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etc 2021. 5. 7. 19:46

 

https://www.youtube.com/watch?v=RJpJiEz7K7k

 

평소 시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라서, 안도현 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로 유명한 '너에게 묻는다' 정도까지 아는 수준이다. 

이 책은 안도현 시인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사유의 잠언들이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잠언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부제인 '안도현의 문장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겸손하게 표현한 것 같다.

일상의 고민과 성찰을 통해 우려낸 짤막짤막한 문장들도 백미지만, 책 전체를 통해 은은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사진들도 문장들 못지 않게 아름답다. 사진을 보고 글을 지어낸 것인지, 글에 맞는 사진을 찍은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어디로든 데려다 준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긴 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안도연 시인은 아래와 같이 썼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눈,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게 만드는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입맞춤이 맞닿기 직전까지의 상상력 때문이다."

이 책은 장 그르니에의 글로 시작한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 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 았다.”
그러면서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해, 시를 쓰는 비밀을 간직하고 살기 시작하던 나의 스무 살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어쩌면 과거의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살 청춘에게 바치는 글이기도 할 것이다.

곧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이 올 것이다. 봄에만 잠시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바로 연두색이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연두가 초록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두의 눈에 푸르게 불이 들어오기 전에, 연두가 연두일 때, 연두가 연두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은 연두하고 오래 눈을 맞추자."
짧은 봄이다. 그리고 짧은 인생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잠잠히 지켜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 지원을 통해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장 그르니에는 이렇게 썼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 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 았다.” 이 세상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의 아련한 기대와 다 짐을 이보다 더 신비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대한 꿈이란 겸허한 마음없이 이루어지지 않고, 가난과 남루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사람은 당당해진다. 수없이 꽃이 피었다가 지고 눈보라가 퍼붓다가 그치고 강이 넘쳐 벌판이 되고 길이 산을 뚫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해, 시를 쓰는 비밀을 간직하고 살기 시작하던 나의 스무 살에게 이 책을 건넨다.
-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꿈이랄까,희망 같은 것 말 이다.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거슬러 올라 가기 때문에.
-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눈,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게 만드는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입맞춤이 맞닿기 직전까지의 상상력 때문이다.
- 인간의 귀는 인간의 목소리 이외의 소리를 듣는 데 매우 인색하다. 인간의 한계는 바로 그것이다.
- 비 그치면 고추밭 매러 가려고 큰맘 먹었 더니 또 비가 오네. 호미야, 처마 밑에서 빗소리나 듣자
- 연두가 초록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두의 눈에 푸르게 불이 들어오기 전에, 연두가 연두일 때, 연두가 연두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은 연두하고 오래 눈을 맞추자.
- 별똥별이 아름다운 것은 빛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떨어진 곳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삶이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고 회의하는 자만이 위험한 생을 즐길 수 있지. 하지만 삶 자체가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될 때는 다시금 안전한 쪽 을 바라보는 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생이지. 생 이란, 위험과 안전 사이의 줄타기.
-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 길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반드시 길이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 앞에서만 없던 길도 생기는 법이다. 뛰어오르라고, 도전하라고 벽은 높이 솟아 있는 것이다.
- 세상한테 떼쓰며 대들던 소년은 가출을 하고, 세상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려고 몸부림치던 사람은 출가를 한다. 가출과 출가, 이 두가지 여행 중에 더 진정성을 갖는 여행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출가보다 가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훌쩍 건너가 버리는 출가는 이 세상에 대해 책임지려고 하지 앉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돌아오는 가출은 그날까지 세상속에서 부대끼며 전전긍긍할 것이 뻔하다. 이런 전전긍긍 없는 여행, 전전긍긍 없는 생활, 전전긍긍 없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속임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전전긍긍해야 할 것이다.
- 삶이란?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
-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더 힘을 주는 것.
- 어머니에게 카네이션이나 용돈 대신 선물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잘 늙어가는 50대의 건강한 아버지, 술 마시지 못하는 아들들, 바퀴벌레 나오지 않는 아파트,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튼튼한 무릎, 늘 잔고가 백만 원쯤 되는 통장, 돈 잘 쓰는 생활습관 등등
- 교훈을 받아들이는 일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풍잎들이 강을 수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교훈을 생각하고, 이름 없는 꽃을 하나 발견하더라도 식물도감부터 뒤적인다. 그 꽃이 몸에 해로운지 이로운지를 먼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별을 바라보면서도 교훈이 될 만한 일을 찾을지도 모른다. 꽃은 꽃대로 아름답고 별은 별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고통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상처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는 관심도 없다.
- 낙엽을 보며 배우는 것 한 가지. 일생 동안 나는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가. 떠날 때 보면 안다.
- 도토리는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가? 갈참나무 가 지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것으로 도토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후에도 새로운 삶을 시 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 길에 모퉁이가 없다면, 보이지 않는 모퉁이 저 쪽을 상상할 일도 없고, 비행기 활주로나 고속 도로처럼 인생은 황막해졌을 것이다.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들었다. 모퉁이가 없다는 것은 곡선이 없다는 것, 막막하고 뻣뻣한 직선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모퉁이가 없다면 골목길에서 자전거 핸들을 멋지게 꺾을 일도 없었을 것이 고, 연인들이 담벼락에 붙어 서서 키스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별 후에 돌아서서 숨죽여 흐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핍이 모퉁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퉁이는 아쉽고 그리운 것들을 낳았다.
- 외로울 때는 사랑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사랑 에 빠진 뒤에는 외로움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사랑하고 싶거든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외로워할 틈이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이 세상에 외로워지고 싶은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떠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외로움 을 느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외로워할 틈이 있는가, 먼저 돌아보라.
-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적막을 사랑하라. 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돼라. 적막 속에서 빈둥 거리다가 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 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 그러다 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 시인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봄날에 눈부시게 피어난 꽃잎을 보며 경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꽃잎의 눈부심을 위해 혹한의 겨울, 꽃잎의 언저리로 눈보라가 지나갔음을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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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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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일즈포스가 정의하는 마케팅 관점의 고객의 시대 10가지 특징

1) 고객의 손끝에서 무제한의 컴퓨팅 파워를 즉시 활용할 수 있다.

2) 모바일은 전 인류를 연결하는 단일 플랫폼이다.

3) 소셜 네트워크는 아이디어와 정보가 실시간 소통되는 온라인 모임 공간이다.

4) 데이터 사이언스와 애널리틱스는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의 것을 배우는 데 도움을 준다.

5) 자동차에서부터 가전기기까지 모든 것을 사물인터넷으로 연결한다.

6) 고객은 요구사항이 일관되게 충족되기를 바랄 뿐, 어떤 서비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7) 고객담당자는 혁신적인 변화를 위한 커다란 기회를 맞게 되었다.

8) 고객과의 상호작용은 모두 개인화되어야만 고객의 실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9) 고객이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10) 더 많은 고객사의 임원들이 이제 변화할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 PaaS와 SaaS 형태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일즈포스는 고객관계관리 업무를 프로세스화하고 시스템화하면서, 기업의 업무환경이 바뀌어도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반 서비스를 창조해냈다. 개발 자는 PaaS를 통해 영업부문의 요구를 반영한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개발하거나 수정할 수 있고, 서비스 이용자(영업사원)는 SaaS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여 업무를 볼 수 있다. 만약 영업사원의 업무 방식이 변경될 경우 시스템 또한 그 변경을 반영하므로, 영업사원은 최신의 프로세스와 일하는 방식으로 계속 업무를 할 수 있다. 즉, 세일즈포스가 클라우드 기술의 속성을 통해 지향하는 서비스는 크게 3가지 방향이다. (1) 비즈니스 요구의 빠른 변환, (2) IT기술의 지속적 최신성 유지, (3) 효율적 IT 비용(전통적 개 발 대비 낮은 총비용).

클라우드 서비스 도입에는 비즈니스 니즈와의 결합(Fit)이 중요하다. 국내외 다양한 클라우드 서비스 중 우리 기업에 가장 적합한 것을 찾으려면, 비즈니스의 니즈를 먼저 정의하고 이에 따라 제공받을 수 있는 IT 서비 스를 구해야 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와 접목될 때 정말 업무 효과가 높아질까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고객관계관리 업무처럼 지속 적인 업무 변화와 이를 반영한 시스템화가 필요한지를 파악하라는 얘기다. 잦은 부서 변동을 고려한 사용자별 비용집계가 필요한지, 다양한 모바일 디바이스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최신 기술 유지가 필요한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기업의 현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 영업활동의 견실함은 바로 다음 질문에 얼마나 잘 대답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며, 아래 질문은 세일즈포스의 근본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1. 양질의 비즈니스 기회가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는가? 

2. 회사가 가진 비즈니스 기회의 성공률은 얼마나 되는가? 

3. 경쟁사에 비해 성공률이 높거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4. 계약 성공률을 높이는 데 필요한 개선 활동은 무엇인가? 

5. 회사 차원에서 어떤 비즈니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가? 

6. 지역 품목 서비스별 매출 트렌드가 완만한 성장곡선을 유지하는가? 

7. 영업사원을 평가할 때 매출 이외 영업활동도 평가하는가?

- Sales Cloud 적용을 통한 영업 혁신의 지향점

1) 과거의 낡은 소통 방식을 바꿔라. 플랫폼 안에서 소통하고 공유하라.

2) 모든 보고와 문서작성을 간소하게 줄이고 고객 접촉 빈도를 늘려라.

3) 얼마나 잠재기회를 많이 만들고, 유의미한 사업기회를 만들어 내는지 과정을 함께 평가하라.

4) 기존 고객 히스토리를 분석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아라.

5) 모바일을 통해 현장중심으로 영업하라. 실시간으로 본사의 지원을 받아라.

- IT 실무라는 관점에서 사전에 준비 점검할 사항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 다. 그러니까 아래 7가지는 프로젝트 준비 시 반드시 고려할 사항이다.

(1) 클라우드 서비스 도입에 따른 기존 보안정책과의 상충 부분 이해 

(2) 세일즈포스에서 사용되는 콘텐트 및 파일, 모바일에 대한 보안정책 적용 방법 

(3) 세일즈포스 사용 용량, 오브젝트(기능)의 수, 라이선스의 종류, 개발플랫폼의 사용유무 

(4) 세일즈포스 적용 대상 부서의 규모와 추진 방식(일괄 혹은 단계적) 

(5) 세일즈포스 환경에서 국가별 대륙별 보안정책을 기업 상황에 맞게 적용할 방법(중국 개인정보 보호, EU의 개인정보보호법 대응 가이드라인 등에 대한 회사별 대응책 필요) 

(6) 세일즈포스가 적용되었을 때 현업 실무자와 IT 운영자의 역할 그리고 향후 운영 방법 

(7) 기존 시스템과 연계되는 인터페이스 대상과 방식

- “Information is the oil of the 21st century, and analytics is the combustion engine."

"정보는 21세기의 원유이며,분석은 그걸 태우는 연소기관이다.” (피터 존더가드 가트너 리서치)

- “In this age of the customer, the only 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 is knowledge of and engagement with customers."

"지금과 같은 고객의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는 오로지 고객에 대한 지식과 고객관계뿐이다." (포레스터 리서치)

- Sales Cloud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점은 너무나 많은 기업의 영업방식이 아직도 개인 역량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 많고 유능한 영업사원은 자신만의 고객 프로파일을 갖고 있으며, 매일 시장정보와 상권정보를 탐색 분석하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구글링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잠재고객을 발굴하고 있으며, 회사의 역량으 로 영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료를 찾아 출력한 다음, 사무실을 찾아가 담당자와 일단 부딪혀보는 식으로 영업을 수행한다. 흔히 영업에서 많이 활용하는 기업정보 DB인 크레탑(http://www.cretop.com)이나 해외기업 정보 DB인 D&B Hoovers (http://www.hoovers.com)조차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흔히 보았다. 영업을 잘하려면 좋은 기업을 골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래하기 나쁜 기업도 걸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잘 만들어진 고객 DB가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 애당초 영업의 기초 체력이 다르다. 

세일즈포스를 소개할 때 가장 강조하는 기능면의 장점은 고객에 대한 360도 뷰(View)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 고객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보 를 연결해 한 페이지로 요약 정리해서 보여준다는 콘셉트. 하긴 기존에 전혀 없던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어떤 기술로 도 구현 가능한 고객 360도 뷰는 고객 관점으로 일하는 출발점이 된다. 세 일즈포스는 정보의 시작을 고객으로 보고 Account 화면에 고객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축적, 소통, 분석되도록 하고 있다.

- 지금 회사의 CRM 서버에 접속해보라. 고객정보 중 얼마나 최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미팅 결과를 문서로 저장해놓을 수는 있지만, 문서는 이미 파워포인트나 워드나 한글 프로그램에 종속된 정보일 뿐, 데이터가 아니다. 결국 디지털로 기록되더라도 분석과 내용 조회가 불가능한 정보가 된다. 그래서 적어도 고객과 관련한 업무를 다루는 부서의 커뮤니케 이션은 더구나 기록 가능한(사내 메신저나 SNS 같이 정보 축적이 가능한) 형태 가 되어야 한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팔로우하듯이 고객을 팔로우하면 자 동으로 고객의 최신 정보가 실시간 알림으로 전달된다. 그런 알림을 보고 친구에게 댓글을 다는 것처럼, 소통 그 자체가 고객의 히스토리로 기록되 어야 한다. 이렇게 소통 수단 방식만 바꿔줘도 한 순간에 고객중심의 히스 토리 정보를 가진 회사가 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기존의 커뮤니케 이션 습관이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세일즈포스를 구축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 생각해보자. 유튜브 기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유튜브가 제공하는 동영상 기능을 새로 만드는가? 구글의 검색기능이 안 좋다고 나한테 맞는 검색 기능을 다시 만드는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일즈포스를 플랫폼으로 이해한다면, 플랫폼 자체의 서비스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존 시스템이나 방식을 거기에 적응시켜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기존에 써오던 익숙한 시스템 방식대로 만들거나 세일즈포스 플랫폼을 맘대로 손본다면, 자체 개발보다 더 불편하고 더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갖게 될 뿐이다. 

플랫폼은 고객이 이용하는 부분 외에도 그 이면에서 플랫폼 기업이 관리하고 제공하는 영역이 별도로 존재한다. 세일즈포스를 단순히 IT 개발 도구로 인식해 도입한다면, 플랫폼 서비스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새로 만든 시스템 간의 연결성은 끊어진다. 

- 세일즈포스는 글로벌 표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자를 위한 표 준 규약인 OWASP(Open Web Application Security Project)를 통해 지침을 제 공한다. OWASP는 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 지켜야 할 10가지 지침이 다. 세일즈포스는 PaaS 형태로 플랫폼 내 개발 기능을 함께 서비스하고 있 기 때문에, 개발자를 위한 규정과 지침도 모두 제공한다. 

우리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 다. 공개가 필요한 범위는 각 기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구글처럼 오픈소 스 기반으로 상생 협업하는 구도도 있지만, 특정 제품을 개발한 노하우와 소스의 공개는 없어도 제3의 기관을 통해 신뢰성을 검증 받아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때도 이런 서비스 차이를 이 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안타까운 순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플랫폼이 가진 여러 제약이다. 15만 기업이 사용하도록 만들 려면 기능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진화 중인 플랫폼이다 보니, 고객사에 꼭 필요한 기능이 미미한 경우도 없지 않다. SI형이었다면 직접 개발이라도 하겠지만, 정해진 서비스를 사용해야 하는 SaaS 모델이므로 주어진 기능 내 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한계가 있다.

둘째는 고객사의 시스템이 신뢰할 만한가의 문제다. 세일즈포스 아키텍처를 요청하는 기업 중에는 자사 시스템이 비표준으로 개발되어 세일즈포스와의 연계(Interface)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한 번 로그인으로 여러 사 내 사이트를 이용하는 SSO(Single Sign On) 서비스 표준을 준용하지 않거 나, 한국의 보안규정만 지키다보니 유럽-미국 진출 시 새로이 준비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한국형-사내형 기술로 포장된 시스템이 많아 글로벌 표준과 상충하기 쉽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의 신뢰성과 사내 정책이 없어서 혼란이 생긴다. 세 일즈포스가 준용하고 인증 받은 개인정보보호와 보안은 시스템 및 서비스 에 대한 제공자 관점의 신뢰성이다. 즉, 제품으로서 하자나 문제가 없다는 뜻일 뿐이다. 그런데도 SaaS 제품을 구매한 고객은 자사의 보안정책과 규정까지 모두 저절로 준용되는 것으로 오해한다. 제품 구매 이후, 고객의 정 보를 어떻게 수집 관리 저장할 것인가는 고객사의 정책 문제다. 세일즈포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은 정보 표준을 세일즈포스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세일즈포스는 이미 나라마다 인증을 받은 상태다. 추가로 필요하다면 제품에 대해서 는 세일즈포스가 인증을 받을 것이다), 우리 회사가 글로벌 표준을 준수하는지, 국가별 정책을 준용하는지, 검토해서 이에 대한 정보보호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 가장 좋은 방법은 SaaS 형태로 제공되는 본연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세일즈포스를 이용하고 있는 크고 작은 15만 기업 중 그런 기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각자의 경영 환경에 맞추어 조금씩 다르게 사용한다. 최소한 고객관리 정보에 필요한 필드 값이라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세일즈포스는 이와 같은 각사의 업무 및 시스템 환경을 고려해 SaaS 외에 개발자를 위한 PaaS도 함께 제공한다.

세일즈포스를 우리 회사에 적용하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표준설정(Standard Configuration)은 만들어진 기능에 설정 값을 바꾸어 화면을 만드는 것이다. 업무 프로세스 자동화(Workhow Automation) 는 비즈니스 로직을 반영해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며, 기본 설정과 함께 SaaS로 제공되는 기본 기능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어떤 형태 로 화면을 만들건 플랫폼 내 기능과 속성을 그대로 이용하기 때문에, 세일즈포스가 주는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우리 회사에만 필요한 기능이 있다면 일부 자체 개발을 반영하 는 세일즈포스 프레임워크 기반 개발과 Full Page 개발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여기부터는 자체 개발로 인해 세일즈포스 플랫폼과의 관계가 분 리되게 된다. Full Page 개발은 세일즈포스 개발 언어를 통해 직접 전체 기능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기존 SI형 자체 개발과 같아진다. 이 두 방식은 플랫폼과의 관계가 분리됨으로써 매년 3회 플랫폼 업그레이드 시 추가 개선되는 기능을 이용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플랫폼과 분리 정도가 심할수록 향후 비즈니스 요건 변경 및 운영 시 유지보수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SI형 개발과 같이 시스템 구축 후 별도 운영, 유지보수를 통해 기능을 추가 개발하거나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AppExchange는 세일즈포스의 앱 스토어다. 필요한 상용 기능을 내려 받아 설치해 바로 플랫폼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다만 이 앱은 전 세계 개발 파트너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상용화한 것으로, 세일즈포스와 별도로 비용을 내고 운영 관리해야 한다. 세일즈포스 프로젝트팀은 이런 고려사항을 숙지해 비즈니스 요구와 IT 시스템화 가능성을 조율하고 분석, 설계, 개발,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 B2B 및 전문직 영업에서는 잠재고객을 확보하고 Account로 전환하는 Pipeline 관리가 중요하다. 웹사이트, SNS, 이메일 등 온라인으로 방문한 고객에 대해 정보입력 Landing Page'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또는 영업사 원이 세미나, 박람회, 협회 모임 등을 통해 잠재고객들을 모으기도 한다. 우리 회사에 적합한 잠재고객 정보를 생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영업 파이프 라인의 시작이다. 영업사원은 고객에게 받은 명함에서 회사명, 부서, 연락처 등의 기본 정보를 확보하게 되고, 세일즈포스의 Lead' 기능을 통해 이를 등록한다. 잠재고객 단계는 고객 코드나 ID 없이 고객정보를 관리할 수 있으며, 잠재고객 으로부터 문의가 오거나 요청한 사항이 있으면 간단한 정보를 기입하여 그 소통 내역을 기록해야 한다.

영업 담당자와의 대화를 통해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잠재고객에 대해서는 Account 전환 작업을 진행한다. 실제 고객이 될 가 능성이 50% 이상이라 판단되고 영업 자원(시간과 노동)을 할당할 가치가 있 다고 생각되면, Account로 전환해 고객계정을 부여한다. 현장에서 어떤 제 품-서비스에 대한 정보나 견적을 요청할 때 Account로 전환하기도 한다. 해당 고객과의 첫 번째 거래 과정을 세일즈포스는 'Opportunity 라고 하며, 잠재고객이 Account로 바뀔 때 고객계정, Contact, Opportunity 등의 정보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ERP에 등록할 고객계정을 생성할 경우는 더 상세한 영업 정보가 필요하므로 ERP 고객정보와 연동하 기 위해 Account 전환을 한 단계 더 나누어 관리하기도 한다.

- 등록된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사원은 이제 활동을 시작한다. Account 정보 생성시 등록된 고객 요청사항을 확인하고 방문 일정을 시스템 상 달력으로 예약한 뒤, 준비사항 등을 메모로 기입한다. 회사소개서나 사업자 등록증 등 지원 부서에 요청할 것이 있다면 Chatter를 통해 요청하고, 요청 사항은 Event에 등록해 방문 전 알람이 오도록 설정한다.

이어 고객을 면담한 영업 담당자는 미팅 내용을 면담록에 작성한다. Account 메뉴에서 해당 고객을 검색하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면담 후 템플릿으로 감사 메일을 불러와 구성하고, 세일즈포스 메일을 통해 고객에게 제품소개서와 함께 발송한다. 내가 보낸 메일 정보와 시간은 활동 으로 집계돼 영업활동 정보에 자동으로 반영된다.

우리 회사의 영업팀장은 영업사원의 활동 현황을 대시보드에서 파악 한다. 누가 어떤 고객을 어디서 만나는지 일일이 체크하지 않아도 그날과 그 주의 주요 진행상황을 아침마다 파악할 수 있다. 영업사원 또한 어제 등록한 점검 업무가 지연되는 경우 알람으로 표시하여 챙길 수 있으며, 본인 이 할 일, 금주의 매출 목표를 대시보드에서 확인하고, 오늘 만날 고객 목 록과 일정을 참조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전문직의 경우는 대체로 영업사원과 팀장의 활동을 본인이 직접 수행하지만, 소수의 직원이 있다면 지원부서처럼 Chatter를 통해 그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그리고 이벤트 기능에 업무지시 사항, 완결 일자, 담당자 등을 지정 등록하면, 그 날짜가 오기 전 알람 설정으로 진행상항을 관리 할 수 있다.

모든 활동이 완료되면 그 결과(계약)와 매출 정보는 시스템에도 기록된다. 이 정보를 통해 영업담당자는 전체 고객(잠재고객+실 고객) 중 실 고객수가 기간별로 어떻게 변하는지, 유입되는 잠재고객과 이탈하는 고객은 어떤 상황인지, 리포트로 파악할 수 있다. 특정 기간별, 지역별, 업종별 고객 을 구분하여 비중을 파악하고, 별도 산식으로써 고객유형별 매출기여도까지 리포트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주요 제품 서비스별, 영업담당자별 매출정보를 파악해 다음 기간 영업에 어떻게 반영할지도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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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의 이동

경영 2021. 5. 6. 22:23

-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전체 산업이 교통신호를 포함한 물리적 세계의 요소들에 센서를 뿌리고, 멍청한 기계들을 식물과 동물처럼 행동하는 적응형 네트워크로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제조업까지 확대된다. 자동차 회사는 동일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한다. 멍청하고도 융통성이 없는 공정이다. 결함을 감지하거나 인기를 측정할 수 있는 피드 백 고리가 부족하면 자동차 공장은 단순히 자동차만 만들어낸다. 뭔 가가 잘못되었을 때 기업은 터무니없이 비싼 리콜 조치에 나서야 한 다. 그리고 후드 디자인, 허리 지지대, 고속도로 주행거리 등 자동차나 트럭의 특정 측면을 구매자들이 싫어한다면 쉬운 해결책 같은 건 없다. 생산 공정이 고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패했을 경우수억의 비용이 든다. 낭비되는 돈이다. 

생물학과 접목된 칭거의 계획 속에서는 각각의 자동차가 진화한다. 3D프린터 공정은 속도, 핸들링, 편안함, 연비 등을 테스트할 수 있는 단일 시료를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피드백 고리를 만든다. 테스트 데이터가 들어오면 엔지니어들은 차를 녹여서 소프트웨어 디 자인, 즉 자동차의 DNA를 수정할 수 있다. 그들은 다양한 시장, 즉 생태계를 위해 여러 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도 길고 평평한 토런스 대로에 맞는 차나 파키스탄 남부 도시인 카라치Karachi의 혼잡한 거리와 골목길에 맞는 차를 따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칭거는 가장 폭력적인 피드백 고리인 '충돌'에 대해 얘기할 때 가 장 흥분한다. 3D프린터로 출력된 자동차 대부분은 녹여서 재활용 할 수 있기 때문에 충돌 테스트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각각의 테스트는 자동차의 모든 재료와 디자인 기능에 대한 풍부 한 데이터를 생산해줄 것이다. 칭거의 비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차세 대 제조업체들은 자동차 수십 대로 충돌 시험을 한 후, 다른 모든 사 람과 공유할 상당한 양의 피드백 데이터를 만들어낼 것이다. 칭거는 “그 속에서 수영해도 될 만큼 많은 충돌 데이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데이터를 학습 엔진에 입력하면 엔진이 각 부품의 성능을 분석하여 점차 가장 안전하고 충돌 안전도가 뛰어난 설계를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대부분 소프트웨어로서 존재하는, 제조 공정이 갖는 탄력성과 경쟁우위다.

-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교수이자 LA의 최고기술책임자인 피터 마르크스Peter Marx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자동차는 군집을 대표하는 우점종優點이며, 우리 인간이 그것을 섬기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자동차가 우리 위에서 군림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자동차에 거액을 지불하고, 그들이 게으른 경향이 있어도 닦아주고 청소해준다. 그들 대부분은 존재하는 시간 중 극히 일부 동안만 일하며, 우리가 그들을 위해 마련해준 값비싼 주차장과 차고에서 나머지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낸다.

- LA 시민들은 거주비로 매달 수천 달러를 쓰는데도 다수는 비좁은 원룸과 다세대주택 같은 데서 거주한다. LA는 긴급히 해결해야 할 노숙자 문제도 겪고 있다.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노숙 생활을 하고 있어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동차는 종종 무료로 주차한다. 한 대당 평균적으로 세 곳 이상의 공간에서 호화롭게 지내는데, 그중 다수는 노숙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쉼터와 텐트보 다 안전하고 크고 튼튼하다. LA의 주차 공간은 약 520제곱킬로미터로, 파리 전체 주차 공간의 다섯 배다. 

이 네 바퀴 달린 존재의 요구에 맞춰서 모든 환경이 조성되었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을 연구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해변, 들판, 산 또는 초목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아름다운 환경은 자동차가 지내기엔 좋지 않다(그들을 광고하기 위한 배경으로 유용할 수는 있다). 그래서 가수 조니 미첼 Joni Mitchell의 노랫말대로 1세기 동안 우리는 천국을 포장하고 주차 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계들에 대한 우리의 굴종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우리가 부주의하게, 혹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동차가 달리는 포장도로에 뛰어들었다가는 그것에 치여 죽거나 불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자동차 산업은 인간이 만들어낸 조직체의 승리이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발전의 본보기다. 자동차 회사는 무자비할 정도로 효율적 이고 반복적인 공정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공정 안에 얽힌 극도의 복잡함을 극복해내고, 필요한 모든 단계와 움직임을 최적화한다. 공장 벽 밖에 있는 길거리와 학교는 혼란에 지배되었을지 모르지만, 자동차 제조 공장은 질서의 축소판이 되었다. 

이제 자동차 제조 공장의 통합된 기준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퍼지 고 있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포드의 초기 엔지니어 중 한 명이 한 손에는 스톱워치를, 다른 손에는 클립보드를 들고 2020년경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 인간의 모빌리티에 대하여 효율성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대부분의 자동차 진입로나 차고 안에서 주차된 차를 한두 대 아니면 세 대 정도를 발견한다. 엄청나게 공간이 남아돈다. 암송아지 한두 마리를 충분히 끌 수 있을 정도로 큰 픽업 트럭 한 대가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에 도착하여, 운전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만 들고 1~2분 뒤에 나타난다. 이보다 심한 낭비도 많다. 대형 버스가 승객 몇 명만 태운 채로 대로를 덜컹거리며 내려갈 때다. 그들이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교차로에서도 빨간불에 멈춰 서서 연료와 시간을 태울 때도 그렇다. 이 정도로 낭비되는 공장이 있다면 1주일 안에 문을 닫을 것이다.

- 스카린지는 전화기를 꺼내 말에 관한 자료를 검색했다. 말 경제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그가 고민 끝에 찾아낸 이 질문에 대한 논리 적인 답은 1910년이었다. 포드가 모델 T의 대량생산을 시작했을 때 나, 아니면 그보다 5년 뒤에 내연기관의 굉음과 자동차의 경적 소리 가 도시의 음경音景을 변화시켰을 때란 것이다. 외딴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과 말타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1915년에 누 가 말을 타려고 했단 말인가?

스카린지는 '카우보이웨이Cowboy.way'라는 사이트에서 답을 찾은 뒤 스크린에 떠 있는 그래프를 의기양양하게 가리켰다. 1910년에 미국의 말과 노새 수는 2,400만 마리를 조금 상회했다. 그 후 10년 동안초창기의 자동차 산업이 성장했지만 말 산업은 확장세를 이어가면 서 1920년에 2,600만 마리로 최고치에 이른다. 스카린지는 그때를 '말 경제의 전성시대'로 판단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새로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낡은 것을 대체하기 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습관, 인프라, 경제 논리가 전통 기술을 떠받치고 있다. 1920년에 출시된 모델 T는 지금 가격으로 8,000달러 에 상당하는 550달러였다. 말은 그보다 훨씬 더 저렴했다. 게다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자동차를 좋아하듯, 사람들은 말을 좋 아했다.

그래서 10년 이상이 걸려서, 그리고 농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 점진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어우러지는 동안 말 농장 사업은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대형 자동차 기업들이 이익을 내고 있더라도 머스크의 테슬라와 알파벳의 웨이모 waymo에서부터 스카린지의 리비안에 이르는 많은 전기, 네트워크, 자율주행차량 신생 업체가 그들을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스카린지는 “지금이 바로 대형 자동차업체의 전성기” 라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재편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파티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 1973년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방 국가들 에 취한 석유 금수 조치는 디트로이트 블록버스터 시대의 막을 내리 게 했다. 미국인들이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찾기 시작하자 일본인들이 시장에 몰려들었다. 일본인들은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생산 철학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일본어로 가이젠 Kaizen, h世人’이라 불리는, '지속적 개선'의 추구를 중시하는 철학이었다. 일본인들은 미국의 산업 전문가인 W.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으로부터 가이젠 철학을 상당 부분 배워갔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는 누구도 데밍을 주목하지 않았다.

일본의 침략으로 디트로이트는 이제 세계적인 업체들과 경쟁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는 그런 경쟁의 위협을 무시하고 있었다. 이후 토 마스가 성장하는 수십 년 동안 자동차 회사들은 노조가 없는 남부와 멕시코로 생산 거점을 옮겼다. 공급망 전체를 중국으로 옮기기도 했다. 디트로이트는 결국 공동화되었다. 

- 새로운 기술은 기업인이 소형 공장을 세우고 틈새시장을 겨냥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런 자동차들 역시 대량 생산된 자동차와 트럭과 자율주행차 시장을 잠식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런데 아마도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그들 사업의 성격 변화 자체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서비스 구입을 늘리되 기계 구입을 줄일 것이다. 서비스 시장 규모는 확대될 것이다. 미래의 자동차 사업은 수백만 명의 고객과 관계를 맺고, 고객의 데이터를 토대로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예측해 그곳으로 데려가주면서 도중에 카푸치노를 대접하거나, 가상현실 속에서 모험을 즐기게 해주거나, 아니면 발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포드, GM, 도요타 등은 단순히 차량 제조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도시에서 차량 제공 서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그것은 해 킷이 말하는 '모바일 솔루션'이자 '디지털 연결’일부다. 그리하여 자동차 회사의 임원들은 생존을 위해 열정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와 차량 관리 회사를 집어삼키고 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의 가치는 IBM의 일곱 배에 이른다. 특히 모빌리티와 관련성이 많은 이런 격차가 생긴 주된 이유는, IBM이 더 이상 많은 기계를 판매하지는 않지만 핵심 사 업이 여전히 점점 더 저렴해지는 기술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출이 줄어든다. 그와 달리 구글에 기술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구글은 기술 가격이 하락할수록 이익을 얻는다. 구글은 기술과 완전 히 다른 '광고' 라는 것을 팔기 위해 이처럼 더 싸고 더 강력해지는 기 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도 구글과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이제 모빌리티 혁명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회사가 커넥티드카 분야의 챔피언으로 등극할지, 그리고 어떤 자동화 기술이 최고가 될지 모른다. 현시점에서는 다만 자동차가 앞으로 어떻게 생기게 되고 무엇이라고 불리게 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거의 확실히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주행비용이 더 적게 들 거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 기술이 특정 산업에서 퍼질 때 일어나는 현상 이다. 디지털 기술은 희귀했던 무언가를 풍부하고 저렴하게 만든다. 연산 능력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이러한 역동성을 유발한다. 소프트웨어와 실리콘의 성격도 본질적으로 그러하다. 일단 소프트웨어가 어떤 일을 맡게 되면 그 일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무한 복제되면서 전체 산업을 집어삼킬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가격이 폭락하는 산업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다른 회사들이 짊어진 모든 위험과 힘든 노동 위에 앉아서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업을 만드는 것이다. 컴퓨팅 분야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이 이것이다.

우버와 리프트가 모빌리티 분야에서 바쁘게 구축하는 사업도 그 것이다. 그들은 철강과 유리를 사지 않고,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와 협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임러나 폭스바겐이나 중국에서 새로 등장하는 수많은 제조업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아스팔트를 깔거나 교각을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준다. 그래서 자동차 공유 기업들은 물건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 위험, 책임과 작별했다. 야생의 세계에서라면 그들은 특히 음흉한 종류의 기생충으로 간주될 것이다.

차량 공유 회사는 전화기의 앱에 불과하다. (구두쇠의 극치라고 할 그들은 지도 제작 기술에도 투자하지 않고, 그 작업의 상당 부분을 구글에 외주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동차 회사와 달리 수백만 명의 고객과 긴밀하게 접촉한다. 그들은 고객의 데이터를 풍족하게 캐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수천만 개의 전자 결제 관계를 구축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경제에서든 고객의 은행 계좌로 바로 연결되면 노다지를 캘 수 있다.

- 기계식 차량이 단계적으로 전자 제품이 되어갈 때 기업 간의 해묵은 장벽은 사라진다. 통학 버스가 전기사업에 뛰어들고, 접대 산업은 택시로 옮겨간다. 다시 말해 거대한 구조조정이 펼쳐진다. 모두에게 무료다. 그것은 신생 기업에 기회를, 그리고 공익 기업이건 자동차 회사건 기존의 대형 기업에 위험을 초래한다.

- 지난 20년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네트워킹 장비 분야의 선두 주자인 시스코 Cisco의 임원들은 화웨이에 대해 심하게 불평해왔다. 그들은 화웨이가 자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비난하면서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긴밀하지만 불투명한 관계는 '위험'을 뜻한다고 경고했다. 2012년 미국의 하원정보위원회 Permanent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는 화웨이와 중국 제2의 네트워크 회사인 ZTE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선언했다. 하원정보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두 회사의 장비를 이용해 미국인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중국은 그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수년 동안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들 간의 다툼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나머지 디지털 경제에서 미국과 중국은 모두 번성했고, 서로 상대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았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미국의 인터넷 거물들이 세계 최대의 성 장 시장인 중국에서 차단된 데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나머지 세 계 다수의 지역에서 지배력을 강화했다. 한편 그들의 상대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중국의 인터넷 감시·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안에서 번창하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10대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드웨어를 계속 제조했고, 애플 아이폰의 최대 판매 시장이 되었다. 태평양 양쪽의 거대 기술기업들은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모빌리티 혁명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의 다음 단계는 그러한 편안한 상태를 전복시키려 위협하고 있다. 화웨이를 둘러싼 혐의가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의 중심 소재가 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정보가 자동차, 자전거, 신호등, 그리고 도시 전체 등 실제 세계로 확 산될 때 화웨이 같은 대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 지휘소의 계약을 따내기 위한 상업적 싸움, 즉 두뇌 부분은 이전 단계 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컴퓨팅 단계에서 궁극적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에 시작된 최초의 PC 시대를 장악한 왕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었다. 칩은 컴퓨터의 두뇌였고, 운영체제는 뇌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기업들이 산업을 지배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스마트폰이 떠오를 준비를 끝내자 싸움은 다시 누가 이 기계를 작동시킬 것인가, 즉 어느 기업이 뇌를 제공하고 운영할 것인가에 초검이 맞춰졌다. 초창기부터 유력한 기업으로 각각 소프트웨어와 핸드셋 분야의 1등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애플과 구글이 시장을 장악했다. 그들이 스마트폰 시장을 완전히 새로운 무엇으로 본 게 중대한 역할을 했다. 윈도즈 소프트웨어는 노키아 클램쉘 clamshell(폴더형 - 옮긴이) 폰이든, 스마트폰은 이전 세대 유산의 연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글로벌 거인 기업을 육성하고 다음 단계의 정보화시대를 지배할 수 있느냐다. 화웨이와 인터넷 거물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가장 강력한 후보들이다. 그들은 모두 AI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2017년 화웨이 혼자서만 AI 관련 연구에 1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구글과 웨이모의 모기업인 미국의 알파벳과 맞먹는 규모다.

베이징에서 선전에 이르기까지 중국 내의 다양한 장소에서 열린 기술 컨퍼런스에서는 중국처럼 하향식 top-down 챔피언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이에 대한 최고의 반론은 기업들이 밑에서부터 세력을 키워 거물들을 쓰러뜨려온 미국에서 발견된다. 자유시장경제의 잔혹한 특성은 RCA, 제니스zenith,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같은 오래된 챔피언이 파산하거나, 성장하는 경쟁자에 하나씩 먹히면서 시 장에서 퇴출되도록 허용했다. 경쟁사는 차례로 오늘날의 강한 기업으로 변모했다. 현재 미국의 일류 기술기업은 대부분 지난 50년 동안 나타났고, 그중 다수는 21세기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번 시기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모빌리티 혁명이 상하이 같은 도시, 즉 실제 세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계획의 영역이며, 중국에서는 5년짜리 계획이다. 이들 계획은 이전에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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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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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맥주가 언제 양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 전 1만년 전에 맥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기원전 4000년경에는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그림문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에는 커다란 항아리에 갈대로 된 빨대를 꽂아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고대 맥주는 표면에 곡물의 입자나 다른 찌꺼기들이 떠 있었기 때문에 부유물을 피해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빨대가 필요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기록물은 기원전 3400년경의 것인데 이들 문 서에도 맥주의 기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맥주의 등장은 농경의 도입과 맥주의 원료인 곡물의 재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류의 생활 방식이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전환되었고, 이어 최초의 도시들이 등장하고 사회의 복잡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인류 역사의 격변기에 맥주가 등장한 것이다. 맥주는 선사 시대의 유산이며 그 기원은 문명의 기원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 곡물은 처음에는 그렇게 중요한 식재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2가지 놀라운 특성이 발견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하나는 곡물을 물에 담그면 발아가 시작되고 단맛을 낸다는 성질이다. 완벽하게 물을 차단하여 방수가 되는 저장 구덩이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에 인간이 곡물 저장을 처음으로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특성을 바로 발견했을 것으로 보인다. 달콤한 맛이 생기는 원인은 지금은 분명하다. 습기에 찬 곡물은 디아스타제diastase라는 효소를 만들어내고, 그 효소가 전 분을 맥아당麥芽糖, maltose sugar 또는 맥아麥芽, malt로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 곡물에서도 발생하지만 특히 보리의 경우 훨씬 많은 디아스타제를 배출하고, 따라서 가장 많은 맥아당을 만들어낸다.) 당분糖分을 섭취할 수 있는 다른 식재가 거의 없었던 당시에 “맥아화 麥芽化, malted"한 곡물이 내는 단맛은 매우 중요했고, 자연스럽게 곡물을 물에 담갔다가 건조시키는 맥아 공법의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두 번째의 발견은 더욱 중요했다. 수일간 방치되어 있던 곡물의 옅은 죽에서, 특히 맥아화한 곡물이 들어있었던 경우에는 불가사의한 변화가 발생했다. 죽에서 가벼운 거품이 발생했고 그것을 마시면 기분 좋게 취했다. 즉 공기 중에 있는 천연 효모의 활동에 의해 죽에 함유되 어 있던 당분이 발효되어 죽이 알코올로 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곡 물의 죽이 맥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맥주가 인간의 입술을 적신 최초의 알코올이라는 말은 아니다. 맥주가 발견된 당시에도 사람들이 과일이나 꿀을 저장하 려고 했을 때, 과즙 또는 꿀이 물과 섞인 상태에서 우연히 발효가 이루어져 (이는 와인이나 벌꿀 술을 만들기 위한 과정) 소량이지만 알코올이 자연적 으로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일은 제철이 지나면 쉽게 부 패하고 야생 꿀은 매우 제한적인 양만 채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5000년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도기 없이는 와인이나 벌꿀 술은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없었다. 반면, 맥주의 원료가 되는 곡물은 풍부했으며 쉽게 저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맥주는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의 양을 확실하게 양조할 수 있었다. 도기가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맥주는 역청을 칠한 바구니, 가죽으로 만든 가방, 짐승의 위장, 속이 텅 빈 나무, 커다란 조개 또는 돌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여 양조되었다. 아마존 유역에서는 19세기까지도 요리의 도구로 조개를 사용했고, 핀란드의 전통 맥주인 사티sahti는 지금도 속이 텅 빈 나무를 사용하여 양조되고 있다.
맥주라는 중요한 발견이 있은 후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맥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면, 옅은 죽 형태의 곡물에 맥아가 많고 발효 기간이 길수록 알코올 강한 맥주가 되었다
- 맥아가 많다는 것은 당질이 많다는 것이며, 발효 기간이 길다는 것은 더욱 많은 당질이 알코올로 변환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죽이 끊을 정도로 열을 높이면 맥주의 도수가 강해진다. 맥아 과정에서 보리 안 에 있는 전분의 약 15퍼센트만이 당질로 변환되지만, 맥아화된 보리를 물을 넣고 끓이면 고온에서 활성화되는 다른 전분 당화 효소들이 더욱 많은 전분을 당질로 변환시키고, 이처럼 많은 당질은 발효 과정을 통해 알코올로 변환된다.
- 메소포타미아의 양조자들은 바피르bappir라고 하는 맥주를 만드는 빵beer-bread의 첨가량을 조절함으로써 맥주의 맛과 색깔을 조절했다. 바피르는 발아한 보리를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2번 구워 만드는데, 어두운 갈색에 이스트를 넣지 않은 단단한 빵으로 몇 년간 보전할 수 있었다. 양조자는 맥주를 만들 때 바피르를 꺼내어 잘게 부수어서 사용 했다. 기록에 따르면 바피르는 마을의 저장 창고에 보관되었고 식량이 부족했을 때에만 바피르를 먹었다고 한다. 따라서 바피르는 식재료라 기보다는 맥주의 원재료를 저장하기 위한 편리한 방법으로 중요한 의 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맥주를 양조하는 데 빵을 사용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방법은 고고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을 야기했다. 일부 학자는 빵은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등장한 파생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학자들은 빵 이 먼저 등장했고, 따라서 그 후에 맥주 양조의 한 요소로서 빵이 사용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빵과 맥주가 모두 곡물의 죽에서 파생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걸쭉한 죽은 햇볕 아래에서나 뜨 거운 돌 위에서 구워지면 편편하고 둥근 모양의 빵이 되었고, 맑은 죽은 발효가 되도록 내버려두면 맥주가 되었다. 둘 다 같은 동전의 양면 이었다. 빵은 딱딱한 맥주였고, 맥주는 액체화된 빵이었다.
- 처음부터 맥주는 사회적인 음료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에 수메르인이 그린 그림은 두 사람이 빨대를 통해 하나의 항아리에 담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맥주를 마시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으로 추측된 다. 그러나 수메르 시대에는 곡물이나 찌꺼기 또는 맥주의 다른 불순물을 거르는 것이 가능했고, 또한 도기가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컵을 사용해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빨대를 사용하여 맥주를 마시는 그림이 매우 넓게 퍼져 있었던 것은 빨대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의식으로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 그 이유는 어쩌면 음료야말로 음식과는 다르게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러 사람이 같은 항아리에서 맥주를 마 실 때 그들은 같은 액체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기의 경우는 잘랐을 때 특정 부위가 다른 부분과 차이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음료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신다는 것은 호의와 우정을 표현하는 세계 공통의 상징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 음료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독이 들어 있지 않고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제공하는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 개인적인 컵을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에 원시적인 용기에서 양조되었던 초창기의 맥주는 같은 용기에서 함 께 마셔야만 했을 것이다. 오늘날 맥주를 마실 때 손님에게 빨대를 제공하고 커다란 맥주 통에서 빨대를 이용하여 같이 맥주를 마시는 관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차나 커피의 경우에는 같은 포트pot를 이 용하여 와인이나 증류주는 같은 병에 담긴 것을 각자의 글라스에 따라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모임에서 술을 마실 때 잔을 부딪치 며 건배하는 것은 동일한 용기에 들어 있던 동일한 음료를 같이 마심 으로써 서로의 단합과 단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다. 이런 것들은 고대에서부터 비롯된 전통들이다.
- 고대에는 음료, 특히 알코올음료에는 초자연적인 성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맥주를 마시면 취하게 되고 의식 상태에 변화가 생기는 현상은 불가사의하게 보였다. 동시에 보통의 죽이 맥주로 변화되는 신비로운 발효 과정 역시 불가사의하게 보였다. 그들이 내린 명백한 결론은 맥주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는 것 이다. 따라서 많은 문명이 어떻게 신이 맥주를 창조했으며, 어떻게 인 간에게 맥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는지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 는 것은 당연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인은 맥주는 농업의 신이며 사후 세계의 왕인 오시리스Osiris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 그는 발아한 곡물에 물을 섞어놓고는 잊어버린 채 햇볕에 내버려 두었다. 나중에 돌아왔을 때 곡물이 발효되었고, 그것을 마시고 기분이 너무 즐거워진 오시리스는 그 지식을 인간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 맥주는 또한 건강과 더욱 직결되어 있었고, 메소포타미아인과 이집 트인 모두 맥주를 의약용으로 사용했다. 기원전 21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니퍼라는 수메르 도시에서 출토된 설형문자 점토판 에는 맥주를 사용한 약제법 또는 의약 처방 리스트가 기록되어 있었 다. 그것은 알코올을 의약용으로 사용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다. 이집트에서 맥주는 부드러운 진정제로 인정되었고, 그리고 허브와 향신료 등 여러 의학용 혼합물을 섞는 기본 재료였다. 맥주는 끓는 물 로 만들기 때문에 보통 물보다는 오염이 덜 되며, 다른 혼합 요소들이 맥주 안에서 쉽게 용해된다는 장점이 있다. 기원전 1550년경의 이집트 의 의학 사료인 “에버스 파피루스The Ebers Papyrus" - 보다 오래된 문헌 에 근거를 두고 있긴 하지만 - 는 약초를 이용한 수백 개의 처방전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그들 중 많은 것이 맥주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 면, 양파 반쪽과 거품이 있는 맥주를 혼합하면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했고, 올리브를 분말화해서 맥주와 혼합하면 소화불량을 치료한다고했다. 샤프란 (saffron, 크로커스 꽃으로 만드는 샛노란 가루로 음식에 색을 낼 때 쓴다. 역주)과 맥주를 섞은 것으로 여성의 배를 마사지하면 출산의 진통을 완화한다고 했다.
- 맥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메소포타미아인과 이집트인의 모든 삶 속에 침투해 있었다. 그들이 맥주를 사랑했다는 것은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한 사회의 등장, 문자로 기록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맥주의 대중화는 잉여 농산물이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곡물 재배를 위한 최상의 기후 조건을 가졌기에 그곳에서 농경이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최초의 문명이 탄생했고, 그곳 에서 문자에 의한 기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맥주가 아주 풍부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맥주는 홉hops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지만 - 홉은 중세가 되어서야 맥주의 표준적인 요소가 되었다 - 맥주와 관련된 일부 관습들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맥주가 더 이상 노동의 대가로 사용되지 않고, 사람들이 더 이상 “빵과 맥주”라는 말로 인사하지는 않지만, 맥주는 지금도 세계의 많은 지역에 서 여전히 노동자를 위한 중요한 음료로 여겨지고 있다. 맥주를 마시기 전에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하는 것은 맥주에 마력과 같은 힘이 있다는 고대인의 믿음의 유산이다. 그리고 친밀하고 편안한 사회적 교류를 위한 맥주의 역할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그것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음료라는 의미다. 맥주는 문명화의 새벽 이후 석기 시대의 촌락 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연회장에서, 현대의 선술집이나 바에서 사람들 을 함께 어울리게 만들었다.

- 매주처럼 와인의 기원도 선사 시대이지만 상세한 내용은 알수가 없다. 와인의 발명 또는 발견은 너무 고대의 일이어서 단지 신화나 전설을 통한 간접적인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는 와인이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9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현대의 아르메니아와 이란 북부에 해당하는 자그로스 산악지대에서 처음으 로 생산된 것으로 제시된다. 세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 지역에서 와인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첫째로 야생의 유라시안 포도 품종인 비티스 비니페라 실베스트리스 Vitis vinifera sylvestris가 자생 하고 있었고, 둘째로 곡물 생산이 풍부해서 와인을 만드는 지역사회에 1년 내내 곡물을 식량으로 제공할 수 있었고, 셋째로 기원전 6000년경에 와인을 양조하고, 저장하고, 제공serving할 수 있는 도구인 도기가 발명되었다는 점이다.
- 고대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문명' 또는 '세련’과 동의어였다. 어떤 종류의, 그리고 언제 생산된 와인을 마시느냐가 그 사람의 문화적 세련미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맥주보다는 와인을, 보통 와인보다는 좋은 와인을, 연식이 짧은 와인보다는 오래된 와인을 선호했다. 그러나 어떤 와인을 선택하느냐보다도 중요시되었던 것은 와인을 마실 때의 태도였다. 와인을 마실 때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때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아실루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청동은 외모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와인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 물은 와인을 안전하게 만들지만, 와인 역시 물을 안전한 상태로 바꾸었다. 와인에는 병원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천연 항균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지만 오염된 물을 마시는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샘물이나 깊은 우물 또는 수조에 저장된 빗물을 선호했다. 와인으로 상처를 처리하는 것이 물로 씻어내는 것보다 감염의 위험이 적다는 사실 때문에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와인에는 병원균이 없고 항균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와인에는 소독이나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본질적으로 심포지엄은 지적 · 사회적 · 성적인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지만 그 핵심은 쾌락의 추구였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었던 모든 종류의 열정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분출구였기도 했다. 심포지엄에는 심포지엄을 탄생시켰던 그리스 문화의 최고와 최악 의 요소들이 공존했다. 심포지엄에서 마셨던 물과 와인의 혼합물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비옥한 은유적 토양을 제공했다. 그들은 그러한 조합을 개개의 인간에게나 크게는 사회 안에 혼재하는 선과 악의 공존에 비유했다. 심포지엄에는 참석자들이 절제를 벗어나 위험한 상태로 나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규칙이 존재했고, 따라서 심포지엄은 플라톤을 비롯한 다른 철학자들이 그리스 사회를 바라보는 렌즈 역할을 했다.
- 요약하면, 심포지엄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면서 좋은 면과 나쁜 면 모두를 내포하고 있지만, 플라톤은 적절한 규칙들이 준수된다면 심포지엄의 좋은 면이 나쁜 면을 넘어설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그가 아테네 교외에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40년 이상 철학을 가 르치고 자신의 작품의 대부분을 저술했을 때 심포지엄은 그에게 교육 방법의 모델을 제공했다. 어느 연대기에 따르면 플라톤은 매일 강의와 토론이 끝나고 나면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셨는데, 이는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무엇보다도 배우고 토론한 내용을 반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모임의 주목적은 지적인 측면에서의 재충전이었고, 플라 톤의 지시에 따라 적당한 양의 와인이 제공되었다. 당시의 기록에 따 르면 플라톤과 함께 식사했던 사람들은 다음 날 몸 상태가 아주 상쾌 했다고 했다. 그 모임에는 악대나 댄서들은 없었다. 플라톤은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질서 있는 방법에 따라 순서대로 말하고, 그리고 듣는 것”을 통해 서로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플라톤이 시작했던 이러한 모임은 오늘날까지 학문의 세계에 남아 있는데, 참가자들이 순서대로 발표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토론하고 논쟁하는 학문적 세미나 또는 심포지엄의 기본적인 형식이 되었다.
- 이전의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인 역시 와인을 만민이 즐기는 음료로 생각했다. 카이사르나 노예 모두 똑같이 와인을 마셨다. 그렇 지만 로마인은 와인 감평에 있어서 그리스인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마 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집주인은 자신이 마시는 낮은 수준의 와인을 안 토니우스에게 대접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와인은 부를 상징하고 음용자의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면서 사회적 차별의 상징이 되었다. 로마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과 가장 가난한 자들의 차이는 와인 잔에 담기는 내용물에 의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로마의 부유층에게 있어서 최고급 와인의 이름을 알고,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과시적 소비를 드러내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최고의 와인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부자이며, 그리고 와인의 종류에 대해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 저급하고 값싼 와인들에는 보존제로서 쓰이거나 또는 부패한 것을 은폐하기 위해 첨가제들이 가미되었다. 예를 들면, 암포라를 봉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역청pitch 을 가끔 보존제로서 와인에 첨가했 고, 그리스인이 그랬던 것처럼 소량의 소금이나 바닷물을 첨가하기도 했다. 서기 1세기의 로마의 농업에 대해서 썼던 콜룸멜라Columella는 그러한 보존제는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와인 맛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 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남긴 레시피에 따르면 첨가물을 가미해서 더욱 좋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했는데, 화이트 와인에 바닷물과 호로파(fenugreek, 장미목 콩과의 한해살이 풀로 높이 약 50cm까지 자란다. 잎은 복엽(겹잎)으로 3장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져 있다-역주, 두산백과 참조)를 넣어 발효시 키면 오늘날의 드라이 셰리(dry sherry, 스페인 남부에서 주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으로 식사하기 전에 마시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역주)와 매우 유사한, 강하면서 견과 맛이 나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와인에 꿀을 섞은 물섬Mulsum은 1세기 초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에 식전에 마시는 와인으로 인기가 있었고, 장미향이 나는 로자툼rosatum 도 같이 식전주로 즐겨 마셨다. 그러나 허브, 꿀 그리고 다른 첨가물들이 저급하고 질이 낮은 와인의 부족한 부분을 은폐하기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부 로마 인은 여행을 할 때 질이 낮은 와인의 맛을 높이기 위해 허브나 다른 향료를 휴대하기도 했다. 현대의 와인 애주가들은 첨가물을 사용했던 그 리스인이나 로마인의 방법에 대해서 코웃음을 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러한 방법은 평범한 와인을 더욱 풍미 있게 만들기 위해 오크를 사용하는 현대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모하메드가 알코올을 금지한 것은 주연 자리에서 두 명의 제자가 충 돌했던 사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언자가 그러한 사고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알라신에게 거룩한 가르침을 구했을 때 알라신의 답변은 단호했다. “와인과 도박은 (중략) 사탄이 만들어낸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을 피하면 번성할 것이다. 사탄은 와인과 도박을 수단으로 해서 너희들 사이에 반목과 증오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너희들은 알라의 존재를 기억하고,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라. 그것 들을 삼갈 수 있겠는가?” 이 명령을 위반하는 사람에게는 40대의 태형이라는 처벌이 가해졌다. 그러나 무슬림에게 있어 알코올에 대한 금지는 여러 문화적 요소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슬람의 부상과 함께 권력의 중심이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로부터 아라비아사막의 부족에게로 이동했다. 이들 부족은 바퀴 달린 이동 수단 대신 낙타를, 의자와 테이블 대신 쿠션을 사용했고, 최고의 세련미를 상징했던 와인을 금지 함으로써 이전의 엘리트들, 즉 그리스인과 로마인보다도 자신들이 우 월하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슬림은 기존 문명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라이벌 신앙인 기독교에서 와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무슬림이 와인을 적대시한 이유 중 하나다. 심지어 와인을 의약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아쿠아 비태의 매력은 잠재적인 의학적 효과가 아니라 단시간 내에 쉽게 취하게 만드는 힘에 있다고 생각했다. 증류주는 와인이 귀하고 비싼 북부 유럽의 추운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맥주를 증류함으로써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가지고 강한 알코올음료를 만드는 것이 처음으로 가능해졌다. 아쿠아 비태를 의미 하는 게일어 (gaelic, 스코틀랜드 켈트어-역주) uisge beatha(발음은 이슈커 바허로 하고, 이슈커는 '물'을, 바허는 '생명'을 뜻한다-역주)는 현대어인 whisky 위스키의 어원이다. 이 새로운 음료는 빠르게 아일랜드인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어느 연대기 작가는 아일랜드 족장의 아들인 리처드 맥라 네일의 1405년의 죽음에 대해 “생명의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후에 죽었는데 그것이 리처드에게는 죽음의 물이 되었다”라고 기록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아쿠아 비태가 “번트 와인burnt wine, 불타는 와인”으로 불렸고, 독일어로는 Branntwein 브란트바인으로, 영어로는 brandywine 브랜디와인 또는 줄여서 brandy 브랜디라고 번역되었다. 사람 들은 집에서 와인을 증류하기 시작했고 축제일에 그것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한 관행은 널리 퍼졌고, 또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기 때문에 독일의 뉴렘베르그에서는 1496년에 그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 영국 해군이 맥주 대신에 그로그를 마셨다는 것은 18세기에 영국이 해상의 지배권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 당시 수병들의 사망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괴혈병이었다. 지금은 비타민 C의 부족이 원인으로 알려진 소모성 질환이다.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18세기에 여러 번 발견되고 또 잊힌 것인데, 레몬 과 라임주스를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1795년에는 그로그에 레 몬이나 라임주스를 넣는 것이 필수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괴혈병의 발병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맥주에는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맥주에서 그로그로 대체한 것은 영국 수병들을 전 반적으로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반대는 프랑스 해군이었다. 프랑스는 맥주 대신 와인 4분의 3리터(오늘날의 와인 한 병)를 정기적으로 배급했다. 긴 항해를 하는 경우에는 16분의 3리터의 브랜디로 대체되었다. 와인은 소량의 비타민 C를 포함했지만 브랜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해군의 저항력이 강화된 것에 비해 프랑스 해군의 괴혈병에 대한 저항력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초래되었다. 어느 해군 군의관에 따르면, 괴혈병에 대한 영국 왕실 해군의 저항력은 전투력을 2배로 상승시켰고, 이는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에 승리할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럼이 최초로 발명되었을 때의 시점에서 본다면 이 모든 일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럼이 가졌던 최초의 중요성은 증류주, 노예 그리고 설탕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하면서 통화 수단으로 사용되 었다는 점이다. 럼은 노예를 사는 데 사용되었고, 그 노예를 이용하여 설탕을 생산하고, 설탕 생산의 찌꺼기로 럼을 만들고, 그 럼으로 다시 노예를 매수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해서 진행되었다. 프랑스의 무역 업자인 장 바보트는 1679년에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항상 많은 양의 프랑스산 브랜디를 가지고 갔는데, 최근에는 그 수요가 점점 줄었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 서안에서 상당한 양의 증류주와 럼이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21년, 어느 영국 무역 업자의 보고에 의하면 노예를 무역하는 아프리카 해안에서 럼은 “중요한 교역품”이 되었다고 했다. 심지어 럼으로 금도 살 수 있었다. 또 한 럼은 해안의 수용소에서 배까지 노예들을 싣고 운반하는 카누 조정자들과 경비원들에게 배급되던 브랜디의 역할을 넘겨받았다. 브랜디는 설탕과 노예를 대상으로 한 대서양 무역을 촉발하는 역할을 했지만, 럼은 그 무역을 더욱 활성화하고 더욱 커다란 이익을 남겨주었다.
- 일반적으로 각지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맥주와는 다르게, 그리고 특별한 지역에서 생산되고 무역의 대상이 되었던 와인과도 다르게, 럼은 전 세계로부터 재료, 사람 그리고 기술이 총합된 결과물이었고, 또한 여러 역사적인 힘이 상호 교차하면서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폴리네시아가 기원이었던 설탕은 아랍인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고, 콜럼부스에 의해 아메리카에 전해졌고,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예들에 의해 재배되었 다. 설탕의 찌꺼기를 증류해 만든 럼은 신세계에서 유럽의 식민주의자 들과 그들의 노예에 의해 소비되었다. 럼은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의 모험과 비즈니스의 산물이었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던 노예무역의 잔혹성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음료였다. 럼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글로벌 시대의 승리와 억압이 체현된 음료였다.
- 럼주와 당밀에 대한 관세는 아메리카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와 함께 럼주에 강렬한 혁명의 향을 가미했다. 1781년에 영국이 항복하고, 그리고 아메리카 합중국이 건국되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존 애덤스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당밀이 미국 독립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였다는 것을 고백할 때 왜 낯을 붉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많은 위대한 사건들이 그보다도 더 작은 요인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 총기 또는 전염병과 함께 증류주는 구세계의 거주자들이 신세계의 지배자로서 자신들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근대 세 계의 형성에 기여했다. 증류주는 수백만 명의 사람을 노예화하고, 강제로 이동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토착 문화를 정복하는 과 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오늘날 증류주를 볼 때 더 이상 노예제나 착취를 연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 증류주를 사용했던 방법이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항공기의 승객은 면 세품인 증류주 병을 손가방 안에 집어넣는 것은 증류주가 휴대하기 편하고 오랜 여행에도 상하지 않는 알코올음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금을 싫어하고 면세품인 증류주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럼의 밀수업자 또는 위스키 보이즈가 지녔던 반체제적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 17세기에 유럽에 커피가 소개된 충격은 아주 주목할 만한데, 그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음료는 아침 식사의 경우에도 약한 맥주나 와인이 었기 때문이다. 물은 오염되기 쉬웠기 때문에, 특히 지저분하고 사람 이 붐비는 도시에서 맥주나 와인 모두 물보다 훨씬 안전한 음료였다. (증류주는 마시면 취했기 때문에 와인이나 맥주처럼 매일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는 아니었다.) 맥주처럼 커피는 끓인 물로 만들었고, 따라서 알코올음료에 대신 하는 새롭고 안전한 음료가 되었다. 알코올 대신 커피를 마시면 약간 취해 느슨한 상태가 아니라 각성되고 활달하게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 고, 업무의 양이나 질 모두 향상되었다. 커피는 주정 상태가 아니라 깨어 있게 하고, 감각을 둔하게 하여 현실을 잊게 하기보다는 인지 능력을 높여주어 알코올과 아주 반대되는 음료로 여겨졌다. 
- 17세기 말까지 아라비아는 전 세계에 커피의 공급자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고 있었다. 1696년에 어느 페르시아 작가는 “커피는 메카 인근에서 재배되었다. 거기에서 지다 항구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수에즈까지는 배로 이동했고, 이후 낙타를 이용해 알렉산드리아까지 운송 했다. 그곳에 있는 이집트의 창고에서 프랑스와 베네치아 상인들은 그들의 고국에서 필요한 만큼의 커피콩을 구입했다” 라고 설명했다. 때 때로 커피는 모카에서 네덜란드까지 직접 운송되기도 했지만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처럼 커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럽의 국가들은 외국의 생산품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랍인이 자신들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 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커피콩은 선적되기 전에 살균 처리 되었는데, 이는 커피콩이 새로운 커피나무의 씨앗으로 사용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커피 생산 지역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같은 아랍의 독점 체제를 처음으로 깨뜨린 것은 네덜란드인이었 다. 그들은 17세기에 걸쳐 동인도제도(East Indies,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제도를 가리켜 부르는 역사적 명칭-역주)를 지배했던 포르투갈을 몰아냈고,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단숨에 세계 최강의 상업 국가로 부상했 다. 네덜란드 선원들은 아랍의 커피나무에서 잘라낸 가지를 훔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져갔고 온실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1690년대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자바에 위치한 바타비아에 커피 플랜테이션을 설치했는데, 그곳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으로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바에서 생산된 커피는 로테르담으 로 직접 운송되었고,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커피 시장을 장악했다. 전 문가들은 아라비아의 커피가 향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지만 가격에서는 자바의 커피에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 예멘에서 종교적인 음료로 탄생한 커피는 모호한 기원에서 출발해서 먼 길을 지나왔다. 커피는 아랍 세계에 침투했고, 그 후 유럽으로 건너갔고, 유럽의 강대국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커피는 알코올에 대한 대안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고, 특히 지 식인들과 사업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음료 자체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커피 하우스는 커피뿐만 아니라 대화를 제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커피하 우스는 사회적·지적 · 상업적 · 정치적 대화를 위한 전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제공했다.
-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서 금융혁신이 빠르게 이루어졌던 시기, 수 많은 주식회사의 설립, 주식의 거래, 보험 산업의 발전, 그리고 국채의 공공 매각 등이 모든 것은 런던이 암스테르담을 대신하여 마침내 세 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이를 가리켜 영국의 금융 혁명으로 부르고 있다. 이 혁명은 비용이 많이 드는 식민지 전쟁의 자금 조달을 위해 필요했고, 또한 커피하우스의 비옥한 지적 환경과 모험 정신 때문에 가능했다.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은 금융 분야에서 《원리》에 필적할 만한 책인데, 그는 이 책에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이론을 설명하고 지지했다. 즉 무역과 경제적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사람들의 자유재량에 맡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집필했는데, 그곳은 런던에서 스미스의 근거지였고 우편물을 수령하는 주소지였다. 또한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모이는 인기 있는 장소였는데, 스미스는 그들에게 국부론의 각 장을 보여주고 비판과 의견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런던의 커 피하우스는 근대 세계를 형성한 과학 혁명과 금융 혁명을 탄생시킨 용광로였다.
- 오늘날 커피와 카페인이 있는 다른 음료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우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커피가 도입될 당시의 충격과 초창기 커피하우스에 대한 인기를 상상하기 어렵다. 현대의 카페는 역사적으 로 빛났던 그들의 조상에 가까이 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커피는 여전히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정보를 논하고 발전시키고 교환할 때에 만나서 마시는 음료라는 점이다. 이웃들 의 커피 잡담에서부터 학문적인 콘퍼런스나 비즈니스 미팅까지 커피는 여전히 알코올처럼 자기 통제력을 잃은 염려 없이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음료인 것이다.
커피하우스의 원래 문화가 오늘날 가장 잘 알기 쉬운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은 카페인이 연료가 되어 정보의 교류를 촉진하는 인터넷 카 페나 무선 인터넷이 제공되는 장소, 그리고 모바일 세대들이 사무실과 미팅 장소 대신으로 사용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라 할 수 있다. 현 대 커피 문화의 중심이며 스타벅스 커피 프랜차이즈의 고향인 시애틀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회사들의 본거지라는 사실 이 경이롭지 않은가? 커피와 혁신, 이성, 그리고 네트워킹의 관계는 - 여기에 혁명적 열정의 질주까지 더해져서 -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영국 사회의 정상에서부터 하층민까지 모든 사람이 차를 마셨다. 유해 사업 그리고 사회적 변화는 서로 얽히면서 영국인이 차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현상은 18세기 말이 되기 전에 이미 외국인들이 주목했던 현상이었다. 1784년에 프랑스에서 온 어느 여행자는 “영국 전역에서 차를 마시는 것은 일반적이었고, (중략) 가 장 가난한 농부조차 부자와 마찬가지로 하루에 두 번 차를 마셨고, 차 의 전체 소비량은 어마어마했다” 라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온 어느 방 문자는 “차는 영국인에게 물 다음으로 불가결한 것이었다. 모든 계층이 차를 소비했고, 아침 일찍 런던의 거리에 나가면 많은 장소에서 옥외에 작은 테이블들이 설치되어 있고, 석탄 카트를 끄는 인부나 노동자들이 둘러앉아 컵에 들어있는 맛있는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국으로부터 세계 각 지로 전파되었고,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제국의 중심에 뿌리를 내렸다. 영국인은 집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대영제국의 강력한 힘과 광대했던 영토를 생각한다. 차의 부상은 세계 강대국으로서 영국의 성 장과 얽혀 있으며, 영국이 상업적 · 제국주의적 힘을 더욱 팽창시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 17세기에 많은 사무직 직원들, 비즈니스맨, 그리고 지식인들이 커 피에 탐닉했던 것처럼 18세기에 새롭게 탄생한 공장 노동자들은 차를 즐겨 마셨다. 차는 이렇게 새롭게 변화된 노동 환경에 최적으로 어울 리는 음료였고 여러 가지 형태로 공업화에 도움을 주었다. 공장의 주 인들은 종업원의 휴식을 위하여 “차 마시는 시간tea breaks"을 허용하 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농업 노동자들에게 제공되었던 맥주는 알코올 때문에 정신을 무디게 만들었지만 차는 카페인 때문에 오히려 정신을 예민하게 해주었다. 차는 길고 지루한 작업 시간 동안에 노동자의 예민함을 유지시켜주고,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를 다룰 때 집중력을 높여주었다. 수작업으로 하는 직공이나 방적공은 필요할 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기름칠이 잘 된 기계의 부품처럼 일을 해야만 했고, 차는 공장이 잘 돌아갈 수 있 도록 유지시켜주는 윤활유였다. 
또한 차에는 천연 항균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수인성 전염병의 발병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고, 차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물이 충분히 끊지 않은 경우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영국에서 이질의 발병률은 1730년대부터 떨어졌다. 1796년의 어느 관찰자는 이질과 다른 수인성 질병들의 “발병률이 크게 낮아져 서 런던에서는 그러한 질병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19세기 초경에 의사와 통계학자는 영국인의 건강 상태가 향상된 가장 큰 원인이 차의 보급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미들랜드(Midlands, 영국의 중앙부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으로 18세기와 19세기의 산업혁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가장 큰 도시로는 버밍햄 이 있다)에 위치한 공업도시들 근처에서 밀집된 형태로 생활하더라도 질병의 발생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차에 들어 있는 항균성분인 페놀이 모유 중에 엄마의 젖으로 쉽게 이동하기 때문에 유아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유아의 사망률이 감소했고, 마침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었을 때 필요했던 거대한 노동 인력의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 불법적인 약품이었던 아편을 차와 직접적으로 교환하는 형태의 무역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고, 동인도회사는 아편 무역이 드러나지 않도록 정교한 거래 구조를 고안했다. 아편은 벵골에서 생산되었고 1년에 한 번 캘커타에서 경매가 이루어졌는데, 회사는 그 이후에 아 편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모른 척했다. 실제로 아편은 인도에 근거를 둔 “지역 무역회사들country firms”이 구입했는데, 이들은 명목적으로는 독립적인 회사로서 동인도회사로부터 중국과 교역을 승인받은 회사 들이었다. 이 회사들은 경매를 통해 구입한 아편을 배에 싣고 광동의 하구까지 가서 은과 교환했고, 이후 린틴이라는 섬에 아편을 하역했다. 이곳에서 아편은 중국 상인에 의해 노를 갖춘 갤리선에 실린 후 해안으로 밀반입되었다. 지역 무역회사들이 아편을 직접 중국으로 보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인도회사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무역에 관여하지 않 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동인도회사는 회사의 배를 이용한 아편의 수송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세관 관리들은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중국의 아편 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으면서 동인도회사의 교묘한 사 기극을 눈감아 주고 있었다. W. C. 헌터라는 미국 상인은 당시의 사정 은 이렇게 설명했다. “아주 완벽했던 (외국인은 일절 관여하지 않은) 뇌물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에 비즈니스는 쉽게 그리고 정기적으로 진행되 었다. 새로 임명된 관리가 부임하는 등 때때로 장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보상 문제가 제기된다. (중략) 그러나 곧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중개인들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다시 나타나고 그 지역에 평화와 면책이 다시 허용된다.” 때때로 지방의 관리들은 린틴 주변을 배회하는 외국 배들을 향해 본토의 항구에 기착하 거나 그곳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는 위협적인 포고령을 발동했고, 중국 세관의 배가 외국 배를 최소한 지평선으로 사라질 때까지 추격하는 모 양을 양측이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관리들은 외국 밀수업자를 몰아냈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 19세기에 아메리카는 경제력을 자국 내에 집중했고, 반면 20세기에는 해외로 경제력을 돌리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후 미합중국은 세 번째 국면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소련 과의 냉전 체제였다. 양측은 군사력에서 팽팽했고, 전쟁은 경제전쟁으 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소련은 미국과 더 이상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세기라고 불릴 수 있던 시대인 20세기가 끝나 면서, 세계 경제가 무역과 통신으로 이전보다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는 글로벌 경제 체제가 되면서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겸비한 미합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확고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미국의 대두, 20세기의 전쟁, 정치, 무역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글 로벌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고 유명한 브랜드로 미국과 그 가치관 이 체화된 것으로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음료인 코카-콜라가 전 세계에 보급되는 과정과 잘 부합된다. 미합중국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콜라가 아메리칸 드림인 선택과 소비자 중심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경 제적·정치적 자유를 상징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콜라가 무자비한 글로벌 자본주의, 글로벌 기업과 브랜드에 의한 지배, 그리 고 지역문화와 가치를 훼손하면서 미국화 또는 미국식으로 균질화의 시도를 상징했다. 대영제국의 이야기를 한 잔의 차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지 미국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는 갈색의 달콤한 그리고 거품이 나는 코카-콜라의 이야기 속에 펼쳐져 있다.
- 미국의 젊은이들이 군인으로 징집되자 코카-콜라 회사의 사장인 로 버트 우드러프는 “군복을 입은 모든 이들에게 어디에 있는 5센트 코카-콜라 한 병을 제공하고 모든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라”고 지시했다. 코카-콜라는 이미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무알코올의 청량 음료는 군사 훈련 중에 지급되었다. 회사가 코카-콜라를 군에 적극적 으로 공급한다는 홍보 전략은 코카-콜라와 애국심, 그리고 전쟁에 대 한 지원 태도와 연결하면서 훌륭한 효과가 있었다. 코카-콜라는 미국 에서 멀리 떨어진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로부터 진심 어린 환영을 받았 다. 코카-콜라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병사들의 도덕심 유지에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당신의 회사가 이 비상사태가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에게 계속해서 코카-콜라를 제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라고 어느 장교는 코카-콜라 회사에 편지를 보냈다. “나는 코카-콜라가 군 에 복무 중인 젊은이들에게 도덕심을 세워주는 매우 중요한 상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이러한 수십 통의 편지를 증거 삼아, 그리고 군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워싱턴에 많은 로비를 했다. 그 결과 회사는 코카-콜라는 전쟁 수행에 중요한 상품이라는 이유 로 1942년에 설탕 배급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배급제의 실시로 경쟁 사들은 청량음료의 생산량을 반으로 줄여야 했지만, 코카-콜라는 이 전과 마찬가지로 생산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 코카-콜라 병을 선적하고 지구의 반을 돌아 군대가 주둔하 는 곳으로 가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 군수품을 실어 야 할 귀중한 선적 공간을 코카-콜라 병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그래 서 군부대 안에 특별한 병 작업 시설과 소다 디스펜서를 설치했고 코카-콜라 원액만 그곳으로 보내도록 했다. 이러한 기계를 설치하고 운 영하는 코카-콜라 직원은 많은 군인들에게 비행기를 수리하고 탱크 를 움직이는 기술자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들은 “기술 감독관technical observer" 이란 특별대우를 받았고 군대의 계급도 부여되었기 때문에 “코카-콜라 대령”으로 불렸다. 그들은 전쟁 기간에 전 세계에 64곳 이상의 군 기지에 병 작업 시설을 설치했고 약 100억 병의 코카-콜라를 공급했다. 기술 감독관들은 정글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휴대용 코카-콜라 기계를 고안했고, 잠수함의 좁은 해치hatch를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슬림형 기계도 개발했다. 또한 코카-콜라는 해외의 미국 군사기지 주변에 사는 민간인들에게도 제공되었는데 대부분이 그 맛에 매료되었다. 폴리네시아인 (Polynesia, 폴리네시아는 중앙 및 남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1000개 이상 섬들의 집단을 가리킨다-역주)들부터 줄루족(Zulus, 아프리카 원주민 의 하나로 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살고 있는 민족-역주)까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코카-콜라의 맛을 보게 되었다.
- 1945년에 연합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한 후에도 재건기의 3년간 군 기지에 설치된 코카-콜라의 생산 기계들은 계속 가동되었다. 그 후 생산 시설은 민간에 넘겨졌다. 그러나 그때쯤에는 미군 덕분에 전 세계로 퍼진 코카-콜라는 남극을 제외하고 지구상의 모든 대륙 위에 확고 한 기반을 구축했다. 회사의 어느 간부가 말한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덕분에 "코카-콜라의 매력이 거의 전 세계에서 인정되었다."
- 1997년에 발간된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각국에 있어서서 코카-콜라 소비량은 해당 국가의 글로벌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국제연합이 정한 기준에 따라 측정된) 풍요로움과 삶의 질,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자유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는 것이다. 매거진은 “발포성의 거대 시장을 가진 상품, 즉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입니다”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코카-콜라가 사람 들을 부유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든 것은 아니다. 이는 소비자 중 심주의와 민주주의가 확산될 때 발포성의 갈색 음료는 항상 함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어느날 탄산 소다수는 미합중국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로서 모든 액상 형태의 소비량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코카-콜라 회사는 단일 회사로서 가장 커다란 공급자이다. 세계적으로는 회사는 인류가 소비하는 총 액상의 3퍼센트를 공급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의 심할 바 없이 20세기의 음료이며, 그리고 20세기에 발생했던 미합중국의 부상,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 그리고 글로벌화의 진전 을 상징하는 음료였다. 코카-콜라를 인정하는 안 하든 그 음료가 가진 매력의 너비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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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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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나 분자를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완전한 진공 상태의 공간에도 전 자기파가 존재한다면 그 공간의 온도를 결정할 수 있다. 공간에는 한 가지 파장의 전자기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파장의 전자기파가 섞여 있다. 공간에 포함되어 있는 전자기파의 파장 분포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 그래프가 몇 도의 물체가 내는 흑체복사 그래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간에 포함되어 있는 전자기파 의 파장과 세기 분포가 나타 내는 온도가 그 공간의 온도 가 되는 것이다. 우주 공간에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라고 부르는 전자기파가 퍼져 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는 우주가 시작되던 빅뱅 시기에 만들어진 전자기파가 우주가 팽창하면서 식은 채로 우주 공간에 남아 있던 전자기파이다. 따라서 우주 공간에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가 없는 곳이 없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는 온도가 2.725K인 물체의 흑체복사 그래프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우주 공간의 평균 온도는 2.725K이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추운 곳이다. 그러나 별 부근에는 별이 방출하는 에너지로 인해 우주의 평균 온도보다 훨씬 온도가 높다. 별들은 차가운 우주 여기 저기에서 불타고 있는 작은 모닥불들이다. 우리는 태양이라는 모닥불 가까운 곳에서 돌고 있는 지구라는 암석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 기체의 상태방정식은 이상기체에만 적용된다. 이상기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기체를 말한다. 우선 기체 분자가 실제로 차지하는 부피가 전체 부피에 비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 기체 분자 자체가 차지하는 부피가 크면 기체 분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기체의 성질이 나타나지 않는다. 압력이 아주 높지 않은 대부분의 기체는 이런 조건을 잘 만족시킨다.
이상기체가 되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기체를 이루는 분자들 사이에 탄성 충돌 이외의 상호작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체 분자들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하고 있지만 중력은 매우 약해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체 분자가 전하를 띠게 되면 전기적 상호작용이 기체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전하를 띤 입자, 즉 이온을 포함하고 있는 기체는 이상기체와 다르게 행동한다. 따라서 전하를 띤 입자를 포함하고 있는 플라스마는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을 이용하여 다룰 수 없다.
이상기체가 아닌 실제 기체의 경우에는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이 아니라 기체 분자의 실제 부피와 분자 사이의 상호 작용을 보정해 준 약간 다른 형태의 상태방정식을 사용하여야 한다. 과학자들은 실제 기체의 상태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상태방정식을 제안했다. 실제 기체의 행동을 나타내는 방정식들 중에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였던 요하네스 판데르 발스(1837~1923년)가 제안한 방정식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밀한 실험결과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이상 기체 대신 실제 기체의 상태방정식을 이용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을 이용하여 기체의 행동을 분석한다. 주로 분자들 사이의 화학반응을 연구하는 화학에서는 실제 기체의 상태방정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기체의 일반적인 성질을 분석하 는 물리학에서는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을 주로 이용한다.
- 카르노가 얻은 결론
1) 열기관의 열효율은 가역기관의 열효율보다 좋을 수 없다. 
2) 가역기관의 열효율은 열기관을 작동시키는 물질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열기관이 작동하는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의 온도 차에 의해 결정된다.
카르노가 얻은 결론이 중요한 것은 이 결론이 후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이용해 다시 증명된 후 열기관의 작동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카르노가 후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열소 설을 이용했음에도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가역기 관과 초능기관을 비교한 논리적 분석 방법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 열이 열소의 화학 작용이라는 열소설을 받아들이지 않은 과학자 들은 카르노가 열소설을 취했다는 이유로 그의 분석 방법을 불신했을 뿐만 아니라, 열효율에 상한선이 있다는 카르노의 결론도 잘못되었다고 단정했다.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얻어낸 결론이 옳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물리학자로 글래스고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을 중 심으로 활동하면서 물리학에서는 물론 공업 기술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던 켈빈은 열기관의 열효율에 최댓값이 존재한다는 카르 노의 결론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년 동안이나 잊혀졌던 카르노의 논문을 찾아내 세상에 소개한 켈빈은 가역기관의 열효율이 열기관의 종류에 관계없이 두 열원의 온도 차이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결론을 유도한 카르노의 증명 방법에 큰 감명을 받았다. 켈빈은 열기관의 문제를 넘어서 열의 본성에 대한 무언가가 그의 논문 속에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카르노의 분석결과를 재 평가한 켈빈에 의해 카르노의 연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르노가 열기관의 열효율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는 아직 잘못된 이론인 열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열역학의 과제는 열소설을 이용하지 않고도 어떻게 카르노가 얻어낸 결론을 설명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열이 열소라는 물질의 화학 작용이 아니라 에너지의 한 종류라는 것을 밝혀내야 했다.
- 클라우지우스는 1850년에 발표한 〈열의 동력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열역학이 봉착하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해결 방법을 제안했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열기관이 작동하기 위해 높은 온도의 열원과 낮은 온도의 열원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에너지 보존법칙과 연관지어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우지우스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클라우지우스는 열이 왜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흐르는지 를 설명하려고 하는 대신 그것을 열이 가지고 있는 본성의 하나로 받 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말해 열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흐르는 것을 새로운 열역학 법칙으로 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새로운 열역학 법칙은 에너지 보존법칙과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열과 관계된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라 열소설을 기초로 하여 유도한 카르노의 원리도 새로운 열역학 법칙을 이용하여 유도할 수 있었다. 클라우지우스는 에너지 보존법칙과 새롭게 제안한 법칙을 이용해 열역학의 체계를 세워 나갔다. 클라우지우스가 제시했던 열역학의 법칙들을 그가 쓴 표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법칙 : 일은 열로, 또 열은 일로 변할 수 있다. 그때 한쪽의 양은 다른 쪽의 양과 같다. 
제2법칙 : 열은 주변에 아무런 변화를 남기지 않고 저온의 물체에서 고 온의 물체로 이동할 수 없다.
클라우지우스로 인해 마이어와 헬름홀츠, 그리고 줄이 주장했던 에너지 보존법칙이 열역학 제1법칙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열이 높 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흐르는 것을 나타내는 새로운 법칙은 열 역학 제2법칙이 되었다. 열역학 제2법칙의 도입으로 더 이상 왜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흐르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남은 문제는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을 이용하여 열역학과 관련이 있는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뿐이었다.
클라우지우스가 열역학 제2법칙을 제안한 후인 1851년에 출판 된 논문에서 켈빈은 또 다른 형태의 열역학 제2법칙을 제안했다.
제2법칙 : 하나의 물체에서 열을 빼내 그것을 모두 같은 양의 일로 바꿀 수 있는 열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운동 에너지는 모두 열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만 열에너지는 모두 운동 에너지, 즉 동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켈빈의 열역학 제2법칙은 열기관의 작동을 통해 확인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열역학 제2법칙은 두 가지 다른 표현이 있게 되었다.
- 클라우지우스는 새로 도입한 엔트로피를 이용하여 열역학 제2법칙의 두 가지 표현을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엔트로피는 열량을 온도로 나눈 값이므로 열량이 같은 경우, 높은 온도에 있을 때보다 낮은 온도에 있을 때 엔트로피가 크다. 따라서 열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르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변화이고, 반대로 열이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흐르는 것은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변화이다. 열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흐른다는 것은 열이 엔 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 운동 에너지나 위치 에너지와 같은 역학적 에너지의 엔트로피는 0이다. 따라서 역학적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 뀌는 것은 없던 엔트로피가 생겨나는 것임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열에너지가 모두 운동 에너지로 바뀌는 것은 있던 엔트로피가 0으로 되는 것이므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이다. 따 라서 열을 모두 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으로만 에너지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클라우지우스가 설명한 열역학 제2법칙과 켈빈이 설명한 열역학 제2법칙은 모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통합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기관이 작동하는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으므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엔트로피 감소 불가능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보존되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그냥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엔트로피를 이용하여 열역학 제2 법칙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열역학 제2법칙 -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고립된 계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없다.
- 엔트로피를 에너지의 효용성을 나타내는 양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엔트로피는 에너지가 얼마나 쓸모 있는 에너지인지를 나타내는 양이다. 엔트로피가 낮을수록 효용성이 큰 에너지이다. 따라서 같은 열에너지라도 높은 온도에 있는 열에너지가 낮은 온도에 있는 열에너지보다 효용성이 크다. 
에너지 중에서 가장 효용성이 큰 에너지는 운동 에너지나 전기 에너지와 같이 엔트로피가 0인 에너지이다. 그리고 쓸모가 적은 에 너지는 낮은 온도로 흘러가버린 열에너지이다. 따라서 절대 0도에 있는 열에너지가 가장 효용성이 작은 에너지이다. 세상은 효용성 큰 에너지가 효용성이 작은 에너지로 바뀌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열이 가지고 있는 비가역적인 성질을 잘 나타낸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인해 일단 열로 바뀐 역학적 에너지는 모두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물론 작동하는 동안에 엔트로피가 보존되는 카르노 기관과 같은 이상기관에서는 원래 상태 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이상기관은 실제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열기관에서는 작동하는 동안에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엔트로피가 0인 운동 에너지는 마찰로 인해 열로 전환되고, 열은 보다 낮은 온도로 흘러간다. 켈빈은 이것을 에너지의 확산이라고 했다. 켈빈은 ‘역학 에너지가 확산되려고 하는 자연의 보편적 경향에 대해서’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물질 세계에는 에너지가 확산되려는 보편적 경향이 존재한다. 
(2) 열에너지를 원래의 역학적 에너지 상태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되돌려놓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의 운동 에너지가 열로 전환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3) 현재 생명체에 적용되고 있는 물리법칙에 의하면 지구는 과거 일정 기간 동안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천체였으며, 다가올 유한한 미래에 다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천체가 될 것이다.
켈빈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을 고온 의 열원으로 하고 대기권 밖의 우주 공간을 저온의 열원으로 하는 커다란 열기관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은 모두 지구라는 거대한 열기관의 실린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언젠가 열원이 식어 지구의 온도가 우주공간의 온도와 같아지면 지구라는 열기관이 작동을 멈춘 죽음의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 클라우지우스도 엔트로피 개념을 제안한 1865년 논문의 마지막 절에서 켈빈의 생각을 인용하여 열역학 법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놓았다.
(1)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2) 우주의 엔트로피는 최댓값을 향해 변해간다.
엔트로피는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명제는 그 간단함 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증가나 감소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방향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시간에 물리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열역학은 증기기관이라는 기술적인 발명품이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열역학의 발전으로 열기관의 작 동을 설명하는 것을 뛰어 넘어 물리학의 다른 분야는 물론 화학, 생 물학, 우주론 등에까지 적용되는 새로운 물리법칙의 발견으로 이어 졌다. 그러나 아직 열랑을 온도로 나눈 양인 엔트로피가 왜 증가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없었다.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흐른다고 했던 열역학 제2법칙을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 다는 말로 바꿔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이용하여 열과 관련된 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엔트로피가 왜 항상 증가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확실하 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에 대한 통계물리학적 해석이 등장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그렇다면 열역학적으로는 에너지를 재생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마디로 말해 에너지를 재생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모든 에너지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한 번 증가한 엔트로피를 되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용광로에서 나오는 폐열은 온도가 높아 아직 엔트로피가 매우 낮다. 따라서 이런 열을 난방용이나 온실용으로 사용 할 수는 있다. 이것은 에너지 재활용의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것도 에너지를 재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태양 에너지나 풍력, 지열 등은 어떤 에너지를 재생시킨 에너지가 아니다. 이런 에너지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화석 에너지와 다른 것은 계속 사용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에너지라는 점이다. 영어에서는 재생 에너지를 renewable energy라고 부른다. 이 말을 과학적 고려 없이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여 재생 에너지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그러나 renewable energy라는 말은 쓸모없게 된 에너지를 재생한 에너지라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의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재공급 가능한 에너지 또는 계속 공 급 가능한 에너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재공급이나 계속 공급이라는 것도 인류 문명의 시간 스케일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영원히 재공급이 가능하지는 않다.
- 지구나 금성, 그리고 화성 정도의 질량을 가지는 천체의 중력은 산소와 질소,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같은 분자량이 큰 기체 분자를 붙들어 두기에는 충분하지만, 수소와 같이 빠르게 운동하는 기체 분자를 잡아둘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 행성에서는 가벼운 분자들이 우주로 날아가버려 무거운 기체 분자들로만 이루어진 대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달이나 수성과 같이 질량이 작은 천체들의 중력은 천천 히 운동하는 무거운 기체 분자들을 잡아두기에도 충분하지 못해 모든 기체 분자들을 잃어버려 대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 천체가 되었다. 반면에 목성, 토성과 같이 질량이 큰 천체는 모든 기체를 잡아두기에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어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대기층을 가지고 있다. 태양계가 만들어진 우주의 물질은 주로 수소 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열역학 제2법칙을 통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열량을 온도로 나눈 양을 엔트로피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정의된 엔트로피는 열량과 온도 만 측정하면 쉽게 그 양을 알 수 있고, 여러 가지 열역학적 과정에서 엔트로피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 볼츠만은 거시 상태에 포함되어 있는 미시 상태의 수를 이용해서 새롭게 엔트로피를 정의했다. 수없이 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체계에서 이 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미시 상태의 수를 직접 측정하여 엔트로피를 알 아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측정 가능한 양들을 이용해서 엔트로피를 계산해 낼 수 있다. 따라서 계산 결과를 실험결과와 비교해 볼 수 있다. 
통계적으로 정의한 엔트로피가 과학적인 물리량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론적으로 계산한 결과를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역학이나 통계물리학에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법칙이다. - 수렵과 채취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수렵과 채취를 포기하고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렸고, 농경이 시작된 시점으로부터 산업사회로 옮겨가야 했던 시점까지도 수천 년이 걸렸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전환되고 불과 수백 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리프킨은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효율 적인 것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100만 년 전과 비교 할 때 오늘날에는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이 1000배가 넘는다. 인간이 해야 할 더 많은 일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 가 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적게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를 사용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있다. 그것은 열역학의 측면에서 보면 진보가 아니라 퇴보이다.
리프킨은 사회와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더 질서 있는 사회로 발 전한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이나 역사관은, 인류 역사는 더 많은 에너 지를 사용함으로써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입각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리프킨은 새로운 세계관에 입각하여 사회와 개인이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방향으로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을 내세워 인류 역사를 발전하는 과정이 아니라 효용성이 큰 에너지를 소모하여 쓸모없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퇴보의 과정으로 본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 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와 인류 역사에는 고립계에서만 성 립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류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으나 인류 역사에 영향을 준 것은 에너지만이 아니 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에너지의 효용성만을 문제 삼는 것은 인류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문화나 문명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중앙 집중식 제어가 더욱 강화되는 이유 역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정치 및 경제 기구들도 기술이나 기계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변환시 키는 장치이다. 이들은 사회 전체를 통해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을 더 욱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흐름의 모든 단계에서 에너지는 변환되고 교환되며 폐기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는 더욱 분산되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 흐름이 방해를 받는다. 
에너지 흐름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구석구석에서 점점 더 빨리 증가하는 무질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 및 경제기구들은 무질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강력한 기 구들을 만든다. 무질서가 너무 커져 사회 기능이 위협받을 정도가 되는 시점이 되면 더욱 큰 중앙 집중적 기구가 나타나 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국가는 때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 기구는 더욱 강력해지고 중앙 집중적이 된다.
우리는 진보라는 이름하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따라서 더 빠른 속도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역사는 유용한 에너지를 무용한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이다. 우리 문명이 오래 존속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진보가 아니라 에너 지 흐름의 속도를 줄여 엔트로피 증가의 속도를 줄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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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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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인생수업

예술 2021. 5. 6. 22:16

- 목차
1장 공부는 못해도, 잘생겼다 불운 극복법 
2장 장점을 극대화하다 직업 선택법 
3장 나를 키워줄 도시를 찾다 청춘의 여행법 
4장 스승을 능가하는 비법을 찾다 청출어람의 학습법 
5장 인생에서 때로는 측면 돌파 나와 맞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6장 창조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비주류로 주류의 스타가 된 비법 
7장 마무리 짓지 않아도 괜찮다 야심 관리법 
8장 깔끔히 포기해야 새 길이 열린다 인생의 두번째 기회를 만드는 법 
9장 무시와 좌절을 우아하게 넘어서다 분노 사용법 
10장 자기다움으로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다 자아 유지법 
11장 미켈란젤로와 세기의 대결을 벌이다 경쟁자 관리법 
12장 마음을 과학으로 표현하다 모나리자의 미소법 
13장 시대에 맞은 고유한 성이 있다. 창조의 비법 
14장 평생 노력했던 그 사람 실패 사용법 
15장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레오나르도를 존경하는 진짜 이유 융합형 인재의 시대 

- 15~16세기의 르네상스와 21세기는 모두 '융합의 시대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에서 쌓은 지식으로 그림을 발전시켰고, 해부학적 관점으로 건축을 바라본 융합의 창조자였다. 그는 신을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남들처럼 무조건적으로 믿지도 않았으며, 자연과 세계를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었다. 시대와 불화하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그는 신과 같은 재능을 갖고 태어난 천재가 아니라, 왕성한 호기심을 끈질기게 해결한 노력형 재인이었다.
- 세르 피에로는 세속의 욕망이 강한 사람으로, 피렌체에서 일을 하기 위해 빈치의 집을 자주 비웠다. 아버지 없이 자란 레오나르도에게 단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떤 종류의 권 위는 복종하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권위가 위협받는 현실은 곧 세계가 붕괴하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주 어릴 때 부터 권위가 없는 상태에 적응해야 했던 레오나르도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위를 포기하는 법을 일찍 깨우쳤다. 그로 인해 대담한 과학적 탐구로 상징되는 지식 추구와 남들의 비난에도 꿋꿋이 제 길을 가는 독립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랬다.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젊은이들은 신앙도 잃는다는 프로이트 의 말을 받아들이면,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교황 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광은 그만큼 사라진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 고 싶다는 열망으로도 이해된다.
이렇듯 아버지로 상징되는 일체의 권위와 권력을 레오나르도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공백은 과학적 탐구 정신으로 채워졌다. 불운이 반드시 불행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생아로 태 어났기에 그는 수학과 라틴어, 그리스어 읽기, 쓰기 등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대학에도 가지 못했으며, 주류 사회에 편입될 가능 성도 희박했다. 훗날 스스로를 일컬어 “학문이 없는 자Uomo Senza Lettere"라고 했지만, 지식에 대한 강한 욕구로 노년에는 라틴어를 독학으로 깨우쳐 고전을 읽을 정도였다. 그러니 저 말은 자조나 한탄이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글을 읽고 쓰기만 하 는 자들과 달리, 그는 스스로 “경험의 신봉자Disciepolo Della Speriena"로 당당했기 때문이다. 
시련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출생의 불운이 성공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맹자의 말도 레오나르도의 삶의 모퉁이마다 잘 들어맞는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먼저 그의 마 음을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격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레오나르도는 타고난 장점인 외모를 발전시켜 얻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덕분에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의 감각에서 생겨난다. 젊은 시절에 얻는 것은 노년의 비참함을 이겨내게 해준다. 그리고 지혜를 노년의 양식으로 삼기를 바란다면, 저장해둔 양식이 늙어서 부족하지 않도록 젊은 시절에 노력하라.
- 같은 시대를 살더라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달 라진다. 레오나르도가 15세기 후반에 태어났다는 사실보다. 피렌 체에서 10대 후반부터 15여 년을 보냈다는 점이 그의 예술세계에 서는 더 중요하다. 그가 밀라노나 로마에서 성장했다면 상당히 다른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도시도 사람처럼 개성이랄까 고유한 유전자 DNA가 있어서, 나를 키워줄 수 있는 특징과 분위기를 품은 도시에서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은 상당히 가치 있다. 
- 새로움을 추구하려면 먼저 과거의 것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에 뿌리내리지 못한 새로움은 치기어린 시도에 그칠 뿐이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공부한 브루넬레스키처럼, 레오나르도는 이전 시대의 회화를 자신의 시대에 맞게 재창조해냈다. 모든 혁신은 현실에 발을 디뎌야 쓰임새가 생긴다.
- "레오나르도는 옷을 든 천사를 그렸다. 그때 그는 아직 매우 어렸지만 베로키오가 맡았던 다른 인물보다 훨씬 빼어나게 그렸던 것이다. 베로키오는 어린 제자가 자신보다 색채 처리와 묘사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결국 베로키오가 붓을 꺾는 원인이 되었다.”
- 과장을 양념으로 자주 사용한 바사리의 말을 그대로 믿긴 어렵겠으나, 이후 베로키오가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 이유를 바사리는 자기보다 뛰어난 도제를 향한 스승의 질투 탓으로 돌렸는데,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단 베로키오는 그리 옹졸한 성격이 아니었고, 그림이 개인의 예술작품보다 문화 상품으로 인정받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공방운영자 베로 키오에게 솜씨 좋은 제자는 탁월한 직원으로 기뻐할 일이었다. 따라서 베로키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차츰 그림은 레오나르도와 다른 도제들에게 맡기고, 베로키오 자신은 그보다 수익성이 좋은 조각과 세공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크다. 흐르는 물에 담근 예수의 발을 통해, 당대 최고의 데생 전문가로 인식되던 베로키오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위의 바사리의 말은 실력 좋은 선생에게 잘 배운 제자 레오나르도의 빛나는 재능을 돋보이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런 평가는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점차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가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역사적인 기록 도 이를 뒷받침한다. 
1472년 스무 살의 레오나르도는 수련생활을 끝내고 보티첼리 와 함께 콤파냐 디 산루카에 가입하여 '피렌체의 장인 레오나르 도Maestro Leonardo Fiorentino 로서 독립 화가가 되었다. 당시 관례대로 베로키오와의 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 유럽에서 미술은 오랫동안 정해놓은 방식대로 그려야만 했다. 몇몇의 선구자적인 화가들이 그에 반기를 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렸는데, 조토 디 본도네 Giotto di Bondone, c.1267~1337가 대표적이다. 조토는 중세에 르네상스의 씨앗을 심은 화가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종교화에 인간적인 표정을 불어넣었다. 조토는 세상의 생각보다 자신의 눈을 믿었고, 그림에 인간의 감정을 담아냈다. 그의 눈은 손을 통해 그림으로 구현됐다. 조토의 혁신적인 눈과 손을 가지려 노력한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과학의 위대한 선구자들 의 가르침을 흡수했고, 조토가 도착한 지점을 지나서 르네상스에 걸맞는 종교화를 구현했으니, 조토가 꾸었던 꿈은 레오나르도에 의해 마침내 이루어졌다.
- ‘문명 이야기 신앙의 시대’를 쓴 역사가 윌 듀랜트에 따르면, 교회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공포심 을 꼽았다.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나뉜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과 논리적인 반박은 매우 위험했지만, 레오나르도는 한 번 시작된 의문과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람 들의 죄를 없애준다며 교회가 팔았던 면죄부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비판했다.
"갖가지 다양한 물건이 공식적으로, 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린다. 그 물건들은 그만한 가치도 없고 또 어떤 힘도 갖고 있지 않으며, 주께서 그 물건들을 팔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정의로 이를 막을 수 없단 말인가.”
-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자연을 탐구하면서 이단의 정신이 생겨나서 가톨릭과 불화하게 됐고, 기독교인보다는 철학자의 길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레오나르도 사후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레오나르도가 생전에 스스로 '이단의 정신'을 운운했다면 제 명대로 살기 어려웠을 텐데, 그저 자신의 노트에 기록만 했으니, 교회는 레오나르도의 불경한 생각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과학자였으나 사상가는 아니어서 자신의 의심과 발견으로 세상을 바꾸거나 기존 진리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없었다. 내가 궁금하고 의심이 들어 탐구해서 해결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 창조성은 변방에서 비롯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 혹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한다면 창조성은 발휘되지 못한다. 시대의 중심과 사회의 주류는 현상 유지에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에, 주류의 힘이 미치지 않는 비주류의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들이 만들어지기 쉽다. 왼손잡이 사생아이자 동성애자, 채식주의 자 등 사회의 비주류였던 레오나르도는 종교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가졌고, 그것을 새로운 관점과 기법으로 르네상스의 종교 화를 그렸다. 바로 이것이 치열한 피렌체 예술시장에서 젊은 레오나르도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비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이 빛이라면, 그림자는 미완성작이 많다는 것이다.
- "좋은 화가가 그려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인간, 그리고 그 영혼의 의도이다. 앞의 것을 그리기는 쉽지만, 뒤의 것은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레오나르도는 이미 성취한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만족을 몰랐고, 건축과 해부학 같은 분야를 파고들어 얻은 새로운 발견들을 그림에 완벽하게 녹여내고 싶었다. 욕심은 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창작 과정에는 장애물로도 작용한다. 생산성에는 커다란 결점이나, 완성작에는 장점이다. 압도적인 장점 하나는 자잘한 단점을 덮는다. 그는 적은 수의 작품을 완성했으 나, 스프링처럼 많이 움츠렸다가 튀어오르듯 완성작들은 아주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니 미완성작이 많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30여 점이나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 그림은 생각의 표현물이다. 문제는 누구의 생각을 표현하느냐 다. 레오나르도의 시대는 교회(교황과 성직자)와 왕(귀족) 같은 주문자의 생각을 담아내야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제 생각을 담으려 했다. 이것은 표현기법의 문제를 넘어, 화가를 그림의 주체로 믿 었다는 뜻이다. 그림의 제작비용과 실력에 대한 대가로 거래를 하 나, 내 창작물은 내 생각대로 완성하겠다'는 태도다. 따라서 레오나르도는 주문자의 요구를 자신의 욕구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네와 반 고흐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에서야 조금씩 받아들여진 이러한 생각을, 레오나르도는 무려 400년 앞서서 실행했다. 따라서 그의 미완성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독립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피렌체 예술시장의 큰손인 성직자들은 중도 포기를 일삼고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레오나르도에게 점점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시대와 맞지 않는 예술관도 문제였다. 레오나르도는 주문자 화가의 관계보다 후원자 - 예술가의 관계를 원했으나, 피렌체의 상인 자본가들은 그림과 조각 부분에서 세속적인 욕구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브라만테,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를 더 선호했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도시는 달라진다. 피렌체는 레오나르도를 장인으로 키워냈으나, 그가 실력을 꽃피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희망 없는 곳에서는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렇다고 막연한 희망을 꿈꾸며 무턱대고 떠날 수는 없었다. 우선 '피렌체 출신의 장인'이 후광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곳, 예술 후원자가 많은 군주국가, 그림과 조각 등에 대한 수요가 많은 곳일수록 승부를 걸어볼 만했다.
그림에 흥미를 잃고 불안과 걱정의 나날을 보낼 때, 희망의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밀라노 군주가 로렌초 메디치에게 실력 좋은 화 가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밀라노는 레오나르도가 원한 조건을 대체로 만족시키는 곳이었다. 그는 밀라노 왕의 후원을 받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이 곧 이뤄지리라는 기대로 부풀어올랐다.
여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스승 베로키오가 밀라노 궁정 과 일한 적 있었고, 당시 「수태고지」와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등을 그리면서 레오나르도의 실력도 꽤 인정받았던 터였다. 하지 만 로렌초가 선택한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이루 말할 수 없 는 실망은 곧 로렌초가 레오나르도를 음악가로 보내기로 결정하 면서 희망으로 되살아났고, 서른 즈음의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난다. 이것이 여행에 그칠지, 이주가 될지는 전적으로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 1452~1508에게 달렸다.
- 인생에서 늘 같은 것만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시기마다 원하는 것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10대부터 20대까지 레오나르도가 원한 것과 30~40대에 원하던 것은 분명히 달랐다. 나이, 도시, 주변 사람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아울러 살펴보면, 그 변화는 확연하다. 10대와 20대에는 자신의 자유로운 기질이 너그러이 받아들여지며, 새로운 학문과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가들이 즐비한 피렌체에서 과거와 현재의 생각들을 스폰지처럼 수용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배경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밀라노로 옮겨와 30대를 맞았다. 그것은 실로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 덕분에 루도비코를 위시한 새로운 주문자들과 만났고, 새로운 협력자(와 제자)들과 아틀리에를 열고, 새로운 학문에도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림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의 결실이 그림으로 흘러들었고, 피렌체의 세련됨에 밀라노 궁정의 화려함을 더한 우 아한 스타일이 구축되면서, 레오나르도의 이름이 이탈리아 전역 으로 퍼지게 된다. 밀라노로 가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공 이었다. 사는 장소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레오나르도의 출생 DNA는 밀라노의 환경 DNA와 만나면서 활짝 피어났다. 영광의 뒤편에서는 궁정 대신들의 무시가 여전했으나, 레오나르도는 아주 우아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그들에게 복수한다. 비트루비우스 인간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레오나르도는 궁정인들을 “권위에 의존하는 것으로 토론을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단지 지성이 아닌 그의 암기력을 사용하고 있을 뿐” 이라며 고전을 외워 반복만 해댄다며 진정한 배움을 모르는 나팔수이자 다른 사람들의 노동 덕분에 외모를 치장하고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연에서 직접 길어올린 자신의 지식이 더 우월함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밀라노에서 새로운 기회로 부풀었던 가슴은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고대 서적을 읽기 위해 뒤늦은 나이에 라틴어 동사 변화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지식을 사랑했고, 그것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괴로움과 쓰라림을 대가로 치렀다. 그런 레오나르도를 봤는지, 1497년경에 라틴어 학자 빔보 추기경은 라틴어 '아마레amare를 사랑하다, 괴롭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사랑은 곧 괴로움이었으니, 지식을 사랑한 레오나르도는 괴로움도 컸다. 애석하 게도 라틴어는 금세 늘지 않았지만, 그는 뜻밖의 성과를 얻었다. 결정적 계기는 고대 로마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 가 쓴 건축이론서인 『건축 10서 De architectura libri decem』다. 그림 없이 글로만 쓰인 터라 레오나르도는 주변의 도움을 얻어가며 겨우 읽어낼 수 있었는데, 피렌체에서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를 알게되었을 때만큼이나 강한 몰입으로 비트루비우스의 생각을 흡수 했다.
"균형잡힌 인체의 부분들과 관련된 원리를 정확히 따르지 않는다. 면 그 어떤 신전도 조화와 비례가 없으므로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
비트루비우스는 원형과 사각형의 조합이 완전한 모양을 만들어내며, 심지어 그것이 인체의 완전성과도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인체와 건축은 관련이 깊다는 비트루비우스의 의견에 동의한 레오나르도는 건축가를 '건물의 의사醫師'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건축 디자인과 인체해부학의 밀접한 연결성을 이해했고, 해부학 스케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분노로 촉발된 공부가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건축, 인체해부, 생리학 같은 분야의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게 만들었다.
"세계의 모든 것이 일련의 보편 법칙, 원리, 관계, 힘 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로 묶여 있다는, 거의 두려울 만큼의 우주적인 장대함으로 깨달았을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세계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충분히 부지런히 해나간다면, 사물의 내부 원인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이런 관점에서 회화는 세상에 대한 모사가 아니었고, 자연 피조물의 성질과 아름다움, 세계의 조화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었다. 사람의 몸은 기어와 도르래 등 다양한 부품들로 구성된 일종의 기계이고, 기계는 조화와 균형을 갖춘 유기적인 몸과 같으며, 같은 원리로 건축은 해부학이요, 해부학은 지리학, 지리학은 수학, 수학은 기하학, 기하학은 음악, 음악은 일종의 물리학이라는 결론 에 도달했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수數, 소리, 무게, 시간, 공간, 존 재하는 모든 힘에서 파악되는 비례라고 믿었다.
생각은 이렇게 했으나,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다른 사람들 에게 전달하자니 막막했다. 레오나르도는 이해력은 좋았으나 자신이 이해한 것을 상대에게 풀어 설명하거나, 관찰한 것을 요약하는 데는 서툴렀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깨달음을 그림으로 표 현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린 배경이다.
- 자기 능력의 80퍼센트만으로 잘해낼 수 있는 일을 하면, 여유롭게 일 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자기 능력의 100퍼센트가 필요한 일은 다소 힘겹고 작은 돌발 변수에도 숨이 찬다. 능력의 120 퍼센트를 발휘해야 하는 일은 주변에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레오나르도는 능력을 약간, 때때로 과도하게 상회하는 일에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곤 했다. 그렇게 해서 성취하지 못한 일들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시키고 발전시켜나갔다. 우리도 공을 멀리 차야 할 때가 있다. 공을 찬 후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 잠 재된 실력이 발현될 때 우리는 그만큼 성장한다.
- ‘최후의 만찬’에서 세속과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예수의 얼굴은 추기경의 측근인 조반니 공작, 손은 파르마의 알렉산드로를 모델로 삼았다. 이러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그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중도 포기의 악명이 높은데다 어떤 날에는 그림 앞에서 하루종일 지그시 바라 보기만 했고, 다른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와서는 붓질 한 번 하고 다시 떠나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를 감독하는 산타마 리아텔레그라치에의 수도원장의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이에 그는 루도비코에게 레오나르도를 힐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재치 넘치는 반박문이 기록으로 남아 전해진다.
“전하(루도비코), 작품에서 유다의 머리만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고계실 것입니다. 유다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소문난 악한이기에 그의 사악함에 걸맞는 얼굴이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찾느라 거의 1년 동안 흉포한 자들이 득실거리는 보르게토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생각하는 그런 악한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악한의 얼굴을 찾기만 하면 바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저의 연구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면 전하께 저를 모함한 자가 바로 유다에 합당할 터인즉 그자의 얼굴을 대신 그려놓겠습니다.”
-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가 생전에 가장 극찬을 받은 작품 이었으나, 경동 기마상을 만들 기회는 끝내 얻지 못했다. 오히려 프랑스 군대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을 피해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떠나야 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떠나 만토바로 향했다. 당대의 예술 후 원자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화를 스케치했지만, 말이 유명한 만토바에서는 주로 말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렸다. 이후 레오 나르도는 만토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가 군사 관련 일을 하다가 1500년 4월경에 18년 만에 다시 피렌체에 정착한다. 이를 제2차 피렌체 시기로 본다.
- 미국의 과학사가 조지 사턴은 돈과 권력과 편리보다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면서 레오나르도를 반란자라 불렀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분명 대단한 기술과 실력을 가졌으면서 도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돈이 안 되는 일에 집중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림 한 점에 수년을 매달리고, 해부학과 수학을 연구하고, 언제나 적당히 실용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했다. 이런 고집이랄까 세계관 때문에 그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만 했 다. 그래도 자기답지 않은 것으로 사랑받느니, 차라리 자기다움으로 미 움받겠다던 소설가 헤밍웨이의 말처럼, 레오나르도는 꿋꿋이 자기다움 을 유지했다. 레오나르도의 위대함의 비결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지켜 낸 자기다움이었다.
- 레오나르도에게 그림은 과학이었고,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은 창조였다. 과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태도가 전제되므로 레오나르도는 물질을 정신보다 중요하게 여긴 현실주의자였고, 돌과 회화를 통해 신의 고귀한 정신을 표현한 미 켈란젤로는 정신만이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였다. 아름 다움은 사물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하면 드러난다고 생각했 던 레오나르도는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구하여 추한 인물들도 거침없이 그렸다. 성 제롬의 모습을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세속의 노인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이유다. 해부학은 그에게 인간이 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반면에, 미켈란젤로에게는 단지 인체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레오나르도에게 미켈란젤로는 예술을 이상의 수단으로 삼는 보 수파였고, 미켈란젤로에게 레오나르도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망치는 진보파였다. 둘의 갈등은 서로의 일거리를 뺏으려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극명하게 달랐던 그림과 조각을 향한 관점에서 비롯됐다.
- 레오나르도는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해했고, 미켈란젤로는 신의 사랑이 구현된 세상에 감탄했다. 따라서 미켈란젤로의 몸은 르네상스에 속했으나 의식은 중세에 고정되어 있었다면, 레오나르도는 저 멀리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근대를 향해 걸었다. 과거의 인간과 미래의 인간이 현재에 만나 부딪힌 셈이 다. 미켈란젤로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반면에, 레오나르도는 시대의 상징이 되었던 이유기도 하다.
-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를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레오나르도는 얼굴을 윤곽선 없이 비대칭으로 그렸다. 즉, 모나리자의 왼쪽 입가가 오른쪽보다 올라가 있고, 왼쪽 눈 주변의 음영이 반대 쪽보다 깊다. 그래서 왼쪽 얼굴을 가리면 심각해보이고, 오른쪽을 가리면 미소가 강해진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 뇌가 좌뇌보다 감정처리에 더 많이 관여하므로 감정은 우뇌가 관장하는 왼쪽 얼굴에서 도드라진다. 따라서 지금 상태의 얼굴로는 화가 앞에서 긴장한 조콘다 부인이 억지로 미소를 짓거나, 미소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눈도 좌우가 미세하게 다른 곳을 보고 눈꼬리의 높이도 다르다. 레오나르도는 인간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눈과 입의 양쪽 끝을 각각 다르게 묘사하여 관람자가 혼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인간이 어떤 감정일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것이 어떻게 보이 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한 레오나르도는 그것들 사이의 연관관계 를 정확히 파악했고,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 혼란을 가중시킨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나리자를 보면서도 조콘다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으며, 그림 속 조콘다 부인이 우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모나리자를 신비롭게 만들었는데, 이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얻은 성취다.
- 「최후의 만찬」에서 시도한 프레스코와 유화의 접목은 실패했고, 거기서 얻은 교훈으로 다시 도전한 「앙기아리전투에서도 레오나르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불완전했겠지만, 전작보다는 오랫동안 그림이 유지됐을 것이다. 실패를 새로운 시도의 교훈으 로 받아들이며 지속했고, 그 결과 벽화에는 유화의 장점을 구사하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벽을 버리고 나무판에 여러 번 덧칠하고 자연의 빛이 그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뒀 다가 또 덧칠하는 과정에서 스푸마토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스푸마토가 절묘하게 발휘된 모나리자」 「성모자와 성 안나」 「세 례자 요한」은 「최후의 만찬」과 「앙기아리전투 등의 실패에서 피워낸 꽃인 셈이다. 
- 「앙기아리전투를 중단하고 피렌체를 떠나면서 시작된 제2의 밀라노 시기 동안 레오나르도는 그림보다 해부학과 궁정의 연회에 사용되는 장식물 제작, 건축가로서 관개시설에 관련된 작업 등을 주로 맡았다. 특히 책에서 영향을 받았던 이전의 오류(남자의 성기 와 뇌가 연결되어 정액이 뇌에서 생긴다는 중세의 정보)들을 직접 해 부해 바로잡으면서, 인체해부도의 완성도를 높였다. 자궁 속의 태아도 이즈음에 그렸다. 실제 임산부의 몸이 아닌 소를 해부한 탓 에 4~5개월의 태아가 사실과 달리 서 있다. 인체의 피부, 골격 구조나 근육 등은 자세히 알 수 있었지만, 인체의 장기에 대한 부분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체에 정통해진 레오나르도는 인물을 아주 색다른 관점에서 표현했는데,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 레오나르도 창조력의 비밀 "남성성의 원리와 여성성을 통합해야 온전한 전체가 될 수 있다. (.........) 스탠퍼드대학이 실시한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기능은 남성성과 여성성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발휘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토런스 박사는 성역할이 고정되면, 창의성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창의성을 발휘하 려면 여성의 특성인 감수성과 남성의 특성인 자율성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남성성과 여성성 가운데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높은 지적 수준 에 도달하기 어려우며, 성 역할이 고정되면 창의성이 발휘되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레오나르도의 창조성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이고, 그것이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가 요구하는 두 성의 비율과도 맞았다. 즉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여성적인 문화와 중세의 남성적인 문화를 자기만의 방식과 비율로 재창조해냈고, 시간이 흐르면서 후대 사람들은 르네상스의 시대적 특징과 레오나르도의 대표작인 모나리자」와 「세례자 요한」이 이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따라서 레오나르도를 가장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다양한 분야 에 업적을 남겨서가 아니라, 그가 그 시대의 정신에 부합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를 이룬 창작자였고, 거기에서 그의 왕성한 창조력이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점이 프랑스 왕의 마음을 건드렸고, 노년의 예술가를 프랑스로 모셔간 이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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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군 명장(名將) 보응우옌잡은 훗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가지를 하지 않은 비결로 꼽았습니다. “() 원하는 장소에서, 적이 원하는 시간에, 적이 예상한 방식으로 싸우지 않았기에 승리할 있었다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430일자 A30 삶의 전투에서 주도권을 지키는 방법 기사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적의 예상을 깨뜨림으로써 주도권을 쥐는 것이야말로 약자가 강자와의 싸움에서 이길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의 자기계발 전문작가 로버트 그린은 지난 3000 동안 정치와 전쟁, 협상에서 성과를 인물들의 성공 비결을 바탕으로인간 생존의 법칙 정리했습니다. “성공한 인물들은 모두 인간 본성의 결핍과 불안을 활용해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실행했다 그의 발견입니다. “주도권을 빼앗긴 무기력한 상태로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반드시 빈틈없는 전략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린은과거에는 개개인이 국가와 대가족, 회사 집단의 보호를 받을 있었지만 이상 그렇지 않다지금 당장 버려야 것이 있다면평화협동이라는 낭만적 이상으로 무자비한 세상을 헤쳐 나갈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우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공격적 욕망을 숨긴다.” 따라서 전략가로서의 번째 과제는적의 개념을 확장하는 이랍니다. “당신이 어떻게 대처하든, 순진한 희생양은 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생존을 위한 당신의 무기를 완전히 내려놓지 마라. 친구 앞이라도 마찬가지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연승을 거둔 비결은강력한 통제에 대한 유혹 떨친 결과라는 성찰도 눈길을 끕니다. “나폴레옹은 장군들에게 임무를 주고 그들이 임무를 알아서 완수하도록 했다. 결과 ·하부로 명령을 전달하느라 소모되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훨씬 빠른 속도로 진군할 있었다.” 여러 군단이 패턴 파악이 불가능한 형태로 움직임에 따라 적군은 나폴레옹의 의중을 파악할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린은유동적이고 신속하며, 단순히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조직만이 살아남을 있다 강조합니다. “리더라면 조직을 통제하고, 조직의 모든 활동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민첩하지 못한 재래식 군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전쟁은 거의 모든 것이 결과로 판단됩니다. 장수가 군대를 패배로 이끌었다면, 의도가 아무리 고귀했고 예상치 못한 요소들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것이어도 패장이라는 사실을 피할 없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기준을 정치학에 적용했습니다. “정치가는 말이나 의도가 아니라 그들이 취한 행동의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이것을실질적인 진실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진짜 진실은 말이나 이론상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의미한다.”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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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의 심리학

심리 2021. 5. 2. 11:03

- 감정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대비하게 해준다. 만일 당신의 일부가 끊임없이 세상의 위험 징후를 감시하지 않았다면 교통사고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위험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했다면 당신은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위험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이에 감 정은 이런 일을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아슬아슬하게 교통사고를 피한 사례와 같이, 대체로 그것은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일단 위험이 지나갔다고 해도 속을 휘저었던 두려움을 여전히 느낄 것이다. 그런 감각이 진정될 때까지 10초에서 15초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감정은 우리 뇌의 일부에 변화를 일으켜서 감정을 유발한 일에 대처하게 한다. 동시에 자율신경계에 작동해 심박, 호흡, 발한, 그 밖의 많은 신체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갖가지 행동에 우리를 대비시킨다. 감정은 또 신호를 내보내고, 우리의 얼굴표정, 목소리, 자세를 변화시킨다. 이 변화들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어날 뿐이다.
- 위험을 감지하는 우리 안의 자동평가기제
감정적 반응이 진행되는 과정이 더 느렸다면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 장에서 제기된 여러 의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날 뻔한 사고에서 생 존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신속하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첫 순간, 감정을 일으키는 결정이나 평가는 놀랍도록 빨라서 자각할 수 없 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끊임없이 스캔하다가, 우리의 안녕이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을 탐지하는 자동적 평가 메커니즘automatic appraising mechanisms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 감정이 언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자동평가기제가 어떤 사건에 반응하는지 추론해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감정경험을 하는 것을 실제로 관찰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 정경험에 대한 기억에서 얻어진다. 결국 감정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기 억하고 그것이 어떤 느낌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얻어진다. 철학자 피터 골디Peter Goldie는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에서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를 사후 합리화라고 부른다. 이런 정보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문지에서 얻는 대답은 불완전하고 상투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치 감정적 사건 이후에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신에 게 해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그 대답이 자각이나 기억의 필터를 통 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문지에 응답하는 경우, 자신이 타인에 게 알려주어도 좋은 것만을 말하는 문제도 있다. 그렇지만 질문지에서 얻어지는 대답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 자연선택이 우리 생명의 다양한 측면을 형성해온 것은 분명하다. 손 을 한번 보자. 엄지는 네 손가락과 마주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은 대부분의 다른 동물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류 는 어떻게 해서 그런 엄지를 가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주 옛날 우리의 조상 중에 돌연변이로 우연히 그런 유용한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던 자가 있었는데, 자손을 낳고 돌보는 일, 사냥감과 포식자를 다루는 일에 남들보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그 결과 그런 특징을 가진 자손 이 증가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서 거의 모두가 그러한 특징을 가지게 되 었을 것이다. 다른 손가락과 마주볼 수 있는 엄지를 가지는 것은 '선택' 되었고, 지금은 유전형질의 일부가 된 것이다.
유사한 논리로, 방해가 있었을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려고 했 던 사람들이나 제거의 의도를 분명하게 표명했던 사람들은 먹이나 짝짓 기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고, 시간이 흘러 모두가 그런 분노의 테마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보편적 테마에 대한 두 가지 설명, 즉 인류 보편적 학습과 진화 사이 의 차이는 구체적인 사항들이 획득된 '시점'에 대한 것이다. 진화론적 설명은 우리의 선조 대에서 그런 테마(그리고 다른 장에서 다룰 감정의 그 밖 의 특징)가 계발되었다고 지적한다. 인류 보편적 학습이 존재한다는 이 론은, 분노 테마의 어떤 부분(목표를 추구하려는 욕구)이 진화과정에서 편 입된 것은 인정하지만, 다른 부분(위협과 공격으로 그 목표까지의 장애물을 제 거하는 것)은 개인의 삶 속에서 학습된다고 보았다. 결국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학습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 뇌와 감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리처드 데이빗슨Richard Davidson과 내가 웃음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으로 진행한 다른 연구에서는, 즐거움과 함께 일어나는 뇌의 변화 중 대부분이 웃는 것으로 인해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종류의 웃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연 구에서 내가 발견했던 웃음, 즉 '진심에서 우러난 기쁨'이 만들어내는 웃음 (9장 참조)의 경우에만 그랬다.22
이 연구에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부탁한 것은 특정한 얼굴 움직임을 짓는 것이지만, 개별 감정에 따라오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믿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얼굴로 표정을 만드는 것보다 목소리로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쪽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가능한 한 여성을 찾 았고, 그녀는 실제로 목소리와 얼굴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 대본에는 배역(대본을 적용하는 당사자와 그 밖의 주요인물)에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플롯이 들어간다. 모든 사람이 현 상황에 실제로 어울리지도 않는 과거의 감정적 대본을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성격에 대한 정신 분석 이론의 통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과거의 대본을 현 상황에 투영하는 이유는 과거 사건이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느낌이 있거나 표현했다 하더라도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본은 현실을 왜곡하고, 부적절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며 불응기를 연장한다.
- 가장 저명한 뇌와 감정의 연구자이면서 심리학자인 조지프 르두는 최근 다음과 같이 썼다. 
“조건화된 두려움 학습은 복원력이 매우 강해서 실제로 소거 불가능한 학습 형태에 해당할 수도 있다. ...... 학습된 두려움의 소거불능성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리의 뇌가 과거의 위험과 결부된 자극이나 상황의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대체로 충격적인 상황에서 형성되는 이런 강력한 기억은 일상생활 도중 특별히 도움도 안 되는 상황 안으로 불쑥 침입해올 때가 있다..”
- 감정과 기분moods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감정도 있고 기분도 있다. 둘 다 느낌과 관련이 있지만 서로 다르다. 가장 명백한 차이는 감정이 기분보다 훨씬 짧다는 점이다. 기분은 하루 종일 지속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이틀도 가지만, 감정은 생겨나서 몇 분, 때로는 몇 초 있다가 사라진다. 기분은 미세하지만 지속적인 감정 상태와 흡사하다. 짜증난 기분이라면, 항상 약간 짜증이 나 있으며 쉽게 화가 날 수 있는 상태다. 우울한 기분이라면 약간 슬프며 언제든 아주 슬퍼질 수 있다. 업신여기는 기분에는 혐오와 경멸이 담겨 있으며, 고양된 기분에는 흥분과 쾌감이, 불안한 기분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다.
하나의 기분은 특정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는 짜증난 기분일 때 화낼 기회를 찾는다. 우리는 세상이 화를 내어도 되는 곳, 화를 내야 하는 곳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짜증이 난 경우, 우리는 보통 때 같으면 화내지 않을 일에 화를 낸다. 그리고 화가 나면 그 분노는 짜증난 기분이 아닐 때보다 더 강렬하고 더 오래간다. 기분은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고유의 신호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어떤 기분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는 이 유는 그 기분 안에 잔뜩 실린 감정의 신호 때문이다. 기분은 우리의 유 연성을 줄인다.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에 둔감하게 만들 어 해석 방식과 대응 방식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감정도 같은 작용을 하 지만 불응기가 길어지지 않는 한 그것은 한순간뿐이다. 하지만 기분은 여러 시간 지속된다.
- 기분과 감정의 또 하나의 차이는 일단 감정이 시작되고 이를 우리가 자각하면 대개 그 감정을 일으킨 사건을 지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분에 빠져 있을 때 왜 그런 기분이 되었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더니 특정 기분이 들 때가 있고 혹은 한낮에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침울해 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기분을 낳고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은 자율적인 신경화학적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지극히 농밀한 감정경험에 의해서도 이런 기분이 생기기도 한다고 나는 믿는다. 밀도가 높은 기쁨이 고양된 기분을 낳을 수 있듯이, 밀도가 높은 분노는 짜증난 기분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왜 우리가 특정 기분을 느끼는지를 안다. 나는 앞에서 감정은 우리의 인생에 필수적인 것이고, 우리가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기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기분은 종의 생존에 뛰어난 적응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화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구조가 빚어낸,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기분은 우 리의 선택 범위를 축소시키고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키며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다. 밀도 높은 감정경험에 의해서 기분이 야기될 때, 기분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하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기분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에 비해서 그것이 주는 이로움 은 작다. 가능하다면 나는 다시는 기분을 갖지 않고 감정만으로 살고 싶다. 나는 짜증난 기분이나 우울한 기분을 없앨 수만 있다면 행복의 기분도 기꺼이 포기하련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
-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의 선택이나 즉각적인 자각 없이, 일련의 변화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우선 얼굴과 목소리에 감정신호가 나타나고, 미리 설정된 행동과 학습된 행동이 일어난다. 신체를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활동이 일어나고, 우리의 행동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조절 패턴이 나타난다. 이와 동시에 연관 있는 기억이 떠오르거나 기대를 하게 되고, 우리 내면이나 주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해석 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다. 이런 변화는 무의식적인 것이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는 이를 '불가피한 것'이라고 부른다.
- 심리학자 조지아 니그로와 울리히 나이서는 기억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기억에서는 자신이 구경꾼이나 관찰자의 위치에 서서, 외부 관점에서 상황을 그리고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니그로와 나이서는 이런 유형의 기억을, 기억 속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본 기억과 대조시킨다. 대부분의 감정 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경험에 푹 빠져서 감정에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 에, 우리 마음의 어떤 부분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관찰하거나, 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성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식하며 자각하 고 있지만 심리학자 엘렌 랭거Ellen Langer가 말하는, 텅 빈mindless 상태에서 그럴 뿐이다.
기억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는 니그로와 나이서의 구분은, 정신과의사이자 불교 사상가인 헨리 와이너Henry Wyner가 의식의 흐름과 그가 목격자라고 부른 것의 차이로서 기술하고 있는 것과 지극히 유사하다. 목격자란 “의식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의미를 관찰하며 반응하는 자 각”을 말한다. 우리가 감정적 행동을 완화하고 자신의 언동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언제 감정적이 되었는가를, 더 좋은 것은 자신이 감정적이 되어가는 바로 그 순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동평가가 일어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을 자각할 수 있 어서 그 평가를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것이다. 자동평가기제는 순식간에 작동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달라이 라마와 만 났을 때, 그는 일부 요가 수행자들은 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동평가가 일어나는 극미의 찰나를 연장해서 평가 프로세스를 의식적으로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자신을 포함해서 대다수의 일반인에게 이런 평가 자각appraisal awareness' 이 가능할지 의문을 표했다.
달성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 다음으로 가능한 단계는 자동평가 직후와 감정적 행동 시작 이전에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자각하는 일이다. 즉 특정 언동에 대한 충동이 일어나자마자 그 충동을 자각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일 그런 충동 자각 impulse awareness 24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 충동을 실행으로 옮길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 상을 당한 사람이 깊은 비통을 보이지 않는 것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고, 후에 심각한 정신의학적 문제를 낳기 쉬울 것이라고 정신의료 전문가들이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의 연구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서서히 쇠약해질 경우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런 경우 최종적으로 죽음이 왔을 때 상을 당한 사람은 슬픔은 수시로 느낄 수 있지만 고통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애착관계에 어려움이 있었고, 관계가 험악했던 시기나 상당한 불만이 있었다면,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안도감의 느낌과 함께 해방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 심리학자 니코 프리다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했다. “죽음이나 이별을 통보받고 나서 당장은 비 통함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같은 통보는 단어에 불과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에 돌아와 그때 비로소 비통이 몰려온다."
- 우리는 아주 기쁜 소식을 들을 때 눈물을 그렁거리며 고통의 표정을 보이는 일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 있는 설명 한 가지는 강렬한 기쁨이 감정 시스템을 압도하게 나, 어떤 감정이라도 아주 강렬해지면 순간적으로 고통을 낳는다는 것이다.
분노는 비통에 대한 방어책, 대체물, 때로는 치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애인에게 거부당한 사람이 차여서 화를 낼 경우 절망감은 줄어든다. 절절한 고독의 순간, 슬픔이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또다시 분노에 의해 쫓 겨난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아주 작은 상실의 표시라도 나타나면 즉시 분노를 드러내려고 준비해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심리치료사들은 상실이 주는 슬픔이나 고통이 연장되는 것은 분 노를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결과라고 주장해왔다. 괴로워하는 사람이 분노를 외부로, 즉 죽은 사람이나 떠난 사람, 자신을 버린 연인, 배우자, 선생님 혹은 상사에게 돌릴 수 있다면, 슬픔과 고통은 치유될 수도 있 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어버린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노만 느끼는 것도 아니고, 분노의 표출이 슬픔이나 고통의 필수적인 치유나 확실한 치유라고 할 수도 없다.
- 약을 충분히 복용하면 괴로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표정과 목소리에 나타나는 슬픔과 고통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지지, 친구와 가족이 주는 보 살핌은 고통을 치유한다.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그런 치유적인 관심을 덜 받을 수 있다. 타인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슬픔이나 고통을 표현하 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표현은 의도적인 것이 아 니며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얻은 기능 중 하나가 그런 표현들을 본 타인으로 하여금 배려하도록, 위로하고 싶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슬픔과 고통의 표정이 지닌 또 다른 기능은 상실이라는 경험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면, 울음이 어떤 느낌인지, 얼굴에서 느끼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자각하게 된다. 표정이 없다고 상실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약물로 절망감을 완화시킨다면, 그 감정을 알긴 하겠지만 완전히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슬픔이 가진 또 하나의 기능은 그 사람의 자원을 재건하고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이다. 
- 감정 이론학자 리처드 라자루스는 분노를 조절하는 아주 어려운 기 술 한 가지를 설명한다. 이 기술이 어려운 이유는 분노를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나 연인의 언 동으로 감정이 상했다면 우리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앙갚음을 하는 대신, 그들이 당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요컨대 그들은 자제심을 잃어버린 것이지, 원래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 고 추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의도를 재평가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갑작스럽게 폭발했 던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라자루스는 이것이 말하기는 쉬워도 행 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달라이 라마 승하께서도 동일한 접근법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우 리는 불쾌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을 구분한다. 그 사람이 왜 공격 적으로 행동했는지 이해해보고, 공감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무엇이 그 사람을 분노하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숨겨야 한다. 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분노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 자체로 향해야 한다.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를 도와주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도움을 원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가령 약자를 괴롭히는 자라면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하고, 잔인한 사람이라면 위해를 가하는 것을 즐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동만이 아닌 그 사람 자신에게 분노를 향해야 할 것이다.
- 누구라도 짜증난 기분에 빠지면 화를 억제하기가 힘들다. 짜증이 나 있을 때는 보통 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화를 내게 된다. 화낼 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짜증이 나 있으면 그저 좀 귀찮다고 여기고 말 일에도 화를 내며, 보통 화가 날 일에는 격노하게 된다. 짜증이 났을 때 느끼는 분노는 훨씬 오래가며 조절하기가 더 힘들다. 어떤 기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정말로 좋아하는 활동에 몰두 하다 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조언은 짜증이 날 때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분노가 먼저 폭발하기 전까 지는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제야 짜증이 난 상태여서 화가 났음을 깨닫는다.
- 분노는 우리에게 무언가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일으키려면 분노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려 는 것을 방해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우리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위협인 가? 아니면 자존감에 대한 모욕, 거부, 타인의 분노, 어떤 부당한 행위였 는가? 우리는 정확하게 인지했을까, 아니면 짜증난 기분 탓이었을까? 그런 불만을 완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고 분노에 차서 행동하면 그 원인을 제거하게 될까? 
분노와 두려움은 흔히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위협에 반응하여 일어나지만, 분노는 두려움을 줄이는 일에 그리고 위협에 대처하는 행동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분노는 우울증의 대안으로도 알려져 왔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비 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우울증과 함께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정 말로 분노가 우울증의 대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노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타인에게 알린다. 모든 감정과 마찬 가지로, 분노는 얼굴과 목소리로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만일 타인이 분노의 원인이라면, 우리의 화난 표현은 그 사람의 행동에 우리가 반대한 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알린다. 타인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경우도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으면 할 때 감정을 꺼버릴 수 있는 스위치를 자연은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 우리는 타인의 몸 안을 보면 속이 뒤집히도록 자연에 의해서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특히 출혈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다. 출혈하는 자 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나 친족일 때는 그런 혐오의 반응이 정지된다. 그런 경우, 우리는 거기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고 통을 감소시키도록 움직인다. 신체적 고통의 신호나 병의 신호에 혐오 를 느끼는 것이 병의 감염률을 떨어뜨리는 데 큰 기여를 담당해왔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지극히 유효한 공감이나 연민 능력을 감소시키는 대가를 치르고 실현되는 것이다.
공감이나 연민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들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가리킨다.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에서 사람은 타인이 느끼고 있는 것을 인식한다.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에서는 타인이 느끼고 있는 것을 실제로 느낀다. 연민 어린’ 공감compassionate empathy 에서 우리는 타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감정에 대처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 어진다. 감정적 공감이나 연민 어린 공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공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연민 어린 공감을 가지기 위해서 감정적 공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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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닉의 설계자들

etc 2021. 5. 2. 11:02

- 직감 디자인의 구조
1. 가설 : 자발적으로 OO할까?'라는 가설을 세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할 수 없다. 
2. 시행 : 자발적으로 'OO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시험 삼아 행동에 옮긴다. 
3. 환희 : 그 과정에서 OO하는 것이 맞았어!'라고 환희한다. 여기서 비로소 플레이어는 자신의 가설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 우리의 뇌는 늘 OO해볼까?'라는 식으로 다음 행동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싶어 한다. 실제로 이 개념은 이미 학문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심리학이나 인지과학에서 사용되는 어포던스 affordance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어포던스는 본래 환경이 동물에게 부여하는 의미로 정의 되지만, 왠지 어렵게 느껴지므로 과감히 풀어서 설명해보겠다. 어포던스는 당신이 무언가를 봤을 때 자연스럽게 OO해볼까?'라고 생각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물론,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를 보고 'OO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인간이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개가 이 물건을 본다 한들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어포던스와 세트인 개념으로 '시그니파이어signifier가 있다. 어포던스를 전달하기 위한 특화된 정보 를 가리키는 개념인 시그니파이어는 슈퍼 마리오의 경우에 마 리오의 모습과 위치, 산과 풀 등에 해당한다. 정확하게는 화면 의 거의 모든 것이 시그니파이어라고 할 수 있다. 어포던스와 시그니파이어, 이 2가지 개념을 적용해보면 앞에서 아이들이 슈퍼 마리오가 재미없어 보인다고 말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하는가?'
뭔가 철학적으로도 울림이 있는 이 질문에 이 책이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게임 자체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플레이어 스스로가 직감 하는 체험 그 자체가 재밌으니까.”
우리의 뇌는 언제나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뇌가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게임이 '직감적 이해'라는 체험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며 이는 플레이어에게 다가선 체험 디자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체험의 근간이 바로 '직감 디자인'이다.
- 우리 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예상하려 하고, 예상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이 세계의 움직임을 학습한다. 그래서 예상이 적중한 뇌는 '미래에 다가올 죽음의 위험도 틀림없 이 예상할 수 있어, 목숨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흥분 물질을 만들어내며 기뻐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예상이 들어맞으면 뇌는 '이제 충분히 미래를 예상할 수 있으니 더 이상 학습할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예상이 빗나가는 체험'이 등장할 차례다. 예상을 벗어난 체 험을 한 뇌는 미래를 조금도 모르겠어. 죽음의 위험도 피할 수 없을지 몰라!'라는 위기감을 안고 이 세계를 학습하려는 기능을 다시 활성화한다.
피로와 싫증으로 약해진 뇌의 학습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뇌의 예상을 벗어나는 체험을 의도적으로 가미하는 것이다. 장시간의 체험을 디자인할 때 아주 중요한 테크닉이다. 
- 놀람 디자인의 구조
1. 오해: 틀린 가설을 세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2. 시행: 시험 삼아 행동으로 옮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3. 경악: 놀란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가설, 시행이 오류였음을 깨닫는다.
- 오해하고, 시행하고, 예상 밖의 결말에 놀라게 된다. 이러 한 일련의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이 바로 놀람 디자인'이다. 직감 디자인의 연속으로 피로와 싫증이 쌓인 플레이어에게 적용함으로써 피로와 싫증을 떨쳐내고 보다 장시 간의 체험을 가져다주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 디자인을 설계하려면 세밀하게 정성을 들여 계획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순서는 이렇다 (미리 말하지만 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 1. 피로와 싫증이 나타나는 타이밍 파악하기
드퀘에서 '8개의 커맨드 학습을 완료했을 때처럼 피로와 싫증이 정점에 달하는 타이밍에 주목한다.
2. 사전에 오해로 이끄는 세계관 구축하기
'이 게임은 진지하다'는 오해를 사기 위해 차분히 시간을 들 여 잘못된 세계관을 학습시키고 오해하게 한다.
3. 확신을 배신하는 연출 디자인하기
이 게임은 ○○이야', '터부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는 2가지 확신을 동시에 배신하는 연출을 한다.
- 놀람 디자인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이나 외면하고 싶 은 것을 그리면서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걸게 하고, 기원하게 하며 플레이어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만든다. 이러한 체험 디자 인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직감 디자 인의 연속으로 인한 피로와 싫증을 불식시키고 플레이어를 다 음 체험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는 기본 전략이다.
놀람 디자인은 플레이어가 체험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게끔 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부지런해서 피로를 모르는 플레이어만 있다면 놀람 디자인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인 체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놀람 디자인이 필요하다.
- 이야기 내용이란 '주인공이 A에 가서 B가 일어나고 C가 되는 일련의 사건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 이야기 내용이다. 이야기 내용은 어디까지나 사건 그 자체를 말한다. 이때 그 사건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수단이 있어야 비로소 이야기 내용은 전달된다. 문자, 영상, 음성과 같은 표현 형식도 중요하고 단어 선택과 전달 순서도 이야기의 재미를 좌 우한다. 이야기를 전달할 수단, 이것이 바로 이야기 언설이다. '이야기는 또한 일련의 사건의 표상representation of a sequence of events' 이라는 정의도 자주 이용하는데, 여기서 '일련의 사건이 이야기 내용, 표상'이 이야기 언설에 대응된다.
정리해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이야기 내용과 이야기 언설을 합친 것이 내러티브가 되는 것이다. 내러티브라는 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 나 내러티브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영상과는 별도로 음성만으로 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을...
내레이터narrator'라고 부른다. 내레이터는 내러티브 하는 사람, 즉 이야기를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의미하는 단어라도 스토리에는 '스토리어 storyer'라는 단어가 없다. 전달한다는 의미의 tell'을 붙여서 '스 토리텔러storyteller'라고 해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된다. 왜일까?
스토리와 내러티브, 둘 다 이야기' 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즉 이야기 내용에 중점을 두는 반면 내러티브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이야기 언설을 포함하는 뉘앙스가 있다.
- 애초에 게임 디자이너는 이야기만으로 플레이어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M전개되는 가공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체험을 디자인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디자이너가 정말로 그리고자 하는 것은 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성장해나가는 플레이어의 이야기다.
- 가공의 이야기: 가공의 세계에서 가공의 캐릭터가 겪는 이야기.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체험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 지니 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이야기: 게임이라는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 자신이 겪는 이야기. 현실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를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성장시켜야 한다.
- '게임보이(1989, 닌텐도)용으로 출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 은 '포켓몬스터(1996, 닌텐도)'에 등장하는 151마리의 포켓몬을 모조리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하고 한숨을 내쉬던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포켓몬을 기억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게임은 도입부에서 3마 리의 포켓몬 중 한 마리를 고르게 하고, 백지로 된 포켓몬 도감 까지 건넨다. 전체상과 빈자리를 모두 인식시키고 한 마리씩 포 켓몬 잡는 체험을 반복하니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 것이다. 플 레이어가 빈자리를 의식하게 만들고 수집, 반복을 통해 이끌어 감으로써 플레이어를 성장시키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 반복하면 무엇이든 능숙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쳤다느니 질렸다느니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우리는 반복을 멈춰버린다. 만약 피로도, 싫증도 모르고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직일 것이 반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행복감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좋고 나쁨을 평가해주는 것을 게임 업계에서는 '피드백'이라고 부른다. 피드백이 있어야만 플레 이어는 스스로의 선택과 재량의 의미를 파악한다. 동시에 난 잘 했어' 혹은 내가 망쳤어' 라며 플레이어 자신이 주어가 되어 체 험을 실감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가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고, 재량도 없으며, 어떤 행동을 해도 돌아오는 리액션이 똑같은 게임은 재미있을 리가 없다. 게임은 언제든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른 리액션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다.
- 플레이어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고 싶다면 주인공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면 된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에게 강렬한 문제를 일으켜 철저히 불행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잔혹한 디자인의 목적이다.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체험 디자인 에는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다.
자, 이제 겨우 공감 조건 하나를 클리어했다. 주인공의 불 행으로 플레이어가 주인공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동행자도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진정한 공감으 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다음 조건은 플레이어와 주인공이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이것이 공감 체험의 시금석이자 운명의 갈림길이다.
- 맞서려면 플레이어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이 지론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최후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 디자인을 통과 해왔다. 번롱을 통해 성장하고 스스로의 의지를 갖게 되어 스스로가 그린 이야기를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체험이었다. 특히 성장이라는 체험에서는 수집과 반복, 선택과 재량, 번의와 공감과 같은 거친 체험을 열심히 헤쳐 나왔다. 다시 말해, 몹시 힘든 여행이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수십 시간, 바람의 여행 자는 수 시간을 들인 이 긴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마지막에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며 게임은 끝이 난다. 긴 시간을 소비한 의의가 전혀 없는, 한낱 헛수고였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이는 결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예를 들어 여행은 어떤가. 돈과 시간을 할애하여 여행을 즐기고 나면 마지막에는 시작점인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결 국 집으로 돌아오니까 여행에는 의의가 없어. 모두 헛수고야'라 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여행은 여행이라는 체험 자체가 본질이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면 여행은 끝이 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여행이라는 체험을 통해 당신은 성장하고, 여행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당신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의의다. 게 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라는 체험 자체가 본질이며,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가 바뀌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 플레이어의 마음을 움직이는 체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지금 까지 논의한 체험 디자인 방법을 한 페이지로 밀도 있게 응축하여 복습해보기로 하자.
1. 직감 디자인: 가설→시행 환희 
2. 놀람 디자인: 오해 → 시행 경악 
3. 이야기 디자인: 번롱 →성장→의지
직감 디자인은 체험 디자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체험이 다. 틀에 박힌 체험을 자발적 체험으로 바꿔 플레이어 스스로가 직감적으로 행동하도록 돕고, 나아가서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기 위한 수법이다. 사람들의 뇌와 마음의 공통된 성질과 기억을 이용하여 단순하고 쉽게 체험을 디자인함 으로써, 모든 플레이어가 가설을 시행하고 가설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환희를 느끼게끔 한다.
그러나 직감 체험에는 문제가 있다. 연속된 직감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피로와 싫증을 초래하여 체험 자체를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함께 필요한 것이 놀람 디자인이다. 놀람 디자인은 전제에 대한 확신과 일상에 대한 확신을 이용하여 플레이어의 예상을 뒤집음으로써 놀라움을 준다.
이 2가지 체험 디자인을 조합하여 직감적이고 질리지 않는 장시간의 체험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체험에 의의가 없 다면 플레이어의 마음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 디자인이다. 상황을 이해하려는 플레이어를 번롱하고 성장하게 만들어 스스로 의지를 갖기까지 이야기를 통해 체험에 의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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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 힘

사회 2021. 5. 2. 11:00

- 1970년대까지는 심리학과 경제학이 별 개의 학문으로 발전했다. 처음에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심리학 영역에서 실험을 진행했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판단과 의사결정에서 반복되는 다양한 실수들을 설득력 있고 정확히 짚 어 내는 실험들을 연이어 고안해 냈다. 
그들은 197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불확실한 상황에 서의 판단 추단법과 편향」에서, 전통적인 경제 모델이 가정하 는 것만큼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입증하며, 그야말로 우 리의 인식 체계를 바꿔 놓았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인간이 추 단법, 즉 경험에 바탕을 둔 어림법을 이용해 신속하고 효율적 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걸 알아냈다. 그들은 가용성 추단 법’ availability heuristic 을 어떤 사건이 기억에서 잘 떠오르는 정도를 기주으로 그 사건의 빈도와 확률 혹은 원인을 평가하는 인지적 경하로 정의했다. 또 대표성 추단법representativeness heuristic에 따르면, 어떤 개인이나 대상 혹은 사건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과거에 형성된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특징을 찾는 경향을 띤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공동 연구를 계기로, 인간은 합리적이 지 않다는 걸 입증하는 논문들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그들의 논 문은 오늘날 행동 경제학이라 칭해지는 학문의 도약대 역할을 해냈다. 마케팅과 협상, 의학적 의사결정 등 다른 분야들도 체계적 편향에 주목하며, 그 가능성을 그들의 분석에 반영하기 시 작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이런 아이디어는 적잖은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그 이 후의 공동 작업이었다. 그들은 정통 경제학자들을 위한 경제학 학술지 『에코노메트리카』에 게재한 「전망 이론: 위험한 상황에 서 내려진 결정에 대한 분석」에서, 경제학의 핵심적 가정인 합 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학적 모델을 경제학 언어로 풀어냈 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야심은 요약문의 첫 문장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이 논문은 의사결정 과정을 기술하는 모델로서의 기대 효용 이론을 비판하고, 대안적 모델로 전망 이론을 제시한다.” 마침내 그들이 경제학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 좋은 조직에서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 실수할 것이라 예측하며 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스템까지 마련한다. 넛지 는 인간의 이런 성향을 이용한 것으로, 세일러와 선스타인은 선 의의 정책 입안자와 관리자가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도구로써 넛지를 적극 추천했다.
선택 설계자라는 개념은 의사결정의 개선에 활용되던 과거 의 접근법과는 극명히 대조된다. 예전에는 많은 행동 경제학자와 행동 심리학자가 개개인이 편향성을 떨쳐 내고 더욱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주는 데 주력했다면, 넛지는 선택 환경에 변화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장기 기증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옵트 아웃 시스템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편향성, 즉 현재의 상황에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인간의 성향을 이용한다.
사람들은 장기 기증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구태여 밝히려고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옵트 아웃 시스템에서 장기 기 증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기본값의 전략적인 선택은 지금도 이메일 수신 등록부터 퇴직 연금 가입까지 다양한 경우에 이용된다. 우리에게 제시되는 기본값이 마음에 드는 경우가 있다. 
-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공정 거래라는 개념은 새로운 전자 상
거래의 등장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따라서 더 공평한 인터넷 시 대라는 약속도 희미해졌다. 2015년 뉴요커는 업데이트된 만평을 게재했다. 이번에는 캄란 하피즈Kaamran Hafeez의 작품으로, 1993년 만평의 주인공이던 익명의 개들이 다시 등장했고 “인터넷에서 누구도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때를 기억해?"라는 설명글이 더해졌다.
- 한 세기 전, 백화점 왕, 존 와너메이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광고에 쓴 돈의 절반은 낭비한 것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어느 쪽 절반인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는 조직에게 광고 효과를 평가하는 새로 운 기회를 제공했다. 바로 '실험'이란 방법이다!
- 이베이 경제 팀에서 일하던 경제학자들, 톰 블레이크와 크리스 노스코, 스티브 타델리스는 구글 광고에 대한 수익률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구글 광고를 게시하거나 중단하며 시장에 변화를 주었고, 구글 광고를 통해 이베이에 접속하는 사람들을 추적했다. 물론 유기적 결과를 통 해 접속하는 사람들, 즉 광고료를 지불하지 않는 구글 검색 결 과를 통해 이베이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추적했다.
그 차이는 극명했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구글 광고를 중 단한 시장에서는 광고를 통해 이베이에 접속되는 흐름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시장에서 유기적 검색 결과를 통한 접속은 확연히 증가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구글에서 이베이' 혹은 이베이와 관련된 검색어를 검색하고는 광고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유기적 결과를 보려고 아래로 스크롤할 이유가 없었던 사용자들이 상단의 유기적 검색 결과를 클릭한 것 이었다. 그들은 어차피 이베이를 찾아 접속할 텐데 무의미한 광고를 집행한 셈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베이가 매년 구글에 지 불하던 거액의 광고비가 거의 낭비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베이와 그다지 관련되지 않은 품목의 광고라면 매출 확 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이베이는 '중고 깁슨 레스폴'Gibson Les Paul이란 검색어에 광고해 상당한 수익을 거둔 적이 있었다. 하기야 기타를 검색할 때 기타와 이베이를 관련 짓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구나 그런 광고는 이베이에서 구매해 본 적이 없는 사용자들에게 더욱더 효과가 있었다. 그들은 이베이에서 어떤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실험 결과에서, 정보가 부 족한 잠재 고객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때 광고가 더 효과적 이라는 이론이 새삼스레 입증되었다.
이 실험을 근거로, 이베이는 구글 광고를 줄였다. 이제 구글 에서 '이베이'를 검색하면 유기적 결과만이 나온다. 이베이가 '이베이'라는 검색어에 더 이상 광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 스탠퍼드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앨빈 로스는 한 번의 특별한 실험보다 일련의 실험'에서 배운 것을 자주 언급한다. 다양한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되풀이할 때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리바바가 데이터에 근거해 결정을 내렸고, 연구자들이 무척 냉정하게 실험을 실시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할인 판촉 프로젝트와 그 가격 전략의 다른 부분들을 시험하고 다듬기 위해 더 많은 실험을 실시했더라면 그들의 플랫폼이 상당한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조직이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올바른 대 답을 얻는 것만큼이나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 관 리자들은 상품 자체를 테스트하는 데도 주력해야 하지만, 올바 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기준틀을 개발하기 위해 실험 을 어떻게 활용한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경계 적 조건과 메커니즘을 알아내려고 애써야 한다는 뜻이다. 알리 바바의 경우로 말하자면, 특정한 가격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반적으로 할인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써야 했다는 뜻이다.
- 경제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정부 기관과 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걸 도왔고, 주요 항공사들이 가격 정책을 개발하는 것 도 지원했다. 또한 노동과 차별에 대한 분쟁에서 전문가로서 증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이 테크 분야에 대거 진출 하는 현상은 처음이었다. 아마존과 이베이, 구글과 마이크로소 프트, 페이스북, 에어비앤비와 우버 같은 주요 기업은 이제 경제학 박사들로 구성된 대규모 팀을 두고, 더 나은 설계 선택을 찾아 머리를 짜내고 있다. 예컨대 아마존에는 100명이 넘는 경제학 박사가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 경제학부를 압도한다. 그런 경제학자들은 많은 기업이 엄격한 실험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부딪치던 장벽을 피하는 능력을 보여 주며, 테크 분야의 실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또한 경제학자들은 테크 분야의 실험을 설계하고 해석하는 이론적 토대와, 실험에 언제 어떻게 투자해야 하느냐는 지침을 제공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해냈다.
- 요즘에는 거의 모든 테크 기업이 실험을 실시하고, 앞으로도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게다가 테크 기업은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 실험이 그들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들은 상품과 서비스, 설계와 메시지 전달, 선호성과 접속 등을 끊임없이 테스트하며, 무엇이 효과가 있고 없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이런 실험은 테크 기업만이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가치가 있다. 데이 터를 근거로 삼으면 더 나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을 텐데, 직관적 결정의 결과에서 비롯되는 저급한 서비스를 원하는 사용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달리 말하면 사용자는 실험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고, 기업은 실험 과정을 비밀로 감추지 않고, 실험과 관련된 의사소통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비자는 영리하다. 소비자는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조금씩 수정하며 고객의 반응을 살핀다는 걸 알고 있다. 기업은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준수하며 실험해야 한다. 결국 기업이 연구에 관해 감추는 것이 없다면 의혹을 떨쳐 내고 고객의 지지를 받아, 향후의 실험에 참여하는 고객의 적극성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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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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