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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워

경영 2023. 10. 6. 07:32

- 한국이 향후 수년간 첨단 칩 제조의 핵심 생산자 지위를 유지하리라는 전망은 거의 모든 반도체 전문가가 동의하는 바입니다. 한국 반도 체 기업은 미국 어딘가에 투자를 늘려 나가겠지만 한국에는 더 많은 투 자를 할 것입니다. 사실 한국 기업이 중국 투자를 줄일 예정이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 자국 내에서 생산 역량을 더 확충하지 않을 수 없 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전쟁, 칩 워의 영향은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연장선상에는 전자 제품 생산 업체와 그에 따르는 공급망이 있 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PC와 스마트폰 생산 업체들은 주로 제품의 신 뢰도와 가격에 따라 공급망을 결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와 안보까지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랩톱컴퓨터와 서버를 만 드는 HP는 중국을 대체할 생산 기지로 멕시코를 물색 중입니다. 애플은 아이폰, 에어팟, 맥북 제조의 비중을 베트남과 인도로 옮기는 중입니다. 이런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한 것이며, 한국 기업은 전자 제품 공급망 변 동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칩 워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전자 산업을 넘어 세계의 하이 테크 분야를 둘로 나누는 중입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계속 이 어 나가는 것은 매출 유지에 있어 필수적인데, 그러자면 한국 기업은 중 국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 수준과 격차를 유지해야만 합 니다.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쉼 없는 노력이 지금껏 삼성과 SK하이닉스 를 이끌어 왔고, 그들을 반도체 산업의 선두에 서게 한 핵심 동력이었습 니다.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한국 기업은 기술 우위를 지켜 나가기 위해 더 노력하는 길뿐입니다.

- 미국, 중국,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아찔할 정도로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 이 복잡한 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2020 년까지 미국의 애플과 중국의 화웨이 양쪽을 최대 고객으로 삼고 있던 그 회사를 만들어 낸 어떤 사람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이다. 모리스 창Morris Chang은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홍콩에서 성장했다. 하버드, MIT, 스탠포드에서 수학한 그는 댈러 스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며 미국 반도체 산업의 초기부 터 힘을 보탰다. 모리스 창은 미군의 전자 장치 개발을 위한 극비 의 기밀 정보 취급 허가"를 마친 인물로, 대만을 세계 반도체 제 조의 핵심지로 만들어 냈다. 베이징과 워싱턴의 몇몇 국제 전략가 는 두 나라의 기술 영역을 완전히 떼어 내는 미래를 꿈꾼다. 하지 만 칩 디자이너, 화학 물질 공급, 제조 설비 생산자 등으로 이루어 진 극히 촘촘하고 효율적인 국제 분업 체계는 그렇게 손쉽게 떼어 낼 수 없는 것이며, 모리스 창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론 그건 뭔가 폭발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중국이 대만을 "재통일"하기 위해 침략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자 베이징 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중국이 상륙작전을 개시한다면 세 계 경제는 반도체발 충격에 크게 휘청댈 것이고, 이는 중국이 벌 일 수 있는 일 중 이보다 더 극적인 일은 떠올리기 어렵다. TSMC 의 최신 반도체 제작 설비를 향한 단 한 발의 미사일 공격 성공만 으로도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자동차, 통신망, 다른 기술 영역의 일정 모두에 생산 지연이 생기게 되며 그로 인한 피해는 수천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적 갈등 상황에 글로벌 경제 전체 가 인질로 잡혀 있는 이 상황은 역사가 낳은 오류처럼 보일 지경 이다. 하지만 대만, 한국, 그 외 동아시아가 최신 반도체 생산 거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들이 내린 일련의 의도적 결정이 이토록 길게 늘어진 공급망을 만들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저임금 공장 노동자를 찾던 칩 생산자들은 아시아의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에 매력을 느꼈다. 동아시아의 정부와 기업은 더 발전된 기술을 배우고, 궁극적으로 는 국산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생산 기지 역할을 자임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효율을 끝없이 요구하며, 그로 인해 기업은 생 산비 절감 및 합병의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발전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꾸준히 이루어졌으며, 그에 따라 점점 더 고도의 복합 소재, 복잡한 장비, 까다로운 공정이 요구되었다. 이런 것은 오직 글로벌 마켓에서만 공급과 투자가 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더 많은 연산력을 가진 제품과 서비스를 걸신들린 듯이 소비해 댔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 일각에서는 일본의 하이테 크 산업을 모두 해체해 버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끔찍한 전쟁 을 시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항복한 지 몇 년 후, 워싱턴의 국방 관료들은 "약한 일본보다 강한 일본이 더 낮은 리스크'라는 공식 정책을 채택했다. 일본이 핵물리학을 연구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짧게 있었으나, 그 후 미국 정 부는 일본이 기술과 과학 강대국으로 재탄생하도록 지지해 주었 다." 관건은 일본이 경제를 재건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시스템의 일원으로 포섭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본을 트랜지스터 세 일즈맨으로 만드는 것은 미국의 냉전 전략의 핵심이었다.
- 노동력의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던 동부 해안의 전자회사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자리 잡은 새로운 칩 생 산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조립 라인을 여성들로 채웠다." 실리콘 밸리의 경제가 과일 통조림 공장에 의존하고 있던 1920년대와 1930년대부터, 항공 산업이 활발했던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지금 까지도 산타클라라 밸리의 생산 라인에서는 여성들이 일하고 있 었다. 1965년 의회가 이민 조건을 완화하면서 외국에서 태어난 수 많은 여성이 실리콘밸리의 노동력 풀에 합류했다.
칩 회사가 여성을 고용한 이유는 더 낮은 임금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여자는 남자보다 노동 조건 개선 요구가 심하지 않았다. 생산 관리자들은 남자에 비해 손이 작은 여자가 반도 체 조립 및 완성된 반도체를 테스트하기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기 도 했다. 1960년대, 플라스틱 기판에 실리콘 칩을 부착하는 과정 은 이러했다. 칩이 올라가야 하는 위치를 노동자가 현미경으로 확 인한다. 조립 노동자가 두 부품을 고정시키면 기계에서 열과 압 력, 초음파 진동이 가해져 실리콘이 플라스틱 기판과 결합하게 된 다. 칩에 전력을 공급하는 얇은 골드와이어 역시 손으로 붙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칩을 테스트하려면 일종의 미터기에 꽂아야 했 는데 그 역시 손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 해외 제조 공장을 아시아에 연 것은 반도체 기업 중 페어차일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모토로라, 그 외 다 른 기업도 재빨리 그 대열에 합류했다.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거 의 모든 미국의 칩 제조사들이 해외 조립 설비를 운영했다. 스포 크는 홍콩 바깥으로 눈길을 돌렸다. 시간당 임금 25센트는 미국의 10분의 1이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준 이었다. 1960년대 말, 대만의 노동자는 시간당 19센트, 말레이시 아는 15센트, 싱가포르는 11센트, 대한민국은 고작 10센트를 받고 있었다.
스포크의 다음 행선지는 싱가포르였다. 중국계가 주류를 이 루는 도시국가는 리콴유라는 상대적으로 계몽된 독재자가 다 스리고 있었는데, 한 전직 경영진의 회고에 따르면 고맙게도 노동 조합이 "사실상 거의 불법인"4" 곳이었다. 페어차일드는 얼마 지 나지 않아 말레이시아의 도시 페낭에 조립 시설을 열었다. 반도체업계는 세계화라는 말을 아무도 쓰지 않았던, 그런 말이 등장하기 10년 전부터 세계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시아 중심 공급망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포크 같은 관리자들이 세계화의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 었던 건 아니다. 만약 비용이 같았다면 메인주나 캘리포니아주에 공장을 지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농촌에서 탈출하 여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수백만의 농민이 있었고, 그로 인 해 당분간은 저렴한 노동력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워싱 턴의 대외 정책 전략가들에게 홍콩, 싱가포르, 페낭 같은 도시의 중국계 노동자들은 마오쩌둥의 공산주의가 전복될 날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포크에게 그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존재로 보였다. 그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우리는 실리콘밸리에서 노동조합 문제를 겪었다. 동양에는 노조 문제가 전혀 없었다. "
- 반도체 공급망이 경제 성장과 정치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나라는 대만뿐이 아니었다. 1973년, 싱가포르의 지도자 리콴유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만난 자리에서 싱가 포르의 "실업을 일소하기 위해"  수출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 다. 싱가포르 정부의 협조 아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내셔널세 미컨덕터 National Semiconductors는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조립 설비를 건 설했다. 다른 칩 제조사도 그 뒤를 따랐다. 1970년대 말, 미국의 반 도체 기업은 해외에서 수만 명을 고용했는데 그 대부분이 한국, 대 만, 동남아시아에 있었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칩 제조사들과 아시 아의 독재자들, 그리고 많은 경우 아시아 반도체 조립 설비를 채우고 있던 화교 노동자들 사이에 새로운 국제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 반도체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미국 동반국들의 경제와 정치를 재구성했다. 정치적 극단주의의 온상이었던 도시는 근면한 조 립 라인 노동자들이 완전히 바꿔 놓았다. 실업 상태였거나 보조금 에 의존하는 농부였던 이들이 행복하게도 보다 나은 월급을 받으 며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 초, 전자산업은 싱가포 르의 국민총생산GNP 중 7퍼센트, 제조업 일자리의 4분의 1을 담당 했다. 전자 제품 생산을 놓고 보면 60퍼센트가 반도체 소자였고, 나머지도 반도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제품이었다.
- 홍콩에서 전자 제조업은 섬유업을 제외하면 그 어떤 산업 영 역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페낭, 쿠알라룸푸르, 믈라카에서 반도체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말레이시아 노동 자 중 15퍼센트가 반도체로 인해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이동하면 정치적 불안정을 일으키게 마련이지만, 상대적으로 임금이 후한 전자 조립 일자리" 덕분에 말레이시아는 실업률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대만까지, 싱가포르에서 필리핀까지, 반도체 생산 설비를 지도 위에 놓고 보면 마치 아시아 전역에 배치된 미군 기지의 위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미국이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해당 지역의 군사 기지를 철수한 후에도, 태평 양 전역에 흩어진 반도체 공급망은 지속되었다. 1970년대 말이 되자 오히려 공산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고, 아시아의 미 국 동맹국은 미국과 그 전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 인텔은 창업 후 2년 만에 첫 제품을 출시했다. 다이내믹 랜덤 액세스 메모리dynamic random access memory 혹은 D램이라 불리는 칩이 그것이었다. 1970년대 이전 컴퓨터는 일반적으로 실리콘 칩이 아 니라 전선으로 이루어진 격자에 연결된 작은 금속 링의 행렬matrix 인 자기 코어magnetic core라는 장치를 사용하여 데이터를 "기억"했 다. 링 하나가 자성을 띠면 컴퓨터는 그것을 1로 인식한다. 자성을 띠지 않은 링은 0이다. 얼키고설킨 전선이 링에 자성을 부여하거나 빼앗으며 0과 1을 부여하고, 어떤 링의 자성을 "읽음read"으로 써 1과 0의 신호를 되돌려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1과 0의 기억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전선과 링의 크기를 줄이 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기 코어 메모리는 부품을 손으로 꿰 어서 만드는 방식이었기에 수작업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작게 만 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컴퓨터 메모리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지 만 마그네틱 코어로는 그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
1960년대, IBM의 엔지니어 로버트 데나드Robert Dennard는 집적 회로가 작은 금속 링보다 더 효율적으로 “기억remember "하게끔 하 는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귀를 덮을 정도로 길고 검은 그의 머리카락은 바깥으로 심하게 뻗쳐서 흔히 떠올리는 괴짜 천재의 모습이었다. 데나드는 작은 트랜지스터를 콘덴서와 짝짓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결합 소자에 전하가 충전되면 1이고 아니면 0인 것이다. 콘덴서의 전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기 때문에 데나 드는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콘덴서를 주기적으로 충전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충전을 하는 '다이나믹dynamic' 한 랜덤 액세스 메모리인 D램DRAM의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D램은 오늘날까지도 컴퓨터 메모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전류의 도움으로 0과 1을 저장한다는 점에서 D램 칩의 작동 방식 은 구형 마그네틱 코어 메모리와 흡사하다. 하지만 D램 회로는 전 선과 고리를 엮은 게 아니라 실리콘에 새겨 넣은 것이다. 손으로 꿸 필요가 없으니 고장이 날 가능성이 낮고 훨씬 작게 만들 수도 있다. 노이스와 무어는 데나드의 통찰에 새로 만든 회사 인텔의 운명을 걸었다. 반도체 칩은 그 어떤 마그네틱 코어보다 치밀하게 만들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얼마나 줄여 나 갈 수 있을지 파악하려면 무어의 법칙에 따라 그려진 그래프를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D램이 컴퓨터 메모리 산업을 정복할 참이었다.
인텔은 D램 칩 시장을 지배할 계획이었다. 메모리 칩은 기기 에 맞춰 특화될 필요가 없으므로 같은 설계를 수많은 종류의 기기 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메모리 칩을 큰 단위로 생산하는 일 이 가능해진다. 반면에 "기억"이 아닌 "계산computing"을 하도록 되 어 있는 다른 유형의 칩은 모든 기기마다 각기 다른 연산 과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각 장비에 맞춰 특별히 설계되어야 한다. 예컨 대 계산기는 미사일의 유도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것 이므로,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다른 종류의 논리 회로를 필요로 했다. 이렇게 개별화된 수요는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그래서 인 텔은 메모리 칩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다. 대량 생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 밥 노이스는 엔지니어 과제를 풀어야 하는 퍼즐 게임이 보이면 도저히 참지 못하는 유형의 인물이었다. 메모리 칩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새 회사를 차렸지만, 바로 새로운 생산 라인을 추가해 버렸다. 1969년, 비지 컴Busicom이라는 일본의 계산기 회사가 노이스에게 최신형 계산기 를 위한 복잡한 칩 설계를 의뢰했다. 최신 컴퓨터 기술의 집약체 가 저렴한 가격에 생산되며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수많은 이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휴대용 계산기는 오늘날의 아이폰과 다를 바 없었다. 수많은 일본 기업이 계산기를 만들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칩 설계와 제작을 실리콘밸리에 의탁 하고 있었다.
신경 회로 연구를 끝으로 학계를 떠나 인텔에 온 테드 호프Ted Hot는 부드러운 말투를 지닌 엔지니어였다. 노이스는 테드 호프를 불러 비지컴의 의뢰를 처리하도록 했다. 인텔 직원은 대부분 물리 학이나 화학 전공자였고 그들은 칩 안에서 전자가 어떻게 돌아다 니는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아키텍처 computer architectures 전공자였던 호프는 칩이 아닌 컴퓨터의 관점에서 반도 체를 바라보았다." 비지컴은 호프에게 각각 2만4000개의 트랜지 스터가 탑재된 칩 12개가 필요하며, 그 칩들 모두가 맞춤형 설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호프가 보기에 이것은 인텔 같은 작은 스타트업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지컴의 계산기를 고민하던 호프는 맞춤형 논리 회로와 맞 춤형 소프트웨어 사이에서 컴퓨터가 맞닥뜨리는 양자택일 문제를 깨달았다. 칩 제작은 개별 기기에 최적화된 회로를 만들어서 제공 하는 주문형 사업이므로 고객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별다른 고민 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텔은 메모리 칩 분야에서 큰 진보를 이 루고 있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성과는 더욱 커질 전망이었 다. 즉 앞으로 컴퓨터는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을 정도 의 메모리를 갖게 될 터였다. 표준화된 로직 칩logic chip을 개발하고 강력한 메모리 칩을 탑재하여 각기 다른 과제에 맞게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를 올린다면 다양한 연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 호프는 자신의 판단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아무튼 호프가 아 는 한 인텔보다 강력한 메모리 칩을 만드는 회사는 세상 그 어디 에도 없었다"
인텔은 이 다목적 로직 칩에 4004라는 이름을 붙이고, "칩에 탑재된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 서microprocessor의 홍보에 나섰다. 새로운 칩은 일반적인 연산 기능 을 제공하며 수많은 다양한 유형의 장비에 사용 가능했다. 사실 인텔의 4004 칩이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주장은 옳지 않 을 수도 있다. F-14 전투기에 탑재되는 칩을 제공한 어떤 군수 납 품 업체가 인텔의 컴퓨터와 매우 흡사한 칩을 이미 생산한 바 있 었다. 하지만 그 칩은 1990년대까지 비밀에 붙여져 있었으므로 1971년 발매된 인텔의 4004가 컴퓨터 혁명을 촉발했다는 말은 거짓도 과장도 아니다.

- 마셜 같은 전략가들은 소련의 양적 우위에 맞서는 유일한 답은 질적으로 더 우수한 무기를 생산하는 것뿐임을 모두 알고 있었 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한가? 마셜은 일찌감치 1972년부터 미국이 컴퓨터에서 "실질적이고 영속적인 우위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 고 적어 두었다. "좋은 전략은 우위를 개발하고 전쟁의 개념을 전 환하여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셜은 거의 완벽 한 정확도로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병기를 그려 보면서 미사일 에 "신속한 정보 수집", "정교한 명령과 제어" 및 "종말 유도"를 구 상했다. 만약 미래의 전쟁이 정확도 싸움이 된다면 소련은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셜은 여기에 승부를 걸었다.
페리는 연산력의 소형화 덕분에 마셜의 미래 전쟁 구상이 머잖아 실현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반 도체 혁신에 친숙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만든 회사의 기기에 인 텔 칩을 사용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쟁에 사용된 수많은 무기 체계 는 진공관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최신형 휴대용 계산기에 사용되 는 칩은 구형 스페로 3 미사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연산력을 지니 고 있었다. 페리가 볼 때 미국은 이런 칩을 미사일에 탑재함으로 써 소련을 훌쩍 앞질러서 승부를 내야 했다.
페리의 추론에 따르면 유도 미사일은 단지 소련의 양적 우위를 "상쇄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었다. 유도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소련은 엄청난 비용의 미사일 요격 시스 템을 갖춰야 한다. 페리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펜타곤이 배치할 예정인 3000기의 순항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모스크바는 5년에 서 10년, 300억에서 500억 달러가 필요할 터였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모든 미사일이 소련을 향해 발사된다면 소련은 날아오 는 미사일 중 고작 절반가량만 요격할 수 있다.
앤드류 마셜이 찾고 있던 기술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방장관 해럴드 브라운Harold Brown과 손을 잡은 페 리와 마셜은 펜타곤이 신기술에 큰 투자를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유도 미사일에 진공관이 아닌 집적회로를 이용하며, 인공위성을 별자리처럼 깔아서 지구 위 어느 지점이건 겨냥할 수 있게끔 하고, 가장 중요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의 시동을 거는 등, 그런 작업을 통해 미국이 기술 첨단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페리가 주도하는 가운데 펜타곤은 미국의 마이크로 전자 기 술 우위에 방점을 둔 새로운 무기 체계 개발에 돈을 퍼붓기 시작 했다. 순항 미사일부터 포탄까지 모든 발사체를 유도 무기로 전환 하는 페이브웨이 정밀 무기 프로그램이 발족했다. 소형화된 컴퓨 터가 연산력을 제공하면서 센서와 통신 기술 역시 한 단계 도약하 기 시작했다. 예컨대 적의 잠수함을 탐색하고자 할 때 정확한 센 서를 개발하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전에 없이 복잡한 알고리즘 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큰 관건이었다. 군의 음향 전문가들은 충분 한 연산력을 확보한다면 먼 거리에서도 고래와 잠수함을 구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었다."
유도 무기는 점점 복잡해져 갔다.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 같 은 새로운 체계는 페이브웨이보다 훨씬 복잡한 유도 체계로 작 동하는 것이었다. 레이더를 이용해 지상을 스캔하고 미사일의 컴 퓨터에 미리 입력되어 있는 지형도와 대조하는 방식을 사용했는 데, 이렇게 하면 경로를 이탈한 미사일도 알아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유도 체계 이론은 수십 년 전에 등장했지만, 순항 미사일에 탑재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강력한 칩이 등장한 후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 1979년 앤더슨이 미국산 칩의 품질 문제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불과 몇 달 전, 소니는 워크맨을 출시했다. 음악 산업에 혁명을 일으킨 휴대용 음악 재생기 워크맨은 소니의 최신 집적회 로 다섯 개를 탑재하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의 십 대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만이 아니었다. 실리 콘밸리가 개척했지만 일본에서 개발해 낸 집적회로가 워크맨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소니는 전 세계적으로 3억8500만 대의 워크 맨을 팔았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소비자용 기기 중 하나였다. 이것이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일본이 만든 혁신이었다.
미국은 전후 세계에서 일본이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미군정은 트랜지스터 발명에 대한 지 식을 일본 물리학자들에게 전달해 주었고,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 들은 소니 같은 기업이 미국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일본을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고 미국의 계획은 성공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일각에서는 그 목 표가 지나치게 잘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 했다. 일본 산업에 힘을 실어 주는 전략이 미국의 경제와 기술 우위를 해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 국방부 관료들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지 키기 위해 반도체가 지니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이 지 니고 있던 전반적인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반도체 기술을 사용 하는 것은 냉전을 치르는 미국의 1970년대 중반 이후 전략이었다. 이는 밥 노이스의 성가대 친구 빌 페리Bill Perry가 펜타곤의 연구 및 엔지니어링 분야를 이끌던 때부터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방위 산업체는 새로운 비행기, 탱크, 로켓을 만들 때 가능한 한 많 은 칩을 탑재하여 더 나은 유도, 통신, 명령과 제어가 가능케 하라 는 지시를 받았다. 군사력 증강이라는 측면에서 이 전략은 빌 페리 를 제외한 그 누구의 생각도 뛰어넘을 정도로 잘 먹혀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략에는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다. 페리는 노이스를 비롯한 그의 실리콘밸리 이웃들이 반도체 산업의 꼭대기에 남아 있으리라고 전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1986년이 되자 일본은 반 도체 생산량에서 미국을 추월해 버렸다. 1980년대 말 일본은 세계 리소그래피 장비 공급량의 70퍼센트를 차지했는데 이는 실로 놀 라운 일이었다. 미국의 군사 연구소에서 제이 라스롭이 발명해 낸 리소그래피 장비 산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한 국방부 관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소그래피는 한마디로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가장 민감한 안보 요소를 생산하기 위해 해외의 제조업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일본을 점령했 을 때, 미국은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심을 불가능하게 하는 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1951년 양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후 미국 은 조심스럽게 일본의 재무장을 독려했다. 소련과 맞서기 위한 군 사적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이에 동의하기는 했 지만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1퍼센트로 국방비를 제한했다. 이 런 조심스러운 행보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 확장과 전쟁을 본능 적으로 기억하는 주변국을 의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무기 에 큰돈을 쓰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곳에 투자할 여력이 넘 쳐났다. 미국은 경제 규모를 놓고 볼 때 일본보다 다섯 배에서 열 배 정도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었다. 일본은 경제 성장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일본을 지켜줘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극적인 결과가 나타 났다. 한때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이라고 조롱당하던 나라 일본이 이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일본은 미국 군 사력의 사활이 걸린 미국의 산업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미국 은 공산권을 상대로 경제 봉쇄를 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이 대외교 역을 늘리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고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하지 만 이런 식의 분업은 미국 쪽에서 더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일 본 경제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도쿄 의 첨단 제조업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마저 위협할 지경이었다. 앞 서가는 일본의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TV나 카메라 산업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반도체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원치는 않 으실 겁니다." 스포크는 국방부를 상대로 말했다. "반도체가 없다 면 군사력의 미래는 오리무중입니다."
- 기술력으로 세계 1등이 된 일본이 과연 군사력에서 2등의 자리에 만족할 수 있을까? D램 칩에서 거둔 성공을 모델로 삼아 미 국이 차지한 거의 모든 유의미한 산업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 들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군사적 지배력을 넘보아서는 안 될 이유란 또 뭐란 말인가? 일본이 그렇게 나온다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1987년, CIA는 분석가들을 모아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예측해 보았다. 분석가들은 일본의 D램 시장 지배를 "팍스 니포니카"가 시작되는 증거로 보았다. 일본이 주도하는 동 아시아 경제 정치 블록이 출현하리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아시아 에서 행사하는 지배적 영향력은 기술 우위, 군사력, 무역과 투자 등을 통해 일본, 홍콩, 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묶어 놓은 것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홍콩 구룡만에 페어차일드가 최초의 반도체 조립 공장을 세운 후 집적회로는 아시아 내 미국의 위치와 불가분 의 관계였다. 미국의 칩 제조사들은 대만, 한국, 싱가포르 등에 설 비를 건설해 왔다. 이 지역을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막아 내는 힘은 군사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경제 역시 그러한 역할 을 하고 있었다. 농촌에서 이탈한 농민을 전자 산업이 흡수함으로 써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 지역이 흔히 그렇듯 게릴라 반군의 기반 이 되는 것을 막고, 아시아의 전직 농민은 전자 제품을 조립하는 좋은 일자리를 얻고 미국의 소비자도 혜택을 보는 구조였다.
미국의 공급망 전략은 공산주의자를 몰아내는 데 혁혁한 공 헌을 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자 그 전략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 는 건 일본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무역량과 해외 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던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와 정치에서 도쿄가 차지하는 위 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만약 일본이 반도체 산업을 이토 록 자연스럽게 지배할 수 있다면, 그들이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빼앗고자 할 때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실리콘밸리의 부활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과 방 만한 조직을 쥐어짜는 구조조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일본 이 차지하고 있던 D램 거대 기업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일본을 뛰어넘었다. 국제 경쟁에 직면한 실리콘밸리는 무역 을 중단하는 대신에 대만과 한국으로 더 많은 오프쇼어링 offshoring 을 하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한편 미국의 반도체 산업이 부활함에 따라 마이크로 전자 기술에 승부를 걸었 던 펜타곤의 도박은 다른 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무기 체계라는 보상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미국의 군사력은 1990 년대와 2000년대 동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는데, 이는 시대의 핵심 기술인 컴퓨터 칩의 지배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 인텔의 새로운 제조 기법은 "정확히 베끼자"로 통했다. 어떤 제조 공정 묶음이 가장 잘 작동하는 것으로 판명되면 인텔은 그것 을 모든 설비에서 복제했다. 그 전까지는 엔지니어들에게 인텔의 공정에 대해 미세 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고 엔지니 어들은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하지 말고 모방하라 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건 엄청난 문화적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일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실리콘밸리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공장식 생산 라인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배럿도 인정했다. "저는 독재자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정확히 베껴라" 전략은 먹혀들었다. 인텔의 수율은 확연히 향상되었다. 제조 설비는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되었고 비용이 절감되었다. 인텔의 공장은 이제 연구소보다는 미세하게 조정된 기계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로브와 인텔에는 운도 따랐다. 1980년대 초 일본 생산자들 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구조적 상황이 일부 변화하기 시작한 것 이다. 1985년에서 1988년 사이, 미국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두 배 올랐고 미국의 수출가가 저렴해졌다. 1980년대를 지나며 미국 의 금리도 가파르게 내려왔고 인텔의 자본 비용이 낮아졌다. 게다가 텍사스에 본사를 둔 컴팩컴퓨터 Compaq Computer가 IBM의 PC 시 장에 뛰어들었다. 컴팩은 운영 체제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직접 만들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PC 부품을 플라스틱 상자에 조립하 는 상대적으로 쉬운 방향을 잡았다. 컴팩은 인텔 칩과 마이크로소 프트 운영 체제를 사용한 자체 PC를 출시했는데 가격은 IBM보다 훨씬 저렴했다.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컴팩과 다른 회사들이 만드 는 IBM PC "복제품"이 IBM의 오리지널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었 다. 25 컴퓨터가 모든 사무실과 많은 가정에 설치되면서 가격이 급 격히 내려갔다. 애플 컴퓨터를 제외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의 PC 가 인텔 칩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를 탑재했고, 이 둘은 서로 궁 합이 잘 맞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인텔이 PC용 칩 판매를 사실상 독점한 상태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그로브의 인텔 재건은 실리콘밸리 자본주의의 교과서적 사례 가 되었다. 그는 인텔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깨 닫고, 인텔의 창업 아이템이었던 D램을 포기함으로써 인텔을 스 스로 "파괴"했다. 대신에 인텔은 PC용 칩 시장의 목줄을 움켜잡 았다. 매년 혹은 2년 간격으로 더 작은 트랜지스터를 적용하고 더 많은 연산력을 갖춘 새로운 세대의 칩을 발표했다. 편집광만이 살 아남는다는 것이 앤디 그로브의 신념이었다. 인텔을 구해 낸 것은 혁신도 전문성도 아닌 그의 편집증이었다.

-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이병철은 도시바나 후지쓰 같은 기업이 D램 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반도체 산업에 뛰 어들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만 든 칩의 조립과 패키징을 아웃소싱하는 중요 장소였다. 게다가 미 국 정부는 1966년 한국과학기술원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의 창립에 도움을 주었고, 미국의 최고 수준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교수에게 훈련받는 한국인 역시 늘어났다. 하 지만 이렇게 숙련된 인력이 있다 해도 기본적인 조립에서 첨단 반 도체 제조로 뛰어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삼성은 이전에 단순한 반도체 작업에 손을 댔다가 수익을 내지 못 하고 더 나은 기술을 확보하지도 못하며 고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이병철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리콘밸리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처절한 D램 경쟁이 그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한국 정부는 반도체를 우선 사업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삼성의 미래를 숙고하던 이병철은 1982년 봄 캘 리포니아 여행을 하면서 휼렛패커드의 시설을 방문해 그 회사의 기술을 보며 감탄했다. HP가 팰로앨토의 차고에서 시작해 이토록 거대한 테크 공룡이 되었다면, 채소와 건어물점에서 출발한 삼성 역시 같은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이게 다 반도체 덕분이 죠." 한 HP 직원이 이병철에게 말했다. 그는 IBM의 컴퓨터 공장도 방문했는데,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사실에 또 한 차례 놀랐다. "당신들 공장에는 비밀이 많이 있을 텐데요." 공장 안내를 해 주는 IBM 직원에게 이병철이 묻자, 그 직원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비밀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따라 할 수 없으니 까요. 30 그러나 이병철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정확히 모방하겠 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만 달러 이상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 데 다 아직 제대로 될지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병철에게도 그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그는 몇 달을 고심했다. 실패하면 그 가 이룬 비즈니스 제국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데 한국 정부가 흔쾌히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정 부는 반도체 산업에 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은행은 정부 방침을 따라 더 많은 돈을 빌려줄 것이었다. 그러니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하이테크 기업은 차고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은행에서 저리로 대 출받을 수 있었던 거대 재벌의 산물이었다. 1983년 2월, 신경이 곤 두선 불면의 밤을 보내던 이병철은 전화기를 들었다. 삼성전자 사 업부를 총괄하던 수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선포했다. “삼성은 반도 체를 만들 걸세." 삼성은 적어도 1억 달러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는 선언과 함께 그는 회사의 미래를 건 반도체 도박을 시작했다.
이병철은 노련한 경영자였고, 한국 정부는 그의 든든한 지원 자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도 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삼성의 도박은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의 국제적 경쟁 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한국에서 훨씬 더 저렴한 공급원을 찾아 내는 동시에 미국의 연구개발 에너지를 이미 상품화된 범용 D램 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설득력 을 얻고 있었다. 밥 노이스가 앤디 그로브에게 말했듯이, "한국인들과 함께하면 그들이 일본 생산자들보다 더 저가로 판매할 테니, 일본이 "비용에 상관하지 않고 덤핑을 하는" 전략을 쓰더라도 세계 D램 시장을 독점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일본의 칩 제조사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노이스는 예측했다.
그리하여 인텔은 떠오르는 한국의 D램 생산자들을 환영했다. 인텔은 1980년대에 삼성과 함께 합작 투자에 합의한 여러 실리콘 밸리 기업 중 하나다. 삼성이 제조한 칩을 인텔의 브랜드로 판매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를 향한 일본 의 위협에 대응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생산 비용과 임금은 일 본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의 제조 공정은 일본처럼 완벽에 가깝지도 극도로 효율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럼 에도 일본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일에는 문제가 없었다.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 갈등 역시 한국 기업들에게 호재로 작 용했다. 워싱턴은 일본이 미국 시장에 D램 칩을 저가로 풀어놓 는 행위, 이른바 "덤핑"을 중단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결국 1986년 도쿄는 D램의 대미 수출량을 제한하며 낮은 가격에 팔지 않겠다 고 약속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더 많은 D램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으로 한국에 이익을 주자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칩을 생산하는 것이 일본을 제외한 다른 누구여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것은 D램 시장만이 아니었다. 기술도 함께 제공했다. 실리콘밸리의 D램 생산은 거의 파탄 나 있었기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한국에 전수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병철은 현금이 부족한 메모리 칩 스타트업인 마이크론에 64K D램용 설계 라이센스 계약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창업자인 워 드 파킨슨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이다호의 칩 제조사는 그 계약
-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PC 시대가 오는 것을 놓쳤다는 데 있다. 일본의 반도체 공룡 중 인텔이 메모 리 칩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하고 PC 생태계의 지배자가 된 경로를 따라간 회사는 없었다. NEC 단 한 곳만 유의미한 시도 를 했으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가져갔을 뿐이다. 앤디 그로브와 인텔에게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였다. 반면에 일본의 D램 기업들은 이미 높은 시장 점유율을 누리고 있었고 금융 비용마저 낮았던 탓에,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무시했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 늦었다. 결과적으로 PC 혁명의 혜택은 대부분 미국 기업에게 돌아갔다. 일본의 주식 시장이 폭락했을 때 그들의 반도체 지 배력은 이미 잠식되고 있었다. 1993년부터 미국은 반도체를 다시 수출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한국 기업이 일본을 제치고 D램 의 최대 생산자 자리를 차지했다. 1980년대 말 90퍼센트에 달하던 일본의 시장 점유율은 1998년이 되자 20퍼센트까지" 내려앉았다. 세계 무대에서 당당한 일본이 되자는 야심은 그들이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었는데, 이제 그 토대마 저 흔들리고 있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 이시하라 와 모리타는 일본이 반도체 지배력을 갖춤으로써 미국과 소련 모 두에게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 쟁이 터지고 보니, 걸프전이라는 예상 밖의 전장에서 미군이 보 여준 활약은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릴 정도였다. 반면에 디지 털 시대 첫 번째 전쟁에서 일본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철수 시키기 위해 파견된 28개국 다국적군에 합류하기를 거절했다. 그 대신에 일본은 이라크 주변국과 다국적군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보내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미국의 페이브웨이 레이저 유도탄이이라크의 탱크들을 날려 버리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 외교는 초라해 보였다.
- 1990년대는 "세계화"라는 단어가 최초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대였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국제 분업과 공급망은 페어차일 드 초창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은 1960년대부터 의도적으 로 반도체 공급망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국내에 일자리를 제공하 고 더 나은 기술을 획득하며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서였다. 1990년대부터 대만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TSMC의 눈부신 성장 덕분이었다. 모리스 창이 만든 TSMC는 시 작부터 대만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1985년 대만은 전자 분야에 특화된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모 리스 창에게 그 기관을 이끌도록 했다. 당시 대만은 해외에서 만 든 칩을 가져와서 테스트하고 플라스틱이나 세라믹 패키지에 부 착하는 등 반도체 조립에서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였다. 대만 정부는 미국의 RCA로부터 반도체 제조 라이센스를 받아 1980년 UMC라는 반도체 제조 업체를 설립한 바 있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업계에 뛰어들었지만 UMC는 첨단 기술에서 경쟁할 역량이 되지 못했다'
대만에는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일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 만이 가져가는 이윤은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에 서 가장 큰 몫은 칩을 설계하거나 최신 칩을 만들어 내는 기업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대만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다른 곳 에서 설계하고 생산한 칩을 조립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했다. 리궈 딩 장관을 비롯해 대만 관료들이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모리스 창이 대만을 처음 방문했던 1968년, 대만은 홍콩,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경쟁 중이었다. 이제 삼성과 한국의 다른 거대 재벌이 최신 메모리 칩 생산을 위해 돈을 쏟아부으려던 참이었다. 비록 삼성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싱가포르와 말 레이시아는 한국이 반도체 조립에서 생산으로 나아간 경로를 모 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반도체 공급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만은 끝없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 공산당의 지배가 아니었다면 중국은 아마 반도체 산업에서 훨씬 더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적회로가 발명되었 을 당시 중국은 방대한 규모의 저임금 노동력과 잘 교육받은 이공 계 출신 인재 등 일본, 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반도체 제 조 업체들 눈에 들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1949년 공산 당이 집권한 후 외국과 관계를 맺는 모든 일이 의혹의 대상이 되 었다. 모리스 창 같은 사람이 스탠퍼드에서 유학을 마치고 중국으 로 돌아갔다면 가난에 시달릴 것은 거의 확실한 일이었고, 어쩌면 구금되거나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공산혁명 이전에 중국에 서 대학을 나온 최고의 인재들은 대만이나 캘리포니아에서 일자 리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렇게 숙적의 전자기술 역량을 키워 주고 만 것이다.
한편 중국의 공산정권은 소련과 같은 종류의 실수를 저질렀 다. 단, 이번에는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로 그 실수를 반복했다. 1950년대 초 베이징은 반도체 소자를 과학 연구 우선순위로 확정 지었다. 곧 그들은 베이징대학교를 비롯해 공산혁명 이전에 버클 리, MIT, 하버드, 퍼듀 등의 대학교에서 연구했던 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중국은 1960년에 최초의 반도체 연구 기관을 설립 했다. 중국이 단순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첫 생산하기 시작한 것 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1965년 중국 엔지니어들은 스스로 중국산 집적회로를 만들었다." 밥 노이스와 잭 킬비가 그 일을 해낸 지 5 년 만의 일이었다.
- 마오쩌둥의 극단주의로 인해 해외 투자뿐 아니라 진지한 과학 연구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중국이 최초의 집적회로를 생산한 그해 마오쩌둥은 온 나라를 문화혁명의 난장판으로 만들 어 버렸다. 전문 지식은 특권의 원천이며 사회주의적 평등을 침 해한다는 것이 마오쩌둥의 주장이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 나 라 교육 체계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수많은 과학자와 전문가가 지 정된 마을에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냥 살해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마오 주석이 내린 "1968년 7월 21일 교지"는 이렇게 주장 했다. “교육 기간을 줄이고, 교육을 혁명하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를 실행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다. . 학생들은 실제적인 경험이 있는 노동자와 농민 중에서 선발해야 하며, 몇 년의 학습을 마치 고 생산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
- 창의 전략은 단순명료했다. 바로 TSMC가 한 대로 하는 것이었다. 대만에서 TSMC는 눈에 띄는 족족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고용했다. 특히 미국이나 다른 첨단 반도체 기업에서 일한 사람이 우선이었다. TSMC는 동원 가능한 최선의 장비를 갖추었다. 반 도체 산업의 최고가 되기 위해 TSMC는 직원 교육에 혼신을 다했 다. 그러면서 대만 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세제 혜택 및 보조금을 누렸다.
SMIC에게 TSMC의 행보는 종교 경전과도 같았다. SMIC는 해외 반도체 기업, 특히 대만 기업의 인재들을 경쟁적으로 데리고 갔다. 설립 후 첫 10년간 SMIC 직원 중 3분의 1이 해외에서 채 용된 사람들이었다. 반도체 산업 분석가 더그 풀러 Doug Fuller에 따 르면 2001년 SMIC는 중국에서 650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한 반면 에 주로 대만이나 미국 같은 해외에서는 393명을 채용했다. 그렇 게 10년을 보내고 나니 SMIC의 직원 중 3분의 1이 해외에서 영 입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심지어 채용과 관련한 구호까지 있었다. "옛 직원 한 명이 새 직원 둘을 데려온다." 경험이 풍부한 해외 출 신 직원을 데려와 현지 엔지니어를 교육시키겠다는 방침을 요약 한 것이다. SMIC가 중국에서 고용한 엔지니어들은 빠르게 기술을 습득해 나갔고, 곧 해외 칩 제조사들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기 시 작할 정도로 성장했다. 반도체 기술을 현지화하겠다는 SMIC의 목 표는 해외에서 교육받은 인력을 통해서만 달성 가능한 것이었다.
- 중국의 여타 반도체 스타트업이 그랬듯이 SMIC 역시 수많은 정부 보조의 혜택을 누렸다. 5년간 법인세를 면제받았고 중국 내 에서 판매되는 반도체는 매출세 또한 면세였다." 제품의 질보다 정치인 자녀 채용에 초점을 맞추었던 경쟁자들과 달리 창은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고 기술을 첨단 수준으로 갖추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렇게 2000년대 말이 되자 SMIC와 세계 최고 기업의 격차는 고작 몇 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SMIC는 세계 최고 수준 의 파운드리 기업이 되는 궤도에 오른 듯했다. 어쩌면 TSMC를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리처드 창은 그의 전 직장이었던 텍사 스인스트루먼트 같은 반도체 업계의 리더로부터 주문을 받아 칩을 만들 수 있었다. SMIC는 2004년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 이제 TSMC가 경쟁해야 할 파운드리 기업이 동아시아에 여러 곳 세워졌다. SMIC뿐 아니라 싱가포르의 차터드반도체, 대만 의 UMC와 뱅가드반도체vanguard Semiconductor, 2005년에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든 한국의 삼성전자까지, 다른 이들이 설계한 반도체 를 만들어 주는 사업을 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정부 보조를 받고 있었는데, 그 덕에 반도체 가격은 낮 아질 수 있었고, 결국 그 기업에 설계도를 보내는 미국의 팹리스 업체들 대부분이 혜택을 보았다. 게다가 팹리스 업체들은 스마트 폰이라는 혁명적 제품의 출현을 앞두고 있었다. 이는 고성능 칩의 숨 막히는 싸움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다. 해외 제조는 제조 단 가를 낮추고 더 치열한 경쟁을 불러왔다. 소비자들은 이전에는 상 상도 할 수 없었던 제품을 낮은 가격에 구입하는 혜택을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의 바람직한 모습 그 자체 아니었을까?
- 몇몇 기업이 PC 시장의 표준이 되어 버린 x86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90년, 애플은 두 회사와의 협력 하에 영국 케임브리지에 기반을 둔 암Arm이라는 합작 벤처를 설립했다. 인텔이 고려했지만 결국 거절했던 RISC 규칙에 따라 보다 단순한 명령어 집합 구조를 지닌 프로세서 칩을 설계하는 것이 그 회사의 목적이었다. 스타트업인 암은 기존 업무나 고객이 없었으므로 x86을 포기하는 비용이 따로 들지도 않았다. 대신에 암은 컴퓨터 생태계에서 x86 이 차지하는 자리를 대체하고자 했다. 암의 첫 CEO였던 로빈 색 스비 Robin Saxby는 고작 열두 명으로 꾸려진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 지만 그 야심만은 엄청났다. 그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세 계 표준이 될 겁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색스비는 모토로라의 유럽 반도체 분야를 담당하는 자리까지 올라갔었고, 그 후에는 유럽의 한 반도체 스타트업에서 일했지만 제조 공정의 실적이 저조한 탓에 스타트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러니 그는 칩을 자체 제조함으로써 얻게 되는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암의 전략에 대해 초창기에 벌였던 논쟁에서 주 장했다. "실리콘은 강철과 같습니다. 그건 상품입니다. . 내 눈 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직접 반도체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 신 암은 아키텍처 사용권 라이센스를 판매하여 그 아키텍처에 따 라 다른 회사들이 칩을 설계하도록 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파 편화된 반도체 산업의 속성을 반영한 새로운 전략이었다. 인텔은 x86이라는 자체 아키텍처를 가지고 다양한 칩을 스스로 설계했다. 색스비는 암 아키텍처 사용권을 팹리스 설계 회사에 팔아 암의 아 키텍터를 이용해 그 나름의 칩을 설계하도록 하고자 했다. 그리고 제조는 TSMC 같은 파운드리에 외주를 주면 되는 것이었다.
색스비의 꿈인 인텔의 경쟁사를 만드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인텔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암은 PC 시장에서 인텔의 점유율을 빼앗아 오지 못했다. 인텔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 체제와 맺고 있는 협력 관계가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의 단순하고 에 너지 효율적인 아키텍처는 머잖아 대중적 사랑을 받게 되었다. 터리 사용을 고려해야 하는 작고 휴대할 수 있는 기기가 대거 등 장했기 때문이다. 가령 닌텐도는 휴대용 비디오게임기에 암 아키 텍처를 도입했는데, 인텔은 이런 작은 시장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인텔은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을 과점하면서 엄청난 이윤 을 누리고 있던 터라 틈새시장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텔이 스스로의 패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 무 늦었다. 그저 또 다른 휴대용 컴퓨팅 기기일 뿐이고 틈새시장 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모바일 폰 시장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 모바일 기기가 컴퓨터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발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칼텍의 선지자였던 카버 미드가 이미 1970 년대 초에 예견한 일이었다. 인텔 역시 PC가 컴퓨터의 최종 진화 형이 아닐 것임은 알고 있었다. 인텔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일련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투자했다. 그 중에는 무려 20년을 앞서 나온 줌Zoom 같은 화상 회의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신제품 중 자리 잡은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기술적 이유 에서가 아니라, 인텔의 핵심 사업인 PC용 칩 제조와 비교할 때 너 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새로운 기기와 분야는 인텔 내에서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 모바일 기기는 1990년대 초 앤디 그로브가 아직 CEO이던 시절부터 인텔 내에서 주기적으로 논의 대상이 되곤 했다. 1990년대 초 인텔의 산타클라라 본사에서 열린 회의, 윌 스워프Will Swope라는 한 임원이 자신의 팜 파일럿Palm Pilot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런 기기들이 성장해서 PC를 대체할 겁니다.” 하지만 PC용 프로세서를 만들어서 벌 수 있는 돈이 엄청났던 당시, 모바일 기기에 돈을 퍼붓는다는 것은 과격한 도박으로 보였다." 그래서 인텔은 모바일 비즈니스에 뛰어들지 않기로 했고, 오판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 많은 이들은 그로브를 지나간 시대의 전형으로 취급했다. 그가 인텔을 만든 것은 한 세대도 더 된, 인터넷이 존재하지도 않았 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로브가 만든 회사는 모바일 폰의 흐름을 놓쳤고 컴퓨터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제품을 생산하는 대신 x86 독점의 과실을 따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2010년대 초 인텔은 경 쟁자보다 한발 앞서 더 작은 트랜지스터가 탑재된 칩을 발매하는 반도체 산업의 선두 주자였다. 고든 무어 시대 이래 꾸준히 같은 호흡을 유지하며 달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텔과 TSMC나 삼성 같은 경쟁자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 게다가 다른 사업 모델을 채택한 테크 기업들로 인해 인텔의 비즈니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2000년대 초 만 해도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높은 기업 중 하나였지만, 인 텔 칩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꾸린 애플에 의해 따라잡히고 말았다. 인텔은 인터넷이 경제의 축으로 떠오르는 것 도 놓쳤다. 2006년 창립된 페이스북 Facebook의 시가 총액은 2010년 현재 인텔의 절반에 달했다. 지금보다 몇 배 더 가치 있는 회사가 될지 모를 일이었다. 실리콘밸리 최대의 반도체 제조사는 인터넷 의 데이터가 그들 서버 칩에서 처리되고 그들 프로세서에 의존하 는 PC에서 액세스된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칩을 만들면서 나오는 이익은 앱에서 광고를 판매하면서 버는 이익보다 낮았다. 그로브는 "파괴적 혁신의 추종자였지만 2010년대 인텔의 비즈니 스는 혁신 없이 파괴되어 있었다. 애플이 제품을 해외에서 만든다 는 그로브의 불만은 누구의 귀에도 가 닿지 않았다.
- 심지어 반도체 업계 내에서조차 그로브의 멸망과 파국의 예언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TSMC 같은 새로 운 파운드리 업체들이 대부분 외국 기업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 다. 하지만 해외 파운드리가 만드는 칩의 상당수는 미국의 팹리스 업체가 설계한 것이다. 외국의 반도체 생산 시설은 미국에서 만 든 제조 장비로 가득 차 있고, 미국에 자리 잡은 반도체 설계자들 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한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생산 기 지를 이전하는 것은 앤디 그로브의 첫 직장이었던 페어차일드 반 도체가 홍콩에 최초의 해외 생산 거점을 만든 이후 반도체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 핵심 중 하나였다.
그로브는 그런 주장에 설득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상품' 제 조업을 포기하는 것은 내일의 새로운 산업으로부터 문을 걸어 잠 그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로브의 주장이었다. 그는 전기 배터 리 산업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로브는 기고문에서 미국은 "30년 전 소비자 가전제품 생산을 중단했을 때 배터리 산업의 선두 자리 를 빼앗겼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PC용 배터리도 잃었고, 이제 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마저 잃을 상황이었다. 2010년의 그로브 가 예언했다. "나는 미국 전기 배터리 산업이 과연 외국을 따라잡 을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 "빨리 달리기"는 단 하나 있는 단점을 제외하고 나면 우아한 전략이었다. 몇몇 핵심 지표를 놓고 볼 때 미국은 빨리 달리는 나 라가 아니었고, 입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부 안에서 는 그의 분석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생산 시설 해 외 이전에 대한 앤디 그로브의 우울한 예측은 점점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2007년, 국방부는 전직 펜타곤 장교였던 리처드 반 아타Richard Van Atta와 몇몇 동료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반도체 산업 의 “세계화”가 군의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 었다. 반 아타는 수십 년간 국방용 마이크로 전자 기술을 다룬 사 람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몰락을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했다. 그의 보고서는 경계하며 과잉 대응하는 쪽이 아니었다. 다 국적 공급망 덕분에 반도체 산업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는 점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매끄럽게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펜타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민해야 하는 조직이었다. 반 아타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가 첨단 칩을 얻기 위해서는 머지않아 외국에 의존할 것이라고 보았다. 너무나 많은 고도화된 제조 시설이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오만에 빠져 있던 단극 시대에서 이런 주장에 귀기 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관계를 알아볼 생각조차 없이 미국이 "더 빨리 달린다"고 믿고 있 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볼 때 미국의 우위가 늘 유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일본 을 앞서지 못했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역전했다. 리소 그래피 분야에서 GCA는 니콘과 ASML을 능가할 수 없었다. 마이크론은 동아시아 경쟁 업체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D램 생산자였 고, 다른 미국 D램 생산자들은 모두 파산해 버렸다. 2000년대 말 까지도 인텔은 트랜지스터 소형화에서 삼성과 TSMC를 능가하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 격차가 줄어들었다. 인텔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었지만, 아직 앞서갈 수 있는 건 처음부터 먼저 뛰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미국은 대부분의 반도체 설계에서 선두를 지 키고 있었지만 대만의 미디어텍 MediaTek은 다른 나라에서도 반도체 설계 회사가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반 아타가 볼 때 미국 이 자신을 할 이유는 많지 않았고 안심할 근거는 단 하나도 없었 다. 2007년 그가 남긴 경고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이 차지하고 있 는 선두 자리는 이후 10년간 심각하게 침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지 않았다.
-  2000년대가 되자 반도체 산업을 세 영역으로 나누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로직 Logic"은 스마트폰, 컴 퓨터, 서버를 운영하는 프로세서를 뜻한다. "메모리 Memory"는 컴퓨 터가 작동하고 있을 때 필요한 단기 메모리인 D램과 장기간에 걸 쳐 데이터를 저장하는 플래시 메모리, 혹은 낸드 메모리로 나누어졌다. 세 번째 영역은 다소 난삽한 것으로, 시각이나 음성 신호를 디지털 데이터로 치환해 주는 아날로그 칩, 휴대전화가 무선 네트 워크와 접속하고 통신할 수 있게 해 주는 무선 주파수 칩, 장비의 전기 사용을 관리하는 반도체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 번째 영역은 본디 무어의 법칙과 동떨어져 있었다. 매 년 지수함수적으로 성능이 개선되는 분야가 아니었다. 이 영역은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것보다는 설계를 얼마나 독창적으로 잘 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오늘날 이 세 번째 영역에 속하는 칩들 중 4분의 3은 1990년대 후반에 개척한 제조 기술인 180나노미터' 이상의 프로세서에서 생산된다. 결과적으로 이 분야의 경제 논리 는 로직이나 메모리 칩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기술의 첨단을 유지하기 위해 가차 없이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야만 하 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이 분야의 칩을 만드는 팹은 일반적으로 해마다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기 위해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 따라서 로직이나 메모리 칩을 만들기 위해 평균적으로 첨단 팹에 쏟아붓는 자본 투자의 4분의 1 정도면 충분할 만큼 훨씬 저렴하 다. 오늘날 가장 큰 아날로그 칩 제조사는 미국, 유럽, 일본에 산 재해 있다.' 대만과 한국에 외주를 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나면 대 부분은 생산도 그들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오늘날 가 장 큰 아날로그 칩 제조 업체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로, 이 회사는 인텔처럼 PC나 데이터센터 시장을 독점하지 못했고 스마트폰 생 태계 ecosystem를 차지하지도 못했다. - 2006년, 엔비디아는 고속 병렬 계산이 컴퓨터 그래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놓은 소프트웨어가 CUDA였다. 표준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그래픽과는 전혀 무관한 방향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GPU를 활용 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최고 성능의 그래픽 칩을 찍 어 내고 있는 와중에 황은 CUDA라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막 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2017년 한 회사의 추산에 따르면 그때 투 입된 돈은 최소 100억 달러였는데, 이렇게 만든 프로그램은 그래 픽 전문가뿐 아니라 엔비디아의 칩을 보유한 어떤 프로그래머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황이 CUDA를 무료로 공개한 것이 었다.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는 엔비디아 칩에서만 작동했다. 그래 픽 업계 밖에서도 쓸 수 있는 칩을 만드는 것은 엔비디아에게 엄 청나게 큰 새로운 시장을 열어 주었다. 계산화학computational chemistry 부터 기상 예측에 이르기까지 병렬 처리를 원하는 수요를 발굴해 낸 것이다." 그 무렵 황은 어렴풋하게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병 렬 처리의 가장 큰 수요처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었 다. 바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l이었다.
- 팹리스 모델 덕분에 혜택을 본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엔비디 아와 퀄컴 외에도 많다. 수십억 달러를 써 가며 자체 제조 시설을 갖추는 대신에 새로운 반도체 설계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결과적으로 전혀 새로운 유형의 반도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런 칩은 팹리스 설계 회사가 실제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다. TSMC와 일부 파운드리의 힘을 빌어야만 했던 것이다.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s는 각기 다른 목적에 따라 최적화해 사용할 수 있는 적응형 칩으로, 이 분야의 선구자 격인 회사는 자일링스Xilinx 와 알테라Altera인데, 두 회사 모두 설립 초기부터 반도체 제작을 외 주로 맡기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단지 새로운 유형의 칩 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함께 고급 그래픽, 병렬 처리를 가능케 함으로써 팹리스 회사들은 전혀 새로 운 유형의 컴퓨터 세계를 만들었다.
- 창은 TSMC가 경쟁자들을 기술적으로 따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회사는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하는 반면에 TSMC는 중립적 입장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TSMC의 "연합군” 파트너십이라 불렀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지식재산 사용권 판매로 돈을 벌고, 소재를 생산하고, 장비를 만드 는 십여 개의 회사와 일종의 동맹 관계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회 사 중 상당수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지만 이들 중 웨이퍼에 칩을 새겨 넣는 일을 하는 곳은 없으며, 설령 시도한다 해도 TSMC를 이길 곳은 없었다. 그러니 TSMC는 이들 사이에서 협업하며 반도 체 산업을 이루는 거의 모든 회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기준을 설 정하게 되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TSMC의 공정과 호환되도록 맞추는 것은 거의 모든 반도체 회사의 작업에 필수적 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팹리스 회사들에게 있어서 TSMC는 제 작 공정의 경쟁력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믿음직한 선택지가 되었 다. 도구, 장비, 소재 공급사에게 TSMC는 가장 중요한 고객이 되 었다. 스마트폰 판매가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기 시작하면서 실리콘 칩의 수요 역시 함께 치솟았고, 모리스 창은 그 중심에서 선언 했다. "TSMC는 모든 이의 혁신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혁신, 우리에게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 의 혁신, 우리 고객의 혁신, 지식재산권 제공자의 혁신, 이것이 바 로 연합군의 힘입니다." 이는 막대한 재정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 이기도 했다. 모리스 창은 자신감 있는 태도로 과시했다. "TSMC 와 우리의 10대 고객이 함께 지출하는 연구개발 비용은 삼성과 인 텔을 합친 것보다 큽니다."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함께 하는 구식 모델은 TSMC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도체 업계 전반의 공격 앞 에 고전하고 있었다.
TSMC가 반도체 업계의 우주에서 북극성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었다. 대형 고객이 요구 하는 물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었다. 그건 결코 적은 비용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금융 위기를 겪는 동안 모 리스 창이 직접 임명했던 후계자릭 차이 Rich Tsai는 다른 CEO가 다 들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했다. 직원을 해고해서 손실을 줄이는 것 이었다. 창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창은 40나노 공정을 되살리고 그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 투자를 늘렸다. 창은 스마트폰 사업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했다. 특히 2007년 처음 출시되어 TSMC의 최대 숙적 삼성으로부터 핵심 칩을 처음 공급받고 있던 애플 아이폰에 칩을 공급하려면 그에 걸맞은 막대한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갖추어야 했고 투자가 필요했다. 창이 볼 때 손실을 줄이 기 위한 차이의 방향은 패배주의자의 것이었다. 훗날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너무, 너무도 투자가 부족했어요. 우리 회사는 그보다 더 해낼 역량이 있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그러지 못했죠. 정체 상태였습니다. "
그리하여 창은 후계자를 해임하고 TSMC의 조종간을 직접 잡았다. 투자자들은 모리스 창의 복귀와 투자 확대가 불안하다 고 느꼈고 당일 TSMC의 주가는 하락했다. 하지만 창이 볼 때 현 상태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일이었다. 금융 위기가 반도체 산업의 우위 경쟁에서 TSMC를 위협하도록 내버려 둘 수 는 없었다. 무려 반세기 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며 1950년대 중반부터 명성을 쌓아 왔던 그였다. 그리하여 금융 위기의 가장 깊은 수렁 속에서 그는 전임 CEO가 해고했던 이들을 다시 고용하고 생산 역량 확충을 위해 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을 두 배로 늘 렸다.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2009년과 2010년 자본 지출을 수백 억 달러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경우의 수보다는 생산 역량을 초과해서 보유하고 있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 창의 태도 였다. 파운드리 업계에 끼어들고 싶은 경쟁자가 있다면 우선 전력 으로 맞서는 TSMC의 방어선을 뚫어야 할 터였다. TSMC는 막피 어나기 시작한 스마트폰 칩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진심으로 달리 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반도체 산업 정상에 오른 60년을 맞이 하며 모리스 창이 선언했다. "우리는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 생산 라인 노동자와 달리 스마트폰 속의 칩은 대체하기 매우 까다롭다. 트랜지스터 크기가 줄어들면서 칩 제조는 한층 더 어려 워졌다. 첨단 칩을 제작할 수 있는 반도체 회사 수는 한 줌으로 줄 어든 지 오래다. 2010년, 애플이 첫 번째 칩을 발표했을 때 최첨단 파운드리 업체는 그저 한 줌에 지나지 않았다. 대만의 TSMC, 한 국의 삼성, 그리고 어쩌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한다는 전제하에 글 로벌파운드리즈 정도가 전부였다. 인텔은 트랜지스터 크기 줄이 기 경쟁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를 달리며 PC와 서버에 들어가는 칩을 스스로 제작하고 있었지만 다른 기업의 폰에 들어가는 프로 세서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SMIC 같은 중국 파운드리 업체는 선두권을 추격하고자 했지만 몇 년은 뒤처진 듯 보였다.
- 이런 이유로 인해 스마트폰의 공급망은 PC 관련 부품의 공급망과는 사뭇 다른 형태가 되었다. 스마트폰과 PC 모두 대체로 미 국이나 유럽, 일본, 한국에서 설계한 고부가가치 부품을 탑재하고 중국에서 조립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PC의 경우 대부분의 프 로세서는 인텔에서 나왔고 미국, 아일랜드, 혹은 이스라엘에 소재 한 인텔의 팹에서 제작되었다. 스마트폰은 달랐다. 스마트폰에는 (애플 스스로 설계하는) 메인 프로세서뿐 아니라 온갖 칩이 가득했 다. 무선 통신망과 연결해 주는 모뎀과 무선 주파수 칩,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연결을 담당하는 칩,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 적어도 두 개는 탑재되는 메모리 칩, (사용자가 핸드폰을 가로로 돌릴 때 그런 동작을 인식하는) 동작 감지 칩, 배터리, 오디오, 무선 충전 관리 칩 등 다양했다. 이 모든 칩이 모여야 스마트폰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제작 역량이 대만과 한국에 쏠리면서 이들 칩 중 다수 의 제작 역량 역시 두 나라에 집중되었다. 스마트폰의 전자두뇌 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거의 대부분 대만과 한국 에서 제조해 중국으로 보낸 다음 스마트폰의 플라스틱 케이스 속 에 담겨 유리로 된 스크린을 덮는다. 애플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오직 대만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오늘날 애플이 요구 하는 제작 역량과 기술을 가진 회사는 TSMC뿐이다. 그러니 모든 아이폰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캘리포니아의 애플 설계. 중국에서 조립"은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다. 아이폰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한 부품이 캘리포니아에서 설계되고 중국에서 조립되는 것 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대만뿐이다.

- ASML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는 양 산된 공작 기계 중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싼 것이다. 너무도 복잡 한 나머지 전문적으로 훈련된 ASML 직원이 없다면 작동하지 않 고, ASML 직원은 기계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장비를 관 리한다. 모든 극자외선 스캐너에는 ASML 로고가 새겨져 있다. 하 지만 ASML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그 기업의 진정한 역량은 광학 전문가, 소프트웨어 설계자, 레이저 회사, 그 밖에 극자외선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지닌 수많은 관계자가 얽혀 있 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조율해 내는 것에서 나온다.
- 언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전략은 각기 달랐지만 TSMC, 인텔, 삼성 모두 극자외선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반면에 글로벌파운드리즈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28나노미터 공정에서도 수율을 끌어올리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생산 지연으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파운드리즈는 14나 노 공정을 자체 개발하는 대신 삼성의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0 자체 연구개발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글로벌파운드리즈는 자사의 최신 설비인 팹 8에 구매하고 설치했던 여러 대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의 작동을 중단했다. 2018년의 일이었다. 글로벌파운드리즈의 극자외선 프로그램은 취 소되었다." 더 이상 새로운 첨단 노드의 제작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극자외선 리소그래피를 통한 7나노 공정에는 이미 15억 달러의 개발 비용이 들었고, 앞으로도 본격화하려면 그 정도 비용 이 더 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글로벌파운드리즈는 그 싸움에서 빠 지기로 했다. TSMC, 인텔, 삼성은 극자외선 장비가 작동할 가능 성에 판돈을 걸고 주사위를 던질 수 있을 정도의 재정적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중간 규모의 파운드리였던 글로벌파운드리즈는 스스로 7나노 공정을 가능케 할 정도의 여력이 없다고 판 단했다. 더 작은 트랜지스터의 생산을 중단하고, 연구개발 비용을 3분의 1로 줄이며, 그간 발생했던 손실을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발표가 뒤따랐다. 첨단 프로세서를 만드는 것은 세 계 최대의 칩 제조사가 아니면 낄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용이 드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글로벌파운드리즈의 실소유주인 페르시 아만 석유 부자들의 주머니도 그 돈을 메울 수 있을 정도로 깊지 는 않았다. 첨단 로직 칩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회사의 수 는 이제 넷에서 셋으로 줄어들었다.
- 통합 모델에도 일부 장점이 있을 테니 인텔의 판단이 어느 정도 옳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합 모델에는 분명한 단점이 존 재했다. 다양한 여러 회사의 칩을 제작하고 있던 TSMC는 인텔에 비해 매년 거의 세 배 많은 실리콘 웨이퍼를 찍어 내고 있었는데, 그 말은 제조 공정을 갈고닦을 기회가" 그만큼 더 많다는 것을 뜻 했다. 게다가 인텔은 신생 반도체 설계 업체를 위협으로 보고 있 었던 반면에 TSMC는 제조 서비스를 위한 잠재 고객으로 인식했 다. TSMC의 기업 가치는 단 하나의 분야 즉 효율적인 반도체 제 조에서 나왔기에 TSMC 경영진은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최신 반 도체를 생산해 내는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인텔 지도부는 반도체 설계와 반도체 제조 양쪽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다가 둘 다 죽을 쑤고 말았다.
인텔의 첫 번째 난관은 인공지능이었다. 2010년대 초, 인텔의 핵심 사업 영역인 PC용 프로세서 시장은 성장이 정체되었다. 오 늘날은 게이머들을 제외하고 나면 새로운 모델의 CPU가 나왔다 고 해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요가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컴퓨터 안에 어떤 프로세서가 내장되어 있는지도 잘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에 인텔의 다른 주요 시장인 데이터센 터 서버용 프로세서 판매가 2010년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 마존 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그 외 많은 회사가 거대한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클라 우드"가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연산력을 인텔 칩이 제공한 것이 다. 오늘날 우리가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데이터의 대부분이 이런 회사들 중 한 곳의 데이터센터에서 처리되고 있으며, 그 데이터센 터는 인텔 칩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초 인텔이 데이 터센터 시장을 정복했을 그 무렵, 컴퓨터의 연산력에 대한 수요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것은 인공지능이었 다. 하지만 인텔의 주요 칩은 구조적으로 인공지능을 위한 계산에 잘 대응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었다.
- AI 알고리즘을 범용 CPU에서 작동시키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AI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연산력을 CPU로 제공하려 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비용이 든다. 단일 AI 모델을 학습시키 기 위해 사용하는 칩과 소비하는 전력의 비용은 수백만 달러에 달 할 수 있다." (컴퓨터가 고양이를 알아보도록 훈련하려면 수많은 개와 고 양이 사진을 보여 주면서 둘의 차이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더 많은 동물 사진을 요구할수록 사람은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AI는 매번 다른 데이터를 받아서 같은 계산을 반복적으로 수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AI 알고리즘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그러 한 계산을 경제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칩을 특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회사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빅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들은 칩과 서버를 구입하는 데 연간 수백억 달러를 소비한다. 또 이런 데이터센터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 역시 어마어마하 게 소비한다. 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기업들에게 "클라우드" 공간을 파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AI 작업에 최적화된 칩은 더 빨리 작동하면서 데이터센터 공간을 더 적게 차지하고, 그러면서도 인텔의 범용 CPU보다 더 적은 전력을 소비해야 한다.
- 엔비디아의 성공은 보장된 미래라고 볼 수 없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텐센트, 알리바바 등 대형 클라우드 기업 은 엔비디아 칩을 구입하면서 동시에 인공지능부터 머신러닝까지 그들 각자의 수요에 맞춰 스스로 자체 칩을 설계하기 시작했기 때 문이다. 가령 구글은 구글의 텐서플로우 TensorFlow 소프트웨어 라이 브러리에 최적화된 텐서 처리 장치Tensor processing units, TPU라는 자체 칩을 설계했다. TPU는 아이오와에 소재한 구글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용자는 매달 3000달러만 내면 가장 낮은 사양의 TPU를 사용할 수 있지만, 더 강력한 TPU를 쓰고 싶다면 매달 10만 달러까지 사용료가 높아진다. 클라우드는 마치 천상의 무언 가처럼 들리지만 우리의 모든 데이터는 지상의 실리콘 위에 있으 며 그 위에는 현실적이고도 값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는 셈이다.
- 엔비디아가 됐건 클라우드 센터를 운영하는 대형 IT 기업이 됐건, 그들로 인해 인텔의 데이터센터 시장용 프로세서의 준準독 점 판매 시절도 막을 내렸다. 만약 인텔이 새로운 시장을 발굴했 다면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생각처럼 심각한 문제는 아니 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텔은 2010년대 초 TSMC와 맞대결을 벌이기 위해 파운드리 시장에 숟가락을 넣었다가 큰 코를 다치고 있었다. 인텔은 자사의 제조 공장을 타사에 개방해 반도체 제조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는데, 이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함께하 는 통합 모델이 인텔 경영진의 주장처럼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텔은 앞서가는 기술력 과 막대한 생산 역량 등 주요 파운드리 기업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다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파운드리 기업이 되는 것은 엄청 난 문화적 변화가 필요한 일이었다. TSMC는 지식재산권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한 반면에 인텔은 폐쇄적이었고 비밀에 집착했 다. TSMC는 서비스 중심 기업이었던 반면에 인텔은 고객이 인텔 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TSMC는 스스로 칩을 설계하 지 않았으므로 고객과 경쟁할 일이 없었다. 그에 비해 인텔은 거 의 모든 기업을 경쟁 상대로 바라보는 반도체 업계의 거인이었다.
- 중국 기업을 놓고 본다면 SMIC는 상대적으로 성공한 반도체 기업이라 할 수 있었다. 중국이 보유한 다른 파운드리 기업인 화훙과 그레이스는 아주 작은 시장 점유율만 갖고 있었 고, 그나마도 국영 기업 및 지방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사업 영역 의 주문을 통해 나오는 것이었다. 한 중국 파운드리 기업의 전직 CEO에 따르면, 모든 중국 지방 정부 수장은 자신이 관할하는 지 역에 칩 생산 설비를 짓기를 원했다. 겉으로는 보조금을 제시하며 자기 관할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하지만 은근한 협박도 잊지 않 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은 전국 곳 곳에 소규모 시설을 깔아두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비효율 이 뒤따랐다. 외국인들은 중국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잠재력을 보 았지만, 재앙과 같은 기업 지배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든 먼저 해결되어야만 한다. 한 유럽 반도체 기업의 임원은 이렇 게 설명했다. "중국 기업에서 '자회사를 합시다'라고 말하면, 저 는 '돈을 잃어봅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26 중국과의 합작 투자는 대체로 정부 보조금에 중독된 채 제대로 된 신기술은 거의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결말을 맞게 마련이었다.
- 반도체 기업에게 중국은 너무도 탐나는 시장이어서 기술 이전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몇 기업은 심지어 중국 지사의 통제권을 통째로 넘길 것을 제안받기도 했다. 2018년,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인 암은 중국 지사 지분의 51퍼 센트를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49퍼센트를 자사가 보유했다. 그 보다 두 해전 암은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에 인수되었는데, 소프 트뱅크는 중국 기술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소프트뱅크로서는 투자 성공을 위해 중국의 규제 조치 가 자사에 유리하게 작동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미국 규제 당국의 정밀 조사에 직면했다. 미국은 소 프트뱅크가 중국과 맺고 있는 관계가 베이징의 정치적 압력에 약해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암을 400억 달러에 인수했지만 암의 전 세계 매출 중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지사의 지분 51퍼센트를 고작 7억7500만 달러에 팔아 버렸다. 
암 차이나를 분리해 버린 결정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소프 트뱅크가 중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아 암 중국 지사를 매각했다 는 분명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암의 경영진은 매각의 논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니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암의 임원 중 한 사람이 말한 바에 따르면, "중국 군대나 중국의 감시 기구를 위해 시스템 온 칩] 반도체를 만들 때, 중국은 그런 과정이 중국내에서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새로운 합작 회사는 그런 걸 만들 수 있죠. 과거에는 우리가 할 수 없던 일입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중국은 보안과 통제 가능성을 원합니다. 궁극 적으로 중국은 자신들의 기술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요. ... 우리가 가져간 기술을 기반으로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도 혜택을 볼 겁니다." 이 설명에 깔린 상업적 논리는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지 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자면 소름 끼치는 말이다. 소프트뱅크를 규제하는 일본 관료든, 암을 규제하는 영국 관료든, 암의 지식재 산 중 상당 부분을 관할하는 미국의 관료든, 이 사안에 대해 더 파고들어 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 화웨이는 자사 제품이 필요로 하는 250개의 핵심 반도체를 선별하여 가능한 한 많은 칩을 자체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들 칩은 주로 통신 기지국 구축 사업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화웨이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애플리케 이션 프로세서를 비롯해 스마트폰용 반도체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실제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고급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애 플이나 다른 선도적인 반도체 회사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화웨이 역시 칩 제작은 외주로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런 칩을 만들 수 있 는 회사는 고작 두어 개뿐이었고, 자연스럽게 대만의 TSMC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 2010년대 말, 화웨이의 하이실리콘Hisilicon 사업부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또 TSMC의 두 번째로 큰 고객이기도 했다. 'OS 화웨이의 스마 트폰에는 메모리 칩이나 다양한 신호 처리기 등 여전히 다른 회사 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하지만 스마트폰 프로세서를 생산해 내는 것은 대단한 위업이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칩 설계 산업은 미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위기에 놓인 것이다. 화웨이가 한국의 삼성이나 일본의 소니가 수십 년 전에 해냈던 것을 성공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줄 수 없었다. 바로 첨단 기술 생산 방법을 배우고, 세 계 시장에서 승리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미국의 선도적 테크 기업에 도전하는 일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화웨이는 모 든 환경에 컴퓨터가 사용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ubiquitous computing 시대를 앞서갈 수 있는 고지를 이미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차세 대통신 기반 설비인 5G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 화웨이의 기지국 장비는 경쟁사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실리콘을 포함하고 있다. 화웨이의 무선 장치를 일본 신문 《니케이아시아》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110 미국산 반도체에 크게 의 존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필드 프로그램 가능 게이트 어레이 field- programmable gate arrays 반도체는 오레곤주에 위치한 래티스세미컨 덕터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래티스는 칭화유니그룹이 인수하고 나서 몇 년 후 약간의 지분을 매각한 회사다. 텍사스인스트루먼 트, 아날로그디바이시스, 브로드컴Broadcom, 사이프레스Cypress 반도 체 역시 화웨이의 무선 장비에 필요한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했 다. 《니케이아시아》의 분석에 따르면 화웨이의 통신 시스템 가격 중 약 30퍼센트는 미국산 반도체 및 기타 부품이 차지한다. 하지 만 핵심 프로세서 칩은 화웨이의 하이실리콘 반도체 설계 사업부 가 중국 내에서 설계한 것이며, 제작은 TSMC에서 이루어졌다. 화 웨이가 기술 독립을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여러 특화된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회사 내에서 설계한 칩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TSMC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화웨이가 각 무선 시스템에서 가장 복잡한 전자 기기 중 일부를 만들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구성 요소를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는 사 실 또한 분명하다.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사업부는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지니 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니 중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실리콘 밸리의 대형 업체들만큼 TSMC의 큰 고객이 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2010년대 말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 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밸리와 견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갖 게 될 터였다. 이것은 단지 테크 업계와 무역의 이동만 뒤바꾸는 일이 아니다. 군사력 역시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 냉전의 승부는 미국 미사일의 유도 컴퓨터 주위를 도는 전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싸움은 전자기파 스펙 트럼 속에서 결판이 날 수 있다. 전자 센서와 통신 장비에 온 세상 의 군대가 더욱 의존할수록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는 데 필요한 스펙트럼 공간에 접근하기 위한 싸움도 치열 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전시에 전자기파 스펙트럼이 어떻게 작 동할지 단지 얼핏 보았을 뿐이다. 가령 2007년 이스라엘이 시리아 의핵 시설을 공습했을 때,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레이더를 교란하 거나 해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시리아의 방공 시스 템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와의 전쟁에서 다양한 레이더와 신호 교란기를 동원하고 있다. 또 러시아 정부는 보안을 고려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있을 때 방문지의 GPS 신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DARPA는 GPS 신호나 인공위성에 의존 하지 않는 대안 항법 체계를 연구 중이다. 123 GPS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미국의 미사일이 목표물을 맞힐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전자기파 스펙트럼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반도체에 의한 보 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될 것이다. 레이더, 전파 교란, 통신은 모두 복잡한 무선 주파수 칩과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에 의해 관리된 다. 이들 칩이 개방된 스펙트럼 공간에서 신호를 발산하고, 특정 한 방향으로 보내며, 적의 센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레 이더나 교란기에 담긴 강력한 디지털 칩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작 동시켜 수만분의 1초 내로 수신한 신호를 해석하고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할지 결정한다. 군대가 전장을 보고 소통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린 문제다. 자율 비행 드론은 스스로 어디 있는지 파악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다.

- 워싱턴과 반도체 업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세계화라는 꿀단지를 끌어안고 단물을 마셔 왔다. 언론과 학자들 역시 세계화를 진짜로 "글로벌 "한 것처럼 전달해 왔다. 기술 확산은 막을 수 없고, 다른 나라의 기술 역량이 발전하면 미국에 이익이 되며, 설령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기술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식 이었다. "반도체 산업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일방적인 행위는 점점 더 무의미한 것이 된다"라고 오바마 정권의 반도체 보고서는 주 장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정책은 기술의 확산 속도를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그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는 없었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세계화가 아니라 "대만화"였다. 기술은 확산되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한 줌의 기 업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살펴봐도 세계화의 불가피 성이란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미국의 기술 정책 은 그 흔한 상투적 어구에 인질로 잡혀 버리고 말았다.
- 미국은 제조, 리소그래피. 그 외 다른 영역에서 기술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우위를 헛되이 흘려보냈다. 경쟁의 주체는 기업이며 정부는 그저 평평한 운동장을 깔아 주기만 하면 그만이 라는 생각에 워싱턴이 빠져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경제학 교과서와 신문 칼럼에서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그런 주장은 특 히 아시아의 반도체 산업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미국의 관료들은 다른 나라가 반도체 산업의 중 요한 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현실을 그저 무시해 버렸고, 그러는 사이 미국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 왜 호주와 영국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이 화웨이의 위험에 대해 각기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기술적 요소를 두고 해석 이 달랐다고 볼 근거는 없다. 가령 사이버 보안 문제를 다루는 화 웨이의 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은 영국의 규제 당국 역 시 잘 알고 있었다. 진짜 논점은 따로 있었다. 중국이 세계의 기술 인프라에서 더 큰 역할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저지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영국의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 기관의 장을 역임했던 로버트 해니건Robert Hannigan은 이렇게 주장했다. "서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누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대신에, 우리는 중국이 미래에 세계의 기술 강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 며 그 위험을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 많은 유럽인의 생각도 비 슷했다. 중국의 기술 발전은 불가피하며 그것을 막으려고 애쓰는 건 부질없다는 것이었다.
- 화웨이에 대한 공격은 화웨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다 른 중국 기업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미국과의 논의 끝에 네덜란드는 ASML이 극자외선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고자 해도 승인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2017년 AMD가 "전략적 파트너"라 불 렀던 중국의 슈퍼컴퓨터 회사인 수곤이 2019년 미국의 블랙리스 트에 올랐다. 그 목록에는 파이티움Phytium, 飛騰도 포함되어 있었 는데, 미국 관료들은 파이티움이 설계한 칩이 탑재된 슈퍼컴퓨터 가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에 사용되었다고 보았고, 이 내용은 《워 싱턴포스트》를 통해 보도되었다. 파이티움의 칩은 미국산 소프트 웨어로 설계되고 대만의 TSMC가 제조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의 반도체 생태계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파이티움의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파이티움은 외국산 소프트웨어와 제조 역량에 기대고 있었고, 그 결과 미국 제재에 극히 취약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볼 때 중국 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의 공 격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최대의 테크 기업 인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은 미국산 반도체를 구입하거나 TSMC 에 반도체를 주문하는 일에 있어서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중국 최고의 로직 칩을 생산하는 SMIC는 첨단 반도체 제작 도구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제재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성업 중이다. 심지어 화웨이마저 구형 반도 체 구입은 가능한 터라 4G 네트워크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 최고의 글로벌 테크 기업 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있을 때, 중국이 그 어떤 복수도 하지 않았 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미국 테크 기업을 응징하겠다고 여 러 차례 위협하긴 했지만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베이징 은 중국의 안보를 해치는 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 unreliable entity list '에 올리겠노라 했지만, 그 어떤 기업도 그 목록에 등재되지 않았다. 화웨이가 미국에 당해서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 는 2등 테크 업체가 되더라도 살아남아 있는 편이 낫다는 베이징 의 분명한 계산에 따른 행보였다. 결국 미국은 공급망을 끊음으로 써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화웨이 습격 사건을 두고 이렇게 곱씹었다. "무기화된 상호 의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미국 안보 관료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제 조 장비의 수출 제한을 무기로 삼아 TSMC를 압박해서, 최신 기술 을 대만뿐 아니라 미국에도 동시에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과 논의가 강화되고 있다. 혹은 대만에 투입하는 자본 지출에 맞 춰 미국의 애리조나나 일본, 더 나아가 잠재적인 유럽의 신규 팹 에 새로운 설비를 짓도록 TSMC에 압력을 넣어 확약을 받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전 세계 반도체 생 산의 대만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런 압력 이 필요하다 해도 현재로서는 워싱턴이 그것을 실행할 의지가 없 다. 전 세계가 대만에 의존하고 있는 현 구도는, 그러므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 대만해협의 군사력이 중국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 는 군사 전문가는 없다. 1996년 발생했던 제3차 대만해협 위기처 럼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이끌고 대만해협을 항해하는 것만으 로 중국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아득한 과거의 일일 뿐이다. 오 늘날 그런 작전을 수행하면 미국 전함을 치명적 위험에 노출시키 는 셈이 된다. 현재 중국의 미사일은 대만 인근의 미군 함정뿐 아 니라 저 멀리 괌과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 국이 대만을 상대로 제한적인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자 할 때, 미 국으로서는 힘의 균형을 면밀하게 따져본 후 중국을 몰아내려 힘 을 쓸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 다고 할 수 있다.
- 만약 중국이 대만을 압박하여 TSMC의 팹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혹은 다른 나라보다 더 우선순위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미국과 일본은 첨단 장치와 소재 수출에 새로운 제 약을 가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런 요소는 미국 및 유럽의 동맹국이 쥐고 있는 카드이므로 그 시점에도 활용 가능하다. 하지 만 대만의 반도체 생산 역량을 다른 나라에서 따라잡으려면 몇 년 이 걸릴뿐더러 그동안 세계는 여전히 대만에 의존해야 한다. 그 경우 세계는 중국에 아이폰 조립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까지 의존하게 된다. 베이징은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적 역량과 생산력을 지닌 유일한 팹 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러한 시나리오는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입지에 재앙과도 같은 충격을 준다. 차라리 TSMC의 팹이 전쟁으로 날아가 버리 는 것보다 더 나쁜 경우다. 아시아와 대만해협에 매달려 있는 세 계 경제와 공급망은 이런 아슬아슬한 평화 위에 놓이고 마는 것이 다. 애플부터 화웨이, 심지어 TSMC까지 대만해협 양쪽에 투자한 회사들은 절대적으로 평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 회사가 수조 달러를 투자한 설비들이 대만해협과 선전, 홍콩, 푸젠과 타이페이 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모두가 미사일의 쉬운 표적인 것이다. 전 세계의 반도체 산업, 더 나아가 반도체를 쓸모 있게 만들어 주는 전자 제품의 조립까지, 그 모든 것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연안에 기대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곳은 실리콘밸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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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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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디스럽션

경영 2023. 10. 3. 10:41

- 우리가 '비파괴적 창조'라고 이름 지은 이 개념에는 세 가지 특징 이 있다.
첫째, 이는 과학적 발명이나 기술 중심적 혁신으로 생성될 수 있 다. 예를 들어 여성용 생리대가 그렇다. 한편으로는 과학이나 기술 중심적 혁신 없이도 생성될 수 있다. 마이크로파이낸스가 그 예다. 또한 기존 기술의 새로운 조합이나 응용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가 대표적인 예로, 기존의 TV 기술을 활용해 에 듀테인먼트 산업을 개척했다. 이는 과학적 또는 기술적 혁신에 투 자할 자원이나 투자 의지가 없는 많은 기업 및 기업가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M:NI의 대니얼 벨커는 "개별 부분은 이미 존재했지만 이런 요소, 즉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웨어러블 기술이 M:NI를 탄 생시키는 데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됐다"라고 말했다.
둘째, 비파괴적 창조는 특정 지역이나 사회경제적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선진 시장이든 피라미드 맨 아래에 있는 시장이든, 전세계 모든 지리적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 생리대, MINI 등은 모두 선진국에서 나왔고 처음에는 선진국을 위해 만 들어졌다. 그에 비해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인도의 생리대 기계는 초기에 피라미드 아래쪽에 있는 시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비파괴 적 창조의 기회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 존재한다. 그 기회는 한 지 역의 사회경제적 피라미드의 모든 층에 있다. 교정용 안경이나 생 리대는 처음에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상위 계층을 위한 것이었지 만, 마이크로파이낸스나 인도의 생리대 기계는 애초부터 하위 계 층을 대상으로 했다. 이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셋째, 비파괴적 창조는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세계 최초의 혁신' 과는 다르다. 세계 최초의 혁신은 비파괴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다. 무루가난담의 기계는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강력한 성 장을 창출했지만 기존의 주요 기업이나 시장을 대체하지 않았다. 그의 제안은 해당 지역에서는 새롭고 비파괴적이었다. 하지만 이 미 시장 참가자들이 생리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개발된 지역에서 그의 기계가 판매됐다면 그들에게는 파괴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무루가난담의 비파괴적 창조는 '지역 최초의 혁신'이다. 이에 반해 <세서미 스트리트>가 개척한 취학 전 아동을 위한 에듀테인먼트 산업은 전 지구에 걸쳐 파괴적 창조를 이뤄낸 '세계 최초 혁신'의 한 예다.
- 오늘날의 파괴 현실에서는 슘페터학파가 말한 기존 시장의 파괴, 즉 증기기관이 내연기관으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과 같은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우리가 '파괴적 창 조'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장 창조'라는 페터의 개념을 따르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 이 공존하며, 기존 시장에서 벌어지는 대체도 고가 시장과 저가 시장에서 모두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포착하고자하는 목적도 있다'
- 파괴적 창조와 비파괴적 창조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성장시키는 창조와 성장의 혁신 스펙트럼에서 정반대에 자리한다. 비파 괴적 창조는 기존 산업 경계 '외부'나 그 '너머'에서 새로운 시장 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며, 파괴적 창조는 기존 산업 경계 '내부 within'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을 뜻한다."
두 가지를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는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이다. 파괴적 창조는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과 관련된 회사와 일자 리를 대신해 등장하는 승자-패자win-lose의 게임이 되거나 승자독 식 winner-takes-most의 경제적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서 새로운 시장 창조에 의한 성장은 기존 시장과 그 안에 있던 기업 및 일자리가 대체되는 것과 같은 산업적·사회적 파괴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런 파괴는 세상이 이 대체에 적응하는 동안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 익이 상충관계 trade-off에 놓이게 한다.
이와 달리 비파괴적 창조는 기존 시장 및 그와 관련된 기업과 일 자리에 영향을 주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실현한다. 승자가 없고 어떤 시장 참가자도 불리해지지 않기 때문에 포지티브섬 성장을 만들어 낸다. 즉 산업과 사회에 파괴와 고통을 발생시키지 않으며, 경제와 사회적 이익 간의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 우리의 연구 결과 비파괴적 창조는 파괴적 창조 및 블루오션 전략과 구분되는 개념임이 드러났다. 그 에 따라 성장에도 다른 영향을 미친다. 파괴적 창조는 기존 산업 경계 안에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 파괴적 성장을 가져오는 반면, 블루오션 전략은 기존 산업의 경계에 걸쳐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 하며 파괴적 성장과 비파괴적 성장의 혼합된 형태를 보인다. 이에 비해 비파괴적 창조는 기존 산업 경계 '외부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며 대부분 비파괴적 성장을 생성한다는 특징이 있다.
파괴적 창조가 혁신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있고 비파괴적 창조가 다른 쪽 끝에 있을 때, 블루오션 전략 은 두 가지의 조합으로 볼 수 있으며 중간에 자리한다. 
- 언론은 기민하고 영리한 스타트업의 파괴적인 움직임이 덜 떨어지고 고루한 기존 기업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 는 기존 기업들이 더 자주 이긴다. 파괴적인 스타트업들의 실패는 무비패스와 같이 아주 유명한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 알려지지 않 는다.
게다가 많은 산업에서 소비자들은 기존 산업의 제품이나 서비 스를 사용하는 데 어느 정도 비용을 투자한 상태다. 따라서 파괴자 가 구매자들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 만약 사 람들이 현재 사용 중인 제품이나 서비스에 상당히 만족한다면, 대 체품을 찾을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더 나은 솔루션이라고 할지라도 판매 전환이 파괴자의 예측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 기존 지붕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나온 태 양열 패널 지붕이 바로 이런 일을 겪었다. 알다시피 태양열 패널은 난방 및 전기 사용에 드는 돈을 절약해줄 뿐 아니라, 환경을 생각 하는 시민이라는 감성적인 만족감도 제공한다. 그러나 기존 지붕 에 대한 투자 비용이 큰 탓에 주택 소유주들 사이에 상당한 관성이 형성돼 있어서 태양열 패널 지붕 산업의 파괴적인 능력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문제는 당신이 탄탄히 자리 잡은 기존 업체와 구매자들의 상당 한 투자 비용과 직접적으로 대립하길 원하느냐다. 그것도 한 가지 방법임은 분명하다. 특정한 시장 조건에서는, 파괴적인 움직임이 여러 차원에서 커다란 혜택을 제공할 때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대서양 항공 여객기가 대표적인 예다. 대서양 여객선보다 속도, 편 의성, 화려함 등 가치의 도약을 제공했다. 이메일(공짜이고 빠르며 세 계 어디라도 즉시 연결되는)과 우편(달팽이처럼 느린)을 비교해보라. 실 제로 많은 유니콘 기업이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파괴없이 혁신 하고 성장할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비파괴적 창조의 기 회도 크게 나타나며, 스타트업이나 기존 기업 모두 이를 간과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 콩트니켈은 프랑스에서 은행 이용이 어려운 이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 해답은 '상자 속 은행 bank in a box'이었다. 신분증과 휴대전화만으로 10분 이내에 설치할 수 있으 며, 소득증명도 필요 없다. 간편하고, 차별이 없으며, 빠르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프랑스 전역에 퍼져 있는 4,000개의 신문판매점 중 한 곳을 방문한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밝은 오렌지색 상자를 받는다. 상자 안에는 국제 은행 계좌번호와 국제적으로 작동하는 마스터카드Mastercard의 직불카드가 들어 있다. 이 모든 것이 20유로로 제공된다. 계좌 관리는 완전히 전자적으로, 즉 인터넷 뱅킹, 온라인 명세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뤄진다. 고객은 매년 50유로의 고정 연회비만 내면 어느 ATM에서나 현금을 인출할 수 있고, 파트너 신 문판매점에서 현금을 입출금하거나 송금하고 송금받을 수 있다. 상자를 받는 순간부터 신용카드와 니켈 계좌를 사용할 수 있다. 이 를 위해 그들이 할 일은 계정을 개설하는 금액을 신문판매점에 내 는 것뿐이다.
-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의 세 가지 경로와 성장의 결과
우리의 연구 결과,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의 세 가지 주요한 방법이 밝혀졌다.
•기존 산업의 문제에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기존 산업의 문제를 재정의하고, 재정의된 문제를 해결한다. 
•산업의 경계 외부에서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활용한다.
- 지난 수십 년 동안 비즈니스와 기업 세계는 다음 세 가지 아이디어 에 사로잡혔다. 첫째, 어떤 사업을 할 수 있을지를 제대로 예상하기 위해서는 그 사업을 자세히 분석해야만 한다.' 둘째, 기술 혁신이야 말로 오늘날은 물론 미래에도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성장을 이 루는 핵심 열쇠다. 셋째, 혁신의 한복판에는 고독하고 스마트하며 배짱도 두둑한 기업가가 있다.
아주 합리적인 얘기다. 그러나 비파괴적 창조를 이뤄내기 위해 지녀야 할 적절한 관점은 아니다. 이 세 가지는 당연히 고려해야 하고, 필요하면 실행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말이 아니 라 마차라고 생각해야 옳다. 일단 말이 있어야 마차도 필요하다.
우리가 찾아낸 바에 따르면, 비파괴적 성장을 만들어내는 혁신가들은 오랫동안 당연시해온 이런 믿음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는 특정한 관점과 심리 상태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이런 관점 덕 분에 기업 리더들은 마음을 열고 비파괴적 기회를 받아들일 수 있 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관점 자체가 혁신가들이 기울인 노력이 성공을 거두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이 관점은 비파괴적 혁신 가들이 말하는 것, 기대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비파괴적 창조의 근간이 되는 창의적 문화를 확립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혁신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프 슘페터가 기업가를 최고의 위 치에 올려놓은 이래, 기업가에 대한 숭배가 계속돼왔다. 슘페터의 세계에서는 기업가의 창의성, 대담성, 본능적 배짱 등이 성장과 혁 신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핵심 동력이다. 슘페터의 표 현을 빌리자면, 기업가는 소중히 보호돼야 할 희소자원이다. 하지 만 이런 신화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기업가 는 일반인과 달리 원래 고독하고, 직관적이며, '창의적인' 사람들 로 여겨지는 경향도 생겨났다. 이런 구분은 슘페터의 사상에서는 의도치 않은 결과겠지만,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을 보는 시야를 좁히고 말았다.
여기에 비파괴적 창조자들이 갖춰야 할 세 번째 관점이 있다.
비파괴적 창조자들은 기업가나 창의적인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 기면서도, 그들을 과대평가하면 그 외 일반인들의 창의성과 기여 를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창의 성과 아이디어의 광범위한 영역이 경시되고 인정받지 못하게 된 다. 실제로는 그것이야말로 현재 산업의 경계를 넘어선 곳에서 완 전히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붙잡아 비파 괴적 창조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도 말이다. 리퀴드페이 퍼는 비서이자 타자기 사용에 불편함을 겪는 소비자인 그레이엄의 아이디어로 시작됐지만, 다니던 직장에서는 그녀의 창의성이 인정 받지 못했다. 물론 수백만 달러 규모의 비파괴적 시장으로 실현되 기까지는 그녀의 아이디어 이상의 것들이 더해졌을 것이다. 하지 만 기업은 창의성의 원천을 좁게 보고 이런 아이디어들을 간과하 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 연구를 완성하고 보니, 비파괴적 신시장을 창조하고 장악한 기업이나 개인들에게는 세 가지 기본적인 구성 요소가 있었다. 그림 7-1에 정리했는데, 첫 번째 구성 요소는 추구할 비파괴적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기회를 감추고 있는 기존 가정들을 드러내고 재구성해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높은 가치와 낮은 비용'의 방법으로 그 기회를 실현하는 데 필요 한 지원 요소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구성 요소들은 대개 실행 단계로 간주될 수 있다.
- 이처럼 전문가들한테서 이런 기운 빠지는 비판이 나오게 돼 있다는 걸 당신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리라고 예상하고 있으 면 실제로 그런 비판을 받더라도 낙담할 가능성이 훨씬 작아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반응에서 가치 있는 교훈을 찾아내 기 위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 당신이 놓친 중요한 문제를 그들이 제기했나?
•그들의 의견을 참고해 기회를 개척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강화할 수 있을까?
• 왜 이 기회가 주목받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는지 당신이 놓친 숨겨진 복잡성을 그들이 밝혀줬나?
비판을 칼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또는 학습,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방법으로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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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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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버려라

경영 2023. 10. 1. 11:41

- 조용함은 사람들의 시간과 집중력을 보호한다.
조용함은 1주일에 40시간만 일하는 것이다.
조용함에 대한 기대는 당연하다.
조용함은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져다준다.
조용함은 줄이는 것이다.
조용함은 한계를 보게 한다.
조용함은 회의를 자주 하지 않는다.
조용함은 비실시간 소통이 먼저고, 실시간 소통은 두 번째다.
조용함은 회사를 오래 지속시키는 관습이다.
조용함은 보다 독립적이고, 덜 상호의존적이다.
조용함은 이익을 가져다준다.
- 생계를 위해 세 개의 저임금 직업을 가진 사람이 긍지를 가지고 일중독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중독에 빠진 사람은 실제적으로 생계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엄청 나게 희생하고 있다고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경영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필요가 없다. 대부분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지루한 이야 기다. 폭발하는 자동차들을 뛰어넘는 거친 추격 장면이 펼쳐지기 보다는, 벽돌을 쌓고 페인트를 칠하는 쪽과 더 닮았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미친 듯이 일하기를 멈춰도 된다. 날마다 즐겁게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은 필요 없다.
- 우리는 비교하지 않는다. 남들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기 원하고, 하기로 결정한 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 는다. 베이스캠프는 쫓아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쫓아가서 잡아 야 할 토끼도 없다. 우리가 만들기 원하고 고객이 구매하기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깊은 만족을 느낄 뿐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제거하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 목표 설정을 반대하는 이런 생각 때문에 베이스캠프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낙오자 취급을 당한다.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별 볼일 없는 회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단지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이익을 최대한으로 내지 못해도 상관없다. 레몬을 짤 때 마지막 한 방울의 레몬즙까지 다 쥐어짤 필요는 없다. 어차피 마지 막에 나온 좁은 맛이 별로다.
우리가 이익을 늘리는 데 관심이 있냐고? 그렇다. 매출을 늘리는 데는? 그렇다. 더 효율적이기를 원하느냐고? 그렇다. 제품을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유용하게 만드는 것은? 원한다. 우리 고객과 직원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원한다. 계속 제품을 수정 하고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상황을 더 좋게 만들기 원하느냐고? 항상 원하는 바다. 하지만 지속적인 목표 추구를 통해 향상을 극대화하기를 원하느 냐고? 그런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베이스캠프에는 목표가 없다. 창업할 때도 없었 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없다. 우리는 그저 매일 우리가 해야 할 일 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사실을 직시해보자. 목표는 가장된 것이다. 거의 모든 목표가, 목표 설정 자체를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것이다. 그 인공적인 숫 자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작용하며, 결국 달성되기도 하고 끝내 폐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거나 폐 기한 후에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때부터 다시 새로운 스 트레스가 시작된다. 1분기 목표를 달성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1년 에는 4분기가 있다. 10년에는 40분기가 있다. 각 분기마다 '기대 치'를 넘어서 생산하고 초과하고 기록을 깨야 한다.
- 당신 자신과 당신의 사업에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가? 열심히 그리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직원들과 함께 행 복하게 일하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업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쉽 지 않다. 그런데 왜 회사에 대한 의무 그리고 월급, 보너스, 자녀의 학자금에 대한 의무에 더해 임의적인 숫자 달성의 의무까지 더 얹 으려고 하는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는 것에는 더 부정적인 측 면이 있다. 목표를 쫓아가는 회사는 숫자를 달성하기 위해 종종 도 덕성, 정직성, 성실성과 관련해 타협의 길로 가게 된다. 일단 목표 보다 뒤처지면 좋은 의도는 밀려나게 된다. '이익을 좀 더 낼 필요가 있다고? 그렇다면 품질에 대해서는 잠시 모른 척해야겠군.'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번 분기에 800,000달러를 더 벌어야 한다 고? 고객들이 환불하는 것을 좀 더 까다롭게 만들어야겠군.'
휴대폰을 해지해본 적이 있는가? 그 일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복 잡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휴대폰 회사가 그것을 아주 어렵 게 만들어놓았다. 그들에게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해지를 어렵게 만들어서 그들이 세운 목표에 더 쉽게 이르고자 한 것이다.
- 단기 계획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매 6주마다 그다음에 할 업무를 결정한다. 그것이 우리가 세우 는 유일한 계획이다. 이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단기 계획을 고수하면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심되는 일이다! 이로 인해 완벽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사라진다. 배의 키를 놓고 수 천 번의 작은 물살에 의해 나아가는 대로 진행하는 것이 몇 번의 커다란 급류를 통해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우 리는 전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장기 계획을 세우면 안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다. 5년 후나 3년 후 또는 1년 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 른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면 할수록, 당신은 잘못된 결정을 내릴지 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더 빨리 전진할 수 있다. 먼 미래 를 예측하지 않을 때 흐릿하게 보이는 것들을 없앨 수 있다.
일을 잘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세워놓은 '계획' 때문에 방향을 바꾸기에도 너무 늦었다면 회사는 크게 걱정할 수밖에 없다. "끝까지 지켜보자!" 어느 한 시점에 좋게 보였기 때문에 세 운 잘못된 계획을 끝까지 실행하는 것은 에너지와 재능을 낭비하 는 비극이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분명히 볼 수 없다. 미래는 통제할 수 없 는 수백만 가지의 변화무쌍한 변수로 가득한 거대한 관념이다. 당 신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정보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기다렸다가 결정한다.

- 만일 한 주 40시간의 업무 시간 동안 원하는 일을 다 끝내지 못 한다면, 더 오래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을 정하는 데 좀 더 신중 해야 한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은 전혀 할 필 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일은 종종 불필요한 선택으로 인해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불필요한 일을 없애면 필요한 일만 남는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 8시간씩 한 주에 5일간 일하는 것이다.
- 회사는 보호하기를 좋아한다.
상표등록과 소송을 통해 브랜드를 보호한다. 규율과 정책과 기 밀 유지 협약을 통해 데이터를 보호한다. 예산안과 재무 담당 이사 와 투자를 통해 재정을 보호한다.
회사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취약하 지만 가장 중요한 직원의 시간과 집중력을 지키는 데는 실패한다.
직원들의 시간과 집중력이 마치 무한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직원의 시간과 집중력은 회사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직원의 시간과 집중력을 보호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직원이 어떤 일에 하루 종일 완전히 집중해서 전념할 수 없다면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다. 부분적으로만 집중하는 것은 사실 집중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 이를테면 베이스캠프에서는 업무 진척 상황에 대한 회의를 하 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과 계획에 대해 잠깐 발표하 고, 또 다음 사람이 발표하는 이런 회의가 어떤 것인지 모두 잘 알 것이다. 이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왜냐고? 모든 직원이 한자리 에 모여서 회의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회의에는 큰 비용이 든다. 8명이 1시간 동안 회의실에 모여 있다면,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이 아니라 8시간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베이스캠프에서는 직원들이 시간이 있을 때, 일일 또는 주간 업무에 대한 업데이트 기능을 사용해서 다른 직원 들이 알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 주에 수십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을 직원에게 제 공할 수 있다. 그리고 회의를 위해서는 '회전'과 '회의 후'의 
-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완전히 괜찮은 일이다. 할 만한 가 치가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더 좋다. 당신에게 하루에 3시간 분량의 할 일만 있다면, 그 일을 한 후에는 멈춰라. 그저 바쁘다거 나 자신에게 생산성이 있다고 느끼기 위해, 남은 하루를 채울 다섯 가지 일을 더 찾으려고 하지 마라. 할 필요가 없는 일은 굳이 만들 지 말자. 남은 시간을 즐긴다면 그 자체로 멋진 일이다.
- 업무 일정을 공유하는 달력은 현대사회의 가장 파괴적인 발명품 중 하나다. 날짜마다 사람들의 일정이 겹겹이 쌓이고, 날짜마다 스케줄이 가득 붙는다. 이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베이스캠프에서는 다른 직원과 일정을 조율해야 할 때 귀찮아 도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서 하지, 자동화된 달력 기능을 통해 쉽게 하지 않는다. 다른 직원과 일정을 조율하려면 당신의 시간과 일정 에 대해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 사람들의 일정이 기록된 달력에서 비어 있는 날짜를 찾아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깃발을 꽂아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베이스캠프에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달력 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본 거의 모든 회사에서 일정 공유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 이의 하루가 어떤지 를 들여다볼 수 있다. 모두의 달력은 완전히 공개됐을 뿐 아니라, 누구라도 원하면 거기에 자신의 일정을 끼워 넣을 수 있게 최적화 돼 있다. 테트리스 게임에 등장하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막대 로 일정 공유 달력에 30분의 회의 시간을 갖겠다고 표시하기만 하 면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업무 시간을 조각내도록 권장되고 있 는 것이다.
- 최근에 자신의 일정을 기록한 달력을 살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입력한 일정은 몇 가지인가? 또 다른 이들이 거기에 추가한 일정은 몇 가지인가?
타인의 달력에 별다른 수고 없이 자신의 일정을 더할 수 있게 했 을 때, 사람들의 시간이 얼마나 조각나게 되는지를 안다면 깜짝 놀 랄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모든 사람의 빈 시간을 쉽게 확 인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섯 명쯤 회의에 더 초대하기는 너무나 쉽다. 이로 인해 5인 이상이 참여하는 회의가 급증하게 된다.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주 골치 아픈 일이 돼야 한다. 많 은 사람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극도로 복잡하고 힘들어서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시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 회의는 최종 선택지가 돼야 한다. 큰 회의라면 더더욱 그렇다.
- 당신이 얼마나 빨리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 있는지와 그가 얼마나 빨리 당신에게 회신할 수 있는지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중 요한 것은 소통의 내용이다. 물론 긴급한 일이라면 빠른 응답이 필 요하다. 지난주에 보내줬던 내용을 다시 보내달라고? 기다려라. 당 신 스스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달라고? 기다려 라. 3일 후에 고객이 몇 시에 방문하는지 알려달라고? 기다려라.
- 거의 모든 일이 즉각 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또 그래야 한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즉각적인 회신보다 나중에 회신하는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급하지 않은 질문에 대해 3시간 후에 회신이 와도 화내지 않고, 이메일이나 채팅, 문자메시지를 바로 확인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방해 없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할 것을 권장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모든 직원이 알아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실시간으로 알 필요는 더더욱 없다! 만약 그것이 중요하다면 당신은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매일매일 회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은 일상적인 내용이다.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일에 대한 것이지 뉴스거리가 아니다. 이제는 일터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소한 내용을 뉴스 속보 자막처럼 다루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베이스캠프에서는 매월 '핵심 내용'을 정 리한 글을 쓴다. 그동안 팀이 해온 일의 진척 상황에 대해 팀의 리 더가 정리한 내용을 회사 전체에 공유하는 것이다. 모든 세부사항 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핵심 내용으로 압축된다. 중요하지 않은 수십 가지 세부사항이 아닌 공동 작업을 위해 모두가 알 필요가 있는 정보만 담는다.
- 오늘날 많은 회사에서 사람들은 사내의 모든 세세한 일에 대해 곧 깜짝 퀴즈라도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실과 숫자, 이름, 이벤트를 다 알려고 한다. 이것은 지적 능력의 낭비이며, 더 나아가 터무니없는 집중력의 낭비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뿐이다. 만약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일 이 있다면 우리가 반드시 알려줄 것을 약속한다. 만약 당신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면 알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것은 문제없다. 우리는 단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놓칠까 봐 광적으로 노심초사하기보다 그런 정보는 몰라도 되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로 알기를 원한다면, 상사가 해 야 할 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간단하다. 그냥 물어보면 된다! "우 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애매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알맹이 없는 질문이 아니라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 그 문제가 도대체 뭔가?" 또는 "일하면서 혹시 걱정되는 일이 있는 가?" 또는 "최근에 한 일 중에 자네가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 는가?"처럼 좀 더 직접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어 떻게 도왔어야 제인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또는 "웹사이트를 다 시 디자인하는 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자네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는가?"처럼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 진지한 태도로 구제적인 질문을 던질 때만 사람들은 진짜 대답 을 해도 된다고 느낀다. 그런 태도로 질문한 후에도 대답을 듣기 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마 처음 질문했을 때는 전체 이야기의 20% 정도의 대답을 들을 것이고, 좀 더 지나면 50%, 당신이 정말 로 믿을 만한 상사라고 인정받으면 그때 80% 정도의 이야기를 들 을 것이다. 전체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려라.
사실 조직에서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정말로 일어나고 있 는 일에 대해 점점 모르게 된다.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 르지만, 최고경영자는 대개 가장 나중에 실상을 알게 된다. 더 큰 권력을 가질수록 더 모르게 되는 것이다.
- 하지 않던 일을 새로 시작하니 앞으로 많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선언한다면 당신이 이 일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전에 결코 해보지 않던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 것인지 평가했던 내용은 일이 진행될수록 잘못됐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최악은 새로운 일을 할 직원들을 채용한 후, 그들이 쉽고도 빠르게 결과를 만들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직원들을 실패하게 만든다.
최근에 우리도 경험했다. 베이스캠프는 처음으로 사업개발을 전 담할 직원을 채용했다. 그러고는 그들이 전화를 몇 통 거는 것만 으로 신속히 새로운 고객을 계속적으로 유치할 수 있을 거라고 생 각했다. 전에는 이 업무만을 담당하는 직원을 따로 둔 적이 없었 고 이번 채용을 통해 손쉽게 많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땅속에 있는 황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묻혀 있었다. 사실 아직도 파는 중이다.
- 매출이 즉시 상승곡선을 그릴 거라는 생각은 이제껏 해보지 않 은 일이기 때문에 갖게 된 환상일 뿐이었다. 때로는 생각했던 것처 럼 일이 쉽게 진행되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유료 회원으로의 전환이나 사업개발, 매출 신장 같은 일은 작은 성과를 내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고된 일이다. 작은 결과들이 쌓여서 결국 큰 성과를 낳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매는 낮은 가지가 아니라 나무 꼭대기에 달려 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직원들에게 낮은 곳에 달린 열매니까 쉽게 따 오라는 말은 하지 마라. 당신이 해본 적 없는 일을 존중하라. 타 인의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노력 없이 얻 어지는 결과는 없다. 만약 탄력이 붙거나 그동안의 경험이 효과를 보인다면 어려운 일이 쉽게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에 해보지 않던 일이 쉬울 거라는 추측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런 생각은 대개 일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 우리는 수수께끼처럼 인터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칠판에 문제 를 내고 푸는 종류의 테스트도 진행하지 않는다. 즉석에서 어떤 상 황에 대해 가상의 대답을 하게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하루 종일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지 여 부를 확인한다. 그래서 실제로 할 일을 주고 그 일을 하는 데 필요 한 적당한 시간을 준다. 그들이 채용되면 실제로 하게 될 그런 일 을 준다.
-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와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 면 가상의 인물을 채용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누군가가 주의 깊 고 교묘하게 자신의 이력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때 거기에 속 아 넘어가기는 너무나 쉽다. 훌륭한 이력, 좋은 학교, 유명한 전직 장들의 목록,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 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회사는 늘 적합하지 않은 직원을 채용하게 된다. 지원자의 현재 능력이 아닌 그가 전에 가졌던 자격을 기준으 로 직원을 뽑기 때문이다.
- 당신이 직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의 영광스러운 과거 이력이 아 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와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면, 더 많은 구직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면 학창 시절의 어느 한 시기에 학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 던 사람을 점수로 걸러내지 않을 수 있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을 학력을 이유로 불합격시키지 않게 된다. '몇 년 이상의 경력'이라 는 추상적인 조건 때문에, 일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고위급 직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탁월한 성과를 갈망하는 훌륭한 사람들은 종종 생각지 않은 곳 에 있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또 그가 실제로 한 일이 어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출 때만 그런 직원을 알아볼 수 있다.
- 인재를 두고 싸우는 것은 의미 없다. 인재는 한정된 것도 아니 고, 너무 희귀해서 당신 회사에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그런 존재도 아니다. 어떤 인재가 모든 회사에서 인재인 경우는 없다. 한 회사에서 슈퍼스타라면 다른 회사에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갖 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재 영입을 위한 전쟁에 뛰어들지 마라.
사실 인재 확보 전쟁에 대한 모든 비유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 다. 인재를 강탈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존재로 생각해보라. 그렇게 하고자 하는 회 사에게는 지구촌 곳곳에 인재가 될 씨앗들이 널려 있다.
-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업계의 급여 수준을 기준으로 삼 는다. 우리 회사에는 거기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지만 그 렇다. 샌프란시스코는 분명 이 업계에서 최고의 보수를 주는 곳이 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이 어디에 사는지를 불문하고 우리는 업계 최고의 보수와 같은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한다. 어디에서 일하는 가에 따라 그의 업무 결과물 수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업무 결과물에 대해 보수를 지불할 뿐이다. 보스턴에 살든 바르셀 로나에 살든 방글라데시에 살든 그로 인해 업무 결과물의 수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 처음부터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의 회사들이 지급하는 최고 수준 의 급여를 주지는 않았다. 비슷한 모델을 채택했지만 한동안은 시 카고에 있는 회사들의 급여 수준을 따랐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 리가 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주는 도시에 수준을 맞출 수 있는 가, 또는 업계 상위 10%에 해당하는 급여를 줄 수 있는가가 아니 라, 직급에 따라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에게 같은 급여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직원은 살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생활비가 덜 드는 지역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급여가 깎이는 일은 없다. 우리는 원격으로 일하기를 권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 여러 곳으로 이주해서 살지만 여전히 베이스캠프를 위해 일하는 많은 직원들이 있다.
우리 회사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보너스 역시 없다. 그렇기 때문 에 우리의 급여 체계는 다른 회사들이 지급하는 급여와 보너스를 합한 금액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도 여러 해 전에는 보너스를 별 도로 지급했다. 하지만 보너스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급여로 인식된다. 그래 서 보너스가 줄면 사람들은 강등된 것처럼 느낀다.
- 우리는 직책과 급여와 관계없이 모든 직원이 '사무실을 벗어나서' 누리도록 다음과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
1년 이상 근무한 모든 직원에게 매년 휴가와 함께 비용을 지 원한다. 실제로 항공비, 숙박비를 포함해 여행에 든 모든 경 비를 개인별 또는 가족별로 최대 5,000달러까지 지원한다. 여름에는 주 3일만 일한다. 5월부터 9월까지 우리는 일주일 에 32시간만 일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직원들은 금요일에 쉴 수도 있고 월요일에 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매주 3일 간의 주말 연휴를 여름 내내 누릴 수 있다.
매 3년마다 30일간의 안식월을 제공한다. 직원들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 을 배우기 위해 깊이 있는 학습을 할 수도 있으며, 히말라야 산맥으로 등반을 갈 수도 있다.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엇이든 계속 배울 수 있도록 연간 1,000달러의 교육비를 지급한다. 이것은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우라 고 지급하는 교육비가 아니다. 일과 관련 없이 무엇이라도 배울 수 있다. 반조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가? 요리를 배우고 싶은가? 우리가 비용을 지급한다. 어떤 교육도 베이 스캠프에서 해야 할 일과 관계가 없다. 직원이 전부터 늘 해 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도록 용기를 주고, 실제로 할 수 있 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연간 2,000달러의 기부금을 지원한다. 직원이 원하는 기관에 2,000달러 한도로 기부하면 회사도 2,000달러 한도에서 같은 금액을 기부한다.
매월 지역사회 CSA(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 북미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역 생산 농산품 연결 시스템. 후원자가 월 정액을 내면 생산자가 매주 또는 격주로 배달해준다-역주)의 후 원 지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다.
월 1회, 사무실이 아닌 실제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월 100달러의 체력단련을 위한 금액을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의 피트니스센터 회원권, 요가 교실 등록비, 운동화 구입비, 대회 참가비 또는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제공하는 어떤 복지혜택도 직원들을 사무실에 잡아두려 는 목적이 없다. 어떤 혜택도 직원들이 집보다 회사에 남아 있기를 좋아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어떤 혜택도 일을 삶보다 우선순위에 두게 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시간에 컴퓨터를 끄고, 원하는 것을 배우고, 요리하고, 운동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 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사용자 탓을 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문 제는 사용자에게 있어. 그들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 고, 또 잘못 사용하고 있어. 사용 방법을 이렇게 바꿔야 해." 하지 만 소프트웨어의 특정 디자인은 사용자가 특정 행동을 하게끔 유 도한다. 사용자가 어떤 디자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 은 디자인이 잘못된 것이다.
의사소통에 있어서 채팅은 일정 부분에서는 훌륭한 도구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 업무에 대해 발표할 때 우리는 항상 먼저 문서로 작성한다. 주의 깊게 고안해놓은 여러 장으로 된 문서 양식에 완성된 생각을 적는 다. 그림으로 설명이 가능한 내용은 그림을 사용한다. 그런 다음 베이스캠프 시스템에 올린다. 그러면 그 일과 관련된 모든 직원이 신중히 검토해야 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거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 반응을 원하지 않는다. 즉흥적인 첫인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동 반사 반응을 원하지 않는다. 사려 깊은 검토 를 원한다. 문서를 읽고 또 읽어라. 두 번 또는 필요하면 세 번도 읽어라. 충분히 생각해보라. 그 아이디어를 발표한 직원이 준비했 듯이 시간을 들여서 살펴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라.
그렇게 하면 아이디어에 대해 숙고할 수 있게 된다.
- 베이스캠프에서 직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등록하면, 피드백이 홍수처럼 밀려들기 전 처음 며칠간은 침묵이 흐른다. 그것은 문제 가 되지 않으며 예상되는 상황이다. 보통의 발표장에서 발표 후 흐 르는 침묵을 한번 생각해보라. 어색한 상황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발표자가 직접 발표하기보다 문서로 발표하는 것을 선호 한다. 우리는 침묵과 검토의 시간이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 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를 원한다.
이런 방식으로 발표를 진행하면 효과적인 발표 무대를 만들 수 있다. 발표자는 무대에서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방해 할 수 없다. 발표자가 중간에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발표의 흐름 이 끊어질 이유도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발표의 전체 내용이 공유될 수 있다. 발표자에게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무대가 있 다. 그리고 발표에 대해 의견을 말할 준비가 됐을 때 이제 그 무대 는 당신의 것이 된다.
가끔 이 방법을 시도해보라. 발표를 위해 모이지 말고 문서로 작성하라. 단순 반응을 보이는 대신 신중히 검토하라.
- 어떤 것을 애써 문화로 만들고자 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당신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열망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당신이 하는 행동이다. 그러니 더 나은 행동을 하라.
- 처음부터 조용히 시작하면 조용함은 습관이 된다. 처음부터 바 쁘게 시작하면 그것은 늘 당신의 모습이 된다. 당신이 10년, 20년, 30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 일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원하는지 자신 에게 계속 물어봐야 한다. 만약 지금처럼 일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중'이 아니라 지금 바꿔야 한다.
나중은 변명이 사는 곳이다. 좋은 의도는 나중 때문에 사라진다. 나중은 건강을 상하게 하고,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 나중은 말한 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야근하는 거야." 야근 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
-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실행해봅시다." 이 말은 베이스캠프에서 특정 제품 또는 전략에 대한 열띤 논쟁이 있고 난 후에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회사들은 일을 시작할 때, 모든 직원을 설득해서 전원 의견 일치 를 이끌어내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럴 때 얻는 것 은 대개 은밀한 분노를 숨긴 채 하는 마지못한 수락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모든 사람에게 의견을 말할 기회를 준 후, 결 정은 최종 결정권자가 하도록 해야 한다. 들어보고 생각해보고 심 사숙고한 후 결정하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다.
- 조용한 회사는 이렇게 운영된다. 모든 직원이 자신의 생각을 발 표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고 발언권을 갖는다. 하지만 최종 결 정은 다른 이에게 맡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그 의견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을 알면, 자신의 의견대로 결정되지 않아도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실행해보는 것에 있어서 특히 중 요한 것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최후 결정에 대해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하고 그냥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설명한 뒤에 실행하는 것이다.
- 새로운 접근이나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 지만 그러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타이밍은 나쁠 수 있다. 늘 급격한 변화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두면, 혼란과 추측이 따라온다. 자신감을 갖고 그 문을 닫아라. 기차가 역을 떠난 후에 더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가 꼭 더 괜찮은 것은 아 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 아이디어가 정말로 좋은 것이라면 다음번에 시도하면 된다.
너무 늦게 떠오른 새 아이디어는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 만약 당신이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 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은 그리 흔치 않음을 알 것이다. 확실하고 분명한 긴급 상황, 또는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 또는 대책 을 세우지 못하면 평생 평판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그런 상황 말 이다. 그런 상황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은 흔 하지 않다. 그런 특수한 상황일 때 갖게 되는 두려움이 매일의 일 상 업무를 몰아가는 추진력이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는 이렇게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낼 것을 요구 하기보다는 “이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그 렇게 대화로 초대한다. 전략을 논의하고, 협상을 진행하며, 불필요 한 것들은 잘라내서 전반적으로 단순하게 접근한다. 심지어는 그 일이 전혀 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질문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지만, 명령은 직원들을 지치게 할 뿐이다.
- 시간이란 관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그저 시간이다. 당신이 시간을 가지고 아무리 씨름한다고 해도 시간은 그저 똑같은 속도로 흘러갈 뿐이다. 어떤 일에 시간을 쓸 것인가를 정하 는 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관리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분명히 말했다. "애 초에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보다 쓸데없는 짓은 없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필요 없는 일이나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
- 베이스캠프에서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3명으로 구성된 팀이 진행한다. 3은 우리에게 마법의 숫자다. 3인으로 구성된 한 팀은 일반적으로 두 명의 프로그래머와 한 명의 디자이너로 이뤄진다. 그리고 만약 3인이 아닐 경우에는 4인이나 5인이 아닌, 1인이나 2 인으로 팀을 구성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하 는 대신 3인으로 이뤄진 팀이 그것을 끝낼 수 있을 때까지 문제를 쪼갠다.
- 3이 어떤 숫자이기에 그럴까? 3은 세 개의 면을 가진 쐐기와 같고, 쐐기처럼 작동한다. 3에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있다. 3은 홀수 이기 때문에 서로 묶이지 않는다. 3은 확실한 흔적을 남길 만큼 강하지만, 잘 깨지지 않는 것은 깨지 못할 만큼 약하기도 하다. 큰 팀 은 가볍게 다뤄야 할 일에도 너무 많은 인력을 투입하기 때문에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4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 관리를 위한 5번째 사람이 필요한 상 황이 되는 것이고, 5의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 팀에 6인이 나 7인 또는 8인이 있으면 불가피하게 일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 진다. 주어진 시간과 팀원의 수만큼 할당되면서 일이 확대되는 것 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일을 함께하면 단기간에 끝낼 작은 프로젝 트가 순식간에 크고 오래 걸리는 것으로 바뀐다.
- 작은 팀으로도 큰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작은 업무를 큰 팀이 하 게 되면 완전히 골치 아픈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필요 한 업무는 작은 것들이다. 가끔씩 큰 작업을 하는 것은 좋지만, 대 부분의 제품 개선은 작은 업무들로 이뤄진다. 큰 팀은 그러한 작은 업무의 초석 위에서 큰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3은 당신을 정직하게 한다. 3은 당신의 야망을 옳은 방향으로만 강화한다. 3은 당신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 한 특징으로, 3은 의사소통에서 생기는 오류를 줄이고 협력을 증 진시킨다. 3인이 함께할 때는 다른 누가 한 말을 언급할 필요 없이 서로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3인의 일정을 맞추는 것 이 4인 이상에서 일정을 조율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 조용한 회사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누구인지, 누구를 위한 서비 스를 하고 싶은지, 누구를 거절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 이다. 무엇을 최적화해야 할지 아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쪽만 옳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를 선택하지 않거나 선택을 망설이는 것이야말로 확실히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 베이스캠프는 창업했을 때부터 미래에 어떻게 제품을 개선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늘 고객이 오늘 구매하고 사 용할 수 있는 제품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기를 원하지, 미래에 존재 할지도 모르는 상상의 버전에 대한 평가는 원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결코 제품의 로드맵을 그리지 않는다. 이것 은 우리가 연기 자욱한 방 안에 보여주기를 원치 않는 비밀스러운 무엇인가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 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1년 후에 어떤 것을 만들지 알지 못한 다. 그러니 왜 우리가 아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가?
- 궁극적으로 창업하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 공연이 오랫 동안 계속되게 하는 일은 처음 무대에 서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창업 첫째 날에는 세상의 모든 스타트업이 영업 중이다. 하지만 1,000일째 되는 날에는 아주 일부의 스타트업만 여전히 영업을 계 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힘든 시간이 다 끝 났다고 생각하다가 다가오는 더 어려운 일들에 쉽게 지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라.

-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하루에 4.5시간만 일하고도 <종의 기원>을 포함해 19권의 책을 집필했다.
- 4권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 (Atul Gawande)는 중요한 업무가 이메일과 회의 때문에 묻혀버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중 25%는 일정을 잡지 않는다.
-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 (Isabel Allende)에게는 두 개의 사무실이 있다. 하나는 인터넷도 전화도 없는 글쓰기만을 위한 방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한 방이다.
- 퓰리처 수상 작가인 콜슨 화이트헤드(Colson Whitehead)는 하루에 5시간 동안만 글을 쓴다.
그리고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비디오게임을 하고 요리를 하기 위해 1년간 휴식을 갖는다.
- 슬로푸드 운동의 선구자인 요리사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산책을 하거나 불을 피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연구와 일을 하는 데 있어 장기적인 관점을 가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교제하는 일 외에도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을 가지라고 권장했다.
- 자신의 이름으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를 설립한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직원들이 오후 5시 30분이 지나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근무시간이 끝난 후에 보내는 이메일이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텔레비전 프로듀서이자 각본가인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는 다수의 황금시간대 방송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지만, 저녁 7시 이후와 주말에는 전화를 받지 않고 이메일 회신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방침을 지킨다.
- 아웃도어 제품인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르(Yvon Chouinard)는 1년 중 일정 기간을 와이오밍에서 등산과 낚시를 하며 보낸다. 그리고 사무실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들러서 점검한다.
-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조용히 5시간 동안 글을 쓴 후에 꼭 3시간 동안 산책하는 규칙을 엄격히 지켰다.
- 시인이며 시민운동가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u)는 소박한 호텔 방에서 혼자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오후 2시 이전에 집필을 마치고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기 전까지 충분히 쉰다.
-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밤 9시에 잠자리에 든다.
-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는 여름 동안 알프스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교향곡을 작곡했다. 일한 후에는 몇 시간 동안 산책을 했다.
- 암흑물질과 은하 형성에 대한 획기적 발견을 한 천체물리학자 샌드라 파버 (Sandra Faber)는 저녁 시간과 주말에 가족에게 집중하는 일상이 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프랑스의 지식인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매일 오후에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4시간의 휴식을 가졌다.
- 극작가 토니 쿠슈너(Tony Kushner)는 노란 리갈패드에 만년필로 쓴다. 그리고 잉크가 떨어지면 쓰기를 멈춘다.
- 2018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의 마라톤 선수 가와우치 유키는 하루에 한 번만 연습한다. 그는 정규직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여전히 명상을 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정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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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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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투자처로 주목받는 것은 우주 인터넷, 우주 빅데이터, 우주여행, 행성 탐사 등 4가지 분야다.
우주 인터넷은 수백에서 수천 기의 인공위성을 발사해 지구 전역 에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향후 미개척지라도 안테나만 두면 인터넷 환경이 만들어진다. 수천 기의 인공위성을 생산하면 대량생 산 효과가 있어 제작비가 크게 준다. 지상에 설치하는 네트워크가 더 는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
우주 빅데이터는 인공위성이 수집한 정보를 활용해 지상에서 수집한 정보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완성도 높은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이나 정부는 기존의 항공 사진과 기상 관측을 뛰어넘는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전 세계에 퍼진 광산이나 농지 등의 자산을 감시할 수 있다. 우주 빅데이터를 통해 자원의 소재지를 밝혀내는 것이 일반화되고 채굴권 같은 과거 의 기득권이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있다.
우주여행은 인간을 우주로 운송하는 서비스다. 5~10명이 고도 100킬로미터 정도의 우주를 여행하는 상품을 기획 중인 기업이 이미 있다. 우주여행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안전하게 우주로 이 동하는 수단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 기술이 이동 수단의 개념을 완전 히바꿀 수 있다.
- 행성 탐사는 새로운 물질의 발견, 새로운 환경의 제공, 행성 이주 등 향후 우주 개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응용 가능성이 커질 분야다. 어떤 가치가 창출될지 많은 기대가 된다.
4가지 분야 외에 우주 공장이나 우주를 이용한 화학물질 생성을 비롯해 엔터테인먼트의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우주 개발 기업인 스페이스XspaceX의 CEO 일론 머스크on Musk는 로켓 재이 용에 도전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로켓 발사 비용이 대폭 낮아진 다. 그는 화성 유인 탐사 계획도 차곡차곡 진행 중이다.
우주에는 미지의 영역이 많으므로 위험도가 높지만 그만큼 가능 성이 무한하다. 

- 만일 고정 가격 매입제"가 없어지면 재생에너지 사업은 단순히 전 력을 판매하던 모델에서 다양한 사업 형태로 바뀐다. 수요지에 설치 할 수 있는 소규모 태양광발전소는 자가 소비를 지향하게 되고, 지역 에 분산된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 바이오매스발전소" 는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 지향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축전지 같은 에너지 저장소의 가격 이 낮아지면 출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지산지소 모델의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현지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으려 해도 수급이 불안정한 문제가 있어 쉽지 않았다.
- 자가 소비와 에너지 지산지소가 확산되면 멀리서부터 전기를 실 어 나르는 송전선의 가동률이 낮아진다. 그 영향으로 송전선 유지비 에 관한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되고, 경우에 따라 전기 요금의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수요자의 부담이 늘어나거나 추가 투자가 이루 어지지 않을 때는 송전선의 유지가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먼 곳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비용이 상승하면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산업은 입지 전략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에 섞인 불순 물을 걸러내는 정련 산업은 전기세가 높은 지역에서는 존속할 수 없고 브라질처럼 저비용 수력발전 설비가 구축된 지역에 집약되기 마련인데 다른 산업도 이처럼 재편될 수 있다.
국내외에서 송전 인프라의 유지가 문제가 된 사례는 이미 가시화 되고 있다. 주택 태양광발전 시스템을 보급 중인 미국에서는 수년 전 부터 송배전망 유지의 위기가 지적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네트 에너 지미터링net energy metering 제도 덕분에 많은 지역에 주택 태양광발전 설 비가 보급돼 있다. 이는 소비자가 신재생 발전 설비로 전력을 직접 생산 및 소비하고 남은 전기를 전력 회사에 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런데 전력 회사는 입장에서는 직접 전기를 생산하게 된 소비자가 늘어 전력 회사의 전기가 적게 사용되면 더 이상 전기 요금을 통해 송배전망을 관리하는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 송배전망의 관리라는 관점에서 본 이 상황을 데스 스파이럴death spiral 이라고 한다. 만일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전력 회사는 송배전망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태 양광 설비를 설치하지 못하는 수요자는 여전히 존재할 테고 사회 전 체적으로도 송배전망이 여전히 필요하다. 따라서 주택 태양광 설비 와송전 인프라를 어떻게 양립시킬지가 제도 설계의 관건이 된다.
일본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다. 고정 가격 매입제를 바탕으로 도입된 재생에너지는 매입 기간이 종료되는 20년 뒤에는 감가상각이 끝나므로 일부 시설만 손을 보면 연료비를 전혀 들이지 않고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에너지 지산지소를 목표로 인근 수요자 에게 전기를 팔고 싶을 때는 전국 어느 지역으로든 고정적인 운송료로 전력회사의 송배전망을 이용해 전기를 보낼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력 회사가 판매하는 전기 요금과 차이가 없다.
에너지 지산지소를 추진하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가까운 곳에 전기를 보낼 때는 운송료를 할인해야 한다는 수요지 근접 할인'을 주 장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할인 제도가 도입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가까운 지역의 운송료를 할인해주면 그만큼 먼 거리에 보내는 운송 료를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펴본 미국과 일본의 사례에는 전제가 있다. 자가 소비와 에너지 지산지소가 이루어진다 해도 '송전선은 사회 인프라로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전제다. 그러나 앞으로 축전지 같은 에너지 저장소 비용이 낮아지면, 전력 회사의 송배전망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완전 자립형 자가 소비 모델이나 독립적인 전원을 사용한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전기 사용자가 전력 회사의 송배 전망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현실화될 경우, 더는 전기 요금을 통해 송 배전망의 유지 비용을 확보할 수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 진정한 의미의 데스 스파이럴이 시작돼 전국의 송전 인프라는 엄청난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 피해야 하는 리스크 시나리오는 이것이다. 세계가 전기차로의 전 환을 서두른다. 일본도 이를 따라야 하지만 이미 수소에 공적 자금을 투입한 이상 중단할 수 없어 계속 자금을 투입한다. 그러다 최종 단 계에서 포기하게 돼 공적 자금도 수소 관련 연구 개발도 물거품이 되 고 결과적으로 일본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약해진다.
리니어신칸센과 수소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신칸센을 처 음 만들 때도 무모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가솔린 자동차가 등장했 을 때도 다들 위험하다고 했다"라고 하지만, 과거와 지금과 미래는 다르다. 세계의 상황과 기업이 놓인 상황을 제대로 알고, 계속 진행 해도 될지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비단 리니어신칸센과 수소차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 기업이 물과 관련한 리스크에 대처해야 하는 이유는 비즈니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리스크에 대응을 게을리했다가는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해 안정적인 투자자가 되어줄 ESG 투자자들로 부터 낮은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다.
기후 변화와 함께 리스크에 관한 정보 공개 요청이 점점 거세지 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비영리기관인 탄소정보공개프로젝 트(Carbon Disclosure Project, 이하 'CDP)는 2015년부터 물과 관련한 기 업의 활동을 조사, 평가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업이 활동 전반에 걸쳐 물에 대한 리스크를 파악해 충분한 대책을 강구 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얻기 어렵다. 운용 자산 총액이 87조 달러에 달하는 650명 이상의 투자자가 CDP를 지원 중이며, CDP의 평가 결과는 투자판단에 이용되고 있다.

- 업이 ESG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이유 는 ESG 평가를 통해 투자 대상을 결정하는 ESG 투자 때문이다. ESG 설명회를 주최한 후지쯔의 IR 담당자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서는 장기적으로 투자해주는 안정적인 주주의 확보가 불가결하다. ESG 정보를 적극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안정적인 투자를 받을 수 없 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ESG가 기업의 자금 조달을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투자자가 기업의 ESG를 평가하고 경우에 따라 투자를 철회하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 지배 구조 면에서는 기업의 고문 제도에 대해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기업의 고문 제도는 종신 고용을 전제로 한 인사 제 도의 종착점이자, 일본적 경영의 상징이다. 그러나 해외 투자자의 눈 에는 별다른 기여가 없는 사람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처럼 비칠 뿐이 다. 이런 해외 투자자의 뜻에 따라 2017년 시세이도生와 J프런트 리테일링JFR, 닛신보홀딩스가 고문 제도를 폐지했다.
2018년 가고메, 이토추상사, 파나소닉 Panasonic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한편 기업의 고문 제도는 경영진이 조언을 얻을 수 있고, 업계 및 재계 활동을 통해 기업에 이익을 주는 장점이 있다. 일본 기업은 오 래전부터 직원과 거래처,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경영을 실천해왔다. 만일 이런 장점이 기업 가치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투 자자에게 ESG 정보와 함께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 지적 재산의 경계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허물어지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업무의 수주와 발주가 쉽기 때문에 곳곳 에서 아웃소싱이 벌어진다. 이미 많은 일이 아웃소싱으로 바뀌었다. 단순 작업은 물론 고도의 지적 노동마저 맡기는 기업도 있다. 지역 간 경계 또한 외국과의 가격 격차를 줄이기 위해 생산과 개발의 거점 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면서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사람이 유연성을 발휘하는 고객 응대 업무도 AI가 대체할 것이라 는 예측이 많다. 안내 데스크 서비스와 전화 마케팅이 이에 해당한 다.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경리나 각종 심사, 정해진 사양을 바탕으 로 프로그램을 짜는 프로그래머도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 미래의 인력 활용에는 이런 시대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 어, 베테랑 직원에게 프리랜서에 버금가는 자유를 보장하고 오랫동 안 맡아온 업무를 처리하게 해서 활동의 폭을 넓혀준다. 베테랑 직원 의 능력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분야는 신사업의 창출이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 해온 업무를 기반으로 하는 신사업이라 면 베테랑 직원의 경험이 잘 녹아들 수 있다. 이때 외부로부터 아이 디어와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직원이 회사의 외부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없애 산학 협동으로 서로의 기술을 도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할 수 있다. 이로써 자사 직원은 외부에서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고 기업은 외부에서 우수 인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신사업 창출과 관련해 기업이 직원의 잠재된 지식과 기술을 표면 화하려면, 직원을 자신 있는 분야에 종사하게 하고 평소의 업무와 관 계가 없더라도 회사 외부에서 잘하는 일을 참고해서 팀을 구성해야 한다. 팀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멤버끼리 가치관을 공유하고 사업의 미션을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사업 개발은 AI와 IT를 빼고서는 말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AI와 IT를 잘 다루는 인력을 확충해야 하지만, 그런 인 력은 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개방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AI와 IT를 이용할 때는 베테랑 직원의 노하우 중에 미래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것 을 가려내 AI와 IT에 이식할 필요가 있다. 만일 베테랑 직원에게 마케 팅 경험이 풍부하다면 그 경험을 이식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자.

- 장수 기업이 기술을 잃어가다
'2007년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일인가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가 60세를 넘어 정년퇴직할 나이가 된 것이 2007년 즈음이었다. 당시 이 세대의 숙련된 기술자가 대거 퇴직함으로써 기업의 비즈니스에 큰 지장을 줄 것이 우려됐던 것이 바로 2007년 문제다.
든든한 숙련 기술자를 잃어 기술과 기능이 이어지지 못하고 기업 의 강점이 사라지는 사태는 심각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취득한 기술 과 기능, 강점과 요령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는 일은 1~2년으로 부 족하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퇴직자를 재고 용해 숙련 기술자가 계속 근무하도록 하는 이른바 '계승 연장'이 시행 되고 있다.
그러다 단카이 세대가 65세를 넘는 2012년에 '2012년 문제가 다 시 부각됐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단카이 세대가 70세를 넘기 시작한 지금은 같은 문제를 또다시 지적하는 게 민망해 서인지 사회적으로 '사업 계승 문제'라고 뭉뚱그려 언급되고 있다.
- 직원의 평균 연령이 상승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매출과 이익이 늘어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직원이 만족스럽게 일하는지, 정년이 연장되면 60세가 넘은 직원이 활약하거나 회사에 공헌할 수 있는지, 젊은 직원이 고령의 직원에게 자극을 받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젊은 직원과 고령의 직원이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등이다.
고령화 기업이 직면한 큰 과제 중 하나가 젊은 직원의 승진이 가 로막히는 사태다. 기업은 정년이 연장된 직원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 기 때문에 승진 연령을 늦추게 된다. 경영자측에서는 고령의 직원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 기능을 살려 기업의 강점을 유지하는 조치이 지만, 젊은 직원 입장에서는 정년의 연장이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왔 다고 여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고령의 직원과 젊은 직원 간에 거리 감이 생기고 사내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고령의 직원에게 재교육이 필요한 사례가 적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기업을 둘러싼 환경과 사업 내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최신 기술에 대응하는 능력을 교육이나 부서 배치를 통해 정비하는 것은 기업에 큰 과제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 BMW는 50세 이상 직원 수가 2010년에 20 퍼센트 정도였으나 2020년에는 40퍼센트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자동차업체 중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BMW는 고령 의 직원이 일하기 쉬운 작업 환경을 정비하는 등 국제 경쟁력을 높이 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일본의 제약 회사 모리시타진단은 2017년에 '아재도 바뀌고 일본도 바뀐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신규 채용 광고로 화제를 모았다. 성별을 불문하고 40~50대 임원 후보를 뽑겠다는 이 광고 덕분에 직 원 수가 290명인 이 회사에 2천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여기에 는 인력 부족에 대한 고마무라 준이치村사장의 강한 위기감이 있 었다. 40~50대 임원 후보에게 기대하는 업무 중에는 대학 졸업생을 비롯한 신입 직원의 교육이 포함돼 있었다.
52세에 미쓰비시상사에서 모리시타진탄으로 이직한 고마 무라 사장은 이직 3년 만에 V자 성장으로 이끌어 30억 엔의 적자를 내던 모리시타진탄에 흑자를 안겼다. 본인의 모습을 신규 채용 광고 에 투영했을 것이다. 활력 넘치는 젊은이와 건강한 50대가 더불어 행복하게 일하는 환경이 가능하다면 그 기업은 더욱 빛날 것이다.

-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없는 독자라면 '자동차 산업이라는 말을 자신이 몸담은 산업으로 바꿔보기 바란다. '연 결성, 자율성, 공유, 전기'라는 키워드는 다른 산업에서도 통한다.
디지털화와 서비스화에 따라 전에 없던 편리성과 가치(효율적이 고 저렴한 배차 및 모빌리티 서비스, 기능이 진화한 자동차)를 제공할 수 있 으면 고객은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기존 산업(신차 판매)이나 주변 산 업(자동차 보험, 주차장, 애프터서비스)은 산업 구조가 바뀔테고(완성차 제조사와 메가 서플라이어의 위상 역전) 이것이 다시 산업에 악영향을 미 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모빌리티 서비스, 새로운 종류의 보험, 픽업 서비스 공간 제공, 자동차를 사용한 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소재의 이용).
디지털화와 서비스화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기업은 마치 새 로운 석유를 손에 넣는 것과 같은 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 는 동시에,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데이터를 지키는 대책을 세울 필요 가 있다. 자동차처럼 인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품의 경우에는 사이버 공격의 위험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새로 운 서비스가 시장에 받아들여지려면 법규의 정비를 비롯한 안전성 확보를 통해 고객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 일본에서는 부동산의 내진 성능이 1981년 5월 이전의 구식 내진설계를 따르는지, 같은 해 6월 이후에 실시된 신식 내진 설계를 따르 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구식으로 내진 설계가 된 건 물은 보강을 통해 내진 성능을 확보하지 않으면 브라운 디스카운트 를 피할 수 없다.
한편 현재는 부동산 평가 시 에너지 절약 성능이 반드시 고려되 지 않는다.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 성능을 표시하는 제도가 2016년에 야 시작돼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ESG 투 자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는 에너지 절약 성능이 떨 어지는 건물은 투자를 받지 못할 것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심지어 그런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투자를 철회당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성능이 뛰어난 건물은 쾌적하다. 임대 빌딩일수록 에너지 절약 성능이 떨어지는 건물에 입주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없 다. 인력 부족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서 불쾌하고 불건전한 근무 환경 이 인력 확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건물에 단열을 강화하고 고효율 설비로 전환하면 국내외 투자를 끌어모을 수 있고 세입자의 만족도까지 높아진다. 당장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입주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절약을 소홀히 하여 브라운 디스카운트에 빠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 기업을 대상으로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민트브랜딩가의 모리야마 나오코 대표이사에게 기업의 기념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선 그는 "비전과 목적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몇 주년 기념 사업은 실패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광고사에 50주년 기념 사업을 의뢰하면 서 일단 안을 몇 가지 내보라는 엉성한 요청을 했다. 광고사는 두꺼 운 기업 화보집을 만들어 제출했으나 기업에서 마음에 들지 않고 비 용도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결국 광고사는 처음 부터 다시 일을 하게 됐다. 기념 사업의 목적과 예산을 기업에서 정해 광고사에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결여된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 다고 할 수 있다.
'고객 여러분 덕분에 ○○주년을 맞이했습니다'라는 식의 캠페인 은 진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모리야마 대표는 “광고는 기발한 아이디 어가 아니면 오래가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캠페인이 실패하는 요 인 중에는 비용 문제도 있다. 모리야마 대표는 한 가지 사례를 들었 다.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운 CI를 만든 어떤 기업에서 이를 반 영한 직원들 명함을 인쇄 회사에 발주했습니다. 할 일을 마쳤다고 생 각했지만 뒤늦게 회사 소개서와 웹사이트까지 모두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비용이 크게 증가했죠."
애초에 올해가 창립 몇 년째인지 챙기지 않는 회사도 있다. 모리야마 대표에게 브랜딩을 의뢰한 어느 기업은 1년 뒤에 창립 60주년을 맞는 것을 나중에 알고, 60주년을 기념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브랜딩을 해달라고 다시 의뢰했다고 한다.
창업 이래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역사야말로 기업의 브랜드 가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업의 역사를 자산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특히 기념 사업으로 개최하는 파티 같은 이벤트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화제성을 노리고 유명 가수나 배우를 초대하면 그 자리에서만 즐겁고 마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 유명 인사가 기업 브랜드에 필요 한 인물인가. 기업 내부에서 이런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가. "비용을 들여 부르는 의미가 있는지, 사전에 검토하면 좋습니다”라고 모리야 마 대표는 조언했다. 이벤트는 관행대로 되풀이하기 쉽다. 따라서 이 벤트 후 반드시 담당자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해 다음 이벤트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념 사업 중의 하나인 사사모" 출간도 골칫거리다. 필자가 만난 한 기업의 기념 사업 담당자는 창립 80주년 사사를 앞에 두고 “이 정 도면 거의 흉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상자에서 꺼낸 사사는 두께 5 센티미터, 무게 3킬로미터로 표지에 회사명이 금박으로 처리돼 있었 다. 본문은 대략 1천 쪽이었는데, 담당자는 “이걸 다 읽은 사람은 회 사에 거의 없어요"라고 말했다. 사사는 사장실이나 응접실 책장에 장 식용으로 꽂혀 있을 뿐이다. 자료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사내외 독자 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출간은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 그 기업은 곧 100주년을 맞는다. 그래서 "다음에는 책 말고, 검색하기 쉽고 보관하기 편리한 디지털 버전으로 만들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담당자는 말을 아꼈다. "저는 가능하면 안 만들고 싶지만, 100주년에 아무것도 안 하면 사장님이나 이 회사 출신들에게 무슨 말을 듣겠습니까." 담당자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해묵은 사사를 피 할 수 없다면, 직원과 이해관계자를 등장시키거나 제작 과정에 직원 들을 참여시켜 공동체감을 일깨워주는 방안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활 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기념 사업은 실패해도 사건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뉴스를 장식하지도, 대표자가 사과를 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기업이 기념일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남는다. 기념 사업의 목적을 사 내외에 잘 알리고, 일회성 축제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브랜딩입니다. 기념일을 기회로 기업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싶은지 그 비전을 직원 모두가 확실히 가지는 것 말입 니다"라고 모리야마 대표는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의 역사가 갖는 의미와 미래에 대한 구 상을 대표자가 사내외에 전달해야 한다. 경영자의 메시지 동영상을 각 부문에 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념일은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계기로 기업의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개선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사 연구가 무라하시 가쓰코橋勝는 "사는 기업 경영 전략의 집대성”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출간된 사사 중 1만 권을 읽고 다면적으로 분석해 사사 연구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사사에서 읽 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경영 전략을 소개했다. 이처럼 사사와 기념 사업을 기업이 영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자 세가 바람직하다.

- 중기 경영 계획이라는 용어에서 '기'의 의미가 약 3년이라는 애 매한 시간을 나타낸다는 점에도 이리야마 교수는 의문을 표했다. "해 외 기업은 짧아도 20~30년, 길면 100년 기준으로 시장을 보고 사내에 비전을 제시하는 사례가 많다. 물론 미드텀 플랜도 세우지만, 구체적 으로 예산을 짤 때는 1년 단위로 한다. 즉, 중기는 없고 초장기와 단 기로 2가지 계획을 세운다." 일본 기업이 3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주요 이유는 사장의 임기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사장의 임기에 구 애받지 않고 20~30년을 내다본 계획을 세우는 게 어떨까. 중기를 몇 년으로 잡을지는 기업에 따라 달라져도 좋겠다"라고 이리야마 교수 는 조언했다.
장기적인 경영 비전을 갖고 경영자가 현장에 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원의 업무 의욕이 오르지 않는 다. 무늬뿐인 중기 경영 계획을 만드는 데 매달리기보다 기업의 미래 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대응이 이노베이션으로 연결된다.

- 크라이시스 매니지먼트 홍보는 새로운 경영 과제다. 2000년 유키지루시유업(현재는 '유키지루시메그밀크X=1")이 집단 식중독 사건을 기업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자. 당시 유키지루시유업 의 사장은 제품 회수와 기자 회견을 뒷전으로 미뤘다가 여론의 뭇매 를 맞고 나서야 결국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해 더 큰 비난을 불러왔다.
크라이시스 매니지먼트 홍보를 둘러싸고 변화가 생기고 있으므 로 기업은 이에 대응해야 한다. 이에 대해 경제홍보센터의 사쿠와 도루상무이사 겸 국내홍보부장은 다음처럼 말했다.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서 위기는 더 다양화해졌으므로 보다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 다. 뜻밖의 사건이 증가하고 있어 과거의 노하우가 통하지 않는 사례 가 많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첫 번째 변화는 유출 문제다. 앞서 살펴봤던 폭로가 여기에 해당한다. 종신 고용제가 흔들리고 기업에 대한 직원의 충성도가 떨어지고 있다. 기업은 정보를 관리하는 데 어 려움을 겪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SNS의 발달이다. 악플 문제는 이미 언급했다. 과 거에 기업의 홍보 대상은 이해관계자였지만, SNS가 보급되면서 직접 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인도 홍보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관습이나 통념이 언제까지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사쿠와 부장은 이에 대해 “예전 같으면 과자 한 상자 들고 찾아가 사과하면 해결됐을 고객 불만이 지금은 자칫 중대한 위기로 닥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크라이시스 매니지먼트 홍보컨설턴트인 오모리 아사히는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크라이시스 매니지먼트 홍보의 핵심은 사건의 중대성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판단해 사회가 납득할 만한 착지점을 찾아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다. 초기 대응을 잘못하면 지킬 수 있던 것도 지키지 못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특히 사안을 축소하는 태도는 잘못된 대응이다. 불미스러운 사태 에 직면했을 때 기업은 "별일 아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반 응하며 정보 공개에 소홀하기 쉽다. 그러나 사태를 판단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제3차 AI' 붐 속에서 많은 기업이 AI를 탑재한 시스템을 속속 구축하고 있다. 앞으로 AI를 더 잘 이용하려면, 기업의 생산이나 판매, 회계 등을 뒷받침하는 기간 시스템과의 제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것이 쉽지는 않다. 기간 시스템과 제휴하기 위해서는 AI는 물론 다른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 시스템은 흔히 SoEsystems of Engagement와 SoRSystems of Record로 나 뉜다. SOE는 AI, IoT, 빅데이터, 모바일 등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고객 과 연결 engagement 되는 시스템이다. SOR은 직역하면 '기록의 시스템'으 로 과거의 기간 시스템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은 AI를 비롯해 SOE와 과거의 SoR을 제휴함으로써 새로운 가 치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간 시스템에 축적된 고객의 구매 이 력 데이터를 AI로 분석한 뒤, 온라인 쇼핑몰에 추천 상품을 표시하고 영업 담당자에게 최적의 제안 시기를 알리는 식이다. 실제로 한 스포츠 의류 기업은 IOT를 활용해 고객의 운동량과 건강 관련 데이터를 입수하고, AI 분석을 통해 고객별로 조언한다. 이와 더불어 기간 시 스템의 구매 이력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타이밍에 다른 상품을 제 안함으로써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SOR과 SOE의 제휴가 어려운 것은 성격이 달라서다. 개발 방식과 라이프 사이클, 데이터 형식 측면에서 모두 다르다.
SOR은 한번 멈추면 업무가 마비되므로, 개발과 운용 과정에서 안 정적인 가동과 보안을 중시하고 기능 확장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 이다. 몇 년에 걸쳐 시스템을 개발하고 10년 정도 운용하는 일이 드 물지 않다. 기간 시스템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컴퓨터로 작동시키는 것이 일반적이고, 취급하는 데이터의 형식은 대부분 숫자나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비해 SOE는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수시로 업데이트 해야 한다. 시스템을 소단위로 나누고 작동 상태를 확인해 그때그때 수정하며 개발을 진행한다. 클라우드 컴퓨팅loud computing"의 보급에 따라 기업의 외부에 있는 클라우드로 시스템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 아졌다. 데이터로는 숫자나 문자뿐 아니라 음성, 이미지, 동영상까지 취급한다.
이 둘의 제휴를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문가의 부족이다. SOR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적다. 현장에서 SoR을 담당하는 부서 (IT 부문)에 SOE 시스템까지 함께 관리하게 하기보다는 사외 IT 기업에 발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IT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재팬
Gartner Japan은 '2020년까지 IT 부서가 아닌 일반 부서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IT 프로젝트(개발, 운용, 보수)의 80퍼센트 이상이 결국 IT 부서의 지원 과 도움을 받아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정의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발견해 부정적인 영향은 피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최대한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렇게 하기란 어렵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왔고, 최근에는 조직 전체가 추진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ERM [Enterprise Relationship Management이라 일컫는다. 10년 전부터는 내부 통제 가 중요시되면서 CRO Chief Risk Officer 를 둔 조직도 등장했다. 하지만 리스크는 조직적으로 관리해도 쉽게 줄지 않고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좋은 영향을 키우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게 말처럼 되지 않는다. 조직적으로 대응해도 리스크가 잘 관리되지 않는 이유는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기업 내에서 리스크 매니지 먼트가 이루어지는 구조는 대개 비슷하다. 실무 담당자가 현재 파악 한 리스크를 목록화하면, 그 사람의 상사가 여러 리스크를 식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상부에 보고한다. 그러면 관리직은 이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간다.
자료를 만들고는 이내 안심하는 과거의 형식주의가 리스크 매니지먼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리스크 식별에만 관심을 쏟고 서식이 나 절차를 가다듬는 것에만 힘을 쏟는다. 이것이야말로 '리스크 매니 지먼트의 유명무실화'라는 리스크다. 이 리스크는 기회로 바꿀 여지 가 없다.
-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리스크를 식별하고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대응 책을 정하는 것이다. 발생하면 기업에 위기가 닥칠 리스크를 회피하 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위기까지는 아니어도 악영향이 미칠 것 으로 예상되는 리스크라면 줄이거나 받아들이기도 한다.
폭설로 교통이 혼잡해지는 리스크를 생각해보자. 예전에 한 텔레 비전 프로그램에서 폭설이 내린 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 리를 담아 방송한 적이 있다. 그때 "집에 빨리 들어가야죠", "썰매를 만들어 왔어요"라고 대답한 사람은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이고, "근처 에서 하루 묵었다가 상황이 정리되면 움직이려고요"라고 대답한 사람은 리스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집에 빨리 돌아가는 방법을 취한 사람이 많아지면 역이 혼잡해져 전철을 타기도 어려워져 사태 가 더욱 심각해진다. 썰매를 만들었어도 미끄럼 사고가 일어날 수 있 다. 본래 폭설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해 회피책을 취하기란 불가능하지 만,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재택근무 제도를 마련해 직원의 출퇴근을 줄여주는 것은 하나의 회피책이 될 수 있다.
발생하면 기업 경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는 회피책을 진 지하게 생각한 뒤 그 대책을 단행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단 순하게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내놓는 데 그쳐 폭설의 사례처럼 뜻 하지 않은 결과를 부르게 된다. 또한 경영 위기로 연결되는 것을 회 피하는 대책은 출혈을 수반하는 사례가 많아 결단을 내리기가 좀처 럼 쉽지 않다. 때로는 잠시 망설이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 어지기도 한다. 굳은 각오로 회피책을 단행하는 결단력 있는 임원이 있어야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제대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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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브랜드 설계자

경영 2023. 9. 7. 13:57

- 마침내 전문가가 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 다. 그러려면 다양한 출처와 다른 사람들의 프레임워크에서 얻어낸 정 보를 손에 넣고, 살펴보고, 구성하여 완벽한 프레임워크를 만들기 위한 당신만의 이론을 창안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이소룡이 말한 대로 "직접 경험한 바를 연구해서 유용한 것은 흡수하고, 불필요한 것은 뱉어내고, 자신의 본질적인 것은 더해야 한다." 이 프로세스는 세계 최 고의 속독가인 하워드에게 신에 관한 견해를 물었을 때 들은 답과 비 슷하다. 하워드는 주제를 하나 고른 다음, 모든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 기 위해 열권이 넘는 책을 읽고, 해당 논쟁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이해 하여 이를 바탕으로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이제 당신이 이 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과 기 회를 이해하고 당신만의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의 저자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어 느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들으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유용하군', '바로 그거야', '내 생각도 그래', '난 한 번도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 어.'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나만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나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언어, 나만의 언어를 만들게 된다. 흡 수하고, 메모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데 적절한 것을 여기저기서 꺼내 야 한다. 예술가가 바로 이렇게 사물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 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고 싶다면 가치 있는 콘텐츠를 주기적 으로 올려야 한다. 유튜브 브이로그나 팟캐스트 등 분량이 긴 콘텐츠를 일 주일에 한 편 이상 올려야 한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에 하루에 6~7번을 포스팅해야 한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와, 그렇게나 많이! 어떻게 유의미한 콘텐츠를 하루에 6~7개나 만들어 포스팅하지?' 아주 중요한 팁을 한 가지 주자면 '창작하지 말고 기록하라.'
간단히 말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기록'이라면, <스타워즈>와 <프렌즈> 는 '창작'이다. 그런데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기록한다고 해서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스토리나 판타지를 구상하는 대신(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이 어려워한다) 실용적으로 생산하라는 말이다. 이런 방법도 생각해보라. 자신을 모든 포스트 이면에 감춰진 전략에 관해 고민하는 가상의 '유력 인사'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 내가 프레임워크를 소개한 뒤에 맨 먼저 하는 일은 어떻게 해당 프 레임워크를 알게 되었는지(지식) 혹은 얻게 되었는지(경험)를 설명하 는 것이다. 당신은 이 책의 모든 장(그리고 나의 모든 책)-그리고 내가 만드는 모든 발표 자료, 팟캐스트 에피소드, 블로그 포스트, 영상 등- 에서 내가 어떻게 깨달았거나 얻었는지부터 설명한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이렇게 미리 설명하면 내가 공유하는 전략과 전술에 가 치가 생겨난다. 이런 가치가 없으면 전략 전술도 쓸모가 없어진다.
전체 프로세스 가운데 이 대목에서, 프레임워크의 일부라도 구축하 는 데 도움을 주었던 거인들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 당신은 프레임워 크를 구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연구하는 데 시간을 들 였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전문가와 인터뷰를 했다. 남들 덕분에 알게 된 것을 나눌 때는 언제나 그들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지식의 출처를 밝히면 듣는 사람이 자신을 낮잡아 보리라 생 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나는 누군가에게 배운 지식이라면 항상 이 를 공유하기 전에 그들에게 공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이런 행동은 내 가 처음 시작할 때 가르침을 주었던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여정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베푼 친절을 갚아 주는 것이다. 청중은 내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더 존경할 것이다

- 경쟁 혹은 보완: 당신이 내놓는 제안은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기존 제안과 경쟁하거나 이를 보완해줄 것이다.
*경쟁: 데이비드 오길비는 1900년대에 활동한 유명 광고인으로 '광고의 아버지'라 불렸다. 1950년대에 세면도구 회사 도브는 오길 비에게 새로운 비누 판매를 맡겼다. 처음에 주저하던 오길비는 도 브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새 비누를 포지셔닝해 판 매할 거라는 말을 듣고는 일을 받아들였다.
오길비는 직접 연구하고 광고 카피를 쓴 다음 "비누가 아니다, 도 브다!"라는 태그라인으로 신제품 출시를 도왔다. 근데, 잠깐, 도브는 비누잖아. 그런데 왜 이 광고가 성공했을까? 한 문장으로 도브는 경쟁적인 '비누' 시장에서 벗어나, 그 시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사 제품을 팔았다. "비누가 아니다, 도브다!" 도브는 일반 비누시장에 돌을 던지며 모든 사람에게 거길 떠나 도브로 가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다음 오길비는 모두에게 도브는 원래 보습제지만 비누처럼 깨끗하게 씻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보습제를 구매하 면서 비누 효과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영리하다.
시장 포지셔닝이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당신을 '끼워 맞추는 방법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미 비누가 무엇인지 알았고 오길비는 그것을 공략했을 뿐이다. 이를 '경쟁적 시장 포지셔닝 competitive market positioning'이라고 부른다.
*보완: 1900년대 초반에는 아무도 오렌지 주스를 마시지 않았다.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오렌지 주스는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버트 래스커가 만들었다. 캘리포니아의 과일 재배자와 거래소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앨버트에게 연락 했다. 오렌지 나무를 베어버려야 할 정도로 그해에 오렌지가 너무 많이 생산된 것이다. 앨버트는 오렌지 소비를 급격히 늘리는 임무 를 맡았다.
앨버트는 맨 먼저 회사 이름을 선키스트로 바꿨다. 오렌지에서 나 오는 과즙을 사람이 마실 수 있고 이 주스 한 잔에 오렌지 두세 개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낸 앨버트는 오렌지 주스 마시기가 건강한 미국인의 아침 식사 루틴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일에 착수했다. 선키스트에서는 '오렌지 착즙기'를 만든 다음, 고객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10센트만 있으면 오렌지 착즙기를 살 수 있고 공짜로 오 렌지 한 봉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효과가 뛰어났다. 쌓인 재고가 사라졌으며 기업이 살아남았다. '오렌지를 마시자'라는 캠페인은 오늘날까지 실시되는 중이다.
당신은 앨버트가 새 오렌지 착즙기를 팔기 위해 어떻게 '보완적 시 장 포지셔닝complementary market positioning'을 이용했는지 이해했는 가? 그는 오길비처럼 기존 상품을 비판하는 대신 보완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많은 사람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시장에 돌을 던지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코 사실이 아니다.

- 역사를 통틀어 성공적인 운동(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연구해보면 리더들은 모두 추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스도는 추종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따를 더 좋은 방법을 제공 하지 않았다. 그는 옛 약속이 아니라 새 약속을 제시했다. 이제는 동물 을 제물로 바치고 율법을 따른다고 구원을 얻지 못했다.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해야 했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더 잘 살거나 전쟁배상금을 빨리 갚는 방법 을 제안하지 않았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책임이 없으며, 베르사 유 조약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자신이 제시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 현하자고 말했다.
테슬라도 이런 기업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일론 머스크가 만든 상 품은 더 좋은 자동차가 아니다. 새 카테고리이자 새로운 기회인 전기 자동차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그들이 속한 하부 시장에서 같은 일을 했다. 스냅챗의 에번 스 피걸과 트위터의 잭 도시도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 새로운 기회를 제공 했다. 

- 인생의 모든 선택은 거의 지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당신은 어느 학교를 다녔는가? 당신이 (혹은 당신의 부모가 그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지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데이트 상대는? 헤어진 사 람은? 누구와 결혼했는가? 당신은 누가 내 지위를 높여줄 것인가라는 기준에 따라 이들을 선택했다. 당신은 아이들을 어떤 학교에 보내는가? 어떤 책을 읽는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가? 어떤 차는 타지 않는가? 이러한 모든 것이 지위와 연관된다.
- 우리가 어떤 기회를 찾는다면, 그것이 우리를 더 똑똑하고, 행복하고, 가진 것이 많고, 우아하고, 영향력이 있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 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지위를 향상시킨다. 소비자들이 “그 래, 이건 내 지위를 향상시킬 거야"라고 생각하면 손에 넣기 위해 움직 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 시 지위 하락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이걸 샀는데 내 지위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무기력한 기분이 들 거야.' 이런 생각은 판매를 감소시킨다. 우리 뇌는 늘 이처럼 갈등을 조정한다. 지위가 향상되기를 바라는 마 음과 지위가 하락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 우리가 3년 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이 논의를 다시 이어갈 때,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만족하려면 어떤 발전을 이루어야 할까요?
『댄 설리번의 질문The Dan Sullivan Question에 나오는 질문으로, 사람들 이 진정으로 바라는 성과의 근원을 재빠르게 파고든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면 꿈의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아주 깊은 수준까지 이해 해야 한다.

- "여러분의 퍼널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후크, 스토리, 제안'입니다." 그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후크는 꿈의 고객에게 주목을 받는 방법이고, 스토리는 상품의 인지 가치를 쌓는 방법이다. 제안은 당신이 파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퍼 널에 있는 광고, 이메일, 소셜 미디어 포스트, 블로그 게시글, 팟캐스트 에피소드, 랜딩 페이지, 판매 페이지, 부가 상품 페이지 등 모든 페이지 의 후크, 스토리, 제안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세상에 내놓는 것에는 이 러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뭔가 동작하지 않는다면 늘 후크, 스토리, 제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생각해보라. 당신도 논리적인 전문용어 탓에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 이지 않다가, 약간의 감정적인 경험 덕분에 받아들였다. 먼저 깨달음 을 얻었고, 이로 인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감정에 기반하여 구매한다. 그런 다음 논리를 사용하여 이미 내린 구매 결정을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페라리를 한 대 구입했다. 페라리를 한번 운전 해보고 사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감정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내가 페 라리(대형 저택, 값비싼 옷, 시계 등)를 구입한 이유다. 하지만 그다음에 는 나 자신과 친구 혹은 아내에게 페라리가 돈값을 한다는 사실을 정 당화해야 한다. 연비가 높다고, 할인 판매 중이었다고, 애프터서비스 조건이 아주 좋았다고 변명해야 한다. 논리는 이미 형성된 감정적인 애착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생각해보면 이 방정식의 양쪽에는 지위라는 고려 사항이 있다. 나는 새 페라리가 내게 주는 지위에 감정적으로 이끌렸지만, 이를 논리적으 로 정당화해야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형성된 지위를 잃지 않는다. 하 지만 애초에 페라리와 감정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면 아무리 뛰어난 영업사원이라도 나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득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 하는 것이다.

- 1949년 캠벨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다룬 『천의 얼굴을 가진영웅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캠벨은 '영웅의 모험'이라는 17단계의 이야기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1. 모험에의 소명: 영웅은 모르는 사람에게 소명을 받는다.
2. 소명의 거부: 다른 의무나 두려움 때문에 여정을 떠나지 못한다.
3. 초자연적인 조력: 불가사의한 조력자가 등장한다.
4. 첫 관문 통과: 기지의 세계를 떠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5. 고래의 배: 기지의 세계에서 분리되는 마지막 단계.
6. 시련의 길: 자신을 바꾸기 위해 일련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7. 여신(사랑)과의 만남: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한다.
8. 유혹: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행동을 방해하는 유혹을 맞닥트린다.
9. 아버지와의 화해: 인생에서 궁극적인 힘을 가진 사람과 맞서야 한다.
10. 귀환 전에 만나는 평화와 성취 : 신성한 깨달음을 경험한다(대개 죽음을 극복하여).
11. 홍익: 목표 달성.
12. 귀환 거부: 다른 세계에서 행복과 깨달음을 얻으면 귀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13. 불가사의한 탈출: 영웅은 도움을 받아 곤경에서 탈출해야 한다.
14. 외부로부터의 구조: 때로 구조자가 필요하다.
15. 귀환: 임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지혜를 세상과 공유하여 인간 사회에
통합한다.
16. 두 세계의 스승: 물질과 영혼(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 낸다.
17. 삶의 자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미래를 걱정하거나 과거 를 후회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 나는 책상에 에피파니 브리지 스크립트를 설명하는 프레임워크 그 림을 둔다. 이야기를 할 때는 언제나 그것을 이용한다. 전문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당신 도 이 스크립트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14개 질문에 답 하기만 하면 전체 이야기를 빠짐없이 할 수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다 루겠지만 지금은 이들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빠르게 효과 가 나타나는지 보여주겠다.
[1단계] 배경 이야기
1. 당신의 여정에서 흥미를 끄는 '배경 이야기'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2. 달성하길 원하는 '욕망'이나 성과는 무엇인가?
외부 외적 욕망은 무엇인가?
내부 내적 욕망은 무엇인가?
3. 과거에 동일한 성과를 얻기 위해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낡은 매개체는 무엇인가?
[2단계 여정]
4.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한 '소명'이나 이유는 무엇인가?
5. 성공을 가로막는 '악당'은 누구 혹은 무엇인가?
6. '만약'이 여정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3단계 새로운 기회]
7. 깨달음을 주었던 '길잡이'는 누구인가?
8. 경험한 '에피파니(깨달음)'는 무엇인가? 9. 그로써 얻은 '새로운 기회'는 무엇인가?
[4단계 프레임워크]
10. 욕망을 달성하려고 개발한 '전략'이나 프레임워크는 무엇인가?
11. 프레임워크를 따라서 얻은 '당신의 성과는 무엇인가?
12. 당신의 프레임워크를 따름으로써 얻게 된 '다른 사람들의 성과'는 무엇인가?
[5단계 성취와 변화]
13. 결국 '무엇을' 성취하거나 완수했는가? (외적 욕망)
14. 여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 (내적 욕망)

- 당신이 믿는 이야기들이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 이야기들을 바꾸면 정체성이 변해 삶의 방향도 바뀔 것이다. 크레 이그가 "마케팅에서 내 목표는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의 마 케팅에서 진정한 단 하나의 목표는, 고객이 스스로에게 하는 잘못된 이야기들(성공을 가로막는 이야기들)과 잘못된 믿음을 파악하고 그들 마 음속에 다시 쓰는 것이었다.
퍼널 해커 커뮤니티의 최고 퍼널 너드로서 내가 항상 하는 일은 사 람들에게 퍼널이 도움이 될 거라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책임이다. 당신이 믿는다면 퍼널은 도움을 줄 것이다. 당신은 성공하는 데 필요한 노동과 노력을 투여할 것이다. 당신이 퍼널을 믿 지 않으면 여정을 떠날지는 몰라도 마칠 방법은 찾지 못할 것이다. 

- 그저 강의를 할 때는 당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전략을 설명하고, 전술을 가르치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검증하는지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판매할 때는 전술을 알려주면 안 된 다. '무엇을(전략)'은 가르쳐야 하지만 '어떻게'는 가르치면 안 된다. 프 레젠테이션이 끝났을 때 청중이 돈을 주려고 달려 나오는 것은 이 '어떻게'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 『무기가 되는 스토리」에서 도널드 밀러는 당신의 브랜드가 주인공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고객은 주인공이며 브랜드는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끄는 가이드다. 당신의 브랜 드는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요다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본다면, 당신이 하는 일은 사람들(역경 에 처한 주인공)을 찾아 관심을 끌 만한 후크를 던지고, 역경을 헤치고 바라는 결과를 얻게 해주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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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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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전쟁

경영 2023. 9. 7. 13:56

- 실제로 중국에는 산업계와 소비자들을 위한 전반적 체계가 이미 마 련되어 있다. 리튬과 기타 핵심 자원들을 채굴하고, 화학물질로 가공하 며, 부품으로 만들고, 자국 내에서 생산된 배터리에 설치하는 모든 단계 가 중국 국경선을 넘지 않고 이루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배터리들은 아 마 외국인은 들어본 적도 없을 여러 전기자동차 브랜드에 공급된다. 중 국의 배터리 산업을 지켜보며 가장 감탄하게 되는 사실은 정부가 대부 분의 생산공정을 면밀하게 감시해 EU의 중앙 집중식 시장에서도 경험 하기 어려운 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고객층에 맞춘 다종의 전기자동차 중 하나를 골라 구매하면 도시 밖에서라도 쉽게 충전소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한 해에만 매일 새로운 전기자동차 충전소 1000개가 설치되었다('충전기'가 아니라 '충전소'다. '12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차종과 사용 강도에 따라 5년에서 8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13 중국에서는 새 배터리 에 돈을 낭비하는 대신 기존 배터리를 재생하는 새로운 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나라의 법은 배터리의 수명이 다하면 반드시 재활용해 야 한다고 규정한다. 중국은 이미 자국 내에서 발생한 것들뿐 아니라, 수입한 폐배터리들을 가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규모의 재활용 시설 을 보유하고 있다.
- 중국 자동차 산업은 중국식 자본주의의 전형이라 할 만한 경로를 따 라 발전해 왔다. 먼저 공산당이 거시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특 정 산업 분야를 발전시켜야 할 전략적 필요성을 인식한다. 지식 이전이 필요하다면 강제성과 인센티브를 섞은 법률을 마련한다. 노하우를 확 보하게 되면 보조금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시장의 주요 참 가자 중 너무 많은 수가 국가 소유거나, 경영자들의 정치적 관계, 또는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공산당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 기 업을 국가가 장려하는 산업에 참여시키는 결정은 단순히 경제적 계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세계 어디에서든 거대 기업들은 내부 수익률뿐 아니라 기회비용과 기회이익까지 따져서 새 프로젝트를 평가한다. 하지만 아메리칸드림과 달리 중국몽中國)은 시진핑이 지적했듯이 공동의 것이고, 국유기업의 경영자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자국의 꿈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 정부의 비전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며 국가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경제 발전에 대한 이런 하향식 접근법은 자연스레 과잉 설비와 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지고 종종 상품 품질 저하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전기 자동차와 배터리, 리튬 산업도 이런 문제들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신에너지 혁명
전기자전거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격한 중국 정부는 일찌감 치 전기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베팅하려 혈안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많았다. 이 나라에서 전기자동차 산업이 발전한다면 도시의 오염을 줄 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영역은 채굴과 화학 처리에 서 시작되겠지만, 리튬 이온 배터리나 자율주행 같은 신기술을 개발하 는 것도 포함할 터였다.
신에너지 혁명의 시작은 '863 계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3월 3일 중국의 물리학자 네 명이 덩샤오핑에게 편지를 보냈다. 왕다헝 과 왕간창, 양자, 천원은 원자력과 인공위성 활용을 포함하는 민군겸용 기술의 연구에서 명성을 쌓은 과학자들이었다. 덩샤오핑은 중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현대 중국의 건축가로 불린다. 서구에는 아마 중국의 경제특구 실험으로 가장 잘 알려졌을 것이다. 그 는 특별히 지정한 연안 지역에 시장경제와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임으로 써 중국에서 사실상 자본주의 실험을 벌였다. 선전을 비롯한 여러 도시 의 경제특구가 성공하면서 국가 경제 개혁의 길이 열렸다.
물리학자들은 편지에서 중국이 더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 으로 독립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 분야에서 첨단 기술의 발전을 이끌 국가기술연구발전계획國家高技術硏究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덩 샤오핑은 이 계획에 만족한 나머지 이틀 만에 승인한 다음, 공산당 동료 들에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체 없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알렸다.  많은 역사서가 이 계획이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이 제안했고, 이후 '스타워즈 계획'으로 불린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의 영향을 받았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서구 중심적인 관점으로, 863 계획과 전략방위구상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전략방 위구상은 특히 소련이 시도할 수 있는 핵 공격에서 미국을 보호하는 미 사일 방어 체계를 개발하는 계획이었다. 전략방위구상이 다양한 첨단 기술, 가령 레이저 무기처럼 환상적인 기술의 발전을 자극하고, 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내 첨단 기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명확한 목적과 군사적 활용 방안은 따로 있었다.
- 바로 이것이 863 계획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863계획은 중국은 아직 발전 중인 나라고 따라서 과학적 노력을 분산할 수 없다고 인정하며 시 작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외부 세계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고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소수의 핵심 분야가 존재한다고 선언 했다. 중국이 적당한 때에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기 술 영역에 진입한다면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이었다. 이 최초의 계획에서 핵심 분야로 제시한 일곱 개 산업 중 신소 재와 에너지는 배터리 개발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 물론 중국 기업들도 배터리 산업에 진입하고자 했으나, 노하우와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비용이 문제였다. 일본처 럼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마련하려면 1억 달러 이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후이성 출신의 한 이상주의자는 상황을 다르게 보았다. 화 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했던 왕푸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배터리 산업에 진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신의 꿈을 키워라 build your dreams'라 는 영어 문장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딴 다음 중국어 발음으로 부른 '비야디'를 사명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일본산 배터리를 구매한 뒤 학계 에 있는 동료들과 분해하며 모방했다고 한다. 또한 배터리 기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의 특허를 찾아보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 서는 시내 중심가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가게마저 불법 복제된 영화와 음악, 책을 취급했다. 지적재산권법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팀원 들과 함께 상업용 배터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낸 왕푸는 자체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는 값비싼 일본산 로봇을 인간으로 대 체했다. 왕찬푸가 사업을 시작했던 시기 중국은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의 인건비가 모두 저렴했다. 사실 일본에서도 생산라인의 일부 작업은 사람이 마무리해야 했다.
배터리 생산라인에서의 노동은 지루하고 건강에 해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직률도 높았다. 하지만 일본산 배터리의 소매 단가가 8달러 이던 시절 왕푸의 회사에서 생산한 배터리의 단가는 3달러였고 그만 큼 잘 팔렸다.3 투입되는 자본의 측면에서나 운영비의 측면에서나 자동화된 생산라인보다 인간의 저렴한 노동력이 더 효율적이었다. 오늘 날의 독자들은 비야디의 시작을 접하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인간적이 지 못한 노동관행을 개탄하며 산업 혁명기의 영국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자수성가한 비야디의 창업자는 오늘날 중국의 우상이자 신에너지 혁명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 리고 비야디는 워런 버핏이 대주주 중 한 명인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 업으로 성장했다.
- 일본산 배터리를 분해해 모방하고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것만으로는 비야디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끊임없이 변신하며 막대한 수요에 편 승하는 능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자그마한 주택에서 휴대전화용 배 터리를 생산하며 초라하게 시작한 이 회사는 중국 3대 자동차 생산업 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서구에서도 비야디의 성공에 주목했다. 2010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Bloomberg Business Week》는 연구개발에 수십억 달 러를 쓰는 비야디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8위로 꼽았다. 몇십 년간 같은 업계에서 군림해온 포드, 폭스바겐보다 높은 순위였다.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는 인접 영역, 또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 방향을 과감히 트는 능력은 중국 기업가들의 특징이다. 서구의 경영대학원에서는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전문화와 핵심 역량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중국식 접근법은 더 실용적이다. 모든 것을 아예 바닥 부터 새로 배워야 하고 초기 생산품의 품질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수 요가 있는 시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배터리 물질 생산 업체 중 하나인 녕 파삼삼이 있다. 2006년만 해도 이 회사의 매출 중 93퍼센트가 의 류 판매에서 나왔다. 녕파삼삼이 처음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자본을 축적한 분야는 남성복, 특히 신사복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녕파삼삼 은 매출의 75퍼센트를 배터리 물질에서 만들어냈다!
- 간단히 설명하면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양극재 는 LFP, 니켈· 망가니즈·코발트 Nickel Manganese Cobalt, NMC, 니켈·코발트·알 루미늄 Nickel Cobalt Aluminium, NCA, 리튬 코발트 산화물 Lithium Cobalt Oxide, LCO' 이다. 전기자동차와 다목적 에너지 저장 시설을 위한 대형 배터리 시장 에서는 여전히 NMC 양극재와 LFP 양극재가 점유율 싸움을 벌이고 있 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하겠지만, 두 양극재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지난 2~3년간 적어도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는 대체로 성능이 뛰어난 NMC 양극재가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특히 비야디가 관 련 연구를 주도한 결과 LFP 양극재 또한 꾸준히 개선되었다. 이 회사가 LFP 양극재에 감상적인 애착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저렴하고 안전한 대안이어서 힘을 실을 뿐이다. LFP 양극재에는 비싸고 가격 변동성이 큰 코발트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코발트 채굴의 부정적인 영향 을 알고 있는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가격에 민감한 신흥 시장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점이 된다.
비야디는 F3DM의 후속작이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조에서 이름 을 딴 '친'으로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첫 번째 성공을 거뒀다. 2016년 친 의 판매량은 5만 대를 넘어섰다. 14 처음 출시된 후 2년간은 중국에서 가 장 잘 팔리는 전기자동차였다. 이 모델도 LFP 양극재를 사용했는데, 에 너지 밀도가 더 높은 새로운 버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친조차 사실 배터리만으로는 70킬로미터밖에 가지 못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였다. 온전히 전기로만 구동되는 '친 EV300'은 하이브리 드 모델이 출시되고 3년이 지난 2016년 3월에야 공개되었다. 이 모델은 300킬로미터의 주행거리를 자랑했는데, 보조금이 붙지 않은 원래 가격 이 3만6600달러부터 시작했다. 보조금이 적용되면 가격은 절반 정도 인 1만7000달러까지 떨어졌다. 친 EV300의 사례는 전기자동차 산업 을 순조롭게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중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재정을 투 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지원금을 제공한 나라 는 독일인데, 2020년에야 관련 계획이 발표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 후의 부양책이기도 했던 이 계획은 전기자동차 구매 시 최대 9000유로를 지원한다고 내세웠는데, 중국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다.
- 중국은 배터리 산업의 호황을 밀어붙이기 위해 리튬이 필요했다. 리 튬은 어떠한 종류의 양극재든, 즉 LFP 양극재든 NMC 양극재든 NCA 양극재든 LCO 양극재든 반드시 들어가는 유일한 금속이다. 다른 금 속들은 양극재의 종류에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니켈은 NCA 양극재와 NMC 양극재에는 들어가지만, LCO 양극재와 LFP 양극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코발트도 LCO 양극재, NMC 양극재, NCA 양극재에는 쓰이지만, LFP 양극재에는 쓰이지 않 는다. 하지만 리튬은 모든 양극재에 들어가고, 심지어 음극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사실 1950년대에는 중국의 산업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탓에 리튬 처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산업에 사용되는 광물의 수요가 많지 않았 다. 리튬과 다른 희소금속들은 단지 소련에서 빌린 돈을 갚는 수단이었 다. 중국은 이들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커커투오하이 광산을 노천광 산으로 바꿨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1956년에는 전해의 두 배에 달하 는 1만6600톤의 리튬을 소련에 수출할 수 있었다.30 또한 커커투오하이 광산에서는 베릴륨보다 리튬을 중점적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1950년부 터 1962년까지 이 광산에서 소련으로 운송된 리튬은 10만 톤에 달했는 데, 베릴륨은 3만4000톤에 그쳤다.
당시 커커투오하이 광산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리튬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리튬은 주로 유리와 도자기 생산에 쓰였다. 유리 생산에 투입된 리튬 중 70퍼센트는 급격히 발전한 텔레비전과 전자 산업에서 소비되었다. 같은 기간 소련에서는 텔레비전 을 향한 열기가 점차 사그라졌다. 물론 소련의 모든 가정에 텔레비전이 놓이기까지 커커투오하이 광산의 리튬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8년 에는 신장의 우루무치에 중국 최초의 리튬 가공 시설인 115공장 이 문을 열었다. 이 공장은 중국에서 채굴한 스포듀민을 산화리튬 lithium oxide"이나 리튬염 lithium salt "처럼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제품으로 가공했다. 첨단 기술뿐 아니라 핵무기 관련 기술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었 다. 리튬은 신장 지역 내 고속도로와 창고 시설 개발에도 불을 지폈다. 1960년대 초 신장의 석유를 내륙으로 옮기기 위해 건설된 란저우신 장철도는 미래에 각종 금속을 운반할 길이 될 운명이었다. 지방 지역의 산업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대약진운동은 국유기업인 중국비철 금속공업中國有色金에 특히 신장 지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1960년 이 되자 신장 지부가 고용한 인력만 초창기의 여섯 배인 2만 4000명까지 늘어났다. 
- 소련에서 흘러오던 차관은 1960년대 초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 련과 중국은 이데올로기적 이유와 실용적 이유 모두에서 멀어지고 있 었다. 시작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것이었는데, 마오쩌둥은 블라디미르 레닌과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에서 벗어나려 는 소련의 움직임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그사이 소련이 인도와 밀접 한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의 권내 지배력이 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 로 미국이 공산주의자들에게서 타이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핵무기 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협박한 제1차 타이완해협 위기가 벌어졌다. 이런 이유들로 중국은 1955년부터 핵무기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 중국 최초의 핵 시설은 신장에서 시작되는 철도의 종착지인 란저우 와 희토류 매장량이 많다고 알려진 바오터우에 건설되었다. 리튬은 중국의 핵무장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리튬의 동위원소 인리 튬-6은 수소폭탄의 핵심 재료다. 이 동위원소는 중성자와 반응해 핵무 기에서 가장 중요한 열핵 재료인 트리튬tritium, 즉 삼중수소가 된다. 트리튬이 중수소인 듀테륨 deuterium과 결합하면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열핵폭발을 일으킨다.
핵무기 경쟁에서 리튬이 중요해지자 커커투오하이 광산의 채굴 할 당량도 바뀌었다. 1963년부터 공식적으로 이 광산은 소련의 차관을 상 환하는 데 사용되던 베릴륨 대신 중국 핵무장 계획의 핵심인 리튬 채굴 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북한이 2016년 함흥 근처에 지은 시 설에서 과잉 생산된 리튬-6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려 한다는 정보를 바 탕으로 핵무기 개발 상황을 가늠하기도 했다.33
중국의 핵무장 계획에 신장의 자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되고 석유 생산지로서의 중요성까지 더해지면서 1960년대 내내 이 지역에 보안시설과 병력이 증가했다. 광산 도시가 확장되면서 지역 내 한족 인구도 증가했다. 높아진 경제 수준과 인구 구성의 변화 모두 위구르족과 중국인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는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만 배터리 산업의 호황이 시작되기 전까지 적어도 리튬에 한해서는 크게 특별한 것 없는 세월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리튬은 유리, 도자기, 알루미늄, 에 어컨 산업에서 쓰일 뿐이었다.
신장 외에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리튬 매장량이 많은 두 지역에서 채굴이 시작되었다. 바다와 가깝지만 육지로 둘러싸여 있고 빈곤한 장시성 그리고 티베트와의 경계에 자리한 쓰촨성이었다. 국유 광산과 가공시설이 들어섰고, 오늘날 시장을 주도하는 리튬 생산 업체 두 곳이 탄생했다. 바로 간펑리튬讀鋒鉀과 톈치리튬天齊鋥業이다. 
- 시장, 특히 성장하는 시장은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수요가 아주 많은 신산업에는 승자독식의 사고방식이 만연하다. 미국 기업들이 공 유하는 비전을 처음 제시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이야 기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록 펠러가 젊었던 19세기 후반에 석유산업은 막 개발이 시작된 참이었다. 당시 석유를 주로 활용했던 곳은 궁극적으로 이 산업의 성장을 불러온 분야(내연기관차)가 아니었다. 그때는 석유를 대개 등유의 형태로, 오염 은 덜하고 더 밝은 조명의 연료로 썼다. 비슷하게 1994년에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리튬의 7퍼센트만이 배터리 생산에 소비되었고, 도자기와 유 리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양이 투입되었다. 19 록펠러는 수직적 통합을 통해 재빨리 초기 석유 산업을 독점했고, 스탠더드오일이 생산부터 운 송까지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도록 가치 사슬 전반에서 투자와 인수를 감행했다. 이렇게 비용을 낮춘 스탠더드오일은 경쟁사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석유를 판매할 수 있었다.
간펑리튬뿐 아니라 다음 장에서 이야기할 톈치리튬을 비롯한 중국 리튬 업계의 주요 기업들이 구사하는 전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업 정 보를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인 링크드인 LinkedIn에 게시된 간펑리튬의 소 개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 회사는 상류의 리튬 채굴부터 중류의 리튬 화합물 생산, 하류의 리튬 기반 배터리 제조와 재활용까지 가치 사슬의 주요 단계를 따라 운영되는 수직적으로 통합된 사업 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20 리량빈의 말을 빌리면, 간펑리튬의 접근 방식은 항상 단계 별 전략을 따르면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지방 소도시의 가족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 이다.
- 오늘날 비정제 리튬의 최대 생산국인 오스트레일리아를 보면, 리튬 산업에 뛰어든 후 몇 년간은 자국 내 가공 시설이 충분치 않아 광석 형 태의 상품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일반적으로 경암 퇴적층이나 염 호퇴적층에서 이뤄지는 채굴 작업은 그 자체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전체 가공 과정에서는 가장 쉬운 단계다. 더 어려운 단계가 남아 있고, 가치 사슬의 위로 올라갈수록 화학적으로 더 까다로운 작업 이 진행된다. 물론 단계가 진행될수록 가격은 높아진다. 실제로 가공시 설이 건설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리튬 생산 업체들은 바로 중국으로의 광석 수출을 중단했다. 대신 리튬을 농축한 형태인 정광으로 가공해 판 매했다. 이러한 정광은 대개 산화리튬을 6퍼센트 정도 포함한다.  여 전히 농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적어도 광석의 두 배에 달하므로 비용 면에서 완전히 합리적이다.
- 이런 배경을 알게 되면 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리튬을 더 가공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리튬 생산 업체들도 이 방향 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 같지만 힘겨운 여정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함정 이 숨어 있다. 채굴 공정을 개선하는 것보다 산화리튬을 6퍼센트 포함 한 리튬정광을 순도 99.5퍼센트 이상의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로 변 환하는 설비를 건설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고 해도, 이런 화학 처리 단계로 나아가려면 엄청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최종 생산품의 리튬 함유량을 높이는 동시에 배터리의 핵심 요소인 양극재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마그네슘, 포타슘potassium, 소듐sodium"의 불순물 수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전기자동차 생산 업체들이 간절히 원하는 수준 의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을 얻거나,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산 업 폐기물을 얻는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질이 떨어지는 리튬 화합물이 라도 일단 가공해 낼 설비만 있다면, 유리나 도자기 생산업체에 판매하거나, 자체 시설과 엔지니어, 노하우가 있어서 배터리 등급으로 가공할 수 있는 중국 협력사에 넘길 수도 있다.
간펑리튬은 첫 단계의 가공을 마친 리튬을 사들여 전기자동차 배터 리 생산 업체에 판매할 수 있도록 추가 가공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리 튬에 대한 접근성'이 시간적 의미까지 포함하는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이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고품질 리튬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 는지, 아니면 (전기자동차 판매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 5년에 서 10년간 채굴될 리튬 중 자신들이 확보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 다고 생각하는지다. 좋은 시절을 만난 기업이 최대한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에는 경쟁이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는 신생 분야들이 흔히 그렇듯 이 업계에서도 일찍 일어 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 간펑리튬은 이 책을 쓰는 현재 스포듀민과 리튬을 함유한 염수 및 점토 등 세계적으로 일곱 곳에 분포한 리튬 자원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 다. 오늘날 대부분의 리튬은 스포듀민에서 생산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은 달랐다. 원래 스포듀민은 유리나 도자기 생산에 주로 활용되었다.  유리 산업에서는 유리의 강도를 높이거나 끓는점을 낮춰 에너 지를 절약하고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게 한다. 도자기 산업에서는 대표 적으로 인덕션의 검은색 표면을 이루는 유리와 세라믹의 복합 재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스포듀 민 채굴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가공 산업이라는 새로운 영 역이 대규모로 생겨났다. 스포듀민 가공시설은 대부분 중국에 있다. 몇 몇 시설은 다른 산업에서 경험을 쌓은 사업가들이 수익을 창출할 새로 운 기회를 찾아 건설한 것이다. 이 시설 중 다수가 무질서하게 확산하는 전기자동차산업을 상대한다는 구상을 품고 만들어졌지만, 전기자전거 나 덜 알려진 브랜드의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저품질 리튬을 판매하는 데 그쳤다. 고품질 리튬의 생산은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도전으로 판명되었다.

- 사실 유럽 기업들보다 먼저 유럽에 자리 잡고 전기자동차 산업이 태 동한 초기부터 이익을 낸 것은 한국인들이었다. 2015년 LG화학은 유 럽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 근처의 부 지를 노렸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와 가깝다는 점, 독일과 비교해 생산 비용이 낮다는 점, LG가 오래전부터 폴란드에 진출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랍지 않은 선택이었다. LG는 폴란드가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급격히 변화하던 광란의 시대에 논란의 기업 아트-비Art-B"와거 래하며 이 나라에 등장했다. 당시 20대에 불과했던 아트-비의 창업자 들은 현대자동차와 컨테이너선 두 척 분량인 차량 5만 대를 수입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회의 중 신용카드 한 장으로 대금을 결제해 한국 재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LG화학의 배터리 공장은 2018년부터 가동되었고,  유럽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 업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는 2021년 가동을 시작했다. LG화학의 주요 경쟁자 인 삼성SDI도 헝가리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해 2018년 가동을 시작했 지만, EU의 반독점 규제 기관이 이곳에 1억 800만 유로를 지원하려는 헝가리 정부의 계획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EU는 유럽 내 단일 시장의 경쟁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회원 국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 지원을 불법으로 정의하고 있어, 헝가리의 계 획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EU는 일반적으로 보조금을 허용하지 않고, 회원국 정부는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이 있을 때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즉 EU는 한편으로는 배터리 산업을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에 선두권 생산 업체를 유치하고 (일자리와 조세수입 증 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관련 노하우를 익히며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구 체적인 우대책을 제안한 회원국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 리튬이 조만간 칠레의 가장 중요한 금속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구리가 칠레의 연간 수출액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한다. 52 2018년 칠레의 리튬 수출액은 총 9억4900만 달러로,53 전체 수출액의 약 1.25퍼센트에 그쳤다. 하지만 언론에서 집중 조명하고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금속은 단연코 리튬이다. 현재 시장가격을 적용하면 칠레에 있는 리튬 900만 톤의 가치는 약 5260억 달러에 달한다. 2018년 칠레의 총수출액은 약 755억 달러였다. ' 같은 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출액은 2945억 달러였고, 약 80퍼센트가 석 유에서 나왔다.
숫자가 너무 커지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리튬 생산 업체인 웰스미네랄스Wealth Minerals의 CEO 팀 맥커천Tim McCutcheon이 "칠 레는 본질적으로 '리튬의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했을 때 모든 투자자 가흥분했을 것이다.57 숫자는 종종 잘 만든 캐치프레이즈가 주는 흥분 을 빼앗아가지만, 보통 객관적 경제 상황을 더 잘 전달한다. 칠레 땅에 있는 리튬을 모두 파내 판매한다 해도 사우디아라비아가 3년간 수출한 석유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칠레가 리튬의 사우디아라비아일 지는 모르지만, 이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하게 리 튬이 칠레를 더 부유한 국가로 만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리 틈만으로 이 나라가 부유해질 수는 없다.
- 국제적으로 칠레는 리튬 추출에 높은 비교 우위를 지니고 있다. 현재 수익을 보나 잠재적 미래 수익을 보나 리튬 추출은 칠레에서 가장 매력 적인 투자 기회이므로, 여기에 투자하면 잃을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칠레의 비교 우위가 얼 마나 확장되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다. 현지에서 리튬 을 가공하는 산업도 이 나라에 비교우위를 선사할까. 아니면 가공은 아 시아 국가들에 맡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배터리 부품은 누가 만들어야 할까.
가치 사슬의 높은 곳을 향한 칠레의 도전에 부정적인 이들은 배터리 등급으로 리튬을 가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강조하며, 칠레는 추 출에만 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나라는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염수 에서 고품질 리튬을 추출하는 특별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칠레의 리튬생산 업체들은 말 그대로 자원만 가지고 맨땅에서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염수에 함유된 리튬과 불순물의 양을 파악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 다. 특히 추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염을 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려면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가해 '잠든' 상태 로 염수에 가라앉아 있는 리튬 성분을 '깨워' 분리한다. 이때 투입하는 에너지와 반응물질의 양은 추출하려는 리튬의 양에 따라 대략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즉 에너지 집약적 과정이지만 적절한 환경에서는 무 척 친환경적이다. 아타카마염원처럼 가물고 화창한 지역에서는 리튬을 회수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70퍼센트 정도가 태양에서 나온다. 조 건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환경에 우호적이지 않은 수준까 지 떨어질 수 있다. 기온이 떨어지면 몇몇 과정에서 황산염 불순물을 분리하기가 더 쉬워지므로 기온의 변동 폭도 중요하다.100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따르면, 칠레만의 독특한 환경과 리튬의 좋은 품질은 추출 에 집중할 확실한 근거가 된다.
게다가 천혜의 환경을 갖춘 아타카마염원에서조차 염수에서 추출 하는 리튬의 비율은 약 6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개선할 여지가 많다.  배터리 공장을 짓는 대신 거기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업계 내부자 중에도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을 얻는 게 얼마나 복잡 한 일인지 과소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염수에서 탄산리튬 100킬로그램 을 얻으려면 약 1만5000킬로그램의 염수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최종 생산품 100킬로그램에 정화하지 않은 염수를 한 숟가락이라도 섞으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103 그렇게 적은 양으로도 판매 할 수 없는 제품이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사고실험은 배터리 산업이 얼마나 엄격한 품질을 요구하는지 알려준다.
일반적인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의 순도는 99.5퍼센트지만, 업계 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순도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0.5퍼센트 의 잔여 물질 중 불순물의 수준을 미세 조정하는 기술에 배터리의 품질 이 달려 있다.  0.5퍼센트를 백만분율로 계산하면 5000피피엠 parts per million, ppm에 해당한다. 최종 소비자인 양극재 생산 업체는 배송된 리튬의 칼슘과 황산염의 농도가 각각 100피피엠과 200피피엠 이상이면, 또는 철이 5피피엠 이상이면 제품을 인도받지 않을 것이다.  5 피 피엠은 극도로 적은 양이다. 1리터의 물에 찻숟가락 하나만큼의 액체 를 섞고 다시 1000배로 희석한 것과 같다.
- 맞춤형 리튬 화합물의 생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크게 보면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리튬을 함유 한 염수를 여러 개의 연못에서 태양열로 증발시켜 농축한다. 증발 과정 에서 중간생성물인 염화리튬이 생기는데, 염화리튬에 소다회를 섞 으면 탄산리튬을 얻을 수 있다. 보통은 여기서 공정이 끝난다. 수산화리 튬을 얻고 싶다면 탄산리튬에 석회를 더해야 한다. 문제는 반응물질인 소다회와 석회를 염원에서 외떨어져 있는 가공 시설까지 운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데다가, 둘 다 상당한 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리튬 삼각지대 밖에서 반응물질을 수입하고 대금은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 다행히도 분쟁 광물을 둘러싼 쟁점이 점점 알려지고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재정적 위험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평판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애플이나 BMW 같은 기 업은 무형의 브랜드 가치가 회사 전체의 가치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 한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 Interbrand는 BMW의 브랜드 가 치를 410억 달러로 평가했다. 이 자동차 생산 업체는 콩고산코발트와 거리를 두는 대신, 10 오스트레일리아와 모로코의 광산에서 코발트를 직 접 확보하려 한다. 안전한 동시에 영리한 전략으로, 이제 BMW는 "우리 는 콩고에서 벌어지는 아동노동이나 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2019년 모로코에서 생산된 코발트는 전 세계 생산량의 1.5퍼센트에 불과하고 매장량은 콩고의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 아에는 코발트가 훨씬 많아서 매장량이 콩고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 로 추정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생산량은 모로코보다 두 배 많은 정도 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니켈과 구리 채굴의 부산물로 코발트를 생 산한다. 기술적·경제적·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향후 10년간 오스트레 일리아가 주요 코발트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 따라서 BMW가 콩고산 코발트를 멀리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기업들이 '일제히' 이러한 전략을 따를 수는 없다. 콩고 밖에는 그렇게 많은 코발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종의 사고실험으로 콩고를 대체할 나라가 존재한다고 해보자. 그렇더라도 콩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발트 가격이 GDP 성장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IMF에 따르면 2017년 코발트 가격 이 급등하자 콩고의 GDP 성장률도 3.7퍼센트에서 5.8퍼센트로 뛰어올 랐다. 콩고의 총수출액에서 광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보통 80퍼센트에 달한다. 우리가 인구수에 비해 정부 예산이 극단적으로 적은 국가에 관 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은행의 자료를 바 탕으로 추산해 보면 콩고 정부의 예산으로는 매일 국민 한 명에게 겨우 2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 12 이런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기업 들이 윤리적인 이유를 대며 더는 콩고의 코발트를 사지 않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일까.
콩고의 부패한 관료들이 코발트로 얻은 수입의 커다란 덩어리를 먹 어치우고 있을 게 분명하더라도, 기반시설이나 보건, 교육, 안보와 관 련된 기본 요구들은 (덩어리의 나머지로 형성된) 정부 예산을 통해서만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공급될 수 있다.
- 개발도상국만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탄발전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첨단 기술의 요람인 일본은 배터리, 반도체, 로봇 공학, 특수 화합물, 첨단 소재에서 탁월한 성취를 자랑하는 나라지만, 여전히 이산 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약 3분의 1이 석탄 발전에서 나온다.  일본과 '검은 황금'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 1970년대까지 이 나라의 주요 에너지원은 석유였다. 그런데 OPEC이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국가들을 상대로 발효한 석유 금수조치의 대상이 된 후로 석탄이 핵심 에너지원이 되었다. 원자력발 전을 함께 활용했으나, 후쿠시마 참사로 그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또 한 지형이 험해 태양전지판을 설치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해안 근처의 해저가 너무 깊어 해상풍력발전도 어려운 탓에 재생에너지 활용이 더 디다. 일본의 에너지원 구조가 조만간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실제 로 2025년까지 22개의 화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 자동차 엔진을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원흉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실 수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아도 사람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하지만 함께 배기관을 빠져나오는 미세먼지나 이산화질소는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미세먼지는 코와 폐의 자연 방어 막을 쉽사리 통과한다.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세계적 현상이고, 이 문 제를 해결하려면 온실가스의 배출 총량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개 인 건강의 차원에서는 당신 주위에 전기자동차가 많은지, 많지 않은지 가 실제로 무척 중요하다. 이산화질소는 하루 이상 공기 중에 머무르지 않지만, 멀리 이동하지도 않는다. 가장 작은 입자도 처음 배출된 곳에서 겨우 몇 미터밖에 퍼지지 않는다. 이러한 미세먼지는 휘발유나 디젤로 덮인 금속들을 혈액으로 운반해 암을 유발하고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 화시킨다.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보다 훨씬 높은 지역 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폐활량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이 온난화를 멈추는 데 도움이 될지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해도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숨 쉬는 공기의 질을 높여줄 것은 분명하다.

-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여러 유형의 배터리에 들어가는 금속은 리 튬과 코발트뿐이 아니다. 흑연은 음극재를 만들 때 필요하며 니켈은 NCM 양극재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생산하는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에는 리튬보다 흑연과 니켈이 더 많이 들어가므로, '리튬 이온 배터리'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흑연과 니켈 시장은 배터리 생산을 위한 수요보다는 특 히 철강 생산을 위한 수요가 주도한다. 니켈은 강철의 강도와 인성靭性," 부식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준다. 흑연은 강의 보호제로 쓰이며 또한 용광로를 싸는 막으로도 활용된다. 배터리에 사용되는 니켈은 전 체 수요의 약 3퍼센트로 250만 톤 정도다. 45 따라서 흑연과 니켈을 채굴 하는 대부분의 기업에 배터리 산업은 새롭고 흥미로운 수요처지만, 더 큰 그림에서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흑연이나 니켈을 생산한다고 해서 배터리 산업에 자사의 제품을 무조건 공급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 를 복잡하게 만든다. 배터리에 필요한 것은 니켈 자체가 아니라 그가 공품 중 아주 최근까지도 틈새시장용 제품으로만 알려졌던 황산니켈 nickel sulfate이기 때문이다.
순위를 따져보자는 건 아니지만 흑연과 니켈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리튬이나 코발트산업을 넘어서는 듯하다. 연필심과 거의 같은 물질인 흑연은 탄소의 한 형태인데, 탄소와 관련된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지저분하다. 이론적으로 흑연에 엄청난 압력과 열을 가하면 만들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만 예외다. 흑연은 채굴로 얻기도 하고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두 가지 방법으로 생산한 흑연 모두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지만, 채굴된 흑연이 훨씬 저렴해서 음극 활물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대개 이쪽을 선택한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든 흑연은 일 반적으로 두께가 얇은 조각 모양인데, 음극재에 사용하려면 형태를 다듬고 정제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이후의 화학 처리 단계에 비하면 채굴 작업은 편하다고 할 수 있다.

- 일본의 재활용 산업은 2005년 전자기기 폐기물 10만톤을 처리했는 데, 오늘날에는 30만 톤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정부는 환경보호의 차 원을 넘어 수익성 있는 경제 분야로 성장하도록 이 산업을 지원하고 있 다. 오래된 회로 기판에서 금이나 은을 수확하거나 폐가전제품에서 구 리를 찾아내는 사업은 이미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
올림픽은 언제나 개최국의 힘을 보여주는 무대로 활용된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환경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한 첨단 기술보 유국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했다. 이에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로 움직 이는 전기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기술은 배터리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지만, 리튬이 더 많이 들어간다. 또한 지금까지 일본에서 보지 못한 규모의 자율주행차 들을 동원해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려고도 했다. 한편 선수들에게 주어 지는 메달은 재활용된 금과 은, 구리로만 만들었다.
- 2019년 애플은 자사의 재활용 프로그램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17 이 회사는 아이폰 6만을 대상으로 한 선구적인 해체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한 후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폐기된 아이폰 6가 온전한 형태로 해 체라인에 놓이면 29대의 로봇이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이며 21단 계를 거쳐 분해한다. '데이지Daisy'라 불리는 이 해체라인은 이제 15종 의 아이폰을 시간당 200개씩 분해한다.
하지만 애플이 만든 데이지는 자사 제품만 속속들이 알고 재활용한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배터리가 들어가는 제품의 생산 업체에 재 활용 의무를 지운 중국 법이 합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배터리에 표준 화된 일련번호를 붙이는 것도 무척 유용하다. 미래의 로봇들이 자신들 의 불완전한 '시각에만 의존하는 대신 일련번호를 해독해 관련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배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면, 우리가 오랫동안 전기자동차 배터 리의 가격을 (배터리 수준에서) 킬로와트시당 100달러 이하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리튬을 이용한 일부 양 극재(가령 LFP)에서는 이런 목표가 달성되었으나, 35 니켈을 이용한 양 극재의 경우 가장 뛰어난 성능을 내는 배터리의 가격이 킬로와트시당 150달러 근처에 머물러 있다. 킬로와트시당 100달러라는 목표는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가격대를 유지해야만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 오늘날 리튬 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전해질은 액체인데, 유기용제 와 리튬염, 각 요소의 바람직한 특성을 강화하는 첨가물로 구성된다. 이 화합물은 인화성이 대단히 강하지만, 이상적인 전해질에 요구되는 특성을 고루 만족하기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온전도도ionic conductivity가 높고 전자는 전달하지 않으며, 양극재와 음극재에 반응하 지 않고 높은 전압을 잘 견디며, 가격이 저렴하고 안전하다. 사실 안전 성은 오늘날 사용되는 각종 전해질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아킬레스 의 발뒤꿈치처럼 배터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따라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려는 동기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리튬 기반의 음극재에서 피어나는 덴드라이트의 성장을 억제하고, 배터리의 안전성을 전반적으로 향상하기 위해서다. 고체 전해질로는 리튬 이온에 대해 높은 전도도를 보이는 세라믹 화합물이 가장 많이 거 론된다.
놀랍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도 덴드라이트의 성장을 막는 데는 실패 했다. 리튬처럼 부드러운 금속이 유리만큼 단단한 세라믹 화합물을 파 괴한다고 하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겠지만,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 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위를 뚫는다' 는 격언을 알고 있지 않나. 덴드라이트가 바로 그런 일을 해낸다. 부드 럽긴 하지만 엄청난 압력을 가해서 고체 전해질인 세라믹 화합물을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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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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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밸류 빅샷 20

경영 2023. 9. 5. 12:10

요즘 세계경제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지정학적 분열로 인해 전세계가 공들여왔던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희망사항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위기도 더 이상 이상기후현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 등의 불안요인에 사회양극화가 더해지면서 사회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의 위기에 직면할지 모르는 초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변수들 속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고, 특히 경제의 버팀목인 기업이 방향을 잘 잡아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속가능성 및 ESG경영의 중요성은 더해만 가고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리얼밸류는 코스코그룹이 추구하는 새로운 가차칭출 철학이다. 22년 3월 코스코그룹은 지주사 체제를 출범하면서 리얼밸류 경영을 통해 그룹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그룹역량과 미래성장 잠재력을 실현해 리얼밸류 프리미엄을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리얼밸류는 그야말로 진짜 가치, 다시 말해 기업이 비즈니스를 통해 만들어내는 모든 유무형의 가치의 총합을 말한다. 주식가치만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 나아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구성원들에게 제공하는 총가치로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은 최종적인 가치창출에 기여한 선수들, 즉 임직원, 공급사, 고객, 주주, 국가, 지역사회, 자연환경에 대해 각각 기여한 만큼의 합당한 몫을 재무적 혹은 비재무적 형태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런 셈법이 리얼밸류 경영이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이 책은 코스코경영연구원의 ESG경영실을 주축으로 리얼밸류 경영을 소개하는 사례를 엮은 책이다. 주로 팬데믹 전후로 경제뉴스를 장식했던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 즉 스티브잡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등 해외유수기업 CEO들의 성공비법을 리얼밸류 경영의 프레임워크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돈을 좇는 욕심에 기반해 위대한 기업을 일구고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비록 리얼밸류라는 궃적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한 시대를 이끌어온 전설적인 CEO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리얼밸류의 정신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은 4개의 인류를 위한 선물, 비즈니스의 품격, 가치를 보는 안목, 희망과 구원의 손길의 4개의 챕터에 걸쳐 20명의 경영자가 각자 나름의 리얼밸류 경영을 통해 회사가 가진 유무형의 활용도를 높이고, 경제/환경/사회적 측면의 가치를 창출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경영자들에게도 좋은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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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복합 기업은 과거와 다르다. '돌아온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완전히 새로운 복합 기업이며, 정확하게는 복합 기업의 개념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복합 기업 은 본업에서 벌어들인 자산을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데, 이른바 분 산 투자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당시 유행하는 비즈니스에 맞추어 '무슨 사업이든 잘만 되면 돈을 번다'라며 누가 뭐라든 투자 마인드로 다른 사업으로 확장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11개 회사의 복합 기업은 모든 사업이 데이터로 연결되어 있다. 
- 기업의 형태가 복합 기업화하는 것은 미래의 트렌드이기 때문에 데이터는 어떤 것이든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는 쓸모없고 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아도 상관없다. 탐정이나 형 사가 수사나 추리를 위해 온갖 정보와 증거를 끌어모으는 것과 같 다고 보면 된다. 미시경제학에서는 '시그널링signaling' 이라고 부르 는데 이것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음식의 취향은 물론이고 머리 색깔은 무엇인지, 숱이 많은지 적은지, 반려동물을 좋아하는지, 개와 고양이 중 어느 쪽을 키우는 지, 산책은 하루에 몇 번 나가는지 등 어떤 정보라도 좋다. 예를 들 어 어떤 고객이 투자 신탁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다른 사업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하자. 당연히 투자신탁에 흥미가 없는 사람보다 는 흥미를 느끼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계약 성사율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데이터를 연계하고 활용하여 복합 기업에서 낭비를 최대한 줄이고 수익률을 높여 나간다. 앞으로 미래에서는 이것을 당연한 일로 여길 것이다.
- 전부터 데이터를 이용하고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단지 프라이버시나 테크놀로지의 한계 때문에 생각만큼 제대로 활용하 지 못하다가 이제야 클라우드와 우수한 데이터 공학자의 등장으로 비로소 가능해졌다. 게다가 복합 기업화로 기업도 데이터를 사용 하지 않을 재간이 없어졌다. 데이터의 이용과 활용, 거기에서 비롯 된 시너지는 향후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기업은 GAFA 등 11개 회사를 비롯한 시대의 흐름 을 타는 기업에 흡수당할 게 불 보듯 뻔하다.
- GAFA도 영상업계에 참여하고 있다. 아마존에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구글에는 유튜브, 페이스북에는 인스타그램이 있다. 이들 GAFA는 어떤 트렌드에 맞춰서 무슨 키워드로 영상 비즈니스를 하 고 있을까? 바로 AI를 통해 추천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나온 여배우의 의상이 멋있어서 사고 싶다고 하자. 2025년에는 버튼만 눌러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와 유사한 방식의 상품 판매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가 2025년에는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다.
영상업계의 트렌드는 예상보다 꽤 앞당겨 실현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만 사 용하던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제는 많은 사람이 원격 근무를 위 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외출 자제 분위기 속에서 앞서 이야기한 동영상 서비스처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AI, 특히 화상 해석 기술인 딥러닝도 몰라보게 정교해졌다. 이렇게 상황이 변하면서 2025년쯤에나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트렌드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비즈니스 거래도 줌 등의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 상대방과 주고받는 거래의 영상을 AI로 해 석하여 어떤 말투나 표정일 때 좋은 인상을 주어 계약이 성사되는 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개그맨이나 가수, 아이돌이 온라 인으로 라이브 화면을 전송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몸짓이나 표 정을 지어야 시청자가 좋아하는지, 시청자가 경멸하는 듯한 반응 을 보일 때 자신은 어떤 표정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등을 동영상 해석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 GAFA 중 어떤 기업이 농업 부문에 진출할까 살펴보면 아마존 이 가장 유력하다. 아마존은 아마존 베이직이라는 독자적인 브랜 드가 있어서 기존 사업 영역에 농작물 하나를 추가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프라이빗 브랜드(유통업체가 자체 개발한 브랜드 -옮긴이)로 아마존 우유, 아마존 딸기, 아마존 멜론 등이 가능하 다. 실제로는 농가와 협업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역시 복 합 기업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GAFA가 소규모 농업 법인을 인수 합병하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아마존은 2017년에 고급 식료품을 취급하는 홀푸드마켓 이라는 슈퍼마켓 체인을 인수했다. 각 체인점의 정보망을 통해 어 느 지역에서 어떤 식재료의 수요가 많은지 파악하고 있다. 멜론 수 요가 높은 지역에서는 딸기 생산 공장처럼 멜론만 만드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또 하나 농업의 미래를 위해 차별화된 노력을 하는 기업이 바로 고마쓰다. 정확히 분류하면 임업이지만, 고마쓰는 산에서 나무를 벌채한 순간 벌채기에 탑재된 카메라로 나무의 상태를 스캔한 다 음 그 정보를 얼른 클라우드에 올린다. 그러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에서 가격이 어느 정도 될지 재빠르게 파악한다. 고마쓰는 실 제로 이런 시스템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나무를 베는 순 간 가격이 매겨지는 셈이다. 농업 같은 1차 산업에서는 아마 이런 것들이 미래에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어업이라면 물고기를 잡는 순간 배에 탑재된 카메라 등으로 분석하여 가격을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미래가 실현되면 그동안 쓰키지 시장 같은 도매시장에서 전문 중개상들이 하던 가격 책정을 소프트웨어나 AI가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 러 수확한 지 오래된 생산물의 신선도 등도 자동으로 표시해줄 수 있다. 그러면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생산자에서 소비자 혹은 소 매업자에게 직접 연결되는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다.

- A사는 하드웨어, B사는 소프트웨어, C사는 서비스............ 예전에 존재했던 이러한 업종 구분이나 벽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하드 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지금은 이들 세 영역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어느 한 영역만 다뤄서는 GAFA 같은 복합 기업에 먹힐 거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퍼스트'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은 소프트웨어가 우위에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보다 한 걸음 앞서가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는 것은 당연하고 아울러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 즉 '경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서비스 (경험)가 혁명의 출발점이 된다.
아마존을 예로 들어보겠다. 아마존은 아마존 에코라는 하드웨어 를 만들고 알렉사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AWS 라는 클라우 드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운송도 직접 맡아서 하는데 아마존 프 라임과 같은 시스템으로 고객의 마음을 굳건하게 사로잡고 있다. 아마존이 강한 이유는 이렇게 모든 영역을 제어한 상태에서 아마존다운 서비스, 즉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하드웨어를 단지 상자 정도로밖에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상자를 활용하여 만들어내는 고객과의 관계이다. 미래에는 모든 영역을 제어한 다음, 어떻게 사용자가 바라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경험이 좋은지 나쁜지에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린다.
- 고객 경험 중심의 경영과 관련하여 알아둘 게 하나 더 있다. 제 공하는 서비스 그 자체로 수익을 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 애플카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아이폰 사용자를 묶 어두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이폰 사업으로 수익을 내면 되는 것이지, 카드 사업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에게 편리함만 주면 된다 는 것이다. 더 나아가 데이터 수집을 위한 도구이자 고객과 만나는 접점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말해 애플이 카드 사업에서 수익이 '0'이 라도 상관없다. 카드사가 GAFA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이 런 이유 때문이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그리고 업종의 벽도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만족도다. 이런 마인 드를 가진 기업만이 미래에 승리한다.

- 특정 사업에서 수익 제로, 혹은 적자여도 좋다는 생각으로 출시한 상품이나 서비스는 팔리지 않아도 실패가 아니다. 아마존은 잇달 아 새로운 디바이스를 출시하고 있는데 아마존의 생각은 이렇다. 만일 그 디바이스가 팔리지 않다손쳐도 고객 데이터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으면 된다. 혹은 그 디바이스를 계기로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해주면 된다. 나아가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했으니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커머스를 통해 판매하는 상품은 10% 할인 해줘도 상관없다. 다른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볼 때는 적자 상태에 서도 비즈니스 모델로서 효용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 만 할 것이다.
- 아마존은 출시 후 평가가 좋지 않으면 데이터만 얻고 바로 철수했다. 아마도 아마존이 세상에 내놓은 제품의 70~80%는 별 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고 금방 사라져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30%만이라도 히트하면 그것도 감지덕지라 생각하고 계속 도 전했고 이러한 태도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전략은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들여 고성능 하드웨어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디바이스를 발 빠르게 선보이는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아마존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항공권 등을 살 기회가 많은 사람은 시간과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 했을 것이다.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가변가격제)이라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변화를 보면 항공권은 1분마다 아마존과 관련해서는 초 단위로 변화하고 있다.
이커머스에서 당연시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흐름은 오프라 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미 도입한 슈퍼마켓도 있는데 바로 전자태그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이다. 전자태그를 통해 이른 아침에는 500엔에 판매하던 생선회가 오후에는 400엔, 저녁에는 300엔, 폐 점 직전에는 절반까지 떨어지게 된다.
시간대에 따른 가격 할인은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대형 마트 등 에서 지금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시간대뿐만 아니라 구매자 에 따라 값을 바꿀 수도 있다. 라이프타임 밸류Lifetime Value (고객 평 생 가치)라는 개념이다. 라이프타임 밸류는 오랜 기간을 상정해놓고 매기는 가격이다. 지금의 가격이 평소보다 훨씬 싸고 그 가격에 판매하면 적자를 낸다고 치자. 그런데 어떤 구매자의 속성을 보니 지 금 사면 앞으로 1년간 계속 살 것이라는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알 게 되었다면 어떨까?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될 테니까 당연히 지금 한 번쯤이야 적자를 각오하고 판매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이런 계 산과 비즈니스가 가능한 것은 바로 데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커머스에서는 라이프타임 밸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 이고 있다. 그리고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물론 이커머스의 흐름을 볼 때, 미래에는 전자태그의 확산으로 라이프타임 밸류가 오프라 인에서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 서브스크립션과 리스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소개되 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이 둘의 같은 점은 연회비 등의 표면적인 부 분뿐이고 내용물이나 서비스의 본질은 전혀 다르다. 리스는 단지 빌려주는 것뿐이다. 반면에 서브스크립션은 고객에게 최선의 가 치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 본질로, 데이터를 모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리스와 서브스크립션의 차이를 자동차에 빗대어 설명해보겠다. 리스라면 차량별로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하지만 서비스의 질은 바뀌지 않는다. 한편 서브스크립션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서비스 내용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객들이 주말이면 캠핑하며 낚시와 스노보드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자. 그러면 이 정보 를 반영하여 다음부터는 아웃도어형 SUV를 소개해줄 수 있다. 더 나아가 복합 기업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최신 낚싯대 나 보드를 소개할 수 있으며 숙박업소도 안내해줄 수 있다.
이처럼 서브스크립션은 데이터를 철저히 활용하여 UX(사용자 경험)를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면 서브스크립션의 잠재성을 살려낼 수 없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일정 기간 무료로 제공하거나 유·무료 통합형이 있는데 양쪽 모두 고려하는 것이 좋다. 다만 자신들의 서비스나 브랜드에 관심을 가진 고객이 많다는 확신이 있을 때는 유료형을 도입할 수 있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같은 테마파크나 호텔 등 을 비롯한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이전부터 연간 이용권이 나 베케이션 클럽이라는 서비스가 있었다. 이 역시 서브스크립션 과 혼동하기 쉬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 결론부터 말하면 처음부터 목적이 다른 서비스다. 연간 이용권 은 기업의 이익 추구가 목적이다. 연간이라고 해도 1년에 몇 번이 나오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만든 거기 때문에 할인 금액처럼 보여 도 수익이 보장된다. 베케이션 클럽도 마찬가지다. 베이케이션 클 럽에는 고객이 몰리는 성수기에 이용할 수 없는 등의 제약이 들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는 고객에게 가치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 다. 즉, 서브스크립션의 정의와 맞지 않는다. 최근에는 연간 이용 권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 서비스를 향상하는 데 활용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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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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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전쟁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는 미국 기술로 만든 '산업의 쌀'이 었지만 이젠 '적을 궁지로 몰아붙이는 무기가 되었다. 제조 시대에 는 철이 산업의 쌀이었지만 정보 시대에는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 되 었다. 미·중의 기술 전쟁이 시작되면서 반도체는 중국에서는 '심장', 미국에서는 '안보'로 격상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안보를 지키고 심장을 확보하는 데 봐주기나 양보 가 없다. 1986년 G1 미국과 G2 일본 사이에서도 10년에 걸친 반도체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대의 미·일 반도체 전쟁은 산업의 주도권을 두고 싸운 전쟁이었고 같은 민주주의 국가끼리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2023년 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미·중 반도체 전쟁은 다르다. 산업의 주도권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두고 싸우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간 패권 전쟁이다.
해양의 시대에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고, 산업혁 명 시대에는 에너지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지만, 4차산업 혁명 시대에는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지금 손톱 크기의 1/3이 채 안 되는 작은 칩Chip 속에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밀 코드가 숨어 있다.
- 미국은 트럼프 정부인 2018년부터 중국과 3년간 무역 전쟁을 했다. 하지만 세계 1위의 무역 대국인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하지 못했다. 미국의 대중국적자는 더 커졌고 무역 규모는 더 늘어났다. 그래서 미국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 전략을 바꾸었다. 중국이 치명적으로 약한 반도체 기술 전쟁을 시작했다. 제조 시대에는 석유 공급을 끊어서 전쟁을 끝냈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 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반도체의 공급을 끊어 버리면 간단히 전쟁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미·중의 반도체 전쟁에서 옆에 서서 구경하던 한국이 미국에서 날린 짱돌에 맞았다.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착공하고 삽질을 시작한 한국은 미국의 황당한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과 심사 기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국은 미국 공장을 착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미 국으로 보면 국부 유출을 막는 기막힌 지혜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보조금의 덫'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TSMC는 삼성보다 많은 4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했는데 막상 착 공하고 나니 난관이 많다. 엄살이 포함되긴 했지만 TSMC는 인건비, 미국산 사용 허가 규정 준수, 인플레의 영향으로 공사 비용은 대만의 4배, 생산원가는 50~100% 높을 것이라며 우는소리를 한다.
TSMC는 미국의 반협박에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지만 속으로는 삼성을 제치고 미국 고객을 싹 다 잡아 보겠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식 제도와 대만식 관리의 충돌에 한숨짓고 있다.
첫째,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공급망의 결핍으로 제조 원가가 급상승할 판이다.
둘째, 구글·아마존 같은 인터넷 회사나 퀄컴· AMD 같은 칩 디자 인 회사에서 커피 마시며 컴퓨터 보면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 하는 미국의 고급 엔지니어링 기술자들을 방진복에 3교대 하는 반도 체 공장에서 관리하는 것이 최대 난제다.
셋째, TSMC 공장은 고객의 비밀 관리를 위해 모든 직원의 카드 출입증을 통해 직원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공장에서 핸드폰 사용 금 지는 물론이고 사무구역에서조차도 최소한의 기능만 있는 블랙베리 휴대폰만 가지고 업무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 이런 문화에 서 미국의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와 인권을 따지는 노동자들을 관리 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넷째, 돈으로 건물을 짓고 장비는 사지만 문화를 사지는 못한다. 미국 문화를 대만 문화화하지 못하고, 대만 문화가 미국 문화에 동 화되면 TSMC의 신화도 끝난다. TSMC는 2024년에 4nm, 2026년에 3nm 공장을 400억 달러를 들여 짓는데, 대만에서 1,000여 명의 인재 가 3년 계약으로 미국으로 간다. 3년 후 대만 엔지니어들에게 영주권이 주어졌을 때 문화 차이, 환경 차이, 특히 자녀교육 문제 등이 걸리면 그들은 인텔 등 미국 회사로 이직할 가능성이 크다. 공장은 지 었지만 숙련된 고급 인재를 미국에 고스란히 바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황당한 것은 2023년 3월 27일 공개한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 기술연구소NIST의 미국 투자 기업 보조금 신청 신고 자료 목록이다. 기업의 현금흐름과 예상이익은 물론이고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가동률, 수율 등의 생산 정보, 소재, 인건비, R/D 등의 원재료와 원가 정보, 판매 가격을 모두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 해당 파일 템플릿을 보면 반도체 애널리스트의 수익 예상 모델보다 더 정교하다. 초과이익 공유를 산출하기 위한 근거라는 명분으로 반도체 기업의 기밀로 분류되는 가장 민감한 비밀 정보를 모두 미국 정부에 제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법팀에 전직 반 도체 전문가와 금융 전문가를 대거 배치해 송곳 검증을 하겠다는 것 이다. 결국 이것은 명분은 뭐라고 하든지 간에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에서 미국이 일본 기업에 요구했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 이름만 지원법이고 이를 통해 한국과 대만 기업의 첨단 공장 기밀을 모두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 지금 한국은 미·중의 기술 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지난 3년 간의 미·중 전쟁을 보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보이지만 문제는 미 국의 반도체 기술 봉쇄의 실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제재받은 중 국 기업 중에서 사라지거나 망한 기업이 없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 들어 기술 동맹,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 등의 조치는 많았지만 완 성된 것은 없다.
기업은 돈이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간다. 2023년 3월 25일 베이징 에서 중국 정부가 주최한 중국발전고위포럼에 세계 500대 기업에서 CEO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미국의 대표 기업 애플의 팀 쿡, 한국 의 대표 기업 삼성의 이재용 회장도 참석했다.
미·중이 전쟁 중이고 미국의 첨단 기술을 중국에 가져가지 말고, 중국에서 공장을 빼라는데도 애플, 인텔, 화이자, 퀄컴 같은 미국 첨단 산업의 대표 기업 CEO들이 중국 정부의 초청에 대거 참석하고 중국 경제 예찬론을 읊조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바로 시장 때문이다. 첨단 기술의 역사를 보면 기술은 돈이지만 기술은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고객이 바로 돈이다. 2023년에 세계 반도체 시장이 불황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고 있고 주요 회사들이 모 두 적자로 전환되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35%를 차지한다. 경기회복이 가장 빠른 중국이 이번 반도체와 IT 불황의 구세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을 정확히 봐야 한다. 미국의 반 도체 봉쇄로 중국의 반도체는 다 죽었다는 것이 한국에서 보는 일반 적인 시각이지만 미국 정부가 제한한 중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기준 D램DRAM 18nm, 낸드NAND 128단, 로직 Logic 14~16nm가 지금 중국 반 도체의 진짜 실력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양산 기준으로 로직에서 7년, D램에서 5년, 낸 드에서 2년 격차다. 개발 기준으로 보면 낸드는 1년, D램은 3년 격차 다. 2023년 3월 16일 대만 언론사가 주최한 포럼에서 대만 반도체 업 계의 대부인 TSMC의 장충모 회장도 중국 본토 반도체 기술은 대만에 비해 5~6년 뒤져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2022년 9월 상하이 경제정보위원회 Shanghai Economic and Information Tech Commission의 책임자는 중국이 14nm 로직칩 생산, 90nm 노광기, 5nm 에칭기, 12인치 대형 실리콘 웨이퍼의 국산화를 달성했고 5G 칩과 같은 첨단 통신 칩도 국산화를 이루었다고 발표했다. 2023년 3 월 6일 화웨이는 14nm급의 반도체 설계를 할 수 있는 EDA를 국산 화했다. 이게 중국 반도체의 진짜 얼굴이다.
- 2022년 8월까지 중국 반도체 회사 5,746개가 폐업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국에서는 중국 반도체 업계가 미국의 견제에 망했다고 보 는 시각이 넘쳐 나는데 이것도 오해다. 2022년 중국의 연간 반도체 기업 창업 수는 6만 개가 넘고 부도율은 9.6% 선이다. 최근 5년간 중 국은 15만 2,060개 반도체 기업이 창업했고 1만 3,033개 기업이 폐 업했다. 폐업율은 8.6%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2014년에 만들어진 1기 국가반도 체펀드와 2019년에 만들어진 2기 국가반도체펀드가 투자한 60여 개 기업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것이지 손바닥만 한 반도체 디자인 업 체 수천 개, 수만 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간 2개의 국가펀드 가 투자한 60여 개 기업 중에서 망하거나 폐업한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 미·중의 반도체 전쟁으로 이제 반도체의 세계화는 죽었다.' 향후 20년간 유럽, 중국, 대만, 한국이 투자하겠다는 반도체 투자 금액은 2022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6,135억 달러의 1.7배 수준이다. 당장 한국, 대만, 미국이 짓는 5mm 이하 공장만 계획대로 모두 완공되면 2025년 이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심각한 치킨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가 경쟁력인 반도체 산업에서 투자 능력이 떨어 지면 자동으로 탈락이다.
- 한국은 반도체 불황 사이클에서 역발상을 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이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것은 한국에게는 단기로는 악재, 장기로는 호재다. 당장 한국 기업의 중국 메모리 공장들이 타 격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메모리의 공급 부족을 불러오고 중국과 의 메모리 기술 격차는 더 커지게 만들어 추격자를 없애는 효과가 있 다. 진정한 싸움꾼은 한 놈만 팬다. 낸드에서 투자를 늘려 3, 4, 5위 를 죽여 한국 점유율 75% 신화를 만들고, D램에서 투자를 늘려 3위 를 죽여 한국 점유율 95% 신화를 만들면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이런 담대한 반도체 전략은 G1 미국과 G2 중국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다. 세계 1위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대만은 반도 체 공장에 물이 부족하자 농업용수를 우선 공급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한국에 날아왔고, 중국 은 반도체 국산화 기업에 법인세를 10년간 면제했다.
지금 반도체 산업은 재벌의 수익 사업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도 국가의 명운을 건 안보 산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반도체는 지금 국가대항전이자 쩐의 전쟁이다. 미·중을 상대로 한 반도체 전 쟁에서 안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남을 죽이기 전에 우리 편이 먼저 죽는 우를 범하면 안 된 다. 반도체 산업에 남들보다 못한 지원을 하면서 미국, 대만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미·중의 전쟁에서 아직까지 한국이 발언권이 있고 부당한 대우 에 항의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미·중이 절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한 첨 단 반도체 생산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를 다이아몬드알을 낳는 거위로 키워야 미·중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투자 타이밍을 놓치고 기술 개발에 서 처지는 순간 한국의 반도체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반도체 산업 이 지는 순간 한국도 지게 된다. 반도체는 지금 한국을 지키는 최종 병기다
- 미국은 반도체법에서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 390억 달러 와 첨단 반도체 R&D 지원 110억 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만 총 527 억 달러(69조 원)를 지원한다.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 세액공제로 10년간 240억 달러(31조 원) 상당의 지원도 한다. 그 러나 관련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에서 첨단 반 도체 제조 시설 확충을 포함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두었다.
미국이 이런 파격적인 지원과 투자를 하는 이유는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석유'이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은 인간의 행동 에서 빅데이터를 만들고 여기서 IP를 뽑아 AI(인공지능)를 만들어 로 봇의 머리에 심는 것이다. 그런데 0과 1의 디지털 기술로 빅데이터 를 만들어 내는 기계가 반도체이고 이것을 장악하면 4차산업혁명의 패권을 쥔다.
- 2022년 7월 28일 미 의회는 5년간 총 2,80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 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전후 유럽을 살린 유명한 마셜 계획은 총 131억 5,000만 달러였는데 이를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현재 통화 로 1,616억 달러에 불과하다. 따라서 반도체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크고 광범위한 법안 중 하나다.
이번 미국의 반도체법과 이와 연계한 반도체 Chip4 동맹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에 부응해 미국과 협력할 경우 중국 의 보복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 미국의 반도체법은 대중국 견제는 명분이고 본질은 '반도체 미국 회귀법Semiconductor Pivot to America Act'이다. 오히려 한국으로서는 과거 일본 반도체 업계가 미국에 당했던 '제2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 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법안의 성격을 명확히 규 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 서명식에서 "반도체는 미국이 발 명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해외에서 생산하도록 그냥 뒀다. 코로 나19 대유행 기간에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서 경제는 멈춰 섰고, 가 계는 높은 물가에 시달려야 했다. 이 법은 반도체를 바로 이곳 미국 에서 생산하도록 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배가시킬 것이다."라고 언급 했다.
- 중국이 '중국제조 2025'에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맹비난했던 미국이 이젠 앞장서서 반도체에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퍼붓는다. 앞뒤가 안 맞지만 강자가 하면 로맨스고 약자가 하면 불륜인 것이 지금의 국제 상황이다.
미국의 보조금은 인텔을 위한 보조금이고 '미국 반도체 내재화 전 략Semiconductor USA Inside'이다. 한국과 대만 기업에도 보조금을 준다는 것은 당장 급하니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일 뿐이다. 중국의 견제 는 명분이고 미국의 반도체 인사이드' 전략이다.
미·중의 반도체 전쟁 과정에서 미국이 반도체를 보는 정의가 달 라졌다. 지금 트럼프의 반도체와 바이든의 반도체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는 '첨단 공산품 반도체'였지만 바이든의 반도체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전략물자 반도체다.
- 메모리는 한국, 로직 제품은 대만에 생산을 의존하는 미국은 중국 의 부상 이후 이를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대만은 중국, 한국은 북한 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다. 만일 유사시에 이들 지역에 문 제가 생기면 대만과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첨단 산업도 원시 시대 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은 이제 스마트폰이 아니라 자율주행 전기차가 주도 품목이다. 반도체 소요량을 기준으로 보면 핸드폰이 '반도체 통조림' 이라면 자율주행 전기차는 반도체 드럼통' 수준이다. 내연기관 자동 차에는 반도체가 200여 개 필요하지만, 전기차에는 400~500개, 자율 주행 전기차에는 1,000~2,000개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려면 반도체 생산을 반드시 미국 안에서 해야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생산과 소비 구조를 보면 미국은 전체 반도체 밸류체인의 38%를 장악하고 반도체 소비의 25%를 차지하 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 단계에서 미국의 반도체 웨이퍼 가공 Wafer Fabrication 의 점유율은 12%에 불과하고 조립 테스트 Assembly and Packaging Test는 2%에 그치고 있다. 유사시에 반도체 웨이퍼 가공의 72%를 담당하는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의 IT 산업은 대책이 없다.
- 미·중의 경제 갈등과 미국이 반도체를 국가 안보 산업으로 규정하 고 첨단 반도체의 생산 내재화를 내건 이후 세계 반도체 산업 구도에 대풍랑이 몰아쳤다. 미국과 유럽의 자국 영토 내 생산, 중국의 국산 화 전략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에는 반도체 산업에 정부 보조금과 생 산 설비 증설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가 국가 안보 산업으로 격상되면서 투자나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최고의 기술과 안전한 생산이 중요해지면서 기존의 자유 시 장경제, 공정 경쟁, 경제성의 문제는 뒤로 가고 모든 국가가 보조금 경쟁과 투자 경쟁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는 돈이 안 되는 투자 다. 돈이 되는 시장이었으면 인텔이나 마이크론이 해외로 나갔을 리 가 없다. 장사꾼은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다. 미국 공장이 돈이 된 다면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가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 공장을 짓고 대대적인 증설을 했을 것이다.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세계 정상의 기업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 곳에 공장을 지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미국이 40여 년간 구축된 반도체 생태계를 무시하고 자 국 수요를 스스로 충족하는 국산화 전략으로 가면 반도체 산업에는 엄청난 비효율적인 투자와 비용 증가가 수반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BCG가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별로 필요한 반도체의 자급 체 계를 갖추려면 세계 반도체 업계는 900억~1조 2,250억 달러의 투자 를 해야 하고 매년 450~1,250억 달러의 운영비를 써야 한다. 문제는 이런 투자를 할 경우 전 세계 반도체 원가는 35~65%나 올라간다는 것이다.
- 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가 만든 기형적인 반도체 지원책에 대해 미국 내에서, 그리고 유럽에서도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 고 있다. 표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지율 낮은 바이든 정부의 속 사정, 그리고 자기 합리화가 필요한 미국 정부의 애국심은 이해되지 만 돈에는 애국심이 없다. 돈이 되면 되돌아가는 것이고 돈이 안되 면 떠나는 것이다.
미국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국과 대만은 돈이 되면 미국의 양자가 되는 것이고 돈이 안 되면 파양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 대만 과 한국의 미국 반도체 공장은 527억 달러라는 보조금 약발이 떨어 진 다음에는 수익성을 따질 것이다. 시장의 65%가 아시아와 중국에 있고 제조 원가도 아시아가 싼데 계속 미국에서 증설하고 확장할 이 유가 있어야 한다.
미국 반도체 공장의 환상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이 40여 년 전에 해외로 나간 이유가 있다. 365일 3교대를 돌려야 하는 반도체 공장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3,000달러대의 한국에서도 어려운데 7만 5,000달러대의 미국에서 원가를 맞추기는 더 어 렵다.
미국반도체협회SIA가 BCG와 공동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미국에서 로직 제품을 생산하는 반도체 공 장의 운영 비용은 한국과 대만보다 22%, 중국보다는 37%가 높다. 메모리의 경우도 한국과 대만 대비 21%, 중국 대비 34%가 높다.
역사적으로 첨단 산업은 시발역과 종착역이 같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미국이 종착역에 이른 반도체 산업을 다시 시발점으로 돌리려 는 노력은 패착이다. 예를 들면, 반도체Semiconductor를 넘어서는 신기 술 초전도체 Superconductor를 만드는 것이 답이지 정거장을 한참 지난 기차를 다시 역주행하려면 엄청난 혼란과 비용이 든다.
- 미국이 절대강자였던 1990년대부터 미국 중심의 세계는 자유무역과 국제 분업의 효율성에 기반을 둔 '오프쇼어링off-shoring'과 '아웃 소싱 Outsourcing'이 대세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국 내 제조업 육성과 일자리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제조업 회귀 정책인 '리 쇼어링 Re-shoring' 혹은 '니어쇼어링 Near-shoring'이 대두되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안보와 지정학적 문제가 급변하자 미 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지 국가 또는 동맹국 간 협력을 통해 잠재적 공급망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서 '얼라이쇼어링Ally-shoring'인 '프렌드쇼어링'을 제안했다. 신뢰할 수 있는 다수 파트너 국가와 공 급망 다변화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안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투자 규제(관세, 수출 통제, 투자 감 시), 지정학적 정책(지역 경제·안보 협정), 산업 정책(제조업 육성, 기술 투 자, 정부 조달)을 동원하고 있다.
미국은 가치공유 국가 간 공급망과 첨단 기술 개발에 협력함으로 써 미국의 글로벌 경제, 지정학 리더십을 확대하는 한편 자유무역 국 제분업 효율성은 지향하되 지정학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한다. 이를 미국이 반도체법과 Chip4 동맹을 통해 대중국 반도체 공급망 봉쇄 를 시작했다. 5nm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만은 미국 첨 단 반도체의 심장으로 유사시에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반도체 때 문에 미국이 자동 개입해야 하는 수밖에 없어 대중국 실리콘 방패 Silicon Shield'를 하나 가졌다. 미국 역시 중국의 코앞에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 불침항모를 하나 가지게 되어 서로 윈-윈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은 66%, 한국은 17%를 점유하고 있다. D 램 시장에서 한국은 72%, 미국은 23%, 대만은 4%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파운드리에서는 대만이 없으면 문제가 커지지만 D램에서는 마이크론이 있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도 살 수 있다.' 그래서 파운드리에서 대만의 1/3 수준인 한국은 대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필요하고 D램에서는 중국을 잡는 데 필요하다.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미경중은 수명이 다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미국은 한국에 여러 가지 압력을 넣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반도체 공장에 가고 재무장관이 방한해 배터리 공장에 가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이 필요한 북핵 문제나 통화 스와프 문제는 뒷전이고 미국이 필요한 반도체와 배터리에만 관심을 보인 것이다.
- 한국은 이에 맞추어 한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이 170억 달러, 배터 리 3사가 140억 달러, 자동차 대표 기업이 74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 다. 물론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한 조치이긴 하지만 삼성이 향후 20년 간 1,921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짓는다고 발표했고, LG에너지솔루션도 2025년까지 미국에 7개의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미국 상무부에서는 IRA의 배터리 보조금 문제가 한미 간의 새 로운 대형 쟁점이 되고 반미정서가 고조되자 14nm 이하 반도체 첨 단 장비의 대중국 수출 금지 조치를 한국 기업에게는 1년간 유예해 풀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메모리의 경우 14nm 이하 제품에서는 EUV 노광장비가 필요한데 지금 DUV 장비도 규제하려는 미국이 한 국 기업에게는 메모리 생산을 위한 대중국 핵심 장비의 수급을 풀어 주어 Chip4 동맹의 한 축인 한국을 달래겠다는 속내를 보인 것이다. 첨단 장비의 반입이 어려우면 대미 투자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한 대중국 반도체 투자를 스크랩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한국 반도 체 업계에는 희소식이지만 배터리 업계에는 악재다. 미국에서는 보 조금을 받지 못하고, 중국에서는 Chip4 동맹 가입 시 보복으로 반도 체가 아니라 배터리 소재가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중 싸움에서 배터리의 희생에 반도체가 어부지리를 얻게 된 이상한 형국이 되어 버렸다.
- 미국의 반도체법과 Chip4 동맹은 최대 시장인 중국을 봉쇄하고 중국에서 첨단 공장을 빼내는 것이지만 세계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조치이고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을 잃어버리면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도 약화할 수 있는 조치다.
그리고 이번 조치는 국가간 협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요이 다. 한국의 경우 반도체 수출의 63%가 중국으로 가고 이미 삼성전자 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공장이 있는데 보조금을 대가로 이들 공장 에 추가적인 투자를 금지한다는 것은 한국의 중국 공장을 장기적으로 스크랩하라는 의미다.
- 전기차 보조금의 사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미국은 자국 의 이익에 따라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미국에 공장을 지은 외국 기업 들에게 족쇄를 채울 것이다. 보조금이라는 당근은 미국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고 이것이 외국 기업을 찌르는 창이 될 수도 있다.
공장을 짓고 나서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오면, 다음은 미국 내 첨단 기업에 대한 정보 공개 의무를 법안으로 만들어 기술 공개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공짜 점심을 못 먹게 하는 것이 1차 목표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나라들 역시 미국의 공짜 점심에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도 정부파와 시장파로 나누어질 판이다. 중 국 견제를 핑계로 보조금의 수혜를 크게 받는 정부파 디바이스 업계 와 대중국 수출 금지로 손해를 보고 보조금 수혜를 받지 못하는 소 재, 장비 회사 같은 시장파들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아이러니지 만 실적 악화로 곤경에 빠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2024년 대통령 선거철에 대중국 봉쇄 제한을 일정 수준으로 풀어야 한다고 로비를 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좋은 사례가 배터리다. 바이든 대통령이 IRA법을 통해 중국산을 배제하고 자국산 배터리 혹은 동맹국 배터리를 쓰면 7,500달러 보조 금을 준다는 제한을 하자 배터리 생산을 하지 못하는 미국에서는 한국 배터리 업체를 양자로 들이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기업은 달랐다. 포드와 테슬라가 중국의 CATL과 합작을 한 것이다. '정부에 정책이 있으면 기업에는 대책이 있다.' 포드와 테슬라는 지분은 100% 미국이 갖고 기술은 CATL의 것을 사용해 배터리를 만들어 'Made in USA' 조건을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정책 물 먹이기 다. 기업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기업은 국익보다 주주 이 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일본 반도체를 좌초시키고 일본을 플라자 합의로 엔 고를 유도해 죽인 데에는 공화당의 3연속 집권이라는 정책의 일관 성이 있었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레이건 대통령 2회 (1981~89 년), 조지 부시 대통령 1회(1989~93년) 총 3기 12년에 걸친 공화당의 연속 집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 4년(2017~21년),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 4년(2021~25년), 다음에 다시 공화 당 대통령 4년(2025~29년)이 교대로 이어진다면 미국이 일본처럼 중 국을 죽이기 위해서는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형편없다. 최근에 집권한 10명의 대통령 중 최악이고 트럼프 대통령보다 낮다. 이 추세라면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재선은 어렵다. 표심과 선거자금에 목숨 을 걸어야 하는 미국 정치가 실적 악화의 덫에 빠진 기업들의 로비에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미국의 적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 있을 수 있다.
- 2023년 바이든의 반도체와 1986년 레이건의 반도체는 정책은 똑 같이 미국우선주의지만 문제는 정치 상황이 다르고 미국이 타도 대 상으로 삼은 중국은 1985년의 일본과 10가지 부문에서 다르다는 데 있다.
첫째, 정책의 일관성이다. 미국의 일본 죽이기가 성공한 정치적 상황은 12년간 공화당이 집권해 대일본 정책에 일관성이 유지되었다. 반도체는 4년 주기 사이클이 적어도 3번 정도 지날 때까지 잡아야 상대를 완전히 죽일 수 있다.
미국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부터 중국 때리기를 시작했지만 바 이든의 대중국 정책은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을 홀랑 접었다. 2024년 에 미국은 대선이 있지만 지금 바이든과 집권당의 지지율을 보면 공 화당(트럼프)→ 민주당(바이든)→공화당(?)의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4년마다 한 번씩 대중국 정책 기조가 흔들리면 중국을 좌 초시키기 어렵다.
둘째, 중국의 맷집이 1985년 일본과 비교하면 13배나 커졌고 대 미국 의존도는 절반 수준으로 낮다. 중국은 일본과 달리 금융시장 이 개방되어 있지 않아 미국의 최대 강점인 금융을 무기로 쓰기 어렵 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리더십을 보면 미국이 동맹으로 중국을 공격한다고 하지만 플라자 합의 같은 강한 대중국 금융동맹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작다.
- 결정적인 것은 일본과 달리 중국은 외교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 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말도 안 되는 조건의 엔고와 미· 일 반도체 협정을 찍소리 없이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국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에 칼을 들이대고 안보를 무기로 위협하는 미국을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반도체 정책은 표면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지만 실 제 속내는 한국과 대만의 생산 기술을 미국으로 내재화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는 써먹지 못하는 안보를 중국 본토와 대치 상황인 대만, 남북이 대치 상황인 한국에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대만 공격은 미국의 대만관계법을 통해 미국의 자동개입을 부른다.
둘째, 반도체 방패를 가진 대만의 반도체 산업 역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부른다. 반도체를 품은 닭인 대만을 지키려고 미국이 바로 달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만을 지키는 것은 미국의 무기가 아니라 대만의 첨단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이다.
셋째, 지금 중국의 실력을 보면 군사력에서 게임이 안 된다.
넷째, 중국의 대만 공격은 필연적으로 일본의 개입을 부른다. 대 만과 인접한 일본의 안보 위협에 일본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이기 때문이다. 대만해협, 더 나아가 중국이 점유한 남사군도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대치하고 있다.
다섯째, 이 지역은 중국과 대만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의 해상 안보, 에너지 안보, 식량 안보 문제가 걸려 있다. 대만해협의 긴 장은 대만, 중국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물류망 위협이기도 하다. 대만 문제는 단순한 양안 관계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 더 나아가 미국과의 전쟁이기 때문에 중국은 대 만을 쉽게 공격하기 어렵다
- 미국은 중국의 금융을 먹고 중국은 대만 반도체를 먹고 싶다. 그러나 빨리 먹다 보면 체한다. 그리고 가만두면 동화 속에 나오는 잭의 콩나무처럼 커지니 일찍 먹을 필요가 없다. 중국은 대만 반도체가 더 커졌을 때 먹으면 된다. 빨리 서두를 이유가 없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좌시하지 않겠지만, 미국도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미·중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대만의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이는 정치인 시진핑이나 바이든 개인 의 정치 이익의 극대화다. 정치적으로 보면 미국이나 중국이 대만을 빨리 통일할 이유가 없다
- 중국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복잡한 문제를 수반하는 대 만 무력통일보다 친미 성향 민진당 정부를 낙마시키고 친중 성향 국 민당 정부를 세우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이다. 중국은 경제 교류 확 대와 관광 확대 같은 방법을 통해 대만에 경제적 이득을 크게 제공함 으로써 대만 내 친중 세력을 키워 민진당을 퇴출시키고 친중 성향 국 민당 정부를 세우는 것이 대만의 무력 침공보다 훨씬 쉽고 비용도 싸 게 먹힌다.
이는 미국과 대만의 갈등을 유발하고 대만 내 친중, 반중의 편가 르기를 가져와 대만 내부의 분열을 획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TSMC 창업자 장충모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반도체 를 제조하면 원가가 50% 이상 높아진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미국은 TSMC와 바터를 친다. 미국의 정부자금을 공짜로 주고, 미국의 파운 드리 시장을 몰아주고, 중국 본토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준다.
대만이 미국으로 가는 것은 한국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의 보호를 받지만 언제 중국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달걀 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증시의 격언처럼 TSMC는 반도체 파운 드리의 지역별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다.
- 대만은 전쟁이 나면 중국보다 미국이 더 무섭다. 미국의 국가 안보 보좌관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망설임 없이 TSMC의 공장을 먼저 폭파하겠다고 했다. 첨단 반도체 공장이 중국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전략이다.
대만의 반도체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존재하는, 미국의 반도 체 산업을 육성할 숙주일 뿐이다. TSMC도 1990년대에 오리건주와 워싱터주 접경에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공장을 지었지만 비용, 문화, 인력 문제로 악몽으로 끝났고 2020년대에도 다시 그 악 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만은 중국의 첨단 드론 4대면 TSMC의 핵심 반도체 공장을 폭파당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에 반도체 방패를 군사적 방패로 전환하려면 미국의 해군력과 핵우산 밑으 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미국에서는 527억 달러의 보조금이 있고 투자금에 대해 25%의 세액공제도 된다. TSMC의 입장에서는 시장점유율에서 한국을 따돌 리고 애플, AMD,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의 큰 거래선을 안정적으 로 확보할 수 있어 미국 공장 투자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대만은 지 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해 미국, 일본, 유럽에 공장을 분산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만의 TSMC는 USMC(미국), JSMC(일본), ESMC(유럽)로 공장 분산을 통해 리스크에 대한 보험을 들고 있다.
- 반도체 기술은 10nm 이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가 이끌지만, 반도체 산업의 허리는 레거시 기술의 저가 반도체가 받치고 있다. 10nm 이하 미세 공정 첨단 반도체는 모바일 칩AP, 인공지능, 고성능컴퓨 팅 HPC 등에 쓰인다. 반면 레거시기술의 저가 반도체는 정보기술IT 기기나 자동차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전력관리반 도체PMIC 등에 사용된다.
산업용 제어 칩도 레거시 기술의 저가 반도체가 대부분을 차지한 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세계 자동차와 전자 업체의 생산 차질은 10nm 이하 첨단 미세 공정 반도체가 아니라 8인치 웨이퍼로 만드는 레거시 저가 반도체 MCU, PMIC 등에서 발생했다.
미국이 반도체법을 통과시키면서 미국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14~18nm 이하의 생산 설비 증설 금지 조항을 넣은 것은 이유가 있다. 8인치 웨이퍼를 쓰는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28nm 이상 제품은 구형 공정이어서 핵심 설비들이 대부분 단종된 상태이고 선 진 기업들은 증설에 나서지 않는다.
선진국은 투자를 하지 않고 공급이 부족한 반면 중국은 미국의 기술과 장비 봉쇄로 첨단 제품의 생산이 어렵게 되자 저가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이 한국과 대만, 미국 등에 크게 뒤진 만큼 중하위 기술 역량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 중국 반도체의 삼성, TSMC와의 기술력 비교나 격차를 논하기에 는 이르다. 하지만 제품 수요 시장에서 중국의 전략을 주목해야 한 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로 서방 세계가 중국과 반 도체를 단절하면 중국은 기술 국산화를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고 사 회주의 특유의 국가 동원력을 가진 중국의 국가 역량을 감안하면 중 국은 10~15년 안에 국산화를 이룰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오면서 방 반도체 기업에게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수요처가 사라져 버릴 수 도 있다.
시장이 없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 반도체는 동맹이 중요한 게 아 니고 시장과 기술 혁신이 중요하다. 시장의 30%가 사라지면 기술 혁 신의 동력도 그만큼 줄어들고 투자 여력도 약해진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면서 시장 상호 의존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생각 해야 한다. 미국의 IPEF, Chip4를 넘어서는 10~15년의 긴 시각에서 대중국 반도체 전략을 세워야 한다.
- 1950년대 말 중국은 구소련이 지원을 중단하자 모든 국가 자원을 동원한 거국체제 동원으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을 만들어 낸 경험이 있다. 지금 이를 반도체 국산화에 그대로 적용 하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중국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반도 체 국산화를 미국의 봉쇄를 계기로 국산화할 수밖에 없고 국산화해 야 한다는 당위성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미·중 전쟁 이후 중국의 침묵이 무섭다. 중국의 당대회, 경제공 작회, 양회의의 문건을 보면 모든 정부 문서의 양이 줄었고 구체적 인 수치 목표나 내용이 없다. 모호한 추상적인 단어 나열에 그친다. 이는 미국과의 경제 전쟁을 의식해 정보를 의도적으로 노출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첨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은 구체적인 육성 계획이 2020년 14차 5개년 계획 이후 공식 발표가 없다. 이는 진정한 반도체 '도광양회' 전략이다.
2023년 양회의에서 반도체에서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는 거국체 계를 명시했지만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바깥으로 정보를 내 보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주목할 것은 국유기 업 개혁이다. 중국은 GDP의 63%를 차지하는 국유기업의 평가 기준 에 ROE와 현금흐름을 추가하고 R/D 비중을 명시했다. 국유 기업은 업종 평균 R/D 비율보다 낮게 투자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새로이 들 어왔다.
- 국유기업에 ROE 경영을 통해 서방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고, 현금흐름과 기술경영을 통해 기술 선진화를 하며, 기술 국산화의 중 심에 국유기업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2023년 3월 들어 중자 기업 이라고 불리는 국유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다. 국가자본주의의 무서운 추진력과 될 때까지 고를 부르는 막가파 정신이 무섭다.
- 2023년 3월 24일 중국 증시에서 중국 반도체 회사들의 주가가 무더기로 상한가를 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전일에 미국의 대중국 반 도체 투자 제한 조치의 세부 사항을 발표했다. 10년간 첨단 제품은 5%, 성숙 제품은 10%의 증설만 허용한다는 조치였다. 언론은 한국기업이 한숨 돌렸다고 했지만 중국에 투자하지 말라는 기조는 변함 없었다.
그런데 중국 반도체 주가의 폭등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중국 정 부가 미국 정책에 화끈한 맞불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 체 공장 유치에 자금 제한과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 려운 조건을 수없이 많이 두었지만 중국은 파격적인 지원 조건을 내 걸었다.
중국은 2023년 3월 양회의에서 정부와 당의 조직을 개편하면서 국무원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당에 중앙과학기 술위원회를 만들었다. 미국의 기술 전쟁에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역 량을 집결하고 분산된 반도체 산업의 지원을 통일하고 집중해서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 중국은 그간 느슨하고 방만하게 운영되어 온 국가반도체펀드를 재편하고 부패 혐의가 있고 개인의 사익을 추구했던 국가반도체펀 드의 책임자와 이들과 공모해 자금을 유용한 CEO들을 모조리 잡아 들였다. 국가반도체펀드와 국가반도체펀드가 주력으로 투자한 칭화 유니그룹 같은 투자 기업의 지배 구조와 CEO를 싹 바꾸고 반도체에 서 미국과의 새로운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과기부와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새로이 출범시키면서 반 도체 국산화와 반도체 장비 국산화의 주력이 되는 기업에 미국과 달 리 전략적으로 자금 지원에 어떤 상한도 없이 무한대로 지원하겠다 는 것을 밝혔고, 이를 증시가 알아차리고 강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 미국은 반도체 지원 자금에 금액 조건 등 복잡한 제한을 두었지만 중국은 반도체를 국산화만 한다면 '자금 무한 제공의 조건을 내걸었 다. 민간이 자본을 통제하는 서방의 자본주의와 국가가 자본을 통제 하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차이다.
아이러니지만 지금 중국 반도체를 키우는 것은 90%가 미국이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받은 중국 기업 중 죽어 나간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만리장성의 보호 속에 멀쩡하게 내수시장 기반으로 건재하다. 적은 단칼에 죽여야지 여기저기 마구 찌르면 내성만 키우고 상대 의 실력만 키운다. 지금 미국이 중국 반도체의 교과서이고 중국을 키우는 코치다. 중국이 가야 할 길을 레슨하고 있다. 반도체에 대한 통상 대응, 기술 보조금, 외국 기업 다루는 법, 외국 기업을 제재하고 통제하는 법 등을 모조리 알려 주고 있다.
- 대만 출신인 양맹송은 20여 년간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에서 17년간 연구임원으로 일한 뒤 2009년 퇴직한 이후 2011 년 삼성으로 넘어와 최고기술책임자CTO(부사장급)를 맡았다. 양맹송 은 삼성이 2014년 14nm FinFET 공정을 가장 빠르게 개발해 TSMC 를 제치고 애플의 아이폰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파운드리 계약을 따내는 데 일조했다고 알려졌다.
그러자 TSMC는 2014년 양맹송에게 소송을 걸었다. TSMC 출신 인 양맹송이 삼성에게 TSMC의 핵심 특허를 넘겼다는 주장이었다. 2015년 대만 대법원은 그해 말까지 양맹송 전 부사장이 삼성전자에 서 일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양맹은 2016년 삼성전자에 복 직했다가 퇴사하고 2017년 중국 본토의 SMIC에 입사해 14nm/10nm FinFET 공정 연구개발 R&D을 했다.
14nm는 반도체 전자회로의 선폭이 14nm인 초미세 공정을 의미한다. '핀펫FinFET'은 칩 아키텍처를 평면이 아니라 3차원 형태 로 구현해 마치 물고기 지느러미 fin와 비슷해 붙은 이름이다. 14nm FinFET을 적용한 제품은 소비 전력이 낮아지고 데이터 처리 능력이 빨라진다.
- SMIC는 2017년 삼성전자 출신인 양맹송 전 부사장을 영입한 뒤 단기간에 미세 공정 기술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양맹송 의 참여로 SMIC의 첨단 공정 기술은 14nm, N+1, N+2를 달성했고 SMIC는 14nm FinFET 공정에서 나아가 10nm, 7nm 공정을 이행한 다는 중장기 로드맵도 세웠다.
기술 장인, 반도체 FinFET 공정의 대가로 불리는 양맹송은 SMIC 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양맹송은 2020년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중 국 본토로 넘어와 2,000여 명의 엔지니어와 밤새며 14nm 공정을 완성했고 노광장비만 있다면 2021년 4월 7nm로 들어갈 수 있는 공정 기술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 네덜란드의 작은 기업 ASML은 세계 반도체 업계를 쥐고 흔들며, 미국도 중국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노광장비에서 대체불가기술NFT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대만, 한국이 경쟁적으로 2024~26년을 목표로 5nm 이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런데 짓는 것은 반도체 회사 맘이지만 완공은 ASML 맘대로다.
이런 ASML에 대응해 일본 캐논이 저렴한 UV를 광원으로 활용 하고 렌즈를 사용하지 않는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IL: Nanolmprint Lithography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23년 엔비디아는 ASML, TSMC, 시놉시스synopsys와 함께 리소그래피 공정에 가속 컴퓨팅을 도입하는 '쿠리소cuLitho'라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은 리소그래피가 물리학의 한계에 도달한 지금, 쿠리소 기술을 통해 파트너사인 TSMC, ASML, 시놉시스와 의 협력을 통해 파운드리에서 처리량을 늘리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 며, 2nm 이후의 생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TSMC는 2nm 공정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와 기술 관련 협업을 강화해 2023년 6월부터 노광(리소그래피) 공정에 엔비디아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쿠리소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노광 공정은 '포토마스크'에 그려진 회로를 극자외선EUV을 활용 해 웨이퍼 (반도체 원판)에 사진을 찍듯 옮기는 것이다. 반도체 선폭이 nm 단위로 좁아지면서 포토마스크에 반도체 회로를 정확히 그리고, EUV를 정밀하게 쏘기 위해서 AI를 활용한 고성능 컴퓨팅 기술이 필 요하다.
개별 포토마스크를 설계할 때 중앙처리장치 CPU를 활용하면 2주가 걸린다. 엔비디아는 데이터 병렬 처리가 가능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해 포토마스크 설계 기간을 8시간으로 단축했다. 엔비디아의
GPU 기반 컴퓨팅 노광 공정인 쿠리소 기술을 활용하면 소비전력도 85%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UV는 기존 반도체 노광 공정에 활용되어 온, 광원 대비 파장이 짧아 더 미세한 회로를 구현하는 데 용이하다. High-NA(렌즈 수차) EUV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렌즈의 크기를 기존 0.33에서 0.55 로 키운 차세대 기술이다. 렌즈가 빛을 받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 에 더 세밀한 해상력을 얻을 수 있다.
3nm 이하 첨단 공정에서 필수인 ASML의 High-NA EUV 장비가 격은 EUV 장비 대비 2배가 넘는 1대당 5,000억 원 이상으로 예상되 지만 패터닝 비용을 최대 50%, 프로세스를 최대 60% 효율화할 수 있 어 도입이 필수불가결하다. High-NA EUV는 현재 개발 속도를 보 면 잘해야 2025년 말에 상용화될 것이고 2026년에도 20대 이상 생산 되기 힘들다. 그래서 첨단 반도체 공장의 완성은 대체불가기술NFT을 가진 ASML이 결정한다.
- 미국에 공장을 짓는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은 처한 상황이 다르다.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에서 세계 1위이고 삼성의 3배 규모 기업이다. TSMC 매출액의 64%는 미국이다. 공장은 고객과 시장이 있는 곳에 지으라는 경영 철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한국은 첨단 파운드리에서 TSMC보다 시장점유율, 생산 규모, 기 술에서 모두 뒤진다. 미국은 1등과 최고가 필요하지 2등과 차선은 필요 없다. 단지 1등을 끌어오고 유혹하는 데 필요한, 마라톤으로 치 면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할 뿐이다.
- 2023년 3월 미국과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이 자국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회사 중 4개가 일본 업체다. 당장 한국의 중국 반도체 공장이 증설과 업그레이드에 타격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양쯔메모리YMTC 와 창신메모리 CXMT의 공장 건설을 불가능하게 해 중국의 추격을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 한국 메모리 업계 입장에서는 시장의 공급 부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고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입을 막아주는 효 과가 있어 단기로는 악재지만 장기로는 호재다.
중국은 2023년 3월 31일 미국의 마이크론사에 사이버 안보를 이유로 마이크론으로부터 수입하는 메모리 칩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핵심 정보 인프라의 공급망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이 같은 조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첨단 반도체,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은 미국 정부에 대한 맞불 작전이다. 한국으로서는 메모리 3등 업체를 중국이 제거해주는 조치라서 조심은 해야 하지만 미국마저 중국이 견제해 주면 장 기적으로는 메모리 시장에서 입지가 나쁘지 않다.
D램 시장의 역사를 보면 대불황 때마다 3류를 죽이고 살아남은 1, 2류의 생존 잔치였다. 1970년대 일본의 미국 죽이기, 1980년대 미 국의 일본 죽이기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2000년대 대만의 독일 죽 이기(2009년 키몬다 파산), 2010년대 한국의 일본 죽이기 (2012년 엘피다 파산)가 예이다. 2020년대의 반도체 대불황기에 한국이 과감한 투자 전략으로 3류 기업 하나를 더 정리하면 D램은 한국 기업의 독점시장이 된다.
- 중국이 세계 최고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를 유치하면 중국 내 전기 차를 다 장악할 텐데 상하이에 유치한 이유는 메기 효과와 생태계 효 과를 노린 것이다. 중국은 메기 효과를 확실히 누렸다. 중국의 배터 리 회사들이 세계 1류 테슬라의 기준에 맞추려고 목숨을 걸다 보니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했다. 한국에 일본의 소부장 업체를 유치 하면 한국 소부장이 다 죽는다는 것은 테슬라의 생태계를 이용한 중 국의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온다.
소재화학은 100년 산업이고 반도체보다 더 시행착오 산업이다. 한국이 첨단 화학 제품을 지금처럼 두면 한국이 일본 기술을 따라잡 는 것은 한여름 밤의 꿈이다. 메기를 풀어 놓아 치여 죽는 놈은 죽는 것이고 살아남으면 메기를 먹는 고기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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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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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엔스는 센서 중심의 업무용 전자기기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대부분 제조 현장에서 이상을 감지하거나 생산성 향상에 이용되는 제품군이다. FA(공장자동화)의 진전에 발맞춰 사업 영역을 점차 확대해왔으며, 현재는 바코드를 읽는 핸디 터미널과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 시스템인 로봇 비전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생산 공장이나 창고, 연구소에 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면 키엔스 제품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
- 제품 역시 고스펙으로 무장하기보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존 제품을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화 생산설비의 제어를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PLC다. 키엔스는 2019년 세계 최초 로 PLC에 '드라이브 리코더' 기능을 탑재했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블랙박스로 현장 상황을 재생할 수 있는 것처럼, PLC를 탑재한 설비의 가동 실적과 카메라 영상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키엔스의 롤플레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질까?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첫째, 대본이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시나리오로, 판매촉진 부에서 상황별 설명이나 대화 내용을 정리해 대본을 작성한 다. 모든 영업사원에게 제공되며 이를 바탕으로 영업의 기본 틀을 익힌다. 그런 다음 고객의 속성이나 상황에 따라 내용 을 바꿔가며 응용법을 익힌다.
둘째, 롤플레이는 실전을 위한 연습이라는 점이다. '지도 역할을 맡은 선배가 지나치게 어려운 질문만 골라서 한다' 라거나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해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당했다'라는 등 롤플레이로 직원의 능력을 판단하려는 회사 도 있지만, 키엔스는 다르다.
"롤플레이는 어디까지나 표현력과 설명법, 프레젠테이션
을 연습하는 과정입니다. 순발력이나 대처 능력을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키엔스 출신 한 OB의 말처럼, 키엔스에서 롤플레이는 직 원의 우열을 가리는 평가 수단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 을 파악하고 시연을 통해 제품을 설명해서 구매품의서를 쓰 게 하는 것, 그 결과를 얻기 위한 훈련 수단이다. 따라서 제품 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내용 설명이나 질의응답 과정에서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 이라는 스토리를 전달해야 합니다."
셋째,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점이다. 롤플레이는 오래 한다 고 좋은 게 아니다. 10분에서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반복하면 근육 트레이닝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 고 나면 어떤 고객과 상담해도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는 튼 튼한 기초체력을 갖추게 된다.
“입사하고 처음 1년 반 동안은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매일 반복했어요. 철저히 단련됐죠."

- 외근 스케줄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필수 아이템이 '외보'즉 외근 보고서다. 영업사원은 상담 전후로 반드시 외보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 미팅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비롯해 어 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등 상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태블릿에 입력하고 모든 직원과 공유한다. 외보에는 면담의 시작과 종료 시각을 1분 단위로 기입하 는 칸이 있다. 하루에 많을 때는 10건도 넘는 상담을 효율적 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고객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상담 횟수와 질이 서로 시너지를 이뤄야 한다. 따라서 시간 효율을 반드시 의식 해야 한다. 외보에는 상품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시연'의 수도 기재하는데, 모두 영업사원의 KPI로 집계된다.
외보를 기입하는 데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상담 종료 후 5분 이내에 작성을 마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주관 이 개입되거나 상세한 내용을 적기가 귀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 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나 인사이트를 즉시 기록해두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쉽고, 다음 영업 전략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영업사원의 하루는 외보를 바탕으로 현재 상황과 이후 방 침을 상사와 의논하면서 마무리된다. 그날의 성과뿐 아니라
미리 작성해둔 다음 날 목표와 방문할 고객에 대해서도 함께 의논한다.
- 키엔스의 영업사원은 SFA에 그날의 행동을 매일 기록한다. 영업활동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통화 건수나 시간 등이 다. 태블릿의 외보 자료도 자동 연동되며, 그 밖에 담당자가 직접 SFA에 입력하는 데이터도 있다.
외보는 직원 자신과 상사를 위해 메모를 해둔다는 의미가 크다. 그에 비해 SFA는 외보를 비롯하여 다양한 채널에서 수 집되고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다른 사업부 서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통계적 분석을 위한 데이터로 쓰기도 한다.
실제 영업사원이 SFA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경쟁 업체의 제품이 교체될 수요를 겨냥해 영업할 경우다. 대상의 크기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이미지 측정기 를 예로 들면, 정밀측정기기 업체인 미쓰토요Mitutoyo가 키엔 스의 강력한 경쟁자다. SFA 시스템에 회사명 미쓰토요와 이 회사의 한 세대 이전 제품명을 키워드로 입력하면 현재 이 제품을 보유 중인 회사들이 죽 나열된다. 영업사원들이 현 재 보유 기종이나 과거에 구입을 검토했던 기종 등을 고객 과 상담하면서 알아낸 뒤 외보에 입력해둔 것이다. 그 자료는 다시 SFA에 저장됐다가 훗날 영업 상담의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 SFA를 활용하면 키엔스의 신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이전에는 어떤 기종을 보유했는지도 조사할 수 있다. 교체할 만한 기종이 발견되면 즉시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
"최근 이 기종을 교체하는 업체가 늘고 있습니다. 지금 앞에 보시는 이 신기능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 있게 설명한다면 아무리 신중한 고객이라도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최근 키엔스에서는 SFA 분석을 담당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AI라는 새로운 무기를 활용하고 있다. 어떤 공통분 모를 지닌 고객에게 영업해야 수주 확률을 높일 수 있을지 AI로 찾아내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어떤 행동이 성과로 이어지는지도 분석 중이다. AI를 이용하면 사람마다 정보가 균일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구축한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인 KI도 판매가 개시됐다.
- 키엔스 직원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영업활동의 힌트가 될 수 있는 정 보를 온갖 방법을 써서 고객에게 알아낸 뒤, 그 성과와 자신 의 행동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수고스러운 작업이지만 철저 히 할수록 수준 높은 영업을 할 수 있고 효율 또한 극대화된 다. 게다가 SFA에 축적해두면 사람이 바뀌어도 데이터는 남 는다.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회사가 효율적인 영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 한 OB가 영업활동을 복기하거나 인사평가를 위해 자신의 행동을 분석하던 시트를 보여줬다. 2,000개 정도의 칸이 그 려진 표에는 숫자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누적 거래 업체, 거 래 참가자, 상담 횟수와 상담 참여자, 방문한 회사, 신규 회 사, 전화 발신 횟수와 수신 횟수, 업무 외 방문자 등 수십 개 의 항목을 지표로 해서 각각의 월별 수치가 적혀 있었다. 전 년 동월과 비교해서 몇 퍼센트 늘었는지 줄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특히 힘을 쏟은 활동은 의사결정권자를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키맨key man 전략'이었다. 키맨을 방문한 횟수가 늘자 그에 발맞추듯이 수주 단가와 금액이 증가하는 모습이 시트에서 한눈에 보였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유효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결정권자가 아닌 사람과 상담한 횟수와 수 주 상황도 함께 분석했다고 한다. 어떤 수단을 썼을 때 플러 스가 되어도 그 반작용으로 다른 부분에서 마이너스가 나와 전체적으로 마이너스가 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키엔스에서는 어느 한 부분을 개선했을 때 다른 부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해야 한다고 가 르칩니다."

- 키엔스의 9개 사업부는 전국을 바둑판처럼 구역별로 나누고 있으며, 각 영업사원은 자신이 담당하는 제품을 세일즈한다.
"옛날부터 오므론 영업사원의 차는 구매부 주차장에 있고 키엔스 차는 공장 주차장에 있다고들 했어요."
- 글로비스 경영대학원의 시마다 쓰요시 교수의 말이다. 키엔스의 현장주의는 유명하다. 전국의 영업 거점에서 직원들은 고객의 현장에 밀착해서 해결할 과제나 참신한 제안을 탐색한다.
생산 현장에 직접 들어갔는지 아닌지를 외보에 기입하는 습관도 있다. 공장 실사를 중시하는 태도는 신입 직원들에게 도 그대로 계승된다. 키엔스에서는 신입이 들어오면 선배의 외근에 동행하는 연수가 있다.

- 영업활동의 다양한 정보를 축적하는 SFA 시스템에는 고객 중 누가 키맨인지, 해당 인물의 성격과 구매 결정 시의 습관 등도 기록돼 있다. 키맨 정보는 분기나 반기에 한 번씩 주기 적으로 갱신한다. 키엔스의 영업사원은 고객과 상담하면서 구매 결정의 진행 방식과 키맨, 그리고 키맨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의 요구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기록한다.
잠재 니즈를 찾아내는 키엔스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키엔스 출신 직원들은 "전체를 시야에 넣고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배터리 제조 업체가 절단 공정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다고 하자. 보통은 절단물 과 절단법을 알아보고 공정에 적합한 제품을 제안한다. 하지 만 키엔스 직원은 다르다. 배터리 제조 공정 전체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상담에 나선다. 전체 공정의 최적화까지 염두에 두고 먼저 고객이 원하는 부분인 절단 공정을 상담 하면서 진정한 니즈를 함께 찾아낸다.

- 키엔스의 개발 부서는 따로 예산을 산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리 금액을 정해놓고 기간 안에 소진하는 방식으로는 정말 필요한 곳에 투자하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원의 외근 하나에도 목적을 묻는 것이 키엔스 스타일 이다.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비용은 인정하지 않는 다. 그런 만큼 필요한 투자라고 판단되면 망설이지 않는다. 상품을 기획할 때 개발에 어느 정도 공수와 비용이 드는지 미리 계산한다. 상품 생산으로 투자에 걸맞은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프로젝트 진행이 허가된다. 상품화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회사의 책임자'라는 뜻인 '사책', 즉 사장이 담당하지만 각 사업부에도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진다.
- 키엔스가 고객의 잠재 니즈를 충족시키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기획 부서가 개발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키엔스에서 영업과 기획 모두를 경험한 다카스기가 개발의 흐름과 특징을 설명해주었다.
키엔스에서는 상품 기획자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비교·검토해서 기획을 입안한다. 그런 다음 프로젝트 리더로서 개발부서, 영업 부서와 함께 상품을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포인 트는 세 가지다.
첫째, 상품 기획자는 영업과 개발의 중재역을 맡는다. 고 객과 밀접한 영업사원과 새로운 기술에 정통한 개발자의 주 장을 모두 참고하며 상품 기획을 구상한다. 아무리 큰손 고 객의 요구라도 또는 세계 최고의 기술이라도, 고객의 잠재적 니즈와 관련성이 낮다면 개발하지 않는다. 기획자가 그 조정 을 책임진다.
둘째, 상품 기획자는 장기간에 걸쳐 기획을 다듬고 완성해 나간다.
셋째, 상품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품 기획자가 관여한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상품 기획 부서는 수십 명 규모의 소수 정예 부대로 주로 영업과 개발 부서의 베테랑들이 발 탁되는 듯하다. 단순히 영업 실적이 좋다고 뽑히는 건 아니다. 고객의 니즈와 미래의 상품을 연결하는 센스가 필요하므 로 전문 분야의 애널리스트처럼 시장 조사에도 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획 업무를 즐길 수 있는 적성이 우선이다.

- 상품 기획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상품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첫째가 '착수 승인'이다. 수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시제품으로 제작할 만한 것을 골라 기획서를 제출한다. 기획자는 상품화를 검토 중인 아이디어 를 늘 30개 정도 품고 있다고 한다. 그중 실제 착수되는 것은 3개 정도로 경쟁률 10대 1의 좁은 문이다.
다음은 '상품화 승인'이다. 일반 기업에서 말하는 '신상품 개발품의'에 해당한다. 시험적으로 제작해보고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큰 안건을 한층 더 깊게 조사한다. 시장 조사와 기 술 검토, 비즈니스 가능성 조사, 즉 타당성 조사와 예비 조사 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사장의 승인을 받고 나면 수억 엔이 투자되는 상품 개발이 시작된다. 상품 화승인의 가능성은 3분의 1이다. 시험 제작에 들어간 기획 3건 중 단 1건만이 승인되는 셈이다.
상품 기획에서 최대 난관은 기획서 작성이다. '매출총이익률 80%'라는 대전제는 이때부터 적용된다. 기획자는 고객에게 제공할 가치에서 상품 가격을 어림해두고, 사내 개발자 의 의견을 참조해 기술적인 실현 수단과 원가를 정확히 산 정한다.
고객의 니즈는 어떻게 파악할까?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 는 것이 앞서 언급한 '니즈 카드'다. 영업사원이 고객과 상담 하면서 파악한 잠재 니즈를 기록한 카드로, 모든 영업사원이 한 달에 1건 이상 제출하게 돼 있다. 전국의 영업사원 수만 큼 전달되는 대량의 니즈 카드를 기획자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샅샅이 살펴본다. 지금은 자동화됐지만 다카스기가 재직하던 당시는 카드 내용을 정리한 책자를 몇 번이나 뒤 지면서 새로운 힌트를 필사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 '직원이 행동하면 피드백을 주고 다음 행동을 촉진한다.
행동만 남기는 일은 없다.' 이것이 키엔스의 행동 원리다. 물론 니즈 카드의 내용이 그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 다. 영업사원들이 매일 고객의 숨은 니즈를 알아내려 애쓰지 만 이미 상품화된 것도 많다. 기획자는 관련 전시회를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는 사람이라 니즈 카드에서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건 드문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전력을 다해 고안한다.
- 키엔스가 상품 기획을 진행할 때 중요시하는 것이 '뺄셈' 이다. 일반 업체에서는 경쟁 상품과 사양을 비교하면서 다른 회사에는 없는 기능을 강조하거나 소형화처럼 크기에서 차 별화를 꾀한다. 모든 항목에서 경쟁사 제품을 웃도는 스펙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설계와 제조 난이도가 높아져 개발 기간이 장기화된다. 물론 원가도 높아진다.
키엔스는 취사선택에 능한 집단이다. 사전에 꾸준히, 철저 히 조사한 고객 니즈를 바탕으로 꼭 필요한 기능과 성능을 취사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개발한다. 약 30개사의 고객을 대 상으로 조사해서 중복되는 니즈를 3~5개로 압축하면 고객 80% 이상이 인정하는 제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 된 상품은 강점이 명확해서 팔기 쉽고, 전체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 키엔스에서는 보통 12개월 안에 개발비가 회수되도록 해 야 한다. 드물게 24개월까지 허용하기도 하지만, 타당한 이 유가 필요하다. 신상품에 투입하는 비용 대비 효과는 매출로 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매출총이익으로 확인한다. 게다가 기존 제품과의 상관관계도 고려한다. 이 정도까지 철저히 논의하 고 확인한 뒤 개발한 상품이기에 '모든 상품이 히트상품'이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키엔스 출신 한 직원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대기업에 서 "주문 안 받아주면 출입 금지야"라는 농담 섞인 협박까지 들었다며 웃었다. 그 업체는 특별 주문한 장치를 발주하려고 했는데 키엔스 영업사원이 좀처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영업사원의 상사에게도 여러 번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 다. 특별 주문한 제품은 예측한 수량만큼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거래처 외에는 고객을 확장할 수 없다는 게 약점이다. 드러난 니즈만 만족시켜서 제공하는 부가가치 에는 한계가 있기에 아무리 큰손 고객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기업 이념을 꿋꿋이 관철한다.
- 전 상품의 재고를 보유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무작정 생산해서 재고를 대량으로 떠안으면 수익률 악화가 뒤따르 기 때문이다. 생산부서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수요 예측 과 원재료 조달 리드타임, 생산 리드타임 등 모든 사항을 치 밀하게 고려하면서 재고가 부족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을 갖 추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본사 건물 7층에 있는 생산부서다. 상품 특성에 맞춰 복수의 협력 공장에 생산 라 인을 구축하는 일부터 부품 조달과 생산, 출하 계획의 입안, 생산 공정 및 출하 관리, 상품 센터에 입고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담당한다. 과거 경험에서 문제가 되기 쉬운 부품을 숙지한 직원이 1만 개도 넘는 아이템의 동향을 살피며 내일의 생산과 부품 발주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1만 엔짜리 상품을 즉납하는 데 10만 엔이 들어도 즉납 원칙을 지킨다'라는 것이 키엔스 스타일이다. 기한에 맞추기 어려울 때는 직원이 직접 신칸센을 타고 지방에 있는 부품을 가져다가 협력 공장에 전달해서 특급 생산을 부탁하기도 한다. 즉납은 키엔스가 양보할 수 없는 간판이다.
- 키엔스는 상품 판매로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생산에 대한 집념도 강하다. 키엔스를 '뛰어난 원가 절감 능력을 지닌 이상적인 제조 업체'로 보는 시선도 있다. 팹리스fabless, 즉 공장이 없는 회사인 키엔스가 어떻게 생산에 힘을 쏟는 것일까?
사실 키엔스에는 공장이 있다. 100% 자회사인 키엔스엔지니어링 Keyence Engineering 이다. 주로 키엔스 제품의 부품 수리와 분석, 제조 장치의 설계를 담당한다. 또 새로 개발하는 제품의 시제품이나 초기 양산도 진행한다. 키엔스 전 제품의 10% 정도를 제조하며, 양산 방법이 확립된 나머지 90%는 협력사에 의뢰한다.
키엔스엔지니어링이 발표한 2022년 3월 결산기 유가증권 보고서를 보면, 당기 총제조비용이 1.335억 엔이고 그중 재 료비가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992억 엔이다. 외주 가공비는 제조비용의 15%에 조금 못 미치는 194억 엔이다.
- 키엔스엔지니어링에서는 '조립법은 문제없는가?', '이 작 업에는 어느 정도의 공수가 필요한가?'처럼 상세 내역을 검증하면서 양산법을 확립해간다. 제조 과정과 비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제조를 위탁하는 것이 아 니라 협력사를 감독하는 역할도 한다. 한 OB는 "키엔스엔지니어링 같은 회사는 만들지 말아 달라고 협력사들이 불평하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 협력사 직원 및 현장 근로자와 촘촘히 연계하면서 개선 작 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키엔스의 생산 철칙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협력사와는 윈윈하는 관계여야만 합니 다. 1년치 물량 매입 보증이나 단기 납기에 따른 할증료, 잔 업수당의 정확한 지불 같은 조건을 확실히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애초 계획대로 발주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러고 나서 품질을 확실히 부탁하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이혼'같은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거래처는 부부와 같다 고들 하거든요."
협력사에 대한 키엔스의 남다른 대우는 숫자로도 알 수 있 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의 오미야 시니어 애널 리스트에 따르면 키엔스는 매입에서 결제까지 걸리는 기간인 매입채무회전일수가 43.3일(2022년 3월 결산기 기준)이다. 한편 판매한 뒤 대금을 회수하는 기간인 매출채권 회수일수는 169.1일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은 현금흐름을 고려해서 양쪽의 균형을 맞춘다. 예를 들어 오므론은 전자가 76.2일, 후자가 72.6일이다. 결국 키엔스는 공급 업체에는 대금을 빨리 결제해주고 고객사로부터는 천천히 수금하는 셈이다. 게다 가 어음보다 조건이 좋은 현금으로 지불한다.
키엔스가 이렇게 대응하는 이유는 유사시 최우선으로 부 자재를 공급받기 위해서다. 평소에 공급 업체와 좋은 조건으 로 거래하는 것이 키엔스의 즉 체제를 유지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얘기다. '최종적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곳은 확실히 지불한다. 상당히 합리적인 태도다.

- 타임차지라는 사고방식이 직원들에게 이 정도로 정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직원들이 스스로 엄격히 규율한 것도 있 지만 급여 결정 방식도 영향을 미쳤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키엔스는 기본급에 더해 회사 이익의 일정 비율을 실적 상여 형태로 직원에게 지급한다. 자신과 주변 동료가 부가가치 를 창출해서 회사 실적이 오르면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보상 이 돌아온다. 만일 타임차지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도 소용없다고 느낀다면 직원들의 의식은 점점 약화될 것이 다. 이익 환원 비율과 투명한 산정 방식에 이르기까지 노력 하면 충분히 보상받는다'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이해시켰기 때문에 직원들의 공감과 노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 키엔스 직원들은 날마다 외보를 작성하고 영업 지원 시스템인 SFA에 정보를 입력한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니 가끔은 게을러지거나 하지 않을까?
키엔스의 기본 방침은 철저한 '가시화'와 행동에 대한 '평가'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직원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동을 거는 시스템도 분명히 존재한다. 키엔스의 내부감사 상황을 한 OB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난데없이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마치 국세청 기동대 같 았죠. 완전히 허를 찔렸습니다."
키엔스의 지속가능성 관련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사내감사팀: 내부감사로서 전임 감사팀을 둔다. 국내외 각 거 점에서 업무와 운용의 적정성·효율성을 중심으로 내부감사 를 실시하며, 감사 결과와 기타 정보는 정기적으로 또는 필요 시 대표이사에게 보고된다.
- 내부감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업은 '영업 감사', 해외는 '해외 감사'라고 불린다. 감사팀은 정기적으로 불시 검문을 통해 현장을 둘러본다. 감사팀 인원은 허위 보고가 발생하기 쉬운 경우를 숙지한 관리직 경험자들로 구성된다. “이 고객사를 3시에 방문하려면 이 톨게이트를 2시에는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속도로 요금 시스템의 자료가 다른 것 같습니다."
- 키엔스는 늘 다양한 시스템을 고안하고 개선책을 고민해왔다.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깨끗이 그만두는 문화도 있다. 나카타 사장은 '그만둘 때를 정확히 판단하자'라는 슬로건 을 내세우기도 했다.
키엔스는 무엇이든 시스템으로 철저히 실행한다. 직원들 이 'OO는 그만두어야 한다'라는 의사를 자유롭게 밝힐 기 회도 있다. 1년에 한 번 직원들이 자신의 인사이트를 회사에 제출하는데 항목 중에 '새로운 발견'과 같은 비중으로 '그만 두어야 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인사이트를 제출한 후에는 자신의 의견이 채용됐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정세와 기술 트렌드가 바뀌면 시대에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시스템을 활용해 경영하는 스타일의 기업에는 큰 과제가 된다. 키엔스는 과거부터 써온 제도를 그저 유지하는 게 아니라 본 질을 생각하며 개선점을 생각한다. 현재의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해본다. 잘 되지 않거나 시대에 맞지 않으면 강단 있게 그만둔다.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수치와 같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키엔스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 “일류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항상 최신 의료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서 최고의 치료를 합니다. 리드전기가 목표로 삼는 영업이 바로 그겁니다. 땀 흘리고 체력을 사용 하는 개척 영업이나 접대로 고객의 정에 호소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업을 하고 싶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머리를 쓰 는 영업,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 두렵지 않은 분은 그대로 남아 입사 테스트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경영자의 카리스마가 강할수록 후계자 선정에 고민이 깊기 마련이다. 키엔스와 동시대에 일본전산을 창업한 나가모리 시게노부, 소프트뱅크softBank 그룹의 손정의 회장,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을 일본 내 최대 어패 럴 기업으로 키워낸 야나이 다다시는 모두 카리스마 경 영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자신을 대체할 존재가 없어 경영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업자이면서도 자신은 카리스마 경영자가 아니라고 단언 하는 다키자키는 1991년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창업자들은 '회사는 내 자식 같은 존재'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은퇴 시기도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요. (...) 제 손으로 후계 자를 확실히 키운 뒤에 물려줄 생각입니다."
예고대로 다키자키는 2000년 사사키 미치오에게 사장 지 위를 위임했다. 이후 2010년에는 3대 사장인 야마모토 아키 노리, 2019년에는 4대 사장인 나카타 유가 취임했다. 대개 10년 주기로 사장이 바뀌었지만 키엔스의 문화는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다.
-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키자키는 일본 내 굴지의 자산 가다. <포브스>가 발표한 2022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를 보면 그의 재산은 239억 달러로 세계 61위다. 패스트리테일링 창 업자 야나이 다다시 회장과 그 가족이 261억 달러로 세계 54 위이면서 일본 최고 부자에 올랐다. 다키자키는 그 뒤를 이 어 2위다. 참고로 일본 3위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으로 자산은 213억 달러, 세계 74위다.
- 참고로 창업 아이템이었던 자동 선재 절단기는 영업이익률이 20%나 됐지만 당시 이미 40%의 이익을 올리던 센서 보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1982년 시장에서 철수했다. 다른 기업이라면 창업 아이템으로 소중히 보존할 법한데 키 엔스에는 현재 한 대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A/S가 필요 하지 않게 된 시점부터 현재와 미래 사업은 연결고리가 끊 어진다. 그런 상품은 전량 폐기한다. 예외는 없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기술과 과학입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 키엔스에 추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자동 선재 절단기의 철수를 결정하던 무렵, 다키자키는 특정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데 도전했다. 1982년부터 1년 동안 키엔스 매출의 20%를 차지하던 제조 업체와 거래 규모를 줄이기로 결단한 것이다. 키엔스는 현재 9개 사업 부문의 개별 매출을 공표하지 않지만, 부문마 다 큰 차이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정 제품이나 기업에 의존 해서 발생하는 구조적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의 결과다.

- 키엔스의 해외사업이 크게 성장한 계기는 2008년 SFA 시스 템을 현지 법인에 정비한 일이다. 2001년에 중국 법인을 설 립하면서 키엔스는 아시아 시장 개척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해외 매출 비율이 좀처럼 30%의 벽을 넘지 못하는 시기가 이어졌다. 지루한 답보 상태를 돌파하려면 본사와 해외 법인의 운영을 일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해외에서도 SFA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나라마다 시스템이 제각각이었다. 일본에서는 해외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고, 해외에서도 일본 내 사정에 깜깜했다.
2000년 이후 유럽과 미국도 중국과 아세안ASEAN으로 공 장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왕성한 설비 투자 를 이어갔다. 키엔스 내부에서도 해외사업을 더 강화해야 한 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키엔스는 해외사업의 가시화를 추 진하기로 했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던 시스템을 통합하고 국 내 사업부와 해외 법인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일본과 해외의 정보가 연동되어 세계 시장에서 더욱 치밀한 영업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후지타는 당시를 이렇게 회 상했다.
"비즈니스 상담을 성공시킬 수 있는 요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수주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체제가 해외에도 마련됐습니다."
이제는 해외에서도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보를 이용해 매일 고객과 나눈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상사와 공유한다. 나아가 거래의 동기나 방문 목적, 고객사의 키맨, 현장에 들어갔는지 아닌지, 수주 성공 여부 등 다양한 항목을 입력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일본에서 확립한 방법을 세계 곳곳에 이식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 거점을 관리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영업사원이 수주 성과와 행동의 인과관 계를 자세히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국내 영업과 상품 담당자에게도 해외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 해외 시장을 겨냥 한 상품 기획과 개발, 판매 전략 수립이 수월해졌다.
예를 들어 해외로 진출한 일본계 기업의 국내 핵심 인물이 외국으로 발령이 나면, 그 정보가 해외 법인으로 전달돼 일 관성 있는 관리가 지속될 수 있다. 이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건 시스템이 정비된 덕분이다.
- "너무 평범해서 쓸 게 별로 없죠?"
취재에 응해준 키엔스 OB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키엔스의 업무 수행 방식과 시스템을 조사하다 보면 특출난 것은 없다. 외보, 롤플레이, 니즈 카드, 내부 감사 등 대부분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제도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제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겁니다. 시스템을 만들고 철저히 운영한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완벽하게 실행한다. '적당히' 는 통하지 않는다. 예외도 없다."
- 우수한 인재들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키엔스의 시스템은 성약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은 때로 방심도 하고 힘들면 게으름도 피운다. 그렇기에 모두가 무엇을 하는지 유리창 너머로 다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숫자도 나쁜 숫자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수 행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키엔스 사람들은 모두 밝고 즐겁게 일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믿으면, 누구나 필요한 행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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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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