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노트

경제 2021. 2. 17. 19:51

이 책은 제목처럼 책이 아닌 노트다. 요즘같이 증권사별 트레이딩 시스템이 발달하여 매수/매도 실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결과를 휴대폰이나 컴퓨터에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매매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의 구성과 사용법을 보는 순간 '아 투자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선 제일 처음에는 일반적인 업무용 노트처럼 달력이 나와 있다. 다만, 월별 주요 증시관련 이벤트와 주목해야 할 이벤트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업무수첩과 다른 점이다. 그리고, 월별로 매년 반복되는 테마 및 관련주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음으로 산업별 테마와 그와 연관되는 산업 및 관련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연간 주요 주식매매의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다음부터다. 이제는 무언가 직접 공부해서 기록해야 하는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상한가 분석, 테마정리, 섹터분석, 증권사 리포트 및 추천주 정리, 주차별 관심종목, 뉴스분석, 시장현황, 기업분석으로 이어진다. 이는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관련된 사항별로 독자가 직접 공부하고 분석하면서 기록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한 분석을 행하면서 비로소 매매일지를 작성할 수 있다. 매매일지는 매수/매도시 종목, 날짜, 매수/매도 근거 및 목표가와 손절가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단순하게 주위에서 권유한다해서 무턱대고 사지말고, 자신만의 논리를 세워가면서 매매를 진행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책의 서문에 나온대로 세상에 잃어도 되는 돈은 없다. 특히 월급이나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아껴가면서 투자자금을 모아 주식을 매매하는 직장인,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주식투자에서도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세워나가는 투자자만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식투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주린이들과 주식을 오래 했지만, 성급하게 매매만 반복하는 초보투자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지원을 통해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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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리학

심리 2021. 2. 6. 22:38

- 비교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그루밍, 가십, 그리고 언어의 지하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에서 가십이 영장류의 유산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인간은 가십에 뛰어난 영장류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가십을 사실이 아니거나 근거 없는 험담 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가십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 그가 선하거나 악하거나, 진실하거나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가십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부분적인 이유는 가십이 우리가 개인적 으로 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내면적인 문제를 알려주는 거대한 무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거짓말하는 사람의 태 도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적용된 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에 대해 갖고 있는 이론은 틀린 이론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론이 우리를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이보다 덜 명확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인 작용을 이해하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론 없이 사람들을 대하기보다는 비록 틀린 이론이라고 해도 그들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내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행동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 아이디어, 생각, 상상, 기억 같은 정신적인 개체들은 실체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한다는 피 아제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미취학 아동들은 정신적인 개체 를 실재하는 물리적인 물건으로 보는 “현실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피아제는 이 아이들은 꿈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사진이고 생각은 외적 언어이거나 은밀한 언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피아제는 자신의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예시와 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피아제의 주장은 틀렸다. 3세 아동들도 개를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개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현대의 연구들은 3세와 4세 아동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개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고 주장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이들은 정신적인 개체(개에 대한 생 각)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고 외적으로 볼 수 없고 은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베넷과 다아시 씨를 생각해 보자.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영국 역사책을 읽는 것만큼 영국 섭정 시대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스틴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옷을 입고 섭 정시대의 행동과 대화를 모방하는, 오스틴 애호가들을 위한 웹사이 트와 클럽도 있다. 2013년에 출간된 《제인 오스틴처럼 말하고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사는 방법: 더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안내서 How to Speak Like Jane Austen and Live Like Elizabeth Bennet: Your
Guide to Livelier Language and a Lovelier Lifestyle》라는 책도 있다.
이것은 성인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정신적인 이상 행동이 아니다. 아이들이 상상의 친구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상상의 놀이능력이 성인들에게 확장된 것이다. 이것은 건전하고 통찰력을 제공하는 허구이다. 허구가 실제 삶의 진실을 고양시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이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우리에게 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안내한다. 허구적인 사고는 어른들의 통찰력을 이끌어 내고 피어나게 하는 아동기의 마음이론의 발명품이다.
- “나는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계속한다. 그리고 때때로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 (스티븐 호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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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역사 2021. 2. 6. 22:37

- 약 3000만 년 전에 북동아프리카 지하에서 뜨거운 맨틀 기둥이 솟아올랐다. 이 때문에 땅덩어리가 약 1km나 위로 거대한 여드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 부풀어 오른 돔 위를 지나가는 대륙지각 껍질이 길게 늘어나면서 얇아지다가 결국 일련의 열곡들 가운데에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생겨났는데, 동쪽 갈래는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말리를 지나가고, 서쪽 갈래는 콩고를 지나 콩고 와 탄자니아 국경을 따라 뻗어 있다. 지구를 가르는 이 과정은 북쪽에서 더 강렬하게 일어났는데, 지각에 생긴 긴 상처를 따라 마그마가 솟아올라 새로운 현무암 지각이 생겨났다. 그러고 나서 이 깊은 열곡에 물이 채워져 홍해 가 생겨났다. 또 다른 열곡은 아덴만이 되었다. 해저 확장 열곡들은 아프리카의 뿔(아덴만 남쪽에서 아라비아해로 돌출된 동아프리카의 반도 지역) 일부를 떨어져나가게 해 새로운 판인 아라비아판을 만들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와 홍해와 걸프만이 만나는 Y자 모양 지역은 삼중 교차점이라 부르는데, 이 교차 지점 중심에 아파르 지역이라는 삼각형 모양의 저지대가 에티오피아 북동부와 지부 티와 에리트레아를 가로지르며 뻗어 있다. 이 중요한 지역은 나 중에 다시 다룰 것이다.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에티오피아에서 모잠비크까지 수천 킬로미터나 뻗어 있다. 그 아래에서 마그마 기둥이 계속 솟아오르기 때문에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아직도 양쪽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판들의 확장' 과정은 단층을 따라 전체 암석판에 균열을 일으켜 암석판을 절단시킨다. 그리고 양 측면이 밀려 올라가 가파른 경사면이 생기고, 그 사이의 블록은 아래로 가라앉아 골짜기 바닥이 된다. 550만~370만 년 전에 이 과정을 통해 현재 와 같은 동아프리카 지구대 지형이 만들어졌다. 해발 약 800m 지점에 넓고 깊은 골짜기가 지나가고, 양 옆에는 산맥이 우뚝 솟 아 있다.  이러한 지각 융기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높은 산맥이 가져온 한 가지 주요 효과는 대다수 동아프리카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인도양에서 습기를 많이 머금고 불어오는 공기 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지형 때문에 더 높은 고도로 상승하다 가 냉각되면서 응결해 해안 지역에 비를 뿌린다. 이 때문에 내륙 지역은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기후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비 그들(in shadow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와 동시에 동아프리카 지구 대의 고지대는 중앙아프리카 우림 지역의 습한 공기가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한다.이러한 판들의 활동 -히말라야산맥 생성, 인도네시아 해로 봉 쇄, 특히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높은 산맥 융기 은 동아프리카 지역의 기후를 건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동아프 리카 지구대의 생성은 기후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생태계를 변 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연 경관까지 변화시켰다. 무성한 열대 숲으로 뒤덮여 있고 균일하게 편평한 지역이던 동아프리카는 고 원과 깊은 골짜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울퉁불퉁한 산악 지역으 로 변모했고, 식생도 운무림에서 사바나와 사막 관목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게 되었다. 거대한 열곡은 약 3000만 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했지만, 융기와 기후의 건조화는 대부분 지난 300만~400만 년 동안 일어났 다. 우리가 진화한 것과 같은 시기인 이 기간에 동아프리카의 풍경은 〈타잔)의 무대에서 〈라이언 킹>의 무대로 변모했다. 나무 에서 살아가던 유인원으로부터 호미닌의 분기를 촉진한 주요 요 인 중 하나는 바로 장기간 지속된 동아프리카의 건조 기후와 그 로 인해 숲 서식지가 감소하고 쪼개지거나 사바나로 변모해간 환경 변화였다. 또한 건조한 초원 지역의 확대는 대형 초식 포유류, 즉 사람이 사냥할 수 있는 영양과 얼룩말 같은 유제류의 번성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요인만으로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판의 활동으로 생겨난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숲과 초원, 산맥, 가파른 경사면, 언덕, 고원과 평원, 골짜기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 바닥의 깊은 민물 호수 등 다양한 지형들이 인접해 나타나면서 아주 복잡한 환경이 되었다. 이 모자이크 환경은 호미닌에게 다양한 식량원과 자원과 기회를 제공했다.
- 최근에 극심한 기후 변동이 일어난 세 시기는 270만~250만 년 전, 190만~170만 년 전, 110만~90만 년 전이다. 화석 기록을 살 펴보던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호미닌 종(대개 뇌 용량 증가와 연관이 있는)이 출현하거나 멸종한 시기는 바로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가 요동한 이 시기들과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인류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190만~170만 년 전의 기후 변동 시기에 일어났는데, 이 시기에 7개의 주요 호수 분지 중 5개가 물로 채워졌다 말라붙는 일이 반 복적으로 일어났다. 바로 이 시기에 호미닌 종수가 정점에 이르렀으며, 뇌 용량이 극적으로 증가한 호모 에렉투스도 이때 나타났다. 우리가 아는 호미닌 15종 중에서 처음에 출현한 12종이 이 세 가지 기후 변동 시기에 나타났다. 게다가 제각각 다른 도구 기 술 올도완 공작, 아슐리안 공작, 무스테리안 공작 단계의 발달 과 확산이 일어난 시기도 극단적인 기후 변동 시기와 일치한다. | 그리고 기후 변동 시기들은 우리의 진화를 결정하는 데 중요 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호미닌 종을 태어난 곳에서 떠 나 유라시아로 이주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장에서 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 전체로 확산할 수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볼 테지만, 그 전에 호미닌을 아프리카 밖으로 내몬 조건들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일어난 기후 변동에서 생겨났다.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는 큰 증폭기 호수들이 물로 채워지고 여분의 물과 먹이를 구할 수 있어 인구가 급증한 반면, 그와 동시에 나무가 늘어선 지구대 어깨 부분에 해당하는 서식지 공간이 줄어 들었다. 이 때문에 세차 운동의 주기에 따라 강수량이 많은 단계 로 접어들 때마다 호미닌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관을 따라 이동하다가 결국에는 동아프리카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습한 기후는 또한 호미닌을 나일강 지류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시나이반도와 레반트 지역의 푸르른 회랑을 지나 유라 시아로 건너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모 에 렉투스는 약 180만 년 전의 기후 변동 시기에 아프리카를 떠났고, 결국에는 멀리 중국까지 퍼져갔다. H. 에렉투스는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해갔고, 동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H. 에렉투스 개체군은 결국 30만~20만 년 전에 현생 인류로 진화했다.
-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모든 지구 과정들의 특별한 조합이 만들어낸 존재이다. 땅속에서 솟아오른 마그마 기둥 때문에 지각이 부풀어 올랐고, 그 결과로 우리 영장류 조상이 살던 비교적 편평하고 숲이 우거진 서식지가 메마른 사바나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단순히 건조한 지역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전체 자연 경관 은 가파른 단층 절벽과 용암이 굳어서 생긴 산등성이가 이리저리 뻗어 있는 기복이 심한 지형으로 변했다. 이곳은 갈기갈기 쪼개진 다양한 서식지들이 복잡한 모자이크를 이루어 존재하는 세계였고,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해갔다. 특히 동아프리카에서 지각을 확장시킨 판들의 활동으로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갈라지면서 비를 붙들어 쏟아지게 하는 거대한 벽들과 뜨거운 골짜기 바닥으로 이루어진, 이곳만의 독특한 지형이 생겨났다. 지구의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에 일어난 우주적 변화는 주 기적으로 지구대 바닥에 있는 분지들을 물로 채웠는데, 증폭기 호수들은 사소한 기후 변동에도 급격히 반응함으로써 이 지역에 서 살아간 모든 생물에게 강한 진화 압력을 가했다. 호미닌이 살았던 이 고향의 독특한 환경이 적응력과 재주가 뛰어난 종의 발달을 견인했다. 우리 조상은 갈수록 지능에 더 많이 의존하고 사회적 집단을 이루어 협력하게 되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이 다양한 자연 환경이 호미닌을 진화시킨 요람이었고, 거기에서 털이 없고 수다스럽고 자 신의 기원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똑똑한 유인원이 나타났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농업을 발전시키고 도시에서 살고 문명을 건설하게 한 지능과 언어, 도구 사용, 사회 학습, 협력 행동)은 이러한 극단적인 기후 변동이 낳은 결과이자,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특별한 환경 이 만들어낸 것이다.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환경의 산물이다.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와 판들의 활동이 낳은 유인원 종이다.
- 현재 우리는 기온이 비교적 높고, 육지를 덮은 얼음이 줄어들어 그 결과로 해수면이 높아지는 간빙기에 있다. 하지만 지난 260만 년 동안의 평균 조건은 현재보다 훨씬 추웠다. 아마도 여러분은 박물관의 전시물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마지막 빙기 때 세상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대륙 빙하가 북반구 대부분을 뒤덮고, 털매머드가 툰드라 비슷 한 곳을 걸어 다니고, 검치호가 그런 털매머드를 공격하고, 털가죽을 입은 구석기 시대 인류가 돌을 매단 창으로 사냥을 하던 시절이었다.하지만 이것은 최근의 지구 역사에서 일어난 많은 빙기들 중 마지막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60만 년 동안 빙기는 40~50번이나 있었는데, 갈수록 그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기온은 더 내려갔다. 사실, 제4기는 지구 기후가 예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는데, 혹독한 빙기와 따뜻한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거대한 대륙 빙하가 주기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거듭했다. 빙기는 평균적으로 8만 년 동안 계속되고, 빙기들 사이의 간빙기는 그보다 훨씬 짧은 1만 5000년 정도만 지속된다. 1만 1700년 전 부터 시작된 홀로세(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 충적세沖積 世 또는 현세現世라고도 한다)처럼 각각의 간빙기는 기후가 다시 빙기 로 돌아가기 전의 짧은 휴식기에 지나지 않는다.
- 산맥 생성과 그에 잇따른 침식으로 일어난 대기 중 이산화탄소 감소, 남극 대륙을 남극점 위에 고립시키면서 파나마 지협을 만들어 해류의 패턴을 변화시킨 판들의 활동, 대부분의 육지를 한쪽 반구로 몰아넣은 대륙 이동, 이 모든 효과들이 합쳐져 지구 를 얼음 저장고로 변화시키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260만 년 전에 북반구에 거대한 대륙 빙하가 생기는 단계까지 지구가 냉각된 것이 결정적 문턱이었고, 그러자 지구 전체의 기후가 완전히 불안정한 상태로 돌입했다. 이제 밀란코비치 주기의 작용으로 북극점 부근이 약간 냉각될 때마다 두꺼운 얼음층이 유럽과 아시 아와 북아메리카로 팽창해갔고, 대륙 빙하가 북반구의 이 거대 한 대륙들을 두껍게 뒤덮었다.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면적이 조금만 증가해도 더 많은 햇빛이 반사되어 냉각 효과가 더 커졌고, 그 결과로 폭주 과정이 시작되어 대륙 빙하가 더 넓게 팽창하면서 더 많은 바닷물을 얼음에 가두어 해수면이 낮아졌다. 신생대에 접어들어 지난 5500만 년 동안 이러한 지구의 지속 적인 냉각은 지구 자체와 우리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앞 장에서 본 것처럼 기후가 더 차갑고 건조하게 변하자 동아프리카의 숲이 줄어들면서 초원으로 변했고, 이것은 호미닌의 발달을 촉진하는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다재다능하고 지능이 높은 종으로 발달하게 한 동아프리카 지구대 증폭기 호수들의 급격한 요동은 밀란코비치 주기 중 세차 운동의 리듬이 그 원인이었다. 약 10만 년 전부터 지구의 주기들이 서서히 일치하기 시작했 다. 북반구에 여름을 가져오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지구가 타원 궤도를 도는 중에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어지는 시점과 일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북반구의 여름이 더 서늘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겨울철에 생긴 얼음이 녹지 않고 쌓이기 시작했다. 지구가 또 한 번의 빙기로 접어들면서 북쪽의 대륙 빙하가 성장했고, 남쪽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 인류의 확산이 세계 모든 곳으로 빠르게 그리고 심지어 방향성을 가지고 일어났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불굴의 의지가 이글거리는, 눈살 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아프리카의 고향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지평선을 향해 과감하게 걸어가 대륙들 가장자리에 위치한 온 구석구석을 체계적으로 채워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렵 채집인 집단들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온 사방을 배회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 다. 그들은 국지적 기후 변화에 따라 추위와 가뭄을 피해 그리고 더 따뜻하고 강수량이 더 많고 식량을 구하기에 더 좋은 곳을 찾아, 계절에 따라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이동해갔다. 세대가 지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멀리 나아갔다. 예를 들면, 아라비아반도에서 남유라시아 해안을 따라 중국까지 인류가 확산해간 평균 속도는 1년에 0.5km도 안 되었다.
- 인류가 전 세계로 확산해간 사건이 마지막 빙기의 혹독하게 추운 기후 속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얼음 저장고 환경 덕분이었다. 북쪽 대륙 빙하가 성장하면서 바다에서 다량의 물을 흡수한 덕분에 해수면이 낮아져 광대한 대륙붕 지역이 마른 땅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마른 땅을 걸어 인도네시 아로 건너가고, 얕은 바다를 건너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고, 베링 육교를 지나 아메리카로 건너갈 수 있었던 건 바로 빙기가 가져다준 조건 덕분이었다. 또한 낮은 해수면은 살아갈 육지 면 적이 더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2500만 km2의 땅이 새로 생겼 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북아메리카와 거의 비슷한 크기이다.
- 분명하게 설정된 천연 국경과 비교적 작은 면적 덕분에 영국 은 봉건 영주들이 지배하던 영지들을 일찍 통일해 단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 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의회 제도 확립에 이르기까지 영국이 전제 군주제로부터 더 균형 잡힌 민주주의 제도로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데에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상대적 안전성이 큰 도움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방어해야 할 육상 국경이 없는 영국은 유럽 대륙의 경쟁국에 비해 군사비 지출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에 해군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는데, 영국 해군은 단지 국가를 방어하는(1805년에 프랑스와 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영국을 침공하려던 나폴레옹의 꿈을 수장시킨 트라팔가르 해전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데에만 몰두한 게 아니라, 에스파냐와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대체해 해상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외 식민지를 방어하고 상업적 이익과 교역로를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간빙기는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조건이 특징이다. 실제로 지난 1만 1000년 동안 지속된 홀로세 간빙기는 지난 50만 년 사이에 따뜻한 기후가 가장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된 시기였다. 그리고 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었을 마지막 빙기 이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전 지구적으로 작용한 효과였다. 전 세계 각지의 문화들에서 거의 동시에 농업이 발달한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안정적이고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은 조건은 큰 낟알이 열리는 초본 식물을 믿을 수 있게 생산하는 지역들에서 사람들이 광범 위한 지역을 배회하며 살아가는 대신에 선별된 일부 종들을 직 접 재배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는 동기가 되었을 수 있다. 간빙기 는 농부에게 필수 조건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 우리가 영장류로 진화하고 수렵 채집인으로 발달한 과정은 속 씨식물의 열매와 덩이줄기와 잎에 의존해 일어났다. 우리가 채 택한 농업 또한 거의 전적으로 속씨식물에 의존했다. 곡류는 속씨식물이다. 사실, 우리가 수확하는 곡물은 식물학적으로 초 본 식물의 열매이다. 초본 식물이 존재했다는 최초의 증거는 약 5500만 년 전에 생긴 화석에서 발견되지만, 신생대 내내 지구가 지속적으로 냉각되고 건조해짐에 따라 2000만~1000만 년 전에 초본 식물이 지배하는 생태계가 세계 곳곳의 많은 지역에 생겼 다. 따라서 우리의 진화를 이끈 요인은 단지 동아프리카가 건조 한 기후로 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길들임으로써 역사 를 통해 문명들을 먹여 살린 곡식들이 된 식물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조건은 바로 지구 전체적인 냉각화와 건조화 과정이 만들 어냈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식물은 대부분 여덟 가지 속씨식물과 중 하나에 속한다.
- 놀라운 사실은 우제류와 기제류가 영장류와 함께 모두 5550만년 전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진화적 분화를 통해 약 1만 년 이내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중에 동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될 우리 조상들과 가축화와 문명의 발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동물 집단들이 모두 지구의 역사에서 눈 깜짝할 순간에 해당하는 같은 시기에 출현했다. 그리고 이 중요한 APP 포유류들의 급속한 출현을 촉발한 것은 세계 평균 기온 이 급격히 치솟은 발작적 사건이었다. 세계 기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따뜻해진 사건은 팔레오세와 에오세를 구분하는 경계에 해당하는 시기에 일어났으며,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 Palaeocene-Focene Thermal Maximum, 줄여서 PETM이라 부른다. 지질학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인 1만 년 미만의 시간에 엄 청난 양의 탄소(이산화탄소와 메탄)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온 실 효과가 크게 증가해 세계 평균 기온이 5~8°C나 급상승했다.  이러한 환경 급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생태계들이 크게 변하긴 했지만, 백악기 말이나 페름기 말에 일어난 것과 같은 규모의 대멸종은 일어나지 않았다. 열대 지역의 환경이 극지방까 지 확대되면서 활엽수와 악어와 개구리가 극지방에서도 번성했 다.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는 유공충이라는 일부 심해 아메 바를 사라지게 했는데, 이들은 따뜻해진 수온과 심해에서 줄어 든 산소에 견뎌낼 수 없었던 반면, 와편모충류 같은 플랑크톤은 햇빛이 환하게 비치고 따뜻한 대양 표면에서 크게 불어났다.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 같은 전 지구적 환경 교란은 많은 동물에게 급속한 진화를 촉진했는데, 특히 온도 급상승은 새로운 APP 포유류 목들의 출현에 중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이 티베트 고원을 지배하려고 하는 데에는 중요한 전략적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군사적 이유 때문이다. 인도가 티베 트 고원을 차지해 문자 그대로 중국 심장부가 내려다보이는 요 지를 차지하고, 그와 동시에 그곳을 그 아래의 평원을 침공하는 전진 기지로 삼을 가능성을 중국은 좌시할 수 없었다. 설사 인도 가 티베트 고원을 점령하지 않더라도, 만약 티베트에 정치적 자 치를 허용한다면, 티베트 정부의 허락을 받아 인도가 그곳에 군 사 기지를 건설할 가능성이 있어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는 티베트 고원이 공급하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자원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물이다.티베트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이며, 이곳에 있는 수 만 개의 빙하에는 북극 지방과 남극 대륙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서 가장 많은 빙하 얼음과 영구 동토층이 있다. 그래서 이 높은 고원은 지구의 세 번째 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빙하와 눈에서 녹은 물은 황허강, 양쯔강, 메콩강, 인더스강, 브라마푸트라강, 살윈강을 포함해 동남아시아 전제로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는 큰 강 10개의 원류가 된다. 이 근 강들은 모두 산에서 침식된 엄청난 양의 퇴적물도 실어가 주변의 범람원과 논을 기름지게 만든다. 따라서 티베트 고원은 전체 대륙 지역의 급수탑 역할을 하는 데, 소중한 자원을 저장하고 이 강들을 따라 그것을 분배하면서 2억 명 이상의 사람에게 식수와 관개용수, 수력 발전 용수를 공 급한다. 중국이 성장하는 인구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이곳을 확보하려는 이유는 풍부한 구리 광석과 철광석뿐만 아니라 방대 한 양의 민물 저장고 때문이다.
- 북해의 자연은 현대 세계를 만드는 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저지대 국가들인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북유럽 평원의 편평한 해안선에 자리잡고 있는데, 13세기부터 네덜란드인은 바다와 습지에 새로운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물을 빼 내는 데 풍차를 사용했다. 사실상 이들은 빙기의 도거랜드 일부를 복구한 셈인데, 이곳은 해수면 상승으로 다시 물속으로 잠겼 던 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을 개간하기 위해 제방과 풍차를 건설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공동체의 자원을 공유 함으로써 그 비용을 댈 수 있었다. 필요한 자금은 지역 교회나 의 회가 주민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 모았고, 새로 개간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얻은 이익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곧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거대한 계획에 자금을 대기 위한 채권에 잉여 자금을 투자하게 되었고, 이것은 다시 신용 대출 시 장을 크게 활성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자연 환경의 요구와 바 다를 관리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네덜란드는 자본주의자들의 땅이 되었다. 이 시스템은 자연히 17세기에 국제 통상으로 옮아갔다. 지역의 풍차 건설에 필요한 주식을 사던 행위에서 향료 제도로 가는 교역선에 자금을 대는 행위로 옮겨가는 데에는 아주 작은 발걸음만 내디디면 되었다. 어떤 계획에 드는 전체 비용을 작은 지분 들로 쪼개는 관행은 투자자들의 위험을 분산시켜 주었다. 여러 항해 계획에 돈을 조금씩 나누어 투자하면, 설령 배 한 척을 잃더 라도 과도한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돈을 꽁꽁 숨겨두는 대신에 투자를 하도록 자극했고, 그러자 대출금에 대한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모험적 사업에 필요한 자본 비용이 낮아졌다. 네덜란드인은 또한 선물 시장 개념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크게 개선했다. 
- 지중해는 아프리카판이 계속 북쪽으로 밀고 올라옴에 따라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지중해 북쪽과 남쪽 해안선에서 나타나는 지질학적 차이는 이러한 판의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중해 남쪽 해안선은 비교적 반 반하고 천연 항구가 별로 없는데, 아프리카판이 아래쪽으로 기 울어지면서 유라시아판 밑으로 들어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러한 충돌의 결과로 지중해 북쪽 해안선에는 산맥이 많다. 여기에 판의 침강과 지금이 해수면이 높은 간빙기라는 조건이 결합해 해안선이 점점 물밑으로 잠기는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섬과 갑, 만과 함께 천연 항구가 풍부한 지중해 북해안의 매 우 복잡한 구조는 이렇게 자연 지형이 물에 잠기면서 나타난 결 과이다. 이 기본적인 판의 활동은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해상 활동 문화들에 큰 이점을 가져다주었고, 청동기 시대부터 현재까 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홍해는 아프리카 지각 아래에서 거대한 마그마 기둥이 솟아오를 때 지표면을 갈라지게 한 Y자 열곡계의 세 가지 중 하나이다. 남쪽 가지인 동아프리카 지 구대는 우리가 종으로 진화하는 무대를 마련한 반면, 북서쪽의 더 깊은 균열은 아라비아 반도를 아프리카에서 떼어냈고, 길이 약 2000km의 이 균열에 물이 흘러들면서 홍해가 생겨났다. 
아라비아반도는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데, 북쪽의 좁은 힘줄 시나이 사막을 통해서만 붙어 있고, 홍해 가 넓어짐에 따라 아라비아 블록은 동쪽으로 돌면서 유라시아판 남쪽 가장자리에 충돌했다. 그 결과로 이란에서 자그로스산맥이 솟아올랐고, 지각이 침강하면서 쐐기 모양의 전면 분지가 생긴 이 산맥 기슭을 따라 인도양의 물이 흘러들어와 페르시아만이 생겼다. 홍해와 페르시아만에서 인도로 가는 최초의 교역로는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100년경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상인들이 여름에 남서풍 계절풍을 이용해 불 과 몇 주일 만에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곧장 인도양을 가로질 러 인도 서해안으로 갔다가 계절풍의 방향이 반대로 바뀌는 계 울에 되돌아오는 방법을 발견했다. 지구의 대기 패턴에 나타나는 이 특징을 활용하면서 유라시아 전역에서 해상 교역이 급증했다. 하지만 7세기 말에 이슬람 세력이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를 정복하자, 유럽인 항해자 들에게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관문이 닫히고 말았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슬람 상인의 다우(큰 삼각돛을 단 아랍인의 배)와 대상이 아시아를 지나는 세 갈래의 큰 동서 교역로를 지배했다. 세 교역 로는 홍해와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을 건너는 두 갈래의 해상로 와 중앙아시아를 지나가는 실크 로드였다. 이것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신드바드의 세계였는데, 신드바드는 바그다드에서 상품 을 싣고 바스라로 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페르시아만을 내려가 는 모험 항해를 일곱 차례나 한 상인이다.
- 이슬람 세력이 이 교역로들을 지배하기 이전에 인도는 스트라본과 프톨레마이오스같은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홍해의 통행로가 막힌 이후에는 그 위치에 대한 지식이 점차 희미해져 전설에 가까운 수준으로 변하고 말았다. 8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유럽인이 다시 인도양을 항해하기까지는 이후 거의 1000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렇게 했을 때, 유럽인은 동남아시아에서 지중해 못지않게 활기 찬 교역망을 발견했다.
- 미국의 지질도를 살펴보면, 파란색 카운티들의 패턴이 8600 만~6600만 년 전의 백악기 후기에 퇴적된 지표면 암석의 띠를 따 라 구부러지면서 뻗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표면에 노출된 백 악기 암석들로 이루어진 비교적 좁은 이 띠는 우뚝 솟은 애팔래치아산맥을 포함해 북쪽 내륙의 더 오래된 암석들을 빙 돌아 뻗어가다가 더 최근에 생긴 퇴적암 밑으로 들어가면서 남쪽의 땅속으로 사라진다. 
- 오늘날보다 기후가 더 따뜻하고 해수면도 훨씬 높았던 백악 기 동안에 오늘날의 미국 땅 중 상당 부분은 물밑에 잠겨 있었다. 서부 내륙 해로라는 바다가 미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대륙 동부를 따라 애팔래치아산맥 기슭을 빙 두르고 있었다. 애팔래치아산맥에서 침식된 물질이 강물에 실려 이 얕은 바다로 흘러 가 해저에 점토층으로 퇴적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 해저 점토 층이 셰일층으로 변했다. 해수면이 다시 낮아지자 오늘날 우리 가 아는 것과 같은 미국의 윤곽이 드러났고, 지표면이 침식되자 해저에 퇴적된 이 퇴적층 띠가 연안 평야 위에 다시 드러났다. 이 셰일 기반암 띠에서 유래한 토양은 어두운 색이고 영양 물질이 많았는데, 그 물질이 원래 산맥에서 침식된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 벨트 Black Belt 라는 용어는 원래는 앨라배마주와 미시시피주를 지나가며 뻗어 있는, 농업 생산성이 높은 독특한 색의 이 띠를 가리켰다. 백악기의 셰일에서 유래한 어두운 색의 이 비옥한 토양은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이상적이었는데, 특히 목화를 재배하기에 좋 았다.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목화를 옷으로 만드는 과정이 가속 화되면서(목화 섬유를 씨에서 분리하고 실로 자은 뒤에 천으로 만드는 과정이 기계화됨으로써) 목화 수요가 크게 치솟자 목화는 중요한 환 금 작물이 되었다. 하지만 목화 재배는 매우 노동 집약적인 일이 었다. 탈곡기를 사용해 식물 줄기에서 낟알을 쉽게 훑어낼 수 있는 곡물과 달리 초기에 목화를 재배할 때에는 목화솜이 붙은 고투리를 일일이 사람의 민첩한 손가락으로 떼어내야 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부터 남부 주들에서는 그 노동력을 노예들이 제공했다. 1830년경에 노예 제도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미시시피 강 주변 지역에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1860년경에는 앨라배마 주의 멕시코만 해안 지역에서 위쪽으로 그리고 조지아주까지 퍼 져갔다. 노예의 노동력을 이용한 목화 농장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블랙 벨트'라는 용어는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되었는데, 디 프사우스 Deep South(미국 남부의 여러 주를 통틀어 이르는 말. 주로 남부의 특징이 두드러진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조지아주의 네 주를 가리킨다)에서 많이 발견되는 인구 집단이 분포하는 지역을 가리켰다. 즉, 미시시피강 양안을 따라 그리고 땅 밑에 백악 기 암석층의 띠가 늘어선 곡선을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가리켰다.
- 1865년에 남부 연합이 남북 전쟁에서 패하고 남부 주들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이 지역의 인구 분포나 경제적 초 점이 갑작스럽게 변하지는 않았다. 이전의 노예들은 여전히 동 일한 목화 농장에서 일했는데, 다만 이제는 자유민 신분이 되어 소작농으로 일했다. 하지만 목화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이어 1920년대에 목화바구미가 창궐하면서 디프사우스의 경제적 부 는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 인이 남부주들의 농촌 지역에서 북동부와 중서부의 산업 도시들로 이주했는데,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에 농촌을 떠난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다수는 처음에 인구 밀도가 가장 높았던 지역들에 그대로 남았다 비옥한 토양의 역사적인 '블랙 벨트'에. 그래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블랙 벨트'는 민권 운동의 심 장부가 되었다. 1955년 12월에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버스 를 타고 가던 로자 파크스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길 거부했다. 몽고메리는 7500만 년 전에 퇴적된 백악기 암석층이 구부러지며 뻗어 있는 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하나의 점에 해당한다. 오늘날에도 미국 내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 밀도가 높은 카운티들은 거의 다 남동부 지역의 이 때를 따라 분포한다.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북부와 서부로 이주한 뒤에도 계속 남아 있는 이 인구 집단은 경제적 조수에 수백만 명이 다른 곳으로 휩 쓸려간 뒤에도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침전 잔존물과 같다. 경제적 생산성이 높았던 이 지역은 이후 산업이나 관광을 통 한 큰 발전이 일어나지 않아, 높은 실업률과 빈곤, 낮은 교육 수준, 부실한 보건 관리 등의 사회경제적 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 을 겪어왔다. 따라서 이 지역의 유권자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의 정책과 공약에 표를 몰아주는 경향을 보이면서 대통령 선거 지도에서 선명한 파란색 띠를 드러냈다. 따라서 오늘날의 정치 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역사적 농업 시스템에 내재하는 그 뿌리 와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우리 발밑의 땅속에 숨어 있는 지질 학적 구조와 연결하는 인과론적 사슬이 분명히 존재한다. 먼 옛 날 바다에 쌓인 진흙층의 띠는 지금도 우리의 정치적 지도에 새겨진 채 나타나고 있다.
- 우리가 사용하는 금속의 종류는 이처럼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급팽창했다. 오늘날의 마이크로칩에 들어가는 금속의 종류는 60여 가지나 되지만, 1990년대만 해도 20여 가지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인듐을 살펴보자. 1863년에 발견된 이 금속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항공기 엔진의 베어링을 코팅해 부식을 막는 데 쓰였다. 하지만 인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인듐-주석 산화물의 얇은 막을 스크린에 첨가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인데, 그 희귀한 성질(이 금속 산화물은 투명한 동시에 전도성이 있다)이 소중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듐은 평면 TV에서부터 랩톱 그리고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터치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에 사 용된다. 이와 비슷하게 인듐보다 10여 년 뒤에 발견된 갈륨 역시 전자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는 널리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날 갈륨은 집적 회로, 태양 전지판, 블루 LED, 블루레이 디스크의 레이저 다이오드 등에 쓰인다. 이 기묘한 이름을 가진 금속들은 대부분 희토류 금속이나 백 금족 금속 중 한 집단에 속한다. 같은 집단에 속한 금속들은 화학적으로 서로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같은 광물 속에 함께 들어 있어 분리 과정에서 동시에 추출될 때가 많다. 이 20여 종의 금속은 현대 기술 시대를 정의하는 원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중 80% 이상은 1980년 이후에야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 다. 이 금속들이 현재의 기술 시대에서 핵심 요소라면, 현재의 탄 소 경제에서 탈피하게 될 미래에는 더욱 중요하게 쓰일 것이다. 이 금속들은 풍력 터빈 발전기와 전기 자동차 모터, 고성능 충전 지에 필요한 작지만 강력한 자석을 제공할 것이다.  17종의 희토류 금속은 주기율표에서 여섯째 줄에 있는 '란타 넘족 원소들과 화학적 성질이 이와 비슷한 원소인 스칸듐과 이 트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희토류라는 이름은 잘못 지어 진 이름인데, 이 원소들은 실제로는 지각의 암석 속에 그렇게 희귀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단, 지각 전체에 겨우 5kg밖에 들어있지 않은 방사성 원소 프로메튬을 제외한다면), 예컨대 란타넘(란탄)은 거의 구리와 니켈만큼 풍부하며, 납보다 세 배나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희토류 금속은 금보다 적어도 200배나 더 많이 존재 한다. 문제는 희토류 금속들이 전체적으로 지각에 얼마나 많이 존재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들을 추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다. 희 토류 금속들은 화학적으로 서로 비슷해 같은 종류의 광물에 함께 섞여 산출되기 때문에 각각을 순수한 금속으로 분리하기가 아주 어렵다. 더 성가신 문제는 암석 속에 들어 있는 각 금속의 최대 농도이다. 많은 금속들은 특정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풍부한 광석으로 농축되어 호상 철광층이나 세로리코(볼리비아에 있는 남아메리카의 최대 은광)의 두꺼운 은 매장층 같은 형태로 산출된다. 하지만 희토류 금속은 화학적 성질 때문에 고품질 광석으로 농축되지 못하고, 대신에 암석들 사이에 낮은 농도로 희박하게 흩어져 있다. 따라서 희토류 금속을 채굴하는 것은 대체로 경제 성이 낮은데, 금속의 가치에 비해 추출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희토류 금속을 경제성 있게 채 굴할 수 있는 지역은 제한되어 있다. 오늘날 희토류 금속은 인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적은 양이 채굴되고 있지만, 1990년 대 이후부터는 전 세계 생산량 중 대부분이 중국에서 채굴되고 있다.
- 말은 처음에 운송 목적이 아니라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가축화되었다. 소는 눈 틈에서 풀이 보이지 않으면 풀을 뜯어먹 지 않고, 양의 연약한 코는 부드러운 눈 속에 파묻힌 풀만 뜯어먹 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종은 겨울철 초원에서는 발밑에 먹이가 있는데도 그냥 서서 굶어죽기 쉽다. 반면에 말은 추운 초원 지역 에 잘 적응해 차갑고 단단하게 뭉친 눈도 발굽으로 헤치고 그 밑 에 숨어 있는 겨울의 풀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물을 마시기 위 해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본능적으로 깬다. 사실, 인간이 말을 가 축화하기 시작한 계기는 유라시아에 추운 겨울을 가져온 기후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말의 가축화는 이르면 기원전 4800년 무렵에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의 스텝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통제하고 타는 법을 터득했는데, 이것은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3장에서 보았듯이, 양과 소 같은 초식 포유류 종을 가축화하면서 우리는 풀을 영양분이 많은 고기와 젖으로 바꾸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정착 생활을 하 는 농민에게는 가축을 먹여 살릴 풀밭이 얼마 없었고, 그래서 풀 을 뜯어먹는 동물을 기르다 보면 풀밭이 금방 고갈되기 쉬웠다. 하지만 광대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가축을 몰면, 방목지를 훨씬 먼 곳까지 넓힐 수 있고 훨씬 많은 가축을 통제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원전 33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소가 끄는 일체형 바퀴 수레가 도입되면서 스텝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것- 식량과 물, 천막 등과 함께 가축을 이끌고 광대한 초원을 장기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초식성 유제류 가축과 말을 이용한 빠른 기동성 그리고 이동식 주택 역할을 하는 소가 끄는 수레의 결합으로 스텝 지역은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 대서양 삼각 무역은 값싼 목화와 설탕, 커피, 담배를 원하는 유럽인의 끝없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연결했다. 직물과 무기처럼 선진국에서 생산한 상품을 싣고 유럽에서 출발한 배들은 서아프리카 해안으 로 내려가 현지 추장들이 붙잡아온 노예와 유럽의 상품을 교환 했다. 그러고 나서 노예들을 신고 대서양을 건너가 식민지인 브라질과 카리브해와 북아메리카의 농장 소유주들에게 팔았다.* 선장들은 이 인간 화물을 팔아서 얻은 수입으로 농장에서 노예 의 노동력으로 생산한 산물을 구입했다. 노예를 실었던 선창을 식초와 잿물로 박박 문질러 씻은 뒤, 이 원자재를 가득 싣고 유럽 으로 가져가 판매함으로써 삼각 무역의 고리가 완성되었다. 배들의 정확한 항로와 각각의 기항지에서 교환하는 상품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고, 특정 해안선에서 상품을 교환하기 위해 짧게 들르는 곳들도 있었지만, 이것이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 지 유럽 본국과 식민지들 사이를 연결한 대서양 삼각 무역의 핵심 항로였다.  대서양 건너편으로 실어나르기 전에 아프리카 노예들은 공장이라 부르던 해안 요새에 가둬두었는데, 이러한 공장은 내륙에 서 잡아온 노예들을 운송하기에 가장 편리한 하구에 많이 설치 했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아프리카 중동부 지역(적도와 남위 159 사이)과 황금 해안(아프리카 서북부, 기니만에 접한 해안)을 따라 베냉 만과 기니만의 비아프라만에서 배에 실렸다. 여기에도 대기 순 환 패턴과 해류의 역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장소들에서는 남동 무역풍을 타고 남아메리카로 건너가기가 쉬웠고, 대서양을 건넌 뒤에는 브라질 해류를 타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브라질 의 커피 농장으로 가거나 북동 무역풍과 북적도 해류를 타고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농장과 앨라배마주와 캐롤라이나주의 목화 농장, 버지니아주의 담배 농장으로 갈 수 있었다. 대서양 노예 무 역은 1807년에 금지되었지만, 1865년에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나면서 노예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밀수업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그때까지 1000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이 강제로 붙잡혀 아메리카로 실려 갔는데, 많은 노예가 여행 도중에 처참한 조건 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거나 농장에서 혹사당해 일이 년 만에 죽 었다. 전체 노예 중 40%는 브라질로, 40%는 카리브해로, 5%는 훗날의 미국 지역으로, 15%는 에스파냐가 지배하던 아메리카 지역으로 실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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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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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고안하는 사람은 누구나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물건을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지적 활동은 환자에게 처방을 하는 것이나, 회사에서 새로운 세일즈 계획을 세우는 것, 혹은 정부의 복지 정책을 만드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허버트 사이먼 Herbert A. Simon, 1916-2001은 그의 1969년 저서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에서 위와 같이 디자인을 정의했다. 약 50년 후 진행될 디자인 의 진화를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최근 들어 세계의 디자이너들은 실제로 이런 복잡하고, 어렵고, 고약한 문제 Wicked Problem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디자인하다'라는 동사의 의미 역시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도안을 하는 것에서, 그 도안을 실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명확히 연결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데까지 확장되어 왔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거친 분야로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인간의 몸에 맞는 인간공학적인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사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인지심리학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고 제품이나 서 비스를 고안하는 인류학적 접근까지 왔다. 지난 수십 년간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이렇게 그 문제 해결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에 걸맞는 방법론을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왔다. 이런 변화와 확장은 이제 세계 각국의 정부에서도 받아들여져, 정부 정책이나 서비스 혁신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 노동부Ministry of Manpower는 워크패스work Pass 비자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서비스를 개선하고 싶다며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디자인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해 주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언어의 장벽을 넘어 노동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좀 더 손쉽게 이용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취지였다. 핀란드 농림부는 농업 관련 신고 서비스를 개선하고 싶다며 알토 대학교 Aalto University 정부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Government 수업을 찾아왔다. 매년 식품안전, 동물복지 등 의무적으로 제출 해야 하는 신고 서류와 농업보조금 수령을 위한 신청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농부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이 모든 과정을 전산화해 정부의 지출을 줄 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 쿨라 링을 통해 알게 된 의식ritual의 보편성과 기능성

‘쿨라 링'이란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18여 개 섬이 참여하는 선물 교환의식이다.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원을 그리며 카누를 타고 이동해 음식, 조개팔찌와 목걸이를 교환하고 전달하던 의식인데 이동거리가 무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자칫 가치가 낮아 보이는 장식품을 목숨 걸고 전달하는 이 행위가 비합리적이고 무모해보일 수도 있지만, 트로브리안드 군도인에게는 사회적 의미가 굉장히 큰 의식이었다. 장식품을 과거에 소유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쌓여 현재의 전달자를 장구한 역사의 중요한 참여자로, 또한 위험을 극복하면서 선물 전달에 성공한 존경받는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의식이었던 한편, 의식을 계속하지 않으면 명예를 잃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어, 마치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의무였다. 이 연구는 원주민들의 열정, 동기, 규범을 이해함으로써 의식의 보편성과 기능성을 밝혀냈다. 서구사회와 쿨라의 사회가 지리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원리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 인종과 지리를 막론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사회 구성 및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초석이 됐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예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생일파티에는 케이크나 축하 노래, 카드, 선물, 음식 등 당연시되는 준비와 절차가 있고, 초대되는 가족들은 대부분 이미 우리 가족을 초대했거나 나중에 자신을 초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렇게 유지되는 의무를 지키는 것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사회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 디자인 에스노그라피를 진행할 때는 상자에서 도구를 꺼내 쓴다고 여기기 보다 자기 자신이 바로 관찰 도구라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한다. 관찰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전략이나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디자인 에스노그라피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관찰하는 사람의 마인드세트, 민감함 그리고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관찰자에게 요구되는 마인드세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진짜 이야기'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에 있다. 디자인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얻은 발견점은 있는 그대로의 환경을 직접 관찰하여 얻 은 경험을 통한empirical' 결과물이다. 미리 세운 가설이나 아이디어를 뒷받침 하는 상황을 찾거나, 기존에 존재하는 이론을 바탕으로 연역적으로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둘째, 상세하게 관찰하되 넓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어떤 특정 행동 을 관찰하더라도 항상 더 큰 범주의 맥락을 찾고, 그 안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하자. 한두 번의 관찰로 멈추기보다 관찰한 내용을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다른 관찰을 진행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좀더 풍부한 맥락을 탐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판단은 일단 접어두고 경험한 것만 최대한 상세하고 풍부하게 기 술한다. 이때 관찰자의 섣부른 판단은 보류한 채 있는 그대로 기술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행동을 자신의 선입관으로 판단하게 되고, 결국 기술한 내용은 실제 사람들이 한 행동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쓰 여진 평가서가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 항상 관찰하고 있는 사회나 집단의 구성원, 즉 사용자의 입장에서 현장과 상황을 보려고 노력하자. 물론 관찰자가 완벽하게 관찰 대상의 상황을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외부자라는 생각으로 피상적인 관찰을 진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용자의 입장에 공감하 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 디자인 에스노그라피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관찰자 스스로가 결코 객관적인 관찰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인지하는 그렇지 못하든 간에 항상 어떤 관점을 통해서, 어떤 가정을 가지고 특정 현상을 바라보게 마련이다. 관점과 가정 없이 관찰한다는 것은 갓 난 아이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처음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느냐는 나중에 디자인 아이디어로 이 어지는 발견점과 통찰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부적절한 가정을 가지고 관찰 을 시작해 끝까지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관찰 과정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 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실은 무엇을 발견했어야 했는지 그 실마리도 얻지 못한 채 엉뚱한 관찰 결과물을 들고 돌 아올 수도 있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소개한 일화에서 수영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어든 이유는 수영장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수영장으로 오는 버스 시간표가 그들의 하루 일과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영장 시 설의 문제였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면 시민들이 수영장 시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불만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찰하게 될 것이다.

- 현장 기록의 시작은 사람들의 행동을 매우 근접한 위치에서 관찰하며 무엇 을 하는지 보고, 어떤 말을 하는지 듣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보다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 이다. 수년 전에 한 디자이너가 종합병원의 환자 관리 정보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호사들이 어떻게 입원 환자들의 진료 정보를 기록하고 관 리하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이 디자이너는 환자 진료 파일을 안고 병동 이 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는 간호사를 따라다니던 중, 한 간호사가 환 자 진료 기록의 귀퉁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거나 볼펜으로 깊게 눌러 자국을 내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여러 환자를 짧은 시간 안에 돌아보며 그들이 최근 어떤 진료를 받았고, 다음에 어떤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환자부터 보아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서 안쪽에 필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많은 진료 정보 중 자신이 필요한 문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여러 장의 문서 속에서 필요한 진료 기록을 재빠르게 찾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다.  이 간호사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원활히 해내기 위해 문서 귀퉁이에 정보를 표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유의 정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그를 통해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실수 없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방식이 동료 간호사들 사이에서 마치 그들만 아는 암호처럼 공유되 어서 업무를 교대할 때도 별도의 요청 없이 환자들의 진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한다.

- 감성적이고, 개인적이며,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내면에 접근하는 데 인터뷰와 디자인 에스노그라피로는 한계가 있다. 물어본다고 해서,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디자인 프로브는 사용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깊은 내면에 디자이너 가 접근할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로브는 이를 위해 인류학이나 마케팅과 같은 다른 학문 분야가 아니라 '디자인적인 표현 방법’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사용자는 그림 그리기, 이미지 콜라주, 사진 촬영, 일기 등의 활동을 수 행하면서 자신의 감성과 주관적 경험, 상상력을 표현하고, 디자이너는 암호를 풀 듯이 그 결과물을 해석한다. 그 후 디자이너와 사용자가 만나 사용자가 작성한 프로브 결과물을 함께 해석하며 그 의미를 찾아나간다. 이런 면 에서 프로브는 사용자가 단순히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기록하여 디자이너 에게 제공하는 '사용자 다이어리'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사용자 조사의 가치는 사용자의 행동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설명하느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새롭고,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이 생각을 디자이너에게 상기시켜 준 것이 프로브이다. 그동안 과학적인 방법을 차용하여 사용자 조사를 해야 했던 디자이너에게 프로브는 디자이너 고유의 기술과 시선으로 사용자와 의사소통하고 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디자인 도구 역사 에 있어 의미가 매우 크다. 디자이너가 프로브를 만들 때 명심해야 하는 것은, 각 프로젝트 고유의 상황과 목적, 사용자 그룹의 특성에 맞게 프로브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변형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이 디자인해야 하는 프로브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추어 프로브를 만드는 것은 결코 부수적 노력이 아니라 디자이너로 하여금 사용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프로브를 통해 알 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해 나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 코디자인 워크숍co-design workshop은 기존에는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람을 디자인 과정에 능동적인 참여자로 초대한다. 사용자를 비롯,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표현하고, 시각적이고 발상적인 기법들을 통해 함께 아이디어를 도출한다. 디자이너는 워크숍의 결과물 뿐 아니라, 참여자들이 의견을 공유하고 의사결정하는 과 정을 관찰하며 통찰과 영감을 얻는다. 코디자인 워크숍은 사용자가 직접 디자인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상호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다른 디자인 도구들과 차별화된다.

- 코디자인 워크숍의 목적은 최종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바로 적용할 아이 디어를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발상'을 통해 참여자가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잠재적 지식을 드러내도록 돕고, 그 과정과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다. 사용자의 발상 과정을 수월하게 하고, 그를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디자인 해결안을 구상하는 것이 전문가인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 어피니티 다이어그램affinity diagram은 프로젝트 과정 중 수집한 수많은 정보의 조각들을 다양하게 배치해봄으로써 개별로 보았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연 결점들을 찾고 새로운 통찰을 얻도록 돕는 도구다. 앞서 소개한 디자인 도구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비롯해 프로젝트와 유관한 주요 발견점, 시사점, 아이디어 등을 메모지에 문장으로 적어 팀원들과 공유하고, 이를 넓은 공간 에 펼쳐놓고 분류하며 패턴을 찾는다.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팀원들과 함께 해석, 분류, 정리하는 협력적이고 창의적인 해석 도구라 할 수 있다.

- 사용자 조사로부터 얻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현장 기록, 사진, 비디오 등 을 프로젝트와 연관해 문장으로 요약한다. 자료는 단지 자료일 뿐이다. 이 를 해당 프로젝트에 연관해 정보로, 지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접착식 메모지에 적을 것인가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데이터를 바 라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혹은 기회 요소인지, 이를 통해 내가 얻은 통찰 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여기서 어떤 테마가 두드러지는지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다. 이들의 영단어 앞자를 따서 P.O.IN.T. 분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문제 problem는 사용자 연구중 드러난 문제 상황, 사용자가 당면하는 어려움과 문제점, 구조적 제약사항 들을 의미한다. 

* 기회opportunity는 디자인 해결안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 요소들을 의미한다. 

* 통찰insight은 관찰 도중 깨닫게 된, 사용자나 디자이너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발견점들을 의미한다. 

* 필요needs는 사용자들이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의미한다.

* 테마theme는 사용자 연구 중 두드러지거나, 모은 정보 중에서 두드러지는 주제를 의미한다.

- 퍼소나persona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다양한 사용자를 실제로 관 찰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만드는 전략적 가상의 인물이다. 디자이너는 퍼소나를 만들면서 사용자에게 공감하고 디자인 영감도 얻을 수 있다. 또 완성된 퍼소나를 통해 사용자가 특정 기능이나 상황, 환경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예상해볼 수도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프로젝트 구성원이 사용 자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를 가지고 대표적인 요구사항에 집중할 수 있게 하여, 효과적인 디자인 의사결정에도 도움을 준다.

- 퍼소나의 창시자 앨런 쿠퍼Alan Cooper는 사용자 정보를 포도에, 페소나를 포도주에 비유했다. 마치 수많은 포도알이 모여서 가공되고 숙성되 어 포도주가 탄생되듯 퍼소나는 많은 사용자 정보를 수집해 전략적으로 가 장 적합한 가상의 인물을 빚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디자인 팀은 서비스나 제품이 제공해야 할 구체적인 요구사항에 합의할 수 있게 되어 디자인 제안의 초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또, 서비 스나 제품이 만족시켜야 할 다양한 퍼소나를 만들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요구사항, 핵심은 아니지만 충족하면 더 많은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요구사항 그리고 피해야 할 요구사항 등을 고려해 상세한 디자인 결정을 내 릴 수 있다. 또, 가상의 인물인 퍼소나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공유하면서 사 용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맥락에 공감하고,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다.

- 퍼소나를 두 단어로 정의하라면 '사용자 대변user representation'이 될 것이다. 퍼 소나는 그 인물의 성격과 배경, 환경 등의 묘사로 구성되는데, 가상의 이름 및 해당 프로젝트의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는 목표goal와 필요needs 그리고 그와 관련해 평소에 느끼는 불편함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좀 더 구체적으 로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동기motivation, 의도purpose, 습관 habit, 직감 intuition, 기 대wish, 희망hope, 흥미 interest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퍼소나를 만드는 방법에 왕도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퍼소나를 만들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아래의 3단계를 거친다.

첫째, 사용자 조사 실시하기 

둘째, 변인을 파악해 뼈대 만들기 

셋째, 상세 설명을 이야기로 풀어내기

- 퍼소나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퍼소나에 이름을 부여한 이유도 다시 생각해보고, 처음으로 돌아가 퍼소나가 해당 프로젝 트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실제 만나고 관찰한 사용자들의 어떤 요구를 반영 하기 위해 퍼소나를 만들었는지, 전략적인 사용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되 묻는 것이 중요하다. 퍼소나는 대변된 사용자의 목소리다. 퍼소나를 단지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능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만 사용하기보다는 사용자의 행동과 목표, 성격 그리고 그들이 느낄 어려움과 고통을 상상해보고 그들을 감동시 키기 위한 디자인을 한다는 태도를 가져보자.

- 초기 사용자 중심 디자인에서 사용자는 신체 조건을 자로 잴 수 있거나, 혹은 인지과정을 분석해야 할 대상 정도로 이해됐다. 이런 정량적 사용자 모델과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인간을 위한 디 자인 사이에는 치명적 간극이 존재한다. 퍼소나는 정성적인 가상의 사용자를 통해 영감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이 틈을 메운다.  퍼소나의 디테일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퍼소나는 수 많은 실제 사용자를 관찰한 뒤 전략적으로 구성한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 사용자 못지 않은 디테일로 퍼소나를 구성함으로써 디자이너를 비롯한 프로젝트의 유관자들이 정말 이 퍼소나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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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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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가 주어지면 기쁜 마음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그리 고 목표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오히려 원래 바랐던 목표보다 좋은 성과가 나올 때도 많다.  이런 태도의 바탕에는 후츠파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후츠파는 삶을 대하는 확고한 자세로,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고집이 세고 무례하 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적절한 후츠파 정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가족이 한데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설득할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기업가가 중요한 사업 미팅에서 이전에 없었던 창의적인 거래 방식을 제안하기까지, 후츠파는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한다. 당당하고, 용감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가 후츠파의 진정한 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곳곳에서 후츠파를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술 강국으로 우뚝 선 데는 후츠파의 역할이 컸다. 다들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국가'로 불린다는 사실은 이미 알 것이다. 아주 딱 맞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 계에서 인구 대비 스타트업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인 동시에 미국 다음으로 글로벌 기업가정신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 “석유를 찾아 중동으로 간다면 이스라엘은 들를 필요가 없다. 인재를 찾아 중동으로 간다면 이스라엘 외에는 들를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은 에너지가 없는 대신 그를 상쇄할 만큼 많은 인재를 지녔다.” (워렌 버핏)
- 이스라엘의 역사와 지정학적 조건 탓인지 사람들은 엄청 나게 효율적이고, 경각심이 높은 데다가, 대응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굉장히 혁신적이다.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고 곧장 행동에 나선다. 그 결과 삶을 살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에 재치 넘치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또한 이런 특징 덕분 에 뛰어난 기업가가 다수 배출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 들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언제 일이 터지나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 장기 계획 수립과 즉각적 상황 판단은 기업가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이지만 종종 대립되는 성향으로 판단된다. 기업가는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일단 기업을 설립하고 경영을 시작하면 계획에 없던 일이 생기기 마련 이니 조직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순발력을 발휘해 상황에 따라 적 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기업을 키우는 데는 체계적인 계획도 중요하지만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임기응변 또한 못지않게 큰 역할 을 한다. 즉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미리 생각해 두기보다 그때그때 사태에 맞춰 알맞은 대응을 내놓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무섭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컴퓨터를 활용해 예상하기 힘든 인간의 행동을 추리하는 소프트웨 어 프로그램 또한 현대적인 임기응변에 속한다. 여러 가지 면을 모두 감안했을 때, 임기응변은 순간적인 처세술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즉각적으로 결정하는 연습을 꾸준히 반복하며 임기응변 기술을 익힌다. 어떻게 보면 임기응변을 체득하는 셈이다. 하지만 당장 주어진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대응하는 전략이 주를 이루다 보니 다른 나라처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나 단체를 찾기가 어렵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몇 십 년 뒤가 아닌 내일을 생각해서 행동한다. 이스라엘 기업이 규모를 키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기업가로서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 이스라엘에서는 얄라 alla', 즉 일단 행동에 나선 후 삶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지켜보라는 표현이 있다. 열망과 열정을 가져라. 그리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라.
- 발라간은 러시아에서 유래한 단어로 이스라엘에서는 지저분함, 즉 미리 정해진 질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람들은 물론 사회 체제까지 즉흥적이다. 놀랍겠지만 이스라엘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발라간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발라간의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무질서는 혼란을 초래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스라엘의 발라간은 유연성을 발휘해 주변 상황을 수용하도록 돕는다. 놀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엄격한 규칙을 따르기보다 발라간의 태도로 열린 마음을 유지하면 변화를 수용할 여유가 생긴다. 즉 발라간은 인생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의외의 상황에 대응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유도한다. 다소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느 껴지겠지만, 혼란을 추구하는 발라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갈등과 불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단 말인가? .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지저분한 책상이 지저분한 정신을 의미한다면, 빈 책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뉴욕타임스〉의 페넬로페 그린Penelope Green 또한 아인슈타인의 의 견을 지지했다. 그린은 “지저분한 책상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 를 상징한다”며 이런 사람들이 깔끔한 일터를 유지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성과를 올린다고 주장했다. 그린은 신경심리학자 제러드 폴락 Jerrold Pollak의 말을 인용해 “완벽한 정리정돈은 인생의 예측 불 가능한 면을 부정하고 통제하려는 헛된 시도일 뿐”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 에릭 에이브러햄슨Eric Abrahamson과 데이비드 H. 프리드먼David H. Freedinan은 그들이 쓴 책 《완벽한 무질서A Perfect Mess에서 말했다.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보다 적당히 무질서한 사람, 기관, 체제로 이루어진 사회가 더 효율적이고, 탄력적이고, 창의적이고, 대개 더욱 효과적이다.” 이뿐 아니라 환경에 따른 영향을 주제로 한 선구적인 연구는 약간의 소음이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제니스 데네그리노트Janice Denegri-Knott와 엘리자베스 파슨스 Elizabeth Parsons가 이야기하길, 지저분함은 '지저분한 정신'을 의미하 지 않는다. 발라간은 오히려 더 좋은 생각을 이끈다. 데네그리노트와 파슨스가 말하길, 발라간은 “깊숙이 뿌리 내린 편견과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사회에 어떤 질서가 필요한지, 또 현재 우리가 따르는 규칙 외에 어떤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발라간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바로 진정한 기업가정신이 아니겠는가?
- 이스라엘의 유년기는 협력, 공동체 형성, 사회적 관계 유지 및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이스라엘 사회는 '패거리를 굉 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패거리라는 단어는 나 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히브리어로 패거리는 차부라(복수 로는 차부로트)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에 부정적인 느낌은 조금도 없 다. 차부라는 대부분의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린이 또는 청년의 무리를 뜻한다. 이들은 학교나 방과 후 활동, 이웃 동네에서 만나 친목을 다진다. 이스라엘에서 차부라는 아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어른이 된 후에도 종종 차부라를 통해 관계를 넓혀 나간다.
- 나는 선수 시절 9,000번 이상 슛에 실패했다. 300번이 넘는 경기에서 패배했다. 경기의 승패를 결정하는 결승샷을 놓쳐 팀이 실패한 적이 26번이나 된다. 나는 평생 실패에 실패를 반복했다. 내가 성공한 비결은 실패에 있다.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의 전설로 남은 빈스 롬바르디 Vince Lombardi 코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넘어져도 괜찮다. 문제는 다시 일어날 것인지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지에 있다.
-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지금과 같은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는 발상의 전환은 새로운 관점을 제 시한다. 위협을 도전의 기회로 보는 태도는 두려움을 완화한다. 주 어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 들은 외부의 위협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대신 문제를 정확히 인식 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력은 안보는 물론 경제 발전까지 가져왔다. 언제 테러와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이 우리를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 이스라엘에서는 군 복무 이력을 강점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군대에서 새롭게 형성한 사회적 관계망이 발돋움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이스라엘에서 군대는 사회 재통합을 유도한다. 스웨드와 버틀러의 의견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구의 70 퍼센트 이상이 군 복무가 인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으 며, 68퍼센트 이상이 이스라엘 방위군 복무 이력이 구직 성공 확률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 출신 배경이나 과거 경력과 상관없이 입대한 이상 모두 같은 동료로 대우받으니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계급이란 개인이 지닌 역량과 지휘 능력을 인정한다는 징표로 여겨질 뿐이다. 윌리엄스는 말했다. “장교를 달아도 다른 계급과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 전장에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장교는 다른 병사와 같은 식당에서 식사하고 같은 막사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스라엘 방위군의 수평적이고 비계층적인 문화는 책임을 분산하는 효과를 보인다. 군사 역사 연구가 에드워드 루트왁Edward Luttwak이 설명하길 “이스라엘 방위군은 의도적으로 고위급 군인 숫자를 적게 유지한다. 즉 명령을 내릴 장교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장교의 숫자가 줄수록 낮은 계급에 주어지는 자율성이 늘어난다.”
- 이스라엘 공군의 보고 문화를 설명하는 데 두그리 dugri'보다 적합한 히브리어 단어는 없을 것이다. 두그리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현상을 이야기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두그리를 갖춘 사람은 부정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고 명료하게 이야기한다.  두그리야말로 이스라엘 공군 보고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보고할 때는 사실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날을 떠올려 보자. 거래처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오자 동료가 묻는다. “프레젠테이션 어떻게 됐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아마 “끔찍했어요” 또는 “잘 안 풀렸어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는 감정을 나타내는 대답이다. 하지만 스스로 “내 가 무엇을 잘못했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내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답은 달라진다. 이 질문에 “끔찍했다”는 대답은 맞지 않는다. 이스라엘 공군의 보고 체계는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 일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자신을 질책하는 대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길잡이를 제공한다. “프레젠테이션을 완전히 망쳤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대신 무엇을 왜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 인지를 고민하면 아마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요점을 날카롭게 짚지 못했고, 생각만큼 일목요연하게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 새 벽 2시가 다 돼서야 잠들어 굉장히 피곤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 요한 프레젠테이션 전날에는 적어도 7시간은 꼭 자야겠다.” 이렇 게 논리적인 분석에 앞서 “끔찍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버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미래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두그리의 가장 큰 이점은 감정적인 부분은 잠시 미뤄 두고 곧장 개선점 찾기에 집중하는 데 있다.
- 영어로 임기응변, 즉 improvise는 계획하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provisus에서 파생했다. 계획에 부정형 접두사 im이 붙었 으니 improvise는 계획이 없는' 또는 준비되지 않은'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히브리어로 임기응변은 '일투르iltur'라고 한다. 이는 즉시 행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레알타르lealtar'에서 나왔다. 허술 함을 떠올리게 하는 영어와 달리 히브리어에서 임기응변은 즉흥성을 강조하며 현재에 충실한 느낌을 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 투르는 어떤 문제를 맞닥뜨려도 효율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변화하 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이 그랬 듯 자원이 부족하면 임기응변으로 결핍을 이겨 내면 된다. 이 과정 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점차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다. 자원 부족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일투르는 예정에 없이 갑자기 마주한 상황에 대처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계획에 의존하지 않고 순간에 충실하게 살며 적응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학습한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방법을 배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맹목적일 만큼 긍정적인 신념을 가졌다. 히브리어로는 이를 '이히예 베세데yiheye beseder'라고 부른다. 이히예 베세데라는 단어 뒤에는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가 있 다. 어떤 면에서 이는 우리가 이스라엘답다고 표현하는 모든 자질의 본질과도 같다.
- 복잡한 문화 현상이 모두 그렇듯, 이히예 베세데 또한 단점을 지닌다. 이히예 베세데를 핑계로 정당한 비판을 회피하고,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고, 힘든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타이 실로니 Etay Shilony 박사는 그의 책 《이스라엘리즘lycielism)에서 충분한 생 각과 고민을 거치지 않고 대충 일을 처리하는 이스라엘 조직 문화 를 언급하며 비판했다. 실로니 박사에게 이히예 베세데는 이스라 엘 기업과 정부의 무관심과 태만을 상징한다.  “이히예 베세데가 이런 부작용을 보이는 이유는 근거 없는 낙 관 때문입니다.” 페레스가 이야기하길 “뭐든 다 잘될 거라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이 다 잘되도록 행동해야죠. 제대로 노력하지도 않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내 마음이 편하려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히예 베세데를 남용하면 위험합니다. 이히예 베세데를 핑계로 책임을 분산하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이히예 베세데가 지닌 부정적인 면은 현상의 복잡성 을 증명한다. 적절히 활용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한다면 기업과 국가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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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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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대전쟁

경제 2021. 2. 6. 22:30

- 2008년 말 데이턴 근교의 GM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았고 이듬해에는 NCR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GM 자동차가 이전 한 후 비어 있던 공장은 결국 중국 푸저우福州의 푸야오 사 에 매각되었다. 중국의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인 푸야오 사는 미국에 진출해 GM 자동차의 공장을 개조하고 자동차 유리를 제조하여 미국에 공급했다. 현지 신문은 종일 푸야오 사에 관 한 부정적인 뉴스를 내보냈다. 작업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는 식의 보도였다. 이에 대해 푸야오 사 는 “시급 15달러를 주고 있으며, 이는 인도나 멕시코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항변했다.과거 GM 자동차에서 시급 35달러를 받던 데이턴 시민들은 이제 중국 기업으로부터 시급 15달러를 받으며 일주일에 두 번 자선단체에서 음식을 받아가야 자녀들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 다. 이것이 민주당 텃밭이던 미국의 내륙 지대가 공화당과 트 럼프를 지지하게 된 이유다. 트럼프 본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 "나는 전쟁의 진정한 기원이 아테네의 부상으로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킨 데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기원전 431년))
- 미국의 전임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 James N. Matis'는 2017년 상원에서 열린 임명 청 문회에서 미국과 중국의 미래가 충돌 추세로 갈 것인가 하는 질 문을 받았다. 그는 국가와 국가 간 적대적 추세의 원인으로 '공 포, 명예, 이익fear, honor and interest 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인용하여 대답했다. 제임스 매티스는 미중관계를 비적대적 방식으로 처 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예로 든 세 가지 요소는 고대 그 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자신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언급한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Athens 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양측은 전력이 크게 손실되었다. 아테네 문명은 이때부터 쇠퇴의 길을 걸으며, 아테네가 이끌던 델로스 동맹pelian League 도 해산하게 된다. 얼마 후 스파르타도 그 뒤를 이어 멸망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당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결정적 전쟁을 일으 킨 배경을 주제로 다루었다. 근세의 학자들은 이 책에서 묘사 한 전쟁 발발의 기원을 국가와 국가간 '투키디데스의 함정The Thueydides Trap' 이라고 명명했다.  전쟁 발발의 세 가지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포'다. 사 실상 제임스 매티스가 언급한 세 요소는 스파르타 공민대회The Appela 에서 참관인 자격으로 발언한 아테네가 부상하게 된 원동력을 투키디데스가 인용한 것이며, 투키디데스 자신이 관찰한 전쟁의 기원은 아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제1장 23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진정한 기원은 아테네의 부상으로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 타가 전쟁을 일으킨 데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저자 는 이 전쟁의 기원을 단 하나로 설명했다. 즉 한쪽의 세력이 강해지면 상대방의 공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 2018년 10월 10일 연방조사국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은 상원 의 미국 국토안보와 정부사무 의제에 관한 증언에서 러시아가 여전히 주요 문제인 것은 사실이나 중국은 미국에게 “가장 광 범위하고 가장 복잡한 정보보호 분야에서 장기적인 위협”이라 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의 목표는 국 제 사회에서 수행할 모종의 역할을 쟁취하는 것뿐이며, 그들이 '오늘'의 전쟁을 하고 있다면 중국은 '내일'의 전쟁을 하고 있다. (...) 이는 앞으로 장기전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위에서 언급된 발언들은 일부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과 관련한 공청회의 모든 내용을 추가하고 연방 상원의원들이 공개 장소에서 매체에 발언한 내용까지 추가한다면, 중국의 굴기에 공포를 느끼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방위비를 요구하는 것이 미국의 당파를 초월한 공동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 2018년 6월,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 보고서
이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경제 침략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 의했다.  “중국 정부는 전면적인 장기 산업 전략을 실시하여 세계에서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베이징의 최종 목표는 자국 기업이 국내에서 우선 외국 기업을 대체하여 핵심기술 및 제품의 설계자와 제조자가 되고, 이어서 해외에 이를 판매하게 하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거쳐 세계 2대 경제 주체가 되었으며, 동시에 공업화와 글로벌 가치사슬의 향상을 실현했다. 그러나 그 성장은 많은 면에서 글로벌 규범과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 정책, 방법을 통해 실현되었다(경제 침략 Economic Aggression으로 통칭).” 중국의 경제 규모와 시장왜곡 정책 정도에 기반해 판단할 때, 중국의 경제 침략은 현재 미국 경제를 위협할 뿐 아니라 글 로벌 경제까지 위협하고 있다. 어떤 방면에서 중국은 그 침략행위, 정책, 방법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의 정부 문건, 간부급 관리의 행동을 비롯해 기업과 싱크탱크, 정부 기관이 작성한 보고서에 그 사실이 드러난다. 중국의 경제 침략에는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자국시장 보호 조치로 수입품과 경쟁하지 않게 해준 다. 이 유형에는 높은 관세, 비관세장벽, 기타 법규 등의 수입 장벽이 포함된다.  
둘째,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다. 수출융자 외에도 국유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합병을 단행하여 국가 챔피언'으로 키우고, 이들이 국내시장과 국제시장에서 외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산업정책에 포함된다. 중국 기업도 우대정책과 자금지원을 받아 자국시장에서 생산과잉을 초래했는데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자사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외국 경쟁자들을 글로벌 시장에서 몰아냈다.
셋째, 전 세계에서 안전한 핵심 천연자원을 공급받는다. 중 국은 약탈적인 '채무 함정Debt Trap 이라는 경제 발전 및 금융 모 델을 이용해 개발도상국에 대량의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해당 국가의 천연자원을 통제하고 시장에 진입한다. 이러한 천연자원에는 보크사이트, 동, 니켈, 그리고 베릴륨, 티타늄 등의 희토류가 있다. 이러한 약탈적 모델은 법치 수준이 취약하고 권위적 정치가 득세하는 국가에 특히 효과적이다.
넷째, 전통 제조업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은 이미 각종 전통 제조업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대출우대, 시장 가격 보다 낮은 공공사업비율, 상부의 명령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느슨한 환경, 느슨한 건강 및 안전 기준을 통해 이 목표를 실현 했다. 유럽 상공회의소협회에서 “이 세대 사람들에게 중국은 줄곧 세계의 공장이다.” 라고 밝혔듯이, 2015년에 중국은 이미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의 28퍼센트, 전 세계 조선의 41퍼센트 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 냉장고 생산량의 50퍼센트 이상, 전세계 컬러 텔레비전 생산의 60퍼센트 이상, 전 세계 에어컨과 컴퓨터 생산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중국은 두 가지 유형의 경제 침략을 추구하고 있으 며, 이는 본 보고서의 중점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로부터 핵심기술과 지적재 산권을 획득한다. 
둘째, 미래의 경제성장동력을 창출할 신흥 하이테크 산업과 국방산업의 신기술을 장악한다. 이 보고서는 중국 산업정책의 주요 법령, 조치, 행동을 상세 히 살펴 이 두 가지 정책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설명한다. 중국 정부는 이 정책들을 통해 미국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이라는 왕관의 보석을 빼가려고 한다.
-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 사조는 오늘날 자유학파의 경제학 주류가 아니다. 그러나 당시 각 대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는 주류 중의 주류를 차지했다.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자들 중 중량급 인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한국 학자 장하준 張夏準, Ha-Joon Chang 이 있다. 장하준이 저술한 책 중 《사다리 걷어차기》는 중국어로 《부국의 함정: 선진국은 왜 사다리를 걷어차는가》로 번역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산업혁명을 최초로 일으킨 영국을 포함한 모든 서구 국가들이 산업정책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 입하는 방법을 통해 신흥산업을 육성하고 성장을 촉진함으로 써 신흥산업이 일정 규모의 수익을 내고 경쟁력을 갖추게 한 후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kicking away the ladder'는 사실 독일의 경제학자 프 리드리히 리스트 Friedrich List, 1789~184%가 가장 먼저 사용한 용어다. 영국은 발전 초기에 네덜란드 등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수 많은 산업보호정책을 사용했는데, 이런 정책들이 곧 사다리였다. 영국은 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꼭대기에 올라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영국의 제품이 세계에서 무적의 수준에 이르자 세계를 향해 이렇게 선포한다. “과거에 행한 모든 것은 잘못되었 으며, 자유무역을 시행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보호정책을 버리고 자유무역을 시행해야 한다." 당시 독일은 영국에 비하면 낙후된 편이었다. 따라서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선진국 영국이 보호주의를 사용했으며, 경제 발 전에 성공한 후에는 사다리를 치워버려 다른 국가들이 자신들과 같은 방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막았다고 표현했다. 후발주자 독일은 당시 많은 산업정책을 채택했다. 특히 국가 역량으로 은행을 연합하여 전략 산업에 거액의 대출을 제공하게 했으며, 이는 당시 독일 경제를 일으킨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지적했듯이 영국은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첫 번째 국가다. 그러나 이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다. 유명한 경제 역사학자 폴 베이로크 가 미국을 “현대 보호무역주의의 본산이자 철옹성” 이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상 보호주의 전략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람은 미국 헌법 초안인 중 한 명이며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ton 이다. 그는 '유치산업'이라는 용어를 고안했으 며, 1791년에 '제조업에 관한 재무부 보고서'를 발표하여 보호 주의를 분명히 주장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유치산업 보호 를 최초로 제창한 사람이 아니다. 첫 주자는 당연히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장하준의 책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원래 자유무역을 주장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기간(1825~1830년)에 비로소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학자로 변신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미국에 있을 때 알렉산더 해밀턴과 미국 정치경제학의 시조인 다니엘 레이몬드Daniel Raymond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자신의 보고서에서 초기 손실을 정부가 보완해주지 않으면 미국이 미래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실을 보상하는 방법 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심지어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제조업 위주의 북부는 관세를 통해 자신들의 산업을 보호해주기를 희망했고, 농업위주의 남부는 농산물을 수출하고 제조업 제품을 수입했기 때문에 관세에 반대했다. 북부와 남부가 서로 다른 입장차로 갈등하던 상황에서 1789년에 최초로 전국적 관세정책이 시행되 었다. 당시 세율을 5퍼센트로 일괄 부과했으며 상당히 낮은 편 이었다. 1812년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벌일 때 평균 관세율을 12.5퍼센트로 인상했다. 그러나 상황은 1816년에 중대한 변화를 맞는다. 거의 모든 제조업 제품의 수입 관세를 35퍼센트로 인상함으로써 알렉산더 해밀턴의 제안이 이때부터 비로소 실행되기 시작했다. 농업 위주의 남부는 이 조치가 자신들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반대했으나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24년, 미국은 심지어 해당 관세를 추가로 인상했다. 1832년 제조업 제품의 평균 관세는 이미 40퍼센트에 달했으며, 양모제품에 대한 관세는 40~45퍼센트, 기타 방직품은 약 50퍼센트에 달했다. 남부와 북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때마다 관세의 인상과 인하가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변화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장하준은 사실 관세가 미국 남북전쟁을 초래한 중요한 요소였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노예해방 여부가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상 링컨 자신은 노예제도의 강제성 폐지를 내세운 적이 없으며, 그 역시 흑인'의 투표권에 반대했다고 장하준은 지적했다. 남북전쟁 이전에 링컨은 남부를 미국 영토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노예제도를 유지해도 무방하다는 뜻을 밝혔다.
- 남북전쟁(1861~1865년)이 발발한 후 재정 수입이 필요해지자 관세는 더욱 인상되었다. 1864년이 되자 미국의 관세는 신기록 을 돌파했다. 북부가 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이 관세는 대부 분 유지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관세정책의 시행 국가가 되었다. 관세 보호가 가장 강 력한 그 시기에 미국은 세계에서 성장이 가장 빠른 국가가 되었으며, 19세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이런 정책이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산업 경쟁력이 세계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우위를 차지했을때, 미국은 비로소 자유무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영국이 1860년부터 1932년까지 실시한 것과 같은 자유무역정책은 실시하지 않았으며, 수입품이 국내 산업 을 위협할 때 보호조치를 취했다. 가령 일본 및 기타 국가의 방직품과 경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수입 할당제를 추진했으며, 수입 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산업을 위협하자 상대 국가에 자발 적인 수출 제한을 촉구하는 보호정책을 실시했다. 한편으로는 국가 역량을 이용해 산업 발전을 지지하기도 했다. 1862년 제정한 토지공여대학법 Morrill Land-Grant Colleges Acts 부터 시작해서 미국은 정부의 역량을 이용해 농업과 기술 연구를 지지했다. 19세기 하반기부터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여 공공교육정책을 추진했다. 이밖에 교통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여 철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토지를 무상으로 기여함으로써 그들이 미국에서 철도망을 건설하도록 했다. 국방산업을 육성할 때도 민간산업 부양의 목적이 있어서 많은 국방산업 계획을 민간에 이전함으로써 민간 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미국의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은 국가 예산으로 약물과 바이오 기술 분야의 연구를 지원했다.
- 유럽 통합의 모델을 볼 때, 미중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더욱 활발한 교류와 무역을 진행함으로써 양국이 전쟁을 할 마 음이 없어질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류'에 관해서는 미국의 전임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의 말이 눈길을 끈다. 그는 2017년 상원에서 열린 임명 청문회에 서 미중관계에 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은, 외교적으로 교류하고 연합의 관점 에서 교류하고 경제적으로 교류하면서 아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함으로써, 신흥 세력을 상대할 때 우리 외교관이 항상 유리한 위치에서 교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제임스 매티스는 지혜로운 장군으로 많은 면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 며, 2018년 말 그를 해고했다. 트럼프의 내각에서 지식과 이성 을 겸비한 관리가 또 한 명 줄어든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외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저서에 서 미국과 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중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자성어)하며 충돌을 화해로 풀어가고 협력과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이 국제 사회에 융화하려고 시도하는 마당에 그들의 민족주의는 과도하게 해석되었다(Zheng, 1999).
둘째, 미국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국과 군사적 충돌을 피하여 세계대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Bandow, 2018).
셋째, 미중 양국이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함으로써 양국의 이익을 창조할 수 있으며, 충돌이 벌어지면 각자 피해만 입을 것이다(Paulson, 2015, 전임 재무장관). 
넷째, 미중관계는 결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저지해서는 안 되며, 협조하여 중국의 발전 방향을 이끌어야 하고, 지역적 혼란을 피하여 양국에게 유리한 국제협력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Christensen, 2015).
다섯째, 중국은 미국이 정한 규칙에 따라 경제를 발전하는 중이다. 따라서 중국이 발전할수록 상업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로서의 지위는 오히려 강화될 것이다(Steinfeld, 2012).
여섯째, 중국 위협론은 잘못 보도된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 의하에서 앞으로 15년 후 중산층 인구가 8억 명에 도달할 것이며, 미국 상품에 대해 큰 수요가 생길 것이다(Wang, 2010)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주요 군수물자를 공급하 는 기업은 '군수기업'으로 지정되었다. 1945년까지 대략 600개 의 기업이 군수기업으로 지정되었다. 이 기업들에 운영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장성大藏省은 한두 개의 은행과 협력하여 그들에게 특별 융자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는 주거래은 행제도'가 탄생하게 된다. 즉 모든 기업은 한두 개의 주거래은 행과 연계해 평소 거래하며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945년 3월에는 주거래은행제도'를 확대하여 군수업체가 아닌 기업도 포함하여 2,000개의 기업이 이 제도에 편입되었다. 자본시장의 자금 모집처가 거의 막힌 상황에서 주거래 은행의 대출은 기업들의 유일한 자금줄이 되었다. 이밖에 모든 명령이 체제 안에서 더욱 완벽하게 관철될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산업에 산업협회와 유사한 '통제회統制會'를 설치했다. 통 제회의 장점은 명령체계를 관철하는 데 있었다. 가령 정부가 내년에 철강업에서 몇 톤의 철강을 생산하기로 계획한다고 하자. 정부는 그 목표를 통제회에 전달한다. 통제회 간부는 기업으로 구성된 회원들을 모아놓고 정부가 정한 생산목표를 전달하고, 각 기업과 협의하여 할당량을 배분하여 기업의 개별목표로 삼는다. 이는 마치 군대의 지휘체계처럼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방식이었다.이런 체제가 가동되면서 1937~1945년 일본 경제는 혁명적 인 변화가 일어나 국가동원 체제로 변했으며, 기업과 노동자 는 국가의 목표를 위해 존재했다. 이런 체제하에서 정부는 생 산 방향을 통제했고, 그 결과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1937년 방 직업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29.3퍼센트에서 1941년에는 14.7퍼센트로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기계 공업은 14.4퍼센트 에서 30.2퍼센트로 늘어났다. 중공업 위주로 발전시키는 일본의 군사적 목적을 엿볼 수 있다. 군수물자 생산량은 1937~1945년 무려 2배가 성장했으며, 노 동자 전원이 동원되어 실업이 자취를 감췄다. 산업구조는 농업 에서 공업으로 이전하면서 일본은 공업화 국가로 거듭났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상당히 짧은 시간에 일본이 성공 적으로 제도를 완벽하게 운영하며 빠르게 실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일본의 동북3성(만주국) 지배와 매우 큰 관계가 있다. 일본은 1937년에 동북3성을 점령한 후 군대를 파견하여 이 지역을 직접 통치했다. 통치계층은 '만주국'에 위 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통제체제를 구축했다(독일을 모방한 것). 따라서 '만주국'에서 실험 단계를 거치면서 완벽하게 적응한 체제를 본국에 직접 접목함으로써 일본의 자유경제체제를 전시동원 체제로 바꿨는데 이를 '일본식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 미국은 일본에 엔화절상을 압박하는 절묘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즉 G5 그룹) 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행장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체결했다. 인플레이 션 억제, 내수 확대, 무역개입 감소와 더불어 각국 중앙은행이 협력하여 외환시장에 개입함으로써 달러의 주요 통화에 대한 가치를 '질서 있게 절하한다는 내용이었다.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기 전부터 엔화는 이미 상승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엔화 대 달러 환율은 1975년 12월 10일 최고점 306.01:1에서 시작하여 플라자 합의 당시(1985년 9월) 242:1로 상승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1986년 5월 엔화 환율은 160엔을 돌파했으며, 1987년 말에는 120엔에 달했다. 그 후에도 엔화의 절상은 계속되어 1995년 5월 3일에는 83.25 엔까지 상승했다. 독일 마르크화도 큰 폭으로 절상하여 각 주요 화폐에 대한 달 러의 가치는 큰 폭으로 절하했다.  1985년 미화 1달러로 250엔을 환전하던 수준에서 1987년 말 120엔을 환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미국에 수출하 는 모든 일본 상품에 108퍼센트의 추가관세가 붙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일본에 수출하는 모든 미국 제품의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1975년 엔화의 최저점에서 1995년 최고점까지 상승폭은 무려 3.68배에 달했으며, 이는 268퍼센트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플라자 합의에서 보여준 미국의 초강수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다른 4개국(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는 미국의 처분에 따랐으며 아무도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 거품경제는 어떻게 해서 출현했을까? 특히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그토록 빠른 속도로 늘려가며 조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 엇이었을까? 자료를 찾아보면 두 가지의 각각 다른 해답이 나온다. 그중 하나는 '공황론'이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로 인한 큰 폭의 엔화 절상을 겪으면서 경제 후퇴를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통화완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여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는데도 경각심을 느끼지 않았다. 결국 자산가치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부풀 대로 부푼 거품이 마침내 꺼지게 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음모론'으로, 이는 미국과 관련이 있다. 음모론을 주장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리하르트 베르너 교수다. 
- “개혁을 일으키는 가장 직접적 방법은 한 차례의 위 기를 조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 제도에 불만을 느끼고 개 혁을 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기존 제도의 기득권자들을 권력의 핵심에서 쫓아내서 개혁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개혁 방식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남 미에서 출현했다. 시카고 학파 출신의 경제 자유주의자들이 잇달아 칠레, 우루과이, 러시아에서 '충격 요법'을 실시하여 경제 위기를 일으키고 기존 제도를 변화시켰다. 이 일본 은행 출신의 총재들은 그들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우선 경제거품을 형성한 후 거품을 터뜨림으로써 사람들을바닥에서 살게 만든다." 따라서 이 일본은행 간부들은 대출한도를 위험한 수준까지 고의로 확대. 그런 후에 대대적 긴축경제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일본경제를 붕괴에 직면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각계각층이 기존 제도를 돌아보고 근본적변화를 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미일 무역마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역 문제에서 미국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일본에 대해 혹독한 조치를 취했다. 여기서 설명한 일본 거품경제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미일 무역마찰을 해결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미국에 투항한 일본의 지도자와 정부는 미국보다 더 악랄하게 자국민을 대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 일본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일본은 업그레이드와 우회진출을 통해 역경을 헤쳐나갔으며, 가공과 조립라인을 일본에서 한국, 대만, 동남아 국가와 중국으로 이전했음. 이것이 우회진출이다. 최종 조립상품 수출에서 중간원료와 부품 및 기기설비 수출로 발전한거이 업그레이드에 해당함. 중국 본토와 중국에 진출한 대만업체들도 미들스트림과 업스트림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이어서 다운스트림 라인을 일대이로 국가로 옮기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이 방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중국의 대미무역흑자가 감소하여 동남아, 인도, 아프리카 등지의 대미 무역흑자로 전환될 것이다. 일부 업체는 주문 이전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가령 볼보volvo 자동차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SUV차량 'XC60'을 청두成都 공장에서 수출하고 있었고, 얼마 전 S60 인 스크립션 Inscription 전장 추가 버전도 같은 공장에서 수출했다. 그러나 이번 관세 폭탄의 영향으로 볼보 자동차는 스웨덴 공장 의 XC60 모델을 수출하는 것으로 변경했으며, 청두 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하기로 되어 있던 생산분은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수출함으로써 타격을 줄였다. 외국자본이 철수할 가능성이 있지만 철수하지 않거나 일부만 철수할 수도 있다. 후자를 택하는 것은 어차피 대미수출이 중국의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8.5% 인데다 지금도 계속하락하고 있기 때문. 이는 중국이 시장을 분산하고 있으며, 다른나라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말해줌. 중국은 국내 소비시장 자체의 성장도 빠르기 때문에 외국자본이 중국에서 철수한다고 해도 나머지 81.5%는 중국에서 생산하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는 아무래도 중국보다 생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았다면 외국 자본은 진작 철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 자본의 대부분, 또는 전체가 철수할 수도 있는데, 이는 불확실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 중국의 노동 비용이 최근 큰 폭으로 올랐으며, 다른 생산기지(가령 베트남) 측이 충분한 우대혜택을 제공한다면 '우회진출'을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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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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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머니 씽크스몰

경제 2021. 2. 6. 22:28

- 버핏이 말하듯, 투자에서는 삼진아웃이 없다. 내 스트라이크 존이 좁은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자꾸만 내 스트라이크 존 밖에서 배트를 휘두르다가 아웃되어서 내일은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큰 숫자도 0을 곱하면 0이다.
- 개별 주식에 투자하든, 액티브 펀드나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훗날 후회하게 될 투자 속 실수는 다음의 다섯 가지 범주 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1. 이성이 아닌 감정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 
2. 자신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양심과 능력이 모두 없는 사람에게 자본을 맡긴다. 
4. 쇠퇴, 경쟁, 과도한 채무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기업의 주식을 선택한다. 
5. 주식에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이런 일은 강렬하고 충격적인 스토리가 있는 주식일수록 빈번히 일어난다)
- 투자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의사 결정과 함께 시작된다. 게다가 다른 사람 들의 의사 결정 또한 평가하게 되므로 투자란 거울의 방처럼 어지러운 일 면도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와 씨름하며 사실관계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심각하게 틀릴 수도 있는 타인의 의견을 구하고 그것을 또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시 스템 2(느린 생각)를 이용하여 보다 적지만 더 나은 대상을 선택할 수 있도 록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과도한 회전율 을 지양하고 “다음은 무슨 일이 생기지?” 보다는 “이것의 가치가 얼마나 되 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어 투자를 하라는 뜻이다. 또한 이는 자신에게 맞는 투자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 사람 감정의 깊이는 그 사람의 사실에 대한 지식 수준에 반비례한다. 즉, 더 적게 알수록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버트런드 러셀)
- 역사를 공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야기 짓기 오류narrative fallacy다. 나심탈레브 Nassim Taleb 의 책 『블랙 스완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야기 짓기 오류는 일련의 사실을 설명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 지 못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를 나타내며, 그래서 이런 일련의 일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논리적인 관계를 억지로 부여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사실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맞추어 개연성을 부여한다. 또한 사실들을 더 기억하기 쉽고 논리적으로 만든다. 이러 한 경향이 잘못된 방향으로 작용될 때가 있다. 실제 사실의 이해 여부에 상관없이 사실을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질 때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억지로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 낼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명백하며 개 인적 감정에 호소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경우일수록 그 모호한 이야기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 사후 확신 편향은 이야기 짓기 오류에서 파생된 이론으로,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음에도 어떤 사건이 예측 가능하며 필연적이었다고 믿 는 것을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후 확신 편향을 피하기 위해 내가 했던 투자와 투자 근거를 기록으로 남긴다. 물론 다른 투자자들 역시 비슷 한 투자 다이어리를 갖고 있다. 이런 기록은 사전 부검을 포함하는데, 나는 기록을 보며 그때 의사 결정이 나빴다는 것을 깨닫고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 었는지 추측한다. 과거에 내가 작성했던 노트를 보면 종종 특정 주식을 매 입한 이유가 바뀐 경우가 있는데, 때로는 더욱 강력한 매수 근거를 발견해서이기도 하고 때로는 더욱 강력한 매도 근거를 발견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처음에 몬스터 베버리지의 천연 과즙 음료에 관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른 원인은 에너지 음료의 폭발적인 성장 때문이었다. 반대로 유가가 45달러까지 내려갔을 때는 유가가 110달러일 때 평가된 에너지 회사의 자산 가치 수준이 터무니없이 높아 보였다.
- 금융권에는 자신의 답이 옳다는 확신에 가득한 사람이 넘쳐 난다. 월가는 소위 우두머리 수컷alpha male'과 자신이 3루에서 태어난 것인데도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실제로 확신에 차서 행동하는 것은 경력에 도움이 된다. 특히 금융권처럼 능력이 쉽게 판별되는 산업에서 는 능력과 자신감이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펀드매니저의 투자 능력을 검증 하려는 시도가 실패하기 일쑤임에도 불구하고, 의뢰인들은 자신감 있게 일 관성 있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의지한다. 심지어 지나친 자신감이 합리적 인 것일 수도 있다. 경제적 인간은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리스크든 거 침없이 짊어진다고 하니 말이다. 나같이 겁이 많은 사람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리스크를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 입장에서 보면 대 담하게 모험을 즐기는 사람은 단순히 운이 좋은 것이다. 경우의 수를 잘못 계산하고 과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는 순간 지나친 자신 감은 독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분석이 옳았고 시장이 틀렸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 아닌 이상 자만이다. 물론 실적과 상관없이 자신의 실력과 지식, 성실함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은 가져야 한다. 이러한 자신감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깨닫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채권보다는 주식에, 단기 투자보다는 장기 투자에 더 자신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 큰 변화가 없는 주식을 인내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래서 지루 함을 감내한 대가로 수익을 얻는 것은 내가 가장 반기는 일 중 하나다. 과거 성과를 보면, 안정적이며 변동성이 낮은 주식은 생각보다 수익률이 좋았으 며 위험부담이 높고 흥미로운 주식은 예상 외로 수익률이 낮았다. 이론적으로 기대수익이란 변동성을 감안한 수익이지만, 과거 성과를 보면 리스크는 주가 변동성을 확대하고 사실상 투기 세력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큰 변동 없이 꾸준히 상승하는 주식을 보고 있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상승 장세가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 정확히 안다면 베타계수(주식시장 전체의 가격 변동 폭 대비 펀드의 수익률이 얼마나 변동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가장 높은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과거에 안정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주식이 앞으로는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저변동성 주식의 수익률이 꽤나 좋았다는 것 을 아는 주식 투자 상담가들이 저변동성 변수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구 성하여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수들이 영향력이 있었던 이유는 저변동성 주식이 과거에는 저평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낮 은 금리로 인해 사람들이 저축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 Money Market Fund, MMF (미국 의 단기 투자 신탁의 하나 - 옮긴이)에서 얻는 소득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에 예금이 보장하던 이자라도 벌기 위해서 주식에 투자를 한다. 주가가 폭락하지 않는 이상, 저변동성 주식의 수익률은 왜 투자자가 리스크 를 감수하는 대가로 보상을 받는지 알게 해 줄 것이다.
- 금욕적인 거리두기 stoice detachment와 결합된 감정적 자각은 주식 투자를 위한 완벽한 조합이다. 공포를 느껴라. 그러나 이성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가장 흔한 실수는 자신의 감을 믿는 투자자가 저지른다. 반면, 가장 큰 재앙은 감 이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신호를 보낼 때 감정적으로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사람에게 발생한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거나 강렬하게 반응하지만 않는다. 면 걱정도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나는 가치 투자자로서 아직 일이 잘못되기 전부터 걱정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감정의 비용은 다른 비용과 비교하면 작 은 편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걱정은 대안을 탐색하고 더 나은 길 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우에만 하라는 것이다. 만약 하늘이 무 너질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우선 긴장을 풀어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빈도를 줄이고 태평해져라.
- 성적이 좋은 학생은 일반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근면하다. 하지만 시스템에 장난을 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교수에게 아첨을 하고 그들이 원하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다. 투자 업계에서는 때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실수를 예방하기에, 특수한 종류의 게으름은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게으름은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투자라 는 게임은 남들이 놓친 어떠한 것을 찾아내느냐의 싸움이다.  가장 큰 포상은 남과 다른 생각을 제대로 해낸 사람의 몫이 된다. 몇몇 투 자 아이디어는 멍청하거나 제정신이 아니어 보일 수 있다. 그중 일부는 실 제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용감하다는 평을 듣거나 오만하 고 무모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를 고치지 못 하는 것을 두려워 하라. 대학에서 듣는 강의는 몇 번의 시험과 기말 보고서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 는지 절대 이야기해 주지 않을뿐더러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 경제학의 흥미로운 과제는 인간에게 자신이 설계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의 범위가 실제로는 얼마나 작은지 증명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 내가 부자인 이유는 내가 틀렸을 때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지 소로스)
- 높은 세금은 열심히 일할 유인을 떨어뜨려서 GDP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지만, 데이터만 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는 가장 높은 한계 세 율 구간이 80퍼센트를 넘었던 모든 해를 표로 정리했다. 1941년 한계 구간은 81퍼센트로 인상되었고, 1942년에는 88퍼센트로 올랐고, 1944년에는 94 퍼센트였다. 또 1946년에는 91퍼센트로 줄어서 유지되다가 1964년에 7퍼 센트로 줄어들었다. 그 23년 동안 실질 GDP는 2009년의 달러 가치로 1.27 조달러에서 3.59조 달러로 늘어났다, 연평균 4.6퍼센트 성장했다고 보아도 된다. 이는 미국이 통계 수치를 보존하기 시작한 이후 기록한 가장 높은 성장률 중 하나였다.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성장한 경제 상황을 설명하려면 다른 스토리가 필요했다. 미국이 대공황에서 탈출할 때, 많은 사람이 겨우 삶을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인상된 세율이 그들에게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할 것을 강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물자 지원 등을 통해 전쟁 에 기여하는 것은 애국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증거가 수십 년 전 과거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최상위 한계 세율 구간의 세율은 70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떨어졌다. 그 기간 동안 실질 GDP 성장률은 연평균 3.4퍼센트 였다. 평균을 상회하는 수치지만, 앞서 언급한 수치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낮은 세율의 이점을 보여 주어야 하겠다고 작심하면 1981~1990년 사이의 기간을 끔찍했던 직전 9년과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정한 비교 가 아니다. 1972년에서 1981년 사이에 유가는 급등했고, 로널드 레이건 대 통령의 임기에는 다시 하락했다. 이율도 1981년 전례가 없던 수준까지 치 솟았다가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앞선 기간 동안 크게 지지받지 못했던 베 트남 전쟁이 종료되었고, 리처드 닉슨은 유일하게 임기 중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다.
- 내재 가치는 투자 아이디어에 결함이 있는지 알려 주는 역할을 하고, 행 동의 규범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만약 무언가를 놓쳤다는 유일한 근거가 돈 을 잃고 있다는 사실뿐이라면, 큰 문제에 빠져 있는 것이다. 모멘텀 투자자 는 가격이 상승한 주식을 사고 가격이 하락한 주식을 판다. 나는 이것이 그들이 가격이 상승하는 주식을 40달러에 사고, 35달러로 떨어졌을 때 팔고, 41달러로 오르면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주식의 가치가 50달러에 상당한다고 판단하고 40달러에 구매를 했다면, 주가가 35 달러로 내려가면 오히려 더 기뻐했을 것이다. 물론 가치가 변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만약 가격 하락을 유발한 뉴스가 내재 가치를 30달러로 떨어뜨렸다면, 나는 주식을 매도하고 손해를 감수했을 것이다.
- 잘 다스려진 나라에서 빈곤은 부끄러운 것이다. 잘못 다스려진 나라에서 부는 수치스러운 것이다.(공자)
- 한 기업의 캐릭터를 이해하고자할 때 나는 나 자신이 잠재 고객이라고 가정하고 다가간다. 웹 사이트나 전단지를 보거나 매장을 방문한다. 포럼 을 방문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인데, 잠재 고객에게 기업이 더 뛰어난 상품을 제공하고자 하는지 혹은 최소한 더 싼 가격에 제공하려고 하는지 등의 정보 를 알 수 있다. 종종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연구 보고서나 기업의 연간 보고 서도 이런 일을 일부 도와주지만, 나는 기업의 캐릭터를 파악할 때 분기 보고서는 모두 무시한다. 애플은 똑똑하고, 우아하며, 가끔은 변덕스럽지만 대 체로 잘 지내기 쉬운 기업이다. 가이코GEICO는 정직하고 절약하며 온화하다. 다수의 기업은 단조로운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한 시간 동안 기업에 대해 조사를 했어도 확실하게 모르겠다면 더 노력할 필요는 없다. 사업과 투자에서 성공의 비결은 남이 하지 않는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이 다. 숙련된 경영진의 임무는 이러한 독특함을 보호하고 연장하는 것이다. 다른 이가 이를 모방하면 꽃은 시들게 마련이다. 어떤 기업은 차별화된 혁 신적인 상품을 가지고 있고, 어떤 기업은 독특한 기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 며, 또 어떤 기업은 고객이 공감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경쟁자들이 이 러한 차별성을 최대한 모방하면, 그 기업의 특별함은 어느새 진부해진다. 고객의 취향은 변하므로, 기업은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 해야 한다. 경쟁자의 제조 방법이나 재무 기법을 공부하는 것에도 큰 가치가 있지만 전략의 요점은 경쟁자들이 하지 않거나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능력에 있다. 기업의 캐릭터는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차별성이 무엇인지 단서를 제공한다.
- 이익의 상당 부분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기업은 때때로 두 가지 서로 상 반되는 신호를 보낸다. 첫째, 높은 배당률은 기업이 확장 프로젝트를 실행 할 때에 굉장히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익성이 좋은 성 장 프로젝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돈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이다. 주주에게 현금을 환원하고 있지 않는 기업은 돈을 수익률 이 별 볼일 없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산이 빠른 속 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익은 그렇지 못하다면 더더욱 걱정스러운 일이다. 둘째, 배당률은 기업이 수익성이 좋은 확장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 지를 보여 준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작은 기업은 보통 배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기업은 종종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낙관적으로 큰 자신감을 갖는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워런 버핏 이 합류한 이후에 단 한 번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자사주 매입 또한 거 의 하지 않았다. 이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주주보다 더 나은 자본 배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워런 버핏이 아닌 기업 최고 경영자가 그런다면, 대부분 오만하거나 이익의 기준이 낮은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담배 회사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윤의 4분의 3을 배당으로 지급하고 자사주 매입까지 실시한다.
- CEO인 케네스 레이 Kenngth Lay 는 경제학 박사였는데, 이는 에너지 업계에서 이례적이었다. 또 리치 킨더 Rich Kinder는 별명이 규율 박사'였으며, 능력이 특출나게 좋아 보였다. 나는 천연가스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컨트롤 및 포지션 한도에 대해 물어봤다. 그들은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천연가스 가격에 대한 규제 완화는 흥미로운 트레이딩 및 차익 거래 기회를 만들었다. 나는 그중에 엔 론의 규제받는 행동과 규제받지 않는 활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기회가 있는지 궁금했다. 천연가스 트레이딩은 여느 거래 데스크와 같이 전화기와 모니터가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부채가 많고, 임시 비용이 빈번하며, ROE가 높지 않고, 트레이딩 손실이 큰 기업이었다. 엔론 주식은 1987년 10월 30퍼센트 하락했지만, 그달 주식 시장이 폭락하면서 이 스캔들은 2001년까지 잊혔다. 엔론을 끝내 파산에 이르게 만든 사기의 발단은 아직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1992년 회계 기준이 바뀌면서 에너지 트레이더들 이 보유 포지션을 취득가가 아닌 시장 가격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 원 인이었던 것 같다. 엔론과 아서 앤더슨 Arthu Anderisen은 이렇게 회계 기준을 바꾸는 로비를 진행하고 있었으니, 사기의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회계 기준 변화 이전에는 사기 행위가 없었다고 쳐도, 신규 회계 기준 변화는 사기의 발판이 되었다. 또 다른 가설도 있다. 1996년 리치 킨더 Rich Kinder가 엔론을 떠났을 때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이자 전 엔 론 파이낸스Enron Finance 의장 및 엔론 가스 서비스Enron Gas Services의 의장을 지낸 제프 스킬링 sif Skilling이 왕좌를 이어받았다. 그때부터 엔론의 재무 및 트레이딩 사업이 지나치게 커지기 시작했다. 엔론의 영업 현금 흐름은 마이너스로 바뀌었고, 홍보에 더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애널리스트와 리포터들은 엔론을 찬양하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포춘은 엔론을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불렀으며, 우수 경영진 부문 1등을 안겨주었다.  기업의 홍보 부문이 커진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그들이 사기 집단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심한 광고를 통해 강매를 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자금 조 달이 임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치 투자자로서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만약 투자자가 정말 이러한 과대 광고를 믿게 되면 주가가 오른다는 사실이다. 주요 회계 실패 사건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부담되는 주가수익률 수 준에 거래되고 있었다.
- 통계는 하나의 임시 자료에 불과하다. 투자자는 통계 자체보다는 움직이 는 그림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숫자는 단순한 합계이지만, 대부분의 숫자 는 뺄셈도 포함한다. 특히 트레이더가 집착하는 그런 숫자는 말이다. 순이익은 이익과 손해의 긴 연속을 통해 나타나는 산출물이며, 그 계산 과정에 는 간혹 곱셈이나 나눗셈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종종 맞지만 가끔은 틀린 추정치와 근사값 등이 계산식에 포함된다. 마술사들은 조정된 EBITDA'와 같은 주문을 반복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목을 집중 시키는 것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능한 탐정은 그 숫자 이외의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다른 이들 이 찾기 힘든 단서를 관찰한다. 회계 처리는 복식부기 시스템에 기반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수치의 기입은 반대되는 숫자와 항상 일치되어야 한다. 상 상 속의 이익은 과장된 자산 가치와 연결된다. 더 나아가 3개 주요 재무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재무상태표) 중 하나가 위조되면, 그 흔적이 다른 2개의 재무제표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 투자자에게 있어 궁극적인 지향점은 수익성과 성장성이 좋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기업을 찾는 일일 것이다. 재무레버리지는 기업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변동성을 만든다. 다음과 같은 대응 원칙을 존중하는 기업을 찾아라. 채무는 안전 자산과 대응시키고, 장기 자산은 장기부채와 대응시켜라. 원자재 사이클에 민감하거나 노후화되기 쉬운 산업, 고객의 선호가 자주 바뀌는 산업의 경우에는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이연되고 시차가 있는 상환 일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계약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채권자가 친절한 편인 무담보 대출을 이용한 기업을 찾아야 한다. 현금 쿠션과 아직 사용하지 않은 신용 한도 또한 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것을 도울 수 있다.
- 예측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그 예측을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워런 버핏)
- 공짜 화폐나 금융 완화가 모든 버블의 필수 요소다. 중앙은행은 금융 완화가 빠른 경제 성장률에 기여하기를 원하지만, 이는 가장 먼저 자산 가격의 상 승을 야기한다. 미 연방준비은행이 통화를 공급하면, 이는 은행 예금의 형 태로 나타나 금융시장에 영향을 준다. 금융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 돈을 제공하면, 그들은 가장 먼저 금융자산에 투자할 것이다. 이 돈은 주택 버블에서 그랬던 것처럼 물리적인 자산의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돈이 금융시 장에 오래 머물수록 버블은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다. 광케이블이나 라 스베이거스의 콘도와 같이 실물 자산이 되면 투자에 대한 열정이 식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레이더는 가장 빨리 움직이는 자산을 계속 거래하기를 원 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자산일수록 이득이다. 1990년대에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는 듯하자 연방준비은행은 가차 없 이 규제를 완화하여 금융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제공했다. 1981년에는 최고 15퍼센트 가까이 올랐던 미국 국채 10년 수익률은 1990년에는 8퍼센트, 1996년에는 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1987년 연방준비은행은 미국 증시 폭락과 1990년 초반까지도 지속된 높은 실업률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주식과 채권의 가격은 할인율이나 금리가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상승하기 때문에, 이런 상태는 금융자산의 가격에는 호재였다. 꾸준한 수익률과 성장률은 제로인 주식은 할인율이 15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떨어지면 가치가 2.5배 상 승한다. 성장세의 기업일 경우에는 주가가 훨씬 더 많이 상승할 수도 있으 며, 초기의 가치 산정에 비해서 이 높은 수치는 버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후 연방준비은행은 활황인 주식시장이 정치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것 을 깨달았다. 경기나 주식시장이 안 좋아질 조짐이 보일 때마다 연방준비은 행은 통화를 공급하여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노동 인구가 증가함에도 불 구하고 실업률은 떨어졌으며 인플레이션도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경제학 자들은 '대안정기 great moderation'가 경기순환을 과거의 유물로 만들 것이라고 이 야기했다. 투자 전략가들은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며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이 주가에 난류 가 감지될 때마다 그 위험을 상쇄시킬 것이라 믿었다. 앨런 그린스펀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규모가 크고 활발히 거래되던 주식은 순식간에 팔아 치워 질 수도 있었다.
- 2000년에 나스닥 100은 고점에서 주가수익률이 100을 넘었고 그다음 2년 동안 78퍼센트가 더 올랐기 때문에 IT 버블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박하는 사 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S&P 500이 수익 대비 1929년과 1966년을 초과하는 수치인 30배 이상에 거래된 후 반 이상의 가치가 날아갔음에도, 규모가 큰 성장주에 버블이 있었다는 것을 반박하는 사람은 꽤 많다. 다우 36,000」의 저자들이 언급했듯, 가치를 예상하는 데에 차이가 클 수 있지만 큰 버블이 존재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추론은 어렵지 않다. 다만 가치보다 싼 주 식을 사고 가치 대비 비싼 주식을 팔려는 가치 투자자에게는 유용한 결론 이 아니다. 주식이 가치 대비 2배에 거래되고 있다면, 이미 오래 전에 팔았 어야 한다. 여기서 어려운 것은 버블의 군중 심리학이다. 군중의 심리는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옳은 전제하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오랜 과거를 기반으로 한 기대가 너무 보수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다. 사람들이 사실에 대한 오해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그를 기반으로 더 큰 오해가 퍼지기 시작한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 을 하게 된다. 금융의 역사는 벼락 경기와 불경기의 연속이며, 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수가 맞는 경우가 있기나 한지 고민하게 된다.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가격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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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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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1330년대에서 1350년대까지 이 중대한 역병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했다. 이는 1340년대 최초의 페스트 창궐 이후 유럽의 인구 감소에 비견될 정도였는데, 장기간에 걸쳐 이와 비슷한 사망률을 초래한 질병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제는 페스트의 야생 발 생지가 중국 근처라는 견해를 지지해 주는 유력한 근거가 있다. 페스트 박테리아의 DNA 흔적이 26,000~2,600년 전에 중국 내 또는 중국 인근에서 진화한 박테리아라는 주장이다. 중국이 몽골제국의 원 왕 조(1260~1368) 지배 아래 통합된 후에, 페스트가 이들 먼 지역으로부터 인구 밀집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쉬웠을 것이 다. 사실, 페스트가 14세기 이전 중국에서 발생했다면, 페스트 직전 에 곳곳에서 기록으로 보고되고 있는 홍수와 지진을 통해 감염된 설 치류를 통해 퍼져 나갔을 것이다. 이런 재앙의 결과, 들쥐 떼가 인가에 사는 설치류와 가까이 접촉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쥐벼룩이 페스 트 박테리아를 인간에게 옮겼을지도 모른다
- 격리란 단지 질병에 대한 방어의 목적으로 계속하는 것이 아니었 다. 16세기 후반 페스트에 시달린 나라들의 내부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내린 금지 조치에 의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외국 항구에서 역병 기미만 나타나도 그런 금지 조치를 충분히 단행할 수 있었고 어떤 경 우에는 경쟁국의 상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그런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병의 전파를 막는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노력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중요했을지는 의문이다. 역병에 대처하는 초보적인 규정만을 갖춘 나라들은 무역의 단절에 특히 취약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1600년대 초 역병 공포로 15년간 불황에 시달렸고 그 후 경제 회복이 지체되었다. 그러므로 새 국왕 제임스 1세가 내린 역병에 관한 칙령은 인근 나라 및 무역 상대국들에게 필요한 보호 조치를 취했다고 안심시키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와 같은 칙령은 또한 심각해지는 빈곤과 부랑민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빈민 그리고 악당이나 범법자outlaw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격리했다. 이 암울한 사람들은 초기에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표면적으로는 역병 퇴치를 겨냥한 법규의 목표물이 된 것이었다. 환자와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병원들이 세워졌다. 역병이 잠잠 해지면 이들 병원은 병약한 사람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수용 시설로 전용되었다. 마찬가지로 격리 조치도 사회적 여과 장치 로 작용해, 원치 않는 인물을 배제하는 반면, 중요한 인물은 그들이 감염 지역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통과하도록 허용했다.
- 페스트 이후 3세기 동안 유라시아, 북아프리카 및 동아프리카의 상당 지역이 역학적으로 얽혀 있었다. 중세 후기의 역병은 비록 간헐적이 기는 하지만 그 이전 수천 년 동안 진행되어 온 과정에서 가장 늦게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질병들 사이에 서로 약간 뒤섞이기도 했지만, 세계의 여타 지역은 이 역병에 이제야 노출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항 해로 인해 구세계 질병 대부분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고 신세계 의 전염병 매독syphilis이 귀환한 항해자들과 함께 동쪽 유럽으로 퍼져 나가는, '교환'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그리고 아마도 페스트와 같은 구세계 질병들이 어느 정도로 유럽인의 남북 아메리카 정복에 도움을 주었는지, 그뿐만 아니라, 매독이 아메리카 토착 질병인지 아니면 유럽에 이미 존재했던 병원균의 돌 연변이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어느 정도는 여전히 공인된 사항이지만, 콜럼버스적 교환이 불평등했던 것은 분명하다. 매독은 초기에는 치명적이고 끔찍한 질병이었지만, 그 병이 유럽에 끼친 영 향은 콜럼버스와 접촉을 한 뒤의 남북 아메리카의 인구 감소와 거의 비교가 되지 않는다. 
- 북미 지역은 17세기 중반부터 사탕수수 농장의 끊임없는 성장으로 발병하기 쉬웠다. 노예선은 더 빈번하게 대서양을 횡단했으며, 종종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노예와 이집트 모기Aedes aegypti의 유충을 운반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설탕(사탕수수) 경제가 발전하면서 일어난 환경 변화였다. 사탕수수 재배용 길을 만들기 위해 숲을 개간함으로써 새로 들어온 곤충과 모기를 먹이로 삼았을 조류와 동물들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그 반면에, 물 항아리와 저장 탱크는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여러 장소를 제공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설탕 그 자체였다. 농장 근처에 설탕 찌꺼기가 남아 있 었고, 그 후 해안 도시에 건설된 제당 작업장 주변에 박테리아의 성 장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어 모기 유충에 영양을 공급해 주었던 것이다. 
- 1840~50년대에 대서양 양안의 여러 나라들은 황열병을 막기 위한 격리 조치를 완화했다. 1828년 지브롤터에 잠시 나타난 이후 유럽에  발병 사례는 없었다. 병이 자취를 감추자 안정감이 되살아났다. 그것은 마치 짐승이 열대 지방의 은신처로 돌아간 것 같았다. 프랑스는  1847년 황열병에 대한 격리를 일방적으로 없애는 데까지 이르렀으 며, 영국과 그 대서양 제국에서는 그러한 방역 조치를 완화하거나 폐지했다. 북아메리카 일부 항구는 황열병의 영향을 계속 받았지만, 예 전처럼 정기적으로 엄습하거나 심각하지는 않았고 북미 지역 나라들도 방역 장벽을 낮추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186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규제가 느슨하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는 종국을 고했다. 각국이 위생 조치를 재검토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제도를 새로운 조치로 대체하거나 보완할 것을 고려했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황열병의 유병률 및 발병률의 급상승에 따른 것이었다. 1850년대부터 이 질병은 대서양 서쪽을 통해 급속히 퍼졌고, 무역을 통해 남미 및 카리브해의 발병지와 연결된 세계의 다른 지역을 위협했다. 1830년대에 증기선의 등장으로 대서양 횡단의 여행 기간이 약 30일에서 15일로 단축되었고, 1880년대는 스크루 프로펠 러와 같은 동력의 향상으로 다시 더 짧아졌다. 황열병은 그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대서양을 횡단해 전염될 수 있었고 그 지역 전체에 걸쳐 상업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었다.
- 1865년 전세계는 메카Mecca에 모인 순례자들 사이에 콜레라가 발생 하는 것을 공포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 전염병으로 약 3만 명 메 카 순례자의 거의 3분의 1 이 죽었으며, 이는 곧 세계를 뒤덮을 역 병의 핵심을 이루었다. 광대한 영토에 인구가 널리 흩어져 있는 러시 아에서는 약 9만 명이 병에 걸려 죽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그 전염 병이 대부분 항구를 엄습해 사망자는 거의 5만 명에 가까웠다. 프로 이센과 전쟁에 휘말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병사자는 16만 5천 명을 넘었다.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결핵과 같은 일반적인 전염병과 비교하면 치사율이 대체로 낮은 편이었다. 콜레라에 대한 공포감은 그 병이 실제로 초래할 통상적인 위험을 훨씬 더 초과한 것 이었다. 그것은 병사자 대부분이 겪게 되는 그 끔찍하면서도 수치스 러운 죽음 때문에 특히 서구인의 상상력을 강렬하게 장악했다. 콜레라는 이 불행한 사람들을 어떤 사전 경고도 없이 엄습했으며, 그리고 전신에 나타나는 첫 번째 증상 후에 그들은 곧바로 복부 경련을 일으키고 설사가 멈추지 않아 뱃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했다. 신경 쇠약과 죽음이 그 뒤를 따랐다.
- 중국 윈난성은 여러 해에 걸쳐 페스트에 시달려 왔으나 1850년대에 는 더 자주 발생했고 때때로 광시廣西와 광둥廣東 등 인근 성으로 퍼져 나갔다. 민란이 페스트 창궐의 주된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다 른 성으로 퍼진 것은 수익이 높은 아편 무역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무역이 고지대 감염 원천지와 남부 및 동부의 상업 중심지를 연결시켰던 것이다. 이후 제3차 대역병Third Plague Pandemic으로 알려지게 된 최초의 창궐 시기가 언제인지 의논이 분분하지만, 1890년대에 이 질병이 윈난성 동남부 주요 무역 도시 중의 하나인 멍쯔蒙自로부터 주강珠江 강변의 일부 촌락까지 전염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 이전 에는 질병이 윈난성을 벗어난 후에 없어졌지만 1890년 이후에는 계 속 번져 1894년에는 광둥성 전역을 엄습했다. 그 후 광둥성 수도이자 주요 상업 중심지인 광저우廣州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따뜻한 날씨에 힘입어 선腺페스트가 창궐했기 때문에, 1894년 초 광둥성의 심한 더위가 질병 확산에 유리했을 것이다. 5월경 페스트는 이미 해안을 따라 영국과의 조약으로 할양된 홍콩 항에 이르렀다. 광저우에서 80마일도 못 미쳐 주강 하구에 있는 홍 콩은 감염에 매우 취약했다. 정크선(범선)이나 증기선을 이용해 강 상 류의 항구들과 교역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으 려고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쿨리coolie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하층의 중 국인 인도인 노동자를 서양인이 부르던 호칭. 옮긴이 주)라고 불리는 수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고향에 머물러 있으라는 권고appeal는 무시되었으며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도 않고 도 시로 들어왔다. 광저우 주민들은 페스트 발병 보도를 듣고도 특별히 놀라지 않았는데, 이는 많은 중국인들이 그 질병을 전염성 있는 병으 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거주지와 사업장 주변의 공기를 정화하려고만 했다. 그 지역의 어떤 도시도 어떤 형태로든 격 리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개혁안이 발의되었음에도 위 생 상태는 열악했다. 홍콩의 영국 당국은 수많은 중국인 지주들이 이 런 개혁에 저항하는 것을 묵인해 왔다. 인구 과밀을 규제하면 그들이 임대료로 거두는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홍콩에서 페스트는 인구가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거리를 통해 급속하게 퍼졌다. 6월 중순까지 거의 2천 명의 목숨을 앗아 갔는데, 이때 의 페스트는 이전의 것과 아주 다른 종種임이 분명해졌다. 안일했던 도시는 곧바로 공황 상태로 변했다. 8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다. 그 결과, 상업은 '심각한 영향을 받았으며 노동력이 부족해졌다.
- 1910~11년 만주를 휩쓴 전염병은 약 6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는 데 인도 아대륙 서부와 북부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한 인도 전염병 이래 가장 치명적인 발병 사례였다.135 1890년대 중국 남부에서 창궐 한 전염병과 달리 만주에서는 강이나 연안 항로보다는 철도를 타고 퍼졌다. 그런 시나리오는 그보다 몇 년 전에 인도에서 페스트 확산을 목격한 영국의 세균학자 한킨E. H. Hankin이 예견했던 터였다. 아시아·아프리카의 대규모 철도 공사를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질병이 근절될 것이라는 약속은커녕, 점증하는 불안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 예언은 적중했다. 1890년대 이후 만주는 점차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한 러시아와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 다. 러시아는 만주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자신의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북만주를 가로지르는 동청철도東靑鐵道를 건설했는데, 이 철도 는 모스크바와 태평양 연안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최종 구간이었다. 동청철도와 남쪽 뤼순旅順의 러시아인 정착지까지 남부지선으로 연결되었으나 1904~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게 패배한 후에 러시아 세력은 북쪽으로 밀려났고 뤼순과 연결되는 남부 지선은 일본이 장악해 반관영 남만주철도회사만철滿鐵에 귀속되었다. 1910년 흑사병이 만주를 엄습했을 때, 그것은 내륙 멀리 떨어진 페스트 발생 지역과 하얼빈이나 선양陽 같은 주요 산업도시를 연결하는 이 노선을 타고 퍼졌던 것이다.  페스트에 대한 최초의 보고는 1910년 10월 내몽고의 한 작은 철도 읍 만졸리에서 비롯되었다. 다음 달에는 러시아 지배하의 하얼빈시에 서 이 질병이 나타났는데, 시베리아 마멋(타르바간tarbagan, 중앙아시아산 다람쥐과의 하나)을 사냥하던 두 남자가 페스트 진단을 받았다. 타르바간은 페스트의 야생 감염원인 셈이었고 과거에도 사냥꾼들은 병에 걸렸었다. 그러나 새로운 철도 연결을 통해 이 질병이 평소의 범위를 훨씬 넘어 퍼질 수 있게 되었다. 하얼빈 철도 거점은 곧 페스트의 확산 지점이 되었다. 페스트는 만주 중부 및 남부 지역, 그리고 인접해 있는 허베이성과 산둥성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감염 경로는 중국 새해를 맞아 귀성하는 노동자들의 경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이 경우 페스트는 바이러스성 폐렴 형태를 띠게 되어 승객이 빽빽 하게 들어찬 철도 객차와 인구가 과밀한 빈곤층 주거지에 쉽게 퍼져 나가기 때문에, 한정된 구역으로부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다. 따라서 그 당시 만주 유행병에서 특히 페스트 통제 조치는 쥐보다 사람에게 더 집중했다는 점에서 가장 최근 발병에 취해진 것과 상당히 달랐다. 첫 번째 전염병이 창궐할 때, 철도 차량을 격리용 객실로 바꿨고, 그다음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하얼빈에서 러시아 측은 중국 측과 협력해 격리와 감염된 주택 소각을 비롯해 '엄격한 조치'를 시행했다. 러시아 당국은 말레이시아 출신의 케임브리지대 졸업생 우롄더吳連德 박사를 채용해 페스트를 직접 치료하도록 했다. 남만주에서도 일본인들이 페스트에 대해 이와 비슷하게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강력한 대응을 했음에도, 만주에서는 경제 교 란이 심각했다. 타르바간 모피의 거래는 1911년 러시아와 중국 두 나 라에서 모두 금지되었다. 물론 그 후에 특정 철도역에서 모피 제품의 검사와 소독 조치를 포함해 우롄더 박사가 작성한 엄격한 규정하에 다시 재개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철도 운행의 중지 에 따라 무역이 심각한 영향을 받았으며, 전염병 창궐기에 총 손실이 1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 2002년 11월, 중국 남부의 한 정부 관리가 폐렴에 걸렸는데, 이 병은 일반적인 치료 형태에 반응하지 않는 나쁜 사례였다. 2월 중순까지 광둥성에서 3백 건 이상의 급성호흡기증후군의 발병이 보고되었고 5명이 사망했다. 베이징에서 파견된 의료진이 발병 사례를 조사하고 광둥성 호흡기질환연구소장 중난산嶺南山 박사를 만났는데,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새로운 감염병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시점 에서, 그 발병은 공식적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우려감이 증폭되 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약이라면 어느 것이나 손에 넣으려고 했기 때문에 약종상들이 몰려들었다. 중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그 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병이 비말 감염으로 퍼진다는 것을 발견했고, 환자들을 격리시킴으로써 감염을 막으려고 했다. 정부의 보건 당국자들은 이러한 발견을 무시했지만 3월 중순에 이르면 이 문제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 었다. 홍콩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에서 전염병이 발생했으며, 이때 부터는 알려진 바대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SARS)'은 더 이상 국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 었다. 3월 15일 세계보건기구는 사스가 이미 전 세계적인 보건 위협' 이 되었음을 천명하면서 이미 캐나다,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발병이 확인되었음을 밝혔다. 3월 19일까지 미국, 에스파냐, 독일, 슬로베니 아, 영국 등지에서도 의심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질병의 이동 속도는 무섭게 빨라져서 세계가 얼마나 작아졌는지 실감하게 했다. 필연적으로 '사스'는 곧 세계화 현상과 연결될 터였다. 즉, 질병이 상업과 관광 네트워크를 따라 퍼지면서 물질적 의미 와, 그리고 좀더 미묘한 방식으로, 전자 매체로 가능해진 정보의 신속한 송신에 의해 가상의 대유행병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2월의 투기, 소문, 고의적인 허위 사실이 그대로 퍼지면서 기업 신뢰를 떨어 뜨리고 상품과 통화 시장에 내재된 불안정을 증폭시켰다. 심지어 세계화를 공개적으로 칭찬했던 사람들조차 새로운 경제는 대체되는 것 이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창조물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1990년 대 후반, 최종 위기는 동남아시아의 '호랑이' 경제(신흥공업국 경제)의 급속한 상승을 갑작스럽게 종식시켰지만, 그때 금융 붕괴라는 전염 병'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다. 미래는 훨씬 더 불확실해졌다. 세계 경제는 금융 전염뿐만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도 점점 더 취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 조류독감과 돼지독감은 사스와 큰 차이가 있었지만, 두 질병에 대 한 반응은 새로운 세기 이 최초의 대유행병이 남긴 유산에 따라 조성 되었다. 사스는 세간의 이목을 끈 테러 공격과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 에 대한 우려 속에서 소련 블록의 몰락과 함께 밀려 온 낙관론이 수그 러들고 있던 시기에 발생했다. 서구에서 방어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났 고 많은 공중보건 관계자들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따라 움직였다. 아 마도 자기 분야의 미래가 국가 및 세계의 안전 문제에 어떻게 관여하 는가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량 사망자 수를 예측하 는 것은 대유행병에 따른 대재앙에 대해서 만약이 아니라 언제 의 태도를 조장했으며, 지금까지 위험에 빠져 있었던 의학의 한 분야(공중보건) 쪽으로 좀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하는 데 이용되었다. 대중은 종종 이런 과장된 주장에 회의적이지만, 그러면서도 국경을 넘나드는 무 역과 인간의 이동을 줄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손에 휘둘렸다. 검역과 무역 금지는 최근에 확립된 세균 행정germ governance 의 관례에 따라 책임성 있는 조치로 제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치 가운데 일부는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규정이 이 일련의 다양한 관행을 지속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SPS 협약은 각국이 감 염 위험성에 대한 적절한 과학적 평가에 따라 국제 표준에 근거한 조 치로 이룩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은 보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12 이 조항은 해외 경쟁을 제한하려는 국가들이 가혹하게 자주 악용할 수 있는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제 반 조치에 실린 믿음은 때로는 잘못된 것이었다. 일부 비평가들의 견 해로는, 차단 방역bio-security' 이라는 지배적인 개념은 잘못된 표현이 다. 이 말이 그릇된 안전의식을 낳았고, 대중이 그렇게 할 수 없는데도 독감과 같은 질병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물과 육류 생산물의 밀집사육(및 원거리 무역)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위장막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 인수 공통 감염병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동물 의 대규모 밀집사육이다. 퓨위원회rew Commission(퓨Pew 자선재단의 기금으로 설립된 공장식 밀집사육에 관한 조사위원회)는 존스홉킨스대학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과 협동으로 작성한 공장식 사육에 관한 최근 보고서에서 “동물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병원균의 위험성 제고, 비치료적 목적(즉 성장 촉진)을 위해 사용한 항생제와 항균제에 내성이 있는 미생물의 출현, 식품에 의한 질병, 근로자의 건강에 대한 우려, 그리고 지역사회에 확산되어 미치는 충격” 등을 경고했다. 아마도 이들 문제의 핵심은 공장식 사육 농가가 일부 논평자들이 부르는 이른바 '진화 가속 경로evolutionary fast-track'를 제공해 병원균을 더 치명적인 형태로 변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독감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 로버트 웹스터Robert Webster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전에는 뒷마당의 가금류를 먹었다....이제 우리는 수백만 마리의 닭을 공 장식 사육 시설에 집어넣는다. 그 바로 옆에는 돼지 사육 공장이 있다. 이제 이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옆의 닭 사육 시설에 침투해 수십억 마 리의 돌연변이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 위생적 책임이 있는 곳에는 항상 논란이 빚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 는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가 어렵다. 국경을 넘어선 감염에 초점을 맞추면 정부와 생산자들은 다른 곳에 책임을 넘길 수 있는 반면, 특정 생산물의 배제라고 하는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강제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보호주의 충동은 종종 질병과 무역 자체의 본 질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을 이용하는데, 이는 국내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문화적 영향력을 들여오려는 성향이기도 하다. 세계화 시대 에 이러한 두려움은 불편과 불안 등의 일반 감정과 뒤섞여 작용한다. 부유한 나라들은 더 값싼 제품과의 경쟁을 두려워하고 개개인은 전염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치명적인 대유행병이든, 광우병과 같은 은밀한 감염의 형태든 다 그렇다. 세계무역기구와 세계보건기구 같은 단체들은 이 불안정한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시도했지만 감염 위험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든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로 과학'에 호소하 지만, 무역의 위생 규제에 순수하게 기술적인 해결책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고 제안하는 것은 기껏해야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 면 위험한 허구다. 무역의 자유를 유지하고 위생 보호를 제공하는 우 리의 가장 큰 희망은 어떤 이익 집단도, 어떤 국가나 무역 블록도 지 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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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생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Profits are an opinion. Cash is a fact.” "이익은 주장이고 현금은 팩트다.
국제경영 컨설턴트 알프레드 라파포트가 처음 말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원조라는 의견도 있는데, 아무튼 비슷비슷한 여러 버전으로 전해 내려 오고 있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영업이익이 100억 원 났다고 해도, 그건 현금 100억 원이 지금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감가상각 등 여타의 발생주의 회계적 숫자를 차감하면 더 많은 현금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죠. 이 렇듯 회계정보와 실제 현금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숫자를 봐야 합니다.
- 수주산업(건설사, 조선업 등)이 한참 문제가 많았던 2015~2017년 당시 건설사 재무상태표에 나오는 '미청구공사'라는 계정과목이 갑자기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청구공사는 매출채권과 유사한데 진행율이라는 기준으로 매출을 청구하는 수주산업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계정과목이었습니다. 보통 잘 언급되지 않던 계정과목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건설사의 부실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주를 딴 회사가 100억 원짜리 공사를 30% 완성시키면, 30억 원을 발주사에게 청구합니다. 그러면 발주사는 현장을 가보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에이, 30%는 아니고 25% 밖에 진행 안 됐네요."
그러면 당초 예상과 5% 차이가 나게 되는데, 이 5%를 미청구된 공사'라 하여 따로 계정과목으로 관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외플란트와 같은 대규모 공사에서 생각보다 건설 중에 원가가 많이 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점점 공사의 진행은 더뎌지고, 진행은 되었지만 발주처가 인정해 주지 않은 부분이 쌓이게 된 거죠. 그 결과 수주처의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를 미청구공사'로 우선 막아둔 거죠. 그 결과로 더 큰 문제가 발 생했습니다. 나중에 갑자기 건설사와 조선회사들이 미청구공사 금액을 은근 슬쩍 한 번씩 손실로 떨어내는 사례가 우후죽순 드러났고, 모든 사람들이 미 청구공사는 수주산업에 있어서 Risk를 알리는 지표가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 습니다. 최근에는 표현이 바뀌어 미청구공사를 계약자산이라고 표기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주석 중 약정사항이라는 항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는 가끔 분쟁에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주먹다짐을 하는 형사소송은 드물고, 이권과 손해배상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겠죠. 소송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소송금 액)이 클 경우엔 재무제표에 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석 우발부채로 말이죠. 재무제표에 금액으로 들어가있진 않지만, 주석에서 이렇게 우발부채가 발 견될 경우, 계류 중인 소송사건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소송가액을 봐야 합니다. 만약 소송에서 패할 경우 회사에서 얼마를 상대에게 물어줘야 하는지 체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송 얼마나 되겠어?" 하고 확인 안 했는데 나중에 큰 금액이 나와서 흑자가 적자로 바뀔 수도 있습 니다. 기업 간 이권에 대한 소송이기 때문에 단위가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경우 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용을 봐야 합니다. 소송 관련해 기업이 진행했던 사업활동에 대해 기술되어 있으니, 어떤 원인으로 분쟁이 일어났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분석 회사가 피고라면 즉 소송을 당한 입장이라면 더 주의 깊게 볼 필요 가 있습니다. 보통 소송의 원인은 손해배상, 계약 불이행 등이 많고, 건설사라면 하자보수, 시설물 복구 등의 이유로도 소송이 종종 생깁니다.
소송의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되면, 해당 금액을 충당부채라는 항목으로 재 무제표에 표기합니다. 렌탈관리, 환불, 마일리지, 복구 등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 하다 보면 일정 비율 이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미리 충당부채로 반영 해두는데, 소송도 마찬가지로 소송충당부채'를 통해 정리하는 것입니다.
- 유상증자는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고 그걸 판매해서 자금을 모으는 것입니다.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거나, 제3자 배정을 하기도 하고, 공개시장에서 자본을 공개모집하기도 합니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대출금이 자본으로 출자 전환되는 경우에도 증자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반면 무상증자는 신주에 대해서 대금을 받지 않고 기존 주주들에게 일정 비율로 주식을 나눠줍니다. 신주를 발행해 회사의 여윳돈(잉여금)으로 산 후, 그걸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죠. 회사 자기자본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회사 의 자기자본은 자본금 + 잉여금이기 때문에, 잉여금 항목이 자본금으로 옮겨 갔을 뿐이죠. 아무튼 주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증자는 대표 적인 주주친화정책으로 통합니다. 보통은 주가가 높고 기업가치가 높아진 회 사들이 주식유통량을 높이기 위해 실시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 다고 왜 무상증자를 하는지 이유를 잘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무상증자를 1:1로 하면 1주 가지고 있던 주주가 1주를 더 받아 2주를 갖게 됩니다. 산술적으로는 기업가치에 변함이 없으니, 주가가 반토막이 나야 합니 다. 실적도 좋고, 이미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주가가 고가인 기업이 무상 증자를 진행합니다. 100만 원짜리가 50만 원이 되어도 아직 괜찮다 싶은 기업 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적자이면서도 무상증자를 하는 기업들이 있 습니다. 왜일까요? 적자인 기업들 중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 다. 전환사채를 부채인데 적자기업이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빚이 더 늘어나니 까 위험하지 않을까요? 전환사채 발행 후 받은 돈을 나중에 다시 같으려 하면 당연히 부담이고 위험합니다. 하지만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 가능하니, 구매자들이 현금 대신 주식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현금유출 부담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무상증자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전환사채 구매자들이 매력을 느끼고 주식으로 전환해 가져가게끔 하기 위해. 무상증자는 보통 시장에서 호재로 받아들여져 주가상승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빚을 현금 대신 주식으로 갚아버리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늘어난 물량은 가격 하락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식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죠. 이런 경우를 볼 때마다 본 사업목적은 온데 간데 없고 투자전문 회사가 된 듯한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증자와는 반대로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을 '감자'라고 합니다. 감자는 자본금 을 감소시키는 것인데, 주주로부터 주식을 회수해 소각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 유상감자는 흔하지는 않은데, 상장사에서 비상장사로 바꾸거나, 주식회사 에서 유한회사로 형태를 바꾸려는 경우, 혹은 회사 규모에 비해 자본금이 지 나치게 많다고 판단할 경우 진행합니다. 또 대주주나 기존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유상감자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2019년 야놀자는 유상감자 를 통해 1,000억 원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당시 펀드 만기 등 의 문제로 투자금 회수 필요성이 있었다고 야놀자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감자의 대부분은 무상감자입니다. 상 장사의 경우 무상감자는 주주들에게 악재로 비춰집니다. 가진 주식을 아무 대 가 없이 가져가버리니, 이에 찬성할 주주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상감자가 이 뤄질 때는 회사가 굉장히 안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습 니다. 기업회생이 필요하거나, 부도, 상장폐지 직전의 회사인 경우 무상감자를 주주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회사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청산절차까지 간 회사에 주주는 즉 투자자는 채권자보다 후순위입니다. 투자의 책임을 져야 하 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유상감자는 외국계 자본이 많이 합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 는 기업이 자본금을 줄이고, 개인투자자를 모두 없애고 나면, 강력한 경영권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실적 좋은 기업들은 배당을 많이 해서 대주주가 이 익을 사외로 유출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할 수 없는 적법한 행위입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본이 이렇게 하면, '국부유출' 이다 뭐다 해서 논란거리 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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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두뇌 회로는 사실을 찾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동의하는 견해들을 자연히 '사실'인 것처럼 아주 빠르게 규정해 처리한다. 이스라엘 네게브 벤-구리온 대학교의 한 연구팀은 〈그게 내 진실이야〉 라는 이름의 연구에서 우리의 견해가 변화에 저항적일 뿐 아니라 기존의 자기 견해와 모순되는 사실을 대할 때 자기도 모르게 거부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게다가 모든 인간이 가진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은 이러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의 견해를 확인해주는 정보를 찾고 또 자 신의 관점을 지지하는 사실만을 골라내는 데 아주 특화돼 있다.
- 사실은 스토리가 아니다. 사실은 가슴을 울리지 못하고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의사결정은 이성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통계나 연구 결과를 들이미는 것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진심 어린 관계를 맺고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 구매 습관, 선거권 행사에 변화를 줄 수 없다. 그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 내가 들었던 말들은 내게 가장 큰 불안감을 가져다주고, 가장 큰 약점이 되고, 가장 큰 장애물이 됐어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나에게는 늘 키가 작고, 세상 물정을 모르고, 충동적이며, 못생기고, 선머슴 같고, 어리석고, 반항적이고, 괴짜에, 정신이 나간 애 같다는 꼬리표가 붙곤 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최대 강점들이 됐다. 나는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 때문에 성공했다. (AJ 멘데스 AJ Mendez, 미 여자 프로레슬링 챔피언)
- 당신과 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다. 고객이 바라는 모습이라는 '당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잘못된 기대치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생각과 다른 어떤 것을 설득하려 든 다면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란 인상만 주게 될 것이다. 이미 굳어진 인상을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모순보다 브랜드 스토리에 치명 적인 피해를 안기는 것은 없다. 분명히 해두자. 스토리가 없는 설득은 당신이 현재와 다른 어떤 모습이 되리라는 점을 상대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 설득은 믿음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스토리를 찾는 일이다. 간신히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으면서 혁신을 약속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개를 좋아하기도 않으면서 데이트 상대에게 그렇다고 이야기하지는 말라. 지금 하는 일도 간신히 처리하는 중이면서 상사에게 관리직을 맡을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신이 보는 자신과 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이 보는 당신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 개인적으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운동 동안 주장한 메시지를 받아 들였든 아니든 내 연구에 따르면 많은 유권자들이 그로부터 진정성이 있고 여과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그는 자신이 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되 그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신뢰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나는 경제 위기에서 미처 다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지역에서 이루어진 트럼프의 연설을 분석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듣고 싶었던 말은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가 아니었다. 그런 말들은 그들의 경험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일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느낄 만한 것이 없었고 게다가 아직도 먼 길'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당장의 해법'을 원했다. 트럼프가 “다시 일을 하고 싶고, 미국에서의 일자리를 원하며, 많은 일자리를 해외로 빠져나가게 놓아둔 지금의 정부에 실망했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되짚어주자 그들은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진정성에 대해 생각하는 또 다른 방법은 취약성이다. 휴스턴 대학교의 연구 교수로 지난 20년 동안 수치심과 취약성에 대해서 연구한 브레네 브라운 Brene Brown 박사는 취약성을 불확실성과 위험, 감정 노출로 정의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당신은 '그런 특성들은 내가 설득에 끌어들이려 하는 요소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이야. 나는 위험이 적고 감정 노 출의 가능성이 낮은 상태로 내가 이길 것이란 확신을 갖고 싶어'라고 생 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을 설득한, 즉 당신의 지지를 얻어낸 정당, 당신의 표를 얻은 정치인, 당신의 지갑을 열게 만든 그 제품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취약성이 존재할 때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 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트럼프는 허세와 허풍으로 유 명하지만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그것을 지지자들 앞에서 장점으로 재구성했다.  경험 없이 공직에 출마하려는 사람이라면, 그 점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기존 브랜드의 사용을 중단하고 신생 회사의 브랜드를 이용해보라고 권하는 경우라면 그로 인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편이 낫다. 여성으로서 남성의 유급 출산 휴가 인정을 회사에 로비하고 있다면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명백한 대변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이 왜 장점이 되는지 설명하는 것이 좋다. 회사가 엉망인 상태에서 신 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우선 회사가 놓인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이 장에 서 말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취약성을 어떻게 사용하면 상대의 귀에 거짓으로 들리지 않게 하면서도 주장을 강화할 수 있는가?
- 우리 회사에서는 늘 두 가지 진실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진실’ 과 ‘그들의 진실'이 말이다. 설득에서 문제가 되는 진실은 그들의 진실, 단 한 가지이다. 그 진실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설득은 불가능하다.
- 말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닿아야 한다.
공감은 다양한 경험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 책의 목적에따라 나는 공감을 다른 사람들의 감정, 가치, 행동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감정, 가치, 행동에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당신이 세상을 그들의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판단을 보류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할 능동적 공감은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 감정: 어떤 감정이 내가 상대방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가능하게 혹은 불가능하게 할까? 내가 각자의 감정 상태를 어떻게 다루어야 우리가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까?
2. 가치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게 중요한 가치관을 그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언어로 소통시킬 수 있을까??
3. 행동: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행동,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행동을 통해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할 방법은 없을까?
- 공감은 단순히 당신이 아는 것을 내가 알고 당신이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을 대신해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지적 공감을 실행할 수 있다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들의 경험이내게 스며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메시지의 전달에서 대단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현재 절반 이상의 미국인들은 정부가 아닌 미국의 기업계가 이 나라 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과 그 리더 들이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과거에는 뭔가를 말하는 게 가장 큰 위험이었다면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위험이다. 콘/포터 노벨리 Cone/Porter Novelli 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78퍼센트의 미국인이 논란이 있는 주제에서 브랜드가 취한 입장에 근거해 해당 브랜드를 처음으로 구매한다. 50퍼센트는 회사의 기조와 가치관에 근거해 구매를 한다. 51퍼센트는 침묵을 지키기보다는 목 소리를 내는 브랜드의 충성 고객이 되며, 48퍼센트는 자기 주장을 펼치 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경쟁 브랜드를 비판하는 브랜드를 지지하고 옹호한다. 30퍼센트는 불과 4년 전인 2014년에 비해서 특정 회사의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거나 구매를 거부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위험을 피하지 만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에 와 있으며,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을 때 모든 사람이 뜻을 같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시점까지는 개인적인 문제에서나 직업적인 문제에서나 우리의 본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을 거야. 안티들이 싫어할 테니까.” 하지만 총기 규제와 같은 문제를 생각해볼 때, 당신이 닉스 스포팅 굿즈이건 밀리언 맘 마치 Milion Mom March (1999년 시작된 강력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운동 - 옮긴이 주)의 일원이건 반대 입장의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지 않으면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2013년 발표된 퀴니피악 Quinnipiac 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7퍼센트는 모든 총기 구매에 범죄 및 배경 조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목소리를 높이는 강경한 입장의 3퍼센트 때문에 대화가 미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입법권자에게 97퍼센트의 지지기반이 있다는 점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한 의미 있는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 우리의 두뇌 회로는 상대가 시선을 보내주고 귀를 기울여주기를 갈구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음번에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당을 지지하는 가족과 있게 되면 화를 내는 대신 호기심을 갖도록 노력해보라. 의견을 파악하는 인터뷰를 위해 이모를 찾아왔다는 식의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 집에서 나올 때까지 당신이 할 일은 이모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모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 이후 이모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전할 수 있는, 이모가 귀를 기울일 만한 이야기와 표현들을 생각해본다.
- “스토리텔링은 당신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들을 훨씬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줍니다. 스토리텔링은 강력한 유대를 구축하게 해줍니다. 소비자나 고객에게 긴장을 풀게 할 시간을 허락해서, 당신이 말하는 것마다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당신에게 귀를 기울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퍼뜨립니다. 하지만 보고서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퍼뜨리는 일은 없습니다.”
- 몇 년 전 '탑 기어' Top Gear 라는 TV 프로그램이 “어떻게 해야 도요타 Toyota 를 죽일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도요타 픽업트럭을 죽이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이 차를 만조 때의 바다에 여덟 시간 동안 넣어두었다가 끄집어냈다. 차는 소금물에 여덟 시간이나 잠겨 있었는데도 시동이 걸렸다. 그들은 레킹 볼로 차를 박살냈다. 그런데도 시동이 걸렸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불을 붙이고 한동안 타게 했다. 그런데도 시동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철거 예정인 73미터 높이의 건물 꼭대기에 차를 주차하 고 TNT 폭탄으로 폭파시켰다. 건물 잔해 사이에서 파낸 차도 시동이 걸 렸다. 고객들이 일상에서 자신들의 도요타를 이런 상황에 빠뜨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상을 본 고객들은 도요타가 생존을 위해 그 차 를 만들었다는 점을 잊지 못하게 된다. 도요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영상을 끝맺는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도요타의 80퍼센트는 오늘도 도로를 달리고 있다.”
- 당신이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발명입니다.” 라는 식의 말을 한다면 그것은 당신에 대한 것이고 당신 생각이다. 따라서 고객의 장애를 없앨 수가 없다. 고객이 당신을 탐욕스럽다고, 이윤만이 당신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곧바로 반박에 나설 것이다. 믿는 것과는 완벽하게 배치되는 말을 들을 때, 우리의 뇌는 그 말을 바로 차단해버린다. 파마케어의 경우, 감정적 유대가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브랜드를 인도 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스토리를 앞세워야 했다. 우리는 “치료법을 찾 아서: 당신의 삶에 시간을 더하고 당신의 시간에 삶을 더한다.” 라는 거대 서사를 만들고 뉴저지에서 자라 고향 땅에서 항생 물질을 발견한 소년 을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 중요한 것은 무슨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슨 말을 듣는가다. (마슬란스키 앤드 파트너스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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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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