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의 대절벽

경제 2018. 2. 8. 19:58
- 역사는 분명한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부채버블은 금융자산(주식, 부동산, 상품 등)버블로 이어지며 모든 금융자산 버블은 터진다는 사실. 그것도 극적으로 붕괴. 버블이 클수록 붕괴도 크다
- 1800년대 후반까지 미국(그리고 대부분의 유럽)은 인구의 80%가 농업, 광업, 수렵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였으며,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인구의 60%가 시골에 살았다. 당연히 농촌 소비자들은 오늘날 부유한 도시 중간층 소비자들과 달리 경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함. 오늘날 중국과 인도의 농촌 소비자들조차도 대부분 자급자족 경제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적음. 그러나 광간의 1920년대 이후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의 풍요로운 중산층 사회를 맞이. 그들의 지출주기가 경제를 지배하여 30년 상품주기를 대체했다. 지출주기는 호황과 침체주기를 각각 40년으로 늘렸고, 그 결과 이제 사계절 경제주기는 80년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콘드라티예프 추종자들이 1990년대의 공황을 잘못 예측. 확장된 80년 주기로 보면 공황은 20년 후에 발생할 예정이었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다.
- 버블은 항상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던 수준으로 떨어진다. 단순한 진실을 말하자면, 부동산은 주식처럼 가치 상승 자산이 아니다. 부동산은 인플레이션과 건축비 상승분을 반영할 뿐이다. 금이나 대부분의 상품도 마찬가지. 하지만 금과 달리 사람들은 소득을 얻기 위해 부동산을 임대하거나 임대료를 절약하기 위해 부동산을 구입한다. 그러나 2000년 초에 시작된 부동산 버블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곧바로 정상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음. 그 후에는 인플레이션을 제외할 경우 가치상승이 미미하거나 전혀 없는 정상적 추세로 돌아갈 것임. 간단히 말해, 부동산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증가 추세가 둔화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점점 더 많은 부유한 선진국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사망하면서 매각하는 주택이 젊은 사람들이 구입하는 주택보다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 09년초부터 2015년 중반까지 주식시장 버블은 세계 각국 정부가 갑자기 찍어낸 돈을 금융시스템에 쏟아부어 만들어진 인위적 버블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 은행과 몇몇 주요 기업을 구하는 (그리고 지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상위계층 자산가들의 지출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엄청난 개입이 없었다면, 1930년대식 공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2008년은 1930년과 정말 비슷했다. 7조달러의 재정적자와 함께 4조달러의 양적완화는 평균 GDP를 2% 증가시켰을 뿐이다. 이는 매년 GDP가 약 3200억불 증가한 셈. 이것은 나쁜 거래였을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결과적으로 연평균 1.6조달러 또는 GDP의 약 10%를 투입하여 겨우 2% 성장에 멈추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유례없는 부양책이 없었다면 경기는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2% 성장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회복이자 근대 역사상 최악의 수준이므로 여기서 사용한 회복이란 용어는 아주 관대한 표현이다.
- 모든 버블의 끝에는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들과 기업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옴. 투자자들이 대공황 이후 벌어들인 돈을 보라. 제시 리버모어는 주식을 공매도하여 몇년만에 현대적 의미의 억만장자가 되었다. 조지프 케네디는 주식이 상한가일 때 팔고, 하한가일 때 되사서 가문을 일으켰다. 마피아는 1920년대의 불법자금을 이용하여 1930년대에 현금유동성이 높은 대규모 고리대금회사를 만들었다. GM은 경기하강국면을 이용하여 시장점유율 2위에서 1위로 올라섰고, 1960년대 내내 확실한 시장지배력을 확보. 이런 부는 모두 1929년 버블 붕괴 직전과 직후에 그들이 코앞에 놓인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닥을 치는 기업을 아주 헐값으로 인수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이때다. 가장 강한 기업들은 경쟁사가 파리처럼 추락할 때 시장점유율을 대폭 확대함. 부동산은 폭락하여 다른 사람의 손에 팔릴 날만 기다린다. 주식가격은 하락하여 호의적 투자자를 기다린다. 상품가격은 결코 다시 볼 수 없을 정도의 낮은 수준으로 폭락. 사람들은 너무 두려워 꼼짝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보고도 활용하지 못함.
-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 상황이 절대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믿는다. 그들은 총성이 무서워 숨어서 상처를 어루만지느라 매수기회를 놓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블붕괴 때 자산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잃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설령 용기가 있다 해도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자산이 없다.
- 버블의 7가지 원리
(1) 버블은 순환적이며 1930년 이후부터 세대지출 주기를 따름. 버블은 각 세대의 가을 붐 시즌에 발생하므로 수십년전에 미리 쉽게 예측가능. 또한 버블발생은 불가피하며 아주 긴 간격을 두고 일어남. 1920년대 후반과 지금처럼 버블발생 간격은 한사람의 일생과 비슷.
(2) 버블은 인간본성이다. 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우리에게 일확천금을 줄 수 있는 부동산과 그 밖의 것들을 좋아함. 우리는 이것을 보면 사족을 못쓴다. 그래서 우리는 버블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버블을 보지도 못한다.
(3) 버블은 직선적이지 않고 기하급수적임. 그래서 버블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버블은 반드시 터진다. 버블은 장기적 추세이긴 하지만 기하급수적이므로 붕괴가 불가피
(4) 버블은 금융의 오르가즘이다. 버블은 서서히 커지다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되고 절정과 정점에 이른 후, 급속히 축소됨. 때로 버블은 지금처럼 터지기 전 세번 정점에 이르는 여성의 오르가즘 형태를 따름. 역사가 보여주듯 이것은 훨씬 더 불길하다
(5) 버블은 항상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기 전 수준이나 더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감. 거의 예외가 없다. 따라서 버블이 터진 뒤 어느정도까지 하강할지, 그리고 다음 붐이 오기 전 구매기회가 얼마나 클지 쉽게 알 수 있다.
(6)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버블붕괴를 막을 수 없다. 일본은행은 20년동안 시도했지만 실패. 유럽중앙은행도 연준도 마찬가지.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블은 터질 것이다. 그것도 고통스럽게 말이다. 실제로 그들의 개입활동 때문에 버블은 과거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 있고, 이제 우리는 파괴적인 붕괴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7) 최초의 급격한 버블 붕괴가 일어난다면 버블은 수년동안 계속 터지면서 우리에게 일생일대의 투자기회를 줄 것이다. 이때 우리는 기업, 부동산, 주식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실제 가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음. 비록 위기지만, 이것이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안다면 위기는 단시간 내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평생 단 한번의 기회를 제공한다.
- 미국은 광란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대공황에서 벗어나 1800년대의 영국 이래로 가장 위대한 국가이자 세계의 리더가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기 때문. 그 당시 미국은 오늘날 우리가 하듯이 부채나 인구감소 추세를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지 않고, 개인부채를 대부분 제거. 미국은 은행과 기업들이 도산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이것은 경제 시스템을 치유하는 거대한 해독제였고, 결국 경제는 더 효율적이고 강해졌다. 그리고 미국은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베이비붐 세대의 버블을 맞이했다.
-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를 맞을 것이고 언젠가 결국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임. 2039년까지 이미 죽었거나 앞으로 죽을 사람들이 자산시장에서 사라질 거이며, 그 수는 주택 구매자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됨. 이것이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이유다. 베이비붐 세대보다 더 작은 규모의 밀레니얼(에코붐) 세대가 부동산 구매 주기에 진입하는 시기에도 이런 이유로 부동산은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 금은 2016년 중반까지 단기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다시 꾸준히 하락할 가능성이 높음. 금은 01년과 11년 사이에 674% 상승했다가 2016년1월 1050달러선으로 폭락. 이 버블은 2005년 후반까지는 나타나지 않다가 그 뒤부터 6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380% 커졌다. 따라서 이 버블이 제거되려면 가격이 훨씬 더 내려가야 함. 다음 목표는 온스당 700불 선이다. 궁극적으로 금은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는 30년 상품주기가 다시 돌아오는 2020년과 2022년 사이에 저점인 대략 400불까지 떨어질 것. 최악의 경우 금은 2001년의 저점인 250불까지 떨어졌다가 신흥국딜이 주도하는 장기적 붐을 다시 맞을 수 있다. 신흥국은 금과 상품의 큰 소비시장이며, 다음에 찾아오는 세계적 호황에서는 인구추세를 완전히 주도할 것임. 1980년에 금 가격은 840불로 치솟았고, 5000불까지 갈 것으로 예측되었따. 이것은 버블은 논리다. 우리는 최근 몇년 동안 금에 대해 똑같은 무모한 예측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는다. 금은 다음 30년 상품 주기의 정점에서 3000불, 심지어 5000불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대략 2038년에서 2040년 사이가 될 것.
- 태양 흑점활동은 위성에서부터 전자 기반시설, 기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침. 태양 흑점 주기가 정점에 이를 때 일조량과 강우량이 평소보다 20%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모든 농부가 이 주기를 따라 농사를 짓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최근 주기에서 최고의 과학자들은 2013년 후반에 이 주기가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두달 빨랐따. 태양흑점 주기는 2014년 2월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기의 세계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히 정확하다. 최근의 과학자들은 다음 태양의 흑점개수가 저점에 이르는 시기를 대략 2019년 말이나 2020년 초라고 말하고 있다.
- 네개의 주기(세대지출, 지정학, 혁신, 붐-버블붕괴(태양흑점))는 2014년 초부터 동시에 아래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 추세는 2020년 초까지 계속될 것임. 이런 수렴현상이 발생한 이전 시대는 엄청난 재앙을 겪음. 이 주기체계가 진행되면서 2000년 초 이래로 위기가 어떻게 고조되었는지 주목할 것.
* 지정학 주기가 2000년 후반에 처음 정점에 도달
* 이때 최악의 첨단기술주 폭락과 엄청난 9/11 테러 공격이 발생
* 세대지출 주기가 2007년 후반에 미국에서 정점에 도달. 큰 경기침체가 찾아왔고 주요 주식이 폭락
* 혁신주기는 2010년 최고수준에 도달했고, 2011년에 주가가 20% 하락. 2009년 초 저점을 찍은 뒤로 가장 큰 조정이었다
* 태양흑점 주기는 최근 2014년 2월에 정점에 도달했고, 유럽과 일본의 양적 완화 확장과 가속적 부채증가, 중국의 과잉건설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2014년 10월말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함. 이것은 머지 않은 시기에 다음 주요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주식시장이 붕괴될 것임을 말해줌. 아울러 또 다른 작은 규모의 붕괴와 그에 따른 여파가 2018년 후반과 2020년 초에 발생할 가능성. 2022년 후반에 저점을 찍은 후 비로소 네 주기중 세 주기가 다시 함께 상승할 것임. 마지막 주기(혁신주기)는 2032년에 함께 상승세로 돌아설 것임
- 조만간 1930년부터 1932년(그리고 73~74년) 이래 최악의 주식폭락이 발생할 것임. 그 다음에 발생할 대공황은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인 대략 2022년 후반까지 지속될 것임. 네가지 핵심 거시적 주기가 모두 하강하는 2020년 초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 특히 유례없는 통화정책을 시행한 뒤에 잔혹한 시기가 다가올 것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조만간 5500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그런 뒤 2018년에야 경고신호가 울릴 것이다. 94년 후반 시작된 버블을 제거하려면 다우지수가 80% 이상 하락한 3300에서 3500까지 떨어져야 할 것이며, 2020년 초반부터 2022년 후반에 주식시장 추세가 반등할 것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블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버블 붕괴에 대한 대비는 고사하고 우리가 만들어온 버블을 인정하지 않음. 그들은 투자와 사업시장이 이런 대대적 조정 이후에 항상 발생하는 기회로 넘칠 때 곤경에 빠질 것.
- 베이비붐 세대들의 거대한 세대지출 주기가 07년 후반에 정점을 찍고, 그와 함께 부채버블도 정점을 찍은 이후 연준은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찍어냈다. 그러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인구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시도로는 붕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단 한세대(베이비붐세대) 덕에 아기 이유식, 청바지, 약물, 사회변화, 록음악, 건강식,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분야에 끝없는 버블이 형성되었다. 그 다음에는 크루즈선, 장례식장, 요양원과 같은 것에 버블이 형성될 것임. 장례식 사업이 선호되는데, 죽은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 크루즈선 승객이나 요양원 환자를 다루는 것보다 쉽다. 이 세대는 처음부터 버블세대였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 진입하는 분야에서 계속 게임체인저가 될 것임. 이 세대의 은퇴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신들이 은퇴하지 않거나, 적어도 예전 세대처럼 완전히 은퇴하지는 않을 것이라 주장. 그들은 앞으로 경기가 둔화됨에 따라 계속 일을 해야 하기 때문. 베이비붐 세대의 권력주기가 대략 2026년에 정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치와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 될 것임. 다음에 등장할 두 세개의 행정부는 중단없는 개혁을 수행해야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30년대와 비슷할 것이다.
-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최대규모의 부채버블을 만들었다. 지난 대규모 붐과 버블때(83~08년), 총부채(정부와 민간)는 GDP의 2.54배 증가. 이런 민간부채의 일부는 베이비붐 세대가 자녀를 양육하고 집과 차를 사느라고 빚을 내면서 자연스레 증가한 것. 그러나 26년 동안 2.54배 증가했다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이런 증가율을 문제로 보지 않는 경제학자는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아니다.
- 어떤 대통령이나 수상, 중앙은행 총재도 자기 임기내에 부채축소와 대공황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음.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악성투자와 투기를 유발항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와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들은 경제적 겨울을 통과하는 것이 경제적 봄이 돌아올 때 다시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부채축소와 디플레이션은 불필요한 요소를 깨끗하게 치워준다. 이것은 사람들이 혁신하도록 도전적 자극을 제시함. 부채축소와 디플레이션은 무거운 짐과 과도한 생산능력을 줄이고 기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상품가격을 소비자가 지불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함. 이것은 새롭고, 날씬하고 민첩한 것들에게 자리를 내줌. 부채축소와 디플레이션이 없다면 결코 더 위대한 다음단계로 나아가지 못함. 일본을 보라. 일본 경제는 부채축소를 막기 위한 무제한의 화폐발행과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 덕분에 지난 정점 이후 26년간 계속 혼수상태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인구추세가 47년의 출생시차에 따라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 97년부터 양적완화를 시행. 이 암울한 상황은 여전해 보이는데 부채는 계속 쌓이고 은퇴자들의 주택은 저당잡혀 있다.
- 앞으로 다가올 추세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은 항상 경제적 겨울의 특징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나이가 들고 경제가 붕괴될 때, 디플레이션은 이런 버블 영역의 과잉생산능력을 제거하고 우리를 더 지속가능한 길로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주택, 교육, 자녀양육 비용의 하락압력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됨
- 화폐 유통속도가 평균이상으로 증가할 때, 돈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는 생산적 자산에 투자되고 있는 것임. 생산적 투자는 기업과 노동자에게 더 높은 수입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그들은 더 많이 지출하고 투자한다. 1919년과 1998년처럼 화폐 유통속도가 아직 평균 이상이지만 떨어지기 시작할 때, 돈이 점점 지속 불가능한 투기분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는 생산적 자산을 창출하지 못한다. 부채와 금융자산 버블이 이 단계에서 형성된다. 광란의 1920년대와 2000년대처럼 말이다. 투자자들은 점차 거품이 낀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기를 하고 기업들은 자사주매입과 배당금 확대에 더 집중한다. 이 두가지는 생산능력에 대한 투자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화폐유통속도가 평균이하로 떨어지면 부채축소와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는 시기다. 레이시 헌트의 도표는 정부가 막대한 화폐발행과 무익한 경기부양 정책으로 디플레이션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디플레이션 단계에 진입했음을 경고해준다. 우리는 곧 30년초반의 상황에 직면할 것임. 그 당시 대공황이 발생하여 29년 후반부터 최악의 주식폭락이 시작되었다.
- 중국은 점차 노동력이 줄고 있는데 왜 그렇게 과도하게 투자할까? 간단히 말하면 도시화와 엄청난 1인당 GDP증가효과 때문. 도시화율 증가는 안정적 일자리가 있는 경우 보통 소득과 지출을 약 세배 증가시킴. 그러나 중국은 우선순위를 바꾸어 사람들을 먼저 이주시키고 있다. 많은 자유시장 모델은 경제와 수출을 성장시킨 다음 농촌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여 새로운 일자리를 채운다. 중국의 정부주도 모델은 먼저 도시를 건설한 뒤 농촌사람을 이주시키고, 그 이후에 일자리를 만들어 새로 이주한 사람들이 소비자가 되기를 바란다. 달리 말하면, 이 새로운 소비자들은 아무런 수요도 없는 시설을 건설하는 현장에 취직하고 그곳에서 번 돈을 지출하도록 되어 있다.
- 중국은 엄청난 재앙을 향해 돌진하고 있으며 세계는 이것을 응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터무니 없는 인프라 버블을 만들었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이것은 주로 최고의 저축률과 중국인들의 부동산 소유욕에서 비롯됨. 중국 도시는 건물 공실률이 24%로 세계 최고수준이며, 계속 올라가고 있음. 수천만 또는 수억 명의 이주자들이 주민등록된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막대한 재산이 뜨거운 태양아래 물이 증발하듯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임. 유례없는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중국인들의 부가 사라지면서 세계 도처에서 몰아친 그들의 부동산 구매열기도 식을 것임. 90년대 초 이후 일본인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것은 세계 도처의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는 해일이 될 것이다.
- 레버리지 효과가 높은 금융증권이 보험으로 이용되지만 담보물이 없는 상황. 그래서 이런 파생상품은 실제 세계에서 규제를 받는 보험상품과는 다름. 보증을 약속한 투자자들이 갑자기 돈을 지불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모든 법적 책임이 제기되고, 08년 리먼 브라더스와 AIG가 그랬듯이 균형은 파괴됨. CDS는 월스트리트가 점점 더 많은 레버리지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위험을 더 훌륭하게 관리하는 또 다른 마법이었다. 그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대출을 다양한 패키지로 묶고 이것을 터무니 없는 CDS로 보증. 신용평가기관들은 이것을 못 본체 하거나, 월스트리트의 최고고객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쓰레기와 같은 상품에 AAA등급을 부여했다.
- 16년 1분기 주요 뉴스는 유럽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마침내 이탈리아 은행들의 부실대출 채권을 민간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이것을 정부가 보증하기로 합의했다는 것. 이것은 또 다른 금융 속임수이자 은폐술이다. 왜 모든 정부는 명확한 해결책을 시행할 수 없을까? 즉 은행들에게 부실대출을 탕감하거나 조정하도록 강제하고 은행주식과 채권보유자들이 손실을 감수하게 하지 않을까?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근시안적 해결책이고, 글로벌 버블이 필요 이상으로 더 심각하게 터지면 나쁜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08년 버블붕괴에 대한 대응책은 더 많은 양적완화와 부양책 그리고 정부보증 확대였다. 상황이 나빠지면 정부가 모든 것을 보장할 수 있을까? 어떤 정부도 그럴 수 없다.
- 거의 모든 다른 금융자산이 하락하는 시기에 국채는 더 안전한 투자로 돈을 두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지금 채권투자는 좋은 거래이며 부동산과 주식이 가장 저조하 때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현금가치를 늘리는 방법이다. 우량채권은 유동성이 높아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 물론 우량채권이 모두 좋은 피난처는 아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금, 은, 상품과 같이 당신이 틀림없이 들어보았을 더 전통적인 안전한 피난처 중의 일부도 역시 그렇지 않다.
-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닥칠 대공황 때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전기가스회사와 같은 인프라 주식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 이런 기업들은 수요가 그다지 감소하지 않고,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고, 앞으로 디플레이션이 오면 더 낮은 이자율의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 이런 주장이 솔깃하겠지만 속지 마라. 인프라 주식들은 35년 초반까지 89% 떨어졌다. 실제로 이 주식들은 29년 초 더 넓은 범위의 주식시장보다 먼저 폭락했으며, 몇 달 만에 56% 하락. 인프라 주식에서 도피처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 대공황 시기의 부동산에는 06년 부동산만큼 거품이 많이 끼지 않았다. 그 당시의 부동산은 투기를 할 여지가 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한 가구가 집을 구입할 때 계약금으로 주택가격의 50%를 내고, 만기 일시상환조건의 5년만기 주담대를 이용해야 한다면 투기가능성이 낮다. 대공황 시기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집을 구입할 수 있었고 투기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부동산 가격이 33년까지 26% 하라가. 08년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정도의 하락은 대출액이 많은 사람들에게 타격을 준다 40년이 되어서야 부동산 가격이 25년의 정점을 회복했다. 부동산이 주식보다 몇년 앞서 정점에 도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유의하라. 사람들은 지출정점에 도달하기 약 5년전에 가장 큰 집을 구매하기 때문. 06년 초 부동산은 미국과 글로벌 버블의 중심이었다. 주식보다는 부동산에서 투기와 대출이 더 많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부동산이 첫번째 폭락보다 34% 하락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폭락은 주식보다 경기를 덜 타고 일반적으로 주담대를 이용하는 분야치고 매우 큰 것이다. 다음 대폭락 시기에 부동산은 다시 급격히 떨어져 06년 초 정점대비 최소한 55%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됨. 최근 반등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은 지금수준 대비 40% 이상 떨어질 것이다.
- 가장 큰 문제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밴쿠버, 싱가폴, 시드니와 같은 가장 비싸며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동산 지역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 그들은 이들 지역이 특히 최고부유층과 외국인 구매자들의 수요가 많고 공급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이 도시들의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 "이 도시들은 유일무이하게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가 의미가 있다면 그들은 틀렸다. 버블이 클수록 붕괴는 더 크다. 부동산이 너무 특별하여 대체 불가능하므로 계속 오르기만 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 버블이 전면적으로 터질 때를 대비해 다음 사항을 준비할 것
* 현금, 미국 재무부 증권, 높은 등급의 양도성 예금증서
* 높은 등급의 장기국채(미국 국채)
* AAA등급 회사채
- 다음은 멀리해야 한다
* 인프라 관련 주식
* 정크본드
* 주식
* 부동산
* 금, 은, 상품
- 셰일가스 기업들은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채무를 갚지 못할 것이며, 이 1조달러 규모의 산업이 도산하면 미국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이 산업의 정크본드 시장이 붕괴되면, 주식시장과 미국경제는 더욱 암울해질 것이다. 08년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이 그랬듯이 나는 원유가 다음 글로벌 금융위기의 또 다른 중요한 도화선이 될 것이라 믿는다. 원유가격이 새로운 저점으로 하락할 때마다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보인다. 미국에서 원유공급이 감소함에 따라 원유가격이 16년 어느 시점에 상당한 폭으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원유가격은 결국 다시 하락하며, 이 하락세는 분명히 18~20불까지 내려갈 것임. 2020년 초와 2023년 초 사이의 어느 시점에는 배럴당 8~10불까지 내려갈 것이다.
- 베이비붐 세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속 이동하게 될 분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투자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다음 분야가 여기 포함된다
* 성형수술 같은 특정 의료분야
* 비타민, 화장품, 주름방지 크림 등 베이비붐 세대들의 노화를 방지하는 제품
* 크루즈 여행
* 퇴직, 휴가와 간호, 가정생활 지원
- 다가올 시기에 살아남아 시장지배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9가지 원칙
(1) 현금과 현금유동성이 중요. 경제조정기에 살아남고 향후 수년 동안, 특히 2020년경 사상 유례없는 헐값으로 금융자산을 매입할 때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 모든 것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될 것이다. 힘든 시기가 오면 대담한 사람들은 쇼핑에 나선다
(2) 분명하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라. 또는 다른 분야를 매각하거나 폐업하고 사업범위를 좁혀 집중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라. 그러지 않으면 시장이 당신에게 더 많은 고통과 손실을 끼치면서 그렇게 하도록 만들 것이다. 시장지배력이 약한 제품군이나 사업은 매각하고 현금을 비축하라. 그렇게 하면 앞으로 다가올 사상 최대의 금융자산 세일을 이용할 수 있는 실탄을 갖게 될 것. 만약 그런 제품과 사업을 매각할 수 없다면 상황이 더 힘들어질 때 고정비용이나 현금 유동성 누수를 없애기 위해 그것을 제거하라
(3) 고객과 그들의 요구를 명확히 정의하여 기업의 방향과 목적과 집중할 목표를 정하라. 고객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당신이 하려고 생각하는 내용이 아니라 고객이 당신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다.
(4) 긴축이 필요핟. 특히 지금부터 2019년까지와 같이 위험한 시기는 더욱 그렇다. 고정비용을 적절하게 할당한 뒤에 고정비용, 경상비, 모든 변동비를 줄여라. 고정비를 배정하기 위해 먼저 고정비용 유발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라.
(5) 주요 자본지출을 미루라. 공장, 창고, 점포, 중요한 컴퓨터 시스템, 사무실 구매와 같은 자본지출은 다음 주요 붕괴와 경제침체기까지 연기하라.
(6) 공헌이익이 높은 제품의 매출을 늘리거나 단기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단기투자에 집중하라.
(7) 비전략 부동산을 매각하고 임대하라. 자산시장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앞으로 수년 또는 십여년 동안 인플레이션 이상으로 이익을 내기가 거의 또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당신이 정의한 고객의 최종결과, 즉 당신의 이미지, 고객서비스, 유통 또는 다른 시스템에 매우 중요할 때만 부동산을 소유하라
(8) 가장 약한 경쟁상대가 누군지 파악하라. 그리고 곤경에 처하거나 파산한 경쟁사로부터 얻기 바라는 자산이 무언지 미리 확인하라. 그것에 필요한 현금을 추산해보라. 위기가 닥치면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일 준비를 하라.
(9) 직원을 조사하여 누가 성과가 저조하고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라. 비용절감 뿐만 아니라 경제가 침체되기 전에 그들에게 더 나은 직장을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 지금 그들을 해고하라. 성과를 입증한 직원만 고용하여 고객의 최종결과에 집중하게 만들어라.
- 부동산에 대한 조언
* 비전략 부동산은 사업과 개인적 지출을 위해 지금 매각하라
* 향훈 몇년간은 사무실을 소유하는 것보다 임대하는 것이 더 좋다
* 지금살고 있는 주택은 유지하되 장기간 그 집에 거주할 계획인 경우에만 그렇게 하라. 향후 몇년내에 주택규모를 줄이거나 이사할 계획이라면 지금 팔아라
* 당신에게 소중하지 않거나 일년에 몇주이상 사용하지 않는 별장은 반드시 매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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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세계 경제를 보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선진국과 신흥국 경제가 같이 촘촘하게 엮여져 있어서 어느쪽이라도 삐걱하면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다행스런 것은 세계 경제의 갖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붕괴하는 이른바 퍼펙트스톰으로 치닫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2년부터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마지노선인 바오빠(8% 성장 지키기)가 무너지면서, 15년에는 급기야 6%대로 성장률이 하락. 현재는 바오류도 버거운 상황. 이는 중국경제가 중속 성장의 시대로 진입하였음을 의미. 동시에 중국의 부채증가. 위안화의 평가절하와 이로 인한 일시적 외화자금 유출 확대로 중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복병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최근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부동산 버블붕괴 위험, 산업전반에 걸친 공급과잉와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중국경제의 위기는 여전히 숨은 뇌관으로 도사리고 있다. 중국 경제의 후퇴와 위기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경제의 동반침체를 불러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 미국은 굳이 4차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있지 않지만 1등 제조국으로의 귀한을 위해 첨단제조파트너십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셰일 혁명으로 인해 안정적 제조업 경쟁력 강화 여건이 충족되고 있으며, 차제에 중국 혹은 동남아 등에 나가 있는 미국기업들을 자국으로 유턴시키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 일본은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아날로그 모조즈쿠리에서 디지털 모노즈쿠리로의 변신을 시도하면서 제조업 강국의 면모를 일신시키고자 한다. 중국은 후발 신흥국이지만 제조업 2025라는 플랜을 통해 제조업 대국에서 강국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확실하게 선두가 없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단순에 1등이 되겠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한국도 이에 뒤질세라 제조업 3.0 프로그램을 부랴부랴 가동시키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오히려 민간에서는 나름대로 분주하게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정부의 대응능력측면에서는 경쟁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됨
- 양대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G2로 부상한 중국의 영향력이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훨씬 더 많이 미치고 있다는 것이 다방면에 걸쳐 확인되고 있음. 미국의 금리 인상이후 위안화와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평가절하, 신흥국에 나가 있던 자금들이 일시적이지만 미국으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후에도 미국경제의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면서 이런 현상이 다시 재발되고 있음. 특이한 것은 중국과 신흥국의 실물경제와 금융이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인다는 사실.
- 신흥국 경제는 우선 산유국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16년 말 산유국들의 원유감산 합의에 따라 배럴당 50불을 넘어서면서 한층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음. 그러나 현실적으로 원유수급 상황을 보아 배럴당 60불을 넘기는 어려울듯. 원유생산 코스트는 사우디나 쿠웨이트의 배럴당 10불과 8.5불에서 나이지리아의 31불, 미국 셰일오일의 23~58불까지 다양. 손익분기점의 경우 사회적 비용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므로 국가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여하튼 유가가 배럴당 55불이 되면 플랜트 발주가 늘어날 수 있어 그 수치에 상당히 근접하고 있다
- 중국과 교역의 화두가 되는 용어 두가지는 홍색 공급망과 뉴 차이나. 홍색공급망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면 차이나 인사이드. 이는 완제품 제조에 사용되는 소재, 부품, 장비 등 중간재 부문에서 중각산 제품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을 일컬음. 이로 인해 한국산, 일본산, 대만산 중간재가 중국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과 경합해야 하는 상황이 더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권에서 빠른 추격자로 우리가 일본을 극복했다면 중국은 우리를 극복하고 있는 셈. 뉴 차이나는 올드 차이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후자가 세계의 공장을 의미했다면, 전자는 세계의 시장을 의미. 최근 중국의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환경규제 강화 등 중국의 제조업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함.
- 뉴 차이나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중국시장의 변화는 수입상품의 수요가 중간재보다 오히려 소비재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점이다. 중간재의 경우 중국 국내의 수준이 급속도로 올라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재의 질은 여전히 낮음. 소득확대, 인터넷의 발달, 고속철 개통확대, 해외여행 증가 등으로 소비자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메이드인차이나 소비재 제품이 이들의 욕구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 이로 인해 중간재보다 소비재 수입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뉴차이나의 모습이다.
- 중국정부가 내수활성화를 위해 제조업 비중은 낮추고 서비스 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중간재 부문 중국 수입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소비재 부문으로 가면 일본, 미국, 독일 등에도 밀릴 정도. 이는 한국산 소비재가 중국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
- 포스트 차이나로 당장 주목해야 할 지역은 인구 6억의 거대시장, 제2의 EU로 변모하고 있는 아세안경제공동체다. 지난 15년부터 상품, 서비스, 자본,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역내 시장의 분업화 촉진과 더불어 소비시장도 점진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마오딤.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3개국이 경쟁적으로 ASEAN시장경영에 나서고 있음. 한편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이들 3국의 진출욕구와 수요를 적절히 저울질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 이 지역 진출의 선발주자인 일본은 태국을 중심으로 아세안역내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는 전선을 만들고 있으며, 한국은 베트남을 거점으로 미얀마 등을 배후 거점화하는 전략을 공격적으로 전개. 후발주자인 중국이 일대일로를 간판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차이나머니를 미끼로 각국의 인프라 시장을 쓸어담는 Pivot to Chian전략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 신흥국의 노동력은 선진국 노동시장에서 인구절벽을 메워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안. 일개국가의 노동시장에서 자국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로봇 혹은 스마트기계 등 3종의 노동공급원을 두고 어떤 포트폴리오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대중적 의사결정을 만들어가야 함.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3개 노동주체들이 어떻게 갈등없이 화합하고 시장의 파이를 키워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함.
- 70년대까지 스웨덴 해안도시 말뫼는 당시 세계 최강 조선업체인 코쿰스를 보유한,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풍요로운 도시였다. 하지만 1980년대에 한국이 신흥조선강국으로 한국이 부상하면서 이 도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 마침내 2003년 말뫼조선소의 상징무인 코쿰스 크레인이 대한민국 울산으로 옮겨질 때 스웨덴 국영방송은 말뫼 현장에서 생중계를 하며 장송곡을 흘려보냈다. 한국에서는 골리앗 크레인이 울산이라는 도시의 상징물이 되면서 울산을 가장 풍족하고 윤택한 도시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16년 울산이 스웨덴의 말뫼와 같은 처지로 전락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이는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였다
- 세계 인수합병 시장에 큰 손으로 등장한 중국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됨. 중국 자본의 무차별적 공세로 귀빈으로 모셔지던 차이나머니가 졸지에 불청객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두가지 이유로 요약되는데 중국의 과다한 선진기술 인수욕심과 상대국의 에너지, 전력 등 안보 인프라와 같이 민감한 분야에까지 중국자금이 접근하고 있기 때문.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에 대한 선진국의 불편한 심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 미국, 독일 등에서 구체적으로 중국기업을 기피하거나 경계하는 현상이 표면화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20년 역사를 가진 쿠카가 중국 메이디 그룹에 인수당한 것이 결정적 원인을 제공. 미국과 달리 독일은 민간기업의 영역에 대해 정부가 법적으로 차이나머니를 차단할 방법이 없으므로 이를 막을 수 없었다. 반면 미국에 자회사를 둔 독일 반도체 기업 아익스트론을 중국자금이 인수하려고 하자 오바마 정부가 개입하여 이를 무산시킴.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독일은 EU차원에서 차이나머니의 공급에 대한 규제장벽을 만들고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EU등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 견제에 나섰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철강과 같이 또 하나의 글로벌 공급과잉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필요하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중국의 보조금 지원을 WTO에 제소하거나 슈퍼 301조라는 통상보복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협박. 반도체와 같은 전략산업을 두고서라도 G2간의 전쟁거리가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있다. 어느 외국과도 군사동맹을 체결하지 않고 있으며, 외국 군사기지 또한 없다.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 누적규모를 보면 한국이 5453건/488억 1000만불로 일본의 3154건/402억 4000만불, 싱가폴의 1664건/381억 6000만불보다 우위. 16년에도 베트남에 대한 전체 외국인투자의 32.5%를 차지해 독보적 1위를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2위와 3위인 일본과 싱가폴은 10.8%, 10.6%를 차지. 베트남 산업지도를 한국기업이 바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인건비의 50% 수준, 손재주와 근면성, 10% 이하의 문맹률 등이 베트남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 글로벌 분업체계의 재편은 우리 산업정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제조업 강국이라는 우리의 정책적 목표를 수정해서는 안됨. 그리고 국내산업과 블로벌 분업형태로 나가 있는 해외 생산기지와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는 지략이 요구됨. 국내에서는 연구개발, 부품, 소재 등 중간재 공급기지로서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고 해외거점은 현지시장에서 완제품의 완성도와 시장장악력을 높여야 함. 시장 다변화와 거점시장 확보, 제조업 저변확충, 해외시장과 내수시장의 시너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 다시 말해 우리 산업의 글로벌 분업체계 지도를 다시 짜자는 이야기다. 그 틀내에서 중간재, 상품, 자본, 인재가 적재적소에서 움직이는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해외각국과 체결하고 있는 FTA, 외국인 투자유치 등도 단순히 경계영토를 넓힌다는 개념보다 한국경제 혹은 산업의 글로벌 지형과 적재적소의 인재배치를 다시 그린다는 목적이 되어야 함. 해외를 포함하는 산업정책이 되어야함 실효성이 배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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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경제 2018. 1. 1. 14:50

- 침체(recession)은 흔하지만 불황(depression)은 드물다. 내 판단으로는 경제역사에서 불황으로 대략 묘사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시기인데, 1873년 공황 뒤에 이어졌던 물가하락과 불안정의 시기와 1929~30년 금융위기뒤에 이어졌던 대량실업의 시기였다. 19세기의 장기불황이나 20세기의 대불황은 끊임없는 경기하강의 시기는 아니었고, 반대로 둘다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기개선의 경우들은 초기 침체에서 오는 위험을 저지하기에 절대 충분하지 않았으며, 악화가 뒤따랐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세번째 불황의 초기단계에 있는 것 같다. 아주 극심한 대불황이라기보다 장기불황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세계 경제에 미치는 대가와 무엇보다도 일자리가 없어서 망가진 수많은 이들의 삶에 미치는 대가는 막대할 것이다. (폴 크루그먼)
- 세계 주요 경제국은 장기불황에 빠져있다. 여기서는 불황을 경제가 이전의 산출액보다 훨씬 낮게, 장기 평균보다 낮게 성장할 때로 정의한다. 그것은 또한 고용과 투자의 수준이 그 꼭짓점보다 낮고, 장기 평균보다 낮은 것을 의미. 무엇보다도 자본부문의 이윤율이 불황 시작 이전 수준보다 대체로 낮게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 지금까지 현대 자본주의에서 세번의 불황이 있었다. 첫번째는 19세기 종반(1873~97)이었고, 두번째는 20세기 중반(1929-30)이었고, 현재 21세기 초반(2008~?)에 또 하나를 겪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심각한 침체와 함께 시작되었다. 가장 심각한 불황은 자본주의 순환의 하강국면들이 결합될 때 나타났다. 모든 불황은 여러 산업부문의 혁신순환이 무르익고 포화상태가 되었을 때, 세계의 생산 및 상품가격이 하강국면으로 들어섰을 때, 즉 물가상승이 둔화되고 물가하락으로 전환될 때, 건설과 사회기반시설 투자의 순환이 침체로 바뀔 때, 무엇보다 이윤율의 순환이 하강국면에 있을 때에 온다
- 불황은 사회 및 경제반응을 촉발. 19세기 불황은 제국주의 경쟁을 촉발했고, 이는 결국 1차대전으로 이어졌따. 30년대의 대불황은 유럽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의 발흥과 이와 함께 스페인에서는 혁명과 반혁명과 일본에서는 군국주의와 소비에트연합에서는 전체주의 지배의 강화를 초래했는데, 이는 상승하던 추축국들이 영미 제국주의의 세계 지배를 위협했을 때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자본 스스로 기필코 극복하지 못하는 영구적인 침체는 없다고 주장. 자본주의는 노동대중이 이 체제를 대체할 정치권력을 얻지 못한다면, 경제에서 출구를 갖게 된다. 결국 여러차례의 침체를 겪으면서 자본이 불황의 심연의 바닥에 모여들고 있는 새로운 기술진보와 혁신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이윤율이 회복될 수 있다. 자본은 새로운 성장 및 발전의 시기를 위해 다시 부상할 것인데, 하지만 많은 기업들의 파산과 실업에서 엄청난 증가와 심지어는 수많은 사물과 사람의 물리적 파괴가 일어난 후에 그렇게 될 것이다.
- 주류 경제학 조차도 때때로 이윤과 위기사이의 관련성을 인정함. 그 관련성은 투자다. 얀 틴베르헌은 새로운 투자는 일반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벌기 때문에 기대이윤이 새로운 투자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결론내림. 기대는 과거 및 현재 수익성의 경험에 기초할 것이다. 웨슬리 미첼은 투자행동이 총 수요 변동의 중요한 요소이며 따라서 투자의 감소는 위기를 촉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여주었다. 이윤율과 투자 사이의 강한 관계는 여러 연구에서 밝혀짐. 이런 연구들은 투자수준을 잘 예측하는 경제변수는 전체 기업의 이윤율이지 증권 시장가치평가나 다른 경제변수가 아니라고 밝혔다.
- 자본주의에서 각 위기는 고유한 특징을 지님. 08년의 도화선은 가공자본의 엄청난 팽장이었는데, 이는 가계소득에 대한 주택가격의 비율이 극한에 도달하여 실질가치 팽창이 가공자본의 팽창을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여 붕괴됨. 하지만 그런 도화선은 원인이 아니다. 위기의 일반적 원인은 도화선 뒤에 있는데,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이다. 다른 위기들처럼 08~09년 위기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축적과 이윤율 저하경향 간 모순에 기초하는 근본원인을 갖는다. 이런 모순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ㅅ용을 위한 생산이아니라 가치를 위한 생산이기 때문에 일어남. 목적은 이윤이지 생산 또는 소비가 아니다. 가치는 오직 노동의 지출로 창조된다. 이윤은 노동이 대가를 받지 않고 창조하고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자가 전유하는 가치로부터 온다. 자본축적과 이윤율 하락 사이의 근본모순은 실질가치와 허구적 가치 파괴의 형태를 갖는 위기로 해결된다. 실로 자본의 허구적 팽창이 가장 많이 전개된 곳에서 위기가 시작된다.(튤립, 증권시장, 주택부채, 은행부채, 기업부채, 공공부채 등) 금융부문은 자주 위기가 시작되는 곳이지만 생산부문의 문제가 그 원인이다 자본주의에서 침체는 자본가의 투자붕괴로 시작. 투자의 변동은 처음에 이윤의 변동때룸에 일어나지 그 반대는 아니다.
- 마르크스의 법칙은 자본주의 체제는 금융부문에서 기술적 고장을 겪을 뿐 아니라 생산부문에 내재한 모순, 즉 자본 스스로 만드는 성장의 장벽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으로부터 결론을 내리면 자본주의 체제는 호황과 침체가 없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게끔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체제는 다른 체제로 바뀌어야만 한다.
- 19세기 후반의 초까지 영국은 자본주의의 선두 강대국이었다. 영국은 세계 무역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했는데, 특히 제조업에서 그랬다. 이 분야에서 산업혁신 및 확대의 세계 지도국이었음. 영국은 팍스 브리태니카 아래서 세계 지도국을 유지할 수 있는 커다란 식민제국과 군사력을 가졌었다. 1851년 대영박람회는 영국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절정이었다. 19세기 후반 동안 영국은 경제력, 금융력, 군사력, 정치력의 선두를 유지. 하지만 영국은 특히 미국과 비교하여 그 힘을 잃기 시작했고, 도한 1차대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럽에 비해서도 그 힘을 잃기 시작. 그런 의미에서 1850~1914년 동안 영국은 1970년에서 현재까지의 미국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 마르크스의 자본의 운동법칙 분석은 주로 영국에 기초. 그는 그곳에 살았으며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영국의 경제자료와 사건을 사용했다. 그래서 영국 경제는 19세기 종반 자본주의 축적과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적 타당성을 분석하는 데 딱 들어맞았다
- 장기불황은 실제였지 미신이 아니다. 장기불황은 유럽에서 터져서 미국으로 갔고, 다시 유럽에서 터진 국제금융공황이 촉발했다. 하지만 그 이후 동시대인들과 주류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장기불황의 주요원인은 금융부문에서 찾을 수 없고 또는 화폐 공급긴축이나 엄격한 금본위제 때문이 아니었다. 원인은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부문에 있었다. 산업생산의 성장이 둔화되었는데, 투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자본투자의 급감이 일어난 이유는 자본의 이윤율이 1870년대 초반부터 급락하여 1890년대 중반까지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일련의 침체와 약한 회복이 있었고, 각 국가들은 다양한 수준의 심각함과 회복을 겪었지만, 모든 국가들이 성장감소, 투자감소, 물가하락을 겪었으며 무엇보다 이윤율 하락을 겪었다.
- 대불황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30년대에 전면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케인즈가 제공. 그는 경제에서 총수요의 감소가 소득과 고용의 커다란 감소에 이바지했다고 주장. 그런 상황에서 경제는 경제활동이 평균수준일 때보다 낮은 균형에 도달했고, 실업률이 높아졌다는 것. 산출액의 증가는 구매력의 크기에 의존하는데, 이는 시장에서 오는 것으로 예상된다. 회복은 구매력 증가에 의존한다. 케인즈는 구매력과 산출액을 높이는 데 작동하는 세가지 요인이 있다고 언급. 첫째는 현재 소득에서 소비자지출의 증가이고, 둘째는 자본가의 투자증가이고, 셋째는 정부당국이 차입이나 화폐발행을 통한 지출로 추가소득을 창조하기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 소비자의 대부분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고 임금이 낮은 시기 동안 필요한 규모의 소비지출 증가는 가능하지 않다. 기업투자는 결국 실현될 것이지만, 오직 정부당국의 지출로 흐름이 바뀌고 난 다음이다. 공공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용에 대규모 정부투자가 먼저 일어나야 하고 오직 그런 다음에야 민간투자가 시작된다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이 총투자를 회복하는 것은 경제회복을 만드는 데 필수이다. 하지만 심각한 침체에서 개별 자본가의 투자는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각 자본가들은 회복의 증거, 즉 다른 자본가들이 생산적 지출을 수행하는 증거가 있을 때까지 투자를 미룰 것임. 따라서 구조적 모순이 자리잡는다. 각 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자들이 투자할 때까지 투자하지 않느다면, 어떤 자본가도 투자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들이 투자할 때까지 계속 기다린다. 민간투자 체계에 외부 자극 부재로 불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민간시장에 외부의 힘이 가해질 수 있다면 오직 회복이 가능하다. 정부가 구조하도록 하라. 따라서 총수요의 붕괴가 불황을 이르켰다는 것이다. 수요의 회복을 위해 외부개입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경제는 불황에 계속 빠져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케인즈의 설명은 두가지 결함이 있다. 첫째, 그것은 왜 총수요가 갑자기 붕괴했는지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과관계의 설명이 아니다. 둘째, 그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채택되거나 정부정책의 동기로소 사용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대부분 국가들의 경제가 1932년 후에 저절로 회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대불황과 2차대전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가 일단 깊은 불황에 빠져들면, 경제팽창의 새로운 시기가 가능하려면 자본주의가 이전에 수십년 동안 가치로 축적한 모든 것의 부단하고 깊은 파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 이를 피하면서 자본주의 부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대불황을 다루는 그의 처방이 루즈벨트와 미국인으로부터 퇴짜를 맞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는 전쟁상황을 제외하고는 나의 주장이 증명될 수 있는 대단한 경험을 만드는데 필요한 규모의 지출을 조직하기에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다고 케인즈는 언급. 전쟁은 결정적으로 대불황을 끝냈다. 미국산업은 다시 활기를 띠었고 많은 부문이 군수품 생산에 맞춰졌고, 또는 완전히 군수품에 의존했다. 대불황 기간동안에 전쟁이 낳은 과학과 기술의 빠른 변화가 계속되었고, 강화된 추세가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미국을 제외한 모든 주요 경제국들이 파괴됨에 따라, 미국 자본주의는 1945년 이후 정치 및 경제주도권을 획득했다.
- 하이먼 민스키에게 자본주의 생산과정, 즉 실물경제에서 결함은 없고, 오직 화폐라는 가상과 생산과 소비사이의 금융중개에 있다. 부채가 쌓여 가면서 이는 그런 과정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불러 일으킨다. 헤지 대출자, 투기대출자, 폰지 대출자 등 세종류의 대출자가 있다. 헤지 대출자는 대출하고 나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고, 투기대출자는 이자만 상환하는데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자산가격 상승에 의존하고, 폰지 대출자는 더 많이 대출하여 이자를 상환. 호황 동안에는 헤지 대출자의 비율이 줄어들고, 투기대출자와 폰지 대출자의 비율이 늘어나서 부채 피라미드가 무너지기 시작할 대에 불안정성의 위험에 길을 열어줌. 이런 부채위기의 실제 도화선은 07년처럼 자산시장에 있을 수 있고, 2000년처럼 주식에 있을 수 있다.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레버리지와 부채에 대한 의존이 더 커질수록 붕괴의 가능성도 더 커짐. 부채상환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주택가격이 충분히 상승하지 않게 되면, 갑자기 위험을 싫어하게 되고, 부채축소를 바라게 되는데, 이것이 07년과 같은 민스키의 순간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 경기순환 가운데 호경기는 정부가 현재 이자율의 유지를 바라기보다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더 많이 공급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따라서 현재 이자율은 하락하기 시작함. 대출가능한 자금이 수요를 초과하고, 그러면 이는 비생산부문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02~07년 주택시장 호황의 경우가 그렇다. 호경기 동안의 이런 실수는 오직 불경기의 시장에서 드러난다.
-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가치론과 이윤율 법칙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위기는 기술적 고장이었고, 경제의 금융부문에서 즉 불로소득 부분에서 그리고 가치 또는 소득의 분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 생산부문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었따. 케인즈는 위기가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했는데, 즉 투자와 소비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소가 있고, 이는 이윤과 임금의 감소를 일으킨다는 것. 반대로 마르크스는 이윤에서 시작한다고 제시한다. 이윤이 감소하면, 자본가들이 투자를 중단하고,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며, 임금이 하락하고, 소비가 감소한다. 그러고 나서 유효수요의 부족이 있는데, 그러나 이는 야성적 충동의 감소나 신뢰의 부족 때문이 아니며, 또는 너무 높은 이자율 때문도 아니며, 이윤의 감소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생산의 본질에 있으며 금융부문에 있지 않다.
- 세계 자본주의의 생산과 투자는 이윤율이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부채가 충분하게 감소하여 투자를 위한 새로운 차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아주 높아서 실업과 임금제약을 통해 상승한 잉여가치율도 이윤율을 제대로 높이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에 이윤율이 이전의 꼭짓점들보다 낮다는 것을 보았다. 자본주의 침체는 결국 생산과 자본가치를 충분하게 떨어뜨려서 살아나은 기업들의 이윤율을 높인다. 실업은 노동비용을 낮추고 파산과 기업인수는 자본비용을 떨어뜨린다. 기업들은 점점 생산을 다시 늘리고, 끝내 새로운 자본에 투자하고 직업이 없는 산업예비군에서 노동력을 고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투자자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고, 결국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비재를 구매하기 시작하고, 회복이 시작된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산업과 건설부문에서 유휴설비의 과잉이 많고, 기업, 정부, 가계 모두 여전히 떠안고 있는 부채규모가 커서 회복을 방해하고 있음. 모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수요에 필요한 것보다 생산설비를 30% 넘게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기록적으로 높은 수치. 이는 좀비기업들의 체계, 유휴생산수단, 비생산 노동자들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채의 더 많은 대손상각을 위해 또 다른 침체가 필요할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
- 현재의 세계 저상장은 잠재 자본 수익률과 비교한 차입비용으로 보면 여전히 큰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부담의 반영이며, 따라서 성장을 이루는 데 여전히 큰 부채규모를 짊어지고 있는 부담의 반영이다. 침체가 하는일(유형자간과 무형자산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이자율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기업과 정부의 부채를 상환하는 비용이 지속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기에, 새로운 침체가 쉽게 촉발될 수 있다. 침체는 이윤율의 의미있는 상승을 여전히 막고 있는 자본의 남은 과잉을 청소해줄 것이다. 그 동안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위기 이전 추세율보다 훨씬 낮게 유지되었고, 이와 함께 생산성 증가를 낳을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능력보다 낮은 상태에 있다. 장기불황은 계속된다.
- 자본주의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가지. 첫째는 이윤을 늘리고 투자를 재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노동력의 착취율을 높이는 것. 두번째는 약하고 수익성 없는 자본(기업)을 청산하거나 오래된 기계, 장비, 공장을 기업 회계장부에서 감가상각처리하는 것. 물론 자본가들은 침체후에 이윤량과 이윤율 회복을 모두 시도한다. 이번 위기에서는 이런 회복이 09년 중반 대침체의 바닥이후부터 오래 걸리고 있다. 자본저량의 가치하락과 이전에 축적한 부채축소를 진전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으며, 심지어 통화정책이 이 진전을 막고 있다. 하지만 착취율 증가의 진전은 상당하다
- 유로위기는 정말로 국가부채 위기 혹은 재정위기가 아니다. 그 근원은 자본주의 실패에 있으며 거대한 은행 및 민간 신용위기에 있으며, 자본주의 실패에 대처하지 못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 중앙은행, 각료 이사회, 유럽의회 같은 비민주적 범유럽 자본주의 기구들의 무능력에 있다. 통화동맹을 비롯해 미국 및 아시아와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는 프랑스와 독일의 야망은 근본적으로 실패했따. 하나로 통일된 자본주의 유럽이라는 원래의 꿈, 즉 생산, 노동, 금융의 자유시장이라는 원래의 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림. 이제 단일 통화동맹이 위협받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야망이었다.
- 유럽연합 지도자들과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이런 신자유주의 해법의 진짜 목적은 보통 말하는 그런 성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고 노동력의 착취를 높이는 것. 이는 이윤율을 북돋울 수 있고, 그러면 민간부문은 일자리 창출과 더 많은 국내총생산을 위해 투자하게 될 것인데, 물론 이는 자본주의가 그전에 다른 침체를 맞지 않았다고 가정하고서다. 그런 정채들은 아직까지 효과가 없었다. 유로존에서 약한 자본주의 경제국들의 경우에 그런 정책들은 끔찍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키프로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의 인민들은 이미 그리스가 겪었던 청년 실업자 전체를 잃어버린 세대로 만들어 버리는 긴축을 앞으로 몇년간 더 견딜 수 있을까?
- 인도자본의 이윤율은 세계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꾸준히 하락. 최근 이윤율은 더 많이 하락했고, 현재는 80년대 수준보다 약 20% 낮음. 2000년대 초반 두자리수 경제성장의 호황기 때는 모든 이야기가 인도의 소프트웨어 외주제작산업과 새로운 자동차 공장에 관한 것이었는데, 노동에게로 분배되는 가치의 몫을 급격하게 삭감하지 않고는 그런 호황을 돌이킬 가능성은 없어 보임. 모디노믹스는 충분한 성장과 이윤율 개선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인도 자본주의의 실패를 해결하지 못할 것임
- 주류경제학의 주장은 중국이 이른바 중간 소득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완전한 소비주도 자본주의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신흥경제국들은 대자본 투자와 값싼 노동력과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수출품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데, 중국 모델이 그렇다. 하지만 60년에 중간소득이었던 101개 국가가운데, 08년까지 단지 13개 국가만 그 집단에서 떨어져나와 선진국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주류 경제학은 내수 소비진작으로 전환이 있어야 하며, 국가주도 경제는 이것을 할 수 없다고 주장. 그래서 그 주장은 자유무역과 자본으로 자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좌파 경제학자 존 로스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소비를 늘리는 것이 실제로 경제정책의 목표인 것 같다. 불행하게도 이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몫을 급격하게 늘리는 생각과 혼동되어 왔따고 존 로스는 주장. 이 두가지 목표는 실제 서로 모순이 되는데, 국내총생산 성장이 크게 투자때문에 일어나고, 투자가 지속성 있는 소비를 뒷받침하기 때문. 하지만 국내총생산에서 소비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 투자규모를 축소하고, 그리하여 의도와 다르게 국내총생산 하락을 낳으며, 그 결과 소비성장률 하락을 만든다. 이는 왜 소비주도 성장이 혼동된 생각인지 보여준다. 중국 공산당 3중전회의에서 앞으로 5년에서 10년동안 무엇을 할지 논의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일반철학에서 변화는 없으며, 따라서 국영기업부문의 우위유지에도 변화가 없었다. 더 많은 민주주의나 인민들에 의한 법체계의 관리와 결정을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반대로 지도부는 중국 인민들을 감시, 통제하고 반체제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서 더욱 억압적인 국가안보 서비스를 세워나가고 있다.
- 중국 정치 엘리트들이 동의한 정책의 목표와 정책제안에는 중국 경제, 사회, 정치모델의 성격을 바꾸겠다는 것은 없다. 중국 지도부 다수는 공산당 간부들이 모든 수준에서 지휘하고 있는 국영기업이 지배하는 경제모델을 계속 유지할 것임. 시장이 경제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고, 가치의 법칙이 가격, 노동자의 소득, 국내거래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은 세계은행과 친자본주의 요소가 원하는 자본주의 길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위기나 침체를 촉발하지 않으면서 이런 가운데 길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노동계급 인구가 국가운영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기 시작할 때 정치 엘리트들은 아래로부터 폭발에 직면할 것인가? 존 로스가 지적하듯이 중국의 산업 성장은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더 중국의 연간실질 성장률은 최소한 6~7%가 될 것이다. 노동인구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곧 꼭짓점에 도달할 것이고, 산업기계에 결합될 농촌 노동자들과 소농들이 수십만명 있다. 중국은 팽창을 지속할 필요 때문에 점점 더 많이 세계의 원료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위대한 경제기적이 고갈될 날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 현재 우리는 다른 이윤율 하강 파동에 있는데 2018년이 지나서야 바닥에 도달할 것 같다. 그래서 산출과 고용의 침체는 적어도 197475년과 1980~82년처럼 심각하고 장기간 계속될 것이다. 이는 현재 이윤의 하강파동이 82년 시작된 콘드라티예프 가격순환의 하강파동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면서 2018년 즈음을 지나서야 바닥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 세차례의 불황은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겨울국면과 함께 발생. 이 장기불황들은 역시 자본주의의 다른 단계로 발전하는 것과 함께 일어났다. 19세기 종반 장기불황은 제국주의 발전과 식민지로의 금융자본의 팽창과 세계분할을 위한 제국주의 열강들 간 전쟁을 위한 자극제였고, 이는 결국 1차대전을 초래. 이 대불황은 새로운 제국주이 전쟁을 초래했고, 1차대전 때까지 해결되지 못함. 패권을 가진 제국주의 강국 대영제국은 1914~18년 전쟁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지만, 상승하던 패권국 미국은 제국주이 패권의 해체를 맡으려고 준비하거나 맡으려고 하지 않았따. 제국주의 경쟁국인 독일가 일본은 더 많은 전리품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2차대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45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가 시작. 현재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가을국면(1982~2000)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을 보았다. 현재 장기불황은 미국 제국주의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는데, 미국의 패권은 이미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같은 새로운 야심찬 강대국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새로운 경쟁이 앞으로 10년 정도의 기간동안 커다란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협이 되고 있다. 결국 현재 전개되고 있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겨울국면은 콘드라티예프 봄 국면에 길을 내주면서 현대 자본주이의 다섯번째 콘드라티예프 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겨울 국면 동안에 여러번의 침체를 겪으면서 자본의 가치가 파괴된 뒤에 새로운 상승국면으로 접어들 것. 2030년대 중반부터 우리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여름국면에 접어들 것이며, 이때 이윤율은 하락할 것이고, 자본주의는 다시 위기에 빠질 것이고, 계급투쟁은 강화될 것임. 이는 2050년대까지 지속될 것 같다. 이야말로 우리가 장기적 관점이라 부르는 것이다.
- 신고전파 경제학은 총요소 생산성이라 부르는 더 복잡한 생산성 척도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고용된 노동력의 생산성뿐만 아니라 혁신으로 이룬 생산성도 측정. 그 척도는 실제로는 실질 국내총생산과 노동 및 자본 투입물의 생산성 차이에서 얻은 나머지다. 그래서 실제로 다소 위조된 수치다. 하지만 콘퍼런스 보드는 그 수치를 액면가대로 고려하여 2013년 세계 경제의 총요소 생산성이 0미만으로 떨어졌고 이는 자원의 최적배분과 사용에서 효율성이 정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더 나쁜 것은 생산성 성장이 둔화되면서 세계 물가상승률도 둔화하고 있고, 몇몇 주요 경제국들은 물가하락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황의 또 다른 전형적 지표다
- 노아 스미스(케인즈 학파 경제학자)는 최근 불황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불황의 설명은 아직도 축소하고 잇는 부채와 이윤의 낮은 기대와 낮은 신뢰이다. 역시, 이윤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는 왜 자본이 유휴하고 있는지에 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충분히 이윤을 벌지 못하기에 그런 것 아닌가? 이윤율을 되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번의 침체를 통해서이다. 이런 침체는 생산적이지 못한 축적된 자본의 가치를 파괴하고 그리하여 남아있는 자본가치와 비교하여 이윤이 상승하고 자본축적의 과정이 재개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30년대 대불황 때와 같이 죽은 자본의 대량파괴 없이는 자본주의는 이렇게 긴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1880년대와 1890년대동안 자본주의은 여러번의 커다란 침체를 겪고 나서야 지속적인 성장을 했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술이 진보하면서 산업의 자본집약도는 높아지고, 노동집약도는 낮아짐. 그리고 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창조할 수 있고, 이런 산업들은 거의 언제나 자본집약적이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사이의 투쟁은 강화된다
-  30년대 케인즈는 세계가 사회격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의 세계화는 전례 없는 사회 불평등을 만들어냄. 노동이 점점 더 사회적으로 되고, 생산과정이 국가간에 대륙간에 서로 침투하고 겹쳐지고, 부유한 엘리트들의 힘과 부가 커지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착취와 억압이 강화되었다. 사실상 모든 국가들에서 행해진 연구는 최근 몇십년간 노동자들의 일자리 불안과 일터에서 억압의 체감이 늘었다는 것을 보여줌. 로봇이라면 달라질 수 있을까?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주요 이유는 첫째, 마르크스 주의 경제학 이론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부터 시작하는데, 오직 인간이 어떤 일을 하거나 노동을 수행할 때만 물건이나 서비스가 생산된다. 자연에서 제공된 것 외에는 그렇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오직 노동만이 자본주의에서 가치를 생산할 수 있고 가치는 자본주의에 특유한 것이다. 살아있는 노동은 물건을 창조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가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생산하는 물건의 실체다. 자본은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수단을 통제하며, 노동자가 창조한 가치를 전유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사용하게 할 뿐이다. 자본 자체로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이제 기술, 소비상품, 서비스의 전체 세계가 노동을 수행할 살아있는 노동없이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고, 로봇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재화와 서비스는 생산되지만 가치의 창조는 일어나지 않을 것임. 마틴 포드는 '더 많은 기계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수록, 평균노동자들이 부가하는 가치는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축적은 로봇이 완전히 장악하기 훨씬 전에 멈출 것이다. 왜냐하면 수익성이 자본편향 기술의 중압을 받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운동법칙, 즉 이윤율 저하 경향이 작동할 것이다. 자본편향 기술이 증가하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 상승할 것이고, 따라서 노동은 결국 이윤율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는 절대로 로봇사회에 도달하지 못하며, 노동하지 않는 여가사회로 이를 수 없다. 위기와 사회폭발이 그런 사회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방해할 것이다. 노동에게 분배되는 가치 몫의 감소로 이미 이런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집적의 증가를 통해 자본이 몇몇 손아귀에 축적되고 있다. 이는 노동이 생산한 가치를 자본이 전유하고 99%에게 분배되는 몫을 최소로 만드는 것을 보장한다. 이는 완전경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독점이 아니라 소수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독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순전한 기능이며, 자본주의의 전부이다. 노동분배율이 줄어들게 만드는 것은 독점기업을 가진 악덕 자본가에게 가는 지대 증가나 독점력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다. 미국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경제국들의 자본주의 부문에서 노동분배율이 감소한 이유는 세계화와 해외의 값싼 노동력, 노조의 파괴, 더 큰 규모의 산업예비군 창조(실업과 불완전 취업), 복리후생비와 종신고용 보장의 종말로 된 자본편향 증가와 기술증가이다. 이는 정확하게 마르크스의 노동계급의 궁핍화가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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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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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는 공감형 기술직. 이는 STEM능력과 인간의 오래된 공감능력을 결합하는 일. 기계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과 가슴을 가진 인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결합하는 능력은 다른 무엇보다 높은 가치를 지닐 것. 이는 기계가 하는 일을 다른 인간에게 연결해주고 그들이 이 세계를 더욱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왓슨이 암에 관해 발표된 모든 의학논문을 읽었다면 나는 왓슨에게 가장 적합한 질문을 할 수 있고 그 답을 나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인간인 의사나 간호사를 원할 것임
-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흐름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 흐름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내고 최악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가?
둘째, 그들은 지치지 않는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편집증적 면모를 보인다.
셋째, 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리더드링 있다. 젊은이들은 특히 사명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과 최고경영자들에게 끌린다
넷째, 그들은 평생학습을 요구하며 이를 위한 자원을 창출한다
- 당신이 어떤 기계의 정지버튼을 누르면 기계는 멈춰섬. 그러나 인간에게 정지버튼을 누르면 무언가를 시작함. 당신은 멈춰 서서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하고, 당신의 전제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며, 무엇이 가능한지 다시 구상하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당신이 가장 깊이 간직하고 있는 믿음을 다시 연결하기 시작 일단 그 일을 하고 나면 더 나은 길을 재구상하기 시작할 수 있음.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멈춘 사이 무엇을 하느냐임
- 07년 세계는 평평하다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 페이스북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고, 트위터는 어떤 의성어였고, 클라우드는 아직 하늘에만 있었고, 4G는 주차공간이었고, 애플리케이션은 대학에 보내는 지원서였고, 링크드인은 거의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종의 감옥이겠거니 생각했으며, 빅데이터는 어떤 유명한 랩스타를 일컫는 것으로 들렸고, 스카이프는 인쇄과정의 오류로 보였다. 이 모든 기술이 '세계는 평평하다'를 쓰고 나서야 꽃을 피웠으며 그중 대부분은 07년쯤 만개했다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속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 이게 의미하는 건 단지 변화의 속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속도의 변화율 또한 갈수록 높아진다는 의미. 그리고 변화율이 결국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면 당신은 변위적 혼란에 빠지게 됨. 파괴적 혼란은 누군가가 영리한 일을 해서 당신이나 당신의 회사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 때 벌어지는 것. 변위적 혼란은 환경이 전체적으로 너무나 빨리 바뀌어서 모두가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것.
- 과거의 접근방식은 상태기반 관리. 예를 들어 뭔가 더러워 보이면 씻으라고 하는 식. 그에 비해 예방적 관리는 예컨대 1만킬로 주행할 때마다 오일을 갈라고 하는 식. 험하게 운전했는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음. 새로운 접근방식은 예측적 관리와 처방적 관리임. 우리는 언제 자동차 타이어나 엔진, 트럭의 배터리, 터빈의 날개, 혹은 다른 장치를 갈아야 하는지 거의 정확히 예측 가능. 또한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는 특정엔진이 어떤 세정제가 가장 효과적인지 정확히 지시할 수 있음.
- 하둡의 알고리즘은 수십만대의 컴퓨터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작동하도록 해줌. 그러므로 누그든 시장에 가서 범용 하드웨어를 대량으로 사서, 데이터를 대량으로 저장하고, 하둡 소프트웨어를 서서 정교한 통찰을 제공할 연산을 대량으로 수행가능. 그러자 곧바로 페북, 트위터, 링크트인이 모두 하둡을 바탕으로 구축되기 시작. 이들이 07년 일제히 떠오른 건 바로 그때문. 이들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그것들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 이들은 데이터를 저장할 아드 드라이브를  살 돈은 갖고 있었지만 그 하드드라이브에서 필요한 것을 뽑아낼 수단을 갖지는 못했음. 야후와 구글은 사람이 검색할 수 있도록 웹페이지들을 찾아내고 분석하기를 바랬다. 의미있는 목표였으나 야후나 링크드인이나 페북이 웹페이지상의 클릭 하나하나를 보고 저장함으로써 이용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때 검색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클릭들을 기록하는 건 이미 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둡이 나타나기 전에는 구글말고는 누구도 그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 깃허브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기 위한 협력을 촉진하는 가장 인기있는 플랫폼 이런 노력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수 있음. 개인들과 다른 개인들 사이에, 또는 기업내 독립적인 그룹들이나 광범위하게 개방된 오픈소스와의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것. 깃허브 이용은 07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 여기에서도 대중은 어느 한사람보다 똑똑하다는 전제아래 이제 더욱더 많은 개인과 기업이 깃허브 플랫폼에 의존. 이 플랫폼은 그들이 모든 걸 더욱 빨리 배울 수 있도록 해준다.
- 우버를 사용할 때 당장 생각해야 하는 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임. 어떻게 그곳에 갈까를 생각하는 것은 아님. 깃허브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금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하는 것이지 어떤 수단을 써야할까가 아님. 이제 당신은 깃허브의 선반으로 가서 정확히 필요한 것을 찾고, 그것을 가져와 향상시키고, 다른 사람을 위해 다시 갖다 놓을 수 있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마찰을 제거. 당신이 깃허브에서 찾아낸 건 모든 산업에서 통할 수 있음.
- 사람들 대부분이 핸드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애플이 더 나은 전화기를 만들어낸 덕분이라고 생각. 그러나 애플은 당신에게 더 넓은 스크린과 더 나은 디스플레이를 가져다 주었지만 버퍼링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은 퀄컴과 AT&T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이 무선통신 네트워크와 전화기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기 때문. 이 가속화 과정은 이렇다. 2G는 음성과 데이터, 그리고 단순한 문제를 보낼 수 있었지만 인터넷을 통하지는 않았음. 3G는 인터넷에 연결은 했지만 그 빠르기나 어설픈 수준이 온라인 작업을 하려면 다이얼로 작동하는 모뎀이 필요했던 시절을 떠올릴 정도였음. 지금의 표준인 4G 무선통신은 지상의 광대역 통신으로 연결하는 것과 다름없이 매끄럽게 연결되며 특히 비디오와 같이 데이터를 많이 잡아먹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때 원활하게 연결됨. 그럼 5G는 어떤 모습일까? 퀄컴의 공학자들은 그것을 '당신을', '나를', '나는'과 같은 대명사들이 사라지는 단게라고 묘사. 휴대폰이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지,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를 학습하고 그 대부분을 예상하고 당신을 위해 정확히 그 일을 하는 단계다
- 실리콘밸리의 신조는 이런 것이다. 아날로그인 모든 것은 디지털화할 수 있고, 디지털화한 모든 것은 저장할 수 있으며, 저장한 모든 것은 이처럼 더 강력한 컴퓨팅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로 분석가능. 그리고 이렇게 해서 알아낸 모든 것은 오래된 것을 더 잘 작동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가능하게 함. 또한 오래된 것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즉시 응용할 수 있다.
- 대개 어떤 문제가 복잡하고 그래서 해결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이유는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거나 그것을 쓸 수 없어서 적합한 데이터를 모으고 그걸 실제 문제에 적용할수 있는 지식으로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 그러나 데이터를 감지하고 모으고 저장하며 이를 슈퍼노바에 올리고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사실상 공짜가 될 때 결정적 돌파구가 마련됨. 이제 어떤 시스템이든 훨씬 더 적은 노력긍로 절정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최적화할 수 있다.
- 컴퓨터 발전의 역사를 세 시대로 나누는 존 켈리 3세는 왓슨이 그야말로 인지 컴퓨팅 시대의 여명기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첫번째 시대는 190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 이어진 표 작성 시대다. 어떤 숫자를 세는 한가지 목적의 기계적 시스템이 천공카드를 이용해 데이터를 계산하고 분류하고 맞춰보고 해석하던 시대였다. 그 다음에는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프로그래밍 시대가 왔다.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와 사회체제가 더 복잡해지면서 수작업이 필요한 그 기계적 시스템은 확실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짜는 소프트웨어로 눈을 돌렸다. 만약~하면 ~한다는 논리를 적용해 미리정해지 시나리오대로 답을 계산하는 일. 이 기술은 무어의 법칙의 물결을 탔고 우리에게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을 가져다주었음. 이러한 프로그래밍 기술은 아주 오랫동안 강력한 효과를 내며 많은 걸 바꾸어 놓았지만 문제는 본질적으로 그것을 설계하는 우리의 능력에 따라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었음. 그래서 07년 이후 우리는 컴퓨팅의 인지시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는 무어의 법칙이 체스판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말, 사진, 데이터, 스프레드시트, 음성, 영상, 그리고 음악)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준 다음에야 가능했다. 이는 또한 그 모든 것을 컴퓨터와 슈퍼노바에 올릴 수 있는 용량, 그것들을 고속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네트워킹 능력, 그리고 컴퓨터가 구조화되지 않은 데이터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수 있게 복잡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소프트웨어 능력을 갖추고 나서야 가능했다. 인지 컴퓨팅은 인간의 두뇌가 하는 것과 똑같이 함으로써 인간의 의사결정의 향상을 이루는 것이다.
- 왓슨과 더불어 기계의 힘이 커질 때 개인의 힘이 갖는 속성은 달라짐. 어떤 면에서는 가장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창의성의 본질이 된다. 디자이너의 세계는 바뀌고 있음. 어떤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디자인할 대상의 목적과 제약조건들을 창조하는 사람의 세계로 바뀌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더이상 디자인을 만들어내지 않고 넓게 펼쳐진 가능성 중에서 그 디자인을 선택함. 우리는 하나의 포인트 솔루션(다른 것들과 무관하게 특정 문제 하나만 해결하는 것)을 찾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가 협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음. 컴퓨터의 도움으로 이제 디자이너는 인간이 혼자서 알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어떤 시스템의 전 범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
- 맥닐은 역사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에 대해 '서구의 부상'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주된 요인은 새롭고 생소한 기술을 가진 낯선 이들과의 접촉'이라고 주장. 고급 기술의 중심지들(문명들)은 흔히 그 이웃들에게 매력적이고 신기한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면 그 주변의 기술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려고 애쓸 수 밖에 없다. 앞선 기술을 가진 이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 그들이 갖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얻으려면 그래야만 하기 때문. 그러나 이런 노력을 하다보면 그 문명을 모방하려는 의욕, 그리고 고유한 관습과 제도를 보존하려는 똑같이 강렬한 열망 사이에서 어려운 고민에 빠지게 됨. 그 제도와 관습은 기술을 빌리는 이들의 삶을 부패와 불의가 따르는 문명화된 삶과 구분하는 것이다.
- 비록 문명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이렇다할 합의가 이뤄진 게 없고, 또 교류지대를 묘사하는 합의된 단어나 문구가 없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는 현실과 그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확실히 미래 세계사 연구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옳다. 서구의 부상을 쓸 때 나는 유라시아 대륙의 각 문명이 어떻게 그들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서로 교류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토인비의 주장을 발전시키려고 준비했다. 이들은 결정적 기술을 서로 차용했으며,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간직해온 지식과 경험을 새롭게 빌린 것들과 함께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변화는 더욱 촉진됐다. 물론 인간에게 궁극적인 변화의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행방법, 제도를 발명하는 데 있다. 그러나 발명은 또한 낯선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때 꽃피울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서로 다른 경쟁적 방식가운데 의식적 선택이 이뤄지고, 오래된 관행들을 개선하는 것은 쉬워지며 종종 불가피해진다.
- 검은 코끼리는 검은 백조와 방안의 코끼리를 합성한 말. 검은 백조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매우 드물고 가능성이 낮고 예상치 못한 사건. 방안의 코끼리는 모든 사람에게 뚜렷이 보이지만 아무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문제. 그러므로 검은 코끼리는 언젠가 검은 백조와 같이 엄청난 파장을 낳을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 해결하지 않는 문제를 가리킴. 지구환경에는 지금 한 무리의 검은 코끼리들이 나타나고 있음. 그중 네가지만 들자면, 글로벌 온난화, 삼림파괴, 대양의 산성화,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대규모 멸종이 그것이다. 그런 것들이 나타나면 우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검은 백조라고 주장하겠지만 사실은 지금도 아주 잘 보이는 검은 코끼리임
- 선진국의 자동화는 일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공적인 동아시아 경제가 추구했던 수출주도형 성장의 경로를 끊어버릴 수 있음. 그에 따른 높은 실업, 특히 젊은이들의 실업은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음. 이슬람국가의 과격한 폭력에는 여러 뿌리가 있지만 지난 50년간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인구가 세배로 불어난 것도 그중 하나. 앞으로 85년 동안 아프리카 인구가 30억명 넘게 늘어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유럽연합은 거대한 이민의 물결에 직면할 수 있음. 그에 비하면 수십만명의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지금의 논의는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음. 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모두 인류의 복지에 긍정적 발전들임. 이 목표를 이루는 데 중국이 한자녀 정책과 같은 수용하기 어려운 강제성이 필요한 건 아님. 높은 수준의 여성교육, 피임수단의 제한없는 공급,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의 출산문제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할 뿐. 그 선택은 보수적인 종교당국 또는 급속한 인구증가가 국민경제의 성공을 이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정책을 펴는 정치인들에게 구속받지 않아야 함
- 오늘날 변화를 관리하는 일에서 방향을 잡으려면 기술과 세계와, 환경변화만큼 빠르거나 그보다 빠른 속도로 노를 젓는 수밖에 없음.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역동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 애스트로 텔러가 이야기한 자전거 타는 요령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물의 흐름과 같은 속도로 노를 젓는다는 것 또는 역동적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기술 외의 모든 일에서 혁신을 이루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일터와 정치, 지정학, 윤리, 그리고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고 설계하는 것. 또한 우리가 지금처럼 빠른 변화를 겪을 때 더 많은 시민들이 더 오랫동안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바꿔놓는 가속화된 흐름에 보조를 맞추고 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90년대 초 이후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들은 미국 국민에게 줄곧 오래된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곤 했다. 당신이 열심히 일하고 규칙에 따라 행동하면 미국의 체제는 당신이 품위있는 중산층의 삶을 누리게 해주고 당신의 자녀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는 말이다. 한때는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평범하게 자기일을 하며 규칙에 따라 행동하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생각에 작별을 고해야 할 것. 우리는 기후에 있어서 홀로세럴, 다시 말해 자연의 모든 것들이 훌륭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완벽한 에덴동산의 시대를 막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일에 있어서도 홀로세와 같은 시대를 떠나고 있다.
- 평균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내 딸들은 일자리를 발명해야 한다. 나는 평생 써먹을 기술을 배우러 대학에 들어갔고, 그후 나에게 평생학습은 하나의 취미였다. 내 딸들은 첫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러 대학에 갔고, 그들에게 평생학습은 그후 일자리를 얻을 때마다 필수가 됐다.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은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의 여행과 같은 것이며, 이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걸어올라가는 것과 같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어릴 때 장난삼아 했던 행동이다. 하지만 그러자면 당신은 분명 에스컬레이터보다 빨리 걸어야 한다. 이는 당신이 더 열심히 일하고 정기적으로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어떤 형태든 적어도 중등교육 이후의 훈련을 받고, 반드시 평생학습에 참여하고, 새로운 규칙에 따라 행동하며 그중 일부는 새로 만들기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 그렇게 하면 당신은 중산층이 될 수 있다.
- 20세기 미국인들 대부분이 사무실에서 종이를 넘기거나 공장에서 기계장치를 두드리며 시간을 보냈따. 21세기에는 우리 대부분이 서로의 삶을 향상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 우리는 사람이 사물에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의 고유한 존엄성을 발견해야 할 것.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면서 그들의 바람과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재ㅔ공하는 것이 정직한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면서 그들의 바람과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정직한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임.
- 80년 이후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 필요한 직업들이 다른 직업들보다 훨씬 빨리 증가. 그리고 2000년 이후 임금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진 직업들은 인지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모두 요구하는 직업들. 그러나 학생들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게 하려면 학교가 그들을 가르치는 기술도 바뀌어야 함. 전통적 교육에서 사회적 기술이 강조되는 예는 매우 드물다. 마이클 혼은 '기계는 이 모든 것들을 자동화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욱 유연한 기술을 갖추고 인간적 감성을 이해하고 과학기술을 보완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필수적인데, 우리 교육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 냉전시대에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큰 도전은 대부분 힘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힘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일본 같은 동맹국들의 힘. 그리고 러시아, 중국 같은 주요 경쟁국들의 힘을 관리해야 했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은 약점을 관리하고 극복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사용. 유럽연합과 일본 같은 동맹국들의 약점, 분노하고 굴욕감을 느끼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러시아의 약점, 해체된 국가들의 약점, 그리고 9/11테러와 08년 금융위기 후 미국경제의 약점을 관리해야 함. 약점을 관리하는 건 엄청난 골칫거리.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해체되는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바로 그 발이 마룻장 밑으로 빠져서 다시 빼내려면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엄청난 계산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 워렌 버핏이 말했듯이 물이 빠질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을 치고 있었는지 드러나는 법. 그 모든 강대국의 지원이 끊기고 글로벌 경제환경이 바뀜에 따라 실제로 어느나라가 국내 경제의 기초를 닦아 왔는지, 그리고 어느 나라가 단지 농산물과 석유수출 호황에만 올라타고 있었는지 드러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발가벗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 그리고 베네주엘라처럼 돈이 들어오는 대로 써버리고 어려울 때를 대비한 저축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나라들은 이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뿐 아니다. 기후변화는 이제 많은 개도국,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농산물 생산에 훨씬 더 강력한 타격을 주고 있음. 그리고 아프리카와 일부 아랍세계에서는 인구가 계속해서 빠르게 늘어나면서 모든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과 휴대폰, 그리고 소셜미디어는 불만을 품은 이들이 정부를 무너뜨리는 일을 보다 쉽게 조직할 수 있도록 안정적 대안을 찾기 위해 뭉치는 일은 훨씬 어렵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이 헤엄치던 물은 훨씬 더 많이 빠지고 있다. 실제로 제조업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가 개도국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되돌아오는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고 있음. 지난 25년은 누가 물건을 싸게 만드느냐가 중요했지만, 다음 25년은 누가 물건을 가장 영리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할 것. 값싼 에너지와 더욱 유연하고 개방적 혁신이 어우러지면 미국은 다음 차례의 거대한 신흥 시장이 될 것임. 미국은 대학과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발견들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 두뇌를 공유하고,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세대의 로봇과 3D프린터를 활용해 더 많은 생산이 지방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며, 새로운 제품에 무선으로 연결되는 센서를 갖추고 신소재를 써서 어느때보다 똑똑하고 빠르게 작동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이는 미국에는 좋은 일이지만 기존 신흥시장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지만 정치적 조직이나 문화, 또는 리더십을 대체할 수는 없으며, 자발적인 운동은 보통 이 모든 면에서 대단히 취약. 아랍의 각성을 위한 많은 노력들이 결국 실패한 것은 그들이 진보적인 생각들을 지배적인 다수의 견해로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조직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
- 혁명 다음날 아침에 무엇보다 필요한 조직적인 근육을 만들고 시민적 습관을 형성하려면 때로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전단을 인쇄하고, 이웃의 얼굴을 마주보며 설득하는 아날로그적 절차를 거쳐야 함. 이 오래된 교훈을 다시 배울 때까지 우리는 혼란의 세계가 확장되는 걸 보게 될 것이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행동할 자유가 아니라 벗어날 자유를 얻기가 더 수월하다는 걸 알게 될 것임.
- 대자연은 파산의 가치를 믿으며, 생태계 전체가 성공하려면 개별적 식물과 동물에게 실패가 용인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자연은 자신의 실수와 약한 자에 대해, 또는 씨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데 적응할 수 없는자에 대해 자비심을 갖지 않음. 약한 자가 죽어 없어지도록 용인하면 강한 자에게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흘러감. 대자연은 시장에서 파산법이 수행하는 기능을 산불로 대신. 에드워드 클로드는 1897년에 출간한 '탈레스부터 헉슬리까지, 진화론의 선구자들'에서 자연은 실패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성공의 여지를 확보하려 한다며, 적응하지 못한 자는 소멸하고 오로지 적응하는 자만이 생존한다고 기록. 잿더미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것이다.
- 끊임없이 자신의 불운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공이 어디에 떨어져 있든 간에 하나의 도전으로 보고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공을 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건 그 공이 튀는 방향이 아니라 그것을 치는 당신의 태도뿐이라는 걸 안다. 그런 맥락에서 자신감과 낙관주의는 그 자체로 힘이 된다. 어떤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역경이나 외부의 중대한 도전을 마주했을 때 집단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뒤쳐저 있는데,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뛰어난 이들에게서 배워야지' 그리고 그들은 변화에 대한 적응을 배운다. 그와 달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따. '내가 뒤쳐저 있는데, 당신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이건 당신 잘못이야'
- 지금같은 시대에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태풍의 눈을 찾아내고 자신만의 눈을 만들어내는 것. 태풍의 눈은 폭풍과 함께 움직인다. 태풍의 눈은 태풍에서부터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그 안에서 안정적 피난처를 만든다. 그것은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가속화의 흐름에서 도망칠 수 없다. 그 안으로 뛰어들어서 가능한 한 그 에너지와 흐름들을 이용하고 그 흐름들과 같이 움직이며, 그것들을 활용해서 더 빨리 배우고 더 똑똑하게 설계하고 더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닻을 내린 것처럼 안정을 찾고서 나 자신과 가족들이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기 위해 우리 자신의 태풍의 눈을 만들 수 있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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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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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차이나

경제 2017. 11. 5. 14:54

- 현재 지구에 약 70억 인구가 살고 있으니 중국인은 세계 노동력의 20%를 노동력을 확보. 하지만 마오쩌둥이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을 당시만 해도 중국인구는 이처럼 많지 않았음. 당시 중국인구는 약 5억명에 불과했으며 경제적으로는 후진국 위치. 이때 마오쩌둥이 내건 슬로건은 '런둬리량다'(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커진다)였다. 그는 아이를 5명 이상 낳은 어머니는 영광엄마, 10명이상 낳으면 영웅이라는 호칭까지 부여하며 출산장려운동을 펼침. 이때부터 중국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할 즈음 중국인구는 9.4억명에 달했으며, 82년 10억명을 돌파. 약 30년 동안 중국인구가 2배 급증. 이렇게 급증한 인구는 마오쩌둥이 바란 것처럼 일하는 손이 되어주었다. 경제개방 초기에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이 전 지구촌을 휩쓸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저임금의 산업 생산력이 있었기에 가능. 이는 곧 고성장을 이끌어주는 견인차 역할을 하며 오늘날의 중국이 있게 했다
- 많은 인구는 오히려 그 사회의 경제가 성장하는 데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기 십당.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 실업률이 높은 사회일수록 소득 불균형에 따른 정부불신 등의 사회불안 요소가 증가하기 때문. 문제는 수많은 노동력이 일을 할 수 있게 고용창출을 하는 것. 중국은 이같은 문제를 수출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해결. 세계 시장은 기본적으로 중국시장보다 크며 당연히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 즉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만들면서 거대한 노동력을 흡수. 이는 곧 소비증대로 이어짐. 노동자가 곧 소비자이기 때문. 노동소득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소비증가를 불러옴. 소비증가는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며, 중국경제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을 작용. 특히 13억 인구의 중국은 고용창출로 인한 소비자의 등장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내수시장이 만들어짐. 이로 인해 중국은 내수시장만으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임
- 중국이 콩 수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돼지고기 사료로 쓰기 위함. 전통적으로 중국인은 돼지고기 요리를 즐겨왔다. 중국 돼지고기 요리는 1500종이 넘는다. 게다가 경제성장과 소비증대는 돼지고기 소비를 더 늘게 했다. 현재 중국인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연평균 39킬로그램. 1인당 소비량이 13.5억 인구를 곱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12년에 중국사람들은 5300만톤의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이는 미국의 여섯배에 달하는 수치. 이같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중국은 세계 돼지의 절반인 4.7억마리 이상을 사육. 그런데 돼지 사육은 만만치 않다. 돼지는 곡물을 먹는 하마라 불릴 정도로 많은 곡물을 먹어치임. 돼지 체중을 1킬로 불리려면 3킬로의 곡물이 필요.
- 중국은 젊은 두뇌에게 기회의 땅. 매년 중국에서 배출하는 이공계 출신 대학 졸업자만 400만. 이들 상당수가 IT기업이나 벤처창업시장으로 뛰어들고 있으며, 해마다 3000개의 기업이 새로 생겨남. 2010년에 세계 15위였던 중국의 창업자 지수는 12년 세계 1위가 되었다. 청년창업 세계1위의 바탕에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이 있다. 중관춘은 80년대 초 전자상가 거리에 불과했지만, 현재 2만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연간 총 매출은 450조원을 넘어섬. 중관춘에 입주한 젊은 두뇌들은 재능과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건다. 한달에 몇만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사무실이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차고카페도 그중 하나다. 차고카페는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을 탄생시킨 것에 착안해 지어진 이름. 이곳에 입주한 젊은이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마음맞는 사람끼리 공동창업을 하기도 함
- 피케티는 '부가 분배되는 과정에는 양극화나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불러오는 강력한 요인이 있다'고 진단하며 '경제가 정체될 때 이전세대에 축적된 자본의 영향력이 늘어난다'고 예측. 상속된 부에 따라 결정되는 계층구조를 지닌 사회는 낮은 성장체제에서만 생겨나고 존속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중국경제는 지난 수십년간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며 성장중. 게다가 기존 자본주이 사회에서 이전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부를 상속하고 이에 따라 빈부가 결정되는 양극화 현상은 공산주의 사회였던 중국에서는 아직 덜한 편. 마치 오늘날 중국은 중국인에게 '마음것 능력을 발휘해봐. 그럼 너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중국에도 도움이 될 거야'라고 말하며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여느 자본주의 사회처럼 중국 사회 역시 경제성장에 따른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상속된 부가 아니어도 부를 획득할 기회는 확실히 많은 편. 이같은 기회를 잡고 성공한 기업인들으 경험은 중국 젊은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마윈 역시 중관춘에서 미래를 준비하던 젊은이 중 하나였다.
-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와 함께 값싼 노동력의 비교우위로 인해 수출이 증가. 매년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외화를 축적. 외국기업의 중국투자는 자본수지 유입으로 이어짐. 자본수지와 경상수지가 쌍둥이 흑자를 이루면서 외화가 지속적으로 축적됨
- 중국의 저축률도 중국의 자금력을 높이는데 일조함. 중국의 가계저축률은 GDP의 5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 1인당 평균 예금잔액이 약 525만원 정도. 한국은 가계저축률이 중국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4.5%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 저축률은 놀랄만한 수치임. 이유는 첫째, 중국 정부의 금융통제, 중국인의 국내투자는 제한적이므로 대부분 가지고 있는 돈을 은행에 저축하여 보관함. 하지만 금리는 물가상승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낮은 편. 둘째, 사회복지제도가 전무하므로 거기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저축으로 모여드는 것. 노후대책이나 의료복지 등을 개인이 저축으로 준비하려는 성향을 보임. 이렇게 모인 저축은 중국정부이 마르지 않는 돈줄이다. 중국정부는 13억 인구의 예금으로 국영기업을 통해서 세계 곳곳을 사들인다.
- 차이나 머니의 공격적 진격은 중국 국내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중국은 정부의 규제로 투자기회가 제한적임. 중국내 은행에 저축을 해도 거의 제로에 가까운 금리만 받음. 이 때문에 중국 기업이나 투자자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음. 중국 정부 역시 해외투자 국가별 산업지도 목록까지 만들어 전략적으로 해외투자를 독려. 민영기업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시장개방 전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답게 기업 대부분이 국영이었다. 하지만 눈부시게 경제가 성장하면서 민영기업이 기하급수로 증가.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성장한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기업사냥꾼으로 세계 곳곳에 진출하고 있다.
- 풍부한 자금 동원력, 싼 이자, 자금을 지원할 때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중국정부의 원칙은 아프리카,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환영받고 있으며, 차이나 머니를 유치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이게 함.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각 나라 정부 고위관료의 배를 채웠을지는 모르나 그 나라 국민들에게서는 일자리를 빼앗거나 차별을 일삼는 문제를 발생기키기도 함. 이는 중국이 풀어가야 할 과제. 지역주민과의 갈등은 결국 그곳에 들어선 중국정부나 기업에도 여러 난관을 만드는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
- 1875년 수에즈 운하를 이집츠로부터 획득한 대영제국은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통로를 장악하며 세계 패권국이 됨. 한편 미국은 1903년 프랑스로부터 파나마운하 건설권을 사들임. 그때부터 미국은 운하의 관리와 보호를 명분으로 거의 100년 동안 파나마에 주둔. 태평양과 대서양양을 잇는 전략적 급소를 차지한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을 장악하며 현재의 패권국이 됨. 이처럼 운하는 단순한 물길이 아니다. 패권국으로 올라서는 지름길이다. 중국이 니카라과 운하의 운영권을 가져온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 니카라과 운하로 인해 중국은 미국의 뒷마당까지 진출한 셈. 이를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까지 세력을 넓힐 수 있게 됨. 이는 곧 앞으로 중국이 미국이 누리고 있는 패권국의 지위에 강력하게 도전할 것임을 예측하게 함
- 중국에서 생물유전자원을 대표하는 것으로 팔각향이 있다. 팔각향은 별모양으로 생겼으며 독특한 향기를 내서 중국 요리 향신료로 사용됨. 최근 팔각향이 타미플루 핵심원료로 사용되며 각광받고 있음. 팔각향은 전 세계의 80%를 중국이 공급. 그동안 중국은 대륙이 제공하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광속으로 경제성장을 이룩. 그런데도 경제적 가치가 높은 생물자원이 얼마나 더 있는지 알수조차 없을만큼 풍부함. 중국은 계속해서 자원을 발굴하고 개발해나갈 것이며, 새로운 자원을 개발할 때마다 높은 수준의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자원에서도 아직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품고 있음.
- 북경 올림픽 개막식 공연은 중국이 공자의 나라, 철학과 문화와 인문이 나라임을 보여줌. 공산주의, 일당체제의 정당,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지우고 중국이 문화대국으로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세계인의 뇌리속에 박아두려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 실제 중국은 북경올림픽 이후 문화대국과 관련한 정책논의를 활발하게 진행. 문화안보, 소프트파워 같은 말이 공산당 대회나 고위지도자 연설에서 빈번하게 들리기 시작. 사실 전통문화와 철학을 부각하는 중국정부이 전략은 대단히 놀라우면서 특이함.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한 후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가혹하게 배척했음. 공자의 유고로 대표되는 봉건사상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문화라고 비판했던 소설가 루쉰을 중국 정부차원에서 숭배. 그런데 지금 중국은 '옛것은 무조건 숙청하라'는 구호를 완벽히 삭제하고 새로운 구호를 만들어냈다. 바로 문화강국이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가 이전에 배척했던 공자로 대표되는 전통문화를 다시 살려냈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를 재편성하려면 중국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힘이 필요. 그 힘은 내부적으로 중국인의 단결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살려내고 퍼뜨리려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과정이 있다. 미디어를 지배하는 것. 이는 곧 중국이 국영방송 CCTV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유이기도 함
- 붉은 전화기는 권력의 상징. 이 전화기는 중앙정부 부부장(차관급)이상의 고위간부에게만 주어짐. 권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애당초 이 전화기를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이 때문에 국영기업 사장들은 붉은 전화기를 하사받기를 원함. 붉은 전화기를 가졌다는 것은 중국 권력의 핵심에 가까워졌음을 의미. 붉은 전화기의 벨이 울리면 천지가 바뀌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받아야 하며, 수화기 저편의 권력자가 하는 말에 매이게 된다. 붉은 전화기는 비밀스럽다. 중국을 움직이는 300명의 핫라인으로 그들의 통화는 대부분 비밀에 부쳐짐. 하지만 붉은 전화기는 더이상 비밀스런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중국의 권력자들이 핫라인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신속하게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안다. 붉은 전화기는 중국 공산당의 힘이 다양한 곳에 뻗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 화폐 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을 가진 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는 자기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간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긍정의 대상이 아님. 오히려 노동자를 착취해 자기재산을 불리는 유산계급. 그래서 과거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에서 자본가는 공산당 가입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2001년에 중국 공산당은 놀라운 변신을 꾀한다. 노동자나 농민이 아닌 자본가, 기업가, 자영업자의 공산당 입당도 허용. 이들이 당원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당헌을 고치는 결단력까지 보였다.
- 사회주의 국가에 민영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중국에서 민영기업이 부활한 것은 80년대 중반. 당시 중국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민영기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민영기업은 GDP의 60%를 차지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90년대 민영기업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데, 공산당은 이들을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통일전선정책으로 대한다. 그러다. 2001년에 이들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엘리트로서 수용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삼개대표론. 이는 선진생산력(자본가), 선진문화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 농민)의 근본이익을 위해 기업가의 입당이 필요하다는 것. 마오쩌둥에게는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중국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킨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이 있었다. 덩샤오핑은 중국경제를 성장하게 하기 위해 사적유물론을 발전시킴. 장쩌민 역시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지킬 수 있으며, 단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그대로 계승한 인물로만 평가받지 않게 된다. 그는 삼개대표론 사상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임. 또한 사회주의 영웅들의 이론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을 계승발전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01년 장쩌민은 '중국 공산당이 새로운 세기와 새 단계를 맞이하여 당의 새로운 강령이 통과되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함께 3개 대표사상이 당의 새로운 지도사상이 되었습니다.' 라고 삼개대표론을 발표. 삼개대표론의 등장은 중국 공산당이 시대의 흐름에 얼마나 빠르게 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사적인 부를 인정하지 않고서 자본주의 사회와 경쟁하기 불가능.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적인 부를 인정하면 되레 체제 자체를 통째로 흔들리게 하는 부담. 그런데 중국 공산당은 사적인 부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민영기업가를 공산당의 일원으로 끌어안으며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많은 혜택을 주었다. 민영기업가는 국가에 대항해서는 안되며 정치적 요구를 해서도 안됨. 연대를 통한 집단행동도 불가능. 만일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붉은 전화기로 비밀스런 채널을 통해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전달받듯 오로지 사적인 채널을 통해 해결해야 함. 삼개대표론은 공산당이 민영기업을 품어 그 지위를 승격시킨 반면 민영기업이 위험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을 애당초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 중국 공산당이 2013년 9호문건이라는 비밀문서를 배포했는데, 일종의 서구로부터 체제전복위협과 관련된 지침이었다. 시민사회는 없다. 열린 미디어는 없다. 직접선거도 없다. 인터넷도 없다는 것. 이는 중국 공산당이 매우 불안해하며 때로는 편집증적이기도 함을 보여줌. 이건 자신감 있는 당의 모습은 아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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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기술된 매뉴얼을 따라 작업하면, 비록 그 업무에 오래 숙련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점검할 것을 알고 하니 결과가 어느정도 보장됨. 하지만 체계적인 매뉴얼이 없는 경우에는 다행히 업무 담당자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신참이 맡았을 때에는 주요 부분이 생략되어 진행될 위험이 존재. 개인에 따라 편차가 심함. 회사가 그 업무를 담당하는 각 개인의 역량에 따라 편차가 크다면 그것은 문제가 됨
- 어떤 기업은 같이 일할 때 그 기업에서 10년을 일한 사람들의 실력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인정하게 됨. 즉, 회사 내부에서 훈련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학력이나 출신학교도 큰 의미 없음. 그 기업에서의 10년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줌. 그러나 또 다른 기업은 여전히 누가 담당하느냐가 카운터파트로서 일을 할 때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함. 업무를 잘 모르는 담당자를 만나면 곤란을 겪게 됨.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내부훈련에 매뉴얼이 필요. 그래야 소위 말하는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기초가 마련됨
- 외부에 아웃소싱을 줄 때도 유사함. 일을 잘하는 기업은 아웃소싱을 주는 내용에 대해 아주 자세히 매뉴얼이 작성되어 있어서 외부업체가 아웃소싱을 받아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음. 그 말은 아웃소싱을 주기전에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의미. 그런데 일부 기업은 정비된 매뉴얼이 없음. 프로젝트 오너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머릿속에 쫙 꿰고 있으니 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하고 급히 진행함. 빨리빨리만 외치는 셈. 그리고 본인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경질을 낸다. 일정을 맞춘다거나 원하는 품질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울수도 있고 효율이 많이 떨어질수도 있는데 남탓을 하게됨. 왜? 본인은 쫙 꿰고 있으니 오로지 따라오지 못하는 상대업체가 문제라고 생각
- 위험관리 영역의 확장 필요성
* 비즈니스 위험관리 + 임직원의 안전관리 = 전방위 관리
* 해외사업장은 특히 환경이 낯설기 때문에 주의필요
- 문제 해결방안
* 문제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싹을 자른다
* 큰 회사일수록 회사 이미지에 민감하다보니 아예 원천봉쇄하려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경계해야 함
* 근본적 문제를 해결했는가 아니면 현재의 문제만 덮는 미봉책인가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 해결이 목표
- 위험예방지침 및 발생시 대처방안
* 작성준비 : 위험발생 가능요인들이 공통분모 파악, 이에 더해 상황별 특수성 분석
* 내용 : 업무별 상황별 행동 매뉴얼 작성. 진행에 필요한 부서내, 부서간 소통 매뉴얼 작성. 단계별 복수의 점검절차
* 유지 : 정기적 업데이트.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세분화하고 바로 활용가능하도록 접근용이성 유지. 공통사항에 대해서는 항상 숙지
- 매뉴얼의 효과
* 수많은 위험요인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매뉴얼이 있으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다
* 퀄리티를 유지하는 수단
- 예를 들어 1000개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만든다는 의미의 제조를 써서 제조원가라고 함. 실제 만드는 데 들어간 원가임. 매출은 판다는 의미이므로 매출원가는 팔린 제품의 원가로 제조원가와 매출원가는 다름
- 예를 들어 만두전골을 만들기 위해 만두가 필요한데, 냉장고게 어제 만든 만두중 남은 것 100개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오늘 만두를 좀 많이 만들어 총 1000개를 만들었다. 오늘 가게문을 닫을 때 다 안팔리고 남는 만두 500개는 다시 냉장고에 보관. 오늘의 제조원가는 만두 1000개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 오늘 몇개가 팔렸는지 계산하면 100+1000-500=600개. 즉 매출원가는 600개를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임. 달리 말해 '매출원가=기초재고금액+당기 제품제조금액-기말재고금액'
- 가치사슬과 관리회계 정보
(1) 연구개발
* 내용 :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새로운 생산방법 및 흐름에 대해 연구하고 실험하고 개발하는 활동
* 관리회계정보 : 기존의 제품, 서비스 등의 판매가격, 생산원가 등 수익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획기저긍로 개선해야 할 기능이나 획득해야 할 기술을 모색하게 함
(2) 설계
* 내용 : 개발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상용생산이 가능하도록 구체화하는 활동
* 관리회계정보 : 개발된 기술이나 기능을 구현할 때 여러 설계대안 간 예상매출과 예상원가를 제공함으로써 바람직한 설계안을 선택하게 함. 또 특정설계에 대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표원가를 제시하여 설계방향에 대한 지침을 제공
(3) 생산
* 내용 : 설계에 따라 재료나 노동력 및 설비 등의 자원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
* 관리회계 정보 : 설계단계에서 의도한 방향대로 생산단계에서 실제원가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생산단계에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
(4) 마케팅
* 내용 :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과 가치를 고객에게 알리고 판매를 촉진시키는 활동
* 관리회계정보 : 목표시장이나 고객정보를 제시하여 효과적인 매출증대 계획을 수립하게 함. 판매촉진전략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
(5) 물류
* 내용 : 실제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활동
* 관리회계정보 : 유통경로별로 소요원가를 산정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최적의 유통경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함
(6) 고객서비스
* 내용 : 판매후 사후적으로 해당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
* 관리회계정보 : 고객서비스에 소요되는 원가정보를 제공하여 품질개선의 방향을 정함
- 조세협정은 이중과세방지협정이라고도 함. 양 국가간에 과연 어느국가가 세금을 징수할 것인가 하는 과세권에 대한 협의. 세금을 내는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양국에서 중복해서 과세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에 이중과세방지협정이라고 함
- 고정사업장 구성은 중국 밖 해외에 있는 본사를 의미. 해외에 있는 회사가 중국내에 자회사가 없더라도 해외 회사에 중국 내 자회사와 같은 고정된 사업장이 있다고 본다는 것. 이미 중국내 설립된 자회사와 혼동하면 안됨
- 단순히 세법 이슈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관리팀에서 해결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본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버림. 그러나 현장에 있는 생산팀이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영업팀에서 고정사업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입찰을 진행하는 동안 관리팀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관리팀에서 위험을 인지하기 어려움. 팀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관리팀에서도 위험을 인지하기 어려움. 즉 거주자, 고정사업장 등에 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원활히 의사소통 하기 위함
- 고정사업장을 구성하면 중국내 법인이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납세 의무가 존재. 이 말은 중국내 설립된 법인이 내야하는 세금은 모두 납부해야 하고 수익에 대한 기업소득세를 납부해야 함. 물론 성전토지사용세 등을 내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고정사업장은 가상의 법인이라는 특성상 중국에 부동산이 없어서 토지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내지 않는 것이지 고정사업장이라서 내지 않는 것이 아님
- 한국본사의 사업부가 중국내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프로젝트팀에서 중국을 방문해 업무를 진행하게 됨. 이렇게 프로젝트를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팀원 각 개인은 중국내 개인소득세 납부의무가 있는데, 중국을 방문하는 첫날부터 납부의무를 지게 됨.
- 과거 중국에서는 부가가치세(증치세)와 영업세를 분리되어 있었으나, 부가가치세 개혁을 통해 현재 두 세제의 통합이 진행됨
- 용역 등의 서비스 제공에 대하여 과거에는 영업세 납부의무가 있었는데, 이제는 부가가치세 납부의무로 전환
- 과거에는 중국밖의 해외에 있는 업체가 중국 경내에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에는 영업세 과세대상에서 제외. 그런데 09년부터 시행된 개정 영업세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받는 어느 일방이 중국 경내에 있을 경우 과세대상이 된다고 규정
- 영업세는 고정사업장 구성여부와 상관없이 중국내 법인이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인 경우 납세의무가 발생하는 것. 즉, 고정사업장을 구성하지 않아도 서비스 제공이 있었다면 납부하는 세금. 그리고 지금은 용역에 대하여 부가가치세를 납부함. 결론적으로 고정사업장 구성효과는 중국에 법인이 설립된 것과 마찬가디로 관련된 세금을 납부하는 것
- 고정사업장 이슈
* 외국 회사가 중국내에 설립해 놓은 법인실체가 없더라도 가상의 고정된 사업장이 있다고 보고, 중국에 설립되어 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내 법인과 마찬가지로 간주하겠다는 것
* 고정사업장 구성으로 인한 세부담은 세법이슈가 아니라 원가를 추산할때에 꼭 참고해야 하는 원가항목, 회사의 수익성에 대한 문제이므로 위험관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함
* 규정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규정을 활용하여 의무를 피해 나가기 보다는 규정을 몰라서 있을 수 있는 피해를 방직하고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기 위함
*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직장인에게는 규정에 대한 이해가 바로 의사소통의 언어이자 수단
- 고정사업장의 구성(한중조세협정 5조)
* 장소, 공사, 용역의 제공 등 활동이 동일한 사업 또는 연관된 사업에 대하여
* 어느 12개월 이내의 기간 동안 총 6개월을 초과하는 단일기간 또는 제기간동안 존속하는 경우 고정사업장을 구성
* 단 중구내에서의 활동이 준비성, 보조성 활동인 경우, 고정사업장을 구성하지 않는다
- 고정사업장 구성효과 : 고정사업장을 구성하게 되면 중국내 설립된 법인과 동일한 개인소득세, 기업소득세(법인세) 납부의무를 부담
- 대책
* 규정을 정확히 파악
* 포괄적인 하나의 계약서로 작성하지 말고, 프로젝트를 정확히 구분하여 동일 프로젝트가 아닌 경우 적극적으로 분리하여 독립된 계약서로 작성
* 동일 또는 관련된 프로젝트인지 주의. 출장자별로 체류기간 및 시기도 관리
- 주재원의 고정사업장 구성 (중국 국가세무총국의 규정에 의해 주재원이 사실상 외국기업의 고정사업장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주의 필요)
* 자회사에서 먼저 인력파견요청서를 작성하여 본사에 발송
* 자회사가 고용하여 자회사를 위하여 업무를 진행하고 그 지휘권이 자회사에 있음을 고용계약서에 명시
* 보고라인 및 책임에 대해서도 고용계약서와 내부문서로 보충
- 협력업체가 노출될 수 있는 위험사례
* 동반진출한 완성재 기업의 실패
* 현재업체와의 경쟁에서 도태
* 시장의 빠른 변화 및 정치적 문제, 자연재해 등의 돌발사고
- 협력업체의 대책
* 판매처 다변화, 다른 제품군 모색 등의 성공전략뿐 아니라
* 실패에 대비한 철수, 회수전략 마련
* 즉, 진출 결정전에 더욱 장기적이고 철저한 전략에 대한 고민 필요
- 협력업체의 위험은 바로 우리의 위험
* 협력업체의 위험이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옴
* 중국의 홍색공급망
* 자칫하면 샌드위치 신세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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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분히 관찰하고 분석하라. 입지를 다져라. 끈기있게 변화에 대처하라. 능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려라. 몸을 낮추고 결코 리더십을 주장하지 마라. 겸손하게 일을 진행하라.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뒤 90년 초에 등소평이 발표한 전략. 당시 일어난 변화의 물결에 대처하는 방식을 제시. 이 내용 대부분이 중국의 현 국제전략에서도 핵심을 이룸)
- 중국정부는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해외 이주가 용이하게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 스위스 로잔대의 중국인 이주문제 전문가 앙투안 커넌은 "중국은 자국 이주자들을 통제하는 임무를 방기하고, 그 책임을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떠넘기고 있음. 중국 이주자들이 받는 국가중 일부는, 부패가 만연하고 행정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 국가들 같은 곳이어서 쉽게 집입 가능
- 해외이주는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대량해고에 시달리는 지역의 사회적 긴장을 덜어줌. 게다가 해외에서 살다 돌아온 이주자에 대해서는 실업과 빈곤문제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대개 해외에서 귀국한 이들은 자녀교육에 투자할만한, 혹은 재정적인 안전이 보장된 사업에 투자할만한 자금을 들고 온다. 인력을 수출한 뒤 자국에 재투자할 자본을 거둬들여 내부의 경제성장을, 또한 일자리 확대도 이루는 셈
- 전세계를 향한 중국인의 대이주는 중국 내부에서 수십년간 지속된 이주물결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가능. 경제개방 초기부터 시작해 최소 2억명의 농촌 거주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향함.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앞으로 몇년간 도시로 떠날 농촌인구를 약 3억명으로 추산. 경제성장에 자극받아 중국내부의 인구이동이 증가하는 한편, 기회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이주자들도 늘어 나이지리아에서 아르헨티나, 파푸아뉴기니에서 캐나다까지 전 세계 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한세기 전에 시작된 중국의 이주물결이 그 어느때보다 거세게, 빠르게, 넓게, 결정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는 수백년전부터 일어난 현상. 굶주림과 전쟁, 압제, 사회적 갈등을 피해 중국인들은 나라 밖으로 떠났다. 그 결과 중국은 역사상 해외이주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약 3500만명의 중국계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음. 일부 아시아 지역으로의 이주역사는 중국이 해상강국으로 막 발돋움하기 시작한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감. 15세기에는 중국의 콜럼버스로 불리는 정화장군이 해양 지배권을 장악. 정화는 명나라 영락제의 명령으로 여러차례 원정에 나서 지금의 소말리아 해안에 있는 아덴만까지 항해. 1405년부터 시작해 1433년 사망할 때까지 일곱차례에 걸쳐 진행된 그의 원정은 현대적 기술과 해상 통제력에서 적수가 없었던 중국의 과세 및 조공체계를 확대하기 위한 것. 이슬람교도 환관이었던 정화는 전쟁중 공을 세워 명나라 황제의 눈에들었고,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로 떠났을 때 탔던 산타마리아호에 비해 규모가 4배나 큰 함대를 이끌고 최고 2만 7천명을 동원해 원정에 나섬. 그의 원정은 동남아 교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향신료와 공예품의 교역이 활발해져 해상운송의 거점인 말라카 같은 항구는 그때 이미 요충지로 떠올랐다.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교역은 수백만명의 중국인이 아시아 전역으로 점진적으로 이주하는 도약판이 됨. 그 후손들이 지금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인구의 상당부분을 점하고 있음. 중국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중국계는 약 2800만명에 달하며 싱가폴, 말레이시아, 타이, 인도네시아 인구구성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
- 인신매매또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서구 식민지에 소수의 중국인 노예를 들여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본격적 세계진출은 19세기에 인신매매가 폐지된 이후의 일. 그 시점부터 중국인 이주자들은 페루의 농장에, 남아프리카 광산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냄. 심지어 1차대전의 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약 15만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헐값에 고용해 참호를 파거나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맡김. 그 무렵 중국은 실질적으로 와해된 상태였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궁핍, 일상화된 혼란이 유혈내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일본의 침략까지 겹쳐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현대적 해외이주를 촉진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고난과 외국의 침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푸젠, 광둥성 등에서 몰려나온 사람들은 빚낸 돈으로 표를 사서 새로운 기회의 땅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배에 올랐다.
- 79년 작은 거인 등소평이 경제개방 및 개혁에 착수해 마오주의가 남긴 혼란 속에서 중국을 성공적으로 구출한 이후, 중국의 산업발전을 뒷받침한 주된 재정적 원천은 해외 공동체였다. 03년까지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총액 5000억불의 약 65%가 해외공동체, 특히 홍콩과 타이완, 동남아에 사는 중국인들에게서 나온 것. 문화혁명기에 해외이주민을 유난히 경멸했던 공산주의 정권의 시각도 바뀜.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해외 공동체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80년대 이후에는 관계회복에 힘쓰고 있다. 20세기 상당기간 해외 이주민들과 사실상 절연상태에 있었던 베이징은 여타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다른 세금특혜를 보장하는 법까지 통과시키면서 경제부흥을 위해 자국민들의 해외이주를 적극 장려하고 있음. 베이징은 저우추취-인진라이(경제개방이후 세율 인하 등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편 정책이 인진라이, 축적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99년부터 실시한 해외투자 장려정책이 저우추취) 정책의 일환으로 해외 중국인들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계 각지에 사절단을 수없이 보냈다. 해외 중국인 공동체는 푸젠성의 인구 100만 도시인 푸칭 한곳에만 1억 4000만불을 기부했으며, 약 900개 사업체에 투자해 40억불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기록
- 장사를 시작한 중국인은 소유주, 짐꾼, 계산원, 기사, 영업사원의 역할을 도맡는다. 그 사람 자체가 원맨 기업인임. 이유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완벽하게 파악해야 직원을 두었을 때 속는 일이 없기 때문
- 중국은 아프리카로부터 석유, 광물, 목재 등 원자재를 공급받으면서 아프리카 시장에 자국산 제품을 쏟아놓고 있음. 아프리카에서 입수한 원자재들을 가져가 공장과 작업장을 돌리고, 거기에 수백만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더해 아프리카 시장에서 판매할 최종 생산품을 만들어내. 베이징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관계를 상보성이란 말로 그럴싸하게 꾸민다. 하지만 현실에서 중국이 이 지역과 맺은 경제관계의 기초를 이루는 공식은 '너의 원료로 만든 나의 최종생산품'이다. 예전에 서구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썼던 식민지배체제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식민지배체제는 산업혁명으로 강대국이 된 영국이 19세기에 고안. 현재 베이징인 답습하고 있는 영국 모델에서는 식민지를 면화와 같은 천연자원의 공급자로, 또한 국내 수요를 초과해 생산된 맨체스턴산 직물 등의 제품을 풀어놓는 시장으로 이용. 중국이 당시의 대영제국이나 20세기의 일본처럼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노리를 것은 똑같다. 원자재 공급을 보장받고, 생산한 제품을 팔 새 시장을 손에 넣고, 그 기반 위에 교역관계를 구축하는 방식
- 중국의 천연자원 수요가 아프리카에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은 분명하나, 아프리카 대륙의 사업동반자로 중국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다른 지역에서 사례들이 보여주듯,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있음. 모로코, 레소토,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등 일정정도 산업기반을 갖춘 나라들에서는 경쟁력이 막강한 중국제품의 상륙만으로도 일부 산업이 붕괴했다. 국내시장의 매출이 감소하고 세계시장에서도 그러함. 섬유산업이 전형적. 중국 같은 나라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위해 섬유 수입국이 수량제한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다자간섬유협정이 05년 종료됨에 따라 의류수출품의 4분의 3을 미국과 유럽으로 보내던 아프리카 의류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음. 05년을 기점으로 더 거대하고 경쟁력 있는 중국 섬유산업이 미국과 유럽시장을 점령하면서, 스와질랜드,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전역에서 중소형, 대형공장 수천 곳이 문을 닫았으며 수십만명이 일자리를 잃음. 라틴아메리카의 상황도 비슷.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라틴아메리카의 대미수출은 01년에서 06년 사이에 13.1% 감소. 이런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것. 중국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지배적 위치를 고수하는 한편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제품 수출에도 착수했기 때문. 값싼 전기제품, 운동화, 섬유, 완구 등을 계속 수출하면서 고급전자제품, 기계, 재생에너지 등의 시장에서도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뜻. 실제로 중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을 보면 알 수 있음. 중국 기업들은 매년 1200만대 이상의 차량이 팔리는 세계 최대인 국내시장에서 독일, 미국,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차량의 최대수입처인 아프리카 시장(아시아 보다 중국 차량을 더 많이 수입)에도 적극 진출. 또한 중국은 미국과 유럽이 독점해온 항공, 전기차, 이동통신과 같은 하이테크 분야로 파고드는 중. 화웨이의 경우 연 매출의 약 20%를 아프리카에서 벌어들인다.
- 중국은 발전도상국에 대해 적용하는 윈-윈정책의 빛나는 모범사례로 늘 콩고를 든다. 콩고가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겪는 시기에 심각한 장기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처럼 대규모 투자에 나설 국가는 사실 중국이 유일. 하지만 계약서와 부속서류, 수정내용을 뜯어보면, 베이징이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배후의 의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협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핵심질문은 공정성의 문제다. 중국이 콩고의 광산채굴로 손에 넣을 자원의 가치가 투자를 압도적으로 상회하기 때문. 중국 국영기업들이 중국수출입은행을 통해 내놓을 돈은 60억불이지만, 시코마인즈(투자를 관리하고, 기반시설 건설을 진행하고, 광산을 운영하고, 채굴에서 나온 이익을 분배하는 일을 맡은 합작사)가 코발트와 구리에서 거둘 이익은 400억~1200억불에 달할 것으로 추정됨. 수익이 투자금액의 6배~20배 수준. 이 숫자만 봐도 장기적으로 중국이 콩고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음. 광산을 현대화하고 유지하는 데 따른 경비 수십억불을 감안해도 그러함. 계약에 따르면 차관의 상환기간 중 관련 중국 기업들은 로열티를 포함해 모든 세금을 면제받음. 장피에르 오켄다 같은 활동가들이 불법이라고 비판하는 조항이다. 나아가 차관상환이 만료된 이후에서 광산의 상업적 채굴에서 나오는 세금은 콩고가 아니라 합작사인 시코마인즈로 들어감. 계약서에는 이런 세금수입이 2차 기반시설 구축에 사용된다고 나와 있으나 구체적 내용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경제적 자원의 원천으로 광산에 의지하는 콩고는 약 200억불의 수입을 잃어버릴 전망. 더욱이 채굴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콩고의 구리와 코발트 매장량은 30년 안에 바닥이 난다. 계약서에는 광물자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으며 판매가격을 얼마로 할지 명기되어 있지 않다. 이는 시코마인즈의 다수지분을 가진 중국정부가 상업적 과정 전반을 사실상 통제한다는 의미. 중국은 차관을 광물로 상환받으므로, 콩고에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대가로 구리와 코발트에서 높은 수익을 거두려면 광물가격을 최대한 낮게 책정해야 함.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는 위험한 상황. 채권자, 판매자, 구매자가 동일한 법적 실체인 중국정부이기 때문. 내재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콩고정부 및 기관들이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자원을 실어가려는 중국을 저지할 수 있을까? 자국 영토 내부의 평화를 보장할 능력조차 없는 정부가 중국 기업들이 약속대로 시멘트와 화물차, 도로에 투자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 중국 정책은행들이 돈을 대고, 주로 국영기업들이 실행하는 프로젝트들에서는 금융적 이익과 환경적 영향이 종종 열외로 밀려남. 그렇다고 중국은행과 기업들이 해외투자에서 상업적 이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님. 국가적 우선순위가 아닌 사업에서는 더욱 그러함.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기는 해도 중국기업들도 일상적 사업운영에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을 경우 교향곡 연주를 위해 오케스트라(은행, 기업, 외교관 등)를 지휘하는 것은 공산당임. 물론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삼각편대를 활용하는 것이 중국에만 고유한 것은 아님. 다른 나라들도 외교적 목표나 자국기업의 이익을 위해 개발은행을 활용. 차관을 공여받은 국가가 제공국가로부터 정해진 액수의 장비를 구매하거나 서비스 계약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 대표적. 그렇긴 해도 이를 중국의 방식과 나란이 놓을수는 없다. 우선 규모에서 차이가 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어서 엄청난 금융영향력 행사가 가능. 또한 중국의 일당체제에서는 균형추(언론, 시민사회, 야당)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할 자유가 있다
- 중앙아시아 에너지 산업 무대에 중국이 극적으로 입성한 것은 이지역에 대한 러시아 헤게모니의 심각한 위축을 의미. 그러나 중국의 긴급한 에너지 수요로 인해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난 곳은 중동, 북동아프리카임. 중국은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산유국 두나라와 손을 잡았다. 바로 워싱턴 및 브뤼셀의 숙적인 수단과 이란이다.
- 기반시설과 석유를 맞바꾸는 방식은 80년대부터 중국 등 일부 국가들도 사용했지만 앙골라 모델에서는 다른 특성이 가미됨. 조세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이 이끄는 권위주의 정권이 04년 중국이 앙골라에 진출한 해부터 강력하게 추진한 앙골라 메돌은 루안다와 베이징간의 단순한 협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중국 건설업체들은 앙골라 전역의 건설사업을 담당하고 그 대금을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으며, 앙골라는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 및 그 자회사들을 통해 약정한 양의 석유를 공급함으로써 중국의 차관을 갚는 방식. 이런 방식을 통하면 앙골라처럼 기반시설을 급히 재구축 해야 하지만 자금은 물론 양질의 노동력 또한 갖고 있지 못한 나라는 빠른 성과를 낼 수 있음. 이때 중국과 손을 잡으면 매우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수도 있으므로 금상첨화다. 이 모델은 또 공공 프로젝트에 쓰일 수백만불이 스위스나 케이맨제도의 계좌로 향하는 것을 봉쇄해 부패한 당국자들이 차관을 빼돌리는 것도 방지. 정부가 실제로 돈을 만지는 일 없이 은행에서 서비스를 공급자에게 바로 전하기 때문. 앙골라 모델의 명백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앙골라에 진출한 것은 기회주의에서 기인함. 내전이 끝난 뒤 79년 권력을 장악한 두스 산투스 정권은 정부계획을 추진할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제채권자들, 이른바 파리클럽과 IMF같은 기관들은 앙골라에 금융, 정치, 경제개혁을 요구.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 부패국가의 상환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쌓여 있는 미상환 부채에 대한 채무구제조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기존의 대출을 일부 갚을 것을 요구. 줄다리기는 중국이 선진국들이 계획을 좌초시키려 무대에 등장한 04년 3월까지 계속됨. 중국수출입은행이 선뜻 20억불을 신규대출해 주어 앙골라는 무사히 빚더미에서 탈출. 당시 채무재조정을 위해 성과없는 노력을 계속하던 앙골라에게 중국은 환상적 조건을 내걸었다. 이율은 리보금리 플러스 1.5퍼센트, 상환기간은 12년 (거치 4년)이었다. 베이징은 자금력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석유자원의 심장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 04년 7월에 시노펙이 예상을 깨고 앙골라 18광구의 심해 석유자원에 대한 쉘의 지분을 계승한 것도 중국이 제공한 차관에 대한 보상으로 알려짐. 20억불은 중국이 원유대금 및 앙골라 천연자원에 대한 장기채굴권의 대가로 국영은행들을 통해 빌려준 차관 145억불의 시작에 불했다. 하지만 이 거액투자도 큰 그림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 베이징은 중국수출입은행, 중국개발은행, 중국공상은행을 통해 제공한 차관외에 형식상의 민간부문을 통해서도 자금을 빌려주었다.
- 베이징은 차베스의 곡예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상을 차려서 바친 기회들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아의 거인이 베네수엘라로부터 얻은게 얼마나 많으지는 통계를 보면 안다. 중국은 위성 2대와 막대한 무기를 차베스 정권에 팔았고, 화수분에서 퍼낸 자금을 천연자원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엄청난 규모의 차관을 제공. 2010년 중국개발은행은 베네수엘라에 200억불, 중국공상은행은 40억불을 빌려줌. 여러 은행이 합동으로 투자한 금액도 120억불. 이 모든 것은 베네수엘라의 귀중한 자원을 겨냥한 투자다. 현재 중국의 베네수엘라 원유구매량은 하루 64만배럴로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 하지만 양국간의 협정에 따르면 2014년에는 중국의 구매량이 하루 100만 배럴에 달할 전망
- 중국이 파격적 조건으로 베네수엘라 유전에 대한 특권을 얻은 것은 그뿐이 아님. 위키리스크가 공개한 자료에 다르면, 원유시장 가격이 배럴당 78불일 때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5불에 구입. 그래놓고 베네수엘라 지도자의 관대함에 감사하기는 커녕 그 원유를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에 되팔아 상당한 차익을 챙김. 베이징을 충실한 동맹으로 여긴 베네수엘라 정부로서는 당을 칠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이란, 볼리비아, 벨로루시, 쿠바 등에 이념적 동맹을 이유로 석유를 퍼주는 것은 차베스 정권에서는 늘 발생.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라는 보증을 내세워 시엔푸에고스 정유공장의 개보수 자금 60억불을 중국에서 얻어냄. 같은 방식(베네수엘라 보증, 중국의 차관, 쿠바의 혜택)으로 쿠바 마탄사스의 또 다른 정유고장 개보수도 예정됨.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종횡무진 촉수를 뻗는 와중에 중국은, 거의 우연히,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차베스의 책략에 간접적으로 휘말레게 된 셈. 미국의 다른 옛 친구 쿠바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베이징 입장에서 이는 사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업, 순수하고 단순한 비즈니스일 따름이다.
- 중국인이 입으로는 우리와 연대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행동은 다름. 실제로 그저 우라힌테는 힘 닿는 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있다. 차베스는 중국에 가기 전 마오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 그런데 막상 베이징에 가보니 마오의 사진은 모조리 다락방에 치워져 보이지도 않았다. 중국인들한테 파시스트-레닌주의자라고 말해 보세요.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에게 이득이 된다면 그런 말에 상관없이 당신 물건을 살 겁니다.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이념은 설자리가 없다.
- 수단과 에콰도르의 사례는 중국의 금융패키지가 발전도상국, 특히 국고가 바닥나고 현금흐름이 감소한 국가에 얼마나 잘 먹히는지 보여줌. 차관을 받은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 등장한 세계의 은행 기반시설을 짓는데 필요한 거부할 수 없는 단기대안을 제시한다. 소프트론(달러 등 국제통화로 빌리고 현지통화로 상환하는 차관), 낮은 비용, 빠른 공사기간 등 지극히 유혹적 조건. 게다가 국제적인 사회적, 환경적 기준이나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또는 어떤 이유로 서구와 불화를 겪고 있어도, 중국은 타국에 대한 불간섭을 내세워 기꺼이 구조의 손길을 내민다. 국제기술을 준수하지 않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의 행동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 중국이 자국의 미래를 위해 길을 다지는 과정이 다른 국가들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이 사실. 우리는 현지 취재에서 이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사례는 3대륙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견됨. 중국은 전쟁으로 찢긴 앙골라에 수천채의 집을 짓고 사실상 무에서 시작해 운송망을 구축. 콩고에는 새로운 도로를 깔았고, 수단과 투르크메니스탄과 버마에는 석유 파이프라인을 놓았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의 야심찬 철도공사, 이란과 모잠비크의 불가능할 것 같은 도로공사,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거쳐 신장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루트개설에도 같은 상황임. 나이지리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위성을 발사한 비약적 성취도 빠뜨릴 수 없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엄청난 규모와 가시성을 감안할 때, 기반시설 공사가 중국의 조용한 세계정복에서 극히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함. 베이징이 해외원자 잡탕 패키지 및 정부간 협력에도 기반시설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소프트파워를 행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 중국은 쌀 같은 식량을 계속 자급자족하기를 원함. 쌀은 중국인의 식단에서 핵심이라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동물사료로 쓰이는 콩이나 옥수수같은 다른 작물들까지 자급하긴 어려움. 이런 작물들은 수입이 필요. 그러려면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국제시장에서 구매한다. 둘째, 지분을 획득해서 국제 농산품업체를 통치한다. 셋째, 다른 나라의 땅을 산다. 이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은 국제시장에서 구매하는 것.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기 대문. 예컨대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식량생산 대국이 직물수출을 금지하면 어쩝니까? 중국은 리오네그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농식품 부문에 진출함으로써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안전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투자덕에 금융위기나 2012년 미국의 가뭄 등으로 인한 공급부족 시기에도 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식량가격이 지속적으로 폭등세를 보이기 마련임. 이미 아랍권에서는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가 발생했다.
- 금융영향력의 위력은 역사속에서 확인됨.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간 것은 미국이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 최대의 채권자이자 제조업 초강국이 되었을 때였다. 워싱턴은 유엔을 창설하고, 세계은행과 IMF등 국제 금융기관을 만들고, 무역자유화를 추진. 이 세가지 요소가 2차대전 이후 수립된 세계질서의 특징. 현재 중국은 미국이 양 대전 사이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 바로 산업확장과 거의 무한한 금융역량. 이는 중국이 현 상태를 뒤엎고 새로운 세계질서 창출의 기반을 다지는, 미국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 중국의 비결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국가가 경제와 사회 어디에든 개입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을 해명책임이 없는 유일정당에 종속시키는 극심한 정치적 통제다. 선전매체들이 조화로움을 표현하는 이런 권위주의 체제가 지닌 효율성은 많은 나라에서 발전의 지름길을 제시함. 하지만 그 지름길은 비싼 대가를 요구하며, 그 값을 치르는 것은 발전의 뒤편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중국의 실용주의는 분명 발전도상국들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시민 자유와 권력분립을 도입했던 여러 신흥국가들의 정치 지도층이 중국의 도래가 자아낸 흥분에 굴복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중국방식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정권에 특히 매려적이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독재정권과 그늘진 동맹을 맺은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중국은 기회를 발견한 곳 어디서든지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공모자가 되는 쪽을 선택한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들(버마, 북한, 이란, 수단, 쿠바)에서 가장 큰 성공을 누리며 사업 파트너로 선호되고 있는 것, 중국 국영기업들이 전능한 국가를 배경으로 거래에서 종종 백지 위임장을 받는 것은 단순하게 넘길문제가 아님. 지극히 애매모호한 중국의 기준과 가치가 침투하고 수용된다는 점이 중요함. 베이징은 투자한 국가들 및 세계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등의 기관을 통해 그런 가치를 확산시킨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마틴 자크가 제시한 이론이 현실화되는 듯하다. "중국의 경제개방이 가속화됨에 따라 세계는 중국이 서구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다 세계가 중국화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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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노크라트적 환상으로 인해 기술적 전문가들은 새로운 권력과 정당성을 무심코 국가에 안겨준다. 그들에게 국가는 그저 기술적 해결책을 실행하는 기관일 뿐이기 때문. 테크노크라트적 접근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권력을 바라보는 태도가 끔찍할 정도로 순진함. 권력이란 것이 자신을 제한하는 견제가 약해지거나 없어지더라도 전과 다름없이 저절로 호의적이고 인자할 것이라 여김. 오래전 왕권신수설이 통하던 시절의 국왕들이 신의 권력을 휘둘렀다면, 요즘 우리 시대의 독재자들은 발전의 권력을 휘두른다. 오늘날의 발전이 묵시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기술적 전문가들을 자문가로 거느린 호의적 독재자다. 이 책에서는 이런 지향을 권위주의적 발전이라 명명. 테크노크라시라는 말 자체는 전문가들의 지배를 뜻하는 20세기 초의 신조어다. - 사람들이 정말로 권리를 침해당해도 이를 묵과하고 기술적 해결책으로 눈을 돌리는 약삭빠른 속임수는 오늘날의 발전이 처해 있는 도덕적 비극.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는 그 자체로 윤리적 목적이다. 가령 우간다 농민들은 멀쩡한 자기집을 불살라 버리는 만행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는 그 자체로 윤리적 목적이다. 빈곤에 대처하는 일에서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접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접근하든 간에, 발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이 있고, 반대로 침해하는 방식이 있다. 이 윤리적 선택을 피할 방도는 없다. 증거에 바탕을 두는 비이데올로기적 정책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해서 이 선택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하이에크는 새로운 사회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려는 테크노크라트들의 야심에 질겁했다. 그는 기술적 문제에 대한 집착이 빈 서판 사고방식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집착은 오늘날의 발전에서 여전히 횡행하는 사고방식을 일찌감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빈곤을 척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그 답을 자연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순수하게 기술적인 해법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의 발전이다. 하이에크가 보기에 테크노크라시는 자연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사고습성을 무비판적으로 사회문제에 대입하는 꼴이었다. 테크노크라트들은 올바른 기술적 해법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과 맞지 않으면, 사회에 대한 과거의 연구결과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로운 사회시스템에서는 아무도 시스템을 통제하지 않고 분산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와 달리, 엔지니어는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는 상황에서 기술적 문제를 전자와 후자는 닮은 구석이 없다. - 빈서판은 발전에서 개인의 자유가 수행하는 역할에 두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빈서판은 개인의 자유가 과거의 발전에서 얼마나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말해주는 긍정적 증거들을 내다 버렸다. 역사적 증거를 거부하니 발전에서 자유의 역할을 부정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둘째, 빈서판식 접근을 밀어붙이려면 그 자체로 더욱 독재적 강압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개인들로 하여금 이전의 제도를 포기하고 전문가들의 새로운 해법을 받아들이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서방의 경우, 민주적 제도 덕분에 사람들이 보존하고 싶어하는 제도를 지키고 전문가들의 대안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방에서는 테크노크라시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스웨덴 사람들은 뮈르달 부부가 병리적이라고 했던 전통적 가족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양육할 하나의 커다란 국가적 가정을 수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전통을 대체로 지켜가면서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방식은 강압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었다. - 전문가의 해법을 고집하는 사고방식과는 다른 대안, 즉 시장경쟁을 통한 자생적 해법이 존재.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 경쟁하며 참여하는 시장에서는 특정 필요를 해결해 줄 방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음. 소비자들은 최소비용으로 자신의 필요를 최대한 충족해주는 해결책을 선택.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들이 생산될 거라고 여기는 근거는 독립적이고 서로 경쟁하는 다수의 노력에 대한 우리의 신뢰라고 하이에크는 말했다. 그는 이것을 시적인 어구로도 묘사. 심지어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자생적 시장경쟁은 우리가 막상 보게되면 원하게 될 것들을 생산해 낸다. - 의도적인 지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인들에게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자신들이 당사자들보다 더 잘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자기들의 지능으로 충분히 사회전체를 경영할 수 있으며, 빈곤탈피를 위한 사회진부의 저해요인을 식별하고 경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주의가 견지하는 자생성과 겸허함은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즉, 개인주의는 이러한 사회적 과정을 겸허한 태도로 대하며,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도 관용적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사회적 과정을 포괄적으로 지휘하자고 요구하는 태도의 근원에 있는 지적 오만과는 정확히 상반되는 입장이다. - 국가냐 시장이냐는 논쟁은 세가지 이유에서 잘못된 논쟁임. 첫째, 국가와 시장은 서로 보완적임. 하이에크 본인도 정부가 공급하는 상품영역이나 시장이 담당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국가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만큼, 이점을 인정. 하이에크가 의문의 여지없이 국가가 나서야할 광범위한 행동이라고 언급한 분야에는 도로, 공해, 위생, 법적체계, 사기방지, 사회적서비스가 들어감. 둘째, 정부 서비스 자체도 자유사회의 자생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결과일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함. 셋째, 의도적 설계나 자생적 해법이냐의 논쟁을 국가냐 시장이냐의 논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는 시장 우호적 독재자를 보면 분명히 드러남. 이런 독재자는 국가냐 시장이냐의 논쟁에서 어느쪽에 위치하는 것일까? 독재자와 그의 자문가들은 시장 우호적 정책을 표방하면서 발전을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 논리면에서나 증거면에서나 권위주의적 발전의 새 경제학을 뒷받침해줄 근거는 별로 없다. 그러나 어찌 됐든 권위주의 쪽이 자유로운 발전을 물리쳤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쪽에 권력이 있었고, 권위주의적 발전의 핵심집단들이 자기 권력을 합리화했기 때문. - 19년 상반기 내내 1차대전을 끝내기 위한 베르사유 협상이 진행되다가, 마침내 19년 6월 참가국들이 베르사유 조약에 조인. 27개국이 베르사유 협상에 참여했지만, 대세를 좌우하던 열강은 미, 영, 프였다. 이때 세가지 결정이 중국 및 여타 지역에서 발전사상의 역사에 지속적 영향을 미침. 첫번째 결정은 패전국의 식민지 등 여러지역에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을 설치한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인종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 세번째는 중국 산둥성의 통치권을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긴다는 것이었다. - 발전이 49년 해리 트루먼의 연설에서 갑자기 태어났다는 것이 공시적 발전의 전설이다. 하지만 전설과 달리, 그 이전 20년 동안 중국은 테크노크라트적 발전 모델이 형성되는 장소중 하나였다. 테크노크라트적 사고방식은 문제를 중국 개인들의 존업성과 권리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 그렇게 문제를 돌리는 것이 이민이나 치외법권을 주관하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도 좋았고 중국의 지도자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열망했던 장제스에게도 좋았다. 하지만 권리가 짓밟힌 중국의 개인들에게는 좋지 못했으며, 중국이 발전하는데도 효과적이지 못했다. 49년 1월 해리트루먼이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미국의 대담하고도 새로운 발전 프로그램을 공표하던 날, 마오쩌둥의 전차들은 베이징을 포위. 이때 20년이 넘도로 중국에서 추진해 온 미국의 대담하고조 새로운 발전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장제스를 위시한 민족주의자들은 푸젠성의 항구도시 취안저우에서 타이완으로 가는 해협을 건넜다. 중국 국내외에 사는 중국인들의 발전은 IPR과 록펠러 재단 그리고 퐁이 제시했던 방식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49년 시점에 그들은 권위주의적 발전이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 62년 헤일리 경이 90세에 이르렀을 때, 아프리카 독립국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대영제국은 확실한 몰락의 길로 들어섬. 권위주의적 발전관으로 제국을 구하려 했던 헤일리경의 시도는 실패. 영국이 직접 인자한 독재자로서 지배하는 그의 구상은 장기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 주요 이유는 식민지에서 등장한 민족주의적 지도자들이 그들 스스로 인자한 독재자 역할을 맡으려 했기 때문. 한편 미국과 소련은 냉전의 동맹세력을 얻으려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새로 태어난 민족주의적 독재자들 편에 섰다. 인자한 독재자의 임무교대는 예상외로 일찍 일어났지만 무소불위와 다름없는 국가권력을 발전노력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헤일리 경의 주장은 그보다 훨씬 오래도록 지속됨.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위협하는 엄청난 국가권력의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헤일리 경이 활동하던 시절, 영국이들과 미국인들은 여전히 인종주의적 태도로 아프리카인들을 대했다. 그러니 그들 머릿속에는 아프리카인들의 권리라는 관념자체가 생기기 어려웠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인종주의가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전과 같은 변명은 있을 수 없다. 헤일리 경이 남긴 권위주의적 발전사상은 냉전에 맞서야 하는 미국에도 유용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마침내 이 단계에서 권위주의적 접근이 공식화되는 최종적 도약을 달성하게 된다. - 테크노크라트적 발전으로 합의가 굳어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하나는 44년 브레턴우즈에서 세계은행 협정문의 특정 조항 하나가 승인되었다는 점. 그 조항은 비정치 조항으로 불리게 된 제4조 제10항인데, 이 조항 덕에 냉전기 중 미국의 반 소련 동맹국 가운데 꼴사나운 독재자들을 눈감아주기가 쉬워졌다. 세계은행과 직원들은 회원국의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되며, 세계은행의 의사결정은 회원국이나 그 정부의 정치적 성격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 결정에서는 오직 경제적 사항만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비정치 조항에는 44년 상황의 정치적 동기가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동기는 당초 소련에 대한 지원을 허용하기 위한 것. 전시였던 그 때는 소련이 연합국이었기 때문. 동시에 이 조항은 테크노크라트적 관점을 완벽하게 반영. 중요한 것은 국가가 수행할 기술적 해법이었지, 국가가 권위주의적이냐 하는 정치적 성격이 아니었다. 이 조항 덕분에 테크노크라트적 수단으로 세계의 빈곤에 대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44년의 동기는 전시에 소련과 동맹을 다지는 것) 사이의 동맹이 가능해짐 - 기막힌 아니러니는 정치에 반대하는 조항 덕에 정치를 추구하는 일에 세계은행을 이용하기가 더욱 쉬워졌다는 점. 맨 처음에는 44년 소련의 독재자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은행을 이용하는 명분으로 이 조항을 이용했다. 50년에는 콜롬비아 독재자들과 동맹하여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은행을 이용하는 명분으로 이 조항을 이용. 그로부터 60년이 흐른뒤, 세계은행이 자신들의 차관을 받는 나라의 권위주의적 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을 눈감아 주는 명분으로 세계은행 대변인은 나에게 4조 10항을 제시했다. 이 60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 세계은행이 지원한 독재자들은 공교롭게도 테러와의 전쟁에 가담하는 미국의 동맹국들이었다. - 시기순으로 보면 첫째, 중국에 대한 서방의 반식민주의적 이해가 중국인들의 개인권리를 억압하는 중국 독재자의 이해와 일치했다. 둘째,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식민주의적 이해가 아프리카인들의 개인권리를 억압하는 식민지 해방후의 아프리카 통치자들의 이해와 일치했다. 그리고 셋째로, 콜롬비아에 대한 냉전기 미국의 이해가 콜롬비아인들의 개인권리를 억압하는 콜롬비아 독재자의 이해와 일치했다. 이런 과정이 50년대가 끝나기 전에 완성됨. 이때가 발전사상이 시작된 시기라고 간주되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 전에 끝나버렸다. - 게이츠와 블레어는 빈서판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탓에 몇가지 잘 알려진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짧은 기간동안 단일국가를 관찰한 결과는 심각한 통계문제로 인해 신뢰하기 어려운 증거임. 게이츠는 5년에 걸친 어린이 사망률 향상을 정확한 성공의 척도로 취급하고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어린이 사망률이 부정확한 측정으로 악명이 높은 통계라는 점. 어린이 사망률의 측정오차는 너무 커서 5년정도의 단기간에 걸친 변화는 오차 크기에 가려 통계의 의미를 상실함. 문제는 가난한 나라의 정부통계청이 그 나라의 출생과 사망을 전수조사로 폭넓게 기록하지 않는다는 점. 통계전문가들이 그런 작업을 감당할 여력이 없거나, 아니면 열심히 작업하지 않는다. 게이츠도 이전에는 정부가 에티오피아 촌락에서 발생하는 아동의 출생과 사망을 기록한 공식자료가 전혀 없었다고 인정. 중요한 기록이 결여된 상태인지라, 어린이 사망률은 이런 저런 부정확한 자료조각을 토대로 지볘됨. 이를테면 아이가 최근에 사망했는지 또 몇살에 죽었는지 엄마들에게 물어서 답변을 얻는 식이다. 게이츠의 희망적 주장대로 정부가 이제는 그런 지표를 정확하게 추적한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님. 왜냐하면 90년 자료는 자료의 부정확성이 엄청나게 커서 이때부터 2015년까지 사망률을 3분의 2만큼 줄이겠다는 정확한 목표의 출발점이 될 수 없기 때문. - 최근에 이러 경제학자들은 빈서판을 내다버리기 시작. 가까운 시점의 단기에서 장기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그들은 정말로 아주 긴 장기를 관찰했다. 그들은 수백년에 걸친 경제적 자료를 진단했는데, 이를테면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점부터 시작된 개인주의적 가치의 출현이 오늘날의 번영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 개인주의적 가치가 어떤 성질의 것이며, 그런 가치가 왜 끈질기게 존속하는지 좀더 깊게 이해하려면 제노바 사람들을 12세기의 다른 집단 마그레브 사람들과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마그레브인들은 개인의 이해보다 집단의 이해를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 집단주의적 가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방어적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장기적 성공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신뢰의 부재와 타인에 대한 존중의 부재는 위계적 사회의 대표적 특징.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을 이성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간주. 그리고 본능은 근시안적이고 해로운 방향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여김. 그러한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믿을게 못되고 억압해야 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게 아무것도 없다고 보기 때문. 좋은 사고란 그저 강압의 결과라고 간주된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시민이 잘 행동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 자유가 신장되던 17~18세기에 걸쳐 먼저 네덜란드에서, 그리고 뒤짜라 영국에서 경제가 흥성했다. 1650~1800년 런던, 암스테르담, 글래스고는 나중에 교역이 장점을 설파하는 애덤 스미스를 배출하게 됨. 1800년에 이르자 대서양 무역상들의 근거지들이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된 것들이 됨. 이 무역도시들은 1600년에 아시아와 동일한 도시화 수준에서 출발했지만, 그후 아시아 및 동유럽을 큰 폭으로 앞섬. 이와 같은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국왕의 세력권 밖에서 성장한 상업적 이해집단들이 통치자의 권력에 대한 견제를 요구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권력제한 덕에 상업적 이해집단이 재산과 이익을 몰수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상거래 진입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왕의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었다. 물론 왕권의 득을 보는 기성 경제 엘리트들은 이런 변화에 저항. 그러나 이익은 정치적 힘을 동반한다. 대서양 무역에서 나오는 이익은 신생무역상들이 오래된 이해집단과 맞서 승리하는 데 충분했다. 그러자 자유로운 제도가 자유의 가치를 만들어냈고, 반대로 자유의 가치가 자유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선순환의 되먹임이 일어났다. - 집단의 이해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면 집단구성원들이 자기집단에 대해서는 건전하게 행동하는 반면, 외부자들에 대해서는 대놓고 사기를 치고 악용하는 내부자와 외부자간의 차별이 나타난다.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행동하면 그 사회의 평균적인 신뢰와 존중이 떨어지기 마련. 그리고 서로를 불신하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가치관은 다시 독재적 통치를 촉진. 체제를 지지하고 그 덕에 후견을 받는 내부자들은 체제가 외부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해도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음. 외부자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재의 역사와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지역을 좀더 민주적 역사와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지역과 비교해보면, 오늘날에도 전자가 후자보다 더 가난함. 가장 대표적 사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카탈루냐 지방은 예외)이고, 당연히 남부 이탈리아도 해당됨.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민주적 역사를 배경으로 번영을 누리는 가장 긍정적 사례는 영국과 네덜란드, 북부 이탈리아다. - 유럽인이 소수파인 남미 사회와 유럽인이 다수파인 북미사회의 차이 또한 주로 지리적 차이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즉 사탕수수와 금을 둘러싼 경제가 유럽인 엘리트의 소수파가 흑인과 원주민의 다수인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탕수수는 남미와 카리브해에는 존재했지만, 북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지리적 사건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 멕시코와 남미 안데스지역의 인구밀도가 북미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 유럽인이 옮긴 질병으로 인해 사망률이 재앙적으로 높아진 뒤에도 중남미 인구밀도는 북미보다 훨씬 높았다. 원주민 인구가 많았기 때문에 유럽인들에게 유리한 전략도 상이. 즉, 유럽인들이 다수인구를 이루어 정착하는 것보다 소수의 지배자로서 다수의 원주민을 착취하는 것이 훨씬 유리. 왜냐하면 남미 원주민을 몰아내고 유럽인들이 다수가 되어 정착하는 데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려면 엄청난 군사력이 필요한 반면 당장 얻을 혜택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반면, 소수의 정착자들이 원주민들에게 세금을 거둬 이득을 보는 데는 작은 군사력이면 충분했다. - 1700년대 말 콜롬비아에 살던 유럽인 후손들의 인구는 나라 전체의 26%에 불과했는데, 미국에 있는 유럽인 후손들의 인구는 나라전체의 81%였다. 브라질과 카리브해 지역 등에 설탕농장을 경영하던 소수파 유럽인들은 부분적으로 자신들의 사회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장악은 장기적 발전에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17~18세기 흥성하던 설탕산업이 장기적 침체로 들어선 뒤 이를 상쇄할 만한 새로운 산업의 성공이 충분히 일어나지 못했다. 즉 엘리트 집단의 억압이 너무 드센 나머지 새 산업을 일으킬 만한 기업가 집단이 생겨나지 못한 것. 이에 더하여, 경제적 권리를 박탈당한 남미 다수의 인구에게는 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투자와 혁신을 일으킬 동기가 없었음. 정부를 장악한 유럽계 엘리트 외부의 평균적 콜롬비아인들은 새로운 산업에 투자할 동기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새로 산업을 일으켜 봐야 엘리트 집단의 정부에게 몰수당하면 그만이기 때문. 그래서 유럽인들이 소수파였던 사회는 결국 유럽인들이 다수파였던 사회에 비해 소득수준도 낮고 불평등도 심해졌다. - 대략 18세기의 시점에는 북미와 남미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임. 이렇게 보면 북미에 살았던 백인들에게는 남미의 사악한 억압자들과 달리 성자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있었다고 강조하는 견해를 교정할 필요가 있음. 17~18세기 북미와 남미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북미의 앞날이 남미보다 훨씬 좋지 못했다는 점. 네덜란드 인들은 1667년 전쟁에서 뉴욕을 영국인들에게 다시 빼앗았지만, 영국인들에게 그 땅을 다시 매각. 네덜란드인들은 그 대가로 네덜란드령 기아나(지금의 수리남)의 설탕농장을 받았다. - 테크노크라트적 발전의 천재성은 가치관이 거의 정반대인 집단들을 만족시키는 능력을 계속 발휘한다는 점. 테크노크라트적 발전은 타민족을 적대시하는 부자나라 사람들을 대할 때는 이민제한을 정당화해줄 뿐 아니라, 바로 그 타민족을 걱정하는 부자나라의 인도주의자들을 대할 때는 그 타민족 국가의 발전을 선물로 내놓는다. - 지금까지 발전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올바른 국가적 행동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찾으려고 했음. 이것은 방향자체가 잘못된 질문이었다. 물어야할 질문은 올바른 국가적 행동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떠한 정치, 경제적 권리의 체계를 갖추어 놓아야 다수의 정치, 경제적 행위자들이 국경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들 자신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행동에 나설 것인가이다. -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은 어떤 요인들때문에 나라 사이의 성장률이 달라지는지 설명하느라 이십년을 보냈다. 그들은 수많은 국가적 정책을 비롯해 갖가지 특징들을 따져봤지만 그중 성장률 차이를 견고하게 예측해주는 요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견고한 예측력을 보이는 중요한 예외적 요인이 국가적 특징 하나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발견은 지금까지 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견고한 예측력을 보여주는 그 국가적 특징이란 나라가 어떤 지역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 그러니까 나라가 사하라 이남에 위치하는가 아닌가는 나쁜 성장을 예측해주는 좋은 지표가 됨.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다는 사실은 세계 평균미만의 성장을 예측해주고, 동아시아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세계평균 이상의 성장을 예측해줌. 이처럼 지역적 위치의 영향은 서로 다른 성장률 자료 집합에서도 유효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1%포인트 떨어지는 성장률을 보이며, 아프리카 국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2%포인트 떨어짐. - 푸젠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국외 중국인들은 아시아의 유대인이라 불림. 토머스 소웰은 유애딘들을 유럽의 중국인들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바 있다. 이 대목에서 20년대 중국인 학자와 미국인 학자들이 어울리는 와중에 시작된 국가주의적 발전관을 상기해 보자. 국가주의적 발전관은 중국인 이민을 제한하는 미국의 인종주의적 태도를 은폐하고 다른 데로 시선을 따돌리는 편리한 도구였다. 미국이 이민을 가로막았던 중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이민자들이었으니, 아이러니 아닌가. - 국가의 특권인가, 개인의 권리인가 하는 논쟁에서 전자는 주로 나라차원에서 일어나는 발전을 근거로 삼았던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는 발전 커뮤니티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중요치 않음. 국가가 정말로 중요할 때는 알레포 질병과 무역을 붕괴시키는 국경처럼 때때로 나쁜 방식으로 중요하다. 나라차원의 고도성장을 숭배할수록 이러한 성공을 밀어붙일 더 많은 권력을 국가에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때가 많았다. 나라의 성장실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왜냐하면 그래봐야 그만한 혜택이 성장으로 돌아온다는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장률 측정 자체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나라를 강조하는 전략이 정말로 그만한 값을 하는지 아닌지조차 알 방법도 별로 없다. 늘 그렇듯, 피해를 보는 것은 집단적 성공을 추구하는 국가적 명분으로 억압되는 개인의 권리다. - 스미스가 탐욕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오해임. 이 오해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좌파 측의 거부감을 촉발하는가 하면, 우파측에는 스미스가 기성 사업가들의 이익을 모조리 좋은 것으로 치켜세운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실 스미스는 부자와 사업가 둘다를 좋지 않게 보는 경우도 많았다. 그의 첫번째 고전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부자들을 일컬어 이기적이고 탐욕적 본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지칠줄 모르는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힌 소수의 거만한 양반들이라 불렀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업가들을 언급하면서 상인과 제조업자의 천박한 욕심과 뭐든 독차지하려는 정신상태를 지적. 그가 글래스고에서 직접 목격한 모습도 그와 비슷했다. 스미스는 자신의 저술 전체를 꼴사나운 독점정신을 겨냥하는 맹렬한 공격이라 설명했다. 스미스의 또 다른 유명한 언급에 이 점이 좀더 자세히 나옴. 같은 업종의 상인들은 좀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같이 웃거나 즐기는 일조차 없다. 그들이 만다면 한다는 이야기가 대중을 골탕먹이는 음모나 가격을 올리는 술수다. 스미스는 욕심많은 상인들이 일반적 복지의 향상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보았다. 일반적 복지와는 정반대로, 그들의 관심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이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미스의 자유시장은 기존의 상인들을 더 부자가 되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독점권과 특권을 박탈해서 그들의 부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같은 이유에서 스미스가 제시하는 방향은 소수의 거만한 양반들을 더 부자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그의 취지는 오히려 빈곤층을 위한 저렴한 식량의 수입을 촉진해 그러한 거대지주들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기업의 자기 잇속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자기 잇속이 작동되는 힘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항상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장 저렴하게 파는 사람들에게서 사려는 대다수 사람들의 이해이며, 그럴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명분에서 스미스는 국내시장이나 국외시장에서 특권과 독점의 철폐를 주창. 또 바로 이러한 명분에서 국내시장과 국외시장을 아우르는 자유무역을 주창. 스미스는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주로 부자를 이롭게 하는 생각으로 간주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볼때도 시장인가 정부인가 하는 논쟁은 잘못된 논쟁이다. 한쪽은 시장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고, 반대쪽은 정부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긴다. 이 논쟁의 초점은 정부와 민간에 걸친 각 유형이 행위자들에 대해서 사적인 보상과 사회적 보상을 좀더 효과적으로 조응시키는 문제여야 한다.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의 올바른 혼합을 찾기 위한 논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올바른 논쟁은 개인의 권리인가 국가권력인가 하는 문제다.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권리는 민간 및 정부의 공급자 모두가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하는 힘이다. 테크노크라트적 접근, 즉 전문가에게 해결을 맡기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최악의 해법이라는 것.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은 시장의 시험도 민주적 제도의 시험도 치르지 않는 행위자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 전문가들은 잘못된 지식을 동원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불이익을 겪지 않음. 그들이 낸 해결책이 어쩌다 효과를 보더라도 그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전문가들에게는 커다른 성공을 고무할 유인이 없을뿐더러 실패를 철저히 제거할 동기도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은 전문화와 체험학습 그리고 교환의 이득이 어우러지는 선순환을 통해서 발전을 촉진. 보이지 않는 손은 비전문가들을 그들이 잘하는 일로 인도함. 그 일의 산출물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비전문가들은 체험학습이 늘어나 그 일을 더 잘하게 된다. 또한 교환은 그들이 계속해서 선순환의 규모를 키워 가도록 길을 열어줌. 즉 계속해서 판매량이 늘어남에 따라 더 잘하는 방법을 배우고, 결국 세계시장에서 대단한 성공을 이룰때까지 선순환이 지속될 수 있음. - 시장에서의 성공은 대단히 변덕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한데, 이에 대해 언급할 것에 세가지 있다. 첫째, 변덕스러운 것은 시장이 아니라 삶이다. 시장은 빠르게 변화함으로써 변화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적응. 변화하지 않고 적응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시장의 변화는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다. 둘째, 이러한 변덕스러움이야말로 기업권력이 너무 크다고 우려하는 걱정을 일부나마 경감시켜주는 요소다. 힘센기업들은 단지 잠시동안만 힘이 셀뿐이다. 왜냐하면 그런 기업들도 시장의 힘에 휘둘리고 그로 인해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거나 심하면 파산하기 때무니. 기업의 수장들은 더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심각한 문제가 불거지는 첫신호가 나타나면 회사가 잘 버티는 상황일지라도 최고경영자는 해고될 것이기 때문. 셋째, 변덕스러운 시장의 변화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오르막일 때는 계속 새로운 기회가 많이 생긴다. 이럴 때 열심히 일하고 계속 노력하면 고대하던 성공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다. 그러다 내리막길을 만나면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상황이 변하고 기업이 버티기 어려워지면 피고용자들이 커다란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예전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기업이 새 일자리를 창출함. 보이지 않는 손은 항상 최적의 국내적, 국제적 거래기회를 찾아냄으로써 작동한다. 그 최적의 기회란 딱 맞는 시장에 딱 맞는 상품을 딱 맞는 시점에 공급할 딱 맞는 나라의 기업의 딱 맞는 개인의 등장이기도 하다. - 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빈곤을 해결하자는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유행을 타지 않는 기술중 빈곤층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간과하고 있다. 발전에 주목하는 청중들은 외진 마을이라도 인터넷에 연결되기만 하면 실시간으로 작물가격을 조회할 수 있는 농민의 모습에 환호함. 하지만 그들은 인터넷을 조회하는 바로 그 농민들이 그 가격을 받고자 시장까지 자기 차량으로 작물을 실어나를 여건이 되는지는 묻지 않음. 상부주도로 일을 추진하려는 지도자들과 기술전문가들은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일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지식과 동기가 없다. 광대역으로 빈곤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던 그들은 청년들이 포르노를 구경하는 세상을 실현해 주었다. - 1500년의 기술이 오늘날의 기술(1인당 소득)을 예측해 준다. 실제로 오늘날 유럽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소득 차이의 78%는 1500년에 이미 존재했던 기술에 의해 설명됨. 기술의 역사적 뿌리는 이보다 더욱 깊다. 우리에게는 기원전 1000년의 기술과 서기 1년의 기술에 관한 아주 개략적인 자료가 있다. 그 자료를 보면 기원전 1000년의 기술과 서기 1년의 기술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서기 1년의 기술과 서기 1500년의 기술 사이에도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 이로부터 곧바로 기원전 1000년의 기술과 서기 1500년의 기술사이에도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함 - 경제사가 조엘 모키르는 계몽의 경제에서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중시하는 새로운 계몽사상 덕에 영국 산업혁명이 성공했다고 보았다. 이따금 아주 괴상한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생각을 떠벌리더라도 이단이나 변절이라고 공격하는 격렬한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넉넉한 관용의 사회에서만 지성이 충만한 혁신이 일어난다. 모키르는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이라는 말이 예전에는 욕설의 하나였음을 지적. 혁신가들은 두로 공경을 받는 관념, 제도, 사상가, 통치자를 향해 모욕적 경멸을 선사했다. 계몽주의 시대를 겪고 나서 혁신은 칭찬의 말이 되었다. - 오늘날 기술과 소득에서 장소가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중요한 것일까. 앞에서는 장소를 기준으로 서기 1500년 시점의 기술을 측정해 보았다. 사람을 기준으로 기술적 유산을 측정하려면, 오늘날의 사람들을 기준으로 그들의 조상이 서기 1500년 시점에 가지고 있던 기술을 측정해야 한다. 즉 그 조상들의 후손인 오늘날의 사람들이 1500년 이래 장소를 바꾸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장소인가, 사람인가 두가지 기준의 설명력을 보면, 서로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큰 차이가 난다. 오늘날 기술과 소득을 설명하는 일에서 1500년 이래 기술적 유산을 사람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쪽이 장소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쪽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함. 이런 결과는 역사적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발전연구에서도 여러번 반복적으로 검증되었다. 즉, 중요한 것은 장소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다. - 알 수 없는 지식문제에 대한 해법은 있다. 어떤 해법들이 있는지 보자. 첫째, 폴 카가메 같은 사람이 지휘하는 뛰어난 전문가 집단에 큰 역할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둘째, 아주 많은 독립적 개인들이 아주 많은 서로 다른 해결책을 시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혁신이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개인들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이성의 성장은 서로 다른 지식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개인들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를 예측할 수는없다. 어느 견해들이 이성의 성장에 도움이 되며 또 도움이 되지 않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 누구나 아는 것이 극히 작을 뿐더라 우리중 누가 가장 잘 아는지 좀처럼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독립적이고 서로 경쟁하는 다수 참여자들의 노력을 신뢰한다. 그 노력을 통해서 우리가 뭔지는 몰라도 막상 보게 되면 원하게 될 것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해법은 서로 다른 지식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다수의 독립적 노력이다. 혁신과 개인주의는 서로 같이 가는 관계지만, 혁신과 순응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순응하려고만 하는 내 생각을 모욕하는 짜증스런 반대자들이 있어야 한다. 셋째, 서로 경쟁하는 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손을 다시 상기시킨다. 서로 다른 다수의 혁신가들은 대중의 호감을 얻으려 경쟁. 시장은 어느 혁신이 인기를 얻고 어느 혁신이 쓸모없는지를 시험한다. 달리말해, 우리 소비자들은 어떤 신제품을 원하고 또 원하지 않는지를 선택한다. 우리 소비자들은 무엇을 원하게 될지 미리 알지 못할 때가 많고, 막상 보았을 때나 그것을 원하게 된다고 언급한 하이에크의 말은 옳다. - 세상 사람들은 인자한 독재자가 자국민들에게 발전을 안겨준다고 믿는다. 세간에 떠도는 그같은 이야기의 전통은 아주 강력함. 그리고 기적을 이룩한 독재자들의 목록은 과연 끝이 없을 정도로 길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폴의 리콴유는 물론, 한국의 박정희, 대만의 장제스가 이 목록에 오른다. 칠에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맛도 이 목록에 오름. 독재자들이 고도성장을 일으켰다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인자한 독재자들이 정말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증거와 대적해야 한다. 그러한 증거는 자생적 해법보다 의도적 지휘가 낫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전횡이 발전을 가져온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증거가 꼭 보이는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사실 이장에서는 그러한 고도성장이 일어난 것이 독재자들 덕분이 아니라 독재자들의 굴레를 이겨낸 결과다. - 우리의 심리적 편향 때문에 성장의 기적은 대부분 독재자하에서 일어난다는 진술을 독재자들은 대부분 성장의 기적을 이룩한다는 진술과 혼동함. 이것은 곧 우리가 인자한 독재자 가설의 강한 변종과 약한 변종도 혼동한다는 것을 의미. 우리는 약한 변종, 즉 기적을 이룩하는 독재자들이 있다는 증거를 보면서, 그것이 강한 변종 즉 독재자들은 전부 혹은 거의 다 성장의 기적을 이룩한다는 증거라고 해석함. 우리의 심리적 편향이 대세를 장악하면 강한 변종의 오류를 지적하는 증거가 아무리 많아도 전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실패보다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들을 때 편향적 인식은 더 악화됨. 뉴욕타임즈는 1960~2008년에 실패한 독재국가보다 성공한 독재국가를 4배 더 많이 언급. 다른 발간물들도 그러한 경우가 많다. 이게 어떤 음모라는 것은 아니나 매체는 단지 독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보도하며, 독자들은 실패보다는 성공에 대해 더 많이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앙드레 콜링바(81~93년 집권했던 성공적이지 못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독재자)보다는 리콴유에 대해 훨씬 많이 듣고 싶어할 것이다. - 중국의 예를 보면 정치적 자유의 신장과 경제적 자유의 신장을 달리 바라보는 이상한 비대칭이 있다. 정치적 자유의 신장은 독재자의 공적으로 비치지 않지만, 경제적 자유의 신장은 독재자의 공적으로 치는 경우가 많음. 그러나 정치적 자유든 경제적 자유든. 자유의 신장은 국가권력의 축소와 개인권리의 신장을 의미. 따라서 두가지 경우 모두, 독재자들은 그들이 쥐고 있던 권력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정치적 자유를 확장하는 조치를 취하면, 우리는 보통 저항운동의 압력대문이라고 생각. 그런데 독재자들이 경제적 자유를 확장하면, 우리는 이것을 현명한 독재자가 시장주도적 발전을 고무하려고 의도적으로 선택한 정책이라고 간주하는 경우가 허다함. 이런 해석이 옳을지도 모르나 독재자들이 저항운동의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경제적 자유의 신장을 허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 중국이 78년 이후 집단농장을 가족농장으로 바꾼 것은 유명한 이야기. 이 변화 역시 덩샤오핑의 의도적 선택 못지 않게 농민들의 저항과 관계 깊다. 농민들은 여러해동안 사적 보상이 매우 작은 집단농장을 위해 생산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고 가족소유 경작지에서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 66~67년 문화혁명이 한창일 때 마오는 무자비하게 집단농장을 밀어붙였지만, 그 대가로 작물생산은 아주 빈약해짐. 마오 통치말기(68~76)에는 정부가 농민들에게 농기계, 비료, 농약, 개량종자를 더 많이 지급했다. 하지만 집단농장의 동기유발은 너무 미약해, 농업생산량은 인구성장을 겨우 따라갈 정도에 불과했다. 76년 마오가 사망하고 나서 중앙에 덜 무지막지한 권력이 들어서자, 농민들은 마침내 출구를 발견. 작업시간 중 일부동안만 집단농장대신 가족농장에서 일하는 것을 눈감아 달라고 지역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먹인 것이다. - 70년대 말 안훙성과 쓰촨성을 비롯해 농민들이 혹독한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지역에서 이런 협상이 많이 일어났다. 지역당 관리중에는 농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고, 농민들 자신과 지역당 관리들 모두에게 득이 되자, 가족농장은 걷잡을 수 없는 분산된 방식으로 확산. 결국 82년 중앙당은 공식문건에서 현장의 실정을 인정하고, 가족농장을 사회주의적 집산경제의 핵심 시스템의 하나로 승인 - 스미스는 정치질서에 관해 그가 계획했던 세번째 책을 완료하지 못했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가 보이지 않는 손과 더불어 자기교정 시스템을 이루듯, 정치적 자유가 자기교정 시스템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살을 붙이는 일은 그의 후계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이미 인간의 어리석음과 부정의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경제 모두가 개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교정하는 밑으로부터의 상향식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케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 통치자를 통해 자기교정이 필요없는 완벽한 위로부터의 하향식 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늘 어리석음과 부정의가 넘쳐나는 세상이니만큼 미래는 케네의 방향이 아니라 스미스의 방향으로 개척되어 왔다. 서구세계에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서구밖 나머지 세계에서는 케네가 승리했다. 21세기의 발전경제학자들은 여전히 현명한 자문가들을 거느린 인자한 독재자를 꿈꾸고 있다. - 마틴 루터킹 2세는 미국 흑인들의 빈곤을 가슴깊이 걱정했지만, 빈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동등한 권리라는 문제가 희석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동등한 권리의 원칙이 수용되지 않는 한, 행동을 거론할수도 없고, 원칙을 거론할수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행동을 이끌어 줄 원칙이 없다면 행동도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흑인과 백인의 동등한 권리라는 원칙을 얻어내지 못하는 한, 흑인과 백인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발언을 멈출수도 없으며,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킹은 흑인의 빈곤을 심각하게 염려했지만, 문제의 틀을 흑인의 빈곤을 종식하려면 우리가 무얼해야 하는가로 잡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길이라고 생각. 킹이 꿈꾸었던 것은 흑인의 빈곤을 경감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계획이 아니었다. 킹의 꿈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를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그러한 신조의 참된 의미를 행동에 옮기는 나라였다. 킹이 꿈꾸었던 것은 흑인들이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애당초 흑인들을 마침내 중산층으로 만들어줄 전문가들의 계획을 요구하지 않았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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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와 미국은 금리를 낮게 유지. 절약을 모르는 미국 소비자들은 빌린 돈으로 흥청망청 소비를 즐겼다. 머리좋은 월가 금융공학자들은 부동산과 관련된 기기묘묘한 상품을 만들어 놓고는 리스크를 줄였다며 희희낙락했다. 돈은 부동산으로 몰렸고, 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경제에 공짜점심은 없는 법. 버블이 꺼지면서 발생한 것이 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중국의 과도한 무역흑자와 미국의 적자라는 불균형이 위기를 낳은 것. 세계공장 중국의 WTO체제 등장. 이것이 바로 금융위기의 태동이 된 셈. 97년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을 할퀴었던 아시아 외환위기때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 위기의 원인이야 많지만 좀더 길게 세계 경제흐름을 추적하다 보면 역시 중국이라는 요인을 만나게 됨. 94년 1월 중국은 환율시스템을 개방. 정부고시 환율과 시장환율의 통합으로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5.8위안에서 8.7위안으로 뛰었다. 또 다른 위기의 태동이었다. 수출경쟁력이 높아진 중국상품은 세계시장을 파고 들었따.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이 상품이 먼저 밀려남. 이들 동남아 국가는 무역부문에서 적자를 보기 시작. 어설픈 자유주의 정책이 이들 국가의 위기를 자초. 달러 유입이 줄어들자 이를 보충하고자 자본시장을 열었던 것. 그러나 투기성 자금유입으로 자본시장에 거품이 생겼고, 그 버블이 꺼진 게 바로 아시아 외환위기.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는 동남아 국가를 차례로 강타하더니 홍콩을 거쳐 결국 한국까지 건너옴.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아시아 지역 파워시프트가 위기를 부른 것.
- 아시아 위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 중국의 부상이 그것이다. 중국은 98년 시자으이 평가절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가치를 지켜냈다. 주변국들은 중국이 버텨준 덕에 결과적으로 위기의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2000년대 초에서 중반에 이르는,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10%를 넘나드는 성장을 지속. 그 기간 아시아 지역의 전통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던 일본은 2000년대 들어서도 또 다른 고난의 10년을 헤매야 했다. 아시아의 경제리더였던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바라만 봐야하는 신세였다. 그 사이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따거로 행세. 중국으로 인해 야기됐던 위기, 그 윅를 딛고 아시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 위기의 패러독스였다. 오늘날 경제위기에서도 그 역설이 감지된다. 세계는 지금 중국이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중국에게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자국의 국채를 사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기업들은 서방의 경제위축으로 야기된 소비공백을 중국 소비자가 메워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 중산층 구제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중국이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말과 다르지 않은 구도다.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의 구원자였던 중국이 지금은 세계 경제위기의 구원자라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08년 말 중국은 국내총생산의 약 17%에 해당하는 약 700조원 규모에 달하는 부양대책을 실시했고, 덕택에 질식상태에 빠진 세계 경제에 숨통을 틔워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11년 발발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각국은 중국에 SOS신호를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위기를 조장한 나라가 그 위기를 통해 위상을 높이는 위기의 패러독스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 중국의 건설투자는 세계경제에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했다. 98년 도로건설은 중국의 내수를 부추기는 힘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들은 외환위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을 중국에서 얻기도 했다. 08년말의 철도경네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었다. 서방언론도 중국은 세계경제의 구원투수라는 찬사를 보냈다. 서방언론들이 중국을 G2의 반열에 올려놓고 박수를 친 것도 이때쯤이다. 곳간이 텅빈 유럽국가들은 달러 부자의 나라 중국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한다. 위기를 틈타 맹주로 등장하는 위기의 패러독스가 이번 세계 금융위기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셈
- 90년대 동아시아 지역이 가장 먼저 차이나 사이클의 영향권으로 편입됐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면서 일본, 한국, 대만 등 인접국들은 중국에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기지 역할을 했다. 고부가 부품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생산하고 조립은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이 담당하는 분업구조. 아시아 지역 내 교역이 중간재 위주로 이루어진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아시아 주요 국가의 대중국 수출 중 부품이나 반제품 등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만 74%, 한국 72%, 일본 60%에 달함. 이들 국가들은 세계공장이 된 중구에 고부가 부품을 수출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짐. 중국은 03년 한국의 최대수출 대상국이 된 데 이어 05년에는 일본이 최대수출국으로 부상. 중국이 기침을 하면 인접국들은 독감에 걸리는 구조가 됨. 한국의 전체 수출의 약 30%(홍콩 포함)는 중국으로 향함. 차이나 사이클에 편입된 것이다. 차이나 사이클의 두번째 편입대상국은 자원부국이다. 심지어 미국과 함께 서방질서를 만들고 있는 유럽도 중국 영향권에 편입되고 있음. 중국이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의 국채매입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 지금 중국은 그 어느때보다 유럽에서 환영받고 있음. 유럽의 위기를 해결해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 중국은 그럴 뜻이 있어 보인다. 달러에 편중된 외환 보유액에서 유로화 비중을 높이는가 하면 유럽 기업의 매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음.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지도자들은 시도때도 없이 유럽국가들을 자주 방문한다.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유럽 각국 정상들은 맨발로 뛰어나와 허리를 굽힌다. 유럽이 중국을 시장경제 국가로 인정한다면 언제든지 돈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게 중국의 입장. 유럽도 차이나 사이클의 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기업 역시 중국시장에 목을 매야 하는 실정. 중국이 세계의 백화점으로 부상하면서 다국적기업의 명운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나라가 됐기 때문.
- 중국의 실질 GDP가 1%포인트 하락할 경우 한국은 0.22~0.38%포인트, 대중국 수출은 2.0%포인트, 전체수출은 약 1.7%포인트로 떨어짐. 중국이 감기기운을 느끼면 우리는 몸살을 앓는 구조. 게다가 중국은 노동자 임금을 앞으로 5년내 두배 올릴 계회깅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업체들의 사업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브라질, 호주 등 자원부구깅 느끼는 압박은 그 성격이 다르다. 이를 대변하는 말이 네덜란드 병. 특정 자원부국이 자원수출에 따른 외국자본 유입으로 일시적 호황을 누리다 물가와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제조업 쇠퇴로 결국 경기침체에 빠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59년 유전발견으로 잠시 호황을 누리던 네덜란드가 제조업 낙후로 60~70년대에 침체에 빠졌던 사례에서 유래. 지금 브라질이 그런 상황. 브라질은 2020년 중국과의 교역에서 52억 달러 흑자를 기록. 그러나 자원을 제외하면 235억불 적자. 자원을 팔아 번 돈으로 다시 중국제품을 수입한 셈. 자원수출-->달러유입-->자국화폐 평가절상-->제조업 경쟁력 악화의 악순환 구조의 반복이다.
- 한때 세계 태양광업계를 주도하던 에버그린솔라는 11년 중국이 저가공세를 이기지 못해 파산을 신청. 대신 생산시설을 중국 우한으로 대거 이전하고로 함. 800여명의 매사추세츠 공장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내몰릴 처지가 된 것. 한국도 삼성과 LG가 중국에 차세대 LCD공장을 세우기로 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분야 일자리를 중국에 넘겨야 할 처지. 심지어 삼성전자는 핵심제품인 반도체 공장까지 중국 시안에 지을 계획. 한국에 짓는다면 전문대졸 이상 학력의 구직자들에게 돌아갈 일자리를 중국 노동자들에게 뺏긴 셈. 거대 중국시장은 이제 첨단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하고 있다. 한국, 대만, 일본 등 주변국들은 중국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자국에 두었던 부품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고급 일자리의 중국이동이 시작된 것. 중국과의 거대한 밥그릇 싸움이 시작됐다.
- 브레진스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략적 비전'에서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 미국과 중국은 결국 공생의 틀을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현재의 미국을 대체할만한 힘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쇠퇴는 곧 세계적 혼란을 가져와 결국 중국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진단. 중국이 오히려 미국의 빠른 쇠퇴를 바라지 않는다는 이야기. 미국이 중국을 외면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미국은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도움 없이는 국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처지.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지 않았던 냉전시대의 미국, 소련과의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함. 중국이 갖고 있는 1조달러의 미국국채가 이를 상징한다.
- 중국인들은 내심 자신에 차 있다. 그들은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섰던 78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지만, 서방경제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은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중국은 이제 마음에 들지 않는 서방의 경제 스탠다드에 대해선 노라고 외친다. 체제경쟁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을까? 하계에서는 중국모델이 뜨거운 연구과제로 등장. 신자유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에 빗대어 중국 고유의 성장방식을 담은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새로운 용어도 등장.
-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중앙 국자위가 관할하고 있는 117개 중앙기업. 이들은 중국 국유체제의 뼈대. 2010년 이들 중앙기업의 매출액은 약 19조위안으로 전체 국유기업 매출액의 65%에 달함 117개 중앙기업이 중국 국유 체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들 중앙기업을 더 크고 더 강하게 만들 계획. 관련 기업간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워 국제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 중앙기업은 03년 196개에 달했으나 지금은 117개로 감소. 그러나 이 기간 총자산은 8.3조위안에서 28조위안으로, 매출액은 3조위안에서 19조 위안으로 오히려 증가. 더 크고 더 강하게 전략이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줌. 중국이동통신, 차이나알미늄, 이치 자동차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대형기업들이 대부분 여기 속함.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38개 기업이 포진해 있다. 중앙기업은 산업을 장악하고 있음. 중국은 핵심산업은 국가독점산업으로 지정해 놓고 민영기업의 참여를 차단. 석유화학, 군사, 전력, 통신, 자원, 항공, 해운 등 7대 국가독점산업에 속한 중앙기업은 약 46개. 이들이 각 산업에 매출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9%에 이름. 중앙기업이 핵심 국가독점산업을 장악하고 있음.
- 국자위가 국유기업을 지휘한다면 CIC는 국유은행 및 국부펀드의 해외투자를 총괄. 이를 위해 산하에 중앙후이진공사와 해외투자공사를 두고 있음. CIC가 운용하고 있는 자산의 총규모는 2010년말 현재 약 3,743억 불. 이중 1,351불은 해외에서, 나머지 12개 주요은행 및 증권사의 주식으로 보유. 특히 중국 금융자산의 69%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4대 국유상업은행을 거느리고 있음. 국가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셈. 이로써 국가(공산당)-중앙기업-CIC로 연결되는 국가자본주의 삼각펴대가 형성. CIC가 탄생한 것은 2007년. 외환보유액 중 2000억불을 투자해 설립. 재정부가 당시 환율을 감안해 1억 5500억 위안의 특별채권을 발행하는 형식으로 설립. CIC역시 국가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정함.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가 가장 큰 투자대상이고, 금융상품은 그 다음이다.
- 개도국이 중진국(중등수입국)수준에 도달하기는 오히려 쉽다. 농촌의 잉여인력을 도시로 이동시켜 제조업에 종사하게 하면 됨. 도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주민들의 소득수준도 늘어날 것. 60~70년대에 우리가 이미 경험했고, 중국에서는 아직도 진행중. 그러나 제조업에 유입되는 인구가 줄고 임금이 높아지면 상황은 달라짐. 노동력 투입에 의한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기 때문. 제조업은 더이상 일자리를 만들지 못할 것이고 서비스업에서는 임시직 등 허드레 일자리만 창출될 것. 이 과정에서 잠복해 있던 사회적 불만까지 폭발하면 성장이 발목을 잡힌다. 이것이 중진국 함정이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인다 GDP가 5000~10000불 되면 오는 현상.
- 중국기업인들은 천생적으로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권력바라기들이다. 게다가 장쩌민 시절 공산당은 돈 있는 사람도 대표한다는 3개 대표론을 제시하면서 공산당과 기업인은 더 가까워짐. 공산당이 정권과 지식, 금권을 모두 쥐고 있는 것. 이는 공산당을 대체할 만한 정치적 실력을 가진 정당은 앞으로 탄생하기 어렵다는 의미.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연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고 민주화 시위가 벌어져도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구호는 여전히 인민들의 마음에 살아 있음. 그들은 당의 분열은 곧 국가의 분열이라 교육받았다. 산간벽직까지 깊숙이 뻗어 있는 모세혈관같은 당 조직으로 볼 때 일당독재 체제가 쉽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 12년 봄, 세계는 중국 정계를 뒤흔든 보시라이 사태를 주시했다.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와 그의 심복 왕리쥔 부시장과의 갈등으로 시작된 사태는 결국 중국의 정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권력투쟁 양상으로 발전.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후진타오, 리커창 등이 소속), 태자당(혁명원로나 당 고위 인사자제로 구성된 정치세력, 시진핑, 왕치산 등이 소속), 상하이방(상하이 관료그룹. 장쩌민 계열)등 중국 공산당 내부 정파의 힘겨루기가 보시라이 사태를 매개로 폭발한 것. 89년 천안무 사태 이후 벌어진 가장 큰 공산당 권력투쟁이었다.
- 학계의 노선투쟁이 정책방면으로 옮겨붙은 것은 바로 충칭모델과 광둥모델의 대립이었다. 태자당의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주도한 충칭모델의 핵심은 대정부와 분배였다. 그는 정부가 사회동원력을 발휘해 소외계층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을 추진. 빈곤층을 위한 서민주택을 건설했고, 농민공들에게는 도시 후커우를 발급해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받게 했다. 전형적 포퓰리즘이었다. 보시라이는 충칭에서 민생이야말로 최고의 도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마오쩌둥 시대의 군중노선을 연상케 하는 홍색 열풍을 일으킴. 그의 정책은 신좌파 학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에 비해 공청단 소속 왕양 광둥성 당서기가 이끈 광둥모델은 분배보다는 개혁을 통한 지속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또 정부의 간섭보다는 사회자치를 강조. 예산공개, 인터넷을 통한 정책개발 등이 추진됨. 그는 민주야말로 최고의 도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으며 자유주의 성향의 우파 경제학자들이 광둥모델로 모임. 광둥으로 갈 것인가, 충칭으로 갈 것인가의 논쟁은 공청단과 태자당 상하이방 세력간 힘겨루기의 표현이기도 했다. 시진핑, 저우용캉 정치국 상무위원 등 태자당, 상하이방 소속 지도자들은 충칭을 방문해 보시라이를 치켜세웠다. 9명의 상무위원 중 충칭을 방문하지 않은 지도자는 후진타오, 리커창 등 공청단 소속 지도자와 원자바오 총리뿐이었다. 그들은 광둥편이었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는 광둥을 수시로 방문해 왕양의 민주시장 개혁에 힘을 실어주었다. 태자당, 상하이방 연합세력은 충칭모델로, 공청단은 광둥모델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셈. 이같은 권력암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시라이 사태가 터졌다.
- 충칭모델과 광둥모델은 크게 3개분야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임. 우선 정부운영 시스템 개혁에 관한 차이. 충칭은 기존 공산당의 권위주의 통제 시스템을 지키려 했고 또 강화했다. 정부가 나서서 무엇인가를 하려 했다. 기존의 운영시스템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의미. 이것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반면 광둥은 시스템 개혁을 부단히 추구했다. 정부예산을 공개했고, 인터넷을 통한 정책개발 등에 나섰다. 이들의 개혁은 덩샤오핑이 주창안 사상해방을 통한 개혁을 연상케 했다. 두 지역 모두 민생을 강조했지만 그 방법은 상이. 충칭은 강한 정부였다. 빈곤층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민주택을 의욕적으로 건설하고 정부가 부를 분배하겠다며 직접 나서기도 했다. 국가의 시장개입이었다. 그러나 광둥은 시장지향적 정책을 중시. 정부가 나서서 대규모 사업을 벌이거나 빈곤층 우대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중국 최고의 개방지역인 광둥에서는 어울리지 않았따. 민간 역량을 중시하는 정책이었따. 선전 부분도 달랐다. 충칭은 포퓰리즘에 호소. 마오쩌둥 시대를 연상케 하는 노래를 부르며 군중의 단합을 유도했고, 조직폭력배 단속으로 민심을 사려했다. 반면 광둥은 민주를 선택. 언론간섭을 줄여 사상에 대한 통제수준을 낮춤. 이런 민주적 정치의식은 남방주말과 같은 자유주의 성향의 매체가 나올 수 잇는 이유가 됨. 광둥성 우칸에서는 직접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따.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었다.
- 신좌파 학자들이 충칭을 칭송한 반면 우파 학자들은 광둥을 지지. 이렇게 중국의 학계와 정계는 좌우로 나뉘어 힘겨루기를 해왔다. 보시라이의 몰락은 충칭 모델의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개혁이 보수를 이겼고, 시장이 정부를 이겼고, 민주가 포퓰리즘을 이겼다는 의미. 중국의 경제노선에 대한 이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보시라이 사태는 향후 중국의 경제발전 방향이 충칭모델보다는 광둥모델쪽으로 흘러갈 것임을 시사. 우징롄 교수는 시진핑 시대 중국경제는 시장화, 법치화의 큰 물결을 탈 것이라고 단언했다.
- 충칭모델을 사실 경제발전 모델이라고 할 수 없음. 붉은 깃발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투입에 의존한 기존의 성장패턴을 답습. 보시라이 개인의 열망이 낳은 정치쇼일수도 있따. 보시라이 몰락이 중국 경제에 주는 함의는 이제 우리는 모두 광둥으로 간다는 것. 한때 충칭 모델을 찬양했던 태자당, 상하이방 소속 지도자들은 이제 충칭에서 벗어나 옛모습 그대로 다시 시장화, 개방화의 길로 접어들 것.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청 박사가 말했듯, 보시라이 사태는 개혁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공청단 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았다. 이번사태가 시장화, 법치화를 바라는 중국경제에 오히려 보약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의미. 광둥모델은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창신을 통한 산업고도화, 인터넷을 통한 인민들과의 소통, 다양한 언로를 통한 민주화, 시장에 대한 믿음 등이야말로 중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들. 앞서 언급된 국가자본주의의 연성화 같은 맥락이다. 이번 보시라이 사태는 이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점차 퇴색해가고 있는 지금 중국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갈수록 민족주의에 의존하고 있음. 한 나라가 민족주의에 호소하거나, 대중이 민족주의에 끌려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중은 세계를 바라보지 않으며, 심지어 자기 나라의 균형된 이익도 주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존심만을 내세우며 자국의 명예가 모욕당했다고 생각되면 분기탱천한다. 08년 올림픽 이후 중국인들은 여러면에서 그런 성향을 보였다. 일본과 센카쿠열도 문제로 충돌할 때면 여지없이 극렬한 반일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발생. 이같은 민족주의는 아시아 질서에 대한 제국주의적 인식과 결합해 이웃국가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 마오쩌둥이 공산주의의 바이블리라는 자본론을 읽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자치통감, 25사, 수호지 등 왕조시대 제왕들의 통치술과 권력투쟁에 관한 책이 그의 서재를 가득 메웠다는 점은 분명함. 세계적 마오쩌둥 연구가인 하버드대 로스 테릴 교수는 "마오쩌둥은 20세기 세계 지도자 중 최고의 독서가이자 저술가였지만 과학기술이나 경제경영, 정치사상,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을 포함한 서구의 정치사상 서적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힘.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마오쩌둥은 과거 왕조 역사에서 신중국의 경영을 배운 것이다.
- 마오쩌둥이 그랬듯, 중국인들은 과거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살아간다. 현실의 문제해결을 위해 전통에서 지혜를 구했다. 그들은 국가보다 오히려 문명을 중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이란 생각대신 용의 후손이라 여긴다. 중국인들은 자국의 성장을 새로운 슈퍼파워의 등장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옛 영광으로의 부흥이라 생각. 그들이 꿈꾸는 과거의 영광, 그것이 바로 아시아의 맹주다. 중국인들은 자국의 힘이 강해질수록 아시아는 원래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권여이라는 옛 왕조시대의 조공 패러다임을 되살리고 싶어함
- 원교근공. 먼 곳에 있는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지만 가까이 있는 나라에게는 공세를 편다. 춘추전국 시대에 등장했던 중국의 외교술이다. 역대 중국의 전략가들은 힘의 영역이 닿을 수 없는 곳은 외교적 방법으로 친구관계로 만들어 놓지만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근접국가는 힘으로 제압해야 나라의 안녕을 얻을 수 있다.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이 같은 힘의 외교는 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불안요소가 될 것
- 중국은 그동안 서방세계가 구축했던 자유시장 체제에 수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유시장 체제에 따르고 순응하는 것은 곧 13억 인구의 밥그릇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 중국은 서방의 이념 공격에도 수세적 입장을 보여왔다. 경제력이 약했고, 경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안정적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 덩샤오핑이 국제문제를 언급하면서 절대로 우두머리가 되지 마라고 한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수렴이 아닌 발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문제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문제가 동아시아 주변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들의 목소리는 매우 거칠어진다.
- 78년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때 중국은 돈도, 기술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지천에 깔린 사람뿐이었다. 덩샤오핑은 화교를 대상으로 자본유치에 나섰다. 그리고 호소했다. 여기저기 저임금 노동력이 넘쳐나고 있으니 와서 공장을 세워라. 이 과정을 통해 홍콩과 대반, 동남아 화교자본은 중국 땅으로 갔고, 이어 일본, 한국 등이 뒤를 이었다. 80년대의 이야기다. 그러나 재봉틀 공장(소규모 임가공 공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제대로 된 굴뚝을 지어야 했다. 그 일환으로 80년대 말부터 유행한 말이 시장으로 기술을 바꾼다였다. 이말은 시장을 줄테니 기술 다오 였다. 진출기업에게는 중국 내수시장 진입 특혜가 주어짐. 특히 자동차. 자동차 회사를 유치해 그들을 통해 기술을 배운다는 속셈. 86년 폭스바겐이 중국으로 진출 90년대에는 가전, 정보기기, 화공, 철강 등에 이르는 수많은 서방기업이 그 뒤를 따름. 실제 이 과정에서 일부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감.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학계를 중심으로 기술과 시장을 바꾼다는 전략에 비판적 시각이 제기됨. 외국기업은 시장은 다먹으면서 핵심기술은 이전하지 않는다는 지적. 자동차가 특히 그랬다. 업계에서는 엔진 등 핵심기술은 모두 해외 본사에서 개발하고, 중국에는 하급기술만 넘긴다는 불만을 터뜨림. 게다가 모델도 구닥다리였다. 이제 믿을 것은 우리뿐이라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 그 연장선상에서 02년 집권한 후진타오 주석이 내놓은 것이 바로 자주창신 전략.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의지. 정부와 기업은 대대적으로 기술개발 투자에 들어감. 지난 10여년동안 연구개발 투자는 매년 20% 안팎으로 증가. 2000년 GDP대비 0.9%에 그쳤던 연구개발 투자는 현재 1.5%까지 높아졌고, 15년에는 선진국 수준인 2.3%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 해외투자를 받아들이는 조건도 기술을 얼마나 넘겨줄 것이냐에 초점을 맞춤. 시장을 무기로 구미에 맞는 서방기업만 골라받고 있음.
- 상해 주변에는 노트북 클러스터가 형성됨. 쿤산, 쑤저우, 항저우 등 상하이 일대는 전세계 노트북의 80%를 생산. 삼성전자 노트북은 100% 이곳에서 생산됨. 삼성전자 쑤저우 공장 관계자는 약 2000개에 달하는 노트북 부품 중 약 70%를 주변에서 조달한다고 함. 컴퓨터 관련 부품업체들은 이제 상하이로 넘어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단순조립에서 시작된 중국 컴퓨터 산업이 이제 고부가 부품을 생산하는 체제로까지 발전.
- 중국은 전통산업 분야에서는 선진국 기술을 단순히 추격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그러나 태양광, 녹색산업, 바이오 등 신흥산업 분야에서는 발달과정을 서너단계 뛰어넘어 일약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비약을 이뤄냈다. 구글을 중국땅에서 몰아낸 바이두, 09년 말 뉴욕증시에 상장된 줄기세포 전문업체 차이나코드블러드 등이 대표적. 시장을 미끼로 해외 첨단기술을 끌어들이고 그 기술을 중국산업에 이식시키던 중국이 이제는 신흥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적 비약을 이루고 있는 것.
-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고스란이 중소민영 기업의 몫. 중소기업은 은행문턱이 높아 은행돈 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하금융에 의존. 저장성, 푸젠성 등 민영기업이 발전한 곳에서는 지하금융이 성행. 중국의 지하자금 규모는 GDP의 약 20%에 달하는 10조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산. 이중 절반은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불법 사금융 형태로 운영됨. 지하금융은 신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 한번 흔들리면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됨. 11년 하반기 원저우에서 벌어진 주요 민영기업이 야반도주는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
- 정부는 땅을 팔아 부를 챙긴다. 원래 국가소유였던 땅을 부동산 개발명목으로 기업에 파는 것. 2000년 이후 전국 토지의 민간 양도규모를 보면 거의 매년 두배씩 증가. 토지판매는 지방정부 예산수입의 절반이상을 차지. 정부가 땅장사로 돈을 모은 것. 땅값이 하락세를 보이면 여지없이 정부의 재정위기가 언론에서 제기되는 것도 이때문. 부동산 개발업체는 업계 폭리구조의 핵심. 업체는 우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지방정부로부터 개발부지의 토지사용권을 매입. 일단 땅을 사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다. 그 땅은 개발용지로 형질이 변경되면서 땅값이 뛰기 시작. 물론 지방정부가 형질변경을 도와줌. 기업은 그 부지를 담보로 다른 은행에서 다시 돈을 대출받아 은행 빚을 갚는다. 그래도 돈이 남는다. 그러면 그 돈으로 아파트를 건설. 아파트를 3분의 1정도 지으면 분양에 들어가고 개발업자의 주머니에 다시 돈이 들어어고 시작. 아파트 값이 오르면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집을 사야한다고 마음 먹음. 그래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산다. 하지만 주택가격은 소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높다. 도시지역 평범한 샐러리맨이 30년동안 월급 전부를 모아도 만들기 어려운 돈. 이 구조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개인자금은 부동산 개발업체로 들어가고 다시 지방정부로 몰림. 이 과정에서 소외된 개인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란의 투기과정에 마음이 아플수 밖에 없다. 경제의 분절구조가 낳은 현상임. 중국 경제는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이 서로 분절되어 있고, 같은 도시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나뉘어 있다. 산업 내에서도 국유기업과 민영기업 사이에 칸막이가 쳐 있다.
- 중국 각지 농민들이 키우는 돼지수는 약 4억 5천만 마리. 세계 전체 돼지수의 절반 수준. 돼지는 곡물을 먹는 기계다. 돼지 몸무게 1킬로를 불리기 위해서는 약 3~5키로의 곡물을 먹여야 함. 특히 대형 기업영농이 늘면서 중국에서도 사료먹는 돼지 비율이 증가세. 최근 수년동안 사료수요는 연평균 20% 넘게 증가. 돼지고기값이 오를 수밖에 없음. 이는 중국 물가지수에 고스란이 반영됨. 인플레가 기승을 부렸던 11년 6월, 소비자물가 상상률 6.5% 중 1.5%가 오로지 돼지고기때문. 돼지가 중국, 나아가 세계 인플레의 주범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 농민공이란 말이 생긴 것은 80년대 초. 당시 중국 농촌에서는 5000년 농업 역사에 일대 혁명이 벌어진다. 종촌에 기업이 들어선 거. 이들은 향진기업이라 불림. 농민들은 쟁기르 버리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기 시작. 언론에 농민공이란 말이 등장. 농민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란 의미. 80년대 농민공은 비록 토지를 버렸지만 그렇다고 고향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는 토지도 버리고 고향도 떠나는 현상이 벌어짐. 중국 동부 연해도시에 대거 설립된 개발구 농장들이 농민을 산업현장으로 끌어낸 것. 특히 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일본, 한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기업들이 중국으로 밀려들면서 노동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90년 약 1000만명에 그쳤던 농민공은 95년 6000만명, 2012년 현재 2억 3000만명을 넘어섰다.
- 60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4-2-1 가정이 사회전체로 퍼짐. 중국은 부자가 되기도 전에 이미 늙어가는 미부선로의 시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8.3%에 진입한 해의 각국별 1인당 GDP수준을 보면 일본 1만 7480불(78년), 미국 1만 2065불(49년)이었따. 이에 비해 중국은 6382불(10년)에 그쳤다. 소득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의미
- 중국의 인터넷을 발전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산당의 탄압. 공산당이 89년 6월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진압했고 그로 인해 미국에 남게 된 유학생들이 10년후 귀국길에 오르면서 실리콘밸리의 정보혁명을 중국으로 전파. 중국정부는 인터넷을 행정의 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 상부의 지시를 인민들에게 전달하는 통로로 안성맞춤. 그러나 인터넷은 속성상 정보의 독점을 용납하지 않음. 중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따.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창출해 내면서 권력의 정보독점을 깨기 시작한 것
- 흔히 중국 비즈니스의 성패는 현지화에 달려 있다고 한다. 제품의 현지화, 유통의 현지화, 인사/조직의 현지화, 자금조달의 현지화 등이 그것. 현지화에 관한 한 IBM이나 GE등 다국적 기업은 달인이다. 그들은 현지인을 해당지역법인의 CEO로 채용. 본부에서는 돈줄만 관리함. 현지인이 CEO를 맡으니 현지 사정에 밝고 시장을 빠르게 파고든다. 이는 레귤레이션의 힘이다. 다국적 기업은 해외진출시 레귤레이션도 함께 보냄. 현지 CEO는 레귤레이션에 따라 자기역할만 하면 됨. 그만큼 업무가 모듈화 되었다는 의미. 본부 임직원들은 현지 CEO를 인정하고, 존중. 그들은 그렇게 해외시장을 열어가고 있다.
- 중국 내수시장 공략의 핵심은 유통망. 중국에서 제품유통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 중국진출기업 중 실패한 회사를 분석해 보면 상당수 업체들이 중국 파트너에게 유통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했다. 한국 투자사는 생산을 담당하고, 유통은 중국 파트너가 맡는 식의 합작사업은 대부분 깨진다. 어렵더라도 내 제품은 내 손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전해준다는 마인드가 필요.
- 90년대 중국에 진출한 1세대 비즈니스맨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싸게 생산할 것인가였다. 2001년 중국의 WTO가입을 계기로 내수시장에 진출했던 2세대 비즈니스맨들은 중국 유통망 구축에 총력을 기울임. 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에 진출해 활발하게 뛰고 있는 3세대 비즈니스맨들은 이제 중국자금을 어떻게 사내자원으로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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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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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컨센서스

경제 2017. 8. 10. 22:51
- 중국 지도자들은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등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상황을 원치 않음. 미국과 중국의 국방비가 지속적으로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 이유에는 이와 같은 측면이 있다. 중국군의 발전에 관한 통계수치가 인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미군의 경우와 비교가 되지 않음. 09년 미국 국방성 공식 예산은 5154억불인데, 이는 01년 이후 74% 증가한 수치. 이외에 09년까지 수행될 테러와의 전쟁 관련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비상자금으로 700억불이 배정됨. 중국군의 발전은 미국의 전장공간에 흠집을 내기 위한 맞춤형 능력의 구비라는 시각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취약부위, 특히 통신과 정보기술에 의존하는 취약부위를 공격하기 위해 첨단 단거리 무기를 개발함으로써 미군의 하드웨어 장벽을 뛰어넘고자 노력했다. 이런 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새로운 하드웨어를 수백만 톤씩 구입하지 않고도 전력투사 측면에서 미군과 대등한 수준이 되기 위해 중국 본토와 타이완 주변에 접근 거부 지역을 확보하려는 것. 08년 중국군 해군소장 양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따. 중국해군은 정보기술 상황의 지역차원의 해전에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신무기를 연구, 개발하고자 적극 노력할 것이다.
- 특별인출권은 국제통화기금이 60년대 고안한 것. 이것을 고안한 이유는 채권국 화폐가 의미있게 변동할 때 채무국을 보호하기 위함. 예를 들어 한 국가가 국제통화기금에서 자금을 빌렸다면, 달러와 그나라 화폐의 환율이 크게 달라질 경우 채무의 가치가 요동칠 수 있음. 결과적으로 채무불이행 사태 등 금융 측면에서 보다 많은 문제가 초래될 수 있음. 특별인출권은 달러화, 파운드화, 엔화, 유로화를 비롯한 몇몇 통화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이는 특별인출권을 이용한 거래가 달러만을 이용한 거래와 비교해 외환시장의 변동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 그러나 이는 특별인출권이 화폐가치의 기준점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것자체가 화폐까 아님을 의미. 특별인출권은 수입대금을 지불할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말하자면 화폐가 아니다.
- 미국과 중국경제는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음. 미국은 중국이 빌려주는 자금에 점차 중독되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미국의 소비에 중독되었따. 이와 같은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상호확증파괴의 경제적 형태를 통해 미중관계가 안정되고 있다. 켐브리지대 제임스 메이올이 표현했듯이, "중국경제와 미국경제는 상대방의 몸에 자신을 기대고 서 있는 두 명의 술취한 노인의 모습이다. 이 중 한명이 넘어지면 모두 넘어지게 된다." 냉전종식 이후 이는 특이한 의존관계다.
- 세계 무대에서 중국이 부상한 시점은 미국 브랜드를 대변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서구 민주주의가 일시적이나마 세계적 조롱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순간과 일치. 개도국의 모든 여론집단이 미국을 조롱했다. 문제를 보다 복잡하게 만드는 부분은 당시 미국이 위선적이며 무능력하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8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은 시점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 역사적으로 권력이동은 친숙한 주제다. 결국 100년이 지나지 않아 대서양 너머로 또 다른 거대한 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종종 역사가들은 1919년을 국제체제의 세력분포 측면에서 전환기로 생각한다. 1919년은 미국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된 시점. 이와 같은 전환이후 몇년 동안 미국은 고립주의와 보호주의 정책을 채택. 그러나 이같은 정책의 채택은 국제문제에 관한 새로운 수준의 참여를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국가가 되었다. 그후 약 100년이 지난 시점에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주요 채권국이 되었다. 무리는 권력이 팍스아메리카나에서 이탈하여 부상하는 아시아의 경제대국들로 이동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미국이 정치경제적 진화의 보편적 종착점이라고 주장해온 시장민주주의 모델이 무절제한 방종과 수년에 걸친 경기침체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 모잠비크 캐슈 열매 산업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방대한 경우였따.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75년 이후 신생 모잠비크 정부는 통조림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공하지 않은 캐슈열매의 수출을 금지. 수출을 금지하자 캐슈열매이 국내가격이 하락. 결과적으로 캐슈열매 통조림 공장에 일종의 보조금처럼 기능. 그러나 내전이후 국제금융기관에 지원을 요청하자 이들 기관은 대부조건으로 캐슈열매의 수출금지 해제를 요구. 미국 경제연구소는 이 조치로 인해 농민들에게는 매년 5.3달러 정도의 수입이 생긴반면 캐슈열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던 1만 100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으며, 또 다른 100만명에게는 캐슈열매 채집자들이 수입원을 잃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모잠비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모잠비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함. 모잠비크의 사례는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보여주는 명백한 경우임. 이론적으로는 시장경제모델이 적절히 기능하면 비효율적인 산업이 도태되면서 국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부문으로 잉여자원이 재투입됨.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면 모잠비크는 효율적 시장경제 모델이 아니었다. 적절한 상호조정을 방해하는 비효율이 만연해 있던 국가였다. 모잠비크에는 운송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으며, 통신기반구조가 조잡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은행체계도 손쉽게 새로운 기업을 시작하고 기업활동을 촉진할 수 있을만큼 정착되어 있지도 않았다.
- 80년대 초반이후 서구 선진국들이 보다 가난한 국가들에 제시한 경제발전 대책은 90년대 말에 매력과 정당성 모두를 상실. 이같은 현상을 비롯한 주요 이유가 정책에 입각한 서구식 금융대부의 큰 특징인 천편일률적 적용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생각. 엘리사 반 바어이언버르허라는 경제학자가 말했듯이 80년대 말 세계은행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용한 몇몇 국가들의 경제실적이 매우 저조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국민소득이 2000불 미만이었던 83개국 가운데 57개국은 동일수준에 머물렀거나 보다 가난해졌다고 랜들 피어렌붐은 말했다. 2000년경 다양한 지원계획을 적용했떤 54개 개도국 생활은 90년도보다 궁핍해짐
- 중국은 더이상 공산주의를 수출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훼손하려고 적극 노력하지도 않음. 그러나 중국은 서구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순간 독재자와 독재정부에 자금을 제공할 여력이 있으며, 그렇게 하고 있다. 제임스만이 07년도에 기술했듯이 지구상의 독재자를 무작위로 지정해보면 이 독재자가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말이후 중국은 세계도처에 동맹을 형성. 이 동맹국들은 주로 미국과 서구사회가 기피하는 국가로 구성되 있음. 이런 사례는 베네수엘라에서 앙골라,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버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 전략적으로 시장 민주주의 교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중국과 같은 통제형 자본주의에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집권당의 엘리트들과 긴밀히 연계딘 거대 에너지공사와 국영기업의 발전이다. 개도국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13개 석유회사는 오늘날 정부소유. 브라질의 페트로바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이란의 국영석유회사(NOC), 베네수엘라의 페트롤로스 드 베네수엘라, 사우디의 로열 뷰로크러시, 중국의 석유천연가스공사,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가 그렇다. 여타 부문에서도 정부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 이들 정부는 더이상 시장을 규제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음. 이들은 국영기업 또는 국가주도형 산업을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음. 이들 산업분야는 석유화학에서, 발전소, 광산, 철광업, 항만관리, 선박업, 방위산업, 장거리통신, 항공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함. 이들 중 두드러진 사례에 브라질의 우라늄광산, 러시아의 니켈광산과 제철산업, 인도의 철도, 자동차, 철강, 화학, 중국의 장거리 통신, 알제리의 농공업, 모로코의 인산염, 앙골라의 다이아몬드 광산, 카자흐스탄의 우라늄광산, 필리핀의 식량 및 주료생산, 아제르바이잔의 전자산업이 있다. 한편 천연자원이나 제조품 수출을 통해 현금을 축적한 정부들이 잉여자금을 이용해 다양한 물자, 부동산, 주식, 채권 또는 외국화폐를 구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특정국가 소유의 투자기금 또는 국부펀드의 발전을 보게된다.
-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 이면에 있는 간단한 정치적 공식 때문. 즉 권위주의적 통치로 얻어진 안정성과 시장의 위력 때문. 자국 경제를 외국의 투자에 개방하고, 노동유연성을 보장하며, 세금부담과 책임부담을 줄이고, 민간 또는 국가지출을 적절히 혼합해 일급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등 중국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일부 수용. 또한 중국 정부는 정부, 법원, 군대, 내부치안기구, 정보의 흐름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음. 중국정부와 국민은 새로운 자본주의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국민은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허용하고 있따. 로버트 케이건이 말했듯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실용주의적 규칙을 근거로 한 일종의 거래다. 즉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사생활이든 누릴 수 있다. 본인으로 국한할 경우 어느 누구도 읽거나 사고하는 방식에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벌고 부자가 될 수 있따. 정치에는 관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관심을 보일 경우 차단당할 것이다. 중국은 시장권위주의 모델을 다른 국가에 강요하지 않았지만 다른 국가들이 이같은 접근방식을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들 국가가 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우거나 모방하려 할 경우 반대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지식에는 전략적 투자와 반민영 형태의 언론매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 방대한 무역수지 흑자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봉쇄하기 위한 불태화 개입(경상수지나 자본수지 흑자로 외화가 유입되면 외환당국은 수출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외화를 매입. 이때 통화량이 증가. 통화량 증가로 인한 인플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재차 흡수하는 것을 의미)이라는 거시경제 정책, 일시적 세금감면이나 면제 그리고 여타 보조금과 같은 중앙차원의 규제수단을 통해 해외직접투자를 늘리는 방식 등이 있다.
- 중국의 부상은 정권이나 이념의 변화가 없이도 중급세력들이 단기간에 세계적 차원에서 자신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음을 입증. 그리고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은 까다로운 규칙, 무질서한 법규, 비판적 언론매체, 일반대중의 변덕을 피하면서 안정과 번영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었다. 이 중심세력들의 선택에 따라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시장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얼마나 많은 국가가 채택할지가 결정된다. 더욱이 중국식 모델을 수용한 국가의 주변국들은 정치와 문화, 역사적 성향이 비슷하므로 쉽게 수용하게 될 것이다.
- 시장권위주의 모델이 시장민주주의 모델의 우위에 개념적으로 강력히 도전해 오고 있다. 시장권위주의 모델이 서구사상의 근간에 해당하는 부분, 즉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국가의 최소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부분을 뒤집고 있다. 점차 많은 국가들이 시장권위주의라는 새로운 모델을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기 시작. 그리고 이 모델의 지원세력은 중국이다.
- 중국은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물리적, 정치적으로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로 결심했으며, 그 과정에서 놀라운 수완을 보여줌. 중국은 정면대결이 아니고 우회하여 미국에 도전. 중국의 도전은 서구식 외교정책의 약점과 단절을 활용하여 이득을 얻기 위해 간접적이고도 매우 정교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중국공산당의 합법성과 정당성은 그 전례가 없는 속도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음. 이와 같은 사실이 중국이 계획가들에게 상당한 부담. 결과적으로 중국의 외교정책에서는 도덕적 윤리적 부분을 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할 수 없는 실정이다.
- 중국에서는 대중적 비판이나 학생들의 논쟁이 제대로 살아 있다. 그러나 비판의 많은 부분은 서구사회의 격변기 이야기나 당시로부터 20년 전에 천안문 광장의 시위대에게 느낄 수 있었던 체취와는 전혀 다르다. 오늘날 중국 학생들은 특정 영역에서 정부의 특정 정책 또는 행동을 비판. 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일당체제 또는 정치권력에 대한 정부 독점의 합법성에 도전하는 수준은 아님. 사실 이같은 대중비판에서는 문제가 체제차원의 증상이 아니고 개인적 차원으로 남아 있는 한, 정부당국이 문제를 알게 되면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실제로는 이들이 비판으로 정부 독점권은 강화된다.
- 중국공산당은 공자의 기본사상에서 정당성과 힘을 얻고 있다. 공자의 사상은 역할중심의 윤리체계에 근거. 공자의 윤리체계에서는 서로가 자신의 역할을 이행하는 한 피지배자와 지배자가 상대방의 입지를 존중하고 보호하려 한다. 따라서 공자가 생각하는 조화로운 사회의 이상은 이와 같은 것이다.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복종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삶, 교육, 그리고 외세의 위협에서 안전을 보장한다는 중요한 의무를 수행하는 한 지속된다. 중국 농민들에게는 지배자가 자신들의 의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추구했던 전통이 있다. 이와 같은 피지배자와 지배자간의 거래는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통치 엘리트는 인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인민들은 통치 엘리트들의 정치적 권력의 독점을 묵인
-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현상이 아님. 중국 노동자들이 국가적으로 미국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1850년대 중반. 많은 중국인들이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 서부해안으로 몰려왔다. 황금러시가 주춤해지고 광산이 폐쇄되자 중국인들이 건설현장이나 레스토랑, 세탁소 뿐만 아니라 가정의 잡일로 몰려듬. 이들은 곧바로 차이나타운을 조성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 번창하고 있다. 그러나 1870년대 미국의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들은 인종편견을 이용해 서부지역에서 반중국 운동을 전개했따 이들은 황화의 공포를 확산시킴. 살롱의 문에는 중국인과 강아지 금지라는 안내판이 부착됨. 미국인의 일자리를 차지한 중국인들은 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도 거의 모든 일을 하고자 함으로써 임금하락을 조장했다.
- 지난 5년간 미국의 생산시설이 중국뿐만 아니라 멕시코, 인도,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국가들, 동유럽, 캐나다로 대거 이전해갔다. 예를 들면 3개월 동안의미국의 생산시설 이전현황을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이들 중 23%가 중국, 27%가 멕시코, 12%가 인도, 15%가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아일랜드, 이스라엘, 뉴질랜드, 스웨덴, 영국으로 이전. 따라서 미국 의회의 주장과 달리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급격한 평가절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하면 미국의 성장사이클을 지원해주는 중국 자금이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함. 빈번한 주장과 달리 위안화를 평가절상한다고 미국 제조업이 성장하는 것도,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님. 예를 들어 컴퓨터, 장난감, 유사제품과 더불어 미국의 면직물 수입이 중국에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또 다른 신흥시장으로 이동하게 될 거. 이렇게 한다고 보호되는 미국의 일자리는 거의 없다.
- 제임스팰로스가 지적했듯이 미국 정치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와 비즈니스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좋아함. 이들은 무역흑자를 줄이고 보다 공정한 게임을 하라고 중국에 촉구.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들은 무역흑자를 통해 축적한 달러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미국의 국채와 미국회사 주식에 투자하라고 중국 금융업자들에게 촉구. 우리는 이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중국인이 미국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일자리를 돌려줄 수는 있으나, 그 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 보수적인 구시대인물들이 새로운 인물인 개혁성향의 기업가들과 보조를 맞추고, 전국적으로는 티베트와 신장성의 소수민족 또는 종교집단들을 무참히 억압하는 한편 조화로운 사회를 주장하면서, 국가적인 신화를 강조하지 않는 정부에 군의 고급간부들이 충성하도록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보를 검열하면서 정보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법적 책임에 대한 요구를 회피하면서 비즈니스를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계약법 등 법적 골격을 다지고, 부정부패를 소탕하면서 당의 통제를 분권화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중국의 동부 해안과 강변 도시 주변에 출현한 새로운 중산층의 삶의 질 향상에 보탬이 되었던 6억 5000만명 가량의 시골사람 내지는 도시로 이주한 하층계급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 그렇다면 현대 중국은 모순투성이다. 그러나 통치 엘리트들은 지난 20년간 여러부분으로 나뉜 거대한 공동체를 통치한다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위해 부러뜨리기보다는 구부리고 변화에 적응하면서, 지속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균형을 유지해왔다.
- 중국 내부의 많은 모순을 인식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애초에 찾고자 했던 중앙통제력의 부식은 분명치 않거나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지휘부가 중앙통제력의 부식을 우려하고 있는 것은 분명함. 중국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 관심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리고 급속히 변화하는 오늘날의 중국에서 변함없는 부분이 있다면, 중국 공산당이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것. 보다 구체적으로 혼돈의 두려움, 정치적 사회적 통제력 상실의 두려움이 통치체제 전반에 깔려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우려는 매년 봄 재현되는 양쯔강의 범람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중국 지도자들은 왕조의 역사에 대해 일종의 공포감을 느낌. 중국 왕조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경제적 혼란, 농민봉기, 왕조의 붕괴를 반복. 진나라, 한나라, 수나라, 원나라, 명나라를 포함한 적어도 5개 왕조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멸망했다. 중국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의 역사가 있다. 이와 같은 두려움이 세계 속의 중국의 모습 전반에 깔려 있다. 로버트 스티븐스은 다음과 같이 진기한 부분을 간파하여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중국에서 살아 숨쉬면서 세계무대에서 기이한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훌륭한 이웃이라는 새로운 중국의 정체성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지킬박사의 중국은 평화유지활동부대를 파견하고, 재난구호활동을 지원하며, 6자회담을 주관하고, 세계경제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이웃인 중국의 이면에는 색다른 두번째 모습이 숨겨져 있다. 하이드씨의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낙후된 정권에 자금을 지원. 이같은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최악의 핵확산국가에게 대량살상무기 제조을 위한 지식과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종종 불량국가를 제재하려는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을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개의 중국, 즉 훌륭한 이웃인 중국과 불량국가인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공존. 이같은 이중적 모습은 중국에 대한 서구사회의 접촉의지 내지는 강압적 성격의 서구의 영향력을 통해 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 전반적으로 이는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국가적 위상이 자국 내부에서 통치력을 유지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노력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 즉 불변의 역사적 사실인 중국 내부의 혼돈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 중국은 단일의 정책 결정을 통해 서구 개발경제학 이론에 치명타를 입혔다. 냉전에서 승리한 이후 적어도 20년 동안 제1세계 국가들은 국제체제의 미래를 조성할 능력, 이 서구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가치관을 겨냥해 이와 같은 미래를 점차 유도할 능력이 있다고 가정. 우리는 또한 그런 자질이 워싱턴 컨센서스와 같은 경제개발 개념을 적용하는 데서 나온다고 가정했따. 워싱턴 컨센서스에서는 보다 가난한 국가들이 서구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다고 가정.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그 국가들은 경제적 정치적 거버넌스측면의 조건과 구조개혁을 고려한 수많은 처방전을 수용해야만 했다. 즉 투명성, 법의 지배, 반부패 조치, 사회적 투자, 보다 효과적 예산운용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러한 처방전은 서구사회가 생각한 일종의 당근과 채찍이었다. 그런 것을 통해 개도국에게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세계은행 선임 경제전문가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많은 경우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경제발전을 위한 필요조건도 그리고 충분조건도 아니었다고 말했따.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8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스티글리츠가 말한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다. 이 기간에 경제분야의 구조개혁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했는데, 6%이상에서 2%이하로 하락하기도 했듬. 빈곤층과 실업률은 증가하고 개인의 수입이 감소. 이 기간에 서구 경제개발 처방전의 본질은 민영화와 자유화, 가격안정을 강조하는 자유시장 근본주의 공식을 완벽하게 적용하는 것. 그 과정에서 성공의 척도로 국내총생산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그런데 국내총생산은 국가가 보다 빈곤해지는 상황에서도 증가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또한 토지개혁, 금융부문의 건전성, 교육수준, 공공 및 민간부문의 좋지 못한 거버넌스의 문제와 같은 주요 요인들을 간과. 이런 개혁의 많은 부분은 기술관료와 특정집단에는 도움이 되지만, 소득분배와 사회정의 측면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었다.
- 미중관게를 특별한 G2관계로 격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님. 미국과 중국은 이해관계, 가치관, 우선순위가 서로 다름. 좋은 소식은 미국과 중국이 경제성장 증진, 개방된 세계경제 유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 기후변화 근절과 같은 공통목표가 있다는 가실. 그러나 좋지 못한 소식은 30여년 동안의 접촉에도 불구하고 국제체제의 작동방식에 관해 미국과 중국이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주권의 문제, 제재, 무력사용의 조건에 관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정치와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폭넓게 수용가능한 공동의 가치관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 반면 중국은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음. 아시아에 투자하는 외국계 회사들은 자회사의 특허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반면 중국에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틀이 없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완화 계획과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지원계획 등 진정 아프리카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전시켰다.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독재국가들과 통상관계를 맺고 있음. 미국은 미얀마, 이란, 수단의 정부를 유엔의 이름으로 비난했다. 중국은 이런 비난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동을 걸었따. 백악관은 미중 군사관계 측면에서 투명성을 촉구했지만 중국은 지속적으로 미온적. 요지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자국 내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목표는 같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목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사를 사용하며 미중관계를 묘사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성공적 동반자 관계보다는 비난과 실망만 초래할 것이다.
- 겔브는 오늘날 국제체제의 세력구조가 상이한 수준의 피라미드처럼 보인다고 생각. 가장 높은 수준에 미국이, 바로 아래에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라는 주요 8강이 위치. 이들이 미국과 함께 세계 권력을 공유하고 있다. 다음단계에 석유와 가스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 베네수엘라, 이란, 나이지리아, 또다시 러시아가 있다. 이들은 천연자원으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 그 아래 멕시코, 파키스탄, 남아공, 대한민국, 타이완과 같은 중간수준의 지역국가가 있다. 이들은 자국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음 단계에서 자신만을 돌보며 어느 누구에게도 거의 불편을 주지 않는 책임감 있는 국가들이 있는데, 그런 국가에는 스위스, 싱가포르, 노르웨이, 보츠와나, 칠레가 있다. 그 아래 내전과 대량살상과 무시무시한 독재로 인해 여러 문제를 던지고 있는 불량국가와 실패한 국가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언론매체 집단, 테러집단, 비즈니스 집단과 같은 비국가행위자라는 급속히 부상중인 계층이 있다. 이들이 세계적으로 정부나 사회와 긴밀히 연계된 상태에서 세력을 공유하고 있음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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