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서비스 노 서비스

저자
빌 프라이스, 데이비드 제프 지음
출판사
호이테북스 | 2014-06-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창조하는 해법, 서비스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가격비교

- 많은 기업들이 고객서비스의 질을 평가할 때 고객의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응대했는가만을 기준으로 삼음 일부 고객에에는 '전화벨이 한번 울리면 받기', '24시간 내에 메일 답변'과 같은 처리방식이 잘 정비된 서비스로 보이겠지만, 응답속도나 AHT(평균처리시간) 같은 편협한 기준을 서비스의 질과 동일시해서는 안됨. 애석하게되 이 잘못된 이론을 지지하는 그래서 요점을 완전히 놓쳐버린 벤치마킹 형식의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음. 그러나 서비스의 질은 FCR(first contact resolution), 교육적이고 정보를 제공하는 응대, 애초에 고객이 문의할 일이 없게 하는 서비스 등의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함. 또한 진정한 서비스의 질에 대한 평가는 고객의 전화를 받고 난 후 이메일로 답장할 때나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응대하기 시작한 순간에야 비로소 고객은 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창립초기부터 아마존은 CPO(주문건당 연락건수)에 집착. CPO는 CPX(CPU(배송된 제품당 연락건수), CPT(거래건당 연락건수), CPC(고객1명당 연락건수))의 핵심기준 중 하나로, CPO가 많을수록 수정하고 해결해야 할 실수가 많다고 할 수 있고, CPO가 적을수록 모든 것에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며 고객만족도도 높다고 할 수 있음
- 대부분의 CRM시스템은 고객이 어떤 정보를 물어보기 위해 또는 어떤 불평을 하기 위해 연락했는지를 설명하는 시스템이지, 고객이 애초에 왜 연락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음. 한 예로, 단순히 배송문제로 체크된 고객의 요구사항들을 열거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 그 대신 상담원이 고객을 상담하면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인 배송기사의 지연 또는 물류창고에서의 지연과 같은 항목으로 배송문제의 원인을 기록해 놓는다면, 운영부서의 책임자도 어떤 문제가 고객을 짜증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임. 또한 CRM시스템은 기타 또는 일반적 사항이라는 항목을 제공하는대, 이 항목에 가장 많은 고객의 요구사항이 해당됨. 이런 시스템은 고객이 왜 기업에 연락했는지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함. 결과적으로, 중요한 분석도구이자 균형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데이터를 제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직감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됨
- 기업은 (1) 고객의 기분, (2) 제안사항, (3) 상담원의 능력, (4) 원래의 고객 사유코드, 즉 고객이 애초에 연락한 이유라는 네가지 요소와 연결에서 최고의 접점을 찾아야 함. 사실 CPX는 어떻게 하면 고객의 연락건당 판매를 늘릴 수 있을까? 라는 개념이나 고객연락 응대시 판매나 예약과 관련한 부서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판매전환 비율의 개념으로 바꿀수도 있음. 하지만 현실은 고객센터에서 오는 고객의 연락은 판매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고, 고객센터 직원에게 판매를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권고할만한 사안이 아님
- 아마존의 스마트 디자인, 채널통합 : 아마존은 간소화된 고객연락 사유 코딩 시스템과 스카이라인 보고 시스템을 통해 책임주체가 불필요한 고객요구사항이 생기지 않게 하고, 고객에게 셀프서비스 이용을 권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했음. 셀프서비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아마존이 창립하고 나서 맞은 첫번째 연휴기간에 상품을 판매한 후에 나타남. 매우 드문 일이지만, 고객이 훼손된 책이나 CD를 받으면 아마존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새로운 상품으로 다시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기존에 받으신 상품은 폐기하시거나 도서관 같은 데 기증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했음. 고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 정책을 매우 좋아했고, 아마존은 이를 통해 문제가 있는 물품을 회수해서 결함을 확인하고 다시 새 제품을 발송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음. 하지만 더 비싸고 복잡한 상품에 대해서는 이런 정책을 취할수가 없었음. 따라서 책, CD 및 비디오 외의 상품에 대해서는 고객에게 반송을 요청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교환해줌.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이런 상황을 겪은 고객은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시간이 소요되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했음.
(1) 아마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다
(2) 고객센터는 고객확인절차를 거쳐 교환제품을 확인한다
(3) 고객센터는 고객에게 반품이유를 확인한다. 반품이 승인되면, 상담원은 CRM시스템에 있는 반품이요 항목 8~10개중 하나에 체크한다
(4) 고객센터는 사내 프린터로 반환제품인증서를 출력한다.
(5) 고객센터의 다른 직원은 반환제품인증서를 인쇄해서 봉투에 담아 고객에게 발송한다
(6) 고객은 반환제품인증서를 받으면 자신이 받은 제품 패키지에 인증서를 붙여 아마존의 반품물류센터로 발송한다
(7) 반품된 줄 몰랐던 아마존 반품 물류센터는 반품을 받으면 자체적으로 문제를 초래한 주체, 즉 제품결함이 배송업자에 의해 초래되었는지, 제조업체에서 발송할 때부터 생긴 것인지 등을 조사한다.
전체적으로 매우 수동적인 이 과정은 다음 세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보임. 첫째로 고객을 기다리게 했고, 둘째로 직원의 시간도 소요했으며, 셋째로 반품물류센터의 운영팀에 미리 정보를 주지 않았음. 새로운 매출을 창줄하지 않고 이익을 감소시키는 교환에 대한 고객연락률이 높아지자 아마존은 서비스 자동화와 셀프 서비스 프로젝트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센터, 반품 물류센터, 반품이 가장 많이 발생한 상품 카테고리 관련 부서, 웹사이트 개발부서의 직원 대표들이 모여 첫해에 교환/환불에 관한 CPO를 50% 줄이자는 원대한 목표를 세움. 이는 공격적이면서 흥미진진한 목표였음. 직원 대표들은 문제의 근본원인과 고객의 반품사유를 검토하면서 수동적 과정의 세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웹사이티 기반의 솔루션을 제시. 이 해결책은 첫째로 시간을 절약했고, 둘째로 상담원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셋째로 반품물류센터에 반품시기와 사유를 미리 알려주었음. 다음에 제시하는 인터페이스는 고객이 직접 반품 라벨을 인쇄하고 아마존이 반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1) 이 페이지를 인쇄하세요
(2) 반품 라벨을 자르고, 아마존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바코드를 분리하세요
(3) 라벨의 왼쪽 상단의 FROM부분에 고객님의 주소를 적으세요
(4) 반품하시려는 제품을 박스에 잘 포장하고, 분리한 바코드와 원래 받은 배송장을 박스안에 넣으세요
(5) 기존주소와 바코드가 가려지도록 그 위에 라벨을 잘 붙이세요
(6) 박스를 집배원에게 전달하거나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발송하세요. 미국내에서 발송하는 경우 우편요금을 따로 결제하지 않아도 됩니다
* 환불은 저희가 고객님의 반품상품을 수령한 날부터 7~14영업일 사이에 처리됩니다. 환불처리가 완료되면 고객님께 환불처리내역을 이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온라인을 통한 반품과 다운로드가 가능한 반송라벨 시스템을 정립한 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아마존은 계획한 목표를 달성했고, 고객은 더 쉽게 상품을 반품할 수 있었으며, 상담원과 나머지 운영팀 직원들도 전보다 수월하게 일할 수 있었음.
- 기업이 통제권을 쥐려고 하는 또 다른 고전적 예로는 웹사이트에 고객센터의 전화번호를 숨겨 놓는 것. 많은 기업들이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고객은 오직 웹사이트만 이용해야 한다는 전략을 고수하는 듯한데, 이는 고객에 대한 통제권을 쥐려는 것처럼 보임. 반대로 제대로 된 셀프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전화번호를 숨기지 않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표기함. 의료보험 중개회사인 아이셀렉트가 바로 이런 기업중 하나. 아이셀렉트는 웹페이지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전화번호를 표기해 고객이 쉽게 고객센터에 연락할 수 있게 함. 버진 항공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모든 항공기에 자사의 웹사이트 주소를 크게 표기해 홍보함. 미국의 대표적 소매기업들은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서비스 채널을 고객이 직접 선택하게 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음. 이들은 고객이 웹사이트는 점포에서 상품을 둘러보고 다른 채널을 통해 구매하는 것을 반긴다. 고객은 웹사이트에서 상품을 둘러보고 가게에 직접 방문해 상품을 구입할수도 있고, 전화를 걸어서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입할수도 있음. 담보대출과 보험상품 구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임. 고객은 온라인으로 상품을 검색해보고, 구매하기 전에 직원과 상담하기를 원한다. 즉 기업이 통제권을 포기하고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셀프서비스를 실행하는 데 매우 중요함
- 고객이 쉽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고객의 소리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 고객은 무엇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주고 싶어함. 고객이 제기하는 문제를 그냥 덮는 것은 고객을 짜증나게 해 경쟁사에 내주는 것과 같음. 시스템을 정립했다면, 고객이 이것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함. 기업은 전화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모든 추가 옵션에 대해 질문하고, 지점에서 고객이 줄을 설지 말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함. 끊임없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임. 당신은 고객으로서 어떤 대접을 받고 싶은가? 어떤 옵션이 제공되었으면 좋겠는가? 옵션이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기업은 고객이 쉽게 연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놀라운 사실은 고객이 쉬운 연락체계를 매우 좋아하며, 이는 고객서비스 업무도 덜어준다는 것이다. 전화를 했을 때 대기하지 않고 상담원과 바로 통화한다거나 웹사이트에서 한두번의 클릭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놀랍고도 기분좋은 경험을 한다면, 고객은 아주 빡빡하게 굴지 않을 것임. 반면에 웹사이트에서 고객선터의 전화번호를 찾느라 5분이나 이리저리 헤매거나, 잘못 서례된 ARS나 음성 인식 시스템에서 원하는 메뉴를 찾기 위해 2분을 허비한후 상담원과 통화하기 위해 60초를 기다린다면, 고객은 상담원과 통화할 시점에 이미 기분이 나빠져 있을 것임
- 창립 초기부터 아마존의 성공에 도움을 준 요인 중 하나로 훼손된 책이나 CD, 또는 상품에 대해 고객이 불편을 제기하거나 지적했을 때, 조건없이 무료로 상품을 교환해주거나 다른 혜택을 제공한 관례를 들 수 있음. 아마존은 고객을 신뢰하고 직원들에게 권한을 이양해 조사 후가 아니라 필요할 때면 언제나 직원들이 고객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음. 아마존은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속담을 그대로 따랐던 것. 아마존이 성장할수록 정책은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상담원들은 최소한의 지시만으로도 이 차이를 이해했음. 하지만 나중에 아마존의 CFO는 제품을 교환하고 환불하는 사항에 대해 상담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음. 그는 상담원이 너무 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해 발생하는 대손상각비용이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우려. 그래서 그는 각 상담원당 처리할 수 있는 교환과 환불건수를 제한하고, 매주 목표대비 실제 결과를 보고하게 함. 그리고 제한기준을 초과해 교환과 환불을 해준 상담원은 따로 불러 그 이유를 해명하게 했음. 다행히도, 당시 아마존의 고객서비스 부서에는 현명한 상담원이 대부분이었음
-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고 행동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함. 우리는 고객과 연결이 끊기는 것을 포함해 고객을 잃는 경우나 잘못된 실행방안에 돈을 낭비하는 경우를 거론하며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때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사후 고객인터뷰나 포커스 그룹조사 보다는 이미 접수된 고객의 의견에 좀더 귀기울 것을 권한다. 또한 실적기록에 너무 많이 투자하지 않기를 권한다. 비록 몇몇 기업이 적용하는 NPS를 언급했지만, 이는 단지 점수에 지나지 않으며 실행방안을 도출하지도 않음. 조사와 측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데 적극적이고 고객의견 접수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고객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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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국경제 이야기. 2

저자
이장규 지음
출판사
살림 | 2014-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제 정책을 썼을까?1988...
가격비교

- 대통령은 더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민주화 시대는 더이상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을 원하지 않았고, 노태우도 그 점에 동의. 시대환경은 의회중심으로 흘러갔고, 대통령 스스로 권력행사를 삼갔으므로 청와대의 힘은 현저히 약화되었음. 정부관료들은 노골적으로 청와대와 간격을 벌려나감. 그전 같으면 경제수석이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면 장관들은 즉각 청와대로 달려갔지만, 노태우정부에 와서는 지방출장을 핑계로 빠지기 예사. 노태우도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화 시대에 맞다며 청와대 역할과 기능을 대폭 줄였음. 여소야대 의회는 더이상 정부의 일방통행 행정을 용납하지 않음. 국회의원들도 경제분야만큼은 경제부처의 전문성을 인정해 왔으나 이제 어림없는 분위기로 바뀜. 상황이 이렇다보니 권력의 중심도 청와대에서 국회의사당으로 넘어감.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할 수 있는 거부권이 있었으나 노태우는 거부권 행사에 적극적이지 않음. 그는 자신의 소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대세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편하게 여김. 경제쪽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의 뇌관이 터진 것은 노동문제였음. 앞선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유연하고 합리적인 노동정책을 펴왔더라면 노태우 정권에 와서 그토록 부작용이 심각하진 않았을 것임. 전임정권의 잘못된 노동정책이 다음 정권을 더 어렵게 만들었음.
- 3저호황 속에 거침없이 뻗어가던 한국경제는 얼마 가지 않아 적신호가 켜짐. 88올리픽의 흥분이 가시면서 경제가 속절없이 주저앉기 시작. 민주화의 열기와 흥분 탓에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이상 징후는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났었음. 우선 전임정권에서 2~3%로 안정됐던 물가가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는 7~8%가 보통이었음. 물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부동산 가격 폭등까지 감안하면 일반 사람들이 직접 느끼는 물가는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음. 수출전선부터 이상이 왔음. 미국이 원화 절상을 압박하는 바람에 달러당 원화환율이 한때 666원까지 떨어지면서 수출이 눈에 띄게 위축되었음. 환율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제품의 수출경쟁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었음. 한국경제는 어느새 이른바 저효율 고비용 구조에 빠져들었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전정권이 3저호황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을 위해 지나치게 긴축재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항만,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소홀히 하여 물류 비용이 급속히 올랐기 때문. 여기에 더해서 임금상승 부담도 가중됐음. 국제수지는 88년 145억 달러 흑자를 정점으로 줄어들어 급기야 90년부터 적자로 돌아섬. 흑자시대를 마감하고 적자가 3년 연속 계속되는데도 정부는 수출감소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 그저 왜 이렇지? 이상한데? 하는 식이었음. 한국 수출이 부진에 빠지게 된 것은 국내적으로 인건비와 물류비용이 급속히 오른 탓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 제품의 경쟁력이 강해진 것도 크게 작용. 일본의 기술과 자본,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이 서로 결합하면서 국제협업체제를 구축했고, 미국과 유럽의 중저가 시장을 협공하는데 성과를 올리고 있었던 것. 요컨대 동남아에서 만들어진 일본 브랜드 제품이 싼값으로 나서는 바람에 메이드인코리아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음
- 중국과의 수교(92년 8월)가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소련과의 수교 영향이 컸음. 소련 수교를 성사시킨 노태우는 여세를 몰아 중국과의 수교에 박차를 가했음. 북한과 형제국가인 중국과의 협상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소련과의 수교 덕을 많이 봤음. 그러나 한국과 수교 이후 중국은 북한의 반발에 적지 않게 시달림. 만약 중국과의 수교가 2~3년 뒤로 미루어졌다면 한국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늦어졌을 것임. 오늘날 중국 시장 수출이 미국과 일본 시장 수출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한국경제에 새로운 젖줄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노태우 시대의 북방정책이 갖는 경제적 의미는 매우 큼
- 실제로 개혁 대통령이라 할 정도로 김영삼은 집권 내내 개혁작업을 계속함. 그중 최고개혁은 부정부패에 대한 개혁이었음. 그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자신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부패척결에 솔선수범해야 함을 강조.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는가하면, 공직자 재산신고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무원들의 부패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음.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한 제도가 이때 만들어짐으로써 한국사회의 부패개선에 두고두고 큰 역할을 함. 이 시기에 실시한 금융실명제도 경제정책보다는 부패척결 차원에서 내린 긴급조치였음. 금융실명제 실시로 가장 타격을 받게 된 곳은 기업들보다 정치판이었음. 가장 고질적인 부패의 고리가 정치자금이었는데, 실명제 실시로 정치자금의 움직임이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된 것. 물론 김영삼의 아들과 주변인물들이 비리 스캔들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고 감옥가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졌음. 그러나 공직자 재산등록제도나 금융실명제 등 이 시대에 구축된 제도적 장치가 한국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결정적 계기가 됨.
-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을 때의 경제는 어떠했을까. 첫 경제부총리 이경식이 취임직후 한 말은 93년 초 경제상황을 잘 요약해 줌.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경제는 경쟁력 약화와 함께 성장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정치 민주화에 상응하는 경제윤리가 새롭게 따르지 못했고, 부동산 투기 등으로 계층간 갈등이 심화됐으며, 각종 규제로 기업의 투자의욕이 크게 위축됐고, 넷째 사회전반적으로 왕성했던 의욕과 자신감이 상실된 것이 이유다. 게다가 중국과 동남아처럼 새로운 경쟁상대국들이 부상하는 등 92년 하반기 이후 한국경제는 구조적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 원래 김영삼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 아님. 특히 숫자가 있는 보고서를 싫어했으며, 구체적 사항에는 관심이 없었음. 물론 김영삼도 대통령에 당선되기위해 후보시절에 경제를 공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함. 텔레비전 토론을 준비할 때도 경제분야 공부를 꺼려서 가정교사 박재윤이 애를 먹음. 김영삼은 원래부터 거시정책이나 미시정책이나 하는 경제용어를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은 전문가나 직업관료에게 맡기면 된다고 여딤. 아마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신경제 5개년 계획이 그토록 허망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임.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YS노믹스에 해당하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이 힘도 한번 못써 본채 흐지부지된 가장 근본적 이유는 김영삼 자신이 경제에 대한 이해나 열정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 그렇다고 김영삼이 경제를 무시한 대통령은 아니었음. 취임사에도 밝혔듯이 그는 나름대로 한국병을 치유해야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은 절실히 느끼고 있었음.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다른 대통령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경제개혁 정책을 훌륭히 실현할 수 있다고 자신. 특히 대통령이 우유부단해서 해야 할 것을 못하는 일은 자신의 임기중에는 없다고 장담함. 전임 대통령 노태우와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음.
- OECD가입을 계기로 자본시장을 과감히 개방했고, 신생 종금사들이 홍콩 금융시장에서 외자를 끌어들여 한국기업에게 빌려주는 일도 예사로 벌어졌음. 그들은 돈만 빌려 오는 것이 아니고, 대박을 노리고 위험부담이 높은 싸구려 정크본드를 대량으로 사들이기도 했음. 국내 금리보다 낮은 외채가 들어올 수 있게 되자 기업들은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의 신규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고, 부채비율은 350~400%로 높아짐. 그러나 원화가치가 계속 유지되는 한 기업은 외채를 많이 빌릴수록 좋았음. 재수가 좋으면 싼 금리에 더해 환차익까지 누릴 수도 있었음. 외국투자자도 설마 한국에 돈을 떼일까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한국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줌. 수출이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데도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원화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임. 일본의 엔화나 중국의 위안화는 같은 기간에 20~30%씩 절하되는 판에 유독 한국의 원화만 3년 내내 평균환율이 달러당 800원대를 유지됐으니 수출은 죽을 쑬 수밖에 없었음. 그런데도 김영삼 정부는 아랑곳 하지 않음. 수출은 부진한데 소비재 수입이 급증하고 해외여행 자유화까지 겹체 급기야 96년에는 237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 외환보유고에 육박하는 적자를 낸 것.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기관들이 해외영업 규제에서 풀려 마음대로 외자를 끌어들임. 그것도 정부가 장기차입은 규제하고 단기차입만 허용했기 때문에 1년만기 이하의 단기 외채 도입이 크게 늘었음. 이렇게 총 외채는 93년 439억불에서 96년 1,047억 불로 급속히 불어남. 이처럼 불길한 징조가 완연한데도 환율이나 금리에 대한 정부정책은 일관성이나 정리된 입장이 없었음.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항상 의견이 엇갈렸고, 바뀌는 장관이나 경제수석마다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 한쪽에서 수출경쟁력을 위해 환율을 올리자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들의 외채상환부담 가중을 내세워 반대. 이견이 다른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견들을 조정하고 결론을 내려주는 시스템도 사람도 없다는 것이 문제. 더구나 환율인상(원화가치 절하)을 공론화하지 못한 배경에는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차질을 염두에 둔 정치적 압박이 작용하고 있었음.
- 외환위기 원인정리
(1) 빚더미 기업(부채비율 400%이상)들이 무모하게 외채투자를 벌임
(2) 정부는 OECD 가입에 급급한 나머지 개방정책을 무분별하게 추진
(3) 의회는 대통령 선거에 눈이 멀어 정부정책에 딴죽걸기만 일삼음
(4) 노조와 시민단체들은 노동자 권익을 주장하며 부실기업 정리를 가로막음
(5) 국제투기자본이 여러나라에 몰려다니며 국제금융시장에 심각한 불안을 가중시킴
그러나, 결정적 문제는 대통령의 리더십. 대통령이 최소한의 위기수습 능력을 발휘했더라도 국가부도 위기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수 있었음. 사실 경제분야의 대통령 리더십문제는 노태우권부터 불거졌음. 소위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 생겨나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이해상충의 문제를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하는 새로운 대통령 리더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
- 돌이켜보면 국가부도 위기가 처음은 아니었음. 70년을 전후로 차관기업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무더기로 빚더미에 올랐을 때 사채동결조치로 위기를 넘긴일이 있었고, 이후 중화학공업 과잉투자와 석유파동, 대통령 암살 등이 겹쳐 80년에 또 한차례의 큰 위기에 몰렸었음. 그러나 모두 독재정치 시대에 일어났던 상황이었고, 위기대처 또한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사불란하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음. 부작용이나 반대가 있더라도 방향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음. 그런 뜻에서 97년 외환위기는 종래 개발연대식의 대처가 애당초 불가능했음. 박정희와 전두환이 풀었던 위기해법 방정식보다 김영삼이 풀어야 했던 방정식은 훨씬 어렵고 복잡했음.
-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정권하에서 여러가지 개혁을 이루었음. 그러나 김대중이 의도한 개혁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이 개혁은 김대중의 개혁이라기 보다는 IMF개혁이라 부르는 게 옳다.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이지만 한국정부의 개혁의지가 아니라, IMF의 강력한 압력이 변화에 결정적인 개혁의 엔진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과거와 비슷함.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맥아더 사령부가 패전국 일본의 과거를 해체하고 변화와 개혁의 판을 다시 짰던 형국과 비슷한 점이 많았음. IMF가 구제금융만 해주고 개혁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정부는 어떤 정책을 폈을까. 30대 재벌의 절반이 무너지고 5개 시중은행이 모조리 간판을 내리는 사태가 벌어졌을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 과거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처럼 충격적 개혁을 우리 스스로 시도한 적은 없었음. 재벌개혁이든 은행개혁이든 훨씬 온건하게 진행되었을 것임. 특히 개방정책은 분명 비교가 안될 정도로 소극적으로 진행했을지도 모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자비한 초강력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외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음. 더욱이 지방은행 하나도 부도를 내본 적 없는 한국정부가 시중은행 간판을 내리게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음. 결국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이기에 피를 철철 흘려가면서도 엄청난 대수술을 감행할 수 있었음. 어쨌거나 재벌개혁, 금융개혁, 정부개혁, 노동개혁 등 4대개혁을 내걸고 김대중은 IMF의 약속을 실천에 옮겼으나 부문마다 사정이 달랐음. 개혁은 주로 재벌과 금융기관에 집중됨.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관치금융 속에 뿌리내렸던 권력과 재계의 유착관계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것.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거래은행이 눈감아주고, 국회의원이 압력을 넣는다고 계속 대출을 해주는 일이 근절되었음.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기업은 부도처리를 당해야 했고, 은행도 자기자본이 일정기준 미만이면 문을 닫아야 했음. 지금까지 한국경제가 이렇게 원칙대로 해온 일은 없었음. 뭐니뭐니 해도 기업들이 빚으로 사업을 마구 벌이는 차입경영 습관이 뿌리째 뽑혔고, 은행들은 전당포식 낡은 금융관행이 크게 변화. 500%에 달하던 대기업 부채비율이 100%로 급격히 줄었는가 하면,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도 확 줄어듬. 불신의 대상이던 한국기업들은 회계장부 작성을 국제기준으로 끌어올렸고, 감시감독 제도가 강화되면서 경영의 투명성이 현저하게 높아짐. 외국인들이 은행을 비롯하여 땅과 주식도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됨.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투명성 문제는 좋은 싫든 개선될 수 밖에 없었음.
- 한편 IMF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김대중의 지론이었던 대중경제론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는 IMF에 시종일관 끌려다니기만 한 것인가. 개혁의 주도권이 IMF에 있었으나, 그 내용이 김대중의 경제철학과 소신에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니었음. 우선 대중경제론 자체가 그동안 변해왔지만, 김대중의 생각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많이 달라짐. 더구나 자신이 늘 주장하던 것이 관치금융 폐지와 재벌규제, 자유로운 시장경제였는데, 이는 IMF가 한국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개혁의 핵심과 일치. 그러고 보면 뜻하지 않게 김대중의 개혁의지를 뜻하지 않게 IMF가 대신 비난을 무릅쓰고 실현시켜 준 셈
- 김대중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공기업 개혁이 용두사미가 된 배경에는 노조의 반발이 결정적이었음. 김대중은 평소에 공기업의 비효율과 저생산성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반드시 민영화를 통해 경쟁원리를 도입시키겠다고 장담.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김대중의 소신은 오래전부터 국영기업체들은 독재정권의 일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 그런데 막상 자신이 집권한 후 추진하던 민영화가 노조의 반발에 걸려 무산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아무튼 그는 집권 내내 노동자 편에 서서 가장 많은 정책을 폈던 대통령이었음. 처음으로 노조의 정치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민노총과 전교조를 합법화시켰으며, 공무원의 노조활동에 정당성을 부여. 그럼에도 대화와 타협의 장에 참여해달라는 김대중의 요청을 노조는 끝내 거부. 김대중은 노조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갔으나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없었음. 다만 재임기간중 마지막 노동부 장관에 노조운동 준법을 강조하던 방용석을 기용함으로써 자신의 노조관에 변화가 왔음을 보여줌
-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 작업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경제에 새 살을 찌우기 위한 강력한 부양책을 펴기 시작. 국가적으로도 먹을거리를 제공할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 했는데, 인터넷을 중심으로한 IT산업이 그것이었음. IT산업은 운도 따랐다. 마침 미국을 중심으로 닷컴 비즈니스가 붐을 일으켰고, 국내여건도 전두환시대 이후 닦아 놓은 통신산업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서 IT산업 육성 정책의 여건은 잘 조성됌.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구축 등을 비롯해 기업지원책을 적극적으로 늘렸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IT창업 자금지원을 대폭 강화했음. 강남 테헤란로 일대가 한국이 실리콘 밸리로 불렸던 것이 이때부터임. 99년 후반부터 소위 벤처창업이 봇물처럼 터지자 언제 국가부도위기를 당했느냐는 듯이 한국경제는 순식간에 달아오름. 그해 연말 증권시장의 종합주가지수는 1000을 돌파했고, 벤처기업들이 주식을 거래한느 코스닥을 모르면 촌놈이엇다. 닷컴이란 이름만 붙이면 주가는 천정부지로 솟아오름. 경기를 살린 것은 벤처회사만이 아니었음. 정부는 얼어붙은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신용카드를 적극적으로 권장. 현금대신 카드를 사용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를 도입하는가하면,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한도도 철폐.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아파트 전매금지를 비롯해 그동안 실시해온 규제란 규제도 죄다 풀었다. 금리도 빠른 속도로 내렸음. 이자부담 때문에 은행돈을 못쓴다거나 은행문턱이 높다는 말도 사라짐. 보통 연간 금리는 10%가 넘었는데 3~4%대로 떨어진 것. 자기돈으로 집을 사면 바보란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 집값이 오르고 투기가 일더라도 하루빨리 경기를 살려내는 것이 정부의 급선무였음. 이 같은 노력의 총집결을 통해 IMF 조기졸업을 박수갈채 속에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그러나 문제는 뒤탈이었다. 우선 2000년부터 미국의 닷컴 버블이 진정되자 곧바로 한국의 닷컴회사들에 영향을 미침. 하늘높은 줄 모르던 벤처기업들의 주가는 어느날 갑자기 폭락세로 뒤집혔고, 테헤란로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섯던 중소창업회사들은 여기저기서 무너짐. 01년 미국 9/11 테러사태까지 겹쳐 세계경제가 하락하자, 결국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99년 10.7%까지 회복했던 것이, 01년 4.0%로 떨어짐
-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출범 당시 충분한 준비가 없었으며, 특히 경제분야가 그러했음. 그의 주분에는 비판을 전문으로 하거나 운동권 사람들만 수두룩했지, 실제로 정채을 입안하고 책임지고 실행해본 경험을 지닌 행정전문가들은 드물었음. 물론 대선과정에서 기존 보수후보들과는 달리 서민복지를 앞세웠고 성장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두는 과감한 개혁을 약속했으나, 막상 국정을 책임지면서 이내 간단치 않음을 깨달음. 오죽하면 노무현은 재벌기업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를 소문나지 않게 찾아가서 코치를 받고, 그들이 만든 보고서를 경제운영의 참고서로 삼았겠는가. 그러나 노무현이 추구하는 국정방향은 분명한 자기색깔이 있었음. 그의 경제관은 비록 다듬어지지는 않았으나 몇가지 점에서 명료했은. 무엇보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이 빚어낸 불균형과 왜곡을 고치고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 요컨대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을 분배와 복지우선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음.
- 집권 첫해 03년 경제성적표가 나오자 노무현은 큰 충격을 받음. 경제성장률은 3.1%를 기록했는데, 일자리는 3만개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경제성장률도 02년 7%에 비해 크게 둔화된 것도 충격이었지만, 일자리의 절대 숫자까지 줄어든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음. 성장을 하는데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는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로 다가설줄은 노무현은 미처 예상치 못함. 이때부터 노무현은 선거때 주장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기 시작.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복지예산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복지정책이요, 이를 위해서는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경제방정식을 비로소 인식. 그의 참모들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03년 고용없는 성장을 경험한 이래 노동시장 정책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물꼬를 틀었다. 무조건적인 성장우선 방식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북유럽식 복지체제를 추구하다가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되는 것도 피하자는 것이다."
- 집권중반에 접어들면서 노무현의 노조관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음.
(1)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노조의 투쟁방식은 과거 독재 탄압시대와 다를 바 없다
(2) 대기업 노조들이 집단이기주의와 귀족화 현상을 보인다
(3) 정작 보호받아야 할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소홀해졌다
(4) 노조의 불법파업이 너무 잦아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 한미 FTA는 미국의 개방압력으로 시작된 게 아님. 당시 미국은 한국과의 FTA에 시큰둥했으나,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추진됨. 초기 단계에서 한국 실무자들이 미국측과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것이 결실을 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무엇보다 참여정부의 성격이나 정책기조로 봐서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개방정책이라고 여겨졌기 때문. FTA의 경제적 효과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가뜩이나 반미성향이 뚜렷한 노무현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랬던 것이 예상을 깨고 노무현이 앞장서 미국과의 FTA를 밀어붙였던 것. 노무현이 한미 FTA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극히 비정치적이고 실무적 차원에서 비롯됌. 통상산업본부장 김현종으로부터 한미 FTA 관련 보고를 받고 나서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고, 한번 결심이 서자 주저하지 않고 추진
- 노무현 정부는 돈줄 조이는 정책은 외면한 채, 왜 세금폭탄 정책에만 의존했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 첫째, 돈줄을 조일 경우 경기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을 우려. 노무현 정권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가 아무리 나빠도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는 정책의지를 밝혀왔는데, 사실 이런 정책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였음.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인위적 부양책을 펴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아파트 투기의 원천이었던 주택대출제도는 그대로 방치했던 것. 둘째, 노무현은 부동산 투기꾼을 처벌하고 손해를 보게 하려면 세금을 중가하는 징벌적 정책으로 뿌리를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 참여정권은 집권내내 부동산 문제를 경제정책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운동권적 시각으로 보았던 것. 그 결과는 실패였음. 아파트값은 물로 전국의 땅값을 잔뜩 올려 놓았을 뿐 아니라, 세금폭탄 투하로 부동산 거래 자체를 얼어붙게 하였음. 소위 말하는 지나친 세금공세로 심각한 조세저항을 초래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열우당이 패하는 중요 요인이 됨
- 노무현의 업적을 돌이켜 봐도 대화와 타협보다는 오히려 반대를 무릅쓰고 굽힘없는 소신을 관철시켜 이뤄낸 경우가 많았음. 그에게는 역시 도전이나 투쟁이 더 어울렸음. 자기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가마저 모두 아울러 끌어안고 융화하는 것이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의 기본덕목이라고 한다면, 그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끝까지 다투고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음. 노무현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야 이점을 후회했음
- 이명박은 전임대통령 노무현이 경제를 망쳤다는 사회분위기의 반사이익을 많이 보았음. 김영삼 경제의 실패로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처럼, 노무현 경제에 댛나 실망이 경제대통령, CEO대통령을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의 당선에 크게 작용했던 것
- 집권초기 이명박은 성공한 기업인, 성공한 서울시장이란 이미지를 바탕을 매사에 자신만만해 했음. 사소한 부분까지 실무자들로부터 일일이 보고받고 지시해야 직성이 풀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현안문제들을 따지기 시작하면 보고가 서너시간을 넘기기 일쑤였으니 보고자들은 애를 먹음. 그는 관료들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이 있었음. 특히 재무부에 대한 반감은 노골적임. 그는 기업에 있을 때부터 관치금융의 습성에 젖어있는 재무관료에 대한 불신이 깊었음. 이명박 정권의 첫 금융위원장 자리에 뜻밖의 인물인 전광우를 발탁한 것도 이런 불신 때문. 원래 주변에서 금융행정 경험이 풍부한 재무관료 출신을 천거했으나 재무관료 출신은 안된다는 기본입장이 작용. 대운하 추진계획이나 4대강 사업 또한 이명박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음. 4대강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주제로한 TV토론에 출연한 이명박은 토목공사는 내가 최고 전문가 아니냐며 비판론자들의 비전문성을 반박. 이명박은 자신이 실무에 밝다는 점을 자주 내세움. 자원개발이나 원자력 발전소 건설수주 같은 사업도 직접 나서길 좋아했고 실제로 효과를 보기도 함.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추진됐던 녹색성장 개념 또한 이명박이 적극적으로 나섰기에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음. 그는 국정전반을 조감하고 총괄한다기 보다, 개별 프로젝트의 책임 매니저 같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스타일이었음.
- 청와대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음. 야당가 시민단체의 공격에 굴복하는 항복문서나 다름없는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고, 그것에 더해 집권 첫인사를 불과 3개월만에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수모를 겪음. 이로 인해 MB노믹스의 추진일정은 초장부터 크게 빗나갈 수 밖에 없었음. 더구나 촛불시위의 위세가 어느정도 수습국면에 들어서자 미국발 금융위기와 3차 석유파동이 터져 나오면서 이정권은 또다시 격랑속으로 빠져듬. 운으로 치면 이명박 정부는 억세게 운이 나쁜 케이스였음.
- 기세좋게 출발한 MB노믹스는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음. 정권 출범 3개월만에 터진 촛불시위로 대통령의 권위가 실추된 것을 시작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국제 석유값 폭등 그리고 유럽발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대외여건 악화는 성장 촉진에 초점을 맞춘 747공약을 초장에 주저앉혔던 것. 세계경제가 구조적 불황에 빠져든 판국에 성장을 모토로 하는 747 공약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음. 오히려 역풍이 불기 시작. 747 공약은 졸지에 나쁜 정책으로 전락. 경제가 나빠지면 당연히 투자촉진책을 먼저 쓰기 마련인데,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 종전의 경기 부양정책이 기업특혜 정책으로 매도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제는 지속성장을 위해 분배와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음. 마치 다시 참여정부로 회귀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음. 원인이 어디 있든 간에 여론은 급속히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음. 대외여건 악화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진했던 기업지원책만 비판의 도마에 오름.
- 이명박은 유난히도 자주 인사문제로 비판받았음에도 특유의 자기스타일 인사를 고집. 경제분야 인사는 내가 최고의 전문가라고 확신했기에, 누구를 등용하느냐보다도 누구를 시키든 내가 직접 챙긴다는 식이었음. 부총리를 통해 경제부처 장관들을 통괄하거나, 경제수석에게 부처간 이견조율을 맡기는 것이 아니었다. 경제 각료들의 팀플레이나 장관중심의 정책운용은 애당초 없었다. 이명박은 부총리제도를 폐지하고 주요 사안들을 직접 챙김. 선거캠프 때부터 중심역할을 했던 강만수를 첫 기획재정부 장관에 앉혔으나 경제부처의 총괄이나 통솔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뭐라 하던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토해양부 장관은 아랑곳 없이 대통령과 직접 의견을 나누거나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같은 이명박 정부의 진두지휘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처해서 일사불란하게 비상회의를 꾸려가는 과정에서는 효과적이었음. 하지만 MB인사는 고전의 연속이었음. 단순한 인사 스타일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였음. 첫번째가 도덕성 시비. 당선자 시절의 첫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은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음. 소위 고소영, 강부자라는 신조어가 회자되는 가운데 부자와 재벌을 위한 정부라며 몰아붙이는 야당의 공세는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 MB인사가 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교우, 영남지역 인사에 쏠려 있음을 비아냥 거리는 데서 나온것. 국회청문회에서는 청문대상자의 자격이나 능력검증은 뒷전이었음. 청문회가 개인적 치부를 들추기 위주의 도덕성 검증에 치중했음에도 이명박은 이점을 너무 소홀히 대처. 재산이 많은게 무슨 잘못인가.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한다는 그의 소신은 너무 나이브했음. 축재의 정당성을 따지는 사회적 요구가 얼마나 엄격해졌는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줌
- 역대 대통령들은 대체로 국내보다 외국에서의 평판이 더 좋음. 이명박도 그러했음. 국내에서는 747공약의 좌절이나 촛불사태 등으로 지지도가 급속히 떨어졌지만, 해외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석유파동, 유럽의 재정위기 등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지도자로 그를 치켜세움. G20정상회담 서울 개최를 주도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던 G7체제가 새롭게 진화하는 길목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괄목상대로 끌어올렸다는 점 또한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만했음.
- 이명박 경제는 09년 동안 내내 미국발 금융위기의 대혼란 속에서 한국경제를 구출하는 일에 올인해야 했음. 이처럼 정부가 출범했던 08년부터 이듬해인 09년까지 광우병 사태와 국제금융위기, 게다가 3차 석유파동까지 겪어야 했으니, 747 공약은 제대로 추진할 겨를도 없었음. 그나마 위기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11년부터 그리스를 시작으로 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연이어 덮침. 대외여건만 보면이명박 경제는 유난히도 나쁜 상황이 끊이지 않고 계속됨. 사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로서는 이같은 외부악재들에 대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음. 그나마 한국은 대통령이 적극적인 리더십으로 대응을 잘해서 다른 나라에 비해 타격을 한결 덜 입음. 09~10년 세계평균 경제성장률이 2.2%였던 것에 비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3.2%였음. 바로 이점에서 국내평가가 국제적 평가보다 훨씬 인색했음. 여론은 대부분 위기극복을 주도한 이명박 리더십에 대해 긍정적 시각보다 당초의 747 공약 실패를 비판. 대통령이 경제운영을 잘해서 위기를 넘겼다는 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음. 일반의 관심은 위기극복은 당연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일자리 문제, 다시 고개를 든 인플레이션, 서민들에게 직접적 타격을 주는 전세값 폭등 등 눈앞의 현안들이었음.
- 이명박에 대한 평가는 억울한 구석이 많음. 비록 당초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배경에는 국제경제 악화가 결정적이었으며, 고용없는 성장이나 양극화 심화문제 또한 혼자서 그 책임을 뒤집어쓸 일은 아님. 본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경제살리기에 매진한 대통령이었따고 자부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은 왜 비판의 대상이 됐고, 노무현은 왜 명예롭게 부활한 것일까. 노무현 정부때보다 이명박 정부에 와서 객관적으로 더 나빠진 것이 첫번째 이유. 여기에 더해 이명박의 정책수정 결과가 노무현이 추구했던 것을 뒤늦게 따라갔다는 것이 둘째 이유. 다음 정권이 전임정권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태도를 바꿔 따라한다는 것은 결국 전 정권의 정책이 옳았음을 입증해주는 꼴. 노무현 부활론도 그런 맥락에서 나옴. 결과를 놓고 보면 그럴만 했음. 이명박 정권에 와서 경제가 더 악화된 것도 사실이고, 취임 첫해를 보낸 이후 이내 성장 위주 정책에서 분배 및 복지 정책으로 기조를 급선회한 것도 맞음.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고 친기업론을 강조하던 대통령이 어느날 갑자기 친서민가 윤리경영을 내세운 것도 사실. 동반성장 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비정규직 문제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원래 참여정부의 단골메뉴였음. 그러나 이런 이슈가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함. 양극화 해소는 사회통합 문제는 노무현의 적절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던 사안. 도리어 집권기간 중 양극화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가진자와 없는자의 패를 갈라놓는 바람에 대립과 갈등이 더 증폭되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바통을 넘겨 받았던 것. 경제가 악화되자 이에 대한 정치, 사회적 불만이 한층 더 강해짐. 다시 말해 노무현의 정책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시대에서 불거지고 이슈화되었던 양극화 문제가 국제경제 악화와 국내경제 구조의 급속한 진화로 한층 더 심각하게 부각된 것.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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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회사 안되는 회사

저자
얀 필로초프스키 지음
출판사
시그마북스 | 2014-04-1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비결은 실패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성공을 주...
가격비교

- 당신 회사나 조직이 성공하려면 성공에 대해 엄격하고 고정된 선입견을 갖고 있으면 안된다. 특정 지위나 업무, 활동에서 성공의 의미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시기에 따라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는데 사람의 관점은 늘 변하기 마련임. 그렇다고 해서 나름대로 정한 성공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일을 시작하면 안된다는 의미는 아님. 그저 여러 사례들의 교훈을 명심하면서, 성공목표를 계속 검토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미
- 실패가 일어나서 진행되는 과정에는 명확하고 예상할 수 있는 패턴이 있으며, 패턴의 핵심은 실제활동과 그 활동에 대한 인식에 괴리가 생겨서 점차 멀어진다는 것. 이런 괴리는 지속될 수 없으며 심각하거나 근본적인 실패를 촉발함
-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가벼운 실패로 유지하다가 회복하려면 아주 중요한 세가지 요소를 명심해야 함
* 조직과 지도자의 사고방식
* 문제의 실체에 대한 통찰력
* 문제에 대한 공동의 주인의식
- * 가벼운 실패는 흔히 일어나며 올바른 접근법만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 심각한 실패는 아주 위험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최선의 해결책을 알아내려면 실패의 폭을 확실히 이해해야 함
* 한 조직의 실패가 전 시스템의 실패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폭넓은 실패는 보다 중요하며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현 상황이 개벌젹인 회사의 실패인지 아니면 전 시스템의 실패인지를 분명히 구분하는 게 필수적이다. 어느 쪽인지 따라서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둘다 바로잡을 수 있는 실패이다
* 완전한 실패는 해결할 수 없다. 종말을 알리는 마지막 경고이다
- 조직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모르면 우선사항을 정할 수 없음. 우선 사항이 몇가지 정해져 있으면 그런 일들을 집중적으로 하면되지만, 우선사항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모든 일들을 떠맡아야 함. 그러다보면 버거워서 체념하고 아예 포기하거나, 여기에 조금 손을 댔다가 저기에 조금 손대는 식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거나 둘중 하나임. 이런 활동은 성과가 없으며 의욕을 저하시킴. 이 상태는 너무 많은 일들이 너무 빠르게 몰려들어 완전히 압도당할 때 발생함. 자동차 불빛 앞에 선 토끼처럼 얼어붙어 버림. 필수적으로 우선사항을 확실히 구분하고 더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
- 중요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조직을 만다면 다음을 명심해야 함
* 이미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는 말을 강하게 의심하라
* 설명을 검토하라. 설명에는 어려움, 원인, 이미 진행중인 바람직한 조치, 해결수단이 들어있다
* 이런 설명은 결함이 있으며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 설사 설명이 옳더라도 대체로 핵심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 그런 설명을 받아들이면 안된다
* 납득이 갈만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
- 실패를 피하려면 수동적 혹은 능동적 경고신호를 알아채는 것과 부정적이거나 조직을 좀먹는 문화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으며 발견하기가 쉬움. 이런 신호와 문화는 여러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안타깝게도 쉽게 증가함.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면 조직을 심각한 실패로 몰아감. 그러니 눈에 띄면 바로 대처하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함. 미국 재무부장관 티머시 가이트너는 "오래 기다릴수록 해결하기가 힘들어지는 전형적인 특성이 잇다"라고 말했음
- 중요한 점은 일반적 사항이 아니라 구체적 사항이라는 사실. 관리자는 구체적인 사항에 집중해야 하고 구체적인 사항에서 배워야 하며 구체적인 일을 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실행해야 함. 무엇이 됐든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게 만들려면, 커다란 덩어리를 작게 나누고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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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

저자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지음
출판사
코난북스 | 2014-07-2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출산 보육 노후부터 교통 보건 교육까지 200조 머니게임 지방재...
가격비교

- 보충성의 원칙은 정부간 업무배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 간의 역할분담에 관한 원칙임. 이 원칙은 31년 로마 교황 비오 11세의 선언문에 잘 나타남. "저 작고 더 낮은 사회에 의하여 실효성 있게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더 크고 더 높은 단체가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회 철학의 흔들림 없는 근본원리이다. 모든 사회활동의 진정한 목표는 사회구성원을 돕는데 있는 것이지 그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하는 데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보충성의 원칙은 유럽연합을 만들때 유럽연합과 개별회원국 간의 권한 배분기준으로 적용되면서 널리 알려짐. 개별 국가가 존재하면서 연합체를 만들 경우에는 이 원칙이 마땅해 보임. 유럽연합을 만들었다고 해서 기존에 개별국가가 수행해오던 일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 하지만 이 원칙을 한 국가내에서 상하위 정부간 업무배분에 엄격하게 적용하기는 힘들다. 엄격히 적용하자면 상하위 정부가 둘다 할 수 있지만 상위정부가 더 잘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하위정부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완화된 기준을 제시. 둘 중에 더 잘할 수 있는 정부에게 맡기자는 것. 하위정부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하위정부가, 상위정부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상위정부가 담당하게 하자는 이야기임.
- 지방정부 재정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비의 일부를 중앙정부가 주는 돈에 의존한다는 점. 그래서 자체재원만으로도 사업비를 충당해야 한다면 결코 하지 않을 사업도 중앙정북 돈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하게 됨. 이런 사업은 국가전체로 보면 편익보다 비용이 큼. 그러나 지역 입장에서 보면 지역에 돌아오는 편익이 지방정부 자체 재원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보다 크다. 그러니 지역의 정치인이나 주민이나 한마음으로 이런 사업을 선호함. 소위 지역 숙원사업 중에 이런 것들이 많음. 물론 지방자치가 아니라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활약과 대통령 선거마다 등장하는 선심성 지역공약으로 낭비성 지역 숙원사업이 실행되기는 함. 하지만 지방자치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은 분명함
- 지방화에 대한 강조는 대략 20세기 후반부터였음. 세계적 석학이나 저명한 미래학자, 이를테면 다니엘 벨이나 앨빈 토플러 같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방화를 강조. "국가는 삶의 큰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크다." 다니엘 벨의 말은 중앙집권적 국가기능의 쇠퇴와 지방화의 도래를 상징하는 문구로 인용되기도 했음. 서구역사를 보면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20세기 중반까지 산업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복지국가가 발전되어온 과정은 모두 중앙집권적 국가기능의 확대를 가져왔음.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탈산업사회와 복지국가의 변화가 시작되면서 중앙집권적 국가기능의 비효율성이 부각됨. 이에 따라 시장화와 더불이 지방화(분권화)가 강조된 것. 지방화 주창자들이 강조한 만큼이나 국가(중앙정부)의 기능이 쇠퇴한 것은 아님. 국가는 여전히 중요함. 하지만 지방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사실. 이에 따라 20세기 후반부터 선진국들은 국가운영의 효율화를 위한 지방화(분권화)를 추진. 우리도 20세기 후반에 지방자치를 재개하였으니 시대조류에 부응한 셈이기는 하다. 선진국에서 국가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해서 추진했다면,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서 했다는 점이 다름. 이 차이는 중요함. 지방자치를 국가운영의 효율성과 연결하여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지방자치가 그토록 비효율과 낭비를 양산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 이제는 지방자치를 효율성 관점에서 따지고 개선안을 논의할 때도 된 것 같음. 효율성을 높인다고 민주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님. 오히려 우리 지방지차의 현실을 보면 효율성과 민주성은 함께 갈 가능성이 훨씬 높음. 이제는 우리도 국민생활을 더 윤택하게 하는 지방자치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 보조금 배분이 정치적 산물인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님. 미국 정치용어 중에 포크배럴 정치라는 말이 있음. 보조금이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유리하게 배분되는 현상을 말함. 포크배럴은 옛날 미국 남부에서 농장주들이 노예들에게 주는 훈제 돼지고기를 보관하던 통을 말함. 지역구를 위해 보조금을 따내려고 달려드는 정치인들 모습을 농장주가 돼지고기 한 조각을 꺼대 던져줄 때 모여드는 노예들이 빗댄 표현임. 또 어느 일본학자는 국고 보조금은 정치인들이 표밭에 뿌리는 비료라고 말하기도 했음.
- 지방정부는 자체수입으로 지출을 모두 충당하지 못했음. 그래서 부족분은 중앙정부가 지원해줌. 이런 물렁한 예산제약이 존재할 때 지방정부는 스스로 노력해서 수입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중앙정부 지원을 더 받으려 하거나, 어차피 자신의 노력보다는 중앙정부의 지원에 따라 재정형편이 좌우된다는 생각에 나태해짐. 지방교부세는 의존재원이긴 해도 법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배분되며 일반재원으로 사용되므로 이 돈자체가 낭비될 소지는 별로 없음. 그러나 형편이 어려우면 지원이 늘어나므로 자력으로 재정여건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꺾는 효과가 생김. 인구가 많을수록 많이 받기 때문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늘리려고 꼼수를 쓰기도 함. 대행사업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떠맡겨서 하는 것. 마지못해 하는 것이고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집행하는 경향이 있음. 그래서 효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 지방교부세와 대행사업보다 훨씬 심각한 효율성 문제는 자체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에서 발생. 국고보조는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비용을 실제 사업비용보다 작게 만듬. 그래서 국고보조금이 없다면 하지 않았을 사업, 더욱이 하지 말았어야 할 사업도 시행하게 됨. 뿐만 아니다. 지원여부가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보다 정치력에 의해 결정된다면 지방정부는 저마다 좋은 사업을 개발하기보다 정치력을 동원하는 데 더 힘을 쏟게 됨. 이런 왜곡된 행위에 따라 발생하는 무형의 낭비가 효율성을 더 떨으뜨릴지도 모른다
- 국가보조금, 민간투자, 공기업이라는 수단이 없다면 지방정부는 대형 개발사업을 벌이기 힘들다. 국고보조금은 중앙정부가 거저 주는 돈이니 많이 따올수록 이익이라고 생각하게 됨. (실제는 자체재원으로 매칭해야 하는 돈이 만만치 않음) 민간투자나 공기업의 빚도 남의 돈이라고 생각하게 됨. 그러니 꼼꼼하게 따지기보다 일단 벌여놓고 보자는 경향이 강함. 더구나 신중하게 일하던 지자체도 다른 지역에서 이런 방법으로 통크게 사업을 벌이는 걸 보게 되면, 가만히 있는 자신만 무능하게 비춰질까 두려워하게 됨. 국가보조를 받는 국제대회나 민자사업, 공기업 사업 중에는 무리하게 일을 벌이다 예산을 낭비하고 재정을 위험하게 만든 사례가 차고 넘친다
- 공기업 부채의 원인
(1) 원가에 못미치는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서 생긴 부채. 한전 부채의 대부분은 값싼 전기요금 때문.
(2) 정부사업을 수행하면서 생긴 부채. LH공사의 상당부분은 신도시 건설과 공공주책 공급과정에서 생긴 것임.
(3) 정부가 무리하게 강요한 개발사업때문에 생긴 부채. 수자원공사의 부채의 많은 부분은 4대강 사업을 떠맡아서 생김. 석유공사, 광물공사 같은 에너지 공기업들 부채의 상당액도 정부가 독려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 발생.
(4) 공기업 자체의 경영과실에서 비롯한 부채. 공기업도 기업인 이상 경영상의 판단착오로 손실이 생긴 것이고 이것이 부채로 연결되기도 했을 것임. 하지만 전적으로 자율경영을 하는 공기업은 거의 없을테니 순전히 경영진의 판단착오에서 비롯한 부채크기가 얼마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움.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의 실패로 철도공사가 지게 된 부채가 여기에 해당
(5) 방만경영. 어차피 수익에 민감할 이유가 없고 자율경영도 아닌 바에야 경비절감이나 구조조정을 위해 애쓸 필요도 없으니 경영이 방만해지는 것은 당연함
공기업 부채문제를 따질 때는 입장에 따라 이 다섯가지 중에 몇가지를 강조함. 정부는 방만경영을 강조하고 공기업 노조는 원가에 못미치는 가격의 서비스 제공과 정부사업 대행을 강조. 언론도 색깔에 따라 정부입장을 더 강조하기도 하고 공기업 노조입장을 옹호하기도 함. 부채 규모로 보면 (1), (2), (3)의 원인이 대부분
- 지키지 않는 게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기 어렵고, 집행과정에서 부패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 그리고 이런 부패를 없애려면 애초에 그런 규정을 만들지 말아야 함. 우리 사회 버벶도 곳곳에 이런 규정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공무원의 관행적 부조리도 어느정도 이런 측면이 있음. 과거에 공무원 급여를 인상하는 대신 초과근무수당이나 관내출장비를 급여를 보충하는 수단으로 써도 눈감아 주었음. 또 부서경비를 적정하게 책정하는 대신 관외출장비 등을 부서경비로 전용해도 모르는 척했음. 이럴 바에야 공무원 급여와 부서경비를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초과근무수당과 출장비는 원칙대로 집행하는 게 훨씬 나음. 관행적 부조리는 그 자체도 문제임. 하지만 은연중에 모두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서 상사나 동료의 진짜 부정과 비리마저 눈감게 만드는 것이 문제
- 지역의 정치와 행정을 엘리트주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론 중에 성장기구라는 이론이 있음. 성장기구는 지역의 성장을 이끄는 수단이란 의미. 부동산 개발을 중심으로 뭉친 집단과 그 영향을 받는 지방정부가 성장기구에 포함된. 부동산 개발로 이득을 보는 사람끼리 성장연합을 결성해서 지방정부로 하여금 부동산 개발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것. 성장연합을 구성하는 첫번째 계층은 지역의 건설업자, 투자자, 부동산 소유주임. 이들은 부동산을 개발하면 직접 이득을 얻는 집단임. 두번째 계층은 지역의 정치가, 언론인과 가스/수도/교통 등 지역 SOC공급자임. 첫번째 계층만큼 직접적이지 않지만 역시 부동산 개발로 상당한 이득을 얻는 집단임. 이 두계층이 성장연합의 핵심임. 이들 외에 보조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이 있음. 바로 지역의 대학, 예술/문화계임. 이들은 부동산이 개발되었을 때 과실을 간접적으로 누리기도 하고, 핵심 성장연합 집단과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게 이득이 되는 집단임. 성장연합은 지역의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함. 지방정부에 부동산 개발을 독려하는 것은 물론이며 지역주민들이 이를 지지하도록 여론을 형성. 부동산 개발 혜택이 실제로는 소수에게 집중됨에도 지역을 개발해야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주민의 자산가치도 올라간다는 식의 성장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전파. 이로써 지역의 정치, 행정, 경제는 결국 소수집단의 이익을 위한 부동산 개발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됨. 그러나 이렇게 부동산 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하면 결국 지역동동체가 훼손되고,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으며, 지방정부 재정도 멍이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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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심부름꾼

심리 2014. 10. 2. 17:20

 


주인과 심부름꾼

저자
이언 맥길크리스트 지음
출판사
뮤진트리 | 2014-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좌뇌와 우뇌가 벌이는 배신과 정복의 역사를 말하다" 지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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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같은 비교적 영리한 동물에서는 전두엽이 두뇌 전체 부피의 약 7%를 , 하위 영장류에서는 약 17%를 차지하는 데 비해, 인간의 두뇌에서는 약 35%를 차지. 사실 대형 영장류도 이와 비슷하지만, 인간의 전두엽과 대형 영장류의 전두엽은 백질의 비율에서 차이를 보임. 백질은 일부 신경세포에서 축색, 즉 길게 이어져서 두뇌 밖으로 나가는 메시지를 소통시키는 신경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인지질층인 미엘린 껍질때문에 흰색으로 보임. 이 미엘린 껍질은 메지시의 전달속도를 엄청나게 빠르게 해줌. 인간의 전두엽이 크다는 사실은 전두엽에서의 상호연결이 더 풍부하다는 뜻
- 새들은 양쪽 눈에 각기 다른 전략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먹는 일과 살아남는 일을 공존시키는 난제를 해결. 많은 동물에게는 전체 종의 차원에서 왼쪽눈(우반구)으로 포식자를 지켜보는 편향이 있음. 마모셋원숭이류의 경우, 편중화가 잘된 원숭이는 더 유능함.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경계하는 쪽으로 반구의 전문화가 더 잘 이루어졌기 때문. 특정 앞발을 사용하는 쪽으로 편중화된 고양이는 그렇지 않은 고양이보다 반응속도가 더 빠름. 편중화가 발달된 침팬지는 그렇지 않은 침팬지보다 개미를 더 잘 잡음. 인간의 두뇌도 어떤 이유에서든 편중화 정도가 평균이하인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결손을 보임. 한마디로, 편중화는 특히 두 종류의 상이한 관심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진화적 이점을 가져다줌
- 일반적으로, 좌반구는 먹이를 얻도 먹여주고자 좁고 집중된 관심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음. 우반구는 경계적인 관심을 폭넓게 발휘하는데, 그 목적은 주위에서 발생하는, 특히 잠재적인 포식자나 짝 또는 적이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다른 생물들에게서 오는 신호를 인지하기 위함으로 보임. 그것은 사회적 동물간의 연대와 관련되어 있음. 그렇다면 인간 두뇌의 분리도 세계에 대한 양립불가능한 두가지 관심을 동시에 담아내야 하는 필요에 따른 결과일 수 있음. 하나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지시되는 좁고 집중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향해 열려 있는 폭넓은 관심이다. 동물이나 새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경우에도 각 반구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며, 그 처리방식에는 일관성이 있다. 우반구는 관심의 넓이와 유연성을 강조하며, 좌반구는 집중된 관심을 담아냄. 여기서 이어지는 결과가 우반구는 전체 사물을 그 맥락에서 보고, 좌반구는 맥락에서 추출된 파편화된 사물을 보고, 거기에서 각 사물의 특성과는 아주 딴판인 어떤 전체를 조합해 낸다는 것. 세계를 향한 것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관심이 포함된, 인간으로서 우리가 타인과 연대를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능력인 공감과 감정적 이해같은 것들은 대체로 우반구의 기능임
- 좌반구는 수렴적으로 작동하여 당장은 관련이 없는 의미를 억압하고, 우반구는 관련된 의미들을 광범위하게 활성화시키며 비수렴적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함. 의미론적/어휘론적으로 가까운 관계는 좌반구에 더 많이 의존하고, 느슨한 의미론적 연결은 우반구에 의존. 우반구는 사용빈도가 낮거나 관계가 먼 단어들의 의미까지 활용하므로, 서로 동떨어진 단어를 조합하여 특이한 단어를 만들거나 대상의 새로운 용법을 창안하는 데서 우반구의 개입이 잦아질 수밖에 없음. 이것이 우반구에 자유롭고 창조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임
- 전체 맥락안에서 말해진 내용을 받아들이는 우반구는, 화용론과 의미의 맥락적 이해기술, 은유의 사용을 전문으로 취급. 언어의 비문자적 측면을 처리하는 것이 우반구임. 좌반구가 발언의 고차원적 의미층을 이해하는 데 서툰 것은 이 때문임. 예컨대 '오늘은 좀 덥구나' 같은 발언은 왜 우반구가 유머의 감상을 강화하는지 보여줌. 유머는 말과 행동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맥락이 말과 행동의 의미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 우반구가 손상된 사람은 여러가지 면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비슷하지만, 그들과 달리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관례적인 발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임
- 비언어적 행동, 언어, 얼굴표정, 억양, 몸짓은 사람들 사이의, 또 사람들과 세계 사이의 모순되고 압도적으로 감정적인 복잡한 관계를 확립하는 데 중요. 어개를 건드리고 악수하고 쳐다보기만 해도 장황한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는 우리의 발언이 충분히 정확하지 않기 때문. 오히려 그와 반대임. 발언이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고 애매모호한 것을 표현하는 데 부적절하도록 만드는 바로 그 언어의 정확성과 확정성 때문.
- 말하기는 일차적으로 좌반구의 기능이지만, 노래에 쓰이는 가사의 제작은 우반구의 폭넓은 활동과 관계되어 있음. 좌반구에 발작이 일어나 말을 하지 못하게 된 환자도 노래가사는 어려움 없이 읊을 수 있음. 그러나 우반구에 손상을 입으면 음악을 감식하고 이해하고 연주할 능력을 잃은 음치가 됨. 실어증은 없지만 음악을 감상하거나 연주할 수 없는, 또 그러면서 일상적 발언이나 이해에는 장애가 없는 음치는 거의 대부분 우반구에 손상이 생긴 경우임.
- 유명한 작곡가이자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였던 비사리온 쉐발린은, 왼쪽 측두엽과 두정엽에 발작이 일어나 심각한 실어증이 생겼지만 작곡능력에는 이상이 없었음. 지휘자이자 작곡자인 다른 음악가도 좌반구의 발작을 겪은 뒤 단어를 읽을 수 없게 되었지만, 악보는 어려움 없이 읽고 쓸 수 있었음.
- 좌반구는 사실을 잘못 파악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론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자기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함. 이렇듯 좌반구는 확실성을 필요로 하고 옳을 필요가 있다. 우반구는 한가지 결과를 불완전한 채로 유지하면서 여러가지 모호한 가능성을 붙잡고 유보시킬 수 있다. 오른쪽 전전두엽 피질은 불완전한 정보를 처리하는 데 핵심적인 구역으로, 완전히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을 추론하는 역할을 담당. 우반구는 좌반구의 섣부른 해석에 좌우되지 않으며 모호한 정신적 표상을 유지할 수 있음. 이처럼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특성은, 은유와 아이러니 또는 유머를 사용하는 우반구 특유의 능력에 내장되어 있음. 은유와 유머 등은 모두 모호성을 성숙하게 처리하는 자세에서 나옴. 지각적 경쟁(예를 들어 오리인지 토끼인지 모호한 그림)을 받으면 우반구 피질은 더 활성화됨. 우반구에게는 흐릿하거나 불분명한 이미지가 별 문제가 안되지만, 좌반구는 이를 문제로 받아들임. 과제의 특성상 우반구에게 더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서도 그러함. 반구간 전문화 현상과 관련하여 초기에 발견된 내용중 일관된 것은, 어떤 영상을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보거나 형체의 상태가 너무 열악하여 부분적 정보밖에 얻을 수 없는 경우에는 항상 우반구가 우월성을 나타낸다는 것. 그 재료가 언어적인 것일 때도 마찬가지
- 질병에 관한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우반구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반구가 손상된 사람들은 자신의 질병을 부정. 자신이 신체의 절반을 갑작스럽게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질병인식불능증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그런 경우. 왼쪽 팔다리가 완전히 마비된 환자는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왜 왼쪽을 움직일수 없느냐고 물으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늘어놓기도 함. 이런 증상은 신체 왼쪽에 영향을 주는 발작을 겪은 대다수의 사례에서 발생하지만, 신체 오른쪽의 발작으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음. 이처럼 자기질병을 부정하는 현상은 문제가 생신 우반구를 활성화시키면 일시적으로 뒤집힐 수 있음. 마찬가지로, 우반구를 마취하면 질병의 부정현상을 유도할 수 있음
- 복내측 전두엽에 병변이 있는 환자들은 충동적이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며, 감정적으로 타인들과 차단되어 있음. 특히 변연계 구조와의 상호관련성이 풍부한 오른쪽 복내측 전두엽 피질은 도덕적, 사회적 행동의 모든 측면에 결정적으로 중요. 도덕적 판단에는 복잡한 우반구의 네트워크가 개입되며, 특히 우측 복내측과 완와 전두엽 피질 및 좌우반구 편도체가 다 관련됨. 그래서 우측 전전두엽 피질이 손상되면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음. 우리의 정의감은 우반구에 의해, 특히 오른쪽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로 보강됨. 이 구역이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더 이기적으로 행도하게 됨. 이는 아마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는 일반적인 공감능력, 즉 오른쪽 전두엽의 능력과 관계가 있을 것임.
- 우측 전두엽의 일부인 우측 안와전두피질은 사회적, 공감적 이해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영장류의 경우 오른쪽이 왼쪽보다 큼. 아기와 어머니가 놀이로써 상호작용하는 생후 6개월 이후 1년 사이의 기간에, 또 자아감각이 나타나는 생후 1년에서 2년사이에 두뇌의 이 부위가 크게 자람. 앨런 쇼어는 우측안와전두피질이 자아성장의 핵심임을 발혔음. 우반구는 좌반구보다 더 일찍 성숙하며, 유년기 초반에 이루어지는 정신적 기능의 발달 과정 및 사회적, 공감적 존재로서 자아의 거의 모든 면모에 좌반구보다 더 많이 개입함. 유년기의 사회성 발달은 언어발달과는 별개로 진행되는데, 이는 그 기원이 우반구에 있음을 가리키는 또 한가지 징표임. 앞에서 자아감각의 진화, 그리고 타자를 자신과 비슷한 존재로 느끼고 그럼으로써 공감과 이해를 유발하는 감각의 진화가 오른쪽 전두엽의 업적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두가지 진화 사이의 관계는 자아감각과 마음이론 발달간의 긴밀한 관련으로 입증됨. 예를 들어, 뇌영상 검사를 해보면 자기인식과 마음이론의 상관요인들이 모두 우측 전두엽과 우측 대상피질에서 발견됨.
- '일관되고 지속적이고 통합된 자아감'을 담당하는 것도 우반구임. 반구와 시간에 관한 짧은 논의에 이미 함축되어 있듯이, 인간어른들이 자신을 바로 그런 자아,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른 피질 및 피질 하부구조와 협력하는 오른쪽 피질임. 그래서 오른쪽 전두엽이 손상되면 시간속에 있는 자아감각, 즉 이야기 줄거리가 있고 지속적인 흐름처럼 존재하는 자아의 감각이 해를 입음
- 우리는 이제 두뇌 기능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으므로, 언어가 한쪽 반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주장이 참이 아니라는 걸 안다. 언어기능은 두 반구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언어의 실제 내용인 구문과 어휘의 대부분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좌반구에 수용되어 있다는 것은 참이지만, 어떤 맥락에서 전체 구절이나 문장의 의미, 어조와 감정의 의미, 유머, 아이러니, 은유 등을 이해하는 언어의 고급기능을 도와주는 것은 우반구임. 이를테면 그림에 색을 칠하는 것은 우반구이지만, 물감통은 좌반구가 갖고 있는 격이다. 따라서 좌반구에 발작이 일어나면, 우반구는 그림재료를 잃는다. 좌반구가 지배자라는 오래된 견해는 그렇게 하여 성립되었다. 좌반구가 없으면 아무런 그림도, 일관된 발언도 나올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가 한 장소에 묶여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좌반구가 확장되었다는 주장은 참이 아니다.
- 사실 과거에 시는 모두 노래로 불려졌다. 그러므로 문학적 기술의 진화는 우반구의 음악에서 우반구의 언어(은유적 시 언어)로, 나아가 좌반구의 언어(참조적인 산문언어)로 진행되었다. 음악은 십중팔구 언어의 조상일 것이며, 대체로 우반구에서 출현했다. 우반구는 타인들과의 소통수단, 사회적 응집력을 촉진하는 수단이 생기는 장소이다
- 언어로 명시적으로 사유하는 시절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는 이유로, 언어가 사유에 필수적이라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된다. 가령 상상의 혹은 혁신이나 직관적인 문제해결, 영적인 사유, 예술적 창조성 등의 거의 모든 형태는 언어를, 아니면 적어도 기존에 사용되던 참조적 암호의 언어를 초월하라고 요구한다. 거의 모든 소통이 그렇듯이, 거의 모든 사유가 언어없이 진행된다.
- 언어는 엄밀성과 고정성을 가져다주는데, 이 두가지는 우리가 세계를 제대로 조작하는 데 필요한 성질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특히 다른 인간을 조작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비언어적 소통으로는 진실을 숨기기 힘들지만 언어로는 쉽게 숨길 수 있음. 언어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계획을 수행하도록 함들기 힘들다. 먼 거리에서 언어 없이 행동할 수 없다. 언어는 제국주의적 열망이라 할 것과 함께 시작되었다. 물론 조작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우리가 통제하고 바꾸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므로, 이런 것들은 확실히 인간의 기본특질이며, 문명의 절대적 기초를 이룸. 이런 의미에서 관례적인 표현이지만 단순하게 인식한다면 언어는 엄청나게 귀중하고 중요한 선물임
- 최근까지도 우반구에 관한 모든 것은 어둠속에 가려져 있었음. 결국 그것은 침묵하는 반구로 알려져 있음. 언어적인 좌반구적 사고방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쥐기(grasp)와 외연적 언어를 기준으로 볼 때, 좌반구가 이룬 업적에 비할만한 것들을 우반구에서 담당하는 것은 우측 전두엽 아닌가? 실제로 언어가 하는 것 중 좌반구가 담당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이룰 수 있도록, 즉 공감하고 유머를 사용하고 아이러니를 활용하게 하고, 사실의 전달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소통하고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우측 전두엽임. 여기서는 언어가 그저 조작의 도구가 아니라 타자에게 다가가는 수단이 됨. 사실 인간 존재가 지닌 놀라운 점들, 동물과 인간을 구분해주는 것들은 대부분 우반구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우반구가 팽창한 부분인 우측 전두엽의 활동에 의존함. 인간과 동물을 궁극적으로 구분해주는 특징을 열거해 보라고 했을 때, 이성과 언어라고 하는 것은 고전적이며 변변찮은 대답이다. 이성 및 언어와 관계가 있는 추리능력은 다른 동물도 일부 갖고 있음. 반면 동물에게는 전혀 없는 특징들이 우리 인간에게는 더 많음. 이런 것들 가운데 많은 부분, 혹은 대개의 경우 가장 주된 부분은 우반구의 활동에 의거하며, 대개는 우측 전두엽의 활동에 따른 것임. 좌반구와 세계의 관계가 손을 내밀어 쥐고 일은 하는 관계라면, 우반구는 단지 다가가는 관계임. 사실 두 반구의 존재방식상 나타나는 주된 차이는, 좌반구는 항상 '눈에 보이는 목적'과 용도를 갖고 있으며, 의식적인 의지의 도구로서의 측면이 우반구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 좌반구는 항상 목적에 개입되어 있음. 좌반구는 항상 목표가 설정된 상태이고, 도구적 목적이 없는 것은 곧바로 평가절하된다. 이와 달리 우반구는 아무런 설계도 없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아무런 선입견 없이, 미리 규정된 목표없이 주의력을 발휘한다. 우반구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나 보살핌의 관계를 맺는다. 두 반구로서 매개된 경험들 간의 주된 차이, 그 두가지 존재양식을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좌반구의 세계는 지시적 언어와 추상에 의존하며, 알려지고 고정되고 정지적이고 고립되고 탈맥락화되고 명시적이고 신체를 벗어나 있고 일반적 본성을 지니면서 궁극적으로는 생명이 없는 것들을 조작하는 힘과 명료성을 발휘한다. 우반구는 개별적이고 변화하고 진화하고 상호관련되고 묵시적이고 신체를 가졌고, 살고 있는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지만 사물의 본성상 절대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고 항상 불완전하게만 알려지는 세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세계에 우반구는 보살핌의 관계로 존재한다. 좌반구가 중개하는 지식은 폐쇄 시스템 속의 지식이다. 그것은 완벽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런 완벽성은 궁극적으로 공허함과 자기 참조성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얻어진다. 그것은 이미 알려진 다른 사물들의 기계적 재배열이라는 기준에서만 지식을 중개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로 뭔가 새로운 것을 알고자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지식은 그 자체의 표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물 그 자체가 우반구에게 존재할 때 좌반구에게는 표상될 뿐이고, 그렇게 하여 사물의 관념이 된다. 타자라는 것이 어떤 것이든 우반구는 그것을 의식하지만, 좌반구의 의식은 그 자체의 의식이다.
-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신경학적 용어를 써서 감정의 우선성을 지적함. '전통적으로 신피질적이라고 추정된 합리성의 기관은, 생물학적 규제가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합리성의 기관을 생물학적 규제기관 위에다 구축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그리고 그것과 함께 구축한 것 같다.'
- 85년 벤저민 리벳은 의식적 의지를 신경심리학적 관점에서 탐구한 연구논문 한편을 출간. 리벳은 불특정한 실험대상자들을 모아서 두피에 전극을 붙이고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여 보라고 요청한 다음, 뇌파 전위 기록장치로 손가락 움직임에 따른 두뇌속 변화를 기록했음. 그 결과, 한스 코른후버라는 독일 신경학자가 그전에 발견한 내용이 확인되었음. 코른후버는 같은 실험을 통해 손가락 움직임이 일어나기 1초쯤 전에 순간적인 변동이, 즉 준비성 잠재력이라 알려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혀냄. 하지만 리벳이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지적 충동이 준비성 잠재력보다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약 0.2초 뒤에 일어난다는 것이었음. 마치 주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두뇌가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았음. 이는 분명히 우리가 어떤 일을 할지를 의식이 결정한다는 통념과 맞지 않음. 이로써 인간이 창조될 때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다는 자유의지에 대한 의혹이 피어올랐고, 광범위한 철학적 논쟁 및 연구가 행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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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문학1

인문 2014. 10. 2. 17:18

 


이미지 인문학. 1

저자
진중권 지음
출판사
천년의상상 | 2014-06-0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 프로젝트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섬뜩...
가격비교

- 근대 철학은 진지를 정신과 실재의 일치로 규정. 하지만 일치해야 할 정신과 실재는 성격이 다름. 즉 자연은 연속적이나 숫자는 단절적임. 따라서 수를 자연에 들이대면 자연은 수와 수 사이의 빈틈으로 빠져나오게 됨. 17세기의 과학자들이 자연의 수학화를 시도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가 바로 이것임. 자연을 인식하려면 먼저 이 연속과 불연속의 모순부터 극복해야 함. 이 '근대의 패러독스'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손으로 해결된다. 그들은 미적분으로 숫자들 사이의 간극을 채움으로써 자연의 모든 것을 형식화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전지하고 전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이론적 가능성일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미분방정식은 곧 현실에는 응용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 실생활에서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너무 복잡하여 인간의 계산능력으로는 풀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인간은 아직 지식을 권력으로 전화할 수 없었다. 전지하나 전능하지는 못한 이 답답한 상태가 해결되려면 계산기가 필요했다. 17세기에 계산기 제작붐이 일어난 것은 이와 관련되리라. 라이프니츠 자신도 1670년경부터 모두 다섯개의 모델을 고안한 바 있다. 적어도 계산이라는 면에서 기계는 인간보다 우월하다. 17세기의 계산기들은 모두 십진법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당시 라이프니츠는 기계적 계산에 적합한 언어는 이진코드라는 인식을 이미 갖고 있었음. 하지만 이진법에 기초한 계산이라는 그의 이상이 실현되기까지는 230여년을 더 기다려야 했음. 38년 독일의 공학자 콘라드 추제는 디지털 원리로 작동하는 계산기 Z1을 인류 최초로 제작함. 이진코드로 짧은 시간에 무수히 많은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와 더불어 17세기 이후 그저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자연의 정복이 비로소 실천적 가능성으로 전화됨
- 고대인의 상상력이 주술적 상상력이라면 현대인의 상상력은 기술적 상상력임. 인간이 세계를 표상하는 상징형식의 변화를 플루서는 이렇게 요약함. "먼저 인간은 생활세계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그것을 상상한다. 이어서 그는 상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그것을 기술한다. 그 다음에 그는 선형적 문자로 쓰인 비판으로부터 물러나 그것을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상상력에 힘입어 그 분석을 통해 얻은 합성 이미지를 투사한다."
-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것.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남이 본 것을 보고, 남이 들은 것을 듣는다. 반면 미디어에 매개되지 않은 체험은 대부분 사회적 의미가 없는 사소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귄터 안더스는 이 매개된 체험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실이라 부르는 것의 어원은 만들어진 것(faktum)이라는 라틴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이미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 디지털 가상이 아날로그 세계를 그대로 베끼는 것은 적어도 한가지 장점을 갖는다. 인터페이스에 관한 별도 학습 없이도 대중이 운영체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디지털 기기의 인터페이스는 아날로그 현실과 디지털 가상이 봉합선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임. 디지털 대중도 전자책의 책장을 넘길 때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고 싶어함. 그래서 디지털 문화는 탈육체화에서 재육체화로, 비물질화에서 재물질화로 나아가고 있음. 산업혁명의 인터페이스는 기계를 상수로 놓고 인간을 변수로 간주해 인간을 기계에 꿰맞추려는 경향이 있었음. 그때 인간은 기계를 지향했음.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을 지배했던 무기물의 미학, 즉 추상과 몽타주는 그런 기계화의 예술적 반영이리라. 반면 정보혁명의 인터페이스는 인간을 상수로 놓고 기계를 변수로 놓는다. 여기서 디지털 가상마저도 아날로그 현실과 똑같이 디자인하려는, 이른바 디지로그의 복고적 경향이 발생한다. 오늘날 예술에서 유기체의 미학이 부활하는 것은 이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대중의 의식에 일어나는 변화다. 그것이 가상현실이든 증강현실이든, 오늘날의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가상과 현실을 봉합선 없이 중첩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런 인터페이스에 이미 익숙한 대중은 가짜마저 진짜처럼 대하는 파타피지컬한 태도를 자연스레 갖게 된다. 디지털 대중은 가상과 현실, 관념과 실재의 구별을 괄호 안에 집어넣어버리는 현상학적 판단중지, 즉 존재론적 중립의 태도를 취하려 한다. 이것이 디지털 대중의 새로운 세계감정이다.
-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에 따르면 미디어의 발전은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가 공존하면서 상대의 전략을 차용하는 식으로 이루어짐. 이를 재매개라 부름. 이를테면 윈도우가 아날로그의 은유(오피스, 폴더, 파일, 휴지통)를 사용하는 것은 과도기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미디어의 발전에서 쉽게 발견되는 일반적 현상이라는 것. 칼라TV의 중계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방송이라는 올드미디어가 게임이라는 뉴미디어 전략을 차용한 재매개 현상이라는 것. 중계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채팅창 혹은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시청자 견해가 올라왔음. 네티즌들은 방송으로 지켜본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촬영팀에게 전달되었음. 이를테면 광화문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다가 "시위대가 사직터너에서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 한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방송팀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감. 카메라로 비친 영상을 보고, 지금 도로에 스티로폼으로 연단을 쌓는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봐달라고 구체적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었음.
- 방송이 게임의 포맷을 차용했따는 사실의 바탕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음. 기실 방송의 보도는 진지한 현실에 관한 것이고 게임은 허구속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일 뿐이다. 하지만 촛불집회 현장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정치와 오락을 가르던 뚜렷한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 현장에서는 불과 100미터 거리를 두고 치열한 투쟁과 즐거운 놀이가 공존했다. 촛불시위 속에서 저개발의 정치, 즉 투쟁의 정치는 과개발의 정치, 즉 놀이의 정치와 하나가 되었다. 서사학과 유희학은 앞으로 정치학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다. 저개발의 정치에서 과개발의 정치로 이행하는 데는 당연히 물질적 근거가 바탕에 깔려 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오면서 노동과 오락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정보사회에서는 생산의 수단과 여가의 수단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은 컴퓨터로 노동하고 컴퓨터로 놀이한다. 노동과 여가가 시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것이 종종 노동을 감시해야 할 자본에는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노동자들이 클릭 한번에 근무모드에서 오락모드로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종종 외부로 연결되는 인터넷을 제한하거나 아예 차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구술문화에서는 로고스보다는 뮈토스가 중요. 거기에는 객관적 기술보다는 주관적 상상이, 논증의 정합성보다는 플롯의 개연성이, 이성적 비판보다는 정서적 공감이 더 잘 어울림. 구술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제공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한 사태를 영웅적 스토리로 압축, 변환하는 능력임. 토론토 학파 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전자매체는 문자문화가 무너뜨린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는 경향이 있음. 실제로 나꼼수 청취자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독특한 손동작으로 같은 상상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무언의 교감을 낯선 이들과 나누곤 했음.
- 인쇄술로 무장한 문자문화는 한때 구술문화의 비논리를 비웃었음. 새로운 구술문화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무장하고 나타나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문자문화의 논리를 비웃음. 서구사회가 오랜시간에 걸쳐 비교적 탄탄한 문자문화를 형성해왔다면 한국에서는 문자문화의 역사가 매우 짧았음. 공동체적 구술문화의 전통이 강고하다는 점은 인터넷이나 SNS위에 가상공동체가 형성되는데 유리한 조건이 되어줌. 하지만 그것이 문자문화의 비판적 이성으로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 발달한 테크놀러지를 들고 1차 구술문화로 함몰하기 쉽다.
- 나꼼수는 탈정치화한 디지털 세계에서 내면에 숨은 정치적 욕망을 발견하고 끌어냈으며,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의 연대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디지털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도 보여주었음. 나아가 유저가 제작하는 콘텐츠가 신뢰도와 영향력에서 기존 언론을 능가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기능전환으로 테크놀러지를 정치적 목적에 전유하는 탁월한 예를 제시하며 정치의식에 유희정신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주체들을 낳았음. 나꼼수의 한계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아직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진보적 잠재성을 올바로 활용할만큼 성숙하지 못했음을 의미함
- 차별을 당하는 자들이 왜 타인을 차별하려고 할까? 이유가 있다.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에서 신분체 철폐에 가장 반대한 것은 외려 상민들이었음. 신분제가 철폐되면 천민을 차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 사무라이로부터 받는 차별의 수모를 견디게 해준 것은 그들이 마음놓고 차별할 수 있는 천민계층의 존재였음. 일베의 심리도 다르지 않음. 현실에서는 차별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일베에서 그들은 차별의 주체가 될 수 있음. 일베의 고학력 인증 사태도 이와 관련됨. 그것은 학력으로 차별받는 이들이 차별에 항의하는 대신 타인의 고학력을 내세워 차별하는 위치에 서보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다.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회원들이 굳이 학력을 인증할 필요를 못느낄 것이다. 일베에서는 다르다. 거기서 그것은 실재계를 가리는 스크린 역할을 한다. 즉 자신을 소수 고학력 회원들과 동일시함으로써 자기가 학벌사회의 루저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차별받는 현실을 잊으려고 차별하는 권력에 동승할 때 병신게임의 무정부주의적 해학은 곧바로 파시스트적 공격으로 전화하게 됨. 자신을 병신이라 부르려면 보통은 존재의 여유가 필요하다. 자신이 병신이 아니라 믿는 이들만이 자신을 병신이라 부르는 놀이를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일베회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신을 병신으로 여긴다. 그들이 자신을 병신이라 부를 때 거기에는 놀이의 여유가 아니라 실존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 이것이 그들이 인정하기 싫은 실재계다. 이를 공격적으로 망각하려고 억지로 차별대상을 만들어보지만 그런다고 실재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반복적으로 표출되기 마련, 그래서 혐오발언을 마치 오토마톤처럼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기억은 항상적이지 않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주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역사라는 이름의 집단적 기억도 마찬가지이다. 역사학은 그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아니다. 집단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조직 하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이 할 일이고, 또 이제까지 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집단의 것이든 개인의 것이든, 과거의 기억을 다시 조직하는 것은 그리 신기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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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  (0) 2014.10.03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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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국경제 이야기. 1

저자
이장규 지음
출판사
살림 | 2014-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제 정책을 썼을까?해방 이...
가격비교

- 경제환경뿐 아니라 정치사회 여건도 북한이 남한보다 앞섰음.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눠서 점령했으나 양쪽의 사정은 많이 달랐음. 남함은 미군의 비교적 느슨한 통치 아래 정당이 난립하고 좌우로 갈라져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반면, 북한은 소련군의 치밀한 지시아래 김일성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공산정권을 구축해 나감. 많은 부문에서 북한은 남한을 앞서 나감. 46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해 사실상의 정부가 만들어졌고, 제대로 된 군대를 창설했으며, 소련한테 들여온 탱크로 탱크부대까지 만들었음.경제운영도 북한이 한수위였음. 남한은 거주 일본인을 다 쫓아냈지만, 북한은 일본인 기술자 900여명을 강제로 붙잡아 놓고 일을 시킴. 그들이 없으면 비료공장, 철강공장 등 주요 산업시설이 당장 멈추게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 제도 개혁또한 과감하게 추진.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대부분의 산업시설을 국유화. 그리고 땅뿐 아니라 가축까지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줌. 47년 말에는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49년에는 통일을 전제로 한 남한의 토지개혁계획까지 수립. 실제로 이듬해 6/25 전쟁을 일으켰을 때 점령지역을 대상으로 이때 준비했던 토지개혁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었음. 북한이 신속한 체제구축을 통해 일찌감치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이뤄나갔던 반면, 남한은 극도로 혼란스러웠음. 무엇보다 이념대립이 심각했음. 북한에서는 시비의 여지없이 사회주의 체제구축이 처음부터 정해진 노선이었던 반면, 남한은 수많은 정당이 자유롭게 생겨나면서 이념적으로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치열하게 대립했음.

- 일본인이 경영하던 적산기업의 수는 크고 작은 것을 합쳐 2700여개에 달했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것들을 차지하려고 미군정청을 상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로비를 벌임. 철수한 일본인 기업주와 내통해서 사실상 주인행세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음. 반면, 북한에서는 소련 고문단의 코치아래 모든 기업의 국유화 조치가 일찌감치 취해졌고, 남한에서도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음. 그러나 미군정청의 기본입장은 국유화 반대였음.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민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결국 미군정청은 기업활동의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적산기업의 일부만 민간에게 넘기고 대부분의 주요 기업들은 중간관리인만 지정한 채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음. 골치 아픈 적산기업 처리를 자기들이 처리하지 않고 새로 수립되는 한국 정부에 넘기기로 한 것. 아무튼 미군정청이 적산기업의 처리원칙을 국유화가 아닌 민영화로 정한 것이 남한 기업 역사의 시작이었던 셈. 적산기업 못지 않은 또 다른 돈벌이는 미국이 주는 원조물자, 구호물자를 확보하는 일이었음. 밀가루, 의류, 의약품 등 생필품이 중심이었고, 기름, 석탄, 비료, 면화 등 원료도 대상이었음. 미군정청은 본국에서 보내오는 구호물자를 제대로 나눠주는 것이 큰 과제였음. 그러나 무정부시대나 다름없는 해방직후의 혼란과 부패속에 구호물자들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음. 상당부분이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이것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번 사람을 구호물자 벼락부자라 했음. 미국은 여러 시도 끝에 구호물자를 교회 같은 종교단체를 통해 배급하기도 했는데, 이즈음에 교회가 급격히 난립했던 배경에는 이처럼 무상으로 배급되는 구호물자 탓도 있었음. 또 다른 굵직한 사업은 일본으로부터의 밀수였음. 당시 일본을 통치했던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의 무역행위 자체를 금지시켰으나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했음. 일본 상인들은 부족한 쌀을 한국으로부터 밀수입했고, 한국쪽에서는 부산항을 통해 일제 화장품, 의약품, 기계부품 등을 물물교환으로 들여왔음. 일본과의 밀무역에 이어 다롄, 칭다오 등 중국과의 무역도 성행. 47 3월쯤부터 마카오를 통한 중계무역이 그리고 뒤이어 홍콩과의무역이 본격과되기 시작. 우리는 적산기업들이 생산했던 텅스텐, 망간 등을 수출했고, 그 돈으로 페니실린, 사카린, 시계, 생고무 등을 수입. 이처럼 무역이 돈벌이의 주축으로 활기를 띠자, 해방이전부터 무역업을 했던 화신무역의 박흥식이 선두에 나섰고, 다른 조신인 기업들도 뒤따름. 대구에서 양조장을 하던 이병철도 48년 서울에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고 무역업에 뛰어듬

- 이승만의 경제적 관심은 오직 달러였음. 나라경제를 살리려면 달러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 부족한 생필품을 수입하는 일도, 공장을 짓는 일도, 달러 없이 되는 것은 없었기 때문. 이승만이 걸핏하면 미국과 실랑이를 벌였던 것도 바로 달러 문제에서 비롯.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 즉 환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미국에서 얻어낼 수 잇는 달러 액수가 늘었다 줄었다 했던 것임. 원조받는 달러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도 충돌. 이승만은 일본에서 생필품을 사다 쓰라는 미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국내에 발전소를 짓고 밀가루 공장과 비료공장들을 건설하겠다고 맞섰던 것. 원조를 통해 돈줄을 쥐고 있던 미국정부도 이승만의 이같은 고집때문에 애를 먹음. 미구긍로서는 코리아의 대통령이 영어를 잘해서 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좋은데, 중요 정책들을 자기네가 시키는 대로 않고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바람에 골치를 썩임. 아무튼 이승만의 산업정책은 하루빨리 수입대체 산업을 키워서 수입을 줄이는 일이었음.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자급할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을 키워야 한다고 이승만은 판단했음. 품질이 떨어져도 국산품 사용을 독려했고 수입은 강력히 규제. 국산품 애용과 수입품 배격은 이 시대의 중요한 범국민운동 과제였음. 따라서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자금을 부족한 물자를 수입하는 데 쓸 것이 아니라 공장 짓는데 투자하기를 바랐음.

- 농지개혁의 정치적, 정책적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 결과와 역사적 의미는 대단했음. 비록 땅값을 치른 유상몰수였다고는 하나, 왕조시대의 전통적 지주제도가 농지개혁으로 인해 일시에 해체된 것. 부작용도 상당했지만 지주제도의 해체는 한국경제의 생산구조와 분배구조 면에서 혁신적 변화를 몰고 왔음. 지주제도의 붕괴는 3년간의 처참한 전쟁을 치러내는 과정에서 더 과격하게 진행됐음. 전쟁통에 지주계급들은 피해가 컸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전쟁 인플레 탓에 토지보상대금으로 받은 지가증권이 휴지조각이 되었기 때문. 농지개혁을 계기로 기존 농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을 기대하였으나, 애초의 의도는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말았음. 지주들이 유상몰수의 대가로 받은 지가증권은 3년 전쟁을 치르면서 엿장수들이 엿을 주고 거둬들일 정도로 그 가치가 폭락. 아무튼 이승만은 농지개혁을 실시함으로써 공산화를 막았고, 자본주의 기틀인 사유재산제도를 공고히 다졌으며, 지주계급이 해체됨에 따라 분배구조면에서도 꾸준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음. 이것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필리핀 경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 브라질 대통령 룰라가 재임시절 "브라질 경제의 근본문제는 한국이 50년대에 했던 농지개혁을 아직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 말은 한국 농지개혁을 밖에서 보는 객관적 평가이기도 함

- 원래 5개년 계획은 장면정권의 경제관료들이 완성했지만, 발표 직전 쿠데타가 터져 사장됐던 것. 이 계획은 쿠데타로 경제 청사진 마련이 다급했던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안성맞춤이었음. 즉각 실무자들을 동원해서 몇군게 손질을 통해 급조한 것이 바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66)이었음. 박정희에게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두가지 계획을 성사시키는 데 필요했음. 첫째, 집권 6개월만에 미국 워싱턴 방무을 앞두고 있는데, 워싱턴에 가서 원조와 차관을 요청할 사업계획서가 필요했음. 둘째, 경제를 모르는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경제를 꾸릴 목표와 계획표가 있어야 했음. 그러나 두가지 모두 박정희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음. 박정희는 미정부에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열심히 설명했으나 워싱턴 당국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음. 호주머니 생각은 않고 사고싶은 물건들만 잔뜩 열거한 쇼핑 리스트라며 무시. 의욕만 앞세웠을 뿐, 내용도 조잡하고 방향도 틀렸다는 것. 미국은 애당초 한국의 독자적 경제계획에 부정적이었음. 미국은 5년간 평균 목표성장률 7.1%가 실천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숫자이며, 한국정부로서는 무리한 성장을 추구할 게 아니라 물가안정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 이는 세계은행도 마찬가지였음. 경제쪽에서 박정희에서 첫 시련과 좌절을 안겨준 것은 외자조달이었음.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는 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 큰소리쳤던 대규모 공장건설은 불가능했음. 기업도 정부도 돈이 없었음. 몇푼 안되는 외환보유고만 축내고 있었음. 당시 정부 외환보유고는 2억달러 안팎.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첫해의 성장률이 흉작까지 겹쳐 2.2%에 그치자 박정희의 좌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 경제살리기를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았는데,초장부터 실패를 면치 못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음. 그로서는 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음. 이후 박정희는 23개 부분에 걸친 220개 사업을 일일이 챙김. 브리핑 차트를 집무실에 걸어놓고 밤낮없이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였으나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었음. 계획자체도 엉성한데다 돈도 없으니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음. 결국 미국의 종용을 받아 목표성장률을 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실시 1년만에 계획을 수정. 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소득은 성공이 아니라 쓰라린 실패경험이었음. 박정희는 경제개발 전략의 요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수많은 조절을 통해 학습했고, 나름대로 해법을 찾기 위해 골몰. 무엇보다 사업이든 계획이든 자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엇하나 되는 일이 없음을 절실히 깨달음. 투철한 사명감과 혁명정신으로 목숨을 걸고 추진하면 안될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었음.

- 박정희 경제모델은 정형화할 수 없는 특유의 리더십과 환경적 요인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음. 정치적 화경, 그리고 박정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안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함. 그는 반대에 부딪히면 독재의 힘으로 밀어붙였고, 전문관료들이 소신껏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정치적 외풍을 차단시킴. 정책 토론 과정에는 민주적 분위기를 보장해 주는가하면, 시간을 끌면서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자신이 결단함. 흉내낼 수 없는 리더십이었음.

- 정권말기를 제외하면 수출지상주의는 박정희 정권 내 경제정책의 핵심이요, 중추적 역할을 함.주무부 장관도 추진력을 으뜸으로 따져서 앉침. 심복이었던 국세청장 이낙선을 상공부 장관에 보낸 것도 세금을 걷듯이 수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밀어 붙이라는 의도였음. 관치금융, 정책금융의 대표선수가 수출금융이었음. 당시 일반 시중금리는 30%였는데, 수출금융 금리는 절반 이하로 특혜를 주었음. 한국의 은행들은 수출지원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수출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니 금융시장이 왜곡되는 등 부작용도 많았음.

-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는 정권내내 지속되다가 막판에 와서야 제동이 걸림. 갖가지 부작용과 폐단때문이었음. 수출은 한국경제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돌파구였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와 집값폭등 등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냄. 수출기업은 경제의 1등공신이었으나, 불항에 빠져드니 부실의 원흉이 됨. 더구나 싼 금리를 악용해서 수출은 뒷전이고 그 돈을 빼돌려 돈놀이를 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기업이 생기는 등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됨. 결국 2차 석유파동과 세계적 불황 속에 박정희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수출지상주의를 수정하기 시작. 16년 동안이나 지속했던 금융특혜를 대폭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이른바 안정화 정책으로 노선을 전환

- 베트남 파병이후 보잘 것 없던 수출은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모두 달라짐. 인력진출이 최고에 달했던 69년 해외진출 인력은 15500명이 넘었고, 베트남 진출기업도 최고 79개업체에 달함. 한진 그룹은 당시 베트남에 미군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수송업을 발전시켜 항공산업까지 뛰어들면서 오늘의 대한항공으로 발전. 훗날 중동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린 해외건설도 우물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던 국내 건설업체들이 베트남 전쟁터에서 기초실력을 닦은 덕택이었음. 그전 같으면 국제입찰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 100만 달러만 수출해도 주목받던 시절, 베트남 참전을 계기로 수출금액의 단위도 달라지기 시작. 달러뿐 아니라 군인과 해외공사에 파견되는 노동자의 봉급 그리고 기업의 현지 사업수익 등을 모두 합치면 베트남 전잰중에 벌어들인 돈은 10억 달러가 넘었음. 현금반입, 군수품 편법 반입 등 비공식적 금액을 포함하면 한국의 경제적 소득은 공식 집계보다 훨씬 컸음. 이 같은 달러 벌이는 이후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데 주요 재원이 됨. 박정희 정권이 올린 또 다른 소득은 베트남 참전을 계기로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도 호전되었다는 점. 미국이 박정권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뀌었고, 수출 또한 잘되는 바람에 국제 신인도는 부쩍 상승했으며, 돈 빌리기도 수월해지고,적용되는 금리도 한결 낮아짐

- 정부직제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운용임. 포철이나 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국가적 프로젝트는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 그러나 대부분 주무부 장관들에게 믿고 맡기고 정기적 회의를 통해 전체 동향을 챙김. 월간경제동향보고와 수출진흥 확대회의가 대표적 사례.65 1월부터 본격화된 경제동향 보고회의는 대통령 주재로 매월 빠짐없이 열렸고, 수출진흥확대회의도 마찬가지였음. 이 두 회의는 박정희가 불행한 최후를 맞을 때까지 14년 동안 계속됨. 모두 1400회 이상의 회의 직접 주재. 모든 주요 현안은 대통령 앞에서 직접 보고, 논의 되었고, 난관에 봉착한 문제는 즉석에서 대통령의 판단과 결심으로 결론이 났음. 부처들의 의견이 달라 정책결정이 유보되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음. 아무리 어려운 일도 두 회의에서 결판이 났던 것. 이것이 박정희 주식회사의 의사결정방식의 요체였음.

- 훌륭한 출발을 보였던 새마을 운동은 유신정치와 결합하면서 당초의 순수성이나 자발성은 크게 훼손당했음. 이런 이유로 외국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훨씬 평가절하됨. 여기에 전두환의 잘못도 가세. 그렇지 않아도 변질된 새마을운동 사업을 전경환 손에 맡기는 바람에 기능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전히 망해버림. 본연의 새마을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전경환 개인의 놀이마당이자 대통령 친인척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

- 북한의 위협은 군출신 대통령 박정희에게는 큰 충격을 줌. 250만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전 국민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68년부터 시작. 경부고속도로도 서울-수원구간은 중앙분리대를 없애 유사시 전투기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 박정희의 산업혁명 방향은 중반을 지나면서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다시 말해 무기공장을 집중적으로 건설하는 것. 단순한 산업구조조정 차원의 변화가 아니었음. 한국경제의 근간이 된 중화학 공업의 본격적인 추진이 경제적 동기보다 북한의 위협이 가져다준 결과물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음. 유신체제 또한 한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 당시 정치환경과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간의 관계는 매우 주목할만함. 박정희가 몰아붙였던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은 민주적 토의나 의견수렴 절차를 상식적으로 밟았다면 도저히 추진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 유신체제가 아니었다면 짧은 시간안에 그 같은 대규모 투자는 불가능했을 것임.그러나 극심한 정치, 사회적 저항을 초래했다든지, 무리한 과잉투자로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신체제 때문에 빚어진 부정적 측면 또한 심각했음. 따라서 중화학 공업 발전이 유신체제 덕분이었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임. 중화학 공업이 뿌리를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비용이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 없이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위협, 중화학공업의 육성, 유신체제의 탄생은 서로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음. 어떻든 간에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 경제성을 무시한 과감한 중화학 투자를 낳았고, 비판이나 반대를 봉쇄했던 권위주의적 정치환경 또한 이 같은 시도에 속도를 더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 지나친 정책금융으로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바람에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비판과 부작용에 아랑곳 없이 정부의 강력한 지원아래 기업의 중화학공업 투자는 봇물을 이뤘고, 결과적으로 수출을 비롯한 국내산업 구조가 강제적으로 바뀌었음. 70년대 중반, 한때는 중화학 공업 제품이 수출증가의 새로운 견인차로 박수를 받기까지했음.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했던 것이 세월이 흐른 뒤 한국경제에 결정적으로 효자노릇을 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78년에 접어들면서 2차 석유파동과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자 그동안의 과잉투자와 잘못된 투자가 드디어 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경제적인 면에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을 정도로 심각한 파국을 초래. 사실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은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훨씬 선배였음. 60년대 중반부터 주체사상 아래 자체 무기생산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 북한판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었음. 결국 그것이 실패하면서 70년대부터 남한경제가 북한경제를 추월하기 시작.

- 박정희 경제는 정권말기에 이르러 급기야 휘청거리기 시작. 그런데 희한하게도 위기도래 직전은77, 뜻밖의 반짝 호황을 맞게 됨. 중동 해외건설로 벌어들이는 오일달러가 안겨준 마지막 축복이었음. 중동 해외건설 붐은 베트남 전쟁에 이은 두번째 대박이었음. 베트남 참전을 계기로 한국기업들의 국제화가 본격화되었고,특히 국내기업들이 해외건설에 대거 진출했는데, 베트남 철수가 결정되자 이들이 갈 곳을 잃어 심각한 고민에 빠짐. 그동안 키웠던 해외건설 전문인력과 비싼 장비들을 소화할 방법이 없었음. 그러던 판에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국가에 건설붐이 일면서 안성맞춤의 돌파구를 찾은 것. 73년부터 74년 사이에 터진 1차 석유파동은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한국경제에 큰 타격을 안겨주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 산유국들이 벌어들인 오일달러가 한국의 건설사들에게 살길을 터줌. 제조회사들의 수출만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건설회사가 외국에 가서 건설공사하는 일이 새로운 달러박스로 등장한 것. 76년과 77년 사이 수출이 75억불에서 대망의 100억불을 돌파했고, 이중 중동 해외건설 수주는 25억불에서 35억불로 껑충 뛰었으며, 경제성장률은 각각 13% 14%를 기록.

- 그러나 중동 해외건설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에 대해 모두 좋아하기만 했을 뿐, 경제가 너무 잘돼서 일어나는 무서운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음. 하지만 2차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우리 경제는 극심한 인플레와 부동산 투기, 수출감소에 따른 재고누적 그리고 국제수지 악화라는 심각한 파국에 처함. 결과적으로 77년 반짝 호황은 박정의 정권에 독화살이 되어 돌아온 셈. 과잉투자로 인해 중화학 공업은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수출기업들은 줄줄이 도산. 여기에 부가가치세 도입에 따른 조세저항으로 민심도 흉흉했음. 정치는 차치하고, 경제쪽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예고하는 심상찮은 조짐이 일고 있었던 셈.

- 박정희 정권 말기에 추진된 경제안정화 정채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만큼 획기적이었음.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던 것일까. 이 같은 전환은 다름 아닌 박정희 시대가 키워 온 직업 관료들에 의해 시작, 추진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함. 박정희 경제에 앞장서 왔던 그들이 박정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안 제시와 새로운 처방을 주장하고 나선 것.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하고 권력에 약한 관료집단이 도대체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겁없이 주도했던 것일까. 한마디로 박정희 키즈의 반란이었음. 7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경제기획원의 핵심관료들 사이에는 박정희식 경제정책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었음. 반란의 주모자격이었던 강경식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음.

"78년 당시 경제관료들은 어떻게 하면 물가안정을 이루고 국제수지 흑자를 내는 경제를 만들 수 있는가 염원했다. .... 독일, 일본, 대만이 성공사례였다. 1차 석유파동 때 우리는 경기부양에 역점을 두었는데, 일본과 대만은 물가안정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래서 우리도 79 2차 석유파동 때는 불황을 감수하더라도 물가안정 위주의 정책을 펴고자 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나. 그러나 공무원은 물론이고, 경제학자나 연구기관, 심지어는 언론조차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리는 정책건의나 비판을 대놓고 하기 어려운 때였음. 이런 상황에서 경제기획원은 차관보 강경식, 기획국장 김재익 등을 중심으로 78년부터 안정화 정책에 시동을 걸기 시작. 이들의 노력을 정책으로 만드는데 지지하고 방어해준 최후의 보루는 뒤늦게 부총리가 된 신현확뿐이었음.경제기획원이 나서서 외롭게 안정화 계획에 불을 지피고 KDI의 경제학자들이 힘을 보태는 과정에는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어떠한 건의나 경고도 없었음. 다시 말해 선진국 전문가들이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등을 켜기 전에 한국의 경제관료들이 스스로 빨간 불을 켜고 비상을 건 셈. 실물경제를 주관하는 상공부와 금융기관을 관장하는 재무무, 그 밖의 농림부, 내무부 등 대부분의 부처들은 고통감수를 요구하는 안정화 정책에 모두 반대했음.

-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장관, 경제부총리, 경제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한 남덕우는 박정의의 최대장점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탁월한 용병술이라고 말함. 집권초기의 혼란을 거치고 나름대로 경제정책의 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감을 잡은 박정희는, 남덕우의 말대로 특유의 용병술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적재적소에 활용. 박정희는 상대가 누구든 언제나 듣는 입장을 취함. 보고를 듣는 것은 공부의 기회이자, 동시에 보고자의 됨됨이를 살필 기회기도 했음. 집권 초기에는 자신의 심복인 군인들에게 요직을 나누어주었으나, 이내 한계를 깨닫고 직업관료를 중심으로 학자들을 과감하게 영입. 이병철을 비롯한 부정축재 처벌대상인 재벌 총수들에게 지도를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음. 현안이 생길 때마다 전담반을 만들고, 거기서 내린 결론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나감. 신문에 게재되는 팔럼이나 기고를 유심히 보고 발탁인사에 참고하기도 함. 남덕우를 재무장관에, 김만제를 KDI원장에 기용할 때도 그들이 쓴 신문칼럼을 주목했던 것. 박정희는 한번 믿고 맡기면 오래 중용했음. 경제 쪽은 더욱 신임. 그는 사람보는 눈이 있었음. 발탁된 인물이었던 장기영, 김학렬, 김정렴,남덕우, 김용환, 김만제 등은 박정희 경제의 기둥역할을 해냄. 그들이 없었다면 박정희 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임

- 믿고 맡기는 인사도 경제가 잘 돌아갈 때 이야기힘. 정권말기에 해당한느 78년 선거패배로 단행한 인사에서는 전에 없이 흔들렸음. 신임했던 김정렴, 남덕우, 김용환을 모두 내보내고 신현확에게 지휘봉을 맡길즈음 박정희는 그전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함. 탁월했던 용병술이 정상궤도를 벗어난 것은 비단 경제분야뿐만 아니었음. 경호실작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정부장 김재규를 측근 3인방으로 임명하면서부터 심각한 사달이 나기 시작. 자타가 인정했던 인사의 달인이 결국 자신이 임명한 정보부장의 총탄에 최후를 맞았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 박정희 시대가 한국의 경제발전 기틀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나, 정권말기의 부작용과 어려움은 매우 심각했음.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박정희 경제의 막판 위기상황을 어렵사리 극복해냈고, 한국경제를 여러면에서 한단계 끌어올림. 건국 이후 계속되던 만성 인플레를 근절시켰을 뿐 아니라 고도성장 시대를 부활시켰고, 여기에 더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제수지 흑자시대를 열음. 처름으로 물가안정, 경제성장, 국제수지 흑자라는 소위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대통령이었음. 사실 경제성장도 잘하고, 물가도 안정시키고, 국제수지도 흑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불가능한 것으려 여겨 왔었음. 그런 것을 전두환 정권이 이뤄낸 것이다. 아무도 전정권이 세마리 토끼를 잡아낼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없었음. 원래 전두환은 경제에 문외한이었음. 세마리 토끼가 무얼 뜻하는지도 몰랐던 인물. 하지마 그는 집권초기부터 철권통치로 비판과 저항을 봉쇄한 가운데 물가안정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고, 유능한 전문인력을 기용했으며, 본인 스스로 열심히 경제공부를 해나감.

- 전두환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대통령이기도 함. 재임 중반에 국제 원유값이 떨어진 것을 비롯해 국제금리와 달러값이 동반하락하는 소위 3저 호황이 전두환 경제를 결정적으로 도왔음. 하지만 대외여건 덕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치적을 과소평가할 순 없음. 3저 호황은 세계 모든 나라가 겪었지만 유독 한국경제가 3저 현상을 잘 활용해서 좋은 성과를 만들었기 때문.물가안정은 원유값 하락에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전부터 전정권이 추진했던 강력한 긴축정책 등 지독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음. 또한 개방정책이나 투자확대 정책 등을 미리미리 준비했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잃지 않고 대외여건 호전의 상승물결에 올라탈 수 있었음. 예산동결 같은 파격적 조치는 일종의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결단을 내리으로써 재정안정화의 기틀을 마련. 지금까지도 한국의 재정상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것은 당시의 재정혁신 덕택임. 산업쪽에서는 전임정권에서 넘어온 중화학 공업 과잉투자와 부실문제를 해결했고, 전자교환기 도입 등을 시작으로 오늘의 통신 혁명 인프라를 구축. 오늘날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기본터전이 이때 마련된 것. 재벌의 경제력 집중문제에 대처히기 위한 공정거래제도도 정권 초기에 도입되었는데, 기업들이 반대할 겨를도 없이 신군부가 후다닥 결정함. 박정희 시대의 연장선에서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들이었음. 이처럼 전두환 시대의 한국경제는 여러 방면에서 도약적 발전을 기록했고, 전두환은 스스로 경제대통령임을 자임했음. 그러나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실패하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 노동정책이었음. 그는 집권이후 줄곧 노조에 대한 탄압을 강화. 3저호황으로 노동정책을 정상화할 호기를 맞았으나, 전두환은 이때에도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음. 그는 노조의 활성화를 사회불안 요인으로 간주했던 애당초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함. 결국 80년대의 잘못된 노동정책이 후일 노동시장에서 두고두고 심각한 왜곡현상을 초래하는 화근으로 작용

- 돌이켜보면 물가상승률 목표를 2~3%로 책정한 것 자체가 일종의 몽상이었음. 어쩌면 김재익의 몽상을 신뢰한 사람은 전두환 혼자뿐이었을지도 모름. 박정희 경제가 자신의 확고한 경제관으로 추진됐다고 한다면, 전두환 경제는 경제선생이나 참모인 김재익에 대한 전두환의 절대 신뢰에 의해 소기의 목적을 극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셈. 아무튼 고통을 감내하는 물가안정 우선정책은 80년부터 시작해 무려 4년간 지속.불황의 터널이 그만큼 길고 지루했다는 이야기. 그렇다고 전정권이 경기부양을 전혀 외면한 것은 아님. 여러가지 부양책을 동원.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물가안정 기반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된 부양책이었음. 경제 전체의 체질개선을 위해 구조조정을 줄기차게 해낸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었음. 박정희 경제에 대한 대대적 수선기간이었던 셈

- 돌이켜보면 전두환 시대의 경제정책은 박정권의 경제를 계승하면서도 잘못된 것을 고치고 업그레이드시킨 정책들이 많았음. 경제운영을 시장원리에 더 충실하게 했다던지, 금융자율화를 더 촉진시켰다던지, 공기업들을 경쟁체제로 바꿨다던지, 공정거래제도를 처음 도입해서 재벌규제를 본격화했다던지, 정부의 만성적 재정적자를 청산했다던지, 수입규제를 과감하게 텄다던지 등 여러 방면에서 한국경제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책을 끌어갔다고 평가할 수 있음. 그러나 전두환 시대에 경제가 좋아졌다고 해서 잘했다고만은 할 수 없음. 물가안정에 성공한 치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졌던 부작용도 적지 않았음. 예산동결 같은 파격적 조치로 정부의 씀씀이를 줄이고 재정을 건전화시킨 공로도 크지만, 그 바람에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그 뒷감당을 다음 정부에 넘긴 부정적 측면도 없지 않음. 예컨대 세출예산 동결에 따라 항만이나 도로건설에 필요한 예산을 싹둑 잘라버리는 바람에 중요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할 수 없었음. 결국 부작용과 부담은 다음정권이 뒤집어 씀. 도로나 항만시설의 건설을 소홀히 한 결과 유통비용이 크게 오르는 물류대란을 야기했던 것. 가장 잘못된 것은 노동정책이었음. 다른 정책이 대부분 앞을 향해 나아갔다면, 유독 노동정책만은 뒷걸음질쳤음.경제가 좋아지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소홀했던 노동자 권익보호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게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오히려 박정희 시대보다도 더 강압적인 정책을 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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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살마 로벨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4-06-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뜻대로 안 되던 일, 얻기 힘들었던 사람 마음, 극복하기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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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정신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느낌과 가치판단은 주위환경으로부터 미묘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음. 겉보기에는 서로 무관하지만, 보고 만지며 신체감각을 통해 처리하는 것들은 대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침. 이 책에서 탐구하고 있는 신생 심리학 분야의 체화된 인지이론의 핵심은, 따뜻하거나 차가운 물체를 만지는 것 같은 감각운동체험과 인간이 실행하는 행동, 판단, 감정, 의사결정 사이에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전통적 심리학의 역사를 보면 인간 머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람들은 왜 행동을 할 때 실수를 하며 왜 선택을 하는가에 관심을 가져왔음. 대개 심리학자들은 공포, 욕망, 기억, 감정을 연구함. 그런데 인간이 외부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맥락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상황(구직, 오디션, 시험, 스포츠)에서는, 참가자들의 머리 바깥에 있는 환경 또한 성공이나 실패의 이유에 영향을 미침. 예를 들면 오디션의 경우, 무대조명이 발산하는 열기나 커튼 색깔이 도전자의 당락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 또한 무심코 걸려 이쓴 브랜드 로고의 밝기가 경쟁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
- 차가운 느낌이나 따뜻한 느낌은 방의 온도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상태에 의해서도 결정됨. 만약 사람이 외로움을 느낀다면, 실제로 사회활동에서 배제된다면, 또는 자신의 견해, 선택, 의견을 공유하지 않는 타인들과 같은 방에 있다면, 실제로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체험양상은 변화함. 심지어 인간은 다른 사람들 또는 어떤 집단으로부터 단순히 멀리 떨어져 서 있거나 앉아 있기만 해도 고립감을 느낌. 이때 방의 온도는 차갑게 느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만약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또한 자신의 견해, 선호도, 관점을 고유하는 이들과 함께 방에 있거나 그저 누군과와 가까이 앉아 있기만 해도, 방이 따뜻하다고 느낌. 이같은 연구결과는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암시함. 교사, 교육자, 부모가 아이들이 여러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때 특히 중요. 예를 들어 어린이와 청소년은 때때로 학교에서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때로 적응에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음. 이제 당신은 따뜻한 온도가 대인관계를 통한 상호작용에 긍정적 효과를 끼친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기가 따돌림당하고 배제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도울 수 있음. 아울러 다른 친구들이 자신에게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것도 가능. 가령 실내 온도를 높이거나 아이들에게 스웨터를 입으라고 권하는 것 같은 간단한 행동도 원활한 대인관계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됨. 또한 아이들이 함께 핫초코나 따뜻한 점심을 나누어 먹어도 분위기 개선에 도움이 됨.
- 인간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행위를 통해 신뢰와 협력을 늘려나감. 접촉으로 인해 위협감을 줄이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증대시키며 안심함. 불안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접촉하거나 손을 잡으면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음.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진단검사를 기다리며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환자의 이마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려주면 불안이 줄어들 수 있음. 직장일이 유난히 힘든 날이라면, 근육이 특별히 뻣뻣하거나 불안한 기분이 들지 않더라도 마사지를 받는 것이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됨
- 비밀을 계속 간직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부담을 느끼며 끊임없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고 나르는 것과 유사한 감각을 체험함. 진짜 성적 취향, 대단히 충격적인 경험, 외도, 질병과 같은 중대하고 커다란 비밀은 무거운 물건이 신체에 부담을 주는 것처럼 실제로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함.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고 심각한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는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도 부담을 완화시키려면 일기를 기록하거나 전문치료사와 상담을 하거나, 믿을만한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됨
- 수많은 연구결과를 보면, 여성들의 수학과목 시험에 대한 수행능력은 실험참가자들이 단순히 시험을 보기전 답안지에 성별을 기입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악화됨. 미국에 사는 흑인이 시험을 치르기 시작할 때 답안지에 자신의 인종을 기입하라고 요구받았을 때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남. 즉 수학과목 시험에서의 수행능력이 크게 감소한 것. 이 같은 연구는 "수학 실력이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진 특정 집단에 속한 개인이, 단순히 이런 사실을 머리에 떠올리는 행위만으로도 평소보다 낮은 시험점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함. 하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고정관념이 자신의 수행능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전혀 몰랐음. 이 같은 현상은 고정관념의 위협효과라 불림. 이 고정관념의 위협효과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행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임. 마찬가지로 빨간색 또한 그럴 수 있음.
-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감정반응 때문에 수행능력과 자신감이 감소될 수 있음. 빨간색은 위험과 연관되어 있으며 신경과민 및 불안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 빨간색으로 인해, 학과시험에서 빨간색 잉크로 채점된 시험지 또는 F가 새겨진 오래된 커다란 고무도장 등이 떠올라, 불안에 떨던 기억이 유발되어 학과시험에서 실패한 공포가 되살아날 수 있음. 당연히 이 같은 연상작용은 신경과민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어서 회피행동 및 저조한 수행능력의 원인이 될 수 있음. 빨간색과 위험간의 연관성은 학습된 결과로 나타나지만, 사실 인간이 진화를 하는 성향에 뿌리를 둔 것일지도 모름. 아득한 옛날 인간이 특정 색에 대해 보인 반응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응 행위로 판명됨. 예를 들어 유아시절에는 빨간색 멈춤표지와 빨간색 신호등을 보고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계를 배우며, 나이를 먹으며 이 같은 성향을 강화시킴
- 여성이 아주 매력적일 경우, 배경 색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음. 이를 일컬어 천장효과라고 함. 반면 여성이 중간정도로 매력적인 경우, 배경색이라는 환경요인은 보다 강력한 효과를 끼치며, 이때 빨간색은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 양방향성이 있는 상황일수록 환경요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짐. 여성이 엄청 매력있거나 극도로 매력이 없는 경우라면, 이를 인식하는 남성에게 있어 상황은 아주 명확하고 일방향성을 띤다. 반면 여성이 중간정도로 매력이 있다면 상황은 양방향성이 강화되며 환경요인이 보다 큰 역할을 함
-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인간이 개인공간을 침범당했을 때 위협과 불편을 느끼는 심리가, 다른 사람이 신체적 위해를 가하기 충분할만큼 가까이 접근했을 때 스스로에게 경고하는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적응의 산물이라고 믿었음. 그런데 좀더 최근에, 신경학자들은 이런 반응은 명백하게 관장하는 뇌부위를 찾아냈다. 바로 측두엽에 있는 편도체다.
- 당신이 잠재적 투자자, 바이어, 기부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어떤 조직의 특정 부서나 특정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면, 조직과 그 아래 표기하는 직급사이를 잇는 선을 눈에 띌 정도로 길게 그어라. 수직으로 위치를 선정하는 것과 권력간의 상관관계는 아주 강력해서, 심지어 단순히 선 길이만으로도 어떤 이가 얼마나 권력을 막강하기 쥐고 있는지 인지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강렬한 발상이나 이미지를 마음속 맨 꼭대기에 띄워 올리고는 실제 홍보활동과 연계시켜 활용한다. 예를 들면 기업명칭 또는 해당 기업이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강력한 특성을 광고판, 화면, 지면의 가장 높은 위치에 배치한다.
- 연구자들은 스투룹 효과를 활용해 긍정적 의미와 수직위치간의 연관성이 자동적으로 성립되는지 조사. 실험 참가자들은 단어가 최하단보다는 최상단에 나타났을 때 좀더 쉽게 긍정적 의미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와 유사하게, 단어가 최상단보다는 최하단에 등장했을 때 더 쉽게 부정적 의미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 같은 결과를 통해 긍정적 성향 및 부정적 성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우리 마음속에 수직축을 따라 자각되는 차원으로 제시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음. 인간은 자동적/무의식적으로 수직위치를 권력뿐만 아니라 긍정적 성향과 부정적 성향과도 연관시킴. 위는 좋은 것이고 아래는 나쁜 것이다. 신과 악마라는 선과 악을 상징하는 두가지 추상적 개념또한 위아래와 연관되어 있음. 지옥과 악마는 우리가 있는 땅 아래 있는 반면 신은 변함없이 땅위인 천국에 존재하며 인간들 위에 있다고 간주됨. 실제로 여러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신을 위와, 악마를 아래와 연관시키는 것으로 밝혀졌음.
- 2분 동안 앉았다가 일어서며 강력한 힘을 드러내는 자세를 취한 사람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증가했으며, 코르티솔 수준은 감소. 이와 대조적으로 앉거나 일어서서 약한 힘을 표출하는 자세를 취했던 사람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감소했으며 코르티솔 수준은 증가. 이 주목할만한 결과는 체화된 인지이론에 신빙성을 더해줌. 호르몬 수준 측정 실험 결과를 통해 인간의 몸동작과 느낌 및 행동 사이에는 분명히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음. 인간의 신체는 정신과 마음에 큰 영향을 끼침. 단순한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물리적 힘은 물론 정신적 힘의 느낌까지 전달할 수 있음
- 몸이 더러워지는 것은 개념상으로나 은유적으로나 부도덕과 연관. 개개인은 몸을 씻고 때를 벗겨내면서 양심이 느끼는 죄책감까지 닦아내며, 그렇게 함으로써 얼마든지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허가증을 스스로에게 발부하고 다른 이를 돕겠다는 충동을 감소시킴. 개개인은 이렇게 깨끗한 양심으로 무장해 죄책감을 덜은 상태에서, 최소한 가벼운 도덕적 위반행위 쯤은 훨씬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것으로 보임. 신체를 깨끗하게 하는 행위는 정신적으로 반향을 일으켜, 더러운 얼룩쯤이야 약간 묻어도 좋다고 여기도록 함. 씻는 행동을 통해 도덕적으로 백지상태인 양심을 지니게 됐기 때문. 이는 앞서 연구에서 본 것처럼 실험참가자들이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바람에 마음이 느슨해져 도덕적 위반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음. 이와 대조적으로 몸이 깨끗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비행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경향은 현저이 낮아지며 아울러 죄책감에 대해 좀더 민감한 반응을 보임. 인간은 신체의 더러움을 깨끗하지 못한 양심과 연관시키며 그리하여 더이상 위반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 제재를 가함. 이런 현상, 즉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은 체화된 인지이론의 기본을 이룸
- 인간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뒤 몸을 깨끗하게 씻고 싶은 욕망이 있음. 그러니 배우자나 자녀가 몸을 씻는 행동을 예전보다 더 자주, 오래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때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이 바로 향후 있을지도 모를 사유와 연관성에 좀더 주의깊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첫 조짐일수도 있다. 죄책감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임. 많은 이들에게 죄책감은 일종의 화해이며,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윤리적이지 못한 짓을 저지렀을 때 꼭 체험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드는 필수과정임. 하지만 살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기 몸을 의식적으로 씻는 행동을 통해 일부라도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계속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음
- 지금까지 소개한 연구는 단기적으로는 몸을 씻거나 깨끗히 아는 행위가 이후 우리가 취하는 행동과 결정에 확실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입증. 마치 몸을 깨끗이 씻는 행위를 통해 가장 최근까지의 심리적 자취도 없앨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현재 우리가 하는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임. 인생의 중요한 일은 마음속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반면,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체험은 좀더 가변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몸을 씻음으로써 그런 체험이 앞날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을 통제할 수 있음.
- 연구자들은 인간이 초콜릿 조각 같은 단 음식을 먹으면 좀더 친절하고 친사회적 태도로 행동하며, 필요한 경우 더 많이 다른 이를 돕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음. 이 같은 정보는 상당히 유용함. 누군가와 다툰뒤나 다른 이가 내게 친절하게 행동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에게 달콤한 음료나 초콜릿, 맛있는 케익을 대접하라. 이렇게 하면 그들의 행동은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며 당신을 돕고 갈등을 피하겠다는 생각이 더 커질 것임. 그런데 이같은 결과를 보고, 단 것을 먹으면 인간의 행동이 크게 바뀐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됨. 그럼에도 단맛 나는 음식을 먹는 행위와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이 분명함
- 사람들은 단지 생선 비린내를 맡기만 해도 충분히 의심이 많은 상태에 빠진다는 점을 알 수 있음. 참가자들은 자기도 미처 모르는 사이, 생선냄새와 의구심 사이에 놓인 은유적 연관성의 영향을 받았음. 감각을 통해 겪은 체험이 추상적 개념에게, 그 다음으로 심리적으로 일어나는 판단 및 행동에게 영향을 준 것
- 생선 비린내와 의구심 사이에 존재하는 은유적 연관성은 쌍방향으로 작용. 즉 인간은 생선기름냄새를 맡고 난 뒤 의심을 품게 되는 일이 늘어나며, 반대로 뭔가 의구심이 드는 상태에서 생선 비린내를 잘 감지하는 경향이 있음. 위 실험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은 은유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는 증거가 확보된 것. 우리는 생선냄새와 의구심을 서로 연관시키며 이렇게 연관성을 이루는 각 요소는 상대요소를 활성화시킨다. 만약 갑자기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대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또는 돌아가는 상황이 어쩐지 불편하다는 기분이 들지만 이를 이성적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면, 당신 신체에서 냄새를 맡는 감각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일 수 있음. 이렇게 연륜이 아주 오래된, 냄새맡는 감각이 제공하는 귀중한 정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함. 어떤 이가 뭔가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과연 그사람을 신뢰할지 다시한번 고려해야 할 것임.
-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아예 바깥으로 나가 자유롭게 걷는 행동은, 인간이 관습과 장벽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 창의적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줌. 두선을 뻗는 방향과 제스처를 바꾸기만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됨. 또한 두개의 물건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행위를 통해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개념에서 공통적 요소를 찾아낼 수 있음. 때로는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창의성을 증가시킬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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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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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워크

IT 2014. 9. 20. 10:43

 


빅 데이터 @ 워크

저자
토머스 H. 데이븐포트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4-06-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빅 데이터를 원하고 지배하고 싶다면 이론보다 실행에 초점을 맞춰...
가격비교

- 우리는 빅데이터가 조직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함. 빅데이터의 이용가능성(운영, 직원, 고객, 그리고 사업위험에 대한)이 데이를 포착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중앙에 집중시킨 기업들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는 믿음에는 이유가 있음. 우리는 스몰 데이터 분석에서 이미 그런 사례를 볼 수 있는데, 많은 조직들이 중앙에서 통제하는 분석전략과 그룹을 만들기 시작. 만약 빅데이터가 기업 전 조직에 걸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면, 사업기회를 이해하고 반응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합치기란 매우 어려울 것임. 그러나 빅데이터는 아주 새롭기 때문에 조직 변혁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는 알 수 없음. 대기업에서 나온 초기 결과는 빅데이터가 기존의 데이터 및 분석그룹과 합쳐질 것임을 시사함. 그러나 그것도 다음 몇년 동안 바뀔 수 있음. 우리는 또한 빅데이터가 고객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지 못함. 빅데이터가 가능하게 하는 전반적인 방향은 고객행동, 선호, 그리고 비선호에 대한 지식을 더 넓히고, 그런 지식에 근거해 광고, 제품/서비스를 더욱더 타게팅 하는 것. 그러나 고객들이 더 많은 타게팅을 원하는 않는다는 증거가 이미 있음. 그리고 기업들이 데이터로 하는 일에 대해 고객들은 몹시 의심을 품고 있음. 예를 들어 미국 인터넷 사용자 중 68%는 검색가 웹사이트에 이력에 근거한 표적광고를 반대한다고 응담. 이런 이론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사회적인 상호작용(페이스북처럼)이나 혹은 상품가격 할인과의 교환으로 상당한 양의 개인적 정보를 때로는 포기하려는 것처럼 보임.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는 빅데이터에 근거한 타게팅에 대해 미국내에서 큰 반발(규제적인 혹은 소비자 행동적인 측면에서)이 확실히 있을 것임. 기업들이 고객 데이터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강력히 규제하려는 노력이 유럽연합에서는 이미 있었음. 미국내의 규제에 관해서는 아직 급박한 조짐이 없지만, 이 점에 관해서 조직들은 고객정서 (그리고 고객들이 오싹한 요소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를 주의깊에 관찰해야 함. 우리는 또한 빅데이터가 경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알지 못함. 빅데이터는 우리에게 많은 의사결정을 데이터에 근거해서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기회를 제공함. 기업과 조직들은 그들의 사업환경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이 아는 것을 근거로 의사결정하고 행동을 취하기 위해 분석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임. 이런 새로운 접근 방식을 경영자들이 어떤 속도로 채택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음.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런 채택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음. 어쨌든 스몰 데이터 분석은 수십년 동안 우리와 함께 있었고, 아직 많은 경영자들은 여전히 직감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함. 그리고 조직내에서 권력과 정치는 빠른 시일내에 확실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음.
- 벨 연구소의 전 데이터분석가인 톰 레드먼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데이터연구소의 문화적 처점은 벨연구소가 수십년 전에 발전시켰던 다음과 같은 것들과 유사해야 함
* 벨연구소의 성공의 비밀은 하루의 반만 일하는 것. 벨 연구소에서 가장 좋은 것은 그 열두시간을 당신이 원하는 때에 일할 수 있다는 것
* 벨 연구소에서 성공 비밀은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 당신은 2년마다 단지 하나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전화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여야 한다
* 벨 연구소에서 훌륭한 관리자가 되기 위한 비법은 알맞은 사람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주며, 그들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 어떤 것이 빅데이터 채택의 적절한 속도인가?
(1) 보수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경우
* 경쟁자가 빅데이터에 크게 진력하지 않음
* 과거에기술이 산업에서의 변혁을 주도 하지 않았음
* 고객 혹은 다른 중요한 기업체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음
* 당신 회사는 전통적으로 산업혁신에서 선도기업이 아님
(2) 적당하게 공격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경우
* 당신의 산업에서 빅데이터 혹은 분석에 이미 적극적이다
* 경쟁자들보다 계속 앞서기를 원한다
* 당신 회사는 전통적으로 기술과 데이터에 능숙하다
* 빅데이터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최소한이나마 있다.
(3) 공격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경우
* 당신 산업에서 누군가 이미 매우 공격적이다
* 과거에 분석적 경쟁자였다
* 과거에 당신 산업을 변혁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했다
* 모든 필요한 능력을 모았다
- 월급을 받을 가치가 있는 데이터 과학자는 데이터가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함. 불행하게도, 데이터 해커톤은 많은 경우에 문제를 명백히 정의하는 데 미흡함. 대부분의 회사들은 단지 해커들, 피자, 그리고 데이터를 한방에 몰아넣기만 하면 마술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함. 이것은 해비탯 포 휴매니티가 자원봉사자들을 목재더미 주위에 모아놓고 '힘차게 시작합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음. 날이 저물때쯤이면 14개의 출구가 있는 일광욕실이 반쯤 지어질 것임. 달리 말하면 해커톤은 단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아놓은 아이디어 묶음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실제 사업문제를 목표로 한다면 더 가치있을 것임.
- 많은 형태의 데이터 과학자가 있음 그런 형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구분하는 한가지 방법을 빈센트 그랜빌이 만들었음. 그는 그과 같은 데이터 과학자들을 위한 소셜네트워크인 데이터 사이언스 센트럴을 운영.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그는 수직적 데이터 과학자와 수평적 데이터 과학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
* 수직적 데이터 과학자들은 좁은 영역에 아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 그들은 모든 정렬 알고리즘에 요구되는 복잡한 계산에 아주 익숙한 컴퓨터 과학자일 수 있음. 혹은 고유값, 단일값 분해와 그것의 수치안정성, 그리고 유사 최대추정량의 점근적 수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통계학자일 수도 있음. 혹은 웹 크롤링 기술과 API개발에 적용된 파이썬 프로그램을 수년간 써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일 수도 있음. 혹은 데이터 모델링, 데이터 웨어하우스, 그래픽 데이터베이스, 하둡과 NoSQL 지식을 갖춘 데이터베이스 전문가일 수도 잇음. 혹은 베이지안 네트워크, SAS, 그리고 SVM에 정통한 예측모델 전문가일수도 있음.
* 수평적 데이터 과학자들은 사업분석가, 통계학자, 컴퓨터 과학자와 사업영역 전문가가 합쳐진 것. 그들은 비전을 기술적 지식과 결합. 그들은 고유치와 일반선형 모델, 그리고 다른 거의 사용하지 않는 통계기법에 전문가는 아닐지 모르지만 비구조화 데이터, 스트리밍, 그리고 빅데이터에 적용할 수 잇는 현대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기법에 대해 더 많이 안다. 그들은 강력하고, 효율적이고, 간단하고, 재생할 수 있고, 확장가능한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음.
- 하둡이 필요한 이유중 하나는 빅데이터가 단 한대의 서버에서, 그것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빠르게 처리될 수 없다는 것. 여러대의 서버에 걸쳐 컴퓨터 작업을 나누는 것(말하자면,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사진을 많은 다른 사진과 비교하는 알고리즘)은 100 호근 그 이상의 처리시간을 쓸 수 있음. 빅 데이터의 부상은 운 좋게도 많은 (때로는 수천개의) 컴퓨터 프로세서를 가진 값싼 상업용 서버의 부상과 일치. 또 다른 흔히 사용되는 도구는 맵리듀스임. 이것은 빅데이터 처리를 연결된 다수의 컴퓨터 그룹에 나누기 위해서 구글이 개발한 구조임. 하둡에는 맵리듀스 버전이 포함됨
- 빅데이터가 비즈니스 어플리케이션에 따라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데이터를 다루고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프로그램도 변할 수 있음. 하둡은 디스크에 데이터를 분배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데이터에 복잡한 연산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도 맵리듀스라고 불리는 처리구조를 사용. 그 플랫폼의 높은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맵리듀스 명령은 빅데이트 플랫폼에 있는 다양한 노드에 걸쳐서 병렬적으로 처리되고, 그런 다음에 새로운 데이터 구조 또는 해답세트를 제공하기 위해 빠르게 합쳐짐. 하둡에서 빅데이터 어플리케이션의 한 예는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를 좋아하는 모든 영향력 있는 고객의 수를 찾아라"가 될 수 있음. 텍스트 마이닝 어플리케이션은 팬, 사랑, 구매함, 또는 굉장함과 같은 단어를 찾고, 긍정적 정서를 가진 영향력 있는 주요 고객들의 목록을 통합하면서 소셜 미디어 거래를 빠르게 처리할 수도 있음. 아파치 피그와 하이브는 하둡의 맨 위에 있는 두개의 개방형 스크립팅 언어로,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에서 맵리듀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높은 수준의 언어를 제공. 피그는 데이터 읽기, 여과하기, 변환하기, 근접하기 그리고 쓰기와 같은 작업을 설명하기 위한 스크립팅 언어를 제공. 다시 말해 피그는 자바보다 높은 수준의 언어이고(즉 피그언어인 피그라틴은 자바로 번역됨), 더 높은 프로그램 생산성을 가능하게 함. 일부 다른 조직들은 이런 목적으로 파이썬 공개형 스크립팅 언어를 사용하기도 함. 하이브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좀더 일괄처리 지향적이고, 데이터를 SQL질의에 적합한 관계형 형태로 변환할 수 있음. 하이브의 이런 장점은 그런 질의어에 익숙한 분석가들에게 아주 유용.
- 빅데이터 더미의 사업적 시각 층은 빅데이터를 더 높은 분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줌. 빅데이터 어플리케이션에 따라 맵리듀스 또는 맞춤 프로그램을 통한 추가적인 처리는 통계모델, 독립파일, 관계형 표, 혹은 다면 데이터 같은 중간적인 데이터 구조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음. 그 결과로 나타나는 구조는 추가적인 분석을 위해 사용될 수 있거나 혹은 전통적인 SQL기반의 질의 도구에 의해서 연구될 수 있음. 많은 공급기업들이 이른바 하둡위의 SQL이라는 접근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단지 SQL이 몇십년간 사업에서 활용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높은 수준의 언어들이 SQL질의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업적 시각은 조직 내에 이미 존재하는 도구와 정보 취급자들에 의해서 빅데이터가 더욱더 활용될 수 있음을 보장한다.
- 그것은 크기가 아니라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기업들은 모두 지금과 앞으로 3년 내에 데이터의 크기가 아니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점을 조사결과는 보여준다. 빅데이터 계획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잠재적인 포상은 매우 큰 데이터 세트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 원천과 새로운 데이터 형태를 분석하기 위한 능력이다
- 분석에느 항상 세가지 형태가 있음. 즉 과거에 대해서 보고하는 설명적 분석, 미래를 예측하기 우해서 과거 데이터에 근거한 모델을 사용하는 예츠적 분석, 그리고 최적의 행위와 행동을 구체화하기 위한 모델을 사용하는 처방적 분석이 있음. 분석 3.0은 모든 형태를 포함하지만, 처방적 분석을 점점 더 강조하고 있음. 이런 모델들은 대규모 테스트와 최적화에 관련되며, 중요한 과정과 직원행동 속으로 분석을 내재화하는 수단임. 그것들은 조직을 위해 높은 수준의 운영혜택을 제공하지만 높은 수준의 계획과 실행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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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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