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가 아니다

인문 2021. 5. 25. 20:59

- 이 책은 반자연주의 관점을 채택한 다. 즉, 모든 존재가 물질적이지는 않다는 것, 혹은 자연과 학적으로 탐구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바꿔 말해, 나는 비물질적 실재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상식적 통찰이라고 본다. 내가 누군가를 친구로 여기고 적절한 감정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대할 때, 나는 그와 나 사이의 우정이 물질적인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나 자신을 단지 물질 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내가 적절한 몸을 가지 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우리 우주의 자연법칙들이 지금과 다르거나 생물학적 진화가 다르게 진행되었다면 내가 적절한 몸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말이다.
- 신경중심주의의 기본 사상에 따르면, 정신적인 생물이 라는 것은 적당한 뇌를 가졌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요 컨대 신경중심주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나는 뇌다〉로 요약된다. 《나》, 〈의식〉, 〈자아〉, 〈의지〉, 〈자유〉, 또는 정 신>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철학이나 종교, 또는 상식 따위 에 문의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 최선의 경우에는 신경생물학과 짝을 이뤄 ? 뇌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나는 뇌가 아니다!〉를 이 책의 비판적인 길잡이 명제로 삼는다.
- 신경과학자들은 우리 의 뇌 혹은 중추신경계와 그것의 작동 방식을 다룬다. 뇌 가 없으면, 정신도 없다. 뇌는 우리가 의식 있는 삶을 살아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뇌가 우리의 의식 있는 삶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필요조건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두 다리를 보유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기 위한 필요조건이 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혀야 하고 내가 자전거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등의 조건들도 따로 갖춰야 하니까 말이다. 뇌를 이해하면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이해하리라는 믿음은 우리의 다리를 이해하면 자전거 타기를 완전히 이해하리라는 믿음과 유사하다.
- 뇌의 10년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의 종결이 뚜렷해진 직후에 조지 H. W. 부시에 의해 선포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그 프로젝트는 오로지 의학 연구를 정치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생각하는 뇌를 - 따라서 시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전망은 감시사회를 (또한 군산 복합체를) 위한 새로운 통제 가능성을 의미하 지 않을까? 뇌에 관한 지식의 향상이 소비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의 발전을 약속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알 려졌다. 어쩌면 신경과학에 기초한 약물을(또한 광고를) 활용하는 새로운 여론 조작 메커니즘들이 개발될 수도 있지 않을까? 펠릭스 하슬러가 저서 『신경 신화Neuromythologie에서 설득력 있게 서술했듯이, 뇌의 10년은 새로운 로비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현재 미국 대학교들에는 흡연하 는 학생보다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하는 학생이 더 많다. 해상도가 향상된 뇌 영상에 대한 더 세밀한 이해는 크리스 토프 쿠클리크가 통제 혁명Kontroll-Revolution)이라고 적절하게 요약한 사회적 변환을 약속한다. 통제 혁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착취당할 뿐 아니라 개별적 으로 또한 정확하게 해독(解讀)〉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클리크는 그런 상황을 알갱이 사회granulare Gesellschaft) 라고 칭했다.
- 저널 『뇌와 정신』에 실린 〈뇌 과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선도적 신경과학자 11인의 선언문>의 말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설령 우리가 인간의 공감, 사랑에 빠져 있음, 도덕적 책 임감의 바탕에 깔린 신경학적 과정 전체를 해명한다 하더라도, 이 내면 관점Innenperspektive의 독자성은 여전히 존속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바흐의 푸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더라도 그 음악의 매력이 조금도 손 상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뇌 과학자는 자기가 말할 수 있는 것과 자기의 관할 범위를 벗어난 것을 명확히 구분해 야 한다. 이는 ? 다시 위의 예를 들면 - 음악학자가 바흐 의 푸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더라도 그 음악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는 것과 같다.
- 신경중심주의 - 곧, 《나》 = 뇌라는 주장 - 의 대표적 인 예로 네덜란드 뇌 과학자 디크 스왑의 저서 『우리는 우 리 뇌다Wir sind unser Gehirns를 들 수 있다. 이 책의 도입 글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고 방치하는 모든 것이 우리 뇌를 통해서 일어난다. 이 환상적인 기계의 구조가 우리의 능력, 한계, 성격을 결정한다. 우리는 우리 뇌다. 뇌 과학은 이제 더는 뇌 질병의 원인을 찾는 작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뇌 과학은 왜 우리는 이러이러한 우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작업, 우리 자신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의 이른바 실존주의까지 정신 철학의 핵심적인 생각 하나는, 인간은 사회적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이므로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이 생각을 특히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은 물론 사르트르의 소설들과 희곡들이겠지만, 당연히 카뮈의 문학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우선 자기를 단적으로 실존하는 놈으로서 발견하고 이어서 끊임없이 이 사태에 대해서 모종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과 구별된다. 바로 이 것, 곧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모종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유명한 에세이 실존주의는 인본주의다」에서 우리의 본질)로 칭한다. 그리하여 그는 실존주의를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이 문장의 배후에 있는 근본 사상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에서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칸트 윤리학의 중심 테마 이며, 특히 그 뒤를 이은 정신 철학의 중심 테마다. 또한 그 근본 사상은 오늘날의 철학에서도 다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컨대 크리스틴 코스가드, 스탠리 카벨, 로버트 피핀, 주디스 버틀러, 조너선 리어, 제바스티안 뢰틀의 철학에서 그러하다.
- 신실존주의는 사르트르의 생각, 곧 한 개인의 행위를 이 해하려면 반드시 그의 인생 계획Lebensentwurf(사르트르 의 표현으로는 〈프로젝트))을 이해해야 한다는 ? 이미 말한 대로 영향력이 큰 선배 철학자 칸트도 가졌던 ?? 생각을 이어받는다. 그 프로젝트의 수행은 개인이 다소 유의미 한 개별 행위들을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개 인이 자기의 삶을 어떻게 유의미하게 빚을 것인가라는 일반적인 생각의 틀 안에서 다양한 행위들 중에 일부를 선택 하는 것이 그 프로젝트 수행의 핵심이다.
-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 인간 속에 천성 적인〉 몸-영혼 이원론〉과 〈천성적인 목적론>이 존재한다. 고 지적함으로써 이런 형태의 영혼 미신을 설명한다. 내 눈 뒤에 《나》가 숨어 있으며, 그 《나》는 최소한 소설 속에서 다른 몸속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 모두의 속에 뿌리내려 있는지는 의심할 만하다). 그 유치 한 목적론〉은 〈모든 것의 배후에 의도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도킨스는 이 생각이 종교의 원천이라고 본다. 그에게 종교는 그의 유명한 저서의 제목대로 신 망상 God Delusion)*에 불과하다.
실제로 우리 눈 뒤에는 《나》가 없고 뇌가 있다. 그런 한 에서 도킨스는 옳다. 유기체를 살아 있게끔 하는 영혼 실 체가 있다는 생각도, 우리가 생명의 화학을 이해할 수 있음이 명확해진 이래로 근대 생물학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 생명, 곧 생물학적 생명의 화학 외에 따로 생명력이 있어 야 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생각들은 근대 자연과 학에 의해 시대에 뒤처진 것들로 전락한다. 이 통찰은 우 리의 자아상을 위해 전적으로 중요하다.
요컨대 실제로 뇌 과학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지침으 로 삼은 고유한 인식 관심의 틀 안에서, 목적론적 세계상 에서 유래한 과거의 생각들을 무력화한다. 예컨대 신경 세 포들 간의 신호 전달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온 통로들과 소수성(疏水性) 지방산 사슬들을 탐구해야 한다. 더 포괄적인 이해를 원한다면, 무수한 화학적 세부 사항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개별 뇌 구역들의 기능을 연구해야 한다. 이런 탐구 방법을 채택한 사람은 목적론적 행위 설명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특정 신경 세포들이 이를테면 멀리 떨어진 뇌 구역의 신경 세포들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점화한다는 말은 오해를 유발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비록 뇌 과학자들은 이 표현의 목적론적 함의에 주의하지 않고 이 표현을 사용하지만 말이다. 
- 도킨스는 종교를 대대로 전승된 근거 없고 자의적인 확신들과 처방들로 격하한다. 또한 그는 모든 종교의 핵 심은 〈신이며 이 단어는 《우리가 숭배해야 마땅한 초자연적 창조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모 든 종교의 핵심은 <신>이며, <신>은 도킨스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는 통찰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계 종교들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처럼 유일신을 상정하든, 불교의 일부 유파들처럼 궁극적으로 무신론이 든 간에) 근대적인 자연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에 발생했다는 점을 도킨스는 간과한다. 창세기」의 저자는 자연 개 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신을 초자연적 창조자로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단지 도킨스가 시대착오 적으로 자연 개념을 과거로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적 사건들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과 초자연적 설명을 시대 착오적으로 맞세우는 것은 도킨스가 지휘하는, 역사를 잘 모르는 신무신론의 일관된 특징이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패턴의 종교 비판이며 당연히 수백년 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 · 출처 비판적 quellenkritisch 지식을 갖춘 ? 신학과 종교학이 이미 오래 전부터 채택해 온 ?? 관점에서 보면, 무릇 종교가 도킨스 의 종교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근거 없고 자 의적인 확신이다. 도킨스는 자신의 종교 개념을 틀로 삼아 인류의 계몽과 유치한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처방 들을 찍어 내지만, 그의 종교관은 그가 스스로 내린 종교적 미신의 정의에 여러 모로 부합한다. 설령 그가 신을 믿지 않으며 신을 자연으로 대체하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식 획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라는 질문은 철학적 인식론에 국한되지않으며, 수많은 광범위한 귀결들을 가진다. 모든 지식은 오로지 경험이라는 원천에서 나온다는 입장을 채택하면, 우리는 곧바로 여러 난관에 봉착한다. 모든 지식이 경험에 서 나온다면, 엄밀히 따지면 우리는 - 경험이 우리에게 항상 더 나은 지식을 줄 수 있을 터이므로 - 확정적인 지 식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컨 대 아이들을 고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나 정치적 평등 을 민주 정치의 한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경험주의가 옳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고문하 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확정적으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1 +2 = 3이라는 것도 확정적으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등식도 경험에 의해 단박에 수정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경험주의에 대한 반론을 더 쉽게 제기하려면 다음과 같 은 간단한 질문 두 개를 던지면 된다. 정말로 모든 지식이 감각 경험이라는 원천에서 나온다면,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지식은 어떠한가? 모든 지식이 감각 경험에서 나온다는 지 식을 우리는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지식과 관련해서도 경험이 우리에게 더 나은 지식을 줄 수 있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바꿔 말해, 우리가 모든 지식 을 경험으로부터 얻는 것은 아니라는 지식을 경험으로부터 얻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능의 역사  (0) 2021.05.30
위험한 나비효과  (0) 2021.05.30
터지는 콘텐츠는 이렇게 만듭니다  (0) 2021.05.19
네이처 매트릭스  (0) 2021.05.19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0) 2021.05.07
Posted by dalai
,

-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 (비스마르크)
-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왜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동시에 '왜 고대 그리스와 지중해 세계에서는 그토록 일찍 문명이 탄생했을까?'라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그 대답 중 하나를 나는 말[馬]' 이라는 동물에서 찾고자 한다. 사실 나는 다른 책에서 “만약 말이 없었다면 21세기는 아직 고대를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라고 쓰기도 했다.
문명의 발상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말의 유무로 문명 발달 속 도가 크게 달라졌다는 주장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세기 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년)도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말을 언급했다.
- 말은 사람과 물자를 더 멀리 더 빠르게 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전차와 기마부대로 막강한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은 인간사회가 문명 단계에 접어드는 결정적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이 시점에 이렇게 반문하고 싶은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 메리카 원주민도 말을 타고 다니지 않았나요?'라고. 그렇지 않다. 이는 미국 서부극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은 그릇된 정보다. 15세기에 유럽인이 찾아오기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이 없 었다. 그렇다면 이 대륙에는 원래부터 말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오래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도 말이 존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말이 뛰어노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증거가 있다. 실제로 그곳에서 말 화석이 수없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많은 말이 왜 모두 사라졌을까? 놀랍게도 초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이 수천 년간 모조리 잡아먹어 멸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1. Tolerance : 로마는 '관용'의 힘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했다. - 로마는 어떻게 번영을 이루었으며 쇠퇴하고 멸망했는가
- “로마인은 갈리아인 (켈트계·게르만계)에게는 체력과 활력에서 뒤 지고 히스파니아인 (이베리아반도인)에게는 머릿수에 밀린다. 그들은 또 에트루리아인에게는 대장장이 기술에서 뒤처지고 그리스인 에게는 학예 능력 면에서 당해낼 수 없다. 그렇다면 로마인은 어떤 점에서 뛰어날까? 바로 '종교적 경건함' 이다.” (키케로)
폴리비오스는 키케로가 언급한 로마인의 종교적 성실성이 개인 의 이익보다 공공의 안녕을 중시하는 국민성을 낳았고 그 정신이 로마를 하나의 강력한 국가를 이루는 근원적 힘이 되었다고 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한 국정 시스템이 국력을 나라 밖으로 쏟을 여지를 마련해준 덕분에 강대한 로마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 그리스의 패전 장수는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패 배하고 비루하게 목숨을 부지한 경우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달리 로마의 패전 장수는 전쟁에서 맛본 쓰라린 치욕을 떨쳐내기 위해 다음 전쟁에서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싸움에 임했다.
로마인들은 그런 마음에 기대를 걸고 패전 장수에게 기꺼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었다. 그런 로마인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44년)를 꼽을 수 있다. 카이사르는 자신도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이 있어서인지 부하 장수나 병사들의 실수나 실패를 무조건 질책하지 않고 관대하게 대하며 스스로 만회할 기회를 주고자 항상 노력했다.
로마인이 지닌 '관용'과 '패자 부활전을 허용하는 자세는 로마를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하고 수백 년 동안 패권을 유지하게 해준 근원적인 힘이 되었다. 실제로 로마의 유명한 장수들은 누구나 한 번쯤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보다 더한 굴욕감을 딛고 자신에게 주어진 다음 전쟁을 승리로 이기는 데 크게 공헌했다.
- 사람이 아무리 치욕적인 일을 겪는다고 해도 이후 그가 어떤 자세로 임하고 또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그 치욕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이 진리를 잘 아는 로마인은 무슨 일이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매달렸다. 또 근성과 인내력을 바탕으로 그리스와는 달리 마침내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오랫동안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 로마제국에서 관용 정책을 가장 탁월하게 활용한 지도자는 카이사르다. 라틴어에 '클레멘티아 카이사리스(Clementia Caesaris, 카이 사르의 관용)'라는 말이 널리 회자하고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과연 뼛속까지 관용으로 가득 채운 관용의 화신 같은 인물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카이사르는 본래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었지만 '관용'의 측면에 서도 그러했다. 오늘날 누구나 관용 하면 카이사르를 머릿속에 떠올릴 정도로 그는 관용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그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카이 사르가 관용적인 사람인 것은 일면 맞지만 그가 관용을 베푼 대 상은 어디까지나 로마 시민과 로마에 철저히 복종하는 사람뿐이었다. 반대로 그는 로마에 끝까지 맞서고 저항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벌할 때 갈리아인들에게 보인 그의 자 세와 대처는 유명하다. 그는 로마의 목에 칼을 들이댄 갈리아인을 막강한 군사력으로 가차 없이 제압한 뒤 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처형했다. 이후 갈리아인이 복종의 뜻을 표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백 팔십도 태도를 바꿔 관용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 기원전 427?~3472년)은 인간의 '흥미'와 관련해 유익한 통찰을 남겼다. 플라톤은 인간에게 세 종류의 흥미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 '지식', 둘째 '돈벌이’, 셋째 '승리'다. 그는 사람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중 하 나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이 주장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에 딱 들어맞는다. 실제로 그리스인은 지식, 카르타고인은 돈벌이, 로마인은 승리에 강한 흥미를 보였다. 플라톤이 활동하던 시대에 로마는 아직 작은 도시국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플라톤이 로마라는 나라의 존재를 알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 터라 플라톤이 한 위의 말이 딱히 로마를 두고 한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레고 조각을 끼워 맞추듯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과 로마인에 적용해보면 신기할 정도로 각 민족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다. 일본 평론가 모리모토 데쓰로(森本哲?)는 『어느 통상국가의 흥망 - 카르타고의 유서」에서 “로마는 미국, 그리스는 유럽, 카르타고는 일본을 닮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고대 그리스와 유럽은 둘 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지식을 얻는 일에 강한 흥미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카르타고는 비교적 작은 영토를 가진 나라지만 당대 무역을 독 점하던 경제 대국이었다.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에 패배한 후 카르타고는 군사력을 상실했으나 경제 부흥을 통해 다시 나라를 일으켰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경제력으로 국력을 회복한 모습과 절묘하게 겹친다. 카르타고인과 일본인은 모두 돈벌이에 매우 관심이 많은 민족이다.
-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Live as if you were to die tomorrow. Learn as if you were to live forever. (간디)

2. Simultaneity : '동시대성'이 역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 한제국과 로마제국,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조로아스터의 탄생
- 3세기 거의 동시에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를 로마제국은 위태위태하게 넘어간 반면 한제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결말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같은 해에 등장한 동양과 서양의 세계제국이 거의 같은 시기에 존망의 기로를 맞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역사의 동시대성'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 기원전 1000년대에도 흥미로운 '동시대성'이 존재했다. 바로 '사상'의 탄생이다. 당시 문명 선진지역인 그 리스, 오리엔트, 인도, 중국 등지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우후죽순 사상과 철학이 태동했다.
먼저,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부터 이오니아 철학을 거쳐 소크 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철학이 탄생했다. 오리엔 트에서는 예레미야 등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언자가 나 타났다. 오늘날 이란 부근에서는 배화교의 시조 조로아스터가 태 어났다.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철학이 출현했고 뒤이어 불교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공자, 노자 를 필두로 '제자백가'라고 부를 정도로 무수히 많은 사상가가 등장했다.
- 물론 이들 사이에는 200~30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 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상과 철학이 왜 이 시기에 일제히 꽃을 피웠는지는 아직도 역사학의 수수께끼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시기에 특별히 주목한 철학자가 있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다. 그는 이 시대를 축의 시대 (Achsenzeit)'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꽃피운 사상이 모두 이후 인류 사상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 나는 동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상가가 출현한 이 현상 을 기원전 2000년대에 일어난 문자, 일신교, 화폐 등의 탄생과 별 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간소화한 문자가 널리 보급 되면서 민중 사이에 읽고 쓸 줄 아는 지식계급이 탄생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화폐 탄생이 교역을 활발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더 광범위한 정보를 얻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고 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신교가 등장한 배경에는 신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생겨나 인간의 사상과 가치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데 초월 신 개념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친숙하게 느끼던 신의 세계와 다소 멀어지게 만들지 않았을까? 아 무튼 사람들은 기존 신을 대체할 새로운 삶의 길라잡이를 찾아야 했다. 광범위한 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비교하고 융합하다 보면 새로운 관점과 사상이 생겨난다. 그것을 문자로 기록 할 경우 더 먼 지역 사람들과 후대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 역사학은 알파벳과 일신교 등장, 화폐 탄생을 각각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들 사건이 모두 당시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같은 부분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원전 200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간소화 움직임 덕분에 '축의 시대'가 올 수 있었다고 본다.

3. Deficiency : ‘결핍(건조화)'이 문명을 탄생시켰다.- 문명 태동부터 도시국가를 거쳐 민주정 탄생에 이르기까지
-  '왜 유독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다른 나라,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기존과 달리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 사람이 있다. 미국 역사학자 케네스 포메란츠(Kenneth Pomeranz)가 바로 그다. 그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 중국과 유럽 그리고 근대세계 경제의 형성)』에서 각 지역의 생태환경 차이에 주목했다.
이 연구는 일종의 최신 지정학 연구로 보아도 좋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영국은 다른 지역에 없는 행운을 누렸고 그 덕분에 산업혁명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런던 등 일정 수준의 인구가 밀집한 지역 근처에 에너지 원인 양질의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에너지 자원 획득이 행운의 실체라는 얘기다. 세계는 인구 증가와 함께 에너지 자원인 목재가 부족해졌다. 산 업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다. 18세기 이후 수백 년간 영국과 중국의 공업지대인 양쯔강 삼각주 지역의 연료용 목재 가격은 일곱 배나 폭등했다. 이처럼 전 세계가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던 중 영국은 목재를 대신할 에너지원으로 석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획득한 영국은 생산성이 높아졌다. 사람들 의 생활 수준은 점점 좋아졌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구 과잉 현상 이 일어났다. 자원이 있다고 물건을 너무 많이 생산하면 문제가 불거지게 마련이라는 것이 그 시절 사회적 인식이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점에 행운의 여신은 또 한 번 영국을 향해 미소 지었 다. 사실 영국은 멀리 떨어진 곳에 식민지를 두고 있었다. 그때까 지 영국은 잉여생산물 처리 시장 측면에서만 식민지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국의 남아도는 인구를 식민지로 내보냈을 때 얻는 이득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은 공업지역 근교에 있는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확보했고 광대한 식민지 덕분에 거대한 시장을 개척했다. 또 토지에 예속되어 있던 인구 부양력이라는 제약에서 풀려나 인구가 급증하면서도 일인당 소비량이 상승하는 기적이 발생했는데 바로 이것이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산업혁명 하면 가장 먼저 증기기관 발명에 따른 동력 쇄신이 동서의 명암을 갈라놓았다' 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증기의 열을 기 계 작동 에너지로 활용하는 기술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로마제국에서조차 산업 근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생태환경이 기술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래서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은 이처럼 축복받은 생태환경에서 착실하게 성장했지만 아시아는 산업혁명을 일으킬 힘이 있으면서도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지 못해 저 멀리 뒤처졌다. 그렇게 한 번 뒤처진 간격을 따라잡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19세기 제국주의 시 대로 접어들었고 격차는 더 많이 벌어졌다. 만약 산업혁명이 로마제국이나 한제국 시절에 일어났다면 이 정도로 큰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100년의 격차 가 있었더라도 양 제국은 제각각 세계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 하지만 18세기에 벌어진 50년 정도의 격차는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비교사 관점에서 아시아는 아직도 그 시절에 벌어진 격차를 완전히 따라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 령 '국제화'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미국과 영국의 영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영어권 국가가 줄지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면서 그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제화 환 경을 만든 결과다.
케네스 포메란츠는 자신의 책에 '대분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산업혁명을 불러일으킨 약간의 생태환경 차이가 그야말로 서유럽과 동아시아의 이후 명암을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분기점이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대규모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물가 로 몰려든 일이 어떻게 문명 태동으로 이어진 걸까?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낸 땅속 식물 뿌리나 씨앗이 봄에 새싹을 틔우고 나무 를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과 비슷한 이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조화'와 '물 부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는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했을 것이다. 살아남 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현실에 순응하 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맞서야 했을 것이다. 그런 역동적인 과정에 그 시대의 인간들은 좀 더 영리해지고 유능해졌을 것이다.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마침내 찬란 한 문명을 이룩했을 것이다. 마치 식물이 겨울이라는 역경을 이겨 내고 이듬해에 싱싱한 새싹을 틔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듯 말이 다. 이렇듯 문명이 태동하고 성장하는 원리도 자연의 이치와 맥을 같이한다.
지구가 건조화해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인류는 어떻게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룩했을까? 잠시 이 점을 살펴보자. 먼저 생존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물(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마을이 만들어지고 그 마을 들이 통합되며 차츰 도시라고 부를만한 규모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 마을과 마을, 집단과 집단 사이에 물을 둘러싸고 하루가 멀다고 분쟁이 벌어졌다. 도시나 국가의 통치자는 이런 물 분쟁 문제를 무 엇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 필요에 따라 물 분쟁을 방지하는 '물 사용 시스템'이 개발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통치 자와 지배 계층은 이런 사실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이고 기록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자가 탄생했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기록을 살펴보면 거래기록 등 실무적인 기록이 꽤 많이 발견된다. 위에 언급한 대로 문자는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이 므로 '왜 필요했는지' 파악하려면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4. Huge Migration : '대이동’ 하며 세계지도를 다시 그린 민족들 - 게르만족 · 몽골제국의 드라마틱한 역사, 대교역시대부터 난민 문제까지
-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 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칭기즈칸)
- 4세기 무렵부터 게르만족은 엄청난 규모로 무리 지어 서로마제 국 영토로 물밀듯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왜 갑자기 로마제국 영토 를 침범하기 시작했을까? 아시아에 살던 기마민족인 훈족이 서쪽 으로 옮겨옴에 따라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좀 더 서 쪽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렇게 일어난 대규모 이동이 바로 '게르만족 대이동'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랭화가 일어나면 서쪽으로 이동해도 무슨 차 이가 있을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도 서유럽은 멕시코 난류가 흐르는 덕분에 기후가 대체로 온난하다. 그때까지 게르만족 유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심히 관망하던 로마는 물밀 듯 밀려오는 이주 행렬을 더는 팔짱 낀 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다른 민족이 소규모로 들어올 때는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임 계점을 지나 허용치를 넘어설 지경이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 작한다. 정착 세력과 이주 세력 사이에 갈등과 알력이 발생하기 마 련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유럽의 난민 문 제를 보면 어느 정도 실감이 날 것이다.
로마에서는 오늘날의 유럽 난민 문제와 비슷한 문제가 훨씬 큰 규모로 빈번히 일어났다. 평소에는 사소한 다툼으로 끝나던 일도 사람이 많아지면 자칫 폭동으로 발전하기 쉽다. 로마는 더 심각한 문제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진압에 나서야 했다. 이런 식으로 폭동과 진압이 반복되면서 잔 매에 장사 없듯 로마의 국력은 차츰 쇠약해져 갔다.

5. Monotheism : 유일신교는 왜 항상 분쟁의 씨앗이 되는가 - 세계사를 바꾼 3대 유일신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탄생과 발전
- - 『길가메시 서사시』나 『일리아스』 같은 고대 작품을 보면 오래된 작품일수록 사람들이 직접 신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대인은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줄리언 제인스는 고대인이 들은 신의 목소리를 양원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줄리언 제인스는 양원 정신이 좌우 뇌가 각각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대뇌생리학 관점에서 우뇌와 좌뇌가 개별적으로 작동한다는 얘기다. 그는 인간이 명 확한 의식을 소유하면서 좌뇌가 발달하고 우뇌는 퇴화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신의 목소리는 우뇌 의 목소리'인 셈이다. 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뇌에서 그 같은 현상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점이 궁금했던 나는 뇌과학자에게 직접 물어보 았다. 그는 지금의 과학으로는 증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양원 정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 - 사실 서구인에게 로마는 지금도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다. 로마는 광대한 지역을 오랫동안 평화롭게 다스린 강대국이었을 뿐 아니라 서구인의 뿌리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는 서구인의 자존심 원천인 동시에 그들의 이상이다. 서구에서는 이 의식을 '로마 이데아(Rom Idee)'라고 일컫는다. 이는 아시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용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로마적 이념' 또는 '로마적 이상'에 해당한다. 요컨대 기독교 세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로마가 서구인 의 정신세계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오늘날까지 서구, 특히 유럽인의 마음 에 이런 생각이 뿌리내려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조금 극단적 으로 말해 유럽인의 마음 밑바탕에는 지금도 로마의 재현, 즉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세계 통합'이라는 의식이 은연중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 이 생각은 역사 속에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신성로마제국은 이름부터 로마를 표방했고 프랑스혁명도 로마와 떼 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인이 혁명 후 사용한 관직명 '콘술'은 로마 공화정의 관직명을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그다지 좋은 예는 아니지만 독일 나치스의 밑바탕에도 로마 이데 아'가 자리하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기독교가 이렇듯 전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지 않 았다면 이슬람교도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로마 이데아를 포함해 두 종교의 야망이 거대한 뱀처럼 꿈 틀대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세계를 양분하는 두 개의 거 대 종교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6. Openness : 개방성'이 국가와 시대의 운명을 결정한다. - 왜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아닌 로마가 강국이 되었다.
-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 저자))
- 서양에서는 비록 신분 격차는 있어도 왕은 비교적 가까운 존재였다. 그처럼 친근한 존재였기에 민중은 왕의 행동과 관련해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다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 이는 앞서 잠깐 소 개했듯 고대 로마의 시인 플로루스가 5현제 중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를 미주알고주알 험담했다는 이야기로도 잘 알 수 있다. 
- 서양에서는 민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최고 권력자의 권위로 이어졌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민중 앞에서 모습을 감춤으로써 권위를 만들었다. 실제로 서양의 위정자들이 민중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무튼 거리감을 좁히려는 그들의 노력은 민중이 위정자의 국정 운영과 관련해 발언권을 행사해도 좋다는, 즉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함양했다. 이러한 민주주의 토양은 서양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길러온 것이다.
- 로마 황제는 사실 민중과 가까운 존재였다. 로마 황제 중 민중과 가깝게 지내며 친근하게 대한 황제는 의외로 많았다.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는 종종 민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 당대 인기 가수이기도 했다. 로마에서 속주로 파견한 총독 등은 당연히 민중 앞에 자주 얼굴을 보여야 했다. 가장 고귀한 신분인 황제마저 그토록 민중과 가깝게 지냈으니 총독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 서양에서는 민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최고 권력자의 권위로 이어졌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민중 앞에서 모습을 감춤으로써 권위를 만들었다. 실제로 서양의 위정자들이 민중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무튼 거리감을 좁히려는 그들의 노력은 민중이 위정자의 국정 운영과 관련해 발언권을 행사해도 좋다는, 즉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함양했다. 이러한 민주주의 토양은 서양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길러온 것이다.

7. Nowness : '현재성'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진다 - 모든 역사가 '현재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에드워드 H. 카(역사가.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 읽는 돈의 세계사  (0) 2021.08.12
문명의 역습  (0) 2021.06.20
침대위의 세계사  (1) 2021.05.25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  (0) 2021.05.06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0) 2021.04.27
Posted by dalai
,

인간 욕망의 법칙

etc 2021. 5. 25. 20:57

- 항상 선하려고 애쓰는 자는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틈에서 반드시 파멸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군주는 선하지 않게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권력의 원천
- 권력의 세계에 들어서려는 자는 그 본질부터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권력은 게임이다.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따라서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조력자와 먹잇감을 구별해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덕이나 사회적 통념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것이 권력 세계의 윤리다. 권력 게임에 필요한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본능적인 감정 표출 오히려 권력 게임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서는 결코 권 력의 세계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기술들을 끊임없 이 갈고닦아야 하며 세련된 행동 규칙을 익혀야 한다. 일단 그것들을 정복한 후에 야 권력의 세계에 들어설 자격이 주어진다. 출발점은 권력이 당신의 본질이 아닌 외양을 가지고 하는 게임이라는 점을 아는 것 이다. 상황에 맞게 자신을 재창조하라.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가 그 순간에 맞게 바꿔 써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표정뿐만 아니라 자신 안의 감정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1. 자신을 재창조하라-자기 혁신
- 사회가 떠맡기는 역할을 그냥 받아들이지 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동시에 결코 그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을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창출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재창조하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이미지를 정의하도록 놔두지 말고, 당신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라.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몸짓과 행동에 극적인 장치를 결합하라. 당신의 권력은 강화될 것이고, 됨됨이는 실제보다 더 대단해 보일 것이다.
- 연극은 삶의 희로애락을 극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로마에서 연극은 마치 종교의식처럼 평범한 시민들에게 즉각적이고 강력한 영 향을 미쳤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권력과 연극 사이의 중요한 관계를 처음으로 간파한 정치인일 것이다. 카이사르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스스로 배우이자 연출자가 되었다. 그는 대본을 읽듯이 말 했으며 몸짓과 행동을 할 때는 자신의 모습이 청중에게 어떻게 비칠지 늘 의식했다. 그 덕분에 카이사르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카이사르는 모든 리더와 권력자들이 이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다. 당신도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놀랄 만한 요소, 긴장감, 정서적 공감, 대상과의 상징적 일체감 등 극적인 장치를 이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아울러 카이사르처럼 항상 청중을 의식해야 한 다. 그들이 무엇에 즐거워하고 무엇을 지루해하는지 알아야 한다. 는 뜻이다. 당신은 늘 무대의 중심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하며 그 자리를 다른 누구에게도 내주어서는 안 된다.


2.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라-조력자와 먹잇감
- 상대방에 대한 무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양과 사자를 구분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 법칙은 무슨 수를 쓰든지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 법칙에 관한 반대 사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라-감정 통제
- 분노와 감정 노출은 전략적으로 비생산적이다. 당신은 항상 침착함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적을 화나게 하면서 당신 자신은 침착할 수 있다면, 당신은 결정적 이점을 확보하게 된다. 적의 평정을 흐트러뜨려라. 적의 자만속에서 맹점을 찾아 휘저어놓아라. 그러면 당신이 적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4. 이미지와 상징을 앞세워라-권력의 아우라
- 인상적인 이미지와 웅대한 상징은 권력의 아우라를 창출한다. 모두가 그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멋진 광경을 보여주어라. 흥미로운 볼거리와 찬란 한 상징은 당신의 존재감을 드높여준다. 이런 광경에 취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진짜 하려는 일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5. 목숨을 걸고 평판을 지켜라-대중의 지지
- 평판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위험한 게임에서 당신의 본모습을 파악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분산시키고 세상이 당신을 판단하는 방식까지 어느 정도 통제하게 해줌으로써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즉 강력한 입지를 구축해준다는 이야기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그것이 멋지게 비치느냐 끔찍 하게 비치느냐는 전적으로 행위자의 평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우선 당신은 관대하다는 평판이든 정직하다는 평판이든 혹은 교활하다는 평판이든 한 가지 두드러진 평판을 구축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당신이 그러한 한 가지 속성으로 부각되면 사람들은 당신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당신의 평판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하고(단, 교묘하게 확고한 기반을 토대로 천천히 구축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라. 
확고한 평판은 당신의 존재를 부각하고 굳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아도 당신의 장점들을 과장해준다. 확고한 평판은 또한 다른 이들에게 존경심을, 심지어는 두려움을 주입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속성을 토대로 단순한 평판을 구축하라. 그러면 이 단 하나의 속성, 이를테면 효율성이나 매혹성 등이 당신의 존재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일종의 명함이 될 것이다. 

권력 획득의 법칙
6. 무슨 수를 쓰든 관심을 끌어라-루머와 신비화 전략
- 점차 진부하고 평범해지는 세상에서는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것이 즉각적인 시선을 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너무 명확하게 알리지 마라. 패를 전부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다. 신비한 분위기는 당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모두가 다음에 일어날 일을 파 악하기 위해 당신을 주시할 것이다.
신비감을 조성한다고 해서 반드시 당신 자신을 장엄하거나 경외심을 일으키는 존재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일상적인 행동에서 표출되는 신비, 미묘한 신비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시선을 끄는 데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저 참고 침묵을 지키며 이따금 모호한 말을 내뱉고 의도적으로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만 해도 신비의 아우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당신을 해석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 아우라를 극대화할 수 있다.
- 17세기 스페인의 작가 발타사르 그라시안 Baltasar Gracin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진실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보일 때의 이점은 상대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를 더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의미를 물리적으로 느끼게 할 경우, 그것은 말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강하다.

7. 덫을 놓고 적을 불러들여라-주도권 장악
- 협력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과거에 당신이 베풀었던 배려나 도움 따위를 상기시키지 마라. 그러면 상대는 당신의 요청을 회피할 방법을 찾게 된다. 대신 당신을 도와주면 상대에게 생기는 이익을 밝히고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라. 그래야 상대의 열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8. 말이 아닌 행동으로 승리를 쟁취하라-논쟁의 부작용

9. 정직하고 아량 있는 태도를 보여라-경계심 풀기

10. 자비나 의리가 아니라 이익에 호소하라-협상의 기술

11. 돈의 노예가 되지 마라-공짜 점심의 함정

12. 친구처럼 행동하고 스파이처럼 움직여라-정보전
- 권력자에게 정보는 무엇보다 중대하다. 하지만 당신이 다른 사람을 정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상대방도 당신을 정탐할 수 있다. 따라서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이 정보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된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너무도 귀해서 항상 거짓말이라는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다녀야 한다.” 당신의 진실에 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당신도 그런 경호원을 주위에 둬야만 한다. 당신의 뜻에 따르는 정보를 심을 수 있으면, 게임은 당신이 장악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라. 그러면 당신은 누구보다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된다.

13. 상대보다 멍청하게 보여라-의심 회피 전략

14. 힘을 집중하라-집중과 분산 
- 손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면, 결코 싸우지 마라.” 이것은 절대적인 법칙이다. 즉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팽창하면 반드시 붕괴한다. 힘을 한곳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목표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눈앞의 승리에 취해 목적의식이나 균형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집중되고 응집돼야 힘이 생긴다. 흩어지고 분열되고 팽창한 것은 몰락하고 만다. 지나치게 팽창한 것일수록 강하게 추락한다.

15. 신앙심을 이용해 추종자를 창출하라-메시아 전략 

16.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짜라-전략 프로그래밍 

17. 별다른 노력 없이 성과를 달성한 척하라-능력 포장하기
- 당신의 행동은 자연스러워 보여야 하고, 또 쉽게 실행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모든 노고와 수단, 계책을 절대 드러내지 마 라. 행동할 때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라.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라. 이는 능력에 대한 의문만 키울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만의 비결을 가르쳐 주지 마라, 당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역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8. 사람들의 환상을 이용하라-대중의 기대심리
- 기억하라, 환상을 유지하는 열쇠는 '거리'다. 멀리 있는 것은 매혹적이고, 기대감을 주며, 단순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당신이 제시하는 것은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없어야 한다. 멀리 있는 신기루로 유지하되 상대가 다가가면 더 멀리 떨어뜨려라. 그 환상에 대해 너무 직접 설명하지 말고 모호한 채로 놔두어라.

19. 왕 대접을 받으려면 왕처럼 행동하라-왕관의 전략

권력 유지의 법칙
20. 주인보다 더 빛나지 마라-신중한 아부

21. 불행하고 불운한 자들을 피하라-불행 바이러스 차단하기

22. 사람들이 당신에게 의존하게 만들어라-네트워크 만들기
- 권력이란 결국 사람들을 당신 뜻대로 움직이는 힘이다. 사람들을 강제하거나 해치지 않고 당신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의 권력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의존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당신이 꼭 필요하도록 만들어라. 당신 없이는 그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게 하라. 만일 당신을 제거할 경우 그는 곤란에 빠지거나, 또는 당신의 자리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할 것이다. 일단 의존관계가 구축되고 나면 당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어 윗사람을 당신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는 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인물, 실제로 왕을 좌지우지하던 실력자들이 사용했던 전통적인 방법이다. 
권력의 궁극적인 형태가 독립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권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당신에겐 언제나 동맹이나 인질이 되어줄 사람, 표면상의 권력자가 되어줄 나약한 주인이 있어야 한다.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자는 숲속 오두막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

23. 적은 완전히 박살내라-잠재적 위험 제거 

24. 품격과 신비감을 높여라-부재와 존재의 법칙
- 세상의 모든 것은 부재와 존재의 법칙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존재감이 강력하면 당신은 권력을 얻고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주위 사람들보다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재감이 지나치게 커지면 어느 순간 정반대의 효과가 생긴다. 사람 들 눈에 뜨이거나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당신의 가치는 떨어진다. 당신은 일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당신을 밀어내기 전에, 당신 스스로 제때 모습을 감추어야 한다. 일종의 숨바꼭질인 셈이다.

25.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평판을 쌓아라-심리 교란
-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도 익숙한 면을 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만약 당신이 늘 예측할 수 있게 움직인다면 상대는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종종 고의로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일관성이 없거나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방식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해석하느라 기력을 소진하게 된다. 이 전략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위협과 공포를 느낄 것이다.
- 예측 불가능성은 때때로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하급자의 위치에 있을 때 그렇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예 측대로 행동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안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낫다. 과도한 예측 불가능성은 우유부단의 신호, 혹은 정신적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

26. 자신만의 요새를 짓지 마라-고립의 위험성 
- 세상은 위험하고 적들은 사방에 득실거린다. 모두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요새를 지으면 안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립은 보호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큰 위험을 안겨준다. 고립되면 귀중한 정보로부터 단절될 뿐 아니라 눈에 잘 띄어 손쉬운 목표물이 될 수 있다. 사람들 속에 뒤섞여 동맹을 구하고 어울리는 편이 낫다. 군중을 방패막이로 삼으라는 뜻이다.

27. 어느 누구에게도 헌신하지 마라-관계의 기술 
- 서둘러 편을 드는 사람은 바보다. 어느 한쪽이나 대의명분에 헌신하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에게 헌신하라. 독립을 유지함 으로써 무리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고, 결국 당신을 따르게 만들어라.

28. 완벽한 궁정 신하가 되어라-우회 조종술 
- 궁정 신하가 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과 같았다. 궁정신하는 외줄타기를 하듯 신중하게 움직이고, 아첨하되 지나치지 말아야 했으며, 통치자에게 복종하면서도 다른 궁정 신하들보다 뛰어나야 했고, 그렇다고 지배자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면모를 보여서는 안 되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궁정 신하들은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달인이었다. 그들은 왕이 스스로 존엄한 존재라고 느끼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권력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표정 관리의 마술사였다. 위대한 궁정 신하들은 기품 있고 정중했으며, 자신의 공격성을 베일 속에 감춘 채 간접적인 경로를 취했다. 또한 그들은 언어의 달인이었다.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한마디의 칭찬이나 은근한 모욕을 최대로 활용했다. 그들은 즐거 움의 원천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가까이하고 싶어 했는데, 그것 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면서도 아첨하거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9. 적당한 때를 기다려라-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
- 타이밍을 잘 잡으려면 세 가지 시간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데, 각 상황마다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에는 기술과 연습이 꼭 필 요하다. 
첫째는, 긴 시간이다. 지루하게 늘어지고 몇 년이 걸리는 일은 인내심과 세심한 계획을 갖고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긴 시간을 상대하는 일은 대부분 방어적 양상을 띤다. 이때는 충동적 인 반응보다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강요 시간이다. 상대방을 서두르게 하거나, 기다리게 하거나, 페 이스를 잃게 하거나, 시간관념을 왜곡시켜 타이밍을 못 잡게 하는 것이 강요 시간의 요령이다. 이 단기간의 시간을 공격 무기로 활용하여 적이 타이밍을 못 잡게 할 수 있다. 
마지막은 마무리 시간으로, 속도와 힘을 갖추어 계획을 실행시켜야 하는 때를 말한다. 지금까지 기다려 절호의 순간을 찾아냈으니 머뭇거려서는 안 된 다. 멋지게 인내심을 발휘하고도 두려움 때문에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30. 본심은 감추고 남과 같이 행동하라-동화 전략 

31. 후광에 의존하지 마라-정체성 구축 
- 언제나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뒤에 나온 것보다 더 낫고 더 독창적으로 보인다. 위대한 인물의 뒤를 잇거나 유명한 부모 밑 에서 클 때는 그 두 배의 업적을 달성해야 그들보다 더 빛날 수 있다.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길을 잃거나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과거에 연연하지 마라. 경로를 바꿔 당신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확립하라. 압도적인 전임자와는 결별을 선언하고 그의 유산을 비방하라. 당신 나름의 방식으로 빛을 발해 권력을 획득하라.
-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부담스러운 과거를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채울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존재를 없애야만 새로운 질 서 창조를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용할 전략 몇 가지가 있다.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과거를 무시 하고 얕잡아보는 것이다. 구세대와 거리를 유지하려면 때로 상징 이 필요하다. 루이 14세는 선왕들이 쓰던 궁전을 사용하길 거부 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새로운 상징을 창출했다. 스페인의 펠 리페 2세가 아무것도 없는 언덕에 에스코리알 궁을 세워 권력의 중심으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다.
전임자가 위대하고 강력한 인물일수록 도처에는 과거의 상 징으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당신의 이름을 부각시킬 공간이 없다. 이럴 때 당신은 밝은 눈으로 빈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 당신이 들어가서 빛나는 최초의 인물이 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 위대한 전임자의 그림자를 당신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교묘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권력을 얻은 즉시 이 전술을 버려야 한다.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라는 점을 내세 웠으며, 이는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 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일단 권력의 자리에 오르자,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통치가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공표했고, 국민이 그에게서 과거 나폴레옹 1세와 유사한 치세를 기대하지 않게 만들려고 애썼다.

32. 중심인물을 공격하라-추방과 고립
-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를 해하고자 할 때는 상대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적을 고립시키는 작전을 수행할 때는 적에게 앙갚음 수단이 없는지 확인해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 법칙은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 즉 그가 원한을 품어도 당신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상황이 그렇지 않다면 상대를 원한을 품은 적으로 만들기보다, 그를 당신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는 편이 낫다. 가까운 곳에 두고 은밀하게 그의 지지 기반에 타격을 주어라. 때가 오면 그들은 원인도 모른 채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33.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지 마라-질투심 원천봉쇄
- 남들보다 나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늘 위험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전혀 결점이나 약점이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일이다. 질투는 무언의 적을 만든다. 때때로 결점을 드러내고 해로 울 게 없는 악행을 인정하는 것이 영리한 처사다. 그래야 질투를 비끼게 하고, 보다 인간적이고 가까이하기 쉬운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오직 신과 죽은 자만이 완벽해 보여도 탈이 없는 법이다.

34.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라-성공 공식의 진화

권력 행사의 법칙
35. 친구를 멀리하고 적을 이용하라-용인술 

36. 의도를 드러내지 마라-유인책과 연막술 
- 상대가 불안한 마음으로 어둠 속을 헤매게 하는 방법은 당신의 행동 뒤에 숨겨진 목적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의도를 모른다면 상대는 방어책을 준비할 수 없다. 연막을 피워 상대를 엉뚱한 길로 유도하라. 그렇게 하면, 상대는 너무 늦은 시점에서야 당신의 의도를 깨달을 것이다.

37. 최소한의 말만 하라-침묵의 효과 

38. 일은 남에게 시키고 명예는 당신이 차지하라-성과 가로채기

39. 싸워서 질 바에야 항복을 선택하라-전략적 후퇴
- 명심하라. 자신의 권위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제일 쉽게 항복 전술에 기만을 당한다. 당신이 겉으로 복종의 의사를 표현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상대가 자기를 존중한다는 사실에 만족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후의 반격이나 브레히트가 사용한 것과 같은 간접적 조롱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40. 더러운 일은 직접 하지 마라-앞잡이 

41. 대담하게 행동하라-자신감의 힘
- 행동의 명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마라. 의심과 주저는 실행을 오염시킬 뿐이다. 소심은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니 행동하려면 대담하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낫다. 대담하게 나아가다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 더 대담하게 나가는 것이 해결책이다. 대담한 사람은 모두 존경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42. 당신이 돌린 카드로 게임하게 하라-선택권 통제
- 최상의 기만책은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상대는 자신이 통제권을 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당신의 꼭두각시가된 것 뿐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당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선택사항들을 조작ㅎ라. 상대에게 불리한 것(당신의 목적에는 부합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덜 나쁜 쪽을 선태갛게 하고, 상대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어라. 어느 쪽을 택하든 상대는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43. 사람들의 약점을 공략하라-심리적 무장해제 

44. 가질 수 없는 것들은 경멸하라-무시 전략 

45.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 하지 마라-급진적인 개혁의 부작용
- 과거는 강력하다. 과거에 벌어진 일들은 무조건 위대하게 보인다. 관습과 역사는 어떤 종류가 됐든 행동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교훈을 당신의 이점으로 활용하라. 당신이 낯익은 것을 파괴했을 때, 당신은 공허, 즉 진공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런 진공 상태를 채우게 될 혼돈을 두려워한다. 당신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와 같은 공포감이 조성되지 않게 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무게와 정당성을 빌려 써라. 그것이 편안하고 낯익은 현재를 창조 해줄 것이다. 그러한 현재는 당신의 행동에 낭만적인 연상을 제공 하며, 당신이 추구하는 변화의 본질을 가려줄 것이다.

46. 상대의 마음을 유혹하라-은밀한 설득

47. 상대를 허상과 싸우게 하라-거울 전략

48. 승리를 거두면 멈출 때를 알라-승자의 저주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은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30가지  (0) 2021.05.30
묻는 게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0) 2021.05.25
기업은 사장의 그릇만큼 큰다  (0) 2021.05.18
최고의 의사결정을 위한 원칙  (0) 2021.05.11
고백  (0) 2021.05.07
Posted by dalai
,

-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돈을 '일상생활의 구조'의 기본 요소라고 했다. 그가 묘사한 중세 사회에도 통하는 주장이지만, 현대 사회에도 통하는 주장이 다. 돈은 상당히 포괄적인 용어다. 경제학자나 돈에 관심이 있는 비경제학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즉 결제 수단으로서 돈에 대해 연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의 인류학자 빌 모러Bill Maurer의 표현대로 결제 시스템은 '현대 경제의 배관'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표현대로 '상업의 고속도로다. 나는 돈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 현금, 카드, 수표, 결제 앱은 단순히 금전적 가치만 전달하지 않는다. 신용카드에는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권력기관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다. 거래의 특성과 거래에 관여하는 당사자들의 관계에 관한 정보도 담겨 있다. 거래는 사회적·문화적 · 관계적 의미의 일부가 되고, 또한 그런 의미를 반영한다. 그 의미는 거래를 수행하는 종이 또는 전자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다시 그런 의미를 만들어낸다.
- 커뮤니케이션학자 제임스 케리James Carey는 커뮤니케이션을 “현실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수정하고, 바꾸는 상징적 인 절차"로 규정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공유이며, 따라서 공유된 의미, 더 나아가 공유된 사회를 만들어낸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삶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 실용주의 전통을 따르는 존 듀이John Dewey 같은 사회학자들과 마찬가 지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세계를 기록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세계가 구조화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이론을 구체화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전송傳送으로 보는 관점과 의식儀式으로 보는 관점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은 공간을 가로질러 발신자에서 수신자로 정보를 운반하는 것과 그 운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이 주류였다. 그래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신호의 수리경제학數理經濟學으로 환원하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cybernetic paradigm이나, 서로 떨어진 사람들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나, 매스미디어의 청취자나 시청자를 메시지의 수신 자로 상정한 다음 메시지가 그들에게 예측 가능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가정하에 매스미디어를 연구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정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건네는 행위가 아닌 공유된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본다면 신문은 소식과 지식을 퍼뜨리는 도구다. 의식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신문을 읽는 행위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수집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모임에 참가하는 행위가 된다. 이 모임에서는 새로운 것이 학습되지는 않지만 특정 세계관이 표현되고 강화된다.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이라는 렌즈, 즉 문화적 접근법을 적용해야만 실제로 중요한 상징이 창조되고 이해되고 사용되는 사회적 절 차를 연구할 수 있으며, 그런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공통 문화를 재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분 석하는 틀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지폐는 인쇄 미디어이므로 당연히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거래는 언제나 말 그대로 무언가가 오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존 더럼 피터스John Durham Peters는 "돈은 결국 미디어이며, 교환 미디어일 뿐 아니라 표현 미디어” 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통화 디자인을 보면 그 국가가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 독립전쟁 중에 매사추세츠주에서 발행한 지폐에는 검을 휘두르는 애국자가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를 펼쳐들고 있는 그림과 함께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발행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캐나다가 건국 초기에 발 행한 지폐들은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풍경은 투지가 넘치기보다는 목가적이었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했다. 유로는 특정되지 않은 '유럽적인 것'의 느낌을 내고자 했다. 유로에 인쇄된 상상 속 다리는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는 과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형상화는 지폐가 청중을 전제로 하는 인쇄 미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로버트 모지스가 설계한 다리가 도시 생활자들이 근교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프라의 힘은 우리의 의식적 경험에도 작용한다. “자신의 위치를 안다는 것”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결제 시스템에는 어떤 낮은 다리가 건설되어 있을까? 그런 다리들은 우리가 어떤 곳에 속하는지 또는 속하지 않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알리고 있는가?
- 실리콘밸리는 소셜미디어 삶에 어울리는 거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돈 테크놀로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돈 테크놀로지 개발 작업에도 소셜미디어 산업의 논리를 적 용한다. 많은 기업이 거래 행위로 축적되는 빅데이터의 잠재력을 활성화하고 그것을 다른 소셜 데이터와 통합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결제 시스템은 클릭만 하면 서비스 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등 실리콘밸리의 관행을 따른다. 또한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벤처 투자 같은 경제 방식을 따른다. 핀 테크의 목적은 기존 결제 산업을 파괴하고 매출과 데이터의 흐름이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저장소를 반드시 거치도록 재설정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결제 앱인 벤모는 처음부터 소셜미디어의 형태로 출시되었다. 벤모는 페이스북처럼 거래 내역을 공개하는 피드를 제공하며, 이 점에서 페이팔PayPal과 같은 일반적인 개인 간 결제 시스템과 차별화된다. 어떤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벤모로 지불하면 그 거래는 게시물이 된다. 그 게시물은 해당 계정의 스트림stream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다. 벤모 사용자는 모든 거래 내역에 메모를 해야 하며, 대개 이모티콘이 사용된다. 술값이라면 마 티니잔 이모티콘을 다는 식이다. 친구의 거래 내역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남길 수 있다. 많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처럼 개인 정보 보호 설정의 기본값은 공개다.
벤모는 사용자가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공개 프로필, 트위터 같은 거래 내역피드, 친구 목록, 다른 회원의 친구 목록을 훑어보고 게시물(결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 등 SNS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벤모는 확실히 소셜미디어처럼 보인다. 일례로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화면을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꾸몄다. 벤모는 이런 익숙한 기능과 디자인 요소로 사용자가 벤모를 단순히 금융 서비스 플랫폼이 아닌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 소셜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결제 시스템은 특정 행동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등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다. 빌 모러의 말대로 “테크놀로지가 애초의 계획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온갖 사용법을 낳듯이, 테크놀로지가 도용되거나 수정되거나 다른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다른 기능을 하는 새 로운 파생종을 낳듯이, 돈도 그럴 것”이다. 결제 시스템의 미 디어 테크놀로지는 지금 이 순간 신중하게 재설계되고 있다. 대부분은 소셜미디어의 형태로 실리콘밸리에 의해서 말이다. 돈은 늘 소셜미디어, 즉 사회적 미디어로 기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돈을 소셜미디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 실리콘밸리가 돈을 재설계하면서 통제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흔히 새로운 자유를 낳는다고들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제약도 낳는다. 현금은 국가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이지만 접근은 쉬운 반면 통제와 감시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돈은 그렇지 않다. 소셜미디어 모델을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누가 이 새로운 돈을 통제할 것인가? 누가 이 새로운 돈을 감독할 것인가?
매스미디어 돈이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면서 우리가 떠안게 될 위험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결제 시스템이 새로운 거래 공동체를 창조하고 그 공동체 내에서 거래 정체성 · 거래관계 · 거래 권력을 창조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매스미디어 돈에서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는 것은 곧 매스미디어 거래 공동체에서 소셜미디어 거래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 국가 단위의 경제에서는 지폐가 그 국가의 영토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커뮤니케이션, 즉 통신은 한때 운송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우편 통신은 편지가 도로망, 철도망, 운하망을 통해 운송되는 것을 의미했다. 신문과 편지를 먼 곳까지 운송한 미국 우편 시스템은 미국 전역을 하나의 국가로 묶었고, 주정부들의 느슨한 연합에 통일된 국가상을 주입했다.
우편 시스템은 돈을 실어 나르는 인프라 역할도 했다. 20세기 이전에는 아주 부유한 계층만이 예금계좌를 사용했고, 대부분 사람들은 먼 곳으로 돈을 보내야 할 때면 돈을 봉투에 넣고 실과 바늘로 봉투를 꿰맨 후 풀로 봉인했다. 그러고 나서 우편으로 보냈다. 국가 통화처럼 미국 우편 시스템은 “민족국가에 대한 지지를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였다. 우체국장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연방정부의 대변인이었다. 몇몇 거대 결제 서비스업체, 이를테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와 웰스 파고Wells Fargo는 금융 서비스 산 업이 아닌 통신 산업에서 출발했다. 역마차, 배달원, 연락선, 증기기관차 등을 보유하고 있던 이들은 동부에서 서부를 오가는 금가루, 금, 정화正貨, 편지, 소포, 기타 화물의 운송 용역 수주를 놓고 미국 우편국과 경쟁했다. 이런 탄생 배경은 웰스 파고의 기업 로고에 그려진 힘차게 달려나가는 역마차에서도 엿볼 수 있다.
- 1990년대 내내 개인 간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1990년대 말 여러 스타트업이 합병하면서 페이팔이 탄생했다. 페이팔은 실리콘밸리의 테크놀로지 산업과 그 산업에 만연한 반기업주의, 사회적 자율성, 문화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같은 가치를 시장주의와 묶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의 산물이다. 많은 테크 기업 창업가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대안 공동체와 사회적 삶이 만들어지고 더 나아가 개인이 해방될 것이라고 믿었다. 페이팔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만이 아니라 개방된 세계 화폐 시장을 추구했다. 애초에 페이팔의 목표는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글로벌 공동체가 아니라 민족국가의 간섭에서 완전히 해방된 글로벌 시장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페이팔의 사업 모델이 성공한 것은 오로지 1970년대에 도입되어 여전히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관리하는 자동교환결제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 시스템은 은행 고객이 수표를 액면가 그대로 전부 결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유동자금도 확보하지 않아 직접적인 매출도 없다. 페이팔은 기존 카드네트워크를 이용할 때 수반되는 각종 비용을 내지 않기 위해 고객들에게 은행 계좌를 등록하도록 권장했고, 그 덕분에 자동교환결제 시스템의 거래 규정에 따라 고객의 계좌에서 직접 돈을 인출했다. 결론적으로 페이팔은 이미 존재하는 공공재를 활용한 것뿐이다. 사람들은 돈을 보내고 받을 때 그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속도로 거래를 진행할 수 있었다.
-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네트워크는 지불이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각 카드 소지자의 거래 정체성에 반응해서 네트워크의 설정을 그 정체성에 맞춘다. 실제로 POSPoint of Sales(판매시점 정보관리) 단말기 1대가 여러 소비자의 카드를 연달아 받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설정을 불러와야 할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통과하는 여러 경로가 열리고 닫히며, 여러 알고리즘이 예금계좌 잔고 조정, 이자 계산, 수수료 작성 업무를 수행한다. 때로는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현금은 모든 사용자를 동등하게 취급하지만, 개방 루프 네트워크는 카드가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거래 정체성의 차이를 인식하고 유지한다. 다만 이런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개방 루프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상인은 특정 카드를 차별하는 일 없이 모든 카드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결제 수단으로 받는다.
- 수수료는 결제 서비스업계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상인은 수수료가 카드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가격 담합 사례라고 주장한다.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같은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카드를 받으려면 상인은 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모든 카드를 받아야 한다. 체이스 사파이어 리저브 신용카드는 받지 않으면서 다른 신용카드만 받는 식으로 카드를 가려가며 받을 수 없다. 개방 루프 네트워크와 발급인은 차별화된 수수료 일람표를 가격 담합 사례가 아닌 코피티션이라고 말한다.
-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폐쇄 루프 시스템이다. 별도의 발급인이나 매입인이 없고 자체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상인에 게 높은 수수료를 부과한다. 상인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는 받지 않을 수 있어도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수수료가 비싼 다른 프리미엄 카드는 받아야 한다(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받는 상인은 애초에 신용카드를 받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그 카드를 받는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소지자는 돈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수수료를 반영하면 상인의 부담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으므로 일부 상인과 고객은 리워드 신용카드가 상품 가격을 올리고, 결국 고객이 자신의 리워드 프로그램 비용과 다른 고객 의 리워드 프로그램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리워드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고객이 리워드 신용카드를 쓰는 고객의 리워드 프로그램 비용을 보조하는 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2010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카드를 쓰는 가구는 현금만 쓰는 가구에서 매년 149달러를 지급 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현금만 쓰는 사람은 매년 카드를 쓰는 가구에 대해 약 1,133달러를 간접적으로 보조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연구자가 수수료가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재의 수수료 체계가 소비자와 상인에게 비효율적이며 특정 소비자나 상인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우리가 지불하는 방식은 관계적이고 불평등하다.
인류학자 빌 모러가 지적했듯이 이 시스템은 자본주의 경 제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원칙 을 따르지도 않는다. 우선 수수료는 기존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발급인이 최고 고객을 두고 벌이는 경쟁으로 인해 상인, 매입인, 잠재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이 전부 올라가는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지불카드나 신용카드가 만들어내는 수수료, 그 수수료가 투입되는 리워드 프로그램은 여러 거래정체성 사이에 적용되는 위계질서를 수치화한다. 수수료는 특정 사업들이 나머지 사업들보다 큰 비용을 부담하는 시장을 만들어낸다. 빌 모러는 수수료가 자본주의 체제의 수요와 공급 논리에 의해 정해진 가격표라기보다는 공물貢物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 일상적인 거래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상인은 돈을 주고 특정 유형의 사람들을 고객으로 받는 특권을 사고, 그 고객들은 리워드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돈을 받는다.
- 은행의 신용카드 시스템은 고객에게 최소 금액 상환을 허용하는 한편 카드는 곧 특권이라는 이미지를 과감히 포기했다. 다이너스클럽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카드 소지자와 가맹점을 직접 연결하는 폐쇄 루프 시스템이었다면,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같은 개방 루프 시스템은 여러 은행·상인·카드 소지자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다. 테크놀로지 역사학자 데이비드 스턴스David L. Stearns의 설명대로 개방 루프는 은행 카드 시스템 혁신에서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었다.
- 비자카드 네트워크는 개인이 은행에서 발급한 카드로 그 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 계좌를 가진 상인에게 돈을 지불하도록 보조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주가 은행이 본사 소재지의 주 경계 밖에서 업무를 처리하거나 두세 곳이 넘는 지점을 운영하는 것을 금지했으므로 개방 루프 시스템이 꼭 필요했다. 다이너스클럽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은행이 아니었으므로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 선불카드는 회전인도 거래인도 아니면서 예금계좌도 없 는 고객을 대상으로 돈을 벌 궁리를 하던 결제업계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물론 소소한 수수료를 많이 부과해야 하지만 말이다. 선불카드는 개방 루프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여느 카 드와 동일한 기능을 하고 직불카드와 동일한 규제를 받는다. 카드사는 카드 소지자가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수수료와 리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버는 대신 선불카드 소지자에게 온갖 수수료를 청구하며, 그 수수료는 달러 단위로 책정된다.
선불카드는 카드 소지자에게 수수료가 부과된다(그 외에도 월사용료 · 재충전 수수료 · 잔고 확인 수수료 · 휴면 카드 수수료 등이 청구되며, 그것도 모자라 선불카드를 없앨 때도 수수료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린닷Green Dot에서 발급하는 선불카드에
는 다음과 같은 수수료가 붙는다. 카드 발급비 최대 1.95달 러, 거래 건당 3퍼센트의 수수료, 선불카드 서비스 월 이용료 7.95달러(전월 충전 금액이 1,000달러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면제되기도 한다), 현금 충전비 최대 4.95달러, 현금 인출 수수료 25달러, 잔액 확인 수수료 0.5달러, 카드 재발급비 5달러 등이다. 이 수수료 책정 기준은 업계 표준에 가깝다. 모보 버추얼Movo Virtual 선불카드처럼 카드 발급비, 월 이 용료, 거래 수수료가 없는 선불카드도 있다. 커머스뱅크에서 발급하는 마이스펜딩mySpending 카드는 자동응답 고객 서비 스 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50센트를 부과한다. 그리고 상 담원과 실시간으로 통화하려면 1.5달러를 내야 한다. 법학자 메르사 바라다란Mehrsa Baradaran의 지적대로 “현대 미국 사 회의 심각한 아이러니 중 하나는 돈이 없을수록 그 돈을 쓰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내가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서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 합 비자카드로 2.1 달러를 내고 커피를 살 때 그 돈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내 카드의 발급인인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이 비자카드의 교환 시스템을 거 쳐 스타벅스의 거래 은행인 JP 모건 체이스에 커피값을 지불 한다. JP 모건 체이스는 그 돈을 스타벅스에 지급한다. 
그런데 그 돈은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스타벅스는 JP 모건 체이스에 수수료를 낸다. JP 모건 체이스는 나를 고객으 로 공급한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에 수수료를 낸다. 스타벅스는 거래 매출 규모가 큰 기업이므로 비교적 낮은 고정 수수료를 낸다. 스타벅스는 POS 단말기를 위한 자체 하드웨 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자사가 매일 판매하는 수백 만 잔의 커피에 대한 값을 확실히 지불 받을 수 있도록 지원 하는 내부 부서도 여럿 두고 있다. 
반대로 우리 동네의 카페가 JP 모건 체이스와 직접 거래를 한다면 별로 실익이 없을 것이다. 내 단골 카페는 웰스 파고의 결제 서비스를 재판매하는 소규모 ISO 업체와 거래한다. 이 ISO는 내 단골 카페를 위해 스타벅스의 내부 부서가 담당하는 업무 대부분을 대신 수행한다. POS 단말기를 관리하고 그 정보가 업계의 표준과 법규를 준수하도록 감독하고 결제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한다.
은행은 결제 서비스 외에 위험도 판매한다. 상인이 고객의 카드를 받으면 은행은 단기로 그 지급을 보증한다. 내가 커피 값을 결제하려고 카드를 사용하면 JP 모건 체이스는 2.1 달러 에서 수수료를 뺀 금액을 스타벅스에 빌려주는 셈이 된다. 그 런 다음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이 스타벅스가 JP 모건 체이스에 빚진 결제액 전부를 정산한다. 마지막으로 버지니 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커피값 2.1 달러를 포함해 그동안 카드로 결제한 금액과 이자를 내게 청구한다.
사기나 불만 등 어떤 이유로 내가 커피값 2.1달러의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지급을 거절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발급인에게 결제액을 환불할 의무가 생긴다. 발급인은 은행에서 돌려받은 돈을 다시 고객에게 돌려준다. 그런 다음 은행은 상인에게서 그 돈을 회수해야 한다.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JP 모건 체이스에서 2.1달러 를 돌려받고 JP 모건 체이스는 그 돈과 추가 수수료를 스타벅스에서 돌려받는다.
내가 단골 카페에서 낸 커피값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그 돈을 웰스 파고에서 받아내고 웰스 파고는 그 돈을 커먼웰스 머천트 솔루션스Commonwealth Merchant Solutions에서 받아내고 커먼웰스 머천트 솔루션스는 그 돈을 단골 카페에서 받아낸다. 은행의 업무, 즉 상인에게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상인 대신 위험을 떠맡는 것이다. 지불을 받는 과정은 곧 단기 신용대출이기도하다.
- 페이팔은 돈이 폐쇄 루프 시스템에 최대한 오랫동안 머물게 해서 기존의 시스템을 우회한다. 한 사용자가 PSP를 통해 다른 사용자에게 지불하면 PSP는 그 전송 내역을 내부 장부에 기록하고 돈을 지불한 사용자의 계정에서 차감하고 돈을 지불 받을 사용자의 계정에 가액加한다. 이것을 장부 전송이라고 부른다. PSP로서는 돈이 PSP를 떠나는 일 없이 장부전송으로만 돈이 오가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 경우에 PSP는 외부 시스템에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사용 자에게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의 계정에 묶인 채 체류하는 돈(유동자금)으로 이자를 벌 수 있다.
사용자가 계좌 이체나 신용카드 결제를 선택하면 PSP는결제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인을 두고 '마스터 상인' 역할을 한다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마스터 상인인 창고형 마트 처럼 PSP는 네트워크 · 처리업자 · 은행과 직접 협상해서 대규 모 거래에 맞는 맞춤형 수수료를 제안 받는다. 중간업자를 거 의 다 쳐내고 스스로 중심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객이 신용카드 결제를 선택하면 PSP는 수수료를 고객에게 전가한다.
- 전통적인 ISO 모델은 스타트업에 상인조차 빠른 속도로 빼앗기고 있다. 이들 결제 플랫폼은 PSP처럼 기능할 수도 있고, 대형 은행의 ISO로 등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 상인에게는 포인트 적립, 분석 자료, 장부 작성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꽤 오랫동안 ISO는 중소 상인이 카드 결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중간업자가 대개 그렇듯이 ISO도 상인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않았으며 바가지를 씌워서 가격만 올린다고 비난받기 일쑤다. 오늘날, 적어도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들은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계약을 한다. 그들은 카페에 소프트웨어, 카드 리더기, 세련된 회전 거치대를 장착 한 태블릿을 제공하고 있다.
- 단순히 이모티콘만 더한다고 해서 소셜미디어가 될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셜미디어 시스템의 밑바탕에 깔 린 논리, 즉 사회관계를 설정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흐름의구조, 가치 배분 방식을 결제 수단에 적용해야만 한다. 소셜미디어와 돈은 둘 다 기억의 테크놀로지이며, 새로운 기억 생태계'의 일부다. 이메일을 쓰거나 친구와 셀카를 찍을 때 우 리의 사적 기억은 데이터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우리의 개인 기록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언제 어떻게 과거와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기억을 소셜미디어에 믿고 맡긴다. 과거의 기록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에서 한데 뒤섞인 채 SNS를 떠돈다. 이런 식으로 개인 기억과 집단 기억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미지, 영상, 댓글, 광고가 서로 포개진다. 이 타임라인을 훑어가다 보면 친밀한 순간과 개인적으로 중요한 순간부터 국제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억과 마주치게 된다. 소셜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기억하기는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계몽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 기억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이 기억이라는 가상 대차대 조표를 통해 각 행위자의 거래 기록이 작성되고 유지된다. 돈 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돈이 그런 대차대조표를 대신하는 실질적인 기록 매개체가 된다. 따라서 돈은 기억의 기능을 대신하는 기술 혁신이며, 사회가 돈이 없었다면 시행하지 못했을 공정한 분배를 시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사고 실험을한 뒤 그는 돈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인류학자 키스 하트는돈을 뜻하는 머니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 모네모시네를 로마식으로 표기한 모네타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주목함. 그의 관점에서 보면 돈은 기억은행이다. 가치에 관한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미래에 전달하고, 거래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약속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일종의 신용체계인 것이다. 그는 돈이 기본적으로 집단기억의 도구이며, 우리가 나머지 인류와 맺는 교환관계의 일부를 기록하는 방식이라고 주장. 돈은 언어와 마찬가디로 기억인프라다. 돈은 인간의 교환관계가 눈에 보이지 않게 새겨진 유통되는 기록이다.
- 벤모가 기억의 테크놀로지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디지털 화폐는 거래의 구체적인 사항을 보존하고 우리의 지리적 이동을 기록하고 우리의 취향과 습관을 추론하는 능력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나이절 도드는 “기억의 테크놀로지가 기업과 국가의 통제를 받는 한 기억을 보조하는 장비는 정치적 · 상업적 감찰을 보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비판에서 자유 로울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한때는 사적 영역에 속했던 거래 내역이 게시물이 되어 친구와 적, 국가와 기업의 감찰 대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단순히 이모티콘만 더한다고 해서 소셜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셜미디어 시스템의 밑바탕에 깔 린 논리, 즉 사회관계를 설정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구조, 가치 배분 방식을 결제 수단에 적용해야만 한다. 소셜미디어와 돈은 둘 다 기억의 테크놀로지이며, 새로운 기억 생태계'의 일부다. 이메일을 쓰거나 친구와 셀카를 찍을 때 우 리의 사적 기억은 데이터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우리의 개인 기록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언제 어떻게 과거와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 테크놀로지학자 재런 러니어Jaron Lanier는 현금이 미래의 디지털 경제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에는 “기억력이 너무 나쁘다”라고 말한다. 그 대신 그는 우리가 기억하고 거래한 상대방이 기억하는 걸 돕는 ‘경제 아바타'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 장한다.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이 약속하는 꿈은 바로 더 잘 기억하는 돈일 거라고 예상한다. 사람들은 돈의 모든 유통된 행위 흔적을 기록한, 진정한 의미에서 유통된 장부이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영원한 장부, 모든 거래 내역을 완벽하게 기억하면서도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돈을 기다리고 있다.
- 결제가 과거의 거래 내역을 생성하듯이 우리가 매 순간 페이스북 등에서 하는 활동은 사회적 흔적을 남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우리가 올린 사진과 댓글 외에도 우리가 클릭한링크나 영상까지도 기록한다. 이 자동화된 수집은 디지털 티끌이 모이면 엄청난 가치의 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를 둔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언젠가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사용자의 사소한 활동을 기록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인다.
실리콘밸리가 결제 산업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금융 활동이 생성하는 기록에도 소셜미디어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는 결제의 기능을 2가지 방식으로 구조화한다. 첫째, 소셜미디어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결제 내역은 아직 저평가된 자원이며 기업이 이미 축적해놓은 사용자 감찰 자료에 더할 새로운 유형의 개인 데이터다. 둘째, 소셜미디어 산업은 다층적인 플랫폼, 예컨대 한 이해관계자 집단(우리)이 생성하는 데이터가 다른 이해관계자 집단(광고주)에 판매되는 시장을 구축한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결제는 통합하고 분석하고 포장하고 판매할 데이터를 생산하는 또 하나의 사회활동에 불과하다.
새로운 소셜 결제 시스템은 구체화되지 않은 채 존재하던 개인과 집단의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영속적인 장부를 만들어낸다. 결제의 사회적인 속성을 기록으로 구체화할 뿐 아니라 그 기억에 울타리를 세우고 독점한다. 거래는 이제 거래데이터가 되었다. 과거에는 사적 데이터로 취급되던 거래가 언젠가는 매출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사회 데이터의 일종이 되었다. 우리의 거래 내역은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감찰 가능하고, 사유화된 무언가로 재탄생했다. 거래 내역의 기록에 대한 이런 관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벤모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결제업계에서 개인 간 모바일 결제는 전망이 없는 분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전통적으로 상인은 돈을 받기 위해 돈을 낸다. 그런데 개인 간 거래에는 상인이 없다. 실제로 벤모는 사용자가 직불카드나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거나 받을 때에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2012년에 우버와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을 지원하는 결제업체 브레인트리 Braintree는 2,620 만달러를 주고 벤모를 인수했다. 당시에 벤모는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었다. 2013년에는 페이팔이 브레인트리를 8억달러에 인수했다.
벤모가 투자자와 파트너사에 약속한 가치는 커뮤니케이 션, 즉 새로운 거래 내역 기록인 사용자 간 대화다. 이런 대화는 벤모의 기본 구성 요소로 거래 내역을 자동적으로 기록한 다. 더 나아가 현재 벤모의 가장 귀중한 자산은 '벤모'라는 단 어일 것이다. 구글하다가 검색하다'를 의미하고 '페이스북하다'가 '연락을 주고받다'를 의미하는 것처럼, 20대 사용자들 사이에서 '벤모하다'는 '돈을 보내다'를 의미한다. 벤모의 기업 가치는 벤모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친구 간 돈 거래를 둘러싼 일상적인 사회규범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벤모의 개인 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누구나 벤모의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피드를 구독하거나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친구의 친구뿐 아니라 벤모 피드를 클릭하기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벤모의 개인 정보 설정을 비공개로 바꾸는 사용자도 많다. 그러면 사용자가 돈을 보냈거나 사용자에게 돈을 보낸 친구 들만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용자가 개인 정보 설정을 공개로 놔둔다.
- 하워드 슐츠는 디지털 화폐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신뢰를 강조할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났다. 모든 돈의 가치는 신뢰에서 나온다. 미국 달러는 국가와 국가의 돈을 관리하는 시장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등에 업고 있다. 비트코인은 달 러로 표시되는 비트코인의 시장가치, 그것의 토대가 되는 암 호 시스템, 그 화폐를 지지하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등에 업 고 있다. 거래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제도, 구성원, 정서 구조 에 대한 신뢰의 네트워크다.
따라서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가 디지털 화폐 발행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커뮤니케이션학자 세라 베이넷-와이저Sarah Banet-Weiser는 브랜드가 정체성과 공동체를 만들 어낸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기업 브랜드는 정체성과 공동체를 제공한다. 정체성과 공동체의 대표적인 예인 종교와 시민운동단체는 기업의 브랜딩 도구와 기법을 활용한다. 거래 공동체의 생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화폐는 최고의 브랜딩 도구다.
- 20세기의 마지막 20년과 21세기의 첫 20년 동안 사이퍼펑크족과 암호무정부주의자의 비전을 토대로 디지털 화폐 시 스템을 설계하고 도입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1985년 에 컴퓨터공학자 데이비드 촘David Chaum은 “빅브러더를 완 벽하게 무력화할 것이라고 주장한 전자화폐 시스템을 제시 했다. 1994년에는 사이퍼펑크스의 공동설립자인 팀 메이Tim May는 가상의 암호 기법을 제안했다. 1998년에는 컴퓨터공 학자 웨이 다이Wei Dai가 익명으로 배분되는 전자화폐 시스템인 비머니B-money를 제시했다. 또 1998년에 닉 사보Nick Szabo는 컴퓨터가 희소한 디지털 재화를 채굴하는 시스템인 비트 골드bit gold를 제안했다.
- 지금까지 결실을 맺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 이후에 등장한 디지털 화폐 시스템, 특히 2008년에 등장한 비트코인의 토대가 되었다. 인터넷의 지리학과 정치학은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인터넷은 돈의 가치를 전송하고 가치의 이동을 기록하는 일을 해내기에 적합하다. 그러 나 인터넷이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가치를 보증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가치를 전송하고 보관하는 업 무를 담당하는 인터넷 자체도 관리와 보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인류학자 키스 하트는 인터넷이 디지털 화폐에 미칠 영향력을 예견할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다. “돈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한다.”
- 미국은 오래전부터 현금이 부족할 때면 스탬프, 가증권, 쿠폰 같은 상품을 국가 발행 화폐의 대용품으로 사용해왔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채굴·벌목 회사가 노동자에게 임금 대신 기업 가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가증권은 회사 매 점에서만 통용되었으므로 노동자들은 종종 높은 이윤을 붙여 파는 매점에서 물건을 구매해야만 했다. 이런 관행은 과거만 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멕시코 대법원은 월마트가 직원 들에게 임금 대신 월마트에서만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소비자에게는 리워드 포인트가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지만, 그 가치가 변경되었을 때 소비자는 기업에 항의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 소셜미디어 돈이 분절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지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 돈이 둘 이상인 현실은 당신이 각기 다른 돈과 공동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복잡한 거래를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미래의 거래 공동체 주민은 동질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거래 정체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여러 화폐를 다루면서 살 것이고 거래 정체성도 여러 개일 것이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0) 2021.06.13
빅데이터 주식사전  (0) 2021.06.06
경제학자의 생각법  (0) 2021.05.19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0) 2021.05.15
세상을 바꾸는 행동경제학  (0) 2021.05.11
Posted by dalai
,

침대위의 세계사

역사 2021. 5. 25. 20:53

-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침대는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 발 견되었다. 대략 7만 년 전에 현생 인류가 동굴 바닥을파내서 만든 침대들이 남아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영어 bed'는 원시 게르만어 어원에서 땅바닥을 파내서 만든 쉼터'를 뜻한다. 이것은 적절한 설 명이었다. 최초의 침대가 땅을 파낸 구덩이였다는 특징 때문이 아니 라, 침대가 언제나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침대는 휴식 말고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난방이 잘 되는 집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환경에 취약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잠을 어떻게, 어디서 잘는지는 언제나 보온과 안전성을 우선으로 해서 결정되었다.
- 빙하기 말이나 2세기 전 캐나다 북극권처럼 영하권의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지역의 사람들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낮이 짧아지면 침대로 파고들었고, 여러 겹의 털을 휘감고 깊은 겨울잠에 들었다. 4 천 년 전, 캐나다 북극권 배핀섬 인디펜던스 피오르의 겨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몇 달간 반수면 상태로 지냈다. 이들은 두툼하고 따뜻한 사향노루나 황소 털가죽을 두르고 손닿을 거리에 음식과 연료를 쟁여놓고 서로 밀착해 웅크려서 지냈다.
오늘날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담요나 털가죽이나 옷가지를 뒤집어쓰고 땅바닥, 콘크리트 바닥, 마룻바닥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5천 년도 전에 문명이 발생하면서 침대의 높이가 때때로 올라갔고, 이는 지식인층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이런 고대 카우치 유물은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 덕분에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투탕카멘이 통 치하던 기원전 14세기 중반, 침대는 이미 (우리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기본 형태가 갖추어졌다. 다만 머리를 대는 쪽이 살짝 높았고 미끄 러져 떨어지지 않도록 아래쪽에는 발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후로 침 대가 잠을 자는 곳이라는 주제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지만 침대 종류는 다양해졌다. 벽장형 침대부터 해먹, 낮은 워터 베드(물침대)와 바닥에서 5미터 가까이 띄운 침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5천 년 동
안 놀랍게도 직사각형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다. 매트리스도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풀과 건초, 짚을 채운 자루나 천 가방이 수 세기 동안 기본 매트리스 구실을 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매트리스를 여러 개 쌓아올려서 벌레를 쫓고 충전재의 까칠 까칠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게 했다. 21세기에 들어 수면과학 기술이 엄청나게 정교해지면서 불면증을 물리치기 위한 묘수와 엉터리 치료법이 난무하고 있다.
- 버지니아 공대의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Roger Ekirch)는 베어의 수면 연구에 자극을 받아서 이중 수면 패턴을 기록한 역사 문헌들 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원전 1세기에 쓰여진 리비우스(Livius)의 라틴어책 《로마사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둘 다 ‘프리모 솜노(primo somno)' 또는 콘큐빈 녹테(concubine nocte)', 즉 첫 번째 잠에 대하여 수차례 언급했다. 중세 시대에 제프리 초서 같은 작가 들은 영국인들이 이따금 이른 저녁에 ‘첫 번째 잠에 들었다가, 후에 깨어나서 아마도 무언가를 먹고, 다시 두 번째로 아침잠을 즐겼다고 적었다. 두 번째 잠은 한밤중을 넘기고 시작되었을 수도 있었다. 심야의 깨어 있는 시간을 영어권 사용자들은 'the watch' 또는 (watching 이라고 불렀다. 이때 사람들은 꿈을 되돌아보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을 먹거나 섹스를 나누기도 했다(유대인의 글에는 이 시간이 임신에 적기라고 충고한다). 또 다른 사람들 은 이 시간을 종교적인 목적으로 활용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괴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잠을 적게 자던 윈스턴 처칠은 자신을 괴롭히던 우울증을 '블랙 독(black dog)' 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매일 밤 다섯 시간을 자도 건강에 전혀 지장이 없는 부류가 드물게 있다. 태생적으로 잠이 없다고 알려진 이 엘리트들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반대로 잠을 많이 자는 습관은 우울한 기분과 연관된다. 이중 수면 패턴을 끝장내는 데 누구보다 공헌한 토머스 에디슨은 태생적으로 잠을 적게 자는 위인에 속했다. 에디슨은 밤에 네 시간 정도 잤고, 때때로 사무실의 간이침대나 작업대 근처의 바닥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 1900년 미국 여성의 약 5퍼센트가 병원에서 분만을 했다. 1920년대에는 이 비율이 미국 대도시에서 65퍼센트에 달했고, 1955년에는 95퍼센트로 올라갔다.
오늘날 예비 '부모'는 아기를 낳기 전 각종 검사를 받는다. 또 미국과 영국의 산모 중 약 3분의 1이 제왕절개수술[caesarean section]을 받는다. 고대 로마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대(大) 플리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의 조상이 이런 방식으로 분만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명칭은 '자른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caedere', 또는 로마법 렉스 카이사레아(Lex Caesarea, 황제령)에서 유래한 듯하다. 이 로마법에 따르면 임신한 채로 죽은 여성은 사망 직후에 분만이 허용되었다. 태아를 몸에 지닌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수 없게 한 문화적 금기 때문이었다. 무균수술과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에 제왕절개 분만은 산모에게 죽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산부인과 병원의 침대는 우리 대부분이 처음으로 만나는 침대가 되었다.
-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관련해서 침대는 적극적인 회복을 위한 공간에서 수동적인 출산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전환은 여성 산 파가 남성 산부인과 의사로 바뀐 것과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산부인과 의사의 85퍼센트가 남성이다. 이전의 가부장 사회처럼 우리 사회 는 출산의 공로를 대부분 남성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침대는 더 이상 여성이 오염되는 공간이 아니다. 출산과 관련된 수많은 질병이 치료되면서 한 달 동안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불결한' 여성들은 이제 없다. 그 대신 여성들은 출산 후 며칠 만에 청바지를 입고 팔짝 팔짝 뛰어다니는 미디어 속 유명인을 따라 하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것도 여성의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다.
1970년대 초에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출산과 관련된 치료가 이해하기 쉬워야 하고 여성의 삶이 의료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 장했다. 출산은 질병이 아니므로 임신부 모두가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면서, 일반 조산사의 부활을 옹호했다. 여성 운동가들이 가정출 산을 지지하면서 의사들과 갈등이 일어났다. 가정에서의 분만을 금지한 미국의 주는 없었다. 하지만 가정출산을 시행하는 의사들은 권 위의 상실과 심지어 의사자격증에 대한 위협을 받았다. 오늘날 조산사들은 미국 내 출산의 8.2퍼센트를 맡고 있다. 1980년 1.1퍼센트에 불과했던 수치보다 높다.
그런데 현대의 의학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은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병원 침대로 가는 이유이다. 이들은 대부분 장신구를 두른 오스투니의 여성 유골이나, 1631년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어 타지마할에 묻힌 인도 왕비 아르주만드 바누(뭄타즈 마할), 1855년에 임신으로 인한 구토증(=입덧, 지속적인 구토와 체중감소, 탈수)에 시달리다가 죽은 소설가 샬럿 브 론테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침대는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변할 수도 있는 장소였다.
- 임종 침대 둘레에서의 모임은 왕실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 다. 임종 침대는 친구들과 가족이 망자를 (그리고 서로를) 지지하기 위해 모이는 사교장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영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보통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힌 후에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간단하게 방부 처리를 했다. 이 시신은 상여나 뚜껑 없는 관이나 망자의 침대에 놓였다. 그리고 조문이 시작되었고, 친구들과 가족은 시신을 묻기 전까지 망자를 결코 홀로 두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가톨릭교는 임종을 지키는 관습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때 망자 의 운명이 갈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망자의 사후는 침대를 천사가 둘러쌀지 아니면 악마가 둘러쌀지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고요한 죽음은 천사가 승리했다는 표시였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들은 인간의 운명이 마지막 1분으로 정해질 리 없다며, 이런 태도가 분명 임종 침대에 불안감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개신교도인 엘리자베스 1세의 채플린은 여왕이 마지막 숨으로 곧장 천국으로 갔다고 주장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는 “여왕께서는 마치 양처럼 온화하게, 나무에서 익은 사과를 따듯 편안하게 이생을 떠나셨다” 라고 적었다.
이슬람에서도 가족과 친구들이 임종 침대 둘레에 모여들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아랍어로 “알라는 유일신이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임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이 이어졌다. 원래 이 기도는 반복된 '라'음으로 편안하고 서정적으로 진행된다.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 편치 않을 때에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하듯 귀에 대고 성스러운 말들을 속삭여주었다. 죽은 후에 시신은 의식에 따라 씻기고 수 의가 입혀져 상여 위 관에 놓였다. 매장은 가능한 빨리, 보통 하루 이 내에 진행되었는데, 매장된 후에 조문 기간이 이어졌다. 이렇듯 신속하게 매장이 진행된 것은 위생과 부패 문제 때문이었다. 이슬람교는 물론이고 유대교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화장을 금지했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유대인들은 임종 침대를 지키는 풍습을 미츠바(mitzvah), 즉 선행이나 종교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 공동체는 누구도 홀로 죽게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죽어가는 사람은 열 명의 유대인 앞에서 고해를 하는데, 여기에는 일련의 기도가 포함되었다. 이후에 죽어가는 사람이 가족을 위해 축복을 빌거 나 기도를 했다. 죽은 후 시신은 24시간 안에 씻기고 매장되어야 했 다. 탈무드에 따르면 하느님은 “나는 너희 사이에 나의 형상을 두었 고, 너희의 죄로 인해 나는 그것을 뒤엎었다. 이제 너의 침대를 뒤엎 는다.”라고 말한다. 유대인 조문객들은 이 구절을 따라서 자신의 카우치나 침대를 엎어놓았다. 7일간 이어지는 시바 기간(shivah 기간, 부모·배우자와 사별한 유대인이 장례식 후 지키는 7일간의 복상服喪 기간 옮긴이)에는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잤다.
- 서구인들은 마지막 말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다. 이런 유행은 인상적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불경죄와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로 고발되었 고 헴록(hemlock, 독미나리과의 다년초로, 독이 있어 사약으로 쓴다.)을 마시는 독약형을 선고받았다. 젊은 제자인 플라톤이 당시 사건의 흐름을 기록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마시고 (아마도 침대에) 누워서 온몸을 시트로 덮었다. 독이 소크라테스의 발에서 머리로 차츰 퍼지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지막 순간 소크라테스 는 자기 얼굴에서 시트를 내리고 지켜보던 친구에게 부탁을 남겼다.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의료의 신)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 는데 자네가 대신 갚아줄 수 있겠는가?”
- 우리는 얼마나 겁먹으며 살아왔는가! 우리는 죽음과 맞서며 여기 까지 왔다. 살균된 시트와 격리 커튼이 있는 병원 침대는 우리의 생 명을 살려내는 곳이며 또한 우리 중 50퍼센트가 죽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병원이 아닌 곳에서 죽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다. 어쩌면 임종 침대에 사람들을 모아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용서를 건네는 전통을 되살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유족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침대 위에 시신을 뉘어서 모든 사람이 보고 받아 들이고 큰 북소리, 가슴 치기, 친구들의 지지, 큰 축제가 포함된 장례식을 여는 건 어떨까. 인간은 무엇보다 사교적인 동물이다.
- 옛날 사람들은 청결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졌다. 이슬람교 도들은 흐르는 물로 규칙적으로 세정식을 해야 했다. 고여 있는 물 에서 씻는 행위는 불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구의 상류층은 17세기 말 이전까지 거의 씻지 않았다. 엘리트층의 어린아이 들은 두세 살까지 목욕을 시키지 않았다. 1601년에 태어난 루이 13 세의 기록을 보면, 의사가 신중하게 고안하고 승인한 특별한 왕실 일정표에 따라 열일곱 번째 생일날을 앞두고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고 한다. 체액이 보존되어야 하고 또 물이 너무 많으면 건강을 해친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5세기 무렵 유럽의 몇몇 논평자들이 위생과 도덕을 근 거로 공동 수면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가장 두려운 동물은 머릿니였 을 것이다. 머릿니가 있으면 사회에서 낙인이 찍힐 정도였다. 머릿니는 흔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수시로 머리와 수염을 빗 고 감는 방법 말고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서캐와 머릿니를 잡 아 없애려 고안된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빗은 개인의 필수 소지품 이 되었다. 고고학자들이 튜더 왕조 시대의 난파선 메리 로즈(Mary Rose)를 발굴하면서 익사한 선원들 대부분이 빗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중세 시대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건초더미 위에서 잠을 잤다. 외투르 뒤집어쓴 채 바닥에서 자거나 짚을 채운 자루를 깔고 그 위에서 가죽 이나 담요를 덮고 잤다. 사람들은 공동주거지에서 온기를 찾아 난로 가까이에 모여서 자기도 했다. 이 주거지는 동물들과 함께 썼다. 사 람들은 자루를 건초로 채워서 침대를 만들었다. 영주의 눈에 든 이 들은 영주의 주 거주 공간 벽에 딸린 구석진 곁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당시 침실은 창문에 유리가 없어서 외풍이 심했고 위생 상태가 형편없었다. 가장 중요한 영주만이 신화 속의 덴마크 왕 베어울프처 럼 높다란 침대를 가질 수 있었다. 베어울프는 자신의 침대 부근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수많은 용사들에 둘러싸여 잠이 들었다. 용사들 모두 갑옷만 아니라면 어디서도 잠이 들었다. 베어울프의 백성들은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만족에 비하면 거칠었다.
노르만족은 안락함을 선호해서 집을 지었고 영주는 응접실 역할 을 하던 방에서 잠을 잤다. 이 방들은 침실 겸 알현실로 사용되었고, 귀족부터 평민 농부까지 모든 사람이 응대를 받았다. 훗날 이 방들의 형태는 유럽 궁정의 공적 침실의 원형이 되었다.
- 2013년 인터넷의 개척자 구글의 빈트 서프(Vint Cerf)가 프라이버시 를 근래에 태어난 변종이라고 했을 때,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서프의 말은 완벽한 진실이다. 프라이버시는 개인적인 비밀, 공적 영역과의 분리 개념으로 약 150년 전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 뿌리는 훨씬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근대적인 개념의 침실이 등장한 것은 불과 2세기 전 이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프라이버시는 어느 인간 사회에서도 최우선이 아니었다. 돈 · 권위 · 안전 · 편리성에 비해 고독은 뒷 전으로 밀려 있었다.
선사시대에는 온기와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프라이버시를 별로 지키지 않았다. 사람들은 화덕 가까이에 붙어 있거나 함께 웅크리고 지냈다. 십중팔구 아이들은 부모가 섹스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가족 모두 붙어서 잠을 자거나 작은 집에서 함께 지냈기 때문 이다. 1929년 트로브리안드 군도 사람들의 성생활에 대한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의 유명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른들은 자 신들의 섹스를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 았다. 아이들이 빤히 쳐다보면 매트로 얼굴을 덮으라고 꾸짖는 게 전부였다. 한편 전통적인 수렵채집인과 극빈층 농민 사회에서 섹스 는 수면 공간이 아닌 야외에서 자주 이루어졌다. 보는 사람도 없고 움직임의 폭도 더 넓었을 것이다. 육식동물로 바글거리는 위험한 장 소나 자연환경에 살던 사람들에게 생존에 비해 프라이버시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의 북극 사회에서는 바깥에서 고독을 찾는 행위가 매우 위험하고 멍청한 짓으로 생각되었다.
- 프라이버시가 언제부터 개념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마도 통치자와 귀족들, 그 외 사람들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높은 침대에서 잠을 잤고 유력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뺀 모든 사람이 매트나 땅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건축 기하학에 능했던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이따금 햇빛은 최대로 들이면서 공적인 노출은 최소화한 집들을 설계했다. 단어 'private'의 기원인 라틴어 'privatus'는 원래 관직을 맡지 않은 시민을 일컫는 말이었다. privatus'는 '나는 박탈한다, 빼앗는다' 뿐만 아니라 '나는 해방시킨다, 풀어준다'라는 뜻을
가진 'privo에서 유래되었다.
- 당시에도 오늘날처럼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쟁이 일었던 듯하다. 소크라테스 같은 석학들은 사생활을 옹호하여 자신을 은폐하는 사람 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고독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렇게 언급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적절한 명예나 관직 어느 것 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정의조차도. 평등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로 마 사람들은 호화로운 시골 빌라든 우아한 호숫가든 도심의 대저택 이든 대놓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즐겼다. 서기 77년 대 플리니우스 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고... 자신들 의 침실과 내밀한 공간... 심지어 은밀한 비밀도 낱낱이 까발렸다”라 고 적었다. 사실 로마의 주택 대부분은 딱히 구분된 침실이 없었고, 대신 이동 가능한 침대들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겼을 뿐이다.
- 로마 사람들은 공공 목욕탕에서도 거리낌이 없었고, 그곳에 딸린 공동 화장실에서도 나란히 앉아 볼일을 봤다. 이 화장실에서는 칸막이로 나눈 흔적이 이따금 발견될 뿐이다. 이들은 볼일을 보기 위해 U자 형태의 구멍이 있는 좌석에 앉았고 볼일을 본 후에 낡은 천 쪼가리로 닦거나 스펀지를 붙인 막대를 함께 썼다. 그 사이에 스 스럼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화장실은 사교와 공적 모임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특권층이 사치와 과시를 누렸던 것에 비해 로마 시민 대 부분은 날림으로 지어진 비좁은 공동주택에 살았고 여기에 프라이 버시가 존재할 리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생활에 개의치 않았 다. 관청의 허가를 받은 매춘부와의 섹스는 (남성들에게) 비밀이 아니었고 공공연한 쾌락의 원천이었다. 폼페이의 한 벽에는 이런 낙서가 적혀 있다. “목욕·술·섹스는 우리의 몸을 망가뜨린다. 하지 만 목욕·술·섹스는 우리를 살 만하게 한다. 프라이버시는 세계 어디에서도 최우선이 아니었다. 기원전 5000년경에 등장한 중국의 '캉은 결코 사적인 침실이 아니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자고 먹고 사 교하는 장소였다. 기원전 1000년경에야 점차 바닥보다 높은 침대에 서 잠들기 시작했다. 정교하게 새기고 금박을 입힌 엘리트층의 침실 은 조용한 휴식처라기보다 가구를 두는 공간에 가까웠고 사람들이 잠을 자고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옷을 보관하는 장소는 따로 있었다.
- 상업화가 진행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침실을 따로 쓰게 되면서 아주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었다. 이 시기에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어린이 장난감과 가구를 포함해서)이 시작되었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활발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를테면 남자아이의 장난감과 옷, 가구는 파란색이고 여자아이들은 핑크색이라는 관념(부모가 물건을 두 배로 사주어야 함)은 제2차 세계대 전 이후에야 널리 알려졌다. 그 전에는 반대였다. 1918년의 한 패션업계 기사는 이러했다. “일반적으로 남자아이에겐 핑크색을, 여자아이에겐 파란색을 적용하는 규칙을 받아들인다. 핑크색은 확실하고 강렬한 색이라서 남자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반면, 파란색은 섬세하고 얌전해서 여자아이들을 더 예뻐 보이게 한다
- 19세기가 되자 침대와 매트리스는 중세 시대의 건초나 짚으로 채운 자루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혼자 자는 것은 아직도 보편화되지 않았다. 앞에서 보았듯이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했음에도 침대 공유는 이 무렵까지 이어졌다. 침실의 분리는 실내에 계단과 복도가 발전하면서 가능해졌다. 계단과 복도를 통해 하인들과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들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 하인들은 남주인이나 여주인의 침실에서 잠을 잤으나 이제 하 인들도 위층이나 아래층에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고 벨이 울리면 불려 갔다. 국가의 권력은 이제 더 이상 왕의 침실이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에 있었다. 따라서 침실은 호화로움이 약화되고 훨씬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했다.
- 전용 침실이 여러 개 필요해지자 건축가들은 침실과 집 안 다른 구역 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남편과 아내의 침실은 때때로 1층에 있었고 공동의 공간인 응접실로 이어져 있었다. 가족과 하인, 성인과 어린아이들, 다 큰 아이들과 아기들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집안의 다른 가족들은 2층에서 잠을 잤고, 하인들은 더 높은 층에서 잠을 잤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올라야 할 계단 숫자는 줄어들었 다. 이런 관습은 수세대 동안 지속되다가, 결국 1층 전체가 일상생활 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수면 공간은 위층으로 배정되었고, 각 공간은 복도로 연결되었다. 사생활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단층 집이나 도심 공동주택에서는 침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 두 가지 대안이 유행하게 되었다. 하나는 복도를 중심으로 침실을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침실을 사교 공간들과 연결하는 방식도 있었다. 작은 집에서 침실 하나는 부모에게, 또 다른 침실은 아이들에게 배정되었다. 하인들은 지하층의 부엌에서 잠을 잤다.
- 미래의 침대는 당신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면 캡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수면 캡슐은 이미 존재하지만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다. 수면 캡슐은 컴퓨터로 연결되어 있고 사용자의 안락한 정도를 점검하여 온도와 조명, 심지어 외부 소음 정도를 조절한다. 당연히 이 침대에는 자동 마시지기가 있어서 부드럽게 침대를 흔들고 우리를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깨워줄 것이다. 캐노피 수면 캡슐은 미디어 스 크린을 구비해서 커플이 일어나지 않고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웹사이 트를 검색할 수 있다. 잠이 손짓할 때는 버튼을 누르면 스크린이 블 라인드로 가려진다.
게임 콘솔과 HD 프로젝터 등 멀티미디어 오락기기를 갖춘 수면 캡슐도 있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침대를 조절할 수 있고, 매우 사적인 순간에 당신을 숨겨주는 블라인드도 설치되어 있다. 아니면 식물과 함께할 수 있는 생태형 식물 침대도 있다. LED로 빛을 주어 식물의 성장을 돕고, 당신을 잠들게 할 음악을 들려주는 스피커, 심지어 자가발전기도 있다. 여기서는 침대 주변의 모든 활동이 에너지로 전 환된다. 클라우드 침대(The Cloud)는 자력을 활용해서 부드러운 쿠션을 공중에 띄우는 것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잠자기에 좋은 장소이 지만 그 밖의 다른 활동에 대해서는 비실용적이고 청교도적인 삶을 요구한다.
- 수면 캡슐, 캐노피, 자기부상 침대와 고급 워터 베드 모두 연결성 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데, 이것은 불과 몇 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USB 포트와 블루투스를 설치한 매트리스도 있다. 당신의 침대가 스마트폰과 완벽히 동기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 당신은 전세 계에 걸쳐서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침대에서 기상하는 시간, 온도를 낮추거나 음악과 빛 을 조절하는 미래 기술과 연결되어 있다. 당신은 컴퓨터가 만들어놓 은 환경에서 빈둥거리며 누리기만 하면 된다. 가상현실을 통해서 당 신의 매트리스가 꽃이 만발한 가운데,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 딩 위나 보름달과 별들 아래에 있을 수도 있다. 가까운 미래에 각 사용자에 맞춰 개별 난방과 냉방을 제공하는 매트리스를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 당신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줄 홀로그래 피 반려자를 개발해줄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자동세척과 해충 제거 기능을 완비한 항균 매트리스라면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세대는 당연히 안락한 표면에 기대고 싶어 하겠지만, 미래주의자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 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중 부양을 최고로 삼고, 당신을 공중으로 띄울 에어제트 침대를 상상한다. 아마 당신은 강력한 에어제트와 플로트에서 전화를 걸게 될 수도 있다. 베개에는 칩과 센서가 내장되어 당신의 바이털 사인을 측정하고, 수면 패턴을 추적하고 이상적인 기 상 시간을 알려줄 것이다. 천장과 벽은 낮 또는 잠을 불러오는 조명 으로 빛날 것이다. 내장 스마트폰으로 헤드셋, 음성과 센서로 난방 과 냉방을 조절하게 되리라고 미래주의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밀집 주거지와 더 작아지는 아파트를 고려해서 거실을 침실로 전환하는 자동 가구가 언급되고 있다. 수직룸은 더 흔해질 것이고, 어쩌면 우주인처럼 침낭에서 자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침낭이 안락함을 느낄 만큼 무중력 상태를 만들어낼 날이 올까?
- 우리 대부분은 우리 선조들이 알아볼 수 있는(우리의 매트리스가 훨씬 안락하겠지만) 매트리스에서 누워 잠을 잔다. 스마트 기기를 침대에 꼭 장착해야만 할까? 우리는 정말로 의학적 상태뿐만 아니라 음악 취향,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물건 구입을 추적하는 전자기기를 원할까? 건강진단용 스마트워치와 칼로리 계산 어플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곧 우 리는 슬립 트래커(sleep tracker)가 내장된 매트리스를 구입할 수 있 고, 이것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이론적으로 시간에 따라 향상될 것이다. 슬립 트래킹은 당신의 수면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어줄 것이 라고 주장한다(스마트하다는 게 무슨 뜻이든 간에). 매트리스가 최적의 수면 조건을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당신의 수면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숙면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본업 포기, 일과 유지하기, 효과적인 다이어트, 적당한 시각의 취침, 규칙적인 운동, 잠동무와 즐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때 삶의 모든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던 침대는 어둠 속으 로 사라졌지만, 침대는 이제 가상의 세계에서는 사회적인 장소가 되 리라고 약속한다. 미국의 미술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은 말한다. “기술은 우리가 둘러앉아 우리 이야기를 하는 캠프파이어입니다.” 그녀의 말은 일부 맞다. 기술을 통해 우리는 누구든 어떤 생각이 든 우리 침대로 가져오리라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일상적 이라 여겼던 신체적 접근 없이..
무한한 연결과 완벽한 고립 이렇듯 오늘날의 침대는 이전과 마 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내일의 침대에 덮인 시트 를 잡아당길수록 우리는 미래를 더 잘 볼 수 있다. 미래는 공동체성 이 실종되는 악몽이 될 수도 있지만 상호 연결된 세상이라는 꿈이 될 수도 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명의 역습  (0) 2021.06.20
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  (0) 2021.05.25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  (0) 2021.05.06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0) 2021.04.27
부의 역사  (0) 2021.03.28
Posted by dalai
,

- 글은 기본적으로 독자와의 대화입니다. 둘은 아주 조용 한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약간 어둑한 불빛의 나무 테이블이 있는 따뜻한 공간이죠. 내가 좀 더 말이 많은 상태고 독자는 조용히 듣고 있습니다. 우린 우리가 쓰는 페이지 건 너편에 사람이 있단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문법의 철두철미함이나 표현의 기 발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중요하지만, 적어도 일하는 데 필요한 글에선 동료나 소비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게 먼저입니다.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소재와 제목을 뽑느냐는 차후의 문제죠.
- 사실 ‘기획을 하면 안 터지고, 대충 쓰면 터진다'는 말엔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기획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아니죠. 막 쓴 글이 터지는 이유는 특유의 생동감과 자연스러움 때문입니다. 썰을 푸는 듯한 흥미로운 스토리와 무겁지 않은 문체, 감정이 섞여 드러나는 인간미와 솔직함 등에서 매력이 태어나죠. 깊은 생각이나 논리보단 감정의 매듭으로 묶여 있는 말에 가까운 글'입니다.
기획한 글이 터지지 않는 건 기획의 잘못이 아니라 정확히는 '긴장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획해야 하는 건 글의 구성과 치밀한 개요입니다. 그 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 적이 너무 강조되어서는 안 되죠. 회사에서 발행되는 글은 대부분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매출 증진이나 회원 유치, 고객 유입, 상품 소개 등이죠. 자세히 바라보면 모두 회사입장에서 이득이 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글을 본 독자들은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글에 녹아 있는 욕심에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팔고 싶다면 '이 책이 정말 좋다!'라고 끊임없이 얘기하기보단, 그 책을 정말 맛깔나게 소개하 다가 너무 궁금해질 만한 지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스스로 찾아보게끔 하는 것이죠. 목적을 이루는 건 중요합니다. 그게 여러분이 글을 쓰는 이유이니까요. 우리는 그 목적을 어떻게 드러낼 지 고민해야 합니다.
- 아이러니하지만 대충 쓴 글은 터지지 않습니다. 새벽에 급하게 술 먹고 썼던 글들과 업무를 위한 목적으로 썼던 글을 구분 짓기 위해 쓴 말일 뿐,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3~4시간을 집중하여 단어를 조합해가는 과정은 언제나 치 열합니다. 글을 쓰기 전 기획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 이지, 늘 머릿속엔 관찰했던 풍경들과 메모가 있었을 것이 고 항상 생각하고 있던 무언가가 타이밍이 맞아 표출되었을 뿐이죠. 그 방식이 유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을지라도 투박함과 솔직한 매력이 부족한 기획력을 보완해준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예상과 다르게 글이 퍼져나간다면 그 것은 반드시 여러분의 내공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종 이에 쓰지 않았을 뿐 늘 기획은 하고 있었던 셈이죠. 저 또 긴장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장황함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이해하지만, 어떤 종류의 콘텐츠 건 듣고 싶 은 말을 중심으로 해야 할 말을 녹이는 게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으며 중간중간 재미있는 농담을 한두 개 배치하는 건 오히려 글을 망치는 지름길이죠.
이런 실수를 상당히 많이 합니다. 좀 센스 있게, 재미있 는, 드립과 농담을 섞어서'라는 오더가 많은데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이 버려야 할 가장 큰 욕심 중에 하나입니다. 원래 글 자체가 가벼운 소재고 전체적인 톤이 개그스러운 느낌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글은 잔뜩 진지하고 정보는 복잡한데 이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갑자기 농담을 던지는 건 좀 당황스럽죠. 글은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유기체입니다. 가벼운 톤의 농담을 던지고 싶다면 글의 서두에 살짝 배치하고, 에피소드, 주위환기, 본문 순으로 진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재미있게 쓰려고 애쓰지 맙시다. '이야기를 쓰려고 해야합니다. 너와 내가 똑같은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름과 생소함에서 오는 반전과 호기심이야말로 재미의 가장 큰 요소죠. 쓰는 여러분들 또한 나와 다른 세계를 엿보고 이해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과감히 그리고 매우 자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단어에 노출되길 바랍니다.
- 글을 쓰는 손은 무언가에 점점 익숙해지지만, 세상은 꾸준히 변합니다. 시대에 따라 관통하는 문체와 구성 방식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엔 ‘무언가에 미쳐라, 공부해라, 도전해라, 아껴라, 독기를 품어라'는 식의 다소 강압적인 문체가 인기였다면 4~5년 전쯤부턴 '괜찮아, 힘내자, 네가 옳아'라는 위로의 문장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2~3년 전엔 심화된 사회 갈등 양상을 대변하듯 한쪽 입장에서 변을 토하는 사이다 발언이 유행했습니다.
- 글쓰기가 점점 쉬워지고 익숙한 패턴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 좋은 신호이지만, 숙달’과 ‘성장’은 조금 다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게 숙달이라면 정해진 패턴을 계속 반복하며 소위 '손버릇'을 최대 강점으로 만들어야겠지만 성장을 원한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익숙함에 질문을 던지고, 눈에 담긴 풍경을 부술 용기. 펜의 예리함은 여백의 고요함을 깨고, 통념의 단단함을 파고듭니다. 태도는 굳건히, 손은 유연하게 해봅시다.
- 단락 쪼개기는 논리적인 흐름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한 단락을 다섯에서 일곱 문장 정도로 구성하고 화제가 바뀌거나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반면에, 예를 들어' 등 의 역접 접속사나 부연 설명 단락이 시작될 때 줄바꿈을 해주세요. 특히 디지털 콘텐츠는 모바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단락이 너무 길면 집중도가 굉장히 떨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단락이 쪼개지는 부분에 소제목을 붙여주거나 색깔, 굵기 변화 등의 시각적 효과를 더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만, 기울임이나 밑줄 등 가로선을 활용한 방 식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좀 어지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폰트 크기는 본문은 모두 일정하게 유지하고, 대제목/중제목 부분만 일정한 규칙에 의해 크기를 달리합니다. 소제목은 보통 크기 변화 없이 굵기만 달리해서 적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따옴표나 괄호, 각주의 사용은 가급적 지양합니다. 특히 괄호는 웬만하 면 안 쓰려고 하는데, 쭉 읽는 도중에 괄호가 나오면 다시 앞 단어를 확인해야 하거나 괄호 앞뒤 단어를 이어야 해서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괄호로 덧붙여 설 명해야 하는 개념은 가급적 본문에 미리 풀어서 쉽게 설명 해주고, 출처표기 등은 본문이 아닌 글 하단에 작게 표기해줍니다.
- 월터 옹(Walter Ong)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따르면 글은 소리의 세계와 뗄 수 없습니다. '사과'라는 단어는 말로 하든, 글로 쓰든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글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고, 말은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문자가 생기면서 말과 글은 서로 교환 가능한 표현 수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월터는 '기록과 연구'의 측면을 덧붙입니다. 연구나 학습과 같은 높은 차원의 사고에는 글이 다소 유리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보를 나누거나 나열하고, 분석하는 등의 행위에선 쓰고 읽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공감 하기 쉬울 겁니다. 이 말은 글이 더 우위에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글과 말은 서로 다른 역할이 있는 셈이죠. 
글은 기본적으로 능동적인 독자의 개입을 허용합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치거나 옆에 적을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같은 문장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독자의 개입과 정보의 위계를 더 고려합니다. 해석과 맥락에 특화되어 있 습니다. 했던 얘길 반복할 수 없고, 독자의 반응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문장을 전개함에 있어 맥락이 매우 중요해지죠.
반면 말은 화자와 청자 간의 시간차가 없죠. 말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습니다. 청자는 화자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그의 정보에 집중하게 되죠. 말하는 사람은 청자의 집중력과 분위기를 움직입니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반복을 통해 자극을 주고,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 싶으면 바로 바로 바꾸거나 덧붙일 수 있죠.
콘텐츠를 만드는 여러분은 이러한 말과 글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의 차이가 극명하다고 해서 글의 특징인 맥락과 위계만을 고집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 일단 퇴고의 기본은 보고 또 보는 것입니다. 보통 글을 쓸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저처럼 뭔가 감이 왔을 때 끝까지 쭉 써 내려가는 일필휘지 스타일이 있고, 한 문장 한 문장 고민하면서 쓰는 장인정신 스타일이 있습니다. 당연히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순 없습니다. 다만 둘 다 장단점은 존재합니다.
먼저 일필휘지로 쓴 글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감정과잉입니다. 필자가 글에 매몰되는 것이죠. 글에 감정이 너무 차고 넘치면 주장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논리가 깨질 염려가 높습니다. 마치 술에 취해서 친구에게 울부짖는 목소리 와도 같죠. 글에 감정이 담기는 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글의 본질은 '전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사람의 감정도 고려해야 합니다. 글에 흥분을 고스란히 담는 것이 아니라 흥분의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본적으 로 쓰는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이죠. 반면 장인정신 스타일은 너무 고민이 많은 나머지 호흡이 끊길 수 있습니다. 한 문장을 쓰고, 한참 고민하다 보면 다양한 생각이 문장에 묻어납니다. 문장마다 색깔이 달라질 수 있죠. 글을 크게 보지 않고 문장 단위로 끊어 생각하 기 때문에 맥락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더불어 글 하나를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완성까지의 시간이 꽤나 길어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 다. 업무로써 글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무척 큰 리스크죠. 
여러분이 어느 쪽이든 퇴고는 필요합니다. 퇴고란 기본적으로 초고의 완성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일 필휘지형이라면 전체의 감정과 논리를, 장인정신형이라면 문장 간의 맥락과 톤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겠죠. 이 점을 고려해두고 퇴고를 시작해봅시다.
- 다음은 접속사나 조사, 전치사, 번역체, 외래어 등의 사용을 체크합니다. 불필요한 단어들을 정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아지면 단어가 추상 적으로 변하거나 번역체가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주어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사건만을 생각하다 보니 자꾸 피동문이 등장하는 것이죠. 육하원칙이 무너졌을 때 자주 발생합 니다. 뺄 수 있는 어려운 단어들은 최대한 빼줍니다. 여기서 '어렵다'의 기준은 여러분의 글을 읽는 독자의 지식 수준 보다 좀 더 쉽게 잡도록 합니다. 피동문은 능동문으로 바꿔 주고, 외래어는 가급적 우리말로 씁니다. 번역체 중에서 ~ 에 대해’, ‘~를 통해’, ‘~에 관하여'와 같은 전치사 번역체들 은 특히 조심해주세요. 흐름을 해치고 읽는 속도를 떨어뜨 립니다. 속독이 힘들어지면 글은 지루해집니다. '등, 및, ~것, 의' 등의 조사나 부사들도 최대한 삭제합니다. 호흡을 딱딱 끊는 단어들입니다.
- 기억되는 글의 핵심은 꼼꼼한 정독'이 아닙니다. 모든 정 보는 선택적 인지 과정을 거칩니다. 아무리 눈에 잘 띄게 큰 글씨로 적어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한계가 있죠. 우리의 목표는 '기억해야 할 것만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 장 최악은 '엉뚱한 것만 기억하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이런 종류의 글은 설계에 가깝습니다. 기억하게 만들어야 할 정보를 선택하고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상위 단계로 올리고, 문두에 배치하고, 주어를 독자로 바꾸고, 행위를 강조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보세요.
- 무게감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어려운 단어를 쓸 필요는 없 지만, 단어를 쓸 땐 적확한 단어를 쓰셔야 합니다. 애매한 단어들은 가급적 피하세요.
예를 들어 간주된다, 여겨진다, 보여진다, 생각된다' 등 의 주관적인 어미들. '가치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추 상적인 단어. 명징한, 핍진성, 경세적, 징구'와 같은 비일상 적이고 어려운 단어들이죠.
특히 '패러다임, 알레고리, 에피스테메, 디아스포라' 등과 같은 복잡한 개념을 사용할 땐 정확한 뜻과 문맥 간의 관계 를 꼭 살펴보셔야 합니다. 이런 단어들은 다양한 철학적 의 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하나의 의미로 쓰이지 않습니다. 일 반적인 사전적 정의로만 쓰기에 함축된 의미들이 묵직하죠. 예를 들어 '에피스테메’와 같은 단어는 플라톤이 주장한 뜻과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언급한 뜻이 각각 달라서 자칫 오해를 부르거나 괜히 이해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 이 단어를 설명하면서 뜻을 설명해드려야 하나 고민을 잠시 했는데 이 뜻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간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멈칫했습니다.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단어들은 오히려 여러분들의 글을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우리는 정확한 글을 쓰려고 하는 거지 어려운 글을 쓰려는 게 아닙니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한 나비효과  (0) 2021.05.30
나는 뇌가 아니다  (0) 2021.05.25
네이처 매트릭스  (0) 2021.05.19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0) 2021.05.07
슬로 싱킹  (0) 2021.05.02
Posted by dalai
,

경제학자의 생각법

경제 2021. 5. 19. 22:05

- 주당 100유로(12만 원)에 샀던 주식이 반토막 났다고 해보자. 기다리면 언젠가는 100유로가 될까? 아무리 나쁜 주식도 매일 떨어지지는 않는다. 잠깐 반등하는 시기가 있다. 영어에서는 이런 현상을 '데드캣바운스dead cat bounce' 라고 한다. 죽은 고양이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튀어 오른다는 것에 빗댄 표현이다. 굳이 죽은 고양이까지 들먹이며 오싹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싶지만 내가 투자한 상품이 죽어버렸을 때의 오싹함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 주식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수십 개의 종목에서 약간씩 수익을 내기 보다는 한 두 종목에서 큰 수익을 거둔다. 여러 종목에서 작은 손실을 내고 몇 종목에서 큰 이익을 얻는 게 훨씬 낫다. 너무 광범위한 분산 투자는 주식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윌리엄 오닐)
- 지금 주식을 팔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팔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당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주가가 떨어졌는데도 아직 주식을 팔지 않았으니 만회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손실은 이미 발생했다. (윌리엄 오닐)
-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명심하는 사람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손해를 피할 수 있다. 그러므 로 비오는 날 택시를 기다리며 보낸 시간이든 냉동삼겹살 거래에 날 린 돈이든 이미 날린 것, 즉 매몰된 것이 지금의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흔히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매몰비용의 개념을 아는 사람이 라면 '더 멀리 가기 전에 포기해야 한다.” 라고 말해야 한다. 과거의 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비용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맞다. 사라진 돈과 시간이 아무리 아깝더라도.
- 직원들이 출장비를 책임감 있게 쓰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직원 입장에서 볼 때 출장비는 늘 남의 돈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출장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직원으 로 하여금 자기 돈을 쓰게 하되 너무 인색하게 굴어 고객을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아이디어가 있다. 직원을 동업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가 낭비하는 금액만큼 이익 배당금이 줄어든 다. 구두쇠처럼 인색하게 굴어 고객을 잃어도 배당금이 줄어든다. 결 국 직원은 성공적인 출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고객을 잃지 않는 선에서 비용을 줄이려 애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직원 참여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직원이 경영에 참여하고, 직원이 기업의 성공에 참여하면, 그들은 자신의 실수와 낭비가 결국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한다. 물론, 세밀하게 잘 다듬을 필요가 있지만 매우 효율적인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다. 자기 재산만큼 강한 동기를 주는 건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돈을 가장 신중하게 쓴다.
-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다. 효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크기는 불리한 조건이다. (허버트 카슨)
- 증권 시장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투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주식투자가 모두의 화제가 되었을 때 투자자들은 무조건 하차해야 한다. - 앙드레 코스톨라니
-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
- 리니언시 제도 cartel leniency policy
가격을 담합한 기업들이 자진해서 담합 행위를 신고하면 과징금을 감면 또는 면제해 주는 제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라고도 한다. 자진 신고를 유도해 담합에 대한 불안 정성을 강화시키는 제도, 1978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다. 담합 행위의 이익을 챙기 고 나머지 기업들을 신고하여 과징금을 면제 받는 얌체 기업들이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담합 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약 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계속 시행되고 있다.
- 르노의 개발팀은 바람이나 지진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고층 건물에 설치하는 진 동 방지 장치에서 영감을 얻어 차량용 매스 댐퍼를 만들었다. 르노 개발팀은 경쟁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연승을 이어갔지만 그것 때문에 국제자동차연맹으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혁신 때문에 징계를 받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족족 금지를 당하 는데 누가 돈과 시간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려고 할 것인가. 실제로 F1 팬들 중에는 기술이 오히려 퇴보했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아 무것도 하지 않는 팀이 승리할 거라고 빈정거리는 이들도 많다. 경제학자들은 경쟁의 역동적 자극 기능을 설명한다. 공정한 경쟁에서 혁신을 통해 도약을 이룬 사람은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의약품에 특허를 인정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신약에 대한 독 점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보상을 충분히 받게 된다. 보상은 새로 운 약을 개발하는 데 동기를 부여하고, 막대한 개발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효과가 확실하고, 부작용도 없는 암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해보자.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특허를 인정 하지 않고 약값을 통제한다면 제약회사는 큰 이익을 내지 못할 것이 고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암은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다. 
- 사람들이 스포츠 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의외성 때문이다. 이미 우승 자가 확정된 경주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F1 의 수많은 금지 규정들은 경기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들과 관련 되어 있다. 기술이나 장비에 제약이 없다면 돈 많은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기술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주요 팀들은 이미 1년 에 2억 유로(2,4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쓰고 엔진 개발에만 1억 유로(1,200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제한 규정이 없다면 개발 비용은 더 늘어난다. 지금도 일부 팀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실제로 기술에 대한 규정이 느슨했던 시기에 많은 팀들이 운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F1을 포기했다. 그중에는 도요타자동 차 같은 대기업 팀도 있었다. F1이 세계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 참가하는 모든 팀들에게 유 리하다. F1 경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마어마한 스폰서 비용과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려면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많아져야 한다. 수많은 금지 규정 속에서도 혁신은 이어져 왔 다. 다른 팀이 미처 생각지 못한 기술로 레이스에서 승리하면 우승 상금과 스폰서 계약 등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정부가 국민들을 보호해 주길 원한다. 그러나 시급한 문제는 정부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밀튼 프리드먼)
- 세의 법칙 Say's law
공급이 자연적으로 수요를 만들어 낸다는 법칙,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Jean Baptiste Say)는 농부가 곡물을 재배해 팔면(공급) 그 수입으로 옷, 음 식 등 다른 물건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수요) 어느 한 재화의 공급은 그 재화의 주 요가 아니라 다른 재화의 수요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공급이 이루어지면 그만큼의 수요가 자연적으로 생겨나므로 시장은 공급 과잉 없이 언제나 균형 상태를 유지한 다는 것이었다. 세의 법칙에 의하면 공급이 있는 한 늘 수요는 있으므로 공급 공심의 고전적인 경제 정책을 주장하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세의 법칙은 공급 과잉으 로 인한 대공황이 터지면서 비판 받기도 했으나 일부에서는 세에 대한 비판이 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변호하기도 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의 법칙이 공급과 수요에 대한 관점을 바꾼 것만은 확실하다.
- 경제는 초대형 유조선과 같아서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정부 정책은 경제를 서서히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움직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레고리 맨큐)
- 글로벌 금융 위기에 관해서 가장 확실한 사실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뿐이다. (폴 새뮤얼슨)
- 정체가 오래 지속된다면 일시적인 정체가 아니라 고속도로 설계자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설계를 변경하고 도로를 다시 만들려면 한동안 그 도로를 이용하지 못해서 큰 불편을 겪는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불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원인 모를 수요 감소가 아니라 구조적 질병일 확률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안타깝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 시장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 특별히 손대지 않아도 수요와 공급은 늘 적절한 선에서 만난다. 여러 요인으로 흔들릴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균형을 되찾는다. 그런데 평형 상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대공황이나 그와 비슷한 대규모 실업 사태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 때문에 발생한다. (밀튼 프리드먼)
- 경영의 역학은 사회주의적 주장과 정치적 호소를 듣지 않는다. 이것을 무시하면 결국 채용 대신 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기업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러므로 기계를 직원으로 대체하려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인 미숙련 노동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노동비 용을 생산성에 맞춰 낮춰야 한다. 노동조합원도 사민당 정치인도 이런 톱니바퀴 역학을 비켜갈 수 없다. 먼저 생산성을 높이고 그 다음 열매를 분배할 때만 생산성과 사회 적 분배가 공존할 수 있다. 반대 순서로는 결코 안 된다.
- 불확정성 원리 uncertainty principle와 굿하트의 법칙 Goodhart's law
물리학에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면 경제학에는 굿하트의 법칙'이 있다. 어떤 경제 지표를 관찰하고 정책 목표로 삼는 순간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법칙이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경제 체제가 바뀌면서 영국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1960년대 중앙은행 최고 경제 자문관이었던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는 정부가 특정 경제 지표를 정책적 목적에 의해 관 리하면 경제 지표가 지표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경제 당국 이 물가를 정책적으로 규제하면 기존에 관측되었던 통계치의 규칙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굿하트의 법칙은 경제 정책 자체를 부인한다기보다는 통계치에 의존한 정책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다른 사람보다 부자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 문명의 진정한 기준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충분한 식량이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새뮤얼 존슨)
- 지대추구 rent seeking 지대추구란 이익집단이 로비, 소송 등의 비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자본을 늘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특정 집단이나 경제 주체가 독점권이나 특권을 얻기 위해 정부를 이용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여기에서 지대는 토지를 빌 려주고 받는 돈이라기보다는 이자, 임대료, 배당금 등의 불로소득을 의미한다. 1967 년 고든 털럭(Gordon Tullock)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10여 년 후 미국 경제학자 앤 크 루거가 지금의 이름을 붙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그의 저서에서 “상위 1퍼센트가 누리는 엄청난 부는 그들이 생산에 기여한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특권과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적 생산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양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 전구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전에 쓰던 기름 램프를 내다 버렸다. 더 나은 것을 보여 주면 사람들은 이전의 것을 과감히 버린다. (호레이스 W. B. 도너건)
- 외부효과 external effect
어떤 경제활동이 직접적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 의도치 않게 영향을 미쳐 혜택(이익)이나 손해(비용)를 발생시키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 말. 이 영향이 이익이냐 손해냐에 따라 부정적 외부 효과와 긍정적 외부 효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집 주위에 공장이 들어서 소음과 먼지를 일으킨다면 집값이 하락하고 주거 환경이 나빠진다. 이럴 때는 공장에게 보상금을 요구하거나 작업 시간을 제한하여 주변의 손실을 줄 이게 된다. 반면, 집 주위에 명문 사립고등학교가 들어선다면 그로 인해 교육 환경이 좋아지고 집값도 상승한다.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도 명문 고등학교가 들어선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데이터 주식사전  (0) 2021.06.06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0) 2021.05.25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0) 2021.05.15
세상을 바꾸는 행동경제학  (0) 2021.05.11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0) 2021.05.11
Posted by dalai
,

네이처 매트릭스

인문 2021. 5. 19. 21:59

정석문 아나운서가 들려주는 '경험의 멸종'을 초래하는 것은? [네이처 매트릭스] - YouTube

 

이 책은 자연철학자,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로버트 마이클 파일의 에세이 14편을 모은 책이다. 에세이 중에서 처음 지은 것은 1969년이고, 가장 최근의 에세이는 2017년이다. 무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어낸 저자의 글 중에서 자연과 환경 관련 에세이의 정수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

책을 펼쳐 읽다보면 처음에 "~누구를 위하여", 혹은 "~누구에게 감사하며"의 형태의 짤막한 글귀가 적혀 있는 책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종류의 하나인데, 그 글귀자체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로 다가온다.
"내 손자 손녀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손자 손녀들을 위하여"
또한 책의 부제로 설정되어 있는 글귀 역시 인상적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을 위하여"

우리의 일상에서 동식물을 만나는 경험이 줄어들면 그 부재에 익숙해 지게 된다. 이를 경험의 멸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봄날 남한산성 개울가에서 개구리알로부터 올챙이가 깨어 나와 꼬물거리며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런 경험을 머릿속에서 잃어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봄날 개울가에서 올챙이가 깨어나와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서도 올챙이를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것이 바로 경험의 멸종이 아닐까.

경험의 멸종이 일어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시선 안에 있던 공터가, 대지가 개발이란 미명아래 건물로 도로로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방치된 대지가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지이용을 경제문제로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질문이 윤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옳은지도 검토하라는 자연철학자 알도 레오폴드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자연에 대한 경험의 멸종은 무관심과 악화, 자연과의 궁극적 분리라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경험의 멸종을 막기위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바로 "네이처 매트릭스" 개념이다. 자연과 인간은 절대 분리될 수 없으며, 자연은 인간의 정신이 기원하고 영구히 뿌리를 내리는 유기체와 같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헨리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야생이 주는 즐거움은 포효와 강장제다.' 삶에서 우리가 야생을 직접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인 프로그램을 그리 즐겨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말엔 아침일찍 가까운 산에라도 다녀와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 지원을 통해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탁 트인 자연과 접촉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특히 현대의 도시 생활에 치여서 몸도 마음도 지친 사 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작가 발레리 마틴은 자신의 단편에서 오 로지 자연만이 안정감을 회복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생물학 자 윌슨은 이렇게 다른 형태의 생명과 연결되고자 하는 본능 적인 욕구를 “생명애” 라고 칭했다. 한마디로 자연에는 치료 효 과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야생 서식지를 완전히 점유해버리면 일반종 의 동식물도 사라져버린다. 그러면 자신의 일상에서 자연과 접 촉하는 경험이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레 관심이 떨어져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도 줄어들고 만다. 이것은 순환 효과가 있어서, 멸종의 파도가 확대될수록 인간은 자연과 단절된 상태로 존재 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경험의 멸종”이라고 부른다.
- 우거진 작은 골짜기 혹은 움푹 꺼진 곳, 공원, 오래된 들판, 목초지, 초원, 이런 장소를 묘사할 때는 빈터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실제로 도시나 교외 지역에서 자란 청중이나 학생들이 처음 자연을 접한 장소는 대개 일종의 빈터다. 근접성, 야생, 비밀스 러움, 가능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추억의 장소에 대해 자신도 놀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깊 은 애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그 까닭에 내가 두 번째로 묻는 말은 슬픔과 동시에 동지애를 일으킨다. “그 특별한 장소가 지금까지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있나요?” 
- 추론 능력, 관찰의 정확성, 대뇌를 발달시키는 연상 기술이 생물학적, 지질학적 노출의 직접적인 결과로 더욱더 예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애에 관한 문헌 전반에서 비슷한 결론이 나타나며, 생물애를 자아내는 장소들은 분명 우리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끼친다. 좀 더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의 장소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풍부한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 탁 트인 대지를 공원으로 개선' 하려는 충동을 억제할 필요도 있다. 아이들이 숲과 들판에 나갈 때 왜 등록과 지도, 계획, 프로그램이 반드시 따라다녀야 한단 말인가? 땅, 물, 상상력이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일이다.
자기만의 개울과 공터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 장소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한다. 아이들의 에덴을 지켜주고 싶은 간절한 바 람도 좋지만, 우리는 특권을 가진 아이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에게 자연의 욕구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특별한 장소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우선 문화 속에서 방치된 대지의 중요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 세상을 좀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고자 하는 인간의 자율성과 합리성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폴 W. 테일러, 《자연에 대한 존중: 환경윤리론〉 중에서)
- "왜 내가 이곳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거지? 정확한 이름이나 무서운 과학 용어까지는 알고 싶지 않은데.”
"무지에서 비롯된 경멸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그게 어떤 것이든.” (존 파울스의 소설 중에서)
- 그러니 직접적으로 살아라. 지식과 감각, 반응, 경험을 사물 의 표면에서 한껏 끌어오고 더욱 깊이 들어가라. 머릿속을 벗어 나 감각이 주는 만족을 매일 느껴보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 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든 감각을 사용하라. 독자를 섬길 때는 직접 독자가 되어라. 넓게, 풍부하게, 다양하게, 까다롭게, 비판 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넓은 도량으로, 핑계 없이, 기대를 뛰 어넘어 많이 읽어라. 잎사귀를 말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오거든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으로 그렇게 하라. 최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아.
눈부신 화면을 뚫고 다른 인간과 이어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잎사귀가 희미하게 빛나고 바람에 사각거리도록 단어를 제 대로 담아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면 된다. 정보의 교착상태가 내는 불협화음을 뚫고 잎사귀의 희미한 속삭임이 자신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여 울려 퍼지면, 그때 작가는 글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존재들이 세상을 살아가고 무분별하고 무작위적인 읽기 행동을 하는 한, 글은 (그것의 모든 의미도)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는 것도
- "대지 이용을 경제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라. 경제적으로 편리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질문이 윤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옳은지도 검토하라." (알도 레오폴드, 자연철학자)
- “생물 군집의 온전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존해주는 것은 옳고, 그렇지 않은 것은 틀리다." (알도 레오폴드, 자연철학자)
- "매일 물질을 보고 접촉하라. 돌, 나무, 뺨에 닿는 바람, 단단한 흙을! 실제 세계를! 상식을! 접촉하라! 접촉하라!” (헨리 소로우, 사상가)
- “자연은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가 무너지고 우리가 발을 딛지 않은 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목격해야 한다.” (헨리 소로우, 사상가)
- "하지만 이렇게 위로하거라. 유니콘은 책 속에 존재하므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어도 존재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뇌가 아니다  (0) 2021.05.25
터지는 콘텐츠는 이렇게 만듭니다  (0) 2021.05.19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0) 2021.05.07
슬로 싱킹  (0) 2021.05.02
당신만 모르는 인생을 바꾸는 대화법  (0) 2021.05.02
Posted by dalai
,

미국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인 네이비실(Navy SEALs)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대원들을 7명씩 팀으로 구성해 24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데, 4주의 지옥훈련을 앞두고 1 팀과 꼴찌 팀의 리더를 교체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꼴찌 하던 팀이 단숨에 1등으로 올라서고, 1등을 하던 팀은 2등으로 밀려났습니다.

한국경제신문 514일자 A30 기사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 아니라안주>는 조남성 삼성SDI 사장이 체득한 리더십의 지혜와 통찰을 소개했습니다. “기업은 사장의 그릇만큼 큰다는 말이 있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도 사장이고,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사장이다.” 사장은이대로는 된다 위기의식이 경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안주(安住). 실패한 사람은 다시 도전할 있지만, 안주한 사람에겐 재도전의 기회가 없다.”

사장이란 무엇인가가장 이상적인 조직은 어떤 모습인가 그가 사장이 먼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홍길동전>의 홍길동과 같은 조직이 그가 꼽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홍길동은 분신술을 쓴다. 자기 머리카락이 수많은 홍길동으로 변해 적과 싸운다.” 전체는 완벽한 명의 홍길동이지만 각각은 완전히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면서 적과 싸운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 분신술을 회사에 적용하면 조직 단위로는 전체가 지향하는 비전과 목표, 방향을 공유하고 개인 단위로는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서 자율적으로 일하는 조직이 된다.”

홍길동과 같은 조직 이끌려면 사장이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미래를 멀리 내다볼 있는 통찰력, 미래를 상상해서 회사가 추구해야 모습을 그리는 비전, 미래와 현재의 격차를 인식하는 위기의식입니다. “ 가지를 모두 갖춰야 에너지를 얻고, 몰입도와 실행력을 높여 변화를 주도할 있다.”

사장으로서이럴 거면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을 떨쳐내야 합니다. “경영자는 미래를 계획하고 회사를 성장시킬 새로운 방법을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일과 권한을 나누는 것은 직원을 성장시키는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평소 직원을 유심히 관찰해서 수준을 파악하고, 기꺼이 일을 나눠주는 것이 사장의 책무라는 얘기입니다.

인재를 육성하는 최우선 방법으로잠재력을 일깨우는 대화 꼽습니다. 경험이 적은 직원일수록 자기 잠재력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의 잠재력은 위로 올라갈수록 보입니다. “사원보다는 부장이, 부장보다는 임원이, 임원보다는 사장이 보는 것이 순리다. 직원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것은 상사의 몫이다.”

경영자는 모든 일을 위해 사상과 철학을 갖춰야 한답니다. “일반적인 경영은 경험과 데이터에 의존하고 관리자나 전문가와 상의해 결정할 있다. 그러나 불확실한 사안, 책임지기 어려운 , 위기 순간의 결정은 경영자의 몫이다.” 이런 결정은 경영자 자신의 생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묻는 게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0) 2021.05.25
인간 욕망의 법칙  (0) 2021.05.25
최고의 의사결정을 위한 원칙  (0) 2021.05.11
고백  (0) 2021.05.07
‘실질적인 진실’이 진실이다  (0) 2021.05.04
Posted by dalai
,

스켑틱

과학 2021. 5. 15. 20:03

-  존경할 만한 훌륭한 태도는 2001년 5월 11일 자 《사이언스》에 게재된 동아시아 현대인의 아프리카 기원) 보고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의 유전학자들로 구성된 조사팀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163개 집단 1만 2127명 남성을 표본으로 Y염색체에 있는 세 개의 유전자 표지를 추적했다. 그들은 모든 피실험자들이 3 만 5000년 전에서 8만 9000년 전 사이에 존재했을 아프리카의 한 부 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세 유전자 표지 중 하나 에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결과는 동아시아 현대인의 해부학적 기원에 그 지역 원주민이 최소한의 기여도 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렸으나 이는 사실상 아프리카 원주민이 현대 인류의 유일한 조상이라는 “아프리카 기원설”의 확실한 승리를 뜻한 것이다. 또한 이는 현대 인류의 조상이 수십만 년 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다지역 기원설” 이론을 거 의 파기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발견이다. 이 발견은 초기 미토콘드리 아 DNA 연구, 화석 기록, 그리고 네안데르탈인들이 동시대 인간과 교배하지 않았음을 보인 DNA 연구와 일치한다.
다지역 기원설의 주된 옹호자 중 한 사람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인류학자 빈센트 사리치 Vincent Sarich (1934-2012)는 자신의 신념과 이론을 열정적으로 옹호하기로 유명하다. (나는 그를 알고 있으며 그가 자신의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다지역 기원설의 추종자”라 일컫는 그는 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본 뒤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일종의 깨 달음을 통해 전향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인간은 다지역 기원설이 이 야기하는 고대의 Y염색체 혈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래된 미토콘 드리아 DNA 혈통도 없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완전히 생각을 바꾸었다.” 이 고백은 매우 커다란 지적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곧 “내가 틀렸군요”라고 말한 것이다.
사리치의 전향이 잘못된 것인지는 이번 발견을 지지하거나 혹은 부정하는 새로운 발견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그리고 궁지에 몰린 다지역 기원설의 한 열렬한 옹호자는 내게 빈센트는 진정한 다. 지역 기원설 지지자가 아니며 이번 연구는 어떠한 반증도 되지 못한다고 말 했다). 요점은 과학이 권위에 대한 교조적 순종이며 옹졸한 고집쟁이 들의 인맥으로 이루어졌다고 비난하는 창조론자들과 사회비평가들 이 틀렸다는 것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기존의 이론 은 새롭게 발견되는 증거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자신의 의견을 바꾼다.
- 파인먼 다이어그램은 에드워드 터프티가 그의 세미나(www.ed
wardtufte.com)와 책《양적 정보의 시각적 표현 The Visual Display of Quantitative Information》, 《시각적 설명 Visual Explanations》, 《정보의 시각화 Envisioning Information)에서 강조한 분석적 디자인의 전형이다. “적절한 데이터 그림은 구조, 과정, 동역학,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식을 전달한다.” 인간은 매우 시각적인 동물이며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볼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눈과 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근거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는 정량적 근거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명확하고 정확한 그림은 명확하고 정확한 사고를 이끈다.”
나는 명확하고 정확한 사고의 대가와 명확하고 정확한 그림의 대가가 만난 것을 기념해 파인먼-터프티 원리를 만들었다. “데이터의 시각화는 밴의 한쪽 면에 그려질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야 한다."
- 20세기의 소송 변호사였던 루이스 나이저 Louis Nizer(1902-1994)가 “우 아한 조롱은 천 마디 욕설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순수문학에서 짧고 재치있는 문장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고급문화에 는 새뮤얼 존슨 samuel Johnson(1709-1784)의 “그는 자신만 멍청한 것 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멍청하게 만들었다”, 마크 트웨인 Mark Twain(1935-1910)의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장례식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친절한 편지를 보냈지”,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1874-1965)의 “그는 내가 싫어하는 모든 미덕을 가졌지만, 내가 경애하는 어떤 악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등이 있다. 대중문화에는 그루초 막스Groucho Marx(1890-1977)의 “완벽하게 멋진 저녁이었습니 다. 아, 오늘 말고요.”가 있다.
과학자들 또한 동료를 영리하게 엿 먹이기를 꺼리지 않는다. 아마 과학계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평가는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 wolfgang Pauli (1900-1958)가 어느 논문을 두고 한 말일 것 이다. “이 논문은 맞지 않다.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 나는 이 표현을 파울리의 금언이라 부르겠다.
- 컬럼비아대학교의 수학자인 피터 보이트Peter Woit는 초끈이론을 비판한 최근 자신의 책의 제목으로 파울리의 금언을 따왔다.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Not Even Wrong》 (2006)(우리나라에는 《초끈이론의 진실》로 번역되었다 - 옮긴이), 보이트는 초끈이론이 그저 검증 불가능 한 가설에 기반하는 것을 넘어, 이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의 명성과 이론이 가진 수학적 심미성에 과도하게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에서 만약 어떤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한 경 우 그 아이디어는 틀릴 수 없다. 곧,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가 틀렸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때 우리는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 이보다 더 나쁜 평가가 있을까? 있다. 바로 그냥 틀린 것보다 더 크게 틀렸다는 평가다. 또는 내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1920-1992)의 원칙이라 부르는 그것은 그가 쓴 《틀림의 상대성 Relativity of Wrong》 (1988)에 이렇게 잘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틀렸다. 지구가 구 체라고 생각했을 때, 그들도 틀렸다(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는 뜻이다. 옮긴이). 하지만 당신이 지구가 구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과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두 집단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생각을 가진 것이다.
- 절대적으로 우수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 창조론 논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두 반대되는 주장이 같은 열의를 가지고 주장된다고 해서 진실이 반드시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두 주장 중 하 나가 그저 틀린 것일 수 있다.” 
그저 틀린 것이다. 과학은 편견과 무관하고 문화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저 틀린 것이다. 과학이 전적으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저 틀린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과학에는 편견이 없다는 사람들과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 된다는 사람들이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은 심지어 그냥 틀린 것보다 더 크게 틀린 것만 못한 것이다.
- 모든 과학자는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 들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계의 동료 평가 제도를 거치면서 그러한 편견과 신념의 영향은 제거되며, 만약 저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논문과 책으로 출간될 수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누구도 지적 진공 상태에서 홀로 연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학계는 자신의 연구에 반영된 편견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가 발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  "진실을 추구하는 자, 아직 확신에 도달하지 못한 탐구자.” 회의주의는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을 가져라" 이다. 전자는 인지심리학에서 “확증편향”이라 부르는 오류의 전형적인 사 례가 되기 쉽다. 열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기 존의 정설과 새로운 학설 사이에, 기존 체재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맹목적 추구 사이에, 그리고 극단적으로 새 로운 아이디어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 지는 것과 너무 쉽게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로 열린 마음이 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이다. 
-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87년 “회의주의자가 짊어져야 할 부담 The Burden of Skepticism”이라는 강연에서 과학에서의 정설과 새로운 학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긴장감을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했다.
나는 두 상반된 요구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가설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회의 적인 태도로 꼬치꼬치 따져보는 것과 이와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한히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회의적인 태도만을 취한다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것입니 다. 반대로, 눈곱만큼의 회의적 태도도 없이 헛소리에도 쉽게 넘어갈 정도로 마음을 열어둔다면, 우리는 유용한 아이디어와 쓸모없는 아이디어를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의 마음은, 사물의 모습이 있 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하고 평평한 렌즈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온갖 미신과 사기로 가득 찬 마법의 렌즈와 비슷하다.” (베이컨)
- 어떤 이론을 만들거나 지지할 때 인간은 얼마나 자신의 목적에 맞춰 사실들을 왜곡하는가! - 찰스 매케이, 《대중의 미망과 광기》 (1852)
- “똑똑한 사람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별로 똑똑 하지 않은 이유로 가지게 된 믿음을 자신의 똑똑함으로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895년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1844-1924)는 이렇게 말했다. “우연은 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사 용하는 익명인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인간 행동의 관찰자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담배는 그저 담배일 뿐이다.”(모든 상징에서 성적 암시를 찾았던 프로이트의 말이다)
- 의학은 기적과 같고 과학은 눈부시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의학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프리뭄 논 노체레 primum non nocere. 무엇보다 해를 입히지 말 것.
- 멘켄은 어리석은 행동과 돌팔이들을 놀리는 것을 특히 좋아했 다.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바보를 혐오한다.” 또 이런 유명 한 말도 남겼다. “대중의 지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함으로써 손해를 본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사람도 없다.” 너무 터무니없는 주장에는 이렇게 반응하라고 말했다. “한 번의 커다란 너털웃음이 만 가지 논리만큼 가치가 있다.” 나는 이 말을 “멘켄의 처세술”이라 부르겠다. 
- 2001년 출간된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에서 앤드루 뉴버그 Andrew Newberg와 유진 다킬리 Eugene D'Aquilt 는 불교 수도승들이 명상할 때와 프란체스코회 수녀들이 기도할 때 그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그들이 정향연합영역 Orientation Association Area(OAA)이라 명명한,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이 부위에 부상을 입은 이들은 집 주변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곤란을 겪는다) 상 후두정엽posterior superior parietal lobe의 활동이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것 을 발견했다. OAA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부드럽게 작동시키면 자아 와 비자아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발생한다. OAA 영역이 깊은 단계 의 명상이나 기도 때처럼 수면 모드로 진입할 경우 그와 같은 구분은 사라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리고 신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 또한 모호해진다. 수도승들이 경험하는 우주와의 일체감, 수녀들이 경험하는 신의 존재, 그리고 외계인이 자신을 침대 위로 끌어올려 그들의 모선으로 유괴하는 경험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일지 모른다.
때로는 트라우마가 이런 체험의 원인일 수 있다. 《랜Lancet)2001년 12월호에 발표된, 심장마비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살아난 네덜란드인 344명에 대한 연구는 이들 중 12 퍼센트가 자신의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 터널 끝 밝은 빛을 보는 임사체험을 했음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죽은 친척과 대화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험이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의해 뇌가 만들어내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뇌의 특정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해 이러한 환상을 만들고, 또 다른 부위가 이를 외부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정상적 활동이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겨 지는 것이다.
- 우리는 패턴을 찾는 동물로, 자연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인과 관계에 특별히 민감한 원시 인류의 후손이다. 이런 능력은 종종 유용 했기에 우리의 본성에 깊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능력 은 가짜 패턴을 진짜로 인식하는 오류 또한 종종 드러낸다. 이는 패 턴을 착각하는 습관이 유전되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 하여금 미신적 사고에 쉽게 빠지도록 만들었다. 특히, 세상의 복잡성에 따른 큰 수 의 법칙, 곧 일어날 가능성이 100만 분의 1인 사건이 뉴욕에서만 하루에 여덟 번씩이나 일어나는 상황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 오늘날과 같이 데이터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패턴을 쉽게 발견하는 능력을 고려해볼 때, 수많은 사람이 바이블 코드와 비슷한 사기에 넘어가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가진, 그리고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인지 능력에 있다. 해결책은 우 리가 가진 가장 우수한 패턴 분별 방법인 과학이며, 이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의 합창 속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진짜 신호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 결국 이는 신호와 잡음의 문제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잡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생존을 위협하거나 생존에 도움이 되 는 패턴을 인식하는 뇌를 가지게 되었다. 두 가지 사건을 인과적으로 연관짓는 이것을 연상 학습association learning 이라 하는데, 우리는 이 작 업을 매우 능숙하게 해낸다. 또는, 적어도 이 능력을 가진 이들이 살 아남아 관련된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할 만큼은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능력에는 약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두 현상이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관한 것을 의미하는 미신은 대표적인 잘못된 연상 학습의 예이다. (홈런을 치기 위해 면도를 하지 않는 야구선수를 생각해보라.)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잘못된 연상 학습을 바탕으로 지어진 도시이다.
- 우리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라는 특징을 가진 사회적 영장류로 진화했다. 문제는 진짜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에 도움을 주었지만, 가짜 패턴을 인식한다고 해서 우리가 죽지 는 않았으며, 때문에 자연선택 과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짜 패턴을 계속 발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윈상(인류의 유전자 풀에서 “진정 어리석은 방법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제거한 이들에게 주는)은 더 이상의 수상자를 원하지 않는다. 경험에 의지하는 사고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과학적 사고는 훈련을 필요로 한다.
- 영적인 태도를 가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과학 또한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해준다. 는 점에서 그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우주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별의 구성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에살렌 바로 남쪽에서 촬 영된 〈코스모스> 시리즈의 첫 장면으로 생명을 구성하는 화학 원소 들이 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는 마침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별 로 이루어진 존재가 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며, 10억의 10억의 10억 의 10배에 해당하는 숫자의 원자들이 유기적으로 뭉친 존재가 물질 의 진화를, 지구에서 아니 어쩌면 우주에서 시작된 길고 긴 의식의 탄생을 추적하게 된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고 번성해야 할 의무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탄생시킨 그 오랜, 그 광활한 우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궁극의 영성이다.
- 뛰어난 과학자이자 (특히 그는 위성통신 아이디어를 최초로 내놓았다) 과학소설 분야를 개척하기도 한(그의 대표작으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있다) 아서 C. 클라크 Arthur . Clarke(1917-2008)는 우리 시대 의 가장 뛰어난 선지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가 남긴 날카로운 인용 구들은 인간성과 이 우주 속 우리 인간의 위치에 대한 통찰력 덕에 인류의 정신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그의 세 가지 법칙은 특히 그러하다.
- 클라크의 제 1법칙 “유명하지만 이제 원로가 된 과학자가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말은 거의 확실히 맞다. 하지만 무언가가 불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말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클라크의 제 2법칙 - “가능성의 한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 능할 때까지 시도하는 것이다.” 
클라크의 제3법칙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우리는 사람들의 행동보다는 그들의 말에 크게 의지하며, 그 때 문에 대부분 거짓말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실어 증에 걸려 상대의 말에 덜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은 상대의 표정에 집 중함으로써 거짓말을 73퍼센트나 구분하였다. (다른 이들은 우연 이상 의 점수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의 뇌는 어쩌면 직관적 사고를 하도록 만들어져 있는지 모른다. 전두엽과 편도체의 일부(뇌에서 공포를 관리 하는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관계 속 속임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그가 다른 면에서는 인지적으로 정상이었음에도 그러했다. 비록 과학에서는 직관이 가진 수많은 위험성 때문에 (마이어스는 이 내용 또한 잘 정리해놓았다) 이를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지성과 직관이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커크 선장의 법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성 없는 직관은 우리를 억제되지 않은 감정적 혼란으로 이끌 뿐이다. 또한 직관 없이는 복잡한 사회적 동역학과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바로 매코이 박사가 우유부단한 이성적 커크 선장에게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이를 필요로 하지요! 그것도 우리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끔찍한 것이 아니에요. 바로 그게 인간이지요. 부정적인 면 없이는 선장님이 될 수 없고, 선장님도 그것을 알아요! 선장님 권위의 상당 부분은 그에게 있어요.”
- 인간은 한 번 의견을 정하면 그 의견을 지지하고 고수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끌어다 붙인다. 설사 상대편 주장에 옳고 중요한 근거들이 훨씬 많을지라도 자신이 내린 결론이 너무나 중요한 나머지 그 결론의 권위가 위협받지 않도록 이 부정적인 근거들을 그저 무시하거나 얕보게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노붐 오르가눔》(1620)
- 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 Carol Tavris와 앨리엇 애런슨 Ellist Aron 이 쓴 《거짓말의 진화 Mistakes Were Made(but Not by Me)》는 이런 인지적 오 류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가능한 최 선의 행동이었다고 스스로 확신하게 만드는” 자기정당화에 주목한 다. 과거시제 수동태로 잘못을 말하는 이 문장 “실수가 행해졌다. mistakes were made" 은 정당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 캄보디아, 남아메리카에서 이루어진 미국의 작전 들을 고백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가 봉직하던 정부에 의해 실 수들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뉴욕의 추기경이었던 에드워 드 이건은 가톨릭 교회가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에 제대로 대처하 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중에라도, 실수들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발견하게 된다면... 이는 너무 나 안타까운 일이다.”
태브리스와 애런슨은 자기정당화가 인지부조화, 곧 “심리적으 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인식(생각, 태도, 믿음, 의견)을 가지게 될 때 발생하는 상태”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부조화는 작은 양심의 가책에서 깊은 고뇌에 이르는 정신적인 불안을 유발한다. 인간은 이러한 상태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편안히 쉴 수 없다.” 부조화 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기 정당화가 일어난다.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1919-1989)는 클라리온 행성에서 온 우주선이 1954년 12월 20일 도착할 것이며 다음날 지구가 멸망하고 자신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굳게 믿은 어느 UFO 사이비 종교 집단을 연구하면서 인지부조화 이론을 처음 발견했다. 멸망의 날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자(혹은 우주선이 도착하지 않자), 그들은 페스팅거가 예측한 대로 행동했다. 곧 직장을 그만두거나, 배우자와 헤어지거나,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치는 등 이 종교를 위해 크게 희 생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세계를 구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부조화는 해소 되었다. | 엉뚱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해 사형을 선고한 경우들에서 인지 부조화는 널리 발견된다. 1992년 이래, 이노센스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사형수 중 188명이 무죄임을 밝혀냈다. “만약 우리가 사형수 에 기울인 정도의 관심을 일반 범죄자에게 기울였다면, 우리는 지난 15년간 2만 8500명의 무고한 사람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실제로 무죄로 밝혀진 이들은 255명에 불과하다.” 미시간대학교 의 법학 교수인 새뮤얼 R. 그로스Samuel R. Gross의 말이다. 이런 부조화에는 어떤 자기 정당화가 가능할까? “사법 시스템에 들어온 이들은 매우 냉소적인 사람으로 바뀐다. 모든 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당신은 범죄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며, 터널 시야tunnel vision 라 불리는 편협한 시야를 가지게 된다. 
-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으려 합니다. 한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수는 당신이 이를 고치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잘못이 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려 합니다. 우리는 희생양을 찾지 않겠습니다. ... 어떤 실수든 그 최종적인 책임 은 내게 있으며, 오직 나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부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을 것이며, 새로운 증거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신중한 리더로서의 그의 능력에 많은 이들이 존경을 표했을 것이다. 위의 발언은 쿠바 피그만 침공 이후 존 F. 케네디가 했던 말이며, 정확히 위와 같은 반응이 따랐다.
- 선택 교배를 통한 가축화의 가장 유명한 예는 1959년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Dmitri K. Belyaey(1917-1985)가 시베리아의 세포학및유전학연구소에서 행한 것으로(지금은 루드밀라 N. 트루트가 이어받아 진행하고 있다) 은여우가 인간을 친밀하게 대하도록 교배시킨 것이다. 그는 인간과의 친밀성을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는지, 손으 로 주는 먹이를 먹는지, 쓰다듬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적극적으로 인간과의 접촉을 원하는지의 4단계로 나누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진화의 관점에서는 놀랄 만큼 짧은 시간인 35세대 만에 꼬리를 흔들고 사람의 손을 핥는 유순한 여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여우들은 또한 두개골과 턱, 치아가 야생의 조상보다 작아졌다. (가축화된 개와 그들의 조상인 늑대 사이에도 유사한 차이가 존재한다.)
-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유순한 성 격을 위한 교배 과정이 말린 꼬리나 펄럭이는 귀(야생에서는 새끼에게 는 관찰되나 성체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미지의 자극에 대해 공포 반응 을 쉽게 보이지 않는 것, 낮은 수준의 공격성 등 사실상 유형보유paedomorphism ?새끼 시절의 특성을 성체가 되어도 유지하는 것 - 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통해 태어난 새끼들은 도피 혹은 투쟁 반응에서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양이 크게 줄었으며, 공격성을 낮추는 주된 요인인 세로토닌의 분비량 또한 크게 늘었다. 
- 랭엄은 지난 2만 년 동안 인간 또한 인구 증가와 정주 생활에 적 응하면서 집단 내 공격성을 낮추는 선택압을 겪었으며, 때문에 두개 골과 턱, 치아가 (우리의 바로 직계 호미니드 조상에 비해) 작아졌고, 발 정기가 사라졌으며, 강력한 성욕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에머리대학교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B. 드발Frans B. de Waal은 영장류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노보는 갈등 해결과 사회적 친밀감을 위해 섹스를 활용한다는 것을 보인 바 있다.) 랭엄은 또한 인간의 뇌에서 공격성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변연계 전두피질의 13구역”이 침팬지보다는 보노보와 더 비슷한 크기임을 보인다. 
이 그럴듯한 진화적 가설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제한 된 자원이라는 조건은 인류가 집단 내에서는 협동을 하지만 집단 간 에는 경쟁하도록 만드는 선택압을 주었다. 이 시나리오는 또한 만약 당신이 보는 아름다움을 나 또한 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은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더 깊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나는 꽃의 복잡 한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꽃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식물이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식물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것일 까? 질문들은 더 생겨난다. 곤충은 색깔을 볼 수 있을까? 곤충은 아름 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질문은 끝이 없다. 나는 꽃을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꽃의 아름다움을 없앤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꽃을 연구하는 것은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 뿐이다.
- 에머리대학교의 정신의학자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는 《만족 Satisfaction》(2005)에서, 쾌락의 추구는 우리를 끝없는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l 위에 올려놓아 역설적으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며, 따라서 행복이란 쾌락이 아니라 만족감에 더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번스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만족감은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감정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쾌락은 자의와 상관없이 얻게 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쾌활한 성격의 유전자를 타 고나거나, 아니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등 운에 의한 것이다. 반면, 만족은 당신이 어떤 일을 의식적으로 행함으로써만 가질 수 있 는 감정이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 당신은 오직 당신의 행동으로 책임을 지거나 명예를 얻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행복에걸려 비틀거리다 stumbling on Happiness》 (2006)에서 “인간은 미래를 고려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지금 우리 를 행복하게 하는 것보다 미래에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 기대되는 것들을 바탕으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길버트는 우리 인간이 이러한 예측에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다시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 중 대부분은 다양한 경험이 인생을 흥미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간식을 선호하는지를 예상하도록 한 뒤, 실제로 몇 주 동안 간식을 주었을 때 간식을 다양하게 먹지 않은 사람들이 더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길버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놀라운 일은 처음 일어날 때 특히 더 놀라운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 경우 감동은 점점 줄어드는 법이죠.”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과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예상할 때,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한 친구들이 상상하는 싱글의 주말을 나는 지난 주 말에야 드디어 보낼 수 있었다네.” 기억은 녹음기보다는 편집 장치에 가까우며, 과거에 대한 잘못된 기억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불행으로 가는 길은 잘못된 기억으로 포장되어 있다.
길버트는 또한 놀라운 일이 반복될 때 그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두고 경제학자는 “한계 효용 체감declining marginal utility"이라 말하지만 결혼한 부부는 이를 인생이라 부른다고 약간의 냉소와 함께 말한다. 하지만 혹시 당신이 다양한 상대와의 관계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카고대학교 출판부가 1994년 펴낸 《성의 사회적 구조The Social Organization of Sexuality》에 실린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결혼한 이들은 미혼 남녀보다 성관계 횟수와 오르가슴 횟수에서 모두 앞섰다. 구체적으로, 일부일처제의 기혼자 들 중 40퍼센트는 일주일에 두 번의 성관계를 가졌지만, 미혼 남녀 중 그 비율은 25퍼센트에 불과했고, 성관계 중 오르가슴을 느낄 확률 도 기혼자들이 더 높았다. 그리고 기혼과 미혼 여부에 무관하게, 한 명의 성적 파트너를 가진 남성이 다수의 파트너를 가진 남성보다 더 많은 횟수의 성관계를 가졌다.
역사학자 제니퍼 마이클 헥트Jennifer Michael Hecht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The Happiness Myth, Harper》(2007)는 이 점을 강조한다. 그녀는 심층적이고 치밀한 역사적 관점을 통해 행복이 얼마나 시대와 문화에 의존하는지를 보여준다. “행복에 대한 현대적 가정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허튼소리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성관계의 경우를 보 자. “만약 당신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스스로 성적으로 비정상이라고 느낀다면, 100년 전의 보편적이고 세속적 가치를 따르는 기혼 커플이 일주일에 세 번의 성관계를 가질 경우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 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오히려 “100년 전만 하더라 도, 3년 동안 성관계를 가지지 않은 보통의 남자는 자신의 건강과 인내력을 자랑스러워 했고, 10년 동안 금욕한 여성은 자신이 이를 통해 얼마나 건강해졌고 행복해졌는지를 자랑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한 친구들이 상상하는 싱글의 주말을 나는 지난 주말에야 드디어 보낼 수 있었다네.” 기억은 녹음기보다는 편집 장치에 가까우며, 과거에 대한 잘못된 기억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불행으로 가는 길은 잘못된 기억으로 포장되어 있다.
길버트는 또한 놀라운 일이 반복될 때 그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두고 경제학자는 “한계 효용 체감declining marginal utility"이라 말하지만 결혼한 부부는 이를 인생이라 부른다고 약간의 냉소와 함께 말한다. 하지만 혹시 당신이 다양한 상대와의 관계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 찰스 다윈은 5년간의 세계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직후 진화론의 개요를 기록한 M 노트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개코원숭이를 이해하 는 이는 철학자 존 로크보다 형이상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 다.” 과학은 이제 사랑은 중독적이며, 신뢰는 유쾌한 것이고, 협력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진화가 이런 보상시스템 을 만든 이유는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 영장류 조상의 생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다윈을 이해하는 이는 제퍼슨보다 정치철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 프로이트는 인류가 경험한 세 가지 지적 충격을 이야기한 것으로 (그리고 자신의 업적을 거기에 포함시킨 자신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째는 코페르니쿠스가 인류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세계의 작은 점 위에 존재하게 만든 것이고, 
둘째는 다윈이 인류로부터 “인간은 특별하게 창조되었다는 특권적 위치를 빼앗고 동물 세계의 일 원으로 격하 시킨 것이며, 
셋째는 자신의 이론이 “우리 각자의 자아는 자신의 주인이 아닐 뿐 아니라 마음속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일부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 다윈은 1835년 10월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나지만 진화론자가 된 것은 1837년 3월이었고, 이 이론을 1859년 《종의 기원》으로 발표 할 때까지 계속 가다듬었다. 설로웨이는 다윈의 행적뿐 아니라 다윈의 생각 또한 계속 추적했고, 이를 통해 다윈이 진화론을 떠올린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갑작스러운 발견 때문이 아니라 영국에서 자신이 수집한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 이후라는 결론을 내렸다. 설로웨이는 다윈의 노트와 일기장을 분석해 다윈이 진화론을 받아들인 것은 1837년 3월 둘째 주로, 당시 갈라파고스 제도의 조류를 연구하던 저명한 조류학자인 존 굴드와 만난 뒤로 추정한다. 
-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인구통계국 인구조회센터의 인구통 계학자인 칼 호브 Carl Haub에 따르면, 기원전 5만 년에서 2002년 사이 에 태어난 사람은 1064억 5636만 7669명에 달한다. 2015년, 지구의 인구는 72억 9028만 9811명이다.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1000억 명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며, 따라서 앞으로 120년(인간의 최대 수명) 안에 적어도 60억 명 이상이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 과학적 일원론은 종교적 이원론과 충돌할까? 물론이다. 육체의 죽음 이후 영혼은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일원주의는 인생의 모든 의미를 사라지게 만들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 가 없을 때, 우리 인류는 유한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장대한 우 주의 드라마에 찰나와 같은 무대를 함께 장식하는 동반자로서 더 높은 수준의 겸손과 인류애를 느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 모든 순간, 모든 관계, 모든 인간에게 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신의 존재는 과 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기반에서 출발 하는 신학은 신을 믿는 이들에게만 호소력을 가질 뿐이다. 신앙은 확률, 증거, 논리와 거의 무관한 사회적, 심리적, 감정적 요소들에 의지 하는 것이다. 이 점이 신앙의 필연적인 약점이다. 또한, 신앙의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수업  (0) 2021.06.26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0) 2021.05.30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0) 2021.05.11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0) 2021.05.06
과학 vs 과학  (0) 2021.04.27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