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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22 부의 감각
  2. 2019.09.15 약탈적 금융사회
  3. 2019.09.05 현금없는 사회
  4. 2019.08.05 호모이코노미쿠스의 죽음
  5. 2019.07.28 트럼프발 경제위기가 시작됐다
  6. 2019.07.25 하버드 미래경제학
  7. 2019.07.04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
  8. 2019.05.27 화폐의 신
  9. 2019.04.20 리밸런싱
  10. 2019.04.20 소음과 투자

부의 감각

경제 2019. 9. 22. 12:52

- 기회비용을 무시하는 경향은 우리 인간의 사고에 기본적인 흠결이 존재한다는 의미. 이로써 돈의 멋진 특성, 즉 돈으로 지금이든 혹은 미래든 여러가지를 선택해서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돈과 관련된 우리 행동이 그토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 밝혀짐. 돈을 지출할 때는 마땅히 기회비용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지만, 즉 지금 어떤 것을 사는 데 돈을 지출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대의 삶은 신용카드, 담보대출, 자동차 할부금 변제, 학자금 대출 등의 수많은 금융상품을 안겨줬고, 이 금융상품은 사람들이 돈을 지출할 때 그것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가로 막음.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면서 마땅히 해야 하는 생각을 하지못할 때, 혹은 그런 생각을 하려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심리적 지름길에 의지하게 됨. 이런 전략 중 다수는 돈과 관련된 복잡성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도움이 가장 바람직하거나 논리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이 심리적 지름길들은 흔히 사물에 내재된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엉뚱한 곳으로 유도함
- 미국인의 지능을 낮게 평가한 사람들 가운데서 망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헨리 루이스 멩켄, 미국 문예비평가)
- JC 페니의 할인가격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가치단서를 제공했다. 이것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보통은 유일한 단서임. 할인가격, 그리고 JC페니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절약할 수 있는 금액은 고객들에게 그 거래 하나하나가 모두 매우 매력적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런 맥락이든 아니든 간에 JC페니의 세일 문구나 표지판은 고객들에게 셔츠 한장의 가치를 판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 셔츠에 60불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나 100불짜리 셔츠와 비교하면 60불짜리 셔츠는 훌륭한 선택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60불 짜리와 100불짜리가 동일한 셔츠이므로 60불짜리 셔츠를 사면 40불을 공짜로 얻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그렇다면 우리도 다들 이 셔츠를 하나씩 사자. 할인과 구매 포인트와 쿠폰을 제거함으로써 고객들에게서 자신의 구매의사결정이 올바르다고 느끼게 해주는 요소를 JC페니가 박탈해 버린 셈. 정상 가격 옆에 붙어 있는 할인가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객은 스스로가 상당히 똑똑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 상댕성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 스테레오 시스템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과 자기가 생활 속에서 했던 이런저런 선택을 놓고 탄식하는 것은 별개다. 어떤 사람이 느끼는 행복 역시 흔히 그가 실질적으로 느껴 마땅한 행복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 결과다. 대부분의 경우 이 비교는 건강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 사실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려는 경향은 너무도 두드러져서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말라'는 예수의 10계명을 늘 명심하고 되뇌어야 할 정도임. 한편 후회라는 개념도 비교의 또 다른 버전임. 후회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여러 대안들의 가상적 결과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함. 우리는 지금의 나를 다른 선택을 했떠라면 될수도 있었던 이런저런 자아들과 비교한다. 이것 역시 건강하지 않고 유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너무 깊이 철학적으로 들어가지는 말자. 행복과 인생의 의미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말자. 후회나 걱정같은 감정을 잘 갈무리해서 작은 상자에 넣어둬라. 그런 감정을 완전히 격리해둬라.
- 라스베가스라는 도시 전체는 심리적 회계의 거대한 사례임. 이 도시의 관광 담당 공무원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심리적 회계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들이 지출계정 분리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라스베가스에서 생긴 일은 라스베가스에 묻어두고 가라'라는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 마케팅 구호까지 만들었다. 그들은 사람의 가장 원초적 충동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그 충동을 따름. 사람들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정신적인 라스베가스 계정에 몰아 넣는다. 만일 도박판에서 이긴면 신난다. 그야말로 한탕 대박이다. 그런데 만일 지면? 그래도 상관업삳. 어차피 그 돈을 라스베가스 지출이라는 항목에 달아 뒀으니 말이다. 가진 돈을 어떤 지출계정에 두든 그게 자기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음. 라스베가스에 머무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거기에서 일어난 지출이나 수입은 우리와 함께 집까지 따라온다. 결코 라스베가스에 묻어두고 올 수 없다
- 사람들이 돈을 범주화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이 있는데, 돈을 벌어들인 방식에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그 돈의 일부를 기부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자기 돈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 돈을 지출하는 방식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사람들이 돈을 각각의 지출계정으로 분산, 할당 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그 돈에 대한 각자의 느낌, 즉 기분이다. 부정적 환경에서 돈을 획득하면 불쾌한 기분이 드는가? 선물로 받은 돈은 공짜라는 기분이 드는가? 아니면,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기분이 좋고 비로소 그걸 가질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가? 사람들은 일해서 번 돈은 공과금이나 생활비등 책임성 있는 항목에 쓰는 경향이 있음 그 돈을 진지한 돈으로 느끼기 때문. 반면 카니노에서 딴 3억불처럼 재미로 느껴지는 돈은 더 큰 도박판 같은 또 다른 재미에 지출되는 경향이 있음.
- 조너선 레바브와 피트 맥그로는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돈을 획득하면 사람들이 이를 세탁하려 한다는 사실을 발견. 예를 들어 사랑하는 친척으로부터 돈을 상속받았다면 이 돈은 기분좋게 느껴지고 금방이라도 이 돈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어떤 부의 원천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은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그래서 돈에 묻은 부정적 감정을 씻어내기 위해 가장 먼저 이 돈의 일부를 떼어내서 (아이스크림을 산다든가 하는 이기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교과서를 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등의 긍정적인 쪽에 지출. 이렇게 해서 그 돈의 일부가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난 다음에는 그 돈이 깨끗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완벽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머지 돈을 휴가여행이나 보석 그리고 아이스크림처럼 자기가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에 사용함. 조너선과 피트는 이를 감정적 회계라 부름. 감정적 돈세탁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 고약하게 때가 묻은 돈은 채무변제 같은 심각한 일이나 고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하는 도적적으로 바람직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세탁 가능.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이 행위가 돈과 연관된 나쁜 감정을 씻어주고, 따라서 나머지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됨. 이런 유형의 감정적 돈세탁은 누가 봐도 이성적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분명함. 이는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돈을 지출하는 방식을 상당히 정확하게 진술해 준다. 사람들은 이치에 맞는 방식이 아니라 기분이 좋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지출한다.
- 사람들은 먹는 데 돈을 쓰고서는 나쁜 기분을 느끼지 않음. 어쨌거나 뭔가를 먹어야 살고 또 한 주 동안 힘들게 일했으니까 그럴 만한 자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게다가 술을 조금 많이 마신 뒤에는 저축이니 공과금이니 하는 지겨운 것들을 생각할 인지능력이 상실됨. 심리적 회계는 비록 이성적이긴 하지만 기업회계와 마찬가지로 잘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음. 예산 범주들은 예산계획을 세우고 지출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기업 회계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회계가 만병통치약은 아님 여전히 회색지대가 많기 때문. 몇몇 기업이 창의적 회계를 동원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듯 우리 역시 융통성 넘치는 진출 논리로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우리는 아무런 회계 범주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함. 그러나 회계범주를 사용해도 지출명세 분류를 왜곡한다. 규칙을 바꿔서 잘못된 지출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그럴듯한 핑계와 이야기를 꾸며낸다. 마크 트웨인은 이런 창의적 규칙 조작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묘사. 그는 시가를 하루에 한 대만 피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런 뒤 점점 더 큰 시가를 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목발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커다란 시가를 사서 하루에 하나씩 피웠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런 창의적 회계유형을 융통성 있는 심리적 회계라 부름
- 지불의 고통이란 자기가 가진 돈을 포기한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가 느끼는 통증. 이 고통은 지출 자체가 아니라 지출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됨. 그러므로 지출을 생각하면 할수록 고통은 그만큼 커짐. 그래서 지출을 떠올리며 그렇게 구입한 것을 소비할 때면 지불의 고통이 소비 전체경험을 실제보다 덜 즐거운 것으로 느껴지도록 그 경험 전체를 진하게 물들인다. 지불의 고통이란 용어는 지출로야기된 스트레스와 불쾌한 감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뇌영상과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여러 연구저작들이 돈을 지출하는 행위가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뇌 영역을 실제로 자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많은 돈을 지출할 때는 이런 뇌 메커니즘이 더 강한 자극을 받는데, 고통을 유발하는 것은 단지 높은 가격만이 아님. 가격도 고통을 야기하지만, 어떤 것을 포기할 때도 사람들을 고통을 느낌
- 어떤 것을 소비하기 전에 미리 그 대가를 지불하면 그것을 실제로 소비할 때는 거의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됨. 소비하는 시점에는 지불의 고통이 전혀 없으며, 또한 나중에 지불해야 할 일을 두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그야말로 고통없는 거래다
- 아마존닷펌은 프라임 회원제를 운영하면서 배송비를 선불로 받고 있다. 프라임 회원제의 연회비는 99불이지만 1년내내 무료배송을 보장.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완전 무료는 아님. 이미 99불을 지불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1년 동안 아마존닷컴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배송과 관련된 대금을 지불하는 고통에 추가로 시달리지 않아도 됨. 그러므로 그때마다 우리는 배송비가 공짜라는 느낌을 받음. 특히 아마존의 해당 상품은 바로 옆에 프라임 회원은 배송비 무료, 이틀 내 배송이라는 문구가 밝은 색으로 붙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마치 반드시 보다 더 많은 물건을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이득을 보는 거래이기 때문. 그리고 아마존에서는 보다 많은 물건을 살수록 각각의 온라인 흥청망청 소비는 더 많은 공짜 덕분에 더 싸지기 때문. 이렇게 이득을 보는 멋진 거래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신용카드는 소비하는 시간과 그것의 대금을 지불하는 시간을 분리하는 심리적 힘을 주로 사용. 신용카드는 미리 소비하고 지불은 나중에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돈 문제와 관련해서 시야를 흐리게 만들며 기회비용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지불의 고통도 줄여줌
- 신용카드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보다 빠르게, 그리고 보다 부주의하게 지출하게 만들며 또한 자기가 한 지출을 보다 쉽게 잊어버리게 만든다. 정보를 처리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헝클어뜨린다는 점에서 보자면 신용카드는 마약과 같다.
- 신용카드는 자신이 구매한 것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만든다. 즉, 현금지불은 구매의 부정적 측면과 돈이 자기 수중에서 떠나갈 때의 부정적 측면을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데 비해서, 신용카드는 구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유도.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을 대 사람들은 어떤 디저트가 맛있을까 혹은 어떤 것을 벽난로 위에 놓아두면 멋질까를 생각하지만, 현금지출을 할 때는 똑같은 것이라도 그걸 먹으면 얼마나 살이 찔까 혹은 어떻게 하면 벽난로를 없애버릴까 하고 생각함. 동일한 가격의 동일한 제품이라도 지불방식에 따라서, 얼마나 쉽게 지불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유발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
- 어떤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손쉽고 고통없는 것을 좋아한다. 현명하고 사려깊은 것보다는 손쉽고 고통없는 것을 선택한다. 언제나 그렇다. 값비싼 저녁식사를 한 뒤에 사람들은 지불의 고통 때문에 죄의식을 느낌. 또한 지불의 고통은 충동구매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도 함. 디지털 지갑이 주된 지불수단으로 사용될 미래에는 지불과정에서 거의 모든 마찰이 제거될 위험이 존재. 그러면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임. 사람들은 공짜 음료수와 과자와 디저트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널려 있는 해변에 누워 하루 종일 돈을 쓸 것이다.
- 현실에서 우리 대부분은 상대적 가치평가를 경험함. 여러 텔레비전을 비교하고, 여러 자동차를 비교하며, 여러 주택을 비교함. 임의적 일관성은 우리가 두개의 규칙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 우선 어떤 제품군에 대한 기준가격은 완전히 임의로 결정할 수 있지만, 그 범주안에서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해당범주의 제품은 기존의 결정을 기준으로 상대평가 과정을 거쳐 결정함. 이치에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 왜냐하면 애총 타당하지 않은 닻에서 출발한 가격이므로 어떤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
- 성공한 카피라이터들은 어떤 점에서 보면 마술사나 마찬가지. 이들은 잠재적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이 이미 그 문제의 제품을 소유한 것처럼 느끼게 만듬. 사람들은 이미 그 멋진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느끼며, 가족과 함께 남태평양의 어느 아름다운 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느끼며, 맥주광고의 그 멋진 모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처럼 느낌. 이는 실질적 소유가 아니다. 그저 가상의 소유일 뿐이다. 광고가 불어넣는 환상이 우리를 광고 속의 그 제품과 연결해줌. 정신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15초 혹은 30초 동안 잠재적 소비자에게는 소유의식이 생성되고, 이 감정은 그 상품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라면 보다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짐
- 소유효과는 이른바 손실회피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원리는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처음 제기했는데, 사람들이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다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즉, 동일한 양의 고통과 즐거움이 있을 때 보통은 즐거움보다 고통을 더 강하게 느낌. 그런데 이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 무려 약 2배나 된다. 다른 말로 하면, 10불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강도가 10불을 얻을 때 느끼는 즐거움 강도의 2배다. 10불을 잃을 때의 정서적 충격을 상쇄하려면 20불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손실회피는 소유효과와 나란히 손을 잡고 작동함
- 이득보다 손실을 강조하고 자기 소유물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인간의 통상적 심리적 경향은 매몰비용과 결합할 때 한층 강력한 힘을 발휘함
- 매몰비용은 인생이라는 장부에서 영원히 손실로 기재될 수밖에 없는 비용. 자신이 영원히 짊어져야 하는 비용이며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비용이다. 매몰비용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단지 그 금액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 금액과 함께 들어간 희망과 꿈 그리고 그 모든 선택과 노력까지도 함께 바라봄. 그렇기 때문에 매몰비용이 한층 더 무거워질 수 밖에 없음. 매몰비용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함으로써 그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적어지고, 결국 헛된 구멍을 계속 더 깊이 파고들어가게 됨
- 우버는 승차를 원하는 승객과 승차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전사 사이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고 추가요금을 매긴다. 평상시라면 사람들은 공정한 가격과 공정한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기꺼이 바구려 들 것임. 하지만 이는 아주 작은 폭에서만 그렇다. 사람들의 유연성에는 한계점이 존재함. 프리미엄 가격의 상승 폭이 크고 갑작스럽고 또 기회주의적일 때 이 가격은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 손님들에게 내고 싶은 액수만큼만 음식 값을 받는 식당이 있는데, 이 식당은 예전에 책정했던 가격보다 적은 금액으로 사람들이 음식 값으로 낸다는 사실을 확인. 주인으로선 반갑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식당을 찾았으며, 한 푼도 내지 않거나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식당은 예전보다 돈을 더 벌었다. 이처럼 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음식값 지불의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유는 그들이 식당 직원들의 노력(주문을 받고, 주방에서 요리하고, 음식을 나르고, 식탁보를 가지런하게 매만지고 와인병의 코르크를 따는 노동)을 볼 수 있었으며, 여기에 보답해야겠다고 느꼈기 때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는 한 푼도 내지 않고 그냥 나가는 것은 정직하지 않을 뿐더러 고정하지 않게 보인다. 이런 측면은 공정함이 양방향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알 때,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일 때, 즉 투입되는 노력이 눈에 직접 보일 때 사람들은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함. 노동집약적인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가치있다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한다. 어떤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심리를 추동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노력이라기보다 노력의 외양이다.
- 투명성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우리 돈을 받아간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드러낸다. 어떤 것에 많은 노력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음. 서비스를 사고파는 데 인터넷이 만만찮게 어려운 매체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사고자하는 앱이나 서비스에 투입된 노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많은 돈을 지불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함. 크고 작은 기업이 투명성이야말로 자신들이 들인 노력과 가치를 보여주고 증명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사람들이 보다 높게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단서들을 제시하고 있음. 여행 사이트 카약은 특히 더 투명성에 높은 비중을 둠. 카약의 웹사이트는 검색과정에서 퀵 메뉴나 스크롤별 항목 그리고 가격부터 비행편에 이르는 여러 선택권의 조합까지 함께 제시하는 한층 확장된 도표와 풍성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검색대상이 지닌 제각각의 특성을 인식하게 해줌. 이런 식으로 카약은 자신들이 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있으며 이 많은 계산이 이미 수행됐음을 방문자에게 보여줌. 그러면 방문자는 결국 자기를 대신해 수행한 그 모든 것에 감명받고는, 만약 카약이 없었다면 그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임을 깨닫는다
- 언어 조작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와인 제조업자들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계속 창조해왔다. 이들은 와인의 맛을 묘사하기 위해서 '타닌', '복잡성', '산도' 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 와인제조공정 및 와인수송방법을 묘사하는 특이한 단어도 많다. 예컨대 와인잔을 흔들 대 잔 벽면에 형성되는 얇은 막인 렉이 많을수록 좋은 와인이라고 말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각의 용어가 뜻하는 내용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지 혹은 그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많은 이들이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한다. 와인을 조심스럽게 잔에 따르고, 잔을 빙빙 돌리고, 밝은 빛에 비춰보고 또 조금만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한다. 또한 우아하고 멋진 설명이 붙은 와인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와인 및 와인제조공정을 묘사한 말 때문에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행위는 합리적이지 않다. 그 말 자체가 와인을 바꿔놓지는 않기 때문. 하지만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보다 자세히 묘사된 와인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는다. 즉, 언어는 와인병에 든 와인이라는 액체의 물리적 특성을 전혀 바꾸지 않고서도 사람들이 와인을 경험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바꿔 놓으며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준다. 언어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준다. 마개를 따는데서부터 와인을 잔에 부을 때까지, 기울인 잔에서 향기를 맡는 코까지, 와인을 삼키는 것에서부터 뒷맛까지의 과정에 대한 묘사를 들으며 우리는 와인 이야기에 젖어든다. 이 묘사가 우리가 평가하는 와인의 가치와 와인을 마시는 경험의 가치를 한껏 높은 수준으로 올려준다.
- 언어는 이 소비경험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 떨어뜨릴 수도 있음. 언어가 사람들이 초콜릿이든 와인이든 혹은 순종의 햄버거든, 어떤 것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을 주는 근본적 이유도 바로 여기 있음. 이러한 역할을 하는 언어의 중요한 한 유형이 이른바 소비단어다. 소비단어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즉 예를 들어 와인의 부케(와인이 익었을 때 나는 향)나 퀼트의 새싱(조각과 조각 사이에 연결되는 부분) 같은 특정한 용어를 사용할 때 나타남. 소비단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어떤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해줌. 주방장 특선 요리에 대한 1분 동안의 설명은 요리 자체만이 아니라 그 요리와 관련된 배경과 역사까지 다룸. 향과 식감과 맛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는 기묘하고 복잡한 요리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사람들은 그 묘사만 듣고서도 그 요리를 바라보고 씹어먹고 냄새를 맡고 뜯는 상상을 하게 됨. 이처럼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곧바로 그 경험을 할 준비를 마친다. 언어가 어떤 경험이나 경험의 기대치를 지원할 때, 그 언어는 그 경험 및 경험의 가치평가 수준을 바꿔놓고 차원을 격상시킴
- 요컨대 언어는 사람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창문을 제공함. 노력이야말로 공정함과 높은 품질을 갖췄다는 신호이기 때문. 그리고 공정함과 품질에 대한 인식은 가치의 대리자가 된다. 바로 이것이 언어에서부터 가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지금껏 걸어왔던 길고 구불구불한 경로인데, 이 경로의 어느 지점에서든 우리는 발이 걸려 넘어지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 언어는 노력에 대한 인식과 가치에 대한 감각을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도록 우리를 유도할 수 있다. 보건분야와 금융분야 그리고 법률분야의 전문가들을 놓고 생각해보자.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들이 구사하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며, 심지어 그들이 쓴 손글씨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언어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전문가임을 암시함. 이 언어는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그들이 그 모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까지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노력했고, 또 이제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복잡한 언어를 사용해서 그 지식과 기술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함을 상기시킴. 이런 언어 사용은 저술가 존 란체스터가 '사제의 말씀'이라고 불렀던 것을 생성함. 그 전문가들은 정교한 제의 그리고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들고 위협하고 자신을 신비하게 포장하기 위해 고안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전문가가 하는 말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자격을 갖췄다고 검증된 사람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한 자신은 전문가의 통제 안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도록 만든다
- 제의는 음식을 보다 맛있게 만들며, 일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며 또 인생을 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줌. 경험을 보다 가치있게 만들어줌. 제의는 소비단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것을 할 때 거기에 집중하게 만들어줌. 또한 소비에 보다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서 소비의 즐거움을 한껏 높여준다. 그러나 제의에는 우리가 직접 수행하는 행동과 의미가 포함되기 때문에 소비단어를 능가함. 이 과정 속에서 제의는 거의 모든 경험에 담긴 즐거움의 수준을 높여줌. 우리는 와인 한 잔을 그냥 마셔버릴 수도 있지만, 제의를 거치면서 마시면 그러지 않을 때보다 와인 마시는 순간의 즐거움을 강화할 수 있음. 동일한 와인 두 잔을 마신다고 치자. 그런데 한 잔은 커피 머그잔에 담아서 마시고, 다른 한 잔은 멋진 크리스털 와인잔에 담아서 멋진 조명하래에서 몇 차례 빙빙 돌려서 한 모금 입에 넣고 입속에서 천천히 굴리면서 음미한다면 어느 쪽이 더 맛있다고 평가할까? 어느 쪽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까?
- 기대치는 서로 다른 두개의 시간대에 걸친 경험의 가치를 바꿔 놓음. 두 개의 시간대란 구매대상을 경험하기 전인 기대시간대와 경험이 진행되는 경험 시간대다. 이 두가지 유형의 기대치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각기 중요한 방식으로 작용함. 기대치는 어떤 경험을 기대할 때 즐거움을 제공하며, 그런 다음에는 그 경험 자체를 바꿔 놓음.
첫째, 휴가여행을 기대한느 동안 사람들은 계획을 짜면서 즐거운 시간과 맛있는 열대음료와 모래해변을 상상함. 이처럼 자신의 기대속에서 즐거움을 추가로 즐긴다.
둘째,기대치는 어떤 사람이 실제로 그 경험을 하는 동안에 그가 자기주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림. 한 주 동안의 휴가여행은 고양된 기대치 덕분에 한층 더 즐겁고 가치가 높아질 수 있음. 우리는 사전에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관심을 들이고 또 멋진 순간을 보다 충실하게 즐김. 기대치 대문에 바뀌는 것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 역시 바꾼다. 우리가 뭔가를 기대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는 생리상태도 변화함.(파블로프의 개)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기대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 정신과 육체는 그 어떤 것의 실체를 준비하기 시작함. 이 준비는 경험의 실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또한 전형적으로 영향을 준다.
- 이름붙이기는 기대치를 만들어냄. 이름 붙이기가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기 때문. 이름 붙이기 효과가 있다. 이름 붙이기는 확실히 주관적 성과에 영향을 준다. 이런 사실은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의 연구저작들이 확인해준다. 동일한 고기와 맥주는 브랜드가 있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신경과학계를 사로잡는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붙은 콜라를 마실 때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답변했고, 이는 감정과 문화적 기억과 관련 있는 뇌 부위인 배측면 전두엽피질의 활성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사실과 호응이 된다. 즉, 이름 붙이기는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보다 많이 즐긴다고 말하는 데 그치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뇌에서 그것을 보다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말이다.
- 11년 7월까지만 해도 모나리자는 그저 그런 한 장의 그림일 뿐이었음. 그런데 11년 8월에 이 그림이 루브르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했다. 수사당국이 범인을 추적하는 동안 그 그림이 걸려 있던 텅빈 자리를 보겠다는 방문객들로 갑자기 박물관 앞에 긴 줄이 생겼다. 결국 절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그림을 본 사람보다 그림이 사라지고 없는 빈자리를 본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 절도사건은 모나리자의 가치를 알리는 신호가 됐다. 아무런 가치 없는 그림을 애써 훔칠 이유는 당연히 없다. 그 범죄는 모나리자와 루브르박물관에 장기적 가치를 가져다주었다.
- 기대치의 강력한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기대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가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물이나 상황의 가치를 평가하게 만듬. 이런 기대치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생에 있어 일상적인 것(타이레놀, 커피 등)에서부터 숭고한 것(미술, 문학, 음식, 와인, 동료애 등)에 이르는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할 때 기대치는 분명히 평가내용을 바꾸어 놓는다. 만일 누군가 어떤 경험에 기대치를 갖고 있고, 이 기대치가 어디서 비롯됐는지와 상관없이 그 기대치가 높다면, 그는 그 경험의 가치를 보다 높게 평가할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로 보다 많은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려 들 것이다.
- 현재 시점에서의 소비가 주는 편익은 늘,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으 소비를 포기하는 것의 비용보다 크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스카 와일드도 다음과 같이 말함. "나는 다른 것들에는 다 저항할 수 있어도 유혹에만큼은 저항할 수 없다."
- 이치에 맞든 아니든 높은 가격은 그것의 품질이 좋다는 신호를 발산함. 건강, 음식, 의류 등 중요한 것에 있어 높은 가격은 싸구려가 아니라는 신호를 발산함. 때로 나쁜 품질이 아니라는 것은 높은 품질이라는 것만큼이나 중요함. 수전 이모는 티셔츠 하나에 100불을 주고 사지는 않겠지만, 만일 이 가격이 JC페니 백화점에서 파는 티셔츠의 정가이고 여기에 그럴듯한 근거가 따라붙기만 한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살 것이다. 이정도 가격이라면 이 티셔츠는 반드시 품질이 좋을 것이다, 라는 식이다.
- 사람들은 비싼 와인일수록 더 좋아함. 증거는 명백하다. 자기가 마시는 와인에 얼마의 돈을 지출하는지 알 때, 가격과 즐거움 사이의 상관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짐. 이대 그 와인의 실제 맛이나 품질은 중요하지 않음. 그러나 가격으로 품질을 추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딘 평가방식임. 추정된 품질에 가격이 주는 영향은, 만일 우리가 와인을 다른 방식으로 평가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음. 예컨대 그 와인의 생산지가 어디인지, 언제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는지, 왜 그 와인이 중요한지 안다면, 혹은 와인제조업자를 개인적으로 안다거나 그 사람이 포도알갱이를 으깨기 전에 손발을 잘 씻는지 어떤지 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 일반적인 문제의 의사결정,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의 의사결정에 대해 심리학은 모호하게 올바른 대답을 해주고 경제학은 정확하기 잘못된 대답을 해준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정확한 것을 그리고 정확하다는 착각을 좋아함.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때는 특히 더 그러하다.
- 복수의 어떤 제품을 비교할 때, 계량화가 가능한 속성은 쉽게 평가할 수 있고 설령 이런 속성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보다 더 예리한 초점을 받게 됨.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 속성을 다른 속성에 비해 보다 중요하게 여기고(즉, 속성에 가중치를 두고) 평가하게 됨. 흔히 이런 속성은 제조업자들이 소비자가 다른 속성은 무시하고 여기에만 초점을 맞춰 눈여겨 바라보길 원하는 바로 그 속성들이다. 카메라를 놓고 이야기하자면 화소라는 속성이 쉽게 비교되는 숫자로 표시되기 때문에, 화소만 놓고 따질 것이지 이 카메라가 얼마나 자주 혹은 쉽게 고장나는지는 따지지 말라는 제조업체의 바람이 그대로 관철된다는 말이다. 어떤 속성이 측정되고 나면 사람들은 거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비중은 더 커짐
- 사람들느 미래의 자아를 자기와 동떨어진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저축을 자신이 아닌 낯선 이에게 돈을 주는 행위쯤으로 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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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사회

경제 2019. 9. 15. 11:46

- 우리는 스스로가 쾌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 모른 채 계속해서 뭔가를 구입한다. 새로운 상품이 자신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댄 애이얼리, 경제심리학)
-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만 해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190조 수준,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율은 55.8%에 불과. 반면 저축률은 70년대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87년 24%로 OECD 국가중 최고수준에 올라선뒤 2000년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각 가정은 비록 지금보다 수입은 적었을지라도 빚이 적거나 거의 없이 착실하게 은행에 저축한 돈으로 미래를 설계했음. 월급날 잘해야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귀가할 지언정 이자상환을 걱정하지 않았고, 카드 돌려막기에 초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하는 목적이 가족의 밝은 내일을 위한 것이었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은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빛나는 자유인의 시절이 분명 있었다.
-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선불제에서는 지불하는 가격만큼 제품이 가치가 있는지를 따짐.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 판단기준, 즉 의사결정 프레임은 상품의 장점을 찾는데 집중. 반대로 후불제에서는 '나중에 후회할 만큼 하자가 있는가'라는 쪽으로 프레임이 이동함. 결정적 하자가 없다면 우리는 나중에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음. 빚은 이런 후불제 프레임이 작용하는 경향이 크다. 나중에 원금상환뿐 아니라 이자라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지만 당장은 수중에 들어온 대출금을 횡재처럼 여기게 됨. 결국 먼저 상품을 차지하듯 돈을 손에 쥐고 나중에 비용을 부담하는 후불제 프레임에 갇혀 비용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됨. 빚을 공돈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은행의 대출마케팅 앞에서 당당히 됐다면 거절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임.
- '내 탓' 논리는 그간 금융사들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학습시킨 결과. 금융권이 불완전 판매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사람들에게 '내 탓'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킨 것.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투자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위험은 키코와 후순위채, 더 나아가 펀드와 회사채, 각종 대출상품 등 개인의 자산운용 전반에 광범위하게 잠재되어 있음. 투자실패, 채무상환 등 모든 책임을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금융사에게만 철저히 유리한 지금의 시스템은 결코 공정하다 할 수 없다.
-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러고 나서 혹시 미덕이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하라. (조너선 스위프트)
-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 (도둑의 소굴, 제임스 스튜어트, 자산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의 사람들의 심리)
- 당신이 3억짜리 주택을 구입해 이웃에게 5억에 팔았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2억을 거머쥐었다. 그 2억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바로 당신의 이웃이 지불한 비용이다. 그 이웃의 돈이 넉넉해서 집을 5억에 구입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주택시장 흐름을 비추어보면, 당신의 이웃은 2억 이상 모기지 담보대출을 끼고 20년 혹은 30년 상환계획으로 집을 샀을 것임. 결국 당신이 손에 쥔 차익 2억은 당신의 이웃이 20년, 30년간 일해서 갚아야 하는 돈이다. 누군가 차지하는 자본소득이란 다른 누군가가 미래에 받을 노동소득, 즉 대출원금인 셈이다. 이처럼 너의 손해가 나의 수익이 되는 자산 빼앗기 경쟁구조를 갖고 있는 재테크 시장에서 중산층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노동소득은 재테크에 성공한 소수의 자산소득으로 이전되었다. 노동소득의 양극화와 더불어 자산의 양극화까지 벌어진 셈.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부자되기에 매달렸던 중산층은 결국 가난해짐. 재테크 열풍은, 지친 얼굴로 상담을 하러 왔던 부부처럼 20년간 나워 갚아야 하는 숨막히는 빚의 미래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 바보 같은 짓 가운데 그야말로 최고봉은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 외환위기 직후 찾아온 벤처 거품과 부동산 투자, 그리고 펀드 열풍 속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자되기 신드롬에 빠져들었다. 자본소득, 즉 불로소득에 대한 달콤한 유혹은 소비절제마저 무장해제시켰다. 때맞춰 기업들의 공격적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소비자를 향한 집요한 감성조작이 대형마트와 홈쇼핑 등 더욱 다양해진 쇼핑공간으로 확대됨. 외환위기 이전에는 저축이 독려되고 절약을 강조했다면 위기 이후에는 절약이 미덕이 아니며 소비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동력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발휘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 절약대신 소비가 상생의 밑거름이라는 믿음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에 경계심을 갖는 대신 흥분을 조장. 게다가 자산시장의 거품 탓에 돈을 번 것 같은 착시현상이 만연했고, 자산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이른바 부의 효과까지 나타남. 가계의 자산구조는 집에 딸린 대출, 반 토막 난 펀드와 더불어 신용카드 소비의 확대로 현금흐름마저 동맥경화에 걸리고 말았다. 우리 사회를 휩쓴 부자열풍은 중산층이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에 맞서 연대와 저항을 선택하는 대신 머니게임과 소비확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비확장은 저축률을 떨어뜨리고 비상금이 없는 가계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 때문에 보험가입을 늘리면서 금융비용이 금융비용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됨. 이 역시 한편으로는 정부의 방카슈랑스와 자통법 제정이라는 정책적 의지가 만들어낸 금융 과소비다. 정책 변화로 금유오히사간 판매장벽이 허물어졌고 보험사뿐 아니라 은행, 증권사까지 보험판매에 나섬. 이제 소비자들은 보험사 직원의 방문뿐 아니라 은행에 가서도 보험강매에 시달려야 한다.
- 거품은 항상 터지기 마련이다. 거품은 그 의미자체로 지탱할 수 없는 가격변동이나 현금흐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찰스 킨들버거, 광기,패닉,붕괴 중에서)
- 주택시장이 안정된 유럽의 경우 각 지역별로 공정임대료를 정하거나 평균적 임대료를 정하고 그 이상으로 임대료를 책정하지 못하도록 금액 상한제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인상률 상한제를 채태갛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영국의 경우에는 집주인이 정한 임대료에 세입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임대료 조정관이나 조정위원회가 임대료를 조정. 특히 세입자가 계약종료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임대차 계약이 계속 유지됨. 만약 집주인이 계약연장을 거부하고자 한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하는데, 영국은 그 사유를 법률로 정해놓았고 일본은 법원이 판단. 이렇게 선진국은 주거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통해 임대시장의 급격한 가격변동에 따른 사회의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써 혼란을 방지.
-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자 보호정책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정서가 강함. 그러나 집을 가지고 과도한 부를 챙기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규제는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 그런 부분적 제한을 통해 부동산 시장 전체가 안정되면 국가경제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침. 실제로 부동산 투기가 지나치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짐. 제로섬 게임 혹은 공멸을 자초할 수도 있는 부동산 투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로운 권리 행사로 내버려둘 거라면 신호등은 왜 만들고 횡단보도는 왜 만드는가. 전체 시장을 보호하려는 적절한 규제는 시장 참여자간에 공정한 룰로 이해되어야 함. 특히 주거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정부의 중요 역할 중 하나. 이것을 오로지 재산권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과도할 정도로 주거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정부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방기하면서 우리는 부동산 계급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렵게 벌지 않고 공짜로 생긴 돈에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 하다고 느낌. 그래서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소득 서민가구의 경우에도 한계상황에 내몰려 있기는 하지만 빌린 돈을 공돈으로 여겨 치밀한 계획없이 쓰게 될 위험이 있다. 결국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게 돈이 사라지는 허탈한 경험을 하게 됨. 그리고 그 돈을 갚아야 하는 현실에서 더 큰 절망으로 내몰려 자립의 동기가 극도로 낮아지는 무기력 상태가 됨. 정부가 저소득 서민가구에 금융지원을 하고 싶다면 빚을 늘리는 정책으로 가선 안된다. 오히려 극단적 상황은 사회복지로 해결하고 자립의 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저축을 장려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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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없는 사회

경제 2019. 9. 5. 12:47

- 우리를 현금없는 사회로 몰아가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재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우리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현금없는 삶을 강요받고 있다. 우리에게 유익해서가 아니라 힘 있는 이익단체들이 우리를 염탐하고 우리를 상대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 현금없는 사회가 제격이기 때문. 그 힘 있는 이익단체의 일부가 바로 전 세계 정부들이다.
- 마스터카드가 아무리 찾고 싶어도 한 국가의 경제력과 비현금거래 비율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한 국가의 현금거래 비율은 주로 그 국가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결정됨. 보통 독일사람이 영국이나 스웨덴 사람보다 현금을 더 선호. 독일 경제가 다른 두 국가의 경제보다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독일 사람들이 현금 폐지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그 누구보다 경계하기 때문. 독일에서는 거리에 설치하는 CCTV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신용카드 사용을 거부함. 어쩌면 그들은 20세기 독일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감시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크게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현금없는 지불방식을 왜 그리 선호할까? 아마도 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제한하는 노동법과 자동화된 고객 인터페이스를 의무화한 법 때문일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국내 거래의 80%를 차지하는 현금결제 방식을 고수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신용거래를 주저하기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신용거래가 60년대 신용카드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것을 보면 제법 그럴듯하다. 또 범죄율이 낮은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고액의 현금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마다하고 굳이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일본의 낮은 전자결제 비율이 어떤 면에서는 일본 사회가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 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함부로 도입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음. 은행은 마이너스 금리가 확대되면 예금주들이 은행에 맡긴 돈을 모두 인출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음. 하지만 현금사용이 중단된다면 어떨까? 금리가 마이너스 2,3,4%로 떨어지는 것을 견제할 방법이 사라짐. 소파 아래에 더 이상 돈을 숨기지도 못할 테니 은행이 정한 마이너스 금리를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수년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음. 그 사이 일본 사람들은 만이릉ㄹ 대비해 현금을 비축해왔다. 20년만에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지폐와 동전의 총액이 101조엔인 두 배로 늘었다. 16년 1월 일본은행이 마침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로 확정할 당시 일반 예금주들은 금리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음. 일반 예금주들은 제외해야 마땅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면 사람들이 돈을 집데 감춰두거나 채무자를 구제하는 데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은행 계좌에서 대규모로 돈을 인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일본 사람들이 현금을 선호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그들은 현금없는 사회로 유인하려는 국가의 꼬임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노련하다. 전자적인 모든 것의 발상지나 다름없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그 국민들은 현금없는 사회가 우리를 기만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 현금없는 사회를 가장 열렬하게 외치는 주체 대부분이 하필이면 왜 지불결제업계 관계자나 관계기관일까? 그들은 하나같이 현금없는 사회가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금없는 사회는 바로 그들을 위한 사회다. 우리가 전자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그들은 현금 결제라는 대안이 있을 때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돈을 빼앗을 것이다. 전자결제 시스템은 중개기관이 거래 당사자들은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도록 해줌. 외국에 나가 식당에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무심코 꺼내 사용하면 금융중개기관이 결제 수수료를 쏙 뽑아간다.
- 전자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면 어떤 식으로든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 현재 스웨덴에서 사용하는 스위시 휴대전하 결제 앱의 경우 개인 사용자들은 수수료 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건당 1.5-2 크로나의 거래 수수료를 지불. 예상대로 기업의 수수료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 현금없이 사는 데 드는 비용을 알고 나면 현금없는 사회가 더욱 달갑지 않을 것임. 영국에서는 보통 직불카드로 결제할 때 수수료를 물지 않음. 소매업체가 전자결제로 거래하기 위해 수수료를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음. 물론 현금을 취급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지폐와 동전을 세야 하고 현금을 은행에 가져야 예근해야 한다. 현금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로비스트들은 이러한 비용문제를 부풀려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카드결제로 발생하는 비용은 그보가 훨씬 크다. 영국소매협회에 따르면 15년 영국 소매업체들이 현금으로 거래할 경우 평균 1.39펜스의 비용이 들었다. 이는 거래액의 0.15%에 해당한다. 직불카드는 컫당 5.79펜스(0.22%), 신용카드는 건당 28.41펜스(0.79%)의 거래비용이 들었다. 추가비용만큼 소비자가격이 상승하고 결국 소비자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됨. 위 통계 말고도 알아야 할 점은 바로 소규모 업체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점. 한 주에 수천건씩 거래해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상점이라면 카드결제를 받기 위해 지불하는 단말기 수수료가 카드 매출액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하지만 거래 건수가 별로 많지 않은 소규모 상점이라면 카드단말기 수수료가 큰 부담이 될수밖에 없다. 현금없는 사회를 위한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힘없고 작은 경쟁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기 좋아하는 대기업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우리가 은행에 의존하도록 만들려는 이유를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수백억 파운드에 달하는 현금을 턱없이 낮은 금리로 예치할 수 있기 때문. 은행에 돈을 예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은행과 달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우리가 현금을 자주 사용하지 않더라도 돈을 인출하고 보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지킨다면 은행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됨. 현금없는 사회가 되면 그러한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 전자화폐의 특이점은 현금보다 해외로 송금하기 훨씬 수월하다는 점. 전 세계 어디든 신속하고 원활하게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는 기능은 조세회피를 더 용이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음. 현금을 폐지하면 경제주체 범위의 저변에서 발생하는 얼마 되지 않는 탈세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거대경제 주체의 탈세는 증가할 것임. 현시점에서 탈세에 반대하는 주장은 불순한 동기로 현금에 반대하는 로비스트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그럴싸한 주장에 불과함
- 현금을 폐지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일부 사람은 우리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슬며시 적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꽤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함. 케네스 로고프는 그의 책 '화폐의 종말'에서 거의 모든 물리적 화폐가 폐지되기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당당하게 주장. 로고프는 08-09년 경제위기 이후 최적의 통화정책이란 미 연준이 주요금리를 마이너스 5%로 인하하고 영란은행과 유럽 중앙은행이 주요 금리를 마이너스 2%에서 마이너스 3%로 사이로 인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최적이라는 말일까? 마이너스 금리가 경기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재정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사람들이 저축해둔 돈을 착취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무분별한 대출로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지면서 08-09년 금융붕괴 주범이 된 채무자들은 그 이후로 구제금융을 받았을 것임. 그들은 실제 필요한 구제 금융보다 훨씬 더 많이 지원을 받기도 했을 것임. 이러한 구제금융이 더 무책임하고 위험한 채무자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소매시장에 무분별하게 돈을 빌리는 채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렵게 상상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떠올리면 됨. '저 BMW차를 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까? 그럼 BMW대신 페라리를 사야죠.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둘다 사는 게 좋겠네요.' 로고프와 다른 일들이 제시한 다소 메마른 주장들을 보면 마이너스 금리의 심리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제로일 때 금리를 마이너스 5%로 인하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10%일때 금리를 5%로 인하하는 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실질 이자율이 마이너스 5%다. 일반 대중 혹은 일반대중 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마이너스금리를 마치 영원히 작동되는 영구기관처럼 걱정없이 돈을 마음껏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경제정책처럼 생각할 수도 있음. 08년 세계 금융위기때 금융기관으로 새나간 사회비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값싼 이자로 사람들의 허영심을 채워가며 무분별하게 대출해주는 은행이 적지 않다.
- 얼마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이 제로일 때 금리가 마이너스 5%인 경우와 인플레이션이 10%일 때 금리가 5%인 경우가 다를 게 없다고 설명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음. 저축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그러한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것임. 그들은 재산을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려 할 게 분명함. 잔액이 점점 줄어드는 은행계좌에서 현금인출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소파안에 돈을 쌓아둘 수 없다면 그들은 금이나 은, 혹은 건물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금은방, 부동산개발업자, 부동산 중개인 같은 경우 자금이 돌아 경제가 일부 활성화될 수도 있겠지만 로고프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체 경제의 톱니바퀴에 기름을 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 마이너스 금리로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보유한 재산의 가격을 올려 경제를 더욱 왜곡시키고 부를 축적하는 데 필요한 다른 수단을 궁리하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많은 선진국가들이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지출을 좀 줄이고 세금을 좀더 올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것. 영국에서 긴축이란 말로 빈축을 사기도 하는 이 재정정책은 정치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인지도 모름. 그러나 조만간 정치인들은 긴축재정정책을 유권자들에게 납득시킬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임. 현금을 폐지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 꼼꼼하게 재정관리를 해온 예금주들의 돈을 착취하려는 방책은 결코 지속가능한 경제해결책이 아님
- 중국에서는 스마트폰 기반의 결제 서비스 업체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덕에 최근 휴대폰 결제 서비스 사용량이 폭증. 2010년 중국인구의 6%에 불과하던 스마트폰 보급률이 2016년 71%로 급증하면서 현재 휴대전하 결제가 전체 거래의 8%를 차지. 은행계좌를 개설해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음.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 이용시 스마트폰과 은행계좌가 연동되어 있으면 서비스 이용 수수료가 저렴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비싼 수수료가 부과됨. 예를들어 알리페이 계정을 이용하기 위해 현금으로 충전할 경우 수수료 5%가 부과됨. 알리페이 가맹점 역시 통상 0.6%의 결제 수수료를 지불. 15년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수수료 수익이 각각 25억불과 74억불에 달하는 것만 봐도 스마트폰 결제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유엔은 중국에서 스마트폰 결제시장이 급성장한 덕에 경제적 기회, 포용적 금융, 투명성, 보안, 성장이 촉진되었다며 매우 만족하는 것처럼 보임. 중국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물건값을 결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급히 꺼낼 때 단지 수수료 비용만 지불하는 것은 아님. 앞으로 개인의 사생활은 물론어쩌면 자유까지 침해당할지 모름. 중국 정부는 2020년부터 다양한 데이터를 토대로 개개인을 평가해 사회신용점수를 매기는 사회신용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 이것이 도입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용도와 사회활동 전반에 대한 점수를 합산해 개인의 사회신용을 평가하게 됨. 사회신용 평가과정에서 스마트폰 결제 시스템을 통해 얻은 데이터 일부가 사용될 것임.
- 열악한 은행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케냐에서 은행업무를 대신할 엠페사는 그야말로 반갑고 획기적인 금융서비스였다. 문제는 그것이 현금없는 사회를 뒷받침할 근거인 양 과장된 선전전을 펼치기 시작할 때 발생함. 엠페사를 비롯한 다른 여러 디지털 결제 서비스가 케냐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 그가 누구든 엠페사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임. 다른 여러 디지털 결제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엠페사의 치명적 약점은 수수료가 적용되지 않던 일상 거래에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점. 이러한 취약점은 결제수수료가 매출을 갉아먹는 소규모 저가거래에서 특히 더 두드러짐. 엠페사 대리인이 나중에 추가로 부과할 수 있는 비공식요금은 제외하고 17년 5월 기준으로 공식 수수료율만 참고해 따져보면 101-500케냐 실링을 다른 엠페사 사용자에게 송금할 경우 수수료 11케냐 실링이 부과됨. 이렇게 되면 101케냐 실링을 송금하게 될 경우 수수료가 송금액의 11%에 달함. 엠페사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게 101-500케냐실링을 송금할 경우 수수료가 44케냐 실링으로 훌쩍 증가. 다시 말해, 101케냐 실링(1달러)을 엠페사 비가입자에게 송금할 경우 사파리콤이 44%의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이야기. 모바일 화폐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때도 역시 꽤 비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함. 200케냐 실링을 인출하면 수수료 33케냐 실링이 부과되므로 인출금액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수수료로 빠져나간다는 의미. 가난한 사람들이 현금을 사용하지 못해 일상거래를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값비싼 모바일 화폐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모든 휴대전화 기반 결제 시스템은 그 시스템 고유의 보안상 결함을 갖고 있음. 휴대전하는 추적이 가능한 신호를 내보낸다. 영국에서 시험적으로 사용된 한 시스템의 경우 매장마다 추적장비를 설치해 소매업체가 매장 주변에 있는 고객들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의 동의도 없이 그들의 휴대전화 신호를 추적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시스템은 소매업체에 고객들이 한 매장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어떤 상품을 둘러보기 위해 잠시 멈췄는지 또 어떤 경로로 매장을 둘러보는지 알려주었다. 게다가 그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소매업체에서는 한 고객이 그동안 자사 매장을 몇 차례 방문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특별한 시스템이 휴대전화 소유자의 신원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지는 않았지만 휴대전화 결제기록에서부터 휴대전화 신호를 추적하며 얻은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여러 데이터를 결합해 저장할 가능성이 크다. 여러분이 한 매장에서 1000파운드를 쓴다면 그 매장이 있는 번화가 일대에서 여러분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물건을 구입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임.
- 담배는 미국 교도소에서도 04년 흡연이 금지되기 전까지 화폐로 널리 사용됨. 그 이후에는 고등어 팩이 교도소 화폐로 널리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라면이 사용되고 있음.
-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 신뢰가 무너지면 화폐로서의 기능도 무너짐. 만약 정부가 화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의도로 앞으로 우리가 민간기업들이 제공하는 카드, 전자태그,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로만 거래해야 한다고 공표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 우리 재산을 서서히 깎아 내리려고 한다면 정부가 의도한 대로 화폐는 신뢰를 잃게 될 것임. 그리고 신뢰를 잃은 화폐를 대체할 다른 무언가가 자연스레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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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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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전집착 증후군
- 우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돈이라는 물건은 불가사의하게도 삶의 모든 부분을 점거해버렸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수단은 돈이다.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붙는다. 그 명제는 언제나 참이며 대단히 명확하가. 돈이란 우리에게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도구임고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 부재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돈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결핍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최근에는 우버, 딜리버루, 태스트래빗, 리프트와 같은 기업들이 등장해 새로운 노동의 미래를 정의하고 있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고용에 따르는 모든 부담을 노동자 개인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 어떤 사람들은 이런 플랫폼 비즈니스를 첨단의 기술적 혁신과 모바일 앱이 합쳐진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라 평가함. 하지만 그 기업들은 경제적 착취와 근로자 권리 침탈로 대표되는 또 다른 사회적 퇴화를 상징할 뿐이다. 최근 떠노르는 블록체인 기술도 일각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접근방식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기술은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지도 모름. 공유경제 참가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기는 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끊임없는 냉대 속에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렵다고 느끼게 됨
- 팔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구축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뭉쳐야 함. 가장 중요한 것은 단결. 하지만 소위 공유경제는 그런 정신적 기풍을 파괴함. 공유경제가 설계된 목적 자체가 여기에 있다. 모든 개인은 그리고 그의 가족은 결국 좌절에 빠질 뿐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 영원히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몰락하고, 미래는 상실된다.
- 현대는 특별한 형태의 암흑시대다. 이 시대의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적 플랫폼을 활용해서 노동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물리적 능력 이상으로 오랜시간 동안 일하도록 만듬. 그들은 이런 발전을 바탕으로 21세기 경제의 심장부에 일종의 사이버 봉건주의라는 암흑세계를 만들어냄. 이와 같이 불편한 트렌드의 첨단을 달리는 기업의 사례에 다시 한번 우버가 등장. 우버는 행동경제학자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운전자들이 자신의 근무시간을 적절하게 제한하려는 자연적 욕구에 역행하는 운전자 대응시스템을 설계.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거의 쓰러질 때까지 운전대를 잡고,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다.

2. 파괴의 경제학
- 파괴의 경제학은 혁신, 생산, 성장이 아니라 약탈과 착취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유의 이상과 후기 자본주의의 가혹한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벽 위에 걸터앉아, 아직도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진 도구나 네트워크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
- 애론 스와르츠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지난 몇년간 세계를 휩쓸었던 새로운 경제환경을 상징하는 사례. 내가 파괴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은 07-08년 경제위기 이후에 기업들과 정부가 확산시킨 정책들과 관련이 깊다. 사회적 가치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고찰해보면, 이 파괴의 경제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부의 축적방법에 대해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님.
첫째, 그들은 공동체 기반의 자원이나 경제적 활동을 포획하고 점령하는데 중점을 둔다. 공공은 지난 20년간 기업들이 점령해온 사회의 영역들 속에서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가치의 마지막 저수지다.
둘째, 기업과 국가는 애론 스와르츠에게 사용한 것과 같은 전술을 사용해서 약탈의 의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보호한다. 예전에 운동가들은 사회적 관습을 다소 거스르는 행동을 해도 적당히 용서받았지만, 요즘에는 강력한 세력을 지닌 무리들과 맞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셋째,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경제적 수탈의 시대에서, 모든 민주적 요소는 심한 경멸과 무시의 대상이 됨. 국가와 기업이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에 노골적 증오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정부는 민주주의를 질병과 같이 기피하며, 이를 얄팍한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다.
넷째, 파괴의 경제학은 이미 생명유지장치(양적완화, 무담보대출, 느슨한 신용)에 의존해 가까스로 숨을 쉬는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할 뿐 아니라, 이 위기의 부정적 효과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함.
-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자본주의는 60년대 반권위주의, 그리고 레이건정부 이후 번성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기묘한 결합에 의해 탄생. 69년 피플스 파크에서 군대에게 공격을 당했던 학생들은 명백히 자본주의 문화에 적대적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90년대가 되자, 그들 중에 플라워 파워(60-70년대 청년문화를 상징했던 반전과 평화의 슬로건)의 정신과 레이건이 갈망했던 시장자유주의를 결합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 미국의 서해안을 무대로 활동하던 작가, 해커, 자본가, 예술가들은 느슨한 동맹관계를 결성함으로써 도래하는 정보시대의 이질적 교리, 즉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를 정의하는 데 성공. 이 새로운 신념은 샌프란시스코의 자유분방한 문하적 특성과 실리콘 밸리 하이테크 산업의 기묘한 결합에 의해 생겨났다. 잡스와 빌게이츠는 이 이데올로기를 전형적으로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 당신이 받는 보수는 조직이라는 위계질서의 가파른 피라미드 상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따라 달라짐. 그리고 그 위치는 당신이 이미 소유한 부를 의미. 이 위계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최고 경영진이나 고위관료들은 모두 비슷한 엘리트 학교나 집안 출신이다. 이 사람들은 사실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받는다. 그들은 불로소득자, 임대소득자, 유한계급 인사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의 일원이며, 영국, 미국, 그리고 제3세계의 상당부분을 통제. 두번째 계급은 주로 부자들을 위해 일하면서 상당한 고소득을 올리는 직원들. 세번째 계급은 직업 피라미드의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99%의 사람들이다.
- 많은 사람들이 정보기술의 혁명을 인류 역사의 엄청난 전환점으로 여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메인프레임이 발명된 것은 42년이다. 개인용 컴퓨터는 70년대에 등장했으며, 80년대에 크게 성능이 향상됨. 90년대에는 바코드가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이 혁신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 2000년 이후의 발명품들은 주로 오락이나 통신영역에 집중. 장비들은 더 작아지고 스마트해졌으며, 한층 유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등, 자동차, 실내배관 등과 같은 발명품처럼 인간의 노동생산성이나 생활수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임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감원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쉽고, 값싼 노동력을 고용하는 일이 가능한 곳에서는 기술적 혁신의 속도가 느리다고 지적돔. 파괴의 경제학하에서는 대부분의 노동력은 유연한 노동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됨. 그런 환경에서는 지식의 축적이나 조직적 학습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 오늘날의 고용이란 노동자 개인 입장에서는 희생을 의미하며 고용주, 기관주주, 사모투자기업 등에게는 최대한의 약탈을 뜻할 뿐이다.

3. 호모이코노미쿠스는 왜 죽어야 했나
-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99%의 보통 사람들은 오직 죽느냐 사느냐의 이분법적 갈림길에서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 그곳에서는 상실의 가능성이 자신이 수행하는 모든 일을 정의한다.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담보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자동차 대출을 상환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퇴거명령을 취소할 수는 없다.
-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인간형의 순수한 추상적 개념, 그리고 그가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 데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주목해볼만 하다.
첫째,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패는 같은 운명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본보기의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분위기를 확산시킴.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는 이런 문화를 직업윤리와 사회적 질서를 관리하는 데 포괄저긍로 사용함. 물론 이런 프로세스는 개인들을 통제하는에 활용되기도 함. 사람들은 경제적 인간형을 스스로 구현하는 데 실패하면, 이 인간형을 거부하기보다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실현 불가능한 호모이코노미쿠스의 이상적 형태에 보다 강력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로렌 벌랜트는 사람들이 현실에 실패하고 상처받을수록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갖는 현상을 잔혹한 낙관주의라 불렀다.
둘째,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혼란에 빠진 오늘날의 상황을 틈타 새로운 형태의 경제가 어두운 그늘에서 생겨났다. 부채와 관련된 산업은 가장 대표적 예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자기계발과 관련된 업종이나 민간교도소 사업도 시장규모가 수십억 불에 이르는 비즈니스다. 또한 제2의 로드니 잭슨이 나올지 모른다는 가능성은 막대한 경호및 치안 서비스의 필요성을 불러왔다. 대중 속에 만연한 우려와 좌절, 그리고 절망감은 자본가들에게 좋은 사업거리일 뿐이다.
- 권력은 합리적일 수 없으며, 합리적이길 바라는 일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칸트)
- 행동경제학은 그동안 경제적 인간의 이상적 행태를 더욱 확장시키는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해옴.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인 예측 불가능성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유함. 행동경제학 창시자 중 하나인 대니얼 카너먼조차도 이렇게 인정. "행동경제학은 일반적으로 합리적 의사결정 모델의 기본구조를 바탕으로, 그 모델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변칙들에 관한 인지적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설계된 이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간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보려 한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변칙적 행동양식을 자본가의 좌표에 맞춰 설명하는 이론. 리처드 탈러가 쓴 책의 제목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님.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동, 즉 멍청한 선택은 기업가들 입장에서 결국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소름끼치는 학문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대기업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이끄는지 입증. 문제는 두 사람이 이런 속임수를 상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엽적 문제로 치부해버렸다는 점이다. 히자만 그런 수단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속성이자, 끔찍한 신용사기라면?
-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주로 생산이라는 개념을 떠올림. 상품, 서비스, 경험 등은 일단 만들어져야 소비가 가능. 생산이라는 활동에는 시간과 투자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 하지만 오늘날 봉건주의적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생산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음. 수익을 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소유한 생산도구들을 활용해서 그 제품과 서비스를 포위 및 약탈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원가를 절감시킨다. 이것이 우버, 딜리버루, 유튜브 같은 기업들이 채택한 소위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비즈니스 모델. 말하자면 이 회사들은 비공식 경제를 상업화해서 이를 공동체에 임대하는 수법을 사용함

4. 상실의 연극. 노동
- 우리는 사무실에서 나름 바쁘게 일하지만, 이는 결국 바쁘게 보이기 위해 바쁜 것일 뿐이다. 현대의 직장이 연극이나 공연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장의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 때문.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대부분은 불필요한 이들이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반드시 회사에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에는 심각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삶과 노동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함으로써, 일하는 삶을 평화롭게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함. 이런 속임수의 효과는, 언론매체를 통해 노동자들에 대한 극도의 착취 스캔들 같은 예외적 사건이 드러났을 때 오히려 증가. 말하자면 그런 사례들은 규범에서 벗어난 일부 기업들의 끔찍한 일탈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지옥은 대단히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상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한다는 프로그램들은 이 사회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잘 조율된 형태의 착취, 즉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노동시간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에 지장이 없는 그런 종류의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는 신화를 제공하는 역할을 함.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함. 자본주의적 노동 시스템은 수치적 한계를 통해 정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정한 수치적 레드라인을 넘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착취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질적인 관계다. 바로 이런 이유로, 노동자들이 현대식 사무실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업문에 몰두했는지에 상관없이, 자본주의적 생산형태는 본질적으로 과도한 노동을 수반할 수 밖에 없음.
- 원시사회의 구성원들은 비록 그 행동이 극도록 속박되고 규제됐지만 직업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직업이란 국가가 발명한 모델임. 그 모델하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이 일하거나 더 많이 생산함. 클라스트르에 따르면 우리가 생업경제라고 폄하해서 부르는 사회, 즉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을 할 뿐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사회는 필요없는 과도한 활동을 거부함으로써 운영되는 듯하다. 직업이란 개념은 잉여가치를 전제로 등장. 다시 말해 일은 처음부터 과도한 일로서 시작됐다.

5. 바보들을 위한 미시경제학
-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도 열악한 작업환경에 감정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반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사치인 사람들도 많다. 직원들에 대한 훈련이나 개발에 대한 투자가 정체되면서 앞날에 대한 개선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현대의 직장인들은 권태라는 감정을 경험함. 산업화 시대를 선도했던 흥미롭고 역동적인 작업공간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죽을만큼 지루한 곳이 되어버렸다.
- 사람을 인적자본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은 결국 통일성이 강조되는 기업의 울타리 바깥으로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노동자 각자가 스스로를 경쟁적 환경속에서 여기저기 이동하며 활동하는 독립적인 미니기업의 대표라고 인식하기 때문. 그동안 시장의 합리적 변화에 따라 고용관련 법률과 규정도 크게 변화. 오늘날 새로운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급이나 기업의 문화가 아니라 바로 개인계약이다.
- 미국, 영국 뉴질랜드, 유럽대륙과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지에서 발생한 이런 변화의 원인은 다양함. 기업권력의 결합, 신자유주의적 국가정책, 제조업 일자리의 개도국 이전, 서비스 및 IT 부문에 특화된 형태의 노동수요 등등.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인적자본 이론과 관련된 지적 움직임 역시 오늘날 고용의 개인화 현상이 확산되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다.
- 작업장을 통제하기 위해 과도하게 개인화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관리방식은 이제 아마존의 애니타임 피드백 툴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임. 하지만 기업들은 이미 비슷한 시스템들을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360도 평가다. 2차대전 이후부터 존재해온 이 시스템은 어떤 직원의 상사, 동료, 부하직원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방위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말함. 문제는 이렇게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평가가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평가를 하는 사람이 평가대상자에게 불만을 지니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는 마치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 형성되는 탈억제효과와 비슷. 그러다보면 수많은 거짓말과 잘못된 생각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결과가 빚어짐. 경험많은 비즈니스 조언자들이 동료들의 익명 평가방식을 우려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더욱이 모든 직원을 서로 경쟁관계에 놓인 인적자본으로 인식하는 조직에선느 소위 오피스 악성댓글이 횡행할 가능성이 매우 커짐. 이 경우 조직은 진흙탕과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대부분 피드백 순환과정을 빠른 시간내에 완료하는 일의 장점을 강조. 이 과정은 성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피드백으로 구성됨. 피드백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것. 컴퓨터로 데이터를 만들어내면 신속한 피드백이 가능해짐. 아마 요즘에는 역사성 처음으로 이 순환과정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 하지만 기계에서 도출된 그 추상적인 숫자가 그 직원이 진정한 성가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가? 또는 이런 방법을 통해 여러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팀의 전체적 효율성을 측정할 수 있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한때는 스톱워치가 담당하던 과업관리를 이제는 최첨단 컴퓨터가 대신. 그리고 수많은 관리자들이 무의미한 스프레드시트 사고방식에 시달림. 장황하게 나열된 숫자들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신성한 진실이라도 되는 양 왜곡되어 받아들여짐. 테일러가 빅데이터나 애니타임 피드백 툴을 봤으면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일러의 아이디어는 당대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아마존으로 상징되는 데이터 기반의 관리방식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나 자동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이유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다. 낯선 이들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도구들은 머뭇거리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공유경제라는 시스템의 문턱을 넘게 만든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문턱을 넘은 이유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이렇게 기이한 형태로 돈을 벌어야 하게끔 망가진 경제와 해악적 공공정책 때문이다.
- 기업대 고객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공유경제 역시 마찬가지. 우버, 딜러버루, 태스크래빗 등을 포함한 기업들은 다음 세가지 단계로 작동.
첫째, 빈곤도가 높은 사회적 영역을 찾는다.
둘째,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시간과 자원을 포획한다.
셋째, 포획한 자원을 고객들에게 더 비싼 값으로 판매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공유경제란 결국 접근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말한다. 무엇에 접근한다는 말인가? 물론 삶 그자체다. 인적자본이론이 결국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현장은 바로 이곳이다. 공유경제 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이용한다. 수많은 사람이 돈을 받고 자신의 시간, 공간, 노동력을 연중무휴로 기꺼이 팔아넘기는 이 처참한 경제적 현실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그 포획당한 삶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분배의 양극화 현상으로 가장 부정적 영향을 입은 사람들이다.
- 인적자본이론이란, 노동과 사회를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자기 이익 본위의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난 학설임. 하지만 현대의 사회, 경제에 만연한 불평등과 일방적 권력관계를 고려하면, 이 과도한 개인주의는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실패의 책임을 완전히 전가하는 역할을 할 뿐임. 인적자본 이론이 사람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어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박탈하는 것에 가깝다. 신고전주의적 인적자본이론, 개인적 책임, 개인부채 등의 개념과 현대의 심각한 기술 및 교육결핍 현상 사이에 놓인 중요한 상관관계를 감안할 때, 신고전주의적 경제학은 그야말로 바보를 위한 경제학이론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아님. 이 경제적 원리는 실제로 사회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렸으며, 실력주의에 입각한 기술과 노하우의 배분원칙을 훼손.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들 스스로가 조만간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게 분명하다는 측면에서, 결국 우리는 자기무덥을 판 격이 되어버림. 만일 이 시스템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16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좋다'고 공언한 트럼프 같은 사람들이 또다시 등장할지 모른다.

6. 조용한 지구
- 결국 세상에 다른 사람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최종적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이 보증해준다는 의미이며, 그 역하을 서로가 내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 이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험적으로 이끌린다는 말과도 같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필요성이란 계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계산이 끝나버린 것일지도 모름.
- 권력자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우리의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정반대로 행동. 그들은 좋은 삶에 대한 수사법을 포기했다. 대신 우리가 제로-아워 계약, 부실한 연금계획, 악마같은 관리자를 거부한다면 앞으로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악화될지에 대한 심각한 경고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융단폭격한다. 자연적 본능에 따르면 우리는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뒷걸음치고 도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주된 이유 기이한 모습으로 변한 구타당한 배우자 증후군, 즉 경제적 인간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제도에 더욱 의존하고 심지어 그것에 이끌리는 현상이다. 긴축경제의 이면에 숨겨진 또 하나의 소름끼치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 어떤 일이 불가능할지 아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무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해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비극인가. 못되게 구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말해야 하고, 쓸모없는 이메일을 수없이 보내야 하고, 학자금 대출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고, 여성 혐오증을 지닌 상사에게 아첨해야 하는 그 상황이, 이런 식으로 여러 해가 지나면 그 사람은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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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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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정부는 국가주의자, 유대인, 공화당 주류세력 이렇게 3개의 축으로 구성.
(1) 국가주의자는 새롭게 부상한 세력으로, 미국 대중을 선동해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킴. 스티브 배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는 추방되었고, 현재 피터 나바로 등 실무적 관료들만 남아 있음. 그러나 그들의 정책은 계승되고 있다.
(2) 유대인은 트럼프 정부에서 가장 중심적 세력. 국가주의가 지나치게 흘러가지 않고 기득권층과 연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대표적. 그 밖에 안보보좌관 존 볼턴, 재무장관 스티브 무누신 등 상당수가 요직에 포진된 가장 큰 세력
(3) 공화당 주류세력은 트럼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여기에 속함
- 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임금이 낮은 중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고, 멕시코로부터 불법이민자를 유인해 미국 노동계층을 궁지에 몰았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들을 선동해 대통령에 당선됨. 그는 신자유주의의 두바퀴인 자유무역과 자유이민에 철퇴를 내려 대중들의 환호를 받고, 이어 미국을 수탈한다는 명분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보복관세를 때린다. 또한 군사중비를 증대해 군사력으로 이러한 경제전쟁을 지원하려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미국의 패권 자리를 노리는 중국이 있음. 트럼프는 무역전쟁을 통해 미국에게 유리한 무역시스템을 만들고 중국을 거기서 배제해 고사시키려 함.
- 트럼프의 정책은 신자유주의에 만족하던 기득권층의 강한 저항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감세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크게 올려줌. 기업이 고배당을 하거나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해 주가를 올리도록 함으로써 기득권층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다
-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정치가 오랫동안 자리잡음. 공화당은 보수적이며, 기독교적, 백인중심정당으로 유명. 민주당은 지놉적, 세속적, 소수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인식. 그러나 이들의 지지기반이 무엇이든 정당들을 이끄는 핵심세력은 분명히 소수이며, 그 소구가 미국을 끌고 가는 그룹이다. 공화당으로 말하자면 앵글로색슨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가이며, 민주당의 경우에는 유대인을 선두로 하는 금융자본가가 그에 속함. 둘 다 미국의 대기업을 대표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음. 언론의 경우 폭스 같은 보수채널이 공화당을 지지하고, CNN,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같은 진보채널은 민주당을 지지. 그러나 이들 매체는 공통적으로 유대인이 지배하고 있어, 유대인의 이익에 상충되는 의견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공화당 중 티파티나 대안우파 같은 계열은 신문과 방송이 아닌 인터넷에 기반한 새로운 매체를 자신의 홍보도구로 활용함. 브라이트바트가 바로 그것이다. 제조업과 석유산업은 공화당을 지지. 현대의 미국을 만들어낸 산업자본가들은 철강, 자동차 같은 묵직하면서도 근간이 되는 산업에 집중해왔다. 그들은 19세기 미국 철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철도와 철강산업을 발전시켰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동차, 전자산업의 성장을 주도해옴. 산업의 피라 할 수 있는 석유산업 역시 산업자본가들의 공이 컸다. 현대적 대기업의 탄생은 그들의 업적이다
- 이에 반해 민주당은 유대인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금융, IT, 영화, 언론이 받치고 있다. 유대인은 본래 핵심적이며 정신적 산업에 집중해옴. 금융은 사람의 심장처럼 돈을 경제 전체에 순환시켜주는 역할을 함. IT는 사람의 뇌와 신경처럼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을 통해 정보를 경제 전체에 순환시키는 임무를 담당. 영화와 언론은 끊임없이 이미지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프레임은 다르지만 미국자본주의라는 목표물을 공동으로 지지하면서 교대로 집권해왔다. 일종의 세력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정책은 세부적으로는 다르지만 큰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음.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번영이다. 45년부터 이어지는 자본주의 영광의 30년에서는 공화당 계열이 주도하는 실물적 축적이 이루어져 왔음. 물론 그 와중에는 트루먼, 케네디, 존슨 같은 민주당 대통령의 집권기간도 있었지만, 29년 대공황으로 금융자본을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에 정책에서는 튼 차이가 없었음. 또한 실물적 축적으로도 상당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기도 했다.
- 73년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금융자본이 살아난다. 금융규제가 하나둘 풀리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주로 M&A 등 기업지분에 대한 투자와 증권에 대한 투자로 이익을 거둔다. 특히 79년 볼커의 등장, 그리고 81년 레이건의 취임에 주목해야 함. 볼커거 금융화의 문을 열어젖혔고, 레이건이 세계화라는 배를 출범시켰기 때문. 이후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금융적 축적이 주도하는 시대라고 분류할 수 있다. 특히 클린턴이 중요하다. 클린턴은 루빈 재무장관, 그린스펀 연준의장, 서머스 재무차관의 삼각편대를 편성해 금융화를 본격적으로 추진. 글래스 스티걸법을 해체한 금융서비스 현대화법을 통과시킨 사람도 클린턴이다. 때마침 나타난 IT혁명에 힘입어 미국경제는 회복된다. 그러나 다분히 금융거품에 의존한 성장이었다 01년 IT 주식 버블에 이어 08년 부터 동산, 파생금융상품 버블이 꺼지면서 미국경제는 대공황을 방불케 하는 대침체를 맞음. 세계화와 금융화를 통해서 미국의 금융자본과 IT자본은 크게 성장했으나 반대로 미국 제조업은 크게 타격을 받음
- 국가주의자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를 타도하려는 세력임. 신자유주의는 국제주의를 깔고 있으므로, 국가주의와 공존하기 어려움. 국가주의자들에게 신자유주의는 오로지 기득권 계층에게만 유리한 방식 국가주의자들에 따르면 기득권 계층이 의회, 행정부, 정보기관, 언론, 학계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국가를 장악하고 대부분의 미국 국민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화와 세계화를 양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일부에게만 유리하고, 대부분에게는 불리하며, 미국의 장기적 체력도 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이 유력한 패권경쟁자로 부상함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서 중국과 타협함으로써 미래의 몰락을 촉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가주의는 미국을 국가다운 국가로 만들어야 하며, 기득권층만이 아닌 미국인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함. 바로 이들이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대중을 선동한다는 점, 그리고 위대한 국가의 부흥을 기치로 내세운다는 점,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국으로 돌리고 그들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와 비슷함.
- 스티브 배넌은 그러한 이념과 그에 맞는 선거전략을 창조한 사람으로 국가주의 진영의 세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배넌은 물러났으나, 그의 반세계화 정책은 피터 나바로와 로버트 라이트하우저에 의해 실행되고 있다.
- 트럼프 정부에는 많은 유대인이 있음. 640만에 달하는 미국의 유대인은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반드기 그런 것은 아님. 예를 들어 아들 부시의 행정부를 구성하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압도적 다수가 유대인이다. 그들은 중간 실무자로 포진해 부시대통령, 파웰과 라이스 국무장관 휘하에서 강력한 하부구조를 구성했으며, 이 시기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했다. 이후 클린터의 정부에도 상당한 유대인 세력이 포진해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다수파의 민주당계 유대인 대 소수파의 공화당계 유대인이라는 구도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대인이 트럼프를 강하게 반대했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는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유대인 로비단체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협의회는 양당의 주요 대선후보를 불러 면접을 보는 것으로 유명. 트럼프도 16년 3월 대손선 초기에 이 단체의 연례총회에 참석했음. 그는 자신의 딸 이방카가 유대인과 결혼해 유대인이 되었으며, 유대인 아이의 어머니라는 점을 들어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
- 유대인들은 본질적으로 세계주의자이며, 신자유주의자다. 그들은 떠돌아다니는 역사를 겪어왔으며, 가는 곳마다 국가주의에 시달려왔다. 그렇기에 국가주의라는 말을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 콘이 트럼프의 보호 무역정책에 반감을 표시한 것도 그 때문. 그러나 유대인 내에도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며, 이런 추세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 예를 들어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보호무역은 좋은 수단일 수 있음.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음. 더구나 트럼프는 법인세를 대폭 깎아 기업과 부자들에게 좋은 일도 했다. 트럼프는 또한 오바마보다 훨씬 더 이스라엘과 가깝게 지내려 한다. 이란에 대해서도 매우 강경함. 이런 점들은 그가 유대인들에게 함께 할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게 한다.
- 트럼프는 공화당 주류와도 타협한다. 그의 정책 중 보호무역과 반이민을 제외하면 기존 공화당 주류와 정책과 판박이다. 감세를 통해서 부유층의 세금부담을 줄여주었고, 미국 기업의 순이익을 높여주었다. 해외에서 자금을 갖고 돌아오는 미국기업에게는 낮은 세금을 매겼는데, 이 돈은 자사주 매입자금으로 사용되어 그 기업의 주가를 올렸다. 따라서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 부유층의 입맛에도 부합했다.
- 미국 우선주의는 모든 정책에서 미국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으로, 듣는 사람이 솔깃할 만하다. 이것은 아들 부시의 네오콘이 내세우는 미국 일방주의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음. 부시의 생각은 보안관인 미국의 힘으로, 이라크 같은 악당들을 해치우고, 서부의 확장판인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전리품이자 보상으로 석유를 얻는 것.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도 미국이 가진 힘을 휘둘러, 미국인의 이익을 챙기자는 면에서 힘에 의한 목적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짐. 다만, 이라크, 시리아, 아프간 같은 쓸데 없는 전쟁에 개입해 힘빼지 말고, 미국에게 영양가 있는 경제적 측면에 주력하되, 상대(특히 중국)가 말을 듣지 않으면 힘으로 제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 부시의 적이 석유를 끼고 저항하는 이라크와 알카에다, IS, 탈레반 같은 광적인 이슬람 세력이라고 하면, 트럼프의 적은 거대하게 부상하는 중국이다.
- 미국의 주적은 중국과 러시아다. 그들과의 접점은 동북아와 중동에 놓여 있고, 태풍의 눈에는 북한과 이란이 있다. 트럼프의 안보전략에서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군사우위를 유지하는 것. 다만 그 접점인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전략은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북한이 핵을 완성단계가지 발전시켰으니 일단 그들을 회유해 시간을 끌고 긴장을 줄인다. IS가 무너졌으니, 이란에 대해서는 강공으로 돌아선다. 이 모든 것은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미국의 칼이 향하는 방향에는 중국과 러시아아 놓여 있음. 단지 지금 칼을 휘두르거나 잠시 멈추는 장소가 이란과 북한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의 안보전략은 매우 전통적이다. 그의 현란한 수사만이 기존 대통령들과 다른 점이다.
- 민주당은 윌슨과 루즈벨트 이래로 UN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세계를 통치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룰을 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불량국가가 나타나면 UN의 이름으로 응징한다.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적당한 떡을 던져주고 대신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며, 그들과 함께 적대세력을 제압하는 것이다. 클린턴도 그러한 전통에 충실했다. 클린턴은 나토를 동유럽까지 확대해 러시아를 압박했다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가 밀어주던 세르비아를 폭격했으며, UN의 이름으로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군비를 축소하고 경제문제보다 집중하며 재체로 타협적 노선을 밟았다. 94년 이스라엘의 라빈과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로 하여금 오슬로 협정을 맺어 두 나라로 갈라져 평화롭게 사는 타협안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핵을 추진하던 북한과도 타협하고 수교 일보직전까지 갔다. 마침 불어도던 IT붐을 맞아 경제도 호황이었다. 천하는 바야흐로 태평성대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쇠락을 걱정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 들리지 않고, 미국은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눈에 띄지 않던 문제가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급진 이슬람 세력이다. 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오랜 잠에 빠져 있떤 그들을 깨웠는데, 소련은 마침내 10년간의 전쟁을 패배로 끝맺고 철수.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전쟁 통에 탈레반이 탄생했고, 또한 국제 이슬람조직인 알카에다가 출현. 이들은 전쟁을 통해 단련되었고 바야흐로 세상을 놀라게 할 터였다.
- 과거 볼턴은 결정적 순간마다 나타나 북한과의 핵 협상을 깨뜨리고 오히려 압박강도를 높이는 정책을 밀어붙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더구나 북한의 핵은 완성 직전이고, 중동의 사태는 화급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미국 사람의 용어대로 하면 폼페이오는 굿캅, 볼톤은 배드캅의 역할을 맡아 북한을 어르고 달래면서 최대한 유리한 상태에서 현상을 동결하려고 함이 분명함. 이렇게 북핵을 최대한 유리하게 마무리하는 한편, 중동에서는 이란이 지르고 있는 불을 꺼야 하는 것이다.
-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들은 북한과 중국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군사적 봉쇄전략을 추진해옴. 북핵을 이유로 중국을 경제제재에 끌어들었는데, 이는그들에게도 괴로운 일이었다. 북핵은 골칫거리지만, 북한이 망하면 다음 차례는 중국이 될 수도 있었다. 겉으로는 북한을 야단치지만, 그들이 망하지 않도록 석유와 물자를 공급하면서 안으로는 순망치한의 국가라고 달래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미국이 주류는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체결해 중국의 포위망을 완성하고 싶어하나, 한국의 반일감정이 워낙 크기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또한 호주와 인도까지 끌어들여 크게 포위망을 구추갛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풀어준다는 것은 포위망에 구멍을 하나 내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만 했따. 그러나 트럼프의 안보정책은 중동과 중국에 대한 봉쇄에서 완급조정을 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인 것이다. 또한 중국에 대해서는 군사보다는 경제적 공격을 가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완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의 정책은 매우 합리적이며, 현재의 상황에서 타당하기도 하다. 물론 미국의 관점에서만 그러하다.
- 미국은 44년 브레턴우즈에 유럽국가들을 불러모아 놓고 전후에 자신이 만들 규칙을 통고. 예상대로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달러의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다시 달러에 고정시키는 것. 대신 달러는 금과 태환이 된다. 미국이 갖고 있던 막대한 금이 달러에 대한 담보물이 되었다. 이렇게 고정환율제도를 부활시킴. 환율이 안정되면 무역이 활성화될 터였다. 그리고 미국은 보유하고 있던 금보다 훨씬 더 많은 달러를 발행해 발권이익을 챙길 속셈. 전쟁전 영국이 하던 방식이다. 국제통화기금을 설립해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달러가 부족한 국가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했다. 세계은행을 설립해 개도국에게 장기 개발자금을 빌려주도록 했다. 혹시나 경제난이 시작되어 소련진영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 것. 관세협정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무역을 적절히 통제해, 공황 확산의 빌미가 된 환율인하 경쟁과 관세장벽 쌓기를 방지. 이렇게 달러를 세계통화로 만들어 세계 곳곳에 흘러가도록 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달러의 흐름을 통제. 물론 이것은 압도적으로 미국에게 좋은 것이지만, 다른 나라들에게도 안정적 질서가 생겼으므로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공황과 전쟁으의 끔찍한 기억이 바로 엊그제였음을 생각하면 불평을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
- 미국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미국 중심의 안정된 질서, 케인즈의 조언 덕에 45년부터 30년간 세계경제는 순풍에 돛 단듯이 미끄러져 갔다. 그러다 주춤한 것이 65년경의 일이다.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자본의 수익률 저하가 마침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 그리고 73년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남. 그래 10월 4차 중동전쟁이 터졌고, 석유수출국기구의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국가에 대한 응징을 명분으로 가격인상과 감산을 단행.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는 금세 4달러를 돌파했고 다음해 1월 11.6달러까지 올라감. 불과 3개월만에 무려 4배가 올라간 것. 자본주의 영광의 30년에 관 뚜껑을 덮고 못을 박는 사건이었다.
- 금의 제약에서 풀려난 달러는 미친 듯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 미국은 작정하고 인쇄기를 돌려 달러를 찍었으며, 그 결과 심각한 인플레가 나타남. 악성 인플레는 화폐가치의 폭락이다. 자칫 아무도 달러를 받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나타난 것. 이때 닉슨의 국무장관 키신저가 사우디로 날아가, 그들에게 오직 달러로만 석유를 결제하도록 구슬렸다. 그 대가로 사우디에게 미군의 보호과 아랍세계의 맹주자리를 약속했음. 당시 이집트의 나세르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아랍의 단결을 호소했는데, 사우디는 미국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음. 오늘날 석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동차는 물론 전기도, 석유화학으로 제조되는 모든 제품도 만들 수 없다. 이렇게 금 대신 석유가 달러의 담보물 역할을 했다. 또한 사우디가 석유로 번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사서 미국으로 돌려보내는 석유달러 환류 시스템도 시작됨. 이렇게 하나의 체제가 끝나고 다른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체제가 끝나고 다른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 체제는 오늘날가지 이어진다. 물론 석유는 남이 가진 것이지만, 이제 미국과 사우디는 부부가 되기로 했으므로, 결국 자기것이나 다름없었다. 훗날의 담화이지만, 이라크의 후세이닝 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의 공격을 받은 것도 새로 출범한 유로화로 석유를 결제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 95년 역 플라자협정으로 힘을 얻은 일본경제가 살아나기 시작. 그런데 그와 반대로 동남아와 한국이 타격을 받기 시작. 일본은 85년 플라자 협정이후, 엔고를 피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옮김. 엔화강세는 한국에도 3저호황을 가져왔으며, 그 덕에 수출증대로 좋은 시절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95년 엔저로의 전환은 이들 나라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자국 통화가 달러와 연동되어 있고 자본시장까지 개방했던 동남아국가는 엔저의 타격을 고스란히 입었다. 처음에 한국은 괜찮을 거이라고 생각. 한국은 고속성장을 추진하면서 돈이 모자라면 외채를 빌려 보충했고, 이렇게 싼 자금들이 수출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감. 마침 김영삼 정부는 외환의 흐름에 대한 통제도 풀어버림. 그러자 더 많은 돈이 들어옴. 기업실적이 괜찮으면 큰 문제없이 돌아갈 터였다. 그러나 한국은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고급품에서 일본에게 밀리고 있었음. 거기에다가 마침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던 중국이 대대적 평가절하를 단행하면서 저가품에도 밀리게 됨.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 기업실적은 극적으로 나빠졌다. 그랬는데도 한동안 외국자금이 계속 밀려들었따. 특히 엔저를 이용한 일본계 자금이 환차익을 노리고 들어옴. 후에 외환위기가 벌어지면서 가장 먼저 빠져나간 것도 바로 일본계 자금. 그러면서 달러와 연동된 원화가치가 밀려서 올라감. 실물경제와 그것을 대표하는 원화가치 사이의 간격이 극적으로 벌어졌다. 수출이 잘 되지 않으면서 아시아의 4마리 용가 4마리 호랑이는 서로 격렬하게 싸우게 되었고 이는 수출가격을 더욱 떨어뜨림. 이들 나라의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섰으며, 그렇게 많이 유입되던 달러도 눈치를 채고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시작.
- 미국에서 양적완화는 08년 12월부터 14년 10월까지 6년에 걸쳐 3회 실시됨. 그 결과 연준의 자산은 05년 7408억불에서 15년 9월 4조 2329억불로 증가. 연준의 자산이란 사들인 국채와 모기지 증권이다. 그만큼 시중에 돈이 풀린 것이다. 그러한 자산을 후한 값을 치르고 사들임. 따라서 연준에 자산을 판 금융기관들은 돈을 꽤 벌었을 것이다. 또한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되어 있는 지불준비금에도 이자를 지불하기 시작. 원래 이 돈은 고객이 예금을 찾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자를 주지 않았다 은행은 잔뜩 돈을 쌓아놓고도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아다. 그래서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약간의 이자를 챙긴 것. 이자는 낮지만 금액이 엄청났으므로 이것도 은행에게는 꽤 쏠쏠했을 것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은행들에게 보조금을 준 셈이었다.
- 일본은 매우 공격적인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엔화를 낮춤으로써 수출 대기업을 돕는 효과를 가져옴. 또한 금리를 억누름으로써 국채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는데, 확대적인 재정정책이 갑자기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고,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으며, 아울러 청년인구의 감소가 맞물리면서 취업난이 풀리는 결과가 나타남. 그러나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소비와 투자는 여전히 부진하다. 근본적으로 일본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고령화와 인구감소, 그리고 과도한 부채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95년을 피크로 줄어들고 있으며, 2010년에 들어와서는 그 감소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에 따라 노동력 부족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 구인자 수 대비 구직자수를 나타내는 구인배율은 1.52배에 이르렀는데, 이는 일본버블시기 1.46배를 넘어선 것. 일본은 최근 노동시장이 좋다고 하는데, 이는 20년에 걸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덕분. 일본은 소재, 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4차산업혁명 추진에 있어서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러한 기술혁신의 경쟁에서 가장 앞서나갈 것으로 보기는 어려움. IT산업의 주도권은 오래전에 미국과 한국으로 넘어갔고, 이후 중국으로 옮겨가는 상황이기 때문. 일본이 장점을 갖고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과 로봇 정도인데, 이것도 미국에 비해 앞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움
- 2차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양대산업이 자동차와 전자인데, 이 두산업에서 미국은 독일과 일본의 추월을 허용했다. 그러나 IT가 다양한 분야의 하드웨어와 융합하는 추세는 미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가정내의 가전제품과 공장의 시설물을 컨트롤할 수 있으며, 여기서 수집된 정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분석가능. 이 과정을 거쳐 전자제품과 공장의 효율성을 극도로 높인다. 이 부분은 모두 미국이 장기로 하는 분야다. 미국의 무역전쟁이 단순히 한물 간 제조업을 미국에 불러들이려는 의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확실한 점은 중국이 타겟이라는 것. 그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알아야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음. 이제까지 중국은 겉으로는 일전불사를 내세웠으며, 심지어 시진핑은 "왼쪽 뺨을 땔면 오른쪽 뺨을 내놓는 것이 미국식인지는 모르지만, 펀치로 대응하는 것이 중국식"이라고 신랄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뒤로는 여러 타협책을 내놓으면서 미국을 달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자유무역의 가치를 내팽개친 무도한 나라이지만, 중국은 자유무역을 수호할 뿐만 아니라 시장을 기꺼이 개방할 용의가 있다는 식으로 선전한다. 시진핑은 18년 4월 보아오 포럼에서 신개방시대를 선언하며 미국이 포기한 자유무역의 주자 역할을 맞겠다고 천명. 그리고 6월에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네거티브 리스트를 발표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개방하겠다고 선언. 여기에는 금융, 자동차, 철도, 전력 등이 포함되었는데, 모두 중국의 국영기업이나 기존 사업자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미국기업이 추가로 들어갈 빈틈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 영역임.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금액을 정해 무역흑자를 줄이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으며, 기술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함으로써 기술대국으로 굴기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도 않음. 사실 이는 중국이 포기할 수도 없는 사항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 일단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발동을 걸었을 것임. 양국간 수출입규모를 생각하면 미국의 승산은 시작부터 분명함. 이것은 일종의 치킨게임으로 두 나라 모두에게 손해가 가지만, 어느 쪽이 더 손해를 입는가의 게임이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나가는 데 반해, 중국은 겉으로는 맞대응을 하지만 뒤로는 타협하려는 것을 보면 누구에게 유리한 싸움인지는 분명해 보임
- 미국의 핵심목표 중 하나는 그들의 자리를 위협할 경쟁국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것인데, 중국은 그러한 경쟁국 후보 중 단연 1등이다. 트럼프는 TPP에서 일단 탈퇴했으니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식으로 여운을 남겼다. 그의 복안은 아마도 이러한 무역전쟁을 통해 최대한 교역조건을 유리하게 고친 다음에, 그것을 표준으로 TPP를 뜯어고치는 것일수도 있다. 그때까지 트럼프는 중국을 마구 때려서 기를 죽여 놓고 TPP에서도 배제해 왕따를 시킬 수도 있다.
- 물론 중국은 대단한 경제국이지만 그 나라가 저가품을 생산해 미국에 공급한다면 모를까, 기술대국으로 성장해 고급품을 생산하려 한다면 중국을 TPP에 포함시키는 것이 미국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중국은 TPP에 대항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이라는 것을 만들어 대응책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마치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각자의 무역 카르텔을 만들고 있지만 사실은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수면 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원래 WTO를 통해 세계교역의 자유화를 추구하려 했으나 여기에는 이미 중국이 들어와 있다. 따라서 미국은 TPP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중국을 배제한 무역자유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TPP나 RCEP은 모두 그 안에 포함된 나라간에만 혜택이 주어지므로 일종의 네트워크라 볼 수 있음. 네트워크는 클수록 구성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커진다. 이를 네트워크 효과라 하는데, 미국과 중국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키움으로써 상대방의 네트워크를 쪼그라들게 하는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말말 것 없이 이러한 전쟁은 세계 여러나라에게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 교역이라는 점에서 후퇴를 가져올 것이 분명.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역규모가 크고 미국, EU와 중국의 시장이 모두 필요한 나라에게는 더욱 그러함
- 트럼프의 감세와 인프라투자, 그리고 군비를 중심으로 하는 확장적 예산은 미국의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음. 미국은 이미 상당한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있고, 그 덕에 국가부채가 만만치 않음. 그런 상황에서 세금은 오히려 깎아 주었으니 들어오는 돈은 적고, 인프라투자와 군비로 나가는 돈은 증가. 그 간격을 국채를 발행해 메우고 있으며, 그 결과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음. 미국은 18년 들어 국채 발행량을 늘리고 있으며, 특히 만기 2년까지 단기국채를 증가시키고 있음. 이는 상대적으로 단기국채가 금리가 낮으며, 만기가 짧아 수급조정이 용이하고, 또한 양적 완화로 쌓아놓은 국채가 대부분 장기채이기 때문. 이 때문에 단기채의 가격이 떨어지고, 단기금리가 올라가고 있으며, 장단기 국채간 금리차이도 좁혀들고 있다. 이로 인해 장단기 금리의 역전이 일어나며, 또한 이때마다 위기가 찾아왔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위기가 찾아올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미국은 위험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양적긴축을 돈을 거두어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채발행을 늘려 돈을 풀고 있다. 따라서 미국 통화정책은 상당히 혼란스런 상태
- 지금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만들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세우고 있음. 이것은 페르시아만에서 시작해 말라카 해협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오는 석유수송로를 지키기 위한 조치. 중국은 내륙으로도 다양한 수송로를 개척해 수입원을 다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80%의 석유가 이곳으로 흘러옴. 과거 제국주의 일본은 만주와 중국에서 도발하다가 미국에게 제재를 당한 바 있음 미국은 미, 영, 중,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ABCD 포위망을 구축해 일본으로의 석유 및 원자재 수송을 차단했따. 일본의 경제는 고사직전으로 몰렸으며, 심지어 목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까지 등장했었음. 일본은 절체절명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기지룰 공격했으나, 이는 어떻게 보면 미국이 쳐 놓은 덫에 걸린 것이라 볼 수도 있음.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포위망에 구멍을 내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군사적 충돌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한반도에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 트럼프의 생각은 대중의 분노를 외국, 특히 중국에 돌림으로써중국에 대한 경제적 포위망을 구축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첨단제조업에 있어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것. 결국 국력 차이는 첨단제조업의 실력에 좌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을 유도하도록 무역질서를 새로 짠다. 중국을 굴복시킨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새로 짠 판에서 배제시키고 포위망을 좁혀 경제를 압박함. 지금 이란이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그보다 좀더 큰 차원에서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외국이 부당하게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며 미국인들을 선동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외국을 압박하면서 강압적으로 판을 바꾸려고 한다. 보복관세전쟁을 시작함으로써 전 세계를 무역전쟁의 판에 끌어들인 다음, 각개격파 방식으로 무역조건을 개선. 미국은 TPP를 탈퇴했지만, 각국과의 FTA 개정을 추진하면서 TPP의 기준을 참고하고 있다. 이미 TPP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은 물론 영국과 인도 등도 끌어들여 거대한 무역동맹체를 구축하려 함. 그리고 나서 EU와 제휴해 하나의 경제서클을 완성시킬 것임. 이미 오바마 때부터 미국과 EU는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대한 협상을 추진해왔음. 이러한 미국의 구도를 보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과 북한 등 적성국가들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시대 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경제 포위망은 이제 새로운 적성국가를 둘러싸고 거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결국 새롭게 짜여지는 무역질서는 철저히 미국의 전략에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트럼프의 보호무역정책의 목적은 단순히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것이 아님. 그것은 쇠락해가는 미국의 패권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며 잠재적 경쟁국가인 중구을 미리 치려는 시도. 무역적자를 어느정도 줄이려고 하는 것이라면 중국도 미국에게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따. 그러나 중국의 기술발전을 억제하고 만년 후진국으로 눌로놓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싸움은 둘 중 하나가 결딴날 때까지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 물론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완만하게 진행되지만 흐름의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임.
- 미국이 TPP를 중심으로 세계의 경제질서를 재편하려고 한다면 한국도 그 안에 들어가야 하며, 따라서 중국은 더이상 시장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됨. 또한 이미 중국은 첨단제조업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겠다고 선언했으며,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음. 이미 시장이 아니라 경쟁국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수출은 더이상 성장하기 어렵게 될 것임. 인도와 동남아 등지에서 대안을 찾으려 하겠지만, 충분한 상쇄가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은 자국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대미수출을 견제하고, 반대로 IT와 서비스에 대한 개방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 명백함
- 오랫동안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는 방식으로 원화가치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억눌렀음. 이것이 수출가격을 낮추어 수출물량을 늘림으로써 성장한 우리의 방식이었음. 이런 방식 덕에 수출이 잘 되어 경상수지 흑자가 생긴 것까지는 좋은데, 그렇게 들어온 달러에 더해 주식,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몰려온 달러까지 외환시장에 밀려오면서 원화가치가 올라가는 상황이 되었음. 한국은행은 부지런히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해 원화가치를 억눌렀으나, 이것도 미국이 압력을 가하면서 어렵게 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미국도 수출을 늘리겠다고 나서면서 우리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적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음.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환율시장에 대한 개입상황을 공개하겠다고 양보할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중국과 미국이 보호무역전쟁을 벌이면서 한국도 유탄을 맞고 있음. 중국이 타격을 받으면서 위안화가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 당국이 어느정도까지는 유도한 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수출을 촉진하면서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의 가치를 유지하는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 그러나 이에 따라 한국의 원화가치도 함께 떨어지고 있음. 환차손을 우려하는 자금이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최근 한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통합되면서 원화와 위안화가 동반해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 어떤 방햐응로 환율이 튄다 해도 한율변동성이 커지는 것은 한국에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음. 원화가치가 올라가면 수출이 타격받고, 내려가면 자본유출의 위험이 다가온다
-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3개의 폭풍이 서로 마주친다는 점에서 퍼펙트 스톰이라 부를만 하다.
첫째는 미국을 따라 금리인상을 하다가 가계 부채가 부실화되고, 이것이 부동산과 주식시작의 붕괴로 이어지며, 이어 외자유출이 따라가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한국의 주력산업이 더욱 타격을 받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이에 따라 실업이 늘고 소비가 줄어드는 장기불황이 찾아오는 것이다.
셋째는 미국의 자산시장이 붕괴하면서 달러가 썰무렃럼 본국으로 돌아가고, 한국의 자산시장도 덩달아 무너지는 것이다.
- 역사는 반복되지만 같은 형태로 반복되자는 않는다고 함. 한국이 98년식 외환위기를 맞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시달릴 것은 틀림없다. 미국의 달러약세정책에 따라 한국의 원화는 밀려올라가겠지만, 상황이 위급해지면 오히려 원화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겪는 움녕. 위기가 닥칠 때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하락하고, 세계에 풀린 돈은 모두 안전한 달러를 찾아감. 이에 따라 외국자금이 빠져나가고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더욱 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 그러면 경기침체는 더욱 심화됨
- 현재 조선, 해운, 철강, 건설, 화학의 5대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중. 이중 해운은 이미 완료되었고, 조선은 진행중이며, 건설은 큰 파도를 앞두고 있음. 철강화 화학이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이지만 자동차가 위기. GM의 철수논란은 빙산의 일각이다. 현대차는 11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자동차 생태계를 버티고 있는 2차 협력업체는 심각한 상황. 정치와 경제는 한 몸으로 굴러간다.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어렵게 할 것임. 그러나 앞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함. 대규모 매각과 인수합병, 실업은 어느정도 감수해야 하며, 그러면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반대파의 총공세가 시작될 것임. 이어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짐. 지금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올릴 때가 아니라, 반대로 허리띠를 조르고 날밤을 새며 일해 경쟁력을 높일 때다. 규제완화의 압력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자리 증가는 주춤하고, 제조업의 감소를 정부가 만드는 서비스업의 증가로 상쇄하려 하지만 역부족일 것임. 이렇게 만들어진 서비스업 일자리에서는 저임금을 받으므로 구매력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임. 과도한 가계 부채로 인해 부동산으로 경기부양하는 것은 어려울 것임. 그동안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해왔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더구나 정부는 부동산억제정책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특히 수도권과 지방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이 나타나면서 건설부문은 타격을 받을 것임. 건설부문은 전후망 연관효과가 매우 크므로 이로 인해 관련분야가 함께 어려움을 빠질 것이며, 저임금 건설근로자를 중심으로 실업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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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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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미래경제학

경제 2019. 7. 25. 08:27

- 경제학자들은 공리(유용성)의 개념으로 사람의 행위를 설명. 마약 중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해서 마약을 하기로 한 결정의 유용성이 마약을 끊기로 한 결정의 유용성보다 큼. 결정 유용성의 상대적 개념으로 경험 유용성이 있음. 이것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희열과 고통을 가리킴. 처음으로 공리개념을 사용한 영국 철학자 벤담이 가리킨 공리는 바로 이 경험 유용성이다. 이 밖에 기억 유용성이라는 개념도 있음. 사람은 본인이 경험했던 희열이나 슬픔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는 잊힌 유용성이라고함. 이렇게 서로 다른 종류의 유용성은 어떤 상황에서는 불일치함. 예를 들어, 당신이 등산을 할 때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피로하고 발바닥에 물집까지 생겼따고 해보자. 이때 당신의 경험 유용성은 부정적인 것임. 그러나 하산한 뒤 몸이 건강해지고 의지도 강해지는 좋은 경험을 했다면 당신의 경험 유용성은 긍정적인 것이 됨. 다음에 등산을 다시 할지 말지 결정할 때 만약 등산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등산을 하기로 한 결정 유용성이 등산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유용성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
- 사람의 행복도는 보통 주위 사람들의 상황에 따른 상대적인 것. 만약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매우 높은 생활수준을 영위하고 있다면 당신은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임. 이런 이유로 안정적 경제성장도 사람들의 장기적 행복감을 높여주기 힘들다. 반면 당신의 소득이 장기적으로 주위 사람들보다 높아진다면, 당신은 장기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 사람의 행복감은 매우 빨리 극도의 슬픔 혹은 극도의 희열을 주는 사건을 통해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반년의 슬픔은 그 다음 반년 동안 회복된다.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보통 2년 후에 없어지며, 이혼한지 2년 후에 느끼는 스트레스와 초조감은 이혼 전 2년의 초조감보다 낮고, 이혼한 지 2년 뒤의 행복도는 이혼전 2년 동안의 행복도보다 높았다. 또한 결혼을 한 뒤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사람은 행복도 역시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01년에 학자들은 이 수치를 통해 결혼한 지 5년이 된 사람의 행복도는 평균적으로 볼 때 결혼 4년 전의 행복도보다 낮다는 연구결과를 발표. 이는 사람들이 결혼 생활 중 발견하는 7년의 고통을 설명해준다. 좋은 결혼은 미혼보다 좋지만 초조함을 주는 결혼은 미혼만 못하다. 만약 자녀가 부모의 뜻을 잘 따르는 효자라면 자녀가 있는 것이 자녀가 없는 것보다 좋지만, 만약 자녀가 속을 썩이기만 한다면 부모에게 주는 고통이 행복보다 크기 때문에 자녀가 없는 것만 못하다.
- 총명한 광고제작자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약을 처방한다. 그들이 하는 한두 마디의 말은 당신의 가슴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일이 당신이 정확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악의 컨설턴트가 아니고서야 버블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주식을 사라고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들은 당신의 감정에 파고들어 나쁜 선택을 조장하며, 강한 시장경기 순응성을 갖고 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소비자들을 속이는 것을 당신이 통제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광고가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매우 적거나 심지어 아무것도 없기 때문. 그들 역시 소비자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단지 '강태공은 낚시를 하고, 원하는 자는 낚인다'는 식일 뿐이다. 그들은 게임을 하며, 이러한 심리게임은 거대한 상업적 가치를 갖고 있다.
- 광고제작자들은 또한 소비자가 부가기능 또는 별도의 설명이 있는 제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가기능과 별도의 설명이 이 제품 자체와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캐주얼 재킷 광고에 알파인 수준이라고 써놓으면, 이 재킷은 이 문구가 없는 같은 제품보다 더 잘 팔린다. 이는 소비자들이 알프스 산 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만들어, 모르는 사이에 소비자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
- 경제학자들의 관점에서 신문의 기능은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신문의 품질은 그것이 제공하는 정보의 품질에 좌우되며, 정보의 정확도와 발간부수 역시 신문의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됨. 신문시장의 운영은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가격과 품질에 의해 결정됨. 그러나 경제학을 벗어나는 순간 이 기준으 모두 사라짐. 매체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신문이란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와 진술, 스토리가 있고 독자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이들은 독자의 성향에 맞는 기사를 게재하고, 이를 통해 고정적인 발간부수를 확보하려 한다.
- 지식인들의 진정한 역할은 글쓰기와 교학을 통해 사상의 종자를 뿌리는 것. 종자가 발아하느냐, 꽃을 피우느냐, 과실을 맺느냐는 많은 외부조건, 즉 토양, 온도, 강수량 등에 따라 결정됨.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상이 주류가 되고 진정한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 정치 분위기와 경제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함. 30년대 실업률이 25%에 육박해 민심이 흉흉했을 때, 케인즈 이론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나타나 새로운 정책운동과 완전히 새로운 경제정책을 이끌었음. 이로인해 케인즈는-적어도 20세기에-가장 위대한 경제학자가 되었다.
- 분쟁해결을 위해서는 많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함. 코언교수는 이를 위해먼저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 이를테면 이러한 문제들이다. 미국은 왜 2차대전 이후 조어도를 타이완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중국으로 반환하지 않았는가? 왜 청일전쟁 이전에 조어도를 행정 관할구역의 일부로 편입시키지 않았는가? 일본은 청일전쟁 전후 조어도를 무인도로 여겨 점유했는가 아니면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도 점유했는가? 이것도 아니면 조어도를 타이완의 일부로 여기고 자기관할로 귀속시켰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자료를 찾와보아야한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조어도를 점유해 60년대 말까지 관할해왔음. 당시 중국은 왜 미국의 이런 행태에 대해 전혀 반대를 하지 않았는가? 왜 주권반환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았나? 법적 정의의 측면에서 분쟁 중 한쪽이 일정기간 내에 타국의 영토 점유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를 피력하지 않은 경우, 이는 영토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음을 뜻하는가?
- 과학기술과 법률의 발전은 영토분쟁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음. 68년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는 조어도 주변 수역에 대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힘. 이후 70년부터 중국은 조어도 주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 80년대 말 유엔해양법이 정식 발효되면서 배타적 경제수역 개념이 생김. 이에 따라 조어도 부근의 해양자원 탐사와 귀속문제도 나날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 덩샤오핑은 72년 중국의 경제성장 환경조성을 위해 전격적으로 "쟁의를 멈추고 공동개발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불편했던 중일 외교관계가 정상화됨. 코언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 문제가 다시 불거졌는데, 계속 해서 쟁의를 멈추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제기. 그는 일본 정부의 입장, 즉 '조어도는 일본령이므로 다툴 필요도 없다'는 주장은 중국에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 일본이 조어도를 점유하고는 있지만 조어도의 주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 일본은 한국과도 섬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독도는 한국이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지만, 일본은 2차대전 이전부터 일본령이어다고 주장. 현재 일본은 '한 입으로 두 말하기'의 모순에 빠져 있다.
- 사람은 모두 평화를 사랑하고 누구도 전쟁을 좋아하지 않음. 하지만 때때로 전쟁이 일어나고 어떤 때는 가공할 만한 규모의 폭격으로 참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함. 역사를 보면 전쟁은 모두 외교수단이 고갈될 때 쌍방의 지도자가 할 수 없이 선택하는 하책이다. 중일 양국의 지도자는 현재 위기를 완화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있으며 내리기 힘든 상황. 둘 중 누구도 상대국의 압력에 굴복하길 원하지 않음. 아베 신조는 강경한 대중정책, 국방강화, 헌법 9조 수정 등의 공약에 기대어 12년 12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생애 두번째로 일본 총리 자리에 올랐다. 13년 3월 취임한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중국경제와 군사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지금, 과거 중국을 침략했고 동시에 아시아의 절반을 강점했던 일본에 굴복할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절차가 하나 있는데, 바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는 비밀외교다. 어떤 학자는 양국 지도자 사이에 특수한 교량을 설치해 체면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충돌 대신 순리대로 일을 처리하고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국면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 헨리 키신저가 71년 7월 파키스탄을 경유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떤 것이 이런 역할을 했음. 당시 중국과 미국은 두 차례의 군사적 충돌(한국전쟁, 베트남 전쟁)과 장장 20년간의 적대적 관계를 거치면서 그 누구도 먼저 상대에게 손을 내밀기를 원치 않았음. 키신저의 임무는 당시의 국제정세 아래(중소 긴장,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내 반전여론)에서 양국이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수교를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키신저는 언론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이 방문의 표면적 목적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베트남, 태국, 인도, 파키스탄을 순방하는 것으로 알렸다. 키신저는 파키스탄에 있을 때 병을 핑계삼아 쉰다고 말하며 언론의 시선에서 이틀간 사라졌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몇 명의 측근만 대동한 채 파키스탄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 그리고 베이징에서 미중 수교 가능성에 관한 초기교섭을 벌임. 만약 이 교섭이 실패했다면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것. 미국 대통령 측근조차도 키신저가 아시아 방문길에 오른 진짜 목적을 몰랐음. 교섭에 성공한 덕에 그는 죽의 장막을 걷어낸 닉슨 대통령의 공신이 되었고, 미국과 중국은 역사적 수교를 맺을 수 있었다.
- 중국의 국내 정책이 세계의 시험과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중국경제의 성공과 세계화에 대한 대가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며, 머지 않아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중국은 수출대국이자 수입대국, 자본유출과 유입대국으로서, 국내정책이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외국인들은 당연히 중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며, 중국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전통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완벽하게 실현하기란 불가능함. 따라서 중국은 세계의 간섭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함. 과거에 일본도 이런 간섭을 수없이 참아왔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불과 25년만에 세계 7위에서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 이 과정에서 일본의 국내 정책 역시 외국의 시험과 평가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단지 성공의 대가이지 객관적 현실일 뿐이다. 이를 반중국이라는 주관적 혐오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에 해가 될 뿐이다
- 정치학자들은 과거 60년을 미국패권의 시대로 부름. 일부 중국 지도자들도 이 단어를 사용해 미국의 지위를 설명. 사실 패권의 정의는 매우 불분명함. 패권이란 무엇인가? 만약 미국 패권을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 단어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군사력에 있어서 구소련이 맞서고 있었던 것 외에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적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한편 미국패권을 국제문제에서 미국이 독단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 단어는 틀린 것임. 우리는 보통 미국이 빠진 협력이나 국제조약은 실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음. 유엔 해양법, 국제형사재판소, 교토의정서는 미국의 지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합의된 것임. 만약 미국 패군을 미국이 임의대로 다른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 표현은 완전히 틀린 것임. 국제협상과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54년 미국이 지지한 유럽방위공동체는 프랑스 상원에서 부결됨. 미국은 58년 영국이 주도하는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희망했지만, 영국은 73년이 되어서야 가입을 허락. 이 밖에 유럽자유무역지역 설립, 67년 케네디라운드 무역협상에서의 관세인하 폭, 71년 스미스소니언 협정의 환율 재조정 등에서 미국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함. 이와 비슷한 사례도 많다. 미국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한 것이 결코 아니다. 미국은 무언가를 제안할 때, 반드시 다른 국가에 이 제안이 자국 외에 여러 국가를 고려해 만든 것이라 설득. 그리고 그 속에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함. 어떤 때는 다른 국가를 성공적으로 설득할 때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망하고 돌아갔으며, 당초의 제안을 대폭 수정하기도 했다.
- 미국인들은 매우 쉽게 자신의 가치관을 세계의 진리로 생각하며, 미국 밖의 대중이 세계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함. 미중관계는 많은 소통과 이해, 양해와 신임을 필요로 함. 그렇게 해야만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따. 200-300년 이후의 역사는 미중관계의 변화가 냉전 이후나 이슬람 국가간의 대립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국제경제학을 가르치는 제프리 프랭클 교수는 11년 강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힘. 그는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84년 발표했던 논문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 크루그먼은 국제통화의 지위는 커다란 관성을 가진다고 본다. 미국 경제 총량은 GNP로 계산했을 때, 1872년 이미 영국을 추월. 그러나 미 달러화는 46년이 되어서야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율에서 영국을 넘어설 수 있었음. 프랭클 교수는 이러한 크루그먼의 30년전 관점은 좌향으로 기운 것이라고 평가. 하나의 화폐가 다른 화폐를 따라잡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1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20년대, 미 달러화는 영국 파운드화를 위협하는 존재였으며 국제통화였음. 당시 미국 국제 무역총량이 이미 영국을 넘어섰기 때문. 물론 한 국가의 화폐가 국제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역총량 외에도 여러 조건이 필요함. 이 국가가 채무국이 아닌 채권국인지, 화폐가치는 보장할 수 있는지, 금융시장은 개방적인지, 이 금융시장은 넓이와 깊이 측면에서 만족스러운지 그리고 충분한 유동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잣대가 됨. 여기서 프랭클 교수는 다음 두 그룹의 어휘를 구별했다. '위협형성, 라이벌 되기와 추월'은 '초월, 대체'와는 다르다는 것. 미 달러화는 20년대에 영국 파운드화의 라이벌이 되었으며, 2차대전 이후 파운드화를 초월함. 이렇게 볼 때, 화폐 초월과정은 크루그먼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다. 20세기에 미 달러화는 세가지 국제통화 중 하나가 됨. 다른 두가지는 엔화와 마르크화다. 이 두가지 화폐는 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의 해체 이후 국제통화가 되었다. 프랭클 교수는 당시를 회고. 71년 미국 국제수지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 연준의 금 비축량은 급격히 감소. 닉슨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미 달러화와 금의 태환을 정지시킴. 이것이 그 유명한 닉슨 쇼크다. 이 조치로 인해 각 주요 화폐간 환율은 상대적으로 변동하기 시작했으며,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고정환율은 해체됨. 그 후 유로화가 마르크화를 대체해 국제통화가 되었음. 이어 프랭클 교수는 사람들이 늘 잊어버리는, 화폐 지위의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90년대 초에 사람들은 엔화와 마르크화가 미 달러화의 라이벌이 되어, 미 달러하를 초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일본경제는 부진하기 시작했고, 잃어버린 10년에 들어서면서 경제력이 약화됨. 결국 엔화는 미 달러화를 초월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화도 90년대에 유로화로 대체되며 사람들의 예상을 비켜갔다. 사후에 보면, 90년대 초에 모든 중앙은행의 엔화와 마르크화 보유율은 초고에 달했고, 그 이후에는 하락하기 시작. 이처럼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던 일(미 달러화 초월)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프랭클 교수는 현재 위안화의 상황과 미 달러화가 파운드화를 초월했던 상황, 엔화와 마르크화가 미 달러화를 초월하지 못했던 상황은 조금씩 다르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정부는 위안화가 국제교역에서 사용되는 것을 장려. 하지만 과거 일본과 독일정부는 자발적으로 자국 화폐의 국제화를 추진하지 않았음. 이들 국가에는 수출 이익이 금융시장을 통한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 한 국가의 화폐가 국제경화가 된다는 것은 비록 금융부문에서는 이익이 있을 수 있지만, 자국 화폐가 평가절상되어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 또함 의미함. 따라서 엔화와 마르크화가 국제화되는 것은 일본과 독일정부의 당초 바람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미국정부 역시 20세기 초에 달러하의 국제화를 장려하지 않았음. 14년 이후에 대다수의 미국인은 달러화의 국제화에 무관심했거나 반대했고, 단지 극소수 엘리트만이 국제화를 주장. 그들은 벤저민 스트롱을 대표로 하는 1901년 미국 중앙은행 설립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미 연준제도는 1913년 설립)
- 07년 중국 관영 CCVV가 연속 방영한 대국굴기는 9개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분석. 그중에는 중국 해군을 강화해 국내에서 안정적 통일을 보장하고 해상강국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됨. 퍼거슨 교수는 중국이 만약 진정으로 해상권력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미국과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미국의 충돌을 일으킬 또 다른 원인은 타이완이다. 오늘날 타이완은 약 100년 전 벨기에와 같은 상황. 1914년 이전에 영국과 독일은 경제무역관계가 매우 긴밀했음. 당시 그 누구도 양국이 서로 반목하고 혈전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음. 양국은 모두 벨기에의 중립을 존종하고, 만약 벨기에가 침략당하면 반드시 보호할 것이라고 맹세. 그러나 이 맹세도 14년 벌어진 잔혹한 전쟁을 막을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퍼거슨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음. "비록 차이메리카의 경제적 성과, 즉 미국기업의 유례없이 높은 수익과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상술한 국가 메커니즘, 인구구조, 환경오염과 정치적 충돌 가능성 등 네가지 원인으로 인해 차이메리카의 앞날은 비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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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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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고령을 정의하는 개념 가운데 일부는 생물학에 근거함. 그런데 그 외에는 인간이 150년 사이의 단기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내용이 대부분임. 지금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노화개념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 개념은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며 점점 위태롭게 변질되고 있음.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이는 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허투루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닥칠 고령화 사회는 노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크게 의존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또한 이 개념 때문에 기업도 고령 소비자의 참된 욕구를 외면해 왔다. 하지만 고령 소비자는 이미 강력한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지고 부유해지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 은퇴란 오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얻는 보상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개인마다 종종 경력은 다르더라도 이제 일을 그만하고 다른 연령집단과 동떨어져 사는 일상이 노인이 꿈에 그리던 삶이라 여김. 고령화를 다루는 아주 흔한 읽을거리에서 노인은 하나같이 어느정도 궁핍하다. 신체 여건상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정도 이기적이다. 노인이 어디서나 눈에 띄는 모습으로 밖에 나와 즐겁게 지내면 비록 오해에서 비롯했더라도 남의 돈을 거저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두 이미지가 합쳐져 생성한 노인에 대한 개념은 결국 완벽한 소비자의 모습을 귀결함. 그런 노인은 레저 상품이나 휴식을 틀림없이 원할 터이고 노쇠한 신체를 돕는 의료나 접근성을 고려한 상품 또한 반드시 필요로 함. 이런 요구와 욕구를 다 충족하면 기업이든 비영리단체든 심지어 정책 입안자든 스스로 편견이 없는지 더 이상 내면을 탐문할 필요성이 사라지며, 따라서 고령인구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려 들지 않는다. 궁핍하고 이기적인 어르신이란 상반된 개념이 너무나도 착 달라붙어 있어 어느쪽이 진실인지 의문조차 품기 힘들다.
- 생명이 정상적으로 밟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수긍하며 노인네는 궁핍하고 이기적이라는 내용으로 절정을 이룬 이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 창작품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과 여러 시대에서 늙어가는 경험은 개인마다 달랐다. 누구에게나 적용하는 일정한 나이도 없었으며 법칙처럼 항상 똑같은 경로를 거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연금정책과 요양시설과 노인보호 전문기관이 유럽과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와 동시에 이런 기관에서는 고령의 개개인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단일범주인 고령자로 묶어 버렸다. 그러고는 이 인구집단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대중에게 각인했다.
- 능률전문가가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노동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즉 한정된 일자리를 수많은 노동자가 나눠 갖는다는 생각은 노동 총량오류의 한 사례이며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오류"라고 지적. 왜 오류인지 설명하는 주된 근거는 경제 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 양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유효한 일자리 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일수 감축이나 조기 정년제 시행 등 명백해 보이는 해결책은 전반적으로 경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젊은 노동자 고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고령 노동자가 청년 노동자에게서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실 대불황의 여파로 실업이 번질 때조차도 그러지 않았다
- 그렇지만 20세기 초에는 고령노동자가 훨씬 유능해 보이는 청년 노동자를 쫓아낸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음. 반면 의무교육 확대로 늙은 실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면 젊은 고학력 구직자와 더욱 힘들게 경쟁을 벌여야 했다.
-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잠시 생각해보자. 예컨대 은퇴계획을 처음 판매한 사람처럼 델 웹이나 다른 초창기 은퇴 신화 설계자에게 떠오른 이 천재적 영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깨달았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로 노인이 되지만 정부와 산업과 문화가 정의하는 고령자는 한 덩어리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거의 똑같은 나이에 고령자로 규정된다는 현실을, 주머니에 돈이 있는 65세 이상 건강한 사람에게 굳이 휴양이 필요 없었다. 지금도 대부분 그렇다. 대신 할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단순한 여가활용이 아닌, 타고난 본능으로도 정연한 논리로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특권을 향유한다는 자부심에 돈을 썼다. 웹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이 새롭고 긍정적인 은퇴관을 포착하여 하나의 틀로 마련한 다음 팔았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이 상품을 사고 있다.
- 고령기술 사용자를 생각할 때 장애를 전제조건으로 삼아선 안됨. 오히려 장해관리가 전제된 목표라고 생각해야 함. 즉 노인은 장해요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 여러 활동을 하려는 사람이다. 이는 중요한 차이다
- 노인을 해결해야 할 문젯서기라는 생각에 푹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이 그다지 터무니없다고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영대학원생에게 빈 종이를 주고 다른 연령집단, 가령 10대를 대상으로 어떤 상품이 좋을까 상상해 보라고 했는데 기껏 내놓은 상품이 여드름 크림이나 경거망동하다가 다칠 경우를 대비한 목발이라면 과연 어떨까? 그렇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정도로 빈약한 상상력이 아닐까? 노인이 지난 요구나 욕구에 대한 우리 사고방식도 이에 못지 않게 형편없다
- 미국의 여러 자동차 기업 경영진 덕에 1950년대와 60년대부터 명실상부 금언으로 굳을 말이 있다. "젊은이가 타는 차를 노인에게 팔 수는 있어도 노인이 끄는 차를 젊은이에게 팔 수 없다." 젊은 층도 사지 않을뿐더러 부모나 조부모 세대도 사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하면 수없이 부정적 연상을 일으키고 이런 습성은 뿌리 또한 깊어서 한번 박힌 선입견이 계속 위세를 떨치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상품이 확실하게 고령 사용자를 겨냥하면 대개 노인조차 모욕을 느끼고 딴 데로 눈길을 돌리면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사실 이런 편견은 실패를 낳는 원인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여러 사항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노인이 처한 기초 수준의 생리적 요구를 해결하겠다는 태도 때문에 형편없는 상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 남성이 여가 중심의 은퇴라는 막연한 장밋빛 미래로 노년을 그리는 반면 여성은 더욱 선명하고 더욱 가혹한 관점에서 노년을 바라봄. 그리고 이 차이는 소비자가 주머니 사정에 따라 현재의 노령 개념에 반기를 들 때 그 맨 앞에는 여성이 있으리라는 점을 시사함. 게다가 각 연령대마다 여성이 상대 남성보다 노년에 해결하기를 바라는 여러 문제에 대해 더 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해결책에서 어떤 점이 미흡한지 깨닫고 잘못된 질문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 여성이다. 또한 노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품과 노인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상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인식할 사람도 여성이다.
- 루스 슈워츠 코완은 명저 '과학기술과 가사노동'에서 이론적으로는 여성을 도우려고 개발한 상품이 결국 가사노동량만 늘렸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예시를 들었다. 한 예를 들면 한때 카펫 세탁은 이따금 혹은 철마다 온 가족이 다 나서서 돕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공청소기가 등장하면서 한 사람이 이 일을 도맡았음. 더구나 갑자기 이 사람에게는 이 일을 더 자주 하도록 요구했고 동시에 "집안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카펫을 밖으로 옮기는 의무에서 해방됐다. 또한 집안에서 가장 어린 사람은 카펫을 두드리며 터는 의무에서 해방됐다." 이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진공청소기 때문에 카펫을 더 쉽게 혹은 더빠르게 세탁하게 되었는지 아닌지 묻는 질문에는 이제 대답하기가 꽤 까다로워졌다. 누구 일이 더 쉬워졌을까? 누구 일이 더 빨라졌을까?
- 진공청소기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예컨대 세탁기 같은 상품이 낳은 결과가 차곡차곡 쌓였다. 가사노동을 절약하는 기기 덕에 사실상 남성만 가사노동에서 벗어남. 과거엔 가사노동을 양성이 평등하게 분담하거나 일손을 고용해 맡김. 이 결과 20세기 초 사회적 부도 유용한 소비자 상품도 증가하지만 "전업주부가 누리는 여가시간은 이와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전업주부 경우에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이외 다른 가족은 생산성이 높아져 자신이 세운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코완이 책에서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는 역사가 시작한 이래 어째서 여성은 결국 자신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상품을 기꺼이 구입하거나 혹은 나서서 두둔하는 듯 보이냐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까닭은 분명함. 가사노동을 돕는 새로운 도구 덕분에 "최소한의 건강과 체면을 유지할 수 있어" 새로운 사람과 폭넓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 현대적 도구를 ... 압제자가 아니라 해방자로 여기는 태도는 조금 의아했다."
- 50년대 틀리 착용자가 어째서 거버 이유식은 사되 하인즈 노인식은 사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경우 소비자의 일은 씹는 음식을 피하는 동시에 계산대 줄에서 품위를 지켜내는 것이다. 스티치 대 다른 다양한 고령층 고립완화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사용자의 일은 비슷하다. 데이트처럼 자연스런 사회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지 의료행위를 본뜬 강요된 관계를 통해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 역사적으로 기업은 소비자가 예기치 않는 방식으로 상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무척 반가워했다. 새로운 시장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 크리넥스를 예로 들어보자. 크리넥스는 20년대 킴벌리-클라크가 미용티슈로 처음 시장에 선보임. 그런데 소비자는 이 부드러운 종잇장이 곧 일회용 손수건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을 발견. 킴벌리-클라크는 마케팅 전략과 포장을 바꾸었고, 크리넥스는 곧 콧물닦이라는 등식이 성립. 그러고는 하룻밤 사이에 모두 코 푸는 방식을 바꾸었다. 영원히
- 예로부터 노인이 자신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정기적으로 도와달라고 요구할 때 해결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방안에 얼마 없었다. 일손을 고용하거나 가족이 돌보거나 노인 시설에 맡기는 게 고작. 그런데 수요중심의 공유경제 체제를 이용해 필요한 부분을 서로 이어 맞추면서 린도버나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자립방식을 직접 보여준다. 다친 허리 때문에 1마일 떨어진 일반 식료품점까지 걸어다닐 수 없었을 때 오롯이 혼자였다면 치료시설로 옮기거나 적어도 다양한 노인제도를 이용하며 의존도가 높아만 갔을 것이다. 인스타카트나 제트닷컴이나 다른 온라인 회사 덕분에 이런 시기를 더 늦출 수 있었다.
- 설사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은퇴와 더불어 찾아오는 정체성 상실감은 50년대와 60년대와 비교해 지금이 훨씬 혼란스러움. 50-60년대는 황금빛 노후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며 당시 시류를 반영했다. 우선 은퇴 후에도 일하는 사람은 두 영역에 발을 걸치며 생산과 휴식 사이를 취청거리며 오갔다. 아주 옛날 은퇴자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 은퇴 기념선물로 금시계를 받자마자 정체성 위기를 겪는 사람은 애당초 주로 남성이었음. 그런데 지금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곤경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여러 측면에서 노후가 변하고 있다. 기술이 진보를 거듭하고 소비자 성향과 요구가 바뀌고 수명이 늘어나고 종교 공동체를 비롯해서 보호시설이 사라지고 가족 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를 덜 낳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회관습상 은퇴할 나이가 찾아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미지의 신세계와 바로 눈앞에서 조우한다.
- 고령층이 감동하고 환호하는 상품을 디자인하려면 결코 생리적 요인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신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소비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활보할 때에 의지하는, 잘 예시된 정신모형을 무시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에이지랩 입장에서 고령층이 어떤 기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고령층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기술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의 기술적 단점 자체가 분명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기술에 대한 정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기술요소든 좋다라고 여기려면 고령층을 비롯해 예비 사용자 모두가 마음에 든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자는 의미. 계단 한쪽에 설치하는 경사형 휠체어 승강기는 이 디자인 특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반면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디자인 결정은 보편적 디자인이라고 함. 가장 대표적 예로 레버식 손잡이가 있다. 팔꿈치나 의수 같은 인공기관, 온전치 않은 팔다리나 관절염을 앓는 손으로도 작동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무릎으로도 열거나 닫을 수 있다.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나 보편적 디자인이나 그 특성은 기능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을 모두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필수요소다. 하지만 수준이 더 높은 또 다른 접근성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제껏 보편적 디자인으로 잘못 묶어서 다루었는데, 바로 초월적 디자인이다. 기본적으로 보편적 디자인이되 10점만점에 11점까지 후한 점수를 받은 경우다. 접근이 용이하다는 특성은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높은 호감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열망도 일으킨다.
-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는 많은 일이 만들기 쉬운 무언가를 먼저 만드는 데서 비롯한다. 하지만 대중이 이것을 원할지 알 수 없는 노릇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고 더구나 이런 해결책은 아무도 선뜻 사려고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기술 우선접근방식에서 보면 충분히 팔 수 있으리라는 기분에 휩싸이기 쉬움. 한편 이런 풍토에서 등장한 상품이라도 소비자로부터 가장 열띤 호응을 얻은 상품을 살펴보면 대개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진 욕망, 즉 일곱가지 대죄아 일치하는 경향을 보임. 색욕에는 틴더, 나태에는 태스크래빗, 오만에는 트위터, 이상 3가지에 분노와 질투를 더하면 페이스북이다.
- 요점은 건강이나 안전과 같은 중대한 관심사를 다룰 때조차도 최첨단 기술상품 덕분에 노인에게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찍지 않도록 피할 수 있다. 아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미를 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어쩌면 아서 클라크가 말한대로 "마법과 구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초월적 기술이 등장하면 다시 한번 노인은 자립을 다질 수 있으며 동시에 건강도 나아질 수 있다.
- 자산관리사도 소위 은퇴 산업계 종사자도 노년에는 무엇을 열망하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은, 노인에게는 진정한 열망이 없다는 고정관념에 우리가 사로잡혀 있다는 현실과 일맥상통함. 아무도 노년의 성공을 의미하는 뚜렷한 이정표를 세울 수 없었던 이유도 완성된 노후가 어떤 모습인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 그리하여 이 여분의 시간에 우리에게 허락된 놀라운 자유는 불안스레 부유하는 감각과 함께 도래한다.
- 사회관계가 협소해지는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강한 이론을 보면, 우리가 점점 선택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함. 노년에는 똑같은 일을 해도 노력과 힘이 더 필요하기 때문. 그래서 열망도 성취할 수 있는 크기로 줄이고 함께 하는 사람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관계로 한정한다. 이 이론가 카스텐슨의 이론에 따르면 함깨 하면 확실히 기분 좋은 대상에 시간을 더 할애함으로써 한가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더욱 행복해진다.
- 독일 자동차 회사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고령 운전자가 있어야 비싼 차를 팔 수 있듯이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숙련 공장노동자층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다는 점. 제조부문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도의 기술과 지식이 집약한 분야다. 특히 복잡하고 정밀한 공학을 이용해 생산한 상품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동차 공장에서 어떤 역할을 잘 해내려면 매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서 노동자가 박사학위에 버금가는 훈련을 쌓아야 함. 그리고 대개 이런 성질의 지식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습득함. 예컨대 생산라인을 멈출 만한 실수를 피하는 법이라든가 어떤 부속품이 제 자리에 딱 들어갈 때 오는 감이 여기에 해당함. 가령 생산과정중 어떤 부문에서 일하려면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한 데 수십년이 걸려야 이 수준에 다다른다. 그래서 독일 BMW공장에서 일하던 최고참 공장 일꾼이 떠나면서 남기는 수수께끼를 생무지를 고용해 빈자리만 채워서는 풀 수 없다. 가장 단순한 반복조립 공정에서 일을 한 경우에는 종종 신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상대적으로 숙련이 거의 필요 없어 나이에 따른 생산설 하락이 없다. 사실 다임러 조립공정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나이 든 노동자일수로 실수는 더 잦아지는 편이지만 대참사를 부르는 잘못은 훨씬 덜 저지른다. 결론은 간단하다. BMW와 폭스바겐, 다임러와 여타 자동차 회사에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고령 노동자가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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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신

경제 2019. 5. 27. 12:43

- 달러를 겨눈 위협이 점점 거세지고 미국 정부채가 해마다 세계 대부분 국가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1조 달러이상 늘어나고 있던 09년말과 10년 초, 미국 정부와 월가의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에 포진한 그 동맹세력은 사실상 부상중인 유로를 상대로 화폐전쟁에 들어감. 그 결과 촉발된 것이 이른바 그리스 위기다. 나중에 유럽의 일부 매체가 폭로한 기사에 따르면, 02년 그리스정부와 골드만삭스는 그리스가 적자 요구조건이나 부채 수준을 충족하지 않았는데도 불법적으로 유로존에 진입하게끔 계략을 꾸밈. 이것이 바로 유로위기의 서막이었따. 그 위기가 노린 바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 한차 전부터 주도적인 세계 준비통화였던 미국 달러를 위협하면서 서서히 대안으로 떠오르는 유로에 치명상을 안겨주자는 것이다. 그러한 미국 정부의 공격을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를 비롯한 뉴욕의 헤지펀드들이 거들었다
- 국제 금융가들이 노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각국의 정치체제와 세계 경제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금융통제체제를 구축하고 그것을 자기들 손안에 넣는 것이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세계 중앙은행들은 빈번하고 은밀한 회동과 회합을 거쳐 비밀협약을 이끌어내고 그에 따라 마치 봉건주의적 방식으로 그 체제를 통제한다. (캐럴 퀴글리)
-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를 장악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을 장악할 것이다. 화폐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 (헨리 키신저)
- 증권화란 은행이 안고 있게 마련인 채무불이행의 리스크를 궁극적으로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들어내고 그 리스크가 널리 확산되도록 조정함으로써, 31년에 크레디트안슈탈트 은행이 도산한 후 맞게 된것과 같은 위기에 두번다시 빠지지 않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됨. 그런데 이것은 미국 권력의 향방에 관한 몇가지 근본적인 가정에 기초한 일종의 환상이다. 그 가정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0년대 말 미국이 독일제국의 맞수인 주요 산업국가로 부상했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음.
- 링컨은 런던의 주요 은행가들과 뉴욕의 그 동맹군들이 장악하게 될 3차 미합중국은행을 창립할 뜻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대신 헌법의 권한을 이용해 미 정부의 전적인 신뢰와 신용을 바탕으로 당시로소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1억 5천만불의 법정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의회를 설득. 링컨 치하에서 그 법정화폐는 미 재무부가 발행. 그 법정화폐는 이자가 붙지 않고 "수입관세와 공공채무에 대한 이자를뺀, 공적, 사적채무에 모두" 쓰였다. 뒷면이 초록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하여 이 법정통화에는 그린백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는 의회가 법정화폐로 인정한 그린백이 4.5억불이나 유통됨. 그린백은 발행 장시에는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었다. 그것은 미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지폐였다. 그 지폐 소유자에게 정화로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구체적으로 기약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지폐 소유자는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존속하고 번영하리라 믿으며 베팅한 것이다. 그린백 덕에 링컨은 24-36%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자를 요구하는 런던과 뉴욕의 은행가를 따돌리고 전쟁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음. 전쟁에 돈을 대준 그린백의 도움으로 북부연합은 민간은행가들에게 전쟁부채를 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일로 그는 런던과 뉴욕 금융세력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 타임즈는 링컨의 그린백 발행에 민감한 반응을 보임. 시티오브런던 은행가를 대변하고 있었던 게 분명한 사설에게 그 신문은 이렇게 선언했다. "북미공화국에서 시작된 유해한 재정정책이 그 길로 영영 굳어진다면 미국 정부는 아무 비용도 들이지 않고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이다. 그리고 빚을 모두 청산하여 부채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통상에 필요한 화폐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역사상 그 어느 문명화한 국가보다 부강해지는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지식과 부가 북미로 몰릴 것이다. 미국 정부를 타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지상의 모든 제국을 집어삼킬 것이다."
- 악명높은 1893년 공황은 실로 미국에서 은을 줄이고 금에 대한 통제권을 뉴욕의 민간은행에 넘겨주기 위해 모건세력이 어거스트 벨몬트와 작당해 조작한 작품. 몇 차례의 금융공황을 꾸며대는 과정에서 그들은 경제의 구심이랄 수 있는 철강과 철도에 대한 통제력을 확실하게 틀어쥐었다. 모건과 모건은행의 창구역할을 한 것은 민주당 대통령 그로버 클리브랜드 밑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존 칼라일이었다. 모건과 친구들은 그저 평범한 뉴욕 시 정객에 불과한 클리블랜드를 뒷돈을 대주면서 대통령직에까지 올려 놓음.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걸핏하면 백악관에 사적인 손님으로 불러들인 사람이 둘 있었다. 바로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런던 로스차일드 은행을 대리한 어거스트 벨몬트 1세의 아들 벨몬트 2세와 J.P 모건이었음. 런던 사교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어거스트 벨몬트 1세는 칼 메이어 로스차일드 남작의 숨겨둔 아들이었다고 함. 어쨌거나 로스차일드는 어린 벨몬트를 양자로 삼아 훗날 미국에 파견했던 것. 벨몬트라는 덜 시끄러운 이름으로 미국에서 로스차일드의 사업을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 사업의 속성상 국제은행가들은 어느 특정 국가에만 충성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상황을 주물러 치부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제 세상이었음. 따라서 기밀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경쟁자를 제치고 우위를 차지하거나 성공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했음. 멀리 베네치아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 때부터 수세기를 거치면서, 그들은 개인에게 돈을 빌려줄 때보다 정부나 국왕에게 돈을 빌려줄 때 훨씬 더 많은 이익이 난다는 사실을 깨달음. 무엇보다 채무를 차질없이 상환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국가권력이 보증하는 대부라는 점이 매력이었음. 권력의 세계에 들어서는 입장권을 따내는 데서 화폐보다 더 잘 먹히는 것은 없다. 신용대출은 각 나라의 지역을 통제하는 데 쓰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세계대전 이전에 런던과 파리의 은행가들이 신용대출을 중단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린 것처럼 말이다. 화폐, 좀더 정확하게 말해 화폐의 통제가 그들이 겨냥하는 전략적 목적이었음. 중앙은행이나 국책은행을 틀어쥠으로써 그 나라를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부리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70년대에 헨리 키신저가 말한 대로, 국제은행가 엘리트 집단은 다름 아니라 전 세계 석권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화폐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
- 베어링스, 로스차일드, 슈뢰더, 모건, 와버그, 시프, 맬릿, 셀리그먼 같은 국제은행가들은 자국 정부 외국정부 가리지 않고 그들과 은밀하면서도 막역한 유대관계를 맺으려 애썼다. 빚을 얻어 쓰는 주체가 바로 정부였던 것. 그들은 정부보증채를 고가에 거래. 그 과정은 극도로 은밀하게 진행됨. 그들의 돈이 전쟁을 벌일지 아니면 평화를 계속 유지할지 따위의 정치적 결정을 막후에서 어떻게 조작하는지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몸에 밴 관례였음. 자연히 그들은 음모나 정치조작, 정객이나 법조인을 매수하는 짓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름. 또한 은행가들의 명령에 고분고분한 인물을 내세우기 위해 비협조적인 국가나 주의 통치자를 처치하는 쿠데타에 돈을 대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 부분지급준비제도의 본질은 은행이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해 최대한의 돈을 빌려주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결국 신용과잉으로 시장이 붕괴함. 은행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기에, 신용기제는 펜대를 몇 번 굴리는 것만으로 없는 돈을 만들어내는 식이 됨. 이것이 바로 연방준비제도가 창립되기 전 1세기 동안 되풀이된 은행공황의 배경. 모건 등 엘리트 은행가들은 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중앙은행을 원했음. 신용제도의 감독기관으로 기능할 그 중앙은행은 금융제도 전반의 이해에 맞게 개별은행들을 줄 세우는 중앙경찰 노릇을 할 판이었다. 이 제도를 통제하려면, 즉 신용대출을 늘리거나 줄이려면 부분지급대출에 요구되는 은행의 지급준비금 수준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연준은 뉴욕의 머니트러스트에게 국가 신용대출에 관한 준독점적 권한을 허용해줌. 그 권한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지킬 섬에 결집한 이들은 이른바 와버그안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와버그안에는 올드리치안이라는 이름을 붙임. 마치 공화당 출신 상원의원의 독창적 고민의 산물인 양 보이게 하려는 정치적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의 화폐를 장악하고자 하는 계획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화폐권력이 집중되는 데 대한 대중의 반발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 영국이 심각한 쇠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을 무렵,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저력 있는 두 국가가 서서히 대영제국의 역할을 가로채로 나섬. 그중 하나는 독일제국이었다. 1900년만 해도 독일 엘리트들 가운데 감히 영국을 넘보는 이는 없었음. 그러나 독일의 산어발전, 교육제도, 과학은 벌써 영국을 성금 앞지르고 있었다. 오로지 금융중심지인 시티오브런던만이 세계무역을 선도하는 역할을 간심히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독보적 세계대국으로서 대영제국이 누리는 역할에 도전장을 던지며 등장한 또 하나의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1898년에서 1899년 사이 필리핀과 쿠바를 차지하기 위해 에스파냐를 상대로 최초의 제국주의 전쟁을 벌인 나라다. 영국, 독일, 미국이 선전포고조차 없이 펼친 이 다툼의 승패가 마침내 명백하게 드러나기까지는 30년의 세월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필요했다.
- 1차대전은 실은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살해당하자 진지한 국제조약을 어긴 데 따른 반작용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전쟁은 화이트홀과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일찌감치 내린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영국은 1904년 프랑스와 화친협상을 맺었으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하고 난 이태 뒤인 1907년에는 러시아, 프랑스와 3국협상을 체결했다. 이 협상들이 노린 것은 공동의 적인 독일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고립시키려는 것이었다
-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선언하고 있었는데도 1916년 한 해에만 미국 업계는 무려 12억 9천만불어치나 되는 군수품을 영국과 프랑스에 수출했다. 미국이 전쟁에 발을 들여놓기 직적 JP모건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나중에 이탈리아 정부를 상대로 50억불어치의 군수물자 수출을 성사시켰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정부는 모두 JP모건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군수물자를 사들임. 50억불은 오늘날 시세로 환산하면 약 900억불에 해당. 그때까지 어느 민간은행도 만져보지 못한 큰 돈이다.
- 17년 4월 미국이 공식적으로 1차 세계대전에 발을 들여놓은 때부터 18년 11월 11일 독일과 휴전협정을 맺은 때까지, 미정부는 유럽의 연합국에 모두 94억 8631만 1178달러를 대출해줌. 모건맨 토머스 러몬트가 1915년 연설에서 실로 엄청난 규모라고 표현한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큰 몫은 41억 3600만불로 영국에, 그 다음은 22억 9300만불로 프랑스에 돌아감. 독일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연준이 후원하는 미국의 전적인 신뢰와 신용이 동원됨. 그러나 사실 영국정부나 프랑스 정부는 그 90억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 돈은 연합국에 공급되는 전쟁물자 대금으로 미국 재계가 부리나케 쓸어감. 미국 재계는 대부분 모건그룹, 쿤롭, 아니면 록펠러가와 연결되어 있었음
- 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화의 거품이 터진 것과 마찬가지로, 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이 붕괴한 것은 그저 세계 금융이 앓고 있는 훨씬 더 심각한 질환의 한가지 징후에 지나지 않았다. 잉글랜드 은행의 노먼은 스트롱에게 미국금리를 낮추라고 촉구. 그래야 영국이나 전후 영국의 전반적 금융안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유럽 각국의 금리도 낮게 유지되고, 영국과 유럽에서 경기후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저금리정책을 실시하자 할부신용의 조건이 한결 완화되어 저리자금이 풀리면서 미국의 소비붐이 살아나고 뉴욕증시가 활성화되었다. 포효하는 20년대엣 미국에서 과시소비가 횡행한 거은 미국시민 대다수가 마치 살림이 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결과임. 그런데 국구분배의 심각한 불균형이야말로 29년 미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따. 29년경 미국인들은 무려 총 승용차의 60%, 총 주택의 80%를 할부신용으로 사들임. 20년대에 대다수 미국인들은 소득이 비교적 낮았던 터라 외상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 미국의 기득권세력 내에서 모건 세력이 퇴조하자 록펠러 세력이 그 공백을 차고 앉았다. 그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정책에 전대미문의 지배력을 행사했음. 모건이 세계적 달러권력을 구축하기위해 노력하던 20년대에 록펠러 집단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중동,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지에서 스탠더드오일의 권력을 구축하고, 냉전시대에 보게되는 군산복합체의 전신이라 할 만한 세계적 화학군수산업체를 일구는 데 힘을 쏟았다. 30년대 말, 막강한 록펠러 제국은 사실상 네 명의 형제가 꾸려갔듬. 존 D. 록펠러 2세의 아들인 데이비드 록펠러, 넬슨 록펠러, 존 D. 록펠러 3세 그리고 로런스 록펠러였다. 다섯째인 윈스럽은 록펠러제국의 정치활동에서 담당한 역할이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었음. 네 형재는 내셔널시티뱅크와 체이스내셔널뱅크를 둘러싼 미국 최상위 권력층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감. 내셔널시티뱅크는 스탠더드 오일 제국의 은행으로 총재는 제임스 스틸먼이며, 존 D. 록펠러의 남동생 윌리엄 록펠러가 이사로 있었음. 스탠더드오일의 주거래은행인 체이스내셔널뱅크는 33년경 세계최대 은행으로 떠올랐으며, 록펠러가의 에퀴터블트러스트와 합병한 뒤 이제 록펠러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음
- 월가에 포진한 록펠러 세력, 버나드 바루크, 그리고 내로라하는 거대기업 총수들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파쇼적 조합주의 모델에 따라 미국경제를 재편했음. 대놓고 떠들어대지 않을 만큼 정치적 분별력은 있었음. 31년에 바루크는 제너럴일렉트릭과 내셔널시티뱅크의 이사인 절친한 친구 제러드 스워프와 함께, 산업을 안정화하려면 긴급안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후버 대통령을 꼬드겼음. 그 안의 골자는 거대기업에 대한 셔면 반독점법의 제약을 풀어줌으로써 그들이 합병을 통해 힘을 모으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가가 형편없는 터라 현금이 두둑한 록펠러세력은 다른 기업을 헐값에 가뿐하게 집어삼킬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개입에 반대하는 후버는 바루크와 스워프의 안에 퇴짜를 놓았음. 32년에 민주당 출신인 루스벨트의 입장이 후버와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해지자, 바루크와 월가에 포진한 그 친구들은 바로 마음을 바꿔 루스벨트 쪽으로 돌아섰다. 바루크 일당은 루스벨트 측근집단의 환심을 사려고 돈을 뿌려가면서 그들에게 갖은 아양을 떨었음. 신중하게 조작된 선전덕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언론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성전에서 환전상을 몰아낼 태세가 되어 있는 서민의 영웅이라 치켜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부유한 동부연안 권력계급의 후손이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친척뻘로 어느 모로 보나 월가의 사람, 특히 바루크와 록펠러 집단의 사람이었다.
- 은행이나 기업의 지분에만 국한하지 않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면세재단에 부를 숨기는 것, J.PJ모건은 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음. 그런데 존 D. 록펠러는 달랐다. 콜로라도 광부들이 파업을 벌였는데, 그의 사설 보안요원들이 광부가 묵는 텐트에 총격을 가해 무장하지 않은 노동자와 아이들 1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 그 일을 둘러싸고 악성소문이 나돌자, 주변에서 면세재단을 통해 부를 관리하는 것이 홍보차원에서 이롭다고 존 D. 록펠러를 설득했다. 13년 이후 록펠러의 사업고문 프레더릭 게이츠는 록펠러에게 면세기금을 활용하는 식으로 면세재단을 통해 부를 관리하라 제의. 문화적 소양 따위는 없지만, 어쨌거나 박애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미국판 메디치 가문처럼 록펠러 가문의 권력과 위세를 키우라는 것이었다
- 39년말 록펠러가는 매우 위력적 정책집단을 하나 꾸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지 불과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때이자 미국이 2차대전에 직접 참전하는 계기가 되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두 해나 앞둔 시점이었다. 록펠러 세력이 설정한 그 비밀집단의 임무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며, 미국이 그 전쟁의 그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지배적 세계권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전후 미국의 정치경제적 목적을 정하는 일이었다. 뉴욕 외교협회 산하의 전재오가 평화연구 집단은 일손이 부족한 미 국무부를 대신하여 중요한 전후계획을 도맡아 짰다. 42년 이후 이 집단의 회원 대부분은 슬그머니 미 국무부 고위직에 기용되어 연구를 이어나감. 39년 11월부터 42년말까지, 록펠러재단은 전쟁과평화연구 집단에 35만불이나 되는 거액을 기부해 전후에 경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게 했다. 그것은 록펠러가가 실행한 대부분의 박애주의적 투자나 마찬가지로 나중에 수천배로 거두어들일 수지맞는 투자였다. 그 연구는 전후 미국이 산업제국을 일국 차원을 넘어 세계차원에서 정의했다. 그들이 주창한 미국의 세기란 기실 록펠러제국이나 다름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다수 미국인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 록펠러가 자금을 댄 전쟁과평화연구집단이 전후 세계와 관련해서 정한 목적은 결코 감상적인 것이 아니었음. 경제와 금융 소위원회가 외교협회와 국무부에 제출한 비망록 '메모 E-B19'는 이렇게 단호히 말하고 있음.
"우리가 확실하게 권력을 틀어쥘 전후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한시바삐 완벽한 재무장 계획을 완료하는 것이다. ... 미국과 서구 국가의 경제번영과 안정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영역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탓에, 다른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확실하게 제한하기 위해서이다."
그때부터 60년뒤인 02년 9월 , 부시 행정부는 이것을 거의 토씨 하나 고치치 않고 고스란히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으로 채택
- 히틀러뿐 아니라 영국의 라운드테이블 소속 엘리트들도 그들의 상대적 권력방정식을 오판했음. 그러나 록펠러 형제와 그들이 주도한 외교협회의 전쟁과평화연구 집단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권력집단만은 달랐다. 그들은 만약 영국이 어떤 식으로든 크게 상처받지 않고 전쟁에서 이긴다면 미국의 헤게모니는 몇십년 동안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 정확히 판단. 그것만큼은 그들이 반드시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전후에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게될 경쟁국 독일 역시 제거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려면 독일이 적어도 처음에는 충분한 연료를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스탠더드오일 집단이나 록펠러 은행가들이 무슨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세력균형을 판단한 결과이자 미국 기득권세력 스스로 지정학적 과제가 무엇인지 이해한 결과였음.
- 외교협회의 전쟁과평화연구 집단을 이끈 이사야 보면은 어떤 유럽국가의 육군도 러시아 중심지역으로 파고들기를 꺼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 그러므로 독일과 러시아가 파괴적 소모전을 치르면서 서로 싸우게 만들려면, 독일의 루스트바페와 전차부대가 안심하고 전쟁에 임할만큼 충분한 연료를 확보할 수 있어야 했다.
- 록펠러가문, 해리먼가문, 부시가문이 히틀러의 병력증강을 전략적으로 적극지원한 것은 훨씬 더 야심찬 음모의 일환이었음. 그들이 노린 목적은 결코 독일이 승리하도록 밀어주자는 것이 아니었음. 세계를 초토화한 뒤 그 잿더미 속에서 미국의 세기, 좀 더 분명히 말하면 록펠러의 세기가 떠오르게 해줄 세계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음. 부시, 록펠러, 해리먼, 듀폰, 딜런은 모두 초이게 그들의 웅대한 지정학 구상을 실현하려고 발벗고 나서서 제3제국을 밀어주었다. 그 구상이란 유럽의 강대국, 특히 독일과 러시아가 동시에 자멸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음. 어느 영국 전략가의 지적대로, '서로 죽을 때까지 피 터지게 싸우도록' 유도해 결국에 가서 미국의 세기에 헤게모니를 내주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록펠러가 전쟁과평화연구에서 얻은 진짜 결론이었다.
- 전쟁이 끝나고 루스벨트가 사망한 뒤 의회의 기밀기록과 문서들이 공개됨. 그것을 살펴보면 루스벨트와 그의 전쟁관 헨리 스팀슨이 일본으로의 석유공급을 봉쇄하고 일본의 팽창에 맞서 태평양에서 군사행동을 준비함으로써 일부러 일본의 참전을 자극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 자료들은 루스벨트가 진주만 폭격이 있기 며칠전부터 이미 일본해군 선발부대의 소상한 세부사항이며 정해진 공습시각까지 샅샅이 알고 있었음을 말해줌. 또한 루스벨트가 일본의 침략을 부추기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2차대전이 끝난 46년에 켄터키주 상원의원 앨번 바클리가 이끄는 미 의회의 진주만 공격에 관한 진상조사위원회는 미육군진주만위원회에서 보고서 한 부를 건네받았다. 일급기밀로 분류되어 있다 몇년이 지난 뒤 기밀이 해제된 문건이다. 그 보고서는 루스벨트 대통령, 루스벨트 행정부, 그리고 전쟁장관 스팀슨을 신랄하게 비난. 41년 1월, 미 해군제독 제임스 리처드슨과 허즈번드 E. 킴멜은 미 해군 참모총장에게 공동으로 작성해 보낸 편지에서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 그 일이 실제 일어나기 열한 달 전의 일이었다. '일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격해올지 모릅니다. 그 공격은 어떤 형태든 띨 수 있습니다. ... 일본은 운송중인 선박, 외따로 떨어진 미국의 해외기지나 해군부대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진주만을 기습공격한다거나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루스벨트가 41년 7월 26일 대통령령을 발표해 미국내에 있는 일본의 자산을 동결한 일이었다. 이 대통령령은 모든 금융거래와 수출입 무역거래를 미국 정부의 지배아래 두었는데, 거기에는 일본의 이해도 걸려 있었다. 이로써 미국과 일본의 무역은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는 이 대통령령을 일본에 대한 도발행위로 간주했다.
- 41년 일본이 진주만과 미 육군항복대의 부머(핵추진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함대를 공격한 결과, 2403명의 미국인이 죽고, 1178명이 다쳤으며, 함선이 18척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전투기 188대가 손상을 입거나 격추되었음. 그 일이 일어나기 2주전인 41년 11월 26일, 루스벨트는 일찌감치 처칠에게서 진주만 공격이 임박했느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긴박한 정보를 직접 전해들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루스벨트는 도리어 진주만 함대의 대공방어능력을 제거하는 식으로 대응. 이것은 일본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고의적으로 취한 조치였음. 41년 11월 26일 처칠이 루스벨트에 보낸 문건은 그들이 주고받은 문서들 가운데 지금까지 국가안보를 이유로 공개되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처칠의 워싱턴 대사 핼리팩스 경의 비망록에 따르면, 그 문건에는 처칠이 루스벨트에게 12월 7일에, 정확한 도쿄 시간으로는 12월 8일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계획이라고 분명히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루스벨트와 그의 고문들은 일부러 일본이 하와이의 미 해군기지를 공격하도록 충동질. 미국의 세기를 구축하기 위한 전쟁에 아무 영문도 모르는 평범한 미국 시미들을 저항없이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은 전쟁과평화연구 집단이 마련해놓은 전후의제를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역사가들이 2차대전이라 부르게 되는 바로 그 전쟁이다.
- 록펠러 일가와 선견지명 있는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 보기에 2차대전 이후이 세계권력은 더이상 식민지에 대한 군사적 지배로 판단할 수 없었다. 대영제국과 유럽제국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 체제임이 드러났다. 세계권력은 이제 경제적 차원으로 정의되었다. 즉 세계 권력은 하버드 조지프 나이가 훗날 소프트파워라 표현한 것, 그것에 기초했음. 그 소프트파워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와 세계에서 가장 우세한 금융권력이 단단히 뒤를 봐주었다.
- 외교협회의 주도세력과 록펠러 집단을 축으로 하는 국제주의자들이 떠안은 역할은 전쟁과평화연구(전후 미국의 세계패권, 즉 미국의 세기를 위한 소상한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했다)에 자금이나 인력을 대준 방침과는 분명 앞뒤가 맞지 않았음. 록펠러 일가, 스탠더드 오일, 다우케미컬이나 듀폰 같은 기업은 사업과는 비교도 안 될 공을 들여가며 제3제국의 군비증강을 드러내놓고 도왔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이해하려면 외교협회의 이사야 보먼이나 예일대학의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같은 이들의 시각으로 미국의 지정학 전략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들은 영국인 매킨더의 지정학을 미제국의 지정학과 버무려 그들만의 고유한 견해를 개발해냈음. 그들은 미국이 전후에 세계적 패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즉 미제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거들어줄 주요 국가를 골라냈음. 외교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엘리트에게 전쟁이란 그저 전후세계에서 그들의 금융제국을 널리 확장하려는 정책을 실현하는 도구요, 대영제국뿐만 아니라 독일제국, 아니 그 어떤 유럽의 잠재적 강국이든 간에 아무튼 그네들의 경제생활권을 빼앗아 새로운 미국 경제생활권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스파이크먼이 말했다시피, 전쟁을 치르고 난뒤 새로운 시장을 정복함으로써 더 넓은 미국 경제생활권을 확보하고자 한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란 그저 잠정적 휴전상태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 그들이 어떤 해당 영역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해당 영역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닫고 새로운 정복전쟁을 일으킬 때까지만 지속되는 휴전상태 말이다
- 결국 역사가 2차대전이라고 기록하게 되는 이 비극은 세계패권을 서로 차지하려고 상호모순된 지정학 전략들이 거대하게 충돌한 결과. 영국인들은 유럽대륙을 분할하고 바다를 통제한다는 전통적 지정학 전략을 고수했음. 처칠은 독일에 맞서기 위해 주요 경쟁국 가운데 강국인 미국과 연대한다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그것만이 대영제국을 주도적인 세계권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임. 이처럼 영국이 약한 적국에 맞서기 위해 강한 적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영국의 세력균형 외교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은 큰 위험이 따르는 결정이기도 했음. 그러나 처칠과 라운드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그의 동지들은 현실주의자였음. 그들은 대영제국은 이미 끝났으며, 오직 워싱턴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간접적 방식으로만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처칠과 부스벨트 간의 특별한 관계는,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다소 복잡해졌음. 록펠러 일가와 월가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핵심세력은 세계권력을 노릴 법한 유럽국가들이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다 한꺼번에 공멸하도록 몰아갈 작정이었음. 특히나 그들은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이 무너지면서 생긴 중유럽의 세력공백을 독일제국이 차지하러 나설지 모를 싹을 잘라버리고자 했다.
- 처칠이 반히틀러 세력을 지지하기는커녕 격려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전쟁과 수많은 패러독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영국 지정학의 핵심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체임벌린이나 처칠이나 가장 기본적 전략적 요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같았다. 그들이 판단한 대로, 영국의 지정학적 이해는 히틀러 자체에 의해서도 위협받았으나, 그보다 더하다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꼭 그만큼이나, 군부/관료집단/산업계 내의 반히틀러 세력에 의해서도 위협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반히틀러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파괴적인 전쟁을 피하려 들 테고 독일이 유럽 대륙에서 가장 주도적인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 이것이 바로 처칠의 판단이었다. 독일 외무장관 리벤트로프의 영국 담당 고문역 헤세가 아주 예리하게 지적했듯, 유라시아 대륙을 차리하려고 나대는 한 독일은 영국 지정학의 첫째가는 적국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을 비롯한 그 어느 유럽국가도 경제적 수단을 통해서든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든 유라시아 대륙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막는 거, 그것이 1904년 핼포드 매킨더 경이 세계의 심장(소련과 동유럽지역)에 관한 논문을쓰기 훨씬 전부터 영국 지정학이 추구해온 세력균형론의 기본원리였음. 처칠과 영국 수뇌부의 판단에 따르면 독일국방군이나 독일 대기업내의 히틀러 반대파(이를테면 크루프, 티센, 도이체방크를 필두로 한 독일은행들) 역시 영국에게는 동일한 지정학적 현실의 좀더 부드러운 판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경제를 통한 평화적 침투라는 점만 다를 뿐 중유럽에 독일 경제생활권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처칠을 위시한 영국세력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라시아의 경제생활권을 지배하는 좋은 독일은 나치 독일보다 대영제국에 한층 더 큰 위협이었다. 영국의 지정학은 결코 감상적이지 않았다. 파머스턴 경은 100년도 전에 영국 의회의 어느 토론장에서 이렇게 설파했음. "우리에게 영원한 친구는 없다. 마찬가지로 항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은 영원하고 항구적이지만, 우리의 임무는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다. 영국에는 오직 이익만 있을 뿐 친구는 없다."
- 2차대전이 낳은 가장 극적인 결과는 150년 동안이나 세계를 지배해온 대영제국의 몰락이었다. 좀 더 넓은 지정학 관점에서 보자면, 1차대전이 시작된 14년부터 2차대전이 끝난 45년까지, 매킨더에게 지정학을 배운 영국인 피터 테일러의 말대로, "독일과 미국이 영국을 승계하기 위해 다툰" 시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옳다.
- 미 정부는 9월 2일 적잖은 생필품이 이미 영국에 당도해 수송 중일 때 갑작스레 렌드리스를 중단. 영국은 전쟁 직후 물자가 절실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자까지 2% 물리는 등 몇 가지 조건으로 40억불을 대출해주겠다고 제의했음. 이로써 영국이 영연방국가들과 해온 특혜관세 무역은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전후 세계무역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역할은 크게 약화되었다. 영국은 미국의 전후 재정원조에 기대고 있는 신세였다. 동부연안 권력계급 중에서도 국제주의자 집단이 주도하는 미국은 전후 세계를 이끌어가자면 전 세계를 주름잡던 시티오브런던의 전문적 식견과 협조가 반드시 필요다가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음. 45년 이후 영국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몇몇 관측자가 이미 미국의 세기, 즉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르고 있는 그 체제에서 명백한 하위 파트너로서 미국가 특별한 관계를 발전, 심화시키는 식으로만, 즉 오로지 간접적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후 미국의 헤게모니를 떠받치는 양대기둥인 금융과 화폐는 45년 이후 미국의 세계지배를 보장해주는 데서 그 두가지 못지 않게 중요한 군사력에 기대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새로 동맹을 맺어 부상하는 미국의 세기를 위협하지 못하게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5년에 미국의 동맹국이던 나라들이 10년이나 20년뒤 치명적 적국으로 돌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워시언은 영국의 렌드리스 원조를 포기하기 불과 4주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미국은 그 사이 전쟁사상 가장 위력적인 무기를 몰래 개발해왔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적을 박살내기 위해서는 가공할 무기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을만큼 무모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주게 된다.
- 워싱턴 당국이 가공할 신형무기를 투하한 뒤, 트루먼은 "10만명의 미국 젊은이의 생명을 지키려고" 군 수뇌부의 제언에 따라 결정한 일이라고 우겼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의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특히 러시아의 스탈린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속셈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떨어뜨린 것은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해 항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음. 일본은 이미 무릎을 꿇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미국의 군사력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소련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원폭투하는 소련과 미국이 이른바 냉전에 들어서게 한 도화선이었다
- 권력관계가 재편되었음을 부각하려고 45년 11월 트루먼은 영국 수상 클레먼트 애틀리에게 워싱턴 당국은 영국이 전쟁으로 파탄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요청한 60억불의 무이자대출을 거부한다고 밝힘. 트루먼은 대신 금리 2%에 37억 5천만 달러만 대출해주기로 했음. 뿐만 아니라 워싱턴은 원자력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힘. 전시에 캐나다, 영국과 원자력 개발에 협조하기로 한 퀘벡협정을 번복한 것. 퀘벡 협정은 개발된 폭탄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협의하도록 규정. 미국정부는 심지어 가장 가까운 동맹국과도 원자력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겠노로가 선언했음
- 일본에 폭탄을 투하했지만 스탈린의 러시아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누그러지는 기색이 없었다. 스탈린은 미국 정부 최고위층 내에 KGB 스파이를 심어두었고, 그들을 통해 미국의 원폭 프로젝트에 대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소련 스파이들은 소련 과학자들에게 원폭 제조에 필요한 세밀한 계획서를 비밀리에 넘겨주었다. 러시아는 그때부터 불과 4년만인 49년에 자체 개발한 원폭을 터뜨림으로써 미국과 세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바야흐로 냉전이라 불리는 핵 대치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 미제국, 즉 미국의 세기는 1815년 이후의 대영제국과 매우 흡사한 제국이었다. 다만 자유기업, 민족자결, 민주주의를 보급한다는 그럴싸한 허울 아래 본색을 숨기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그들은 용의주도하게도 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피했다. 미 국무부, 백악관, 그리고 대외정책 기관에 속한 미제국의 설계자들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제국이라고 볼 수 없다고 교묘하게 사기를 쳤음.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이론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록 비공식적 제국이기는 해도 오갈 데 없는 제국이었다. 그것은 전후체제의 기둥인 달러를 통해 세계금융에서 수행하는 미국의 역할에 기반을 두고 압도적 군사우위에 의해 뒷받침되는 제국이었다. 그들의 사기는 정말이지 잘 먹혀들었다. 그것은 일면 미국의 기득원 세력이 자기네가 정복하려는 나라(시장)의 부호나 타락한 엘리트들에게 섭섭잖은 떡고물을 흘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간파했기 때문이기도 함. 아무튼 45년 이후 전개된 체제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성장일로의 수많은 속국으로 이뤄진 체제였다. 속국의 주요 부호계급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러저러하게 미국 정부와 미 국방부의 아량에 기대고 있는 체제 말이다. 그 아량으로는 흔히 미국에서 훈련받은 비밀경찰, 암살단, 적시의 쿠데타 따위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식민지를 점령하는 체제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지배방식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미국의 세기는 식민지 점령국이 아니라 종속적 속국을 거느린 비공식적인 제국이 될 판이었다. 지난 100년의 미국역사는 점점 더 막강해지는 금융엘리트 카르텔과 그들이 꽉 쥐고 있는 거대 산업트러스트가 이끌어왔다. 국가의 이익이나 전 국민의 이익보다 그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전략적 우선순위가 매겨졌다. 그들은 미국의 언론매체를 완벽하게 틀어쥐었으며, 선전 전문가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이 바로 국익인 양 그렸다. 국가가 최선을 다하리라 믿는 대다수 미국인은 그 선전에 속아 넘어갔다.
- 브레턴우즈 체제는 세 기둥을 축으로 구축될 계획이었다. 첫째, 국제수지가 악화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긴급준비금을 회원국 분담금으로 조성하는 국제통화기금, 둘째, 회원국 정부가 대규모 공고읖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차관을 공여하는 등장한 것으로, 다국적 관세 인하 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자유무역이라는 의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고안한 관세무역일반협정이다. IMF는 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회원국에 통화로든 금으로든 분담금을 내라고 요구. 각 회원국은 IMF 전체 기금에 기여한 몫에 따라 이사회에서 비례적 표결권을 얻는다. 이것은 처음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게임이었다. 최대의 금 준비금을 보유한 경제 최강국 미국은 전체 표결권의 28%, 영국은 13%를 확보했다. 반면 프랑스의 표결권은 5%에 그쳤다. 새로운 IMF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자기네 구도대로 전후 세계의 경제발전을 이끌어가기 위한 도구였다. 결국 미국 정부는 영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IMF나 세계은행 같은 새로운 제도와 관련한 투표권, 규정, 그밖의 주요 측면에서 자기 뜻을 관철했음. 미 재무부가 사실상 새로운 IMF를 좌우하게 되었음. 투표권은 각 나라가 IMF에 얼마나 기부했는가에 비례. 최초의 29개 창립회원국 가운데 최대 경제부국인 미국은 단연 IMF의 최대 기금출연국이었고, 이사회 최대의 투표권 군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던 것. 새로운 IMF규약에 따라, 미국은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이 반대하는 결정이라면 무엇이든 저지할 수 있었다. 미 정부는 막강한 투표권을 이용해 중요한 IMF 이사회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그에 따라 전반적인 정책을 미 재무부와 월가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갔다. 미국이 새로운 전후 통화게임의 규정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IMF본부는 워싱턴 내 미 재무부와 지척 거리에 들어섰다. 스탈린이 45년 이후 IMF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브레턴우즈에서 미국 협상단이 얼마나 솜씨 좋게 전후 달러제국을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졌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미국의 국제통화 전문가를 제외하면 극소수에 그쳤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국제통화제도를 미국에 우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따라서 미국에게 브레턴우즈는 초창기의 금본위에 견주면 한결 개선된 체제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다른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통화가치를 금이 아니라 미 달러에 연계했다. 미국이 달러를 세계에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는 미 정부, 즉 미 재무부와 연준이 자기들 편한 대로 결정했다. 한 세기 전에는 파운드가 금 못지 않게 좋았는데, 45년에는 달러가 금 못지 않게 좋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뒤에는 이 국제금융의 원칙이 비극적인 착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남. 어쨌거나 45년 당시에는 달러가 금 못지 않게 좋았던 게 엄연한 현실. 유럽 각국은 망가진 하부구조를 재건하기 위해 달러 신용대출에 목말랐다. 그 나라의 통화는 타국 통화와 교환할 수 없었으며, 그들의 경제는 피폐해짐. 13년 창설된 이래 월가 머니트러스트가 장악해온 뉴욕 연준은 비공산권국가의 화폐용 금 대다수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명실상부한 브레턴우즈 체제의 구심이었음. 브레턴우즈 통화제도는 특히나 미국에 이로웠다. 실제로 미 달러가 정식으로 준비통화로 떠오르자, 다른 나라들은 자국 통화를 미 달러에 연계시켜야 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타국 통화와 교환할 수 있게 된 나라들은 IMF 규정에 따라 환율변동폭을 45년 현재 미 달러에 대한 환율의 +-1% 내로 유지하기 위해 달러를 매매해야 했다. 세계 금융제도에서 미 달러는 전전의 금본위제 아래 금이 맡던 역할을 대신. 이것은 실제로 세계무역이 거의 전적으로 미 달러로 거래된다는 것을 의미. 새로운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무제한적 권한을 쥐고 있으며, 달러를 새로 발행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구속에서도 자유로운 미국은 그 덕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게 됨. 45년 이후 영국은 미국 정부와 월가가 세계 화폐에 행사하던 그 같은 일방적 권력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 한국전쟁은 냉전이라는 워싱턴 정부의 의제에 훌륭하게 기여했음. 미국 국방예산을 한국전쟁이 시작될 무렵 연간 130억불에도 못 미쳤지만, 그 전쟁이 끝난 53년에는 600억불을 웃돌았음. 장제스가 이끄는 타이완정권, 이승만의 남한정권, 맥아더(당시 그의 보좌관은 존 D. 록펠러 3세)가 이끄는 미군정은 냉전시대에 동아시아에서 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일본산업은 아시아에 공산주의를 막는 요새를 제공한다는 명분아래 거대 재벌그룹으로 재편될 수 있었다. 연간예산이 600억불에 이르는 미 국방부는 방위 준비태세를 위해 일본과 일부 선별된 유럽, 일본의 산업체에 수십억불어치를 발주하는 세계 최대의 도급자로 부상. 50년대에 군산복합체가 대규모로 성장. 냉전의 최대 수혜자는 한껏 기세를 떨친 스탠더드 오일이었다. 스탠더드 오일은 국방부의 항공기, 탱크, 지프 따위에 연료를 공급. 미국 정치인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나 신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에 맞선 국가방위만 들먹이면 의회가 거의 어떤 안도 무사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했다.
- 전시에 대영제국의 자리를 빼앗아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차지하려고 미국가 열띤 쟁탈전을 벌이던 독일은 45년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면서 한껏 몸을 움츠린 상태였음. 그리하여 워싱턴 정부와 월가가 전후에 맨 먼저 주력한 것은, 잔뜩 기운이 빠지긴 했으나 여전히 가공할만한 적국으로 부상할 소지가 있는 영국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음. 그들은 겉으로는 줄곧 영미의 우정과 특별한 관계를 내세우면서도 천연덕스레 그 일을 해냈다. 미 정부는 전시에 둘도 없는 우방이던 영국을 운이 다하면 내쳐라는 식의 마피아식 관례에 따라 대했다.
-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사건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영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던 중동지역을 공략한 일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집단에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석유를 보장해주려고 처칠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바 있음. 그런데 미 정보당국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영국-이란의 석유합작회사와 민족주의적 이란 수상 모사데크간의 갈등을 통해 어부지리를 얻고자 했다. 자국의 석유를 국유화하려던 이란과 이란 유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던 영국을 동시에 훼방놓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
- 미국이 자유세계의 화폐제도와 경제제도를 지배하던 황금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음. 정확히 10년만에 브레턴우즈 체제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아이젠하워의 집권기이던 57년 발생한 경기후퇴는 달러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57년에는 20년전에 구축된 미국의 전시산업이 쇠락의 기미를 보였다. 그런가하면 50년대 말에는 서유럽국가 대부분, 특히 서독, 그리고 그만은 못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현대산업과 설비에서 위협적인 미국의 경쟁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서유럽은 더 이상 경제재건을 위해 미국 공산품을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을 뿐더러 57년 경에는 수출을 재개하면서 미국기업의 직접적 경쟁자로 떠오름. 미국 산업계나 금융계의 대기업들은 국내투자에 힘쓰기보다 강세인 달러로 이덕을 보려고 해외에 눈을 돌림. 57년 10월 소련이 미국보다 한발 앞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의 기술이 다른 산업국가에 뒤져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짐
- 케네디는 암살(몇 십년이 흐른 뒤 그의 암살은 CIA 요인암살단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짐) 당하기 다섯 달 전에,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중대선어을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 때 전쟁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런던은행에서 차관을 빌어오는 대신 이자 없는 미 재무부 채권, 즉 그린백을 발행한 바 있다. 꼭 그때의 링컨처럼 케네디 대통령도 63년 6월 4일 대통령령 11110을 발표했다. 의회표결이 필요없는 케네디의 대통령령 11110은 "재무부의 은 달러, 은괴, 은을 본위로 은증서를 발행하라"고 재무부에 지시했다. 이는 정부가 신규화폐를 유통시키려면 그에 상당하는 은을 재무부 금고에 비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케네디는 액면가 2달러와 5달러짜리 국채를 모두 43억불 쯤 유통시킴. 액면가 10달러와 20달러짜리는 유통되지 않음. 하지만 케네디가 암살당할 무렵 재무부는 10달러와 20달러짜리 국채를 인쇄하고 있었음. 대통령이 이자없는 화폐를 발행한 것은 링컨이래 초유의 일이었고, 대통령이 민간 연방준비제도의 독점적 화폐권력에 도전한 것도 처음이었다
- 닉슨은 세계 달러 보유자들에게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태환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를 뒤흔들 일련의 사건에 착수. 몇 주 안에 스미스소니언 협정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짐. 금 자체는 내재적 가치가 별로 없다. 금은 산업용으로 사용되며 보석으로서 가치가 있음. 그렇지만 각 나라는 금의 희소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금을 무역조건이나 그에 따른 각국 통화관계를 결정하는 가치기준 내지 가치 저장체로 삼아왔다. 닉슨은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역사상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라스베가스식 투기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71년 8월 이후, 세계 무역은 고정환율제라는 장기적 경제문제를 깊이 고민하는 대신, 다양한 통화가 저마다 변동하는 또 하나의 투기장으로 변모. 미국은 새로 달러를 찍을 때마다 이제 더이상 금으로 뒷받침할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달러를 발행할 수 있었다.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미국의 지폐 달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경기는 계속되는 것이다. 미국이 서방세계의 주요 군사대국으로 남아 있는 한, 세계는 인플레이션 된 미국의 달러를 받아들였다. 냉전 기간 동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미국과 연계된 나라들이 가끔 가다 잊어버리면, 미국 정부와 월가의 사절단은 무례한 방식으로 그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 결과 세계에 유통되는 미 달러의 총액은 60년대 말만 해도 꽤 안정세를 유지하다가 90년대 말에는 약 2500퍼센트라는 기하급수적 팽창률을 보임. 달러를 마구 찍어내다 보니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됨. 뉴욕 은행가들은 달러시장을 장악해야만 방대한 권력과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70년대 초의 금태환 중지와 그에 따른 변동환율제는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미국 금융권력에 앞으로 대책을 세울 때까지 약간의 시간말미를 준 데 그쳤다. 비효과적인 스미스소니언 협정으로 말미암아 72년경 대규모 자본이 달러를 떠나 일본과 유럽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상황은 더욱 꼬였다. 금 대비 달러 평가를 순금 1온스당 38불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42.22불로 10% 평가절하한 것. 이같은 평가절하로도 달러의 매각행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음. 그러던 차에 73년 5월, 스톡홀롬에서 조금 떨어진 휴양지에서 일급 비밀회동이 열림. 세계의 산업발전에 타격을 입히면서 달러의 수명을 다소 연장해주게 되는 모임이었다. 사실상의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록펠러 세력과 팽생 돈독한 친분을 유지)와 월가를 축으로 하는 워싱턴의 권력 엘리트들은 세계 무역과 금융의 구심이자 미 경제제국주의 전략의 핵인 달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세계 경제에 놀라운 충격파를 던지기로 했다
- 빌더버그 연례회의는 본래 54년 5월, 데이비드 록펠러, 조지 볼, 조지프 레팅거 박사, 네덜란드 왕자 베른하르트, 조지 C.맥기(미 국무부 외교가였으며, 나중에 록펠러의 모빌오일에서 최고 중역자리에 오르게 됨)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엘리트집단이 극비리에 만나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 첫 모임이 열린, 네덜란드 아른험 부근의 빌더버그 호텔 이름을 딴 연례회의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비밀리에 정책을 논의. 그렇게 해서 합의를 본 뒤 언론이나 매체에 조심스레 그 내용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은 빌더버그 회의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는 일이 없었다. 빌더버그 회의는 전후 영미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서 가장 효율적 수단이었다.
- 빌더버그 회의에서 미국의 연사로 나온 사람은 록펠러스탠다드 오일의 고문으로 록펠러가와 가까운 월터 레비였다. 그는 대서양 연안국가와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주제로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래에는 세계 석유를 소수 중동산유국이 공급하게 될 거라면서 그가 마치 예언자처럼 말했다.
"석유수입비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석유소비국의 국제수지가 크게 악화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부다비 같은 나라의 외환이 전례없는 수준으로 쌓이면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 "
"그리고 국제 석유회사들의 모국(영, 미)과 산유국, 석유수입국이 정치관계, 전략관계, 권력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런 다음 월터 레비는 OPEC의 석유수입이 40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머지않아 키신저가 이란 국왕에게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였다. 잘츠요바덴에서 빌더버그 회의가 열리기 한 해 전이 72년 5월, 이란국왕은 테헤란에서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를 만났음. 닉슨과 키신저는 원한다면 미국이 보유한 무기 가운데 핵무기 빼고는 어떤 군사장비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미 의회의 동의도 받지 않도록 면제해주겠다고 이란 국왕에게 약속했다. 이란국왕은 막대한 군사장비를 사달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은 석유수입을 확보해야 했다. 물론 이란의 은행이자, 국왕의 개인은행이자, 국린이란석유회사의 은행이자, 팔레비 일가의 은행이자, 팔레비재단의 은행은 바로 체이스맨해튼뱅크였다. 팔레비 정권의 금융제국은 속속들이 록펠러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 73년 5월 빌더버그 회의에 모인 유력인사들은 미국 금융세력과 달러에 유리하도록 세력균형을 되돌려놓기 위해 세계 산업발전을 거스르는 대대적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가장 소중한 전략무기를 선택. 바로 세계의 석유흐름을 장악하겠다는 것이었다. 빌더버그의 정책이란 놀랍게도 그로부터 다섯 달 뒤인 73년 10월 국제유가를 대폭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이 외교력을 써서 세게적인 석유수출금지를 선언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석유사들이 전후이 석유시장을 석권함에 따라 45년 이후 세계 석유무역은 국제관례에 의거해 달러로 거래됨. 따라서 국제유가가 갑작스레 치솟는다는 것은 유가를 지불하는 데 필요한 미 달러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것을 뜻했음. 그렇게 되면 엑슨오일, 모빌오일같은 록펠러의 석유사들이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떠오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쥐고 있는 은행(체이스맨하탄뱅크와 시티뱅크 등)도 세계 최대의 은행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록펠러가 주도하는 미국 금융 기득권 세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석유권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의 터무니없는 계획은 장차 그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안겨주게 된다. 어느 누구도 그 같은 일이 고의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었다.
- 달러체제의 첫 단계는 석유달러 통화라 부를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달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거래되는 세계시장에서 유가를 400% 인상하고, 유로달러의 국외 피난처인 시티오브런던에 있는 미국 은행, 영국 은행, 그 밖의 소수은행이 그 석유달러를 재순환하는 고수익사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70년대 말까지 이어졌음.
달러체제의 두번째 단계는 79년 10월의 볼커 금리쿠데타에서 시작되어 대략 89년까지 지속됨. 8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대략 89년까지 지속됨. 8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월가 은행들이 자산을 빼앗아 달러화할 여지가 드넓게 열린 시기다. 더불어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인 중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세계경제 전반이 대폭적인 임금삭감 물결에 휩싸임. 그 여파는 특히 산업국가 전반에 기세좋게 번졌음.
달러체제의 세번째 단계는 97년 정치적으로 구동되는 헤지펀드가 고도성장중인 동아시아 호랑이 경제(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에 이르는 신흥중진국)의 취약한 통화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대체로 이 단계는 새로 있을지 모를 투기성 공격에 대비해 달러 준비금을 마련해두려고 아시아의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미국에 대거 유입시킨 것과 관련이 있었다. 98년 이후 아시아 자본 수천억 달러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가자 99-02년에 미국의 IT 주식시장이 거품에 휩싸였다. 달러체제의 마지막 단계는 앨런 그린스펀의 금융혁명에서 시작되었다. 그린스펀은 01년에서 02년 사이 IT 주식시장의 거품이 붕괴된 뒤, 신규채를 발행하기 위해 금융자산, 모기지자산과 다른 증권자산에서의 혁명을 적극 밀어붙였다. 그린스펀이 이끈 이른바 증권화 혁명은 07년 부동산증권화 거품이 꺼지면서 막을 내렸다.
- 카터 행정부의 요직을 삼각위원회 회원들이 쓸어가는 바람에 일부 주요 언론은 카터의 대통령직을 삼각위원회의 대통령직이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좀 더 정화갛게는 데이비즈 록펠러의 대통령직이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카터의 후임자 레이건은 재직기간 내내 탈규제와 민영화를 국정의 기치로 내걸었는데, 탈규제와 민영화라는 그 기나긴 과정을 처음 시작한 것이 바로 카터였다. 일설에 따르면 제럴드 포드는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럼스펠드의 조언에 따라 넬슨 록펠러를 76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삼지 않기로 했다. 주목할 만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비즈 록펠러는 일본 교토 회의에서 삼각위원회의 동료 회원들에게 민주당의 지미 카터를 차기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 79년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쿠데타가 일어난 해다. 록펠러 일가, 볼커, 머니트러스트의 부호들은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을 몰아내는 통화 충격요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은 본디 그들이 73년 빌더버그 유가 인플레이션 결정을 내린 데 원인이 있었다)을 구실로 내걸었다. 사실 고금리 정책은 부유한 기득권층이 추진한 것이다. 고금리 정책은 대공황기에 그들이 케인스식의 사회복지국가 건설, 사회보장, 정부의 노조지지 등에 의해 정부에 빼앗긴 자기네 이익을 되찾고자 한 장기전략의 일환이었다.
-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선진국과 발전도상국에 치명적 영향을 끼쳤다. 80년대 초에는 전 세계적으로 철도, 고속도로, 교량, 하수도, 발전소 같은 인프라에 대한 정부자금의 장기지출이나 자본투자가 크게 줄어듬. 국제철강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75년 첫 오일쇼크 때부터 85년까지 주요 산업국가가 공공인프라 건설에 쓴 정부지출은 70년 중반의 절반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세계 철강생산, 톤마일 단위로 측정된 총 해상운송량 같은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경제흐름 지표를 보면, 영, 미의 통화 충격정책이 산업발전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음. 세계 철강업은 30년대 이래 최악의 불황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볼커의 통화 충격요법과 그에 따른 미국 경제의 퇴조는 카터의 이란인질협상에 대한 공화당원들의 사보타주와 함께 카터 대통령이 8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패하는 요인이 되었다
- 정확히 의도한 바대로, 미국 금융세력은 볼커의 충격요법을 통해 다시 한번 헤게모니를 잡음. 볼커가 82년부터 고금리정책을 확실하게 밀고 나가자, 높은 이자소득을 노리고 미국의 채권과 자산에 투자하려는 해외자본이 속속 유입되면서 달러의 위세가 살아났다.
- 벌커가 실시한 통화충격요법의 결과로 리보금리가 몇 달 새 3배쯤 오르자 뉴욕이나 런던의 국제은행에서 변동금리로 달러를 빌린 채무국들은 더 이상 채무를 이행할 수 없었다. 이것이 정확히 2000년 이후 뉴욕은행들이 유인금리니 변동금리모기지니 하는 속임수로 주택 모기지 증권화거품을 일으키며 고스란히 되풀이한 시나리오다. 그러자 주요 뉴욕은행들과 미 재무부는 IMF를 개입시켜 채무국에 대처하게 했음. 제3세계 부채위기라는 잘못된 이름 아래 희대의 약탈극이 펼쳐짐. 80년대에 거대은행들이 거기서 벌어들인 이득은 00-07년 모기지증권화 사기극에서 챙긴 이득 다음으로 컸음. 볼커의 통화 충격정책이 그 위기를 촉발한 장본인이었으며, 뉴욕과 런던의 주요 은행들은 그 부채위기를 통해 큰 이득을 챙김
- 86년경, 미국 국내경제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볼커의 연준이 귀 얇은 국민들에게 미국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며 7년 동안이나 무자비한 고금리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임. 미국 대부분 지역이 제3세계나 다를 바 없이 슬럼가 확산, 두자릿수 실업, 범죄율 급증, 마약중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연준이 실시한 어떤 연구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55%가 순채무상태였음. 연방예산 적자는 그때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치인 매년 2000억 달러씩 늘고 있었다. 데이비드 록펠러의 추종자 볼커가 워싱턴에 파견된 것은 단 한가지 목정. 세계 준비통화로서의 역할을 위협받는 자유낙하하는 달러를 구제하고, 미국 엘리트 사회 상부에 포진한 부호들의 채권시장을 보호할 것. 이것은 소수 과두체제가 대공황기와 그 이후 하류층에게 넘겨준 이권을 탈환해오기 위해 일으킨 혁명이었다.
- 미국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해외투자자들이 미국 채권을 매입해 이득을 보려고 물밀듯이 몰려듬. 채권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금융제도의 핵이었음. 볼커가 경제에 도입한 충격요법은 뉴욕의 금융계에만큼은 크나큰 이득을 안겨줌. 볼커는 기대이상으로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 79년부터 85년말까지 달러의 가치는 독일, 일본, 캐나다 등의 통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상 최고수준으로 치솟음. 미 달러가 과대평가되자 세계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졌고, 미국 공산품 수출은 큰 타격을 입음. 79년 10월 이후 볼커가 실시한 고금리정책의 여파로 미국 국내 건설은 크게 퇴조. 미국 제조업자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해외에서 외주생산을 하면서 국내 자동차산업과 철강산업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음
- 워싱턴, 뉴욕, 캘리포니아에서 후기산업사회라는 새로운 도그마가 번지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번영은 더 이상 최신식 산업능력을 키우는 투자와 상관이 없어짐. 철강산업이 녹슬어가고 용광로가 사실상 폐쇄되면서 철강은 사양산업 선고를 받음. 쇼핑센터, 호화찬란한 애틀랜틱시티나 라스베가스 도박장, 고급 휴양호텔 등지로 돈이 몰림. 투기광풍이 몰아친 레이건 집권기의 대부분 해에 흥청거리는 이 광란 속으로 외국돈이 흘러들어옴. 80년대 중반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에서 14년 이래 처음으로 순채무국으로 돌아섬. 부채는 저렴했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미국 가정들은 주택, 자동차, 전자제품 따위를 구매하느라 기록적인 빚을 졌다. 미국 정부 역시 막대한 세수손실과 레이건의 방위증강에 돈을 대느라 부채의 수렁속으로 빠져들음. 83년 미국 정부의 연간 재정적자는 2000억불이라는 공전의 수치를 기록. 기록적 적자행진이 지속되자 국가부채도 덩달아 증가. 그 돈은 고스란히 월가의 채권거래자와 그들 고객의 이자수입으로 돌아감. 미 정부가 총 부채에 지급한 이자는 80년 520억불에서 86년 1420억불로, 6년만에 3배 가까이 증가. 정부세입의 20%에 해당하는 액수다. 부동산이나 주식같은 투기성 이득을 노리거나 가치가 오른 달러의 덕을 보려고 독일,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지의 돈이 대거 미국으로 흘러감
- 87년 10월 19일 주가폭락에서 주목할 점은 그 낙폭의 규모가 엄청났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연준이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금융도구를 갖고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튿날, JP 모건 등 뉴욕은행의 신임하는 동지들을 통해 국민들 모르게 개입했다는 사실. 당시 주식시장이 회복되는 듯한 가시적 조짐이 나타난 것은 다우존스 시장이 잇따라 거래를 종료하고 있던 10월 20일 정오, 시카고의 파생금융상품인 뉴욕 증권거래소 우량주식의 MMI 지수선물이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스마트머니가 회복되는 조짐이라 해석. 증권업자들이 조심스레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음. 주식시장은 거꾸로 반등하기 시작. 차익거래자들이 기초주식에 대한 거래를 재개하면서 그것들을 사들였고, 프리미엄 가격에 MMI 지수선물을 매도. 뉴욕주식시장은 마치 마술처럼 아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극적으로 회복.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과 달리, 이것은 시키고 MMI 선물거래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린스펀과 그의 뉴욕 금융동지들은 똑같은 파생상품 거래모형을 써서 이번에는 거꾸로 주식시장이 회복되도록 일을 꾸몄다. 즉 그들이 불과 며칠전에 주식시세를 바닥까지 끌어내린 것처럼 이번에는 주가를 가파르게 상승시킨 것이다. 바야흐로 파생금융상품의 시대가 열렸음.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조작의 세계였다.
- 아시아 위기는 달러에 강력하고도 긍정적 영향을 끼침. 국제결제은행의 앤드루 크로킷이 말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96년에 모두 330억 불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투기성 핫머니가 유입되자 98-99년에는 경상수지가 870억불이나 흑자로 돌아섰다." 02년께 경상수지 흑자는 인상적인 수치인 2000억불로 증가.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은 그 흑자분을 미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는 데 썼다. 그 돈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미국 정부의 정책에 자금을 대주고, 미국의 금리를 끌어내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닷컴 나스탁 IT 거품을 부채질했다.
- 99년 글래스-스티걸법이 폐기되고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신용시장은 규제받지 않는 세계 최대의 사채창출기구로 완전히 탈바꿈했음. 신금융은 비록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서로 긴밀하게 결탁한 경기 참가자들의 카르텔 위에 구축되었다. 그들은 그린서픈이나 JP 모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뉴욕 주요 금융사에 있는 그의 동지들이 짠 각본대로 움직였다. 증권화를 고안해낸 이들은 다가오는 세기를 앞두고 그 증권화가 새로운 미국의 세기와 미국의 금융지배를 더욱 공고히 해주리라 확신. 그린스펀의 노골적 지원과 함께 이 금융혁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바로 미정부를 구성하는 입법, 사법, 행정부가 대법원가 공모하고 있다는 점. 더욱이 그 게임을 흠잡을 데 없도록 만들려면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의 도움이 절실했다. 행정부와 의회의 도움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행정부와 의회가 장외파생상품, 은행이 소유하거나 돈을 댄 헤지펀드, 지난 세기에 애써 마련해놓은 감독, 통제, 투명성을 없애려는 수작들, 이 모든 것을 규제해달라는 이성적 호소를 거듭 묵살해주어야 했던 것. 또한 금융혁명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인가를 받은 신용평가기관이 모노라인이라 불리는, 대개 뉴욕에 본사를 둔 거의 규제받지 않는 소수 보험사들에 AAA 등급을 매겨주어야 했다. 모노라인은 신금융에서 또 하나의 주요축이었다. 이들 기관에서 활약하는 주자들은 증권화와 대대적인 확산에 어찌나 분명하고도 광범위한 의견일치를 보았던지, 아마 잘만 했으면 미국신금융주식회사가 건립되고 그 기업의 주식이 나스닥에 상장되는 식으로 구체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JP모건 같은 새로운 증권화 은행들은 채무증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패키지화한 뒤, 채무불이행 확률에 기초한 트랑슈를 팔기 시작. 이 새로운 게임의 이름은 잘게 조각내기로, 증권을 발행, 인수하는 은행에는 수익을 안겨주고, 투자자에게는 수익에 상당하는 리스크를 안겨주려는 것. 곧 자산담보부증권, 부채담보부증권, 심지어 신흥시장 채무도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진 뒤 잘게 쪼개져 연금펀드, 대학기부금, 해외은행, 그리고 수익에 눈먼 투자자에게 팔려나감. 투자자들은 무디스, S&P의 AAA 신용등급 또는 모노라인 보험, 더 흔하게는 둘다 믿을만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이끌렸다.
- 그린스펀이 재직한 18년은 금융시장의 위기를 점점 더 심화시킴으로써 그의 어젠다. 즉 세계통화제도를 장악하기 위한 권력확장을 지휘하는 머니트러스트의 주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역사라 할 수 있다. 09년 초, 세상사람들은 그린스펀의 증권화혁명이 달러와 미국금융기관의 세계지배에 종지부를 찍는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 그린스펀이 증권화혁명을 통해 달성하려던 목적은 다음과 같이 분명했다.
* 그는 의회가 은행 간에 거래되는 장외 파생금융상품에 관해 최소한의 규제를 부과하려는 모든 시도를 대담히 거부
* 빌린 돈으로 주식을 살 때 지불해야하는 증거금의 비율을 올리지 않겠다고 버팀
* 리스크가 큰 불량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증권화를 적극 지지
* 10년간 꾸준히 압력을 넣어, 은행이 투자은행과 보험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 글래스-스티걸법을 서서히 약화시킨 끝에 마침내 폐기시킴
* 01년 이후 연방예산적자를 폭발적으로 불어나게 만든 부시의 대대적 감세정책을 지지
* 수조달러의 현금이 월가의 금융계 친구들에게 흘러갈 수 있도록 소셜시큐리티트러스트펀드를 민영화하라고 주장
이 모두가 치밀하게 계획된 증권화 혁명을 위한 것이었다. 증권화 혁명이란 다름 아니라 리스크를 은행에서 분리하여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게끔) 세계 전역에 고루 분산하는 새로운 금융세계를 창출하려는 것이었다
- 부채담보부증권의 문제는 일단 발행되면 좀처럼 매매가 되지 않는다는 점. 그것은 새로운 것이며 그때까지 아무도 그것을 압류, 매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증권의 가치는 시장에 의해 좌우된다기보다 복잡한 이론적 모델에 기초. 07년 8월, 세계 전역의 부채담보부증권 소유자들은 그 시장의 급락에 맞서기 위해 갑자기 유동성을 필요로했는데, 그제야 그 증권의 시장가격이 장부가격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깨달음. 그래서 손실분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현금을 급히 마련하기 위해 부채담보부증권을 팔아 유동성을 만드는 대신, 유동적인 우량주식, 정부채, 보석따위를 팔아치움. 이것은 부채담보부증권의 위기가 비단 부채담보부증권의 자체만이 아니라 주식가치에 손해를 입혔음을 의미. 자기자본의 가치가 하락하자 그 불똥이 헤지펀드에도 튀었다. 정량적인 헤지펀드가 채택한 이론적 모델은 하나같이 헤지펀드 가격의 그같은 급락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헤지펀드 가격이 곤두박질치자 베어스턴스의 두 헤지펀드가 이끌어가는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 주요 헤지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입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기가 증폭되었다. 그로인해 전례없는 부의 파괴라는 엄청난 피해가 뒤따랐다. 은행들이 채택한 리스크모델은 완전히 붕괴됨. 결국 07년 중반 어쩌지 못하고 폭발한 그 위기의 기저에는 투명성 결여라는 문제가 드리워져 있었다. 투명성 결여는 시장 운용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제이론이 기대하는 것처럼 투명한 방법으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대신 위험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채 고수익 고리스크 자산을 증권화한 데 원인이 있었음. 더군다나 신용평가기관은 그 상품에 내포된 리스크를 보고도 못 본체 했다. 신용평가기관은 증권을 평가하는 데에도 동일한 결함이 있는 리스크 모델을 사용. 그 채권이 거의 매매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구조화한 그 금융상품의 가치가 대략적으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음을 의미
- 80년대 저축대부조합 위기때 미국 은행 규제기관에서 근무한 윌리엄 블랙은 미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 개인의 부에 따라 권리가 주어지는 사실상의 금융과두제로 변모한 정황을 이렇게 묘사.
"40년 전 금융부문이 낸 이윤은 오늘날 금융부문이 거둬들이는 총이윤(40%)의 20분의 1에 불과했지만, 그때 경제는 지금보다 형편이 한결 나았다. 상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비대한 금융부문이 우리 실물경제에 얼마나 많은 타격을 입히는지 과소평가한 결과, 금융부문의 기생성 탓에 총 국가수입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액수가 허비되었다. 그런데 금융부문은 단지 기생적이기만 한게 아니다. 금융부문은 침략국이 표적국을 물어뜯을 때 쓰는 날카로운 이빨 구실까지 한다. 금융부문은 자기배를 채우기 위해 자본을 몽땅 쓸어갈 뿐만 아니라, 그러잖아도 충분히 부유한 금융 엘리트들을 보상해주기 위해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히면서까지 나머지 자본을 그릇되게 배분한다. ... 최근 몇 년동안 기업이 매입한 자사주나 임원들에게 부여한 주식은 미국 자본시장이 조성한 신규자본보다 많았다. 이것은 자본시장이 실물경제를 탈자본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부패한 기업중역을 살찌우기 위해 회계부정이나 스톡옵션 백데이팅 따위를 써서 너무도 쉽게 그런 일을 저질렀다. 미국 실물경제는 탄탄한 수학, 공학, 과학지식을 갖춘 인재가 크게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이 세분야의 졸업생이 실물경제보다는 경제적 보상이 훨신 큰 금융계에서 일자리를 잡는 탓이다. 금융부문은 회계이익에 주력하면서 미국 제조업체와 서비스업체에 외국에서 일손을 구하도록 압박을 넣었으며, 노조가 있는 기업에는 자본을 제공하지 않았고, 무과세국가에서 사업하는 기업이 미국의 과세까지 회피하도록 조장했다."
블랙은 금융계에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맞게 되는 결과를 연구한 뒤, 그 체제는 속성상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거대한 금융거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으며, 그 거품은 반드시 터지게 마련이라고 결론내림
- 1600년전 로마제국이 몰락한 경제적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당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던 로마제국이 쇠락한 끝에 마침내 멸망한 원인은 지배귀족,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호 과두체제가 내린 정치적 결정 때문이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적 부와 사적인 권력을 키우기 위해 정복전쟁을 일삼고 해외토지를 약탈함으로써 제국의 국경을 확대했다. 제국이 커지자 그들은 통제력을 유지하고자 멀리 주둔군을 배치했고, 그 군을 관리하기 위해 점차 외국용병에 의존. 군사적으로 제국을 확장하는 동안 그 제국의 주축인 농부들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그들은 몇 년 동안 해외 정복전쟁에 동원되느라 농토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남부는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돈이 좀 있는 이들은 안정적 투자처인 토지를 구매해 결국 대지주가 되었다. 그 결과 소수의 손에 땅이 집중되었고, 정복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노예가 그 땅에서 일했다. 파산한 소농은 로마로 도망쳐 프롤레타리아, 즉 임노동자로 살아가야 했다. 그들에겐 투표권을 비롯한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없었다. 부자들이 보기에 그들은 그저 매수나 조작이 가능하고, 적을 공격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폭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저 평범한 대중이었다. 로마의 민주주의란 제국에 봉사하는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로마제국 정부는 알맞은 예산제도를 갖추지 못했으며, 가치 있는 것은 거의 생산하지 않고 그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갖고 있던 자원을 탕진하기만 했다. 정복한 영토에서 약탈해온 물품만으로는 더 이상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로마제국 정부는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방대한 군사조직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시민에게 떠넘김. 세금을 인상하자 많은 소농이 점차 땅을 경작하지 않고 방치하기에 이름. 험악한 상황에 놓인 시민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밀을 공짜로 나눠주었고 서커스와 전차 경주, 기독교인 사자우리에 던지기 같은 오락거리로 그들을 현혹. 이른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한 악명 높은 빵과 서커스 전략이었다.
- 행정관직은 점점 더 돈 있는 이들에게 팔려나갔다. 한편 대중은 호의를 베풀어주는 다양한 정치인에게 자기네 투표권을 팔았따. 투표는 민주주의체제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였다. 게다가 로마제국에 치명상을 안겨준 근원적 변화는 원정전쟁이 점점 인기가 없어지자 농민으로 구성된 징집군을 유급의 전문직업군으로 대체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대중의 반전시위가 군의 장래를 위협하자 닉슨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지원제를 채택했었는데, 옛 로마제국은 그 무럽 미국의 상황과 다름없었다. 로마병사를 원정전쟁에 내보내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군대를 충원하기 위한 유인책이 늘어남. 군복무 대상자를 시민권자로만 제한하던 제약이 사라지고, 군복무의 대가로 로마시민권이 부여됨. 이것은 마치 오늘날 미국에 이민 온 10대가 아프간, 이라크 전쟁에 참전 하면 미국시민권을 부여해주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어느 때부터인가 로마병사는 로마제국이 아니라 사령관에게 충성해야 했다. 노획물로 구매한 대농장이 소농장을 서기 2세기에 부유한 원로원 의원의 권한을 제한하는 농업개혁을 도입해 빈부격차를 해소하려 한 그라쿠스 형제는 바로 그 부자들 손에 암살당했다. 로마과두제는 서서히 타락해갔다. 로마 왕정이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을 무렵, 과음, 과식한 이들이 토하고 돌아와 다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보미토리엄을 지었을 정도로 부자들은 흥청거렸음. 언젠가 네로 황제는 이렇게 선언했음. "다시 세금을 걷고 또 걷자. 어느 누구도 아무것오 소유하지 못하게 하자!" 동양에서 이국적인 향신로와 실크를 비롯한 사치품을 구입하자 로마의 금이 빠져나갔고, 그 금은 두 번 다시 로마로 돌아오지 않았다. 곧 로마는 주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금마저 모자랄 지경이었다. 로마는 마침내 금이 고갈될 때까지 계속 주화의 순도를 떨어뜨렸다. 또 다른 황제는 포두주 생산을 줄여서 값을 올리기 위해 로마가 지배하는 포도원을 절반이나 없애라는 명령을 내림.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세계적 군사제국을 유지하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남. 3세기 경 사람들은 군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과된 버거운 세금을 피하느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군대 자체는 아우구스투스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를 지나면서 규모가 두배로 불었다. 그 사이 로마 통화를 구성하는 금과 은의 순도가 자꾸만 떨어지면서 빚어진 결과로 인플레이션이 급등.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는 황제가 하나가 아니라 넷이나 되었다. 이것은 황제를 위한 황실, 근위대, 왕궁, 참모진이 각각 네 벌씩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의 치안을 유지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증가. 로마 관료주의의 유지비는 71년 이후 미국 연방관료제의 행정부서와 맞먹는 규모였다. 마침내 로마의 영토확장이 주춤해지자, 로마의 국내경제뿐 아니라 로마제국의 국제적 야심을 밀어주기 위한 노획물도 차차 줄었다. 외부위탁된 군은 무기력, 자족, 타락에 빠져들었다. 로마제국은 차츰 힘을 잃어갔다. 북부의 야만인들이 분열된 로마제국을 침략하는 일이 잦아짐. 황제들이 군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려고 기를 쓰는 바람에 로마제국의 부채는 가파르게 불어났고, 국민의 도덕성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로마는 국경에 대한 장악력을 계속 잃어갔으며, 도로와 교량이 제대로 유지, 보수되지 않아 무역과 운송이 타격을 입음. 로마에서는 연일 폭동이 그치지 않았음. 빚더미에 올라앉은 정부는 세금을 인상. 군대는 필요한 물품을 지역민에게서 빼앗아갔다. 식량은 점차 중요한 상품이 되었고, 수백 년만에 처음으로 많은 국민들이 배를 곯았음. 정복전쟁이 거듭될수록 로마제국 내부는 혼돈에 휩싸임. 로마의 전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까지 이어졌으며, 정치 지배층의 부정부패는 더욱 기승을 부림. 돈이 최고였다. 로마는 돈이 곧 권력인 금권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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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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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밸런싱

경제 2019. 4. 20. 08:07

- 90년대 해외 저가 수주전으로 홍역을 치룬 기억이 있는 한국의 건설사들은 2010년 전후 한국기업끼리 해외 저가 수주서으로 추정 20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게 됨. 15년을 기준으로 한 최악의 추정치는 약 12조. 이 시기 동안 박정권은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 그 결가 전반적인 국내 주택 분양가는 20-30% 상승했고 그에 힘입어 건설사들은 해외 적자를 국내 주택경기를 통해 벌충하는 구조로 건설사의 한계기업들의 재무상황에 호전되기 시작. 건설업의 경우 특성상 국내총생산의 15%를 차지. 200만명 이상이 종사할 만큼 고용규모가 크며, 경기민감성이 높다는 점에서 단기적 성과를 나타내기 좋기 때문에 내수상황 개선에 집착할 만한 요소가 크다. 그러나 단기적 해결책으로 쌓인 문제는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 20조원을 들인 4대강 사업에서 밝혀졌듯이 대형 건설사는 10여년 전부터 국내건설의 담합을 통해 손해를 벌충해 왔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010년 한국토지주택공사 판교신도시 사업 담합에 대한 제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65개 건설사에 4840억의 과징금을 물렸을 정도. 담합은 건설사 최대 이익의 보루가 되어왔고, 2010-14년에 물린 과징금만 1조이상. 건설사 담합은 호남고속철도 노반공사를 보더라도 28개 건설사에 2.2.조 규모로 원래 과징금이 6천억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사업비의 10%인 2200억을 물리는 선에서 공정위의 결정이 났다. 대형 건설사들은 담합을 통한 고수익으로 해외 적자를 메우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사업으로 일관. 고질적 담합을 통해 해외 손실이 벌충되는 동안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최경환 노믹스 정책은 14년 이후 대형악재의 괴물을 낳게 된다
- 15년 이전 분양가의 차익이 조성원가의 20%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국토부의 지침이 갑자기 폐기된 이후 아파트 분양가가 폭등하기 시작. 예를 들어 공공분양을 담당한 공사가 수도권 공공택지분양을 한다고 하면, 그린벨트를 상하수도 기반시설을 조성한 다음 건설사에 다시 매각한다. 이전의 차익규제 지침아래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성원가가 낮을 수밖에 없어 분양가의 상승이 급격할 수 없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천만 보더라도 토지수용원가는 평당 310만원에 수용하고 조성원가는 850만원이었지만, 대우에 매각할 때 2400만원에 매각하는 등 차익만 평당 1550만원으로 1조이상의 이익을 취하는 구조다. 2400만원에 대우건설에 매각된 가격은 3600만원에 토지조성이 되어 분양가가 폭등한다. 18년 1월 1일 금감원 전자공시를 본다면 17년 실적보고서의 대형 건설사 5개사의 매출액은 58조 2087억, 영업이익은 3조 252억원이다. 이는 주택시장 호황으로 인한 분양사업 호조로 수익성이 대폭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박근혜 정권의 민간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민간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면서 주변 땅값이 상승하면서, 공공택지 감정가도 높아지고 공공주택 분양가까지 높아져 모든 분야의 임대료 상승과 함게 아파트 분양가가 폭등해 온 것읻. 즉, 1천만원의 공공택지가 3천만원의 폭리주택으로 바뀌게 된 것. 이러한 고분양가는 15년부터 LH공사와 민간 건설사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수단이 되어왔고, 전국적인 분양 열풍의 근원으로 이러한 매각이익 증대가 맞물려 있다. 여기에 더하여 20년간 지속되어 온 언론의 개발 친화지원과 투기세력의 업계약서 및 자전거래 담합은 인근 시세를 끝없이 상승시킴. 이런 가격상승 부채질은 건설업계의 분양의 축배가 되었으며, 국내 부실과 해외부실을 정부의 묵인하래 벌충할 수 있게 한 것. 즉, 지난 정권의 실질적 협조행위가 이번 분양가 폭등의 지원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IFRS16 하에서 자체 사업의 수익인식기준이 인도기준으로 결정될 경우, 부채비율이 높은 건설사일수록 회계상 위협이 커짐. 물론 당분간은 현행기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나, 2020년 이후에는 완전하게 소유권 인도기준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됨. 부동산의 경우 후분양제 확대적용이 될 수밖에 없는 수익인식 구조임. 인도기준 시점으로 수익이 인식된다면 18년을 기점으로 분양은 수익이 아니며 소유주에게 완전하게 인도되는 시점이 수익이 될 것임. 결국 모든 수주산업에서 회계를 분식하는 일은 19년 이후에 국제적으로 감시를 받게 됨. 계약의 변경 또한 고객에게 인도되는 시점에서 수익으로 인식되어, 19년 하반기부터 2020년 상반기 사이에 주택업계의 부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됨. 결국 국가에서 내수부양을 통한 경기활성화라는 이름으로 과대하게 팽창시킨 부동산 분양열풍의 무게가 결국은 부담이 되어 시장을 짓누르게 될 것임.
- 수주산업인 건설산업은 공정률에 비례해 수익을 인식해 왔다. 그러나 국제적 기준에 따라 고객에게 인도한 이후에 수익이 잡힌다는 것은 단기적 회계수익을 낼 수 있는 요소가 차단되며, 오히려 그 기간동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 이런 상황에서라면 국제회계 기준변경으로 인한 강제적 후분양제 도입의 가능성도 존재. 문제는 부채가 증가하면서도 국내 주택사업을 확장해온 대형건설사의 위험이 증대되었다는 점. 새로운 기준 도입은 결국 국제적으로 건설업계의 투명성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나 국내 건설 주택업계의 투명서잉 어느정도인지는 짐작할 수가 없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
- 집값 담함에 의한 주택시세를 지키기 위해 악의적으로 허위매물 신고를 하거나, 허위 고가주택을 등록하는 이중수법도 마지막에 등장하게 된다. 결국 주택가격의 거품을 먼저 판단한 거래자들은 통상 이 집값담합 시기에 매물을 몰래 팔고 사라지는 수법을 쓰며 이 시장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됨. 즉, 허위매물 신고가 급증한 17년이 거품의 위험을 보여주는 것이다. 건설사는 분양가가 매매되는 기존 주택가격보다 낮다는 인식을 통해, 거품의 유무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주변 호가와 비교하여 로또로 선전하는 것이 한국 부동산 시장의 왜곡된 특성. 이때 내포된 거품매물일 가능성에 대한 위험성의 정도는 구매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
- 전국의 빈집 비율은 6.8% 이다. 이번 19년부터 25년까지 시작될 경기도 유령마을화 과정에서 40만채 이상의 빈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 2기 신도시 외곽지역에 투기수요가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투기 세력이 빠져나가는 18년부터 2020년까지 신규주택 공실 증가와 상가 내 공실이 속출한다. 18년부터 2020년까지 55만호 이상의 주택이 공급되면 20만호 이상은 신규 공실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2023년까지 빈집이 증가함. 이 중 10% 이상이 1-2기 신도시와 경기도의 100여곳에 산재한 신택지지구, 신도시 인근의 공단마을 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임. 이는 경기도 전체가 빈집을 넘은 유령마을화의 공포에 휩싸일 것으로 예측됨
- 베이비부머가 대규모로 은퇴하면, 은퇴주택의 선호도에 의해 아파트에서 단독으로 주택수요가 많이 이동하게 되는 생애주기 구조가 됨. 또한 은퇴이후 주택규모를 줄이거나 전월세로 다운사이징을 시작하면, 21년 이후가 가장 큰 주택시장 후폭풍이 일어날 것. 건설업계는 미분양이 대량으로 쌓이게 되면 과거처럼 여론을 동원하여 국가의 공공주택 확대를 이유로 미분양 매입을 정부에 요청하게 될 것임. 미분양 물량을 매입하는 주택은행 제도도입을 요구하는 것은, 미분양을 정리하여 업계 생존을 도모할 뿐 아니라 거대한 임대제도를 탄생하게 할 것임. 또한 국가의 공공주택을 활용하여 공공관리 부분이 아닌 민자 효율성을 강조한 민간 위탁형을 요구할 것이다. 이 제도가 선진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임대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란 주장을 언론을 통해 파렴치하고 뻔뻔하게 주장하게 하여 대기업의 이익을 확충하려는 것
- 이제 민간기업의 대규모 임대업 진출과 부동산 관련 종합서비스 도입으로 새로운 시대에 진입. 기존 주택시장에 대한 미분양/미입주 빈집 대란이 시작될 때 IFRS15 후분양제와 함께 광역도시 생활권으로 개발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이 기간 주택시장에 대해 분양이나 거주지 이동이 필요하다면 22년 이후 후분양제와 새로운 주택시장 체제가 안정되는 시기에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전국의 각 지자체 개발연구소 등에서 2030년 이후의 개발계획은 필수적으로 살펴볼 것.
- 부동산 핵심지역인 강남의 재개발지역 역시 이런 영향을 피해가지는 못함. 19년부터 헬리오시티 1만세대 입주를 시작으로 23년까지 연 2만가구가 입주를 시작. 서울의 입주대란은 사실상 19년부터 시작됨. 가장 좋은 예시는 19-22년 시점까지 전국적으로 주택시장에 불기 시작할 대규모 경매대란 공포분위기일 것임. 이른바 하우스 푸어가 되는 공포다. 21-22년 시점부터 후분양제에 대한 체계가 어느정도 자리잡기 시작할 것이며, 23년 이후 다시 저금리 상태로 전환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타당. 대규모 경매대란 과정에서 주택을 싸게 구입할 것인가? 아니면 도심 숲세권 아파트 분양을 구매할 것인가? 이는 수요자의 선택사항이다.
- 20년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공원해제, 일몰제 시행이 예정됨. 이로 인한 신규택지 공급 2천만평이 가능하게 됨. 건설사들은 채비지 방식(국가에 택지의 50% 정도 기부체납 방식으로 논의)을 통한 주택공급방식이 보상보다 지자체의 재정에 유리하다는 논의는 끝나가는 상태. 이는 서울 및 전국 광역시의 대규모 공원 및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전원주택형 택지공급이 20년부터 가능하다는 것이다.
- 대중들에게 제시한 것은 1%의 성공계층에 대한 선망론과 0.1% 금융 소득자들에 대한 욕망 투영을 통해, 주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어야 한다는 가슴에 와닿는 달콤한 이야기다. 주택가경 상승에 의한 갭투자는 상위 1% 계층으로 갈 수 있는 천국의 티켓으로 여기도록 하여, 현실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정당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한다. 4인가구의 평균소득이 195만원이라는 허망한 통계를 본다면, 수도권 월세 평균 115만원인 절망적 환경에서 어떻게 미래와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 급속하게 상위 소득자들에 대한 양극화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것을 문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국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20%의 소득 상위계층은 이른바 1% 계층이 가진 성공론을 선망하여 산업화 시대의 건설경기 호황에 기대어 주택투기에 의한 다주택자 증가의 선봉에 서 있다. 586세대 중 나름 자리잡고 사는 이들이 왜 주택투기 대열의 선봉에 서게 되었을까. 이들은 부모의 평균수명이 75세를 넘어서고 있어 병원비가 급증하는 세대이며, 자신의 사회적 품위 유지비가 급증하고 자녀가 사교육 투자론의 대상이 되어 있기에 고정비가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음. 거기에 1억의 고액 소득계층으로 1%의 최상위 노동 소득계층과 근거리에서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성공론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은퇴가 10년 정도 남아 있어 은퇴 이후에 대한 투자로 10억 은퇴설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의료비, 생활비, 교육비 등의 급증으로 인해 젊은 계층이 목표로 하는 1억 연봉의 세대지만 실질적 여유는 많지 않다. 예컨대 1억 연봉의 세금이외의 월수입은 640만원 정도인데, 부모 100만원, 자녀교육비 100만원, 가정 생활비 20만원 그리고 기타 저축성 보험비 등 100만원을 빼놓고 본다면 실제 저축할 수 있는 돈은 100만원 정도. 어느정도의 여유는 있지만 그 여유가 크지 않은 것이다.
- 이런 사정 속에서 3대 가족 부양의 의무세대라는 위치를 감안해 보면 소득이 줄어드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실제 통계청 생애주기 현상에서 이들의 자녀세대의 석박사 진출이 급증함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자녀의 취업은 늦어지고 교육비와 생활비 지원이 길어져 교육투자가 독립으로 연결되는 연량이 5년이상 뒤처지고 있음. 또한 부모 세대는 예상수명인 75세를 넘어석 있어, 부모 세대에 대한 치료비와 간병비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50대의 심리적 중압감은 3대의 생계비를 책임짐과 동시에 1억 이상의 소득자로소 품위 유지비와 각종 고정비를 감당하고 있는 데서 온다. 때문에 미래에도 지금 이상의 사회적 위치와 풍요를 누리고 싶다는 욕망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대에서 일어났던 부동산 성공신화에 맞물려 성공학이라는 투자개념에 쉽게 감화된다. 그 결과 상위 20%의 고소득 계층이면서도 이 중 14%가 2억 이상의 고액대출자가 되어 총원리금 상환과 생애소득기준으로 변하는 대출 시스템의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지금까지 은행권의 일반적 영업기준은 신용 6등급까지 대출 가능. 장기 연체 보유자는 사실상 금융권 소외자다. 250-260만의 소외된 계층은 대부업 대출 계층이며, 고금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대출자가 됨. 30만원 미만의 소액이라도 90일 이상 장기 연체할 경우, 신용등급이 8-9등급으로 하락하고, 연체대출금을 상환하더라도 상당기간(3년) 7-8등급이 유지되어 대부업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통해 그동안 금융권에서 소외된 계층까지 정밀화, 세분화된 데이터를 통해 대출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저금리, 고신용시장의 확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대출시장에서 중금리 시장의 확대를 금융권에서 주목하여 성장의 방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중금리대출의 도입은 저금리 대출의 확대가 아니라 금융권의 미래대출시장의 확장과 장기간 영업이익의 보장을 위한 것이다. 개인의 대출에 대한 합리적인 정량적 평가를 위해 프로그램을 사용한 비대면 대출이 되며 명분적인 개입여지의 축소가 뒤따른다. 빅데이터 분석과 신용정보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금융이력이 부족한 청년층을 대출시장으로 편입하여 중금리대출시장의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금융권 대출의 안정적 영업기반 확대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사회보험료, 세금납부실적 등 다양한 비금융 공공정보를 공유,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는 IFRS9 체제에서 금융권 대출시장의 협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금융대출기관은 이러한 개인의 신용과 이력생애주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시스템을 보완하게 됨. 이를 통해 대부업 시장의 고금리 대출은 사실상 기관 금융권으로 대부분 편입될 것이고 대부업 시장은 점차 위축되어 상당수가 업계 퇴출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다.
- 앞으로 은행이 모든 부채와 상환능력을 따져 돈을 빌려줄 때 설정한 마이너스통장 한도까지 부채 규모로 잡는다. 때문에 DSR 시행이후부터는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 모두 대출시점 기준으로 소득대비 부채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 소득변화와 만기까지의 원리금 상환부담을 따져 개인별 적정 수준으로 돈을 빌려준다. 즉 신용대출 이자상승은 피할 수 없으며, 노동생애주기를 따진다면 20-30대 신용대출자보다 50-60대 신용대출자의 이자부담이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 통상적으로 중상층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볼 수 있는 명확한 한계지표는 보험환급금. 100조원의 저축성 해약환급금을 5년간 찾았다는 것을 본다면 생계고통의 크기가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보험은 중상층의 마지막 보루다. 보험사들의 저축성보험 해약환급금은 16년 23조 7849억으로 15년 21조 3963억보다 11.2% 나 급증하고 있으며, 16년 해약환급금의 규모는 저축성 보험 총 적립금액(407조)의 5.9%에 달한다.
- 경기침체로 인한 가정경제의 악영향은 도를 넘어섰으나 언론은 연일 집값 폭등을 부추겨 왔다. 이미 16년 이전, 수출감소-->수입감소-->원화절상-->수출감소라는 불황형 흑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가계가 짊어져 왔다. 이러한 고물가 현실에서 고정비 증가를 가계의 미래 안전판인 저축성 보험까지 손대서 버텨 온 것이다. 기획재정부 가계부채 종합대책의 통계를 그대로 인용해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 원금상환이 실시되면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겠다는 비율이 5%에 이르는 것과 보험환급금 해약이 5%에 이르는 것을 종합해 본다면, 이번 중상층 붕괴시대가 오면 국내 가계의 5%는 이미 빚을 갚을 수 없어 포기한 것이다. 이 5%가 원금상환 시기에 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부실의 도미노가 되어 넘어질 것.
- 담보대출에서 소득대비지출로 전환되어 담보대출에서 소득대비지출로 전환되어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는 시점에 주택가격 하락과 자영업 대규모 폐업 등에서 파생될 파산이 급증할 것. 이때 원금유예나 상환유예, 경매유예가 거의 유일한 대안처럼 떠오르기 대문에 파산에 대한 합리적 대안은 국내에 없다고 보고 있다. 결국 금융노예로 전락하면 법원의 파산신청을 통한 개인회생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마저 적다. 은행 연체자 10명 중 1명이 파산신청하는 국가에서 앞으로는 은행 연체자 10명 중 2-3명이 파산을 통한 회생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국가가 대출로 집을 투기하라는 논조를 쏟아내건, 내수활성화라는 목표로 자영업 대출을 천문학적으로 증가시켜 온 만큼 빚의 총량과 파산의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
- 바젤3 시스템의 IFRS9 회계측정 변화는 아래 3가지
(1) 자본의 질과 양의 투명성을 높이고, 위험의 인식범위를 확대한다. 총자본비율에서 기본자본과 보완자본 중 기본자본의 비율을 기존 4%에서 6%로 확대하며, 보통주 이외의 자본수단인 우선주나 신종자본증권 같은 기본자본에 대해선 편입요건이 강화됨.
(2) 레버리지 비율의 보수적 도입. 레버리지는 기업이 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로 이용해서 자기자본의 이익률을 높이는 것을 말함.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기자본비율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레버리지를 축적한 금융회사가 문제가 되자, 세계적 금융위기관리를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도입했다. 레버리지 비율은 익스포저 대비 기초자본이 3%가 초과되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3) 유동성비율규제. 유동성비율규제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과 순안정자금조달비율로 구성된다. 유동성-커비리지비율은 은행이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30일 동안 순현금 유출액을 충당할 수 있는 고유동성 자산을 100% 이상 보유하도록 하는 규정. 이는 금융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한 것이다.
- 저축은행의 부실화는 18년 1월 IFRS9 시행이후 부동산 담보대출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며 가중된 것으로 제2금융권 연체율 상승의 직격탄이 되고 있다. 18년 평균연체율은 5%를 넘어서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2020년까지 저축은행의 정상 및 요주의 분류자산에 대한 대손충당금 최소적립률을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할 계획. 18년 내에 저축은행 최소 적립률이 모두 상향조정되어, 가계정상(0.5-->0.7%) 및 요주의(2-->5%)여신, 기업정상(0.5-->0.6%) 및 요주의(2-->4%)로 여신이 이루어짐. 즉 위험성이 대폭 상승한 것이다.
- 바젤3는 인터넷 은행에는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18년 가계의 위험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인터넷 은행(+상호저축은행+지방은행)의 신용대출이 폭등한 결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19년으로 넘어가면 신용이든 담보든 8-10% 금리권이 확실시되는 저축은행과 인터넷 은행의 부실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임.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5%로, 17년 4월 5일 0.5% 올랐다. 연체율은 금융의 부실화 지표다
- 바젤3 IFRS9 도입 후 주식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높아져 재무건전성이 높아짐. 기업 또한 보수적 회계 재무제표가 반영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부실이 시장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회계적용기준이 발생손실에서 기대손실로 바뀐다는 점이 중요. 미래손실을 조기 인식하기 때문에 은행이 쌓아야 할 충당금 부담이 증가. 즉, 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처분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18년 은행의 사상 최대실적으로 상반기에만 12조원을 만들었다고 해도 19년 하반기부터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의한 실적 악화와 금융권 충당금 설정압박으로 은행보유 주식에 대한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즉, 주식시장에서 기업이익이 감소하고 금융권 전체의 주식매각 압박으로 주식시장이 침체될 것.
- 18년 1월 기준 농협 300조, 기업 284조, 산업 260조, 수출입 87조 에 해당하는 부실자산이 어디에서 얼마만큼 터질지 모름. 기업구조조정 시장이 블랙홀이 되어 정부의 정책자금을 무한대로 빨아들일 가능성마저 열리고 있다. 경기부양이라는 목적에서가계에 대한 대출을 늘려 온 민간은행에 비해 부실기업까지 정책적으로 대출을 늘려온 특수은행이 이번 19년 기업구조조정 속에서 부실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름. 금융기관은 충당금 설정규모와 요주의 기업의 부실대출을 과감히 털어버리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대응방안을 준비중. 내수 불황 상황에서 특수 은행에 기댄 정책자금의 무한대 공급이 벌어진다면, 국가채무는 부실 금융권 지원과 부실건설사 지원으로 말도 안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채무의 끝없는 증가를 염려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 원리금상환, 임대업 이자보상비율, 총부채 상환비율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자신의 소득에 비해 얼마나 많은 원금와 이자를 상환하는가의 비율. 3종 부동산 세트의 금융체제는 아주 단순함. 이른바 모두 대출은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며, 부동산 임대업은 이자보상비율로 10년내에 원리금 상환과 이자보상비율에 맞추어 대출을 해주는 시스템.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는 대출이 없으며 중년인 50-60대에게는 더 가혹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저소득 계층과 고소득 계층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원금상환과 이자상승 그리고 충당금 이자 상승분까지 부담시키게 된다. 결국 저신용자들은 대책없이 파산할 것이며, 고신용 부동산 대출자들은 원리금 상환과 충당금 이자부담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또한 미국의 본격적 기준금리 인상기간 동안의 이자를 최대 연 8%까지 감내해야 하는데, 그 비관적 정보를 모든 기관들이 알고는 있었으나 심각성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그러한 차주들에 대한 대책은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저금리는 중금리로 갈아타게 하고 중금리 이후 파산 상태에서는 경매를 6개월에서 최대 1년간 유예시킨다. 자영업의 대규모 도산도 3년까지 유예시켜 파산속도를 조절, 은행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대응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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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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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과 투자

경제 2019. 4. 20. 08:06

- 만일 어느 기업이 좋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미 주가에도 반영되었을 공산이 크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나쁜 기업에서 좋은 주식이 나오는 게 현실. 그런데 투자자들은 대개 나쁜 기업에 투자하기를 두려워함. 그 기업의 펀더멘털이 개선되어도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임. 그들은 흔히 나쁜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 바뀌었다는 월스트리트의 컨센서스가 나온 뒤에야 그 기업에 관심을 보인다
- 닷컴 버블로 대변되는 90년대 후반의 강세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자기가 월스트리트보다 투자를 훨씬 잘한다고 착각. 당시 여러 투자포럼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청중이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을 향해,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지금의 시장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지금은 기술주에 투자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허다했음. 언론사, 투자 웹사이트 등은 그런 개인투자자들의 생각에 재빨리 편승해 그 흐름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깨달음은 뒤늦게 찾아온다는 말이 있듯이, 훗날 개인 투자자들은 한 업종에 과도하게 투자했던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99년 한 해 동안의 엄청난 수익률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처참히 무너짐. 반면 심한 조롱과 모욕을 당했떤 펀드매니저들은 손실을 거의 입지 않음.
- 인터넷이 포문을 연 정보화 시대에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이것이 꼭 투자에 유리한 것은 아님. 단순히 정보를 많이 얻는 것보다 투자성과를 극대화할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이상적임.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경제로 불리는 이 시대는 정보의 양만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인터넷 때문에 어설픈 투자정보와 조언 등 소음이 늘어났을 뿐, 정보의 질은 낮아졌다고 비판한다. 질은 개선되지 않은 채 양만 늘어난 정보에 탐닉하는 행위는 시간낭비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투자로 이어짐. 게다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있는 정보를 걸러내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 하나만 읽고 투자해 큰 수익을 내고 싶지, 이리 저리 소음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정보화 시대인 지금, 개인 투자자들의 환경은 더욱 악화됐을 공산이 크다
- 내가 일간지를 구독하지 않는 이유는 두가지다. 먼저, 일간지가 통찰을 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 당신이 만일 여러 일간지와 투자레터를 구독하는 가운데 거기서 제공하는 정보가 가치 있다고 믿는다면, 경험과 식견이 뛰어난 조언자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직접 투자를 중단하라. 당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정보 판독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주식시장에서 호구가 되기 쉽기 때문. 다른 이유는 나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사건을 따라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 시장의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투자할 때 소음에 더 민감해짐. 나는 시장의 중요한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상적 사건들을 따라다닐 생각이 없다. 세부사항에 집착하지 말고 큰 그림을 보는 편이 투자에는 더 유리함
- 소음을 걸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자기가 잘 이해하는 투자원칙을 따르는 것. 원칙없이 월스트리트의 소음을 좇는 행위는 앞에서 언급한 랜덤 모델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 그런 전략으로도 단기간은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그런 성과는 단지 운에 불과. 운은 라스베이거스에서나 기대하고, 투자할 때는 치밀한 투자원칙을 따르기 바란다.
- 뛰어난 투자자는 소음이 없을 때 매수하고, 소음이 넘쳐날 때 매도한다
- 흔히 광고에서는 기존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자산을 추가해 분산투자하라고 권유. 예컨대, 대형주 포트폴리오에는 소형주를 추가하고, 100% 주식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는 채권과 현금성 자산을 추가함, 자국 주식 포트폴리오에는 해외주식을 추가하라는 식이다. 대개 이런 광고는 자산을 추가하면 포트폴리오의 수익률도 높아진다고 주장. 그러나 이런 주장이 나오는 시점에 주목해야 함. 이런 주장은 흔히 특정 자산이 매우 높은 실적을 달성한 다음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분산투자를 하면 위험이 감소하지만 수익률도 감소한다
- 일부 투자자는 집이나 직장 근처에 있는 기업의 주식을 즐겨 매수. 내가 사는 지역신문에는 지역기업들의 주가목록이 매일 게재된다. 그러나 집 근처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음. 특정 지역에 경기에 민감한 기업들이 집중되었다고 가정하자. 그 지역 경기가 침체해 기업들이 적자로 돌아사면 십중팔구 직원을 해고할 것임. 그러면 지역 부동산 가격도 하락함
- 우리사주제도나 퇴직연금을 이용해 단기투자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분산투자에 역행하므로 현명하지 못함. 이미 자신의 인적자본이 묶여 있는 회사에 주식까지 투자하면 달걀을 모두 한바구니에 담는 셈. 회사가 역경에 처하면 당신은 해고당할 것이고, 당신이 가진 회사 주식의 가격도 하락할 것임
- 분산투자가 아무리 중요해도, 단지 상관관계가 낮다는 이유로 장기간 계속 가치가 하락하는 자산에 투자해서는 안된다. 금은 주식과의 상관관계가 거의 최저수준인 자산이다. 이른바 금 애호가들은 지금도 금을 이용해 주식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분산하려 함. 그러나 이런 헤지전략은 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거의 효과가 없었다. 상관관계가 낮을수록 분산투자 효과가 높아지긴 해도, 금이 초과실적을 나타낸 것은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기간뿐이었음. 그러나 위의 20년간 대부분, 미국은 디스인플레이션을 경험. 상관관계가 낮더라도 금을 분산투자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만일 마차용 채찍 제조사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 회사 주식과 시장지수의 상관관계도 매우 낮을 것임. 그러나 이런 주식에서 장기적으로 좋은 실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움. 분산투자의 실적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가치가 상승하는 자산만을 분산투자 수단으로 사용해야 함. 미국경제가 장기 인플레이션에 진입한다고 생각한다면 금 역시 적절한 분산투자 수단이 될 수 있음. 지금까지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 기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장기 디스인플레이션 추세 속에서 주기적으로 단기간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임. 이런 추세가 바뀐다면 금도 타당한 분산투자 수단이 됨. 최근 중앙은행들의 금 매각을 그 반대 신호로 해석하는 금 애호가도 있음. 중앙은행들의 금 매각 가격이 80년대는 온스당 800불이었지만, 2000년에는 이보다 훨씬 낮아졌다. 그래서 일부 금 애호가는 금 가격이 곧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예컨대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심각한 인플레 위협이 닥치지 않는다면 금 시장 강세는 장기간 이어지기 어려울 것
- 국제 분산투자를 논할 때, 대중매체는 오로지 거대 다국적 기업에게만 초점을 맞춤. 일부 분석가는 세계 다국적기업 지수까지 계산한다. 이 또한 소음이다. 정말로 국제 분산투자를 원한다면 소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 투자자는 소니나 토요타에 투자할 때보다 일본 소기업에 투자할 때 분산투자 효과가 더 높아진다
- 일상적으로 금융시장에 돌아다니는 소음이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투자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는 것. 자칭 장기투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놀라운 결론일 수 있겠다. 날마다 경제신문을 읽고 경제텔레비전을 보며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면, 처음에 장기 투자를 계획했더라도 결국 장기투자를 포기하게 되기가 쉽다. 투자기간이 아주 길다면, 날마나 경제신문과 경제TV를 보고 포트폴리오를 평가할 필요가 없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등 온갖 분석은 5-10년 뒤 주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장기투자자는 시장을 매일 접할 필요가 없다.
- 일부 학자들은 투자자들이 나쁜 기업을 회피하는 다른 이유를 제시. 학자들의 가설에 의하면, 포트폴리오 매니저, 주식중개인, 재무상담사 등은 위험보다 후회를 더 회피함. 고객에게 사과하게 되는 상황을 더 두려워함. 좋은 기업의 주식을 추천했는데 실적이 부진하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음. 원래 유명하고 좋은 기업이지만 외부 영향 탓에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변명이 통할 수 있다. 예컨대 회사 경영진이 의사결정을 잘못했다거나, 시장에서 다른 업종이 인기를 끌었다고 해명함. 반면, 나쁜 기업의 주식을 추천했는데 실적이 부진하면 해고당하기 쉬움. 그 회사가 부실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데 그들만 몰랐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래서 후회를 회피하고 좋은 기업의 주식을 추천하느 경향이 있다
- 흔히 애널리스트들은 "이 회사는 좋은 기업이므로 저라면 지금 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들어야 할 말은 "이 주식은 좋은 주식이 될 것이므로 저라면 지금 사겠습니다."라는 말이다.
- 듀레이션은 금리에 대한 채권가격의 민감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이자규모와 이자수령 시점에 따라 결정됨. 30년만기 할인채는 원리금을 모두 30년 후에 받게 되므로 듀레이션이 30년이다. 30년만기 이표채는 만기까지 정기적으로 이자를 지급받으므로 듀레이션이 30년보다 짧다. 다른 요소도 채권의 듀레이션에 영향을 미침. 표면금리가 높은 이표채는 표면금리가 낮은 이표채보다 듀레이션이 짧다. 중간에 지급받는 이자가 더 많기에 그렇다. 장기금리가 상승할 때는 듀레이션이 짧은 채권이 듀레이션이 긴 채권보다 유리. 그러나 금리가 하락할 때는 듀레이션이 긴 채권이 듀레이션이 짧은 채권보다 유리. 인플레이션에 의해 금리가 상승할 때는 원리금을 최대한 빨리 회수해 더 높은 금리로 재투자하는 편이 유리함. 금리가 상승하면 미래에 받는 돈의 현재가치가 감소한다. 1년만기 채권은 금리가 1% 상승하더라도 손실이 크지 않다. 남은 만기에 대해서만 1% 손실이 발생하기에 그렇다. 그러나 30년 만기 채권이라며 금리가 1% 상승할 때 큰 손실을 보게 된다. 남은 ㅁ나기 30년에 대해 1%의 복리로 손실이 발생하기에 그렇다. 따라서 듀레이션이 길수록 채권의 가격은 금리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채권 듀레이션 개념을 적용해보면 성장주가 가치주보다 금리변화에 민감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성장주는 배당수익률이 낮은 고PER주와 비슷. 성장주는 대개 배당이 적고 먼 미래에 기대되는 이익까지 주가에 반영하는 탓에 PER가 높아서 그렇다. 가치주는 배당수익률이 높은 저PER주와 비슷 대개 배당지급액이 많고, 가까운 미래에 기대되는 이익만 주가에 반영하는 탓에 PER가 낮아서 그렇다. 결국, 성장주는 듀레이션이 긴 채권과 비슷하고, 가치주는 듀레이션이 짧은 채권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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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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