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에 해당되는 글 62건

  1. 2024.04.05 인권으로 살펴본 기후위기 이야기 1
  2. 2024.04.05 리더의 인문학 1
  3. 2024.04.05 20240405
  4. 2024.04.04 니체와 걷다
  5. 2024.04.04 기꺼이 나로 살아갈 것 3
  6. 2024.04.04 20240404
  7. 2024.04.03 20240403
  8. 2024.04.02 1일 1강 도덕경 강독
  9. 2024.04.02 거인들의 인생문장 1
  10. 2024.04.02 집중력 설계자들

- 기후 변화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이나 지역 자영업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가 인권, 불평등의 문제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8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폭염 민감계층 실태 조사'에서 지금 생활 공간의 온도가 적정한지, 에어컨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물었는데요. 더위 때문에 저소득층이 일반집단에 비해 큰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더위를 견디기 힘들지만 전기 료 탓에 에어컨 사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더워도 그냥 참고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인권 문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소득층 주민들의 태도였어요. 취재 전에는 쪽방촌처럼 열악 한 주거 환경에 사시는 분들은 폭염과 한파 같은 이상 기후에 화가 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체념하신 상태였 어요. 자신들의 삶은 늘 그랬다면서 그저 에너지 바우처 같은 지원이나 늘려 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기자로서 당사자 목소리를 존중 해야 했지만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저희가 다른 식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기후 변화 문제를 심각 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일반 가정은 90%가 넘는데, 저소득층은 60%예요. 피해는 저소득층이 더 보는데 문제의식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높은 거죠. 이는 기후 위기에 관해 당사자가 직접 발 언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도시 중산층 그리고 교육 수준이 높은 40~50대가 가장 많은 발언을 하 고, 친환경 인식도 높다는 연구가 있어요. 복지 전문가들도 기후 위기가 저소득층에게 더 치명적일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 1998년 이후부터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히로시마 원자 폭탄 31억 개가 터진 만큼의 에너지가 우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지구에 잡혀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후 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80만 년 동안 빙기와 간빙기가 10만 년 주기로 반복했습니 다. 이는 인간이 일으킨 100년 동안의 변화와는 달리 10만 년에 걸 쳐 일어난 변화이기에 자연스럽죠. 이때 자연에서는 1000년에 약 1도 상승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기온 상승 속도입니다. 인간은 화석 연료를 태워 지난 100년 동안 약 1도를 상승시켰습니다. 인간에 의 한 기온 상승 속도는 자연 상태일 때보다 10배나 빠릅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는 크기보다 속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기온 변화 속도가 커진다는 것은 기온 변동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극단적인 날씨가 크게 증가하여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 다. 1980년도에 전 세계적으로 약 250개 정도의 극단적인 날씨가 발생했어요. 2019년에는 그 수가 800개를 돌파합니다. 지난 40여 년 사이에 발생 빈도가 세 배 이상 증가한 거예요.
- 현재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라면 기후 위험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1.5도는 2030년대에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 다. 위험을 헤쳐 나가는 것도 한계에 부딪혀 결국 파국에 도달할 수 도 있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2도는 2050년대에 일어날 수 있습니 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우리와 직접 상관없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기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기후 위기는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모든 위험과 질적으로 다릅 니다. 바로 '회복 불가능성' 때문이에요. 지금까지는 아무리 큰 위 기가 있었다고 해도 지나고 나면 회복할 수가 있었어요. 안 그랬다 면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있을 수가 없겠죠. 기후 위기는 점진적으 로 조금씩 다가오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느닷없이 급격한 변화로 다 가올 수 있습니다. 젖은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데 도로 표면 온도 가영상 1도에서 영하 1도로 변하면, 약간 미끄럽던 도로가 순식간 에 치명적인 도로로 바뀌죠. 이처럼 어느 순간에 전체 균형이 깨져 버리는 상태가 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 합니다. 티핑 포인트는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되어 버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지구 가열이 커질수록 결과가 원인이 되어 더 큰 결과 를 낳는 순환이 일어나 극단적인 기후 위기가 가속됩니다. 이러한 조짐이 지금 전 세계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 기득권 집단들은 우리나라 자연환경으로는 재생 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감당 못 할 것이고, 재생 에너지 폐기물 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결국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므로 그 대안으로 핵 발전 확대를 주장합니다. 태양광은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우리나라는 '재생 에너지의 나라' 독일보다도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습니다.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보다 작기 는 하지만 풍력 발전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보존해야 하는 농지와 산지가 아니어도 건물, 도로와 철도 주변, 주차장, 댐, 저수 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 습니다. 서울시 크기만 한 면적을 골프장으로 사용하는 게 우리나라입니다.

- 우리는 내일의 위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죠. 현재의 전력 공급 체계에서 핵 발전은 필 요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근거는 없습니다. 핵 발 전은 미봉책일 뿐이며 대체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핵 발전은 '위험과 혜택' 수준뿐만이 아니라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선진국들은 화석 연료 기반의 산업을 무너뜨리고 재생 에너지 기반의 산업을 일으켜 새로운 세상에서도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합 니다. 우리나라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변화하 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할 처 지예요. 세계 시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합니다. 일본의 미쓰비시가 튀르키예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수주한 핵 발전소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미 투자한 수조 원은 매몰 비용으로 처리 했습니다. 계속 진행할수록 더 큰 손실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생 에너지 전환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계를 뛰어넘는 재생 에너지 기술 혁신 역시 활발합니다. 우 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 결정자와 지도층이 전환 시대에 흐 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재생 에너지의 현재 한 계를 넘으려는 노력과 전망에 대해서는 눈감고, 현재 한계에만 잡 혀 있기 때문입니다.

- 기후 위기는 국경을 가로질러 진행되는 전 지구적 문제이자 전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해결책 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기후 위기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모두의 장기적 이익이 침해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사 결정자의 무책임이 미래 기후 위험을 발생시키지만, 미래 세대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책임 져야 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공정하죠. 기후 위기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나기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기후 위기에서 벗 어날 수 있습니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칩니다. 기후 위기보다 인간에게 더 제한을 가하는 지배적인 조 건은 없어요. 우리가 10미터 높이에서 낙하한다고 가정해 보죠. 너 무 위험하니 중력 가속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타협할 수 없습니 다. 자연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지금껏 달려왔던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가 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기후 위기는 문명 자체의 위기이므로 해오던 방식대로 하면 미래로 갈 수 없어요. 지금 세대가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그만큼 우리 세대의 책임 이 큽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해방적 파국'을 말했습 니다. 우리 앞의 파국은 지금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 리에게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어쩌면 기후 위기라는 계기가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 소득 수준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살펴보면, 전 세 계 상위 10% 소득 계층의 소비 기반 배출량이 대략 50% 차지합니 다. 이 사람들이 사서 쓰는 물건 만드느라 그만큼의 탄소를 배출한 다는 뜻이에요. 하위 50% 소득 계층은 대략 10%를 차지하지요. 쉽 게 말해 최상위 10%의 사람들 8억 명 정도가 온실가스 전체의 절 반을 배출한다는 뜻이에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많이 버는 사람들은 많이 쓰잖아요. 오늘날 소비 행위는 그 자체로 온실 가스 배출 행위입니다.
지난 1990년에서 2019년까지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누구의 책임일까요? 전 세계 50%의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은 16%에 불과하지만, 상위 1%의 책임은 무려 21%나 됩니다. 하위 50%의 가난한 사람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전등을 켜서 밤 에 불을 밝히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을 거지만, 상위 1%의 부유한 이들의 배출량 증가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더 커다란 자동차를 몰고 거대한 저택에서 호화로운 삶을 탐닉했기 때문일 겁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부유한 나라의 중·저소득 계층의 사람들만 배출량이 줄어든 겁니다. 전 세계가 증가했는데 이 계층만 배출이 줄 었어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하나는 환경적 실천들, 친환경적 생활 방식이 증가했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잖아요. 일회용품 안 쓰고, 유기농 제 품 사용하고, 걸어 다니고 합니다. 부유한 국가들의 중산층들이 그 렇게 탄소 배출을 줄여온 거예요. 그러나 아마도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을지 모릅니다. 부유한 국가에서도 나타난 사회적 양극화 와 불평등 심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의 임금이 하락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탓에 소비를 하고 싶어도 못 한 결과 그 계층의 배출이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에요

- 여러분, 혹시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우주 관광'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 옛날에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이들이 우주선에 올랐습니다. 조종사, 과학자, 엔지니어처럼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 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주로 나갈 수 있어 요. 수백억 원 되는 비용을 내고 부자들이 우주 비행선에 타기 시작 합니다. 그중에는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있었어요. 우 주선 발사장에서 우주로 올라가는 데까지 11분 걸립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이 75톤이나 됩니다. 참고로 한국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이 1인당 14.7톤입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뤼카 샹셀은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극단적인 부는 극단적인 오염을 가져온다."
이제 한국 이야기를 해볼까요. 2021년 작성된 '한국의 소득 및 탄 소 불평등 현황'이라는 자료를 보면 상위 10%가 가져가는 소득 비 중이 계속 늡니다. 1980년에 32%였다가 2000년대 이후로 46~47% 까지 늘어났습니다. 앞서 전 세계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2% 를 차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아직 괜찮은 건가 요? 한편 소득 하위 50%는 1980년에 23%였다가 지금 한 16% 정 도까지 내려갔습니다.
- 양극화의 심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현상이에요.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었습니 다. 국가가 세금으로 부를 재분배하고 복지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 쳤어요. 그러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소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작은 정부, 기업의 자유, 무역의 자유가 강조되죠. 쉽 게 말해 돈 버는 데 방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후로 복지는 줄고 양극화는 심해집니다.
한국도 이런 흐름과 비슷하게 가죠. 그 결과 빈부 격차는 물론 탄 소배출 불평등도 강화됩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인당 평균 배출량이 14.7톤인데 상위 1%가 배출하는 양이 180톤입니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각성해서 지구를 살리자는 건 신 화에 불과합니다. '너, 배달 음식 시켰어? 지구를 생각해.' 흔한 캠 페인 내용이잖아요. 물론 이런 홍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해요.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혹은 신분 상승을 위해 끊임 없이 경쟁합니다. 이런 심리적·사회적 압박은 더 많은 소비로 치 닫게 해요. 내가 저걸 못 사면 왠지 뒤처지고 불행한 기분이 들어 요. 쫓기듯이 소비합니다. 그래서 소비주의의 압박 자체를 전반적 으로 낮춰야 한다고 거예요. 그래서 히켈은 다소 급진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최고 부유층들의 소득을 줄이는 모든 정책은 생태적으 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해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한 부유세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하겠죠. 결론적으로 최상층의 구매력 감소는 그 자체로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기후 위기의 해법은 평등이라는 겁니다. 평등한 사회가 탄 소 배출을 줄인다는 거예요.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비와 지출이 많이 줄 었어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동차, 가전제품 지출이 상승했어요. 주로 부자들이 많이 샀습니다. 다들 집 밖에 안 나올 시기였잖아요.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고 돈을 쓸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차도 사고 가전제품도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런 품목은 탄소 배출이 많습니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전 체 탄소 배출량은 줄었지만, 상위층은 오히려 더 많이 배출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국에 전 세계 최고 부자들은 돈을 더 많이 벌었어요. 재난이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죠.
- 그런데 누군가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면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녹색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시스템을 유 지하면서 기후 위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유럽을 그 증거 로 생각하죠. 실제로 유럽은 1990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 지속적으 로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 동안 온실가 스 배출량은 떨어뜨렸죠. 딱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세상에 이보다 좋 은 결과가 없어요. 과거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면서 경제 성장을 추진 해온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전망을 보여 준 결과이니까요. 그야 말로 '녹색 성장'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유럽이 자 신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떠넘긴 결과라는 거예요. 유럽 국가들은 지금 제조업이 별로 없어요. 그럼 제품들은 어디에서 만들까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만들어요. 당연히 온실가스도 만든 쪽에서 발생시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 배출하여 만들어진 수입품을 쓰기 때문에 자신들의 배출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겁 니다.
유럽의 깨끗함은 많은 개발 도상국한테 오염을 떠넘긴 결과입니 다. 탄소 제국주의니 탄소 식민주의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입니다. 만약 이런 '오염 떠넘기기'가 없었다면, 유럽이 경제 성장 을 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래서 녹색 성장 전략 자체가 전 지구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 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유럽을 대신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 계의 공장' 중국도 '녹색 성장'을 한다면, 지구상의 다른 나라에게 전가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 끊임없이 화석 연료를 채굴해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사이클이 지구상에서 반복되는 한 기후 위기 극복은 불가능합니다. 일부 지역에서 온실가스를 줄인 것처럼 보여도 지구 전체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학자들의 딜레마도 여기에서 비롯해요. 전 세계 경제 성장률을 2~3% 정도 유지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여서 지구 상승 온도를 1.5도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나 애를 먹 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인 대책이 나오는 거예요. 전 세계 농토를 밀어서 숲을 만든다든지 우주에 인공 그늘막을 만든다든지,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은 이미 있습니다. 물질적 생산 자체가 줄어드는 방식, 소위 탈 성장이라고 불릴 만한 방식의 시나리오를 개발해야 해요. 경제 성 장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던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야 기후 위기 극복이 가능합니다. 또 그래야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동의하 고 있어요.
- 그러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을까요? 지난 80만년 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분석해 보니까, 그래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해요. 대략 10만 년을 주기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변 화를 했고, 그에 따라서 지구 온도도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했습니 다. 인간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도 자연 상태에서 농도가 올라갔 다 낮아졌다 했다는 뜻입니다.
인류가 없던 시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는 거대한 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판이 계속 떠다녀요. 과거에는 하나의 거대 대륙을 형성했다가 떨어져 나왔다가 뭉치기를 반복했습니다. 대륙 운동이 활발할 때는 화산 활동이 빈번해집니다. 바로 이것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게 돼요. 지구 온도도 함께 상승하면서 온난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시 줄어듭니다. 이유는 풍화와 침식 작용이 에요. 여러분 교과서에서 배웠죠? 암석이 풍화, 침식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가져가요.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지구 온도 는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과거 200만 년 동안의 기후환경을 복원해 그에 따른 지역별 인구 분포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못 막으면 인류 대이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점점 줄어들잖아 요. 그런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외부인이 자기 땅 에 들어와서 사는 걸 쉽게 허락할 리가 없잖아요. 분쟁이 생길 수밖 에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기후 위기에 취약한 지역을 1등부터 25등까지 순위를 매겨보니까, 그중 13개 지역이 내란 상태입니다. 난민이 많이 생겼죠. 이 사람들 지금 다른 나라에는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처럼 잘 받아 주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소극적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8년에 제주도로 예멘 사람 500명이 난민 신청을 해왔을 때 반대 여론이 상당했어요. 그러니까, 생각만큼 이동이 쉽지 않아요.
- 우리나라 전기차 이용 실태를 조사해 보니까 평균적으로 내연기관차 이용자보다 전기 차 이용자가 주행 거리가 많습니다. 아이 오닉 전기 차를 기준으로 1년에 2만 5000킬로미터 정도 탑니다. 전 기를 한 달에 약 388킬로와트를 사용해요. 그런데 전기 1킬로와트 만드는 데 약 840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천연가스로 만들 면 420그램이 나오고요. 그래서 제가 계산을 쭉 해보니까 결과적 으로는 아이오닉 전기 차를 쓰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1년 동안 배출 하는 이산화탄소량이 2.5톤이 나옵니다. 반면에 내연 기관차인 아 반떼를 1년 동안 1만 킬로미터를 탄다면 약 1.3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요.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전기 차를 타는 사람이 내연 차 타는 사람보다 배출량이 더 많아요. 그래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재생 에너지를 쓰는 전기 차여야 하는 거예요. 수소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료인 수소에도 종류가 있어요. 재생 에너지인 태양광, 풍력을 이용해서 물 분해를 해서 나온 수소는 '그린 수소' 라고 합니다. 이걸 사용하면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 어요. 그런데 부생수소라고 해서 석유 화학물이나 철강 등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많이 써요. 이건 따로 설비를 만들 필요 가 없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낮습니다. 1킬로그램을 얻는 도중에 이산화탄소가 10킬로그램을 배출해요.
지금 상태라면 수소를 쓰면 쓸수록 탄소 배출이 늘어요. 그럼에 도 전기 차와 수소 차를 키우는 건 일단 시장을 만들자는 차원이에 요. 그다음에 재생 에너지 비율을 높이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정 책의 면면을 보면 기후 변화 대응이라기보다는 관련 산업 키우기 의 측면이 커요.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면서 영국 시민들 처럼 의회에 가서 입법권을 요구해야 할 지경입니다.

- 다시 '핏포55' 이야기로 돌아오면, 수송에서는 내연 기관 금지가 있었고요. 그다음에 항공 산업 같은 경우에는 기본 배출권을 안 주 기로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운행하려면 무조건 전부 다 배출권을 사와야겠죠. 그런 데다가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 가 능한 항공 연료 혼합을 의무화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 연료 같은 게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런 연료는 값이 세 배나 비싸요. 기업 입장에서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다음에, 항구에 배 들어오는 배가 있잖아요. 이건 총량을 딱 정합니다. 이제 세계 여러 나라 물 건을 대량으로 실어 나르던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나가는 거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 쓰레기 소각장도 짓는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격렬 하게 반대하죠? 그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같은 곳에서는 7000억을 들여서 소각장 을 짓는데 소각장 위에 스키장을 설치하고 기술로 연기도 다 잡아 버리기 때문에 냄새도 안 납니다. 덴마크의 아마게르 바케 열병합 발전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소각장이 주는 피해를 모 르고 지내요. 주변에는 카페 시설도 많고 해서 오히려 관광 명소가 돼 있거든요. 오스트리아에는 지하철 바로 옆에 소각장이 있습니 다. 일본도 그렇고, 외국의 쓰레기 소각장은 음악관, 미술관 등 문 화 시설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지금 태양광 발전은 대기업 중심입니다. 주민들이 출자자로 참 여하는 시민햇빛발전소와 같은 소규모 사업자들이 역할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를 도입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 사업자에게 일정량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의무화 한 거예요. 따라서 한전은 일정량의 재생 에너지를 구입해야 해요. 그런데 입찰로 재생 에너지를 구매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로 가 격을 낮출 수 있는 대기업이 유리합니다. 이렇게 하는 나라는 전 세 계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두 군데밖에 없어요. 다른 데는 전부 다 고정 가격제입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재생 에너지 사 업을 시작하죠. 결국 여기서도 시장 논리로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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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문학

인문 2024. 4. 5. 07:20

- 지혜로운 사람은 돈을 써서 몸을 빛나게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상하면서 돈을 모은다. (대학)
- 증자가 말하였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을 자기가 짊어졌으니 또한 책임이 무겁지 않은가? 목숨이 다하여야 그칠 수 있으니 또한 갈 길이 멀지 않은가?"
보라. 증자는 그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간다. 그것 하나다. 앞서 공 자와 증자의 대화에서도 증자의 뜻이 드러난다. "나는 일이관지다." 선생이 주거니 하고 "네. 충서죠." 제자가 받거니 한다. 충서란 무엇인가? 충은 한결같은 마음이요, 서는 너와 같은 마음이다. 늘 한결같이, 내 마음이 너와 같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지만 내게 주어진 인생길, 마음 맞는 그대와 함께라면 외롭지 않으리라.
- 성질 급한 이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뭔가와 쿵! 하고 부딪쳤다. 뒤를 돌아보니 어디선가 빈 배가 떠내려와 부딪힌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아 노를 저었다. 얼마를 가다 또 다른 배와 부딪쳤는데 그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성질 급한 이는 상대에게 비켜 가라고 소리치고 화를 냈다. 그가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화를 낸 까닭은 무엇인가? 앞의 배에는 사람이 없었고 뒤의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장자, 산목)
-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좁은 공간에 사는데. 여름벌레에게 얼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계절에 얽매 있는데." (<장자> <추수>)
-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무엇을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고 잃었다고 근심하지 않는다.
사물에도 운명이 있어 내게 속할 때가 있고 사라질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자》 <추수>)
- 늪에 사는 꿩은 곡식 한 알을 주워 먹기 위해 열 번을 뛰고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백 번을 뛴다. 하지만 원하는 것이 다 있다 하여 닭장에 갇히길 원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자유로이 날며 스스로 양식을 구하려 한다. (<장자> <양생주>)
- 남을 위한 일은 보람 없고 나를 위한 일은 보람 있다. 부처는 자등 명이라 했다. "누구에게 의지할 생각 말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 의지하라." 자신에서 출발해서 자신으로 귀결하란 말씀이다. '남을 위 한 일'이란 닭장에 갇힌 닭이 하는 일이다. 닭은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 고 달걀을 낳는다. 달걀은 오로지 주인에게 돌아간다. 닭은 뛰지도 날 지도 않는다. 평생 남을 위한 일만 하다 죽어서도 남에게 먹힌다.
꿩은 어떤가? 생존을 위해 열 번을 뛰고 백 번을 난다.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남을 위한 노동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자유 로이 날며 스스로 양식을 구한다
- 위나라의 부부가 기도하러 갔는데 부인이 말했다.
"저희가 베 백 필을 공짜로 얻게 해주십시오."
남편이 물었다.
"왜 그것밖에 바라지 않소?"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첩을 얻을 테니까요." (《한비자> <내저설> 하편)
- 현명하고 어질면서도 죽임을 당하고 굴욕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군주에게 유세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현명하고 어진 군주가 아니면 들어주지 못합니다. (<한비자> <난언> (김원중 옮김))
- 조짐이란 무엇인가? 옛 중국인들은 거북 등을 태워 그 갈라지는 형상을 보고 점을 쳤다. 이때 갈라지는 금을 조라 했고, 배를 만들 때 나무와 나무 사이 틈을 짐이라 했다. 조는 앞에 일어날 일을 의미하고 짐은 하찮은 것을 뜻한다. 하찮은 것 때문에 미래에 큰일을 당하기 일 쑤이니 조짐의 조어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조짐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라' 한비자가 경고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어떻게 할까? 떠나야 한다.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후회도 미련도 다 버리고 결단해야 한다. 조짐이 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떠난 사람 중 하나가 공자다

- 노순규는 칭찬의 감동 효과와 조직관리>라는 책에서 칭찬할 때 꼭 지켜야 할 원칙을 이야기한다.
*칭찬할 일이 생기면 즉시 칭찬하라.(묵히다 뭐 되는지는 다 알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개적으로 칭찬하라. (골방에 가서 두루뭉술하게 칭찬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 대하듯 칭찬하라.(어려운 일이지만 효과는 크다.)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면 칭찬할 일이 보인다.(먼저 관점을 갖고 나면 칭찬은 따라온다.)
*가끔 스스로를 칭찬하라. (보상은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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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5

Quote of the day 2024. 4. 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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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걷다

인문 2024. 4. 4. 07:19

-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막연하게 여정을 보내는 걸 여행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만 사고 돌아와도 여행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만남과 체험을 즐거움으로 삼는 여행자도 있다. 여행지에서 관찰하고 경험한 일을 내버려두지 않고, 일과 생활에서 살려내 풍요로워지는 사람들이다.
인생이라는 여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경험하거나 보고 겪은 일을 당시에 한정된 기념품으로 여기면, 실제 인생은 판에 박힌 듯이 반복된다. 무슨 일이든 당장 매일 활용하고, 언제나 열린 자세를 지니는 것이 이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잘못된 평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자신이 생각하듯이, 바라는 대로 평가받는 일 따위 거의 없다. 평판이나 평가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기울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하루를 마치고 그 하루를 반성한다. 그러면 대개 불쾌하고 어두운 결과에 다다른다. 냉정하게 반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피곤해서다. 피로할 때는 반성한다든지 되돌아본다든지, 하물며 일기 따위를 써서는 안 된다. 자신을 쓸모없게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건 피곤하다는 증거다. 그럴 때는 지체 없이 자신을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아침놀)
- 하루에 하나 작은 일을 단념해본다. 최소한의 일도 쉽게 단념하기 어렵다면, 자제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작은 일에 자제심을 발휘하지 못하면, 중대한 일에도 자제심을 발휘해 성공하기 어렵다.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 지금까지 내가 진실로 사랑했던 건 무엇인가. 내 영혼을 높이 들어 올린 건 무엇인가. 무엇이 내 마음을 채우고 기쁘게 했던가. 지금까지 어떤 것에 넋이 나갔던가.
이 물음에 답할 때 자신의 본질이 분명해진다. 그것이 당신 자신이다. (쇼펜하우어)
-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고 싶다면, 깨어났을 때, 오늘 하루에 적어도 한 사람에게 한 가지 기쁨이라도 줄 수 없을까 생각하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직업은 우리 생활의 척추이다. 척추가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일은 우리를 악에서 멀리하고 쓸데없는 망상을 품지 않게 한다. 그리고 기분 좋은 피로와 보수까지 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즐거워하지 않는 건 좋지 않다. 괴로운 일에서 일단 눈을 돌려서라도 지금을 제대로 즐겨야 한다. 가정에 기뻐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가 우울해하는 것만으로, 집 안은 우울하고 어둡고 불쾌한 장소가 되고 만다. 가능한 행복하게 살자. 이를 위해서 우선 지금을 즐기자. 솔직하게 웃고, 온몸으로 이 순간을 즐기자. (즐거운 학문)
- 모든 '처음'은 위험하다. 그러나 어떻게든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허물을 벗지 않은 뱀은 파멸한다. 인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낡은 생각의 허물을 언제까지나 뒤집어쓰고 있으면, 머지않아 안쪽부터 썩기 시작해 성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죽고 만다. 언제나 새롭게 살아가려면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직업에 전념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이 있는 건 은혜의 일종이다. 인생과 생활의 걱정에 사로잡힐 때, 익숙한 직업에 몰두함으로써 현실 문제가 가져오는 압박과 근심거리에서 눈길을 돌려 틀어박힐 수 있다.
- 괴로우면 달아나도 상관없다. 싸움을 계속하며 고생한다고 그만큼 사정이 호전된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을 지나치게 괴롭혀서는 안 된다. 주어진 직업에 몰두하면 근심거리로부터 달아나게 되고 반드시 무언가 변화가 찾아온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죽는 것은 정해져 있으니 쾌활하게 살아가자. 언젠가는 끝나는 까닭에, 온 힘을 기울이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기회는 언제나 지금이다. 큰 소리로 한탄하는 것 따위는 오페라 배우에게 맡겨두자. (힘에의 의지)
- 창조적인 일에 매달릴 때는 물론, 평상시 일할 때도 가벼운 마음을 지니면 잘된다. 그건 유유히 비상하는 마음, 하찮은 제한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다.
타고난 이 마음을 위축시키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면, 여러 가지 일을 가뿐히 처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여느 때와 같은 일상과 일 속에서, 문득 되돌아보거나 먼 곳을 바라보았을 때 산과 연이은 숲, 아득한 수평선과 지평선, 이런 확고하고 안정된 선이 있는 건 대단히 소중하다. 보기에는 단순히 익숙한 풍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풍경 속 굳건하고 안정된 선이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충족과 안도와 깊은 신뢰를 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하늘 높이 솟아오르려는 나무. 그런 나무가 지독한 바람과 거친 기후 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 증오, 질투, 아집, 불신, 냉담, 탐욕, 폭력, 또는 모든 의미에서의 불리한 조건, 많은 장애. 대체로 지겹고 고통스러운 것들이지만, 이것을 전혀 겪지 않은 이가 강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러한 악과 독이야말로 극복할 기회와 힘을 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강인함을 키워주는 것이다. (즐거운 학문)
- 정말로 자유롭고 싶다면, 어떻게든 기분을 붙들어 매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제멋대로 하게 놔두면, 그때마다 자기를 휘두르거나 감정적인 방향으로만 향하게 하여 결국은 자기를 부자유하게 만들고 만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버섯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축축한 장소에서 돋아난다. 같은 일이 인간의 조직과 집단에서도 일어난다. 비판이라는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폐쇄적인 곳에서는 반드시 부패와 타락이 생겨나 퍼지게 된다. 비판이라는 통풍을 하라. 비판은 의심이 많고 심술궂은 의견이 아니다. 비판이라는 바람은 뺨에는 차갑게 닿지만, 습기를 말리고 나쁜 균의 번식을 막는다. 따라서 비판은 자주 듣는 것이 좋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자동차에 치일 위험이 가장 큰 건, 첫 번째 차를 잘 피한 직후이다.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문제와 말썽거리를 잘 처리하여 안심하고 주의를 느슨하게 한 때야말로 다음 위험이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이렇다 저렇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하지 않는 것. 사람들에 대한 험담도 하지 않는 것. 언제라도 저 사람은 이러니저러니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러한 생각을 가능하면 적게 하는 것 (아침놀)
- 사람은 언제 말해야 하는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용서받지 못할 때이다 그때 사람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스스로의 손으로 이룬 것. 자신이 이미 극복한 일에 대해서만 담담하게 말해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이제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열 수 있는 길이 있어도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안전한 장소는 없다. 먼저 겁을 먹으면 어느 쪽이든 패배하고 파멸한다. 상대가 너무 강해서 사태가 전에 없이 어려워서 상황이 너무 나빠서 역전할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두려움을 느끼고 겁을 먹을 때 자연히 파멸과 패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농담, 간계 그리고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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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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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선택이라는 시스템의 굴레에 묶여 있는건 쇼핑할 때만이 아니다. 이성 교제나 웃음조차 시스템 속에 서 선택하도록 짜여 있다. 인생은 제공된 기회와 가능성 에 대한 선택으로 가득 차 있다. 어릴 때는 학원이나 학 교를 선택하고, 목표로 삼은 학교에 가기 위해 지역을 선택한다. 졸업 후에는 직종과 회사를 선택하고, 그다음 에는 배우자를 선택한다. 나이 들어서는 퇴직 시기를 선 택하고, 암과 같은 질병의 치료법을 선택하며, 인생의 마지막에는 연명 치료 여부를 선택한다. 요컨대 우리는 항상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인 생이라는 게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담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선택이라는 행위가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는 방법인 것처 럼 생각한다.
선택지가 다양하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이 다. 제아무리 선택지가 많다 해도 결국은 양옆이 담장으 로 막혀 있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주어진 길에서 우리 는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통치 체제나 시 대풍조, 그 시대 특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즉 에피스 테메 (episteme)"가 우리 삶을 조종하고 있는 셈이다. 만 약 그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간다면 비윤리적이라고 비 난받을지 모른다. 어쩌면 정상이 아니라고 놀림을 받거 나 낙오자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담장 위 로 올라가 줄타기하듯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흔들면서 발을 내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다시 말해 창조적으로 살자는 말이다. 그저 상품 진열 대 위에 놓인 물건을 선택하고 주어진 즐거움만을 누리 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담장 사이에 없었던 것을 스스 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든 생각이든 상관 없다. 삶의 방식이어도 좋다. 잘 창조하면 예술이 될 것 이고, 더 훌륭하게 창조해낸다면 담장 사이의 폭이 넓 어져 더 많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길 것 이다.
설령 실패할지라도 이는 개성 있는 행위임에는 틀림 없다. 재탕, 삼탕하며 내놓는 뷔페 같은 요리에 만족하 는 사람은 창조의 재미를 알 리 없다. 창조적인 삶이야 말로 자신의 개성을 살려서 사는 삶일 테니까 말이다.

- 인생은 괴로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인생을 소홀히 하기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그런 인생에선 '초라함'이라는 쾨쾨한 곰팡이만 날로 번식할 뿐이다.

- 재능은 이미 몸 안에 잠재되어 있거나 남모르 게 축적된 어떤 특별한 힘이나 에너지가 아니다. 재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며 막연한 것도 아니다. 재 능은 지극히 명확한 것,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이다. 즉 재능은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다.
예컨대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 라,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화가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썼다면 소설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고, 장사를 했다면 비즈니스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 된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재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 다. 재능이 없으면 재능을 심고 키우면 된다. 방법은 간 단하다. 무언가를 이루면 된다. 아니, 끝까지 완수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것이 자신의 재능이 된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이든 강인한 실천력으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그 어디에서도 재능은 발견하기 어렵다.

- 왜 인간은 후회하는가.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대답은 이렇다.
"인식이 변한 것이다. 행위를 했을 당시의 인식, 사물을 보는 견해와 사고방식, 가치관이 훗날 다르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예전대로 똑같이 인식하고 있다면 후회를 할 리 없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행하기 전과 행한 다음의 인식은 별개라는 뜻이다. 인간은 행위와 경험에 따라 인식과 가 치판단을 바꿔나간다. 쇼펜하우어의 설이 어디까지 타 당한지 모르겠으나, 경험은 생각과 견해, 가치관을 변하 게 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 세상만사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 든 것에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걸까. 아니다. 세상만사와 연관된 내용이 의미 속에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사물일지라도 의미를 미리 헤아릴 순 없다.
이를테면 자녀 양육이나 결혼,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 는지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바로 이거야!" 하며 무릎 을 칠 만한 정답이 나올 리 없다. 취직 전에는 이것저것 자료를 뒤져 업종과 기업을 연구하고선 취직을 한 뒤에 야 비로소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면 비참한 결과를 맞기 쉽다. 십중팔구 빈손으로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 깊이 생각하면 정답을 끌어낼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습 성은 오로지 성적으로만 진로를 결정하는 학교 교육 시 스템이 몸에 밴 탓일지도 모른다. 학교 시험이 아닌 실 제 인생에서는 미리 준비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 별한 의미를 지닌 일이나 사물이 있을 리 없다. 일은 일, 사물은 그저 사물일 뿐이다. 자신이 그것과 관계를 맺을 때 그제야 의미가 생성된다.
세상만사와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의미도 변한 다. 어설프게 관계를 맺으면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 만사가 따분할 따름이다. 깊고 진지하게 관계를 맺어야만 의미를 풍성하게 찾아낼 수 있다. 그 의미는 자 기 인생의 의미이자 삶의 보람이 된다. 같은 일에 관계 를 맺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다. 저마다의 개성과 삶의 방식에 따라 의미의 색조가 바뀐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이어받더라도 같은 성 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노하우나 스킬을 운운한다면 아직 의미나 재미를 제 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거기서 훌쩍 뛰어넘어선 지점에 도달해야 의미는 그 속살을 드러낸다. 산꼭대기에 올라 야 간신히 나무들 틈새로 먼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The Philosopher and the Wolf》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영장류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 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소유의 정도가 아니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
무언가를 소유하면 우리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자신에게 속해 있고 자기 곁에 착 달 라붙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유자인 자신 을 특별한 사람으로 오해한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 기다. 무엇을 소유하든지 간에 언젠가는 빼앗기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적대 관계가 되고 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구두쇠'라는 표현이 이 에 딱 맞아떨어진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얽매인다면 무엇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저 그런 평범한 사람도 아닌, 괴상한 생물에 불과할 것 이다.

-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인간은 생성한다'고 생각했다. 생성은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자기실현화(self-actualization)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고정된 자기 자신 따위는 없다. 인간이란 무언가 가 되는 운동을 계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매 순간 생성함에 따라 변신하며, 일정한 계통을 갖고 변신 해야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어린이는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이를 깨닫고는, 망설임 없이 눈을 반짝이며 무언 가가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 현실도피를 꿈꾸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이 무언가 특별한 기법이나 비법, 비밀, 요령, 노하우 등을 알면서도 그것을 감추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은 그런 생각 자체가 자신을 구속하는 고정관념이며, 이를 걷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상황이더라도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 병에 걸린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른바 '개념과다증'이란 병이다. 생각 속에 개념을 잔뜩 그러모아 그 무게에 눌려 버둥거리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형적인 예다. 사람들은 끝없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에 집착할수록 자 신이 불행하다고 굳게 믿는 꼴이 된다. 부자나 가난뱅이 하는 것도 묵중한 개념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젊음과 늙 음, 아름다움과 추함, 성공과 실패, 남자다움과 여성스러 움, 어엿한 어른, 일류와 이류, 가치매김과 관련된 대부분 의 개념이 우리의 삶을 괴롭힌다.
이런 개념어에는 알맹이가 없다. 시간이 흘러도 정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저 막연히 빛나는 말로만 계속 존재할 따름이다. 어쩌면 개념어는 눈부시게 화려한 대문과 비슷할지 모른다. 대문 저편에는 한없이 이어지는 황야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얼핏 아름다운 것이 있는 듯 보이지만 모두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토록 공허한 말을 빛나게 하는 사람은 누굴까 개념어 속에 알맹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 바깥세상에 붙박아 놓은 절대 가치가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고 있다.

- 심리학이나 철학에서는 이성이나 감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근대 이후부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성적이어야 한다' 혹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너무나 쉽게 이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보자. 도대체 이성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감정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토록 수많은 학문과 업적이 있 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성과 감정을 제대로 설 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험을 기준 삼아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이성적이란 것은 냉정하게 손익계산을 할 수 있는 상태이고, 감정적이란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마음이 흔들려서 동요되는 상태라고 말 이다. 다시 말하면 감정적이 된 나머지 심한 말을 내뱉 고 이상한 행동을 할 때는 자존심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감정이 아닌 자존심이라는 놈이 골칫덩어리인 셈이다. 자존심의 실체는 자신에 대한 존 경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어 하는, 또한 자신의 능력을 높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허영일 뿐이다. 그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 그 대신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긍지다.

- 막다른 길을 만나거든 생각을 딱 끊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그저 눈으로만 보라. 먼발치 에서 보거나 멍하니 바라보라. 풍경을 보듯 훑어보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막다른 길에서 겪는 괴로움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웃는 사람을 보고 따라 웃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아니 면 동물원에 가서 해맑은 아이들과 동물의 모습을 보라. 헬리콥터를 타고 세상을 보거나 벌거벗은 채 바다에서 헤엄쳐보는 것도 좋다.
막다른 길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방법론에 관한 책을 섭렵한다 해도 딱히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 다. 방법론이나 노하우에 관한 책을 읽으면 그 자리에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지 몰라도 돌아서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 문제에 가로막혀 경직된 머 리를 싹 뜯어 바꾸지 않으면 막다른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때 몸을 이용하면 한결 수월하게 머리를 개조할 수 있다. 인간의 장(腸)은 머리에 해당되며, 넓적다리 근 육은 물리적으로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막다른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끝까지 물어지고 생각하라. 이러다 미쳐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혼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라.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주일이라도. 그러 다 보면 불현듯 무언가가 바뀔 것이다. 뭔가를 퍼뜩 깨 달을 수도 있고, 맞은편에서 어스레한 빛이 보일 수도 있다. "뭐야, 바로 이거였어!" 하며 피식 웃음이 나올 수 도 있다.
더구나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물방울 소리 나 새소리, 급격한 체감온도의 변화, 흔들리는 불빛, 무 늬, 바다 빛깔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자신 안의 무언가를 일깨운다. 이것은 요행이라 부를 만 큼의 변화라 하겠다.

- 우리는 숱한 고민을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괴로움과 고통을 경험하며, 고민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고민을 마땅히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게 인간의 길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그것이 정녕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면 '고민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살리라'는 생 각은 길을 벗어나 어두컴컴한 골짜기 바닥으로 나동그 라지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 고민은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한 발의 통증일지 모른다고, 한층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한 시련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일을 할 때는 언제나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의 힘으로 시련을 극복하지 않으 면 소소한 기쁨도 얻기 힘들다.

- 만약 문제를 앞서 능가한다면 고통은 바로 사라질 것 이다. 능가한 단계에서 이미 경쟁과 서열은 삐걱거리는 범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오너 가 종업원의 출세 경쟁에 휘말려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 치다. 문제를 능가한다는 일이 어렵게 생각될 테지만 일 단 무엇이든 주변에 있는 작은 문제 하나를 능가해보라. 깊은 충실감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불안정함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이라고 단단히 각오하라. 그러면 변화와 사건을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일 로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면역력을 갖는 것과 마 찬가지다. 어쩌면 이것이 안정과 평온을 바라는 인색한 삶 보다도 훨씬 더 대담하고 강인한 삶이라 말할 수 있다.

- 파도가 존재하려면 넘실거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움직여야만 세상에 존재한다. 주고, 다른 곳에서 받고, 꾀하고 도전하며, 망했다가 다시 재기하고, 쓰러졌다가 일어서고, 얼마간의 요행과 우연의 도움을 받고, 안간힘 을 다해 희망을 형상화한다. 그 행위는 어느 것 하나 불 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의 틈새에 있는 실낱같은 안심의 길을 짚어가면 그만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길은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있는지 없 는지도 모르기에 불안한 것이다.
마음 푹 놓고 안심하며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어디 에 있을까. 어린 시절에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부모를 기다리는 일조차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또 안내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패키지 여행일지라 도 불안한 마음은 말끔히 가시지 않는다. 우리들이 일을 하거나 살아가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다. 인생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바라는 대로 되면 한 바탕 크게 웃을 수 있고 감동도 그만큼 깊어진다. 이것 이 진정 사람 사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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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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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Quote of the day 2024. 4. 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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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을 속이고, 과도한 노동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남보다 더 잘 먹고 잘살려는 욕망입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너무 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욕망이 우울증, 피로, 자기 학대, 열등감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에 만족하며, 지식이나 머리가 아닌 소박한지혜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일 수 있습니다.
-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음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 는 것도 하는 것이지만, 하지 않는 것 역시 '하는 행위의 방법입니다. 잔소리하 는 것도 '하는' 것이지만, 잔소리하지 않는 것도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백성 에게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무위입니다. 욕망, 명예, 이기심, 번거로운 일, 지식적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무위입니다. 무위 정 치의 결과는 자율과 평화입니다.
- 노자가 원하던 것은 영원한 성공입니다. '성공했으면 성공에 머물지 말고 성 공에서 한 발짝 물러나라! 그것이 너의 성공을 영원히 유지하는 방법이다! 성공 에 머물지 않을 때 오히려 그 성공이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는 반전 의 논리는 노자가 자주 사용하는 패턴입니다. 만들었으나 만들었다고 말辭 하지 않고, 살렸지만生 소유하려 하지 않고, 베풀었으나 자랑하지 않는 것 이 결국 반전하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노자 통일론의 핵심은 '무사'입니다. 일 벌이지 않는 사람이 통일의 주역 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은 전쟁, 가혹한 부역, 세금 징수, 국가의 법령 제정 등입니다. 권력자라면 반드시 행사하고 싶은 국가 권력입니다. 노자 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없 다는 것입니다. 다소 이상적이고 순진한 발상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노자의 정 치적 이상은 최소한의 권력 사용을 통한 자율 사회로의 복귀입니다. 복귀라는 말은 예전에 있었던 사회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의 시 대, 권력이 아직 생성되지 않았던 부족이나 마을 공동체 사회에서 대표성만 갖 는 지도자가 있던 시대입니다. 참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사회였을 것이란 상상 을 해봅니다. 이렇게 노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는 훗날 신선 사상과 합해져 서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은거하며 사는 집단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간섭 과 경쟁에 찌든 세상에서 노자 철학이 일종의 돌파구 역할을 하게 된 원인이기 도 합니다.
- 노자의 무위 정치는 내가 직접 모든 것을 처리하지 말고 책임자를 시켜서 집 행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법 집행은 법관이 하고, 경제는 경제 관료에게 맡기 고, 사형은 사형집행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일을 주재하려 하거나 간섭하고 끼어든다면 결국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고, 나아가 큰 저항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게 내 자리를 지키 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서 그들의 능력에 맞게 역할을 주어 세상을 이끌어나가 는 것이 무위 정치의 요점입니다. 경영학 용어로 권한 부여 empowerment, 권한 하 부 이양입니다. 한 사람의 통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문가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최고 통치자의 역할입니다. 기업의 회장이 직접 공 장에 가서 지도하고, 매장에 가서 영업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권력의 오용입니 다.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정하는 것이 최고 지도자의 역할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 천하를 얻으려는 지도자도 한 방에 크게 이루려고 하지 않아야 결국 대사 事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볍게 처신하여 함부로 승낙하지 말아야 합 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지도자를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대충 하는 일이 많을수록 어려움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작은 일이라도 가벼이 보지 않고 어렵 게 생각하면 결국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만과 과시로 조그 만 일이라고 생각할 때 실패할 확률이 높고, 상대방이 별 볼 일 없다고 무시했을 때 큰코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처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작은 일을 대해야 결국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성인은 자기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신 세상 사람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 는 사람입니다. 상심은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고집이 센 마음입니다. 지도 자가 상심으로 자신의 기준을 강조하고, 모든 일을 그 기준에 맞추려 하면 엄청난 참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권력의 폭력, 이념의 억압, 윤리와 도덕의 편 협성은 모두 권력자의 고정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현실은 늘 변합니다.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가장 적합한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자가 강조하는 부드러움은 말랑말랑한 지도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강하고 딱딱 한 지도자가 아닌 부드럽고 온화한 지도자가 성인에 가깝습니다.
- 고독은 지도자가 견뎌내야 할 숙명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칭찬과 비난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일에 자신의 삶을 거는 지도자 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얼마든지 권력을 누릴 수 있고,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살 수 있음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밥 주는 어머니의 역할을 자 임하는 지도자. 사람은 이익과 목적을 위해 인생을 살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오 로지 자식을 위해 바보처럼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성인과 닮았습니다. 때론 자기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외로움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힘을 얻는 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가는 길이 세상을 위한 길이라는 신념 덕분입니다.
- 배움은 지혜의 성장과 고정관념의 형성이라는 두 날이 있습니다. 잘못된 배 움은 분노를 유발합니다. 자신의 배움과 맞지 않으면 화를 내고 못 견뎌 합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만들어 폭력을 사용하게도 하고, 옳고 그름의 골을 파서 자신 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게도 합니다. 조금만 멀리서 보면 선악과 시비의 경계는 애초부터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잘못된 배움으로 경계의 골을 파서 세상을 둘로 나누어 대립합니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 상을 보아야 비로소 세상이 가슴에 들어오고, 모든 것이 이해됩니다. 절학絶學은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배움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움이 편견이 되 고 폭력이 되면 그보다 무서운 무기가 없습니다.
- 노자 도덕경의 유명한 명구, 지족불욕, 지지불태는 많은 사람 이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만족을 알고 그치는 것이 내 몸을 살리고, 내 정신 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해답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노자의 철학이 소극적 이고 허무주의적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주체는 성공 한 귀족이거나 권력자입니다. 이미 성공이라는 문턱에 다다른 사람에게 하는 경 고입니다.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큰 탐욕 을 보일 때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경고입니다. 소유는 나눔을 통해 빈자리가 비 로소 채워집니다. 지속 성공과 생존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알고, 창문을 통해 밖을 보지 않더라도 하늘의 변화를 안다는 이 구절을 읽으면 인터넷으로 세상의 일을 아 는 요즘 시대와 겹쳐져서 웃곤 합니다. 노자의 요지는 지도자가 자신의 자리에 서 벗어나 여기저기 다니며 간섭하거나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보이거나 생각을 드러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소박하게 지내 며 세상이 저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무위를 실천하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직무에 맞는 능력 있는 사람을 잘 선발하여 그들에게 각각 임무를 맡기는 정치가 무위 정치입니다. 무위 정치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 고, 자기 고집과 편견으로 세상을 이끌어나가면 세상은 더욱 혼란해지고, 그 피 해는 백성과 지도자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의 정보를 얻고 처리합니다. 내가 직접 나서면 결국 나의 앎은 보고 들은 것에 한정 됩니다. 그것이 나설수록 앎이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다니지 않아도 세상 의 정보를 얻고, 드러내지 않아도 명성이 저절로 알려지고, 일 벌이지 않아도無爲저절로 성과를 내는 사람이 진정 성인聖人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입 니다.
세상과 결별한 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속세를 떠났다고 하면서 면벽 수도 하는 사람은 노자가 말하는 성인이 아닙니다. 세상이 저절로 돌아갈 수 있도 록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꿰뚫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천 개의 눈을 갖고 보고, 천 개의 귀를 갖고 소리를 듣기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고 깊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저절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진정한 성인입니다.
- 천지가 자생하려 하지 않았기에 장생할 수 있었듯이, 뒤로 물러서면 앞에 서고, 버리면 오히려 존재하고, 이기적인 나를 버리면 개인의 이익이 다가 온다는 것이 노자의 반反의 철학입니다. 내 몸을 버리면 또 다른 생명을 얻으리 라! 조국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개인의 사적 이익을 포기했으나 결국 나라와 사회가 존경하고 추모하는 사람이 된다면, 나를 버려서 오히려 나를 얻은 사람 입니다.
성공을 생각해봅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통장에 새겨진된 숫 자가 크고, 멋진 집과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버려야無私 오히려 자신을 얻는다는 역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 노자는 물처럼 산다는 것에 대하여 부연 설명을 합니다.
1. 낮은 곳에 거함 거선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만물을 길러주고도 낮은 곳에 처합니다.
2. 연못처럼 깊은 마음: 심선연心善淵
물이 고여 연못이 되면 깊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물이 깊은 연못은 가뭄에 마르지 않습니다. 모든 이를 안아주고 품어주는 것이 어머니 품 같습니다.
3. 아낌없이 베푸는 인정 : 여선천
물은 선택하여 베풀지 않습니다. 모든 이에게 골고루 혜택을 줍니다.
4. 믿음이 가는 언행: 언선신
물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뢰가 가고 믿음이 생깁니다.
5. 바르게 하는 정치 : 정선치
부정한 것을 바로잡고,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일으키는 것이 정치입니다.
6. 능숙한 일 처리 : 사선
물은 강한 쇠를 자르기도 하고 집채만한 바위를 띄우기도 합니다. 일하는 데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물을 닮아야 합니다.
7. 때를 아는 움직임 : 동선시
겨울이 되면 물은 고체로 변하여 얼음이 됩니다. 봄이 오면 단단했던 얼음이 녹아 다시 액체 상태의 물이 됩니다. 참으로 때를 아는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 람은 그런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노자가 왜 이렇게 칭찬과 비난에 연연하지 말고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강조하고 있을까요?
사람들의 열광과 호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무게중심을 잡고 칭찬 과 비난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묵묵히 그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갈 뿐입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는 세상 역시 소중 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을 위해 나는 죽어도 좋다고 외치는 지도자는 세상을 어 지럽고 혼란하게 만듭니다. 드러내지 않고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노자가 말하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 성인이란 단어가 나오면 노자가 주장하는 결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의 원 리가 이러이러한 것이니 그러므로 지도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문장 구조는 노 자의 글쓰기 패턴입니다. 굽혀야 온전해진다는 이 원리를 가슴에 새기고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이 하나는 크게 보면 도이고, 이론적으로 보면 부쟁이고, 실천적으로 보면 곡극전 입니다.
적으로 보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기, 자기 생각을 옳다고 주장하지 않기, 자기 공을 자랑하지 않기, 자기 행동에 으스대지 않기입니 다. 그런데 이런 부쟁의 도를 실천하면 밝아지고, 빛이 나고, 성공하고, 오래가는 결과를 얻습니다. 이렇게 얻은 결과는 내세우고, 과시하고, 으스대서 얻은 결과가 아니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성과 입니다.
- 노자는 오직 힘만이 정의라고 생각되었던 춘추시대 말기에 힘보다 더 중요한 부드러움의 강함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강하고 센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약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입니다. 무기를 무기고에서 꺼내어 사용하면 이미 승부의 세계에서는 진 것에 가깝습니다. 물 고기가 연못에서 나오면 안 되듯이, 날카로운 병기가 무기고에서 나오는 순 간 이미 완벽한 승리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국방 무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연한이 되어 폐기되는 것이 가장 잘 사용한 것입니다. 상 대방의 전쟁 도발 의지를 꺾고, 나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 최상입니다. 상대방과 나의 손실 없이 부드럽게 이기는 방법이 노자가 원하던 승리의 방법입니다. 이런 완벽한 싸움의 원리를 아는 것을 미명明이라고 합니 다. 미는 미세하고 은미隱하다는 뜻입니다. 명은 밝은 지혜입니다. 미명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아는 지혜입니다.
- 완성은 자연의 본질이 아닙니다. 미완성이 오히려 우주의 본질에 가깝습 니다.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완성은 죽음 이고 미완성은 생명입니다. 채움은 죽음이고 비움은 생명입니다. 비움 속에 새로운 채움의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이미 다 채운 것 속에 동력이 발생하지 않 습니다. 기교가 있는 기술자는 보기에 재주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자신이 잘났다고 요란합니다.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시끄럽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거꾸로'에 있습니다. 겨울철 한파가 몰아닥쳐 추울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몸을 조급하게 움직여야 추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가만있으면 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반대로 더운 여름철에는 조용히 있 어야만 더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덥다고 신경질 내고 몸을 움직이면 더욱 덥 습니다.
- 성공에 대한 노자의 정의는 '성공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것이 어렵 지만 성공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과감하게 내려 놓아야 한다는 노자의 언급 속에서 '반의 철학이 보입니다. 내려놓으면 거꾸 로 얻을 것이고, 지키려 하면 거꾸로 잃을 것이라는 노자의 반전 철학은 도 의 운동방식입니다. 수는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공을 이루었으면 과감하게 내 몸이 그 성공에서 물러날 때 또 다른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노자는 성공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합니다. 공을 이루는 성공이 죄악이 아닙니다. 다 만성공에 발목 잡혀 으스대다가 결국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제국 건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한신 은 자신의 성공에 집착하여 권력을 탐하다가 결국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 니다. 반면 장량은 정권 창출에 성공하자마자 성공에서 물러나 천수를 누리 며 살다 갔습니다. 성공 후에 어떻게 마무리했냐가 그들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의 자는 현덕입니다. 현덕은 노자의 이 장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유비가 현덕을 자로 사용한 것은 노자 철학에 대한 긍정적인 생 각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역할과 힘을 부여하고, 스스로 낮추 고 겸손하겠다는 생각입니다. 현덕의 현은 검은색입니다. 검은색은 물水을 상 징합니다. 세상 만물을 키워주고 자신을 낮추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모습 은 현덕의 모습입니다. 현은 '깊고', '그윽하다'라는 뜻으로 도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다 합쳐서 만들어지는 색입니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검 은색입니다. 검은색은 도를 상징하는 색입니다. 현덕은 도덕입니다. 도의 철학을 갖고 덕을 세상에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현덕의 네 가지 의미를 정 리해봅니다.
1. 생지휵지
살려주고 길러준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낳아주고 길러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노자가 꿈꾸는 성인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낳아주고, 살게 해주고, 길러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현덕입니다.
2, 생이불유
살렸으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내가 낳았고 길렀으면 내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현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내가 낳았어도 내 것이라 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3. 위이불시
베풀었으나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베푼 덕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그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4. 장이부재
길렀으나 주재하지 않는다. 주도권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내 가 마음대로 주인이 되어 좌지우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현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주인이 되지 않고 객이 됩니다. 낮은 자세로 상대방을 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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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인생문장

인문 2024. 4. 2. 07:00

-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자신이 진실이라 여기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리라 믿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범한 재능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 에머슨은 우리 중에 자신감이 부족한 탓에 남의 말 고분고분 잘 듣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넘쳐난다며 자기신뢰를 무기 삼아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다그친다. 앞장설 테니 얼른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당신들의 관습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될 것 이다. 당신들을 위해서 더 이상 나 자신을 길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당신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 한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에머슨은 소신을 강조한다. 오늘 생각은 오늘 분명하게 말하고, 내일 생각은 내일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오늘 말 과 내일 말에 모순이 생겨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도 했 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예수, 루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 오, 뉴턴처럼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오해를 받았단다.
남 눈치 보는 언행으로는 성공과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생 각인 듯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 할 텐데 에머슨은 그것 못지않게 홀로서기가 중요하다고 강조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버드나무가 아니다. 우리는 홀로 설 수 있고 홀로 서야만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그 속에서 새로운 힘이 생긴다."
- 에머슨은 한 세대 후배 격인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머슨의 저서 《자기신뢰》를 들고 여 행을 다녔다는 니체는 그의 역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 다》를 저술하며 '초인'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 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과 세상을 긍정하는 창의적 인간형인 니체의 초인이야말로 에머슨의 자기신뢰 개념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성공적 인생을 가꾸는 데 에머슨의 자기신뢰는 니체의 긍정 마인드, 헤르만 헤세의 자기발견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기 인생 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방향을 정해 긍정적인 사고로 희망을 노 래한다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면 그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자기신뢰는 당연히 자신감 있는 행동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이 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사람은 자기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최선을 다할 때 괴로움을 잊고 쾌활해진다.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못한다. 구원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지 않는 한 우리 에게는 어떤 영감도 창조도 희망도 없다."
자기신뢰는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에 대한 믿 음이 부족한 사람은 불평불만, 질투, 후회, 실망, 비관 등 심리적 으로 나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에머슨은 이렇게 진단했다. "불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 의지가 약할 때 생긴다. 후회나 미련으로 재난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자신의 일에 열중하 라. 그러면 불행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된 다. '내 생각이 옳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존중할 것이다'라는 생 각을 갖는 것은 자기신뢰의 대표적 표현이다.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자기 삶의 시작이다. 그리고 건강한 일상 의 출발이다.

- 나는 나의 사랑과 희망으로 그대에게 명령한다.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의 희망을 신성한 것으로 간직하라.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대표작이다. 니체 철학의 핵심인 '신의 죽음, 영원 회귀, 위버멘쉬(초인, 超人)'의 개 념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철 인 짜라투스트라의 설교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기술했다. 루터 파 목사의 아들인 니체는 40세 전후에 쓴 이 작품에서 신의 죽 음, 신의 부재를 주장해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 다. 그를 '망치든 철학자'라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니체는 한때 스승으로 삼았던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사상에 빠진 것과 달리 삶의 긍정적 요소에 주목했다.
작품 전편이 아름다운 시적 산문으로 꽉 차있다. 다양한 등장 인물과 풍부한 비유,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 애잔한 사랑의 노래 등은 독자들에게 소설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준다. 딱딱할 수 밖에 없는 철학서임에도 현대인의 애독서로 자리잡고 있는 이 유다.

-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거나 노력해봐야 안 된다거나 노력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 세대의 미국인들은 우리 국민의 정신을 요약한 단순한 신조로 답했습니다. 아니, 우린 할 수 있어 (Yes we can). (버락 오바마 《약속의 땅>)

- 게으름은 모든 미덕을 삼키는 사해(死海)와 같다.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언제나 능동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라. 나뭇가지에 오래 앉아 있는 새는 사냥꾼의 총에 쉽게 맞는다.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 프랭클린은 인쇄소를 경영하던 1732년부터 25년 동안 '리처 드 손더스'란 이름으로 매년 달력을 만들어 판매했다. 달력의 여 백 곳곳에 교훈적인 금언이나 삶의 지혜를 써넣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훗날 이를 책으로 엮은 것이 가난한 리 처드의 달력>이다. 프랭클린은 달력을 통해 "최고의 신용은 성실" 이라며 부자가 되기 위해선 부지런해야 함을 수없이 강조했다. "부지런한 사람의 집에는 가난이 잠시 들여다보지만 감히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한다. 게으름은 걸음이 너무 느려 가난에 게 금세 뒷덜미를 잡히게 된다. 한 방울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다. 생쥐의 부지런함과 끈기가 밧줄을 끊는다. 잠자는 여우는 한 마리의 닭도 잡지 못한다. 그러니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라, 부지 런한 사람에게 게으른 손님은 없다. 끓고 있는 주전자에는 파리 가 앉지 못한다."

- 사람이 도리를 드러내는 데에는 이치를 헤아리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고, 이치를 헤아리는 데에는 독서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왜 그러한가. 옛 성현들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거나 경계해야 할 선과 악이 모두 책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 《격몽요결》)

-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돈은 도처에 해독을 끼치고 파괴를 일삼으면서도 사회적 식물을 키우는 효모였고,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역사에 필요한 부식토였다. (에밀 졸라 《돈>)
- 돈은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늙은 것을 젊게, 심지어 문둥병도 사랑스러워 보이도록 만들며, 늙은 과부에게도 젊은 청혼자들이 몰려들게 만든다. (셰익스피어)

-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철학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로 유명한 프롬 은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2000년 전 로마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같은 제목 《사랑의 기술과는 전혀 색깔이 다르다. 오비디우스의 책은 일종 의 연애 지침서다. 연애할 때의 남녀 심리를 자신의 경험 등과 비교해서 분석하고, 연애 중에 생기는 갈등 해소법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프롬의 책은 사랑의 근원적 의미를 터득하 고 기술을 익혀야 함을 강조하며 그 실천의 중요성을 제안한다.
- 그는 서양 사회에 사랑이 붕괴되었다고 진단하면서 각자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그는 우선 현대인들이 사랑에 명백히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왜 사랑의 기 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사랑을 뿌리 깊이 갈망하면서도 사랑 이외의 거의 모든 일, 곧 성공, 위신, 돈, 권력이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정력이 이런 목적에 사용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의 기술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 프롬은 그 이유로 사람들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혹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사랑받는'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어서 사랑의 기술을 배 울 생각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실패 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 실패의 원인 을 가려내고 그 의미를 배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초의 조치 는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 는지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이 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 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니 기억하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시간에만 우리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네.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인데,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네. 우리는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살아가도록 보냄을 받았기 때문이라네. (레프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 서로 사랑하되 속박이 되도록 하지는 마십시오. 사랑이 두 분 영혼의 해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칼릴 지브란 《예언자>)
- "두 분이 함께하시되 그 안에 공간이 있게 하십시오. 두 분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 잔에서만 마시지 마십시오. 서로 에게 자기 빵을 나누어주되 한쪽 조각만을 먹지는 마십시오. 함 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되 각각 혼자이게 하십시오."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 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그 즉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 《용서>)

- 진정한 우정은 덕(德)에 있어 서로 닮은 선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이의 움직임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놀이를 하든 자유롭게 놓아두어야 한다.(중략)
어른은 나약한 아이에게 안내자로 그쳐야지, 아이의 천성 계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장 자크 루소 <에밀》)
- 루소는 자연상태에 있는 아이는 자기 능력과 욕망 간의 차이 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행복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에밀은 260 년 전 당시 상황에서 아이의 시각으로 기획된 급진 교육이론이 었다.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은 당연하다. 독일의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호메로스》, 머리에는 《에밀》에 관한 기 억이 항상 담겨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칸트는 《에밀》을 읽 느라 정확하기로 유명한 정시 산책 기회를 놓쳤다는 일화가 전 해진다.
루소는 이 책으로 학문적 명성을 얻었지만 엄청난 시련을 감 수해야 했다. <에밀》은 출간되자마자 불과 2개월 전 출간된 또 다른 저서 《사회계약론》과 함께 금서 처분을 받았다. 제4부에 있는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 이른바 이신론(理論)에 해당돼 당국과 기독교계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인생 대부분은 도피와 은둔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가 머문 곳은 자 연이었다.
《에밀》은 내용에 모순이 없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바 로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자 유와 자연이 소중함을 역설한 루소의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사회 젊은 부모들은 아직도 그 메시지를 제대로 새겨듣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은 자유로운가, 그리고 자연스러운 환경에 놓여있는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우리 아이들은 겉으로는 별 불만 없이 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세상과 부모의 욕심에 휘둘려 속으로는 신음하고 있다. 경쟁의 채찍이 난무하는 숨 막히는 도시를 떠나 푸르른 자 연 속에서 큰 호흡으로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농촌으로 당장 달 려가고 싶어 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매여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들을 묶어놓 은 쇠사슬을 이제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 아버지는 내가 배운 어떤 것도 단순한 기억의 연습으로 타락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해력을 교육의 모든 단계와 함께 가게 했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이해력을 선행시키려고 노력했다.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 부모는 처음부터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은 도덕적이거나 논리적인 원칙의 문제에 그쳐서는 안되며, 소유욕이나 억압이 결코 뿌리내리지 못할 만큼의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 러셀은 부모가 가급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자녀가 행복해지고 부모 자녀 관계가 화목해진다고 강조한다. 자녀가 반발할 일도 없고, 부모가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안 되 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는 식의 정신분석학 교과서는 결코 필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모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올바른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러셀의 결론은 이 한마디 아닌가 싶다.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이다."
- 러셀의 이런 자녀 교육법은 자신의 성장 및 자녀 양육 경험에 서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러셀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불 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2살 때 어머니, 4살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그다지 따뜻한 품속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교육을 거부한 할머니의 교육 방침에 따라 가정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외로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서전에 나오는 표현이다.
"어린 시절을 통틀어 내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정원에 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으며, 따라서 내 존재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항시 고독했다. 나는 깊은 생각을 남들한테 잘 말하지 않았 고 간혹 말하더라도 곧 후회하곤 했다. (중략) 유년기를 거치면서 외로움도 커졌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행여 만나려나 기대하다 절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완전히 실의에 빠진 나를 구 해준 것은 자연과 책과 (좀 더 나중에는) 수학이었다."
러셀은 "청년기(10대를 지칭)도 대단히 외롭고 불행한 시기였 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신도 놀랄 만큼 사교적인 젊은이로 변신했다. 사랑을 키워오 던 앨리스란 여성과 22세 때 결혼하지만 아이는 얻지 못했다. 그가 첫아이를 가진 건 49세 때다. 앨리스와 이혼하고 두 번째로 결혼한 도라에게서 아들을 얻었으며 2년 뒤엔 딸도 태어났다. 65세 때는 3번째 부인 피터에게서 막내아들을 얻었다. 육아 책 임감 때문에 장수한 것일까. 그는 98세까지 살았다.
러셀은 자녀들에게 자유로운 교육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생각 으로 기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자기처럼 가정교사에게 맡기 지도 않고 아예 자그마한 학교를 하나 만들어 운영했다. 기존 학 교에 보내지 않은 이유를 러셀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점잔 빼는 교육, 종교 교육이 싫었고 기타 전통적 학 교들에서 당연시되는 자유에 대한 무수한 제약들이 싫었다."

-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라는 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펄벅 자라지 않는 아이)

-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 그런데 이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다. 지향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목표가 있다는 것인데 방황하다니 이상하지 않 은가. 반대로 방황한다는 데 지향이 있다는 논리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국내 최고 괴테 전문가로 꼽히는 전영애 서 울대 명예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비문의 함의가 크다. 뒤집어 보면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 는 것은 갈 곳이, 목표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다. 방황 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참으로 큰 위로일 수 있다.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어딘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크다. 참으로 정교한 비문이다."

- 만약 신독하여 하늘을 섬기고, 힘써 용서 (恕)를 실천하여 인(仁)을 구하며, 또 항구하게 쉬지 않을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성인이다. (다산 정약용 심경밀험)
-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심경밀험》 중 "성인이 되는 길은 배 울 수 있다"라는 주자의 생각에 주석을 단 것이다. 신독과 용서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신독이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르 게 하고 언행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다산은 심경을 탐구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심경밀험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 "나는 궁핍하게 일 없이 살면서 육경과 사서를 벌써 여러 해 동안 탐구하였는데 한 가지라도 얻은 것이 있으면 설명을 달고 기록하여 간직해 두었다. 이제 독실하게 실천할 방법을 찾아보 니 오직 소학과 심경이 여러 경전 가운데 특출하게 빼어났다. 학 문이 진실로 이 두 책에 침잠해서 힘써 행하되, 소학으로는 그 외면을 다스리고 심경으로 그 내면을 다스린다면 거의 현인이 되는 길을 얻게 될 것이다. (중략)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힘을 기울이고자 하여 경전을 궁구하는 사업을 《심경》으로 맺는다."
《심경》과 《심경밀험》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들이 고스란 히 들어있다. 전체 37편 가운데 맹자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11편이나 된다는 게 특이하다. 실제로 맹자는 마음공부를 유달리 강 조했었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알지만 잃어버 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
《맹자》에 나오는 맹자의 말이다. 정곡을 찌른다는 느낌이 들 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는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지도 않 은 채 살아가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시기 질투하고 괜히 화를 내고 남을 욕하거나 원망하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 라 마음 편할 날이 없다.

- 나는 내 삶에 한계가 없다고 믿는다. 팔다리가 없으니 공식적으로는 장애인이지만 실제로는 똑같은 이유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남들에겐 없는 독특한 문제를 가졌지만 그 덕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특별한 기회들도 활짝 열렸다. (닉 부이치치 <허그(Hug)>)

-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 의지에 달려 있다.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 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 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저서에서 프랭클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을 여러 차례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는 이런 말도 남겼단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왔으나 가족은 여동 생만 빼고 모두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울증과 자살 심리를 치료하던 자신이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정신을 되찾은 프랭클은 수용소 시절을 되돌아보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불 과 9일 만에 완성한 독일어판 책의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 체 험에서》였다. 책을 내고 나서 폴리클리닉 병원의 신경과 과장으 로 취임했는데, 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나 재혼했다. 그러고는 로 고테라피 이론을 정립하고, 미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강연을 하 며 이를 전파했다. 현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언젠가 환자가 이뤄내야 할 목표가 갖는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 우가 많다. 그래서 순응주의자가 되거나 전체주의자가 된다." "전통이 점점 쇠퇴해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정신의학의 주된 과제는 인간에게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주 는 것이다."
"나는 전통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삶은 각각의 사람에게 모두 의미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말 그대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의미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 “삶의 의미를 물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길 기다리고 있는 '내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삶이 나에게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 존재를 스스로 책임질 때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 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먼저 화를 버려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우리 자신도 괴롭히는 고통을 안겨준화. 우리는 좋지도 않은 그 일에 귀한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가.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은가. (세네카 《화에 대하여>)
- 세네카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심리학자다. 《화에 대하여》는 철학책이라기보다 심리학책에 가깝다. 화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 며,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인생에서 화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화의 해악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하면 화를 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기술했다. 무려 2000년 전에 쓰인 고전 인데도 이 시대 독자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준다. 그는 화를 다른 어떤 감정보다 특별히 더 비천하고 광포한 악덕이자 일시적인 '광기'라고 정의한다. 특유의 비교법을 동원해 화의 해악을 묘사했다. 화내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통찰이 탁월하다.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나고 화는 서로 를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다. 인간은 화합을 원하고 화는 분리를 원한다. 인간은 이익이 되기를 원하고 화는 해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낯선 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주고자 하고 화는 가장 가깝 고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공격을 퍼부으려 한다. 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고 화는 상대방을 끌고 들 어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화가 사치보다 더 나쁜 이유는 사치는 자신만의 쾌락을 좇지 만화는 남의 고통을 즐기기 때문이다. 화는 악의와 시기심을 능 가한다. 악의와 시기심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지기를 바라고 그들에게 불운이 닥쳤을 때 기뻐한다. 하지만 화는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에게 불운이 찾아와서 피해 입혀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화는 자신이 직접 그들을 해하고자 한다."
세네카는 화란 분별없음의 표현이고 바람처럼 공허한 것이라 며 화가 날 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라고 권한다. 거 울 속 추한 모습을 보면 스스로 충격을 받아 화낼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어금니를 날카롭게 가는 멧돼지를 흉내 내기라도 하듯 이를 부득부득 가는 소리, 비틀린 손의 관절에서 나는 우두둑 소리, 몇 번이고 두들겨대는 가슴팍, 헐떡이는 숨소리, 폐부에서 나오는 절규, 현기증, 느닷없이 지르는 뜻 모를 고함, 앙다물었다가 이제 는 부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혐오스러운 식식거림...."
세네카는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라고 말한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덮었던 어 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 하루, 아니 한 시 간도 안 되어 너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만든 것들이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고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설사 화 를 유예시킴으로써 네가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것은 이제 화의 모양새가 아니라 심판의 형태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세네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화 의 유예를 실천했다며 그 사례를 자기 책에 소개하고 있다. 소크 라테스는 잘못을 저지른 노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지금 화가 나기 때문에 너를 매질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겠다."

- 나는 마음에 울려오는 그대로 들었노라.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노라. 차라리 내가 살고 있음을 의심할지언정 진리가 아니었다고는 의심할 수 없으리라. 창조된 모든 것을 통해 지성 앞에 보이는 그 진리를.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 멋은 '스타일'과 달리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통제가 아니라 해방을, 그리고 타율이 아니라 자율을 가리키는 말이다. 멋은 획일적인 데에서 변화를 찾고 구속 가운데에서 자유를 찾는 감정이다. (이어령, 읽고 싶은 이어령)
- 나는 그의 《읽고 싶은 이어령》이란 책을 특별 히 좋아한다. 소설가 최인호가 생전에 이어령 작품 가운데 주옥 같은 글을 뽑아 예쁘게 편집한 책이다. 글마다 빛이 나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멋'에 대한 이어령의 통찰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는 책에서 멋과 스타일의 관계, 그리고 그 차이에 주목했다. 멋이란 말이 서구에서의 스타일이란 말과 비슷한 의 미로 사용되지만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멋의 사전적 의미가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이기에 스타일 과 유사하긴 하다.
"멋과 스타일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정반대의 성격이 드러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타일은 격식화된 일정한 법칙, 그리고 특정한 양식과 질서를 의미한다. 혼돈되어 있는 것을 어떤 틀 속 에 통일화하는 것처럼 산만하고 무질서한 것에 어떤 법칙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그러나 멋은 그와는 판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일정한 격식, 특정한 경향, 그리고 일반적인 질서와 그 규칙을 깨뜨리게 될 때 멋이 생긴다." 그는 스타일을 파괴할 때 멋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규칙에 사로잡히고 격식에 얽매여 있을 때 멋은 생겨나지 않 는다. 차라리 그것은 고정된 스타일을 파괴하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생의 진미라고 말할 수 있다. 형식의 가면에 은폐되어 있고 규칙의 사슬에 얽매여 있는 생을 거부하고, 그리하여 그 안에 감 추어진 사물의 진미를, 자유로운 맛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멋의 참뜻이라 볼 수 있다."
-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품격이 있다. 그런데 꽃이 싱싱할때 향기가 신선하듯 사람도 마음이 맑을 때 품격이 고상하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오히려 그 냄새가 고약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 "폐포파립을 걸치더라도 행운유수와 같으면 곧 멋이다. 멋은 허심하고 관대하며 여백의 미가 있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피천득)

- 황제 티를 내거나 궁전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기가 쉽기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늘 소박하고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너를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바다보다도 큰 광경이 있으니 그것은 하늘이요, 하늘보다도 큰 광경이 있으니 그것은 인간의 영혼 속(양심)이다.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헤로도토스 《역사>)

- 우리는 단순히 사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네. '잘'이란 말을 '아름답게'라든가 '옳게'라는 말로 바꾸어 놓는다면 어떻겠나? 그것도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겠지?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지혜 를 사랑하는 것을 철학이라 부르는 이유를 새삼 확인할 수도 있 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죄 이유를 길게 조목조목 설명한다. '변명'이 그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끄러 움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스스로 물으면서 이렇게 답한다. "조금이라도 품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 선량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하며, 그 일을 하 면 살게 되느냐 죽게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철학자답게 지혜에 대한 갈구를 전한다.
-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지혜를 사 랑하고 추구하는 일을 결코 중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 분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고하며 여러분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처럼 저의 생각을 전할 것입니다."
고개 좀 숙이고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면 무죄가 나올 수도 있었다고 한다. 선고 결과는 유죄(배심원 500명 중 유죄 280표, 무죄 220표)에다 사형(배심원 투표 사형 360표) 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가 떨어지자 이렇게 말한다. 최 후 진술인 셈이다. 당당함이 하늘을 찌른다.
"저는 위험에 처해 있다 하여 비굴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의 방식대로 변명한 데 대해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비굴한 태도를 취함으로 써 살아남기보다는 저의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의 거듭되는 해외 탈출 권유에 '옳 음'을 강조한다.
"자네 말을 따라야 할 것인지 검토해 보세. 어느 누구의 말에 도 따르지 않고 언제나 내 이성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만을 따르 는 것이 나의 방식일세. (중략) 남들의 의견은 무조건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 존중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가지만 존 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 그는 또 크리톤에게 친구들이나 제자들이 추진할 수도 있는 보복에 대해 옳지 않다고 특별히 강조한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대다수 사람들처럼 악으로써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네. 어떤 경우에도 악을 행해서 는 안 되니까 말일세."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 한 달쯤 뒤 죽음을 맞이했다. 비통해 하는 아내 크산티페를 내보낸 뒤 그곳에 모인 친구들과 철학적 담론을 나눈다. 주제는 철학자의 죽음, 사후 육체와 영혼의 분리 문제였다. 저녁 무렵 슬퍼하는 친구들을 질책하며 목욕을 끝내 고 세 아들을 면담한 뒤 조용히 독배를 들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이런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꼭 갚아주게.”
지금, 그의 죽는 모습을 칭송하거나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죽 음을 숙명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철학자의 모습이 멋있게 보 이기는 하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래서 가급적, 아니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 는 소크라테스라는 철인의 죽음을 통해 '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잘' 살았으니 멋지게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잘' 살지 못했다면 결코 멋지게 '잘' 죽을 수 없다. 자신의 일생이 스스로 생각해도

- 영국 수상인 저는 미국 대통령에게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미니크 엔라이트 《위트의 리더 윈스턴 처칠>)
- 영국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유머와 재치의 달인이었다. 위에 소개한 문장은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했다는 유머다.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마련된 처칠의 침실을 방문했다가 벌거벗은 상태로 욕실에서 나오던 처칠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돌아섰다. 그때 처칠이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런 상황을 재치로 수습하는 동시에 순 간 "나는 당신에게 비밀이 없으니 당신도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 시오"라는 정치적 메시지까지 던졌다는 평가다.

- 기억하라 / 만약 네가 도와줄 수 있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달린 손을 이용해라/ 네가 더 나이를 먹는다면/ 너의 손이 두 개란 걸 알게 될 것이다/한손은 너 자신을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한 손이다. (알렉산더 워커 《아름다운 인생 오드리 헵번》)

-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새로운 양식의 고급주택 등을 살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 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 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 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봤을 때 당시 미국 사람들은 집과 재산과 일의 노예였다. 그것에 얽매여 자유를 박탈당하는 바람에 삶의 여유를 갖지 못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접 지은 그의 오두막집 건축비는 28달 러 남짓이었다. 자신이 졸업한 하버드대 1년 기숙사비(30달러)보 다 적은 돈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한 셈이다. 소로우는 사치스러운 생활보다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이 더 지혜롭고 행복 하다고 봤다. 호화 유람 열차를 타고 매연을 마시며 천국에 가는 것보다 소달구지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땅 위를 돌아다니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그다.
"대부분의 사치품과 이른바 생활 편의품 중 많은 것들은 꼭 필 요한 물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생활 향상에 방해가 된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및 그리스의 옛 철학자들은 외관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가난했으나 내적으로는 누구보다 도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2가지나 3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이 할 수 있도록 하라."
- 2년여 동안의 오두막살이 경험에서 그는 두 가지를 특별히 배웠다고 했다. 하나는 월든 호수처럼 위도가 꽤 높은 곳에 살면서 도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 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 를 해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욕심을 부 리지 않는다면 호구지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는 단순한 삶의 효과가 12가 지나 된다고 했다. 시간이 생긴다, 생활이 즐거워진다, 자유와 해 방감을 느낀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절약하고 환 경을 생각한다, 건강하고 안전해진다, 인간관계가 좋아진다, 지 금 이 순간을 즐긴다, 감사한 삶을 산다.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 아닐까 싶다. 서두에 소개한 《월든> 속 문장처럼 속박 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경제적 결핍은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소로우는 《월든>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 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 가장 훌륭한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만 할 뿐 다투지 않고 주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 나는 춤을 출 때 춤만 춘다.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 그리고 아름다운 과수원을 홀로 거닐다가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게 되면 곧 내 생각을 바로잡아 다시 그 과수원에서의 산책으로, 그 고독의 감미로움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돌려놓는다. (미셸 드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 미국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년 개봉)를 보면 명문 고등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교사 키팅이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을 소리 높여 외친다. 미래의 성공을 준비하는 데 너무 매몰되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 고 충실히 살라는 가르침이다.
카르페 디엠은 고대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가 송가(Odes)라는 시에 사용한 라틴어로, '바로 이 순간을 붙잡다'로 해석된 다. 송가의 마지막 부분을 음미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 순간에도 인생의 시간은 우릴 시기하 며 흐른다네 / 바로 이 순간을 붙잡아야 하네 / 미래에 일어날 일 은 최소한으로 신경 쓰시구려."
첫머리에 소개한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문장을 읽으면 이 '카르페 디엠'이란 말이 곧바로 떠오른다. 단 한순간도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즐기라는 조언이 다. 사람들은 흔히 카르페 디엠을 '오로지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 미로 사용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한동일 교수가 저서 <라틴 어 수업》에서 한 지적이다.
“오늘 이 시간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쾌락을 즐기 라는 뜻이 아니라,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의미 한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다."

-너희는 아름답긴 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어. 너희를 위하여 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물론 무심한 행인은 내 장미꽃도 너희와 비슷한 꽃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내 꽃은 너희 전부보다도 훨씬 소중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 어린 왕자는 여우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 별에 있는 장미만을 사랑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도처에 아름다운 장미가 피 어 있는 넓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자 했다.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 다. 이게 바로 절대적 행복을 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 쟁 속에 살기 때문에 상대적 행복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다. 행 복할 만큼 충분히 많은 것을 갖추었음에도 허기를 느낀다. 남의 평가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움켜쥐고 산다. 나보다 남이 더 소중한 듯 끊임없이 주변을 살핀다. 이런 사람에게 행복은 없다.
절대적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의 중심 이 자기 자신임을 인식해야 한다. 크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 다고 그것을 모두 취하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비록 작고 부족 할지언정 자신과 좋은 인연을 맺은 단 하나를 좋아하는 마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남과 비교하는 버릇을 고쳐야 눈에 보이지 않 는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참된 행복이다. 행 복은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고,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마음속 에 만족감과 감사함을 느끼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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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집중력 설계자들

인문 2024. 4. 2. 06:59

- 홀로 있든 함께 있든 떨쳐낼 수 없는 것이 바로 몸이다. 몸은 욕구로 가득하다. 수면욕, 식욕 그리고 성욕. 수도자들의 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몸을 다스리기 위해 욕구를 적절히 해소하기도, 정면으로 거스르기도 했다. 하지만 목표는 늘 하나였다. 몸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이 목표를 잃은 수도자들에게는 몸에 대한 집착만이 남았다.
- 수도자들이 신체를 단련하려고 개발한 일련의 수행법을 오늘날엔 '고행 asceticism'(또는 금욕주의옮긴이)으로 부른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인 아스케시스askesis에서 유래된 용어로, 신체 단련 이나 정신 단련, 또는 둘 다를 뜻한다. 하지만 자아를 전면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심신 수련법을 수도자들이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 었다. 실제로 수도자들은 수 세기 전부터 이어진 철학적·의학적 전 통에도 의존했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구원의 매개체로 강조한 기독교 신학에도 의존했다. 의사와 플라 톤주의자, 유대인, 스토아학파, 냉소주의자, 신플라톤주의자, 초기 기독교인은 신체와 영혼과 신성의 본질에 대해 각기 다른 이론을 내놨다. 하지만 영혼이 신체보다 위에 있는데도 신체에 영향받기 때문에 의학적·운동적·도덕적 훈련을 두루 거쳐 신체를 면밀히 점 검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데 전반적으로 동의했다.
-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의 기독교 수도자들은 한결같이 몸단장과 수면, 성관계, 식사를 신체 단련의 주요 대상으로 보았지 만, 방법 측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간혹 그들의 다양한 권고는 상당히 다른 우주론과 신학에 뿌리를 두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성 은 대체로 몸과 마음의 경쟁적인 역학과 관련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둘을 함께 훈련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대개 그 시작은 몸단 장이었다. 이는 사소한 주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산만함 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수도자들이 애초에 몸과 마음을 연계해서 바라봤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 "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남자들"
5세기가 되자 대다수 수도자는 금욕이 육체적 도전이자 정신적 도 전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렇더라도 평온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다 양한 수행법을 고안했다. 일부 수도자는 거세까지 하면서 논쟁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마태복음> 19장 12절에서 영감을 얻었 는데, 여기엔 그리스도가 "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남자 들”을 칭찬했다고 나와 있다. 그들은 또 정자가 부족하면 성욕이 고갈된다는 갈레노스Galenos파의 의학 이론을 따르기도 하고, 거세 하면 신체가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금욕주의자들의 속설에 이끌 리기도 했다. 가령 신체 일부가 “당신을 무절제한 상태로 이끈다 면, 전체를 망치느니 그 부위를 잘라낸 채 절제하며 사는 게 낫다." 이처럼 거세는 수도자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는 산만함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거세의 논리에 결함이 있다고 반박하는 수도자도 꽤 있었다. 그들은 거세된 남자도 여전히 성욕을 느끼고, 또 성관 계도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더 일반적으로는 수도자들이 은유적 으로만 거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세는 해결책이 아니라 회피 책이었다. 즉 고환을 잘라내거나 수술로 제거한 수도자는 어떤 결 심으로 감행했든, 실제론 자제력 부족을 드러냈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이라는 궁극적 도전에 맞설 수 없었던 것이다. 30
7세기의 수도자로서 동지중해 일대의 여러 금욕 행위를 조 사한 요한 모스코스는 이러한 논리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수도 자의 성욕이 기적적으로 사라져도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 못 박았 다. 성적 흥분에 맞서 싸우는 수도자야말로 육체적·정신적·도덕적으로 강건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자이자 사제인 코논Conon을 예로 들었다. 코논은 여성에게 세례를 베풀 때마다 흥분했는데, 자 기 약점을 극복하려 애쓰는 대신 당황해서 의식을 그만두었다. 그 런데 기적이 일어나 다시는 성욕을 느끼지 않게 되자, 그는 다시 세례를 베풀었다. 하지만 모스코스는 코논의 성과를 전혀 인정하 지 않았다. 코논이 마음을 수련하지 않았기에 그의 무성애는 무의 미한 승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모스코스의 판단에 동의 하지는 않았다. 로마 법학자들과 교회 평의회가 수 세기 전부터 거 세를 금지했지만, 그들의 결정이 항상 지켜지거나 강제되지는 않 았다. 모스코스가 살던 시대에도 (특히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일 부 수도자는 계속 거세를 감행했고, 일부는 결사반대했으며, 또 일부는 거세된 수도자를 동료로 받아들였다.
이성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수도자도 많았는데, 일부는 이 또한 의지 부족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남성 은수자들 은 흔히 여성 방문객을 외면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남 성과 여성 수도원은 통상적으로 이성 수도자의 접근을 거부했지 만, 대체로 (응접실이나 교회당 같은) 특정 공간, (친척과 고위 성직자 같은) 특정 사람, (건축이나 의료, 성찬 의식 같은) 특정 직군에 대해서 는 예외를 두었다. 심지어 출생 시엔 여성으로 기록되었으나 스스 로 남성이라고 주장한 수도자가 남성 수도원에 합류했다는 기록 이 수 세기에 걸쳐서 꽤 존재한다. 그들의 트랜스 정체성은 흔히 죽고 나서야 밝혀졌다. 동료 수도자들은 그런 사실에 깜짝 놀랐는 데, 초기의 충격은 대개 분노보단 감탄으로 바뀌었다.
- 적어도 중세 초기의 성인전 작가들은 그런 식으로 묘사했다. 트랜스 수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묘사로 볼 때, 이성 간의 신체 접촉이 수도자들의 정신적 평정에 결정적 위협은 아니었던 것으 로 보인다. 수도자들은 그보다 더 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부 수도자는 좀 더 일상적인 상황을 예로 들며 이러한 점을 강조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수도자는 마음이 흥분할 기회를 제한하고자 길에서 마주치는 이성에게서 시선을 돌렸지만, 다른 수도자는 그 런 행동이 피상적인 형태의 금욕주의일 뿐이라고 반대했다. 몸만 치열하게 고행할 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이 단련해야 한다고 보았 다. 널리 알려진 한 이야기에서 떠돌이 남성 수도자는 여성 수도자 무리를 마주쳤을 때 그들을 피하려고 길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무리의 지도자가 그에게 다가가 “당신이 완벽한 수도자였다면, 우리가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나무랐다. 신체 에 얽매이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성인전이 이성과 기꺼이 교류했던 도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포프테그마타 파트룸》, 테오도레 투스의 《종교사Religious History》, 그레고리우스의 《대화집》 등 대 단히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금언집들만 살펴봐도 모두 그러한 성 향의 수도자들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친밀한 공동체 안에서조차 정반대의 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6세기에 쥐라의 아버지들Jura fathers로 불린 수도원장들에 대해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주교는 한 명은 여성과 만나기를 거부했으나 다른 한 명은 따뜻하게 맞아줬 다고 언급했다.
- 수도자들이 개발한 식단은 전통적 충동과 파격적 충동의 특징을 두루 반영했다. 그들은 오랜 의학적·철학적 전통을 계승했는데, 둘 다 절제된 식사의 신체적·정신적·도덕적 이점을 강조했 다. 그들은 또 헤시오도스와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의 신화에서 세상이 변하고 타락하지 않았을 때 인간이 먹었던 음식에 대한 영 감을 얻었다. 일종의 구석기 식단paleo diet을 애용했던 셈이다. 한편 로마 엘리트 가정에서 만연했던 축하연 형태의 식사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새로운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공동 식사는 피트 스톱pit stop(자동차 경기 도중 아주 빠르게 급유하거나 정비하기 위한 정차-옮 긴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수도자들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료를 채우기 위해서 모였다.
그렇지만 함께 식사한다는 사실 자체는 여전히 중요한 의 미가 있었으니, 함께 수행한다는 느낌을 강화했다. 수도원 지도자 들은 같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공동체의 결속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세기에 상부 이집트에서 활동한) 셰누테와 (6세기에 갈리아, 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바오로와 스테파노의 규칙Rule of Paul and Stephen》을 쓴 셰누테는 심지어 수도자들이 각자의 조미료를 식 탁에 올릴 수 없게 했다. 누구나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 였다. 하얀 수도원의 여성 수도자들은 셰누테가 식사량에 대해서 도 그렇게 주장한다는 점에 언짢아했다. 남녀 수도자가 같은 기준 을 따라야 한다는 셰누테의 논리에 따라 일일 배급량이 조절되자, 그들 중 일부는 성별에 따라 차별을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셰누테가 이런 반박에 응하진 않았지만, 그를 비롯한 수도 원 지도자들은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수도자에 대해선 예외를 인정했다. 다만 엘리트 수도자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안을 따르는 지도자는 많 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수도자와 나이 든 수도자, 수확 같은 계절 노동으로 지친 수도자에겐 편의를 봐주려 애썼다. 아픈 수도자에 겐 특별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점에도 대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환자가 더 나은 음식을 먹고 더 많이 쉬는 것에 일부 건강한 수도 자는 분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방된 음식을 먹지 않고 참고 견디 려는 수도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어떤 수도자는 그가 특전 때문에 아픈 척한다고 의심했다.

- 1500년 전의 수도자들에게 책은 신문물이었다. 현대인이 스마트폰에 빠져들듯 수도자들도 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책의 포로가 되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쓰고 만들고 읽으며 책을 집중의 도구로 삼았다. 조판부터 디자인까지 그때 개발된 기술이 지금 이 책에도 녹아들어 있다. 집중을 논할 때 여전히 책을 강조하는 이유다.
- 최적의 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해도, 수도자들과 그들의 마음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았다. 키프로스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of Cyprus 등 열성 지지자들이 주장한, "이 책들을 보기만 해도 죄를 덜 짓고 의로움을 더 굳건히 믿게 된다"라는 식의 정서는 크게 공감받지 못 했다. 6세기에 레안데르가 말했듯 수도자들은 악마에게서 벗어나 기 위해 독서와 기도를 꾸준히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 게 꾸준히 수행하더라도 늘 위태로운 상태를 면하기 어려웠다. 산만함은 책이 베개로 전락하기 한참 전부터 수도자들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수도자들은 집중하는 데 도움 을 받고자 집중이 필요한 작업, 즉 책과 씨름해야 했다.
- 그래서 수도자들은 적극적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이 말은 곧 현대와 상당히 다른 독서법을 채택했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속 독, 훑어보기, 폭넓게 읽기를 목표로 삼는 대신, 수도자들은 천천 히 주의 깊게 읽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었다. 스페인 북서부 에서 전래한 '일반 규칙'은 수도자들이 성부들에 관한 글을 반복 해서 읽고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권고했다. 심지어 글을 읽지 않 을 때라도 성부들이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고 상상하게 했다. 이런 가상의 보호막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일종의 지원책으로 여겨졌다. 

- 수도자들은 자기 내면에서 기억이라는 또 다른 책을 찾아냈다. 원하는 것만 기억하고, 잘 분류하며, 필요한 만큼만 끄집어낼 수 있다면, 산만함과 작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개발된 불멸의 기술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으로 자기 내면에 집중한 수도자들은 머릿속 기억의 방에 가닿았다. 이후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채워 넣으니, 이를 통찰이라 불렀다.

- 집중의 단계가 심화할수록 수도자들은 가장 강력한 적, 즉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 생각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살 수도 없었다. 따라서 중요한 건 생각을 관찰하고 분별하는 일이었다. 이로써 생각을 생각하는 일, 곧 메타인지가 탄생했다. 메타인지의 최고 경지에 오른 수도자들은 집중에 집중하는 일, 곧 몰입의 순간을 경험했다.
- 생각 속으로 깊이, 더 깊이 파고들면 수도자들은 마음의 가장 기이 한 특징, 즉 어떤 정보를 처리하는 동시에 그 과정을 관찰하는 능 력과 마주쳤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성찰성reflexivity을 수다스러운 간섭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도자들은 재능으로 여겼다. 그들 에게 생각에 관한 생각은 산만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아를 안정 시키는 궁극적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머릿속으로 들어 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전략들, 즉 수도자들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공동체, 몸, 책, 기억을 활용하기 위해 고안한 온갖 수 행법은 집중된 마음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동심원과 같았다. 그런 데 수도자들은 마음을 단련할 때조차 산만함에 빠지기 쉬웠다. 설 상가상으로 잘 훈련된 수도자일수록 산만함을 제대로 인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정신이 고도로 기능하는 상태에서 방해받으 면, 방향이 잘못된 것인데도 순간의 통찰처럼 느껴졌다. 그레고리 우스와 니네베의 이삭은 6세기 말과 7세기 말에 저술한 책에서) 산만함과 계시는 대단히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둘 다 술에 취한 듯 통제력을 상실한 느낌을 주었다. (그레고리우스가 말한) 인지적 "실수" 나 (이삭이 말한) "말더듬증" 때문인지, 아니면 개념적으로 압도하 는 현상을 갑자기 접했기 때문인지 구별하기 위해, 마음은 자기 자 신을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
이로써 메타인지는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의 수도자들에게 중요한 수행법이 되었다. 기법은 초급부터 고급까지 다양했다. 나 스파르의 아브라함Abraham of Nathpar이 600년경에 말했듯 "수도자 내면의 숨겨진 존재가 아기처럼 자랐기 때문이다. 마음은 아기의 옹알이를 내면의 언어로 발전시켜, 이를 활용해 자신의 움직임을 능숙하게 관찰하고 산만한 요소를 제거해야 했다. 즉 점점 더 어려 운 훈련을 통해 자기 생각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격려하고 확대해, 궁극적으로 (일시적이나마)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했다.
- 기도에 집중하고자 고안한 가장 간단한 메타인지는 마음속에 상상의 울타리를 치고 그 속에 온갖 생각을 가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7세기의 시리아 작가 사도나Sandona는 “사방에 흩어져 있 는 생각을 한군데로 모은다”라고 묘사했다. 이 방법은 주로 집중 전 준비 단계로 활용되었다. 셰몬 디에부타가 상상했듯이 생각을 목초지로 보낼 수 있다면, 울타리 안에 다시 가둘 수도 있을 것이 었다. 요한도 똑같은 전략을 공유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어느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한 수도자가 기도에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에게 어떻게 그리 집중할 수 있는지 설명해달 라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는 기도를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내 생각과 마음과 영혼 을 끌어모읍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상대로 '어서 그리스도와 우 리의 왕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자!"라고 소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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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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