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24.01.31 크립토사피엔스와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 2
  2. 2024.01.31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3. 2024.01.31 20240131
  4. 2024.01.30 20240130
  5. 2024.01.29 20240129
  6. 2024.01.28 수축사회 2.0 닫힌 세계와 생존게임 3
  7. 2024.01.28 샘 올트먼의 생각들 3
  8. 2024.01.28 나이가 든다는 착각 2
  9. 2024.01.28 20240128
  10. 2024.01.27 20240127

- 인터넷은 통신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인 웹상에서 어떤 데이터나 정 보를 전송하고 수령하는 기술인데, 대부분 5개 층위(layer)로 구성된 다. 최하위 하드웨어 레이어부터 하드웨어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링 크레이어, 인터넷 프로토콜(protocol)로 부르는 네트워크 레이어, 데이 터를 분할하고 다시 조합하는 통신 레이어, 이용자가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와 파일을 교환하는 최상위의 애플리케이션 레이어가 있다. 블록 체인 이전 인터넷이 서버-클라이언트 컴퓨터 구조에서 정보를 전달하 는 데 그쳤다면, 블록체인은 인터넷의 통신 레이어 위에 위치하여 정 보를 전달하는 기능 외에 다수 컴퓨터에서 정보를 저장하고 코드를 작동하게 하는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 기능을 수행하게 해준다. 인터넷의 기술적 구조가 중앙화 기관의 서버와 그에 연결된 다수의 클라이언트 컴퓨터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블록체인은 서버 없이 각 컴퓨터들이 노 드로 참여하여 서로 P2P (peer to peer)'로 연결된 것이 다른 점이다."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에 개인들이 정보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누릴 것이라는 희망이 매우 컸다. 사이버상에서 개인은 국가의 통제없이, 국가 경계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정보를 생성, 전파하는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형성되었다.
-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표현했듯이, 비트코인이 전화기 라면 이더리움은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통화는 물론 각종 앱을 설치하여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비트코인이 기존 화 폐제도에 반발해서 나왔다면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의 바탕 위에서 사 회 · 경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제도의 운영방식 개선 방안을 개발하면 서 나왔다.
- 스마트 컨트랙트와 자산이전의 혁신
비트코인은 송금과 수취 관련 거래만 기록하지만 이더리움은 튜링 완전(turing-complete) 언어인 솔리디티(Solidity)'를 이용하여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까지 구현했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어떤 조 건을 충족하면 자동으로 가상자산의 이전 등 어떤 거래를 발생 · 완결 시키는(코드가 if then의 문장형식으로 이루어짐) 작동체계를 의미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대중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기억하기 쉽다 는 측면에서는 용어를 성공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엄 밀한 의미에서 여러 국가의 법체계상 계약의 정의에 포함되는지는 논 란이 있다.
『이더리움 백서』에서는 '블록체인상 토큰 시스템(on-blockchain token system)'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미국 달러, 금 등과 연동된 하 위화폐, 주식과 스마트자산,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다양한 토큰을 거래하는 시스템이 쉽게 구현된다고 설명한다. 그 시스템의 핵심은 결 국 한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것인데, 그 작업은 A와 B가 토큰거래를 할 때 A 계좌에서 X개 토큰을 차감하고 그 차감한 X개 토큰을 B 계 좌로 지급한다는 논리다. 그렇게 처리하는 조건은 A가 거래 전에 X개 이상의 토큰을 보유하고 있고 이 거래를 승인하는 것이다.
스마트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의사능력이 있는 법적 주체인 개인이 나 법인이 일일이 계약의 조건과 내용을 합의하지 않고도 미리 정해 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자산의 이전이나 블록체인 원장상 어떤 상태의 변화를 실행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참여자들은 실명으로 확 인되거나 실명의 당사자와 1:1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법 체계하에서는 계약의 체결과 이행이 논리적·실무적으로 구분되는 데 비하여 스마트 컨트랙트에서는 계약의 체결과 이행이 동시에 일어나고 계약내 용에 하자가 있어도 이미 이행이 완료된 스마트 컨트랙트를 해제·해 지하거나 수정할 여지가 없다. 이더리움이 창안한 스마트 컨트랙트는 다양한 목적을 이루는 데 활용되고 또 더 널리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계약을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성하는 기술적 방법은 앞 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 전자지갑은 암호자산을 보관할 뿐 아니라 실물신분증 대신 개인의 암호화된 신원확인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하고 그 정보를 필요에 따 라 검증하는 분산신원확인(DID) 시스템에서 신원확인정보를 통제하 는 프라이빗키도 보관할 수 있다. 전자지갑은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신원확인정보와 자산에 대한 접근권과 통제권을 행사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전자지갑이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 터넷에 항상 연결된 핫월렛(hot wallet)에 개인키를 보관하는 경우, 전 자지갑 소유자는 언제라도 개인키를 사용하여 가상자산을 전송할 수 있다. USB메모리 같은 하드웨어 형태인 콜드월렛(cold wallet)에 개 인키를 보관하는 경우에는 지갑소유자가 필요할 때만 통신에 연결하 여 가상자산에 접속한 뒤 전송할 수 있다. 전자는 편리한 데 비하여 해 킹 등의 위험이 있고, 후자는 안전한 데 비하여 사용하기가 번거롭다.

-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소토는 자본의 미스터리에서 자산 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 자본과 종이 문명의 관계에 대해 남다른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어떤 자산은 그 자체로 자본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이 가지는 경제적 잠재력을 부가적 생산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어 고정된 상태를 자본으로 본다. 내 집 한 채는 그것이 지닌 경제적 잠재력을 자본으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하나의 자산에 머 문다. 자본주의를 꽃피운 국가들은 집의 소유권과 거래제도를 법과 규정에 따라 확립하여 누구든 쉽게 그 집의 권리관계를 확인하고 그 집을 사고팔아 추가 생산활동에 활용하게 함으로써 자본화가 이루진 다는 것이다. 자본은 관념적으로 찾아내고 관리할 수 있어서 자본을 직접 만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재산체제로 자산의 경제적 측 면을 종이에 기록해 특정한 소유주에게 귀착시킨다고 본다. 이에 비 추어보면 종이와 그 위에 기록된 재산체제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핵 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수많은 권리와 지위를 표상하는 종 이와 종이 장부는 컴퓨터에 기재되어 디지털화(digitization)해 왔다. 하지만 그 예인 선불전자지급수단, 전자증권, 전자신분증은 기존의 종이로 작성된 중앙장부와 그 내용에 근거하여 발행된 실물형태의 화 폐, 주권, 신분증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실물종이의 내용만 디지털화 했을 뿐 실물을 발행하는 중앙화된 기관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종이화폐, 실물신분증, 실물주권, 실물계약서를 사라지게 한다. 블록체인에 기록. 저장되는 데이터 자체가 그것들을 대체하게 되고, 이런 데이터가 복수의 장부에 분산 저장됨으로써 중 앙화된 기관 장부의 필요성과 효용도 없어지거나 축소될 수 있다. 블 록체인기술이야말로 이런 디지털 전환을 완성하고, 권리와 자산의 개 념에서 종이와 종이문명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 국제기구들도 토큰경제가 글로벌 차원에서 확산될 가능성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이 2022년 3월에 발표한 「세계 의 암호자산 활동, 진화와 거시적 금융 추동력(Crypto-assets Activity around the World, Evolution and Macro-Financial Drivers)」 보고서 에서는 각 국가들에서 암호자산 거래량의 변화는 주로 미국 장기 인 플레이션 예상, 미국 국채수익률, 금과 암호자산 가격에 따라 결정될 뿐 최근 각 국가 내부의 거시경제적 발전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고 분석하고, 암호자산은 국경 간 거래를 지원하는 잠재적 수단으로 점점 더 선호될 거라고 내다보았다. 앞으로 자산의 토큰화가 확대되면 실물자산에 기반한 토큰의 거래도 글로벌 플랫폼을 이용하여 여러나라에서 활성화될 것이다.
자산기반 토큰 중 증권의 성격을 갖는 토큰은 각 나라의 규제에 따 라 발행이나 유통에 대한 제한이 다른 비증권형 토큰에 비하여 더 부 과되겠지만 점진적으로 각 나라가 증권형 토큰 생태계의 발전 추이를 보면서 자본시장의 개방정책이나 규제 변화를 모색할 여지도 있다. 어쨌든 현재의 다양한 실물기반 경제적 거래가 토큰 기반으로 전환될 경우, 경제적 현상은 글로벌 블록체인 메인넷과 그 위의 다양한 탈중 앙화 앱에서 이루지면서 경제의 글로벌 동조화가 가속되고, 그에 따 라 각 국가들의 법체계에 대한 통일화 논의가 더 확대될 것이다.
- 이렇듯 앞으로 크립토사피엔스는 금융 분야는 물론 교육, 의료, 물 류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여 블록체인 : 반 토큰경제의 이점과 인공지능의 장점을 적절히 결합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를 개발한 샘 알트만이 투자한 월드코인도 인공지능으로 인 한 문제를 블록체인기술로 해결하려고 한다. 월드코인은 인간과 인공 지능을 구분하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공지능이 널리 활용되면 온라인에서 거래하거나 발언하는 주 체가 진짜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구분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이 때 사람은 지갑인 '월드 앱을 내려받아 휴대전화번호로 인증하면 '월 드ID'를 생성할 수 있고, 월드ID로 신원이 증명된 사람끼리 지갑을 통해 암호화폐를 교환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생성홍채인식으로 진짜 사람임을 인증(Proof of Personhood)할 수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사람으로 인증된 지갑에만 '월드코인' 토큰으로 지급한다는 것인데, 그로써 인공지능이 확산된 세상이 인간들 사이에 공평함을 유 지하는 데 일조한다는 비전을 내세운다.
현재까지 월드ID를 등록한 사람이 170만 명이며, 2024년에 월드코인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확산을 기정사 실로 전제하고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 확인과 최소한의 소득확보는 블 록체인 토큰과 지갑을 활용한다는 취지인데, 월드토큰의 발행과 배 분, 유통구조가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 만약 월드코인의 비전대로 진행된다면, 인공지능에 대응하는 의미 를 넘어서 많은 사람이 신원확인을 월드ID로 하고, 월드코인이 글로 벌 지급수단으로 널리 이용되어 탈중앙화, 개인정보보호 등이 제대로 구현되는 게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리브라가 등장했지만 갑 작스럽게 전 세계인이 이용하는 글로벌 지급수단이 되고 금융플랫폼 이 되는 데 대한 미국 정부의 우려와 거버넌스의 탈중앙성이 처음부 터 확보되지 못한 점 등이 원인이 되어 좌초된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크립토사피엔스가 산업과 기술뿐 아니라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인한 인간의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주도하는 한 인공지능을 장착한 호모 데우스가 인류를 지배하는 일은 하나의 기우로 끝날 수 있다.
- 기존 증권의 토큰화 현상이 더 가시화되고 확대될 경우 현재의 자본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PwC(PricewaterhouseCoopers) 독일은 이렇게 발전할 자본 시장의 단계를 '자본시장 3.0'으로 정의했다. 자본시장의 발전 단계 를 자본시장 1.0, 2.0과 3.0으로 구분하는데, 각 단계는 시기와 구조 측면에서 Web1.0부터 3.0까지의 단계에 각각 대응된다는 흥미로운 분석이다.
자본시장 1.0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7년까지로, 대형 투 자금융기관과 대규모 자본시장이 일방적인 시장지배력을 갖고 자금조달자의 수요에 맞춤형으로 설계했지만 그들이 이해하기는 힘든 상 품으로 금융기관이 큰 이익을 본 단계다. 자본시장 2.0에서는 금융상 품이 정형화 · 디지털화되어 거래와 결제까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상 품들이 늘어난 단계다. 소비자들의 참여는 늘었으나 소비자들이 금융 상품설계에 협업을 하지는 않는 단계다. 자본시장 3.0은 특정한 중앙 화 주체 없이도 탈중앙화된 금융 위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기존의 증권이 토큰화되는 데 추가하여 증권형 토큰을 디파이 플랫폼 에서 대여하고 차입하는 것을 활성화하거나 증권형 토큰의 기초자산 이 있는 경우 그 자산을 수익성 높게 운용하는 방안 등이 결부되면 증 권형 토큰으로 인한 자본시장의 혁신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다.

- PwC는 또한 다음 세 가지 예측을 제시했다.
첫째, 자본시장 3.0의 핵심 전망은 자산의 토큰화로 현재의 많은 비 유동성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고, 자본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여러 국 가와 계층의 사람들이 추가로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지금은 유동화되지 않은 부동산, 데이터, 지적재산권 등 의 자산이 토큰화되어 유동화될 것으로 추산되는 자산규모가 1조 6,000억 달러(한화 약 2경 원)라는 놀라운 금액이다. 자본시장이 존재 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유동성과 연결하는 것이고 토큰화로 자본시장 이 더 발전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탈중앙화거래소(DEX)의 큰 성장이 예상되는데, 현재 전체 가상자산거래소의 거래대금 중 탈중앙화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액은 전체의 10%인 100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셋째, 많은 증권형 토큰이 NFT로 발행되고 NFT 커뮤니티의 발전 이 예상되는데, NFT가 2021년 말 이후 쇠퇴 중이나 곧 이전 NFT 시 가총액의 최고액인 총가액 20억 달러를 갱신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블록체인의 기술력만으로 자본시장 3.0이 발전할 수 없으므로 더 많은 사람을 교육하여 이해를 넓힘으로써 많이 사용하도록 해야 하 고, 현재의 중앙화금융(CeFi)시스템을 이용해 디파이에 접근할 통로 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토큰을 거래에서 지급결제수단으로 쓰면 결제의 신속함, 낮은 수수 료, 국제간 결제의 편리함이라는 효용을 누릴 수 있다. 비트코인은 송 금 거래 블록이 형성되는데 10분이나 걸려서 수많은 거래를 실시간 으로 기록하기 힘들므로 일상적 재화와 용역대금의 직접적 지급결제 수단으로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토큰을 다양한 형태의 지급결제수단으로 쓰 는 수요가 늘어서 머지않아 토큰결제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 다. 우선 카드사들이 기존 카드결제에 다양한 형태로 토큰을 결합해 나갈 것이다. 결제업의 대표주자인 비자와 마스터카드사가 입맞추어 '앞으로 3~5년이면 토큰이 지배적 지급결제수단이 될 터여서 자신 들이 그 흐름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카드사 들이 이런 변화를 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카드사 고객들이 점점 더 토큰으로 대금지급결제를 희망한다는 사실이다. 즉 고객들은 이왕이면 믿을 만한 대형 카드사들이 토큰으로 대금지급결제를 해주기를 원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급결제수단인 토큰 자체는 탈중앙화된 플랫 폼에서 발행되더라도, 토큰을 이용한 결제대행업은 기존 관념의 신뢰 를 받는 중앙화된 회사가 담당해 주기를 일반 소비자가 원한다는 데 서 대중은 상황에 따라 탈중앙화와 중앙화 구조를 교차로 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토큰으로 결제하는 구조는 제3의 핀테 크회사와 협업하는 방식이다. 이용자가 카드를 이용하여 크립토 토큰 단위로 결제하면, 협업하는 팍소스가 뒷단에서 크립토를 매입해 현금화한 다음 가맹점에 현금으로 대금을 정산해 주는 구조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카드회사는 직접 카드 이용자로부터 크립토를 받아서 가 맹점에 정산해 주는 구조를 꿈꾸고 있다. 현재 쓰이는 직불카드(debit card)가 은행잔고 범위 내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전자지갑 계좌에 보 관 중인 토큰 범위 내에서 결제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현실화되면 수 십 년간 법정화폐에 연계된 대금결제시스템에 엄청난 변혁이 발생하 게 된다.
그러나 불확실성도 있다. 크립토 토큰이 해킹당하거나 크립토 토큰 의 플랫폼 운영상 하자 같은 보안사고에 대한 방지책이 필요하다. 규 제당국의 관점에서는 지급결제회사가 대량의 토큰으로 결제대행을 하려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지급된 토큰에 상응하는 준비금이나 담보금이 필요한지 검토도 해야 한다. 가맹점에서는 궁극적으로 카드 사 개입을 배제하고 토큰을 바로 대금으로 받기를 희망할 수도 있는 데, 카드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절약할 수는 있지만 어떤 리스크를 안게 될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해진다.
페이팔도 2021년 블록체인 플랫폼인 소스와 협업해 토큰 지급 을 허용했다. 이용자가 팍소스 플랫폼 위에 전자지갑을 개설해 토큰 을 보유한 상태에서 가맹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페이팔 앱에서 비트 코인 등 암호자산을 지급수단으로 선택해 지급하면 된다. 그러면 팍소스 트러스트(Paxos Trust)가 그 암호자산을 받아 법정화폐로 환전해 가맹점에 정산·지급하는 결제시스템이다. 페이팔은 뉴욕주에서 가상자산 매매, 송금, 결제업을 하는 것과 관련해 비트 라이선스(Bit License)를 취득했으며, 이와 같은 결제대행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다른 규제는 없다.
비자는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결제하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 우 선 이용자가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지급하면 비자가 법정통화로 환전해 가맹점에 정산 지급하는 구조인데, 장기적으로는 이용자, 비 자, 가맹점 사이에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결제하는 구조도 고려하 고 있다. 아직 대부분 미국 은행은 토큰 가격의 변동성을 이유로 자신 들이 발급한 카드로 고객들이 토큰을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 한국에서도 비트코인 같은 토큰을 결제수단으로 가게에 직접 지급 하고 가게에서 그를 수령하는 데는 별다른 금지나 제한을 하지 않았 다. 그러나 물건 구매자와 가게 사이에 직접 지급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제3자가 토큰을 이용해 지급결제대행업을 하거나 선불전 자지급수단 발행, 관리업 등록을 한 회사가 토큰을 선불전자지급수단 의 충전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제동을 걸고 있다.
다날이 스위스에 설립한 자회사 페이프로토콜은 스위스에서 페이코 인을 발행해 지급수단으로 쓰려는 구조를 만들었다. 페이프로토콜은 페이코인을 한국의 몇몇 거래소에 상장하고, 페이코인으로 결제가 가 능한 레스토랑, 편의점 등 수십 개의 가맹점을 모은 후 이용자들이 가맹점에서 물건이나 음식을 산 다음, 페이코인으로 다날 앱에서 지급하 면 다날이 지급된 페이코인을 받는 대신 가맹점에 현금으로 대금을 정 산해 주는 구조였다. 다날은 지급받은 페이코인을 일정 주기별로 다날 핀테크에 매도해 대금을 수령했다. 다날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전 자지급수단 발행·관리업과 지급결제대행업 등록을 이미 한 상태였다. 이런 구조가 나오자 금융위에서는 다날이 토큰으로 선불전자지급 수단을 충전하는 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다날 자회사가 발행한 토큰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것을 다날이 지급결제를 대행하는 데도 일 반 이용자에게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계열사가 발행한 토큰을 다른 계열사가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하도 록 지급결제대행업을 하면 실질적으로 아무런 제한없이 화폐를 발행해 엄청난 주조차익(발행화폐의 액면가액에서 발행비용을 공제한 금액 상당 의 이익을 발행자가 취함)을 차지하는 문제점이 있고, 암호자산거래소에 서 발행사가 임의로 언제나 많은 수량을 매각하게 됨으로써 토큰 보 유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큰 손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엄격한 의미에서 토큰을 선불전자지급수단의 충전수단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것과 토큰으로 지급결제대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법 률에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국가는 토큰을 지급 결제업에 이용하는 것이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 유를 내세워 토큰을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책적으 로 제한하고 있다.

- Web3.0의 개념은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다고 하기 어려우며, 이 용어를 쓰는 사람이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총괄파트너 크리스딕슨이 '사용자와 생산자가 토큰을 기반으로 공동소유하는 인터넷'이 라고 한 표현에 비교적 함축된 의미가 들어 있다. 이더리움 공동 개발 자 개빈 우드는 Web3.0을 '애플리케이션 제작자들이 쉽게 개발하도 록 돕는 프로토콜의 묶음'으로 프로토콜은 컴퓨터 사이에 데이터를 교환하는 방식을 정의하는 표준화된 규칙과 절차를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개념을 가능한 한 넓게 정의하고자 한다. 우선 웹기술 측 면에서는 컴퓨터가 웹페이지에 담긴 내용을 맥락에 따라 이해하고 개 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시맨틱 웹기술 또는 지능형 웹기술을 도 입하여 Web3.0 이 시작되었다. Web2.0 에서는 플랫폼 운영자가 컴 퓨팅, 저장공간, 호스팅 등 모든 웹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 데 반해 Web3.0 에서는 프로토콜이 그런 서비스를 대체한다.
- 인터넷 플랫폼과 앱의 운영권한과 생성된 데이터의 소유권을 누가 갖는지를 기준으로 보면 플랫폼 운영자가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에게 권한 권리 · 이익을 나눠주려는 방향성과 실행방안이 Web3.0 의 요소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Web3.0은 플랫폼의 지배구조, 수익배분, 데이터 통제권에서 Web2.0과 달리 탈중앙화와 오픈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용자는 읽고 써서 기여함으로써 보상을 받고 플랫폼을 일부 소유해 플랫폼 수익도 분배받는다. 플랫폼을 이 용하거나 그에 기여하는 개인의 데이터는 개인이 소유하며, 개인정보 는 해당 개인이 통제할 수 있다(read, write, open&own). 이 요소들이 Web3.0 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이다. Web3.0은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 큰 역할을 한 플랫폼 경제구조의 한계점을 개선하려는 큰 목 표 아래 Web2.0 구조하의 이용자와 공급자의 엄격한 구분과 수익의 집중현상을 해결하고 그동안 단순히 이용자 지위에만 머물러 온 개인 들에게 운영자·수익자의 지위를 겸하게 하도록 변화를 꾀하자는 사 회 · 경제 ·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웹3.0과 블록체인의 결합
Web3.0 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구현하려는 다양한 방법 과 기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기술과 블록체 인 기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Web3.0 과 블록체 인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결합되었다. Web3.0 을 블록 체인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으나 위에서 보았듯이 Web3.0 은 인터넷의 변화에 따른 사회 · 경제 · 문화 · 정치적 변화를 모 두 포괄하는 데 쓰이지만 블록체인과 암호자산, 토큰경제는 그 변화를 가능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기술이자 체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기존 ID체계의 문제점과 DID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신분증 체계를 블록체인 기반 DID 방식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모 든 분야의 디지털화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신분증의 발급 및 신원확인도 그에 맞추어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되는 것은 자연스러 운 현상인 것 같다. 민간에서 DID체계 개발과 확산을 위한 연합프로 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회사인 아이콘루프가 주도하 는 마이아이디(MyID)와 SK텔레콤과 다른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니셜, 보안기업 라온시큐어가 주도하는 DID얼라이언스 등이 있다. DID는 발급기관(예를 들어 경찰청장)이 어느 개인이 본인인지 확 인한 후 전자적 형태의 암호화된 ID (예를 들어, 운전면허상 신원정보)를 그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발급하고, 개인은 이를 스마트폰에 저장한 후 ID 발급 내역은 신원검증 블록체인에 저장해 두었다가 누가 신원 확인 · 검증을 요청하면 블록체인을 통해 ID를 검증해 주는 시스템이 다. 위 이미지가 DID 작동구조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중앙화된 신분증 발급·관리체계와 달리 발급기관이 독점적 으로 관리하던 신분증 대장이나 서버 대신 다수 당사자가 노드로 참 여하는 블록체인에 신분확인 관련 정보를 저장하고 이용자가 필요할 때마다 정보의 진위를 검증해 주는 시스템이다. DID체계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신원확인정보 발급기관 외에 검증인과 블록체인의 노드가 필요하다. 발급기관은 해당 개인이 본인이라는 대면확인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신원확인정보, 즉 이름, 주민등록번호, 여권번호, 운전면 허증 번호 같은 신분증 발급번호와 주소 등을 확인한 후 그 정보를 암 호화해서 검증가능신원확인정보(VC, Verifiable Claims)로 만들어 개 인 휴대전화로 발급 · 전달하고, 블록체인에는 그 VC 발급사실과 내역 을 기록한다.
개인은 발급받은 VC를 자기 휴대전화에 저장한 뒤 신원확인 또는 자격확인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만 저장된 VC 전부 또는 일부를 개인키로 전자서명을 해서 검증가능제공정보(VP, Verifiable Presen- tation)로 만들어 신원확인 검증인에게 제출하고, 검증인은 블록체인에 진위검증과 신원확인 요청을 해서 확인받는다. 이를 단순화하면 DID 체계에서의 주요 당사자와 정보/데이터의 흐름은 다음 도표와 같다." DID 신분증 발행인이 이용자의 스마트폰으로 암호화된 VC를 발행 해 주고, 이용자는 공적 또는 사적으로 신원이나 자격확인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VC 중 필요한 범위 내의 VP를 검증인에 제출 하여 검증받는다. 검증인은 블록체인에 저장된 이용자의 신원확인정 보 및 VC 발급내역정보와 VP를 대조하여 동일인의 것인지 검증한다. 술집에서 고객을 받을 때 확인하려는 정보는 성인 여부다. 그런데도 실물신분증을 갖고 술집에 들어갈 때 신분증에 기재된 모든 정보를 보여주어야 하지만, DID에서는 전체 신원확인정보인 VC 중 나이 정보만 VP로 제공하면 되는 이점이 있다.
여기서도 전자지갑은 필수적이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의 전자지갑 에 개인키를 보관하고 있다가 VP를 개인키로 전자서명하여 검증기관 에 제공하면, 검증인은 그의 공개키를 이용하여 그 이용자의 VP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신원확인정보의 저장과 확인은 개인의 스마트폰에 내려받은 앱으로 하게 되며, 이러한 앱서비스는 분산신원확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 정신의 취지에 따라 정부뿐 아니라 민간회사도 제공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신원확인정보를 저장하고 진위검증과 신원확인을 하는 구체적인 기술적 구조는 설계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현재 행정안전부도 정부가 발행하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장애인증명 등 각종 신분증을 DID 형태로 발급하고 필요할 때 ID를 검증해 주는 분산신원증명 블록체인 플랫폼을 계획하고 있다. 필자는
- 2021년 정부는 여기서 말하는 DID 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시범적 으로 모바일 운전면허증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패스(PASS) 앱에서 본인인증이 된 사람이 실물 운전면허증의 사진을 찍어 제출하 면 면허증과 같이 생긴 모바일 운전면허증이 발급되며, 필요할 때 QR 코드 또는 바코드 형태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바일 운전 면허증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원증명 ID의 발급에 관한 정보를 블록체인 분산원장에 저장하고 요청이 있을 때마다 ID를 검증해 주는 체 계는 아니다.
PASS 앱에서 보여지는 운전면허증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운전면 허증 제시와 같은 효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이용해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서비스이다. PASS 앱에서 보여지는 운전면허증 이 실물운전면허증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발급하는 신분증 중에서는 역시 운전면허증을 가장 먼저 블 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2022년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였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사진 등 운전면허증 정보를 개인의 휴대폰에 저장한 후, 개인이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범위의 정보만 제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물 운전면허증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모바일에 발급, 저장된 정보와 블록체인에 저장된 정보를 검증하는 절차와 기술적 구조에 대 해서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2023년 6월 행정안전부는 실물 주민등록증을 대체하는 모바일 주 민등록증을 발급할 수 있는 법률안을 만들었다. 아직 구체적인 발급 구조와 기술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탈중앙화 정신을 반영하여 주민등록증 정보를 암호화해서 개인의 휴대폰에 저장하고, 개인이 허 용할 때에만 다른 사람이 정보를 열람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보도되었다.

- 불완전한 또는 위장된 탈중앙화
탈중앙화는 블록체인기술의 핵심이지만 실제로 블록체인 합의 알 고리즘을 운영할 때 탈중앙화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 다. 탈중앙화를 구현할 의사 없이 탈중앙화의 외관만 가지는 가장된 탈중앙화나 탈중앙화를 의도했으나 기술적·운영적 이유로 제대로 구 현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탈중앙화가 나오는 이유는 블록체인을 운영 하는 인간의 양면성 때문이라고 본다.
- 탈중앙화를 내세우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얼마나 명실상부하게 탈중앙화를 구현하는가? 사실 탈중앙화금융 플랫폼도 완벽하게 모든 과정을 탈중앙화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 기반의 합성 자산을 발행하고 거래하는 탈중앙화 합성자산신세틱스 플랫폼에서 는 시스템의 기능 일부분, 즉 다른 서버에 있는 파일, 데이터 등의 데 이터를 찾아 가져오는 프록시 (proxy)기능은 중앙화된 주체가 담당한 다고 공개했다. DAO도 초기 코어팀이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거버넌 스 구조를 정할 때 초기 코어팀에게 투표권이나 의안 제안권을 더 비 중 있게 부여하거나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 각종 블록체인 플랫폼에 외부 정보를 취합하여 제공해 주는 오라클도 현재 주로 중앙화된 주체가 수행하는 모델인데, 더 높은 신뢰를 얻기 위하여 점진적으로 탈중앙화 방식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 실제 ICO나 토큰판매계약(token sale agreement), 장래토큰판매계 약(simple agreement of future token)의 실태를 보면, 발행자 이익에 너무 치중하며 토큰 구매자나 투자자 입장은 거의 보호하지 않는 구 조가 많다. 지금까지 본 여러 분야의 다양한 계약 유형 중 당사자 간 의 이해관계조정에서 가장 편향적인 계약이었고, 한쪽 당사자인 매도 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었다. 예를 들면 토큰 개발이 실패 로 끝나도, 토큰 개발기간이 아무리 늦추어져도, 토큰에 기술적 하자 가 있어도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일절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같이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 협상력이 현격하게 기울어진 이유는 어떻게 하든 토큰을 매수하겠다는 열기가 뜨겁고 묻지 마 투자가 확산되다 보니 매매계약에서 일반적 · 통상적으로 매수인이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받고자 규정을 넣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거나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자유경제시장에서 자산매매에 대한 오랜 거래에서 관행으로 확립되어 온 정형적으로 채택하는 계약 서의 구조와 조항도 거의 무시당했다.
토큰이 여러 노드의 동등한 의결권과 지위를 근간으로 하는 탈중앙 화 구조에서 생성되었지만 막상 토큰 판매계약의 구조는 지극히 불공 평하거나 불공정하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탈중앙화를 남들에게 명분과 구호로 내세우기는 쉽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 용화하는 데는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어쨌든 2018년 을 지나면서 ICO의 열기는 가라앉았고, 따라서 판매자 이익만 주로 고려한 계약서 양식도 쓰이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 테라는 앵커프로토콜에서 테라 예금자에게 20% 가까운 이자를 지 급한 후 테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그에 따라 루나 수요도 증가하 면서 가격이 올랐다. 여기서 문제는 20% 가까운 이자율이 지속가능 했느냐 또는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충분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플랫 폼 이용자들을 속이려 했다고 볼 수 있느냐다. 테라 프로토콜이 언제 든 1달러 상당의 루나와 테라를 교환해 줌으로써 테라 가격을 1달러 에 수렴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지만, 테라폼랩스는 알고리즘만으로 는 테라 가격이 유지되지 못하고 테라 가격과 루나 가격이 동시에 떨 어질 상황에 대비해 테라를 매입할 자금을 확보했다.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unar Foundation Guard)라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하고 10억달러의 재원을 확보해 비트코인을 매입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테라 가격 붕괴 시 급락을 막으려 비트코인을 팔아 테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트코인 가격까지 급락하 는 충격을 가져왔을 뿐 테라 가격 방어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 도 위와 같이 상당한 양의 비트코인을 확보했다가 실제로 테라 가격을 방어하고자 비트코인을 매각해 테라를 매입한 사실은 테라 가격을 1달러에 유지하려 한 데 진정성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다만, 그런 조치만으로는 실제로 테라 가격을 유지하기에 불충분했다. 이런 점들 을 종합적으로 보면, 테라의 탈중앙화 구조는 설계자가 1달러 연동이 불가능한 점을 알고도 악의로 투자자들에게 연동이 가능하다고 거짓 말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설계와 작동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의 도덕적 통제 없이 블록 체인기술이 발전하면 많은 사회적 기능이 블록체인 코드로 대체되고, 결과적으로 소수가 코드를 통제하거나 지배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 했다. 블록체인이 확산된 결과가 탈중앙화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탈중앙화를 추구한 블록체인이 많은 것을 코드화 · 프로토콜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누군가가 코드와 프로토콜의 개 발과 운영을 장악하고 통제할 우려까지 있다는 의미로, 탈중앙화 논 쟁에서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불완전한 탈중앙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실제로 통제권이나 영향 력이 있는 사람들이 프로토콜의 구조와 작동의 오류에 책임을 부담 해 프로토콜 붕괴, 비정상적 작동, 백서 기재와는 다른 오작동 등으로 손해를 입은 자들에게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적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논의는 나라별로 전개과정이 다르고 법제화 여부와 정도 도 다를 수 있지만, 탈중앙화 블록체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신뢰를 제고하려면 불완전하거나 무늬만 탈중앙화된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문제점에 누군가는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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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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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의 경제부 기자들이 통계로 세상을 바로보고 현상을 분석하며,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보고자 매주 연재했던 기사들을 7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책이다. 이들이 알려주는 7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 전쟁발 에너지 대란
* 고래싸움에 무역적자
* 차세대 먹거리 산업의 현주소
* 고물가 텅장시대
* 일자리 세대전쟁
* 나 홀로 월세, 집값 꿈틀
* 더 글로리, 그리고 학교 참상

제목에는 통계로 미리본다고 적혀 있지만, 이 책은 통계와 관련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속에 가짜뉴스가 여과없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허위/과장된 정보가 SNS를 통해 삽시간에 세상에 퍼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 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쏟아지는 데잍터 안에 담긴 숫자를 오롯이 들여다복, 이를 통해 거짓이나 꾸밈없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방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통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지식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트렌드를 이해하고, 나름의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쓰임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통계가 매우 많다. 경제 현안이나 사회적 관심사, 국제정세, 평범한 이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통계로 세상을 바로보고 현상을 분석하며, 각 아티클의 말미에는 다가올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형태(2024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로 구성되어 있어서 올 한해 우리의 경제생활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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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측면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더 싼 가격에 더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 공급되었다. 수요는 위축되고 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급 불균 형 혹은 공급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는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애써 감추려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부채를 늘려 부족한 소비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된 후 22년간 세계 전체의 부채는 GDP 대비 191%에서 2022년 말 기준 248%로 늘었다. 부족한 수요를 빚을 내서 소비하다가 코로나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지난 20년간 나는 주로 공급과잉 측면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해 석해왔다. 그러나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었다. AI 등 디지털 기술은 더 빠르게 수축사회를 강화시 킬 것이다. 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이번 세기에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인 간 활동에 의한 것일 확률이 훨씬 크다면서 "인간이 AI에 대항하려 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면 오히려 AI에게 추월당하는 속도가 빨라진 다는 딜레마가 있다. 우리가 똑똑해질수록 우리보다 더욱 똑똑한 AI 를 만들어내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인류가 인공지능 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기술이 '특이점'(singularity)을 돌파하는 순간이 지금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 응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 한 질문은 '그 모든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 것이다. 의식 은 없어도 거의 모든 것을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인류와 미래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 여론조사 기관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트렌드 모니터 2023》에서 젠더 갈등 문제에 대해 흥미있는 조사 결과를 보여줬다.
20대 남성: 
1) 목표에 집중하면서 능력주의 성향이 강하다.
2)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대 여성: 
1) 남성에 비해 어떤 사건의 배경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2) 목표 자체보다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3) 사회적 평판 등 나 이외 사회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한다.

- 수축사회에서의 사회적 대응은 과거형이다. 과거의 화려한 성장시절(팽창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집단 심리가 형성된다. 내가 본 시위 현장은 퇴진의 대상이라고 지칭되는 베이비부머가 주축이다. 70대 이 상의 산업화 세대 역시 그들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틀릴 수 없고, 나의 성공스토리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방식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으니 나와 내 방식을 존중해 달라는 '인정투쟁'은 시위 현장을 넘어 유튜브 등 SNS에서 중장년층 의 심리적 기반이 되고 있다.
- 수축사회의 해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를 떠나 리더 계층이 사회 변화를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새로운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는 가에 달려 있다.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사람들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 은 리더다. 리더가 과거형이면 해결은커녕 혼란만 가중된다. 리더 그룹 에서 고령자 비중이 높고, 경제 개발 60년의 성과를 간직한 리더계층 이 길을 잃으면서 계층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세대와 나이 구분 없이 적응하기 정말 어려운 세상이다.
- 사이비 공습경보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에 비해서 모르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그 차이를 뭔가가 채워줘야 한다. 바로 종교다. 종교는 현 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심리적 안전판이다. 또한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신(神)으로 칭하고 추앙한다.
역사적으로 사회변동이 극심할 때 다양한 종교가 등장했다. 기 독교의 경우 중세 암흑기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중국 청나라 말기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했던 '태평천국의 난'의 지도자 홍수전은 자신을 구세주인 천왕(王)이라고 칭했다. 또 백련교도 중심의 '의화단의 난'은 수억 년 후에 탄생하는 미륵불에 사회 개조의 염원을 더한 미륵신앙이 바탕이 되었다. 전환기의 새로운 신앙은 기존의 기득권을 해체한다. 현대 경영학으로 설명하면 먼저 과거 질서를 파괴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일어나 는 것인데 이때 신흥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종교지도자 개인에 대한 추앙을 넘어 가스라이팅, 세뇌 등의 방식이 사이비 종교에 접목된다. 스스로 신이라 칭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전광훈, JMS 정명석 또한 방법의 차이일 뿐 수축사회의 빈틈을 노리는 사이비들이다. 지금 세계는 사이비 종교의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다.
대상만 다를 뿐이지 추앙과 추종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사한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의 또다른 '교 주'로 군림하는 일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이들은 '당신은 선택된 사람'이라며 특별하고 인정받는 존재라고 느끼 게 만든다. '우리 대 저들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집단 바깥의 세상을 적으로 규정한다. 두려움이나 죄책감, 분노 등을 촉발하는 말로 행동 을 조종하기도 한다.
피라미드 사기를 일삼는 다단계 판매 조직도 비슷하다. 주로 중 산층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단계 조직의 슬로건은 여성주의 를 가장하고 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아 '자기 자신의 보스'가 되어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해 '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풀타임 못지 않게 수익을 올려서 늘 갈망하던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라'는 것을 지 속적으로 세뇌한다. 
- 파괴적 혁신 이후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지 못하면 최근의 뉴트로 열풍 혹은 보수주의의 부상과 같은 복고(復古)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 기반의 독재 체제가 재부상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수축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더욱 필요하다. 현재 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미래는 더욱 캄캄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기꺼이 신(神)을 소환해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모두가 적 때문이야', '당신은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는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 을 겨냥한다.

- 리브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위 20%의 가구 소득은 1979년에서 2013년 사이에 4조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위 80%의 소득 은 3조달러가 약간 넘게 증가했다. 하위 20퍼센트~중위 20퍼센트 사이 의 격차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하위 80%에 속하는 사람들 간의 불평 등도 큰 변화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불평등은 상위 20%를 경계로 벌어졌다. 사회학적 용어 중에 중하류층의 상향 이동을 가로막거나 여 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다양한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 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비해 리브스는 상위 20%가 중산층 혹은 하류 층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련한 유리 바닥(The Glass Floor)이 있다 고 주장한다. 이 장치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을 계급사회 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 리브스의 책에 인용된 미식축구 코치 배리 스위처의 말은 신랄하다. 그는 상류층의 계급 고착화를 야구에 비유했다. 상류층이 '3루에 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고 비꼬았다. 상류층 부 모가 자녀를 위해 하는 많은 활동(책을 읽어주고, 숙제를 도와주고, 영양가 있 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스포츠 등 학과 외 활동을 지원해주는 것 등)은 아이가 세 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갖추게 해준다. 이는 아이 가 성인이 되어서도 상류층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불공정한 카르텔을 규제하는 반독점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고성장기에는 수출이 증가할 때 수출 대기업의 성과보상으로 불평 등이 커졌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좋은 불평등'으로 부른다. 개발경제학 자들은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구별한다. 좋은 불평등은 사람 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경제성장 을 촉진한다. 반면 나쁜 불평등은 특정 계급(지대 추구자)에게만 이득을 준다.54 좋은 불평등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지만, 나쁜 불평등은 계급을 고착화시켜서 사회를 붕괴시킨다.
고령자 불평등은 나쁜 불평등이다. 국가는 이미 많은 복지 비용 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고령자 불평등 문제는 앞으로 사 회갈등의 중심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고령자들은 지금 당장이 중요하 다. 그러나 국가는 지금 여기서 이들을 구제할 여유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 수축사회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누군가 빨리 이 갈등을 종결해주기를 바란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해진 것이 다. 1930년대 초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이 히틀러를 불러 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21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 시 대통령은 미국 일방주의를 바탕으로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 등 에서 강력한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네오콘(neocon)을 대거 등용했다. 네오콘이란 네오 컨서버티브(신보수주의, neo-conservatives)의 줄임말이 다. 힘을 바탕으로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의 이해를 달성하자는 정치 세력이다. 핵심 인물은 딕 체니 부통 령,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부장관, 폴 울포위츠 등이다.
- 그러나 네오콘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국방과 외교에 있어 절 대적인 힘의 우위에 있었지만, 경제와 사회는 구조적인 문제가 부각되 는 시기였다. IT혁명으로 생산성은 증가했으나 실업률이 높아지고 인종 갈등, 사회적 불평등이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의 부채 경제도 당시에 출 발했다. 또한 주로 남부 지역에 있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사회 각계 각층으로 파고들어 강성 기독교와 신보수주의가 결합되었다. 위기일수 록 사람들은 정치적 극단주의, 즉 일종의 전체주의를 선호한다. 무질서 를 한방에 그리고 과감하게 해결해줄 구원자가 필요해진다. 수축사회에 대한 정치적 대응은 종교와 독재임을 미국이 먼저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 시대 잠시 물러났던 네오콘은 트럼프 시대에 중국과의 패 권전쟁을 명분으로 다시 소환됐다. 이번에는 백인 소외계층을 대변하 는 우파 독재의 지원 세력으로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녀들을 백악관 중요 보직에 임명했지만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왜 그럴까? 우 파 백인들은 도덕적 지도자보다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강력한 독 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트럼프 개인의 일탈은 중요하지 않 았다.
자국 이익 중심으로 국제 정치가 흐르면서 1930년대 유럽의 민 족주의, 파시즘, 나치즘, 쇼비니즘(Chauvinism) 등과 같은 배타적인 정치 이념이 일반화되고 있다. 21세기 초반은 중국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 해지면서 동시에 미국에서도 애국주의가 부상하던 시기다. 이런 이념 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적 성향이 강하다.
- 스포츠에 있어서도 국가 대항전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국가 대항전에 관심이 없던 야구, 골프 등의 종목에서까지 국가 대 항전 인기가 높아진 것도 이 시기다. 축구는 전통적으로 월드컵이 열리 는 등 국가 대항전이 활성화된 스포츠였다. 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축구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는 분열하는 수축사회에서 국 민과 지역을 단결시키지만, 다른 국가와의 경쟁을 강화시키는 부작용 도 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모든 사람들이 수축사회 전투에 참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적 현상이지만 수축사회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각국에서 미국의 네오콘 모델을 응용한 다양 한 형태의 독재자가 출현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필리핀의 두테르테,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등 전체주의를 지향 하는 정치인이 대거 집권했다. 결론적으로 수축사회는 '배타적 애국주 의사이비 종교=포퓰리즘=독재자'의 공식이 통용된다. 이 결과 민주 주의는 엄청난 속도로 퇴행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중 하나였던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내며 세계화와 신자유주를 옹호하자, 이에 대한 반박으로 데이비드 스믹(David M. Smick)은 프리드만의 신자유주의 찬 양에 제동을 거는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가 세상의 모든 이념 대결 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의 《역사의 종말>도 결국 후쿠야마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 정도 로 이미 신자유주의는 오래 전에 생명을 다했다.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중도 우파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느 국가나 불평등이 확대되면 세금을 올려 복지 재원으로 활용한다. 영국의 토러스 총리는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를 언급하며 세금을 깎겠다고 나섰다가 강력한 사회적 저항으로 45일 만에 사퇴했다. 사적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 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행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가격이 급등하자 2021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GDP의 7% 이상을 에너지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국가가 거의 모든 영역에 적극 입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도와주고 있다.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이미 사라졌 다. 다만 정치인들의 투쟁의 도구일 뿐이다. 수축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생존 이데올로기다.
재미있는(?) 것은 오직 한국만 수명을 다한 신자유주의를 숭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부활시키겠다고 등장했던 MB 정부는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 다. 또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공기업의 임금을 깎기도 했 다. 박근혜 정부 역시 기본소득과 유사한 기초노령연금 지급을 확대했 다. 반면 복지를 핵심정책으로 걸었던 DJ와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와 FTA를 도입하는 등 역설적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022년 출범한 보수 정부 역시 대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가장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감세, 규제해제, 공기업 민영화, 복지 축 소 등 현 보수 정부의 이념은 신자유주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정책이 다. 보수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퍼주기' '포퓰리즘' 등의 용어로 비난했지만, 정작 취임하자마자 무려 62조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을 지급하는 추경을 편성했다. 21세기에 등장한 한국의 정권들은 각각 신자유주의와 복지라는 상충된 이념을 주장했지만, 공통적으로 국가 의 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 우리는 자본 즉 금융과 실물경제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금융의 본래 기능은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를 역 임했던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Paul Sweezy)는 "금융자본은 실물생산경제의 겸손한 조력자라는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 필 연적으로 자기 확장에만 골몰하는 투기자본이 된다"고 주장했다." 금 융을 자본주의의 피, 즉 혈맥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혈맥이 통제가 안 되면 인체는 작동이 불가능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21세기의 선진국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에 가깝다. 장기간 고성장 과정에서 금융자본이 대규모로 축적되었다. 정 제위기 때마다 화폐를 찍어내서 살포했다. 얼마나 많은 돈을 풀었으면 프린트(Print) 머니, 종이 화폐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2022년 초반 기준 양적완화(QE)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EU가 풀어댄 돈만 30조달러를 넘었다. 전 세계 GDP가 100조달러이니 전 세계 GDP의 약 30%에 해 당한다. 금리까지 역사상 가장 최저 수준인 만큼 금융자본은 본래 속성대로 탐욕의 본성이 매우 강한 상태가 되었다. 실물경제보다 더 많은 금융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금융의 본래의 기능인 실물경제의 지 원이 아니라 '금융의 금융에 의한 금융을 위한' 경제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실물경제와의 연계성이 낮아지면서 금융시장은 수익률 게임의 법칙만 통용되는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의 과속 질주는 앞서 살펴본 신자유주의 제1 원칙과도 깊이 연결된다. 자본이 국경을 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지게 되었 다. 자본 투자국인 선진국은 투자국의 실물경제(기업, 인프라)가 아니라 금융자산에 투자한다. 투자한 자본은 일정한 투자 수익을 달성하면 빠 르게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 대상 국가는 단지 하나의 상품에 불 과하다. 특히 미국은 과다 축적된 자본으로 세계 각국에 투자하면서 투자 이익과 패권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 주주자본주의 확산은 단 한 개의 일자리도 증가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줄 인다. 자본주의 스스로 자본의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의 수명을 단축 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 는 '주주가치라는 신흥종교'로 금융자본의 과속 질주를 경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자사주 매입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금리는 오르고 있고 수축사회로 기업의 경영위기가 상시화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해당 기업이 과연 생존 가능할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주주가치 경영이 매우 부족한 한국이지만 미국의 사례를 참조해서 준비해야 한다.

- 미국은 독점시스템에 기반한 패권으로 유지되는 국가다. 패권을 상실하게 되면 미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은 8년이나 머뭇거렸다. 상황이 더욱 나빠진 후 당선된 트럼프는 패권전쟁 참전을 공식화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만의 고립 을 택했다. 반면 바이든은 정교하게 전선을 만들면서 동맹과 함께 연 합군을 만들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전쟁이 일어난 핵심 원인이 미국 내 제조업과 첨단산업 생산 부족에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IRA 법안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원칙을 버리고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생존 이념에 몰입하고 있다. '근린궁핍화정책'은 환율 절하나 국가의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인근 경쟁국에서 부를 뺏어오는 정책이다. 그런데 미국은 인근(neighbor)이 아니라 세계 전체(global)를 대상으로 이 정책을 사용 중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힘으로 이기는 방법
2) 중국이 스스로 무너지는 방법
3) 미국인에게 가장 어렵지만 확실한 방법은 100여 년 이상 패권에 취한 상황에서 깨어나서 미국 독점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권과 주류사회는 미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독점 패권을 고칠 만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 결국 동맹국을 압박해서 중국을 포위하고, 중국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미국 혼자 할 능력이 없으니 동맹국과 연합해서 간접적이고 입체적인 방법으로 전 투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 스스로의 노력 없이 전투에 참여해서 이기 고자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극중지계II: 경제편》에서는 앞으로 중국이 4개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1) 누구나 알고 있는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
2) 국가가 강한 리더십을 갖추어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
3) 하드파워가 강하더라도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면 여타 국가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는 킨들버거의 함정(Kindleberger Trap)
4)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등이다. 이 4개의 함정은 서구 특히 미국이 바라는 중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중국은 과연 4개의 함정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런 서구의 시각과 달리 중국에 유학한 학자나 중국인들은 중국이 구축한 독자적인 시스템(이하 중국시스템)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 로 보고 있다. 중국이 만든 이 시스템은 어떤 통치체제보다 견고하다고 신뢰한다. 중국시스템은 전혀 새로운 체제로 기존의 국가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 믿는다.
-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속도를 늦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같이 성장률이 하락하면 가려졌던 중국의 모든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파악하는 지표는 경제성장 률과 일자리다. 최근 한국의 갈등구조 역시 경제성장률 하락과 일자리 감소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느 정도 성장해야 사회가 안정될 까? 중국에서 경제가 1% 성장하면 일자리가 200만 개 생긴다는 분석 이 있다. 중국의 한 해 대학 졸업자는 약 1천1백만명 이상이다. 그걸 기 준으로 삼으면 최소한 5% 이상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반면에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면서 청년 실업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회의 불안정이 높아지는 것은 동서고 금 공통 현상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6월 청년 실업 률은 무려 21.3%를 기록했다. 그런데 중국 위기에 대한 지적이 많아지 자 중국 국가통계국은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주당 10시간,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주당 15시간, 20시간을 근무해야 고용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은 주 1시 간만 근무해도 고용으로 친다. 중국 기준은 국제 기준이나 서구 국가 들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또한 중국의 고용 통계에서는 2억4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농민공 관련 통계를 찾을 수 없다.
고학력 대졸 실업률이 일반 청년 실업률보다 훨씬 높은 것도 위 험하다. 실업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시진핑 주석이 대학생들에게 농촌에 들어가 '고생'을 경험하도록 독려하기까지 했다. 광둥성 정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30만명의 젊은이를 농촌으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이는 마오쩌둥 때인 1950년대에 시작해 20년 이어진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연상시킨다. 21세기 세계 패권을 겨루는 나라에서 대학졸업생에게 농촌에 가서 고생을 하라는 지시가 실행 가능할까?
- 그러나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중국에서 정권에 충성해온 상류층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을까? 중국 상류층은 부정부패를 통해 쉽게 자본을 축적한 비중이 높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너무도 잘 알 고 있다. 중국 역시 다른 선진국과 같이 세금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해 소해야 한다. 그런데 9천5백만, 실제로 1억명에 가까운 공산당원에게 세금을 높일 수 있을까? 소득세, 재산세를 높이면 일부는 해외로 탈출 하거나 사회적으로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제대로 통제되 지 못하면 중국은 공산당원과 일반 국민으로 분열될 수 있다. 견고한 지배체제에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위협을 감지한 중국은 재정 지출을 빠르게 늘리면서 사회 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2023년 들어서는 공동부유론에 대한 언급도 줄어들고 있다. '공동부유론'이라는 슬로건을 줄이고 각각의 정책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면서 홍보하고 있다. 또한 사회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위기는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을 거쳐 저성장이 고착화될 때 표면화될 것이다. 공동부유가 아니라 불평등 사회가 고착화되었을 때 시진핑의 공산당은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은 내부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에 따 른 소득 증가로 버텨왔다. 배금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의 입장에서 공산당은 중국 인민들에게 '돈'을 주고 민주주의를 제한해온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거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높은 상태에서 향후 임금 상승률은 과거와 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도시지역 가처분 소득이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상황이 2~3년 정도 이어지면 중국의 위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 도시에 비해 농촌 지역의 교육 문제는 더 심각하다. 스콧 로젤과 내털리 헬은 중국의 농촌 교육에 집중해서 중국의 미래를 예측했다. 이들의 연구를 요약하면 현대 디지털 시대의 기본적인 교육에 최소 12 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노동자는 디지털 기기의 생 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기 때문에 고교 수준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 다. 로젤과 헬은 고교 취학률이 50%를 넘지 못하면 어떤 국가도 고소 득 국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불편한 진실은 중국 노동력의 70%가 비숙련 상태이고 중학교 이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30%, 대학 교육을 받은 12.5%는 문제없이 잘 살겠지만 중국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매우 허약해졌다.3"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면 범죄율이 올라간다. 중국은 남녀 성비 불균형이 한국만큼이나 심각하다. 2000년 기준 여아 100명당 남자 아이가 120명 정도 태어났는데, 이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 다. 가장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의 경우 영양 결핍으로 인해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도시 아이에 비해 낮다고 한다. 교육 차별화에 따른 사회 의 이중 구조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소황제'로 편안하게 성장한 아 이들도 있지만 과도한 경쟁에 지친 많은 중국 청년 세대는 '자포자기 족' 세대로 변하고 있다. 2021년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평평하게 드 러누워 살자라는 의미의 '탕평(平) 운동', 사회가 썩도록 내버려두겠 다라는 의미의 '바이란(擺爛)'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극장화 현상, 한국의 냉소적인 청년세대와도 유사하다.
- '잃어버린 20년째가 되는 2010년대부터는 아베가 등장하면서 군국주의화로 길로 들어선다. 일본 전문가 유민호는 《일본 내면 풍경》 에서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단순히 아베 총리 등 몇몇 정치인의 정치 구호가 아니라, 일본어로 '쿠키'(공기, 空氣)라 부르는 사회 분위기 자체 가 전체주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야구팀 선수 중 빡빡 머리 학생 비율이 1998년 31%에서 2008년 69%로 늘었다고 한다. 초 등학교 운동회에 2인 3각 경기가 부활하는 등 일본 사회 저변이 개인 보다 전체를 우선하는 전체주의화를 강요했다.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에는 버블의 형성과 붕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일단 총리를 바꿔보고, 바뀐 총리는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등 몇 가지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일본은 사회의 근본 적인 전환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단지 돈을 풀기만 하면 경제와 사회 가 고성장기로 회귀할 것으로 생각했다. 30여 년간 일본사회는 선도 적인 혁신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역사에 끌려갔다. 버블 붕괴에 따른 부실 채권 정리가 무려 11년 이상 지난 2001~2006년에 완료된 것을 보면 얼마나 안일하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IMF 위기 당시 한국의 부실채권 정리가 2~3년 만에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과 비교된다.
- 잃어버린 30년 동안 부동산과 주가는 폭락하고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간 중 일본 사람들은 불행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택 소유자 는 손실이 컸지만 신규로 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오히려 값싸게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저축도 많았다. 풍부한 예금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더라도 소비만 약간 줄이면 된다. 흥분하거 나 실망하지 않고 최소한의 소비만 하면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 전체가 초식남(男) 혹은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일본인 의 삶의 패턴이 수축사회 형태로 바뀐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계화의 피해를 국내 정치에 활용했다. 세계화로 미국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세계의 경찰 비용으로 너무 많은 국방 비를 쓰니, 세계화 대신 고립을 택하면 미국이 더 잘살 수 있다는 논리 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이런 트럼프의 정책에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는 미국이 미국인만을 위하는 정책 으로 회귀하면 세계는 암흑세계가 되지만, 미국은 더 잘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6장에서 살펴본 미국 의 독점시스템에 도전할 국가가 나타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이 있 었을 것이다. 미국이 뿌린 세계화가 미국을 공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 된 것이다.
- 미국의 유일한 해결책은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뿐이다. 다행히 미국에서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제조원가는 공장부지 매입 비용, 세금, 원자재 비용, 인건비, R&D 비용, 운송비 등 으로 구성된다.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미국으로 들여 오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기계장치는 선진국에 서 생산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가격차는 없다. 세금, 공장부지 비용 등은 법률을 바꿔서 중국과 동일하게 하면 된다. 인건비 차이는 로봇 등 기계 사용을 늘리면 절감이 가능하다. 이런 종합적 정책을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한다. 각종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을 동원해서 해외 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이나 해외 기업을 불러들이는 정책이다. 각국 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활발하게 리쇼어링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 미국과 중국 모두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필요해졌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바로 중국식 세계화를 의미한다. 중국이 중심 에 선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화에서 탈퇴하면 세계화 현상이 자연적으로 붕괴할 것으로 판단 했다. 바이든은 세계화에 다소 제한을 가하는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만의 홀로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맹을 공고 히 하면서 중국을 배제한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과 중국은 2개의 세계로 갈라서고 있다. 서로 다른 2개의 세계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오랜 기간 자유민주진영과 헤어질 준비를 해왔다. 미국의 제재에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중국은 러시 아에서의 원유수입 비중을 빠르게 높여왔다. 2010년경 중국의 원유 수입 중 러시아 비중은 7~8%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3년 상반기에는 18%대까지 상승했다. 전체 수입도 원자재와 식량을 중심으로 라틴아 메리카와 러시아 비중이 높아졌다. 반면 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은 줄어들었다. 특이한 점은 아세안 국가와의 교역 비중이 높아진 것인 데 향후 아세안이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의 각축장이 될 것임을 암시 한다.
- 에너지뿐 아니라 중국이 2차전지 등 미래 산업에 다양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자, 미국은 2018년 7월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 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IRA 법안에 앞서 중국이 먼저 선방 을 날렸고 이에 미국이 맞대응하면서 패권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중국이 독자적인 세계화를 추진하자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과 사람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장기 거주하는 미국인은 2010년 7만1천명에서 2020년 5만5천명으로 23% 감소했다. 프랑스인 은 1만5천명에서 9천명으로 40%나 줄어들었다. 베이징 왕징(望京) 거 리의 한국인은 10년 전만해도 10만명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2만명도 채 안 될 정도라고 한다.' 2020년부터 중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 마이크론에 대한 구매를 급격히 줄였다. 

- 과거의 전쟁은 총포를 동원한 물리적 전쟁이었다. 여전히 국지전은 군사무기를 동원한 전쟁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패권전쟁은 입체적인 전면전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의 핵심 국가들이 전부 참여한다. 일찍이 2014년에 전략경제학자인 윌리엄 엥달 (William Engdahl)은 미-중 간의 전쟁은 군사 전쟁뿐 아니라 경제, 환경, 미디어, 통화, 석유, 식량, 보건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엥달의 전망보 다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번 패권전쟁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전쟁이 기 때문이다. 어정쩡하게 타협이 되어도 전쟁은 새로운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진 행될 것이다.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패권을 차지해야만 생존하고, 반대로 패 권을 빼앗기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이 무조건 이겨야만 살아남는 전쟁이다.
패권 이행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에 따르면 신흥국가가 기존 패권국을 추월하 려고 위협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비슷한 논리로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한다. 3 중 국이 미국을 넘기 어렵다면 국력이 최고조인 바로 지금 공격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아 니면 기회가 없다'(now-or-never)는 사고방식이다.

- 굳이 핵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상대방을 제압할 많은 수단이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국민들은 대규모 희생이 불가피한데 과연 전면전이나 핵전쟁을 용납할까? 독점시스템에 익숙해져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성 향이 강하면서, 국민소득 7만달러의 미국인들이 대규모 징집, 경기침체, 주가 폭락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요 7개국(G7) 이 중국에 가할 경제 제재로 전 세계가 3조달러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 는 예측도 있다.''6
중국의 입장도 비슷하다. 중국 인민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알기 시작했다. 개인주의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만일 중국이 패배하거나 치 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면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의 입지는 매우 약화될 것이다. 모든 정치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가장 중요한 목표다. 패권전쟁으로 권력 유지가 어려워진다면 굳이 모험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 전쟁은 GDP, 즉 월급(flow)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산(stock)으로 싸우는 것이다. 쌓아놓은 자산이 부족한 중국은 지구전이나 소모전 이 발생하면 불리하다. 자산 관점의 전통적인 전쟁 논리로 보면 중국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바로 이 논리가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파 혹은 국 제정치학자들이 보는 미-중 패권전쟁에 대한 인식이다. 합리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과거형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패권전쟁은 3차 세계대전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전쟁이다. 후방의 모든 국민까지 참여하는 총력전이다. 사람뿐 아니라 기계가 본격적으로 참
전하는 미래 전쟁이고, 적국이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적 전쟁이기도 하다.
- 과거 냉전 시절에는 피아 구분이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 금융 등에서도 전선이 형성되면서 피아 구분이 모호해졌다. 중 간 지대의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입장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한다. 그렇다면 미중 사이에 낀 국가 입장에서 가 장 좋은 처신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닐까? 미-중은 자신들의 진영을 확대하려 하지만 각 국가들의 속내는 국익에 우선해서 확실한 진영을 거부할 것이다. 한 베트남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공 산당을 잃고,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나라를 잃는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간 지대에 위치한 국가들의 고민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 디커플링은 중국과 완전하게 공급망을 분리하는 정책이다. 반면 디리스킹은 반도체 등 국방과 관련된 안보 분 야를 제외하고 협력하는 정책이다. 이들의 발언이 있은 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디리스킹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토니 블 링컨 국무장관도 직접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디리스킹 을 얘기했다. 미국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위치는 어느 국가보다 강하다. 정치권력도 함부로 하기 어렵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기업인이 반 대하면 실질적 효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미 1960년대에 소련과의 전쟁이 우주전쟁이 아닌 과학 경쟁이고, 본질적으로 교육 경쟁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케네디는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기꺼이 희생하면 서 몰두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했다. 모스크바에 미사일 을 발사하는 대신 바로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었다. 35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계적 차원의 대규모 전쟁은 과학기술 패 권을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었다. 과학기술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지면 기술에서 파생하는 독점적 이익이 가능하고 전쟁에 수반되는 인적, 물적 희생이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중국은 그동안 반도체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2022년 중국의 연간 반도체 기업 창업 수는 6만 개가 넘는다. 최근 5년간으로 기간을 늘리면 15만2천 개의 반도체 기업이 창업했고 1만3천 개 기업이 폐업했다. 폐업율이 8.6%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중국의 반도체 실력은 메모리 분야 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추격 속도가 빠른 낸드메모리 기술 격차는 한국 대비 개발 기준으로는 1년, 대규모 양산에 있어서 차이는 2년에 불 과하다. 2022년 하반기부터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과잉으로 감 산을 하고 있고 자금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자금 문제에서 자유롭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서 장비와 소재 조달에 문제가 생긴다면 기 술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달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 는 기술력이 있는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미국의 규제는 16 나노 이하 공정 로직 반도체, 18나노 이하 공정 DRAM, 128단 이상 NAND 정도에 적용되고 있다. 레거시(legacy) 제품이라고 하는 16나노 이하 제품에서 중국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산화하고 있다.
- 반도체는 첨단 제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전이나 자동차 등에도 필요하다. TSMC는 저성능의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로 2020년 공 급망 위기 시 큰 수익을 얻은 바 있다. 중국은 반도체 생태계의 하단을 받치면서 기능은 좀 떨어지지만 꼭 필요한 저성능의 반도체를 생산하 고 있다. 2022년 중국의 반도체 수출은 1,552억달러였다. 한국은 중국 에 첨단 반도체를 520억달러 수출했지만 수입도 265억달러나 된다. 우 리가 수입한 것은 범용 반도체다. 중국제 반도체 없이 한국이나 베트남 등 아세안의 생산 공장은 가동되기 어렵다. 레거시 반도체 분야는 제조 업 강국들을 상호의존적으로 엮어 놓고 있는데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 2027년 무렵 반도체 산업에서는 7가지 중요한 변수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의 견해와 나의 판단을 결합해서 반도체 전쟁의 미래를 예상해보자.
1) 미국에 짓기 시작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공장은 대략 2025~2026 년 경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가 완공되어도 생산 인력을 선 발하고, 소재 조달 공급망 구축, 제품 판매망 구축 등 반도체 생태계 가 제대로 가동되려면 2027~2028년 이후가 될 듯하다.
2) 그 사이 AI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 또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극강의 기술로 평가되는 2나노 기술 제품이 나오면 상황은 다시 가속 변화할 것이다.
3) 파운더리에 대한 삼성의 추격 여부다. 삼성은 D램으로 대표되는 메 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미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 점유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15% 점 유율도 계열사 매출이 많기 때문이다. 인텔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만일 2027년경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삼성의 파운더리 생산 비 중이 급상승하게 되면 한국 중심의 새로운 반도체 전쟁이 예상된다. 
4) 미국과 한국, 대만 등 반도체 연합군이 중국에 대해 벌이는 첨단 반도체 고사작전이 향후 3~4년 지속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미국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중국은 미래의 핵심 산업에서 크게 뒤처질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6개월 혹은 1년의 차이가 승패를 좌우 하기 때문에 3년 이상 개발과 투자가 뒤처지게 되면 경쟁력을 상실 하게 된다. 화웨이와 같은 세계적 통신회사의 기술적 우위도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중진국 수준의 범용 제조업 제품을 생산 하는 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특히 AI 분야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경 쟁에 돌입하는데 최첨단 반도체가 필요한 이 분야에서 밀리게 되면 거의 모든 산업에서 뒤로 밀려나게 될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베트 남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받 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5) 반도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상품 은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하락하기 마련이다. 2027년경 미국의 반 도체 생산설비가 완성되고 뒤이어 한국의 용인·이천 반도체 설비, 또 TSMC의 설비가 완성되기 시작하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반도체 회사는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늘 투자비용과 손익 을 고려해야 한다. 2023년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자 생산량을 줄이면서 가격 조절에 나선 것을 참고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만일 2024 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반도체 지원을 계속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미국 인텔에 현재의 지원금이 상당 금액 지원된 이후인 2025년 무렵은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이 한창 지어지고 있을 때 다. 이때 새로 출범한 정부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 의 새로운 행정부 출범과 반도체 가격 급락이 맞물릴 경우 미국 중 심 반도체 진영의 결속력이 약화될 수 있다.
6) 그 이전에 상황이 끝날 수도 있다. 2024년 1월 대만에서 총통 선거 가 있다. 이 선거에서 친미 반중 성향의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반 도체 전쟁은 지금보다 더 격화될 수 있다. 반대로 대 중국 화해를 주장하는 국민당이 재집권하면 상황은 다시 복잡해진다. 중국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무력 충돌 없이 점진적으로 대만과 반도 체를 접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대만의 반도체 설비를 초토화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안 하지 않아도 된다.
7) 중국도 반격이 가능한 분야가 있다. 중국은 2023년 7월초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당시 중국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미국 진영을 위협했다. 이 발표는 미국 재무장 관인 옐런의 중국 방문을 3일 앞둔 시점이었다. EU의 핵심 원자재 (Critical Raw Materials)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희토류 15종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시장 1위 (2016~2020년 기준)인 광 물은 3분의 2에 가까운 33종에 달한다. 희토류 중에서 원자 번호가 높고 무거우며 비싼 중(重) 희토류인 테르븀·디스프로슘·에르븀·루테 튬 등 10종은 중국이 100% 장악하고 있다. 네오디뮴을 비롯해 란타 늄, 세륨 등 경(輕) 희토류 5종도 세계 시장의 85%가 중국 몫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소재 공급을 제한하 면 새로운 소재 개발 국가를 찾을 때까지 사실상 대안이 없다. 40 중 국은 반도체의 독자 개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미국 진영은 원 재료 공급망을 재구축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한계 때문에 미-중 반도체 전쟁은 암암리에 속도 조절 국면에 진입할 수도 있다.
-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 구성이 성공할 경우 배터리는 2025년경, 반도체는 2027년 이후 미국에서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이 상대적 우위를 점유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인 영향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무기를 가지고 상대를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그 무기는 양측이 모두 독점적으로 보유하기를 원한다. 중국은 반도체가 끊기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을 중국 이외 최대 생산국인 한국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는 공해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 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입장에서 배터리 원재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려면 적어도 2030년은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 에 또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배터리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전기차 보급 이 빨라져서 배터리 보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활용 비중이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미국이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 생태계를 구성 하는 시점에서 배터리의 재활용이 증가하면 새로운 국면도 예상된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반도체의 안정적인 미국 내 생산이 2027년, 배터리는 새로 운 원재료 공급망 구축까지 2030년 정도를 예상할 경우 그 사이 동안 미국과 중국은 계속 으르렁대겠지만 일정 부분 타협하거나 혹은 협상 을 통해 시간을 끌어갈 개연성이 충분하다. 바로 이런 상황이 디리스킹 (derisking)에 해당할 것이다.

- 2030년 최악의 시나리오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전쟁의 당사자다. 팽팽한 패권전쟁에서 중심 잡기가 만만치 않다.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가 필요하다. 2030년경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미국이 세운 계획이 성공하 면 2030년경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가 구축된다. 최첨단 반 도체가 생산되고,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도 구축했다고 가정할 때, 마찬 가지로 중국도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 대만, 미국에 근접한 기술을 확 보할 것이다.
-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시설이 원활히 가동되고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생태계가 완성될 경우 한국의 가치는 일본을 방어하는 군사적 역할 정도로 위상이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중국으로 기울면 안보 문제가 발생하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을 놓치게 된다. 중국 역시 한국의 반도체를 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웬만한 범용 제품은 자체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없이도 중국의 독자 생존이 가능한 상황이 되면 한국은 지정학적 중요성만 남게 된다. 한국이 크게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 상황은 나쁘지만 서둘러 미국 진영에 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는 미중 양국에서 모두 필요하다. 2030년이 되 어도 미국의 전략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아직 없다. 실익을 얻으려 노력 도 해보기 전에 군사·안보적 차원에서만 결단을 내려선 안 된다. 대만 이 파운더리 반도체의 '고슴도치듯이 한국은 메모리와 차세대 반도 체 기술의 고슴도치를 지양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내부 사정을 깊게 이해한다면 현재와 같은 일방 적 대미 추종은 한국의 미래에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실익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경쟁은 생산보 다는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 확보가 중요하다. 한국 스스로 중국을 버 리려는 행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 인 한국금융연구원의 지만수 박사는 지금 한국 기업들 앞에는 "미국 기업 없는 중국 시장, 중국 기업 없는 미국 시장이 펼쳐져 있다"면서 균 형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 우크라이나 전쟁 중 국제 금융계가 크게 놀란 것은 국제지급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 망에서 러시아를 신속하게 축출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200개국 1만 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매일 1,500만 개의 거래 메시지를 전송하는 글로벌 결제지원 시스템이다. 국가 간, 은행 간 거래에서 필수적이라서 스위프트에서 축출되면 해외와의 금융거래가 실 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런 이유로 스위프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2012년 미국은 이란을 스위프트에서 배제해서 이란의 원유 수 출 대금 결제를 차단한 바 있으며, 2017년에는 북한 은행도 축출시켰다. 
미국의 금융제재를 예상했던 러시아는 2014년부터 자체적인 지불결제시스템을 마련해 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서방이 이란을 제재한 지 1년 후 중국은 자체 국제결제시스템 (CIPS)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비결
게임 이론의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달러 가치에 적용해보자. 내 쉬 균형은 한번 균형점에 도달하면 외부로부터 아주 큰 충격이 작용하 지 않는 한 계속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모든 국가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무역 등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달러 이외 통화로 상거래를 하지 않는다. 달 러로 결제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고,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현재 달러를 대체할 통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달러의 내쉬 균형에는 2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재정적자가 작아야 한다. 미국 정부의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품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무역적자를 막아야 한다. 재정적자로 대규모 국채가 발행되고, 또 무역적자를 메꾸기 위해 해외로 달러가 무제한 공 급되면 언젠가 달러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금태 환 정책을 포기한 1970년대 초반부터 재정적자가 계속되었고, 품질 좋 은 상품도 만들지 못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 유럽과 일본 재무 담 당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달러는 우리 미국의 돈이지만, 당신 들의 문제입니다(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 무서운 얘 기다. 내쉬 균형이 붕괴되면 미국보다 미국 이외 국가가 더 어려워진다 는 위협이었다.
1970년대부터 일본과 독일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자의반 타의반 으로 달러 가치가 유지되도록 미국과 협력해왔다. G7이라는 경제 선진 국들의 정상회담, 1985년의 플라자합의 등은 달러 가치를 안정시켜 내쉬 균형을 유지하려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달러 가치가 안정되면 미국 경제도 안정된다. 달러 패권의 진정한 의미는 달러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미국 경제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달 대안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다. 미국 입장에서는 너무 편리한(?) 시스템이다.
환율은 상대가치로 평가된다. 자국 상황도 중요하지만 반대편의 상대국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 이외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나빴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안정된 측면이 있다. 달러 다음으 로 많이 거래되는 유로화는 출범 후 1유로당 1.4달러 수준까지 강세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1유로당 1달러까지 하락했다. 유로화가 약화된 것은 미국 경제와 달러가 강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로화가 약해진 것일 까? 나는 후자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체질이 아주 강한 중국이 등장하고 있다.

-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의 실질적 패배를 가정할 경우 단기적으 로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유리해진다.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천연 가스 수출이 재개되면서 유럽도 한숨 돌리게 된다. 미국의 파워를 재차 확인했기 때문에 중동 산유국이나 튀르키예 등은 당분간 친중국 행보 를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지 만 시간이 필요하다. 군사적으로 중국 서쪽 지역까지 NATO가 관할 권 확대를 추진할 것이다. 미-중 대결은 지정학적 전선이 아시아로 압 축되면서 중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생 존을 위해서 중국에 더 밀착하거나 굴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우 크라이나 재건을 통해 흑해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러우 전쟁이 2023년 하반기에 방향성을 결정해도 미국은 2024년 대선과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재와 같은 교착 상태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큰 변화를 향해 갈 것이다. 일본은 군사적으로 공격성이 증가할 것이다. 러시아에게 북 방영토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동해에서 캄차카반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긴장을 높이려 할 것이다. 이때 블라디보스톡을 통해 동해로 진 출한 중국과 일본은 지근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북한도 중국 의존도 를 높일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재편의 바람이 불겠지만 여전히 핵심은 미-중 패권전쟁이다.
결국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재편은 미-중 패권전쟁 추이와 연결되 어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에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가 완성되기 시작 하는 2027년~30년 사이에 러우 전쟁의 후폭풍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 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변화는 예기치 못 한 상황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러우 전쟁 이후가 더 위 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 이 전쟁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 모든 상황이 한국에는 난감하다. 한국은 지역적으로 미국과 중 국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중국이 훨씬 가깝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 하고 있다.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진영은 한국, 미국, 일 본의 3각 군사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전에 확실히 미국 진영에 편입하자는 전략이다. 너무 성급하고 위험한 생각 이다. 한국은 북한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 하면 가장 난처한 국가가 한국이다. 주한미군의 대만 참전이 불가피할 텐데 한국 안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회담 을 앞두고 미국은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 여단급 부대(약 5천명)를 파견 하겠다고 우리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주한미군이 대만 전선에 투입되면 북한은 분명 중국 편에 서서 안보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미묘한 '쓰리쿠션'의 상황이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른다.
한국의 보수 정부는 시각이 너무 좁다. 특히 외교·안보 라인은 미 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완전하게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을 완전히 패배시키는 어렵다. 중국은 패 권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핵무장을 유지한 상태로 서해 혹은 동해를 통해 우리와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원자재의 상당 부분 은 중국 앞바다를 거쳐서 수입된다.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한국에 대해 늘 '이사 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중국의 운명과 한국의 운 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는 말이다. 설령 미국이 중국에 승리해서 중국이 무질서 상태에 빠지면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내부의 혼란이 한국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는 세계 여타 국가들과 다른 우리 한국만의 특 수한 위험요소다. 결론적으로 패권전쟁 이후에도 한반도 주변에는 늘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 내부의 정치적 안정성이 낮아질 때를 대비 해서라도 중국 인민과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중국 내 반한 정 서는 무려 8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안미화중(和中), 안보는 미국 을 우선하되 중국과는 화목·화평하게 지내는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 해야 한다. 정권과 무관하게 중국 인민과 한국 국민이 서로 화목하게 지 내는 장기 전략이 절실하다.
- 선진국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서(정부 부채를 늘려서) 코로나에 대응했다. 반면 한국은 가계와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 자가 부채를 늘리면서 코로나에 대응했다. 코로나 위기에서 한국은 세 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아닌 민간이 빚을 내 소비하면서 탈출했다. 민 간 중심의 부채 확대로 코로나 위기에서 탈출한 것은 향후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경제위기 때마다 한국은 가 장 먼저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민간 부채가 많아지면서 지금부터 한국의 회복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려질 것이다. 신(新)코리아 디스카운 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큰 가치를 갖고 있다는 판단하에 형성된 투기 바람, 혹은 불가능한 목표를 위한 노력을 '검은 튤립'(black tulip) 이라고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당시 큰돈을 벌 수 있는 수 단으로 튤립의 품종 개량이 성행하였고, 이는 자연에서는 불가능하다 고 여겨진 검은 튤립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검은색은 모든 가시광선의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에 자연에서는 검은 튤립이 존 재할 수 없다. 저금리와 부채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의 자산 가격 상승은 검은 튤립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검은 튤립이 없다는 경고 였지만, 세계는 이를 무시하고 검은 튤립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 다. 탐욕의 노예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난 20년을 빨리 잊어야 한다. 우리가 부채 돌려막기와 같은 폰지게임에 열광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검은 튤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 미래산업에 투자한다는 구호 뒤에는 검은 튤립을 갈망하는 거대한 탐욕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오스 카 와일드는 "속물이란 모든 것의 가격을 알되 그 가치는 모르는 사람" 이라고 했다. 자산이 가진 가치보다 가격에만 관심을 가진 세태를 풍자 한 말로 지금도 절실하게 유효하다. 이런 식으로 초저금리는 자원 배분 을 왜곡시켜서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이 자 경제평론가인 폴 스위지는 "금융자본은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 한 실물생산경제의 겸손한 조력자라는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자기 확장에만 골몰하는 투기자본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 다. 지금은 그 경고를 곱씹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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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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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의 생각들

경영 2024. 1. 28. 09:14

- 페어차일드는 사실 배신의 산물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배신의 문화가 있다. 올트먼이 오픈AI를 만들 때 함께했던 일론 머스크가 나중에 올트먼을 비난하고, 오픈AI에 대항하는 스타트업을 만드는 배경에도 배신의 문화가 있다. 쇼클리는 연구자로는 뛰어났지만, 경영 자로서는 빵점이었다. 무어를 비롯한 8명의 엔지니어는 쇼클리세미 컨덕터를 동시에 퇴사하는 반역을 감행했다. 이들이 새롭게 만든 회 사가 바로 페어차일드 반도체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투자한 회사 는 페어차일드 카메라 앤드 인더스트리Fairchild Camera & Industry라는 곳으 로, 이 회사의 창업자 셔먼 페어차일드sherman Fairchild 의 지원을 받아 페 어차일드 반도체는 승승장구했다. 페어차일드의 초기 고객은 미국 국방성과 나사NASA였다. 페어차일드는 창업 3년 만에 연간 2,000만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1960년대가 되자 매출은 9,000만 달러로 성 장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성공은 베이 에어리어 일대에 엄청난 자극을 줬다. 무어를 비롯한 8명의 엔지니어는 기술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 페어차일드 출신 기술자들은 선배들의 '배신'을 그대로 이어받 았다.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은 창업의 길을 떠나기 위해 회사 를 하나둘 그만뒀다. 이와 같은 '창조적 배신' 행렬은 고만고만한 반 도체 스타트업들을 양산해냈다. 1970년대 실리콘밸리에서는 1만 2,000명이 반도체 분야의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무어 자신도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세웠다. 인텔은 마이크로소 프트Microsoft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PC 혁명을 이끈 주역이 됐다. 페어 차일드 반도체는 실리콘밸리의 '에이와'였다. 오늘날 베이 에어리어 에 있는 130개 이상의 기업들이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상장사들이다.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70%가 페어차일드 출신 들이 설립한 기업이다. 올트먼도 선배 기업가들이 걸어온 창조적 배 신 과정을 거쳤다. 올트먼의 후배들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실 리콘밸리의 대형 기술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페어차일드에서 시작 한 거대한 계보의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첫 자리에는 애플Apple Inc. 이 있다. 애플은 실리콘밸리의 심장으 로 불리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쿠퍼티노에 본사가 있다. 애플은 2018년, 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기록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Alphabet Inc. 은 인터넷 검색의 제왕이다. 알파벳 본사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마운틴뷰에 있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연합에 추격을 받기 전까지 구글은 '넘사벽' 같은 존재였다. 글로벌 규모로 성장한 최초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 을 만든 메타Meta Platforms Inc.의 본사는 산마테오 카운티의 먼로 파크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기업 중 하나인 엔비디아NVIDIA 도 산타클라라 카운티에 있다. 반도체 칩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인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연산과 블록체인 코인 채굴에 필수적인 그래 픽 프로세싱 유닛GPU을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역사적 배 경과 면면히 이어진 창업 정신을 알고 있다면 오픈AI가 자리 잡고, 챗GPT가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실리콘밸리 의 독특한 문화 역시 성공의 한 요인이다.
- 샘 올트먼과 9년을 사귄 파트너 닉시보Nick sivo는 스탠퍼드대학교 동창생이다. 시보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면서 네트워크 보안과 인 공지능 기술의 한 분야인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주력으로 살폈다. 그들은 루프트 Loopt라는 스타트업도 함께 만들며 학업과 사업을 함께 했다. 올트먼과 시보는 스탠퍼드대학교 2학년 때, 위치 기반으로 친 구들끼리 연락을 주고받거나 소셜네트워크를 공유할 필요성이 높 아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2005년 설립된 루프트는 휴대전화 사용자 가위치 기반으로 다른 사용자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서비 스를 제공했고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연동되게끔 했다. 이 서비스 는 500만 명 이상이 이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루프트는 와이콤비네 이터 창업 캠프 1기로 들어가 세쿼이아캐피털 등 대형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2012년 3월 루프트는 그린닷 코 퍼레이션Green Dot Corporation에 인수됐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첫 작품이 드디어 성과를 내고, 큰돈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 로 이들은 헤어졌다. 친구이자 연인이며 공동 창업자였던 올트먼과 시보는 이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루프트의 창업은 올트먼에 게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루프트를 만든 인연으로 와이콤비 네이터에 들어가 일하게 됐고, 지금의 오픈AI도 만들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 후 올트먼은 동생 잭과 함께 하이드라진캐 피털을 만들었고, 2,100만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모았다. 하이드라 진캐피털에 투자금을 댄 인물 중 하나가 피터 틸이었다. 틸과 와이콤 비네이터의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트먼은 틸에게 투자 자금도 받고, 와이콤비네이터 운영에 대한 조언도 받았다. 또한, 올트먼이 오픈AI를 구상할 때 재단 형식으로 기부금을 받은 투 자자기도 하다. 틸은 실리콘밸리에서도 문제적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독일계 미국인이다. 미국과 독일 시민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2011년에는 뉴질랜드 시민권도 취 득했다. 틸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전공했다. 그는 실 리콘밸리의 마법사 중 하나다. 그가 손을 댄 스타트업, 기술 투자사 례는 전설로 남을 정도다. 오늘날 기술 투자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틸은 페이팔 초기 창업자였고, 나중에 머스크가 만든 기업과 합병을 통해 전자결제의 시작을 알렸다. 페이팔은 이베이에 매각되었는데, 머스크는 이 자본을 바탕으로 테슬라 Tesla를 설립했다. 틸도 페이팔에서 번 돈을 바탕으로 벤처기 업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또한, 틸은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기 도 하다. 그는 2004년 8월, 50만 달러를 페이스북에 투자하며 지분 10.2%를 보유한 엔젤투자자가 되었다. 페이스북은 초기에는 여러 스타트업 중 하나에 불과했다. 또한,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기업으 로 팔란티어 Palantir가 있다.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팔란티어는 미국 중 앙정보국(CIA 등을 고객으로 둔 기업으로 2020년 9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오픈AI에는 375명에 달하는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 다. 이들이 정확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면 챗 GPT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컴퓨터 엔지 니어들은 고집이 있어 자신이 믿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계획서에 따라서 일을 하도 록 명료하게 지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리콘밸리 기술자들은 종종 오픈AI와 구글의 기업 문화를 비교 하곤 한다. 구글은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이 일하는 거대 조직이다. 구글 문화는 상명하복이 아니지만 동시에 거대한 관료 조직이다. 구 글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문화다. 그래서 느리다. 그러나 일단 불이 붙으면 저절로 타오르게 돼 있다. 구글이 현존하는 인터넷 기업으로 고르게 전 분야에서 최상위에 머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픈AI는 전투적인 상명하복 체계다. 상대적으로 작은 스타트업 이기 때문이다. 올트먼과 무라티는 이 스타트업의 사령관이다. 개발 팀 엔지니어와 컴퓨터공학자들은 전투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 다. 챗GPT는 2022년 11월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3개월 만에 사용자가 1억 명에 도달한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군 대식 집중력이 아니면 이룩할 수 없는 일이다. 오픈AI의 총사령관이 올트먼이라면 무라티는 야전사령관이었다. 무라티는 챗GPT를 대 중 앞에 선보일 때 이를 총괄 지휘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있어 이러한 거대한 실험은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 었다.
- 무라티는 테슬라에 있을 때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체 득했다. 무라티는 2013년부터 테슬라의 모델X 개발에 참여했다. 당 시 테슬라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과연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든 사람이 의심을 품었다. 머스크는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엔지니 어들을 독려했다. 머스크는 아이디어를 판 것이 아니라 진짜 자동차 를 만들어 팔았다. 이때 테슬라는 초기 버전의 자율주행차를 만들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내장된 운전자 보조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기 술을 적용한 로봇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무라티는 이때 진짜 상품 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험실 수준에서 움직이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직접 쓸 수 있는 인공지능을 원했다. 무라티는 테슬라에서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배운 후 2016년 립모션 Leap Motion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품 담당부사장을 맡으며 무라티는 컴퓨터와 교감하는 사람들이 마치 공을 가 지고 노는 것 같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립 모션에서는 사람의 동작이 그대로 컴퓨터에 인식되는 기술을 상품화하는 데 주력했다. 무라티는 2018년 오픈AI로 왔다. 그는 Dall-E'와 챗GPT의 대중 배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이 상품을 대중 앞에 테스트하는 것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느꼈다. "실제 세상과 접촉하지 않고도 진공 상 태에서 기술적인 진보를 이룰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곧 질문에 맞닥 뜨리게 되죠. 정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 무라티는 챗GPT가 교실에서 쓰이는 광경을 떠올렸다. 글쓰기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이 앉아 있다. 선생님은 이 문제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챗GPT는 학습 진도가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스스 로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문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료를 어떻 게 찾는지도 보여준다. 학생 각자의 수준에 맞는 글쓰기 교육이 가능 하다. 무라티는 “인공지능이 개인 과외 선생님처럼 활용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동시에 챗GPT 역시 실제 인간에게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이로부터 인간의 말과 글쓰기를 학습할 수 있다. 무라티는 인간과 기계가 서로를 도와주고 발전하는 모델을 떠올렸다.
- 2014년 2월 28세의 나이에 올트먼은 와이콤비네이터의 CEO가 되었다. 그레이엄은 와이콤비네이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이 렇게 발표했다. "샘 올트먼이 다음 창업 캠프부터 와이콤비네이터의 사장이 되는 데 동의했음을 발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나는 스타 트업과 계속 일할 것이지만 올트먼이 와이콤비네이터를 이끌 것이 다. 올트먼은 와이콤비네이터가 진화하는 단계에서 필요한 사람이 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으며 10년 후에는 지 금보다 훨씬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길 것이다. 와이콤비네이터가 자금을 지원한다면 그에 비례해 더 커져야 할 것이다. 올트먼은 우리가 와이콤비네이터에서 일해 온 9년 동안 만난 사람 중에서 그 일에 가 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효과적이면서도 근본 적으로 자비로운,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이며, 나를 포함해 내가 아는 누구보다 스타트업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내가 다른 의견을 원할 때 찾아가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와이콤비네이터와의 관계는 나보다 한 달 정도 짧 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2005년에 우리가 자금을 지원한 첫 번째 캠프 참여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우리에게 여유가 생겼 을 때 나는 그의 영입을 시도했다."
- 와이콤비네이터는 단순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넘 어서 네트워크에 소속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1,000곳 이상의 스타트업이 와이콤비네이터를 통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121개의 스타트업은 세계적인 IT 기업인 구글, 애플, 메타 등에 인수됨으로써 그 가치를 입증했다. 와이콤비네이터를 경유함으로써 강력한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 음을 암시하며, 이는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 한다.
하지만 올트먼은 이런 네트워크가 점차 부정적인 효과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기업이 와이콤비네이터라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실리콘밸리 생태계와 개별 회사 모두에 좋 지 않다. 나쁜 회사는 빨리 죽는 것이 건전한 생태계를 위해 필요하 다"라는 입장이다.
확실한 기업 목적, 브랜드 네트워크, 실질적인 가치 생산이라는 3가지 기준이 와이콤비네이터의 기업 운영 철학이다. 와이콤비네이터는 자신들을 '친절하고 도움을 주는 엔젤투자자'라고 소개한다. 초 기 투자에 대한 대가로 이후 엄청난 지분을 요구하는 벤처 자본가들 과는 다른 존재다. 다만 벤처캐피털 펀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자 체가 펀드라는 구조에 있다. 상호 기금이나 헤지펀드의 관리자와 마 찬가지로, 벤처캐피털들은 투자된 자금을 관리하고 이에 대해 대략 2%의 연간 관리 수수료와 수익 일부를 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벤처 캐피털은 펀드가 가능한 크게 유지되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각 벤처 캐피털 파트너가 큰돈을 투자해야 함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한 사람 이 많은 거래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각 거래 는 수백만 달러 이상의 큰 규모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 와이콤비네이터는 창업자에 집중했다. 창업자들이 각자의 일을 잘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와이콤비네이터의 목표다. 그레이엄과 올트먼은 이 부분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그레이엄은 창업자우 선주의 Founderism를 주창했다. 그레이엄은 창업자 훈련에 주력했다. 올 트먼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의 아이디어 가 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올트먼은 창업자의 생각의 크기, 생각의 깊이, 그 생각이 미칠 파장도 중시했다. 그레이엄은 창업자의 순수한 야망과 대담성이 계획을 실천하는 원동력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레 이엄이 보기에 에어비앤비의 사업계획은 미친 짓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집 소파를 내준다는 사업 모델이었기 때문 이다. 올트먼의 또 다른 강력한 멘토이자 후원자인 피터 틸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세상을 위해 내놓은 프로그램은 사람이 아니라 아이 디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점이 그를 강력하게 만든 요소다. 사람들은 인기가 식으면 어쩔 줄 몰랐지만,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 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 머스크가 오픈AI와 함께하던 시절에는 인공지능 분야의 인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당시 테슬라와 오픈AI가 동일한 인재를 영입하려고 했고, 이로 인해 머스크는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테슬라의 편을 든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겠다는 오픈AI의 핵심 가치를 무시하는 것 이 될 수 있었고, 반대로 오픈AI의 편을 든다면 그가 창업하고 이끌 어온 테슬라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기업의 미래 전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상황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두 집단에 발을 담그는 것은 머 스크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이러한 줄다리 기에서 자신의 근본 가치에 더 충실한 선택을 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 다. 그 당시 오픈AI는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며, 반면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같은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기술은 테슬 라의 핵심 역량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행동은 단순히 공익을 위한 것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픈AI 외에도 굉장히 다 양한 인공지능 관련 기업에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테슬라의 핵심 서 비스 중 하나인 자율주행 기능 오토파일럿은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 으로 한다. 또한, 2016년에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 역시 인 공지능 관련 기업이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이 외부의 사고 기관을 만드는 과정을 연구하고,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데이터 처리 능력과 지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오픈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자, 머스크 역시 인공지능 서비스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이전에 "인공지능 기술 관련 규정 확립을 위해, 6개월간 개발을 멈추는 유예 기간을 가지자"라는 주장을 했지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공지능 회사 X.AI를 설립하고, 고성능 그래 픽 처리 장치인 1만 개의 GPU를 구매했다. 이미 테슬라와 트위터를 보유하고 있는 이 기업가의 움직임은, 그가 개발하는 인공지능 서비 스가 처음부터 수많은 데이터와 플랫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 되어줄 것임을 보여준다.
- 플러그인은 기존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함으로써 개인 의 기기 기능을 개인화하고 확장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원 리를 챗GPT에 적용하면, 외부 개발사가 자체적으로 챗GPT와 호환 되는 형태의 플러그인을 개발하고, 이를 챗GPT에 연결(온보딩)할 수 있다. 이후 챗GPT는 이용자들이 설치한 플러그인이 특정 상황에 적 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플러그인을 호출해 필요한 통신 결과 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국내 사용자가 음식점을 찾아달라고 요청을 하면 챗GPT는 네이버 지도 플러그인을 활용해 가까운 음식점을 찾 아주고, 예약을 부탁하면 캐치테이블 플러그인을, 식자재를 주문해 달라고 요청하면 SSG나 쿠팡 애플리케이션 플러그인을 활용해 그에 해당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다. 이런 플러그인 시스템을 통해, 오 픈AI는 외부 기업이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제공하지 않아도 서비스 를 챗GPT 상에서 제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존의 챗GPT는 말 그대로 챗봇, 즉 사용자의 요청에 가장 적합 한 답변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 플러그인을 통해 챗GPT는 실제로 사용자의 일상에 개입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즉시 제공하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비서로 진화하게 된다.
- 웹 브라우저 플러그인의 활용도 또한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책 GPT에 그해의 오스카상 수상자 정보를 물었을 때, 챗GPT가 정확 하게 답할 수 있는 수상자들은 전해까지의 수상자로 한정되었다. 이 는 챗GPT가 현실의 실시간 정보나 온라인상의 최신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웹 브라우저가 적용된 챗GPT는 온라인상 그해 의 오스카상 수상자 정보에 접근해 더 적절한 답변을 줄 수 있다. 웹 브라우저 플러그인이 적용된 챗GPT는 <더 웨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최신 영화 정보를 담은 답변을 제공해준 다. 이는 웹 브라우저 플러그인을 통해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정보 를 가져올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이렇게 오픈AI는 기존 챗GPT의 한 계 중 하나였던 데이터 제한 문제를 해결했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데이터를 모델에 직접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실시간 정보 에 접근해 사용하는 방식이므로, 모델을 새로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검색 플러그인을 활용하면 사용 자는 자신이 활용하고 싶은 특정 데이터베이스를 챗GPT에 연동하 고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업무에 필요한 데이터나 전략 생 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챗GPT가 직접 분석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다. 이런 확장성은 챗GPT가 단순히 하나의 서비스를 넘어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애플과 구글이 현재의 스마트폰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은 수많은 외부 개발사가 직접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그 애플리 케이션을 스마트폰 생태계 위에 적용하려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챗 GPT를 이용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은 더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 할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결국 챗GPT의 서비스 개선에 도움이 되고 이는 더 많은 이용자를 플랫폼에 유입시킨다. 오픈AI는 챗GPT 플러 그인을 통해 이런 선순환 구조를 챗GPT 위에 만드는 데 성공했다.
- 경력 초기에 위험을 감수한다는 건 실제로는 매우 큰 선물이라 고 했다. 젊고, 무명이고, 가난하다는 건 사실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양에서는 이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위험이란 평생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정의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훨씬 더 후회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정말 무언가를 믿고 열정을 가지 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시작하라고 조언 했다. 몇 년간 보장된 안정적 수익, 직업, 타인이 실패자라 부를 수 있 는 사회적 시선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감수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올트먼은 "사람들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 서 잘못된 종류의 위험을 감수한다"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실제 로 일을 진행하지 않거나 무언가에 전념하지 않고, 실패의 위험과 평 판 손상 등을 과대평가하는 잘못된 종류의 위험을 감수하는 건 실패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부자가 되려면 열정이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놀랍도록 공평한 경쟁의 장이다. 젊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도,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또 한, 가난하고 무명이라는 점이 스타트업에서는 오히려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올트먼은 2014년 스탠퍼드대학교 강의에서 "돈을 많이 벌 기 위해 스타트업을 시작하면 안 된다. 부자가 되려면 훨씬 쉬운 방 법들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올트먼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면 구체 적인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정 문제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고 창업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스 타트업을 시작해야 한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 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 훌륭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X 제품×실행 X팀 X 행 운'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행운은 0에서 10,000 사이 난수입니다. 훌 륭한 아이디어가 없으면 스타트업을 창업하면 안 되고, 제품을 만들 어서도 안 됩니다. 훌륭한 제품이 없으면 나머지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쁜 아이디어를 아무리 훌륭히 실행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위대한 기업은 훌륭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성공 사례를 보면 거의 항상 창업자가 원한 것에서 출발 한 것이지 무작위로 그때그때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난관은 최고의 아이디어도 처음엔 끔찍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구글의 경우 13번째로 생긴 검색 엔진 이었지만 다른 웹 포털이 제공하는 복잡한 기능이 없다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10번째로 생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였지만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낯선 사람의 소파에서 잘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건 처음 들으면 끔찍 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도 하지 않기에 독점권 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이 연구하 고 있어 아이디어를 독점할 수 없습니다.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작은 시장을 찾은 뒤 빠르게 확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나빠 보이기도 하죠. '지금은 소수의 사 용자만 내 제품을 사용하지만, 앞으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내 제품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쪽이 좋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더라도 대다수가 그 아이디 어를 혹평할 겁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죠. 보통은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데 서툴거나, 질투심 때문에 혹평할 수 있습니다. 그 래도 다른 이들에게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말 좋은 아이디어는 훔칠 가치가 있을만하게 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창업자들, 특히 처음으로 창업하는 이들이 흔히 저지 르는 실수는 아이디어의 첫 버전이 거창하게 들릴 필요가 있다고 생 각한다는 점입니다. 나쁜 아이디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좋은 아 이디어가 필요합니다. 특정할 수 있는 작은 시장을 장악하고 거기서 부터 확장하면 됩니다. 이게 대부분 위대한 기업들이 시작하는 방법 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와이콤비네이터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시장 에서 독점권을 가질지에 대해 질문하곤 합니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기업은 대부분 목표 지향적인데, 훌륭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집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목표 지향적인 아이디어는 창업자 스스로를 그 아이디어에 몰두하게끔 합니다. 기존 아이디어를 모방한 파생 기 업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또한, 팀원들이 성공할 만큼 열심히 일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쉬운 스타트업보다 어려운 스 타트업을 창업하는 게 더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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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나이가 든다는 착각

etc 2024. 1. 28. 09:13

- 판단을 흐리는 고정관념
고정관념은 주로 무의식적으로 생긴다. 뇌는 우리가 의식하 기 10초 전부터 판단을 내린다. 노벨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Eric Kandel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생각의 약 80퍼센트는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는 유익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갖거나 판단을 내릴 때는 이 런 과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다른 인간들을 신속히 평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장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관념은 관찰이나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서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타인을 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자부한 다. 하지만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얻은 사회적 인 식을 지니고 있다. 워낙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그 런 인식이 우리를 속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런 인 식은 '암묵적 편향implicit bias'이라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초래해 우리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반사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게끔 영향을 줄 수 있다. 암묵적 편향은 의식적 믿음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서 줄이기도, 그냥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암 묵적 편향에는 흔히 구조적 편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구조적 편향은 근로자를 차별하는 기업이나 환자를 차별하 는 병원처럼 사회 기관의 정책이나 관행에 담긴 편향으로, 암묵 적 편향과 뒤얽혀 있을 때가 많다. 기관 내에서 차별은 관리자 나 의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으므로 암묵적 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차별은 소외된 구성원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지 않고 권력자의 권력만을 강화하므로 구조적이기도 하다.
- 우리는 각자가 속한 문화와 사회로부터 온갖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받아들이지만,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특히 쉽게 흡수한 다. 많은 사람들이 물그릇에 담긴 스펀지처럼 이런 관념을 빨아 들이는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세계보 건기구WHO에 따르면, 연령차별은 오늘날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되는 편견이다." 둘째, 인종이나 성별 고 정관념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 대상이 되는 연령대에 이르기 수 십년 전부터 나이 고정관념을 접해왔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 거나 반대하려 하지 않는다. 셋째, 고령자들이 거주하고, 일하 고, 사교 활동을 하는 장소는 종종 나머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아이들은 고령자들이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알아차리고, 이런 사회적 분리가 여러 연령대 사이의 본질적이고 의미 있는 차이에서 나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사실은 권력자들이 고령자들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넷째로, 이런 고 정관념은 고령자에 대한 광고나 매체에 담긴 메시지를 대량으 로 접하면서 평생 동안 강화된다.
- 연령 인식은 비관적 사고나 낙관적 사고와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은 긍정적 사고의 한 측면이 고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부정적 사고의 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연구를 통해 행복이나 우울 같은 일반적 인 감정과 별도로, 연령 인식 자체가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 다. 즉 연령 인식은 정서적 태도, 이를테면 유리잔이 반쯤 찼다 고 보는 성향인지 반쯤 비었다고 보는 성향인지에 관계없이 우 리의 건강을 실제로 손상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
- 어떤 종류의 기억력은 노년기에 더 좋 아진다. 그중 한 가지는 사과의 다양한 색깔 같은 일반 지식에 대한 기억인 의미기억이다.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기억도 있 다. 자전거 타는 법처럼 일상 행동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절 차기억이 그 예다. 한편 일화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는 경 향이 있다. 일화기억이란 폭풍우가 치던 어젯밤에 집 위에서 번 쩍이는 번개를 본 경험처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개인의 일화에 대한 기억을 가리킨다. 모든 노인은 이 마지막 기억 유형의 쇠퇴를 겪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기억도 개입 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자, 특정 순간에 특정 사람들에게 특정 형태의 기억력이 실제로 저하된다면 '노인 건망증'이라는 표현 이 옳다는 뜻 아니겠냐고 따지는 사람이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기억력 감퇴할 수 있으며, 우리의 뇌 는 노년기에도 가끔의 실수를 보상하고도 남을 새 연결을 형성 한다.
한마디로 특정 유형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노화 그 자체보다 우리가 노화를 대하고 바라보는 태도와 관계가 있다. 즉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속한 문화가 가르쳐주는 방식, 우리 자신이 가진 믿음에 영향을 받는다.
- 신경과학자 대니얼 레비틴Daniel Levitin에 따르면, 특정 유형의 기억력은 나이가 들면서 실제로 더 좋아진다. 예를 들어, 사람들 은 60세가 넘으면 패턴 인식 능력이 향상된다. 레비틴은 "엑스 레이를 찍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서른이 아닌 일흔의 의사가 판 독하기를 원할 것이다"라고 했다.24
나이가 들어도 우리의 뇌는 꾸준히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앤절라 구체스Angela Gutchess는 노화된 뇌의 여러 영역은 특정 기능에 특화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특성은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녀의 명쾌한 MRI 뇌 연구에 따르면 시를 비롯한 언어 정보를 암기할 때 젊 은 성인은 왼쪽 전두엽 피질에 의지한다. 고령자는 같은 부위뿐 만 아니라 지도 등의 공간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기능을 하 는 오른쪽 전두엽 피질까지 이용한다. 양쪽 뇌 반구를 더 많이 활용한다는 것은 적응력과 유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존 베이신저는 어떤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자랑스러 워할 놀라운 암기력을 보여주었다. 문자를 손동작으로 입체화 하고, 노년기를 기술과 경험이 한껏 축적된 시기로 인식한 것이 그 비결이다. 연령 인식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다. 우리 몸을 통제하는 정신의 왕좌를 차지한다. 연령 인식은 노화의 암호를 푸는 중요한 열쇠다. 문화 집단과 개인이 노년을 설계하고, 구성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연령 인식 의 효과는 우리의 기억력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 따위의 행동까지 바 꾸면서 의미 있게 확산된다.
- 심리 메커니즘은 삶이 주는 혜택이 삶이 주는 고난보다 크다고 느끼고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간단히 말해 인생에 뭔가 기대할게 있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 개념을 '인생 계획plan de vida' 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라고 말한다. 프랑스에는 '존재의 이유 raison d'étre'가 있다. 일본인들은 '삶의 원동력生甲'이라 부른다. 모두 '살려는 의 지' 또는 '존재하는 이유' 등의 의미를 갖는다.
삶의 의지는 고귀한 철학적 신념이라기보다 단순히 인생을 살 만하다고 여기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애완동물을 보살피고 정원을 가꾸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목적의식을 주는 대상, 우리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삶의 의지를 갖게 한다.
- 고인이 된 내 동료이자 유행병학자인 스탠 카슬 Stan Kasl은 삶의 의지가 있으면, 아니 단순히 기다리는 행사만 있어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카슬과 사회학자 엘런 아이들러 Ellen Idler에 따르면 독실한 그리스도교인들은 종종 죽음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이후로 늦추고, 독실한 유대교도들은 속제일, 유월절, 나팔절 이후로 미룬다. 내가 '건강과 노화' 수업에서 이 현 상을 설명하면, 손을 들고, 간절히 기다리던 가족의 결혼이나 탄 생 직후까지 사망을 유예한 친척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학생이 꼭 몇 명씩 있다.
- 과거에는 증명된 적 없지만 나는 연령 인식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경로는 우리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했다. 나는 C 반응성 단백질CRP이라는 스 트레스 생체지표에 주목했다. CRP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증 가하여 혈장에서 발견되는 고리 모양 단백질이다." 일찍 죽는 사람들은 대체로 CRP 수치가 더 높다." 우리는 50세 이상 미국 인 4,000명의 연령 인식과 CRP 수준을 6년간 추적했다. 그 결 과 긍정적 연령 인식이 CRP를 낮추어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긍정적 연령 인식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스트 레스에 저항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높였고, 결국 수명에도 영향 을 미쳤다.
- 문화심리학자 헤이즐 마커스와 기타야마 시노부는 부모의 양육 방식을 예로 들며 이 문화 차이를 부각한다. "자녀에게 밥 을 먹일 때 미국 부모들은 이런 말을 즐겨 한다. '굶주린 에티오 피아 아이들을 생각해봐. 그 애들처럼 배를 곯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반면 일본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 희를 위해 벼를 키우느라 고생한 농부를 생각해봐. 네가 밥을 먹지 않으면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되잖아. 농부가 얼마나 서운하 겠니.'"52 일본과 미국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텍사스의 한 회사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에게 매일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야"라고 100번을 중얼거리게 한다. 반면 일본인이 소유한 뉴저 지 소재 슈퍼마켓 직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상대에게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문 화는 자신을 주로 개인으로 인식하는 반면, 다른 문화에서는 자 신을 더 큰 집단의 일원으로 본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긍정적 연령 인식 문화를 촉진하고 지지 한다. 68개국의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윌리엄 초픽 과 린지 애커맨은 집단주의 문화의 구성원들은 연령차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연장자에 대해 존경심을 품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예술사학자와 창조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노년의 양식, '알터스틸Alterstil'이 실제로 찾아온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예술가가 노년에 이르면 작품의 기법, 정서적 분위기, 주제 등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들은 극적인 효과의 증가, 육감 에 따르는 노련한 접근, 폭넓은 시야, 직관과 무의식에 기대는 경향을 알터스틸의 특성으로 보았다. 화가 벤 샨Ben Shahn이 66 세에 설명했듯, 창조적 과정이라는 정신적 삶에 대한 인식도 갈 수록 깊어진다. 그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의식의 가장 까마득하 고 깊숙한 공간에서 끌어냈다. 우리가 고유하고, 자주적이며, 가 장 온전한 인식을 간직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
- 미켈란젤로가 50년의 간격을 두고 조각한 두 점의 <피에타>는 이런 '노년의 양식', 그리고 나이와 함께 성장하는 창의성을 잘 드러낸다. 그가 23살 때 조각한 성경의 한 장면은 현재 성 베 드로 대성당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젊은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무릎에 누인 채 팔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노련한 예술가가 된 미켈란젤로는 연령 인식에서 힘을 얻었 다. 그는 만년에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Ancora imparo" 라는 말을 남겼다." 72살에도 그는 같은 장면을 조각했지만 스타일은 전 혀 달랐다. <피렌체의 피에타>는 예수,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세 인물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뒤에 서서 나 머지 세 명을 받쳐주는 노인은 미켈란젤로 자신이었다. 이 예술 가는 자신의 무덤을 장식할 의도로 이 조각품을 제작했다. 첫 번째 <피에타>에서 마리아는 얼굴에 전혀 슬픈 기색 없이 예수 를 내려다본다. 두 번째 피에타 속 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예수 를 들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노인이 그녀를 돕고 있다. 그녀 혼자만의 고통도 아니다. 그들의 형체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서로 얽혀 있다. 사랑과 슬픔을 훨 씬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경험에 위배될 때조차 쉽게 수용되고 표출되기에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를테면 우리는 어떤 노인 의 총기가 예전 못지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정신이 오락가 락하거나 행동이 엉성해졌다는 식으로 우스갯소리를 한다.
한편 연령차별의 구조적 동기는 부정적 연령 인식이 경제적 으로 이익을 얻거나 권력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꽤 유용하다는 데 있다. 나의 은사인 인류학자 로버트 러바인 Robert Levine은 문화 현상을 조사할 때 처음으로 던지기에 좋은 질문은 "이 현상에서 누가 이익을 얻는가?"라고 했다.
많은 영리기업은 부정적인 연령 인식을 조장하여 막대한 이 익을 얻는다. 노화에 대한 공포와 쇠약해지는 노인의 이미지를 먹고 사는 안티에이징 산업, 소셜미디어, 광고 대행사, 기업 등 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업계는 연간 1조 달러 이상을 벌 어들이고,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은 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 고령의 근로자들은 놀랄 만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뿐더 러, 훨씬 믿음직하고 이직률·결근율·사고율도 낮다. 그런데도 연령차별은 고용 주기의 전 단계에 만연하다. 우리 연구팀이 45 개국의 직장 내 연령차별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모두)을 조사해 보니, 나이 든 근로자가 젊은 구직자보다 채용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고, 채용되어도 직무교육을 받거나 승진을 하기 어려웠다. "
최근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독일의 BMW 공장에서 실시 한 연구는 고령의 근로자를 보유할 때의 이점을 보여준다. 여러 연령대가 섞인 조립라인은 생산성이 높아지고 결근이 줄었으며 생산된 자동차의 불량이 적었다. 그밖에 장점이 있다면? 연구가 끝난 후에도 다세대 팀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55 세에 에어비앤비에서 비슷한 연령 혼합팀 조직에 기여했던 칩 콘리는 이런 팀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평가했다. "고령의 근로자들은 문제를 파악하고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알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 나는 우리가 속한 문화가 우리의 노화 방식에 영향 을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폐경을 예로 들어보자. 일 본 문화에서는 폐경을 두고 별로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생식능력을 잃게 되는 시기라는 이유로 폐경기를 중 년에 찾아오는 역경으로 보는 서양과 달리, 일본에서는 가치 있 는 인생 단계로 나아가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취급한다. 일본인들이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북미의 동년배들만큼 수치 스럽게 여기지 않은 결과는 무엇일까? 나이 든 일본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의 미국, 캐나다 여성들보다 열감을 비롯한 갖가지 갱년기 증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그리고 이 연구를 이끈 인류학자에 따르면 "자국에서 록스타처럼" 대우받는 일본 의 남성 노인들은 유럽의 노인들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 다. 이 말은 우리가 속한 문화권에서 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성욕의 노화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뜻이다. 
- 인구통계학적으로 우리는 일종의 분기점에 이르렀다. 세상 에 5세 미만보다 64세 이상 인구수가 더 많기는 인류 역사상 처 음이다. 일부 정치인과 경제학자, 언론인은 이른바 '실버 쓰나 미 silver tsunami'를 우려하지만 그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노령에 들어섰는데도 건강이 양호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성과다. 또 지금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 인지 다시 생각해보기에 좋은 시점이기도 하다.
-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옥스퍼드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대한 연 구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성별, 소득, 출신 배경, 외로움, 기능적 건강보다 이곳 주민들의 수명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노년 에 대한 생각과 태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령 인식은 우 리의 수명을 약 8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인 식은 우리의 머릿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나눈 우스갯소리에 담긴 인식 은 우리의 행동을 지시하는 대본이 된다.
- 처음으로 장수에 대한 이런 사실을 밝혔을 때, 92세를 일기 로 돌아가실 때까지 호티 할머니를 곁에 둘 수 있었던 것이 우 리 가족에게 큰 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그렇게 늙 어가면서 행복하셨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어떻게 긴 수명이라는 선물을 누리게 됐는지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호티 할머니와 7~8년쯤 더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노년 에 삶을 만끽했기 때문일까? 제도가 됐든 방법이 됐든 잘 늙는 비결이란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연령 인식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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