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니스가 야프섬 화폐 시스템의 이런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을 때 안내인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가까운 마을에 누구나 엄청난 재산가라고 인정하는 엄청난 집이 있지만, 아무도, 심지어 재산가 본인조차 그 재산을 만진 적도 본 적도 없다. 엄청나게 크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만 할 뿐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상태 그대로 있는 페이가 그 재산의 근원이다."
알고 보니 그 페이는 아주 오래전 바벨투아프섬에서 야프섬으로 옮기던 중 폭풍우를 만나 바다게 가라앉은 것이었다.
"굉장히 큰 페이가 바다로 떨어져 사라진 사건은 시시한 일이라 입에 올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 그것이 해저 수백 미터 아래에 있더라도 시장성에는 아무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 보편적이었다. ... 돌 화폐의 구매력은 바닷속에 있어 보이지 않을 때도 소유주로 추정되는 사람의 집 한구석에 놓여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효했다. 중세시대 수전노가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쌓아놓은 황금 덩어리가 그랬듯이 부를 상징하는 의미만 담긴 듯했다. 어쩌면 워싱턴 재무무 금고를 꽉 채우고 있다는 은덩이와도 비슷했다. 우리는 그것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지만,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증명서의 힘에 기대어 거래한다."
퍼니스의 유별난 여행기는 1910년에 출간되었지만, 경제학계의 눈길을 끌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중 한 권이 어쩌다 영국 왕립경제학회 기관지 이코노믹 저널 편집부로 흘러들어갔다. 편집부는 켐브리지 대학교 출신 젊은 경제학자 케인스에게 이를 읽어보라고 주었다. 20년 뒤 화폐와 금융에 관한 세상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으나, 그 당시만 해도 영국 전시 내각의 신출내기 관료에 지나지 않았던 케인스는 퍼니스의 여행기를 읽는 내내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퍼니스의 여행기 덕에 화폐에 관해서라면 세계 어느 나라 국민과 견줘도 철학적으로 훨씬 심오한 생각을 만들어낸 야프섬 원주민을 알게 되었다. 현대의 금 보유 관행은, 논리적으로 더 뛰어난 야프섬 관행에서 배울 점이 많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가 어째서 야프섬의 화폐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하고 보편적인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했는지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 야프섬의 돌 화폐 이야기는 화폐의 기원에 관한 전통 이론의 설명에 도전장을 내민다. 더 나아가 화폐는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개념에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함 전통이론에 따르면 화폐란 교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게 해주는 상품들 중에서 선정된 물건이며, 화폐교환의 본질은 재화와 서비스를 이 교환수단을 통해 맞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야프섬의 돌 화폐는 이 도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첫째, 누군가를 지름 30센티미터에서 360센티미터에 이르는 굉장이 크고 단단하며 무거운 돌 바퀴를 교환수단으로 선택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대부분 사례에서 돌 바퀴를 옮기는 것은 거래대상인 재화를 옮기는 것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
둘째, 페이는 다른 모든 것과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의미에서의 교환수단도 아니었다. 페이가 교환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운반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페이가 바다에 빠진 사례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문제의 페이를 교환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고사하고 실물을 본 적도 없었다. 야프섬 주민이 이상하게도 페이가 어찌 되건 무관심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화폐 시스템에서 핵심은 교환수단으로 사용되는 돌 화폐가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었다.
- 교환수단으로 선정된 상품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야프섬 주민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덤 스미스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장소에서 당야한 상품이 화폐로 선정되었다고 주장했음. 다시 말해 뉴펀들랜드섬에서는 말린 대구, 버지니아에서는 담배, 서인도제도에서는 설탕, 스코틀랜드에서는 못이 화폐로 쓰였음. 그러나 국부론이 나오고 나서 한두 세대 지난 뒤 거기 실린 사례가 과연 타당한지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예컨대 미국인 은행가 토머스 스미스는 1832년 '통화와 은행에 관한 소고'에서 애덤 스미스는 이들 사례를 두고 특정 상품이 교환수단으로 사용된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 그 모든 사례는 알고 보면 근대 영국에서 그랬듯 파운드, 실링, 펜스 단위로 계산된 거래와 다르지 않았다. 판매자는 자신의 장부에 화폐단위로 채권을 기재했고, 구매자도 자신의 장부에 화폐단위로 채무를 기재했음. 판매자와 구매자가 누적 채권과 채무를 서로 상계하고 남은 채무의 순 잔액을 그 가치에 해당하는 이런저런 상품을 털어버렸다는 사실은 그 상품이 화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애덤 스미스는 신용 시스템 및 신용 시스템 이면의 정산 시스템이 아니라 상품 지불에만 주목한 바람에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애덤 스미스가 그랬듯 상품 자체가 화폐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는 논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헛소리로 귀결되고 만다 화폐의 본질을 다룬 뛰어난 논문을 두편이나 썼지만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경제학자 앨프리드 미첼 이니스는, 뉴펀들랜드섬에서 말린 대구가 화폐로 사용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에 담긴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직설적인 말로 정확하게 정리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주산물이 화폐로 사용되는 건 불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가설에 따르면 교환수단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똑같이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부가 말린 대구로 물품 대금을 지급했다면, 어부와 버래한 상인은 똑같이 말린 대구를 구입한 대금을 말린 대구로 지급해야 한다. 누가 봐도 터무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야프섬의 페이가 교환수단이 아니었다면, 페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더 중요하게는 야프섬의 화폐가 아니었다면, 무엇이 야프섬의 화폐였을까? 이 두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굉장히 간단하다. 야프섬의 화폐는 페이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근원적 신용거래 및 정산 시스템이었고, 페이는 이 시스템을 추적, 기록하는 보존수단이었다. 페이는 이들 신용거래를 나타내는 증거물에 불과했다. 뉴펀들랜드섬 주민이 그랬듯이 야프섬 주민이 물고기, 코코넛, 돼지, 해삼을 거래하는 과정에서도 채권과 채무가 발생해 쌓였다. 이들 채권과 채무는 사후정산을 통해 서로 상쇄되었다. 즉, 일회성 거래가 끝난 뒤나 하루 단위, 혹은 일주일 단위 거래가 끝난 뒤 거래 당사자는 서로 원한다면 적절한 가치의 통화, 즉 페이를 교환해 이월된 미결제 잔애을 정산했던 것이다. 페이는 야프섬 주민 사이의 매매거래에서 발생한 미결제 신용 잔액이 기록된,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였다. 다시 말해, 주화와 통화는 근원적 신용거래 시스템을 기록하고, 근원적 정산과정을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증거물이다. 주화가 바다에 떨어져 밑바닥에 놓여 있어도 그것이 그 소요주의 재산이라는 데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야프섬보다 경제규모가 더 큰 곳에서도 통화와 주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통화 그 자체는 화폐가 아니다. 화폐는 통화의 의미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신용 정산의 체계다.
- 화폐는 하나의 상품이고, 화폐교환은 재화와 교환수단을 맞바꾸는 것이며, 신용은 화폐상품을 빌려주는 것이라는 전통적 관점은 지난 수백 년간 이론가와 철학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그리하여 경제사상과 경제정책을 지배해왔다. 전통적 화폐이론이 분명히 틀렸다면, 그렇게 유명한 경제학자와 철학자가 그것을 믿었던 이유는 뭘까? 왜 오늘날 유명한 경제학자 대부분이 전통적 화폐이론에 담긴 근본적 이념을 현대 경제사상의 주춧돌로 삼기를 고집했을까? 간단히 말해 왜 전통적 화폐이론은 생명력이 강한 걸까? 여기에는 깊이 생각해야 할 이유가 두가지 있다.
첫번째 이유는 화폐에 관한 역사적 증거와 관련 있다. 오래된 화폐가 적잖이 남아 있지만, 문제는 그 모두가 사실상 단 하나의 유형, 즉 주화라는 점이다. 전 세계 박물관은 고대와 현대의 주화를 잔뜩 쌓아두고 있다. 주화 및 주화에 새겨진 명문은 고대문화, 사회, 역사를 이해하려 할 때 꼭 필요한 주요 고고학적 자료다. 재능있는 학자가 해독한 주화 속 이미지와 짧은 문구는 고대 신의 위계서열, 고대 공화국의 이념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알려준다. 고대 주화를 연구하는 학문이 고전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전학은 특별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해볼만한 우표수집과는 다름. 가장 성과 높은 역사 연구분야의 하나다. 물론 주화가 고대 역사 연구에서 굉장이 중요한 이유, 무엇보다 화폐 역사의 연구를 지배해온 이유는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이 주화밖에 없기 때문이다.
-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 600년 이상 영국 재정은 단순하지만 굉장히 독창적인 회계기술, 즉 재무무 엄대 시스템에 따라 운영되었다. 엄대는 웨스트민스터궁 인근 템스 강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로 만든 막대기. 엄대에는 재무부의 수입과 지출내역이 눈금으로 새겨졌고, 대로는 글씨로도 적혔음. 지주가 국왕에게 납부한 세금의 영수증으로 쓰인 엄대가 있는가 하면, 국왕이 유력한 신하에게 빌린 돈을 만기에 갚았다는 기록이 담긴 엄대도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한 엄대를 보면 "풀크 바셋에게서 받은 위컴 농장지대 9파운드 4실링 4페니"라고 적혀 있다. 13세기 런던 주교 풀크 바셋이 헨리 3세에게 진 빚과 관련 있는 듯하다. 뇌물 수수를 기록한 것 같은 엄대도 있음. 민간인이 소장한 한 엄대에는 "국왕의 은전에 대한 대가로 윌리엄 드 툴레위크에게서 13실링 4페니를 받음"이라는 수상쩍은 글이 적혀 있다. 양쪽 거래 당사자는 엄대에 거래 세부내역을 기록한 뒤 엄대를 가로로 쪼개 하나씩 나눠 가졌다 채권자가 보관하는 것은 스톡이라 불렸고, 채무자가 보관하는 것은 포일이라 불렸다. 스톡이라는 말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영국의 국채를 가리킨다. 버드나무는 나뭇결이 독특하기 때문에 사실상 위조하기가 불가능하다. 또 엄대에 새겨두는 것이 웨스트민스터궁의 장부에 기록해두는 것보다 이동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엄대 보유자는 거기에 기록된 재무부 채권으로 제삼자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현대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엄대는 채권, 주권, 은행권처럼 보유자에게 액면 금액을 수령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무기명 채권증서였던 셈이다.
- 영국의 엄대 시스템이 보여주듯 주화는 거대한 빙산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음. 주화만으로 화폐와 금융의 방대한 역사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함. 한마디로 화폐의 존재와 운용을 알려주는 물리적 증거가 더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 자연재해가 발생해 현대 금융 시스템의 실상이 담긴 디지털 기록이 파괴되었다고 가정할대, 미래의 역사가가 무엇에 의지해 오늘알 화폐의 역사를 복원할 지 생각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의 추론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파괴되지 않고 남은 파운드와 유로 동전덜, 5센트와 10센트 주화만이 오늘날 화폐의 전부라고 가정한다면, 현대 경제 생활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전통적 화폐이론이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두번째 이유는 사회과학 고유의 문제점과 직접 관련 있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연구대상을 객관적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굉장히 어려움. 어떤 제도가 우리 일상적 삶의 핵심부와 가까워질수록 한걸음 비켜서서 그 제도를 분석하기란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한걸음 비켜서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화폐의 보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우며 화폐가 예나 지금이나 논쟁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두번째 이유는 화폐가 경제의 불가결한 일부이기 때문. 우리가 화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국 속담의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며 물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야프섬 사례는 지난 수백년간 경제학자의 골머리를 썩이던 화폐의 본질, 즉 교환수단으로 기능하는 통화, 상품화폐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관한 그릇된 선입견을 벗겨냈다. 야프섬 같은 원시경제에서도 오늘날 경제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통화는 잠깐 사용하다 마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용거래 뒤 정산하는 메커니즘의 기초를 이루는 시스템이 화폐의 본질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통이론이 그리는 것과 전혀 다른 화폐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그림을 마주하게 되었다. 화폐를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의 핵심은 신용이다. 화폐는 상품교환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본요소로 이루어진 사회적 기술이다.
첫번째는 화폐의 액면금액으로 표현되는 추상적 가치.
두번째는 개인이나 기관이 서로 거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과 채무의 잔액을 기록하는 신용거래 시스템
세번째는 원래 채권자가 그 채권과 아무 상관없는 채무를 정산하기 위해 제삼자에게 채무자의 채무상환 의무를 양도할 가능성.
이 세번째 기본요소가 매우 중요함. 모든 화폐는 신용이지만, 모든 신용이 화폐인 것은 아님. 양도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서 차이가 남.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금전소비대차계약만 나타나는 한 차용증서는 신용이지만, 화폐는 아니다. 차용증서를 제삼자에게 양도할때 신용이 생겨나고, 이는 화폐로 양도가능한 신용이다. 신용이 생겨나 화폐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화폐는 단순한 신용이 아니라 양도가능한 신용이다. 19세기 경제학자 겸 변호사 헨리 더닝 매클라우드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화폐의 근본적 성격이 들날 것이다. 분명히 말해 화폐의 주요 용도는 채무를 측정하고 기록하는데, 이 사람에서 저 사라으로 채무의 양도를 쉽게 하는 데 있다. 금, 은, 종이 등 그 무엇으로 만들어졌던 이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화폐인 것이다. 그래서 화폐라는 말과 양도가능한 채무라는 말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종류가 무엇이든 양도가능한 채무를 나타내는 것은 화폐다. 또 화폐는 그 소재가 무엇이든 다름 아닌 양도가능한 채무를 나타낸다."
채권은 양도가능하다는 혁신적 생각 덕분에 화폐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 일어났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물물교환 대신 화폐를 사용해 거래하면 더 편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채권을 양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경제와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 누가 인류의 운명에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발견을 했는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부채도 판매 가능한 상품이라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 아일랜드 은행 폐쇄 사례는 은행과 신용카드, 위조방지 표식이 새겨진 지폐 같은 공식적 장치는 화폐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 이들 장치는 사라질 수 있지만, 화폐는 살아남는다. 신용거래 및 정산 시스템으로서 팽창과 수축을 한없이 반복하며 거래의 원활한 순환을 도움. 화폐가 신용거래 및 정산 시스템으로 기능하려면 신용도가 높은 채무자가 존재하고, 제삼자가 채무자의 채무를 인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어야 함. 경험에 비춰볼 때 정부와 은행이 나서면 이 두가지 기준이 쉽게 충족되지만,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은 그러기가 쉽지 않음. 그러나 아일랜드의 은행 폐쇄사례가 보여주듯이 이 경험칙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님. 공식적 화폐 유통질서가 해체되더라도 사회는 효과적 대안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 우리는 형체와 내구성을 겸비한 주화를 비롯한 모든 통화는 화폐이고, 그 위에 신용과 채무라는 마법과 같은 무형의 장치가 놓여 있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다. 양도가능한 신용이라는 사회적 기술이 자본적 힘이나 화폐의 원초적 실체다. 야프섬의 돌 화폐 페이, 중세 영국의 버드나무 엄대는 물론 은행권, 대용화폐,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벌어진 통화 혼란사태 때마다 작성된 차용증서, 오늘날 선진국 은행이 널리 사용하는 전자 데이터 등은 모두 무수한 채권, 채무관계의 근저에서 수시로 변화하는 잔액을 기록한 증거물이다. 뉴턴 역학이 양자역학으로 바뀌면서 물리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극적으로 달라졌듯이, 화폐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경제현실을 이해하는 방식도 극적으로 달라진다.
- 구소련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이 계획이나 계획을 조율하는 계획가가 없어도 경제가 작동할 수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듯이, 시장경제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는 사회가 시장이나 화폐 없이도 작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놀랄 것이다. 화폐와 시장이 존재하기 전에 무엇이 사회를 조직했을까?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이에 대해 풍부하고 자세한 대답을 들려준다.
- 화폐가 없던 암흑시대 그리스사회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의식주 같은 인간의 기본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부족원이 자기 땅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근근이 먹고사는 자급자족 경제였기 때문이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세가지 사회제도도 강조한다. 일리아드는 특히 전쟁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전쟁에서 도시를 점령하거나 적을 물리친 뒤 전리품을 나눠 갖는 것은 그중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이는 일종의 소득분배 시스템으로서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배규칙부터 빈번하게 논란이 된다. 사실 일리아드의 줄거리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와 그리스 동맹군 사령관 아가멤논이 누가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말다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오딧세이의 시대에 이르러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오딧세이는 트로이에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아버지를 찾아 에게해를 떠도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오디세이 시대에는 일리아드 시대와 전혀 다른 제도가 장면을 지배함. 다시 말해 부족장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는 관습이 등장한 것. 동료 귀족과 만나거나 헤어질 때 선물을 주는 것이 당시 관습이었다. 이 선물은 다음번 찾아가면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 원시적 형태의 교환경제는 사회적으로 동등한 사람과의 유대를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미래에 대비한 사회적 기반을 공고히 다지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전리품 분배규칙이 그랬듯이 교환경제 규칙도 종종 분란을 일으키곤 했다. 트로이 전쟁 자체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규칙을 어기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신부인 헬레네를 데리고 달아났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암흑시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전쟁중일 때를 제외하면 교환경제가 가장 중요한 경제적 상호작용 시스템이었다. 사실 교환경제는 그 당시 세게관에 비춰볼 때 핵심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호메로스보다 200년 뒤에 활동한 어떤 시인은 행복한 삶의 본질을 포착해 이렇게 읊었다. "아들, 사냥개, 말 그리고 외국에서 돌아온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리니."
- 거의 모든 면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는 암흑시대 그리스 사회와 달라도 아주 달랐다.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에는 원시적이고 평등한 부족사회가 있었지만,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만명의 주민이 반신반인 왕의 지배를 받으면 다층적 위계질서에 따라 조직된 도시가 있었다. 또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에서는 부족장이 무지막지한 권력을 휘두르며 평민을 지배했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는 신전관료가 운영하는 회계 시스템에 의한 정교한 지배가 뿌리를 내렸다.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 경제는 호혜성 원리와 희생의식이 지배하는 단순한 경제였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 경제는 세련된 경제계획 시스템이 지배하는 복잡한 경제였다. 호혜성 원리와 희생의식이 수천년간 무수한 원시부족에게 낯익은 것이었다면, 경제계획 시스템은 현대 다국적 기업 경영자에게 낯익은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 경제와 암흑시대 그리스 경제는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똑같았다. 신전 관료의 계획경제건, 암흑시대 그리스의 원시부족 제도건 화폐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대단히 뛰어난 상업문명이 발달했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경제를 뽐냈으며 문자, 숫자, 회계를 발명한 사회로 꼽힌 고대 메소포타미아가 왜 화폐를 발명하지 못했을까?
- 전통적 도량형 개념은 구체적 상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아래에서부터 만들어진 것, 눈앞에서 진행되는 활동과 가장 관련깊은 측면을 포착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경작지의 둘레를 재서 그 넓이를 알아낸다. 그러나 중세 촌뜨기 농부에게 밭의 넓이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톨트 쿨라의 설명을 들어보자. "밭의 두가지 질적 측면이 대단히 중요하다. 첫째가 밭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고, 둘째가 밭에서 거둘 수 있는 수확물의 양이다." 그 결과 밭을 측정하는 전통적 단위는 한 사람이 하루에 쟁기질할 수 있는 넓이나 일정한 양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넓이를 기준으로 정의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넓이의 단위를 정하면, 밭의 질적 수준에 따라 넓이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음. 현대인이 보기에 일반성 없는 단위였지만,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이 사례는 모든 도량형 개념의 적절성 정도와 표준화 여부는 그 용도가 무엇인가에 좌우된다는 일반적 사실을 보여준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량형학은 정적인 학문이 아니다. 측정용도가 바뀌면 측정단위와 측정기준도 바뀐다. 게다가 측정용도가 측정단위, 기준은 서로 기줌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한다. 즉, 관습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측정단위가 새로 등장하는가 하면, 범위가 더 넓은 도량형 개념이 발명되고 더 일관된 기준이 적용됨에 따라 새로운 방식의 기술적, 경제적 협력이 활기를 띠기도 한다. 고립된 자작농 위주의 경제에서는 마을마다 다르고 일관성 없는 여러 측정 시스템과 기준 시스템으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의 시대, 즉 기계의 시대이자 대량생산의 시대는 표준화를 요구했고, 국제무역과 산업의 급성장은 효율성이라는 명분하에 공통의 단위를 필요로 했다. 오늘날에는 공통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보편적 단위의 필요성이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 고도의 기술과 세련된 문화가 반드시 발전을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역사를 보면 새로운 사상의 흡수를 거려했거나 흡수할 능력이 아예 없었던 선진적 문명이, 기존 성취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후진적 민족에게 따라잡힌 사례가 풍부하다. 고대 세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혁신적인 사회 시스템, 즉 관료제에 의해 운영되는 대도시와 복잡한 경제가 있었다. 관료제는 문자, 수, 회계 같은 최첨단 사회적 기술을 이용해 최적의 효율과 성과를 발휘했다. 인류 문명의 정점을 찍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서방 미개민족에게서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들 미개민족은 1000여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미 사라진 투박한 부족제도를 기반으로 소규모 사회를 조직해서 살았다. 그러나 그리스는 달랐다. 그리스인은 문자와 숫자를 받아들이면 편익이 엄청나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그들은 동방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적절한 관계를 맺자 마자 새로운 기술을 철저하게 받아들여 전 그리스 세계로 퍼뜨렸다.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서 문명을 전파한 민족은 레반트 지방의 페니키아인이었다. 그리스 인이 암흑시대 말기부터 광범위하게 관계를 맺은 페니키아인은 항해술과 장사수완이 뛰어난 민족이었다. 그리스 문자에 관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로 글귀 세줄이 간명하게 새겨진 유명한 술잔이 꼽힌다. 1954년 이스키아섬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이 술잔의 제작연대는 기원전 750년에서 7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감. 불과 몇 십년 사이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는 능력이 동으로는 흑해 연안에서 서로는 시칠리아섬과 티레니아해 연안 식민지까지, 그리스 세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문자와 숫자라는 새로운 기술은 그리스 문화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650년 이후 100년간 전례 없는 지적 혁명이 일어났다. 수량화하는 능력, 기록하는 능력, 반성하는 능력, 비판하는 능력 덕에 사고의 행방이 일어난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는 화폐의 세가지 요소 중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자와 숫자의 발견을 기반으로 발전한 회계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의 정교한 관료경제, 통제경제에는 보편적 경제적 가치라는 개념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제각각 독자적 기준이 있는 제한적 용도의 가치개념만 필요했고, 그들은 이를 완성시켰다. 화폐의 첫번째 구성요소인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경제적 가치의 단위를 개발하지 않았다. 반면에 암흑시대 그리스에는 비록 원시적 형태이긴 했지만, 보편적 가치개념과 보편적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있었다. 그리스 암흑시대에는 회계 시스템은 고사하고 문자도 숫자도 없었음. 화폐의 첫번째 구성요소가 발생 초기 형태로 존재했지만, 두번째 구성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의 최신기술인 문자, 숫자, 회계가 야만적 서방에서 싹튼 보편적 가치의 척도라는 개념과 결합하자 비로소 화폐의 전제조건이 형성될 수 있었다.
- 화폐의 두가지 구성요소, 즉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가치 단위개념과 화폐를 단위로 삼아 장부에 기록하는 관습이 널리 확산됨에 따라 세번째 구성요소인 탈중앙적 양도원리도 나타남. 보편적 경제적 가치라는 새로운 개념이 싹트면서 중앙 통제기관의 승인을 받지 않고 의무를 상쇄하는 것이 가능해짐. 또 객관적인 경제적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 즉 시장개념은 그 가능성이 부단히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남. 시장이 있을 때 사람들은 중앙 통제기관에 무엇을 선호하는지 알려 행동지침이 받는 대신,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고 임금에 합의할 수 있다. 이때 흥정이 성공하려면 공통의 언어가 있어야 함. 흥정하며 주고받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서로 공유해야 함. 그래서 가치개념과 표준화한 가치측정 단위의 공유는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임. 다시 말해 흥정이 일어나려면 어떤 재화와 서비스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경제적 가치의 단위도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달러화는 무엇인가에 관한 일반적 합의가 없다면, 시장바닥에서 달러화로 표시된 가격을 놓고 흥정하는 것은 새와 벌에게 말을 거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최초의 혁명적 화폐화 경험은 사회와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경제 중앙통제기관과, 고착화된 사회계층을 특징으로 하던 전통사회 시대는 끝났다. 대신 화폐사회시대, 시장이 거래를 조직하는 원리로 기능하는 시대, 가격이 인간의 행동지침으로 작동하는 시대, 그리고 야망과 기업가 정신, 혁신이 지배하는 시대가 새로 열림. 낡은 우주론은 죽어갔고, 그와 더불어 공정한 사회질서는 우주질서의 지상 축소판이라는 낡은 생각도 사라져갔다. 대신 돈 버는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경제중심적, 화폐중심적 생각이 발전했음. 낡은 제도 아래서는 사회적 지위가 절대적이었음. 농부로 태어나면 농부로 살다 죽었고 부족장으로 태어나면 부족장으로 살다 죽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었다.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한 척도는 돈이었다. 그리고 돈의 축적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없다. 재산도 잃고 친구도 잃은 아르고스의 귀족 아리스토데모스는 새로 자리잡은 질서에 넌더리를 내며 "아, 돈! 돈 나고 사람 나는 세상이야"라는 유명한 말을 내뱉었다. 이제 돈이 사회적 지위, 가문, 명예를 좌우했고, 전통은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누구든 돈이 없으면 별 볼 일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 아르헨티나 외에도 통화 레지스탕스가 정부의 경제적책에 맞선 게릴라전을 벌인 사례는 더 있음. 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할 무렵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음. 러시아 정부는 수십 년간 보조금에 의지해 유지되어온 기업을 겨냥해 예산을 매섭게 줄이는 충격요법을 취했다. 그 바탕에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기업을 대거 청산하는 창조적 파괴를 거쳐 살아남은 기업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기업경영자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경영하던 기업이 공식 금융부문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꽉 막히고 경영자들은 조용히 퇴직하라는 압력에 직면했지만 그들은 묘책을 생각해냄. 독자적 통화 네트워크를 만들어 거래를 정산한 것. 공급사슬로 연결되어 장기간 거래신용을 쌓아온 덕분에 국정통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채권, 애무를 상쇄할 수 있는 기업이 모인 네트워크였다. 97년에 이렇게 통화 네트워크를 통해 정산된 기업간 거래규모는 러시아 전체 거래규모의 4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됨. 노동자는 대용화폐나 바우처러 급여를 받음. 우크라이나의 한 애널리스트는 그 발행규모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약. "이들 사적 화폐, 독립회계 화폐의 종류가 우크라이나는 수백가지, 러시아는 수천가지에 이른다."
- 제정 초기 로마 상류층이 농장 경영으로 부를 쌓던 시절은 한참 전에 끝남.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농장을 경영해 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라고 당시의 로마인을 노래했다. 그는 "전 재산을 국채에 쏟아부었다."는 이유를 대며 청구서에 지불하지 못해도 봐달라고 간청한 금리생활자가 드물지 않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 살았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시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은 거들떠보지 않고 화폐 형태로만 부를 쌓기로 선택한 부자가 있었다. 로마의 은행가도 예금을 받고 대출을 일으키며 국제거래를 정산. 그때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금융 엘리트는 복잡한 금융기법으로 특별한 지식이 없는 사람을 현혹했다. 금융 엘리트의 행태에 신물이 난 키케로는 신랄하게 비꼬는 글을 썼다. "야누스 신전 부근 영업소에서 일하는 어떤 영악한 친구들은 어디서 돈을 벌고 어디에 돈을 맡겨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그 어떤 학파의 철학자보다 말을 잘한다." 이렇듯 화페화가 널리 진행되었으므로, 로마인이 현대 금융의 낯익은 또 하나의 특징인 신용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님. 로마 사회가 현대 사회와 닮은 점이 많아 가끔 기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기원후 33년 로마 황베 티베리우스의 재무관은 최근 몇 년간의 사적 대출업 붐이 과도하다고 판단. 비정상적 과열양상을 보인 사적 대출업을 진정시키려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결정 내리고 선행법령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수십 년 전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시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부유한 세습귀족이 돈을 빌려주고 받는 이자를 엄격히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짐. 카이사르는 한마디로 대출업자의 자기자본요건을 엄격하게 정하는 법을 제정했던 것. 이 법이 알려주는 바는 명백했다. 아무리 사적 대출업을 규제해도 부지런한 대출업자는 매번 규제를 피하는 방법을 용케 알아낸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끊임없이 새로운 규제조치를 취하며 사적 대출업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대출업자는 희한한 수법을 개발해 되살아났다."고 썼다.
- 화폐사외에서 전통사회로 전면적으로 후퇴했으나 완전하게 후퇴한 것은 아니었다. 대형 금융거래의 정교한 기법부터 자그마한 주화를 사용할 때의 소박한 편리함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금융기술의 파노라마는 잊혔지만, 로마 화폐사회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보편적인 경제적 가치개념이 그것이다. 유동적 사회구조가 다시 딱딱하게 굳어감에 따라 확고한 부족관계와 봉건관계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화폐사회의 전형적 징표인 보편적인 경제적 가치개념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훗날 유럽 사회의 재화폐사회화를 널리 촉진시키는 지적 고정자본이 되었다. 8세기 말 프랑크 왕국이 서유럽을 제패한 뒤 화폐사회는 부활했다. 샤를마뉴 대체 치하에서 파운드, 실링, 펜스 등의 화폐단위가 되었고, 유럽 전역에서 일관된 기준에 따라 화폐가 발행되었음. 그러나 이 첫번째 화폐 르네상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12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야 2000년 전 에게해에서 확립된 논리에 따른 재화폐사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됨. 12세기말부터 서유럽 저지대나라(벨, 네, 룩 일대)를 시작으로 전 유럽에 걸쳐 전통적인 현물지대가 화폐지대로 바뀌어감. 농노가 1년 중 일정기간 동안 봉건영주에게 노역을 마치던 부역제도도 임금노동으로 대체됨. 가난한 사람이 보기에 세습귀족과 다르지 않았던 민간 관료는 봉급을 받으며 전문적 일을 하는 집단이 되기 시작. 이거은 민간관료를 부릴만한 경제력이 있는 지역에서는 로마시대 이후 처음으로 조세의 금납화가 재도입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 12세기말에서 14세기 중반에 거린 이른바 장기 13세기에 벌어진 유럽의 재화폐사회화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현상을 초래. 첫째, 화폐로 거래하며 부를 쌓아가는 개인과 기관이 출현. 그들은 군주 이상으로 화폐에 대해 '정치적으로 강력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화폐 사용이 늘어날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기적이었다. 경제활동의 화폐화가 더욱 심해지고 화폐경제에 말려드는 사람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시뇨리지를 부과하는 대상도 확대됨. 그러나 군주는 국고를 채워주는 시뇨리지의 마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술적 한계까 아니라 정치적 한계였다. 새로 등장한 화폐 이익집단은 때가 되면 군주의 도를 넘는 시뇨리지 추구행위에 반대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 리옹 같은 대도시에서 시장이 서면 유럽의 대상인은 대륙 곳곳의 마을과 도시에서 매주 열리는 장을 크게 키울 기회로 생각해 모여들었다. 이런 시장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고가의 사치품 거래가 일어나는 주요 공간으로, 거기서 중세 경제의 역동성이 크게 발휘되었다. 그것은 물론 지역에서 생산되는 변하기 쉬운 다양한 농수산물이 소규모로 거래되는 공간이기도 했음. 그러나 장기 13세기 동안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을 조직하는 방식이 바뀜. 무엇보다 무역업에서 노동의 분화가 일어남. 상인 가문의 수장은 이제 더는 상품을 갖고 돌아다니지 않았다. 본국에 머물면서 대리인을 주요 수출시장에 보내 상주시켰고, 계약에 따라 육지나 행상으로 상품을 운송하는 전문 운송인을 두었다. 상인은 상품이나 상품거래대금의 명의변경 같은 국제거래의 법적, 재무적 측면이나 전화 한 통화로 받은 수입과 다른 통화로 나간 지출을 조정하는 재무적 계산에 주로 관심을 기울임. 상품을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기는 지루한 작업은 상인보다 더 낮은 계급에게 넘어갔다. 이처럼 무역을 조직하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시장의 본질도 서서히 바뀌어감. 본래 리옹 같은 대도시의 시장은 지역 소매상인의 거래가 맨 밑에 위치하고, 도매상인과 국제상인의 거래가 중간에 위치하며, 낮은 수준에서 누적된 신용거래의 상계처리가 맨 꼭대기에 위치하는 피라미드 모양.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 상인계급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페르낭 브로델이 말했듯이, "피라미드 밑바닥이 아닌 꼭대기에 상품이 아닌 신용이 집중되었다." 상품을 물리적으로 교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반면 지난 몇 달 동안 국제거래에서 누적된 채권과 채무 잔액을 정산하고 결제할 기회는 날로 늘어갔다. 한 시장이 문을 닫고 다른 시장이 문을 여는 사이 국제거래는 주화가 아니라 환어음에 바탕을 둔 신용으로 결제되었다. 환어음은 범유럽 상인가문이 고객에게 발행한 크레디트노트였다. 그러면 고객은 해외도시의 공급자에게 상품대신 크레디트노트를 건네주었음. 결국 1555년 무렵 리옹 시장은 유럽의 상인가문이 거래대금을 조달하기 위해 환어음을 발행함에 따라 상호 누적 채권과 채무잔액을 정산하는 정산소 역할을 주로 했다. 상품이 아니라 화폐를 교환하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 됨. 온종일 문서작업에 매달리던 이탈리아 상인도 이 시장 시스템의 일부였음
- 유럽의 대상인 가문은 영업활동이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거래 사슬의 중간에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음. 신용을 계층적으로 조직화할 가능성을 재발견 한 것. 지역 소매상인의 지불약속은 고객과 공급자라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면 별 가치가 없다. 그러나 지역 소매상인보다 거래규모가 훨씬 크고, 보유자금이 아주 많으며, 오랜 성공의 역사를 누려온 국제적 대상인의 지불약속은 달랐다. 대상인이 자신의 지급약속으로 지역 소매상인의 지불약속을 대체하면 그 전에는 고작 지역경제 테두리 안에서만 유통되던 차용증서가 대상인의 명성이 자자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유통되는 차용증서로 바뀔 수 있었다. 결국 지역 소매상인의 신용이 맨 아래에 놓이고, 도매상인의 신용이 중간에 놓이며, 배타적이고 유명하며 결속력이 강한 국제적 대상인 집단의 신용이 맨 꼭대기에 놓이는 신용 피라미드가 세워졌다. 다시 말해 국제적 상인 가문이 지역 상인가 지역상인의 거래상대에 끼어들어, 유동성 없는 쌍방향 지불약속을 이 채권자에게서 저 채권자에게로 쉽게 양도가능한, 그래서 대상인 가문의 신용이 통하는 곳에서는 화폐처럼 유통할 수 있는 유동성 있는 부채로 바꿔 놓았다. 달리 말해 아주 영세한 지역상인조차 국제적 대상인의 이름 아래서, 지역의 테두리를 벗어나 원래 채무자가 누구이고 무슨 사업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유럽 다른 지역의 상인과 거래하고 대금을 결제할 수 있었다. 바로 여기서, 즉 사적 결제 시스템의 창출에서 근대 은행의 발명이 싹틈. 근대 은행의 기원이 보잘것 없어서 의외라 생각할 수도 있다. 흔히 생각하기에 은행 부문의 지급 서비스는 틀에 박힌 지루한 업무이고 대출이나 증권, 채권거래는 역동적인 업무일 것 같다. 그러나 자금조달 및 지급결제 활동은 은행의 기본활동이다. 이 활동 덕분에 은행은 통화 역할을 하며 특별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은행은 한편으로는 차용증서(은행이 예치한 예금, 은행이 발행한 채권과 어음 등 은행입장에서 부채)를 발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용증서(은행의 대출금과 보유유가증권 포트폴리오 등 은행 입장에서 자산)를 모아둔다. 모든 기업은 공급자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해주고, 고객에게서는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놓는다. 대부분 기업에서는 이들 재무적 자산과 부채의 가치가 설비자산, 업무용 부지와 시설, 재고자산 등 실물자산의 가치보다 작다. 그러나 은행은 정반대다. 리옹 시장의 수수께끼에 싸인 이탈리아 상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리면 짐작가능함. 은행의 실물자산은 예나 지금이나 무시할 만한 것으로 평가받음. 현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적힌 금액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07년 영국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적힌 자산규모는 영국 전체 GDP보다 더 컸다. 제조업 기업도 그만한 규모의 자산을 쌓아둘 수 없다. 은행이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대차대조표에 적어둘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든 자산이 지불약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 거의 모든 부채도 마찬가지다.
- 환은행가가 유럽 대도시 간 무역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환어음을 지속적으로 발행하고 인수함에 따라 채권과 채무잔액이 쌓여갔음. 환은행가 집단의 결속력이 끈끈해, 미결제 잔고가 쌓여도 기꺼이 용인했음. 그렇지만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빚졌는지 분명하게 파악하려면 채권과 채무를 정기적으로 상쇄해야 했다. 누적 채권과 채무는 쌍방이 합의하면 즉석에서 상쇄할 수 있었지만,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리면서 채권과 채무를 덩어리로 정산할 기회가 점차 자연스레 열렸다. 대상인 가문은 분기마다 리옹시장에서 모임을 갖고 서로의 장부를 맞추며 정산했다. 시장이 열리고 나서 처음 이틀 동안은 열심히 채권과 채무를 사고팔고 새 환어음을 발행하며 오래된 환어음을 취소했다.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대상인 가문 대리인이 일제히 분기별 장부를 마감해 대상인 가문 사이의 채권과 채무잔약을 확정지었다. 셋째날은 가장 중요한 환율의 날이었다. 환은행가 집단의 고위 간부는 따로 모여 콘토, 즉 에퀴 드 마르와 유럽의 다양한 법정화폐 사이의 환율 명세서를 작성. 환율명세서는 전체 금융 시스템의 중추였다. 시장 마지막날인 결제의 날에 환율명세서에 적힌 환율로 미결제 잔액을 다음 정산일까지 이월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현금으로 결제할 것인지 합의해야 했다. 리옹의 비밀스러운 이탈리아 상인 같은 신중한 환은행가의 임무는 시장이 열린 첫째 날 채권과 채무의 거래를 성사시켜 결제의 날까지 잔액을 완벽하게 털어내고 이익을 올리는 것이었음. 그러나 환은행가가 경이로운 부와 권력을 누리는 실제 원천은 갓 생겨난 외환시장이 요동치는 틈을 파고들어 투기할 줄 아는 능력 하나만이 아니었다. 환어음 시스템은 국제무역이나 외환거래는 촉진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지만, 그 수단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는 훨씬 포괄적이고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시스템이었다. 환은행가는 유럽 곳곳에서 사적 신용이 화폐로서 유통될 수 있게 하는 거대한 기계의 가동부를 차근차근 조립해나갔다. 거기에는 화폐의 세가지 기본적 구성요소가 담겼다. 먼저 아르헨티나의 크레디토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추상적 가치단위, 에퀴 드 마르가 있었다. 또 독자적 회계 시스템도 갖췄다. 파치올리가 산술집성에서 정리한 부기규칙가 대상인 가문이 부기규칙을 적용하기 위해 합의한 표준규약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환어음과 주요 시장의 어음교환소를 이용해 채권과 채무잔액을 이전하고 정산하는 시스템도 마련. 환어음은 국가 내부의 공적 화폐와 상호작용하는 초국적 사적 화폐가 되었다. 환은행가는 국제적이고 자율적이며 결속력이 강한 네트워크로 범유럽 신용 위계체계의 최정점에 올라섬으로써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데 성공. 환어음 시스템을 완성함으로써 유럽 전역에서 유통될 수 있는 사적 화폐를 만들어냄. 환은행가가 만든 사적 화폐의 경제적 의미는 분명했다. 상업혁명을 촉진했고 환은행가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줌. 뿐만 아니라 이는 획기적 정치변화, 금융의 면모를 영원히 바꿔 놓는 변화의 조짐이기도 했다.
- 잉글랜드 은행설립으로 화폐 이익집단과 군주는 역사적 타협에 도달. 화폐 레지스탕스가 마침내 권력을 잡았고, 그 보답으로 그림자 군대가 비록 부분적이긴하지만 정부를 지지했다. 이 타협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화폐 시스템의 직계 선조다. 화폐를 창조하고 관리하는 일은 사적 은행에 거의 전적으로 위임되지만, 법정화폐가 최종정산자산으로 남아 있는 시스템 말이다. 여기서 최종정산자산은 피라미드 맨 위에서 두번째 층에 있는 은행간, 혹은 이들 은행과 국가 사이에 얽히고 설킨 채권, 채무 잔액을 정산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신용잔액을 말함. 현금은 군주가 지켜야 할 신용의 징표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유통중인 화폐 대부분은 사적 은행계좌에 기록된 신용잔액이다. 1694년의 정치적 타협을 모태로 탄생한 군주의 화폐와 사적 화폐의 융합은 아직도 현대 화폐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 맨더빌은 비록 가볍게 툭 던지듯 우화를 발표했지만 그 우화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심오한 생각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탐욕스러운 말버러 공작의 특별한 사례는 일반화될 수 있었다. 언뜻 사악해 보이는 모든 행동이 의도와 달리 실제로는 최상의 결과를 낳음. 맨더빌은 1714년 이 풍자시의 증보판을 새로 펴냈다. 증보판의 제목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은 사회의 역설적 면을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인간 사회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우호적 자질과 속 깊은 애정이 아니다. 이성과 자기부정에 의해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도덕성도 아니다. 선천적인 악에서 도덕적인 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 세상의 악이라 부르는 모든 것 덕분에 인간사회는 존재할 수 있다." 자칫 악을 장려하는 말로 들리겠지만, "인간의 모든 예술과 과학의 진정한 기원은 악이다. ... 악이 멈추는 순간 사회는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심하게 망가질 것이다." 사회 차원에서 최적의 결과를 낳는 최상의 방법이자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야망, 탐욕, 원초적 이기심을 추구하는 개인차원의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당파성 짙은 풍자시인이 진지한 정치경제학자가 되었다. 맨더빌의 시집은 심한 분노를 샀다. 철학자와 성직자가 앞다퉈 그의 끔찍한 주장을 반박했다. 그가 쓴 시집과 수필집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금융혁명이 잉글랜드 은행의 설립이라는 날개를 달고 탄력을 받았듯이, 맨더빌의 역설적 주장은 분명 시대정신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음. 화폐는 어디서나 유통되엇다. 해마다 새로운 회사가 세워졌다. 시골 아낙네조차 주식투자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기업혁명과 금융혁명이 빚어낸 새로운 세상은 설명과 정당화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물의를 일으키며 등장한 맨더빌의 주장은 그 두가지를 동시에 달성해낸 것처럼 보였다. 계몽시대의 떠오르는 샛별 중 한 명이던 스코틀랜드인 애덤 스미스가 받아들인 맨더빌의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충분히 통할 만한 화폐사회이론의 밑거름이 되었다.
-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조직적 경제활동과 개인의 행동을 연관시키는 체계적 이론을 최초로 정립. 금융혁명이 전통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살핀 초기 사상가들의 생각을 최초로 일관성 있게 종합. 그는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질서와 좋은 정부가 자리를 잡았고, 개인의 자유와 안전도 향상되었다'고 주장. 애덤스미스는 이 같은 금융혁명의 정치적 배당이 축적되고 지급되는 이전의 역사적 역설도 깨달았다. 전통사회의 최대 수혜자였던 봉건영주는 화폐의 마력에 푹 빠졌다. 그들은 사치품을 무척 좋아했고, 그로 인해 봉건지대의 화폐화가 촉진됨. "봉건영주는 유치하고 천박하며 추잡한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내동댕이쳤다." 맨더빌이 읊은 역설적 과정을 애덤 스미스가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행동이 의도와 달리 사회의 이익을 효율적으로 증진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은 대단히 유명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또한 이 만족스러운 결과가 개인이 내린 자기결정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시스템 자체의 특징이라는 점을 강조. 개인은 '사실 사회의 이익을 증진할 의도가 없다. 심지어 자신이 어떻게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가치가 만물의 척도가 되고 화폐사회의 동적 관계가 전통사회의 정적 관계를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것은 정치적 균형과 경제적 균형을 지향하는 객관적 시스템으로서의 화폐사회에 대한 전망이기도 했다. 전통사회가 전복되면, '임차농이 독립자영농이 되고 지대가 사라지면, ... 도시는 물론 농촌에도 정상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어느 누구도 그 정부가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화폐사상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업적을 남겼음. 경제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 양쪽에서 화폐사회를 철저하게 정당화했던 것이다. 화폐사회는 실천적 차원에서의 화폐 대타협에 어울리는 지적, 도덕적 차원에서의 역사적 타협이었음. 잉글랜드 은행 설립자는 사적 은행과 국정화폐를 결합시키면 역사속에서 경제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를 향한 힘이 용솟음칠 것으로 믿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아버지 로크는 누구나 화폐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그리고 화폐에 수반되는 자연스럽고 변치 않는 경제적 가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화폐는 새로운 복음인 입헌정부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선언. 화폐는 절정기에 도달했다
- 화폐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전통사회는 엄두도 내지 못할 방법으로 사회적 안정과 사회적 이동을 결합시킬 수 있다는 독특한 약속을 했다. 화폐가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발명품이 된 것은 이 약속 덕분이었음. 화폐사회가 확산됨에 따라 사회와 경제가 전통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곳에서 야망과 혁신이 굉장치 효과적으로 싹텄다. 화폐는 은행과 더불어 정치혁명의 분위기를 조성했을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규모로 사회 구석구석을 활발하게 변화시켰다. 화폐의 장점을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본 유명한 회의주의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9세기 중반의 고도로 발전한 화폐사회를 두고 다음과 같이 불평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든 고정된 관계, 빠르게 굳어진 관계는 유서깊은 오랜 편견 및 견해와 함께 사라져갔다. 새로 형성된 모든 관계역시 미처 자리잡기 전에 낡은 것이 되고 만다. 견고한 것은 아무 흔적없이 사라진다. 신성한 모든 것이 모독당한다.
- 늑대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늑대처럼 울어야 한다.
- 로의 시스템은 믿기지 않는 성공을 거두었다가 한순간에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탓에 금융사기극의 전형으로 매도당했고, 로는 18세기 버니 메이도프로서 금융사기극의 주연을 맡았다는 비난을 샀음. 영국 작가 대니얼 디표는 로가 한 일을 놓고 일확천금을 좇는 젊은이의 본보기라고 비꼬았다. "로의 사례가 말해주는 바는 간단하다. 할 수만 있다면, 검을 차고 다니다 애인의 남자친구 한두 놈 죽여 교도소에 갇혔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탈옥하라. 낯선 나라로 건너가 주식 투기꾼으로 변신한 다음, 국채를 발행해 나라 전체를 거품경제속으로 몰아넣어라. 그러면 당신은 금방 대단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포의 평가는 너무 피상적이다. 로의 시스템은 화폐의 힘을 활용하려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화폐사회의 장점은 살리고 바람직하지 못한 결점은 피하기 위한 제3전략의 원형이었다. 스파르타 전략과 소비에트 전략은 기본적으로 화폐를 믿지 않았고, 화폐의 이용을 억제하거나 제한하려고 시도했음. 반면에 존 로는 야망과 기업가 정신을 촉발시킬 수 있는 힘이 화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믿었다. 로의 회의론은 화폐의 두번째 약속, 즉 고정된 금융적 의무가 제공하는 안전성과 안정성을 사회적 유동성과 결합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약속과 관련이 깊었다. 그래서 로의 전략은 보편적 경제적 가치라는 개념의 사용을 막는 것을 지향하지 않았다. 대신 겨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향했다. 불가능한 일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로의 시스템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그는 이행 불가능한 군주의 지급약속이라는 베일로 화폐의 모순적 약속에 담긴 위험을 가리는 대신 모든 화폐 사용자가 그 위험을 명시적 전면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새로운 타협을 이뤄내려 했다. 로는 국가 소유 단일회사와 국가소유 단일은행을 합병시킴으로써 불산된 화폐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에 숨어 있던 것을 명확히 드러내 보여주었음. 모든 소득과 부는 따지고 보면 생산적 경제에서 흘러나온다. 화폐가 궁극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이 소득에 대한 청구권이다. 그러나 소득은 불확실하다. 세계는 불확실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득에 대한 청구권의 가치도 불확실하다. 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일반적으로 화폐로 이용되고, 다른 말로는 부채라고도 하는, 고정적인 금융적 청구권을 가변적인 금융적 청구권, 달리 말하면 주식으로 바꾸는 것임. 그러기 위해서는 네덜란드나 잉글랜드에 전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후에도 존재한 적 없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조세징수권을 비롯한 국가의 모든 자산을 소유하는 기업이다. 이 지분-화폐는 관습적 화폐보다 안정성이 떨어졌다. 1720년 로가 만든 시스템에 투자한 사람들이 깨달았던 대로 주식-화폐의 가치는 하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서 지분-화폐의 이동성은 더 높았다. 로의 시스템은 이렇게 철저한 투명성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덜 강력한 대안도 내놓았다. 왕립은행이 발행하는 지폐, 즉 은행권이 그것이다. 이 은행권은 화폐본위의 단위를 잣대로 고정된 가치가 매겨졌다. 그러나 화폐본위 그 자체는 국왕평의회가 경제적, 재정적 관점에서 가장 적절할 것 같은 수준에서 결정했기 때문에 변동이 심했다. 달리 말하자면, 지분-화폐와 은행권의 유일한 차이는 지분-화폐는 시장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지만, 은행권은 군주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는 점이었다. 로의 시스템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었으며, 시대를 수백년 앞서갔다. 1973년 국제 금환본위제가 무너지고 명목화폐본위제가 전 세계 규범이 되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250년 앞을 내다본 것이었다. 그러나 로의 시스템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어디에 결함이 있었을까? 당연히 온갖 부수적 문제가 로의 야심만만한 계획을 방해했다. 로는 자신의 능력은 과대평가했지만, 자신의 시스템 때문에 특권을 빼앗긴 기득권 집단의 힘은 과소평가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는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공적 정부부채가 아니라 공적 정부지분을 제공한다는 로의 독특한 생각자체도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다. 이후 시대에 로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로의 해법에는 이들 부수적 문제를 압도하는 근본적 오류가 있었다.
- 메소포타미아인은 이렇듯 부채의 문제점을 꿰뚫어보고, 자신의 전통과 종교적 우주론에 바탕을 둔 해법도 마련해 놓았다. 부채의 일부나 전부를 탕감해 사회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하늘의 신을 대리해 지상을 다스리는 국왕의 책임이라 보았음. 메소포타미아에서 부채로 인한 부담이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도달하면, 부채를 전액 탕감해주는 전통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이자부부채가 존재했다는 증거만큼 역사가 길다. 이 전통은 도시국가 라가슈의 국왕 엔테메나가 통치하던 기원전 24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통은 고대 근동세계로 전해져 성서시대 희년의 관습으로 살아남았다. 성경의 레위기를 보면 히브리인은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하고 즐겼다.
- 그린스펀이 사용하던 모형에 결함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결함이 그린스펀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문제, 말 그대로 수조 달러짜리 문제였다. 경제학은 역사가 짧은 학문이 아니다. 중앙은행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난 200년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회과학의 여왕 경제학은 왜 파멸적 오류를 범했을까? 세계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재무장관을 지낸 미국 최고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오바마 정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2011년 4월 세번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금융위기로 인해 정통 거시경제학과 금융이론이 경제현실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놀랍게도 그렇다고 인정. 서머스의 설명에 따르면, 정통 거시경제학이 2차대전 이후 쌓아올린 방대한 이론체계는 금융위기가 닥치자 아무 소용 없었다. 왜 경제가 휘청거리는지, 휘청거리는 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말도 못했던 것이다. 서머스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경제학 전통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금융시스템이 심하게 흔들리며 혼수상태 일보직전에 이른 08년 말과 09년 초 백악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정책을 수립하는 동안 그는 세명의 경제학자 월터 배젓, 하이먼 민스키, 찰스 킨들버거를 스승으로 지목. 서머스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정통 경제학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오래전 경제사상가를 스승으로 골랐다. 먼저 하이먼민스키는 화폑ㅇ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한 파격적 이론을 내놓았지만, 주류 경제학계의 냉대에 시달리다 96년 사망한 경제학자였다. 찰스 킨들버거는 78년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쓴 경제사학자. 대학 강단의 경제학자는 경제사를 별 볼 일 없는 경제학의 방계 학문쯤으로 취급함. 1877년 사망한 영국 금융언론이 월터 배젓은 1873년 명저 '롬바드 스트리트'를 썼다. 그는 당시 근대 경제학계에서 경제학자로 대접받지 못했다. 서머스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 은행과 금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물 간 경제사상가를 스승으로 삼고 의지. 그리고 금융위기의 가장 심각한 국면이 지나 중기 정책대응 방안을 모색할 때가 되자 케인스에게 눈을 돌림. 서머스는 이런 말을 했다. 현대 강단 거시경제학의 핵심연구 프로그램은 "정책입안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나는 기본적인 케인스주의 경제학 체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면 이 대안적 경제사상 전통의 어떤 점이 2차대전 이후 많은 사람이 정성을 쏟았떤 방대한 체계보다 훨씬 쓸모 있고, 훨씬 현실적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최대 규모의 금융붕괴가 한창 진행되던 때 1870년대 초의 런던 금융시장을 설명한 월터 배젓의 롬바드 스트리트가 빼어난 21세기 경제학자의 최신 연구성과가 담긴 학문적 성취도 높은 무수한 책을 제쳐두고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서머스의 말을 빌리자면 "경제학은 아는 것은 많다. 잊은 것도 많다. 그리고 한눈 판 것도 많다."
- 근대 화폐 시스템은 잉글랜드 은행이 세워진 뒤로 확장을 거듭했지만, 그 작동원리는 언제나 똑같았다. 잉글랜드 은행은 특권을 누리는 사적 은행가 집단의 상업적 감각과 화폐에 신용과 보편적 양도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군주의 공적권한을 결합시켰음. 설립 이후 150년 동안 잉글랜드 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사적 은행가는 꾸준히 증가. 군주가 자신의 고유권한을 잉그랜드 은행에 빌려주었듯이, 잉글랜드 은행도 자신의 고유 권한을 수많은 은행에 빌려주었다. 오버렌드거니주식회사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음중개인에게 알리며 정책을 전환할 때까지 줄곧 그랬다. 그 결과 근대 화폐 경제는 영국이 부도나느냐, 마느냐가 일개 합자회사 이사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고, 모든 은행이 잉글랜드 은행에 의지하며, 모든 상인이 은행가에 의지하는 상황에 빠졌다.
- 배젓에 따르면, 롬바드가가 글로벌 경제의 화폐시장인 이유, 세계 역사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은행이 많은 화폐를 발행하는 공간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잉글랜드 은행이 군주와의 대합의를 통해 화폐 유통권을 얻어냈듯이, 롬바드가의 은행과 어음중개인도 잉글랜드 은행으로부터 화폐유통권을 얻어내고, 이어 지방은행도 롬바드가의 은행과 어음중개인으로부터 화폐 유통권을 얻어냈다. 지방과 런던의 은행은 기업가와 지주가 저축한 돈을 예금으로 유치했다. 상인은행과 어음중개인은 기업 발기인으로부터 투자기회를 제공받았다. 피라미드 맨꼭대기의 대어음중개인, 즉 최초의 근대식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은 한 예금자와 기업가에게서 다른 예금자와 기업가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음할인과 인수를 가능하게 했고, 그 흐름을 조절했다. 위기 상황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해야 할 핵심역랑은 분명했다. 잉글랜드 은행은 졸지에 최후에 기댈 최종 어음중개인이자 최종 은행가가 되었다. 아무도 어음을 할인해주겠다고 나서지 못할 때 잉글랜드 은행만이 어음을 할인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젓의 설명에 따르면, 이 놀라운 화폐의 기반시설, 즉 잉글랜드 은행은 산업혁명의 운영시스템이었다. 잉글랜드 은행이 있었기에 영국은 세계 다른 나라를 제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잉글랜드 은행의 좋은 면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파국적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다. 엄청난 유혹, 고전파의 추상적 경제학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라고 밝혀낸 유혹이 일었다. 군주의 대리인인 중앙은행만이 화폐 시스템의 존립을 좌우하는 신용과 신뢰를 지탱할 수 있으므로, 평상시건 위기시건 경제전반의 건전성은 물론 시티 오프 런던의 건전성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싶은 유혹 말이다. "우리는 어려운 과제에 매달리다보면 쉬운 과제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러운 상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롬바드가에는 관리해야 할 화폐가 너무 많다." 1866년 위기당시 잉글랜드 은행은 세계 최대 금융중심지 한복판에서 관리능력과 정책 능력면에서의 시대착오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 유동성을 신용의 명백한 한 속성으로 생각하며 중시한 배젓의 통찰이나 배젓보다 앞선 시대의 조플린과 손턴의 통찰도 결정적으로 놓치고 말았다. 이들 세사람은 유동성이란 존재할 때는 신용을 화폐로 만들어 놓지만, 존재하지 않을 때는 신용을 무기력한 쌍방신용으로 바꿔놓는 속성으로 바라보았다. 유동성은 배젓과 케인스가 그토록 강조하고 싶어했던 금융과 실물경제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거시경제정책의 근거였다. 법정화폐는 어떤 사적화폐 발행자도 감히 바라기 힘든 유동성을 어느정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대전 후 강단 금융학은 국가가 유동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가, 필요가 있다면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 하는 신학적으로 고민스러운 주제를 거시경제학자에게 흔쾌히 떠넘긴 채, 사적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 청구권을 신용도가 가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관심을 쏟았다. 유동성이라는 추가적 수준까지 살피며 상황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 지난 10여년 간 통화안정을 헌신적으로 숭배한 해악은 심했다. 외곩으로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만 추구했기 때문에 08년 글로벌 경제를 무릎꿇게 만든 여타 통화요인과 금융요인에는 관심을 쏟지 못했다. 아니, 이들 요인을 더 악화시키시만 했다. 이단적 예지자 하이먼 민스키는 수십 년 전에 이미 외곬으로 통화안정을 추구할 때의 해악을 다음과 같이 경고했음. 중앙은행이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을 달성함으로써 한가지 유형의 위험을 완화하는 데 성공할수록, 투자자는 더욱 자신감을 갖고 불확실하고 비유동적인 증권에 투자함으로써 다른 유형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할 것이다. 풍선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오른다. 바꿔 말하면, 높고 변동이 심한 인플레이션을 제거하면, 자산시장의 파국적 불안정을 초래함. 통화안정이 금융불안정을 야기하는 것이다. 모든 정책입안자가 정통 이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왜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는지 알았다. 01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시경제학자이자 훗날 잉글랜드 은행 총재자리에 오른 머빈 킹은 "많은 사람이 경제학은 화폐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부분 경제학자의 대화에는 화폐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다음, "경제학자가 사용하는 표준모형에 화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 추측하건대 경제학자의 대화에서 다시 화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그의 믿음은 적중했지만, 추측은 빗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화폐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제학을 확립하려고 했던 배젓과 케인스의 꿈을 무너뜨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궁극적 대답은 화폐에 관한 로크의 교리가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배젓은 화폐에 관한 로크의 교리를 공격했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화폐가 거울나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화폐는 상품교환 수단이라는 마법에 걸린 사람은 정반대되는 증거나 논거를 아무리 많이 접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1866년의 위기 및 배젓이 이 위기에 보인 반응은 화폐와 경제를 이해하는 두가지 방식이 수렴하는 지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두가지 방식이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고전파의 화폐 없는 경제학에서 현대의 정통 거시경제학, 즉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중앙은행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화폐사회에 관한 과학이 발전했다. 한편 배젓의 현장 전문가 경제학에서는 금융학, 즉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은행가와 증권거래인이 사용하는 거래방법이 발전했다. 거시경제학은 화폐, 은행, 금융없이 경제를 이해하는 지적 틀이었고, 금융학은 경제없이 화폐, 은행, 금융을 이해하는 지적 틀이었다. 이렇게 경제학과 금융학이 지적으로 갈라진 결과 08년 금융부문에서 발생한 위기로 거시경제학이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때, 그리고 이후 은행 부문의 파탄 때문에 경제가 회복되지 못했을 때, 현대 겨시경제학과 현대 금융학 둘 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래리 서머스가 지적했듯이 의지할 만한 대안 전통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물음, 즉 왜 경제학자는 위기가 닥치는 것을 몰랐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경제학자가 거시경제를 이해하는 틀에는 화폐가 없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수많은 사람이 은행가와 규제당국에 묻고 싶었던 물음, 즉 왜 당신들은 위험한 짓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간단하다. 금융을 이해하는 틀에 거시경제학이 없었다는 것이다.
- 07년에서 12년 사이 25개국의 대규모 은행이 위기를 겪었는데, 그중 3분의 2는 자국 은행에 신용을 지원했다. 몇몇은 위기에 전례 없는 규모로 개입했다. 미국은 GDP의 4.5%를 은행 자본재구조화에 쏟아부었다. 대규모 전쟁이 한창일 때 지출하는 1년치 국방예산과 맞먹는 규모였다. 1816년 토머스 제퍼슨은 "은행 제도는 상비군 제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경고. 제퍼슨의 경고는 놀라우리만큼 진실에 가까웠다. 영국은 GDP의 8.8%를 은행 자본재구조화에 지출했다. 이는 영국이 해마다 국민건강보험에 지출하는 예산규모보다 더 컸다. 아일랜드는 GDP의 40%를 썼다. 정부 각 부처의 1년 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정부는 은행가를 철저히 돌봐주었다.
-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고 대침체가 시작되자 대중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은행과 은행투자자는 일방적 정책만 펴왔다. 언제나 그렇듯 은행이 하는 일은 유동성 위험과 신용위험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만약 자산가 부채의 만기를 일치시키지 못하면, 중앙은행이 개입해 유동성을 지원했다. 대출이 악성으로 변하고 자기자본이 부족해지면 납세자가 신용손실을 메워주었다. 되돌아보면 그 결과는 얼마든지 예측가능했다. 전 세계 숱한 은행이 규모를 늘렸고 완충자본을 줄였다. 서슴지 않고 위험한 대출을 했고 자산의 유동성을 낮췄다. 덩치가 아주 커져서 쉽게 망하지 않을 은행이 늘어갔다. 그 결과 정부가 암암리에 제공하는 신용보험의 수준은 높이 치솟았다. 위기가 엄습하고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려는 정책입안자의 노력이 실패로 엄습하고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려는 정책입안자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야 정부가 은행에 퍼준 보조금의 진짜 규모가 드러났다. 리먼브러더스가 망하고 1년이 지난 09년 11월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은행부문에 지원한 자금 총액은 약 14조 달러로 추정됨. 전 세계 GDP의 25%를 웃돌았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납세자가 줄곧 들은 손실 예상액의 규모였다. 이에 반해 수익 예상액은 오롯이 은행의 주주, 은행 투자자, 직원의 차지였다.
- 2000년대 들어 수많은 소액 채무증권을 묶어서 거액의 새로운 채무증권을 만들어내는 증권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대출, 기업대출, 신용카드 부채 등 온갖 종류의 신용은 하나로 묶인 다음 잘게 나뉘어 새로운 채권으로 발행되었다. 이들 채권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를 받고 새로운 투자자에게 팔려나갔다. 신용시장을 통해 돈을 빌리는 것이 전에는 간단한 거래였다. 은행의 도움을 받아 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개인이나 기관이 매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 과정에 굉장히 복잡해졌다. 회사는 여전히 채권을 발행하지만 최종투자자가 채권을 직접 매입하지 않는다. 채권 매입 목적으로 다른 회사가 취득해 보관하다가 자산 유동화 기업어음을 특수목적회사 앞으로 발행한다. 특수목적회사의 부채로 잡히는 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은 제4의 회사가 매입해 보관한다. 이 제4의 회사의 채무증권은 또다른 특수목적회사가 매입해 부채담보부증권을 배서하는 데 사용한다. 헤지펀드는 다시 이 부채담보부증권을 매입해 머니마켓 뮤추얼펀드에서 대출을 받기 위한 담보로 사용한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최종투자자가 등장해 머니마켓 뮤추을펀드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처음 채권을 발행한 회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슬에 현금을 공급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슬 맨 앞의 회사가 채권을 발행하는 수수료는 옛날보다 덜 든다.
- 20세기를 지나며 미국과 영국 은행의 보호적 완충자본의 규모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포트폴리오 내 현금과 고유동성 증권의 비율 역시 불과 50년 사이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바젤위원회는 보호적 완충자본의 유지 및 포트폴리오 내 현금가 고유동성 증권비율 확대는 검증이 끝난 아무 문제 없는 무기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보다 화력이 더 강한 무기라고 진단을 내렸다. 2010년 12월 바젤위원회는 은행에 더 많은 자본을 보유하고 포트폴리오 내 유동자산의 보유를 늘리라는 요구는 위험한 행동에 큰 부담을 안겨준다. 밑바탕에 깔린 기본 주장은, 그렇게 함으로써 은행이 위험한 행동을 한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판의 크기를 제한함으로써 건전한 균형이 회복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규제는 틀이 정해져 있고, 이는 사적 편익과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그 어떤 산업에도 낯익은 것이다. 예를 들어 화학공장은 주주에게 줄 이윤을 창출하고 직원에게 줄 월급을 벌어들일 뿐 아니라 환경에 해로운 폐기물도 배출한다. 화학공장이 환경오염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무임승차를 즐기려 하면, 폐기물은 경제적으로 정당화되는 수준 이상으로 생산된다. 해법은 오염 유발자가 오염을 생산한 경제적 비용을 전부 지불하도록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기관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은 위기에서 드러난 심각한 문제를 이 같은 재래전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들은 금융부문이 일으키는 오염은 화학공장이 일으키는 오염과 두가지 이유에서 다르다고 경고한다. 첫째는 문제의 규모다. 금융 시스템의 현재구조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운영할 때 잠재적인 사회적 비용은 너무 커서 조세시스템으로 억제할 수 없다. 은행에 부담금을 부과하면 유동성 지원과 신용지원이라는 직접적 재정비용을 거의 환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이 거둔 이윤 대부분을 빼앗아갈 테지만 말이다. 07년 이후 자업자득인 금융불안정으로 GDP 감소, 대량실업, 생산능력 상실 등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십조 달러에 달한다. 엄청난 액수다. 바꿔 말해 재래전 방식을 고집한다면, 지구를 파괴할 정도로 위력이 큰 원자폭탄을 사용해야 겨우 이긴다는 이야기다. 세금부과가 아무 효과 없는 두번째 이유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은행 시스템의 성격상 개별 은행의 활동도 시스템 전체의 비상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데 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오염을 일으키는 화학공장 사례와 달리 추가세금을 부과해 위험을 불러오는 활동을 억제해야 함. 그러나 은행 시스템은 국제적이다. 세금을 부과할 정당성을 갖춘 다자가 정치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래전을 고집한다면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전투력이 뛰어난 유엔군을 투입해야 이길 수 있다.
-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제도를 단순한 사회적 고안물이 아니라 자연계의 필연적 사실로 받아들이면, 그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해져 제 아무리 그릇된 것이라도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다. 역사에는 그런 사례가 즐비함. 19세기에는 신체적 특징으로 흉악범을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증범죄학이 크게 유행. 귀 모양으로 부정부주의자를 알아볼 수 있고 코 모양으로 절도범을 판별할 수 있다고 했음. 기괴하게 들리겠지만 중요한 것은 실증 범죄학을 믿은 사람은 얼굴이 특이하게 생긴 사람을 잡아 가두는 데 별 이해관계가 없었다는 점. 그들은 단지 범죄행위는 생리적 요인의 산물이라는 자연주의적 설명을 믿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인종주의도 19세기 미국에서 받아들여졌다. 신체적 차이로 유색인종이 열등함을 입증할 수 있다는 이론. 이 과학적 인종주의는 보수적 세계관이 아니라 진보적 세계관의 특징이었다. 사회과학에서의 자연주의적 추론, 즉 사회적 현상을 자연의 객관적 진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자기강화적 특징이 있다. 사회적, 정치적 편견이라는 실을 갖고 가짜 사실이라는 그물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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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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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선택은 다양한 외적, 내적 요인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음. 선거로 대표를 뽑는 대의제 민주주의 에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 변덕이 심하고 일관성이 없는 개인은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해를 더 잘 대변할 정치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받음. 미국 정치학자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는 현대 정당의 역할을 이해하는 고전 가운데 하나인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이 점을 명쾌히 지적함. 그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평범한 사람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체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역을 오가는 군중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당 조직의 본질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군중은 전혀 조직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찰자가 지켜보게 되는 것은 혼란스러운 무질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표와 개찰구가 그 많은 사람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 군중을 이루는 각각의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즉 이 체제가 이들을 조직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에게 주어진 대안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 정당은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방식을 통해 이들을 조직한다. 이것은 조직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방식이다.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그런데 바로 이 정당의 힘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애초 정당중심의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정당중심의 정치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정당정치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 미국조차도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오랫동안 정당 밖에서 기업인이자 유명인으로 살아온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 자체가 정당이 약해진 현실을 보여준다.
- 페이스북 민주주의. 정당이 약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유행이다. 오랫동안 정당은 자신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생각이 비슷한 이웃을 정치적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샤츠슈나이더의 지적처럼 사람들은 정당을 매개로 공적문제를 놓고 입장을 정했다. 여러 사회문제 중 특정 이슈를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데 구심점이 된 것이 바로 정당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역할을 페이스북 같은 SNS가 대신하고 있따. 18년 퓨리서치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3분의 2는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추천한 뉴스를 보며 세상을 해석. 친구 네트워크로 묶인 이들이 끼리기리 추천하는 뉴스를 보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다.
- 시험이란 학생들을 책상앞에, 그리고 현 상태에 묶어 놓는 사슬이고, 앞으로 닥쳐올 무한경쟁에 준비시키는 트레드밀이며, 벗어나려 들면 발사하겠다고 위협하는 머리 옆의 권총이고, 무엇보다 끔찍하게는, 학생들의 생각을 몽롱하게 만들어 이 미친 상황을 정상으로 여기도록 하는 마약이다. (버텔 올먼,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아무리 고상하게 치장하려 해도 시험은 현재 상황을 정당화하고, 또 그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키우는 효과적인 수단. 세상에 불만이 많은 할아버지 올먼이 시험 잘보는 법에만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진짜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에게 강제되는 사회적 게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 원전은 기존 화력발전의 열원을 중유(혹은 석탄)의 연소에서 우라늄 핵분열로 치환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열로 (물을 끓여 생긴 증기로) 터빈을 돌려서 발전하는 구조는 기존의 화력발전과 완전히 동일하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핵분열 반응을 일으켜 열을 발생시키는 중심부, 즉 원자로에 있다. (나의 60년대, 야마모토 요시타카)
- 핵발전소가 얼핏 하이테크로 보이는 것은 바로 원자로에서 일어나는 우라늄 핵분열의 부작용을 막고자 설치한 안전장치 때문이다. 야마모토의 지적대로 핵발전소의 본질은 18세기부터 석탄을 태워서 얻은 열로 물을 끓여서 움징니 증기기관과 다르지 않음. 단지 열의 원천이 석탄에서 원자로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과학자아 엔지니어는 입만 열면 혁신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지금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는 핵발전소 이외의 다른 대안에는 관심이 없다. 소비전력의 3분의 1정도를 핵발전소에서 얻는 나라가 프랑스(4분의 3)와 한국을 포함해 12개 국가 정도로, 전 세계에서 극히 예외적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당장도 아니고 앞으로 수십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핵발전소 비중을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중을 늘리자는 주장에도 쌍심지를 켠다. 그러면서 태양에너지, 풍력에너지를 비롯한 재생가능 에너지는 절대로 핵에너지만큼의 효율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반대로 앞으로 핵발전소는 더욱더 효율이 높아지고 안전해지리라고 강조한다.
- 미세번지가 중국 탓이라고 하면 당장 속은 시원하지만,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을 가장 즐기는쪽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마다 정부는 중국 탓이라 흘려주고, 언론은 신나게 받아쓰고, 대중은 중국만 욕한다. 공기청정기부터 특수 마스크까지 미세먼지 특수를 누리는 기업은 더러워진 공기 탓에 기대하지 않았던 이윤이 생기니 좋다. 결국 병들어 가는 것은 우리, 특히 다음 세대 뿐이다. 더욱더 기가 막힌 일은 우리가 이렇게 중국 탓을 할 때, 베이징이나 텐진 같은 중국 도시이ㅡ 공기는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는 것. 베이징, 텐진을 포함한 74개 주요 도시의 16년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입방미터당 50마이크로그램으로, 중국 정부의 대기오염 대응이 시작된 13년 72에 비해 31% 감소. 이제 진실을 직시할 때다. 미세 먼지의 상당수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오염물질이다. 중국보다 국내에서 나오는 미세먼지가 훨씬 더 많다는 정황증거도 계속 쌓이고 있다. 더 이상 미세 먼지는 중국산이라는 주문을 외면서 욕만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다급하다.
- 귀뚜라미가 쇠고기보다 좋은 이유, 우선 곤충은 적은 자원으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소가 몸무게를 1킬로 늘리려면 10키로의 사료가 필요. 돼지는 5키로, 닭은 2.5키로 필요. 반면 귀뚜라미는 1.7키로의 사료만 있으면 된다. 더구나 식문화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소, 돼지, 닭은 먹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반면 귀뚜라미는 최대 80% 정도를 섭취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귀뚜라미는 똑같은 사료를 섭취하고서도 닭보다 2배, 돼지보다 4배, 소보다 12배 이상 효율이 높다. (곤충이 변온동물이라 체온유지에 영양분이 필요없기 때문이라 짐작) 게다가 곤충은 소, 돼지, 닭과는 달리 비교적 좁은 환경에서 별다른 부작용 없이 대량사육이 가능. 소,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을 키우는 데 현재 전체 농지면적의 70%가 든다. 이런 가축 대부분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사육 방식으로 길러지면서 여러 문제를 낳음. 17년 우리나라와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충제 계란 파동은 좋은 예이다. 반면 곤충은 일단 크기가 작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사육이 가능함. 사료가 적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물 소비량도 적다.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기는 하지만, 곤충을 이런 좁은 공간에서 키운다고 소, 돼지, 닭 등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가 하면 소, 돼지와 같은 가축을 사육하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전체 배출량의 18%에 달한다. 특히 가축 사육과정에서 나오는 메탄이나 이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는 짧은 기간에 지구를 데우는 데 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메탄)에서 289배(이산화질소)까지 크다. 반면에 곤충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소, 돼지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한 곳에 모아놓고 기르는 방식은 조류 인플루엔자, 광우병 등과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치명적 질병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함. 야생의 바이러스가 소, 돼지, 닭 등을 통해 돌연변이를 일으켜 종 간 장벽을 넘어서 결국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과학자는 곤충은 소, 돼지, 닭보다 인간과 차이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이렇게 종 간 장벽을 뛰어넘는 바이러스, 세균의 감염을 초래할 위험이 낮으리라 본다.
- GM작물의 위험여부를 따져 묻는 청중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이 인체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름. GM작물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불확실하지만 다른 확실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때문. 가장 심각한 문제는 GM작물이 환경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다. 예를 들어 GM 콩의 대부분은 몬산토에서 만든 라운드업 레디. 이 GM 콩은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내성을 갖도록 개발된 것. 처음에 몬산토는 이런 GM작물이 결과적으로 제초제 사용량을 줄여서 환경에 도움이 되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제조체를 마음대로 뿌려도 죽지 않는 GM콩이 있다. 그렇다면 농민은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마음놓고 제초제를 뿌릴 것임. 결과적으로 몬산토의 주장과는 반대로 제초제 사용량은 증가했음. 이렇게 제초제 사용이 늘어서 환경이 파괴되는데도 정작 매출이 늘어서 웃는 기업이 있다. 바로 세계 최대 규모의 종자 회사 몬산토다. 왜냐하면 몬산토에서 만든 아주 강력한 제초제 라운드업을 뿌려도 살아남는 콩은 이곳에서 만든 라운드업 레디 뿐이다. (그래서 GM콩 이름이 라운드업 레디이다.) 더구나 이 제초제의 주요 성분 글리포세이트는 인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독성물질이다.
- GM콩이나 GM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은 매년 몬산토 같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주고 종자를 구매해야 함. 라운드업 레디 같은 GM콩을 구매한 농민이라면 그것에 사용할 라운드업 같은 제초제까지도 함께 사야한다. 종자에 대한 소유권이 농민에서 기업으로 넘어가게 됨
- 95년까지 97개 드라마 등에 나타난 심폐 소생술을 분석해서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드라마 속에서 심폐 소생술을 받은 환자의 75%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크리티컬 케어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각각 실린 연구결과를 보면, 심폐 소생술의 성공률은 환자의 나이, 질환, 상태에 따라서 보통 8~18%였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률은 심폐 소생술을 받은 환자들이 살아서 퇴원하는 것을 말함. 드라마 속의 성공률에 비하면 한참 적다.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는 환자의 나이, 질환, 상태 등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면 앞선 사례의 노인처럼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심폐 소생술 성공률은 어떨까? 암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한 의료요법에 관한 연구동향을 제공하는 학술지 SCC에 실린 연구결과를 보면, 말기 암 환자 가운데 심정지 때문에 심폐 소생술을 받은 61명 가운데 10명만 생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심폐 소생술로 살아남은 환자 10명의 평균 생존시간은 불과 3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암처럼 중증 말기 질환을 앓는 환자가 일단 심장이 한 번 멎으면 심폐 소생술로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잠깐 살리는 일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무의미한 심폐 소생술이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실상이 이런데도 공격적인 연명의료가 늘어나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병원이 연명의료를 원한다. 수익을 올려야 하는 병원으로서는 고령의 노인 환자를 비롯한 중증 말기 환자에게 공격적인 연명의료를 처치해서 하루, 한 주, 한 달 이렇게 수명을 연장할수록 돈이 남는다. 또 다른 이유는 환자의 가족. 평소에는 환자를 돌보지 못하고 타지에 있던 아들 딸이 임종직전에 나타나 의사를 잡고서 애원한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주세요" 이런 사정 탓에 결국 환자는 의미없는 심폐 소생술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기도로 연결된 인공호흡 장치에 의존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뿐 아니다.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도 엄청나다. 왜냐하면 죽기 직전의 며칠, 몇 주, 몇 개월의 연명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 대부분이 시민 십시일반 조성한 국민건강보험 기금에서 나가기 때문이다.
- 최근 용기 있는 의사 몇몇이 나서 완화의료를 실천하고 있다. 완화의료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만을 위한 공격적인 처치 대신 마약성 진통제 등을 이용한 통증 완화 등을 통해서 마지막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처치를 통칭함. 환자에게 존엄한 혹은 아름다운 죽음을 선물하자는 것이다.
- 홀푸드 마켓을 방문하는 소비자는 인터넷을 통해서 똑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는데도 기꺼이 매장에서 지갑을 연다. 홀푸드마켓에서 소비하는 일은 단지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나는 미국의 성공한 중산층이야' 이렇게 남에게 티를 낼 수 있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기 때문. 미국의 번화한 쇼핑몰마다 볼 수 있는 애플 스토어도 마찬가지. 잡스가 01년 애플 스토어를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업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미국판 하이마트라 볼 수 있는 베스트바이 같은 할인 매장, 인터넷쇼핑몰 등 값싸게 애플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이 가득한데 사람들이 애플 스토어를 방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애플 스토어는 해마다 1제곱피트(약 0.09제곱미터) 당 거의 5000불을 벌어들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매장이다. 매년 수억 명의 소비자가 애플 스토어를 방문한다. 심지어 애플 스토어가 애플 컴퓨터나 아이폰을 다른 곳보다 싸게 파는 것도 아닌데 소비자는 기꺼이 이곳에서 지갑을 연다. 애플 스토어가 독특한 소비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한 과학자 팀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 농도가 적어질수록 뇌에서 다리 근육으로 보내는 신호가 약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근육에 산소가 공급되는지 여부는 결정적 변수도 아니었다. 또 다른 과학자 팀이 (근육의 산소량에 변화가 없는데도) 뇌속 산소의 양이 적어지자 실험 참가자 다수가 탈진하는 현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의 의미는 명백하다. 노턴이나 메스너가 고지대에서 발걸음도 떼지 못할 정도로 극한의 피로와 육체적 한계를 경험한 이유는 산소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다. 몸의 정상 사태와 비교했을 때 3분의 1에 불과한 산소부족 사태를 맞닥뜨린 그들의 뇌가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선제적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제한한 것이다. 그렇다면 메스너가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나서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의 기록은 산악인들에게 '메스너가 해냈다면 나도 충분히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밟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산소통이 없다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나 공포를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정말로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가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등산가의 뇌를 산소 부족에 좀 더 무디게 반응하도록 만들었을까? 현재로서는 메스너나 다른 산악인의 뇌 속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의 마음, 정확히는 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뇌의 역할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예를 하나 더 보면,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갈증은 생존을 위해서 수분을 섭취하라는 중요한 신호. 마라톤 선수처럼 땀을 비처럼 쏟아내는 운동선수에게 피해갈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하나임. 97년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두 시간의 운동으로 탈수 상태가 된 실험 참가자에게 물을 먹였다. 그런데 그 물은 흡수되지 않고 코에서 위장으로 연결된 튜브를 통해 밖으로 그대로 나왔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제로 물이 몸속으로 흡수되지 않았는데도 참가자가 갈증을 느끼는 감각이 감소. 비슷한 연구결과가 또 있다. 스포츠 음료는 인간이 움직일 때 연료로 쓰는 영양소인 탄수화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음료수다. 스포츠 음료 덕분에 운동선수는 강렬한 신체 활동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탄수화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과학자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04년 스포츠과학자 애스커 주켄드러프는 사이클 선수에게 포도당 음료를 마시는 대신, 입에 잠깐 머금었다가 즉시 뱉어내라고 지시. 놀랍게도 사이클 선수가 스포츠 음료를 단순히 입에 머금고 있을 때가, 혈관에 음료를 직접 주사할 때보다 운동 효과를 더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많은 과학자는 스포츠 음료를 입에 머금었다 뱉기만 해도 운동선수의 기록이 나아진다는 이 실험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선수의 기록이 나아진다는 이 실험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09년에 영국 버밍엄대학 연구팀이 비슷한 실험을 하며 아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선수의 뇌 사진을 찍어 봤다. 그랬더니 스포츠 음료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뇌의 특정 부위가 반응했다. 이번에도 뇌가 움직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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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함과 진심

경영 2020. 1. 27. 08:28

-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10대 연습생이 많았지만 이들에게 별도의 규제를 하지 않았다. 연습시간을 정해놓고 강제하는 관행은 아예 없앴다. 멤버 스스로 하고 싶을 때 연습하도록 했다. 과제가 있기는 했지만 강압적으로 검사를 하거나 처벌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과제를 해왔을 때 전문가들이 보완해주거나 평가를 해주면서 BTS 멤버드리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빅히트 역할을 정립. 다른 활동은 최대한 자율성을 존중했줬다.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다. 소셜미디어도 욕설이나 사회통념에 위배되는 행동이 아니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
- 분석은 많은 한계가 있다.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과 각종 인지적 편향, 그리고 정보수집의 한계 등으로 완벽한 분석은 애초부터 불가능함. 이미 97년 SWOT 같은 분석에 기반한 방법론이 현실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실제 효과도 미미하다는 연구결과가 제기된 바 있다. 또 거의 완벽에 가까운 분석을 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만약 분석을 통해 좋은 전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해당 분야의 모든 기업이 거의 유사한 전략을 수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분석이 이뤄진다면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한국기업들이 한때 대체에너지 등 거의 비슷한 신사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적이 있다. 분석을 기반으로 신사업전략을 수립하다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렇게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출혈경쟁은 불가피하다. 분석에 기초한 전략을 기계적으로 수립하는 기업들이 양산되면 업계 전체가 공멸한 가능성만 높아진다.
- 분석과 다른 두가지 접근, 즉 불편이나 불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나온 전략이나, 경영자의 내면에서 나온 전략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 방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분석에 전략을 의탁하는 것은, 분석을 잘하는 컨설턴트나 경영 전문가에게 전략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설령 내가 분석을 한다 하더라도 분석 툴과 방법론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기는 셈이다. 한마디로 나만의 고유한 개성과 영혼을 반영할 수 없는 전략수립 방법론이다. 반면, 불편이나 불만을 토대로 수립된 전략은 창업자나 창업기업의 고유한 문제인식과 극복의지를 담아낼 수 있다. 내면의 철학이나 사명감 등에서 나온 전략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창업가의 영혼을 담고 있다.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 영혼이 없이 만들어진 전략이 통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시장에서 공급초과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영혼이 없는 전략은 기껏해야 시장 평균정도의 성과만 낼 것이다.
- 극도로 포화상태인데다 수없이 많은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는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인 연예 산업에서 창업자와 아티스트의 영혼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 BTS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방시혁대표와 방탄소년단은 두번째 방법, 즉 내면에서 하고 싶은 것을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했다. 멤버 스스로 결정한 학교 컨셉의 앨범을 발표했고, 청춘의 방황과 고뇌 희망을 메시지로 담은 것도 시장의 트렌드 분석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이전까지 K팝이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글로벌 팬덤의 원천이 됐다. 좋은 전략은 내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리더십을 발휘할 때 많은 사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아여 주도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리더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이런 리더들은 소통부재 등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함. 다행히 카리스마적 리더가 전략방향을 잘 설정하면 문제가 없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는 주위에서 누구도 문제를 지적하거나 반론을 펴지 않기 때문에 조직이 순식간에 몰락할 위험도 있음. 반면, 자신의 취약점을 공개하는 리더는 조직원들의 진심어린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HBR에 소개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줌.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부하직원들에게 신뢰를 잃었던 한 리더는 다면평가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후 자신의 스타일을 점검하며 문제점을 파악했다. 이 리더는 조용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치는 방법도 있었지만, 공개 석상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이후 진심으로 조직원들이 리더를 도와줘 조직의 성과는 극적으로 향상쇘다고 한다.
- 카테고리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빠른 판단을 하여 인지적 부단을 줄이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 카테고리의 위력은 대단하다. 주식시장에 대한 연구결과, 업종별로 구분되어 있는 애널리스트의 전문 영역분류에 포함되지 못해 카테고리 분류가 애매한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주가가 체계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카테고리 정당성의 강력한 힘 덕분이다. 실제 대학교 교수 임용과정에서 기존 학제 카테고리 중 하나에 확실하게 편입되는 경우가 임용확률이 높다. 최신 융합 학문분야에서 기존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거나, 두 가지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전공을 한 학자들 가운데 임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 개별 스토리 하나로 승부하는 것에 비해, 세계관을 토대로 개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접근 방식은 확실한 장점이 있다. 우선 스토리에 대한 고객들의 몰입도가 훨씬 높아진다. 개별 이야기가 전체 세계관의 일부이기 때문에 개별 이야기를 이해하고 난 고객들은 전체 스토리 속에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더 강한 몰입감을 갖고 고객들은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려 할 확률이 높아진다. 또 고객들 스스로 이야기의 해석과 관련한 더 큰 자율권을 얻게 된다. 개별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스토리에 대한 해석에 비해, 전체 세계관과의 연계 속에서 이뤄지는 해석은 확장 가능성과 자율성이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이 과정에서 세계관을 해석하고 나름의 관점을 덧붙인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세계관을 해석하고 나름의 관점을 덧붙인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고, 이런 컨텐츠들은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고객의 유입을 촉진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개별 스토리와 세계관은 상화작용을 하면서 발전해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특정 스토리는 아무리 확산되더라도 정점을 지나면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관 속에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 고객들은 새로운 스토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접근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선 신작 콘텐츠의 연착륙이 가능. 스토리 라인이 연계되는 연작소솔이 고객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듯, 이전 대작들과 연계된 신작 컨텐츠에 대해 고객들에게 훨씬 높은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고, 과거 이용자들을 비교적 손쉽게 새 콘텐츠의 이용자로 끌어올 수도 있다. 또한 신작 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신규 고객은 세계관으로 연계된 과거 콘텐츠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서로가 상호보완적으로 고객의 충성도와 몰입도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관속에서 정교한 스토리라인이 구축되면 다른 사업영역으로의 확장도 용이해짐. 실제 블리나드는 오버워치를 소설과 영화로도 제작해 게임을 통해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고객들과 접점을 형성했다.
- 기업들은 무경계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무경계 미디어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전담조직을 만들면 이전보다 무경계 미디어를 통한 고객과의 소통이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는 등 일부 성과도 낼 것이다. 하지만 전담부서는 오히려 뭔가를 하긴 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면서 경영자를 전담부서의 덫에 빠지게 만든다. 전담부서의 덫이란 조직 전체가 참여해야 하는 변화를 추진할때 전담부소를 만들면, 오히려 해당과제에 대한 책임이 특정부서로 떠넘겨져 오히려 근본적인 변화에 걸림돌이 되는 현상. 이런 사례는 많다. 조직문화 전담조직을 만들었다고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는다. 윤리경영실을 만들었다고 윤리문화가 쉽게 정착되지 않는다. 공유가치창출 전담부서를 둔다고 조직이 변하지는 않는다. 조직문화, 윤리경영, CSV 등 전 조직원이 과거와 다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과제다. 조직은 고도화된 유기체로 단순한 기계와 다름. 극도로 상호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전 조직원이 참여해야 하는 과제를 부서 하나가 해결할 수 없다. 전담부서를 두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 없지만, 전담부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 무경계 미디어를 통해 방탄소년단은 3가지 새로운 전략 대안을 제시한다. 진심으로 고객을 케어하고, 가치를 주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이라는 게 방탄이라는 사례가 주는 통찰이다. 모두가 콘텐츠를 만들고, 변형하고, 편집하고, 큐레이션하며, 유통하는 시대에 공식적인 마케팅 메시지만 들고 고객과 접점을 형성하는 것은 조직의 성장가능성에 큰 제약을 가져올 것이다. 진심으로 고객들을 케어하고,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다양한 접점을 확보하는 게 성장을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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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인사이트

경영 2020. 1. 27. 08:27

-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누구보다 더 빨리 학습하는 것이다. (에릭 리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스타트업의 핵심은 아이디어를 구현하여 대략 만들어 보고 이를 통해 측정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순환과정이다. 이것이 만들기-측정-학습 모델이며, 이 모델이 순환하며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창업자들은 자신들의 가설을 검증해보고, 이것이 실패할 경우 그 모델의 가설을 수정하여 다시 만들어보고 검증하게 된다. 이러한 가설을 수정하거나 가설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을 피벗이라 한다. 피벗의 사전적 의미는 중심축을 두고 선회하는 것을 의미. 다시 말해 스타트업의 핵심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콘셉트를 다양하게 변형해 가며 선회하는 것이 피벗이다. 피벗은 학습단계에서 실행된다. 만들기-측정-학습의 과정이 순환됨에 따라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높아지게 된다. 즉, 피벗을 통해 한 단계 위로 올라가고 만들기-측정-학습의 과정을 거친다. 이 모델은 사업계획을 단계별로 가설화하고 그 가설을 하나씩 검증해가며, 검증이 된 이후에는 다음 가설을 검증하는 순환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일괄처리 방식은, 전통적으로 단계별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가는 신사업개발 방식에 비해 프로젝트 실패에 따른 비용과 자원 낭비를 줄이고 프로젝트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린 방식의 핵심 중 하나다.
- 금융이란 단어는 쇠 금자에 녹을 융자로 풀어쓴다. 쇠 금자를 쓰는 이유는 굳이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아도 아직도 전 세계가 금속화폐를 쓰고 있음에서 충분히 유추 가능하나, 왜 이것을 녹이는지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찬찬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금융의 본질은 바로 녹임에 있기 때문이다. 자산은 규모나 가치가 커질수록 시장에서 거래가 일어나기 힘들다. 금덩어리가 커질수록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굴러다기기 어려울 것이다. 빠른 거래, 쉬운 거래를 위해서는 자산을 분리해야 한다. 금덩어리가 잘게 나눠질수록 시장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기 쉬워진다. 금덩어리를 자르고 또 잘라서 가루가 되면 물처럼 흐르게 된다. 선조들은 이것을 녹는다고 표현했다. 금융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자산을 잘라서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최우선적인 역할이다.
-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14년 말 기준 벤처기업의 신규자금조달방법은 정부정책지원금(46.1%), 일반금융(32.9%)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결과 지분구조에서 창업자, 대표자 및 관련인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90%를 넘어서고 있다. 16년 11월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전용 장외시장이 출범하여 스타트업의 주식 투자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금융투자협회는 17년 7월ㅂ부터 유망 스타트업, 혁신 비상장기업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K-OTC 프로 비상장 주식거래시장을 개설하여 운영 중. 스타트업에도 IPO를 통한 자금조달 인프라가 구축됨으로써 크라우드 펀딩-KSM, K-OTC-코넥스-코스닥으로 이어지는 상장 사다리의 연결이 완성되었고, 앞으로는 활성화 여부가 관건. 중소, 벤처기업의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이 대출이 아닌 투자에 방점을 두는 것은 자산을 자르는 금융의 원래 취지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방향이다.
- 성공. 돈으로 광고한다고 다 해결되지 않는다. 스타트업 초기에 돈이 없다면 SEO를 향상시켜 유기적 성장을 하라.
- 배움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지식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찾고 또 찾는다는 의미에서 연구를 영어로 research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듯,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여 실망할 일은 아니다.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미 세상에 나온 것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아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 태반이고, 이미 알고 있던 별이라고 해도 어떤 망원경을 쓰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 새로운 시각은 늘 중요하며, 계절마다 보이는 별자리가 다르듯 시시각각 바뀌는 트렌드는 분명히 존재한다. 창업가가 스타트업 성공 트렌드를 배우고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며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능 여기 있다. 기존의 사업구조를 깨는 혁신을 통해 소위 말하는 대박을 노리는 경우도 기존에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깨고 말고를 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렌드를 배워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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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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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생산의 증대가 굶주린 사람에게 식량을, 추운 사람에게 옷을,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오늘날 생산증대란 더 우아한 고급 자동차와 색다른 음식, 멋진 옷, 세련된 오락 등... 한마디로 감각적이고 사치스러운 현대의 모든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뜻한다. (풍요한 사회, 갤브레이스)
- 수없이 많은 제품이 실제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도 절박하게 소비되고 있다. 광고와 마케팅 기법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욕망을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 기업전략에서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지출만큰 중요한 것이 제품의 수요를 만들기 위한 지출이다. 즉, 기업은 재화의 생산뿐만 아니라 욕망의 생산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 ...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현대의 욕구창조를 외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렇다. 고전경제학자들은 생산은 소비자들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므로 생산이 늘어나고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곧 소비자들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 즉 행복이 증진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갤브레이스는 기업이 쓸모없는 제품, 심지어 해로운 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들의 욕망을 창조하면 팔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산과 소비의 증가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풍요한 사회가 사실은 풍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정보가 많이 필요함. 우리는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을 타고났지만 그것을 일일이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얼굴에 대한 기억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정보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언어가 그늘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을 설명하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사실이 이후 많은 후속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목소리를 말로 설명하게 했더니 원래 목소리를 찾아내는 비율이 떨어졌고, 언어화가 미각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모두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언어적 정보가 머릿속에서 생략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 이처럼 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다.
- 아인슈타인에게 생각은 말의 형태로 오지 않았다. 그는 언어의 형태로 사고하지 않았다고 함. 생각이 먼저 자리잡고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말로 풀어서 쓴 것 뿐이다. 창의적 통찰이 언어로 변환되기 전에 먼저 떠오른다는 의미. 우리가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이토록 소중한 부분이 사라진다.
- 경영대학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대기업의 은퇴한 공장장이 실무기술을 가르치는 형태의 수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2차대전 이후 경제부흥기에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보다 체계화하고자 과학적인 방법론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직업교육의 특징이 완전히 사라지고 현재와 같이 학문적 부분만을 강조하는 형태로 바뀜. 전문교육이 되어야 할 경영학이 이론분과가 되었다는 사실은 전문분과인 법학이나 의학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음. 법학전문대학원은 판결을 정리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학자들도 높이 평가하지만 훌륭한 법조인을 양성하는 교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학전문대학원도 생리학적 연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교수들은 대부분 의사로서 실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경영대학원 교수들은 물리학이나 경제학처럼 자신들의 학문분야에서 업적을 쌓는 것 말고 다른 데에는 관심이 없다.
- 과학적 경영기법이 이렇게 급속도로 확산된 것도 어쩌면 사업의 성패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경영자들에게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름. 복잡한 모델을 활용해 명확한 수치로 의사결정을 유도하는과학적 방법론들은 경영자들에게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러나 정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소비자들의 감성이 다양해지는 파괴소비시대에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위험이다.
- 트로피, 메달, 돈 등은 성공의 척도가 아니다. 성공이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안이다. (전설적 농구코치 존 우든) 그는 우승하려고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많은 위대한 선수와 감독들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승하려고 할 수록 우승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심리적 부담이 스포츠 선수의 몸과 플레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심리학에서 밝혀냈다. 공을 차거나 라켓으로 공을 받아치는 방법을 배울 때 처음에는 머리로 일일이 동작을 생각하며 익힌다. 의식적인 사고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동작을 구사하게 된다. 이때 동작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달라진다. 그래서 마치 몸이 움직임을 기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그 동작을 구사하게 되는 이유는 몸동작에 일일이 명령을 내리는 의식적인 뇌가 아니라 본능적 욕구와 관계된 뇌의 영역에서 그런 움직임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매일 수천 번 포핸드 스트로크를 연습하면 점차 동작을 의식하지 않게 되고 나중에는 생각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공을 받아넘기게 된다. 스트로크가 거의 본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승리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심리적 압박이 크면 플레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의식이 동작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본능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순간 베테랑 선수가 초보자가 된다.
- 지금 대부분의 한국기업은 성과주의를 적용해 직원들을 평가하고 보상한다. 성과주의는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 기업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당시 한국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나 낮은 생산성이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런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에서 개발된 다양한 성과주의 경영제도가 도입되었다. 연봉제나 성과급, 하위인력 구조조정 등이 단행되었고 실제로 한국기업의 경영수준을 높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괴소비시대에는 성과주의 경영을 다시 수술대에 올려놓아야 함. 금전적 보상이나 처벌에 의존하는 성과주의는 인간의 기본욕구에 기반한 메커니즘. 즉, 돈이나 처벌에 의해 사람들을 강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하지는 못한다.
-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하고 일하는 셈코 사람들. 브라질 기업 셈코는 수천 명의 직원이 자유롭게 출퇴근하고 스스로 업무계획을 짠다. 규칙도 없고, 계급도 없다. 신입 말단직원이라도 회사의 기밀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 전직원의 투표로 의사결정을 한다. CEO가 10년째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다며 축하파티를 열 정도로 괴짜기업이다. 또 셈코는 사업영역을 정의할 수 없다. 그만큼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이다. 셈코는 우선 제조업 전통을 갖고 있음. 선박용 펌프, 공업용 믹서, 믹싱 설비 등 기계제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기계뿐만 아니라 냉각탑 같은 설비도 생산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난 제조업체임. 한편으로는 병원, 공항, 호텔, 대규모 공장 등의 시설을 관리하는 세계적 기업이기도 함. 또 환경 사업에 관한 컨설팅도 하고 있으며, 인터넷과 벤처사업도 한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인력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회사도 운영하고 있으며, 재고관리도 대행함. 원래 셈코는 52년 스위스 출신 안토니오 커트 세믈러에 의해 설립된 기계제작업체였는데, 80년 그의 아들 리카르도 세믈러가 회사를 물려받은 후 다양한 분야로 진출. 현재는 매출의 80% 이상이 서비스업에서 발생하므로 제조업체라 할 수도 없다. 사업분야가 서로 별 관계가 없고, 사업간 시너지도 미약해 보임. 더욱이 모두 셈코의 자회사로 독립한 법인임. 특이한 점은 이 회사를 이렇게 만든 것이 바로 직원들이라는 사실. 즉, 셈코가 이처럼 다양한 사업을 하는 이유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사업화했기 때문이다. 셈코는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 직원들의 행동에 따라 전략이 만들어진다. 직원들이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 기회를 발견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일이 셈코에서는 일상적이다. 결국 그들에게 맡긴 사업들이 성공해 '사업영역을 정의할 수 없는' 회사가 된 것이다.
-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을 어린아이로 가정하고 경영시스템을 구축한다. 금전적 보상이나 처벌로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하려는 생각 자체가 직원들을 자율적인 의사결정권과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다. 세믈러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셈코는 이처럼 괴짜경영을 하지만 초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세믈러가 아버지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80년 당시에는 100명의 직원에 400만불의 매출이었음. 하지만 03년 셈코의 매출으 2.1억불을 넘어섰고, 매년 20% 이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 6시그마는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 기업에도 활발하게 도입되었다. 지난 10여연가 대부분의 제조업체에서 이 방법론을 활용해 생산성 개선에 힘썼다. 한국 기업의 생산성이 선진기업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또 몇몇 기업이 6시그마를 도입해 효과를 보자 금세 수많은 기업으로 확산되었다. 한국기업의 경영프로세스는 그만큼 개선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6시그마에 의한 비용절감이 가시적 성과로 즉각 나타났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6시그마는 다양성이 증가하는 앞으로의 환경에서는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오랜기간 경영혁신을 연구해온 마이클 투시먼과 메리 베너 교수가 6시그마를 도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그 효과를 분석. 20년간 사진 관련 회사들의 특허를 연구한 결과, 6시그마 같은 효율화 작업이 점진적 개선에는 효과가 있어지만, 획기적 혁신에는 부정적 기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회사에서는 효율성이나 생산성 개선운동을 하고 나면, 기존 기술 관련 특허는 많이 나오지만 다른 영역의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특허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 6시그마가 기업의 다양성을 감소시켜 오히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약화시켰다는 의미다. 6시그마가 체질을 약화시키는 이유
(1) 효율화는 업무프로세스에서 성과가 나지 않는 절차를 제거해 프로세스를 체계화하고 표준화한다. 그리고 일ㄴ 프로세스를 회사 전체에 확산시키다보니 자연스레 회사의 다양성이나 변동성은 감소됨 직원들의 생각이 효율화기법의 틀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어서, 변화를 그대로 느끼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다양한 활동에서 비롯되는 혁신은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혁신역량이 떨어지게 된다. 기업을 길게 관찰해보면 이같은 현상이 실제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투시먼과 베너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탁월한 프로세스 개선능력을 인정받아 맬컴볼드리지상을 수상한 기업들을 보면, 장기적으로 재정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을 받은 모토로라, 캐딜락, 페더럴익스프레스 등은 모두 경영위기에 처했죠. 그래서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맬컴볼드리지상을 받은 기업들의 주식을 팔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2) 6시그마 같은 기법은 기존 데이터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에 대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6시그마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최고로 잘하게 만드는 기법이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역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투시먼과 베너 교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효율성 개선이나 프로세스 관리기법은 자동차산업에서는 큰 성과를 창출했다. 그러나 컴퓨터 산업에서는 역효과를 났다. 자동차 산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컴퓨터산업은 변화가 심하고 예측불가능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결국 효율성 개선활동은 변화가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분야에서 주로 효과가 있다. 예상치 못한 환경변화가 일어나는 분야에서 효율성 개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 파괴소비 시대의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을 생각해보면 매우 의미있는 지적임. 앞으로는 컴퓨터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산업의 환경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6시그마 같은 경영기법이 기업의 체질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모토로라 위기 또한 6시그마 때문일 수 있다. 6시그마에 대한 강조가 모토로라의 다양성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6시그마 기법을 중시하다보니 효과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방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해보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제로 6시그마 프로세스로 인해 모토로라에서는마케팅부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촉이나 직관이 중요한 상품기획과 마케팅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획일적으로 변해버린 것. 모토로라는 6시그마 프로그램을 도입한 후 20년 동안 170억불의 비용을 절감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 해에 170억불의 기회를 날렸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다양성이 증가하는 파괴소비시대에는 하나만 선택해 온 힘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나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최고로 잘 하는 방법인 효율성 혁신은 더 이상 효과를 보기 어렵다. 다양한 것을 실험하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보도록 장려하면서 촉을 넓히는 기업이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이다.
- 혁신은 숫자게임입니다. 비즈니스 하나를 성공시키는 데 5000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검토해야 합니다. 그런데 6시그마는 처음부터 쓰레기 같은 아이디어는 버리고 성과를 낼 아니디어에만 집중하자고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애초에 뿌리뽑아 버리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아프 프라이)
- 사람들은 생각한 후에 행동하기도 하고 행동하면서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기도 한다. 사전에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천해나가면서 상황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는 사람도 있다. 랭글리 박사와 라이트 형제도 이처럼 비행기 개발에 다르게 접근했다. 랭글리는 계획과 이론에 다라 행동하는 방식을 택했고, 라이트 형제는 행동하면서 이론을 구체화해나갔다. 랭글리 박사는 비행기 개발에서 엔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가 비행이라는 행위를 머리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비행은 땅에서 떠서 하늘을 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단 땅에서 떠야 하늘에서 움직일 수 있다. 랭글리는 일단 땅에서 뜨는 것에 집중했다. 이에 비해 라이트 형제는 하늘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비행기 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날 수 있다면 뜨는 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본 것이다. 랭글리 박사는 이륙 즉 뜨는 것에 집중해 가볍고 동력이 센 엔진개발에 몰두한 반면, 라이트 형제는 비행, 즉 나는데 집중해 공중에서 조종하기 수월한 기체의 설계에 몰두했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과학과 이론에 바탕을 둔 논리적 계획과, 기술과 현실에 바탕을 둔 실천 가능한 행동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느냐의 차이다. 그래서 랭글리 박사는 하우스보트 위에서 마치 우주왕복선을 발사하듯 비행체를 하늘로 쏘아올렸고, 라이트 형제는 높은 언덕위에서 바람의 힘에 의해 비행기를 띄우는 방식을 선택. 오늘날 대부분의 비행기는 이륙할때 라이트 형제의 방식대로 바람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충분히 질주한다. 그러나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랭글리의 방식이 더 논리적이었다. 초기 비행기 발명가들이 참고할 수 있었던 것은 새나 당시 발명된 비행선 정도였다. 새가 나는 것을 보아도 땅에서 뜨기 위해서는 많은 힘을 들여 날개를 퍼덕이고, 비행선도 공기를 데우기 위해 많은 열을 발생시켜야 한다. 랭글리는 당시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를 통합하고 비행이라는 행위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가장 적하반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랭글리 박사가 무인비행을 성공시킨 후 7년간 엔진제작에만 몰두하는 동안, 라이트 형제는 불완전하나마 비행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다. 이 점에서 일단 비행기를 띄우기만 하면 안전하게 날 것으로 생각한 랭글리 박사와 달랐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가 자전거가 균형을 잡고 굴러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비행기도 조종하지 않으면 하늘에서 안전하게 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실험을 거듭한 끝에 날개 끝을 조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방향키를 만들었다. 천 번이 넘게 실험을 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 노키아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빨리 대응했기에 어려워졌다. 1등이라는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에 몰두했음에도 위기에 빠졌다. 노키아의 위기는 변화나 혁신과는 관련이 없다. 다만 그들은 너무 계획에 의존하고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플랫폼 전략 때문에 위험해진 것. (플랫폼 전략이 조금만 더 허술했더라도 고쳐가면서 시장변화에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키아 사람들은 아무리 치밀한 계획도 현실화되면서 쉽게 어그러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획경영을 선봉했다.
-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는 순간을 잘 모릅니다. 새로운 것을 안 하기 때문이지요. 장사란 새로운 수료를 창출해서 비즈니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짜 장사에서 성공하려면 열 번 중 한번만 승리해도 됩니다. 뒤집어 말해, 아홉번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라는 이야기지요. 1승 9패라도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서 최종적으로 손님의 요구에 맞는 업태, 상품, 매장을 만든다면 그건 성공입니다. 유니클로는 그렇게 실패를 통해 지금의 성공을 이룬 것임. 촉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경험과 실패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1승 9패면 충분하다는 철학은 자신감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패스트패션업체처럼 먼저 행동하고 상황에 따라 계획을 수정해나가는 기업들의 밑바탕에는 자신감과 자기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이겨낼 수 없다.
- 자전거포를 운영하던 라이트 형제가 당대 최고 과학자인 랭글리 박사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유니클로처럼 실패에서 배웠기 때문. 형제는 1900년부터 키티호크해변에서 비행실험을 했는데, 첫해에는 줄이 달린 커다란 글라이더 형태였다. 1901년에는 줄을 뗀 글라이더 모양이었고, 다음 해에는 글라이더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꼬리날개를 달아서 실험했다. 한번 키티호트에 갈 때마다 수백 번 이상 글라이더를 타 보았다. 그리고 고치고 또 고쳤다. 윌버 라이트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들의 성공은 재능의 결과가 아니라 행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플라이어호의 성공에는 수천가지 다른 요인이 결합되어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영향력이 우리의 정신적 능력이나 창조력보다 열배나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우리가 했던 일을 다시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있을 수 없는 상황의 특이한 조합이었습니다. ...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소한 것들이 영향을 미쳐 끝장을 보지 못합니다. 나는 아주 객관적인 자세로 이야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의 문제였습니다." 윌버는 행운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실패가 모여 성공가능성을 점점 높여주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1903년 키티호크 해변에 갈 때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의 성공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 밀그램은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면서, 권위에 복종하는 성향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라고 분석. "우리는 조류, 양서류, 포유류에서 지배구조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인간에게서는 상징을 통해 기능하는 권력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위계구조를 가진 집단은 물리적 환경의 위험, 경쟁종의 위협, 내부의 잠재적 분열에 대처할 때 큰 이점을 갖는다. 무질서한 군중에 비해 훈련을 잘 받은 군대는 개인들이 방향없이 행동하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이점이 있다." 밀그램은 또 외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것뿐 아니라 내적 목표를 달성하기에도 좋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회조직의 또 다른 장점은 집단구성원 사이의 관계에 안정과 조화를 부여한다는 점. 각 구성원의 신분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늑대떼가 먹이를 사냥한 경우, 우두머리 늑대가 첫번째 특권을 누리고 두번째 늑대가 그 뒤를 잇는 식으로 서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같은 원리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 특히 현대사회의 관료제는 가능한 한 역할을 세분화시켜놓았기 때문에 더 쉽게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밀그램은 앞의 실험에서 조건을 변경해 도우미를 한 사람 더 투입했다. 그의 역할은 전기충격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다. 이로써 실험 참가자와 희생자의 거리가 멀어졌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93%가 부당한 권위에 복종했다. 밀그램은 이는 관료주의의 전형이라고 설명. 가장 냉담하고 둔감한 사람을 직접적인 폭력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잔인한 행위와 멀리 떨어져서 그에 필요한 지원활동을 하도록 한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도 별다른 긴장이나 거부감없이 일을 수행하게 된다. 그들은 서류를 정리하고 탄환을 장전함으로써 파괴적인 결과에 일조하지만 그들의 눈과 마음은 여기에서 멀어져 있다.
- 사실 그는 고어사를 어떤 회사로 키우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명확한 비전 없이 그저 테프론으로 만든 케이블에 엄청난 기회가 있을 거라 직감했고, 일단 회사를 창업해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소재기업이 된 것뿐이었다. 빌은 분위기가 전혀 다른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듀폰에서 경험한 것처럼,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그런 조직과는 다른 회사로 키워가고 싶었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피라미드 구조와 명령체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꿈꾼 것이다. 그는 듀폰에서 사람들이 창의성을 가장 잘 발휘하는 순간은 카풀할 때라는 것을 발견했다. 상사와 부하관계라고 해도 동료들의 차에 함께 타고 출퇴근할 때 오히려 생산적인 대화가 많이 오고갔다. 특히 부가직원들이 회의 때는 전혀 나오지 않을 법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에너지도 넘쳐났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능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직급체계와 수직적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는 또 다른 순간은 회사가 위기에 빠져서 태스크포스를 조직했을 때였다. 태스크포스에서 일하게 되면 직급과 명령체계를 떠나 모든 팀원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존중해주었다. 일시적으로 조직된 팀이라서 회사의 복잡한 규칙과 상하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밑바탕 위에서 고어사가 만들어졌다. 직급과 상하관계가 없는 조직을 만들면 구성원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낼 것이고, 과제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면 사람들의 열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고어와 동료들로 지은 것이다. 이 회사에는 공식적으로 직급이나 직함이 없다. CEO나 재무담당자처럼 공식적 직함을 가진 사람이 몇 명 있지만, 이는 회사법에서 규정한 요건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다. CEO도 동료로 불린다. 그래서 고어사에는 보스가 없다. 사업을 맡는 사람도 CEO가 임명하지 않는다. 그 사럽부의 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따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도 사업부장이 아니라 리더라 불림. 또 직원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소속된 부서도 없다. 그래서 직책도 없다. 섬유사업부에서 영업을 하다가 인사부서에서 일하는 등 직무순환이 자유롭다. 빌은 직원들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일하는 회사를 만든 것이다. 어느날 직급이 있어야 편하다는 여직원에게 빌은 "그럼, 최고사령관이라 부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 실제로 이 여성은 명함에 최고사령관이라 새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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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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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는 일은 케이블 방송국이 아니다. 방송업이 아니라 고객들이 세상을 탐험하고 호기심을 만족시키도록 돕는 일이다. 새로운 유통 플랫폼과 화면으로 옮겨간다면 이런 철학을 고수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존 핸드릭스)
- 단순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단순함이란 정말 소중한 것을 위해 덜 소중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 정말 소중한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먹는 것, 쓰는 것, 만나는 것, 가진 것까지 생활의 모든 면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내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다.
- 단순하려면 엄청난 자신감이 필요하다. 관료주의는 속도를 두려워하고 단순함을 혐오한다. 당신이 내놓는 아이디어는 칵테일 파티에서 나누는 잡담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당신과 같은 업종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라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잭 웰치)
- 내 만트라 가운데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이다. 단순함은 복잡한 것보다 더 어렵다. 생각을 명확히 하고 단순하게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일단 생각을 명확하게 하고 단순하게 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 (스티브 잡스)
- 관료주의는 권위가 지위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자란다. 관료주의는 속도를 무서워하며 단순성을 증오한다.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음모를 키우고, 때때로 비열하게 만든다. 관료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공유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열정적이지 못하다. 관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관료주의는 불안감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불안감에 대한 해독제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첫번째 방법은 조직을 경쟁체제로 만드는 것이다. 경쟁이 없는 조직의 종착역은 관료주의다. 다음은 조직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다. 내 생각을 말하고, 상대 이야기를 듣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좋은 아이디어에 개방적이며 기꺼이 그 아이디어에 공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모두 자신이 생각해내야 한다거나 자신이 시작한 모든 아이디어에 대해 공로를 인정받아애 한다고 우지기 않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일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필요하면 아낌없이 지원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키운다. 가만히 있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관료적이 된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관료주의를 막는 최선의 바책이다. 모든 조직은 곰팡이처럼 자라나는 관료주의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만 경쟁력을 갖춘 조직이 된다.
- 관료기구는 내버려두면 방대해진다. 그들은 자기보존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 그들은 능력을 향상시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와 기생충을 늘리는 방법으로 이를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개혁요구를 기대할 순 없다. 이는 복종시키는 힘이 있는 권력자만이 할 수 있다.
- 관료주의는 암세포와 같다. 암세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어떻게 하면 비슷한 조직을 증식시킬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관료주의는 생산성과 상관없이 자리를 늘리고 규정에만 목을 맨다. 관료주의를 죽여야 생산성을 살릴 수 있다.
- 우리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잘사는지 그 사실을 모른다. 잘살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다. 뭔가 부족해서는 아니다. 너무 많이 가져서, 너무 복잡해서, 너무 바빠서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행복함은 단순함이다. 행복은 심플에서 온다.
- 기업은 비영리단체처럼 사명을 중시해야 하고, 비영리단체는 기업처럼 생산성을 중시해야 한다.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생산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지, 그만한 결과물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결과물은 재미가 있든지 의미가 있든지 돈이 되든지 셋 중 하나다.
- 의무감에서 만나는 사람, 만나기 싫지만 할 수 없이 만나는 사람, 만나고 나면 기분이 언짢아지는 사람은 정리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은 불필요한 만남의 정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 선택이란 무얼까?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위해서는 정리정돈의 프로세스가 필요. 정리는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버린 후 찾기 쉽게 재배치하는 것. 선택도 그렇다. 선택이라 하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엔 일에 치여 죽도 밥도 안된다.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유를 얻고 그걸로 정말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이다. 불필요한 일들이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
- 집중력은 자극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도전이다. 사람들은 도전에 직면해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능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까지는 절대 자신의 자신의 잠재력을 알지 못한다. 도전은 집중력을 높이는 좋은 수단이다.
- 많은 사람들은 여유가 행복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일은 적게 하고 해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료한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즐기기 쉽다. 몰입 경험이 많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 생산성이 떨어지는 회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결정해야 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회의. 시간단축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의견을 장롭고 활발하게 교환할 수 있을지, 일정 시간안에 의사결정이 완료될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이 필요함. 분위기 변화, 테이블 배치, 자리이동, 순차적 자료배포 등 기존 회의 방법을 바꾸는 것마으로도 생산성이 높아짐. 이를 위해 우선 회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함. 결정할 일은 무엇인지, 아이디어 리스트를 만드느 일인지, 정보를 공유하는 일인지, 합의하는 일인지, 설득하는 일인지, 일의 순서나 역할 분담 등 다음 단계의 업무를 정하는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료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면 안 된다. 혁신기업들은 자료를 설명하지 않는다. 시작과 동시에 지금부터 2분간 자료를 읽어보세요, 라고 한다. 작성자가 설명하는 것보다 자료를 각자 읽는 편이 빠르기 때문이다. (생산성, 이가 야스요)
- 높은 사람이 애매모호하게 말을 하면 조직이 큰 혼란에 빠진다. 높은 사람이라 되묻지 못하고 다들 그걸 해석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한다. 생산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 휴식의 기술은 자유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휴식이란 밀도 있는 순간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밀도 있는 대화, 음악을 즐기며 맛보는 기쁨, 때로는 긴장감 넘치는 일,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일체감이다.
- 하루를 마감하라. 그로부터 손을 떼라. 당신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분명 어리석은 실수와 행동이 떠오를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잊어라. 내일은 새로운 날이므로, 들뜨거나 터무니 없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이 내일을 차분하고 훌륭하게 시작해야 한다.
-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다.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서 한다. 10시간 이상 충분히 잠을 잔다. 류비세프는 일용할 양식을 대하듯 시간을 경건하게 여겼다. 시간을 죽인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1분 1초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시간을 숭배한 사람이다. 인생은 무언가를 이루기에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 리더는 형세를 만드는 사람이다. 조직이 승리할 수 있는 구조와, 승리할 수 있는 기세등등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결국 분위기를 바꾼다. 분위기를 바꾸면 성과는 따라온다. 형은 조기의 구조, 세는 조직의 문화와 분위기를 말한다. 리더는 이길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이길 수 밖에 없는 세를 만드는 사람이다.
- 강력한 기업문화는 보이지 않느 손으로 기업의 운영방식을 지배한다.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 어떤 문서상 규칙이나 매뉴얼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다. (앤드루 그로브)
- 조직문화는 최고책임자의 성격, 가치관, 행동의 결과물이다. 최고경영자의 일거수일투족은 구성원들의 관찰 대상이다. 그가 어디에 높은 가치를 두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언제 화를 내고 언제 칭찬을 하는지, 누구를 중요시하고 누구를 내치는지를 보면서 구성원들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런 구성원들의 행동방식이 오랜 세월에 걸쳐 조직문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 사례
* 헤밍웨이는 매일 자신이 쓴 단어의 수를 기록할 정도로 글 쓰는 작업을 관리했다.
* 보봐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부르주아처럼 규칙적이고 정돈된 삶을 살아라. 그래야 격정정기고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 시몬 드 보부아르는 영화제작자 클로드 란즈만이 이렇게 표현할 정도였다. "파티도 없었고 환영회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멀리했다. 반듯하게 정돈된 삶이었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짜인 단순한 삶이었다." 예술가라면 생활계획표 같은 것은 세우지 않고 어떤 제한도 거부한 채 자유롭게 살아갈 것 같지만 작품을 위해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은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짓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거다. 출판과 관련된 사교적인 삶조차 멀리 한다."고 밝힘.
*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달리고 글 쓰는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사교적 삶을 포기했다. 그는 초대를 반복해 거절하면 누구나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삶에서 더 중요한 관계는 독자와의 관계라 말했다. 독자와의 관계를 위해 사교적 삶을 포기하고 더 좋은 작품을 쓰는데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 영국 평론가 프리체트는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쉬지 않고 공부하고 연구했다.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을 낙담케 만드는 근면함이 있다."
- 프로란 계소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자기 역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날은 괜찮고 어느 날은 그렇지 않다면 프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순간적인 기분에 의존하면 연주가가 갖추어야 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없다. 페이스 조절을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그렇게 해야 한다. 최대한 규칙적이고 담단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프로젝트를 받으면 납기 안에 완성하기 위해 매일 어느 정도 일을 할지 생각한다. 기분에 상관없이 꾸준히 일을 하지 않으면 납기를 지킬 수 없다. 장거리를 뛰기 위해서는 페이스를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 일정한 페이스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마음가짐도 갖추어야 한다. (히사이시 조)
-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반대여야 한다. 문명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할 때, 그리고 그런 횟수가 많아질 때 진보해왔다. (화이트 헤드)
- 최고의 생산성은 생산적으로 일하겠다고 의식하지 않은 채 나도 모르게 내가 정한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생산성의 키워드는 단순화와 집중이다. 루틴은 그것을 실천하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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