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아이들이 남과 다른 독특한 관심, 타인을 능가하려는 계획과 노력, 그리고 우월성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원형의 특징에 주목해야 함. 행동과 표현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능한 타인과 최대한 떨어져 있고 싶어한다. 낯선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 장소에 가는 것을 꺼리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협소한 테두리 안에 머무르려 한다. 이런 성향은 학교, 사생활, 사회생활, 결혼생활 등에서 반복된다. 이들은 우월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만의 작은 영역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손쉽게 성취하고 싶어함. 사실 이런 성향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모든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특정 상황과 특정인을 피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려는 사적 지혜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인 접촉과 일반상식이라는 신선한 바람을 필요로 한다
- 한 느긋한 아이가 활동성이 부족하고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아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의 내면 속에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게으르지 않다면, 대통령도 될 수 있을 텐데' 말하자면 그 아이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조건적으로 움직이며 노력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을 높이 평가하며, 어떤 조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거짓이며 공상일 뿐이다
- 사람이란 자신의 공상에 만족하는 존재다. 특히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공상 세계에 상당히 만족한다. 그들은 스스로 약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우회로를 선택한다. 이 싸움을 피하고 도피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실제의 모습보다 더 힘세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거짓 위안을 얻는다.
- 우울증 환자나 정신병자는 가족내에서 항상 관심의 중심자리를 차지함. 우리는 열등감 콤플렉스가 그들에게 안겨준 힘을 발견한다. 기운도 없고 체중도 빠진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가장 강한 사람들이다. 건강한 사람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권에서 나약함이 오히려 힘과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실을 그다지 놀랍지 않다. 누가 가장 강한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변은 아기이다. 아기는 모든 사람을 통제하며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 만약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과시적이라면 이는 열등감 때문. 즉 그 사람은 유용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경쟁을 펼칠 만큼 스스로 강하다고 느끼지 못함. 이것이 그가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지 못하는 이유다. 또한 사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사회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며, 자신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모른다
- 누구나 열등감의 감정을 느낌. 그러나 열등감은 질병이 아니며 오히려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발전을 위한 자극제 역할을 함. 무능력감이 한 개인을 압도해 더이상 유용한 행동을 촉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개인을 우울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할 때 열등감은 병리적 상태가 된다. 이때 우월감 콤플렉스는 열등감 콤플렉스를 겪는 사람이 어려움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중 하나. 우월감 콤플렉스를 통해 그는 실제로 그렇지 않을 때도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거짓 성공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열등감의 상태로부터 그를 보상해줌
- 정상인들은 우월감 콤플렉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월감의 감정조차 느끼지 않음. 정상인들은 우리가 성공에 대한 욕망을 느끼는 것처럼 자연스레 우월성을 표시함. 우월성 추구 노력은 일을 통해 건전하게 표현되는 한, 모든 정신병의 근원인 자신에 대한 거짓 평가로 이어지지 않음
- 행동이 거만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가 이런 식으로 느낀다고 추측할 수 있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어. 내가 중요한 사람이란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함 해. 또한 말할 때 몸짓이 과도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가 '내말을 강조하지 않으면 내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 거야'라고 느낀다고 추측할 수 있음. 타인보다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감추기 위해 아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열등감의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고 의심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키가 너무 작은 것이 두려운 나머지,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걷는 것고 같다
- 모든 신경증 환자는 어느정도 자신의 행동범위를 축소하고 주변 환경과의 접촉을 제한함. 그럼으로써 직업, 우정, 사랑이라는 삶의 3가지 문제와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환경을 벗어나려 하지 않음. 이런 방식을 통해 신경증 환자는 자신만의 비좁은 안식처를 만들고 문을 닫아걸은 다음 외부의 바람과 햇빛, 그리고 신선한 공기와 떨어져 홀로 삶을 살아간다
-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이 괴롭힘이냐 혹은 짜증이냐는 그가 지금껏 시험해온 자신만의 훈련방식에 달려있음. 즉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지금까지 시도한 방법 중 가장 효고적이었던 것을 선택. 가끔 어떤 방법에 만족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할 것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목표는 변함없이 그대로다. 즉 그는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적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그저 우월감의 감정만 얻고 싶어 한다. 눈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울한 아이는 울보가 된다. 그리고 이 성장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 이 울보 아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 우울증 환자로 발전한다
- 만약 우리가 '무능력함이 왜 그토록 두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우월성의 목표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 대한 답은 '각자가 너무 높은 성공의 목표를 정했기 때문'이다.
- 열등감은 그 자체로는 정상적 감정임. 사실 열등감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한 예로 과학은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절감하고 미래를 예측할 필요를 느낄 때만 크게 융성했다. 말하자면 과학은 인류가 자신의 상황 전체를 개선하고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며, 나아가 세계를 더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 실제로 인류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오늘날 까지도 통상적 심리치료는 증상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심리학은 임상 및 이론 측면에서 이와 정반대 입장. 한 아이의 수학실력이 뒤처지거나 학교성정이 나쁠 때, 이 사실에만 관심을 집중해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 아이는 선생님을 괴롭히고 싶어 그럴수도 있고, 퇴학을 당해 학교를 떠나고 싶어 그럴수도 있따. 그 아이를 잘 설득하면 그 아이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성인 신경증 환자도 마찬가지.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에서 편두통은 그에게 아주 유용한 수단으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 발생하기도 함. 편두통을 핑계삼아 자신의 사회문제를 회피하는 것인데,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 동시에 편두통은 사무실의 동료 혹은 배우자나 가족 위에 군림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함. 이런 상황에서 그가 오랜세월 동안 검증을 거친 유용한 수단인 편두통을 포기할 이유가 있겠는가.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 편두통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주는 아주 현명한 투자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목표가 여전히 그대로라면 환자가 증상하나를 포기한다 해도 곧 다른 증상이 이를 대체함. 편두통은 치료되었지만 불면증이나 또 다른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목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그 목표를 계속 추구하기 때문이다. 증상 하나를 없앤 다음 놀랄 정도로 빠르게 새로운 증상을 발전시키는 신경증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말하자면 끊임없이 연주곡을 늘려가는 신경증의 거장 연주자인 셈이다. 그들이 심리치료에 대한 책을 읽으면 아직 시도할 기회가 없던 새로운 증상에 대한 지식만 늘어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증상들을 선택하자는 목적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 목적이 그 사람의 전반적인 우월성 목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밝혀내야 한다
- 어떤 수단을 선택했든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비난할 수도 없다. 우리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구체적 목표 뿐이다. 목표를 바꾸면 정신적 습관과 태도 역시 변화한다. 더이상 옛날의 습관과 태도가 필요 없으며, 수정된 목표에 적합한 새로운 습관과 태도가 자리잡는다
- 각 개인이 설정한 그만의 특별한 목표를 보면 그가 자신의 열등감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보상하는지, 목표 이외의 다른 가능성은 어떻게 배제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어떻게 자신을 훈련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만의 생각에 잠기고 책을 쓰기 위해서 철학자는 때로 사회와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사회적 감성이 그의 우월성 목표와 결합되어야만 자신의 세계에 함몰되어 범하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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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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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챙김이란 당신이 의도적으로 현재 순간에 아무 판단도 하지않고 그리고 당신의 목숨이 그것에 달린 것처럼 주의를 기울일 때 생겨나는 무엇이다. 이때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자각(알아차림) 자체이다. 자각은 우리 모두가 익숙하게 알면서도 동시에 우링게 낯선 어떤 능력이다. 따라서 우리가 함께 탐구하게 될 마음챙김 수행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을 계발하는 것. 마음챙김 훈련은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도착해야 하거나 우리에게 없는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음. 그저 우리는 대개 지금까지 오랫동안 왕래가 끊어진 마음의 영역에 머무는 법을 익히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존재양식(BEING MODE)라는 것이다.
- 자칫하면 우리는 존재의 인간이 아니라 행위의 인간이 되어 이 모든 행위를 하는 자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애당초 왜 하는지도 잊어버리기 쉽다. 여기가 바로 마음챙김이 필요한 지점이다. 마음챙김은 주의와 자각을 활용해 행위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줌. 존재양식으로 옮겨갈 때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존재에서 나와 더욱더 통합되고 효과적일 수 있음. 더욱이 자신의 몸과 우리가 살아 있는 유일한 이 순간에 머무는 법을 배움에 따라 우리는 더이상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아도 된다.
- 마음챙김훈련은 환자들의 불안, 공황장애, 우울은 물론 스트레스 및 스트레스 관련 질환들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됨. 또 환자들이 만성적 통증을 보다 효과적이고 충분하게 대처하는데, 암환자와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높은 재발위험을 가진 주요 우울장애 병력을 가진 사람들의 재발감소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됨. 이런 효과들은 과학문헌에 보고된 임상결과의 몇가지 사례에 불과. MBSR은 뇌가 스트레스를 받는 힘든 감정을 처리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남. 전전두 피질의 특정 영역을 오른쪽 활성화에서 왼쪽 활성화로 전환시켜 정서적 균형을 향상시켜주고, 이런 뇌의 변화에 상관되는 면역체계의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남. 또 다른 연구에서는 MBSR훈련을 받은 사람이 현재 순간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관련된 신피질의 연결망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조사됨. MBSR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이 영역의 활성화가 더 적었으며, 자신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계되는 연결망이 더 크게 활성화됨. 이런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마음챙김 명상이 자신을 경험하는 방식을 더 다양하게 계발시켜주며, 우리의 경험 자체를 가리고 채색하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MBSR훈련이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 등의 뇌부위를 두껍게 변화시킨다는 사실도 분명해짐. 또 욕망의 좌절을 포함한 이런저런 인지된 위협 등, 공포에 기반한 반응을 통제하는 변연계에 있는 오른쪽 편도체 같은 부위를 얇게 변화시킨다는 것도 이제 분명해졌다.
- 마음챙김에 도전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의 경험을 섣불리 변화시키려 하거나 지금과 달라지도록 강제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현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순간에 당신의 경험의 질이 어떠하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자각하는데 필요한 여유공간이 있는가? 당신은 지금일어나는 현상을 회피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습관적 반응을 일으키지 전에 단 한번의 호흡이라도, 단 한차례의 들숨이라도 자각할 수 있는가? 공식적인 명상과 실제 삶에서 당신이 무엇을 경험하든, 자각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마음챙김명상의 정수. 자각 속에 사는 법을 배우면 삶 자체가 명상이 된다. 왜냐하면 자각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의 것이지만 아직 너무 낯설어 우리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삶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존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당신의 생각은 명상이란 것이 얼마나 따분한지 당신에게 속삭일지도모름. 또 엄청난 불편함과 긴장, 지루함과 견디기 어려움을 일으키는 이런 무작위적 방법이 도대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궁시렁거릴지도 모름. 또 자각이 지닌 가치에 의심을 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름. 예를 들어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한 자각이 어떻게 그것이 당신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줄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또 자각이 그저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끝도 없는 지루함에 빠지는 것 이상으로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생각이라는 강물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음. 그렇지 않으면 생각이 우리의 삶을 온통 점령해 버릴 것. 이렇게 되면 우리의 느낌과 행동, 관신을 갖는 모든 일이 생각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됨. 이 점에 있어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모든 사람이, 종종 전혀 인식하지도 못한 채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이런 생각의 강물에 휩쓸려 살고 있다
- 우리가 세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세상속에서 방향을 잃고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력과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추론능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함. 따라서 사고, 특히 정확하고 날카로우며 비판적 사고는 우리가 키우고 다음고 심화시켜야 하는 매우 중요한 능력가운데 하나임. 그러나 우리가 키우고 다듬과 심화시켜야 하는 능력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님. 이것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각이라는 능력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거나 훈련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지만 자각은 사고 못지 않게 우리에게 중요하며 또 쓸모가 있다. 아무리 심오한 사고라도 자각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각은 확실히 사고보다 더 강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초심자들은 명상이 매 순간 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나타나든 자신의 생각과 친해지고, 생각을 자각속에 부드럽게 안는 것임을 처음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명상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버리거나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자동적 혹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현실에 관해 생각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들을 더이상 믿지 않을 때, 또 우리가 호기심을 갖고 생각을 자각 속에 담아 그것의 실체없음과 한계, 부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대단한 힘에 놀랄때, 우리는 그 순가에 생각의 습관적 패턴에 사로잡히지 않고 생각을 있는 그대로의 생각으로 보는 기회를 갖게 됨. 그때 우리는 생각을 나와 무관한 비개인적 사건으로 알게 되고 나아가 그 앎 자체가 된다. 그리고 그 앎이란 곧 자각을 말한다. 그러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건들 속에서 이미 자유롭고 더 큰 명료성과 친절의 마음으로 행동할 준비가 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건들, 이것이 곧 우리의 삶이다. 우리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여기는 삶이 아닌, 확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삶 말이다
- 내면의 이야기란 것이 순전히 우리의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내면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허구적 구성물이자 조립물이다. 한동안 그 이야기는 매우 멋지고 설득력 있으며 흥미로울지 모른다. 그러다 어떤 때는 아주 끔찍하게 변할 수 있고, 또 어떤 때는 권태로울 정도로 그저 그럴수도 있따. 그럼에도 이것들은 모두 우리 마음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 기회는 준비된 마음을 좋아한다(파스퇴르) 준비된 마음이란 무얼까? 그것은 기꺼이 열려 있는 마음이다. 그것은 아는 마음, 혹은 모른다면 모른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아는 마음이다. 그것은 자신의 암묵적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물의 외관을 넘어, 그리고 그것이 왜 그렇고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관습적 이야기 아래로 더 깊이 탐구해 들어가는 마음이다
- 명상은 자신의 배꼽에만 뚫어지게 집중하거나 세상의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 명상은 현실 가치를 지닌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그것을 성취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자신의 현실적 야망과 동기를 빼앗는 것도 아님. 반대로 명상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가 우리 자신의 존재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도록 하는 것에 가까움. 그렇게 할때 우리의 행위는 단순한 행위와는 다른 어떤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때 우리의 행위는 자신의 마음을 친밀하게 아는 데서 비롯되는 경험의 또 다른 차원으로 인도되기 때문.
- 당신에게는 오직 이순간만 있다. 다른 모든 것은 기억과 기대일 뿐이다. 그리고 기억과 기대 역시 지금 여기에서만 일어나고 있다. 이 순간은 다른 순간만큼 소중하다. 사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더할 나위없이 완전하다. 완전하게 있는 그대로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 궁극적으로 수용이란 지금의 현상이 어떠한지 인식한 뒤 그것과 지혜로운 관계를 맺는 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 그런다음 그 명료함의 관점에서 볼 때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수용은 수동적 체념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이다. 만일 상황이 엉망이 되고 있다면 엉망이 되고 있따는 사실에 대한 앎. 그 자각이 당신에게 다음순간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설자리, 즉 방향성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고 수용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아니면 두려움에 압도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려움은 당신이 명료성과 평정심을 가장 필요로 할 때에 당신의 마음을 가려버릴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그 순간 명료성과 평정심이 없다면, 그 두려움을 알아차려 그것이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당신이 그것을 다스릴 방법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 당신의 마음을 가려버릴 수도 있따. 이처럼 수용은 그 자체로 우주 전체이며 사실상 우리가 평생토록 해야 하는 과업이기도 하다.
- 우리가 정의하는 대로의 수용이란 살아있는 지혜의 표현이다. 나는 일어나는 현상을 수용하기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 그렇지만 수용의 태도를 갖고 자각하는 것으로 옮겨가면 이 순간이 행복하려면 반드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해 라고 말하는 우리 머릿속의 이야기들로부터 즉시 해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특정한 사상과 관념, 생각에 집착하는 것으로 인해, 조건이 갖추어져야 행복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계속해서 지속된다. 그러나 집착은 수용과는 정반대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또는 현재 순간에 자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방식대로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고 여기는 태도를 내려놓을 때, 다시 말해 유쾌하든 불쾌하든 중립적이든,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라도 우리가 그것을 자각속에 품어 안으며 이미 존재하고 있는 방식 그대로 허용할 때, 문득 이 순간이 특정한 방식대로 달라져야 할 필요가 없어지며 우리가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가능.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의식의 대전환 자체가 곧 자유이며, 이것은 이미 해방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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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두가지 동기부여를 받아 어떤 행동을 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직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로 봐주길 바란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어함. (자아동기부여) 다른 한편으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이득을 얻고자 하며, 그것이 가능한 크길 바란다. (재정적 동기부여) 이 두가지 상반된 동기부여는 명백하게 서로 모순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남을 속이는 동시에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는 걸까?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이 가진 놀라운 인지적 유연성이 작동. 인지적 유연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적어도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이득을 얻는 동시에 스스로를 괞찮은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균형잡힌 행동이 앞으로 우리가 퍼지요인이라 부르게 될 이론의 토대다
- 부정행위와 자기자신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할 때 상대적으로 덜 주저함. 실제로 이런 실험들은 진짜 화폐가 관련돼 있지 않을 때, 그리고 어떤 행위가 돈과 한 걸음 떨어져 있을 때 사람들이 더 쉽게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줌
- 고갈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자제력을 요구하는 상황들에 맞닥뜨려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을 따르는 것은 쉬운일은 아님. 술집, 온라인 쇼핑, 이메일, 페이스북, 유튜브, 온라인 게임과 같이 우리 주변을 둘러싼 상품경제의 군단이 온 세상에 유혹의 손길을 마구 뻗치며 우리를 고갈시키려 들기 때문. 우리의 자제력을 위협하는 이런 유혹들이 노출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임.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이 남아 있을까? 어떤 유혹에 맞닥뜨렸을 때 거기서 등을 돌리기란 매우 어려우므로 그 열정의 불길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전에 그를 피하는 것이 현명함. 이런 조언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유혹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아예 유혹을 피하는 것이 한결 쉽다. 유혹에 맞서 싸우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해결책 가운데 하나임. 팔짱을 낀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100까지 숫자를 세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구체적 행동계획을 세우고 그를 밀고 나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이를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 우리는 단 한차례의 부정행위도 사소하게 봐 넘겨서는 안됨.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가 처음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용서한다. 처음 저지른 실수이고 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하지만 최초의 부정행위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 및 그 시점 이후의 자기행동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함. 이 점을 명심하고 최초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 가능한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 겉으로 보기에 악의가 없는 행동들이라 하더라도 이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소한 부정행위를 줄일 경우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 정직해지고, 그 결과 부정부패는 점점 설 곳을 잃게 될 것이다.
- 긍정적인 면에서 사람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터무니 없이 강한 믿음은 아무리 지루한 작업이라도 끝까지 매달릴 수 있는 힘을 주며, 새롭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줌.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스스로를 줄기차게 속인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실패는 그럴듯하게 둘러대고, 자신이 거둔 성공은 큰 소리로 외쳐댄다. 자신이 실패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한다. 사람들은 다소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을 자기기만으로 드높인다. 그런 자기자신이 실제 자신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를 속임으로써 이성과의 데이트에 성공하거나 중요한 사업을 훌륭하게 완수하거나 혹은 원하는 일자리를 얻는다. 그렇다고 허위 사실을 기재하는 식으로 이력서를 부풀리라는 의미는 아님. 다만 때로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부정적인 면에서, 사람들의 자기자신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믿음은 명백하게 불가능한 일임에도 언젠가는 잘될 것이라는 그릇된 확신을 갖게 하며, 그에 따른 결과는 최상의 결과와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는 정확한 이유 혹은 어떤 것을 선택하는 이유를 때로 정확히 알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동기가 모호하다고 해서 우리가 하는 행동과 내리는 결정 그리고 느끼는 감정에 대해 우리가 완벽하게 논리적 근거나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님.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 놀라운 능력과 관련해 우리는 좌뇌에 고마워해야 한다
- 인간의 좌뇌는 해석자이다. 좌뇌는 우리 앞에 일어나는 일과 우리가 바라보는 일에 대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역할을 한다
- 부정행위를 형성하는 요인
* 부정행위 증가요인 : 합리화능력, 이익충돌, 창의성, 하나의 비도덕적 행동, 고갈, 나의 부정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 다른 사람의 부정행위 목격, 부정행위 사례를 보여주는 문화
* 부정행위 감소요인 : 서약, 서명, 도덕적 상기자, 감시
* 영향을 미치지 않음 : 부정행위로 얻을 수 있는 돈의 액수, 발각될 가능성
- 로마시대 교훈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메멘토 모리. 로마제국 전성기 시절 전쟁에서 이긴 장군들은 로마거리를 행진하며 전리품을 자랑. 이 장군들은 자주색과 황금색의 의전용 의상에 월계관을 쓰고 얼굴에 붉은 칠을 했따.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함. 그런데 이 축하요소 중에는 노예 한명이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장군의 귀에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속상임. 승리에 도취한 장군들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미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재정립하고 더불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효과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것처럼 보이는 여러 사회적 장치들을 갖고 있다. 천주교의 고해성사부터 유대교의 욤 키푸르(금식과 속죄기도를 하는 속죄일)와 이슬람교의 라마단 심지어 한주에 한번씩 지키는 안식일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 시작하는 여러가지 제의 형식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해 타락한 생활을 중단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새해에나 생일에 혹은 직업을 바꾸고 새로 시작할 때나 실연을 당했을 때 새로운 결심을 한다. 최근 이런 다양한 새출발들의 효율성에 대한 실험결과를 보면 이런 방법들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효과를 매우 성공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도덕적 기준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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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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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심리 2018. 1. 9. 12:45

-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많은 시작의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들의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헤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상실이 크다고 생각된다면 삶에서 그만큼 많은 것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많은 실수를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 것보다 좋은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살아가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배움을 얻는 다는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으미.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에 더 즐겁다'고 누군가 말했듯이,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 본래 자신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맡은 역할들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님. 그 역할들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환상일 뿐이다. 우리의 모든 역할과 상황들 밑에 진정한 우리 자신이 숨어 있다. 거짓된 모습에 대한 환성을 버릴 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정의 내리기 위해 타인을 살펴본다. 다른 이들이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그런 방어를 넘어선 곳에 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건강하고, 완전하며, 가치있는 존재다
- 우리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마이클 조던 같은 뛰어난 운동선수도 아니지만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내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타고난 재능을 눈부시게 꽃피울 수 있다. 본래의 당신은 가장 순수한 사람이며 완전한 존재임. 당신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는 어둠 속에서 당신을 인도하는 불빛과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면 자신이 해야할 일, 배워야 할 교훈이 보임. 겉으로 드러나는 존재와 안에 있는 존재가 하나가 되면 더 이상 숨거나 두려워하거나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상황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자기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
- "얘야, 난 만족한단다. 내 삶은 멋지고 완벽했어. 더 이상 내 모습이 생기로 가득 차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난 이미 이 여행에서 많은 것을 누렸어.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츰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난 내가 어떤 파이였는지 알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알아내야 할 몫이지. 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이 생을 떠날 수 있단다."
- 사랑없이 여행하지 말라. 삶의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임무는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 놓은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사람과의 관계에서 때로 텅 빈 공간이 되라.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자신 안에서 세계의 영혼을 발견하고, 인간 안에서 신의 정신을 보라. 그것이 진정한 관계다. 삶은 거울과 같다. 삶에 미소 지으라. 그러면 삶이 당신에게 미소지을 테니까.
- 당신의 배가 물에 뜨지 못한다면 아무도 당신과 함께 물을 건너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어떤 관계에서든 한쪽은 케이크를 만들고 다른 한쪽은 그걸 먹는 법이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경우, 한쪽은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고 뛰어들어 해결하려 하는 반면 다른 쪽은 그 문제에 다른 식으로 접근해, 한발 물러서서 심사숙고하기를 좋아함. 그들은 각자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로가 일처리하는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김.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훌륭한 짝이다.
- 우리는 여전히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에 적합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훈계하려 들고,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에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보여주고 싶어한다. 분노를 쌓아가고,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한 점만을 되새기며 자신의 감정에 매달린다. 과거의 상처에만 매달린다면, 더 이상 상대방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뜻. 그 불쾌한 감정들에 매달리는 대신,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곧장 '아파!'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 상실과 이별의 수업.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고통속에 있다면, 만일 당신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려는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 이혼이나 별거를 통해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죽음이 궁극적인 상실이 아님을 깨닫는다. 살아있는 사람과의 이별이 훨씬 더 힘든 경험이라는 것. 그 사람이 계속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으로써 영원히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경우에는 가슴속이나 기억속에 계속 살아있기 때문에 그와 함께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따.
- 의학적으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로부터도 다음의 공통점을 배울 수 있다. 첫째, 그들은 한결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둘째,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필요 없어진 옷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말한다. 셋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더불어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 가장 고통스럼 상실을 겪는 와중에도 삶은 계속된다. 온갖 상실과 고통이 당신에게 밀어닥치더라도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상실감이 결코 끝날 것 같지만, 삶이라는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간다
-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이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얼마나 큰 집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차를 굴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 우리의 진정한 힘은 사회적 지위나 넉넉한 은행잔고, 번듯한 직업으로부터오는 것이 아니다. 진실하고, 강인한, 그리고 고귀한 내면에서 오는 것이다.
-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을 중단해야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그것으로 충분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 삶이 충분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의 날들이 충분할 때, 그 기분을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은 이대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막습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바꿀 수 있다. '이런게 바로 삶이고, 난 더이상은 필요없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큰 힘과 행운을 손에 넣은 것이다
- 가슴뛰는 삶을 위하여. 당신은 삶을 위하여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는가. 하루에 몇시간씩 일하고, 얼마를 벌며, 어떤 야망을 이루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 모든 일을 한다 해도 삶은 언제까지나 저쪽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인생시계는 몇시인가?
- 변화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상황에 작별을 고하고, 새롭고 낯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때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 상황의 낯설음이나 익숙함이 아니라, 그 중간에 존재하는 시간임. 유방암을 두차례나 이겨낸 작가 로니 카예는 "삶에서 하나의 문이 닫히면 언제나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그 사이의 복도는 매우 좁고 길다"라고 말했다. 변화는 대개 지금까지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문들의 이름은 끝, 완성, 이별, 죽음 등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불안정한 시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 시기는 닫혀진 문을 보고 슬퍼하면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기다. 이시기가 가장 힘이 드는 때다.
- 우리 모두는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까? 그들은 더 대담해진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 삶의 종착점에 있는 환자들은 곧잘 자신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무한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다. 두려움은 분노, 방어, 자만심 등 여러 가면을 쓰고 있다. 두려움을 지혜로 바꾸어야 한다.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야 한다. 당신의 두려움은 도전받지 않을 때만 힘을 가진다.
- 일단 두려움을 뛰어 넘으면 새로운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두려움을 벗어 버리는 것.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두려움이 주는 이런 배움들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경이롭고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다. 두려움이 없는 우리가 꿈꾸던 삶을...
- 영원과 하루.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별의 순례자며, 단 한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룬 세계를 반영할 수 있겠는가.
- 신체의 중요한 경고 체계 가운데 하나인 화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억눌러서는 안됨. 화가 난다는 것은 우리가 상처를 입었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말해줌. 많은 상황에서 그것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반면 죄의식과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우리 사고체계의 경계선을 넘어섰다고 신호를 보냄.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건강한 반응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행동하지 않을 경우. 때로 우리는 화를 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그것을 부정하다가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게 된다. 화의 감정의 늘 우리의 삶을 집어삼키는 무서운 야수의 모습을 띠는 것은 아님. 그것은 단지 하나의 감정일 뿐이다. 화나는 감정을 지나치게 분석하려 한다거나 그것이 타당한지, 적절한지, 정당한지 묻는 것은 소모적인 일.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과연 감정이 필요한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화는 경험해야 할 감정일 뿐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다른 감정들처럼 화내는 것 역시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며, 상대방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함
- 두려움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화를 내는 것이 더 쉽지만, 그것이 마음속 깊은 곳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 갓난아기와 어린아이들은 감정을 솔직히 느낀 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감. 울고 난 뒤 잊어버리고, 화를 낸 뒤 잊어버림 사람은 죽음의 시기에 이르면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정직해진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난 두려워요', 또는 '난 화가 나요'하고 쉽게 말할 수 있음.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더 솔직해지는 방법과 화내는 법을 배워야 함. 화는 우리 삶에서 스쳐지나가는 감정이어야지, 존재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인생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이다. 수십년 동안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우리는 단 한번도 '일주일에 하루는 더 일했어야 하는데' 라거나 '근무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었다면 더 행복했을텐데'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취해낸 것들을 자랑스레 회상하면서도, 삶에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함. 그리고 일에서의 성취감이 사생활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모든 것이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음. 열심히 일했지만 진정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됨
- 사람들 대부분은 놀이는 악마의 일터이며 놀이보다는 일이 먼저라고 판단.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올라가면서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는 법을 잊어버림. 삶을 힘들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삶을 개선하고, 고치고 싶어함. 단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는 법을 모른다. 우리는 즐거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조금만 즐거움을 맛봐도 죄책감을 느낌.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은 시간낭ㅂ라고 생각함. 아마도 이것이 왜 그토록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놀 장소를 찾아다니는지,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불건전한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설명해 줄 것임.
- 너무나 오랫동안 놀이에 대한 욕구를 억압해 왔기 때문에, 그것들은 불륜이나 약물중독, 충동구매, 식탐 등의 형태로 표출됨. 아니면 자신은 즐거움을 누리거나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고의로 자신의 삶을 파괴함.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함.
- 놀이와 놀이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지혜임. 당신이 만일 경쟁의식, 긴박감, 완벽주의, 독단 등의 특징을 가진 A유형의 사람(B유형은 느긋한 사람)이라면 놀이시간을 당신의 스케줄에 넣고, 때로는 자신에게 놀이를 강요하기도 해야함. 할 일은 항상 많지만 그것이 놀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음. 스스로에게 놀이시간을 주지 않으면 결국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게 됨. 만일 당신이 자신에게 놀이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중에 직장 상사에게 할애한 시간을 후회하게 될 것임. 심지어 가족에게 준 시간도 후회할지 모른다. 지금 놀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한다. 놀이란 이따금씩 우리에게 주어지는 휴식의 순간 이상의 것. 놀이는 그것에 실제로 투자된 시간을 의미. 당신은 일에서부터, 삶의 심각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함. 삶에 다시 순수한 놀이의 시간을 끌어들일 방법은 무수히 많음. 아침에 주식시세를 체크하는 대신 만화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웃기는 영화를 보고, 튀는 옷을 사는 것, 화려한 색상의 넥타이를 매는 것, 기발한 속옷을 입는 것, 초대에는 가능하면 응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무언가 실없는 일을 하는 것. 어느것이나 놀이가 된다. 그러나 어떤 놀이도 일로 둔갑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함. 당신이 정말로 산책을 즐긴다면 놀이이지만, 그것을 반드시 해야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노는 것이 아니다
-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그 어떤 것이라도 단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무화과 하나를 원한다고 나에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고, 먼저 꽃을 피우도록 기다리라고, 열매를 맺고, 그것이 마침내 익을 때까지 시간을 주라고.
- 인내가 주는 한가지 배움은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는 없다는 것. 지금 당장 원하지만 한동안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음. 하지만 설령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일지라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될 것임
- 인내심의 열쇠는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믿음, 인간의 모르는 큰 계획이 존재한다는 신뢰를 키우는 데 있음
- 당신이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곧 모든 일이 나름의 질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사실을 믿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삶에서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할 수 없음.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내심은 규칙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근육과 같다. 날마다 훈련하고 격려해야 한다. 전자 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 데 걸리는 1,2분 같은 작고 일상적 상황에서 그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삶의 더 큰 도전들에서 우리를 지탱해줄 튼튼한 근육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상황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모든 일이 정해진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켜야 함
- 때로는 거부하고 불평하고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대신, 그 상황을 다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경험은 당신을 치유해주고, 더 나은 인간으로 이끌어줄 것임
- 흔히 우리는 개인의 삶이 건강, 일, 연애생활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바꾸고 싶어함. 하지만 삶은 결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삶은 당신 자신에 관한 것. 삶은 당신이 여러 상황에 얼마만큼의 사랑, 자비, 유머, 인내를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
-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경이로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나약함의 상징이나 포기, 굴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받아들임은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잘될 것이고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에서 자신을 맡김으로써 위안과 힘을 얻는 일이다.
-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불가능한 상황들을 통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환상과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 무엇인가 바꾸어야 하고 당신에게 그것을 바꿀 힘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한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거센 파도에 대항해 배에 고이는 물을 퍼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 싸우면서 두려움을 느낄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항복해야 하는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우리를 소모시킨다.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순응해야 할 때이다. 인생이 맘 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때이다.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면, 받아들여야 할때다. 바꿀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다면, 순종할 때다
- 삶을 뒤돌아본다면, 가장 중요한 순간과 멋진 기회들이 반드시 당신이 세워놓은 계획과 노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오히려 당신이 그때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의 일치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이 일하는 방식이며, 삶이 일하는 방식이다.
- 용서와 치유의 시간. 용서의 첫단계는 상대방을 다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은 실수투성이고, 부서지기 쉽고, 외롭고, 궁핍하고, 정서적으로 불완전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 자신과 똑같다. 그들 역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가득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이다.
- 중병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자신들이 시한부 인생이었을 때 더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 시간을 정말 소중히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짐. 우리는 대부분 행복을 어떤 사건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마음의 상태.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얻거나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완벽하게 행복해질 거라고 확신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변하는 것은 없다. 행복이 복권에 당첨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 주름을 제거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그 모든 것들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해주겠지만, 그런 기분은 금방 사라진다. 다행스런 일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불행스런 일은, 우리는 그것들을 어덯게 이용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우리의 마음, 정신, 영혼은 행복을 느끼도록 처음부터 프로그램되어 있고, 모든 선이 연결되어 있음. 누구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해야할 일은 올바른 장소에서 그것을 찾는 것이다.
- 행복은 무슨일이 일어나는 가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달려 있다. 행복은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고, 그 전체를 어떤 마음상태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됨. 그리고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어느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는가에 달려 있다.
-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상실은 무엇이 소중한지 부여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쳐준다. 관계는 자신을 일깨워주고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두려움, 분노, 죄책감조차도 훌륭한 교사이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삶은 그 특별한 매력을 나타내기 위해 굴곡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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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남보다 민감한 성향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불안정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으로 표현되기도 함. 그러나 이것은 타인의 의지가 부족하고 불안할 때 표출되는 특성만을 다룬 것이다. 이런 설명은 민감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남들보다 더 큰 어려움과 도전을 경험하지만, 평온한 상태에서는 남들보다 더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함. 남들보다 민감한 우리는 부정적 상황에서 더 예민하게 불행한 감정을 느끼지만, 적절한 상황에서는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이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한 연구는 어려운 상황에서 민감한 반응(심박수, 면역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다른 아이들보다 자주 병에 걸리고 사고도 많이 당하지만, 정상적이고 익숙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는 빈도가 낮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특별히 예민한 신경시스템을 가짐. 숨어 있는 뉘앙스를 남들보다 더 많이 인식하고, 받아들인 인풋은 더 깊은 곳에 입력된다. 또 풍부한 상상력과 활발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음. 이것은 외부세계로부터 받아들인 인풋과 느낌이 무수한 개념과 연상,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 이처럼 우리의 하드드라이브는 빠른 속도로 채워지고, 그 결과 과도한 자극을 받는다
- 극도로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속에 갈등 요소가 있을 때 견디기 힘들어함. 언쟁이 벌어지는 상황은 그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긴장감이 감도는 자리에 있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감정이입능력을 가짐.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깊이 공감하므로, 남을 돌보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경우가 많음
- 민감한 사람들이 남을 돌보고 돕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 완전히 에너지가 고갈됨. 민감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쉽게 영향을 받고, 정신적 상처도 많이 받음.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분리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함.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민감한 사람들은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서 탈진하기 쉽다. 그런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 많은 활동을 하며 분주한 삶을 살던 사람이 실직하거나 은퇴하면 위기에 빠지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은 그것을 새롭게 발견한 자유로 받아들이고 환영함. 그 시간을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기회로 삼고, 삶을 더 느린 속도로 즐기며 살아간다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과 상단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지키는 행동원칙 중에 잘못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이상을 하면 좋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약점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는 이기적 행동을 하면 안된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깊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잘 지내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걸 요구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나에게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판단기준을 매우 높게 설정한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덕목에 대해 높은 기준치를 갖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사려깊어야 한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깊이 배려해야 한다. 책임감과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위의 모든 규칙을 100% 실행해야 스스로 만족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를 설정할 때 자신의 행동원칙과 자아상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는 적당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다.
- 높은 기준을 세우고 다시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는 악순환은 당신의 자아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자신이 부과한 과도한 요구 때문에 탈진하게 됨.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성향은 당신을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함. 지금 당신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해 힘들어 하고 있다면, 이제 그 기준치를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과중한 부담에 짓눌려 허덕이는 삶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기준을 낮추는 첫 단계는 자신의 개인적 행동원칙을 재검토 하는 것이고, 두번째 단계는 기준을 낮추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행동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당신이 예상하는 그런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해야 한다. 높은 기준에 맞춰 살지 않아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더 여유로운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 자신의 민감성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할 때 당신은 한동안 피로감과 슬픔의 감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지난날의 꿈을 포기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리는 게 인생이다. 때로는 더 많은 문이 열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강하고 활기찬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때 예민한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은 끊임없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분주한 생활방식과 무감각한 주위 환경에 대응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양분을 공급하며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남들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실제로 소모적이고 과도한 자극을 주는 대화에 쉽게 빠져든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배려깊고, 수용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천성적으로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민감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능력은 자기 문제를 남에게 떠맡기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오래 이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회적인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 당신의 에너지 수준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있고 보상받을 수 있는 관계에 그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타인과 깊이 있고 밀도 있는 관계를 맺는 능력을 갖고 있다. 민감한 사람들끼리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 그런 만남은 우리의 에너지를 고갈시키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사람들도 이런 관계속에서는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공격적 성향이 없는 것처럼 보일때가 많음. 실제로 싸우는 걸 싫어함. 논쟁이나 싸움에 취약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빠른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윤리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논쟁이나 싸움에서 승리하기 쉬운 이유는 상대에게 상처주는 걸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 당신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논쟁에서 항상 패배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고수한다. 그러므로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마치 자기 자신이 부과한 약점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 당신은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부정적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지 않고, 아무 문제가 없는 척 하는 게 좋다. 이럴 때 당신의 생각과 느낌은 당신에게 별로 중요치 않다. 그러나 어떤 일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최선의 중도를 찾아야 한다. 당신은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거나, 아니면 분노를 내면으로 향하게 하고 자신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의 중도는 '너 때문에 내 좋은 기분을 망쳤어', 또는 '나는 지금 굉장히 예민해'라고 당신의 느낌을 중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중립적인 말의 사례
* 당신이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면 기분이 너무 나빠
* 나는 지금 당신의 친절한 말이 듣고 싶어
* 나는 피클보다 샐러드를 먹고 싶어
* 우리가 정한 날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 싫어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수록 상대방과 더 명확한 의사소통을 할수 있다.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면 두사람 사이에 좋은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당신이 자기자신을 더 잘 표현한다고 느낄수록 상대방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특히 분노나 갈등을 피하고 싶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것은 나쁜 전략임. 부정적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당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피상적이고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지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분노의 내면에는 현실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숨겨져 있다. 분노는 장애물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된 강력한 에너지다. 당신은 그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변화되기를 원한다.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면, 의식하든 못하든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울 때 문제가 발생. 배우자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나면, 계속 그 점을 지적하고 고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배우자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러나 그것은 단지 두 사람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성격의 어떤 부분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당신은 희망과 불가능한 소망을 구분해야 한다. 희망은 현실과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짐.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바란다면, 결국 본질적으로 생명이 없는 것을 위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게 됨. 남편이 극적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면서 사랑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아내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포기할 때 그녀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남편이 근본적으로 달라질거라는 희망을 버리면,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인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 직접 하지 않은 일이나 실제로 통제할 수없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 제한적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그럴 경우 당신은 자신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죄책감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분노로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나는 죄책감을 자신의 무력함과 슬픔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불안증과 우울증에 취약. 그러나 그것이 기질적 특징은 아님. 안전하고 지지를 받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할 때, 민감한 성향의 소유자는 불안증과 우울증에 취약해짐. 특별히 민감한 이들은 작은 문제만 있어도 자신의 환경을 불안정하게 느낌.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사소한 경험도 민감한 아이들에게는 치명적 경험이 될 수 있다. 극도로 민감한 사람들 중에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음. 민감한 사람들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고 시각화하는 능력이 뛰어남. 우리는 좋은 일을 시각화하기도 하지만 부정적 일을 상상하기도 함. 이것은 어려운 일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으로 사고나 실수를 피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더불어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부정적 측면도 갖고 있다.
- 불안감의 정도(순서)
* 불안 -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 - 걱정 - 긴장 - 초조함 - 음식을 삼킬 때 목이 아픔 - 현기증 - 다리에 힘이 빠짐 - 땀 - 떨림 - 흉부 압박감 - 호흡곤란 - 공황발작
- 우울증의 특징은 자기자신과 미래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부정적 생각은 당신을 지치게 만들고, 피로는 부정적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결국 악순환의 굴레에 갇히게 됨. 당신은 피로감을 덜 느끼는 일들을 함으로써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 휴식과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피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때로는 탈진 상태가 위장된 슬픔과 불행일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잠은 불행한 기분을 없앨 수 있음. 기분이 저조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드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잠을 자는 것보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우울한 감정을 떨쳐버리는 데 도움이 됨. 그러려면 지금 당장 당신을 편하게 하는 일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일처럼 사소한 것 말이다
- 부정적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힘을 때는 생각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당신의 생각이 조종불능 상태에 빠지기 전에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배워야 함. 부정적 생각 중에는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많을 것이다. 끊임없이 나는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왜 나는 잡지에 나오는 사람처럼 성공하지 못했을까?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결점에 초점을 맞추게 됨. 만일 노숙자로 거리에서 떠도는 신세가 되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장점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 내가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라고 묻는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 최대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일 자신의 상황을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장밋빛 안경을 닦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가야할 삶의 방향을 현명하게 설정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반대로 부정적 생각을 하는 성향이라면, 당신이 쓰고 있는 어두운 회색 안경을 밝은 색으로 바꿔 쓰고, 부정적 굴절없이 자신과 세상을 똑바로 봐야 한다. 그것은 기분을 밝게 변화시켜주고, 피로를 덜 느끼게 해줄 것임. 당신이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부정적 생각을 하는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처럼 밝고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항상 경계하고 주의하는 것이 본성의 일부분이기 때문. 그런 성향은 당신이 예기치 못했던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서 고통을 당할 때, 현명한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당신의 민감한 신경 시스템은 다른 사람들의 신경시스템보다 더 예민한 균형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아마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긴장을 풀라는 충고를 자주 들을 것이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조언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음
- 오래된 트라우마를 해결하면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유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민감한 성향의 소유자들이 단지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삶을 조정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다면, 무엇보다 그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 트라우마는 심리치료를 통해 확실하게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문제이기 때문. 이것은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매우 민감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민감한 성향에 적응하도록 삶을 조정해야 한다
-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는 것은 때때로 내가 남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일생동안 자기자신과 화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모든이의 과제다. 어릴 때 우리는 삶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온갖 아이디어와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바라던 것들은 어느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는 정말 잘하고 싶었지만 꿈은 쉽게 좌절된다. 그럴 때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연민의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말 더 잘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어. 그렇지만 이것도 괜찮아." 이말은 "나는 잘해왔어. 그러니 나를 여전히 좋아할 수 있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 고반응성이라는 용어를 외향적으로 반응한다는 말과 혼동해서는 안됨. 이것은 서로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 말이다. 고반응성은 내면적 각성과 효과를 가리킴. 고반응적인 영아들은 뭔가 낯선 일이 주변에서 일어날 때 팔을 흔들어대는 강한 반응을 보임. 그러나 그 아기들이 자라면서 내면적으로 경험하는 강한 반응이 외부적으로는 감지되지 않을수도 있다. 그것은 낯선 사람들은 만났을 때 엄마나 아빠뒤에 숨는 것 같은 수줍은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울면서 팔을 흔들어대던 아기들이 시끄러운 십대 청소년으로 자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들은 자기 또래들보다 인생에 대해 더 깊이 사색하는 , 조용하고 내성적인 청소년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은 예민한 신경시스템 때문에 일상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강한 정신력과 외향적 성격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이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남들에게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가지 이유는 그들의 고통 한계점이 남들보다 낮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더 깊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숙고하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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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고 계신가요

심리 2018. 1. 6. 08:48

- 에로틱이라는 단어는 예외없이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에로틱하다는 말 속에는 마음이 울컥한다거나, 감동받았다는 의미도 있음. 그리고 모든 감각과 지능을 총동원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뜻이기도 함. 그리스 신화에서 쾌락은 영혼의 화신인 프시케와 에로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다. 즉 쾌락은 정신과 성적인 욕구의 결과물. 쾌락은 삶에 대한 에로틱한 반응이다. 우리 몸은 세상과 교감하고 조화를 이룰 때 찾아오는 쾌락에 전율하고 진동하게 되어 있다.
- 사람에게 쾌락을 즐길 수 있는 몸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다. 몸을 가졌기에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부딪치면서 감동받을 수 있는 것. 특히 세상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공통의 전제가 있기에 살을 부비며 사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 만지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경험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만약 갓 태어난 아기를 안아주지 않으면 아기는 곧 죽게될 것이다. 아기는 밥을 달라고 울기보다는 안아달라고 더 많이 보챈다.
- 난 얼떨결에 바보가 되었다. 내 바보스러움은 내 안에 있던 인간애와 다른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인간애를 다시 찾아주었다. 사회적 제약과 세속적으로 현명한 척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정직하고 진실해질 수 있었다. 특히 내가 걱정을 털고 편한 마음을 갖도록 북돋아주었따.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하는 상황, 즉 자기 자신과 모든 일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편히 지내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행동에 목적과 의미가 있어야 할 때 걱정을 덜기란 쉽지 않다. 그게 바로 내 경우에 기꺼이 바보가 되지 못했던 이유다. 늘 나의 인생은 가야할 길이 정해져 있다
- 난 가끔 놀시간도 없을만큼 바빴고,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들은 눈 앞에 닥친 것처럼 느끼며 살았다. 그리고 인생은 심각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인생은 심각하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진실을 말하면 중요한 일은 내가 중요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중요시하기이다. 바보가 된다는 것은 무심코 비밀을 누설하거나 자충수를 두는 것을 의미. 이 말은 공기주머니, 송풍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폴리스(follis)에서 왔다. 바보가 되어 맛보는 쾌락은 기를 쓰고 열심히 일 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기,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하고 남들이 하는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부담감으로부터의 자유 등, 자만심과 사회적 기대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에 있다
- 바보가 된다는 것은 바보처럼 행동한다는 것과 다르다. 마치 자기발전을 위한 또 다른 업무처럼 하루에 한시간씩 그냥 우스꽝스럽거나 바보스럽게 굴 수는 없다. 그것은 당신이 정상적으로 살기 위한 목표나 규칙을 느슨하게 할 뿐이다. 당신을 지탱해주는 세계관과 자신에 대한 생각을 약하게 하는 것이다. 바보의 쾌락은 주로 자의식이 없을 때 느낄 수 있다. 자유의 순간에 자아를 잊을 때 느껴진다.
-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모르는 사람 중에 하나일 수 있다. 그들을 삶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사전지식이나 선입견 없이 신비로운 존재로 보는 것이 바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우리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쾌락을 준다. 예상가능한 성격 중에 하나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인물로 봐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작업은 축 늘어진 사랑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 당시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왜 가는지 모르는 데서 오는 쾌락은 결코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처럼 인생을 낭비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세부적이고 개인적인 계획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계획은 주의깊고 열린 마음일 때 가장 잘 발휘되고, 우리를 둘러싼 더 큰 힘을 받아들이고 협동할 때 성과를 낸다. 그래야 삶의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수수께끼지 수행해야 할 업무가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이뤄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수수께끼다. 뜻밖의 새로운 발견이 있는 삶의 바로 쾌락이다
- 계획된 인생은 가라고 해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인생을 맞이해야 한다. (조셉 캠벨)
- 안전하다는 것은 대부분 미신이다. 현실적으로 안전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삶은 다름 아닌 용감한 모험이다. (헬렌 켈러)
- 겸손은 우리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고 우리의 진정한 상태, 즉 우리가 결점 투성이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해준다. 완벽에 대한 환상은 인생을 조정할 수 있다는 환상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생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결점 투성이어도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을 인정할 때 커다란 즐거움이 있다.
-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레너드 코헨)
-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갖게 해준다. 우리는 친구나 연인에게서 나와 같은 약점과 단점을 보거나 우리처럼 그들도 실수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 모두 빈틈이 많은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를 인간이라는 끈으로 묶어준다. 이 불가사의하고 이상한 세상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유쾌한 일이다. 우리의 빈틈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 물론 빈틈을 제어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도 있지만 우리의 빈틈은 주변 사람이 유능하지 않아 보일 때나 나 혼자만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오만한 태도를 없애줄 것이다.
- 일본에는 미완성의 실수가 빚어낸 불완전함을 높이 평가하는 세계관이 있다. 일명 와비 사비라 불리는 것인데, 와비는 꾸밈이 없고 담담한 것을 가리키고, 사비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생긴 고유의 미를 의미. 와비 사비는 다도, 서예, 도예와 같은 일본의 전통 예술 형태를 강조하는 미학적 관점으로, 겸손과 중용, 불규칙한 흙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미학이다. 그것은 고색창연한 세월과 더불어 유용하게 쓰이기 위해 변해온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와비 사비는 갈라진 틈과 낡은 점에 스며 있다. 청동의 푸르스름한 녹과 돌에 낀 이끼에 들어 있다.
- 놀라운 감정, 느낌, 감각, 감동, 즐겁고 고통스러운 근심, 기적 같은 삶. 어떻게 이 삶이 시작되었을까? 무엇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잡아주는 것일까? 지금도 이 순간은 사라지고 이미 사라져서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데. 답은 없다. 단지 들이마시고 뱉는 이 숨을 느끼며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쾌락이다.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로 미루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이 삶을 지금 맛보는 것이 훨씬 기분 좋은 일이다.
- 끊임없이 다음 스케줄을 알려주는 알람 벨소리가 없을 때, 이것이 유리한지, 저것이 유리한지 머리쓰며 고민하지 않을 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했어야 했는데...와 같이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없을 때(마음속에 특별한 목적의식이 없을 때) 몸 안의 모든 세포는 비로소 적당한 곳에서 쉴 수 있다. 나는 특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그런 느낌이 든다. 마음은 바람하나 없는 호수처럼 고요하고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갠다. 이것이 나태에 대한 관습적 죄의식과 내면의 휴식의 중요한 차이다.
- 바쁘게 돌아다니며 꿀벌처럼 일하고, 곧 알게 될 지식을 찾으러 이곳저곳 성급히 돌아다니지 말자. 다만 꽃처럼 잎을 벌린 채 가만히 세상을 받아들이자. 태양의 신 아폴로의 보살핌 아래 조용히 싹 틔우며, 반갑게 찾아오는 모든 고귀한 곤충들에게 소식을 들으면서. (존 키츠)
- 당신이 완벽하게 무익한 방법으로 완벽하게 무익한 오후를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잘 사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린위탕, 생활의 발견)
- 1,2세기 전만 해도 농부들은 항상 밭의 한 이랑을 남겨두곤 했다. 땅의 한 부분이라도 쉬게 해서 다음 수확에 훨씬 더 많은 곡식을 거두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한시도 쉬지 않고 모든 밭을 다 일군다. 생산적인 면에서 잘못은 아니다. 우리는 이런 것이 만족스러운 성취감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안 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않으면 우리 안의 자원은 다 빠져버리고 팽배한 불안감에 휩싸여 지낼 것이다. 곧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 스무 살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한다. 마흔이 되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은 신경쓰지 않는다. 예순이 되면 그들이 우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밥 호프)
- 내가 집중하지 못한다 해서, 하루에 한시간 또는 그 이상 산만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세상은 나 없이도 훌륭히 돌아간다. 잠시 정신을 놓거나 내 몫을 하지 않는다고 큰 일이 나지 않는다
- 종종 혼자라고 느끼는 고독은 깊이 있는 명상이나 인격형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대함을 직면했을 때 고독은 아이디어와 열망의 발상지다 이 아이디어와 열망은 개인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없으면 사회가 악에 물들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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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깊이를 행복감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애써 만들고 고생하며 돌보는 과정을 통해 완성한 결과물에는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자신이 정성을 들인만큼 강한 애정을 쏟을 것이다. 반려동물도 돌본만큼 정이 든다. 책도 애써 읽은 만큼 감동이 더해진다. 고생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속에 고생이 있다
- 남이 해주는 것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해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능력이다.(아리스토텔레스)
-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생을 피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적절하지 못한 설명이다. 인간은 타인에게서 받은 즐거움에는 싫증을 내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즐거움에는 진심으로 기뻐한다
- 정규직과 고정적인 수입은 인생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 토대위에 안정감이 쌓여간다.
- 대부분의 일은 능력이 아니라 지위에 따라 좌우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행복을 쉽게 거머쥐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 자신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극단적으로 달리지 말고 침착하게 리스크를 생각하면서 대처해 나가자
-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곧 문화적 후퇴를 뜻한다
- 가족만이 지닌 가치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데 있다. 또 서로 엄격히 심사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존재로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족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다.
- 낙타처럼 의무를 짊어지고 사자가 되어 세상의 상식을 부정하고 자신을 자립시키며, 마지막에는 아이처럼 순진무구해지라.(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단계는 낙타, 사장, 아이의 순서인데, 마지막 단계에서 아이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기쁨이 넘치는 곳을 긍정하라는 의미. 우선 낙타처럼 묵묵히 의무를 짊어지고, 그 다음에는 사자와 같이 자신의 가치관을 용기있게 바로 세우며, 아이처럼 여러가지 일을 긍정하고 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런 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세단계, 의무를 다하는 시기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도전하는 시기, 그리고 순수하게 즐기는 시기로 발전시키자
- 단조로운 생활을 참고 견디는 능력을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 한다. 무료함을 견딜 수 없는 세대는 소인배의 세대가 될 것이다. 인류가 저지른 죄의 최소한 절반은 무료함을 두려워하는 데서 기인한다
- 불행할 때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불행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불행한 마음이 줄어든다. 사람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구원받는다
- 어떤 물건이나 대상에 애정을 갖는 것은 잠시 기분을 좋게 해줄 수는 있지만, 집착이 생기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번뇌가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충족시키면서 살면 아무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다. 혼자서도 어느정도 안정감이나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하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처의 제자로 자족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조차 일종의 집단을 만들어서 움직였다. 공자를 따르던 무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을 갈고닦는 수행 중에도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생활하면서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행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오히려 달마처럼 동굴에 틀어박혀 벽을 앞에 두고 홀로 수행하면 행복해질까? 그러므로 홀로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면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이 차오를 것이다. 나누면 커지는 것, 이것도 행복의 한가지 특징이 아닐까.
- 현실에서 벗어나 여기저기 여행하며 다니는 자유의 달콤함에 빠지면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오기 어려워진다.
-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잡담이 인간이 본래적인 삶의 방식을 잃게 한다는 점을 퇴락이라는 말로 지적,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본래적 삶의 방식과 비본래적 삶의 방식이 있다. 본래적 삶의 방식은, 언젠가 사람은 죽음을 맞이 하지만 그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사고방식이다. 반면에 비본래적인 삶의 방식은 일단 죽음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가치관이다. 잡담 역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행복한 조건 중 하나임. 하지만 요즘은 잡담이 지나치게 끝없이 이어지는 탓에 수면시간마처 침식당하고 있는 상황. 이런 풍조가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어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지경. 그래서인지 현재 일본 중학생들의 공부시간이 세계 여러나라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SNS에 소비하는 커뮤니케이션 시간이 너무 많아진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정신적인 행복감이 얕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인류가 추구해온 행복의 형태에서 크게 빗나가 있다. 이 현상이 나에게는 어떤 노력도 없이 그릇이 작은 사람들끼리 인정해주는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유코리교육이 젊은이들을 무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행복에 관해 생각하면, 요즘처럼 얕은 차원에서 추구하는 행복만으로도 과연 괜찮은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 개성은 타고난 기질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평가기준으로 두기 어렵다. 시험처럼 꾸준히 쌓은 노력을 결과로 평가받는 시련이 앞으로도 필요하다
- 위대한 과학자도 성공한 경영자도 개성은 모두 다르다. 특정한 성향이나 개성만 높은 평가를 받는 사회는 자유가 결여되어 있는 사회다
- 앞으로 행복을 만들기 위한 조건중 하나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물건, 특히 시스템을 창출해내는 일이다. 과거의 유산으로 얻은 행복만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다
- 인생이 무한히 길다고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하루하루로 결산해 나가자. 건강과 감정상태의 균형이 잡히거나 약간 플러스로 끝나게 해야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오늘은 인류에 공헌했어라든가, 오늘은 문화적 큰 사업에 참여했다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늘 군만두를 먹었어, 오늘은 기분좋게 목욕을 하고 개운해졌어,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고 자야지 등등 생활에서 쉽게 느낄수 있는 행복을 찾는 것이다.
-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계속 생각하다보면 피로가 누적됨. 이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함.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가 줄곧 신경을 거스르는 경우가 있다. 의외로 이런 일들이 우리가 불행을 느끼는 주 원인이 된다. 오늘날 사회는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누군가에게 들은 불쾌한 한마디나 무심코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하는 방법. 영화를 여러편 보거나 축구경기를 몰아보거나, 책을 여러권 읽는다. 그만큼 시간을 소비하면 그 직전에 괴로워하던 일이 상대적으로 무척 먼 과거의 일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그 사이 욕조에 들어가 몸을 녹이면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이라도 일주일 전에 일어난 일처럼 조금은 멀게 느껴진다. 요컨대 망각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요령.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는 것. 일정한 시간에 여러가지 일을 하면 며칠전에 있었던 일도 마치 한달전의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캠핑을 가면 그 전에 있었던 일은 매우 오래전 일처럼 느껴짐. 그런 특별한 행사에 참가하는 방법으로도 조금전의 일을 단번에 멀리 느끼게 하는 망각의 효과를 촉진할 수 있다. 또 한가지 방법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일보다 더 힘든 일을 하는 것. 그런 상황에 빠지면 그때까지의 고민거리는 하찮게 느껴진다.
- 신경쇠약에 걸렸다는 징후중의 하나는 자신의 일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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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 갈등이 즐겁지도, 편하지도 않기에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으려 하는 아이는 결국 동일시라는 카드를 선택하게 됨. 동일시는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을 닮아가기로 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라면 어머니를 차지하려는 소망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닮기로 결정하는 것임.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아이가 느끼던 내면의 갈등이 서서히 가라앉고 부모가 갖고 있는 도덕적인 가치관들이 아이 자신의 것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를 초자아라 부른다. 초자아는 외디푸스 갈등의 유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가운데 터득하고 배우게 되는 도덕성 및 이와 연관되는 가치들의 모음이다. 말이 좀 어려워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늘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면 안되고, 저렇게 해야만 하고 등의 생각들의 집합들을 초자아라 할 수 있다.
- 초자아는 흔히 마음의 검열관으로 비유됨. 초자아는 한 사람의 내면 안에 눈을 크게 뜨고 앉아서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마음속에 품는 생각, 그가 받는 느낌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점검한다.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 행동이 기대한 바와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 평가한다
- 죄책감은 한마디로 초자아에 의해 생기는 감정. 초자아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자리잡은 다음 내 삶의 방향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발휘. 초자아가 지나치게 강력한 사람이라면 늘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됨
- 분노라는 감정은 자율신경계를 건드리므로 일단 화가 난 다음에는 그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반응을 조절하기란 거의 불가능. 예를 들어 화가 나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아무리 열심히 부채질을 해도 금방 가라앉지 않는다. 씩씩거리는 거친 숨결은 제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마음처런 잘 되지 않는다. 차라리 처음에 분노가 시작되는 과정을 조절한다면 모를까, 일단 분노가 생리적 현상으로 연결된 뒤에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가 없다. 마치 무너지기 시작한 도미노를 붙잡으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가. 그러니 화가 솟구친 다음에 이를 가라앉히려는 노력이 잘 안먹히는 자신을 나는 의지박약이라겨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안되는 게 오히려 당연하니까, 분노가 생기기 시작하고 초기에 잘잡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 사소한 분노가 과거의 기억을 불러 일으켜서 분노를 키우는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 특히 부부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과 원망, 사랑과 섭섭하이 한켜한켜 누적된 관계에서는 과거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이 성냥개비 하나로 산불을 내는 요령과 비슷하다. 예전에 섭섭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분노에 동원할 수 있는 다른 뇌들이 일시에 점화되면서 분노는 연쇄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부부싸움의 여러 요령 가운데 하나는 현재시점의 문제감 갖고 다투어야 한다는 것
- 대뇌변연계, 그중 특히 편도는 폭력과 연관성이 높음. 편도는 생긴 모양이 아몬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폭력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편도에 이상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음. 그러나 편도를 자극한다고 해서 항상 폭력이 유발되는 것이 아님. 실험적으로 편도를 자극해보면 불안과 우울, 분노, 두려움과 공포 등 다양한 감정들이 보고됨.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에 파묻혀 있는 뇌의 한 부분인 도피질은 감정과 신체의 항상성 조절에 기여하는데, 냄새나 오염에 대한 역겨움을 처리하기도 하고, 분노 외에도 공포나 행복, 슬픔 같은 기본감정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 도피질이 주목받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명상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오른쪽 앞 도피질이 두껍다는 보고가 있어서다. 분노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외측 안와전두엽이라는 곳인데, 이 부위는 분노에만 기여하는게 아니라 동기부여와 긍정적 감정처리에 중요한 곳이기도 함
- 정신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 가운데 억압과 억제라는 것이 있다. 억누른다는 것 자체는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가지 방어기제는 서로 다름. 신경증적 방어기제에 속하는 억합(repression)은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의식에 이르기도 전에 눌러버리는 것을 의미. 신경정은 neurosis를 번역한 것인데, 과거에 사용하던 단어인 노이로제라는 말이 여기서 나옴. 느끼기도 전에 원천봉쇄, 미리부터 다 눌러비리는 게 억압이다. 이와 달리 억제(supression)는 성숙한 방어기제에 속하는데, 의식 속으로 들어온 충동이나 갈등을 의지적으로 견뎌내는 것을 의미
- 성숙하게 분노하는 사람이란 분노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를 경험하되 이를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분노를 억압해버리는 사람은 이 감정을 애초부터 너무 눌러버리는 바람에 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른다.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지 못하니까 분노에 뚜껑을 덮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덮어둔 분노는 절대로 그리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서 부글부글 끓으면서 어떻게든 밖으로 나갈 출구를 찾으려던 분노는 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으면, 즉 주변을 불사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속을 태워 들어간다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스트레스인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음. 스스로 받아들일 때 자존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면 그걸로 충분한 타격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은 우울증으로 가는 지름길. 나는 이정도면 나름 괞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는 것과 나란 인간이 하는 꼴이 다 그렇지 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는 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악의가 있어서 그럴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면 진심을 담아 하는 격려의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단순한 우울감, 즉 병적 우울증이 아닌 슬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병으로서의 우울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들은 운동을 담당하는 기저핵에 이상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운동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다보니 몸이 언제나 천근만근으로 느껴진다. 다른 사람에게는 간단한 활동일지 몰라도 이들에게는 지독한 피곤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미리부터 몸서리를 치게된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다 보니 집중력과 주의력이 모두 함께 떨어져서 사소한 일들을 잊어버리는 일도 잦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가 쪼그라들어 있다는 것도 기억해두면 좋겠다.
- 병으로 우울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뇌 자체가 아픈 상태나 마찬가지여서 아무리 속상해 하지 않으려 해도 그게 잘 안된다. 그냥 잊어버리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리 없다. 안 좋은 일일수록 잘 잊히지 않고 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자구 더 생각나는 우리 뇌의 모순 때문에 이미 뇌는 기진맥진해진 상태. 기운을 내보려고 하지만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상태로 느껴지므로 마음처럼 잘 안된다. 그래서 쉽게 건넬 수 있는 위로는 정서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 이 사람은 내가 힘든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식의 의미로만 들린다.
- 제대로된 슬픔은 어떤 모습을 나타낼까? 한쪽 극단은 지나치게 슬픔에 사로잡혀 통곡을 하느라 몸도 못 가누는 상태이고, 또 한쪽 극단은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 채 머뭇거리기만 하는 상태. 그 중간 어딘가쯤에 적당한 슬픔이 존재할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적당한 슬픔보다는 극과 극이 판을 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 질병에 도달할 정도의 우울이 아닌, 겪을만한 슬픔이 찾아온다면 이리저리 숨기보다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받아들이는 방법은 이렇다. '아, 내가 지금 슬프구나. 무언가 잃었구나. 언젠가 겪었던 내 아픔이 이런 식으로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이후에는 슬픔을 잘 표현해야 한다. 적당한 표현이 중요하다. 우는 소리를 하며 자신을 영원한 희생자의 자리에 두는 것은 바라직하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 일이다. 슬픔을 억지로 누르지 말고, 일부러 웃는 얼굴이나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지 말고, 내 안에서 슬픔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가만히 느껴보자. 어느정도가 적당한지 모르겠다면 기간을 정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마음속으로 정해둔 기간이 지나면 그때는 봄을 기다린 나무들이 연둣빛 싹을 틔우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보자.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내가 원래 느끼던 즐거움이 어떤 것들이었나 느껴보자. 풀 죽은 채 웅크려 있느라 뻐근해진 몸을 털고 일어나보자. 병적인 우울로까지 깊어지지 않았다면 슬픔을 담아내는 동안 내 마음속은 깊이로 한뼘 더 자랐을 거다.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주변이 놀라운 감사의 면면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이대다. 왜냐하면 겨울을 견디어 낸 여린 생명처럼, 슬픔을 견디어낸 나는 나이테 하나를 더하고 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 두려움과 불안이 나뉘는 지점은 걱정하는 대상이 갖고 있는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분명히 드러나는, 잘 알려진 외부위협에 대한 반응. 도망치거나 회피하는 등의 대처행동도 비교적 분명한 편. 이와는 달리 불안은 정확히 잘 모르는 모호한 내부 위협에 대한 반응이다.
- 사회불안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어기전은 전치, 투자, 회피 등이다. 전치는 진짜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불안과 같은 감정들을 옮겨놓는 것. 투사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들을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처럼 느끼고 반응하는 것. 회피는 위험한 상황이나 대상으로부터 가능한 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
- 불안으로 고생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왜 불안한지 찾아보면 되잖아요?'라고 쉽게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절대로 쉬운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든 주목받지 않고 회피하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약물로 눌러놨다면 피하기도 더 쉽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항상 걱정이 앞서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굳이 그 내면을 들여다보아서 뭐가 달라질까? 생각도 못한 것들이 올라오게 될까봐 더 무섭다. 차라리 약을 먹고 생활을 잘 하자. 이전에도 걱정은 언제나 하고 있던 바다. 더구나 지금은 약물의 도움으로 불안의 무게도 상당히 줄어있다. 그러니 그냥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이 궁극적으로 좋아지기 위해서는 고비를 넘는 용기가 필요. 이를 가며 덤비는 용기는 아니다. 내가 느끼는 불안,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보는 용기다
- 불안이 신호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공황 역시 신호와 의미를 가짐. 정신분석적으로,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불안 유발 충동을 어떻게든 막아내보려고 애를 쓰지만 잘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게 공황이다. 공황은 가벼운 신호불안에서 시작되어 압도적 걱정과 염려의 감정으로 바뀌었다가 신체증상으로 일단락된다
- 해마는 편도체 바로 뒤에 있으며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함. 편도체는 경험하는 사건의 감정적 중요성을 평가해서 그에 따라 해마의 활성도를 결정함.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아주 강렬한 경험들은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은 쉽게 무시됨.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도 자기가 중요하게 느낀 점에 따라 기억한느 내용이 다 다른 것도 이 때문. 발달순서상 사람의 편도체는 해마보다 먼저 발달. 그래서 해마가 아직 덜 발달된 아기시절은 기억속에 뚜렷이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감정, 그중 초기에 발달하는 두려움, 공포의 감정은 먼저 발달한 편도체를 통해 생생하게 겪을 수 있다. 그래서 기억조차 남지 않은 어린 시절의 공포경험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심리학 개념은 생물학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다
- 우리 뇌는 우리가 하는 생각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단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는 일을 예상하면서 걱정하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함. 뇌는 언제나 현재 시점으로 작용하기 때문. 그러므로 만약을 대비해 가장 안 좋은 결과를 예상하면서 품는 걱정이라 해도 뇌는 이것이 실제로 지금 일어나는 일이려니 생각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에 대한 반응으로 가득 채움. 익히 들은 바 있던 자율신경계가 자극되고, 심장이 수축하고, 소화기관에 몰려 있던 혈액이 근육으로 이동하고 등등의 변화가 진행됨. 우리 몸은 걱정이 실제상황인 것처럼 반응함
- 적당한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를 긴장하고 준비하게 만든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들을 꼽아보게 한다. 그래서 두려움은 마냥 가라앉히는 감정이 아닌 움직이도록 등을 떠미는 감정이다. 불안신호가 울리지 않았다면 꼼짝도 하지 않았을 사람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하기에 두려움은 일종의 힘이다. 다른 모든 힘이 그렇듯 힘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이 힘이 지나쳐서 꼼짝 못하게 되는 상황이 문제일 따름이다
- 그렇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수용을 위하여 꼭 알아두어야 할 두려움의 특성이 있다. 피하려고 하면 점점 더 커지고 아예 없는 체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 겁먹은 마음을 숨기려고 애쓰는 동안 사용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두렵다고 털어놓으며 느끼는 마음의 불편을 다루느라 사용하는 정신적 에너지보다 몇배는 더 크다.
-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머릿속에 그리는 최악의 장면은 무엇인지 묻기를 겁내지 말자. 좀더 들어갈 수 있따면 이런 두려움과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찾아봐도 좋겠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하게 된 것 많은 경우 내 잘못이 아니다. 대개의 두려움은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 부모님의 빈자리 같은 것도 내 잘못이 아니었다. 뿌리를 찾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워야 했던 두려움의 기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면서 다른 사람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그랬어, 하는 건 통제권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기 때문. 내가 느끼는 두려움 안에 나의 책임도 있음을, 나도 잘 몰랐지만 두려워하기로 결정한 건 나라는 걸 보아야 함. 통제권을 제대로 찾아오기 위해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에 또다시 불안해지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세세히 관찰해주리라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보다 더 두려움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없다. 고택에서 유령이 나타나기를 밤새워 기다리는 심령사진사는 허깨비가 무섭지 않다.
- 우물안을 들여다보던 시인처럼, 내가 느끼는 불안을 어떻게 하려하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 회피는 지금 무척 불안하다는 증명서와도 같다. 피해버리면 당장은 조금 덜 불안하고 덜 무서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보다 더한 불안이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 사람은 갈망-낭만적 매력-애착의 세단계로 나뉨. 갈망은 성적욕망을 느끼는 상태. 낭만적 사랑의 단계에서는 시간과 노력을 다 바쳐서 함께 있으려고 한다. 애착의 단계에서는 함께 살면서 자식을 기르고 서로를 지켜주며 안정감과 안전함을 느끼고 싶어함. 이 세단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갈망단계, 즉 한눈에 반하는 단계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증가.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 각자의 성적매력이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짐. 이 시기는 아주 짧아서 고작 몇 주 내지 몇달 정도만 지속됨. 다음 단계인 낭만적 사랑의 단계에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테프린이 작용. 이 시기는 갈망단계보다 조금 길지만 아주 오래 가지는 않는데 통상 반년에서 3년. 내 사랑의 유통기한이 통조림보다 짧다는 이야기는 아마 이 기간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낭만적 사랑의 단계에 있는 뇌에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페로몬, 세로토닌 등 온갖 신경전달물질들이 쏟아져 나옴. 그 결과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맛이 떨어지며 잠도 잘 못다고 무엇에라도 홀린 듯 강렬한 흥분상태를 경험. 마지막 단계인 애착단계에서 증가하는 호르몬은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 장기화되는 이 시기에는 결호이나 자녀양육처럼 서로간의 헌신과 유무언의 약속을 바탕으로 하여 함께 여러가지를 공유하며 동등한 우정관계를 쌓음. 이 시기는 수년에서 수십년까지 길어질 수 있음.
- 페닐에틸아민은 초콜릿 등 달콤한 음식속에 많이 들어 있는데,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차단하고 도파민의 재흡수도 약간 차단. 재흡수가 되면 농도가 떨어질 호르몬들이 재흡수 차단이 되다보니 결과적으로 세로토닌 농도가 뇌 속에 증가. 항우울제가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를 차단하는 기전으로 우울증의 치료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페닐에틸아민은 뇌 속에서 천연 항우울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성분으로 우울증 치료약을 만든 것이 베타페닐에틸아민 성분의 약물인 시부트라민 제제. 이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리덕틸이라는 이름으로 장기 처방이 가능한 체중감량 촉진제로 상당히 많이 처방됨. 본래 시부트라민은 항우울제로 개발된 약이었지만 우울증 치료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데, 의외로 체중감량효과가 있는 점 때문에 각광을 받다가 현재는 여러 이유로 판매가 중단됨. 시부트라민 처방을 받은 사람들은 페닐에틸아민 농도의 상승은 경험했을지 몰라도 모두가 사랑에 빠지거나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호르몬을 일차원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관계는 망가진다. 있는 그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기는 하다. "우리는 항상 다른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옆의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래야 한다, 저래서는 안된다는 조건들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고 그 관계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해리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게 힘들어서 이로 인한 고통과 슬픔, 혼란과 충격을 억누른 채 자기만의 세상속으로 숨어버린 사람들이다. 여러 종류의 해리성 장애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심인성 기억상실은 자기 자신을 스트레스 원인으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우리 마음의 안타까운 발버둥이기도 하다. 충격적인 사건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방어기전은 부정과 해리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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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문득 행복하지 않은 것 같고, 왠지 모르게 인생이 질척거리는 기분이 든다면 두려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해도 '내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관점에서 인생을 재검토해보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뇌가 당신을 방해하고 있다.
- 피험자들에게 두려워하는 얼굴을 보여주었을 때, 피험자들이 그 얼굴을 봤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음에도 편도체라는 뇌구조로 가는 혈류가 증가. 누구라도 두려워하는 이미지를 본 사실을 부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뇌는 다르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에 노출된 그 순간 편도체의 바퀴들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테니까. 두려움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이 발견은 심오한 사실을 알려줌. 바로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두려움을 일으키는 많은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 뇌 속에서 전류를 발생시킬지라도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운전을 하고, 사무실로 걸어들어갈 때,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온갖 것을 생각해보라 우리의 의식은 아무것도 감지 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편도체는 주변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전선에 전류가 흐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자. 전류가 전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문제 없음. 하지만 너무 많은 전류가 흐르면 회로가 그것을 감당못해 시스템이 다운됨. 무의식적 두려움도 뇌에 비슷한 영향을 줌.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편도체에 전류가 흐르게 하지만, 두려움이 너무 과하면 편도체는 오작동을 하거나 작동을 완전히 멈추고 만다. 게다가 편도체는 뇌 안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다. 뇌의 한복판에 위치한 편도체는 뇌 속의 고속도로를 따라 의식적인 뇌와 연결되어 있다. 편도체와 의식적인 뇌 사이에는 항상 신호가 오간다. 따라서 우리가 편도체로 흘려보낸 전류, 즉 감정이나 감각은 의식의 작동과 의식적 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편도체는 인간 뇌의 경비견이다. 편도체는 작고 민감하고 반응을 잘한다. 오늘날 뇌의 두려움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편도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편도체에는 다양한 유형과 크기의 신경세포가 존재하고, 이 신경세포가 모여 특정기능을 하는 경로를 이룬다. 광범위하 뇌 지도를 작성하는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은 두려움과 관련하여 두가지 주요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나는 직접적 경로로서 즉각적 반응을 생산하지만 정확성이 떨어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컴컴한 복도에서 둘둘 말린 밧줄을 본다면 무서워서 뒷걸음질 칠 것임. 뇌가 그것을 뱀으로 인식하기 때문. 이 경우 정보는 시상에서 곧장 편도체로 이동하고, 그런 다음 그 사람의 몸에 이 위험에서 빨리 벗어나라는 지시를 내림. 하지만 시상은 그러고 나서 곧바로 피질에도 메시지를 전함. 피질은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편도체보다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림. 복도에 있는 사물이 뱀이 아니라 밧줄이라는 것을 피질이 알아차리면,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몸의 두려움 반응을 끈다. 두려움은 피질에 전달되지 않은 채로 편도체에 쉽게 등록될 수 있고, 그래서 두려운 무엇에 노둘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하게 만듬. 감정반응을 하기 위해 꼭 두려움의 성질을 알 필요는 없다. 두려움이 무의식적인 뇌에 등록되기만 하면 된다. 편도체는 뇌의 나머지 부분과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 두려움에 대해 알지 못해도 감정과 행동에 깊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우리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든 아니든 두려운 자극에 항상 노출됨. 저녁뉴스에서 길거리 자동차 경적소리, 지하철에서 불안한 사람을 보는 것, 불안함을 느끼고 있지만 남들의 눈에는 불안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주변에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예는 수도 없이 많다. 편도체는 이 모든 자극을 자동으로 처리. 이 효과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동시에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건 아무 상관 없다. 위협이 존재하는 한 우리 뇌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했다
- 한 연구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두 층위의 감정(하나는 의식적인 감정, 하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 벙리는 이런 상호작용을 조사. 여러 이미지를 반맹(한쪽만 시력을 상실한 상태)을 지닌 사람에게 제시했다. 두려워하는 얼굴을 장애시야와 온전한 시야에 동시에 제시했을 때, 뇌의 여러부위(편도체, 방추이랑, 시상베개)에서 활성화가 증가했다. 두려움을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장애시야)을 동시에 할때는 두려움을 보기만 할 때보다 활성화가 두배로 일어났다. 이것은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알다시피 두려운 이미지는 의식적인 뇌가 그것을 보지 못할 때조차 뇌에 인상을 남길 수 있기때문. 그리고 의식적이 뇌와 무의식적인 뇌의 두려움은 당연히 합쳐질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두려움을 나타내는 사진을 온전한 시야에만 제시했을 때 일어나는 뇌 활성화가 같은 사진을 장애시야에 제시했을 때 일어나는 뇌 활성화보다 적었다는 사실. 이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의식적인 두려움보다 뇌 활성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보다 편도체를 더 많이 활성화한다
- 주목할 만한 사실은. 두려움이 상황과 맞지 않는 행복한 얼굴이나 목소리와 함께 제시될 때도 우리는 두려움을 강력하게 등록한다는 것. 두려움을 포착해야 할 이유만 있으면 편도체는 이것을 처리한다. 또 목소리와 얼굴표정의 부조화도 뇌의 부조화 감지 중추를 활성화하고, 이것은 편도체를 다시 활성화한다. 이 사실은 우리 삶에 중요한 함의를 가짐. 많은 환자가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의식적으로 찾아낼 수 없다고 걱정한다. 이 실험들은 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일 때조차 우리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지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거나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도 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걱정한다. 이들의 배우자는 자신의 아내 혹은 남편이 감사할 줄 모른다거나 인생의 좋은 면을 볼줄 모른다고 불평한다. 이 사람들은 자기 배우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왜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부정적 자극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그들의 편도체는 다른 사람들의 편도체보다 한참 먼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아니면 이렇게 남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포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민감함은 유전자와 사회 환경적 영향이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면 우리는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데도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 편도체에 불안을 유발하는 사건이 끝나도 편도체는 활성화 상태로 존재 가능. 한 사람의 장애시야에 먼저 제시한 부정적 감정의 이미지는 잠시 후에 온전한 시야에 제시한 감정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이 현상을 점화효과라고 한다. 이렇게 부정적 감정의 잔재는 뇌 안에 머물면서 긍정적 사건들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이 현상은 왜 때때로 휴가모드로 완전히 돌입하는데 며칠이 걸리는지 잘 설명해주는 듯 하다.
- 전두엽피질은 편도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절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편도체와 편도체가 반영하는 고통과 만나야 한다. 편도체 탓임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때로는 말 그대로 이 모든 감정이 머무는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 뇌의 여러 부위는 전기자극을 받을 때 두려움의 감정 혹은 이야기를 생산함. 이 부위들에 단순히 전기 자극만 가하면 이야기가 불려나온다. 이 이야기는 심리학적으로 무엇일까? 연구자들 대부분은 이것을 전기자극이 뇌의 신경세포를 따라 흐를 때 활성화되는 저장된 기억이라고 생각함. 전기자극은 저장된 문서를 여는 더블클릭과 같다. 뇌의 신경세포들은 뇌 밖의 신경세포들보다 이 전기자극을 훨씬 빨리 전달. 뇌의 신경세포들은 저항이 더 적어서, 전류가 큰 방해없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 다량의 전기신호가 뇌를 통과하지 않아도 많은 개별적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이 생각들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짐. 그런데 뇌는 교묘한 존재다. 예를 들어 뇌는 한 라인에서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두개의 마디를 지각할 때 그것을 하나의 연속된 라인으로 본다. 같은 방식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가지 생각이 제시되면 뇌는 그것을 합쳐 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낸다. 인간의 뇌에 두려움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행동할 용기를 내려면 이 이야기들을 의심해야 한다
- 불안 성향이 더 높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인 뇌가 더 쉽게 활성화되고 위험에도 더 빨리 반응함. 진짜 위험한 상황에서는 이것이 유리하겠지만, 실제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분명히 불리함. 이런 사람은 과잉반응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됨. 그렇다면 과잉반응을 막기 위해 자신에 대해 더 좋은 감정을 느낄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치료과정에서 자신감을 높이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다. 관건은 편도체 활성화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편도체를 활성화하는 두려움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냄으로써 편도체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
- 난데 없이 두려움을 느낄 때는 혹시 지금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님. 마음을 훈련하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명상, 운동, 요가, 심리치료는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훈련시킨다. 불교 명상가들은 자비명상을 함. 몇가지 연구에서 승려들이 명상을 할 때 그들의 뇌를 MRI로 찍어 봤더니, 명상이 승려들의 공감능력을 높이고 편도체를 더욱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편도체는 두려움만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 편도체는 모든 감정을 처리하지만 두려움이 다른 감정을 압도하므로 편도체가 두려움이 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자비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편도체는 이런 명상적 기쁨상태를 무의식적인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함. 그 결과 두려움이 옆으로 비켜서고 명상적 기쁨이 앞으로 나옴
- 무의식적 두려움의 큰 문제는 뇌가 항상 부정적인 일을 기대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일을 찾는 데 주의를 집중한다. 진화적으로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려는 조치였지만,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뇌를 장악하면 과보호가 이루어짐. 실제로 두려움이 크지 않으면 거기에 주의를 덜 기울이지만, 두려움이 심해지면 전대상피질의 활동이 두려움이 사로잡힌다는 증거가 있다.
- 통나무 500개를 등에 지고 있다면, 통나무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짐은 그만큼 가벼워진다. 통나무를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점점 쉬워진다. 등에 통나무 500개만큼의 두려움을 지고 있을 때는 걷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통나무를 하나씩 제거해감에 따라, 불가능해 보이던 것은 어려워보이게 되고, 결국에는 가능해 보이게 된다
-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것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주의를 두려움에서 떼어내서 용기에 올려놓는 의식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 당신이 감정적인 사람이라면 이것이 장점일 수 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감정을 제어라하고 말하겠지만, 당신은 제어되지 않는 모든 느낌을 남보다 면밀하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라. 상황이 버거워 보일 때는, 당신의 뇌가 상황을 지나치게 부풀린 것일수도 있다
- 아이들이 모든 확률과 백분율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랜스 암스트롱)
- 인생의 짐은 곤란이나 두려움의 실제 무게와 관련이 있다기보다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이느냐와 관련이 있다
- 성공한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될 법한 인생을 살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가능성을 따지기 보다는 확률이 더 낮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일에 뇌를 집중한다. 하고 싶다는 이유로 확률이 더 낮은 것을 추구하기로 할 때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희망은 단지 희망적 사고에 그치지 않느다. 희망은 어려운 무엇을 성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 당신의 무지를 나타내는 지표는 바로, 부당함과 비극에 대한 당신의 믿음의 깊이다. 애벌레가 세상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대가는 나비라고 부른다. (리처드 바크)
- 노력을 하면 두려움이 초점에서 사라지고 인생에서 더 중요한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두려움이 떠나가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긍정적인 무엇보다 덜 중요해지기만 하면 된다. 자수성가한 리처드 브랜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추구할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을 도전이라고 부를수도 있고 목표라고 부를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석기시대의 동굴인간으로 살던 우리를 우주여행으로 데려간 것은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이었다.' 생물학적으로 풀이하면, 두려움보다 더 주의를 끌만한, 주의의 진정한 동반자를 찾으라는 뜻이다.
- 즉흥연주를 하는 동안에도 전전두피질의 부위들이 연습한 곡을 연주할 때와 다르게 활동했다. 연습한 곡을 연주할 때는 전두엽의 측면들이 활성화된 반면, 즉흥연주를 하는 동안에는 전두엽의 중간부분이 활성화됨.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즉흥연주를 하는 동안 변연계의 활성화가 줄었다. 이는 두려움 같은 감정이 전문성과 집중으로 바뀌었다는 의미. 이런 편도체 활성화의 부재는 두려움을 버린 표시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 중요한 생물학적 사실이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따는 희망을 제공한다. 첫째는 신경세포가 변할 수 있다는 것. 이 성질을 신경가소성이라 한다. 둘째는, 두려움은 전류라서 경로를 바꾸어 다른 회로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
-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흔히 의식적, 무의식적 이유가 복잡하게 작용함. 따라서 처음에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긍정적 사고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법
* 먼저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집중
*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야한다는 죄책감에 반응하지 말라. 그렇게 해서 타인들에게 주는 이익은 당신이 자신의 열정을 추구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 열정을 찾을 수 없다 해도 절대 절망하지 말라. 절망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두려움에 또 다른 두려움이나 절망을 얹는 것이다
* 당신의 열정이 처음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천천히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 세상의 어떤 일도 쓸모없지 않다.
- 두려움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라. 두려움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두려움을 덜 느끼게 된다. 불안을 일으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움을 돌아본다면, 인생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 하나를 극복할 수 있다. 뇌 영상 연구들은 그럴 때 편도체 활성화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성공에 대한 두려움에 얽매여 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 뇌에 갈등을 제공하여 다양한 뇌부위의 동기화 현상을 없앤다는 것. 보통 전대상피질은 전전두피질의 다른 부위들과 연합하여 연쇄적인 행동을 출발시킴. 그런데 만일 전대상피질이 혼돈상태에 있다면, 전전두피질에 불분명한 메시지가 전송되어 신속하고 성공적인 결과가 일어나지 못할 것임.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임무의 전반적인 요구가 아니라 국지적 요구에 초점을 맞출 경우 전전두피질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전대상피질을 분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려운 과제에서 한 조각만 떼어내면 전반적인 관점에 포함된 모든 정보를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경우보다 그것을 더 성공적으로 소화할 수 있고 갈등을 덜 겪으며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이 융통성은 일이 되게 만드는 열쇠다. 처음에는 전반적인 그림을 마련해야 하지만, 성공에 대한 큰 그림만 계속 붙들고 있다보면, 꼭 필요한 당장의 행동이 자꾸 늦어진다. 단기적 목적으로 범위를 제한하면 일에 지장을 덜 초래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전대상피질의 불안이 줄어서, 전전두피질이 행동방침을 내놓을 수 있다. 게다가 연구결과, 전전두정엽피질은 즉각적인 목표와 최종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행동방침을 정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이 부위가 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공이 모호하고 장기적인 개념에 머무르면, 이 전전두정엽피질에서 주의회로의 작동이 중단될 수 있음. 따라서 목표를 세웠으면 거기에 어떻게 도달할지 곧바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 빠른 계획뿐 아니라 빠른 실행도 중요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더욱 흥미로운 뇌 연구 분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각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더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작은 행동을 취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성공을 위해 매우 자세한 계획을 강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세우지만 이 계획을 계속 지키지 못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세운 목표가 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 또한 전두엽의 변화를 나타내는 뇌 활성화 사진을 보면, 광범위한 생각만 하고 있을 때보다는 작은 행동을 취할 때 실제 변화가 훨씬 더 일어나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시작을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끊임없이 생각만 하는 것보다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 성공하고 싶다와 같은 성공에 대한 수동적 생각은 뇌의 행동중추를 활성화하지 않아서 성공적 행동이나 당신이 원하는 행동을 일으키지 않음. 이런 생각은 긍정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주겠지만, 당신의 뇌는 그것을 당신의 성공에 필요한 일을 하라는 지시로 해석하지 않음. 다음은 성공계획의 주요한 원리다. 구체적일 것. 의심하지 말것. 행동지향적일것
-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바쁘면 편도체가 쉽게 조건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집중을 하면 두려움과 자동적인 두려움 반응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 때문. 간단히 말해, 도로에 지나가는 자동차에 집중하지 않고 제시간에 직장에 도착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빨간자동차=운수나쁜 날이라는 연상이 사라질 것이다.
- 관계에 관한 몇가지 기본적인 가정을 바꾼다면, 늘 똑같이 살아야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음은 우리가 실천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이다.
* 일관성이 없다고 배우자를 심판하지 않는다. 일관성은 상상의 자질이며, 뇌는 실제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 자기 자신이나 배우자가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를 품는다고 두려워하기 보다는 이 욕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의 비용과 이익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어떻게 하면 질투와 두려움, 불안정함을 견디면서 둘이서 함께 하는 장기적 목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자유롭고 싶은 욕구를 들여다보면, 그것에 헤어지고 싶은 욕구와는 전혀 별개라는 사실을 결국 알게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 하룻밤 시간을 내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생각들에 대해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 두렵게 느껴진다면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하면 긴장이 풀릴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 욕구가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관계의 역학을 없앤다. 그 대신 두 사람이 모두 똑같이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현실적 태도를 추구한다.
- 관계를 다루는 이 새로운 방식들은 저절로 생기지 않음. 배우자의 완전한 자유를 온전히 감사 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걱정을 얼마간 덜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방식 각각에 대해 커플마다 용인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열려 있으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정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방식은 사랑을 해치지 않고 관계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 신뢰할만한 연구중 하나는, 위약과 비교해 옥시토신이 뇌 부위들을 어떻게 활성화하는지 조사한 것이다. 이 연구는 옥시토신이 편도체 활성화를 크게 줄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옥시토신과 두려움의 관계는 점점 더 분명해져 갔다. 두려움은 편도체 활성화를 높여 애착을 방해한다. 옥시토신은 편도체 활성화를 줄여 애착을 촉진한다. 따라서 두려움과 옥시토신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다. 즉, 하나가 증가하면 다른 하나는 감소한다
- 불안애착이나 회피애착은 멈출수 없는 부정적 생각의 폭포를 만들어내는 반면 안정애착은 부정적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멈출 수 있게 해줌. 이 사실을 알면 많은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 그중 하나가 상대방이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다. 그럴 때는 상실의 두려움에 집중하지 말고 불안이나 회피에 굴복하는 것은 부정적인 일에 억지로 집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이때 일종의 정신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뇌 속의 부정적 생각의 흐름을 억지로 중단시킨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하거나 자신의 인생이나 관계에서 안심해도 되는 것들에 생각을 집중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인생에서 안심할 수 있는 측면에 무엇이 있는지 적어볼 수 있다. 멀쩡한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는가? 심장이 잘 작동하는가? 혼자 힘으로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은? 대학 학위는?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은? 가족의 지원은? 작성한 목록이 무엇이든, 뇌 작동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임. 이것을 한발짝 물러나기 접근법이라 부른다. 이 정신운동은 사실상 긍정게임을 정상궤도에 다시 올려놓기 위한 중간 휴식이다.
- 어떤 관계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여기에서 비롯된 불안과 편도체 활성화가 그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많은 사람이 두려움과 편도체 활성화에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관계를 떠나야 할 이유를 합리화하기 때문. 두려움과 불안이 시작될 때 떠오르는 이유는 그 상황과는 무관한 것임을 명심하라. 뇌가 두려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유를 꾸며내기 때문이다. 이 악순환을 끊고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리고 관계를 떠나기전에 자신의 애착행동을 돌아보는것은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관계가 불편하다는 것은 떠날 이유가되지 않는다. 그것은 두려움 회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표시이고, 그때 뇌가 내릴 수 있는 지시는 떠나라는 것뿐이다. 이 시점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은 애착불안을 줄이기 위해 떠날 이유를 궁리하는 것뿐이다.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안정된 관계에서 두 사람은 상황을 결코 피하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당면한 문제에 해결책이 없을 때는 해결책이 생길때까지 그냥 있는 것이 필요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두려움은 애착을 방해할 때 편도체를 활성화해 신뢰와 애착의 발달을 가로막음. 또한 두려움은 편도체와 연결된 뇌간 같은 부위도 활성화함. 한 실험은 뇌간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되면 사람이 시종일관 지나친 흥분상태로 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구나 흥분하지만, 애착불안을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에 대한 이런 반응이 극대화되어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금융위기, 가족 스트레스, 혹은 노년기를 맞을 때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날 궁리를 하는 것이다. 세상은 위험한 숲처럼 보이고, 도망치고 싶은 욕구는 증가한다
- 불안할 때는 타인이 전달하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뇌가 등록하지 못한다. 배우자나 동료가 긍정적 인풋에 아무 반응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이 좋은 감정을 무시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을 감지하는 뇌 부위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활성화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편도체는 불안과 두려움에 의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편도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해마옆이랑에서 생기는 모든 기억을 중단시키는 것 같다. 두려움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두려움과 관련된 것을만 보이고, 희망의 렌지를 통해 바라보면 희망적인 것들이 보인다
- 두려움과 신뢰는 인간의 뇌에서 함께 일한다. 하나가 지배하면 하나는 줄어든다. 우리 대부분은 관계가 어떠했으면 좋은지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 결과 안심을 느끼려고 일부러 규칙을 만들어낸다. 어떤 규칙은 그것이 주는 친숙함 때문에 도움이 되지만, 어떤 규칙은 실망의 씨앗이 된다. 규칙이 깨질때마다 당신이 짜증을 내고 있다면, 당장 머추고 단지 규칙이 깨져서 짜등이 나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모든 일을 극단적으로 나쁘게 생각하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아마 규칙이 깨진 것이 애착불안을 활성화하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해놓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처져 있는 대신 의미있는 일을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 트라우마는 우리 내면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과거, 현재, 미래는 불연속적이 되고, 정체성은 산산조각 난다. 그러면 주의가 분산되고 두려움이 커진다. 이러한 단절은 생각과 느낌을 연결하는 뇌부위가 손상되어 일어난다. 기억중추와 주의중추는 어른이 되어서도 변한다. 뇌의 부분들을 다시 연결하고, 기억중추를 복원하려면, 이러한 두려움과 조금씩 대면해야 한다
- 정신적 붕괴는 때로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즉, 당신은 트라우마를 통해 한발짝 내딛음으로써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체리 모라가)
- 지나친 걱정은 우뇌의 정서적 정보가 좌뇌로 건너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다. 따라서 왼쪽의 생각하는 반구가 이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다. 실제로 우리가 위협에 대해 생각하려면 위협에 관한 정보가 우뇌에서 좌뇌로 건너와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의 경우, 뇌량을 통해 정보가 건너오는 일이 훨씬 천천치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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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우르는 어떤 큰일을 마친 뒤 만족감을 느끼는 동시에 허탈감에 빠짐. 그런데 허탈감이 오래 계속되어 무기력하게 되는 경우, 이를 탈진 증후군이라고 함. 이전에는 의료관계자나 자원봉사자 등 봉사나 원조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났던 증상인데 최근에는 업무분야에 상관없이 나타남. 탈진증후군은 정신력이 강하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이상주의적인 사람에게 많이 나타남. 이런 사람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힘도 강하므로 일에만 전념하며, 결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음. 그러나 그렇게 매진했던 일이 끝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남는 것은 텅빈 몸과 마음, 피폐해진 자신뿐이다. 인간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데, 지나치게 가동해서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를 탈진 증후군이라 함. 엑셀을 너무 밟아 기름이 다 떨어진 셈이다.
- 중년남성들은 과도한 책임감, 가정에서의 소외, 자식과의 마찰, 동료들의 퇴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은퇴후의 생활대책 등과 같은 문제로 탈진해 있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은 늘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영웅주의, 성공중독증, 커뮤니케이션 부족, 공감능력 부족, 장남 컴플렉스 등의 몇가지 키워드로 요약됨
- 한국 남자들은 상자안에 갇혀 있다.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천자우이에 작은 창문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천장은 하늘높이 솟아 이어 절대로 탈출에 성공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 남자들의 정복용, 서열상의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는 욕구의 기저에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 조직, 국민을 지켜줄 수 있는 우산으로 권력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자리함. 즉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남자들은 가장 먼저, 자신의 남성성을 외부로부터 확인받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정복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첫번째는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자신의 여자를 정복하는 것. 그리고 이 둘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흔히 이야기하는 정력이 필요. 이 정력은 남자의 일터에서 시작되어 마무리됨. 그만큼 남자에게 있어서 직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이자 쉼터임. 남자의 첫번째 본능이 성욕이라면 두번째는 자신의 여자를 정복하는 데 필요한 일에 대한 정복욕. 즉 남자에게 직장은 자신의 본능을 채워주는 신전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자리가 아닐지라도 목숨을 걸고라도 남자가 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직장과의 단절은 남자에게 정복욕의 상실을 의미
- 파랑새 증후군은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처럼 막연하게 행복만을 꿈꾸며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정열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 요즘 유례없는 취업난에도 어렵게 취업한 20대 직장인 상당수는 취업후 자신의 주변이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함. 그러다가 뚜렷한 현실적 대안없이 직장을 그만두곤 함. 더 좋은 대안을 위해 그만두는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막연히 꿈만 꾸는 경우가 허다함
- 남자의 스트레스는 대개 해내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출발. 역할의 개념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역할은 맡겨진 일, 과제를 뜻하지만 책임은 그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는 완결의 의미를 가짐.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의 넋두리를 들어보면 무언가를 책임지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내용이 대부분. 책임의 크기가 무거울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어짐. 그리고 그게 만성화되어 어느새 남자의 인생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도 못 미치게 되고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게 된다
- 남자에게 책임은 다른 대상을 보살피는 일인 동시에 나란 사람의 존재가치를 확인받는 일이기도 함. 그래서 주변사람이나 특히 가까운 가족에게 '당신이 회사를 위해 하는게 뭐 있어?', '당신이 지금까지 가족에게 한게 뭐 있어?'라는 식의 원망을 들으면 공황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책임의 크기가 크다는 건, 결국 책임져야 할 사람이나 역할의 비중이 크다는 걸 의미하고, 이는 사회에서 통칭하는 성공이라는 가치로 귀결됨. 즉, 남자에게 책임은 성공의 다른 이름이며, 책임의 크기가 클수록 자존감도 함께 높아짐. 때론 책임에 매몰되어 자신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는 동물, 그것이 바로 남자다
-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선천적인 족쇄에 덧붙여져 전쟁터라고 일컬어지는 직장생활이 남자들에게 그들 속내에 자물쇠를 채우게 만든다. 그들은 상사에 대한 불만과 동료나 후배에 대한 속앓이도 웃으면서 소화시키는 훈련을 받는다. 섣불이 자신의 속내와 단점을 꺼내놓는 것은 경쟁자에게 미끼를 던져주는 꼴과 같으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자신의 결점이 승진이나 이직이 치명적 덫이 될 수 있다고 생각. 그들은 상항 자신의 무언가를 꺼내놓기 전에 적절하게 타협이 가능한지부터 계산한 뒤 입을 연다
- 남자는 후천적으로 세가지 감옥 안에서 살아간다. 치열한 경쟁, 감정표현의 억눌림, 자기집중 시간의 부재다. 그리고 이 세가니는 남자를 외딴섬에 가둬버리는 주요 요인. 그중에서도 경쟁은 남자를 스트레스라는 동굴로 안내하는 첫번째 누름쇠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왔다. 하지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거나 반대로 실패했을 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상황적, 감정적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중요한 건 남자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남자에게 경쟁은 이중 스트레스. 주어진 생존게임에서 패했을 때는 그동안의 노동가치는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림. 한번의 패배때문에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되고, 다시 힘을 내어 상처에서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림
- 여자에게 화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신호이거나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일 때가 많음. 그러나 남자에게 화는 권력의 상징, 남성다움을 상징하는 감정표출도구로 활용됨. 상사가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이유는 그래야만 부하가 말을 잘 듣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하며, 그것은 곧 자신은 그만한 위치에 서있다는 것을 과신하는 것일수도 있음
- 우리는 관계라는 사막에서 생존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경험함. 사막이 무서운건, 지나온 발자국이 지워져 나의 현 위치 자체를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 관계라는 사막도 마찬가지. 누군가와 트러불이 발생하긴 했는데 어떤 일 때문에 관계가 이렇게까지 꼬였는지 모를 때가 많다. 틀어진 관계를 돌이키는 것은 애초부터 그른일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틀어진 관계 자체를 인정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 마치 사막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그 앞에서 답을 찾아라'라는 사막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 대다수 남자들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함. 그래서 여러 세대에 걸쳐 아버지가 대화의 주제로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는 결국 자신의 뿌리를 자르는 일이므로 부끄러운 일이다.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이 글귀를 보면 남자들이 왜 아버지를 꼭꼭 숨겨놓으려고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남자에게 아버지는 곧 자신이다. 딸에게 어머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렸을 때나 잠시 친구같은 존재가 되지, 사춘기 이후부터는 먼 미래의 자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둘수록 편안하다.
- 남자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누군가에게 진다는 경쟁이 아니라 그대로 멈춰있다의 멈춤이다. 멈춤은 정지를 뜻하고, 정지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귀결되며, 기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 그래서 남자에게 은퇴는 정신적 죽음과도 같음
- 아드레날린이라 무엇인가.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 호르몬 중 하나인데, 역경이나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정신이 번쩍 나게 만들어 다른 것을 잊고 그 상황을 이겨내는 데 몰두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식이 교통사고를 당하면 내 몸의 어디가 부러져도 아픈 줄 모르고 아이를 업고 뛰어간다. 병원에 도착하기전까지 통증을 못느끼는 것은 비상시 아드레날린이 급증하는 아드레날린 쇄도가 일종의 마약처럼 작용하기 때문. 즉 아드레날린 쇄도가 통증이나 슬픈 감정처럼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감각을 잊게 만들어준 것. 아드레날인이 분비되면 비상상황에 잘 대처해서 성취감이 생기고 괴로운 일은 기억하지 않게 되므로 점점 아드레날린을 갈망하게 됨. 게다가 아드레날린 쇄도 이후에는 엔돌핀도 더 활발하게 작용. 엔돌핀 활성이 증가하면 엔돌핀을 받아들일 수용체도 증가. 수용체가 많아지면 엔돌핀을 더 필요로 하므로 점점 더 엔돌핀을 갈망하게 되고 점점 더 높은 아드레날린 자극에 얽매이게 됨.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단지 기분좋은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아드레날린 자극에 의존하게 됨. 이 중독에 빠지면 비상시가 아니라 일상적 생활을 할 때도 아드레날린에 의존하게 만듬. 이런 사람들은 아드레날린 수치가 떨어지면 허탈감, 즉 아드레날린후 우울증이 생김. 아드레날린이 주는 도취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아무리 건전한 활동에서 생긴 즐거움(쾌락)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을 파괴하는 형태로 서서히 변하게 됨
- 아드레날린체계를 남용하면 일찍 늙는다. 샘물을 박박 긇어대면 샘이 일찍 말라버리는 것과 같은 원리. 또한 과도한 아드레날린분비는 관상동맥질환의 발병율을 높이고 아드레날린 중독에 걸리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느낌. 경쟁적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속거나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식의 의심이 많아짐. 아드레날린에 중독된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늘 뭔가 해야 직성이 풀리고 참을성이 없고 조급하다. 그래서 운전도 항상 급하게 하며 줄서서 기다리는 일은 질색이다. 무엇이든지 초치기로 일하고 조금씩 자주 지각을 한다. 커피와 단 음식을 좋아하고 화를 잘 낸다. 자기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하려하므로 스트레스가 많고 짜증이 늘어난다. 극적인 역전승이나 한방을 좋아한다.
- 변화는 두렵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더 두려우므로 불안해하고 못 견뎌한다. 아드레날린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우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해보라.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버텨보라. 그리고 긍정적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들라. 뱃살줄이기, 금연, 운동 등의 좋은 목표를 이루는 데서 아드레날린을 느끼자
- 하루중 집과 회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 간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을 설레게 만드는 장소라면 사실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활력이 된다. 수강료나 입회비가 다른 곳보다 비싸더라도 시설, 인프라, 지명도, 위치 면에서 최고급인 곳으로 발길을 닿게 만들어라
- 타인의 인정이나 시선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전문적 취미로 자신감까지 키울 수 있어서 금상첨화다. 특히 출세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직업 외에 전문적 취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자존감을 잃지 않는 중요한 탈출구가 되기 때문. 일본에서는 자기 취미를 프로수준으로 탐닉하는 족속, 즉 오타쿠들이 두터운 층을 이룸. 취미를 프로처럼 하면 동호인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어 거기서 받는 인정과 자긍심이 삶의 중요한 원천으로 사용됨
- 겉으로 보이는 외모보다 자기 마음속의 외모, 즉 셀프 이니지가 더 중요함. 자기 혁신은 외모가 아닌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 이미지를 바꾸는 데서 출발함. 긍정적으로 자신을 인식하면 인생이 몰라보게 바뀜. 일에 치이고 압도되면 무기력감이 드는데, 이럴 때는 셀프 이미지도 쓸모없는 인간, 되는 일 없는 인생, 사고뭉치 등 부정적이 된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자아 이미지를 성공과 발전의 이미지로 바꾸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정신의 성형수술을 할 수 있을까? 돈안들고 손쉬운 방법은 거울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표정을 지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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