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산화탄소 농도는 인류가 경작지와 목초지를 확보하고자 중국, 인도, 유럽 등시에서 삼림을 파괴하고 불태우기 시작한 8000년 전부터 서서히 증가. 메탄은 인류가 쌀농사를 짓기 위해 관개를 도입하고 전례 없는 규모로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5000년 전에 비슷한 규모로 증가. 이 두가지 변화는 처음에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문명이 발생하고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동안 지구 기후에 점점 더 많은, 더 의미심장한 영향을 끼쳤다
- 소행성 충돌로 비단 공룡뿐 아니라 숱한 생명체들이 사라졌으므로, 그것은 다윈이 100여년전 예상한 진화과정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 생명체들은 필시 수천만년 혹은 수억년 동안 이용가능한 생태적 지위와 생존수단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윈이 주장한 것과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다투어왔을 것이다. 따라서 소행성 충돌의 생존자들은 비슷한 다른 존재들이 사라진 틈을 타서 더 많이 번식했고, 따라서 더 오래 살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경쟁에서의 승리는 작은 이득이나 손실에 의해 좌우된다. 말하자면 생명의 진화를 제어하는 요소란 마치 보험회사 소속의 공인회계사가 연연하는 것 같은 사소한 차이다. 몇 억 년에 한 차례씩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외계에서 날아들어 질서정연한 세계를 송두리째 재정비한다. 대다수 종이 멸종하며, 그에 따라 살아남은 동물들은 별안간 한때는 경쟁이 치열했던 생태적 지위를 넉넉하게 보장받는다. 이제 그들은 그런 처지를 활용해 좀더 느긋하게, 다윈이 말한 이른바 재능 다양화를 도모했다. 진화의 이 같은 측면은 '행성 간 사격연습장 속의 삶'이라 불렸다. 이러한 대대적 공격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일부 작은 동물들 뿐이었다.
- 6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사건을 계기로 공룡시대가 저물고 포유류 시대가 열림. 본시 작고 보잘것 없고 설치류처럼 생겼던 포유류는 이내 고래 등 지상에서 가장 커다란 동물을 포함하는, 좀더 덩치 크고 복잡한 생명체 집단으로 진화. 그 가운에 하나의 계통은 오늘날 여우원숭이와 매우 흡사한 동물로 진화함. 수천만 년 전에 살았던, 꽉 붙들 수 있는 앞발과 잡기에 적합한 꼬리를 지니고 나무를 타고 다닌 원숭이 모습의 동물이었다. 이 계통은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약 1000만년 전 원시적 유인원 형태로 진화. 그후 약 500만년 전 그들로부터 침팬지와 우리 선조들이 속한 집단이 떨어져 나왔다. 450만~400만년 전, 아프리카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신은 화산재에 발자국을 남긴 동물들처럼 네다리가 아니라 두발로 일어서서 똑바로 걷기 시작. 직립보행 자세로 변했다는 것은 두개골을 받치는 등뼈의 위치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네 발로 걷는 동물의 경우는 등뼈가 두개골의 뒤쪽으로 이어지는 반면, 똑바로 서서 두발로 걷는 동물은 머리통이 정확히 등뼈의 위쪽에 놓인다
- 15~10만년 전 어느 때쯤, 아프리카에서 거의 현재와 유사한 인류가 등장.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거의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 없어졌다. 선조들보다 키도 크고 뇌 크기도 한층 더 커짐. 그들 역시 선조들처럼 돌을 쪼개서 도구를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진일보한 기술을 동원. 좀더 현명하게 돌을 골라 한층 더 다양하고 정교하고 다듬어진 도구를 제작. 우리는 그들이 시체를 매장하고 환자를 돌봤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환자를 간호했다는 것은 다른 이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기형을 지닌 채 성년기를 살았던 개인의 화석 유해가 발굴된 데 따른 결론임. 처음에는 그들 역시 선조들처럼 사냥꾼에게 거의 혹은 전혀 위해를 가하지 않는 작은 사냥감에 주로 의존했다. 지능이 꽤나 높은 인간이 어찌 그리 믿기지 않을 만큼 원시적인 생활을 고수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희한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뇌는 지금 우리의 뇌가 감당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오늘의 우리로서는 당연하다 싶은 상식의 기반이 부족했다. 그들의 아기 한 명을 현대사회에 데려와 키운다면, 그가 천체물리학자, 목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성장할 가능성이 지금의 우리와 하등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장구한 세월동안, 지축의 기울기가 늘 일정하게 유지된 것은 아님. 1840년대 프랑스 천문학자 위르뱅 르베리에는 거대 행성들(주로 목성)의 중력당김에 의해 지축의 기울기가 4만 1000년 주기로 22.2도에서 24.5도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고 밝힘. 4.1만년마다 기울기는 최대에서 최소로, 다시 최대로 달라진다는 의미. 기울기 주기는 길이도 진폭도 일정함. 2.3도에 이르는 지축 기울기의 점진적 변화가 낮 동안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높이를 달라지게 만든다. 2.3도의 변화라니 하찮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태양이 항시 하늘에 낮게 떠 있는 고위도 지방에서는 큰 차이를 만들어냄. 북극권 북쪽과 남극권의 경우, 한겨울에는 결코 태양을 볼 수 없다. 끝없는 극야가 펼쳐지는 것임. 반면 한여름에는 태양이 결코 지지 않고, 지극히 낮은 각도로 지평선 주위를 느리게 돌며 떠 있다. 낮은 태양고도상의 아주 작은 변화조차 전달되는 태양 복사에너지 양에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다 준다.
- 기후를 변화시키는 두번째 방법은 태양과 지구의 거리를 달라지게 만드는 것. 흔히 볼 수 있는 전구에서 손을 30센티 정도 뗀 다음 다시 10센티 가량 더 떼보면 이 주장을 실감할 수 있다. 열원과의 거리는 분명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며, 전구 열의 양을 통해 태양에서 나오는 평균적 열의 양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지구가 공전하는 동안 태양까지의 거리를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지구 궤도의 이심율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구 궤도가 둥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은 원형, 즉 타원형임. 따라서 지구는 공전궤도상의 한 지점(근일점)에 있을 때가 그 반대편(원일점)에 있을 때보다 태양에 약 500만킬로 더 가까움. 이것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평균거리(1.55억킬로)에서 벗어나는, 작지만 의미심장한 변하다. 일반적을 이심율이라 불리는 이 타원율은 오랜 기간에 걸쳐 변화함. 이심율이 거의 10만년 주기로 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또한 르베리에의 업적. 매우 드물지만 이심율이 0으로 떨어지면,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궤도가 완벽한 원형이 됨. 대부분의 기간동안 지축 기울기는 타원형이고, 이심률은 끊임없이 변화함. 이심률의 변화는 지축기울기의 변화보다 더 불규칙함. 또한 최고 이심률과 최저 이심률 간의 변화폭도 크다. 시간과 더불어 변하는 이심률은 지구궤도를 원형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지구궤도상의 위치에 따라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달라지게 만듬. 지구와 태양의 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지구궤도의 두번째 측면은 지축의 세차운동. 지구는 팽이처럼 기울어진 지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번씩 자전함. 또한 1년에 한번씩 태양주위를 공전. 이 역시 평평한 표면에서 서서히 원형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대다수 팽이들에서 확인가능. 그러나 팽이는 흔히 세번째 종류의 운동을 보여주기도 함. 즉 기울어진 방향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꾸면서 흔들흔들 하는 것이다. 지축을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는 지구의 방향변화는 기울기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짐. 1800년대 프랑스 수학자 장 르 롱 달랑베르는 세차운동이 어떻게 태양주위를 공전하는 지구궤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최초로 밝힘. 그는 기울어진 지축이 지구궤도상에서 느리게 한번 흔들리는 데 약 2.2만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냄. 2.2만년은 지구가 하루에 한번 자전하는 것, 혹은 1년에 한 번 공전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긴 기간이다. 지구가 지구궤도상에서 이러한 흔들거림 가운데 단 한번을 경험하는 데는 2.2만번의 공전이나 800만번이 넘는 자전과 맞먹는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 만약 여러분이 그처럼 느린 흔들거림을 감지하려면 상당히 오랫동안 팽이를 주시해야 할 것임
- 기나긴 세월 동안 인간과 동물이 진화과정을 함께 해온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필적할 만한 대멸종이 일어나지 않았따. 이러한 관찰은 사리에 닿는다. 인간에게 쫓기는 사냥감이 그 압박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 (이를테면 혼자 지내는 습관이나 일정치 않은 예측불허의 이주유형 등)을 개발할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멸종을 초래한 원인이 인간이라는 결론은 수많은 과학자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샀다. 그들은 1.25만년전 남북아메리카에 살았던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설사 클로비스 창촉을 장착한 무기를 지녔다손 치더라도 어찌 그 모든 동물들을 삽시간에 대멸종으로 몰아갈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초기 미국인들이 대멸종을 일으키기 위해 모든 종의 마지막 개체까지 일일이 창으로 찔러죽일 필요는 없었다. 인간은 조직적 집단 속에서 사냥하면서 언어적 의사소통과 불을 써서 동물 무리를 크고 작은 협곡이나 제한된 지역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불로 위협하면서 동물떼를 몰아가노라면 어느 때는 그들이 한꺼번에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동물들이 막다른 궁지에 몰려 허둥대가 허망하게 살해당하기도 함. 이 시기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해골 무더기가 절벽 바닥 가장자리에 수북이 쌓인 채 발견되었는데, 더러 그 가운데 가장 위에 놓인 해골만 식량감으로 도살당했다는 증거가 나오곤 한다. 사냥 전략들이 어찌나 잘 먹혀들었던지 그것들을 다채롭게 구사하자 동물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인구 생태학자들이 최근에 진행한 연구는 대형 포유류 종은 매년 그들 인구의 일부만 골라 죽여도 놀라우리만큼 빠른 시일내에 멸종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줌. 대다수 대형 포유류는 임신기간이 긴 데다 한 번에 새끼를 조금씩밖에 낳지 못해서 더디게 번식하므로, 사망률이 정상치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도 쉽사리 피해를 입음. 출생률과 사망률의 장기적 영향력을 계산함으로써 인구변화를 모의실험한 모델들은 사망률이 정상치를 조금만 상회해도 수백년 내에 멸종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적어도 두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수렵-채집-어로 생활에서 농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 수렵채집인은 다양한 출처에서 식량을 얻으며, 비옥한 초승달 지대 같은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많은 동식물은 당연히 영양적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준다. 그에 비해 식량을 한두 가지 곡물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면 단백질과 지방의 부족으로 이어져 영양실조를 초래하기 십상. 이런 관점에서 보면 1.2만년 전 사람들이 점차 몇 개에 불과한 곡물에 의존한 것이 꼭 그렇게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었다. 둘째, 몇몇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근동지역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곡식을 수확하는 것은 같은 곡식을 재배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돌보고 추수하는 것보다 품이 덜 든다고 한다. 원시인들은 최소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최대의 식량을 거두어들이고자 끊임없이 우선순위에 따른 합리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농업의 등장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살아가던 이들로 하여금 나날의 일상을 농사짓는 일로 서서히 옮아가도록 내몬 몇가지 요인이 있었다. 반건조한 이 지역의 초원에선 이례적일 정도로 다양한 곡물이 야생상태로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재배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밀(에머밀과 외알밀), 보리, 호밀 등속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모두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탄수화물 급원이었다. 완두콩이나 렌틸콩은 훌륭한 단백질원이었다. 천연식량이 더없이 풍부하다는 것은 이 지역만의 고유한 특색이었다. 풍부함의 원천은 부분적으로 근동의 반건조성 기후에 따른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건기가 길어서 매년 일년생 식물이 거의 반 죽는다. 따라서 식물은 생식을 위해 씨앗을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를 소비함. 식용 씨앗은 인간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식량이다. 반면 물이 풍부한 숲에서 자라는 초목은 대체로 인간에게 먹을 것을 거의 제공해주지 않으며, 사막은 척박한 불모지나 다름 없음. 따라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 주민들은 곡물을 통해 필요한 식량을 얻긴 했지만, 여전히 야생 씨앗을 채집하거나 사냥을 하거나, 장소에 따라서는 물고기를 잡아서 영양분 섭취를 늘려나갔다. 그들은 이처럼 여러 자원을 한꺼번에 활용함으로써 영양결핍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야생 식량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자란 까닭에 농사가 시작될 무렵 일찌감치 몇몇 기술혁신을 이루게 된다. 게다가 곡물을 자르는 원시적 돌낫, 곡식을 담아 나르는 데 쓰는 직조 소쿠리, 곡물을 갈기 위한 절구 등 다른 곳에서 거둔 기술혁신의 성과도 빠르게 수용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선 농업으로의 전환이 점점 더 탄력을 받기 시작. 처음에 사람들은 야생 곡식이나 콩과 식물을 땄다. 구하기도 쉽고 맛도 좋으며, 특정계절에는 수많은 식량자원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 이것은 채집이지 농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1.1만년 전 무렵 야생곡물종과 유연관계에 있는 곡물들이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범람지대에서 그들이 자연적으로 분포하는 지역을 한참 벗어난 장소에 나타나기 시작. 인간이 개입하거나 손댔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완두콩 같은 보호받는 곡식알갱이들은 서서히 크기가 애초의 야생형태보다 열배나 커졌다. 사람들은 적은 시간에 많은 식량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가장 큰 곡식 알갱이나 채소를 거두어들였다. 당초 이러한 선택은 그저 당연한 일이자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문제였고, 이것은 무의식으로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곡식은 수백년에 걸쳐 점차 서로 밀접한 관련은 맺었따. 사람들이 거듭 큰 씨앗을 선택함에 따라 곡식은 다른 식물들과 겨루어야 하는 야생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잡종으로 진화. 쉴새 없이 이동하면서 자식을 데리고 다녀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믿을만한 식량원이 확보되자 사람들은 자녀를 더 많이 낳았고, 자연스레 인구도 늘기 시작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또 한가지 이점은 그곳이 사육하기 쉬운 것으로 드러난 여러 야생동물의 서식지였다는 사실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강조한 대로, 쉽게 사육하기 힘든 동물 유형도 숱하게 많다. 태생적으로 너무 사납거나 겁이 많거나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동물도 있으며, 그저 너무 작아 쓸모가 없는 동물도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염소, 양, 돼지, 소의 선조들이 야생상태로 살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운이 좋은 곳이었다
- 현대의 주요 종교들은 모두 3200-1400년 전에 출현. 구약성서는 주로 3200년 전 모세의 시기부터 예수탄생 전 세기까지 일어난 사건을 다룸. 동아시아 종교적 인물 거개가 몇 백 년 사이에 태어났다. 기원전 604년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도교를 이끈 노자가 태어났고, 기원전 570년에는 석가모니가 인도 북쪽 네팔에서 탄생. 기원전 551년에는 공자가 탄생. 나중에 서양달력의 기원이 된 예수의 탄생으로 서력기원이 시작됨. 서기 570년에는 무함마드가 태어남. 세계의 종교를 쓴 휴스턴 스미스에 따르면, 일부 종교사가들은 이 기간에 종교적 각성이 비교적 활발했던 이유를 농업의 부가 낳은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함에서 찾았다. 대다수의 종교 창시자들은 전반적으로 사라들 삶에 깊은 윤리적, 도덕적 관심을 기울였지만, 특히 날로 풍요로워지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딱한 처지에 마음을 썼다.
- 인간활동은 지난 5000년간 비정상적 메탄농도 증가뿐 아니라 메탄 농도가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은 사실을 그럴싸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인간은 산업시대가 도래하기 전 수천년간 대기중의 메탄양을 급속하게 증가시킨 주범이다. 초기의 인위적 영향은 그 이전의 수십만년 동안 발생한 자연적 변동 폭의 70%에 이름. 메탄의 경우 인위적인 시대가 약 5000년 전경부터 시작된 것이다.
- 기후 시스템의 주요인들(태양 복사 에너지 변화, 빙상의 퇴각속도, 해수면 상승, 식생의 변화 등)은 하나같이 지난 네차례의 간빙기와 그에 이어지는 몇 천년 동안 비슷하게 움직였지만, 오직 현재 간빙기에만 초기에 이산화탄소가 증가했다. 반면 그에 앞서는 세 차례 간빙기에서는 이산화탄소가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렸다. 결국 최근 이산화탄소 증가를 자연적 요소에 근거해 설명하려는 시도들은 하나같이 과거 세차례의 간빙기에 이산화탄소가 감소한 현상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자연적 요소를 배제하면 다시금 딱 한가지 설명만이 남는다. 즉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비정상적으로 증가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인간은 8000년 전부터 산업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3000억톤이 넘는 탄소를 대기중에 더해준 것으로 보였다.
- 어찌 그토록 적은 인간이 그리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단 말인가? 초기에 인간이 대기중에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방식은 다름 아닌 삼림 벌채를 통해서였다. 8000년 전에서 250년 전까지 3000억톤에 달하는 탄소를 방출하려면 산업혁명 이전의 삼림벌채가 산업시대 2000년동안의 두배가 넘어야 했다. 오늘날에는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열대우림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탓에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에 비해 연간 삼림벌채 속도 추정치가 200년 전에는 오늘날의 10% 수준이었으며, 훨씬 더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찮으리만치 작은 수치로 줄어듬. 이렇게 보자면 1750년 이전까지의 총 삼림파괴가 그 이후의 두배가 넘는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이 들린다. 그러나 일반적 통념에 따른 견해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간과했다. 바로 시간이다. 지난 200년 동안 삼림벌채나 기타 다른 것들의 처분에 따른 탄소배출의 평균속도는 연간 약 7억 1500억 톤의 탄소가 배출된다. 그러나 탄소가 서서히 증가한 그 이전 시대는 그보다 40배나 더 긴 7750년에 걸쳐 있다. 이전 시기의 총 탄소배출량을 3000억톤에 맞추려면 탄소 배출량의 속도가 연간 산업시대 평균(7억 5000만톤)의 5%에 불과한 4000만톤에 그쳐야 함. 결국 속도는 20분의 1이지만 40배 더 긴 기간동안 지속되었으므로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두배가 된다. 이솝우화에서처럼, 느리게 움직이지만 일찌감치 출발한 거북이 빠르게 움직이지만 너무 늦게 출발한 토끼를 이긴 것이다. 이 간단한 계산을 통해서 보면ㅁ 비로소 초기 탄소 방출량이 총 3000억 톤에 달한다는 주장이 그럴법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인간이 비정상적인 이산화탄소 증가의 주범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증가의 두가지 특징과 일치하는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첫째, 이산화탄소 곡선이 증가세로 돌아선 8000년 전에 석기시대 인류가 상당한 속도로 삼림을 파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필요. 둘째, 인류가 저지른 삼림파괴의 누적효과로 산업시대 훨씬 이전에(이 경우 무려 2000년 전에) 이미 이산화탄소가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증거 또한 필요
- 기후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지잔 8000년을 이전 빙하기와 다음번 빙하기 사이에 낀 짧은 막간으로, 자연적으로 기후가 안정된 시기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은 지난 8000년 간의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가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는 실상 시작되었어야 마땅한 자연적 냉각과 인간이 야기한 온난화 효과에 따른 상쇄가 빚어낸 우연적인 유사균형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같은 새로운 개념이 맞는다면, 인간문명이 초래한 기후란 부분적으로 인간의 농업활동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우리 인간은 무려 수천년 전부터 기후 시스템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 8000년 전 자연적인 기후는 따뜻했다. 여름에 태양 복사 에너지가 강하고 자연적인 온실가스 수준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자연적인 지구궤도 변화에 따라 여름 태양 복사에너지 양은 꾸준이 줄어들었고, 자연적 냉각이 이어졌다. 지난 몇 천년간 이러한 냉각 추세는 빙하작용이 가능해지는 문턱에 다다랐지만, 인간이 빙하작용을 피할 만큼 기후를 따뜻하게 유지해줄 온실가스를 대기에 더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극지방 기후는 지난 5000년 동안 태양 복사 에너지 양의 변화로 인해 실제로 냉각되었지만, 인간이 온실가스를 더해주는 바람에 빙상이 생성되지 않았다. 지난 200년간의 산업시대에 방출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기온은 빙하작용이 가능한 온도를 넘어서버렸다.
- 70년대 점차적인 지구궤도 변동이 빙상의 성쇠를 좌우한다는 밀란코비치 이론이 맞는다고 확인해준 것은 기후과학이 일군 성공가운데 하나였다. 임브리 부녀가 80년 발표한 논문은 다음 빙하기가 임박했음을 (고작 1000-2000년 내에 시작될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그 연구결과를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그 결과를 보고 지극히 단견이라 할 만한 다음과 같은 잘못된 결론에 도달. 즉 1960-70년대에 진행된, 지구 기온이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약간 낮아진 것을 보고 새로운 빙하기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한 것이다. 80년대에, 수십년간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했다는 직접적 측정치들이 쏟아져 나오자 대다수 기후과학자들은 급속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훨씬 더 느린 지구궤도 변화보다 가까운 미래의 기후변화에 한층 더 중요한 요인이 되리라 믿었다. 결국 장기적 냉각화보다는 단기적 온난화에 관한 우려가 더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떠올랐따. 그 무렵 온난화는 언론으로부터 이례적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더러는 환경단체 대변인들이 미래의 온난화가 미칠 수도 있는 해악에 관해 필요 이상의 불안을 부추기는 과장된 언급을 쏟아내기도 했다. 90년대는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반격이 가해졌다. 과학계가 이 주제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미래의 빙하작용에 관한 예측에서 미래의 열파에 관한 경고로의 이동은 과학적 무능의 예로 언급되었으며, 현재도 여전히 그렇게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요약된 결과들은 이 주제에 관해 더욱 폭넓은 관점을 제공한다. 빙하기가 임박했음을 암시하기 위해 70년대에 새롭게 확증된 지구궤도 이론에 의존한 대다수 과학자들은 틀림없이 느리고 장기적인 지구궤도 주기라는 맥락에 비추어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새로운 빙하기를 당장 내일이 아니라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뒤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에서 임박했다고 본 거이다. 이런 재해석을 통해 대다수 과학자들은 실제로 불필요하게 불안을 부추기는 사람들보다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구결과들을 보면, 초기 인간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없었다면 지난 수천년간 지구가 대규모의 자연적 냉각과정을 겪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몇 천 년 전부터 적어도 소규모로나마 빙하작용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번 빙하기는 임박한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어야 마땅한 것이다. 한편 60-70년대의 미미한 기후냉각을 보고 빙하기가 도래하는 조짐이라고 성급하게 결론 내린 일부 과학자들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실제로도 비판받았다. 그들의 결론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 오늘날 가장 정확한 추정치에 따르면 단지 유럽인과 접촉한 사실만으로 숨진 아메리카 원주민이 약 5000만에 달한다. 이것이 바로 전 산업시대의 역사를 통틀어, 세계 인구 크기에 비례해, 그리고 지금껏 출몰한 최악의 세계적 유행병들 가운데 단연 최대 규모의 유행병이었다. 당시 지구상에서 살아가던 대략 5억명의 인류 가운데, 10%에 이르는 약 5000만 명이 남북아메리카에서 죽어갔다
- 세계적 유행병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변화가 지난 2000년간의 기후변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기후 시스템이 두배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4-10ppm 감소하면 지구기후는 0.04-0.1도 냉각할 것이다. 이러한 냉각은 추웠던 로마시대(200-600년), 따뜻했던 중세시대(900-1200년), 그리고 다시 추웠던 소빙기(1300-1900년)에 관측된 기온변화의 상당부분을 말해줌. 화산분화나 태양활동의 미세한 변화같은 요인이 기온변화에서 맡은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적 과정은 실험을 통과하지 못한 반면, 세계적 유행병 가설은 어쨌거나 재구성된 기온감소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산화탄소 감소규모를 설명해주었다.
- 대다수 과학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관측에 동의한다. 첫번째, 지난 200년 동안 온실가스 농도는 자연적 수준을 넘어 급격하게 증가했다. 두번째, 전 지구의 온도는 지난 125년 동안 이례적으로 빠르게 0.6-0.7도 상승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당장에라도 인간이 일으킨 전례 없는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말처럼 그리 쉽게 정당화될 수 없다. 믿을 만한 기후과학자라면 관측된 온난화의 적어도 일부는 분명 온실가스 농도 증가 때문이라는 데 동의하겠지만, 온난화 전체가 온실가스에 의해서만 야기되었다고는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요인들도 기후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산업시대에 인간이 기후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려면 우선 그 요인들부터 찾아내야 한다. 한가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측결과가 있다. 바로 인간이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증가시켰는데도 지난 200년의 기후 온난화는 전산업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낸 정도에 그쳤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가장 주된 설명은 기후 시스템이 급격하게 도입된 온실가스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수십년이 걸리므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지구 기온이 폭발적인 온실가스 증가를 미처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그럴듯한 설명은 다른 산업 배기가스들이 대기에 배출되면서 온실가스로 인한 온난화 효과를 일부 소거했다는 것이다. 미래에 온실가스로 인한 온난화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는 화석연료 생산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수지타산이 맞는지, 우리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온실가스 가운데 얼마만큼을 얼마나 빠르게 대기중에 내보낼지, 그리고 기후 시스템이 그들의 투입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지에 달려 있다. 이 같은 예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점은 미래의 기술발달이 인류 연원의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 선조들은 수백만 년 동안 기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 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영향력은 작지만 서서히 커지기 시작. 그러다 급기야 지난 세기에는 인간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자연을 능가했다. 이런 추세는 다가오는 수백년 동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남짓한 세월 동안 화석연료 시대는 대체로 막을 내릴 테고, 그러면 기후 시스템은 천천히 자연적인 (좀더 추운) 상태로 접어들 것이다.
-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온실가스가 비교적 서서히 증가(이산화탄소 40ppm과 메탄 250ppb) 했는데도 지구 기온이 비교적 크게 상승(0.8도) 한데 반해, 산업시대에는 큰 폭으로 증가한 온실가스(이산화탄소 100ppm과 메탄 1000ppb)가 지구 기온을 고작 0.6도만 상승시켰음을 보여준다. 이들 반응의 상대적 규모는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가지 요인이 그 차이를 설명해준다. 첫번째 설명은 거북과 토끼의 차이다. 즉 온실가스 농도가 전산업시대에는 서서히 증가했지만 산업시대에는 몹시 빠르게 증가한 나머지 기후 시스템이 미처 그 결과를 기온에 반영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기후 시스템은 온실가스 증가 같은 새로운 방향의 자극에 제대로 반응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린다. 우리는 이러한 지체를 기후 시스템의 반응시간이라고 부른다
- 바다의 순환에 미치는 이 모든 영향력을 한꺼번에 고려해볼 때다. 바다의 평균 반응시간 추정치는 25-75년 사이다. 바다는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고,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더 많은 열을 저장할 수 있으므로, 전체 기후 시스템의 평균 반응시간도 같은 범위에 놓인다. 가장 정확한 추정치는 아마도 30-50년일 것이다. 이 반응시간은 온실가스가 증가한 두 번의 시기에서 다른 결과를 보인다. 전산업시대에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증가속도가 한정 없이 느려서 장장 수천 년에 걸쳐 있었다. 기후 시스템은 온실가스가 변화하고 몇 십년이 지나면 반응을 보이는데도, 수세기가 흐르는 동안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 속도가 어찌나 더뎠는지 기후 시스템은 당시 존재하는 온실가스 양과 거의 전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 산업시대에는 대기중의 온실가스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증가분의 절반을 웃도는 양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만들어졌다. 산업시대에 온실가스 증가의 최초 조짐은 1800년 무렵 드러났지만, 1900년까지 증가분은 전체의 20% 미만이었다. 1950년경에조차 현재까지의 이산화탄소, 메탄 증가분의 30%가 못 되는 정도만 기록하고 있었다. 따라서 산업시대의 온실가스 증가분 가운데 나머지 70%는 기후 시스템의 반응시간 추정치에 상당하는 기간(30-50년) 동안 일어난 셈이다. 한마디로 기후 시스템은 결국 일어나게 될 온난화의 상당 부분을 미처 기록할 겨를이 없었다. 몇몇 추정치에 따르면, 현재의 온실가스 수치로 인해 결국 일어나게 될 온난화의 절반 이상은 아직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우리가 미래에 배출할 온실가스를 어떻게든 제한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예컨대 대기중의 온실가스 농도를 향후 몇 십 년간 정확하게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식으로), 기후 시스템이 서서히 현재의 온실가스 농도와 전면적인 균형을 이루게 됨에 따라, 지구 기후는 계속 따뜻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처럼 기후가 반응하기까지 시간 자체가 존재한다는 점이 전산업시대와 비교해 산업시대에 온실가스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온난화 정도가 너무나 작은 것처럼 보이는 주된 이유다
-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러한 불일치의 원인에 관한 두번째 설명은 산업 시대에 기후를 냉각함으로써 온실가스의 온난화 효과를 반감시키는 다른 종류의 배기가스들이 대기에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전산어시대에는 그것들이 배출되지 않았거나 배출된 중 배기가스들 가운데 온실가스가 아닌 것은 바로 이산화황이다. 이산화황 가스는 대기중에 배출되면 에어로졸이라는 작은 입자로 변한다. 화산 분화로 발생하는 황과 달리 이 황 입자는 성층권에 도달하지 않는다. 성층권에서라면 황 입자가 정착하기까지 몇 년 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테지만, 대기권에서는 대신 수백미터에서 수천 미터 상공으로 상승한 뒤 우세풍으로 타고 서서히 배출지점에서 벗어남. 이산화황의 3대 주원천은 미국 중서부, 유럽(특히 구소련에서 분리된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중국이다. 에어로졸 기둥은 하강기류를 타고 복사에너지를 일부 반사하므로 그들이 기후에 미치는 효과는 지역적 차원의 냉각이다. 냉각의 정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입자의 크기, 모양, 색깔과 관련된 복잡한 세부사항들, 그리고 그것이 대기권에서 어느 높이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짐. 이 에어로졸은 며칠 혹은 몇 주 내로 비에 의해 대기에서 씻겨 나가지만, 그런 일은 이들이 하강기류를 타고 수백에서 수천 킬로를 떠다닌 뒤에야 일어난다
-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는 말은 지극히 불길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남극대륙 가장자리의 빙붕은 남극대륙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이동하는 얼음에 의해 끊임없이 다시 채워지며, 그 얼음 역시 내린 눈에 의해 계속 새로 보충된다. 다시 말해 얼음은 언제나 그 체제 내에서 돌아다지므로 빙상 크기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음.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더러 떨어져나간다는 사실은 장기적인 의미에서는 안정적인 체제의 정상적 일부분이다. 오직 남극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빙붕이 지난 세기들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드러날 때만 우리는 인위적 온실가스 온난화가 그 같은 추세를 부추겼노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러한 추세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남극대륙의 얼음이 안정적인 것 같다
- 지구 온난화에 관한 숨은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예측된 미래 온난화의 대부분을 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감축하려면, 거의 대다수가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만한 가혹한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야 함. 즉 여행아나 난방을 위한 연료값이 훨씬 더 비싸지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온도조절장치를 훨씬 낮거나(겨울), 높게(여름) 설정해야 하고, 상당비용을 투자해 발전소를 개선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 대체해야 함. 이러한 시도들은 경제나 삶의 질에 현저한 방해가 될 테고, 그것을 반기는 시민은 거의 없을 것읻. 우리는 현재 기술로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만한 경제적 여력이 안된다. 이 기저의 진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논의를 좀더 분명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해주기는 할 것이다. 우리는 대다수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를 정말로 피하고 싶어하는지 솔지갛게 질문해 보아야 함. 사람들은 대체로 겨울이 다가오면 투덜대고 여름이 시작되면 반가워한다. 눈이 내리지 않는 선벨트 지역(미국에서 연중 날씨가 따뜻한 남부 및 남서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중서부와 뉴잉글랜드 지역에 피해를 안겨준 눈과 착빙성 폭풍우에 관한 뉴스 보도를 접하면 그와 무관한 자신의 처지에 안도감을 느낀다. 수백만명이 은퇴 후 남부로 이사를 떠나지만, 북부로 거처를 옮기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추운 주의 거주민들은 투표함 앞에서 어느 쪽에 표를 던질지 저울질해야 한다. 지금처럼 추운 날씨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인가, 아니면 세금은 현재 수준으로 묶어두고 미래의 3월은 지금의 4월처럼, 미래의 11월은 지금의 10월처럼 되게 할 것인가. 나는 그들이 결코 날씨를 더 춥게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결정을 내릴 것 같지가 않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려는 대규모 기획은 어떤 것이든 결국에 가서는 저변에 깔린 이러한 태도와 부딪치게 될 것이다.
- 환경 극단주의자들은 기업 대변인들이 탐욕스러운 석탄 회사와 석유회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음으로써 썩을대로 썩었다고 성토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에서 비롯된 적극적인 조치들이 대중에게 큰 비용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환경 옹호론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이란 장 자크 루소가 주창한 고결한 야만인을 품위있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고결한 야만인이란 과거에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사냥할 뿐 그 이상은 조금도 탐하지 않은 채 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원주민들을 일컬음. 그들은 소위 순정한 원시시대를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지난 200년 동안의 악과 대비시킨다. 그리고 산어발달을 인간이 최초로, 유일하게, 진정으로 자연을 공격한 사건으로 묘사한다. 이 책은 순수한 자연세계라는 개념은 신화임을 보여주었다. 실상 전산어시대의 문화도 오랫동안 환경에 적잖은 영향을 끼쳐온 것이다. 최초의 영향은 여러 대륙에서 대부분의 대형 포유류와 유대목 동물을 멸종으로 내몬 개선된 사냥기술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몇 천년 뒤 인간은 농업발달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로 환경에 좀더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따. 대대적인 삼림파괴와 관개로 인한 토지이용 변경은 토양을 침식하고 악화시켰다. 수 천년 전의 농사 관행으로 온실가스가 다량 방출되었으며, 지구 기후가 변화했다. 전산업시대는 기술도 비교적 원시적이었으며 인구도 수십 억이 아니라 수억 단위였지만, 당시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지구의 환경과 기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실제로 적잖은 증거를 통해 철기시대, 심지어 석기시대 말엽에도 사람들이 오늘날의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지구풍경에 끼친 1인당 영향은 훨씬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 수밖에 없었으며, 대다수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숲을 잘라낸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평균 수십에이커의 숲을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
- 지구 기후사에 대한 오랜 관심이 낳은 결과이겠지만, 미래를 향한 나의 걱정은 서로 연관되는 일련의 문제들이 모아지는 경향이 있다. 즉 과거에 서서히 이루어진 과정을 거쳐서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일단 써버리고 나면 영영 사라져버릴 선물이다. 그 선물에 대한 나의 걱정은 간단하다. 즉 그것이 줄어들거나 완전히 고갈된다면, 우리 인간은 비교적 저렴한 대체물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은퇴할 즈음이면 많은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의 개인적 관심사 또한 우리 손자손녀들이 살아갈 세상까지 뻗어나간다. 나는 그애들이 노년에 이를 무렵이면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선물들의 일부가 더 이상 무한정한 자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누가 봐도 분명해지리라 생각한다. 그때쯤이면 우리 손사손녀 세대는 1800년대 말에서 21세기 초반까지를 짧았지만 너무나 운 좋은 버블의 시기, 즉 억세게 재수 좋은 인류 몇 대가 대체로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채 그 선물들을 대부분 써버린 시기였노라고 회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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