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왔을까? 어째서 난 그 질문을 받지 않았을까? 어째서 규칙과 규정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그냥 사람들 속에 밀어넣어진 걸까? 현실이라고 하는 이 이 거대한 기획에 나는 어떻게 휘말리게 된 걸까? 어째서 휘말려야 하는 걸까? 그것은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이 휘말려야 한다면 관리인은 어디에 있나? 난 이 문제를 놓고 할 말이 있는데, 왜 관리인은 없나? 그럼 내 불만은 누구한테 이야기하지?” (쇠렌 키르케고르, 《반복》, 1843)
- 당신은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누구도 당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누구도 당신에게 지침서를 주지 않았지만 당신은 여기, 이 세상에 던져졌고, 당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존재의 시간 안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 필요가,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늦기 전에, 그 뭔가를 빨리 생각해내는 게 좋다. 영화 〈파이트클럽에 나오는 에드워드 노튼의 내레이션처럼, “이건 당신 인생이고, 1분씩 1분씩 끝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 문득 무대장치가 무너지기도 한다. 기상, 전차,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네 시간, 식사, 수면, 똑같은 리듬을 따라 월, 화, 수, 목, 금, 토, 이 경로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수월하게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가 고개를 쳐들고 권태와 경악이 뒤범벅된 상태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 시시포스 신화, 1955)
- 물론 당신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인생에 많은 투자를 한다. 하지만 때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당신의 인생은 작디 작고 우연적이고 특별한 가치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을지 모른다. 당신의 인생이 아주 소중하다는 기분과 그 기분의 근 거를 대지 못할 수 있다는 앎 사이의 불일치가 바로 부조리함 의 정체다. 철학자 토드 메이는 이를 “의미를 찾는 우리와, 그 걸 내주지 않으려는 우주와의 대결”이라고 부른다.12 당신의 행동이 또는 당신의 삶이 어째서 가치가 있는지 분명히 밝히 지 못할 때 당신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당신에게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지 알려주는 개인, 가족, 사회 차원의 - 기틀과의 유대가 끊겼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 우리가 살아가는 세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함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음을, 한량없이 기나긴,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던 지질학적 시대를, 공간이 남아도는 은하계와 파악하기 힘든 아원자들의 행동을, 물질의 중심에 있는 일종의 터무니없는 수학적 폭력을 우리 앞에 펼쳐 보였고, 그 결과 우리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버렸다. ( 존 업다이크, 《진화에 대한 비판적인 에세이》, 1985)
- 당신은 하찮고, 유한하며, 자의적인 존재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 우주의 나이 - 약 140억 살 - 를 24시간으로 나타내면 우리 인간은 자정이 되기 15초 전부터 느릿느릿 진화를 시작했다. 당신의 인생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끝나버릴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실존적으로 혼란스럽 기는커녕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온 우주 행성 들과 은하계와,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반짝이는 무한한 별들과 장엄한 태양계가 무언가에 어떤 가치를 할당하는지를 알아 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닐 더그래스 의 말처럼 “우주는 당신을 이해시킬 의무가 없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웃길 것이다.
-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게 이곳입니다. 저게 집입니다. 저게 우리입니다. 그 위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들어본 적 있는 모든 사람들이, 존재했던 모든 인간이 (...) 햇살 속에 떠다니는 먼지입자 위에서 자신의 삶을 살다 갔습니다. (칼 세이건, 보이저 1호가 찍은 마지막 지구 사진에 대하여, 1994)
- 영원히 자기 거라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결국 자기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 《11분》, 2005)
- (내 생각에) 자신의 행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에, 인류의 진보에, 심지어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인 목적으로서 예술 그 자체를 추구하는 행위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만이 행복하다. 그러므로 행복은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1873)
- 이 세상에는 행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곳이 많다. 나는 중국인 심리학 교수와 이 문제를 놓고 오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는 자기 부모 세대에게 개인적 행복은 전혀 중요하 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것은 명예의 상징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이 가족이나 나라를 위해 희생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희생은 행복이라는 덧없는 기분보다 훨씬 더 가 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2004년부터 진 행된 한 연구는 미국인과 중국인 학부생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읽고 떠오르는 대로 짧은 에세이를 써달 라고 요청했다. 많은 미국 학생들이 행복은 인생 최고의 목표라고 강조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행복의 가치와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한 그런 강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행복은 자명한 목표가 아니며 그 중요성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을 경우 역효과를 가져오기 쉽고 이미 손에 넣은 행복을 축소시킬 수 있다.
- 심리학 연구는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너무 전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인생을 즐길 줄 모른다는 점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역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기도 한 그 사람의 사회적 관계를 망쳐놓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는 지배적인 문화 규범은 실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불행한 순간들을 더 견디기 힘들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불 행한 기분은 이중부담이 된다. 당신은 불행하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항상 행복을 앞세우는 문화적 규범에 맞춰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 우리 문화에는 행복해야 한다고 자꾸 일깨우는 메시지들이 너무 많아서 행복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 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켜보라. 특히 광고 시간대에, 거기에 는 행복을 패키지 상품으로 파는 건강하고 아름답고 미소 짓 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런 거짓 예언자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헛된 희망 때문에 인생에서 좋 은 것들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행복은 감정에 불과하다. 그 이 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자체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무언가를 손에 넣었을 때 딸려오는 사은품 같은 것 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어떻게 우리 삶을 진 것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부족하다.
- 사람들이 새로운 부의 기준선에 적응 하고 나면 처음의 행복은 소멸된다. 안락함을 주는 새로운 물 건들이 표준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당연시되다가 최신 기기나 사치품이 새로 출시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쪽으로 쏠리 면 수명이 끝나는 것이다. 다들 겉으로는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를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보통 우리는 질문을 받으면 그보다 더 원대한 무언가가 삶의 동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 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이 행복의 약속은 항상 손에 닿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쾌락의 쳇바퀴에 중독되어 있다. 척 팔라닉이 파이트클럽에서 썼듯이 “젊고 원기왕성한 남성과 여성들은 무언가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싶어 한다. 광고는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자동차와 옷을 사게 만든다. 세대가 바뀌어도 젊은이들 은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기 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일을 한다.
- 인생을 두려워하지 마라.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당신의 믿음이 사실을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인생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1897)
-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많은 생명체와 유사할 수 있지만, 의미의 탐색은 우리를 인간으로, 아주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행복한 인생과 의미 있는 인생의 몇 가지 중요한 차이), 2013)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리고 그 이후 수천 년간의 서구 사상에서 인생에 대한 거대한 질문은 인간의 목적에 관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텔로스telos, 중세 기독교 사상가들은 '최고선 summum bonum'이라고 불렀던 이 문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가들의 중요한 관심사로서,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왜라는 물음에, 인류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는 우리가 자전거나 칼이 존재하는 목적 을 물어볼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 는 질문이었다. 자전거의 경우 그 답은 타기이고, 칼은 자르 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는 그리스 사상가들과 기독교 사상가들을 공히 묶어주는 것은 이들 은 인간에게 목적이 있을 가능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이해 가능했고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된 존재였다. 그러므로 사상가가 할 일은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선 또는 인간의 목적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게 전부였다. 조슈아 혹실드 교수의 주장처럼 인간의 목적은 “대부분의 서구 역사에서 인간의 삶에 대해 던졌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17세기 언젠가부터 과학을 근거로 한 세계관이 서구사회에서 서서히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세계관은 먼저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갈라놓았고, 그다음에는 초자연계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과학은 200~300년 동안 우주를 마법에서 깨어나게 했다. 인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등장, 도시화, 이동성의 증가, 산업화, 민주주의, 정부의 관료화 같은 다른 원인도 있지만 전근대기의 마법에 걸린 우주를 겉으 로나마 마법에서 깨어난, 무의미한 기계적인 우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과학적인 세계관이었다. 마법에 걸린 우주에서는 인간의 목적에 대한 질문이 합리적이었지만, 사물들의 거대한 질서 안에서 더 이상 인간에게 명백한 자리 가 없는 기계적인 우주와는 맞지 않았다. 이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거대 질문을 던질 필요로 귀결되었다. 1834년에 토머스 칼라일이라는 한 남자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간단해 보이는 질문을 넌지시 던졌고, 그 이후로 우리는 전사회적으로 그 실존적인 후과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 그러므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무엇보다 주어진 상 황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퍼져 나가고 그로 인해 세계가 마법에서 깨어나면서 발명된 질문 인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을 비롯한 우주 전체에는 자명한 목적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생각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잃어버린 것을 요청하는 것이 아주 중 요해졌다. 그리고 한때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묘사하기 위한 표현이 발명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된 모든 책임을 과학에 떠 넘기지는 말자. 과학적 세계관이 인간의 의식에 진입한 이후, 누군가는 우리가 삶을 유의미한 어떤 것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을 발명해야 했다. 
- 인생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부품 하나를 잃어버렸거나 사용 설명서도 없는 상태에서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표준적인 삼단짜리 빌리 책장을 가지고 정교한 마라커 캐비닛을 조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뭔가 허전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줄리언 바지니,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 2004)
- “만물에 목적이 있어야 하나?"
신이 물었다. "당연하죠.” 인간이 말했다. 
“그럼 이 만물의 목적을 생각하는 건 네게 맡기마.” 
신이 말했다. 그리고 신은 가버렸다.
(커트 보니것, 《고양이 요람》, 1963)
-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장치들만 가지고서는 인생에서 무엇에 가치를 둘지 또는 무엇을 좇을지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맨땅에서 우리 자신의 가치를 발명하는 것은 니체, 사르트르, 그 외 실존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일임 이 드러났다. 이들은 결국 전통의 족쇄에서 해방된, 자립적인 소위 초인 - 일반인의 쩨쩨한 도덕률을 초월한 개인은 스스 로 가치를 창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치의 기틀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제시하려는 이로부터 방향성과 지침을 구하곤 한다. 과거 성직자, 부족의 연장자, 공동체 지도자에게 주어겼던 사회적 지위는 자기계발 전문가,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 광고업자, 가짜 예언자 같은 사람들에게 넘 어갔다. 낡은 세계관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이 교체를 신뢰하는 것은 고사하고 좋아하는지조차 자신이 없다. 중세 세계관의 마법에 홀린 확실성으로부터 마법에서 깨어난 근대의 인간 중심적이고 의심에 찌든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문화적·역사적 과정은 몇 세기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개인은 이 정신적인 과정을 단 한 번의 생애에, 심지어는 자신 의 삶에서 단 한 번의 시기에 거친다. 하나의 문화적 과정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런 이행은 흥미로운 역사적 전개다. 반면 개 인 내부의 과정으로서는 비극적일 때가 있어서 완전히 압도당 하는 감정에 휩싸일 정도의 위기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수렁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이 있고, 당신이 알건 모르건 간에 당신은 이미 꾸준히 의미를 찾고 만드는 데 필요한 많은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 인생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인생은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하다는 말로 마무리가 되면 사람들은 절망하게 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인 의미는 없고,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에 부여한 의미, 개별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인 소설책 한 권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줄거리가 있을 뿐. (아나이스 닌, 《일기》 2권, 1967)
-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 우주의 기원 같은 거대한 형 이상학적 문제에서 시작하지 마라. 대신 당신의 삶의 경험에서 시작하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시작하라. 최근 경험에 대해 잠시 성찰하라.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더 의미 있었는가. 그리고 어떤 경험이 별로 의미가 없었는가. 지금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미래에 그런 경험을 더 많이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 다. 어떤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 간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더 자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어떤 업무가 다른 일에 비해 당신에게 더 의미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 재주를 더 잘 이용하는 경력을 쌓을 수 있 을지를 생각하라. 자신의 인생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유의미함과 충만함의 감각을 키워라. 그리고 만일 여전히 약간 막막한 상태라도 걱정하지 마라. 몇 가지 핵심 가치들은 우리 대부분이 일반적으로 인생에서 의미를 얻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 당신이 2020년에 경험했던 유의미함은 2030년이 되었을 때도 당신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생은 의미의 정도가 제각각인 다양한 일시적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처럼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유의 미함이 손상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사실 오래 지속되는 흰색 이 하루만 지속되는 흰색보다 더 흰색이 아니듯, 선은 영원하 다고 해서 더 선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더 일반적으로 인 생의 경우에도 그렇다. 당신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유의미함을 경험하는지는 먼 미래의 어떤 신비한 지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당신의 삶을 통해 결정된다.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인생이 의미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의미 있고 유일무이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당신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 을 알고 있으면 하루하루를 훨씬 값지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 이 된다. 이 때문에 존재의 유한함을 뼈아프게 느끼게 해주는 근사 체험 - 가령 불치병의 극복을 한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고 극적인 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 자기결정이론은 기본적인 심리적 필요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자율성, 유능감, 관계 맺음이다. 27 이 세 가지 필요가 충 족될 때 사람들은 더 많은 안녕과 고유한 동기를, 그리고 사실 상 인생 안에서의 더 많은 의미를 경험한다. 자율성은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선택을 하고, 개인적으로 흥미롭 다고 여기는 자기표현 활동에 참여하며, 당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유능감은 당신 인생에서 통 제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능력 에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수행한 일에서 솜씨가 좋다는 기분을 느끼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리라고 믿는다. 유능감은 정적이지 않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기술을 더 연마할 때는 유 능감이라는 기분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 관계 맺음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을 돌보고 돌봄을 받기도 한다는 기분을 말한다. 이 세 가지 기본적인 필요는 자기결정, 안 녕, 의미의 감각이 펼쳐질 수 있는 심리적 필요의 삼각편대를 구성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삶과 관련해, 나는 이 등식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고 느낀다.
- 어쩌다가 복잡한 정신적·감정적 구조물을 갖게 된 우리라는 존재의 유형에 대해 알아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 (조너선 하이트, 《행복의 가설》, 2006)
- 기본적인 필요와 관련된 목표에 진척이 있을 때는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런 필요와 관련이 없는 외부적인 목표의 성취에서 진척이 있을 때는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향상되지 않았다. 사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걱정이나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약간 증가했다. 그러므로 부, 명예, 외모를 추구하는 학생들은 그 목표를 성취하는 데 진척을 보이긴 했지만 이런 진척은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좋지 않은 기분이 들게 했다. 목표를 현명하게 선택하라. 자율 성, 유능감, 관계 맺음, 그리고 이 경우에는 선의와 관련된 목표들 은 당신의 안녕함을 향상시킬 수 있다. 반면 이런 기본적인 필요와 무관한 목표들은 성취를 한다 해도 당신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 수 있다.
- 희망 사항에 대해 신중하라. 어느 날 문득 이루어질 수 있으니.
- 사랑, 우정, 의분, 공감을 통해 타인의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한 당신의 인생은 가치가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1970)
- 자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인생 안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주는 고요할 수 있지만 친구와 가족, 동료와 공동체는 우리의 인생을 그들의 목소리와 에너지, 생동감으로 채운다. 그리고 우리를 가장 의 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우리를 가장 아끼는 사람 이다. 철학자 안티 카우피넨의 주장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들에게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어떤 아이에게 누구든 선물을 사줄 수 있지만 “부모가 손수 만들어준 선물과 같은 의 미를 가진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가까운 관계 에서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고유하고 대체 불 가능한 역할을 하곤 한다.
-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든 본성에는 분명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것을 구경하는 즐거움 외에는 거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1759)
- 당신 자신을 믿으라. 모든 심장은 그 쇠줄에 맞춰 진동하나니 (랠프 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1841)
- 가장 제약이 심한 환경에서도 우리의 힘 안에는 여전히 자유의 씨앗, 우리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지를 선 택할 자유의 씨앗이 있다. 사르트르는 “자유가 인간의 심장 에서 그 빛을 깜박이면 신은 그에게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인생에는 제약이 있다. 가령 죄수는 자기 마음대로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죄수라 해도 투옥 상태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전쟁포로로 9개월을 보냈던 사르트르는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했다. 빅터 프랭클 역시 비슷한 정서를 글로 표현했다. “강제수용소에 살았던 우리는 막사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마지막 빵 조각을 내어준 남자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들의 수는 몇 안 되었을지 몰라도, 인간에게서 모든 걸 다 빼앗아가더라도 한 가지는 가 져가지 못한다는 충분한 증거였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기만의 방식을 결 정할 최후의 자유였다. 
- 모든 인간 안에는 자연이 그를 빚어놓은 규모에 맞춰 스스로를 계발하려는 억누를 수 없는 욕구가 있다. 자연이 그 사람 안에 넣어둔 것을 말로, 행동으로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는 적절하고 건강하고 필연적이다. 아니, 그것은 의무, 심지어는 인간을 위한 의무의 축약본이다. 이곳 지구에서 인생의 의미는 이 안에 있다고 규정할 수 있다. 당신의 자아를 펼쳐내는 것,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토머스 칼라일, 《영웅숭배론》, 1840)
- 진화의 산물인 우리는 정확히 어떤 기술이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관심 을 가진다. 만일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상태라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만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연마 하는 것이 최고의 시간 활용법일 것이다. 게으름은 기술 습득보다 나쁜 생존전략이다. 그러므로 진화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잘하는 데서 더 나은 기분과 만족감을 느끼고 새로운 기술을 학습할 기회를 물색하는 강력한 동기를 심어놓았다. 학습과 개인적인 성장은 높은 만족과 참여의 근원이고, 우리 인생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통달한 활 동에 몰두할 때는 거기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바깥세상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 일하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알아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톨스토이, 발레리야에게 보내는 편지, 1856)
-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의 저자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의미란 “어떤 거창한 드러냄이 아니”라고 주장한 다. “그것은 신문가판대 상인에게 잠시 멈춰 서서 '안녕하세 요' 하고 인사하는 것, 직장에서 시무룩해 보이는 동료에게 다 가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상태가 더 나아지도록 돕는 것이고, 아이에게 좋은 부모 또는 멘토가 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충족의 소소한 순간들이지만, 개인적 충족의 작은 순간들은 우리가 마치 지켜보는 이가 없다는 듯이 춤을 추거 나, 매일의 출퇴근시간에 어떤 책에 몰입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여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우리의 과거 - 당신이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했던 어떤 것 - 에, 또는 우리가 품고 있는 미래의 어떤 값진 목표에 연결 시킬 때 이런 순간들의 유의미함은 훨씬 확장될 것이다. 당신 이 인생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당신 자신과의, 그리고 당 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들, 가치, 관심사와의 관계 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톨스토이가 인생의 최저 점에 있는 동안 깨달았던 것처럼 말이다. 심각한 실존의 위기에 시달리던 톨스토이는 깊이 파고들다 가 자기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게 뭔지를 분명히 밝히기 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이 세상에 붙들어매주는 “두 방울의 꿀” 덕분에 우울함을 안기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 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와 자신과의 관계였던 것이다. 당신의 두 방울은 무엇인가?
- 어떤 오래된 동유럽 이야기에 나오는 한 여행자는 평화롭게 스텝 지대를 걷다가 갑자기 호랑이와 마주친다. 목숨을 지키 기 위해 달리던 여행자는 벼랑 끝에 이르러 뛰어내린다. 경악 스럽게도 벼랑 밑에는 거대한 악어가 입을 쩍 벌린 채 그를 기 다리고 있다. 여행자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재빨리 벼 랑을 따라 자라고 있는 야생 관목의 가지를 부여잡는다. 여행 자는 두 가지 끔찍한 선택지 사이에 놓이게 된다. 위에 있는 호랑이에게 먹힐 것인가, 아래 있는 악어에게 먹힐 것인가. 설상 가상 그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쥐 두 마리가 쏠아대기 시 작한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인생의 상황을 설명한다. 실존적 위기 상황에 놓인 톨스토이는 자신을 쥐와 악어에 만 집중하느라 인생이 주는 그 어떤 것도 즐기지 못하는 이 여 행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문답 같은 이 이야기에는 톨스토이가 도출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여행자는 피 할 수 없는 죽음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의 순간에 아직 유효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나뭇가지 옆에는 탐스러운 딸기 몇 개가 있고, 그는 다른 손으로 그 딸기를 집는다. 딸기를 먹는 순간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달콤할 수가 있나!!
- 인생은 어느 날 끝날 수 있다. 나머지 다른 모든 날에는 그렇지 않다. 그 다른 모든 날들에는 아름다움을 맛보고, 의미를 발 견하고, 달콤함을 맛볼 기회가 있다. 멋진 인생은 일상생활의 작은 경이로움의 진가를 아는 인생이다. 유명한 선불교 사상 가인 앨런 W. 와츠는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서, 인생을 음악에 비유한다. 그는 음악에서는 작곡의 끝을 작곡의 핵심으로 여 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어떤 노래를 연주할 때 그것을 더 빨리 연주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음악에서 의미 있는 것은 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인생을 마지막에 진지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나 순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은 성공이든 뭐든, 어쩌면 사후의 천국 같은 그 마지막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되고 말았고, 거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핵심을 놓쳤다. 인생은 음악과 같은 일이고, 그러므로 당신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노래를 하거나 춤을 췄어야 했다. 어느 날 음악은 끝날 것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침묵을 기다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직 음악이 당신을 위해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가서 춤에 몸을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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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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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역습

역사 2021. 6. 20. 19:08

- 방향이 잘못됐을 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 시대를 규정하는 '발전'은 병을 치료하기보다 는 악화시키고, 문명은 소용돌이처럼 점점 더 속도를 높이며 우리를 어지럽히는 것 같다. 혹시 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일종의 진통제 아닐까? 찬찬히 생각해보기에는 현실이 너무 공포스럽기 때문에 '미래의 희망' 이라는 약이 필요한 게 아닌가 말이다. 
- 우리는 우리를 뿌리에서 뽑아낸 힘보다 더 우악스러운 힘에 의해 발전이라는 폭포로 내던져졌다. (칼융)
- 언어학자 대니얼 에버렛Daniel Everett은 20년 이상을 아마존 상류 지역의 수렵채집 부족인 피라항족과 살았다. 당시의 경험을 그린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Don't sleep, There Are Snakes》라는 회고 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피라항족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웃는 다.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서도 웃는다. 한 남자의 오두막이 폭풍우에 날아간 적이 있는데, 그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웃었 다. 그들은 물고기를 많이 잡아도 웃고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아 도 웃는다. 배가 불러도 웃고 배가 고파도 웃는다.” 14 피라항족의 웃 음은 그들이 사는 세계와의 편안한 조화를 시사한다. 근본적으로 그들을 낳은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동일하기 때문에, 즉 그들의 몸과 마음이 예상하는 대로 굴러가는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다. 에버렛이 관찰한 피라항족이 아마존  정글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사막에서 선인장이 느끼는 편안함과 똑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들의 삶이 쉽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만나는 어려움과 위험은 까마득하게 오랜 세대 동안 경험해왔기에 친 숙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과 나는 지난 세대에 어떤 인류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 중 에 진심으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세상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 약 1만 년 전 농업이 촉발한 급격한 변화에 직면할 때까지, 인간의 삶은 평등주의, 이동생활, 사소한 것도 공유하고 필요한 자원은 누구 나 이용할 수 있는 삶, 모든 것을 제공하는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 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지도자'의 특권이란 단지 그 지위에 있는 동안 다른 구성원들보다 의견이 더 중요시된다는 게 전부였다. '권력'은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았고 쟁취하거나 물려주거 나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호모사피엔스 역사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수렵채집사회의 이러한 특징들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마빈 해리스는 평등하고 자유롭던 수렵사회에서 문명사회로의 강제적 인 전환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가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계급이 생겨나자 자연이 준 풍요로움을 누리던 보통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세금이나 공물을 바치거나 과도한 노동을 해야 했다. ...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에는 지하감옥, 구치소, 교도소, 강제수용소와 함께 왕, 독재자, 고위 사제, 제왕, 총리, 대통령, 지사, 시장, 장군, 제독, 경찰서장, 판사, 변호사, 교도관이 등장했다. 계급제도에 따라 인간은 처음으로 절을 하고, 아첨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법을 배웠다. 여러 면에서 계급은 인류를 자유민에서 노예로 전락시킨 것이다.
- 희망에 매달릴수록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가는데도 '절대 포기하 지 말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발전에 대한 맹 목적인 믿음을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망상이 자라난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치더라도 개의치 않는 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헌신하고 집중하고 근면하면 무엇이든 이 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이 있는데, 그 망상에서 깨어나기만 하 면 무조건 비애국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서) 모든 책의 마지막 장은 영원한 행복이나 더 탄탄한 복근을 얻기 위한,더 짜릿한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한, 더 똑똑한 자식으로 기르기 위한, 또는 부자가 되기 위한 간단한 5단계 비법을 알려주는 희망으 로 끝나야 한다. 기후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우리가 '전환불가능 점'에 근접한다고 경고했을 뿐, 이미 그 시점을 지나버렸다고 선언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밤이 깊어졌는데도 우리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다. “내게는 아직 절대 늦지 않았다는 말이 묘비 명에 쓰인 글귀보다도 절망적으로 들린다. 벼랑 끝으로 몸을 던지 기 전에 하는 마지막 거짓말 같기 때문이다.” 토바이어스 울프 Tobias Wolff가 한 말이다. 물론 우리는 모든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인류 가 교훈을 통해 번영한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 게 할 것인가? 희망과 발전 앞에 비굴하게 무릎 꿇는 것이 사실은 이미 위급한 상황에서 나날이 악화되는 현실을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 로널드 라이트는 132쪽짜리 얇은 책 《진보의 함정A Short History of Progress》에서 급소를 찌르듯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오래된 혼란 을 개선시키는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게 하지만, 그 해결책은 훨씬 더 위태로운 혼란을 만들어낸다.” (2004년에) 그는 계속해서 “희망은 가장 허풍스러운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을 뽑게 만든다. 또한 주식 거래인이나 복권 판매자들은 다들 알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신중하 고 확실한 검소함보다 거미줄처럼 가는 희망에 매달린다”라고 했다. 라이트는 발전을 향한 '종교적 믿음의 병폐를 지적한다. 눈에 보이 는 발전을 숭상하는 우리의 신념은 여러 분야로 가지를 뻗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 하지만 발전은 태생적으로 합리성을 벗어 나 파국을 불러들이는 논리를 가졌다."
영원한 발전이라는 장밋빛 약속은 심리적 위안은 될지 몰라도 합리적 근거는 없다. 게다가 너무 늦기 전에 궤도를 수정할 능력까지 앗아간다. 연기 냄새 때문에 잠에서 깼을 때 우리를 가장 안심시키 는 말은 “걱정할 거 없어, 얼른 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조언이 아니다. 심리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은 발전에 대한 이 런 맹목적인 믿음을 낙관주의 편향optimism bias' 이라고 이름 붙였다. 당황스러운 증거는 드물게 일어나는 특이현상으로 치부하는  반면, 미래를 밝게 그리는 내용은 무엇이든 강조하는 경향이다. 
- 문명이 막아준다고 하는 대부분의 위험들은 사실 문명 자체가 만들어내고 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항생제와 관상동맥우회술을 업 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는 교통사고의 위험이 없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안전벨트와 에어백의 혜택을 내세우는 것과 같 다. 우리 집에 불을 지른 사람이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왔다고 해서 고마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과로하고 병들고 불행해지고 모멸감과 두려움을 느낀다면, 도대체 발전의 장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발전의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는 우리도 대략 안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파괴된 숲, 침식된 토양, 고갈된 어획량, 오염된 대수층, 일산화탄소가 가득한 대기, 암, 스트레스,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난민.... 그 외에 수없이 많은 것을 표로 정리할 수도 있다. 전에는 자식들 키우기 좋은 곳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이 혼돈의 세 상에서 자식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만을 바라는 지경이 되었다. 영속적 발전론은 우리의 가장 지혜로운 조상들이 더 잘 살기 위해 농업기술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수렵채집생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되 면서 건강과 장수, 안전, 여가, 훌륭한 예술을 누리게 됐다고 배웠고,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세력도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 임을 증명하기는 힘들다. 사실 농업경제로의 변천은 삶의 질에 전 반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 악화되었고, 여가시간과 수명도 줄었다. 엄연히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 농사를 시작한 것은 영리한 발전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문명화는 유례없이 안정적이고 온화한 환경 덕분에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나온 결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닉 브룩스Nick Brooks는 문명화 를 파국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나온 우발적인 부산물'로 본다. 생존이 힘들어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최후의 도피처'로서 '문명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18 우리 조상들은 안락한 삶을 위해 힘든 수렵채집생활을 버린 것이 아니다. 농업을 시작한 것도 더 나은 삶을 위한 과감한 도약이 아니라 세계 인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 도로 폭발하면서 오랜 세월 열심히 파내려간 구덩이 속으로 추락한 비극적인 사고다.
농업경제로의 변천에 대해 1999년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에 세이의 제목은 꺼림칙하게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The Worst Mistake in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다. 심지어 역사학자 유발 하 라리Yuval Noah Harari는 농업혁명을 '역사의 최대 사기라고까지 했 다. “농업혁명은 분명 식량의 총량을 증가시켰지만, 늘어난 식량이 식생활의 발전이나 여가시간의 증가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2015년에 나온 베스트셀러 《사피엔스Sapiens》에서 그가 한 말이다. 하라리는 그 잉여 식량이 그저 '인구폭발과 응석받이 엘리트'의 연료 역할을 했다는 것, 농부들은 더 고된 노동을 더 오래 하게 됐음에도 음식 의 질은 더 떨어졌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정착생활과 농경을 시작한 인류 앞에는 사회적 불평등, 집단들 간의 폭력, 유일신 종교를 권력 유지에 이용한 지배계급이 등장했다.
- 가톨릭 신자인 슈미트는 최초로 안정된 정착지에 사람들이 모인 것은 함께 예배를 드리려는 욕구 때문이었을 거라고 봤다. 그리고 괴베클리 테페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원을 짓고 유지하기 위해 서는 인부들을 먹이면서 공사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농업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신이 먼저 등장했고 그 후 나머지 조건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처슨, 보이드, 베팅거 등 기후변화에 의해 농사가 시작되었 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괴베클리 테페가 농업을 촉발한 게 아니라 농업사회로 향할 문화적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보여줄 뿐이라고 믿는다.
어떤 경우든, 괴베클리 테페를 지은 사람들은 분명 감사할 일이 많 았을 것이다. 당시 세계는 인간에게 거의 이상적인 환경이었으니 말 이다. 지금은 사방으로 뻗어 있는 메마르고 황량한 구릉지가 1만 2,000년쯤 전에는 먹을 것으로 가득했다. 두 종류의 호밀과 외알밀 로 이루어진 초원이 언덕을 뒤덮었고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도 널리 흩어져 자랐다. 가젤이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것들을 사냥했다. 때로는 한 무리 전체를 잡아들이기도 했다. 유럽들소(오늘날 소의 조상)도 많았는데 한 마리 무게가 1톤 가까이 되기도 했다. 슈 미트는 그 지역이 '지상천국'에 가까웠으리라고 봤다. 괴베클리 테페 규모의 건축물을 짓는 인부들을 먹였다면 그 정도로 식량이 충분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 엘리프 바투먼Elif Batuman과의 인터뷰에서 슈미트는 그들이 자주 큰 잔치'를 벌였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때마다 취기를 돋우는 맥주나 그보다 더 강렬한 효과가 있는 음식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 적어도 3만 5,000년 전부터 인류는 들소나 말 같은 동물을 그리거나 손자국을 동굴 벽에 남겼다. 하지만 괴베클리 테페를 지은 사람들은 황토나 숯으로 벽을 장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부 100명의 무 게와 맞먹는 거대한 인체 모양의 바윗돌을 깎고 정확한 자리에 배치 함으로써 바위벽을 직접 세웠다. 그런데 이 모든 풍요로운 환경은 구조적인 위험을 품고 있었다. 고 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에 의하면, 그 긴 여름'이 여러 세 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정착촌에 사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 정 착생활은 먹을 것이 특히 풍부한 환경에서만 가능한데 말이다. 정착 사회가 자리를 잡음에 따라 수렵채집사회의 유동성과 상호의존성은 점차 약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물이 더 풍부한 장소로 이동하게나 그럭저럭 버틸 만한 장소로 이동하는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항상 유지해왔던 이동생활 능력, 즉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사회적 융통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재난은 항상 세상 반대편에서 왔다.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빙상이 녹으면서 거대한 호수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아가시호Lake Agassiz로 불리는 이 거대한 얼음물 호수는 현재의 캐나다 매니토바에서 미네소타까지 뒤덮으며 면적이 44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렀다. 다 합치면 지금의 오대호 전체보다 넓다. 1만 3,500년에서 1만 2,600년 쯤 전에 아가시호의 물은 래브라도해로 빠져나가며 지축을 흔들 만 한 변화를 초래했다. 차가운 빙하물이 갑작스럽게 유입되자, 열대지 방의 바닷물을 북대서양으로 끌어와 유럽을 따뜻하게 해주던 대서양 역전순환류가 차단된 것이다(지금은 북극의 빙상이 녹아 해양으로 유입 되면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 온 빙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계속 이동하자 수천 년 동안 온화했던 유럽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들이닥쳤다. 후기 드라이어스기Younger Dryas의 눈이 북반구 고위도 지방을 덮으면서 그보다 훨씬 아래인 괴베클리 테페 주변도 기온이 섭씨 7도 정도가 떨어졌다. 기나긴 여름 날씨가 느닷없이 끝나고 천년 동안의 가뭄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고 절망적인 기후변화에 맞닥뜨린 인류는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구밀도가 이미 높아져서 대규모의 희생자 없이 수렵채집만으로 생존하는 것 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을을 이뤄 사는 것에 적응했고 자연이 베풀던 풍부한 공짜 식량은 고갈된 상황이라 굶주린 사람 들은 내륙에서 바다나 강 쪽으로 계속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리를 잡은 초기의 지배층은 요직과 권력을 차지했을 것이다. 
- 강가에 야생종자를 심는 방식이었든, 고랑을 파서 말라가는 견과류 나무에 물을 대는 방식이었든, 농업으로의 변화는 우리 조상들이 기억나지 않는 문을 통과하여 근대화로 휩쓸려가는 과정이었다. 그 리고 이런 변천은 위태롭고 절박한 시기에 영리한 사람들이 그저 식량을 더 얻기 위해 시도한 한 가지 방법이었을 뿐이다. 새벽 안개 낀 나파밸리에서 열기구 바구니를 붙잡으려 했던 브라이언 스티븐슨처럼 그들도 좋은 의도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역사상 최초로 식량을 채취한 게 아니라 추수했던 날, 그들의 두 발은 열기구와 함께 공중에 떠올랐고 손을 놓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 "세상에는 우스운 일이 많다. 그중 하나는 백인들이 다른 야만인들보다 자신들이 덜 야만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Following the Equator》)
영속적 발전론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수렵채집인보다 더 발전했고 문화적이고 세련되고 선택받았고 진화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 리는 문명화되었다, 우리의 우월함은 자명하다'다. 그런데 이들은 이 주장에 반하는 역사적 증거들은 외면한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자신이 '발견한 서인도제도에서 원주민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친절함, 관대함, 아름다운 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아주 소박하고 정직하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줍니다. 달라고 말만 하면 안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들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더 깊은 것 같습니다.” 스페인 국왕과 왕비에 게 보낸 서한에 그가 쓴 말이다. 일기에서는 그들에 대한 찬사가 더 욱 두드러진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선 점잖고 살인이나 도둑질도 하지 않으며 악에 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다정한 얼굴 로 이야기하며... 그리고 항상 웃는다.” 이런 칭찬이 몇 페이지 이어 지다가 역사상 남아 있는 문서 중 가장 섬뜩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 들은 훌륭한 노예의 자질이 있다. 우리 관리자 쉰 명만 있으면 그들을 장악해서 무슨 일이든 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초기 국가에서는 그런 생활 방식이 용인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광산이나 군대, 공장으로 몰려갈 정도로 절박한 처지에 돌려야 했다. 패트릭 콜훈 Patrick Colguhoun 이라는 경찰치안 판사가 한 말에는 굳건한 문명화에는 빈곤이 필수적이라는 통념이 잘 드러나 있다. “가난은... 사회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빈 곤이 없으면 국가나 공동체가 문명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 이 인간의 운명이며, 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노동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부유층이 재산도, 세련됨도, 안 락함도, 이익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체제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은 “가위처럼 전통적인 생활 방식의 중심을 절단하며 나아갔다. 가위의 한쪽 날 은 스스로 먹을 것을 조달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방해했고, 다른 날 은 임금노동 체제 밖에서 대안적인 생존전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옭아맸던 것이다.” 페럴먼의 설명이다. 1500년대 후반 에 영국에서 제정된 소위 튜더빈민법은 거리에서의 구걸 행위를 금지했다. 14세가 넘은 사람이 구걸하다 잡히면 태형을 당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왼쪽 귀에 표식을 남기는 처벌을 받았고 같은 죄로 3회 잡히면 처형되었다. | 이런 사례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스승이자 그 시대(1700년대 중반)의 선구적인 도덕철학자였던 프랜시스 허치슨 Francis Hutcheson은 이렇게 조언했다. “근면한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한다면 그것은 태만을 부채질할 것 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모든 필수품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 일시적인 노예생활을 하게 하더라도 태만은 처벌되어야 한다.”
오해하지 말라. 현대인들도 시장경제에 억지로 끌려가고 있다. 다 국적기업은 늘 가난한 나라의 땅을 수탈하여 (혹은 부패한 정치인들한테서 사들여) 현지인들이 그곳에서 작물을 키우거나 채집하지 못하도 록 몰아내고, 가장 운 좋은 사람들에게는 숲의 나무를 베어내거나 광물을 캐내거나 과일 따는 일을 시키고 노예임금을 준다. 그것도 공장에서 생산해낸 건강에도 안 좋은 식품을 그 기업 소유의 상점 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살 수 있는 회사 화폐로 지급한다. 그 런데도 시장경제의 침입으로 타격을 입은 그들은 '극심한 가난'에서 구제되었다는 이유로 축하를 받는다. 그전까지 그들은 땅이 있고, 가 축이 있고, 물고기가 있고, 사냥감도 있었기에 하루에 1달러도 안 되 는 돈으로 살 수 있었는데, 이제 시장경제에 끌려들어가 노예 같은 일꾼으로 산다. 이것이 발전이라는 것이다.
- 영속적 발전론자들이 찬양하는 '건국의 아버지들', '정복자', '문명인들은 멋모르는 역사가들이 사기꾼, 강간범, 약탈자들을 듣기 좋 게 포장한 것이다. 우리는 동상을 세우고 묘비를 만들어 그들이 이 룬 눈부신 업적을 우러러보지만, 사실 그 업적이란 건 대부분 하늘 을 찌르는 자만심과 비이성적인 탐욕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의 사악 한 행동에 불과하다. 알렉산더 게르첸Alexander Herzen 이 “역사는 미친놈들이 쓴 자서전”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로 떠받들어지는 자들은 대부분 광기에 사로잡힌 범죄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을 바꿔놓았다고들 한다. 하 지만 좋은 쪽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 그들이 좋은 쪽으로 바꿔놓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야심 찬 얼간이들이 남겨놓은 유산은 그들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야망을 반영한 문명이 라고 하는 게 정당한 평가 아닐까? 현재의 운명이 과거에 이미 정해 졌다고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희 한한 사고방식이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은 단 하나도 후회하지 않아. 하나라도 다르게 행동했다면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닐 테니까!”
- 도킨스가 한 말은 모두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는 분명하게 인간의 이기심이이 타고난 것이며 DNA에 새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도킨스는 인간을 “생존 기계, 즉 유전자라는 이기적 분자를 맹목적으로 보존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 전달체”로 본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들의 세계는 야만적인 경쟁, 무자비한 이용과 속임수'가 판치는 세계라고 주장한 다. 나아가 인간도 유전자를 닮는다고 말한다. “이 유전자의 이기적 성향은 보통 개인의 행동에서도 이기심을 발현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도킨스에게 고통에 눈감는 것은 자연선택의 불가피한 결과이지만, 다윈은 그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감과 이타주의가 사회적 동물들에게 분명 진화적 혜택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노트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동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을 보면 인간은 부모로서의 본능, 부부로서의 본능, 사회적 본능이 있고, 이 본능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감정... 자기 자신 을 잊어버릴 정도로 적극적인 공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를 돕고 보호하려는 성향으로 이루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평등'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은 물건, 똑같 은 음식, 똑같은 특권이나 권위를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생각하 는 평등한 사회란... 모든 구성원들이 음식이나 자원을 얻는 데 필요한 기술, 특권을 얻기 위한 방법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 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에게 보장되는 자율성이다. ... 평등주의 는 단순히 위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 는 데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고고학자 로버트 켈리)
- 수렵채집사회는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잘났다고 뻐기는 구성원들을 과감히 처리한다. 존경받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자기중심적으로 처신하다가는 그 지위를 잃는다. 한편, 인류학자들이 '분열 융합' 집 단으로 불렀듯이 수렵채집사회의 구성원들은 언제든 그 무리를 떠 날 수 있었다. 침팬지와 보노보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그런 관행이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식량 사정, 계 절의 변화, 집단 내의 갈등 같은 요인에 따라 집단들은 합쳐지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한다. 《인간사회의 기원The Origins of Human Society》 에서 인류학자 피터 보구키Peter Bogucki는 “홍적세의 무리들은 개인 들의 유연한 집합체였는데 그들의 병합은 혈연관계로 묶이기보다는 근거지가 가깝거나 처한 상황에 따라 가까워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유연한 연합체에서는 내집단과 외집단의 정체성이 한 가지로 고정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한다.
수렵채집 집단의 다양화를 촉진하는 요인은 침팬지나 보노보처럼 여성이 다른 부족과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다. 성숙한 나이에 이르자 마자 여성들은 보통 자신이 태어난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의 일원이 된다. 이는 수십 년 동안의 현장조사뿐 아니라 최근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 의해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 대니얼 리버먼은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발과 무릎 부상들은 사실 우리가 신고 달리 는 신발이 발을 약화시키고, 발목이 과도하게 안쪽으로 휘게 만들고, 무릎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1972년에 이 런 신발이 등장하기 전에는 다들 밑창이 아주 얇은 신발을 신고 달 렸지만 발이 튼튼했으며 무릎 부상도 훨씬 드물었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달리기를 했다. 인간의 몸을 봐도 장거 리를 달리는 데 굉장히 효율적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는 타고난 신체구조를 무시하며 위험을 무릅쓴다. 리버먼이 말했듯이 “인간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인류의 진화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건강을 지켜 주는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스쿨에 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달리면 안 된다.
맥두걸은 나이키가 조작해낸 이런 결과를 '나이키 효과'라고 부른 다. 하지만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런 마케팅을 이용하는 기업이 나 이키만은 아니다. 나이키도 눈부신 수익을 거두기 위해 정석을 밟았 을 뿐이다. 값싸고 자연스러운 것을 버리고 더 안 좋은 것을 취하게 하는 게 나이키 효과라면 이와 비슷한 효과'는 우리 주위에 비일비 재하다. 방목형 대신 공장식 축산 효과', '의사의 토요일 골프모임을 위한 금요일의 무조건 제왕절개수술 효과', '불법재배로 키운 마리화나 대신 해롭고 중독성 있고 비싼 약 효과’, 또는 민망한 모유수유 대신 간편한 분유 효과'. 이 모든 것들이 나이키 효과와 뿌리가 같은 마케팅이다.
자연스럽고 건강에 좋고 공짜인 것을 문제만 일으키는 것들로 대 체하는 행태는 사실 농업과 문명화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그것은 상 업이라는 기어가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수법이다. 이미 1930년대부 터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들은 대놓고 떠벌였다. 광고의 역할은 대 중이 항상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을 불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족 스러운 소비자는 불만족스러운 소비자에 비해 판매에 도움이 안 되 기 때문이다.”
- 바리 족 아기들을 연구한 스티븐 베커먼steven Beckerman에 의하면, 아버 지가 한 명인 아기는 15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64%인 반면, 아버지’ 가 여러 명인 아기는 80%였다. 분할 부성 관습이 있는 다른 사회에 서도 그 비율은 비슷했다.
공동소유가 기본 원칙이라 사적 재산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주의 사회에서는 부권을 중요시할 이유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핵가족은 문명화의 소산이다. 문명화 이후 수백 년 동안 미혼모는 버림받거나 모욕을 당했으며, 최악의 경우 살해까지 당했다. 수렵채집 시대의 상 호존중과 자율성을 특징으로 하던 남녀관계가 농업이 시작되면서 주인-노예 같은 관계로 변질된 것이다. 인간 존엄성이 이렇게 비극 적이고 지속적으로 몰락한 것은 새로 권력을 쥔 남자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혈통을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사회는 자연스럽게 자기복제를 한다. 신경 심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James Prescott은 부족들의 문화를 메타분 석하다가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유대감이라는 단 한 가지 기준만으 로 49개 부족문화가 평화적인지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폭력적인지 를 8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나머지 20% 기준 은 젊은이들의 성적 표현에 대한 반응이었다. 성적인 표현을 용인하 는 사회는 평화로웠고 비난하는 사회는 폭력적이었다. 프레스콧은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간단히 말해 애정 어린 유대라는 이 두 가지 기준은... 전 세계에 분포된 이 49개 부족사회가 평화로운 사회일지 폭력적인 사회일지를 10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어머니와 젖먹이의 접촉 부족이 성인기의 잦은 과음, 폭력적 행동, 자살률, 우울증, 기타 문제행동의 상당한 원인이라는 것이 통계로 증명됐다.
- 발달심리학자 피터 그레이Peter Gray는 어린이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한다. “수렵채집인들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성인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욕구는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힘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그레이는 이러 한 개인의 자율성이 수렵채집사회의 생태적·경제적 환경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아이들은 특정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리 전체에 의존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 부모를 포함해서- 그 아 이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부모한테서 야단을 맞은 아이들은 별다른 제지 없이 다른 오두막으로 간다. 그 오두막은 대부분 조부모 집이거나 부모의 형제들 집이다.”
-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으면 여자들이 사악해 보이지 .... (미국 락그룹 도어즈The Doors,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
- 기독교라는 종교의 중심인물은 처녀 어머니에 의해 성관계 없이 잉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성적으로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기이하지만 천국도 섹스와 완전히 무관한 곳으로 표현된다. 기독교의 이상하게 반에로티시즘적인 성격을 마 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은) 천국을 상상해 냈으면서도 인간의 가장 커다란 기쁨,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인 희열은 완전히 박탈해버렸다. ... 섹스 말이다! 그것은 마치 타는 듯 한 사막에서 길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 앞에 구원자가 나타나서, 무 엇이든 말만 하면 구해주겠지만 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똑 같지 않은가!”
- 모든 10대가 무차별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건 아니다. 여러 사회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이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은 우리가 사춘 기라고 명명한 난해한 시기는 사실 현대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류학자 앨리스 슐레겔Alice Schlegel과 허버 트 배리Herbert Barry II가 산업화되지 않은 186개 사회의 10대 관련 보고서들을 검토해본 결과, 이들 중 절반 이상에 '사춘기'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10대들이 정신장애의 징후를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젊은 남자들도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사춘 기라는 단어가 있는 사회에서도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 연 구에 따르면, 10대들의 분노와 연관된 문제들은 서구 사회의 영향력, 특히 학교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시작된 직후에 생기기 시작했다. 
- 우리는 결핍이라는 개념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자란 탓에 (생존을 위해 평생 악전고투했을 것 같은) 우리 조상들이 고통 없이 뭔가를 얻으며 살았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인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많은 수렵사회에서는 식량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거의 구분하지 않 는다. 집과 먹을 것을 구하는 활동이 고되고 피하고 싶은 사회에서 라면 그런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 내가 너보다 힘든 일을 더 많이 해야 해?' 이런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그 런 활동들이 한가한 시간에 즐겁게 하는 일(사냥, 산책, 물고기 잡기, 오 두막 수리하기, 아이들과 놀기)이라면, 이 논리는 힘을 잃는다. 사냥이 재 밌으면 그것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우받 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번영은 행복에 이르는 열쇠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올로 베르메Paolo Verme는 '자유와 통제력'이 주관적인 삶의 질 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임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행복과 가장 가까운 자유란 오로지 다음 달 빚을 갚기 위해 일주일에 닷새 를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지 않을 자유, 하기 싫으면 면도와 넥타 이(또는 브래지어)를 거부할 자유,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존 경하는 척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32년에 통찰력이 빛나 는 매력적인 에세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을 발표했다. 거기서 그는 “일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 는 굳이 노예제를 시행할 필요도 없다” 라고 했다. 2030년이 되면 자 동화로 인해 미국 내 모든 직업의 47%가 사라질 거라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일할 필요가 없고, 노 예제는 더더욱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거의 100년 전에 러셀은 이미 인간이 일하는 데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이 완전히 낭비라는 것을 간파했다. “아무 필요가 없는데도 과도한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일하는 것은 오로지 어리석은 금욕주의 - 보통은 자신의 의지도 아닌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여가시간이 필요하 다는 주장이 부자들에게는 항상 충격’이라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공장 노동이 그 후로도 계속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그의 에세이가 출판된 지 10년 후에는 또 다른 동원이 훨씬 더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복합 체'라고 명명한 체제로 자리잡았다. 러셀의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적 인 대목은 마지막 단락이다. 그가 상상한 인류의 미래가 태곳적 우리 조상들의 삶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과로와 신경과민과 소화불량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여가의 즐거움을 더할 뿐 피로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 평범한 남녀는 삶이 행복하기 때문에 더 친절해 지고 남을 덜 괴롭히고 덜 의심한다. 전쟁을 좋아하는 성향은 점차 사라 진다. 모두가 행복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 벌어지 면 언제 끝날지 모를 가혹한 노동에 모든 사람들이 동원될 터이기 때문 이다. 모든 덕목 중에서도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선한 본성인데, 선한 본성은 힘겨운 투쟁으로 점철된 삶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전한 삶에서 온다. .... 기계가 발명되기까지 우리는 힘겹게 일해왔다. 그런 환경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하지만 이제 어리석게 살 이유가 영원히 사라졌다.
- 사냥하는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1966년에 열린 인류학학회에서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는 학계 최초로 선사시대의 삶에 대한 스주의적 이론체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살린스는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한 다 양한 관점들을 소개했다. 몇 년 후에 그는 《석기시대 경제학Stone Age Economics》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논제를 좀 더 명확하 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가장 원시적인 세계의 구성원들은 개인 소 유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가난하지는 않다. 빈곤이란 소유물이 적 다는 뜻도 아니고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빈곤이란 사회적 지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빈곤은 문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인류학자 뉴리트 버드-데이비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렵채집인들은 단지 가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부유하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서구인들의 행동을 결핍이라는 전제와 관련해서만 이해할 수 있듯, 수렵채집인들의 행동은 풍요로움이라는 전제와 연관 지을 때 이해할 수 있다. 과연 고결한 야만인이다.
- "욕심은 좋은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황당할 정도로 극심한 빈부격 차 사회에서 그 수혜자들의 수치심을 덜어주는 데 이용되었다. 하지 만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메시지는 인류의 가장 뿌리 깊은 가치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비인간적인 경제체제를 옹호하면서 돈 버는 게임에 서 이기기만 하면 기쁨과 행복을 누릴 거라고 끊임없이 재방송을 한 다. 하지만 30만 년을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기심은 문명을 이루는 데 핵심 역할을 할지 모르 지만, 진화한 인류의 본성에서 한참 벗어난 문명화가 과연 인간에게 맞는 것일까.
- 어쩌면 우리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이라는 유일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삶의 모든 아름다움을 희생시키고 토템과 터부와 십자가와 제물, 교회탑, 이슬람사원, 종족, 군대, 깃발, 민족에 우리 자신을 가둔다는 것이다.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 만물은 전진하고 나아갈 뿐 사라지지 않는다. 멸망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죽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행복한 것이다. (월트 휘트먼)
- 흔히 의사들과 의료 시설들도 환자에게 아무 이득이 없는 비싸고 고통스러운 처치를 하고, 정도를 벗어난 경제 보상을 받는다. 매년 총 의료비의 30% 정도가 사망하는 환자들의 5%에게 들어가며, 그중 3분의 1은 죽기 마지막 한 달 동안에 집중적으로 쓰인다. 말기 환자를 평화롭게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돼야 할 까? “삶의 어떤 단계에 이르면, 공격적인 치료는 승인받은 고문으로 볼 수 있다.” 보런의 결론이다.
외과의사로 의료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권의 책을 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우리 의료인들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환자들 을 끊임없이 가혹하게 갈취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에는 무 지하다.” 가완디는 이렇게 무심한 잔인함은 죽음을 외면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환자와 노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우리의 패착은 그들에게는 안전하거나 더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 의사들이 관행적인 처치들을 거부하는 이유는 의료계의 과장광고 뒤에 가려진 실상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을 보자. 텔레비전에서 묘사되는 심폐소생술에 대한 최근 조사를 보면, 75%가 성공했고 그 환자들의 67%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왔 다. 하지만 실제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 중 한 달 이상 생존한 환자는 8%였고, 이들 중 일상생활에 가깝게 복귀한 환자는 3%에 불과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가정의학과 임상조교수로 근무 하는 켄 머리Ken Murray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들려줬다. “심폐소생술만 하면 대부분 목숨을 구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사실 그 성적은 초라하다. 나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나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수백 명이나 봤지만, 병원을 걸어나간 사람은 심장질환이 전 혀 없던 건강한 남자 딱 한 명이었다. 환자가 병이 깊거나 노령이거 나 암 말기라면 심폐소생술로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아주 희박 한 반면 고통을 가중시킬 확률은 극대화된다.”
오래 사는 것이 당연히 더 좋다는, 순전히 양적인 기준을 받아들 인다 해도 삶의 막바지 치료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옳 지 않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치료보다는 통증 완화에 집중하는) 호스피 스에 입원한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와 비슷하게 오래 살거나 더 오래 산다. 2010년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w England Jourmal of Medicine)에 발표된 한 논문에 의하면, 폐암 말기 환자들 중 일반 적인 암 치료를 받으며 완화 치료 상담도 받은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일찍 호스피스 돌봄을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상당히 호전된 삶의 질을 누렸다. 그리 고 초기에 완화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 소수는 공격적인 말기 치료 를 받았지만, 그들도 생존기간이 25%가 더 길었다. 전문가들의 결 론은 다음과 같다. “초기의 완화 치료는 삶의 질과 심리에 상당히 긍 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 초기에 완화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표준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비교해서 말기에 공격적인 치료를 선택 한 비율이 낮았지만 그들도 더 오래 살았다."
- 늘 죽음을 직면하며 사는 수렵채집인들은 궁극적으로 종말을 피 할 수 없음을 잘 안다.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에 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수렵채집사회에서 극도로 노쇠해지거나 병 이 말기에 이르렀을 때 삶을 끝내는 다섯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어 떤 부족은 그런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둔다. 어떤 부족 은 거주지를 옮길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 이누이트족, 크로우족, 아쿠트족 같은 부족들은 바다로 몸을 던지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방식으로 목숨을 끊도록 장려한다. 그보다 적극적인 방식 은 목을 조르거나 뒤통수를 치는 식으로 '자발적인 자살을 도와주 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노약자가 부족의 이동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공동체에 폐를 끼치면 희생자 모르게 또는 동의를 받지 않고 그렇게 죽이는 방식이 있다.
- "병 없이 사는 기간은 줄어들고 병을 앓으며 사는 기대수명이 늘어 났다. 기능 상실 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난 것뿐이다.” 우리는 결국 수명을 연장시키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저 우리의 고통을 슬로모션으로 겪게 되었을 뿐이다.
-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던 환각제가 밀려난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악의적인 억압 때문이다. 식물성 약물로 누구나 자유롭게 신을 만난다면 신에 대한 그들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를 정복하던 시기에는 실로시빈 버섯 - 아즈텍인들은 이것을 '신의 육신'이라 불렀다 - 을 소지하는 것도 처형감이었다. 스페인인들이 섬기던 신은 사실 '질투하는 신'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원주민 치료사들은 종종 피부에 5-메톡시디 메틸트립타민과 부포테닌이라는 강력한 두 가지 성분이 있는 두꺼 비나 광대버섯을 이용했는데, 기독교가 전래된 후에는 그것들이 사용 금지됐다. 그 버섯과 두꺼비는 독성이 강했기 때문에 약물을 직접 복용하지 않고 점막을 통해 혈류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방식을 썼다. 초기 치료사들은 대다수가 여성이었는데,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 마법의 약물을 주입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남근 형태의 지팡이를 약물에 담근 다음 그것을 질점막에 문지르거나 그 안쪽에 문지르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이런 관습을 근절하기 위해 여성 치료사들을 말 그대로 악마화했고, 오늘날까지도 '마녀'는 남근을 상징하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나온다.
- 실로시빈을 비롯한 향정신성 천연 화합물은 수천 년 동안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신비 체험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그런 신비 체험은 환자에게 살아 있는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실존적 행복감은 높 이고 암으로 인한 충격은 완화시킵니다. 환자는 자신이 죽음의 과정 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을 자 각하죠. 궁극적으로 환자들은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암 후반기에 가장 먼저 잃는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누려 죽음을 덜 두려워하고 삶을 더 많이 껴안게 됩니다.”
- 실존적 공포의 감소는 근대 의료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겠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분명히 입증된 현상이다. 향정신성 버섯을 다양한 의식에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는 적어도 5,7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주요 종교들이 생기기도 전이다. 역사학 자들은 그런 버섯들이 고대 힌두교 경전 《베다vedas》에서 언급한 소 마soma, 혹은 호메로스 Homeros가 《오디세이아The Odysseia》에서 '망 각의 묘약'이라고 한 망우초(忘憂草, nepenthe)일 거라고 추정한다. 
- 이 책의 주제는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지속적인 발전은 과거에 대 한 이해가 바탕이 된 발전이라는 것이다. 융은 "기억 꿈 사상》에서 "발전에 의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과 과학기술에 의한 개혁은 물론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지만 어딘가 수상쩍고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든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라고 했다. “새로운 개혁은 절대 인류 전 체의 만족과 행복을 증진시키지 않는다. 반면, 전통 방식에 의한 개혁은 대체로 희생이 적고 더 지속적이다. 더 단순하지만 더 많은 시행착오를 통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미래의 지침으로 삼는 것이 그리 기이한 일은 아니다. 우 리 선조들이 살아온 방식을 알아야 우리가 사는 인간동물원을 어떻 게 설계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미래의 최고 단계를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괴베클리 테페가 쓰레기처럼 파묻힌 이후 인간의 역사를 형성했던 수많은 속박을 벗어던진 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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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쓰임

인문 2021. 6. 20. 19:07

-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찰과 기록이다. 마케터로 일을 시작하며 존경하는 마케터 선배에게 가장 먼저 배웠던 부분이 바로 '관찰' 이었다.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면밀한 관찰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 선배의 말이었다. 이 관찰은 크 게 사람에 대한 관찰과 이슈에 대한 관찰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사람에 대한 관찰은 나의 취미 중 하나인 '사람 구경' 이 다. 어딜 가도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가서도 현지 사람 구경에 몇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관찰을 할 때마다 얻는 생각이 꼭 있다.
- 지하철은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에어 팟이 대중화되는 것도,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점점 10대에게 선택받고 있는 것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인기도, 패션 브 랜드 슈프림'의 인기도 모두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가장 먼저 알아챘다. 지하철은 선입견 없는 무작위 표본으로 구성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캐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둔 채 사람들을 구경한다.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신발을 신었고, 어떤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하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지(물론, 이건 지옥철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을 볼 수밖에 없을 때다.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 화면을 함부로 쳐다보는 건 실례다) 살펴본다.
- 관찰과 기록이 사적인 생각이라면, 질문과 해석은 콘텐츠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찾아보는 콘텐츠의 첫 번째 차이가 여기에서 온다는 사실을 많은 아티클을 올리고 나서야 발견했다.
- 예를 들면 글을 쓸 때를 예시로 들면 이런 식이다. 나의 글쓰기 과정을 생각해본다. 그러면 크게 총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소재 - 개요 - 1차 글쓰기 - 2차 글쓰기 - 퇴고' 이다. 공장에 서 높은 생산성을 위해 공정을 효율적으로 설계하듯, 내 글쓰 기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설계했다.
글 소재는 소재 아이디어가 생각 날 때마다 〈노션〉이라는 생 산성 앱에 기록해둔다. 글로 다뤄보고 싶은 주제는 모조리 이 곳에 기록한다. 그중 이번 주에 쓰고 싶은 글은 일요일 저녁까지 최종으로 결정한다. 그 뒤 수요일까지는 글의 핵심 메시지와 개요를 작성한다. 이를 토대로 목요일까지 글의 걸탄을 쓰고, 토요일까지 글의 나머지 절반을 쓴다. 그리고 일요일 오전 에 글을 다시 한번 퇴고한 뒤, 최종 발행한다. 그런 뒤 다시다.음주 글 소재를 선택한다.
이렇게 글 쓰는 과정 전체를 단계별로 나눴고, 각 단계별 마감 일을 정해 루틴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몸에 밴 루틴이 지만, 처음에는 벅찬 루틴이었다. 퇴근하고, 주말에 쉴 때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6개월, 1년이 지나면서 글쓰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원래라면 글을 썼을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나만의 시스 템'을 만든 덕분이었다.
- 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생산성 도구'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생산성'이라는 단어다.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앱 중에서도 생산성 카테고리 앱이 제일 많다. 노트계의 절대강자 에버노트〉, 올 인 원 워크 스페이스All in one work space <노션〉, 투 두 리스트To do list 1 등앱 〈Things 3) 등의 생산성 앱이 스마트폰 첫 화면을 가득 채 우고 있다.
이런 생산성 도구를 쓰면 나만의 시스템' 최적화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글 소재를 모으고 프로 세스를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노션〉을 쓰고 있다. 뉴스 레터에 들어가는 뉴스 콘텐츠와 자료는 에버노트〉의 클리핑 기능을 통해 자투리 시간마다 긁어모은다. 긴 목차가 필요한 책을 쓸 때는 불릿 형식으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워크플로위〉 를 통해 개요를 쓰고, 실제 글을 쓸 때는 '구글 문서'를 통해 노트북 태블릿-스마트폰을 동기화하며 어디에서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새로운 생산성 서비스가 보이면, 시스템 개선에 나서보기도 한다. IT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서인지 새로운 IT 서비스를 이 용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작가를 위한 에디터 프로그램인 〈스크리브너를 통해 책 원고를 써보 기 시작했고(무려 6만 원이나 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 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단 2시간 사용해보고 알았다) 아이패드와 애플펜슬 그리고 굿노트〉앱을 통해 손으로 글을 써보는 시도를 하고(이렇게 하면 더 잘 써질 때가 있다), 컴퓨터와 동기화하여 구글 문서에 타이핑하기도 한다. 운동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애플워치 저스트 프레스 레코드> 앱을 통해 목소리 로 아이디어를 녹음해두고 이를 다시 받아 적어 콘텐츠로 만 들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생각노트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서 루틴화를 했던 것, 그리고 생산성 서비스 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끊임없이 프로세스를 개선하여 생산 성을 높인 덕분이다. 
- 소설가 김영하는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소설 가의 기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원고 마감요."
그는 교수 시절에도 소설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소설가의 필수 덕목은 원고 마감 지키는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결국, 출판사와 합의한 때에 맞춰 결과물을 내는 것이 창작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결 과물을 내야 한다. 기획을 잘 하는 사람보다 실행을 잘 하는 사 람이 더 주목받을 확률이 큰 것도 그런 이유이다. 어떻게든 실 행을 해보시라. 시작부터 거창할 필요는 결코 없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분이 지금 당장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든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미 시작인 셈이다.
- 과거에 비해 뉴스레터를 발송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국내의 경우 '스티비’라는 곳이 이메일 마케팅 툴을 제공하고 있다. 국외의 경우 '메일침프' 서비스가 대표적이며, 서브스택’, ‘메일리' 등의 서비스를 통해 유료 뉴스레터 운영도 가능 하다.
또한 뉴스레터 콘텐츠는 훨씬 더 다양해졌다. 밀레니얼을 위한 시사 뉴스레터 뉴닉〉, 리뷰를 다루는 뉴스레터 까탈로그 등 이 뉴스레터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개인이 얼마든지 자신의 독자와 팬을 모아 브랜드가 되고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나의 생각과 기록을 이메일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물론, 뉴스레터가 많아지면서 뉴스레 터 피로도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중은 끊임없 이 '영감'과 '인사이트'를 원하며, 내 메일함으로 배달되는 관점과 해석을 원할 것이다.
- 온라인 콘텐츠를 살펴보면 점점 롱폼(긴 호흡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콘텐츠)에서 숏폼(짧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으로 바뀌고 있다. 생각노트를 시작했던 2016년에는 숏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모바일 서비스가 확장되며, 롱폼 서비스의 빈틈을 노린 숏폼 서비스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온라인 콘텐츠 포맷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콘텐츠 창작자라면, 이제 숏폼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은 '독자 중심' 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어느 정도 밀어 붙이는 것도 창작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일 수 있지만(자 신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다), 결국 창작자는 대중과 만나야 하고 대중의 선택이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 기 위해서는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콘텐츠가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숏폼 콘텐츠를 향한 구성적 실험'이 시작됐다. 
시작은 당연히 인스타그램이었다. 콘텐츠가 숏폼 위주로 가게 된 데는 인스타그램 서비스의 영향이 컸다. 블로그와 페북에서는 사진 한 장에 한 줄 설명만 올리면 성의 없는 게시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조차 도 콘텐츠로 인정받고 어떨 때는 힙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인스타그램은 가볍게 올리고, 가볍게 둘러보는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각 잡고 콘텐츠를 올리다가 스트레스를 받은 수많은 SNS 피난민을 받아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 스토리' 기능이 추가되면서 숏폼 콘텐 츠의 생산성이 더 강해졌다. 스토리'는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 는 휘발성이 있다. 그래서 피드로 올리기에는 살짝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일상 속 사진과 영상이 스토리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드가 인스타그램 내에서는 그나마 '각 잡고 콘텐츠를 올려야 하는 곳이었다면, 스토리는 이제 그런 '각'조차도 잡을 필요 없게 만들어준 것이다.
- 글로벌 럭셔리 편집숍으로 유명한 '미스터 포터'의 전 콘텐츠 디렉터 '제러미 랭미드'는 앞으로 피드보다 스토리가 더 강력 한 영향을 발휘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서비스 맨 상단에 스토리 콘텐츠가 동그라미로 뜨는 UI로 인해 스토리는 피드보다 더 높은 집중도, 더 편한접근성을 갖게 됐다. 심심할 때 들어와 피드를 아래로 내리는 사용성 못지 않게, 스토리 동그라미를 누르고 옆으론 넘겨가면서 보는 사용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독자가 모이고 있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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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시크릿

심리 2021. 6. 20. 19:03

이 책은 하버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수강한다고 하는 탈벤 샤하르 교수의 행복학 강의를 바탕으로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 훈련법 56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그게 너무 작은 행복이라도 비웃지 말고 즐기라는 것이다. 눈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결과에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소비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현재의 중요한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내가 설계한 미래에 다가가는 길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쌓은 탑은 반드시 무너진다.

많은 사람들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남들과의 비교는 불행의 지름길이다. 나보다 더 나은 남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비교는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비교를 하려면 나의 내면에 재능, 가능성, 열정, 의지끼리 비교하라. 그러면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고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 9가지를 늘 새겨둔다면 행복의 길에 조금씩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1)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너무 신경쓰지 마라
(2)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라
(3)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가 되지 말라
(4)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멈추고 미래에 정신 팔리지 말라
(5) 모든 것을 복잡하게 하지 마라
(6) 좀 더 편안한 길을 찾지 마라
(7) 자기 생각과 내면의 감정을 통제하지 마라
(8) 사소한 일을 요란스레 처리하지 마라
(9)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멈춰라

이 책은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이것이다.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당신은 행복하다."


* 본 리뷰는 출판사 지원을 통해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칸트)
- 대개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은 노력가이다. 게으름뱅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는가! 노력의 결과로써 오는 어떤 성과의 기쁨 없이는 누구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확의 기쁨은 그 흘린 땀에 정비례한다. (블레이크)
-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그날그날 낚는 행복을 만끽하라, 크든 작든 다시 못 잡을 행운처럼 기뻐하라. 그것이 매일 매일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고 아름다운 인생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비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칙칙한 회색빛으로 덮이고 삶의 열정도 사라진다. 자, 당장 미소를 지어보자. 그렇게 웃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삶에 불만이 엄습할 때 내면에서는 행복할 이유와 단서를 찾아야 한다. 작고 소소한 것이라도 많이 찾아보자. 불만과 고통의 소용돌이에 속에서도 행복할 근거가 된다. 그 행복 하나가 고난을 이길 힘을 준다. 고통을 넘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든다. 미래를 걱정하며 꽃이 질까 염려하지 말고 눈앞에 핀 꽃을 보고 행복하라.
-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직 괜찮다는 위안이 만족스런 삶의 전제 조건이다. 그 괜찮은 부분에서 긍정의 심리가 싹 튼다. 어떻게 슬픔을 이겨낼지 알고, 슬픔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돕는다. 진정한 행복을 얻고 싶다면 반드시 슬픔과 시험, 우여곡절에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진정한 기쁨을 느껴야 한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불행하다.”라고 풍자했다. 힘겹게 만족스런 삶을 좇고 있다면 먼저 자기 위안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신의 상황이 더 열악한 경우보다 낫다고 믿어라. 세상이 아름답고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만족스런 삶의 출발선이다.
- 실패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 이제 안심이 되는가. 그렇다면 자기 긍정을 마음에 품고 재도전의 첫발을 내밀어라. 이전의 실패가 당신을 강하게 만들었고 도약하게 도울 것이다. 더 높이 뛰는 비약을 체험할 기회다.
- 지식에 뿌리를 내린 경험은 생각의 불꽃을 화려하게 태울 수 있다. 삶의 경험은 우리에게 책보다 더 직접적이고 깊이 있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하나의 사건을 겪고 얻은 깨달음이 더 의미 있다. 이는 지혜의 깊이와 넓이에도 영향을 미 친다. 광범위하게 다양한 것을 만나고 관찰하고 삶을 경험하라. 삶 속에서 이미지를 포착하고 받은 인상을 다 축적하자. 이것들은 배경 지식의 기반이 된다.
- 칼 비테Karl Witte는 “불행 중에서도 행복을 느낄 줄 알고, 고난속에서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어릴 때 상상력이 풍부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은 바로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은 삶에 대해 긍정적인 환상, 즉 꿈을 말한 다. 꿈은 열정적으로 삶을 더 잘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삶의 동기와 계기가 마련되지 않아서 삶에대한 열정도 없다. 반대로 꿈이 가득한 사람은 꿈을 이루고 싶은 소망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노력하고 분투한다. 꿈은 일생을 걸고 쟁취해야 할 사명이 아니다. 각자 가슴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일들의 집합이 꿈이다. 그래서 존 고다드는 꿈의 목록을 127가지나 적었다. 
- 어딘가 하나쯤, 무엇인가 하나쯤 믿는 구석이 있어야 자신감이 생기고 추진력도 생긴다. 그 믿음을 자신의 잠재력에 둬라. 자신 의 가능성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똑같은 일을 할 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결과는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극명하다. 잠재력을 개발하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 오늘의 기쁨을 당신은 가졌는가? 소중히 대했는가 아니면 뒤로 미뤘는가? 아직도 내일의 기쁨을 동경하고 있는가? 만약 오늘 하루 동안 기쁨을 느꼈다면 스스로에게 말하라.
"난 지금 이 행복을 놓치지 않을 거야!"
-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결과에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소비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말자. 현재의 중요한 요소에 집중하자. 그것만이 당신이 설계한 미래에 다가가는 길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탑을 쌓지 마라. 그러면 반드시 무너진다.
-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와 과거를 가지고 비교하길 좋아한다. 비교를 통해 우열을 가릴 수 있고 좀 더 빠르게 목표를 선택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고 나면 행복감이 증가한다. 그러나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맹목적인 비교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초래한다. 따라서 비교의 소용돌이에 잠기지 말고 현재를 꽉 움켜쥐자. 그렇게 해야 자신의 행복이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  상대적 관점에서 누구와 비교하라는 말은 아니다. 인생은 마트에 진열된 엇비슷한 상품이 아니므로 화려한 포장으로 감싼다고 자기를 세상에 어필할 수도 없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 고 그 모습으로 당당하게 생활할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기 내면에 있는 재능, 가능성, 의지, 열정끼리 비교하고 우열을 가려야 한다.
- 심리적 영향을 받는 우리는 행복을 포장지로 생각한다. 카메라를 살 때처럼 남들이 권하는 행복에 눈을 돌리고 남들이 제시하는 행복만 진짜 행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상태를 동경하며 자기 앞에 놓인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는 자기가 친 울타리에 행복을 가두는 꼴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어떤 상황에 놓였다면 선택하지 못한 것에는 미련을 버리자.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이 선택한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만약 계속 비교하게 되면 귀하게 얻은 것조차 하찮게 여기며 결국에는 그것마저 잃게 된다. 바라던 것도 얻지 못하고 우리가 이미 갖고 있던 행복마저 망가져버리는 꼴이다.
-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 9가지
(1)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자기 일은 자신이 하고, 자기 인생은 자신이 산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신경 쓰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2) 모험을 두려워하지 마라. 기회와 위험은 대부분 함께 온다. 위험을 피하려고 하다가 기회마저 잃지 마라. 회사에서 승진할 수 있음에도 승진 뒤 받게 될 엄청난 스트레스를 두려워해 기회를 잃 고 만다.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3)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가 되지 마라. 일은 삶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일 중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쉬어야 하고 일부 러 시간을 내서 가족과 보내며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양질의 쉼 을 누리지 못한다면 정신은 매우 빨리 피폐해진다. 쉬어야 할 때는 쉬어라. 일의 성과로 자신을 지키고 개발해야 한다지만 쉬면서 재충전하면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4)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멈추고 미래에 정신 팔리지 마라. 카를 힐티Carl Hilty는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으니 그저 지나가게 두 어라!”라고 말했다. 삶은 현재 일어나는 모든 순간에 있다. 그러 니 절대 현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그다지 아름다운 게 아니다. 과거의 잘못에 신경 쓰지 마라. 항상 과거에서 얽매어 살아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미래를 동경하는 것 또한 안 된다. 미래의 일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미래가 당 신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 혼란에 빠진다.
(5) 모든 것을 복잡하게 하지 마라. 누가 뭐래도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다. 인생이 단순할지 복잡할지는 인생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달렸다. 인생은 본래 매우 단순하다. 너무 복잡하게 살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얽히고설키게 된다. 행복은 이런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6) 좀 더 편안한 길을 찾지 마라. 삶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삶 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마틴 루터 킹은 “첫발을 내딛을 때는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저 쉽게 첫발을 내딛는 것은 안 된다.” 라고 말했다. 삶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야말로 우리에게 기쁨을 느끼게 한다.
(7) 자기 생각과 내면의 감정을 통제하지 마라. 사람들은 생각을 읽는 것에 익숙지 않다. 도움을 청할 때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드러내야 한다.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하지 마라.
(8) 사소한 일을 요란스레 처리하지 마라. 어떤 일이 당신을 짜 증나게 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일 년 뒤에도 이 일을 기 억할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면 그 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 년 뒤 당신은 그 일로 당황했던 사실조차 잊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인데 미리 전전긍긍하고 확대해서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9)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멈춰라.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둔 틀을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준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삶에도 변화가 있다. 기분이 오르내리기도 한 다. 일이 술술 풀리기도 하지만 답답하게 꽉 막혀 있을 때도 있다. 기분이 최악일 때 답답한 일을 꺼내 들고 좌절하지 마라. 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행복의 장애물을 스스로 만드는 격이니 최대한 빨리 즐거운 일을 찾아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
- 누구나 자기 자신을 충분히 증명하고 싶어 한다. 꿈과 일치하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바라는 것과 현실 사이에는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인생의 끝에 얻게 되는 것이 꼭 바라왔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멀리 있는 신기루를 바라보는 것보다 현재를 성실하게 살며 소박하지만 진실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 현명하다.
- 영국의 철학자 새뮤얼은 대단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글을 쓰면서 완벽주의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글을 쓰는 게 매우 중요한 일임을 잘 알아서, 자신이 좋은 글을 쓰지 못할까 봐 글을 쓸 때마다 근심에 빠졌다. 결국 그는 좋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며 글에 대한 비판과 반론이 쏟아졌다. 새뮤얼은 '대작은 내 최후의 날에 쓰겠다. 지금 쓰는 글들은 모두 초고일 뿐이다.' 라며 글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를 자유롭 게 했다. 이제 그는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후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으며 화려한 문체의 글로 찬사를 받았다. 새뮤얼은 글쓰기 전에 그저 '초고를 쓰는 것이라 여겼다. 초고는 수정을 거듭해야 글이 완성되는 과정의 시작이어서 자기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써나갈 수 있었다. 생각을 바꿈으로써 글을 쓰는 압박감에서 해방된 것이다.
- 이 일을 완벽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자!'라는 생각은 행복의 독보적인 비결'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좌절과 실패를 맞닥뜨린다. 당신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과정 을 누리는 것을 잊지 마라. 이 과정을 걸어가는 것은 실패했거나 넘 어졌던 기억을 지우고 즐기는 일이다. 과거 일들에 발목 잡혀 불안에 떨거나 아직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전전긍긍한다면 행복의 지름길을 놓치고 오히려 돌아가게 된다. 
- 영국의 시인인 셸리는 “만약 잘못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당신은 그 잘못으로 인해 후회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는 이미 죽었다. 미래만이 자신의 것이다.” 라고도 말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과거의 경험에 걸려 넘어져서 '이럴 줄 알았다면'이라고 후회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감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오늘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 흔들의자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거리는 노인이 되었을 때에야 같이 어깨를 마주할 사람이 있다는 것,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임을 깨닫는다. 이렇듯 행복은 늘 곁에 있지만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는 척해주어야 비로소 자기 존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 인생에는 햇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우리가 햇빛을 보면 어둠은 물러간다. 전진할수록 앞길을 비춰주며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돕 는다. 그러나 햇빛을 등지면 자기 그림자만 보게 되므로 관용을 베 풀 수 없고 자기 안에 갇혀 사고의 영역까지 좁아진다. 그로 인해 기쁨을 찾지 못하고 암울한 현상만 보게 된다. 
-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 사상가 러셀Russell, Bertrand은 1924년에 중국의 쓰촨성을 찾았다. 그 시절의 중국은 군벌이 할 거割據하고 있어서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었다. 러셀과 함께한 몇 사람은 사람이 메는 대나무 가마에 앉아 어메이산山에 올랐다. 산길이 가파르고 험준하여 가마꾼들이 지쳐 땀을 흘리는 광경에 러셀은 경관을 구경할 기분이 사라졌다.
가마꾼들은 가마를 타는 그들 몇 사람을 몹시 미워할 것이며, 이렇게 더운 날 가마를 타고 산에 꼭 올라야 하는지 원망할 거 같 았다. 어쩌면 왜 자신이 가마를 타는 사람이 아니라 가마를 메는 사람일지 괴로울 수도 있었다. 산 중턱에 이르러 러셀은 대나무 가마에서 내려 가마꾼의 표정을 열심히 살폈다. 그는 가마꾼들이 일렬로 앉아 담뱃대를 꺼내면서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날씨와 가마를 탄 사람을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들은 흥미롭게 자기 고향의 농담을 들려주기도 하고, 호기심으로 러셀에게 외국의 얘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러셀은 그때를 회상하며 쓴 《중국인의 성격》에서 “우쭐거리는 태도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재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 에픽테토스Epictetos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이 보기에 논에 벼를 심는 농부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행복하다. “진정한 행복은 당신이 인생의 가치를 진정으로 깨달은 뒤에 느낄 수 있다."라는 말처럼 관점을 바꿔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자.
-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세네카)
- “인생의 전반부에는 망설이지 말고, 후반부에는 후회하지 마라!”
-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느릿느릿 오는 미래,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현재, 영원히 멈춰 움직이지 않는 과거이다. 시간의 걸음을 쫓기 위해선 현재를 따라나서야 한다. 성큼 앞서지 말고 그것이 몰래 달아나지 않도록 붙잡고 이용하자. 그렇지 않으면 현재는 당신을 따돌리고 달아나고 인생은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무료하게 흘러가게 된다. 떠놓은 물처럼 어떤 의미도 없어진다.
- 삶에서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반대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잃는다고 생각해보자. 가진 재물은 물론이고 일, 가족, 친구, 재능, 건강 등 새로 얻는 것보다 이것들이 더 소중하지 않은가? 100을 채우려고 기를 쓰지 말 고 먼저 자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자. 당신이 채우려는 1은 99가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 그라시안GRACIAN은 “우리는 가장 잊어야 하는 일을 가장 잘 기억한다. 고통의 이유는 자신에게 있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서 당신을 쓰러트릴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자 신뿐이다. 다른 사람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자신이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에게 화를 자주 내는 이유는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고통이나 선택 앞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것은 진실된 자신이다. 시간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의 가장 큰 적도 자기 자신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 태양을 등지면 자신의 그림자밖에 볼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마치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향해 서 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품고 긍정적으로 태양을 향해 서자. 그리고 낙관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자.
- 모든 일에서 자신감과 자기성찰의 능력을 길러라. 이것이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이다.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삶에 대해 믿음을 갖고 흔들리지 마라. 세상의 기준이 모두 옳을 수 없으며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길 때 행복이 유지된다.
- 인생의 목적에는 일과 건강과 행복이다. 일에는 즐거움이 있고 건강이 있다. 자기 직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찾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공한다. (헨리 포드)
- 우리는 일 년 후면 다 잊어버릴 슬픔을 간직하느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다. 소심하게 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 (카네기)
- 사랑은 떨리는 행복이다. 이별의 시간이 될 때까지는 사랑은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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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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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마라톤이다

etc 2021. 6. 17. 08:00

미국 월가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가문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셸비 시니어와 아들 셸비 주니어, 손자 앤드류와 크리스 3대에 걸쳐 100 넘게 주식 투자를 통해 () 쌓아올린 데이비스 가문입니다. 할아버지 데이비스는 경제교육을 받은 적이 번도 없었고, 38세가 돼서야 주식투자에 입문했습니다. 뉴욕 보험청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늦은 나이에 전문투자자로 변신했지만, 확고한 투자원칙을 세워명가(名家)’ 길을 열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528일자 A31 김동욱의 독서 큐레이션: 세상의 규칙을 찾는 열쇠 기사는 데이비스 가문이 월가의 전설이 비결을 소개했습니다. ”주식 채권투자와는 거리가 삶을 살다가 월스트리트에 입문해포브스선정 미국 최대 부호로 우뚝 섰던 셸비 데이비스,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 대신 투자원칙과 지혜를 전수받아 1만달러를 379000달러로 불렸던 셸비 주니어, 뉴욕의 유명 펀드매니저로 가문의 명성을 이어간 손자.“

월가는 물론 세계에서도 드물게 3대에 걸쳐 성공을 지속해낸 번째 비결은자신이 아는 곳에 투자한다 원칙입니다. 셸비 시니어는 당시 인기 있던 채권이나 기술종목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던 보험종목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많은 보험회사들이 장부가액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팔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다른 종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전망이 밝은 주식을 골라 매입했습니다. 이렇게 투자한 초기자본 5만달러가 9억달러로 58000 불어났고,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최대 부호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가 정립한 투자원칙 가지를 소개합니다. ”헐값의 주식, 고가의 주식을 피하라: 어설픈 기업은 세월이 흘러도 그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반면 아무리 훌륭한 기업도 주가가 비싸면 소용없다. 기업에 투자하는 역시 물건을 사는 것과 다를 없다. 회사는 마음에 드는데 주가가 그렇지 않은 경우 하락할 때까지 기다려라. 투자자에게는 약세장이 많은 돈을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사람들이 시기를 모를 뿐이다.“

뛰어난 리더십에 투자하라 원칙도 눈길을 끕니다. ”어떤 회사든 훌륭한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월스트리트의 불문율이지만, 일반적인 분석 보고서에서는 문제가 배제된다. 분석가들은 최신 통계를 우선시하지만, 그들이 어떤 회사에 투자할 때는 회사의 리더십을 반드시 파악한다.“ 셸비 시니어는주식은 마라톤이다 원칙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1, 3 또는 5 투자를 목적으로 경우 주식의 위험부담이 높지만 10 또는 15년을 계획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증시에 입문한 때가 강세장 막바지였지만 ”20년이 지나고 보니 불안했던 첫출발은 전혀 문제될 없었다 회고했습니다.

그는 주식투자로 1조원 가까운 돈을 벌었지만 자식과 손자들에게 푼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대신투자의 원칙과 지혜 물려줬고, 이것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부의 원천이 됐습니다. ”할아버지는 너에게 푼도 물려주지 않을 작정이다. 대신 너는 스스로 버는 즐거움을 내게 뺏기지 않아도 된다.“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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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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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면서 피할 없는 피드백(feedback)입니다. 가족이나 동료가 말이나 행동에 대해 던지는 한마디, 내가 글이나 만든 제품에 쏟아지는 반응, 직장에서 받는 업무평가가 모두 피드백입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피드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피드백을 불쾌해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국경제신문 611일자 A30 천의 얼굴 가진 피드백헛스윙 아닌 홈런 되려면 기사는 피드백이 불편한 진실인지를 성찰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협상연구소의 더글러스 스톤 교수와 쉴라 교수는 인간이 가진사각지대 피드백 수용을 어렵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에 관한 가지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짜증날 정도로 명확하게 나의 사각지대를 훤히 꿰뚫고 있다.”

교수는 사람들이 피드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 자극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피드백의 내용 자체가 틀렸거나 왜곡된진실 자극’. 피드백을 주는 사람, 상황, 장소, 방식 등이 불러일으키는관계 자극’.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정체성 자극’. 문제는 어떤 경우이건 이런 피드백 자체를 피할 없다는 점입니다. 가지의 자극을 제대로 파악하고 컨트롤함으로써 피드백을 온전한 으로 만드는 중요합니다.

불편한 피드백에 상처를 받고 오히려 보약으로 삼으려면성장형 정체성 갖춰야 합니다. “자신을이러이러한 사람으로 고정시키면, 생각과 대치되는 피드백을 받았을 저항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계속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정체성을 가진다면 상대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있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 생활을 살아가는 피드백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60 개의 회사가 시장의 외면을 받아 문을 닫고, 연간 87 건의 이혼 신청이 접수돼 25 건의 이혼이 이뤄집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피드백이라는 사슬에 묶여 있다.”

모든 피드백이 나쁘기만 아닙니다. 단계 능력을 키우는 짜릿함을 선사하고, 심장이 두근두근하며 밤잠을 설치게 하는 기분 좋은 피드백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견뎌야 하는 힘겨운 대상일 때가 많습니다.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똑같은 조언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스트라이크 한가운데로 날아오는 커다란 소프트볼이 수도 있고, 자신의 몸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파고드는 강속구가 수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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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조직

경영 2021. 6. 13. 09:10

- 실패했다고, 모든 힘을 헛된 일에 낭비했다고 한탄해서는 아무 소용 없다. 오직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무라이는 실수에서 비롯된 지혜를 절대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하가쿠레(葉德)》, 야마모토 쓰네토모(山本常朝)
- 문화는 사명 선언문과는 전혀 다르다. 문화는 한번 만들고 끝나버리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군대에 이런 말이 있다. “표준 이하의 뭔가 를 발견하고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또 다른 표준을 만든 다.” 문화도 똑같다. 문화와 어긋나는 뭔가를 보고도 무시한다면, 새 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비즈니스 환경이 변하고 전략이 진화함에 따라 그것에 맞춰 문화도 지속적으로 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은 움직인다는 말처럼 목표도 언제나 움직이는 법이다.
- 울프는 에스콰이어>에 기고한 기사에서 “인텔에서는 모두가 '인텔 문화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했다. 노이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신입 직원들에게는 앤디 그로브가 직접 나서서 인텔의 문화를 교육시켰다. 훗날 인텔의 CEO에 오르고 뛰어난 문화 혁신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그로브가 직원들에게 이렇 게 물었다. “여러분은 인텔의 접근법을 어떻게 요약하겠습니까?” 그 러면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인텔에서는 다른 사람이 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직접 공을 잡고 띕니다.” 그로브 가 대답했다. “틀렸습니다. 인텔에서는 공을 잡아 바람을 뺀 후 접어 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공을 잡아 들고 달려가 골라인 을 넘었을 때 주머니에 있던 바람 빠진 공을 꺼내 다시 부풀립니다. 그 렇게 해서 6점이 아니라 12점을 따냅니다 
- 계층적 위계 구조가 가진 장점 하나는 명백히 나쁜 아이디어를 제거하는 데 매우 탁월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계층 구조의 맨 꼭대기에 다다랐다는 것은 그동안 각 단계를 거치면서 다른 모든 아이디어와 비교되고 검증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누가 봐도 좋은 확실한 아이디어만이 살아남는다.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 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문제가 있다. 명백히 좋은 아이디어가 진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동의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가끔은 진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 가 처음에는 아주 허접한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업계의 어떤 전설적 인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전기통신 회사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의 전화기 관련 특허와 기술들을 품에 안을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제발로 뻥 차버렸다. 웨스턴 유니언은 그동안 전보 사업을 운영하면서 통 신 사업의 수익성은 정확성과 광범위한 도달 범위에 달려 있다는 사 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전화는 정확성과 도달 범위에서 완전히 낙제점이었다. 전화 통화는 소음이 너무 심하고 끊기기 일쑤였으며 장거리 전화는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질 받았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또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도 미운 오리 새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농담 취급을 받았을 정도였다. 전문성이라곤 없는 대중이 작성한 글 따위가 세계 최고 석학들의 작업을 대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런데 어떻게 됐는가? 오늘날 위키피디아는 역사상 어떤 사전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유일한 백과사전으로 생각하는 수준이 됐다.
- 기업은 갱단, 군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아주 작은 행동들로 이뤄지는 커다란 조직이며, 따라서 구성원들의 사소한 행동에 기업의 존망이 결정된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성공하는 근원 적인 이유가 자사의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 알아 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영 서적들은 광범위하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문화를 고찰하지 않을뿐더러 성공한 기업들에만 현미경을 들이대고 성공적인 기업 문화를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음 에도 견고하지 못하거나 일관성이 없고, 심지어 해로운 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아주 많다. 실제로도 '잘 키운 효자 제품 하나로 비참한 문 화적 환경을 거뜬히 극복하는 회사들이 있다. 하지만 결코 오래가지 는 못한다. 
- 마지막으로 실망스러운 말을 해야겠다. 위대한 문화가 꼭 당신의 회사를 위대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당신의 제품이 월등히 뛰어나 지 않다면 또는 시장이 당신의 제품을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회사 는 아무리 사내 문화가 훌륭해도 실패할 것이다. 기업과 문화의 관계 는 운동선수에 비유하면 영양과 훈련의 관계와 같다. 기량이 출중한 선수는 영양 공급이 다소 부족하고 훈련 기법이 약간 미진해도 성공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재능이 부족한 선수는 완벽히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고 죽을힘을 다해 훈련해도 올림픽 경기에는 출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영양을 섭취하고 양질의 훈련을 받으면 어떤 선수든 기량이 향상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제 이런 생각이 들지 싶다. 훌륭한 문화가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진대 굳이 문화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더 멀리 보자. 당신의 직원들은 언젠가 당신의 회사를 칭찬하는 언론 보도나 회사가 받은 상들을 잊게 된다. 또한 분기별 실 적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당신 회사의 제품들에 대한 기억도 갈수록 흐릿해진다. 그렇지만 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있다. 당신 회사에서 일하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고 그 회사에서의 경험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됐는지는 영원히 그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이렇듯 회사의 성격과 정신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한다. 그런 것들은 일이 잘못될 때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접착제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매일 소소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주며, 그런 결정들이 모여서 진정한 목적의식이 된다.
- 잡스는 애플이 직면한 문제가 PC 산업의 경제학 구조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애플이 할 일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물론 더 나은 제품을 만들려면 애플의 문화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딱 하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아니라 애플의 강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은 언제나 애플이 가장 잘하던 일이었다. 최고의 전성기 시절 애플은 프로세서 속도와 스토리지 용량 같은 업계의 벤치마크들이 아니라, 매킨토시처럼 사람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제품들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통합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애플을 따를 기업이 없었다. 그리고 애플이 통합의 1인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UI,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며 컴퓨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 및 장치 - 옮긴이)부터 하드웨어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색상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 는 능력을 소유한 덕분이었다. 잡스는 이런 자사의 강점을 정확히 이 해하는 직원들을, 다른 말로 자신처럼 사용자 경험을 총체적으로 통제하고자 했던 완벽주의자들을 채용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천재 디자이너로 나중에 아이폰, 맥북 등 애플의 간판 제품들을 디자 인하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도 그런 직원 중에 하나였는데, 잡스는 '영혼의 단짝’ 아이브에 대한 믿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는 우리 일의 핵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 절대 잊을 수 없는 규칙을 세운다
수년간 조직 문화를 이끌 강력한 규칙을 세울 때에는 따라야 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 단순 명료해서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사람들은 규칙을 잊을 때 문화도 함께 잊는다.
*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규칙은 엽기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진심이에요?" 라고 반문하게 만들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 '왜?'에 대한 답은 그 규칙의 문화적 의미를 오해의 여지없이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구성원들은 거의 매일 그 규칙을 맞닥뜨려야 한다 아무리 기억하기 쉬워도 구성원들이 1년에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하는 상황에만 적용된다면 빛 좋은 개살구다.
- 루베르튀르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백인 장교들을 받아들였을 때 노예 출신 병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하나하나 세세히 기록한 문서는 없지만,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한껏 당긴 활시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으리라. 외부에서 리더들을 영입하면 내부에 있던 모두가 매우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문화가 바뀔 때의 느낌이다.
- 루베르튀르는 생도맹그 주민들에게 농업이 최우선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별다른 소득도 없이 입만 아플 거라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했다. 오히려 농업이 최고의 우선순위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그는 극적인 뭔가를, 그것도 모든 사람이 똑똑히 기억할 어떤 행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노예 주인들을 용서했고 그들이 자신의 땅을 계속 소유하도록 허락했다. 그의 농업 우선주의 정책을 이보다 더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 헤이스팅스의 입장 도 루베르튀르와 비슷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우선순위라고 백날 천 날 말로만 해서는 헛수고였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그것을 행동으로 명확히 보여줘야 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헤이스팅스의 과감한 결정 덕분에 넷플릭스는 경이로운 성과를 달성했다. 2010년 말 넷플릭스는 거대 언론들의 조롱 감이었다. 일례로 다국적 언론 기업 타임워너(Time Warner)의 CEO 제프리 뷰커스(Jeffrey Bewkes)는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하는 것에 대해 “굳이 비유하자면 알바니아 군대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것과 같다”고 대놓고 비웃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 는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그런데 오늘날 넷플릭스는 어떤가? 시가총액이 무려 1,500억 달러가 넘는다. 
- 사무라이의 정신과 지혜를 담은 가장 유명한 고서로 야마모토 쓰네토모가 지은 《하가쿠레》를 보면 “그 사람이 용기 있는지, 비겁한지를 평상시에는 알 수 없다. 일이 생겼을 때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구절이 있다.
- 리더로서 당신은 도덕적으로 모호한 사고방식 속에 편안히 숨어 지낼 수 있지만 영원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는 달라져야 한다. 당신은 진화하든가 아니면 도덕적 타락의 벽 속에 자신을 가두든가, 둘 중 하나밖에 취할 수 없다.
상고르는 영리하게도 그 사건을 진화의 촉매제로 사용했다.
- 때로는 리더로서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원칙을 채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인텔은 능력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평상복 근무를 복장 규정으로 채택했다. 인텔의 리더들은 최고급 정장을 차려 입은 최고 경영진의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누가 제안하는 최고의 아이디어가 승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오늘날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그런 역사는 모른 채 또한 그 규정을 뒷받침했던 능력주의는 채택하지 않은 채, 평상복 근무 규정만을 받아들인다.
-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이자 세계적인 칭기즈칸 전문가인 잭 웨더퍼드(Jack Weatherford)는 저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 그 경험이 테무친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씨족이 아니더라도 마치 가족처럼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그 에게 생겼다. 훗날 테무친은 혈연으로 맺어진 유대가 아니라 대개는 자신에게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이것은 초원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행동을 주된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오늘날의 많은 기업 문화에서도 혁명적인 발상이다.
- 부족이나 씨족이 아니라 칸에 대한 충성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만 그런 충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 칭기즈칸은 자신이 건설한 초(超)대국을 지탱하기 위해 부(富)가 지속적으로 유입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은 끊임없는 정복과 전쟁을 의 미했다. 평화 시기가 너무 길어지면 가뜩이나 좌절감에 빠져 있던 강력한 제국의 통치자들이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다가 결국에는 서로를 반목하게 될 터였다.
- 행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칭기즈칸은 올바른 결정을 했다. 그의 제국 은 너무 광활한 데다가 일사불란한 통제가 힘들어서 고도로 중앙 집중화된 체제에 입각해 한 명의 통치자가 다스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커다란 실수였다. 종국에는 그의 제국이 정확히 각 울루스의 경계선을 따라서 분리의 길을 가게 되리라는 점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그 문제는 몽골이 다른 문화들과 통합됨으로써 더욱 심화됐다.
- 톰슨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우연찮게 새로 맡은 업무들이야 말로 자신이 CEO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유익한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소수자로서 조직에서 성공하는 법에 관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라. 그리고 당신의 자기 연민 파티에 다른 사람들을 절대 끌어들이지 마라. 
* 옷깃 말고는 아무것도 접어버리지 마라. 어디서든 기회가 나타 날 수 있다. 전기 공학자라고 평생 감자 튀김기에 사용할 온도 조절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 기획 회의 를 위해 플립 차트를 들고 다닐 수도 있다.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마다 퇴짜 놓을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기회들이야말로 나를 CEO로 만들어준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다.
- 대규모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수없이 많은 업무들을 정확 히 수행할 필요가 있을 때는 모든 대화에서 모든 사안의 모든 측면을 샅샅이 파헤칠 시간이 없다.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대화 중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내 성격의 단면은 극도로 불리할 수 도 있었다. 비록 나 스스로는 지금도 그 성향을 호기심이라고 주장하 고 싶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의 그런 성향이 회사 발전에 걸림돌이 되 지 않도록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문화를 구축해야 했다. 어떻게 했을까?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 나와 정반대의 성격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웠다. 그들은 가능한 일찍 대화를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 나를 통제하기 위해 유익한 자기 관리 규칙들을 만들었다. 단계별로 엄격하게 서면으로 작성된 안건과 희망하는 결과가 없는 회의가 소집되면, 우리는 그것을 취소했다.
* 나는 전 직원에게 우리 회사는 회의를 능률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전념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내가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런 다음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방법이었다.
-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유명한 말이 있 다. “문화는 아침식사로 전략을 먹어치운다.” 정말이지 멋진 발언이고 나 또한 매우 좋아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드러커의 주장에 동의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드러커의 논리를 좋아하는 까닭은 엘리트 의식에 놀랄 만큼 정면으로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숨은 뜻은 이렇다. 경영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마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동이다. 완 벽히 옳은 말이다. 또한 드러커가 그 발언에서 문화를 우선적인 고려 사항으로 올려놓는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 면, 문화와 전략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어치우 는 사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문화와 전략 둘 중 하나가 성공 하려면 둘은 반드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 칭기즈칸의 군사 전략은 거의 모든 병사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했다. 바로 자급자족하는 기병이었다. 따라서 그의 평등주의적 문화는 그의 전략적 니즈에 완벽히 부합했다. 샤카 상고르의 전략은 교도소 내의 다른 갱단들보다 규모는 작아도 좀 더 엘리트다운 정예 갱단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지애를 중심으로 문화를 구축했고, 이는 대형 갱단들이 꿈도 꿀 수 없는 문화였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의 장기적인 문화를 구축했을 때 핵심적인 요소 하나는 저비용 구조였다. 고로 아마존의 문화가 근검절약에 우선적인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근검절약의 가치가 모든 기업에게 효과적일 거라고 속단하지마라. 쉬운 예를 보자. 애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게 디자인된 제품들을 만드는 것에 집착한다. 따라서 그런 기업에게는 근검 절약 문화가 되레 역효과를 불러왔을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를 CEO에서 끌어내리고 애플의 총 사령관에 오른 존 스컬리(John Scully)가 애플을 거의 공중분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부분적인 이유는 비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였다. 아무리 좋은 덕목이라도 모든 조직에 정답인 것은 아니다.
- 미국의 장수 드라마 시리즈 (24)의 주인공인 대(對) 테러요원 잭 바우어가 테러범을 심문할 때처럼 당신 은 진실을 끄집어내야 한다. 영업 부문에서 만약 고객의 말을 액면 그 대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오래지 않아 짐을 싸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기술자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그는 아주 정확하게 대답 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충동을 느낀다. 반면 영업 직원에게 질문하면 그는 당신의 그 질문 이면에 있는 질문 즉, 질문의 숨은 의도를 알아내 려고 할 것이다. 예컨대 고객이 “X라는 기능이 있습니까?”라고 물으 면 유능한 기술자는 “예” 또는 “아뇨”로 정확히 대답할 것이다. 한편 유능한 영업 직원은 절대 그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스스로에게 자문할 것이다. 그 기능에 대해 왜 묻는 거지? 그 기능을 보유 한 경쟁 업체는 어디일까? 음, 나와 거래할 생각이 있는 게 틀림없어. 정보를 좀 더 알아내야겠어.' 그래서 이런 식으로 되묻는다. “x 기능 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처럼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방식은 기술자들을 시쳇말로 '돌아버리게 만든다. 기술자들은 즉각적인 답을 원하고 그래야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성공하 기 바란다면, 다른 말로 회사가 번창하고 그래서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유능한 영업 직원이 자신의 제품을 잘 팔아주길 바란 다면, 기술자는 자신과 영업 직원들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인내심 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순조롭게 굴러가는 조직이라면 기술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얼마나 잘 팔리는가가 아니라 제품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가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시장에서는 때때로 기술자가 통제할 수 없는 커다란 위기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기술자들은 무언가를 만드는 일 자체를 즐기고 가끔은 업무 외적으로 부수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 그램을 작성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취미 활동인 셈이다. 따라서 기술 자들에게는 낮이든 밤이든 원할 때면 언제라도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이런 연유로 기술자 문화는 종종 편안한 복장, 늦은 출근, 야근, 철야 근무 등으 로 특징지어진다.
- 훌륭한 영업 직원은 권투 선수를 좀 더 닮았다. 그들이 자신의 일을 즐길지는 몰라도, 취미 삼아서 주말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 는 영업 사원은 없다. 프로 권투 시합과 마찬가지로 영업 활동의 목적 은 돈과 경쟁이다. 상금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영업 조직들은 수수료, 판매 경진 대회, 판매왕 클럽 등을 비롯해 상 금 지향적인 보상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 영업 직원들은 외부 세상에 보여주는 회사의 대표 얼굴이므로 비록 고객들은 정시에 도착해도 그 들은 적절한 복장을 갖춰 입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 훌륭한 영업 문화는 경쟁적이고 저돌적이며 보상에 커다란 초점을 맞춘다. 그렇지만 과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결과로만 말한다.
- 누군가가 선을 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어느 정도는 당신의 문화가 그런 행동이 용납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당신의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동의하지 않아도 결정을 따른다' (disagree and commit)는 엄격한 규칙을 고수하는 것 은 건강한 문화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위고하를 떠나 관리자는 마땅히 이미 내려진 결정을 지지해야 하는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물론 회의에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진 후 에는 최종적인 결정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결정이 내려진 근 거들을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마지막 요소는 속도와 정확성 중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더 중시하는가?'다. 이에 대한 대답은, 조직의 본질과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존이나 GM 같이 직원이 수만 또는 수십만에 이르고 매일 수천 건의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대기업에서는 속도가 정확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거대 조직에서는 가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가 그것이 잘못된 결정임을 깨닫고 올바른 결정으로 전환하는 편이, 처음부터 올바른 결정을 하느라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속도 면에서는 더 유익할 것이다.
- 권한 위임이냐 통제냐에 관한 문제에서 마지막으로 고려할 사항은 지금이 평시(peacetime)인가 아니면 전시(wartime)인가이다. 회사가 순 항 중이고 그래서 조직을 확대할 창의적인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가? 아니면 회사의 존망이 달린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는가? 내가 하 드씽》에서도 설명했듯 '평시의 CEO'와 '전시의 CEO'는 경영 방식이 전혀 달라야 한다.
평시 CEO는 규약을 적절히 지킴으로써 승리에 이를 수 있음을 안다. 전시 CEO는 승리하기 위해 규약을 위반한다.
평시 CEO는 큰 그림에 역점을 두고 세부적인 결정은 직원들이 할 수 있게 권한을 위임한다. 전시 CEO는 가고자 하는 주된 방향에 방해가 된다면 깨알만 한 사항까지도 신경 쓴다.
평시 CEO는 대규모 직원 모집을 단행한다. 전시 CEO도 대규모로 직원을 모집할 때도 있지만, 정리해고를 단행할 인사관리 부서도 구성한다.
평시 CEO는 기업문화 조성에 시간을 할애한다. 전시 CEO는 위기상황이 문화를 규정하게 한다.
평시 CEO는 항상 비상 대책이 있다. 전시 CEO는 때로 무리수를 둬야만 한다.
평시 CEO는 남보다 크게 우세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전시 CEO는 편집증 환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
평시 CEO는 비속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전시 CEO는 경우 에 따라 의도적으로 비속어를 쓴다. 
평시 CEO는 경쟁을 대양에 떠 있는, 서로 교전을 벌일 가능성이 없 는 배들과의 경주로 여긴다. 전시 CEO는 경쟁을 남의 집에 몰래 들 어가 아이를 유괴하려는 것과 같은 행위로 여긴다. 
평시 CEO는 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다. 전시 CEO는 시장 쟁취를 목표로 한다.
평시 CEO는 노력과 창의성이 수반된 경우라면 회사의 계획에서 벗어나더라도 용인하려 한다. 전시 CEO는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평시 CEO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전시 CEO는 보통 수준의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평시 CEO는 갈등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전시 CEO는 논쟁을 부 추긴다.
평시 CEO는 폭넓은 동의를 얻으려 노력한다. 전시 CEO는 합의 형 성도 좋아하지 않고 의견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다. 
평시 CEO는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를 세운다. 전시 CEO는 적 과 싸우느라 너무 바빠서, 일상이 전투인 노점 상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컨설턴트가 쓴 경영서 따위는 읽을 시간이 없다. 
평시 CEO는 구성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경력 개발을 돕기 위해 직원 교육을 실시한다. 전시 CEO는 직원들이 전쟁에서 전사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교육을 실시한다. 
평시 CEO는 '우리 회사는 업계 1위나 2위가 아닌 사업 부문은 모두 철수한다' 같은 규칙이 있다. 전시 CEO에게는 대개 업계 1위나 2위를 점하는 사업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치스러운 규칙을 지킬 여유가 없다.
- 조직을 평시에서 전시 태세로 전환시키기가 더 쉽다. 가령 평시형 CEO가 생산 지연에 관해 매일 회의를 소집하는 것처럼 특정한 세부사항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회사는 곧바로 그것에 신속하게 반응하고 모두가 전시 태세로 정신을 무장할 것이다.
거꾸로 전시형 조직을 평시 태세로 전환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전시형 CEO는 의사결정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CEO가 최종적인 결정권자가 아니더라도, 결정 권을 가진 사람들은 CEO의 눈치를 살피게끔 돼 있다. 그래서 CEO의 의견이나 CEO의 의중을 짐작해 그것을 지침으로 결정 내린다. 이렇듯 전시 상황에서는 개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문화가 위축된다.
- 나쁜 소식이 있는데 직원들이 알게 되어 동요할까봐 두려울 때는 게티즈버그 연설을 기억하라. 큰 거래가 불발됐든, 분기 실적이 저조 하든 아니면 정리 해고든, 이는 비단 그 사건만이 아니라 당신 회사의 성격을 정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게다가 당신이 얼마나 일을 엉 망으로 망쳤든 적어도 수천 명의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개중에는 신뢰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업들이 있다. 또한 조직 내부의 경쟁을 일부러 부추기는 리더들도 있다. 그들은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키고 최고의 직원이 경쟁에서 이기도록 한다. 이런 역학 관계는 주로 직원 대부분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들에서 만연 해 있다. 벤처캐피털, 금융, 텔레마케팅 영업 등의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런 업무 환경은 절대로 협업적이지 않고 가끔은 '등급을 매긴 후 퇴 출되는 경쟁에 의존하기 때문에 내부적인 신뢰는 아예 꿈도 꿀 수 없 다. 모두는 자신이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슨 말이 든 서슴지 않는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이런 유형의 역학 관계가 회사에는 높은 수익성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면 절대로 그런 조직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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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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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종말

경제 2021. 6. 13. 09:09

- 이런 이론들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규제나 과세가 성장 둔화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에는 연방 차원에서 배당세율과 개인소득세율이 모두 인하됐다. 그렇다면 노동자 수와 기업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정확하게 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모든 주를 통틀어 더욱 엄격한 규제 와 더욱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의 성장률이 더 유리한 환경에서 사업하는 기업보다 낮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캘리포니아 와 매사추세츠는 기업 친화성' 척도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데도 여전 히 가장 생산성이 높은 주에 속하며, 미국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규제의 영향을 다룬 연구 결과를 살펴보 면, 연방 법령으로 규제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해서 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지진 않았고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 하지만 성장 둔화의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생활 수준의 향상이라는 요인이 존재하며, 우리는 성장 둔화를 되돌릴 수 없을뿐더러 되돌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을 늘리고 1인당 GDP 증가율을 잠시나마 끌어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소유한 자동차를 모조리 파괴할 가치가 있을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성장을 증가시키려는 의도에서 인구 고령화 현상을 뒤집으려고 생활 수준과 여 성의 권리를 과거로 되돌리고 싶을까?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 요'라면, 성장 둔화에 분명하게 원인을 제공한 악당은 없다. 성장 둔 화는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한 시장 변화, 소비 패턴의 변화, 가족 형성 을 둘러싼 결정의 변화가 누적되어 나타났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성장률을 약간 더 높일 목적으로 그동안 발생한 모든 변화를 되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성장 둔화를 '성공' 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원했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이다.
- 이런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거의 2세기 동안 모든 선진국에서는 1인당 GDP와 임금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하락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고소득 자의 출산율이 더 낮다. 래리 존스 Lary Jones와 미셸 터틸트 Michele Tertit 는 미국 역사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가족의 소득과 출산율의 관계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과거 인구조사국 데이터를 사용해 1828년에 출생 한 여성 집단을 시작으로 연도별 조사를 이어갔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가족의 소득과 여성이 출산하는 자녀 수는 분명히 반비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의 출산율이 다소 하 락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소득 증가가 출산율을 낮춘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 잔차 성장은 더 많은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의 축적에 기인하지 않은 경제 성장을 뜻한다. 잔차 성장은 공식적인 정의가 없으며, 1인당 실질GDP 성장률에 영향 을 미쳤거나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모든 힘을 포괄한다. 4장의 회계에서 살펴봤듯이, 세기가 바뀔 무렵 벌어진 상황 때문에 결과적으로 잔차 성장률이 하락했다. 하지만 잔차가 측정하는 단 일 경제활동이나 개념이 없으므로 잔차 성장률이 하락한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잔차 성장은 '생산성 증가'라는 친숙한 명칭으 로도 불린다. 자료에 따라서는 총요소 생산성 증 가.total factor productivity growth'나 '다요소 생산성 증가 multifactor productivity growth'라고 불린다. 생산성 증가(지금부터는 일반적인 의미의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는 잔차 성장의 일부도 아니고, 잔차 성장의 추정치도 아니다. 잔차 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동의어다. 
- 상품 생산 기업은 서비스 생산 기업보다 더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상품 생산 비용 은 서비스 생산 비용보다 더 빨리 내린다. 이것은 서비스와 비교할 때 상품의 상대적인 비용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뜻이다. 역으로, 상품과 비교할 때 서비스의 상대적인 비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과 비용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보멀이 얘기한 서비스의 비용 질병은 서비스 대비 상품의 상대적 가격이 더욱 낮아지는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하는 이유는 서비스산업이 지닌 시간과 관심 집약적인 특성 때문이지, 기술 노하우나 적성이 반드시 실패했기 때문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품에서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에 문제가 있거나 경제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상품 생산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 성장 둔화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서비스로의 전환은 21세기에 국한 된 특징이 아니고 1950년 이후, 심지어 그 전부터 진행되어왔다. 이는 서비스(소득 탄력적)와 상품(소득 비탄력적)에 대해 소비자가 장기적인 선호도 차이를 보인다는 보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0년에 들 어서면서 경제활동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고, 이런 변화 때문에 발생한 생산성 증가율 둔화가 마침내 가시화됐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동안 상 품 생산의 생산성을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내구재에 대한 지출 비중이 감소한 것은 더는 소득에서 큰 몫을 지출할 필요가 없도록 매우 싼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됐다. 
- 아기옹과 호윗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들이 보유한 시장 지배력이 혁신에 대해 보상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경쟁자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최적의 지점이 양극단 사이에 있다. 아기옹과 호윗은 니컬러스 블룸, 리처드 블런델 Richard Blundell, 레이철 그리피스 Rachel Grifith와 공저한 논문에서 이런 영향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저자들은 시간 경과에 따라 산업 내에서 혁신의 대명사가 되는 특허 활동을 계산했다. 각 산업에서 마 크업을 측정하는 또 하나의 방법인 산업별 러너 지수Lerner Index도 계산 했다. 저자들은 특허 활동을 마크업과 대조했을 때 분명한 언덕 모양 그래프를 발견했다. 마크업이 매우 낮은(즉,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특허 활동이 매우 적었고, 마크업이 매우 높은(즉, 경쟁이 거의 없는) 산 업에서도 특허 활동은 매우 적었다. 특허 활동이 최고를 기록한 것은 마크업이 중간 수준인 기업들이었다.
- 시장 지배력의 결과: 지금까지 제시한 증거를 살펴보면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1980년 무렵부터 현재까지 상당량 증가했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의 증가에서 성장 둔화까지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하게 성장 회계 관점에서 생각할 때, 마크업이 큰 기업으로 노동과 자본이 이동하 는 것은 생산성 성장에 좋다. 비용에 대비해서 상품이 높은 가치를 지 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업의 순투자율은 하락했고, 이런 현상은 기업의 집중도가 높은 산업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투자 감소가 성장 둔화에 미친 영향은 처음엔 그다지 크지 않았으므로 집중도 증가는 성장 둔화를 약간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업과 개인에게 인센티브를 최대로 제공하는 최적의 지점에서 시장 지배력과 혁신의 관계는 모호하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 이 지나치게 크거나 작아도 혁신과 성장에 해를 끼칠 수 있다.
- 시장 지배력의 증가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시장 지배력이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의 이익을 획득하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GDP에서 노동력 제공자나 물적자본 제공자에게 흘러가는 몫이 줄어들고, 시장 지배력이 창출하 는 경제적 이익의 청구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그 청구인들은 기업 소유주를 뜻했다. 인구통계상 변화와 서비스로의 장 기적 이동이 1인당 실질GDP 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기업이 지닌 분명한 동기는 순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이익은 세 가지 구성 요소, 즉 마크업, 세율, 규모의 상호작용에서 나 온다. 이 책에서 마크업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깊이 있게 다뤘 다. 마크업은 각 생산 단위의 한계비용에 대한 가격을 가리키고, 규모 는 판매할 수 있는 단위 수를 가리킨다. 규모에 마크업을 곱하면 기업 이 창출하는 총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 심지어 월마트처럼 마크업이 작은 기업이라도 규모가 매우 크면 막대한 총이익을 거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크업과 규모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세금이 부과되고, 기업 은 세금을 내고 나서 순이익을 손에 쥔다. 준수 비용이 발생하므로 규 제는 이익에 대한 효과적인 세금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율은 순이익에 중요하지만 마크업과 규모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 세금과 규제가 기업의 순이익에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중요하다. 어떤 기업이라도 세금과 규제가 많은 것보다 적 은 것을 선호할 것이다. 기업들이 세금과 규제를 줄이려고 열심히 로 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소 정책을 뒷받침하는 주장에 따르면 세금과 규제를 줄일 경우 경제 성장률을 자동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시점에서 GDP가 무엇을 측정하는지 생각해보면 유익하다. GDP는 기업의 재무 성과를 합한 것이 아니라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 의 실제 가치를 합한 것이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아메리칸항공이 2011년 말 파산을 신청했다. 그해 순손실이 19억 달러였고, 다음 해에 18억 달러, 그다음 해에도 18억 달 러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항공이 실질GDP에 미치는 영향 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전혀 없다.
실질GDP의 관점에서는 아메리칸항공이 해당 연도에 실어 나른 승객수만 중요하다. 아메리칸항공은 파산 절차가 진행되던 2011부터 2013년까지 연간 약 8,60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그 기간에 엄 청난 적자가 발생하고 있었는데도 수백만 명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 소로 운송하는 서비스는 실질 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 가 됐다. 
이런 사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든 세금을 100퍼센트에 맞 춰야 한다는 것도, 규제가 경제에 대가를 물리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간 이익을 거둘 수 없으면 어떤 기업도 굳이 사업을 운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규제 때문에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면, 어떤 기업도 굳이 규제를 준수하면서 사업을 끌고 나가려 하지 않을 테 고 결국 회사 문을 닫고 말 것이다. 하지만 증거들을 검토해보면 세금 과 규제는 실질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의 능력에 지대한 영 향을 미치지 않았고, 정부 정책 중에서 2000년경 성장 둔화를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다.
- 스포츠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의 등장은 소득 분배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더욱 적절한 원인은 피케티가 대기업 고위 중역을 가리켜 말한 '슈퍼매니저'의 확대였다. 존 바키자Jon Bakija, 애 덤 콜Adam Cole, 브래들리 하임 Bradley T. Heim이 제시한 데이터에서는 슈퍼매니저들의 상대적 중요성이 드러난다. 세 사람은 2005년 개인 세금 신고서를 사용해 상위 소득자 0.1퍼센트의 약 41퍼센트가 비금융 계 기업 중역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18.4퍼센트는 금융 전문가들이다. 상위 0.1퍼센트 중에서 3.1퍼센트만 스포츠 · 미디어. 예술 분야에 속했다. 트레버 아리자, 채닝 프라이, 콜 알드리치 등 소 득 상위 0.1퍼센트에 들어가는 중간급 NBA 선수에게도 20여 명의 CEO, CFO, COO, 헤지펀드 매니저가 붙는다. 이처럼 고위 중역과 금융 전문가에게 돌아가는 소득 증가분은 1993년 이후 상위 0.1퍼센트에게 돌아간 NI 증가분의 3분의 2를 설명한다. 최고 경영진과 금융 전문가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기타 보상(예: 스톡옵 션)은 최고 소득 범위 안에서 임금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불평등이 전 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부추긴다.
- 중국과 성장 둔화를 연결하는 방식이 있는데, 개중에는 타당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 다. 중국이든 멕시코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경험한 단순한 수입 증가는 GDP 수준이나 성장률과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우선 입증하려 한다.
수입이 미국 GDP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하는 흔한 주장은 회계 정체성의 잘못된 해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역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 수입품의 도입과 제조업 등의 현저한 일자리 감소를 연결한 믿 을 만한 연구가 있다. 노동자가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인적자본 스 톡이 축소되거나, 노동자가 저생산성 성장 산업 쪽으로 이동하는 현 상이 가속화하면서 이론상으로 성장 둔화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이 런 현상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미친 영향의 규모와 전반 적인 무역은 성장 둔화를 두드러지게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한 듯하다.
- 미국 제조 산업에 속한 기업과 고용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대중국무역의 영향이 실재하고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 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성장 둔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장기적으로 상품 생산에서 서비스 생산으로 이동하는 중 이었으므로 중국이 주요 수출국으로 부상하지 않았더라도 성장은 둔화했을 것이다. 중국이 이런 이동 속도를 약간 부추기기는 했지만,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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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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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이 온다

사회 2021. 6. 13. 09:07

- 적자생존이란 경쟁이 치열한 시장, 정치, 문화의 무자비함을 손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다윈이나 그 후계자들의 이론을 곡해한다. 진화를 순전히 경쟁 논리로만 본다면, 인간의 사회성 발달이라는 큰 그림을 놓치게 되고 상호 연 결된 하나의 큰 팀으로서의 인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생물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생태계에서 공존한다. 우리로서는 그렇게 광범위한 협력 관계를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생물들을 각자 고립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무 한 그루는 나무 한 그루, 소 한 마리는 소 한 마 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무는 결코 단일한 나무 한 그루가 아니다. 나무는 숲의 작은 일부분이다. 충분히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보면, 살아남기 위한 나무 한 그루의 투쟁은 숲의 더 큰 시스템을 지 탱하기 위한 그 나무의 역할이라는, 더 중요한 이야기와 합쳐진다. 
우리는 또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관계는 수면 아래에서 조용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무들이 서로 소통하는 소리나 그 모습을 쉽사리 듣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건강한 숲에서는 버섯을 비롯한 균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여러 나무들의 근계根系를 서로 이어준다. 이렇게 지하에서 이뤄지는 네트워크 덕분에 나무들은 상호작용할 수 있고 심지어 자원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여름날 키 작은 상록수들은 키 큰 나무들의 그림자에 가려진다. 빛이 닿 지 않아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키 작은 상록수들은 균류를 통해 필요 영양분을 얻는다. 키 큰 나무들은 나눠 줄 만큼 충분한 영양 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진 동료들에게 영양 분을 보내 준다. 겨울이 되면 키 큰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광합성 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가 되면 반대로 햇빛에 노출된 상록수들 이 남는 영양분을 잎이 떨어진 공동체 일원들에게 보내 준다. 또 지하에서 활동하는 균류는 나름대로 약간의 서비스 비용을 받는데, 큰 나무들의 영양분 교환을 도와준 대가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식이다.
그러니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숲속의 나무들이 햇빛을 받 으려고 서로 경쟁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나무들은 햇빛을 받기 위해 서로 협업한다. 전략을 다양화하고 노동의 대가를 공유한다.
또한 나무들은 서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아카시아 나무 의 잎에 기린의 침이 닿으면 나무는 경고성 화학물질을 공기 중에 내뿜는다. 이 화학물질에 반응한 주변의 아카시아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린에게 혐오감을 주는 특별한 물질을 내뿜는다. 진화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마치 단일한 존재의 한 부분처럼 행동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키웠다.
- 인간은 마치 뇌를 공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세 서로 이어진다. 바로 대뇌 변연계 조화 limbic consonance'라는 것 덕분인데, 이 는 상대의 정서 상태에 나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이다. MRI 스캔을 해 보면 엄마와 아기의 뇌는 서로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함을 알 수 있다. 대뇌 변연계 조화는 아직 그 과정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 지만, 행복한 사람 혹은 초조한 사람이 방에 들어왔을 때 방 안 전 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거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의 뇌 상태가 화자話者의 뇌 상태와 같아지는 것 등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때는 여러 개의 신경계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서로 동기화同期化 되고 조응照應한다. 우리는 이런 조화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행 복 호르몬과 신경 조절 과정을 갈망한다. 아이들이 부모 곁에서 잠들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들의 신경계는 부모의 신경 계를 흉내 냄으로써 잠들고 깨는 법을 배운다.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녹음된 웃음소리를 삽입하는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함께 시청하는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 우리도 그 웃음을 흉내 내기 쉽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들의 뇌 상태와 공명共鳴하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화한 현실적인 신체, 화학적 처리 과정 덕 분에 우리는 사회 교류와 화합이 가능하다. 바로 이런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말을 한다는 것은 기도와 식도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적응이었다. 성대를 사용할 때 잘못하면 음식물이 목에 걸려 숨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진화한 덕분에 우리는 성대 주름에서 나오는 소리를 조절하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양화해 언어를 만들 수 있었다.
언어는 더 크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얼마나 대단한 협업이 필요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여러 세대에 걸쳐 그런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짜임새가 달라지고 협업에 대한 믿음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수많은 초기 인류의 조상들 중에서 오직 우리만이 언어를 가 졌고 우리만이 살아남았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누르고 전설 과 같은 승리를 쟁취한 것은 우리가 힘이 더 세고 무기를 가졌고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라,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발견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 어느 쪽이 되었든 사회 분위기는 훼손된다.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 주었던 것이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는다.
실제로 우리가 사회 교류와 철저한 소외 사이를 오가는 방식 과, 그 과정에 다양한 미디어가 이바지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문명의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소통과 교류 메커니즘을 개발한다. 책, 라디 오, 돈, 소셜 미디어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바로 그 매개체가 우리를 갈라놓는 수단이 된다. 책 은 오직 글을 아는 부자들만 접할 수 있고, 라디오는 폭동을 부추 기며, 돈은 은행가들이 독점해서 쌓아 두고, 소셜 미디어는 알고 리즘으로 벽을 쌓아 이용자들을 분리시킨다.
우리가 서로 소통하려고 개발한 미디어나 기술은 인간과는 달리, 사회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다.
- 언어는 인간을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로 데려갔고, 더 크고 훌륭하게 조직된 집단을 형성할 수 있게 했다. 언어는 부족을 하나로 묶고, 분쟁을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으 며,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연장자들이 후대에 자신의 지식을 전수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문명이 중시하는 사회 요소들은 생물학이 스스로를 개선하는 속 도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에는 역효과도 있 었다. 언어가 생기기 전 '거짓말 따위는 없었다. 거짓말에 가장 가까운 행동이라고 해 봤자 과일 한 조각을 숨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말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현실을 호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문자는 우리에게 역사를 기록하고, 시를 남기고, 계약서를 쓰고, 동맹을 맺고, 먼 곳까지 뜻을 전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문자는 시공간을 넘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 매체로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어주었다.
그러나 최초의 문자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주로 힘과 지배력을 휘두르는 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는 메소포타 미아에서 발명된 후 최초 500년간 오직 왕과 사제들이 통제하는 곡물과 노동력을 기록할 때만 쓰였다. 글이 출현한 곳에는 언제나 전쟁과 노예 제도가 따라왔다. 문자는 수많은 혜택을 주었으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문화를 추상적이고 관리적인 문화로 바꾼 것도 문자였다.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유럽 전역에 문자 언어의 접근성과 도 달 범위를 확장시켰고, 사람들이 글을 깨치고 사상이나 감정을 표 현하는 것과 관련해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군주들 은 인쇄기를 엄격히 통제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군주들은 허가되지 않은 인쇄기를 부숴 버리고 소유자를 처형했다. 인쇄기는 아이디어가 넘쳐 나는 새로운 문화를 장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위층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 라디오 역시 그 시작은 개인들을 서로 이어주는 매체였다. 지금 우리가 아마추어 무선통신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휴대용 무 선기가 라디오의 원래 형태였다. 그런데 기업들이 일정 주파수 대 역을 독점하려고 로비를 벌이고 각국 정부가 무선통신을 통제할 방법을 찾으면서, 당초 공동의 공간이었던 라디오는 광고와 선전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 아돌프 히틀러는 새로 등장한 마법의 매체처럼 보이는 라디오. 를 이용해 본인이 전국 어디에나 동시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독일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토록 널리 침투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라디오는 마치 청취자와 진행자가 직접 소통하고 있 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고, 그 덕분에 히틀러는 수백만 명과 새로운 형태의 라포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전국에 7,000만 대 의 확성기를 설치해 그들이 소위 '주문형 정치 politics on dermand'라고 부르는 것을 방송했다. 르완다인들은 1993년까지도 라디오를 이 용해 적대 종족의 위치를 폭로했고, 그 라디오 방송을 들은 친정부 성향의 폭도들은 마체테를 들고 반대 종족을 학살했다.
그 어떤 새로운 매체는 일단 엘리트의 통제하에 들어가면 사 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서로를 향하지 못하고 고위 권력층을 향 하게 된다. 그 결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보다 더 못한 존 재로 인식하면서 이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형태의 폭력 행위 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게 된다.
- 텔레비전 역시 처음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상은 훌륭한 연결 매체이자 교육 매체였다. 그러나 마케팅 심리학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하고 몇 가지 판타지와 함께 특정 제품까지 주입할 방법을 찾아냈다. 텔레비전 프로그래밍' 이란 말 은 채널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시청자를 프로그 래밍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됐다. 이 기발한 장치는 사람들을 사로 잡았고 인간의 숨은 본능까지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가에 옹 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소파에 앉아 스크 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됐다. 집단 내에서 형성되던 라포르는 '대량 수용'으로 대체됐다.
텔레비전은 한편으로는 가족과 소비자 천국을 묘사해 획일 적인 미국 문화를 조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사 람들을 소외시키는 개인주의 정신을 강요했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 마치 드라마 속 캐릭터를 고르듯이, 우리 자신의 정체성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시청자'라는 대중은 이러 한 전제를 기꺼이 받아들인 만큼 그에 따른 대가도 치러야 했다.
- 당초 월드와이드웹www은 연구문서를 찾아내고 하이퍼링크 를 걸기 쉽게 하려는 의도로 고안됐다. 하지만 월드와이드웹의 시 각적인 클릭 중심 인터페이스는 다른 인터넷보다 훨씬 더 텔레비 전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이 점이 기업들의 관심을 끌었다. 월 드와이드웹에 들어갈 때 이용자는 자판을 두드리거나 적극적으 로 사고할 필요가 없다. 그냥 클릭하고 읽으면 되고, 그냥 보고 구 매하면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가상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던 히피나 프로그 래머들로서는 경악할 일이었지만, 웹은 금세 '대화 공간'에서 '카 탈로그'가 됐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 창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개인과 브랜드 사이의 '일대일 마케팅'이 들어섰다. 닷컴붐을 타 고 수천 개의 기업이 물건을 팔러 나섰으나, 모두가 이윤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닷컴 붕괴 사태가 이어졌다.
인터넷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은 승리를 선언했다. 인터 넷은 상업화 세력의 공격에도 살아남았으니, 이제 우리 모두를 서 로 이어준다는 본연의 미션을 재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터넷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언제나 소셜 미디어'일 거라고 공언 했다.
- 소셜 미디어가 공동체라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보는 종류의 고립 현상이 나타났다. 광고주는 (나 중에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개인 맞춤식 뉴스피드를 통해 이용자와 개별적으로 소통했다. 이것도 처음에는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광고주들이 이런 커뮤니티 플랫폼을 금전적으로 보조해 준다면, 그들도 약간은 우리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고 어쩌면 약간의 개인정보까지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우리의 관심에 꼭 맞는 광고를 보여 주려고 열심히 노력까지 한다면 말이다.
사람들이 돈으로는 지불할 수 없거나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이제는 돈 대신 개인정보로 지불하게 됐다. 그런데 그 사이 뭔가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플랫폼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서 로에게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물건 파는 기업들에 연결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더 이상 소셜 미디어의 '고객'이 아니었다. 우리가 '제품'이었다.
- 소셜 미디어 운동의 마지막 변신은 플랫폼들이 이용자를 광고주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기업이 보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퍼붓는 대신, 구전口傳 마케팅의 최신 온라인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것을 '소셜 추천social recommendation'이라고 불렀다. 어떤 기업들은 원하는 콘텐츠나 광고 링크를 사람들이 공유하게 했고, 또 어떤 기업들은 특별히 영향력 있는 이용자들을 찾아내 공짜 제품을 주며 자기네 브랜드를 선전해 달라고 했다.
- 쌍방향성이 매우 높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미디어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해결되지 않은 이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방법처럼 보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밈은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왔어야 할 무언가였다.
문제는 목적이 언제나 해당 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게릴라 미디어 운동가들이 사용하는 상향식 bottom-up” 기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기업과 정치가, 선동가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그들에게 바이럴 미디어란 더 이상 불평등이나 환경 문제를 폭로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반응을 만들어 내는 효과적인 수단일 뿐이다. 그 반응이 무의식적이고, 생각 없고, 잔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논리나 진실은 바이럴 미디어와 무관하다. 밈이 작동하려면 '투쟁도주 반응fight or flight reactions'을 자극해야 하는데, 그런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런 기법은 한 번도 적절했던 적이 없고, 좋은 뜻으로 사용된 적도 없다. 바이러스가 위험한 이유는 뇌에서 사고나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인 대뇌 신피질을 우회하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보 다 원시적인 파충류 뇌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학적으 로 이미 증명된 기후 변화에 대한 밈은 '엘리트들의 음모!' 라는 밈만큼 강렬한 반응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바이럴 공격을 한다고 해서 수해를 입은 지역의 주민들이 상호 부조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는 없다. 반면에 생존자들을 더 피해망상에 빠트려 자기 보호 본능 속으로 몰아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밈을 이용한 캠페인은 포용, 사회적 관계, 차이에 대한 인정이 왜 좋은지를 이해하는 뇌 부분에 호소하지 않는다. 밈을 이용한 캠페인은 포식자인지 먹잇감인지,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죽일 것인지 죽임을 당할 것인지만 생각하는 파충류 뇌에 호소한다.
-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미명 아래 대부분의 기술 혁신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치워버렸다. 산업혁명기가 남긴 진짜 유산은 바로 이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의 유명한 발명품인 요리 운반용 승강기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 승강기를 편리한 기술이라 생각한다. 음식과 음료를 주방에서 식당까지 나를 필요 없이 작은 승강기에 올리고 줄을 당겨 위층으로 보내면 그것들이 마법처럼 나타난다. 하지만 요리 운반용 승강기의 목적은 노력을 절약하는 것과는 무관했다. 그것의 진짜 목적은 노예제라는 흉측한 범죄를 눈에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기술 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해당 기술을 사용했던 방법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산업혁명기는 많은 기계적 혁신을 낳았지만, 그런 혁신이 실제로 생산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만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산업혁명은 그저 인간의 기술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 오늘날 사람들은 마침내 코딩하는 법을 배우라는 권유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프로그래밍은 더 이상 미디어 지형을 좌지 우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개발자들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으나, 그 가동과 배포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즉 클라우드 서버에 대한 접근성에 전적으로 의존 한다. 이 클라우드 서버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각종 장치는 불과 서너 개의 기업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자체는 이들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실제 활동에 대한 위장술에 불과하다.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들이 우리 모두에 관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 가는 그 활동 말이다.
문자나 인쇄술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끝없는 자유가 펼쳐졌다고 믿었다. 우리에게 새로 생긴 능력은 여 전히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똑같은 세력에 의해 철저히 제한된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기껏해야 우리는 나중에 우리의 신세계를 독점할 자들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있을 뿐이다.
- 디지털이 데려온 관심 경제에 산다는 것은 자동화된 각종 조작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다는 뜻이다. 요즘에 많이 이야기하는 '설득형 기술persuasive technology' 이라는 것은 미국의 몇몇 일류 대학에서 개발하고 가르친 설계 원칙으로, 전자상거래 사이트나 소셜 네트워크에서부터 스마트폰과 운동용 손목 밴드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설득형 기술의 목표는 '태도 변화와 습관 형성'을 이루는 것이며, 흔히 이용자가 모르는 채로 혹은 동의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진다.
행동설계이론 behavioral design theory은 사람들이 태도나 의견이 바뀌어 행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본인의 행동에 맞게 태도를 바꾼다. 이 모형에 따르면 우리는 자유의사를 가지고 생각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깝 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조작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형 기술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때 '논리' 라든가 최소한의 정서적 호소'조차 동원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광고나 세일즈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오히려 전시戰時의 심리전이나 교도소 혹은 카지노, 쇼핑몰 등에서 사용하는 시기 조종과 비슷하다. 
- 산업혁명기에 기계장치 시계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 고 공장의 기계가 인간 노동자보다 더 빠르게 일을 해치우면서, 우리는 아주 기계적인 측면에서 스스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 리는 스스로를 시계태엽 우주 안에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인간의 신체도 하나의 기계장치라고 말이다. 우리의 언어에도 서 서히 기계화된 메타포가 나타났다. 기름칠을 해야 한다', 크랭크 업을 한다’, 깊이 판다', '회사를 잘 돌아가게 한다'와 같은 표현 이 그것이다. 일상용어에서조차 점심을 먹는 것을 '연료 공급이 라 부르고, 논리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나사가 빠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을 기계 장치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로서 우리는 효율성과 생산성, 힘과 같은 기계의 가치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더 튼튼한 노동자가 되어 더 효과적으로 작업하려고 했고, 작업 속도나 결과물의 양, 효율 이 효과적인 작업의 기준이 됐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세상이 컴퓨터로 계산되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데이터고, 인간은 프로세서(처 리 장치)다. 우리는 그 논리는 계산이 안 되는데?', 그 친구는 멀티 태스킹을 너무 잘해서 동시에 두 명 이상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니까'라고 말한다.
- 지금의 메카노모피즘 문화는 인간의 독특함이 반영된 것은 무엇이든 지워 버리는 디지털 미학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목소리나 억양에 조금이라도 특이한 점(꺼칠꺼칠함, 흔들림, 공기, 음조 변화)이 있으면 '결함' 이라고 재해석한다. 디지털 미학은 완벽한 정확성을 추구한다. 인체가 실제로 음악을 연주하는 정도의 정확성이 아니라 점수를 표시할 때 사용하는 수학적인 정확성 말이다. 우리는 그런 표기가 음악의 근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 인간의 감정 표현을 기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한 방법이자 다른 사 람이 재현할 수 있게 사용한 기교, 즉 상징체계에 불과하다는 사 실을 망각한다.
인간의 연주가 지각 차원에서 그리고 무의식의 차원에서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데이터의 순수성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전경과 배경이 역전된 것 이다. 인간이나 인간의 기구가 만들어 낸 노이즈를 자율성의 표현 으로 보지 않고 조작이 필요한 샘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프로세싱이나 디지털 노동을 통해 추출과 재포장을 거쳐야 할 원재료 말이다.
인간의 해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참여했다는 흔적은 모두 삭제된다. 그럴 바엔 우리가 차라리 기계라면 좋을 것이다.
- 시장 화폐는 일반인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게 해 주었다. 시장 화폐는 마치 포커 게임을 시작할 때 칩을 나눠 주는 것처럼 아침에 발행해서 교역이 끝날 때 현금으로 바꾸기도 했다. 화폐는 단위별로 빵 한 덩어리나 양배추 하나를 뜻하기도 했는데, 그런 물건을 파는 사람이 쿠폰처럼 사용하면 그날의 거래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빵 가게 주인은 일찍 나가서 빵 한 덩어리에 해당하는 쿠폰들을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산다. 그 쿠폰이 돌고 돌아 다시 빵 가게 주인에게 돌아오면 그는 쿠폰을 빵으로 바꿔 주었다.
무어인들은 곡물 영수증이라는 것도 발명했다. 농부는 곡물 100파운드를 곡물상에 가져와 영수증을 받아간다. 이 영수증에는 10파운드 단위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 농부는 일부를 찢어 그것으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형태의 돈이 시간이 지나면 가치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곡물상은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일부 곡물은 상해서 버려야 했다. 그래서 이 돈은 다들 빨리 사용하려고 했다. 다음 달이면 가치가 떨어질 돈을 들 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경제는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돈이 빠르 게 회전되게끔 설계된 경제였다. 부의 분배가 아주 원활했기 때문 에 많은 소작농들이 새로운 중산층 상인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구 밑에서 일하지 않았고, 일하는 날수도 줄었 으며, 이윤은 더 많아졌고, 이전보다 그리고 먼 후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해졌다.
- 귀족들은 이렇게 평등한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작농들이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영주들은 소작농으로부터 경제적 가 치를 뽑아낼 수 없었다. 부유한 영주들 집안은 수백 년간 한 번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본인들의 몰락과 부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막으려면 사업의 규칙을 바꾸는 수밖 에 없었다.
그들이 생각해 낸 획기적 아이디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독점 허가였다. 누구든지 왕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하면 불법이 됐다. 이 말은 곧 왕이 선별한 구두공이나 포도주상이 아니라면 사업을 그만두고 인가를 받은 누군가의 고용 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독립혁명은 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장악하고 있 던 그런 독점권에 대한 대응이었다. 식민지 주민들이 면화를 재배 하는 것은 자유였으나 그것으로 직물을 짜거나 동인도회사(착취 수준의 가격을 매겼다)가 아닌 곳에 내다 파는 것은 금지되었다. 동 인도회사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싼값으로 사들인 이 면화를 영국 으로 가져가 직물로 만든 다음, 다시 미국으로 신고 와서 그들에 게 팔았다. 이런 독점 허가는 현대적 기업의 조상으로, 일부 기업 이 시장을 장악해 수익을 독점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지금도 그대로다. 또 하나의 획기적 아이디어는 중앙 화폐였다. 시장 화폐는 불법이 됐고, 그것을 썼다가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거래를 하고 싶은 사람은 이자를 주고 중앙 금고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이렇게 하면 돈을 갖고 있던 귀족들은 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재화의 교역을 촉진하는 도구였던 돈이 상업으로부터 경제적 가치를 착취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지역 시장은 붕괴됐다.
계속해서 돈을 빌린 사람은 인가를 받은 대형 독점 회사들뿐 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으려면 어디선가 추가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이 말은 곧 경제가 성장해야 한 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인가를 받은 회사들은 신대륙을 정벌하러 나섰고, 신대륙의 자원을 착취하고 그곳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동력을 착취했다. 회사들의 이런 성장 의무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기업이 투자자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면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회사는 중 앙 화폐의 운영 체계가 계속해서 경제적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통로에 불과하다. 기업이 성장할 때마다 사람과 자원이 있는 진짜 세상으로부터 자본을 독점한 자들에게로 더 많은 돈과 가치가 전달된다. 그래서 이름이 '자본주의'인 것이다.
- 디지털 기업은 착취의 성격을 가진, 그 선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형 상점은 동네에 들어가 동네 가게들을 약화하고 결국에는 그 지역 단독 상점이자 고용주가 된다. 그렇게 해서 그 지역을 독점하고 나면, 이제 가격은 올리면서도 임금은 낮 출 수 있고, 노동자는 파트타임으로 지위를 낮추고, 건강보험 비 용과 저소득자 지원금은 정부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이 업체가 지역 사회에 끼친 효과를 따져 보면 착취적이다. 동네는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진다. 해당 업체는 지역 경제(그 지역의 땅과 노동)에서 돈을 털어 주주에게 전달한다.
디지털 기업도 마찬가지다. 다만 속도는 더 빠르다. 디지털 기업은 택시업계나 출판업계처럼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업계를 골라서 이전 참여자의 대부분을 잘라내고 시스템을 최적 화한다. 그렇게 택시업계의 시스템을 최적화한 택시 서비스 플랫폼은 한 번 이용할 때마다 운전자와 승객 양쪽 모두에게 수수료 를 부과하고, 자동차나 도로, 교통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다 른 주체에게 떠넘긴다. 도서 판매 웹사이트는 저자나 출판사가 지 속 가능한 수입을 올리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단독 구매 자 혹은 수요 독점자로서의 힘을 이용해 양측 모두가 더 적은 노동 대가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그러고 나면 이 최초의 독점사업은 소매업, 영화,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다른 업종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 이런 업체들은 결국 처음에 그들이 의존했던 시장 자체를 파괴해 버린다. 대형 상점은 이렇게 하고 나면 지역 하나를 마감하고 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디지털 업체가 이렇게 할 때는 처음 시장에서 다음 시장으로 분야를 확장한다. 예를 들면 책 시장에서 장난감 시장으로, 다시 모든 소매업으로 확장하거나, 승차 공유 서비스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로, 자율 자 동차로 확장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해당 업체의 실제 상품의 가치는 상승하고, 주가도 함께 올라간다.
주주의 관점에서 이 모형이 가진 문제점은, 결국에는 더 이 상 효과가 없는 때가 온다는 점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부양 효과 에도 불구하고 지난 75년간 기업들의 총자산 대비 이익률은 꾸준 히 감소해 왔다. 지금도 기업들은 시스템에서 돈을 몽땅 다 빨아 들이는 데는 아주 능하지만, 그렇게 빨아들인 자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형편없는 솜씨를 발휘한다. 기업의 덩치는 커지지 만 이익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기업들은 쓰지 않는 돈을 그냥 깔 고 앉아 있다. 그리고 시스템으로부터 현금을 너무나 많이 빼내가서 중앙은행은 돈을 더 많이 찍어 내라는 압력을 받는다. 그렇게 새로 찍어 낸 돈은 은행에 투자되고, 은행은 그 돈을 기업에 빌려주고, 이러한 전체 순환이 다시 반복된다.
디지털 사업은 실물 자산을 주주 가치라는 추상화된 형태로 바꿔 놓는 소프트웨어에 불과하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하키 스틱 모양의 성장 궤도를 그릴 다음번 유니콘 에 투자했다가 망하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 고 있다. 이런 사업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에 가면 성장 곡선이 납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디지털 경제는 번영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자본 주의의 가장 착취적인 측면을 증폭시켰다. 연결성은 참여의 열쇠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아직 갖고 있는, 얼마 되지도 않는 가치 까지 기업들이 모조리 뽑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 디지털 경제는 P2P 시장을 복원하는 대신 부의 분배를 악화할 뿐만아니라 그런 효과를 완화해 줄 '상호 부조'라는 사회적 본능까지 마비시킨다.
디지털 플랫폼은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 지수함수적 역학 구조를 증폭시킨다. 디지털 음악 플랫폼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플랫폼의 구성 방식과 추천 엔진 때문에 지금 그들이 홍보하는 음악가의 수를 따져 보면, 이전에 음반 가게와 FM 라디오 등 다양성을 갖춘 생태계에서 홍보하던 시절보다 오히려 판매되는 음악의 수는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재생하는 음악은 한 두 명의 슈퍼스타뿐이고 나머지 모든 음악가들은 거의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있다.
- 비트코인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컴퓨터 전력은 평균적인 미국 가정이 2년간 사용하는 전력에 맞먹는다. 이게 과연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근본적 해결책일까? 더 훌륭한 거래 내역 원장을 만드는 게?
블록체인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더 빠르고 훌륭한 회계'라고 하는 실무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어쩌면 온라인으로 누군가 의 신분을 검증하는 절차가 좀 더 쉬워질 수도 있다. 은행업계가 궁극적으로 블록체인을 받아들인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를 더 빨리 찾아내서 우리의 자산을 더 빨리 빼내 가기 위한 것 말이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 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기록하고 보상하는 역할을 블록체인이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마치 인간의 활동이 온통 거래뿐이어서 죄다 컴퓨터로 계산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기술이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더 많은 기술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공유 자산은 승자가 독식하는 경제가 아니라 '모두가 승자' 인 경제다. 공동 소유권은 공동의 책임을 일깨우고, 사업 활동에 도 장기적 관점을 갖게 해 준다. 그 무엇도 '다른' 참가자에게 떠 넘길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한 우물을 쓰는 관계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업 활동이 다른 시장 참가자에게 피해를 준다면 시장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일이 된다. 자본주의의 신화에 도취된 사람들에게는 이게 이해하기 힘든 개념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가 대변貨邊’과 ‘차변借邊의 양쪽 칸으로 이루어진 대 차대조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돈이 빠져나간 사람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제로섬 관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화폐의 중앙 독점이 낳은 산물이다. 돈을 반드시 어느 사설 금고에서만 빌릴 수 있고 빌린 후 에는 이자를 붙여 갚아야 한다면, 그렇게 경쟁적이고 안타까운 희 소성 모형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빌린 것보다 많은 돈을 갚아야 하므로 차액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취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제로섬의 전제다. 하지만 경제가 꼭 그런 식으로 운영될 필요는 없다.
부채 기반의 금융이 가진 이런 파괴력은 중앙 화폐보다 더 오래되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냐면 성경에서 경계하라고 말했을 정도다. 파라오에게 풍년에 곡식을 저장해 두면 흉년에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사람은 요셉이었다. 파라오의 고용인이 된 사람들은 결국 파라오의 노예가 됐고, 400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은 포로 상태에서 풀려날 방안과 빚쟁이식 사고방식에 서 벗어날 방법을 알아냈다. 탈출 후에도 히브리인들은 사막에서 한 세대를 보낸 후에야 그들에게 쏟아진 양식 '만나'를 쌓아 두지않고 서로 공유하면서 향후에도 '만나'가 계속 생길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무언가가 부족한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실제로 그것이 부족해질 것이다.
- 그들이 입맛대로 짜 맞춘 인류 역사에 따르면, 모든 게 구제 불능으로 끔직해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 냈다. 그들은 1894년의 말똥 위기 사태를 자주 언급한다. 당시 영국과 미국 사람들은 교통수단으로 쓰던 말 들이 싼 똥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가 등장 해 도로에 허리 높이까지 말똥이 쌓이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우리를 마차가 야기한 문제에서 구해 주었듯이, 새로운 기술 혁신이 나타나 우리를 자동차로부터 구해 줄 것이다.
이런 설명의 문제점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은 상업용 교통수단으로 채택됐고, 전차에 탄 사람들은 새로 나타난 거슬리는 자동차와 도로를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게 만드는 데는 50년간의 홍보 활동과 로비, 도시 재계획이 필요했다. 게다가 만약 자동차가 정말로 어느 면에서 도로를 더 깨끗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환경 훼손으로 인한 비용과 석유 매장량 확보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남들 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도 알고 있다. 순전히 양적인 측면에서 측정한 사회 진보를 찬양하는 과학 자가 너무나 많고, 그중에는 성장에 집착하는 기업들이 자금을 제 공한 경우도 많다. 그들은 기대 수명이 늘었다거나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줄었다는 것을 이유로 우리가 발전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것도 그 자체로 훌륭한 발전이지만, 문제는 그런 것들이 현대 자본주의가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마치 서구의 일부 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고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게 서구 모델의 우월함을 증명하거나 성장 추구의 이점을 반박 불가능하게 증명하는 일인 것처럼 거론되듯이 말이다.
-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 결코 부채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현 실이 결코 정보가 아닌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컴퓨터가 아니다. 지능은 뇌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고 현실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 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부릴 인간의 의식이 없다면 두 가지 모두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을 단순한 처리 능 력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몇 킬로그램을 들 수 있느냐로 인간의 몸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계산 속도는 슈퍼컴퓨터와 겨룰 수 없고, 우리는 결코 크레인만큼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인간의 유용성을 훨씬 능가한다. 일과 관련된 지표 하나를 개선하자고 인간에게 기술을 개입시키거나 기술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더 중요한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은 의식 자체다.
-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의식은 미세소관微細小官, microtubule 이라고 하는 뇌의 아주 작은 구조물 내에서 계산되지 않는 양자 상 태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미세소관은 수십억 개가 있고, 그 하나 하나마다 진동하는 수많은 활동 부위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컴퓨터 칩을 이용하는 기계가 있다고 해도 인간의 뇌 하나의 복잡성 앞에서는 빛을 잃을 것이다. 뇌는 가능한 조합이 많아도 너무 많다.
- 예술은 우리를 참신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접근법과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종종 낯설고 불편한 심경을 유도한다. 예술은 우리를 잠들게 하는 게 아니라 흔들어 깨운다. 자칫 잊힐 수 있는 인간다움에 관해 무언가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 빠진 부분을 뭐라고 꼬집어 말하거나 즉각 관찰하거나 알고리즘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만, 이름을 붙이거나 묘사하거나 해결하기 전에도 그것은 분명히 거기에 있다.
그것은 살아 있고, 역설적인, 팀 휴먼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 우리는 일찍부터 남들과 돈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 말리고 교육받았다. 개인의 연봉이나 통장 잔고는 길병 이력만큼이나 민감한 사생활로 간주된다. 왜일까? 이 습관의 뿌리를 찾르면 근원에는 소작농들의 신분 상승이 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부상 중인 중산층보다 앞서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신분을 나타내야 했다. 이를테면 고귀한 출생 신분 같은 것 말이다. 부르주아의 옷이나 인테리어 스타일을 따라 갈 수 없었던 귀족들은 덜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수백 년 간 이어져 온 허례허식의 삶이 역전되는 과정에서 이제는 부를 과시하는 것보다 숨기는 게 더 세련된 행동이 된 것이다.
지금도 누구에게 얼마나 버냐고 묻는 것은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상황에 따라 너무 적게 버는 게 창피할 때도 있고, 너무 많이 버는 게 수치일 때도 있다. 그러나 부자인 것 혹은 가난한 것 을 숨기는 사회 관습은 서로의 감정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상사의 지배력을 보호하는 것과 더 관련이 있다.
- 상사가 내 연봉을 올려 주려면 나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말했다가는 다른 사람들 도 모두 똑같이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비밀을 유지한다면 나는 경영진과 공모 관계가 된다. 학대를 당했지만 사탕을 받고 입을 다물기로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한 셈이다. 이때의 뇌물은 수치심에 기초한 계약이 된다. 이 계약이 깨지는 것은 오직 피해자가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 똑같은 학대를 겪은 사람을 찾아냈을 때다. 그리고 진짜 힘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폭로할 준비가 되어, 학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동으로 발전했을 때다.
- 마찬가지로 조합에 힘이 생기는 것은 단순히 단체 교섭력 때문이 아니라 조합의 결성이 만들어 내는 집단 감수성 덕분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놓고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게 만들려고 했던 경 영진의 노력은 노동자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 수포로 돌 아간다. 택시 애플리케이션이나 온라인 심부름 서비스 플랫폼에 노동자들끼리 서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대화창 기능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화는 결속을 낳고, 결속은 불만을 낳는다.'

종교, 사이비집단, 정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모두 똑같은 술책으로 구성원들을 장악한다. 개인의 비밀이나 성적 취향, 정체 성 문제 등을 알아낸 다음, 그것을 빌미로 구성원을 협박하는 것 이다. 스타 배우들이 사이비집단을 빠져나오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하는 이유는 폭로가 두렵기 때문이다. 사이비집단 중에는 타깃으 로 삼은 사람의 가장 사적이고 수치스러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도 한때 교회가 부유한 교구민을 협박하거나 가난한 교구민에게 수치심 을 일으켜 착취에 순종하게 만들 때 사용했던 고해성사실의 업그 레이된 버전에 불과하다.
- 업보나 환생을 믿었다면 자신이 한 행동의 파급효과를 겁내 지 않고 그런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 든 것은 나에게 되돌아오므로 아무것도 남에게 떠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환생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내가 오늘 피해를 준 사람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신의 개입을 믿으면서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롭게 자연 을 파괴하고 하늘의 구조를 기다리게 됐다.
시간이 순환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세상의 종말과 같은 정 도를 벗어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순간은 떠올릴 수 없다. 모든 것은 그냥 존재하고, 늘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진보 따위는 없다. 계절과 순환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유대교 이전의 많은 종교가 인간이 하는 일 중에 완전히 처음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 종교들은, 인간의 행위는 원형이 따로 있는 어떤 행동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물건을 만들든, 그게 중요성을 띠려면 현실 속에 울림을 만들어 내야 했다. 행동이 의미를 갖는 것은 신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사 랑을 나눌 때마다 사람들은 신들의 결합이라는 원형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거나 세운 것은 모두 신이 가진 창의성의 메아리에 불과했다.
현대성이라는 그물에 걸려든 사람들에게는 진보를 강조하지 않는 이런 얘기가 아무 목적 없는 따분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 다. 애당초 독창성도, 저자라는 개념도, 저작권도, 특허권도 없다. 아무 방향성이 없다.
그러나 방향성이 없더라도 이게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천연 자원을 모두 쓰레기로 바꿔 버리는 일방향 흐름보다는 말이다. 그런 일방향 흐름은 자연과 존재의 재생 원칙에 어긋난다. 사람들은 원래 순환을 믿었다. 일방향을 믿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 농경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전조였다. 농부들은 땅 이 내놓는 것을 채집하는 게 아니라 땅을 갈고 원하는 작물을 키웠다. 농경은 수확을 자연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업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 아이러니를 수천 년간 알고 있었다. 성경을 보면 카인이 스스로 키우고 수확한 곡식을 제물'로 바치려 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양치기 아벨은 제물로 바치는 동물을 자신이 만들지 않았다고 겸손히 인정했다. 카인은 작물을 재배했으나 오만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런 신화 속 교훈을 알면서도 우리는 농경의 독점 지향성을 떨쳐내지 못했다. 중세가 되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 럽의 공유지까지도 왕의 인가를 받은 독점권자들이 울타리를 쳤 다. 농경이 지닌 최악의 폐단은 증폭되었다. 사유화된 농장을 기 초로 세워진 사회는 통제와 착취, 소유를 중시하게 됐고, 진정한 효율성과 인간의 건강, 환경의 지속가능성까지 희생시켰다.
- 농경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권력 을 축적하는 수단이 됐다. 미국 식민지의 공장식 면화 농장은 당 시 큰 돈벌이가 됐던 노예무역을 정당화했다. 오늘날 공장식 농업 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주로 화학회사, 농약회사, 생명공학회 사의 주주들이다. 공장식 농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기농 농사 는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규모를 키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 한두 해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수십 년간의 화학제품 남용으로 파괴된 토양이 건강을 회복할 동안 말이다. 생물다양성 을 가진 유기농 농장을 늘리는 것은 부자들만을 위한 사치가 아 니다. 그것은 지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길이다.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 있다. 바로 공장식 농업은 소규모 유기농 농업에 비해 땅에서 나는 식품의 양도 적고, 영양가도 적으며, 효율성도 떨어 지고,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환경 파괴는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공장식 농업이 잘나가는 이유는 진짜 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공장식 농업은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는 질병을 낳는다. 직접적으로는 오염된 식품과 가축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영양 부족과 비만, 당뇨병을 통해서 말이다. 한편 패스트푸드 및 식료품 업계는 운송비를 공공도로 체계에 떠넘기고, 공급자 역할을 해 줄 나라들의 정복을 군대에 맡긴다. 경쟁에 반하는 보조금까지 정부로부터 받아가면서 말이다. 국제연합UN과 세계은행에서 실시한 연구 조사는 유전 공학이 전 세계 식량 공급에 조금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예언자는 “히네니Hineni"라고 대답한다. “여기 있어요”라는 뜻이다. 사람이 왜 하나님에게 여기 있다고 답해야 했는지에 관해 학자들은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 다. 분명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심을 알았을 텐데 말이다.
“히네니”를 외치는 진짜 목적은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어나 기꺼이 위대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찾아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여기 있어요.
이제는 우리가 인류를 위해 일어설 때다.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팀 휴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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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 자신을 살리는 글쓰기를 하려면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둑으로 치면 복기와 같은 과제인 셈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치유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거창한 목적보다는 우선 자신을 깨우치고 치유하는데부터 출발해야 한다.
- 여름이 더워도 손을 떼지 않고 긴 겨울밤에도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 제자로서 경(經)ㆍ사(史)를 고열(考閱)하는 자가 수인(數人)이며, 입으로 부르면 나는 듯이 받아쓰는 자가 3인이요, 항상 번갈아가며 초고(草稿)를 다듬고 정서하는 자가 수삼인이며, 옆에서 도와 책지(冊紙)를 가다듬고 책을 꾸미며 바로잡아 장황(粧蹟)하는 자가 3~4인이었다. 무릇 한 책을 저술함에는 먼저 그 자료들을 수집하여 서로 대비하고 서로 참고하여 완색하며 빗질하듯 정밀하게 골라 배열하였다.
'사암선생연보'에는 다산이 어떤 저술과정을 거쳤는지 그 실 상이 기록되어 있다. 집필의 시작인 자료 수집에서부터 마지막 제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자료수집에 있어서 대비하며 참고하며 완색하며 빗질하듯 정밀하게 골라 배열하였다는 대목에서 그의 기록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다산이 두 아들에게 경서를 먼저 읽으라고 한 것은 폐족이 된 집안으로 인해 희망 없이 살아갈 것이 염려된 것도 있지만, 경학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방안, 즉 삶의 철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서였다.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듯한 옷을 입고 죽을 때까지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린다. 한 상자의 책도 전할 것이 없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가장 경박한 남자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로 여기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고담(古談)이라고 한다. 맹자는 대체(大體)를 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저들이 소인됨을 즐거이 여기는데, 나 또한 어찌할 것인가?
'또 정수칠(丁修七)에게 주는 말'의 일부이다. 정수칠(丁修七,1768~?)은 장흥 반산(盤山)에 살던 이로 다산의 먼 집안사람이기도 하고 제자이다. 이 글은 두 아들에게 경학을 공부하라는 당부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고, 대체마음을 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몸을 기르는 이는 소인이 된다고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이며 그 시작은 경학이라는 것이다.
- 사신으로 연경에 가는 교리(校理) 한치응(韓致應)을 전송하는 서(送韓校理致應使)]에서 “나의 소견으로 살펴보면, 그 이른바 '중국'이란 것이 나는 그것이 중앙(中]'이 되는 까닭을 모르겠으며, 이른바 '동국'이란 것도 나는 그것이 '동쪽'이 되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른바 '중국'이란 무엇을 두고 일컫는 것인가. 요순우탕(堯舜禹湯)의 정치가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고, 공자·안자(顔子)、자사(子思)ㆍ맹자의 학문이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는데 오늘날 중국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성인의 정치 와 성인의 학문 같은 것은 동국이 이미 얻어서 옮겨왔는데, 다 시 멀리에서 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같은 글에서 다산은 성인(聖人)들의 다스림이나 성인들의 학 문이 우리나라에서 이미 다 얻어내어 옮겨 놓아버렸으니 굳이 중국을 치켜세울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산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양반사대부들이 우리나라의 문헌과 역사는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기 위해 맹목적 으로 중국의 고사와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큰 병통이고 비루한 문풍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역사서만 한정해서 읽으라고 하지는 않았 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다만 우리를 중심으로 놓지 않고 중국에만 의존하려는 사고방식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 모름지기 실용적인 학문에 마음을 써서 옛사람들의 경제(經濟)에 관한 서적을 즐겨 읽고서 마음속에 항상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모든 사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둔 뒤에야 비로소 독서하는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두 아들에게 부침(壽二兒]'이라는 글에서 다산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었다면 다음은 경제에 관한 서적 을 읽으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산의 입장에서는 조선 사회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실제 먹고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 다산시문집 오학론2(伍學論二)'의 내용 중 일부이다. 정독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책을 정독한다는 것은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백하게 분변하고, 독실하게 실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 책을 읽을 때 주관과 판단력이 생기면 취사선택의 안목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책에서 무엇을 뽑아 기록할지 알게 된다. 다산은 “초서(書)의 요지는, 무릇 한 종류의 책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로서 〈소학(小學)〉에 실려 있지는 않으나 〈소학>을 이을 만한 것이 있으면 뽑고, 모든 경설(經說)에 새로운 것으로서 전거(無據)가 있는 것을 뽑고, 자학(字學) · 운학(韻學) 같은 종류는 10에서 1만을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산이 수많은 저작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서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은 구절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하고, 그런 초서의 기록들은 모아 두었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지 않겠는가.
- 그 중에서 가려 뽑는 방법을 너의 형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었으니, 이번 여름에 부디 너의 형제들이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힘을 쏟아서 이 일을 끝내도록 하여라. 무릇 초서(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절목을 세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一貫)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 놓은 규모와 절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기록하여야 득력(得力)할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의 길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생각의 길이 열리고 글이 되는 것이다.
사의재(四宜齋)라는 것은 내가 강진(康津)에 귀양 가서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 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 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고 한 다. 마땅하다]라는 것은 의롭다]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바 학업이 무너져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기 논쟁은 세상이 마치도록 서로 다투어도 끝이 없을 것이니 인생에 일이 많은데 그대와 나는 이를 할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당대의 성리학이 탁상공론에 불과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비판했다. 이기논쟁이 요구되는 때가 있었다면 현재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학문의 의미가 그 학문을 키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효용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 다산은 시를 뜻이라고 했는데, 뜻이 저속하거나 편협하면 아무리 청고하고 달통한 말로 표현하더라도 그 뜻이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시를 하나의 수행으로 여기는 것 같다.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걸러내려는 것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특이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서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맑고 투명한 두보의 경지는 타고난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을까.'
- '연아에게 부침(壽淵兒]'이라는 글에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미운 것을 밉다하며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즉 현실을 외면하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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