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에 박힌 위로의 말은 불안을 덜기 위한 해결책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역시 잘못된 처방일 수 있다. 두려워해야 할 때 두려워하는 것은 분별있는 행동이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몽테뉴, 베이컨, 소로와 같은 지성인들은 표현방식만 조금 다를 뿐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 없다." 두려움과 불안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 앞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불리해진다. 직접 대면하고 가늠해보지 않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제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못하거나 뒤도 못 보고 줄달음치게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나 당신 내면의 도움을 받아 두려움과 불안에 정면으로 대응하면 이를 스스로 감당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과 마주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 두려움은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으로서 생존을 위해 우리 몸에 내재됨.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 두려움으 존재를 인정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가장 적절한 대처가 가능해짐. 두려움을 오해하거나 과장하는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대신 두려움에 모든 것이 휩쓸리려 하는 순가 위협의 실체를 다시금 살펴보고 도움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면 된다.
- 소설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가장 믿을만하고 쓸모 있는 용기는 닥쳐오는 위협을 올바로 판단하는 순간에 솟구친다"고 말했다. 두려움이야 말로 이를 가능하게 한다. 두려움은 마치 메시지 전달자처럼 우리에게 지시를 보낸다. 신중하게 움직여라. 미친듯이 달려라. 멈춰라. 혹은 계속 가라. 새로운 도전을 하라. 적절한 두려움은 이처럼 자연스러우며 지극히 무해하다
-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해서가 아님. 손도 까딱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두려운 것.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그러나 정말 그런 순간이 닥친다 해도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패배감에 젖어 완전히 포기할수도 있지만, 그 대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다.' 이어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간혹 선택권을 떠올릴 틈도 없이 패배감에 빠져들지도 모르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잘할수도, 못할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사실을 아는 시점부터 자신감은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 걱정할 때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결과를 몇번이고 반복하며 떠올린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떠올린 훙 또다른 시나리오를 떠올리는 것. 혹시 내가 전화를 받는 사이에 아이가 굴러 떨어지면 어쩌지... 아니 내가 다른 아기를 씻기는 동안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행여나 고독사 했는데 아무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어쩌지...폭탄테러에 휘말려 죽게 되면...혹시...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지칠수 밖에 없다. 그러다 정작 걱정했던 일이 닥치는 순간에는 이를 감당할 여력조차 없게 된다
- 부모들이 자식에 물려준 두려움과 불안은 제대로 수선되지 않은 바지와 같다. 모르는 척 입기에는 딱히 편안하지 않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두려움들을 가늠해보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라. 이런 분류작업은 자녀의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해방감을 준다
- 문제행동을 당장 몰아낼 필요는 없다. 공포증이든 집착이든 우울증이든 오히려 이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한동안은 잘 살 수 있다.
- 세월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답을 주기도 한다
- 인간은 완벽에서 조금 부족한 존재이다. 완벽주의는 이런 인간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이 두려움 속을 똑바로 가로지를 때 당신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 꼭 깔끔하고 완벽한 동그라미가 될 필요는없다. 우린 저마다 조금 찌그러졌거나 구부러졌으며,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인간 존재로서의 두려움은 가장 먼저 잠재울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두려움과 좀더 쉽게 마주할 수도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잠시 접어두자. 자기 자신을 꾸미거나 감추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때 충만한 기쁨이 생겨난다
- 두려움과 불안은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는 순간에 생겨남.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현재부터 차례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깨어 있는 동안 혼잣말처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바로 여기에 머무르자.' 두려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만일 이런 일이 닥쳐온다면 한번에 하나씩 오기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하자. 침착하게 호흡에 집중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지금', 내쉬며 '여기'라고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앞날을 예측하려 애쓰지 말자. 지금, 여기에 살며 얻는 매일의 선물을 즐겨보자. 당신이 바라는 한 이 선물은 계속해서 당신손에 주어질 것이다.
- 사실에 접촉하는 순간 평정심과 객관성, 생생함이 솟아나지만, 공상으로 빠져드는 순간 끝내 부안과 우려에 종착한다.
- 앞만 보고 날아가는 화살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 속도를 늦추고 잠시 쉬어가는 동안, 누군가는 당신이 예전같지 않다거나 나태해졌다고, 혹은 아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시선이 두려워 용기를 내기가 어려울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 마음의 건강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반응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말고 일단 그 자리에 앉아보라(틱낫한) 시간제한을 두지 말고, 구태여 뭔가를 얻으려 애쓰지 말고, 자리에 앉아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우는 시간을 가져라. 꾸준히, 규칙적으로 이런 시간을 갖다 보면 영혼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조용한 공간에서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삶의 가치를 찾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당신이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 분노를 줄이고 마음속 불안을 달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 인간이 살면서 마주치는 가장 커다란 난관은 우리가 빌린 인생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분노와 불안에 똑바로 대면하고 존중하라. 이로부터 도망치려 하지말고, 소중한 하루의 순간순간이 망가지도록 내버려두지모 말라. 고통스러운 상실과 변화를 슬퍼하고, 무언가를 잃을 수 있따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보자. 누구나 겪는 난관은 웃어넘겨라. 그리고 지금 주어진 것을 즐겨라.
- 해변에 갔다가 한 꼬마가 열심히 모래성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어찌나 흠뻑 빠져 있는지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 아이에게 파도에 모래성이 곧 휩쓸려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즐겁게, 온 힘을 다해 그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꼬마는 몰입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떠올리고 난후,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 슬픔, 후회 등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 살펴보자. 이런 감정이 행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친한 친구에게 하듯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완벽하지 못한 날 용서한다' 우리는 후회와 죄책감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려는 순간마다 이를 저지하며 어김없이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이런 습관을 당신의 삶에 적용하고, 잘못된 일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자책하는 것은 멈추자. 원인을 추측하고 증거를 모으는 일에는 끝이 없고, 때로는 다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 도망치지 말고 두려움과 불안을 맞이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행동이다. 미처 긴장을 풀지 못해 말을 더듬거리며 두려움을 향해 인사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런 대치상태에서 몸이 떨려온다면 할머니가 손수 떠주신 옷이나 부드러운 담요를 어깨에 두르자. 믿음직한 친구와 함께 있어도 좋다.
- 어쩌면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서 두려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안녕, 너였구나. 차 한잔 마실래? 난 네가 누구인지, 왜 내 주변을 맴도는지 알고 싶어' 그 다음에는 귀 기울여보자. 상냥하고 편견없는 태도로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듣듯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향해 직접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당신의 삶의 지배하거나 하루를 망쳐던 두려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당신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다.
- 그 어떤 커플이라도 하나가 될수는 없다는 사실. 완벽한 일치감을 주는 관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승려 로버트 에이트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를 깨닫는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그 누구도 이런 현실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졸음을 떨치고 하루종일 깨어있을지 말지는 오직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바깥에서 구원자를 찾는 일을 멈추는 순간부터 당신 자신에게 의지하며, 내면의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런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만 있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행동을 시작하면 자신감도 커질 것. 두려움은 과거로 밀쳐버리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깊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 감정은 가두행진을 따라가는 악단과 같다. 감정은 당신의 삶이라는 가두행진을 따라 흘러간다. 구슬픈 곡조를 연주하는 악단에게 흥겨운 곡을 강요하지 말고 행복한 연주를 하는 악단에게 더 오래 있어달라고 애걸하지 말라. 악단 공연을 취소하거나 지연시키거나 재촉하지 말라. 그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연주를 하도록 내버려두자.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다. 빠짐없이, 온전하게.
- 행동은 감정이라는 꼬리를 흔들며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행동을 활용하여 감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행동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감정을 지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행동하며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은 내적 성숙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두려움은 우리가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가리키는 표정역할을 한다. 만약 변화를 결정하고 행동한다 해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머리속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면 된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내 노력의 결과와 관계없이 존재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늘 증명할 필요는 없다.
- 힘든 시기가 닥칠 때 평화를 얻기 위한 조건을 달라지지 않음. 바로 용기이다. 삶은 당신이 엄두도 못내는 그것을 엄정하게 요구한다. 용기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심장 혹은 마음을 뜻하는 coeur로부터 생겨남. 말하자면 용기야말로 심장처럼 우리 생존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것이다.
-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꾸거나 회피할수는 없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를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용기를 빼앗고 내 앞을 가로막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일상에서 사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삶의 기쁨과 의미가 조금씩 조금씩 되돌아올 것이다.
- 구태여 무겁고 칙칙한 돌덩이를 질질 끌고 다닐 필요는 없다. 때때로 삶은 비극이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기 때문.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해도 얼마 되지 않아 잊어버리고 돌덩이 하나를 더 껴안을지 모른다. 괜찮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과감하게 돌덩이를 던지고, 또 버리는 연습을 해야한다. 가볍고 경쾌하게 인생여정을 떠나기 위한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 우리는 왜 가치있는 존재일까. 그냥 단순히 생각하자. 우리는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가치있는 존재다. 우리 고유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마음이 좀더 느긋해지고 시간을 투자해서 자기방식대로 세상에 공헌할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자기의 가치를 뼛속깊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배려하는 단순한 행동은 곧 세상을 향해 친절과 열정을 베푸는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 유연하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유연성의 핵심은 현재 상황을 주어진 그대로 바라보고 이에 어떻게 반응하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계획에 따라 행동한느 것이 아니니 두려울 법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연해지기를 두려워한다. 누구나 계획이라는 단단한 기반위에서 움직이길 원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하고, 미리 계획을 세워 목표를 추구. 하루, 일주일, 한달, 인생전체를 계획대로 생기길 바란다. 다만 문제가 있다. 제아무리 완전무결하게 계획을 짜놓는다 해도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 철저히 계획을 지키겠노라 단단히 마음먹어도 삶은 융통성 없는 우리를 기어코 무장해제시킨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느닷없이 우리에게 닥치는 사고나 병, 실직, 자연재해, 범죄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계획을 제멋대로 바꾼다. 실제로 위중한 병을 치료하는데 집중하거나 재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무너진 집을 보수하고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려 애쓰다보면, 전에는 중요하다고 여겼던 계획이 얼마든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가야 하는데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거나, 아이를 봐주기로 한 보모가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급히 처리할 일이 있는데 컴퓨터가 고장나버리는 경우는 또 어떤가. 상황이 항상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되지 않으며 새로운 조건이나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계획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달라진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유연해지겠다고 마음억어야 한다. 지우개와 연필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배운 나 자신을 축하해주자. 해야할 일을 끝까지 완수해냈다고 축하하는 것이다. 상황은 매 순간마다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 수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활력이나 열정이 넘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용은 그저 수용일 뿐이다. 여전히 주어진 상황에 불만스러울수도 있고, 이런 상황으로 이끈 운명을 원망할수도 있다. 하지만 수용을 끌어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절망에서 벗어난다. 그것이 스스로 절망에서 빠져나올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
- 춤을 추는데 발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고로 왼쪽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한 후에도 무용을 그만두지 않은 수드하 찬드라)
- 이 세상에서 손쉬운 일을 오직 죽음 뿐이다. 그렇다 마음편히 숨쉬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겨라.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삶을 끌어안아라.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두려움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을 끌어안으며, 다음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려라.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매 순간을 꽉 끌어안아주라. 얼핏 눈물이 고이고 마음 한구석에 아직 절망이 웅크려 있어도 안아주라. 매일매일 이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잊지 말자 조용히 읊조려도 좋고, 크게 소리 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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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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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은 실제로 무엇인가? 과학자들의 고전적 견해를 한쪽으로 제쳐놓고 그냥 데이터로 살펴보면, 감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설명을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당신의 신체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당신의 문화와 양육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다. 오히려 감정은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실재한다. 다시 말해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산물이다
- 구성된 감정이론이라고 부르는 견해에 따르면 멀로이 주지사의 연설 중 일어난 사태를 매우 다르게 해석 가능. 멀로이 주지사의 목이 메었을 때, 이것이 내안의 슬픔 회로를 촉발해 일련의 전형적 신체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내가 슬픔을 느낀 이유는 특정 문화속에서 성장한 나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한 신체감각이 끔찍한 인명피해와 동시에 일어날 경우 슬픔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배웠기 때문. 총기사고에 대한 나의 지식, 그 피해자들과 관련된 나의 예전 슬픔 같은 과거 경험의 조각들을 사용해 나의 뇌는 내 몸이 이런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신속히 예측했다. 그리고 이 예측때문에 내 심장이 두근거렸고, 내 얼굴이 붉어졌으며, 내 위가 딴딴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예측이 내게 울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래서 내 신경계가 어느정도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슬픔의 사례로서 의미를 지니는 최종느낌이 남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뇌가 나의 감정경험을 구성. 나의 특정한 동작과 감각은 슬픔의 지문이 아니었다. 만약 뇌의 예측이 달랐다면, 나의 피부는 붉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위가 딴딴하게 뭉치는 느낌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뇌는 이렇게 해서 생긴 신체 감각을 여전히 슬픔으로 변모시킬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원래 경험한 심장의 두근거림, 얼굴의 붉어짐, 위의 뭉치는 느낌, 눈물 등은 슬픔이 아니라 분노나 공포같은 다른 감정으로서 의미를 지닐수도 있다. 또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면, 예컨대 결혼식장이라면 똑같은 신체감각이 기쁨 또는 감사의 감정이 될 수도 있다.
- 당신이 의사를 찾아가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다고 호소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이것은 심장마비 증상일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불안때문이라는 진단과 함께 그냥 집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반면 당신이 남성이라면 심장병 진단을 받고 생명을 구하는 예방치료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런 차이로 인해 65세 이상 여성이 남성보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음.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여성환자 자신의 이렇게 왜곡된 지각은 그들의 불안 등의 감정을 탐지해낼 수 있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근본적으로 더 감정적이라는 고전적 견해에 기초해 있음. 그리고 이것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짐
- 공포 같은 하나의 감정범주 안에 이렇게 다양한 안면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뜬 얼굴이 공포의 보편적 표현이라는 자연스런 신념을 갖고 있을까.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문화 안에서 잘 알려진 공포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고정관념 또는 상징이기 때문.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노려보는 사람은 화난 사람이고, 입을 삐죽 내민 사람은 슬픈 사람이라는 식으로 고정관념을 우리아이에게 가르친다. 이런 고정관념은 문화적 약식기호 또는 관습. 우리는 각종 만화, 광고, 인형의 얼굴, 이모티콘 등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도형에서 이것을 봄. 대학 교과서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심리학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치료사는 이런 고정관념을 환자에게 가르침
- 얼굴은 사회적 소통의 수단이 된다. 몇몇 안면 움직임은 의미를 지니는 반면, 다른 안면 움직임은 그렇지 않다. 아직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알아내는지에 대해 거의 아는바가 없다. 다만 신체언어, 사회적 상황, 문화적 기대 등의 맥락이 어떤 식으로든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뿐이다. 눈썹을 치켜 올리는 식의 안면 움직임이 어떤 심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이 언제나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지, 또 그것의 의미가 매번 동일한지 알지 못한다. 모든 과학적 증거를 종합해볼 때 감정마다 그것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표정이 있다는 주장에는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다.
- 편도체는 공포에 휩싸인 얼굴이든 중립적 얼굴이든 상관없이 피험자가 그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경우 모든 낯선 얼굴에 대한 반응으로 활동이 증가. 기본감정기법에서 사용된 사진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공포에 휩싸인 듯한 안면배치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않기 때문에 뇌 영상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에게는 낯선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 및 이와 비슷한 다른 결과들은 원래 실험에 대해 편도체를 공포의 뇌부위로 간주하지 않는 대안적 설명을 제공한다.
- 뇌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체는 감각입력의 또 다른 원천일 뿐. 심장과 허파, 물질대사, 체온변화 등에서 생기는 감각은 애매모호한 얼룩과 다르지 않다. 신체 안에서 생기는 이렇게 순수하게 신체적인 감각에는 객관적으로 어떤 심리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개념이 개입하는 순간 이런 감각은 추가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음. 만약 당신이 저녁 음식을 앞에 둔 상황에서 위가 쑤시는 느낌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것을 배고픔으로 경험. 그러나 유행성 감기가 돌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이 똑같은 느낌을 메스꺼움으로 경험할 것이다. 또 당신이 법정의 재판관이라면, 당신은 이 똑같은 느낌을 피고가 의심스럽다는 직감으로 경험할수도 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뇌는 밖에서 들어온 감각뿐 아니라 내부감각에 대해서도 개념을 사용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난다. 이처럼 위가 쑤시는 느낌을 바탕으로 당신의 뇌는 배고픔, 메스꺼움, 또는 불신의 사례를 구성할 수 있다.
- 유행성 감기에 걸린 상황에서 남성에 대한 매력을 느낀 경험은 고전적 견해에 따르면 오류 또는 귀인 착오라 불릴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류라면 얼룩덩어리에서 꿀벌을 보는 것도 오류라 불러야 함. 얼굴이 달아오르고 열이 나는 것은 피 속의 감기 바이러스 때문이고, 내 뇌는 점심 데이트라는 맥락 속에서 이 감각에 의미를 부여해 상대방에게 정말로 끌리는 것 같은 느낌을 구성한 것. 이것은 뇌가 심리상태를 구성하는 정상적 방식. 만약 내가 집에서 체온계를 입에 문채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똑같은 신체감각을 느꼈다면, 내 뇌는 똑같은 구성과정을 거쳐 이것을 병이 난 느낌의 사례로 구성했을 것이다. 반면에 고전적 견해에선느 누구에게 끌리는 느낌과 병이난 느낌에 대해 각각 상이한 뇌 회로를 통해 촉발되는 상이한 신체지문이 있다고 주장할 것
-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당신은 감각 입력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당신 감정의 능동적 구성자임. 당신의 뇌는 감각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 만일 당신에게 과거 경험을 표상하는 개념이 없다면 당신의 모든 감각입력은 잡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감각이 무엇인지도 알수 없고, 무엇으로 인해 야기되었으며, 이것에 대치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것. 반면에 개념을 갖고 있으면, 당신의 뇌는 감각에 의미를 부여. 이 의미가 때로는 감정인 것이다.
- 빵을 구울 때 소금은 이스트의 부풀기 제어, 반죽 안의 글루텐 강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향미의 증진 같은 역할을 함. 이처럼 소금이 빵의 제조과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해하려면 소금의 작용을 맥락 속에서 관찰해야 함. 마찬가지로 감정의 성분도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나머지 뇌의 맥락 속에서 연구해야 함. 전체론이라 불리는 이런 생각은 어째서 내가 부엌에서 빵을 구울 때 정확히 똑같은 요리법을 사용해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설명해줌. 예를 들어 모든 성분의 무게를 재고, 반죽을 똑같은 시간 주무르고, 오븐을 똑같은 온도에 맞추며 빵을 굳게 만들기 위해 오븐에 물보라를 분사하는 횟수까지 센다. 매우 체계적인 요리법을 사용해도 빵은 때때로 가볍기도 하고, 더 무겁기도 하고, 더 달기도 하다. 이것은 요리법에 나오지 않는 빵 굽기의 추가맥락이 있기 때문. 즉 반죽을 주무로는 힘의 양, 부엌의 습도, 반죽이 부푸는 시점의 정확한 온도 등은 빵을 만들 때마다 달라짐.
- 수백번의 실험을 수행했고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한 수천건의 실험을 검토한 후 완전히 비직관적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공감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얼굴로부터 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내부의 핵심으로부터 감정이 발산하는 것이 아님. 감정은 뇌의 특정부위에서 분출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혁시을 통해 감정의 생물하적 지문이 기적같이 발견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감정은 우리 안에 내장된 채 그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 감정은 우리가 만들어낸다. 우리는 감정을 인식 또는 확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체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즉석에서 우리자신의 감정경험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구성한다.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뇌의 동물적 부분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가공의 감정회로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다.
- 역사 기록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행복할 때 자진해서 미소를 짓지 않은 듯 하다.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 미소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음. 미소짓기는 중세에 등장했으며, 이를 다 드러낸채 크게 웃는 것은 치과의술이 더 저렴해지고 일반화된 18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유행. 고전학자 메리버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은 로마인이 거의 미소처럼 보이는 형태로 입 가장자리를 말아올린 적이 한번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런 말아올리기는 로마의 사회문화적 제스처 중에서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거꾸로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다른 제스처들에 중대한 의미가 부여되곤 했다." 어쩌면 미소짓기는 지난 몇백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행복을 상징하는 보편적이고 정형화된 제스처가 되었을지 모름. 고전적 견해의 지지자라면 치과의술이 등장할 때까지 사람들이 타고난 행복의 미소를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억압하고 있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어쩌면 행복할 때 미소를 짓는 것은 전혀 보편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 자극-반응 시각은 직관적이긴 하나 잘못된 것. 당신의 뇌에 있는 860억개의 뉴런은 거대한 신경망에 연결된 채 외부시종이 걸리기만을 기다리면서 잠자고 있지 않다. 당신의 뉴런들은 언제나 서로를 자극하고 있으며 때로는 수백만개를 한꺼번에 자극하기도 함. 산소와 영양분이 충분할 경우 내인성 뇌활동이라 불리는 이 막대한 양의 다단계 자극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됨. 이 활동은 외부세계에 의해 촉발된 반응고는 전혀 다름. 이것은 오히려 외부촉매가 필요없는 과정인 호흡에 가까움
- 뇌는 두개골 안에 갇힌 채 오로지 과거경험의 안내만 받으면서 예측을 함. 우리는 보통 예측이라 하면 미래에 관한 진술로 생각. 그러나 예측은 아주 미시적 규모에서 수백만개의 뉴런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일어남. 이런 신경대화를 바탕으로 당신의 뇌는 당신이 경험할 광경, 소리, 냄새, 맛, 감촉의 모든 조각과 당신이 취할 모든 행동을 예상하려고 시도한다. 이 예측은 당신 주위의 세계에서 무선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당신의 생명과 안녕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뇌가 행하는 최선의 추측이다.
- 보통의 경우 당신은 내수용을 대체적으로만 경험. 즉 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같은 단순한 느낌으로만 경험. 그러나 이따금 강렬한 내수용 감각의 순간들이 감정으로 경험될 때가 있음. 이것은 구성된 감정이론의 핵심요소이기도 함. 깨어 있는 매순간 당신의 뇌는 당신의 감각에 의미를 부여함. 이때 일부감각은 내수용 감각이며, 여기에 부여된 의미가 감정사례가 될 수 있다.
- 뇌가 움직임을 예측할 때마다(침대에서 일어난다. 커피를 마신다. 등) 신체예산 관리부위에서는 예산을 조정. 뇌에서 신체에 신속한 에너지 분출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하면, 신체예산 관리부위에서는 콩팥에 있는 부신에 코티솔 호르몬을 방출하라고 지시. 흔히 코티솔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데, 이는 잘못된 것. 코티솔은 에너지 분출이 필요할 때마다 방출되며,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코티솔이 방출되는 주요 목적은 포도당이 다량 함유된 혈류를 통해 세포에 즉각적인 에너지를 공급하여 근육세포를 확장 또는 신축시킴으로써 당신이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신체예산 관리부위는 당신이 숨을 더 깊게 쉬어 산소가 더 많이 혈류로 들어오도록 할 뿐만 아니라 동맥을 확장해 이 산소가 근육에 더 신속하게 전달되어 당신의 신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 이런 모든 내부 움직임에는 내수용 감각이 수반됨. 다만 당신은 이것을 정밀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배선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내수용 신경망은 신체를 통제하고 에너지 원천을 관리하며 내부감각을 표상.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남
- 만약 당신이 가난하게 성장했다면 만성적 신체예산 불균형과 과민성 면역체계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신체예산 문제는 당신을 곁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몸이 편찮음을 느낀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이상 당신의 예산관리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주요한 원인. 이럴때 당신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이기도 하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 당신이 산출하는 모든 예측,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생각, 그리고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광경, 소리, 맛, 감촉, 냄새는 모두 당신의 신체예산과 내수용 예측에 영향을 미침. 당신의 뇌는 당신의 삶을 유지하는 온갖 예측에서 비롯하는 연속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수용 감각과 씨름해야 함
- 느낌이 좋지 않다고 해서 언제다 그 대상이 잘못된 것은 아님.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은 현재 당신의 신체예산에 부담이 많이 간다는 것을 의미. 예컨대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하면,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기 한참 전부터 피곤하고 매우 불편한 느낌이 든다. 수학문제를 풀 때 또는 무엇을 애써 기억해내려 할때, 사람들은 실제 잘할 수 있을 때도 절망감과 어려움을 느낀곤 한다. 대학원생 중에서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은 신체로부터 받는 느낌이 신체의 실제상태를 언제나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방금 배웠다. 가슴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 허파에 공기가 차는 느낌 같은 낯익은 감각과 전반적 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같은 정동은 실제로 당신의 신체안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에서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의 결과. 한마디로 당신은 당신의 뇌가 믿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정동은 기본적으로 예측에서 비롯한다. 이미 당신의 뇌가 믿는 것을 당신이 보게 된다.
- 당신은 일상에서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이 당신의 느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의 사정은 대개 이와 다르다. 당신의 느낌에 따라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이 바뀐다. 외부세계보다 이 순간의 내수용이 당신의 지각과 행동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당신은 어떻게 처신할지 결정하기 전에 장단점을 따져보는 합리적 동물이라고 스스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뇌의 피질구조상 이것은 허구일 뿐이다.
- 당신에게는 범주화, 맥락, 개연성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모두 매우 반직관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만약 숲 속을 걷다가 길 앞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뱀을 보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음. '나는 과거 경험중에서 현재의 감각과 어느정도 유사성을 지니는 몇몇 경쟁적 개념을 구성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내 지각을 창조하면서 이 뱀을 예측했다' 대신에 그저 뱀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조심조심 돌아서서 도망치면서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은 예측을 계속 가다듬어 마침내 공포라는 감정범주의 가장 적절한 사례를 찾아내었고, 그래서 도망치게 되었다' 대신에 그저 겁에 질려 달아나야겠다는 충동을 느꼈을 뿐이다. 공포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들이닥치며, 마치 자극(뱀)이 작은 폭탄(신경지문)을 건드려 반응(공포와 도주)이 촉발된 것처럼 느껴진다
- 내가 뱀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의 범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도망쳐야겠다는 충동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의 범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의 범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범주화했기 때문에 뱀을 보았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고, 도망친 것이다. 나는 이런 감각을 올바르게 예측했으며, 그럼으로써 이런 감각을 공포개념의 사례로 설명했다. 이것이 감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 다양한 분노의 예측에는 상사, 승진, 실패, 복수심 같은 유사성이 있는 반면 고함, 속삭임, 침묵 사이에는 제각기 상이한 감각예측과 운동예측이 요구되기 때문에 많은 차이가 있다. 각 예측에 포함된 당신의 동작도 다르며(책상 내려치기, 몸을 구부리기 등), 따라서 당신의 신체 내부변화도 다르고 신체예산에 초래되는 귀결도 다르며, 따라서 내수용성 결과와 정동적 결과도 다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당신의 뇌에서 우리가 곧 논의할 과정을 통해 이 특정 상황에서 당신의 목표에 가장 적합한 분노의 최종사례가 선택된다. 그리고 이 최종사례를 통해 당신의 행동가 경험이 결정된다. 이런 과정이 바로 범주화다. 그러나 당신의 상사와 관련된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음. 예컨대 당신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기, 당신을 밀어내고 승진한 동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같은 다른 목표를 추구할수도 있음. 또는 후회, 공포 같은 다른 감정의 사례를 구성할수도 있으며, 또는 종속 상태의 탈피 같은 비감정이나 두통같은 물리적 증상 또는 상사가 멍청한 자식이라는 지각 등을 구성할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당신의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전체상황과 당신의 내부감각에 가장 어울리는 것을 범주화하려는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범주화는 당신의 지각이 되는 그리고 당신의 행동을 인도하는 최종사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 의미구성은 주어진 정보 너머로 가는 것.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충분한 산소를 팔다리에 공급해 당신이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은 신체기능을 가짐. 그러나 범주화를 통해 이것은 행복이나 공포같은 감정경험이 될 수 있고, 당신의 문화안에서 이해된 추가적 의미와 기능을 획득하게 됨. 당신이 불쾌한 유인성과 높은 흥분도의 정동을 경험할 때, 당신이 행하는 범주화에 따라 이것의 의미가 구성됨. 이것은 공포의 감정사례인가?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해 생긴 신체사례인가? 아니면 당신에게 말을 거는 사내가 얼간이라는 지각인가? 생물학적 신호에 새 기능을 부여하는 범주화는 신오의 물리적 성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지식과 세계안에 있는 당신의 주위 맥락에 기초함. 만약 당신이 이 감각을 공포로 범주화한다면, 당신은 공포가 내 몸에 이런 신체변화를 야기했다는 식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관련된 개념이 감정개념이면, 당신의 뇌는 감정사례를 구성하는 것이다.
- 구성된 감정이론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한 현대적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제시. 이 견해는 신경과학의 최신연구결과와 일치. 또한 이것은 고전적 견해에 비해 당신의 느낌과 행동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당신에게 부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당신은 세계의 사태에 그저 반응하도록 배선된 수동적 동물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경험과 지각을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좌우한다. 당신은 예측하고 구성하며 행동한다. 당신은 당신 경험의 설계자다. 인간 본성에 대한 또 다른 그럴듯한 견해는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에서 출발. 이것은 이미 수천년 동안 우리 주위에 있었으며 사회의 법률, 의료, 기타 주요부문에 여전히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 실제로 두 견해는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인간본성에 대한 고전적 견해가 우위를 차지. 그러나 오늘날 현대 신경과학은 마음과 뇌의 혁명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고, 고전적 견해는 압도적 증거에 직면하여 점차 자리를 내어주고 있음
- 고전적 이야기는 인간의 진화적 기원에서 시작. 당신은 본질적으로 동물이다. 당신은 동물 조상으로부터 다양한 정신적 실재를 물려받았으며, 여기엔 당신의 피질 하부 깊숙이 파묻혀 있는 감정적 실체도 포함되어 있다. 다윈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온갖 고상한 성질과...신을 닮은 지성과...이 모든 고귀한 능력에도 불구하고...인간의 신체 틀에는 여전히 인간의 저급한 기원을 말해주는 지울 수 없는 도장이 찍혀 있다.' 그러나 고전적 견해에 따르면 당신은 이런 동물적 본질이 합리적 사고로 잘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다. 인간만이 지닌 이성적 본질 덕분에 당신은 감정을 합리적 수단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이 덕분에 당신은 동물의 왕국의 정점에 서 있다
- 고전적 견해를 신봉한 과학자들은 편도체 등의 변연부위에서 다른 많은 감정을 확인했으며, 이것들이 피질 또는 인지의 통제를 받는다고 주장. 그러나 현대 신경과학은 변연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뇌 진화의 전문가들은 더이상 변연계에 관한 주장을 진지하게 취급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것이 과연 통일된 체계인가 하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음. 변연계가 뇌에 자리잡은 감정의 소재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울 것이 아니다. 감정에만 전문화된 뇌 부위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
- 감정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체예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함.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당신의 내수용 신경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면서 이런저런 예측을 내놓아 신체예산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며,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신의 정동적 느낌(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이 생겨남. 당신이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면, 당신의 심박수, 호흡, 혈압, 체온, 호르몬, 물질대사 등에 관한 뇌의 예측이 신체의 실제수요에 맞게 조정될 필요가 있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신체예산이 정상궤도를 이탈할 것이며, 그러면 당신이 무슨 자기계발 방법을 동원하든 상관없이 기분이 더럽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은 더러운 기분에 양념을 치는 것 밖에 안된다
- 불행히도 현대문화는 당신의 신체 예산을 엉망으로 만들도록 설계됨. 슈퍼나 음식점에서 파는 많은 제품은 신체예산을 왜곡하는 정제설탕과 나쁜 지방이 가득한 불량식품이다. 학생과 직장인들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기를 강요받듯 13세부터 64세 사이의 미국인 가운데 40% 이상이 만성 수면부족 상태. 이것은 신체예산의 만성 불균형과 심지어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 미디어에서는 친구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당신의 신체예산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는 광고를 내보낸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거부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연출됨으로써 당신의 신체 예산은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 새로운 개념을 획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새로운 단어를 학습하는 것. 당신은 단어학습이 정서적 건강에 유익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구성의 신경 메커니즘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 단어는 개념의 씨앗이 되고, 개념은 예측의 원동력이 되며, 예측을 통해 신체예산이 조절되고, 신체예산에 따라 기분이 좌우됨. 따라서 당신의 어휘가 섬세할수록 당신의 뇌는 더 정밀한 예측을 통해 신체수요에 알맞게 예산을 조절할 수 있다. 실제로 감정입자도가 더 높은 사람들은 병원을 덜 방문하고 약을 덜 먹고, 병에 걸려 입원해 있는 기간도 더 짧음. 이것은 마술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꽉 막혀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아이에게 감정에 관해 가르칠 때, 본질주의적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행복하면 미소를 지어야 하고 화가 나면 노려봐야 하는 것 등이 고정관념이다. 아이가 실제 세계의 다양성을 이해하도록, 미소가 맥락에 따라 행복, 당혹감, 분노, 심지어 슬픔을 의미할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라. 또한 언제 당신 스스로도 당신의 느낌이 확실치 않은지, 언제 당신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저 추측하는지, 또는 언제 잘못 추측하는지를 솔직히 인정하려고 노력하라.
- 재범주화는 감정전문가를 위한 도구다. 더 많은 개념을 알고 더 많은 사례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효과적인 재범주화를 통해 당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시험을 앞두고 흥분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것을 해로운 불안으로 범주화할 수도 있고(아, 시험을 망칠 것 같아), 아니면 유익한 예상으로 범주화 가능(힘이 솟는다. 나는 준비되었다!)
- 이런 종류의 재범주화는 당신의 삶에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줌. 대학원 입학 자격시험 같은 시험성적을 살펴본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불안을 신체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는 신호로 재범주화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공개연설을 하거나 심지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할때도 불안을 설렘으로 재범주화하는 사람들은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고전적 불안증상을 덜 보임. 그들의 교감신경계에는 여전히 과민성 울렁증이 산출되지만, 수행능력을 낮추고 일반적으로 기분을 망치게 만드는 전염증성 시토킨의 수준이 내려가므로,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 명상을 하라.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매순간 각성된 상태로 현재에 충실하면서 감각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판단하지 말고 그저 관찰하라고 가르친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를 해체하는 것이 범주화를 보류하는 데 도움이 됨. 그러나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뇌는 예측을 결코 멈추지 않으므로 개념을 끄는 것도 불가능. 어마어마한 연습을 통해 도달가능한 이런 상태는 내게 신생아의 평온한 각성상태를 연상시킨다. 이런 상태에서는 신생아는 불안한 기색 없이 세계를 관찰하고, 아기의 뇌는 예측오류에 편안하게 파묻혀 있다. 신생아는 감각을 경험하되 붙잡지 않는다. 명상을 통해 도달가능한 경지도 이와 비슷. 이 상태에 도달하려면 오랜 기간의 연습이 필요하므로, 차선책은 당신의 사고, 느낌, 지각을 손에서 놓기 쉬운 신체감각으로 범주화하는 것. 명상을 활용해 처음에는 신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범주화를 우선시하고, 그다음에는 당신에게 또는 세계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자리에 더 많은 심리적 의미를 부여하는 범주화를 탈우선시하려고 시도하라.
- 당신의 면역체계는 침입자와 상해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주는 역할. 이것은 어쩌다 망치로 손가락을 치거나 꿀벌 침에 쏘여 부어오를 때 또는 병원균 때문에 부어오를 때 염증을 일으켜 당신을 도와준다. 염증은 전염성 시토킨이라는 작은 단백질에서 일어남.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세포는 감염부위로 혈액을 끌어당겨 온도를 높이고 부어오르게 하는 시토킨을 분비. 이런 시토킨이 당신이 낫도록 분주히 도와주는 동안 당신은 피곤하다든가 일반적으로 아프다고 느낄 수 있음. 그러나 전염성 시토킨은 채권추심에 적합한 조건이 주어지면 나쁜 녀석이 될 수도 있음. 이것은 특히 당신의 신체예산이 균형을 잃었을 때, 예컨대 당신이 우범지역에 살고 있어서 매일밤 총소리를 들을 때 더욱 심화됨. 이런 고약한 환경에서는 당신의 뇌가 신체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곧잘 예측할지도 모른다. 이런 예측은 필요이상으로 당신의 신체에 코티솔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방출하게 함. 코티솔은 일반적으로 염증을 억제(하이드로코티존 크림이 가려움을 완화하고 코티존 주사가 부어오름을 감소시키는 것도 이 때문) 당신의 혈액에 코티솔이 장기간에 걸쳐 너무 많이 있으면 염증이 확 일어난다. 그러면 당신은 무기력감을 느끼고 열이 나기 시작. 만약 누가 당신의 코에 감기 바이러스를 주입하면 당신도 아픈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악순환이 이어진다. 염증 때문에 피곤하다고 느낄 때 당신은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뇌가 착각한 것)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은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운동도 게을리한다. 그러면 예산이 더욱 더 균형을 잃게 되고 당신은 진짜 몸이 좋지 않다고 여김. 체중이 늘지도 모른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정 지방세포가 염증을 악화시키는 전염증성 시토킨을 실제로 만들어내기 때문. 또한 당신은 사람들을 기피하기 시작할지도 모름.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신체 예산이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연결이 더 적은 사람들은 전염증성 시토킨이 더 많아 병에 더 자주 걸릴지도 모름
- 약 10년던 과학자들은 전염증성 시토킨이 신체에서 뇌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 또한 이제 우리는 뇌가 이런 시토킨을 분비하는 세포가 포함된 염증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비참한 느낌을 유발하는 능력을 지닌 이 작은 단백질은 뇌의 배선에 변화를 일으킨다. 염증은 뇌에서, 특히 내수용 신경망 내에서 뇌구조 변화를 일으킴. 이것은 신경 연결을 방해하고 뉴런을 죽이기도 함. 또한 만성 염증은 주의력과 기억력, 지능검사결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음
-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우울증은 부정적 사고가 부정적 느낌을 야기한것. 이 책에서는 반대로 생각. 예측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지금 이 순간 느낌이 당신의 지각뿐만 아니라 당신의 다음 사고를 가동시킴. 따라서 우울한 뇌는 과거의 비슷한 인출예측을 바탕으로 가차없이 예산으로부터 인출한다. 이것은 어려운 사태와 불쾌한 사태를 끊임없이 다시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 즉 예측 오류가 무시되고 과소평가되어 뇌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결국 예산불균형의 순환에 빠져들고, 예측오류로는 이것을 깰 수 없음. 실제로 당신은 수정되지 않은 예측의 순환에 갇히고, 물질대사 수요가 높았던 과거의 어려웠던 때에서 빠져나오지 못함. 우울한 뇌는 사실상 고통에 갇혀 있다. 또한 만성통증의 뇌처럼 예측오류를 무시한다. 그러나 훨씬 더 큰 규모로 당신을 망쳐놓는다. 당신의 예산을 만성적자 상태로 만든다. 따라서 당신의 뇌는 소비를 줄이려고 한다. 소비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꼼짝 않은 채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이것이 우울이라는 무자비한 피로이다. 만약 우울증이 만성 예산불균형에 의해 야기된 장애라면, 엄밀히 말해 우울증은 정신질병만은 아니다. 우울증은 신경, 물질대사, 면역과도 관련된 질병이다. 우울증은 신경계의 수없이 뒤엉킨 부분의 불균형이다. 이 뒤엉킨 부분은 기계의 부품처럼 따로 떨어진 하나의 체계로 간주해서는 이해할 수 없고 전체 사람으로 간주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
- 불안은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감정, 고통, 스트레스와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된 범주인 것 같다. 당신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느끼는 비참함은 신체예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당신에게 말한다. 그래서 뇌는 자금을 확보하려고 애쓰면서 불쾌한 정동을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자금수요를 줄이려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피로를 초래. 당신의 뇌는 이런 감각을 불안, 우울 또는 경우에 따라 고통, 스트레스, 감정 등으로 범주화. 분명 밝히지만 주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가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님. 정신질환의 각 범주가 다양한 사례의 개체군이며, 특정 증상 집합은 불안장애로 범주화하든 우울증으로 범주화하든 똑같이 합당할 것이라는 점. 또한 증상의 심각도도 고려해야 함. 헬렌 메이버그가 다루었던 몹시 우울한 몇몇 환자는, 긴장증에 가까운 환자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불안장애로 진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루었던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환자들은 불안, 만성 스트레스, 또는 심지어 만성 통증으로 진단되어도 충분히 합당할 것임. 일반적으로 말해 중간정도로 심한 우울증과 불안은 증상 프로필이 서로 중첩될 수 있으며 만성 스트레스, 만성통증, 만성피로 증후군과도 중첩될 수 있다
- 배심원과 재판관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들은 독심술사가 되거나 거짓말탐지기가 되어야 함. 또 어떤 사람이 상해를 야기하려고 했는지 결정해야 함. 법률제도에 따르면 의도는 피고얼굴의 코만큼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예측하는 뇌에 있어서, 누군가의 의도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당신이 탐지한 사실이 아니라 피고의 행동을 근거로 당신이 구성한 추측이다. 감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도에 대해서도 지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기준이 없다. 70년간의 심리연구는 이런 판단이 심리추론, 즉 추측임을 뒷받침한다. DNA증거가 피고를 범죄 현장으로 연결해 줄지라도 이것은 피고가 범죄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결정하지 못한다
- 법은 대체로 만성통증을 감정적인 것으로 간주. 관측가능한 조직손상이 없기 때문. 이런 사례들에서 법은 보통 보상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림.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종종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음. 환상에 불과한 고통을 감소시키려고 침습수술을 선택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의료보험회사는 만성통증이 신체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다. 만성통증 환자는 일을 할 수 없는데도 보상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성통증은 십중팔구 뇌의 잘못된 예측질병이다. 고통은 실제로 존재한다. 법은 예측과 시뮬레이션이 뇌 작동의 정상방식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만성통증은 정도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 감정은 표현되지도, 표출되지도 않으며, 그밖에 어떤 식으로든 얼굴, 신체, 목소리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죄와 유죄 또는 처벌을 결정하는 사람은 이것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신은 분노, 슬픔, 회한, 또는 다른 사람의 어떤 감정을 인식하거나 탐지할 수 없다. 오직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 인간의 뇌에 사전 설정된 정신적 개념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쾌감과 불쾌감, 동요와 평온, 시끄러움과 조용함, 밝음과 어두움, 그밖에 의식의 몇몇 속성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다양성이 표준. 인간의 뇌는 주변상황에 따라 다양한 많은 개념을 학습하고 사회적 실재를 발명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물론 이런 다양성이 무한하거나 자의적인 것은 아님. 이것은 뇌의 효율과 속도를 높일 필요성, 외부세계, 사이좋게 지낼지 아니면 앞지를지를 둘러싼 인간적인 딜레마 등에 의해 제약을 받음. 그리고 당신이 속한 문화는 이 딜레마에 대처할 때 사용할 특정 집합의 개념과 가치와 관습을 당신에게 건넨다. 보편적 개념들이 가진 보편적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가 같은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 따라 배선이 진행되어 결국에는 여러종류의 마음을 산출하는 복잡한 뇌로 충분하다
- 정동실재론, 즉 당신이 믿는대로 경험하는 환상은 당신 뇌의 배선 때문에 필연적이다. 내수용 신경망의 신체예산관리부위(메가폰을 들고 설치는 당신 내부의 시끄럽고 고집불통인 과학자)는 뇌에서가장 강력한 예측자이고, 일차감각부위는 열렬한 청취자이다.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정동이 실린 신체예산 예측은 당신의 경험과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운전자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음식이 맛있다면서 마치 이 맛이 음식에 담겨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맛은 구성물이고 맛있다는 느낌은 우리 자신의 정동이다. 교전지역의 병사가 누군가의 손에서 총이 없는데도 총을 지각할 때, 그는 실제로 총을 본다. 이것은 오류가 아니라 원래 지각이 그런 것이다. 가석방 심리중에 배가 고픈 재판관은 더 부정적인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듯 정동실재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당신의 지각은 세계를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처럼 사진같은 그림도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지각은 반 고흐나 모네의 작품을 닮았다. 또는 아주 안 좋은 날이면 잭슨 폴락의 작품에 더 가까울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정동실재론의 효과를 통해 이런 것들을 인식할 수는 있다. 어떤 것이 맞다는 직감이 들 때, 어떤 소식을 듣거나 어떤 이야기를 읽고 그것이 곧바로 믿길 때, 또는 어떤 메시지를 곧바로 물리치거나 심지어 그 전달자를 싫어할 때 이것은 정동실재론에 의한 것이다.
- 개념은 당신의 머리속에 있지 않다. 당신과 내가 커피에 관해 수다를 떤다고 상상해보라. 내가 재치있게 한마디 하자, 당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내 뇌가 당신의 미소와 끄덕임을 확인했따면, 그리고 내 뇌에 들어온 시각입력을 통해 이런 움직임이 확증되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향해 똑같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내 예측이 내 행동이 된다. 그러면 다시 당신은 다른 많은 가능성과 함께 내 끄덕임을 예측했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은 다시 당신의 감각입력에 변화를 야기하고 당신의 예측과 상호작용한다. 다시 말해 당신의 뇌에 있는 뉴런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직접 연결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나와 상호작용하는 것과 같은 외부환경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이루어짐. 우리는 예측과 행동의 동기화를 통해 서로의 신체예산을 조절한다. 이런 동기화는 사회적 유대와 공감의 토대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에도 결정적으로 작용. 그러므로 당신의 개인적 경험은 당신의 행동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성됨. 당신이 세계를 비틀면, 세계가 당신을 다시 비튼다. 당신은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당신 환경의 설계자일뿐만 아니라 당신 경험의 설계자 이기도 하다. 당신의 움직임이, 그리고 그에 따른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이 당신의 감각입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통해 모든 경험이 그렇듯이 당신의 뇌는 재배선될 수 있따.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 경험의 설계자일 뿐만 아니라 배선을 직접 담당하는 전기기사이기도 하다
- 개념은 인간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또한 개념을 통해 본질주의로 가는 문이 열린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 개념은 있지 않은 것을 보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파이어슈타인의 '무지: 과학의 추진력'은 다음과 같은 옛 속담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고양이가 없으면 더욱 그렇다' 이 말은 본질에 대한 탐새을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본질을 찾아 헤맨 수많은 과학자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잘못된 개념을 지침으로 삼아 가설을 세웠기 때문. 파이어슈타인은 우주에 가득 차 있어 빛 이동의 매질로 기능한다고 여겨진 신비의 물질인 발광성 에테르를 예로 든다. 파이어슈타인이 설명하듯이 에테르가 검은 고양이였으며, 물리학자들은 어두운 방에서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하면서 있지도 않은 고양이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다.
- 본질주의는 인간본성에 대한 견해를 넘어 세계관까지 제시한다. 본질주의는 사회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위치가 당신의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암묵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당신이 남보다 더 똑똑하거나 더 빠르거나 더 힘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 달리 당신이 성공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사람들은 자격이 있는 만큼 얻고 얻는 만큼 자격이 있다. 이것은 유전적으로 공정한 세계에 대한 신념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과학처럼 들리는 이데올로기다. 우리가 확실성으로 경험하는 것은, 즉 자기자신, 다른 사람, 주위 세계에 관해 무엇이 진실인지 안다는 느낌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잘 헤쳐 나가도록 뇌가 꾸며낸 착각이다.  이따금 확실성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예컨대 우리는 모두의 성격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하곤 한다. 그 남자는 너그러워, 그여자는 정직해, 당신의 상산느 멍청이야. 우리는 확실성의 느낌에 사로잡혀 마치 이들의 너그러움, 정직, 멍청함이 실제로 이들의 본질이며, 이들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것들을 객관적으로 탐지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기 쉽다. 이런 태도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행동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런 행동이 정당하다고까지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너그러운 남자는 그저 당신에게 잘 보이려는 것일수도 있으며, 정직한 여자는 은밀히 자기 잇속을 챙길수도 있고, 당신의 멍청한 상사는 집에 앓아 누운 아이 때문에 마음이 딴데 가 있을수도 있다. 확실성은 다른 설명가능성을 놓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파악을 제대로 못할만큼 어리석거나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의 뇌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감각입력에 대해 하나이상의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따. 실재가 무수하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 이상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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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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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심리 2017. 11. 15. 17:50

- 아들러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명백히 부정함. 이런 면이 굉장히 새롭고 획기적임.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은 마음의 상처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생각. 인생을 거대한 이야기라 보았을때, 그 이해하기 쉬운 인과법칙과 드라마틱한 전개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 '어떠한 경험도 그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함.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거나 어린시절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음. 분명이 영향은 남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함.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 어떻게 사는가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
-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유효한 수단도 써보지 못한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함. 그 결과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절망하고 인생을 포기하며 살다가 결국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빠지게 됨. 트라우마 이론으로 대표되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은 형태만 다른 결정론이자 허무주의의 입구임
-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됨. 고민을 없애려면 우주공간에서 그저 홀로살아갈 수 밖에 없다.
- 인간의 고민은 죄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며, 이는 아들러 심리학의 근저에 흐르는 개념. 만약 이 세계에 인간관계가 사라진다면 그야말로 우주공간에는 단 한사람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 사라진다면 온갖 고민도 사라질 것.
- 우선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태어났음. 그리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보편적 욕구를 갖고 있으며, 아들러는 이를 우월성 추구라고 했다.
- 열등감 자체는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님. 아들러도 말했듯이 열등감은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함.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 A라서 B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며, 그것은 열등 콤플렉스
- 권위의 힘을 빌어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맞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됨. 자기 공을 자랑하며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걸핏하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추억담을 늘어놓는 사람. 이런것도 우월 콤플렉스라 할 수 있음.
- 정말로 자신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것.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 함.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봐 겁이 난다. 이는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임.
-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
-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며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 남기 때문.
-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하는 것. 하지만 경쟁의 도식에서 해방되면 누군가에게 이길 필요가 없다.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도 해방됨.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도 있다.
-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분노라는 도구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노 이외의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욱해서라는 말이 나오는 거고, 분노를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 함께 있으면 왠지 숨이 막히고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지는 관계는, 연애는 가능해도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반면 구속이란 상대를 지배하려는 마음의 표징이며, 불신이 바닥에 깔린 생각.
-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을 받는다.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 아들러는 이런 상벌에 의한 교육을 비난. 상벌교육의 결과로 생기는 것은 '칭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 등과 같은 잘못된 생활양식. 칭찬받고 싶은 목적이 있어 쓰레기를 치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칭찬받지 못하면 분개하거나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됨
-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 과제를 분리할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는 급격히 달라짐.
-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함.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만약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을 때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희망하는 학교에 못간다)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님. 즉 공부는 아이의 과제
- 세상 부모들은 흔히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명배기 자신의 목적(세상의 이목, 체면, 지배욕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동. 즉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그 기만을 알아차리면 아이들은 반발함
- 아들러 심리학은 방임주의를 권하는 것이 아님. 방임이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시를 전하는 것.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함.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잔소리를 해서는 안됨
- 아이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의 인생은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아이의 과제까지도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떠안는다. 그렇게 늘 아이만 생각하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인생에서 나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어느정도 아이의 과제를 떠맡았다고 한들 아이는 독립적 개인임. 부모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음. 진학할 학교, 직장, 결혼상대, 일상의 사소한 언행마저도 부모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음. 당연히 걱정도 되고, 개입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타인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설령 내 자식이라도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과 타인의 과제를 떠안는 것은 인생을 무겁게 짓누른다. 만약 인생에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면 그 고민인 인간관계에 있으니,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며 경계선을 정할 것. 그리고 타인의 과제는 버릴 것. 그것이 인생의 짐을 덜고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첫걸음
-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 그래서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면 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간단함. 아직 과제를 분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본래는 타인의 과제여야 할 것까지 내 과제라 생각. '내 얼굴을 주의깊게 보는 사람은 너뿐이다.' 그 말에는 과제분리의 핵심이 담겨 있음. 다른 사람이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그건 그 사람의 과제임. 내가 이러쿵저러쿵 따질 문제가 아님
- 먼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할 것. 그리고 과제를 분리.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도 개인관계의 고민을 단숨헤 해결할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만의 획기적인 면이다.
-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런 욕망이며 충동이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칸트는 그런 욕망을 가리켜 경향성이라 명명. 본능적 욕망, 충동적 욕망이란 뜻. 그런 경향성에 이끌린 채, 다시 말해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려 사는 것, 비탈길을 굴러내려가는 돌멩이처럼 사는 것이 자유일까? 그런 삶은 욕망과 충동의 노예가 될뿐. 진정한 자유란 굴러내려가는 자신을 아래에서 밀어올려주는 태도
-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 '그때 맞아서 사이가 틀어졌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입각한 발상. 아들러가 주창한 목적론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가 역전되는 셈. 즉 나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서 맞은 기억을 꺼내들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 생활양식이다.
- 칭찬한다는 행위에는 능력있는 사람이 능력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측면이 포함됨. 저녁식사 준비를 돕는 아이에게 '엄마를 도와주는 거야? 착하기도 해라'라고 칭찬을 한다면 남편이 같은 행동을 해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 장하다, 잘했다, 훌륭하다 칭찬하는 것은 엄마가 아이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고 무의식중에 상하관계를 만들려는 것. 동물훈련 사례는 그야말로 칭찬의 배후에 있는 상하관계, 수직관계를 보여줌. 인간이 남을 칭찬할 때 그 목적은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상대를 조종하기 위한 것' 거기에는 감사하는 마음도, 존경하는 마음도 없다.
- 누군가의 칭찬을 받고 싶다고 바라는 것, 아니면 반대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 이는 인간관계를 수직관계로 바라본다는 증거. 칭찬받기를 원한다면 수직관계에 익숙해졌기 때문.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
-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을수록 '나는 능력이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 칭찬받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국은 타인의 가치관에 맞추어 삶을 선택하게 된다
- 칭찬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직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며, 나는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 칭찬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
-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됨
- 우리는 타인을 행위의 차원에서 보고 있다. 즉 그사람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차원에서만.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자리에 누워만 있는 노인은 주변사람에게 폐만 끼치고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 하지만 타인의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 타인이 무엇을 했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느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
-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자기만의 이상적 모습을 멋대로 지어내고,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를 내림. 예를 들어 부모님 말에 일절 말대꾸도 안하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진다. 그런 이상적인 아이를 만들어 노호는 자식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불만을 갖는다. 이상적인 모습을 100점으로 놓고 천천히 점수를 깎는다. 이거야 말로 평가라는 발상. 그러지 말고 아이를 누구와 비교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그저 거기에 있어주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 이상적인 100점에서 감점하지 말고 0점에서 출발하라. 그러면 존재 그 자체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 과제를 분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할수 있는 것과 변할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함.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할 것. 이것이 아들러의 자기수용이다.
- 열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사람은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명중 두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은 이도저도 아니다. 이때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한명만 보고 세계를 판단한다
- 인간은 내가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 왜 특별해지려 할까. 그건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 특별히 잘하는 상태가 실패로 돌아가면 극단적으로 특별히 못되게 구는 상태로 빠르게 넘어감. 그런데 보통인 것, 평범한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걸까? 어딘가 열등하다는 뜻인가? 실은 누구나 평범하다.
- 우리가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평범해지는 것을 무능해지는 것과 같다고 착각해서임.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님.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선(line)으로 파악.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선이 크고 작은 굴곡을 그리며 정점에 다다르다 그대로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맞이. 하지만 인생을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것은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입각한 발상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는 사고방식. 인생은 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연속되는 것. 분필로 그어진 실선을 확대경으로 보면, 선이라고 여겨진 것이 실은 연속된 작은 점.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다시 말해 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임
-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란 찰나안에서만 존재. 이걸 알지 못하는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선의 인생을 강요함. 좋은 대학, 대기업, 안정된 가정 등 이런 선로를 따라가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면서. 그래도 인생은 선이 아니다.
- 만약 인생이 선이라면 인생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점의 연속. 계획적인 인생이란 그것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불가능한 것임
- 일반적인 운동을 키네시스라 함. 여기에는 시점과 종점이 있다. 그 시점에서부터 종점에 이르는 운동은 가능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 급행열차를 탈 수 있다면 일부러 역마다 정차하는 보통열차를 탈 필요가 없는 것처럼...반면 에네르게이라란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운동을 가리킴. 달리 말하면 과정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이라고나 할까. 춤을 추는 것이나 여행처럼.
- 여행의 목적은 무얼까. 이집트 여행을 가정하면 우리는 되도록 효율적으로 빨리 피라미드에 도착했다가 그대로 최단거리로 돌아올 것인가. 그런건 여행이 아니다. 집에서 나온 순간,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다.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을 포함해 모든 순간이 여행. 물론 어떤 사정이 생겨 피라미등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것이 에네르게이아적 인생
- 등산의 목적이 정상에 오르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키네시스적 행위임. 극단적으로 말하면 헬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5분가량 머무르고 다시 헬기를 타고 내려와도 상관없다. 물론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경우 그 등산은 실패고. 하지만 목적이 산 정상이 아니라 등산하는 그 자체라면 에네르게이아적 행위임. 산정상에 올랐는지는 관계 없다.
- 우리는 좀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함.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음.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 함.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지 간에 '지금, 여기'와는 상관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서게 되면 인생을 원인과 결과로 구성된 하나의 큰 이야기로 보게 됨.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떤 어린시절을 보내고,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회사에 들어가는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고, 미래의 내가 있다는 식으로. 확실히 인생을 이야기에 비유하면 재미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래봤자 그 이야기의 끝에는 흐릿한 미래가 보일 뿐. 그럼에도 그 이야기에 따라 살려고 한다. 내 인생은 이러니까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쁜 것은 내가 아니라 과거인 환경이다. 이렇게 과거를 들먹이며 탓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면죄부를 주는 것. 인생의 거짓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인생은 점의 연속이며, 찰나의 연소깅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더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
- 생활양식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 직선처럼 보이는 과거의 삶은, 우리가 '바꿀 수 없다'는 결심을 번복한 결과로 그렇게 보이는 것에 불과.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완전히 백지상태에 놓여 있다. 쭉 뻗은 레일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이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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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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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심리 2017. 11. 4. 10:37

-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는 철학자들의 주장에 익숙. 그래서 모든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이유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함. 매우 비과학적인 인간중심적 사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세상의 많은 책이 행복해지기를 위해 의미를 찾아라, 가진 것에 만족해라, 긍정적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을 함. 즉 생각을 바꾸라는 것. 맞는 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허한 말장난 같기도 하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한다. 이런식의 행복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기 어려울까? 행복은 사람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생존에 절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상의 경험들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최근 많은 학자가 의식적 사고의 중요성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생각하는 모습을 인간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는다. 왜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이토록 숭배할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 볼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이 보이는 부분이 실제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
- 우리는 의식적인 부분이 자기 행동의 원인이라고 믿음. 사실 일상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은 의식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짐. 예를 들어 레몬향을 맡으면 사람이 갑자기 청결에 신경을 쓰게 됨. 세척제에 주로 레몬향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 무의식에서 이 둘(레몬향과 청결)은 연결된다. 두 사건이 연합되는 경우, 하나(레몬향)가 활성화되면 거기에 연결된 고리(청소)도 함께 활성화된다. 이 과정이 본인도 모르게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레몬차를 마시던 엄마가 갑자기 걸레를 찾는다고 하자. 왜그러냐고 딸이 물으면 엄마는 의식수준에 떠오르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 사회심리학자 팀 윌슨은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같은 존재라고 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게 자기 자신임.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면 인간을 그저 생각하는 단백질 덩어리로 착각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문제도 생각이라는 아주 좁은 테두리 안에서 논하게 되고, 결국 행복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다
-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녀의 기질차이가 발생. 예를 들어 여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지향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 그러나 수컷은 다르다. 어차피 최고가 못되면 짝짓기에서 낙오된다. 매사에 모 아니면 도와 같은 극단적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작은 것에도 승부욕이 강함. 작은 골프공을 김부장보다 몇미터 더 날리려고, 연습장에 출근하며 쇠막대를 수천번 흔드는게 남자다. 승부욕 있는 수컷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드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다. 풀 한포기에서 국가수상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예외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 뇌는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일종의 생존기계다. 사자는 피하고, 믿을 만한 녀석과는 고기를 나누어 먹고 등의 깨알 같은 생존팁들이 담겨 있다. USB로 주지 않고, 유전적 정보로 저장해 우리 뇌에 심어 놓았다. DNA코드로 작성돼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적인 머리로는 완전히 해독되지도 않는다. 사실 우리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몸이 손가락을 5개 만들도록, 체온이 떨어지면 몸을 떨도록,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정신을 쏟도록 자동 실행된다. 뇌는 생존경쟁에서 직면하게 되는 과제들이 무엇이고, 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느 수백만년간의 생존기록서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세상과는 더이상 맞지 않는 습성도 있음. 식량문제가 해결됐지만, 아직도 우리몸은 지방이나 달콤한 음식에 정신을 못차람. 과거 우리에게 긴요했던 생존장치가 이제 약보다 병이 된 것은 우리 뇌가 문명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
- 근친관계를 막는 첫단계는 우선 상대와의 혈연관계 여부를 파악하는 것. 인간은 어떤 단서를 통해 이런 판단을 내릴까? 학자들에 의하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단서는 유아기때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 형제이기 때문. 물론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형제라는 단순한 공식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님. 예를 들어 이스라엘 키부츠 집단에서는 형제가 아닌 남녀가 어릴 때부터 함께 생활.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중 성인이 되어 서로 결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키부츠 출신의 남녀 아이는 서로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하지만 이들의 뇌에는 너희는 어릴때 너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어...수상해라는 경계이 신호가 켜진다. 그래서 성인기에 이르면 서로에 대한 성적 매력이 억제됨. 머리로는 혈연관계가 아님을 알지만 사랑의 화학호르몬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 미국 66개 도시 소비 형태를 분석해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사는 곳일수록 남자들의 과소비가 심함. 짝짓기 경쟁이 심할수록 무리한 지출을 해서라도 이성을 유혹하겠다는 의미. 그래서 남자가 넘치는 도시일수록 남자들의 카드빚과 부채율이 높다. 돌 대신 돈을 무기로 들었을 뿐, 구석기 시대의 수컷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이런 동물적인 모습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함. 도대체 어떤 여자가 자신이 가임기때 아버지와 접촉을 피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남자가 다른 수컷들이 나타나면 자기가 무리하게 카드를 긁는다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가? 그래서 완벽히 속는다. 자신은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련되고 고결하고 기품있는 존재라고 믿으며 사는 것이다. 인간은 이 자화자찬의 몽상에 수천년간 빠져 있었다.
-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 기초위에 현재의 행복연구는 세워졌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모든 행위는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상의 일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 혹은 수단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한 철학자가 가졌던 개인적 견해일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 칼텍의 물리학자 캐롤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 위트 자체가 생존필수품은 아니다. 그러나 위트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수준을 나타낸다. 위트는 창의성의 표현이며, 높은 창의성을 가진 사람은 멋진 꼬리를 소유한 인간 공작새가 되는 셈. 창의성이나 별다른 재주가 없는 수컷에게 남는 옵션은 하나다. 다이아 같은 값비싼 돌을 선물하는 것이다.
- 행복의 본질은 개에게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 서핑과 생존, 차원이 다른 두 목표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필요하다. 개 주인이 사용한 수단은 새우깡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돌고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은 기막한 설계를 했따.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나다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 왜 동물은 쾌와 불쾌의 잣대로 경험을 나누는 것일까? 생존과 밀접한 결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 쾌와 불쾌의 신호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기회를 포착하도록 응원함. 뱀, 절벽, 사기꾼, 썩은 음식, 치명적 위협들이다. 이때 우리의 뇌는 두려움이나 역겨움같은 불쾌의 감정을 유발시켜 위험하니 피하라는 메시지를 전달. 감정은 그 어떤 매체보다 즉각적이고 강력하며 효율적이기 때문. 그러나 단지 위험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생존 불가. 비옥하지만 가보지 않은 낯선 땅, 매력적인 이성, 절벽에 붙어 있는 꿀이 가득한 벌집, 지금 당장 손에 쥐지 못한다고 실신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자원을 확보해야 함. 번호표를 쥐고 기다린다고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두렵지만 길을 나서야 하고, 고단하지만 열번을 찍어봐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의욕과 에너지를 요구. 따라서 그 노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 쾌감을 유발하는 정서들이 바로 이런 역할은 한다.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이런 치명적 매력을 가진 경험을 한번 맛보게 되면 또다시 경험하고 싶어짐. 그것을 유발시킨 모든 사건, 물체, 장소, 사람을 또 찾아나선다. 올스와 밀너 실험의 쥐들처럼,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장기적 생존확률은 높아진다.
- 오랜 진화과정중 어떤 큰 변화가 호모사피엔스의 뇌 발달에 기여했을까?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주요사건들과 유골의 크기 변화를 비교해보면 된다.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림. 약 10여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약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됨.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던바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 인간이 인공위성을 띄우고 힉스 입자를 발견했지만, 이런 위업들은 사실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위해 똑똑해진 뇌에서나온 부산물. 그래서 비사회적 과제들은 그토록 낯설다.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골프는 뇌가 디자인된 원래 목적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 마치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도 덜어준다. 놀랍지만 가능하다.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선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 핀란드의 인테리어 소품 등을 디자인했던 알바알토의 얼굴을 화폐에 새긴 나라다. 일상의 작은 경험의 가치를 아는 나라의 상징적 모습이다. 행복한 사회의 특성중 하나다.
- 돈은 마음막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줌. 그래서 초콜릿 같은 시시한 것에 마음두지 않게 하고, 이런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킴. 심지어 사람이라는 자극에도 관심을 덜 갖게 함. 돈을 생각할수록 카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덜 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사양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초콜릿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복권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꼴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음.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짐
-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 사람들의 행복값을 비교하면,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음.  즉, 내가 다른 사람의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는 관련이 없음.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과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 영어로 becoming과 being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는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
-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거라고.
- 적응이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 행복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보면 야속한 일이다. 수년동안 몸과 약간의 영혼까지 팔아서 얻은 승진이 주는 즐거움도 불과 며칠이다. 그래서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표현이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쓰여왔다. 적응 때문에, 그 무엇을 얻어도 행복은 결국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뜻이다.
-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이유다. 그리고 수십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함.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되어버리기 때문
- 행복한 한방에 해결되는 것이 아님.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 행복의 기쁨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외햐엉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 외에도 외향성이 높을 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둠.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찾는 본질적 이유가 자극추구임.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인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상대도 많다.
- 왜 사람에게 행복이 그토록 중요할까? 뇌의 행복전구가 켜지는 것은 개가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때다. 역으로 의무감이나 수단으로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장 피곤한 일이 될 수 있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역시 사람때문이다.
-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 소득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은 상당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소득과 행복과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즉,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역으로 이 접착제가 부족한 사회는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도 거기에 상응하는 행복감이 뒤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음.
- 개인주의 문화의 어떤 점이 개인의 행복 성취를 유리하게 만들까? 역으로 집단주의 문화의 부족한 점은 무얼까? 우선 심리적 자유감이다. 자유감이란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님.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보편적으로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고, 이렇게 살기 위해 세상과 문을 닫고 기인이 돼야 하는 문화가 있다. 행복이라는 씨앗은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 우리나라의 집단주의적 문화에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장점은 일단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무서운 응집력과 추진력을 발휘한다는 점. 축구응원, 금모으기 같은 것이 그 사례다. 한국의 기적적 경제발전도 이 덕분이다. 위기와 어려움에 대처하기 적합한 구조다. 하지만 만성적 긴장과 피로가 수반된다.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옆으로 자유롭게 흩어져 있는 모양이 아니라 서열에 의해 위아래로 세워져 있는 식이다. 팀장과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런 수직적 문화에서는 구성원 각자에게 주어진 뚜렷한 역할이 있다. 자신의 칸 안에서 그 역할만 감당하면 된다. 가족으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주변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움. 그래서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이렇듯 타인중심적 생각은 행복 성취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음
- 파스타를 먹기 전에, 록키 산맥의 장관 앞에서 우리가 꼭 치르는 의식이 있다. 바로 사진찍기. 이렇게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영혼의 내용물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얼굴형과 콧대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나라는 존재에 미치는 타인의 존재감이 너무 큰 것이다. 이렇드 과도한 타인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자아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한국인들은 자칫하면 타인에게 삶의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세상을 나의 눈으로 보기보다 남의 눈을 통해 보려고 한다. 이때부터 행복의 걸림돌을 여기저기 만나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우선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대단한 스트레스다. 인간의 뇌는 철저히 사회적인 뇌다. 생존과 직결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뇌의 최우선적 임무중 하나.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관심과 주의가 자동으로 집중되고, 집중하는 만큼 피로와 불안도 쉽게 온다.
-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인이 모든 판단기준이 되면 내 행복마저도 왠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될 것은 느낌이 든다.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다. 이 과정에서 행복의 또하나의 적이 탄생. 과도한 물질주의적 가치, 저 사람 '행복할 만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우선 남들이 볼 수 있는 구체적 증거들이 필요. 내용보다 외형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뒤바뀌고 있다. 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가 되려하고, 가장 빠른 직구를 던지려 할까? 즉, 왜 자아성취를 하려할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온갖 도덕적, 철학적 이유를 더한 장황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해것은 모든 것을 간명하게 만들었다. 금각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피카소, 칭기즈칸 뿐만 아니라 자아성취의 교과서적 인물인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사실은 대단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금강산을 찾아가는 이유를 본인도 모른다. 그래서 본인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까지도 지나치게 긴 설명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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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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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프 패러독스

심리 2017. 11. 2. 20:53

- 우리 마음에는 우리의 경험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두개의 존개가 있는 셈. 그런데 이 두존재 가운데 하나만이 진정한 당신, 즉 인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침프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감정적 기계다. 우리 자신과는 별개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린다. 침프가 제공하는 감정적 사고와 느낌은 매우 건설적이거나 매우 파괴적이다. 침프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침프일 뿐이다. 침프 패러독스란 침프가 당신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적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 당신의 침프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신체언어를 읽음으로써 첫 인상을 형성. 당신의 침프가 종종 사람의 첫인상을 잘못 파악한다는 걸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당신의 침프는 사람의 첫인상을 파악하는 데 더 뛰어난지 알아보라. 만일 그렇다면 친구의 침프에게 의지하는 것도 유용하다. 일부 사람들의 침프는 타인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선천적으로 뛰어난 반면, 어떤 사람들의 침프는 그쪽으로는 영 젬병이다
- 침프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늘 주변에 위험요소가 있는지 기민하게 살피며, 편집증에 걸리기 쉽다. 편집증적 태도로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경계하는 편이 마음놓고 있다가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의 침프가 타인을 의심하고 불신을 갖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침프는 스스로 취약하다고 느낄수록 더욱 편집증적으로 세상을 볼 것이다. 불안해하는 침프는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위험신호를 읽어낸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논평에서 음모와 악의를 읽어내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한다. 침프는 자기 의견을 방어하는 데 더 편집증적 태도를 보인다. 종종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맥락에 맞지 않게 받아들이고 매우 방어적이다. 당신 내면의 침프가 가진 편집증에 대처하려면 노련함이 필요하다
- 침프는 위험요소가 있는지 계속 살피므로 종종 파국적 생각으로 치닫는다. 상황에 과잉반응을 하고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대처.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앞일을 걱정한다. 그리고 끝내 균형감을 완전히 잃는다. 이런 상태는 비관적 전망과 그로 인한 끔찍한 기분, 속이 울렁거리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이런 순가은 종종 흑백논리적 사고로 연결됨. 빠져나갈 길이 전혀 없거나 지금의 상태에서 절대 회복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의미. 침프가 당신에게 전달하는 이런 감정은 무섭고 끔찍해서 상당한 고통을 야기한다. 당신이 침프의 손아귀에서 감정적 격변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생각해보라. 나중에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의 침프는 당신에게 상황에 반응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당신이 침프를 안심시키며 FFF반응 가운데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당신의 신체는 자연스레 아드레날린을 분비. 아드레날린이 부정적 사고와 결합하면 당신의 침프는 불안상태에 빠진다. 불안은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결정을 내리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자연의 방식이다. 불안은 당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찾아온다. 그것은 당신의 침프라 보이는 아주 자연스런 반응이며, 당신의 침프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해답은 결정을 내리거나 침프를 안심시켜주는 것이다.
- 침프는 즉흥적으로 앞으로 해야할일을 결정하는 반면, 인간은 자신이 해야할 일, 그리고 하루가 끝날 무렵 그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볼 때의 기분이 어떤지에 따라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함
-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언제나 일정한 공식을 따른다. 즉 모든 상황과 행동은 먼저 침프에게 입력된다. 입력이 이루어지면 침프는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결정. 걱정할 것이 없으면 침프는 잠자리에 들고 인간에게 자리를 넘겨준다. 걱정할 것인 있는 경우 침프는 뇌의 혈액공급을 움켜쥐고 무슨일이 있는지를 혼자서 판단한다. 인간과 침프 모두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해석에 돌입한다. 인간은 차분하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침프는 감정적 방식으로. 침프와 인간의 이런 차이는 우리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해준다. 우리가 언제 먹고 언제 자야할지 말해주고, 위험을 경고해주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말해준다.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없다. 문제는 침프가 우리에게 부적절한 제안을 하는데, 우리가 침프의 통제를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두어 우리를 완전히 장악하게 만들 때 일어난다.
- 침프 매니지먼트의 시작은 침프의 본능과 욕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당신은 당신 침프의 본질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다르게 프로그래밍될 수 없는 감정적 기계이기 때문. 당신의 침프는 항상 공격성, 신경증, 충동 같은 감정을 가지며 욕구대로 움직이고 본성대로 행동한다
- 침프에게는 영토욕구가 있으며 일정한 영토와 공간을 제공해 침프를 보살펴야 한다. 그것은 방, 아파트, 집, 분명하게 정의된 업무역할, 심지어 세상으로부터 달아나 책을 읽는 심리적 공간일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의 침프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결심한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침프가 아니라 인간이다.
- 어떤 사람들은 감정표출을 힘들어한다. 그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자신의 기분을 글로 적는 것도 좋다. 침프를 당신 혼자서 훈련시킬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침프들은 다른 누군가가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거나 동의해주길 바란다. 감정을 표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소리지르고 난리를 칠 필요는 없다. 차분하게 감정을 표출할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담아둔 것을 털어내고 심사숙고해 적법한 선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침프의 불만 가운데 타당한 주장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라
- 때때로 당신은 이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이것을 침프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 침프가 제안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선택권은 당신, 즉 인간에게 있다. 당신은 감정대로 행동할수도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좀더 건설적 감정을 제시하길 바란다는 것을 침프에게 알려야 한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다. 하루가 끝날무렵 돌이켜보면 인생사가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침프를 가둔다는 것은 침프를 진정시키기 위해 침프가 받아들여야 할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 당신의 인간대신 침프가 생각할 때의 특징은 감정적 상태가 되거나 차분하긴 하지만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이럴 때는 침프가 자신의 감정을 제공한다는 걸 기억하고, 그런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라. 당신은 침프가 감정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아치릴 수 있고 특정한 기술로 그 감정을 다룰 수 있다. 가령 침프가 흑백논리로 생각하고 있다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대안이 무엇인지, 중간지대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예를 들어 당신이 현재 어떤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면 무척 흥분될 것이다. 그것은 좋은 상황이 아니며, 당신을 감정적으로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침프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낼까, 아니면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선시킬까. 이런 딜레마는 인간이 담당해야 할 몫. 인간은 이것이 흑백논리에 의한 생각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제 인간은 중간지대를 찾아야 한다. 대안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명확한 결론을 나중으로 미뤄두는 것도 좋다. 가령 시간을 갖고 떨어져 지내며 전반적인 상황을 분명히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타임아웃을 통해 당신은 침프에게 말을 걸고 침프를 진정시킬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침프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훈련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다.
- 파괴적인 그렘린들이 종종 해야한다는 표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표현에는 반드시 ~해야한다와 같은 경직된 단어가 포함된다. 이런 단어가 모습을 드러낼 때는 신중하게 생각하라. 그것은 종종 부적절하고 당신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 ~해야한다는 표현은 종종 판단, 죄의식 혹은 실패감을 유발하는 반면, ~할수 있다는 표현은 가능성, 희망, 선택, 권한부여, 잠재적 변화를 유발. ~일지도 모른다도 좋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진술을 바꾸어 보자.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비합리적일수도 있다.
-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한다 --> 내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들에게 달렸다
- 그들은 나를 두고 판단할 것이다 --> 그들이 나를 판단할지 말지는 내 소관이 아니다. 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공통 관심사가 거의 없을 것이다. --> 공통 관심사가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언제든 그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 내가 실수라도 하면 그들은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나는 고의로 실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나를 어떻게 볼지는 그들에게 달린 문제다
- 증거를 찾는 침프의 오류. 인간은 증거를 찾고나서 결론을 도출. 반면 침프는 결론을 도출한 뒤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음. 침프의 오류는 누군가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나서 그것을 증명할 증거를 찾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충족적 예언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감정적 사고다
- 당신 내면의 침프 역시 지원군을 찾으려는 욕구가 비슷하게 강하다. 침프는 보호자 역할을 해줄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집단에 소속되어야 할 필요성이 너무 강해서, 종종 집단에 남기 위해 인생과 라이프스타일이 형태를 놓고 타협을 한다. 이제 다 커서 부모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도달한 십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생각해보자. 이런 아이들은 옷차림이나 행동규범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집단을 이룬다. 집단의 리더가 오렌지색 양말을 신으면 오렌지색 양말을 신는게 멋지다고 느끼고 다들 똑같이 신는다. 리더가 초록색 양말을 신으면 모두 초록색으로 바꾼다. 집단은 리더십을 갈망하며, 종종 분열되거나 쇄신된다. 집단에서 제외된 사람은 대개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원군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배제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순응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침프들은 안전보장을 위해 서로 털을 손질해주고 지위가 높은 침프들과 사귄다. 강해보이는 침프와 친구를 맺으려 한다. 따라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원군에서 배제되는 것은 침프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지원군에게 받아들여지고 승인받으려는 침프의 욕구가 얼마나 중요하고 강력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침프는 당신에게 위험이 어디에나 존재하며 지원군에 속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지원군에 머물려면 당신은 인기를 얻어야 하며, 무엇보다 남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지원군 욕구로 인해 침프는 컴퓨터에 몇몇 그렘린을 저장하는데, 나는 모두를 기쁘게 해줘야 해, 나는 항상 나자신을 증명해야 해, 그 어떤 일에도 실패해선 안돼, 모든 것이 중요해 등등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드을 믿기 시작하고 거기에 부응하려 애쓴다. 지원군 욕구가 이런 믿음들 이면의 주된 요인이다. 그것은 학습되고 해로운 습관으로 강화될 수 있다.
- 단호함의 세가지 요소
*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 당신이 원치 않는 것을 말하라
* 당신의 기분이 어떠한지 말하라
*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라
또한 메시지의 전달을 돕기 위해 말을 끊지 말고 들어달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당신이 보기에 사실인 것을 말한다. 들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는 언제나 도움이 된다
-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행복하고 만족하는 합리적 결과에 도달하는 것. 인간은 흑백논리를 사용하지 않고 회색지대에서 판단하고 행동함. 인간은 자기가 틀렸거나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입장을 바꿀수도 있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인간은 무엇이 옳고 사실이며 수용가능한지 깨닫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법도 참고한다. 그것들에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은 의견은 의견일 뿐이며 누가 지고 이기는게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양보한다. 감정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 본성대로 내버려두면 두 침프가 나서서 싸움부터 하고, 온갖 불쾌한 말이 오고간다. 이후 두 침프가 진정되고 그다지 많은 해를 입지 않았다면, 두 인간이 자리를 넘겨받고 둘다 행복해질 지점에 도달하려 할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든 두 인간은 건설적 대화를 할 것이고, 두 침프 혹은 한 침프가 깨어나 다시 공격하고 대화를 망치기 시작할 것이다. 가장 건설적인 대화방식은 각자가 우선 자신의 침프와 대화를 해서 무엇을, 왜 말하고 싶은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자 자신의 침프에게, 네가 원하는 것의 일부는 파괴적이어서 얻어낼 수 없으며 다른 일부는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침프의 합리적 측면을 대변하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건설적 방식으로 행동할 것임. 이것은 어려운 대화에 접근하는 이상적 방법의 첫단계. 하지만 실제 이렇게 하기는 매우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안체 침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 설령 알아차린다 해도, 인간이 나서서 행동하기 보다는 침프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을 택한다
- 무엇을 하라고 지시받는 것을 좋아하는 침프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침프가 스스로 결정한다.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힘과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그들의 침프를 분개하게 하고 대결을 유발할 수 있다. 당신이 선택하는 단어와 그것이 불러일으킬 효과를 신중하게 생각하라
- 때로는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는 것이 옳은 행동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관계를 끝내고 싶다면 '나는 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원하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라. 당신이 사실을 말했으므로 토론할 것이 없다. 반면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끔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으니 이 관계를 끝내자'라고 말하면, 논의의 여지를 남기게 될 거이다. 요점은 반드시 지켜야할 엄격한 규칙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단어가 당신 자신, 당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주변 사람들에게 유발할 효과를 좀더 깊이 생각해보라
- 스트레스는 불편하다는 것을 뜻하는 건전한 반응.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자연의 방식이다. 스트레스는 공격성, 초조함, 우울함, 걱정 등 여러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냄. 이것이 스트레스의 증장이며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스트레스 제거의 첫걸음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당신에게 경고하기 위해 많은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이 그 대표적인 화합물. 스트레스는 물리적인 것일수도 심리적인 것일수도 있다. 물리적인 스트레스의 예는 탈수상태다. 신체가 스트레스에 반응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갈증을 느끼게 함. 이때 물을 마시면 상황이 바로잡히고 스트레스가 제거됨. 심리적 스트레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함. 즉 스트레스를 느끼면 그것을 적절하게 다룰 건설적 방식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스트레스에 수동적으로 반응만 보일수도 있고, 아니면 스트레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갑자기 닥치더라도 그에 맞는 대처방법이 있다.
- 힘들지만 받아들이고 행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현재의 상황에 빠져 분노와 씁쓸함을 안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냐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따. 보통 슬퍼하기보다는 화를 내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일이 잘못되거나 뭔가에 실패했을 경우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당신이 가진 것에서 출발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만성 스트레스 예방하기.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의 발생을 막아주는 방법이 있듯, 만성 스트레스가 커질 가능성을 줄여주는 방법도 있다. 만성 스트레스는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지 않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생긴다. 이런 일상성은 스트레스를 다루는 용인된 방법이지만, 파괴적이고 해롭다. 달리 말해 스트레스를 일상에 받아들였다는 것은 컴퓨터 안에 체념과 형편없는 대처전략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
- 만약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당신이 보기에 스트레스를 유발한 것들을 종이에 적어보는 것이 유용하다. 복잡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풀어내려고 해 봐야 별 소득이 없다. 문제를 유발한 특정 요인들을 찾아 제거하지 못하고 계속 맴돌기만 할 뿐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문제를 종이에 적어보자. 간단한  경험규칙에 따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해결영역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보라.
* 문제에 대한 자신의 지각과 태도
* 문제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
* 문제에 개입된 사람들
- 스트레스를 느끼는 데 자신의 행동이나 믿음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당신은 앞으로도계속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당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왜 당신이 스트레스를 제거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도 제거해야 한다. 때로는 무엇을 하든 간에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권리의식, 공평함, 권한부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극복하지 못해, 남들이나 세상과 끝없이 전쟁을 하며 살아간다. 만성적 감정적 스트레스는 종종 세상,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기대와 지각에서 생겨난다.
- 스스로 스트레스에 형편없이 대처해도 자학하지 말라. 그래봐야 쓸데없는데다 자학은 해롭고 나쁜 습관이다. 나쁜 습관은 그렘린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제거할 수 있다. 미소를 짓고, 긴장을 풀고, 열정을 갖고 되돌아오라. 당신은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 자신을 학대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해롭고 파괴적인 두 그렘린이다. 그들은 건설적인 것은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당신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것은 당신이 침프에게 납치된 것임을 기억하라. 당신 자신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 왜냐고 계속 묻지 말고, 가짜 이유를 대려고 들지도 마라. 예를 들어 왜 나는 항상 비참한 기분이 들까? 같은 질문 말이다. 왜라는 질문은 유용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과거를 돌아보는 건설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대신 어떻게 라고 물어라. 어떻게 나 자신의 감정을 다루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는 건설적인 질문이다. 왜 나는 비참한 기분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을까?보다 훨씬 낫다. 왜 이런일이 일어난거지?라는 질문은 이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까?로 대체할 수 있다.
- 재활단계에서는 당신이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들만 받아들이고 감정적 진통제를 복용하라. 감정적 진통제는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지원을 받는 것이다. 당신의 기분을 알려서 가까운 친구들과 고통을 함께 하라. 가능하면 도움을 받아들여라. 당신 자신에게 친절하게 굴어라.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다루어라. 때때로 감정은 매우 비이성적이다. 그런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잘 다뤄야 한다.
-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헌신앋. 감정에 기반한 동기부여는 침프가 주도한다. 일반적으로 동기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거나 너무 고통스러워서 변화를 원할 때 발생. 동기부여는 우리를 움직이는 데 유용하지만 성공에 필수적이지는 않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매일같이 동기부여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동기부여의 문제점은 침프의 느낌에 따라 움직이고 금세 변한다는 것. 반면 인간에게서 나오는 헌신은 감정에 기반하지 않음. 헌신은 때로 내키지 않더라도 계획을 따르는 것을 의미. 예를 들어 외과의사가 '이걸 마칠 동기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그러니 여기서 그만드겠어'라고 말할수는 없다. 이때 동기부여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 헌신을 통해서는 수술을 마칠 수 있다. 뭔가 해야겠다고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헌신이다.
- 헌신의 정도를 알아보는 사전심사: 성공의 최대요인은 감정적, 실질적으로 당신이 최고인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
(1) 정말 당신의 꿈인가?
* 그것은 당신과 당신의 침프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 당신과 당신의 침크가 정말로 이루고 싶어하는 것인가?
* 그꿈을 달성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가?
* 꿈을 이루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 달성시 혜택이 있는가?
(2) 꿈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필요저건
*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가?
* 과거에 무엇을 시도했는가?
* 과거에 시도했다면 이번에 시도하는 이유는?
* 이번에는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략은?
* 과거에 효과가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 누군가와 함께 점검해 빈틈없이 계획을 세웠나?
* 계획이 성공을 위해 인간과 침프 둘다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하고, 바람직한 조건은 무엇인가?
* 시작하기 전에 그 조건들을 갖추었나?
(3) 장애물, 걸림돌, 함정
*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의 목록을 작성했나?
* 각각의 장애물을 뛰어넘을 전략이 있는가?
*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 추락에 대처하는 계획은?
* 그꿈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게될 스트레스는?
* 돌아가거나 협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 피해야 할 함정은 무엇인가?
* 함정에 접근할 때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는가?
* 만약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 것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4) 문제에 직면할 때 무엇을 계속할 것인가?
* 목적이나 목표를 충족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직면하는 쟁점이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도록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 도와줄 사람은 왜, 어떻게 당신을 도울지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했는가?
* 어떻게 진전을 측정할 것인가?
* 새로운 전략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 접근법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5) 꿈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되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왜 포기하고 싶은가?
* 포기하기 전에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 다른 접근법을 찾을 수 있는가?
* 누군가에게 허심탄회하게 말해봤는가?
* 그 꿈을 포기하면 유리한점은?
* 그 꿈을 포기하면 불리한점은?
* 더 이상 꿈을 위해 달리지 않을 때의 계획은?
(6) 계획에 대한 헌신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제안
* 당신의 자원을 현실적으로 판단하라. 돈과 시간은 탄력적이지 않다
* 시간관리는 배울 가치가 있는 기술이다
* 효율적일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일한다
* 해야할 일의 우선순위를 매겨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한다
* 가능하면 한번에 한가지씩 하는 것이 온전히 집중하는 방법이다
* 부정적인 사람들을 피한다. 최소한 그들에게 그들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그래도 부정적인 말을 멈추지 않으면 상대하지 않는다
* 조언을 적극적으로 듣고,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구한다
* 우유부단함은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시킨다. 일단 정보를 얻었으면 결정을 내리고 밀어붙인다
- 꿈과 목표의 차이를 모르면 둘다 잃는다. 뇌는 어떤 상황에 대해 전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침프에게 혈액을 공급한다. 그것은 불편함으로 이어지고, 당신은 위협을 느낌. 그 결과 침프가 사고와 계획을 통제한다. 하지만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뇌가 깨달으면 침프는 긴장을 풀고 혈액은 인간에게 공급된다. 그 결과 그 사람은 차분해지면서 기회라고 느낀다. 그리고 이제 인간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 꿈을 목표로 만들지 마라. 그러면 당신의 침프가 자극을 받는다. 당신의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을수 있다는 것도 수용해야 한다. 이것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주사위를 두번던져 연속해서 6이 나오게 할 거라가 말한뒤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과 같다.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웃으며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당신이 꿈을 이룰 가능성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설정한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면, 최선을 다한 것에도 행복해해도 된다.
- 캠프에 도달하면 항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얼마나 올라왔는지 확인하라. 위를 보려 하지 마라. 위를 보면 사기가 꺾이게 마련이다. 만약 위를 올려보고 싶다면 다음 캠프까지만 보라. 그리고 가능하렴 친구와 함께 올라라. 누군가와 함께 등반할 수 없는 경우라면 최소한 그에게 당신이 캠프에 도달했을 때를 알려 성공을 공유하라
- 얼마나 더 청소를 해야할지 집안을 꼼꼼히 둘러보지는 말자. 그러면 기운만 빠질 뿐이다. 할 일을 둘러보는 대신 행복해하고, 청소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축하하면 된다. 이제 도달할 또 다른 캠프를 세워라. 각 단계에서 축하를 하며 단계별로 집을 청소하라. 청소를 완전히 끝마치지는 못하겠지만 진전을 볼 것이다. 부분적 성공이 전혀 성공하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공부도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 공부할 것인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따져볼 필요는 없다.
-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사고방식. 성공적 사고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사고를 말함. 성공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때 그들의 인간과 함께 생각함. 내가 한 일이나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 이 문제를 유발한 것이 뭐지? 그런 다음 묻는다. 문제해결을 위해, 나의 행동이나 믿음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자신과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을 살핀 뒤에는 문제가 발생한 환경을 살펴보고 묻는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환경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한뒤 그들은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제를 유발한 저 사람들의 행동은 무엇이고, 나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침프가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둔다. 침프는 우선 남들로부터 질문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어떤 행동이 문제를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다음으로 이렇게 생각함. 내 환경의 어떤 부분이 이 문제를 유발했을까? 왜 이렇게 환경이 불공평한 걸까? 그런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침프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가 생긴 이유중 침프 자신의 잘못이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이후 곰곰이 생각해볼 수도 있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자기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환경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고 무시한다.
- 침프의 애도반응
* 부정 :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함
* 갈망 :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갈망
* 흥정 : 사건의 결과를 바꾸려 함. 종종 만일~라면, 만일 내가 ~을 했더라면 같은 말로 시작
* 화 : 좌절과 비난은 화를 동반. 그리고 그 사건을 덜 고통스러워 보기에 해줄 설명을 찾는다
* 해체 : 이제 진실을 받아들인다. 불쾌한 감정 또는 공허함과 함께 우울감이 나타난다. 진짜 애도에 해당한다
* 재조직 :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최소한 감수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을 세움
- 관계의 파탄도 보통 위와 같은 단계를 가짐. 당신의 침프가 이런 단계를 겪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옴짝달싹 못하고, 애도과정도 정상적 경우보다 더 길어질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 격렬한 사건을 겪어내는 데 삼개월이 걸린다.
- 행복을 놓고 인간과 침프가 충돌할 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침프에게 필요한 것의 충돌을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 특히 감정적, 신체적, 지적 측면에서 말이다. 그런데 침프와 인간의 필요나 욕구는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부분은 다루기 쉽다. 예를 들어 스포츠는 공격적이고 영역을 중시하는 침프를 쉽게 만족시킬 수 있다. 스포츠는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하고 인간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공격성을 분출할 통로가 없으면 침프는 불건전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때때로 타협이 필요할 때도 있다. 침프와 인간은 합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욕이 일치하지 않는 커플을 꽤 많이 보게된다. 두 인간이 나서서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각자 성욕을 충족시킬 필요를 느낄 것이다. 함께 문제에 접근해 솔직하고 수용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책이다. 침프의 욕구를 부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욕구를 무시당한 침프는 화를 내고 당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행복은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들을 다루고 양립가능하게 하는 데 기초한다.
- 인생은 장미침대일 수 없다. 아름답지만 가시도 많다는 뜻. 장미를 꺾어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가시를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불행의 요소들을 경계하고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피하라. 원치 않는 감정을 유발하는 것들을 피하는 것이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만일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계획을 세워라. 가시 앞에 무방비 상태로 있지 마라. 그렘린은 현실을 부정하고, 오토파일럿은 현실에 대처할 준비를 한다.
- 수정구슬을 바라보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점치는 것이다. 이런 예측은 대개 문제로 점철되고 불행을 가져온다. 수정구슬 그렘린은 미래에서 액운과 어둠을 본다. 수정구슬은 좀처럼 행복한 미래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수정구슬 그렘린은 만약의 사태라는 눈덩이를 만들어 비탈로 굴린다. 눈덩이가 비탈을 굴러내려가면서 더 많은 눈을 묻혀 큰 산처럼 된다. 눈덩이는 만약의 사태라는 눈산을 형성한다. 그 결과 당신은 만약의 사태들을 걱정하다 눈산에 갇히고 만다. 수정구슬을 깨뜨리고 그렘린을 쫓아내라. 그것을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않는다는 오토파일럿으로 대체하라. 오토파일럿은 말한다. 나는 무슨이 일이 일어날지 미리 걱정하느라 눈산을 만들지는 않을 거야. 대신 지금 이순간 벌어지는 일에 대처할거야. 일이 크게 어긋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때면 당신은 타당한 이유도 없이 자신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이미 여러번 그랬다면, 얼마나 더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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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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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심리학

심리 2017. 10. 29. 20:36

- 매운 칠리고추를 잘 먹는 사람은 모험가다. 이는 심리학자 폴 로진과 데보라 실러의 칠리고추 소비에 대한 체계적 연구결과임. 멕시코에서 칠리소비는 강함, 과감한, 남성적 특징으로 통함. 칠리를 좋아하는 미국 대학생은 과속운전, 낙하산 다이빙, 차가운 얼음물에 뛰어들기처럼 모험이 따르고 자칫하면 다칠수도 있는 활동을 좋아하는 경향을 보임. 이런 경험들 초기에는 위험을 극복하려고 비용을 지불하지만, 칠리를 먹을 때는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방법을 배운다. 로진은 연구를 이렇게 요약한다. "예측가능한 위험은 매운 칠리가 주는 무척 자극적인 경험과 같다"
-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기를 매우 좋아하며 사회적 성격의 소유자로 통함. 전문가들에 따르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기꺼이 도우려는 자세는 짠맛 크래커가 아니라 초콜릿을 잡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두드러진다고 한다
- 맛의 기억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 미각은 엄마 뱃속에서 이미 각인됨. 태아는 양수를 통해 엄마가 가진 몇몇 식습관과 선호음식을 향료성분 형태로 받아들임. 사람은 보고 듣기전에 먼저 맛을 느끼고 후각체험을 한다. 임신 2개월 말쯤이면 혀의 미뢰가 형성되고, 12주째부터는 태아는 들이마시는 행동을 시작. 임신말기에 이르면 태아는 양수를 들이마시고, 그 맛에 적응하기도 함. 이때 태아는 매일 양수 0.5리터 가량을 마시는데, 양수가 달콤하면 더 자주 마시고 양수가 쓰면 그 빈도가 줄어듬. 그러니 우리가 단것을 좋아하고 쓴 것을 싫어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사람이 동굴에 살던 시대에는 이 유전적 프로그램이 생존을 보장했다. 단맛은 바로 에너지를 주는 먹거리였던 반면, 독이 든 것은 쓴맛이 나는 것이 많았다.
- 어릴 때 좋아하는 음식으로 인생사의 기억속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면, 평생 좋아하는 음식으로 남는 경우가 많음.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확실히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강력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바로 기억이 가진 함정. 이것을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테봄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기억은 자기가 눕고 싶은 자리에 눕는 개와 같다."
- 개개인이 유난히 예민한 미각물질을 가진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가지 이유는 혀의 돌기갯수일수도 있다. 이 연구결과는 93년 플로리다의 후각과 미각 연구센터의 미각 전문가 린다 바터셕이 얻어냄. 바터셕은 실험 대사자들의 혀를 파란색으로 물들여 도드라진 돌기의 갯수를 셋다. 개수와 크기가 큰 차이가 났다. 특히 작은 돌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미각 실험에서 매우 예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쓴맛 물질 프로필다이오유러실을 두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맛이 없다거나 기껏해야 약간 쓴맛이 난다고 평가했는데, 작은 돌기를 많이 가진 사람은 무척 쓰다고 평가. 바터셕은 그들을 절대미각을 가진 사람이라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맛을 매우 강렬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형광색의 식품세계에 산다면 보통 사람들은 파스텔톤의 세계에 산다고 할 수 있다." 유전자 연구가 사라 티쉬코프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쓴맛 선호도를 연구하면서 아프리카에 쓴맛 수용체의 유전자 변이가 놀라울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 절대미각의 원인이 유전자일수도 있다는 것은 예민한 미각이 부모에서 아이들에게 자주 전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 아이들 가운데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 또는 오로지 면만 먹는 아이가 있을 수 있는데, 절대미각 유전자를 이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이들의 눈동자 색과 성별이 다른 것처럼 혀의 특성도 다양하다. 절대미각에 해당하는 사람은 종종 사과가 너무 시고, 오이피클이 너무 짜고, 자몽은 너무 쓰고, 캐러멜 사탕은 너무 달다고 한다. 맛을 강렬하게 인지하는 부분이 쓴맛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
- 유전자와 뭄무게와의 관계는 매우 밀접. 부모가 뚱뚱한 사람은 마른 부모를 둔 사람보다 평생 뚱뚱하게 살 가능성이 크다. 유전자는 몸무게 조절에 부정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확정된 몸무게 범위를 가진다. 그 범위를 의도적으로 넘거나 낮춰 살려는 시도는 범위에 맞추려는 몸과의 전쟁이다.
- 요리가 위기에 처했다. 수많은 사람이 불에 다가가기를 꺼린다. 그러면서도 음식과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열정적이고 끊임없는 것으로도 모자라 열띤 토론까지 벌이고 있으니 정말 역설적이다. 하지만 똑똑한 식사의 기술에는 말만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일도 속한다. 적어도 가끔은 물론, 성별을 넘어서 말이다.
- 식탁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식탁에서는 그들의 현재상태도 드러난다. 식사는 한쌍이 얼마나 잘 지내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와도 같다. 파트너 사이의 위기는 식사를 하면서 첨예화될 수 있따. 사람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식사할 때 아주 가까이 하게된다. 식탁에 같이 앉는다는 것은 강제적으로 가까이 있는 상태다. 때문에 식사하면서 싸움도 자주 일어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정치, 종교, 시부모나 장인장모 관계의 문제처럼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주제는 피하는 게 좋다.
- 남미 인디언의 경우 여자는 남자에게 떠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남자를 위한 부엌일을 그만둔다. 남자쪽에서는 여자가 만든 음식을 더이상 먹지 않는 것으로 헤어짐의 뜻을 알린다. 텔레비전을 켜는 것으로 식탁에서 첨예화되는 긴장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는 포기하는 게 좋다. 그 시도는 실패한다. 침묵의 냉기는 막말의 가혹함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 광고전략은 소비자의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을 건드리는 게 목적. 벨기에 초콜릿 같은 암시적 자극만으로도 구매결정에는 중요한 연상이 일어남.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런 무의식적 준비를 점화(priming)효과라고 한다. 점화효과는 퀴즈놀이와 비교할 수 있다. 퀴즈놀이는 색, 멜로디, 향, 단어를 자극적으로 제시하고 기억을 불러내 그림을 완성. 초콜릿 케익이라는 명확한 정보대신 주어진 벨기에 초콜릿이라는 특성은, 감정적, 인지적, 감각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제공. 디저트의 판매는 신경마케팅 결과 28% 증가.
-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덴마크 아이스크림? 그런데, 이 비싼 아이스크림은 결코 덴마크제가 아니다 61년 영국과 폴란드 출신 부부 로즈와 루벤 매투스가 뉴욕에 세운 미국기업 제품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하겐다즈를 두고 자연스레 고급스런 덴마크 제품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까? 이는 점화효과의 고전적 사례. 북유럽의 노르딕 언어처럼 들리는 제품 이름이 무의식 속에서 자연, 신선함, 디자인, 한여름 축제의 밤, 고품질 같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의 전형적 연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겐다즈가 그 모든 것과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 당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와인을 선물하라. 받는 사람은 당신의 판단을 믿을 것이다. 단, 그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만약 와인을 선물하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 파커점수가 높은 와인을 선택하는게 좋다. 그러면 마케팅 플라시보 효과를 당신의 장점으로 여겨 멋지게 활용할 수 있다.
- 그렐린 호르몬은 위 점막에서 분출되고, 뇌에서 작용해 허기와 잠과 중독과 포만감에 영향을 줌. 그렐린 수치가 높아지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음식을 먹으면 반대로 그 수치가 낮아짐. 탄수화물은 그렐린 수치를 특히 빠르게 낮추지만 또한 빠르게 다시 상승시키기도 함. 반대로 지방은 그렐린 수치를 천천히 낮추는 대신 보다 오래 낮은 상태를 유지. 그래서 견과류 한줌을 먹는 것이 도넛 한개를 먹는 것보다 더 오래 포만감을 유지. 단점은 호르몬으로 포만의 신호가 뇌에 이르러 음식을 그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릴때까지 약 20분이 걸린다는 것. 20분은 예를 들어 스니커즈처럼 에너지 밀도가 높은 스낵을 세개는 먹고도 남는 시간이다
- 여러 연구는 박테리아를 고려해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 신호를 주는 성분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것. 박테리아를 고려한다는 의미는,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대장에 도착해 대장에서 박테리아가 작업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 놀랍게도 면과 토스트빵은 그런 음식에 속하지 않느다. 그보다 감자, 치커리, 마늘, 양파, 파스닙이 좋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맛이라 일컫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음식의 향을 맡는 것.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음식의 향을 맡을까? 딱딱한 음식이나 유동식에서 냄새 분자가 나와 공기의 흐름을 타고 숨을 내쉴 때 인두의 뒤쪽을 거쳐 코에 있는 비강점막에 와서 닿는다. 비강점막에는 수많은 후각 수용체가 있다. 그곳에서 냄새분자는 열쇠-자물쇠 원리로 각각 적합한 수용체를 발견한다. 말하자면 음식의 향을 맡기 위해서는 숨을 들이쉴 때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앞쪽 비강경로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숨을 내쉴 때 구강 및 코의 뒤쪽 인두강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음식의 향을 최대한 진하게 느끼고 싶은 사람은 세심하게 씹어야 한다. 음식을 씹어야 냄새분자가 많이 퍼진다. 수많은 요리는 데운 후에 향이 더 짙어진다. 마지막으로 후루룩 마시는 행동은 입속에 공기를 더 많이 들어오게 해서 냄새분자와 공기가 결합할 수 있게 한다.
- 당신이 아무리 해도 일이 진척되지 않는 상태라면 열망을 일깨우는 게 도움이 된다. 프랑스 약사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는 감자를 보급할 목적으로 일부러 민중들에게 감자를 금지하고 왕실 밭에서만 재배하면서 낮에 군인들이 지키게 했다. 그러자 민중들은 밤에 몰래 밭에 들어가 이른바 아주 귀하다는 감자를 훔쳤다. 아주 귀한 감자 소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졌고, 사람들은 몰래 감자 밭을 일구었다. 러시아의 카타리나 여제도 그 일을 전해 듣고 왕실 밭에 울카리까지 치고는 감자를 훔치는 사람은 엄하게 처벌하라고 지시. 물론 러시아 민중들도 어떻게든 감자를 얻을 수단과 방법을 찾아냈다.
- 밀크쉐이크는 가능한 걸쭉한 상태로 속을 든든하게 해주면서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밀크쉐이크 소비자들에게서 반복해서 돌아오는 대답. 그리고 또 한가지 대답이 있다. 차가 꽉 막혀 있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크리스텐슨은 간단하게 말한다. 사람들은 뭔가 할 일을 원한다. 그 할일이란 과일조각을 가끔 씹을 정도의 소소한 일이다. 밀크쉐이크에 과일조각이 들어 있으니더 건강한 음료하는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씹히는 조각이 예상치 못한 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크리스텐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밀크쉐이크를 사게 하는 요인은 음료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직업이다.' 여기서 심리적으로 크게 안정을 주는 요소로 등장하는 물건이 빨대라는 사실은 정말 단순하면서도 거의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다. 단지 빨대가 옷에 음료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때문이 아니라 빨대를 빠는 행위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준다. 밀크쉐이크는 입에 들어가면 밀도가 달라진다. 공기가 많은 입속에 음료가 조금 들어온다. 그 결과 부드러운 크림같은 느낌이 난다. 밀크쉐이크가 입안에 오래 머물면 맛이 더 강해지는데, 특히 단맛이 강해짐. 거기에 빠는 행동은 욕망, 안정감, 포만감과 결부되어 있음. 빠는 행동은 인간이 하는 첫번째 경험이자 생존유지를 위한 타고난 반사작용이다. 살아가면서 긍정적 기분을 동반한 반사작용 대신 습관이 들어선다. 이 연상이 다시금 밀크쉐이크를 사도록 부추긴다. 긍정적 기분은 도파민 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 기쁠 때 도파민이 분출하기 때문에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한다
- 학문 및 의학 역사가 디트리히 폰 엔겔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음식문화의 정의는 개인이 그 문화 범위내에서 미각취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략의 유형이다. 이 유형범위를 벗어나면 교육과정에서 사회적 차별을 당한다. 대략의 유형은 음식문화내에서 사회화된 후에 학습경험을 거쳐 내면화된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범위를 넘어서면 구역질이 일어나고 속이 불편한 반응을 보인다. 구역질은 문화적 세분화, 음식의 선호 및 혐오를 넘어 또 다른 기능이 있다. 구역질은 잠재적 질병인자를 경고해주고 감염을 막아줌. 구역질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잡식동물인 사람이 음식물과 재료에 반응하는 감각중추가 없다면 큰 곤경에 빠질 것이다. 구역질이 얼굴에 나타남으로써(지구의 모든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남)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런던 위생 및 열대의학 학교의 인류학자이자 유행병 학자 발레리 커티스는 수십년째 구역질을 연구하면서, 구역질은 학습하는 게 아님을 확신한다. 오히려 진화과정에서 발달해 유전자에 입력된 것이라고 한다. 실험을 위해 전 세계 4만명의 실험대상자에게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피, 똥, 썩은 고기, 고름은 모은 문화경계를 넘어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강력한 구역질을 불러 일으킨다.
- 미국은 남은 음식을 싸가는 봉지 도기백이 유래한 곳. 43년 2차대전 당시 식료품 배급이 통제되던 시절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됨. 옥스퍼드 음식 백과사전에 한때 유행했던 문구가 인용되어 있다. "풍성한 식사로 행복하십니까? 모든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지 마세요. 기다리는 강아지도 생각해야죠. 강아지에게 맛있는 뼈를 가져다 주세요" 적어도 공식적으로 도기백은 배고픈 개를 생각해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통용되는 도기백이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적 역사적 이유에서 무시당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다. 사회학자 장 피에르 코르부에 따르면 프랑스의 시민과 귀족층은 먹을 게 부족하지 않다고 과시하기 위해 음식을 다 먹지 않고 남기는 게 관례였던 반면, 하층계급에서는 어릴 때부터 식사를 깨끗이 다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니 미국과는 달리 음식량이 많아서 걱정할 일이 없어, 남은 음식을 싸가는 봉지는 전연 익숙하지 않았다.
- 특정한 순간에 뭉클 솟아나는 고삐 풀린 갈망은 왜 하필이면 아이스크림, 칩, 초콜릿을 먹고 싶어하게 할까? 이 식품의 구성성분(탄수화물과 지방 혼합물은 호르몬 조절과정에 작용해 보상 호르몬인 도파민을 직접 분출하게 함)은 뒤로 하더라도 우선 감각과 관련된 이유가 있음. 우리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다. 왜 그럴까? 변화하는 밀도에 주의력이 쏠리기 때문. 적어도 음식을 즐기는 동안은 마음이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 기분전환이 된다. 우리는 이 상태를 예측할 수 있기에 절박한 상황에서 가능한 빨리 위안을 주는 음식을 찾음. 그렇다면 사람이 이런 음식에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 쉬라 가브리엘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기본적 신뢰를 얻은 대상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감정적 스트레스는 어머니의 부엌으로 되돌아가 숨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팬케이크, 푸딩 또는 국물이 진한 닭고기 수프처럼 어릴 때 좋아했던 음식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어떤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마음에 위로가 된다. 배려, 웃음 또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실제로 기분을 밝게 해준다.
- 생산자들은 기분을 편안하게 하거나 자극을 활성화하는 구성성분을 직접 활용한다. 예를 들어 카카오 콩에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전단계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 그리고 카페인 유사성부인 테오브로민도 들어 있다. 하지만 세로토닌 분출이 끊임없이 과도하게 활성화하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다 써버려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 감정적 스트레스 상태애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컴포트 푸드 덕택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슬플 때 반사적으로 초콜릿을 집는 사람은 다음의 실험결과에 놀랄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매우 감동적인 영화를 본 후 곧바로 다음과 같은 식품을 받았다. (1) 본인이 안티 스트레스 용으로 즐겨 먹는 식품, (2) 평소에 좋아하는 스낵, (3) 곡물 바 (4) 아무것도 받지 않음. 결과는 모든 경우 같았다. 기분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차차 나아졌다. 컴포트 푸드를 먹든 머지 않았던 상관없었다. 더욱이 실험참가자의 81%가 자신들의 안티 스트레스 식품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를 확신한다고 사전에 밝혔다. 연구책임자는 식품 소비에서 기분전환의 원인을 찾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 결국 컴포트 푸드는 신화다. 특대형 아이스크림은 조금도 마법의 능려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연구책임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그냥 아이스크림을 드세요. 마법은 없어요. 하지만 맛있쟎아요."
- 잠을 자는 동안 렙틴 호르몬이 분출해 신체에 충분히 먹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오직 그 때문에 10시간 동안 먹지 않고 견딜 수 있다. 낮이라면 10시간 동안 먹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잠을 자지 않거나 너무 적게 자거나 잠을 잘 못자면 렙틴 호르몬의 적수인 그렐린 호르몬이 나온다. 이 호르몬이 허기를 불러 일으킨다. 뉴욕 체중조절 영양조사 연구센터의 연구원은 실험에서 잠을 자는 사람과 잠을 자지 않느 사람을 컴퓨터 단층촬영기에 넣었다. 실험참가자가 기계속에 누워 있는 동안 식품 그림을 보여주었다. 적게 잔 사람(최근 며칠동안 4시간)의 보상체계가 정상적으로 잔 사람에 비해 현격하게 크게 반응했다. 유전적으로 밤에 먹는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밤에도 음식을 삼가지 못하고 남들이 자는 사이에 엄청난 허기 공격에 시달려 냉장고를 약탈한다. 잠을 적게 자는 사람은 렙틴 호르몬도 적게 나온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연구가 허기와 수면시간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따. 정상수면인, 장시간 수면인, 단시간 수면인의 식습관을 연구한 학자들은 단시간 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게다가 정상 및 장시간 자는 사람들보다 비타민 C를 덜 섭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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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란 무엇인가

심리 2016. 5. 30. 06:12

- 사람들이 행동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에 대한 연구에서 많은 자료로 증명된 사실 하나는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성격에서 원인을 찾는 반면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것.
- 불안은 특히 우리가 주변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경험했을 때, 이를테면 배우자나 가까운 가족 누군가가 죽었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더 오래감. 이 경우, 삶은 예전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구성개념을 새로 만들어 삶을 스스로 이해하고, 바뀐 재정상태를 관리하고, 그 많은 스포츠 채널을 계속 구독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 구성개념이 많아, 사건을 예상하고 환경변화에서 오는 어려움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불안을 느낄 확률이 낮다. 개인 구성개념이 적은 사람, 특히 그 구성개념의 편의성 범위가 매우 좁은 사람은 사건 예상이 빗나가기 일쑤. 그들의 구성개념이 삶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상황에 맞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 구성개념이 제한적일수록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예측하고 그에 대처할 때 불안은 커지고 자유는 줄어든다.
- 개인구성 개념은 보통 고립된 의미로 깜빡거리며 이리저리 떠다니기보다 여러 속성으로 된 체계를 이루면서, 우리가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 그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개인구성개념 체계의 중요한 특징은 거기에 속한 여러 구성개념들 간의 연관성 정도다. 어떤 개인구성개념은 상대적으로 지엽적이어서, 그 쓰임과 효용성이 다른 구성개념과 별도로 작동함. 그런가하면 어떤 구성개념은 그 체계에 속한 다른 구성개념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핵심 구성개념으로 작동. 이 핵심구성개념이 개인구성개념 체계의 기반이 된다.
- 더 행복해지려 애쓰는 것은 키가 크려고 애쓰는 것만큼이나 헛되고 따라서 비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데이비드 리켄, 오크 켈레겐, 행복은 확률현상이다)
- 성실성은 학문에서나 직업에서나 높은 성취도와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고등학생의 학교성적과 성실성 점수가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성적이 대학학점을 좌우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실성 점수가 대학학점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음. 성실성은 대학을 꾸준히 다닐 가능성을 암시하는 가장 믿을만한 척도이기도 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함. 대학교육은 보통 마감시간을 맞추고,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미룬채 시험공부를 하고, 흥청망청 마셔버리고 싶은 충동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보상받기 때문.
- 성실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성공할 확률과만 연관되는 것이 아님. 성실하면 건강하고 장수할 확률도 높다.
- 대니얼 네틀은 성실성은 주로 예측가능하고 잘 정돈된 환경이나 사회적 생태에서 효용을 발휘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 목표와 과제를 일관되게 추구하려면 열심히 실천하고 적절한 때 완성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은 매우 성실한 사람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질서하고 예측불가능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성실성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오히려 성실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틀에 박힌 행위에서 벗어나 돌발 상황에 주목해 민첩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다.
- 친화성은 첫인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성실성처럼 성공과 밀접한 연관은 없음. 친화성은 다른 5대 특성에 비해 조직에서 성공을 예고하는 척도로서의 기능은 미약. 사실 친화력이 좋은 사람은 봉급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덜 성공적이란 증거도 있다. 친화성이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남자의 경우에 더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회적, 생태적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에, 친화성 있는 사람이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근무환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함
- 신경성의 핵심은 주변환경에 나타나는 부정적 신화에 대한 민감성이다. 이 민감성에는 분명한 신경기저가 있다. 즉 신경성은 위협이 나타나면 각 기관에 울리는 편도체의 과민성과 연관이 있음. 신경성 검사에서 높은 점수가 나온 사람은 좀더 안정된 사람은 보지 못할 위협, 위험, 모욕을 감지하고 회상하고 고민함. 신경과민인 사람은 실제 위협이든 상상의 위협이든 그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극심한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그러다보니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기고 육체적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짐. 이들은 수면장애가 있고 의사를 자주 찾아갈 가능성이 높으며, 일반적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더 많다고 알려져 있음.
- 신경성 역시 다른 성격 요소에 큰 영향을 미침. 신경성은 다른 기질의 증폭기라 볼 수 있음. 예를 들면 성실하면서 신경과민인 사람은 신경과민 때문에 더욱 성실하고, 강박적 행동을 하기 쉽다. 그리고 반친화적이면서 신경과민인 사람은 위험할 정도로 적대적일 가능성이 높다.
- 자극의 정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 외에도 신경흥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음료를 마셔서 흥분정도를 최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음. 술은 적어도 처음에는 흥분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외향적인 사람은 포도주 두어잔을 마시면 흥분이 최적의 수준보다 아래로 내려갈 수 있고, 반면에 내향적인 사람은 최적의 흥분에 가까워져 의외로 수다스러워질 수 있다. 흥분제로서 커피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커피를 두어잔 마시면 외향적인 사람은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업무능력이 떨어짐. 업무가 양적인 것이거나 시간에 쫓길 때, 업무능력 저하는 두드러짐. 내향적인 사람이 회의전에 커피를 두어잔 마시면 힘들수도 있다. 특히 예산안이나 자료분석 또는 그와 비슷한 양적인 문제를 두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토론이라면 더욱 그렇다.
- 외향성/내향성 특성을 알면 동기를 파악하고, 주변환경을 읽어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유익함. 신경과민인 사람들이 처벌신호에 민감하듯이, 외향적인 사람들은 보상신호와 보상기회에 대단히 민감함. 이들은 주변환경을 둘러보면서 긍정적 가능성을 찾아냄. 보상 신호는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그다지 큰 동기가 못됨. 내향적인 데다 신경과민까지 있다면 처벌신호에 과민반응을 보임.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은 거의 똑같은 사건을 두고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 성격의 5대특성은 모두 생물발생적 뿌리에 근거해 평가할 수 있음. 예를 들어 친화력이 대단히 높은 사람은 출산할 때, 수유할 때, 오르가즘을 느낄 때, 그 외 친밀한 행위를 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 수치가 높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옥시토신 수치는 혈액이나 침을 분석해 얻을 수 있으며, 옥시토신 조절 유전자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중.
- 생물발생적 원인에 주목하면, 개인의 행동을 성격 특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라고 설명할 수 있음. 반면에 사회발생적 원인에 주목하면, 똑같은 행동도 사회규범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가능. 그러나 특수발생적 원인에 주목하면 어떤 사람이 특정한 행동유형을 보이는 이유를 찾게 됨
- 어린 시절에 심하게 불쾌했던 사건처럼 중요한 무언가를 억누른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만성적 자율신경 흥분을 경험하는 일인 잦고 건강도 더 좋지 않았다. 이 연구는 삶에서 억눌린 부분을 글이나 말로 털어 놓으면 자율신경계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우선 털어놓는 순간에는 흥분정도가 일시적으로 올라간다. 억누르고 있던 것을 말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일단 털어놓고 나면 흥분이 줄어들면서 원래 수준으로 돌아갈 뿐 아니라 털어놓기 전보다 더 낮은 상태로 떨어진다. 이처럼 속을 털어놓고 나면 더 건강해지는데, 이는 면역체계 기능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 내부지향성이 높은 사람은 일상적 스트레스를 조절할 단추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힘든 시험히 닥치면? 열심히 공부하기 단추를 누를 것. 애인이 될 법한 상대를 만나며? 매력발산 단추를 누를 것. 불확실한 미래에 맞닥뜨리면? 낙천주의 단추를 누를 것.
- 이보다 더 실행하기 어렵고 성공이 불확실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바로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이다. (군주론)
- 밀그램은 한 개인이 도시에 들어갈 때면 인구와 관련한 세가지 사실과 마주하나고 했따. 수많은 사람들, 압축된 공간, 사회적 이질성이다. 이 세요소가 한데 모이면 정보입력 과부하라는 심리적 환경이 조성된다. 밀그램의 주장에 따르면 이 과부하는 정신적으로 해로워 사람들이 환경에서 오는 자극의 양과 속도를 줄이는 적응전략을 쓰도록 유도한다. 이런 자극감소 전략은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긍정적 이점이 있지만, 사회적 차원에선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과부하에 대응해 사용하는 세가지 적응 전략을 살펴보자. 첫째, 자극의 원천에 쏟는 시간의 양과 질을 낮춘다. 도시와 시골에서 일상의 속도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도시에서 삶의 속도는 비도시 지역보다 빨라서,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더 빠르고, 상호작용은 더 짧다. 빠르게 성큼성큼 걷는다는 것은 과부하를 초래하는 사람과 사건을 곧잘 보지 않고 지나친다는 뜻이다. 거래도 마찬가지다. 한 예로 우표를 도시에서 우체국 직원에게 살 때와 작은마을에서 살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조사한 연구가 있다. 그 결과, 도시에서의 시간이 훨씬 짧았다. 도시에서는 대화의 질도 더 떨어지기 쉽다. 작은 마을에서는 우체국에 가면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우기 쉽다. 날씨가 어떻다느니, 내 여동생의 특별한 친구와 간밤에 그녀의 아파트 앞에 주차돼어 있던 차가 어던 관계라느니, 지금 입은 옷이 함께 온 고양이와 아주 잘 어울린다느니, 도시에서도 이런 것들이 이야기 소재가 될 수는 있지만, 그런 수다를 떨 시간은 없다. 내 뒤로 여러명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둘째, 중요도가 낮은 정보는 무시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다가오는 일부 자극을 간단히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적응 전략은 개인의 과부하는 막을지언정 심각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인구구성의 다양함을 상기해보라. 도시는 사람들도 다양하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사건과 상황유형도 여러가지다. 이런 환경에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적응전략 하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셋째, 외부정보가 정보처리 체계에 들어오기도 전에 미리 막아버릴 수 있다.
- 여자들은 스트레스를 받느 목표를 서슴없이 페북에 올려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반면,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 결과는 소셜 미디어가 나오기 전에 실시한 연구와도 어느정도 일치하는데, 스트레스성 목표를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남자는 삶의 질이 낮았고, 같은 경우 여자는 삶의 질이 높았다. 스트레스성 목표를 공개할 때 남자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심해지는데 그 이유는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일 수 있고, 반면 여자는 스트레스가 줄어드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
- 우리 목표를 타인과 공유하려면 목표를 잘 보이게 또는 잘 들리게 해서 타인도 알게 해야 함. 어떤 사람은 자기 개인목표를 소매에 새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마음속 깊이 넣고 다님. 앞서 보았듯 목표의 가시성에 대해서는 남녀가 다른 반응을 보임. 스트레스를 받는 목표의 경우, 여자는 목표와 도전을 가시화할 때 목표추구에 더 유리한 반면, 남자는 목표를 숨길 때 더 유리함. 이는 문제대처 방식에서 남녀차이와 관련이 있음. 남자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주로 싸울 또는 도망갈 준비를 하지만, 여자는 타인과 유대관계를 형성해 도전에 맞선다.
- 고위 관리직 남자와 여자에게 조직의 여러 요소 중 자신의 삶의 질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도 비슷한 성향이 나타났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직문화가 자신의 목표를 지지해주는 정도였다. 반면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직이 목표추구를 방해하지 않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길을 언제 비켜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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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해서 우리 뇌속에 굳게 자리잡은 분노는 짧은 시간안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온전히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음. 우리는 생각보다 분노를 잘 통제할 수 있음. 특히 자신의 분노를 알아차리고, 분노에 귀를 기울이고, 분노에 대해 생각할 때 좀더 잘 통제 가능. 화가난 기분에 반응하여 어떤 길을 따를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고, 다른 사람들의 분노에 대처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분노를 느끼는 데에서 분노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관점을 옮김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디퓨징이다.
- 공포와 분노는 모두 강력하고, 역동적이며,매혹적인 감정으로 진화했음. 공포감을 느끼면 우리는 위험이 사라지기를 바라거나 도망가고 싶어함. 그러나 화가 났을 때는 전혀 다른 현상으로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싶어 하거나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뇌는 열심히, 다르게 일을 해야 함. 이것이 공포와 분노를 모두 느낀 실험 대상자들의 fMRI영상을 분석한 프랑스 학자들이 세운 가설이었다. 뉴로이미지에 발표된 그들의 연구는 화가 난 뇌는 공포를 느끼는 뇌보다 더 복잡한 조직화 모드로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왜 그런지는 상식이 설명해준다. 즉 화가나서 공격성을 띠기 일보직전이라면, 뇌는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함. 빠른 속도로 체스게임을 할 때처럼,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고 재빨리 반응해야 함.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기 위해서 정서적 기억에 관여하는 뇌 부위들인 편도체가 활성화됨. 공격당할 것 같아면 몸이 반응할 준비를 해야 함. 운동피질이 팔과 다리가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을 관장한다. 그리고 실제 신체반응이 일어나기에 앞서 또 한가지 뇌부위가 작동하기 시작. 바로 전운동피질로, 다음 움직임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운동피질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준비시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대방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한 데 따른 반응으로 그런 예측은 전전두엽이 한다.
- 화가 엄습하면 우리 몸은 대항-회피 반응 가운데 대항할 준비를 하며 싸울 태세를 갖춤. 근육이 긴장되고 혈압이 올라가면서 숨이 가빠짐. 화가나면 피는 손으로 더 많이 모임. 반면에 두려움을 느낄 때는 발로 더 모임. 그러는 사이에 뇌는 갑자기 에너지가 솟게 하는 카테콜아민의 하나인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함. 우리의 영역을 위협하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 글루코코티코이드(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같은 화학물질들이 우리 몸의 시스템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우리 몸은 비축해 두었던 당분을 분비할 준비를 하고, 활력 넘치는 준비상태에 들어선다. 근육이 긴장하면서 힘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자신감을 얻는다. 이제 싸울 준비를 갖춘 것이다.
- 질투의 노예가 되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함.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질투심은 인생의 발전에 심각한 방해요소가 될 수 있음.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깎아 내리는 것은 자신의 장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약점이라고 느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질투심이 많고 남의 불행에 쉽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낮았다. 질투는 뇌의 업무수행능력도 저해함.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이 최근 행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질투의 대상과 관련해서는 세부사항까지 잘 기억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은 도리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남. 현재에는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질투 때문에 주의를 빼앗긴 뇌는 기본적인 일들을 관리할 능력을 상실한다. 이웃이 가진것만 생각하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하다가 현재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직장에서 누군가를 질투하고 있다면 주의가 산만해 질 것이고, 상사도 그것을 눈치챌 것이다. 결국 우리 자신과 질투의 대상 사이의 격차만 더 커질 것이다.
- 우리는 소비를 하면 우리가 질투하는 대상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보면 돼지저금통을 깨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만족을 느끼는데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최근까지 소비와 행복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전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학자들은 여행, 음악회 참석, 디즈니랜드 방문 등의 경험에 돈을 쓴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쓴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밝혀냄. 위스콘신대 토머스 드레이 박사도 비슷한 연구를 했다. 그는 소비의 아홉가지 범주를 관찰했고, 그 결과 행복을 강화하는 유일한 소비범주가 레저라는 것을 밝힘. 사람들은 휴가, 오락, 스포츠, 골프채, 낚싯대 등에 돈을 쓸 때 행복을 느꼈다. 쇼핑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친구에겐 어울렸더 원피스를 내가 입으면 별로 예쁘지 않은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 기본적으로 습관화라는 것은 뇌와 신체가 자극을 무시한다는 의미. 예를 들어 철로 근처에 살고 있다면 기차의 소음이 처음에는 무척 정신을 산란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리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며, 결국 소리가 난다는 걸 느끼지도 못함. 옥시토신이 우리의 뇌와 신체에 이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그 사람에게 신뢰를 받는다고 느끼면 스트레스를 다루기가 좀 더 쉬워진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분노의 폭탄을 터뜨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짐.
- 공감과 연민의 차이점은 그것들이 관여하는 감정의 범위와 관련이 있음. 갓 사랑에 빠지거나, 첫 아이나 첫 손자를 얻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을 인식하는 데 한정됨. 반면에 공감은 어떤 사람이 삶에서 여러 사황에 처하면서 경험하는 감정들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내가 당신이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당신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 내가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마음을 쓰고 있다는 걸 당신이 알게 되면, 그런 공통된 경험은 우리 두사람 사이에 유대를 형성해 줄 것이다.
- 진화과정에서 인류는 그 무엇도 그냥 버린 저깅 없다. 신체의 일부가 더 이상 쓸모 없어지면, 대자연은 그것을 없애느라 에너지를 쓰기 보다는, 그저 그 부위가 있다고 해서 뭔가 더 혜택이 있거나 선택적 생존에 도움이 되지는 않게끔 만들었따. 맹장이나 새끼발가락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부위들을 제거해도 생존능력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음. 또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이미 진화한 부위들과 화학물질들에 기능을 추가하기도 했다. 언어에 관여하는 거울뉴런이 좋은 사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해석해 그의 의도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했음.  인류는 구체적 단어들을 사용하기 전에 행동과 소리를 이용했다. 그런데 시각적 신호만이 아니라 청각적 신호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뇌에서 다른 부위를 진화시킬까? 그런 기능들을 위한 별도의 뇌 경로를 개발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비용대비 효율적일까? 최근 이탈리아 토리노대 인지과학센터 과학자들은 fMRI연구를 통해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요라고 주장. 그 대신, 언어와 몸짓을 위해 활성화되는 뇌의 네트워크가 그런 몸짓의 의도와 의미를 전달하기도 함. 뭔가를 표현하는 사람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에서는 매 순간마다 음악적 율동이 나타남.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단어, 어조, 운율을 듣고 처리할 때 그 사람의 몸과 얼굴을 본다. 이 네트워크에 속하는 뉴런들을 글을 통해 의사소통을 해독하는 일도 함. 문자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의 뇌는 눈을 통해 일련의 암호를 인식. 이 문장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뇌는 시각정보를 해석하고 있다. 그 시각정보는 흰바탕에 대비되는 검은선들로 이루어져 있음. 그 선들은 글자, 단어, 문장 등 여러 형태와 패턴으로 재편되어 있다. 우리는 쉼표, 마침표, 물음표 등 구두점을 사용하여 문장에 리듬과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합의해 왔고, 우리 뇌는 그것을 이해한다.
- 협상의 임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화를 내면 짐짓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상대의 뇌를 진정시키는 존중의 몸짓이다. 양보는 포기보다는 타협점으로 나아가는 한 방편이다. 어떤 물건이나 관심사를 두고 협상할 때, 협상 당사자들은 기꺼이 타협을 하려한다. 사실, 화가난 사람이 협상과정에서 경쟁자의 양보를, 적어도 자산에 대해 양보를 끌어낸다면, 그런 화는 어느정도 이익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진화차원에서 장려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학자들은 최근에 영국 사회심리학 저널 논문에서, 서로의 가치관이 갈등을 일으킨 상황이라면 분노를 이용하는 전략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치관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분노를 이용하며, 협상상대는 양보가 아니라 보복을 하고, 의견충돌을 심화시키고, 화를 낼 가능성이 높음.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견해와 관점을 갖고 있게 마련이며, 이는 사람들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는 기준이 됨.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공통점을 찾을수는 있다. 그 공통점이 '다함께 정의와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추상적인 것이라 해도 말이다. 공정성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양쪽다 공정성을 원할 수 있다. 그런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해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음. 1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한 논문은 성공적 협상전략들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 전략들은 하나같이 전전두엽의 기능을 이용하는 것. 그런 기본적 원칙들은 '큰 그림을 보고, 공동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숨은 요인들을 밝혀내고, 사실을 토대로 공정하게 낙찰을 받고, 신뢰를 쌓고,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 감사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영단아 gratitude는 라틴어 gratia에서 왔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grace(우아함, 은총)라고 번역됨. 하지만 gratia는 gratefful(고마워하는)이나 gracious(자애로운)처럼 친절함, 남에게 주기, 무조건적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어원이기도 함. 예를 들어 dei gratia라는 라틴어는 by thr grace of god(신의 은총으로)이라는 의미. 그러나 최근 들어서야 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 지난 십여년간 발전해온 긍정심리학 운동은 수많은 실험과 조사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이 어떻게 행복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줌. 로버트 에몬스와 동료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가져다주는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했고, 감사하는 마음이 인생의 성취감과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결과들을 발표. 그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측정한 방법 중 하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감사일기를 쓰게 한 것. 오랜 시간에 걸쳐 참가자들과 그들의 감사일기를 분석한 결과, 학자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더 느끼는 사람들이 삶에서 더 큰 만족감과 활기와 긍정적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음. 이 집단은 더 관대해고, 공감을 더 잘하며, 남에게 더 도움이 되고, 남을 덜 질투하는 것으로 평가되었음. 또한 남들에게 헌신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과 삶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다고 시인하는 경향이 더 컸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과 다른 사람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다름. 앞의 것은 자신이 누리는 축복을 인정하는 것이다. 뒤의 것은 다른 사라밍 우리에게 한 행동의 좋은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겉으로 표현할 때이다. 고맙게 생각하는 것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상호작용의 많은 범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 특히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러하다. 사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줄수록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가능성은 더 높아짐
- 가치라는 것은 가변적이다. 여성에게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을 주는 것과 남성에게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무척 다름. 이것은 조지맨슨대 학자들이 밝혀낸 것으로, 그들이 최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더 잘 표현하고 선물을 받을 때도 부담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남.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한 여성들은 집단에 결속력을 더 강하게 느끼는데, 그 겨로가 그들은 스스로를 더 유능하고 자율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남성들은 무척 달랐다. 그들은 선물을 받는 것을 불편해 했다. 특히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거나 같은 남성일 때 더 그랬다. 남성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3개월이 지나 다시 조사해 봤는데도 부담감은 더 커지고 자율성은 줄어 있었다. 자신이 더 우세할 거라 기대했던 세게이자 선물을 받거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나약함이라고 여겨지는 세계에서, 남성들은 질투나 의심같은 변연계의 반응에 굴복할 위험성이 훨씬 더 높다. 아마도 이런 경향은 남자는 항상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선물을 받는 것은 자산이 부족하다는 의미라는 사회적 통념에서 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분노, 질투, 의심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게도 전전두엽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거라고 해석하지 않고, 사냥꾼으로서 결속을 단단하게 해주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 마라톤을 하는 마라토너가 아니다. 서로 도와 결승선에 도착하는 이어달리기 팀의 일원이다. 결승선에 도착하면 모두가 1등메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 부모들은 크고 작은 방법으로 아이가 자존감을 일깨우도록 도울 수 있음.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아이가 부모의 자산, 영역, 관계를 공유해주어서 정말로 고맙다는 것을 표현하기만 해도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아이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겨진다고 느낀다. 부모의 눈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는 신뢰를 배운다. 신뢰할 줄 아는 아이는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잠재력을 지닌 아이는 무기력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면 아이는 무기력해질 이유가 없다.
- 대항-회피-경직 외에 우정이라는 네번째 반응이 있다. 나타날지 모를 경쟁자와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얼어붙어버릴 준비를 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 과연 오늘날 생존에 도움이 될까? 우정은 모두가 협력하여 더 훌륭한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준다. 우정은 우리의 내집단을 경계없는 집단으로 넓혀주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한된 자산, 영역, 관계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이 지구에는 자산이 서로 나눌만큼 충분하며 이타심이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전환시켜 준다. 대항-회피-경직반응은 지난날 인류의 먼 조상들을 보호해주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미래를 오히려 위협한다. 이제 우리는 진화를 통해 얻은 것, 즉 전전두엽이 이끄는 뇌를 이용해야 한다. 전전두엽이 지배하는 뇌는 우리의 원시적 본능을 억제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분노의 잔혹하고 원시적 영향 때문에 우리의 잠재력이나 우정의 힘을 낭비하지는 말자. 분노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이라면, 존중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기 위해 생겨난 행동이다. 존중은 신뢰로 이어지고, 신뢰는 인간 잠재력의 발휘로 이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방법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뇌를 다스릴 수는 있다. 이성적인 뇌를 이용하여 분노를 현명하게 해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디퓨징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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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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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습

심리 2015. 12. 8. 14:11

- 사람들을 당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들의 이성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활용해야 함. 우리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객관적인 주장으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오성의 역사는 짧기 때문. 따라서 인간의 본능적인 태도, 즉 불합리한 행동방식이 훨씬 오래되고 더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인류는 시간을 끌며 합리적 가능성을 저울질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늑장을 부리다가는 원시시대의 동물들에게 잡아먹혔을 것. 그외에도 생각을 하는데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됨. 우리가 얻는 에너지는 최대 20%까지 뇌가 소비. 그러므로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적게 생각하고 빨리 행동하는 것이 유리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뇌는 진화과정에서 특정상황에 대비한 생략과 비상대책 기능을 입력하게 되었다. 이런 보조수단을 통해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했고 더 빨리 목표에 이르게 되었지만 항상 성공한 것만은 아님. 잘못된 추론으로 왜곡된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 적절한 타이밍은 주변사람의 기분을 직감적으로 간파하고 무엇보다 인내하는 것을 의미. 비록 힘이 들더라도 자신의 관심사는 뒤로 미루는 것이 좋을 때가 많음. 분위기와 무관하게 성급히 일을 마무리할 생각에 실수를 저지르면 안됨. 실제로 급한 일이라면 그 상황에 맞는 다른 방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다음의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대개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 인생은 매시간 냉온탕을 번갈아 제공하기 마련이다. 그저 기다리다가 그 기회를 잡기만 하면 된다. 인내가 성공의 수단이다.
- 누군가를 상대할 때 그에게 공감한다고 말해보라. 처음 본 사람이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든 상관없다. 언제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단, 공감한다는 발언을 배우자에게 할 경우에는 엉뚱한 결과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는 공감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개인적으로 말을 걸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함. 전화통화를 할 때는 눈맞춤을 하지 못하므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가능. 상대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할 때는 다시 한번 물어보라. 이름 부르기의 효과를 테스트하고 싶다면, 슈퍼나 우체국에 가서 일을 마치고 인사를 할 때, 직원의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직원들이 명찰을 다는 것은 그런 용도때문이다.
- 매일 고맙다는 인사도 못받고 일하는 수많은 사람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자신의 일과 서비스에 욕을 먹는 대신 인정을 받을 때 몹시 기뻐한다. 이들은 평소에 주목받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며 조용히 일하는 일상의 주역들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 사람은 평생의 친구가 생기는 동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게 됨. 그러므로 상대가 당신을 위해 뭔가 해주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그에게 긍지를 갖게 해주어야 함. "정말 최고 전문가네요. 혹시 이 도표작성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행동 방식은 "미안하지만 이 도표작성 좀 도와줄 시간 있나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뛰어남. 두번째 방식은 상대의 시간과 자원을 요구하는 말이다. 즉 당신이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첫번째 방식은 상대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얼마나 솜씨가 뛰어난지 상대에게 보여줄 기회를, 또 감명을 줄 기회를 제공. 이 방법은 최고호칭의 방법임. 누군가의 행위를 최고의 솜씨라고 칭찬하는 것이기 때문.
- 당신이 동료에게 일주일 전에 커피를 갖다 주었다고 해서 그가 호의를 베풀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이와 달리 30분 후에 타자를 부탁할 것이 있어서 동료에게 커피를 갖다 주면 효과가 있을 것. 호의가 작을수록 효과는 빨리 사라진다. 반대로 호의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수록 효과는 오래간다. 또 자신이 이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누군가가 늘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인기를 끌겠지만 그의 협동심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따라서 호의는 뭔가 특별할 때 베풀어야 한다. 다음 규칙은 당신이 상호주의 원칙을 지킬 때 성공확률을 높여줄 것이다.
* 호의는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져야 함
* 호의가 다시 필요할 때까지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면 안된다
* 많은 비용을 들이지 마라. 조금만 베풀어도 당신이 주는 것 이상으로 받는다
* 당신이 베푼 호의와 당신이 기대하는 대가를 드러나게 연관짓지 마라
- 자녀에게 늘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녀의 근면과 노력, 끈기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녀가 계속 세상을 살며 도움이 될 그들 스스로의 자화상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상황을 변화시키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상황을 개선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 전체주의적 논증에 대한 사례
* 이 가정이 맞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 뒤따르는 모든 의문을 탄압
* 이것이 올바른 결정이다. 어쨌든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분명히 알 것이다. --> 따라서 이 결정이 옳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 당연히 이것이 올바른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제안했겠는가 --> 대부분의 종교에서 내세우는 고전적 순환논법
* 당신 말이 훌륭하고 그럴듯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보아야 한다 --> 당신은 몽상가다
-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부분 옳다는 생각에서 그런 주장을 한다. 인간의 오성은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한다. 단지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옳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라고 하면 안된다. 겸손하지 못한 말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듣는 사람은 그 말을 믿기보다 의심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 좋다. 단순한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간단한 책략을 통해, 가령 특별한 내부정보를 통해서 추가로 당신 주장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1인칭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 이때도 단순한 표현이면 충분하다.
* 몇년전 이와 아주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 따라서 내가 당신보다 더 잘안다
* 이것은 학교 다닐 때 전공했던 분야에요 --> 나는 이 분야를 공부했다
* 이 문제에 대해 마이어씨와 개인적으로 의논했습니다. --> 그러므로 마이어씨의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는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 아닌가
* 오래전부터 이 주제에 대해 매달려왔습니다. --> 다른 사람은 모두 초보자다
- 누군가 사리에 맞는 주장을 할 때는, 특히 그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질 때는, 상대의 주장을 잘 기억해야 함. 그 의견을 원용해서 당신의 목적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당신이 다른 맥락에서 그 의견을 이용하더라도 이것은 중요치 않음. 의견진술은 대부분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으며 그 말이 맥락에 맞는지 안 맞는지 캐묻는 사람은 없다
- 단순히 합리적 근거가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결정기준은 종종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당신은 중요도를 떨어뜨려야 할 결정기준과 성공을 위해 더 끌어올려야 하는 다른 기준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밀고 나갈 때, 당신은 우선순위를 완전히 뒤흔들고 당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결정기준의 변경은 언제나 세단계로 이어진다
1) 결정기준에 대한 기존의 우선순위 확인
2) 가장 중요한(그리고 당신이 생각과 어긋나는) 결정기준의 의미에 대한 의문제기
3) 진정한 우선순위의 설정
- 지금까지 우리는 가능하면 사람의 뇌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증거와 사실을 사용하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반면 증거가 넘쳐날 때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온갖 정보와 표면적 증거로 상대를 압도함으로써 부담을 느낀 뇌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용되는 법칙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증거 하나하나와 일일이 씨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사람의 뇌는 증거의 등급이 아니라 양으로 가치를 평가하게 됨. 논증이 많을수록 진실에 가깝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가령 어떤 협의를 하는 자리에서 왜 당신의 주장이 옳은지, 왜 그에 걸맞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계속 증거를 제시하다 보면 상대는 그만 됐다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일정시간 주장을 계속 반복할 수도 있다. 물론 계속 반복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더 옳게 비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오성은 달리 본다. 예컨대 당신의 상사가 해당 분야에서 천재라는 말을 매일 듣다보면 당신은 언젠가는 그 말을 믿기 시작할 것이며 설사 그가 바보처럼 보일 때도 가슴 한 구석에서는 혹시 위장된 모습이 아니야라며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증거가 넘쳐날 때는 당연히 매번 정보의 홍수를 겪게 함으로써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러면 기껏해야 상대가 더 이상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결과를 얻는 것이 고작이다. 불신하면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상대가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최악의 경우, 상대는 더 이상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자주 쓰면 안되고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만 사용하도록 주의해야 함. 적용할 기술은 다양하다. 그때그때 방법을 바꿔가며 신축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 실수를 한번 저질렀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라. 이런 태도가 인간적이다. 그리고 이전에 옳았다는 것을 강조하면 이 실수는 상대화된다. 이전에 잘했고 올바른 결정을 자주 내렸다는 말을 할수록 이번의 실수는 작은 것으로 의미가 축소된다
- 스스로 권위자가 되기 위해 당신이 타고난 카리스마를 갖출 필요도,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일 이유도 없다. 인디언 주술사를 생각해보라. 실제로 그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주술사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가다. 이런 인상은 독특한 인상을 비롯해 선별적으로 제시하는 지식 등 다양한 무기에서 나온다. 주술사가 의도적으로 비전되는 지식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태도로 신비로운 인상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지식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암시만 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 전부를 세세히 보여주고 한꺼번에 드러내는 사람보다 더 권위자로 인식됨. 유감스럽게도 전문가 행세를 하려는 사람 중에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음. 의도적으로 조금씩 핵심적인 것만 말하면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봇물이 터진 듯 말을 쏟아내며 자신이 아는 지식 전체로 주변 사람들을 공략하려 든다. 이런 태도는 권위적이라기 보다는 불확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과유불급이라고 덜 드러낼수록 더 좋다.
- 사람들은 권위자에게 겉으로 실질적 자문을 구할 뿐 아니라 동시에 특정상황에서 정서적 안정감과 방향제시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잊으면 안됨. 진정한 권위자는 바로 이런 것들을 제공함. 흔히 환상을 깨줘야 하는 것도 여기에 속함. 현실적 자문을 구할 때는 그것을 통해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한 바를 확인하고 싶은 의도도 있음. 권위은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아는 이것을 견뎌야 함.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면 인기를 끌지는 모르지만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그리고 진실은 소중하게 다루어야지 우격다짐으로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 유난히 힘든 것은 아주 쉬운 것으로, 유난히 쉬운 것은 아주 어려운 것으로 묘사하라. 이 수법을 쓰면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관심사를 지원하게 만드는 데 훨씬 쉬울 뿐 아니라 당신의 실적을 훨씬 높게 평가하도록 만들수도 있다. IT 담당자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에게 엄청 복잡한 무제가 생겼다고 말한다고 쳐보자. 실제로는 그저 프로그램 코드 몇개만 바꾸면 되는 것이라고 해도,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 담당자는 영웅처럼 보인다. 프로그램상의 엄청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키보드 위로 현란하게 손가락을 놀리면서 더욱이 몇 마디 유머를 섞어가면서 보란 듯이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는 그를 천재로 여긴다.
- 어떤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라. 예컨대 새 프로젝트가 어떤 이점이 있는지, 얼마나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알리는 것이다. 또 나쁜 소식도 늘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거기 담긴 나쁜 요인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큰 위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 고객 서비스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그 고객이 얼마나 원만하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인지 칭찬하라. 그런 다음 나쁜 소식을 전하면 고객은 화내지 않을 것이다.
- 피곤한 회의를 앞두고 있을 때는 찌푸린 얼굴을 하면 안된다. 이럴 때는 기쁜 표정을 짓고 유머도 사용하라. 또 여유를 부리며 동료들에게 가족이 잘 지내는지 물어봐라. 일단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화를 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 당신의 생각에 무게를 더 실으려면 의도적으로 반론을 활용하라.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당신 스스로 반론을 제기하고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어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을 보여준 다음 즉시 그 반박을 무력화한다. 이런 방법으로 당신은 잠재적 비판자가 할 말을 진지하게 대신하는 것이다. 비판자의 주장을 미리 파악해서 언급하는 방식. 당신의 적이 실제로 말도 꺼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 주장을 다룸으로써 당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셈이다.
- 틀짜기를 하는 방법은 너무 다양하고 언제나 아주 효과적.
*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의 시각으로 옵션을 규정하라
* 옵션은 언제나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는 것이라야 함. 예컨대 엄청 불리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어차피 선택하지 않을 0의 옵션이 중요한 역할을 함. 이 옵션의 유일한 역할은 다른 시나리오를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게 함
* 대화를 할 때 첫번째 극단적 옵션을 조금 미화시킨다. 우리는 어차피 이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무의식중에 종종 너무 성급하게 그 의미를 노출시키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면 효과가 사라짐. 시간을 두고 설명하라. 대안을 제시하기 전에 그 옵션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연후에라야 극단적 옵션은 완전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 최대 4개의 옵션을 제시하라. 그 이상이 되면 사람의 뇌는 초점을 잃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 기업체의 회장이나 사장 혹은 자신의 주가를 올리고 샆은 사람이 목표를 이루고 싶을 때, 고위층 연극을 사용하라. 고위인사에게 할 말이 있을 때, 절대 직접 전화하지 말고, 내 여비서가 상대 여비서에게 전화하게 한다. 그러면 비서들끼리 여러차례 일정을 맞추고 생각을 해보고 협의를 하다가 마침내 만남이 이루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누가 시간이 더 부족하고 더 가치가 큰 인물인지를 놓고 벌이는 연극이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의 개인적 가치를 높여준다. 개인비서가 없어도 옆에 있는 동료에게 비서역할을 부탁하라
- 직원들이 당신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려면 팀 내부에서 개인의 업무진척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 개인의 성과를 정확하게 알아볼수록 좋다. 월별로 확인하는 것보다는 주별로 확인하는 것이 낫고, 매일 확인하는 것이 더 좋다
- 업무 진척상황은 각 개인이 아무때나 볼 수 있어야 하며, 동료들이 늘 불러주는 대신 직접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이런 문화는 즉시 일상에 자리잡을 것이다
- 세무서류의 처리를 자꾸 미루는 상사에게 서둘러 마무리 짓게 하고 싶은 데 상사가 그 일을 처리하지 않을 때 당신이 부서이동 신청을 하겠다고 하든가 윗선에 전화를 하겠다든가 세무서에 신고하겠다고 하면 이것은 위협이다. 이때 당신이 세무서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회사에 큰 비용이 초래되고, 그 여파가 상사에게 미치는 것을 방지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손실 시나리오방법이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도움이 필요한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이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나도 팽개칠 거야. 그러면 파티고 뭐고 없는거지"라고 말하면 위협이지만, 손실 시나리오는 이와 달리 "내가 하고 싶어도 나 혼자 파티를 준비할 수는 없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파티를 포기할 수 밖에"라고 말하는 것이다.
- 손실 시나리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중요 특징이 있다
*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 처벌에 대한 조치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뒤따를 결과를 제시하고
* 누군가를 협박하지 않는 상태에서 원치 않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다
- 상대가 간단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에도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당신이 여러사람 앞에서 놀랍고 불쾌한 일을 당할 때도, 전문가답게 냉정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유연하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대부분 냉정한 사람보다 미숙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는 담즙질형 인간은 이런 이치를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만 알면 된다. 냉정을 유지하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기력하거나 아무대책이 없다는 말고는 전혀 다르다. 언제 행동하고 행동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쥐기 마련이다. 당신은 당연히 그런 담즙질형의 생각을 돌려 놓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상대가 불쾌한 태도를 보일 때 효과적인 대응수단은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이다. 상대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그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말로 지적해 주어라. "불쾌하신 것은 이해합니다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언제나 침착하고 사려깊은 분인 줄 알았는데요" 도발적인 말 같은가? 그렇지 않다. 최악의 경우 "내 입장을 생각해봐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런 다음이면 상대의 어조는 갑자기 부드러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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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생각의 해부

심리 2015. 3. 26. 20:37

 


생각의 해부

저자
대니얼 카너먼, 존 브록만 (엮음) 지음
출판사
와이즈베리 | 2015-01-1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석학 22인이 뇌과학, 행동경제학, ...
가격비교

- 셰익스피어도 "원래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생각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생각이란 놀라운 도구를 사용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그 결과로 세상에 대한 정서적 반응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부적절한 존재였던가를 깨닫는 순간, 아내의 배반은 트라우마에서 축복으로 돌변합니다. 우리가 이런 합리화에 능숙하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님. 정말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런 재주에 능숙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 합리화는 대체로 무의식적인 과정. 아내에게 배반당하고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오늘 나는 세상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거야!"라고 말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음. 나쁜 사건이 일어나면 곧바로 무의식적인 과정에 활성화돼 그 사건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기 시작. "나는 절대 사랑에 빠진 적이 없어"라는 생각이 저절로 마음에 떠오르고, 이런 합리적인 제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됨. 이처럼 사건을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떠올리는 인지과정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인지과정이 사후에 일어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함. 나쁜 일이 일어나면 우리가 오랫동안 낙담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주된 이유중 하나는, 우리 자신에게 이런 방어기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
- 사람들이 실제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연구하는 이들에게 기거렌처의 연구는 무척 중요함. 그의 연구는 특히 심리학자와 경제학자, 동물학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지능형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함. 심혈관계 중환자실의 결정, 직원선발, 증권선택 등을 위해 어떻게 신속하고 간결한 전략을 구성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기 때문. 기거렌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합리성을 전지전능과 최적화라는 완벽한 이상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흥미롭지만 시급한 문제를 최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의 행동이 이런 신적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정신은 불합리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음. 극단의 합리성과 불합리성이 오늘날을 지배하는 두가지 관점이지만, 이 둘은 인간 추론의 본질과 거리가 멉니다. 내 목적은 현재 상황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실행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제한된 합리성을 근거로 결정을 내립니다. 의사결정자를 전능한 신이라 생각하며, 그에게 무한한 합리성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한한 합리성에 하나의 유형만 있는 것은 아님. 예컨대 의사결정 방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한계와 제약에 주목하는 경제학자들이 있음. 이 연구는 제약하의 최적화라 불리는데,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이 분야를 연구했음. 이런 관점에서 유한한 합리성이란 개념을 보면, 하나의 유기체에게는 무한한 자원이 허용되지 않고, 무한한 시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음. 따라서 '이런 제약하에서 최적의 해결책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음. 반면에 환경의 제약은 고려하지 않고 마음의 제약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음. 사람들이 때때로 제한된 정보만을 받아들여 한두가지 기준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가 여기에 속함. 그들은 사람들이 선험적 판단으로 편견에 사로잡혀 오류를 범하고 나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함. 따라서 그들은 마음의 제약에 주목함. 하지만 마음의 제약은 환경의 제약과 무관하지 않음. 두 제약은 하나로 합쳐짐. 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은 가위를 이용해서 멋진 비유를 했음. 한쪽 날이 인지, 즉 마음이고, 나머지 날이 과제 혹은 환경적 구조라면 양쪽 모두를 관찰해야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올바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 공이 높이 떠오르면, 선수는 공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달리기 시작함. 그 어림셈법은 응시각, 즉 공과 눈 사이의 각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 응시각을 일정하게 유지하면 공이 제발로 선수를 찾아와서 그의 품에 안기는 것처럼 보임. 이런 어림셈법은 응시각이란 하나의 변수에만 집중하고 다른 모든 관련 변수를 무시하기 때문에, 동일한 목적을 훨씬 더 빨리, 훨씬 더 간결하게 성취하지만 오류의 가능성은 더 적음 정신이 무엇을 하는지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림셈법을 어떻게 하고 환경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 관찰하고, 정신이 환경구조를 어떻게 바구는지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일종의 계산을 해냄. 이 경우 공과 선수의 관계가 선수가 행동하는 기준인 단순한 선적인 관계로 바뀜. 이는 똑똑한 어림셈법의 전형적인 사례. 어떤 의미에서 어림셈법은 인간의 진화를 지원한 적응적인 도구상자의 일부임. 이와 유사한 어림셈법들은 동물에게도 존재함.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개들은 주인이 던진 플라스틱 원반을 잡을 때 운동선수와 똑같은 응시 어림셈법을 사용함
- 당신에게 "더 좋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조작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행동일까요?" 라고 물으면, 당신은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그 같은 행동이 나쁘거나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내려고 할 것임. 하지만 사람들을 어떤 정서상태에 밀어 넣으면, 예컨대 사람들을 끈적거리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식탁에 앉게 하면 다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우리 연구팀은 알아냈음. 만약 당신이 역겨운 식탁에 앉아 있거나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방에 있으면, 깨끗한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고약한 냄새가 풍기지 않는 방에 비해 "더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이력서를 조작한 행위는 나쁜다"라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높음. 또 당신이 사람들에게 깔끔하고 깨끗하다고 느낄 기회를 주면, 그들은 자신의 이력서를 조작하는 행위가 그다지 나쁘지 않고, 심지어 적절한 행위라고 판단하기도 함. 결국 사람들은 그 순간에 어떤 느낌을 받느냐에 따라 어떤 행위의 잘잘못에 대한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받는 듯함. 우리는 자신의 결정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실제로 이처럼 우연적인 것들에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음.
- 메스꺼움은 다른 정서보다 근본적이고 신체적인 면을 띠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운 정서임. 원래 메스꺼움은 음식과의 관계에서 생겨났음. 냄새가 좋지 않은 것은 우리 몸에 해로울 가능성이 있음. 썩거나 오염된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리기 십상. 따라서 메스꺼움은 무척 적응적 정서이며 신체적 정서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도덕과 관련된 메스꺼움, 즉 혐오를 신체적인 혐오반응에 관련시키면서 이처럼 음식에 관련된 기본적 정서가 다소 추상화됐음. 따라서 비도적적인 행위가 구역질나는 짓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신체적이고 영적이고 도덕적인 혐오가 하나로 결합된 것임. 원래 메스거움, 즉 혐오는 물리적인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정서였지만, 나중에는 영적인 오염과 도덕적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정서가 됐음. 이제 혐오는 나쁜 것, 나쁜 행동, 나쁜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정서임.
- 테스토스테론 혼자서는 어떤 기능도 해내지 못함. 테스토스테론이 어떤 역할을 하려면 남성호르몬 수용체에 결속돼야 함. 테스토스테론이 이 수용체에 결속되면, 온갖 유형의 다른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 남성호르몬 수용체는 뇌, 편도체, 관자엽널판 등 몸 전체에 분포돼 있음. 이 영역들의 형태는 남녀가 다르고, 이 영역들에는 남성호르몬 수용체가 무척 많음. 이런 사실들은 동물연구를 통해 알아낸 것이고, 뇌에 분포된 남성호르몬 수용체 지도는 최근에 작성되기 시작. 테스토스테론이 남성호르몬 수용체게 결속되면 온갖 것을 해낼 수 있음. 예를 들면, 신경전달물질을 조절. 테스토스테론은 세로토닌이나 GABA(아미노산 신경전달물질)등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조절함. 뉴런들의 연결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함. 세포자멸사는 뉴런이 제거되는 세포의 죽음으로, 이로 인해 뉴런간 연결이 끊어짐. 테스토스테론은 이런 연결이 끊어지는 속도에 영향을 주는 듯함
- 뇌의 피질이 과거의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발달함. 연구결과에 따르면 피질의 많은 영역에서 회백질은 유년기에 증가하시 시작해 유년기의 중간부터 말 혹은 청소년기 초반의 어느 시점에 최대치에 이르며, 그 이후 청소년기 동안과 20대에 접어들 때, 혹은 30대에 접어들 때까지 대폭 줄어듬. 회백질은 주로 겉질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피질에 분포해 있으며, 세포체들과 세포체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로 이루어져 있음. 세포차원이나 시냅스 차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MRI의 해상도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죽은 사람의 뇌조직을 연구한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시냅스의 가지치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음. 또 뇌 발달 과정에서 시냅스의 수가 처음에는 증가하지만 나중에는 줄어듬. 시냅스의 수적 감소는 시냅스의 가지치기가 원인임.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 즉 잉여시냅스는 가지치기 과정에서 제거됨. 시냅스 가지치기는 청소년기동안, 그리고 30대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됨. MRI를 통한 뇌연구로 알아낸 청소년기 동안의 회백질량 감소는, 역시 청소년기 동안 계속되는 시냅스 가지치기와 관계있는 듯함. 같은 시기에 백질량은 대뇌 전역에서 증가함. 그 이유는 세포의 섬유조직 때문으로 여겨짐. 전기충격이 뇌세포에서 뇌세포로 전달되도록 통로 역할을 하는 축삭들이 미엘린이란 하얀 물질로 싸여 있음. 이런 사실은 동물의 세포연구를 통해 알아냈음. 여하튼 이런 관찰결과가 MRI영상에서 백질량의 증가로 나타남. 이런 변화가 뇌기능에 영향을 미침. 미엘린은 절연체로 작용해 세포에서 세포로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를 높임. 따라서 기능측면에서 이런 변화는 뇌영역간의 신호전달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판단됨. 이런 변화는 태어나서 30년 혹은 40년까지 지속됨
- 동반감각 현상은 왜 일어날까? 동반감각자들은 왜 이런 혼선을 겪을까? 골턴의 관찰, 즉 동반감각이 집안내력이고, 유전적 관계가 있다는 주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 이같은 주장은 골턴 이후로 꾸준히 입증된 것이기도 함. 유아의 뇌, 정확히 말해서 태아의 뇌를 조사하면, 연결이 엄청나게 중복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다 유전자 가지치기가 일어나 뇌에서 인접한 영역들 사이의 지나친 연결을 정리함. 그 결과 모듈적 특성을 지닌 성인의 뇌가 만들어짐. 그런데 유전자 가지치기 과정에서 뭔가가 잘못되면, 다시 말해 성인의 뇌에서도 긴밀하게 연결된 색과 수를 담당하는 영역들처럼 인접한 영역들에서 가지치기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예컨대 유전자가 전사인자들을 통해 방추형이랑에서 선택적으로 표현된다면, 수와 색의 동반감각자가 됨. 인접영역과의 교차연결이 그대로 남아 있어 수를 볼 때마다 혼선이 빚어져 색과 관련된 뉴런들이 활성화되고, 그 결과 수를 볼 때마다 색을 보게 되는 것
- 정신분석이론과 진화론 사이에는 유사점이 적지 않음. 일반론적 관점에서 두 이론은 맞음. 진화론은 자연선택의 힘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줌. 정신분석이론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여러 면에서 우리를 형성하며 우리에게 세계관을 주입했다고 주장.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무의식을 형성하며, 이런 무의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 하지만 이 두이론은 많은 불합리한 결론을 끌어냈고, 두 이론 모두 엄격하게 검증하기 어려움. 정신분석의 영향력이 심리과학 연구에서 시들해진 이유는 정신분석이 지나치게 개괄적이기 때문. 정신분석은 검증하기 매우 어려운 수많은 가정을 쏟아냈고,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냈음. 하지만 정신분석이론이 낳은 몇몇 흥미로운 가정은 엄격하게 검증됐음. 우리에게는 인간관계에 대한 청사진이 있고, 그 청사진이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우리 인식을 형성하며, 그런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입증한 뉴욕대 수전 앤더슨의 전이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 진화론은 어떤 면에서 정신분석이론과 똑같은 상황에 있음. 진화론은 실질적으로 어떤 것이든 설명해낼 수 있음. 앞서 말했듯이 진화론도 유용한 발견법일 수 있음. 하지만 진화론은 지나치게 개괄적. 두 이론의 도 다른 유사점을 굳이 꼽자면, 두 이론은 성의 차이에 집착하는 듯함. 두 이론은 여성이 남성과 다른 이유에 초점을 맞춤. 게다가 두 이론이 사회적 행동의 차이를 유전자 영향을 탓으로 돌리는 것도 어느정도 잘못된 것임.
- 직관은 전문지식과 암묵적 지식에 근거. 암묵적 지식은 명시적 지식과 다름. 명시적 지식은 사실에 기반을 둔 지식. 가령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면 상대방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안다. 또 내가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안다. 이런 것들이 명시적 지식. 명시적 지식은 사실에 기반을 둔 정보임. 다른 유형의 지식도 있음. 예컨대 관례에 대한 지식. 사람들은 관례를 일련의 단계라고 생각함. 하지만 관례에는 암묵적 지식도 있음. 하나하나의 단계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나는지에 대한 전문지식, 또 각 단계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전문지식이 그러한 것임. 따라서 관례에도 전문지식이 필요. 직관은 암묵적 지식의 다른 사례임. 직관은 일종의 지각 식별능력과 비슷함. 따라서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까지 볼 수있음. 예를 들어 당신이 올림픽 다이빙 경기를 본다고 가정했을 때 선수가 발판에서 뛰어올라 몸을 비틀며 입수를 시도한다. 어떤 선수도 배치기를 하지는 않는다. 당신 눈에는 선수가 깔끔하게 입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해설자는 "물이 튀는 정도를 보십시오. 저런, 생각보다 많이 튀었군요. 심판들이 틀림없이 봤을 겁니다."라고 말함. 다이빙 선수가 입수할 때 발목이 꺾였다는 의미. 슬로비디오로 보면 발목이 꺾인게 확연히 보임. 하지만 해설자는 실시간으로 그걸 봤음. 나와 같은 시청자에게는 보이지 않음. 내 눈에는 다이빙 하는 것만 보임. 하지만 해설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어디를 봐야할지 알고 있음.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려운 부분이 어느 곳인지 알고 있음. 이런 지식은 그들이 경험으로 축적한 패턴의 일부임. 그들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음. 그들은 잘못된 부분을 실시간으로 알아내지, 슬로비디오를 통해 알아내지 않음. 이런 예민한 식별력이 암묵적 지식의 일부이고, 직관력의 일부임. 형태재인도 직관의 일부임. 가령 당신이 친구집을 방문했는데 친구가 앨범을 꺼냈고 당신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우들과 함께 직은 사진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 그 사진 속의 얼굴들을 살펴보며 "얘가 너지, 그렇지?"라고 말할 경우, 거의 언제나 맞음. 그 얼굴은 친구의 현재 얼굴과 똑같지 않지만, 우리는 그 얼굴에서 닮은데를 알아봄. 눈과 눈썹, 코 등 모든 것에서 관련성을 찾아냄. 이른바 형태재인을 적용한 예로, 형태 재인도 암묵적 지식의 한 부분임. 전형성도 암묵적 지식에 속함. 당신이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 뭔가를 보면 전형성을 느낌으로 알 수 있음. 다시 말하면,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 눈에 들어옴.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할 수 있는 것임. 그러면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함. 이처럼 있음직한 위험을 의식하게 해주는 것도 암묵적 지식의 일부임. 뭔가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사고모형도 일종의 암묵적 지식임. 사고모형은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이야기임. 즉 A라는 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B라는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관계를 말함. 사람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유형의 내적 표상, 즉 뭔가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사고모형을 만들어감
- 마음의 우리 내면에 있는 것,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계산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함. 이런 생각을 거부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음. 하나만 말하면, 우리 내면에는 생각하고 느끼며 의식하는 것이 없음. 의식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 우리가 행하는 것임. 이와 관련, 무용수만큼 좋은 예는 없음. 무용수는 음악에 호응하고 파트너에게 호응한다는 점에서 환경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음. 하지만 무용이 우리 내면의 상태, 혹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임. 춤을 추는 능력은 우리 내면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지만, 춤을 추는 행위 자체는 기본적으로 주변 세계와의 호응임. 인간의 의식은 더 큰 과정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움직임으로 해내는 것임
- 도덕기반이론을 간략히 설명하면, 도덕적인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가지 미각수용체는 동정심과 적개심, 공정함과 부정함,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배신, 권위와 전복, 신성함과 타락임. 도덕적 시스템은 이런 수용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지역 특산물로 빚어낸 음식과 비슷함
- 실험실 작업에 따르면, 자기 통제력이 쉽게 고갈된다는 점에서 자기통제를 발휘하는 역량은 제한적인 듯함. 다시 말해, 자기통제는 지친다는 점에서 근육과 유사. 많은 연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유형의 자기통제가 필요한 일을 해낸 후에 완전히 다른 유형의 자기통제가 요구되는 환경에 처하만, 근육을 많이 사용해서 지친 것처럼 그 환경에서는 자기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함. 자기통제는 고갈될 수 있는 제한적 자원임. 그러나 한편 다른면에서도 자기통제는 근육에 비유됨. 예컨대 규칙적으로 행사하면 자기통제력은 점점 강해짐. 따라서 자기통제와 도덕성이 제한된 자원이라면 쓸데없이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무 데나 자기통제를 발휘하지 않겠다고 말할 이유가 없음. 오히려 반대로 자기통제를 규칙적으로 발휘해야 함. 그래야 자기통제력이 더욱 강해지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잇는 역량도 더 커짐. 사람들이 도덕적 근육을 사용해서 그 근육이 피로해지면, 다시 말해서 자아고갈이란 상태에 빠지면 행동이 덜 도덕적인 방향으로 표류한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확인됨.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자기통제를 발휘해서 도덕적 근육의 일부를 써버린 후에는 별다른 이유없이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변해간다는 게 확인됨
- 시스템 1은 무엇을 할 수 없을까요? 시스템 1은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음.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처리하는 행위는 계획적이고 의식적으로 해내는 것. 시스템 1은 애매성을 회피함. 다시 말하면, 한가지 해석을 선호. 또 총계 같은 변수들을 처리할 수 없음. 총계 같은 변수는 다른 유형의 사고를 요함. 시스템 1은 개연성을 적절하게 계산할 수 없음. 그밖에도 시스템 1이 해낼 수 없는게 많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별적 사례에 대한 정보와 통계적 자료에 따른 정보를 어떻게 결합하느냐는 것. 시스템 1은 통계와 어울리지 않음. 시스템 1은 지각을 통한 유추에 가까움. 시스템 1은 개별적인 사례를 처리하려고 존재하는 것이지 전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존재하는 게 아님. 따라서 시스템 1은 개별적 사례를 처리할 때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냄. 예컨대 시스템 1은 개별적 사례에 관련된 정보를 엄청나게 축적할 수 있음. 우리는 이런 정보를 근거로 시스템 1을 사용. 누구나 시스템 1과 관련된 정보를 축적할 수 있음. 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정보들, 즉 개별적 사례에 대한 정보와 통계에 관련된 자료를 결합하는 건 훨씬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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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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