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건설 장비업체 고마츠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굴삭기에도 센서를 달아 판매하는데, 이상이 생기면 유지 보수를 해줌으로써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센서를 이용해서 고마츠는 다른 정보도 획득한다. 전 세계에 팔린 고마츠 굴삭기가 10만 대 정도 되는데, 여기에도 GPS가 있어서 판매된 모든 굴삭기가 언제 어느 정도 이용되는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지금 시베리아 쪽에서는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한다는 것, 중국에서는 밤낮 없이 기사를 바꿔가면서 24시간씩 일한다는 것, 한국에서는 주로 쉬고 있다는 것 등을 모두 파악한다.이로써 전 세계의 건설 경기 현황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이 수치로 데이터화되고 있다.
- 중국 정부는 전 국민의 얼굴 사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인도는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큰 홍채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문맹률이 높은 인도에서는 극빈자들에게 지급하는 정부 보조금을 중간에 누군가가 신분증을 도용해 대신 받아 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인도 정부가 나서 전 국민의 홍채 사진을 확보해 신분증에 넣었고, 홍채가 확인되어야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 미국의 어떤 은행은 대출받는 이유를 글로 쓰게하고 그 글에 등장하는 단어를 분석해 대출 신청자가 돈을 잘 갚을 사람인지, 못 갚을 사람인지를 추정한다. 해당 은 행이 발견한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대출금을 잘 갚는 사 람들은 금리', '금리 차이'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했고, 잘 갚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죽어도', '반드시', '하나님 께 맹세'와 같은 단어나 구문들을 많이 사용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라도 대출을 받으려고 과장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 에어컨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관심은 온도 조절 기능과 전기요금, 딱 두 가지다. 여름에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시원 하게 지내고 싶을 뿐, 기계 자체에는 사실 관심이 없다. 데 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는 건물 에너지 관리실에 제공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제조사가 인사이트를 기반 으로 서비스를 판매하고 관리를 맡을 수도 있다. 여기서도 80대20' 파레토 법칙이 성립한다. 전체 20퍼센트의 방에 서 전체 소비 에너지의 80퍼센트를 사용하기에, 해당 20퍼 센트 방을 찾아내면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 다. 이때 모든 답은 실내기 데이터에 들어 있다. 일본의 '다이킨'은 에어컨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 을 보유한 회사로서 시스템 에어컨이라는 개념도 이 회사 에서 만들었다. 그런데 다이킨이 최근에 실외기와 실내기 조합의 기계가 아닌 서비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건물주 와 맺은 계약 내용은 이렇다. “우리가 이 건물을 전기요금 포함 월 얼마의 사용료에 1년 내내 22도에서 25도 사이로 유지해주겠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기계 제품의 유지 및 보수 문제에 따로 신경 쓸 일이 없다. 실내기와 실외기 설 치에 관련된 모든 결정을 다이킨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다.
- 하라스라는 라스베이거스의 오래된 카지노는 단골 회원 고객의 개개인에 대한 고통 커브 pain curve'를 추정해서 데이터로 가지고 있다. 오른쪽의 고통 커브 그래프를 보면, 가로축은 고객이 1회 방문 시 잃은 돈이고 세로축은 미래에 재방문할 확률이다. 여기서 재방문 확률 값은 일정하게 높이 유지되다가 어느 지점을 지나가면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이 시점을 고통 포인트라고 한다. 물론 이 고통 포인트는 회원마다 다르다. 어떤 회원은 한 번에 100만 원을 잃어도 재미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회원은 10만 원만 잃어도 너무도 실망하고 기분이 상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큰돈을 잃으면 다시는 안 돌아오겠지만 조금만 잃으면 대개는 돌아온다. 단지 큰돈과 작은 돈의 기준이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것임. 여기서 하라스 카지노가 원하는 것은 후자의 사람들임. 한 번 와서 1000만원 잃고 평생 안 돌아오는 손님보다 주말마다 와서 매달 50만원씩 잃고 가는 손님을 원함. 그래서 하라스는 단골 손님이 입장하여 베팅을 시작하면 그 회원이 잃은 돈을 실시간 모니터링 하다가, 잃은 돈의 액수가 고통 포인트에 접근하면 더 이상 잃지 못하도록 도박 자체를 못하게 슬쩍 방해함. 직원을 시켜 음료수를 제공한다거나 디너 쇼 티켓을 서비스로 주면서 그 순간 흥분된 회원의 심리상태를 식혀줌. 그러면 게임에 몰입해 이성이 잠시 마비되어 있던 회원은 제정신을 차리고 현재 자신이 잃은 돈의 액수를 인지하고 그만 떠나게 된다. 물론 적절한 금액만 잃었으므로 그 고객은 다음 주에 다시 올 것이다.
- 소비자들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여러 데이터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마케팅 전문가 들은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묻지 말아야 한다. 리서치업체 는 소비자들에게 무엇이 불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신제 품을 구매할 것인지, 신제품의 가격이 얼마면 살 것인지 등 을 끝없이 묻는다. 이때 소비자가 하는 대답은 사실과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정답을 말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본 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제 소비자는 물어볼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다. 묻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그들의 글과 행동을 관찰해야 한 다. 그것이 훨씬 정확한 예측을 가져온다. 마케팅에서의 소비자 연구, 그 답은 소비자의 입이 아닌 행동에 있다.
- 제록스는 애널리틱스를 동원 해서 조기퇴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징들을 찾아냈다. 우 선 회사에서 멀리 거주하며 확실한 교통수단이 없는 사 람 가운데 조기퇴사자가 많았다. SNS 활동이 전혀 없거나 5개 이상의 소셜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의 조기퇴사 가능 성도 매우 높았다. 또한 성격 검사에서 드러난 특징도 있다. 첫째,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타입 inquisitive type 이다. 예컨대 주변 사람들의 근황까지도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사람들, 이것 저것 끊임없이 물어보는 사람들 가운데 조기퇴사자가 많았다. 둘째, 공감을 너무 잘하는 사람, 그리고 셋째, 창의력 이 낮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조기퇴사자가 많았다. 이제 각각의 성격 유형에 대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유추해보기로 하자.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성격의 직원은 퇴근 후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어서도 호기심이 멈추지 않을 수 있다. 3시에 전화한 사람이 왜 자신에게 욕을 했는지 궁금함이 뇌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남들보다 더 스트레스 를 받지 않았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과도한 공감 능 력을 가진 상담원은 지나치게 공감하다 보니 감정 노동이 너무 심해져서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창의 력이 좋은 사람은 고객이 안 좋은 말을 해도 그걸 창의적으 로 해석해서 본인이나 제록스사의 문제가 아닌 전화를 걸 어온 고객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닐까? 단지 고객이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매우 창의적으로 치부하는 능 력이 뛰어난 것이 아닐까? 이러한 해석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데이터를 통해 도출한 인사이트는 상관관계만 밝혀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인사이트는 상관관계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이런 저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퇴사율이 훨씬 높다는 것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당 특징이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 다. 즉 인과관계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 데이터마이닝은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만 약 금광 안의 금 매장량이 100톤이라고 한다면 어떤 방법 을 써도 그곳에서 200톤의 금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다. 100톤을 다 캐내면 끝이다. 데이터도 그와 마찬가지 다. 데이터도 그 데이터가 포함하고 있는 잠재적인 인사이 트 양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최대로 잘했을 때 그만큼의 인사이트가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록스에서 이력서와 성격 검사 데이터만으로 20퍼센트의 조기퇴사자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은 괜찮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상황에서의 판단 기준은 20 퍼센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드는 비용과 20퍼센트의 조기퇴사 감소를 금액으로 환 산했을 때 절감되는 비용, 즉 편익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 업이 투자자 회의 일시를 공표하고 전화할 곳을 알려주면 기업의 분기별 실적 전화 대 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전화 대화가 끝난 후 이 소식이 알 려지면 그때부터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 이때 CEO와 애널리스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를 자연어 처리 기술을 이용해 텍스트를 분석한다. 과연 CEO가 내년에도 실적이 좋을 것이라고 했는지, 아니면 약간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는지 그 말을 컴퓨터에게 분석하도록 해서 주가를 예측하고자 한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 또한 CEO의 답변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질문을 통해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기업의 내밀한 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년에 경쟁사가 중국에 공장 20개를 더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매우 비 관적인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 질문의 정서가 중요한 인사 이트다. 어떤 연구팀은 목소리도 분석했다. 애널리스트가 “내년에는 실적이 안 좋겠죠>" 라고 물어볼 때 CEO가 편안한 목소리로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지, 아니면 갑자기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는지 그 음성을 분석한다. CEO의 말이 빨라지거나 돈이 올라간 경우,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CEO가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알아들 수 없는 어려운 용어를 쓰면서 설명하는 경우에도 주가가 떨어지는 예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안 좋은 상황을 인정하기 싫어서 어려운 말과 복잡한 표현으로 적당히 피하려는 것이다.
- 이미지 데이터로부터 인사이트를 도출한다는 것은 해당 이미지에 어떠한 물체가 들어 있는지, 이들 간의 위치관계는 무엇인지, 색은 무엇인지 등을 이해하는 것임. 컴퓨터 비전 분야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이미지에 대한 표현을 도출한다고 한다. 과거 수십 년간 이 분야는 정말 많이 연구되었다. 특히 통계적 패턴 인식 분야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오늘날의 애널리틱스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방법은 이렇다. 사람 얼굴 이미지가 주어지고 이 얼굴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류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단계에서 눈, 코, 입 부분을 찾아내고, 2단계에서 각 부위의 크기, 각도, 상대적 위치 같은 소위 특징점을 도출한 후, 3단계에서 도출된 특징점들의 조합으로 최종 판정함. 이때는 딱히 기호주의라고 할 수는 없으나 사람얼굴, 남녀 얼굴의 차이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함. 그런데 만일 남녀 구분이 아니라 지문 인식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3단계는 동일하겠지만 1,2 단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또는 항공기의 종류나 나무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라면? 매번 1,2 단계는 완전히 달라짐. 즉 이와 같은 접근방식의 어려운 점은 문제가 달라질 때마다 매버 분석가가 해당 분야 전문가를 찾아가서 특징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물어보고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암묵지를 발굴해 내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미지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식은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명제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최근에 빅데이터가 등장하면서 1,2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3단계로 가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즉 입력으로 넣고 직접 분류하는 것이다. 거대한 다층 퍼셉트론을 딥러닝으로 학습. 이 방법의 장점은 1,2 단계가 생략되었으므로 전문가와 의논해서 특징점을 고안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 사람얼굴이든 지문이든, 비행기든 나무 종류든 3단계로만 해결한다. 빅데이터만 있으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여러 문제가 유사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 빅데이터 분석의 최종목표는 인사이트가 아니다. 최종목표는 가치만들기임. 따라서 그냥 눈앞에 있는 구하기 쉬운 데이터를 갖고 무작정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이를 의사결정자에게 던져주는 접근법은 100% 실패함. 미리 어떠한 가치를 위해 어떠한 인사이트가 필요한지 가르쳐주지 않고 그저 데이터만 주면서 뭐든지 분석해보라고 하는 것은, 셰프에게 무얼 먹고 싶은지 말하지 않고 그냥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실패확률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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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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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의 미래

경영 2020. 2. 20. 08:33

- 미국 쇼핑몰 몰락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1인당 쇼핑면적 초과현상. 쇼핑면적의 초과현상이란 쇼핑공간을 선택할 때 소비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음을 의미함. 실제로 1970-2013년 인구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쇼핑몰이 증가하는 속도가 2배나 빨랐음. 에이티커니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1인당 쇼핑면적은 23.5평방피트인 반면, 캐나다는 16.8, 영국은 4.6, 일본은 4.4, 독일은 2.3, 한국은 2.2 평방피트다. 단적으로 미국 국민의 1인당 쇼핑면적은 독일국민의 쇼핑면적보다 10배 이상 넓다. 결국 1인당 쇼핑면적의 초과현상은 오프라인 리테일러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쇼핑면적이 넓은 만큼 스태프가 부족해 소비자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매장 직원을 찾기 힘들어하고, 물품이 도난당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미국 리테일협회에 따르면 물품도난이 리테일러 전체 손실의 36.5%를 차지함. 하지만 충분한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초대형 몰들은 지속적 투자와 리모델링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소비경험, 즉 소비자들이 SNS등에 공유할 재미들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을 잡아두고, 더 나아가 일반 쇼핑몰과 백화점의 소비자까지 빼앗아올 수 있었다. 결국 만족스러운 쇼핑경험을 제공하는 리테일러들에겐 소비자들이 몰리는 반면, 그렇지 못한 매장들은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초지역 몰에 입점하려는 브랜드들은 늘었지만 지역몰, 오픈센터, 파워센터들은 입점 브랜드가 줄어들었다. 초지역 몰은 쇼핑몰, 워터파크 등의 다양한 레저시설, 레스토랑 등의 다이닝을 자랑하는데 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몰에서 매장 입점률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엔터테인먼트나 레저기능이 소비자의 쇼핑공간 선택에서 매우 중요해졌다는 의미. 현재의 추세로 미루어보건대, 초지역 몰과 그 외 쇼핑몰의 매출격차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임. 이런 상황은 아직 영미권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에서만 나타나고 있지만 쇼핑몰이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과 파급력에 비추어보면 오프라인 리테일 업계의 위기 시그널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임.
- 스마트 스피커의 급부상은 리테일 비즈니스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소비자들이 상품정보를 습득하고 상품 주문을 하는 쇼핑행동을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 사실 아이폰에 탑재된 시리 같은 경우는 소비자들의 소비행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스마트 스피커에 탑재된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비서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는 다르다. 이들은 정보검색이나 음악재생 등의 단순기능은 물론, 소비자가 말하는 문맥과 니즈를 파악하여 상품을 추천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더구나 스마트스피커를 가진 소비자들의 구매량이 그렇지 않은 소비자들보다 많다는 통계도 있다. 17년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가 미국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마존의 일반 소비자들은 연평균 1000달러어치를 구매했고, 프라임멤버들은 연평균 1300달러를 소비, 반면 아마존 에코 소유자들은 이들보다 많은 1700달러를 구매. 물론 한 통계가 전체를 대변한다 말할 수는 없지만, 스마트스피커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수치다. 즉 소비자들이 첨단 리테일 테크와 음성으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음성명령으로 쇼핑을 완성하는 보이스쇼핑 시대로 진입한 셈
- 도미노피자가 선보인 서비스가 제로클릭의 시초였다. 도미노피자를 주문하기 전에 소비자가 할 일은 딱 한가지, 모바일 앱을 다운받아 피자 프로필을 설정하는 것. 피자종류, 전화번호, 배달주소, 신용카드정보 등을 사전에 입력해 두고 언제든지 피자를 먹고 싶을 때면 도미노피자 앱을 실행시킨다. 그러면 저장된 주문내역이 집근처의 도미노피자 지점으로 자동전송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에러를 수정할 수 있도록 10초간 타이머가 실행된다. 현재는 문자메시지, 트위터, 스마트TV, 스마트워치, 음성주문비서로도 클릭없이 도미노피자를 주문 가능. 심지어 16년부터는 도미노피자의 음서주문 비서 돔이 아마존 알렉사와 결합해 "알렉사, 도미노피자 앱을 실행시키고 이지 오더를 실행해줘"라는 음성 명령으로 주문이 완성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도미노피자의 가상주문 비서는 매장 직원들의 주문관련 잡무를 처리해주는 한편, 소비자들이 피자 주문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 소비자 만족도도 높기 때문에 매장도입이 확산될 예정이다. 이러한 초기 형태의 제로클릭이 한층 더 진화한 것이 바로 스마트 스피커를 통한 상품주문이다. 아마존 알렉사로 상품을 주문할 때는 "알렉사 세탁세제를 주문해줘"라는 명령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 더구나 18년 현재 전 세계에서 약 40억명이 인터넷을, 약 32억명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쇼핑기능까지 탑재하면서 온/오프라인 리테일러의 영역침투가 본격화됐다. 18년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 리테일러의 25%가 페이스북을 통해 상품을 팔고, 40%가 직간접적으로 SNS를 이용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답했다. 어느 조사결과 SNS의 추천이 구매행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23%,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트위터, 스냅챗 등을 통해 상품을 구입하겠다는 응답이 30%에 이름.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SNS로 상품을 구입하는 데는 세대에 따른 차이가 크지 않을 정도로 SNS가 쇼핑의 한 방법으로 자리 잡음. 소비자의 쇼핑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은 물론, 경쟁자가 나이었던 새로운 기업들이 리테일 영역에 진출하면서 리테일 비즈니스가 완전히 다른 경쟁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 일반적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건강에 관심이 많고 힙한 문화를 선호. 그런데 그들은 건강과 유기농으로 유명한 홀푸드마켓보다 또 다른 마트체인인 알디를 좋아한다고 한다. 바로 가격 때문. 홀푸드마켓은 유기농 식품들을 다채롭게 구비해두고 있고 쇼핑공간도 쾌적함. 그러나 홀 페이체크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격대가 높은 편임. 밀레니얼 세대는 그러한 홀푸드마켓보다 상품이 많지는 않더라도 가격이 저렴하고 다양한 유기농 옵션이 있는 알디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는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감소 등 사호적 불안을 경험했던 탓에 취향과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경제적 측면, 즉 가성비를 중시하는 이 세대의 소비성향을 보여줌.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2000년대 중반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으나 많은 이들이 금융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었다. 또한 물가상승, 집값상승의 시대적 영향으로 결혼을 했음에도 출산을 미뤄야 했다. 이로 인해 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퓨리서치의 연구를 보면, 밀레니얼 중 19%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음. 이는 베이비부머의 40%, 엑스세대의 31%가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한 것과 비교됨. 또한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불신도 이전 세대들보다 높다. 그러다 보니 로컬 브랜드, 독창성을 가진 소규모 브랜드를 선호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 한편 밀레니얼 세대는 선호하는 소비경험도 이전 세대들과는 다름. 맥킨지 분석을 보면, 밀레니얼 세대는 멀티감각적 경험, SNS로 공유될 수 있는 즉시성, 미디어, 게임, 경험을 선호. 이런 특성들은 쇼핑에서도 온라인, 재미, 다양한 경험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고, 그들의 취향에 맞는 경험들은 즉시 SNS로 공유됨. 게다가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동료그룹, 인플루언서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집단이기도 하고, 스스로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의 SNS를 통해 마이크로 셀러비리티를 추구하기도 함. 세대내의 소비경험과 관심사의 확산속도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시어스나 메이시스 같은 중저가 백화점들과 일반 쇼핑몰 들은 이런 니즈를 만족시키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따. 기존 리테일 브랜드들이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성향과 취향에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
- 앞으로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주목해야 할 소비자 그룹이 Z세대다. 밀레티얼 후속 세대라고 하여 '제-니얼'로 불리기도 함. 글로벌 인구구조에서 Z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중반대부터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Z세대는 흔히 말하는 90년대생 들로, 정확하게는 97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을 의미. 이들의 사회, 문좌적 특징은 90년대생을 이해하기 위한 라이프스타일 분석이나 조직경영론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될 정도로 남다르게 부각된다. 05년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와 함께 자란 핵심유저들로 유튜브 제너레이션이라는 별칭도 붙는다. X세대보다 많은 수이고 베이비부머의 3분의 2에 달함. 07년 탄생한 시대의 아이폰 이후, 스마트폰은 Z세대에게 삶을 같이한 산소같은 존재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대를 잘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함. 그들은 밀레니얼보다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고, 사회적 정의를 더 많이 고려한다. 미국의 총판, 교육기업 피어슨은 최근 '밀레니얼을 넘어: 미래세대'라는 보고서에서 Z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유튜브와 동영상 채널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위험을 쉽게 감수하며 이를 재미로 받아들인다. 또한 미래에 대비해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려고 하며 그런 이유로 교육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 80년대생, 즉 바링허우는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는 중국 사회에서 이전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성장했지만, 이전 세대들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음. 또한 바링허우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대학 등록금이 대폭 올랐고, 이들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시작할 무렵부터 회사가 집을 마련해주는 제도가 사라졌다. 또한 이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문화를 처음으로 겪은 세대이기도 함. 그렇지만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인해 부모와 양측 조부무 등으로부터 소황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특별한 대접을 받은 데다 이전 세대(류링허우)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은 탓에 씀씀이도 클 뿐더러 상향소비를 추구하여 과시적 소비, 특별함 추구, 명품구매, 충동구매 성향이 높은 편이다. 이들의 구매력이 한국 소비자 전체의 3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음. 경제관념이 전반적으로 뚜렷한 미국 Z세대와 달리 중국의 Z세대 주링허우는 바링허우보다 훨씬 더 주목해야 할 신흥 부유층으로 떠오르고 있음. 현재 중국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주링허우는 2020년까지 중국 전체소비의 40%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됨. 중국의 첫 디지털 세대로 자라난 이들은 특히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 정보의 질과 양 모두를 중시한다. 브랜드, 인플루언서, 가족, 친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어 쇼핑에 적극 이용한다. 위챗, 바이두, T몰 등 SNS 플랫폼에서 주로 생활한다. 이들의 온라인상 구매 패턴은 이전 세대들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고 쇼핑에서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액센추어 조사결과 중국의 Z세대 중 거의 40%가 당일배송을 원하고, 27%는 반나절 배송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런 특징들을 간과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한동안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다. 주링허우를 이전 세대와 비슷한 세대로 간주하고, 비슷한 전략을 썼기 때문. 결국 지금은 이들을 독립된 소비자 그룹으로 분리해서 개별 브랜딩과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SNS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왕홍같이 트렌드를 이끄는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해 SNS상에서 적극적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 키워드별 리테일 테크 적용 영역
(1) 인공지능 쇼핑 비서 : 스마트 스피커, 로봇
* 아마존 알렉사, 알렉사 키즈
* 구글 어시스턴트
* MS 코타나
* 소프트뱅크 페퍼
* 이마트 나오
(2) 신뢰와 예측을 더하는 소비 빅데이터 : 큐레이션, 예측배송, 판매예측
* 아마존 4-스타
* 아마존 온디맨드 쇼핑
* 아마존 예측 배송
* 알리바바 허마셴성의 신선식품 판매 예측
(3) 미래형 오프라인 매장과 언택트 리테일 : 무인매장, 이동식 무인매장, 인공지능 결제로봇
* 아마존 고
* 중국 모비 마트
* 오샹미닛
* F5 미래상점
* X-마트 (중국, 인도네시아)
* 세븐일레븐 스마트 편의점, 인공지능 결제 로봇 브니
(4) 더 섬세하게 연결되는 옴니채널 : 미래/로봇 레스토랑,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 고객맞춤 서비스, 오프라인 매장의 의도적 쇼룸화
* 허마셴성의 로봇 레스토랑 ROBOT.HE
* 징둥 X미래 레스토랑
* 알리바바 럭셔리 파빌리온
* 로레알 비디오 챗 서비스, 화장품 가상시연
* 록시땅의 큐빗 프로 솔루션
* 온라인 남성복 보노보스의 쇼룸이 된 오프라인 매장
(5) AR과 VR로 구현한 가상 리테일 : 상품의 가상경험, 럭셔리 브랜드 경험
* 중국 웨이싱 리빙의 가구 경험 서비스
* 이케아의 모바일 앱 이케아 플레이스
* 웨이페어의 VR을 통한 인테리어 서비스
* 나이키의 SNKRS 앱을 통한 상품경험
* 크리스찬 디올 패션소의 VR 비디오
* 경매하우스 소더비의 VR 기반 상품재현
* 상하이 스타벅스의 로스터리 AR 기반 매장 경험
* 월마트 3D 버추얼 쇼핑투어
(6) 사람이 결제수단인 캐리시르 리테일 : 모바일 결제, 안면 인식결제, VR 페이
* 알리페이
* 위챗페이
* 애플페이, 아마존페이, 페이팔
*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 아마존 전용 QR코드, 스마일코드
* 알리바바 VR페이
* 중국 얌 차이나의 스마일투페이
(7) 솔루션을 제공하는 로봇 : 고객맞춤 서비스, 퍼스널 쇼퍼
* 패션 브랜드 에리의 챗봇 킥 메신저
* 이베이의 숍봇
* 월마트의 챗봇 쇼핑 서비스 제트블랙
* 인터파크 톡집사
(8) 경쟁력을 높이는 초저가 자체 브랜드 : PB브랜드
* 알디와 리들의 PB
* 멀티티어 PB 전략의 성장 (미국 크로거, 한국 이마트)
* 이마트 PB전문점
* 월마트와 아마존의 PB 확장
(9) 더 저렴하게, 더 빠르게, 스마트 물류 : 스마트 물류센터, 드론/로봇 배송
* 10만대의 키바로봇을 투입한 아마존의 스마트 물류센터
* 아마존의 스마트 드론 배송 특허
* 중국 차오지우중의 신선식품 드론 배송
* 영국 테스코의 무인로봇 배송
* 징둥닷컴의 자동화 물류센터 '아시아 1호' 등을 통한 당일배송
* 알리바바 차이냐오 스마트 물류센터
* 한국 새벽배송, 두시간 배송
(10) 블록체인을 통한 결제와 공급망 관리 : 공급망 관리, 결제 시스템, 스마트 로열티 프로그램
* 월마트와 샘스클럽의 블록체인을 이용한 상품 이력 추적 시스템
* 오버스탁닷컴, 익스피디아, 쇼피파이 등의 지불결제 수단
* 스타벅스 가상화폐 플랫폼 백트
* 아마존 매니지드 블록체인
* 기프트 지니, 로옐라, 키비 등 블록체인 기반 로열티 프로그램
- 로봇카페, 로봇 레스토랑처럼 사람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서비스하는 방식을 언택트라 함. 미래의 오프라인 매장은 대부분 언택트 형태가 될 것이고, 그런 미래는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2018년 1월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에 오픈한 아마존고는 현재 명실상부한 언택트 리테일의 선두주자다. 오픈 당시 인공지능, 컴퓨터 비전, 머신러닝, RFID 등 첨단 기술이 조합된 미래형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타이틀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 언택트 리테일은 미국보다 중국이 훨씬 앞서 있음. 중국의 무인 편의점 시장규모는 22년까지 1조 8105억 위안에 달할 전망. 중국에서 무인매장이 급증하는 이유는 비용절감, 결제환경, 정책지원 때문.
첫째, 중국기업은 운영비를 낮추기 위해 무인매장을 선택한다. 중국에서 무인매장이 급증하는 지역은 상하이, 베이징 등 도심지역임. 임대료와 인건비가 날로 높아져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더라도 작은 면적에서 적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무인매장을 선택하는 것임
둘째, 중국에는 무인매장의 필수 요소인 무인결제가 가능한 기반이 완비되어 있다. 2017년 중국에서 발생한 결제 가운데 모바일 결제 비중 은 78.5퍼센트에 달한다. 특히 도심 지역의 모바일 집중 현상이 두드러 진다.
셋째, 중국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무인매장의 확산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오프라인 매장에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텔리전스, 스마트 물류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러한 배경을 발판 삼아 중국에는 이미 5000여 개의 무인매장이 영업 중이다. 언택트 매장의 기술 기반은 다양하다. 알리바바의 무인 편의 점 타오카페는 머신 비전 machine vision, 생체 인식, 딥 러닝 기술 등을 활 용해 운영된다. 머신 비전은 컴퓨터와 카메라를 이용해 안면과 행동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타오카페에는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매장에 입장하는 고객의 얼굴을 인식하고, QR코드 스캔으로 알리바바 계정과 연동한다. 이후 머신 비전으로 고객이 매장에서 상품을 고르는 모든 동작을 감지한다. 고객이 물건을 선택하고 매장을 나서면 안면 인 식과 RFID 기술이 구매 제품을 감지한 다음 연동된 고객 계좌로 청구서 를 보내 자동 결제를 마친다. 아직까지는 고객이 매장에 들어설 때 해당 고객을 인식하기까지 10~15초 정도 걸리지만 이런 한계는 머지않아 극복될 것임
- 아마존 고는 1호점의 성공적인 운영에 자신감을 얻고 2019년에 약 50개 매장을, 2021년까지 는 3000여 개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하지만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아마존 고 1호점은 최첨단 장비가 완비된 약 165제곱미터 넓이의 슈퍼 마켓으로, 하드웨어 비용만 무려 100만 달러가 들었다. 계획처럼 3000여 개 매장을 열려면 3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아마존 고는 기존 계획을 변경해 매장 크기와 상품 구성을 줄이고 간편식 위주의 편의점 방식으로 확산 중이다. 또한 시간에 쫓 기고 편의성이 중요한 공항 고객들을 대상으로 공항 내에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덕분에 최근 들어 수익성이 개선되었다. RBC 캐피털 마켓 애널리스트의 가장 최근 분석을 보면, 아마존 고 시애틀 본점의 경우 하루 평균 550여 명이 매장을 방문한다. 이들의 지 출 규모를 평균 10달러로 계산하면 약 150만 달러의 연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본점의 경우이고, 앞으로 오픈할 매장들의 수익 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 중국의 무인 편의점 브랜드인 빙고 박스의 경우 2016년에 론칭하고 2017년까지 매장 수를 200여 개로 늘렸다. 2018년 말까지 매장 수를 5000개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으나, 해지 점주가 늘어났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을 활용해 인건비 등 운영비를 대폭 낮출 수 는 있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하루 매출이 한화로 17만 원 선에 불과 했다. 가맹점주들의 라이선스 구입 비용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3~4년 은 운영해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 계약 기간이 3년 에 불과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계산한 점주들은 손해를 무릅쓰고 가맹을 해지했다. 빙고 박스는 새로운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업데 이트된 빙고 박스 2.0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언택트 매장이 얼핏 보기에는 비용 절감에 효율적인 것 같지 만 투자비를 고려했을 때는 오히려 적자일 수 있기 때문에 수익 계산을 꼼꼼하게 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하드웨어를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무인화 체크아웃 솔루션 스타트업인 지핑Zippin은 2018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 아마존 고와 매우 유사한, 계산대 없는 매장을 오픈했다. 아마존이 직접 매장을 여는 주체라면, 지핑 은 리테일러들이 쉽게 언택트 기술을 매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솔루션 을 제공한다. 지핑 같은 언택트 리테일 참여 업체가 많아질수록 매장당 투자비가 감소한다. 이처럼 앞으로의 무인매장, 언택트리테일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가 격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를 충족하는 새로운 혁신 중 하나로 최근에는 스마트 카트가 주목받고 있다. 2019년 1월, 미국의 인공지능 기반 신생 기업 케이퍼 Caper는 계산대 없이 소비자가 스스로 물건을 결 제할 수 있는 스마트 쇼핑카트를 개발했다. 쇼핑카트 케이퍼는 컴퓨터 비전을 탑재한 AI 기반의 스마트 쇼핑카트다. 이와 유사하게 이마트도 스타필드 하남에 있는 트레이더스 하남점에서 스마트 로봇 카트 일라이를 선보였다. 일라이는 음성 인식 기능이 있기 때문에 고객이 문의를 하면 매장 내의 상품 위치를 검색하여 고객을 해당 위치로 안내할 뿐만 아니라 결제까지 해준다. 반면 케이퍼는 결제 기능 외에도 고객이 지나 치는 코너의 세일 정보를 알려주거나 고객에게 다른 상품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시험 매장의 평가 결과 스마트 카트 덕분에 소비자의 쇼핑 규모는 18퍼센트나 늘었다고 한다. 케이퍼는 현재 두 개 매장에서 테스트 중이지만 2019년 안에 150개 매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또한 카메라와 무게를 감 지하는 센서로 한층 정교화된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케이퍼는 아마 존 고처럼 설치 비용과 유지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언택트 리테 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격 저항을 대폭 낮추는 데 큰 의의를 갖는다.
-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세 가지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첫째, 직 접 상품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공간, 둘째, 상품을 즉시 받게 하여 즉각적 필요를 충족해주는 공간, 셋째, 리테일러와 직접 소통이 가능한 실재하 는 공간이다. 옴니채널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쇼룸 공간뿐만 아 니라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픽업하거나 반품하는 장소로도 기능이 확대되었다.
옴니채널의 확장이 결국 리테일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소비자가 리테일러에게 기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졌고,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인내심은 줄어들었고, 온·오프 라인과 모바일을 넘나들며 최적의 가격뿐 아니라 최고의 경험을 요구 하게 되었다.
- 캐시리스 사회는 리테일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현금이 통용되던 세상에서는 리테일러가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모바일 결제가 확산되 면서 리테일러들은 온·오프라인에서 고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보 할 수 있게 됐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얼마나 샀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데이터는 리테일러가 효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해나가는 데 매우 유용한 자산이다. 이를 통해 리테일러들은 상품 확보, 물류, 매 가 우영 판매, 재고 관리, 배송의 전 단계에서 최적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광범위한 고객 데이터가 쌓이면서 고객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결제의 주 이용층은 밀레니얼 세대와 7세대로, 이들은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미래 고객이다. 머천다이저 merchandiser(MD)는 이들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프로모션을 진행 해 고객 경험과 만족도를 높이고, 이는 고객 충성도의 향상으로 이어진 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부가 서비스를 다변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알리페이는 고객의 사용 패턴을 점수화해서 알리페이 금융 대출에도 적용할 예정이다.한편 텐센트처럼 결제 시스템에서 더 나아가 상거래 플랫폼을 진화 시키는 경우도 있다. 텐센트는 자사의 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와 SNS 메신저인 위챗을 결합하여, 사용자가 위챗에서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을 뿐만 아니라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쇼핑 기능을 추가했다. 또한 택시 호출, 레스토랑 예약, 비행기표 구매 등 일상의 거의 모든 구매가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물건뿐만 아니라 생활 전 반에 필요한 서비스까지 구매 가능한 상거래 플랫폼을 만들면 고객을 훨씬 넓은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이마트의 경우 초저가 브랜드인 노브랜드 No Brand, 일반 브랜드인 브랜드, 프리미엄 브랜드인 피코크Peacock 등으로 멀티티어 PB 전략을 전개한다. 특히 이마트 노브랜드는 제품의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불필 요한 모든 요소를 제거한다. 이마트 노브랜드는 2015년에 기존 경쟁 제 품보다 가격이 50퍼센트 이상 저렴한 물티슈, 감자칩 등 아홉 개 제품으 로 시작해, 물티슈의 경우 2년 만에 전체 물티슈 매출의 3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브랜드는 3년 만에 1000여 개 이상의 아이템으로 확대됐고 감자칩, 우유, 생수, 쌀밥, 물티슈 등이 효자 상품으로 자리 잡았 다. 첫해 230억 원이던 매출이 2017년에는 2900억 원으로 1161퍼센트 나 증가해 이마트 실적 향상의 1등 공신이 됐다.
- 스마트 스피커의 확산으로 소비자의 브랜드 선호 경향은 약화되 고, 음성비서가 쇼핑 관련 의사결정에서 교통경찰의 역할을 해주는 방 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아마존 공화국에서 제조사와 도매업자들이 생 존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음성비서의 추천 브랜드에 들어가야 한다. 이 미 많은 기업이 아마존에서 매출을 높이고 구글 검색 결과의 상위에 노 출되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하고 있지만, 보이스 쇼핑 환경에서는 쇼핑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개별 브 랜드의 파워는 줄어들고, 고객 충성도를 확보·유지 혹은 증가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아마존스 초이스 배지를 달기 위한 브랜드 의 노력과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다.
- 인공지능 등의 첨단 기술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 이다. 기술 진화는 홍수처럼 지속될 것이다. 단기적인 목적으로, 또는 트렌드라고 무작정 비즈니스에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경쟁자들과 차별화를 꾀할 수도 없고, 투자 대비 효과를 가지기도 어려운, 무모한 투자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기술은 비즈니스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높 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 마케팅은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혁 신적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를 이해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기술은 그 과정의 효율성을 높여, 소비자의 니즈에 민첩하게 대응하게 하고,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위기의 시대에 기회를 잡기 위 한 보편의 원칙이다.
- 지금까지의 리테일과 앞으로의 리테일
(1) 상품
- 지금까지
* NB중심, 초저가 리테일러들의 PB 중심
* 패키징의 중요성이 적음
* 고객맞춤형 상품 제공이 한정되어 있음
- 앞으로의
* PB 포트폴리오의 적극적 확대(PB전문점, 멀티티어PB, 브랜드 컬래보레이션 중심의 PB)
* 패키징의 중요성 증가
* 고객맞춤형 온디맨드 상품의 증가
* 경험, 체험, 고객가치 자체가 상품화
(2) 가격
- 지금까지
* NB에 기반한 가격정책
* EDLP같은 저가 이미지 중요
* 초저가 리테일의 중요성은 미미
- 앞으로의
* 수직적 통합에 기반한 초저가 전략 또는 초고가 전략의 중요성 증가
* 초저가와 초고가로 양극화
* 실시간 가격 알고리즘 증가
* 가격에서 비용으로 변화
* 인공지능을 이용한 개인맞춤형 가격전략 증가
(3) 프로모션
- 지금까지
* 오프라인과 온라인인 구분된 프로모션은 가격중심
* 글자, 사진에 한정된 고객 커뮤니케이션
* 프로모션 개발과 실제진행의 시간차가 큼
- 앞으로의
*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의 경계가 허물어진 환경에서 고객과의 소통에 기반한 고객맞춤 프로모션
* 영상 중심의 프로모션, 챗봇을 통한 1차 고객 커뮤니케이션
* 알리우드 같은 로봇이 동영상으로 상품 정보를 실시간 제공
(4) 입지
- 지금까지
* 제품이 전달되는 매장위치, 즉 로케이션이 매출 승패를 좌우
- 앞으로의
* 물리적 매장위치 중요성 감소
* 입지의 의미가 온라인, 오프라인, 버추얼까지 포함하며 융합, 확대됨
* 편의성이 핵심
* 디지털 시대에는 물리적 입지 안에서 만남과 교감이 함께 어우러져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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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달러 없는 세계

경제 2020. 2. 20. 08:32

- 1차대전까지 국제금융의 중심지는 런던. 17세기말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자금 조달을 위해 세워진 영란은행은 약 2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영국의 무역금융에 있어 신용의 최종 대부자 역할 수행이라는 다른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음. 그리고, 그 중앙은행 역할의 중심에는 프라이빗 뱅크의 대표자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었다. 로스차일드에 관한 자세한 서술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니, 두 가지 측면에서 필요한 요점만 살펴보자.
(1)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럽을 제패했던 시기는 유럽 대륙의 전쟁시기였음. 유럽은 영란은행이 세워진 1694년부터 워털루 전투가 있었던 1815년까지의 약 120년 기간중 약 60년은 전쟁을, 나머지 60년은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음. 로스차일드가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각국 왕실에 접근해 프라이빗 뱅크의 자금을 채권인수 형태로 공급해주고 다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여 자금을 회수한 후, 전쟁이 끝난 후에 여러 방식으로 인수한 채권을 되파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금융권력을 장악.
(2) 로스차일드 가문이 런던, 파리, 빈, 나폴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대륙 산업의 중심지에 어음인수 은행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증가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전의 시대에 비해 무역규모가 커졌고 신용거래 규모 역시 이에 비례해 커졌다는 점에서 유럽 시장 전역을 아우르는 어음인수 은행의 운영은 시대의 흐름에 부합했음. 이전까지의 은행이 왕실과 귀족들의 자금을 관리하는 규모에 불과했다면, 무역이 발달하고 민간의 자본이 축적되면서 신용공급자로서의 은행 필요성이 커졌던 것
- 위 두가지 측면의 결과로 로스차일드하는 유럽 왕가들의 자금을 관리ㅎ주면서 쌓인 신용을 바탕으로 유럽대륙의 중심지를 아우르는 규모로 상거래 어음을 인수하고 수금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운영하면서, 각국의 전쟁자금에 대한 신용을 공급할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15년 워털루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이 전비조달을 위해 발행한 국채의 약 60%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후 아예 영란은행 주식을 대부분 사들임. 19세기 초반에 드디어 그들은 영란은행의 채권발행과 인수를 주도하는 중앙은행의 실질적 주인이 됨
- 미국은 연방 국가라는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중앙정부, 즉 연방정부의 권한이 커지는 것을 각 주 정부가 견 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남북전쟁 이후 1900년대 초까지 경제에 있 어서 독점의 규제나 중앙은행 같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경기의 변동에 따라 대출이 급증했다가 경기가 하강하면 급속히 유동성이 부족해 지면서 금융위기가 닥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전의 100년의 기간 동안 14번의 금융위기를 겪었는데, 평균적으로 7년에 한 번씩 위기를 겪었다는 얘기다. 사실 이것이 바로 고도로 집중된 대형 자본이 탄 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위기를 조장하고 위기에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부풀려 탄생한 것이 당시 미국의 신흥 재벌들로 지금도 잘 알려진 모건, 카네기, 록펠러 등이었던 것이다.
- 1907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터지고 급속한 유동성 고갈의 위기 상황이 되 어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닥치자, 신흥 재벌이었던 존 모건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최종 신용 공여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정부와 독점 재벌 모두에게 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 규모를 키울 만큼 키운 미국의 독점 자본들은 서서히 해외 진출을 위해 중앙은행과 같은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대서양 너머 영국은 민간은행들이 상업어음을 거래할 수 있는 충분한 시장-투자자들이 있었고, 그 투자자들 덕분에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해지면 어음을 할인해서 팔아 자금을 마 련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어음을 거래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의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그때까지는 위기를 통해 약육강식의 논리, 즉 독점 자본을 일굴 수 있었다-해외의 투자자들이 자신 들이 축적한 달러 자산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의 입장에서는 너무 거대해진 독점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정부의 영향력하에 있는 중앙은행이라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 국가의 특성상 독점 자본이 좌지우지하는 경제에 중앙정부가 간섭을 하려고 하는 것조차 주 정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달성되기 어려운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 1915년이 되면서 전쟁이 길어질 듯한 기미를 보이자 국채를 발행하고 지폐를 찍어서 전비를 감당하고 있던 영국 금융시장에서 금 대비 파운드의 가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쟁이 1916년까지 이어지자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제공한 달러 신용에 점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1918년 전쟁이 끝 나고 나자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30% 이상 평가 절하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런던에서 파운드로 무역 결제를 해왔던 제3국, 즉 남미와 아시아의 무역 업자들은 이제 금에 대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미국 달러가 점점 매력적으 로 보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편 미국이 주로 연합국을 지원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전비 조달에서 한계에 봉착한 동맹국은 결국 패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전의 전쟁과는 달 리 수십 년 예산을 단기간에 사용할 정도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 이 세 계대전은 패전국만이 아니라 승전국에서도 기존의 질서를 바꿔 놓았다. 그 들은 모두 미국과 달러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것을 바라보 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질서의 중요한 의미는 바로 사적 금융권력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는 것이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19세기 유럽 대륙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대였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빈, 나폴리에 다섯 아들이 은행 지점을 설립하여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 한편으로는 서로 돕는 방식으로 유럽 각국에 가문의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했던 이 가문의 방식을 칼 폴라니는 고도금융(Haute Finance / High Finance)이라고 표현했다. 가장 강력한 정부인 영국과 프랑스의 정부조차 로스차일드의 유럽 대륙 금융 네트워크의 독립성을 해칠 수 없고, 어떤 특정 정부에도 종속되는 일없이 모든 정부와 접촉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 고도금융의 특징이었다. 어떤나라의 중앙은행도 이것의 독자성을 해칠 수는 없었으며 동시에 모든 중앙은행은 이것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모건과 록펠러가 연방준비제도의 계획을 입안할 때 로스차일드의 고도금융을 모델로 했던 것임은 명백했다. 즉, 중앙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연방준비은행의 독자성을 해칠 수 없는 형태 말이다. 결과적으로 연방준비제도법은 비록 동상이몽이었을망정 모건과 록펠러가 원했던 바가 충실히 반영된 결과였다는 말이다.
- 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들이 연합국에 패배한 배경에는 전비 조달능력의 차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영국에서 연합국으로 약 100억 달러에 달 하는 자금이 이전된 사실도 포함되었다. 이미 연합국의 전쟁 수행 능력은미국의 신용에 과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고, 전시 재정의 핵심 중 개인은 모건 주니어-잭 모건 였다.길어지는 전쟁으로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긴 영국 정부는 1915년 초 J.P. 모건을 전시 자금 조달 및 무기매입 대리인으로 지정했고, 프랑스도 곧 그 뒤를 따랐다. 잭 모건은 남북전쟁 때부터 무기공급 사업을 같이했던 미국 최대의 화학독점기업 듀퐁과 손잡고 미국 전역에 공장을 세워 화약류를 대량생산해 유럽에 공급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전시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 연합군에 자금을 빌려주고 높은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한편, 이 기 간 중 자신이 조성한 자금으로 연합국의 무기매입 대리인 자격으로 동업자 인 듀퐁 및 계열사였던 US 스틸 등으로부터 화약과 대포 등 각종 군수물자를 독점가격으로 고가에 사들여 연합국에 비싸게 공급하는 등의 방법으로전쟁 특수를 누렸다. 이는 이전에 유럽 대륙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했던 일을 파운드에서 달러로 통화만 바꿔서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 결과적으로 1차 세계대전이 미국과 유럽의 경제에 미친 중요한 영향은 두가지였다. 유럽의 부가 미국으로 이전되면서 유럽의 가문 형태의 사적 금융 권력이 저물고 미국의 합자회사 형태의 사적 금융권력이 그것을 이어받았다는 것과 이전까지 세계 무역금융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달러가 공식적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는 것이 바로 그 두 가지였다.
- 1942년,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니 콜라스 스피크만(Nicholas J. Spykman)은 『세계 정치에서 미국의 전략(Americas Strategy in World Politics)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미국이 고립주의를 고 집한다면 반드시 실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는데, 당시 CFR 에서 주도하던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연구의 영토분과 위원장이었던 보우먼 (Isaiah Bowman)이 이 책에 대해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들은 향후 20년간 이 책을 1년에 한 번 이상 읽어야 한다”고 높게 평가한 이 유는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피크만의 사망 1년 후인 1944년 그의 이론을 통합한 책 『평화의 지리학(The Geography of Peace)』이 출간되는데, 여기서 그는 마한의 해양세력론과 맥킨더의 심장부 이론을 종합 하여 미국의 향후 전략적 방향성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 그는 2차 대전 중 미국이 연간 수천 대의 전투기와 전함을 생산하고 운용한 것을 분석한 결과, 전후의 세계는 해양과 항공 수송체계가 맥킨더가 상상했던 것보다 비약적으로 발달할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심장 부의 중요성 감소를 의미한다는 것도 말이다. 즉, 해운의 비용효율이 맥킨 더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급격하게 높아지기 때문에 해양세력의 자원과 시장 확보는 맥킨더가 지적한 것만큼 대륙세력보다 불리하지 않다 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도 맥킨더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떨어져 있는 섬으로 유라시아의 자원과 인구는 미국의 그것을 상회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도 맥킨더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 에서 떨어져 있는 섬으로 유라시아의 자원과 인구는 미국의 그것을 상회 며, 따라서 유럽이나 아시아 중 한 세력에 의한 유라시아 대륙의 지배는 경 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조건을 미국에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심 장부-구소련-와 주변 해양세력-미국-의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역을 주 변지역(Rimland)이라고 칭하고, 이들 주변지역이 심장부 (Heartland)가 해운의 중 요한 부동항으로 접근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가 제시한 결론은 이 지역(Rimland)에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여 대륙세력의 해양으로의 진출을 막고, 해양세력이 우위에 있는 해운과 항공운송 능력을 활용해 자원과 시장을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향후 미국의 이익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결론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주변지역(Rimland)이 향후 오랜 기간 동 안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각축의 공간으로 작동할 것이며, 이 지역을 통 제하는 자가 결국 세계를 통제할 것이라는 것 말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의 전략가들이 지정학적으로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전략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겼다는 것은 실제 역사의 진행 과정을 통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라도 원조를 보낼 것이 라는 백지 수표를 발행하겠다는 선언이 트루먼 독트린이라면, 마셜플랜은 서 유럽을 수취인으로 그 수표에 금액을 써넣은 것이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육군참모총장으로 1차,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해 유럽의 상황에 밝았던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조지 마셜은 경제적으로 강하고 안정된 유럽이 곧 미국의이익에도 부합한다면서 유럽에 대한 원조 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미국은 생산수단이 거의 파괴된 유럽에 수입 대비 거의 7배에 달하는수출을 하고 있었다. 유럽은 당연히 수입 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달러가 턱없이 부족했고, 원조된 달러는 어차피 미국의 상품을 수입하는데 사용될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를 공급하지 않으면 미국의 수출 시장 역시 고갈될 것이고, 그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기 침체와 공황의 기억을 상기시킬 것이었다. 결국 1948년 4월 우여곡절 끝에 영국·프랑스·이탈리아·서독 · 벨기에 등 서유럽 총 16개국에 원조가 집행됐는데, 대부분의 원조는 미국으로부터의 직접 보조금 형태였다.
- 봉쇄정책의 마지막 단계는 직접적 재군비 정책으로 주변지역 (Pimlant) 전 역에 걸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 단계의 시작이 바로 1949년 4월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그리고 여타 서유럽 8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설립한 것이었다. 마셜플랜을 시작한 미국이, 1940년대 말 전체에 걸쳐 계속되는 달러 부족이 유럽을 미국의 수출 시장으로 삼으려는 미국의 목표에 심각한 장애물임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화폐 경 제적 측면은 그 자체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달러 유동성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 앞에서 마셜플랜이나 다른 원조 계획은 언 발 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다. 훨씬 포괄적으로 세계에 달러 유동성을 순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이미 CFR을 통해 미국의 주요 요직을 장악하고 확실한 이윤을 보장하는 군수 산업을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싶어 하던 미국의 대기업 집단의 존재, 전쟁이 끝나고 군수물자 생산이 감소하면서 다시 실업률이 상승하고 경제가 불황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국민들,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의 민주정부에 대한 위협이라는 세 가지 요인은 이 상황에서 세계역사상 평화 시에 가장 대대적으로 무장을 추진하는 정책을 가능하게 만든 삼박자였다. 미국 의회는 1949년 당시만 해도 국방예산의 대대적 증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봉쇄정책의 최초 입안자인 조지 케넌은 유럽에서의 소련 봉쇄는 유럽의 국가들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마셜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이 된 딘 애치슨(Dean Acheson)-CFR 회원이며 군수업체인 듀퐁의 고문 변호사였던과 국무부 정책실장 폴 니츠(Paul Nitze)-록펠러 가문 산하기업인 스텐다드 오일 집안의 사위는 국방예산의 대대적 증액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1949년 9월 애치슨과 니츠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일이 일 어났다. 미국의 핵무기 독검을 깨트린 소련의 핵실험 성공과 그 며칠 후 중 국에서 이뤄진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이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 를 물리치고 중국 본토를 장악한 일이었다. 이들은 이 일들을 계기로 미국이 위기에 처했음을 강조하고, 국방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건의하는 NSC68 (National Security Council Report 68)'로 알려진 국가 안보정책 재검토 보고서를
트루먼에게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보고서에서 건의한 서독의 NATO 가입과 미군의 유럽 주둔, 국방예산의 증액이 이루어지게 된 직접적 계기는 다름 아닌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훗날 애치슨은 “한국이 와서 우리를 구원해 주었다”고 밝혔다. 미국으로서는 하늘에서 연이어 동아 줄이 내려온 셈이었다. 사실 그들이 NSC-68에서 제안한 정책 노선, 즉 미국과 유럽의 대대적 재무장은 미국 경제 정책의 주요 문제에 대해 뛰어난 해결책을 제공했다. 한국전쟁 중, 그리고 그 후의 대대적인 재무장이 전후 세계 경제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빗장이 풀리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일본이 중국과 소련의 영향 력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1951년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같은 1951년 호주, 뉴질랜드와는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을 체결했고, 1954년엔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를 만들어 태국, 필리핀과 반공 군사동맹을 맺어 미국의 동맹국 범위에 포함시켰다. 당시 동남아시아에는 유럽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투쟁하던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세력이 있었는데, 소련의 자금 지원을 받은 공산당이 이들을 이끄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군사, 경제적 지원을 통해 그 지역에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지지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최종적인 합의의 군사적 형태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되고, 미국의 동맹국은 미국의 군사 활동에 필요한 기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 재건이 시급했던 동맹국에 미국이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군사적인 보호를 제공할 테니, 동맹국은 빠르게 경제를 재건해 함께 공산주의 세력이 넘볼 수 없는 안정된 세계를 건설하자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실제 목적이 무엇인지,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바뀐 것은 아니었을지는 역사가 평가하는 것을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쨌든 미국은 당시 이 체제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미국이라는 큰 시장도 제공할 것이고, 그 시장에 팔 수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산업화와 경제 재건에 필요 한 달러 자금도 지원할 것이고, 거기에 더해 다른 동맹국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용을 부담하여 공산주의 세력이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적 보호 활동까지 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유럽의 연합국은 말할 것도 없고, 패전국이었던 서독과 일본은 두 팔을 벌려 환영해도 모자랄 제안이었다. 제국주의 전쟁의 원인이 결국 잉여생산물을 판매할 시장과 생산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원 확보 때문이었는데 미국이 판매 시장도, 자원도 모두 확보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보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과 같은 군비 경쟁을 하지 말라는 조건이 붙 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할 필요 자체 가 없었다는 점에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미국의 대기업, 유럽과 아시아의 정부 모두 윈-윈 하는 상황이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런 체제의 성립은 미국이 유라시아 대륙 주변부의 주요 조임목(Choke Point)'에서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석유를 포함한 해운의 안전을 단독으로 책임지는 상황이 수십 년간, 현재까지 지속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마한, 맥킨더, 스피크만의 지정학적 이론의 결정판이 현실에 적용된 것이었다.
- 1950년부터 1971년까지의 약 20년간의 기간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태에 서유럽과 아시아 국가 일부가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말 이 좋아 적응이지 사실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더듬어 가보면서 갈 수 있는 길인지,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가야 하는지 불안한 상태에서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시기였다.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는 것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비록 미국이 주도하긴 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서유럽, 일본 등의 국가들에 있어 사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도 않았던 기간이었다.
- 1950년부터 1971년까지 세계는 자본주의의 황금기(Golden Age)를맞이했다. 비록 미국과 서유럽, 일본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유례없는 장기 호황이었다. 이 시기가 자본주의의 황금기인 이유는 특히 경제 성장이 노동 소득의 높은 분배로 이어져 인류 역사상 최초로 소비력이 있는 중산층의 형성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71년 미국의 중산층이 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달했는데 이는 대공황 이전대비로는 거의 2배 증가한 것 이었으며, 2015년 대비로도 약 11%가 더 높은 것이었다. 하지만,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군산복합 대기업과 미 국의 CFR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계층이 고안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황금기를 누리는 동안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수혜를 입은 중산층은 증가하고, 그 시스템의 고안에 깊이 관여한 군산복합 대기업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오히려 자본 이동을 통제받고 높은 세율 등 악조건을 그대 로 감수하고 있었다는 것이 뭔가 앞뒤가 안 맞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들은 그 시스템의 A to Z를 다 이해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 그렇다. 사실 그들은 이전 시대와는 달라진 환경에 맞춰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라는 겉으로 드러난 체제의 그림자 속에서 충분한 이익을 누리면서 자 본을 키우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 동안 군산복 합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 자본이 충분한 이익을 통해 잉여 자본을 축 적할 수 있었던 구조적 이유가 크게 네 가지나 있었다.
첫째는 풍부한 저임금 노동자의 공급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 에 동원된 군인들이 전역하면서 저임금의 노동력이 풍부하게 공급되었고, 산업 생산력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와 고임금을 찾아 농 촌을 떠난 농민들이 도시와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대기업들은 충분한 저임 금 노동자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기술 혁신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2차 대전 동안 각종 군수물자를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은 대기업들 은 이미 기술력과 생산성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브 레튼우즈 체제에서 유동성 공급을 위해 군수 산업에 대한 지출이 증가하 자 그들의 기술 혁신을 더 가속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1970년까지 약 20년의 기간 동안 미국의 기술 개발 예산의 절반이 군수 산업과 우주개발산업에 투여되었는데, 이는 산업 전 분야의 기술 혁신을 자극해 내구소비재와 중화학공업의 기술 혁신으로 이어졌다. 냉장고, 세탁 기, TV 등의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 수송기기, 그리고 철강 산업과 석유화학 제품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급속한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
세 번째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론에 기반한 중산층의 확대다. 높은 세 율, 각종 연금제도의 정착 등 사회 안전망의 확보와 함께 성장한 두터운 중 산층 덕분에 민간 소비가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1960년대 말이 되자 전체 가구의 약 87%가 TV를 소유했고, 75%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 중산층은 베이비붐 세대를 낳았고 이렇게 형성된 가족은 새로운 소비문화 를 만들어 냈다. 1955년 7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는 어린이와 가족을타깃으로 한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다.
네 번째는 이 기간 동안 꾸준하게 유지된 낮은 에너지 가격이다.
- 1950년대 말 미국 의회는 메이저 회사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들 이는 이익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주는 대신, 그 면제분만큼을 사우디아라 비아에 추가 이익금으로 지불하도록 한 협정을 통과시켰다. 사우디의 이익 은 증가하고, 메이저 회사들의 이익은 보존해 주면서 미국의 세수는 감소하 게 되는 이 협정이 통과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 정부가 산유국 정부와 메이저 석유 회사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보조 금으로 서유럽과 일본은 중동산 석유를 저가에 수입해 산업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중동 국가들과 메이저 석유 회사는 달러를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 었다. 이런 경향은 대체로 1960년대 말까지 유지된다. 국민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은 소련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오랜 세 월이 지난 지금 그것이 진실이었는지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국민들만이 아 니라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행정부의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을 가능 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 브레튼우즈 체제가 근본적으로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로 시작했던 이 유는 누차 언급했듯이 2차 대전 직후가 무역불균형을 고민할 상황이 아니 었기 때문이다. 오직 미국만이 시장이 될 수 있었고, 오직 미국만이 자본 을 공급할 능력이 있었다. 여타 국가들은 일단 원조를 받아 재건을 해야 그 다음에 무역흑자가 나든 말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년도 되기 전에 이미 무역불균형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이 계속해서 과도한 양의 달러를 공급하자 결국 1960년대에 들어서 면서 미국의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물가가 올라가자 환율이 고 정되어 있는 서독, 일본과 같은 수출국의 물건들은 그 덕분에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이는 수출국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의 동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환율의 고정이라는 요인이 수출국들에 인플레이션을 전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환율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면서 달러가 유입되고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해 국내 금리는 상승하고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은 하락해야 했는데, 고정환율이 그 메커니즘의 작동을 막았던 것이다. 이렇게 환율을 고정하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이 나서서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고 자국 화폐를 발행하면 국내 물가가 상승하여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수입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불태화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이는 국고에서 불필요한 이자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래도 저래도, 미국은 미국대로, 수출국은 수출국대로 불만이 쌓이는 상황이었다.
- 미국은 오랜 기간 전 세계에 과도한 달러 유동성을 공급했고, 그 결과 나타날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서유럽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은 국내 물가 상승을 막을 수 없었고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달러 유동성 공급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서유럽과 일본은 미국이 공급한 달러 유동성에 기대어 산업을 재건하고 미국 시장에 수출함으로써 경제를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의 수입해야 했지만 달러 유동성과 미국이라는 수출 시장을 대체할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닉슨 행정부의 선택은 각자도생'이었다.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 당신들의 문제야” 라는 재무장관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달러 유동 성 공급은 축소하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물가를 통제하고 수입을 억제하겠다는 것이 닉슨 행정부의 선택이었다. 서유럽과 일본이 이런 결정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서유럽(서독), 일본의 삼자는 달러 유동성의 공급, 미국으로의 수출은 유 지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입은 줄일 필요가 있었다. 반면 미국은 국내 물가의 안정이 달성되어야 달러 유동성의 공급과 수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의 수출은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미국 내 물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하는 달러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지 않을 방법이 필요했다. 마법이 필요했다. 마법을 찾지 못한 닉슨은 결국물러났다. 1973년 삼각위원회를 설립한 록펠러와 브레진스키는 닉슨 행정부의 국무 장관이던 헨리 키신저, 1976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카터를 삼각위원회 창립 멤버로 참여시켰다. 그리고, 1973년 10월 패러다임의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4차 중동전쟁 이 발발했다. 10월 12일 닉슨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결정하자 이 에 반발한 중동 국가들은 10월 16일 유가를 17% 인상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10월 19일 닉슨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22억 달러의 긴급 구호자금 지원 을 의회에 요구하자 이에 반발한 아랍 국가들은 한 발 더 나가 석유 수출 금지 조치(Oil Embargo)를 취했다. 전쟁 시작 전 배럴 당 3달러 선이던 유가는 단 3개월 사이 11달러를 넘었고 1974년 봄이 되어서는 12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 전쟁은 삼각위원회가 필요로 했던 한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즉각 제공했다. 유가가 수개월 사이에 4배나 폭등하자 서유럽 각국의 달러 보유 고가 산유국으로 급격하게 흡수되면서 고갈된 것이다. 유럽은 필요한 원유 를 수입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했다. 비싸진 유가를 감당하기 위해 달러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높아졌다. 금과 결별하면서 폭락이 예상되었던 달러에 회생의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큰 그림이 그려졌다. 이후의 결과를 고려해 봤을 때 그 큰 그림이 그려졌다. 이후의 결과를 고려해 봤을 때 그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삼각위원회가 중심에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했다. 그 그 림은 대략 이렇다. 미국은 계속해서 서유럽과 일본에 대해 수출 시장 역할 을 유지하고, 달러는 서유럽과 일본을 거쳐 원유 수출국으로 유입된다. 원 유 수출국에 달러가 쌓이면 그들이 인플레이션 수입국이 되므로 이는 다시 원유 가격의 상승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원유 수출국이 달러를 다시 역외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원유 수출 국이 만족할 만한 잉여 달러의 투자 방법을 제공해 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러면 원유 가격의 안정, 달러 유동성의 공급, 서유럽과 일본의 수출과 미국의 수입이 모두 달성되는 만족스러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다. 1974년 삼각위원회가 그린 이런 그림을 바탕으로 미국은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그해 6월 키신저는 사우디 를 상대로 양국 간 경제와 군사분야의 광범위한 협력에 대한 동의를 이끌 어 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닉슨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결국 1975년 석유의 수출 대금은 달러로만 받는 대신 미국이 무기와 안보, 인프 라 건설 등을 제공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합의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OPEC이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만으로 받기로 하게 된 것이다. 이를 키신저는 페트로달러 재활용(Petrodollar Recycling)이라고 불렀다.
- 금융위기 즈음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쑹홍빙, 윌리엄 엥달의 책들은 '페트로달러라는 말이 대중들에게 널리 익숙해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핵심적인 논리는 이렇다.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있을 무렵 사우디가 석유 수출의 결제를 달러만으로 하기로 합의하는 대신 미국은 사우디에 무기를 제공수출하고 안보를 보장해 주기로 했다. 이 과정은 미국이 패권을 추구하기 위 한 음모의 일환이고 이를 설계하고 추진한 것이 데이비드 록펠러와 헨리 키신저를 중심으로 한 삼각위원회, 빌더버그 회의의 세력들이라는 것이다. 앞장을 모두 읽었다면 이런 음모론적 사건의 구성이 사실 상상과 사실이 취약한 조합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닉슨이 사우디의 국왕과 1975년 조약을 맺을 당시에는 이란과 이라크가 사우디보다 더 친미 성향 국가였다는 점, 닉슨은 삼각위원회 입장에서는 제 거하고 싶은 대상이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은 그들에게 한창 공격당하고 있었다는 점, 정작 사우디아라비아가 스윙프로듀서 역할을 하 게 된 것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미국과 단교하고 이라그와 전쟁을 한 1980년대에 들어서라는 점 등의 사실만으로도 모두 위의 음모론이 제시하 는 가설을 반박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라는 점 등의 사실만으로도 모두 위의 음모론이 제시하 는 가설을 반박할 수 있다. | 이런 정황 외에 유로화 출범의 과정만으로도 음모론이 얼마나 허황된 것 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 있기 1년 전 인 1970년 이미 유럽에서는 유럽의 단일 통화를 출범시키기 위한 베르너보 고서(Werner Report가 만들어졌다. 달러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의 단일 통화 에 대한 구상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상승하며 달러가 다시 신뢰를 잃고 금값이 급등하던 1979년에는 유럽통화체제(European Monetary System)가 출범했다. 이것이 말해 주는 바는 독일(서독), 프랑스 등 삼각위원회의 서유럽 회원들이 결코 자발적으로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의 구축에 참여했을 리 없다는 점이다. 유로화는 달러의 대항마란 말이다!
- 레이건 시대는 사실상 금에 고정되지 않은 불환지폐, 즉 화폐를 발행하 는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화폐인 신용화폐(Fiat Currency) 시대가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다. 항상 처음이 그렇듯이 레이건의 재임기간은 결코 순탄할 수 없었다. 물가와 실업률이 잡힌 것은 실제 임기 후반이나 되어서였고, 복지 를 축소하고 법인세를 낮추면서 재정은 확장하는 것은 정적들의 공격대상 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마침 이를 돌파하기 위한 훌륭한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소련이었다. 소련의 핵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적자 재정을 감수할만한 그럴듯한 이유 가 될 수 있었고, 레이건은 1983년 3월 소위 스타워즈 계획을 발표했다. 요지는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우주 공간 또는 대륙의 상공에서 요격하는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미사일, 레이저, 인공위성 등 첨단 우주 장비를 개발이 필요한 계획에 군수 산업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국방예산은 다시 한번 급격히 증대되었고 이에 맞춰 본원통화도 술술 풀려나갔다. | 신용화폐를 찍어 내야 할 그럴듯한 이유와 방법은 갖추었지만 이렇게 찍 어 낸 화폐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게 만들 방법도 역시 필요했다. 인 플레이션을 수출할 수 없다면 화폐 가치의 급변동이 나타나고 더 이상 화폐 공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브레튼우즈 체제 동안 인플레이 션을 수입했던 유럽과 일본은 삼각위원회를 통해 함께 인플레이션을 수출할 곳을 찾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각국 정부의 지원하에 인 플레이션을 수출할 곳을 찾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닐 민간 거간꾼 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었다. 이 사기 진작의 방법이 바로 감세와 규제철폐라는 공급주의 경제였다. 민 간 거간꾼들은 인플레이션을 수출할만한 인구가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 고 세계 방방곡곡 달러를 침투시켰다. 신세계를 개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개척이 만만치 않을 경우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면, 정부는 주저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보탰다. 브레튼우즈 체제 동안은 국가의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가 있었지만, 이제 공산권을 제외하면 어느 곳이라도 화수 분에서 막 꺼낸 달러를 아무런 제한 없이 투입할 수 있었다. 화수분 경제와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화수분 경제는 애초에 돈을 찍어 내지 않으면 어떤 혼란이 닥칠지 모르던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안이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시 작될 때부터 이어진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30여 년간 지속된
방향을 더 확대하는 것에 해당했다. 마치 정지하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자 전거 타기와 같이 끊임없이 돈을 찍어 내서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무게로 붕괴될, 샘솟는 지하수와 같아서 어딘가로 계속 흘려보내지 않으면 스 스로를 서서히 물에 잠기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시작한 것이었다. 여 기서 통화주의는 화수분에서 돈을 꺼내는 속도를 관리하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했고, 규제철폐와 금리인하는 찍어 낸 돈이 흘러갈 곳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 수익률 곡선의 역전이 일어났다가 급격한 정상화(Steepening)가 일어난 사례가 1989년, 2000년, 2006년 이렇게 세 차례 있었다. 그런데 위의 그림을 보면 스티프닝(Steepening)에 대한 재밌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수익률 곡선의 역전 후 일어난 스티프닝은 모두 장단기 금리가 함께 하락하면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스티프닝이 일어날 때는 단기 금리뿐만 아니라 장기 금리 역시 하락했다는 것이다. 수익률 곡선이 평탄화되는 현상은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한다고 했다. 돈이 너무 많아서 빌리기가 너무 쉽거나 아니면 빌려봤자 수익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거나. 그런데, 그린스펀은 평탄화나 역전이 나타날 때마 다 어김없이 금리를 인하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연 침체된 경기를 살린 행위였냐는 것이다. 경기가 살아나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수익 이 크다고 기대할 만한 프로젝트에 자금이 공급되면서 금리가 높은 장기 채권에도 수요가 생긴다. 그런데, 이제까지 스티프닝이라고 불렀던 현상들은 모 두 인위적으로 단기 쪽 수요의 증가를 장기쪽 수요의 증가보다 더 크게 만들 어 생긴 현상이었다.
- 은행들은 예금액이 증가하거나 자본금이 증가하지 않는 한 대출 한도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신용 부도스왑(CDS)이라는 마법의 도구는 은행들이 같은 대출한도 내에서 기업이나 정부와 같은 자금 수요자들에게 훨씬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었다. 시장에 훨씬 많은 채권이 공급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린스펀의 미소가 보이는가? CDS는 보호매수자 입장에서는 보험과 흡사한 구조이지만 신용 위험의 회피 대상이 되는 대출채권에 해당하는 기초 자산을 직접 인수하지 않고도 위험만 인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험과는 구분되었다. 그렇다고 대출이 나 채권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적용할 수 있는 법의 테 두리가 모호했다. 기초 자산을 직접 인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레버리지 효과는 컸고, 유동성이 낮은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할 경우에도 CDS 자체 의 유동성은 컸기 때문에 채권 시장과 투자은행에는 신천지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갑자기 오랜 친구라며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모기지 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 증권은 시장에등장했고, 1980년대에는 다시 이들 유동화 증권을 시장에서 소화하기 쉽 도록 위험 수준에 따라 트렌치(Tranche)를 나눠 만든 신용 구조화 채권(CMO, CDO)이 등장했다. 1990년대에 CDS와 이런 신용 구조화 채권들이 만나 합성 구조화 채권까지 등장하자, 이제 사실상 어디의 무엇이라도 현금흐름만 있다면 이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 돈을 만들수 있는 방법이 만들어졌다. 물론, 장외파생상품을 돈을 찍는 수단으로만 이해한다면 말도 안 되는 오류다. 이것이 신용 리스크의 효과적 관리 수단의 개발이기도 했던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아시아, 러시아와 남미의 외환위기를 거 치면서 합성 구조화 채권의 운용 경험이 쌓이고,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의 붕괴, 엔론(Enron)과 월드컴(MCI WorldCom)의 파산 등의 사태가 일어났음에 도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았던 것은 이런 파생상품들의 공도 컸다. 문제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시장의 시각이 너무 한 방향으로 치우쳤다는 것이다.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는 2002년 CDO, CLO, CDS 등의 신용 파생 상품의 빠른 성장과 적절한 가격 결정이 신용 위험을 잘 분산시켜 닷컴 버 블의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어찌 보면 단 몇 년 후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조금의 단서도 가지고 있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돌아봤을 때, 당시 이들 합성 구조화 채 권의 급격한 성장은 신용 리스크의 관리도구와 신용 창출의 기폭제 역할 중 후자에 더 충실했던 결과였음이 맞아 보인다.
- 중국이 필요로 했던 것은 자본(Capital)과 기술(Technology)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이를 충분히 이해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소 련이라는 체제 경쟁자에 대한 유용한 펀치라는 점에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잉여 자본을 수출할 수 있는 큰 영토의 발굴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시작해 볼 만한 거래였다. 중국 역시 마오쩌둥의 실패 이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개혁개방에 대해 더 이상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의 문제로 인식이 변화한 상태였다.
- 클린턴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간 것은 그들이 미국 내의 여론을 유리하게 바꾸는 데 활동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대규모 사절단은 클린턴의 의도에 맞게 정관계를 설득하는데 적극적으
로 나섰고 여론은 건설적 관여 정책에 점점 호의적이 되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클린턴은 중국의 WTO 가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중국의 상황은 이미 살펴보았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장쩌민의 권력 공고화 이후 중국의 보수파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개혁론자들은 경제 선 진화 전략으로 WTO 가입을 적극 추진했다. 저임금을 활용해 제조업을 키 우고, 수출길을 열기 위해선 중국산 상품의 판로를 개척하고 기술과 자본을 투자받아야 했다. WTO 가입이 지름길이라는 결론이었다.
-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 세대-침묵의 세대(Silent Generation-는 1, 2차 세계 대전을 겪었고 큰 빈부격차, 농촌에서 도시의 교외로 이주한 공업화 1세대 에 해당했다. 이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와는 달리 2차 대전이 끝난 후 대공 황, 전쟁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가족을 이루는 기쁨 을 맛보았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늘어난 가족, 특히 자녀 세대-베이비 붐 세대에게 안전한 삶, 안정적인 삶, 더 나은 삶을 물려주는 것이었다. 이들 침묵의 세대들은 자녀들인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기본적으로 안정 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대전의 참상을 몸으로 겪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대공황을 직접 겪은 세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침묵 의 세대와 두 번의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이들의 부모 세대가 유권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1970년대까지는 미국 유권자들의 요구는 '일자리와 복지' 로 요약할 수 있었다. 대공황과 실업의 공포와 공업화의 혜택을 모두 느껴 본 이들 세대는 자녀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실업이라는 문제로 고통받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설사 경제 위기가 닥치더라도 말이다. 이런 욕구 는 정부에 대한 복지 증대’ 요구로 이어졌고, 스스로도 항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어질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하면 소비 성향은 현저히 낮았고, 저축 성향이 높았으며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 서는 비판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1960년대 히피즘의 자유(Freedom)라는 용어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의미했다. 마약, 섹스, 반전 등은 기성세대에겐 금기시되어 있던 것들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 행위였다. 하지만, 이런 탐구를 통해 얻은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대는 물질적 편안함에 대한 거대한 욕구가 있었다. 부모 세대는 2차 대전 이후 점점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 해도 한 번 형성 된 가치관을 바꾸기 어려웠다. '절약' 말이다. 실제 2013년 영국에서 발행된 영국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 성향과 관련된 연구에는 이것이 잘 요약되어 있다. 그들의 부모 세대는 직접 만들거나 (Make Do) 고쳐서(Mend) 쓰는 세대였다면 베이비붐 세대는 사서 쓰는 세대였다. 압축적이지만 위의 비교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당장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지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신용-부채-을 동원해서라도 지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였다. 절약과 저축에서 소비와 투자'로 사고의 관점이 이동한 것 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저축은 절약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 반면 투자는 소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부모 세대는 죽어 서 상속을 하는 순간까지도 내일을 대비했다. 생존 그 자체를 중시했던 것 이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달랐다. 그들에게 '투자'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더 큰 편안함,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이 '투자'였다. 그들의 부모세대는 먹고살기 위해 소비했다면, 베이비붐 세대는 소비-투자를 위해 부채를 일으키는 것을 합리적인 행동으로 여기게 된 세대였다.
- 부모 세대와 아주 큰 사고방식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그들은 겉보기가 어떠했든 부모 세대와 비교해서 근본적으로 미래가 더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지금보다 미래가 더 밝을 것이므로 부채는 미래에 갚을 수 있을 것이며, 적절한 소비는 밝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간주되었다.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은 교육에 지출한 비용보다 그 결과 얻게 되 는 소득이 더 높을 것이라는 기대에 기초한 투자, 큰 자동차를 사는 것은 자동차를 타고 더 먼 곳으로 출퇴근하고 더 많은 물건을 실어 나름으로써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투자, 더 크고 좋은 TV를 사는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해 스스로를 개발하는 투자라는 사고방식에 의해 합리화될 수 있었다. 1950년대 후반 다이너스 클럽을 필두로 좁은 지역에서만 사용되면서 나 타난 신용카드업체들이 1970년대가 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그 뒤로 전 세계 로 확장되어 나간 것은 세대의 사고방식의 변화와 때를 같이했던 것이다. 존 레논의 「Imagine」에 열광했던 세대는 처음엔 미래는 더 밝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탐구'로서의 자유(Freedom)'를 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히피즘이 추구하는 추상적인 밝은 미래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눈치 빠른 젊은이들은 부유한 부모에게 다시 돌아가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최신 지식에 대한 교육을 받고 도시에서 지적인 직업 에 종사하는 것이 진정한 밝은 미래라는 것을 곧 알아챘다. 히피들은 여피 (Yuppie)로 대대적으로 전향했다. 여피족이 추구하는 '자유(Freedom)'는 '자 유로운 자본주의의 자유였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물질적 풍요의 혜택을 세대 전체가 받았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었던 현상이었다. 이 세대가 부모 세대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아 시대의 주류로 나서기 시 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바로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였다. 1976년 아칸소 주 의 법무부 장관으로 선출되었다가 2년 뒤 불과 32세의 나이로 주지사가 된 이 세대의 선두주자가 1946년생인 빌 클린턴이었다. 1975년 불과 26세에 상품 (Commodity) 선물 트레이딩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자 회사를 설립했던 레이 달리오는 1949년생이다. 1955년생인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설립한 것은 각각 1975년과 1976년이었다. 레이 거노믹스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들 세대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ERISA는 부모 세대와 이들의 합작품이었지만, 확정기여형(DC) 퇴직연 금은 바로 그들 스스로를 위한 자작품이었던 것이다. | 레이건의 선거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화수분의 돈을 소 비와 투자라는 형태로 흐르게 만들 베이비붐 세대를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었 다. 망설이지 말고 풍요를 추구해라. 그것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길이다.
-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신용을 창출해도 이로 인한 총수요의 증가가 총공급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금리를 인하해서 신용을 더 창출해서 총 수요를 더 자극해야 했다. 실제로 20여 년간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예상대 로 인플레이션이 달성되면 우주는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는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필립 스 곡선에 의하면 인플레이션율이 낮아지면 실업률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경기가 침체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를 방치하면? 이제까지 발행한 어마어마한 양의 통화가 수축하기 시작하면서 마치 엄청난 질량이 한 점에 모여 생긴 블랙홀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 더 수축하듯이, 멈출 수
없는 디플레이션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할 것이 예상되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생겨 소비가 감소하고 저축이 증가하면, 이제까지 꾸준히 공급 한 통화에 의해 높아진 자산의 가치가 하 락하고, 이는 신용을 축소시켜 다시 경기를 침체시키고, 다시 물가가 더 하락하는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악 순환 말이다. 좌냐 우냐, 통화정책이냐 재정정책이냐는 사실 오바마의 불평처럼 진정한 쟁점이 아니었다. 지고의 가치는 어떻게든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것이 었다. 버냉키도, 옐런도, 서머스도, 크루그먼도, 숨 고르고 있는 과거의 탈규제 시장만능주의자들도 이 점에서는 모두 한 팀이었다. 크루그먼은 그런 점에서 특히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그는 신케인스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왼쪽에 가까운 성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돈도 풀고 이자율도 낮추고, 거기에 더해서 미래에 소비할 여력 까지 다 끌어와서라도 소비를 자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 1980년대 이후로 중산층이 감소하고 소비 여력은 감소했는데 그 원인 중 첫 번째는 바로 통화 공급의 증가와 낮은 이자율로 자본을 조달하기가 쉬워진 상태에서 기술(Technology)이 자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는 것 이다. 공급망을 관리하거나, 신기술을 개발하는 등 반복적이지 않은 숙련 된 기술을 요하는 고숙련 근로자들은 오히려 숙련 프리미엄(Skill Premium)을 인정받아 소득이 더 증가한 반면, 기술의 발달에 의해 추가적인 자본 투입 으로 대체되기 쉬운 반복성이 높은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는 로봇이나 정보통신 기술에 의해 대체되어 오히려 감소했다. 분명한 것은 기술과 자본의 도움으로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전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노동 생산성의 증가에 비해 근로자 의 임금이 적게 증가한 것은 자본과 기술의 몫이 투자자와 기업의 몫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난 논리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중산층은 감소했고 덕분에 수요의 측면에서 소비 여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 2004년 마이클 둘리와 그의 동료들은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지원으로 '재건된 브레튼우즈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요점은 다음과 같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브레튼우즈 시스템은 미국이라는 중심부(Center)와 서유럽과 일본이라는 주변부(Peripheral)를 구조의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중심부 미국이 금에 고정된 기축통화 달러를 주변부로 공급하면 주변부에서 공급받은 달러를 바탕으로 미국이 수출하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달러가 순환되는 구조였다. 이 구조는 주변부 국가인 일본과 독일의 수출 경쟁력이 미국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게 되었다. 금에 고정된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WTO 체제는 어떤 면에서 변형된 브레튼우즈 체제와 흡사했다. 일단, WTO 체제 역시 군사적 측면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세계의 경찰 역 할을 하고 있었고 군산 복합 기업들이 건재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측면은 어떠했을까? 기본적으로 새롭게 되살아난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경제적 측면 역시 중심부에는 여전히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있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주변부 역할을 해줄 국가가 있어야 했다. 이 보고서에서 지적한 주변부 국가들은 무역수지 흑자국들, 그 러니까 동아시아의 외환 보유고 축적국들이었다. 바로, 중국, 한국 대만 등의 국가들 말이다. 중심부 국가인 미국은 여전히 달러를 주변부로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들은 이 달러로 생산시설에 투자하고 다시 미국으로 달러 를 순환시켰다. 과거에는 미국이 무역 적자국이 되면서 달러를 회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 새로운 체제는 달러를 회수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미국은 소비를 부추기고 있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고 있었다. 양측의 이해관계는 미국 국채라는 매개체를 통해 맞아 들어갈 수 있었다. 주변부 국가들은 달러를 생산능력 확대에 투자했고 이 를 통해 재화를 미국이라는 시장에 수출했다. 주변부 국가들은 수출 경쟁 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공급망의 분화를 통한 생산성의 향상 역시 수출 경쟁력 향상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물이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주변부 의 각국 중앙은행들은 계속해서 기업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사 들이고 자국 통화를 발행해야 했다. WTO 체제하에서 수출 중심의 동아시아 국가가 통화가 절상될 경우 낙오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사들인 달러는 최대한 안전하게 투자되어야 했다. 상상해 보라. 한 차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MF의 지휘로 피눈물 나는 강제 구조조정을 당하며 알짜 자산을 해외 자본에 빼앗기다시피 했던 경험이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과연 위험 자산에 투자할 배포가 있었겠는지 말이다. 미국 국채는 수출국들에 달러의 유일한, 궁극의 투자처였다.
-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주요 수출국들이 자국의 화폐 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달러를 매입한 것은 결코 룰을 무시하거나 깨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미국 국채에 대한 투 자가 최고의 옵션이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지 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주도한 WTO가 구축한 자유무역 시스템은 그렇게 돌아가는 바퀴였다. 바퀴의 축은 중심부 국가였 고, 바큇살은 주변부의 수출국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에 충실했기 때문에 바퀴가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이다. 화폐 가치의 절상을 막기 위해 달러를 사들이는 만큼 자국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자국 물가 상승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미국이 인플레를 주변부로 수출했던 것은 이때도 변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 재건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주변부 국가들이 어떻게 자국 물가 의 상승을 억제할 수 있었을까? 뼈를 깎는 공급 측면의 생산성 향상의 노 력이 있었다. 수출국의 국민들은 뼈를 깎아가며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더 싼 달러로 표시했을 때- 값에 물건을 생산했고 미국의 국민들은 수출국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대가로 가만히 앉아서 더 싼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출국들이 미국의 국채에 끊임없이 투자하니 미국은 중동에서의 전쟁 수행이나 복지제도의 개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달하기 가 수월했다. 정부의 재정을 해외에서 조달할 때 얻어지는 효과는 바로 민 간의 투자 여력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은 자금시장에서 정부와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FANNG과 같은 기업들이 모험적인 도전을 시도할 때, 그들은 주변부 국가들과 비교해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용이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를 본받아야 한다는 논리의 한계가 여기 있다. 실리콘 밸리는 정부와 자금을 놓고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전제 조건이 달랐던 것이다. 중국은 조립생산을 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경쟁력이었다. 농촌의 유휴 노동력을 도시로 계속 끌어들여 임금 상승을 억제한 것이 바로 뼈를 깎는 노력이었다. 한국이나 대만의 경우 자본 투입을 통해 이룬 기술의 발 달이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외환 보유고를 축적 한 수출국들은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 질서가 작동할 수 있게 자국민들의 뼈를 깎는 노력을 제공한 쪽이라고 볼 수 있었다.
- 금융위기 이전까지 중국의 입장은 어땠을까?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와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직접 투자는 명백하게 중국이 재건된 브레튼 우즈 체제로부터 얻고 있는 이득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불하는 대가 도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첫 번째 대가는 국내적으로 불균형이 쌓여 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생산 공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낮은 생산비용을 유지해야 했 다. 임금 상승은 억제하면서도 중앙은행이 달러를 흡수하고 시장에 통화를 공급하는 고난이도 곡예 비행을 해야 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거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이나 한국이 그러했듯이 공급된 통화를 주로 수출 산업 발달의 자본으로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국영기업이나 수 출 기업들에 특혜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결과적으로 국내적인 불균형 이 커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과거 산업화 시절에 우리나라의 수출 중심 의 대기업 육성 정책의 결과와 유사했다.
두 번째 대가는 무역을 통해 벌어들여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고로 쌓은 막대한 달러준비금을 미국에 헐값으로 빌려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이렇게 수출국들이 저리로 빌려준 달러가 미국의 거품 생 성에 일조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일 여지 가 있었다. 만약 미국의 국채가치가 하락하거나, 달러 가치가 폭락하는 경 우 공든 탑이 무너져 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전까지 후진타오의 중국은 재건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미국 이 중심부, 중국이 주변부 역할에 충실한 것이 서로 호혜적 106 관계라고 받 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발생 직전까지 중국은 국내적으로 저 두 가지 문제를 감수하고 있었고, 그 결과는 공산당 지도부에 부패-미국 기 업자본과의 결탁-가 만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중국이 언제까지 저 문제들을 감수하 고 이 체제의 주변부 역할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까? 수출주도 성장전략이 한계에 도달하게 될 때, 즉 낮은 생산비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까지 이어갔을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추가 공급의 한계점, 그러니까 동쪽 해안의 도시에서 점점 내륙의 도시로 개발을 이어가면서 내륙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때를 그때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이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하여 수출 주도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 성장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 위안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개입할 필요성이 없어져 달러를 중앙은행이 흡수해서 미국채에 투자할 이유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산업구조를 안정적으로, 주변국들의 견제를 덜 받으면서, 고부가 가치 산업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간재를 수입하여 조립한 후 최종 수출하는 위치에서 중간재를 수출하는 위치 로 전환시키는 것 말이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리쇼어링 정책을 천명 하자 중국은 즉각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미국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중국도 바빠질 수밖에 없었 다. 새로운 판을 준비해야 했다. 2009년 오바마가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이하는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클린턴 과 부시가 방중했던 1998년과 2001년에는 구속 중이던 반체제 인사를 석방 하는 유화 제스처가 있었는데, 오바마 방중 당시에는 오히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유혈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전격 단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 2011년 오바마가 실리콘밸리의 주 요 기업인들을 초대해 가진 만찬 자리에서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미국 에서 생산할 수 없겠냐고 요청했을 때 스티브 잡스가 그건 어려울 것 같다. 고 거절을 표시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에 앞서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바로 친노동자 성향의 오바마였던 것이다. 하지 만 오바마는 최종적인 문제가 소비’라면 어떤 형태로든 해외에서 수출을 통 해 이익을 잘 내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이,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미국으로의 회귀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 었던 것이다. 헷갈린다면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중국에 하부 공급망을 두고 있는 미 국의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급망을 옮기게 되면 미국 노동자의 파이가 커지 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국이 벌던 파이 전체가 작아지는 것일 뿐임을 오바 마는 부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친기업적이고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공화당 소속의 트럼프는, 사실 미국 기업의 이익을 깎아 먹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빼앗긴 노동자들의 몫을 되찾아 오겠다며 과감하게 다자간 자유무역 협정의 틀을 깰 것을 선언했다. 역시 오 바마의 실패를 부각시키고 지지자들에게 세일즈할 수 있는 모양의 행동이었다.
- 2016년 1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와 카일 배스(Kyle Bass) 등 서양의 헤지 펀드 매니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위안화가 과대 평가되어 있다며 위안화 평가 절하에 베팅하는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들 헤지 펀드들이 중국의 내부 권력 투쟁의 결과 자본의 대규모 유출이 일어날 것을 파악했 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상해방은 오랜 기간 서구의 투자자들과 이해관계를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놓았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사실 이들 헤 지 펀드 공격의 자금이 사실 상해방 그들 자신이 제공한 것이라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 시진핑 정부는 2015년 홍콩을 통해 빠져나가는 자본을 급하게 틀어막는데는 성공했지만, 이어서 해외 세력들의 위안화에 대한 공격적인 매도가 지속되자 딜레마에 빠졌다. 당시 중국은 수년에 걸쳐 위안화의 국제화 작업에 공을 들여 왔고, 한창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에 위안화를 포함시키 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안화의 가치가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국제 거래에서 광범위하고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따라서, 자유로운 거래는 보장하면서도 위안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막아야 했기에 위안화를 직접 매수하는 시장 개입을 무리해서라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최대 4조 달러를 기록했던 중국 의 외환 보유고(FX Reserves)는 이 과정에서 상해방의 주식 매도 공격 이후인 2015년 말에는 3조 3천억 달러까지 감소했고, 헤지 펀드들의 공격이 이어진 후인 2016년 말에는 결국 마지노선이라 여겨지던 3조 달러 선마저 위협받는수준까지 도달했다.
시진핑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 유출을 억제하 는 통제정책의 시행 말이다. 자유로운 위안화 거래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목표에는 부합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야장천 위안화 를 매입하는 것은 중국 내부의 부패한 세력들이 합법적으로 자금을 해외 로 빼돌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중국 내 비금융기업의 역외기업대출액을 자기자본의 30%로 제한하고, 중 국에서 사업 중인 외국 기업들이 해외송금을 할 경우 당국의 승인을 받도 록 한 규제의 기준을 기존의 5,0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로 낮췄다. 중국 자국 기업은 100억 달러 이상의 해외 투자를 금지하는 한편, 모기업의 주력 사업과 관계없는 10억 달러 이상의 해외 인수합병을 금지하고, 유니온페이 신용 및 직불카드를 통해 홍콩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것을 제한하여 위안화의 홍콩 유출 역시 통제했다.중국 당국의 목표가 어떤 목적을 가진 세력의 의도된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중국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해외의 투기적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는 아마 앞으로도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위안화 환율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헤지 펀드들은 조용히 손을 뗐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헤지 펀드들은 굿만 본 것이 아니라 떡도 충분히 먹었을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 수십 년간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다. 송금을 달러로 해야한 다는 규정은 없었지만 가장 많은 송금 거래는 역시 달러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이란을 제재한다는 명목으로 스위프트에서 이란의 은행들을 배제 한다는 것은 이란과 무역을 하는 국가나 기업은 돈, 즉 달러를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앞 장에서 언급했던 국가 간 자유무역에 있어 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나 상기해보자. 언어나 문화의 차이 따위는 얼마 든지 극복 가능하다. 하지만 무역을 위해 주고받을 돈의 가치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무역은 활성화될 수 없다. 이것은 과거에나 앞으로나 변함없을, 근 본적인 부분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스위프트에서 이란의 은행을 배제하는 제제가 의미하는 것은 미국이 안정적인 화폐, 즉 기축통화인 달러의 사용에 제한을 둠으로써 전 세계 무역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 줬다는 것이다. 아니 왜 달러 사용을 못 하냐고? 계좌에 달러를 충분히 쌓아 두고 있는 중국이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자. 쿤룬 은 행의 계좌에 쌓아 둔 달러를 스위프트를 거치지 않고 이란 은행에 송금하려 고 한다고 했을 때, 만약 두 은행 간에 서로 계좌 이체를 완료했다고 선언한 들 국제 은행네트워크는 그들의 장부가 바뀐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달러를 발권하는 중앙은행, 즉 미국의 연준이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은행들 이 인정하려고 한들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 간 거래는 단지 장부의 숫자를 동시에 바꾸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장부들의 기 록을 전 세계 모든 은행들이 신뢰할 수 있어야 국제간 결제가 작동하는 것이 다. 그래야 어떤 돈이 생기거나 이동할 수 있다. 바로 스위프트와 국제결제은 행,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그 장부의 신뢰를 보증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중국과 이란 간의 양자 간 거래는 그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스위프트를 거치지 않고 달러로 거래하고자 한다면 가능한 방법은 제3국에 있는 차명 계좌를 이용해 양국이 거래하거나, 아니면 달러 현찰을 물리적으 로 비행기나 선박을 이용해 옮기는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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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순간은 순풍에 돛단 듯 잘 나갈 때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우쭐해질 위험이 있으니까.
주류에서 조금 벗어난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좋다.
한파가 몰아치는 곳이야말로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곳임을 잊지 말라.
- 사사키 쓰네오, ‘일과 인생의 기본기’에서

 

인생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앞이 보이지 않고 벼랑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성공의 토대가 되어준 경험’들이 많을 것입니다.
고난은 인생의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고난과 좌절은 가혹한 운명이 아니라,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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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이끌면서 다른 사람들을 앞에 내세우는 게 더 낫다.
특히 좋은 일이 있거나 승리를 축하할 때는 더욱 그렇다.
반대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앞에 나서라.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 넬슨 만델라

앞에 설 때와 뒤로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앞장서서 헤쳐 나가고,
영광과 축하의 자리엔 뒤로 물러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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