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심리 2020. 2. 11. 08:09

- 우리 뇌는 사람을 볼 때 그가 동성이면 '이 사람이 나의 친구냐 적이냐,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냐 적대적인 사람이냐'를, 이성이면 '나의 메이팅 파트너가 될 많나 사람이냐 아니냐'라는 판단을 순식간에 내린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순식간에 싹 스치고 지나가요. 그리고 그 관점에서 그 사람을 판단해요. 그게 계속 영향을 미치고요.
-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짐.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력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걸 잘 못하게 됨. 의사결정이 빨라졌으니까 잘못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졌을 텐데, 고집스럽게 안 바꾸니까 자신의 성공사례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는 이른바 휴브리스가 바로 이런 것임. 영웅은 결국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경험에 발목이 잡힌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늘 열려 있는 사람들, 그래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고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는 분들, 젊은이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을 존경한다.
- 젊은 시절에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지 못하면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남의 지도를 기웃거리게 된다. 남의 지도를 뜯어내 대충 맞춘 누더기 지도를 들고, 그걸 자기 지도라고 믿게 된다. 먼저 세상을 살아낸 여러분에게 후배들은 틀림없이 물어볼 것이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젊은 시절 지도 그리기를 게을리하면, 여러분만의 시각이 담긴 지도를 그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 지도를 그리는 빠른 방법이란 없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간만이 온전한 지도를 만들어준다.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미친 듯이 세상을 탐구하라.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얻게 되는데, 그 지도가 아무리 엉성하더라도 자신만의 지도를 갖게 되면 그 다음 계획을 짜고 어디서 머물지를 계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인생 동안 그 지도를 끊임없이 조금씩 업데이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함.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길을 물어보면 여러분의 지도를 보여주며 '나는 이 지도로 내가 갈 곳과 머물 곳을 정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우울증에 걸리면 과순응 행동을 하게 됨.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보이는 사회성 변화중 하나가 자기주장이 사라진다는 것. 남이 하자는 대로 눈치를 보고 남이 원하는 걸 들어준다. 기분이 우울한데 왜 순응성이 늘어날까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놓고 굉장히 부정적인 판단을 많이 하기 때문. 저 사람이 나를 조금이라도 안 좋게 볼 가능성이 있는 행동은 아예 안 하는 것이다. 평소에 자기 소신이 있고 의견도 주고받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남들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른다면, 요즘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우울감이 증가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만드는 것도 결정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임. 집에서 키우는 개와 들에서 자란 개 중에 누가 더 의사결정을 잘할까? 들에서 자란 개는 굉장이 다양한 상황에 놓이고 그때마다 해야 하는 의사결정의 스펙트럼 역시 굉장히 넓었을 것이다. 반면 주인이 대부분 의사결정을 하는 안전한 집에서 편하게 자란 개들이 할 만한 의사결정이란 매우 제한돼 있다. 의사결정 장애가 있는 분이라면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놓이도록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정을 해보고 결국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경험을 많이 해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남들에게 항상 스마트하게 보이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중요함.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려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킬가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패해도 별일 없다는 경험을 자주 해야 한다. 우유부단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직관을 믿으세요'라고 말해준다. 신중하게 고민할 때보다 직관을 따를 때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해서가 아니라, 의사결정을 안 하는 것보다 차라리 직관을 믿고 결정하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비교의 대상이 다르다. 우선순위를 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판단기준이 생기면 의사결정은 단순해지고 빨라진다.
-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의 자본주의 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집어등에 달려드는 오징어 떼 같은, 그러니까 그 욕망이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모르면서, 심지어는 독이 되는 욕망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달리고 있다.' 학습된 욕망, 부모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내려와 스며든 욕망들이 자신의 욕망인줄 알고 열심히 추구하다가 동력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좌절하고, 벽을 만나 실패하면 더 이상 추동할 힘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는게 지금 우리 사회다.
- 결핍은 때로는 우리에게 강한 성취동기를 부여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할 의욕을 심어주고, 내 삶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친 결핍은 사람들의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조절능력을 떨어뜨리며 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정신적 병균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 징크스나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라는 굉장히 통제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인,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와 관련해서 유독 미신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시험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고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는 욕망은 강하고, 노력 이상의 행운을 필요로 하는 상황, 다시 말해 결과에 대한 기대는 높은데 미래에 대한 통제권이 약할수록 우리는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무 상관없는 인과관계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이런 말을 했따. "만약 자신의 모든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행운이 따라준다면 인간은 결코 미신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음모론은 발견된 사실들 가운데 비어있는 영역, 즉 설명이 되지 않는 영역을 메우고 싶어 하는 우리 본능과 관련 있다. 음모론은 사건과 사건 사이에 끊어져 있는 고리를 연결해 세상을 잘 짜인 스토리로 이해하려는 노력, 이를 위해 인과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 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 굉장히 그럴듯한 이야기를 집어넣을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음모론들이 굉장히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이다. 음모론을 쉽게 믿는 분들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인과관계가 파악되어 원인을 알 수 있고 심지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분들이다.
-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온다.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다. 월급날 월급이 들어올 때보다 지금 강연장을 나가다 복도에서 5만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 더 기쁜 것처럼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것이다. 반면 불행은 미리 안다면 그 크기가 엄청날 것이다. 우리가 불행이 닥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결국 견디고 감내하지만, 예고된 불행은 그 순간 더 큰 불행의 시작이 된다. 당신이 5년 후에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상상해 보라. 지금부터 5년 동안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마 치매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다릴게 될 것임. 다시 말하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행복은 더 크게 누리고 불행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만한 탐험이다.
- 상충하는 두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여러분이 뭐든지 의심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임.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기겠기에 말이다. (칼 세이건, 회의주의자가 짊어진 부담, 패서디나 강연, 1987)
-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알 수 있다. (존 홀트)
- 럭셔리 마케팅이란 잠재적 구매자뿐만 아니라 나머지 99%의 구경꾼들도 꿈꾸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1%가 비싼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생기니까. 이 차를 구매했다는 사실이 구매자의 능력을 보여주고 생존과 짝짓기에 유리하도록 해주어야 더 많이 팔릴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전략을 사용해서 성공한 자동차회사가 바로 BMW코리아다. BMW 코리아는 아무도 외제차를 광고를 안 할 때 처음으로 매스미디어 광고를 하고, 차의 구매를 성공과 등식이 되도록 설정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BMW 자동차를 성공의 지표로 삼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충분히 성공하지 않은 사람들마저 차를 구매함으로써 마치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소비가 더욱 늘어난다.
- 예전에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대뇌 안쪽 측두엽 근처 해마라는 영역을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이 영역이 발달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 그런데 현대 사회에 와서는 전두엽, 즉 정보를 빠르게 스캐닝하고 필요한 정보가 뭔지 찾아서 결합하고 신속하게 맥락을 이해하는 영역을 더 많이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프랑스 계몽시대 철학자이자 작가 볼테르는 "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4차 산업혁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우리가 안다고 확신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향일지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얼어붙는다면 이 역시 순진한 행동이다. 4차 산업혁명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그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만드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클라우스 슈밥)
- 일상몰입은 창의적인 우리의 일상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간 기발한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그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창의적인 발상의 순간, 이른바 '아하! 모멘트' 일때 오른쪽 귀 왼쪽 부분에 해당하는 전측 상측두회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역은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뇌과학자들도 아직 잘 모르는 영역이다. 예전에는 유머감각과 관련이 깊은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유머 감각이란 뻔한 전개의 마지막을 뒤트는 반전이 핵심이다. 아마도 이 영역이 그런 걸 담당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영역은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안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나 산책을 할 때와 같은, 한마디로 멍 때릴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다.
- 예전에는 창의성의 기원을 주로 몰입으로 설명해왔다. 다시 마래 뇌 전체가 한가지 목적적 사고에만 집중할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온다. 물론 그것도 맞겠지만, 완전히 반대로 뇌 전체가 비목적적인 사고를 하면서 이런저런 몽상을 할 때에도 불현듯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 게 이번 연구의 의미다. 사실 우리에겐 목적적 사고를 하는 몰입의 순간가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난 비목적적 사고의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짓이겠죠.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이나요? 아뇨!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은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 하나의 혁명적 아이디어가 세상에 퍼지고 결국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성세대가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주요 세대로 등장하면서 바뀌는 것뿐이다. (닐스 보어)
-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일치하는 세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그곳에서 찾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많이 고용하지 않아도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완전고용이라는 자유시장 경제학의 가설은 앞으로 달성하지 못할 가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세상에서 예전처럼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도 말라며 노동을 강조하면, 답이 안 나올 수 있다. 일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제공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자본주의 시스템이 운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인간이 소비로라도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작동을 멈출 것임. 이렇게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한 세상이 다가오기에, 우리가 그것을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 독창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연구하고 접촉해온 끝에 아는 놀랍게도 그들이 겪는 내면의 경험이 우리가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끼고 회의에 빠진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용기를 내서 행동에 옮긴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후회를 덜 한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다.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 혁신적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람들은 위험감수 성향보다는 위험 관리성향이 강다하. 그들은 모호한 상황에서는 쉽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며, 그 확률을 제대로 계산하려고 애쓴다. 계산 결과 확률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보수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는 하버드를 중퇴하고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굉장히 단호하고 자기 확신이 강하고 위험감수 성향이 높은 것으로 많이 회자되는 대표적 인물이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롤모델이다. 아이비리그를 다니던 그가 안정적 미래를 버리고 과감하게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을 부러워 한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게이츠는 실제로 위험감수 성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장기휴학을 했으며, 학교와 부모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다. 휴학도 회사를 창업하고 1년뒤에 했다. 자기가 회사를 창업하고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게다가 학교도 나중에 복귀할 수 있는 휴학상태에서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한 것. 게이츠는 만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위험감수자로 인용되기보다는 위험을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함.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혁신가는 늘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라는 녀석을 잘 관리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을 너무 만만하게 보아서도, 무모하게 돌진해서도 안된다.
- 우리는 모순되는 두 주장 사이에서 매우 섬세하게 실천에 옮겨야 혁신에 도달할 수 있다. 혁신을 이루기 위해 실행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섣불리 시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 또한 맞다. 퍼스트 펭귄이 되어야 하지만, 쉽게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서도 안된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위허을 잘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도 옳다. 일견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혁신은 찾아온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어야 한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의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탐험이다. 그 중에서 성취를 이룬 자들은 사려깊게 준비한 탐험가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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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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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웨어

심리 2020. 2. 6. 12:05

- 과학은 종종 촘촘한 그물망이라 묘사됨. 한 분야에서 발견한 사실, 방법, 이론, 추론 규칙이 다른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철학과 논리는 과학의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논리적 판단에 영향을 미침. 물리에서 장이론은 심리학에서의 장이론을 촉발. 입자물리학자들은 심리학자들을 위해 개발된 통게를 사용함. 농법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개발한 도구는 행동과학자들에게도 유용함. 쥐가 미로를 찾아가는 법을 설명하력 심리학자들이 개발한 이론을 컴퓨터 과학자들이 기계에 학습법을 주입할 때 도움이 되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들의 사회체계 이론에 힘입은 바가 큰데, 특히 이기적으로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자가 사회의 부를 창출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요즘은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지능과 자기조절 이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람들의 선택방식을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관점이 과거에는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해 크게 바뀌었고, 경제학자들의 과학도구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실험기술을 받아들여 크게 확장된 바 있다. 현대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본질을 이론화한 18, 19세기 철학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인지심리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은 철학자들이 제기한 질문의 영역을 넓히고 있고, 오래된 철학적 난제에도 답을 내놓기 시작. 윤리와 인식론에 관한 철학적 질문은 심리학자와 경제학자의 연구에 길잡이가 됨. 신경과학 연구와 거기서 나온 개념들은 심리학과 경제학, 나아가 철학까지도 탈바꿈시키고 있다.
- 활성화 확산은 우리 판단과 행동에 원치 않는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인지의 강으로 떠내려오는 우연한 자극도, 그것이 당장의 인지적 작업과 아예 무관하다 해도, 우리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어, 어떤 장면, 소리, 기분, 심지어 냄새까지도 사물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쳐 우리 행동을 그쪽으로 유도함. 상황에 따라 좋은 일일수도, 나쁜 일일수도 있다. 허리케인 이름에 헤이즐과 호러스가 있다고 하자. 어떤 허리케인이 더 많은 희생자를 내겠는가? 사실 이름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컴퓨터를 이용해 무작위로 선택한 이름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헤이즐에 희생자가 더 많이 생길 확률이 높다. 여성 이름을 붙인 허리케인은 남성 이름을 붙인 허리케인보다 덜 위험해 보여 사람들이 예방에 소홀한 탓이다.
* 직원을 좀더 창조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애플 로고를 보여줄 것. 그리고 IBM 로고는 피할 것.
* 직원의 주변을 녹색이나 파란색으로 꾸며도 창조성에 도움이 된다. (빨간색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할 것.)
* 연애 사이트에서 조회수를 올리고 싶다면? 프로필에 빨간 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리거나 적어도 사진 주위에 빨간 테두리라도 둘러라.
* 교육채권 발행에 납세자들의 지지를 얻고 싶다면? 학교를 투표소로 지정하도록 로비를 벌여라
* 임신 말기 낙태 금지법에 찬성표를 던지게 하고 싶다면? 교회를 주요 투표소로 정하게 하라
* 사람들이 커피를 마신 뒤 양심상자에 기부금을 넣게 하고 싶다면? 커피 주전자 위에 있는 선반에 사람처럼 생긴 코코넛을 놓아두어라. 그 코코넛을 보면 좀더 양심적으로 행동할 확률이 높다. 사람 얼굴을 연상케 하는 코코넛은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해동을 감시받는다고 느낀다.
* 누군가에게 사설을 읽게 하고 그것을 믿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깔끔하고 호감가는 서체를 써라. 글자가 엉망이면 설득력도 떨어진다. 그런데 사설을 수산물 상점이나 부두에서 읽는다면, 사설의 주장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사설을 읽는 사람이 '비린내가 나는'을 '의심쩍은'의 뜻으로 쓰는 문화 출신이라면 그럴 것이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비린내는 사람의 마음을 어느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아이들의 IQ를 높이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면? 그렇다면 미네소타 학습기업 같은 따분한 이름은 쓰지 말라. 그보다는 살찐뇌닷컴 같은 이름을 써라 회사 이름이 섹시하고 흥미로우면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더 매력적이다.
* 몸상태도 인지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교도소에서 가석방되고 싶은가? 가석방 심사를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 하도록 시도해보라. 이스라엘 가석방 심사관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심사관이 식사를 방금 끝냈을 경우 가석방을 허락할 확률이 66%였다. 점심식사 직전에 이루어진 심사에서는 가석방 확률이 정확히 0이었다.
*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사람이 나를 따뜻한 사람, 껴안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는가? 그렇다면 상대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주고 들고 있게 하라. 아이스커피는 절대 안된다.
- 당신은 당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치인 인간이다. (짐 론, 미국 기업가 겸 동기부여 전문강사)
- 사람들에게 그들이나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의 행동이 주로 성격 특성에 좌우되는지 상황에 좌우되는지 물으면, 자신보다 친구가 상황변화에 상관없이 일관된 행동을 보일 것 같다고 대답할 것임. 이처럼 행위자와 관찰자가 행동의 원인을 다르게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전후 맥락은 언제나 행위자에게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 상황에 맞게 행동하려면 내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함.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상대는 내가 처한 상황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상대에게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내 행동이다. 그러다 보니 내 행동의 특성에서 내 성격의 특성을 성급히 판단하기 쉬움. 상대는 내가 처한 상황의 중요한 부분을 볼 수 없고 더러는 무시할 수도 있다. 내 행동을 성격 탓으로 돌리는 데 제약이 거의 없는 셈이다.
- 그리스에서는 생계의 기초가 거래, 고기잡이, 목축처럼 주로 혼자 하는 일과 텃밭 가꾸기는 올리브 농장 같은 농사인 반면, 중국은 쌀농사처럼 협동이 많이 필요한 농사였다. 전제정치는 자기이익부터 챙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효율적인 운영방식이었을 것임.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그리스인의 독립적 문화를 물려 받은 서양인과 중국의 유교전통을 물려받은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10여가지 실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남. 그중 다카히코는 일본대학생과 미국대학생에게 가운데 인물의 표정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일본학생들은 인물이 행복한 사람들에 둘러싸였을 때보다 슬픈 또는 화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덜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주위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훨씬 덜했다. 맥락에 주목하는 현상은 물리적 맥락에서도 나타남. 이런 차이가 얼마나 뿌리깊은 지 알아보려면 물밑 영상을 보여주는 20초짜리 영상을 본 뒤 무엇을 봤는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미국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할 것이다. "큰 물고기 세마리가 왼쪽으로 헤엄치는 걸 봤어요. 지느러미는 분홍색, 배는 하얀색인데 등에 세로 줄이 있었어요." 한편 일본인은 이렇게 말하기 쉽다. "시냇물 같은 걸 봤는데 물은 녹색이고 바닥에는 돌멩인가 조개껍데기가 있었어요. 큰 물고기 세마리가 왼쪽으로 헤엄치고 있었고요." 일본인은 맥락을 만든 뒤에야 미국인들에게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사물에 접근. 종합해보면,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배경사물에 60% 더 많이 주목했다. 동아시아인이 서양인보다 맥락에 더 주목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 이런 차이는 행동의 원인을 설명할 때에도 그대로 나타나, 동양인은 상황을, 서양인은 기질을 원인으로 꼽는 경우가 많음. 한국의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면 한국인은 그 상황의 어떤 요소가 그 사람의 행동을 촉발했으리라는 꽤 합리적 출론을 내림. 그러나 미국인이라면 그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도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개인의 기질로 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 여길 때, 우리는 그 판단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보다 당사자의 판단이 맞을 확률이 더 높다는 점을 기억하라. 당사자는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을, 그와 관련한 개인적 사연을, 우리보다 더 잘알고 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서양인들은 세상이 대체로 정적이며 사람을 비롯해 어떤 대상의 행위는 불변하는 기질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반면에 동아시아인들은 불변하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라고 생각. 환경을 바꿔 보라. 그러면 사람도 바뀐다.
- 무의식은 의식보다 감지용량이 훨씬 더 클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훨씬 더 많은 요소를, 그리고 훨씬 더 광범위한 종류를 생각헤 담아둘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 의식까지 가담하면 사물을 평가할 때 엉망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예술 포스터나 잼 같은 대상을 보고 나서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고 각각의 물건에서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싫은지 말한 뒤에 고르라고 하면, 그 물건들을 그저 잠시 생각한 뒤 고를 때보다 잘못 고를 확률이 더 높아짐. 잘못 골랐다는 걸 어떻게 알까? 머릿속에서 일이나는 과정을 말로 표현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시간이 조금 지나서 아까 선택했던 물건을 평가해보라고 하면 그 물건이 아까만큼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 이런 의식적 선택이 문제가 되는 이유 하나는 말로 표현되는 특징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 그리고 그런 특징은 대개 그 물건의 중요한 여러 특징 중 일부다. 무의식은 말로 표현되는 특징뿐 아니라 표현되지 않는 특징까지 모두 고려하기 때문에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한다. 이처럼 선택을 할때 의식적인 과정을 빼버리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 자잉탕은 3년간 쌍둥이 소수추론 연구를 했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해법이 찾아온 순간은 그가 연구실에서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던 때가 아니라 콜로라도에 있는 친구 집 뒤뜰에 앉아 콘서트장으로 떠나기전 잠시 친구를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순간, 이게 정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여기까지가 무의식의 성과였고, 이 뒤부터는 의식이 개입하기 시작. 장이탕은 여러 달에 걸쳐 그 해법의 세세한 부분을 손질했다. 장이탕의 경험은 매우 높은 수준의 창조적 문제를 해결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 사례. 예술가, 수학자, 과학자 같은 창조적 사람이 자신의 창조방식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놀랍도록 비슷한 점이 있음. 미국 시인 브루스터 기셀린은 앙리 푸앙카레에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로 창조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방식에 관해 쓴 수많은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기셀린은 "순전히 의식적인 계산만으로는 절대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글쓴이들은 자신을 구경꾼처럼 묘사. 의식적 견해 뒤에 숨은 문제해결과정의 열매를 처음 목격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관찰자와는 다름.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1) 자신도 무엇이 그 해법을 촉발했는지 거의 또는 전혀 알 수 없으며, (2)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때가 있다.
- 수학자 자크 아다마르는 이렇게 말했다. "외부 소음에 불현듯 깨었을 때, 그 순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오랫동안 찾아헤메던 해법이 머릿속에 불숙 떠올랐다. 그것도 내가 예전에 시도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푸앙카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기분 전환으로 여행을 떠나 수학은 잊고 있었다. ... 그런데 버스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푹스 방정식을 정의할 때 사용했던 변환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변환과 동일하다는 생각이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노스 화이트헤드는 "귀납적 일반화에 성공하기 직전에 상상이 뒤죽박죽되던 긴장감"을 언급.
- 시인 스티븐 스펜도는 "내가 느끼는 어둑한 아이디어 구름은 응결되어 언어의 소나기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함. 시인 에이미 로웰은 이렇게 썼다. "아아디어는 특별한 이유없이 머릿속에 나타날 것이다. 이를테면 청동 말처럼, 나는 말을 시의 좋은 주제로 머릿속에 입력했따. 입력과 동시에 내 의식은 그 주제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한 일은 그 주제를 잠재의식 속에 떨어뜨린 것이다. 마치 편지를 우편함에 집어넣듯이. 6개월이 지나 머릿속에 시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시가 거기 있었다."
- 의식적인 문제해결과 관련해 우리가 아는 것은 (1) 우리 머릿속에 있는 특정한 생각과 지각, (2) 그 생각과 지각을 다루는 방식을 통제한다고 (또는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특정한 규칙, (3)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과정에서 나온 많은 인지적 산물과 행동이다. 나는 곱셈규칙을 알고, 173과 19라는 숫자가 머릿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3과 9를 곱한 뒤에 7을 남기고 2는 한자리 올려준다는 등의 규칙을 안다. 나는 의식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규칙과 일치하는지 점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곱셈이 진행되는 절차를 안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사이먼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떤 일이 어떻게 무의식적 규칙이나 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규칙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를 제시했다. 체스를 처음 두는 사람은 어떤 규칙에 따라 말을 움직이는지,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는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당연히 규칙대로 움직인다. 이때 사용되는 기술은 소위 멍청이 전략으로 고수들에게는 잘 알려진 규칙이다. 그러다 체스를 한참 두면서 관련 책도 읽고 수준급 실력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에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는 규칙에 따라 체스를 두고 그 규칙을 정확히 표현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자신의 행동이 의식적으로 구현되는 규칙에 맞는지, 그 규칙을 따를 때 떠오르는 생각과 일치하는지 점검할 수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복잡한 문제해결의 기저가 되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일은 종종 들여다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느지 안다고 철석같이 믿을 때, 그리고 그와 관련해 지적당할 만한 실수를 하지 않을 때, 어떤 전략이나 전술의 타당성에 관한 그의 생각을 바꾸기란 매우 힘들다. 체스 선수의 경우, 진정한 고수가 되면 자신이 이용하는 규칙을 정확히 표현하기가 불가능해짐. 중급 실력이었을 때 배운 많은 규칙을 이제는 더 이상 의식적으로 구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랜드마스터 정도가 되면 전략을 무의식적으로 구사하기 때문이기도 함. 판단의 기저가 되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주장은 다음 두가지 관점에서 그다지 과격한 주장은 아닐 것임.
(1) 사람들은 판단과 행동의 기저가 되는 과정을 안다고 주장하지만, 기억에서 정보를 꺼내거나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것의 기저가 되는 과정을 안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후자의 과정은 인식범위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각이나 기억을 이끌어내는 완벽한 과정은 우리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일어난다. 그렇다면 인지과정이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2)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정신과정을 구태여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필요한 추론과 행동을 알아서 하는 정신과정까지 알지 않아도 의식이 해야할 일은 많다.
- 모차르트는 음악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간 듯 싶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려면 아래 두 시점에서 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1) 어떤 문제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해결책의 윤곽을 대략 잡아보려면 의식적 사고가 필수. 뉴요커 필진인 존 맥피는 아무리 하찮은 글이라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초고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초고를 쓰지 않으면 생각을 발전시키기가 분명 어려울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하루에 글을 두세시간만 쓸지라도 머릿속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하루 24시간 그 주제를 생각한다. 그렇다. 잠을 잘 때도 생각한다. 하지만 초고 같은 대략의 초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이 존재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글쓰기가 시작된 게 아니다." 초안만들기의 또 다른 좋은 방법은 앞으로 쓸 내용을 어머니에게 편지로 알리는 것이다.
(2) 무의식에서 나온 결론을 점검하고 다듬는 데 의식적 사고가 필요. 어떤 해법이 난데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수학자도, 그 해법을 증명하기까지 수백시간을 의식적으로 고민했다고 말한다.
-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의식의 자유로운 노동의 혜택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 어떤 사람들은 매몰비용 개념을 알고 나서, 그렇다면 결혼생활에 이미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고 해서 결혼생활을 지속할 필요는 없다는 뜻 아니냐고 했다. 쏟아부은 시간과 힘은 이미 매몰됐으니까. 나는 그런 논리가 매우 조심스럽다. 결혼생활에 쏟은 시간과 힘은 결혼생활을 지속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 시간과 힘이 가치가 있었다면 앞으로도 가치 있을 테니까. "결혼은, 사랑하지 않은 시간을 극복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떠올려보라.
- 예상되는 수준보다 타인들이 더 훌륭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면, 설교보다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자주 있음. 설교는 나쁜 행동이 실제보다 더 널리 퍼진듯한 암시를 주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 그렇게 되면 타인을 따라 하려던 마음이 돌아서버린다. 사람들의 전기사용량을 낮추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웃보다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의 집 대문에 그 사실을 적어 걸어둬보라. 여기에 찌푸린 얼굴까지 그려 넣으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전기를 절약할 방법을 제안하라. 이웃보다 전기를 적게 쓰는 사람이라면 역시 그 사실을 적어 대문에 걸어둔다. 이때 반드시 웃는 얼굴도 그려 넣는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전기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제시한 이 영리한 개입으로 캘리포니아은 이제까지 에너지 비용을 3억불 넘게 절약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수십억 파운드 줄일 수 있었다.
-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자 할 때 우리는 흔히 당근과 채찍이라는 인센티브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음. 금전적 이익과 손실은 가장 많이 애용되는 인센티브다. 하지만 사람들을 우리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더 효과적이고 더 싸게 먹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전기 절약을 유도하고 싶다면? 이웃은 전기를 더 적게 쓴다고 말해준다. 학생들의 음주를 줄이고 싶다면? 친구들은 생각보다 술을 덜 마신다고 알려주라. 떠밀거나 잡아 끌기보다 장벽을 제거하고 통로를 마련해주어 가장 현명한 행동이 가장 쉬운 선택이 되게 하라.
- 면접환상과 금본적 귀인오류는 뿌리가 같으며,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양에 제대로 주목하지 못할 때 더욱 부풀려질수 있다. 행동의 원인을 상황보다 고정된 기질 탓으로 돌리는 근본적 귀인오류를 제대로 이해하면, 면접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회의적이 된다. 대수법칙을 확실하게 이해해도 근본적 귀인 오류와 면접환상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나는 면접의 효용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니 면접에 근거한 내 판단에도 언제나 회의를 품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원칙을 이해했다가도 차츰 잊어버린다. 그러면서 나는 가치있고 신뢰할 만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환상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래서 면접이나 누군가를 잠깐 본 것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특히 그 사람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의 견해에 근거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고 학교 성적이나 업무 수행력에 대한 기록까지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짧은 면적에 근거해 판단을 내릴 때는 그 한계를 언제나 또렷이 인식한다.
- 신뢰도는 어떤 사건이 두 가지 경우에 또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측정했을 때 똑같은 수치가 나오는 정도를 말함. 타당도는 무언가를 측정해 예측했을 때 원래 의도한 것을 예측하는 정도를 뜻함. 어떤 측정도구는 신뢰도가 완벽한데 타당도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점성술사 두 명이 물고기자리인 사람과 쌍둥이자리인 사람의 외향성 정도를 두고 일치된 의견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런 주장에 타다도가 있을 리 없다.
-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면 따라 마시게 되고, 사람들이 술을 많이 안 마시면 덩달아 음주량을 줄인다. 호텔의 특정 객실에 묵었던 사람들이 수건 하나를 여러 번 사용했다면 그 방에 투숙한 다른 사람도 따라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유권자에게 그 지역 투표율이 높을 거라고 말하는 게 낮을 거라고 말하는 것보다 투표율을 높이는 데 훨씬 더 효과적임. 사람들에게 지난 선거에서 그들이 투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번에도 그들의 투표 여부를 점검할 예정이라 말한다면 효과적일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도 잘 보이고 싶어함. 그러니 투표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말로써 투표율을 2.5%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단 사실이 새삼 놀랍지 않다. 하지만 오직 A/B테스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단 사실이 새삼 놀랍지 않다. 하지만 오직 A/B 테스타만이 점검 여부가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니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느지 알아볼 수 있다.
- 구두보고는 아주 다양한 왜곡과 오류에 취약하다. 우리는 머릿속에 서류서랍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 의견을 뽑아쓰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할 때는 질문이 어떤 형태였는지, 그 앞에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질문을 받았을 때 우연히 발생한 사오항이 점화효과로 작용했는지에 영향을 받게 됨. 다시 말해 개인의 견해는 급조되고, 외부의 영향에 쉽게 좌우됨.
-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참고집단과의 암묵적 비교에서 나오는 때가 많다. 누가 나더라 얼마나 성실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교수들이나 아내 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마침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비교해 내가 얼마나 성실한지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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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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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파민은 뇌 속이 여러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 가장 잘 알려져 있고 확실한 것이 보상과 기쁨에서의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뇌의 중변연계 보상경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대로 중변연계 보상경로를 가리켜 도파민 보상경로라 부르기도 한다. 뇌는 우리가 자신이 인정하는 행동을 했다는 걸 인지할 때마다(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탈출했거나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졌거나 하는 등) 우리의 행동을 보상해주는데 도파민을 분비시킴으로써 순간적이지만 강력한 수준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기쁨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도파민 보상경로는 행복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뇌 영역인 것이다. 도파민 분비량이 얼마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느냐와 관계있다는 증거자료로 있다. 어떤 사건이 예상하지 못한 일일수록 우리는 더 많이 즐기게 된다.
- 엔돌핀도 기쁨을 일으키는 대표적 신경전달물질. 초콜릿을 듬뿍 먹었거나 흥분된 섹스를 하거나 어쨌든 엔돌핀이 분비되면 경이롭고 강렬하며 아찔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우리의 마음속에 퍼져 나간다. 엔돌핀의 힘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헤로인과 몰핀과 같은 강력한 아편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우리 뇌와 몸속에 있는 엔돌핀 수용체를 활성화시키기 때문. 아편제는 분명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주지만(그래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아편제를 복용한다.) 동시에 몸을 손상시키기도 함. 심각하게 아편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침을 흘리는 것 말곤 잘 하는 게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헤로인은 그 강도가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엔돌핀의 2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가장 중독성 있는 마약보다 5배나 더 강한 물질이 우리 뇌에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무슨 일이라도 해낸다는 게 놀라울 따름. 쾌락주의자들에겐 나쁜 소식이겠지만, 뇌가 엔돌핀을 아주 조심스레 다룬다는 사실은 인류의 기능적 입장에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뇌는 심한 통증이나 스트레스에 대응하며 엔돌핀을 분비한다. 이 두가지 요인의 좋은 예로 출산을 들 수 있다.
- 출산 외에도 자신을 엄청난 통증과 스트레스에 노출시킴으로써 엔돌핀 분비를 일으키는 방법들이 있다. (때때로 남성들이 산모에게 출산이 뭐 그리 힘드냐고 심드렁하게 말한다면 그 고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육체적으로 극단적인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를 느낀다고 말한다. 러너스 하이는 몸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순간 뇌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모든 고통과 아픔을 제거함으로써 느끼는 엄청난 쾌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엔돌핀의 기능은 기쁨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엔돌핀을 '기쁨을 유발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마치 소방차를 '물건을 홀딱 젖게 만드는 기계'라고 설명하는 것과 같다. 엔돌핀은 기쁨을 유발한다. 하지만 틀린 게 있다. 그게 원래 목적은 아니라는 거다.
- 일부 연구에서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기능은 엔돌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엔돌핀의 분비량이 낮으면 행동이나 업무관리 등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본적인 역할만 한다는 증거도 있다. 엔돌핀은 스트레스와 동기의식을 관리하는 신경계와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도와준다. 당신의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라 하자. 그 업무를 끝마쳤을 때 뇌는 약간의 엔돌핀을 분비시켜 우리로 하여금 "끝났어. 이제 다른 걸 해도 돼"라고 느끼도록 해준다. 정확히 말해서 쾌감을 생성하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고 따라서 우리의 안녕과 행복에 기여한다. 이것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엔돌핀의 예방적 기능을 보여주는 증거다.
- 옥시토신은 개인 간 만남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핵심요소.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 사이에 즉각적이고 강렬한 유대관계를 일으킨다. 모유 속에 함유되어 있고 모유 분비를 유도하는 물질이다. 더 나아가 옥시토신은 훨씬 더 다양한 상황에 관여함. 성적 흥분, 스트레스, 사회적 관계 및 신의 등 많은 것들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상한 결과가 많이 초래됐다. 예를 들어, 옥시토신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일을 하지만 성관계를 할 때도 분비됨. 흔히 프렌즈 위드 베네핏(헌신적 애정 없이 육체적 관계만 갖는 관계)이라고 불리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옥시토신 덕에 성적관계는 상대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게 되고, 결국 단편적인 육체적 매력이 진실한 애정과 열망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옥시토신이 진짜 '사랑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 세로토닌은 매우 다양한 신경 프로세스에 사용되는 신경전달물질. 수면과 소화를 조절하고 우리의 주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기분을 조절하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함. 세로토닌은 우리가 좋은 기분, 소위 행복을 느끼는 데 아주 중요해 보인다. 현재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우울제는 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통상적인 생각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세로토닌 감소로 인해 일어난다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프로작이나 이와 비슷한 약들은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분류된다. 세로토닌은 시냅스로 분비되어 신호를 보낸 후에 분해되거나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뉴런에 의해 재흡수된다.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재흡수를 막음. 그 결과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이 잠시 분비되면서 다음 뉴런에서 어떤 활동이 한 차례 급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로토닌 농도가 계속 유지됨으로써 활동이 오랫동안 일어나고 관련 수용체를 계속해서 자극하게 된다.
- 사실은 아직 아무도 세로토닌 의 증가가 뇌에서 실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만약 단순히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기에 세로토닌 양이 부족한 거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신진대사나 뇌가 움직이는 속도를 봤을 때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는 세로토닌 수치를 거의 즉각적으로 증가시킴. 그런데 대부분의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는 정량을 복용한 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몇 주가 걸린다. 따라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세로토닌 자체가 아니라 세로토닌이 간접적 영향을 주고 있는 다른 어떤 대상이다.
- 근본적으로 행복의 근원을 특정 화학물질에서 찾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법. 화학물질이 행복에 관여하는 것은 만지만 그 근원은 아님. 50파운드짜리 지폐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종이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여기서 언급한 화학물질과 행복의 관계 역시 종이와 돈의 관계 같을 수 있다. 즉, 이들 덕분에 행복이 유발되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우연적인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 행복을 관장하는 특정 영역이 있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 수많은 영역이 각각 특정 감정을 처리하는 것으로 보임. 예를 들어, 해마 옆에 자리한 작은 영역인 편도체는 기억에 감정적 색채를 입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포심을 자아내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 기억에 공포심을 입힌 것이 바로 편도체다. 실험 중 동물들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한 대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 다른 예는 전두엽, 두정엽 및 측두엽 사이 깊숙한 곳에 있는 섬피질이다. 섬피질의 기능 중 하나는 혐오감을 처리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나거나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그와 유사하게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경우 섬피질의 활동이 나타난다. 심지어 누군가가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내거나 거북한 것을 단지 상상만 해도 섬피질은 더욱 활발히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뇌에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같은 느낌이나 감정을 처리하는 몇 가지 영역이 있다. 그렇다면 행복 자체를 관장하는 영역이 있을까? 그 후보 중 하나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바로 중변연계 보상경로다. 중변연계 보상경로는 중뇌에 있으며, 우리가 기쁜 일을 했을 때 그에 대한 감정적 보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기쁨과 반대로 행복과 관련해서, 영원한 행복을 느끼려면 복측 선조체가 관여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떤 연구에서는 행복을 느끼는 동안 왼쪽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연구에서는 활성화된 부분이 오른쪽 설전부라 주장한다. 뇌의 어느부분이 행복을 유발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온 일류 과학자조차 매번 다른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 예측 가능성과 혼란스러움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음악은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 뇌 속에서 기쁨을 유발함. 그리고 우리의 신체적 반으을 이끌어낼 정도로 행복을 느끼게 만듬.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도록 결정하는 뇌의 근본적 프로세스가 명명백백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지에 대해 '네', '아니오'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게 그 무엇이 적당히 있어야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가능성이 커지며, 그보다 너무 많거나 적으면 반대의 결과를 초래함
- 한가지 이상한 연구결과가 있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사실 뇌가 아니라 장이라는 점. 뇌와 소화기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진부한 표현이나 속담이 많기도 하지만, 장기능이 우리 정신상태에 직접적인, 더 나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가 많다.
- 장이 우울증 발병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장에 특정 타입의 박테리아가 있다는 것은 스트레스와 우울증, 이와 유사한 감정 문제를 겪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런 결과에 대한 근거는 대부분 동물실험에 국한되어 있다. 사람의 장과 감정 간에 이와 같은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따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여겨지는 신경전달물질, 즉, 몸속 세로토닌의 90%는 장 속에 있다.
- 기본적으로 새로움이 가지는 중요성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됨. 네오포비아의 경우처럼 새로움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강력하고 충족감을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많은 동물실험을 보면 환경적 풍부함(주위 환경에 많은 요소들을 투입해서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환경으로 만드는 것)은 뇌에 실질적이고 유익한 영향을 미치며, 어떤 경우에는 뇌와 해마의 발달이 향상되어 기억력이나 관련 프로세스가 향상될 수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발작을 방지하거나 뉴런이 소멸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뉴욕, 헬싱키, 베를린 같은 시끌벅적한 도시에 사는 것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일일 것이다. 적어도 뇌 기능 측면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나 예술가처럼 창조적 일을 하는 사람들이 뉴욕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 뇌가 공간을 처리하는 원리를 봤을 때 아주 작은 집은 뇌가 견디기 힘들 가능성이 많다. 공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함정에 빠졌거나,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거나 탈출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의미. 집이란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느낄 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지만, 집이 너무 협소할 경우 우리 뇌의 위협인지 시스템은 활동을 계속한다. 원래 뇌의 위협인지시스템 할동은 집이 방지해주기로 되어있던 것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미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불안한 상태에 있으며, 우리의 개인적 경계선이 확대되면서 어떤 사람이나 대상이 너무 가까이 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 한다고 한다. 현실적이고 구조적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심리학적 관점에서 어떤 집은 살기에 너무 협소한 공간인 것이다. 작은 집에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속에서 긍정적이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사람들이 넓은 집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프라이버시 때문. 대다수의 사람들은 혼자 살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함. 하지만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매우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며 외향적인 사람일지라도 개인적 공간에서의 휴식을 필요로 함. 설사 잠만 자는 것이라도 말이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아무리 즐겁다 해도 뇌의 입장에선 일을 하는 것이다. 사회적 심리학자들은 누구에게나 주변 사람들이 거슬리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누구나 정신적으로 지칠 대가 있기 때문. 결국 그 관계에서 후퇴해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재충전을 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힘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자연환경은 수동적 방법으로 우리 주의를 끌며 카플란은 이 프로세스를 매혹이라 불렀따. 우리의 주의력은 자연환경에 있을 때 더 느슨해질 수 있으며, 뇌는 신경을 쏟는 일, 즉 신경의 기능을 사용하는 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뇌는 휴식을 취하고 원기를 되찾으며, 에너지를 보충하고, 연결고리들을 강화시키며, 인지력을 높이고, 기분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카플란은 녹지와 다양한 생물로 가득 찬 환경을 회복공간이라 명명. 녹지공간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만큼 유익함. 심지어 우리 몸에도 영향을 미침. 한 조사에 따르면 비슷한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 벽돌전망의 병실보다 나무와 자연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가 더 빨리 회복했다고 한다.
- 엄청나게 많은 증거자료를 살펴보면 신체적으로 더욱 활발한 사람일수록 뇌 기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뇌는 생물학적 기관으로서 에너지와 영양분을 필요로 함. 신체활동이 증가하면 심장을 강화시키고 발달시켜주며,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신진대사 작용을 높여줌. 이 모든 요인들은 뇌에 혈액과 영양분이 더 잘 공급되도록 만들면서 뇌의 모든 기능이 향상되는 것이다. 신체 활동은 뇌 유래 신경성장인자인 BDNF를 증가시킴으로써, 뇌에 더욱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임. BDNF는 새로운 뇌세포의 성장과 생성을 더 촉진하는 단백질. 이 사실은 학습능력이나 기억력 향상, 해마의 부피 증가, 뇌 전반의 회백질 증가 등 신체활동이 신경과학적으로 여러 이점을 가져다준다는 연구사례를 뒷받침해줌. 또한 여러 연구를 통해 좀더 신체적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학업시험에서도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에 육체적 활동이 포함된다면 그것이 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임.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우리를 더 지적으로 똑똑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지적 능력이 뛰어날수록 사람은 조금 더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운동을 하면 엔돌핀, 즉 행복물질이 분비됨. 당연히 신체건강이 전반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해낼 능력이 향상된다는 의미. 운동을 안 해서 생기는 건강문제나 스트레스로 인해 방해받지 않기 때문. 마찬가지로 정신적 활동 역시 뇌와 몸에 분명 도움이 된다. 제 시간에 출근하는 것말고는 육체적 노동은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다. 교육수준이 높으면 치매나 알츠하이머 예방에 도움이 됨. 심지어 해부결가 뇌가 병으로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는데도,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죽기 직전까지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즉, 뇌 활동이 활발할수록 뇌가 더 튼튼해진다.
- 여러 이유로 뇌는 유능하다는 느낌을 원하며 그렇게 느낄 때 우리가 행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직업은 우리 능력을 높이고 또 이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함. 그건 좋은 일이다. 물론 우리가 무능하다고 평가받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일이하는 것은 다른 형태의 보상도 제공. 새로운 물건이나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는 일과 다른 사람과 교류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일 등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일하긴 하지만, 뇌의 메커니즘은 일을 통해 보상받고 본능적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킨다. 따라서 일은 잠재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조건을 마련해준다.
- 직원들의 관심을 얻어내고 이들이 회사 비전을 공유하도록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유중 하나는 직원들의 인생목표가 어느정도는 회사의 비전과 일치되도록 하는 것. 직원 개개인의 비전이 회사비전과 일치한다면 그건 서로 좋은 것이다. 경영진들이 자신의 계획과 의도를 설명해서 직원들이 목표를 공유하게 만들기 위함. 그래서 흔한 인터뷰 질문이 "5년 뒤면 본인이 어떤 모습일 거라 생각하나요?"인 것이다. 응시자가 "조달부서 매니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직원은 회사에 대해 헌신적이고 열정적 직원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 1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안드레 스파이서와 칼 세데르스트룀은 지속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있는 직원들이 개인적으로는 좀더 좋을지 몰라도, 실제로 회사와 직장에는 여러 측면에서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 예컨대, 행복한 사람들은 협상에 있어서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 이들은 부정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쉽게 체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오히려 화를 잘 내는 직원들이 협상에선 뛰어난 성가를 보이는 경우가 많음. 또한 직장에서 계속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반대로 삶의 다른 측면이 고통스럽다는 의미. 집이나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결국 행복으로 인한 이득은 무효로 돌아감. 당신이 직업에 대해 행복을 느낀다면 아직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행복한 직원들은 실직으로 인해 더 큰 충격을 받기도 함. 다른 문제들도 비슷한 양상이다. 행복한 상태에 있는 직원들은 칭찬과 좋은 피드백을 계속 받고 싶어하며 그렇지 못하며 불쾌해 한다. 이들은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보다 자신의 성과로 인한 행복에 더 치중하기 때문에 더 외롭고 이기적 성향일 수 있다. 따라서 회사에 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행복할 필요는 없다.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음. 현대사회의 많은 회사가 사무실에 갇혀 있는 직원에게 지속적 행복을 강요하는 듯한 행위는 균형을 깨뜨리는 일이며, 동시에 더욱 다양한 감정적 경험으로부터 뇌를 차단하고 혹사시키는 일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생각보다 중요. 여기서 핵심은 일이 아님. 균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피해를 본다. 여기서 결국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일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주 어려운 이유는 뇌의 입장에선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일은 일이기 때문.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 역시 잠시 앉아서 쉬어야 했다.
- 접촉은 피부 속 신경을 통해 느껴지며, 신경은 압력의 변화(그리고 그 외 요인)에 반응. 이때 관련된 신호를 뇌로 전달함. 이런 작용을 촉진하는 뉴런 중 일부를 C-섬유라 부르는데, 다른 뉴런에 비해 작고 신호를 보내는 속도가 느림. C-섬유는 둔탁함, 쑤시는 고통과 같은 감각을 전달하지만, 기분좋은 접촉의 감정도 전달. 접촉과 관련된 모든 감각은 뇌의 체성감각피질에서 처리하는 반면, C-섬유는 즐거운 접촉에 대한 느낌을 섬피질로 보낸다. 섬피질은 즐거운 감각, 마약중독 같은 보상을 쫓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 진화과정에서 그루밍은 접촉의 유쾌한 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 왜 인간이 딱지를 뜯어내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코딱지라도? 우리 몸에서 쓰레기나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행동에 보상을 주는 케케묵은 회로가 뇌 속 어딘가에 아직 있는 게 아니라면 의미없는 행동이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손톱을 물어뜯는지 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편도체와 해마는 흥분과 성욕을 느낄 때 둘 다 아주 활발하게 움직임. 편도체는 우리가 알다시피 감정적 요소를 담당하고, 또 흥분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 결정함. 해마, 즉 기억 프로세스의 중심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우리가 성적인 상황에 있을 때 자극적 기억들이 왜 물밀듯이 떠오르는지, 또 이런 기억들이 왜 그토록 선명하고 뚜렷한지를 설명해줌. 과거 유익했던 경험을 우리 마음속에 생생하게 간직해줄 뿐만 아니라, 흥분을 강화하고 또 유지하도록 도와줌. 뿐만 아니라 성욕은 시상도 활성화한다. 시상은 변연계의 또 다른 영역으로 정보를 멀리 퍼뜨리는 뇌 속의 도떼기 시장 같은 곳이다. 이 모든 일들은 뇌가 할 용의가 있는 상태임을 보여줌. 하지만 감정과 기분만으로는 부족함. 편도체와 관련 영역은 동기유발에 중요한 네트워크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중 특히 중요한 영역이 전두대상피질이다. 전두대상피질은 집중력과 감정을 조절하는 영역들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상호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또 즐기도록 만드는 부분인 선조체는 성적 상황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찾기는 어려울테니 말이다.
- 장소가 안 맞거나 시간이 안 맞거나 상대가 적절하지 않거나 당신이 그냥 너무 피곤한 상태일 때에도, 안와전두피질은 상황을 인지하고 과도한 성행위를 제한한다. 안와전두피질 영역이 손상된 남성들이 무분별하고 위험하며, 과도한 성행위를 보이는 경향이 많다는 여러 연구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또한 안와전두피질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성기능장애와 성욕감퇴 증상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안와전두피질처럼 복잡한 전두엽 영역은 알콜 섭취시 뇌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기거나 억제되는 영역 중 하나. 그건 많은 사실을 암시한다. 이렇게도 많은 뇌 영역들이 우리가 섹스를 하도록 등을 떠민다. 그러면서도 어떤 영역들은 섹스를 제지하는 역할을 한다. 엄청나게 즐거운 섹스는 단기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뇌는 너무나도 섬세해서 섹스가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함. 인간에게 행복은 순간적 희열과 즐거움 그 이상의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 바소프레신은 특히 수컷의 경우 장기적 교미 관계에 핵심적 물질로 알려져 있음. 수컷 초원 들쥐와 다른 일부일처제 종들은 선조체-담창구 영역에 더 많은 바소프레신 수용체를 갖고 있음. 이 영역은 편도체, 담창구(움직임을 조절하는 데 관여), 선조체(중격의지핵을 포함) 등을 결합시키는 복합 네트워크다. 수많은 바소프레신 뉴런들이 선조체와 편도체 영역에서 전뇌와 전두엽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행동을 조절하는 데 직접적 역할을 함. 어쨌든 바소프레신의 활동으로 수컷들은 자신의 파트너에 대해 정절을 지킨다. 수컷의 본능상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비교적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바소프레신 수용체의 유전자들이 불안전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즉 선조체-담창구 영역에서 바소프레신 수용체의 수는 수컷들 사이에서 아주 편차가 크다. 이 영역에서 바소프레신 수용체의 수가 적을수록 한 쌍의 짝을 맺는 경향이 줄어든다. 결국 바소프레신에 영향받지 않을수록 장기적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확률이 줄어든다. 심지어 애초에 장기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줄으듬. 물론 들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연구가 있음. 어떤 남성들은 장기적 관계에 대해 생물학적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쁜 남자의 뻔한 핑계인 헌신적 관계에 대한 공포증은 아마 유전적 요인에 있을 것이다.
- 여러 연구결과 우리가 누군가를 그것도 열렬히 사랑하게 되면 중심 도파민 수치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음. 중심 도파민은 알다시피 보상감과 기쁨을 느기게 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 무엇이 인생에서 사랑을 찾는 일보다 더 즐거울 수 있을까? 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다. 여러가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우리의 행동을 조절하고, 보상에 대한 예측을 관리하는 감정-동기 유발 프로세스에 필요한 물질임. 다시 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보상을 주는 대상을 찾고 또 얻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 이 때문에 우리는 고조되고 집중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됨. 사랑에 빠진 인간은 자신이 애정을 느끼는 대상 주위에 있기 위해, 심지어는 그냥 바라보기 위해 어떤 것이든지 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 뿐만 아니라 뇌와 몸속의 노르아드레날린도 뚜렷하게 증가함. 이는 집중력, 단기기억, 목표지향적 행동을 강화시킴. 노르아드레날린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드레날린의 분비와 활동에 영향을 미침. 아드레날린은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이며, 따라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초조해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게 됨. 노르아드레날린은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고, 특히 심장기능과 관련이 깊다. 이는 사랑에 빠지면 왜 심장이 요동치는지를 설명해줌. 이 모든 작용의 결과로 세로토닌 수치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줄어들게 되며 그 영향력은 막대함. 세로토닌의 균형이 깨지면 감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오늘날 항우울제는 뉴런의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는 작용을 함. 사랑에 빠지면 잠을 못 잘수도 있고, 쓸데 없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도 있으며, 동기나 목표가 바뀔 수도 있다. 한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일들이 이제 시시해짐. 평소 만나던 친구나 여가활동에 관심을 잃게 되어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기도 함. 이런 행동은 강박장애의 경우에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 미친, 상사병에 걸린, 홀딱 빠져버린 등 사랑과 관련된 표현들은 불안정한 상태, 통제력과 이성적 행동이 상실된 상태를 나타내며, 정말 그런 것처럼 보임. 사랑에 빠진 단계의 무서우리만큼 강력한 끌림의 상태가 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단지 화학물질의 문제만은 아니다. 조가비핵, 섬엽, 전두대상피질 같은 친숙한 뇌 영역들의 네트워크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임. 특히나 끌림 단게에서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부정적 자극과 감정을 발견하고 처리하는 핵심영역인 편도체와 후측대상회의 활동은 약화된다고 함. 이들 부위와 비판적 사고와 위협감지를 담당하는 영역들은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억압을 받게 됨. 이 때문에 커플들은 항상 황홀한 상태로 즐겁기만 하고 그 무엇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임. 일단 사랑에 빠지게 되면 불쾌한 대상을 발견하고 처리하는 영역과 이들이 유발하는 스트레스와 걱정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 일상적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능력이 약화되니 당연히 사랑에 빠지면 행복해짐. 뇌 속에는 기쁨과 보상을 주는 화학물질로 가득차고, 스트레스와 걱정을 느끼는 능력은 약화됨. "사랑이 그렇게 좋기만 한 거라고?"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체념할 필요는 없다. 이 모든 현상에도 단점은 있기 때문.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저해됨. 뇌는 이미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긍정적 편견을 갖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결점을 지적해주지 않으면 상대의 결점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가 된다.
- 사랑을 찾는 것이 자동적으로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해피엔딩의 결과를 내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인생이 함께 할 사람을 찾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뇌의 메커니즘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온통 마음을 다 빼앗는 일은 아니다. 사랑은 현재의 멋지고 평온한 삶에 끊임없는 변화를 일으키고 문제를 던진다. 어떤 사랑은 어려움을 견뎌내게 하고 심지어 더 단단하게도 만든다. 어떤 사랑은 세상이 던지는 압박감을 견뎌내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을 만들고 이를 지속해주는 뇌의 방식은 원시시대의 인간에게 더 적합했는지 모른다. 좀더 작고 제한된 사회 속에서 지금보다 더 수명이 짧았을때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강력한 대뇌는 풍부하고 복잡한 정신세계를 제공하고, 이 정신세계와 함께 역시나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한경에서 장기적인 로맨스 관계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훨씬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됨. 상대가 당신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든 간에 말이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사랑을 찾으면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해질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픔이 해결될 거라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멋진 말이긴 하지만 그럴리는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그렇지 않기 때문. 뇌나 세상이 모두 한 자리에 고정된 변함없는 것이 아니다. 오늘 당신을 행복하게 해준 그 무엇이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관계든지 가장 굳건한 관계라 해도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 다행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혐 이러한 시간과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고 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 코미디가 왜 중요한지 아는가? 웃으면서 동시에 슬퍼할 순 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하퍼, 코미디언)
- 동물들이 간지럼을 당했을 때 웃는다는 사실은 웃음의 밑바탕에 장난이 있다는 점을 암시. 이런 간지럼이라는 건 보통 몸으로 난투극을 벌이는 식이다. 그렇다면 장난 같은 행동인지 경쟁상대의 신체적 공격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당연히 웃음이다. 해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게 분명할 때 웃음이 반사적으로 기쁨과 인정을 의미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오케이, 계속해봐'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웃음은 간지럼 같은 상대방과의 장난을 좀 더 연장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왜 우리가 웃음을 그토록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함. 웃음은 더 많은 놀이를 의미하며 그건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웃을 때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웃음은 적어도 간지럼으로 유발되는 웃음의 경우는, 깊숙한 뇌 영역의 네트워크에 의해 처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역에는 편도체, 시상의 일부, 시상하부와 그보다 더 아래영역, 뇌간의 핵심영역이 포함됨. 뇌간은 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얼굴표정이나 호흡패턴을 만들어내는 근육 등 본질적이지만 비자발적 기능을 통제함. 여러 연구들은 중요한 뇌간영역인 복측 상부뇌교가 웃음을 조정하는 센터라고 지목. 이 영역이 웃음과 관련된 생리적 프로세스를 일으키는 모든 신경상의 활동을 처리한다는 의미.
- 간지럼 때문에 유발되는 웃음이라 한정지은 이유는 무얼까? 웃게 되는 원인이 뇌가 웃음을 처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 웃음이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간지럼을 싫어함. 결국 웃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간지럼은 이상한 것이기 때문.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간지럼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첫번째는 피부를 부드럽고 약하게 쓰다듬는 형태로 영어로 니스메시스라 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피부에 벌레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진화상 이런 느낌을 싫어하게 된 것은 당연함. 또한 고의적이고 강제적 간지럼이 있다. 이건 웃음연구에 사용되는 형태로 영어로는 가갈레시스라 부름. 이건 접촉의 친근한 형태다. 마찬가지로 체성감각피질에서 감각활동을 일으킨다. 물론 이 경우에는 전두대상피질에서 즐거움과 보상과 관련된 활동을 유발한다.
- 따라서 간지럼은 즐거운 일일 수 있고, 실제로 사람들을 웃게 해줌. 간지럼의 기능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시상하부 및 투쟁-도피반응을 처리하는 관련 영역의 활동도 일으킴. 심하게 간지럽히는 형태인 가갈레시스는 인간에게 이상하게도 즐거움과 위험의 감정을 함께 유발한다. 한 이론에 따르면 웃음은 간지럽히는 장난 같은 활동 중에 가장 우세한 사람에게 순종의 표시를 보내는 진화상의 반사작용이라고 한다. 이상한 웃음과 동시에 움츠러드는 반사작용은 '네가 이겼어. 난 상관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만약 그 부위가 발바닥, 복부, 겨드랑이, 목과 같은 취약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면 간지럼의 힘은 특히 더 강력해진다. 과거에 힘은 더 세지만 서툴렀던 우리 조상들이 서로 거칠게 놀다가 의도치 않게 이런 약한 부분에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과의 관게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반사작용인 웃음은 틀림없이 인류의 사회화에 도움이 되었을 것임.
- 간지럼이나 다른 장난스러운 행동, 웃음의 원초적 근원을 생각해보자. 아기나 어떤 동물이 간지럼을 당하면 그건 예상치 못한 사건이 됨. 간지럼 자체는 친숙할지 몰라도 간지럼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님. 따라서 매우 짧은 시간일지라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불확실성이 발생함.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긴장이나 근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뇌가 잠재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대상을 얼마나 재빨리 그리고 민감하게 알아채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런 뇌가 아직은 걱정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행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웃음이다. 이 같은 논리는 신나게 신체적인 놀이를 하거나 야단법석을 떨며 놀 때 일행 중 한 면이 진흙 속에 보기 좋게 빠진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됨. 비일상적 일탈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예측가능한 일이 아닌 모순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순간 곧바로 긴장과 불확실성의 감정이 발생함. 우리 뇌는 곧 문제에 대해 민첩하게 파악하고, 이처럼 이상한 사건에 즉각적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긴장감이 완화되며 새로운 경험이 일어난다. 리스크는 없다. 뇌에 해롭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곧바로 강렬한 즐거움이 유발된다. 이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 사회적 소외가 스탠드업 코미디에 있어서 그토록 큰 리스크 요인이라면, 스탠드업 코미니에 매력을 느낄 사람들은 이런 리스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음. 굳건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거나 사회적 소외에 익숙해져서 둔감해진 사람일 경우가 많음. 일반적인 사회와 맞지 않는 부적응자, 괴짜, 아웃사이더와 같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라이브 코미디 공연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이와 관련된 문제로 인해 보통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스탠드업 세계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사람들이다.
- 11년 루크 창의 연구팀이 실시했던 신경영상 연구사례를 살펴보자. 이 게임은 사람들이 돈을 받은 뒤 그 다음 얼마를 되돌려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요청받은 만큼 돈을 돌려준 사람의 경우 섬엽과 같은 죄책감과 관련된 영역의 활동이 증가. 반대로 요청받은 액수에 비해 적은 돈을 돌려줬던 사람의 경우 중격의지핵과 같은 보상감과 관련된 영역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죄책감이 행동을 일으키는 강력한 요인이라는 점. 즉, 죄책감이 유발될 수 있다는 약간의 가능성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돈을 돌려준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죄책감에 덜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보상감에 대한 가능성이 죄책감에 대한 가능성보다 강력하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더 앞세우게 된다. 결국 꽤 많은 부를 쌓는다.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잔인하고도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일 것임. 그런 사람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 성인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들이 10대 아이들에게도 적용되긴 하지만 10대들은 보통 감정변화가 심하고 심술궂고 까다롭고 화를 잘 낸다. 그래서 음주, 섹스, 마약과 같은 위험한 행동에 빠지거나 하루종일 잠만 자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10대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왜 그럴까? 이들 중 상당수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와 관련이 있다. 놀랍게도 10대의 뇌 속 연결고리는 유아기 때보다 더 적다. 어린 아이의 뇌는 매초 마다 수백만개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형성하지만 모두 다 쓸모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린아이의 뇌는 결국 모든 것을 저장하고 있는 상태이며 그 어떤 것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뇌가 꽉꽉 채워 넣는 것에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이 모든 불필요한 신경연결고리들은 효율성을 저해함. 가장 유능한 인간의 뇌를 봄ㄴ 효율성이 뛰어난 경향이 있으며 그 사이의 연결고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갖추어져 있음. 하지만 어린 아이의 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변덕스럽고 또 쉽게 혼란에 빠지는 이유일 것이다. 즉 청소년기에는 우리 뇌 속에서 가지치기라 불리는 프로세스가 일어남. 말 그대로다. 연결고리(시냅스)와 뉴런이 지나치게 많거나 불필요하면 이를 제거하거나 없애버리고 자주 쓰는 것은 계속 유지하면서 더 강화해나간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통해 뇌의 전체적 기능을 향상시킨다. 가지치기는 아주 급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지치기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는 뉴런과 연결고리가 최대 50%까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 어떤 사람들은 10대들이 더 충동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님. 충동은 무언가를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높은 부정적 결과를 예상하지만 어쨌거나 하는 경우다. 이때의 차이는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충동적일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한 물건을 먹거나 손가락을 전기 콘센트에 집어넣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청소년들은 완벽하게 이성적 사고, 합리적 예상,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홧김에 그렇게 하는 것뿐이며 논리나 이성보다 감정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케이시 교수팀은 전전두피질과 변연계 영역간의 발달 차이로 인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10대의 뇌가 아직 발달중인 상태지만 유아기 때의 발달과는 다름. 유아게에는 뇌의 다양한 영역들이 형성되고 저마다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지만, 청소년기에는 세련되게 다듬고 효율적으로 특화시키는 작업이 더 우세해짐. 간단히 말해 유아기에는 뇌의 영역들이 각각 "내가 할 일이 정확히 뭐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내가 할 일이 뭔지는 알아.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하지?"에 더 가까움.
- 청소년들의 뇌는 장기적인 결과나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정적 욕구, 즉각적인 자극 및 만족감에 더 취약함. 그러니 당연히 위험한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변연게와 보상경로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과거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던 것들이 갑자기 그 힘을 잃는다는 의미도 됨. 우리가 한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유치하고 민망한 대상이 됨. 선조체와 편도체의 효율성과 힘이 커진다는 것은 사회적인 욕구, 즉 우정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진다는 의미.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전형적으로 청소년 또래집단 사이에서 인기가 있고 쿨한 대상이 되는 것에 집착한다는 의미. 이처럼 위험하든 말든 탐구해보고, 탐닉해보고, 또 최고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의 욕망은 부모가 반기는 상황은 아니다.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새로운 욕구를 모두 묵살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기본적 욕구나 욕망이 거절당하면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생김. 10대들은 스트레스와 분노에 더 민감하므로 부모와 같은 권위적인 대상에게 더 자주 화를 낸다. 한때 공고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며 안정감을 주었던 대상이 이제 성장과 자기 발견의 장애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즉 고마움보다는 분노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 불행을 유발하는 행동은 복잡하기만 한 인간의 뇌 속에서 성장과정상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쯤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이 존재하는 데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사회적 생물인 쥐와 영장류 역시 그들 나름의 청소년기에는 이와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이런 행동들이 생물학적인 생존과 성장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실험이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성적으로 성숙해지면 인간은 이상적으로 잠재적 짝을 찾아나서게 되고, 구애행동을 함. 이때 한층 고조된 성적 욕망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욕구와 결합하면 가능성이 커짐. 그러면서도 가족처럼 안전하고 친숙한 대상에만 집착하고 책임감을 피하려는 기존의 욕구도 남아 있다. 따라서 부모와 자주 다투거나 부모에게 불만을 품게 되면 인간은 혼자 독립할 가능성이 더 커짐. 이때 짝을 찾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할 학률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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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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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을 활짝 펴는 제스처는 평화의 신호. 펼쳐진 손바닥은 숨기는 것이 없고 무장하지 않았으며, 마음을 열고 당신이 하는 말을 듣겠다는 표시. 일정한 간격으로 상대가 손바닥을 펼치는 모습을 보았다면, 관계가 원활하며 소통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짐작해도 좋다. 이는 그가 마음을 열고 당신의 말을 존중하고 있으며 긍정적이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신호. 또 상대가 손을 앞으로 자주 뻗을수록,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개방성과 정직성 역시 더욱 커짐. 손가락을 펴거나 약간 위쪽으로 구부려 컵 모양을 만든다면 제스처의 의미도 더 강해짐. 따라서 당신이 누군가와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기 원한다면, 손바닥을 보이며 소통하는 것이 좋다. 손바닥을 보여주는 행위는 자신은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에 상대에게 신뢰감을 준다. 반면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손을 숨긴다. 예전부터 손바닥을 보이는 것은 상대에게 긍정적 인상을 주는 제스처였다. 자신에게는 무기가 없으며 상대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표시. 그래서 고대 시절에도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행동을 취해 상대에 대한 성실함과 충성, 경청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손바닥을 펼친 양손을 치켜드는 항복의 신호 역시 자신에게 상대를 해칠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 종교 지도자들이 중요한 순간에 손바닥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 중요한 서약이나 맹세를 할 때도 사람들은 한쪽 가슴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을 활짝 펼쳐서 든다. 요즘도 법정에서 선서할 대 성경 위에 한 손을 얹고 같은 동작을 취한다. 마음을 완전히 열고 상대를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려는 사람은 한 손이나 양손을 상대에게 뻗음. 이런 의도를 강조하고 싶다면 손바닥을 더 많이 보여주면 됨. 대부분의 신체언어가 그렇듯 이런 동작도 무의식중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 같은 이유로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은 자꾸 손을 등 뒤로 감춤. 과거부터 사람들은 무기를 숨길 때 이런 동작을 취했다.
- 이성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인간은 무의식 중에라도 자신의 손목을 드러냄. 남성과 차를 마시는 여성이 자신의 손목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찻잔을 든다면, 상대에게 마음을 연다는 신호. 물론 경우에 따라, 자신의 성실성과 호의를 강조하려는 동작일 수도 있음
- 협상 중 상대가 잔이나 컵을 한쪽으로 밀쳐두고(잔을 잡은 쪽으로) 손을 탁자위에 둔다면, 마음을 열고 당신을 받아들이겠다는 신호. 이런 팔 동작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장벽도 두지 않겠다는 의미. 반대로 컵이나 잔을 몸에 가까이 붙이는 것은 상대에게서 마음을 닫겠다는 신호
- 양손을 모두 쓰는 소위 글러브 악수는 온화암과 믿음과 친절을 드러냄. 여기서도 명심할 것이 있다.
(1) 양손으로 악수를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왼손의 처음 위치다. 양손으로 악수하려는 사람은 마치 상대를 포옹할 것처럼 팔을 벌리는데, 이런 동작에서는 호의적인 관계를 바라는 욕구가 드러남. 이때 왼손은 친밀감을 표시하는 수단이다. 상대의 오른팔을 잡는 왼손의 위치가 올라갈수록,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분명함. 왼손으로 상대의 팔꿈치를 잡으면 손목을 잡는 것보다 더욱 다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런 동작을 취할 때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다른 신호도 함께 주어야 함. 그래야만 악수로 상대를 제압하려든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 수 있다
(2) 악수를 먼저 청하는 쪽은 자신의 왼손이 상대의 개인 공간을 어느정도 침범하는지 인지해야 함. 상대아 이미 돈독한 관계라면 손목을 잡거나 팔의 윗부분을 잡으면서 유대감을 쌓을 수 있음. 왼손으로 상대팔의 윗부분을 가볍게 잡는 것은 상당한 애착관계를 드러내는 행위로 포옹에 가까운 효과를 얻음. 다만, 상대가 같은 호감을 갖고 있지 않거나 악수를 청하는 쪽이 그렇게까지 다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글러브 악수가 자칫 의심만 일으켜 불신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악수에는 진정성 있는 동기가 우선되어야 하며, 단지 좋은 인상을 주겠다는 욕구가 앞서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걸 기억하라.
-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어떤 사람이 꼬고 있떤 다리를 갑자기 풀면서 앞으로 쭉 뻗는다면, 당신이 하는 말에 흥미를 느끼고 당신을 인정한다는 신호. 이때 당신도 상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표시를 하고 싶다면, 같이 발을 뻗으면 된다.
- 인간이 머리를 기울여 한쪽 목을 드러내는 동작은 기꺼이 약자가 되겠다는 신호. 상대에게 신뢰를 보이거나 관심을 드러낼 때, 상대를 인정하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상대에게 목을 드러냄. 그것은 상대가 하자고 하는대로 따르겠다는, 거의 항복에 가까운 신호. 자신의 목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상대와 다투지 않고 상대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알림.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신뢰하며 당신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누군가와 협상을 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상황에서 몇 가지 부정적 태도, 이를테면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짱을 끼거나, 수상하다는 듯 턱을 만지거나, 뒷짐을 지건, 어깨에 힘을 주건, 무례한 표정을 짓거나, 깍지를 끼거나, 몸을 돌리는 행위 등의 비언어적 신호를 보이면서 당신의 말을 자꾸 끊는다면,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여 보라.
- 16년 미국 대선 당시, 많은 유권자가 힐러리 클린턴에게서 진실성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몸에서 배어나오는 자연스럼 제스처가 아닌, 철저히 배워서 익힌 동작에 의존한 탓에 그녀의 움직임은 매우 뻣뻣했고 인위적으로 비쳤다. 오랜 훈련 덕에 침착해 보이긴 했지만 다소 위선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12년 대선 기간 중 보였던 오바마와 롬니의 신체언어도 좋은 비교대상. 오바나는 감정처리에 확실히 능숙했다. 제스처와 표정과 말이 일치했기 때문. 청중은 그의 연설에서 진심을 느꼈다. 롬니의 경우 제스처와 표정이 말과 다소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쩔 때는 전혀 맞지 않았다. 미리 달달 외워서 하는 대사 같다는 인상 때문에 별다른 설득력을 지니지 못했다. 우리는 확신이 없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의도를 신체언어를 통해 드러낸다. 따라서 신체언어의 변화는 항상 내면의 감정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두 손의 손가락 끝을 약간 구부려 모아 가볍게 누르며 앞으로 기울이며, 피라미드 모양이 됨. 이렇게 손으로 만드는 피라미드는 가슴 높이에서 만들 수도 있고 배 높이에서 만들수도 있음. 보통은 자신감이나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이런 동작을 취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자신의 자존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손모양을 만들기도 함.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도 이런 제스처가 종종 목격됨.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야 할 일을 설명하거나 충고할 때 피라미드 형태의 손동작을 자주 보인다. 토론을 주도하는 사람이나 강의를 하는 교수, 인터뷰에 임하는 정치인들 역시 손 피라미드를 만든다. 이런 제스처는 그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 영화감독이나 유능한 영업사원, 판사, 세무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피라미드 손동작을 자주 취함. 대개는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갖고 있을 때 나오는 포즈다. 자신있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들을 때, 대개 비교적 낮은 위치인 자신의 배에서 손 파리미드를 만든다. 배 높이든 가슴 높이든 이런 동작은 긍정적 신호일 가능성이 크지만, 언제나 예외가 있으므로 이 제스처에서 앞서 나타나는 신체언어를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음. 이런 동작을 취하기 전에 보인 비언어적 언어가 부정적이라면, 그 다음 취한 피라미드 형태의 손동작 역시 부정적 견해에 대한 확신으로 보아야 함
- 자신을 엄지로 가리키는 것은 보통 누군가를 비웃거나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낼 때 취하는 행동. 자기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며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려 할 때 이런 제스처를 취함. 다만 상사나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이런 손동작을 하면 무례하고 불경스럼 신호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함
- 엄지손가락은 강한 자부심을 상징. 그렇다면 서 있는 자세에서 두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양쪽 엄지만 보이게 내놓는 제스처는 어떤 의미일까? 이 역시 또 다른 자신감의 표현. 하지만 그렇게 오만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자세를 조금 변형해 양손을 뒤쪽 호주머니에 넣고 엄지를 빼놓았다면, 상대를 제압하고 싶어하는 평소의 기질을 숨긴 것으로 해석 가능. 여성도 엄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지배의지를 강조할 수 있음. 여성이 말을 하면서 엄지를 사용하면 자신의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한 의도. 이때 여성은 자신이 좀더 커보이도록 뒤꿈치를 들어 발끝으로 서기도 함
- 벨트에 엄지손가락을 걸치고 다른 손가락을 성기 쪽으로 향하게 하면, 자신의 공격성향이나 상대에 대한 성적 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음. 우리는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이런 포즈를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주인공들의 마초적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들어간 제스처. 이 포즈에서 팔의 위치와 손의 방향은 신체의 정중앙을 강조함. 남성들이 이런 포즈를 취하는 건 자신에게 내 영역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상대에게 겁먹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 물론 여성도 같은 포즈를 사용할 때가 있다. 동물들도 비슷한 포즈를 취함. 원숭이는 간혹 엉덩이에 양 주먹을 대고 엄지를 앞으로 내미는 동작을 취할 때가 있는데, 이는 "내가 알파메일이고 이곳의 대장은 바로 나다!"라는 의미. 마찬가지로 남성이 이런 포즈를 취한 채 여성쪽으로 몸을 돌린다면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성적 관심이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 팔짱을 낀 자세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는(팔짱) 의도인 동시에, 자신의 우월감(엄지를 위로 향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시도로 해석가능. 이런 포즈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오만한 마음을 감추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 상사와 대화하는 와중에 이런 자세를 취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부하로서 상사에게 존경심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자신의 의견이 더 좋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 양손을 허리에 얹는 동작은 무슨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 조금 가볍게 한 손만 허리에 놓을 수도 있음.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상대가 이런 자세를 취한다면 기꺼이 맡겠다는 의미. 마찬가지로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사람이 이런 자세를 취하면 이제 발표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고, 자신있게 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면 됨. 프레젠테이션에서 발표자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이 허리에 양손을 얹고 있다면, 이는 그가 말하는 사람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거나 그 사람의 말을 뒷받침할 정보를 덧붙이겠다는 의미.
- 악수를 할 때도 지배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 상대의 손을 붙잡을 때 자신의 손바닥이 아래쪽을 향하게 돌려잡는 것. 하지만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상대의 손이 꺾일 정도로 완전히 아래쪽으로 돌려서는 안됨. 자신의 손등이 보일 정도가 되면 상대를 지배하겠다는 강력한 신호가 됨
- 지배하려넌 의도가 보이는 악수를 청하는 이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구도를 깨는 방법이 있다. 손을 맞잡는 즉시 앞으로 한발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레 상대의 손위치를 바꿔 동등한 악수를 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상대의 오른손 위에 당신의 왼손을 포개 얹는 것이다. 왼손으로 상대의 어깨를 다독이거나 팔의 윗부분을 잡는 것도 좋다. 정치인들이 정적으로 제압할 때 자주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뒷짐을 지고 두 손을 맞잡아 깍지를 낀 자세는 자신감과 힘을 드러냄. 실제 손을 등뒤로 보내면 쉽게 허리를 구부릴 수 없으므로 자연스레 자세가 저절로 똑바르게 된다. 이런 스트레칭은 타인에게 당당한 인상을 줌. 무엇보다 이런 자세를 취하면 배와 심장과 목 등 민감한 부분이 노출되게 마련인데, 이는 이미 자신이 이 영역과 상황을 장악하고 있으니 굳이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신호로 해석 가능.
-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려 깍지를 낀 채 팔꿈치를 양쪽으로 펼치는 자세 역시 자신감을 드러내는 포즈.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상대보다 우월한 입장에 서길 원함. 이들은 대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기 좋아하고, 동료들의 실수를 지적하며 빈정거리길 좋아함. 반어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을 것임. 이런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다. 그들은 늘 상대가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그들의 천재성을 칭찬해주길 바라기 때문. 그런 이들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어느 정도 동등하게 대우해주길 바라는 것뿐. 그나마 그 정도의 대우를 받으려면,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함. 그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내거나 그들의 허점이 드러나는 정보로 상대를 기습하는 것도 방법임. 그렇게 하면 그들은 금방 자신감을 잃고 손의 위치를 차츰 바꿀 것임. 당신이 낸 복잡한 문제를 풀면서 턱을 만지작거릴지도 모른다.
- 의자를 돌려서 의자 등받이에 가슴을 대고 앉는 자세는 자신을 지배 혹은 통제하려고 드는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세다. 상대와 나 사이에 의자라는 장애물을 둠으로써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기 때문. 그렇지만 이때 의자는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므로 상대에게 완전히 개방적일 수는 없다. 방패나 의자를 보호막으로 사용할 경우, 말하는 방식이나 구사하는 언어가 더 대담해지며, 자신감도 한결 올라감. 이러한 이유로, 이런 자세는 때로 대결해보자는 뜻으로 해석 가능.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무리 속의 한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할 때, 표적이 된 사람은 의자를 돌려 앉음으로써 반격을 준비할 수 있음. 의자를 돌려 놓고 앉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나머지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 다른 물체로도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창을 통해 이야기하는 사람, 카운터를 사이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누는 감독과 스태프 등, 이 때는 차창이나 카운터, 혹은 책상이 장애물이자 방패박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핸드백을 지니고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 핸드백을 자신의 몸 앞에 두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90도로 걸치면 토론이나 논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 이때 한 손은 발목에,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무릎이나 장딴지에 놓는다면 그 의미가 한층 강해짐. 이는 자신감과 침착함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는 자유의지를 과시하는 자세임. 물론 단순히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생각할 때 나오는 자세일 수도 있음.
-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손을 호주머니에 넣거나 허리에 올려둔 채,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있는 자세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자신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포즈. 대개 어느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관리자이거나 일을 총괄하는 감독, 기업을 소유한 사람에게서 이런 자세를 쉽게 볼 수 있다.
- 액션영화를 보면, 갱단 두목이나 마피아 보스가 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 담배를 피우며 일부러 천장 쪽으로 연기를 내뿜는 장면이 나옴. 이는 자신의 위압적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드러내는 행위. 때로는 남성과 마주 앉아 있는 여성이 이런 방식으로 담배연기를 위로 내뿜을 때가 있는데, 이때 여성은 대개 남성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면 눈꺼풀을 조금 내리곤 한다. 이는 이 여성이 상대 남성에게 관심이 있다는 신호. (담배연기를 위로 뿜는 것은 그가 이 상황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증거)
- 영향력 있는 손동작은 전부 클린턴 박스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 명칭은 클린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정치 초년병 시절 그는 연설을 하면서 팔을 크게 휘두르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런 과장된 몸짓이 청중들에게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자, 결국 그는 신체언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그와 같은 제스처를 못하게 하거나 새롭고 낯선 동작을 가르치는 대신, 그가 평소 하던 팔과 손동작의 범위를 가슴과 배 주변으로 한정시키라고 충고. 그렇게 하여, 클린턴 박스란 용어가 탄생. 클린턴은 동작을 자연스럽게 바꾸고 손동작의 영역을 배 앞의 공간으로 좁힘으로써 허세를 부리는 듯한 인상을 없애고 소통방식을 개선.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말을 할 때 손을 이 박스에서 벗어나지 않게 움직이면 자신감을 더 높일 수 있음.
- 팔짱을 낄 수 없거나 팔짱을 끼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같은 의미를 갖는 다른 제스처나 자세를 취함. 그중 하나가 두 손을 깍지 낀 채 테이블 위에 놓는 것이다. 다소 초조하고 불안해서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 이런 제스처가 나옴.
- 상대에게서 부분적으로 장벽을 치는 또 다른 방식은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잡는 형태임. 가벼운 형태의 깍지 끼기라 보면 됨. 이 같은 방식으로 손을 잡으면 정서적 안정감이 생김. 힘들어하거나 불안해하는 아이의 손을 엄마가 잡아줄 때 아이가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이와 비슷하다. 이렇게 손깍지를 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나름의 장벽이 만들어져 용기기 생기기도 한다.
- 손이나 팔로 확실한 장벽을 치는 것이 쉽지 않을 때, 이를테면 대중 앞에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이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유명인사의 경우, 자신을 보호하거나 안정감을 얻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는다. 한쪽 소매를 잡거나 반지 혹은 장식품 같은 걸 만지작거리거나 시계를 초조하게 자꾼 체크하는 것도 이런 심경의 표현이다. 여성들이 숄이나 스카프를 두르는 것도 이런 의도일 때가 많음. 그들은 이제 두를 뿐만 아니라 만지작 거린다. 이런 점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불안감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핸드백이 있지 않은가? 핸드백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일종의 방어 메커니즘으로,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동작과 제스터는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데, 일부러 하는 경우도 있다.
- 옷에 붙이는 소형 라펠 마이크가 익숙해진 요즘에도, 여전히 연사들은 손으로 잡는 마이크나 연단에 놓인 마이크를 선호한다. 자신과 청중 사이에 무언가를 선호한다. 자신과 청중 사이에 무언가를 두고 그 뒤에 서면 보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 커프스 버튼이 유행하던 시절,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를 헤치고 걸어가는 남성들은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이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요즘에는 휴대폰을 만지거나 유리잔을 잡는 식으로 초조함을 감추곤 한다. 네트워크 미팅에서 참석자가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 때 손으로 찻잔을 잡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손을 입 가까이나 입 앞으로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때론 이런 동작을 정당화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기도 한다. 좀 더 나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기도 한다. 이러한 동작들은 의심이나 부족한 자신감을 숨기려고 하는 일종의 보호용 제스처다. 하지만 이 같은 동작은 오히려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이런 자세에서는 그 사람의 말이 또렷하게 들리지 않으므로 상대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메시지 전달이 어려워지는 것도 물론이다. 특히 대화 도중 갑작스럽게 손을 입술로 가져가는 동작은 대부분 말을 멈추려 하는 신호임. 잠시 헷갈리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하얘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 상황일 수도 있다. 이렇게 손으로 입을 가리는 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내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고 싶거나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한 자신의 입술을 야단치는 것과 같은 동작이다.
- 손가락이나 펜 혹은 안경다리 같은 물건을 입 안에 넣으면 사람들과 제대로 교류할 수 없다. 이때 손가락이나 다른 물건은 일종의 장벽이 되는 셈이며, 장벽은 타인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무언가를 입에 물고 있으면, 상대가 당신의 입술 동작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고 따르지 못하게 되어,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것. 당사자의 목소리 크기가 작아지고 발음이 불분명해지는 건 물론이다.
- 양쪽 어깨를 들어 올리고 목을 움츠리는 자세 또한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을 약화시키게 만드는 동작이다. 이 같은 자세를 약간 변형해 고개를 숙여 턱을 목 아래로 깊이 묻으면서 양 어깨를 한껏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한다면 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가령 다루기 두렵고 어려운 화젯거리가 나오거나 불안을 조장하는 나쁜 소식이 등장해서 위험이 예상될 때, 이런 동작을 취하기 쉽다. 대화 도중에 누군가가 갑작스레 이 같은 동작을 취한다면 그 사람이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앉아서 토론을 하는 도중 누군가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손을 허벅지에 놓으면, 토론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거나 관심이 없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논의를 그만하고 자리를 뜨려는 사람에게도 이런 제스처가 나온다.
- 토론을 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다가 중요한 순간, 갑자기 빠른 동작으로 다리를 쭉 뻗으면, 자신은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으며 상대의 질문을 무시한다는 신호다.
- 손을 허리에 놓으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 이는 자신이 사태를 진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의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공작새가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활짤 펼쳐 몸집을 부풀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지시할 때 허리에 손을 올리면 카리스카가 돋보인다. 반면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을 때 이런 자세를 취하면 자신을 하급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상대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남성이 여성 앞에서 이런 포즈를 취하면 성적 저의를 분명히 밝히며 남성다움을 과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 인간의 신체부위 중 목은 그 사람이 얼마나 유연한 사고를 할수 있는지 아닌지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지표임. 목을 뻣뻣하게 긴장시키는 사람은 보통 경직되고 완고한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아, 어떤 새로운 일처리 방식에 개방적이지 못하고, 보통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 턱을 들어올리고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혀 목을 드러내면, 상대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신호. 목은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취약한 목을 드러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두려울 것이 없다는 표시인 셈. 이런 포즈를 취하면 상대도 이를 대개 오만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거리에서 싸움이 붙어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기 직전, 자신이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때 사람들은 이 같은 포즈를 취함. 이때 가슴을 내밀고 허리에 손을 얹는 등 몸을 크게 보이는 시도도 보인다.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가 이런 동작을 취한다면 좋지 않은 시도로 해석해야 한다.
-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손으로 괸다면 지루하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각도를 더 많이 기울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상대의 말에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일 때 이런 자세가 나옴. 손가락을 펼쳐 뺨에 대고 머리를 받치거나 엄지를 턱 아래에 대는 식으로 변형할 수도 있다.
- 대화를 나누는 도중 상대가 갑자기 자세를 바꿔 다리를 꼬면, 방금 듣거나 보거나 생각한 것에 대한 비언어적 반응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는 사람이 어떤 상황과 순간에 다리를 꼬았다면, 초조하거나 반감이 생기거나 방어하려는 신호일 수 있다. 사실 다리를 꼬는 자세는 선사시대부터 생식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나온 행위. 물론 경우에 따라, 다리를 꼬는 행위가 수줍음과 겸손을 뜻할 때도 있다. 상급자에게 무언가를 배우거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교육을 받을 때 다리를 꼴 수 있는데, 강의나 세미나 중에 메모를 하기 위해 수첩 같은 것을 무릎 위에 놓기 위해서라도 편의상 다리를 꼬는 경우가 많음. 여성의 경우 어렸들 적부터 이런 자세를 취하도록 배우기도 함. 따라서 다리를 꼬는 여성을 무조건 부정적인 태도와 연관지을 수는 없다. 특정한 기분이나 생각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 습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 그러나 특정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특별한 순간에만 갑자기 다리를 꼬았다면,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 대화 도중 갑자기 팔짱을 끼면서 다리를 꼬는 행위는 논의를 중단하고 상대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이중으로 장벽을 치면 아무리 대화를 다시 해보려고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이러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은 대화 내용에 관심이 없거나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경우아 많다. 게다가 그 사람은 그런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며, 좀더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주제를 바꿔야 한다. 호의적인 답이 나올 만한 질문을 던져 반감을 줄이면, 상대를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 대화 도중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발목을 꼬는 동작은 부정적이거나 방어적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임. 어떤 정보를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도 된다. 이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무릎에 손을 놓거나 팔목을 초조하게 잡는다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느낌이 강조된다.
- 입에 무언가를 넣는 행위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신호일 수 있음. 그러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중압감에 시달릴 때도 이런 제스처가 나오곤 한다. 아이가 울면 엄마들이 고무로 만든 공갈 젖꼭지를 물리곤 하는데, 이것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 어른 역시 난처한 순간에 입에 무언가를 넣으면 위안을 얻을 수 있음. 안정을 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손가락을 입에 넣는 것도 안전을 바라는 내면의 욕구가 밖으로 드러난 것임. 입에 넣는 물건이 꼭 손가락일 필요는 없다. 담배나 펜, 안경다리도 같은 기능을 함
-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 수줍거나 불안하다는 신호. 옛날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신체언어다. 경우에 따라 특정 남성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를 가진 여성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릴 수 있는데, 이때 그녀가 유혹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면 더욱 확실함
- 턱을 문지르는 동작은 불안하다는 신호. 어떤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의 답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면, 자신도 모르게 턱을 문지르게 됨. 방금 받은 제안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같은 동작이 나온다. 이처럼 상대가 턱을 문지르고 있다면, 그 사람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반응을 암시하는 다른 신호를 보내는지도 함께 살펴보라. 그러면 그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다른 신체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 손으로 입을 가리면 장벽이 생겨서 타인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손을 입 앞에 어떻게 놓느냐, 그 방식에 따라 메시지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우선, 펼친 손가락에 힘을 빼고 평평한 손바닥으로 누르는 제스처가 있다. 이런 동작은 무언가가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 무작정 말을 뱉어 놓고 후회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이런 동작을 취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해놓고 아차 싶을 때도 자기도 모르게 손이 입으로 간다. 그렇게 손으로 입을 가리면 사람들이 그 사람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역시 손이 입으로 간다. 사고나 위험한 일을 목격할 때도 마찬가지. 이처럼 입으로 손을 가져가는 타이밍과 위치, 방식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
- 인간의 7가지 기본정서를 알려주는 신체언어
(1) 행복 : 열정을 드러내는 제스처. 두손을 비비거나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동작 등
(2) 혐오 : 회피하는 제스처. 손을 앞에 놓거나 몸을 돌려 피하는 동작 등
(3) 경멸 : 지나친 자신감이나 오만함이 드러나는 제스처.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가거나 턱을 내리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는 동작 등
(4) 분노 : 공격적인 제스처. 주먹을 쥐거나 손을 뒤로 가져가는 동작 등
(5) 두려움 : 불확실함을 드러내는 제스처. 손을 흔들거나 어깨를 올리면서 목을 움츠리는 동작 등
(6) 슬픔 : 거리를 두거나 혼자 있고 싶어하는 제스처. 뻣뻣하거나 방어적인 자세, 혹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동작 등
(7) 놀라움 : 느닷없이 집중하는 동작. 눈을 빠르게 깜빡이거나 상대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동작 등
- 인간은 깊은 슬픔에 빠질 때나 자신이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한 뒤 어리석었다고 느낄 때, 저절로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본다. 이는 불확실하거나 불편하다는 감정의 표현으로,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행동.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높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도 이렇게 시선을 피하게 된다 시선의 방향만 자세히 살펴도 그 사람이 한 집단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 대화 도중 갑자기 등을 굽히며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더 이상 교류를 해야 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이는 상대에게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다는 표시로, 이런 자세를 취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머리를 내리거나 올리면 부정적 느낌이 더 강해졌다고 봐야 함. 이럴 때 같이 맞서고 싶다면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동작을 취하면 된다.
- 두 손을 깍지끼는 제스처는 좌절을 뜻함.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는 수단이 되기도 함. 중요한 인터뷰를 앞두고 있거나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 때 이런 동작이 나옴. 부정적인 태도를 숨기는 동작도 된다.
- 축구경기에서 동료 선수가 패널티킥을 차야 하는 순간, 나머지 선수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골이 들어가기를 바라며 두 손을 비빈다. 자동차 영업사원은 고객이 새로 나온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두 손을 비빈다. 두 손을 비비는 자세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빠르게 비비면 모두에게 흡족할만한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는 뜻. 하지만 영업사원이 신형 고급 승용차를 고객에게 판매하게 된 상황은 어떤가? 자동차 판매 수수료가 비싸면 고객에게는 불리하지만, 영업사원에게는 유리하다. 이 경우 영업사원은 아마도 손을 천천히 비빌 것이다. 옛날 영화나 만화에서, 악당들이 사악한 계획을 짤 때 이런 동작을 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한쪽 손으로 다른 쪽 팔의 손목을 잡는 동작은 좌절했거나 자제하고 있다는 신호다. 보통 손목은 몸 앞에서 잡을 수도 있고 뒤에서 잡을 수도 있다. 앞에서 손목을 잡으면 두 팔로 인해 장벽이 만들어지는데, 뒤에서 잡으면 상대가 볼 수 없기 때문에 부정적 느낌은 좀 덜하다. 하지만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면 그 사람이 화를 누르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때 잡힌 손목이 어느 쪽인지도 중요하다. 왼쪽은 인간의 정서를 담당하는 우뇌와 연결되고, 오른손은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와 연결된다. 또 손목을 잡는 손의 위치가 높을수록 그리고 더 세게 잡을수록, 좌절감의 강도가 세어진다. 등 뒤에서 잡을 때는 특히 그렇다.
- 뻣뻣한 손과 마찬가지로 뻣뻣해 보이는 발과 다리 역시 부정적 신호. 이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 생각이 없거나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대개 다리와 몸을 경직시킨 사람은 대화에 낄 생각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당신으로부터 몸을 돌리거나 자세를 자주 바꾸면 당신과의 대화를 피하고 싶다는 의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사려져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 이런 행동이 나옴. 대화 중에 상대가 이런 행동을 취한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내야 함. 이런 자세는 불편과 두려움을 뜻하기도 함
- 뻣뻣한 자세로 의자 끝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동작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증거. 그런 사람에게는 아마 좀 더 편하게 앉을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임. 불안하거나 두려운 일이 있을지도 모름. 이유에 어떻든 그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만은 확실함. 그렇지 않고서야 편하고 싶어서 앉는 의자에 누가 그렇게 앉겠는가
- 캐나다 워털루대 신경학자 스밀렉 교수에 따르면,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에 비해 눈을 더 자주 깜박이다고 함. 눈을 깜박이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부터 자신을 더욱 격리시킨다는 것. 거짓말을 할 대 눈을 더 자주 깜빡거린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전혀 아니다. 영국 포츠머스대 샤론 릴 박사는 오히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는 눈을 덜 깜빡인다는 사실을 밣겨냄. 두뇌가 거짓말을 꾸며내기 위해 다른 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더욱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 다만 거짓말을 한 뒤 긴장의 수위가 떨어지고 나면, 평소보다 더 자주 눈을 깜빡임으로써 줄어든 횟수를 보충한다고 한다.
- 어느 쪽이든 한쪽 눈썹만 들어올리는 것은 불신의 신호다. 한쪽 눈썹을 올리면 자연스레 다른쪽 눈썹이 살짝 내려오게 되는데, 눈썹이 올라갈 때 읽을 수 있는 놀람의 표시와 눈썹이 내려올 때 읽히는 부정적 평가가 뒤섞이게 됨
-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가 0.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입술을 오므린다면, 분노나 슬픔을 억제하는 미세표정일지 모른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인정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제안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신호도 된다. 사람들은 상대의 저항이나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줄 때도 입술을 오므린다. 오므린 입술은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함
- 행동과학에서 '싫음'이란 용어는 조심스러운 반대부터 직설적인 거절이나 혐오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부정적 정서에 대한 일반적 설명이다. 갓 냉장고에서 꺼내 들이마신 우유가 상했을 때 이런 표정이 나움. 이럴 때는 윗입루이 올라기므로 입가에 주름이 나타날 것임. 이는 악취에 대한 자동적 반응으로, 가능한 한 비강을 닫으려 하는 본능적 시도다. 인간의 진화 차원에서 보자면 이러한 표정이 같은 부족원이 썩은 음식을 먹지 않게 만들어 서로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 턱을 문지르는 동작은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는 신호. 이제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함. 그렇게 턱을 만지작거리든 사람이 문지르기를 멈췄다면, 결론이 난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다면 상대가 턱을 문지르는 동안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상대가 턱을 만지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곁눈질을 한다면, 그가 받은 제안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 그러나 위나 아래쪽을 바라본다면, 호의적 반응이 아니다. 따라서 상대가 위아래로 시선을 두며 턱을 문지르고 있다면, 그가 입 밖으로 최종 판단을 통보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하거나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 방법으로 상대의 부정적 생각을 끊어야, 좀더 긍정적 방향으로 설득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결정 직전에 나오는 제스처 중 하나는 눈꺼풀을 내리면서 검지를 입에 갖다 대는 동작. 이는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나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 이럴 때 그 사람의 생각을 중단시켜야 할지 말지는 당신이 그 사람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부정적으로 보는지에 달렸다. 상대가 이런 자세를 취하기 전에 부정적 신체 언어를 보였다면, 질문을 던지거나 좀 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생각을 중단시켜도 손해 볼 것이 없다.
- 중요한 순간에, 안경을 벗어 한쪽 다리를 입에 넣는 사람이 있다.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입 안에서 살짝 넣은 안경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함. 두가지 모두 이미 결심이 섰다는 의미. 이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이 같은 동작을 취하기 전 몇 분 동안, 그 사람이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그의 신체언어가 드러내는 일반적인 인상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빨리 판단하는 것이다.
- 입에 물건을 넣는 동작은 불확실함을 드러내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상대가 이런 식의 행동을 취한다면, 확실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좀더 구체적 주장이나 세부적 내용이 필요하다는 비언어적 신호다. 이와 같은 비언어적 질문에 당신이 만족할만한 정보나 대답을 주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이 상황을 지배하게 되어 부정적 결과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 손으로 피라미드 모양을 취하기 직전, 그 사람이 보인 신체언어가 긍정적이었다면, 당신이 내민 계약서에 서명을 하거나 확실한 협정을 맺을 절호의 순간이다. 반대로 피라미드 모양을 취하기 전 보인 신체언어가 부정적이라면, 당신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더 늦기 전에 좀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그의 상념의 열차를 세운 다음. 대화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손으로 피라미드 모양을 만들면서 머리를 뒤로 젖힌다면, 상대가 우월감을 내세워 당신을 제압하겠다는 뜻.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며 협상을 다시 시작하지 않는 이상, 당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대를 설득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임. 이런 자세를 취한 사람은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으므로 대화도 긍정적 방향으로 끌어가기 어렵다.
- 뺨이나 얼굴 한쪽에 검지 등의 손가락으로 머리를 괴는 것이 아니라, 갖다 대기만 하면 좋은 신호.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며 당신의 말을 더 듣고 싶다는 의미
- 손이나 손가락 몇 개로 머리를 괸다면, 그가 지루해한다는 신호. 미팅이 길어지거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연설이 계속될 때, 사람들은 이런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엄지로 턱을 괸다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의미로 볼 수 있다.
- 비즈니스 협상을 진행하는 중에, 상대가 상의 단추를 풀었다면 긍정적 신호. 실내 온도가 올라간 것도 아닌데 이런 동작이 나온 것은 상대가 당신의 주장에 설득되고 있거나 당신과 손을 잡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
- 엄지로 반대편 손바닥을 문지르는 동작은 그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난감해한다는 신호. 자신의 예상이나 기대에서 어긋나는 결과가 벌어져서 더 이상은 이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을 때, 이런 제스처가 나옴
- 양손을 느슨하게 포개어 접고 있는 동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거리를 두고 싶거나 현재의 대화에서 빠지고 싶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동작이 단순히 그 사람의 습관일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자. 손을 포개는 타이밍이나 정황, 속도에 따라 같은 동작이라도 의미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동작이 긍정적 신호일 때도 있는데, 예를 들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뒤 편안한 기분으로 잠시 테이블에 느긋하게 앉아 쉬려고 할 때도 이 같은 자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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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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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심리 2019. 12. 26. 08:31

- 무슨 일이든 해보지 않으면 소용없다. 해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하지 못한다"는 현실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곧 할거야"라는 가능성 속에서만 살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 못한다.
- 행복은 존재와 관련되어 있지만 성공은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미키 기요시, 인생론 노트)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예를 들면 일류 대학에 합격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과정이 필요함. 반면에 행복이 존재한다는 말은 행복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성취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인간에게는 '지금, 여기'에 이미 행복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그 어느 때라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 무력함이 행복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
-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들러)
- 아들러가 말하는 불완전함이란 인격의 불완전함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지식과 기술에 대한 불완전함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 즉시 '잘하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니 못하는 것은 당연함. 그런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 것의 첫 걸음이다.
- 아침에 눈뜨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오늘도 눈을 떴다. 적어도 '오늘'이라는 날은 살 수 있다." 그것은 병을 앓기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 앞날을 고민하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지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건 별로 즐겁지 않다.
- 많은 부모가 '장래를 생각해야지'라고 말하며 아이를 타이르고, 회사에서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 장래의 일을 왜 그렇게 염려하는 걸까? 그 이유는 시간과 인생을 한 줄의 직선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 여러분은 지금 인생의 어디쯤에 있습니까? 젊은 사람은 직선의 출발점에 가까운 쪽을, 노인이라면 종착지에 가까운 쪽을 가리킬 것임.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간과 인생을, 시작과 끝이 있으며 불가역적으로 종점으로 향하는 움직임으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움직임을 키네시스라 불렀다. 키네시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디에 도달했고 무엇을 완수했는지가 중요. 무슨 일이든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움직임이 중단되거나, 샛길로 빠지면 그것은 미완성이자 불완전한 움직임이 됨. 예를 들어 월반이나 벼락출세는 키네시스 관점에서 보자면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한편, 젊어서 죽은 사람이나 인생이나 완주하지 못한 마라톤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움직임이 된다. 하지만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의 한순간 한순간이 완전하면 완성된 것으로 여길수도 있음. 이런 경우는 시간이나 인생의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에네르게이아는 '이루고 있는 것'이 전부이며, 그것이 그대로 '이룬 것'이 되는 움직임이다.
- 에네르게이아를 비유하자면 춤이다. 춤출 때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도중에 멈추더라도 괜찮다. 춤이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추는 게 아니기 때문.
- 인생도, 살아 있는 '지금, 여기'가 그 자체로 완성된 에네르게이아이다. 에네르게이아의 관점으로 살아간다면 남은 인생을 생각하며 우울해하거나 암담한 기분이 되지 않을 것임.
- 앞날을 염려한다는 건 '지금, 여기'를 소홀히 한다는 뜻.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며 살지 않으니 앞날이 걱정되는 것이다.
- 늙어가는 용기, 나이 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용기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 바구는 용기인지도 모름. 노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병과 쇠약만이 아님. 간병문제도 생길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조우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등의 시련에도 직면할 것임. 그럴 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만 바궈도 마음에 구원의 빛이 따뜻하게 비치게 될 것이다.
- 죽음은 수많은 악 가운데 가장 두려운 것으로 꼽히지만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는 이미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 저세상이란 좋은 곳인 모양이야. 가고 나면 아무도 돌아오지 않네 (다카야마 후미히코, 아버지를 보낸다)
-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건 상대의 결정 또한 존중한다는 의미. 간병하는 데 있어 이는 아주 중요한 자세다. 노년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사람은 부모 자신이다. 부모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서 나의 이상과 희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나이가 들어도 기력이 정정해서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즐겼으면...', '손주들에게도 다정하고 본보기가 될 수 있게 행동했으면...' 등등, 부모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는 이유는, 어른이 되기 위한 세 번째 요건, '자기중심성에서의 탈피'를 하지 못했기 때문.
- 인지증에 걸린 부모의 기억이나 착각이 가족엑 망상처럼 여겨지기도 함. 인지증은 뇌의 질병이다. 그러나 많은 기억 가운데 무엇을 잊고 어덯게 남기는지는 스스로 택한다. 본인이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혹은 잊을 필요가 있어서 잊는 거라면 그 기억을 굳이 지적하거나, 억지로 떠올리게 하여, 기억을 정정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인지증을 앓던 저의 아버지는 만년에 자신의 부인이자 저의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과거에 자신이 결혼햇으나 사반세기도 전에 반려자를 잃었고, 그 이래로 쭉 혼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
- 망령을 통해 마음에 닿는 것을 신뢰한다. 망령은 여과기 (쓰루미 순스케). 인간은 만년에 '지금, 여기'를 살아가기 위해 여러 기억을 버리고 정말로 소중한 기억만을 남기려는 건지도 모른다.
- 부모가 뭔가를 잊어버리거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사실을 우울해해 봤자 사태는 호전되지 않음. 설령 부무가 과거에 집착하더라도 자식이 먼저 과거를 놓아주기로 결심하고, '지금, 여기'에 전념해야 함. 과거를 놓아준다는 말은, '인생을 날마다 새로 시작하듯 산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어제의 일을 들먹이지 않고 날마다 처음 만나듯 부모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대할 수 있을 것임.
-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를 놓아주는 결심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일만을 걱정하면 지금을 소홀히 하게 된다. 하루하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으니 내일의 과제는 내일 생각하면 된다.
- 자신이 학교와 사회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부모가 불행해지기를 아이는 바라지는 않는다. 부모의 행복과 불행은 아이에게 전염된다.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이 불행한 듯 행동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주변과 세간의 동정을 사기 위해서임.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아이를 적으로 돌리게 됨. 아이를 열심히 키웠는데 그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서 나는 이렇게 불행하다는 것을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는 부모의 행위를 아이가 기뻐할 턱이 없다. 아이가 학교에 가느냐 마느냐에 관계없이 부모대로 행복하면 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간병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 차고 넘칠 정도로 부모에게 애쓰는데, 충분히 효도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주변에 알리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자식에게 간병받는 부모 입장에서 간병하는 자식의 모습이 불행해 보인다면 그것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임. 부모에게 자식의 불행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자식의 불행한 이유가 자신을 간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미키 기요시)
- 갓난아기가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듯, 간병받는 것을 당당히 받아들여도 된다. 간병을 받아도 '즐거워 보인다', '간병받는 것도 나쁜게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을 보내면 그것도 하나의 타자공헌이다. 간병받게 되었을 때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압적이 자세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뜻하는 대로 간병해주지 않으면 분노를 표출하는 것. 그런 사람은 자신이 공동체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함. 다시 말해, 어른으로서 자립하지 못한 사람이다. 걱정거리가 되어 주변의 관심을 끌어 공동체의 중심에 있고자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간병받는 몸이 된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다들 처음에는 힘들겠지. 어쩌면 나도 똑같이 행동할지 몰라.' 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그런 사람과도 화내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간병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다.
- 자립한 어른일 것, 생산성을 따지는 사고에서 벗어날 것, 하지 못하는 일에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
- 성공과 행복을, 실패와 불행을 동일시하게 된 이래 인간은 진정한 행복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철학자 미키 기요시는 이렇게 지적, 인생론 노트에서 그는 성공과 행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공은 직선적 향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행복에는 본래 진보란 없으며 행복이 각자의 것, 각자에게 고유한 것인데 비해 성공은 일반적이며, 양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 서로간에 노력하면 다시 마음이 통할 수 있다. 먼저 지금을 과거의 연장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여태까지 두 사람이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는 앞으로 사이좋게 사는 것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으며 문제도 되지 않음. 지금까지는 지금까지고 앞으로는 앞으로라는 것이다. 부부로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고 해서 섣불리 '이 사람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안된다.
- 배우자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가 주어인 발상이다. 아무석도 하지 못해도 이렇게 살아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그것만으로 서로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부부관계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 '나는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행복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을 경험해도 그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공기와도 같다. 공기의 존재를 보통은 의식하지 않듯이, 행복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다.
- 인간관계의 문제는 타자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거나 침범해오는 데서 일어남. 자기 생각을 말해도 되는 순간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내 생각을 말해도 돼?'라고 묻지 않으면 안된다. 설령 자기 생각을 말한다 해도 상대가 받아들인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관대하다는 것은 진로 선택의 예로 말하자면 자식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앞날을 지켜보자고 결의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힘이 있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타자와의 신뢰관계를 맺고 싶다면 이쪽이 먼저 상대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함. 많은 사람이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타자를 신뢰하기를 두려워함. 하지만 배신당할까봐 두려워서 타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 자신의 불우함을 호소하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에게는 목적이 있다. 바로 타자에게 주목받기 위해서임. 그런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의 불편한 심기에 주목해서는 안됨. 그럴 때는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심기가 쭉 불편한 사람은 없으니 기분이 좋아지면 그때 말을 걸면 된다. 심기가 불편해도 주변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심기가 불편한 채로 있어봤자 무의미하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잊어버려도 된다.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숲을 만들고, 다음 세대의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과거를 생각하고 후회하거나, 미래를 생각하고 불안해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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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년간 고해성사를 받아온 신부에게 "오랫동안 내밀한 사연을 들으면서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행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은 성숙한 사람은 없다는 것, 두가지입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 어빈 얄롬)
-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라는 충고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밑바닥까지 겪은 뒤에야 비로소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낙관적 태도는 삶에서 선험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라 고통 뒤에 얻게 되는 사후적 가치다.
- 중년이 되면 에난티오드로미아라는 심리현상이 일어남. 에난티오스는 반대방향이란 뜻이며, 드로모스는 달리기 경로를 의미. 중년이 되면 심리적 에너지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며 마음의 축을 흔들어놓는다. 감성은 연약한 자의 전유물이라고 폄훼하고 이성에만 의지하던 사람이 마흔이 넘어서 낭만과 로맨스를 찾아 방황합니다. 논리와 합리를 금과옥조로 삼던 사람이 멜로 드라마에 눈물을 흘린다. 사고형 성격이 감정형으로 변한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던 외향형 사람이 중년이 되자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평과 분석으로 답을 얻기 보다 직관을 따르게 된다. 완벽을 향한 충동은 불완전성에 대한 수용으로 바뀐다. 모순을 억지로 풀려고 하기보다 대극을 품고 가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이 모든 현상의 마흔과 마흔 이후의 마음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변화들. 그야말로 중년은 전환의 시기다. 마흔은 상실의 시간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떠나보내야 한다. 과거의 성공도 놓아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곁을 떠나고 헌신했던 직장에서 밀려나고 우정도 퇴색한다. 미래는 무섭고 과거는 아득하게 멀어져 시간의 흐름 안에서 길을 잃는다. 야망은 힘을 잃고 자존감은 무너진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막을수가 없다. 상실을 못 받아들이고 과거를 붙들고 억지부린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상실에서 비롯되는 자아의 재탄생을 목도해야 하는 시간이 바로 마흔이다.
- 중년이 괴로운 것은 전환과 상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환은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짝을 이뤄 찾아온다. 상실은 슬픔을 몰고 온다. 슬픔과 두려움은 중년의 당연한 감정이다. 중년의 삶이란 슬픔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자연스런 전환과 상실의 고통을 거부하면 우울과 불안이 망령처럼 따라붙는다. 갑작스레 찾아온 공황에 충격받고 공허감을 못 이기고 무너져 내린다.
- 삶은 고통이다. 누구나 상처 입고 고달픔을 맛본다. 세상에 나만큼 힘든 사람 없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을 게 못된다. 세상 고통 혼자 짊어진 것처럼 굴면 철부지 소리를 듣는다. 마흔이 되어도 상처받고 깨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
- 인생은 목적지가 정해진 경주다. 죽음이라는 최종 종착지. 죽음을 느끼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됨.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애초에 내가 원하던 그것이 맞는디, 제대로 살아왔는지, 진정으로 원했던 건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벼랑끝으로 내몰기도 한다. 때문에 중년이 되어 느끼는 절망감과 위기감은 누구나 느낄 수 밖에 없는 정상적 감정이다.
- 자기 자리라고 여겼던 공간에서 거부당하면 트라우마를 입는다. 존재기반을 잃어버림. 인격이 통째로 무시당하는 것. 애초에 어머니의 자궁에 자기 자리를 갖고 있던 인간은 태어나면서 그것을 잃는다. 그 이후의 삶은 잃었던 자기 공간을 찾기 위한 투쟁이라 말할 수 있다. 출생 후 어디에도 속할 수 없게 된 존재가 자기 자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 슬픈 현실은 자신을 위한 공간을 얻지 못한 채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것.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공간에서도 말이다. 심지어 가정에서도 소외된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
- 실존은 '거기에 있음'이다. '거기'란 하나의 자리, 공간이다. 자신이 속해야 할 공간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 세상 어디라도 안정감을 느낀다.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녀도 두렵지 않다. 어떤 곳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인간의 자리는 정체성의 표상이다. 존재한다는 건 어떤 장소, 즉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공간을 내는 것.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이다. 남겨진 자리가 확고하다고 느기면 자신이 사라지는 죽음도 덜 두렵다. 지금 당신에겐 그런 자리가 있는가?
- 거짓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지금 자신이 얻으려 하는 행복이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확인해 보라. 사회나 언론에서 심어준 행복, 이를 테면 사회적 성공과 부, 완벽한 사랑, 방황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심리상태 등 거짓상태에 현혹되어 있지 않은가? 영화나 신문에 나오는 행복의 이미지에 익숙해지면 나에게 진짜 행복이 뭔지 잊어버린다. ooo교수가 말하는 행복, ooo박사가 말하는 행복이 마치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라 착각하면 나답게 살지 못한다. 병든 행복은 정상적 불행보다 더 나쁘다.
-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행동이 모여 생기는 부산물에 불과. 사실 희망이란 것도 실재하지 않는다. 희망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가 희망을 하루하루 만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 희망을 만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은 단순히 쾌락적 정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즐겁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마약을 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행복일까? 우리는 어떨 때 진짜 행복을 느낄까? 인간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인생의 신념이나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때 좋은 기분을 느낀다. 만족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행동이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지 않아 마찰을 일으키면 불쾌함을 느낀다. 불만족스러워지는 것이다. 즉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인생으 가치로부터 멀어진다고 느낄 때 고통을 느끼고, 하루하루의 삶이 가치에 잘 부합하면 행복하다고 느낀다.
-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자기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는 사람만이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보야 알 수 있는 법.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노력하고 인내하고 애쓰며 사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인생 전체로만 답할 수 있기 때문. 우리에게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숙제가 많은 만큼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도 많다는 뜻이기 때문. 아직 그만큼의 열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함. 숙제 없는 마흔은 생각할 수도 없다. 마흔이라면 당연히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한다. 숙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가지를 알려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과 당분간 숙제의 무게만큼 고통도 던져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힘이 들어도 우리는 계속해서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자아를 I(의식적 자아로서의 주체)와 me(출신과 기호, 미래에 대한 바람 등 자아를 형성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따른 개인적 정체성으로서의 대상)로 구분.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me가 있고, me를 인식하는 I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me와 I 둘다 만들어진 이야기다. 정체성은 이야기다. 인간은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통일된 단일체로 인식.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 언뜻 보면 모순된 언행들은 하나의 이야기 아래 묶어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정체성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함. 나라는 사람은 기억의 결합체임. 기억은 끊임없이 편집된다 인간에게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해서 일관된 이야기로 짜맞추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이 있다.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삶의 일관성을 회복하려는 논리적 틀이다. 인생 서사는 그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보며 '내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떤 제목을 붙일까?'라고 생각해보라.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가 된다면 그것에 어울릴만한 광고문장은 무얼까?'라고 스스로 물어보라. 미래를 내다보면 인생 시나리오를 써봐도 좋겠다. 이야기는 추상적인 인생을 눈앞에 그려주는 힘이 있다.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그 삶에 다가가기가 훨씬 쉬워진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자아를 계속 성장하도록 만든다. 인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가 있어야 안도하는 것이 인간. 무작위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짓는다. 그럴듯한 서사로 풀어낼 수 있어야 고된 인생을 견뎌낼 수 있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본능의 표현이다.
- 니체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역사로 만들 줄 아는 힘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흘러가는 이야기로 허무를 이겨낼 수 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내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기를 바라는가? 내 인생을 다룬 영화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나라는 캐릭터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까?
-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것과 싸우는 일만큼 비생산적인 것은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과 현상 그리고 사람들은 그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좋든 싫든 나의 삶에 초대된 것. 이것을 쫓으려 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무조건 참거나 체념하거나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님. 패잔병이 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님. 고통과도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하고, 우는 아이를 끌어안아 달래듯이 고통을 품을 수 있어야 하며, 가냘픈 꽃을 손에 살포시 쥐듯이 고통을 가볍게 움켜쥐고 갈 줄 알아야 한다. 너무 꽉 움켜쥐지 말고, 그렇다고 느슨하게 놓쳐버리는 것도 아닌 부드럽게 가슴에 안아 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힘을 빼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당장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고 일상을 챙겨나가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동적 태도가 아니다. 깊은 성찰과 지혜가 필요한 적극적 대처방식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언젠가 그 속에서 통찰을 얻게 된다. 새로운 희망을 길은 언제나 수용에서 시작한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변화할수도 없다.
- 갈등은 푸는 것이 아니라 품고 가는 것이다.
- 자기를 변형시키는 것은 자기계발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내면의 특정 자기를 다른 거으로 대체하거나 부정할 수 없기 때문. 그런 방식으로 나를 바꿀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만을 갖고 싶다고 그런 취향에 일치하는 내 모습만을 바란다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갑갑하고 사소한 일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자기를 쥐어짜고 변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필요함. 자존감을 높이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게 마련. 자존감은 내가 선택한 내면의 자아가 시대와 조화를 이루면 높아진다고 느낄 뿐이다. 시대와 불화하는 자아가 강조되면 자존감은 낮아짐. 자아의 한 측면을 시대가 인정해주면 자존감이 다시 높아진다. 어떤 맥락에서 나의 어떤 모습을 강조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 누구나 내 안에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데, 그중 어느 하나도 부정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가치 확인이론에 따르면 자존감에 위협을 느낄 때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임. 예컨대 학계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된다면 내가 매우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나 정말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내가 가정적 남자라는 사실에나 즐겨 이야기하는 정치 등에 관심을 돌리면 그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음. 자존감에 위협을 느낀 것과 무관한 분야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무척 효과적임.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책, 도시, 영화, 노래, 취미 같은 걸 생각하고 글로 적어봐도 좋다. 자아의 가치가 시대와 충돌하여 괴롭다면 내 안의 또 다른 자기에 주목하고 그것에 에너지를 쏟아부으세요. 인생의 과업은 내면에서 다수의 자기를 발견하고 그것에 빛을 비추는 일이다. 내 안에 있느니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 지혜란 무엇을 간과할 지 아는 기술이다. (윌리엄 제임스). 마흔 이후의 지혜는 불필요한 기억이나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 그래서 현명한 선택과 포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중년의 힘이다. 마흔 이후에는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할 때가 되었는데도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만 하면 행복할 수 없다.
- 자수성가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완벽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크다. 성취해도 만족을 못 느낌. 그리고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자기를 몰아세운다. 빈틈, 예외, 실수, 허술, 여유, 지는 것, 느린 것... 이런 것을 못견딘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 자체가 교훈이라고 여겨라.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온 역사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것을 잊지 말라. 돈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기억 속에 심어놓은 정신적 가치가 진짜 유산이다. 삶의 철학이 성실과 신뢰라면 가족과 직원 그리고 사회에 '그 사람은 성실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믿을 수 있었다. 성실과 신뢰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는 기억을 남기자.
- 오직 그 사람만이 인간이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오직 그 사람만이 저 위에서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두 팔에 늑대와 양을 품되 그 둘이 서로 해치는 일이 없도록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이미 터득한 사람이다 (게오르게 구르제프,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
- 마흔 이후의 지혜는 자신의 삶 속에서 늑대와 양이 공생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데서 비롯됨. 늑대와 양이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모순적 상황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늑대가 배고픔을 느껴서 양을 잡아먹지 않도록 꾸준히 먹이를 주면서 돌봐야 한다. 내 마음에 늑대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양도 지켜낼 수 없다. 마흔이 넘어서도 내 마음에는 선한 양만 있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철부지다. 내 마음에는 늑대가 없다고 떠드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말라.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못한다. 나이 헛먹은 사람이나 이런 소리를 해댄다. 제대로 나이 든 사람이라면 나만 옳다고 말하지 못한다. 타인의 언행에서 악을 발견해도 함부로 욕하지 못한다. 자기 마음에도 그런 악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을 함부로 구분하는 사람에게 중년의 지혜가 있을 리 없다. 지혜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뛰어넘는다. 선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과 선이 공존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를 선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옳다, 그르다가 아닌 복잡한 설명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품을 수 있을 때 중년의 지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 의미는 비스듬히 추구되어야 한다. 거기에 매달리고 집착하면 안된다. 의미있다는 느낌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긴다. 의미는 삶에 헌신한 뒤에야 드러난다. 의미 차제를 추구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관념적으로 의미를 찾으면 오히려 공허함만 쌓인다. 생각에서 빠져나와 활동에서 비롯된 충만이 쌓이면 나중에서야 '이것이 내 삶의 의미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두가지 행동양상
(1) 과도한 통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환경을 통제하려 든다. 물리적 환경은 그마나 정해진 곳에 물건을 놓거나 깨끗하게 치우는 등 비교적 통제하기 쉽다. 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은 통제하기 어렵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자기 몰래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통제 안에 있도록 지시와 명령으로 타인을 옥죄려 한다. 잔소리가 심한 엄마들이 그러함. 자기 내면의 불안 때문에 아이를 과도하게 통제하려 한다.
(2) 회피.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움과 낯섦을 두려워함. 웬만하면 익숙한 일만 한다. 매일 만나던 사람만 만난다. 모험도 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가 스트레스다. 감정적 민감도가 높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충격도 크다.
- 마흔 이후에는 모든 것이 편해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병이 들기도 하고 사고도 많이 겪는다.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이들은 원하는 대학에 잘 진학할 수 있을지, 회사에서 해고당하지는 않을지 누구도 확실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중년은 불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 마흔이 되었다면 모호함을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함. 방법은 딱 하나 용기다. 불안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뭐지?' 라는 질문에 답하며 당장 소중한 것에 집중할 용기가 필요. 불안이 내 삶을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신념이 필요. 불안해도 용감할 수 있다. 불안과 용기는 늘 공존한다. 불안한 사람도 강해질 수 있고 용감한 사람도 불안을 느낀다. 불안이 클수록 용기도 커진다. 불안이 나를 단련시켜 맷집을 키워주니까. '까짓것'이라는 마음이 중요함. 막연한 불안, 두려운 상황에 대한 회피 따위는 '이까짓 것들'하고 옆으로 제쳐두고, 진짜 중요한 것을 그냥 해보는 거다. '막상 부딪혀보니 별것 아니네!' 하는 체험이 쌓여야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
- 일탈에는 불안이 따르기 마련. 살던 대로, 평소 하던대로 하면 불안을 느끼지 않겠지만 살아가는 맛 또한 느낄 수 없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을 상상하면 두려운 느낌이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다. 하지만 감미로운 긴장감이다. 회피하고 자극을 좇는 일탈은 죄책감을 일으킴. 감미로운 긴장감과 죄책감은 구별해야 함.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앞으로 5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지금이 순간의 일탈이 5년 후 내가 그리는 그 모습과 자연스레 연결된다면 감미로운 긴장감을 느낄 것임.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이 따라오게 마련.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도 있지만 마땅히 내 모습이어야 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할 때 느끼는 죄책감도 있다. 이런 죄책감을 '내재적 죄책감'이라고 함. 죄책감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 일탈이 없다면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고 자신의 미래가 뻔히 보이는 삶을 살게 될 것임. 그런 삶에서는 윤기가 사라지고 만다. 어차피 결론이 나 있는 인생, 더 살아야 뭐 하나하는 허무함이 찾아온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현실이 어떻든 우리는 매 순간 일탈을 꿈꾸어야 한다. 일탈을 꿈구고 그것을 향해 몸을 던질수 없다면 제대로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임.
-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건강하게 버티려면 자기 정체성이 복잡해야 함. 자기 복잡성이 큰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를 바당도 덜 괴로워하고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낮음. 다양한 정체성이 스트레스에 대한 완충역할을 하기 때문. 하나가 잘못되어도 다른 자기개념들이 자신을 지탱해주기 때문. 진정한 나는 하나가 아니다. 내 안에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 그중에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라고 할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다양한 자아가 모여 이뤄진 집합체. 단일한 자기개념에만 집착할 때 마음의 고통이 생긴다. 다양한 자아 중에 일부만 인정하고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것을 부정하고 억압할 때 문제가 된다.
- 복잡성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 조건이다. 복잡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마음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의미. 한가지 자기상에만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건 배만 볼록 나오고 팔다리는 근육하나 없이 가늘어진 몸으로 살아가는 것과 다를바 없다. 승진과 돈, 인정과 평판, ... 삶의 다양한 가치 중에 한 가지에만 모든 것을 걸면 자아는 쪼그라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평소 듣지 않던 장르의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 나의 정체성도 다양하게 분화된다. 마음 건강을 위해서는 한결같고 단순해지기보다는 복잡한 속성을 내면에 골고루 품고 있어야 한다.
- 모든 삶은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거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인간의 심장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달성하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의미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잃는 순간 인생의 시계도 멎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고통은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필수조건. 누구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 하필 나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고통은 배가 된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 바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함. 지혜로운 사람은 삶에서 겪어야만 하는 시련을 이렇게 부른다
* 삶의 고통은 깨달음을 촉구하는 신이 보낸 메시지
* 고통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우주가 보낸 메시지
* 고통과 충격은 자기만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기 위해 나타난 길잡이
* 고통은 지친 영혼을 새롭게 담금질하라는 의미
* 상처가 아물어 새로운 살이 돋아나 새롭게 되라는 의미
* 고통은 성장을 위한 동기
* 고통은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
* 고통은 진정한 자아를 만나기 위한 기회
* 시련 속에는 하느님의 숨은 의도가 있다
* 고통 속에는 하느님의 큰 뜻이 숨겨져 있다
-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내담자에게 빅터 프랭클 박사는 묻는다. "만약 아내를 남겨두고 당신이 대신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남겨진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요?" 내담자는 말합니다. "아내라면 이런 고통을 견딜수가 없을 거에요. 아내가 어떻게 견디겠어요" 프랭클이 말합니다. "보세요, 당신 덕분에 아내가 이렇게 큰 시련을 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런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해준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살아남아서 아내를 위해 더 많이 슬퍼해야 합니다."
- 인생을 살다가 역경을 만났을 때 그 역경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그 역경은 형벌일 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 역경은 수업료일 뿐이다.
- 고통을 통해 깨달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시련과 고통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그 속에서 찾은 인생의 숙제를 고통 이후에도 계속해서 풀어가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나무의 열매는 꽃이 진 뒤에 맺히는 법이다. 사람도 상처받은 후에야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르누아르)
-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뛰어내리는 곳은 다리 중간이 아니라 다리가 시작되는 초입.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다리에 들어서자마자 뛰어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충동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충동적인 생각은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인생을 마감하려는 강렬한 충동도 그 순간만 버텨내면 시간의 힘으로 자연히 희석되게 마련. 아무리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시간의 힘을 믿고 기다린다면 왜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삶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고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차이는 시간의 힘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긍정적인 사람은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거라 믿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안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이 삶을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요? 인생은 시간이 지어낸 결과물이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정해져 있는 결론이든 아니든 간에 시간이 우리와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과 삶을 이해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는 그대로 남으니까요. 인생은 하나가 끝나고 다음이 시작되는 단편소설이 아니라 죽을 때 완성되는 장편소설이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이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시간의 힘을 빌려 자연스레 찾아간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죽음이 자기 앞에 찾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인생이라는 소설이 어떻게 완결되었는지 알 수 있따. 시간이 흘러야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인생이 짧아 보여도 훌륭하고 영예롭게 살기에는 충분히 길다.
- 사람들마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본질은 똑같다. 현실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자신이 갖고 있지 않다고 인식할 때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스트레스다. 이런 상황을 두고 통제소재가 외부에 있다고 한다. 사장이 밤새도록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말단 직원이 상사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밤새우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다른 것은, 사장은 자기 의지대로 일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말단직원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지각하기 때문.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정상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스트레스를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도망칠 수없고 제 힘으로 풀 수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겪는 것이 스트레스인데, 벗어나겠다고 발버둥치면 힘만 빠지고 더 괴로워진다. 통제소재가 자신에게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데 그걸 풀어보겠다고 달려들면 오히려 탈이 난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에 빠진다. 세상에 나만큼 괴로운 사람은 없을 거라 믿으면 스트레스는 더 쌓인다. 삶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인식하면 스트레스 속에서도 단단하게 버틸 수 있다.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스트레스 받는건가?'라는 의심에 속아 넘어가면 안된다. 스트레스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 충분히 내려놓지도 못했으면서 다 내려놨다고 하는 건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건드리자 말라'는 방어심리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이 문제라며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내려놓지 못했는데 내려놓았다고 믿으면 '나는 할 만큼 했는데, 너희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며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진짜 내려놓은 사람은 내려놓았다는 말조차 안한다. 내려놓았다는 그 마음까지 내려놓은 상태니까 말이 필요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내려놓았다. 마음 비웠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내려 놓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특히 중년 남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돈이 아무리 많고 사는 데 별 문제 없어도 인간의 욕심은 완전히 비워낼 수 없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그나마 줄일 수 있어도 인정욕구는 절대 못 줄인다. 조직, 사회, 친구, 가족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열망은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진다. '나이 먹었어도 나는 여전히 꼭 필요한 존재야'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하는 열망은 더 불타오른다.
-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언제나 나를 피해갈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리라. 피터드러커는 인생에서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 강조. 정진홍 박사도 '완벽에의 충동'에 이렇게 썼다. "완벽에의 충동은 살아있음의 저력이고 생명을 이끄는 힘입니다. 완벽에의 충동이 살아움직이는 만큼 내 삶도 유효합니다. 완벽에의 충동이 사라지는 순간 내 삶은 쉰내가 나는 것입니다. 썩는 것이지요." 완벽을 향한 충동이 사라지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같다. 삶의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쯤 되면 완벽주의가 삶을 풀어가는 묘약이라 믿겠지만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 완벽주의가 독이 되면 성취해도 행복을 못 느낀다. 만족할 만한 순간에도 흠결이 눈에 들오와 불행해진다. 최선을 다하고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과도한 완벽주의는 정신겅강의 적이다.
- 완벽주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미워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고 믿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은 이 세상 누구도 살아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 완벽을 향한 여먕도 좋지만 완벽하지 않은 자기 모습, 완벽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품고 가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완벽을 강요하지 않는 것, 중년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 우울이라는 감정은 숨기려 하거나 부정해서는 안된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아, 내가 요즘 우울하구나'하고 인정하면 된다. 우울한 게 이상하거나 나쁜 감정도 아닌데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다보니 지치고 상처받아 우울한 건데 그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었어. 그랬더니 내 감정이 나더러 쉬라고 하네'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겁먹지 말고 우울을 똑바로 보면서 '너, 왜 나에게 왔니? 도대체 왜 지금 내가 우울해져여 하는 거야?' 라고 물어보라. '한동안 아내와 많이 싸우고 회사 일도 많았느데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하고 살아서 그런거야'라는 원인이 나올수도 있고 '회사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애들 교육비도 많이 들고 돈은 더 필요한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그런데 솔직히 자신이 없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일수도 있다. 이런 저런 나름의 이유가 내 마음을 긁어놓으니까 피도 나고 상처도 생기고 그게 곪아서 우울증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마음 한구성게 감춘다고 낫겠는가? 더 곪기만 한다. 이제라도 내보이세요. 그래도 됩니다. 그래야 우울을 날려버리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 우리의 기분은 힘이 세다. 기분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변한다. 생각보단 기분이 앞선다. 생각을 바꾸면 기분이 달라진다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임. 이를 정서 우선주의라고 함. 감정을 일으키는 변연계의 작용이 사고를 지배하는 전두엽의 활성도를 넘어서기 때문. 우울감에 휩싸여 있을 때는 긍정적 생각을 아무리 해도 기분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체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다. 우울해지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라는 느낌이 마음을 지배함. 이런 상황에서도 활동을 아주 잘게 쪼개면 적은 의욕으로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아침에 일정한 시가에 일어나는 것만이라도 하라고 한다. 기상 후에 따뜻한 물로 샤워만이라도 해보라 한다. 이것도 못하겠다면 아침에 일어나 바로 외출해도 부끄럽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으라고 조언한다. 굳이 잘 차려입고 있을 필요는 없다.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만 아니면 된다. 햇볕 쬐며 걸으면 좋지만 그것도 힘들다고 하면 누워 있지 말고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라. 우울하다는 주부들에게는 외출 약속이 없어도 간단한 기초화장 정도는 꼭 하라고 한다. 우울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 활동은 운동이다.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의 합성과 분비가 늘어나는데 특히 대뇌피질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의 세로토닌 활성도가 증가함. 달리기를 한 뒤에 뇌 PET 검사를 해보면 엔돌핀 농도가 대뇌피질과 변연계에서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전두엽의 회질과 뇌량의 백질 부피가 증가. 몸부터 살살 달래가며 행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함. 움직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바뀜. 움직이다 보면 정서가 자극을 받아 변하기 시작함. 부정적 생각도 몸으로 털어버려야 함. 움직이면 생각이 달라진다. 기분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다 보면 기분이 바뀌고 생각도 바뀐다. 기분은 생각이나 의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 기분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생각만 긍정적으로 한다고 행복해질 수 없다. 마음을 편히 먹는다고 우울이 사라지지 않는다. 항우울제가 우울증상을 없앨수는 있어도 회복탄력성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활동을 추구하면서 늘 활동상태에 있기 위해 노력하면 스트레스 면역력이 길러진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도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게 예방가능. 우울증 치료의 핵심은 행동을 활성화하고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몸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긍정적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하는데 이는 말처럼 쉽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정신건강은 마음만 챙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님. 마음보다 몸이 먼저임.
- 걱정은 사람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
- 생각의 엔진이 꺼지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마치 그 일이 해결된 듯한 착각에 빠져서 심리적 고통이 일시적으로 줄어들기 때문. 그러다 보면 걱정이 걱정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짐. 자기도 모르게 걱정에 중독된다. 그래서 생각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현실에서는 멀어지게 됨. 결국 불안을 일으킨 근원을 제대로 찾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 속에 빠져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기회를 날려버리거나 그럴 수 있는 힘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 걱정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벌어졌고, 22%는 아주 사소한 것이고, 4%는 바꿀 수 없고, 단지 남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쓸데없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 어니 젤린스키)
- 우선 걱정이나 염려 때문에 자신이 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 아래 6가지 경우처럼.
(1) 과거의 일이 자꾸 생각나고 그것과 연관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2) 사소한 잘못이나 흠결이 자꾸만 눈에 거슬릴 때
(3)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질 때
(4) 마음이 혼란스럽고 별일 없는데도 바쁘게 느껴질 때
(5) 비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따지려 드는 마음이 솟아오를 때
(6) 움직이지 않고 생각 속으로만 함몰된다고 느껴질 때
위와 같을 때는 '내가 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점검해야 함. 찬찬히 내 마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세요. 걱정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세상을 보지 말고 내 마음의 걱정을 보세요. '제기랄, 너무 불아낳고 걱정돼!'라고 짜증내기보다는 '내가 지금 불안하다고 느끼는구나', '내가 지금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자기 마음을 관찰하세요
- (1) 고민을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나? (2) 고민을 했더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나? 만약 (1) 이나 (2) 둘 중의 하나라도 '예'라는 대답을 한다면 계속 고민해도 된다. 5분이상 고민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둘 다 '아니요'라면 고민을 계속해봐야 기분은 더 나빠지고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게 분명. 고민이 효율적이나 아니냐는 5분 안에 결정된다.
- 우리가 걱정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실재의 일 때문이 아니라 가상의 생각 때문. 세상 근심걱정은 거의 대부분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걱정하는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면 오히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를 오히려 바란다면(어떤 경우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일부러 행동하기도 한다.) 생각의 의도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어 걱정도 사라진다. 이런 치료법을 역설의도라고 한다.
- 공황장애는 불안에 대한 불안이다.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공포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것. 하지만 이런 불안과 공포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일상이 만들어내는 질식감과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과 상실에 대한 공포가 이런 허구의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 공황장애에 숨겨진 진짜 의미가 무언지를 깨닫게 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너무 숨가쁘게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러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때 번쩍하고 찾아오는 것이 공황이다. 공황장애는 자신의 삶과 마음을 되돌아보라는 신호다.
- 중년이 되면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된다. 무의식에 숨겨져 있던 여성 속의 남성성, 남성 속의 여성성이 꿈틀대기 시작. 이것을 각각 아니무스, 아니마라고 한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성스럽게 성장해야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에 적응할 수 있음. 그렇게 살다 보면 남성은 남성다운 외적 인격이 우세해지고 무의식의 아니마를 억압하게 된다. 여성은 아니무스를 억압하게 된다. 남성 속에 억눌려 있던 여성성과 여성 속에 억눌려 있던 남성성이 표출되는 것에 대해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얌전한 여성의 페르소나에 오랫동안 눌려 있는 아니무스는 분화되지 못한 채 한순간 충동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 점잖은 신사의 페르소나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살아온 남성은, 무의식 속에서 방치된 채 돌보지 않았던 아니마가 아마존의 원시여성과 같은 야생적 충동으로 나타난다."
- 남성이 자신의 아니마를 의식화하지 못하면 중년이 되어 여성적 특성이 미숙한 형태로 드러남. 남성의 무의식에서 억암되었던 분화되지 못한 아니마는 변덕스럽고 감성적인 기분, 허무함, 쓸쓸함, 과민성, 짜증, 때로는 폭발적 분노로 표출된다. 아니마는 원래 남성 안에서 영감, 창조적 통찰, 예감, 섬세한 정감을 갖게 한다. 아니마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남성은 융통성과 생동감, 창조성을 잃어버린다. 완고하고 기계적으로 변한다. 감정을 잃고 메마른 사람이 된다. 미성숙한 아니마에 자아가 사로잡혀 버림. 그렇게 되면 피로를 느끼고 책임감을 잃고 공허에 휩싸임. 소심해지고 불안에 휩싸이기도 함. 미성숙한 아니마가 다른 여성에 투사되면 그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색정적 환상을 유발. 아내와는 완전히 다른 여성, 또는 전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타입의 여성에게 넋을 잃고 빠져버림. 내면의 아니마를 돌보는 작업은 섬세한 정서를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 자기감정을 돌아보고 보살펴야 함.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함. 정서가 요동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함. 그동안 합리와 이성에 과도하게 의지해왔다면 마흔이후부터는 감각과 감성에 더 공을 들여야 함. 중년 남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마를 돌보고 성숙시켜 나가면 생동감과 창조성이 되살아난다. 아니마는 진짜 자기에 닿기 위한 안내가자 된다.
- 여성이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아니무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억압해 왔다면 미숙한 형태의 남성적 특징으로 표출됨. 여성의 내부에서 성숙하지 못한 아니무스는 비판적이고 논쟁적이며 경쟁적이고 공격적이고 고집스런 자기주장으로 나타남. 미성숙한 아니무스가 따지는 버릇으로 나타나 이유 없이 논쟁적이 되거나 폭발적 감정으로 표현됨. 미성숙한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은 의견이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당신 말이 맞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자기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가치를 깎아내리고, 비관적인 생각에 자아가 사로잡혀 버린다. 만사가 귀찮고 사는 게 의미없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아니무스다. 중년여성은 자신의 내면에서 억압되었던 아니무스를 의식화해야 한다. 먼저 외부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함. 자신의 확신이 옳은지 되돌아보고 자기 의견과 다른 생각들을 비평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거이 중요. 내면의 아니무스가 성숙해갈수록 중년여성의 용기와 지혜도 함께 자란다. 무엇보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내면의 아니무스는 자존감을 해치는 원인이다. 하지만 아니무스가 의식화되어감에 따라 중년여성의 자존감도 커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다.
- 마흔 이후에는 밖으로 우세한 외적 인격과 안으로 억압되었던 내적 인격간에 새로운 힘의 균형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남자는 정서와 관계성을 향한 욕구가 커지는 반면에 여자는 자율성과 자기실현을 향한 욕구가 커짐. 아내가 더 이상 순종적이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해진다면 남편은 당황한다. 남편이 감성적, 의존적으로 변하면 아내는 자신이 어떻게 남편을 대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진다. 중년이 되어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아내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함. 당황하고 놀라면 거부하게 된다. 서로 상처받고 움츠러든다. 마흔이 넘으면 아니마, 아니무스를 돌봐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 갱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 갱년기 증상으로 얼굴이 붉어지면 혈색이 좋아졌다고 여기라.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 얼마나 원했던 시간인가? 일하고 자녀 돌보느라 자기 시간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소리 좋은 헤드폰을 귀에 덮고 음악에 몸을 맡겨라. 식은 땀이 나서 불편하면 운동으로 땀을 더 흘려라. 갱년기를 의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갱년기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운동밖에 없다. 자신을 호르몬 전쟁의 피해자로 남겨두지 말라
- 분노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분조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상처받았다는 의미. 타인과 세상에 대해 실망을 느꼈다는 의미. 무조건 덮어두는 것도 옳지 않다. 화를 억지로 눌러서 생기는 게 화병이다. 억울하고 분해도 아프다고 소리치거나 "나에게 더 이상 상처주지 마!" 라며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가 생긴다.
- '지금 느끼는 분노가 정당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정당한 분노라면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모멸감을 느끼고 부당한 이유로 자존감에 상처 입고 고유한 자기권리를 침해당했다면 화를 내서 자기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이런 분노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적응적 감정이다. 적응적 분노는 참아서는 안된다. 고함을 지르며 표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 "아, 성질나서 미치겠네"가 아니라 "당신 잘못으로 너무 화가 납니다."라고 자기 느낌을 언어화한다. 그러고 나서 원하는 것을 묶어서 알려준다. 나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주어로 해서 나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한다.
- '나는 혼자다'라며 소외감을 느끼면 배측전대상피질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암 환자처럼 통증을 느끼게 됨. 외로우면 옆구리가 시리다는 말, 괜한 소리가 아니다. 외로운 사람이 자꾸 아프나고 하는 건 관심 끌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진짜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외로울 때 춥다고 하는 것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외로움은 체온감각을 변화시킨다. 고독감을 느낄수록 주변의 온도를 더 낮게 지각하도록 뇌가 변한다. 추우니까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게 만들기 위한 진화생물학적 장치가 우리 뇌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 61년 미국 내과의사 스튜어트 울프는 펜실베니나주 로세토 지역의 의사와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지역에 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다른 지역 주민보다 심장병에 잘 안걸린다는 것. 울프 박사가 이 지역의 심장병 유병률과 사망률을 조사해 보니 55세에서 64세 인구 중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고, 65세 이상 인구 사망률도 전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 더 놀라운 것은 로세토 주민들은 소시지나 미트볼을 즐겨 먹고 술과 담배도 엄청나게 해댄다는 것. 그런데도 심장병에 잘 안걸린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효과가 나타나나 조사해보니 이 지역 특유의 서로 존중하고 협동하는 공동체문화 때문인 것으로 밝혀짐. 이웃 주민들이 서로를 가족처럼 믿고 의지하는 것이 건강 비결. 이것이 바로 로세토 효과다. 사람이 실제로 옆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이 더 중요. 외로움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해보면 친구의 숫자나 대인관계의 폭보다는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라 인식하는지가 우울증과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남
- 사람은 모두 외롭다. 마흔이 지나면 더 외롭다. 지금 외롭지 않아도 언젠가 외로워진다. 나는 외롭지 않다고 외치는 이는 거짓말쟁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은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다.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어도 심리적 간극이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사람은 서로에게 영원한 이방인이다. 어떤 관계도 외로움을 완전히 달래주지는 못한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만 춥고 외롭다는 생각에 빠져들면 안된다. 외로움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 결혼이 외로움과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랑과 결혼을 통해서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도 외로운 건 매한가지다. 사랑이 클수록 외로움도 커짐. 사랑이 커질수록 결국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 지금 부부생활이 행복하니까 나는 괜찮다고 안심할 게 못된다. 결혼은 너무나 깨지기 쉬운 제도이다.
- 사랑은 오해다 뜨거운 사랑일수록 오해도 깊다. 결혼은 오해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이뤄진다. 서글프게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니까. 부부 사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멀어져야 정상이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남편을 사랑하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라며 변치 않느 사랑에 대한 믿음이 확고할수록 역설적이게도 결혼생활은 더 고달파진다.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사랑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괴로워지는 것이다. 주말에 부부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멀뚱멀뚱 보고 있다면 아주 잘살고 있는 것이다. 심심한 관계가 별 탈 없이 오래가는 법이니까.
- 결혼해서 더 처절한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 식어버린 열정으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결혼생활의 절정과 바닥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만이 결혼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다. 부부간의 정과 결혼의 의미는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해야 깨달을 수 있다.
-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커다란 왜곡일 뿐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이다. (사랑예찬, 알랭 바디우)
-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자여는 "그래, 네가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구나."라는 말을 첫번째로 듣고싶어 할 것이다. 그 다음이 "네가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줄래?" 이다. 마지막으로 "아빠 생각에는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아"라고 조언하라. 자녀가 지금 경험하는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려는 시도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오면 좋다. 쉽게 말해 "학창 시절에 공부하느라 괴로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게 너를 성장시켰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라는 의미부여는 맨 마지막에 해야 한다. 이런 말부터 먼저 꺼내면 꼰대소리 듣는다.
-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가 중요. 인간이 겪는 불행을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보편화할 수 없는 개인의 은밀한 사연들은 언어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이것이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 이런 사람에게 겪은 일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고 하거나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든 거냐고 다그치면 상처는 덧날 수밖에 없다.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일이 반응하려 드는 것은 좋은 경청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바로 따져 묻지 말고 일단 들어주는 것이 먼저다. '당신의 마음을 듣고 싶어요'라는 바람을 간직한 채 침묵하며 기다리기, 표현하기 어려운 진심이 드러나도록 시간을 주며 기다리기 등 진정한 듣기의 힘은 기다림 속에서 발휘딤.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확신은 힘든 고난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듣기는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다.
- 옳은 말로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밀어붙이지 말라. 언어와 논리로 타인을 장악하려는 욕심은 버려라. 설득하려 목소리를 높일수록 내 생각은 타인의 마음에서 튕겨나가니까. 내가 옳다는 믿음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타인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방어성향을 더욱 강화한다. 자기 신념에 동조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뿌리깊은 생각을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보여도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그것을 바꾸려고 덤벼든다면 어떨까? 오히려 저항하며 자기 신념에 따른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심리적 역반응이 일어나고 불화는 오히려 더 커진다.
- 갈등은 해롭고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니라 감탄의 원천이다. 우리는 갈등을 겪고서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과 세상의 이면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다. 아무런 충돌이 없다면 좁디좁은 인식으로 타인을 한정하며 그 틀로만 세상을 보게된다. 충돌이 생기고 감정이 요동치면 그제야 '어, 이게 뭐지?' 하며 타인을 낯설게 인식한다. 관계가 매끄럽게만 흐르면 새로운 관점과 인식은 생기지 못하고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성가시고 괴로워서 화도 나겠지만 갈등이 생길 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 무슨 실미로 저런 말을 하지?' 라면 의문을 품게 되고 이것이 인생에 대한 통찰로 이어짐
- 용서란 본디 어려운 법이다. 아니, 용서는 불가능하다. 용서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해줄 자격조차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많은 흠결을 갖고 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저지르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벌하거나 꾸짖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도 "내가 당신을 용서하겠어!" 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가이 용서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아무런 흠결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는 자기애적 착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분조를 멈출 수 있다. 이것은 타인을 용서하지 말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누군가를 억지로 용서하려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거나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자신을 탓하는 일은 그만두라는 뜻. 억지로 용서하려고 생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미움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게 내버려두지 말고, 매 순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함
- 모든 세대가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진정한 중년이다. 마흔 이후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귀 기울여야 하는 시기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지친 사람에게 마음 한 자리를 내어주고 우왕좌왕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는 이들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면 불행해진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고 타인과 세상에 에너지를 쏟는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 생기를 잃는다. 살맛은 세상을 향해 나를 던져 넣을 때 생기는 법이다. 마흔이 넘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을 벗어난 무언가에 헌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를 깨닫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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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삶의 의미

심리 2019. 12. 2. 08:10

- 어머니의 응석받이 속에 다란 아이는 자신의 공동체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확산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자신에게 똑같은 정도의 친절을 베풀지 않는 아버지나 형제자매 또는 다른 사람들을 회피하려 든다. 이런 생활양식의 훈련과정을 통해, 마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쉽게, 외부의 조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삶을 바라보게 된 아이는 나중에 삶의 과제에 직면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공동체 감정이 미숙해 충격을 경험하기 쉽다. 이런 충격이 가벼운 경우에는 일시적이겠지만, 심한 경우에는 오랫동안 과제해결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제멋대로 자란 아이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어머니를 부려먹으려 함. 아이가 이런 우월의 목표를 가장 쉽게 달성하는 방법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 것. 이런 저항은 언제나 사회적 관심의 결여로 해석될 수 있는 관심의 결여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항으로 나타나기도 함
- 파트너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신체적 자질과 매력 외에 공동체 감정이 충분함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로 고려해야 한다. 즉 파트너는 원만한 교우관계, 노동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자신보다 파트너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식을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다분히 이기적인 원인에서 비롯할 수 있는데, 이것은 어떤 식으로 표현되든 상관없이 궁극적으로는 공동체 감정의 결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컨대 응석받이로 자란 여성이 부부관계에서도 계속 응성둥이로 남으려 할때, 또한 자신의 외모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임신이나 출산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과장할 때, 또는 남편의 사랑을 계속 독점하려 하거나 드물지만 사랑도 없이 결혼했을 때, 이런 행동이 관찰된다. 많은 경우 여성의 역할에 대한 남성적 저항과 출산거부는 매우 파괴적 효과를 낳는다. 자신의 성 역할에 저항한느 여성의 이런 태도는 내가 최초로 남성적 저항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는데, 이것은 종종 생리장애나 성기능 장애의 원인이 됨. 이것은 가족 안에서부터 열등한 것으로 이해된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하지만, 여성에게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종속된 지위를 부여하는 우리문화의 불완전함 때문에 크게 촉진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월경은 소녀의 심리적 저항을 통해 온갖 문제로 발전할 수 있으며 협력을 위한 준비의 결여를 초래할 수 있다. 남성적 저항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는 남성의 역할을 맡으려는 열망과 여자 동성애로 나타나는데, 이런 저항은 '계집아이일뿐' 이라는 열등 콤플렉스에 기초한 우월 콤플렉스라 하겠다.
- 우월 콤플렉스는 자신이 초인적 재능과 능력을 지녔다고 믿는데도, 성격특성, 견해 등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과도한 요구를 통해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은 콧대, 필요 이상의 겉치레, 고상하든 자유분방하든 격에 맞지 않는 복장, 거동이 지나치게 남성적인 여성 또는 지나치게 여성적인 남성, 교만, 감정의 범람, 속물근성, 허풍, 폭군같은 성격, 끊임없는 잔소리, 내가 특징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 평가절하 성향, 과도한 영웅숭배, 유명인사에게는 아첨하고 약자, 환자, 하찮은 사람에게는 명령하려 드는 성향, 자신의 특이한 취향에 대한 강조, 다른 사람을 평가절하할 목적으로 고상한 이념이나 트렌드를 들먹이는 행동 등은 우월 콤플렉스를 의심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분노, 복수심, 비탄, 열광, 습관적 박장대소,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경청하지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는 태도, 대화주제를 자신에게 돌리기, 별것 아닌데 습관적으로 열광하기 같은 격화된 정동은 열등감에서 시작해 우월 콤플렉스로 끝나는 사례에서 매우 자주 관찰됨. 또한 섣부른 직감, 텔레파시나 이와 비슷한 능력 또는 예언적 영감에 대한 믿음은 우월 콤플렉스를 의심케 하는 정당한 근거다.
- 신경증 환자는 후퇴를 통해 자신을 보전한다. 그리고 패배위험이 있는 문제와 충돌했을 때 발생한 신체적 또는 심리적 종류의 충격현상을 격화시킴으로써 이 후퇴를 보전한다. 신경증 환자는 개인적 자존감의 붕괴보다 고통을 선호한다. 이 자존감의 강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개인심리학 외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신병에서만 종종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이 자존감 또는 내 용어로 말하자만 신경증 환자의 우월 콤플렉스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그 자신도 두려움에 몸서리치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이것을 짐작할 뿐이며 이것이 현실의 시험대에 오를 때문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한다. 이 자존감은 그를 앞으로 내몬다. 그러나 후퇴해야 하는 그는 후퇴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배척하고 잊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후퇴의 생각, 후퇴의 감정, 후퇴의 행위뿐이다. 신경증 환자는 후퇴에 온 관심을 기울인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발걸음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며, 이것은 끔찍할 정도로 두렵다. 때뿐에 모든 힘, 모든 감정, 검증된 모든 후퇴수단을 동원해 후방에 머물려 애쓴다. 유일하게 중요한 요인은 외면한 채, 즉 자신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목표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외면한 채, 충격 경험을 증폭하는 데 온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상식에 반하는 생활약식을 고집하기 위해 꿈에서 흔히 그렇듯이 대개 비유적으로 치장되고 격화된 감정을 대량으로 동원한다. 그는 이렇게 완성된 안전장치에 집착하면서 패배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 우리는 삶의 사실을 결토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견해를 통해 경험한다. 때문에 이런 견해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치유는 노직 지적 경로는 통해서만, 자신의 오류에 대한 환자의 통찰이 증가하고 공동체 감정이 발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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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은 왜 좋아지는가? 기분이 좋은 것은 뇌 속에서 신경세포가 연쇄적으로 점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기분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깊이 드렁가, 나의 생각 그 자체가 나의 뇌에서 나온다면 나의 뇌로 나의 생각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상당히 혼란스럽다. 켐브리지대 물리학 교수 존 배로가 우주에 대해 한 말을,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마이어스가 다시 우리 심리에 적요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뇌의 구조가 단순하다면, 뇌는 그 뇌를 이해할 수 있는 심리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우리 심리는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 물론 제멋대로가 아니라 정해진 패턴을 따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의 입장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맞아떨어진다. 파티에서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말하면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당신은 즉각 그 소리를 알아듣는다. 하지만 당신과 마주 선 상대방은 이름을 듣기는 했을지 몰라도 인식하지는 못한다. 뇌가 그런 도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밀려드는 자극의 물결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을 것임. 젤리 몇 개를 집어 사방으로 던지는 짓은 무의미하다. 두뇌는 자동적으로 초점을 정한다. 물론 그로 인해 그릇된 길로 빠질 위험도 있다. "할래?"라는 글자와 선입견에 이끌려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 때로 의지를 이기고 우리의 관심을 끌어가는 함정에 조금 더 예민해질 것임. 우리는 심리의 필터를 거친 현실을 본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알면 새로운 시각이 가능하고 지평이 넓어질 테니까
- 파블로프의 개와 불쌍한 앨버트는 모든 심리학 교과서에 등장하다. 우리 머리에서 두가지 사건이 결합되는 가장 단순한 형태 중 하나를 보여주는 원형이기 때문. 조건화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건이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건화가 없으면 적응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조건화를 통해 자동적으로 적응을 배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뇌를 만든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거나, 모든 반응을 일일이 뇌의 하드웨어에 미리 프로그래밍해 두어야 함. 두 경우 모두 쉬지 않고 변하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결코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 두뇌의 높은 신진대사 활동은 낮 동안 독성분자를 배출. 그 분자를 프리래디컬이라 부르는데, 신경세포에 해를 입힘.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은 다음날 다시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기 위해 그런 독성물질을 제거한다. 더구나 잠은 기억과 창의성, 식습관, 호르몬 분비에도 큰 영향을 미침. 잠을 잘 못자면 몸이 괴로운 것도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 심리치료에서 활용하는 리프레이밍은 행동방식과 상황, 사건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적어도 실제보다 낫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자신을 고집불통이라 생각해 이 성격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심리치료사는 그에게 고집불통의 틀을 단계적으로 서서히 바꾸어보자고 권한다. 일단 고집불통을 변치 않는 성격으로 해석하고, 이것이 잘 먹히면, 다음단계로 확고하다고 다시 해석한다. 확고하다는 확신에 차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은 고집불통보다 당연히 긍정적 해석이다. 단순화시켰지만 어쨌든 이 사례는 리프레이밍의 방법의 목적을 잘 보여준다. 물론 한계는 있다. 그래도 주요우울장애에 시달려서 온 세상을 검은 틀에 가둔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 틀을 바구거나 그림을 아예 새 틀에다 끼우려는 노력이 매우 유익할 수 있다. 가족 치료의 사례를 들어보자. 딸이 식이장애를 앓는다. 부모는 진즉에 이혼하고 싶었지만 딸의 상태를 생각해서 같이 살고 있다. 심리치료사는 리프레이밍을 통해 이 굳어버린 상황을 뒤흔들 수 있다. 딸이 식이장애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가 헤어지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딸의 절망적 노력으로 말이다.- 프랑스 작가이자 화가인 프란시스 피바키아는 말했다. "우리 머리가 둥근 이유는 생각이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자신의 세상을 프레이밍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척 흥미롭다. 그 메커니즘이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풍경화를 끼운 액자틀처럼 우리는 머릿속 틀을 통해 딱 정해진 단면만 쳐다본다. 그래서 나는 비가 내려 날이 우중충하면 생각을 바꾸어 소파에서 뒹굴수 있는 멋진 오후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번 기차역에서 양복을 도둑맞았을 때는 이참에 새 양복을 장만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약간만 훈련하면 리프레이밍도 자동화될 수 있다.
- 한 사람의 개별적인 부정적 특징이나 행위가 그 사람 전체 인상을 크게 흐릴 때 그것을 두고 혼 효과라 부름. 머리에 후광을 두른 예수와 반대로 이 경우는 악마의 뿔이 머리에 달리는 것이다. 후광과 악마의 뿔은 일상 곳곳에서 쉬지 않고 빛을 비추어 우리의 눈을 가린다. 서른 명의 학생을 배정받은 담임교사가 헤일로 효과에 노출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움. 매사 정확하고 깔끔한 학생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전체적으로도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도 헤일로 효과의 위험은 크다. 승진결정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어떤 직원의 개별 업무능력이 전체 성과를 결정하는 일이 너무 잦다. 상사가 직원 A의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한번 보고 감탄했는데, 직원 B가 업무처리를 대충하는 광경은 두번 목격했다면 다음 승진심사에는 단연코 A가 유리하다 한 번의 긍정적 이미지가 상사의 뇌에 깊이 뿌리박혀서 다른 업무평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 반대로 불쌍한 B는 사는 게 고달파진다. 그의 머리에는 뿔이 붙어 버렸다.
- 패스트푸드점들도 헤일로 효과를 교묘하게 이용함. 맥도날드가 초록색 로고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가? 감자튀김의 제국이 의도적으로 메뉴를 샐러드와 다른 초록음식으로 확장한다. 샐러드 소스를 뿌린 작은 봉지는 여전히 정상식사보다 칼로리가 훨씬 높지만 초록의 이미지 탓에 그 사실은 금방 잊힌다. 따라서 학자들이 실험으로 입증했듯 패스트푸드점이 건강한 이미지를 강조할 경우 우리는 주 메뉴의 엄청난 칼로리를 까먹고 자동적으로 건강해보이는 칼로리 폭탄 사이드메뉴를 더 시킨다. 사실을 알고 나면 저항할 수 있는 심리현상들이 있다. 하지만 헤일로 효과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휴리스티 규칙과 비슷하게 헤일로 효과의 파급력에 적극 맞서도록 우리 뇌를 열심히 가동해야 한다. 그냥 쓰기만 하면 헤일로 효과의 눈부심을 막아줄 선글라스는 없다. 개인적으로건 직장에서건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싶다면 그런 식의 평가란 전혀 다른 차원들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상기해야 한다. 집을 보러 갔더니 정원에 풀장이 있다. 풀장이 마음에 쏙 들더라도 다락에 올라가서 지붕에 물이 새지 않는지 살피고 지하실에 곰팡이가 피지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업무결과를 평가할 때는 중요한 업무영역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판단기준을 마련해야 함. 여러 사람에게 평가를 맡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심리학에서는 A와 B 뿐만 아니라 소위 제3의 변수, 즉 C를 고려할 때에만 의미를 얻는 관계가 실로 많다. 예를 들어 진행형 슈팅게임의 소비와 공격적 행동이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관계의 원인은 성별일 수 있다. 여성에 비해 남성이 훨씬 더 컴퓨터 슈팅게임을 즐기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더 공격적이 성향이 높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둘의 관계는 가정환경 탓일 수도 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이 컴퓨터 게임을 더 많이 하며 동시에 부정적 사회구조 탓에 더 폭력성을 띤다. 이 모든 것은 슈팅게임과 폭력의 관계가 결국 다른 요인들이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 심리학의 관점에서 협상이 매우 흥미로운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전히 거꾸로 하기 때문. 독일 사람들은 협상을 하거나 물건값을 깎거나 거래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감스럽지만 그렇다. 그러나 협상이 바람직하게 진행되면 순수한 윈-윈 상황보다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러자면 제대로 협상해야 하고 협상성공의 기본규칙에 유의해야 한다.
(1) 첫번째 기본규칙이자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바로 이것이다. 협상의 목표를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파이의 크기를 최대한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협상의 통합적 잠재력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협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통합한다는 의미다. 살펴보면 양쪽 파트너이 욕구를 통합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렇게 되면 각자가 공정한 몫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윈-윈 상황에서 멈추지 않고 윈-윈-윈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세번째 윈은 협상의 대상인 파이가 갑자기 100% 이상으로 커질 때 가능. 오렌지를 둘로 나누면 둘 다 원하는 것의 50%만 갖게 된다. 껍질도 반, 과육도 반. 하지만 현명하게 협상하여 통합적 잠재력을 찾는다면 마린는 과육 100%를, 리자는 껍질 100%를 가질 것이다. 그것을 합치면 100%의 오렌지만으로도 갑자가 만족이 200%로 커질 것이다.
- (2) 두번째는 네가 나한테 하는 대로 나도 너한테 한다. 전문용어로 팃포탯이다.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팃포탯은 간단하면서 효과가 크다. 이 방법의 목표는 한쪽이 이용당하지 않는 협력이다. 팃포탯을 활용할 때는 항상 친절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투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팃포탯은 공정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협상 전에 삭제할 수 있는 요구사항과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정해야 한다. 당신이 포기한 요구사항을 상대는 당신과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이 사장은 늘 호텔에서만 묵기 때문에 당신이 호텔을 포기한다면 그점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당신은 호텔을 포기한 덕분에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사장은 당신의 그런 마음을 알리가 없다. 이렇게 하나씩 차근차근 양보해 나간다면 어떤 종류의 양보가 당신에게 득이 될지 정확하게 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 (3) 당신이 가진 BATNA를 파악하라.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협상을 통한 합의가 불가능할 경우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다. 그러니까 협상을 하기 전에 만일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대안이 무엇일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뜻. 놀랍게도 이것이 마지막에 가서 합의를 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나는 모든 언어에 새로운 단어를 선사했다. 바로 스트레스다. 오스트리아 학자 한스 셀리에가 한 말이다. 그는 1700편이 넘는 스트레스 관련 연구논문을 써 스트레스학의 창시자로 자리잡음. 셀리에는 스트레스의 탄생을 3단계로 설명
(1) 충격단계. 이 단계에는 신체가 반응함. 신체가 스트레스 해소에 온 힘을 동원한다 저장한 에너지를 소모해 능률을 높이는 교감신경, 즉 신경체계의 일부가 모터처럼 윙윙 돌아서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재촉한다. 그로 인해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동공이 커지고 기관지가 확장되며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고 소름이 돋는다. 위와 장의 활동은 줄어든다. 활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감신경은 이 모든 조치를 통해 신체 시스템의 능률과 저항력을 높인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우리 몸이 제대로 작동하게 한다. 지금 바로 장바구니를 든 그 남자에게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중이다. 그의 머리에선 추락의 시나리오와 생존을 위해 장바구니 속 물건을 써먹을 수 있는 방법과 공기가 없어지면 질식하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뱅글뱅글 맴을 돈다. 어쩌면 저 히죽대는 스케이트 보드 소년의 장딴지를 개물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 바로 이 순간 두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저항단계다. 몸이 활성화한 모든 에너지가 커진 부담을 해소하는 데 사용된다. 문제는 그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될 경우다. 스트레스가 너무 오래가면 썰물현상이 일어난다.
(3) 즉 탈진단계가 시작된다. 신체 저항력이 다시 감소하면서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 뒤처럼 몸의 시스템이 녹초가 된다. 우리는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 정서에 입각한 코핑은 비옷과 같다. 궂은 날씨는 어쩔 수 없지만 비옷을 입지 않으면 젖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말도 있다. 궂은 날씨는 없다. 나쁜 옷만 있을 뿐. 그렇다고 나쁜 스트레스가 없다는 말까지는 못하지만, 사실 우리의 미숙한 감정 탓에 스트레스가 나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타깝게도 정서에 입각한 코핑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다들 문제에 입각한 코핑만 좋아해서 잡초를 아예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속이 시원하다. 문제가 사라지면 스트레스 요인되 사라질 테니 말이다. 괜히 정서적 대처니, 틀을 바꾸라느니 핑계를 대봤자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만 풍길 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요인이 우글대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나의 경우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 삶을 뒤덮는 이 스트레스 요인을 모조리 뽑아내야 한다면, 아, 생각만 해도 그 스트레스 요인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러니 그냥 민들레 가득한 풀밭에 살면서 활짝 핀 민들레 씨앗을 훅 불어 바람에 날릴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흰머리가 다시 까매지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다 마치고 나면 조금은 더 지혜로워질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 아닐까.
- 팀장으로든 팀원으로든 다음번에 팀워크에 참가할 일이 있거든 태만을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기를 권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신원 확인 가능성이다. 누가 어떤 부분에 기여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면 의욕과 참여의식이 되살아난다. 잠재적 게으름뱅이도 집단의 익명성 뒤로 숨을 수 없어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면 팀의 진정한 일꾼이 될 수 있다.
- 자기통제력은 근육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너무 많이 사용하면 기진맥진해진다. 초콜릿 냄새가 풍기는 방에서 초콜릿 쿠기를 못 먹고 래디시만 먹으려면 어느 정도의 통제력이 요구된다. 그러니까 그 이후에는 풀기 힘든 퍼즐에 노력을 기울일 기력이 남지 않은 것이다. 자기통제력과 강한 의지는 우리의 바람보다 훨씬 빨리 소모되는 한정된 자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효과를 자아고갈이라 부른다. 자기통제력이 많이 요구될수록 빨리 고갈된다. 미루기 습관 때문에 괴로운 사람은 훈련으로 자기통제력 근육을 키워서 초콜릿 쿠키 정도는 거뜬하게 참아내며 진짜 과제에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우마이스터의 연구겨로가 덕분에 우리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마라톤을 뛰고 싶다고 해서 훈련 첫날부터 42.195킬로 전구간을 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힘들다. 의미있는 훈련은 소박하게 시작한다. 그러니까 자기통제력을 훈련할 수 있는 자기만의 분야를 찾아라.
-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자기통제력이라는 희귀자원을 현명하게 나누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들은 최고기록을 올리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전 구간에 걸쳐 신중하게 분배한다. 앞으로 고도의 자기통제력을 요하는 과제를 만난다면 힘을 잘 분배해보자. 이렇게 자주 훈련하면 미루기 습관 때문에 마음이 울적해질 일도 없다. 유머와 좋은 기분은 자기통제력의 도핑과 같다. 또한 작은 보상과 구체적 계획을 통해 더욱 의욕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계획 세우기 자체가 미루기 행동의 일부일 경우엔 고양이 꼬리물기 식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 만날 아래를 보고 비교하며 잘된 사람을 질투하고 잘못된 사람을 고소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비교를 절대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함. 대부분의 비교는 무의식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러니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자, 연못에서 헤엄치는 비단잉어를 떠올려보자. 그 연못에는 많은 비단잉어들이 우글거린다. 비단잉어는 누구랑 비교를 할까? 연못 속의 다른 비단잉어하고만 비교할 수 있다. 다행히 당신은 비단잉어가 아니기에 누구와 비교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다음번에 다른 사람을 보고 내 신세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질투심이 솟구치거든 그 비교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따져보고, 그런 비교가 정말로 의미가 있는지도 고민해 보라. 그럴만큼 중요한 사람인지 말이다. 그저 비참한 기분에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비교집단을 스스로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비교현황을 파악해 통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른 비단잉어들이 당신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거든 그 사실을 인정하라. 하지만 당신이 그들보다 헤엄을 빨리 치거나 더 많은 하루살이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야에선 비교하지 말고, 질투를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라
- 심심함은 창의력에만 필요한 존재가 아님. 심심함을 연구한 미국 철학과 교수 안드레아스 엘피도루는 심심함은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일종의 심판처럼 우리 행동의 조절을 돕는 것이다. 심심하지 않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경우 우리는 지금의 상황이나 행위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심심함이라는 심판이 레드카드를 내밀면 그제야 지금하고 있는 행위가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행동해야 한다고 깨닫게 됨. 심심함은 우리를 밀어붙인다. 변화의 방향으로 밀어댄다.
-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한다. 우리부터 자신을 믿고 심심한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심심한 것이 섹시하지는 않다. 하지만 머리이 공회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연구결과로도 명확히 입증되었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칠 것이 아니라 심심함을 나주 만나 알아가야 할 것이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로 돌아간 듯 정기적으로 멍을 때려야 한다. 창의적이기를 바란다면 세상의 온갖 자극을 막아줄 벙커와 시간을 확보하자. 이 벙커가 심심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벙커를 못 찾겠거든 무작적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전화번호부를 읽어보라. 도움이 될 것이다.
- 수많은 선행이 다음에 따라올 악행의 변명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이제 당신은 알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또 반드시 달라져야 할 필요도 없다. 선행을 플러스로, 악행을 마이너스로 계산한 계좌가 마지막에 흑자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또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좌의 플러스이고, 그 플러스가 최대로 크면 될 테니까 말이다.
- 변화에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하기까지 평균 5-6번 새롭게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 그만큼 작심한 것은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번번이 작심만 하다 끝날 거면서 우리는 왜 작심을 반복하는 것일까? 캐나다 심리학자 재닛 폴리비와 피터 허먼이 그 이유를 찾았다. 바로 헛된희망증후군이다. 두 사람은 변화의 실패와 관련한 수많은 실험을 분석했고 결국 실패의 원인이 전형적인 비현실적 기대 4종 세트라는 결론에 도달
(1) 우리는 만성적으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
(2) 속도를 향한 우리의 탐욕. 의욕에 들떠서 원하는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너무 빠듯하게 잡기 때문에 단시간 안에 답보상태에 빠짐. 목표로 한 시간에 이루지 못하지 의욕을 잃고 힘이 빠진다
(3) 도전에 대한 과소평가. 장애물의 높이를 잘못 가늠한 경주마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성공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그만 실패의 가로대에 걸려 넘어짐
(4) 변화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건강 때문이라는 대답은 거의 안나온다. 다이어트를 하면 애인일 생길 것이고 승진을 할 것이며, 나아가 자아상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 기대한다.
- "네가 나에게 하는 대로 나도 너에게 한다"는 호혜의 원칙은 사회의 결속을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원칙이므로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임. 그렇다고 당장 계약서에 서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대를 친절하게 받아주고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절대 잘못이 아님. 그럼에도 나는 장기적으로는 친절하되 신중하게 주고받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친절하다는 건 가급적 먼저 베풀라는 의미다. 신중하다는 건 누군가 나에게 베푼다면 그 사람을 조금 더 조심하라는 의미다.
- 직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심리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활동을 찾아라. 퇴근 후에 작은 텃밭을 가꾸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배춧잎을 다 갉아먹는 저 달팽이는 어떻게 퇴치할 것인가? 물과 비료는 언제 주어야 할까? 직업이 농부가 아니라면 원래의 직업과 전혀 다른 노력과 역량이 필요할 것임. 그것이 마음을 내려놓게 하고 머리를 쉬게 할 것이다. 한편 내 생각에는 실패해도 괜찮은 활동을 찾는 것이 중요함. 나는 달리기를 할때 속도에 구애받지 않음. 어떤 때는 의욕에 불타서 최고기록 수립을 목표로 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할머니도 날 추월할 정도로 느릿느릿 달린다. 매번 결정은 내가 하고, 그날 내게 맞는 속도로 정한다.
- 애매함 분야의 스타학자는 아리에크루글란스키다. 사회심리학자인그는 몇 년 전 인지적 종결욕구라는 개념을 개발. 복잡하게 들리지만 간단히 설명됨. 그는 우리 모두에게 혼란과 애매함을 피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가정. 뇌는 확신을 부르짖는다. 그래서 정확하되 복잡한 대답보다는 간단명료한 대답을 선호. 우리는 혼란을 차단하여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를 통해 뇌에 종결과 질서를 선사하고자 한다.
- 인지적 종결욕망이 강한 사람은 협상 성적도 좋지 않다. 많은 노력을 투자해 중요한 정보를 빠짐없이 검토해야 할 상황에서 아예 그럴 의욕이 없기 때문. 그래서 그냥 선입견에 근거해 상대를 판단함. 자동차 판매원이 양복을 잘 차려 입었다? 좋아, 저 남자는 잘 알거야. 또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클수록나와 다른 것을 받아주는 포용력은 떨어짐. 문화나 종교 등의 다양성을 외면하고 단일성을 고집. 이를테면 동성애자는 질서와 조직을 어지럽힐 위험분자라고 보는 식이다. 안전주의자들은 권위적 지도자의 공허한 구호에도 취약함. 떠들어내는 논리의 질보다는 양을 더 중요시함. 아는 것이 없어도 서둘러 평가하고 성급하게 판단한다. 일단 판단을 내리고 나면 반대되는 의견이 아무리 많아도 좀처럼 판단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의 저 깊은 마음속에는 많건 적건 불확실성을 향한 공포가 숨어 있다. 그 공포를 제압할 수 있는 첫걸음은 자신의 공포가 조금 과도하다는 걸 인정하고, 모험이 곧 재앙은 아니며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불확실성, 미지의 것, 위험한 것에 익숙해지려는 의식적 노력도 도움이 됨. 쉬지 않고 새로운 상황을 모색하라. 그래야 머리도 건강해지고 공포면역체계도 강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에서 보낸 시간과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교류가 진짜 공포킬러인 것 같다.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크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 세상의 속도는 날로 빨라지고 사회는 날로 다채로워짐. 낡은 조직은 흔들리고, 아예 사라진 것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보는 미래는 암울하지 않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다가올 불확실성을 기대하고 있다.
- 우리에겐 머릿속 균형이 정말 중요함. 부조화가 클수록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진다. 방법은 세가지.
(1)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담배를 끊는다)
(2) 주변환경 변화.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피한다)
(3) 뇌를 살짝 개조하고 혁신한다. 인지 자체를 바꾸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담배는 마음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것도 건강의 지름길이라며 흡연을 정당화)
- 결과편향을 절대 조심해야 하는 두가지 상황
(1)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분석해야 함. 어떤 과정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모르면 절대 능력을 개선할 수 없다.
(2) 타인을 평가할 때다. 동료, 상사, 부하, 자녀, 모두는 자기 할 일을 하고 나름의 결과물을 낸다. 결과 못지 않게 그 결과를 이룬 방법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손쓸 수 없는 운에 판단을 맡기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과대평가는 수많은 분야에서 성공의 본질적 요인이다. 직장의 업무성과, 정신건강, 운동, 기업운영실적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냥 자신감이 아니라 과도한 자신감이다. 실제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확고한 믿음은 야망과 투지, 직업윤리를 깨우는 각성제다. 그것이 결국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위험도 있다. 과도한 자신감은 완벽한 자만, 지나치게 높은 기대, 해가 될 정도로 오만한 결정으로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 과신효과는 완벽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다. 과도한 자신감이 건강할 때는 정확히 다음 세가지 상황이다.
(1) 경쟁. 믿음이 산을 옮긴다. 이길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자는 이미 패한 것이다.
(2) 불확실할 때. 사자 1번이 죽은 영양을 발견하고 달려들 확률은 이미 영양의 뒷다리 절반을 먹어치운 사자 2번과 싸워 이길 확률에 달려 있다. 적의 능력이 불확실할수록 자기능력을 확고하게 믿는 과신효과의 유용성도 커진다
(3) 실패의 부정적 결과와 성공의 긍정적 결과가 같은 무게가 아닐 때. 클럽에서 매력적인 사람을 발견하면 건강한 과신이 필요하다. 당신은 잃을 것이 없으니까. 퇴짜를 맞아 친구들의 비웃음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넘치는 자신감으로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붙이면 그뿐이다. 이런 경우 자신감이 손해될 일이 없다.
- 방귀처럼 걱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잘못되었다. 우리 뇌에선 수시로 걱정이 샘솟는다. 방귀가 그러하듯 우리는 그 걱정이 어디서 오는지, 왜 지금 떠오르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거나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그 걱정에 어떻게 될지는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달렸다. 전형적인 그릇된 대응을 심리학에선 곱씹기라 부른다. 곱씹기란 특정한 걱정에 대한 고민과 반복적인 생각을 말한다. 걱정이 부정적인 생각, 통제할 수 없는 생각의 사슬을 만들고 그 사슬은 원을 이룬다. 걱정이 점점 커져간다
- 건설적 걱정. 성적이 나오는 동안 방어적 비관주의의 태도를 보인 학생들이 그런 식의 걱정을 하지 않은 친구들에 비해 시험결과에 훨씬 잘 대처했다. 이유는 누가 봐도 당연하다. 성적이 좋으면 만사형통이다. 걱정이 사라졌으니 두배로 좋다. 성적이 나빠도 문제없다. 이미 예상했으니까.그러므로 걱정의 싹을 자르거나 걱정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걱정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함. 조금 더 보충하면, 근심이 있을 때 요가와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된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심리학의 관점에서 곱씹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1) 우리가 어떤 것을 걱정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것이 문제라는 의미는 절대 아님. 머릿속을 점령한 생각의 늪에서 걱정이 떠오르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부담이 과도하기 때문일수도 있고, 그저 기분이 좀 나빠서 그럴수도 있다. 따라서 걱정을 문제와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한다.
(2) 걱정한다고 해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주관적으로는 걱정을 많이 할수록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도 더 커진다. 그러나, 이를테면 승객이 비행기 연료 장치에 화재가 날까봐 걱정되어 이륙도중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해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3) 확실한 걱정 킬러는 관심이다. 걱정으로 머리를 싸매지 말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러니까 걱정을 그대로 대면하는 게 좋다. 그 말은 평가 없이, 즉 중립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 실제로 병적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을 치료한 연구결과를 보면 걱정을 바라보는 개인의 자세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걱정이 찾아오면 짜증내지 말고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고민해보자. 배 속 가스처럼 머릿속 걱정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의미가 없지 않다. 억지로 참거나 고개를 털어버리려 노력하기보다 긍정적이고 개방적 자세로 다가가자
- 사회적 정체성 이론은 왜 인간의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기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 그래야만 우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타고난 본성이며 방귀와 걱정처럼 자연스러운 것임. 하지만 자신과 다른 집단을 분류하려는 노력은 편견과 배척, 왕따와 갈등을 조장하는 길이 되기도 함. 오늘날의 우리는 방향을 잃을 것 같은 느낌에 자주 빠진다.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이미 했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집단은 방향이 되어준다. 우리와 그들의 구분을 멈출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우리 모두는 견고한 내집단을 부수고 나올 수 있다. 집단의 크기를 키워 타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면 된다.
- 경험은 오래 간다. 또 경험을 기다릴 때는 물건을 기다릴 때보다 기대가 더 크다. 과거를 되돌아볼 때도 마찬가지다. 물건은 순식간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금방 매력을 잃는다. 항상 곁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물건에 금방 질린다. 반대로 경험은 빛을 내뿜는다. 그 순간에는 (비내리는 날의 캠핑처럼) 별로 아름답지 않았던 경험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긍정적으로 기억될 때가 많다. 토마스가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후에, 월말마다 생활비가 간당간당해서 국수에 케첩을 뿌려먹고 살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절로 웃음이 날 것이고 심지어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 물질과 경험의 또 한가지 결정적 차이점은 비교가능성이다. 고대하던 3D 평면 TV를 벽에 달았다. 당신은 자랑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볼 겸 해서 친구를 집으로 부른다. 당신의 행복지수가 치솟는다. "멋진데" 친구가 말한다. "그런데, 요즘엔 화면이 휘어지는 곡면 TV가 대세라던데. 영화를 보려면 화면도 이것보다 조금 더 크면 좋겠어." 당신의 행복은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물건은 비교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비교는 실망을 남긴다. 항상 누군가는 나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뛸테니까. 하지만 경험은 나만의 것이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고, 앞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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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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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색종은 피부암 가운데 가장 드물지만 가장 위험한 유형. 매년 약 13만명이 흑색종 진단을 받는데, 그중 대부분은 피부가 흰 사람들임. 흑색종은 멜라닌이라는 어두운 색소를 갖고 있는 피부세포인 멜라닌세포에서 생김. 자외선으로부터 깊은 피부층을 보호하는 이 멜라닌 세포가 무해하게 자라난 단순한 점이 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며 암으로 바뀌는 일이 간혹 있는데, 흑색종은 대개 이런 과정을 통해 생겨남. 흑색종은 일단 발생하면 쉽게 전이되는 편이고 원래의 자리인 피부에서 림프샘이나 다른 기관, 특히 폐와 간, 그리고 뇌로 퍼져나감. 뇌로 전이되면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
- 암세포들은 명역치료로 수정된 T 세포들에게 공격을 받아 치명적 상처를 입어 마치 작은 시체같은 상태가됨. 이것들은 더 작은 입자로 해체해 혈관계와 림프계를 통해 뇌에서 제거해야 함. 흑색종의 전이로, 그리고 방사선과 면역치료의 이중공격으로 뇌 전체에 염증이 생기고 붓게 된다. 게다가 건강한 상황이라면 독소나 다른 물질들이 뇌에 흘러드는 것을 막아줄 혈외장벽이 면역치료 때문에 교란되는 바람에, 체액이 작은 혈관들과 모세혈관들을 통해 뇌로 새어 들어어고 있었다. 그 액체들이 뇌에 고이면서 뇌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고 붓게 만든 것인데, 이런 상태를 혈과성부종이라 함.
- 내 행동이 가족에게 파괴적이고 작용했던 것처럼 이 모든 것이 내 뇌를 파괴하고 있었다. 살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면 큰 대가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희생이 얼마나 가혹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 뇌는, 그 중에서도 고도의 인지기능을 통제하는 부분이라 아이저 박사가 특별히 염려했던 내 전두엽은 죽음을 부르는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은 위험에 빠져 있었다. 딱딱한 뼈로 이루어진 두개골은 유연성이 없다. 뇌의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 바깥으로 확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뇌가 부으면 뇌가 갈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이다. 바로 두개골 맨 아래, 뇌간이 척수로 빠져나가는 구멍인 대후두공이다. 뇌에서 가장 원시적인 부분인 뇌간은 호흡, 심작, 혈압 등 원초적 기능을 통제함. 뇌간이 부기 때문에 짓눌리거나 다른 식으로 다치면 심장과 호흡이 멈추는 심폐 정지상태가 되어 사망에 이름
- 비정상적으로 변하는 행동은 대개 그 사람의 뇌 안에서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 분노, 의심, 성마름 같은 나의 감정적 과잉반응들은 내 전두엽에서 재앙 수준의 격변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나는 경고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정신질환에 관한 전문가인 나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에 비해 나의 이상한 행동을 더 쉽게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시에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여섯 개의 종양과 그 주변의 부기가 자기성찰을 가능케 하는 부위인 전두엽의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 역설적이게도 내 전두엽이 근무지에서 이탈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멀쩡한 전두엽이 필요했다.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질환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특징이다. 질병인식불능증이라는 이 증상은 여러 신경증과 정신증 상태에서 나타남. 이 몰이해가 뇌의 어느 영역 때문에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뇌의 오른쪽 반구와 왼쪽 반구를 나누는 중심선에 생긴 기능장애와 관련되어 있을거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또한 오른쪽 반구에 생긴 손상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에는 부인이나 대처기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 병 자체가 발현되는 양상에 가까움. 조현병 환자의 약 50%와 양극성 장애 환자의 약 40%는 스스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진단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해도 그것을 자기 뇌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보지 않는다. 환청을 듣거나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가장 극적인 증상인 경우에도 환각을 현실과 구분하지 못함. 조현병 환자와 양극성 장애 환자 가운데 질병인식불능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정신의학적 치료에도 격렬히 저항하는 경우가 많음. 처방된 약물을 복용하지 않거나 행동치료에도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런 질병인식불능증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
- 전두측두 치매는 전형적으로 알츠하이머병보다 젊은 연령대의 사람을 공격하며, 환자의 60%가 45세부터 64세 사이에, 다시 말해 중년에 발병한다. 전두엽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전두측두 치매 환자들은 종종 자제력과 판단력을 잃는다. 이 병이 때로 중년의 위기병이라 불리는 것도 서글프지만 적절한 비유임. 어떤 사람은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흥청망청 쇼핑을 해대며, 금전적 면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하거나 정크푸드를 마구 먹어대기도 함. 충동과 욕망을 억제할 슈퍼에고없이 이드만 미쳐 날뛰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함. 전두측두 치매에 걸린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며, 자신이 하는 일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이러한 통찰의 결여는 전두측두 치매와 다른 여러 정신장애에 대한 핵심적 판다기준이 됨. 내가 내 삶의 많은 시간을 연구하며 보낸 조현병도 이러한 정신장애에 포함된다.
- 나의 집착적인 식탐은 전두엽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신호였고, 내 경우에 그 문제는 식욕 촉진효과를 가진 스테로이드 때문에 더욱 악화됐다. 전두측두 치매를 앓는 사람들은 아주 빠른 시간안에 체중이 상당히 증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먹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기때문. 전두피질이 제대로 기능할 때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 따르는 장단점을 저울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능이 억압되거나 사라지면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대로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 연로한 어머니를 생각해보자. 늘 총명하고 어설픈 구석 하나 없이 활동하는 어머니도 요즘에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서 퇴화한 전두엽이 쉽게 과부하에 걸리기 때문.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면 어머니는 혼란에 빠지고 공황상태가 되어 화를 낸다. 이와 유사하게 조현병 환자들도 인지적 압박이 커진 상태에서는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뇌 영상 스캔을 보면, 복잡한 문제 등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를 받을 때 조현병 환자들의 전전두피질은 신경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들 수준으로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과한 것을 요구받거나 환경에 자극이 많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 저하되어 있는 뇌의 기능이 더욱 떨어지는 것임. 그들은 화를 내거나 부적절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은 뇌 안에서 처리되는 방식이 다르므로, 치매환자들은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은 기억하면서도 그날 아침으로 무얼 먹었는지는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장기기억은 우리 뇌 속에서 강력한 감정적 성분과 얽혀 보관됨. 생존에 유용할 수도 있는 기억이기 때문. 반면 단기기억은 분류와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잠정적 사실 정보들에 더 가까움. 중요한 정보라면 보관될 것임. 중요하지 않다면 보유용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 요의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도 혹시 뇌의 기능과 관계가 있을까? 그것은 피질의 배뇨중추인 전두엽 내측면의 기능장애와 관련이 있을수도 있는 증상. 전두엽에 병변이 있는 뇌졸중 환자는 대부분 요실금이 생기고, 전두엽에 종양이 생긴 환자는 더 이상 요의를 통제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이 될 때까지 방광이 찬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요실금은 치매환자는 물론 노인층 전반에 흔한 장애. 여러 요인이 있는데 그 중에는 요도감염이나 방광염, 전립선 문제 등 뇌 질환과는 무관한 이유도 있음. 그러나 누군가에게 요실금이 생겼다면, 그것은 뇌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음.
- 소변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치매가 아닌 다른 정신질환의 증상일수도 있음. 이후 국립정신보건원에서 함께 일했던 신경학자이자 조현병 연구자인 토머스 하이드 박사는 조현병이 발병하는 아이는 그 병이 생기지 않는 다른 아이에 비해 방광 통제력을 습드갛는 기간이 더 길다는 가설을 제기했고, 실제로 연구자들은 성인 조현병 환자가 아동기에 건강한 형제자매에 비해 요실금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 하이드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많은 조현병 환자가 어린 시절에 방광통제기능 결함을 겪는 것은 전전두피질의 성숙이 지체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과다경계 상태는 스트레스나 불안 때문에 촉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불안은 다시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야기. 거기다 내가 자신과 주변 세상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한다는 어렴풋한 느낌도 상황을 악화시킴. 그런 통제상실이 나를 분노케 한다. 나처럼 감각 과부하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뇌 외상, 자폐증, 그리고 다른 여러 뇌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임. 정상적 뇌라면 뇌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분류해 중요한 것과 무시해도 되는 것의 우선순위를 정함. 이런 여과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으면 뇌은 그 모든 정보를 처리하려 애쓰다가 나가떨어질 수 있음. 너무 많은 데이터가 넘치도록 입력된 컴퓨터처럼 말이다. 이런 상태의 뇌는 멀리서 들리는 차 소리나 걸을 때 얼굴을 스치는 바람처럼 무시해도 안전한 것과 잘못하면 나를 들이받을 수도 있는 자동차의 경적처럼 중요한 정보를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함. 이렇게 소음과 시각, 냄새 등이 끔찍하게 뒤죽박죽 되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심한 감각 과부하에 직면하면 내가 자이언트 슈퍼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황발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게 달라진 상태로, 나는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과학자들조차 불안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과 경계를 담당하는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 우리가 아는 것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같은 특정 질환 때문에 그 메커지즘이 붕괴한다는 점, 또한 한 사람이 온갖 종류의 스트레스 요인들로 가득한 삶의 정글을 성공적으로 헤치고 나가도록 안내하기 위해서는 뇌의 여러 영역을 잇는 복잡한 신경 연결망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는 사실뿐이다.
- 우리는 모두 부서졌고,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We are all broken, that's how the light gets in)
-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뇌의 능력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신체 다른 부위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새것으로 교체되지만 뉴런은 원칙적으로 재생되지 않음. 생쥐를 사용한 실험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는 영역이자 알츠하이머 병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뇌 영역중 하나인 해마에서 제한된 수의 새 뉴런이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어도 그 수치는 의미있는 수준이 아니며, 새로운 뉴런들이 온전히 기능할 정도로 자라는지 여부도 분명치 않음. 게다가 생쥐가 아닌 인간의 해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건, 전전두피질처럼 사고능력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주요 뇌 영역에서는 유아기나 어쩌면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생겨난 뉴런이 평생 한결같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한 뉴런을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 여길수 있는 것인지도 모름. 그러나 뇌세포들 사이의 연결과 뇌 영역들 사이의 연결은 달라질 수 있음. 어떤 연결은 더 강해지고 어떤 연결은 시들어가고 어떤 연결은 손상을 입는다. 뇌의 한 영역이 손상을 입으면 세포들 사이의 새로운 연결이 생성되어 장애가 생긴 기능의 일부 또는 대부분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 이제 종양은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또 하나의 재앙이 빚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뤄져 왔지만 늘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잠재되어 있던 것, 바로 방사선치료의 결과인 뇌조직 괴사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종양이 있던 자리에는 죽은 조직부위가 생겨나고, 그 주위를 둘러싼 조직이 낫지 않으면 괴사가 일어난다. 괴사는 과거보다 요즘에 더 흔하게 발생하는데, 이는 정방위방사선 수술 및 사이버나이프 수술에 면역치료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병행치료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종양을 죽이지만, 동시에 종양 주위의 건강한 조직도 죽인다. 뇌조직 괴사의 증상들은 방사선치료후 1년이 지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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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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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 발표한 베스트셀러 몰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즐거움은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따라오는 결과다.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은 수동적이거나 수용성이 크지 않을 때, 혹은 편안할 때 찾아오지 않는다. ... 최고의 순간은 까다롭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 혹은 마음을 한계수준까지 확장시킬 때 찾아온다. "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침대에 누운 채로 식사를 할 때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10여킬로를 달릴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 몰입의 경험은 우리의 의식에도 영향을 준다. 몰입을 경험하면 또 다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려는 욕구가 더욱 강해진다. 이러한 본질적 의욕은 기술을 더 향상시키겠다는 욕구로 이어지고, 자연히 자신이 보유한 능력에 관한 자신감도 커짐. 기술이 향상될수록 더 큰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고 몰입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아짐. 매우 긍정적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 절정경험도 자아실현과 관련된 현상. 절정경험은 흥분, 환희와 함께 주변 세상과의 강렬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특징인데, 자의식이 사라지고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기분이 든다는 점,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빠져들고 시간개념이 왜곡된다는 점에서 몰입과 일치하는 측면이 많다. 그러나 절정경험은 몰입과 달리 에너지가 분출되고, 외부 사건에 의해 촉발된다는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절정경험 후에 자신과 세상을 보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며, 그와 같은 순간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매슬로는 절정경험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렬한 순간이자 자아실현의 증거라고 보았다.
- 엔도르핀이 천연 진통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전두피질 등 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서 분비되어 혈류로 유입되는 것은 장거리 달리기 중 발생할 수 있는 외상에 대처하기 위한 당연한 반응임. 엔도린이 아편제 수용체의 결합부위와 만나 결합하면 통증이 사그라들며, 다른 모든 마약성 진통제와 마찬가지로 행복감을 증대시키고 스트레스가 신체에 끼치는 영향도 약화시킴. 달리기를 할대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이 제기되어 았다. 가장 유명한 이론은 인류가 수렵, 채집활동으로 생존하던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진화적 부산물이라는 주장. 식량을 구하려면 열량을 추가로 태우고 다칠 위험도 감수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생성된 것이라는 설. 개를 비롯해 장거리를 이동하며 먹이를 구하는 다른 동물에게서도 인간이 장거리달리기를 할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화학적 반응이 나타남. 또한 이 같은 반응은 격렬한 유산소운동을 할 때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음. 예를 들어 걸을 때는 엔도카나비노이드의 생성량이 증가하지 않음
- 몰입상태가 되면 뇌 활성이 변한다. 여러 연구를 통해 몰입상태에서는 전전두피질과 편도체가 불활성화되어, 시간개념과 자의식이 사라지고 부정적 감정이 약화되며 긍정적 감정은 증대함
- 러너스 하이와 몰입은 매우 비슷하지만 다른 현상이다. 러너스하이는 뇌의 화학적 변화로 희열을 느끼게 되는 반면, 몰입은 뇌의 활성변화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 몰입하면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남. 하던 일이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르네 디트리히와 올리버 스톨은 저서 '집중하면 수월해진다'에서 다음과 같이 밝힘
집중력과 행동에 관한 여러 이론은 과제해결에 필요한 요건이 많을수록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정했다. 즉 뇌의 열량소비와 같은 객관적 노력과 함께 당사자가 느끼는 정신적 노력과 주관적 노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몰입하면 이와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몰입하면 스스로 인지하는 정신적 노력이 감소하며, 때로는 아예 힘이 들지 않는 수준에 이르러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도 그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진 것처름 느껴진다.
이처럼 수월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반복. 달리기와 같은 기술은 많이 연습할수록 반복해서 실시하는 데 소요되는 정신 에너지가 줄어든다.
- 몰입하면 힘들지 않다고 느끼지만 이는 일종의 착각이다. 에너지가 전혀 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실제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고 몰입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집중해야 하며, 그러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소요됨. 따라서 몸과 마음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쏠려 있을 때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잡다한 생각들이 흐려짐. 지금 너무 빨리 달리는 건 아닐까? 속도를 좀 늦추고 나중을 대비해서 힘을 아껴야 할까? 그러기엔 좀 이른가? 등의 생각이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달리는 행위 자체만 남는다. 이와 같은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계속되고 있음. 디트리히와 스톨이 밝힌 것처럼 특정한 기술에 숙달되면 암묵적 기억을 통해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암묵적 기억이 행위를 주관하면 생각을 덜 하면서도 더 나은 성과를 얻게 되므로 마치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짐. 이와 더불어, 몰입현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특징은 전전두피질의 활성도가 점진적으로 약화하는 것과 관련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임. 뇌의 기준에서 인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며, 이는 암묵적 기억이 동원되더라도 마찬가지. 따라서 몸을 움직여야 할때, 뇌에서는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여러 영역의 활성이 감소하는 변화가 일어남. 집중할 대상을 바꾸거나 큰 경기를 앞두고 정신적 준비를 하는 것처럼 달리면서 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 뇌가 이 같은 에너지 전환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어느쪽이든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면 의식상태가 바뀌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귀중한 여유공간이 생긴다.
- 우리의 시간 개념은 전전두피질이 조절함. 따라서 이 부분의 활성이 축소되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인지하는 능력도 약화됨. 비슷한 이치로, 몰입해서 무언가에 깊이 집중하면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하는 일에만 온전히 집중 가능. 몰입상태에서는 집중력을 깨뜨리기 쉬운 '대체 이 짓을 얼마나 더 해야 해?' 같은 부정적 생각들이 끼어들 수 없다.
- 볼입은 세가지 선행단계와 여섯가지 처리 결과를 합한 아홉가지 요소로 구성됨. 선행단계에는 명확한 목표, 해결과제와 기술의 균형, 정확한 피드백이 포함되며, 처리결과는 주의집중, 행동과 인식의 융합, 통제력, 자의식의 상실, 시간개념 왜곡, 자기목적성(내적 동기부여)로 이루어짐
- 자기목적성 성격은 세상과 주변에 호기심이 많고, 그만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극 참여함. 성취감, 무언가를 완수했을 때 찾아오는 기분을 즐기며 목표지향적이다. 성취에 따르는 만족감은 외적으로 인정받거나 무언가를 얻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군 성공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자부심에서 비롯됨.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즐기므로, 자신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활동을 선택해 피드백을 토대로 목표와 성과를 조정해 나감. 또한 피드백을 자신의 현 위치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라고 생각한다.
- 한창 몰입한 상태에서 명확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몰입 상태에서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함. 행복, 슬픔, 불안과 같은 감정은 모두 자기인식에서 비롯하고, 감정을 처리하려면 에너지가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처리해야 할 일에 정신을 모두 집중하면 그같은 감정은 느낄 수 없음. 그러므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사실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이고, 집중상태에서 벗어났음을 의미. 몰입한 상태에서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호기심인 경우가 가장 많다. 그렇다고 해서 몰입이 즐겁지 않다는 의미는 아님. 몰입 자체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선사함. 그러나 사건 특이적인 즐거움(달리기를 즐기는 것)과 포괄적인 행복(존재하는 상태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 반드시 새로운 도전을 찾아야 몰입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몰입을 수시로 경험하면 삶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매우 크다. 몰입은 그저 기분좋은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계속 시험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함. 모네타와 마이크 박사의 연구에서도 몰입 경험의 빈도가 높으면 개인적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됨. 단, 몰입과 행복은 양방향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즉 몰입하면 행복을 느끼지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몰입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지지는 않는다. 또한 몰입경험이 전체적 행복감에 끼치는 영향은 그 경험의 깊이보다 경허므이 빈도에 더 크게 좌우된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뇌가 열량을 보존하고 에너지를 재분배하려고 애쓰는 사이, 완전히 몰입해서 달리는 사람은 일시적 전두엽 기능 저하에 따른 영향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갑자기 에너지가 넘치고 운동피질의 원활한 기능 덕분에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지며, 적절한 자세로 달릴 수 있음. 심박과 호흡속도도 적정 수준을 유지한다. 한마디로 더 효율적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활성이 저하된 뇌 영역도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침. 전전두피질의 활성이 약화되면 현재 경험하는 것을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고, 암묵적 기억의 특성으로 무시해도 괜찮은 사소한 문제는 내버려둔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도 감소. 몰입과 더불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란스런 상태가 이처럼 가라앉아야 한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을 상세히 떠올리거나 현재 실패할 가능성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목표에 집중할 때 성공확률은 높아짐. 달리는 도중에 정신을 분산시키는 생각들이 끼어들도록 내버려두면 명시적 기억이 암묵적 기억을 누르고 최상의 성가를 낼 수 있는 능력에 악영향을 끼친다. 암묵적 기억은 오랜 연습을 통해 형성되어 머릿속에 유리한 자세와 전략을 각인시키므로 새삼스레 기억을 꺼내느라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됨. 이것이 자동적 반응으로 발전함. 불안과 과거를 곱씹는 반응에서 헤어나면 자유롭게 호흡하고, 편안하게 움직이고, 평온하게 긍정적 생각을 할 수 있다.
- 최종 목표나 장기목표를 세운 후에는 작은 목표를 세우자. 이를 통해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자기효능감을 키울 수 있다. 자기효능감은 최종목표를 향해 낙관적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간을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판단하자
- 기술향상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목표달성에는 신체적 기술과 정신적 기술도 포함된다
- 몰입의 두번째 선행단계인 해결과제와 기술의 균형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 몰입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보유한 기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도전을 해야 몰입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 세번째 선행단계인 피드백은 명확해야 하며, 목표와 관련이 있어야 함. 피으백은 내적 피드백(심박, 호흡, 생각)과 외적 피드백(지형, 타인의 지시, GPS 데이터) 등으로 나뉨
- 피드백이 명확하면 목표를 향해잘 나아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됨. 또한 현재 기량의 수준과 목표를 조정할 때도 활용 가능.
- 중앙관리자 모형은 신체적 기량을 뇌가 조절, 관리한다고 본다. 이같은 조절기전은 뇌와 신체기관이 무리하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 음악과 유산소 운동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에서, 모든 종류의 음악은 중간 강도로 운동을 할 때 힘들다는 인식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남. 이 같은 효과는 음악이 수동적으로 정신을 분산시켜 힘들고 피곤하다는 느낌에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로 보임. 음악 특유의 리드미컬한 특징 때문이든 개인적 감상이든 의욕을 고취시키는 음악은 피로가 찾아오는 시점을 늦추고 밖으로 분출하는 힘을 증대시키는 것으로도 확인됌. 이 같은 생리학적 반응은 사람마다 다름. 같은 노래라도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이라도 음악이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창의력을 빼앗는 경우도 많음. 노래 가사나 리듬에 집중하면 생각에 빠질 기회가 사라진다. 평온한 상태에서 달리는 동안 생각이 이리저리 흘러갈 수 있다는 점, 강렬한 몰입경험은 문제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결과라 할 수 있음.
- 직장에서 업무실행 계획에 문제가 생겼거나 글을 써야 하는데 딱 막혀서 진도가 안 나간다고 상상해보자.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정신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 하지만 그 문제에서 한발 물러나 그 일과 무관한 다른 일에 전념하다가 다시 문제를 살펴보면 해결책이 떠오를 때가 있다. 운이 좋았다거나 우연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문제와 무관한 일을 하는 동안 무의식이 다양한 선택지 중에 꼭 맞는 담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한 연구에서 그와 같은 숙고의 시간에 인지적으로 과도하게 힘들이지 않고 시간을 다양하게 투자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최상의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냄. 크게 힘들이지 않는 달리기는 이런 요건에 완벽히 들어맞음. 음악 대신 달리기 자체에 집중하면 몰입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몰입을 통해 창의적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다.
- 인간은 천성적으로 경쟁적 존재다. 경쟁을 통해 개개인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 자신과의 경쟁도 강력한 동기가 되지만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그보다 훨씬 강한 자극이 됨. 사회적 촉진이론도 이같은 현상을 잘 설명함. 이 이론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혹은 타인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사람들의 생리학적 활성이 높아진다는 것. 그러나 단순한 운동패턴이 동원되는 숙달된 과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대체로 잘 수행하지만, 불편하고 까다로운 과제는 잘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떨리고 긴장되는 현상은 경기 전헤 흔히 발생. 결과가 염려되거나 주변 상황이 불확실해서 걱정이 될 때도 우리는 긴장을 한다.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수들도 십중팔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드레날린이 급작슬 폭발해 그로 인한 여파로 감당할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아드레날린은 약효가 변덕스러운 약물과 같음.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차를 번쩍 들어올리는 영웅적 행동을 이끄는 투쟁-도주 호르몬이기고 하지만, 잘못된 타이밍에 과도한 양이 쏟아지면 온몸이 마비상태가 되고 만다. 미국 내분비학회에 따르면 아드레날린은 심박과 혈압을 높이고, 동공을 확장시키며, 갑작스런 움직임에 동원되는 큰 근육 단위로 향하는 혈류를 증가시킴. 그러므로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장 적절한 각성수준을 찾아야 함
- 애쓰지 않아도 집중하는 능력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뇌 일부 기능이 저하되면서 얻은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가장 필요한 쪽에 더 큰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점. 암묵적 기억으로 처리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늘어나고, 따라서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작은 징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김. 팔다리를 모두 움직이며 달리는 와중에 과거의 일이나 미래를 염려한다면 자신이 달리는 속도가 조금 느려져도 알아채지 못하고 경쟁자가 저 멀리 앞서간 사실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반면 달리는 동작이 자동화된 것처럼 이루어지면 몸과 마음, 모든 것이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됨.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집중하는 능력은 두가지 방식으로 유도할 수 있음. 명상 또는 마음챙김 명상을 연습하는 것이 그중 한가지 방법이다. 초점이 현재로 향하면 내면의 부정적 소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됨.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달리기라면 매 거리, 매 시간, 매 걸음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다른 생각을 모두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집중하게 되고 몰입도 더욱 가까워진다. 다른 한가지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가진 능력 선에서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집중하게 될 것이라 굳게 믿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제로 장시간 집중할 수 있게 되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질 것도 없을 만큼 자연스레 집중할 수 있게 됨
- 수수께끼처럼 알 수가 없고 역설적인데, 우리는 왜 자꾸 몰입할 방법을 찾게 될까?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부터 철학자들은 즐거움과 참여, 경험을 가치를 숙고해왔다.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오라는 철학자들의 권고도 여기서 나옴. 심리학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예기치 못할 때, 되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할 때 찾아온다고 주장해왔다. 몰입은 형체없는 유령과도 같지만 경험하고 나면 삶이 완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알쏭달쏭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닌다.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되면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쓰게 된다. 후회나 걱정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책이나 대화, 등산, 달리기에 푹 빠져드는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간 뒤 돌아보면, '그래, 이게 사는 거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 행복은 일시적으로 잠시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쾌락적 즐거움과 에우다이모니아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두가지 즐거움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버림. 하지만 그와 같은 상태가 아예 새로운 일상으로 고착되지 않는 한 전반적 행복감을 해치지는 않음. 여가활동은 스트레스 해소 측면에서도, 전체적인 행복감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므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됨. 알렉산더 연구진의 조사에서도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업무에서 느기는 긴장과 전체적인 삶의 불안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남. 여가시간에 어떤 활동으로 즐거움을 얻든, 정신없이 바쁜 기간에도 그러한 활동을 일정에 포함시키면 출퇴근이나 가정에서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의무 등 일상적 스트레스는 물론 이혼, 실직, 경제적 문제 등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됨
- 학습전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한 분야에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 가능. 무의식적인 전이는 간단히 이루어지는 경우로, 집에서 쓰던 키보드가 아닌 도서관 컴퓨터 키보드로도 타자를 칠 수 있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키보드 구성이 몇 군데 다르고 손가락이 닿는 버튼의 크기나 간격도 다를 수 있지만, 큰 문제 없이 타이핑 가능. 반면 의식적인 전이는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고도의 사고가 필요한 경우를 가리킴. 이 경우 어느정도 시간을 들여서 공통분모라 할 만한 유사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함. 가령 군사전략에 정통한 참전 용사가 미식축구팀 코치를 맡게 된다면 자신이 보유한 지식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할 것임.
- 지도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내키는 대로, 또는 누가 부탁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응하는 것은 자기목적적 삶과 거리가 멀다. 자기 목적적인 사람은 때때로 속도를 늦추고 물러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삶은 자칫 번잡해질 수 있으므로 때로는 거절하고 물러나 휴식하고, 명상하고, 산택하고, 자연을 즐기며 만끽하는 법도 배울 필요가 있음.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차분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끽할 줄 아는 능력은 행복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또한 자기목적적인 사람은 마땅이 필요한 고독을 즐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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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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