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소프 등의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태도 (work orientation)를 크게 세 가지로 대별했는데, 첫째는 성 취 지향성 (bureaucratic orientation), 둘째는 연대적 지향성 (solidaristic orientation), 셋째는 도구적 지향성 (instrumental orientation)이다. 첫째는 노동자들이 기업 위계 등 일정한 질 서 속에서 성취를 통해 상층부로 상승, 진급하는 것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경우고, 둘째는 조직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정서적·감정적 유대감을 갖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다. 전자가 승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우라면, 후자 는 친밀한 인간관계 (신뢰, 충성)를 우선시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도구적 지향성은 노동을 다른 무엇보다도 생활 수준 향상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다. 첫째와 둘째가 노동 안에서의 내재적 만족(intrinsic satisfaction)을 지향한다면 셋째는 노동 밖에서의 외재적 만족(extrinsic satisfaction)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 골드소프 등의 실증 연구는 1960년대 말 영국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 것으로, 당시 대부분의 응답자는 노동에 대해 '도구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동 자들은 노동으로부터 내재적 의미(자아실현, 도전감, 발전감, 유대감)를 찾기보다는 단지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보수와 고용에 주로 관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계질서의 하층부, 즉 하층 노동자집단으로 갈수록 도구적 지향성이 강 했다. 이 연구 결과는, 서양에서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 이래 근대적 노동관이 형성되면서 정립된, 자아실현의 장으로서의 노동관 또는 인간관계 형성의 장으로서의 노동관에 일정한변화가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임금과 복지에 의한 구심력이, 다른 편으로는 무의미한 노동에 의한 원심력이 동시에 작동한 것이다. 이제 1990년대 이후의 사정은 어떠한가? 미국 버클리 대 학교의 A, 혹실드 교수가 130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 사해 《뉴욕타임스매거진》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직장을 갖 고 있는 아버지 중 33퍼센트 이상, 어머니 중 20퍼센트 이상 이 자신을 '일중독' 이라 하면서도 근무시간이 줄어들기를 원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직장을 “가정사의 온갖 스 트레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Hochschild, 1997). 이러한 현상은 독일과 같은 유 럽이나 '일벌레' 로 이름난 일본,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일중독은 예외적 현상이나 일시적 현상을 넘어 대중 현상' 이 되어가고 있다(Heide, 2002).
- 사실 우리의 현실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가정의 이 미지는 더 이상 '보금자리(nest)' 가 아니라 단순한 버스정류 장(bus-stop) 으로 변하고 있다. 가정은 노동에 종속되어 노 동의 긴 여정을 다니기 위한 간이정류장이 되었다. 아이들도 노동하는 어른과 삶의 의미와 행복을 나누는 시간을 함께 갖기 어려워 그 간이정류장에 간간이 들러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만 챙겨 먹고 바삐 떠난다. 어른들은 삶이 고달플수 록 고통을 잊기 위해 일에 더 매진하는 병적 경향이 있다. 가 시적 성과를 올리면 다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는 일에 대해 일정한 지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이 우리에 대해 일정한 지향성을 강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는 우리가 일에 대한 가치관 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필요에 따라 일을 하기보다는 일의 필요에 우리가 끌려 다니며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와중에 굳이 우리가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 은 일이 우리 내면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회피할 수 있는 '도피처' 내지 '망각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 일중독 문제나 중독사회의 문제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 A, W. 셰프(A. W. Schaef, 1993)는 이렇게 말한다. “내 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에 묻혀 바삐 지내는 것은 실제 그 일이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바 쁠 필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명상록 I, March 255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자기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가, 거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 요컨대 어릴 적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채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충족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 라, 부모와 잘 소통하지 못하고 따뜻한 지지도 받지 못하면 서 자란 경우, 특히 좋은 학교 성적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성과주의적 삶의 태도를 반복하며 자란 경우, 한국과 같이 전형적인 일중독성이나 일과 삶의 불균형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하이데(2002)가 강조하 는 바와 같이, 어린 시절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을수록 일 종의 상흔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에 시달리면서 사람 들은 생존의 두려움을 특히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럴 때 대 개 생존전략으로서 강자와의 동일시'를 하게 되고 이것이 곧 성과주의적 삶의 지향이나 강박적 노동관으로 연결되기 쉽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좌절감을 보상받기 위해, 또는 그러한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은폐하기 위해, 일이라는 일 종의 중독물에 빠져듦으로써 견디기 어려운 심적 상황을 피 해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의 결과가 얼마 나 좋은가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 으려고 하는 자기 강제' 를 하게 되고, 자연히 실 노동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현실은 경제와 사회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사회가 경제 속에 병합되었음을 말해준다.
- 경쟁의 내면화'는 왜 이뤄지게 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강자와의 동일시 (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 또는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개 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직접 상대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엄청난 폭력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깡패(가해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방식은 대개 도망가거나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 자체가 절대 도망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직접 맞서 싸워봐야 결과가 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그 깡패 같은 이 앞 에 무릎을 꿇고 “형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라고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공포심이 갑자기 모종의 안도감으로 변한다. 피해자 자신이 마치 가해자와 일심 동체가 된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기 때문이다.이제 자신이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사실 상 자신의 내면이 요청하는 것과 다르다. 이렇게 해서 자기 소외' 또는 자기배신' 이 일어난다. 나아가 이 피해자는 스 스로 그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힘이 더 약한 이에게는 마치 강자처럼 폭력적으로 대한다. 이미 자신은 강자처럼 느끼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기 안의 약한 요 소들을 억지로 감추고 철저히 억누른다. 물론 묵시적 증오감 과 더불어. 그런데 만약 자신 내부에 꼭꼭 숨겨두었거나 억압했던 약점들을 어느 날 갑자기 자기보다 더 약한 이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약점에 대한 (불편한) 증오심을 다른 약자에게 (편안히) 모두 퍼부어버린다. 피해자 자 신이 가해자로부터 받았던 폭력적 경험을 이제는 자신이 가 해자로서 다른 피해자에게 전이하는 것이다
-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근본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실업대책을 세우려 해도 실업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 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본 입장에서는 노동력의 유연한 투 입을 위해, 그리고 취업자의 노동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 도 실업자들이 늘 많으면 좋다. 게다가 경기 순환 과정은 호 황과 불황을 거치면서 과잉된 부분들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 다. 오늘날 유행어가 된 구조조정' 이라는 말도 사실은 자본 이 생존을 위해 그 과잉 부분을 조절하는 과정이다. 결국 이 런 사실들은 실업 정책들이 실업률 수치를 세련되게 관리하 는 정책이나 단기적 임기응변으로는 결코 효과를 가질 수 없 음을 시사한다.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최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기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나 현실적 힘으로 부상하여 우리에게 '실재(實在)'로 다가온 것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의 현상이다. 필리핀대학의 월든 벨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 '신자유주의 이념이나 이론 자체는 이미 1920~30년대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에 의해 공식화되었으나 그것이 현실화되는 데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와 사회적 내면화 과정이 필요했다. 즉,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경제 대공황, 소련 사회주의의 등장 등을 거치면서 (선진) 자본주의는 케인즈식 복지국가 자본주의로 변모하는데, 이는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 행위자로서 개입하는 한편, 노동 과 자본 그리고 국가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합의' 를 이루어 제3세계와 생태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존공영' 을 도모한 것 이었다.4 이러한 합의체제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때가 1970년대 초반이고, 마침내 1980년대 초반에 이 르면 케인즈주의 (Keynsianism) 대신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가 현실적 힘으로 떠오른다. 1980년에 권좌에 오른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이 그 예다.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즉, 노동이나 국가에 비해 시장 및 기업 세력이 더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 등의 신자유주의 이론이야 이미 존재했고,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그런 입장을 바탕으로 수십 년간 세계체제의 재편을 도모하려고 케인즈주의의 물밑에서 조심스레 탐색 중이었는데, 마침내 케인즈주의 자체의 한계와 모순으로 파열이 생기고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정치세력이 보수 중산층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를 본격 현실화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대학, 기업, 교회, 정당, 언론 등 사회제도를 통해, (노조 및 국가를 배제한) 자유시장은 국민 전체에게 행복을 준 다' 고 하는 '시장 이데올로기' 가 전파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먼저 기득권층이 내면화하고 다음으로 선전과 선동, 교육과 언론을 통해 국민 대중에 내면화된다. 그리하여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여성,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운동 세력 중에서 실질적 포섭이 가능한 분파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포섭과 타협이 어려운 분파들을 강력 배제하고 주변화시킨다.8 이 과정에서 20 대 80 사회' 로 상징되는 사회 양극화' 는 더욱 심화한다.
- 인류가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한 시기가 약 1만 년 전부터 라고 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의 역사는 불과 4백년 이다. 이 4백 년의 자본주의도 국가-자본 민중의 역관계' 에 따라 크게 나누어보면 고전적 자유주의 단계, 케인즈주의 단계, 신자유주의 단계로 정리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세계화' 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고전적 자유주의 (Classical liberalism)를, 봉건귀족과 국가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일부 민중과 힘을 합쳐 자유 시장체제를 확립한 단계라고 한다면, 케인즈주의 (Keynesianism)는 다양한 차원의 모순과 위기를 드러낸 자유주의 단계의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즉, 저항하는 민중을 '복지-소비 체제'로 포섭하면서도 과잉자본을 합리적으로 정리하는 데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단계가 케인즈주의로 나타 났다. 그 뒤 케인즈주의의 자기모순과 다차원의 민중저항을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가 현실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특성은 무엇인가? 우선 작금의 세계화 물결이 네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추진됨을 보아 야 한다. 그것은 개방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등이다. 개방화(Liberalization)는 초국적자본이나 세계금융시장에 국경을 개방하라는 것이고, 탈규제화(Deregulation)는 국가나 노조의 자본에 대한 간섭과 제한을 철폐하라는 것이며, 민영화 (Privatization)는 공공 부문이나 국가 복지를 민간 자본에게 넘겨 수익성 원리에 따르게 재편하는 것이고, 유연화 (Flexibilization)는 노동시장과 기업조직을 신축적으로 개편하 는 것이다.
- 미국 주도의 군사력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제하 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에마뉘엘 토드는 문제의 근원 은 미국이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라고 말한다.25 즉 세 계적 무력행사 뒤에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의존이라는 취약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무역적자는 1990년에 천억 달러였는데 2000년에 4천 5백 억 달러, 2005년에 5천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했다. 대량소비 위주의 낭 비적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를 시장화, 세계를 공장 화한 결과가 대형적자로 나타나고 또다시 이를 모면하기 위해 더욱 강제적으로 시장자유화를 추진하려 하니, 역설적이게도 세계의 파국과 제국의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다.
- 선생의 말씀 중에 “현대 의학이 인간으로부터 죽음을 탈취해 갔다” 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 인간은 과학, 기술 덕에 무 의미하게 죽음을 연장하는 많은 사례에서 드러나듯, 적당한 기회에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능력까지 상실한 상태, 즉 죽음으로부터의 소외 까지 겪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깊 이 생각해 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막연히 오래 살 것 처럼 생각하고 불행이나 고통, 죽음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 움에 젖어 거의 대비하지 않는다. 생각건대, 죽음을 진지하 게 생각하고 성실히 대비하지 못하는 삶은 온전한 삶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예컨대 한 달에 한 번 씩 나름의 유언장' 을 써 보는 것은 어떨까? 유언장을 쓴다. 는 것은 얼핏 꺼림칙한 일 같지만, 결국 그것은 매 순간 우리 삶을 더욱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 일리치 선생은 인간성 그 자체를 보존, 실천하지 않고 그것 을 체계 내지 제도 속으로 편입하는 것에 대해선 질색한다. 먼저 환대의 제도화가 이뤄진 역사부터 보자. 착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경우처럼 환대와 사랑의 마음을 고이 간직하던 시 대도 있었지만, 서기 3백 년 경 기독교가 공인되고 이후 국교가 되자 사태가 급변했다. 주교들은 마치 행정관처럼 되었고 환대를 제도화하기 위해 환대의 집' 을 곳곳에 세웠다. 피난 민과 이방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물론 많은 현인들은 “당신네들이 자선을 제도화한다면, 즉 자선이나 환대의 관습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적인 사업으로 전환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누렸던 명성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대문을 두드릴지도 모르는 사람 을 위해서 언제나 여분의 이불과 묵은 빵조각과 양초를 준비 해두고 살아온 것으로 유명했던 것입니다” 라며 우려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개별 사람들은 언제라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런 직접적 삶의 방식을 점점 잊 게 되었고 대신에 귀차니즘 이 자리 잡게 되었다. 바로 이것 이 자선의 제도화가 낳은 사생아다. 오늘날 복지국가의 병폐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또한 우리들 모든 삶의 과정이 상품화 한 것이 바로 오늘 날 서비스 경제'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친밀함과 우정, 환대, 사랑의 관계를 만들고 확인하고 나누던 행위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서비스 경제' 라는 이름으로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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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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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경영

경영 2020. 4. 23. 08:19

- 예산(혹은 계획과 측정 프레임워크)은 진공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리더는 주주의 돈을 관리하는 데, 그리고 관리자는 비용을 줄이는 데 집중 하게 하는 것이 예산제도에 부여된 원래의 기능이었으며, 리더와 관리자는 대체로 이에 따라 행동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금융공학자들이 예산의 기능을 바꿔 놓았다. 요컨대 예산을 숫자에 의한 관리' 라는 원격 통제장치 로 사용했다. 그들은 예산을 일종의 고정성과계약 fixed performance contracts 으로 전환하고 이 계약에 명시된 재무적 결과를 다양한 계층의 관리자들이 무조건 달성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관리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변화로 인해 재무적 결과가 근거하고 있는 가정이 더 이상 맞지 않더 라도 그 재무적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그 결과, 정해진 재무적 결과를 만들 어내는 데 급급한 나머지 비윤리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자주 발생 할 수밖에 없었다.
- 예산제도의 폐지가 근본적인 분권화 decentralization의 기회를 가져온다. BB경영의 개념과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조직은 명령과 통제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직 운영의 분권화를 위 해 조직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명령과 통제의 문화와 연결된 고정성과계약 때문이었다. 이 연결고리를 과 감히 끊어버릴 때, 일선의 관리자는 책임감을 갖고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또한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만큼 성과에 대한 책임 부담도 커진다. 또 성과의 부진을 위계구조와 관련된 문제로 돌릴 수 도 없다. 이 모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롭고 진취적인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바로 조직 과 직원이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높아진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조직에서 수립되고 있는 계획, 즉 확률에 근거한 예측결과는, 비록 조직활동을 저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유용한 결과를 내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다. (피터 드러커)
- 예산은 1920년대에 듀폰, 제너럴 모터스, ICI, 지멘스와 같은 대기업들이 비용과 현금흐름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 이르러 예산은 고정성과계약으로 변질되었다. 선구자적 저서인 《적합성의 상실: 관리 회계의 성쇠 Relevance Lost: The Rise and Fall of Management Accounting》의 공저자이자 미국 최초의 회계역사학자인 톰 존슨 교수에 따르면, 이 무렵 기업들은 원가, 순이익, 투자수익률 등의 회계적 결 과물을 경영 성과의 판단뿐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에 있는 구성원의 행동을 동기부여하려는 목적으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는 재무계획에 관해 보다 정교한 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 들이 다양한 재무적 지표를 경영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존슨 교수는 “대부 분의 경영자가 회계적 결과물에만 관심을 둘 뿐 경쟁력의 필수 요소인 생산, 기술, 마케팅적 요소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 지경에 이 르렀다. 심지어 경영 관련 교육에서조차 회계적 수치에 초점을 맞춘 경영 관행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정성과계약은 달성해야 할 목표치가 되었으며, 이 목표치를 기 준으로 성과가 평가되었다. 그리고 평가 결과는 보상에 반영되었다. 고정성 과계약은 일반적으로 고위 경영진과 외부 이해관계자(투자자, 은행가 등) 간의 이익eamings계약' 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조직 내부에서는 상사와 부 하 직원 간의 예산계약의 형태를 띠게 된다. 계약 기간은 대개 12개월로 고정적이다. 예산계약을 맺는 이유는 부하 직원이나 팀이 설정된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그러한 성과를 내도록 상사가 실적을 통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상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개입하고 계약 항목을 수정할 권리가 있다.
- 일단 당신이 예산제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운영관리자들이 궁금해 하는 이슈들이 비로소 당신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이슈들은 사업의 어떤 부분이 (제품 라인, 고객 세그먼트, 개별 고객, 프로세스를 포함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어떤 부분이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것이다. 성과가 낮은 프로세스를 아웃소싱해야만 하는가? 특정 시장 세그먼트에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가? 고객만족을 증대시켜야 하는가? 새로운 예측모형에서 이러한 질문들과 그 외의 여러 질문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결과가 시험된다. 또한 우리는 내부 혹은 외부(혹은 양자의 결합) 벤치마크 기업들의 리그테이블을 사용하여 경쟁자들의 성과를 예의 주시한다. 새로운 정보가 입수될 때마다 전략과 계획을 지속적으로 검토한다. 우리를 놀라게 한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 어났다. 한 예로, 재무팀의 평판이 좋아진 것이다. 예전에 그들은 컨트롤러이자 계산원으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가치를 부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정한 사업 파트너로 인정받는다. 이제 재무팀의 직원들은 스스로 조직에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고 있다.
-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전략을 개방적이고 지속적이며 적응적인 프로세스로 만드는 것은 기업들에게 매 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기적으로 지속예측을 하는 것, 자 원이 필요할 때 즉시 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접근법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유용함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많은 대기업에 만연되어 있는 관료제를 격파하는 것이다.
- 우리는 수년 동안 이 회사를 관리해온 명령과 통제의 구조 등 신속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제거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는 관료적인 문화 즉, 중앙의 기획 도구, 스태프 왕국, 본부에서 보낸 메모, 특별 연구, 그리 고 여타의 대기업적 특징들을 다루었다. “무언가 행해져야 한다면 내가 맡겠다.” 라는 말로 새로운 접근법을 요약해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방식으 로 의사소통한다. 그들이 의도하는 바를 정치라는 은밀한 언어에 숨기기보다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상하의 공식적인 조직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영역을 가로질러서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한다. 이러한 변화가 그다지 혁신적 인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사업을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행되도록 변화시켰다.
- 당신이 어느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2백만 달러의 잠재 적 손실을 확인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당신은 손실이 발생한 대로 받 아들이지 않고 4분기에 걸쳐 반영하려고 할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숫자놀음을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상장회사들은 당신이 숫자를 얼마나 달성하느냐에 따라 당신을 평가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결과가 예상보다 나쁠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뜻밖의 사고로 위장한다. 상장된 대기업에서 사람들은 사업보다는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 는 브랜드를 관리하는 데 집중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것은 정 말 엄청난 차이이다. 또한 과거에 우리는 구성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수 이후에는 공감대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 연간 자본지출 계획서는 없다. 투자는 연중 검토되기 때문에 투자가 필요 하다고 생각되면 연중 어느 때나 투자제안서를 작성한다. 이에 대해 할룬드 는 “해야 할 때 한다.” 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승인할 때 적용하 는 최저수익률 hurdle rate 같은 것은 없다. 사업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고 려해서 투자 여부를 판단할 뿐이다. 예산제도가 없으니 자원 할당 계획도 없다. 그래서 일선 조직들은 자원에 대한 수요의 변화에 맞춰 자원을 조절 한다. 그리고 결과로 나타나는 총 마진율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래서 일선 조직들은 비용을 수익대비비용 비율KPT 의 범위 내에서 관리하고자 노력 한다. 또한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중앙의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품을 확보할 수도 있다.
- 기본적으로 우리의 실수는 리더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조직의 감독자가 해낼 수 없는 일을 팀의 리더 또한 유사한 조건에서는 해 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즉 기본적 모 형이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는 핵심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보다는 그룹의 집 단적인 역량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형을 바꾸고 각 팀에 '임계질량 Critical mass' 을 형성하고자 시도했다. 바로 팀 구성원이 팀의 책임을 분담하 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건강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은 교육 훈련을, 또 다른 사람은 청소를 책임지는 것이다. 책임을 나누어 팀원에게 분담 시키자 팀의 임계질량은 점차 늘어갔다.
- 한델스방켄은 다른 금융회사들과는 달리 특정 상품에 대한 판매 목표도 없으며 중앙의 마케팅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상품중심의 판매전략은 관리 자들에게 제품의 특성, 제품의 수익성, 그리고 그 제품의 시장 점유율 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고객, 고객의 재정상태 변화,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 등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마텐손의 설명을 들어보자.
좋은 고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은 지점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결정한다. 종종 전화를 하고, 자연스럽게 방문하고, 생일 축하 꽃을 보내거나 특별한 때를 맞아 편지를 보내는 것은 모두 고객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활동은 비 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비용 때문에 고객을 놓치는 경우는 드물다. 고객을 놓 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고객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는 수익대비 비용 비율이 낮은 지점들이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고객들을 주로 선호한다 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학생이나 퇴직자, 혹은 주주들과 같은 특정한 집단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다. 특정한 집단이 아니라 좋은 고객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누가 좋은 고객인가는 각 지점이 판단한다.
- 의사결정 결과가 조직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관리자는 의사 결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비행기 조종을 가르칠 때, 교관은 훈련 중인 파일럿이 비행기를 망가뜨리지 않는 정도의 범위 내에서 저지르는 실수라면 모두 허용한다. 이것이 비행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찰스 핸디)
- 변화란 새로운 것을 학습한다는 뜻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하게 될 어떤 것을 잊어버린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대부분의 학습 이론과 모형들은 망각 unlearning의 역동성, 또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 데서 발 생하는 역동성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여 주는 변화의 비전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동기가 저절로 일어난다고 가정한다 (에드가 샤인)
- 사람들은 시스템을 가지고 장난을 했다.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변명하는 1001가지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사 람들은 있는 그대로 노출된다. 그리고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이 취할 행동을 미리 설명해야 한다. 또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달성한 결과인지를 나중에 평가받아야만 한다. 새로운 접근법은 이전의 시스템에 비해 주관적 판단이 많이 개입되지만 잘 작동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악용했던 것처 럼 몇몇 사람들은 이 방식도 악용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는 결과에 만족한다.
- 변화는 오직 창조적 긴장이 있을 때 생겨난다. 창조적 긴장은 비전, 즉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명확히 바라보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 즉 현재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피터 센게)
- 측정을 숭배하는 문화가 조직 생활에 깊이 침투하기 이전에 조직이 어떻 게 운영되었는지 한번 돌이켜보자. 우리는 종종 과거에서 좋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18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에 거주했던 퀘이커 교도의 경우, 인구 는 적었지만 그들은 두 나라에서 모두 최고의 부유층에 속했다. 1769년 필 라델피아(당시 미국의 최대 도시)의 퀘이커 교도는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 했으나, 부유한 엘리트의 3/4 이상이 퀘이커 교도였다. 퀘이커 교도들은 영 국에서 철강제조, 금융, 화학, 제과 사업을 벌였다. 무엇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프로테스탄트 직업 윤리와 종교적 열정도 물론 관련이 있다. 그러나 비밀은 그들이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에 있었다. 퀘이커 교도들은 통합된 신념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서로의 도덕 적 진보를 존중했으며, 자신들의 어린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그들은 곤경에 처한 동료들을 지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고, 서로의 회사에서 시 간을 보냈으며, 사업상 파트너십을 형성하였다. 파트너십은 종종 집안간의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현대 경영의 용어로 보면 그들은 대단한 네트 워커들이었지만, 서로를 이용하겠다는 계산에서 그러한 네트워크를 형성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강한 호혜성 mutuality과 자립성self-help을 보였으 며, 그 결과 신뢰와 공정함의 미덕을 관계 속에 구축할 수 있었다. 마치 오 늘날의 학습 조직과 유사하다. 그들은 믿음과 가치를 공유했고 서로를 신뢰했다. 이익은 사업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목적으로 가는 수단이었 다. 이익은 생산력을 증진시키는 데 다시 투자됨으로써 사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또 리더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있는 무언가 를 만들고자 했는데, 조직원들도 이 같은 리더의 생각을 따랐으며 함께 노력했다. 지금도 18세기 퀘이커 교도들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조직들이 있다. (예: 비영리 섹터에서).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 모형과는 거 리가 멀다. 단기적 고정성과계약에 의해 지배되고 재무 숫자들에 의해 원 거리에서 통제되고 있다. 18세기 퀘이커들은 개인적 책임과 성과측정이 공존하도록 하는 데 성공 했다. 측정의 목적은 원거리에서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규제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전 퀘이커 조직들과 오늘날 일부 비영리 조직 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목적과 상호의존성의 미덕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미덕을 현대의 복잡한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이 책에서 제시된 적응적이고 분권화된 새로운 경영모형이 그 답 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적응적 프로세스, 적절한 경영도구, 그리고 명확한 리더십 원칙을 기반으로 한 구성원의 진취적 정신, 에너지, 역량에 근거하고 있다. 이 모형에서 고정성과계약과 원거리 통제 경영이 설 자리는 없다. 리더들은 운영담당자들에게 더 많은 신뢰를 보내고 책임감을 부여해야 한 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영모형은 경쟁우위의 유일무이한 원천을 제공할 것 이다. 이는 관찰되거나 심지어 이렇게 기술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모방하기는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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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시작점에는 반드시 마음의 반응이 있습니다. 마음이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고민을 만들어내는 '단 하나 의 근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 는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바로 '헛되이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헛되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편해질지 상상해 보세요. 쓸데없는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침울해하지 않고, 화가 나지 않습니다. 압박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남들 앞에서도 긴장 하지 않게 됩니다. 과거를 돌이키며 후회하지 않고, 앞날에 불안 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그만큼 행복은 가까워지겠지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구원이 아닐까요?
- 반응하지 않는 것이, 무리하게 참거나 무시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란 고민을 늘어나게 만드는 헛된 반응을 애초에 하지 않는 연습입니다. 분노나 불안, 자신을 자책하는 어두운 기분이 생긴다면 재빨리 해소해야 합니다.
- 고민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 먼저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일곱 가지 욕구를 낳고 그 욕구에 자극되어 인간은 반응하게 된다. 때로는 욕구를 채우는 기쁨이, 때로는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만이 생긴다. 그런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인생이다.
-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기쁨, 슬픔, 실망, 불만에 가득 찬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붓다는 이같은 삶의 모습을 범람 하는 인도의 강에 빗대어 거센 물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얼마 나 우리의 삶을 잘 비유한 말인지요.
“바라는 마음이 결핍감의 반복이라는 윤회의 홍수를 만든다. 온갖 욕구가 거센 물살이 되어 온몸을 뒤흔들게 된다. 인간은 건널 수 없는 욕망의 진흙탕에 파묻혀 있다.”
- 말로써 확인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라벨링' 이라고 부릅니다. 마음 상태에 이름을 붙여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일상생활에서도 라벨링을 똑같이 실천해봅시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는 '나는 지금 청소를 하고 있다',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 지를 하고 있다', 걷고 있을 때는 '지금 걷고 있다', 컴퓨터로 작 업하고 있을 때는 작업하고 있다.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로 확인하면 됩니다. 이렇게 마음 상태와 행동을 객관적인 말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시다. 실천해보면 말로 확인할 때 헛된 반응에서 쉽 게 빠져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응에서 빠져나오면 마음은 침착함을 되찾게 됩니다. 자신의 상태를 말로 확인하는 작업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 '말로써 확인하기', 감각을 의식하기’라는 두 가지 방법을 붓다가 살던 시대에는 사티sati라고 불렀습니다. 마음 상태를 잘 살 펴보고 의식하면, 헛된 반응은 멈추고 마음은 가라앉으며 깊은 안정과 집중이 가능해집니다.
- 먼저 탐욕은 욕구 과잉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초조함이나 인간관계를 둘러싼 불만은 대부분 이렇게 너무 많 이 바라는 마음에서 옵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신경 쓰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 탐욕에 지배당하면 스스로도 괴롭고 자신과 관계된 상대방도 반드시 불행해 진다는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 탐욕에 사로잡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은, 본래는 힘이 없던 번뇌에 무릎을 꿇고 온갖 고뇌를 떠안게 된다. 이는 마치 스스로 깨부순 배의 밑바닥에 물이 스며들어 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붓다'란 올바른 이해의 궁극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 다. 깨달음을 얻은 자' 또는 각성자'라고도 불리지요. 이 대목은 불교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꼭 전해드 리고 싶습니다. 올바른 이해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견해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아닙 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판단이나 해석, 사안에 대한 견해를 일체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객관적으로, 즉 주관을 배제한 '중립적인' 시선에서 매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올바른 이해에 반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볼 뿐입 니다. 동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볼 뿐 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나와 상대방,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올바른 이해라고 표현합니다. 올바른 이 해야말로 괴로움을 뛰어넘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올바른 이해를 깨친 사람인 붓다가 도달한 경지를 가리켜 '해탈' 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해탈은 자유, 해방이라는 의미입니다. 불교, 즉 붓다의 가르침이란 올바른 이해에 따라 인간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합리적인 사고법'이라고 부르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올바른 이해를 통해 사람은 자유로운 마음을 되찾을 수 있습 니다. 꼭 실천해서 내 안에 존재하는 원인 모를 결핍감을 해소하 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충만한 삶을 되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사람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마음속에는 반드시 집착이 있 습니다. 마음은 계속해서 졸졸 흐르는 실개천과 같아서, 괴로움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더라도 어느새 집착이 고여 괴로움을 낳게 됩니다.
-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바람이 괴로움을 낳는다. 틀림없이 성공했어야 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판단이 괴로움을 낳는다. 상대방을 향한 기대와 요구가 괴로움을 낳는다. 이런 집착들을 떼어놓지 않으면 자신도 상대방도 계속 괴로울 수 밖에 없다.
- 붓다는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낼 법한 말을 들어도 무반응으로 응수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마음을 향하는 것을 인생의 목 적으로 삼은 이상, 쓸데없이 반응해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라 도 결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을 주시하고 이해한다. 철저 히 그 입장에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붓다의 합리적 태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승리'라는 이해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승리란, 상대방에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반응해 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일수록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고, 각오를 다지면서 상대방을 그저 이해하기 위 해 노력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반쪽을 내 안의 반응을 들 여다보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연습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과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 에라도 필요한 일입니다. 마음의 반쪽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나머지 반쪽은 내 마음 안쪽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데 사용해보세요. 그리고 이를 상대 방을 마주하는 방식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좋겠습니다.
-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과거에 속박되지 말고, 지난 일은 잊어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사건을 언제까지고 기억합니다. 게다가 상대방을 그 기억을 통해 대하려고 하는 경 향이 있지요. 하지만 그 기억은 또야?'라는 반응과 함께 새로운 분노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가 나를 매도했고 나를 부정했고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계속 생각하는 사람은기억에 얽매여 반응하고 분노하기 때문에 원망이 그칠 일이 없다.
- 예를 들어 상대방과 언쟁을 했다면, 맨 처음 분노 대상은 상대 방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끝나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답답하며, 개운치 않고 짜증이 난다면 그 원인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기억입니다. 과거를 떠올리고 기억에 반응하면 새로운 분노를 낳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그 분노에 상대방은 관계가 없습니다.
- 언제나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다. 지난 일을 떠올리더라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는 불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상대방을 마주하는 또 하나의 지혜가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을 새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 또 한 가지 알아뒀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망상은 확인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꿈을 꾸면 여기에 중대한 의미 가 있는 것이 아닐까?', '뭔가 이유가 있기에 보인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거기에 의미가 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확인할 도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떻게든 확인해보고 그것을 믿겠다고 생각한다면 망상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됩니다. 그만큼 올바른 이해는 멀어지고 마는 것 이지요. 사실 이것은 망상을 좇을지 올바른 이해에 머무를지 어 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확인할 길이 없는 것을 어디까지 좋을지는 여러분이 마음먹 기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무엇보다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확실히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상을 좇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려 노력하고, 합리적인 사고법과 이해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괴로움이 이번 생에서 생겨난 이상, 이번 생에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도록 해봅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사람은 망상을 그만두는 것 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망상하는 버릇 자체가 다른 사람의 시선 이 신경 쓰이는 고민의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망상을 올바르게 마주하는 방법을 이번 기회에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 불교에서는 마음의 반응이 연쇄한다는 발상이 있는데, 예로부터 이를 연기론緣起論'이라 불렀습니다.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그 본질을 더 잘 떠올릴 수 있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몰이해)의 상태에서 마음이 반응한다.
자극을 접했을 때마음이 반응해서 감정과 욕구, 망상이 결생結生한다.
결생한 생각에 집착함으로써 하나의 마음 상태가 생겨난다.
그 마음 상태가 새로운 반응을 만들어낸다. 그 반응의 결과로 온갖 고뇌가 생겨나는 것이다.
- 외부 사회나 사람이 신경 쓰여 견딜 수 없다면 눈을 감으십시오. 승패나 우열, 열등이라는 판단이 괴롭다면 눈을 뜨십시오. 눈을 감는 것은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 눈을 뜨는 것은 망상에서 깨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이 경쟁이라는 이름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마음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이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 안쪽을 보지 않고, 바깥 세계에만 반응하는 사람은 욕망에 휩쓸린다. 마음 안쪽과 바깥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여 번뇌에 뒤덮이지 않은 깨끗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은 욕망에 휩쓸 리는 일이 없다.
- 말년의 붓다는 여행 도중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 있었던 제자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아무것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처로 삼고 다른 무엇에도 의지 하지 말라. 올바른 삶의 태도를 의지처로 삼고 변하는 것, 인간의 생각이나 말에 매달리지 말라.
- 뭔가에 매달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안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없고 인생 에는 괴로움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바깥 세계에서 구원을 바라 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붓다는 바깥 세계에 해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세계 에 넘치는 모든 기호, 가치관, 사상, 종교 모두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정작 내 마음과 꼭 맞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구원하리라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이 지닌 마음의 어둠과 고뇌는 결국 스스로 뛰어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안쪽에 올바른 삶의 태도 와 의지처를 확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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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은 운이든 돈이든 사람이 불러들인다. 돈이나 지갑이 자기 혼자 걸어오지는 못한다. 행운조차도 사람이 불러들이기 마련이다. 밝은 색 옷차림도 웃는 얼굴도 천국의 말도,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서, 이 사람과 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령이다.
- 신이 말하고 싶어 하는이야기란 무엇일까? 신은 '나에게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해질지어다", "즐겁게 살지어다" 이것이 신이 바로 전하고자 하는 말이다.
- 시들시들한 야채에데 대고 "싱싱해져라"라고 말만 해서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부족할까?'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세요. 그러면 싱싱하게 자라기 마련입니다.
- 진심으로 타인을 이끌어주고 싶거나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차림새가 지저분해서는 안된다. 항상 깨끗해야 하고 초라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남을 위한 품위관리'다.
- 마음이 들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그것이 남을 위한 품위관리다.
- 많은 사람들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현실을 무시하기 때문. 비행기를 날릴 생각이라면 날개와 프로펠러를 달아서 정확한 이치에 따라 조작해야 함. 현실을 무시하면 비행기는 날지 않는다. 남들이 내 말에 주목하길 바란다면 비행기를 띄울 때의 자세처럼 그들이 귀기울일만한 조건을 갖추면 된다. "우리 회사는 사기가 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당신, 사시가 오를만한 방법을 제대로 적용했는가? 물이 끓지 않을 때는 불이 약하거나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조직내에서도 원인에 합당한 처방을 써야 함. 지도자란 좋은 말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좋은 말을 하는 건 기본이고 남들이 내 의견을 듣도 싶어하는 분위기까지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도 행동이다. 바라고 또 바라고 행동하고 싶어질 만큼 바라세요. 이처럼 잘되는 일들은 모두 건설적 행동의 결과다.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만 이곳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그대의 마음속에 식지 않는 열정을 지녀라. 비로소 그때 당신의 인생은 빛날 것이다. (괴테)
-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
-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잘 할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칸트)
- 현명한 사람의 불행은 우둔한 사람의 번영보다 훨씬 훌륭하다. (에피크루스)
-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네카)
-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타인에게서 찾는다. (공자)
- 당신의 이마에서 흘린 땀으로 빵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 (톨스토이)
- 마음이 유쾌하면 종일 걸을 수 있고, 괴로움이 있으면 짧은 길에도 지친다. (세익스피어)
- 성공은 대개 이를 좇을 겨를도 없이 바쁜 사람에게 온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위대한 사람은 목적을 갖고, 그 외의 사람들은 소원을 갖는다. (워싱턴 어빙)
- 어떤 소망이 주어질 때는 그 소망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함께 주어진다. (리처드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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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고 내 인생을 ‘유보’상태로
두면 안 됩니다. 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주변에 나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정도 미움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입니다.
- 기시미 이치로, ’미움 받을 용기’ 저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미움 받도록 행동하라’가 아니에요.
미움 받을까 봐 조마조마해 하며, 자기 인생을 버려두지 말라는 거죠.”
모든 사람에게 다 칭찬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 눈치 보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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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장하고 나누는 것이다.
인생에서 해온 모든 것들을 되돌아볼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고 그들을 이긴 순간보다
그들의 삶에 기쁨을 준 순간을 회상하며 더 큰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 해롤드 쿠시너, 랍비

 

남을 이기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어제의 나와의 지속적인 경쟁을 통해 자신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만드는 것,
이를 통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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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문제가 생긴다니, 좋아!’
고민하고 풀어 가면 그만큼 성장하는 거지.
문제를 극복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야.
- 하마구치 나오타, 경영 컨설턴트

 

문제는 항상 기회와 함께 옵니다. 위기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태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기와 문제는 과거와의 단절을 불러옵니다.
준비하기에 따라서, 생각하기에 따라서, 대처하기에 따라서
그 단절을 기회로 전환시킬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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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을 버리는 것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때
닫혀 있던 마음을 여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옳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을 벗어 던지자 엄청나게 큰 힘이 생겼고,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 조 볼러, ‘언락’에서

모를 때 모른다고 솔직히 털어놓아야 합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알고, 호기심 넘치며, 불확실한 상태를
행복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런 태도를 지녀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집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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