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부의 대전환

경제 2021. 4. 24. 18:18

- 모든 버블이 매번 2000년대 주택버블만큼 파괴적이지는 않으며, 일부는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 기도 한다. 
버블은 3가지 점에서 유용하게 작용한다. 
첫째, 혁신을 촉진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업가가 되도록 장려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래 경제성장에 기여하도록 한다. 
둘째, 버블로 인해 탄생한 기업들이 개발한 신기술은 미래에 혁신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버블이 이 신기술을 다른 산업 분야로 옮겨가기 전까지 활발히 사용될 수 있다. 
셋째,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없었던 기술 프로젝트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역사상 발생한 버블 중 많은 경우가 철도, 자 동차, 광섬유, 인터넷과 같은 기술과 관련되어 있다. 닷컴버블 동안에 성공을 거머쥔 벤처 자본가인 윌리엄 제인웨이 William Janeway 는 버블이 없었더라면 경제적으로 유익을 가져다준 몇몇 기술이 개발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학자, 문예비평가인 월터 배젓 Walter Bagehot 은 1852년에 이렇게 논평했다.
영국인들은 큰 역경은 견딜 수 있지만, 수익률 2퍼센트는 견디지 못한다 ..... 끔찍한 수익률 2퍼센트를 감수하느니 소중한 예금을 캄차카 운하, 워치트 지역으로 가는 철도, 사해를 살리겠다는 계획 등 말도 안 되는 것에 투자하고 있다
- 버블이 일어나려면 버블 트라이앵글의 세 변이 모두 있어야 한다. 두 변인 돈과 신용을 보면, 버블은 전통적 자산의 수익률이 낮을 때, 이자율이 낮고 신용은 제한이 없어졌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실제로 금융시장의 규제완화는 버블이 라는 불을 지필 연료의 양에 걸려 있던 제한을 없애는 행위이기 때문 에 궁극적으로 규제완화가 버블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법 개정 이나 규제사항 변경, 금융 혁신, 기술 향상 등으로 인해 시장성이 증대 된다면 버블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나머지 한 변인 투기는 사실 금융시장에 늘 존재하고 있다. 다만 모 멘텀 거래가 증가하면서 투기꾼 수가 증가하거나 아마추어 투기성 투 자자들의 수가 증가하면 버블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신기술이나 특별한 정치적 이니셔티브에 대해 투자자들과 투기꾼들이 대거 반응하면서 버블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버블을 예측하 는 능력은 이러한 불꽃, 버블 트라이앵글의 세 변을 만족시키게 하는 불꽃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최근을 보면 이러한 매매는 매우 짧은 시간에 주식시장을 크게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5월 6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단 몇 분 만에 10퍼센트 하락했다가 즉시 다시 회복하기도 했다. 알고리즘 및 초단타매매는 이러한 '플래시크래시(flash crash; 금융상품의 가격이 순간적으로 급락하는 현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버블 중에 가격변동을 크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버블이 미래에는 다른 양상을 띨 것이라고 주장 한다. 자산관리 산업이 떠오르면서 잘못된 결정을 하던 수많은 아마추어 개인들이 이제는 정교한 기술을 가진 투자자로 대체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버블은 주로 기관투자자들이 주도했으며, 닷컴버블 역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컸다. 또 서브프라임버블 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담보증권에 투자한 주체는 주로 기관이었다. 실제로 시장지수를 따라 운용되는 편 드인 패시브펀드가 늘어난다면 그건 버블로 인해 가격이 오르고 있는 해당 부문이나 자산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펀드로 유치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패시브펀드의 부상은 미래에 있을 버블에 훨씬 더 많은 연료를 붓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다.
- 버블 동안 미디어는 형형색색으로 초기 투자자들이 부를 쌓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가격상승을 알릴 수도 있고, 또는 높은 자산가격을 정당화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 이론으로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로버트 쉴러는 뉴스 매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뉴스 매체는 관련 뉴스를 대중이 보기에 흥미롭게 만듦으로써 투기성 가격변동을 유도하는 근본적인 투기성 전파 매체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중국 수출품에 대한 서구의 수요 감소를 우려하여 은행 및 그림자금융이 기업, 중소기업, 개인에 게 대출을 해주도록 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폈다. 이를 두고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때까지 펼쳤던 어떤 통화정책보다 규모가 큰 완화책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비정부 부채는 2007년 중국 GDP의 116퍼센트에서 2014년 227퍼센트로 올랐다. 2014년에 는 중국 정부가 이러한 그림자금융 시스템의 불안정한 특성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또 둔화되는 경제성장률(2014년 7.4퍼센트에서 2015년 6.9 퍼센트로 감소)과 이것이 정치적 정당성과 안정성에 미치는 위협에 대해 우려했다.
- 2007년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주식시장 이 붕괴했다고 해서 중국이 금융위기를 맞이하지는 않았다. 중국 내 실물경제에도 큰 타격은 없었다. 2015년 이후부터 성장 속도가 둔화 된 것은 있지만, 그건 버블이 터지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었다. 이러나 저러나 결과적으로 중국의 버블은 중국이 2015년 성장 목표를 달성하 는 데 어쨌든 도움을 주었고, 중국 정부도 그 덕에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나마 은폐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가 버블을 주도했다는 것, 그리고 버블의 붕괴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좀 지나친 노력을 행사했다는 점은 중국이 자본 분배를 위해 자유 시장의 시대를 열고자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었 던 것인지 그 신뢰성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2007년과 2015년 버블은 둘 다 정부가 만들고 정부가 지속시킨 버블이었지만, 버블이 시작된 이유는 달랐다. 2007년 버블은 중국 정부가 비유통주를 유통주로 전환시킴으로써 민간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 수 있게 해 국유 상장사들을 민영화할 수 있게 해주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전환된 주식을 개인 투자자들이 사게끔 하기 위해 정부가 주식 버블을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2015년에 중국 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나고 시작된 거대한 부양책을, 경제성장률을 수용 가능한 7퍼센트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어떻게 다시 줄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정부의 통제하에 있다는 중국 금융 시스템의 특성 때문에 돈을 굴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국의 수많은 중산층들에게 투자처에 대한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정부 소유의 은행에 돈을 예치해두고 물가상승 률보다도 낮은 이자나 받느냐 아니면 주식에 투자하느냐, 둘 중 하나 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2007년 버블을 만들어내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 중국의 버블은 앞서 소개한 버블 트라이앵글을 완벽하게 구현한 버블이다. 중국 버블은 버블이 시장성과 투기를 핵심 축으로 하여 레버 리지로 사용되는 연료의 양에 따라 규모가 크게 결정된다는 걸 잘 보 여줬다. 또한 정부에서 버블을 조장하는 이유와 방식을 명확히 보여주 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버블과 달리 중국 버블은 심각한 경 기 불황이나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었다. 이는 중국이 정부의 경제 개입이 컸던 만큼 그 손실 역시 사회 전반에 골고루 배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주요 은행들 역시 정부의 소유여서 개입이 있는 만큼 국가와 국가 재정력의 원조를 넉넉히 받을 수 있어서 파산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 면에서 중국의 버블은 1720년 최초의 버블과 비슷한 모양새다. 두 버블 모두 정부 부채를 유동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버블이었다. 그러나 버블이 터질 때에는 1720년 프랑스 정 부가 언론을 통제하면서 보다 엄격한 조치로 규제하려 했음에도 막지 못했다. 2015년 중국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또 1720년 당시 프 랑스와 영국 정부는 버블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존 로와 남해 회사 이사진을 비난의 희생양으로 이용했다. 2015년 중국 공산당 역시 똑같이 버블의 책임을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장 샤오강Xiao Gang 개인에게 뒤집어 씌웠다. 샤오강은 자신의 실패였음을 대중에게 공개 적으로 고백하기를 강요당했을 뿐 아니라 2016년 초 직무에서 해임되기까지 했다. 역사가 비극이자 희극처럼 반복된 것이다.
- 2000년대의 주택버블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파괴적인 버블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이 버블이 터졌을 때, 4개 국가의 1인당 GDP 하락폭은 엄청났다. 특히 스페인의 1인당 GDP는 2013년까지 계속 떨어져서 결국 2007년보다도 10.6퍼센트 하락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나라들도 1인당 GDP를 2007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오래 걸렸다. 특히 스페인은 10년도 넘게 걸렸다. 영국의 불황은 이전 두 세기 중에서 가장 길었으며, 1920년대 불황 이후 그 정도도 가장 심각했다. 
버블 이후 경기침체로 인한 인적 비용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매우 높은 실업률이다. 특히 젊은층, 그중에서도 아일랜드와 스페인 젊은 층의 실업률을 보면 당시 인적 비용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위기 이후 15~24세 청년실업률이 극에 달했을 때에는 네 국가 중에 선 가장 낮은 미국의 18.4퍼센트부터 가장 높은 스페인 55.5퍼센트까 지 다양했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양상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청년들 이 주택버블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인적 비용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자가진단 웰빙지수는 금융위기 때 크게 떨어져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계속 단행했다. 금리는 역사상 전례 없이 10 년 동안 거의 0에 가깝게 유지했다. 또 중앙은행들은 좋게 말해서 일 명 양적완화라 불리는 일에 개입해 자금을 조달했다. 양적완화와 저금 리 조합은 금융시장을 왜곡시켰고, 그래서 자본과 주택시장을 실제 상태보다 과대평가하게 했다.
주택 버블과 뒤이은 금융위기가 남긴 가장 큰 여파는 정치권에 떨 어졌다. 위기를 초래한 무능과 부패가 누구든 책임자를 만들어 책임지 게 하는 정치체제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대폭 잃게 했다. 세계 대공 황의 여파처럼 많은 유권자들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에게로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모두 2000년대 주택 버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서브프라임 버블로 인한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현재 진행형인 여파라고 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버블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가장 주목할 교훈 은 버블이 경제적·사회적·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 다는 점이다. 모든 버블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유용할 수는 없다. 서브프라임 버블의 붕괴가 이렇게나 파괴적이었던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정치적 불꽃이 있었다. 그리고 허술한 규제 를 누리던 은행들이 제공한 연료의 양이 무한대였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산인 가정 주거용 주택을 시장성이 높은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어놓았다.
서브프라임 버블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은 중앙은행들이 버블 형성을 막는 데는 무력했지만 버블이 터진 이후 수습하는 데는 큰 역할을 했 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러느라 다른 은행들을 너무 대중없이 구제해주 고 특별 통화정책을 펴서 자산시장을 왜곡시켰다. 따라서 이런 수습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결국 다음에 도래할 버블을 더 크고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다.
- 닷컴버블이 남긴 득과 실
닷컴버블 붕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닷컴버블은 손해 보다 유익이 더 컸던 버블의 예라고도 볼 수 있다. 닷컴버블로 인해 긍정적인 경제 효과를 본 분야가 있었다. 버블 시기에 엄청난 양의 자보 이 경제의 가장 혁신적인 분야로 유입되었던 것이다. 만일 시장이 버 블 없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혁신이 가능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자본의 일부는 상당히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아마존과 이 베이 같은 기업도 처음에는 닷컴 회사로 시작했고,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회사들도 막대한 투자를 받는 혜택을 입으며 설립되었 다. 심지어 결국 파산한 회사들 중에서도 시간이 지나 유용하다고 인 정받는 기술을 세상에 많이 남겼다. 또 실패한 사례마저도 차세대 인터넷 회사들에 조심해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통신회사들이 구축해둔 인프라는 비록 당시에는 특별히 효율적이거나 최적화된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상당한 공익성을 가진 투자처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닷컴버블은 벤처캐피털 산업의 출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닷컴버블이 아니었다면 다른 곳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을, 일종의 고위험 프로파일을 가진 기업들이 자금을 얻어 출현할 수 있었 기 때문이다.
반면 인터넷기술의 결과가 장기적으로 볼 때 꼭 긍정적이기만 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론에서 가짜 정보, 독과점 시장구조, 자동화 등 인터넷기술로 인한 부차적인 사회적·정치적 효과에 대해 우려하는 목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이 정도 우려는 어쩌면 사소한 우려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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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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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나치의 토끼

과학 2021. 4. 24. 18:15

- 이집트의 분수 
이집트인의 분수 표기법은 우리와는 무척 달랐다. 현대 정수론자들은 여기에 관심을 가졌다. 이집트식 분수 표기법에서는 (2/3를 제외하고) 분자가 항 상 1이다. 따라서 5/8를 이집트식으로 쓴다면, 1/2+1/8이 된다. 오늘날 어 떤 분수이건 분자가 1인 분수의 합으로 표현되면 이집트 분수라고 부른다. 
이집트식 분수 표기법에는 실용적인 장점이 있다. 피자 5판을 8명이 나 누어먹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보통의 분수 표현법에 따르면 한 사람당 피 자 5/8를 가지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피자 5판을 어떻게 5/8로 나눈 단 말인가. 이 일은 거의 악몽에 가깝다. 이집트식 분수를 이용한다고 문제 가 더 간단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집트식 분수 표기법에 따르면 5/8는 1/2+1/8이 된다. 이제 상황이 명확해졌다. 피자 4판을 전부 1/2로 나누 고, 마지막 한 판은 8조각으로 나누면 된다. 그러면 모두가 1/2+1/8 조각 을 갖는다. 문제가 마법처럼 간단히 해결되었다. 하지만 정수론자들은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지 않았다. 이집트식 분수표기법에는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더 숨겨져 있다. 우선 1보다 작은 어떤 분수는 이집트 분수로 표기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분수든 무한하게 이집트 분수 표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3/4-1/2+1/8+1/12+1/48+ 1/72+1/144로 끝없이 이어진다.
- 독창적인 수학 
현대 정수론자들은 린드 파피루스를 연구하면 할수록 이집트인의 수학이 아주 기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이집트식으로 곱하기를 하 면 두 배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데, 오늘날 컴퓨터의 계산 방식인 이진법 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등장하기 훨씬 이 전, 이집트인이 원의 넓이를 계산하는 방식은 단순하고 빨랐지만, 현대 파 이 값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1%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이번 이야기의 목적은 이집트인이 수학 천재였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서가 아니다. 이집트인은 우리에게 습관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새로운 통찰력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유클리드가 살던 시기에 기하학은 이미 현실에서 사용될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고대인은 땅의 면적을 재거나 피라미드를 짓는 데 기하학을 오래 전부터 이용했다. 하지만 유클리드와 그리스인은 이런 일상적 쓰임새에서 순수하게 이론적인 수학 체계를 발전시켰다. 즉, '응용 수학에서 추상적인 '순수 수학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전환은 단순히 학문적 시도가 아니었다. 추상적인 이론 체계는 진 리를 찾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삼각형에 대한 진실이 참이 라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도 이것은 참이 된다. 탈레스가 이집트에 갔을 때 닮은꼴 삼각형의 비례 원리를 이용해 직접 재보지 않고도 피라미드의 높이를 구하고, 육지에서 바다에 떠 있는 배 사이의 거리를 구해 이집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유클리드와 그리스인은 수학에 논리 체계를 갖추어 불변의 수학적 진리 를 해방시켰다. 유클리드가 보였듯이, 직선은 서로 다른 두 점 사이의 가 장 짧은 거리다'처럼 수학적 진리에는 증명이 뒷받침되고, 어떤 가정이나 공리에 따라 논리적으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몇 개 의 수학적 가정이 합쳐서 정리라는 수학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정리는 반드시 참 또는 거짓이라고 증명되어야 한다.
- 유클리드의 증명 
오늘날 유클리드의 증명은 '모순 증명(귀류법, 배리법)'이라고 한다. 다시 말 해서 증명하길 원하는 사실의 반대가 참이라고 가정한 뒤에, 이 명제가 어 째서 참이 될 수 없는지 논리적 단계에 따라 증명하는 것이다. 
유클리드가 증명하고 싶었던 명제는 임의의 소수보다 더 큰 소수가 존 재한다는 것이다. 즉, 소수의 개수는 무한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소수의 개 수는 유한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길 원했다. 따라서 모순을 이용해 소수 의 개수는 유한하다고 가정했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유클리드가 한 모순 증명은 모든 자연수가 소수의 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을 이용했다.
그리스어로 된 유클리드의 증명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만약 소수의 개수가 유한 하다면, 우리는 소수를 P., P2, P,에서 가장 큰 소수인 P까지 목록을 전부 나열할 수 있다. 만약 이 숫자를 전부 곱한 뒤 거기에 1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진짜로 모든 숫자를 곱해 볼 필요는 없고 유클리드의 논리를 이해 하면 된다. 
계산 결과가 소수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숫자는 나열한 소수 목 록의 가장 큰 소수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합성수여야 한다. 하지만 합성수는 소수의 곱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숫자를 소수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소수로도 이 숫자를 나머지 1 없이 완벽하게 나눌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소수의 목록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가 나열한 소수 전체의 목록에 있지 않은 소수가 존재해야 한다.
가장 큰 소수로 어떤 숫자를 제시하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항상 그것보다 더 큰 소수가 존재한다. 유클리드의 논리는 숨이 멎을 정도로 독창적 이었고, 수많은 수학자들이 모순 증명을 이용해 수학적 명제를 증명하고 숫자의 숲에서 길을 찾는 데 영감을 주었다.
- 오일러의 해답은 (혹은 정확히 말해 답이 없다는 증명은) 아주 기발한 추론이다.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선과 노드로 단순화시킨 방법은 그 자신도 짐작하 지 못한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이 방법은 수학자들이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결하는 놀라운 방법이 되었고, 적용될 수 있는 범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이 방법은 물류 이동을 계획할 때 사용한다. 또한 수학자들은 네트워크, 표 면, 레이아웃을 탐험하는 수학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를 위상수학이라고 한다. 위상수학은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이 다차원의 공간 을 탐구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수학자들은 이 방법을 이용해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깨달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하니가 보여주었듯 위상수학은 여전히 고차원 적 수학의 최전방이다. 오일러의 다리는 아주 길게 뻗어 있다!!
- 놀라운 점은 수학과 언어가 이렇게 단순하게 연결되고, 이 관계가 시시하 정도로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 관계에 실제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불이 가진 통찰력은 놀라웠고, 진정한 천재였다. 물론 생전에도 천재라고 인정을 받았지만, 불의 통찰력이 진정 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몇 십 년이 지난 이후였다. 불은 아일랜드에서 조 용히 살며 수학에 크게 기여했지만, 다른 어떤 연구도 불 논리처럼 중요하 지는 않았다. 그가 했던 것은 단순히 모든 개념을 단순한 산술형태로 바꾸 는 체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불이 사망한 뒤, 거의 70년 동안 그의 발상은 빛을 보지 못했다. 1930대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젊은 전자 공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이 장 거리 전화의 잡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정보만을 담을 수 있도록 신호를 단순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섀넌이 불의 논리학을 재발견했을 때, 불의 이론이 정보에 대해 핵심적인 견해를 시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 았다. 불의 단순한 논리에 영감을 받은 섀넌은 모든 정보를 이진수인 0과 1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컴퓨터 시대를 탄생시킨 천재적인 신호였다.
- 우주의 운동 법칙은 모든 움직임을 설명한다. 이 말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미래에 어떻게 움직일지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 한다. 하지만 푸앵카레는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 아주 작은 원인이 결코 간 과할 수 없는 중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니 우리는 이 영향이 우연 때문이라고 말한다'라고 썼다. 다시 말해 너무 작고 사소해서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작은 움직임의 차이가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마지막에 엄청난 차이를 야기하는 일이 일어 날 수 있다. 이전에 있던 작은 오류가 이후에 엄청나게 큰 오류를 만들 수 있다. 예측은 불가능하다."
- 이 부분이 바로 푸앵카레가 삼체문제를 해결할 때 실수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한 실수를 밝히려는 노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의미했다. 푸앵카레는 이것이 중요한 발견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1899년 이 것에 관련된 논문을 썼고, 1907년 『우연(chance)』이라는 유명한 책을 냈다.
『우연』에서 우연이라는 작은 요소가 어떻게 어떤 시스템 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지 설명하기 위해 카오스 (chao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남성과 여성의 생식 세포가 만나는 100만분의 1 차이가 나폴레옹이 태어나거나 바보가 태어나는 차이를 가르고,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푸앵카레는 우연이 결정론적인 시스템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날씨를 간단하게 불안정한 대기로 인해 생기는 우연의 결과로 보았다. 사람들은 비가 오길 기도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식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고 여긴다”라 고 말했다. 푸앵카레는 날씨 또한 일식처럼 확실하게 결정이 된다고 주장했다. 단지 날씨에서는 우연의 작용이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데다가 우리가 날씨를 예측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시스템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평범한 우주의 법칙은 여전히 완전히 질서 있게 작동한다.
푸앵카레의 발견은 아주 중요했지만 푸앵카레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미롭고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비효과와 카오스 이론의 발견과 함께 반세기가 지나 모든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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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반란의 경제

경제 2021. 4. 24. 18:11

이 책은 최근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제이슨 솅커가 지은 책이다. 앞선 저작인 '코로나 이후의 세계', '금융의 미래', 로봇시대 일자리의 미래'와 같은 코로나로 인해 촉발될 미래 사회의 변화를 예견하는 책과는 조금 다르게 과거 역사속의 저항과 혁명을 분석하고, 이후 경제를 전망하고 있다. 

정통 역사서라고 보기도 어렵고 정통 경제서라고 보기도 어려운 융복합적인 관점과 서술이 이 책의 특징인데, 아마도 저자가 학생일 때 전공했던, 역사, 응용경제학, 독일어 및 독문학, 국제분쟁과 관련된 내용을 잘 버무려서 서술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저항과 혁명을 일으키는 6가지 틀은 다음과 같다.
1. 전반적으로 열악한 경제조건
2.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경제적 기회부족
3.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4.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외국의 영향
5. 가까운 시일 내 대규모 무력충돌에서의 패배
6. 정치적 대표성의 결여

결국 위에서 제시한 6가지는 모두 경제적 문제,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배고픔과 관련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3일 굶고 남의 집 담장을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코로나 이후 주식시장만 제외하고, 나머지 실물경제는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러가지 지표들, 예컨대 실업률, 실업급여 신청건수, 정부부채, 인종/민족별 불평등 등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내적인 어려움 이외에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호전될 분위기는 아니다. 

비록 중국의 의화단 사건이 하나의 사례로 소개되어 있지만, 책에서 소개된 저항과 혁명의 사례들이 주로 미국, 유럽의 사례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북아 국가들의 저항과 혁명의 사례들을 분석해도 책에서 제시된 6가지 저항과 혁명을 일으키는 6가지 틀에 부합될 것이라 본다. 

마지막으로 하루 빨리 전 세계가 백신접종을 마치고, 미국, 중국 및 세계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길 바란다. 이는 미국이 좋아서, 중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잘 되야 우리나라 경제도 원활히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그렇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작성된 개인적 리뷰임을 밝힙니다.

 

- 독일 역사학자 프리츠 스턴Fritz Stern 은 나치가 독일 정권을 집권하기 전부터 독일에 나타난 절망에 관한 견해를 글로 써왔다. 그가 쓴 저서 ‘내가 아는 5개의 독일’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단 5년을 살았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음에도, 당시의 경험으로 평생 떨쳐내지 못할 불타는 의문 이 생겨났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 모두에게 잠재된 악이 독일에서 현실로 나타났는가?' 내 평생을 바쳐 그 해답을 찾으려 했다.”
물론 그가 찾은 해답도 이 책에 나와 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재난으로 빨 려들고 있었다. ...내 삶과 평생의 공부를 통해 깨달은 가장 단순 하면서도 심오한 교훈이 있다. 곧 자유와 민주주의는 지독히도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 독일 내 만연했던 절망은 매우 본질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초인플레이션으로 한 세대가 누려야 했던 부 가 통째로 날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발생한 대공황은 빈곤과 고통을 확산시켰다. 근본적으로 독일 경제는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대명사가 되었다. 나치 선전대는 그런 독일 경제의 비 참함과 고통을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 그리고 비민주적이었던 바이마르 제도들을 남용하여 더욱 반민주 세력이 되었다. 
1933년 독일에서 벌어진 일은 저항과 혁명을 일으키는 여섯가지 주요 원인이 모두 적용되는 유일한 혁명이다. 
- 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다시 말해 경제적·재정적 부분이 해결됐느냐에 달려 있었다. 빈곤으로 허덕일 때는 매우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며 혁명은 대 체로 성공했다. 이는 역사상 반복되는 사실이다.
1968년 여름엔 정권에 반발한 시위와 사회 저항 운동이 모두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서구 사회와 동유럽에 속한 국가를 비교 해보았다. 어느 국가에서는 그저 시위로 끝나기도 하지만, 또 어느 국가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정부를 몰아낼 가능성을 만들었 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서구 사회의 경제적 여건은 대체로 양호했지만 동유럽의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는 점이다. 경제난을 감추기 위해 전체주의를 무기 삼아 사람들에 게 겁주고 그들을 통제했다. 물론 경제 상황이 열악하다는 이유 만으로 잔혹한 혁명과 정부의 전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참 고 견디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도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나치당의 국가 사회주의, 파시즘이 그러했다. 그리고 공산 주의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 서구 민주주의 국가 중 소수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역학 관계를 보면 사회의 불안과 큰 변동을 초래하는 핵심 요소는 심각하고 위태로운 경제 상황이다. 이를 역으로 짚 어보면 경제가 안정적이라면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은 훨씬 적어 진다는 의미이다.
- 코로나19 팬데믹, 경제 폐쇄, 경기 불황의 여파로 미국과 여러 국가에서 벌어지는 경제 상황을 고려해보자. 현재 미국 노동 시장의 여건이 역사상 최악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 나아가 2007년에서 2009년 터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겪었던 부동산 위기만큼 현재 부동산 시장의 흐름도 좋지 않다. 다시 한번 부동산 위기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위험성 역시 증가하고 있다. 빈곤, 차별, 기회의 부족, 먹고사는 문제라는 경제적 용인의 절박함은 혁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은 안정적으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했던 미국 정치계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SNS의 활 용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사회 각계각층과 조직은 각각 그들만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지지자를 모았다. 그로 인해 색깔이 다른 무리, 이념과 추구하는 내용이 다른 집 단끼리 더욱 분열되고 반목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안정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제 혁명을 확산시키는 주요 요인은 이러한 '비경제적 위험 요소'들이다.
- 현재의 변화를 올바르게 직시하면 미래에 훨씬 더 나은 결실을 맺는다. 정부와 정치 체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비경제적 위험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 을 때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위험 요소들이 생기지만, 일단 단기적으로 '비경제적 위험 요소' 라는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에 차분하게 맞서 대응해 야 한다. 그러면 안정적인 내일이 찾아온다.
- 혹자는 모든 나라가 부채의 짐을 지고 있어 환율이 안정적이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급속도로 증가하는 부채 상황과 세계 경제 성장은 상당히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은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속 토론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어떻게 파산하셨어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네요.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 2020년 1월 1일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2조 7,000억 달러 이상 늘렸다. 풍선처럼 부풀어진 연준의 대차대조표와 함께 미국 연방자금금리Federal Funds Rate(연방자금의 대출에 적용되는 금리로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기금리 중의 하나)는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이는 미국 금리의 최저점이 아니다.
지속적인 높은 실업률은 부동산 위기를 낳는다. 늘어난 정부지출과 수입 부족에 따라 마이너스 금리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 다. 유로존의 마이너스 금리 발생은 2014년부터였다. 그 당시 유럽중앙은행은 대차대조표 축소 정책을 철회했다. 대차대조표 확대를 정책 결정자들은 '양적 완화uantitative easing(중앙은행에서 신규로 대량의 화폐를 공급하는 것)'라 부르고, 경제학자들은 이를 현대적 화폐 이론, 즉 MMTModern Monetary Theory 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강연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마법 동화를 논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중앙은행에서 신규로 화폐를 공급하는 양적 완화가 지속 가능 성에 마냥 좋은 신호는 아니다. 이런 역학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의문이 든다.
- 역사 속 저항과 혁명을 분석할 때 기준 삼았던 6가지 요인을 기억하는가? 최근 발생했던 시위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경제적 기회 부족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이와 같은 요인의 배경은 취약한 경제 상황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더해 여러 위험의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위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저항 운동에 가담하면 재앙의 불씨가 된다. 따라서 불평등과 기회 불균등 문제를 해결하면, 경제적 취약점이 사라져 역사 속 폭력과 쿠데타를 일으켰던 근간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 평등의 기회, 사회적 기회 부족을 요구하는 소수집단은 인구 구성에서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런 소수집단이 인구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면, 정치적으 로 훨씬 위험부담이 컸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엄청난 규 모의 혁명에 휩쓸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상황에 따라 더 많은 사람이 '정의, 형평성, 평등'을 이유 삼아 정치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당장은 불안 요소가 없더라도,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받 아왔던 유색 인종의 인구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한다. 이 사회의 소수집단 구성원들은 기업, NGO, 정부, 시민 대응을 똑똑 히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19 같은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이들의 대응이 어떠했는지, 약자를 어떻게 대변하는지 말이다.
저항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보다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 불안한 정치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튼튼한 정치 안정의 기반 위에서 국가 존립이 보장된다.
- 외부 세력이 개입한 SNS 활동은 국가 내부에 여러 정체성을 키운다. 이는 국가 안정화에 문제 요인으로 작용한다. 코넬대학교 Cornell University 국제학 교수이며 가장 존경받는 민족주의 이론가 중 한 명인,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저서 《상상된 공 동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족주의는 인위적인 개념이자, 사실상 형성되기가 신기할 정도로 별난 개념이다. 각양각색의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개인들을 서로 묶어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게 만든 이념이 바로 '민족주의' 이다.”
앤더슨은 민족주의의 근간을 '언어의 일치'와 '인쇄자본주의 print capitalism 에서 찾았다. 인쇄 기술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발달했다. 대중적 언어에 기반한 출판산업이 번성하고 인쇄술의 발달로 같은 언어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민족주의 형성에 직 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 앤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민족 개념은 어느 정도 우연히 형성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폭발적인 성장, 인쇄술과 같은 소통을 위한 기술의 발달, 언어의 다양성으로 인한 숙명성(전에 서로 교류가 없었던 이들이 신문과 같은 인쇄물을 통해 같은 언어권임을 확인하여 이 언어집단을 신이 내린 숙명으로 인식함)이라는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다.” 앤더슨의 책은 SNS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83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인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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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때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할 때가 간혹 있었다. 하기로 한 약속을 안 지킨다던지, 뻔히 닥칠 일들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하지 않는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그럴 때마다 때로는 나무라기도 하고, 훈계를 하기도 하고, 그냥 지켜보기도 했었다.

나름 부모로서 노력을 한다고는 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가 늘 원만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감정을 읽는 것에 서툴렀던 것 같다. 물론 부모의 역할이 처음이고, 아이들 역시 자녀 역할이 처음이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말고, 결국 어른인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더 많이 헤아렸어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화를 내는것, 적당하게 화를 내는 것, 적절한 시기에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목적을 위해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면서 화를 내지않고 키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책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나 화를 아이에게 쏟아내지는 말아야 한다. 아울로 분출된 화를 잘 풀어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책에서 표현한대로 결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지 독촉이나 공격이 아니다. 아이들의 전두엽이 완성되는 것은 25세까지라고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던 것도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곧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될 아이들과 남은 관계는 정서적 독립이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 독립된 인격체로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갈 준비를 할 때다. 점점 아이들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추어 나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서로 성인대 성인으로서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관계가 되어 있기를 희망해 본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작성된 개인적 리뷰임을 밝힙니다.

 

- 아이를 낳는 것은 내 선택이었지만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다. 부모 노릇이 힘들 때, 부모의 자리가 버거울 때, 부모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싶을 때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과연 나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려보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주변을 위협하며 질주하는 분노를 다잡는 좋은 방법이 되어줄 것이다.
- 훈육은 아이에게 대안을 제시하지만 화풀이는 아이를 통제하기 위 한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훈육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설명하고 부모가 대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일 방적인 명령이 아닌 합리적 설명을 기반으로 아이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규칙과 규범'을 가르친다.
반면 화풀이는 “안 돼!” “하지 마!” “그만!” 이라는 협박성 명령으 로 끝이 난다. 이는 '나는 네 행동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장 그 것을 멈춰'라는 지시에 불과하다. 부모는 잘못된 행동을 금지함으로써 아이를 가르쳤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저 부모가 소리를 지르며 화 낸다고 느낄 뿐이다.
- '요즘 아이들'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시작 과 함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헌은 물론이고 조선시대 각종 기록에도 요즘 아이들의 버릇없음 과 무례함에 대한 글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 은 1311년 스페인 프렌체스코회 사제였던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Albarus Pelagius가 남긴 글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 (...) 그들은 그릇된 논리로 자기들 판단에만 의지하려고 들며 자신들이 무지한 영역에 그 잣대를 들이댄다. (...)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심으로 성당에 가는 게 아 니라 여자를 꼬드기거나 잡담이나 나누려고 간다. 그들은 부모님이나 교단으로부터 받은 학자금을 술집과 파티와 놀이에 흥청망청 써버린다. 결국 집에는 지식도, 도덕도, 돈도 없이 돌아간다.”
《한비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덜 떨어진 젊은 녀석이 있는데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욕해도 움직이지 않고,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을 모른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 '동네 사람들의 행실' '스승의 지혜'라는 세 가 지 도움이 더해져도 끝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정강이에 난 털 한 가닥조차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 어린 시절 긍정적 피드백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숨기고 스스로의 가치와 존중감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자기불구 화 전략을 사용한다. 자기불구화는 어떤 일을 실행하기에 앞서 스스 로 물리적 장애물과 핑곗거리를 만드는 전략이다. 해야 할 일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무의식적으로 실패 장치를 만 들어놓는 것이다.
자기불구화는 크게 행동적 자기불구화와 언어적 자기불구화로 구 분된다.
행동적 자기불구화가 습관화된 사람은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서 일부러 그 일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만든다. 큰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친구들과 약속을 잡거나, 면접 시간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는 등 자기파괴적 행동을 한다. 아이들의 경우 시험 범위를 제대로 확인 하지 않거나, 시험 당일 일부러 오답 노트를 집에 두고 가기도 한다.
언어적 자기불구화가 습관화된 사람은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 나도 못했어”라고 말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어 발표를 망칠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한다. 최선을 다해놓고도 타인의 기대를 낮추기 위해 자 신의 노고를 숨기는 데 급급해한다. 이런 일련의 말이나 행동은 실패 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은 방어 본능에서 비롯된다. 무능함과 나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 수동공격성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별 거부감 없이 들어주는 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바람을 외면하여 상대를 좌절시키는 방어기제다. 수동 공격을 하는 사람은 직접적으로 “No” 라고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 희망고문을 하며 기대를 한껏 부풀려놓고는 갑자기 폭 탄을 터뜨려 상대를 당황하게 만든다.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순종적이던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부모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된다. 차라리 억울하다며 아이가 울고불고 능 동적으로 반항이라도 하면 부모도 같이 펄쩍 뛸 텐데 이런 아이들은 끝까지 수동적인 자세를 고수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죄송해요”라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할 뿐이다.
겉으로는 들어주는 척하면서 '무엇을 요구하는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톱을 숨기고 앉아 있는 아이를 당해 낼 부모는 많지 않다.
-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은 《불안》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빌 게이츠의 딸이나 일론 머스크의 아들이 받은 성적을 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러움과 경탄의 대상이지 질투의 대상이 아니다. 평온한 우리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갑자기 올라간 옆집 아이의 성적, 돈도 잘 버는데 육아와 요리까지 담당하는 친구의 남편, 신혼집 마련은 물론이고 아이의 교육비까지 지원해주는 동료의 시댁이다.
- 양육의 최종 목적은 미성숙한 아이를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시켜 독립시키는 것이다. 통과의례처럼 지나야 하는 좋은 성적, 명문대 진학은 자립과 독립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이를 통해 부모가 바라는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마라. 아이는 환승역처럼 나를 거쳐 갈 뿐 부모와 다른 종착역을 찾아갈 것이다.
-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Evallouz는 《감정 자본주의》를 통해 사회계층에 따라 감정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교 육적·관계적·문화적·물질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출할 줄 알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안다고 한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경우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는 덤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성공한 롤 모델이 많기 때문에 아이의 꿈도 계속 확장된다.
-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롤 모델은커녕 주변에 숙제를 봐주거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어른이 없다. 부모 또한 당장 먹고사는 문제, 즉 생계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에 아이의 요구에 즉 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은 아이로부터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정, 사랑, 우정, 가족애, 동료애, 일상의 작은 행복 등 소소하지만 결코 놓쳐선 안 될 그 무엇을 놓치게 만든다. 부모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를 방치하거나 정서적으로 학대하게 되는 것이다.
-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실수나 실패의 원인 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심리를 투사projection 라고 한다. 반대로 자기 잘못도 아닌데 모든 실패의 원인을 본인에게 돌리는 심리를 내사introjection 또는 내재화라고 부른다. 내사가 습관화된 사람은 분노, 불안, 죄책감, 우울감 등을 카드 마일리지를 쌓듯 차곡차곡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학하 고 자책한다. 이런 왜곡된 사고와 감정은 내가 나를 스스로 공격하게 만드는 좋은 먹잇감이다. 타인을 미워하고 공격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어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 당신이 미워하는 누군가를 다른 사람이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칭찬이 곱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데 누군가의 칭찬과 위로, 격려와 이해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겠는가?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자신을 미워하고 공격하는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이런 모성에 대한 신화와 엄마에 대한 로망은 엄마를 한 사람, 개인으로 마주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든다. 숭고한 희생, 무 조건적인 사랑, 자식에 대한 헌신, 자애로운 부모라는 틀로 엄마를 가 둬놓는다. 한 여성의 삶은 송두리째 외면하고 엄마로서의 삶만 강요한 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은연중 지금의 엄마들에게도 강요되고 있다.
-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에 투영된 자신의 어떤 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은 거슬리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 
-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함께 오는 엄청난 일이다” 라고 했다. 이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일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마라. 아이는 돌봐주는 부모가 있지만 부모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보살펴주지 않는다.
-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우 리는 한 몸으로 두 길을 갈 수 없기에 한길을 선택했고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를 뒤흔드는 미련과 방황은 자신이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내고, 후회 없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기 위한 확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 현대경영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하지 않고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어떤 길을 선택했든 간에 내게 없는 것을 찾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게 없는 것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에너지를 내가 가진 장점과 재능을 발휘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 부정적 감정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감 정이다. 불안은 미래를 대비하게 하고 분노는 권리를 주장하게 하며 억울함은 내 것을 지키게 만든다. 죄책감은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궤도를 수정하게 하며 경쟁자에 대한 질투심은 전투력을 상승시킨다. 내 아이가 잘못된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일을 준비 하며,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좌절을 극복하는 힘은 '괜찮아'라는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정면 돌파하도록 만드는 데서 나온다. 이런 힘이 없으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이고 나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자기 감정을 적절히 통제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 존 가트맨은 “감정코치형 부모는 아이의 감정은 모두 받아들이되 부적절한 행동은 제한하고, 아이에게 감정 조절 방법과 적절한 분출구 를 찾는 방법,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친다. 이들은 슬픔, 분노, 두려움 처럼 부정적 감정도 인생에 유용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 유 형의 부모는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이나 행동을 했으면 주저하지 않고 아이에게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감정코치형 부모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판단하거나 그것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더라도 야단치거나 혼내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행동의 한계'를 정해준다. 부모가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대안을 생각하도록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다.
- 현대 사회에서 공격성은 부정적인 것, 나쁜 것으로 간주되지만 적당한 공격성'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사실 아이들의 공격성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구,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커다란 동기부여 가 된다. 때로는 이 공격성이 부모를 이기려는 안간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치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 적당하게 화를 내는 것, 적절한 시기에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목적을 위해 화를 내는 것, 올바 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화내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올 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법을 통해 화를 낼 줄 알아 야 한다. 이 모든 게 어렵다면 최소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내 아 이에게 쏟아내지 않도록 노력하자. 아이는 부모의 화를 받아내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 동물원에 갇힌 동물에게는 안락한 잠자리, 풍부한 먹이, 천적과 질병으로부터의 보호 등 많은 혜택이 따른다. 다만 생존을 보장받는 대신 우울증과 무기력을 얻을 뿐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자유를 통제받는 동물들은 먹이를 거부하고 벽에다 계속 머리를 박거나 우리 안을 빙빙 돌며 자신의 꼬리를 물어 댄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이를 정형행동stereotyped behaviour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한다. 어떤 학자는 스트레스를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저항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동물원이 그리 나쁠 것 없는 조건 이지만 동물의 입장에서는 춥고 배고파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연이 훨씬 나을 수 있다.
물고기는 바다가 아닌 수족관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자 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더 깊고 어두운 바다로 헤엄쳐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수족관에 들어앉아 거친 바닷속을 헤엄치는 등 푸른 자유를 그리워하라고 할 것인가.
- 흔히 '집중력 = 좋은 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집중력은 삶의 질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집중력이 높다는 말은 곧 자기통제력, 자기절제력, 만족 지연력 delay of gratfication 이 높다는 말과 같 다. 숙제를 하기 위해 놀이나 게임을 그만둘 수 있는 힘, 지루하고 재 미없지만 어떻게든 과제를 지속해 나가는 힘이 바로 집중력에서 비롯 된다. 
집중력이 부족해 실패한 경험이 많은 뇌와 완벽하게 집중해 해야 할 일을 제 시간에 끝낸 경험이 많은 뇌는 성공회로 자체가 다르게 생 성된다. 이 성공회로는 일의 성공 여부는 물론 자신에 대한 신념까지 결정한다. 이는 '나에 대한 긍정적 신념'을 갖게 하는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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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속

사회 2021. 4. 18. 18:59

- (김대식) 어쨌든 세상에 대한 규범적인 모델은 인간이 머릿속에서 생각해내는 것일텐데, 뇌과학을 하면서 점점 이런 걸 느껴요. 뭐냐면, 인간의 뇌 자체가 참ruth’을 위해서 진화한 게 아니고, '생존'을 위해서 진화하다 보니, 이 뇌가 가진 정보가 진실이라 면 그건 우연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거예요. 대부분은 특정 상황 에서 지역적 적합성'ocal fitness을 올려주기 위한 방향으로 만들어졌 을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은 뭐냐면, 저는 우리가 가진 모델 이 정규분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한 특정 상황에서는 그 근사치approximation가 훨씬 생존에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고, 그런데 문제는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점점 멱함수 쪽으로 가요. 그런데 머릿속에서 기대하는 건 여전히 정규분포예요. 부 wealth, 정의도 그래야 하지 않 을까 기대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그게 일치하지 않아요. 우리 머릿속의 30만 년 된 기대치와 사회가 커지면서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하는 멱함수 분포가 불일치하는 것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여러 종류의 네트워크를 비교해보면 멱함수가 되는 네트워크 는 대개 효율성, 생존과 관련이 있어요. 최대한 효율적으로 연결 해야 살아남는 시스템은 멱함수 분포로 진화하는 것 같아요. 그 렇지 않은 시스템은 그쪽으로 잘 안 가는데,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열린 삼각형 open triangle 이라는 게 있거든요, 삼자관계인데 하나가 열려 있는 거. 삼각형이 되려면 될 수도 있는데, 아직 ‘저' 와 제 친구의 친구 사이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기 때문에 삼각형 이 안 된 거죠. 이 열린 삼각형이 닫히느냐 안 닫히느냐. 소셜 네 트워크에서는 대개 닫히죠. 친구의 친구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자연계, 기술 네트워크나 생물 네트워크에서는 이게 닫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왜냐면 이게 닫히는 순간, 네트워크상의 불필요한 중복redundancy이 확 높아지니까 효율성이 떨어지거든요. 거의 죽는다고 봐야죠.
- 악수라는 행위가 감염병이 심하던 어느 시대에 사라졌다, 이런 얘기를 하면 학생들이 신기해하죠. 그런데 그런 신기한 일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 실제로 일어나고 있죠. 악수가 원래 고대 제국에서부터 “우리 손에 무기가 없다” 라는 걸 서로 확인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하지요.
미국에 좋은 대학들이 생겨난 것도 질병 때문이에요. 미국의 학생들이 영국 본토에 유학 가서 공부를 하는데, 미국에는 없는 낯선 병에 걸리곤 하죠. 상층 부르주아 도련님들이 유학 갔다가 천연두에 걸려서 죽든지 혹은 얼굴이 망가져서 오니까,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국 내에 좋은 대학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미국 대 학 건립 이면에 이런 사정도 있다는 건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 하던 비즈bise, bisou 인사법도 오래전부터 있다가 흑사병 때 없어졌다고 해요.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 시기에 다시 나타나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다가 현재 일시적으로 사라졌습니 다. 언제고 다시 생겨나겠지만 지금 비즈는 사회적으로 금기입니다. 제가 프랑스에 처음 유학 갔을 때 어떤 여학생이 뺨을 내미는데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뺀 기억이 나네요. 그런게 고작 20~30년 전 일입니다.
- (김대식) 스탠퍼드대학교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Walter Scheidel 교수가 "인류 역사에서 불평등은 오로지 세 가지 방법만을 통해 해소된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정확히는 질병, 전쟁 그리고 기후 변화라는 세 가지를 통해서이지요. 이분이 말하는 게 뭐냐면, 사 회가 발달하면 효율성이 커지면서 불평등도 계속 커진다는 겁니 다. 그런데 평화로운 합의를 통해서 불평등이 해소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게 좋다거나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고, 역사적 사실이 그랬다는 거죠. 우리는 지금 그걸, 합의를 통해서 불평등을 줄이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시도라는 거예요.
- 우리 눈 안에 있는 망막 같은 게 광자의 절댓값을 계산하면 우리 는 이런 그림을 볼 수가 없어요. 실내에 있을 때하고 실외에 있을 때, 절댓값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상대적인 값을 계산해서 실내에서의 빨간색이 실외에서의 빨간색이랑 같게 보이거든 요. 사실 실외의 밝기가 훨씬 큰데도, 말하자면 다이내믹 레인지 를 넓게 하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만든 시스템인데, 이게 주관적인 행복지수나 소득 부문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다 보니,  반적으로 훨씬 상황이 좋아졌는데도,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데?” 이렇게 나온다는 거예요. 그게 훨씬 중요한 거죠. 이건 아주 본능적인 감각이에요. 불평등에 대한 감각 은 언제나 나와 비교 그룹 사이의 문제이지, 절대로 역사적인 평가 대상이 못 되는 거예요.
- 최근에 미국 샌프란시코 연준에서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나왔는 데요.  14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15차례의 팬데믹 자료를 토대로 역사상 팬데믹이 발생하면 실질 중립금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분석한 겁니다. 결론은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투자 등 수요가 둔화되는 반면에 사람들 이 저축을 많이 하면서 실질 중립금리가 정상적인 상황에 비해 최대 2% 정도 하락하고, 이러한 영향이 길게는 40년 가가까이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에도 나타나듯이 팬데믹은 중립금리에 전쟁 과는 정반대의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전쟁이나 지진 같은 재난이 오면 고정자본이 파괴되지요. 그러면 이후에 아이러니하게도 성장은 양(+)의 영향을 받습니다. 파괴된 시설 등 고정자본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투자가 크게 확대되거든요. 그래서 똑같은 음(-)의 충격이 있더라도 공장을 다시 짓고 하는 과정에서 투자수요가 발생하면서 실질 중립금리는 오히려 올라갑니다. 그런데 팬데믹은 생산시설 측면에서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요. 노동력, 사람만이 죽어나가는 거죠. 결과적으로 고정자본 대비 인적 자본에 타격이 집중되면서 자본의 상대적 가치인 실질금리가 낮아지게 됩니다. 
물론 의료시스템의 발전 등을 고려하면 이번 코로나 사태가 과거 팬데믹 사태와 같이 노동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세계경제의 실질 중립금리는 추가적인 하락 압력을 받게 되 겠죠. 지금 선진국의 실질 중립금리가 글로벌 위기 이후에 잠재성장 률 하락과 함께 낮아져서 이미 코로나 발생 전에 0%에 가깝게 하락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팬데믹 충격으로 다시 마이너스 수준으 로 떨어진다면 그보다 더 아래로 실질금리를 내려주지 못할 경우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될 수 없어요. 즉, 돈을 아무리 풀어도 통화정 책이 실물경제를 부양하는 효과는 별로 없어진다는 이야기이지요. 결과적으로 총수요 부진이 지속되면서 세계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위험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과거 대공황 같은 경제위기 로 진입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개 인적으로 이번 사태가 거기까지 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거 대공황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이번 코로나 위기가 대공황과 같은 극심한 경제 위기로 파급되는 데 두 가지 핵심적인 고리가 있는데, 하나는 디플 레이션의 발생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위기의 발생입니다. 지금 주요 중앙은행들이 혹시 모를 디플레이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신용경색과 은행 위기를 막기 위해 엄청나게 돈을 풀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겁니다.
- 어쨌든 이번 사태로 개인과 집단, 채무자와 자산가, 부유층과 빈곤층, 혁신기업과 낙후기업,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국과 중국 등 모든 부문에서 분절과 괴리가 심화되는 초디커플링 great decouping의 시대 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디커플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사하 는 것처럼 이러한 현상은 본질적으로 이질성의 발현, 양극화에 따른 갈등과 시스템적 불안정성을 내포한다는 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 과정에서 공급 과잉에 직면한 기존 낙후산업의 구조조정 문제, 생산양식과 체제 변화에 따른 생산요소 소유자 간 지대의 재조정 문제 등, 새로운 통합과 균형을 찾기까지는 어쩔 수 없이 장기간에 걸친 갈등조정과 비용이 수반될 것입니다.
- 과거에는 불행하게도 대공황과 세계대전 등이 이러한 새로운 균형 정립을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했지요. 과연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가 예기치 못한 충격과 불안정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을 서둘러 보다 유연한 경제시스템, 충격 흡수력과 복원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연대 회복 그 리고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 등이 정말 긴요하겠지요. 이번 감염사태 가 우리 경제의 앞날에 '위기를 가장한 축복blesing in disguise'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함준호) 재미있는 사실이, 지진같이 재난이 일어나서 생산설비가 파괴된 다음 해에는 성장률이 크게 올라갑니다. 발전소 같은 무너진 생산시설을 복구하는 비용이 투자로 잡히거든요. 당연히 거기에 따른 총수요가 증가하죠. 그런데 팬데믹의 경우에는 다릅 니다. 새로운 생산이나 투자가 별로 필요 없어요. 설비가 셧다운shutdown 돼서 멈췄다가 다시 가동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새로운 투자가 발생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일어난 것은 인적 손실뿐이죠. 의료 기술의 발전 등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에서 발생하는 인적 자본의 손실이 과거 팬데믹의 사례보다 덜할 수는 있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상대적으로 인적 자본의 손실이 고정자본의 손실보다 크다는 거예요. 죽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실업자가 되면서 고용시장을 반영구적으로 떠난 사람들도 포함해서요. 그러면 팬데믹 이후에는 아까 말씀드린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 대비 자본 공급이 과다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 (김동재) 우리나라는 지금 상대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편이에요. 일상생활을 거의 지장 없이 영위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나라 중 하나죠. 이게 정말 축복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혁신을 유발하지 못한다는 측면에 서는 축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뭔가 해냈을 수도 있는데 그냥 쉽게 넘어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고요.
- (김대식) 분명한 건, 면역학적으로 봤을 때는 절대 축복이 아니에요. 아마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1차 감염을 비교적 가볍게 넘어갔기 때문에 집단 면역성이 생기지 않았거든요? 그러면 2차 감염은 훨씬 더 심하게 닥칠 수 있다는 게 면역학계의 전통적인 예측인 거죠. 반면에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지금 치사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요. 그렇지만 아마 2차 감염은 훨씬 정도가 덜할 거라고 예측하는 거죠. 물론 결과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요.
- (주경철) 예컨대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을 보면 이념적으로 가장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고, 원칙적으로는 무조건 상대방을 죽여야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소통하는 채널이 있어서 교류를 하고 있거든요. 지중해 북부의 기독교 유럽과 지중해 남부의 이슬 람 아프리카가 그런 경우이지요.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으 니, 안전하게 배가 드나드는 루트를 만들어두고 이용하고 있었습 니다. 아프리카 상품과 유럽 상품이 이 루트를 통해 교환되고 있 었던 거지요. 또 한 가지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사례로는 베네 치아를 들 수 있겠지요. 베네치아는 서방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도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거래를 지속했습니다. 자, 정말로 김대식 교수님 말씀처럼 전개된다고 하면 전쟁이 일어나겠지요. 이 경우는 제3차 세계대전이 될 테고 곧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엄청난 사태로 번지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하고 또 실제로 세계대전까지 가지는 않겠지요.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이 충돌은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채널을 열어두어야 하고, 그것을 유지해야 할 테지요. 아주 이상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그 채널 중 하나를 담당할 수도 있는 거지요.
- (함준호)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은 영원히 금리를 제로로 묶어두는 거죠. 하지만 경제가 회복되고 다시 금리를 올릴 상황이 되 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겠지요. 금리를 언제까지나 제로로 묶어두는 게 가능하다면 역설적으로 결국 경제가 영원히 회복하지 못한다는 얘기이고요. 만약 경제가 회복되고 인플레이 션 조짐이 나타난다면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싶어도 못 하죠. 그 런데도 재정부담 때문에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돈을 계속 풀면 잘못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고,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결국 재정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 (주경철) 유사한 역사적 사례로 17세기 말에 일어난 영국의 재정 혁명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나온 아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영구채라는 개념입니다. 단기 상환도 아니고 장기 상환도 아니고 이론상 영원히 상환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자 지불만 한다는 것이죠. 만일 국가가 연 3% 이자로 100억짜리 채권을 발행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거액을 갚는 게 아니라 매년 3억씩 이자를 내면서 버티겠다는 거지요. 3억 정도는 확실하게 보장된 세금으로 지불할 수 있으니까 큰 문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상태로 그냥 두는 게 아니라 적절히 통제하기는 합니다. 예컨대 전쟁 때문에 국채를 발행했다고 하면, 전쟁이 끝나고 나서 재정적으로 여력이 생겼을 때 정부가 채권시장에 들어가서 국채 일부를 사서 소각하는 겁니다. 올해 20억 소각, 내년 10억 소각 하는 식으로 조절을 했어요. 이렇게 하면 큰 부담 없이 안전하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거액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재정 문제를 해결한 것이 18세기부터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였거든요. 정부 부채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한 최초의 사례예요. 나머지 나라들은 형편없었죠. 스페인 같은 경우는 거부들에게 무작정 돈을 빌려가지고 급전으로 쓴 다음에 갚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정부 파산 신고를 해버렸습니다. 요즘 일부 국가들 상태가 이런 방향으로 치닫는 건 아닐까요?
- 본격적으로 전략과 조직 문제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기업 전략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업 환경의 관점에서 불확실성이 극심하게 증대되면서 겸손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존 전략의 패러다임은 '계획 Planning' 이었습니다. 분석하고 계획을 잘하면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흔히 기업이나 조직에 있는 부서인 기획실이나 전략기획실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영어로 하면 다들 'strategic planning department', 이런 식으로 씁니다. 계획 패러다임이 그대로 반영된 이름이지요. 여기서 겸손한 방 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고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고 좀 보완적 대안적 관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말합니다. 소수 의견이지만 창발적 전략omergent strategy 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헨리 민츠버그 Henry Mintzberg 라는, 전략 분야의 대가가 있습니다. 당시 소수의견이었지만, 민츠버그 교수는 이미 1970년대부터 '창발적 전략imergent Stategy' 이라는 개념으로 전략은 합리적인 계획에 의해 만 들어지고 실행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진화해간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계획 패러다임에서는 전략을 논리와 분석을 통해서 수립formulation하고 실행implementation했습니다. 그런데 창발적 전략에서는 전략은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 formation 되어가는 것입니다. 유연한nexible 전략이 좋은 전략이고, 융통성 없는 경직된 rigid 전략은 좋지 않은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키워드들이 다 바뀝니다. 실물옵션 Real Option 접근방법이라는 것도 나옵니다. 뭘 살짝 해보다가 반응 을 보고 움직이고, 다시 반응을 보고, 또 살짝 움직이고, 이런 식으로 진화해나가는 전략이 좋은 전략이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전략을 설명하는 키워드도 과거의 계획’, ‘수립’, ‘실행' 이런 키워드에서 탄력성’, ‘유연성' 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지요.
- 리더가 바뀌면 문화가 바뀝니다. 리더가 넥타이를 푸는 것만으로 조직 문화가 좀 더 유연해지는 것처럼,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의 언행에서 가장 강한 신호를 받습니다.
근래 CEO들의 메시지를 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목적’ 과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죠. 과거와 같이 리더가 모든 걸 알아서 관장하고 진행하는 것은 이제 비현실적인 방식이고 사고입니다. 이러한 전통적 리더십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한다는 거죠. 구성원들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겁니다. 구성원들을 존중하자, 고객을 무시하지 말자, 인간을 존중하 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앞으로 조직 문화는 이렇게 가야 하고, 또 그렇게 움직일 겁니다.
-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나눠서 부르더군요. 애니웨어 피플Anywhere people과 섬웨어 피플 somewhere people의 경쟁이라고요. 애니웨어 피플이라는 건,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어디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는, 돈이 있거나 언어를 잘하거나 능력을 어디서나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대부분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고요. 반대로 불이익을 가진, 한 사회에서 한 언어만을 사용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섬웨어 피플이라고 부르더군요. 이 두 부류에게 세계화라는 것의 여파는 전 혀 다르게 다가오는데, 그러면 이 그룹의 비율이 어떻게 될까 살펴 봤더니 애니웨어 피플이 10% 남짓이면 80~90%가 섬웨어 피플이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화를 통해 혜택을 받은 사람은 고작 해야 10~20%밖에 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표현이 되지 않았어요. 항상 주류 언론이나 미디어에서는 세계화의 밝은 면만을 조망하고 있었고요. 우리끼리 항상 다보스 포럼에 가면 그런 얘기를 했 습니다, 본인들도 몰랐는데 어딘가 이상한, 불쾌감unbehagen 같은 것이 있다고요. 
사실 섬웨어 피플 입장에서도 세계화로 인한 간접적인 이득benefit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체감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건 일자리 문제이거든요. 그런데 섬웨어 피플 입장에서 볼 때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거지요.
- (김대식) 어쨌든 이 세계 2차대전이라는 게, 정말 엄청난 재앙이었 잖아요. 유럽은 완전히 폭삭 망하고, 영국은 제국의 지위를 잃고, 도시들이 폭격을 당해 폐허가 되고, 정말 1차 세계대전보다 훨 씬 큰 재앙인 게, 1차 세계대전 때는 어쨌든 국경선에서만 전쟁이 일어났거든요. 파리나 베를린 같은 본토는 크게 피해를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때는 정말이지, 다 다치다 보니 1945년에는 “야, 이거 안 되겠구나” 하고 브레튼 우즈가 나선 거 잖아요.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44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도를 우리가 만들어야 된다, 이대로 뒀다가는 큰일이 난다”했죠. 그때 보니 케인스가 그걸 제안했더라고요. 1차 세계화 금융 위기의 큰 문제 중에 하나가, 파운드가 세계의 기축통화였는 데 제 역할을 못 했더라는 거죠. 
본질적으로 이해의 충돌이 있기 때문에, 한 국가의 화폐가 동시에 세계의 화폐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케인스가 글로벌 인조 화폐를 제안했었는데, 지금은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어버린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당시와 완전히 똑같은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죠. 한 나라의 화폐가 전 세계의 기축 통화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한 나라에서는 거의 무한정 이걸 찍어낼 수 있고, 모든 돈이 이 나라로 쏠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금융 불균형 문제도 생기고요.
제가 봤을 때는 그래서 2차 대전 이후부터 쭉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럽 연합이 유로 만들 때부터, 탄생할 때부터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것같이, 2차 대전 이후의 이 질서 도 태생부터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문제가 지금 우리들의 뒤통수를 치기 시작하는 거고요. 그런데, 결국 보면 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IMF나 유엔이나, 브레튼우즈 체제도 결코 재미로 만든 건 아니잖아요. 세상이 얼마만큼 주저앉을 수 있는지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혼이 나봤기 때문에 만든 거죠. 그렇게 보면, 우리도 한 번 혼나기 전에는 저런 걸 새로 만들 수 없지 않을까요?
- 콜레라가 사실 굉장히 큰 사건이었거든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말로 글로벌한 세계 최초의 팬데믹이었어요. 흑사병 같은 경우는 육상 경로를 통해서 전파되었지만, 콜레라는 철도와 증기선을 타고 옮겨져서 수년 만에 전 세계를 석권했거든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상수도하고 하수도가 도시에 쫙 깔린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게 바로 콜레라예요. 그다음, 위생 관념, 국가가 어떤 병에 대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 그게 단순히 병 에 대한 정책 정도가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변화를 크게 가져왔어요. 이번 코로나 사태도 그런 차원에서 굉장히 영향이 큰 사건으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까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미중 간의 갈등이든 세계화에 대한 반응이든, 이런 큰 문제들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이고도 심대한 타격을 가하기 때문에,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큰 효과를 가져올 거라고 봐요.
- (함준호) 지금도 사실 새로운 형태의 전쟁, 재앙이죠. 그리고 이 전쟁의 여파를 우리나라는 아직 못 느끼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늦어도 이번 가을부터는 점점 통계 지표로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주경철) 이럴 때 흔히 하는 이야기가 프랑스 혁명 사례죠. 프랑스 혁명에 대해, 갈수록 못살게 되어서 사람들이 고통 끝에 결국 들 고 일어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아니거든요. 사 회가 성장하다가 한풀 꺾일 때가 제일 위험하고 사람들이 불만이 많아요. 우리가 불만이 많은 것도 못살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여태 잘나갔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잘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탁 꺾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고통스럽고, 갈등이 커지는 거예요. 지금이 바로 그럴 때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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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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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점점 빠르게 앞으로 향해 가는데 우리는 점점 과거를 들추려는 역설적인 현상, 기억을 통해 콘텐츠를 향유하는 현상은 그래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최근 복고의 지 속적인 확산은 단순히 눈에 띄는 몇몇 사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합적 현상의 집합체이다. 따라서 복고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도 - 특히 이 러한 상황이 최근에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경우 각각 처한 상황 에서 각자 취한 입장에 따라 매우 대조적이고 극단적인 경우로 나타난다.
즉, 복고의 다양한 순기능은 물론이고 비판의 소리 또한 견해에 따라 다 양하다. 과거를 통해 현재 삶의 새로운 동력을 획득하거나 감성을 회복하고, 공유하는 등 긍정적인 부분과 동시에 고된 현재와 불안한 미래 대신 그리운 과거로의 회귀가 추억의 상품화를 통한 지나친 상업화나 콘텐츠의 창의적 소재 고갈의 고착 등 비판의 소지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만큼 복고는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산업적이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주목할 만한 문화 현상임에 틀림없다.
기술은 물론 문화와 같은 감성의 영역에서도 더 나은 미래로, 앞으로 발전해 나가려는 인류에게 지나친 과거 앓이'는 어쩌면 나태한 습관을 갖게 하는 훼방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과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복고문화 콘텐츠가 발전하는 뉴미디어 기술을 통해 우리의 감성과 기억을 소환하여 지속적으로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은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문화 현상들을 볼 때, 그리 틀리지 않아 보인다.
- 과거의 경험을 단순한 암기나 인쇄물에 의해 기억하는 시대와 달리 우리가 물리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이라는 명사적 성질을 넘어 행위로의 무게 중심 이동, 즉, '동사적 성질의 기억 시대로 변화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정보의 소환이 아니라 다분히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기억 특성을 보여준다. 그 때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의 문 제를 넘어 그 때 그 일로 인해 내가 어떤 감정을 갖게 되었는가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점점 과거에 대한 보편적, 객관적, 기계적 정보와 사실로서의 역사' 기억 중심에서 복합적, 주관적, 감성적 가능성과 다양성 재현으로서의 문화 기억 시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 과거에 대한 향수가 복고를 확산시키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이유로 창의성이 결여되거나 혹은 지배담론에 의해 조종되는 과거에 대한 왜곡 가능성이 있다. 푸코M. Foucault, 1975는 지배담론이 책과 영화 그 리고 텔레비전 등과 같은 미디어에서 재현되는데, 여기서 제시된 과거에 대해 대중은 자신들의 기억이라고 인식하고, 수용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 지만 이 과정에서 대중은 자신들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해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즉 창의성이 결여된 복고 문화 콘텐츠는 그 문화 기억에 대한 객관성이 담보되지도 않고 지배 권력에 의해 쉽게 조종되어 과거를 순화시키려는 의도에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7080 음악이 재조명받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시대상황상 대학을 다니지 못한 당시 중년층에게 자유와 평화, 세련된 사랑을 이야기했던 포크음악은 삶 속에서 노동요勞動謠처럼 듣던 일상의 트로트와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청바지를 입고, 상아탑 아래서 통기타를 치며 생맥주를 마시던 대학생과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일해햐만 했던 공장의 노동자는 결코 같은 현실 속에 마주하고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이, 그리고 권력이 당시 기억을 그러한 낭만적인 것들로 포장하고 문화콘텐츠 발신자들이 이를 상품화하여 그때를 눈앞에 재현했 을 때, 경험세대의 혼란은 물론이고 미경험 세대의 착시는 공고해진다. 과 거에 대한 해석에서의 변화는 어쩌면 불가피한 문제일 수 있고, 특히 문화콘텐츠로 재현되는 과정에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형이 왜곡이 되고, 다양한 이유로 그것이 굳어지면 자칫 그래서는 안될 역사적 사실이 편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문화 기억을 통한 복고 현상이 갖는 문화적 함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복고는 우리로 하여금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안전한 도피'를 할 수 있게 한다. 창의성의 문제나 과도한 상업성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우리는 과거, 즉 복고를 통해 내일을 위한 충전을 하곤 한다. 세련된 트렌 드나 스타일, 기술적 우위의 경합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감성을 충전하려는 우리의 문화적 욕구가 복고를 통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복고는 우리를 객관적 사실에 의한 정보로서의 단순 기억을 문화적 요소가 개입된 '추억'으로 확대시켜 준다. 불변의 진리로서 무결점  기억만이 아니라 감성의 진입과 문화의 개입으로 기억 주체로서 사람 마다 조금 틀리거나, 다를 수 있는 지나간 시간은 '잊지 않고 있던 과거가 아니라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 구독경제는 현대인의 달라진 소비상을 반영한다. 상품과 서비스 자체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마다 신문을 읽고, 이틀에 한 번은 신선 한 우유와 과일을 섭취하고, 매일 옷을 입고 빨래를 하고, 여가를 이용해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고, 이런 일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소비 방식이다. 현대의 소비자에게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편리함과 효율성도 중요한 가치다. 원하는 상품을 필요한 기간에 이용할 수만 있다면 꼭 내 것이 아니어도 된다.
소유보다 소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현대 구독경제는 과거의 구독과 차별성을 갖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씩은 경험해 봤겠지만, 과거에 신문이나 우유 배달을 중단하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지국이나 대리점 에 전화 한 번이면 끝내줘야 할 서비스가 종결되지 않고, 구독자가 아무 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주택가 대문 곳곳에 붙은 '신문 사절'이라는 종이가 예전에는 흔한 광경이었다. 그 당시 구독이라는 모델은 그렇듯 달 갑지 않은 측면을 함께 갖고 있었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전혀 없진 않겠 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성장한 구독경제 모델은 신기술과 최신 경향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를 누구보다도 빨리 체험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에게 적합해 보인다.
구독경제에서는 짧고 굵은 독자보다는 가늘고 얇은 독자가 더 중요하 다. 1년 치 비용을 한 번에 통 크게 결제하는 독자보다 한 달씩 열두 달 동 안 구독을 꾸준히 유지하는 장기 구독자가 더 소중하다. 1년 구독자는 다음 해 결제를 유지할지 알 수 없지만, 열두 달을 내리 구독한 독자는 열세 번째 달도 구독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업들이 사용자가 특정 상품을 처음 접하는 순간보다 상품을 접한 이후 만족도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 보다 취미와 취향에 더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구독경제에 뛰어든 기업들은 습관을 판다. 제품 하나가 아니라 제품을 이용하는 서비스를 판다. 칫솔 하나, 면도기 하나에도 철저히 분석하고 정밀하게 겨냥한 '의도된 습관이 들어 있다. 옷을 자주 사고 자주 버리는 것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옷을 대여해 입는 습관, 큰맘 먹고 새 차를 지르는 것보다 필요할 때 원하는 자동차를 바꿔가며 타는 습관을 제공해 익숙해지게 한다. 사용자가 익숙함을 느끼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구독료가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한 달 무료 체험자를 은근슬쩍 충성 구독자로 만드는 것이 기업들이 최종 미션이다.
편리함과 익숙함, 그리고 가성비까지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소비자로서 도 이득이다. 책을 더 많이 읽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종이책의 물성 과 질감을 좋아하던 독자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자책을 읽게 되는 것도 나쁠 건 없다.
구독경제는 기업들에 고객 관리보다 고객 유지가 더 중요함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고객 분석과 관리를 위 해 서비스와 마케팅에 기술적인 요소를 결합해 철저하게 데이터를 분석, 성과를 측정하는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17) 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10명의 신규 가입자보다 1명의 구독 해지에 더 마음이 아프다.
- 팬덤은 정해진 팬 챈트를 외워야 하며 이름의 순서가 틀려도 안 된다. 아이돌 그룹의 거의 모든 노래에 정해진 팬 챈트가 있을 정도이다. 가수 는 무대에서 노래를, 팬덤은 관중석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팬 챈트를 외치 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K-pop 팬덤은 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을 중 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아이돌 대형 콘서트에서의 조직적인 팬 챈트는 아 이돌에게 바치는 일종의 종교의식과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잠실벌에 울려 퍼지는 4만 5천여 명의 팬 챈트를 상상해 보라. 실제 콘서트장에서의 팬 챈트는 아이돌과 팬덤 모두를 전율케 한다.
특이한 점은, 애초 응원의 외침이었던 팬 챈트가 이제는 K-pop 무대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음악방송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팬이 아니어도 저 팬 챈트를 원래 가사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다. 이제는 팬 챈트 없는 K-pop 무대는 허전할 정도가 되었다. 관람문화를 참여문화로 전환시키는데 있어 저력을 보이는 것이 팬덤의 특징이지만, 공연 에까지 팬 챈트로 참여하는 K-pop 팬덤은 아주 독특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엔 아예 아이돌이 팬덤에게 이런 응원 구호를 넣어줬음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음악방송의 경우는 작은 시장 규모에 비해 지상파, 케이블 통틀어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은 나라도 없다. 우리나라보다 시장 규모가 약 6배 이상 큰 음악시장이자 세계 2위 규모(약 6조 원)인 일본은, 전 채널 통틀어 15개 정도인 데 비해, 한국은 일주일에 한 번 편성된 정규프로그램만 해도 현재 KBS 13개, MBC 8개, SBS 및 민방 6개, 기타 10개 이상이 된다(2020년 기준).
많은 프로그램 제작으로 인한 방송국 간의 치열한 경쟁은 각 무대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투자를 하게 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다양하고 질 높은 디지털 음악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졌다. 해외 K-pop 팬덤은 수준 높 은 우리나라 방송 무대설치와 카메라 워크camera work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단기간에 대량으로 쏟아지는 높은 수준의 방송국 음악콘텐츠는, 소셜 미디어로 이를 접하는 해외 팬들에게 쉼 없는 '떡밥'을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져 K-pop 글로벌 팬덤이 형성되는데 큰 원천소스가 됐다. 지금의 글 로벌 팬덤이 한국 팬덤의 응원구호를 연습하여 그대로 따라 하는 데에는 한국 방송 콘텐츠가 교재로 활용되었다.
- 빈지 와칭Binge Watching이 대표적인 용어이며, 빈지 뷰잉Binge Viewing, 마라톤 뷰잉Marathon Viewing이라는 용어도 함께 쓴다.
몰아보기 즉 'Binge Watching' 이라는 용어를 분석해 보면 'Binge'는 명 사로는 '어떤 활동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는 경우, 특별히 먹고, 마 시거나 또는 돈을 쓰는 것을 말하고 동사로는 극단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방법으로 어떤 것을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가진 빈지Binge 에 와칭watching을 더하면 과도하고 극단적이며 통제되지 않은 방법으로 시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는 '폭식 시청' 또는 '몰아보기' 라고 주로 표현하며 일부 학자는 빈지 와칭이라는 부정적인 용어보다 '미디어 마라톤Media Marathon'이란 긍정적인 용어 사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 전통적인 TV 시청이 대체로 주어진 이야기를 개인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몰아보기는 더욱더 이야기 속으로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적극적인 행동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즉 소비자는 현실의 불만족과 스트레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몰아보기를 통해 영상콘텐츠 세계에서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도피라는 측면에서 몰아보기를 설명하는 이유로서 영상콘 텐츠의 스토리텔링이 미치는 힘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스토리텔링 은 기본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 현실과는 다른 이용자들의 희망 사항이나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욕망을 드라마를 통해 충족함으로써 사람들의 판타지에 대한 기본 성향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판타지는 일상의 문화 현상에서 판타스티시즘fantasticism이라 불 리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판타스티시즘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과 모험을 추구하려는 소비성향을 의미하며, 현대 생활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무료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되어 코스프 레, 판타지 장르의 소설,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과 같은 현실 도피형 엔터테인먼트가 유행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결국, 몰아보기는 인간 내적인 욕구를 영상콘텐츠가 제공하는 판타지적인 측면 즉 현실에 없는 상상을 하면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며, 영상콘텐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몰입을 유도한다.
-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을 포장하여 타인에게 전달한다. 정보의 확장과 공유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아주 적절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포장되지만, 결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혼자라는 두려움을 감추려는 자기 기만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구가 분출되는 기계적 커뮤니케이션의 현장이다. 결국,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처럼 과장된 자신에게 도취 되어 타인에게 포장된 자신을 제공함으로써 반대로 자신의 초라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행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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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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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은 개체 차원의 유전자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집단 차원 유전자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환경은 그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자손을 쉽게 남길 수 있게 함으로써 유리한 유전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보통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환경이 물결처럼 변화하기는 하나 일정한 균형을 유지한다. 또 한 쪽으로만 변화하지는 않으므로 환경이 유전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관대한 편이다. 따라서 진화에는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때로는 단기간에 유전자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환경 변화나 인위적 선택으로 특정한 유전자의 우위성이 급속히 증가함으로써 그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증가하는 경우다.
한 예로, 불도그나 요크셔테리어와 같은 견종을 만들어내는데는 몇 만 년, 아니 몇천 년도 걸리지 않았다. 원하는 특성을 보이는 개체를 인위적으로 선택하면 겨우 몇 세대 만에 매우 개성 넘치는 견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젖소의 대표 종인 홀스타인은 1964년부터 40년간 계속 인위적 선택을 받은 결과, 우유의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유전자 자체가 변화했다. 현재 인간에게 일어나는 현상도 이와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환경이 디스커넥트 유형에 유리한 방향으로 급속히 변화 해 이런 특성을 보이는 사람이 반려자로 선택받는 기회가 늘어 자 손을 쉽게 남기게 된다면, 특정 집단에서 디스커넥트 유형의 비율 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지배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특성이라고 하면 인간이 아닌 사물이나 기술에 대한 친화성일 것이다. 이 유리한 유전자가 디스커넥트 유형의 증가를 초래하는지도 모른다.
- 응답적 반응이 부족한 환경 탓에 애착이 손상되면 처음에 는 더 관심받고 싶은 마음에 과도한 애정을 요구하는 불안형이나 애착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미해결형이 증가한다. 하지만 더욱 사 태가 진행되면 애정을 요구하기조차 포기하고 기대치를 크게 낮춰 안정을 되찾으려는 마음에 디스커넥트 유형이 증가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일시적으로 불안형 애착과 이에 수반되는 애착 관련 장애가 급증하나 점차 디스커넥트 유형으로 이동하고, 디스커넥트 유형에 수반되는 문제가 중심을 이루게 된다.
- 자폐 스펙트럼증의 증가에는 거의 확실하게 밝혀진 요인이 있 다. 바로 늦은 결혼이다. 남녀 모두 늦은 나이에 부모가 되면 아이 가 자폐 스펙트럼증을 앓게 될 위험성이 증가한다. 연령 증가에 따 른 난자와 정자의 질 저하와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 폐 스펙트럼증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대체로 결혼을 늦게 할 가 능성 또한 있다.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부모 는 대체로 학력이나 수입이 높다. ADHD가 오히려 어린 부모나 사 회 ·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서 유병률이 높은 것과는 대조적이
결혼이 늦어지면 자손을 남기기에 불리하다. 따라서 자폐 스펙트럼증이 늦은 결혼과 관련되어 있다면 사회 내의 유병률은 분명 억제될 것이므로 자폐 스펙트럼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증 환자 중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서 자손을 남기는 데 매우 불리하다. 자폐 스펙트럼증이 오랜 기간 사회의 이목을 끌지 못한 데에는 이 질환이 극히 드물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손을 남기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그런데도 현실 세계에서는 자폐 스펙트럼증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한 가능성 있는 설명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폐 스펙트럼증은 사실 환경 요인의 영향을 쉽게 받으므 로, 양육 환경이나 정보 통신 환경의 급격한 변화 탓에 이런 특성 을 보유하는 상태가 증가한다는 가능성이다. 이 경우 자폐 스펙트 럼증이 유전되는 심각한 신경 발달 장애'라는 정의를 충실히 따른다고 가정하면, 증가한 비율은 대부분 자폐 스펙트럼증이라기보다 디스커넥트 유형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설명은 자폐 스펙트럼증의 유전자를 일부 보유해야만 적응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확대되고 있는 까닭에 이런 유전자가 선택되었다는 가능성이다. 개체 차원의 적응에 머무르지 않고, 환 경이 그 환경에 적응하는 데 바람직한 유전자 변이를 선택하고 집 단 수준으로 늘려가는 시스템을 '진화'라고 한다. 여태까지는 진화 를 백만 년 단위의 시간적 규모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뒷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오늘날처럼 환경이 급 변하는 상황에서는 진화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추측된다.
- 코크란과 하펜딩이 주목한 집단은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이다. 그들은 살던 터전을 빼앗기고 전 세계에 흩어졌는데, 이주 한 곳곳마다 배척과 탄압을 받는 바람에 유전적으로 고립된 집단이 되었다.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은 처음에 교역으로 자본을 축적 했지만 머지않아 오로지 고리대금업만을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금융업으로 성공하려면 숫자나 문자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 다. 유전적으로 격리된 집단이 이러한 선택압을 받게 되자 적응에 유리한 변이가 효율적으로 축적되었다.
그리하여 천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의 지능지수는 다른 민족의 평균 지수보다 12~15점이나 높아졌다. 아이큐가 140 이상 되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의 비율이 다 른 민족보다 몇십 배나 높은 것이다. 그 결과, 과학사의 중요한 발 견은 대부분 지극히 소수의 유대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코크란과 하펜딩에 따르면 2007년까지 과학 관련 노벨상을 받은 미국인의 4 분의 1 이상이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능의 상승이란 이 진화에는 희생이 뒤따랐다. 신경계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서는 시냅스라 불리는 신경 세포 간의 결합부가 활발히 만들어지거나 축삭 또는 수상 돌기 같은 신경 섬유 의 성장이 양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신경계에 질 환이 생기는데,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에는 테이 · 삭스병o(Tay-Sachs disease)이나 니만 · 피크병 (NiemannPick disease)과 같은 선천적 신경 질환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지능을 높여야만 살아남는다는 선택압이 가해지는 가운데, 신 경계 질환에 걸릴 리스크란 대가를 치러서라도 높은 인지 기능을 얻으려 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장애를 얻게 될 리스크를 짊어지 더라도 높은 지능을 가지는 것이 민족이 생존하고 자손을 남기는 데 유리했던 것이다.
- 아이큐를 12~15점 올리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테이 · 삭스 병이나 니만 · 피크병의 증가라 해도, 그리하여 27명 중 1명이 테 이 · 삭스병의 열성 유전자를 보유한다고 해도, 자연 상태에서 발 병할 확률은 0.2% 정도이고 실제로는 출생 전 진단으로 발병률을크게 줄일 수도 있다.
한편 디스커넥트 인류를 만들어내는 기세는 그 속도가 빠르고 규모도 커서,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의 지능 진화를 훨씬 능가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훨씬 심각하고 엄청난 규모의 부작용이 뒤따르게 된다.
애착이 급격히 희박해져서 육아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고 육아 그 자체를 회피하게 됨으로써 점차 다양한 애착 관련 장애가 엄청난 규모로 증가할 것이다. 과연 이것은 디스커넥트 인류가 탄생하기 위한 산고의 고통일까, 아니면 파멸의 서곡일까.
- 하라리는 IT혁명을 두고, 인본주의를 구가했던 인류를 만능 옥좌에서 단순한 데이터 단말기로 끌어내림으로써 주체성을 빼앗 아, 결국 인간을 국제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의 노예로 만들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IT혁명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뇌 신경 회로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애착 시스템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린다. 는 점이다. 정보 처리 시스템인 뇌는 무한한 정보에 접속할 수 있 는 네트워크에 매료되면 시간도 잊을 만큼 여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 속 인간관계를 희박하게 하고 정서적 교류나 친밀한 관계를 잃게 만든다. 극적인 변화는 편리하고 즐거움에 가득 차있으므로 장점만 있을 듯하지만, 1~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행동이나 생활을 급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머지않아 행동뿐 아니라 감정이나 인지 차원에서도 변화를 일으켜, 년 단위, 세대 단위의 세월이 흐르면 점차 뇌 구조 자체나 유전자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바로 육아나 아이의 발달, 그리고 애착 시스템이다.
- IT혁명은 바쁜 부모로부터 방치당한 사람,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람, 만남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 늘어나 디스커넥트 유형이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바로 그때 일어났다.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폭발적인 지지를 얻은 인터넷과 IT 기기가 금세 사회에 침투한 까닭은 시대가 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디스커넥트 인류를 더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영역으로 밀어낸 순간이기도 했다.
- 디스커넥트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고독한 환경에 강하다.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 환경에 놓이면 애착을 가진 공감형 인류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심하면 환각이나 망상에 사로잡혀 정신 착란을 일으키거나 정신 기능이 무너진다. 구치소 등의 독방에 수감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간저 증후군(Ganser syndrome)이 대표적인 예다.
애착을 필요로 하는 공감형 인류에게 타인과의 관계가 모조리 단절되는 것은 마실 물이 끊기는 것과 같은 고문이다.
- 하지만 디스커넥트 인류는 공감형 인류에게 분명 극도의 스트레스일 환경에 손쉽게 적응해버린다. 일 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살아도 고통이나 답답함을 거의 느끼지않는다. 오히려 쾌적함을 느끼고 안심하기까지 한다. 얼굴을 맞대는 인간관계를 훨씬 번거롭게 여긴다.
프리드리히 니체나 에릭 호퍼(Eric Hoffer) 같은 디스커넥트의 선구자들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독한 환경으로 들어갔다. 
- 디스커넥트 인류가 대면 의사소통을 선호하지 않는 데 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 이유는 에너지의 불필요한 소모를 피하기 위해서다. 물론 불쾌하다는 점도 크다. 얼굴을 맞대 고 직접 이야기하는 행위는 물론 화면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보면 서 이야기하는 행위도 불편해한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생후 4개월 즈음에 그 징후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장래에 디스커넥트 유형이 되는 아이는 엄마와 마 주 보고 있어도 눈을 맞추는 시간이 짧으며 곧바로 시선을 피해버 린다. 엄마의 얼굴을 봐도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고 표정 또한 풍부하지 않다. 엄마가 자신의 입을 만지는 등 자기 위무(慰撫) 행동을 하면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 늘어난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와 눈을 마주치는 행위 자체가 기쁨이나 위로가 되지 않고, 다른 데서 위로를 찾으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얼굴을 마주하는 행위 자체가 기쁨이 아닌 번 거로운 일인데도 공감형 인류와 똑같이 행동하고자 노력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디스커넥트 인류는 자신들의 특성을 억지로 감추려 하지 않는다. 공감형 인류의 방식에 맞추기를 그만두고 자신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생활한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을 부족함 없이 뒷받침해온 완벽한 복지 제도는 스웨덴의 어떤 국민성과 융합하여 발전한 것일까. 국민성을 객관적으로 논하기란 상당히 어렵지만, 외국인의 시선에서 뿐 아니라 스웨덴인도 똑같이 지적한다고 하면 나름대로 신빙성 이 있다는 뜻이리라. 국내외에서 공통으로 지적하는 스웨덴인의 특성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커다란 장벽이 있다는 점이다. 그 벽은 우선 표정이나 정서적 반응의 결핍으로서 관찰된다. 타자에게 무 관심하고 냉정한 스웨덴의 사회는 외부에서 온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진공 사회'라며 비난받을 정도다. 게다가 유머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그 대신 과도하리만치 합리주의와 기능주의가 발달했다. 이 점은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신봉자 또한 많다. 가구나 자동차, 사 회 제도나 이념에도 불필요한 재미와 장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실 용성과 실적을 중시한다. 또 물질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 어서, 무려 원소의 25%를 스웨덴인이 발견했다고 한다. 스웨덴인의 합리적 사고는 그들이 통계를 매우 중시한다는 사실에서도 드 러난다. 국가 차원에서 상당히 정밀도 높은 갖가지 통계를 잘 관리 하고 있으므로 정책을 결정할 때도 이 수치를 토대로 한다. 과학적 사고를 좋아하고 특히 시스템화하는 작업에 뛰어나다. 57158 잡담 이나 논의는 좋아하지 않으며 과묵함과 실리 있는 행동을 존중한다. 그리고 공평함과 평등의 가치관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또 하나의 커다란 특징은 철저한 개인주의로, 어린 시절부터 자립을 요구받은 까닭에 의존을 싫어한다. 보통 스웨덴 여성은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직장에 나가므로 애초에 아이를 느긋하게 돌 볼 수 없다. 따라서 아이들이 일찍 자립한다. 만 16세가 되면 독립 해서 동거하는 사람도 많다. 이를 사회도 환영하고 응원한다. 남녀 관계 또한 대등하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인 남성은 스웨덴 인 여성을 평온함을 주고 위로해주는 존재가 아닌 긴장을 일으키 는 대상으로 여긴다고 한다. 59 스웨덴 남성은 파트너에게조차 평온함이 아니라 긴장을 느낀다. 어찌 됐든 자기문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 개인주의의 끝판왕인 스웨덴인의 기본자세다.
- 사실은 많은 아이가 옥시토신 분비 촉진제를 아기 때부터 계속 투여받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특히 그렇다. 이 아이들은 자궁에서 꺼내지자마자 옥시토신 분비 촉진제를 투여받아
왔다.
원래대로라면 분만 시에 진통과 함께 옥시토신이 모체 내에 다량 분비되고, 그 일부는 제대를 통해서 태아에게까지 이동한 다. 분만 시에 일어나는 격렬한 자궁 수축은 태아의 목을 졸라 태 아를 사망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있는데, 모체에서 이동한 옥시토신은 이와 같은 끔찍한 위협으로부터 태아를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자연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는 포옹이나 애무 등의 자극을 받 음으로써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되고, 이와 동시에 옥시토신 수용 체의 발현이 활발해진다. 그러나 인공 자궁에서 꺼내져 마더 로봇에 의해 길러진 아이는 어떤 방법을 써도 옥시토신계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장벽에 직면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 약이 옥시토신 분비 촉진제다.
이 약은 수많은 아기의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로써 수많은 사람이 이 약에서 평생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와 같은 사실은 인공 자궁이 도입된 이래 수년간 감춰져 있었다. 세상에 드러난 때는 소아 거식증과 부자연스러운 죽음(그 후 자살로 판명되었 다)이 급증하면서 제삼자위원회가 원인 규명에 착수한 후다. 전모 가 드러났을 때 유아였던 아이는 거의 성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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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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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기원

과학 2021. 4. 18. 18:54

- 혁신의 욕구는 유전적 진화의 탁월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진화는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우리 종을 적응시킨다. 혁신은 유전체의 돌연변이 에 해당한다. 돌연변이라는 생물학적 사건은 인류 역사 내내, 다른 종들에게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수준으로 일어나 왔다. 돌연변이는 매우 다양하다. 돌연변이는 개체 수준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대다수는 해롭거나(그리하여 색맹, 낭성 섬유증, 혈우병 같은 수백 가지의 불행한 가족성 유전 장애를 일으킨다.) 건강이나 번식에 검출 가능한 효과를 전혀 일으키지 않 는 중립적인 것이다. 결국에는 사라지거나 기껏해야 아주 낮은 빈도로 남는다. 후자는 이로운 우성 유전자와 같은 자 리에서 침묵하는 열성 유전자로서 공존한다. 극소수의 돌연변이만이 개체에 혜택을 줌으로써, 그리고 집단 전체로 퍼짐으로써 성공을 거둔다. 그런 돌연변이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젖당 내성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들의 집 합이 한 예다. DNA 염기쌍에 일어난 작은 무작위 변화로 우유 소화가 가능해졌고, 그 뒤로 낙농업이 거의 전 세계 로 퍼졌다. 낫 모양 적혈구 돌연변이 유전자도 그렇다. 이 돌연변이는 쌍으로 있으면 치명적인 빈혈증을 일으키지만, 하나만 있으면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해 준다.
- 요약하자면, 인문학은 다음과 같은 약점들에 시달린다. 인과 관계 설명에 근원이 빠져 있고, 제한된 감각 경험이라는 공기 방울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인문학은 불필요하리만큼 인간 중심주의적이고 따라서 인 간 조건의 궁극 원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아브데라의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 of Abdera, 기원전 485~410년)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선언했다. 그 세계관은 당대에 도전을 받았고, 지금은 더욱더 그래야 한다. 새로운 선언이 필요하다. 그 선언은 이래야 한다. “만물이 인간 이해의 척도다.”
- 아직 문자를 가지지 않은 순수 수렵 채집인 사회와 원 시적인 농경을 하는 수렵 채집인 사회는 선사 시대 문화의 탄생기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삶은 단순해 보 일 수 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대부분은 그렇다, 아직은!) 인터넷 검색도 안 하며 채소를 사러 슈퍼마켓에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동시에 가장 상세히 연구된 수렵 채집인 사회에 속하는 칼라하리 사막의 주/호안시 사람들은 자기 세력권의 지형을 도로 지도처럼 잘 알고 수백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과일나무, 샘, 야영 후보지, 조망하기 좋은 언덕을 잘 안다. 그들의 어휘는 현대 도시인의 어휘에 비하 면 아주 적을지 모르지만, 동식물의 이름과 설명은 분류학 을 전공한 자연사 학자에 맞먹는 수준이다. 모닥불 불가에서 이루어지는, 낮에 한 일들과 낮 시간에 한 일과 상관없는 다른 모든 일들에 관한 그들의 대화와 이야기는 다양하면서 상세하다. 그럴 때 주/호안시 사람들은 숨길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만들어지는 세 종류의 폐쇄음이 섞인 단어 들을 쓰곤 한다.
- 과학자들은 이 모든 진화의 초기 단계들을 밝혀내고 있 다. 인간 수준의 종을 생성하는 데는 세 가지 전제 조건들 이 결합되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는 야영지의 형성이다. 그 일은 일찍이 우리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에게서 식성의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가능해졌다. 나는 동물계의 역사 전체를 훑어서 총 20개의 독자적인 계통들로 이루 어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복잡한 사회들의 기원을 모두 검토했다. 각 계통에서 육아를 통해 새끼를 키우는 등 지를 본능적으로 짓는 행위가 앞서 나타났다는 것이 드러 났다. 사회성 벌, 말벌, 개미의 둥지는 지하나 나무 위 등 다양한 곳에 지어지며, 새끼를 기르는 특수한 방이 갖추어져 있다. 사회성 총채벌레와 진드기는 살아 있는 식물 안에 생긴 빈 공간을 육아실로 쓴다. 사회성 바다 새우는 살아 있는 해면동물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든다. 초기 인류의 둥지 는 통제된 불을 통해 온기와 조명을 얻는 야영지였다. 따라 서 널리 퍼져 있지만 흔하지는 않은 적응 형질인, 자식을 키우기 위한 둥지 짓기는 인간가 이룬 희귀한 성취에 이를 수 있는 교두보였다.
20개 진화 계통은 사회 조직 측면에서 볼 때, 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적 형질인 '진사회성(eusocial)’ 행동을 보 인다. 동등한 이들 사이의 협력이 아니라 집단 구성원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장기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루어지는 조직적인 협력을 토대로 한 분업이 핵심 이다. 과학적으로 분류할 때 진사회성에 속하려면, 구성원 중 일부가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하도록 역할들이 미리 정 해져 있어야 한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이타주의는 존재한 다. 집단 구성원 중 일부는 집단 전체의 선(善)을 위해 희생 한다.
인간 사회 기원의 두 번째 전제 조건은 집단 구성원 사 이의 높은 수준의 협력이었다. 각자는 다른 모든 이들과 그 들이 맡은 일, 그들의 능력, 그들의 성격을 잘 알았다. 
분업, 이타주의, 협력이 함께 진화함에 따라서 사회적 지능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특히 그것들이 서로 조합되면서 의사 소통이 풍부해졌다. 최초의 인류가 시청각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구어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생성된 단어들과 의미의 결합은 원래 자의적이었지만, 서서히 집단 내에서 보편적인 용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소리는 빠르 게 생성되고 사라진다. 하지만 시각 신호와 달리 불투명한 장애물을 지나가고 모퉁이를 돌아간다. 더 나아가 후각 및 시각 신호와 달리, 단어는 빠르게 늘어나면서 정보 전달을 최대화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동물본능의 소리는 인간의 언어로 진화했다. 어휘는 인류 집단 별로 달라졌지만, 이야기할 능력과 원초적 충동은 유전적 으로 프로그램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집단 내에서 더 뛰어난 언어 능력을 지닌 이들은 집단 내의 경쟁자들보다 생존율과 번식률이 더 나았다. 더 중요 한 점은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영토 공격 능력뿐 아니라 동맹을 형성하고 교역을 트고 자연 환경에 있는 원천들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추출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이들이 이겼다는 것이다.
- 침팬지와 인간이 갈라진 뒤로 600만 년에 걸친 기간의 대부분에 걸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분류되는 종이 아 마 3종 이상,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공존했다. 그들은 기본 적으로 채식주의자였지만, 아마 기회가 생기면 고기도 조 금 먹었을 것이다. 현생 침팬지들도 그렇게 한다. (섭취 열량 의 약 3퍼센트이다.) 먹는 식생의 종류는 분명히 종마다 달랐다. 더 거칠고 더 섬유질이 많은 식물을 먹는 종은 턱과 이가 더 무거워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진화 생물학자는 그렇 게 분화하는 양상을 전체적으로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 이라고 한다. 적응 방산을 통해서 한 계통은 고기를 더 많이 먹는 쪼 으로 나아갔다. 특히 번갯불이 쳐서 초원과 사바나에 난 불 에 구워진 동물을 먹었다. 초기 단계에서 그 집단들은 야영 지를 발명했다. 처음에는 새의 둥지나 다름없이 단순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들은 통제된 불을 추가했다. 불타고 있는 나뭇가지의 깜부기불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초보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념비적일 변화로부터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다.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200만 년 전이었다. 그 조상 종은 적어도 10만 년 전까지 존속했다. 그때쯤 그 집단 중 적어도 한 집단은 뇌가 훨씬 더 커지고, 턱과 이는 더 작고 더 가벼 워진 상태였다.
호모 사피엔스로의 마지막 전환은 호모 에렉투스가 존 속하고 있는 동안에 꽤 많이 진행되었지만, 그 종에게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일찍, 호모 에렉투스의 직계 조상인 호 모 하빌리스에게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빌린 인의 화석 증거는 호모 에렉투스의 것보다 훨씬 적으며, 후기의 전이 종 다음에 곧이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230만~15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 스에게서 현생 인류로 귀결된 변화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선사 시대의 이 기간에 머리뼈의 용량, 즉 뇌의 크기는 500 시시에서 800시시로 커졌다. 현생 침팬지의 뇌보다 한 참 더 커진다. 호모 에렉투스(1,000시시)에게서는 더욱 커졌고, 호모 사피엔스(평균 1,300시시 이상)에게서 다시금 커졌다. 그 기념비적인 문턱을 건넌 것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였다. 뇌가 클수록 기억 능력도 더 커졌고, 그럼으로써 마음속에 서 이야기를 엮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생명의 역사에서 최초로 진정한 언어가 출현했다. 그 언어로부터 유례없는 창의성과 문화가 출현했다.
우리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더 큰 뇌와 더 고도의 지능으로 이어지는 지향적인 선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 세 계에서의 상호 교배를 통해서 발전시켜 온 균질화를 통해 서다. 집단 사이의 평균 유전적 다양성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인류의 총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문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생물학 차원에 서도 우리는 점점 더 통일된 종이 되어 가고 있다.
- 놀라운 사실은 조건화한 혐오와 공포증을 획득하는 예 민한 능력이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우리의 먼 인류와 선행 인류 조상들이 야생에서 겪은 위험들에만 거의 전적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 적들뿐 아니라, 비좁은 공간, 높은 곳, 급류, 집 바깥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에 대한 공포도 포함된다. 우리 종에게서 칼, 총, 자동차에 대한 공포증이 진화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현 대인에게 훨씬 더 주된 사망 원인들인데 말이다.
창작 예술의 미학적 핵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뇌 의 알파파를 측정하면 우리가 구성 요소들 중 약 20퍼센트 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추상적 디자인을 볼 때 가장 흥분한 다는 것이 드러난다. 단순한 미로, 로그 나선의 2회 회전, 비대칭적인 십자가에서 발견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복잡성이다. 복잡성이 더 낮으면 매력이 없이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더 복잡하면 '혼잡'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는 프리즈, 격자 세공, 간기(刊記), 로고, 깃발 디자인에서 성공을 거둔 많은 작품에서 비슷한 수준의 복잡성이 나타 난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같은 수준의 복잡성은 원시 미술과 현대 미술 및 디자 인에서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일부분을 이룬다. 이 최적 복잡성 원리(optimum complexity principle)는 흘깃 보고 전 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뇌가 지닌 한계의 한 표현 형태일지 도 모른다. 한 번 흘깃 보고서 셀 수 있는 - 즉 세부 단위로 쪼개어 센 뒤에 합치는 식이 아닌 - 사물의 수가 7인 것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인문학은 우리 마음과 창의성의 키메라적 특성을 이해 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만 겨우 이해하고 있는 선사 시대 사건들이 우리 DNA에 새긴 감정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너무나도 당혹스럽게도, 우리는 조만간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은 잘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인간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고대로부터 지닌 가치들과 감정들에는 잘 대처하지 못할 과학 기술의 시대로 빠르게 진입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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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잔혹한 진화론

과학 2021. 4. 18. 18:53

- 몸속의 세포에 산소를 보내기 위해서 매일 24시간 움직이고 있는 심장 자체의 세포에는 어떻게 산소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개구리나 도마뱀의 심장은 내부를 흐르는 혈액에서 산소를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심장 근육은 치밀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내부의 혈액에서 산소를 흡수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의 심장은 네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오른쪽 2개의 방에는 원래 산소가 적은 혈액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심장 외부에 서 심장 전체로 산소를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심장에서 나온 대동맥으로부터 갈라진 '심장동맥'이라는 혈관이다. 심장동맥은 대동맥에서 갈라진 이후 심장의 표면으로 뻗어나가서 월계관처럼 심장을 둘러싼다. 
이처럼 심장동맥은 심장 전체에 산소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 을 맡고 있지만 직경이 2-4밀리미터로 가늘기 때문에 막히기가 쉽다. 심장동맥을 흐르는 혈액이 줄어들면 협심증이 생기고, 이 는 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그리고 심근세포에 혈액이 충분히 흐르지 않아 산소가 부족해지면, 심근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이것이 심근경색이다.
더구나 심장동맥은 심장이라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관(器官) 의 표면에 붙어 있기 때문에 다른 혈관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수 고를 해야 한다. 심장이 수축될 때에는 심장동맥도 눌려서 혈액이 들어올 수가 없다. 따라서 심장이 확장되는 때에 혈액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격한 운동을 할 때에는 심장이 확장되는 주기 가 짧아져서 심장동맥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할 수 없게 된다. 즉, 심장은 가장 산소가 필요할 때에 충분한 산소를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운동 중에 협심증을 일으키기 쉬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
- 경골어류의 허파는 산소가 적은 물속에서 도움이 될 것 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썰물 때처럼 산소가 부족하기 쉬운 환 경에서 사는 경골어류 가운데 허파 이외에도 공기 호흡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독자적으로 진화시킨 종이 있기 때문이다. 말뚝망둥어나 메기류 중에는 아가미의 일부를 통해서 공기 호흡을 하는 종들이 있다. 역시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는 공기 호흡도 할 수 있는 편이 유리하다.
다만 현재의 허파가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 도움이 된다고 해서 처음 허파가 진화했을 때에도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같은 허파 라고 해도 역할은 바뀌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조류의 날개는 하늘을 나는 데에 도움이 된다.
- 그러나 조류의 조상(공룡' 이라고 부르지만)이 가지고 있던 날개는 적어도 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때의 날개는 아마 체온을 조절하거나 수컷이 암컷에게 과시를 할 때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허파도 한 가지에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다음의 두 가지 증거를 맞추어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초창기의 허파는 산소가 적은 환 경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던 듯하다. 
첫 번째 증거는 화석이다. 경골어류는 육기류(肉?類 : 지느러 미가 육질 덩어리/옮긴이)와 조기류(條?類: 지느러미가 부챗살줄기 구조/옮긴이)라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육기류에는 시러캔스와 폐어(肺魚)가 있고, 그밖의 많은 경골어는 조기류에 속 한다. 육기류와 조기류의 공통 조상은 아마 실루리아기(약 4억 4,400만~4억1,90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이다. 화석으로 보건대 이 공통 조상은 먼 바다에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곳은 산소가 부족하지 않은 환경이다. 그후 육기류와 조기류로 나뉘고 육기류의 일부가 실루리아기의 다음 시대인 데본기(약 4억1,900 만~3억5,900만 년 전)에 육지로 올라왔다. 
두 번째 증거는 현존하는 물고기이다. 현존 육기류의 허파와, 현존 조기류 중에서 원시적인 형태가 남아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폴립테루스의 허파는 모양이 비슷하다. 이는 양쪽의 공통 조상이 이미 허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것이 사실이라 면, 첫 번째 증거와 종합해볼 때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실루리아기에 먼 바다에 살고 있던 육기류와 조기류의 공통 조 상에게는 이미 허파가 있었다. 그러나 그 허파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초기의 허파는 심장에 산소를 보내는 데에, 즉 활발하게 활동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인간이나 개구리의 간은 오르니틴 회로(ornithine cycle)라고 불리는 복수의 화학 반응을 통해서 암모니아를 요소로 만들고 있다. 이 오르니틴 회로로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서 독 성이 약한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독성이 약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요소의 단점은 암모니아보다 물에 잘 녹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소를 배출하려면 아무래도 물에 녹여야 하는데, 이렇게 물에 잘 녹지 않는 요소를 녹여야 하므로 당연히 대량의 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매일 물을 많이 마셔서 대량의 소변으로 요소를 버리고 있다.
결국 육지로 올라와서 살다 보니 물을 마음껏 쓸 수 없어서 질소를 버리는 방식을 독성이 강한 암모니아에서 독성이 약한 요소로 바꾸었는데, 그 때문에 대량의 물을 마셔야 한다니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몸속에 독성이 강한 암모니아를 쌓아두는 폐해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 장내 세균이 사는 곳은 장 안이므로 일단 우리의 몸 바깥에서 사는 것이지만 그 수는 엄청나다. 약 1,000조 개라는 추측도 있다. 우리 인간의 몸은 약 4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장내 세균의 수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그 장내 세균의 99퍼센트 이상은 대장에서 살지만, 그 수가 매우 많아서 소장에도 상당 수의 장내 세균이 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입을 통해서 음식물을 넣고 그 음식물을 소화기관에서 소화, 흡수한 뒤에 찌꺼기를 변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변의 대부분이 음식물 찌꺼기는 아니다. 절반 정도는 장내 세균의 사체(살아 있는 것도 있다)이며, 그밖에 상당 부분이 소화기관의 안쪽 표면에서 떨어진 점막 상피세포이다. 음식물 찌꺼기는 변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이렇게나 많은 장내 세균이 소화기관 안에 살고 있어도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이유는 장내 세균의 대부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 기 때문이다. 즉, 인간과 장내 세균은 공생 관계이다. 인간은 장내 세균에 소화기관 안이라는 따뜻하고 영양가 높은 환경을 제공한다. 한편 장내 세균은 우리의 소화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음식과 함께 들어온 세균에 감염되는 것도 예방해준다.
장내 세균은 독자적인 효소를 분비해서 우리가 소화하기 어려 운 성분을 분해하고, 위험한 세균이 들어왔음을 우리의 세포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세포가 위험한 세균에게 유해한 물질을 분비할 수 있다. 또한 장내 세균이 장 안쪽 표면을 점령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감염을 막아주기도 한다. 바깥에서 들어온 세균도 머물 곳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인간의 눈에서 망막은 안구의 안쪽 표면을 덮고 있지만, 생물 에 따라서는 망막이 몸 표면에 있기도 하다. 망막이 몸 표면에 있으면 반점처럼 보이는데, 이를 '안점(eye spot)'이라고 한다(그림 6-1의 1).
안점을 가진 생물은 자신의 몸에 빛이 닿은 사실을 인지한다. 빛이 어느 각도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밝은지 어두운 지는 알 수 있다. 이것이 '명암을 감지할 수 있는 눈'이며, 자포동물인 해파리 중에 이런 눈을 가진 종이 있다.
'명암을 감지할 수 있는 눈' 보다 복잡한 눈으로 '방향을 알 수 있는 눈'이 있다. 이 눈은 안점 망막의 한가운데가 오목한 컵 같 은 모양으로 되어서 밝은지 어두운지뿐만 아니라 빛이 오는 방향 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눈을 배상안(杯狀眼)'이라고 한다. (그림 6-1의 2). 
그림 6-1의 2처럼 배상안이 위를 향하고 있다고 치자. 만일 빛이 오른쪽에서 오면 컵의 왼쪽 시각세포에만 빛이 비치고, 왼쪽에서 오면 오른쪽 시각세포에만 빛이 비친다. 이렇게 되면 어느 시각세포가 빛에 반응했는가에 따라서 빛이 오는 방향을 알 수 있다. 배상안을 가진 동물은 많이 있는데, 예를 들면 연체동물 인 삿갓조개 등이 있다.
나아가 '방향을 알 수 있는 눈' 보다 복잡한 눈으로 형태를 알 수 있는 눈'이 있다. 배상안의 옴폭 파인 부분인 공동(空洞)은 그 대로 두고 입구를 작게 하면 '바늘구멍 눈' 이라고 불리는 눈이 된 다(그림 6-1의 3).
배상안의 컵 입구는 잘록하게 좁다. 따라서 외부에서 들어온 빛은 입구를 통과할 때에 한 점에 모인다. 그리고 입구를 통과하 면 광선은 다시 넓어지고, 망막에 상하좌우가 반대인 상(像)이 비 친다. 즉, 본 것의 형태를 알 수 있다.
바늘구멍 눈은 형태를 알 수 있는 훌륭한 눈이지만 한 가지 큰 단점이 있다. 입구가 좁아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입구의 구멍을 크게 하면 빛이 한 점에 모이지 않아서 사이 희미하게 비친다. 구멍이 작으면 작을수록 상은 선명해지지 만 대신 점점 어두워진다. 이러한 바늘구멍 눈을 가진 생물로는 연체동물인 앵무조개가 있다. 앵무조개의 바늘구멍 눈에 난 구멍 은 비교적 크기 때문에 밝게는 보이지만 상이 희미하다. 그냥 그 런 상태로 견디는 것 같다.
바늘구멍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은 초점을 맞추면 어두워지고, 밝게 하면 상이 희미해진다. 그러나 실은 초점을 맞추면서 밝게 하는 방법도 있다. 바늘구멍 눈의 입구의 구멍을 넓힌 다음 그 자리에 렌즈를 맞추는 것이다. 이런 눈을 카메라 눈이라고 한다 (그림 6-4의 4), 우리 인간의 눈은 이 카메라 눈이다.
- 시각세포에는 간상세포와 원뿔세포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간상세포는 감도가 높고, 약간의 빛에도 반응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사물을 보는 데에 편리하다. 한편 원뿔세포는 감도는 낮지만 색을 구분할 수 있다. 많은 척추동물(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의 대다수)들은 네 가지의 원뿔세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 종류의 색을 구분할 수 있다(4원색 색각). 반면에 수많은 포유류들이 원뿔세포를 두 가지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2원색 색각), 그다지 자세하게 색을 구분할 수 없다. 인간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적록 색각이상이 포유류 사이에서는 보통인 것이다. 
아마 초기 포유류 중에는 야행성인 동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뿔세포를 네 가지나 만들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원뿔세포는 감도가 낮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는 소용이 없다. 쓸모없는 것을 굳이 만드는 것은 낭비이기 때문에, 포유류는 원뿔세포를 두 종류로 줄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원숭이 중에서 원뿔세포의 종류를 다시 늘린 종이 나타났다. 세 가지의 원뿔세포를 가진 것(3원색 색각)이 진화한 것이다. 영장류의 상당수는 나무에 올라가서 생활하기 때문에 열 매나 잎을 먹는 일이 많았다. 그때 이른바 적록 색각이상인 상태 에서는 붉은 열매와 녹색 잎(혹은 잘 익은 붉은 열매와 익지 않은 녹색 열매)을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원뿔세 포의 종류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색각에서 2원색 색각으로 줄었고, 거기에서 3원색 색각으로 늘어 났다고 볼 수 있다.
색각뿐만 아니라 눈의 수도 저쪽으로 가기도 하고 이쪽으로 오 기도 한다. 우리의 조상인 척추동물은 (적어도 파충류와 포유류 가 같은 생물이었던 시기까지는 눈이 3개였다. 머리 옆에 2개, 머리 위에 1개이다. 물속에서 살았던 우리의 조상은 머리 위의 눈으로 자신보다 위쪽을 헤엄치는 적이나 먹이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칠성장어나 장지뱀(도마뱀의 일종)은 머리 위에 제3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정안(parietal eye)이라고 불리는 이 눈은 지금은 명암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 하루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쓰이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인간은 두정안이 퇴화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눈이 2개밖에 없다. 우리의 눈은 0개에서 3개로 늘었다가, 다시 2개로 준 것이다.
이처럼 진화는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거나 후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눈이 완성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상해도 사실인데 뭐, 우리의 눈은 훌륭한 완성품이야!”라고 자부할 수 있는 생물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조류일 것이다. 특히 독수리나 매의 눈은 우리의 눈보다 훨씬 더 성능이 뛰어나다.
- 생각해보면, 척추는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형태와는 상관없는 역할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구성물질에 관한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의 척추는 주로 인산칼슘으로 되어 있다. 척추뿐만 아니라 우리의 뼈나 치아도 인산칼슘으로 만들어졌다.
칼슘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경세포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근육이 수축되거나 다쳤을 때 혈액을 응고시키거나 하기 위해서는 칼슘이 필요하다.
그러나 칼슘이 필요해서 칼슘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먹는 것으 이미 때늦은 일이며, 그런 음식이 늘 주변에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차라리 몸속에 칼슘을 쌓아두는 편이 낫다. 그래서 뼈는 칼슘의 저장고가 되었다. 무엇보다 칼슘의 99퍼센트가 뼈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호르몬이 골흡수(뼈에서 칼슘을 내놓는 것)나 골 형성(뼈에 칼슘을 넣는 것)을 촉진시켜서 혈액 속의 칼슘의 농도 를 조절하고, 필요한 조직 등에 칼슘을 분배한다.
앞에서도 설명한 대로 뼈의 성분은 인산칼슘이므로, 뼈는 칼슘 이외에 인산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실제로 뼈에 영향을 주어 혈 중 칼슘 농도뿐만 아니라 인산의 농도까지 조절하는 호르몬도 있 다. 아마 5억 년도 더 전에 생긴 최초의 뼈는 인산칼슘의 저장고 였을 가능성이 높다.
- 하나의 유전자가 많은 형질에 관여하기도 하는데, 이런 유전자를 '다면발현 유전자' 라고 한다(발현이 란 DNA에서 RNA나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면발현 유전자는 한 번의 발현으로 여러 개의 형질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생물이 수정란으로부터 발생하는 과정에서 다른 시간대에 몇 번이고 발현해서 많은 형질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다면발현 유전자가 돌연변이에 의해서 변이를 일으키면 발생 과정의 다양한 단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많은 생물이 사망한다. 따라서 다면발현 유전자는 장기간에 걸쳐서 화하지 않고 보존되는 경향이 있다.
척추동물의 발생 과정 중에서 기관 형성기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다. 신기하게도 기관 형성기에는 다양성 없이 어느 척추동물이 나 발달 양상이 비슷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리에 팀은 척 추동물의 유전자 발현 자료를 대규모로 분석해서 기관 형성기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조사해보았다. 그리고 기관 형성기에 관 여하는 유전자에는 다면발현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 혔다. 척추가 생기는 시점도 이 기관 형성기이다.
어쩌면 척추가 5억 년 넘게 변화하지 않은 이유는 그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척추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다면발현 유전자가 많다는 발생상의 제약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도 척추는 우리의 몸 안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뇌가 크든 작든, 곧추선 자세를 유지하는 전처럼 사족보 행으로 돌아가든, 우리는 언제나 계속 척추동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인류가 요통에서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듯하다.
- 일본원숭이는 웅크리고 앉아서 출산을 한다. 새끼를 낳을 때에 중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끼는 얼굴을 어미가 보기에 앞을 향한 자세로 산도에서 나온다. 어미는 웅크 린 채 양손을 뻗어 새끼의 얼굴을 잡고 산도에서 나오는 것을 돕 는다. 그리고 새끼가 나오면 그대로 팔로 안아올린다.
한편 인간의 출산은 일본원숭이보다 훨씬 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산도에서 나오는 아기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싶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아기는 어머니가 보기에 뒤를 향한 자세로, 즉 등을 위로 한 채로 산도에서 나오기 때문에 만일 어머니가 아기의 얼굴을 잡아당기면 아기의 목이 뒤로 젖혀지면서 부러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누군가가 아기를 받아줄 필요가 있으며, 어머니는 그 누군가가 받아서 건네주어야 비로소 아기를 안아볼 수 있다. 
이처럼 아기를 낳는 방법은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서는 생물학적인, 즉 인류 공통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출산은 수십만 년 전부터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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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 쾌락 자체는 현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힘이 전혀 없다. (.....) 행복은 결코 목표가 되면 안 되고,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 없으며 단지 결과일 뿐이다.
이로부터 빅터 프랭클은 중요한 사상을 전개했는데, 그것은 그가 발전시킨 실존 철학적 개념의 핵심을 이룬다.
이제부턴 '내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고 [물어선 안 되고]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 프랭클은 삶이란 우리가 대답해야 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에 답변할 때에만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빅터 프랭클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에 대답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진 도구로 적극적인 행위와 타인을 향한 애정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함한) 아름다운 감동의 체험을 꼽았다. 그러면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한 사람에게는 사랑받 은 체험(경험을 포함)이 남아 있고 행동을 초월해 세계를 수동적으 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자살을 시도하다 구조돼서 생명을 건진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자기 머리에 총을 쏘려고 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려 했다고요. 당시는 때늦은 밤이었고 전차도 끊 긴 터라 그는 택시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택시 타는데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는 죽음을 앞둔 마당에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죽기 직전 돈을 아까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살을 결심한 사람에겐 무의미해 보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삶 속에서 행복을 기대하는 인간의 이러한 자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1861~1941는 어느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잠들어 꿈을 꾸었습니다.
삶은 기쁨인 듯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보았지요.
삶은 의무였습니다. 
나는 일했고 이제는 알아요. 
그 의무가 기쁨이었다는 걸
- 이제 우리는 인생의 의미에 관한 물음이 잘못됐다는 것도 압니다. 흔히들 질문받는 것처럼 질문한다면 말이죠.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물을 수 없고 - 인생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 답변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대답해야 하는 자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물음, 생사의 문제에 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삶 자체는 질문을 받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존재는 모두 인생에 대답하는 것, 책임지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생각에서 보면 미래는 있건 없건 우리를 더는 놀라게 하지 못합니다. 현재가 전부이고, 현재야말로 끝없이 새로운 삶의 물음을 감추고 있기 때문 입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 우리에게 닥치는 운명은 좋든 싫든 반드시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동으로는 인내로는 더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란 없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이 운명을 바꾸거나, 필요하다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우리는 불행을 겪으면서 내적으로 성장할 뿐입니다. 또 시인 횔덜린Friedrich Holderlin, 1770∼1843 이 '불행에 발을 내디딜 때 더 높이 우뚝 서네' 하고 노래한 의미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라. 그리고 지금 하려는 행동이 첫 번째 생에서 잘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라!!
- 삶 자체는 질문받는 것, 대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삶의 현존을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과된 것입니다. 그것은 매 순간의 과제입니다. 이로부터 삶은 힘들수록 더욱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과제를 찾는 등반가 같은 운동선수는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만듭니다. 절벽에서 등반가는 오르기 어려운, 더 힘든 '변수'를 발견할 때마다 얼마나 희열을 느끼는지 아십니까! 여기서 우리가 또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종교인은 삶의 감정, '존재의 이해 안에서 삶을 과제로 이해하는 사람들보다 한 걸음 더 멀리 내딛 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 경건한 사람은 과제를 대할 때 자신에게 과 제를 내주거나 자신을 과제 앞에 세운 절차로 받아들입니다. 종교인은 삶을 거룩한 사명으로 체험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인생의 가치에 관한 물음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헤벨Christian Friedrich Hebbel, 1813∼1863 의 말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이란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기회다!!”
- 한번은 수용소에서 제가 어린 시절에 알던 여성과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몹시 비참한 상태로 위독했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기 며칠 전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 이곳으로 데려온 운명에 감사해. 이전에 여유로운 중산층의 삶을 살 때는 심미적 열망이 있긴 했어도 전혀 진지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을 겪었지만 행복해. 이젠 모든 것에 진지 해졌고, 난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 줄 수 있고, 보여 줘야 하니까.” 
이 말을 할 때 그녀의 표정은 전에 알던 모습보다 훨씬 더 밝았 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인 릴케가 모든 인간에게 바랐거나 모든 인 간을 위해 소원했던 것, 자신의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이 그녀에겐 가능했습니다. 삶 전체에 죽음을 의미 있게 삽입하는 것, 죽어 가면 서도 인생의 의미를 충족하는 것, 그것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삶의 전체 의미 안에서 죽음의 유의미성을 그대로 보도록 시각을 전환함으로써, 병들고 죽어 가는 순간도 단순히 잃는 것과 얻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데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를 거의 모두 견디어 낸다. (니체)
‘왜’는 삶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는 강제 수용소 생활을 매우 힘들게 했던 삶의 조건들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왜, 무엇 때문 에’와 관련해서만 견딜 수 있었습니다.
- 책임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백하는 일은 어렵습니 다. 책임에 그리고 삶에 '예'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 갖 어려움에도 '예'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독일 바이마르 근교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은 “그럼에도 우리는 삶에 '예 라고 말하려 하네”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들이 노래할 때는 단지 노 래만 부른 게 아니라 많은 것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수용소에 있는 수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조건에도 그것을 행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 로 말할 수 있는 내외적인 조건 속에서 말입니다. 이전과는 좀처럼 비교할 수 없는 지금의 평온한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할 수 는 없을까요? 삶에 '예'라고 말하는 것은 온갖 상황에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 온갖 상황에서 가능하기도 합니다.
- 우리는 가능하다면 이 운명을 바꾸거나, 필요하다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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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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