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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관한 질문들

인문 2024. 12. 24. 07:06

- 편향된 독자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기 쉬움. 객관성이 부족한 독자는 자신을 중심으로 텍스트를 해석함. 제 멋대로 읽는다는 뜻. 공정하지 않은 독자는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논쟁적 상황에서 정보를 중립적으로 읽지 못함. 편을 든다는 의미. 
우리는 기존 경험이나 신념을 틀 삼아 새로운 정보를 재단하는 경향이 있음. 그 틀이 견고할수록 제멋대로 글을 읽을 가능성이 크고, 패턴이 특정 방향을 가리키면 편을 들며 읽는다. 이런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함. 흔히 확증편향을 가리켜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이라고 함.

- 앎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소극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굳이 질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큼. 이런 사람은 소박한 인식론적 신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함.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실에서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 같음. 경쟁위주의 경직된 입시제도 아래서 학생들은 주어진 지식을 그대로 수용행만 좋은 성적을 받음. 논술평가가 확대되고 고교학점제로 체제를 개편하는 등 크고 작은 변호가 있지만, 그럼에도 대학에 진학하려면 주요 교과의 지식을 외우고 또 외워야 함. 잘 외워서 수능만 잘 보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하다.

- 인공지능에 묻고 답하는 질문과정은 온라인 읽기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던 탐색, 평가, 종합의 과정을 대신함. 인공지능은 독자가 검토할 만한 텍스트를 대규모 데이터로 학습한 상태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저 질문만 던져도, 이전에는 스스로 직접 탐색하고 종합해서 얻어야 했던 잠재 텍스트를 응답의 형태로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음. 인공지능은 한 편의 완결된 에세이를 내어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 뉴미디어 학자 제이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은 매채가 변화해도 이전 매체가 새로운 매체로 온전히 대체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를 재매개라고 정의. 새로운 매체는 이전 매체가 지녔던 표상양식이나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의 일부를 차용하면서 발전해나간가는 것. 즉 새로운 매체라고 해서 말 그대로 완전히 새로운, 전에 없던 무언가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은 아님.

- 판단유보는 독자가 자신이나 사회의 영향력을 재점검해서 최종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려는 태도. 기사나 영상의 댓글에서 판단을 유보하려는 독자들의 의식적 점검과 조절행위를 찾아볼 수 있음. 다소 표현이 거칠지만 중립기어를 박는다고 함. 주어진 텍스트를 섣부르게 믿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비판적 독자들은 어떤 정보나 사건에 대해 현재의 텍스트만이 아닌, 또 다른 텍스트를 통해 해석의 타당성을 확보함. 또 이를 댓글로 남기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중한 해석을 요청하는 매우 적극적인 실천행위라 할수 있음.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는 텍스트의 불완전한 속성을 이해해야 가능. 그리고 텍스트를 읽은 직후에 환기한 느낌과 생각이 자신의 편향성에서 비롯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텍스트 내용이나 가치에 대한 판단을 잠시 지연하려고 노력하는 것임. 이는 자신의 사전지식이나 신념이 텍스트 해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할 때 가능해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편향된 나 자신에게 속지 않는 엄청난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일도 아니다. 제법 멋들어지게 쓴 텍스트와 아무렴 옳다고만 여겨지는 나 자신에게 눈드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한발 물러나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차분히 관망하면서 질문이 비집고 들어갈 빈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 여러분이 화면에서 마주하는 질문의 대상은 인공지능 챗봇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질문창이지만요. 하지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다른 것이 쥐고 있다. 바로 대규모 언어모델. 우리는 대규모 언어데이터를 또 하나의 질문대상으로 고려해야 함. 엄밀히 말해, 질문에 답을 내주는 것은 데이터이기 때문. 현재의 인공지능 모델은 자연어를 이해하고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갖추어 인간친화적으로 대화장면을 구현하지만, 질문에 답을 하려면 학습한 데이터에 의존. 결국 질문의 대상은 챗봇이 아니라는 것.
언어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에서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이 곧 좋은 텍스트를 생성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 생성형 인공지능은 학습한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토대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와 관련된 자료를 탐색함. 이때 데이터를 선정하는 기준은 질보다 양. 정보의 질을 고려하지 못하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끌어모아 분석함. 그렇기에 학습된 자료 다수가 오염되어 있다면, 결괏값 또한 부정확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누구나 텍스트를 만들어 게시하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텍스트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움. 그중에는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도 포함되어 있음. 인공지능은 디지털 텍스트를 학습해서 가공하기 때문에 원텍스트의 오류를 고스란히 가짐.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질문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답하는 대상이 가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줌. 이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응답의 출처를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함. 교사가 질문의 대상일 때, 학습자인 독자는 교사가 가진 정보를 신뢰하고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음. 다중 텍스트 읽기에서 저자의 권우가 높다고 평가하면 정보의 질을 되묻지 않는 것과도 같다.

-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다중 텍스트를 처리하는 일은 단일 텍스트와 비교할 때 인지부하를 가중함. 출처가 다른 텍스트를 비교해 가며 통합하는 일에는 더 높은 수준의 사고과정이 필요하기 때문. 어떤 한 주제에 관해서 한편의 텍스트가 모든 지식을 다 담고 있을 수는 없음. 그래서 우리는 여러 텍스트를 읽어야 함. 그런데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인공지능이 대신해 주고 있다.
독자가 텍스트를 직접 읽으려는 시도를 줄이면서 자신의 궈한과 주도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읽기에서 큰 문제임. 인공지능에 의존해 지식을 학습하는 독자는 텍스트를 검토하고 종합하는 탐구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큼. 무비판적이거나 다중 텍스트 읽기 과업에 부담을 느기는 독자가 계속해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텍스트만을 취한다면, 그들은 자력으로 텍스트를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지식을 탐구하는 주도적 독자로서의 힘을 잃게 될지도 모름.
우리는 지식의 소비자가 아닌, 구성자로서의 지위를 잃지 말아야 함. 그러러면 '그렇구나' 하고 대답하지만 말고 '정말 그렇다고?' 하고 질문하는 독자가 되어야 함. 즉 질문할 수 있는 능력과 질문하려는 태도를 갖춘 독자가 되어야 함.

- 인공지능이 소설이나 시를 써 주면 좀 어떻습니까? 그림은 또 어떻구요? 얼핏 완성되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빈 부분을 확인했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산출물은 결과가 아니라 그릇을 빚을 찰흙이다. 식재료에 비유해도 좋고, 벽돌에 비유해도 좋다. 무엇이든 그것은 최종결과물을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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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에 속한 개인은 생활환경과 직업, 지적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독립된 개인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느기고 생각하고 행동함. 따라서 군중은 구성원 개개인의 평균값이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이질적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유기체와 같음. 군중 속에서 개인이 상실되는 현상은 의식적 행위나 의지가 아니라 무의식에서 비롯됨

- 살아온 환경이나 교육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지적수준이 다를 수는 있으나 인격적인 면에서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음. 또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그들이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들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님.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편적 성질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재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특출함이 아니라 누구나 가진 평범함이기 때문. 그런데도 군중을 이루었을 때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수적 우세와 익명성으로 인해 도덕수준이 낮아지고, 무리 속에서는 어떤 메시지에 쉽게 동화될 뿐 아니라 그것이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증폭하기 때문.

- 독립된 개인으로서는 교양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군중에 속하는 순간 저급한 단계로 떨어져서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며 타인의 생각에 쉽게 동화하는 모습을 보임. 또 한편으로는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도덕을 실천하기도 함. 충동에 사로잡히고 영광과 명예를 중시하는 이런 군중의 속성은 어쩌면 인류문명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름. 인류 역사의 업적 가운데 많은 것이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무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한가지 사실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의 공통된 증언이 과연 진실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군중의 증언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오류가 암시와 전파를 통해 힘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목격한 사건일수록 가장 의심스러운 법이다.

- 군중의 감정은 쉽게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에 어떤 의혹을 접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군중이 이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감정을 마음껏 발산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익명성에서 비롯됨. 한편으로는 군중의 이러한 감정과잉은 수준높은 도덕적 행위를 유도하기도 함.

- 극단적 감정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군중은 편협하다. 그리고 수적 우위에 따른 힘을 믿기에 권위적이다. 때문에 군중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신념에 대해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음. 편협하고 권위적인 군중은 자시들과 유사한 모습을 지닌 지도자를 선호. 그래서 군중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을 섬길지언정 어진 지도자에 충성하지 않는다.

- 군중에게 스며드는 사상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우연한 사건과 인물의 영향으로 형성되는 일시적 사상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거나 사회 여건의 변화로 인해 형성된 근본적 사상이다. 오늘날 민족정신의 토대가 되는 근본사상은 흔들리고 있고, 일시적 사상이 명멸하며 짧은 시간 동안 사회를 뒤흔든다.

- 어떤 사상이 군중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개념을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대체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 형태를 취함. 사상의 개념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그 사상에 담긴 고차원적인 내용이 삭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군중 사이에 통용되는 사상ㅇ들을 두고 비교우위를 따지는 것은 헛된 일이다.

- 비판능력을 상실한 군중에게 논리적 근거는 무의미하다
군중은 어떤 근그를 통해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요된 판단을 받아들인다. 서로 유사해보이는 사례를 결합하고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한다. 군중을 사로잡고 싶은 연설자라면 어떤 사안에 담긴 복잡하고 미세한 부분을 일일이 들먹여서는 안된다. 단 몇 마디의 경구와 구호로 이미지를 환기시켜야 한다.

- 군중이 만들어낸 영웅의 실체
군중은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경구와 구호에 쉽게 매료됨.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는 군중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군중은 어떤 메시지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거기에 신화의 후광을 입힌다. 그래서 역사속 위대한 군주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군중의 상상 속에 군림하는 영웅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어야 함. 우리는 거의 매일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를 겪으면서도 그 일들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는 비상할 정도로 집중하며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지도자가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할 때도 같은 방식을 취해야 함. 응축된 이미지를 통해 사건 전체를 일시에 제시해서 군중이 스스로 이미지를 재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 군중은 자신들이 따르는 신념과 지도자에게 맹목적인 순종을 바치고, 자신들의 믿음에 동조하지 않는 이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임. 군중의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 감성에서 비롯되기에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는 신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 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종교적 감정에 들뜬 군주으이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군주와 지도자의 결정으로 보이는 그 모든 사건을 실제로 움직인 이들은 군중이었고, 종교적 열망이 아니고는 군중의 그 과격한 행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 제도와 법령을 개선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혁명조차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제도와 체제가 시대와 정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정신이 제도와 체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각 민족은 민족 고유의 기질에 어울리는 제도와 체제를 이미 누리고 있다. 때문에 급격한 체질개선을 통해 일시적변화를 이룰 수는 있지만, 곧 그 변화는 제자리로 돌아기기 마련. 결과에 변화를 준다고 원인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 명칭만 바꾸어도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은 어떤 단어와 경구에는 특정한 이미지를 불러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단어와 경구가 가진 실제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권위를 획득한 단어와 경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군중은 스스로 이미지를 불러내고 상상력을 자극해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 군중은 언제나 진실보다 욕망을 중시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과학과 자연의 힘을 드러내 보이며 군중의 케케묵은 환상을 깨뜨리려 하지만, 군중은 진실보다는 거짓과 오류로 점철된 환상을 좇는다. 환상속에서만이 꿈꿀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군중을 각성시키려는 자는 실패하고 군중을 현혹하려는 자는 성공을 거두는 법이다.

- 문명을 일으킨 것은 이성이 아니라 공상이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전을 짓게 하고 제국을 건설하며 신의 권능을 지닌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케 한 것은 감정과 공상이었다. 만약 군중이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따졌다면, 역사속의 그 모든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갈릴리의 한 무지한 목수가 2000년 동안이나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가장 위대한 문명을 이끌었다는 사실도, 몇몇 아랍 부족이 사막을 벗어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영토 대부분을 정복한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보다 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도, 또 무명의 한 포병대 중위가 수많은 민족과 군주들 위헤 군림했다는 사실도 모두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성은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 그 이성이 지나치게 개입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명예와 희생, 신앙과 야망, 공명심과 조국애 같은 감정들, 그러니까 지금껏 모든 문명의 커다란 원동력이었던 그 감정들은 이성과 함께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에 반해 생겨난 것이었다.

- 군중은 항상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군중은 항상 지도자를 원한다. 하지만 군중을 등에 업은 지도자는 대개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런 지도자에 군중이 환호하는 이유는 지도자가 가진 이상과 의지, 신념, 실천력에 매료되기 때문. 조직된 군중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지만, 지도자가 사라지는 순간 오합지졸이 된다.

- 지도자는 크게 두부류로 나뉜다. 일시적 열정을 내뿜지만 강력한 의지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있고, 지속적으로 의지를 유지하는 지도자가 있다. 첫번째는 강렬한 업적을 이루지만, 오래지 않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두번째는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집요하게 일을 완성한다.

- 누구나 따를 수밖에 없을 만큼 위엄을 가진 지도자가 있다. 이런 지도자는 군중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군중으로 하여금 그 상황을 타개할 행동을 하도록 이끌 수 있다. 하지만 군중에게 어떤 신념과 사상을 심으려는 지도자는 확언과 반복, 전파라는 3가지 방식을 취해야 함. 확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확언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군중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이다. 메시지가 반복되면 여론이 형성되고, 이후에는 군중 사이에 빠르게 전파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의 주장을 반복하는 매체에 길들여지고 나면 다른 매체의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 대개의 사상은 국가의 상위 지식인층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확산되는 지점은 평민계층이다. 선술집을 떠돌던 사상은 군중 사이에서 왜곡되고 편집된 뒤 다시 국가의 상위층에 영향을 미침. 그러면 지도자는 그 사상을 다시 왜곡해 파벌을 형성하고, 파벌은 다시 사상을 군중에 퍼뜨린다. 이런 순환구조 속에서 사상은 간결하고도 확고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 지도자의 가장 강력한 요건은 매력이다.
위신은 상대로 하여금 경이와 존경같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모든 비판능력을 상실하게 만듬. 위신에는 후천적인 획득된 위신과 선천적인 타고난 위신이 있음. 획득된 위신은 어떤 존재가 가진 사회적 지위, 재산, 직함 등에 나도 모르게 짓눌리게 되는 그런 것. 위신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의견이나 작품에도 주어지는데, 위신을 가진 의견이나 작품은 다만 경탄의 대상이 될 뿐이지 옳고 그름의 판단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 일단 논란의 대상이 된 위신은 더 이상 위신이 아니다. 오랫동안 위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신과 인간이 결코 논쟁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따라서 군중이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함.

- 과거에는 일반적 신념이라는 굳건한 토대가 있었기에 군중의 견해가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과거의 신념이 힘을 잃어가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군중의 사상이 점점 자유로워지며, 상반된 견해를 실은 언론매체가 확산되면서 군중의 견해가 그 어느때보다 유동적임. 여론을 주도할 힘을 상실한 정부와 언론은 대중의 생각을 따라가기에 급급한데, 이유는 대중의 생각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해야 그나마 생존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오늘날 군중 사이에는 무신념이라는 신념이 확산하고 있어서 뿌리 내리지 갖가지 생각들이 바람에 흩날리듯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 어느 국가에서건 군중투표는 대개 민종의 무의식에 잠재된 열망과 욕구를 발산하며 모두 유사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당선자의 평균은 곧 각국 민족정신의 평균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평균값은 세대가 바뀌어도 거의 변함이 없다.

- 많은 지식인들이 배심원 제도의 오류를 지적. 실제로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림에 있어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폐쇄집단의 일원인 사법관들이 저지르는 오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 폐쇄집단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근거로 사안을 판단하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어떤 전문성의 영역에서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중이 가진 힘이 막강하다 하지만, 폐쇄집단이 가진 힘이야 말로 정말 두려운 것이다.

- 선거 후보자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조건은 위신이다. 타고난 위신이 없다면 재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이 같은 노동자 출신의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후보자에게 위신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후보자는 확언과 반복, 전파를 통해 군중을 끌어들여야 함. 유권자 군중은 후보자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기에 후보자는 과도할만큼 공약을 남발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군중은 이성적 추론능력이 없기에 상대의 비방에 대해 논리로 맞서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행위다.

- 민족은 하나의 이상으로 뭉친 결합체이며, 문명은 그 이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들이 이룬 결과물. 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문명은 성장을 멈추고 노쇠기에 접어듬. 이와 함께 민족도 분열. 각자의 이해와 열망에 따라 분열한 개개인들은 곧 사소한 행위조자 지도해 줄 어떤 존재를 기다리게 되고 이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등장. 하지만 이상이 힘을 잃는 순간 민족도 문명도 더는 존재하지 않음. 꿈을 좇아 야만에서 문명에 이르렀다가 그 꿈을 상실하면서 다시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민족과 문명의 흥망성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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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지는 모호함을 뜻하는 영어로, 스탠퍼드대에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을, 실리콘밸리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며 인간적 맥락의 기술을 다루는 이들을 일컬음. 퍼지형 인재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느끼고 세상과 깊이를 교감한다.

- 다양한 창의성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창의성은 경이감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경이감은 생각, 느낌, 감각, 상상력을 포함하는 온몸의 경험으로 이는 인간의 깊은 통찰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감정임. 경이감은 자연의 아름다움, 예술작품, 인간관계 등 다양한 요소에서 느낄 수 있음. 이 감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큰 존재와 연결되었음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심리적 성장과 변화를 촉진함.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의 저자 카트린 레퀴예는 어린이들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상상에 빠지기도 하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데 지루할 틈 없이 흥미를 느낀다. 레퀴예는 그것이 바로 교육의 본질이라고 주장함.

-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호모 프롬프트라는 용어가 키워드로 부상. 인간이 인공지능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마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명령어를 입력하듯, 필요한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호모 프롬프트는 인공지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능력을 확장하고, 지식과 정보의 접근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인간을 지칭하는 개념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함. 데이터분석과 예측 모델링을 통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지원. 이는 호모 프롬프트 시대를 대표하는 특징임. 과거에는 검색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이를 통해 유의미한 정보를 조합하는 역량이 주요했지만, 이제는 검색하지 않아도 지식을 엮어 의미를 만드는 작업을 챗GPT가 해준다. 따라서 이런 시대에는 인공지능에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물의 질이 달라짐.

-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가
저는 여러 다른 모델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모델을 사용하는 이유는 현실의 세계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의 학문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곳이 아닙니다. (찰리 멍거)

-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만드는 이야기
지금은 의미를 찾고, 의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의미가 담긴 스토리를 만들어 그 세계를 실제로 그려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지금부터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인재입니다. (야마구치 슈, 경영컨설턴트)

-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 사회구조가 약해지면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함. 현대인은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해야 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재구성해야 함. 이를 자기반성적 프로젝트라 부르며 개인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행동을 평가하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과정을 의미.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더 큰 불확실성과 혼란또한 뒤따른다.

- 서사적 통찰력은 단순히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술을 넘어서 삶의 다양한 경험과 사건들을 통합하여 일관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능력을 말함. 인간은 본래 이야기하는 존재.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예측함.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의 의미를 찾음. 서사적 통찰력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게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함.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퍼지들은 이 지혜를 잘 알고 있음. 좋은 이야기는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며, 복잡한 제품의 기능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움. 나아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심리적 당위성을 제공.

- 차이를 만드는 인간다움
우리가 직면한 여러 막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면 코딩뿐만 아니라 인간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스콧 하틀리)

- 러셀은 현대 인류가 과거보다 훨씬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루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루함을 현대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았으며, 나아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과제가 지루함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주장. 러셀에 다르면 지루함은 우리가 커다란 동기와 열정이 없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했을때 생기는 감정적 상태다.
쇼펜하우어에게도 권태는 중요한 탐구대상. 그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함. 인간은 원하는 것을 추구할 때는 고통을 느끼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권태를 느낀다고 주장. 그는 이 두 상태를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보았음. 쇼펜하우어는 권태를 '목표가 없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내적 공허함'으로 정의. 그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했을 때나 모든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권태를 느끼기 쉽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많은 사람이 기술발전으로 인해 권태와 지루함에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함. 이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진정한 만족과 성취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함을 의미. 

-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정교하게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
지루함은 세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지루함. 이는 버스나 지하털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또 다른 지루함은 특정활동이 우리에게 흥미르르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지루함. 재미없는 강의나 ,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의미를 느끼며 권태에 빠짐. 마지막으로 하이데거가 가장 중요하게 본 근본적 지루함임. 이는 인간이 일상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상태임. 이는 철학적 시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돌아보녀 성찰과 내적 성장을 촉진하는 시간이다. 근본적 지루함은 자신의 진정한 목표와 욕구를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근본적 지루함은 인간이 비본래적 존재에서 본래적 존재로 나아가게 함
지루함과 권태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피터 투이는 지루함이 인간경험에서 보편적이며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함. 지루함은 모든 시대와 문화에서 존재해 왔으며, 이는 인간의 본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 따라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투이는 지루함을, 자극과 흥미의 결여로 인해 발생하는 불쾌한 감정상태로 정의. 그는 지루함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상태임을 강조하며, 이를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 아닌 중요한 심리적 경험으로 봄. 그에 따르면 지루함과 권태는 무기력과 우울증, 불안 등을 초래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창의성과 자기성찰을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상태이기도 함. 지루함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 투이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지루함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함. 창의적 활동, 취미,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 등이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

- 혼란스런 환경에서는 다양한 도구와 방법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런 능력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인간의 사고는 비선형적이며, 그 덕분에 무질서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음. 이러한 사고방식은 창의적 문제해결에 특히 중요하며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기반으로 함
이와 관련하여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용한 스푸마토 기법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받아들여 창의성과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을 보여줌.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을 뜻하며, 그림에서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여 더욱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다 빈치는 이 기법으로 작품에 깊이와 현실감을 부여했으며, 대표작인 모나리자와 성 안나와 성 모자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리더십컨설턴트 마이클 겔브는 스푸마토의 개념을 예술적 기법에만 국한하지않고, 삶과 사고의 철학으로 확장. 이는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며, 명확하지 않은 문제나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태도를 의미. 스푸마토는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며, 논리와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과 직관을 활용하여 더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을 준다.

- 21세기 르네상스
중세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관을 마련해야 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정치인도 경제인도 모두 창작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

- 인공지능 시대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유사. 르네상스 시기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진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듯이, 현재도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자신의 길을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기술혁신이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요구하며, 이는 오히려 인간 고유의 능력을 훈련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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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인문 2024. 12. 22. 20:25

- 인간의 지식은 팔다리, 엉덩이, 허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간 머리에서 나온 모든 지식은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논리적으로 이루어졌다, 논리란 사물이나 세계의 이치를 말한다, 라는 표현은 어떨까? 이것은 타당한 이해가 아니다. 세상은 논리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세상을 인간이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 우리가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과 사물의 원리가 마치논리 그 자체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 머리와 세상 혹은 사물 사이의 거리는 아주 멀다.

- 논리는 세상의 원리가 아닐 뿐더러,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고학 학문과도 관련이 없다. 요컨대 논리는 자연세계와 사물과 무곤. 우리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도 있겠고, 그런 자연에 대한 지식을 인간 머리로 얻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논리는 그저 인간 공통의 머리구조다. 생각의 형식, 인간 사유의 프레임, 사고법칙 등 다른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머리 안쪽 세계에 관한 것으로 머리 바깥의 사물과 세계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 논리공부의 장점
1. 타인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는 데 유리
2. 기존 지식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리
3. 자기 생각을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리
4. 타인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데 유리

- 논리의 관점
1. 국어력 관점 : 단어가 등장했고, 문장과 단락이 이어진다. 단락이 모여 주제가 됐고, 주제를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함으로써 논술이 되었으며, 분량이 늘어남에 따라, 장과 책이 되었다.
2. 논리학 관점 : 개념이 처음 등장했고, 이어서 판단과 추론이 나타남. 추론이 모여 지식을 만들고, 그 지식으로 소통한다.
3. 기하학 관점 : 최초의 점이 탄생. 그것은 단어였고 개념들이었다. 점들이 연결되어 선분이 되자 1차원의 생각이 탄생. 이때의 생각은 지금, 여기의 생각이었다. 여러 개의 선분이 연결되어, 2차원의 생각이 지금, 여기에서 다른 곳으로 도약하면서 나타난다.
4. 논리 현실 관점 : 머릿속에서 점이 최초로 나타난다. 그것은 단어이자 개념이었다. 그 다음 점들이 연결된다. 복수의 논리끝이 연결될 수 있다. 더 많은 끈이 연결될 수도 있고, 끊어질 수도 있다.

- 내 머릿속 개념의 크기가 타인의 머릿속 크기 안에 있다면, 타인은 내가 사용한 개념을 이해해주고, 나는 그 타인에게서 얻는 배움이 있으며, 소통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개념의 크기를 맞춰가는 과정이 어쩌면 인간 소통의 일면일지도 모른다. 또한 개념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통이란 텔레파시가 아닌 논리를 사용하는 것. 단어마다 의미의 크기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단어의 크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 그걸 아는 게 논리의 출발점. 논리적인 사람은 생각에 맞게, 상황에 맞게, 적절한 의미크기를 갖는 개념을, 즉 그런 단어를 머릿속에서 선택함. 그런 선택능력이 바로 어휘력이다.

- 논리적인 사람과 표상적인 사람
논리학에서 말하는 생각이란 이처럼 개념과 개념을 연결해서 만들어진 판단을 의미. 즉 판단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판단한 것만을 생각으로 간주. 그런데 머릿속에서 항상 판단이 생겨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아직 판단의 옷을 입지 않은 온갖 이미지, 인상, 개념, 기억이 있고, 그것을 일컬어 철학자들은 표상이라 부름. 하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런 것조차 생각이라 여김. 아직 판단하지 않은 것을 생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표상적인 사람이라고 칭해 본다면, 논리적인 사람과 표상적니 사람의 차이를 흥미롭게 비교해볼 수 있다. 생각의 크기가 아주 다르다.
표상적인 사람도, 인간이므로 당연히 판단을 내리고 논리적인 생각을 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개념을 연결해서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보다는 개념들을 머릿속에 놔둔 상태조자 생각으로 여기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람보다 훨씬 그 생각의 범위가 크되, 그 윤곽은 흐릿하다. 반면 논리적인 사람은 머릿속에 개념들이 있는 것만으로는 생각이라고 보지 않기에, 표상적인 사람에 비해 생각의 범위가 작다. 이런 차이 때문에, 논리적인 사람과 표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화가 잘 안된다. 토론은 더욱 안된다. 전자는 연결된 개념을 위조로 이미 머릿속에 자리잡은 생각을 꺼내면서 신중하게 대화하고, 후자는 생각을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면서 신속하게 대화하므로, 양쪽 모두 답답할 것임. 만약 당신이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표상적인 사람을 만나서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그들 머릿속에서 자기처럼 개념들이 연결되도록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 만약 당신이 표상적인 사람이라면, 논리적인 사람과 대화하면서 순발력 있게 생각을 만들어내는 데 만족하지 말고, 평소 더 좋은 판단을 생각해 놓는 것이 바람직.

- 1. 지금 여기에서의 판단을 근거로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판단이 생겨날 수 있다. 그것을 생각의 도약이라 부르자.
2. 생각의 도약은 아무렇게나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의 머릿속에는 이미 보관되어 있는 기존판단, 경험, 지식이 있다. 그것들이 논리에서 대전제로 작동.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면, 그 판단이 대전제를 소환하고, 그러면 대전제가 생각의 도약을 결정. 그것을 일컬어 추론이라 부름. 추론이 생각의 도약이다.
3. 지금 여기에서의 판단을 담당하는 머리의 요소를 지성이라 부르고, 지금 여기에서 생각을 도약시키는 머리의 요소를 이성이라 부름. 즉 이성은 추론능력(추리력)을 의미.

- 누군가의 결론에 맞서면서 반박하고 대항하고 싶을 때
1. 주장은 사람마다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 있다. 같을 때는 대체로 추론에서 사용한 대전제가 같기 때문. 대전제가 다르면, 결론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2. 이런 주장은 단순히 근거로 작용하는 사실판단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인간 머릿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연역 프레임이 근거, 즉 사실판단을 매개로 대전제를 호출했기 때문. 그러므로 사실 판단에 사용된 다양한 근거들을 탄핵했다는 것만으로는 상대방의 주장을 꺾어냈다고 만족하면 안됨
3. 주장은 주장으로 교정할 수 없다. 주장은 그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대전제의 우세력과 사실 판단에 의해 생겨난 결론이고, 그렇기 때문에 쉽사리 다른 결론으로 대체되거나 교정될 만한 게 아니다. 즉, 대전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 주장도 흔들리지 않음. 만약 당신이 타인을 설득하려면, 그 사람의 주장을 직접 바구려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대전제가 다른 것으로 교체되도록(즉, 내게 유리한 대전제가 선택되도록) 섬세하게 전략을 짜야할 것이다. 타인의 머릿속에는 아주 많은 대전제가 들어 있다.
4. 결론판단은 단순한 사실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원리일 수도 있다. 인간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개념과 판단이 연결됨. 종종 끊기기도 하지만 그 연결이 수정되거나 새롭게 이어지기도 함. 연역추론에서 나타난 결론이 머릿속에서 연결없이 고립될 리 없다. 이리하여 인간은 연역프레임 속에서 생각을 통해 많은 원리를 생각해 내는 것이다. 연역추론 자체는 간단한 논리구조이지만, 덕분에 인간은 지식을 확장할 수 있음.

- 개별요소의 대전제는 그 사람이 선택한다. 다음 세가지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첫째, 세계관은 강력한 대전제다. 철학에 다뤄지는 세계관도 대전제이며, 창작에서 다뤄지는 세계관도 대전제다. 문학에서 작가는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은 그 작품 전체에 우세력을 행사하는 대전제를 만드는 작업이다. 세계관이 없다면, 즉 작품 전체에 미치는 대전제가 없다면, 문학은 소구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문학이 아닌 경우, 개인의 경험지식이 대전제를 만듬. 경험이 다르면 대전제도 다를 가능성이 크다.
셋째, 흥미롭게도 그 대전제는 내 생각이 아니라 타인이 주입한 생각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전제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아니다. 타인이 주입한 대전제의 경우, 의식의 주체로서 내가 등장함을 계기로 대전제가 바뀔 수 있다.

- 단어를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말은 경험을 개념화한다는 뜻. 경험활동은 단어활동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새롭게 경험할때, 그리고 무언가를 학습하거나 공부하거나 체험할 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첫번째 유의미한 이벤트는 단어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단어를 머릿속 사전에 등록하거나, 더 정확한 의미로 머릿속에 이미 보관된 그 단어의 기존 의미를 업데이트하는 거이다. 이것이 바로 개념화다. 그런데 개념화란 단순히 그 단어에 해당하는 문자를 암기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했다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서, 선명하게 기억했음을 뜻한다. 그러려면 자기 머릿소게 단어 사전에 그 단어를 아주 쉽게 풀이해서 보관해야 한다. 쉽게 풀어서 보관한다는 말은 그 단어를 머릿속에 붙들어 놓는다는 뜻. 

- 유추는 접근 불가능한 경험이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경험에 대한 생각의 도약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경험보다 더 큰 한계가 있고, 추론의 정확도도 떨어짐. 따라서 오류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서 유추를 남용하거나 유추를 통해 다다른 결론을 지나치게 확신해서는 안됨.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추론의 결과가 경험으로 검증할 수 없다면, 그 추론지식이 어떤 이름을 갖든 결국 개인의 믿음이나 신조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의 일을 확신하고, 가보지도 않은 장소를 누구보다 확실히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유추를 애호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상력을 체험한다. 오류는 인간의 인간적인 특징이다. 문학과 종교에서는 유추가 마음껏 허용된다. 전자는 오류를 검증하지 않고, 후자는 오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학문과 사회적 소통의 영역에서는 유추를 하더라도 겸손함이 필요하다.
한편 경험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유추를 하지 말고, 직접 경험해야 한다.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음에도 유추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경험할 수 없으니까, 경험하기 힘드니까 유추논리를 사용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 우리가 안다는 것은 머리 안의 현상이다.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을 아는 것이며, 머리 바깥의 존재를 제대로 알려면 내 머리 안의 현상을 더 자세히 탐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상학이 등장했다. 현상학은 머릿속 현상으로 나타나는 존재를 탐구한다. "당신 머릿속에 들어온 존재를 판단하십시오. 그것이 지식이요, 학문입니다. 그러려면 대상에 대한 더 섬세한 관찰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머리 바깥의 존재와, 혹은 타인의 머릿속 존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실존주의는 인식론 이후 불일치 문제에서 현상학과 달리, 머리 바깥의 리얼리티 세계에 주된 관심을 둔다. 그것은 단순한 머릿속 대사잉 아니라, 머리 바깥에 살아 있는 존재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은 그 살아있는 현실 속 존재를 존재자(being)라 불렀다. 말하자면 실존주의 철학은 머리 바깥의 현실세계에 있는 살아있는, 존재자의 존재(being of beings)를 탐구한다. 머리 바깥의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존재와 존재자는 동의어다. 그리고 이런 존재가 머리 안쪽에서 생각하는 본질보다 더 중요하고, 더 앞선다고 강조한다.

- 적대적인 양자대결에서는 타인의 근거를 아무리 논리적으로 공략하더라도 그다지 성과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대적인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모든 시도는 허사이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일이다. 어린 아이처럼 논쟁에서 이겼다고 정신승리하거나 상대방을 함부로 모욕하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없다. 상대방은 더 강한 논리로 무장하여 다시 나타날 것이다. 오히려 고양된 적개심으로 내 앞길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신승리와 모욕은 이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큰 손해라 하겠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현명한 방법은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대전제들의 우선순위 다툼이 일어나도록, 즉 앞에서 말했던 변증이 상대방 머릿속에서 생겨나도록 작전을 짜는 것뿐이다.

- 적대적 양자대결에서 반론의 힘은 연약함. 특히 근거들에 대한 반론이 그러함. 적대적 양자대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대전제들 사이의 우선운위 논쟁이 발생하도록 할 것인가, 이것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심하게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에서는 그 감정을 지휘하는 대전제가 항상 안전하게 논리의 우선권을 쥐기 때문에 다른 생각의 토대가 참견하지 못함. 그때 활약하는 대전제는 우리에게 매우 적대적인 반면, 그 대전제로 말미암하 참견할 기회를 상실한 대전제는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가능성, 생각해 볼 만하다. 따라서 감정적인 반응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 대결중인 상대방의 머릿속 구도가 우리와 다를 리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머릿속 대전제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내게 유리한 대전제가 논쟁 중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찬스에서는 상대방을 몰아붙이거나 놀리는 언행을 중단하는 것이 좋다. 반론의 힘이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저절로 나타났으니, 그 힘이 우세해지도록 우호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방에게서 대전제의 우선순위 다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리카는 우리들에게 타인을 설득하는 세가지 스킬을 강조.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다. 각각 좋은 태도, 좋은 심리, 좋은 논리다. 이 세가지 중에서 가장 실용적인 것은 논리나 심리가 아니라 태도다. 
에토스, 즉 좋은 태도는 내용적인 게 아니라 형식적 스킬이다. 좋은 심리는 내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관한 것이고, 좋은 논리는 상대방의 반론까지 고려한 <충분한 근거인가?> 테스트를 통과한 근거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관전자의 신뢰형성을 방해하려는 이런 공격은 생각의 집합을 향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 관전자가 토론 상대방의 생각의 집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논점을 흐린다
* 상대방 영역에 사실과 거짓을 섞은 다음에, 그 거짓을 과장함으로써 진실에 대한 관전자의 관심을 방해한다
* 관전자가 싫어할 만한 생각의 운동장을 만들어서 그 안으로 상대방을 몰아넣는다.
이런 수법을 쓰는 토론 당사자에게는 상대방의 진심, 그들의 대전제, 주장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공론장을 이성의 영역으로 생각하기보다 승패의 감정세계로 몰아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전자가 상대방의 생각을 왜곡해서 이해해주면 좋은 것이다.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므로 죄책감도 적다. 심리학 용어로 프레임 덧씌우기라 불리는 이런 나쁜 공격은 확실히 효과적이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상대방의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상대방은 분노한다. 그리고 그런 분조는 공격자의 의도에 부합한다.
이런 나쁜 공격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 머릿속 생각의 집합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공격을 방치하면 건전한 토론문화가 실종되고 공론장이 붕괴될 것임. 지금 우리가 그런 사회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토론할 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더 불신하게 되고, 이들 토론을 지켜보던 관전자 중에서 더 재능있고 도덕적이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악의에 찬 사회를 외면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나쁜 공격의 폐해는 실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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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되면 자살률이 높아짐. 여러 이론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중 하나는 이즈음 사람들이 사회적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서상태를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논리. 겨우내 우울했던 사람이 봄이 되었는데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자 날씨가 화창해졌는데 여전히 나는 활기가 안 생겨...라며 환하게 밝아진 세상과 어두운 자기 내면의 차이를 인식하면서 절망에 빠짐. 비교를 많이 할수록 우울할 때 느끼는 고통은 더 커짐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은 사회적 비교를 활용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름. 불행한 이들은 사회적 비교를 많이 한다. 자신이 타인에 비해 우월한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실제상황보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고 그것에 크게 영향받음. 

- 행복한 사람들은 사회적 비교정보를 무시.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고 각자 나름대로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 여김. 누구의 삶이 옳다, 그르다 평가하지 않고 기쁨의 원천을 알며 그것이 충족되면 충분하다고 느낌. 이런 가치관이 행복감을 결정함.

- 정서문제를 다루는 치료의 핵심은 두가지.
첫째, 감정 해상력을 키우는 것.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에서 떨어졌다면 슬픈게 당연. 슬픔은 일차 감정이다. 난 노력해도 안되나봐...라며 자책하고, 맞아, 내 인생은 언제나 불운으로 가득했어...라며 한탄하는 건 메타감정이다. 괴로워도 견뎌내야 하는 일차감정에서 자신을 두번 아프게 만드는 메타감정을 분리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첫번째 치료목표. 이렇게 구분해서 관찰할 수만 있어도 고통의 무게가 줄어듬
감정이 자신을 괴롭힐 때는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함. 중요한 시험을 목전에 두고 불안을 느낄 때 '앞으로 대체 어떤 일이 닥칠까?'라는생각에 파고들면 메타감정이 소용돌이처럼 일어남.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로 생각을 돌려 놓아야 함.
살면서 누구나 겪는 고난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잘못된 게 아니고 그걸 느끼는 자신이 비정상인 것도 아님. 일차 감정으로 인한 괴로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옅어짐. 싫든 좋은 당연히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라면 그것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두번째 목표다

- 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묻는 질문에 누군가는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적극적 태도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변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한 투지와 집념이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임. 모두 어느정도 맞는 이야기지만 저는 다르게 답하겠습니다. 결정적 요인은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바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 치유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도, 치료기법을 상담에 적용하기 위해서도 환자의 마음이 새로운 경험을 향해 열려 있어야 변화가 일어남. 이것이 변화를 일으키는 핵심요소. 
삶은 경험이고 경험 그 자체가 인생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은 일도 경험을 통해야만 가능함. 비록 원하는 바를 이룰지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향해 나를 던져 놓고 또 뛰어들고 또 다시 부딪혀 나가는 동안 무수한 체험들이 나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듬. 이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인생의 목표란 게 있다면, 그것 또한 세상이 던져주는 경험을 온몸으로 끌어안아 나란 사람을 점점 더 충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 자신의 손등을 몇 분간 뚫어져라 바라보면, 손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마치 손 위로 개미가 기어가거나 맥박이 뛰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끼게 됨. 평소에는 모르고 있었던 이상한 점 같은 것이 눈에 띄어 괜히 쓸데없는 걱정에 빠지기도 함. 자기를 뚫어지게 관찰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적인 점에 초점을 기울이고 별것 아닌 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임. 실제로 사회불안장애, 수행불안장애를 가진 환자는 이런 자기초점 주의가 과도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남의 평가대로 자신을 규정짓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 집중해야 함. 자기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무언가로 바꾸려고 하면 자기초점 주의에 빠져들어 더 긴장하게 되고 자신감은 떨어짐. 실수도 잦아짐. 나는 누구인가? 내 성격은 어떤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여서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를 벗어난 무엇, 혹은 누군가를 향해 헌신하면 불안은 저절로 옅어짐.

- 등산을 해보면 산을 오를 때 눈에 띄지 않던 꽃들이, 산을 내려갈 때 오히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힘겹게 위를 향해 걷느라 놓치고 살았던 것들이, 삶의 지향이 바뀌는 중년이 되면서 비로소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 것.
은퇴 후 삶은 자기 삶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시기.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부 등 세속적 성취를 했느냐가 아니라 '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리고 앞으로는 남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시가.
젊다는 것은 아직 가슴 아플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 두려워한다는 것. 은퇴한 지금이 두렵ㄷ면 당신에게는 아직 해야할 일이 많다는 뜻. 그리고 여전히 젊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미래 시간관이 강한 사람은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함. 현재를 희생하고 현재 삶에 주어진 경험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해서는 살아 있다는 느낌, 그래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경험하기 어려움. 희생에 따른 피로와 무기력이 언젠가 따라온다.
미래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현재지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함. 지금 현재의 경험에 충실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나면 자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후회함.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다보면 나중에는 결국 후회만 남게 됨.
앞으로 닥칠일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손끝에 스치는 바람의 느낌을 음미해야 함. 쏟아지는 햇빛을 즐겨야 한다.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고 느끼는 연습이 필요.

- 아프리카 전통에 우분툴는 개념이 있다. 우분투는 '사람은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는 의미. 나라는 사람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필요. 옆 사람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없어짐.
외향인에게는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그런 사람이 필요함. 누구라도 좋다. 그 사람을 마음에 떠올렸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지금 전화해서 '지금 네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너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 마음의 성장은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서 벗어날 때 시작됨. 후지와라 신야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굴곡 없는 일상에 지쳐갈 무려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의미에서 일부러 약간 위태롭게 보이는 다리를 건너갈 필요가 있다. 트래블에 트러블이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 나쁜 사고 한번 없이 인생을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울증이라는 질환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외부적인 환경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일컬어 일차적 문제라고 부름.
문제는 스트레스 그 자체가 아니다. 환자가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우울증 치료에서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핵심. 삶에 던져진 스트레스에 대응하려고 취하는 행동이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강화할 수 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커짐.
살면서 일차적 문제에 압도당한 사람은 꼼짝 못 한 채 자기자신을 놓아버리기 쉬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있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 고민에 빠지는 것도 당연함. 왜 직장을 잃게 되었는지 왜 건강이 나빠졌는지 왜 사고가 생겼는지 자꾸 고민하는 것은 사고하는 동물인 인간의 본성이다. 문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도 우리 마음의 보편적 구동방식. 문제는 이런 자연스런 반응이 반복되고 강화될수록 우울증이 발병할 위험이 커진다는 것.
이렇듯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스트레스가 닥쳤을 때 나타나는 이런 행동반응들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 일차적 문제가 생겼을 때 우울증을 유발하는 개인의 행동반응을 일컬어 이차적 문제라고 한다.
-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잠만 자는게 이차적 문제다.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난 안돼...라며 자책하는 것도 이차적 문제. 고통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는 것,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립되어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나에게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는것. 모두 이차적 문제.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차적 문제다.
정리하면 일차적 문제는 외부에서 발생하여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뜻하고 이차적 문제는 일차적 문제에 대처하며 나타내는 비효율적인 행동반응에서 비롯됨. 일차적 문제를 맞닥뜨린 모든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지는 않지만 이차적 문제가 생기면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보통 우울증에 걸리면 일차적 문제에 매몰되어 있긴 쉽지만 실은 나를 옭매고 있는 이차적 문제들을 살펴봐야 함. 눈먼 황소의 뿔에 받쳐도 꿋꿋이 살아날 가능성은 여기에서 시작됨.
일차적 문제는 대체로 금방 해결되지 않음.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우울증에 빠져 있다면 일차적 문제를 감당할 수도 없고 그런 상태에서 해결하려고 덤벼들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만 크다. 아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이차적 문제 즉 우울증을 일으키는 자신의 행동반응으로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고 거기서 벗어나야 함. 일차적 문제는 그 이후에 해결할 수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열쇠는 행동에 있다. 우울증 치료는 우울증 환자의 행동이 자기 의도화는 다르게 자신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 기쁨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나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재구성하게 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목표

- 무기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회피를 인식하고 그것을 멈추어야 함.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집착할 것이아니라 우선 내 안에서 심리적 회피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이해하는 일이 필요함. 심리적 회피를 멈추기만해도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큰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울증 환자가 회피행동을 보이는 중요한 이유는 흥미감소와 의욕저하 때문이지만 이외에 숨겨진 다른 결정적 요인이 있는데 바로 문제해결능력의 저하다. 우울증으로 인해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는 방안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 것. 우울증 환자에게서 인지장애가 동반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결정과 수행능력의 장애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환자 모두에게서 관찰되고 있음.
우울증이 새어나올 틈을 막고자 항상 바쁘게 산답시고 중독에 빠지는 것은 심각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임. 술, 약물, 성관계, 도박, 일에 중독되어 슬픈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인데 이런 중독행동은 일종의 회피행동임.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들뿐더러 중독행위가 끝나고 하면 우울증이 더 심해짐. 우울증, 중독 다시 우울증, 이런 악순환에 빠짐.

- 지금 어깨에 우울증이라는 괴물이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 괴물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어서 내가 힘든 것인데, 우울증에 걸린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합니다. 어깨 위 괴물이 올라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괴물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한채 말입니다. 때문에 우선 괴물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 그리고 자기비난 대신 연민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대해야 함.
치료현장에서는 은유를 자주 사용합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종종 말하는 부러진 다리 은유가 있다. 우울증이 있는 내담자는 증상으로 힘들어하고 좌절하는데 정작 이들은 우울증이 빨리 좋아져야 한다며 자신을 다그치고 압박함. 이럴 때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다리가 부러진 직후에도 이렇게 자신을 질책하시겠어요?" 라고 말입니다.
부러진 다리가 치유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1.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2. 인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느느 존재다
3.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한다
4. 삶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5.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6.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7. 회피보다는 수용, 도피보다는 직면을 선택함으로서 삶의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8. 사람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힘을 얻지만 항상 그럴수는 없다
9. 다른 사람 때문에 내 감정이 전적으로 변한다면 내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10. 모든 감정을 옳다. 부정적 감정을 없애는 것에만 집중하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위한 행동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 우울증에 걸리면 아침에는 좀처럼 활동을 시작하기 힘들어져 대낮이 될 때까지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밤에는 기분이 그나마 나아져 활동하기가 수월함. 반대로 조증일때는 새벽부터 일어나 활동을 시작. 하루의 수면-각성 리듬은 흔히 생체시계에 의해 조절되는데 우울증과 조증은 생체시계의 고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간 활동이 많아져 수면시간이 줄거나 야간에 인공 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생체리듬이 교란되고 이렇게 어그러진 생체시계는 우울증의 발생위험을 높임.
일상 루틴이 붕괴되면 우울증이 지속됨. 이는 다시 말해 건강한 일상 루틴을 만드는 것이 우울증 재발을 예방한다는 뜻. 이왕이면 일과가 가치지향적 방식으로 구성될 때 더 효과가 크다. 건강한 일과는 정서를 건강하게조절함.

- 통곡물, 과일, 채소, 견과류, 콩, 살코기, 해산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탄수화물과 가공식품은 발병위험을 높임. 오메가3 지방산, 아연, 마그네슘, 철분, 비타민B 같은 영양소는 우울증 예장에 특히 효과가 좋음.
영양정신학에 따르면 연푸른색의 아보카도,연어살, 호두, 시금치, 포도 등 색깔이 다채로운 식탁이 시각적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뇌를 즐겁게 하고 정신건강도 지켜줌. 기분과 음식이 신경으로 연동되기 때문. 무엇보다 항우울제 효과를 내는 비타민B가 풍부한 음식이 좋다. 붉은색 고기, 통곡물, 소간 혹은 시금치처럼 색이 짙은 채소에 비타민B가 많다.
비타민D는 천연 항우울제다. 햇볕뙤고 걸으면 비타민D가 생성되고 우울감은 사라짐. 연어, 고등어 등 기름진 생선과 달걀노른자 등에 비타민D 원료성분이 많다. 오메가3 지방산은 뇌구조와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개선에 도움된다는 연구도 있을 정도인데, 굴, 콩, 호두, 씨앗류, 들기름 등에 많다.
아연, 마그네슘 등 전해질은 항불안 효과를 내는데 이는 결핍시 불안장애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 아연은 살코기, 호박씨, 게, 검은콩, 두유, 아몬드, 치즈에 많다. 요즘 영양제 성분으로 많이 거론되는 글루타치온 등 아미노산은 기분조절 단백질을 생산하고 뇌세포 손상시 복구하는 데도 기여. 글루타치온이 많은 음식은 달걀, 콩, 아스파라거스, 감자, 고추, 당근, 아보카도, 호박, 멜론 등이다.
- 요즘 주목하고 있는 것은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장 건강을 위해 복용하는 장내 유익균을 프로바이오틱스라고 하는데, 이는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결정적 역할을 함. 우리 뇌가 장과 미주신경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 쉽게 말해 뇌가 장에 사는 박테리아의 종류를 바꾸기도 하고 장내 세균이 신경화학물질을 생성해서 뇌기능을 조절하기도 함. 기분을 결정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신체 공급량 중 95%는 장내 세균에 의해 생성됨.

- 20세기 초반 득세했던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는 환자의 무의식을 탐색. 그 안에 있는 갈등, 방어기제, 욕구를 치료자와 함께 찾는 것임. 치료자는 환자의 과거경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전이를 다루고 해석함. 환자가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면서 감정과 욕구 그리고 갈등과 방어기제를 이해하고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게 이끄는 것.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는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20세기 후반에 이르자 치료경향이 변함. 인지행동치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론 벡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가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인지 의문과 회의를 느꼈다.
벡은 부정적으로 왜곡된 인지가 우울증을 일으키는 핵심이라고 봤고 이를 수정함으로써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봤다. 인지치료를 개발하게 된 것인데 여기에 행동치료가 결합되어 인지행동치료로 자리잡음. 인지치료는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해석과 믿음을 수정하는 데 초점을 맞춤. 왜곡된 사고를 확인하고 그것의 현실성과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오류를 수정하여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줌.

- 대표적인 항우울제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현재까지 가장 많이 처방됨. 이름처럼 이 계통의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외에 다른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음. 아주 선택적으로 세로토닌이 뉴런에서 재흡수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세로토닌의 활성도를 높임. 프로작, 서트랄린, 페록세틴, 시탈로프람, 에스시탈로프람, 플루복사민 등의 약제가 SSRI에 속함.
같은 계열의 약제이나 효과와 부작용은 다름. 플로옥세틴은 SSRI제재의 원조에 해당하는 약제로서 같은 계열의 다른 약제에 비해 식욕저하와 항거식 작용이 있고, 서트랄린은 세로토닌뿐 아니라 도파민 활성도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인지 및 주의력 향상에 도움이 됨. 파록세틴은 진정효과가 크고 에스시탈로프람은 같은 계열의 약제 중에서 세로토닌에 대한 특이성이 가장 커서 부작용과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 환자가 감정적으로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는 우선 피ㅎ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금물. 너무 사소한 질문을 하거나 디테일한 것들을 일일이 언급하면 환자가 부담을 느낌.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환자의 말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음. 특히 환자가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남 탓이나 비난을 쏟아냈을 때 바로잡아 주려고 하면 안된다. '지금 너무 힌들어서, 견디기 어려워서 그러는 거구나'하고 헤아려 줄 것.
가벼운 대화가 제일 좋다. 우울증 환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한 주제를 다루는 것. 구체적 정보나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보다 재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좋다. 반려견, 텔레비전 프로그램, 날시, 스포츠, 대중문화, 패션 등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물론 이야기 소재도 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따라 다르다.

- 솔직한 대화도 조심해야 함. 속마음을 다 털어놔봐...라던가 그동안 말 안하고 참고 있었던 것을 꺼내봐라, 함께 이야기하면서 털고 가자, 라고 하면 환자는 오히려 감정적으로 힘들어함. 솔직한 대화라는 건, 보통 사람들도 평소에 하기 힘든 법. 건강할 때도 다루기 힘든 주제의 이야기를 우울한 기분에서 꺼낸다는 건 더 어려운 일.
가족에게 힘든 대화주제가 있다. 환자가 가족을 비난하고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아버니, 어머니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경우. 그걸 듣고 있는 가족은 참기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임. 억울한 마음은 이해가지만 그렇다고 바로 반박하거나 방어적으로 나가면 대화가 끊어짐. 환자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해도 일단은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억지로 "네 말이 다 맞다. 부모인 내가 다 잘못했다"며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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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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