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네덜란드에 투 자하는 것보다 영국에 투자하는 것을 더 선호했으며, 당시 네덜란드는 투자가 더 필요 없을 정도로 성숙한 경제상태이기도 했다.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저축 모델을 더 인간적으로 변형시켜 개발했다. 노동자, 기업, 정부는 서구와 함께 수십 년간의 급속한 성장과 경제적 융합을 일으키자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동의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지 않고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기업들은 국내 역량과 기술 개선에 수익을 적극적으로 재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국내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규제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저축하는 사 람들의 희생으로 제공되는 저리 대출을 회사들에게 지원하기로 합의했 다. 일본 내에서는 소수의 대기업들이 소비자를 희생시켜 과점 경제권을 장악했다. 해외에서는 그러한 똑같은 회사들이 서로,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생 산자들과 시장 점유율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이로 인해 그들은 효율적이고 혁신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노동자, 소비자, 퇴직자들은 모두 상품과 서비스 비용을 과다하게 부담하고, 서구의 노동자, 소비자, 퇴직자들보다 국가생산량에서 더 낮은 몫을 집으로 가져가며, 구매력을 가계에서 기업으로 이전하기 위해 고안된 금융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산업발전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일본 기업들은 제조업의 기반을 개선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생산성 증가라는 이익을 전달하며, 과도한 임원 보수는 자제하는 식으로 보답을 했다. 정부는 일류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했다. 게다가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수출은 계속해서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수입을 초과했다.
일본이 서구의 생활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일본식 개발모델은 문제점들을 야기했다. 교육받은 근면한 노동자가 풍부하지만 충분한 물리적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사회일 때, 명백하게 투자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따라서 구매력을 노동자에서 기업과 국가로 이전하면 국가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소비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는 제도적 편견이 있어서, 최고의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에도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그래서 가계 지출을 제한하고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전쟁 후에 개발되었던 메커니즘을, 그 유용성이 떨어졌는데도 1980년대 초까지 계속 지속했다. 추가 투자로 증가되는 이익은 꾸준히 감소했고, 가계지출에 부과된 체계적인 제약은 투자수익을 감소시켰다. 일본 사회는 결 국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와서 적응했지만 기업 투자가 급감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며 가계저축률이 '0'으로 떨어지는 등 불필요하게 고통스러운 방식을 통해서였다. 일본이 개발 모델을 좀 더 일찍 벗어났더라면 이 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수세기 전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시골 에서 도시로 유입될 수 있었던 하나의 원인은 새로운 기회 덕분이며, 또 한 도시 중심이 급격하게 확장됨에 따라 지방정부들이 토지를 몰수하거 나 전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도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것의 가치에 비해 체계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았는데, 이는 상 당한 잉여금을 발생시켜 물적 자본에 투자하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투 자는 항상 소비보다 우선시되었다. | 한편, 19세기의 미국인들처럼 중국은 외국 기업들에게 높은 수익과 국내 시장에 대한 접근을 약속함으로써 현대 기술과 전문지식을 끌어모 았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중국도 국가가 관리하는 은행 시스템을 통해 가계저축을 우선순위 기업들에게 쏟아부었다. 또한 아시아의 이웃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차별적인 규제와 도덕적 권고를 통해 비중국인 생산자들보다 소위 국내 챔피언(우수업체)들을 선호한다. 
-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접근 방식이 중국에서는 상당히 잘 작동한 것 처럼 보인다. 국내에 심각한 환경 문제들을 야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불행히도 고저축 성장 모델은 오래전에 그 유용성이 이미 다 한 상태였고, 중국과 전 세계에 점점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충족되지 않는 소비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투자가 가치 있 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투자는 다른 곳에 더 잘 쓰일 수도 있는 자원 을 낭비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소비 비용을 희생해서 투자 자금을 조 달하는 일은, 과도한 생산능력과 빈곤해진 노동자들(정확히 2000년대 초반 이 후 중국의 상황)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 자멸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중국 총리인 원자바오가 2007년 3월에 밝힌 바와 같이, 중국 경제에는 불안정하고 불균형적이며 부조화스럽고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들이 있다.”
금융위기 전까지 이 전략의 비용은 무역수지 흑자 증가와 대규모 금 융 유출을 통해 전 세계에 효과적으로 전가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로 중앙정부와 관련된 중국 거주자들이 매년 7000억 달러 이상의 외 국 자산을 사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유출은 생산능력 저하와 가계부채 증가를 감수하고 미국과 여러 다른 부국들이 흡수했다. (메커니즘에 대해서는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금융위기 동안 중국의 주요 수출 시장 특히, 미국의 수요 붕괴는 중국 의 경상수지 흑자를 급격히 위축시켰고, 중국 정부는 국내 생산 감소를 허용(실업 증가를 유발)하거나 국내 지출을 늘려 국내 수요를 상승시키는 방 안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수요를 늘리는 것이 분명히 더 나은 선택이었지만, 더 높은 투자나 더 높은 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투자 수준이 매우 높고 이미 대규모로 잘못 할당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더 높은 소비를 선호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장 뒷부분 에서 더 자세히 논의할 중국의 무수한 제도적 제약 때문에 가계 대출이 급증하는 것 외에는 소비가 충분히 빨리 증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에서 목격했던 일을 봐서는 유사한 경험에 대해 관심 이 없는 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것이 정부가 투자 활성화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세계 금융위기 에 대처하는 가장 직접적인 대응은 외국인 지출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기반 시설과 주택 투자를 대대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중국의 오랜 불균형을 일제히 내부로 이동시키면서 점차 확대되었다. 중국은 유 례없는 중국 부채 급증이라는 희생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했음에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비생산적인 투자는 비용을 충당하지 못했다. 빚을 내서 하는 투자를 통해 고속으로 성장하는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중국 정부는, 무역흑자와 금융 유출을 통해 경제 모델의 비용을 전 세 계에 전가하려고 다시 한번 시도할 위험이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은 투자보다 가계 소비가 우선되도록 중국 경제를 재조정하는 것 이다. 이는 구매력을 중국 노동자와 퇴직자에서 기업과 정부로 이전하는 기존의 모든 메커니즘을 뒤집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1978년 덩샤 오핑이 시행한 개혁만큼 극적이고 정치적으로 어려운 개혁이다.
불행하게도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의 선택들이 정치적으로 고착화되 어 있다. 반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소비력을 소비자에게서 대기업으로 전환하기는 쉽다. 결국 스탈린이 그렇게 했다. 문제는 수년 간 국가가 지원하는 소득 집중 정책이 소비자들에게 소비력 을 되돌려줄 어떤 개혁에도 격렬하게 저항할 강력한 기득권’ - 리커창 총리가 선호하는 용어 - 그룹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성공적으로 조정하려면 정부와 국민 그리고 엘리트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몇 년간 환경보호, 금융개혁, 건강보험 등 중국 서민 들의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 진실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1989년 이래로 지속된 장기적인 추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정세에 알맞은
해답을 찾기가 막막한 가장 큰 문제는, 공산당이 정치적 독점을 잃지 않 고도 중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이 제도를 개혁할 수 있느냐다. 중국이 왜 이런 상황에 빠졌고 왜 이 과정을 뒤집기가 그토록 어려웠 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40년간 중국의 성장 궤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분석가들이 중국의 발전에 대해 이해하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덩샤오핑이 역사적인 개혁을 시작한 이후 거의 40년의 세월을 하나의 지속적인 성장 모델로 융합한 것이다. 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결론 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누군가의 성공에서 말이다. 
- 우크라이나 태생의 경제학자 알렉산더 거친크론은 1951년 그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경제 후진성(Economic Backwardness in Historical Perspective)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역사적으로 두가지 주요 제약조건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첫째, 불확실한 부동산 권리 와 신용할 수 없는 법체계 그리고 불안정한 금융·정치 시스템 때문에, 투 자에 자금을 댈 만큼 충분히 국내 저축을 하지 못한다. 둘째, 같은 이유 로 민간 부문은 생산적인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못한다.
거센크론의 결론은 이러한 제약들을 정부의 개입으로 극복할 수 있 다는 것이다. 거센크론에 따르면, 국가는 민간 부문의 자원을 모아 절실 히 필요한 사회 기반 시설과 제조 시설을 건설함으로써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 투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가계 소비가 억제될 것이다. 실제로 이는 노동자와 퇴직자에게 직접적이고 간접적으로 세금을 부과해 중앙 당국이 지시한 투자를 보조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며, 이는 유권자들에게 해명할 필요가 없는 권위주의 체제에 적합하게 발전한 개발 전략이다.
지난 세기에 있던 거의 모든 투자 주도형 성장의 기적은 이러한 규정을 따랐다. 스탈린 휘하의 소련은 1930년대에 거센크론 모델을 사용해 산업화되었다. 마오쩌둥 사상의 중국은 1958~1962년의 대약진 기간 동안 비슷한 것을 성취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브라질의 군사 독재 정권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러한 모델로 상반된 결과를 얻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모델을 구현한 유일한 주요 민주주의 국가다. 이후 한국이 군사독재 시절에 채택해서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 불균형 성장 모델의 효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중국의 세 번째 성장 단계는 199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중국 기저의 경 제 잠재력은 생산성 향상, 높은 투자, 농촌에서 도시로 노동자가 계속 이 주한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전 시기와는 달리, 실제 중국의 생산량은 기본적인 잠재력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했다. 2008년 정도까지는 무역흑자 증가를 통해 그 차이를 해외에서 상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업에 대한 외부 수요 붕괴에 대응해 국내 투자를 더욱 확대했다. 그러나 수익성 높은 투자 프로젝트가 적절하게 증가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국내 부채 부담만 급격히 증가시킬 뿐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GDP 성장 목표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 산출로서의 GDP 성장과 시스템 투입 으로서의 GDP 성장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제에서 GDP는 가계, 기업, 정부가 창출한 생산량을 측정하는 척도로, 이러한 모든 수치 들은 그들이 얼마나 지출할 수 있는지에 한계를 긋는 역할을 한다. 공식 통계학자는 해당 기간 동안 GDP가 확대되거나 축소된 양으로 보고되는 관련 활동 변화를 측정한다. | 하지만 이것은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GDP 성 장률이 이 시스템에 들어가는 투입 요소 중 하나다. 그것은 그 해의 GDP 성장 목표로서 연초에 설정되고, 사회적·정치적 목적을 수용하기 위해 필요한 성장량을 나타내며, 그러한 과정에서 물론 실업률을 낮게 유지하 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따라서 그것은 표준 경제 제약을 수정해 지방정 부가 민간·부동산 부문의 경제 활동과 함께, GDP 성장 목표를 높일 수 있는 경제 활동을 충분히 창출하도록 만든다. 이로 인해 강력하고 위험한 동기가 생성된다. 중국 지방과 시 정부가 은행 시스템 내에서 신용창조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고, 중국 은행들은 빚을 상환할 수 없는 프로젝트에 거의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공무원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영 은행들에게 우대받는 기업에 대출을 해주어 필요한 만큼 사회 기반 시설, 제조,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투자가 가치가 있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출의 양이 중앙정부의 목표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보고한 대로 GDP를 발생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사회 기반 시설과 제조능력이 너무 부 족했기 때문에 이 제도는 중국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산적인 투 자에 유일한 제약은 저축이 증가할 수 있는 속도였다. 거의 모든 투자가 프로젝트 비용보다 훨씬 더 생산성을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금융 시스템은 가장 빠르게 확장하는 금융 시스템이었는데, 이는 필연적 으로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차별이 덜한 금융 시스템을 의미한다. 만약 그것이 당의 기본적인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든 자금을 지원받을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얻은 금융 시스템이다. 자본을 정교하게 관리해주지는 않지만, 국내 저축의 급증세를 포착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투자 프로젝트에 싸게 대출해주는 것은, 정부의 규제 덕분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중국 경제와 대부분의 다른 경제 사이에는 두 가지 큰 차이점이 있는데, 이것이 지방정부들이 분기별 연도별 성장 목표를 정확하게 달성할 수 있게끔 해준다. 첫째, 지방정부는 엄격한 예산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다. 즉, 그들은 결제할 필요성에 제약받지 않고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비생산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은행 시스템 내 대부분의 신용창조를 통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둘째, 대출이 직간접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은행들은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사업에 들어가는 대출을 기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GDP 성장 목표 달성에 필요한 활동에 자금을 대기 위해 지방정부가 요구하는 만큼의 신규 여신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까지,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빠른 투자 성장으로 인해 생산적인 투자를 명확하게 식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중국 은행 시스템의 오랜 결함들이 심각한 제약이 되었다. 압류된 가계저축에 서 나온 저리 융자는 실제 비용보다 경제적 가치가 덜 추가된 투자에 보조금을 주었다. 중국은 투자 붐이 점점 더 비생산적으로 변하는 포화 단계에 이르렀다.
- 높은 부채 수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더 생산적인 행동에 영향을 준다.
첫째, 높은 수준의 부채는 채무불이행과 상환 비용의 배분에 불확 실성을 야기한다. 이것이 법인금융에서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거시경제학의 일부는 아니다. 중요한 점은 모든 경제 인 구가 나쁜 부채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 행동방식을 바꾸면, 이러한 변화들이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즉, 부자들은 자신의 돈을 국외로 빼돌리려고 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노동자들은 비협조적이 되고, 중산층 저축자들은 계좌에서 돈을 빼서 실물 자산을 사려고 한다. 중국의 부채 수준은 이렇게 재정적으로 좋지 않은 진행 과정이 이미 시작되었을 만큼 충분히 높다. 부채가 평가 절하되기 전까지 생산성을 촉발시키고자 하는 방식의 개혁은, 다른 방법보다 부를 덜 창출할 것이다. 이전에는 중국의 지방정부가 경제의 실질 성장 능력을 초과하는 차입으로 GDP 목표를 달성했다. 그렇게 싸게 빌릴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GDP는 훨씬 더 느리게 성장했을 것이다. 이 말은 부채 수준이 안정되기만 한다면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중국의 부채 수준은 이미 너무 높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단순히 부채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력을 포함해서 모든 자원들을 충분히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경제 상황인 경우 외에는, 부채의 증가나 감소는 성장률의 변화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성장 충동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던 상황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이는 GDP가 훨씬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중국 은행 시스템은 대출이 초래한 경제적 손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의 GDP는 악성 대출(회수 불능 융자)의 원 리합계로 인해 실질적으로 과대평가되어 왔다. 투자는 투자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미래의 소비와 생산을 만들어내는 경우에 만 가치가 있다. 투자 자금으로 사용되는 대출은 경쟁금리로 상환 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투자들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성장을 증가시키지 않고, 노동자와 퇴직자에게서 추가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갚을 수 없는 금융 시스템에 악성 대출을 더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악성 대출과 불량 투자의 비용은 조정기간 동안 분할 상환될 것이며, 과거 GDP에 과대평가되었던 금액만큼 향후 보고되는 GDP를 반드시 낮출 것이다.
- 어떤 식으로든 중국이 경제를 재조정할 것이고, 모든 불균형은 결국 복원될 것이지만, 특정 계획은 몇 가지 경쟁적 제약 속에서 정치 시스템 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중국 경제가 계 속 둔화하는 가운데 베이징에 있는 중앙정부는 중국의 다양한 엘리트 집 단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은 세기 동안 중국 경제성장의 성격을 결정할 새로운 기관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기관들이 어떤 모습일지 누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소득이 엘리트들에게서 일반 가계로 옮겨간다면 가장 바람직한 결과가 될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이것이 바로, 중국의 부족한 내수를 세계의 다른 나라들로 강제로 떠넘길 필요성을 줄여주는 자산균형 재조정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모든 성장 기적에 필수적인 조정 기간은 언제나, 특히 겉으로 가장 명백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상을 항상 뒤엎었으며, 심지어 가장 심한 비관론자들이 두려워했던 것보다도 경제적으로 훨씬 더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태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해도 무방하다.
- 유럽 중부와 동부에서의 혁명들은 소련이 개입할 자원과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부분 성공했다. 소련은 1956년(헝가리), 1968년(체코슬로바키아), 1979년(아프가니스탄)과는 달리, 1980년대 후반에는 위성국가들을 침략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괴뢰정권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소련이 망설였던 이유는 일부 재정상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중이었지만 소련은 유럽과 미국에서 수입하는 곡물에 의존했다. 에너지 수출과 때 로는 금 보유고를 팔아 벌어들인 소득으로 대금을 지불했다. 1960년대에 석유와 가스의 가격은 밀의 가격에 비해 50퍼센트 이상 올랐다. 1970년대에 에너지 가격은 밀 가격에 비해 4배나 올랐다. 소련은 증가하는 국제 구매력으로 공세를 취하는 게 가능했고, 공산주의 체제의 내부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으며, 정부는 추가 수입품에 지불할 거액의 달러표시 부채를 서방 은행들에서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유가는 밀 가격과 달러 대비 3분의2 수준으로 폭락했다. 금값도 급락했다. 이로 인해 소련은 서방세계에서 군사 태세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계속되는 전쟁비용을 지불하고, 1970년대에 발생한 외채를 상 환했다. 어떤 추가 지출이든 국내 전선에는 잔혹한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생활수준을 무너뜨려야 했을테고, 스탈린은 결국 그렇게 했다. 그러나 1985년에 당 지도부의 최고 자리에 오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탄압에 무관심했으며 아마도 그럴 수 없는 규모였을 것이다. 대신 고르바초프의 우선순위는 정권의 권위주의를 누그러뜨리고 서방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동유럽인 들에게 기회의 창이 되었다.
-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은 한 사회 내의 구매력 분배가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구매할 여 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러한 생산물이 필요한 외국의 수요에 의존해야 한 다. 해외 수요나 내수가 충분하지 않다면, 더 적게 생산할 수밖에 없을 것 이다. 한 나라의 소득 중 많은 부분이, 버는 것의 대부분을 쓰는 기업들 에서 버는 것보다 적게 쓰는 기업들로 옮겨갈 때, 그 국가는 더 큰 경상수 지 흑자 또는 더 작은 경상수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중국과 독일의 예를 들어 보여 주었다. 1989년 이후 중국과 독일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너무 많이 저축 하고 너무 적게 소비하게끔 되었다. 그들이 겪은 일은 유익하다. 왜냐하면 일본, 네덜란드, 싱가포르와 같은 다른 주요 흑자 국가들에서 일어났던 일의 많은 부분을 함께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한 이상한 점이라면, 미국이 전형적인 흑자 국가의 많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경상수지 적자를 끈질기게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 기 전에, 왜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운영했어야 했는 지(그런데 왜 그렇지 않은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가계 부문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미국의 불평등은 1970 년대 후반부터 급증했다. 세금과 정부 이전을 감안했을 때 국민 소득의 분포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사람들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30퍼센트 에서 40퍼센트로 증가했다. 상위 1퍼센트 이내의 초고소득자들이 그 증 가의 대부분을 견인했다. 그들의 소득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희생에서 나온 것이었다. 분포의 하위 절반에 속하는 미국인들은 세금, 물가 상승 그리고 정부로부터의 현금 혜택을 고려해볼 때 1970년대 후반 이후 본질 적으로 어떠한 소득도 증가하지 않았다.
- 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소득의 약 40퍼센트를 저축하는 반면 대 부분의 다른 가구들은 저축이 '0'에 가깝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미 국의 총 가계저축률이 상승하도록 야기했어야 맞다. 그러나 가계저축률은 1970년대 후반의 가처분소득의 약 10퍼센트에서 1990년대 후반에는 5퍼센트로 떨어졌는데, 그 주된 이유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저축을 훨씬 적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설명이 필요한 수수께끼다.) 금융위기 전날까지 미국 가계의 평균 저축률은 겨우 3퍼센트로 떨어졌는데, 이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저축률이 마이너스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빌렸으며, 자신들이 버는 소득보다 더 많은 돈을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고 이자를 지불하는 데 소비했던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전체 가계저축률은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한 약 6~7퍼센트로 되돌아갔다.
- 미국의 가계와 기업과 정부가 선택해온 것들로는 미국이 왜 광범위한 경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운영해왔는지를 이해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한 부문이 지출을 줄일 때마다, 다른 부문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개입한다. 미국의 가계와 기업, 정부가 해외에서 유입되는 금융에 대응해 행동을 조정하는 등 경상수지를 독립적인 변수로 생각하 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사채와 공채, 또는 기업 자본 지출과 주택 건설 사이의 특정한 혼합은 주로 미국의 국내 조건과 정책이 하는 기능이다. 그러나 총결산 결과는 미국의 국경 밖에서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독일과 매우 비슷한 특성이 많은데도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과 독일의 주요 차이점은, 미국은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아니어도 외국인들의 미국 자산에 대한 욕구가 왕성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자산을 향한 욕구는 미국의 국가 부채와 그에 관련된 의무들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수행하게 된 특 별한 역할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스템이 어떻게 진화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다소 놀랍게도 국제 통화 시스템은 지난 2세기 동안 많은 핵심 특징들을 유지해왔다. 달러의 우위, 즉 미국의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수긍하게 하는 근본적인 변화는 대공황 기간에 벌어졌 던 금본위의 붕괴다. 그 후 90년 동안 거듭 노력했지만, 어느 나라도 적절 한 대체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좋은 대안은 세계 준비자산 으로서 달러를 중심으로 한 정권이었다. 
- 제1차 세계대전 전날, 잉글랜드 은행은 세계 금 보유량의 겨우 3.4퍼센트만 갖고 있었고, 그리고 지폐의 5퍼센트도 안 되는 금액만이 다시 금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정부들은 수입과 외채를 충당하기 위한 준비자산으로 영국 파운드화를 보유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4대 경제대국(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외에 다른 정부가 발행한 통화는 전체 준비자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금괴였다.) 프랑스 프랑화와 독 일의 라이히스마르크가 더 성행했던 유럽 대륙과 미국 달러로 준비자산 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를 넘어, 파운드화가 단연 지배적인 준비통화였다. 예를 들어, 1913년 일본이 보유했던 준비자산은 금이나 다른 외화보다는 거의 영국 정부와 은행들이 발행한 금융 청구 형태를 취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을 제외한 모든 강대국들은 종이 화폐를 물리적 금으로 전환하는 것을 유예했다. 각국 정부는 전쟁 물자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돈을 인쇄하고 있었고, 만약 그들이 지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폐를 금과 교환하도록 허용했다면 금은 금세 고갈되었을 것이다. 1922년 제노바 회의에서 강대국들은 전쟁 전의 금본위제와 유사 한 상태를 회복하기로 합의했다.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멈추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금본위제에서 각국의 국내 신용공급은 자국 정부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에 따라 제한되어야 했다. 민간 대출업자들은 무제 한으로 서면 청구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청구가 궁극적으로 한정된 금과 교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무제한 서면 청구를 단념했다. 이러한 제약은 1913년 잉글랜드 은행의 제한적인 정화(正貨)준비금에서 증명되었듯 이, 약하긴 했어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금의 유입은 추가 대출과 지출을 장려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는 금괴를 더 많이 받는 나라에서 가격과 생 산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한 결합은 지속적인 글로벌 불균형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했 다. 흑자 국가들은 국내 신용공급을 늘리고 임금과 물가를 부풀리면 금 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출 가격이 비싸지고, 수입과 지출은 늘 어나게 된다. 적자 국가들은 신용공급을 줄임으로써 수출 가격을 낮추고 수입에 대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무역 흐름의 변화는 금의 흐름을 역전시켜 흑자 국가들의 호황과 적자 국가들의 부진을 종식시킬 것이다. 조정은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도록 해줄 것이다.
- 복원된 금본위제는 1920년대에 실패했는데, 이는 프랑스와 미국의 국 내 경제들이 금의 유입에 대해 통상적인 방식으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상당히 유연한 시스템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전쟁 전보다 훨씬 낮게 프랑화의 금 가치를 재설정했고, 이는 수입에 대 한 지출을 억제하고 수출품의 가격을 낮추게 했다. 미국이 달러의 금 가 치를 바꾸지 않는 동안, 유럽에 비해 금의 환율이 실질적으로 평가절하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전쟁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을 훨씬 덜 경험했고 또한 전쟁 후에는 인플레이션을 더욱 성공적으로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 중이나 전쟁 후의 국내 수요에 비해 미국의 생산능력이 우수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미국의 수출 수익을 증가시킨 반면 수입에 대한 지출을 감소시켰다. 미국인들은 전후 독일에 대한 대출뿐만 아 니라 전시 동맹국들에게 해주었던 대출에서도 상당한 이자를 받고 있었 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와 미국 모두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결론은 프랑스와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서 많은 금을 받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금의 유입으로 프랑스와 미국은 소비력이 증가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수출품은 세계 시장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었어야 했다. 불균형은 스스로 바로잡혀야 했고 결국 금의 유입을 역전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프 랑스 은행(프랑스 국립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국내 인플레이션 을 억제하고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금 수입을 무력화시켰다. 프랑스와 미국에 유입된 금은 돈과 신용 거래를 확대하기보다는 세계금융 시스템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이러한 결정은 프랑스와 미국의 준비 자산 보유량을 극적으로 증가시켰고, 세계 경제를 왜곡시켰으며, 결국 제 노바에서 합의한 통화 체제를 파괴했다. 균형을 잡기 위한 채권자들의 조 정은 없을 것이다. 1920년대에 적자 국가들은 국내 경제 상황을 희생시키면서 금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지키기로 선택했다.
그러나 대공황이 닥치자 이러한 선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금 본위제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에 굴복한 첫 번째 나라는 1931년 9월에 페 그를 포기한 영국이었다. 그해 말에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과 일본이 그 뒤를 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금 보유고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 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 정부가 1933년 금과 연결된 달러의 고리 를 끊을 때까지 신용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지급유예 사태를 악화시켰다. 프랑스가 가장 오래 기다렸고, 몇 년간의 국내 약세와 무역 경쟁력의 감소를 겪은 이후인 1936년에 마침내 프랑화를 평가절하했다. 독일은 연합 국에 패배할 때까지 금에 대한 페그화를 엄밀히 지켰지만, 이는 외채를 경화로 지불한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등 국외로 돈을 빼내는 행위 에 대한 가혹한 통제를 통해 얻은 결과였다. 국제 금융 시스템과 단절된 나치 정권은 물물교환식 무역에 의존했는데, 표면적으로 이념적 적수인 소련에서 원자재를 얻기 위해 첨단 제조물들을 팔아 자신들이 필요한 것 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1930년대가 저물어갈 때, 전쟁 전 금본위제와 전 쟁 중의 금환본위제의 마지막 자취는 모두 사라졌다
- 1997~19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수년 동안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은 북미, 유럽, 일본의 저축자들에게서 상당한 재정적 유입을 끌어왔다. 한국의 생활수준은 이미 뉴질 랜드와 스페인의 생활수준에 다다랐고, 말레이시아는 발전 중인 중앙유럽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1990년대에는 모두 미국 달러에 대해 안정적 인 환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7년 상반기가 되자 다양한 이유 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 특히 IMF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IMF의 정책 검토부장이었던 티모시 레인이 회고하면서 분 석해 말했듯이, 아시아 위기 국가들은 재정흑자, 높은 민간 저축률, 낮은 인플레이션을 가지고 있었다. 레인과 그의 동료들이 보기에, '환율이 지나친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의 은행과 기업들이 국내 자산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외화를 대규모로 빌렸다는 사실이었다. 설상가상으 로 부채는 단기적인 경우가 많았다. 돈이 계속 유입되는 한 환율은 보합 세를 보였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계속 상승했으며, 상황은 지속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가 자산 가격 하락, 통화 가치하락과 실질 금리 상승이 자체 강화로 연속해서 이어질 수 있고, 실제로 이어졌다. 이 국가들이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에서 돈을 빌린 것이 실수가 아니라, 붕괴되기 쉬운 방식으로 채무를 구조화했다는 점이 실수였다.
- 정부가 지급하는 일시적인 노동 불능 급료는 실직 노동자들의 생계를 도왔으나 분실 소득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이는 소매업, 식당업, 회계사.. 변호사 등 고액 연봉 업종에 관계없이 해당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모든 사 람에게 해외 수입의 영향이 확대된 것이다. 미국의 그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재앙이었다. 직업이 없는 남자들은 결혼할 여자를 찾 을 수도 없고 아이를 가질 수도 없었다. 직업과 가족이 없는 남성들은 음 주, 마약, 특히 자살로 내몰렸다. 지방정부는 세수가 고갈되고 복지제도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분투했다. 지난 20년 동안 전국적으로 범죄율이 급감했지만, 비용이 저렴한 수입품들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지역의 범죄율은 약간 증가했다.
문제는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의 탐욕스러운 수요였다. 수조 달러의 비경제적 자산 매입이 주택담보대출 버블을 부풀리는 것은 물론 미국 환율을 왜곡하면서, 과도한 대외금융 역시 미국의 교역조건을 무참하게 약화시켰다. 1997년 초반(아시아 금융위기 전날)과 2002년 초 사이에 달러는 교역 상대국 통화에 대해 20퍼센트 이상 절상되었다. 그때부터 2008년까지 달러는 하락했지만, 1988~1996년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달러의 과대평가는 미국 소비자들이 국내 제조업을 희생시켜가며 해외에서 만들어진 상품 을 사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주요 흑자 국가들의 계층 전쟁과 아시아의 금융위기 이후의 자기보험 에 대한 열망 탓으로 전 세계가 소비를 꺼리게 된 것은, 미국의 부채 거품 과 산업공동화 둘 다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외국 금융의 유입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일자리와 소득을 희생하면서 제조 능력의 과잉 상태를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저축자들은 달러표시 자산을 사들이면서 미국 지출에 미치는 일자리 감소의 영향을 완화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금리가 내려가고 신용이 확대되고 가계 대출이 급증했다.
2017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세심한 연구는 이러한 세력들을 분명히 연결시켰다. 연구원들은 값싼 제조 수입품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에 근거해 미국의 다른 지역들을 비교했다. 대외경쟁에 가장 취약한 곳 은, 절대적인 조건에서 보거나 소득 대비해서 볼 때 가장 가계부채가 많 은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수입으로 인해 국내 생산이 이전함으로써, 손실 임금을 대체하기 위해 신용 거래가 증가했다.
- 준비통화를 발행하는 것이 좋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지만, 그것은 경제보다는 심리학에 기반을 둔 오해다. 보유고 발행자가 세계 경제를 압도적으 로 지배하지 않는 한, 보유고의 국내 수요와 글로벌 수요 사이에는 항상 충돌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60년 넘게, 자국 노동자들을 희생해서 전 세 계의 저축자들을 만족시켜왔다. 달러가 가진 최고 지위는 프랑스가 잘못 표현한 '지나친 특권이 아니라 '지나친 부담'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러한 점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10퍼센트 미만을 차지했지만, 인도와 영연방의 저축자들이 매입한 스털링(영국 화폐 제도) 자산의 가치를 보호하 기 위해, 1920년대에 터무니없이 강한 환율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케인스가 영국 정부의 경제 고문으로서 강력하게 반대했던 그 결정이 영국 산업을 희생시킨 것이다. 영국의 수출은 1920년대 내내 1913년보다 약 25퍼센트 낮았고,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값싼 수입품들이 국내 생산을 대체했다. 영국 노동자들은 거의 10년 동안 극도로 높은 실업률을 견뎠다. 세계 주요 준비 통화 중 하나를 발행하는 일이 특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 대중이 국제적 합의보다 국내의 일을 더 우선시하기로 했던 시기인 1930년에서 1932년 사이 상황은 바뀌었다. 영국은 국제적인 합의를 버리고 금 대비 자국의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국내 금리를 낮추 며, 관세를 부과했고, 그 후 1920년대에 생겼던 나머지 경제 부국들과 자 국 사이에 생활수준의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 
그 이전에 영국 정부는 파운드스털링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 으로 자국민들에게 고통을 부과했다. 그것은 파운드스털링의 지위를 유지하게 될 수도, 아니면 그 반대로도 될 수 있던 정책 선택이었다. 미국 정 부도 이와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제 금융 시스템을 달러에 묶는 선택을 했다. 처음에는 준비통화 발행이 부담이 되지 않았다. 미국 생산량이 세계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치 에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전후 초기 몇 년은 이례적이었다. 1971년까지 브레턴우즈에서의 선택은 유지될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닉슨 행정부는 금과의 연결을 끊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저축자들은 어떠 한 공식적인 합의에도 구애받지 않고, 달러를 국제적인 준비자산으로 결 정했다. 이에 따른 결과로 유입된 재정을 미국 정치와 금융 시스템이 수용했으며, 이는 미국인들에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 외국인 저축자들이 미국 자산을 살 때, 산업공동화로 인한 소득 감소와 수입에 대한 지출 증가의 결합을 통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증가한다. 미국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수조 달러 가치를 지닌 투자들이 없다면(그런데, 없었다), 상승하는 지출은 낭비적인 투자나 추가소비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그에 상응해 부채 발행을 증가시킴으로써 외국 중앙은행으로부터의 구매를 완전히 상쇄하지 않는 한, 미국 민간 부문은 자산을 매각하거나 지분을 내놓거나 돈을 차용함으로써 추가적인 외국 금융 유입을 흡수해야 할 것이다. 다른 그럴듯한 결과는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흑자 국가의 제도적 왜곡이 만성적인 소비 부족 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결과는 생산능력의 과잉, 과도한 저축, 미국 금융 자산에 대한 과도한 수요다. 거래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이러한 왜곡을 제한하기 위한 균형 잡힌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그러한 제한을 금본위제가 했다. 금을 잃은 적자 국가들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반면, 금이 유입된 흑자 국가들은 내수를 진작시키는 식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금을 버렸고, 금이 부과했던 규율을 잃었다. 케인스는 글로벌 준비자산 역할을 할 새로운 통화로 국적 없는 통화인 방코르를 내세우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어떤 나라도 세계의 불균형으로 인한 대가를 홀로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케인스는 브레턴우즈 회의의 논쟁에서는 패했지만 그의 예리한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다시 시도할 때다. 대체 가능한 방법들은 국내 불균형을 조정하 려는 흑자 국가들의 자발적인 약속이나, 적자 국가들 특히 미국의 일방적 이고 파괴적인 대응이다.
- 중국이 미국산 비행기를 몇 대나 사고 미국산 콩을 몇 톤이나 사겠다고 약속했다든가, 또는 미국 이 대중국 무역에서 양측의 적자가 얼마나 줄어들었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별 차이가 없다. 앞서 중국으로 이전했던 미국 기업들이 얼마나 미국으로 돌아가는지조차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반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거의 보유하지 못하는 한, 이는 반드시 상품과 서비스에 대 한 지출을 감소시킨다. 그러면 중국은 무역흑자를 운영해야 하고 막대한 양의 저축을 수출해야 한다. 독일, 일본, 네덜란드, 한국, 대만, 스위스, 싱 가포르 그리고 다른 주요 흑자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자 국가들이 이 러한 외국 자본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는 한, 그들은 불가피하 게 다른 나라들의 과잉 저축과 과잉 생산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 소비 시장과 최대 자본 시장을 점진적으로 폐쇄하는 등 세계 무역에서 손을 떼게 되면 처음에는 나머지 국가들에게 상당한 비용이 부과되고, 결국에는 미국 자체에 상당한 비용이 부과될 것이 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새로운 규칙 에 합의하지 않고 이제껏 해오던 역할에서 물러난다면, 각국이 조정의 부담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면서 세계 무역은 불안정해지고 점점 더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평화적 세계화라는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시기 대신, 세계는 1600년대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무역을 특징짓던 무정부 상태 그리고 잠재적으로 폭력과 유사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틀림없이 비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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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시스템의 실제 기능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정보 전달 메커니즘으로 봐야 한다... 이 시스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제나 개별 참여자가 올바른 행동을 취 하기 위해 알아야할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하이에크, 논문 <사회에서 지식의 활용>)
- 정해진 한계 내에서 각 개인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가치와 선호를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이 영역 내에서는 개인의 목적체계가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다른 누구의 그 어떤 지시에도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개인주의 입장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개인을 자기 자신의 목적에 대한 최종적 재판관으로 인식하는 것, 가능한 한 자신의 관점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해야 한 다는 믿음이다. (하이에크, 노예의 길)
- 법 아래에서의 자유라는 개념은 ... 우리가 그것의 구체적인 적용 과는 상관없이 확립되어 있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규칙이라는 의미의 법을 준수하면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 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하이에크, 〈자유헌정론〉)
- 공정한 규칙이란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정되지 않은 규칙을 말한다. 공정한 규칙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부분이 해롭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제한할 뿐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귀하에게 명하노니(you are hereby commanded)’ 규칙이라기보다는 '하지 말라(thou shalt not)'는 규칙이다.
여기에 딱 맞는 예로 고속도로 규정을 들어보자. 제한 속도나 교통 신 호 같은 운전 규칙은 운전자를 특정 장소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지 않는다. 특정 목적지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한 특정경로 역시 운전자가 각자 선택할 수 있다. 도로 규정은 운전자가 어디로 갈지 혹은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신 이 러한 규정은 각 운전자에게 그가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가능한 한 안전하고 확실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최대한의 가능한 범주를 제공하는 한편 모든 다른 운전자의 안전까지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운전자에게 이런 보장을 해준다는 말은 곧 모든 운전자가 동일한 규칙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어떤 계층의 운전자, 예를 들면, 빨간 머리 운전자는 신호등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하게 되면 다른 모든 운전자에게 신호등의 존재 가치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한 운전자가 교차로에 접근 할 때 차선의 신호등이 녹색이라도 여전히 속도를 줄여 빨간 머리 운전자가 총알같이 교차로를 통과하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교통사고는 늘어나고 차량 흐름은 느려질 것이다.
- 입법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법은 인간의 모든 발명품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결과를 담고 있는 것으로, 심지어 효과 면에서 불이나 화약보다도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같은 맥락에서 결코 '발명되는 것이 아닌 법 그 자체와 달리 입법의 발명은 인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났다. 입법은 선을 이 루기 위해 인간들이 필요로 했지만, 거대 악이 출현하지 못하도 록 통제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인간의 손에 강력한 권력의 도구를 들려주었다.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 지배적인 '거시 경제학 이론에서 실업 해결책으로 제안한 바로 그 조치, 즉 총 수요의 증가는 사실상 ... 나중에 대량 실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대규모의 부적절한 자원배분의 원인이 되어 왔 다. 일시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수는 있지만 통화량 증가가 중단 되거나 완화되면 바로 사라질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의 특정 부분 에 추가 재원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경우, 지속적인 가격 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노동을 비롯한 여러 다른 자원들이 고용된다. 하지만 이런 고용은 통화량이 같은 속도로 계속 증가하거나 혹은 어쩌면 일정 비율로 계속 증가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 강연(The Pretense of Knowledge)
- 헬리콥터 머니는 성공할 수 없다.
가격이 합리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실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현실에서 가장 유력한 범인은 바로 잘못된 통화 정책이다.
통화 공급이 안정적이라면, 다시 말해 통화 공급이 임의로 확대되거나 축소되지 않는다면, 가격 패턴은 대부분 정확할 것이다. 시장이 매우 경 쟁적이고 잘 운용되고 있는 경제에서 대부분의 가격이 갑자기 궤도를 벗 어나 상당한 양의 노동력과 자원이 투입돼서는 안 될 산업으로 투입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통화 공급 자체가 달라진다면 가격 패턴이 크게 왜곡될 수 있다.
통화당국이 경제에 새로운 통화를 주입하면 엄청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새로 발행된 통화가 특히 시중은행의 대출을 통해 경제 의 특정 분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이후 이 신규 화폐는 유입된 지점에 서 경제 내의 다른 분야로 확산된다. 가장 먼저 신규 발행 통화를 확보한 사람들은 이 돈을 특정 재화와 서비스 구입에 쓴다.
-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신규발행 통화가 은행을 통해 소비자에게 대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소비자는 대출금으로 신차 구입을 했다. 이 경우 신규발행 통화가 경제에 유입되면서 다른 재화와 서비스에 비해 자 동차의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높아진 자동차 가격은 경제 전반에 걸쳐 사람들에게 경제적 허상(economic lie)을 보여준다. 기업가와 투자자는 자동차 가격이 오토바이, 항공 여행, 청바지, 빵, 그리고 다른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에 비해 오른 것을 보고 자동차 수요가 다른 재화와 서비스 수요에 비해 실 제로 늘었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시실상 지동차 기적의 상승은 지동차 구매지를 기운데 신규 발행된 돈을 먼저 쓸 수 있을 만큼 운 좋은 사람들이 많이 포함됐다는 시 실만을 반영할 뿐이다. 자동차에 대한 이러한 추가 수요는 '실제'가 아니다. 이 추기 수요는 새 차 살 돈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생신을 하는 사람들 의 수요가 아니다. 또한 이 추기 수요는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다른 시 장에서의 구매를 줄이는 사람들의 수요도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지동 차에 대한 이 추가 수요는 경제에 유입된 신규 화폐가 가장 민지 지동자 구매에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을 반영할 뿐이다. 요건대 자동차 수요 증기는 만들어진 신규 화폐가 경제에 유입되어 자동차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소비되었다는 사실만을 반영한다.
- 저금리의 치명적 유혹
자동차, 오토바이 등 소비재의 상대가격 왜곡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내 용은 불도저, 초고층 건물과 같은 자본재 가격 대비 소비재 가격의 왜곡 과 관련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로 하이에크는 소비재 가격 대비 자 본재 가격의 왜곡이 호황과 불황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 자율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이자율은 사람들의 시간 선호’, 즉 사람들이 소비를 내일로 미루기보다는 오늘 소비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을 반영한다. 시간 선호가 낮아질수록 사람들은 소비를 나중으로 미루려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그리고 사 람들이 소비를 미루려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더 많이 저축한다. 저축이 많아지면 이는 다시 은행에 빌려줄 돈이 많아지므로 곧 이자율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자율이 낮아질수록 장기투자의 매력은 높아진다.
낮은 이자율은 사람들이 오늘의 소비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자원 을 MP3 플레이어, 욕조 등 소비재를 생산하는 대신 철도, 기관차, 불도저 등 자본재를 생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기업가에게 전달한다.
- 거짓말을 하는 금리도 있다.
그런데 실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자신들의 소비를 미루고 싶지 않다.면? 이자율이 사람들이 실제로 저축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저축을 하고 있다고 기업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하이에크는 그런 거짓말이 경기 순환에 특히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통화 공급이 증가 하면 신규 화폐는 전형적으로 은행의 대출을 통해 경제에 주입되며, 은행은 차입자에게 부과하는 이자율을 낮춘다. 하이에크의 관점에서 통화 공급량 확대로 가장 위험하게 왜곡되는 가격이 바로 이자율이다. 인위적으 로 낮아진 이자율은 기업가와 기업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많이 차입하도 록 촉발시킨다. 인위적으로 낮아진 이자율은 생산자들로 하여금 고금리 하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보다 장기적인 생산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불행히도 이자율이 낮아진 이유는 사람들이 저축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다. 신규 화폐의 발행으로 이자율이 낮아졌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장기 프로젝트, 다시 말하자면 완공하는 데 10년이 걸리는 철도 같은 사업은 결국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철도 건설에 필요한 철로, 노동자들의 숙소 및 여타 자본재 등등 모든 것이 생산되기에는 저축이 너무나 부족하 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철도 건설업자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수익성 있 게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노동자들을 해고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치게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완전히 청산 되면 해고된 노동자들은 다른 일을 찾는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나 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많은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신규 화폐가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에 고루 확산되 기 전까지는 경제에 주입된 신규 화폐로 인해 상대가격 패턴이 왜곡된다.
- 신규 화폐가 첫 번째 지출되는 시장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지출되는 시장 등으로 옮겨가면서 영향을 미치는 기간 동안에는 인위적으로 낮아진 이 자율을 포함하여 왜곡된 상대가격이 소비자들의 수요 및 자원 공급의 실 제 패턴과는 맞지 않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도록 사람들을 호도한다.
유감스럽게도 지속 불가능한 투자가 해소되는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경제적 건전성을 지속하기 위해서 이런 조정 과정은 필수적 이다. 안타깝게도 지속 불가능한 투자가 해소되는 기간 동안 실제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고통을 완화시켜 달라는 호 소가 정치인들에게 많이 들리게 된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정치권력은 대개 이러한 호소에 대해 문제를 감추고 악화시키는 정책으로 대응한다.
- 아주 완만한 인플레이션조차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번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좀 더 심한 인플레이션만이 유일한 손수운 출구가 되는 상황으로 정책 책임자들을 이끌기 때문이다. (하이에크, 〈자유헌정론〉)
- 호랑이 꼬리는 최대한 빨리 놓아야 한다.
이 문제는 통화 당국이 경제에 신규 화폐를 투입하는 일을 중단하기만하면 해결된다. 그러나 이 치료법이 즉각적으로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접는 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자원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지나치게 확장된 산업에서 좀 더 지속적인 고용이 가능한 산업으로 옮겨 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통화당국이 오늘의 인플레이션을 지속시킴으로써 지나치게 확장된 산업의 축소를 다소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되면 경제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정치적으로 통화 당국은 '호랑이 꼬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애당초 호랑이 꼬리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에 다 동의한다. 그러나 일단 누군가 호랑이 꼬리를 잡았다면 호랑이를 놓아줄 때 물리거나 할큄질을 당할 위험이 있다. 그래도 호랑이 꼬리를 잡음으로써 물리거나 할큄질을 당할 위험에 처하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호랑이 꼬 리를 계속 움켜쥐고 있는 것은 호랑이를 더욱 화나게 만들 뿐이며, 결국에는 그렇게 되겠지만 호랑이가 풀려나게 되면 훨씬 더 공격적으로 바뀌어서 더 맹렬한 분노로 자신의 꼬리를 잡았던 사람을 공격할 것이다.
- 호랑이 꼬리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호랑이에게 끌려갈 위험을 늦추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늦게 놓을수록 결국 놓았을 때 그에게 닥칠 위험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설상가 상으로 어느 순간 너무 화가 난 호랑이가 스스로 벗어나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러면 오랫동안 호랑이 꼬리를 잡고 있던 사람에게 실로 엄청난 위험이 닥치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중단시키는 것은 마치 호랑이 꼬리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 로 어려운 일이다.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메커니즘은 말도 안 되게 간단하다. 인플레이션을 그치게 하기 위해 통화 발행을 중단하거나, 호랑 이 꼬리를 잡고 있는 손을 놓으면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예상되는 결과 를 고려해본다면 이 두 과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경우 모두 그 임무를 수행하려면 지금처럼 계속 가는 것은 사안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알아보는 지혜와 함께 위험과 맞닥뜨리는 것을 뒤로 미루기보다는 가능한 빨리 그 위험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 불행한 일이지만 오늘 정치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통화공 급을 계속 늘린다고 해도 그에 따르는 정치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오늘의 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그들 상당수가 공직에서 물러난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오 늘의 공직자들은 통화량 공급 증가를 유지하여 경제가 실제보다 더 건강 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반면 이 환상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대부분 미래의 다른 공직자가 모두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선호하는 이러한 정치적 편향성은 통화공급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장치를 정당화시키는 주된 이유다. 금본위제로의 회귀는 선택 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이다. 또 다른 선택 대안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유명한 “통화 준칙”으로서,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함에 있어 아주 낮은 수준 이상으로 팽창시키는 것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하이에크 자신은 통화를 발행하고 통화공급을 통제하는 업무에서 정부를 완전히 배제시키는 통화의 민영화를 선호했다. 정부 대신에 경쟁적 시장의 힘이 건전한 통화의 공급을 책임지는 것이다.
통화 공급에 대한 정치적 재량권을 없애기 위해 어떤 특정 방법을 사용하든, 튼튼하고 지속가능하며 광범위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재량권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할 때 절대 금주하라는 것이 현명한 조언인 것처럼, 또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호랑이 꼬리는 절대 잡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현명한 충고인 것처럼, 국민에게는 정부에게 통화공급에 대한 재량권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에 해악을 끼치는 여러 가지 질병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확실한 방법은 그런 준칙을 따르는 것이다.
-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가운데 일부는 서로 다른 규칙에 따른 상이한 질서 안에서 동시에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삶과 생각과 감정을 끊임없이 조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적절하게 조정되지 않고, 제어되지 않은 소우주(예를 들 면 소규모의 무리와 집단 혹은 우리 가족의 규칙들을 대우주(우리의 문명 사회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대우주를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장된 질서의 규칙들을 친밀한 집단들에게 항상 적용시킨다면, 그 집단들을 뭉개버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시에 두 종류의 세계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이에크, 치명적 자만)
- 정치적 쟁점에 대한 결정을 좌우하는 의견이란 항상 오랜 기간에 걸쳐 확장되고 다수의 상이한 차원에서 진행된 완만한 진화의 결과이다. 새로운 이념은 소수로부터 시작되어 그 연원에 대해 잘 모르는 다수의 소유가 될 때까지 점진적으로 확산된다. (하이에크, 〈자유헌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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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시대의 자본주의

경제 2021. 10. 14. 21:16

- 미국이 가난한 사람들로, 그저 먹고살기 위해 힘겹게 노력해야 하 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부유한 나라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힘(가령 기술 발전과 세계화)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불평등의 양상이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는 사실은 무엇보다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불평등은 선택의 문제다.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의 흐 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고 성장은 지금의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세계 역사 속 에서 가장 혁신적인 시대에, 그리고 가장 혁신적인 경제 지역에 살 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 레이건은 국가 경제의 방향을 바꿨고, 동시에 사회적 가 치를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로 몰고 갔다. 그가 약속했던 열매는 주 어지지 않았고, 변화의 방향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결국 허점투성이의 일련의 이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을 뿐 이다.
경제 시스템을 바로잡는 과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미국 경제 시스템도 승리를 거뒀다. 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냉전 승리는 자유시장 자본 주의가 우월성을 입증한 것이라기보다  공산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 미국이 전 세계 인구의 마음을 놓고 공산주의와 경쟁을 벌일 때,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경쟁은 사라졌고, 미국 사회는 그들의 경제 시스템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보여 줄 동기를 잃어버렸다. 독특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은 신흥 시장에서 살아가는 수십억 인구에게 역동적인 대안적 비전을 보여 주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중대한 타격을 입었고 지금은 트럼 프의 등장으로 더욱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대단히 우려해야 한 다. 오늘날 대안적인 사회적·정치적 · 경제적 시스템을 놓고 이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세상의 거대한 부분이 미국 시스템 의 덕목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해야 한다. 앞서 스웨덴을 언급하면서 살펴봤듯이, 다행스럽게도 미국식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시장 경제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 다른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 대다수에게 빠른 경제 성장과 풍족한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그들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공동 번영의 측면에서 미국 시스템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 사회는 많은 흥미로운 선택지를 고려해야 하며,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인 시장 경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절망적인 사건으로 많은 인구가 약물 남용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회는 분명하게도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특정 사 회가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와 건강한 노동력을 창출하는가를 평가 하는 좋은 기준은 노동력에 참여하는 근로 인구의 비중이다. 이러 한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의 상황은 많은 다른 국가에 비해 좋지 않 다. 적어도 미국 사회의 낮은 노동력 참여 비중은 건강에 관한 열악 한 통계 수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앨런 크루거 Alan Krueger는 최근 연구를 통해 노동력에 포함되 지 않은 〈노동 적령기 남성의 절반 가까이가 심각한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들 중 3분의 2가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물론 미국인의 건강 상태가 열악한 것은 기후가 좋지 않아서도, 혹은 아픈 사람이 많이 이민을 와서도 아니다. 또한 전염병 때문에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조기 사망과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부분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미국 경제가 임금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실패하면서 많은 사람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의존에 빠지는 사회적 질병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 시장 지배력과 국가의 파이 나누기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국민소득이라는 파이의 분할을 비인격적인 시장의 힘의 결과물로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시장의 힘이란 물리학에서 말하는 힘과 비슷하다. 중력의 법칙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해서 중력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잘못된 식습관을 원망할 뿐이다. 그러나 경제학 법칙은 물리학 법칙과는 다르다. 시장은 공공 정책에 의해 구축되며, 대부분의 시장 은 완전 경쟁과 거리가 멀다. 공공 정책은 누가 얼마나 많은 시장 지 배력을 확보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개인과 기업은 이기심을 추구하는 과정에 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이익을 높이게 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종종 인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스미스가 남긴 경고의 말에는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말했다. 동일 업종에 종사 하는 사람들은 유흥이나 오락을 즐기기 위해 함께 모이는 일이 드 물다. 그러나 일단 모이게 되면 그들의 대화는 대중에 대한 음모나 가격 담합의 주제로 흘러간다. 이 말은 125년 전 의회가 경쟁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를 예방하고 경쟁에 반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독 점 금지법을 통과시키도록 만든, 언제나 존재하는 위험에 대한 인 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 시장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을 조직화하는 강력한 제도라는 확신은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선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의 지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2세기에 걸친 연구는 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주 었다. 그 이유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88 기업은 종종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 기업이 이런 일에 대단히 유 능하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소비 자와 직원, 그리고 정치 시스템을 착취해 왔고, 이로 인해 혁신적인 경제에도 불구하고 성장은 지지부진했다. 더 나쁜 것은 성장의 열 매가 사회 일부에게만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기업의 경영자 들은 주주를 착취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법망의 허점을 이용해 엄청난 보상을 거머쥐는 방법을 발견했다.
- 독점 금지법이 처음 도입된 이후로, 그리고 시카고학파의 주장이 학계를 장악한 이후로 미국의 경제는 크게 변했다. 경제에 대한 이해 수준도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기존의 법적 기반을 더 잘 이해 다. 하지만 입법을 추진하는 힘과 착취에 대한 근본적인 정치적·경 제적 우려는 그대로 남았으며, 심지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경쟁에 관한 법은 지나치게 협소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경쟁 시장에 대한 추정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경 쟁 관련 법률과 독점 금지법 적용을 개혁해야 하며, 21세기의 현실 과 현대 경제학의 지혜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 트럼프와 내가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같은 편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명백한 착각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법치주의, 다시 말 해 국제 무역을 지배하는 법 기반의 시스템을 믿는다. 우리가 자국 경제 내에서 법치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그것 없이는 어떤 사 회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법 기반의 국제 시스템을 필 요로 한다. 반면 트럼프는 정글의 법칙에 주목한다. 여기서 두 나라 사이에 무역 분쟁이 일어날 때, 그들은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고)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하지만 트럼프의 착각은 미국이 어느 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에 모든 싸움에서 이길 것이며, 이를 통해 미 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제 무역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놓쳤다. 첫째, 왜 다 른 나라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무역 및 다양한 경제적 관계에 초점 을 맞추는 것이 아닌, 미국에게 이용만 당하는 시스템을 받아들인 단 말인가? 둘째, 다른 나라들이 함께 뭉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경제 규모에서 중국 및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비록 조 만간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30퍼센트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는 있지만) 그들이 손을 잡는다면, 혹은 둘 중 하나가 제3세 계의 많은 나라와 손을 잡는다면 미국의 우위는 곧 사라질 것이다.
트럼프는 불공정한 무역 원칙이든 원치 않는 이민자든 간에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세계화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는 잘못이었다. 세계화를 옹호한 자들 역시 틀렸다. 그들은 소득의 정체나 감소를 겪는 인구의 많은 비중이 겪고 있는 곤궁에 대해 세 계화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단지 기술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정한 비난의 대상은 미국 그 자체여야 한다. 미국 사회는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흐름에 제대 로 대처하지 못했다. 만약 효과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세계화와 기술 발전을 옹호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축복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 보호주의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직면하는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세계화의 흐름을 이어 나가는 것 역시 해답이 될 수 없다. 지난 30년 동안 통했던 방식 은 앞으로 점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더 많은 고통과 더 많은 정치적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앞서 우리는 세계화가 일련의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을 살펴봤다. 그 가정이란 세계화에서는 모두가 승자이며(정부 개 입이 없을 때 대부분 패자만 남는다),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실제로 미국이 세계화를 추진했던 방식은 특정 분야에서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힘을 강화했던 비즈니스 세상의 정치적 의제를 뒷받침했다). 세계화라는 명목(각국 을 보다 경쟁적으로 만드는)으로 근로자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 로 환경, 그리고 그들이 의존하는 주요 사회복지의 감축을 받아들 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근로자의 삶이 나아질 수 있겠 는가? 이제 우리 모두는 산업화된 선진국에서 성장에 따른 이익이 과대평가되었고 분배 효과는 과소평가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은 그 출처가 확실하진 않지만 종종 언급되는 포드 자동차 임원과 노동조합 위원장 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포드 공장에서 대부분의 자동차는 기계 로 생산된다. 포드 임원이 이렇게 빈정거렸다. 「로봇한테는 어떻게 노동조합 회비를 받을 겁니까?」 노동조합 간부가 대답했다. 로봇 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포드 자동차를 사도록 만들 겁니까?
- 망 중립성 net neutrality을 둘러싼 갈등은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스템을 조작하는 방식과 그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을 통제하는 사업자(미국에는 컴캐스트와 차터, AT&T, 세 개의 주요 인터넷 사업자가 있다. 경쟁적인 시장과는 거리가 멀다)가 모든 인터넷 사용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며, 특히 특정인에게 인터넷 속도에서 우위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16 2015년 미국 연방 통신위원회가 공개 인터넷 원칙Open Internet Order)을 발표하면서 망 중립성은 국가의 법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은 실질적으로 일종의 공익 시설로서 규제를 받고, 사용자를 차별하는 행위는 금지된다(〈망 중립성의 정의). 하지만 2년이 흐른 2017년 12월에 트럼프의 연방 통신위원회 의장인 아짓 파이Ajit Pai는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 이로써 인터넷 사업자는 다양한 온라인 기업에 제공하는 속도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법적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
망 중립성의 폐기는 최근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 그 결과에 대해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인터넷을 본질적으로 공익 시설로 바라보 는 많은 소비자와 경제학자는 정글의 법칙을 기반으로 한 세상에서 힘 있는 자가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 대기업은 인터넷 사업자와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사업자는 스스로에게 우위를 제공할 것이다. 그들은 인터넷 시장의 지배력을 활용해서 콘텐츠(가령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도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는 망 중립성 원칙의 폐기가 어떻게 경쟁 을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 사례에서는 거대하고 강력한 기 업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데이터 집약적 인 비즈니스다. 소비자가 이 서비스에 대해 갖는 매력은 빠르고 완 벽한 영상 전송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가정으로 흘러 들어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활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의 생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인터넷 사업자가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한다면, 그들은 넷플릭스의 광대역망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 망 중립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독점 인터넷 사업자는 넷플릭스와 같은 사용자에게 빠른 속도의 접근에 대해 프리미엄 요금을 요구함 으로써 수익의 많은 부분을 앗아 갈 수 있다. 넷플릭스가 요구에 응 하지 않는다면, 인터넷 사업자는 넷플릭스가 몸값을 지불할 때까지 용량 문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인터넷 속도를 느리게 할 수 있다.
망 중립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시장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고 주장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그들은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다른 인터넷 사업자로 바꿀 것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주요 인터넷 사업자가 세 곳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선택 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와 관련해 소비자에게 오직 하나의 선택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신뢰할 만한 인터넷 사업 자가 새롭게 진입할 수 있겠지만, 케인스가 다른 맥락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기적인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죽는다. 넷플릭스는 그때 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산업 전체에서 혁신을 위축시킬 것이다. 그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 혁신의 감소, 성장 둔화로 나타날 것이다.
- 오늘날 어둠의 시절은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민주주의와 시장이 승리를 거뒀던 30년 전의 시절과 사뭇 다르다. 당시 사람들은 자유시장이 지구 곳곳에 민주주의 이상을 퍼뜨리는 횃불이 될 것이라 믿었다.
1930년대 파시즘을 망각한 채 인간과 세상은 기본적으로 선하다. 는 극단적으로 낙천주의에 빠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트럼프와 푸틴 은 정말로 나쁜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 켜 주고 있다. 오늘날 선과 악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싸움에서 때로는 악이 승리를 거둔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말 이다. 이러한 경험은 몇몇 나쁜 지도자가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류의 선 한 대다수가 승리를 거뒀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그런 승리를 다시 한번 거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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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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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OECD는 소득 분포도 스펙트럼의 최하위에 놓인 사람들의 사회적 이동성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그 스펙트럼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특권을 축적하고 있는 동시에 자신들이 확보한 우위를 점차 효과적으로 자녀들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동성정체>와 <부의 축적이라는 이중 역학이 작용한다는 것은 곧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상향 이동할 가능성은 낮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미끄러져 내려갈 가능성은 그보다 더욱 낮다는 뜻이다. 이는 상향적 사회적 이동은 어느 시대나 늘 제한되어 있긴 했지만 직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특히 교육의 확대를 통해 관리직과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계층 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20세기 중반 전후post-war 시대와는 명확히 구분 되는 중대한 변화가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 하지만 사회적 이동이 힘들어지는 현상을 <고장난 사회 엘리베이터 broken social elevator)에 비유한 OECD의 묘사에는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20세기 중반의 사회가 갖고있었던 특성을 되찾기만 하면 지금의 문제도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는 결국 고장난 엘리 베이터를 고치기만 하면 계층 이동도 활발해질 거라는 뜻 이다. OECD는 이런 식으로 고용에 기반한 소득 규모에 따른 이동성을 기준 삼아 사회적 이동 모델을 제시한다.
OECD가 제시한 모델은 우리가 이 책에서 의문을 제기한 고용 중심 모델과 관련이 있다. 이동성에만 집중하는 방 식이라는 한계점에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직업을 중심으로 불평등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지금의 문제를 분석하려 들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기도 힘들다.
- 불로소득자의 역할은 사회적 삶 전반에 상당히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자산 소유가 생계를 위한 노동보다 더 돈이 될 때가 많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계급과 불평등을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이 해해 보려는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 고 있긴 하지만 계급, 불평등, 계층화에 대해 좀 더 체계 적으로 접근할 때는 일과 직업〉을 기반으로 하는 과거의 모델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한 인지 부조화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연구자들을 비롯해 도시에 거주하 는 모든 사람은 부동산 가격 논리>가 시장 안에 있는 사 람과 시장 밖에 있는 사람 모두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엄 청난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 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 고 있다. 그런데도 계급과 불평등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 하면 실상을 잘 이해하는 바로 그 사람들마저도 실제 현 실과는 거리가 먼 〈고용 중심〉 모델에 빠져든다. 이제 불평등을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고용 관계가 아니라 임금과 인플레이션보다 가치 상승 속도가 빠른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고용은 대출 상 환 능력을 비롯한 자산 매입 역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에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용은 이제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생필품 확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임금 그 자체만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모습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갖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자산 가치 상승은 개별적인 정책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여러 제도가 뒤엉켜서 만들어낸 현상이다. 여러 제도가 더해져 자산의 가치 상승을 유발한 탓에 자산 소유가 고용보다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 어쨌든 일부 밀레니얼 세대는 부동산 인플레이션 을 발판삼아 부모가 쌓아 올린 부를 통해 자산 인플레이션 역학이 작동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부의 대물림과 상속이 인생의 기회를 결정짓는 데 점점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거의 안정적이고 대체로 무사평온한 방식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주로 남성들 사이에서 부동산이 이동했던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제 더이상 단순히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상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산 경제의 투기적 논리 속에 투입되어야 할 자금을 전략적으로 적당한 시기에 양도 하는 방식이 점차 증 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불평등 논리는 금융화) 라는 초자본주의적 논리와 상속>이라는 봉건적 논리를 뒤섞어 사회 계급 구조 전체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놓았 다. 결국 세대 문제에 현대 금융 제도의 투기적 논리가 더해지면서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삶의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 밀레니얼 세대는 1965년에서 1980년 사이에 태어난 직전 세대인 X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공공 주택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인적 자원,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이상 예전 같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제도적 상황 속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과거라면 주택 소유를 보장해 주었던 부류의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조차 주택 가격은 끝없이 상승하고 임금은 정체된 탓에 밀레니얼 세대는 임금만으로는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에 충분한 모기지 신용을 받을 수가 없 다. 민간 주택 임차료 역시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임차 시장에서조차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대도시 도심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 결과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이런 현상은 자산 경제가 세대 간 분열을 초래했다는 주장에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 한다. 이처럼 세대 문제로 해석하는 관점은 문화 연구와 사회 연구에서 나타나는 21세기의 독특한 시대정신을 포착하려는 시도와 유사하다. 이런 문화적 진단에는 미래의 종말 혹은 취소를 선언하는 내용과 함께 희망 가득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이상 현대 자본주의적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 이와 같은 평가는 현세대의 미래가 이전 세대에 의해 도난당했고 세대 간의 계약이 깨졌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미국에서의 학자금 대출에 관한 연구에서 이런 식의 연결고리가 특히 위력을 발휘한다. 그 연구들은 대개 학자금 대출로 인해 생겨난 현대적인 형태의 고용 계약서 와 고용의 취약화가 인적자본이라는 신자유주의 개념을 비웃는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밀레니얼 세대는 자산 구축 대열 에 합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 생겨난 돌이킬 수 없는 부채와 매몰 투자sunk investments에 발목이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니스트이자 『도난당한 10년 The Theft of a Decade」의 저자인 조셉 스턴버그는 미국 사례를 언급하며, 교육에 투자하고도 수익을 얻지 못하는 이 같은 현상을<인적 자본에 대한 형벌 human capital punishment>이라고 칭했다.
-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파는 것은 단순히 금전거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적 자본을 이용해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이라는 개념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교육은 이익을 창출하고 자본이득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계발하기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자기계발에 든 비용을 변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이 정체되고 있다는 것은 곧 인적 자본의 계발을 위해 짊어져야 하는 빚은 변함이 없는데도 인적자본이라는 자산 자체는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일종의 깡통 주택 underwater mortgage과 같은 현상, 즉 돈을 빌려 매입한 자산의 가치보다 큰 금액의 변제 불가능한 채무를 갚아야 하는 현상이 인적 자본 자산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자산 경제와 상품 경제를 나눌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이처럼 우리 모두가 자산의 가치 상승 및 하락, 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의 논리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주택 소유를 통해서 잠재적이거나 실질적인 자본이득을 얻고 있는 가운데 상속 메커니즘을 통해 성인 자녀들에게 부를 양도할 준비가 되어 있 는 노령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사실 현대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상속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큰 편이다. 젊은 성인들이 주택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돈을 주거나 빌려주려는 부모의 능력과 의지에 점차 의존하게 됨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구매를 위해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역사적으로 상속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가 이동하는 중요한 메커니즘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부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하지만 자산 보유가 인생의 기회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최상위 1%를 넘어서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산을 보유하는 자산 경제 사회에서는 상속과 증여의 중요성이 새롭게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부의 이전이 전반적인 사회 계층 화를 초래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증여를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자녀에게 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부의 대물림은 점차 사회경제 스펙트럼 전반에서 부를 기반으로 하는 불평등과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계급 지위를 재생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부모로부터 현금을 증여받아 부동산 매입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가, 혹은 기존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또 다른 부동산을 매입할 의향이 있는 부모를 두었는가가 청년층의 부동산 시장 진입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자산의 가치 상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상속, 특히 주 거용 부동산 유증은 독특한 투기성을 띠게 되었다. 상속 은 더이상 누군가의 사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수동적 인 양도가 아니다. 이제 상속은 자산 경제 내에서 자녀의 위치를 결정짓는 일련의 전략적 결정이 되어버렸다. 생전증여는 본질적으로 자산 경제에서 활용해야 할 자산을 미리 상속하는 것으로, 자녀의 자산 소유의 기반이 된다. 자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그저 일회성으로 일시불의 돈을 양 도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산의 소유를 통해 부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 이와 같은 부의 대물림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세대 간 계약, 즉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미래 세대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계약이 단순히 해체 상태에 놓여 있다기보다 는 오히려 자산 경제 내에서 더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언뜻 자산 경제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면 세대 간 계약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부의 대물림, 즉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가 전달되는 현상을 통해 세대 간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대 간 계약은 더이상 재분배를 위한 국가의 양도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하지 않고, 새로운 자극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재형성된 가족을 통해서 작동한다. 사회적 재정 지원이 줄어들고, 임금은 정체되고, 집값은 폭등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이제 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산 경제는 그만의 독특한 논리를 갖고 있으며, 그 논리가 사회 구조를 특정한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이 장에서는 이런 변화에 전면적인 계급 구조 조정, 가계 역학 재설정, 인생의 경제적 재편성이 포함되어 있는 현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자산이 점차 계급 지위를 결정하게 되면서 자산의 가치 상승과 가치 하락의 역학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자산 중심 생애가 등장하게 되었다.
-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낮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인플레이션이 다른 곳에서는 신자유주의 자산 경제의 탄생에 핵심적인 기여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자산 인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으로 여기기보다. 특정한 역사적 국면과 광범위한 환경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케인스 시대에서 신자유주의 시 대로의 변화를 가격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자산 인플 레이션 시대>로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3장 에서 살펴봤듯이, 1970년대에는 가격 인플레이션이 임금 상승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자 고용주들이 제품의 가격을 높여 임금 상승에서 비롯된 비용 증가를 상쇄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금 상승은 가격 인플레이션의 원인이기도 했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노조가 더욱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금 상승은 가격 인플레이션의 결과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당시에는 가격 인플레이션이 점차 자산의 가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책 부문 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 움직임이 이런 역학을 뒤바꾸어 놓았다.
- 주택을 임차하던 사람이 주택을 구매하려면 계약금을 내야 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밖에 없다. 최고 상위소득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오직 임금을 통해서만 매매 대금으로 쓸 자금을 모으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금액을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곧 부의 대물림이 중요한 역할을하게 되었으며, 이는 세대 문제가 계급 논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부의 대물림은 이제 더이상 엄청난 부를 물려주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을지라도 물려받은 부동산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부동산 시장에 어떻게 해서라도 진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부의 대물림이 필요해졌다. 계약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 들은 점점 자신들이 생성해낸 금융 흐름과 소득 흐름을 다른 사람의 자산 축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주택 소유주가 부동산을 소유하기 위해 빌린 대출금을 장기 임차인이 갚아나가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 마르크스는 특정한 종류의 착취, 특정한 불평등의 원천, 특정한 종류의 사회, 즉 임금 노동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상품을 특히 강조했다. 물론 현대 사회에도 이런 식의 착취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더이상 임금 노동 착취를 불 평등의 원동력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불평등의 생성 논리가 좀 더 위상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착취 와 악용을 통해서 불평등 생성 논리가 작용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시간의 영향을 받는 부동산 인플레 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따라 불평등 생성 논리가 작용하는 경우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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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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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경제 2021. 8. 21. 17:26

-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John M. Keynes는 여러 가지 새로운 학설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돈에 대한 착각The Illusion of Money' 이다. 풀어 서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내년도 물가상승률이 2퍼센트가 될 것을 예상한 기업이 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도 2퍼센트 올리기로 결정하여 통보한다. 그런데 근로자들의 눈에는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게 보이는데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임금이 올라간 만큼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그들은 노동시간을 늘린다. 늘어난 노동시간으로 인해 생산력은 높아지고 그만큼 경제는 더 성장한다. 돈에 대한 착각은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경제 현상이다. 물가 상승의 고통도 크지 않고 경제 성장 달성도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2퍼센트 정도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필자의 경험칙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2퍼센트는 명목경제성장률 5퍼센트와 함께한다. 3퍼센트의 소득 증가인 것이다.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좋은 것이다.
경제와 금융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가와 돈이 가지는 몇 가지 속성을 잘 살펴야 한다. 첫째는 물건만큼이나 돈도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다. 물건의 가치와 돈의 가치는 반비례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러 이미지 mirror image 인데, 쉽게 말해 '물건 값 올랐네’ 와 '돈 가치 떨어졌네'는 사실상 같은 말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금, 원유, 원자재 시장에서 철저하게 적용되는 말이다.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기대되면 금값은 오른다. 인플레이션은 그 정의상 돈의 가 치가 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 금이라는 물건 값이 올라야 하 기 때문이다.
둘째는 물건 값에는 소비자 물건 값과 투자자 물건 값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소비자 물건 값은 소비자 물가이고, 투자자 물건 값은 주가나 부동산 가격 같은 자산가격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물건 값이 서로 다르다고 착각한다. 소비자 물가는 내려가기를 바라고, 자산 가격은 올라가기를 바란다(물론 무주택자는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 세계에서는 사람 들의 바람대로 가격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소비자 물건 값과 투자자 물건 값은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해당 물건의 본질가치가 정해져 있다고 본다면, 물건 값은 시중에 풀린 통화량으로 결정되는데, 시 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즉 금리가 내려가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건 값은 올라간다. 소비자 물건이나 투자자 물건이나 마찬가지다. 자산 투자의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이다. 
셋째는 돈이 몰리는 곳의 값이 더 올라간다. 돈이 풀리면(즉 돈 가 치가 떨어지면) 물건 값은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소비자 물건 값과 투 자자 물건 값 중 어느 것이 더 올라갈 것이냐는 돈의 쓰임을 봐야 한다. 돈의 쓰임은 두 가지다. 현재의 소비를 위해서 소비재를 사거나 미래의 소비를 위해서 투자 자산을 사는 데 쓰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당장의 소비냐 미래를 위한 투자냐, 이 두 가지 선택 에서 고민한다. 소비자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돈이 투자자산으로 몰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세계 경제는 어떤가? 소비자 물가 는 바닥을 기고 있다. 세계 경제는 현재 저물가 - 고성장 골디락스 시대의 초기에 진입해 있다. 투자자산, 즉 부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는 인플레이션의 이음동의어다.
- 수천 년 동안 발생했던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다음 열 가지 명제로 정리할 수 있다.
1. 돈은 그 자체로 신뢰다.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화폐도 무너진 다.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남용을 막는 것이 정치의 우선적 의무다.
2. 화폐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국가나 통치자가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과도한 채무가 생기면 국가나 통치자는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유혹은 언제나 존재한다. 인플레이션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예상 하는 이유다. 돈과 통치자가 존재하는 한 인플레이션도 사라질 수 없다.
3. 인플레이션은 거대한 면도칼 위를 달리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대개 인플레이션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킬 뿐이다. 소위 초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도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여 경제는 황폐해진다. 이것이 화폐 시스템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4. 20세기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초인플레이션이었고 대개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동기에 발생했다. 일종의 정치적 인플레이션인 셈이었다.
5. 경제학파들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다. 경제학파 내에서도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학파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고수하는 고전학파로 나뉜다. 케인스학파는 인플레이션이 생산력을 방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전학파는 돈은 실제 경제활동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두 학파의 주장이 모두 옳다.
6.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상관관계는 장기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었고 물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7. 2000년부터 '금융위기 발생과 통화 대량 투입' 주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통화량 급증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다음 위기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8. 인플레이션은 물가에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 인플레이션도 동시에 발생한다.
9. 인플레이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빈곤 계층이다. 인플레이션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세금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10. 지금까지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부채를 없애려고 해왔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종말이 예상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통치자에 의한 인플레이션 이용과 관련해 구소련의 독재자 레닌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화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을 이용하면 조용하고 은밀하게 국민이 누려야 할 복지의 일부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레닌의 주장이 옳다. 한 사회를 전복시키는 데 화폐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것만큼 주도면밀한 방법은 없다.”
- 존 로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를 온 나라를 망쳐 놓은 도박꾼이자 사기꾼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다양한 사상을 앞장서 실천했던 최초의 금융이론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존 로의 일부 사상은 이후 국민경제에 편입되었다. 존 로는 지폐를 발 명하지는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 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 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6세기 중국의 비전, 17세기 스웨덴에 도입된 지폐, 18세기에 사 용된 여타의 지폐들은 금, 은, 동을 본위로 했고 이 지폐들은 명목가 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 는 화폐였다. 반면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은 액면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지폐의 담보가치는 약속, 믿음, 평판, 희망뿐이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화폐를 '위험화폐'라고 한다. (귀금속을 본위 로 가치가 보장되는 화폐와 대조적으로) 이러한 화폐는 보장가치가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내재가치만 남는다.
-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만성적 재정 악화에 시달리는 국가에는 인플 레이션이 발생한다. 그 유형도 거의 유사하다. 재미있게도 고전 희곡과 구성도 일치하여 총 5막으로 구성된다. 
제1막에서는 배우들이 소개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희곡에서는 재정 적자와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가 배우인 셈이다. 국가는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폐를 발행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처음 에는 토지, 건물, 귀금속, 세수, 식민지 혹은 기타 국가사업에서 얻은 수입으로 지폐의 가치가 정상적으로 보장된다. 지폐 도입이 성공한 듯 보인다. 국가가 채무를 정리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덕분에 경제가 활성화되고, 생산과 복지는 증대된다. 
제2막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성공에 도취 한 나머지 국가는 경솔한 판단을 한다. 통화량을 늘리기에 바빠 통화의 실질가치와 명목가치가 일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동시에 국가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화폐발행량을 늘린다. 이제 그레셤의 법칙이 슬슬 힘을 발휘하기 시작 한다. 시중에 악화의 유통량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양 화는 뒤로 빼돌려 움켜쥐고 있으려 하지만, 가치를 상실한 악화로 빚을 갚으려 하기 때문이다. 
제3막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초반에 누리던 행복은 사라진 다. 부채가 증가하고 정부에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발행량을 증가시키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 3종 세트가 순차적으로 발생 하면서 경제 및 신용 위기로 이어진다. 화폐발행량이 증가하고 수입 이 감소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다 보면 극심한 인플레이션 이 발생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다. 
하강 국면에 돌입할 무렵 제4막이 시작된다. 정부는 재앙을 막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가격 동결을 선포하고, 시민들에게 가치를 잃은 화폐를 사용할 것을 강요하며 금은 거래를 금지하고 재산을 몰수한다. 이제 국민이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불안정한 통화 체제에서 빠져나가 려는 사람들을 엄벌에 처한다. 이렇게 해봤자 대개 소용이 없다. 재 앙이 올 시기가 미뤄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5막에서는 경제가 붕괴한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 가 무너지면서 정부는 고통스런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정부는 치솟 는 물가를 잡아보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대개 이런 것들은 높은 경제 비용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경제 회생 조치를 감행한다.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을 감수해야 하며 도중에 중단될 위험도 있다. 이런 정책을 도입해봤자 경기 부양 효과는 별로 없다.
고전 희곡에서는 제5막에서 영웅이 성숙한 인물로 거듭나면서 막 이 내린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안타깝게도 인플레이션의 역사에서는 관찰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 동안 유사한 일이 너무 자주, 많이, 빠르게 반복되어왔다.
- 1914년 독일은 거액의 빚을 져 가며 전쟁을 했다. 국민들도 독일이 승리하리라는 기대감에 들떠 애 국하는 마음으로 전쟁채권 War bonds을 샀다. 이때 진 빚에 1918년 승 전국이 패전국에 부과한 전쟁배상금, 군대 해산, 고용 창출 정책, 지방분권화 재정 지출 등으로 독일 정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23년 독일 북서부의 루르 지역이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하자 독일의 채무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보는 이론도 있었다. 마르크 투기꾼들 책임이라는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자본시 장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기에 만만한 대상이 투기꾼이긴 하다). 반면에 독일 경제학자들은 전쟁배상금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전쟁배상금 을 지불하기 위해 독일은 수출을 늘려야 했고, 수출을 증가시키려면 마르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하나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 가치는 급 락했다. 1923년 4월 1달러대 마르크 환율이 2만 마르크였던 것이 8월에는 460만 마르크, 11월 초에는 2조 2000억 마르크로 올라갔 다가, 1923년 11월 20일에는 4조 2000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마르크 환율은 연일 고공행진을 하며 화폐가 광기를 부리면 어떻 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1920년대 초반 사람들이 노후를 대 비하여 모아둔 돈은 1923년이 되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 돈 으로는 노후 대비는커녕 신문 한 장도 사볼 수 없었다. 정치적 결정 으로 인해 중산층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상점은 화폐를 받지 않고 물물거래를 했다. 이것은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하는 산업 화 된 국민경제체제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이 틈을 타 돈을 번 투기꾼들과 암거래 상인들은 벼락부자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가물(경제적 가치 가 있는 물건)을 소유한 자가 곧 왕이었다. 유가물은 해외로 반출되었고 약삭빠른 투기꾼들은 대출받은 돈(몇 달 후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므로 거의 공짜로 물건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으로 재산과 지배권을 얻었다.
얼핏 보면 독일 정부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화폐를 마구 찍어 부채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정부가 정말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면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 초인플레이션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인플레이션율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이미 알고 있다. 대부분의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변기에 발생했다. 전쟁 중 혹은 전쟁 후 기존의 체제가 붕괴되는 시기, 이를테면 계획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과도기 혹은 변혁기에 발생했다는 시기적 공통점이 있다. 초인플레이션은 정치 혹은 경제적 혼란이 낳은 자식인 셈이다. 꼬집어 말하면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인플레이션으로, 일반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원인 제공자다.
정치적 변혁기는 대개 불안정하고 국가의 통제 기능이 제한적이 다. 조세 수입은 물론이고 다른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국가는 심각 한 재정 적자에 시달린다. 자금 압박이 심하기 때문에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 방법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반발이 적고 유일한 해결 방안일 때도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향후에도 인플레이션 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 율은 마지노선을 넘으면 가속이 붙어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다. 화폐가치가 추락하기 시작하면 멈출 방법이 없다. 이때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초인플레이션으로 넘어간다. 고高인플레이션일수록 인플레이션 수치가 더 불안정하다. 즉, 고인플레이션일 수록 인플레이션율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 더 어렵다는 얘기다. | 세 번째 공통점은 인플레이션과 통화량은 같이 움직인다는 사실 이다. 통화량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인플 레이션율이 높을수록 화폐유통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관관계는 살짝 더 복잡하다. 화폐량과 화폐의 액면가 치가 증가하면 구매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은 증가하지만 은행권의 명목가치에 비해 구매력이 극도로 낮다. 그만큼 물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 이런 상황 까지 상상할 수 있다. 화폐를 더 많이 찍어내도 물가가 화폐발행량보다 빨리 상승하므로 화폐가 부족해진다. 화폐량이 2배 증가했는 데 물가가 4배 상승한다면, 구매력의 관점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돈은 더 적어지는 셈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가격 변동 추이가 반영된 실질 통화량이 감소했다” 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100만 마르크 지폐 한 장으로 단독주택 한 채 대신 치즈 크래커 하나밖에 못 산다는 얘기다.
- 독일 화폐개혁은 종종 '렌텐마르크 Rentenmark의 기적'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신화폐인 렌텐마르크가 도입되자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이멈췄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1조 마르크당 렌텐마르크 1장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독일인들이 렌텐마르크를 받아들였다는 자체가 기적이다. 사람들은 렌텐마르크 가 독일의 토지와 땅을 담보로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도이체 렌텐방크Deutsche Rentenbank는 렌텐마르크를 발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었다. 렌텐마르크는 법정 지불수단은 아니 었지만 공공은행에서 인정하는 화폐였다. 은행 설립에 필요한 자본 은 농업, 공업, 상업, 중소기업 종사자들을 통해 조달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이들은 부동산의 토지채무Grundschuld(토지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지불받을 수 있는 물권으로 독일민법상 저당권과 유사한 제도) 상태를 강제로 등기하고 국가에 양도해야 했다. 달리 말해, 국가가 이러한 부동산 에 대해 강제로 접근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부동산이 새로 발행하는 화폐인 렌텐마르크의 담보였던 셈이다.
- 화폐로서 가치를 상실한 마르크화에 대한 렌텐마르크의 환율은 1 대 1조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렌텐마르크를 도입하자 기적 이 일어났다.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진 것이다. 이후 1924년 가을 라 이히스마르크Reichsmark가 도입되면서부터 독일 경제가 안정을 찾았다. 라이히스마르크 대 렌텐마르크의 환율은 1 대 1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끌벅적한 놀이의 최대 수혜자는 독일 제국이었 다. 독일 제국의 채무는 1640억 마르크에서 16페니히로 감소했으 18 얼마나 안정적인가! 라이히스마르크를 발행하는 라이히스방크는 정부가 지폐발행권 을 남발하여 과도한 채무를 해결하는 것을 금했다. 이는 렌텐마르크가 이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다. 여기에는 무분별한 화폐 발행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폐 발행을 중단한다'는 아주 단순한 공식이 적용됐다. 그런데 이 공식대로 했 더니 초인플레이션이 뚝 그쳤다. 당시 기록을 보면 초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중단된 듯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화폐 발행 중단을 계기로 국가가 그동안의 잘못된 지출 행 위를 수정하고, 신규 채무량을 감소시키고, 금융 질서가 재편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을 때 화폐발행량을 늘려 빚 을 해결해온 시간들을 국가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국가에서 새로운 정책을 더 많이 시행할수록, 정치인들이 기념행사에서 제도 혹은 구조 개혁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할수록, 화폐의 광기를 막을 가능성이 높다.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돈은 정치와 관련된 돈이다. 돈의 가치는 돈을 발행하는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책이 잘못되면 돈이 가치를 잃는다. 화폐개혁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아무리 강렬하다고 해도 한 가지가 빠지면 소용이 없다. 바로 신뢰다. 역사학자들의 표현을 빌면, 독일인들은 경제적 대혼란이 지나가고 경제 질서가 잡히며 렌텐마르크가 안정되기를 바랐다.
- 화폐개혁의 역할과 경제 기적의 의미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정신적·정치적 지도자 자리를 두고 전설의 경제장관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Ludwig Erhard 와 '도이치마르크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공군 소위 출신 경제학자 에드워드 테넌바움 Edward A. Tenenbaum이 경쟁을 했다. 라이히스마르크는 잘못된 금융정책으로 인해 이미 화폐 가치를 상실했고 회생이 불가한 상태였다. 화폐개혁이 없었다면 독일연방공화국은 정상적인 출범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 1950년대 도입된 도이치마르크는 독일 경제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도이치마르크가 자리를 잡은 덕분에 독일 경제에 기적의 초석이 다져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20년도 채 안 되어 독일은 경제 강 국의 반열에 올랐고, 독일의 경제모델은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었 다. 도이치마르크는 모든 통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인 기축통화 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상황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물가와 실업률은 상승했지만 임금은 그대로였다. 국민들의 불만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다. 연합국 점령 지역에서는 상점 불매운동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1948년에는 통화개혁과 에르하르트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일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액 예금자가 대부분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액 예금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노조에서는 에르하르트 를 두고 경제 독재자' 라며 맹렬히 비판했지만 그는 끈질기게 버텼 다. 임금동결 조치가 총파업 이전에 철폐된 덕분에 1949년 봄이 되 자 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도이치마르크가 평가절하되면서 수 출 경기는 호황을 이뤘다.  195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 기적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어우러져 나타난 성과였다. 마셜 플랜, 자유 무역 붐, 탄력적인 노동 공급, 독일 경제의 높은 생산성, 시장경제의 충격요법 등의 흐름을 타고 상승효과가 일었고 1950년대 중반에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투자재 및 생산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코리아붐' 덕을 톡톡히 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일 경제에 평화의 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세계 경제의 새로운 도전이 잔잔한 평화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도이치마르크의 안정성
도이치마르크는 어느 정도로 안정적인 통화였을까? 도이치마르크는 지금도 통화 정책과 통화사에서 최고의 화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성적은 어떨 까? 도이치마르크는 평균 3퍼센트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다. 즉, 도이치마르크 체제 중 4분의 3이 넘는 기간 동안 가치를 상실했다. 참고로 유로는 도입 10년 동안 평균 2.1페 센트의 가치를 상실했다. 그러나 10년 실적과 50년 실적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50년 동안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동서독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50 년 실적에는 이 두 사건도 반영되어 있다.
- 필립스곡선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고용이 증가한다”고 주 장한다.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기업의 이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노동자는 임금의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낮아지므로 기업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감소하고, 실질 임금이 감소 하여 고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노동자가 자신의 실질 임금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만일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필립스곡선 이론을 반박했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임금 인상 요구로 인건비가 상승하면 기업의 인력 고용 의향이 감소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래의 고용 효과는 사라진다. 이렇게 필립스 곡선에서 말했던 고용 효과는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실질 임금이 감소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상승한다. 그러나 중기적으로 노동자들은 실질 임금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질 임금이 상승하면 원래의 고용 효과는 사라지고 없 으므로 프리드먼은 중기적으로 필립스곡선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95년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가 등장하면서 필립스곡선에 대한 비판이 더 심해졌다. 루카스는 인플 레이션율이 상승하면 실업률도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프리드먼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는 노동자들이 인플 레이션율이 상승할 것을 예상하면 먼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므 로, 인플레이션 증가에 따른 고용 효과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 다. 프리드먼은 일시적으로 고용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본 반면, 루카스는 노동자들이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고용이 증대하는 효과는 없어진다고 보았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 을 요구했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임금과 실업률만 증가한다. 실질 임금이 증가하므로 고용이 감소하는 것이 다. 잘못된 예측이 한 나라를 경기침체로 몰고 갈 수 있음을 통찰한 루카스의 주장은 탁월하다.
-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세계화되고 자본 이동성이 높은 시대에는 금융 억압으로 재정을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조장 정책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인플레이션으로 국가 의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일 수밖 에 없다.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인플레이션만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화폐의 가치와 부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회의 결의안 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공식 인플레이션 수치는 조작도 가능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 인플레이션을 국채 해결사로 보는 이유가 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채는 국가적 사안에 가까웠다. 각국은 특히 자국민으로부터 돈 을 빌렸다. 이는 정치라는 명목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는 자국 민에게 돈을 빌려서, 즉 내국채internal debts를 발행하는 동시에 세금 을 인상하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국가는 국민에게 돈 을 빌리고 세금을 인상시켜서 세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부채를 상환 하는 셈이다. 신사적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 방법으로 국채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는 일본의 국채 비율이 300퍼센트에 달하는데 국 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 나 일본은 다른 국가에 비해 국민에게 지고 있는 빚이 특히 많다.
그러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빚을 지기 시작하면 이 방법으로는 국채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국가는 자국의 경제 소득을 포기하고 해외로 보내야 한다. 다른 국가에 빚을 지면 상품이나 서비스로만 상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은 상품이나 서비스 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을 원치 않으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플레 이션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다. 해외 부채를 처리할 때도 인플레이션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 지난 수십 년간 금리가 급격히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설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글로벌 저축 과잉global savings glut’ 을 꼽았다. 버냉키는 세계 자본시장에서 중국이 자본 투자 규모를 축소하고 있고, 인구 고령화로 인해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가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 모드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 결과 자본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금리는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현상이 발생한 두 번째 원인이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있다고 보았다. 세계 경제의 생산성과 혁신력 이 줄어들면서 세계 경제가 마비되어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에 투자 자본 수요가 감소했고 금리도 동반 하락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경제 위기, 2007년 부동산 위기, 유로 위기 등 2000년 대에 발생한 금융 위기도 금리 하락에 일조했다. 이후 많은 기업과 은행들이 리스크는 피하는 대신, 부채와 투자를 줄이고 안정성 있는 투자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이러한 분위기 역시 자본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고 금리를 하락시키는 데 한몫했다.
근래 각국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전 세계를 저금리 자금에서 시 작하여 제로 금리로 판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러한 정책이 추진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가설과 해석이 다양한 만큼 주안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은 하나다. 제로 금리 시대에 접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경제 리스크가 더 심해지리라는 전망은 확실하다.
- 주식시장은 영화관이다.
인도 출신 펀드매니저 모니쉬 파브라이(Monish Pabrai, 파브라이 인베스트먼트 펀드의 공동 운영자로 워런 버핏과 점심 경매에 6억 원으로 낙찰된 인물)는 주식시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 러분이 10유로를 주고 영화 티켓을 샀다고 생각해봅시다. 영화관 좌석이 만석입니다. 그 런데 갑자기 불이 났습니다. 최소한 연기는 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밖 으로 뛰쳐나가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이 영화관에는 엄격한 룰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해야지만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 티켓 값은 뚝 떨어지겠죠. 이 영화관이 바로 주식시장입니다."
- 주식 투자 시 심리적 함정에 빠져들고 싶지 않다면 4G를 기억하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몰트케의 전쟁 전략처럼 주식시장에도 네 가지 G가 필요하다. 4G는 바로 돈(Geld), 생각 (Gedanke), 인내심(Geduld), 운(Gluck)이다. 장기 투자를 하려면 항상 돈, 생각, 인내심 이 필요하고, 운은 나중의 일이다. 겁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부족하다” 라고 말 하며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투자 심리를 지적했다.
- 최악의 투자 상담가는 두려움, 탐욕, 질투, 시기, 성급함, 이웃이다. 투자를 할 때는 이런 것들을 멀리하라.
- 1996년 소말리아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5년이 넘도록 무정부 상태에 있었다. 재무부, 중앙은행, 주무관청도 없었다. 그럼에도 은행권은 계속 유통되었고 국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은행권을 돈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스스로 중앙은행 직원 이라 했던 은행권 제조자는 해적들이었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위 조지폐를 제작하여 달러화와 바꿔치기를 했고, 소말리아에서는 통 화량 M1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듯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플레 이션이 없었다. 누구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소말리아는 국가가 없는 상태인데, 인플레이션이 없는 통화를 보유하고 있다니 이 상태를 뭐라고 해야 할까?
해적들은 위조지폐라고 해도 사람들이 인정만 해준다면, 화폐량 이 부족한 상태에서 화폐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알았다. 해적들 은 국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다른 국가의 사례와 달리 국가에 서 개입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국민들은 화폐 가치 평가절하에 관심도 없었다. 위조지폐 제조 비용과 명목가치에서 발생한 차액을 챙겼을 뿐이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처럼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앞에서 배웠던 시뇨리지seigniorage(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의 실질가치에서 발행비용을 제한 차익)가 아니겠는가!
소말리아에서는 공공연히 해적이라는 자들이 화폐 발행을 남발하 여 화폐 체계를 뒤흔들었다면, 다른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은 정치인 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화폐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화폐를 조작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앞으로 화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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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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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경제 2021. 8. 21. 17:25

- 디피, 엘리스, 콕스, 윌리엄슨, 헬먼, 머클 등이 일제히 연구하고 있던 방향은 키의 분할이었다. 대칭은 동일한 키가 암호화와 복호화에 사용된다는 뜻이다. 만일 그 기능을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 관련 있는 키들로 분리할 수 있다면, 다른 쪽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키를 자유롭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고디언의 매듭을 잘라냈듯이, 이 것은 단 한 번의 결정타로 대칭키 교환이라는 난제를 풀 수 있을 터였다.
- 비대칭 배열은 여러분의 통신 보안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공개’키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공개키로 암호화된 메시지는 사용자가 갖고 있는 '개인'키(private key)를 사용해야만 읽을 수 있다. 키 들은 일치하지만, 전자를 후자로부터 추론하지는 못한다. 즉 공개키로부 터 개인키를 추출할 수 없다. 대칭키 관리 체인에 있는 모든 약한 고리에 초조해하는 대신, 그리고 컴퓨터 간의 통신 보안을 구축하기 위해 제3자 의 저장소에 일치하는 키를 맡기는 대신, 여러분 스스로 키 한 쌍을 생성하여 공개키는 여러분이 공유할 사람과 공유하고 개인키는 혼자만의 비밀로 보관할 수 있다. 디피는 “암호기법의 장점은 여러분의 통신과 직접 적으로 연관된 누군가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 이것을 작동시키려면 암호학자들은 '일방향 함수 집합을 찾아야 했 다. 이것은 함수의 계산 및 결과 산출은 매우 쉽게, 그 결과로부터 역방 한 작업 함수의 반전은 매우 어렵게(“계산상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일방향으로만 작동하는, 들어가는 건 허용하지만 나가는 건 안되는 문이다. 우리는 펜, 종이, 초등학교 산수책을 가지고 앉아서 매 우 큰 소수 두 개를 빠르게 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나온 반소수 (semiprime: 두 소수의 곱으로 만들어진 수 옮긴이)를 인수분해하고 우리가 그것 을 산출하려고 어떤 소수들을 곱했는지 밝혀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 제다. 엄청난 공간을 통한 장기간의 무작위 대입(brute force 탐색전이다. 충분히 강한 키가 있다 치더라도 해결 과정은 우리의 수명뿐 아니라 문자 언어, 인류의 진화, 지질학적 시간의 역사도 왜소하게 만든다. 이 함수에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트랩도어(trapdoor)다. 만일 그 숫자의 반소수 인수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들이 정확한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트랩도어를 보유한다는 것은 정확한 정보 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 그 함수가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다. 디피와 헬먼 은 “트랩도어 암호방식은 공개키 분배 시스템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 다”고 썼다. 실제로 이게 무슨 뜻인지 좀더 높은 수준으로 말하자면, 여 러분에게 정확한 함수 집합이 있을 경우 그것을 해독하는 데 필요한 키 를 몰라도 메시지를 받아 암호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를 가진 사람은 거의 즉시 암호를 해독할 수 있고(값싼 디지털 하드웨어의 발달” 덕분에), 상대 방은 암호화된 메시지에 공개키까지는 가로챌 수 있지만 그래도 개인키 를 찾아서 메시지를 읽지는 못한다. 디피와 헬먼은 이 일방향 연산을 위한 정확한 함수를 확신하지 못했고, 처음 여러 차례 시도해보니 빠른 계산으로 풀기에 너무 쉬운 것으로 드러났다. 소인수분해라는 특정 영역은 1978년 론 리베스트(Ron Rivest), 아디 샤미르(Adi Shamir) 및 레너드 애들먼(Leonard Adleman)(획기적인 RSA사와 그 알고리즘은 이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이 연구할 때까지 몇 년 더 기다려야 했고, 컴퓨팅 인프라 및 암호학자인 장프랑수아 블랑셰트(Jean Francois Blanchette)가 “추가적인 적절한 문제의 발견을 향한 골드러시(gold rush)”라고 표현한 움직임을 일으켰는데, 모든 문제는 “서로 다른 계산적 가정, 그 기법을 위한 역함수 계산이 어려울 것이라는 확실한 가정”을 수반했다.
- "여러분이 막 책을 사려는 참이었다고 치자.” 1975년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 과학자 폴 아머(Paul Arnner)는 컴퓨터 앤 피플(Computer and People)〉지 기사에 이렇게 썼다. 의회에서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기사인데, 그가 의회 를 위해 추천한 도서 목록에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 미국 내 첩보 수집에 관한 닉슨 행정부의 메모, 루시 다비도비츠(Lucy Dawidowicz) 의 유대인과의 전쟁, 1933-1945(The Warr Against the Jews, 1933-1945)》가 들 어 있었다. 아머의 글에는 전자 화폐 인증이 초래하는 감시 문제에 관한 놀라운 선견지명이 있었다. “여러분은 카드(직불카드'라고도 한다...)를 제시한다.” 그는 이어서 썼다. “카드를 읽고 나서 여러분의 은행을 호출하는 단말기에 그것을 집어넣는 점원한테 은행은 OK 신호를 보내든지 아니면 거래를 거절한다. 그리고 거기서 문제는 시작된다.
아머가 직불카드로 책을 한 권 샀을 때, 결제 시스템은 그의 당시 위치를 파악하고 그것을 그의 이동 로그(log)에 추가했고, 그것과 함께 “여러분의 금융 거래에 관한 많은 데이터”와 “여러분 삶에 관한 많은 데이 터”도 추가했다. 만약 여러분이 경찰의 특별 관심 대상으로 이미 지목되 어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런 시스템이 이미 지나치게 남용되 어왔음을 의심치 않는다.” 1971년 KGB를 위한 이상적이고 신중한 감시 장비 구축의 임무를 부여받고, 아머와 컴퓨터 및 감시 전문가 집단은 일 종의 전자 자금 이체 시스템을 내놓았다. “그것은 모든 재무회계를 처리하고 중앙계획경제의 핵심인 통계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 안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감시 시스템 이다.”
그가 자신의 개념적 구매 대상으로 책을 고른 데는 의도가 있었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도서 구입 때문에 의심스러운 집단 또는 패턴의 일부로 '리스트'에 오르게 됐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것이 당국이 결정하기로는 여러분이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면, 시스템이 여러분의 구매 시도를 자동으로 거절할까? 여러분의 돈은 어떤 물건은 살 수 있고 어떤 물건은 그럴 수 없는 걸까?
- 이렇게 하려면 다소 마법적인 뭔가가 필요하다. 입력이 달라지면 같은 키가 대응하지 않도록 같은 데이터에 대해서는 항상 같은 결과를 제공하고 데이터가 달라지면 다른 결과를 제공하는 데이터 변환 방법이 필요하다(이 우발적 대응 다른 데이터에 똑같은 해시 키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충돌(collision)이다. 이 마법적 변환, 즉 어떤 크기의 데이터든 가져가면 원 래의 데이터에 해당하는 훨씬 짧은 고정된 크기의 데이터를 되돌려놓는 함수인 해시는 컴퓨터 과학에서 아주 흔한 사안이 되었다. 원래의 해시를 조금이라도 변경하면 다른 해시가 생성된다. 여러분이 특정 해시 알고리즘을 선택하여, 그것을 다른 매개변수로 조정하면, 그 데이터가 무엇인지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의미 없는 간단한 유닛을 생성할 수 있다. 해시 생성의 체계 및 알고리즘은 그 자체의 사용만큼이나 늘어났다. 해시는 두 개의 디지털 객체 - 텍스트, 코드 파일, 미디어 - 가 정확히 똑같고, 손상이나 상대방의 의도적 행위로 변경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 사 용될 수 있다. 더욱이 객체를 전부 비교하거나 심지어 그 객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반드시 밝히지 않고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그것들의 해시만 비교하면 되니까 말이다. 어떤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 원 본 텍스트를 알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데이터의 해시로부터 원본 데 이터를 알아낼 수 없다. 그것은 실제로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론상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어떤 객체의 해시는 해시가 그것에 해당한다. 는 것, 그것에만 해당한다는 것 말고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여러분이 비밀번호가 필요한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한다면, 사용자들이 로그인할 때 시스템은 비밀번호 자체가 아니라 비밀번호의 해시를 여러분에게 보내줄 수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직접 그 비밀을 갖지  않고도 해시가 입증했으므로 그들이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디지털 화폐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됐는지 설명하기 위해, 해시 생성 툴의 두 가지 비정통적인 응용을 가지고 이 기술을 좀더 얘 기해보겠다. 첫째, 해시는 타임스탬프가 찍힌 연계된 사건들 서로 연결 된 연계 사건들의 블록(말하자면, 블록체인) 의 반박할 수 없는 체인을 창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그리고 백과 해시캐시로 다시 돌아가서 해시는 컴퓨터로부터 정확한 양의 작업을 요구하고 확인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 오스트리아 얘기는 지금부터 거슬러 올라가 1870년대까지 확장된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커뮤니티의 핵심은 쿠르트 괴델(Kurt Godel),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루돌프 카르나프(Rudolf Carnap), 에 른스트 마흐(Ernst Mach),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오토 노이라 트(Otto Neurath),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카를 크라우스(Karl Kraus) 같은 사람들과 동일한 환경, 그리고 어 떤 경우는 동일한 패거리와 사교모임에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뭔가를 알 수 있고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했던 오랜 세대에 속했고, 특히 하이에크와 카를 포퍼가 가까이 지냈던 빈서클 (Wiener Kreis)은 그 대표적 예였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대 화 상대들은 지위가 각양각색이었다. 가령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인간행동학(praxeology)이라는 기이하고 대단히 난해한 이론적 틀을 만들었는데, 이 학문은 모든 주관적인 인간의 행동 및 욕망을 경험과 사실을 구실로 한 검증이나 위조를 따르지 않는 논리적이고 공리적 인 최초의 원칙들로부터 추론했다. 카를 포퍼는 과학 철학자이자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의 세계적인 저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다. 미제스의 제자인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는 급 진적 무정부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이며, 단조로운 이념가이며, 인 종차별주의적 '고전자유지상주의자(paleolibertarian)'였고,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로스 울브리히트의 실크로드 시장에 영감을 줬다. 하이 에크는 박학다식한 자칭 고전적 자유주의자로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칠레의 군인 출신 독재자 옮긴이)의 독재를 지지하고 찬성했다.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이 이 질적인 인물들을 한데 묶는 중심 질문은 인식론적 문제 - 미래 자체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지식의 문제였다. 도대체 물건의 가격이 얼마여 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가격은 정보의 한 형태다. 그것은 구매자들이 기꺼이 지불하려는 것의 형태로 주관적인 필요, 욕망, 상황 및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 그 런데 가격으로 표시된 이 정보가 정확한지 우리는 어떻게 알까? 만일 물 건의 가격 책정 방식이 올바르지 않거나, 자원 할당이 잘못됐거나, 부당 하거나, 아니면 조정이 필요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어떻게 알 수라도 있겠는가? 나는 인슐린 주사가 한 대 필요하고, 여러분은 트럭용 침대 라이너를 원하고, 반도체 회사는 최종적으로 10억 달러의 마이크로 칩 제조 라인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은 이 다양한 융단에 자원을 적절히 할당하고 가격을 매기는 것은 모든 형태의 계획 역량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가격은 주관적인 필요와 욕망에 대한 정보 전송 시스템이며, 시장은 상호 관련된 모든 것의 가치에 대한 지속적이고 판단 불가한 계산이다. 가치 가격 - 가치가 할당되는 어떤 커다란 틀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려는 것, 즉 가격 신호 에서 발생하며, 가격 신호가 다시 다른 형태의 행동을 유발한다. 이 시스템을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는 아무리 경미하더라도 작동 중인 시장의 효율성과 주관적 효용을 떨어뜨릴 것이다.
-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필요는 없다.” 물리학자 레오 실라드(Leo Szlard)는 이렇게 썼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알기 하루 전에만 알면 된다.” 그는 제국의회 화재 직후, 출국하는 사람들 을 멈춰 세우고 심문하라는 명령이 발효되기 전에 베를린을 떠났다. 그는 나치가 정권을 잡자 늘 여행 가방 두 개를 싸서 문가에 뒀었고, 신발 속에 평생 저축한 돈을 숨겨 떠났다. 상상할 수 없는 일련의 미래 속에서 평소 에 그는 상대 속도의 여행자처럼(그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친 구였다 항상 하루나 몇 년을 앞서서 살아온 듯했다. 시카고의 스태그필드(Stagg Field)에서 최초의 핵연쇄반응 실험 - 수년전 런던을 돌아다니며 그가 개발했던 이론의 검증이 있기 전날, 그는 실험이 너무 잘돼서 시카고 대학 캠퍼스 일부와 자신을 포함해 그곳의 최고 물리학자들 다수가 전멸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두 번째 저녁 식사를 했다. 그들이 새로운 수준의 중성자 강도를 수용하기 위해 기록 장비 의 눈금을 거듭 변경하면서 연쇄 반응을 임계치까지 밀어붙일 때, 실라드 는 과거와 미래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그날 오후, 새 시대의 해안에서, 이 물리학자들은 종이컵에 키안티(Chianti: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적포도주 - 옮긴이)를 담아 조용히 축배를 들었다). 그는 과학기술적 진보의 효과 아래 붕괴되는 사회, 핵으로 인한 지구상의 인류 소멸, 기계들의 사회,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 정부를 상상했다. 그는 여생의 대부분을 여행 가방 두 개로 호텔에서 살면서 -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나한테 중요해졌다” - 잠재적 미래와 거기에 어떻게 도달할지를 고민하고, 특허나 청원을 작성하거나 공상과학 소설을 쓰며 보냈다.
- 2008년 10월 초, 글로벌 신용 위기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미국 정부는 위기의 전염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함에 따라, 10월 3일에 대규모 구제금 융인 긴급경제안정화법을 시행했다. 테드스프레드(TED spread: 미국 재무부 채권의 T와 유로달러의 머리글자를 결합한 합성어로, 이 둘의 가격차를 이용해 무위험 수익을 얻고자 하는 거래. 대출기관들이 리스크를 얼마나 인식하는가의 금융권식 표현)가 2008년 10월 10일에 4.5퍼센트를 넘어 섰다. 중요한 금융 주체들이 파국의 시장으로부터 안전한 어딘가에 돈을 숨겨두는 전례 없는 그림이었다. 재무부 단기 채권과 안전해 보이는 달 러 및 스위스 프랑 같은 통화를 보유하려 몰려드는 통에 소규모의 개발도 상국 통화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무역이 계속 돌아가게 하려는 필사적인 조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이 2008년 할로윈 밤에 비트코인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가명을 쓰는 사토시 나카모토는 “나는 제3의 신뢰기관 없이 완전히 사용자 간에 일대일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 화폐 시스템을 연구해왔다”로 시작하는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백서'를 암호화 메일 링 리스트에 올렸다.
금융 혼란은 이 선언의 배경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일단 소프트웨어 초기 버전이 작동되고 나자 통화 장부 자체에 통합되었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시작한 '제네시스 블록(genesis block)'에 이런 텍스트를 덧붙였다.
- 이것은 일종의 타임스탬프(현찰더미나 인질 옆에 찍힌 타임즈지 제1면에 맞먹는 것(실제로 그것은 제1면의 헤드라인이었다) - 이자 위 태로운 시기에 대한 해설 기능을 했다. 은유를 확장하되 너무 멀리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앞으로 블록체인 장부가 거래 하나하나, 메모 하나하나, 즉 엄청난 부채에 짓눌린 세상의 해제를 연대기로 기록할 것이며 새 화폐에 내재된 비참한 정책 실패를 문서화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역사의 첫 줄이었다. 1월 9일,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세 번째 블록에는 당시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Ben Bernanke)의 아스키(ASCII) 코드 초상화가 포함됐 다. 다음 날 할 피니는 트위터(@halfin)에 “비트코인 실행” 이라고 게시하게 된다.
- 1980년대 말, 팀 메이는 사이퍼펑크 커뮤니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 졌다. “디지털 코인'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결코 '코인'이 아니라 비트의 분리된 문자열, 데이터 단위가 아니라 집단적 소유권 검증 시스템이며, 그 검증시스템 바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코인을 소유하고 있는 비트코인 계좌 없이는 어떤 코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코인' 자체가 소유되는 재산이다(전체 장치를 1970년대의 재너두에 대한 테드 넬슨의 설명이 한마디로 요약한다. “기술적 구조와 소유권
관행”). 이것이 나카모토의 전제에 내재된 의미 중 하나다. “우리는 전자 코인을 디지털 서명들의 체인으로 정의한다.” 코인은 그것이 교환되어왔던 서명 거래의 역사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사실, 다름 아닌 그 거래가 코인이다.
여러분은 비트코인을 소유하지 않는다. 소유할 특정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비트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은 비트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 여러분은 장부에서 특정 비트코인을 청구하고 그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권리를 갖는다. 거래란 비트코인이 “손을 바꾼다(change hands: 신체적 은유가 이만큼 오도된 적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권리, 즉 장부에 추가된 최근 거래를 통해 청구가 이관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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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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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세계에도 AI가 들어오면서 투자환경이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Orbital insight 는 인공위성을 통해서 정보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로, 전 세계에 있는 2.5만 개 원유 탱크의 사진을 분석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탱크의 그림자 크기를 AI(이미지 인식 기술)를 통해서 매우 빠르게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 탱크의 바깥쪽 그림자를 통해서 탱크의 크기를 알 수 있으며, 안쪽 그림자의 크기를 통해서 탱크에 저장된 원유의 양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가능해지면, Orbital Insight라는 회사는 전 세계에 저장된 원유의 재고 수준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Orbital insight는 2019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추 탈황 설비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전 세계 원유재고 현황을 정확하게 확인하면서 더욱더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테러 발생 직후, WTI 유가는 $53 에서 $65 까지 20% 이상 급등했지만, 며칠만에 원래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까지 하락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어느 국가의 원 유저장 탱크에서도 재고가 감소하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가가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은 EIA 재고 발표 이후였지만, Orbital insight 가 확보한 정보를 알고 있는 투자자는 먼저 관 련 포지션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현상이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고, 르네상스 테크놀리지와 같은 회사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적용하면서 시장을 바꿀 것입니다.
- 사이먼스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당나귀 벤저민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신은 내게 파리를 쫓을 수 있는 꼬리를 주셨다. 하지만 나는 꼬리도 파리도 없는 게 더 좋다. 이것이 언론의 주목과 관심에 대한 나의 생각입니다."
- 전직 수학 교수였던 사이먼스는 이론의 여지없이 현대 금융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트레이더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메달리온 Medallion 헤지펀드는 1988년 이래 연평균 66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1,0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달성했다. 투자 세계에서 이런 수치에 근접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스티브 코헨, 레이 달리오도 이 수치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르네상스는 매년 7억 달러 이상의 트레이딩 수익을 달성했다. 이는 언더아머와 리바이스, 해즈브로 Hasbro, 하얏트 호텔 을 포함한 유명 브랜드 기업의 연간 수익보다 많다. 여기서 이해하기 힘든 한 가지는 이들 기업이 수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반면, 르네상스에는 고작 300여 명의 직원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초창기부터 사이먼스는 산더미처럼 쌓인 데이터를 파헤치고 고급 수학 기법을 적용하며 최첨단 컴퓨터 모델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시장 예측을 위해 여전히 본능적인 직감과 예전 연구 방식에 의존했다. 사이먼스는 트레이딩 방식에 혁명을 일으키 며 투자 세계를 휩쓸었다. 2019년 초에 이르러 헤지펀드와 '퀀트 투자자'로 불리기도 하는 계량적 투자자들이 주식 트레이딩의 약 30퍼센트를 장악하고 개인 투자자와 전통적인 투자 기업들을 능가 하며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MBA 출신들은 한때 과학적이고 시스템적인 투자 방식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조롱하며 만약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정말 필요하면 그냥 고용하면 된다고 확신했다. 오늘 날 프로그래머들은 MBA 출신을 두고 같은 말을 한다. 단 그들을 조 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말이다.
- 암호 해독과 수학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 나가는 동안에도 사이 먼스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았다. IDA는 소속 연구원들 에게 업무와 관련해 놀랄 만큼 많은 유연성을 부여했다. 이 덕분에 사이먼스는 주식 시장을 조사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이때 바움을 비롯한 두 동료와 함께 최신식 주식 거래 시스템을 개 발했다. 이들 4인조는 최소 50퍼센트의 연간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래 방법이 담긴 주식 시장 행태의 예측을 위한 확률적 모델 Probabilistic Models for and Prediction of Stock Market Behavior)이라는 제목의 IDA 내부용 기밀 논문을 발표했다. 사이먼스와 동료들은 암호 해독자들이 시장의 기본적인 경제 통 계'로 여기고 대부분의 투자자가 집중하는 수익과 배당금, 기업 관련 뉴스라는 기본 정보를 무시했다. 대신 시장의 단기적 행태를 예측할 수 있는 소수의 거시적 변수 macroscopic variables'를 탐색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은 주식이 평균 이상으로 이동하는 '높은 변동성과 주가가 대체적으로 오르는 '좋음' 같은 최대 8개의 근본적인 상태가 시장에 존재한다고 단정했다. 이들의 주장에서 정말 독특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논문에 서 제시한 방식은 경제 이론이나 다른 전통적인 방법을 활용해 이런 상태들을 확인하거나 예측하려고 하지 않으며, 시장이 특정 상태에 진입한 '이유'를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 사이먼스와 동료들은 관측한 가격 데이터에서 가장 적합한 상태를 결정하기 위해 수학적 계산을 활용했다. 그런 뒤에 결정된 상태에 따라 투자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이먼스와 동료들은 추론한 상태를 활용할 수 있는 전략만 제시했다. 
대다수 투자자는 이런 접근 방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도박꾼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포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행동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조정하며 상대의 기분 상태를 추정한다.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는 사람과 대결을 펼칠 때는 특정 전술이 필요하다. 경쟁자가 너무 들떠 있거나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최상의 상황이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가 침울하거나 활기 넘치는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 그저 기분을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
- 사이먼스와 동료 암호 해독가들은 주가 예측을 위해 이와 비슷한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은닉 마르코프 모델 hidden Markov model이라는 정 교한 수학적 도구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도박꾼이 상대의 의사 결정 방식에 따라 기분 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투자자도 시장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시장 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사이먼스의 논문은 당시가 1960년대 말임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허술하고 유치했다. 그와 동료들은 제시한 모델이 제대로 적용되려 면 매일 많은 양의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야 하는데도 거래 비용 제 로를 포함한 '이상적인 거래 조건'에서 주식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매우 순진하고 전문 지식이 결여된 가정을 설정했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 사이먼스는 학계에 완벽히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하학을 사랑하고 수학의 아름다움을 인정했지만, 돈에 대한 열정 과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모험을 향한 욕구가 그를 다른 학자들과 갈라놓았다.
훗날 사이먼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늘 아웃 사이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학에 몰두했지만, 내가 수학계의 일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한 발은 늘 그 세계 바깥에 있었죠.”
뛰어난 암호 연구자였으며 수학의 차원을 올렸고 세계적 수준의 수학과를 구축했으며 이 모든 것을 마흔 살 이전에 이뤄 냈던 사이먼스는 자신이 주식 거래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투 자자들이 시장에 통달하려고 수세기 동안 노력했지만,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런 도전 과제는 그를 단념시키는 대신 오히려 다시 한 번 그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를 두고 사이먼스의 친구 로젠샤인은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 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특이한 일을 정말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사이먼스는 훗날 그 일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사이먼스는 다른 세계에서 온 터라 특이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즉 많은 양의 데이터 집합을 면밀히 검토하고 다른 사람들이 무작위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이치와 질서를 감지하는 데 익숙했다. 과학자와 수학자는 예상치 못한 단순함과 구조와 심지어 아름다움까지 찾아내기 위해 혼란스러운 자연계의 내면을 파고들도록 훈련돼 있다. 드러나는 패턴과 규칙성이 과학의 법칙을 구성하는 요소다. 
사이먼스는 시장이 뉴스나 다른 사안들에 언제나 설명 가능하거 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통적인 조사와 상 식, 통찰에 의존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무작위인 것처 럼 보이는 날씨 패턴이 확인 가능한 경향을 감출 수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하게, 시장이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금융 가격은 최소한 어 느 정도 뚜렷한 패턴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진리는 너무나 복잡해서 근사치 외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존 폰 노이만)
- 과학자는 인간이며, 종종 너무나 인간적이기도 하다. 욕망과 데이터가 충돌하면 때로는 증거가 감정에 밀리기도 한다. (브라이언 키팅, 《노벨상을 놓치며(Losing the Novel Prize)》에서)
- 사이먼스 투자 스타일의 뿌리는 초기 상인들이 미래의 동향을 예측할 수 있기를 바라며 보리와 대추 등의 작물 가격을 점토판에 기록하던 바빌로니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중반 독일 뉘른베르크의 상인 크리스토퍼 커츠Christopher Kurr는 계피와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의 향후 20일간 가격을 예측하는 능력으로 찬사를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처럼 별자리에 의존하면서도 커츠는 별자리에서 얻었던 과거 신호들도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가격 이 종종 오랫동안 지속되는 트렌드를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과 같은 신뢰할 만한 특정 원리들을 추론했다.
18세기 일본의 쌀 상인이자 투기꾼이며 '시장의 신'으로 알려진 무네히사 혼마는 일정 기간 동안 일본 쌀 가격과 최고가, 최저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도표 작성법을 창안했다. 전통적인 촛대 candlestick' 패턴을 포함하는 혼마의 도표는 상당히 정교한 초기 평균 회귀' 거래 전략으로 이어졌다. 혼마는 시장이 감 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투기꾼들이 손실을 재빨리 감수하고 이익 을 계속 흘러가게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이것이 바로 선물 트레이더들이 채택하는 전술이다. 1830년대 영국 경제학자들은 정교한 가격 차트를 만들어 투자 자에게 팔았다. 19세기 후반 다우존스 산업평균을 창안했고 〈월스 트리트저널>의 창간에 힘을 보탰던 미국 기자 찰스 다우 (Charles Dow는 수학적 정밀함을 다양한 시장 가설에 적용하며 뚜렷한 가격 트렌드와 거래량의 요인을 분석한 차트에 의존하는 현대의 기술적 분석을 탄생시켰다.
- 1980년대 내내 응용 수학자와 물리학자 출신이 월스트리트와 런던 금융 시장으로 영입됐다. 그들은 대개 복잡한 파생상품과 모기지 상품에 가치를 매기고 위험을 분석하며 투자 포지션에 대한 대비책 을 마련하고 보호하는 훗날 금융 공학financial engineering'의 형태로 알 려진 활동들을 실행하는 트레이딩 모델을 구축하는 임무를 맡았다.  금융 산업이 이 같은 수학 모델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에 게 붙일 적합한 이름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월스트리트 기업 에 합류하기 전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 던 이매뉴얼 더만 Emanuel Derman은 처음에는 로켓 공학이 가장 발전된 과학 분과라고 추정한 사람들이 그들을 '로켓 과학자 rocket scientist(수완 있는 금융가, 머리가 좋은 사람, 수재를 뜻하는 속어로도 쓰인다)로 불렀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전문가들은 계량 금융 quantitative finance 전문가의 영문 단어를 줄인 '퀀트quant'로 불렸다. 이 후 몇 년간 은행과 투자 기업에서 일하며 컴퓨터를 무시하는 자신 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많은 고위 관리자들이 퀀트라는 용어 를 경멸적인 뜻으로 사용했다고 더만은 기억한다. 1985년 골드만삭스Goldinan Sachs에 합류했을 때의 상황을 더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수리적 사고를 창피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으며 트레이더와 세일즈맨, 은행가들이 일하는 기업에서 다 큰 어른 두 사람이 수학이나 유닉스 Unix 운영 체제 또는 C언어를 얘기하는 것은 좋지 못한 취향으로 여겨졌다.”  더만은 자신의 자서전 《퀀트-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My Life as a Quant》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아예 시선을 회피했다.”라고 썼다.
‘컴퓨터쟁이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들의 정교한 헤징이 항상 그렇게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1987년 10월 19일 다우존스 산업평균이 23퍼센트 곤두박질치며 역사상 가장 큰 일일 낙폭을 기록했을 때, 투자자의 컴퓨터가 하락의 첫 번째 신호가 보이면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주 가지수 선물을 매도하는 헤징 기법으로 광범위하게 채택된 포트폴리오 보험 portfolio insurance'이 그 원인으로 비난 받았다. 이런 매도는 당연히 가격을 더욱 떨어뜨리며, 컴퓨터에 의한 매도가 더 많이 발생하고, 결국에는 엄청난 폭락으로 이어진다.
그로부터 25년 후 뉴욕타임스의 전설적인 금융 칼럼니스트 플 로이드 노리스Floyd Noris는 이런 사태를 “멍청한 컴퓨터에 의한 시장 파괴의 시작이다. 사실 컴퓨터에 좀 더 공정하게 표현하자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짜고 컴퓨터 프로그램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신뢰한 컴퓨터에 의해 파괴가 시작됐다. 컴퓨터가 개입하면서 인간의 판단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에 프랙털fractal이라는 들쭉날쭉한 특정 수학적 형태가 자연에서 발견되는 불규칙성과 닮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던 브누아 망델브로 Benoit Mandelbrot 교수는 금융 시장에도 이런 프랙털 패턴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널리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이 바로 고성능 컴퓨터가 만들어 낸 정교한 트레이딩 모델을 의심하는 또 다른 이유다. 망델브로의 연구 결과는 널리 쓰이는 수학 도구와 위험 관리 모델이 과거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고 예측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모델이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는 편차에 투자자 를 충분히 대비시킬 수 없다는 트레이더 출신 작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와 다른 여러 사람의 관점을 더욱 강화했다.
- 서스먼은 쇼에게 골드만삭스에서 일하지 말고 직접 헤지펀드를 운영해 보라고 제안하며 초기 투자 자금으로 2,8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쇼는 서스먼의 제안을 받아들여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Union Square 구역의 모래로 뒤덮인 곳에 있던 공산주의 서점 레볼루션 북스Revolution Books의 위층 사무실 공간에서 D.E. 쇼haw 라는 헤지펀드 기업을 출범시켰다. 쇼가 처음으로 한 일들 중 하나는 값비싼 초고속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ns 컴퓨터 구입이었다.  서스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쇼에겐 자동차로 치면 페라리급의 컴퓨터가 필요했고, 우리는 쇼에게 그런 컴퓨터를 마련해 줬습니다.”  
슈퍼컴퓨터 전문가인 쇼는 자신의 과학적 트레이딩 방식을 수용한 수학 및 과학 전공 박사들을 영입했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지닌 아주 영리한 직원들도 채용했다. 그는 영어와 철학 전공자들을 선호했지만, 체스 고수와 스탠드업 코미디언, 단행본 작가, 올 림픽 수준의 펜싱 선수, 트롬본 연주자, 폭파 전문가도 채용했다.
쇼의 펀드에서 일했던 초창기 한 임원은 “선입견을 지닌 사람을 원치 않았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 기업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시끌벅적한 트레이딩 룸과 달리 쇼의 사무실은 조용하고 엄숙하기까지 해 방문자들은 직 원들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의회 도서관의 연구실에 온 듯했다. 당시는 인터넷 초창기였고 교수들만 이메일을 사용할 정 도였지만, 쇼는 새로운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프로그래머에게 쏟아 냈다.
"나는 앞으로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할 것이라고 생 각하네. 쇼핑할 때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살 때면 (......) 사람들은 '이 파이프가 좋아.' 또는 '이 파이프는 좋지 않아.'라고 말하며 사용 후기 를 인터넷에 게시할 거야.” 쇼가 동료에게 말했다.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인 제프리 베조스Jeffrey Bezos는 쇼와 함께 몇 년간 더 일한 뒤 자신의 물건들을 이삿짐 트럭에 가득 싣고 당시 부 인이었던 매켄지Mckenzie와 함께 시애틀로 갔다. 가는 도중 베조스는 노트북 컴퓨터로 자신의 기업 아마존닷컴 Amazon.com의 사업 계획서 를 작성했다(처음에는 기업 이름을 '카다브라'로 정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체라는 뜻의 영어 단어 'Cadaver'로 오해하는 바람에 그 이름을 포기했다)
- 사이먼스는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할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싶었다. 어쩌면 하루를 더 세밀한 시간대로 분할하면 팀원들이 장중에 일어나는 가격 결정 정보를 분석해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패 턴을 밝혀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라우퍼는 처음에 하루를 절반으로 나누었고 그다음에는 4분의 1로 나눴고 결 국에는 5분 간격으로 나눈 5분봉 five-minute bard이 가장 이상적인 분할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스트라우스가 이제 연산처리 능력이 향상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어 라우퍼는 예전 데이터를 잘게 나 눠 비교하는 일을 더욱 쉽게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코코아 선물 시장의 188번째 5분봉은 과민하게 반응하는 주간 투자자 탓에 주로 하락했던 반면, 190번째 봉은 일반적으로 반등하는 현상을 보였는 가?”, “금 선물 시장의 50번째 5분봉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주간 투자자들에 의한 적극 매수 현상을 보였지만, 63번째 봉은 대개의 경우 약세를 나타냈는가?” 하는 식이었다.
- 숫자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
- 린치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컴퓨터가 아니라 전화기였다. 믿을만한 경영진에게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고 때로는 직접 찾아가 그들의 비즈니스와 경쟁자, 공급자, 소비자 등에 대한 최근 상황을 물었 다. 당시에는 이런 행동이 합법적이었지만, 투자 규모가 작은 투자 자는 이런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린치는 말했다. “컴퓨터는 비즈니스 트렌드가 한 달이 갈지 1 년이 갈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1990년에 이르러 미국인 백 명 중 한 명은 마젤란 펀드에 투자했으며 린치의 저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은 백만 부 이상 팔리며 “슈퍼마켓 근로자에서 일반 직장인에 이르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피델리티는 뮤추얼펀드 시장을 장악한 후 젊은 애널리스트들을 보내 매년 수백 개의 기업을 방문하 게 했다. 제프리 비닉을 포함한 린치의 후임자들은 이런 방문을 활용해 완전히 합법적인 자신들만의 정보 우위를 확보해 경쟁자를 압도했다.
당시 피델리티의 애널리스트였던 J. 데니스 장자크J. Dennis Jean Jacques는 이렇게 기억한다. “비닉은 우리에게 공항을 오가는 동안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며 지역 경제나 우리가 방문하는 특정 기업에 대해 알아보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또 방문 기업의 구내식 당에서 식사하거나 (......) 식당 종업원에게 길 건너 기업에 대해 물어 보기 위해 근처 식당에서 식사했습니다.”
- 브라운과 머서는 IBM에서 언어 인식 문제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도전을 수학 문제처럼 다뤘다. 그들이 입력한 요인은 펀드의 트레이딩 비용과 다양한 레버리지, 위험 매개 변수, 여러 가지 제한 사항과 요구 조건들이었다. 이 모든 요인을 고려해 문제를 해결하고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하루 종일 최적 의 결정을 내리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접근 방식의 장점은 모든 트레이딩 신호와 포트폴리오 조 건을 하나로 통제하는 단일 트레이딩 모델에 통합함으로써 르네상 스가 새로운 신호를 쉽게 테스트하고 추가하며 잠재적 신규 전략에 서 얻는 수익이 비용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는지 곧바로 알 수 있다. 는 것이었다. 그들은 트레이딩 시스템을 적응 가능한 형태, 즉 라우퍼의 선물 트레이딩 시스템과 매우 비슷하게 자체적으로 학습하고 조정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만약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트레이딩 모델이 추천한 트레이드가 실행되지 않으면 모델은 스스로 수정 하며 포트폴리오를 원래 있어야 했던 포지션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매매 오더를 자동으로 찾았다. 이를 통해 프레이의 모델을 괴롭혔던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은 이런 과정을 한 시간에 몇 번씩 반복하며 전자 트레이드 지시를 내리기 전에 수천 건에 달하는 잠재적 트레이드를 저울질하는 최적화 과정을 실행했다. 경쟁자들 에게는 이 같은 자가 개선 모델이 없었다. 르네상스는 이제 펀드의 미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로 판명될 비밀 병기를 갖췄다.
마침내 브라운과 머서는 수만 개의 코드 라인 lines of code 으로 구성 된 프레이의 예전 모델보다 훨씬 많은 50만 개의 코드 라인을 갖춘 정교한 주식 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했다. 새로운 시스템은 필요한 모든 제한 사항과 요구 조건을 시스템 내에 포함시켰다. 이 시스템 은 많은 면에서 사이먼스가 몇 년 전부터 꿈꾸던 바로 그런 종류의 자동화된 트레이딩 시스템이었다. 이 덕분에 노바 펀드의 주식 트레 이딩이 시장의 변동에 덜 민감해졌고 노바 펀드는 주식을 평균적으 로 하루 이틀 더 오래 보유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항은 프레이가 모건스탠리 시절의 경험을 살려 개발 한 예측 모델을 브라운과 머서가 유지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이 모 델은 곤경에서 벗어난 주식이 대개의 경우 원래대로 회귀한다는 데 베팅하는 식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트레이드들을 충분히 찾아냈다. 지난 몇 년 동안 르네상스는 이런 기반 전략에 변형을 가했지만, 10 년 넘게 그런 변형은 단지 르네상스의 평균회귀 예측 핵심 신호를 보완하는 '2차 주문에 그쳤다.
- 1998년 가을 시장에 대혼란이 찾아왔다. 단 몇 달 만에 D. E. 쇼는 채권 포트폴리오에서 2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으며 25퍼센트의 직원들을 해고하고 운영 규모를 축소했다. 이후 D. E. 쇼는 회복하고 트레이딩계의 거물로 다시 떠오르지만, 그들이 겪은 어려움은 LTCM의 엄청난 손실과 함께 사이먼스와 르네상스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교훈을 남겼다.
패터슨과 동료들은 경쟁 기업의 갑작스런 실패와 좌절을 세밀히 분석했다. 1998년 메달리온은 그해 가을 다른 투자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진 틈을 활용해 42퍼센트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패터슨은 르네상스가 LTCM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해야 했다. 르네상스가 메리웨더의 기업처럼 차입금이 많은 것도 아니고, LTCM의 트레이드는 사이먼스가 선호하는 방식과 달리 일정 시간 내에서만 이뤄져야 했다는 것을 패터슨은 알고 있었다. 르네상스는 수학자와 컴퓨터 공학자를 영입했지만, 경제학자를 영입하지는 않 았으며 이 또한 LTCM과 다른 요소다.
그래도 보다 심오한 교훈을 찾아야 할 만큼 서로 유사한 점들은 충분히 많았다. 패터슨과 동료들에게 LTCM의 붕괴는 주문처럼 되 뇌는 르네상스의 기존 만트라를 더 강화해야 할 계기가 됐다. 즉 트 레이딩 모델을 과도하게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르네상스의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었지만, 모든 공식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 결론에 따라 펀드의 위기관리 방식이 더욱 강화됐다.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거나 시장의 변동성이 갑자기 높아지면 르네상스 시스템은 자동으로 투자 포지션과 위험을 줄이려 한다. 예를 들면 1998년 가을에 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때 메달리온은 선물 트레이딩 을 25퍼센트 줄였다. 이에 반해 LTCM은 전략대로 되지 않아 허둥대 며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동안에도 규모를 줄이는 대신 오히려 더 키웠다.  패터슨은 설명한다. LTCM의 근본적인 실수는 자신들의 모델이 진리라고 믿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스템이 현실을 있는 그 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실의 일부만 반영할 뿐 입니다.”
또한 D. E. 쇼와 LTCM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혀 경험이 없는 시장에 빠져들었다. 바로 덴마크 모기지 시장과 온라인 뱅킹이 었다. 이는 사이먼스 팀에게 신규 비즈니스 진출이 아니라 기존 방식을 더욱 다듬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켜줬다.
- 2001년 사이먼스의 헤지펀드에 뭔가 특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르네상스가 새로운 종류의 정보를 소화하기 시작하면서 수익은 계속 쌓여 갔다. 팀원들은 완료되지 않은 주문을 포함한 모든 주식 트레이드 주문 데이터와 함께 연간 및 분기별 수익 보고서와 기업 경영진의 주식 거래 기록, 정부 보고서, 경제 전망과 논문들을 수집 했다. 사이먼스는 더 많은 정보를 원하며 그룹 회의에서 물었다. “뉴스 속보로 뭔가를 할 수는 없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원들은 신문과 뉴스 제공 서비스의 기사와 인터넷 게시물, 더 나아가 해외 보험금 클레임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데이터까지 추적하며 예측 가치를 얻기 위해 수량화할 수 있고 면밀히 조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를 입수하려고 바삐 움직였다. 메달리온 펀드는 마치 데이터 스펀지라도 된 것처럼 연간 테라바이트terabyte, 즉 1조 바이트에 달하는 정보를 수집했고 이 모두를 소화하고 저장하며 분석하기 위한 값비싼 디스크 드라이브와 프로 세서를 구입하며 신뢰할 만한 패턴을 찾았다.
머서는 동료에게 “더 많은 데이터만큼 좋은 데이터는 없다.”라고 했으며 이 표현은 르네상스 직원들이 주문처럼 되뇌는 만트라가 됐다.
머서는 훗날 르네상스의 목표가 “미래 모든 시점에서의 주식 또 는 다른 투자 상품의 가격을 예측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며 덧붙였다. “우리는 3초 뒤, 3일 뒤, 3주 뒤, 3개월 뒤의 가격을 알고 싶었습니다.”
- 머서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만약 세르비아에 빵이 부족하다는 신문 기사가 나오면 르네상스의 컴퓨터는 과거 빵 부족으로 밀가루 가격이 사승한 사례들을 꼼꼼히 살피며 다양한 투자 상품들이 어떻 게 반응했는지 파악했다. 
기업의 분기별 수익 보고서 같은 일부 새로운 정보들은 그렇게 많은 이점을 제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식 분석가의 수익 예측과 기업에 관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 주는 데이터는 도움이 되기도 했다. 기업의 실적발표와 기업 현금흐름, R&D 투자, 주식 발행 및 다른 요인 이후의 주가 패턴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이었다. 르 네상스 팀원들은 한 기업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또는 그저 루머 수준이든 뉴스 피드에서 얼마나 많이 언급됐는지 측정하는 단순한 방법도 개발하며 예측 알고리즘을 개선했다.
머서와 동료들은 주식 트레이딩이 음성 인식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했다. 이것이 르네상스가 IBM 컴퓨터 언어 팀의 인재를 지속적으로 노리는 부분적인 이유였다. 두 부문의 목표는 불안 정한 형태로 뒤섞인 정보들을 소화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어 데이터에 기반을 두지 않는 전통적인 분석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컴퓨터로 이뤄지는 트레이딩이 점점 늘고 이에 따라 인간이 주 도하는 투자전문기관과 중개인들이 업계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자 메달리온은 더 많은 전산 네트워크로 활동 범위를 넓혀 매수와 매 도를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했다. 마침내 사이먼스는 인간의 개입이 거의 없는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원래 목표의 달성에 가까워졌다.
- 외부인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정말 중요한 핵심은 그 모든 요인과 세력을 자동화된 트레이딩 시스템에 입력해 처리할 수 있는 르네상스의 엔지니어링 능력이었다. 르네상스는 종종 미세한 개별 신호가 혼합된 형태의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일정 수의 주식을 매수하고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주식을 공매도하거나 하락에 베팅했으며, 이런 움직임은 수천 라인에 이르는 소스 코드를 통해 결정됐다.  한 선임 직원은 설명한다. “우리가 하는 개별 베팅 중에서 어떤 주식은 상승하고 또 다른 주식은 하락할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베팅은 없습니다. 모든 베팅은 다른 모든 베팅과 우리의 위험 감수 수준 그리고 우리가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에 하려는 일들과 전부 다 연관돼 있습니다. 우리가 예측에 따라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 을 만큼 미래에 대한 예측을 잘하고 위험과 비용, 영향, 시장 구조를 굉장히 잘 활용할 만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 뤄진 복잡하고 거대한 최적화입니다.”
르네상스가 '어떻게 베팅하느냐는 적어도 '무엇'에 베팅하느냐 만큼 중요했다. 예를 들어 달러 가치가 오전 9시에서 오전 10시 사이에 0.1퍼센트 상승한다는 신호처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신호를 발견해도 메달리온은 9시 정각에 달러를 매입하지 않았다. 다른 투 자자들에게 매일 그 시간에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 주는 잠재적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한 시간 동안 매수 규모를 나누고,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로 분산시킴으로써 트레이딩 신호가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했다. 메달리온은 가장 강력한 신호가 발생하면 경쟁자들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을 변동시키며 최대한 트레이딩을 실행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대형 소매 체인점 타깃Target에서 잘 팔리는 상품들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는 정보를 들으면 매장 개장 시간에 거의 모든 할인 상품을 구매해 다른 사람들이 할인 행사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 르네상스 같은 퀀트 투자 기업들이 누리는 이점은 이들 기업의 컴퓨터 트레이딩 모델이 소화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확대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IBM은 전세계 데이터의 90퍼센트가 지난 2년 동안에 만들어졌으며 2020년에는 2005년 대비 300배 늘어난 40제타바이트(44조 기가바이트) 크기의 데이터가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추측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종류의 데이터는 디지털화되며 한때 투자자들 이 꿈에서만 그리던 거대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중 투자자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데이터는 감지기에서 곧바로 얻을 수 있는 정 보와 전 세계 위성사진을 비롯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를 포함하는 '대체 데이터 alternative data'다. 창의적인 투자자는 전화 회의 에서 들리는 경영자의 목소리 톤과 소매상점들의 주차장에 드나드 는 자동차 수, 자동차 보험 신청 기록,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의 추 천 내용들을 세밀히 조사해 수익을 올려 줄 수 있는 연관성과 패턴을 확인한다.
- 퀀트 투자자들은 농업 생산량 데이터를 기다리는 대신 농업 장 비 판매량이나 작물 수확량을 보여 주는 위성사진을 검토한다. 화물 컨테이너의 청구권을 표시하는 선하 증권 bill of lading들을 보고 전 세 계 물동량을 알 수 있다. 시스템을 활용하는 트레이더들은 휴대폰에 서 생성된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들이 한 매장 내 어느 통로와 심 지어 어느 선반에 있는 상품들을 자주 살펴보는지 알 수 있다. 신제 품의 인기는 아마존 사이트의 사용 후기들을 검토해 알아볼 수 있 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 및 구성원들의 경력과 배경을 분석해 새로운 의약품의 승인 여부를 예측하는 알고리즘도 개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헤지펀드는 스트라우 스가 1980년대 중반 르네상스에서 했던 일과 매우 비슷한 신규 데이터의 근원을 찾는 데 집중하는 새로운 유형의 직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을 데이터 분석가 또는 '데이터 사냥꾼'이라 불렀다. 모든 정보는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경제 궤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들의 전망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고속으로 처리됐다. 모험 정신이 풍부한 투자자들은 예를 들어 국제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 국방부 건물 펜타곤으로 향하는 피자 배달이 평소와 달리 많아지고 있다는 정보를 활용해 잠재적 위기에 대비하기도 한다
- 소설가 게리 슈테인가르트 Gary Shiteyngat의 재치 있는 말이 금융 산업의 미래 경로와 광범위한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요약해 준다.
"아이들을 위한 정신과의사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면, 그것이 마지 막일 것이다. 더 이상 남은 것은 없다.”
- 딱히 설명할 만한 뉴스거리도 없이 갑작스럽게 하락한 현상은 일부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활용한 트레이딩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위험성과 변동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자동 조 정 장치로 운항하는 비행기와 자율주행 자동차가 안전을 크게 향상 시켰다는 증거가 있는데도 사람들을 겁먹게 만드는 것처럼 컴퓨터 에 의해 자동화된 트레이딩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개념이다. 실 제로 컴퓨터 트레이딩이 기존 트렌드를 증폭하거나 가속화할 수 있 다고 믿어야 할 이유들이 있다. 작가이자 위험 관리사였던 리처드 북스테이버 Richard Bookstaber는 퀀트 투자 모델 수용이 “투자 세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오늘날의 위험이 상당하다고 주장하며, 퀀트 투자자들에게 앞으로 생길 문제는 과거보다 시장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퀀트 트레이딩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금융 시장의 본질은 변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오류가 등장할 수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라 예측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지금까지 시장은 트레이더와 투자자들의 지배적인 역할을 반영하며 인간의 행동에 의해 움직였다. 머신러닝과 컴퓨터 모델이 시장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인들이 되면, 인간의 본성은 거의 일정한 반면 컴퓨터를 이용한 트레이딩의 본질은 빠르게 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요인들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낮아지고, 어쩌면 안정성 또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를 활용하는 트레이딩의 위험성은 일반적으로 과장돼 있다. 퀀트 투자의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므로 이 주제를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부 퀀트 투자자들은 추세를 추종하는 전략의 일종인 모멘텀 전략을 채택해 하락 장세에서 다른 투자자들이 더 많이 매도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스마트 베타 smart beta' (시장을 추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플러스알파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에 기초하는 운용방식)와 팩터 투자 factor investing, 스타일 투자 style investing를 포함한 다른 방식들이 퀀트 투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투자 범주에 속한다. 이런 방식들을 사용하는 퀀트 투자자들은 주가 가 하락할 때 매수하도록 프로그램해서 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장 참여자들은 시장이 위기 상황에 처하면 항상 트레이딩을 줄이고 물러나는 경향이 있으며, 퀀트 투자자들도 과거 방식을 사용하는 투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주저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퀀트 투자자가 지배적인 위치에 올라섰을 때 시장은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인간은 공포와 탐욕과 완전한 공 황 상태에 빠지기 쉬우며 이 모든 행동이 금융 시장에 변동성을 불 러일으킨다. 컴퓨터가 편견과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들을 배제할 수 만 있다면 시장을 보다 안정시킬 수 있다. 항공 산업과 같은 분야에 서 이뤄지는 컴퓨터 주도의 의사 결정은 일반적으로 실수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 르네상스의 경험에서 얻는 또 다른 교훈은 금융 시장과 개인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변수가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거나 추 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이 놓치고 있는 요인은 수십 가지에 달하고, 어쩌면 요인들 전체를 다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르네상스는 주가와 다른 투자 상품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동안 간과했던 수학적 연관성을 포함한 중요한 요소들을 그 누구보다 많 이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꽃을 보며 인식하지 못하는 다채로운 색상을 벌이 동일한 꽃을 보며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르네상스가 시장의 모든 색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기업이 풍부한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었던 덕분에 많은 돈을 벌기에 충분할 정도의 다양한 색상을 본다. 르네상스가 예전에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 내기는 했지만, 시장이 진화하고 직원들은 시장을 따라가려고 노력하기에 급급하면서, 과거만큼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 왔다. 솔직히 현재 직원들과 과거 직원들은 모두 예전 성과에 크게 놀라며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을 인정한다.  사이먼스와 그의 동료들이 달성한 수익을 보며 사람들은 추정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능률적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 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자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추정하는 것보다 비 효율성과 기회가 더 적을 가능성이 높다. 르네상스가 확보한 그 모 든 독특한 데이터와 컴퓨터 성능, 뛰어난 인재, 트레이딩과 위험 관 리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는 전체 트레이드 중 겨우 50퍼센트가 넘는 트레이드에서만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는 시장을 앞서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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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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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는 이미 인쇄기, 강력한 해군, 화약, 활기찬 도시가 있었고, 부유함은 물론 환경 위기 면에서도 유럽보다 두드러졌다. 유럽 자본주의가 흥성한 것은 자연을 생산적인 무언가로 활용하고 그 생산성을 부로 변환한 능력 덕분이었다. 이 능력은 폭력, 상업, 기 술의 독특한 융합에 의존했지만, 다른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바로 자연이 사회의 반대편에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뒷받침한 지적 혁명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훨씬 능가 하는 것이었고 결국 삶의 방식으로서 정복과 약탈의 상식이 되었다. 자연을 부인하는 유혈 낭자한 행위들은 폭력과 반란으로 형성된 자본주의의 프런티어에서 극단적으로 자행되었다. 이를 보여주 는 것이 마녀사냥이다.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지역은 사회적이고 다른 지역은 자연적이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긴다. 극단적인 폭력, 대량 실업과 투옥, 소비 문화는 사회적 문제이고 사회적 불의다. 기후, 생물 다양성, 자원 고갈은 자연의 문제이고 생태의 위기다. 사람들은 세계를 이 런 식으로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와 '자연'이 따로 작동하는 것처럼, 생명망이 인간의 권력 관계와는 접촉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세계를 그렇게 만든다.
- 콜럼버스는 저렴한 것들의 모든 전략을 초기에 실행한 사람으로서 이 책의 모든 장에 등장한다. 그는 정복자로서만이 아니라 평가자의 눈을 가지고 카리브해에 당도했다. 그의 눈은 북 아프리카 연안에서 포르투갈이 벌인 식민 모험으로 예리해진 터 였다. 그는 독특하고 금전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식민화하기 시작 했다. 스페인, 포르투갈을 필두로 한 유럽 제국은 부와 권력을 키 우는 데 혈안이 되어 야만적인’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산물을 강 박적으로 모으고 주문했다. 콜럼버스는 자연에 값을 매기기 위해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은 초기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연이 무엇 이 되었는지 그가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 콜럼버스는 신세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저렴한 자연 전략을 구사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카리브해로 항해한 지 8일째 되는 날에 어느 곳을 보고는 '카보 헤르모소(아름다운 곳)'라는 이름을 붙이 고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정말 (...) 나는 그토록 아름답고 색다 른 식생은 아무리 봐도 눈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그곳에는 유럽에 가져가면 염료와 약재로 큰 가치가 있을 허브와 나무가 많을 것이 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그 식물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래서 매 우 슬프다.”20 그는 처음부터 예리하게 저렴함과 권력을 간파한 평 가자로서 자연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돈이 될지 안 될지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 데카르트는 프랑스인이었지만 그의 관점에는 잉글랜드인과 네덜란드인의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았지만 1629~49년 네덜란드공화국에서 주요 저작을 완성 했다. 이 시기 네덜란드는 최강의 슈퍼파워였고 가장 역동적인 자 본주의의 본고장이었다. 당시는 거의 두 세기 전에 시작된 지구적 인 생태계 혁명이 점차 강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폴란 드, 향료 제도에 이르는 숲이 베어졌고, 러시아에서 영국에 이르 는 습지가 간척되었으며, 안데스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곳곳의 자 원이 채굴되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저렴한 자연의 여러 형태로 전달되어 1650년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최초의 현대적 주식시장)에서 5백 가지 넘는 상품이 거래되었다. 데카르트의 혁명적인 물질주의는 이 시대와 보조를 맞췄다.
데카르트가 이 혁명적인 철학을 혼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생태의 제2법칙이라고 부르는 이 철학의 많은 부분에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이 기여했다(베이컨을 '아버지'라고 지칭한 이유가 있다). 베이컨은 영국 정치 체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었고, 다른 시기엔 의회의 멤버이기도 했으며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검찰총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과학은 자연의 비밀을 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남성의 제국'은 '자연의 자궁'을 뚫고 지배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방황하는 자연을 묶어야 하고, 당신은 원할 경우 자연을 몰고 다닌 뒤 같은 장소로 다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 진실을 얻으려는 목적에서라면 이 구멍과 구석으로 들어가 침투하는 데 대해 주저할 필요가 없다"  베이컨은 유럽 여성의 삶이 철저히 현대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위협받고 감독되고 지배되던 당시에 주요 정치 인물이었다. '자연’ 과 '사회'의 발명은 모든 국면에서 일어났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 고 자연과 사회를 나누는 이분법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 사회에 대비되는 자연의 영역은 처음부터 '여성/생태적' 이었다.31 이렇게 생명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조직함으로써 자연은 사물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생명을 저렴하게 만들도록 허용하는 전략으로 변모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지금도 그렇지만 실 증 진술이라기보다는 권력과 위계, 인간과 자연, 남자와 여자, 식 민화의 주체와 객체를 어떻게 최상으로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규범 진술이었다. 명성(과 비판)은 여러 사람의 몫이겠지만 이를 데카르트 혁명이라 부르는 데는 일리가 있다. 당시에 펼쳐진 지적 움직임은 생각하는 방식뿐 아니라 정복하고 상품화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형성했다. 데카르트 혁명으로 만들어진 네 가지 주요 변환은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했다. 첫째, 둘 중 하나라는 이 분법적인 사고가 둘 다를 고려하는 대안을 제거했다. 둘째, 물질과 사물의 관계보다 물질과 사물 그 자체를 생각하는 것에 권리를 부여했다. 셋째, 사회재인 과학을 활용해 자연을 지배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데카르트 혁명은 지도 제작과 정복이라는 식민 사업을 생각하고 실행하도록 촉발했다.
- 지주들은 단지 토지를 수탈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연'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었다. 공동체의 땅을 경쟁적인 임대 시스템 아래로 돌려놓자 농부들이 어느 정도 자치권을 행사 해온 공유지가 줄었다.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가축 방목, 땔감과 건축 자재 채취, 이삭줍기 등 공유지에 대한 폭넓은 권리가 주어졌었 다. 이런 권리에는 아껴야 한다는 책임이 따랐다. 예를 들어 숲에서 무언가를 채취할 때는 미래에 활용할 여력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만 채취해야 한다는 책임이 주어졌다. 이 권리와 책임은 농민들의 생존에 긴요했다. 농민들은 수확한 농작물이 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에 못 미치면 그 차이를 공유지에서 벌충했다. 공유지가 축소되는 동시에 남은 공유지에 대한 접근도 어려워지자 농민들은 이 차이를 다른 방식으로 메워야 했다. 교회와 사회적 지원을 위한 다른 기관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농민들은 땅을 떠나거나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 즉 노동력을 매물로 내놓아야 했다. 그들의 노동력이 '자유로웠다는 것은 이런 제한적인 의미에서 였다. 노동력의 판매는 가난과 부랑죄 복역으로 강제되었다. 가난 과 부랑죄는 의도적으로 심하게 처벌되었다. 생존을 위해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뿐이었다.
농민들은 저항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16세기 전 반기에 농촌과 도시에서 일련의 반란이 일어났다. 저항의 정점은 1545년 발발해 1만 6천 명이 잉글랜드 제2의 도시 노리치를 점령 한 케트(Kett)의 반란이었다. 농민들의 분노는 공유지 인클로저 와 관습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분노는 1450년 이후의 상대적으로 새롭고 터무니없었던 경쟁적인 임차료를 향해 있었다. 

- 자본주의 생태의 기원에는 돈과 상품의 순환을 넘어서는 순환이 있다. 독특하고 매우 현대적인 마술이 여기에 있다. 국가는 전쟁의 전리품을 원했지만 군인에게 지불할 돈이 필요했다. 새로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앞서 빌린 전쟁 비용을 갚는 데 필요한 부 또한 획 득할 수 없었다. 전쟁, 돈, 전쟁, 은행가들은 빚을 갚을 정부가 필 요했고, 정부는 돈을 빌려줄 은행가가 필요했다. 자본주의에서 새 롭게 등장한 것은 이윤 추구라기보다는 이윤 추구와 금융과 정부의 관계였다. 이 관계는 향후 세상을 다시 만들 참이었다. 
- 노동, 식량, 에너지, 원자재의 저렴함이 자본주의 붐의 필요조건이라면, 저렴한 신용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5 역사적으로 저렴한 돈과 새로운 프런티어의 선순환이 이어져 왔다. 생산과 채굴 같은 기존 영역에서 이익을 창출할 기회가 줄어 들면 자본가들은 이익을 자금 거래에 투입했다. 세계 자본주의에서 큰 붐 이후에 학자들이 금융화라고 부르는 과정이 뒤따른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17세기 중반, 영국은 19세기 중반, 미국은 전후 황금기가 그런 시기였다. 이 시기에 자본가들 으 오래되고 수익성 낮은 상공업으로부터 자금 거래로 돈을 옮긴다. 말썽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값비싼 공장을 짓고 원자재를 구매해 무언가를 만드는 대신, 더 간단하고 (일시적일 수 있지만) 더 매력적인 무언가로 점점 더 많은 자본가가 눈을 돌린다. 자금을 대출해주고 미래에 대한 투기적인 내기를 하는 사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융화는 본질적으로 미래에 더 수익성이 좋은 산업혁명에 돈을 거는 도박을 하는 것이다.16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는 지난 역사를 보면 안심할 수 없다. 과거에 그런 축적 사이클의 끝은 대개 전쟁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금융권력도 흥기했다.
- 잉글랜드의 땅 조각들은 인클로저를 통해 합쳐 졌고, 그에 따라 농민 중 점점 더 많은 수가 자신이 경작하고 유지하면서 부쳐 먹고 살던 공유지에서 풀려났다. 농부들은 자유롭게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고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굶거나 감옥에 갇 힐 자유도 있었다. 이처럼 노동자와 토지의 새로운 관계는 동시에 만들어졌다. 17세기, 18세기 지도층은 가난한 떠돌이를 두려워했 다. 부랑자에 대한 가혹한 법이 제정된 한편으로 강요된 궁핍으로 일어날 최악의 영향을 경감하고자 자선 활동이 펼쳐졌다. 정부의 후원 아래 감옥살이를 시키겠다는 위협은 가난한 사람들을 임금노 동자로 이동시키려는 전략이었다.
- 임금노동은 인간의 지능, 힘, 기술을 취한 뒤에 또 다른 '현대 발명'을 활용해 규율 속에서 만들어낸 생산적인 노동이었다. 여기서 현대 발명이란 시간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식을 가리킨다. 토지 생산성보다 노동의 실행이 자본주의 생태를 형성한다면, 이 과정에 서 불가결한 것이 기계식 시계다. 돈이 아니라 시계가 노동의 가 치를 측정하는 핵심 기술로 등장했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흔히들 임금을 위한 노동이 자본주의의 표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13세기 잉글랜드의 경제활동인구 중 3분의 1이 이미 생 존을 임금에 의존했다. 임금이 삶과 공간과 자연을 조직하는 결 정적인 방식이 된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시간 모형 덕분이다.
- 미국에서 1940~70년대에 진행된 농업 혁명(이는 6장에서도 논의할 것이다)과 그보다 앞선 19세기 농업 혁명을 생각해보자. 둘 다 화석연료와 산업 노동을 전제로 했다.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은 미시시피 삼각주의 비옥한 토양과 저렴한 노동력을 결합해 생산한 저렴한 면을 (잔혹한 노동 착취 체제의 인큐베이터였던) 영국의 섬유공장에 공급했다. 앨라배마에서 미시시피에 이르는 프런티어 주에서 노예 수는 1790년에서 1860년 사이에 스무 배 넘게 증가해 1860년 남부 의 노예는 4백만 명에 달했다.45 노예 노동자는 놀라울 정도로 생산 적이었다. 미시시피 삼각주의 비옥한 충적층 위에 플랜테이션이 구 축된 것 또한 프런티어의 저렴한 노동으로서 기여했다.46 노예 노 동의 영향으로 원면 가격은 1835년에는 50년 전에 비해 70% 넘게 하락했다.47 남부 면 사업은 미시시피 노예 같은 사람들을 추방하 고 죽이는 데 바탕을 두고 돌아갔다. 그들은 자연의 영역으로 버려 졌다. 미국이 면과 식량을 수출한 덕분에 영국은 공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 1870년 영국 노동자 일곱 중에 여섯은 농업 이외의 영역에 고용되어 있었다. 이들의 배는 저렴하게 채워져야 했고 미국 농업이 바로 그 역할을 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영국으로 수출된 미국 곡물은 1846년 이후 30년 동안 40배로 급증했다.48 이처럼 엄청난 증가는 농업의 공업화에 따라 가능했다. 대규모로 이루어진 농장 기계화는 1840년대 수확기를 비롯한 간단한 기계에서 소박하게 출 발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1870년에 이르 면 농업용 기계가 미국 기계 생산 중 4분의 1을 차지했다. 49 | 그 시기에 미국 곡물은 영국 노동자를 먹였을 뿐 아니라 유럽 남부, 동부 농민들에게 타격을 입힘으로써 미국에 노동력을 공급 했다. 미국의 곡물 수출이 급증하자 유럽의 곡물 가격이 1882년에서 1896년 사이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농민들이 이주한 것처럼,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잉여 인력이 된 사람들 은 이민을 감으로써 대응했다. 많은 유럽 농민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에서 그들은 2차 산업혁명의 신산업에서 일했다.
- 현대 가계와 그 구성원의 기원은 유럽 자본주의의 생태적인 변 화에 있다. 앨리스 클라크는 《17세기 여성의 노동하는 삶》에서 남편, 부인, 아이들로 구성된 핵가족이 등장한 것은 공유지에서의 돌 봄과 생산의 경제지리학이 다른 양상으로 이행한 결과라고 주장 한다. 공유지에서 여성들이 한 노동에는 땔감 모으기와 이삭줍기가 포함되었음을 상기하자. 이를 통해 최저한의 생활이 가능했고 가끔은 내다 팔 잉여가 생겼다. 무언가 잘못될 경우 공동체의 종교적 · 개인적 · 사회적 지원망으로부터 사회 보험이 작동했다. 이 런 제도는 쟁기 활용의 확산을 비롯한 농업 혁신과 양립할 수 없 었다. 인클로저로 더 넓어진 경작지, 단일 작물 재배, 배타적인 사 유지 제도, 굶주림과 수감의 위협으로 움직이는 노동력의 탄생 등 과도 어울릴 수 없었다.
- 인클로저로 인해 농민들은 변변치 않은 땅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농민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이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공유지가 있 을 때 소를 치는 일은 여성들의 활동이었고 여성들은 우유와 유제 품을 팔아 가계에 보탰다. 공유지가 사라지자 풀을 뜯길 곳도 사 라졌다. 소 치는 기술을 원하는 시장도 빠듯해졌다. 반면 우유보다 양모가 훨씬 수지가 맞는 사업이 되었다. 그리고 양털 깎기는 남성 의 일로 분류되었다. 여성들은 젖을 짜고 봄에 송아지를 받는 일에나 필요하게 되었다. 봄 쟁기질과 가을 수확은 근력을 더 요구했고 종종 남성의 일로 분류되었다. 이런 노동 분화는 남녀의 고용에 다 른 값이 매겨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적인 현상인 남녀 임금 차는 농촌에서 비롯했다. 이 현상은 처음부터 자연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 작물 품종의 다양성은 토양과 인간 생태계에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식량 전반에 대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작물이 고유한 생태계 를 형성하는 방식과 특성에 주목하려고 한다. 쌀, 옥수수, 밀 등 페 르낭 브로델이 말한 '문명의 식물들은 서로 매우 다른 권력, 일, 요리법 그리고 자연의 형태를 낳았다.
유럽은 밀을 선택했다. 밀은 토양을 걸신들린 듯 집어삼켜 정기적 으로 휴경하게 만든다. 이 선택이 내포한 건 가축 사육이었다. 자, 황소와 말, 쟁기, 수레가 없는 유럽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선택의 결과로 유럽은 늘 농업과 축산업을 병행하게 되었다. 즉 늘 육식을 하게 된 것이다. 쌀은 집중적인 재배 형태로 발전해서 사람이 동물을 위한 공간을 거의 내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쌀 재배 지역의 식단에서 고기가 그렇게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 를 설명해준다. 옥수수를 심는 것은 분명 매일의 빵을 얻는 가장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다. 옥수수는 매우 빨리 자라고 손도 많이 가지 않는다. 작물로서 옥수수라는 선택은 여유 시간을 줬고, 농민의 강제 노동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거대한 기념물을 가능하게 만들었 다. 사회는 경작하는 노동력을 순전히 간헐적으로 전용했다.
자본주의는 흔히 석탄 혁명, 석유 혁명과 결부되지만 식량 체제 의 전환이 그보다 먼저 등장했다. 식량 과잉이 없었다면 농사 말고 다른 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메르, 이집트, 중국 한나라, 로마, 마야, 잉카 같은 교과서 속 문명들은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 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혁명을 거쳐 성장했다. 신석기 혁명부터 16세기 여명기까지, 인류 역사의 궤적에 나타난 식량과 인간의 관계는 숨이 막힐 만큼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노동보다는 토지에 의존한 농업 생산 체제라는 점, 시장보다는 정치를 통해 식량 과잉을 통제한 체제였다는 점이다.
- 자본주의 농업은 지구를 변화시켰다. 어떤 토지에는 특정 작물 과 경작 체제가 들어섰다. 현금이 잘 들어오는 단일 작물만 재배하 도록 설계된 독점 체제였다. 다른 토지에 집이 들어섰다. 경작에서 배제당하고서 노동을 더 잘 보상받을 수 있는 곳 가까이에 살려고 간 사람들이 모인 곳, 즉 도시였다. 도시와 들판은 오랫동안 '도시 빈민을 위한 저렴한 식량 공급'이라는 영구적이고 긴요한 요구로 묶인 남매였다. 키케로부터 중국 황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도 시 거주자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는 게 도시의 불만을 막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환금성 농업의 생태계는 오 로지 이익과 저렴한 식량에 집중한다. 저렴한 식량을 도시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공급해 폭동을 막고 저렴한 노동을 유지한다. 노동과 돌봄에 대한 장에서 봤듯이 임금 체제를 유지하려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저렴한 식량 덕에 이 비싼 체 제에서도 부가 창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는 권력과 생산 기반으로 흘러들어 도시-농촌의 생태를 만들어냈다. 고용주-노동 자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도시-농촌의 생태는 자본주의 구조로 짜 인 극도로 불평등한 관계였다. 그 자본주의의 틀은 대서양 접경 지 역, 유럽 주요 도시, 인도양과 아시아의 향신료 루트를 통해 형성 되었다.
- 20세기 초반까지 대부분의 무기질 비료는 채굴되었다. 초석(消石, 질산칼륨 KNO)은 농경과 화약 모두에 중요한 무기물이다. 역사학자 애브너 오퍼는 식량 공급에 투입되는 이 물질의 처리를 두고 조성된 긴장감이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한다.44 연합군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량 공급을 무력화하기 위해 칠레 초석 광산의 봉쇄를 감독했고, 전쟁 전에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개척한 대기 질소 고정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군사 작전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조치들이 지구를 변화시켰다. 현재 지구의 질소산화물과 암모니아 농도는 1800년 이전의 다섯 배에 이른다.46 그리고 암모니아 제조에 필요한 에너지는 저 렴한 화석연료에서 직접 가져온다. 지금 식량 1칼로리를 생산하는 데 최대 10칼로리에 이르는 석유가 필요한 이유다. 
- 녹색 혁명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곡물 생산량 은 두 배 이상 늘었고, 1950~80년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녹색 혁명의 중심부에서는 생산량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인도의 밀 수확량은 1960~80년 87%나 급증했다. 이는 1935년 이후 20년 동안 미국 옥수수 농부들이 경험한 것과 비슷했 다. 이 곡물들 모두 점유율이 전 세계 시장에서 상승하면서 세계 의 곡물 수출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179% 증가했다. 국 가 보조금으로 식품 가격을 인하하겠다는 정치 공약과 폭력은 효 과를 발휘했다. 식품 가격은 1952~72년 매년 3%씩 하락했다. 20세 기 내내 상품 가격은 이미 급락하고 있었는데 식품 가격은 하락세가 세 배나 빨랐다7 1976~2002년 쌀, 옥수수, 밀의 실제 가격은 더 떨어졌다. 녹색 혁명의 가장 큰 성공은 아마도 토지 개혁에 대 한 농민들의 요구, 그리고 정치 변화에 대한 도시민들의 요구를 효 과적으로 잠재웠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긴 녹색 혁명의 놀라운 성과가 굶주림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중국을 분석에서 제외하면, 녹색 혁명 과정 동안 기아자 수가 11% 이상 증가했다(중국의 농업 혁명은 확실히 공산주의적이었지만 생산성 향상에서는 뒤처지지 않았다).  인도의 밀 생산량이 1965~72년 두 배로 늘었고60 1970년대 내내 꾸준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축하 하는 보고들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인도인들이 실제로 먹는 양은 거의 늘지 않았다
- 암모니아는 생명의 물질이기도 하다. 신진대사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에 영감을 준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1840년 흡수가 잘 되는 질소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농업의 투쟁 과제라고 선언했다. 보통 비활성 상태인 공기 중 질소가 번개와 상호작용 하거나 미생물에 의해 토양에 고정되면 생물이 질소를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식물이 풍성하게 성장하는 전제 조건이자 자극제다. 하버-보슈 공정으로 생물이 이용 가능한 질소를 만들려면 에너지 비용이 많이 든다. 반응을 일으키려면 수소가 필요하고, 수소를 만들려면 저렴한 연료가 필요한 것이다. 석탄과 나프타로도 수소를 만 들어 비료를 생산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천연가스가 쓰인다. 이 때문에 미국의 산업화된 농업에 투입되는 에너지 중 비료 생산에 드는 비중이 가장 크다.
공기와 화석연료를 비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하버-보슈 공정은 식량, 노동, 돌봄의 비용을 줄였다. 저렴한 무기질 비료는 도입되 자마자 땅을 소유한 농부들에겐 더 높은 수확으로, 현장 노동자들 에겐 낮은 임금으로 되돌아왔다. 식료품과 쫓겨난 소작농의 물결이 도시로 흘러들었다. 곡물은 산처럼 늘어 가축의 위장 속으로도 들어갔고, 글로벌 노스에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그 고기를 씹어 삼 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암모니아는 군수품에서 방향을 바꿔 토양 속으로 폭발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폭증한 곡물의 3분의 2가 동물 사료로 쓰였다. 토니 웨이스의 표현처럼 하버 - 보슈는 전 세계의 식사를 육식화했다. 고기가 점점 더 현대적인 식사의 필수 요소로 광고되면서 사료 수요가 치솟았다. 이를 충족하려고 브라질 농부들은 땅을 축산 사료용 콩 재배지로 개간했는데, 이는 매년 자본활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온실가스 중 2%에 이른다. 이 비료 식량 지배의 또 다른 예는 가장 최근인 2007~08년 식량 위기 때 비료 가격을 조작한 결과 4400만 명이 빈곤에 빠진 사실이다. 이는 전적으로 소작 농업과 고유한 식생활 방식을 파괴해 산업적인 단일 재배 체제로 대체하려는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에너지로 토양을 개조하지 못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니면 마르크스의 말대로 '일정 기간 내에 토양의 비옥함을 늘리는 모든 발전은 그 비옥함을 더 오래 지속시킬 원천의 파괴를 향한 발전이다. 한 나라가 발전의 배경으로 대규모 산업에 더 많이 기댈수로 이 파괴의 과정은 더 빨라진다. 그러므로 자본가의 생산은 토양과 노동자 등 모든 부의 원천을 동시에 훼손함으로써 오직 생산의 사회 과정이 결합하는 기술과 정도를 발전시킬 뿐이다.

- 저렴한 석유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화석연료 없이는 자본주의 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소매업자, 제조업자는 전기가 고대 화석에서 나오는 풍차나 태양 전지판에서 나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저렴한 석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태양에너지 체제로 이행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오늘날 자본가들이 여기에 지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다양한 재생에너지 계획에 분명 돈을 걸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기업이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대규모 전환하는 데 필요한 45조 달러를 내놓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태양에너지 체체로 이행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오직 정부들이 그 비용을 치렀기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관행에서는 세금 감면 외에 정부가 가진 정책 처방전이 별로 없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기업 과세는 이미 역사적으로 최저 수준이며, 애플과 구글 같은 자칭 '녹색' 기술 회사들이 가장 큰 수혜자다. 우리는 결국 그 회사들의 주가를 높게 유지하는 데 돈을 낼 것이다. 저렴한 연료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연료의 위기가 반드시 생산이 모자라거나 넘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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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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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 전쟁

경제 2021. 7. 24. 19:46

- 디플레 위험을 무시하기 어려운 세 가지 이유
첫째, 한국은 GDP 갭이 마이너스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둘째,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물가하락이 지속되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 
셋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물가가 실제보다 높게 측정되고 있는 점 등이 바로 그 이유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이슈를 감안할 때, 한국이 디플레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이 2018년 중국 제품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한 이후 1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중국의 대미 수출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일은 '시차'나 '위안화 약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체 중국 기업들은 어떻게 관세부과에 따른 비용 증가를 흡 수할 수 있었을까? 여러 후보를 제외하고 남은 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중국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여 수출제품의 가격 상승을 억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기업들은 같은 설비와 노동력을 활용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 는 데 성공한 것이다.
- 미국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잃어버린 일자리는 대략 98만~ 200만 개로 추정된다. 미국의 일자리 수는 1억 4,800만 개이므로,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6~1.3%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근로 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업주가 “저임금 근로자들이 있는 중국으로 공장 을 이전하겠다”라고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임금협상 등에서 우위를 잃 게 될 것이기에, 임금 상승의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덧붙이자면, 모든 국제무역이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유럽 등 선진국과의 교역에서는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는 충격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 예를 들어 고급 자동차 분야에서는 독일이 우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파이를 키우는 면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등 신흥국과의 교역에서는 일자리 문제가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인도 등의 신흥국 소비자들은 아직 구매력이 적은 데다가 시장 개방성도 낮아서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으로부터의 수 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흥국과의 교역이 증가하면 경제 전체의 인플레 압력이 낮아져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개선되는 대 신, 일자리 측면에서는 '순유출'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선진국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이래저래 미국의 실질임금 상승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다.
- 미국의 금리, 물가 하락에 고령화가 미치는 영향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이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첫 번째 경로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고령층이 늘어나면 경제 전체의 성장 탄력이 떨어지며, 이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한다고 해도 생산성이 낮은 편이기에 경제 전체적으로는 성장 탄력을 떨어뜨 리는 면이 있다.
고령화가 금리를 떨어뜨리는 두 번째 경로는 경제활동인구가 미 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데 있다. 6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하지 못하고 계속 일자리를 찾는 모습을 본 젊은 세대들이 장차 자신들도 노후 빈곤에 시달릴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저축을 더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저축률은 2005~08년을 바닥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지연 및 고령화 경향은 미국 실질임금의 상승을 억제하고 물가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 1990년대 후반부터 돈을 풀었는데도 왜 물가가 오르지 않았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생산성 혁신이다. 정보통신 제품의 가격이 계속 하 락하는 가운데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어려워지자, 통화공급이 늘어났 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이 억제되었다. 
또 다른 요인은 '신용경색' 현상이다. 신용경색이란 간단하게 말 해 금융기관들이 은행 파산이나 금융위기 등의 큰 신용 이벤트를 겪은 후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경기침체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은행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출하기보다 중앙은행에 다시 맡겨두려고 든다. 이런 경우 중앙은행이 아무리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통화공급을 늘려도 실물경제에는 돈이 풀리지 않게 된다.
- 미국은 1990년대부터 시중에 돈을 풀어 과잉 유동성이 생겨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인플레는 화폐적 현상이다”, 즉 시중에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면 인플레가 생긴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적어도 1990년대 이후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를 보면 화폐수량설은 이제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할 신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 국제유가 폭락, 왜 미국 회사채 시장이 패닉에 빠졌을까?
미국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은행보다는 회사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특히 셰일오일 기업을 비롯한 신생 분야의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의 대출심사 를 피해 적극적으로 회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또한 글로벌 투자자들도 셰일오일 기업이 발행한 정크본드에 적 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준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제 로금리 정책을 펴자, 고금리 채권에 대한 수요가 부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셰일오일 기업의 경쟁력이 나날이 개선되는 것을 긍정적으 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좋았던 시절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국제유가의 급락 으로 셰일오일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나는 가운데, 정크본드의 가산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 산금리란 정크본드가 비슷한 만기의 국채에 비해 이자를 얼마나 더 많 이 부담하는지 측정한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미국 BB등급 회사채의 가산금리는 2%를 밑돌았지만, 2020년 3월 13일에는 무려 5%의 벽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미국 에너지 및 금융회사의 주가가 폭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2020년 2월 12일 고점 이후 3월 17일까지 8314포인트, 약 28%가 급락했는데, 그중에서 금융업종은 32.4%, 에너지 기업은 38.4%나 폭락했다.
물론 주가 폭락 그 자체만으로 기업이 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회 사채 가산금리의 급등 속에서 이루어진 금융 · 에너지 주식의 폭락 사 태는 상당 기간 원유가격이 저가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시 장 참가자들의 예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필자는 1~2년 안에는 유가 급등이 유발하는 '인플레의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 전반의 디플레 압력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디플레의 '징후'가 나타날 때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때 단호한 대응이란 어떤 정책을 의미할까?
미국 연준의 보고서가 지적했듯, 정책금리를 적극적으로 인하해 서 디플레 기대심리가 형성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경 제 주체들이 '돈이 많이 풀리니 앞으로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만일 정책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 로 내렸는데도, 디플레 기대심리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이 재정정책이다.
- 시장금리가 낮으면 적극적 적자재정도 괜찮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시장금리가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낮을 때에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으며, 또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 재정적자가 증가했는데도 시장금리가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황, 혹은 디플레의 압력이 우세한 시기에는 재정지출을 아무리 늘려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즉, 경기가 악화될 때에는 미국 국채 등 이른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므로, 재정적자를 아무리 내도 금리는 떨어진다.
재정지출의 확대가 시장금리를 급등시키는 것은 '경기부양'의 효과 가 나타났을 때에야 출현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이는 등 재정 건전화에 나서면 된다. 반면, 시장금리가 급등하고 인플레 압력이 높은 시기에는 재정적자가 시장금리의 상승을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불황에는 공격적인 재정확장 정책을 써야 하고, 반대로 호 황에는 재정긴축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일 것이다. 실 제로 미국의 연구를 살펴보아도, 물가가 낮고 저금리 환경일 때 재정 정책의 효과가 높아진다고 한다.
재정정책 전략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플레 및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때도 재정확장 정책을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1980년대의 남미 국가들이었다.
-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는데도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고, 중앙은행 이 아예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 국채를 인수해버리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면, 1980년대 중반의 볼리비아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ation, 이하 '하이퍼인플레)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 참고로 하이퍼인플레란 매월 물가가 50% 이상 상승하는 일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 항상 '금리 하락 = PER 상승' 의 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최근처럼 정책당국이 급박한 경제충격에 대응하기 금리를 적극적으로 내린 시기에는 PER가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하곤 한다. 예를 들 어 이 책을 쓰는 순간(2020년 3월 말) 미국 주식시장의 PER는 16배까지 하락했는데, 이것은 2019년 말에 비해 거의 3/4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질까? 그 이유는 바로 가산금리 상승' 때문이다. 회사채 가산금리가 급 격히 상승하면서 기업들이 돈을 제때 빌리기 어려워지고 이자 지급 비 용마저 급등하는데, 주가가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산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정반대로 바뀐다. 정책금리 인하의 효과에 기업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까지 겹치니, PER 는 본격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아직까지 이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지만, 회사채 가산금리가 떨어지는 순간에는 저금리 위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 일본 부동산시장은 왜 다른 길을 걸었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일본 경제의 성장속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 해 빠르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던 것이 지목된다. 다른 한편으로 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행이 강력한 저금리 정책을 펼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 해 일본과 독일이 자국 통화의 강세를 용인한 조치를 말한다. 이 합의 의 영향으로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1985년 242엔에서 1988년 12 월 124엔까지 떨어졌다. 불과 3년 정도에 엔화 환율이 반토막이 나버 린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엔화 환율이 급락하고 엔화 강세가 이어지자, 세계시장에서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일본은 극심한 수출 부진을 겪게 되고 물가도 하락했다. 이에 일본은행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정 책금리를 1985년 5.0%에서 2.5%까지 무려 2.5%포인트 인하했다. 그 리고 이처럼 강력한 저금리 정책 덕분에 '엔고 불황'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리가 급락하자 대신 주택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예 를 들어 일본 왕궁이 위치한 지요다구 오테마치에 있는 상업용 건물의 3.3m2당 가격은 8,250만 엔에 이르렀고, 도쿄 핵심지역에 있는 아파트 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984년 6.9배에서 1988년에는 15.6배로 단 4년 만에 2배 이상 부풀어 올랐다.
주택시장 거품이 엄청나게 커지자, 버블 붕괴를 우려한 일본은행 은 1989년부터 금리인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책금리를 2.5%에서 1990년 6.0%까지 불과 1년여 만에 무려 3.5%포인트를 인상했다. 그 러자 부동산시장은 일거에 얼어붙었고, 여기에 중동 걸프전의 충격까 지 가세하면서 일본 경제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특히 일본 정책당국이 1990년대 초반 대대적인 공공주택 건설에 나선 것이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 1세기 전에 살았던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은 천연자원의 유무로 설명할 수 없는 지리적인 산업의 집적현상을 발견했다. 마셜 시대에 가장 유명한 예는 영국의 대표적인 중공업도시 셰필드의 도검류 제조업자의 집중, 그리고 노스햄프턴의 면제품 기업들의 집중이었다. 현대에는 실리콘밸리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 뉴욕에 집중된 투자은행산업, 할리우드에 집중된 오락산업 등이 그 예이다. 앨프리드 마셜은 기업들의 집적이 개별기업으로 격리되어 있는 경우보다 더 효율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전문화된 공급자를 지원하기 위한 집적 능력, 둘째는 대규모 노동시장, 셋째는 산업의 지리적 집중으로 인한 지식 창출 및 확산 효과 등이다. 지금까지도 이 지적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첨단산업 기업들의 이러한 집적현상은 부동산시장, 그중에서도 특정 지역의 부동산가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 장단기금리가 역전될 때, 왜 불황이 출현하는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활동참가자들의 기대 변화에 있다. 먼저 소비자들의 지출을 결정짓는 요인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소비자들의 현재 지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 소득이겠지 만, 미래 소득에 대한 전망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가 지 금은 경기가 나쁘지만,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수가 낙관적인 전망을 공유한다면, 현재의 소비지출은 늘어나고 저축률이 둔화되며 시장의 장기금리는 상승할 것이다. 결국 장기금리는 향후 먼 미래의 경제성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하며, 반대로 단기금리는 지금 당장의 경기여건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단기금리가 역전된다는 것은 현재보다 미래의 소비가 둔화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도 흥미롭지만, 장단기금리 역전이 불황을 유발하는 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은행의 수익은 대출과 예금의 만기 차이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평균적으로 은행의 대출은 만기가 긴 반면 예금은 만기가 짧은 경향이 있다. 결국 은행은 만기가 짧은 부채(=예금)를 이용해 만기가 긴 대출을 운용함으로써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은행들은 예금금리(단기금리)에 비해 대출금리(장기금리)가 더 크게 상승할 때 수익을 더 많이 올리게 된다. 그런데 단기금리가 오히려 장기금리에 비해 더 빠르게 상승하면, 예금을 유치하는 데 더 많은 이자를 주어야 하니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 특히 장단기금리 차가 역전되어 단기금리가 오히려 장기금리에 비해 높으면 은행들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은행들은 이런 환경변화에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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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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