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24.12.11 에프 플러스 전략 3
  2. 2024.12.11 20241211
  3. 2024.12.10 5개 원소로 읽는 결정적 세계사 4
  4. 2024.12.10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공부 1
  5. 2024.12.10 20241210
  6. 2024.12.09 20241209
  7. 2024.12.08 20241208
  8. 2024.12.07 코스모스 씽킹 1
  9. 2024.12.07 로스차일드 이야기 7
  10. 2024.12.07 이것이 경영이다 3

에프 플러스 전략

경영 2024. 12. 11. 07:08

- 공급망 관리는 거시적 기업운영전략을 의미하기도 하고, 세부적 실행방안이기도 함. 운영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IT인프라 시스템을 의미하기도 함. 공급망 관리기술은 많은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공급관리협회: 최종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조직의 경계를 초월해 끊어짐 없는 부가가치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 공급사슬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인적, 기술적 자원의 개발과 통합이 필요함
* 공급사슬협의회: 수요와 공급의 관리, 원자재와 부품의 조달, 제품생산 및 조립, 재고관리와 추적, 수주 및 주문관리, 그리고 고객에게의 배송 등을 의미

* 공급사슬관리 전문가 협의회: 발주, 조달, 생산을 위한 계획수립, 관리 및 물류활동을 의미. 공급망 관리는 공급업체, 유통업체, 제3자 물류업체, 그리고 고객 등 공급사슬 파트너와 조정과 협력하는 활동도 포함

- 기업관리자는 더이상 재고수준만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재고유지비용을 계산하고 운전자본 및 현금유동성이 미칠 영향을 살펴봐야 함.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데 힘쓸 것이 아니라 환율리스크를 비롯한 각종 리스크를 관리하고 매출의 변동성을 줄여야 함. 전통적 공급자-구매자 관계관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거래 파트너의 신용등급을 새로운 관리기준으로 추가해야함. 기업에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기관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임. 이런 전략을 3세대 금융공급망 관리 혹은 정보공급망 관리에 F요소를 더하므로 +F전략이라 칭한다.

- +F전략은 기존 공급망 관리를 보완, 강화할 수 있도록 금융요소를 결합한, 확장된 개념의 공급망 관리전략이다. 공급망에서 겪게 되는 금융이슈와 이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데 필요한 공급망 참여자의 역할을 포함. 기존 공급망 관리와 달리 기업의 재무, 회계부서와 거래 금융기관을 공급망의 주요 참여자로 간주하며, 공급망 참여자간의 재화 및 현금이동을 최우선 순위로 다룬다. 단순히 거래에 다른 돈의 흐름 외에도 파이낸싱, 거래 파트너의 신용평가, 위기관리 등 다야야한 금융이슈를 공급망 의사결정에 고려한다.

- +F전략을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
* 공급망 운영비용 최소화
* 운전자본 및 현금흐름 최적화
* 자금의 적시조달을 통한 미래성장기회 확보
* 리스크 적시대응을 통한 기업생존력 향상
* 금융, 재무적 요인을 고려한 최적의사결정
* 돈(금융)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 역팩토링으로 대표되는 외상매출금 대상 공급사슬금융과 송장금융으로대표되는 외상매입금 대상 공급사슬금융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이 프로세스를 주도하는 가다. 일반적으로 송장금융은 청구서를 발송하는 공급기업이 착수함. 공급기업이 주도적으로 외상매출채권만큼의 펀딩을 제공할 수 있는 투자자를 찾는다. 때문에 송장금융은 외상매출금 대상 공급사슬 금융으로 분류됨. 이에 비해 역팩토링에서는 공급기업보다 구매자나 펀딩을 제공하는 금융기관 혹은 팩토링 회사가 프로세스를 주도. 외상거래가 발생하기 전 구매자가 가능한 할인율+지급시기 조합을 공급자에게 보여주고 공급자로 하여금 지불시기와 방법을 선택하게 함. 혹은 팩토링 기업이 투자자를 유치해 공급자에게 외상액에 대한 현금화 시기와 방법을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역팩토링은 외상매입금 대상 공급사슬금융이라 불린다. 
공급사슬금융은 최근까지 많은 관심을 받지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 전통적인 팩토링 프로세스에서는 공급자가 자신이 보유한 외상매출채권을 판매하려고 팩토링 기업에 접근함. 반면 역팩토링 프로세스에서는 팩토링 기업이 우량구매자와 공급자에게 먼저 접근해 좋은 파이낸싱 거래를 제안. 팩토링과 역팩토링 모두 외상매출채권을 구매하는 팩토링 기업, 실제 외상매출채권에 명시된 만기일에 미수금액을 지급하는 구매자, 현금이 필요하여 외상매출채권의 이른 지급을 원하는 공급자라는 전체 프로세스를 개시하는 데 비해 역팩토링 프로세스에서는 팩토링 기업이 프로세스를 개시한다.
대부분 금융기관이 팩토링 기업의 역할을 수행한다. 금융기관은 외상거래금액에 대한 지급시기와 할인율이 결합된 다양한 파이낸싱옵션을 공급기업에게 제시한다. 공급기업은 외상매출금을 만기일 이전에 지급받는 조건으로 매출금에 대한 일정 수준의 할인률을 이자를 대신해 제공함. 

- 실수는 외상매출금과 외상매입금을 직접 매치하는 것임. 때때로 기업은 공급자에 대한 외상매입금을 고객에 대한 외상매출금과 직접 매치시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함. 열흘 내에 갚아야 할 외상매입금이 있다면, 구매고객으로 하여금 열흘 내에 외상매출금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직접매칭에는 여러 변수가 존재. 일반적으로 기업이 공급자와 구매자를 대하는 협상력에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매출채권과 매입채권을 직접 매칭해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함. 둘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취급해야 함

- ABC재고관리 시스템은 우선순위에 따라 재고를 A,B,C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 연간 매출액의 80%를 차지하는 20%의 품목들을 A, 연간매출 15%를 차지하는 40%의 품목을 B, 나머지 매출 5%를 차지하는 40%의 품목을 C로 분류. 각각 그룹 중요도에 적합한 관리기준을 설정함. 만일 A그룹에 속한다면 재고수준을 꾸준히, 자주 관찰하고 안전재고 수준을 높게 설정. 만일 C그룹에 속하면 간헐적 재고조사를 실시하며, 때로는 품절에 의한 손실비용을 감당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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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 지고지상의 금속이자 권력과 부의 상징, 그러나 잉카라는 황금의 제국에서 금은 저주와 모욕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제국은 더 깊은 수렁에 빠졌으며, 몇몇 후대 황제들이 봉기를 일으켰지만 매번 총과 바이러스 앞에서 쓰러짐. 반면 피사로는 소원을 성취. 에스파냐 국왕에게 자신이 발견한 금의 20%를 바친 뒤 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고,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됨
금의 저주는 계속되었다. 금 때문에 목숨을 잃는 발보아와 멸망한 잉카제국처럼 피사로와 알마그로의 운명 역시 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못함. 1539년에 알마그로는 전리품을 공평하게 분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사로와 사촌형제에게 살해당암. 2년 후,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알마그로의 심복이 피사로의 머리를 베어버림. 수십 년간에 걸쳐 싸운 두 사람은 금을 가지면 영혼을 천국에 보낼 수 있다는 콜럼버스의 말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확실히 입증한 셈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에스파냐 국왕이야말로 최대 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금이 계속해서 에스퍄냐로 흘러들어가자 대항해시대에 무적일 것 같던 왕국은 금융 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재물을 실어나르는 상선을 해적의 약탈로부터 보호하고자 군비지출을 늘리면서 해상패권을 유지해야 했다. 에스파냐 왕국은 황금의 시대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뼛속까지 금이 내뿜는 독소에 중독되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에스퍄냐 왕국은 1588년 영국 함대에 격침당한 사건을 계기로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쇠락의 길로 접어듬

- 홍동기 시대가 청동기 시대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면 본격적으로 청동기시대를 연 금속은 주석이다. 순수한 주석 역시 매우 무른 것은 물론 불의 열기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녹는점이 낮아서 취사용품으로도 쓸 수 없을 정도로 구리보다 활용도가 떨어짐. 청동기의 기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서로 다른 곳에서 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주장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이 우연히 구리와 주석이라는 재질이 무른 두 금속을 한데 섞어 단단한 금속, 곧 청동을 얻었다는 유일기원설이 있다. 후자에 따르면 청동제련기술은 빠르게 유라시아 대륙에 퍼졌고, 이런 과정에서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던 초기 고대역사문화권이 청동제련기술을 습득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이 때문에 고대 중국은 홍동기 시대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유독 청동기술만 발전했던 것을 아닐까.
- 청동은 합금이라는 글자 그대로 두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원소로 만들어진 물질로서 그 속에는 적어도 한개 이상의 금속원소가 들어있지만 원소들 사이에는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음. 한편 합금의 성질은 어떤 금속이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비례해 결정되지 않으므로 청동의 경도는 구리나 주석보다 훨씬 더 높다. 단단해지는 동시에 외부 힘이 가해져도 갈라지거나 쪼개지지 않는 성질인 인성은 낮아져서 구리보다 더 부스러지기 쉬움. 따라서 청동은 불에 달궈 두드리는 단조보아 불에 녹여 거푸집에 부어 굳히는 주조에 더 적합. 단조보다 주조가 더 까다롭고 어렵지만, 다행히 청동의 녹는점은 구리에 비해 아주 낮아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수준에서도 그방 녹는다.

- 물은 점토가 불에 구워질 때 가장 먼저 열기를 느끼는 물질이다. 일반적으로 물은 열과 만나면 금방 수증기로 변하지만 규산염의 복잡한 그물망 구조 때문에 점토 속의 물분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수증기로 변한다. 물분자가 점토 밖으로 뛰쳐나갈 때는 점토 속 여러 유기물도 함께 끌로 낙버리는데, 이들이 공기 중에 휘발되면서 고체성분은 더 단단하게 뭉쳐짐. 온도가 더 높아지면 기름이나 파라핀처럼 끓는점이 높은 유기물도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씩 밖으로 나감. 빠져나갈 때를 놓쳐버린 성분들이 분해되거나 탄화하거나 활활 타는 불에 연소하면서 점토는 본래 모스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온도가 섭씨 400도를 넘어서면 점토 속 유기질과 물은 전부 사라지고 규산염의 그물망 구조에는 이들이 빠져나가면서 만든 구멍이 송송 남는다.
규산염 역시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방문자를 내치는 법이 없다.더군다나 방문자가 고온에서도 본인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줄 아는 전이원소라면 더더욱 환영. 규산염의 오랜 친구인 철이 바로 그 전이원소 중 하나. 철의 산화물 중에는 붉은색의 삼가철이나 녹색의 이가철이 있는데, 점토에 철이 많이 함유된 상태에서 산화불꽃과 만나 구워져 나온 점토는 붉은 색을 띠게 되고 반대로 환원불꽃과 만나면 녹색을 띠게 됨. 붉은색 벽돌과 푸른색 벽돌은 이런 점토가 만나 도기가 되는 소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짐. 수많은 선사시대 채색도기도 전부 철과 같은 전이원소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규산염은 여러 이물질이 섞여 있고 그물망 구조가 반듯하지 않은 탓에 정확한 녹는점이 없으므로 넓은 온도범위에서 부드럽게 변하는 연화과정을 거쳐 끝에는 완전히 액화됨. 점토덩어리를 전부 연화하려면 섭씨 1200도 이상의 높은 온도가 필요하지만 점토덩어리 속 그물망 조직은 섭씨 800도 부근만 되어도 서서히 풀어지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일수록 더 빨리 흐물흐물해짐. 따라서 섭씨 800도에서 그릇모양으로 잘 빚은 점토를 구우면 겉모습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점토속 그물망 조직이 풀어졌다 뭉치기를 반복하면서 점토 겉면에 있던 자그마한 돌입자가 부드러워지고 점토와 한데 합치면서 더 큰 그물망 구조를 가진 도기가 탄생함. 도기는 그야말로 인간의 기술로 개량한 석기다.
- 고대 가마온도는 섭씨 약 1000도에 불과했지만 이후 가마짓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온기술은 물론 숯의 품질까지 향상해 가마의 온도도 점차 올라갔다. 이윽고 가마온도를 섭씨 1200도까지 올릴 수 있게 되자 도기가 질적으로 변했다.  도기 속 보이지 않던 구멍과 틈새가 오그라들어 느슨했던 규산염 그물이 촘촘하게 바뀌면서 표면이 더 매끈하고 광택이 도는 새로운 도기, 곧 자기가 구워진 것. 이런 외관상의 변화는 가마의 온도가 규산엽의 녹는점에 가까워지면서 모난 부분이 부드러워지는 연화나 아예 녹아버리는 융해과정을 거쳐 생김. 새롭게 탄생한 자기는 도기와 달리 외관뿐 아니라 소리까지 예뻤다. 도기가 바닥에 떨어질 때 둔탁한 소리를 내며 깨진다면, 자기는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맑은 소리가 났다. 가마 온도만 조금 높였더니 자기가 탄생한 것 같지만 백도를 손에 넣고자 하는 고대인의 열망이 도기를 자기로 진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고대인은 꿀보다 훨씬 대중적인 인공식품을 발명하기도 했다. 바로 지난 3000년 동안 줄곧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엿당이다. 엿당은 화학적으로 녹말이 가수분해된 후 생성되는 불순물이 섞인 맥아당이다. 식물 중에서도 곡물은 녹말이라는 형태로 에너지를 많이 모아둔 후 싹이 틀 때 아밀라아제를 이용해 녹말을 분해해 에너지를 공급받는데 이 과정에서 맥아당이 생성됨. 식량이 부족한 고대에는 보관한 곡물 씨앗에서 싹이 터도 버리지 않고 먹었는데, 그 과정에서 새싹에 단맛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일부러 씨앗에 싹을 틔워 당분을 추출해 엿당을 얻음.
엿당이야말로 중국에서 최초로 단맛을 내는 데 쓰인 인공식품 첨가물이다. 

- 사카린의 단맛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오랜 세월 동안 생물학자들은 혀에는 구역별로 각각 다른 미각신경이 분포해 있어 어떤 구역은 단맛을, 어떤 구역은 신맛을 민감하게 느낀다고 생각해왔지만, 최근에는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본질적으로 미뢰는 단백질과 일부 화학물질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을 통해 맛을 감지. 어떤 단백질이 나트륨 이온과 결합해 짠맛정보를 전달해 뇌가 인지하게 하는 것임. 이처럼 맛을 감지하는 능력을 갖춘 체내미각세포는 300여종에 달하며, 흔히 사용하는 다섯 종류의 기본 미각이라는 개념은 가장 보편적인 다섯종류의 맛을 지칭하는 표현일 뿐이다. 한편 우리가 일상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매운맛은 사실 미뢰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주관하는 3차 신경에서 보내는 통증신호이므로 미각에 속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인간의 뇌는 혀가 매운맛을 느끼는지 아니면 뜨거워서 데인것인지를 구분못함.
이런 원리에 따르면 꼭 설탕이 아니더라도 뇌는 단맛을 느낄 수 있음. 곧 단맛을 느끼게 하는 단백질과 화학분자가 결합하기만 하면 미각신경은 착각을 일으키고, 인간은 꿀을 먹었을 때와 똑같은 맛을 느끼게 됨. 사카린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뇌에 단맛을 제공한다. 
에너지 공급원을 구하기 쉬워지면서 고혈당, 비만 등이 인간의 주요 질병이 되었고, 무설탕콜라, 무설탕과자를 비롯한 각종 무설탕 식품이 유행하기시작. 이와 같은 무설탕 식품을 먹어도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인공감미료 덕분. 미국 일리노이대 한 학생이 37년에 발견한 감미료 시클라메이트가 그 예다. 시클로헥실술팜산나트륨염이라는 화학명을 가진 이 인공감미료의 당도는 사탕수수 원당보다 40배나 높고 사카린보다 더 깔끔한 맛을 자랑. 시클라메이트도 사카린처럼 실험실 규정을 위반한 덕에 발견하게되 된 감미료임. 여느때처럼 규정을 위반하고 실험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이 손에 묻은 시클라메이트 때문에 단맛을 느끼면서 발견에 성공.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탄소생명체는 고탄소 먹거리를 통해 에너지와 영양을 섭취. 오늘날 현대 식품산업을 새롭게 만든 사카린과 시클라메이트뿐 아니라 향미증진제인 글루탐산나트륨, 마가린으로 사용되는 수소화된 식물유 등 약 15000종에 달하는 식품첨가물이 그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 우리는 인공감미료를 남용할 때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를 아직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게다가 아직 인공유기물을 무조건 믿을 만큼 충분한 확신도 없다. 지난 세월동안 인공유기물이 인류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기나긴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이익이되는 것은 따르고 해가되는 것은 피하는 인식체계를 갖추었다. 어떤 물질이 유해하다고 판단되면 우리 몸은 이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뇌는 피하라는 지시를 내림. 이 때문에 우리가 유쾌하다고 느끼는 냄새는 대부분 무해하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냄새는 반대로 유해하다. 그런데 인공유기물이 인간과 함께한 역사는 겨우 180년밖에 되지 않음. 다시 말해 인공유기물은 본능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낯선 물질이라서 유해성이 발견되기 전이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기전까지 오랜시간 동안 우리 곁에서 정체를 감춘 채 지낼 수 있음.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의 생활양식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므로 유기물을 탓할 일은 아니다.

- 지난 세월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거주환경을 개선해왔다. 진흙을 다져만든 바닥이 너무 더러워서 시멘트바닥으로 바꾸었고, 시멘트바닥이 예쁘지 않아서 대리석 바닥으로 바꾸었으며, 미끈거리는 대리석 바닥은 나무바작으로 바꾸었고, 그렇게 바꾼 나무바닥은 불편해서 또 카펫을 깔았다. 하지만 카펫으로 부족하면 이네 무엇을 더 해야할까? 아마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임. 한 단계, 한 단계씩 커지는 소비욕구는 언제쯤 끝에 다다를까? 어쩌면 아예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고탄소 생활양식은 탐욕적이고 방탕하다.

- 프레온이 눈에 보이는 피해를 주었다면, 테트라에틸납은 은밀하게 환경을 파괴. 자동차 배기가스와 함께 대기중으로 배출되는 테트라에틸납은 밀도가 공기의 11배 높은 탓에 대기 상층부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면 근처에 쌓여서 생물권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힘. 게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증상이 겨우 드러나므로 병의 원인을 확실하게 진단받았을 때는 손 쓸 수 없을만큼 늦은 경우가 많음. 일찍부터 사람들은 테트라에틸납의 인체유해성을 의심했지만, 자동차배기가스에서 배출된 납이 공기중에 있는 납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80년대에서야 납이 함유된 유연휘발유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짐.
전설적인 테트라에틸압이 무대에서 퇴장할 즈음, 피배를 본 사람들의 분노는 이 물질을 발명한 미즐리에게 옮겨갔고 그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그의 기구한 운면도 세상에 알려짐. 미즐리의 천부적 재능은 전 세계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기만했다. 오랫동안 미즐리와 함께해온 납이 두다리를 거의 마비시키고 뼈에 이상을 일으킬 만큼 건강을 악화시킨 것. 엄청난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던 미즐리는 전공인 기계공학 기술을 활용해 장애인이 몸을 쉽게 뒤집을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장치를 만들고, 이번에도 솔선수범해서 생애 마지막까지 발명품을 사용함. 안타깝게도 그의 전설적 발명품인 테트라에틸압과 달리 성능은 뛰어났지만 안전성이 떨어진 이 기계는 금방 고장났고 미즐리는 줄에 목이 감겨 구조를 요청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함.
슬프게도 미즐리에게는 테트라에틸납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에탄올이다. 일반적으로 알콜이라 불리는 에탄올은 탄소원자 두개와 수소원자 6개, 산소원자 하나로 이뤄진 단순한 구조의 유기분자. 산소원자가 들어 있는 탓에 같은 부피의 휘발유에 비해 발열량이 3분의 2정도 밖에 되지 않아 낮은 편에 속하지만, 휘발유의 품질을 크게 향상하고 이상폭발이 덜 일어나게 도와줄 수 있다.
- 미즐리가 에탄올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혼화성, 즉 다른 액체와 섞이는 능력이 약하고 자동차 부품을 부식시키기 때문. 하지만 그가 테트라에틸납이라는 물질을 선택했다는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에탄올의 단점이라 거론된 이유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으며 진짜 이유는 아마 낮은 경제성으로 보임. 에탄올은 별다른 기술력 없이도 누구나 생산할 수 있으므로 생산자가 시장을 독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에탄올을 발견한 정도로는 미즐리도 명성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납이 없는 무연휘발유 시대가 된 오늘날, 에탄올은 신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신분증을 발급받고 사람들로부터 재평가받고 있음. 자연의 화석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지는 휘발유와 달리 에탄올은 생물권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생산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 여기서 산소가 없어도 포도당 대사가 가능한 효모와 같은 진균은 받아들인 포도당 분자를 에탄올 분자 두개와 이산화탄소 두개로 바꿈. 에탄올 농도가 높으면 효모도 번식을 중단하고 사멸하므로 상당히 위험한 대사방식이지만 이런 대사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유혹적인 에탄올 향기를 이기지 못한 인류는 막걸리나 차조와 수수를 넣고 만든 황주, 맥주, 포도주, 백주 등 다양한 알콜 음료를 탄생시킴.
- 에탄올은 발열량이 높지 않아 완전연소가 가능하므로 휘발류에 조금 첨가하는 정도로는 자동차 동력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음. 더군다나 현대의 자동차는 순수한 에탄올 연료만 사용해도 부식되지 않을 정도로 기술력이 좋아졌고, 이상폭발 없이 부드럽게 연소하는 에탄올은 오히려 엔진의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됨. 무엇보다 에탄올을 이용하면 온실가스나 폐기물배출이 없는 무배출을 실현할 수 있음. 식물은 태양광만 있으면 매년 많은 양의 포도당을 생성하고 공기중의 이산화탄소도 흡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식물을 통해 생성되는 포도당을 몽따 에탄올 연료로 가공해도 연소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최대치는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넘지 않음.

-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는 원소 사이에 객관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음. 근대화학이 중세 연금술에서 탄생했기 때문. 미신에 가까운 원시과학이었던 중세연금술은 물질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할 줄 몰랐고, 현자의 돌을 찾아 돌을 금으로 바꾸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 헛된 생각을 믿고 미지의 힘으로 원소가 만들어지고 화학반응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멘델례프가 살던 시대에도 여전히 있었다. 이런 시대에 멘델레예프는 미지의 힘은 신의 힘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인식할 수 있는 법칙이라는 점을 세상에 알렸을 뿐 아니라 법칙을 통해 지금껏 본적도 없는 세상을 탐험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후 엥겔스가 나서서 주기율표는 해왕성 발견에 필적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멘델레예프의 예측은 화학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 과거 갈릴레이가 수차례나 무시했던 해왕성은 1846년에야 겨우 발견되었는데, 우연이 아니라 천문학자들이 수학적 단서를 좇아 열심히 계산한 끝에 거둔 성취였다. 이 과학적 발견은 태양계의 족보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과학을 보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
르네상스 시대 초기에는 과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천문학자들을 박해했으므로 과학은 더디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과학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신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예언을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니 과학을 믿어봐야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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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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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침몰한 로마제국
로마제국에서도 황제가 주화발행권을 독점. 영어로 돈을 머니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여신 주노(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 아내 헤라)의 별칭인 모네타로부터 유래. 로마제국은 모네타 신전에서 독점적으로 주화를 제조.
지중해 주변국가를 정복한 뒤에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부담해야 했던 로마제국의 주요재원은 모든 거래에 일률적으로 1%씩 부과하던 물품세였다. 하지만 물품세만으로는 막대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했고, 제국은 지속적으로 주화의 귀금속 함량을 낮추면서 재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최전성기였던 오현제시대(96-180)에도 재정 가운데 절반이 군사비로 지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도로건설 역시 실업병사를 구제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이었음. 갈수록 은 함유량이 떨어지고 급기야 5%밖에 섞이지 않게 되어 실질적으로 은화가 동화로 바뀌었다고 하니, 재정난이 얼만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은 함유량이 적어지면 화폐의 가치가 하락. 이것을 현대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지폐를 증쇄하는 것과 같으며 인플레를 초래하게 됨. 로마제국은 요즘 말로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멸망한 것이다.

- 전략가였던 쿠빌라이는 페르시아만과 중국의 연안부로 이어지는 바다의 세계와 초원길로 이어지는 육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규모의 대상단을 갖추었고, 상단의 교역로를 자신이 건설한 정치, 경제도시인 대도(북격)까지 연결. 현재 중국 정부가 제창하는 일대일로 정책은 유라시아를 시야에 넣은 쿠빌라이의 상업전략을 모델로 한 것.
이 시대는 초원길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의 육지와 바다의 간선이 서로 이어져 경제공간이 단숨에 확대된 경제의 약진기였다. 제노바,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상인은 육지와 바다를 통해 몽골 상업권에 진입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의 마르코포롤가 유라시아 각지에서 교역을 하며 부를 축정. 이 부를 토대로 상인들이 지원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국지적인 몽골제곡은 영국 등 유럽세력에 의해 내부대립이 일어나 망하거나 또는 맞서 싸우다가 멸망했지만, 곳곳에 침투해 있던 유목제국의 틀은 잃어버리지 않음. 지금도 러시아, 중국, 서아시아에서는 군사우위 체제인 강권국가의 흐름이 이어짐. 18세기 초의 역사지도를 살펴보면 국지적 몽골제국이 병존했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음.
(1) 터키인이 지배하는 오스만 제국
(2) 무굴제곡
(3) 유목계 여진족(만주인)의 청제국
(4) 북쪽의 대삼림지대를 통합한 러시아제국
이 네개의 제국이 국지적 몽골제국에 해당.
청나라는 몽골인과 대립관계에 있던 만주의 유목민인 여진족이 세운 국지적 몽골제국이며, 러시아제국의 군대는 터키계의 카자크가 주력이었음. 따라서 폭넓게 보면 몽골인 대신 터키인과 여진족의 군대가 아시아 세계를 거의 이등분한 셈. 광활한 영역을 지배한 유목민의 노하우와 군사력이 계승된 것임.
영국 등 유럽세력이 각 제국을 정복한 뒤 지속적으로 쇠퇴해가던 러시아와 중국에는 사회주의가 유입되었으며, 이후 사회주의는 변질되어 힘을 잃어버렸고, 전통적인 강권체제가 부활. 2차대전 종전 후 민족간 대립과 사회주의 흐름이 거세지며 한때 유라시아 구세계가 일신된 듯 보였다. 하지만 리먼쇼크 이후 구미세력이 후퇴한 후 유라시아에서 전통사회가 급격하게 부활하고 있으며, 서아시아, 중국, 한반도 등에서 낡은 사회가 되살아나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 염격한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15세기 말 유대교도 추방령을 내리자, 추방된 유대인의 일부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 그들이 지중해 경제권에 확대되었던 이슬람의 어음제도를 정착시킨 것이 네덜란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됨. 해운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됨.
산란을 위해 찾아오던 청어가 오지 않게 되면서 어획량이 줄어 소금에 절인 청어를 유럽에 공급할 수 없게 된 한자동맹의 맹주 뤼베크를 대신하여 네덜란드는 북해에서 유망으로 잡은 청어를 소금에 절여 유럽 전지역에 판매. 이것으로 경제발전의 발판을 만들었고, 조선업, 해운업, 상업, 출판, 금융등을 통합하여 단숨에 경제를 성장시캄. 

- 상선을 대규모로 움직여 상업활동을 하자면 당연히 화폐가 대량으로 필요했는데, 유대인이 도입해온 어음거래와 암스테르담 외국환은행 덕에 부족한 화폐문제가 해결됨. 암스테르담 외국환은행이 계좌에 화폐를 기호화하여 상거래를 하면서 예금이 통화로 인정받게 된 것임. 세계 최초 예금통화의 출현이다.
네덜란드 조선업이 번성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된 사순절의 단백질원으로 애용되던 청어에 이르게 됨. 14세기 경에는 산란하기 위해 발트해 입구 덴마크령의 좁은 해협으로 대대적으로 몰려들었다. 이것을 뤼베크 등 한자동맹의 상인들이 잡아 소금에 절인 뒤 나무통에 담아 유럽 각지에 판매하여 큰 이익을 올림. 그런데 그 청어가 덴마크령에 몰려오지 않게 되었고, 15세기 이후 청어 어장이 북해로 옮겨감. 1-3월 북해 서부 어장에서 수많은 네덜란드 어선이 유망으로 청어를 포획. 청어는 선상에서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이나 식초에 절이는 등 가공되어 유럽각지로 보내졌고, 네덜란드인은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 해상에너슨 대항해시대 이후, 영국의 왕이나 귀족은 뱃사람에게 특허장을 주고 사략선에 태워 대서양을 왕래하는 스페인의 은수송선을 습격하게 했고, 스페인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사략선 활동을 위해서는 대형선, 무기, 선원, 자금뿐 아니라 뱃사람이 포로가 되면 석방을 위해 힘써주는 후원자가 필요. 간단하고 빠르게 고수입을 올릴 수 있는 합법적 해적이었던 것이다. 사략선은 평균 3000-4000파운드의 수입을 올렸는데, 그중 5분의 1이 선장의 몫으로 돌아갔고 잔액은 후원자인 귀족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후원자에게는 그야말로 불로소득이나 마찬가지. 영국의 지배층은 모험성과 약탈성을 띠게 된다. 
1588년 해적행위를 되풀이하는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스페인은 배 130척 선원 1만명, 육상병력 19000명으로 구성된 그랜드 아르마다(무적함대)를 파견했지만, 도버해협에서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사략선과 해군에 거의 괴멸됨. 이것이 이른바 천하를 겨루는 결전이 된 아르마다 해전이다. 그 결과 해상패권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감.

-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자멸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패한 이유는
(1) 지휘관인 귀족이 해전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고,
(2) 주로 대형함선으로 구성되어 움직임이 둔했으며,
(3) 계속 폭풍이 부는 등 기후조건이 나빴다는 점을 들 수 있음. 여기에 스페인 재정이 악화되어 함선을 제대로 보강하지 못한 점도 패배를 초래한 중요 이유였음.
대항해시대 이후 스페인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으나
(1) 신대륙에서 들여온 방대한 은이 오스만제국과의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 전쟁 등의 군비를 충당하느라 국외로 유출되었고,
(2) 유대교도 추방령으로 경제능력이 높은 유대인을 국외로 추방했으며,
(3) 신대륙에서 대량의 은이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국내산업이 쇠퇴했고,
(4) 거래를 할 때마다 세금을 징수하는 아르카바라 라는 소비세로 민중의 삶이 피폐해졌다.

- 국민이 보증하는 빚은 믿을 수 있다.
현재 정부와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채무를 소버린 본드라고 총칭함. 국왕이 전쟁 등 긴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금융업자나 상인에게 돈을 빌리고 툭하면 떼어먹다보니, 왕의 보증은 신용도가 낮았고 상인들은 핑계를 대며 빌려주기를 거부했다. 그런데 명예혁명으로 주권이 의회로 옮겨지자, 국왕의 빚이 국가의 채무로 바뀜. 국왕이 아니라 의회가 채무반환을 보증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이 납부하는 조세로 확실하게 채무를 상환하는 구조가 된 것. 이로써 국채는 빚의 상환을 확약하는 증서로서 화폐처럼 취급받게 됨.
영국이 해군을 증강하고, 백년에 걸쳐 프랑스와 벌인 패권다툼(2차 백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시에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 매일 설탕을 넣어 마시는 커피와 홍차는 자본주의경제와 밀접하게 관련 있음. 가장 처음 설탕이 세상에 나왔고, 설탕 수요를 늘리기 위해 커피와 홍차 등 기호품 문화가 잇달아 육성되었음.
영국은 국제 경쟁력이 낮은 카리프해 설탕산업을 육성하기위해 국내에서 설탕판매를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 1600년 국민 1인당 설탕 소비량은 연간 400-500그램이었는데, 17세기에는 약 2키로, 18세기에는 약 7키로로 격증. 하지만 설탕은 보호관세 등으로 높은 가격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조미료로서는 수요에 한도가 있었다.
설탕상인은 증산되는 설탕의 판로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기호품 문화를 육성. 설탕 수요를 늘리기 위해 파트너로서 최초로 선택된 기호품은 커피로,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이며 이슬람 세계에서 즐겨마시던 것이었다. 커피판매는 네덜란드가 선도하고 있었으므로, 영국은 청나라의 홍차와 아메리카 대륙의 카카오 등도 기호품으로 유행시켰다.

- 홍차로 반격을 도모한 영국
커피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이며 아라비아반도 예멘의 항구 모카에서 유럽으로 수출됨. 그 뒤 커피는 각지에 이식되었는데, 처음에는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만 수입할 수 있었음.
네덜란드는 1640년대에 모카와 암스테르담 간의 커피무역을 정기적으로 진행했다. 그 뒤 네덜란드와 영국간에 벌어진 커피무역 경쟁에서 네덜란드 상인이 이겨싿. 네덜란드 상인은 생 커피콩이 반출되던 남인도에서 커피 묘목을 몰래 가져와 식민지인 자바섬에 심고, 주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커피를 재배시킴. 18세기 초에는 세계 제일의 커피상이 되어 막대한 이익을 올림.
한편 경쟁에서 패한 영국은 청나라 홍차에 주목. 영국 동인도회사는 왕실에 홍차를 들여 모닝 티 등 귀족의 홍차문화를 만들어냈고, 이것을 젠트리, 서민, 식민지에 보급해 홍차산업을 대규모 비즈니스로 육성.
설탕은 지금도 우리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으며, 청량음료, 과자, 가공식품에 첨가되어 있다.

- 미국 독립전쟁은 본국의 생활양식으로부터 자립하는 전쟁이기도 했다. 영국 상품과 생활양식을 거부하던 식민지 사람들은 홍차를 영국적 생활의 상징으로 여겨 마시지 않았다. 대신 홍차를 닮은, 연하게 추출한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미국에서 대량으로 커피가 소비되었고 이것이 브라질 커피산업을 발달시킴.
에스프레소로 대표되듯, 유럽에서 커피란 어떻게 볶느냐가 중요한 향기좋은 음료였다. 하지만 갑자기 고안하여 홍차처럼 만든 미국커피는 그렇지 않았다. 이 점에 착안하여 미국에 커피 본래의 향기를 즐기는 문화를 보급하려 나선 기업이 스타벅스다. 독립전쟁으로 인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생겨난 아메리칸 커피를 몰아내고 스타벅스가 크게 번창한 것은 당연한 흐름. 스타벅스 회사명음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냉정한 일등항해서 스타벅스의 이름을 따옴.

- 기술혁신과 콘드라티예프 파동
산업혁명기의 경제성장률은 높은 시기에 2%, 평균적으로는 1.3%에  불과했다. 산업혁명은 100년 이상에 걸쳐 농업을 대신하여 공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고 기술혁신에 의해 (1) 생산성 향상, (2) 생산량 증가, (3) 생산분야 확대 등이 축적된 과정. 
초기 산업혁명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50년 주기로 기술이 변화했다는 주장을 전개한 사람은 러시아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다. 이에 따라 약 50년마다의 변화를 장기파동이라 부름.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계사의 관점에서 공업의 변화를 고찰할 때는 이렇게 크게 묶어 보는 것이 필요함.
(1) 제1파동(1780-1840) : 산업혁명
(2) 제2파동 (1840-90) : 증기기관과 철도
(3) 제3파동 (1890-1940) : 전력과 철망
(4) 제4파동 (1940-90) : 대량생산과 자동차
(5) 제5파동 (1990-) : 정보통신

- 산업사회를 궤도에 올린 철도
기계로 면포를 생산하게 된 것은 섬유산업 내의 사건에 불과. 하지만 소형화된 증기기관을 장착한 기관차가 발명되고, 새로운 교통기관인 철도가 보급된 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성숙시키고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철도 건설은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고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기 때문에 지구 규모로 대규모 경제성장이 일어남. 또한 속도가 빠르고 안정된 교통수단인 철도는 세계의 연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음. 유럽을 중심으로 집중되는 체제가 완성되었고, 자본주의 경제가 지구화되었다. 철도건설은 세계를 지구규모로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팍스 브리태니카라는 영국의 경제패권을 초래

- 지정학은 유럽각국의 대립이 격화되던 19세기 후반에 생김. 러시아와 세력을 다투던 영국에서 역사와 지리를 통합하여 지리조건이 국가에 미치는 정치적, 군사적영향을 지구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지정학이 출현.
영국의 지정학자 매킨더는 세계를 (1) 해양국가 영국과 대항하는 육상제국 러시아의 세력권인 유라시아 가장 깊숙한 지역인 하트랜드(핵심지역), (2) 해상패권으르 지닌 영국과 육상패구너을 보유한 러시아가 접촉하는 중국, 동남아, 인도, 서아시아, 동유럽 등의 림랜드(주변지역), (3) 일본, 필리핀 등 해양국가에 물자를 보급해주는 힌터랜드(배후지역)로 분류하여 고찰하고, 하트랜드를 장악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 부를 불러들인 파운드 지폐
세계 토지와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패권국가 영국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영국은 유럽의 은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고가의 금을 본위화폐로 삼는 국제 금본위제를 확립하고, 언제라도 금과 교환된다는 원칙 아래 대량의 파운드 화폐를 발행. 이는 4000년 동안 이어져온 은화의 시대를 지폐의 시대로 전환한 금융사상의 중요한 혁신이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71) 뒤 유대계 은행이 경제를 지배하던 독일이 금본위제를 단행하면서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전환하는 세계적 흐름이 생겼으며, 미국과 일본도 그 흐름에 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굴된 금은 전부 모아도 올림픽 수영장 3개반에서 4개 정도 분량밖에 되지 않으므로, 파운드 지폐를 전부 금으로 교환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 확실하게 대응하여 언제라도 지폐를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하면 사람들은 굳이 보관하기 힘든 금으로 교환할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이다.

- 파운드가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
영국의 통화단위 파운드는 정식으로는 파운드 스털링이다. 파운드는 본래 고대 로마의 무게단위이며 스털링 실버는 순은을 의미. 중세 영국에서 고대 로마가 은 1파운드로 240개의 은화를 만든 것을 본떠서 은화가 주조된 것이 유래다. 요컨대 파운드라는 명칭은 이전에 영국에서도 은화가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영국이 금본위제로 전환한 것은 명예혁명 뒤의 일이며 유럽대륙에서 은 가격이 폭등한 것이 그 배경. 영국의 은화가 녹인 지금의 형태로 유럽대륙으로 유출되는 상황속에서 조폐국 장관이 된 뉴턴은 금화중심의 통화제도를 발안.

-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뒤인 1816년 화폐법을 제정해 금본위제를 확립하고, 1821년에는 금과 교환할 수 있다고 명기한 파운드 화폐를 발행했다. 당시에는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은화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었기에 금으로 가치를 보증하는 화폐의 발행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필요한 일이었다. 영국의 파운드 발행은 이런 시대의 요청에 부응한 결과이기도 했다.
영국은행의 통화발행량은 보유하는 금에 1600만 파운드를 더한 금액으로 제한되었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성장에 대응할 수 없게 됨. 당시 영국은행의 금보유고는 1000만 파운드 이하였다고 하니 어렵게 금본위제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영국에게 반세기 뒤처져서 1871년 독일, 1873년 미국, 1879년 일본이 금본위제로 이행. 1900년에는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금본위제로 바꾸었으며, 부족한 금 보유고는 갈수록 큰 문제가 되었다. 영국은 세계의 은행으로서 방대한 양의 금을 장기적으로 빌려주었으며 투자활동으로 전 세계에 파운드를 퍼뜨렸기 때문에 금이 부족한 상황은 상당히 중대한 문제였다.

- 미국서부에 급속하게 철도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자본의 투자 덕분이었다. 대불황으로 투자할 곳을 잃은 영국 자본이 신흥국 미국으로 몰렸던 것. 유럽 자본의 창구가 된 것은 유럽에 금융제국을 구축한 로스차일드의 미국 대리인을 맡은 JP모건이었다. 모건은 외국자본을 이용하여 미국 최대 재벌이 됨
또한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영국의 투자가에게 철도 등 미국기업의 경영정보를 제공하는 회사가 필요해졌고, 1870년대에 미국 철도채의 신용평가를 시행하는 신용평가회사가 등장. 20세기가 되자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등 신평사가 성장. 미국에 유럽에는 없는 증권, 국채 등의 신용평가를 하는 대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미국경제의 대영종속의 흔적이며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 보통 지폐는 은행권이라 불리고 금과 교환되는 것이 원칙이나, 미국지폐는 연방준비권이다.
은행권과 준비권의 차이는 무얼까? 단지 말의 뉘앙스가 다른 듯한 느낌이지만 연방준비권은 (1) 금의 보증이 필요없고, (2) 국채구입에 충당된다는 특징을 지님. 지폐를 발행하는 연준에 정부는 출자를 하고 출자자는 모두 민간 금융기관이다. 통화발행에 대해 미국정부는 발언권을 갖고 있지 않고, 민간은행이 이자가 붙은 정부의 국채를 매입하는 형태로 준비권을 발행. 정부로부터 이자를 받고 있다는 점이 미국 통화인 달러의 특징이다.

- 전쟁의 국면이 연합국의 우위로 기울어진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개최된 연합국 45개국 재무, 금융담당자 회의에서 금 1온스가 35불로 정해지고, 금달러본위제(브레튼우즈체제)가 성립됨. 이로써 달러만이 금과 교환될 수 있는 유일한 통화가 됨. 달러에 의해 각국 통화가치가 결정되는 고정상장제를 채택. 엔은 1달러 360엔으로 고정되었다.
각국 통화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통화인 달러와 교환함으로써 비로소 금과 바꿀 수 있게 됨. 파운드를 포함한 각국의 통화는 달러의 분신처럼 됨. 최대 금융국가였던 영국은 미국과의 통화전쟁에서 패배.
미국은 19세기 영국중심의 식민지 체제를 절대적인 힘을 지닌 자국의 경제에 유리한 단일 세계체제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움. 기존의 식민지가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 미국은 (1) 국민국가를 단위로 구성된 국제연합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의한 정치적 지배와 (2) 달러에 의한 세계 경제시스템의 일원적 지배로 패권을 차지했다.

- 유로달러로 영국금융이 부흥하다.
세계의 여러 통화 가운데 유일하게 금과 태환할 수 있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은 고정상장제는 불과 25년 밖에 지속되지 않음. 미국경제가 절대적 우위를 잃었기 때문. 달러와 금의 교환이 정지된 71년 이후 세계경제는 미국 경제가 허약해지면서 불안정한 상황에 놓임.
미국은 50년대 한국전쟁과 60년대 베트남전쟁을 치르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군사기지를 유지하며 재정적자가 확대됨. 67년에는 미국 채무가 금 준비금 1.5배까지 확대되었고,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짐.
한편 세계화가 진행되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들이 증가했는데, 이런 기업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런던 시장에서 이익을 운용했기에 미국에는 이익이 돌아가지 않음. 이런 자금이 유로달러다.
19세기 이래 국제금융을 움직여 온 런던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것뿐이었다. 런던은 유로달러 시장으로서 끈질기게 금융력을 되찾았고 국제금융센터로서 뉴욕을 넘어서게 되었다.

- 제조부문을 중국으로 이전한 미국
85년 플라자합의 이후 큰 폭의 달러약세로 되살아난 미국은 90년대 후반 클린턴 정권하에서 금융제국 쪽으로 키를 틀더니 돌변하여 달러 강세정책을 취함. 월가는 변동상장제와 IT기술을 조합하면 금융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90년대에 금융을 급격하게 팽창시킴. 미국은 전 세계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 대담하게 고금리 정책으로 전환.
IT혁명과 나스닥 혁명의 조합으로 인플레이션을 동반하지 않는 호황이 이어진다는 신경제이론이 제창되었고, 금융을 주도하여 미국경제를 재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짐. 그때까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던 민주당은 클린턴 정부 하에서 월가와 함께 화폐로 화폐를 증식시키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길을 선택. 견실한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즉 일확천금을 버는 길로 미국경제를 바꾼 것.
미국에서는 금융제국화와 경제의 공동화가 앞뒤로 진행되었고, 자동차, 철강 등의 공장이 노동력이 저렴한 아시아로 대규모 이전. 21세기가 되자 IT산업까지 중국에 집중됨. 이런 경향은 80년대부터 가속화됨. 2000년이 되자 미국은 기업수익의 45%를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데 반해 제조부문은 불과 5%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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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씽킹

과학 2024. 12. 7. 06:41

- 우주에서 우리 주소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처녀자리 초은하단, 처녀자리 은하단, 국부은하군, 우리은하, 오리온자리 팔, 태양계, 지구입니다.


- 우리는 우주와 똑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많은 별의 삶을 ㅇ어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 내부에는 우주가 있다. 나아가 우리는 인류 전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 모든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늘 우리가 마신 물에는 클레오파트라의 몸을 통과한 물분자가 있고, 오다 노부나가의 내장을 지난 물분자가 있다. 지구상의 모든 물을 컵데 다망도 10의 19승 컵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컵에 가득찬 물에는 대략 10의 25승의 수소와 산소가 있다. 통계확률적으로 그렇게 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인류 및 생명과 똑같은 물분자를 공유한다.
공기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들이마신 공기분자를 들이마시고 케냐의 사자가 들이마신 공기분자를 들이마시고 있다.

- 우주의 빛, 그리고 우리의 빛
빛은 전자파이며 다양한 파장을 가짐. 그러므로 물체가 발하는 빛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파장을 선택할 필요가 있음. 태양의 대기는 가시광선으로는 관찰할 수 있지만 엑스선이나 전파로는 관찰 불가. 그리고 태양의 바깥층과 태양 코로나는 엑스선으로는 관찰할 수 있지만 가시광선이나 적외선으로는 관찰 불가. 우주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파장을 다각적 시점에서 볼 필요가 있음. 
빛에는 다양한 파장이 있다. "무엇이 어떤 빛을 내는가?"는 어떤 망원경을 사용해 어떤 파장 영역에서 어떻게 관찰하느냐? 다시 말해 관찰자의 시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의 빛도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 우주의 95%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은 우리 생활이나 실험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런 물질을 보통물질이라고 함. 이를테면 원자를 이루는 양성자와 전자는 보통물질이다. 인간, 지구, 태양도 보통물질이다. 질량은 없지만 에너지를 가진 빛도 보통물질읻.
그러나 우주에는 보통이 아닌 물질과 에너지도 있다. 이것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고 한다. 우리가 정체를 모르고 이해할 수 없어서 암흑이라 부른다. 우주의 95%는 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 암흑물질의 정체
암흑물질을 입자로 가정할 경우, 검출이 어려운 이유는 암흑물질이 보통물질을 무시하며 거의 교류(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 암흑물질끼리도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암흑물질은 대체 어떤 입자일까?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는 WIMPs(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라는 전하를 띠지 않고 중력과 약한 힘에만 반응하는 무거운 가상의 입자다. 이를테면 WIMPs가 붕괴할 때 방출되는 감마선을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거나 제논 원자핵과의 산란으로 인한 발광을 실험 시설에서 직접적으로 검출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관측과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암흑물질의 존재가 추정된 지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음

- 참가자에게 버튼을 주고 언제든지 눌러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참가자가 버튼을 누를까?라고 생각하기 0.3초 전에 이미 뇌가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누르기로 선택한다고 한다. 오른쪽 버튼을 누를지 왼쪽 버튼을 누를지 선택하는 실험, 숫자 두 개를 서로 더할지 뺄지 선택하는 실험 등 다양한 실험이 있는데,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왔다. 자신이 선택했다고 인식하기 약 0.3초 전에 이미 뇌가 움직이기 시작해 선택하고 인간은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가정과 착각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의 편향이 작용하는 판단을 내리게 됨. 버튼을 누르거나 간단한 계산을 하는 단순한 선택은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대상이 복잡할수록 또 자신에게 미지일수록 현실에서 벗어난 왜곡된 해석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자기 뇌의 한계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다시 말해 현실을 더 정확히 보고싶다면 자신의 뇌가 내리는 지시를 의심해야 한다. 타인이나 사물을 안일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 또하나 뇌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는 선택도 가능. 물론 트럭이나 코끼리가 갑자기 달려들 때와 같이 뇌의 무의식적 판단을 곧바로 따라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리기 전에 한번 멈춰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잠시 멈춰 서 보자. 그리고 자신의 뇌가 내리는 지시를 인식하고 그 해석과 판단을 의심해보자.

- 우리는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만, 내일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는 기억할 수 없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이 과거(낮은 엔트로피)이고, 기억에 남을 수 없는 것이 미래(높은 엔트로피)다.
한편,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내일 저녁 무엇을 먹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과거는 선택할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 과거는 가능성의 폭이 좁고 예측가능하므로 기억으로서 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미래는 가능성의 폭이 넓고 예측이 어렵기에 기억으로 신용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다.
과거와 지금, 미래가 평등하게 존재하는 우주에서 우리는 선택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시간의 화실이 없는 미시적인(원자) 세계와 시간의 화실이 있는 거시적인(인간)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보완한다. 거시적 세계에는 미시적 세계에는 없는 선택(자유의지)가 있다.

- 60년전 블랙홀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이론상의 가설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관찰을 통해 존재가 확인되면서 가설은 과학적 지식이 되었다. 우주와 세계의 구조에 관한 가설은 무수한 관찰과 실험으로 수없이 업데이트되고 검증된 후 과학적 지식이 된다. 또 과학적 지식(과학)은 틀렸을 가능성을 허용하고, 반증을 환영하며, 항상 동적으로 변화함.
한편 상식이란 특정한 집단, 특정한 시대, 특정한 환경에서 공통인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규칙이다. 엄격한 과학적 방법, 의심, 비판적 사고로 검증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의심해본 적이 있는가? 비판적으로 상식을 검토해 본 적이 있는가?
상식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환경, 특정한 집단이 집단으로서 기능하는 데 필요한 규칙임. 그러므로 다른 시대나 다른 환경, 또는 다른 집단에서는 상식이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상식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집단과 개인을 속박한다. 그렇기에 상식은 의심해야 한다. 상식도 틀렸을 가능성을 허용하고, 반증을 환영하고, 항상 동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상식을 과학적 방법으로 업데이트해 나가면 모든 사람에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과학의 5가지 규칙은 사회의 규칙이기도 하다.(코스모스)
1. 권위를 의심하라
2.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3. 관찰과 실험으로 아이디어를 검증하라
5. 나는 틀렸을 수도 있다.

-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 중 일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일부다. 타자와 분리된 한 사람으로 자신이 존재하고, 자신이 사고하고 느긴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전부 우리 의식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착각이다. 그 착각과 망상은 우리의 감옥이다. 각자의 욕망으로 된 감옥이다. 이 감옥에서는 자신과 소수의 사람만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모든 생물과 자연의 조화가 가진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배려를 넓혀 나감으로써 이 꽉 막힌 감옥에서 자신을 해방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 암흑에너지로 계속해서 가속팽창하는 우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1) 텅텅 비어 시간의 방향이 없어진 우주
(2) 알지 못하는 사이 순식간에 말살되는 우주
(3) 모든 것이 갈가리 찢기는 우주
(4) 수축해서 빅 바운스로 다시 태어나는 우주

-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서 무한한 것 두 가지가 있다. 우주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우주는 무한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간은 무수히 서로 죽이고, 약탈하고, 침략하고, 파괴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함에도 여전히 전쟁을 일으키고, 낭비하고, 차별하고, 괴롭히고, 시기하고, 비비꼬인 마음을 먹고,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들을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는 등 확실히 어리석은 면이 무한히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음이 무한함과 동시에 사랑도 무한하다. 무한한 사랑의 양이 무한한 어리석음의 양보다 커지면 사랑이 어리석음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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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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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 이야기

경영 2024. 12. 7. 06:40

- 산업혁명은 19세기 들어 본격적 궤도에 진입. 산업혁명이 세계로 전파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저금리의 금융산업 발전과 해상무역의 발달이다. 그 중심에 유대인들이 있었다.
유대인 이야기의 사실상 클라이막스는 로스차일드가에서 시작함. 이전까지는 스페인계 세파르디가 유대인 사회를 주도해 왔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이후 독일계 아시케나지가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산업혁명이 불길처럼 번지고 금융업이 전에 없이 번성하던 시대에 탄생해, 성장하고, 시대를 주도. 이 가문은 국제금융의 설립자로 불리는데, 19세기 당시 지역대부업 수준이던 금융업을 온갖 혁신적 아이디어로 글로벌 금융산업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
독일 프랑크푸르트 게토 출신의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4-1812)가 본격적으로 국제금융업에 뛰어든 것은 18세기말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독립주권을 가진 235개의 공국과 51개의 자유도시로 나뉘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목상의 느슨한 연방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중부와 동부유럽국가들이 거의 포함되었다.
그 무렵 유럽은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대자본이 필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무역증가에 다른 대금결제 필요성도 증대. 게다가 나폴레옹 전쟁에 휩쓸려 있던 시기였는데,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듯 금융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때 새로운 금융기법들이 탄생. 
전시에 유대인은 부를 쓸어모으는 데 탁월한 창의적 재능을 발휘. 창의적이란 원래 평화로운 시기보다는 비상시에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로스차일드는 갓 10대를 벗어난 다섯 아들을 유럽 주요국의 5대도시, 프랑크푸르트, 빈, 런던, 나폴리, 파리에 보내 어음결제은행을 세움. 은행이름은 로스차일드 상사로 메디치가문 이후 최대의 민간 다국적 은행이다. 

- 마이어는 68세나이로 사망. 그는 "우리 집의 자산은 일체 공표하지 말라.", "돈이야말로 유대인을 구원하는 단 하나의 무기라는 것을 늘 명심하라"같은 유언을 남겼다. 그가 남긴 엄격한 유언은 다음과 같다.
1. 가족 구성원은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다투지 않는다.
2. 가문 은행의 요직은 반드시 가문 내부에서 맡아야 한다. 남자만이 상업활동을 할 수 있다.
3.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재산의 외부유출을 막아라.
4. 재산상황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
5. 재산 상속시 변호사를 개입시키지 말라.
6. 집안의 모든 장자가 우두머리다. 가족이 만장일치로 동의할 경우에만 차남을 후계자로 할 수 있다.
7. 유서내용을 위반하는 자는 재산 상속권 일체를 박탈한다.
유언장에 따르면 "그 어떤 경우든, 법원이나 다른 기관이 나의 재산을 조사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동시에 유산의 평가에대한 어떤 법적 조치나 공표도 금지한다. ... 누구든 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가족간 분쟁을 야기하는 어떤 종류의 행동이든 취하는 자는, 나의 유언에 대항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 행동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했다.이 유언장 문구는 이후에도 로스차일드 가문 후손들의 유언장에 예외없이 그대로 반복됨.
이 유서 때문에 오늘날까지 로스차일드 일가의 자산은 비밀에 싸혀 있음. 당시 상황은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수많은 유력인사와 몇몇 정부와 은밀히 거래했다. 이런 비밀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서류 이외에는 보존하지 않았고, 이마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기하곤 했다. 반유대주의를 촉발할 어떤 증거도 남겨두려 하지 않은 것이다.

- 큰 아들 암셸은 나중에 통일독일의 초대 재무장관이 된다. 또한 1822년 오스트리아 황제에 의해 남작에 봉해졌으며 프랑크프루트 로스차일드 상사는 독일 금융의 중심이 된다. 현재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중앙은행이 자리잡은 유럽 금융의 중심지다. 둘째 살로몬은 빈에서 최고의 직위에 오름. 셋째 나탄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금융인이 됨. 넷째 카를은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했고, 막내 야콥은 프랑스에서 공화정과 완정에 걸쳐 군림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은 한 손에 질끈 묶여 있는 다섯개의 화살이다. 이 화살들은 전 유럽으로 흩어져 집안의 부를 팽창시키던 마이어의 다섯 아들을 의미. 화살처럼 빠르되, 하나로 묶여 있어 어느 누구도 부러뜨릴 수 없는 강한 힘을 지닌 형제애를 의미함.

- 정보망과 수송 네트워크 구축
나탄이 구축한 전용 고속정보망에 힘입어 형제들은 유럽 전체를 커버하는 통신과 마차 수송 네트워크를 완성. 통신은 주로 비둘기를 사용. 날씨가 나빠 도버해협에 비둘기를 날리기 힘들 때는 배를 띄움. 
당시 로스차일드 집안은 영국과 프랑스를 가로막는 도버해협에 자가용 쾌속선을 여러 척 대기시켰다. 나탄은 남들보다 정보를 1시간이라도 빨리 전달해 줄 때는 수고비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나탄 곁에는 악천후에도 바다로 나서는 용감한 선장이 많았다. 이들은 몇 세대에 걸쳐 로스차일드가에 봉사하며 대대로 충성심을 이어감.
로스차일드 집안은 유럽대륙을 종횡무진 내달릴 수 있는 마차수송 네트워크도 보유. 로스차일드 집안 전용 파발마는 어느 말보다 빨리 전 유럽을 누비고 다님. 그들은 남들이 잘 때 마부를 바구어 밤을 새워 달렸다. 남들이 닷새 걸릴 기도 나흘이면 충분했다. 이 하루차이의 정보가 금융세계에서는 승패를 갈랐다. 예를 들어 혁명 소식을 하루 먼저 접한 로스차일드는 그 나라 채권을 먼저 팔아 치웠고, 다음 날 소식을 접하고 폭락한 채권을 저녁에 다시 헐값에 사들였다. 하루만에 채권의 양이 서너배로 증가. 이들은 보안을 위해 정보를 전하는 편지에는 이디시어와 암호를 섞어 사용.
형제 중 하나가 손해를 보면 다른 형제가 이를 만회. 영국 철도사업에서 실기하면 오스트리아 프랑스 철도건설을 추진하는 식이었다. 그들에게는 실패도 유용한 정보이자 재산이었다.
당시의 정보망과 수송네트워크는 오늘날 인터넷 만큼이나 획기적 시스템이었음. 남보다 한발 빠른 정보를 이용해 나탄은 금과 통화투기로 대박을 터뜨림. 이는 믿고 맡길 수 있고 한마음처럼 움직일 수 있는 형제들끼리만 가능한 제휴플레이였다.
그들의 최대무기는 뛰어난 정보수집력과 더불어 분석력. 융자를 제공할 때는 사전에 유럽의 정세를 분석한 정보를 토대로 치밀하게 조사하여 변제능력을 철저히 검증. 특히 전쟁이 끊이지 않던 격동의 유럽에서 정세분석은 생존과 직결됨. 이들은 정보망을 이중삼중으로 점검하고 분석하는 로스차일드 시스템을 탄생시킴.
당시 군소 유대금융가문들은 이런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보 네트워크 일원이 되는게 꿈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과 정보만 공유할 수 있다면, 금융시장의 강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 적어도 정보부재로 실수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 결국 전쟁은 나폴레옹의 약탈적 금융과 성숙한 채권시장에 기반을 둔 영국 금융 사이의 싸움이 되었다. 영국은 많은 채권을 발행해 순조롭게 전비를 마련. 거기에 대항해 프랑스가 1806년 대륙봉쇄령을 내렸으나, 이미 나폴레옹은 패배의 길로 접어든 셈. 상인과 금융인 전체를 적으로 삼은 꼴이니 말이다. 세상에서 돈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음. 
게다가 나폴레옹이 대적했던 나라는 군자금을 빌려주는 로스차일드가가 있었다. 물론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에게도 군자금을 빌려주었으나 상대국에 비해 적은 금액이었음. 나폴레옹 전쟁 당시 각국 정부에 1억프랑을 지원하며 나폴레옹을 패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탄이었다. 
유대인의 해방을 앞당긴 나폴레옹은 "유럽에는 오직 하나의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로스차일드다"라고 한탄함. 결국 전쟁은 자본력 싸움이다.
미국 노동운동가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에서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역사를 쉽게 명쾌하게 다룸.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고전경제학으로부터 시작된 경제학 이론을 그 배혁이 되는 역사발전에 비추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음. 이 책에서 휴버먼은 "역사책을 보면 이런저런 왕들의 야망과 정복 그리고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런 책들의 강조점은 완전히 틀렸다. 왕들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기보다 왕권 배후에 있는 진정한 힘, 곧 그 시대의 상인과 금융업자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 금융역사를 보면 1815년을 분기점으로 큰 변혁이 일어남. 네덜란드 금융시장이 주도하던 1600년부터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되는 1815년가지는 정부공채와 동인도회사 같은 소수 독점기업의 주식만 유통됨. 하지만 1815년 이후 금융시장은 세계화되는데, 이 중심에 로스차일드상사가 있다.
1815년 워털루전쟁 이후 유럽 내 런던 로스차일드의 위상은 매우 높아짐. 나탄은 영국이 유럽 동맹국들에게 제공한 자금 4200만 파운드의 절반을 조달할 정도로 금융계의 강력한 권력자가 됨. 그뿐 아니라 영국 정부의 최고 채권자로 등극하여 공채발행을 주도하고 영란은행 최대주주가 되어 실권을 장악. 영국 통화공급량과 채권금리를 로스차일드가 좌지우지하게 됨.
워털루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시장이 전반적으로 살아나 상승장, 즉 불마켓이 형성됨. 특히 콘솔채를 비롯한 채권 가격이 상승해 주식시장 역시 불붙기 시작. 이때 주식시장이 확대되어, 처음에는 운하, 다음으로 철도 주식이 금융시장이 성격을 바꾸어 놓음.
이런 상승기에 힘입어 로스차일드 일가는 채권시장과 금시장에서 대출을 동원한 투자, 즉 레버리지 투자를 한 것으로 보임. 이후 형제들의 정보분석력과 단합된 힘으로 국채와 금, 환거래, 주식, 광산투자 등에서 연이어 성공함으로서 로스차일드 일가의 자산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세계 금광업을 장악한 로스차일드는 영국을 1819년 세계 최초의 금본위제 국가로 만듬. 그 무렵 로스차일드가 세계 주요 금광산을 사들여 금을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할 때였다. 이렇게 1819년부터 영국 파운드화는 공식적으로 금과 연계됨. 세계 최초로 금본위제가 시행된 거이다. 로스차일드는 이 여세를 몰아 아예 세계 전체를 금본위제로 유도했다. 유럽 주요국들과 미국이 금본위제 시행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이 지대하게 작용.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 중개수준을 넘어 금융와 외혼시장의 글로벌화를 통해 시장의 성격을 바꿈.

- 파운드화, 기축통화가 되다
역사가 시작된 이후 금의 생산량은 감소세이 있다. 1800년대 당시 금은 덩치가 커진 전 세계의 모세혈관까지 흘러들어가기에는 양이 부족. 따라서 금을 대신할 강력한 화폐가 필요해짐. 이때 영국의 파운드화가 가장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영국은 1819년 금본위제를 채택하여, 영란은행이 파운드를 금과 바꿔주는 제도를 실시했기에 파운드화는 금에 맞먹는 지위를 갖고 있었다. 당시 영국 파운드화는 세계무역 가운데 60%를 장악했고, 런던 금융시장은 전 세계 투자의 절반을 소화했다. 영국이 최대교역국이자 주요 운송국이고, 해외자본 수출국이었으니, 영국 화폐가 국제지불수단이 되는 것은 당연. 이렇게 파운드화는 세계기축통화로서 그 힘을 과시하게 됨.
이런 배경에도 로스차일드의 역할이 컸다. 일설에 의하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총자산은 약 1억 3600파운드에 이르렀는데, 그중 나탄이 9천만 파운드를 소유. 당시 영국 최고부자로 알려진 왕가의 재산은 500만 파운드 정도. 이때부터 화폐발행과 금가격을 포함한 중요 결정권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중으로 들어감. 당시 영국 정부는 화폐발행권한이 없었기에 국채를 발행해 로스차일드 소유 영란은행에서 돈을 빌려쓰면서 연 8%의 이자를 내야했다. 영국의 세금뿐 아니라 국채가격과 통화공급량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이 마음대로 주물렀던 것. 대영제국의 경제와 금융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경제가 통째로 로스차일드 가문에 들어간 셈.
로스차일드는 각국의 통화를 상품으로 보고 형제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무위험 차익거래를 통해 꾸준히 수익을 올림. 그뿐 아니라 외환시세를 주물러 그 환차 수익 투기에 열을 올림. 그리고 채권시장의 글로벌화와 외환시장의 글로벌화를 동시에 추진하여 런던을 그 중심시장으로 만듬.

 

- 로스차일드가는 금본위제하의 파운드를 기축통화로 만들어 그 세력을 세계로 넓힘. 특히 미국산업발전의 돈줄이 되어 미국 근대산업사와 금융사에 공헌. 이른바 소로스 같은 현대 헤지펀드들이 주로 애용하는 투작기법인 매크로투자가 로스차일드로부터 시작된 것임. 로스타일드 가문은 거대금융에 의한 승자독식시대를 열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참고로 이후 1870년대 영국의 재정지원을 받고자 하는 많은 나라가 금본위제로의 이행을 서둘렀고, 독일(1872), 프랑스(1878) 등이 영국을 따라 금본위제를 채택. 그리고 1879년 미국이 금본위제에 합류함으로써 세계 주요국이 모두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됨. 금본위제는 국제결제 시스템의 효성을 높여 세계 경제발전에 기여

- 유대인은 이슬람 세계에서 500년간 번영을 누렸다. 그러던 중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으로 박해받게 되자 스페인 왕국으로 건너갔고, 그 후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며 통일왕국을 이룩한 스페인이 기독교 왕국을 표방하자 다시 전격 추방됨. 이때가 1492년이다.
스페인에서 쫓겨나 종교의 자유를 찾아 척박한 저지대로 몰려간 30여만명의 유대인이 인구 100만의 소국 네덜란드를 당대 중상주의 물결을 타고 최강의 강소국으로 만드는 기적이 100여년만에 펼쳐짐. 네덜란드가 가난한 어업국에서 해운강국으로, 중계무역과 금융강국으로 변신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씨앗인 주식회사, 주식거래소, 중앙은행이 탄새이
유대인은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치르며 치열하게 싸움. 특히 전시자금을 모으기 위해 채권시장을 발전시킨 덕에 시중금리가 2-3%대로 떨어짐. 이로 인해 투자가 활성화되어 세계 무역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커가며 서로 왕래하게 됨.
이후 이들 무역 네트워크와 금융시스템이 후진국 영국으로 통째로 옮겨지는 소설같은 일이 실제 역사에서 벌어짐. 유대인의 이동과 함께 암스테르담의 세계 무역네트워크와 금융시스템이 도버해협을 건너 런던으로 이식된 것.
이런 환경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타나 세력을 확장하며 유럽대륙을 하나의 금융권으로 묶은 것임. 멀티내셔널 금융그룹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정보를 토대로 돈을 벌었다. 전쟁, 산업, 외환, 상품, 지역 등에 관한 모든 정보가 돈과 직결되었다. 그리고 정보를 통해 이들이 축적한 천문학적인 자금과 저금리는 산업혁명을 전 세계로 전파. 글로벌 금융의 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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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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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경영이다

경영 2024. 12. 7. 06:38

- 리딩하지 않는 상사에게서 우리는 어떤 관리를 기대하고 있는가? 이는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관리도 하지 않는 상사에게서 리딩은 받고 싶어할까? 이 역시 맥 빠지기는 매한가지다. 이처럼 리더가 경영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스탠퍼드경영대 짐 마치가 "리더십은 배관공사 업무일뿐만 아니라 시적 통찰력을 포함하는 업무이다." 라고 언급했듯이 말이다.
나는 캐나다 왕립은행 의장인 존 클렉혼이 맡은 업무를 관찰했다. 그는 공항에 가는 길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어떤 은행지점에서 발견한 현금입출금기의 고장상황을 알리면서 나름의 평판을 쌓아갔다. 참고로 해당은행의 현금입출금기는 수천 개나 된다. 과연 존은 여기에서 마이크로매니팅을 하고 있던 것일까? 아마도 존은 부하직원이 따라오도록 타의 모범을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경영자의 지위와 관계없이 다양하게 일어나는 경영자의 업무를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야 한다.

-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매크로리딩이다. 이것은 머릿속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업무에서 동떨어진 상태로 원격통제로만 업무를 관리하려드는 고위간부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어느새 우리는 과도한 관리와 부족한 리더십에 대해 운운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부족한 관리와 과도한 리더십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경영자와 리더를 구분하기보다 경영자를 리더로 볼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경영에서 실행이 원활한 상태로 봐야할 것이다.
또한 통상 리더십은 개인에 집중하는 반면, 이 책에서는 리더십이 포함된 경영을 이른바 커뮤니티십(사장과 임원, 현장 실무자들이 서로 존경하고 연결된 공동체적 개념)이라는 것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 경영자들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수행할 가능성이 있는 업무와 수행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업무에 대한 문제로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영국 축구협회의 어떤 회장은 유럽대륙 경기에서 팬들의 폭동이 일어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영자들은 업무를 보면서 끊임없이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업무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신속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시간낭비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상황은 어찌 보면 경영자의 직업병인 셈이다. 경영자들은 성공하기 위해 피상적인 업무처리에 능숙해져야 한다.
흔히 전문가는 모르는 것이 없을 때가지 갈수록 많은 것을 아는 자라고 한다. 경영자의 문제는 그 반대다. 경영자는 아는 것이 없을 때까지 갈수록 적은 것을 아는 자다. 이것을 이른바 '피상성 증후군'이라 지칭한다.

- 가십, 소문, 추측은 경영자의 입맛에 맞는 정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 그 이유는 아무래도 이러한 정보가 지니는 적시성에 있는 것 같다. 즉 오늘날의 가십은 내일의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회사의 가장 큰 고객이 경쟁사와 골프를 친다는 전갈을 받지 못한 경영자는, 다음 분기에 대폭적 판매량 감소를 보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회복하기에 너무 늦을 것이다. 
"회계보고서에 미처 확보하지 못한 정보가 반영되어 나온다면 곤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루즈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정보를 수집하는 습관에 대해 연구한 리처드 뉴스타트의 말을 인용해보자
"대통령의 유대관계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잘 정리된 요약, 설문조사. 기타 고리타분한 서류가 아니라, 보고된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마음속의 구체적인 자질구레한 정보들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신의 관심사와 유대관계에 도움이 되는 작은 사실 하나, 의견, 가십이라도될 수 있는 한 광범위하게 수집해야 한다. 즉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수집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 형식적 정보는 정형화되어 있으며 한계가 있는 하드데이터다. 하지만 비형식적인 정보는 신뢰성이 조금 떨어지긴 해도 훨씬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화에는 목소리의 톤이 담겨 있으며 상호작용할 기회가 있다. 미팅에는 표정과 동작을 포함한 다른 신체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비공식적인 정보의 이점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자. 이메일이 전통적 우편물보다 훨씬 빠르고 다소 상호적 매체라 해도, 이런 이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 경영의 최우선 목적은 소매체인에서 제품을 파는 일이든, 요양소에서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든, 사업부가 그 기본목적을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영자들은 때때로 스스로 실행에 옮겨야 하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일보나 이보후퇴하는 일이 더욱 빈번히 발생. 즉 경영자들은 일보후퇴해 코칭과 동기부여, 팀격려활동, 문화활동 등으로 직원들이 실행에 옮기도록 독려한다. 또한 이보 후퇴해 정보를 통해 영업팀에 목표를 부과하고 고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등 직원들이 행동에 옮기도록 이끌어준다.

- 힐이 연구한 신임경영자들은 처음에는 각 부하직원과 가장 효과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인사관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팀 구축의 책임에 역점을 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책임을 인식하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번 실수를 저지르면서 그들은 팀 구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마도 신임경영자들은 조직의 체계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란 착각에 빠지는 것 같다. 즉 신임경영자들은 모든 근로자가 어떤 전반적 게획이나 방향에 다라 업무를 수행한다면, 접촉이나 사람의 간섭이 없어질 것이라 여긴다. 다시 말해 경영의 역할 중 통제의 역할이 알아서 필요한 조정을 척척 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리딩은 조직문화의 조성과 강화를 돕는 일이다. 

- 연계는 완충을 의미. 특히 경영의 균형을 이루는 미묘한 행위로 인식되는 연계활동의 조합을 완중이라 함. 경영자들은 외부정보와 영향력을 전달하는 경로일 뿐아니라, 이 경로에서 어떤 정보가 어떻게 통과되어야 할지 통제하는 밸브 역할을 함. 경영자 역할에 대한 두가지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 경영자들은 영향력을 주고받는 흐름에서 문지기와 완충재 역할을 한다. 이것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 경영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완충의 양상을 보자.
* 어떤 경영자들은 외부 영향력이 사업부로 너무 쉽게 흘러가도록 하는 체 같은 역할을 함. 이런 역할은 수뇌부가 단기결과를 빠르게 끌어올리려고 주식시장 분석가의 요구사항을 전 직원에게 전달할 때처럼, 직원들이 외부압박에 일일이 반응하게 해 무모한 보고서만 양산하게 할 수 있다.
* 어떤 경영자들은 제품변화를 요구하는 외부고객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차단해 버리는 댐 같은 역할을 함. 이러한 역할은 사업부 내부직원을 보호할 수도 있지만, 직원들을 외부와 격리시킬 수 있음.
* 어떤 경영자들은 스스로 압박의 상당수를 흡수하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함. 이런 역할을 하는 경영자들은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말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지쳐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임.
* 호스관처럼 행동하는 경영자들은 외부사람들을 압박하기도 함. 결과적으로 이런 경영자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해서 비협조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은 회사가 과도하게 공급사를 압박할 때 빈번하게 발생함.
* 마지막으로 소리 소문 없이 흐르는 물처럼 행동하는 경영자들이 있다. 그들은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업부의 필요성을 외부에 드러내지도 못한다. 회사가 어려운 지경에 처하는데도, 주식시장 분석가들을 들볶지 않는 사장들이 그 사례다.

- 사업부의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경영자든 드물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수행을 이른바 마이크로매니징으로 깎아내리는 일부 문헌의 의견은 수행에 대한 편협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이런 관점을 가진 경영자들은 문자 그대로 접촉(관계)에서 벗어나 높은 연단과 같은 집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도록 전략을 읊는 자들에 불과. 
한 간부가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컨설턴트 그룹의 한 고위간부가 제게 일정연설을 늘어 놓더군요. 내로라하는 최고위 간부들은 될 수 있으면 제품을 잘 몰라야 이상적이라고요. 그 간부는 그래야 편견없이 객관적으로 모든 비즈니스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단순한 곳이라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세상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을 파악하는 단 하나의 합리적 방식이 바로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전략은 별도로 떨어져 있는 사무실에서 빈틈없이 구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 경험을 통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영자가 참여하지 않고 프로젝트가 스스로 알아서 전략방향에 맞춰 진행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자크 벤츠의 사례에서 보듯이 프로젝트는 사업초기의 전략수립에 도움을 준다. 높은 위치에 앉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경영자들은 배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흔히 말하는 실패한 전략가가 되고 만다.

- 사고의 속성은 무겁다. 그래서 사고를 너무 많이 하면 경영자의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행동의 속성은 가볍다. 그래서 행동을 너무 많이 하면 경영자는 자기 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더욱이 리딩이 지나치면 내용, 목표, 구성, 실행이 없는 업무로 전락할 수 있는 반면, 연계가 지나치면 핵심에서 벗어난 홍보업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커뮤이케이션만 하는 경영자는 어떤 업무도 제대로 완수할 수 엇다. 반대로 수행만 하는 경영자는 결국 업무를 혼자서 도맡아 하게 된다. 또한 통제만 하는 경영자는 예스맨만 있는 빈껍데기 조직을 통제할 위험이 처한다. 우리엑는 사람지향적이기만 하거나, 정보지향적이기만 하거나, 행동지향적이기만 한 경영자는 필요 없다. 세가지 영역을 고루 아울러야 한다.

- 기본적인 6가지 조직형태
* 기업가적 조직 : 한 명의 리더를 중심으로 상당히 중앙집권화된 조직. 리더는 상당한 수행과 교섭에 관여
* 기계적 조직 : 단순하게 되풀이되는 운영업무 중심의 공식적으로 체계화된 조직. 경영자들은 상당한 통제의 역할에 관여
* 전문적 조직 : 운영업무를 하는 전문가들 중심으로 대체로 스스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여기에서 경영자들은 내부 전문가를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해 연계와 교섭같은 외부업무에 더욱 치중
* 프로젝트 조직 : 혁신적 전문가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 이 조직의 프로젝트 관리자들은 팀을 구성하기 위한 리딩에 집중하고, 프로젝트 업무를 돕기 위한 수행에 집중하며, 다른 팀들과 협업하기 위한 연계에 집중. 그동안 이 조직의 고위간부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져오기 위한 연계와 교섭에 주력한다.
* 사명적 조직 : 강력한 조직문화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여기에서 경영자들은 해당 조직문화를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리딩을 강조.
* 정치적 조직 ; 갈등이 주로 나타나는 조직. 경영자들은 때로는 긴급대응 조치를 위해 수행과 교섭을 강조.

- 전략은 모세가 십계명판을 하달받듯, 경영자가 만들어 직원들에게 하달하여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전략은 특수 사실을 넘어 일반 사실을 끌어낼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 정상이 아닌 땅 위에서 수립할 수 있는 것. 전략가는 성층권과 같이 매우 높은 개념에 머물러 있기보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듯 실체가 있는 땅에 발을 딛고 실제적인 전략을 세워야 함.
이는 경영자들이 자신의 조직에서 수천개의 전략적 꽃이 피어나도록 한 후, 이 중에서 조직을 가장 잘 뒷받침할 수 있는 꽃을 선택하는 식으로 계획의 고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 이렇게 계획의 고충을 완화하는 경영자들은 보통 전략이 온실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는 경영의 지성형 스타일보다는 잠재적 성장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참여형 스타일을 선호함.

- 피터스와 워터맨이 청킹(업무분할)에 대해 의욕적으로 기술했다. 즉 경영자는 큰 문제들을 한 번에 하나씩 다룰 수 있는 조그마한 조각으로 쪼개어 처리한다는 것. 하지만 청킹은 경영자가 이러한 조각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때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되돌려 놓는 일이 퍼즐 맞추기의 퍼즐조각처럼 쉽게 딱딱 들어맞을 것 같지 않기 때문. 이처럼 퍼즐의 개별 조각이 서로 잘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과 경영자가 무엇을 구축해야할지 불명확할 수 있다는 점만 제외하며, 청킹은 마치 레고블록을 갖고 노는 일과 같다.

- 인원감축을 통해 슬래브의 숫자를 줄여 수평적 격차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은 이미 유명. 인원감축은 수백년전 치료기법의 하나였던 사혈과 마찬가지로 매우 인기있으면서도 손쉬운 방법이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중간 관리자로 미어터지는 조직의 문제를 인원감축으로 완화할 수 있음. 하지만 그간 우리는 넘쳐나는 불필요한 중간관리자들을 감축한답시고, 진짜 필요한 중간관리자들마저 무심코 내친 적이 많지 않았던가?
현장업무와 경영을 수행하는 사무실업무 사이에 발생하는 행정적 격차를 메우는 더욱 바람직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바로 현장운영과 사무실 경영을 자연스레 연결할 수 있는 중간경영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 이것을 연계지위 영역이라고 한다. 
- 우리중 상당수는 최고경영진이 모든 것을 감독할 역량이 있다고 믿음. 또한 경영진이 일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명확히 볼 수 없는 근시안이 된 사례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흔히 중간 관리자들의 연계지위영역은 운영현실을 전략적인 큰 그림과 연결하기에 더욱 유리한 위치이며, 이런 연결과정에서 제대로된 경영은 맨 위보다는 중앙에서 나타난다.

- 하드데이터는 지나치게 집계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 데이터는 일반적으로 실제 숫자를 많이 수집한 후에 최종결산 결과와 같은 총계숫자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숫자를 산출하느라 놓친 삶의 일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자. 목재업에 몸담은 게 아니라면 숲을 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목재업에 몸담고 있다면 숲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봐야 한다. 헬기에서 보면 나무들이 그저 초록색 카펫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많은 나무가 존재하듯이 엄청나게 많은 경영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수많은 하드데이터는 너무 늦게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즉 정보는 하드정보가 되는데, 즉 명확한 정보가 되는데 시간이 필요함.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전자의 속도, 즉 인터넷의 빠른 속도에 속지 말자. 일반적으로 사건이 일어나면 우선 사실을 문서로 기록하고, 집계하여 결과를 내며, 그 후에 사전에 정해둔 일정에 따라 보고서가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경쟁사들이 고객들을 모두 훔쳐 달아난 후일 것이다.
- 결과적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하드데이터는 그저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에 불과. 하드데이터는 명확한 숫자들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는 좋다. 하지만 대체 이 숫자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드데이터라는 바위를 들어올려 그 바위 밑으로 기어다니는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

- 공공기관들은 통계수치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이런 통계수치를 모으고, 더하고, 세제곱근을 구하여 훌륭한 다이어그램을 만든다. 그런데 여기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런 수치들의 출처다. 즉 이 수치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저 자신이 적고 싶은 대로 적는 마을 경비원들에게서 나온 수치들이다.

- 하드정보를 아예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사실 하드정보를 없애버리는 일은 소프트정보를 없애는 일보다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저 앞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숫자에 더는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하드데이터가 소프트데이터를 몰아내게 하는 짓은 하지 말자.
우리 모두 소프트한 직관을 얻기 위해 하드한 사실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드한 사실을 얻기 위해 소프트한 직관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정보는 개인에 특화된 정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직접적이고 풍부한 정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업의 중역실에서 너무나 당연시 되고 있는 소프트데이터를 차단하는 현상에 반기를 들자.

- 평가의 피해
평가를 통한 경영은 분명 고위경영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임. 즉 고위경영자들은 모호한 것을 명확히 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보고서에 특정한 성과기준을 제시한다. "뭘 해야할지 알고 싶나? 좋아. 여기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니 꼭 맞추도록 하게나"
그런데 이 목표들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즉 목표에서 제시된 숫자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정작 목표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경시하면서도 때때로 이러한 수치들은 임의로 뽑은 것이거나, 모순이 있거나, 뜬금없는 희망목록에서 나온 것들이다. 목표에 담긴 엄청나게 모호한 면은 비밀에 부쳐지지 않은 채 더욱 많은 하급 경영자들의 일상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거대조직은 갈수록 당연해지는 많은 평가때문에 간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 혼자 힘으로 나아가는 경영자는 직원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따라올 수 있도록, 확신이 없을 때조차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경영자들은 확신 있는 척 해야함. 겸손한 경영자들은 이런 일을 어려워할 수 있다. 반대로 극도로 확신에 차 있는 경영자들은 이런 일을 절대로 어려워하지는 않지만 자칫하면 조직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심지어 합리적 확신조차 경영자를 극단에 치우치게 하여 오만한 상태로 내몰 수 있음. 이처럼 경영의 직무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남의 말을 듣는 것을 멈추고, 남에게서 고립되며,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기 쉬움.
확신과 오만 사이의 경계는 얇을 뿐만 아니라 모호하기까지 하다. 경영자는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 경계를 넘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미끄러운 비탈길 아래로 내려가다보면 바닥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확신의 위기는 오만한 수준으로 넘어가지 않으면서, 어떻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확신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

- 1. 경영자마으로는 효과적일 수 없다. 경영자와 다른 요인의 궁합이 맞을 때 효과적이다. 좋은 남편이나 좋은 아내라는 것은 없다. 오직 좋은 커플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경영자와 사업부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모든 경영업무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모든 경영업무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없다. 경영의 성공은 일정 시기에 경영자오 환경이 궁합이 맞아야만 가능.
그러므로 2. 일반적으로 효과적인 경영자라는 것은 없으며 
이는 또한 3. 모든 것을 경영할 수 있는 전문적인 경영자도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4. 경영의 효과성을 평가하려면 사업부 운영의 효과성을 평가해야 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5. 그 효과성에 대한 경영자의 기여도를 평가해야 한다.
소위 시원찮은 경영자가 있는데도 잘 굴러가는 사업부가 있는가 하면, 경영자와 관계없이 잘 굴러가지 않는 사업부들도 있다. 따라서 경영자가 자동으로 사업부의 성공과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추정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중요한 것은 역사, 문화, 시장, 날씨 등과 같은 조직을 둘러싼 제반환경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경영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업무만을 교묘히 수행하고 망치지 않도록 애쓰면서 성과의 공훈을 차지하는 식으로 성공을 거머쥐었을까?
내용을 정리해 보면 6. 경영효과는 사업부와 조직의 범위를 넘어 더욱 폭넓은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평가되어야 함. 전체 조직에 부담을 주면서 사업부의 성과를 쥐어짜내는 경영자는 어떠한가? 제조단가를 너무 낮게 잡아 품질에 문제가 생겨 영업에서 완제품을 판매할 수 없을 수도 있다.사업부와 해당 경영자를 평가할 때 전체 조직에 대한 기여도로 평가하는 조직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건강한 조직이란 동떨어진 별개의 인적자원을 그저 모아 놓은 수집품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인간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사업부와 조직에는 들어맞는 것이 사업부나 조직을 둘러싼 회적 상항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뇌물을 주는 일은 효과적일까? 그런 방식으로 상황을 보려 한다면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영자가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도 효과적이라는 명목하에 경영자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판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종합된 이 모든 요소를 가지고 과연 어떻게 경영자를 평가할 것인가? 답은 원칙적으로 간단하다.. 즉 7. 효과적인 경영은 판단할 문제이지 측정할 문제가 아니다.

- 단순하게 경영해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의 인간성, 즉 우리의 원래 모습을 깨닫고 리더십에 대한 유치한 집착 따위는 집어치우자. 오묘하고 대단한 권위의 위계구조가 아니라, 참여 공동체로서 모든 조직 구성원이 존경받고 이렇게 받은 존경심을 되돌려주는 그런 조직을 구성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물론 조직에는 구성원들의 노력을 조화시키고, 복잡한 사회 시스템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구성원들이 업무를 간단하게 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영자라는 사람들이 필요함. 하지만 경영자들은 군림하지 않고 구성원들과 더불어 함께 일해야 한다.

-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 리처드 보야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자연에서 생활할 때는 경영에 대한 어떤 이미지나 은유나 본보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경영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다. 물론 사람들이 경영하는 일은 거위 떼를 이끌거나 벌집을 결합하는 화학물질을 방출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실 경영은 완전히 자연스러운 행위여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경영을 자연에서부터 분리하여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연스러운 경영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는 우리가 위대한 경영자와 리더에 집착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을 암시. 이제 우리는 합리적으로 정상적인 사람들, 즉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약간의 결함은 있으나그 결함이 치명적일 정도로 크지는 않은 사람들이 조직에서 그야말로 성공적으로 경영하며 통솔하는 모습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감히 말하자면, 위대한 리더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려면 대단하기보다 어느정도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명철해야 한다. 이는 경영의 오묘함을 분명히 알고,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한계와 남들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며, 어떤 방식으로 세계가 나아가고 변모할 수 있는지 잘 아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는 리더십을 지나치게 부추기면서 그 외 구성원들의 지위를 강등시켰다. 즉 커뮤니티에서 협력하는 사람들의 원래 성향을 활용하기보다, 업무를 이행하도록 내몰리는 추종자 무리를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효과적인 구성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경영자가 참여할 뿐아니라 구성원들이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기 위해 경영자가 관계형성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리더십을 넘엇 커뮤니티십을 도모하면서 경영과 조직이 모두 얼마나 간단하고, 자연스러우며, 건전할 수 있는지 깨달아 이런 경영과 조직을 재조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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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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